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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담월 송서율창 제전이 4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렸다. 이 대회는 경기 명창 담월(淡月) 묵계월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글읽는 소리의 대중화를 위해 사단법인 서울전통문화예술진흥원(이사장 유창·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율창 보유자)이 주최한 대회다. 송서(誦書)란 소설, 고문 등 산문을 읽는 소리로 전문 음악가들이 예술성을 가미해 읽기 시작하면서 국악의 한 장르가 됐다. 율창(律唱)은 시 등 운문을 읽는 소리다. 이날 경연에는 초등학생부, 중·고등학생부 및 신인부, 일반부, 명인부 5개 부문에 걸쳐 200여명이 넘는 경연자가 참여해 천자문, 삼설기, 계자제서, 전죽벽부, 명심가, 촉석루 등 주옥같은 송서와 율창을 경연했다. 국악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일반 시민들의 참여도 많았다. 초등학생부에는 50여명이, 직장인이 중심이 된 신인부에는 100여명이 몰렸다. 특히 이날 맑은 목으로 낭랑하게 고서설 삼설기를 불러 초등부 장원을 차지한 추명연 군(11·강원 태백 장성초등학교)은 송서를 배우기 위해 초등학교 3학년때인 3년 전부터 매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강원도 태백에서 서울로 상경한 사연이 알려져 주위를 놀라게 했다. 추명연 군이 부른 삼설기(三說記)는 세 명의 선비가 백악산에 봄놀이를 갔다가 술에 취해 황천에 들어가 염라대왕 앞에 각기 소원을 말하는데, 세 번째 선비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 지옥으로 추방되었다는 내용의 불교설화에 기반한 풍자적인 고소설이다. 일제강점기 가객 이문원만이 가지고 있던 것을 경기명창 묵계월이 배워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재 송서율창 보유자인 유창 명창에게 전승한 대표적인 송서이다. 한편 24명의 송서율창 명창들이 참여해 국회의장상을 놓고 벌인 명인부 대상에는 역시 송서 삼설기를 부른 김선주 씨(여·29)가 차지했다. 김 씨는 송서율창뿐만 아니라 경기민요 명창으로도 유명한 차세대 소리꾼으로 출중한 기량을 선보이며 초대 담월 송서율창 경연대회 대상을 차지하는 영예를 차지했다. 이외에 부문별 대상은 △중고등부 이송미(18) △신인부(예샘소리단) △일반부 고영란 씨(50)가 차지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병실에 앉아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비추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쟤는 얼굴이 멀쩡하네. 아무렇지도 않네."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대통령의 안색이 저렇게 좋으냐는 당신의 한탄이셨다. 역시 우리엄마는 언제나 핵심을 찌르셔. 감탄하며 내 머리에 또 다른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비상시국회의에 참석한 야권 지도자들의 웃는 얼굴. '비상시국'과 어울리지 않는 그들의 환한 미소가 눈에 거슬렸다. 국민들은 나라가 걱정돼서 속이 타들어 가는데.....나라를 걱정하는 게 직업이어야 할 정치인들은- 대통령은 자기만 살 궁리나 하고 국회의원들은 우왕좌왕 국민들 눈치만 보며 계산기를 두드린다. 집회에 나가기 며칠 전에 겨울코트를 들고 의류수선실에 갔다. "아저씨-이거 입고 촛불집회 나갈 거니까, 단추 튼튼하게 달아주세요." 내 입에서 촛불이 떨어지자마자 아저씨가 날 물끄러미 보더니 다른 일감을 제치고 내 옷을 잡았다. '촛불' 덕분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5분만에 수선이 끝난 코트는 어찌나 단추를 단단히 박았는지 십년이 지나도 안 떨어질 것같다. 비가 오지 않기를 빌었다. 비가 오더라도 젖을 만큼 쏟아지지 않기를 빌었다. 토요일 오후 1시, 어머니를 씻기고 운동시킨 뒤에 요양병원을 나오니 비와 눈이 거세게 흩날렸다. 그래 쏟아져도 지금 다 쏟아져라. 집회가 열리는 저녁엔 하늘이 뽀송뽀송 하기를 빌면서 근처의 식당에 들어가 청국장에 밥을 비벼먹었다. 추위를 이기려면 든든히 먹어야지. 집에서 좀 누워있다 택시를 타고 서대문역에 내렸다. 허겁지겁 걸어 서 친구들과 약속한 서울역사박물관에 도착하니 오후 4시 50분. 차를 마시고 일어나 광화문으로 걸어갔다. 핫팩을 나눠주는 아줌마를 나는 그냥 지나쳤다. 털모자를 쓰고 가죽장갑에 위아래 내복을 입어 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인파에 파묻혀 걷는데 촛불을 파는 노점상 앞에 긴 줄이 보였다. 그냥 촛불은 천원, Led 촛불은 이천원이었다. 더 비싸도 살텐데, 바가지를 씌우지 않고 적정한 가격을 제시하는 양심적인 상혼이 고마웠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망언을 한 국회의원 아무개를 욕하며 Led 촛불 세 개를 샀다. "(전등의) 위를 누르면 꺼져요."라는 노점상 아저씨의 설명을 듣고 종이컵 바닥에 전등을 끼워넣는데, 잘 들어가지 않아 옆에 선 친구가 도와주었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 아이들을 셋이나 데리고 나와 손에 손을 잡은 가족도 보였다. 앞으로 뛰쳐나가려는 딸애에게 "오늘은 엄마 손을 꼭 잡아야 해."라고 말하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이 추운 날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의 용기가 가상했다. 이미 사람들의 장벽에 가로막혀 우리 일행은 무대가 펼쳐지는 중앙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귀를 무대에 열어두고 섰다 걸었다를 반복하며 바깥을 맴돌았다. 