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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론스타 사건이 연말 정치권의 ‘시한폭탄’이 될 것이란 말이 많았다. 정부는 2022년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외환은행 매각 관련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판정에 따라 약 3200억 원을 배상할 뻔했다. 정부가 이에 불복해 제기한 취소 신청에서 지난달 다행히도 승소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상당한 국민 혈세를 뱉어낼 상황이었다. 과실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지는 정치권 공방으로 시끄러울 게 뻔했다. 2022년 판정 전 금융 당국에선 ‘정치권에선 국정조사, 감사원 조사, 검찰 수사 등 별별 수사 얘기가 나올 거다’란 말이 나왔다. 론스타 사안에 조금이라도 엮인 당국자들은 ‘나는 모른다’며 함구하기 바빴다. 정부가 그랬던 분위기를 뒤집고 우리가 승소하자 김민석 국무총리가 나서 “중대한 성과”라고 발표하고 취소 신청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숟가락 얹으려 하지 말라”고 하니 참 어색하기만 하다. 한국 정부가 지난한 법적 다툼에서 이긴 건 분명 노고를 인정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22년간이나 끌어온 분쟁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언제든 제2의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뒤흔들 수 있다. 정부도 또 다른 ISDS에 승소할 준비가 됐는지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론스타가 ‘먹튀’ 했다는 지적은 여전히 뼈아프다. 론스타는 2003년 8월 외환은행 지분 51%를 1조3834억 원에 사들여 최대 주주가 됐다. 2012년 1월 외환은행을 약 4조 원에 하나금융지주에 팔아넘겨 상당한 차익을 남기고 한국 시장을 떠났다. 물론 이후 이를 방지하는 여러 규제가 생겨났다. 연기금 등 전문기관 투자자들이 사모펀드(PEF) 투자자로 참여해 감시하는 체계가 마련됐다. 정부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도 강화됐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에선 PEF가 취득한 지분을 더 긴 기간 의무적으로 보유하도록 하거나 PEF의 차입인수(LBO) 한도를 더 줄이도록 규정한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사모펀드가 기업 가치를 높이는 순기능도 있는 만큼 ‘약탈 자본’이란 프레임은 경계해야겠지만 안전한 장치를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22년 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심사할 때 론스타가 ‘산업자본’에 해당하는지를 엄정하게 살폈다면 애초 론스타와의 ‘잘못된 만남’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도 있다. 당시 은행법은 비금융 부문의 자산 규모가 2조 원 이상인 산업자본이 은행 주식을 10%(의결권 있는 주식은 4%) 이상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론스타는 일본에 골프장, 예식장 등을 운영하는 회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국은 워낙 외환은행 부실이 심해질 상황이라 은행법 시행령의 예외 사유를 인정해 론스타의 인수를 승인했지만 론스타의 산업자본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론스타 사건의 상흔이 진하게 남은 이유는 사건 자체가 길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넘기는 과정에서 시장과의 소통이 부족했던 영향이 커 보인다. 당국이 불필요한 오해를 낳지 않게 결정 과정을 자세히 밝혔다면 국민들의 불안이 덜했을 것이다. 한국의 금융기업들도 지난 22년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론스타의 먹잇감이 된 외환은행의 수준은 면했더라도 아직까지 ‘대출 중심 사업에서 벗어나라’라는 비판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조은아 경제부 차장 achim@donga.com}

주식 시장이 출렁이는 날도 있지만 투자 열풍은 식지 않는 분위기다. 코스피가 하락할 때도 주식을 대량으로 던지고 떠나는 외국인과 달리 ‘개미’들은 저가 매수를 시도하며 코스피를 떠받쳤다. 그래서인지 요즘 유독 ‘오전 9시 무렵에 회사 화장실이 붐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국내 증시가 개장하자마자 화장실 칸마다 문 닫고 들어가 스마트폰 주식 창을 여는 직장인이 많다는 얘기다. ‘오전 9시엔 빈자리가 없으니 더 일찍 가야 한다’고 귀띔하는 이도 있었다. 주식 시장이 성장하는 건 일반 투자자들은 물론이고 한국 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국내 증시는 금융당국에 오래도록 ‘아픈 손가락’이었다. 당국자들은 한국 경제 규모만큼 성장하지 못한 증시 육성에 책임을 느끼고 있었기에 증시 얘기만 나오면 목에 힘을 주질 못했다. 기업들은 실적을 내도 증시는 ‘박스피’를 벗어나지 못하니 부잣집의 성적 부진한 아이 공부시키듯 여러 부양책을 냈다. 그래도 분위기를 반전시키긴 쉽지 않았는데 요즘 보지 못한 지수를 보니 다행스럽고 반갑다.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세대를 중심으로 개인 투자자들도 투자 재미가 쏠쏠하다. 이들은 천정부지로 오른 부동산에 대한 ‘포모(FOMO·소외 공포)’를 주식 투자로 달랜다. 하지만 직장인들이 오전 업무를 잠시 제쳐두고 화장실로 달려가며 어떤 마음일지 생각해 보면 씁쓸해진다. ‘이제는 주식 투자 외에는 돈 벌 기회가 없다’고 여기지 않을까. 실제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오르지 않는 건 내 임금뿐’이란 말이 많다. 임금도 오르긴 하지만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한다. 10년 전만 해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7%였지만 올해는 거의 매달 2%를 넘긴다. 반면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이달 4일 기준으로 올해 월평균 급여는 전년 대비 2.7% 올랐다. 10년 전 임금 상승률 3.1%에 비해 둔화했다. 임금 상승 속도가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니 일의 가치가 더 외면받는 풍조가 퍼지는 분위기다. 최근에 만난 한 기업의 40대 팀장은 “아침마다 주식 창을 열 생각도 못 한 채 열심히 일만 생각하고 고민했던 나만 바보가 됐다”고 털어놨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임원보다 건물주’라는 말이 공감을 얻는다. ‘열심히 일하느니 투자에 공들이는 게 낫다’는 정서가 강해지면 일터로 향하는 이들의 정신 건강에도 안 좋을 뿐 아니라 결국 기업의 생산성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주식 창을 볼 때만큼이나 월급통장 보는 설렘이 크려면 성장 기업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반도체 산업에 집중된 온기를 다른 업종으로 퍼지게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사실 임금을 단시일에 끌어올리기엔 대내외적인 상황이 만만치 않다. 상황이 이러하니 기업들은 성장을 위한 노력과 함께 임금 체계도 계속 바꿀 필요가 있다. 직무 가치와 성과를 기반으로 임금과 보상 체계가 정착되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정부는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이 근로소득에 비해 낮다는 지적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투자 열풍 속에 배당소득 분리과세에 대한 반발이 심했던 만큼 당장 많은 걸 바꾸긴 힘들지만, 자본소득과 근로소득의 과세 불균형은 장기적으로 해결될 필요가 있다. 조은아 경제부 차장 achim@donga.com}

요즘 한국 수출이 연일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한국 수출의 화려한 성적은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을 맞은 반도체가 이끌었다. 지난달 전체 수출액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6.4%였다.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의 기여도가 4분의 1을 넘긴 것이다. 10년 전 같은 시기엔 지금의 절반도 안 되는 11.5%였음을 고려하면 성장세가 놀랍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 반도체의 활약이 다행스럽지만 수출 희소식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최대 수출 수치에 가려진 뿌리 제조기업들의 부진 때문이다. 전체 수출은 불어났지만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철강 등 일부 품목의 수출은 1년 전에 비해 10∼20%씩 감소했다. 제조업 위기는 올 하반기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석유화학이나 철강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달 수출이 1년 전에 비해 18.9%나 급감한 자동차 부품산업도 소리 없이 곪고 있다. 최근 만난 한 국내 자동차 부품 제조사 대표는 중국산 저가 공세에 주변 부품사들이 도산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점점 기업들이 국산 대신 저렴한 중국산 부품을 채워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론 한국 브랜드를 달았지만 속은 중국산이 가득한 ‘깡통 메이드인 코리아’가 조용히 확산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 부품사들은 저가 중국산 부품에 밀려 일감을 줄인다. 정부와 중소기업들이 중국산 저가 공세에 서둘러 대비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국내 중소기업 제품의 원가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을 부단히 기울였어야 했다. 대미 관세 공격을 받고 보니 그간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지 못한 점도 뼈아프다. 최근 대미 수출 감소를 동남아시아와 유럽에서 잘 만회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얼마나 지속될지 의문이다. 산업 현장에선 기업들이 대미 수출의 구멍을 임시방편으로 서둘러 메워놨을 뿐이라고 말한다. 한국 경제의 근간인 제조기업들의 쇠락은 고용 가뭄을 예고한다. 