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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보수의 미래가 되기는 어렵다는 게 재차 확인된 것은 6·3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다. 박민식(16%) 대 한동훈(43%)의 대결이었지만, 실은 장동혁-한동훈의 미래 전쟁이었다. 부산 유권자들은 넷플릭스 다큐로 스타가 된 정리 정돈 전문가 곤도 마리에 여사의 구호를 잘 아는 것처럼 투표했다. “물건을 하나씩 손에 쥐어보라.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장 대표는 설레는 정치를 한 적이 없다. 사퇴 압박 속에 며칠 전 입원한 그가 퇴원 후 당직 개편을 시도한다는데, 장동혁 2기는 세상을 가슴 뛰게 할지 모르겠다. 장 대표가 버틸 만한 이유가 여럿 있기는 하다. 우선 더불어민주당이 당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친윤-친한 싸움에 국민이 진저리를 냈는데, 그 따가운 시선이 여당으로 더 쏠리고 있다. 선관위 사태도 장 대표에겐 숨돌릴 공간이다. 장 대표가 의탁하던 조직적 부정선거와는 무관한 것이지만, 선관위가 자초한 치명적 잘못 아닌가. 무엇보다 당 지지율이 올라갔다. 선거 패장인 그가 대표직을 유지하는데도 여론조사 숫자가 뛴다. 지지율이 오를 때 사퇴한 정당 대표는 없다. 그래서인지 장 대표 입원 이후 빗발치던 사퇴 요구가 잦아든 느낌이다. 하지만 착각은 금물이다. 이런 우호적 여건 가운데 장 대표가 이끌어낸 것은 없다. 오히려 세 가지 이유에서 지금이 퇴진의 최적기다. 첫째, 2년 임기가 끝나는 내년 8월보다 지금이 더 여건이 좋다. 장 대표가 버티자면 버틸 수 있지만, 자기반성과 고백이 결여된 그의 정치가 생명력을 갖게 될지는 회의적이다. 당내 다툼이 재연되면서 보수층이 그토록 바라는 보수 재건은 뒷전으로 밀릴 것이다. 5명의 최고위원 가운데 대표직 유지의 동아줄이 되는 2명이 언제까지 장동혁 리스크를 지면서까지 같은 편이 되어주겠나. 둘째, 임기를 단축하는 자진 사퇴가 자기희생인 점은 분명하다. 요즘처럼 주판알 정치판에서 희생이란 사어(死語)가 돼 버렸다. 밀려나고 쫓겨난 정치인은 있어도, 스스로 내려놓은 정치인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걸 장 대표가 할 수만 있다면 “장동혁=민주당의 전략자산”이란 낯 뜨거운 뒷말을 덮고도 남을 스토리가 생긴다. 그걸 거머쥐지 않는다면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을까. 셋째, 장 대표는 콘텐츠 부족을 채우고 돌아올 기회를 일부러라도 찾아야 한다. 국회 입성 1년 반 만에 사무총장을 맡더니 이어 최고위원, 당 대표가 된 그다. 이런 ‘소년급제’는 정치를 영글게 할 축적의 시간을 앗아갔다. 장동혁의 문제는 제1야당 대표인데도, 그의 구체적 의견 제시에 반향이 없다는 점이다. 인천 지역 쌍둥이 개표 결과가 ‘5억9000만분의 1 확률’이라는 그의 주장을 보자. 그는 자기 주장에 신뢰를 더할 믿음직한 통계 전문가 이름 하나 인용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여당에선 무시로 일관한다. 장동혁에게 멈춤이 필요하다는 점은 “당의 4번 타자가 되겠다”며 대권 의지를 너무 일찍 말해버린 데서도 확인된다. 뭐가 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뭘 어떻게 해서 그 위치에 가겠다는 알맹이가 없다. 장 대표는 전 당원 재신임 투표로 승부수를 둘 수도 있다. 100만 권리당원들은 상당수가 강성보수인 이른바 ‘짠물 당원’으로 추정된다. 그를 재신임할 현실적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렇게 힘을 과시하는 건 목마르다고 소금물을 마시는 결과와 다를 게 없다. 장 대표로선 희생의 서사를 만들 거냐,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들이는 ‘오늘뿐인 정치’를 할 것이냐 선택의 순간을 앞두고 있다. 병실에서 깊은 생각에 잠기길 기대한다. 12·3 밤에 계엄 해제 동의 표결에 당당히 나섰던 그가 윤석열 지킴이로 돌아섰던 과오를 만회할 기회를 잡아야 한다. 사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내릴 결단이다. 이런 정도의 모험과 감동 없이는 장 대표가 제1야당 대표에 걸맞은 스피커로 인정받기 어렵다. 공소취소 특검 등 여당을 비판할 소재가 잇따라 등장하던 때에도 팀 장동혁의 공격은 왠지 공허했다. 이 모든 일이 장 대표 결단만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건 사안을 좀 복잡하게 만든다. 우군인 당권파나 이른바 물밑 실세 그룹인 ‘언더 찐윤’ 의원들도 사퇴 결정을 수용해야 하고, 경쟁자인 친한계 역시 사퇴 과정에 장 대표를 궁지로 모는 일은 절제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결단에 앞서 정파 간 물밑 사전 조율이 선행되어야 한다. 어지간한 정치력으로는 풀기 힘든 고차원 방정식이다. 장 대표의 선택이 이번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이런 기회가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니다.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국민의힘은 이번 지선에서 광역단체장 기준 ‘12 대 4’로 참패했다고 평가받지만, 민심 지형을 보여주는 숫자가 더 있다. 광역단체장 기준 두 정당 후보 16명씩이 얻은 총 득표수 비율로, 51% 대 42%였다. 1년 전 대선 때 이재명(49%), 김문수(41%) 후보가 얻은 지지율과 흡사하다. 혹자는 선거 때 응당 나타나는 진영 결집의 결과가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선 이후 나타난 민주당에 유리한 세 가지 흐름을 고려하면 표차는 더 크게 벌어졌어야 자연스럽다. 첫째, 이재명 대통령의 높은 국정 지지율이다. 5월 마지막 갤럽조사 때 ‘잘한다’와 ‘못한다’ 비율이 각각 64%, 28%였다. 둘째, 전직 대통령 부부와 그들을 에워쌌던 국힘 정치인들의 서글프고 부끄러운 뒷모습이 드러나면서 생긴 거부감이다. 셋째, 계엄을 시종 감싼 장동혁 체제의 퇴행과 여러 기행(奇行)도 빼놓을 수 없다. 51% 대 42%로 좁혀진 격차는 민주당으로선 심각히 받아들여야 할 사안이다. 혼수상태에 빠진 국힘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준 건 민주당의 오만이었다. 국회 상임위와 국정조사 현장에서 민주당 소속 위원장들이 보여준 일방통행은 용인 가능한 선을 넘어서곤 했다. 어지간한 일터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호통과 안하무인이 이어졌는데, 국민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이래선 곤란하다는 자성은 보이지 않았다. 연초에 ‘공소취소 모임’이 활동을 시작할 때 설마 했지만, 특검에게 공소취소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까지 발의할 줄은 몰랐다. 국힘은 브레이크 역할을 못 했다. 국힘 지도부가 이 지경에 몰린 건 ‘내란 옹호 세력’ 이미지가 쌓인 결과다. 민주당이 찍은 낙인인데, 크게 틀린 게 없다. 국힘은 계엄 해제 표결에 대거 불참했고, 국회 탄핵에 반대했고, 한남동 관저 앞에서 체포 저지에 나섰다. 정당이란 큰일이 터질수록 국민 앞에 정확하고 정직하게 설명해야 그 진심을 인정받고 신뢰를 회복하는 법이다. 비상계엄을 두고 변명과 옹호 일색인 국힘이 어떻게 여당을 견제할 힘을 모아 달라고 할 수 있겠나. 국힘 지도부는 지도자답지도 일꾼답지도 못했다.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라는 ‘정명(正名) 정치’에 실패했다.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식으로 정치를 타락시킨 데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야당이 상식과 순리에 어긋난 길을 가며 심판받은 지금 민주당에도 비슷한 폭풍우가 다가오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지선에서 더 압도적으로 국힘을 꺾지 못한 이유로 공천 잘못, 정청래 대표의 사심(私心) 정치를 꼽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직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들만으로 ‘국힘이 대패해야 정신차린다’며 투표 거부로 기울어 가던 일단의 보수층을 투표장으로 대거 이끌지는 않았다는 것을. 8월쯤 열릴 전당대회를 앞두고 6월 중으로 정청래 대표는 사퇴하고, 당은 원내대표 중심으로 운영될 공산이 크다. 그 경우 민주당은 ‘지선 이후’로 처리를 미뤘던 공소취소 특검법안을 6, 7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를 강행할까. 100명이 넘는 공소취소 모임 의원들, 국정조사를 주도하던 서영교 의원 등은 여론을 살피며 고심 중일 것이다. 처음 계획대로 밀어붙일지, 선거 때 확인한 따가운 민심을 고려해 ‘새 당 대표가 결정할 몫’이라며 두세 달 시간을 더 벌 것인지, 아니면 제3의 수를 찾아낼지 곧 확인하게 될 것이다. 민주당은 침묵하고 있지만 진보진영의 저류에선 위기의식이 묻어난다. 민주당 독주를 견제하는 민심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대해 “특검법안을 주도한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 방치한 청와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진보 성향 신문의 사설까지 등장했다. 선거 전만 해도 찾아보기 힘들던 문제의식이다. 현재로선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에 더해 송영길 의원의 당 대표직 도전이 점쳐지고 있다. 이들 3인이 이 사안을 어떻게 다룰지가 궁금하다. 세 후보는 ‘검찰이 증거를 조작해 기소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이들 아닌가. 장동혁 체제에서 국힘은 계엄 이후 정국에서 선 굵은 대처를 못 했다. 정치적 셈이 앞섰고, 헌법과 상식은 그다음이었다. 이젠 민주당이 비슷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무조건 특검법안 처리 중단이 답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민주당과 후보 3인은 어떤 결정을 내리건 국민 앞에 제대로 된 이유를 제시하면서 진행하고 평가받아야 한다. 난처하다는 이유로 뒤로 미룰 일이 아니다. 사사로움을 걷어내고 국민만 보겠다는 용기를 내길 바란다. 이런 일 정리하라고 정치인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의석수를 앞세운 우격다짐이 아니라 상식과 순리에 따른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민주당은 새로운 리더십의 탄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십수 년 전 미국에선 보스턴에서 태어난 C 학점 학생과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A 학점 학생 가운데 어느 쪽의 삶이 더 나은지 묻던 때가 있었다. 1970년생 학생끼리 비교했을 때 ‘보스턴 C 학점이 낫다’는 응답에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2000년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학·과학 경쟁력이 더 중요해진 지금 와서 다시 묻는다면 ‘상하이 A 학점’의 삶이 여전히 큰 미-중 간 국력, 사회 환경의 차이를 뛰어넘어 더 탄탄할 것이란 의견이 크게 늘었을 것이다. 이 질문은 미국 성인의 절반쯤인 대학 경험자에 대한 것이었다. 고교 중퇴(13%)나 고졸(33%) 학력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비교해 볼 이유가 없을 정도로 관심 밖 존재였다. 그러던 걸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해 판을 뒤집었다. 노동자층 몰표를 받고 당선된 트럼프가 동맹국 정부와 기업을 압박해 천문학적인 대미 투자를 빼앗다시피 받아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이 필요하다. 그 결과 1억 명이 넘는 블루칼라 노동자와 가족들의 삶은 정말 나아질까.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생기겠지만, 그 정도론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보고서가 많다. 결국 미 기업인 스스로가 미국 땅에 공장을 지을 때라야 제조업이 부활하는데, 미국 스스로가 머뭇거리고 있다. 젊고 저숙련 노동자일수록 지각·결석·이직이 잦은데, 이는 미국이 경험한 ‘100년의 풍요가 낳은 비극’으로 부를 만하다. 중고교 시절 최하층의 삶을 경험한 밴스 부통령이 자신의 저서에서 “일하려는 의지도 없으면서 일자리가 없다고 탓한다”고 꼬집었을 정도다. 어쩌면 동맹 압박보다 더 중요한 게 오랜 안락함에 빠진 미국의 대각성 아닌가. 대통령이라면 흐름을 바꿔놓고 싶을 과제가 될 법하다. 하지만 포퓰리스트 대통령은 관심이 없다. 트럼프는 오히려 “이민자가 문제고, 중국이 뒤통수를 쳤다”며 지지층 귀에다 달콤한 이야기만 한다. 그렇다고 트럼프만 탓할 수 있을까.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치인은 불편한 진실을 말하기 어렵다. 밴스 부통령은 정치 입문 이후론 “노동자는 잘못이 없다”는 쪽으로 확 돌아섰으니 말 다 했다. 