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해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과 무역 관련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도 통화하겠다며 ‘중재 외교’를 재개할 의지를 드러냈다. 16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휴전 협상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움직일 카드를 제시할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나는 월요일(19일) 오전 10시(한국 시간 오후 10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통화의 주제는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5000명 이상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군인을 죽이는 ‘대학살’을 끝내는 일과 무역”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또 “그런 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여러 회원국과도 대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일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전화 통화가 이뤄지면 올 1월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뒤 두 정상 간의 3번째 통화가 된다. 두 정상은 2월 12일 첫 통화를 가졌고, 3월 18일 두 번째 통화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30일간 에너지 인프라 공격 중단’을 협의했다. 이번 통화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협상단의 16일 이스탄불 회담이 진척을 보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직접 대화를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이스탄불 회담이 열리기 전에도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직접 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무역을 논의한다고 예고한 만큼 에너지 등 대러 경제 제재를 완화하거나 강화할 카드를 거론하며 휴전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가운데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17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통화를 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적인 휴전과 폭력 행위의 종식을 요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고 미 국무부가 전했다. 한편 18일 즉위 미사를 치른 새 교황 레오 14세도 전쟁 중재에 적극적 모습을 보여 바티칸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휴전 협상이 열릴지 주목된다. 레오 14세 교황은 16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직접 회담이 큰 성과 없이 종료되자 바티칸을 양측의 휴전 협상 장소로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안사통신에 따르면 교황청의 최고 외교관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이날 “레오 14세 교황은 양측의 직접 만남을 위해 교황청과 바티칸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루비오 장관 역시 바티칸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편하게 올 수 있는 장소라면서 즉위 미사에서 대화가 촉진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평화가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 교회가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의 즉위 미사가 18일 오전(현지 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공식 거행됐다. J D 밴스 미국 부통령 등 세계 각국 주요 인사를 포함해 약 25만 명이 모여든 가운데, 교황은 “지금은 사랑을 위한 때”라며 세계 평화와 분쟁 종식을 촉구했다.바티칸뉴스 등에 따르면 레오 14세는 공식 미사에 앞서 교황 전용 의전 차량인 ‘포프모빌’을 타고 광장에 나타났다. 광장에 모인 인파는 “비바 일 파파(Viva il Papa·교황 만세)”를 외쳤으며, 교황은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로이터통신은 “교황이 포프모빌을 두 번 멈춰 세운 뒤 아기 3명에게 축복을 내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레오 14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 도착한 뒤 중앙 제대 아래의 성 베드로 무덤에 경배를 올리며 미사를 시작했다. 추기경들을 따라 성 베드로 광장에 마련된 야외 제단에 올라 ‘팔리움’을 착용했다. 팔리움은 어깨에 걸치는 흰색 양털 띠로, 붉은 십자 문양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를 뜻한다. 이어 교황의 사도적 임무를 상징하는 ‘어부의 반지’도 착용했다. 예수가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레오 14세는 결연한 표정으로 의식을 치르고 두 손 모아 기도한 뒤 환한 미소를 지었다. 교황은 이날 미사 강론에서 “그리스도인이 인류의 화합을 위한 누룩이 되는 교회를 세우자”며 “불화와 증오, 폭력, 편견 등으로 인한 두려움, 지구 자원을 착취하고 가장 가난한 이들을 소외시키는 경제 논리가 만든 상처를 우리는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에 애도를 표하며 “아무런 공로 없이 선출됐지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형제로서 여러분에게 다가가겠다”고 했다. 교황은 또 “모두 함께 걸어야 한다. 작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지 말고, 세상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지도 말자”며 “모든 민족의 사회·종교적 문화 가치를 존중하며 서로 사랑하자”고 당부했다. 미사 마지막 삼종 기도에서도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희생자들,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날 즉위 미사에는 밴스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등과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동생인 에드워드 왕자 등이 참석했다. 레오 14세의 주요 사목지였던 페루에선 디나 볼루아르테 대통령이 왔다. 미사 직전 밴스 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끄는 교황 즉위 경축 사절단이 미사에 참석했다. 염수정 추기경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무국장 송영민 신부도 참석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휴전 협상에 불참할 뜻을 밝혔다. 이로써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을 위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3자 정상회담’은 불발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실무팀이 3년 만에 ‘대면 협상’에 나서는 상황이지만 휴전을 위한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많다. 크렘린궁은 14일 푸틴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보좌관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이스탄불 협상에 파견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푸틴 대통령 이름은 협상단 명단에 없었다. 푸틴 대통령이 참석하면 성사될 것으로 예상됐던 젤렌스키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과의 3자 정상회담 역시 자연스럽게 물 건너갔다. 메딘스키 보좌관은 2022년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 뒤 이스탄불에서 열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협상에서도 러시아 대표단 단장을 맡았다. 푸틴 대통령이 그를 다시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이번 협상이 3년 전 진행됐던 협상의 ‘재개’란 의미를 부각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 협상단에는 미하일 갈루진 외교차관, 알렉산드르 포민 국방차관, 이고리 코스튜코프 군사정보국(GRU) 국장도 대표단에 포함됐다. 푸틴 대통령이 긴 침묵 끝에 회담 전날 밤인 14일 오후 11시경에 대표단 명단을 공개한 점에 대해 전직 러시아 외교관 보리스 본다레프는 러시아 독립언론 모스크바타임스에 “동맹국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막판에 결정을 바꿀 수 있는 의도적인 전술”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회담 시기를 두고도 이견을 보이며 기싸움을 하는 분위기다. 