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총재직 사퇴]권력공백 '국정 아노미' 초래

  • 입력 2001년 11월 8일 18시 39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직을 사퇴함으로써 향후 정국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시계(視界) 불투명’의 상황에 접어들었다.

특히 김영삼(金泳三) 노태우(盧泰愚)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이 권력공백을 우려해 차기 대선후보 선출 이후나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총재직을 사퇴하거나 이양했던 점에 비춰 임기가 1년3개월여나 남은 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는 정치권에서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 대통령은 ‘국정 전념’이라는 표현으로 총재직 사퇴의 당위성을 설명했지만 권력의 공백이 초래될 수 있는 국정 전반의 ‘아노미 현상’을 향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전망이나 대책은 뚜렷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또 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가 당 안팎의 ‘외우내환(外憂內患)’에 따른 피동적 선택이었다는 점에서는 전직 대통령들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튼 정치권은 대통령의 집권당 총재직 사퇴로 본격적인 대권 경쟁 국면에 들어서게 됐다. 특히 여당은 ‘친(親) 이인제파’와 ‘반(反) 이인제파’ 및 ‘독자노선파’로 삼분되면서 당장 당권이 걸린 전당대회 개최 시기를 놓고 일대 힘겨루기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이 민주당의 대권 경쟁에 끝까지 초연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직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인지가 앞으로 정치권의 관심사라 할 수 있다. 또한 대권 경쟁이 격화돼 민주당이 분열 위기에 직면할 경우 김 대통령이 ‘최후의 조정자’로 나서게 될지도 관심거리다.

만약 민주당이 분열될 경우엔 정계개편을 촉발함으로써 민주-한나라당간 양자(兩者)구도가 아닌 다자(多者)대결 구도를 태동시킬 가능성도 있다.

여야 개혁파 중진들의 모임인 ‘화해와 전진포럼’이나 재야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개혁신당’ 움직임이 관심을 끌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 대통령의 ‘2선 후퇴’가 갖는 가장 큰 상징적 의미는 30여년간 우리 정치를 지배해온 ‘3김(金) 정치’의 동반 후퇴라는 점이다. 김 대통령의 2선 후퇴는 ‘경쟁과 공생의 관계’를 유지해온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의 영향력 퇴조를 가져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치권의 분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3김의 영향력이 오히려 확장될 것이란 관측도 만만치 않다. 정계개편 과정에서 이들이 캐스팅보트를 쥘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정치권 일각에서 김 대통령의 결단을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 탈당·총재직사퇴 기록
대통령탈당 등 시기상황
전두환87년7월10일 총재직사퇴6·29선언 후 민정당총재직 사퇴, 노태우후보에게 총재직이양
88년4월13일 탈당민정당 명예총재직 사퇴(국가원로자문회의의장직 동시 사퇴)
노태우92년9월18일 총재직사퇴 및 탈당관권선거논란으로 민자당탈당, 현승종 중립내각출범
김영삼97년9월30일 총재직사퇴이회창후보에게 총재직 이양
97년11월7일 탈당이회창후보의 요구로 탈당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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