광장의 가장자리엔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모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밖은 시끌시끌한데 유모차 안에서 고이 자는 애들의 얼굴은 한편의 시처럼 아름다웠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았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사람들 사이에 기쁨의 함성이 퍼졌다. 어디선가 "영미 누나!" 소리가 들려 앞을 보니 이게 대체 몇십년만인가. 어느 정치인을 보좌한다는 대학후배를 만나 잠깐 인사를 나누었다. 안치환의 흥겨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젊은이들에 섞여 나도 몸을 흔들었다. 토요일 저녁, 광화문은 해방구였다.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한 광장은 춥지 않았다. 도도한 불빛 속에 나도 촛불을 들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믿지는 않지만, 어둠이 빛을 이기게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아서. 젊은 날에, 87년 유월의 그 뜨겁던 거리에서도 부끄러워 외치기를 주저했던 구호를 내가 먼저 선창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그날 처음 만나 '광장고등학교' 동문이 되기로 약조한 우리는 8시의 소등행사를 마치고 행진을 할래 말래 설왕설래하다, 중년의 건강을 생각해 발길을 돌렸다. 그냥 헤어지지 섭섭해, 전철을 타고 홍대 역에서 내려 술을 마시며 시국을 논했다. 잠룡이란 말, 맘에 안 들어. 제왕적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은 이 나라 언론이 아닌가. 1년에 절반은 차기대권주자의 지지도를 싣는 신문과 방송들. 반성해야 해. 제왕에만 관심을 두는 언론이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었어. 이번에도 죽 쒀서 개 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누가 답을 갖고 있겠어요. 전직 국회의원과 한국노총의 연구원과 시인이 함께 한 술자리가 끝난 뒤, 홍대의 그 수상한 거리에서 술김에 우리는 또 외쳤다. 박근혜를 구속하라!!최영미 시인}
병실에 앉아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비추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쟤는 얼굴이 멀쩡하네. 아무렇지도 않네."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대통령의 안색이 저렇게 좋으냐는 당신의 한탄이셨다. 역시 우리엄마는 언제나 핵심을 찌르셔. 감탄하며 내 머리에 또 다른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비상시국회의에 참석한 야권 지도자들의 웃는 얼굴. '비상시국'과 어울리지 않는 그들의 환한 미소가 눈에 거슬렸다. 국민들은 나라가 걱정돼서 속이 타들어 가는데.....나라를 걱정하는 게 직업이어야 할 정치인들은- 대통령은 자기만 살 궁리나 하고 국회의원들은 우왕좌왕 국민들 눈치만 보며 계산기를 두드린다. 집회에 나가기 며칠 전에 겨울코트를 들고 의류수선실에 갔다. "아저씨-이거 입고 촛불집회 나갈 거니까, 단추 튼튼하게 달아주세요." 내 입에서 촛불이 떨어지자마자 아저씨가 날 물끄러미 보더니 다른 일감을 제치고 내 옷을 잡았다. '촛불' 덕분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5분만에 수선이 끝난 코트는 어찌나 단추를 단단히 박았는지 십년이 지나도 안 떨어질 것같다. 비가 오지 않기를 빌었다. 비가 오더라도 젖을 만큼 쏟아지지 않기를 빌었다. 토요일 오후 1시, 어머니를 씻기고 운동시킨 뒤에 요양병원을 나오니 비와 눈이 거세게 흩날렸다. 그래 쏟아져도 지금 다 쏟아져라. 집회가 열리는 저녁엔 하늘이 뽀송뽀송 하기를 빌면서 근처의 식당에 들어가 청국장에 밥을 비벼먹었다. 추위를 이기려면 든든히 먹어야지. 집에서 좀 누워있다 택시를 타고 서대문역에 내렸다. 허겁지겁 걸어 서 친구들과 약속한 서울역사박물관에 도착하니 오후 4시 50분. 차를 마시고 일어나 광화문으로 걸어갔다. 핫팩을 나눠주는 아줌마를 나는 그냥 지나쳤다. 털모자를 쓰고 가죽장갑에 위아래 내복을 입어 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인파에 파묻혀 걷는데 촛불을 파는 노점상 앞에 긴 줄이 보였다. 그냥 촛불은 천원, Led 촛불은 이천원이었다. 더 비싸도 살텐데, 바가지를 씌우지 않고 적정한 가격을 제시하는 양심적인 상혼이 고마웠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망언을 한 국회의원 아무개를 욕하며 Led 촛불 세 개를 샀다. "(전등의) 위를 누르면 꺼져요."라는 노점상 아저씨의 설명을 듣고 종이컵 바닥에 전등을 끼워넣는데, 잘 들어가지 않아 옆에 선 친구가 도와주었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 아이들을 셋이나 데리고 나와 손에 손을 잡은 가족도 보였다. 앞으로 뛰쳐나가려는 딸애에게 "오늘은 엄마 손을 꼭 잡아야 해."라고 말하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이 추운 날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의 용기가 가상했다. 이미 사람들의 장벽에 가로막혀 우리 일행은 무대가 펼쳐지는 중앙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귀를 무대에 열어두고 섰다 걸었다를 반복하며 바깥을 맴돌았다. 광장의 가장자리엔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모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밖은 시끌시끌한데 유모차 안에서 고이 자는 애들의 얼굴은 한편의 시처럼 아름다웠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았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사람들 사이에 기쁨의 함성이 퍼졌다. 어디선가 "영미 누나!" 소리가 들려 앞을 보니 이게 대체 몇십년만인가. 어느 정치인을 보좌한다는 대학후배를 만나 잠깐 인사를 나누었다. 