러시아 언론들은 회담일을 15일로 보도했지만, 우크라이나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했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바람’을 맞은 꼴이 됐지만 일단 튀르키예로 출국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우크린포름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15일 튀르키예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두 번째 중동 순방국인 카타르의 도하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회담에서) 무언가 일어난다면 16일 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사진)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15일 정상회담 참석을 압박한 데 대해 러시아가 “회담 대표단 발표는 나중에 하겠다”며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이 안 오면 러시아 측을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유럽도 대(對)러시아 제재를 언급하며 압박에 동참했다.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3일 브리핑에서 이틀 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협상에서 누가 러시아를 대표하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대표를 발표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할 때 즉시 발표할 것”이라고 답했다. 앞서 11일 푸틴 대통령은 15일 이스탄불에서 우크라이나와 직접 대화할 것을 제안했다.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역제안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참석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를 순방 중이라 가까운 이스탄불로 날아가 3개국 정상회담에 참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다만, 크렘린궁이 이날 모호한 태도를 보인 만큼 3개국 정상회담이 열리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동안 푸틴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국가 정상으로 인정하지 않은 데다 양측의 이견도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지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3일 정상 간 회동이 성사되지 않으면 아예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자문위원은 이날 현지 방송에 출연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주 이스탄불에서 푸틴 대통령을 제외한 다른 러시아 관료들과는 회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키이우인디펜던트가 전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압박에 동참했다. 이날 저녁 TF1 방송에 출연해 러시아가 끝내 30일간 휴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앞으로 며칠 내로 미국과 협조해 추가 제재를 가할 것”이라며 대러 금융·석유·가스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사진)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참석하길 바란다고 12일 밝혔다. 전날 그는 우크라이나에 직접 대화를 제안한 푸틴을 향해 15일 튀르키예에서 정상회담을 열자고 역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두 정상의 만남을 환영하며 자신도 참여할 수 있다고 밝히자 젤렌스키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3자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 트럼프 대통령을 지렛대 삼아 자신의 정상회담 제안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푸틴 대통령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젤렌스키 대통령은 12일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튀르키예를 방문할 기회를 갖길 바란다”며 우크라이나, 러시아, 미국의 3자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가 도움이 되겠다 싶으면 (튀르키예로) 날아가겠다”고 밝힌 뒤 곧바로 3자 회담 카드를 제시한 것. 마침 트럼프 대통령은 13일부터 나흘 일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3개국을 순방 중이다. 인근 국가인 튀르키예로 쉽게 향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일각에선 젤렌스키가 트럼프를 앞세워 푸틴 대통령을 향한 외교적 압박을 끌어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대선이 연기된 사실을 내세워 젤렌스키 대통령을 정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직접 대화를 제안하면서도 정상회담을 거론하지 않은 건 이런 배경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두 정상이 만나면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기존 입장을 철회하는 것이 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을 튀르키예와 논의하면서도 푸틴 대통령의 참석 여부는 언급하지 않았다.한편, 8일 새 교황에 선출된 레오 14세가 취임 직후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여하는 행보를 보여 주목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레오 14세 교황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러시아에 납치된 우크라이나 아동 문제와 서방이 지지하는 30일 휴전에 대해 논의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2일 새 교황과의 첫 대화가 “매우 따뜻하고 본질적이었다”며 “우리는 우리나라의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와 수감자 석방의 필요성에 대한 그의 말을 깊이 존중한다”고 말했다. 교황청은 두 사람이 통화를 한 사실은 확인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FT는 “러시아에 중립적이었던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과 다른 행보”라고 평가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트럼프의 어머니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스코틀랜드에서 유명한 턴베리 골프장도 소유하고 있다.”2022년 리즈 트러스 총리 내각에서 재무장관을 맡았던 콰지 콰르텡은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10일자 기고에서 “트럼프의 영국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고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뜬금없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어머니와 영국의 관계를 부각시킨 것.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8일(현지 시간) 영국과의 첫 무역 합의를 발표하자 나온 반응이다. 영국 정계는 이번 미국과 영국의 무역 합의를 큰 성과로 추켜세우며 흥분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행정부가 초고율 관세로 전 세계 국가들을 전방위적으로 공격하던 와중에 영국이 합의를 이뤄낸 ‘1호 국가’가 됐기 때문.영국 내에서도 합의에 대한 평가가 갈리긴 한다. 하지만 영국이 초강대국의 압박에 따른 불확실성을 신속하게 완화한 성과를 냈다는 게 중론이다. 해외 언론들은 영국이 까다롭던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한 비결에 주목하고 있다. ● “인질 협상에 가깝다” 비판도합의 내용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영국산 자동차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연간 10만 대에 한해 기존 25%에서 10%로 낮추기로 했다. 10%의 상호관세는 유지되지만 관세율을 낮춘 건 미국 수출이 중요한 자동차 업계엔 희소식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영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도 조정할 방침이다. 대신 영국은 미국에 에탄올, 소고기, 농산물, 기계류 등의 시장을 개방하기로 했다.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이 결과에 대해 “환상적이고 역사적”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협상은 장기적으로 양측이 각자 이득이 되길 바라며 주고받는 ‘인질 협상’에 가깝다”며 “트럼프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고 그 대가를 지불하고 나면 손가락 몇 개가 잘리고 아마도 큰 충격에 빠질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위스키, 연어, 자동차 등 모든 대미 수출품에 대한 관세는 10%로 유지된 점이 한계로 꼽힌다. 영국 영화 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외국 영화에 대한 관세 위협이 여전한 점도 문제다. 의약품에 대한 관세도 예상된다.● 숨은 전략가들의 ‘물밑 작전’시작이 미미하긴 하지만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도 있다. 협상에 성공한 비결을 두고 분석이 분분하다. 