산업단지에선 중국산에 밀려 수주를 받지 못한 기업들이 문을 닫고 근무 일수를 줄이고 있다. 인공지능(AI)으로 인해 ‘고용 없는 성장’이 미국부터 가시화되고 있어 그나마 고용을 창출하던 제조업의 위기가 더욱 걱정이다. 제조업이 쓰러지면 지방 경제도 무너지기 쉽다. 제조업 생산기지가 뿌리내린 지방에선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에 처해 연체율이 급증하고 있다. 올 3분기(7∼9월) 5대 지방은행의 연체율은 4대 시중은행의 2배가 넘었다. 신규 투자는커녕 대출 이자조차 못 갚고 있는 기업들이 많다는 의미다. 지방에 돈이 안 돌고 고용이 줄면 인구가 더 유출돼 경기가 악화하는 악순환이 심해질 것이다. 뿌리 제조기업들을 살리려면 저가 경쟁력을 넘어서는 기술력을 키워야 한다. 중소기업 기술 개발을 위해 정부의 연구개발 자금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미국과 중국의 보호정책 탓에 우리 기업들이 불리해진 부분을 점검하고 개선할 필요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이 반도체 외엔 내세울 것 없는 중국산 부품의 조립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절실한 때다. 제조 생태계가 무너지면 반도체의 미래마저 담보할 수 없다.조은아 경제부 차장 achim@donga.com}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환율 전쟁’이 사실상 7년간이나 이어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2008년 12월 경제난에 대한 극약처방으로 ‘제로 금리’ 시대를 열며 경쟁국들의 금리 인하 경쟁을 촉발했다. 2015년 12월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까지 중국 일본 등 세계 주요국들은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며 자국 통화 가치를 치열하게 끌어내렸다. 수출품의 외국환 표시 가격을 낮춰 수출을 늘리려 했다. 환율 전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주요 20개국(G20)은 15년 전 이맘때 경북 경주에서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열었다. 각국이 환율을 너무 조정하지 않도록 “경상수지 흑자까지 조정하자”며 경상수지 목표제까지 제시할 정도였다. 최근 들어 환율 전쟁이 재개될 조짐이 보인다는 말이 나온다. 미 연준은 지난달 약 9개월 만에 금리 인하를 단행한 데 이어 추가 인하를 시사하고 있다. 중국은 지금은 금리를 동결하고 있지만 연말에 내릴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디플레이션 압력이 만만치 않고 미국과의 무역 갈등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각국은 다른 정책 수단 대신 금리 인하를 택하는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환율 전쟁이 다시 발발하면 한국은 참전할 여력이 있을까. 이미 원화 가치는 추락해 버렸다. 환율을 끌어올리려 애썼던 2010년 평균 환율은 1150원대였지만 올해 22일까지 평균 환율이 1410원대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평균 환율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평균 환율(1394.97원)을 추월한다. 그런데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연초 대비 9%가량 하락했다. ‘약달러’가 뚜렷한데도 원화 가치가 고꾸라지니 원화가 얼마나 외면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원화 가치의 급락은 수출에 호재이긴 하다. 실제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수출을 늘리고 이를 토대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업들은 ‘원화 약세 호재’를 마냥 반기기 어렵다. 주요 수출국들이 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도 문제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 물가가 올라 국내 기업들의 원자재 지출 부담이 커진다. 수입 물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도 끌어올린다.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실물인 부동산으로 돈이 몰리기 쉽다. 결국 앞으로 환율 전쟁이 불거져도 한국으로선 참전 위험이 크다. 원화 가치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추락했을까. 흔히 미국 기준금리 추가 인하에 대한 기대감과 한미 관세협상에 대한 우려가 원인으로 거론된다. 국내 요인으로는 작년 12월 계엄 사태로 불안감이 고조된 문제가 컸다. 한국은행도 과거 금리 인상기에 민첩하게 움직였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제로 금리 시대가 끝나고 세계적으로 금리 인상이 한창일 때 한은은 금리 인상 실기론에 시달렸다. 정치적 부담에 금리를 못 올렸다는 해석이 나왔다. 당시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상황이 달랐을 수 있다. 경제는 어려운데 재정은 팍팍해 돈 풀기에도 한계가 있어 통화정책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중앙은행에 독립성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말을 무게 있게 받아들일 때다. 조은아 경제부 차장 achim@donga.com}

9년 전 대만을 찾았을 때 ‘귀신의 섬(鬼島)’이란 으스스한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대만 청년들이 자국을 비판하며 부르는 별명이었다. 마치 당시 한국 청년들이 ‘헬조선’이라며 현실을 비판했던 모습과 흡사했다. 대만의 현실을 보면 그럴 법도 했다. 대만 경제성장률은 전년도에 이미 1%대로 저성장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실업률은 한국과 비슷한 3%대였다. 게다가 중국과 대치하며 정치적 불안도 한국의 북한 리스크처럼 커졌다. 경제, 정치적 여건이 한국과 여러모로 닮은꼴이었다.한국과 닮아 보였던 대만은 최근 한국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정치적 리스크는 커졌을지 모르지만 경제는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올해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8066달러(약 5367만 원)로, 한국(3만7430달러)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대만 증시의 시가총액은 2조3320억 달러로 한국(1조5230억 달러)의 153%에 달한다.대만 경제의 핵심 동력은 반도체 산업이다. 대만 수출에서 반도체가 40%가량을 차지한다. 반도체 산업은 중국에 위협받는 대만의 안보까지 담보할 분위기다. 카멀라 해리스 전 미국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필립 고든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22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대만 최고 기업들이 생산하는 최첨단 칩을 대체할 곳은 세계 아무 곳도 없다”며 “미국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대만 안보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내다봤다.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을 장악한 대만의 눈부신 반도체 도약은 우수한 공대에서 나온다는 분석이 많다. 과거에는 미국 공대를 나온 유학파가 귀국해 산업을 이끌었다.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메이드인타이완(Made In Taiwan)’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하지만 최근 10여 년 동안 대만은 자국 공대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며 인재 양성 시스템 확대에 나섰다. 4년 전부터는 향후 공대 인력이 부족해질 것에 대비해 장기 전략까지 내놨다. 2021년 ‘국가 중점 분야의 산학협력 및 인재 양성 혁신법’을 제정한 것이다. 이 법에 따라 대학 9곳이 반도체 전문연구소를 신설했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핵심 분야 학부 과정은 10%, 대학원 과정은 15% 늘었다. 과거 유학만 보내기 바빴던 공대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적극적으로 외국 인재를 유치한다. 한때 ‘귀신의 섬’으로 불렸던 곳이 ‘기회의 섬’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셈이다.공대 교육의 체질도 변하고 있다. 대만의 공대는 일찍이 창업기지로 바뀌고 있다. 대만의 명문대로 꼽히는 국립대만대는 10년 전 ‘대만판 실리콘밸리’를 목표로 D스쿨(디자인스쿨)을 설립했다. 공대생들이 주축이 된 이곳에선 창업을 훈련한다. 교수들도 창업 기업의 대표를 겸직하는 경우가 많다. 공대의 창업 인재들은 반도체 대기업으로도 진출하지만 강소기업을 키워 저성장 공포에 허덕이던 대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한국에서도 공대와 기업이 연계된 계약학과가 늘고 ‘AI’ 간판을 내건 교육과정이 유행처럼 번진다. 하지만 내실은 부족하다는 말이 들린다. 대만처럼 산학협력을 더 강화하고 정부는 장기적인 로드맵을 갖고 예산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공대 교육을 시대에 맞게 바꾸고 인재들이 창업할 길을 잘 터주면 의대 편중에 따른 다른 사회 문제들도 더 쉽게 해결될지도 모른다.조은아 경제부 차장 achim@donga.com}