미국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6·3 선거를 앞둔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아서다. 선거가 선출직 권력자를 통제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꽃인 것은 분명하지만, 필요한 논의를 막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출마 희망자들은 정책 공약을 내놓은 뒤 이 사안이 왜 중요하고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 납득시켜야 한다. 그럼에도 현실에선 손에 뭔가를 쥐여 드리겠다는 약속이 넘친다. 실현 가능성, 재원 조달 방안은 후순위로 밀리거나 꺼내지 않는다. “이런 정도는 유권자가 양보해야 합리적”이란 말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번 선거는 시도지사와 교육감을 16명씩 선출하는 것 외에도 국회의원 14명을 뽑는 종합선거다. 많은 주장과 담론을 찬반 토론에 부쳐 공통분모를 찾아낼 기회다. 하지만 선거 캠페인은 사소하거나 자극적인 이슈에 빠져들고, 과거 행적 평가가 미래를 압도하는 양상이다. 제1당은 “내란 세력 척결”을 1년 넘게 반복하고, 제2당은 “보수 재건” “정권 심판”을 내세우지만 선거 후 당권 판도에 마음이 더 가 있다. 조국, 한동훈 후보가 제3의 후보로 나선 경기 평택을, 부산 북갑 국회의원 선거에선 1, 2당 대표가 자당 승리보다 두 후보의 생환 여부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는 듯하다. 교육감 선거는 어떤가. 이념 대립이 도드라지고, 현금을 나눠 준다는 공약이 넘친다. 공부 압박에 놓인 아이들을 위해 조기 영어 부담을 어떻게 풀어줄지, 수학 문제 풀이에 지금처럼 매달리는 게 맞는 건지 청사진을 제시하는 이들이 안 보인다. 우리는 이 정도에 맴돌 수밖에 없나. 선거는 승자독식 구조 속에서 더 큰 권력을 향한 게임이자 전쟁으로 전락했다. 또 한 번의 선거가 치러지는 동안 이젠 이런 걸 문제라고 여기는 이들조차 줄어들고 있다. 트럼프가 블루칼라의 일하는 의지 고취 필요성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피하는 것처럼 우리 정치인들도 지방소멸 시대의 지방 자생력 확보, 학령인구 감소 시대의 학교 통폐합 등 누군가가 불편하고 손해를 볼 만한 사안을 외면하고 있다. ‘진짜 토론 주제’의 실종 앞에 무력감을 삼키게 된다. 그렇다고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해선 곤란하다. 엉터리 같은 정치에 질려 찍을 정당이 없다고 좌절하는 이들이야말로 정치 정상화를 기대하던 유권자이고, 시시비비를 가려 가며 정치를 바라보던 중도층 아니겠나. 이들이 투표장을 떠난다면 그건 맹목적 진영정치 추종자들의 목소리만 더 영향력을 얻도록 하는 일이다. 그걸 그대로 두고 볼 순 없다.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미국-이란 전쟁은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국이 과연 한미동맹과 국익을 위해 군사행동에 나설 역량과 의지가 있는가? 우리는 베트남전쟁 이후 50년 넘게 전투병 파병을 꺼려 왔고, 과거 미 대통령들은 우리의 주저함을 대체로 양해했다. 하지만 동맹조차 거래 대상으로 삼는 트럼프의 등장으로 셈법이 많이 달라졌다. 여기에 화물선 ‘나무호’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누군가 날린 비행체 2기의 타격을 받은 사건으로 ‘파병의 정치학’이 재삼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는 개전 초부터 이재명 정부에게 해군 함정 파병을 요청했다. 하지만 다른 서유럽 동맹과 일본이 그랬듯 우리는 개입하기 어려웠다. 워낙 위험한 곳인 데다, 미국은 왜 이란을 공격했는지 똑 부러진 설명을 내놓지 못해 전쟁의 정당성이 의심받고 있었다. 설령 비행체 공격이 이란 소행으로 드러나더라도 인명 피해가 없다는 점에서 파병 여론이 우세할 것 같지는 않다. 군사행동이란 1차적으론 군 수뇌부와 외교안보 책임자들의 영역이지만, 종국엔 정치인, 특히 대통령의 결단에 달린 일이다. 한국에선 오랫동안 이 문제를 놓고 진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 안보 책임자들은 뒤로 빠졌고, 정치인들은 여론조사 숫자를 살펴가며 민심을 추수(追隨)하는 경향이 보수 정부건 진보 정부건 나타났다. 적잖은 안보 당국자들은 사석에선 파병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누구도 자기 말과 글로 속마음을 주장하지 않는다. 이런 환경 속에선 미국의 파병 요청이 간혹 있더라도 “우리 장병을 사지로 내몰란 말인가”란 한마디는 초기 여론의 싹을 자르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러는 동안 한국의 몸집이 커졌다. 국방예산으로 연 65조 원을 투입해 세계 5위 강군을 키워 놓고도 위험 지역에는 보낼 수 없다는 말은 ‘뜨거운 얼음’처럼 형용모순이 돼 버렸다. 하지만 파병의 명분이 있는 전쟁일지라도 나설 여지는 별로 없다. 러시아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를 돕는 일마저도 공개적인 것이라면 주저했다. 러시아와 이란이 ‘적대 행위로 간주한다’고 엄포를 놓으면 ‘납치나 테러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흔들리는 게 우리다. 3월 중순 이 칼럼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 파병 요청은 거절할 때 하더라도 정치인 누군가는 나서서 파병 필요성을 제안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쓴 바 있다. 특히 소신파 정치인이라면 ‘무서운 고양이(민심)의 목에 방울 달기’를 할 때가 됐다는 제언이었다. 정말 누군가 토론의 물꼬를 터주길 바랐다. 그즈음 안철수 등 국민의힘 의원 3인이 제각각 파병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논쟁은 살지 못했다. 예상대로 반대(55%) 기류가 찬성(30%)을 압도했다(3월 20일·한국갤럽). ‘왜 우리가 지구 반대편 분쟁에 끼어드나’라는 비판과 ‘당신들과 가족부터 먼저 참전하라’는 말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보수가 거론하고 진보가 반박하는 구조가 되풀이됐다. 이제부터라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선진국은 국제 분쟁 때 자국 병사들의 죽음을 감수해 가며 파병하는 이유는 되새겨 봐야 한다. 그 나라라고 군인의 생명 보호를 내세운 반대가 없는 게 아니다. ‘나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는 사고체계가 그들 나라엔 확립돼 있는데, 미국의 그늘 아래 안보를 보장받아 온 한국으로선 낯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전시전작권을 미국에서 2, 3년 뒤 돌려받으려 한다. 국가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는 데 한 발 더 다가서겠다는 것으로, 중견국다운 안보전략이 태동하는 시기가 지금일 수 있다. 결국 정치인 두셋은 총대를 메고 ‘파병을 상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당장 파병에 대한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먼 훗날을 대비해 우리 국민들의 흉중 어딘가에 이런 토론이 자리 잡기를 바란다. 6·25전쟁 때 도움받은 한국은 우방과 동맹을 도울 책무가 있고, 그래야 훗날 다시 도움받을 수 있다고 설명해야 한다. 글로벌 분쟁 해결이나 항행의 자유 수호처럼 안보 공공재를 놓고 보면 한국은 최대 수혜국 가운데 하나라는 데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그런 공공재 형성에 기여해야 발언권을 키우고 국익을 지킬 수 있다는 것도 납득시키길 바란다. 당대의 박수만 받고 싶은 정치인은 할 수 없는 일로, 여론의 뭇매를 각오해야 한다. 이런 굵직한 방향 제시는 소수 리더들의 몫이다. 당 대표나 대통령 후보에 도전하는 이들이라면 파병, 국제질서 만들기, 한국의 역할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으면 좋겠다. 지금은 지방선거 국면이지만, 여야가 선거 후 당 주도권 경쟁이 시작되면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정치는 큰데 정치인들이 너무 작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는 걸 보고 싶다.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대구시장 불출마를 선언한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장동혁 대표 사퇴를 요구하며 꺼낸 주역의 한 구절은 뼈아프다. 인격과 지혜는 부족한데 지위만 높고 욕망만 클 때 생기는 화(禍)를 두려워해야 한다고 경고한 것이다. 인간적 됨됨이라 할 수 있는 덕(德), 판단력에 해당할 법한 지(智)는 리더십의 요체다. 장 대표를 직접 겪어보지 못해 그의 덕을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 대표로서 내놓은 결정과 처신은 오판의 연속이었고, 속내를 들여다보면 철저한 자기 정치가 도사리고 있었다. 가깝게는 황당한 미국 방문 소동부터, 공천 혼란과 맹목적 한동훈계 징계 회부가 대체로 그랬다. 당의 대선 후보가 되고 싶은 욕심에 취임 1년도 안 돼 식물 대표로 전락했다. 다만, 주 의원이 놓친 게 있다. 야당의 난맥은 장동혁 1인 사퇴로 끝날 일이 아니란 점이다. 장동혁은 한 사람의 정치인이 아니고, 오히려 기획작품에 가깝다. 국회의원 3년 만에 당 대표로 선출된 그는 스스로 권력을 만든 게 아니다. 탄핵 이후 방향을 잃은 친윤 내지는 ‘언더 찐윤’ 세력이 그를 옹립하다시피 했다. 이러니 마음대로 사퇴할 처지가 아니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설사 그가 퇴진하더라도 ‘친윤 그룹’ ‘짠물 당원’이 내세우는 누군가는 제2의 장동혁이 될 것이다. 주 의원은 사퇴 촉구가 아니라 ‘친윤+짠물’이란 주도 세력을 바꾸는 작업에 나서자고 촉구하고, 스스로 앞장서야 했다. 이런 맥락에서 장 대표가 쏟아지는 사퇴 요구에 응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는데, 당연한 수순으로 읽힌다. 그는 “지방선거를 마무리하고 당당하게 평가받겠다”고 했다. 지난주 갤럽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힘의 지지율은 48% 대 20%였다. 이런 지지율 격차를 받아든 상태에서 ‘당당하게 평가받겠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의 뿌리는 무엇일까. 우선, 이런 처신은 ‘대책 없음’을 숨기려는 표현일 수 있다. 지금 사퇴한다고 대단한 결단으로 평가받지도 못할뿐더러 본인만 만신창이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작금의 당 상황이 장동혁 1인만의 책임이랄 수 없고, 그를 교체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을 만큼 사태가 꼬여 있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장 대표가 기댈 법한 구석이 생긴 것도 눈길을 끈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부산·울산·경남(PK)에서 지지율이 꿈틀거리고 있다. 대선 출구조사 때 PK에서 이재명 후보는 48%, 김문수 후보는 44%를 얻었다. 지난주 갤럽 조사 땐 41% 대 28%로 벌어졌다. 44%와 28%의 차이는 걸려온 여론조사 전화에 “나 국힘 지지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 이들의 존재를 말한다. 과거 지지자였고, 잠재적 우군인 이들이다. 현재 당 안팎에선 ‘국힘이 선거에 참패해야만이 장동혁 체제가 무너진다’는 믿음이 형성돼 있다. 그래서 6월 선거 때 기권하겠다는 보수층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하지만 국힘이 달라지거나, 혹은 달라질 것이란 믿음을 준다면 이들이 움직일 가능성도 배제 못 한다. 이런 변화가 정말로 PK에서 생기더라도 그건 장 대표의 성과는 아니다. 선거 때 막판에 나타나곤 하는 표 응집 현상과 함께 부산 북갑 출마를 선언하고 내려간 한동훈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의원 배지를 달고 국힘에 복당하길 희망하는 한동훈 전 대표는 이미 전재수, 김경수 등 자신의 상대도 아닌 민주당 후보들을 겨냥하면서 벌써 부산·경남 선거에 관여하고 있다. 만약 6월 3일 밤 한동훈이 힘을 발휘한다면 그건 묘한 결과를 빚을 수밖에 없다. 장동혁 체제는 ‘우리의 승리’를 선언하면서 정치 생명 연장을 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가 힘을 발휘할수록 적대자 장 대표의 입지가 강화된다. 한동훈 패러독스(역설)가 발생하는 것이다. 동지에서 등 돌린 장동혁-한동훈 둘은 묘하게 흥망을 함께하는 운명을 맞을 수도 있다. 8개월 된 장동혁 체제는 반론의 여지 없이 수렁에서 헤매고 있다. 이런 국힘은 민주당에 지독한 ‘야당 복’처럼 비치곤 한다. 하지만 야당 복이기만 할까. 요즘 민주당에서 오만할 때 나타나는 증상이 자주 나타난다. 반복되는 전과 경력자 공천, 일방통행 국회, 진보 진영에서도 문제 삼는 낙하산 인사가 그렇다. 허우적대는 야당의 존재란 결국 민주당에 정치적 긴장을 풀게 해 미래의 업을 쌓도록 하는 일일 수 있다. 폭주하는 여당과 무기력한 야당, 그러면서 1, 2당 지위를 번갈아 나눠 맡는 두 정당을 그동안 ‘적대적 공생’ 관계라 불렀다. 