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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령자였던 브라질의 이나 카나바호 수녀(사진)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별세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향년 117세.AFP통신에 따르면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의 테레사 수녀회는 이날 카나바호 수녀의 별세 사실을 발표했다. 카나바호 수녀는 1908년 6월 8일 브라질 히우그란지두술주(州)에서 태어나 1934년 26세에 수녀가 됐다. 지난해 3월 고인은 포르투갈어 매체인 ACI디지털에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위해 매일 묵주 기도를 드린다”며 기도가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110세 생일에는 지난달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축복을 받기도 했다.테레사 수녀회에서 고인은 근무 윤리를 중시한 따뜻했던 성직자로 통했다. 생전에 고인의 동료였던 루시아 이그네스 바소토 수녀는 “그는 항상 자신보다 타인에게 집중했다. 많은 걸 요구하지 않고 모든 것이 감사하고 괜찮다고 여겼다”고 가톨릭뉴스통신(CNA)에 전했다. 장수 노인 연구단체인 노인학연구그룹(GRG)과 론제비퀘스트에 따르면 카나바호 수녀의 별세로 1909년생인 영국 서리 출신의 에설 케이터햄(116)이 세계 최고령자가 됐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천장의 아름다운 벽화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17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국회의사당의 도서관. 이곳에서 만난 10대 소녀 악셀 양은 가족들과 도서관 내부를 둘러본 뒤 천장 벽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의 동생 콤 군도 “천장에 그림이 정말 많았다”고 거들었다. 이 도서관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7년 후인 1796년 완공됐다. 역사가 229년에 달한다. 그간 입법이나 국가 행정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찾는 프랑스 정치인과 관료들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지만 오랜 역사로 많은 책과 시설이 낡은 상태였다.》원래 국회의원, 정부 고위 공직자 등만 출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최근 1년간의 보수 공사 끝에 ‘정치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준다’는 상징적인 취지를 담아 일반에도 개방을 결정했다. ‘세계 문화유산의 날’ 등 특별한 날 이벤트성으로 신청자들에 한해 공개된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일반인에게 문을 연 건 처음이다. 현장에서 만난 팡세 샤포토 국회 부행정관은 개방 취지에 대해 “국회가 프랑스 국민을 위한 장소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를 국민의 품으로”도서관 내부로 들어가니 5개의 돔으로 이어진 약 400m²의 천장에 고풍스러운 벽화가 펼쳐졌다. 19세기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이었다. 돔 중앙은 천장이 하늘로 열려 있는 듯 푸른색으로 가득 채워졌다. 천장 한쪽 끝에는 무기를 휘두르며 야만적인 모습을 보이는 남성이 그려진 전쟁 장면이 담겨 있었다. 다른 한쪽 끝에는 신들이 하늘을 날며 노래하는 평화가 표현돼 있었다. 이곳은 역시 천장에 벽화가 많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시스티나 예배당’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두 작품 사이로 천장의 돔 5개가 이어졌다. 각 돔은 시, 신학, 역사와 철학, 과학 등을 각각 주제로 삼은 그림들을 품고 있었다. 돔 아래 서고엔 각 분야의 책이 가득 꽂혔다. 각종 전쟁을 야기하는 인간의 잔인함과 야만성이 이런 다양한 책을 통해 터득한 교양으로 순화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평화를 추구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일간지 르파리지앵에 따르면 도서관을 일반에도 공개하자는 주장을 주도적으로 펼친 인물은 집권 르네상스당 소속의 국회의장이자 유명 여성 정치인 야엘 브론피베 의원(55)이다. 그는 현대 프랑스 정치 체계의 근간인 1958년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첫 여성 국회의장이다. 시민들은 정치 엘리트의 상징이던 국회도서관의 공개에 반가움을 표했다. 딸과 함께 도서관 투어를 신청한 백발의 도나토 드니 씨는 “국회도서관을 우리나라의 지식인이나 정치 엘리트를 위한 장소로만 한정하지 않고 모든 국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볼 수 있도록 허용한 건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프랑스 정계의 혼란과 갈등이 심해져 지난해에만 총리가 여러 차례 바뀌었던 터라 정치권에서 모처럼 좋은 일을 했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기득권의 공간으로 오랫동안 감춰졌던 도서관이 개방된다는 소식에 방문 예약 또한 일찌감치 마감됐다. 이날 투어를 예약한 이들은 일찍부터 긴 줄을 섰다. 이날 방문객들의 주목을 받은 건 책이나 유물뿐만이 아니다. 보수 공사를 통해 도서관 내부에 재미있는 요소 또한 여럿 가미됐다. 길고 빽빽한 책장 중엔 ‘가짜 책꽂이’도 숨어 있었다. 책이 꽂혀 있는 듯한 외양으로 디자인된 문이다. 이 문을 밀면 도서관 내부의 행정 사무실로 연결된다.● 佛 대표하는 루소-위고 작품도 국회도서관 개방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이유 중 하나는 이곳에 프랑스 현대 정치와 사회의 근간이 된 문학 작품이나 법률 문서 등이 보관돼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2개 층에 걸친 지상 공간과 지하에 품고 있는 도서는 약 70만 권. 이 외에 명저의 사본 약 1900권도 있다. 대혁명에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장자크 루소가 1760년대에 쓴 ‘고백록’, 대혁명 당시 ‘공포 정치’를 주도한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주석을 단 헌법 초본도 존재한다. 중세 백년전쟁의 영웅 잔 다르크의 재판 관련 문서, 9세기에 쓰여진 성경, 대혁명의 시작을 알린 ‘테니스 코트의 선서’도 있다. 도서관에는 진귀한 유물 또한 상당하다. 마침 도서관 직원이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직접 쓴 편지를 보여줬다. 편지 말미엔 위고의 프랑스어 서명이 선명했다. 작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위고가 친필로 쓴 편지 중엔 대혁명 당시 한 여성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도 있다. 당시 위고는 억울하게 처형된 아들에 대한 슬픔을 털어놓은 이 여성을 다독이고 위로하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1700년대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형 책 모양의 ‘화장실 휴대품’도 눈길을 끌었다. 오래된 탓에 급하게 열면 부서질 듯한 책 안엔 인형 장난감 같은 작은 향수병과 거울 등이 들어 있었다. ● 루브르 박물관서도 의류 전시 엘리트주의를 허물겠다는 움직임은 다른 도서관이나 박물관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BNF)도 이미 대중에게 일부 열람실을 개방해 파리의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그간 주로 박사 과정생이나 교수에게만 출입을 허용했지만 일부 공간을 대중에게 개방했다. 이날 방문한 도서관 내 ‘리슐리외’관에는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조각과 창문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도서관 속엔 일반인들이 긴 책상에 빽빽이 들어앉아 노트북을 켜거나 책을 펼친 채 열독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이들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도서관은 박제된 교양인 책부터 독서로 살아있는 교양을 보여주는 시민들까지 생생한 관광 상품이 된 셈이다. 이집트의 미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 세계적인 유물이나 회화 작품만 전시하는 공간으로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도 최근 달라지고 있다. 루브르는 올 1∼7월 사상 최초로 명품 패션 브랜드의 의류 전시를 허용했다. 현재 루브르 내 특별전시관에서는 샤넬, 돌체앤드가바나, 지방시, 발렌시아가, 루이뷔통 등이 제작한 의상을 볼 수 있다. 의상은 65벌, 액세서리는 30점이다. 현지 매체들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 중 한 곳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 다른 나라의 유명 박물관들은 일찌감치 의류 전시를 허용해 왔다.‘문화 엘리트’를 상징하는 극장 ‘코메디 프랑세즈’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선 올해 1∼3월 매주 목요일마다 극단 예술가들이 모여 연극 의상 약 10벌씩을 중고로 판매했다. 자수 드레스, 가죽 외투, 연미복 등 프랑스의 옛 시절 만들어진 의상들을 내놨다. 극장 측이 일반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으로 주목받았다.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크림반도를 포기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미국 뉴저지에서 워싱턴으로 출발하기 전 ‘러시아가 2014년 병합한 크림반도를 젤렌스키 대통령이 포기할 준비가 됐다고 보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그간 크림반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했음에도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할 의지를 밝힌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휴전 협상이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가 점령 중인 크림반도가 협상의 중대 변수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측을 중재해 온 미국은 협상에 적극적이지 않은 러시아에 제재 강화라는 ‘채찍’과 동시에 크림반도의 러시아 소유 주장을 인정하는 ‘당근’도 거론하며 중재 성과를 거두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젤렌스키, 크림반도 포기 준비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나는 그(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 공격(shooting)을 멈추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협정에 서명하길 바란다”고 다시금 러시아에 휴전 협상에 임할 것을 압박했다. 전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가진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동에 대해선 “그 만남은 잘 진행됐다. 