해외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최근 3년 만에 귀국하니 갑자기 가난해져 버린 느낌이다. 물가가 지나치게 올라 버렸다. 회사 주변에서 점심을 해결하려면 대개 1인당 1만 원이 넘게 든다. 3년 전엔 6000∼7000원으로 한 끼를 해결하기 어렵지 않았다. 즐겨 먹던 달걀 15구짜리 가격은 7500원에서 9500원으로 뛰었다. 우유 2병 세트도 6300원에서 7100원으로 역시 앞자리가 달라졌다.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 놀랐다’는 필자 얘기에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더 놀랐다. 물가 상승세를 필자만큼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 통계를 확인해 보니 그럴 법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3년 전에 비해 7.2%가 올랐다. 하지만 연간 상승률은 시간이 지나며 둔화했다. 소비자물가의 연간 상승률은 3년 전엔 무려 6.3%였다. 올해 들어선 월별로 2% 안팎에서 머물고 있다. 필자도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이런 변화를 크게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물가 상승이 항상 나쁘진 않다. 물가가 오르면 돈을 갚는 사람은 실질 부담이 줄고, 기업들이 돈을 빌려 실물에 투자하기 쉬워져 성장에 긍정적일 수 있다. 이를 ‘먼델-토빈 효과’라고 부른다. 하지만 지금 같은 ‘제로 성장’ 시대에 고물가는 치명적이다. 정부가 22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9%로 제시하며 저성장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임금은 많이 안 오르는데 물가만 유독 뛰면 우린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저소득층일수록 인플레이션에 더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문제는 고물가가 뉴노멀이 될 분위기란 점이다. 주요국들이 성장을 유도하려고 저금리 정책을 예고하고 있는 데다 높아진 관세는 수입 물가를 올릴 것이다. 폭염과 폭우에 작황이 나빠져 농수산물 공급마저 줄어 물가가 유독 뛰고 있다. 이런 현상은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며 일상화될 듯하다. 이제 저렴하게 소비하던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정부는 물가로 비판을 받을 때마다 ‘고물가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원인이 복합적이라 해결하기 힘들다’고 말하곤 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물가는 뾰족한 대책을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적어도 고물가를 자극하는 대책은 자제해야 한다. 돈 풀기 정책이 유독 우려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내수 진작을 위해 ‘민생회복 소비쿠폰’ 발행에 12조2000억 원의 국비를 투입한다. 내년 예산안은 사상 처음 700조 원을 넘겨 73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을 씨앗처럼 뿌려 경제를 키우겠다는 취지다. 재정을 에너지 시설이나 주택 건설 등 공급 능력을 확충하는 데 집중적으로 뿌리면 괜찮다. 하지만 일회성 현금 지원에 많이 쓰면 물가 상승을 촉진한다. 게다가 정부 부채까지 늘고 있어 물가가 더 걱정이다. 한국재정학회는 올 6월 ‘정부 부채가 1% 늘면 소비자물가가 최대 0.15%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정부는 수확까지 오래 걸리더라도 성장의 기반이 될 신사업 등에 ‘재정 씨앗’을 뿌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가 상승으로 서민은 더 가난해지고, 소비 위축으로 성장은 더 더뎌질 수 있다. 재정 씨앗은 성장의 마중물이 아니라 더 큰 위기를 부르는 불씨가 될 수 있다. 조은아 경제부 차장 achim@donga.com}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명품 화장품 매장에선 머리 희끗한 고령의 여성 영업직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20, 30대 인플루언서들이 모여드는 이곳에 나이가 지긋한 직원들이 화장품을 파는 모습이 신기했다. 유행에 빠른 젊은 여성 직원만 가득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발인 한 직원을 유심히 보고 있던 필자에게 이곳에서 일하던 지인은 “저분이 단골들을 꽉 잡고 있다”고 귀띔했다. 몇십 년 근무하며 함께 나이 든 손님들의 향수 취향이나 피부 특성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 여성이 ‘올드 머니’를 잡는 매장의 핵심 인력이었다. 서울 강남의 명품 매장에선 백발의 영업직원을 찾아보기조차 힘든 게 사실이다. 국내 고령층의 척박한 고용 환경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이 6일 발표한 ‘2025년 경제활동 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서 올 5월 기준 고령층(55∼79세) 경제활동인구는 1001만 명이었다. 취업자와 실업자 등 일하려는 의지가 있는 고령층이 1000만 명을 돌파한 셈이다. 그런데 고령층 취업자 가운데 단순노무직(22.6%) 비율이 유독 높았다. 비교적 처우가 좋고 안정적인 사무 종사자(8.3%)나 관리자(2.1%) 비율은 훨씬 낮았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 1위’인 한국의 미래에 우려를 더한다. 저임금에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노인이 늘면 빈곤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다. 아직은 법정 정년이 60세인데 국민연금은 퇴직 직후 나오질 않아 당분간 소득 공백기도 불가피하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대량 퇴직으로 빈곤 노인들도 대량 양산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더구나 한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 일찍 일터를 떠나고 있어 더 안타깝다. 이번 조사에서 고령층이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둔 연령’은 평균 52.9세였다. 고학력자가 많은 관리자나 전문가의 경우 평균 53.4세였다. 초고령사회에 맞게 개혁되지 못한 노동시장의 헐거운 틈 사이로 숙련 인력들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50대 초반은 노동시장에서 시니어 베테랑으로 남느냐, 빈곤 노인으로 전락하느냐의 갈림길에 서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숙련된 인력을 재교육하고 재배치하면 노련함이 빛나는 베테랑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단기 일자리나 자영업의 열악한 일자리로 버티다 빈곤 노인이 되기 쉽다. 기업들도 오래 일한 시니어들을 다시 봐야 할 때다. 최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기업 124곳의 직원 연령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50대 이상’의 비중이 ‘30대 미만’의 비중을 처음으로 역전했다. 젊은 인구가 줄고 있는 만큼 50대 이상의 생산력을 배가할 방법을 찾아야 기업도 이익일 것이다. 기업들은 인건비가 많이 드는 중년층을 계속 고용하기엔 비용 부담이 크다고 호소할 수 있다. 달라진 인력 구성에 맞게 시니어 인력의 노동시간이나 강도는 낮추면서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정부도 고령층 일자리 지원 대책을 내놓곤 있지만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중장년 직원의 재교육과 경력 전환, 재고용에 적극적인 기업들을 발굴해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더욱 늘려야 한다.조은아 경제부 차장 achim@donga.com}

이탈리아 최대 식품 기업으로 다양한 초콜릿 브랜드를 개발한 페레로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콘플레이크를 제조했고, 이를 토대로 아침 식사용 시리얼 시장에서 강세를 보여온 미국 WK켈로그를 인수한다고 10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식품 산업의 대표급 유럽 기업이, 이 분야에서 미국을 대표해온 기업 중 하나를 인수한다는 점 때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날 AFP통신 등에 따르면 페레로는 북미 시장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WK켈로그를 31억 달러(약 4조2600억 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페레로는 WK켈로그를 주당 23달러(약 3만 원)에 현금으로 인수할 예정이다. 또 인수 가격은 전날 WK켈로그 종가에 31%의 프리미엄을 붙인 것이다. 이번 거래는 올해 안에 완료될 예정이다. 페레로의 조반니 페레로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합병에 대해 “충성스러운 소비자를 보유한 두 회사의 결합”이라고 평가했다. 페레로는 페레로 로쉐와 누텔라 같은 초콜릿으로 명성을 쌓았고, 매출과 인지도에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식품 기업으로 꼽힌다. 제과업자 피에트로 페레로가 1946년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알바에서 설립한 뒤 그의 아들, 손자가 물려받으며 성장을 이룬 ‘가족 기업’이다. 다양한 제조 노하우의 보안을 지키기 위해 언론과의 접촉도 거의 하지 않는 등 “비밀주의가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페레로는 최근 북미 시장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18년 네슬레의 미국 제과사업 부문을 현금 28억 달러(약 3조8500억 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또 ‘키블러’(크래커), ‘페이머스 아모스’(과자), ‘틱택’(사탕) 같은 미국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WK켈로그는 1906년 미국 미시간주 배틀크리크에서 설립된 켈로그의 시리얼 사업부로 2023년 분사됐다. 당시 켈로그는 스낵 사업부는 켈라노바로 분사시켰는데, 이 회사는 또 다른 식품기업 마스에 인수됐다. 켈로그 가문은 미국인의 기름지고 짠 가공육 중심 아침 식사를 개선하기 위해 콘플레이크를 개발했고, 이를 다양한 형태의 시리얼 제품으로 판매했다. 바쁜 현대인이 빠르고 쉽게 먹을 수 있어 대표적인 국민 아침식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물가 상승과 요거트와 과일 위주의 아침 식사 트렌드 등이 강해지며 과거보다 판매가 부진해 어려움을 겪어왔다. 게리 필닉 WK켈로그 CEO는 페레로의 자사 인수에 대해 “회사의 유서 깊은 유산의 다음 장을 쓰게 해줄 거래”라고 밝혔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우리 두 나라가 유럽 대륙의 안보를 위해 특별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다. 이제 이를 명확히 할 때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영국 국빈 방문을 시작한 8일 영국 의회 연설에서 이같이 밝혔다. 