하지만 요샌 한술 더 떠 ‘적대적 동반 추락’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국힘 주요 후보들은 당 대표를 왕따시킨 지방선거를 도모하고 있는데, 전무후무한 일이다. 퇴행적이라 비판받는 한국 정치가 이제 이런 지경으로까지 뒷걸음치고 있다.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더불어민주당 48%, 국민의힘 20%라는 10일 갤럽 여론조사는 6·3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많은 걸 짐작하게 해 준다. 그런데 이런 낙관적 전망이 민주당에 좋기만 한 걸까. 민주당의 선거 승리는 지금대로라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지만, 꽉 찬 달은 언젠가는 기울기 시작한다. 국민의힘의 브레이크 역할이 미미해 긴장감이 빠질수록 씨앗이 뿌려지는 걸 조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다음 두 영역에서 민주당은 민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첫째, 공천 기류 관리다. 출마에 법적 제한은 없지만, 송영길 김용 김남국 3인은 지선과 함께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출마를 노리고 있다. 송 전 대표는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혐의와 7억 원 넘는 개인연구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찰의 핵심 증거 입수 과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돈 문제가 없었다’고 결론 난 게 아니다.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대장동 일당에게서 6억 원대 자금을 받은 혐의로 1, 2심에서 유죄가 났다. 구속 중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에서 ‘조작 수사’를 주장하며 책까지 썼다. 그런 그의 출판기념회에 의원 50여 명이 몰렸고, 공천 신청자 26명이 그에게 후원회장을 맡겼다. 인사 청탁 논란 속에 지난해 청와대에서 경질되다시피 물러난 김남국 전 의원도 이렇게 빨리 국회의원직에 도전하는 게 맞는지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다. 본인들이야 명예 회복이 급하겠지만, 거대 여당이 이래선 곤란하다. 3인의 혐의나 처지를 한두 문장으로 압축해 설명했지만, 연루된 일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 민주당에선 레드팀도 반대자도 사라졌다. 친명 김영진 의원이 김 전 부원장을 두고 “대법원 선고 후에 출마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 밖의 누구도 ‘이건 아니다’ 말하지 않는다. 공천이 뭔가. ‘우리 당은 이쯤 되는 인물을 정치 지도자감으로 여깁니다’ 하며 선보이는 일이다. 민주당은 이들의 국회의원 적격성에 문제의식이 없다는 말인가. 드루킹 사건을 일으켜 2017년 대선 때 댓글 공론장 질서를 왜곡한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경남지사 후보 공천을 이미 받아버렸다. 경남도청 탈환을 위해서라는데, 제대로 된 반대 목소리가 안 들린다. 그는 유죄 확정, 사면과 복권은 물론 이번 공천 과정에서도 드루킹 혐의를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둘째, 대북송금 국정조사다. “쌍방울 돈 300만 달러가 경기지사 방북 대가로 북한에 전달됐다”는 점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대법원 판결로 확정됐다. 이걸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가 알았느냐가 쟁점인데 , 민주당은 연어 술 파티를 열어준 검사의 불법적 회유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최근 공개된 박상용 검사의 전화 녹음 파일에서 ‘선을 넘는 듯한 대화’가 일부 드러났다. 여기에 검찰이 국가정보원,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입맛에 맞는 자료만 가져다 썼다는 의혹도 제기돼 있다. 따져 봄 직한 사안이니 실체는 실체대로 엄정히 밝히면 된다. 문제는 국회 운영 방식이다. 민주당은 이번에도 국정조사 증인 채택, 회의 진행 등에서 독주했다. 범여권 신청 증인을 100명 넘게 채택하면서 야당 요구 주요 증인은 1명도 동의 안 했다. 법대로 하자는 강자 논리 그대로다. 이러니 의회 민주주의를 중시하는지 묻게 된다. 또 소속 의원들은 국정조사장에서 목청을 높였지만 어떤 증거가 어떻게 조작됐는지, 그 조작 흔적을 이화영 재판 2년 넘게 왜 주장하지 않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는 이를 못 봤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진실 규명도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진실을 찾아가는 태도를 늘 강조하던 그 민주당이 맞나 싶다. 이런 현상은 국민의힘의 무기력함 때문에 더 가속화한 측면이 있다. 민주당의 압도적 지지율은 자력 득점보단 국힘의 자책골을 통해 얻은 반사이익 성격이 짙다. 그렇기에 수렁에 빠진 국힘이 달라진다면 상황이 반전될 수 있다. 6월 지선 이후 선거 책임론이 불거질 경우 국민의힘 리더십의 지각변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민주당도 8월이면 전당대회를 통해 친명계와 친청계가 2년 임기 새 당 대표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일 것이다. 이젠 여야 싸움보다 정당의 내부 갈등이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걸 다수가 알고 있다. 올여름 고비가 올 수 있다는 뜻이다. 민주당이 문제의 싹을 선제적으로 잘라내길 기대한다. 민주당의 민주주의는 건강한지 따져 묻는 자성적 질문이 하루빨리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 지금 상태에서 민주당의 품은 따뜻하다. 어렵지 않게 선거를 이길 수 있으니 반대 의견을 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계파 간 경쟁 말고는 활발한 당내 토론이 가로막혀 있다. 높은 지지율에 눈멀고, 승리 예언에 귀먹는 일이 닥쳐선 곤란하다.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장동혁 정치가 흔들리고 있다. 그 원인을 지금 새삼 따질 필요는 없겠다. 다만, 국회의원 경력 3년뿐이던 그를 꽃가마에 태워 당 대표로 만들고 버팀목이 된 아스팔트 우파 당원들의 영향력과 그 폐해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장 대표가 선출된 지난해 8월 당의 ‘책임당원’은 75만 명이었다. 전체 당원은 400만 명이 넘지만, 월 1000원 이상의 당비를 3개월 이상 낸 이들은 책임당원으로 불리며 당내 선거 투표권이 주어진다. 장 대표는 상대 김문수 후보에게 일반 여론조사(20% 비중)에선 크게 졌지만, 책임당원 투표(80%)에서 이겨 승리했다. 장 대표는 이때 책임당원의 힘을 절감했을 것이다. 그는 당원의 권리 확대를 반복해 약속하면서 지난해 말 기준 책임당원을 100만 명까지 늘렸다. 이 과정에서 당 인사들이 말하는 ‘짠물화’가 진행됐다. 늘어난 책임당원은 더 강경한 보수 성향으로 ‘짠물 당원’의 주축이 됐다는 게 당 안팎의 정설이다. 유튜버 전한길 씨도 지난해 “10만 명을 입당시켜 당을 접수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실제 이행 여부와 관계없이 짠물화와 당권 장악에 대한 우파그룹의 구상을 읽을 수 있다. 그러는 동안 윤 어게인 정치에 신물이 난 ‘소금기 없는’ 중도보수 책임당원들 일부가 탈당했다고 당내에선 설명한다. 장 대표의 자신감은 올 2월 오세훈 서울시장, 친한계와 맞설 때 드러났다. 장 대표는 이들이 요구한 당 대표 재신임 카드를 수용하겠다며 ‘전(全) 당원 투표’를 꺼냈다. 놀랍게도 이런 맞대응이 나온 뒤 오 시장, 친한계에서 더 이상 같은 요구를 내놓지 못했다. 이들도 짠물의 응집력을 잘 알고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결국 4400만 유권자 가운데 2%가 조금 넘는 100만 명이 정통 보수정당의 퇴행을 재촉했던 것이다. 지선 전망이 어둡다는 지금, 당 변화를 위해 뭘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누군가는 던져야 한다. 오 시장, 한 전 대표가 장동혁 체제를 비판하지만, 실제 권한 없이는 바꿀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오 시장은 지선 이후 장동혁 궐위 시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제명당한 한 전 대표는 6월 보궐선거 때 원내 입성을 노리지만, 최고위 의결 없이는 5년간 복당이 불가능하다. 현재 여론조사대로 국힘의 지선 패배 이후를 상정한 여러 시나리오가 주장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장 대표 사퇴 가능성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임기가 1년 더 남았다”고 버티거나, “사퇴한 뒤 2년 임기 당 대표에 재출마하는 식으로 신임평가를 받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책임당원 구성이 달라져야 절윤을 실행할 당 대표가 탄생할 수 있다. 중도보수적 유권자가 새로 책임당원이 되거나, 당비 내지 않던 느슨한 기존 당원들이 월 1000원씩 당비를 납부하며 책임당원이 된다면 기회의 창은 열릴 것이다. 100만 책임당원 중 짠물 대 나머지 비율이 6 대 4라면 그 차이인 20만명 정도의 ‘맹물 책임당원’이 추가되어야 의미 있는 당내 경선을 모색할 수 있다. 물론 6월 선거 결과 짠물 당원들의 현실 인식이 바뀐다면 필요한 맹물 당원 숫자가 20만 명보다 줄어들 수는 있다. 입당원서를 들고 다니면서 부탁하는 과거 방식으론 될 일이 아니다. 설사 당원으로 가입한다 하더라도, 매달 지갑을 열어 1000원씩 내도록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다. 시대착오적 불법계엄을 탄핵하는 일은 헌법수호 행위이고, 조직적인 선거 부정이나 투표 결과 전산 조작은 없었다는 걸 믿는 이들이 책임당원으로 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국힘의 과거 반성을 포함해 좋은 정치를 향한 개혁의 큰 바람이 불어야 한다. 주도하는 정치인들은 장대하고 희망적인 보수정치 메시지를 제시해야 한다. 그동안 국힘은 무엇을 하려는 정당인지 모호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보통 사람들에게 정당 가입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명절 때 친척끼리도 정치 이야기를 일부러 피하는 경우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누군가를 입당시키려면 그 당위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거대여당 견제가 필요하다는 구호 정도로 20만 당원을 모을 순 없다. 오세훈 한동훈은 물론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던 유승민 전 의원 등 그 어떤 정치인도 역할을 나눠 맡을 수 있다. 특히 전면에 설 것으로 기대되는 이들 셋은 갈등 없이 협력해야 한다. 비전 제시부터 3자 협력까지 쉬운 게 하나도 없다. 맹물은 평소엔 존재감도 없고, 주목받기도 어렵다. 그런 맹물 같은 보통 유권자들이 국힘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진 정당에 가입하고 당내 선거에 투표하겠다고 나서는 일이 가능하긴 한 건가.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상당 기간 퇴행 일색이던 그 정당에 중대한 변화가 시작됐다는 뜻일 것이다.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이란이 봉쇄한 호르무즈 해협에 우리 유조선 등 국적선 호위를 위한 군함을 보내달라는 미국의 요구로 한미동맹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한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에서 파병을 반복해 요구받았다. 하지만 위험지역은 피하거나,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의료·공병부대를 보냈다. 전사자가 1명도 없었다.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첫째, 유조선 등 우리 배 26척의 발이 묶였으니, 한국은 당사국이다. 마땅히 해야 할 자국 상선 보호 역할을 요청받은 것이다. 둘째, 한미동맹은 지난 70여 년간 미국에 의존하던 관계를 벗어나 한국이 국력에 걸맞게 기여하도록 밑그림을 그려 왔다. 한국이 예산을 더 쓰는 데는 양자가 이미 합의했다. 여기에 더해 주한미군의 대중국 견제 역할을 어떻게 한국이 수용할지, 이번 파병 요청처럼 한국이 정치적·군사적 리스크를 어떻게 져야 할지를 치열하게 논의 중이다. 셋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군사와 투자·교역 이슈를 뒤섞어 버렸다. 거액 투자 압박과 상호관세를 연동시켰듯이 이번 요청도 결과에 따라 보복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호르무즈 파병은 위협 요인도 크다. 