그것은 멋지고 아름다운 회의였다”고도 말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대화가 원활히 진행됐음을 시사했지만 정작 우크라이나가 자국 영토임을 주장하는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할 뜻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로이터통신이 최근 보도한 트럼프 행정부의 중재안에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지배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논의를 휴전 뒤로 미루자는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제안도 포함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포기를 밀어붙이는 모양새란 분석도 나온다. 크림반도는 2014년 러시아에 강제 병합됐다. 2013년 11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럽연합(EU) 가입 논의를 전격 중단하고 친러시아 노선으로 선회하자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유로마이단 혁명’이 일어났고, 러시아는 러시아계 보호 등을 이유로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다.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를 여전히 헌법상 자국 영토로 규정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크림반도를 포기할 경우 사실상 헌법을 위반하게 된다. 정치적으로도 치명상을 입게 될 가능성이 높다.● 루비오 “결실 없으면 시간-자원 투입 못 해”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도 27일 두 전쟁 당사국에 대한 압박에 나섰다. 그는 미 NBC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주는 우리가 이 노력을 계속할지 아니면 다른 문제에 집중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것(종전 협정)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이 노력이 결실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시간과 자원을 계속 투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번 주를 시한으로 협상에 성과가 없으면 중재를 중단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J D 밴스 미 부통령도 23일 인도 방문 중 “미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매우 분명한 (종전) 제안을 했다”며 “이제 그들이 받아들일 때이며, 그게 아니라면 미국은 손을 뗄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영유권을 인정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러 압박 발언도 내놓고 있다. 그는 26일 바티칸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동한 뒤 “그(푸틴 대통령)는 전쟁을 중단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2차 제재 가능성도 거론했다. 이와 관련해 루비오 장관은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옵션을 갖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 단계까지는 가고 싶지 않다. 아직 그 시점이 아니라고 본다. 그건(대러 제재 강화는) 외교의 문을 닫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황이 진전되지 않는다면 추가 대러 제재 카드도 쓸 수 있다는 것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28일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다음 달 9일)을 맞아 일시적 휴전을 선언했다. 크렘린궁(대통령실)은 성명을 통해 “푸틴 대통령의 결정으로 5월 8일 0시부터 11일 0시까지 휴전을 선언했다”며 “이 기간 중 모든 군사행동은 중단된다”고 밝혔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교황께서는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고 물으셨어요.” 교황청에 따르면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24일(현지 시간) 한국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사흘 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선포 당시 “빨리 잘 해결되길 바란다”며 한국 걱정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유 추기경은 그간 한국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여러 차례 고사하다 이날 바티칸 교황청 성직자부 청사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났다고 한다. 그는 “교황 선종이라는 큰일을 계기로 교황청 사람으로서 감사한 마음으로 소식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고 소개했다. 유 추기경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일 뒤 말씀드렸는데 (교황이 이미) 마음속에 품고 계셨다”며 “(그래서 같은 해 8월 교황의 방한 때) 서울공항에 세월호 유족 대표도 나왔고 여러 일들이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교황 선종 뒤 온라인에선 2014년 8월 방한한 교황이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위로한 장면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교황은 이산가족의 아픔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유 추기경은 “교황은 ‘같은 형제, 자매가 어떻게 60년, 70년 이렇게 (떨어져 사는) 불행이 있느냐’라고 하시며 ‘북한에 가고 싶고, 언제든 불러주면 가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교황은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고, 전쟁과 평화는 구별하라고 하셨다”고 덧붙였다. 유 추기경이 차기 교황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힌 데 대해선 “영광스럽지만 감히”라고 말을 흐리며 “하하하 웃고 넘겼다”고 했다. 그는 최근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가 꼽은 차기 교황 유력 후보 12명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12월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유 추기경을 차기 교황 유력 후보로 거론했다. 26일 오전 10시(현지 시간·한국 시간 오후 5시)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리는 교황 장례식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 각국 정상들과 신자 등 25만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장례 미사는 추기경단 단장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주례하며,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과 주교, 사제들이 공동 집전한다. 과거에는 장례 미사를 마친 뒤 세 겹으로 된 삼중관 입관 절차를 거쳤지만, 교황이 장례 예식을 대폭 간소화함에 따라 이 과정이 사라졌다. 개정된 장례 예식서에 따라 교황의 시신은 삼중관 대신 아연으로 내부를 덧댄 소박한 목관 하나에만 안치된다. 교황은 유언에 따라 성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이탈리아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 안장된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교황께서는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고 물으셨어요.”교황청에 따르면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24일(현지 시간) 한국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사흘 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선포 당시 “빨리 잘 해결되길 바란다”며 한국 걱정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유 추기경은 그간 한국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여러 차례 고사하다 이날 바티칸 교황청 성직자부 청사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났다고 한다. 그는 “교황 선종이라는 큰일을 계기로 교황청 사람으로서 감사한 마음으로 소식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고 소개했다.유 추기경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일 뒤 말씀드렸는데 (교황이 이미) 마음속에 품고 계셨다”며 “(그래서 같은 해 8월 교황의 방한 때) 서울공항에 세월호 유족 대표도 나왔고 여러 일들이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교황 선종 뒤 온라인에선 2014년 8월 교황이 방한했을 때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위로한 장면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교황은 이산가족의 아픔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유 추기경은 “교황은 ‘같은 형제, 자매가 어떻게 60년, 70년 이렇게 (떨어져 사는) 불행이 있느냐’라고 하시며 ‘북한에 가고 싶고, 언제든 불러주면 가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교황은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고, 전쟁과 평화는 구별하라고 하셨다”고 덧붙였다. 유 추기경이 차기 교황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힌 데 대해선 “영광스럽지만 감히”라고 말을 흐리며 “하하하 웃고 넘겼다”고 말을 아꼈다. 그는 최근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가 꼽은 차기 교황 유력 후보 12명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12월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유 추기경을 차기 교황 유력 후보로 거론했다.26일 오전 10시(현지 시간·한국 시간 오후 5시)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리는 교황 장례식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 각국 정상들과 신자 등 25만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장례 미사는 추기경단 단장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주례하며,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과 주교, 사제들이 공동 집전한다.과거에는 장례 미사를 마친 뒤 세 겹으로 된 삼중관 입관 절차를 거쳤지만, 교황이 장례 예식을 대폭 간소화함에 따라 이 과정이 사라졌다. 개정된 장례 예식서에 따라 교황의 시신은 삼중관 대신 아연으로 내부를 덧댄 소박한 목관 하나에만 안치된다. 