다음 날 영국 정부는 양국이 사상 처음으로 핵무기 사용 협력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유럽의 양대 핵 보유국인 프랑스와 영국이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핵전력을 공동으로 활용함으로써 유럽 동맹국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뒤 미국이 유럽 안보에서 발을 빼려 하고,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보이자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과 프랑스가 유럽 전역에 걸쳐 실질적인 핵우산을 제공해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을 줄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영-프, 차세대 장거리 미사일 개발할 듯9일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양국은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과 영국 내각이 공동 의장을 맡는 ‘핵 감독 그룹’을 설립할 예정이다. 이 기구는 핵 관련 정책, 운용, 협력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핵담당 관리로 일했던 윌리엄 알베르크는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양국이 핵무기 공동 개발까지 확대하진 않겠지만 탄두 설계 연구를 교류하고 자재를 공동 운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올해 영국과 프랑스가 보유한 핵탄두는 합쳐서 약 545기다. 러시아가 5459기, 미국이 5177기를 보유한 점을 고려하면 미미한 규모다. 하지만 핵탄두 1기만으로도 강력한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핵무기 사용 협력은 의미 있는 안보 효과를 지닌다는 평가가 나온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의 핵심적인 핵 억지력은 잠수함 발사 미사일이다. 영국은 이 미사일을 미국에서 조달했지만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공중 발사 옵션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여기엔 미국산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미국 F-35A 전투기 구매 계획도 포함됐다. 프랑스의 핵무기는 자체 개발된 잠수함 발사 및 공중 발사 미사일로 구성돼 있다.양국은 핵전력 협력 외에도 2010년 합의된 광범위한 방위 협정을 개선한 ‘랭커스터 하우스 2.0 선언’에도 서명하기로 했다. 이 선언에는 양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스톰섀도 미사일과 스칼프 미사일을 대체할 차세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한다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또 양국의 합동 원정군을 확대한다는 계획도 포함된다.● “말 없이 미국으로부터 ‘탈동조화”유럽 안팎에선 영국과 프랑스의 이번 결정을 두고 파격적인 조치란 시각이 많다. 영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핵기획그룹(NPG) 회원국으로, 나토 안보를 위해 자국의 핵전력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는 나토 핵공유 협정에서 탈퇴해 핵전력 사용과 관련해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핵전력 운용이나 협력을 놓고 입장 차이가 있던 두 나라가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유럽 관련 안보 전략 변화로 손을 잡았단 평가가 나온다.필립스 오브라이언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유럽이) 말 없이 미국으로부터 탈동조화(decoupling)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유럽의 핵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사상 처음으로 핵무기 사용 협력에 합의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 전쟁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부각된 러시아의 위협이 가장 직접적 요인으로 분석된다. 유럽의 핵심 동맹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와 역할 축소 등을 시사하며 ‘미국 없는 안보’ 위기를 고조시킨 점도 한몫했다. 트럼프식 예측 불가능한 외교가 노골화되며 ‘미국을 믿을 수 없으니 스스로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영국 정부는 9일(현지 시간)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핵 억제력 강화 협력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영국 정부는 “두 나라는 새로 서명된 선언문에서 각국의 억제력이 독립적이지만 조율할 수 있으며, 두 나라가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유럽에 대한 극단적 위협은 없다고 처음 명시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등 적대국의 공격 시 핵전력으로 공동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프랑스 엘리제궁(대통령실) 관계자도 이번 합의에 대해 “우리의 동맹과 적대세력 모두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밝혔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또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합의로 양국은 핵 대응 조율을 논의하는 군사·정치기구도 마련하기로 했다고 전했다.‘美없는 핵우산’ 대비 나선 英-佛 “유럽 안보에 책임 다할때”“우리 두 나라가 유럽 대륙의 안보를 위해 특별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다. 이제 이를 명확히 할 때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영국 국빈 방문을 시작한 8일 영국 의회 연설에서 이같이 밝혔다. 다음 날 영국 정부는 양국이 사상 처음으로 핵무기 사용 협력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유럽의 양대 핵 보유국인 프랑스와 영국이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핵전력을 공동으로 활용함으로써 유럽 동맹국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뒤 미국이 유럽 안보에서 발을 빼려 하고,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보이자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과 프랑스가 유럽 전역에 걸쳐 실질적인 핵우산을 제공해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을 줄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영-프, 차세대 장거리 미사일 개발할 듯9일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양국은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과 영국 내각이 공동 의장을 맡는 ‘핵 감독 그룹’을 설립할 예정이다. 이 기구는 핵 관련 정책, 운용, 협력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핵담당 관리로 일했던 윌리엄 알베르크는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양국이 핵무기 공동 개발까지 확대하진 않겠지만 탄두 설계 연구를 교류하고 자재를 공동 운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양국이 작전구역을 서로 나누거나 부족한 전력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올해 영국과 프랑스가 보유한 핵탄두는 합쳐서 약 545기다. 러시아가 5459기, 미국이 5177기를 보유한 점을 고려하면 미미한 규모다. 하지만 핵탄두 1기만으로도 강력한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핵무기 사용 협력은 의미 있는 안보 효과를 지닌다는 평가가 나온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의 핵심적인 핵 억지력은 잠수함 발사 미사일이다. 영국은 이 미사일을 미국에서 조달했지만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공중 발사 옵션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여기엔 미국산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미국 F-35A 전투기 구매 계획도 포함됐다. 프랑스의 핵무기는 자체 개발된 잠수함 발사 및 공중 발사 미사일로 구성돼 있다.양국은 핵전력 협력 외에도 2010년 합의된 광범위한 방위 협정을 개선한 ‘랭커스터 하우스 2.0 선언’에도 서명하기로 했다. 이 선언에는 양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스톰섀도 미사일과 스칼프 미사일을 대체할 차세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한다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또 양국의 합동 원정군을 확대한다는 계획도 포함된다.● “말 없이 미국으로부터 ‘탈동조화”유럽 안팎에선 영국과 프랑스의 이번 결정을 두고 파격적인 조치란 시각이 많다. 영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핵기획그룹(NPG) 회원국으로, 나토 안보를 위해 자국의 핵전력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는 나토 핵공유 협정에서 탈퇴해 핵전력 사용과 관련해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핵전력 운용이나 협력을 놓고 입장 차이가 있던 두 나라가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유럽 관련 안보 전략 변화로 손을 잡았단 평가가 나온다.엘루아즈 파예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 연구원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합의는 군사 및 정치적 차원에서 전례 없는 수준의 공조를 이룬 진정한 조치”라고 평했다. 필립스 오브라이언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유럽이) 말 없이 미국으로부터 탈동조화(decoupling)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부모님과의 추억이 깃든 산을 가꾸면서 생활비까지 벌 수 있다니 일석이조 아니겠어요? ‘친환경도 돈이 될 수 있구나’ 배웠습니다.” 25일 오후 전북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모래봉에서 박도현 씨(82)는 자신이 가꾼 버드나무와 백일홍을 손으로 짚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박 씨는 1960년부터 부친과 함께 이곳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벌거숭이였던 산은 183ha(헥타르) 규모 울창한 숲으로 탈바꿈했다. 