안치환의 흥겨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젊은이들에 섞여 나도 몸을 흔들었다. 토요일 저녁, 광화문은 해방구였다.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한 광장은 춥지 않았다. 도도한 불빛 속에 나도 촛불을 들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믿지는 않지만, 어둠이 빛을 이기게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아서. 젊은 날에, 87년 유월의 그 뜨겁던 거리에서도 부끄러워 외치기를 주저했던 구호를 내가 먼저 선창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그날 처음 만나 '광장고등학교' 동문이 되기로 약조한 우리는 8시의 소등행사를 마치고 행진을 할래 말래 설왕설래하다, 중년의 건강을 생각해 발길을 돌렸다. 그냥 헤어지지 섭섭해, 전철을 타고 홍대 역에서 내려 술을 마시며 시국을 논했다. 잠룡이란 말, 맘에 안 들어. 제왕적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은 이 나라 언론이 아닌가. 1년에 절반은 차기대권주자의 지지도를 싣는 신문과 방송들. 반성해야 해. 제왕에만 관심을 두는 언론이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었어. 이번에도 죽 쒀서 개 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누가 답을 갖고 있겠어요. 전직 국회의원과 한국노총의 연구원과 시인이 함께 한 술자리가 끝난 뒤, 홍대의 그 수상한 거리에서 술김에 우리는 또 외쳤다. 박근혜를 구속하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대학입학 논술 준비부터 취업을 준비하는 성인까지 논술과 면접을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글쓰기 공부를 위한 시사교양 논설선집’(동아일보사·사진)이 발간됐다. 이 책은 동아일보에 최근 1년간 실렸던 사설과 칼럼 80편을 정치, 경제, 국제, 사회, 문화, 정보기술(IT), 환경, 스포츠, 인물 등 분야별로 엄선했다. 다양한 시사 이슈에 대한 칼럼을 통해 관련 지식과 정보뿐 아니라 논리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글쓰기를 연습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교육 현장에서 신문을 활용해 교과 지식을 지도하는 정규희(용화여고) 이만석(문정고) 김광원 교사(정의여고)의 해설도 덧붙였다. 책에는 사설 및 칼럼 원문뿐 아니라 ‘용어의 이해’를 통해 시사 용어를 해설해주고, 시사 이슈에 관한 기사와 그래프까지 곁들여 이해가 쉽도록 했다. 또 기업의 면접 현장에서 면접관들이 해당 이슈와 관련해 던질 만한 질문도 제시돼 있고, 관련 이슈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을 때 참고할 수 있는 책도 추천한다. 이 책의 편집에 참여한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주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은 “좋은 글을 쓰려는 사람은 많이 읽고, 많이 써보고, 많이 생각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대입을 앞둔 고교생뿐 아니라 각 공사·공단·언론사의 상식 및 작문시험은 물론 대기업의 직무적성 평가, 구술면접까지 종합적으로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상생’ ‘문화’ ‘창조’ ‘융합’ ‘콘텐츠’…. 설마 이런 단어가 나쁜 의미로 쓰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제 이 말을 들으면 권력을 등에 업은 자들의 후안무치한 날도둑질만 떠오르게 됐다. 시작은 ‘상생과 공존’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를 내걸면서 자주 쓰던 용어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고, 대통령 취임식 행사부터 중소기업 대행사에 맡겼다. 이랬던 박 대통령이 임기 중반 대기업 총수들과 직접 독대하며 수백억 원 규모의 재단을 만들고 나선 것은 아이러니다. ‘상생과 공존’은 최순실과 차은택이 급조해 만든 ‘K’자로 시작되는 신생 기업들도 나랏일을 싹쓸이 수주할 수 있다는 말로 변질됐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차은택이 포스코 계열의 광고사를 강탈하려 했을 때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인수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거들기도 했다. ‘문화융성’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역대 정부 최초로 문화 정책이 4대 국정기조에 포함되자 문화계의 기대는 컸다. 프랑스의 문화대통령으로 칭송받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10분의 1만 따라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미테랑은 1981년 취임 후 문화 진흥을 위한 ‘그랑프로제’를 내걸고 오늘날 파리의 관광명소가 된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오르세 미술관,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초현대식 미테랑 국립도서관, 라데팡스 등을 건설했다. 이후 파리는 프랑스의 수도를 넘어 세계의 문화수도로 거듭났다. 그러나 현 정부의 ‘문화융성’은 비선 실세의 가족과 친구만 융성시키는 정책이었다. 분야도 케이팝, 한식, 영상 콘텐츠 등 돈 되는 문화산업에만 집중됐다. 한 출판인은 페이스북에 “출판계는 돈이 안 돼서인가 차은택, 최순실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자조했다. ‘문화창조융합본부’ ‘국가브랜드’ ‘케이스타일 허브’ 등 거창한 구호를 내세웠지만, 문체부 담당 직원조차도 무슨 뜻인지 잘 설명하지 못했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서점가에는 ‘대통령의 말하기’와 ‘대통령의 글쓰기’ 책이 베스트셀러로 등장했다. 