교황은 유언에 따라 성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이탈리아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 안장된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23일 이틀 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조문하기 위해 수천 명이 늘어선 성 베드로 대성당 앞 광장. 한 이탈리아 방송 취재팀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다급히 뛰기 시작했다. 빠른 걸음으로 광장을 빠져나가는 교황청 성직자를 향해서였다. 취재팀이 급하게 질문을 건넸지만 그는 손사래를 치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의 회의인 ‘콘클라베’ 개최를 앞두고 추기경들과 교황청 성직자들의 발언과 행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언론의 취재 경쟁도 뜨겁다. 교황의 장례식이 26일 마무리되면 이르면 다음 달 6일경 콘클라베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콘클라베에 참여할 캐나다 토론토의 토머스 크리스토퍼 콜린스 추기경이 후임 교황으로 누가 유력한지 언급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바티칸 내 카페들은 각국 기자들이 가톨릭 성직자들과 인터뷰를 하느라 만원을 이뤘다. 근처 서점가엔 콘클라베 관련 책들이 전면에 배치됐다. 바티칸에선 이미 ‘콘클라베 전주곡’이 시작된 셈이다.● 추기경 일일회의 발언에 ‘실마리’ 콘클라베는 라틴어 ‘cum(함께)’과 ‘clavis(열쇠)’의 합성어인 ‘쿰 클라비(cum clavis)’에서 유래했다. ‘열쇠로 잠근 방’을 뜻하는 말로, 교황 선출 비밀회의를 뜻한다. 추기경들이 콘클라베에 들어가면 외부와 단절된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비밀에 부친다. 콘클라베는 통상 바티칸궁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리는데, 차기 교황이 선출되면 선거용지를 태우면서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 오르게 한다. 검은 연기가 나면 그날은 선출에 실패했다는 신호다. 교황 투표권을 갖는 선종일 기준 만 80세 미만 추기경은 135명으로, 이 중 2명이 건강상 이유로 불참해 133명이 투표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AP통신이 전했다. 이들은 장례식 뒤 콘클라베 전까지 일일회의를 하며 이 시대에 맞는 교황상을 논한다. 콘클라베 전까진 공개행사에 참석해 차기 교황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등을 밝힐 수 있다. 이에 따라 언론들은 이들의 발언을 주목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27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리는 교황의 애도 미사를 집전할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의 메시지에 이목이 쏠린다고 전했다. 그가 미사에서 설교하는 내용에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담길 수 있어서다. 장례 기간 중 로마에 머무는 추기경들은 도시 곳곳의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데, 이들이 하는 설교를 통해 차기 교황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로이터통신은 “통상 차기 교황에 대한 힌트는 천천히 나타나는데, 프란치스코 교황 후임에 대한 힌트는 더 천천히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회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벨리토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오직 예언자들만 안다”고 했다. 콘클라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를 다루는 책이나 영화도 화제가 되고 있다. 23일 온라인 스트리밍 조사업체 루미네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국에선 올해 개봉)한 영화 ‘콘클라베’는 스트리밍 시청 시간이 일주일 전의 약 32배로 급증했다.● 유흥식 추기경 “주님께는 동서양 구분 없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첫 아메리카 출신 교황이었듯, 차기 교황도 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에서 나오는 파격이 재현될지 관심이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한국의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필리핀 출신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과 함께 아시아권 교황 후보로 꼽힌다. 두 추기경은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가 선정한 차기 교황 유력 후보 12명에 포함됐다. 유 추기경은 23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차기 교황이 아시아에서 나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주님께는 동서양의 구분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이번 콘클라베가 일찍 끝날 것으로 보면서도 “과도기에는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주님의 뜻을 지켜보자”고 했다.바티칸=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23일 이틀 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조문하기 위해 수천 명이 늘어선 성 베드로 대성당 앞 광장. 한 이탈리아 방송 취재팀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다급히 뛰기 시작했다. 빠른 걸음으로 광장을 빠져 나가는 교황청 성직자를 향해서였다. 취재팀이 급하게 질문을 건넸지만 그는 손사래를 치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의 회의인 ‘콘클라베’ 개최를 앞두고 추기경들과 교황청 성직자들의 발언과 행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언론의 취재 경쟁도 뜨겁다. 교황의 장례식이 26일 마무리되면 이르면 다음 달 6일경 콘클라베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콘클라베에 참여할 캐나다 토론토의 토마스 크리스토퍼 콜린스 추기경이 후임 교황으로 누가 유력한지 언급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바티칸 내 카페들은 각국 기자들이 가톨릭 성직자들과 인터뷰하느라 만원을 이뤘다. 근처 서점가엔 콘클라베 관련 책들이 전면에 배치됐다. 바티칸에선 이미 ‘콘클라베 전주곡’이 시작된 셈이다.● 추기경 일일회의 발언에 ‘실마리’콘클라베는 라틴어 cum(함께)과 clavis(열쇠)의 합성어인 ‘쿰 클라비(cum clavis)’에서 유래했다. ‘열쇠로 잠근 방’을 뜻하는 말로, 교황 선출 비밀회의를 뜻한다. 추기경들이 교황을 뽑기 위해 콘클라베에 들어가면 외부와 단절된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비밀에 붙인다.콘클라베는 통상 바티칸궁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리는데, 차기 교황이 선출되면 선거용지를 태우면서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 오르게 한다. 검은 연기가 나면 그날은 선출에 실패했다는 신호다.교황 투표권을 갖는 선종일 기준 만 80세 미만 추기경은 135명으로, 이 중 2명이 건강상 이유로 불참해 133명이 투표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AP통신이 전했다. 이들은 장례식 뒤 콘클라베 전까지 일일회의를 하며 이 시대에 맞는 교황 상을 논한다. 콘클라베 전까진 공개행사에 참석해 차기 교황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등을 밝힐 수 있다.이에 따라 언론들은 이들의 발언을 주목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27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리는 교황의 애도 미사를 집전할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의 메시지에 이목이 쏠린다고 전했다. 그가 미사에서 설교하는 내용에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담길 수 있어서다. 장례 기간 중 로마에 머무는 추기경들은 도시 곳곳의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데, 이들이 하는 설교를 통해 차기 교황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로이터통신은 “통상 차기 교황에 대한 힌트는 천천히 나타나는데, 프란치스코 교황 후임에 대한 힌트는 더 천천히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회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벨리토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오직 예언자들만 안다”고 했다.미스터리에 싸여있는 콘클라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를 다루는 책이나 영화도 화제가 되고 있다. 23일 온라인 스트리밍 조사업체 루미네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국에선 올해 개봉)한 영화 ‘콘클라베’는 스트리밍 시청 시간이 일주일 전에 비해 32배나 급증했다.● 유흥식 추기경 “주님께는 동서양 구분 없어”프란치스코 교황이 첫 아메리카 출신 교황이었듯, 차기 교황도 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에서 나오는 파격이 재현될지 관심이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한국의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필리핀 출신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과 함께 아시아권 교황 후보로 꼽힌다. 두 추기경은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가 선정한 차기 교황 유력 후보 12명에 포함됐다.유 추기경은 23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차기 교황이 아시아에서 나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주님께는 동서양의 구분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이번 콘클라베가 일찍 끝날 것으로 보면서도 “과도기에는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주님의 뜻을 지켜보자”고 했다.바티칸=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교황의 관이 지나가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봤어요.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23일(현지 시간) 오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만난 미국인 팻 고먼 씨는 교황의 운구를 지켜본 뒤 벅찬 감격에 차 있었다. 교황을 떠나보내 슬프지만 교황의 사랑을 느끼고 나눌 수 있어 기쁨도 함께한다는 얘기였다. 21일 선종한 교황의 관은 이날 바티칸 산타 마르타의 집 예배당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운구돼 사흘간의 일반인 조문을 시작했다. 운구 행렬이 지나간 뒤 한참 자리를 지키던 독일인 가톨릭 신자 파울 고벨 씨는 미소를 지으며 “교황은 벌써 천국에 잘 자리 잡으셨을 것이다. 