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이정은 부국장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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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현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정책의 흐름을 정확하고 빠르게 따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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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04-02~2025-05-02
칼럼97%
미국/북미3%
  • [오늘과 내일/이정은]‘적보다 나쁜 친구’와의 관세 협상 방정식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최근 관세 관련 의회 청문회에서 “왜 적과 친구를 똑같이 대하냐”는 질문에 시달렸다. 동맹과 우방국들에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적’으로 분류돼온 러시아와 벨라루스, 북한, 쿠바에 대해서는 상호관세를 부과하지 않은 이유를 추궁하는 질의가 이어졌다. 미국 상원의원들조차 납득하기 어려운 정책 결정이라는 반응이었는데, 이에 똑 부러진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그리어 대표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핵폭탄급 관세 정책을 발표하면서 “친구가 적보다 더 나쁘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 대미 무역흑자를 보는 국가들은 미국을 ‘약탈하고 후려치고 등쳐먹고 뜯어먹고 호구 삼는’ 나라다. 연간 1조2000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악화시킨 주범 국가들이다. 이런 인식은 트럼프 대통령의 뼛속까지 각인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협상용 수사라고 하기엔 지독하게 일관돼 있고, 반복해서 튀어나온다. 좋은 물건들을 그저 열심히 잘 만들어서 팔았을 뿐인 수출국들로서는 억울하기 그지없다.‘원스톱 쇼핑’ 맞춘 최적 조합 찾아야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콕 찍어 말한 게 여러 차례였지만,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 호주는 미국이 무역흑자를 보고 있는 나라이자 인도태평양 지역의 주요 안보 파트너임에도 관세를 피해가지 못했다. 일본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특별 제작한 황금 투구까지 들고 갔지만 우리보다 단 1%포인트 적은 24% 관세를 맞았다. 대만, 인도 등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협상을 요청하는 나라들을 향해 트럼프 대통령은 “내게 아부를 떨고(kissing my ass) 있다”고 조롱하듯 말했다. 미국이야말로 ‘적보다 나쁜 친구’로 돌변할 판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대가 불신과 편견까지 안고 협상장에 나오니 타협점을 찾는 과정은 전례 없이 험난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원스톱 쇼핑’은 미국이 그리는 협상의 그림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나마 도움이 될 방향점이다. 한국의 경우 조선업 협력,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알래스카 가스관 프로젝트 참여 등에 더해 군사안보 분야까지 패키지로 엮어 총괄적으로 주고받자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1기 행정부 때 집요하게 요구했던 게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었다. 글로벌 관세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인 2019년 방위비 분담금을 5배 늘리라고 압박했다. 지난해 대선 유세 기간에는 10배로 높여 불러놓은 상태다. 이번에는 반드시 받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는 눈치이니 어차피 피해갈 방법도 없다. 1기 때에는 연계된 카드가 주한미군 감축 같은 안보 분야에 국한됐지만 이번에는 경제, 산업 분야까지 넓혀져 있다.방위비까지 패키지로 묶는 대응 필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던 초기 “피로 맺어진 동맹국의 전우를 용병으로 만들려는 것이냐”는 비판이 미국 내 지한파 학자와 의원들 사이에서 나왔다. 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북한의 핵 위협 사정권에 놓인 미국에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우리 또한 증액 압박에 맞서왔다. 다만 더 부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한국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나라가 돼 있다. 그 성장의 바탕에 미국이 제공해준 안보가 있었음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방위비 같은 안보 이슈를 먼저 꺼내지 않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한시적인 유예기간이 끝나자마자 되살아날 25%의 관세 폭탄 앞에서는 안일한 접근이다. 분야별로 가치가 다른 협상 카드들의 효용을 극대화하고, 담판 과정에서 상대를 설득할 최적의 조합을 찾으려면 우리가 선제적으로 묶어낼 필요가 있다. 큰 틀에서 통 크게 거래의 고차방정식을 만들어내야 한다.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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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포장에 그쳐선 안 될 민주당의 외교안보 ‘우클릭’

    얼마 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에게서 “한국의 민주당이 정말 중도 보수냐”는 질문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우리는 진보가 아니다”며 중도 보수를 자처하는 발언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이어지던 시점이었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한국 야당의 이념 성향 변화까지 이런 속도로 업데이트하고 있었던가. 이 관계자는 이 대표의 발언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기보다 민주당 노선이 실제로 바뀔 가능성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듯했다.美에 도표 그려가며 ‘중도 보수’ 역설민주당 의원들은 요즘 자신들이 접촉하는 미국 측 인사들에게 자신들이 중도 보수라고 설명한다고 한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접촉한 지난달 한 면담 자리에서는 한국 진보 정당의 뿌리가 원래는 보수였다는 점을 강변하며 아예 도표를 그려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들은 모두 워싱턴의 상부로 보고됐을 것이다.미국 외교안보를 담당하는 당국자들이 주 52시간이나 상법 개정안 같은 한국의 경제, 민생까지 관심을 가져서 그랬을 리 없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고 정권이 교체됐을 경우 한국의 대미, 대중 정책 같은 외교안보 방향이 어디를 향할지 가늠하려 했을 것이다. 탄핵 정국 이후의 여러 시나리오를 미국 또한 들여다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민주당이 미국 측에 ‘중도 보수’ 노선을 역설한 것은 자신들의 대외정책 노선을 미국이 껄끄럽게 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중국,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중시했던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1기 행정부와 툭하면 삐거덕거렸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하노이 정상회담이 틀어진 이후 비핵화 문제는 물론이고 종전선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중국 견제 등 주요 현안마다 충돌했다. 고위 당국자가 대놓고 ‘죽창가’를 외치는 문 정부의 대일 기조 또한 한미일 협력을 외쳐온 미국과 어긋났다. 미국 당국자들이 한국을 향해 “보조를 맞춰야 한다(in lockstep)”는 표현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던 게 이때다. 보조가 안 맞는다는 미국의 불편함이 역설적으로 더 드러났다.백악관과 국무부 당국자들은 겉으로는 “어떤 정권이냐는 상관없다. 이념은 달라도 각자의 국익에 따라 외교를 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국과 다른 외교노선을 타는 동맹국 정부를 향해 보이지 않게, 때로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강대국의 실력행사를 주저하지 않는 게 미국이다.민주당이 지난해 4월 총선 이후 물갈이가 된 만큼 노선 변화가 적잖다는 분석도 있다. “반미나 반일 감정을 건드리는 발언은 이제 안 나오지 않느냐”는 내부 항변도 들었다. 그러나 중도 보수를 외치면서 주요 정책마다 좌클릭하며 돌아가는 이 대표의 오락가락 행보를 보면 외교안보 분야라고 다를지 의문이다. 586 운동권 인사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고,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알려진 원로 전문가들도 건재하다.외교안보만큼은 오락가락 행보 안 돼국내 현안을 놓고 정치적 계산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행보는 피곤할지언정 안에서 감내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상대국이 있는 외교안보는 다르다. 말이 바뀌고 불신이 쌓이는 만큼 국가적 손해가 커진다.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했던 문재인 정부에 대해 “속았다”고 생각했고, 그 인식이 향후 한국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 노선을 물었던 미국 당국자가 대화를 끝내면서 했던 말은 “트럼프 대통령은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란 한마디였다. 민주당이 집권하든 야당으로 남든 피해 갈 수 없는 경고로 들렸다.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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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가 만난 사람]“가족 희생하는 치매 돌봄은 미담 아닌 괴담… 통합지원 이뤄져야”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 길을 잃어버려 집으로 못 돌아오는 할아버지, 폭언과 분노 표출이 부쩍 잦아진 배우자…. ‘나’를 잃고 변해가는 치매라는 질병은 당사자만큼이나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에게 고통이다. 돌봄의 정신적, 경제적 부담을 감당하느라 가족들 또한 또 다른 의미에서 ‘나’를 잃어가는 경우가 많다. 의료비보다 돌봄 비용의 비중이 크고, 심적인 스트레스로 간병살인 같은 극단적 선택을 부르기도 하는 게 치매다. 김용익 돌봄과미래 이사장은 1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치매 환자는 여러 종류의 노인 돌봄 중에서도 가장 난도가 높은 대상”이라며 “가족에게만 이 부담을 떠넘기는 정책적 방치”라고 지적했다. “치매 대응은 정부와 지역사회가 함께 나서야 하는 문제”라며 “가족의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치매 환자들이 집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는 맞춤형 돌봄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사 출신인 그는 공직 활동을 끝내고 돌봄 연구와 제도화 지원에 집중하고 있는 보건정책 전문가다.》―고령화 추세 속에 치매 환자가 내년 100만 명, 2044년엔 200만 명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7년 전에도 같은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전망치와 비교하면 치매 환자의 규모나 증가 속도가 다소 완화됐다. 당시 전망으로는 올해 이미 100만 명이 넘고 2050년에는 300만 명이 넘을 것이라고 했었다. 조기진단 시스템 등 그동안의 여러 치매 관리가 조금은 성과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한국의 인구집단에서 규모가 가장 큰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 단계에 진입하고 있는데, 이분들의 소득이나 교육수준이 과거보다 높아진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치매 예방이나 치료가 가능한 약재가 발견된다면 더 좋아질 것으로 본다.” ―치매 돌봄의 경우 형태나 성격이 다른 질병과 어떻게 다른가.“치매는 노인 돌봄의 여러 종류 중에서 난도가 가장 높다. 노인들이 겪는 질환은 중풍, 고관절 골절 같은 신체적 문제와 노인성 우울, 치매 같은 정신적 문제가 있다. 치매는 그 자체가 어려운 병인데 여러 질병이 같이 온다는 점에서 더 어렵다. 고혈압과 당뇨, 치과 질환, 청력 손실 같은 것들이 같이 오고 이것이 다시 치매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노인들이 얻게 되는 만성질환 개수가 보통 2.2개인데 치매 노인의 경우 4개나 5개가 한꺼번에 온다. 그래서 돌봄은 더 어렵고 비용도 더 많이 든다. 병의 덩어리 자체가 크다.” ―드라마에 치매의 중증 사례들이 극화돼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보는 것만으로 부담이 되는 상황들인데….“치매를 빙산으로, 삼각형 그림으로 그려볼 수 있다. 가벼운 인지장애가 있는 초기 상태의 경우가 대부분이고 중기, 후기로 갈수록 수는 적어진다. 단어를 잊어버리고 때로 기억이 소실되는 정도의 경증 단계에서는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 중증으로 악화하면서 행동장애와 망상, 의심, 분노장애가 오는 경우는 전체의 15% 정도다. 식사를 한 직후 왜 밥을 안 차려 주냐고 버럭 화를 내는 사례 등 TV에 나오는 게 중증 단계다. 중증 환자가 특히 문제다. 가족 부담은 감당이 안 되는데 시설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진퇴양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특별 대책이 필요하다.” ―그 특별 대책이라는 게 무엇인가. “가정 방문형 돌봄을 강화하고 중증 치매를 받아 주는 시설에 대해 수가와 인력 지원 등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기술 지원도 따라가야 한다. GPS 위치 추적이나 웨어러블 장비를 통한 환자의 상태 관리 등은 외국에서 이미 널리 활용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치매 관리 체계만 따로 만드는 ‘로빈슨 크루소’ 식의 대응은 안 된다. 지역돌봄이라는 큰 틀을 만들고 그 바탕 위에서 치매라는 어려운 문제를 패키지로 다뤄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작년 2월에 통과한 ‘지역돌봄 통합지원법’이 내년 3월 전국적으로 실시된다. 전국 모든 지자체가 지역사회 돌봄에 나설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미래에는 전 국민 의료보장처럼 전 국민 돌봄 서비스 제공이 이뤄지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지역돌봄 체계가 갖춰지면 돌봄 방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지나.“현행 수준의 돌봄 시스템에서는 가족의 희생이 너무 크다. 무급 가사노동의 72%는 여성이 한다는 통계가 있다. 결국 아픈 노인이 행복하려면 여성이 희생돼야 하는 구조다. 이 충돌이 모든 가정에 끼어 있는 먹구름의 실체다. 가족의 이 희생이 없으면 노인들은 갈 곳이 결국 시설밖에 없게 된다. 집에 머물면서도 가족들의 정신적, 물질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다. 지역돌봄 통합지원은 정부가 각 가정으로 복지, 의료, 재활을 비빔밥처럼 통합해 배달해 주는 개념이다. 집을 베이스로 놓고 낮에 어린이들이 유치원 가듯이 노인들이 ‘노치원’을 다니면 여성들도 자기의 일상을 사는 게 가능해진다. 사회복지사와 의료인들이 각 가정을 맞춤형으로 찾아다니게 되니 고독사를 방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치매는 때로 24시간 관리를 필요로 하는 질환이다. 집에서 돌봄이 가능할까.“물론 어려움이 많지만, 다양한 아이디어를 개발해 해외에서는 ‘살던 곳에서 늙어간다(aging in place·AIP)’라는 개념이 실제 이뤄지고 있다. 