대통령의 말과 글이 제대로 소통되지 않고, 국정 농단 세력에 의한 자의적인 해석이 난무할 때 얼마나 부패의 악취가 진동하는지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하기’ 책에서 저자는 ‘생각이 곧 말이다’라고 강조한다. 지도자에게 불현듯 떠오르는 표현은 끊임없는 사색의 결과이며, 철학에서 나온 말이어야 진정한 내 말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박 대통령이 ‘대면보고’를 받지 않았던 것은 그가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생각하거나 즉각적으로 판단·결정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문화융성’ ‘창조경제’와 같은 국정기조도 자신의 철학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비선 실세의 개입을 필요로 했고 그들의 농단에 휘둘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100만 명의 시민이 몰린 촛불시위의 민심은 분노에 앞선 부끄러움이었다. 대통령이 진짜가 아닌 꼭두각시에 불과했고, 그의 기본적 말과 글조차 믿을 수 없다는 국가적 신뢰 붕괴에 대한 절망이었다. 그러나 100만 시민은 분노를 절제하고, 축제와 같은 평화시위를 해냈다. 외신들은 전 세계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시위라며 놀라워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대통령에게 상처받은 국민적 자존심을 더 이상 추락시킬 수 없다는 결의가 느껴지는 집단적 자각의 현장이었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역대 정부 최초로 정부의 국정기조에 ‘문화융성’이 포함되자 문화체육관광부가 무척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여성문화분과 전문위원으로 파견됐던 김태훈 현 문체부 관광정책관은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4대 국정기조 중 하나로 ‘문화융성’이 포함됐을 때 문체부 내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당시 인수위에 참가했던 한 인사는 “인수위에서 창조경제는 원래 정보통신 관련 산업 분야에서만 논의됐는데, 취임사에서 문화와 창조경제가 융합된 ‘문화융성’이 국정기조로 택해지는 것을 보고 누군가 비선에서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문화융성은 급조된 국정기조였기 때문에 개념조차 불분명했다. 이 때문에 당시 모철민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이 유진룡 문체부 장관과 함께 문화융성의 개념부터 세부 정책까지 총괄해서 채워 넣는 역할을 맡았다. 2013년 7월에는 문화융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문화융성위원회’가 출범했고, 이듬해 1월에는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했다. 정권 초기의 문화융성 정책은 연극, 무용, 출판, 학술 등 순수예술까지 다 포함된 개념이었다. 문체부에는 ‘인문정신문화과’가 신설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 7월부터 문화융성의 개념은 ‘융·복합 콘텐츠 산업’ 지원으로 크게 변질된다. 유 전 장관이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와 관련된 승마협회 비리 조사 문제로 경질된 시기와 겹친다. 같은 해 8월 최 씨의 측근으로 CF 감독인 차은택 씨가 문화융성위원으로 위촉됐다. 최 씨가 예산 400억 원 규모의 문화창조융합센터 계획 보고서를 작성한 것도 이즈음이다. 이후 비선 실세가 문화융성을 각종 이권을 챙기는 ‘놀이터’로 만들기 위한 인적 조치가 속도를 낸다. 8월에는 차 씨의 홍익대 대학원 지도교수인 김종덕 장관이 취임하고, 12월에는 차 씨의 외삼촌인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56)가 대통령교육문화수석에 임명됐다. 1기 문화융성위 위원이었던 중견 배우는 “융성위가 초반에는 대통령도 참석해서 대단한 회의처럼 생각했는데 곧 껍데기만 있다는 게 드러났다”며 “그저 밥 한번 먹고 오는 자리였다. 결국 비선 실세들이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해 놓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비선 실세의 문화융성은 차 씨가 2015년 4월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으로 임명된 이후부터 현 정부의 문화융성 예산도 본격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문화창조벤처단지, 문화창조아카데미, K팝 아레나 등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는 2019년까지 7000억 원의 국고 지원이 계획됐다. 정부가 국민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늘렸다고 홍보해 온 ‘문화가 있는 날’도 대통령의 ‘찬조 출연’으로 비선 실세들이 세 과시를 하는 행사로 변질됐다. 2014년 8월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가 있는 날’에 차 씨가 연출한 뮤지컬 ‘원데이’를 관람하고, 같은 해 11월에는 역시 차 씨가 개입해 만든 ‘늘품체조’ 시연회에 참석했다. 연출가 윤호진 씨는 “김종덕 장관 취임 후 ‘융·복합’이 유독 강조되면서 수준 떨어지는 공연도 무대에 영상만 틀면 지원금을 주길래 뭔가 돈이 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문체부의 전직 고위 관료는 “문화융성의 기초는 인문학, 학술, 연극, 무용 등 순수예술의 활성화와 가장 직결되는 부분”이라며 “차은택이 실세가 되면서 순수예술은 도외시되고 문화콘텐츠 산업만 강조되는 기이한 구조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전승훈 raphy@donga.com·조종엽 기자}