박 씨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엔 일대에 묘소도 장만했다. 이 숲 덕분에 박 씨는 1000만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 그는 최근 3년간 산림청으로부터 총 1400만 원의 임업직불금을 받았다. 2022년부터 본격 시행된 임업직불금 제도는 산림을 성실히 가꾸고 보전한 임업인에게 정부가 지급하는 보상 성격의 지원금이다. 공공의 가치를 창출한 개인에게 국가가 그 가치를 현금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박 씨는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후손의 터전을 지킨다는 책임감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숲 지키며 얻는 수익 502억 원 숲에서 나는 산물도 돈이 되지만 숲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과거에는 산림 보전이나 숲 가꾸기가 그저 공익사업이나 자원봉사 정도로 여겨졌지만, 최근엔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에 따라 실질적인 소득 창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그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임업직불금이다. 산림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육림업’ 종사자가 탄소 흡수 등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면, 산림청이 ha당 연간 32만∼13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산림을 탄소중립 실현의 핵심 수단이자 경제적 자산으로 보는 정책 변화가 반영된 제도다.박 씨처럼 직불금을 받는 임업인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2022년 2만614곳, 2023년 2만336곳에 이어 올해는 2만2973곳이 직불금 수령 대상에 포함됐다. 지급 금액도 해마다 늘어 2022년 468억 원, 2023년 489억 원, 올해는 502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산림청이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회공헌형 산림탄소상쇄제도’ 역시 숲을 가꾸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산림 보호와 같은 활동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한 임업인에게 흡수한 탄소량에 따라 배출권 거래 등의 방식으로 경제적 보상을 제공한다. 임업인이 산림청에 사업계획을 제출하면 산림청은 이를 검토한 뒤 현장 모니터링을 통해 실제 탄소 흡수량을 계산한다. 산정된 흡수량은 탄소배출권으로 등록돼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다. 소규모 임업인들도 참여할 수 있다. 지난달 말 기준 이 제도에 등록된 사업체는 총 673곳이다. 산림 면적으로 따지면 약 5만5607ha에 달한다. 이 가운데 62곳은 실제 탄소흡수량을 거래해 수익을 얻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추정한 t당 적정 거래가(1만6500원)를 적용하면, 약 3억8000만 원의 경제적 가치가 창출된 셈이다. 탄소배출권 거래 규모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산림이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정량화해 거래하는 산림탄소흡수량 거래 실적은 2022년 1만1266t에서 2023년 1만6726t, 지난해에는 2만3042t으로 늘었다. 지난해 처음으로 배출권을 거래해 200만 원의 수익을 얻은 최남용 씨(82)는 “처음엔 이런 사업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요즘은 주위 임업인들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산을 가꾸는 보람에 더해 경제적 보상까지 따라오니 더없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숲의 공익 효과는 60조 원에 달해 잘 가꿔진 숲은 그 자체로도 경제적 가치가 높다. 주변 환경을 개선해 부가적인 이익을 창출하고 사회적 비용도 줄여준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지역 주민들이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한다. 숲의 푸른 녹음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준다. 산림청 분석 결과 숲이 제공하는 휴양 기능과 경관 기능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부가가치는 60조2000억 원에 달한다. 박 씨도 자신의 숲 한쪽에 잔디밭을 조성해 마을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박 씨는 “부모님 묘소가 있는 산을 어떻게 하면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 잔디밭을 만들었다”며 “주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잠금장치도 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찾은 날에도 주민들은 자유롭게 박 씨의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주민 김진곤 씨(73)는 “답답할 때 이곳 산에 올라 전망을 둘러보면 속이 탁 트인다”라며 “스트레스가 풀려서 병원비를 아끼는 것 같다. 고마운 마음에 종종 이곳 제초 작업도 도와드리고 있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기분 탓일까요? 종일 땀이 뻘뻘 났는데 숲에 들어오니 하나도 안 덥네요. 바로 앞 아스팔트 도로랑 천지 차이예요.” 29일 오후 2시 서울 동대문구 홍릉숲에서 산책하던 홍윤서 씨(34)는 숲속 그늘 아래에서 쾌적하게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이날 기온은 30도가 넘었지만 숲길을 따라 뛰노는 아이들도 한결 밝은 표정이었다. 홍릉숲은 41.8ha(헥타르)에 이르는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녹지 공간이다. 1922년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이자 임업시험장이 들어선 곳으로 1993년부터 시민에게 개방됐다. 도시숲은 빌딩과 도로로 열이 갇히는 ‘열섬현상’을 완화하는 데 기여한다. 산림이 도시 안에 조성될 경우 평균 기온을 3∼7도 낮춰준다. 건물 옥상이나 벽면에 식물을 심을 경우에도 최대 5도가량 기온을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도시에서도 숲에 들어오면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이 단순히 ‘기분 탓’은 아닌 것이다. 산림청은 이러한 열섬 완화 기능이 연간 약 6000억 원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고 추산한다. 도시숲은 도심의 대기질도 개선한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홍릉숲은 인근 지역보다 미세먼지를 25.6%, 초미세먼지를 40.9% 줄여주는 등 공기 정화 효과가 뚜렷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경기 시흥시의 미세먼지 차단숲인 ‘곰솔누리숲’ 일대 대기질을 분석한 결과 숲이 조성된 2006년에서 2023년 사이 미세먼지 농도가 ㎥당 평균 85.2㎍(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g)에서 43.0㎍으로 거의 절반(49.5%)이나 줄었다. 호흡기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시민도 3만6709명에서 2만776명으로 43.4% 감소했다. 탄소흡수 효과도 탁월하다. 산림청에 따르면 국내 산림은 ha당 6.9t의 온실가스를 흡수한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도시에서는그 효과가 더욱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지자체에서 산림청 국비 지원을 받아 조성한 도시숲은 214곳으로, 지자체 평균 1곳에도 못 미쳤다. 지금까지 전국에 조성된 생활권 도시숲은 5963개소 이나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은 14.07제곱미터로 WHO 권고기준 15제곱미터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산림청은 지난해 ‘기후대응 도시숲’ 107곳, ‘도시바람길숲’ 20곳, ‘자녀안심그린숲’ 60곳 등을 신규 조성하는 등 도시숲을 확대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박찬열 생활권도시숲연구센터장은 “국민 모두 도시숲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시숲의 양적·질적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6구 오데옹역 근처 카페 거리. 프랑스식 카페와 식당 사이로 ‘소주 바(SOJU BAR)’란 붉은 네온사인이 걸린 식당이 나타났다. 한국 먹자골목에서 흔히 보이는 네온사인, 다닥다닥 붙은 작은 식탁들, 어둑한 조명이 포장마차를 재현한 분위기였다. 한국 수저 세트와 그 아래 깔린 흰 냅킨, 한국 술 광고를 붙인 플라스틱 물병 등 포장마차 소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젊은 남성들이 모여 앉은 테이블, 중년 남성이 혼술을 하고 있는 자리에는 눈에 익숙한 초록 소주병들이 놓여 있었다. 비좁은 가게에 앉은 네다섯 팀의 일행 가운데 동양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한국 여행 중 소주를 종종 마셨다는 프랑스인 크리스티안 말라바포티 씨는 “소주는 육개장, 해장국 같은 국물과 아주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최근 전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한식과 궁합이 맞는 술로 소주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셈이다. K드라마, K팝 인기로 한식 열풍이 불더니 이제 한식과 함께 놓이는 소주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선 포장마차형 소주 바는 물론이고, 프랑스인 청년들이 창업해 생산하는 ‘프랑스산 소주’까지 등장했다.● 佛 소주 수출 5년 만에 8.4배로 급증 프랑스에서 소주 열풍은 심상치 않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파리지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프랑스로 수출된 소주의 규모는 2019년 11만6047달러(약 1억5900만 원)였지만 지난해엔 97만5428달러(약 13억3400만 원)였다. 수출 규모 자체는 아직 미미한 편이지만 5년 만에 8.4배로 증가한 것이다. 