행여 이란의 미사일 혹은 드론 공격으로 우리 해군함이나 유조선이 피해를 입거나 교전이 발생한다면 전쟁에 끌려들어 갈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냉전-탈냉전 70년 동안 한국이 큰 수혜를 누린 한미동맹이 앞으로 30년간 안보와 번영을 위해 적절한 역할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시대가 왔다는 점이다.올 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한 말도 이런 동맹 조정기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던진 말이었다. 시 주석은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서 정확한 전략적 선택을 하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틀 뒤 “공자님 말씀으로 들었다”며 넘겼지만, 속으론 결코 가볍게 듣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한다.시 주석의 말은 21세기 중반이면 중국은 미국과 대등한 동아시아 패권국이 될 것이니, 한미동맹 나아가 한미일 3국 협력에 목매지 말라는 압박이었다. 중국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주변국과의 관계 재정립으로 국가 운명의 방향을 튼 경험을 갖고 있다. 마오쩌둥 시절인 1960년대 공산 종주국 소련과 갈라섰고, 1970년대엔 아예 6·25 때 싸웠던 미국과 손잡았다. 그 결과 냉전이 끝났을 때 중국은 냉전의 승자 편에 섰다. 하지만 이걸 두고 우리가 운명을 중국과 함께할 수는 없다. 중국의 면면이 ‘역사의 올바른 편’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시 주석의 요구는 그럼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중견국 한국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누구와 손잡고, 어떤 책무를 해야 하는 걸까. 트럼프 정책이 지닌 지독한 일방주의, 오락가락 관세정책에서 드러난 즉흥성과 무논리는 한국인을 실망시켰다. 그렇다고 한미동맹의 앞날을 트럼프 1인만으로 규정할 순 없다. 미국이 전통적으로 제공해 온 가치(자유와 인권)와 실리(미국 시장, 국제교역을 통한 부 축적, 동맹 안보)를 제쳐놓고 21세기 한국을 상상할 수 있을까.그럼에도 두 나라엔 극복할 신뢰 문제가 남아 있다. 미국이 정말 우리를 핵 공격한 나라를 핵으로 응징해 줄까. 미국을 향한 핵 보복을 감수하면서까지 핵우산을 씌워 줄까. 드골의 프랑스가 독자 핵 개발에 나섰을 때 가졌던 의문이 똑같이 남아 있다. 미국은 미국대로 대만 방어를 위해 주한미군 전력을 투입할 때 한국이 협력할지 선뜻 믿지 못하고 있다. 호르무즈 파병 요구는 결정적 순간에 신뢰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줄 기회다. 한미동맹이 평상시엔 모범적이지만, 정작 중요한 유사시엔 결단을 주저하는 관계여선 곤란하다.트럼프가 쏘아 올린 파병 카드는 정부가 결정할 일이지만, 파병 논쟁에 정치인들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글로벌 경제는 이젠 우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우리끼리 공급망’이 짜인다는 걸 지난 1년간 숱하게 목격했다. 적어도 정치인 몇몇은 국가 운명을 이끌기 위해 당장은 민심의 호응이 적더라도 글로벌 책무를 해 나가자고 말할 때가 왔다. 국제 체제에서 이익은 내지만, 그 시스템을 지킬 책임을 회피하는 코리아는 점점 환영받기 어려워질 것이다. 늘 그랬듯이 ‘파병 반대’가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신중 검토 끝에 불참 결정을 정부가 내린다면 그 자체도 존중되어야 한다.언젠가는 한국도 전투병 파병을 여론이 수용할 때가 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 출발점으로 호르무즈 파병 논쟁이 기억됐으면 한다. 반대가 더 많은 여론조사 숫자는 ‘무서운 고양이’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목에 국익 중심 파병 주장이라는 방울을 매달겠다고 나서는 소신파가 등장할 때가 됐다.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국민의힘은 되는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느낄 것이다. ‘사법개혁 3법’ 강행 처리, 대통령 사건의 공소 취소 모임처럼 더불어민주당에서 몇몇 비판거리가 등장했지만, 외려 양당 지지율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이 난국을 누가 풀까. 장동혁 당 대표, 제명당한 한동훈 전 대표 두 사람일 수밖에 없다. 둘 다 자기 계파의 눈으로만 보면 세(勢)를 이룬 것 같지만, 한 발 떨어져 보면 정도의 차이일 뿐 확장이 없다. 더 급한 건 장 대표다. 당을 더 오른쪽으로 끌고 가면서 중도층을 잃은 책임론이 쏟아지고 있다. 더구나 ‘당이나 보수정치의 앞날은 어찌 되건 자기 권력만 챙긴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이 프레임을 깨지 못한 채 앞날을 기약하기 어렵게 됐다. 장 대표가 살아나려면 이젠 식상한 이야기가 돼 버렸지만, 두 세력과 갈라서야 한다. 첫째, 부정선거론자들이다. 국힘은 그동안 그들을 공개적으로 옹호할 자신도 없으면서 적당히 두둔해 왔다. 유권자의 10∼20%쯤으로 짐작되는 이들의 지지를 손쉽게 챙기는 쪽이었고, 장 대표도 당 대표 선거 때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부정선거는 근거가 없는 음모론에 머물고 있다. 엊그제 이준석-전한길 토론을 봐도 서버 해킹이건, 조직적 투표용지 부정 사용이건 뾰족한 단서가 제시되지 않았다. 파면당한 대통령조차 손대지 못한 게 선관위 서버다. 그걸 열어 보려면 국민의힘은 국회 과반 의석을 얻어 입법을 하는 길밖에 없다. 국힘은 음모론에 곁불 쬐기를 중단하고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 부정선거론을 공식 의제로 채택해 당의 공식 입장을 정할 것을 바란다. 자신 있으면 공론화시켜 국민들을 설득하든가, 아니라면 부정선거론자들이 얼씬도 못 하도록 해야 한다. 부정선거론자들을 향해 ‘때를 기다리며 전술적 후퇴를 하자. 그러니 당분간 입을 닫자’고 제안할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든 앞으로 국힘이 부정선거에 기대는 흔적이 보이면 중도층 표는 포기하겠다는 각오를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장 대표는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해야 한다.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을 이야기겠다. 국힘이 국회에서 겪는 굴욕과 좌절은 2년 전 총선 참패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디올백 수수, 무리한 의대 증원 등 직접적인 패인을 여럿 제공했다. 당내에선 한동훈 책임론이 만만찮지만 윤석열 책임론과는 비교할 것이 못 된다. 장 대표가 변절자로 욕먹을 각오로 절연에 나선다면 당장은 힘든 정치를 해야 하지만, 그 결단만큼은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장 대표가 요구받는 두 갈래 배신은 당과 자신이 살아나기 위한 필요 최소한일 뿐이다. 여기에 장-한 사이의 감정싸움 중단이 더해져야 한다.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은 운명공동체가 돼 버렸다. 어느 한쪽이 이기고 다른 한쪽이 무너지는 일은 팽팽한 당내 지지 구도로 볼 때 가능성이 낮다. 지금처럼 싸우다간 둘 다 공멸이다. 부정선거 음모론 및 윤 어게인과 결별하는 걸 전제로 두 정치인이 손을 잡는다면 둘 다 보수의 지도자로 성장할 길이 남아 있다. 그러자면 이번엔 한 전 대표가 먼저 손을 내밀어 ‘한동훈식 정치력’을 입증할 차례다. 대구 서문시장에 인파가 더 모였으니 한동훈은 장동혁을 이긴 것인가. 장 대표를 ‘나의 스태프’라고 불러서 일이 더 잘 풀렸나. 그렇게 이긴들 중도층은 실망하고, 끌어안아야 할 국힘 당원들 상당수가 마음을 닫는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순간의 논쟁에선 이길지 몰라도, 넓은 품이 아쉽다’는 평가를 듣는 한 전 대표다. 동지였다가 결별한 두 사람이기에 의기투합이 어렵다는 걸 잘 안다. 둘 다 법률가로 잔뼈가 굵은 터라 정치적 유연함이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또 핵심 조언그룹의 생각도 바뀌는 게 쉽지 않을 거다. 그렇더라도 무너진 보수정치를 되살려야 하는 책무를 위해 소아(小我)를 못 버린다면, 정치는 왜 하는 건가. 내키지 않더라도 연기(演技)하는 성의는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라고 과거 생각과 달리 대일본 협력과 새 원전 허가를 결심하는 게 쉽진 않았을 것이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내부 정지 작업을 통해 진영 불만을 다독였을 것이다. 그런 노력을 국민들이 평가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장동혁-한동훈 두 사람이 표변(豹變)해야 한다. 당을 위해, 국가를 위해 표변 못 할 이유가 없다. 지금이야 부정적인 말이지만, 중국 문헌에 처음 등장할 당시 표변이란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된 군자는 대의를 위해 기꺼이 변신한다는 의미였다. 이걸 못 한다면 큰 정치 꿈은 버리는 게 맞다. 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국민의힘은 한동훈 전 대표 제명을 계기로 내전 상태에 빠져들었다. 107석 소수야당으로, 정책과 정치에서 영향력을 잃어버린 정당이 이만한 일로 싸울 때냐는 비판이 많다. 한동훈 제명 과정은 위태로웠다. 이성적으로, 순리대로 했더라면 없었을 일들이 반복된 탓이다. 당무감사위원장은 “(사람을) 받아 죽이면 소는 돌로 쳐 죽인다”는 글을 썼다. 본인은 성경을 인용한 통쾌한 비유라고 여길지 몰라도, 공적 책무에 적개심 비슷한 감정을 뒤섞어 드러낸 까닭을 모르겠다. 당이 내세운 징계 사유는 여론 조작이었다. 익명의 당원 게시판이라지만, 한 전 대표의 가족 넷이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판 글을 1000개 넘게 올린 것이 드러났다. 한 전 대표가 ‘나중에야 알게 됐다’고 해명했지만 사실관계는 더 가릴 필요가 있다. 한 전 대표도 민망했을 것이고, 그래서 어정쩡하게나마 사과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의 결정은 쫓아내겠다는 것이다. 이만한 일이 제명 사유가 될 수 있나. 친윤 주류에서 ‘이건 아니다’는 만류가 있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비상계엄으로 파면된 전직 대통령을 상대로는 징계조차 않던 국민의힘 아닌가. 이러니 ‘미래 경쟁자 제거’, ‘친윤의 복수극’이라는 평가가 따라다니는 것이다. 매년 세금으로 수백억 원대 보조금을 받는 정당의 정치가 이래서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당 지도부가 초강수를 둔 것은 여론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1월 7일 발표된 KSOI 여론조사(무선 ARS)에서 국힘 지지층만 떼놓고 보면 46%는 ‘한동훈의 여론 조작이니 징계가 맞다’는 쪽에 손을 들어줬고, ‘장동혁 체제의 조작 감사’라는 견해는 33%였다. 윤 전 대통령도 한 전 대표를 두고 배신이란 실제 말을 썼다고 한다. 계엄 1개월 전인 2024년 11월 “살다 보면 나는 꼭 배신당한다”며 만취 상태에서 한동훈 이름을 거론했다는 것이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법정 진술이었다. 당시는 한 전 대표가 김건희 특검, 채 상병 특검 필요성을 거론하고, 김건희 인맥 배제를 요구하던 때였다. 친윤 주류의 요구는 이렇다. 설령 윤 전 대통령에게 부족함이 있더라도 민주당이 이재명 당시 대표 문제를 ‘검찰의 조작 수사’라며 똘똘 뭉쳐 방어했듯이 한 전 대표도 감쌌어야 한다는 것이다. 친윤그룹이 이렇게 느끼는 걸 일방적으로 탓하기 힘든 정서적 측면도 있다. 그게 옳은 일이냐는 건 별개의 문제지만. 결정타는 한 전 대표의 ‘대통령 당론 탄핵’ 구상이었다. 실제로 친한계 의원 여럿이 찬성하면서 국회 탄핵소추안은 가결됐다.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법무부 장관과 당 비대위원장을 맡았다. 이렇듯 누릴 건 누려 놓고 어떻게 등 돌릴 수 있느냐는 질문은 윤-한 사이의 사적 관계에서라면 상상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은 헌법 판단이 필요한 공적 행위다. 사적 인연에 가둬 둘 수 없고 가둬서도 안 된다. 그가 자행한 비상계엄은 표를 준 유권자 1639만 명의 기대를 꺾은 행위였다. “공정과 상식”이란 선거 때 구호는 어떤가. 그는 지킬 뜻도, 의지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망쳐버린 국정까지, 이 모든 것이 배신 아닌가. 민주당은 2024년 12월 토요일마다 탄핵소추 국회 표결을 시도했다. 2번째 토요일에 가결이 안 됐더라면 3주, 4주, 5주 차 소추안은 계속 상정됐을 것이다. 그때의 극심한 사회 혼란은 누가 책임지나. 무장한 군을 국회에 투입했는데, 어떻게 그가 하루라도 국가와 정부를 대표하는 상황을 그냥 둘 수 있나. 지금 국힘은 어두운 계곡을 헤매고 있다. 인공지능 어젠다 설정, 미일중 정상외교를 통해 미래라는 주제를 이 대통령이 독차지하고 있다. 