현 정부의 4대 국정기조에 포함된 ‘문화융성’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최종 보고서에 나오지 않았는데도 불과 나흘 뒤인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에 갑자기 포함돼 비선 실세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 대통령 취임 전 인수위에 참여했던 고위급 인사는 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수위의 문화여성 분과에서는 문화향유권, 문화복지 확대 등만 논의됐을 뿐 ‘문화융성’이란 키워드는 나오지 않았다”며 “그런데 역대 정부 최초로 취임사 국정기조에 문화융성이 포함되자 무슨 의미인지 다들 놀라워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수위가 발행한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백서’(전체 731쪽)에서도 문화융성이란 말은 찾아볼 수 없다. 2013년 2월 21일 인수위 최종 보고서에서 발표된 ‘5대 국정목표’는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맞춤형 고용·복지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 △안전과 통합의 사회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 구축이었다. 인수위는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이란 항목에 대해 “학생들이 꿈과 끼를 키우고 창의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고, 국민이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문화를 누리고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해 현 정부의 문화융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나흘 뒤인 2월 25일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4대 국정기조에 문화융성을 포함시켰다. 박 대통령은 당시 “문화와 첨단기술이 융합된 콘텐츠산업 육성을 통해 창조경제를 견인하고, 새 일자리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새 시대의 삶을 바꾸는 ‘문화융성’의 시대를 국민 여러분과 함께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비선 실세’ 최순실 씨와 차은택 CF감독이 주도했던 문화창조융합벨트에 2019년까지 총 7000억 원을 쏟아붓는 예산 지원 계획을 세우는 배경이 된다. 당시 취임사 준비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의 취임사는 막판까지 최종 수정 작업이 거듭됐고 구체적인 내용은 전날까지 극비에 부쳐졌다”며 “문고리 3인방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정호성 전 비서관이 최종 수정 작업을 주로 맡아서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사가 최종본 때 크게 수정됐다”며 “비선 실세들이 문화융성을 급조해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는 도구로 삼으려 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복수의 문체부 고위 간부들은 “문화융성에 대한 개념이 인수위에서는 논의되지 않았는데 취임사에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들어갔다”며 “그 뒤 당시 모철민 대통령교육문화수석의 지시로 문체부 내에서 긴급하게 문화융성의 개념과 가치, 세부 정책을 채워 넣느라 곤욕을 치렀다”고 말했다.전승훈 raphy@donga.com·김정은 기자}

“프랑스는 ‘디지털 정부’ 행정 분야에서 세계 제3위의 국가입니다. 디지털 강국인 한국과 공공행정 간소화에 관한 협력을 하고 싶습니다.” 8일 방한한 한국계 입양인 출신인 장뱅상 플라세 국가개혁·간소화 담당 국무장관(48·사진)이 서울 중구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플라세 장관은 9, 10일 부산에서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 마리 키비니에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차장, 서병수 부산시장 등과 함께 ‘정부 3.0 국민체험마당 글로벌 포럼’에 참석할 예정이다. 플라세 장관은 10일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행사인 ‘프렌치 시네마 투어’ 개막식에 참석한다. 개막식 행사에서 ‘괴물’ ‘설국열차’를 만든 봉준호 감독에게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여할 예정이다. 플라세 장관은 “봉 감독의 ‘설국열차’는 프랑스 만화작가 장마르크 로셰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한-프랑스 문화교류의 상징적인 작품”이라며 “프랑스에서 한국의 음식과 케이팝(K-pop)과 함께 영화의 인기가 높기 때문에 훈장을 수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플라세 장관은 프랑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개혁 프로그램의 하나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노동법 개혁’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의 노동법 개혁은 고용주들에게는 좀 더 노동의 유연성을 주고, 노동자들에게는 고용 안정을 주는 방향으로 개혁하고 있다”며 “기존의 관습에 익숙한 사람들이 개혁에 반발하기도 하지만, 유연성과 안정성이 동시에 보장되도록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협력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플라세 장관에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정치적 위기에 빠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소식을 들었느냐는 질문도 제기됐다. 