유럽의 경우 ‘케어팜’이라고 부르는 돌봄농장이 많다. 네덜란드의 노인들이 목축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치유 효과를 누리는 식이다. 한국은 목축보다는 밭농사인데 이 또한 고되지 않게 맞춤형으로 강도와 활동을 조절하면 된다. 다양한 한국형 아이디어들을 개발해서 시도해야 한다.” ―거액의 예산이 투입돼야 가능한 일 아닌가. 관련 예산 부담은 지금도 이미 급증 추세다.“돌봄이라는 꼬리표를 단 예산이 당장에 따로 책정되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혜택을 조금씩 확대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으로 본다. 돌봄을 쓰고 끝나는 돈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한다. 돌봄이 일으키는 경제가 있다. 우선 돌봄 일자리가 생기고 욕창 방지 매트리스나 보행기, 가정용 의료기기 같은 수요가 늘면서 관련 산업도 커질 것이다. 보행기가 갈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는 등 집을 개조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인공지능(AI)과 스마트화된 기기가 돌봄에 더 많이 쓰이게 될 것이다. 돌봄체계의 구축 과정에서 제4차 산업혁명도 진척될 것으로 본다. 고령화를 기회로 보고 과감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다.” ―50, 60대가 80대 부모를 돌보는 노노(老老)케어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엔 간병살인이 사회 문제로 불거지기도 했다.“지역사회 인프라가 없으니 돌봄의 가족화가 지나치게 진행돼서 생긴 문제들이다. 가족돌봄은 자기 삶을 희생하지 않는 선에서, 돌봄 비용은 기존 생활수준을 떨어뜨리지 않는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가족들의 역할은 환자와의 정서적 유대감, 안정감, 보호, 긴급대처, 치매 같은 정신장애의 경우 대리 결정 등 가족만이 할 수 있는 일로 채워져야 한다. 자기 인생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가족을 돌보라고 강요하는 건 못할 짓이다. 어머니가 장애인 아들을 업고 다니며 대학까지 보냈다는 이야기가 미담이 돼서는 안 된다. 가족의 희생이 당연시되면 미담이 아니고 괴담이 된다. 우리 사회는 과거 유교적 전통과 인식이 강해서 그랬던 측면도 있지만, 이제는 가족의 역할이 변했다. 그냥 놔두는 것은 정책적으로 방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 이사장은 3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다. 목발을 짚은 채 돌봄 정책과 관련한 세미나 등 관련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는 “돌봄 시스템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여러 사람의 참여가 동력”이라고 했다. ―돌봄에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1970년대에 서울엔 판자촌이 가득했다. 청계천과 모래내, 문래동…. 난지도에는 쓰레기가 정신없이 쌓여가던 때다. 자유로가 생기기 전 난지 샛강에 온갖 곳에서 퍼온 분뇨를 쏟아부었다. 그 먼지와 열기 속에서 쓰레기를 뒤져 살아가던 가난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근처 진료소에 견학을 간 적이 있었는데 기억이 뚜렷하다. 그 이후 의료봉사를 하게 됐다. 4년간 매주 주말마다 거의 빠짐없이 봉사활동을 했다. ‘지역사회 의학’이라는 공부도 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부채의식 같은 게 남아 있다. 나의 의학은 진료실이나 연구실이 아닌 길바닥에서 태어났다.” ―고령에 불편한 몸으로 뒤늦게 시작한 재단 업무가 힘드시진 않나.“정책 업무를 하면서 돌봄에 대한 사명감 같은 게 있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그만둔 이후 곧바로 ‘돌봄과미래’ 재단을 만들었다. 그때가 만 70세였는데, 80세가 될 때까지 10년간 돌봄운동을 할 작정으로 시작했다. 이제 3년째가 된다. 취지에 공감한다면서 격려하고 동참해준 사람들 덕분에 후원자가 400명으로 늘어났다. 그 두 배쯤 후원회원이 늘었으면 좋겠다.”김용익 돌봄과미래 이사장△1952년 충남 논산 출생△1971∼1983년 서울대 의대 학사, 석사, 박사(예방의학)△1984∼2013년 서울대 의대 교수△2006∼2008년 대통령사회정책수석비서관△2012∼2016년 제19대 국회의원△2016∼2017년 민주연구원 원장△2017∼2021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2017년∼현재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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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협상 카드가 없는 나라’의 굴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몰아치고 다그친 정상회담의 마지막 10분은 지켜보기가 민망했다.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회담에서 강대국 지도자가 상대국을 그토록 노골적으로 면박 준 장면은 찾기 어렵다. 부통령과 언론인이 가세한 협공은 ‘매복’ ‘함정’ 등의 평가가 나올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역사에 남을 굴욕의 현장이다. 우크라이나 뒤에는 그간 지지를 표명해준 28개 유럽 국가가 있었다. 자국을 무력 침공한 러시아에 맞서 영토와 주권을 지키겠다는 명분도 확실했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희토류를 확보하려는 미국에 내밀 광물 자원도 상당했다. 그 어느 것도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안전보장의 교환 조건으로 쓰려던 광물은 과거 받았던 지원에 대해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가 돼 버렸다. 우크라이나가 침략 피해자가 아니라 “러시아를 자극해 전쟁을 촉발한 나라”로 위치가 뒤바뀌어 버린 것도 순식간이다.트럼프 공세에 맞대응 실패한 우크라 궁지에 몰린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에게는 (협상) 카드가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벌써 3년째 전쟁을 치르며 국력을 소진한 우크라이나가 반박할 근거는 없어 보였다. 땅덩이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크지만 사회 분열과 부패에 시달려온 나라, 국내총생산(GDP) 순위가 57위에 그치는 나라, 러시아로부터의 안보 위협이 상존했음에도 이에 대응할 외교력이 부족했던 나라가 처한 엄연한 현실이다. 국제정치는 냉혹하다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몰고 온 냉기는 초저온이다. 한국도 어느 시점에선 신(新)외교 빙하기의 한가운데서 그를 상대해야 할 순간이 올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앉았던 백악관의 의자에 한국 대통령이 앉게 됐을 때 공개적으로 “한국이 미국을 호구 삼았다”는 협공을 받게 되지 말란 법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핵 협상에서 패싱 우려를 제기하는 한국에 “북한이 안보 불안 때문에 핵 개발에 나서도록 촉발하지 않았냐”는 식의 공격이 가해진다면? 미국이 안보 지원의 대가로 한국의 핵심 이익을 양보하도록 압박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게 마냥 뜬금없는 상상은 아니다.젤렌스키 자리에 韓 정상이 앉는다면 70년 넘게 동맹을 유지해온 미국과의 경제, 안보 협력이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알던 미국은 이제 없다’는 전제에서 새로운 전략을 찾아야 할 때다. 유럽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악을 대비하자”며 방위비를 대폭 증액하고 유럽 중심의 안보 연합 구성 추진에 나섰다. 기존의 나토(NATO)에서 미국을 뺀 유럽만의 ‘이토(ETO·European Treaty Organization)’를 만들자는 제안도 나오는 판이다. 주요국들이 앞다퉈 추구하는 ‘자력갱생’의 핵심은 국부(國富)다. 조 단위로 이뤄지는 국방비 증액도, 미국발 관세 폭탄 대응도 모두 국가의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이런 바탕이 탄탄해야 ‘거래적(transactional)’이라는 키워드로 설명되는 트럼프 행정부에 우리만의 협상 카드를 내밀 수 있을 것이다. 방산과 반도체 등 핵심 산업 분야의 초격차 첨단기술을 보유하는 것도 주요한 협상 카드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중국 견제, 그 과정에서 강화해온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과 기술 협력이다.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갖고 있다면 그게 손에 쥔 카드다. 그 카드가 점점 얇아지고 작아지고 있는데도 정상 외교는 공백 상태에 여야는 극단의 정쟁만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특별법은 공전이고 거야(巨野)는 상법 개정안으로 경제를 흔들어대는 중이다. 우리에게 그럴 여유가 아직도 남아있다고 착각하는 정치권의 행태에 속만 터진다.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5-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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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부정선거 의혹이 키운 혐중… 외교 부담만 커진다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는 이달 초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첫 공식 예방한 자리에서 조 장관의 부친인 조지훈 시인의 시 ‘새아침에’를 읊었다. ‘출렁이는 파도 위에 이글이글 태양이 솟듯이/그렇게 열리라 또 그렇게 솟으라’는 마지막 구절을 언급했다고 한다. 이태백 같은 옛 문장가들의 한시를 정상회담 등에서 자주 인용해온 중국이 시를 꺼내든 것이 새롭지는 않다. 그래도 다이 대사가 조지훈 시인의 시 일부를 낭송한 것은 부친에 대해 존경심이 각별한 조 장관을 위한 맞춤형 준비였을 것이다. 한중관계를 새롭게 개선해 태양처럼 ‘이글이글’하게 만들자는 취지의 설명에 접견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고 참석자들은 전한다.껄끄러운 대중 외교 현안 쌓였는데… 이런 외교적 노력이 무색하게도 한국은 거센 계엄의 후폭풍 속 중국의 선거 개입 논란으로 시끄럽다. 윤석열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헌법재판소 변론 과정에서 중국의 선거 개입을 기정사실화한 질의를 계속했다. 현직 대통령이 의혹 제기에 앞장서니 지지자들의 동요가 잦아들 리 없다.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한 유튜버가 주한 중국대사관에 “테러를 하겠다”며 난입하려 한 사건은 어쩌면 예고된 난동이었다. 해외에서 불거진 선거 개입 의혹들을 보면 중국을 의심해 볼 만하긴 하다. 지난해 대만선거에서는 ‘스톰1376’이라고 불리는 친중 그룹이 인공지능(AI)을 이용해 후보들에 대한 가짜 동영상과 밈을 생성, 유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대선에서는 러시아와 중국, 이란이 모두 선거 개입을 시도했다는 게 중앙정보국(CIA) 같은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캐나다는 2019년과 2021년 연방선거에 중국이 연달아 개입했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이를 조사할 특별보고관이 임명됐다. 다만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목적으로 여론 조작을 했다는 것과 선거 시스템을 해킹해서 결과에 직접 손을 댔다는 건 다른 이야기다. 해외 주요국에서 문제가 된 중국의 시도들은 ‘스패머플라지(spam+camouflage)’라고 불리는 허위정보의 소셜미디어(SNS) 유포나 특정 후보에 대한 간접적 자금 지원 등으로, 개표 시스템 서버에 침투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 1월 나온 캐나다 특별보고관의 최종 보고서를 보자. 122쪽짜리 보고서는 “중국 등 해외 국가들의 선거 개입 시도가 실제 있었다”고 했지만 “제한적으로 이뤄졌고, 선거 결과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국내에서도 2년 2개월의 심리 끝에 나온 대법원 판결은 물론 현재까지 윤 대통령 측이 내놓은 자료 중 계엄 선포까지 해야 할 부정선거 증거를 확인한 것이 없다. 한중관계 관리는 올해 우리의 주요 외교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은 여전히 우리의 최대 수출국이고 첨단기술 분야에서 치고 올라오는 나라다.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이 예상된다. 한중 정상회담은 물론 시 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한국을 무대로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한중 양국이 지속적으로 협의해야 할 의제들이 줄줄이 생겨날 것이란 의미다.국내 정치적 이유로 嫌中 조장 안돼 그 과정에서 중국과 때로 얼굴을 붉히고 정면으로 맞서야 할 이슈들은 많다. 역사와 문화 논쟁부터 사드(THAAD)와 한한령, 탈북자 북송 문제 등 껄끄러운 현안들도 언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모른다. 정확한 팩트를 바탕으로 냉철하게 대응해도 모자랄 판이다. 확실한 근거도 없는 부정선거 의혹으로 반중 감정에 휘둘리며 중국에 공격 빌미를 줄 여유가 어디 있나. 국내 정치적 이유로 부풀어 오른 혐중(嫌中) 여론이 이글이글 타오르게 놔두는 것은 정상 공백 속 가뜩이나 힘든 대중외교의 걸림돌만 될 뿐이다.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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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애국시민’ 여러분, 애국하고 계십니까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한 시위대가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한 폭력 사태는 4년 전 미국에서 벌어진 1·6 의회 난입 사태와 닮았다. 보수 대통령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의혹 속에 성난 지지자들이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기관으로 몰려가 창문을 깨고 문짝을 부수며 내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음모론을 주장하는 ‘프라우드 보이스’ 같은 단체가 앞장서며 경찰과 거칠게 충돌했다.법치와 국격 훼손한 폭력난입 사태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에게 잊혀지지 않는 또 하나의 장면은 폭력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상황이 종료됐다고 생각하던 시점에 나왔다. 군복 차림의 병사 수백 명이 의회 내 곳곳에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총을 들고 완전군장을 한 채 로툰다홀을 일렬로 가로지르는 군인들도 있었다. 사태 발생 며칠 뒤 조용해진 의회 안으로 발을 디딜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의회와 군대의 무시무시한 부조화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들은 준(準)전시 상황이 되어버린 워싱턴에 투입된 주방위군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에 또다시 벌어질지도 모르는 폭력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당시 2만 명이 넘는 주방위군이 투입됐는데, 이들 일부가 숙박시설이 아닌 의회 안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의 추가 폭력에 대비하려고 이렇게까지 많은 병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나’ 생각했지만 당시 분위기는 그만큼 삼엄했다. 이들의 철수가 완료되기까지는 이후 두 달이 걸렸다. 의회 혹은 사법기관을 겨냥하는 정치적 폭력 사태는 그 자체로도 심각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것이 반복되고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틀 속에서 서로가 지켜왔던 법치의 선을 넘어버림으로써 내부 혹은 반대쪽 진영을 자극하게 된다. 가뜩이나 악화하는 정치 양극화를 극단으로 치닫게 만든다. 한번 경험한 폭동은 불안을 키우고, 그렇게 불어난 불신은 점점 더 많은 공권력 투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적 낭비다. 