로이터통신은 “두 나라가 비교적 균형 잡힌 무역을 하고 있고, 영국이 다른 나라들처럼 관세로 (미국에) 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트럼프와 관세를 낮추는 첫 번째 협상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로이터통신은 스타머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 아첨한 점도 주효했다고 봤다. 올 2월 스타머 총리가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두 번째 국빈 방문을 요청하는 왕실의 초대장을 보낸 점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 집무실로 전화를 걸어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고 한다.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숨은 전략가들의 ‘물밑 작전’에 주목했다. 비밀 자문 회사 해클루이트의 전 대표인 바룬 찬드라 총리 고문이 숨은 주역으로 꼽힌다. 그는 하워드 루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는 영국 정부에서 공식적인 직책을 맡고 있지 않은 ‘비공식 라인’이다. 숨어 있던 40세의 그가 스타머 총리의 다우닝가에서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 했음을 잘 보여준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이 매체는 “그는 노동당 정부는 거의 따라올 수 없는 기업 인맥을 자랑한다”고 소개했다.피터 맨델슨 주미 영국 대사 역시 토니 블레어 내각 때부터 갈고 닦은 유창한 언변과 외교로 기여 했다는 진단도 눈에 띈다. 폴리티코는 “그는 기업인들에게 미국에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 개인적으로 물었고, 호화로운 관저를 최대한 활용해 백악관 출입기자단에 세 차례의 파티를 열었다”고 전했다. ● ‘브렉시트’ 덕분?이번 합의 성공의 요인으로 돌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소환돼 주목을 끌었다. 2020년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EU와의 교역 감소를 우려해 미국과 일찍이 무역 합의를 서둘러 왔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워낙 일찍이 협상 진도가 나갔던 덕에 미국으로서도 영국과 무역 성과를 내기가 편했던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로 여러 회원국의 이해관계가 얽힌 EU의 틀을 떠난 점도 주효했다는 주장도 있다. 영국이 독자적으로 가볍게 협상했기 때문에 빠른 합의를 이룰 수 있었다는 얘기다. 콰르텡 전 재무장관은 텔레그래프 기고에서 “영국이 (브렉시트로) 무역 정책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았기 때문에 협상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EU가 우리가 한 만큼 유리한 합의를 이룰 가능성은 낮고 오히려 더 나쁜 합의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앞으로가 문제다. 지금까지는 손쉽게 협의를 이뤘지만, 더 높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언론 액시오스는 “영국과의 이번 협정은 ‘손쉬운 목표’였다”며 “다음 협상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사진)이 “15일 튀르키예에서 푸틴을 직접 기다리겠다”고 11일 밝혔다. 앞서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직접 대화를 제안한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에 응할 것을 압박하자, 정상회담을 역제안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압박으로 양국이 대화 공세를 벌이는 가운데, 휴전 여부조차 아직 합의되지 않아 종전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X에 “나는 목요일(15일) 튀르키예에서 푸틴을 기다리겠다. 직접”이라며 “이번에는 푸틴이 왜 못 오는지 핑계를 찾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휴전을 기다리고 있다”며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휴전, 외교에 필요한 기반을 제공할 만큼 충분히 오래 지속되는 휴전은 평화를 크게 앞당길 수 있다”고 했다. 본격적인 종전협상에 앞서 휴전이 선행돼야 한다는 자국과 유럽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보다 앞서 같은 날 TV 생중계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당국에 15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지체 없이 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푸틴은 “이번 회담에서 새로운 휴전에 합의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우크라이나는 즉시 이에 동의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오전까지는 무조건적인 휴전이 이행돼야 러시아와 직접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 재개를 종용하자 일단 푸틴 대통령의 제안에 응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에 참여할지는 불투명하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X에 젤렌스키 대통령의 글을 공유하며 “진정한 지도자는 이렇게 행동한다. 그 누구나, 무엇 뒤에도 숨지 않는다”며 “러시아 측이 그런 용기의 한 조각이라도 갖고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썼다. 만약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스탄불에서 15일 만나면 2019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분쟁을 중재하기 위해 독일, 프랑스 정상과 만난 이후 5년 5개월 만에 대면하게 된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말의 무장을 해제합시다. 그러면 세상의 무장 해제를 도울 수 있습니다.”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가 12일(현지 시간) 바티칸의 바오로 6세 홀에서 언론인들을 만나 “모든 편견과 분노, 광신주의, 증오 등 말의 무장을 해제하자”라며 이같이 말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8일 선출된 이후 이날 처음 기자회견을 열었다. 10분간 연설한 그는 단상 아래로 내려가 언론인들과 악수를 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담소도 나눴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평화를 지키는 소통 방식’을 강조했다.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공격적인 언어를 쓰지 않고, 경쟁적인 문화를 따르지 않아야 한다”며 “진실 추구와 사랑을 분리하지 않는 의사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언론의 보도 역시 인류애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교황은 이어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며 “우리는 말과 이미지의 전쟁에 ‘아니요’라고 말해야 한다. 전쟁이란 패러다임을 거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날에도 첫 부활 삼종기도를 집전하면서 “더 이상의 전쟁은 안 된다”며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등에서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이날 레오 14세 교황은 진실을 취재하고 보도하다가 투옥된 언론인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교황은 “그들의 고통은 국가와 국제사회의 양심에 도전하며, 표현의 자유와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세상에 일깨워준다”며 “개인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만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전 세계의 불평등과 빈곤이 주목을 받도록 언론이 최전선에 남아 줄 것도 부탁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대한 당부도 나왔다. 교황은 “AI의 막대한 잠재력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사용돼 모든 인류에게 이로울 수 있어야 한다”며 책임과 분별력을 요구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교회가) 이 세상의 어두운 밤을 밝힐 수 있길.” 8일(현지 시간)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가 전임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교황은 9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추기경 대상으로 집전한 첫 미사와 다음 날 시노드홀에서 추기경들을 만난 자리에서 ‘교회의 충실한 관리자로서 평범한 사람들 편에 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시노드홀에선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소중한 유산을 이어받자”며 1960년대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단행된 주요 교회 개혁의 의지를 이어갈 것을 당부했다. 교회가 현대 사회의 문제와 고통에 응답해야 한다는 선언 등을 일컫는다. 교황은 자신을 “하느님과 형제들을 섬기는 겸손한 종일 뿐”이라고도 했다. 레오 14세를 교황명으로 택한 건 “레오 13세 교황을 계승한다는 뜻”이란 점도 분명히 했다. 레오 13세는 1891년 가톨릭교회 사상 최초로 ‘노동헌장’ 회칙을 반포해 현대 가톨릭 사회교리의 초석을 놓은 교황으로 평가받는다. 교황은 인공지능(AI)을 인류가 마주한 주요 숙제로도 지목했다. 