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이날 핀란드를 방문 중인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가시적 국정쇄신’ 요구에 대해 “총재직 사퇴에 모든 것이 포함돼 있으며 총재직 사퇴 그 자체가 가장 가시적 조치”라고 반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김 대통령의 ‘당적 유지’ 천명이 여권 내부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대통령의 이번 언급은 자신이 만든 민주당에 대한 애정이 여전하다는 의사 표현인 동시에 당내 대선주자들의 ‘DJ 밟고 가기’ 움직임에 대한 경고 메시지도 담고 있는 것 아니냐”고 풀이했다.
김 대통령은 회견에서 1년여 남은 임기 내에 추진할 대북정책 구상의 일단을 내비치기도 했다. 특히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답방 가능성에 대해 “단언할 수 없다”고 말한 대목은 몇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김 대통령은 우선 미국의 대(對)테러 전쟁 이후 조성된 국제환경의 변화와 6차 장관급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대남 비난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당분간은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김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를 낮출 필요성을 느낀 듯하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대북 포용정책은 일관되게 추진하겠지만 김 위원장의 답방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한 실망감을 나타냄으로써 우회적으로 김 위원장의 답방을 촉구한 측면도 없지 않다.
결국 김 대통령은 대북정책에 있어서 전술적인 ‘일보 후퇴’를 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철희·김영식기자>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