한동훈 제명과 장동혁 단식 모두 과거에 머무는 행위다. 장-한 두 정치인의 역량 한계 때문이든, 정치적 셈법 때문이든 타협과 조율의 정치력은 찾아볼 수 없다. 정치라는 것이 하나하나 따지는 것보다 묻어두는 게 상책일 때가 있다. 하지만 한동훈이 걸린 배신 프레임은 두고두고 살아 움직이며 갈등의 씨앗이 될 것이다. 봉합하거나 미루지 말고 뜨겁게 논쟁해야 하는 이유다. 국힘 안팎에서 ‘배신자와는 정치 같이 못 한다’는 주장은 넘치지만 뭔가 알맹이가 빠져 있다. 한동훈의 어떤 행위가 배신인지,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했어야 했는지 구체적인 논리가 안 들린다. 장동혁 한동훈 두 경쟁자는 제대로 붙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인간적 정리(情理)와 공인의 공적 선택을 누가 어떻게 설명하고 논박하는지 유권자는 지켜볼 것이다. 그 대결의 승패와 관계없이 ‘한동훈=배신자’라는 인상만 남을 여지가 없진 않다. 그러나 그마저도 감내할 각오가 필요하다. 당의 ‘4번 타자’도 자연스럽게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정치인들의 상식 이하 행동이 수면으로 하나둘 떠오르며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당사자의 소양과 판단력 부족 혹은 욕심이 1차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 정치인에게선 소통 오작동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곤 한다. 정치인은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고언(苦言)에는 귀 닫고, 이에 참모들도 굳이 나서지 않는 현상이 도사리고 있다. 대통령실, 국회 의원회관, 당 사무처에서 이런 하소연이 들려온다. 직언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 거기엔 구조적 이유가 있다. 비상계엄 일주일 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에게 계엄 구상을 설명했고, 펄쩍 뛴 총리의 반대로 계엄을 백지화했다고 가정해 보자. 덕분에 대통령은 ‘구속, 파면, 사형 구형’이란 치욕을 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벌어지지 않은 미래’를 알 도리가 없는 대통령은 도움받았다는 마음보다는 1년 넘게 준비한 계엄을 포기한 데 따른 응어리가 남을 수 있다. 어쩌면 대통령-총리 관계가 불편해졌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라면 ‘성공한 쓴소리’ 제공자는 그 공(功)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 보며 정치인의 참모진은 직언을 삼가거나 머뭇거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윤 전 대통령은 이달 5일 형사법정에서 제대로 된 계엄 만류가 없었던 것처럼 말했다. “(그날 밤) 국무총리하고 국무위원들이 최소한의 정무 감각이라도 갖췄다면 외교나 민생이 어쩌니 할 게 아니었다. ‘계엄을 선포해 봤자 민주당이 해제할 텐데, 대통령님만 창피스러울 수 있고 역공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장관도) 이렇게 말 안 했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 결심을 바꿀 뜻이 없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말은 자기기만형 핑계일 뿐이다.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가 “군을 동원한 헌정 중단은 역사 앞에 떳떳하지 못하다”고 건의했다면 좋았겠지만, 수십 년 직업 공무원 출신이 대통령 면전에서 그렇게 말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인인 비서실장이 했어야 할 말이지만, 대통령은 자기 비서실장과는 일언반구 상의도 안 했다. 무능한 충성파 군인 및 군 출신 몇몇과만 일을 꾸미다가 비극을 자초했던 것이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는 어떤가. 그는 후보직을 수락하지 않았어야 했다. 일련의 불미스러운 행위로 국무위원직을 수행하기엔 부적격하다는 걸 자신이 가장 잘 알지 않나. 인사청문회의 매서움을 잘 아는 그로선 뼈아픈 오판을 했다. 그와 가족들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이 후보자는 입각 제안을 받고 누구와 상의했을까. “검증이 혹독할 텐데, 자신 있냐”는 조언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제3자가 그의 불법 탈법 갑질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행적을 알기 어렵고, 혹 일부 짐작했더라도 “검증이야 잘 통과하실 테니까…” 정도로 에둘러 말했을 공산이 크다. 그쯤 말했을 때 이 후보자가 찰떡같이 알아듣고 검증 무서운 줄 알았어야 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직언의 부재로 엉뚱한 방향으로 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언자 그룹과 한 몸으로 똘똘 뭉쳐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졌다는 해석이 더 그럴듯하다. 그는 ‘윤 어게인’ 인사들을 끌어안고,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했다. 누가 봐도 경쟁자 제거를 통한 당 장악에 나선 사익 챙기기다. 그 과정에 “우리가 하는 이 정치, 맞는 건가”라는 내부 질문이 있었을까. 문제는 장 대표가 앞으로 비슷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점이다. 단식 중인 그의 머릿속에 “이러다 6월 지방선거 참패하면 이후는 어떻게 대처하나” 하는 질문이 맴돌아야 한다. 불편한 질문은 오감을 자극해 내 생각을 원점에서 되짚어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이런 브레이크 장치는 참모들의 남다른 용기에만 기대서 갖출 일은 아니다. 쓴소리의 실질적 수혜자인 정치인이 간언(諫言)의 채널을 정비해야 한다. 이런 이슈를 다룰 때 지금도 인용되는 게 당나라 때 펴낸 ‘정관정요’다. 거기엔 당 태종 이세민이 신하들을 향해 “내 결정에 동의 못 하면 누구든 반론을 펴달라. 그대들은 내 비위만 맞추고 있다”며 답답해하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당 태종 사례는 간(諫)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 책이 제왕학의 전범이긴 하지만, 1300년도 더 된 이야기가 여전히 소비될 정도로 이런 소통 방식은 귀했다는 뜻이리라. 권력이 함께하는 직언과 쓴소리는 보물 같은 존재다. 당의정과는 정반대로 쓴맛 코팅이 됐을 뿐 알맹이는 바른 정치로 이끄는 달콤함이 있다. 오직 영리하고 인내심 깊은 정치인만이 그 효능을 누릴 뿐이다. 지금 이 시각, 여러 실력자들은 자신에게 직언 정치가 잘 작동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소시지와 국회 법안의 공통점은 만드는 과정을 보지 않는 게 차라리 낫다는 점이다’라는 말은 독일 정치에서 전해졌다고 한다. 요즘이라면 ‘국회 법안’ 대신에 정당공천 등 다른 표현을 넣을 수 있겠다. 가깝게는 김병기 강선우 이혜훈 사건을, 거슬러 가면 김건희 여사의 국정 사유화의 디테일을 알게 되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비유다. 모르는 게 나았을 장면을 뉴스를 통해 알게 된 뒤 분노하는 이들이 많다. 건진법사가 2018년 어느 출마 희망자에게서 공천을 미끼로 1억 원을 받았다는 혐의가 알려졌을 땐 저잣거리 브로커의 일 정도로 여겼다. 요즘 세상에 공천받겠다고 현금을 싸 들고 나서는 것도 웃기지만, 선거로 돈을 벌겠다는 정치인은 자취를 감췄을 것으로 짐작했다. 사실 검증이 더 남아 있지만, 중앙정치 한복판에서 그런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장면이 벌어졌다. 충격적인 것은 스캔들의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훌륭한 경력을 지녔고, 세상을 향해 정의로운 말들을 자주 던져온 이들이란 점이다. 나라에서 월급 주는 보좌진 9명을 거느린 국회의원은 소왕국의 1인자다. 피감기관장에게 호통치고, 700조 원이 넘는 국민 세금의 용처를 정하는 과정에 1인당 수억∼수백억 원 정도는 예산 처분권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정부와 기업이 잘 모시고, 예산 수혜자들은 조아린다. 특권의식이란 마(魔)에 휩싸이고, 의전의 그물에 걸려 허우적거리게 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처럼 “갑의 횡포 근절이 내가 정치하는 이유”라는 글을 책에 쓰면서도 20대 인턴을 쥐잡듯 대하는 이율배반이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 언제부턴가 여의도엔 거래형 정치가 뿌리를 내렸다. 정치인이 꿈과 희망을 말하면 왠지 어색하다. 현금복지 늘리고, 나랏돈을 내 지역구나 특정 직업군에 안겨주는 것이 고정표를 확보하는 새로운 공식이다. 공익 추구보다 공천권자에게 표건 전략이건 ‘쓸모 있는 것’을 제시할 수 있을 때 공천 기회가 커진다고 한다. 김 여사의 김영선 공천 개입이나 매관매직도 이런 기류에 딱 맞아떨어진다. 공짜 여론조사, 보석, 시계, 금 거북이가 건네졌고, 프랑스 명품이 사회적 예의로 포장됐다. 공직의 값을 이렇게 떨어뜨려도 되나. 이대론 안 된다, 어떻게든 바꿔 보라는 시대의 절규가 들릴 법도 하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둔감하다. “환부를 도려내겠다”는 민주당 반응은 상투적이어서 안일하게까지 들린다. 국민의힘은 모처럼 여당에 악재가 터지니 어깨에서 짐을 덜어낼 때의 홀가분함을 느끼는 듯하다. 이젠 의원들에게 따져 물어야 할 때가 왔다. 예산 나눠 갖고, 보좌관이 써 준 원고를 읽어가며 호통치고, 상대 당 비판하고, 위헌 논란이 있건 없건 당론대로 국회서 표결하는 일은 뭐 그리 대단한 걸까. 이런 정도 일을 할 거면 왜 4년마다 홍역을 치르며 경선하고 총선을 치르는지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국회의원 300명 모두를 도매금으로 매도할 생각은 없지만, 이젠 정말 정치가 한 클릭이라도 개선되도록 하는 일에 국회의원이 한 기여로 그 정치인을 평가해야 한다. 여야 정치인들에게 당부하고자 한다. 여야에 각각 유황불이 떨어졌는데도, 가만히 앉아 주변 공기를 살펴선 곤란하다. 여당은 반복되는 돈과 성추문으로, 야당은 ‘윤 어게인’ 세력과의 절연 문제로 수렁에 빠져 있다. 정당문화를 바꿀 정풍(整風) 운동이라도 시작됐어야 마땅한데, 용기를 내는 의원 한둘이 안 보인다. 의원들이 너무 잘 알아서일 것이다. 고개 들고 당 핵심부를 향해 옳은 소리, 쓴소리를 외치면 다음 공천 확률은 낮아진다. 진화생물학에서 말하는 ‘자연선택’ 과정이 반복되면서 지금 여야 모두 창업가형 의원은 찾아보기 어렵고 얌전한 월급쟁이형이 수두룩하다. 정부는 지난달 국무총리실 산하에 사회대개혁위원회라는 조직을 설치했다. ‘사회의 근본 틀을 확 바꿔보겠다’는 인상을 주는 이름이다. 이 조직의 실체와 활동 내용은 논외로 하더라도 비슷한 결기가 국회든 정당에서든 등장할 때가 됐다. 정치인들은 남 탓하면서 ‘너만 바뀌면 세상이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바뀌지 않고 세상이 달라졌던 때를 찾기 어렵다. 유권자들의 기대는 멋진 정치개혁을 척척 해내라는 수준이 아니다. 최소한의 상식과 순리에 부합하고, 정치적 사익보다 공익을 한 번쯤 먼저 생각해 달라는 주문만 남았을 뿐이다. 대통령부인 국정 개입이나 돈 공천 같은 후진국형 정치는 이제 안 보도록 해 달라는 거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는 일을 보면 청와대가 7개월 넘게 도입을 머뭇거린 특별감찰관, 그걸 대통령실만이 아니라 국회에 함께 설치해야 할 정도가 됐다.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일본 총리실 당국자가 핵무기 보유 필요성을 거론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 핵무기를 만들지도, 갖지도 않고, 밖에서 들여오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손보겠다는 구상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일본은 미국 전술핵을 반입하거나 공유하는 걸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비핵 모범국인 일본이 이럴 정도로 전 지구적 핵안보 질서는 불안정해졌다. 유럽에선 러시아발 위기와 도널드 트럼프의 돌변이 기폭제가 됐다. 미국 핵우산이 사라지는 걸 가정해 ‘유럽만의 핵우산’ 구축론에 독일과 프랑스가 팔을 걷고 나서고 있다. 동북아에선 북한이 핵선제공격 독트린을 만들고 휴전선 부근에 전술핵을 배치했다. 한국도 그 흐름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경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 나서는 두 가지 기회를 잡았다. 나랏돈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에 대한 반대급부로 정부가 기회를 제대로 포착한 것이니 국민들은 박수를 보낼 만하다. 사실 핵잠과 재처리는 바이든, 오바마, 부시처럼 여느 미 대통령은 이런 핵 확산 금지 원칙을 허무는 일에 동의하지 않았을 일들이다. 