그는 “신문을 봐서 스캔들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상대국의 내정에 코멘트하지 않는다는 외교적 관례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 공화국을 대표하는 정신은 자유, 평등, 박애가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라이시테(Laicit´e)’의 원칙”이라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그는 또한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박빙의 대결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대선에 대한 질문에 “이 문제만큼은 외교적 관례를 깨고 싶다”고 말했다. 플라세 장관은 “테러, 안전, 환경오염 등 전 지구적인 여러 문제를 생각했을 때 클린턴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며 “트럼프 후보가 주한미군에 대한 언급을 한 것으로 아는데 한국도 미국 대선을 바라보는 시각이 프랑스와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청와대가 이념 성향에 따라 예술인을 분류한 명단을 문화체육관광부에 내려보냈고 이에 따른 예술인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차관이 바뀌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복수의 문체부 전·현직 공무원은 “2014년 중반부터 청와대가 문화계 인사들을 이념 성향으로 분류한 명단을 문체부 예술국에 내려보내 좌파 인사에 대한 지원을 못하도록 했다”며 “하지만 이 역할을 담당해야 할 당시 박민권 1차관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올 2월 돌연 물러나게 됐다”고 밝혔다. 박 전 차관은 2015년 2월 행시 33기 중 처음으로 차관에 올라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실장이 된 지 4개월 만에 전격 차관으로 발탁됐었다. 이들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을 통해 좌·우파 문화계 인사 명단이 내려왔는데 교문수석실에선 정무수석실을 통해 받았다고 설명했다”며 “정무수석실 내 국민소통비서관 라인이 실무작업을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정무수석은 조윤선 문체부 장관이고 국민소통비서관은 정관주 1차관이다. 실제로 박 전 차관이 “조직 관리를 제대로 못 한다”는 모호한 이유로 갑자기 경질된 뒤 정 비서관이 후임 차관으로 내정되자 내부에선 “청와대에서 ‘진보 예술인 관리’를 담당하던 인사가 직접 내려왔다”는 얘기가 돌았다는 것. 문체부의 한 간부는 “청와대에서 받은 명단 중 특히 좌파로 분류된 예술인이 9000여 명이나 돼 지원을 금지하기가 쉽지 않았고 실효성도 크지 않았다”며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한 사무관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 턱이 빠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명단에는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한 예술인,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한 예술인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문건은 2014년 중반부터 2015년 초까지 작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문체부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관련 의혹이 제기되자 문체부는 7일 해명 자료를 내고 관련 보도에 대해 “익명의 취재원을 내세워 마치 소위 ‘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을 조윤선 장관과 정관주 차관이 주도한 것처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며 “법적 대응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김정은 kimje@donga.com·전승훈 기자}
문화체육관광부가 4일 ‘최순실·차은택 예산’ 의혹을 받은 내년 예산 3570억7000만 원 중 21%에 해당하는 751억7000만 원을 자진 삭감하기로 했다. 문체부 사업이 비선 실세에 좌우됐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문체부가 내년 예산을 자체 검증해 내놓은 조정안이다. 우선 최순실 씨와 차은택 씨가 직접 기획했다고 알려진 사업은 폐지됐다. 최 씨의 조카인 장시호 씨가 주도한 동계스포츠 영재 선발 육성 지원 사업(5억 원),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대표로 있던 회사인 머큐리포스트에서 추진하던 LED빙판디스플레이 기술 개발(20억 원), 문화창조융합벨트 전시관 구축(35억)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차 씨가 주도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은 반 토막이 났다. 문체부는 총 6곳의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 주요 거점 가운데 정부가 주도하는 △문화창조벤처단지 △문화창조아카데미 △잠실 케이팝 공연장 등 3곳의 사업만 남기기로 했다. 사업 관할도 기존 콘텐츠진흥원에서 다른 기관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문화창조벤처단지 사업(145억 원 삭감), 문화창조융합벨트 글로벌 허브화 사업(145억 원 삭감), 융복합콘텐츠 개발 사업(88억 원 삭감) 등 관련 예산도 대폭 줄었다. 