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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세네갈 어린이들의 힘겨운 일상이 지난달 21일자 동아일보 보도(A3면·dongA.com 뉴스테이션)로 알려지면서 세네갈을 향한 ‘작은 기부’의 물결이 일고 있다. 세네갈 등 아프리카 아동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어린이재단에는 보도 열흘 만에 510건의 후원신청이 답지했다. 지구 저 멀리 또래 친구들을 도우려는 청소년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신규 후원자 중 만 18세 미만이 165명으로 전체의 32%를 차지했다. 경기 평택시에서 부인과 함께 태권도체육관을 운영하는 신동우 씨(43)는 본보 기사를 보고 중학교 1학년인 쌍둥이 딸에게 후원을 제안했다. “맞벌이 하느라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부족함 없이 다 해주다 보니 쌍둥이가 ‘없는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한 것 같아요. ‘어려운 친구들을 배려하라’고 백 번 말하면 뭐합니까. 용돈 쪼개 쓰면서 아프리카 친구들을 직접 도와주고 펜팔도 하면서 스스로 깨쳐야죠.” 아버지의 권유에 쌍둥이 자매 지영 양과 우영 양(13)은 흔쾌히 동의했다. 매달 2만 원씩인 후원금 마련 방안도 짜냈다. 쌍둥이 자매는 떡볶이나 아이스크림 등 매일 사먹던 간식을 월 수 금요일 3일만 먹기로 했다. 주말마다 다니던 영화관도 한 달에 한두 번으로 줄이고, 독서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이 계획을 지키기 위해 이달부터 용돈기록부도 쓴다. 내년 2월 태권도 4품(4단) 승품 심사를 보는 지영 양은 “대학생이 되면 세네갈에 가서 제가 도움을 줬던 친구도 만나보고 그곳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어린이재단 임신혁 대외협력실장은 “기부에 대한 기존 관점이 어려운 사람에게 일방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면 요즘 청소년들은 도와주면서 동시에 삶을 배우는 ‘자신에 대한 투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매달 2만 원씩 보내는 소액 기부이다 보니 일반 서민들의 참여도 많았다.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권윤자 씨(48)도 후원에 동참했다. “단돈 2만 원이 세네갈 아이들에겐 꿈을 이루는 한 줄기 빛이란 말에 마음이 움직였어요. 저 같은 서민도 누군가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뿌듯합니다.” 어린이재단 1588-1940신광영 기자 neo@donga.com▶dongA.com 뉴스테이션에 동영상}

“윤재경(가명)이 어머니 되시죠?” 경찰서에서 전화가 온 건 오전 3시쯤이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식은땀이 났다. 아들이 절도로 구치소에 있다 나온 지 두 달 정도 된 터였다. 300m 거리의 지구대까지 가는 데 1시간이 걸렸다. 당뇨를 앓고 있는 최모 씨(40)는 합병증으로 시력을 거의 잃어 밤길에는 매우 힘들어했다. 이번엔 폭행혐의였다. 9명이 1명을 때렸는데 윤 군(18)도 현장에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합의금 50만 원에 풀려났지만 윤 군은 ‘전과’가 있어 재판에 넘겨졌다. 윤 군의 비행이 시작된 건 2004년 최 씨가 재혼하면서부터. 새 아버지와 불화를 빚더니 수시로 가출했다. 절도와 폭행에 연루되는 일이 잦아 경찰에 자주 소환됐다. 없는 형편에 합의금을 마련하느라 빚도 졌다. 여기에 윤 군은 우울증까지 보였다. 알약 50알을 먹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가까스로 깨어나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당뇨를 앓아 온 최 씨에게 윤 군은 목숨을 걸고 낳은 아들이었다. 그 아들은 최 씨의 걸음걸이가 “왕따 같다”며 떨어져 걸었고 최 씨가 넘어지면 “쇼 하느냐”며 내려다봤다. 구치소 면회실에서 “여기 또 오면 다신 안 보겠다”고 꾸짖었을 땐 피식 웃는 아들이었다. 