윤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며 서부지법 앞에 모여있던 이들은 윤 대통령이 ‘애국시민’이라고 부르는 지지자들이다. “나라 안팎의 주권침탈세력과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 위험해진 대한민국”을 지켜달라는 윤 대통령의 편지 속 당부 메시지가 향했던 사람들이다. 방식과 방향은 다르지만, 국가의 부를 쌓고 안보를 지키는 일에 진심인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20대 학생부터 80대 기업인까지, 보수의 가치에 공감하며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나온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폭력 사태로 애국시민은 어느새 극우 유튜브의 음모론에 휘둘리는 막무가내 세력으로 치부될 처지에 놓였다. 한국의 대외적 이미지를 갉아먹고 국격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계엄만도 벅찬데 폭력 사태까지 벌어졌으니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최했던 국가로 국제사회에 명함을 내밀기도 민망하다. 주요 8개국(G8)이니 G10 같은, 선진국 그룹으로의 편입 기대도 당분간은 접을 수밖에. “안정적인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다는 국가적 신뢰가 기본 조건인데, 그 전제에서 너무 멀어져 버렸다”는 탄식이 나온다.반복, 확산하며 피해 키울 가능성 우려 둑이 터져버린 폭력적 선동은 또 언제, 어떻게 되풀이될지 모른다.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벌써 3명이 월담을 시도하거나 경찰과 충돌했다가 체포됐다.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는 신변 보호를 요청해야 했다. 긴장감이 팽팽해진 현장에서 또 무슨 우발적 상황이 벌어질지 조마조마하다. 흔들리는 법치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소모되는 국가적 에너지도 상당할 것이다. 이런 일을 벌이고 또 동조하는 것이 진짜 애국시민들이 하겠다는 애국이냐고 묻고 싶다.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5-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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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前 美대사 “대통령이 어떻게 이런 일을… 계엄 직후 심각한 우려”[데스크가 만난 사람]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국대사(사진)는 불법 계엄이 선포됐던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지에 대한 추가 설명을 대통령실 인사에게 요구했다”고 밝혔다. “계엄에 대해 심각한 우려(grave concern)를 표명했고 그것이 한국의 평판을 크게 훼손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골드버그 전 대사는 퇴임을 하루 앞둔 5일 현직 신분으로는 마지막으로 진행한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내용의, 내가 들은 계엄 포고령 내용에 반대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 측과의 접촉에 어려움을 겪다 가까스로 연결된 대통령실 인사와의 통화였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상황을 경고하고, 미국 워싱턴에서 신속하게 성명을 발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계엄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이었다”며 밤을 새워 한국 측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본국과 교신했던 당시의 긴박한 대응 과정을 설명했다.“고함치며 반대한 韓 계엄… 헌법적 절차 따른 해결 역량 믿는다”韓계엄, 일어나지 않았길 바란 불행… 민주주의와 헌법 작동 역량 믿어‘상종 못할 정부’ 발언은 지어낸 허위… 北 오판, 도발 가능성에 지속적 대비한미동맹, 정권 바뀌어도 초당적 지지… 韓에서 대사 마무리 영광, 최선 다했다《12·3 계엄령이 선포되던 밤, 필립 골드버그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외교부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이 외교부 인사가 통보하듯 읽어내린 계엄 관련 성명서. 퇴임까지 불과 한 달밖에 남지 않은 그의 마지막 한 달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임을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35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콜롬비아, 필리핀, 쿠바 등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의 대사로 권위주의 지도자들을 상대해 온 그였다. 극적인 순간들을 수없이 겪어낸 국무부 최고위 ‘경력대사’다. 그런 골드버그 대사에게조차 한국의 계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충격적 상황이었을 것이다.》골드버그 대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5일 저녁 서울 중구의 대사관저를 찾았을 때 그는 짐을 싸고 있었다고 했다. 워싱턴으로의 출국을 단 하루 앞둔 날이었건만 미처 떠날 준비를 다 하지 못한 듯했다. 고별파티 대신 방한 중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수행하면서 한미 동맹이 굳건하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업무로 마지막 일정을 채웠다. 골드버그 대사는 “계엄은 일어나지 않았기를 바라는 불행한 사건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한국의 헌법과 민주주의는 계속 작동하고 있다”며 “우리는 한국인들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계엄 사태는 70년 넘게 동맹을 유지해 온 미국으로서도 예상치 못한 혼란이었을 것 같다. 정치적 후폭풍도 거세지고 있는데…. “슬픈 사건이고 슬픈 시기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매우 신속하고 초당적인 (계엄 해제) 조치를 취했고, 두 번째 표결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헌법이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혼란이 발생했고 정치적 분열이 존재한다. 민주적이고, 헌법적이며, 평화로운 방식으로 풀어내야 할 과제들이다. 그 과정에서 부침을 겪겠지만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됐을 때 내가 언급한 이 원칙들은 지켜져 있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대사로서 겪은 ‘계엄의 밤’은 어떤 것이었나. “외교부의 누군가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계엄 관련 성명서(statement)를 읽어줬다. 나는 이의를 제기했고, 반대를 표명했다. 이어서 대통령실의 누군가와 통화했는데 그는 계엄과 관련해 아는 게 없어 보였다. 나는 심대한 우려를 표시했고, 대통령이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지에 대한 추가 설명을 요구했다. 계엄이 한국의 명성을 크게 훼손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화 중 고함을 질렀냐’는 질문에 답변이 끊겼다. 10초 넘게 침묵하던 골드버그 대사가 “조금 그랬다”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을 때 그의 표정은 단호해져 있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계엄 다음 날 곧바로 영문 웹사이트 메인 화면에 적색 경보(Alert)를 띄웠다. 같은 날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심각하게 오판했다”는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의 비판이 나왔다. 동맹국을 상대로 이례적으로 강경한 조치였다. ―대사가 윤석열 정부에 대해 ‘상종 못 할 사람들’이라는 취지로 본국에 보고했다는 한국 국회의원의 발언이 나왔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이에 대해 ‘완전히 틀렸다’는 설명 자료를 냈다. “계엄 선포 후 며칠간 많은 소문이 돌았는데, 많은 것이 나 혹은 대사관, 파이브아이즈 등을 출처로 한 것이었다. 모두 지어낸(all made up) 허위 내용이었다. 이런 헛소문은 멈춰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 내가 본국에 보고한 내용을 국회의원이 도대체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더구나 내가 보고한 내용도 전혀 아니었다. 우리가 하는 일과 말에 대해 이런 식의 허위 정보를 지어내서는 안 된다는 나의 뜻이 분명하게 전달되기를 원했다.” ―그렇다면 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실제 내용은 어떤 것들이었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논의들이 있었다. 미국인들에게 상황을 경고하고, 워싱턴에서 신속하게 성명을 발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국의 관계자들과 대화하는 것이었다. 초기 몇 시간 동안 우리가 아는 모든 이들이 경계 상태를 갖출 수 있도록 대사관 내 조직을 정비했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그날은 밤을 새웠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미국 측을 ‘오도(mislead)’하기 싫어서 전화를 안 받았다고 했는데, 급박한 상황에서 연락이 안 된 건 문제 아닌가. “조 장관과의 대화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사실 그에게 직접 전화를 하진 않았다. 조 장관이 나에게 콜백하지 않은 것을 그런 식으로 말한 게 아닌가 싶다. 당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느꼈기에 우리에게 연락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린 듯하다. 그날 밤, 내가 앞서 말한 두 통의 전화를 빼면 아무도 전화를 안 받은 건 사실이다. 다만 모두가 일종의 ‘쇼크’ 상태였을 것이기에 너무 비판적으로 볼 생각은 없다.” ―주한미군과 협력해야 할 한국군 수뇌부 상당수는 구속 기소돼 리더십 공백이 발생한 상황이다. 계엄이 촉발한 혼란 상황에서 북한이 오판하고 도발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나. “일부 군 인사들이 계엄으로 기소됐지만 합참의장과 다른 수뇌부는 그대로 있고, 공석이 된 자리는 대행이 신속하게 채웠다. 주한미군과 연합사령부, 유엔군사령부는 한국의 군 지도부와 계속 접촉하고 있다. 우리는 그 어떤 사태에도 준비돼 있고, 북한의 위협과 도발에 맞서 지속적인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미국은 12·3 이후 지금까지 한미 동맹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지금 같은 상황이 장기화해도 영향이 없다고 보나. “그런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민주주의를 고쳐 나가려는 우리의 시도는 불완전하게나마 결국은 이뤄진다고 믿는다. (한국인들이 느끼는) 두려움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한국인들을 신뢰하고, 민주적 헌법적 기관들이 작동할 역량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올해 한국에서 다시 대선이 치러져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면 한미 관계나 한미일 협력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미국 일각에서도 나오는데…. “한국인의 70∼80%가 미국에 우호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안보는 물론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기술과 비즈니스 등으로 확장해가는 이 강력한 동맹을 지켜나가는 것은 미국과 한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양국의 동맹은 한국 민주당을 포함해 양국의 엄청난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다. 몇 주 전에 민주당 대표를 만났을 때 그는 한미일 3자 협력 및 일본과의 양자 협력 관계를 지지한다고 했다. 정권이 바뀌면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는 식의 인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동맹이 소중하다지만, 거리 시위에 성조기가 나부끼는 게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나. “완전히 이해되는 건 아니다. 다만 시위에 참여한 보수 지지자들의 상당수는 나이가 있는 분들이다. 그들은 전쟁을 겪은 세대이거나, 전쟁을 겪은 이들의 자녀일 것이다. 이것과 상관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는 소위 ‘트럼프 리스크’가 닥쳐올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방위비분담금 증액,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지원 철회 등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나.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펼칠지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직접 확인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다만 양국 기본 관계의 바탕은 강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외교 활동에 도전이 되는, 지금과는 다른 정책들이 나오겠지만 경제와 안보의 기본 관계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직접 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실제 상황이 전개되면 ‘비핵화’ 목표가 유지될 수 있을까. “비핵화는 트럼프 1기 행정부를 포함한 미국의 지속적인 정책 목표였다.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비확산과 평화, 안정을 위해 중요한 목표다. 러시아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자신들이 지지해 왔던 (유엔) 결의안을 위반하겠다고 할 때까지는 거의 모든 나라가 동의했다. 비핵화 목표는 유지되겠지만 달성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예정했던 인터뷰 시간이 훌쩍 지났다. 골드버그 대사는 “이제 남은 짐을 싸야겠다”며 일어섰다. 그제야 물어본 퇴임 소감에는 “긴 경력을 이제 끝내는 것이 행복하고 슬프고 만족스럽다”고 했다. “지난 한 달은 분명히 어려운 시기였지만, 마지막 부임지인 한국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에서 대사로 근무한 것은 정말로 큰 영광이었다”고 했다. “정말로 멋지고 친절했던 한국 사람들이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여운이 짙었다.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국대사(69)△2006∼2008년 주볼리비아 대사△2009∼2010년 유엔 대북제재 조정관△2010∼2013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차관보△2013∼2016년 주필리핀 대사△2018년 주쿠바 대사대리△2019년 8월 주콜롬비아 대사△2022년 7월∼2025년 1월 주한 미국대사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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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계엄령보다 더 위험한 계엄 허위정보들