반면 CJ그룹의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창조융합센터와 경기 고양시 K컬처밸리, 대한항공의 K익스피리언스 등 민간이 추진해 오던 3개 거점은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이 외에도 국가 브랜드 개발 홍보 사업, 문화박스쿨 설치 사업 등도 예산이 크게 감소했다. 그러나 문화창조아카데미 조성·운영 사업 309억 원, 지역 거점형 문화창조벤처단지 조성 사업 98억 원, 콘텐츠코리아랩 사업 307억 원의 예산은 그대로 유지됐다. 재외 한국문화원 신설 예산 127억 원도 유지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지역과 외교적인 문제 때문에 한꺼번에 일률적으로 취소하기 힘든 예산”이라고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야당 측은 1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열리는 문체부 내년 예산안 심의에서 추가적인 삭감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전통음악과 교수 출신인 송혜진 국악방송 사장(56)이 자신의 후임 교수 자리에 김상률 전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56)의 부인인 오경희 씨(55)를 추천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7월 당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국악방송 사장에 송 교수를 임명했다. 송 사장은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측근인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의 주도로 설립된 미르재단에서 이사를 지냈다. 숙명여대 교수인 김 전 수석은 차 씨의 외삼촌이고, 김 전 장관은 차 씨의 홍익대 영상대학원 재학 시절 스승이다. 국악계의 한 인사는 “송 교수가 국악방송 사장으로 가는 대신 김 전 수석의 부인을 교수로 밀어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 송 사장은 오 씨(가야금 산조 이수자)를 후임 교수로 추천하기 1개월 전인 7월 해당 학과의 겸임교수로 활동해 온 양승희 씨(68·가야금 산조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양 씨는 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13년부터 이 학과에서 겸임교수로 일했는데, 7월 당시 유일한 전공주임 교수인 송 교수가 갑자기 ‘학교에서 이만 나가주셨으면 좋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말했다. 국악계에서는 인간문화재급을 밀어내고 이수자인 오 씨를 교수로 앉힌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전승 체계는 크게 ‘보유자(인간문화재)-전수교육조교-이수자’ 순으로 돼 있다. 보유자는 해당 예술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고, 이수자는 보유자와 전수교육조교로부터 3년 이상의 이수 기간을 거친 뒤 이수시험을 통과한 사람이다. 숙명여대 측은 오 씨의 교수 임용이 당시 송 교수의 추천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최종원 숙명여대 교무처장은 “전통음악과의 유일한 전공 교수였던 송 교수의 추천으로 절차를 거쳐 오 씨를 초빙교수로 8월에 계약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송 사장은 “오 씨는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전통음악과에서 7년간 시간강사를 하며 인연을 맺어왔다”면서도 “그동안 겸임교수로 활동해 온 양 씨와의 계약해지 이유에 대해선 설명하기 어려운 입장”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는 송 교수가 국악방송 사장으로 임명된 배경을 놓고 ‘문화계 황태자’로 불린 차 씨와 김 전 수석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화계의 한 인사는 “최순실-차은택 라인의 농단이 문화와 스포츠 분야뿐 아니라 대학과 순수예술계까지 뻗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 전 수석과 오 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김정은 kimje@donga.com·전승훈 기자}

야3당은 1일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와 함께 별도의 특검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내년 예산안 심의에서 ‘최순실 예산’을 삭감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 응할 것을 촉구하는 등 야권 공조로 대여 압박 수위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국민의당 박지원,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회동에서 이같이 합의했다. 민주당 기동민 대변인은 “국조와 특검은 새누리당이 동의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새누리당이) 진의를 의심받지 않으려면 특검과 국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야3당은 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협상 중단 △백남기 특검 추진 △쌀값 안정화 대책 마련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국회 합의기구 설치 등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최순실 정국의 해법인 거국중립내각 구성은 각 당이 이견을 보여 합의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민주당은 선(先) 검찰 수사와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를, 국민의당은 박 대통령의 탈당과 영수회담을 통한 총리 합의 추대를 각각 주장했다. 