군중 속에서 교황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날 성 베드로 광장에서 조문을 기다리던 2만여 명은 운구 행렬을 차분하게 지켜보며 박수를 보냈다.● 눈물보다 미소로 작별 준비 이날 조문이 시작되면서 바티칸과 로마는 도시 곳곳이 추모의 분위기로 가득했다. 교황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려는 이들이 추모 열기를 고조시켰다. 신자들은 삼삼오오 도시 곳곳에 간이 탁자를 세우고 교황의 사진과 초를 놓은 채 기도를 올렸다. 관공서 등 주요 건물에도 조기가 걸렸다. 다만 교황 선종 당일의 어둡고 슬픈 분위기는 많이 옅어진 느낌이었다. ‘눈물’보다는 ‘잔잔한 미소’ 속에서 교황의 생전 모습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찬송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22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는 멕시코, 포르투갈, 프랑스 등의 국기와 대형 십자가를 든 채 무리를 이뤄 찬송하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남태평양에 있는 프랑스령 뉴칼레도니아에서 온 신자 20여 명은 붉은 단체복을 입은 채 기타와 북을 치면서 영어, 프랑스어 등으로 경쾌한 성가를 부르며 행진했다. 슬픔보다는 감사를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23일 교황 조문을 기다리던 루카스 씨는 “교황께 그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며 “감사의 기도를 할 것”이라고 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교황 조문이 진행되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나 교황의 무덤이 마련될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앞에는 청년들도 많았다. 최근 서유럽 국가에선 가톨릭 신자가 줄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교황으로 인해 가톨릭과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독일에서 온 20대 브라질인 브루나 우리우 씨는 “교황의 선종 소식에 그동안 잘 몰랐던 교황과 교회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교황은 소탈하게 대중과 함께하며 교회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고, 시각도 바꿨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로 증폭된 ‘자기 과시의 시대’에 청빈한 삶을 보여준 교황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가톨릭 학교를 다니는 10대 리엄 맥솔리 군은 “소셜미디어에서 남들이 과시하는 모습을 보며 우울한 감정이 생기기도 하는데, 교황의 소박하면서도 밝은 모습에서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미국인 골드버그 씨는 교황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을 비판했어도 교황의 뜻을 기렸다. 그는 “교황은 종교와 국적을 묻지 않고 사람들을 모아 연대를 이루게 했다”고 말했다.● 사흘간 조문 뒤 장례 미사 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패럴 추기경은 23일 오전 9시에 기도와 함께 운구 절차를 주재했다. 운구 행렬은 산타 마르타 광장과 로마 순교자 광장 등을 지나 바티칸 대성당으로 들어갔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23일 오전 11시부터 일반인 조문을 받았다. 조문은 25일까지 사흘간 진행된다. 조문이 끝난 뒤엔 교황의 얼굴이 흰 천으로 덮이고 관이 봉인된다. 관 뚜껑에는 십자가와 교황의 문장이 새겨진다. 교황의 문장은 그가 주교였을 때부터 사용한 방패와 예수회 문양이다. 장례 미사는 26일 오전 10시(한국 시간 오후 5시) 성 베드로 대성당 앞 광장에서 거행된다. 새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회의인 ‘콘클라베’는 다음 달 초나 중순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바티칸·로마=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교황의 관이 지나가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봤어요.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23일(현지 시간) 오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만난 미국인 팻 고먼 씨는 교황의 운구를 지켜본 뒤 벅찬 감격에 차 있었다. 교황을 떠나보내 슬프지만 교황의 사랑을 느끼고 나눌 수 있어 기쁨도 함께한다는 얘기였다. 21일 선종한 교황의 관은 이날 바티칸 산타 마르타의 집 예배당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운구돼 사흘간의 일반인 조문을 시작했다. 운구 행렬이 지나간 뒤 한참 자리를 지키던 독일인 가톨릭 신자 파울 고벨 씨는 미소를 지으며 “교황은 벌써 천국에 잘 자리 잡으셨을 것이다. 군중 속에서 교황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날 성 베드로 광장에서 조문을 기다리던 2만여 명은 운구 행렬을 차분하게 지켜보며 박수를 보냈다.● 눈물보다 미소로 작별 준비이날 조문이 시작되면서 바티칸과 로마는 도시 곳곳이 추모의 분위기로 가득했다. 교황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려는 이들이 추모 열기를 고조시켰다. 신자들은 삼삼오오 도시 곳곳에 간이 탁자를 세우고 교황의 사진과 초를 놓은 채 기도를 올렸다. 관공서 등 주요 건물에도 조기가 걸렸다.다만 교황 선종 당일의 어둡고 슬픈 분위기는 많이 옅어진 느낌이었다. ‘눈물’보다는 ‘잔잔한 미소’ 속에서 교황의 생전 모습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찬송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22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는 멕시코, 포르투갈, 프랑스 등의 국기와 대형 십자가를 든 채 무리를 이뤄 찬송하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남태평양에 있는 프랑스령 뉴칼레도니아에서 온 신자 20여 명은 붉은 단체복을 입은 채 기타와 북을 치면서 영어, 프랑스어 등으로 경쾌한 성가를 부르며 행진했다.슬픔보다는 감사를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23일 교황 조문을 기다리던 루카스 씨는 “교황께 그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며 “감사의 기도를 할 것”이라고 했다.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교황 조문이 진행되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나 교황의 무덤이 마련될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앞에는 청년들도 많았다. 최근 서유럽 국가에선 가톨릭 신자가 줄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교황으로 인해 가톨릭과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독일에서 온 20대 브라질인 브루나 우리우 씨는 “교황의 선종 소식에 그동안 잘 몰랐던 교황과 교회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교황은 소탈하게 대중과 함께하며 교회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고, 시각도 바꿨다”고 말했다.소셜미디어로 증폭된 ‘자기 과시의 시대’에 청빈한 삶을 보여준 교황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가톨릭 학교를 다니는 10대 리엄 맥솔리 군은 “소셜미디어에서 남들이 과시하는 모습을 보며 우울한 감정이 생기기도 하는데, 교황의 소박하면서도 밝은 모습에서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미국인 골드버그 씨는 교황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을 비판했어도 교황의 뜻을 기렸다. 그는 “교황은 종교와 국적을 묻지 않고 사람들을 모아 연대를 이루게 했다”고 말했다.● 사흘간 조문 뒤 장례 미사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패럴 추기경은 23일 오전 9시에 기도와 함께 운구 절차를 주재했다. 운구 행렬은 산타 마르타 광장과 로마 순교자 광장 등을 지나 바티칸 대성당으로 들어갔다.성 베드로 대성당은 23일 오전 11시부터 밤 12시까지 일반인 조문을 받았다. 조문은 25일까지 사흘간 진행된다. 조문이 끝난 뒤엔 교황의 얼굴이 흰 천으로 덮이고 관이 봉인된다. 관 뚜껑에는 십자가와 교황의 문장이 새겨진다. 교황의 문장은 그가 주교였을 때부터 사용한 방패와 예수회 문양이다.장례 미사는 26일 오전 10시(한국 시간 오후 5시) 성 베드로 대성당 앞 광장에서 거행된다. 그 뒤엔 9일간의 공식 애도 기간이 시작된다. 새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회의인 ‘콘클라베’는 다음 달 초나 중순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바티칸‧로마=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숲은 다른 어떤 농사와도 다릅니다. 씨앗을 사지도, 비료를 주지도, 농약을 치지도 않지만 언제나 최고의 선물을 주지요.” 지난달 22일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시에서 남동쪽으로 80km 떨어진 브로몽의 파인 마운틴 숲을 찾았다. 퀘벡 지역은 세계 메이플 시럽의 72%, 캐나다 메이플 시럽의 90%를 생산하는 전 세계 메이플 시럽의 핵심 생산지다. 이곳에서 만난 메이플 시럽 생산자 데이비드 홀 씨(65)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울창한 단풍나무들을 쓰다듬으며 “숲에서 태어나고 숲에서 자란 우리에게 숲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액 흘러넘치는 봄의 단풍나무 숲홀 씨의 단풍나무 숲은 얼핏 보기엔 잎사귀 없는 나무들로 가득한 겨울 산의 모습이었다. 군데군데 여전히 녹지 않은 눈들이 덮여 있었다. 하지만 수액 채취를 위해 단풍나무마다 1, 2개씩 꽂아놓은 관을 가만히 살펴보니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수액이 흘러나와 튜브를 통해 산 아래쪽 수액 탱크로 내려가고 있었다. 홀 씨는 “지금처럼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 수액 흐름이 왕성한 3월이 단풍나무 수액을 채취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라며 “많게는 하루에 한 그루당 3갤런(11.4L)을 채취하는데, 이런 나무가 이 숲에 2만3000그루”라고 설명했다.메이플 생산자들은 봄이 오기 전 미리 나무에 드릴로 구멍 1, 2개를 뚫고 수액 채취 관을 연결한다. 20여 일 뒤 채취를 끝내고 관을 제거하면 1년 뒤 나무는 스스로 재생을 통해 그 구멍을 메운다. 나무에서 막 흘러나온 단풍나무 수액은 달콤한 생수 같은 맛이 난다. 이를 수액 탱크에 싣고 단풍나무 숲 근처 일종의 처리 시설인 ‘슈거섁(Sugar Shack·설탕 오두막)’으로 가져간다. 수액을 끓이자 마침내 갈색빛이 나는 메이플 시럽이 됐다. 홀 씨는 “1L의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데 평균 40L의 수액이 필요하다”며 “메이플 시럽의 브릭스와 농도는 생산 설비 내 컴퓨터 센서를 통해 균질하게 관리된다”고 설명했다.● 대 이어 청년 농가 만드는 ‘액체 황금’ 홀 씨의 집안은 1860년부터 6대째 메이플 시럽을 생산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아버지 이전에도 우리는 늘 이 숲에 있었다”며 “어린 시절 아버지를 도와 일하던 때와 달라진 점이라면 그때는 채취한 수액을 마차에 실어 산 아래로 가지고 내려왔다는 것뿐”이라며 웃었다. 