그는 “오늘날 교회는 또 다른 산업혁명, 즉 AI의 발전에 직면했다”며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 노동을 보호하는 데 있어 새로운 도전을 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일엔 교황 선출 이후 처음으로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서 주일 기도를 집전하고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등 전 세계에서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은 “제3차 세계대전이 조각조각 벌어지고 있다”면서 “더 이상의 전쟁은 안 된다”고 했다.한편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사진)은 9일 바티칸 집무실에서 콘클라베에 참여한 경험을 공개했다. 그는 “영화 ‘콘클라베’ 같은 야합은 없었다”며 “선출 과정이 정치적 투쟁처럼 묘사되나, 실제로는 굉장히 형제적이고 아름다웠다”고 전했다. 유 추기경은 “교황과 업무 회의로 월 2회 이상 꾸준히 만나 왔다”며 “과거 방한했던 경험이 ‘좋았다’고 했다”고도 말했다. 레오 14세는 2002∼2010년 네 차례 한국을 방문했으며,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참석을 위해 다시 한국을 찾는다. 유 추기경은 콘클라베에서 교황이 선출되자 “모두가 일어나 박수치고 야단이 났다”고 전했다. 레오 14세가 성 베드로 대성전 ‘강복의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추기경들의 밝은 표정에 대해선 “(성 베드로 광장이) 휴대전화로 찍고 싶을 정도로 축제 분위기여서 (추기경들도) 신이 났다”고 설명했다. 레오 14세 교황의 즉위 미사는 18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교회가) 이 세상의 어두운 밤을 밝힐 수 있길 (바란다).”새 교황 레오 14세는 9일(현지시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추기경들을 대상으로 집전한 첫 미사에서 이같은 메시지를 전했다.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레오 14세는 ‘교회의 충실한 관리자로서 평범한 사람들 편에 서겠다’며 이 같이 말했다.이튿날 시노드홀에서 추기경들과 만난 새 교황은 자신을 “하느님과 형제들을 섬기는 겸손한 종일 뿐”이라고 표현하면서 교황이라는 직책이 권위가 아닌 봉사의 자리라고 강조했다. 전임 교황 프란치스코의 개혁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소중한 유산을 이어받자”며 추기경들에게 1960년대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단행된 주요 교회 개혁을 이어갈 것을 당부했다.‘레오 14세’라는 명칭을 선택한 이유에 관해서는 “레오 13세 교황을 계승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레오 13세는 1891년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로 ‘노동헌장’ 회칙을 반포해 현대 가톨릭 사회교리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인공지능(AI)을 인류가 직면한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지목하기도 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오늘날 교회는 또 다른 산업혁명, 즉 AI의 발전에 직면했다”며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 노동을 보호하는 데 있어 새로운 도전을 야기하고 있다”고 했다.앞서 7, 8일(현지 시간) 이틀에 걸쳐 진행된 콘클라베에 참여한 유흥식 추기경(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은 9일 바티칸 집무실에서 국내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영화 ‘콘클라베’ 같은 야합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콘클라베에 참여한 한국인 추기경은 그가 유일하다. 그는 “영화에서는 교황 선출 과정이 대단한 정치적 투쟁처럼 묘사되나 실제로는 굉장히 형제적이고 아름다웠다”고 했다. 또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 다른 추기경들이 보지 말라고 하더라”고 했다.유 추기경은 새 교황 레오 14세가 한국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유 추기경은 “레오 14세와 업무 회의로 월 2회 이상 꾸준히 만나 친한 사이인데, 과거 한국을 찾았던 경험이 ‘좋았다’고 언급했다”고 했다. 레오 14세는 2002, 2005, 2008, 2010년에 걸쳐 한국을 네 차례 방문했다. 2027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WYD) 참석을 위해 방한할 예정이다. 유 추기경은 지난 달 21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이후 거의 매일 진행된 추기경단 회의에서 추기경 별로 5분의 발언 시간이 주어졌다고 했다. 그는 “5분 발언을 통해 저마다 마음 속에 어떤 사람이 (새 교황이) 됐으면 한다는 생각을 품게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콘클라베 이틀째 레오 14세가 선출되자 “모두가 일어나 박수치고 야단이 났다”고 전했다.레오 14세가 성 베드로 대성전 ‘강복의 발코니’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추기경들의 밝은 표정도 화제가 됐다. 유 추기경은 “휴대전화가 있었으면 그 장면을 찍고 싶을 정도로 (성 베드로 광장이) 축제 분위기였다. 그 모습을 보니 모두 신이 났다”고 했다. 한편 레오 14세 교황의 즉위 미사는 오는 18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출신 교황이 나왔다.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 둘째 날인 8일 오후(현지 시간) 14억 가톨릭 신자를 이끄는 제267대 교황에 미국의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 추기경(69)이 선출됐다. 미국 출신 교황은 가톨릭 역사상 처음이다. 교황명은 ‘레오 14세’. 교회법에 따라 새 교황의 득표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 출신으로 알제리 대주교를 맡고 있는 장폴 베스코 추기경은 9일 프랑스 르피가로에 레오 14세가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었다”고 전했다. 이런 결과에는 세계 각지의 분쟁 속에서 교황이 맡을 역할에 대한 기대가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염원을 의식한 듯 교황 레오 14세는 선출 직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의 ‘강복의 발코니’에 나와 손을 흔들며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길 바랍니다(La pace sia con tutti voi). 이것은 무기를 내려놓은 평화,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서로서로 도와서 대화와 만남으로 다리를 건설하고 모두 하나가 되어 언제나 평화를 누리는 백성이 됩시다”라고 말했다. 레오 14세는 이날 교황의 전통 복장인 진홍색 어깨 망토(모제타)를 걸쳤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선출 당시 너무 화려하다며 거절했던 옷이다. AP통신은 레오 14세가 가톨릭의 전통 노선으로 어느 정도 회귀할 것임을 암시한다고 논평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노선을 따르면서도 전통을 중시하는 ‘온건한 중도파’로 분류된다. 9일(현지 시간)에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교황으로서의 첫 미사를 집전했다. 흰 제의를 입은 그는 모국어인 영어로 가톨릭 신앙 전파를 위한 추기경단의 도움을 요청했다. 1955년 9월 14일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레오 14세는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출신으로 1982년 사제품을 받았다. 1985년부터 20여 년간 페루 빈민가에서 사목 활동을 해왔다. 미국 출신이지만 귀화해 페루 국적도 갖고 있다. 가난한 이주민을 위해 헌신한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과 닮았다는 평가다. 2023년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 때 추기경에 서임됐고, 이후 전 세계 주교 인사를 총괄하는 교황청 주교부 장관을 지냈다. 한편 레오 14세는 2027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WYD)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 역대 교황으로는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어 세 번째다.페루 빈민가서 20여년 사목 ‘중도파’… “교회 화합 이끌 교황” 기대[267대 교황 레오 14세]새 교황 레오 14세는 누구주교 돼서도 늘 낮은 곳 임하는 삶… 온건하지만 단호한 카리스마 평가첫 강복 메시지도 ‘평화’ 앞세워… “서로 다른 세계에 다리 놓을 인물”“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이 말씀은 하느님의 양 떼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주신 착한 목자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신 첫 번째 인사였습니다.” 8일(현지 시간) 선출된 교황 레오 14세는 이날 전 세계에 보내는 첫 강복(降福) 메시지에서 ‘평화’를 앞세웠다. 그는 “이는 무기를 내려놓은 평화,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라며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 악은 결코 지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티칸 안팎에서는 교황이 첫 강복 메시지에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전 인류의 염원인 ‘평화’를 앞세움으로써 교황청이 앞으로 맡을 역할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본다. 