[대선후보인터뷰]권영길 "軍후방 전력중복…20만명 줄여도돼"

  • 입력 2002년 11월 22일 17시 22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진보 대 보수의 정치구도를 구축해 2004년 총선에서 5~10석을 차지하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 서영수기자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진보 대 보수의 정치구도를 구축해 2004년 총선에서 5~10석을 차지하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 서영수기자
《본보는 21일 대선후보 특별 연쇄 인터뷰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대통령후보를 만났다. 인터뷰는 이날 오전 8시반부터 10시까지 서울 여의도 민노당 당사 9층 후보실에서 진행됐다. 후보실은 세 평 남짓 됐고 인터뷰 내내 출입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당측 배석자는 없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끝까지 선전해 한국정치를 진보 대 보수 구도로 바꾸고, 2004년 총선에서 진보세력의 중심부대를 형성하겠다”고 밝혔다.》

-군복무 기간을 18개월로, 병력을 20만명 감축하면 전력이 크게 약화되지 않겠나.

“오히려 전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군 감축이다. 후방에는 육해공군이 각각 병참부대를 갖고 있는 등 전력 중첩이 많아 정리할 필요가 있다. 20만명을 줄이고 불필요한 전력증강사업을 폐지하면 국방예산 6조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추산이다. 북한의 군축도 이끌어낼 수 있다.”

-북한이 군축에 응한다는 논리적 근거는 뭔가.

“91년에 남북이 군축협상을 진행했는데, 합의까지 거의 갔다가 핵문제를 둘러싸고 무산됐다. 최근 북측은 50만명을 감축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지 않았나.”

-군 내부를 설득할 자신이 있나.

“우리 군은 원래 간부 위주 체제가 아닌데, 지금은 간부 위주로 돼 가고 있다. 부사단장은 영관급이었는데 지금은 장군이고, 대부분의 사단에 부사단장이 2명이나 있다. 그들의 반발은 우려되지만 절대 다수 군인과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대선 목표는 뭔가.

“진보 대 보수 구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특히 농촌지역 활동가를 길러야 한다. 민노당이 농촌에서는 기반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후보끼리 연대할 생각은 없나.

“사회당과 연대를 논의할 것이다. 한국노총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며 민주사회당을 창당했으나 자연적으로 하나가 될 것이다. 한국노총은 제1의 연대 대상이다.”

-미국 유럽 등을 보면 진보당과 보수당의 정강 정책이 점차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 노선을 다소 오른쪽으로 옮길 의향은 없나.

“유럽에선 선거 후 공동정부를 구성하면서 정책에 대한 완충 지점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그러나 우리는 진보정치가 확립도 돼 있지 않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진보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 정책은 250여명의 교수들이 1년여 동안 노력해서 얻은 것이다.”

우리 현실에서 성장 없는 분배는 곤란한 것 아닌가.

성장 없는 분배란 있을 수 없지만, 분배 없는 성장도 불가능하다. 민노당은 분배를 통한 성장을 이루겠다. 60년대부터 우린 성장제일주의 정책을 펴 왔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빈부격차가 가장 심하다. 노동자의 경영참여가 확대돼야 한다.”

-진보가 왜 보수보다 더 우위라고 생각하는가.

“진보에 영원한 것은 평등과 정의다. 그런 점에서 진보가 우위에 있다. 부정부패는 집권 보수층이 저질러 놓은 것이다. 그것을 혁파할 수 있는 것은 진보정당밖에 없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더 많은 분배를 요구하면 더 많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불공정한 분배를 받을 수도 있다.

“절대다수 노동자들의 생활기반 구축을 위한 국가 차원의 분배가 중요하다. 재벌에 대해 상속세와 증여세를 제대로 매기고 고소득자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 사회적 임금을 확보하고 사회보장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선진국의 조세부담률은 국내총생산(GDP)의 30∼53%인 데 반해 우린 20%에 불과하다.”

-진보에도 ‘먹물 진보’와 ‘민중 진보’가 있는데, 권 후보는 먹물 진보가 아닌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먹물 진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미 다 보수진영으로 갔다. 남아있는 사람은 먹물 진보가 아니다.”

-자녀의 해외유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등록금 면제받고 장학금 받으면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노동운동하겠다는 게 무슨 잘못인가. 부자만 유학 간다는 사회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선거에서 잘 안되면 다시 거리로 나설 것인가.

“현재의 지지율로도 2004년 17대 총선에서 5∼10명의 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부유세에 대해 조세저항이 우려되는데….

“토지와 건물, 주식, 예금, 골프회원권처럼 드러나 있는 총자산이 과세표준 10억원 이상, 시가로는 30억원 이상인 사람에 대해 누진율을 적용해 세금을 부과해서 한 해에 11조원을 걷겠다. 과세 대상자는 전체 인구의 1%도 안 된다.”

-부유세를 어디에 쓰나.