홀 씨는 “오직 자연과 호흡하며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게 일터로서의 숲의 매력”이라며 “맥길대 졸업 후 스스로 이 숲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홀 씨의 아들 앤드루 씨(31)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처럼 맥길대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한 뒤 숲으로 돌아와 메이플 시럽을 함께 생산하고 있다. 실제 퀘벡 지역에는 귀농한 청년층 등 젊은 메이플 시럽 생산자가 꾸준히 유입되며 그 수가 늘고 있다. 캐나다 정부 통계와 퀘벡 메이플 시럽 생산자협회(QMSP)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생산 농가 수는 20% 가까이 늘어 현재 1만3500가구에 달한다. 이렇게 창출된 정규직 일자리도 1만2600개에 이른다. QMSP는 “메이플 시럽 산업은 퀘벡주 국내총생산(GDP)에 11억 캐나다달러(약 1조1300억 원) 이상을 기여한다”며 “벌목에 비해 GDP는 9배, 고용은 16배 더 높다”고 분석했다. 홀 씨 역시 “메이플 시럽 생산을 통해 매년 40만 캐나다달러(약 4억1170만 원)의 수익을 얻는다”고 말했다.● 숲푸드로 지역경제 활성화 세계 3대 산림국 중 하나인 캐나다는 숲에서 얻는 임산물이 이처럼 국가 경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캐나다의 임산물은 목재와 펄프부터 시작해 블루베리, 크랜베리 등 숲 열매와 단풍나무 수액 등 비(非)목재 임산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산림 전문가들은 “버섯, 산나물, 감, 대추, 밤 등 먹는 임산물, 일명 ‘숲푸드’는 자연산 무공해 식품인 데다 탄소 배출, 토양 오염 등도 줄여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며 “지역의 숲푸드를 잘 살리면 지역 경제도 좋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캐나다의 숲을 지키고 지역을 살리려 노력하는 일부 청년들은 캐나다 숲의 오랜 주인이었던 원주민 부족들과 함께 직접 숲으로 나가 버섯과 허브, 약초 등을 채취하고 이를 판매하는 지역 기반 사업체를 세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은 ‘야생 바구니(The Wild Basket)’라는 이니셔티브를 통해 지역과 땅을 연결하고 주민들과 인근 식당에 신선한 임산물을 공급해 주목받았다. 다만 최근 캐나다 숲 농가들은 기후변화 위기와 맞서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극한기후 속 산불 재해 위험성 등이 커졌기 때문이다. 홀 씨는 “모든 숲을 지금처럼 유지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메이플 시럽 산업의 미래와 다음 세대를 위해 필요한 숲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새로운 단풍나무를 심어 메이플 시럽을 생산하려면 최소 50년 이상이 걸린다”고 말했다. 최근 퀘벡 지역의 메이플 시럽 생산 농가들은 ‘숲이 없으면 시럽도 없다’ 캠페인을 시작했다. 메이플 시럽 패키지에 캠페인 문구가 새겨진 10만 개의 스티커를 붙여 국내외 메이플 시럽 소비자들에게도 숲의 중요성을 알리자는 취지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무덤은 땅속에 특별한 장식 없이 간소하게 마련돼야 합니다.” 21일(현지 시간) 88세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단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만 (무덤에) 남겨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교황청이 이날 밝혔다. 또 교황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바티칸 외부의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묻어 달라”고도 했다. 평소 청빈한 삶을 살아온 교황이 조용하고 검소한 장례를 강조하며 마지막까지도 낮은 자세로 임한 것이다. 남기고 싶은 말이 많았을 법하지만 유언은 12개 문장으로 끝났다.교황은 2022년 6월 29일 생전 거주지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작성한 유언에서 “지상에서의 삶의 황혼이 다가옴을 느끼며 영원한 삶에 대한 확고한 희망을 갖고, 매장 장소에 대한 제 마지막 소원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매장지를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으로 택한 데 대해 “평생 사제와 주교로 사목하는 동안 우리 주님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성모 마리아께 저 자신을 맡겨 왔다. 마지막 지상 여정이 이 고대의 마리아 성지에서 끝나길 바란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재임 동안에만 100차례 이상 이 성당을 방문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교황은 첨부된 도면을 언급하며 “바오로 경당과 스포르차 경당 사이의 측면 통로에 있는 틈새에 매장을 준비해 주시길 요청한다”며 세부 장소까지 지정했다. 또 “무덤 조성에 드는 비용은 한 후원자가 제공한 금액으로 충당한다”며 장례비도 직접 챙겼다. 마지막은 “제 인생 마지막을 장식한 고통을 세상의 평화와 민족 간의 형제애를 위해 주님께 바친다”는 기도로 맺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종식과 평화를 하느님께 빈 것이다. 교황청은 교황의 장례 미사가 26일 오전 10시(한국 시간 오후 5시) 성 베드로 광장에서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단 단장이 집전하는 가운데 열린다고 22일 밝혔다.“교황 잃은 우린 목자 없는 양”… ‘광장 바닥’서 마지막 인사[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슬픔에 잠긴 바티칸“세계가 불안할 때 위안-안정 줘”… “군림 않고 저택 손님 자처한 어른”유언대로 소박한 장례절차 진행… 3중관 아닌 장식없는 목관서 영면이르면 오늘부터 일반 조문 시작“교황은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옷을 입은 채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다가가셨죠.”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21일(현지 시간) 늦은 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만난 백발의 호주인 앤서니 보노모 씨는 생전 소탈했던 교황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교황의 선종 소식을 듣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급히 기차를 타고 온 페르낭도 모랄레스 드라크루즈 씨는 “교황은 ‘왕처럼 사는 다른 국가 원수들’ 같지 않았다. 고급 저택에서 손님임을 자처한 어른이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세계 곳곳에서 광장으로 모여든 신자와 순례자들은 “권력과 권위를 멀리한 교황의 낮은 자세가 그립다”고 입을 모았다. 사람들은 낮은 곳으로 임했던 교황의 뜻을 받들려는 듯 자정이 되도록 기도하고 명상하며 고요한 애도를 이어갔다.● “목자 없는 양처럼 멍하니 선 기분”바티칸에서 만난 가톨릭 신자들은 교황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날인 20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부활절 미사에서도 고인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모니카 씨는 “어제 부활절 미사 때 교황을 뵙고 ‘내가 정말 운이 좋다’며 기뻐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가실 줄 몰랐다”고 했다.교황청에 따르면 교황은 21일 오전 7시 35분 바티칸 자택에서 뇌졸중과 그에 따른 심부전으로 선종했다. 고인은 다발성 기관지 확장증, 동맥 고혈압, 제2형 당뇨병도 앓고 있었다. 교황은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미사에 참여하며 가급적 많은 이들과 함께했던 것이다.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교황이 꾸준히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심적으로 큰 안정감을 줬다는 평가도 나왔다. 호주인 톰 씨는 “세계가 불안에 시달리는 와중에 교황은 안정을 주고 위안이 됐다”고 했다.이날 저녁 바티칸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당에선 교황을 추모하는 미사가 열렸다. 바티칸 당국이 운영하는 매체인 바티칸뉴스에 따르면 미사를 주재한 로마 교구의 총대리 발도 레이나 추기경은 “목자 없는 양처럼 멍하니 서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장식 없는 소박한 관에 눕다교황청은 21일 오후 8시 교황이 머물던 바티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1시간에 걸쳐 입관식을 거행했다. 교황의 사망을 확인하고, 그를 관에 안치했다. 입관식에는 교황 주변에서 활동했던 사제들과 가족들이 참석했다. 이와 함께 교황의 사인과 유언을 공개했다. 교황의 비서 역할을 하는 궁내원장은 교황의 상징물 중 하나인 ‘어부의 반지’를 파기했다. 다음 교황에게는 새 반지가 주어진다.장례 절차는 생전 교황의 뜻에 따라 소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교황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간소화된 장례 규칙에 따라 교황은 전임 교황들처럼 편백나무, 납, 참나무로 된 3중관이 아니라 장식 없는 목관에서 영면에 들 예정이다.이날 교황청은 산타 마르타의 집 대문에 빨간 리본을 달아 묶고, 밀랍 도장을 찍어 봉인했다. 이는 교황 애도 기간의 시작을 상징하는 절차다. 교황청은 이르면 23일 오전 교황의 시신을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 일반인 조문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조문 풍경도 소박하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전엔 교황의 시신이 대성당 내부에 설치된 허리 높이의 단상 ‘카타팔케’ 위에 안치됐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뜻에 따라 성 베드로 광장 바닥에 관이 놓인 상태에서 조문을 받을 예정이다. 그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 당시 텅 빈 이 광장을 바라보며 특별 강복으로 위로를 건넸는데, 같은 자리에서 신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장례식은 26일 열리고,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들의 모임인 콘클라베는 교황 선종 2, 3주 뒤인 다음 달 중순경 열릴 것으로 보인다.바티칸=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캐나다 퀘벡주(州) 일대의 메이플 시럽 생산 농가들은 시럽 생산에서 더 나아가 메이플 시럽을 지역의 요리 및 문화 유산과 결합시킨 체험형 사업을 통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바로 퀘벡 지역의 독특한 전통 문화인 ‘슈거섁(설탕 오두막)’을 통해서다. 1850년대부터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설탕 오두막은 메이플 시럽 생산이 절정에 달하는 이른 봄, 온 가족이 눈 덮인 숲에서 종일 일하다가 저녁에 모여 함께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휴식을 취하던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도 퀘벡주의 단풍나무 숲 일대에는 100여 개의 설탕 오두막이 존재하는데, 대부분 단풍나무 수액 채취가 이뤄지는 3월에 집중적으로 운영된다. 