현금 투자 유치에 눈이 어두워지고 핵질서에 관심이 작은 트럼프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둘 가운데 핵잠수함 도입은 상대적으로 쉬운 쪽이다. 어디서 건조할지, 미국서 잠수함 원자로 기술을 받을지 여부는 협상하면 된다. 다만, 우리로선 핵을 비(非)평화적 목적으로 쓰는 첫 사례여서 낯선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건 분명하다. 반면 핵물질 부문 양해각서(MOU)는 모호하다. “농축과 재처리로 이어질 절차를 미국이 지지한다”고만 표현했는데, 제대로 동의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 합의로 한국에 핵발전소 연료를 자급하는 등 상업용 핵활동을 모색해 볼 수 있게 됐다. 농축과 재처리가 충분히 보장된다면 핵무기 개발 직전 실력이라고 평가받는 일본 독일 이란 등에 버금갈 수 있게 된다. 협상에 걸림돌이 있다면 미국 국무부 에너지부에 넘쳐나는 비확산 매파(원칙주의자)의 반대다. 그래서 트럼프라는 ‘우리 편’이 퇴임한 이후까지 핵물질 협상이 계속된다면 결과를 낙관하기 힘들 수도 있다. 결론 없이 흐지부지 끝나지 말란 법이 없다. 미 정부 내 비확산파는 한국의 핵무장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 핵무기는 안 만들겠지만, 그래도 언제든 핵무장할 직전 단계까지는 가 있어야 북핵에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이 국내에 생겨나고 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도 그중 하나다. 1945년 오펜하이머가 미국서 개발한 핵무기는 이젠 범접 못 할 기술이 아니다. 미국은 핵 비확산 체제를 만들어 비교적 잘 틀어막았다. 그럼에도 인류 멸망을 가리키는 핵시계는 지금을 자정(멸망 시점) 90초 전이라 말한다. 러시아와 미국이 만든 근년의 핵 불안은 그 시계를 85초 전으로 5초 더 흘러가게 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묻게 된다. 핵잠수함과 핵물질 생산에 나서기로 한 이재명 정부가 그리는 한반도 핵의 미래는 어떤 건가. 10년쯤 뒤 완성될 우리 핵잠은 좁은 한반도 해역에만 머물 것인지, 미국의 북태평양 전략의 한 축을 담당해 중국 견제 역할을 할 것인가. 민간 원전에도 알레르기를 느끼는 민주당 정부가 과연 어떤 비전을 갖고 농축과 재처리를 기획한 것인가. 이건 이재명 정부에 던지는 질문일 뿐만 아니라 미지의 세계로 나서게 되는 한국 사회가 스스로에게 묻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트럼프라는 ‘악동 대통령’의 등장으로 우리에겐 핵무기 없이 미래의 핵 지위를 그려볼 기회가 왔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절대 핵무기 제조는 꿈꾸지 않고 제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일각의 핵무장론은 학자들의 주장에서 그쳐야지 국가적 어젠다는 될 수 없다. 우리 산업과 무역 구조가 미국과 마찰을 견딜 수 없다. 결국 최선의 목표는 ‘핵잠수함을 갖춘 핵농축 국가’일 것이다. 그런 위치에서 사실상 핵무장 국가반열에 오른 북한을 상대할지를 구상해야 한다. 미국의 동의 아래 재처리-농축이 언젠가 시작되면 북한은 부당한 핵위협과 말폭탄을 쏟아낼 거다. 우리에게 찾아온 핵 도약 목표는 가파른 길을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가 마련한 기회는 3500억 달러 강제 투자라는 희생을 치르며 얻은 것이다. 국내에선 그 바람에 산업 공동화, 일자리 감소, 외환 리스크 등을 감내해야 한다. 이렇게 손에 쥔 호기를 치밀한 협상으로 결실을 맺어야 한다.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 “이젠 윤석열 인연을 벗어던지자”고 말한 것은 계엄 후 1년만이다. 내년 지방선거 참패 걱정에서 한 말이겠지만, 당의 공기가 확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몇 가지가 눈길을 끈다. 먼저 장동혁 당 대표의 ‘계엄은 민주당 탓’ 주장을 공개 비판하는 형식이었는데, 웰빙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이 당 문화에선 드문 일이다. 게다가 윤 의원은 원조 윤핵관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기어이 부글거리는 저류가 분출한 이상, 8일 열릴 의원총회는 달라야 한다. 엎드려 침묵하던 영남·강원권의 이른바 ‘언더 찐윤’ 30여 명 가운데 한두 의원이 공개 동조한다면 돌파구가 생길 것이다. 전체 107명 의원들은 ‘제대로 사과하자’는 쪽과 ‘그러면 더 끌려다닌다’는 쪽이 반반쯤이라고 한다. 열쇠는 장동혁 대표가 쥐고 있다. 장 대표는 정치 입문 후 5년 동안 정치가 술술 풀렸다. 최근 3년 동안 의원직에 2번 당선되는 동안 사무총장을 거쳐 당 대표가 됐다. 지지층이 된 강성 아스팔트 우파 그룹을 계속 활용하고, 한동훈 이준석 등 미래의 범보수 경쟁자를 향한 거부감만 유지시키면 2030년 대선 후보 자리가 어른거릴 것이다. 장 대표는 벌써부터 ‘4번 타자’ 즉, 대선 후보가 되겠다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사가 어디 그렇던가. 자신이 성공했던 바로 그 이유로 실패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보게 되는데, 장 대표가 그런 위기에 몰렸다. 친윤 우파의 지지로 일어섰지만, 이젠 그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친한계였던 그는 계엄의 밤에 계엄 해제 표결 때 찬성한 18명 국힘 의원 중 하나였다. 하지만 탄핵 반대로 돌아선 뒤론 “계엄은 하나님의 계획”이란 말까지 남겨 주위를 놀라게 했다. 강성 우파가 미는 50대 주자가 되면서 당 대표까지 맡았는데, 그러다 “우리가 황교안” 발언이 나왔다. 이런 퇴행 속에 지금 보수 야당은 존재감이 미미하다. 대장동 항소 포기, 위헌 논란이 큰 ‘사법개혁 법안’ 파장이 이어지고 있지만 비판이 먹히지 않는다. 장 대표가 마이크를 잡지만 ‘계엄 옹호’ 이미지가 겹쳐지니 힘이 빠진다. 위헌적 불법적 계엄을 일으켜 파면된 전직 대통령과 절연하는 일도 못 하는데 누가 귀 기울이겠나. 그렇다고 장 대표가 돌아서서 사과의 길로 들어서는 걸 예상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내부적으론 “1월부터 달라질 거다”라고 말한다지만, 그는 이미 양치기 소년이다. 여름부터 “하루에 1도씩 달라지겠다”고 약속했지만 달라진 건 없다. 설령 장 대표가 결심하더라도 험난한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1년간의 자기를 부정하고, 한동훈 전 대표를 견제할 때 쓰이던 ‘배신자’ 딱지를 각오해야 한다. 장 대표는 강성우파의 지지를 쟁취한 게 아니라, 주인 잃은 우파의 마차에 올라탄 것에 가깝다. 장 대표가 변심하면 마차는 언제든지 떠나고 빈손으로 남게 될 리스크도 있다. 이럴수록 해법은 근본적인 질문에서 나오곤 한다. 하고 싶은 정치가 뭐냐는 물음이다. 대표직 유지하고 ‘4번 타자’로 뛰다가 몇 년 뒤 대선후보가 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위기에 몰린 보수정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한 알의 밀알이 되는 정치를 꿈꾸나. 의정 활동 기간이 3.5년인 그로선 현직 당 대표지만 그만큼 유연할 수 있다. 다만, 그가 소수의 강경론자 정치인, 유튜버와 깊이 교유한다는 당내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동굴 속에 몇몇이 모여 자기들 그림자를 보면서 그것이 실체적 진실인 양 판단하는 오류에 빠져선 곤란하다는 옛 가르침을 새겨야 한다. 국민의힘이 거듭나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처절한 반성과 단절을 통해 제1 야당답게 건강한 반대자가 될 책무가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3차례 연이은 총선 패배가 말해주듯 수년째 그런 역량을 잃어가고 있다. 민주당의 독주를 탓할 수 있지만, 그건 일부만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107석 의석에, 20%대 지지율로는 어림도 없다. 하루에 하나씩 국민 마음을 얻는 좋은 정치를 이행하고, 지지율을 1%포인트씩 높여야 한다. 이걸 버거워하다 일어난 게 어처구니없는 비상계엄이다. 이기는 DNA를 되찾기 위해선 다른 선택지는 없다. 나는 정치를 왜 하는지, 10년 뒤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초라해진 보수 본류 정당의 대표로서 유권자들에게 미안하지 않은지…. 장 대표가 말하는 기도의 시간에 떠올려야 할 질문들이다. ‘잘 싸우는 정치’를 강조하는 장 대표는 1차 싸움 대상을 정확히 잡아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나중의 문제다. 우선 지난 1년간의 자신과 싸우고, 이겨내고, 바꿔내는 게 순서일 것이다.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열흘 전 사직한 노만석 전 검찰총장 대행은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대장동 사건을 항소한 뒤 징계를 받든 어떻든 정면승부 할 걸 그랬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늦었다. 노 전 대행은 문제의 금요일 오후 5시 30분 아직 항소하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됐다. 이후 6시간 남짓 세 가지 선택지를 놓고 면밀하게 후과(後果)를 따져봤을 것이다. 항소 재가를 받도록 정성호 법무장관을 설득할 것인지, 장관 뜻을 거슬러 항소장을 접수시킬 것인지, 아니면 장관 메시지처럼 “신중하게 검토”한 뒤 항소를 포기할 것인지 등이다. 그는 대검찰청 검사장들, 서울중앙지검장과도 상의했다. 스스로를 무사요 칼잡이라 부르는 이들의 집단적 선택은 놀랍게도 가장 손쉽고, 그래서 비겁한 세 번째 ‘항소 포기’ 시나리오였다. 항소를 밀어붙였다면 어땠을까. 노 전 대행은 권력 앞에 고개 숙인 검찰 굴욕사의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작금의 상황을 모면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행 자리를 지켰을 수도 있다. 그날 밤 11시 기류를 파악한 언론이 첫 보도를 하기 전에 항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면 장관이 법무차관을 통해 의견을 전달한 전모는 비밀에 부쳐졌을 수 있다. “나는 경영자” “용산 법무부 관계를 고려”라고 실토해 망신을 살 일도 없었을 것이다. 법무장관으로선 특별한 지휘를 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니 문책받을 일도 없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도 12·3 계엄의 밤에 비슷한 압박을 받았다. 밤 8시 대통령에게서 임박한 계엄 선포 계획을 들었지만, ‘골든타임’인 첫 1시간 동안 만류하지 못했다. 본인은 반대했다고 주장하는데, 공개된 CCTV 영상이나 여타 장관들 진술을 보면 그는 그날 밤 계엄에 순응한 것에 가까웠다. 짧은 순간 세 가지 선택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계엄 찬동이냐, 반대 표시 후 소극적 수용이냐, 결연히 반대 후 사직(辭職)할 것이냐…. 특검은 찬동했다고 보고 있고, 한 전 총리는 ‘소극적 수용일 뿐’이라며 법정서 다투고 있다. 한 전 총리는 항의의 뜻으로 사의를 밝히고, 그런 뒤 몇몇 장관들과 함께 국무회의장을 박차고 나섰다면 계엄은 불발됐을까. 아닐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고, 특전사 등 계엄 병력은 출동 채비를 다 갖춘 때였다. 계엄 선포를 막았더라도 기획 사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고, 어마어마한 정치적 파장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용산 대통령실에서 몸을 던졌다면 한 전 총리는 윤 정부의 2인자였다는 정치적 책임과는 별개로 지금 같은 수모와 사법적 고초는 피할 수 있었다. 한덕수 노만석 두 공직자는 운명적인 오판을 했다. 머리로 꾀를 내지 않고 마음으로 큰 판을 읽었더라면 용기 있는 참공직자로 박수 받았을 일이다. 결기를 보인 뒤 크고 작은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지만, 대의를 따랐다는 명분을 쥐고 있으니 공직의 마지막을 망치지 않았을 것이다.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겐 뻔히 보이는 쉬운 답 대신 자충수를 둔 이유가 궁금할 뿐이다. 짐작 가는 첫째 이유는 이들의 상상력 부족이다. 계엄 이후, 항소 포기 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시각적으로 그려보는 데 실패했다. 1시간과 6시간이 짧아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각각 경제관료와 검사로 수십 년 동안 산전수전 겪은 두 사람은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손에 잡히듯 그려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대명천지에 계엄이 성공해 국회를 멈춰 세울 수 있다는 쪽에 의탁했다는 것이 어이없다. 또 대장동 사건 1심 판결문에 대해 보고받았을 텐데, 김만배 일당의 형사적 금전적 이익에 민심이 얼마나 부글거릴지 짐작 못 했다는 말인가. 또 하나 이유는 공직 DNA다. 주위 평가를 들어보면 둘 다 강단 있는 승부사보다는 기질적으로 순응형 노력파에 가깝다. 