폭행사건 재판 이후 헤어졌던 모자는 5개월 만인 21일 다시 만났다. 대전 대덕소년원 ‘편지 낭독의 밤’ 행사장에서였다. 6개월 형을 선고 받은 윤 군은 우울증 병력 때문에 치료감호소에서 지내고 있었다. 최 씨 모자 등 소년원생과 부모 6쌍은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다. 뒤에서 본 부모들의 어깨는 한결같이 ‘ㅅ’자 모양으로 처져 있었다. 28일 ‘교정의 날’에 앞서 열린 이날 행사는 소년원 측이 정신장애나 발달장애로 의료 재활시설에 수감된 70명을 위해 만든 자리였다. 보호자 전원을 초대했지만 참석한 부모는 8명이었다. 곽칠선 교무과장은 “그나마 오늘이 최다 인원”이라며 “비행에 장애까지 겹쳐 부모에게마저 버림받은 아이가 많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와 말없이 앉아있던 윤 군은 낭독시간이 되자 품에서 꼬깃꼬깃한 편지를 꺼냈다. “엄마가 저 때문에 당뇨합병증으로 뇌경색까지 왔는데 병원에 입원해 계신 걸 보고도 전 또 가출을 했죠. 엄마가 환자복 차림으로 경찰서에 왔을 때…. 제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저 이곳에서 (대입)검정고시 공부도 해서 고등학교 졸업자격이 생겼어요. 엄마에게 해드리지 못한 보답 다 할 때까지 꼭 오래 사세요.” 뜻밖의 소식에 최 씨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2년 전 고교를 자퇴한 아들이 몰래 검정고시를 준비해 석 달 만에 합격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눈물을 훔치며 아들을 바라봤다. 답장 순서가 돌아왔지만 최 씨는 편지를 꺼내지 않았다. 시력이 거의 없어 편지를 쓸 수 없었기 때문. 최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즉석에서 육성편지를 썼다. “아들아, 검정고시 합격 그 자체보다 엄마의 힘겨운 믿음에 아들이 응답해준 게, 우리 아들이 하고자 하는 뭔가를 찾은 게 너무 기뻐. 엄마가 너무 아파서 예전처럼 너의 방패가 될 수 없어. 그래도 너는 나의 영원한 ‘숙제’야. 엄마 살아 있는 동안 그 숙제 잘 끝낼 수 있도록 도와줄 거지?” 이어 폭행으로 수감 중인 최모 군(17)의 차례였다. “저 자고 있으면 들어와서 내 옆에 누워 눈물 흘리며 자는 우리 엄마, 제가 뭐 해달라면 안 해줄 것처럼 무뚝뚝하게 말하고 나중에 몰래 해주는 아빠. 사랑은 줄 때 받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하신 말 이제야 깨닫게 되네요.” 최 군의 흐느낌 속에 어머니의 답장이 이어졌다. “(폭행)합의금 마련하느라 빚이 많이 쌓여 힘든 삶이 계속되지만 아들에게만은 예수도 되고 부처도 될 있어. 우리 아들, 사랑한다. 아까 보석박물관 다녀왔지. 너는 영원한 엄마의 보석이야. 알았어? 영원히 빛나주길 바란다.”대전=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소설가 공지영씨 ‘세네갈 경험’ 특별기고]신을 원망하며 살던 내가 물었다그 많은 혜택 왜 내게만 주셨나요 세네갈은 아프리카에서 최빈국은 아니다. ‘끝에서 열 번째라니 당장 기근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곳에 비하면 그래도 살 만한 곳일 것이다’라고 방심한 것이 잘못이었다. 지난해 최빈국 1위 에티오피아와 우간다를 다녀온 후 더 이상의 충격은 없을 거라는 생각도 오만이었다.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4시간여를 달려 들어간 내륙지방 디우르벨에 다다랐을 때 나는 비로소 이 검은 대륙이 내 알량한 양심과 신앙이 시험받는 땅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단지 농작물이 자라야 할 곳에 펼쳐진 쓰레기 더미들, 우기의 끝 무렵인데도 눈을 흐리게 만드는 먼지들(건기에는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황사 먼지 속에서 아침이면 일어나 동냥그릇을 들고 몰려나오던 조그만 소년들, 그들의 찢어진 옷과 더러운 맨발, 숙소에서 자주 나가던 전기, 식탁 위를 과감히 활보하던 아기 손바닥만 한 바퀴벌레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번 에티오피아 방문 때 그래도 이 빵을 먹고 나면 이들의 삶이 조금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던 내 오만함에 대한 자책 때문이었다. 