이 시기에 설탕 오두막을 방문하면 갓 끓여낸 메이플 시럽을 눈 위에 붓고 나무 막대에 돌돌 말아 막대 사탕처럼 굳혀 먹는 ‘메이플 태피’를 경험할 수 있다. 메이플 시럽을 이용한 팬케이크나 크레이프 등 다양한 퀘벡 전통 요리도 제공된다. 설탕 오두막 옆 단풍나무 숲에서 방문객들은 직접 단풍나무 수액 채취 과정을 관찰하고 생산자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일부 설탕 오두막은 무쇠 솥에 단풍나무 수액을 붓고 장작을 피워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전통 방식을 시연하는가 하면, 단풍나무 숲 산책이나 마차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다 보니 이 시기 슈거섁에는 가족 단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퀘벡주는 2020년 메이플 시럽 생산 100주년을 기념한 데 이어 2021년 단풍나무 수액 채취 시즌을 문화유산법에 따라 퀘벡의 공식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또 메이플 시럽의 역사와 생산을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다뤄 지역의 숲 자원이 산업을 넘어 교육과 공유 유산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지역의 기술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메이플 시럽 생산 자격증도 딸 수 있다. 퀘벡주는 지난해 단풍나무를 퀘벡 문화와 정체성의 상징으로 공식화하기 위해 10월 셋째 주 일요일을 ‘국립 단풍나무의 날’로 선포하는 법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날은 단풍나무와 단풍 시럽 생산, 단풍나무 제품과 관련된 모든 것을 기념한다. 퀘벡의 문화, 사회, 요리, 역사에서 단풍나무 숲이 가지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무덤은 땅속에 특별한 장식 없이 간소하게 마련돼야 합니다.”21일(현지 시간) 88세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단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만 (무덤에) 남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교황청이 이날 밝혔다. 또 교황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바티칸 외부의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묻어달라”고도 했다. 평소 청빈한 삶을 살아온 교황이 조용하고 검소한 장례를 강조하며 마지막까지도 낮은 자세로 임한 것이다. 남기고 싶은 말이 많았을 법하지만 유언은 12개 문장으로 끝났다.교황은 2022년 6월 29일 생전 거주지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작성한 유언에서 “지상에서의 삶의 황혼이 다가옴을 느끼며 영원한 삶에 대한 확고한 희망을 갖고, 매장 장소에 대한 제 마지막 소원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매장지를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으로 택한 데 대해 “평생 사제와 주교로 사목하는 동안 우리 주님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성모 마리아께 제 자신을 맡겨왔다. 마지막 지상 여정이 이 고대의 마리아 성지에서 끝나길 바란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재임 동안에만 100차례 이상 이 성당을 방문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교황은 첨부된 도면을 언급하며 “바오로 경당과 스포르차 경당 사이의 측면 통로에 있는 틈새에 매장을 준비해 주시길 요청한다”며 세부 장소까지 지정했다. 또 “무덤 조성에 드는 비용은 한 후원자가 제공한 금액으로 충당한다”며 장례비도 직접 챙겼다. 마지막은 “제 인생 마지막을 장식한 고통을 세상의 평화와 민족 간의 형제애를 위해 주님께 바친다”는 기도로 맺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종식과 평화를 하느님께 빈 것이다. 교황청은 교황의 장례 미사가 26일 오전 10시(한국 시간 오후 5시) 성 베드로 광장에서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단 단장이 집전하는 가운데 열린다고 22일 밝혔다.“권력 멀리한 교황의 낮은 자세 그리워” 슬픔에 잠긴 바티칸“교황은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옷을 입은 채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다가가셨죠.”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21일(현지 시간) 늦은 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만난 백발의 호주인 앤서니 보노모 씨는 생전 소탈했던 교황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교황의 선종 소식을 듣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급히 기차를 타고 온 페르낭도 모랄레스 드라크루즈 씨는 “교황은 ‘왕처럼 사는 다른 국가 원수들’ 같지 않았다. 고급 저택에서 손님임을 자처한 어른이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세계 곳곳에서 광장으로 모여든 신자와 순례자들은 “권력과 권위를 멀리한 교황의 낮은 자세가 그립다”고 입을 모았다. 군림하는 정치 지도자들과 달리 군중 속으로 들어가 소리 없이 진정성 있는 선행을 실천했다는 것. 사람들은 낮은 곳으로 임했던 교황의 뜻을 받들려는 듯 자정이 되도록 기도하고 명상하며 고요한 애도를 이어갔다. 22일 낮에도 성 베드로 광장에는 엄숙한 표정으로 기도를 하는 신자들로 붐볐다.● “목자 없는 양처럼 멍하니 선 기분”바티칸에서 만난 가톨릭 신자들은 교황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날인 20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부활절 미사에서도 고인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모니카 씨는 “어제 부활절 미사 때 교황을 뵙고 ‘내가 정말 운이 좋다’며 기뻐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가실 줄 몰랐다”며 “너무 슬프다”고 했다.교황청에 따르면 교황은 21일 오전 7시 35분 바티칸 자택에서 뇌졸중과 그에 따른 심부전으로 선종했다. 고인은 다발성 기관지 확장증, 동맥 고혈압, 제2형 당뇨병도 앓고 있었다. 교황은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미사에 참여하며 가급적 많은 이들과 함께했던 것이다.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교황이 꾸준히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심적으로 큰 안정감을 줬다는 평가도 나왔다. 호주인 톰 씨는 “세계가 불안에 시달리는 와중에 교황은 안정을 주고 위안이 됐다”며 “부디 차기 교황도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이날 저녁 바티칸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당에선 교황을 추모하는 미사가 열렸다. 바티칸 당국이 운영하는 매체인 바티칸뉴스에 따르면 미사를 주재한 로마 교구의 총대리 발도 레이나 추기경은 “오늘 저녁 우리 교구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목자 없는 양처럼 멍하니 서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장식 없는 소박한 관에 눕다교황청은 21일 오후 8시 교황이 머물던 바티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1시간에 걸쳐 입관식을 거행했다. 교황의 사망을 확인하고, 그를 관에 안치했다. 입관식에는 교황 주변에서 활동했던 사제들과 가족들이 참석했다.이와 함께 교황의 사인과 유언을 공개했다. 교황의 비서 역할을 하는 궁내원장은 교황의 상징물 중 하나인 ‘어부의 반지’를 파기했다. 다음 교황에게는 새 반지가 주어진다.장례 절차는 생전 교황의 뜻에 따라 소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교황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간소화된 장례 규칙에 따라 교황은 전임 교황들처럼 편백나무, 납, 참나무로 된 3중관이 아닌 장식 없는 목관에서 영면에 들 예정이다.이날 교황청은 산타 마르타의 집 대문에 빨간 리본을 달아 묶고, 밀랍 도장을 찍어 봉인했다. 이는 교황 애도 기간의 시작을 상징하는 절차다. 교황청은 이르면 23일 오전 교황의 시신을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 일반인 조문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조문 풍경도 소박하게 바뀔 전망이다. 이전엔 교황의 시신이 대성당 내부에 설치된 허리 높이의 단상 ‘카타팔케’ 위에 안치됐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뜻에 따라 성 베드로 광장 바닥에 관이 놓여진 상태에서 조문을 받을 예정이다. 그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 당시 텅빈 이 광장을 바라보며 특별 강복으로 위로를 건넸는데, 같은 자리에서 신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장례식은 26일 열리고,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들의 모임인 콘클라베는 교황 선종 2, 3주 뒤인 다음달 중순경 열릴 것으로 보인다.바티칸=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21일(현지 시간) 정오, 부활절 다음 날로 이탈리아 법정 공휴일인 ‘라 파스퀘타’를 맞아 한산해진 바티칸 시국 성베드로 광장에 종소리가 88번 울렸다. 이날 오전 7시 35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나이를 의미하는 숫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버지의 집’으로 향했다는 부음이기도 했다. 전날 약 3만5000명의 신자가 모여 가톨릭 희년(25년마다 돌아오는 은총의 해) 부활절 미사를 보던 광장에는 신자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교황의 마지막 길을 애도하기 위해서다. BBC 등 주요 외신들은 교황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생전 고인의 낮은 자세와 가난한 이들을 배려하는 태도를 떠올렸다고 전했다. ● 대중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던 부활절에도 ‘평화’ 강조 교황은 선종 전날이며 부활절이었던 20일 미사에 약 20분간 참여했다. 이날 정오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2층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고 신도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후 부활절과 성탄절에만 특별히 하는 축복과 강론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로마와 온 세계에)’의 첫마디를 숨찬 목소리로 열었다.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절을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말이었다. 교황은 미사가 끝난 뒤에는 교황청 차량을 타고 성베드로 광장을 둘러보면서 신자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다. 부활절 미사가 그가 대중과 만난 마지막 시간이었다. 교황은 부활절 때 마지막으로 대중을 만난 자리에서 평화와 포용을 강조했다. 