공직 사다리를 올라오는 동안 소수 의견을 관철한 경우보다 대세를 모범적으로 따르는 쪽이었다고 한다. 결국 두 사람은 어두운 기운이 닥쳤을 때 옳고 그름보다는 유불리를 따졌고, 책임의식보다는 정치적 후각을 예민하게 가동시켰던 것 아닌지 짐작할 뿐이다. 공직사회는 두 사람의 비극적 추락을 지나가는 일로 여겨선 안 된다. 공직자라면 상부로부터의 압박에 따라 원칙을 훼손하는 결정을 하도록 몰릴 때가 있다. 두 사람의 추락은 얼핏 보면 한순간에 벌어진 일 같지만, 오랜 공직생활에서 체화된 무언가가 발현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라면 박차고 일어났을 수 있나. 나라면 ‘항소장 접수시키세요. 책임지겠습니다’라고 지시할 수 있을까.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최고 권력자 주변엔 비밀이 넘칠 수밖에 없다. 조선조 국왕과 왕비가 머무는 곳을 지극히 비밀스럽다고 해 지밀(至密)이라 불렀다. 대통령 곁엔 명함에 비(祕)자를 쓰는 참모들이 30명은 족히 넘는다. 권력 핵심부의 정치적 논의, 인사 검증 등의 과정은 하나하나가 기밀인데, 잘 지켜지던 보안은 레임덕 징후와 함께 구멍이 생기곤 한다. 비상계엄과 탄핵 이후 생생히 목격하는 대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채 상병 사건 당시 격노를 전 안보실 1차장 등이 인정했고, 대통령의 당 공천 개입을 친윤 핵심 의원이 확인했다. 그토록 감추려 했건만 맥없이 드러나고 있다. 충성파라던 전 경호처 차장도 태도를 바꿔 대통령의 비화폰 기록 삭제 지시를 시인했다. 전 특전사령관은 “총으로 쏴 죽이겠다고 그러시지 않았느냐”고 발언해 윤 전 대통령을 당황케 했다. 김건희 여사도 예외는 아니다. 믿었던 건진법사나 건설사 오너 등이 명품 제공 사실을 털어놓았다. 명태균 씨 폭로도 빠질 수 없다. 돌이켜 보면 김 여사는 느슨한 ‘거래적 의리’에 의탁해 겁 없이 비밀을 공유했던 것이다. 용산에 머무는 동안 누구도 어쩌지 못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동영상 속 김 여사는 비밀 유지가 불가능한 인간사를 정확히 아는 듯했다. “비밀은 없어요. 잠깐은 속일 수 있어도, 결국 비밀은 다 나와요.” 전 국민의힘 대표의 배우자가 보냈다는 프랑스 명품백도 그렇다. 3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이런 방식으로 드러날 걸 상상이나 했을까. 비밀은 발이 달린 듯 사방에서 걸어 나왔다. 이처럼 3대 특검 수사는 비밀의 비밀이 깨지는 과정이다. 수사와 브리핑, 영장과 공소장, 재판 중계를 통해 특검은 한국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임진왜란 후 나온 징비록이 한 역할대로다. 과거의 어떤 잘못을 징(懲)하고, 후대에 무엇을 전달해 비(毖)하도록 할지가 차곡차곡 기록되고 있다. 2025년판 징비록의 실천적 교훈이 있다면 그중 하나는 자기 위험은 본인이 알아서 챙겨야 한다는 점이다. 누구도 내 비밀을 지켜준다고 장담할 수 없다. 문자건 전화 통화건 캡처되고 녹음될 것이고, 부적절한 일이 있었다면 몇 년 뒤라도 망신을 살 각오를 해야 한다. 올바라야 한다는 윤리를 따지기 이전에, 나의 안녕을 위해 삼갈 수밖에 없다. 300쪽이 넘는 한 정치인의 1심 판결문을 읽어본 적이 있다. 수사기관이 달려들면 포렌식 수사가 얼마나 정교하게 내 삶을 재구성할지에 생각이 미치면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다. 이런 교훈이 새로울 것도 없다. 과거에도 녹음 파일은 공개됐고, 불법 행위를 담은 업무 수첩도 여럿 압수되곤 했다. 문제는 우리가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개개인은 물론 검찰 같은 권력기관은 자신들의 과거에서 반면교사를 더 못 찾은 듯하다. 그 결과 김건희 봐주기를 거쳐 검찰청 폐쇄라는 운명을 맞았고, 전 검찰총장이 수사받고 있다. 놀라운 일은 이재명 정부의 검찰도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로 새로운 파문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이틀 사이에 중앙지검장은 사표를 냈고, 검찰총장 대행은 “검찰이 주도하여 한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 사안은 당사자들의 부인과는 별개로 대통령실, 법무부가 의사 결정 과정을 잘 알았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과연 비밀이 없는 지금 세상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은 진실을 끝까지 안고 갈 수 있을까. 항소 포기 결정은 경주 정상외교가 끝나자마자 민주당이 재판중지법 입법을 추진하려던 것을 용산이 나서서 제동을 건 때와 비슷한 시기에 진행됐다. 우연인지, 누군가 조율한 것인지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다. 검찰 업무를 총괄 보좌하는 대통령민정수석은 수년 전 검찰 간부회의 때 ‘뉴스페이퍼 스탠더드’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수사라는 칼을 휘두르는 검찰은) 어떤 행동을 할지 고민될 때 내가 하는 행동이 내일 아침 조간신문 1면에 났을 때 납득될 수 있는지 살피라”는 취지였다. 권력기관 구성원의 처신에 이만한 기준이 있을까. 윤 전 대통령 부부, 계엄에 가담한 군 장성들, 봐주기 수사를 한 과거 검찰은 물론 지금의 검찰과 법무부, 용산은 이 기준에 자신을 비춰 보길 바란다. 비밀이 없는 세상에 우리 앞엔 두 가지 선택이 놓이게 된다. 오늘의 내 행보가 어떻게든 공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마음에 둘 것인지, 아니면 그렇기 때문에 더 입 무거운 충성파와 ‘우리 사람끼리’를 강화할 것인지. 양자택일할 일이 아니니 둘 사이 어딘가겠지만, 어느 쪽에 더 가까울 때 공공선과 나의 안위가 더 보장될지는 자기만의 답을 제각각 갖고 있을 것이다. 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현장 정치부 기자 시절, 안도현 시인의 글을 읽고 정치인이라면 시작(詩作)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안도현은 시인을 ‘말로 세상을 바꾸는 존재’로 여겼다. 그는 시를 쓰는 태도에 대해 “허리를 낮추거나 무릎을 구부려 (길가의 들풀을) 관찰할 줄 알아야 한다” “양심을 속이거나 거짓됨이 없어야 한다”고 썼다. 유권자 앞에 더 낮아지고, 삿됨 없이 정직한 언어로 세상을 마주하는 정치인들이 더 나올 수 있겠다 기대했다.당시 생각이 부질없었음을 인정한다. 모두가 고개를 젓는 작금의 정치는 시적(詩的)이기는커녕 추문(醜文)이 너무 많아졌다. 국정 사유화, 계엄, 탄핵, 정권교체에 이어 거대 여당이 이끄는 국회를 지켜보며 이런 생각을 갖는 이들이 더 늘었을 것이다. 요즘 법사위에서의 고성, 반말과 삿대질, 방미통위에서 벌어진 언어폭력을 통해 바닥에 떨어진 정치를 봤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만든 현상이라지만, 정치인들은 문제를 바로잡기는커녕 한술 더 떠 이 흐름에 올라타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있다.정치인의 저질 발언이 뭐가 새삼스럽냐고 반문할 수 있다. 2008년 11월 동아일보가 보도한 여야 대변인의 1년 치 논평 1000건 분석 기사를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놀라운 건 상대 정당에 대한 공격성과 적대감에서 가장 부정적 점수를 받은 논평 2가지다. “(그들은) 시대착오적인 극우 형제” “정권교체 저지를 위한 마지막 발악이 (민주당) 곳곳에서…”. 지금은 매일같이 듣는 이런 논평이 최악으로 평가되던 시절이었다.2008년 기사를 보면 저격수 역할은 여야 부대변인들이 도맡았다. 당 지도부나 현역 의원이던 대변인들은 모진 비판거리가 있을 땐 당내 입지가 약한 부대변인들에게 넘겼다. 중진들이 한발 뺀 것이지만, 그렇게 만든 공간에서 타협과 절충이 이뤄졌다. 하지만 여운과 함축의 맛을 담은 정치 논평이 박수받던 그 시절은 이제 가고 없다.말의 품격이 떨어진 정치는 그 공격성만이 문제는 아니다. 사막 같은 정치 언어는 생각의 빈곤, 콘텐츠 부재를 가리는 외피가 돼 버렸다. “첫째, 둘째, 셋째”를 말하며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옛 정치인들이 그리울 정도다. 올망졸망하게 키 작은 정치인들만 넘쳐난다. 선수(選數)는 쌓았으되, 지도자다움을 키우지 못한 결과다. 대통령감, 당 대표감으로 여겨지는 거물이 점점 줄고 있다. 전체적으로 국회의원들 언어가 옛 부대변인과 비슷해졌다.내실 없음은 숏폼 정치로 때우고 있다. 숏폼 속 정치인들은 연예인과 다를 게 없을 때가 많다. 한 세대 전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유행하던 말(“Politics is show business for ugly people”)이 한국에도 상륙한 것이다. 의역하자면 “정치인과 연예인은 똑같은 기질을 지녔다. 인물이 빼어나면 연예인을 하고, 그 반대는 정치를 할 뿐이지”라는 뜻이다. 이런 정치의 큰 해악은 국가 현안을 다뤄야 할 신문지면과 방송뉴스 시간을 뺏는다는 거다. 이번 주 경주에서 동북아 질서의 30년을 가늠할 한미, 미중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고, 정부 어디선가는 AI 시대와 민생 복지 정책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정치인 싸우는 영상에 빠져든 대중은 무거운 주제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우리가 너무 심했다”는 자성은 없다. 당 원로나 어른들도 뒷짐만 지고 있다. “의원들이 상임위에서 싸울 때 보좌관들이 휴대전화로 영상 찍으러 따라다니는 게 정상이냐”는 지적이 안 들린다. 200년 전 나왔던 ‘독일 국민에게 고(告)함’ 강연 시리즈처럼 국회의장, 당 대표를 지냈던 이들이라면 피를 토하듯 촉구해야 하지 않나.좋은 정치에 목마른 유권자들은 작은 일에도 감동할 준비가 돼 있다. 정치가 먼저 허리 낮추고, 무릎 구부리는 걸 보고 싶어 한다. 욕심 덜어내고, 관조하고, 손 먼저 내밀며 자연과 하나가 되려는 시인들의 태도가 우리 정치에서 발붙일 곳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정당들이 스스로 변할 여지도 크지 않다. 여전히 “악수는 사람과만 한다”거나 “여당과 잘 싸우는 게 먼저”라며 버티고 있다. 상대 당이 변해야 한다고 목청 높일 뿐 자당이 먼저 달라지겠다는 의식도 없다. 그럼에도 여의도에서 반말과 악쓰기를 멈추겠다는 다짐을 먼저 내놓는 정당이 나오길 바란다. 그럴 경우 그들은 굴복한 게 아니라, ‘지는 게 이기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유권자는 언제나 그렇듯 정확하게 기억할 것이다.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트럼프 정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어떤 사업인지도 모르는 미국 내 사업에 나랏돈 3500억 달러를 100% 현금으로 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국난이 눈앞에 닥친 셈이다. 거칠게 빗대자면, 남한산성에 갇힌 채 청(淸)의 홍타이지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받던 병자호란 때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야만적 힘이 정의던 400년 전 우리는 추위와 굶주림 속에 59일 만에 투항했다. 청과 싸우자는 척화파와 화친하자는 주화파가 맞선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학자 한명기에 따르면 조정에선 95 대 5 비율로 싸우자는 쪽이 압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조선의 선택은 5% 소수파가 제시한 길이었는데, 굴욕적일지언정 피해는 최소화하려던 선택이었다. 당시엔 우리가 오랑캐라 배척하던 세력이 남한산성을 에워쌌는데, 지금은 미국이 70년 동맹을 ‘남한산성’에 몰아넣었다. 한국인에게 처음으로 배고픔을 딛고 서게 했던 미국이 국난을 가져온 것이다. 이런 역설이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달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에 올 예정이다. 8월에 이어 2차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지금 3가지를 묻게 된다. ①트럼프는 왜 유독 한국에 모질게 나오나 ②대미 투자 총액을 줄이는 등 우리 부담을 덜 길은 없나 ③투자협상 타결 이후 한미동맹은 온전할 수 있나. ①에 대한 답은 상대국을 대미 충성도에 따라 차등 대우하겠다는 트럼프 캠프의 생각에서 찾을 수 있다.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약(弱)달러를 추구한다는 정책이 정리된 이른바 ‘스티븐 마이런 보고서’를 보자. 그곳에선 트럼프의 경제·안보 정책에 얼마나 잘 따르느냐에 따라 나라별로 관세를 차등해서(graduated tariffs) 부과하겠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우리 눈에 일본은 맹목적으로 미국을 추종한다. 한국 정권교체기마다 등장하는 중국 경사(傾斜)론도 일본엔 없다. 트럼프 사람들이 한국에 더 가혹해 보이는 이유다. 이재명 정부는 ②와 관련해 투자 총액도 줄이고, 지분투자 비중을 최대한 낮추는 양 갈래 협상을 진행 중이다. 미국은 한국이 자신들 요구를 100% 이행할 여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조건을 누그러뜨릴 기미는 안 보인다. 