특히 프랑스인들의 국민 주류인 와인 소비는 줄고 있는 중이라 소주 판매 증가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프랑스 매체 ‘프랑스 앵포’에 따르면 프랑스의 와인 소비량은 1960년대에 1인당 연간 평균 120L였지만 최근엔 약 40L로 줄었다. 약 60년 새 70%가량 줄어든 셈이다. 소주가 인기를 끄는 핵심 비결로는 한식의 성장이 꼽힌다. K드라마, K팝을 접하며 한식에 눈을 뜬 프랑스인들이 이제 한식과 함께 놓이는 소주에 관심을 갖게 된 것. 프랑스인 레아 바사르 씨는 “소맥과 소주를 마셔 봤는데 모두 한국 음식과 딱 맞는 술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한국 음악, 영화, 드라마의 확장과 미식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소주는 프랑스에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마실 때 부드럽게 넘어가는 점도 소주의 매력으로 꼽힌다. 와인보다 가벼운 느낌을 주고, 샴페인이나 맥주에 비해 탄산이 덜해 잘 넘어간다는 얘기다. 프랑스인 파트나 라파엘 마리 씨는 “프랑스 와인 등과 비교했을 때 소주는 마실 때 느낌이 아주 좋고 부드럽다”고 말했다. 소주가 여러 가지 과일 향과 자연스럽게 섞인다는 점도 강점이다. 실제 복숭아, 청포도 맛의 소주가 식당 진열대를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지난달 29일 파리 11구의 한 한식당에서 열린 전통주 시음회에선 과일 맛과 소주를 섞은 칵테일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주류를 유럽에 수입하는 티엔글로벌의 김태은 대표는 “소주 등 전통주는 아직 유럽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과일향을 섞어 현지인들에게 쉽고 친숙하게 다가가는 게 좋은 전략”이라고 말했다. ● 프랑스인이 만든 ‘프랑스산 소주’도 출시프랑스에서 소주가 더 잘 팔릴 것을 예감한 사업가들은 아예 프랑스에서 직접 소주를 생산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스와티 에크 씨(23)와 마르탱 프라타롤리 씨(25)는 최근 최초의 프랑스산 소주 ‘야주(YAJU)’ 브랜드를 선보였다. 브랜드명은 한국어 ‘자유(JAYU)’의 알파벳 순서를 바꿔 프랑스인들이 발음하기 쉽게 만들었다.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소주를 개발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프라타롤리 씨는 기자와 만나 “프랑스 친구들이 한국을 다녀오거나 파리의 한식당을 가서 소주를 맛본 뒤 자주 얘길 해서 소주를 맛보게 됐다”며 “색다른 매력에 매료돼 프랑스에서도 개발해 팔면 반응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소주의 매력은 다양한 맛을 연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로 마시면 일본 사케보다 달지 않은 편인데, 달게 마시고 싶으면 각종 과일향과 섞어 세련된 칵테일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게 이들이 꼽은 소주의 매력이다. 이들이 내놓은 첫 프랑스산 소주는 프리미엄 소주다. 한 병에 33유로(약 5만3000원)로 가격이 비싼 편이다. 우선 소주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100% 쌀을 재료로 썼다. 프랑스의 고급 식당 테이블에 오르는 현지 카마르그의 쌀을 써서 고급 이미지도 강조했다. 프랑스 남부 아를 남쪽에 있는 카마르그는 프랑스에서 보기 드문 쌀 생산지다. 이들은 프랑스의 대표 술인 코냑 제조에 사용하는 ‘샤랑트식 증류기’를 사용해 코냑의 향도 녹였다. 실제 기자가 맛본 프랑스 소주에선 소주의 향과 함께 깊은 코냑의 맛이 느껴졌다. 알코올 도수는 한국 소주와 비슷한 17도로 만들었지만 병 용량은 한국 소주의 약 2배인 700mL로 개발했다. 이는 프랑스 주류의 표준 크기다. 현지 소비자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전략이다. 이들이 소주 제조를 익힌 방법도 흥미롭다. 한국에 전혀 가지 않은 채 유튜브로 기본 제조법을 배우고, 전통주에 대한 여러 연구 논문을 참고했다. 다만 누룩은 만들기 힘들다고 판단해 누룩 대신 프랑스의 자연 효모를 활용했다.● “영어식 명칭부터 재정비해야” 소주는 파리의 한인 마트뿐 아니라 앵테르마르셰, 까르푸 등 프랑스 일반 대형마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급 주류를 많이 취급하는 프랜차이즈 주류 판매점 ‘니콜라’에도 소주 ‘화요’가 납품된다. 소주 시장이 급성장하다 보니 한국 주류 회사들도 팝업 매장을 여는 등 시장 확대를 위한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초 파리에서 ‘진로 정원’이란 팝업 매장을 마련했다. 술 시음은 물론이고 한국 전통 부채에 방문객이 선택한 문구를 손 글씨로 새겨주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프랑스 소주 수출량은 연평균 70% 이상씩 늘고 있다. 다만 한국 소주가 와인처럼 세계적으로 성장하려면 ‘소주’, ‘술’의 영어식 표기를 정비하고 개념을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프랑스 곳곳에서 열리는 주류 행사에선 영어식 이름이 제각각이었다. 소비자로선 진짜 소주인지 짝퉁인지 헷갈릴 법했다. 독일에서 한국 전통주 수입업체 ‘소주할래’를 운영하는 허영삼 대표는 “유럽연합(EU)이 관리하는 제품명 목록에 ‘소주’를 등록하면 유럽 여러 국가의 납품처나 소비자들에게 더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소주의 프리미엄화를 위해 프랑스의 AOC처럼 원산지 품질을 보증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유럽인들도 소주가 건강하고 좋은 원료로 만든 술임을 알고 안심하고 마실 수 있게 정부 차원의 원산지 표기 관리 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레오 14세 교황이 6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수도 로마로부터 남쪽으로 25km 떨어진 카스텔 간돌포에서 즉위 후 첫 여름 휴가에 들어갔다. 휴가를 교황청에서 보냈던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과 달리, 전용 별장을 이용해 온 역대 교황들의 전통을 12년 만에 재개한 것이다.AP통신에 따르면 레오 14세 교황은 이날부터 20일까지 보름 동안 카스텔 간돌포의 교황 별장에 머문다. 그는 이날 별장 주변에 운집한 환영 인파에 인사한 뒤 거처로 이동했다. 앞서 교황은 이날 바티칸을 떠나기 전 정오 기도를 드리며 “모두가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휴가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1624년 건립된 카스텔 간돌포 별장은 1세기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대부터 교황들의 인기 휴양지였다. 규모가 55만㎡로 바티칸 시국보다 크며 농장, 정원, 천문대 등이 내부에 있다. 평소 소박한 삶을 강조한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기간 카스텔 간돌포를 찾지 않고 교황청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앞서 레오 14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 머물던 사제 기숙사(산타 마르타의 집)가 아닌 역대 교황의 거처인 바티칸 사도궁에 들어가는 등 기존 전통을 중시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교황의 휴가에 따라 바티칸에서 열리는 각종 교황 알현 행사는 일시 중단되고, 30일 재개된다고 AP는 전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일부 중단한 뒤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최대 규모의 공습을 가하고 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의 지원이 약해진 틈을 타 공습 강도를 대대적으로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를 꺾으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엇 미사일 지원을 재개할 수 있음을 시사해 주목된다.5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3일 밤과 4일 새벽 사이 7시간에 걸쳐 드론 539대와 미사일 11발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등을 집중 공격했다. 이는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우크라이나에 가한 최대 규모의 공습이라고 AP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러시아는 1000㎞에 이르는 전선 곳곳에서 육상 공세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이번 공격은 트럼프 대통령이 3일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직후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뒤 ‘휴전 협상과 관련해 진전이 있었냐’는 취재진 질문에 “아니다. 오늘 푸틴 대통령과 나눈 대화에 매우 실망했다. 그는 (싸움을) 중단시키려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답했다.러시아의 이번 공격에 대해 WSJ은 “푸틴의 전략은 우크라이나의 가장 강력한 지원 세력이 지원을 줄이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군인과 민간인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과 의지를 꺾는 게 목표”라고 진단했다.4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한 트럼프 대통령은 패트리엇 미사일 지원 재개 가능성을 내비쳤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그는 4일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에서 “우크라이나가 방위를 위해 패트리엇 미사일이 분명히 필요하다”며 미사일 재개 가능성을 드러냈다.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도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전화통화하며 우크라이나에 방공 지원 의사를 피력했다”고 전했다.한편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대규모 공세에 맞서 러시아의 핵심 군 시설을 공격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5일 보로네시주의 보리소글렙스크 공군기지를 타격했다고 밝혔는데, 이 기지에는 수호이(Su)-34, Su-35S, Su-30SM 같은 러시아의 주력 전투기가 배치돼 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완전한 충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약속한 무기 지원을 최근 일부 중단하자, 우크라이나 정부가 충격에 빠졌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일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무기 지원 중단에 대한 공식 통보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우크라이나 정부는 미국에 특사를 긴급 파견했다. 