교황은 이날 인사말 뒤 디에고 라벨리 대주교가 대독한 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종교와 사상, 표현의 자유와 타인의 견해에 대한 존중 없이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가자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를 향해 “전쟁 당사자들이 전쟁을 즉시 멈추고 인질을 석방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굶주린 이들을 도와주길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또 “취약계층과 소외계층, 그리고 이민자들을 향한 경멸이 심각하다”라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교황이 마지막으로 접견한 인물은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이다. 교황청 등에 따르면 그는 20일 거처인 ‘카사산타마르타’에서 가톨릭 신자인 밴스 부통령과 몇 분간의 짧은 면담을 가졌다. 면담은 밴스 부통령의 18∼20일 사흘간의 로마 방문 일정 막판에 깜짝 성사된 일정으로 알려졌다. 교황청은 이날 만남에서 교황이 밴스 부통령과 “이민자, 난민, 수감자 등 어려운 인도적 상황에 대한 의견 교환을 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을 비판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밴스 부통령에게 다시 한번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 퇴원 뒤 한동안 다양한 활동 펼쳐 교황은 올해 2월 14일 폐렴으로 로마 제멜리 병원에서 38일간 입원했다. 큰 고비도 두 차례나 있었지만, 상태가 호전돼 지난달 23일 퇴원했다. 두 달간 요양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권유에도 신자들과 소통을 중시하며 평화 메시지를 내던 평소 활동을 재개했다. 거처에서 일부 업무도 처리하고 미사에도 나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교황은 이달 6일 퇴원 2주 만에 휠체어를 타고 코에 호흡용 튜브를 낀 모습으로 미사에 깜짝 등장하면서 활동 재개를 알렸다. 교황은 이날 “모두에게 좋은 일요일이 되길 바란다”라면서 메시지를 냈다. 부활절을 사흘 앞둔 ‘성 목요일(17일)’에는 이탈리아 로마의 한 교도소를 방문해 “여러분 곁에 있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예상을 깨고 부활절 미사에도 참여해 마지막까지 소외계층에 대한 포용과 전쟁 반대를 호소하고 세상을 떠났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임현석 기자 lhs@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가톨릭 사상 첫 남미 출신으로 ‘가난한 이들의 성자’로 불렸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 시간) 선종(善終)했다. 향년 88세. 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패럴 추기경은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오전 7시 35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라며 “그는 우리에게 복음의 가치를 충실히 하고, 용기를 갖고 보편적인 사랑을 실천하며 살도록 가르쳤다”고 발표했다. 패럴 추기경은 이어 “교황은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다”며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로서 보여준 모범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한다”라고 덧붙였다. 2013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위 12년 동안 청빈하고 소탈한 행보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교황은 올해 2월 14일 이탈리아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해 폐렴이 확인돼 “심각한 상황”이란 진단을 받았다. 젊은 시절 폐렴을 앓아 한쪽 폐 일부를 절제한 것으로 알려진 교황은 겨울이면 만성 호흡기 질환에 시달려 왔다. 한때 위중한 상태에 빠졌던 교황은 상태가 호전되며 지난달 23일 38일간의 입원을 마치고 퇴원했다. 이후 찰스 3세 영국 국왕을 접견하고 로마 시내 교도소를 방문하는 등 조금씩 활동을 재개했다. 선종 전날인 20일 부활절 대축일에도 성베드로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 부활절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발간된 자서전 ‘희망’에서 “장례 준비는 끝났다. 교황 장례 예식이 성대해 담당자와 상의해 간소화했다”며 “품위는 지키되, 다른 그리스도인들처럼 소박하게 치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장례 규정을 개정해 역대 교황들이 묻힌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이 아닌 로마 시내에 있는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안장될 예정이다. 교황의 선종에 따라 바티칸 애도 의식은 9일간 이어진다. 교황청은 21일 오후 8시경 교황 거처인 카사산타마르타 예배당에 마련된 관에 유해를 안치하며 장례 절차에 들어갔다. 일반인 조문은 23일부터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러시아가 부활절을 앞두고 일방적으로 선언한 우크라이나와의 ‘30시간 휴전’을 예고대로 종료했다. 이에 미국 국무부가 휴전안 연장을 촉구한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일 트루스소셜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이번 주 (휴전에) 합의하기를 바란다”고 밝히는 등 휴전 압박에 또한번 나섰다.러시아 국영매체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20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휴전 연장 등) 다른 명령은 없었다”며 “휴전은 오늘 밤 종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19일 오후 6시부터 21일 오전 0시까지 ‘부활절 휴전’을 선언했다.미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중재 중단’을 거론하는 등 대러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휴전 협상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금주 중 합의를 촉구하며 “양국은 (휴전) 이후 우리와 큰 사업을 시작해 큰돈을 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24일에 광물협정을 체결할 것이라고도 예고한 바 있다.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측이 30시간 휴전마저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휴전 선언 당일 러시아의 포격이 오히려 증가하는 등 러시아가 21일까지 약 3000회가량 휴전 약속을 위반했다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30일 전면 휴전’을 제안했지만 러시아로부터 아무 답변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진지를 444차례 공격하는 등 1000번 넘게 휴전을 위반했다고 반박했다. 로이터통신은 “휴전 기간에도 실질적인 교전 중지는 없었다”고 전했다.특히 러시아의 공세는 최근 강도 높게 이어지고 있는거으로 나타났다. 20일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전날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군이 장악했던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 지역의 99.5% 이상을 탈환했다고 보고했다. 양국의 최대 격전지인 쿠르스크에선 지난해 11월부터 북한군이 파병돼 러시아군과 함께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공세를 펼치고 있다.이런 가운데 미국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을 인정하는 내용의 종전안을 우크라이나와 유럽 주요국들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미국, 우크라이나, 프랑스, 독일, 영국 등 5개국 대표단 회의에서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이런 구상을 담은 기밀문서를 공유했다. 미국은 이번 주 영국 런던에서 열릴 2차 회의 때 이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입장을 기다리는 것으로 알려졌다.미국이 제시한 종전안에는 우크라이나가 요구해 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은 제외됐다. 키스 켈로그 미 백악관 우크라이나 담당 특사도 19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협상 테이블 위에 없다”고 못 박았다. 유럽 최대 원전인 우크라이나 동부의 자포리자 원전 주변을 미국이 통제하는 중립 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은 미국의 종전안에 포함됐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러시아는 (모스크바 현지 시간으로) 오늘 18시부터 21일 0시까지 부활절 휴전을 선언한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 크렘린궁에서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과 면담 중 ‘부활절 30시간 휴전’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및 종전 중재를 중단할 수 있다고 시사한 지 하루 만이다.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30시간이 아닌 30일 휴전을 해야 한다”고 역제안을 하며 맞섰다. 30시간 휴전은 사실상 보여주기식 조치일 뿐 실질적이면서도 장기적인 휴전으로 이어지기 힘들다는 취지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의 부활절 휴전 선언 뒤에도 양국은 서로 상대방이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휴전에 필요한 실효성 있는 조치 역시 딱히 취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루비오 ‘동시 압박’ 하루 뒤 ‘휴전’당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18일 미국의 중재로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는 ‘30일간 부분 휴전’에 원칙적으로 동의한 바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서방의 대(對)러 제재 해제를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며 이 같은 휴전안은 사실상 이행되지 않았다.이처럼 미국의 중재에도 공격을 이어가며 버티던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루비오 장관의 경고성 발언이 나온 하루 뒤에 휴전을 선포한 건 일단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이달 30일 ‘취임 100일’을 맞는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에 수긍하는 태도를 보여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트럼프 대통령은 18일 백악관에서 취재진에 “두 당사국(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 한쪽이 상황을 매우 어렵게 만들면 우리는 ‘당신은 바보다. 