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탈북자 외교’ 완패…中에 사과요구 안먹혀

  • 입력 2002년 5월 22일 18시 09분


곤혹스러운 日외상 - 도쿄AP연합
곤혹스러운 日외상 - 도쿄AP연합
8일 중국의 선양(瀋陽) 일본 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하러 들어갔다가 중국 무장경찰에 연행된 장길수군 친척 5명이 23일 오전 한국에 도착함으로써 사건은 2주일만에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 사건은 중국과 일본 정부 간의 외교마찰을 일으키고 중국 경찰이 무자비하게 탈북자를 끌어내는 장면과 일본 외교관의 방관자적 태도가 비디오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짐으로써 큰 파문을 일으켰다.

중국과 일본의 외교관계는 당분간 냉각될 전망. 일본은 중국이 빈협약을 위반했다며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했으나 중국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거부했다. 나아가 중국은 일본 측에 사과요구를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탈북자가 출국하기 전 신원조사와 망명의사 확인작업에 참여함으로써 체면을 유지하려고 했으나 중국은 “일본과는 관계없는 문제”라며 이마저 거부했다. 일본은 결국 체면을 구긴 상태에서 “인도적인 배려를 우선한다”며 “빨리 제3국으로 출국시켜 달라”고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탈북자의 필리핀 출국을 21일 밤 일본 정부 측에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중국이 일본의 요구를 들어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일본으로서는 체면회복을 위해 중국 측에 ‘빈협약 위반관계를 규명하자’고 계속해서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양국 간의 마찰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국 모두 이 문제가 계속 지연되는 것은 원치않고 있다는 점에서 9월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적당히 덮어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본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외교관의 자질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또 난민이나 망명자에 대한 대처방침을 확실히 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도적인 문제를 너무나 외면한다는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이 얼마만큼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할지는 미지수다.

한편 중국의 외교소식통은 탈북자 사건을 둘러싼 중일 외교분쟁이 사실상 일본의 완패로 끝난 데 대해 “일본 외교가 과거의 정교한 맛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이 사건 발생 직후부터 여론에 휘말려 섣부른 대응을 하는 바람에 수습이 불가능한 국면을 자초했다는 것. 중국은 국제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데도 5일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12일에야 ‘일본 영사의 동의 하에 총영사관에서 탈북자들을 데려 나왔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등 특유의 우보(牛步)전술을 구사해 사태를 역전시켰다는 것이다.

또 다른 소식통은 “중국은 탈북자들의 잇단 기획 망명에도 불구하고 ‘난민지위를 인정하지는 않되 국제법과 국내법,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처리할 것’이라는 원칙을 일관되게 고수했다”면서 “탈북자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제고될 수 있는 기회였으나 중일 외교갈등으로 희석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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