미국산 무기가 모두 끊기는 건 아니지만 핵심 무기들이 들어오지 못해 우크라이나가 전장에서 열세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와 3년 넘게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무기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외교부는 “우크라이나의 방위력 지원을 미루는 건 침략자(러시아)가 전쟁과 테러를 계속하도록 부추길 뿐”이라고 했다. 미 국방부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무기 지원을 지속할지 검토하겠다고 밝혀 동맹국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콜비 美 국방차관, 행정부 내 통보 없이 강행”백악관은 1일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일부 무기 지원을 중단했다는 폴리티코 보도를 확인하며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기 위해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무기 비축량 감소 우려가 커지자 이 같은 조치를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30일부터 미국의 일부 무기 지원 중단 조치가 취해졌다고 전했다. 숀 파넬 미 국방부 대변인은 2일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와 본토 방어를 우선시할 것이고, 이를 인도·태평양으로의 전략적 전환과 연결 지을 수 있다”며 중국 견제를 위해 우크라이나 등에 배치한 무기를 재배치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로이터통신은 공급 중단 무기에는 우크라이나가 고속 탄도미사일 요격에 쓰고 있는 패트리엇 방공 미사일 30기가 포함됐다고 관계자를 인용해 2일 보도했다. 약 8500개의 155mm 포탄, 250기 이상의 정밀 유도 다연장로켓시스템(GMLRS), 142기의 헬파이어 공대지 미사일 등도 포함됐다. 다만, 이런 방침에 미 의회 등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폴리티코는 이날 6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미 국방부의 우크라이나 일부 무기 운송 중단에 미 의회 의원, 국무부 관리, 주요 유럽 동맹국 관계자 등도 당황했다”고 전했다. 또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차관과 소수의 자문위원들이 담당자들에게 관련 방침을 통보하지 않고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지금처럼 러시아가 진격 중일 때 핵심 무기 공급을 중단하면 ‘치명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을 통해 미국산 무기를 들여오는 방안을 서둘러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는 폴리티코에 “매우 중요한 일부 무기는 미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에서도 생산되지 않아 유럽 파트너들과 함께 구매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4일 전화 통화를 갖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일부 무기 공급 중단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3일 전했다.● 美 “세계 무기 지원 상황 검토” 미국은 동맹국들에 대한 무기 지원도 줄일 가능성을 내비쳤다. 2일 미 국방부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해외 무기 지원 상황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넬 대변인은 이날 “어떤 무기를 어디에 보내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체계를 마련했다”며 세계 각지로 투입되는 무기 지원 현황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검토 대상에 오른 국가에 대해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미국이 무기를 보내는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한미군 감축이나 역할 변경과 관련된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군사 태세 검토에 대해 이 단상에서 보통 언급하지 않는다”며 “한국과 철통같은 동맹을 유지하고 있으며 동맹에 충실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러시아는 북한과 군사 공조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2일 CNN이 입수한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 평가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에 2만5000∼3만 명을 추가 파병할 방침이다.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 등에 따르면 안드리 코발렌코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산하 허위정보대응센터장은 이날 러시아 교관들이 북한 평양과 원산 인근 훈련장에서 북한 무인기(드론) 조종사들에게 1인칭 시점(FPV) 드론의 조종법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이 ‘60일 휴전’ 조건에 동의했다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도 해당 조건을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마스에 휴전 압박을 가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강도 높은 가자지구 공습을 이어갔다.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을 통해 “내 대표자들은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문제와 관련해 길고도 생산적인 회의를 했다”며 “이스라엘은 60일간의 휴전을 확정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평화 달성을 돕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해 온 카타르와 이집트에 이 최종 제안을 전달할 것”이라며 “중동을 위해, 하마스가 이 제안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했다.앞서 그는 지난달 27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나는 (가자지구 휴전이) 임박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음 주 내로 휴전을 이룰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달 첫 주를 휴전 시한으로 밝히며 하마스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7일 방미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휴전 제안에 대한 하마스의 반응을 지켜본 뒤 네타냐후 총리와 세부 휴전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다만,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압박에도 가자지구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1일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마흐무드 바살 가자지구 대변인은 가자 전역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최소 27명이 숨지고 이 중 11명이 중부 및 남부의 구호품 배급소 근처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지역 당국과 목격자들은 최근 몇 주간 구호품 배급소 근처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에 반복적으로 살해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구호품은 5월말부터 주로 이스라엘과 미국이 지원하는 가자 인도주의 재단을 통해 배급되고 있다.이스라엘군은 민간인을 표적으로 한 전쟁범죄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이 민간인 공격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은 커지고 있다. 구호금 배급소 인근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에 따른 사망자가 늘어나며 배급소 운영을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AFP에 따르면 비정부기구 200여 곳이 1일 공동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가자지구 구호품 배급소의 운영 중단을 촉구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2일 ‘가마솥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대구와 강릉은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30일 전국 곳곳에서는 6월 하루 평균 기온 최고 기록이 줄줄이 경신됐다. 이틀째 열대야가 이어졌던 서울에선 밤 최저기온이 26.2도로 역대 가장 더운 6월 밤이었다. 부산은 1904년 4월 관측 이래 역대 6월 중 가장 더운 날로 기록됐다. 스페인에서는 한때 낮 최고기온이 46도까지 오르는 등 해외에서도 폭염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사실상 장마 끝났다” 분석도기상청은 2일 전국 아침 최저기온이 23∼27도, 낮 최고기온은 26∼35도로 예보했다. 지역별 낮 최고기온은 서울 30도, 부산 31도, 대구 35도, 대전 32도, 광주 34도, 강릉 35도로 전망된다.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내륙에는 5∼20mm의 소나기가 예보됐지만 무더위를 식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이후 11일까지 비 소식은 없다. 기상청과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7월이 평년보다 더울 확률은 64%, 8월은 71%로 예년보다 심한 폭염이 예상된다. 