우리는 (더 이상의 중재 노력을 안 하고) 넘기겠다(take a pass)’고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루비오 장관도 프랑스 파리에서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유럽 주요국 장관들과 회동한 뒤 “며칠 안에 분명한 진전이 보이지 않으면 미국은 협상에서 손을 뗄 것”이라고 압박했다.실제로 미국이 중재에서 손을 떼면 서방의 대러 제재 해제 움직임도 중단되게 된다. 그만큼 러시아로서도 일단 미국을 달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타티야나 스타노바야 프랑스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 선임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매우 짧은 시간의 휴전이라면 (푸틴에겐) 잃을 게 없고, 자신이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데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활절에도 러 최전방서 59회 포격”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발표한 휴전 개시일인 19일 오후 ‘X’에 올린 게시물에서 “완전한 휴전이 유지된다면, 우크라이나는 휴전을 부활절인 20일 이후로 연장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부활절 아침까지 러시아는 최전방에서 59회의 포격을 퍼부었고, 다섯 차례 공격을 시도했다”며 러시아의 휴전 선언에 진정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도 20일 우크라이나군이 도네츠크주를 공격했다고 당국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에 이번 휴전 선언이 러시아가 2023년 1월 일방적으로 러시아정교회 크리스마스를 맞아 36시간의 휴전을 제안했지만 흐지부지됐던 상황처럼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다만, 일각에선 러시아의 30시간 휴전 선포가 휴전 논의에 다시 시동을 걸 것이란 전망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도 취임 100일을 앞두고 휴전 성과를 내려 조바심을 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전 종전 협상을 밀어붙이기 위해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영유권을 인정해 주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8일 보도했다. 한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부활절을 맞아 19일 아랍에미리트(UAE) 중재로 전쟁포로를 246명씩 교환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는 포로 31명을, 러시아는 포로 15명을 각각 추가로 받았다. 이날 양측이 교환한 포로 규모는 538명으로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최대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얼마 전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프랑스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한국 여성들의 ‘4B 운동’이 화제가 됐다. 이 운동은 ‘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성관계’, 4비(非)를 의미한다. 해외에서도 4B 운동은 꽤 알려져 있다. 특히 유럽에선 신기하고 놀라운 해외 토픽으로 적잖은 화제가 됐었다. 직장 내 여성 차별, 저출산 문제 등도 대화 주제에 올랐다. 최근 독일의 과학 전문 유튜브 채널 ‘쿠어츠게자흐트(Kurzgesagt)’는 ‘한국은 왜 망해가나’란 콘텐츠로 큰 주목을 받았다. 구독자가 2390만여 명에 이르는 이 채널에선 구체적 통계를 들며 한국 저출산의 심각성을 꼬집었다. 노동 인구, 병력 자원이 줄어 한국이 망하고 있단 내용이었다. 결국 한류의 중심인 청년들도 줄어 “한국 문화의 영혼이 사라질 것”이란 진단까지 내놨다. 한 유튜버의 분석일 뿐이지만 이 영상에는 6만9000건에 이르는 댓글이 달렸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사실과 별개로 ‘망해 가는 한국’의 이미지가 굳어질까 우려된다.행복 지키는 북유럽의 육아 제도 정도 차이만 있지, 저출산은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저출산 1위’를 벗어날 기미가 전혀 없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암울한 현실과 대비되는 뉴스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올해 세계 행복 국가 조사에서 핀란드(1위), 덴마크(2위), 스웨덴(4위), 노르웨이(7위) 등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는 소식이다. 공교롭게도 북유럽인들이 행복한 비결 중 하나로 ‘우수한 육아 지원 제도’가 꼽힌다. 2018년 에르나 솔베르그 당시 노르웨이 총리를 인터뷰했을 때도 같은 답을 들었다. 그는 “행복이란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이라며 “일과 가정이 균형을 이룰 때 사람들은 자기가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고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가족 친화 정책이란 얘기였다. 솔베르그 총리가 특히 강조했던 육아 지원 제도는 근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유연 근무제’였다. 흔히 노르웨이의 부모들은 하교하는 아이들을 데리러 오후 4시쯤 퇴근해 아이들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다시 컴퓨터를 연다고 했다.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필요로 할 때 당장 달려갈 수 있도록 근무를 조정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주요 노동조합들이 파업을 거의 매주 벌이고 학교가 수시로 문을 닫을 때마다 부모들은 재택근무나 휴가로 대응했다. 일하는 부모들을 도와 저출산을 해결하려면 ‘근무 혁명’이 필수적인 것이다.韓 대선 공약은 재정 지원 중심 그런데도 한국의 대통령 선거 후보들 사이에서 유연 근무제 이야기는 잘 들리질 않는다. 아동수당, 육아휴직 급여 등 재정적 지원을 늘리는 주장이 주를 이룬다. 금전 지원도 육아에 도움은 된다. 하지만 매일 출퇴근과 육아에 허덕이는 부모들은 근무 방식의 혁명적 변화를 더 원한다. 유연 근무제로 노동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기업들의 고민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이미 7년 전 만났던 노르웨이 총리마저도 ‘유연 근무제로 오히려 노동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자부했다. 기업과 정부, 노조가 생산성 하락만 걱정하기보다 새로운 시도로 생산성을 높일 방법을 연구하고 대화를 서둘러야 할 때다. 저출산 대책이 핵심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채 계속 겉돌기만 한다면 독일 유튜버의 지적처럼 한국은 경제, 안보, 문화 등 다중적인 소멸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K팝과 K드라마에 열광하던 유럽의 팬들은 이제 한국을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다.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북한과 러시아가 지난해 6월 양국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두만강 자동차 교량’ 건설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북한이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에 이어 우크라이나 본토에도 파병해 러시아를 지원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따라 북-러 간 군사 및 경제 협력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분단을 넘어’는 올 2, 3월 수집한 위성사진을 토대로 북-러를 잇는 두만강 자동차 다리 건설 준비 작업이 진척되고 있다고 밝혔다. 올 2월 27일 촬영된 위성사진에선 러시아 쪽 다리 건설 현장 인근의 나무와 관목들이 제거되고 일부 지형이 평탄해졌다. 북한 쪽에선 다리 건설 현장에서 서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지점에 소형 레미콘 공장으로 보이는 시설물이 추가됐다. 얼어붙은 두만강 위로 러시아 쪽에서 시작되는 164m 길이의 임시 교량이 설치된 사실도 확인됐다. 공사 인력과 장비를 나르기 위한 임시 시설로 추정된다.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정상회담에서 두만강을 가로질러 북-러를 잇는 자동차 다리 건설에 합의했다. 다리가 완성되면 양국 간 경제협력이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쿠르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공격을 지원했던 북한 파병군이 우크라이나 본토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산하 허위정보대응센터의 안드리 코발렌코 센터장은 16일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에서의 전쟁에 북한군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러시아는 생산시설에서 일할 북한의 여성과 남성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고 썼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북한과 러시아가 지난해 6월 양국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두만강 자동차 교량’ 건설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북한이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에 이어 우크라이나 본토에도 파병해 러시아를 지원할 거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따라 북러 간 군사 및 경제 협력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분단을 넘어’는 올 2, 3월 수집한 위성사진을 토대로 북러를 잇는 두만강 자동차 다리 건설 준비 작업이 진척되고 있다고 밝혔다. 올 2월 27일 촬영된 위성사진에선 러시아 쪽 다리 건설 현장 인근의 나무와 관목들이 제거되고 일부 지형이 평탄해졌다. 북한 쪽에선 다리 건설 현장에서 서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지점에 소형 레미콘 공장으로 보이는 시설물이 추가됐다. 얼어붙은 두만강 위로 러시아 쪽에서 시작되는 164m 길이의 임시 교량이 설치된 사실도 확인됐다. 공사 인력과 장비를 나르기 위한 임시 시설로 추정된다.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정상회담에서 두만강을 가로질러 북러를 잇는 자동차 다리 건설에 합의했다. 다리가 완성되면 양국 간 경제협력이 더 가속화 될 전망이다.한편, 러시아 쿠르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공격을 지원했던 북한 파병군이 우크라이나 본토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산하 허위정보대응센터의 안드리 코발렌코 센터장은 16일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에서의 전쟁에 북한군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러시아는 생산시설에서 일할 북한의 여성과 남성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고 썼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