왜 그동안 유력한 후보로 언급되지 않던 그가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에 참가한 추기경들의 선택을 받게 됐는지 엿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온건하지만 단호한 카리스마콘클라베를 앞두고 각종 언론에 오르는 유력 교황 후보는 대체로 직위와 성품, 대중적인 이미지 등이 고려되는 면이 많다. 하지만 추기경들은 이런 기준으로 표를 던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가톨릭계 등에 따르면 드러내고 말하지는 않지만 콘클라베에 참가하는 추기경들이 중요하게 보는 자질이 세 가지 정도 있다. △선교적·신앙적으로 존경받으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각국 정상과 함께 세계 무대에 나설 수 있는 정치력을 가졌는지 △가톨릭교회와 바티칸 앞에 닥친 위기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지 등이다. 특히 뒤 두 가지 자질을 바티칸에서는 ‘타이어를 걷어차야 할 때를 아는 자질’로 부른다고 한다. 그동안 언론 등 대중매체에 유력한 교황 후보로 꼽히지 않은 그가 새 교황으로 선출된 데는 추기경들의 이런 내부적인 기준에 가장 부합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과거보다 추기경 수가 많고 분포 대륙이 다양해 콘클라베가 오래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단 네 번째 투표 만에 일찌감치 새 교황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온건하지만 확고한 판단력과 탁월한 업무 능력, 단호한 카리스마를 지닌 그를 대부분 추기경이 평소 높게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낮은 곳에 임한 ‘페루의 프란치스코’미국 출신이지만 페루에서 20년이 넘게 사목 활동을 한 그는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빈민과 이주민 등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 ‘페루의 프란치스코’로 불린다. 주교가 돼서도 늘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했는데 “주교는 자신의 왕국에 앉아 있는 어린 왕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발언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유럽의 시각에서 볼 때 ‘미국식 오만함’이라는 이미지가 없다는 것도 그가 선출된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초강대국에서 교황까지 배출하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시각이 존재하는 교황청 내부에서 이런 이미지는 그가 새 교황에 선출되는 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그는 올 2월 가톨릭 신자인 J D 밴스 미 부통령이 ‘오르도 아모리스(Ordo Amoris·사랑의 순서)’라는 가톨릭 개념을 빌려 “그리스도교는 우선 가족을 사랑하고, 그다음 이웃, 공동체, 같은 나라 사람들, 그다음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의 정당성을 주장하자 이를 비판했다. X(옛 트위터)에 관련 기사를 올리면서 “밴스는 틀렸다. 예수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위한 우리의 사랑에 순서를 매기라고 요구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것. 며칠 후 프란치스코 교황도 미국 주교단에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가장 소외되고 가장 가난한 자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나와 가까운 데에서부터 동심원처럼 확장되는 사랑은 그리스도교적이지 않다”고 힘을 실어줬다.● 교회 분열 속 ‘개혁 이어갈 중도파’ 선택 레오 14세 교황은 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추기경으로 임명한 인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3년 그를 추기경에 서임하며 주교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주교부는 전 세계 주교 선출 등의 인사를 총괄하는 교황청 내 핵심 부서. 주교부 장관은 주교 후보를 검증하고 교황에게 주교 선출과 관련된 모든 것을 조언하는 책임을 맡고 있어, 교황청은 물론이고 전 세계 가톨릭 고위직과 인맥을 쌓기에 가장 좋은 자리로 알려졌다. 여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임이 더해져 일각에서는 그가 재임한 2년간의 주교부 앞에 ‘초강력’이란 수식어를 붙여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신학적으로는 온건 중도 성향이지만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노선은 대체로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주교부 장관 시절 그는 주교 후보자 명단을 결정하는 투표단에 처음으로 여성을 포함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조치를 주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여러 이념 진영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포용적 의제를 이어갈 교황과 보수적 교리로 돌아갈 교황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 ‘균형 잡힌 중도파’가 대안으로 지지받았다고 보도했다. 영국 BBC방송은 “서로 다른 세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교회의 분열을 화합으로 이끌 교황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출신 교황이 나왔다.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 둘째 날인 8일 오후(현지 시간) 14억 가톨릭 신자를 이끄는 제267대 교황에 미국의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 추기경(69)이 선출됐다. 미국 출신 교황은 가톨릭 역사상 처음이다. 교황명은 ‘레오 14세’.교회법에 따라 새 교황의 득표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 출신으로 알제리 대주교를 맡고 있는 장폴 베스코 추기경은 9일 프랑스 르피가로에 레오14세가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었다”고 전했다. 이런 결과에는 세계 각지의 분쟁 속에서 교황이 맡을 역할에 대한 기대가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염원을 의식한 듯 교황 레오 14세는 선출 직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강복의 발코니’에 나와 손을 흔들며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길 바랍니다(La pace sia con tutti voi). 이것은 무기를 내려놓은 평화,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서로서로 도와서 대화와 만남으로 다리를 건설하고 모두 하나가 되어 언제나 평화를 누리는 백성이 됩시다”라고 말했다. 레오 14세는 이날 교황의 전통 복장인 진홍색 어깨 망토(모제타)를 걸쳤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선출 당시 너무 화려하다며 거절했던 옷이다. AP통신은 레오 14세가 가톨릭의 전통 노선으로 어느 정도 회귀할 것임을 암시한다고 논평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노선을 따르면서도 전통을 중시하는 ‘온건한 중도파’로 분류된다. 9일(현지 시간)에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교황으로서의 첫 미사를 집전했다. 흰 제의를 입은 그는 특히 모국어인 영어로 카톨릭 신앙 전파를 위한 추기경단의 도움을 요청했다. 1955년 9월 14일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레오 14세는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출신으로 1982년 사제품을 받았다. 1985년부터 20여 년간 페루 빈민가에서 사목 활동을 해왔다. 미국 출신이지만 귀화해 페루 국적도 갖고 있다. 가난한 이주민을 위해 헌신한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과 닮았다는 평가다. 2023년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 때 추기경에 서임됐고, 이후 전 세계 주교 인사를 총괄하는 교황청 주교부 장관을 지냈다.한편 레오 14세는 2027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WYD)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 역대 교황으로는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어 세 번째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들의 비밀회의인 콘클라베가 열린 지 둘째 날인 8일(현지 시간) 제267대 교황으로 미국인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70)이 선출됐다. 교황명은 레오 14세.이날 오후 6시경 콘클라베가 열리던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콘클라베가 7일 개막된 지 이틀 만이다. 