    ‘그와는 상종을 못 하겠다’라는 말이 영어로 뭘까 궁금했다. 인터넷 번역 사이트 몇 곳에 넣어봤는데 번역된 문장 중에 ‘he is an asshole’이 있었다. 한글로 재번역하면 ‘그는 나쁜 놈이다’로, 경멸적 뉘앙스가 그대로 포함된 의역이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이렇게 거친 표현을 썼을까. 그가 한국 계엄 사태 직후 ‘윤석열 정부 사람들과는 상종 못 하겠다’고 본국에 보고했다는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의 주장에 고개가 갸웃해진 이유다.美 등 해외 출처로 포장된 제보 이어져 외교관들도 궁금했던 모양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국회 질의에서 영어로 뭐였느냐고 묻자 김 의원은 “한글로 들었다”고 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이례적으로 ‘완전히 틀렸다’며 불쾌감 가득한 반박자료를 냈음에도 그는 발언을 수정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와 손절하려는 것”이라며 미국이 출처라는 식의 주장을 지속하는 중이다. 방송인 김어준 씨는 국회에서 ‘한동훈 암살설’과 ‘북한 소행으로 위장’, ‘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군 사살’ 시도 등을 터뜨렸다. 국내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에서 제보받았다고 했다. 이런 수준의 첩보를 다룰 수 있는 우방국은 미국 정도다. 그러나 미국 측과 수시 접촉하며 오랫동안 정보 교환을 해온 관계자들은 모두 “나도 모르는 민감한 내용을 어떻게 야당 정치인이나 방송인이 먼저 알겠느냐”며 고개를 내젓는다. 워싱턴의 한 인사는 “미국은 첩보를 다루는 데 매우 엄격하다”며 “상황 발생 며칠 만에 저런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면 최소 징역 25년 형을 받는다”고 했다. 12·3 계엄 사태 이후 믿기 어려운 주장과 제보들이 쏟아지고 있다. 설마 했던 내용 일부를 뒷받침하는 진술들이 나오고 있어서 최종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진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도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타국 정부에서 받았다는 식으로 포장해 사실인 것처럼 퍼뜨리는 것은 외교 관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다. 첨단 도감청 기술과 첩보 역량을 갖춘 선진국의 신뢰도를 허위정보에 덧입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일부라도 있다면 더더욱 경계해야 할 일이다. 계엄 세력의 무도함을 비판하는 쪽만큼 이를 감싸려는 반대쪽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극우단체 등이 퍼뜨리는 것으로 보이는 허위정보들은 외신을 인용하는 식으로 가공된 게 많이 보인다. BBC방송이 “한국인은 미개한 국민들이다. 법관들의 편향된 이념과 주체사상이 한국을 파탄내고 있다”고 논평했다는 글이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돌았다. 영국의 대표 공영방송이 이런 천박한 논평을 낼 리 없건만, 이를 기자에게 보내준 한 보수 기업인의 반응은 “오죽하면 BBC방송까지 저렇게 하겠느냐”였다. 유창한 영어를 쓰는 외국인 해설자가 “계엄은 한국 내 북한의 국가 전복 시도를 뿌리 뽑기 위한 것”, “계엄군을 선거관리위원회에 보낸 것은 중국 공산당과 러시아의 선거 개입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동영상도 받아 봤다. 어느 매체인지 확인도 되지 않는데, 언뜻 해외 방송뉴스처럼 보이는 영상에 한글 자막을 달아놓으니 그럴싸했다. 미국 대선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퍼뜨리며 1·6 의회 난입 사태를 야기한 극우 음모론 집단 큐어논(QAnon)과 다를 바 없는 행태들이다.‘한국판 큐어논’의 음모론 경계해야 진짜와 교묘하게 섞인 가짜는 구분해 내기가 쉽지 않다. 이런 허위정보가 반복적으로 퍼지면 확증편향을 낳고, 음험한 음모론에 씨를 뿌려 불신과 불안, 혼란을 부추긴다. 내년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는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나 이념적,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계엄령만큼이나, 어쩌면 계엄보다 더 위험한 일이다.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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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北, 美대표 팔 붙잡던 절박함 남아 있다면…

    2019년 북-미 하노이 회담 후 8개월 만에 스웨덴에서 열렸던 후속 협상. 북측 김명길 대표가 스티븐 비건 미측 대북특별대표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준비해 온 장문의 원고를 읽었다. “모든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맹비난한 김명길이 일방적으로 협상 결렬을 선언하자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긴장된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자리를 박찬 북측 대표단이 떠나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머뭇거리던 한 명이 비건 대표의 팔을 붙잡고 급히 한마디를 속삭였다. “제발,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Please, don’t give up).”美 NSC 2인자에 지한파 앨릭스 웡 임명 예상치 못했던 이 짧은 한마디에 미국 협상팀은 꽤나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난 북측의 강경함 외에 다른 기류나 변수가 있는지 등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이뤄졌다고 한다. 강경파인 북한 통일전선부와 상대적으로 온건파인 외무성 간의 알력 싸움이 있다고 알려졌던 때다. 협상에 참여했던 한 미측 인사가 전한 당시 장면은 ‘북한 내에도 비핵화를 원하는 이들이 몰래 애태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때때로 해보게 만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에 임명된 앨릭스 웡은 당시 이 자리에 있던 협상팀 중 한 명이었다. 1기 때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로, 비건 대표와 함께 가장 집요하게 북한을 공부하고 협상 전략을 고민했던 인사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준비했던 전략들을 끝내 진전시키지 못했던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뒤 자신들이 이끌었던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리뷰에 나섰을 때는 “멍청한(stupid) 접근”이라며 고개를 내젓기도 했다. 공직을 떠난 이후에도 북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던 그에게 하노이 회담은 ‘미완의 협상’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웡이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2인자에 임명되면서 북-미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 섞인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그를 지명하면서 “김정은과 나의 정상회담 협상을 도왔다”고 소개했다. 웡은 한국과도 인연이 많은 지한파다. 비건 대표와 함께 광화문에서 ‘닭한마리’를 즐겼던 그는 이후 쿠팡 임원으로 서울 출장을 올 때면 짬을 내 한국 외교관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한식집을 찾았다. 웡 같은 인사들이 백악관에 들어간다고 당장 한반도 이슈 논의가 재개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중동 전쟁이 우선순위에 올라 있다. 중국 전문가이기도 한 웡은 미중 갈등 현안들도 다뤄야 한다. 무엇보다 북핵 이슈는 일부 참모들의 경험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더 이상 비핵화 협상은 없을 것이라는 김정은과 핵 동결 혹은 군축을 논의하게 되더라도 결국 검증이라는 덫에 다시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으로서는 어떤 방식이든 북-미 협상이 재개됐을 경우 우리가 소외되지 않도록 한미 공조를 유지하는 일이 시급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노골적으로 ‘왕따’ 시도를 당하고, 한국이 포함된 3자 회동을 만들어 보려다가 망신당한 전례가 있다. 더구나 지금은 북한의 통미봉남 의도가 더 노골화하는 시점이다. 한미 간에는 방위비 분담금 같은 민감한 동맹 현안도 예고돼 있다. 웡 같은 인사들을 연결고리로 트럼프 2기 백악관을 ‘넛징(nudging)’할 필요가 있다.한국, 對美인맥-전략으로 북핵 풀어야 인맥과 전략이 탄탄하게 뒷받침된 세련된 외교로 한국이 이를 매끄럽게 풀어낼 수 있다면 미국과 함께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게 불가능한 장면은 아닐 거라 본다. 또 누가 아는가. 혹시라도 미국 협상 대표의 소맷부리를 절박하게 붙들던 그 북한 외교관과 다시 마주 앉게 될지.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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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北인권 문제까지 金 여사와 엮이게 해서야

    러시아에 붙잡혀 있던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가 8월 풀려나 다시 미국 땅을 밟는 장면은 부럽기 그지없었다. 취재 도중 간첩 혐의로 붙잡힌 에번 게르시코비치 기자가 투옥된 지 약 500일 만이었다. 고문과 가혹한 환경으로 악명 높은 레포르토보 구치소는 비슷한 이유로 체포된 한국인 백모 선교사가 수감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北인권재단-특별감찰관 무리한 연계 미국은 그를 비롯해 러시아에 억류된 자국민들을 구하기 위해 1년 넘게 치밀한 물밑 외교전을 펼쳤다. 러시아를 상대로 쓸 ‘맞교환 카드’를 확보하기 위해 제3국인 유럽의 동맹국들을 끌어들였다. 특히 독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송환을 원하는 러시아 암살범이 구속돼 있었다. 자국 땅에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를 풀어줄 수 없다며 완강히 버티는 독일을 미국은 집요하게 설득했다. 그렇게 극적으로 돌아온 미국인 4명을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한밤중 공항에 직접 나와 맞이했다. 활짝 웃는 석방자들을 보면서 북한에 갇혀 있는 김정욱 선교사가 떠올랐다. 2013년 평양에서 체포된 지 벌써 4000일이 넘었다. 무기노동 교화형을 선고받은 뒤 생사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다. 북한이 남한 사람을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이라 조심스럽게 전망할 뿐이다. 김 선교사를 포함해 북한에 억류돼 있는 한국인은 6명이다. 북한인권 문제는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 고문받거나 처형당하고,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등에서는 ‘북한인권’을 북한이 가해자이거나 북한에 연루된 인권 사건들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정의한다. 억류자와 납북자, 국군포로를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들도 엮여 있는 문제라는 말이다. 그러나 북한인권을 중시한다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실질적 개선은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통령실이 최근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을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과 연계시킨 것 또한 그다지 진정성 있는 조치로 보이지 않는다. 상관관계가 없는 두 사안은 여야가 정치적으로 엮으면서 벌써 8년째 공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도 아닌 여당 대표가 연계를 풀자고 나섰다. 용산이 이를 북한인권재단 이사 문제로 받아친 것은 이렇게라도 재단을 굴러가게 하겠다는 절박함이라기보다는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다루게 될 특별감찰관 선임을 어렵게 만들려는 계산법이 앞섰기 때문은 아닌가.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선임 과정도 시끄럽다. ‘김정은 금고지기’로 불리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관리였던 이정호 씨의 딸 이서현 씨가 단수 추천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탈북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북한 정권에서 특혜를 누렸고, 한국으로 왔으나 다시 미국으로 망명을 신청해 떠난 인사의 자녀가 북한인권대사를 맡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서현 씨가 김 여사의 방미 기간에 행사를 함께 도왔던 것도 논란을 키우는 분위기다. 수십 년간 활동해온 북한인권 전문가들을 밀어내고 30대 초반의 탈북민이 유력 후보로 검토된다니 ‘여사 라인’이 배경이 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법도 하다.정쟁화할수록 내부 갈등만 키울 뿐 이런 논란들은 결과적으로 북한인권 문제를 정쟁의 늪으로 밀어넣기만 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는 해결은커녕 우리 안의 갈등을 부추겨 지금까지의 노력마저 퇴보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는 사이 북한에서는 10대 학생들이 한국 드라마를 봤다가 공개 처벌됐다는 증언이 나오고, 북측 하늘로 띄우는 대북 전단이 많아지는 만큼 이를 접하는 주민들이 통제, 박해받는 정황들도 이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시끄러운 정치적 이슈와 엮어 시간을 흘려보낼 때가 아니다.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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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핵심 놓친 ‘국기에 대한 경례’ 공방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낸 파면 결의안은 신박하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안 했다는 이유로 고위공직자에 대해 국회에서 “즉각 파면하라”는 결의안이 나온 것은 본 적이 없다. 김 차장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면서 대통령실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같은 시각적 묘사를 해놓은 부분도 낯설다.야당 “경례 안했다” 김태효 파면 결의안 문제가 된 윤석열 대통령의 체코 방문 환영식 동영상을 보면 옆에 도열해 있던 김 차장이 두리번거리다 멈칫한 채 서 있는 모습이 어색하긴 해도 고의적인 경례 거부로 단정하긴 어렵다. 이를 “의도적”이라고 문제 삼으면서 과거 논란이 됐던 그의 일본 관련 발언을 덧붙여 ‘친일 매국’을 제목에 달아 놓은 결의안은 어설프다. 애국가가 나오는 동안 가슴에 손을 얹지 않은 뻣뻣함은 어차피 구실이었을 뿐, 50명이 넘는 민주당 의원들이 겨냥한 타깃은 김 차장이 주도해 온 것으로 알려진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정책일 것이다. 윤 정부의 대일 전략은 미국 인도태평양 정책과의 연계, 그리고 그 핵심축이 되는 한미일 협력 강화라는 큰 틀에서 이뤄지고 있다. 미국과 패권 다툼을 벌여 온 중국의 공세적 외교,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장기화 속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에 대응하기 위해선 한미일이 더 끈끈하게 뭉쳐야 한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한일 관계를 풀어야만 가능한 3각 협력이다. 조급함이 앞서는 듯한 정책들을 놓고 추진 방식이 거칠고 정교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계속돼 온 게 사실이다. 강제징용 문제만 해도 제3자 변제 방식을 추진하던 지난해 대통령실의 입장은 “일본에 조건 없이 제안하고 추진하라”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전향적 입장 선회에 일본 측이 되레 당황해서 “정말 원하는 게 없느냐”고 수차례 확인했다고 한다. 당시 협상을 지켜본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일본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 다르게 처리한 셈이니 진정한 ‘반일(反日)’ 아니냐”는 자조적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민주당은 이런 윤 정부의 대일 외교를 공격하고 싶겠지만, 정작 공격 대상으로 삼아야 할 국가안보실장은 수시로 교체되고 있다. 결국 실세 2인자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 차장이 대놓고 타깃이 돼 있는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 “해리스 후보의 참모들을 가르쳐야 한다” 같은 부적절한 발언들이 누적된 탓도 있으니 김 차장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까칠한 언행과 직설화법 등으로 가뜩이나 오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다. 그렇다고 해도 민주당이 제출한 이번 파면 결의안은 내용과 방식 모두 핵심에서 한참 벗어났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재선될 경우 1기 행정부 때의 미일 간 밀착 구도가 재현되면서 한국만 어정쩡하게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원칙’이 공고히 유지될지 여부도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에서는 아시아판 나토(NATO) 창설을 주장하는 안보통이 새 총리로 선출됐다. ‘친일 프레임’ 속 정부 비판을 넘어 일본과의 미래 협력을 어떻게 끌어갈지,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에 어떤 다자 구도로 대응할지에 대한 현실적 방안이 절실한 시점이다.“왜놈” 막말 공격 넘어 외교정책 지적을 이런 정책적 고민은 뒷전으로 미뤄 둔 채 특정 공직자에게 “왜놈의 후예 아니면 매국노 밀정”이라는 딱지를 붙여 공격한다고 정부의 대일 정책이 개선될 리 없다. 이런 수준으로는 한미일 협력 강화 과정에서 발생한 대중 정책의 구멍이나 편중 외교의 문제점을 짚은 데까지 나아가는 것은 기대 난망이다. 이제 곧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최소한 ‘김태효 파면 결의안’보다는 깊이 들어간 질의가 이뤄져야 지켜보는 이들이 덜 민망하지 않겠는가.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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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尹 대통령의 불안한 ‘한국형 헨리 키신저’ 실험