하루에 1달러를 가지고 11명의 식구가 먹고사는, 그러니까 적어도 굶어서 죽지는 않는 그들의 눈에도 에티오피아의 난민이 가졌던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초점 잃은 눈동자였다. 겨우 죽지 않을 만큼의 빵을 먹고 하루를 사는 그들에게 내일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열세 살에 아이를 낳다가 척추를 다치고 귀가 먼 열일곱 살의 미혼모는 ‘꿈이 있어요?’라는 내 질문에 젓가락만 한 팔다리를 숨기며 “양고기를 한번 먹어 보고 싶어요. 일어나 걷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때 그녀를 만난 지 한 시간여 만에 처음으로 미소가 어리는 것도 보았다. 그 미혼모가 그토록 어여쁘지 않았다면 내 가슴이 좀 덜 아팠을까? 수백만의 미혼모들이 이런 식으로 절망에 빠져 있는 이 나라, 그러나 그녀의 막내 동생 카딘은 내가 꺼내든 볼펜을 감히 만져 볼 생각도 못하며 말했다.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작은 푼돈과 보잘것없는 선의가 거대한 가난과 착취와 모순을 이길 수 있을지 나는 가끔 절망에 빠진다. 더위와 악취가 해일처럼 우리를 덮칠 때 무언가를 건설하는 일은 희망처럼 더디고 작다. 그럴 때면 마더 테레사의 말을 떠올린다. ‘우리가 하는 일은 거대한 대양에 물 한 방울을 보태는 일처럼 보잘것없지만, 그 한 방울이 없다면 바다도 없다’는 그 말. 나는 그저 커피 값을 아낀 2만 원으로 그 아이들의 학비를 대주고 연필을 사줄 수 있을 뿐이다. 모기장을 사줄 수 있고 수도관 30cm를 연장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학교에 가면 무언가 다른 내일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어쩌면 결정적인 희망의 빛을 줄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오늘도 우간다와 에티오피아 혹은 시에라리온을 도우러 또 다른 팀이 떠났다. 그들이 돌아오면 또 다른 팀이 떠날 것이다. 그러면 하나의 수도, 하나의 학교, 하나의 화장실이 세워질 것이다. 오늘은 한 아이가, 내일은 그 이웃집 아이가 비로소 학교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내 친구와 내 친구의 친구가 조금만 마음을 열면 그 옆집 아이도 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희망이 없다면, 나의 아프리카 방문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나는 살면서 가끔 신에게 물었다. 대체 뭘 그리 잘못했다고 내게 이런 벌을 내리십니까. 43도를 오르내리는 더위 속에서 망연히 앉아 있다가 내가 물었다. 대체 뭘 잘했다고 내게 그 많은 혜택을 주셨습니까? 어쩌면 이번 방문에서 온전히 도움을 얻고 온 사람은, 실은 나였던 것만 같다.}

‘16~18세기 노예무역 중심지’ 세네갈에 어린이재단 매달 ‘2만원의 희망 심기’● 실업률 48% - 가난 ‘검은 탄식’인구 5명중 1명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학비 마련위해 마약중개도● 간질병 초등생 ‘되찾은 꿈’한국 동갑내기의 도움받아 약도 사고 학교도 다니게돼 “커서 의사가 되고 싶어요”12일 세네갈 고레 섬(Gor´ee Island)으로 가는 길은 ‘검은 잉어’들로 북적였다. 유람선이 섬에 200m 정도로 근접하자 검은 물고기 같은 물체들이 바다를 하얗게 가르며 일제히 몰려들더니 순식간에 유람선을 에워쌌다. 물 위로 얼굴을 내민 건 흑인 소년들이었다. 100여 명의 ‘인간 잉어’는 관광객을 향해 “머니!”라고 외쳤다. 배 위에서 동전이 한 닢 떨어질 때마다 수십 명이 물속을 파고들었다. 모이를 향해 달려드는 고기 떼의 형상이었다.고레 섬은 소년들의 조상이 노예로 팔려가던 곳. 아메리카 대륙과 가까워 16∼18세기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노예감옥 등 당시 상처가 보존된 이 섬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면서 관광명소가 됐다.