교황은 4번째 투표에서 결정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레오 14세 교황은 이탈리아로 한 첫 연설에서 “이 평화의 메시지가 여러분의 마음 속으로 들어와 여러분의 가족과 어디에 있든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지난달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경의를 표하며 신자들에게 “두려움 없이, 하나 되어, 하느님과 서로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덧붙였다. 자신을 교황으로 선택해준 동료 추기경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출신인 그는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소속이다. 1990년대 페루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중 수도회 총장으로 선출돼 로마본부에서 10년간 수도회를 이끌었다. 총장 재임 중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해 한국 공동체의 자립을 지원하기도 했다.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그는 교황청에서 새로운 주교 선출을 감독하는 주교성 장관에 임명된 바 있다.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그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신자들에게 더 가까운 교회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선 ‘온건파’로 여겨진다. 성적인 이슈와 관련해선 신중한 의견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루에서 오래 체류해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가디언은 “교황청이 그간 미국의 초강대적 지위와 세계적 영향력으로 미국에서 교황이 선출되는 것을 견제했지만 레오14세 교황은 온건파로서 주목할 만한 인물로 꼽힌다”고 평했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국 출신 첫 교황 선출에 “우리나라에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중국과 러시아는 패권주의와 강권 정치에 단호히 반대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7일(현지 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브누코보-2 공항에 도착한 직후 성명에서 이같이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추진 중인 통상 전쟁 등에 맞서기 위해 러시아와의 반미(反美) 연대를 공고히 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시 주석을 초청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8일 크렘린궁에서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러-중 관계는 역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화답했다. “양국 관계의 원동력은 에너지”라며 미국의 경제 제재를 피해 석유 및 가스 교역 등 양국의 경제 협력을 강화할 뜻도 드러냈다.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7∼10일 나흘 일정으로 러시아를 국빈 방문했다. 8일엔 올해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중-러 정상회담을 열었다. 미 CNN방송은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은 두 권위주의 지도자 간 강력한 결속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보”라고 평했다.● 중-러 “양국 통화 결제 확대”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회담 뒤 포괄적 파트너십과 전략적 상호작용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양국은 성명서에서 “미국의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이중 봉쇄’ 정책에 단호히 대응하기 위해 협력을 확대하고 공조를 강화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양국은 미국의 경제, 외교적 공세를 받고 있는 만큼 경제 협력 강화에 주력했다.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고율 관세를 부과받고 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뒤 미국을 포함한 서방으로부터 원유 판매 등 각종 경제 거래에서 제재를 받고 있다. 양국은 이를 의식한 듯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중국으로 수송하는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사업을 논의했다. 또 양국은 성명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이 은행 간 관계를 강화하고 국가 통화 결제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대러 제재로 막힌 금융 거래의 물꼬를 트겠다는 뜻이다. 중-러는 북한에 대한 지지 의사도 나타냈다. 두 나라는 “각국에 대북 제재 및 (북한에 대한) 압박 강화 중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중-러 관계와 내정에 대한 외부 간섭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주권과 영토 보전을 지지한다”고 했다. 러시아가 자국 영토임을 주장하는 크림반도 및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영유권에 대한 중국의 지지가 강화될지 주목된다. 시 주석의 이번 방문은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리 80주년 기념일(전승절)을 계기로 이뤄져 주목받았다. 승전 70주년인 2015년에 이어 10년 만이다. 시 주석은 9일 전승절 열병식에도 참석한다. 푸틴 대통령도 중국의 항일 전쟁 승전 80주년(9월 3일) 기념행사에 참석할 계획이다.● 중-러 밀착, EU 심기 건드나 중-러 관계는 지난해 10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공식 확인되고,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 불편한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뒤 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 관세 폭탄의 집중 타깃이 됐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압박을 받고 있다. 시 주석이 러시아와의 유대를 과시하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는 분석도 있다.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과 관세 문제로 미국과 유럽이 갈등을 벌인 틈을 타 중국이 유럽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데 따른 것. 중국의 러시아 밀착은 유럽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교역이 어려워지자 유럽과의 경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7일 “(시 주석의) 이번 방문은 미국과의 치열한 무역 전쟁의 고통을 상쇄하기 위해 유럽과 관계를 회복하려던 중국의 노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중국과 러시아는 패권주의와 강권 정치에 단호히 반대한다.”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7일(현지 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브누코보-2 공항에 도착한 직후 성명에서 이같이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패권과 강권 정치에 맞서 러시아와 반미(反美) 연대를 공고히 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양국이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글로벌 거버넌스를 촉진시킬 것이라고도 했다. 시 주석을 초청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8일 크렘린궁에서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러시아와 중국 관계가 국제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안정 요인”이라고 화답했다. “양국 관계의 원동력은 에너지”라며 미국의 경제 제재를 피해 석유 및 가스 교역 등 양국의 경제 협력을 강화할 뜻도 드러냈다.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7~10일 나흘 일정으로 러시아를 국빈 방문했다. 8일엔 올해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중-러 정상회담을 열었다. 미 CNN방송은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은 두 권위주의 지도자 간 강력한 결속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보”라고 평했다.● 푸틴 “극동 가스 사업 2027년 시작”이날 중-러 정상회담에선 우크라이나 전쟁, 미-러 관계 등이 포괄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중러는 미국의 경제, 외교적 공세를 받고 있는 만큼 경제 협력 강화에 주력했다.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고율 관세를 부과받고 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뒤 미국을 포함한 서방으로부터 원유 판매 등 각종 경제 거래에서 제재를 받고 있다. 양국은 이를 의식한 듯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중국으로 수송하는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사업을 논의했다.