    용산 대통령실 경호처 부속건물에 최근 한때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새로 만들어지는 외교안보특별보좌관 사무실을 한번 보고 싶다며 방문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기존에 쓰던 다른 사무실 일부를 헐어 특보실로 만드는 공사가 아직 진행 중인 데다 폭염 속 에어컨도 없는 상황. 직원들이 윤 대통령의 발걸음을 막느라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연쇄이동 논란 속 외교안보특보직 신설 윤석열 정부의 초대 외교안보특보 자리는 지난달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장관에, 신원식 국방장관을 국가안보실장에 앉히는 연쇄 인사 과정에서 신설됐다. 국가안보실 사령탑 자리를 내어주게 된 장호진 전 실장이 맡게 된 새 직함이다. 7개월 만에 돌연 교체된 국가안보실장 인사의 배경을 놓고 경질설, 권력다툼설 등이 난무했다. 윤 대통령이 특보 사무실을 직접 챙기는 것을 보니 후속 조치에 신경이 쓰이는 인사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윤 대통령은 나토(NATO) 정상회의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해외 정세를 보고 군인 출신 국가안보실장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게 인사 발표 당시 대통령실의 설명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두 개의 전쟁이 동시에 돌아가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도 이제 외교보다는 안보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의 위협 등에 대비해 군사적 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은 군이 할 일이다. 중동과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서 국가안보 사령탑이 군인 출신으로 교체돼야 했는지 의문이다. 국방부 인사들이 ‘즉·강·끝(즉시, 강하게, 끝까지)’의 응징을 외칠 때 다른 한쪽에서 적대국 혹은 비우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고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하는 게 국가안보실이 해야 할 일 아닌가. 한 발 더 나아가 전쟁 종식 이후 러시아 등과의 관계 재설정까지, 풀어내야 할 외교 방정식은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까다롭다. 불과 60여 일밖에 남지 않은 미국 대선 또한 초박빙 구도 속에 그 결과를 가늠하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재선될 경우 제기될 이슈는 주한미군 감축 같은 군사 문제만이 아니다. 북-미 협상 재개, 미중 관세전쟁,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기 등 한국이 대응해야 할 경제안보 분야의 난제가 쓰나미처럼 들이닥칠 것이다. ‘리베로’로 해외를 뛰면서 이런 현안을 풀어낼 것이라는 장 특보의 역할은 막상 애매하다. 원전 세일즈 같은 특별 임무를 맡게 된다지만 특보만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미션이 무엇인지 정확지 않다. 경제안보나 통상 관련 업무라면 산업통상자원부, 한미일 협력은 외교부 장차관들이 언제라도 출장길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업무 중복이나 관할권 충돌의 문제가 불거지지 말란 법이 없다. 윤 대통령은 기존과는 다른 상근 외교안보특보직을 처음 만드는 취지로 “우리도 헨리 키신저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했다고 한다. 헨리 키신저가 밀사로 중국을 오가며 미중 데탕트 시대를 열었을 때는 그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재직하던 때였다는 것을 알고 한 언급인지 모르겠다. 키신저의 성과는 충분한 권한과 국가적 지원, 이를 보장받을 직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6년 넘게 백악관에서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한 최장수 국가안보보좌관이다.‘리베로’ 역할 한계와 업무중복 우려 교체 사실을 직전까지도 몰랐던 장 특보는 예정됐던 업무 일정들을 갑작스럽게 조정해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인사 배경이 석연치 않으니 이번 연쇄 인사의 출발점으로 보이는 김용현 국방장관 후보자 임명을 놓고 탄핵 대비용이니 계엄령 준비니 하는 야당의 공세만 거세져 간다. 대통령실이 “외교와 안보의 두 마리 토끼를 쫓겠다”고 의미를 실은 국가안보실과 외교안보특보실의 역량을 결국 동시에 흔들게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해진다. 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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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해리스 돌풍’ 만들어내는 美 민주당의 절박함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에 대한 워싱턴 정가의 초기 평가는 꽤 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4년 전 그가 백악관에 입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참모 몇 명이 연달아 사표를 쓰자 ‘부통령실의 대탈출(exodus)’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이어졌다. 업무 역량에 리더십까지 도마에 오르면서 “사람을 품을 줄 모르는 게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그의 발언을 일일이 분석해 ‘말비빔(word salad)’ 화법이라고 비판하는 논평들도 있었다. 핵심이나 논리 없이 그럴싸한 수식어들만 두서없이 섞어 놓는다는 지적이었다.‘反트럼프 결기’가 밀어올리는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실권이 많지 않아 언론이 관심 자체를 별로 두지 않는 자리다. 그런 부통령에 대한 비판적 기사가 쏟아지는 걸 보면서 ‘백인 남성이었어도 저랬을까’ 싶은 생각이 든 적도 있다. 혼혈이자 여성인 해리스 부통령을 향한 여러 비판에 대해 실제로 당시 부통령실은 “인종주의에 성차별적 시각”이라고 발끈했다. 한때 약점으로 여겨졌던 그의 성별과 인종은 그가 조 바이든 대통령을 대신해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서면서 강점으로 바뀌고 있다. 아시아계와 흑인의 표심을 모두 잡을 수 있는 다양성을 주목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다소 경박해 보였던 그의 웃음도 순식간에 매력으로 탈바꿈했다. 호탕하게 웃는 동영상이 코믹한 밈(meme)으로 재구성돼 젊은이들의 스마트폰에 퍼지고 있다. 해리스 정도로 되겠느냐며 당내 경선을 주장하던 목소리는 쑥 들어갔다. 순식간에 대의원을 확보한 그는 이제 전국 단위 지지도는 물론 핵심 경합주 여론조사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맹추격하고 있다. 그냥 된 것은 아니다. 해리스의 당선을 위해 민주당의 내로라하는 선거전략가와 소셜미디어 전문가들이 달라붙었다. 당 지도부는 총력전으로 뒤를 받치고 있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만들어보자며 여성계가 다시 똘똘 뭉치기 시작했고, 큰손 후원자들이 속속 지원에 나서 거액의 캠페인 자금을 대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이 지난달 모금한 선거자금만 우리 돈으로 4000억 원이 넘는다. 무서운 결집 속도다. 이런 움직임의 밑바탕에는 트럼프에게 정권을 내줄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대로 끝이라는 민주당 인사들의 토로에는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대선 번복 시도와 기밀문서 유출, 성추문 입막음 등 91개 혐의로 재판을 받는 트럼프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어줄 수 없다는 결기가 가득하다. “트럼프는 위험하다”며 그의 역량과 자질, 도덕성 문제를 조목조목 짚은 뉴욕타임스의 이례적으로 긴 사설도 배경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 칼럼니스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저서 ‘담대한 희망’에 빗대 ‘담대한 절박함(the audacity of desperation)’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 절박함이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 결정을 이끌어냈고, 이제 ‘비(非)백인 여성 대통령’이라는, 민주당이 가본 적이 없는 길을 좁게나마 뚫어내고 있다. 민주당 후보가 누구든 당선시켜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이어진다. “해볼 만하다”는 인식이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지면서 패색이 짙었던 민주당에는 다시 활기가 돌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승리의 간절함이 한계를 강점으로 지지하는 후보의 매력보다는 “상대 후보만은 절대 안 된다”는 판단이 선택의 기준이 되는 구도가 선거의 정석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스의 등판은 순식간에 대선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는 점에서 새로운 선거의 역사를 쓰는 과정이다. 수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건재한 미국의 역동적인 민주주의 현장을 온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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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 초대석]“트럼프 재선땐 ‘스케줄F’로 반대파 없앨듯… 韓, 북미협상 대비해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유세 중 암살미수범의 총에 맞아 부상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대선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충격적 암살 시도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리스크와 맞물리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을 높이는 추세다. 한국에도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칠 미국 대선과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해 우리의 관점에서 제대로 들여다보고 분석할 필요성이 커지는 시점이다.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지난해부터 트럼프 분석에 빠져 있다. 2016년 그의 대선 출마부터 4년간의 백악관 업무, 최근 유세 연설문에 참모들의 회고록까지 8년간의 자료를 모으고 분석해 ‘트럼프의 귀환’이라는 책을 냈다. 40년 가까이 외교안보 현장을 경험해 온 전직 외교관의 시각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그는 13일과 14일 동아일보와 대면 및 추가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이나 트럼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아직도 코끼리 더듬는 수준”이라며 선입견 없이 심층적으로 이를 들여다볼 필요성을 강조했다.》―트럼프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왜 트럼프였나. “처음부터 트럼프에 대한 책을 쓸 생각은 아니었다. 현직에 있을 때 정권에 따른 한국 외교의 변동성이 너무 크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은퇴 이후 글쓰기에 자유롭게 전념할 시간이 생기니까 이걸 풀어보고 싶어졌다. 미국, 중국, 일본의 대외전략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관련 자료들을 보기 시작했고, 다음이 트럼프였다. 그를 다룬 책 이외에도 CNN과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같은 외신에 심층 분석 특집기사가 정말 많다. 지난해 말쯤 되니까 이제 ‘구슬을 실에 꿰기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료가 쌓였다.” ―어떤 자료들이 트럼프를 이해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됐나.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부편집인이 쓴 3부작 시리즈가 압권이다. 공포(Fear), 분노(Rage), 위험(Peril)을 쭉 읽으면 트럼프의 백악관 4년의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우드워드가 직접 트럼프와 17번의 인터뷰를 하면서 썼다는 점에서 특히 신뢰도가 높다. 존 볼턴(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나 마이클 울프(‘화염과 분노’ 저자), 피터 베이커(뉴욕타임스 기자) 같은 이들의 책도 보았는데 편향이 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속에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트럼프의 과거 발언들은 백악관 아카이브에서 찾았다.” ―보고서 형식에 익숙한 외무공무원이 책을 쓰는 데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 “2019년 북한대학원대학에서 늦깎이 공부를 했다. 쓴 박사 논문을 단행본으로 낸 적은 있었지만, 단행본으로 내는 글을 쓴 것은 처음이었다. 신문 칼럼을 정기적으로 쓴 적이 있었는데 좋은 훈련이 됐다. 챗GPT 4.0 유료 버전도 활용했다. 방대한 자료들을 짧은 시간에 기가 막히게 찾아내 정리해 내더라(웃음).” 조 전 원장이 300페이지 가까운 책을 쓰는 데 걸린 시간은 4개월. 영어로 된 자료들을 속독했던 외교 현장에서의 경험이 시간을 단축시켰다. 그는 “질문을 잘 뽑아야 좋은 글이 나오더라”라고 했다. 트럼프의 경우 ‘전략적인 건지, 즉흥적인 건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트럼프라는 인물을 대통령 자리까지 밀어올린 미국의 국내정치와 사회, 경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문제의식도 또 다른 목차를 구성하는 바탕이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이번 총격 사건으로 지지자들이 결집하면서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11월 대선 표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트럼프 암살 시도는 극심한 양극화 속에 ‘증오의 정치’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선거판을 보면 2000년 이후 공화당이 늘 승리해온 곳이 20개 주, 민주당이 매번 승리한 지역이 16개 주다. 