섬 소년들은 운 좋게 한 닢을 낚으면 입에 넣고 다시 동전 사냥에 나선다. 배가 하루 두세 번 오가기 때문에 종일 해도 50∼100CFA프랑(약 150∼300원)짜리 동전을 몇 개 잡는 게 고작이다. 배가 섬에 도착한 뒤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는 관광객 사이로 큰 소년이 작은 소년의 머리를 연거푸 물속에 밀어 넣었다. 고라(12)와 와드(9) 형제였다. “장난이냐, 고문이냐”고 묻자 고라는 “훈련”이라고 했다. “둘이 열심히 해야 하루에 1달러를 채울 수 있다”고 했다. 고라는 나이 차가 14세인 미혼모 어머니와 살면서 생업의 짐을 함께 졌다. 그는 아직 학교에 가본 적이 없다. 고라와 동갑인 모사는 처지가 한결 낫다. 모사는 세네갈 디우르벨에서 초등학교에 다닌다. 다만 교실 밖에서 수업을 듣는다. 창문 밖에 의자를 놓고 그 위에서 창틈으로 칠판을 본다. 모사는 간질 환자다. 세네갈에서 간질은 주변 사람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전염병으로 통한다. 교실에서 쫓겨났지만 모사는 창틀을 책상 삼아 꿋꿋이 공부한다. 10일 수업에 열중하던 모사가 필기를 하다 노트에 끼워진 사진 한 장을 떨어뜨렸다. 사진 속 주인공은 한국에 사는 동갑내기 김지은 양. 6년 전 어린이재단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김 양이 없었다면 모사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모사의 부모는 땅콩을 튀겨 팔며 하루 2, 3달러를 번다. 학교에 다니려면 등록비 12달러에 학용품과 책값으로 한 해 30∼40달러가 들어간다. 병원까지 다니려면 400달러가 든다. 5남매를 키우는 모사의 부모에게 학교와 병원은 언감생심이었다. 김 양이 보내는 매달 2만 원의 후원금이 모사를 절망에서 건져냈다. 김 양도 아버지가 일할 수 없는 장애인이라 넉넉하진 않지만 용돈을 아껴 돈을 부친다. 15달러 남짓한 그 돈으로 모사는 학비를 내고 약을 샀다. 어렵게 학교 문턱을 넘고도 간질 때문에 교실 문턱은 넘지 못했지만 모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달 치른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상위 3%의 성적을 받기도 했다. 모사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한국 돈 2만 원이 만든 꿈이다.이날 낮 기온은 43.5도까지 올라갔다. 학교 근처 가게에서 500mL짜리 생수를 사니 가격이 300CFA프랑(약 900원)이다. 모사네 가족 하루 수입의 3분의 1이다. 세네갈 인구 5명 중 1명은 1달러 미만으로 하루를 산다. 여기에 실업률은 48%나 된다. 어린이재단 서아프리카 담당 우스만 씨는 “세네갈은 아프리카로 마약을 공급하는 교두보인데 수도 다카르로 상경한 청소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마약중개상이 되는 사례가 많다”며 “그중 상당수는 학비를 마련하려고 위험을 무릅쓴다”고 말했다. 모사의 학교에서 나오는 길, 수십 명의 아이가 기자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잔돈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아이들은 멈추지 않았다. 보다 못한 교사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돈이 아니라 펜을 달라네요.”디우르벨 (세네갈)=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고사리손 기부’ 3년새 5배이상 늘어 ▼ 성인들이 아프리카 어린이들과 일대일 결연을 맺어 도와주던 국제 후원이 청소년 간의 ‘고사리손 기부’로 바뀌고 있다. 혼자 자란 아이들이 또래들과 형제나 남매 관계를 맺은 뒤 용돈을 아껴 돈을 보내주고 편지도 주고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세네갈의 한 미혼모(14)는 이혜진 양(13)이 매달 2만 원씩 1년째 도와준 덕분에 아이를 키우기 위해 40대 남성과 결혼할 뻔했던 위기를 모면했다. 유럽 프로축구 선수를 꿈꾸는 에티오피아의 코르사(11)는 김유정 양(11)의 후원으로 구걸 대신 학교에서 훈련을 받게 됐다.※ 후원 문의: 어린이재단 1588-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