“고교 무상교육은 1조5000억원(이미 정부가 부담하는 금액을 제외하고 정부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금액)이면 가능하다. 여기에 대학 등록금을 면제하는 데 10조2000억원 정도 든다. 부유세 재원으로 가능하다.”

-공무원노조의 노동3권 보장 공약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적지 않다.

“공무원사회가 부패집단으로 인식돼 있어 문제이지만 대국민 봉사기관으로 변한다면 나아질 것이다. 공무원 수도 늘어나야 한다.”

-과거 팩스나 컴퓨터도 없을 때보다 공무원 수가 늘어난 것은 업무 비효율 아닌가. 수는 줄이고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전문가들이 많다.

“공무원 사회가 철저히 정화되고, 국민이 찾아오는 행정에서 공무원이 국민을 찾아가는 행정으로 변하면 늘어나도 좋지 않겠나.”

-본격적인 검증대에 선다면, 뭐 꺼림칙한 거 없나.

“윤동주 시인의 서시 한 구절로 답을 대신하겠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는….”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봤는데 개인적 취미인가 여성 배려인가.

“어려서부터 자취를 하다보니 요리를 잘 하게 됐다. 생선찌개 된장찌개를 잘 한다. 가사노동을 분담해야 한다는 생각 이전에, 자연스럽게 내가 먹는 것은 내가 한다는 차원이다.”

-여기 올 때 타고 온 택시의 운전사가 ‘권영길도 대통령이 되고 나면 달라지지 않을 자신이 있겠느냐’고 꼭 물어봐 달라고 하더라.

“민주노동당의 공직자 후보는 당원의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에 의해 선출되고, 당원의 뜻을 저버리는 활동을 하면 즉각 탄핵된다. 국민 이전에 당원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정리〓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네티즌 이게 궁금해요▼

네티즌들은 권영길 후보의 국방 및 교육정책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군 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고 수학능력시험을 폐지하겠다는 등 다른 후보와는 확실히 차별되는 공약을 내놓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동아일보의 인터넷신문인 동아닷컴(www.donga.com)은 ‘권영길 후보에게 가장 묻고 싶은 질문’을 공모해 네티즌 대신 질문을 던졌다.

권 후보는 “70만명인 군인을 50만명으로 줄이면 공급과 수요 문제 때문에 복무기간은 자연히 18개월로 줄어든다”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복무기간이 14개월이고 독일은 병력이 13만명밖에 안 되지만 우리보다 약하지 않으므로 전력약화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일각의 우려를 불식했다.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와 관련해 “개인 의견이지만, 그들을 군 복무보다 더 긴 기간 농업 부문에서 일하도록 한다면 붕괴된 농촌도 살리고 병역 형평성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입시 위주의 교육을 없애 대학에 들어가기는 쉽되 졸업하기는 어렵게 해야 한다”며 “대학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대학 내에 있는데도 이제까지는 고교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했기 때문에 잘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수능 폐지, 대학자격시험 도입 △전국 국공립대 통폐합 △집권 첫해 고교 무상교육, 임기 내 대학 무상교육 실현을 공약했다.

▼"지지율 매우 낮은데…" "유권자 死票 심리탓"▼

권영길 후보는 ‘6·13지방선거에서 민노당이 얻은 8.1%의 득표율에 비해 현재 여론조사 지지율이 매우 낮다’는 지적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자신의 개인 경쟁력이 약해 당 지지층마저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일각의 비판을 의식한 듯했다.

권 후보는 낮은 지지도의 원인을 두 가지로 분석했다. 지역주의 선거문화와 사표(死票) 방지심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대선에서 지역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있지만 사표 방지심리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고 전망했다.

권 후보는 또 “대선에서는 사표 심리가 강하게 작용해 왔고 97년 대선에서도 그 때문에 피해를 봤지만 이번에는 다르다”며 “‘권영길에게 찍는 표는 사표가 아니라 의미있는 표다’고 하는 얘기들을 97년과는 비교도 안되게 많이 듣는다”고 자신했다.

권 후보는 “만약 노무현(盧武鉉) 정몽준(鄭夢準) 후보가 단일화를 이루어 박빙의 선거전이 된다면 한나라당은 영남 정서에 집중적으로 호소하고 상대방도 지역주의에 호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며 “지역주의가 청산 대상 제1호다”고 강조했다. 권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선전해야 진보진영의 싹을 틔울 수 있다. 노 후보는 개혁후보도 아니고 진보후보도 아니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도 사표 방지 심리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는 “민노당이 빨간 띠나 구호, 만장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생래적인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다른 직종의 예를 들어 문제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작년 의약분업 파동 때 보니까 최고의 고소득자로 평가받는 의사들도 붉은 머리띠를 매고 있더라”며 “누구나 다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인터뷰팀▼

심규선 정치부장

고승철 경제부장

정동우 사회1부장

오명철 문화부장

김지완 동아닷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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