미국의 호남, 영남 같은 구도여서 선거 결과는 거의 안 바뀐다고 보면 된다. 한 번이라도 결과가 바뀌었던 경합주는 15곳인데, 민심 바로미터인 하원의원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따져보면 이번 대선에서는 트럼프가 대의원을 단 6명 더 확보해 조 바이든 대통령을 이기는 것으로 나온다. 초박빙이어서 단 한 군데라도 예상을 벗어나면 결과가 바뀌게 된다.”―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1기 때와는 얼마나 큰 변화가 있을까. “트럼프는 집권 이후 지금까지 반대파를 없애고 공화당을 평정했다. 2기 때는 ‘스케줄 F’를 실행할 것이다. 국정 기조에 반발하는 공무원을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도록 만든 행정명령이다. 대통령의 의지가 연방정부의 끝까지 침투하게 된다는 의미다. 결국 예스맨들에게 둘러싸이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권한을 극대화할 것이다.” 조 전 원장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는 정당 지도자라기보다 사회운동 지도자에 가깝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600만 명의 팔로어를 즉각적으로 움직이는 힘으로 이념적이고 명분에 충실한 열성분자를 결집시킨다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을 대신해 싸우는 여러분의 전사다. 여러분을 배신하고 해를 끼친 자들을 응징하겠다”며 ‘보복’을 벼르고 있다. 트럼프가 ‘어젠다 47(Agenda 47)’과 ‘프로젝트 2025(Project 2025)’를 통해 공개한 정책 구상의 3가지 핵심은 이민자 통제, 제조업 재건, 그리고 미국의 해외 개입 축소다. 중국, 러시아는 물론 한국과 관련된 외교 및 경제통상 정책 등은 이 틀 위에서 짜이게 될 것이라고 조 전 원장은 설명했다.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을 비롯한 한미 동맹 이슈에는 어떤 변화가 올 것으로 보나. “방위비 분담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규정의 예외 적용을 위해 만든 ‘특별협정(SMA)’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SOFA에는 우리가 미군부대의 토지와 시설만 제공하도록 돼 있는데 한국이 이보다 많이 부담하라는 요구를 받으니 특별협정을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서 뭔가 더 해주려면 이제는 예외 규정까지 손대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트럼프는 1기 때 요구한 50억 달러를 기억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이 커질 경우 정부가 증액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트럼프가 김정은과 재협상에 나서고 한미 연합훈련, 주한미군 등을 협상카드로 쓰게 되면 우리는 주도권을 뺏긴 채 분담금만 뜯기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그의 캠프에서 활동하는 참모들은 주한미군은 유지될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는데. “주한미군 철수는 트럼프가 공개적으로는 물론 내부 회의에서도 여러 차례 꺼냈다. 그때는 게리 콘(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제임스 매티스(전 국방부 장관) 같은 인사들이 때로 훼방까지 놓아 가면서 막아냈다. 하지만 그런 참모들은 이제 다 떠났다. 트럼프는 ‘그때 하려고 했는데 못 했던 것들’을 할 것이다. 한미동맹이 70주년을 맞았다고 이를 당연시하면 안 된다.” ―2기 정부에서 미중 관계는 더 악화될까. 트럼프는 최근 유세에서 ‘시진핑이 잘생겼다’ 같은 말을 하기도 했는데. “미국이 패권국의 입장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트럼프나 바이든 정부가 똑같다. 다만 바이든이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를 앞세웠다면 트럼프는 지정학적 경쟁의 관점에서 중국을 보고 있다. 경제과학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중국을 더 강하게 견제하려 할 것이다. 트럼프에게 호혜적인 무역협정이란 간단하다. ‘네가 쥐어짜면 나도 너를 쥐어짠다’는 것이다.” ―북-러가 밀착하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재등장이 이 구도를 바꿀 변수가 될 수 있을까. “트럼프는 우크라 전쟁 협상을 하루 만에 이뤄낼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의 북한 포탄 수요는 줄어들 것이고, 더 이상 북-러가 지금처럼 밀착할 이유는 줄어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재협상에 나서게 되면 북-미 구도가 바뀔 수 있다. 이때 북한의 ‘통미봉남’ 시도가 다시 극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대북 적대감을 유지한 채 미국 일변도의 외교만 해서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트럼프의 2번째 백악관행이 현실화될 경우 한 번의 ‘일탈’이 아닌 지속적 ‘현상’으로서의 변화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란 게 조 전 원장의 진단이다. 그는 1시간 반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새로운 모습의 미국을 상대하려면 한국이 기존의 이분법적 세계관과 흑백논리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귀환’이 위기가 될지 위협이 될지는 우리한테 달렸다는 말이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프로필△경북 영천 출생(1956년)△서울대 외교학과 졸업(1979년)△제15회 외무고시 합격(1981년)△한미 방위비분담협상 대표(2008년)△주미얀마 대사(2010∼2011년)△외교통상부 대변인(2011∼2012년)△주말레이시아 대사(2013∼2016년)△국립외교원장(2017∼2018년)△경남대 초빙석좌교수(2019년∼)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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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차기 지도자를 키우지 못하는 나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고령 리스크에 휘청이는 민주당을 두고 “그 많은 정치인 중에 정말 대안이 없느냐”는 탄식이 쏟아진다. 그러나 불과 4년 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던 후보만 해도 서른 명에 육박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 TV토론 참가 조건을 충족해 카메라 앞에 선 후보만 20명. 이틀간 10명씩 나눠서 진행된 토론 무대는 빡빡했다. 고령의 상원 중진부터 아시아계 젊은 사업가까지 각자의 강점을 내세운 후보들이 짧게 배분된 발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 안간힘을 썼다.고령 대통령의 대안 못 찾는 美 민주당 후보들은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한때 선두였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급진적인 정책 논란으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너무 왼쪽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에 고령의 나이까지 발목을 잡았다. 세계적 부호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도 집중포화를 맞은 TV토론에서의 방어 실패와 ‘정치 철새’ 논란 등을 버티지 못했다. 당시 후보들 중 지금 바이든 대통령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이는 찾기 어렵다. 다시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는 최연소 후보였던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 정도인데 그는 성소수자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탈락한 패자의 이미지, 경선 과정에서 노출된 흠집 등도 이들의 재도전을 막는 이유가 됐을 것이다. 설령 다시 뛰어 볼 의사가 있다고 해도 이미 공화당에 넘어간 하원에 이어 상원까지 흔들리는 상황에서 한 자리라도 지켜야 하는 의원들이 쉽게 움직이긴 어렵다. 새로운 이름들이 없는 건 아니다. 뒤늦게 대안 찾기에 나선 민주당 안팎에서는 7, 8명 정도가 거론된다. 이번엔 주로 주지사들인데, 중앙정치에서의 정치력이 검증되지 않았거나 전국 단위 인지도가 약하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그나마 현실성 있는 카드지만, 현재 지지도가 바이든 대통령보다도 낮다. 오죽하면 정치할 생각이 없다는 미셸 오바마 여사가 가상 대결에서 1위에 올라 있는 상황이다. 국가 지도자는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반짝이는 가능성을 보였다고 해도 정글 같은 정치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리더십을 훈련받으며 세력을 불려가는 데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중앙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굵직한 프로젝트를 맡겨 역량을 검증하고 언론에 노출시키면서 지지 기반을 넓혀 주는 ‘작업’이 이뤄진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04년 전당대회 연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직후부터 민주당 지도부가 그를 대통령 후보감으로 점찍고 키워낸 스토리는 잘 알려져 있다. 민주당에는 이제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 의지를 다지며 버티고 있으니 잠재적 경쟁자를 키울 여지가 크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바이든 대통령의 82세 리스크를 감안했으면 대비했어야 했다. 본인도 첫 출마 당시에는 “나는 국가의 미래인 차세대 리더들의 중간다리 역할”이라고 했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그는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 재앙적 수준의 내부 혼란에 직면해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조롱당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정권을 빼앗길 판이다.‘잠룡 흠집내기’ 반복되면 韓도 인재난 진퇴양난에 빠진 미국 여당의 처지는 여의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가능성을 주목받았던 여당 대표들이 대통령실 개입설에 흔들리며 줄줄이 떨어져 나간 게 최근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한동훈 후보의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논란으로 자폭 직전이다. 물고 뜯고 싸우며 서로 끌어내리는 과정에서 후보들이 받은 상처는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다. 성한 상태로 차기를 기약할 잠룡들이 남아나지 않을 판이다. 이대로면 우리도 3년 뒤 미국 같은 인재난에 빠지지 말란 법 없다. 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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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우리끼리 싸움’ 부추기는 北의 대남 심리전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로 발표되는 대남 담화들을 읽으면서 실소한 게 여러 번이다. 내용은 둘째 치고 막말로 범벅된 표현의 저급함과 정제되지 않은 문장들이 혀를 차게 만들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으로,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북한의 최고 실세가 썼다는 것을 믿기 어려운 수준이었다.오물 풍선이 드러낸 北 히스테리 담화에는 “재잘거리는 놈들한테 줴박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거나 “남조선 괴뢰들이 지껄이는 소리가 지루하고 진저리가 나서 몸이 다 지긋지긋해진다”는 식의 감정적 사족(蛇足)이 곳곳에 들어 있다. 북한의 미사일 기술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 발언을 놓고는 “우리의 대륙간탄도미싸일을 금방 보고도…?”라고 혼잣말하듯 묻기도 한다. 소위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대북전단금지법을 채근한 2020년 담화에선 한국 정부와 탈북자들을 향해 ‘망나니’, ‘똥개’ ‘인간추물’ 같은 단어를 배설하듯 쏟아냈다. 김여정은 최근 오물 풍선을 살포한 뒤에는 “진정 어린 성의의 선물로 여기고 계속계속 주워 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것들의 눈깔’ 같은 표현을 늘어놓고는 대남 위협으로 담화를 마무리했다. 한국의 대북전단과 확성기 방송 같은 심리전에 대한 북한의 히스테리가 느껴진다. 발사 후 2분 만에 폭발해 버린 정찰위성의 실패가 이를 자극했다는 분석도 있다. 수십 t(톤)의 쓰레기를 최소 3500개 풍선에 실어 보내는, 전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기 힘든 희한한 도발 방식부터가 신경증적이다. 2016년 북한이 대형 풍선을 대량으로 띄웠을 때는 대남 메시지를 담은 ‘삐라’가 들어 있었다. 발견된 것만 10만 장이 넘는 전단에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정치적 오물’이라고 비하하는 내용이 있긴 했지만, 풍선 안에 실제 오물이 들어 있지는 않았다. 이번엔 전단 한 장 없이 냄새나는 거름과 쓰레기뿐이다. 북한의 실상을 알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전단 같은 방식으로는 심리전 맞대응이 어렵다는 것을 평양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북한은 결국 확성기 조준 타격을 포함한 재래식 국지 도발을 감행한 뒤 협상 과정에서 방송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도발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북한은 앞서 오물 풍선 살포를 예고한 김강일 국방성 부상의 담화에서 ‘해상 국경선’을 거론하며 “해상에서 무슨 사건이 발생할 경우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대한민국이 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신경질적 반응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 벌써 4차례 반복되고 있는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는 남남갈등을 부추기려는 의도 또한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벌써부터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은 대북전단 살포가 원인”이라며 이를 막지 못한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정부의 9·19 남북군사합의 전면 중단 결정에 대해서도 “잇따른 안보 참사를 덮기 위한 것”이라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거야(巨野)는 윤석열 정부가 당면한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북의 도발을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南南갈등에 대북정책 휘둘려선 안 돼 우리끼리 싸우게 만드는 남남갈등 전술은 북한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심리전이다. 대북 대응의 정책 일관성을 흔들어 효력을 약화시키면 정부의 강경 조치들은 어느새 북한이 ‘감내할 수 있는 조치’로 흐물거리게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도발이 추가될 때마다 책임 소재를 따지며 서로 삿대질을 해대는 상황에서 국방부가 외쳐온 ‘즉·강·끝(즉각, 강력하게, 끝까지)’ 원칙이 지켜질 수 있을까. 북한의 이런 의도에 말려들었다간 북한의 중대 도발은커녕 오물 풍선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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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 초대석]“中, 한국과 함께 중요 합의 확실히 이행할 것… 韓 기업의 성공 지원”