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공동 사업들이 진행 중”이라며 “극동 가스 파이프라인은 2027년 시작돼 중국 소비자들에게 연간 최대 100억㎥의 연료를 공급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시 주석의 이번 방문은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리 80주년 기념일(전승절)을 계기로 이뤄져 주목받았다. 승전 70주년인 2015년에 이어 10년 만이다. 시 주석은 9일 전승절 열병식에도 참석한다. 푸틴 대통령도 중국의 항일 전쟁 승전 80주년(9월 3일) 기념행사에 참석할 계획이다. 중-러의 밀착에 남미, 아프리카 국가들도 동조하는 모양새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보좌관은 전승절에 29개국 정상이 초대됐으며, 이 중 최소 15명이 푸틴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한다고 6일 밝혔다. ● 중-러 밀착, EU 심기 건드나 중-러 관계는 지난해 10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공식 확인되고,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 불편한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뒤 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 관세 폭탄의 집중 타깃이 됐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압박을 받고 있다.시 주석이 러시아와의 유대를 과시하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는 분석도 있다.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과 관세 문제로 미국과 유럽이 갈등을 벌인 틈을 타 중국이 유럽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데 따른 것. 중국의 러시아 밀착은 유럽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교역이 막힌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유럽과의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7일 “(시 주석의) 이번 방문은 미국과의 치열한 무역 전쟁의 고통을 상쇄하기 위해 유럽과 관계를 회복하려던 중국의 노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새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들의 비밀회의인 콘클라베가 시작된 7일(현지 시간) 첫 투표에서 새 교황이 선출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추기경들은 8일부터는 최대 네 차례 투표를 이어갈 수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7일 오후 9시경 콘클라베가 열리고 있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검은 연기는 교황 선출에 실패했음을, 흰 연기는 교황이 선출됐음을 알린다. 새 교황이 선출되려면 콘클라베에 참여하는 추기경 133명 가운데 3분의 2인 89명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첫 투표에서 추기경 선거인단의 3분의 2를 넘는 지지를 얻은 교황 후보가 나오지 못한 것이다. 추기경들은 8일부터는 오전과 오후 각 두 차례, 하루에 최대 네 차례 투표를 진행할 수 있다. 외신들은 이르면 8일이나 9일 투표에서 교황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과거에는 대부분 3~14회의 투표 끝에 교황이 선출됐다. 1978년 33일간 재위했던 요한 바오로 1세는 네 번째 투표에서 선출됐다. 그의 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는 여덟 번의 투표를 거쳐 결정됐다. 지난달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다섯 번째 투표에서 선출됐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지난달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후임자를 선출하는 가톨릭 추기경단의 비밀회의 ‘콘클라베’가 7일 바티칸 시스티나 대성당에서 시작됐다. 교황청에 따르면 첫 투표는 현지 시간 7일 오후 4시 반(한국 시간 7일 오후 11시 반)경 진행되고, 새 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시스티나 성당 굴뚝의 흰 연기는 이르면 8일 오전 10시 반(한국 시간 8일 오후 5시 반) 이후 피어오를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 매체 바티칸뉴스에 따르면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언론실장은 투표에 참여하는 추기경 133명이 7일 오후 3시 45분경 바티칸 시스티나 대성당에서 열리는 콘클라베에 입장한다고 6일 발표했다. 선거에 참여하는 추기경들은 이날 회의에서 “전쟁, 폭력, 심각한 양극화 시대에는 자비, 함께 걷는 교회의 정신, 희망을 지닌 교황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눴다.투표는 철저한 비밀로 진행되기에 추기경들은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비밀 유지 서약도 해야 한다. 교황청은 첫 투표 진행 1시간 반 전부터 바티칸 내 휴대전화 신호 송출 체계를 비활성화하기로 하는 등 보안 유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새 교황은 콘클라베 선거인단의 3분의 2인 89명의 추기경으로부터 지지를 얻어야 한다. 투표 때마다 시스티나 대성당 지붕에 설치된 굴뚝에서는 투표 용지를 태운 연기가 피어 오른다. 검은 연기가 나오면 교황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뜻이고, 흰 연기는 새 교황이 결정됐음을 의미한다.콘클라베 첫날인 7일에는 투표가 한 차례만 진행된다. 8일부터는 매일 오전과 오후에 두 번씩, 최대 네 번 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 첫날은 교황이 확정될 가능성이 낮은 편이다. 브루니 실장은 “흰 연기가 날 가능성이 있는 시간은 8일 오전 10시 반 이후나 낮 12시 이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8일 오전 두 차례의 투표에서 교황이 결정되지 않으면 오후 4시 반부터 오후 투표가 다시 두 차례 진행된다. 이렇게 되면 오후 5시 반 이후나 오후 7시경 흰 연기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교황청은 설명했다.교황 선출로 흰 연기가 피어오르면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군중에게 라틴어로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 즉 ‘우리에게 새 교황이 탄생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추기경단의 수장은 선출된 교황에게 ‘교회법에 따라 교황으로 선출된 사실을 받아들이는가’라고 묻는다. 이 동의 절차를 거친 후 새 교황은 자신이 쓸 이름을 정한다. 이후 그는 ‘눈물의 방’으로 이동해 교황이 입는 흰색 수단을 착용한다. 이후 성베드로 대성당의 발코니에서 군중과 만난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국제적인 콘클라베.’ 지난달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후임자를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비밀회의 ‘콘클라베(Conclave)’가 7일부터 바티칸에서 열린다. 이번 콘클라베에는 역대 가장 많은 133명의 추기경(80세 미만 추기경만 참석 가능)이 참석한다. 추기경들의 출신 국가 또한 이전에 비해 다양해졌다. 프랑스 매체 ‘프랑스24’는 콘클라베의 국제화가 이뤄졌다고 진단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출했던 2013년 콘클라베 때는 추기경 115명이 참석했다. 바티칸은 늘어날 추기경을 수용할 숙소를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다. 기존엔 프란치스코 교황이 거주했던 ‘산타마르타 게스트하우스’로도 충분했지만 이번엔 인근 건물 ‘산타마르타 베키아’까지 활용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추기경단의 출신 국가 또한 5개 대륙에 걸친 70개국으로 2013년(48개국)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과거에는 유럽 출신 추기경이 50% 이상이었으나 현재는 30%대로 낮아졌다. 대신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 비(非)유럽권 추기경이 절반이 넘는다. 추기경단의 규모가 커지고 구성도 다양해지면서 교황 선출 결과는 더 가늠하기 어려워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콘클라베는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는 후보가 나올 때까지 매일 투표를 되풀이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그의 전임자 베네딕토 16세는 모두 콘클라베 둘째 날 교황으로 선출됐다. 이번에는 이보다 오래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다.● “다양한 종교와 대화하는 교황”콘클라베 투표는 첫날 한 차례, 다음 날부터는 오전과 오후 각각 두 차례씩 하루에 네 번 진행된다. 투표에서 새 교황이 결정되면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그렇지 않으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렇게 사흘간 투표해도 교황이 안 뽑히면 추기경들은 하루 동안 투표를 중단하고 기도와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교황청 관영매체 바티칸뉴스에 따르면 선거인단을 포함한 170명의 추기경은 앞서 5일 총회를 열었다. 새 교황의 덕목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가톨릭 교회 운영은 물론이고 전 세계 각국의 보혁 갈등, 민족 중심주의, 이주민 및 이주민 신앙 지원의 중요성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끊이지 않는 전쟁과 갈등, 추기경들의 출신 국가와 관련된 주제도 언급됐다. 