공상민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장마전선이 더 이상 내려오지 않는다고 내다보는 기후 예측 모델이 더 많다”면서도 “북쪽의 찬 공기가 강해질 가능성이 있고 태풍이 발생하며 기압계를 흐트러트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직 장마가 끝났다고 확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장마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세력을 키워 찬 공기를 완전히 밀어낼 때 끝난다. 북태평양고기압의 힘이 약하면 장마전선을 밀어내지 못하고, 힘이 강하면 장마전선을 밀어내 폭염이 시작된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북태평양고기압이 과거보다 더 강하고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 김해동 계명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필리핀 앞 열대 서부 해역 수온이 높아 강한 상승 기류를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북쪽의 찬 공기는 힘이 약해 장마전선이 일찍 북쪽으로 올라갔다. 사실상 장마가 끝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지난달 30일 밤부터 다음 날인 아침까지 서울의 밤 최저기온은 26.2도로 종전 6월 열대야 기록인 25.8도(2022년 6월 27일)보다 높았다. 이날 제주 전역에서 열대야가 발생했고 청주와 포항은 3일째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 부산은 같은 날 하루 평균 기온이 26.2도를 기록하며 역대 6월 중 가장 더운 하루를 기록했다. 대구에서도 하루 평균 기온이 30.7도를 기록하며 1907년 1월 관측 이래 역대 6월 중 가장 더웠다. 이전 기록은 2005년 6월 25일 30.1도였다. 이 기간 6월 하루 평균 최고기온을 경신한 곳은 전국 97개 기후 관측 지점 중 59곳이다. 열사병 등 온열질환으로 이송된 환자도 크게 늘었다. 1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5월 15일부터 전날까지 집계된 온열질환자는 470명, 추정 사망자는 3명이다. 지난해와 같은 기간(5월 20일 이후) 온열질환자는 453명으로, 전년 대비 73명(19.2%) 늘었다.● 스페인 46도, 프랑스 전역 폭염경보 유럽 대륙도 곳곳에서 6월부터 최고기온을 경신하며 폭염이 극심해지고 있다. 고기압이 상공을 덮어 뜨거운 기운을 가두는 ‘열돔 현상’이 심해지며 폭염 지속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남유럽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우엘바 지방 엘그라나도에선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낮 최고기온이 46도에 달했다. 프랑스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본토 거의 전역에 폭염경보가 발령됐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프랑스 기상청은 지난달 30일 전체 행정 구역의 88%에 폭염경보 중 두 번째로 높은 주황색 경보를 발령했다. 프랑스 남부 타른에가론 지역 원자력발전소는 주변 가론강의 수온이 28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되자 원자로 한 대를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파리 에펠탑마저 폭염으로 약 20cm의 변형이 생길 수 있다고 일간 르파리지앵은 보도했다. 이탈리아는 지난달 29일 도시 27곳 중 21곳에서 최고 수준의 폭염경보를 발령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박성민 기자 min@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2일 ‘가마솥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대구와 강릉은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30일 전국 곳곳에서는 6월 하루 평균 기온 최고 기록이 줄줄이 경신됐다. 이틀째 열대야가 이어졌던 서울에선 밤 최저기온이 26.2도로 역대 가장 더운 6월 밤이었다. 부산은 1904년 4월 관측 이래 역대 6월 중 가장 더운 날로 기록됐다. 스페인에서는 한때 낮 최고기온이 46도까지 오르는 등 해외에서도 폭염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사실상 장마 끝났다” 분석도기상청은 2일 전국 아침 최저기온이 23∼27도, 낮 최고기온은 26∼35도로 예보했다. 지역별 낮 최고기온은 서울 30도, 부산 31도, 대구 35도, 대전 32도, 광주 34도, 강릉 35도로 전망된다. 경기북부와 강원북부내륙에는 5~20mm의 소나기가 예보됐지만 무더위를 식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이날 이후 11일까지 비 소식은 없다. 기상청과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7월이 평년보다 더울 확률은 64%, 8월은 71%로 예년보다 심한 폭염이 예상된다. 공상민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장마전선이 더 이상 내려오지 않는다고 내다보는 기후 예측 모델이 더 많다”면서도 “북쪽의 찬 공기가 강해질 가능성이 있고 태풍이 발생하며 기압계를 흐트러트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직 장마가 끝났다고 확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장마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세력을 키워 찬 공기를 완전히 밀어낼 때 끝난다. 북태평양 고기압의 힘이 약하면 장마전선을 밀어내지 못하고, 힘이 강하면 장마전선을 밀어내 폭염이 시작된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북태평양 고기압이 과거보다 더 강하고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 김해동 계명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필리핀 앞 열대 서부 해역 수온이 높아 강한 상승 기류를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북쪽의 찬 공기는 힘이 약해 장마전선이 일찍 북쪽으로 올라갔다. 사실상 장마가 끝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지난달 30일 밤부터 다음 날인 아침까지 서울의 밤 최저기온은 26.2도로 종전 6월 열대야 기록인 25.8도(2022년 6월 27일)보다 높았다. 이날 제주 전역에서 열대야가 발생했고 청주와 포항은 3일째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부산은 같은 날 하루 평균 기온이 26.2도를 기록하며 역대 6월 중 가장 더운 하루를 기록했다. 대구에서도 하루 평균 기온이 30.7도를 기록하며 1907년 1월 관측 이래 역대 6월 중 가장 더웠다. 이전 기록은 2005년 6월 25일 30.1도였다. 이 기간 6월 하루 평균 최고기온을 경신한 곳은 전국 97개 기후 관측지점 중 59곳이다.열사병 등 온열질환으로 이송된 환자도 크게 늘었다. 1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5월 15일부터 전날까지 집계된 온열질환자는 470명, 추정 사망자는 3명이다. 지난해와 같은 기간(5월 20일 이후) 온열질환자는 453명으로, 전년 대비 73명(19.2%) 늘었다.● 스페인 46도, 프랑스 전역 폭염경보유럽 대륙도 곳곳에서 6월부터 최고기온을 경신하며 폭염이 극심해지고 있다. 고기압이 상공을 덮어 뜨거운 기운을 가두는 ‘열돔 현상’이 심해지며 폭염 지속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남유럽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의 우엘바 지방 엘그라나도에선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낮 최고기온이 46도에 달했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동쪽으로 약 97km 떨어진 모라에선 낮 최고기온이 46.6도에 이르러 6월 기준 역대 최고 기록이 경신됐다.프랑스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본토 거의 전역에 폭염경보가 발령됐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프랑스 기상청은 지난달 30일 전체 행정 구역의 88%에 폭염경보 중 두 번째로 높은 주황색 경보를 발령했다. 아녜스 파니에루나셰 생태전환부 장관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했다. 프랑스 남부 타른에가론 지역 원자력발전소는 주변 가론강의 수온이 28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되자 원자로 한 대를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파리 에펠탑마저 폭염으로 약 20cm의 변형이 생길 수 있다고 일간 르파리지앵은 보도했다.이탈리아는 지난달 29일 도시 27곳 중 21곳에서 최고 수준의 폭염경보를 발령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30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4차 개발 재원 총회에서 “극심한 더위는 더 이상 드문 현상이 아니다. 이제는 새로운 표준”이라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박성민 기자 min@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독일에서 전시 공간을 찾지 못해 약 4년을 떠돌던 평화의 소녀상이 28일(현지 시간) 독일 본 여성박물관에 설치돼 제막식을 열었다. 1981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여성 박물관인 본 여성박물관은 소녀상이 여성 인권과 역사 바로 세우기의 상징성을 지닌다고 판단해 설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에 따르면 마리아네 피첸 본 여성박물관장은 이날 “우리에게는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매우 중요한 주제”라며 “평화의 소녀상은 우리 박물관에 중요한 상징이며 그 이름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라고 말했다. ‘동마이’로 불리는 이 소녀상은 2021년 4월부터 4개월간 독일 동부 드레스덴 민속박물관에서 처음 전시되기 시작했다. 이듬해엔 독일 북부 볼프스부르크 현대미술관의 초청으로 4개월간 전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영구 전시관을 찾지 못해 대부분 창고에 보관돼 있었다. 한편 베를린 미테구 공공부지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아리’는 베를린 행정법원의 결정에 따라 9월 28일까지 전시된다. 미테구청은 법원 결정은 존중하면서도 사유지 이전을 제안하고 있다. 현재 코리아협의회는 소녀상의 상징성을 고려해 사유지로 옮기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