    《“韓中 교류 지원조치 더 나올 것”지난달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李强) 중국 총리의 회담 후 얼어붙어 있던 한중 관계가 풀려 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싱하이밍(邢海明·사진) 주한 중국대사는 회담 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중 간 왕래 편의를 위한 조치들이 더 나올 것”이라며 양국 교류 확대 의지를 강조했다. 한반도 긴장 상황과 관련해서는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동안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가 다시 외교 테이블에 앉은 것은 지난달 말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李强) 중국 총리의 회담 때였다. 그는 한중 외교안보대화 신설, 2단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개 등에 합의한 양자 회담부터 두 지도자가 중국 시인 두보(杜甫)의 시 구절을 나누며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현장에 함께했다.싱 대사는 지난달 31일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진행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회담이 아주 잘 됐다”며 “중국은 한국과 함께 중요한 합의들을 잘 이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중국 비자의 발급 절차 간소화 조치에 이어 관광 및 영화, 드라마 같은 문화 분야 교류를 확대할 후속 방안들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경제 협력과 관련해서도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성공하는 길을 계속 열어주자는 마음”이라며 지원 의사를 강조했다.》―중국은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를 어떻게 평가하나.“3국 각계각층과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모았던 회의다.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세심하게 준비하며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올해 25주년이 되는 중한일 협력 체제는 풍성한 성과를 거뒀지만 도전에 직면하기도 했다. 중국은 한국, 일본과 함께 이번 정상회의의 성과를 확실히 이행하고 3국 협력을 안정적, 장기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한중일이 공급망 협력 강화에 합의했지만 미중 무역전쟁은 격화하고 있고 한국, 일본은 미국과의 공급망 협력을 가속화하는 상황 아닌가.“중한일 3국의 경제 총량은 세계 경제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상호 교역액이 8000억 달러에 이르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3국이 함께 개방과 포용, 호혜와 상생을 견지하며 함께 경제·무역 문제의 범정치화, 범안보화를 반대하기를 바란다. 무역 보호주의와 ‘디커플링’에 반대하기를 바란다.” ―윤 대통령이 리 총리를 배웅하면서 ‘춘야희우(春夜喜雨·봄밤에 내리는 기쁜 비)’라는 두보의 시구를 인용했다.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가 한중 관계에 단비가 될 수 있을까.“중국에서 유명한 시다. 첫 구절은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인데,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회담을 이 시구로 표현한 것은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양국 관계 발전의 성과가 두보 시의 ‘수풍잠입야, 윤물세무성(隨風潛入夜, 潤物細無聲)’처럼 ‘바람결에 살며시 밤에 들어와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실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 수출이 감소했다. 향후 경제 협력을 통해 이런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보나.“양국의 교역이 많을 때는 3600억 달러를 넘었다. 좀 떨어졌지만 올해는 1월부터 4월까지 벌써 1026억 달러로 증가했다. 이런 추세로 가면 한국이 다시 중국의 제2 무역 파트너가 된다. 중국 기업이 성장하고 ‘신품질 생산력’을 추진하면서 (한국과) 경쟁하는 면이 있지만 중국만큼 시장이 크고 기회도 많고 지방정부에서 잘 도와주는 곳은 이 세상 어디를 가도 못 찾는다. 특히 중국으로의 반도체 수출은 한국 경제에 돈이 된다. 대기업도 그렇고 중견기업, 중소기업이 중국에 와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을 계속 열어주자는 마음이다.” ―한국인과 중국인의 상호 호감도가 높지 않다. 인식 제고와 교류 촉진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이 있나.“최근 여론조사에서 한국 국민의 80% 이상이 ‘한중 양국이 우호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는데, 이는 100만 명에 달하는 재한 중국인이 느끼는 바와 같다. 지방, 교육, 스포츠, 언론, 청소년 교류 기회를 늘리기를 바란다. 중국은 왕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조치들도 계속 내놓을 예정이다. 더 많은 한국 국민이 중국에 가서 신(新)시대 중국의 발전을 체험하며 중국인의 열정을 느껴 보시길 바란다. 더 많은 중국인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 또한 지지한다.” ―중국의 ‘반간첩법’ 개정안 시행이 외국인의 안전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데….“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반간첩법 개정안은 관광이나 비즈니스, 학술 교류 같은 정상적 활동을 겨냥한 게 아니다. 일각에서 반간첩법이 외국인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라고 과장하는데, 이는 사실을 왜곡하고 중국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이 법 때문에 한국 국민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저는 들은 적이 없다. 중국은 투자, 비즈니스, 업무 교류 및 관광을 하는 한국인의 합법적인 권익을 법에 따라 보호할 것이다.” ―북한이 최근 오물 풍선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교란으로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한반도 정세의 긴장 국면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압박을 통해서는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중국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서로 양보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그렇게 해서 잘 된 것도 있고, 아쉽게 합의가 안 된 것도 있었다.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반도 정세의 긴장이 날로 고조되는 것은 중국이 원치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데 근원적으로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이런 방향으로 노력할 것이다.” ―최근 대만에서는 라이칭더(賴淸德) 총통이 취임했다. 대만해협의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대만섬의 정세가 어떻게 변화하든, 누가 집권하든 양안(兩岸)이 같은 하나의 중국에 속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중국이 결국 통일될 것이라는 역사적 대세 역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대만은 예로부터 중국의 불가분한 일부였다. 유엔총회 결의안 2758호는 중국 정부가 대만을 포함해 중국 전체를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충실히 지켜 대만 문제를 적절하고 신중하게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 싱 대사는 지난해 6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 “중국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소위 ‘베팅’ 발언으로 국내 여론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 싱 대사는 당시 “오해가 있었다”고 했지만 이후 공식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로 키 행보를 이어왔다. 오랜만에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싱 대사는 신중했다. 한국 관련 상황을 세세한 수치들을 들어가며 설명했고 “중국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유창한 한국어로 답변하면서 민감한 질문에도 미소를 유지했다… ―요즘 한국에서의 업무와 활동은 어떠신가.“한국의 각계 인사들을 만나고 있다. 오늘도 대구에 가서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왔다. (한국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친근’이다. 저는 40년 가까이 한반도 관련 일을 하며 4차례 한국에서 근무했다. 제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다. 저에게 있어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32년 전 대사관 현판과 관인을 가지고 서울에 와서 주한 중국대사관 설립에 참여하고 이를 지켜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양국 교역액이 연간 3000억 달러를 넘어서고 인적 왕래가 1000만 명을 돌파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중국은 ‘한한령이 없다’고 하지만 중국 내 한국 문화 확산 움직임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해도 되나.“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는 소재가 풍부하고 잘 만들어져서 많은 중국인이 좋아한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영화관에서 영화 ‘파묘’를 관람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근대 이후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과정에서 중한 양국 국민은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 서로 도왔다. 이를 대중이 즐겨 보고 듣는 방식으로 널리 알려서, 양국의 우호 감정을 심화시키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회담에서 재개하기로 한 중한인문교류위원회는 내가 초대 사무총장을 맡았던 조직이다. 이 위원회를 통해 앞으로 여러 문제를 토의할 수 있다.” ―판다 푸바오가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중국으로 돌아간 푸바오의 근황을 궁금해하고 걱정하는 한국인이 많다.“푸바오를 향한 한국 국민의 관심과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푸바오는 양국 국민에게 온정과 행복을 전해줬고, 국민 간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잊지 못할 감동적인 추억을 많이 남겼다. 푸바오는 현재 중국 생활이 평온하며 상태도 양호하니 여러분 모두 안심하시길 바란다. 푸바오는 한국 국민의 보배이자 중국 인민의 보배다. 우리 모두가 푸바오를 매우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므로 반드시 정성껏 돌볼 것이다.”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60)1964년 중국 톈진(天津) 출생. 1980년대 북한에서 유학했다. 북한에서 3차례, 한국에서는 1992년 한중 수교 때부터 주한 중국대사관 서기관, 참사관과 부대사 등 4차례 근무했다. 중국 외교부 본부에서도 남북한, 동북아 업무를 주로 맡았던 한반도 전문가로, 한국어가 유창하다. 2015∼2019년 몽골 대사를 거쳐 2020년 한국 대사로 부임됐다.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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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 초대석]“소수 극렬 지지자 주장이 소셜미디어로 증폭… 통제 방법 찾아야”

    《2021년 미국 워싱턴 의회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에게 점령당하는 장면의 충격은 미국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의회 건물이 대낮에 공격당하는 일은 전례가 없었다. 3년이 지난 지금, 미국 정치학계에서는 11월 대선이 민주주의에 미칠 영향을 놓고 다시 논쟁이 한창이다.스티븐 레비츠키 미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가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무너질 수 있음을 지속적으로 경고해 온 학자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 등의 저서를 통해 “정당한 선거 절차를 거쳐 선출된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쓴 채 이를 파괴하고 있다”고 한 그의 분석은 섬뜩할 지경이다.레비츠키 교수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극심한 정치 양극화와 함께 이를 증폭시키는 소셜미디어의 문제를 함께 지적했다. 강성 지지층이 목소리를 키우는 것에 대해 “그들이 다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 주장에 과민반응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막말 등으로 얼룩진 한국의 4·10총선이 끝나고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그를 화상으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11월 미국 대선 결과는 워싱턴 정치를 어떻게, 얼마나 바꿔 놓게 될까. “현재는 동전 뒤집기 같은 상황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을) 50 대 50으로 본다. 2018년 이후 전 세계에서 진행된 최소 20개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했는데, 미국에서도 같은 결과가 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에서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라는 기본 룰을 깨버렸다. 재선되면 충성파를 기용하고, 법무부를 앞세워 정적을 수사하며, 언론을 압박하겠다는 점을 올해 유세에서 대놓고 밝히고 있다. 프리덤하우스가 매긴 미국의 민주주의 점수는 10년 전 92점에서 이제 83점으로 추락했다.” ―인종적, 문화적 양극화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당신은 지적해왔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느끼는 ‘지위 불안(status anxiety)’ 문제도 언급했다. “지난 40년간 지속된 경제 불평등의 문제, 금융위기 이후 꺾인 성장, 중산층의 상황이 더 이상 좋아지지 않는다는 인식, 세계화의 부작용 등이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양극화를 심화시킨 원인으로 지목된다. 유럽에서는 불법이 아닌 합법적 이민자 행렬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젠더, 인종 등의 평등의식이 높아지고 사회 다양성도 커졌지만 동시에 지방 소도시는 더 종교적이 됐고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이 많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내의 이런 정치 흐름은 한국 같은 동맹국 민주주의에도 영향을 미칠까. “한국과 일본은 매우 견고한 민주주의 국가다. 다만 유럽에서 동아시아까지 전 세계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 내부의 움직임을 불확실성과 불안 속에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미국은 민주주의를 전 세계에 장려하는 것을 멈출 것이다. 또 우크라이나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을 끌어안기를 멈출 것이다. 중남미 국가들 중에서는 트럼프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따라하는 지도자들이 나오고 있다. ‘봐, 저게 우리의 모델이야’라면서. 