추기경들이 다양한 종교 및 문화권과 대화하는 사목적인 새 교황의 모습도 기대했다고 바티칸뉴스는 전했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새 교황은 세상의 위기 속에서 길을 잃은 인류가 친교에 접근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는 인물이어야 한다”며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가까운 목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표 참여 추기경 4명 중 3명 프란치스코가 서임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가톨릭계, 주요 외신 등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노선을 계승할 후임자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번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133명 중 100여 명(약 75.2%)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임했기 때문이다.그중에서도 이탈리아 출신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70)과 마테오 마리아 추피 추기경(70)이 유력 후보로 꼽힌다. ‘교황청 2인자’격인 교황청 국무원장인 파롤린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건강이 악화될 때마다 후임으로 거론됐다. 중도 성향이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을 받들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했다. 추피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사상, 철학적으로 가장 비슷해 ‘프란치스코의 정신적 후계자’로 불린다. 2023년부터 이탈리아 주교회의(CEI) 의장 겸 우크라이나 전쟁의 평화 특사로 활동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제들의 동성 커플 축복을 허용하는 등 동성애에 포용적인 입장을 보인 데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혔다.필리핀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68)은 최초의 아시아 출신 교황 후보로 거론된다. ‘다양성’을 중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타글레 추기경을 포함해 비유럽권 출신 추기경을 대거 발탁했다. 모친이 중국계이며 양극화 해소 등에 관심이 많아 ‘아시아의 프란치스코’로도 불린다. 그는 “미혼모, 동성애자 등에 대한 카톨릭 교회의 엄격한 입장이 복음 전파에 해를 끼쳤다”고 밝히는 등 진보 성향이다. 6일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주요 도박 사이트의 베팅 추이를 분석한 결과, 세계 도박사들은 파롤린 추기경이 새 교황으로 선출될 가능성을 27%로 가장 높게 봤다. 이어 타글레 추기경(19%), 추피 추기경(10%) 등이 뒤를 이었다.● 韓 유흥식 추기경, 특유의 친화력으로 주목 한국인 최초의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74)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최근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는 유 추기경을 차기 교황 유력 후보군 12명 중 한 명으로 꼽았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바티칸 안팎에 인맥이 두텁다. 또 우수한 업무 추진력과 소탈한 성품으로 그를 좋아하는 추기경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아시아계 성인으로는 처음으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 성상이 설치됐는데, 유 추기경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다. 이 외에 프리돌린 암봉고 베숭구(65·콩고민주공화국), 페테르 에르되(73·헝가리), 안데르스 아르보렐리우스(76·스웨덴), 장마르크 아블린(67·프랑스), 빔 에이크(72·네덜란드), 찰스 마웅 보(77·미얀마) 추기경 등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올 2월 말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 차기 총리 후보로 뽑힌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가 6일 연방의회에서 열린 총리 선출 2차 투표에서 가까스로 차기 독일 총리로 선출됐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내각을 임명하면 그는 총리로 공식 취임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의회의 1차 투표를 통과하지 못한 총리로 기록되게 됐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연방하원에서 실시된 2차 신임 투표에서 메르츠 대표는 전체 630표 중 325표를 얻어 차기 총리로 결정됐다. 과반(316표)을 달성해야 총리로 선출될 수 있다. 그는 같은 날 이에 앞서 진행된 1차 투표에선 과반에서 6표가 모자란 310표를 얻어 총리 선출이 불발됐다. 영국 BBC는 그를 지지할 것으로 여겨졌던 진영에서 이탈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메르츠 대표가 CDU 내부에서 완벽한 지지를 얻지 못했거나, 연립정부를 꾸리기로 한 사회민주당(SPD)의 일부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메르츠 대표가 이끄는 중도 보수 성향의 CDU와 기독사회당(CSU) 연합은 이번 총선에서 각각 22.6%와 6.0%를 득표했다. 다만 과반 달성엔 실패해 지난달 30일 올라프 숄츠 총리가 속한 중도좌파 성향 SPD와의 연정을 택했다.통상 신임 총리가 취임하기 전에 거치는 의회 투표는 그간 형식적인 절차로 여겨졌다. 메르츠 대표의 이날 투표 또한 무난히 가결돼 같은 날 취임식이 열릴 것으로 예상됐다. 예상을 뒤집은 이번 결과를 두고 AP통신은 “메르츠 대표가 참담한 패배를 겪었다”고 평가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또한 메르츠 대표가 “굴욕적인 좌절을 겪었다”고 전했다. 부결 직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주식시장의 DAX지수 또한 전 거래일 대비 1.8% 하락했다. 이번 총선에서 지지율 20.8%로 2위를 차지했던 강경 보수 성향의 ‘독일을위한대안(AfD)’은 1차 투표 직후 즉각 재총선을 요구했다. 알리스 바이델 AfD 공동대표는 “메르츠가 물러나야 총선을 위한 길이 열릴 것”이라며 “(오늘은) 독일에 좋은 날”이라고 주장했다.이런 혼란을 수습하고 의회는 2차 투표로 메르츠 대표를 총리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가 2차 투표에서 받은 찬성표도 연정 의석수(328석)에 못 미치는 만큼 새 정부의 국정운영 동력이 약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올 2월 말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 차기 총리 후보로 뽑힌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가 6일 연방의회에서 열린 총리 선출 투표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총리 후보가 의회의 1차 투표를 통과하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 최대 경제대국이지만 2023년과 지난해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고전 중인 독일의 정치 및 경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부결 직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주식시장의 DAX지수 또한 전 거래일 대비 1.8% 하락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메르츠 대표는 이날 연방하원에서 실시된 1차 신임 투표에서 전체 630표 중 310표를 얻었다. 과반(316표)에서 6표가 모자랐다. 영국 BBC는 그를 지지할 것으로 여겨졌던 진영에서 이탈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메르츠 대표가 CDU 내부에서 완벽한 지지를 얻지 못했거나, 연립정부를 꾸리기로 한 사회민주당(SPD)의 일부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메르츠 대표가 이끄는 중도 보수 성향의 CDU와 기독사회당(CSU) 연합은 이번 총선에서 각각 22.6%와 6.0%를 득표했다. 다만 과반 달성엔 실패해 지난달 30일 올라프 숄츠 총리가 속한 중도좌파 성향 SPD와의 연정을 택했다.통상 신임 총리가 취임하기 전에 거치는 의회 투표는 그간 형식적인 절차로 여겨졌다. 메르츠 대표의 이날 투표 또한 무난히 가결돼 같은 날 취임식이 열릴 것으로 예상됐다. 예상을 뒤집은 이번 결과를 두고 AP통신은 “메르츠 대표가 참담한 패배를 겪었다”고 평가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또한 메르츠 대표가 “굴욕적인 좌절을 겪었다”고 전했다. 이번 총선에서 지지율 20.8%로 2위를 차지했던 강경 보수 성향의 ‘독일을위한대안(AfD)’은 즉각 재총선을 요구했다. 알리스 바이델 AfD 공동대표는 “메르츠가 물러나야 총선을 위한 길이 열릴 것”이라며 “(오늘은) 독일에 좋은 날”이라고 주장했다.독일 하원은 14일 안에 재투표를 거쳐 과반을 확보한 총리 후보를 정해야 한다. 메르츠 대표는 물론 다른 의원도 출마할 수 있다. 이 기간 중 투표 횟수에는 제한이 없다. 과반을 확보한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를 총리로 임명하거나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치를 수 있다. 이미 5일 퇴임 행사까지 열었던 숄츠 총리 또한 임시 총리직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