트럼프식 협상 전략일 수도 있고, 이재명 정부의 혼을 쏙 빼놓아 보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대미 수출품에는 대체로 25% 고율 관세가 붙고 있다. 그렇다고 시간이 미국 편만인 것은 아니다. 전 세계는 한미 협상의 결론은 물론 과정까지 주시하고 있다. 동맹의 모범국 한국이 굴복당한다면 어떤 나라가 미국의 동맹 리더십을 흔쾌히 따를까. 이럴 때일수록 아쉬운 것이 한국 보수의 역할이다. 한미 간 가치동맹을 주도해 온 그들이라면 국익의 이름으로 협상을 도울 기회다. 하지만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현 여권에 대한 정치적 정서적 반감 탓일 텐데, 하책(下策)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 협상이 타결된 이후 한미동맹은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질문 ③에 대한 답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의 “한국을 밟는다고 밟아지는지 한번 보라. 밟는 (미국의) 발도 뚫릴 거다라고 미국에 말했다”는 설명은 놀랍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지만, 이건 동맹끼리의 언어가 아니다. 우리가 미국 없이 중국과 일본을 맞상대할 방법은 없지 않나. 하지만 지금처럼 밀린 월세 받아 가듯 동맹의 혜택을 받아내겠다는 건 머리론 이해해도 가슴으로 승복하기 어렵다. 결국 가치동맹이 훼손된 자리에는 계약동맹이 들어설 것이고, 피를 나눈 혈맹이 아닌 필요할 때 주고받는 사이가 될 수 있다. 잘 작동되는 듯하더라도 ‘결정적 순간’에 미국이 한국을 위한 안보개입을 이행할지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토동맹은 즉각 개입이지만, 한미동맹은 ‘각자의 헌법적 절차를 거친다’는 지체 요인이 있다. 협상 타결은 미국이 요구를 양보해야 가능하다. 그 대신 우리는 뭘 줄 수 있나. 결국 전략적 유연성이든, 중국 문제든 ‘동맹 현대화’로 이름 붙인 미국의 동맹구상을 수용하는 어딘가에 길이 놓여 있을 것이다. 트럼프와의 대좌가 다가올수록 이 대통령은 외롭다고 느끼는 시간이 늘어날 것 같다. 엊그제 퇴임을 앞둔 이시바 일본 총리가 2차 대전 패전 80년을 맞아 왜 일본의 군국주의를 정치가 막지 못했는지에 대해 글을 남겼다. 내용 자체보다 그런 글을 마무리하기까지 늦은 밤 홀로 생각에 잠겼을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절대 고독의 시간이다. 동맹을 남한산성에서 꺼내는 일은 미국도 할 수 있지만, 이 대통령도 할 수 있다. 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영교, 부승찬 의원이 꺼내든 조희대 대법원장 비밀회동설은 여러 이유에서 충격적이었다. 회동설 폭로와 함께 사법부 수장의 중도 사퇴를 요구할 정도였는데, 많은 게 허술했다. 30년 전 박계동 의원은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면서 은행 자료라도 흔들었지만, 이번엔 AI 변조 가능성까지 거론된 음성파일이 사실상 전부였다. 당 내부에서도 대놓고 말은 못 해도 외면하는 기류가 형성됐다고 한다.부 의원은 폭로 며칠 뒤 지상파 라디오에 출연해 같은 주장을 폈다. 국회에서 한 일방적 폭로가 아니라 방송사 앵커를 마주한 자리였다. 부 의원은 확실한 근거가 있는지 묻는 질문을 3, 4개 받았다. 앵커는 “제보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까지 물었다. 대법원장이 ‘이재명 사건은 대법원에서 알아서 처리한다’고 말했다는 문제의 그 오찬 모임 참석자 4명의 면면을 볼 때 뭔가 어색하다는 지적이었다. ‘폭로 전에 이런 상식적 의문을 따져 보지 않았느냐’는 질책처럼 들렸다.세상이 뒤숭숭할 때는 말이 먼저 흔들린다고 했는데, 우리 공론장과 미디어 지형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정치인들은 전통적 언론을 피하고 있다. 언론학자들이 쓰는 ‘언론 회피(바이패싱·Bypassing) 저널리즘’ 현상이다. 부 의원도 지금쯤 이런 생각을 갖게 됐을지 모르겠다. 정치인들은 우호적 유튜브를 더 찾는다. 12·3 계엄 직후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주적(朱赤)이 동색인 같은 편 유튜브를 방문해 탄핵 반대 여론전을 시작했다. 그는 “유권자들이 1년 후에는 다 찍어준다”고 했다.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는데, ‘같은 편’인 유튜버는 그 문제적 발언을 들으면서 경고음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끼리끼리 같은 편의 집단사고가 특징인 유튜브에선 생각의 힘이 작동할 공간이 좁다.TV건 유튜브 매체건 진행자 역량이 더없이 중요해졌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조국혁신당 조국 당시 대표는 여러 유튜브에 출연했다. 조 대표는 당시 “입시 문제로 잘못했으니 처벌받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형 비리는 1건도 없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필자가 직접 본 영상 3, 4건에서 비슷한 논지를 폈다.채널 진행자들은 수긍한다는 뜻인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 주장은 사실일까. 그는 민정수석 시절 유재수 금융위 국장의 비리 정황을 포착하고도 정치인들 부탁을 받고 눈감아줬다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여러 번 보도된 대로다. 진행자들은 “그럼 유재수 건은 권력형 아닌가요”라고 질문했어야 했다. 당시 진행자들이 정파적 동질감 때문에 반박하지 않은 것인지, 단순히 타이밍을 놓쳤던 것인지 알 길은 없다. 시청자들은 ‘조국이 억울했겠다…’는 인상을 받았을 개연성이 있다. 방송의 공공책무와 무관한 유튜브라지만, 공론의 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축을 차지하게 된 지금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취재기자도 그렇지만 미디어 진행자는 권력자에겐 부담스러운 존재일 때 토론 문화는 활기를 띤다. 정치인들은 자신만의 통계와 사례를 앞세워 일방적 주장을 펴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그런 숫자나 사례를 어디서 듣고 알게 된 건가요” “당신 주장이 사실이라는 근거가 어떤 건가요”를 물어야 한다. 좋은 앵커와 그렇지 않은 앵커는 위 두 질문을 하느냐, 아니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느냐로 구분된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까지 들을 때 시청자들은 정치적 판단을 더 분명하게 할 수 있다.한국의 공론장은 사실 5000만 국민의 상수원 같은 존재다. 우리는 까다로운 기준을 만들어 생활하수가 스며들지 못하게 상수원 수질을 관리한다. 같은 이유로 정치인들이 팩트를 비틀거나, 사실과 의견을 뒤섞어 말할 때 공론장 참여자들은 수질 감시인처럼 나서야 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의견인지 생선 살에서 가시를 발라내듯 가려내야 한다. 언론과 유튜버의 구분이 모호해진 마당에 이런 책무는 기자든, 평론가든, 개그맨이든 진행자라면 느껴야 한다.정치 공론장 참여자는 정치인, 매체 진행자, 뉴스 수용자 3축이다. 지금은 정치인의 변화 촉구를 기대하기 힘든 시기다. 앵커의 분발만으로도 부족하다. 결국 시청자들이 앵커를 냉정하게 평가할 때가 됐다. 정치인이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펴는데, 왜 반박성 질문이 안 나오는지를 따져야 한다. 앵커가 꼭 필요한 질문으로 공론을 풀어갈수록 이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좋은 정치와 언어에 대해 더 높은 기준을 세우게 될 것이다. 시청자들의 높은 공론 기대치는 결국 정치인들이 반응하도록 하는 유인이다. 3축이 함께 움직이는 그때가 오면, 난공불락 같던 공론장에도 진짜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우리가 미국에 투자하기로 합의한 3500억 달러는 액수도 크지만, 미국의 합의 압박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여기에 일본이 열흘 전 갑자기 ‘백기 투항’하는 바람에 일이 더 복잡해졌다. 일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정하는 사업에, 5500억 달러를 전액 현금으로, 트럼프 임기 내에 입금하겠다고 서명했다. ‘투자 원금 회수 이후’로는 투자 이익을 미국과 일본이 90 대 10으로 나누기로 했다. 이런 불평등한 투자 합의에 왜 동의했는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트럼프 정부는 이재명 정부가 비슷한 수준에서 합의해 주길 바란다고 한다. 일본은 자국에 중요한 자동차 수출 관세를 낮추기 위한 통 큰 양보였다고 설명하지만, 그것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굴기한 중국을 상대하기 위해 손해를 무릅쓰고 미국에 줄을 다시 선 것이다. 일본은 중국과 손잡은 역사도 없고, 손잡을 미래를 상상할 수도 없는 만큼 미국은 생존의 동아줄이다. 같은 이유로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협정에 합의했다. 그때도 미국은 ‘대미 무역흑자가 너무 크다’며 일본을 찍어 눌렀다. 한국은 이러기가 어렵다. 미국의 절대적 안전보장 속에 국방비를 크게 절약해 산업 성장의 디딤돌로 삼았던 것은 일본과 똑같지만,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평가가 좌우 정부가 바뀔 때마다 번번이 달랐다. 미국이 장기적으로 이익의 90%를 갖겠다는 건 투자의 ABC도 못 지킨 부당한 요구다. 트럼프 특유의 욕심이 작용한 것이지만, 근본적으론 트럼프 지지 백인 노동자 그룹의 ‘외국적인 무언가’에 대한 거부감을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은 늘 정체성을 묻는다. 현재까지도 뜨거운 질문은 두 가지다. 질문①은 ‘어떤 기업이 더 미국에 도움 되나(Who is us?)’라는 1990년 논문에서 시작됐다. 당시 미일 양국의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인 IBM의 일본법인과 후지쓰(富士通)의 북미법인을 예로 들어보자. 클린턴 정부의 노동장관이었던 로버트 라이시는 “기업의 국적은 부차적인 문제다. 미국 땅에서 고용하고 훈련시키고 세금 내는 회사(후지쓰USA)가 (IBM저팬보다) 미국에 더 기여한다”는 주장을 폈다. 국제주의 시각을 지닌 고학력 엘리트층의 생각이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의 삼성 SK 등을 향한 투자유치 보조금은 이런 시각에서 가능했다. 질문②는 정반대 생각을 담고 있다. ‘우리 미국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Who are we?)’는 것으로, 새뮤얼 헌팅턴은 2004년 이 질문을 제목으로 달아 책을 썼다. 미국은 250년 전 건국 때부터 앵글로색슨 기독교인의 나라였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라틴계 아시아계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백인 국가의 정체성을 잃어갔다는 이들의 주장을 정연하게 정리했다. 트럼프식 반이민 정서의 출발점이다. 저학력 백인 노동자의 눈에는 한국인이 소유·경영하고, 이익을 챙겨가는 미국 내 투자회사는 아무리 잘 봐줘도 한국 회사다. 이런 회사가 미국에 좋은 것이라는 ①번식 생각은 딴 세상 사람들 이야기로 치부한다. 바이든이 약속한 보조금을 백지화하겠다는 약속 파기가 그래서 나왔다. 조지아주 사태처럼 미국 노동자를 쓰지 않은 채 한국서 기술자를 데려다가 공장을 지었으니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②번 관점에 따라 노동자 계층은 자신들을 세계화의 피해자로 여긴다. 외국 기업과 노동자가 두렵고(恐·공), 방어적으로 국경에 장벽(壁·벽)을 쌓고, 외국인은 물론 미국 내부의 다른 정치적 의견에 대한 화(怒·노)를 내고 있다. 대통령실은 길고 어려운 협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기업은 자동차 관세 25%는 물론이고 모든 대미 수출품에 25% 상호관세를 지금처럼 계속 내야 한다. 15%를 적용받는 일본이나 유럽연합과 더 힘든 경쟁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간이 결코 우리 편이 아니다. 투자 총액이나 투자 방식에서 우리 경제력에 걸맞은 절충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기대한다. 그러자면 정부는 트럼프 정부 협상 대표를 상대하는 것 못지않게 ②번 믿음을 갖는 백인 노동자 집단의 마음을 얻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줄 미국 조선산업 부흥은 한국 기업과 미국 노동자가 함께 만드는 것이고, 수십 년 전 미국이 한국인 의사, 엔지니어를 하나하나 교육시켰던 것처럼 한국도 미국인 블루칼라 노동자의 경쟁력과 삶의 질 회복에 핵심 파트너가 기꺼이 될 것이란 점을 설명해야 한다. ①번식 사고가 영 틀린 게 아니란 걸 설득해야 한다. 우리가 관심 두지 않던 미 러스트벨트 지역을 향한 공공외교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들의 공벽노(恐壁怒)를 품어야 길이 보일 것이다.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