전 세계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함의를 갖게 될 것이다.” ―지난달 한국 총선 과정에서는 막말이 쏟아졌고 상호 비방 속에 정책 대결은 실종되다시피 했다. 성공한 민주화를 이뤄낸 국가에서조차 이런 퇴행이 벌어지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보기 흉한 정치 양극화를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는 찾기 어렵다. 라틴아메리카만 해도 1970년대에는 좌파가 극단적이지 않았고 사유재산을 국유화하려는 시도도 없었지만 이젠 그 어느 지역 국가들보다 양극화가 극심해진 상황이다. 소셜미디어의 영향이 이를 가중시킨 측면이 있다. 우리 사회가 이를 어떻게 제대로 규제, 통제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한 허위정보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이를 통제할 우리의 역량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정치적 팬덤의 부작용이 커지는 듯한데….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게 거칠고 광적인 지지자들이 따라붙는 것은 늘 있어온 현상이다. 전체의 30%를 넘지 않는 소수파다. 다만 최근에는 이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결돼 목소리를 키운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몇십 년 전만 해도 미국 서부의 시골에서 어떤 극렬 지지자가 미친 소리, 멍청한 소리를 한다고 해도 정반대 지역에서 이를 들을 일이 없었다. 이제는 모두가 다 듣고 안다. 심지어 계속 반복되고 퍼져나가면서 ‘이런, 정말 심각한 일이야’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들이 다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에 과민반응해서는 안 된다.” ―제도적 자제와 상호 관용이 당신이 책에서 제시한 해법이다. 그러나 권력을 놓고 죽기살기로 싸우는 정치권 스스로 이를 해낼 수 있을까. “2개 이상의 정당이 싸울 때 어느 한쪽이 자제하거나 룰을 지키는 것은 매우,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공화당이 점점 극단화하고 룰을 위반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민주당이 똑같이 지저분하게 맞대응해야 하느냐를 놓고 격론들이 있었다. 딜레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위기는 룰을 지키는 것으로 막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정치평론가나 활동가들은 ‘한쪽 팔을 뒤로 묶은 채 링 위에 올라가라는 것이냐’고 비판한다. 한쪽이 모든 무기를 쓰면 다른 한쪽도 가진 모든 무기를 들어야 한다는 논리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맞대응할 경우 양쪽 모두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결국 민주주의를 죽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은 서로가 강대강의 정면 대결로 치닫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게 아닌가. “정치인들이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넘어버림으로써 민주주의를 잃은 나라들이 그 대가를 치렀음을 역사가 보여준다. 정치인들이 절대로 넘지 말아야 할 레드라인이 있다는 것을 유권자들 또한 알아야 한다. 이 선을 지킬 수 있도록 사회에서 존경받고 권위 있는 지도자들, 종교지도자와 원로와 비즈니스 리더와 언론 등이 나서야 한다.”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80%가 넘는 지지율로 5선에 성공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3연임 체제를 굳혔다. 이들은 대외적 영향력 확대와 군사력 강화도 시도하고 있다.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의 갈등이 더 심해질까. “냉전 종식 후 2000년대 초반까지 서구 국가들은 자유주의라는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과 러시아라는 중요한 두 개의 권위주의 파워가 부상하고 있다. 동시에 한국 일본 대만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도 부상하면서 세상은 다극화되고 있다. 서구 국가들은 여전히 파워풀하지만 과거로는 절대 돌아가지 못한다. 권위주의 국가들에 대응하는 방법은 자유주의의 건강함을 지키고, 이를 뒷받침할 경제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2023년도 글로벌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완전한 민주주의’로 분류된 나라는 24개국(14.4%)에 불과하다. 반면 권위주의 체제는 59개국(35.3%)으로 더 많다. “민주주의가 체제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내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경제 성과, 성장, 부패지수, 범죄율 등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만 해도 권위주의 국가들이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대만도 한국도 매우 잘해 내지 않았나. 민주주의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막상 그 엄청난 가치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모두 장기화하고 있다. 당신이 지적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 전 세계적으로 커지는 듯 보인다. 북핵 위협에 직면한 한국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한 국가가 존재론적 위협을 받게 될 때 사람들은 보호받기 위해 권위주의에 굴복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내부 결집이 빠르게 이뤄진다. 1960, 70년대 한국에서도 나타난 상황 아닌가. 덴마크 같은 곳에는 없는 위협을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한국이 이후 40년간 보여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준 높은 민주주의를 확립해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민주주의와 권위주의, 라틴아메리카 정치 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해 온 학자. 미국 하버드대 데이비드 록펠러 중남미 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2018년 하버드대 동료 교수인 대니얼 지블렛과 함께 쓴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28개 언어로 번역됐고, 미국은 물론이고 독일 등 해외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국내외 정치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경쟁적 권위주의’ 등 여러 저서에 이어 최근에는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출판했다. 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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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헝가리 의대’와 ‘소말리아 의사’ 논란의 본질

    워싱턴 특파원 시절 미국 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일상생활과 업무를 모두 영어로 하던 시기였는데도 의학 용어는 어려웠다. 호르몬계 이상이 의심되는 증세를 영어로 묘사하려니 난감했다. 의사 설명도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가뜩이나 사람 위축시키는 진료실에서 이왕이면 언어도 정서도 같은 것을 공유하는 의사한테 진찰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후엔 코리아타운의 한인 의사를 찾았다.특정국 비하와 인종주의로 번진 논란 의료파행 장기화에 대응해 해외 의사면허를 소지한 사람들도 국내 진료를 할 수 있게 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놓고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다. 보건복지부의 입법 예고에 달린 1100여 개의 의견 중 91%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니 이 조치에 부정적인 일반인도 적잖은 듯하다. 보건의료 재난 경보가 ‘심각’ 단계일 때만 한시적으로 허용한다지만, 국내 임상 경험이 없고 한국말도 서툰 외국 의사에 대한 불안감을 쉽사리 걷어내지 못해서일 것이다. 외국 의사면허 소지자들이 한국 예비고사와 의사 국가고시를 모두 통과한 비율은 41%로 절반에 못 미친다. 한국은 의료 수준이 높고 그만큼 국민들의 의료 서비스 기대치도 높은 나라다. 최고 엘리트들이 잡는 메스여야 내 생명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 같은 한국인 의사라도 이왕이면 서울 대형병원 의료진에게 치료받고 싶다며 전국 각지에서 상경하는 게 우리나라 환자들이다. 의사들의 반발이야 예상됐던 것이라고 해도 이런 국민감정에 대한 고려 없이 불쑥 내놓은 정부의 조치는 섣불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도 일부 의사와 누리꾼 반응이 특정 국가 비하나 인종차별 논란으로 번진 것은 기막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SNS에 소말리아 흑인 의사들의 졸업식 사진을 올리고 “coming soon(곧 온다)”고 썼다. 비판이 커지자 이를 삭제하고 사과했지만, 국내에 투입될 외국 의사들을 저개발국 수준으로 싸잡아 보는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임 회장은 해명 과정에서 헝가리 의대 등에 대해 “돈은 있고 지적 능력은 안 되는 사람들이 간다”고도 했다. 외교적으로까지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이다. 인터넷에는 “오늘 뇌종양 수술은 웅써여리띠엔 교수님이 집도하신다”는 식으로 비아냥대는 댓글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인정하는 해외 의대는 38개국 159곳이다. 국내에서 조건부로 한시적 진료라도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외국인 의사보다는 이들 의대에서 유학한 한국인이 대부분일 것으로 추정된다. ‘의사면허를 돈 주고 산 부유층 자제들’이라는 시각이 있지만, 이들 중에는 의사의 꿈이 간절한데 내신 1등급, 수능 만점 수준의 성적은 받지 못해 해외 우회로를 찾겠다는 이들도 있다. 헝가리 의대의 경우 입학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공부가 쉽지 않아 유급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의사들의 엘리트 우월주의 돌아봐야 의료계가 의대 증원의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며 정부와의 협상을 거부한 지 벌써 석 달이 되어간다. 역효과를 부르는 임시방편을 초강수로 내놓는 정부도 문제지만, ‘우리 안에서 늘리는 것도, 외부에서 데려오는 것도 다 안 된다’는 식으로 버티는 의사들의 대응도 답은 아니다. 험난한 N수를 거쳐 바늘구멍보다 좁은 의대 입시의 문을 통과한 소수만이 의사 자격이 있다는 식의 배타주의, 엘리트 우월주의가 사안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무엇보다 필수의료 분야와 지방의 의사 부족 문제를 풀지 못하면 실제 외국인 의사들을 수입해야 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 통역기를 손에 든 환자들이 손짓발짓해 가며 낯선 외국인 의사들에게 진료받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환자도 의사도 바라는 장면은 아닐 것이다.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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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지수 잘못 짚은 민주당의 신(新)한일전 [오늘과 내일/이정은]

    “기형 물고기라는 게 있잖아요. 어디든 기형은 꼭 나오기 마련이니까…. 그게 우리나라 앞바다에서 나오면 후쿠시마 오염수와 상관없다고 정부가 입증하기는 어차피 어렵지 않겠어요?” 지난해 여름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국내 여론이 들썩일 때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이 한 말에 등골이 서늘해졌던 기억이 있다. 그는 실제 인과관계와는 상관없이 기형 물고기를 오염수 문제와 엮겠다는 ‘작전’ 구상을 숨기지 않았다. 방류에 나선 일본은 물론 이를 반대하지 않은 윤석열 정부를 공격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언제까지 반대 목소리를 낼 것이냐는 질문에 그가 내놓은 대답은 “총선 때까지는 계속 끌고 가야지”였다.외교, 국방 영향력 급속히 늘리는 日 4·10총선 유세 과정에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번 총선은 신(新)한일전”이라고 외치는 것을 보면서 당시 이 중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선거 쟁점도 아니었던 외교 사안을 뜬금없이 앞세운 이 대표의 발언은 여당 후보들을 ‘나베’ 등으로 부르며 친일로 몰아세우는 과정에서 나왔다. 한일 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은 그때나 이번이나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총선 개표가 진행되던 10일, 워싱턴에서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미일 간 전략적 협력의 새 시대”, “동맹 수준이 전례 없이 높아진 역사적 순간” 같은 표현들이 공동 성명을 장식했다. 양국은 24쪽 분량의 팩트시트에 협력 내용을 꽉꽉 채워 넣었다. 화려한 국빈 만찬과 공연, 선물 교환 등은 윤 대통령이 지난해 먼저 거쳐간 것들이지만 미일 양국의 협력 범위와 깊이, 밀착 속도가 심상치 않다. 일본은 미국·영국·호주의 3국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에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 참여하는 기회도 얻었다. 오커스 회원국들과 극초음속 미사일을 비롯한 첨단 방위기술 협력이 가능해진 것이다. 영국과 호주의 견제에도 미국이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역할 확대를 노리는 일본은 국방 분야에 거액의 예산을 쏟아붓는 중이고, 미국은 주일미군사령부의 격상을 검토하고 있다. 미일 양국은 더 나아가 필리핀까지 참여하는 3국 정상회의를 열었다. 미일 두 나라를 밑변으로 한 대중(對中) 삼각연대를 구축하는 모양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필리핀은 3국 간 ‘발리카탄’ 연합 군사훈련에도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을 중심축으로 놓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끌어들이는 ‘소다자(mini-lateral)’ 협의체를 하나씩 늘려 나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중 갈등이 심화할수록, 북-중-러의 밀착이 강화될수록 미일의 협력 밀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이는 일본의 외교적 영향력을 더 밀어올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기시다 총리는 기립박수가 쏟아진 미국 의회 연설에서 “일본이 이제는 미국의 지역 파트너가 아닌 글로벌 파트너”라고 했다. 한국으로서는 일본이 좋든 싫든 더 자주 마주치고 협의해야 할 외교 상대가 된다는 말이다.‘반일 프레임’ 갇힌 정치로는 대응 못해 제22대 국회에서 활동하게 될 민주당 의원들 중에는 지난해 “국제적 망신”이라는 비판에도 일본까지 날아가 ‘오염수 방류 반대’ 시위를 벌였던 이들이 있다.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죽창가 선동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본성에 친일적 요소” 운운하며 여당 정치인의 국가관까지 문제 삼는 이 대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이 끌고 갈 192석의 거대 범야권이 정치적으로 단맛을 본 ‘반일’ 프레임에만 갇혀 있다간 한국 외교의 퇴행을 막기 어렵다. 국내 정치를 휘저어 놓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국가적 손실이 될 것이다. 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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