정의당은 박 대통령 하야와 대선을 준비하는 과도중립내각을 제안했다. 야권 내에서조차 거국내각을 두고 각각 다른 해석을 내놓은 셈이다. 이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는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 장관들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질타가 이어졌다.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없다’는 조 장관의 답변도 논란이 됐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정무수석으로 11개월 일하는 동안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조 장관은 “없었다” “전화 통화는 했어도 독대는 안 했다”고 밝혔다. 최 씨에 대해서도 조 장관은 “본 적도, 통화한 적도 없다”고 답했다. 야당 의원들은 상임위 차원의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를 요구하기로 했다. 한편 문체부는 이날 최순실, 차은택 씨와 관련된 의혹이 있는 사업들을 전면 조사하기 위해 ‘문체부 문제사업 재점검·검증 특별전담팀(TF)’을 구성했다. 특별전담팀은 △인사·감사 △문화예술 △콘텐츠 △체육 등 4개 분과의 모든 문제사업을 정밀 조사해 의혹을 규명할 방침이다. 우경임 woohaha@donga.com·전승훈 기자}
‘최순실, 차은택 게이트’로 의혹의 한가운데에 선 문화체육관광부가 “의혹을 다 털고 투명한 문체부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철저한 자기반성과 명쾌한 해명도 없이 A4용지 1장짜리 보도자료만 내놓아 ‘면피용 발표’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지난달 30, 31일 이틀간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최순실, 차은택 게이트로 논란의 중심이 된 문체부에 대한 국민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했다. 문체부는 31일 “외부 개입에 의해 추진된 의혹이 있는 사업에 대해서는 법령 위반 및 사익 도모 여부를 점검해 문제가 확인되면 과감한 정리 등 법적, 행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차 씨와 최 씨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문체부 사업은 문화창조융합벨트, 국가브랜드 선정, 문화융성, 늘품체조, 해외 국가이미지 홍보사업, 미르재단 사업 등 20여 가지에 이른다. 문체부는 “콘텐츠산업, 관광산업, 겨울올림픽 성공적 개최, 문화융성 등은 국가적 과제로 존속시키겠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1일부터 국회에서 진행되는 2017년 예산안 심의에서 대규모 예산 삭감이 예상돼 긴급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문화융성을 국정 4대 기조의 하나로 내놓았지만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근본적인 실태조사와 함께 문화예술 관련 예산의 판을 새롭게 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문체부의 내년도 예산은 5조9104억 원으로 올해보다 7.6%(4156억 원) 증가했다. 특히 최 씨와 차 씨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던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의 내년 예산은 1278억 원으로 올해(903억 원)보다 41.5%나 증액됐다. 한편 문체부는 이날 광고회사에 지분을 넘기라는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은 송성각 콘텐츠진흥원장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박근혜 정권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는 최순실 씨와 CF 감독 차은택 씨가 현 정부의 국정기조인 ‘문화융성 프로젝트’의 계획안 수립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7일 TV조선이 입수한 2014년 6월 작성된 ‘대한민국 창조문화 융성과 실행을 위한 보고서’에 따르면 △문화 융복합을 위한 아카데미와 공연장 설립 △한식 사업과 킬러콘텐츠 개발 등의 기획안이 담겨 있었다. 또한 표절 논란을 빚은 국가브랜드 사업에도 바이럴 홍보와 해외문화관 사업 등 6개 분야에 모두 140억 원을 투입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보고서에는 최 씨의 필체와 비슷한 빨간 펜글씨로 자구 하나하나를 첨삭한 흔적이 나오기 때문에 ‘문화융성’ 안의 초기 계획안부터 최 씨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제안서는 최 씨의 수정을 거친 후 같은 해 8월 ‘문화융성위원 차은택’이라는 이름으로 문화부에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융복합 아카데미, 한복과 한식 홍보를 위한 사업 등은 실제로 현 정부에서 예산까지 배정되고 거의 그대로 진행됐다. 한편 2년 동안 개발된 ‘코리아체조’가 무시되고 갑자기 ‘늘품체조’가 국민체조가 된 배경에도 최 씨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날 공개된 화면에서 최 씨는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과 함께 늘품체조 시연회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입었던 연두색 운동복 상의를 고르는 장면이 포착됐다. 그러나 박영국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은 “확인 결과 차 씨 명의로 제출됐다는 보고서는 문체부에 접수된 적이 없다”며 “또한 보고서를 첨삭했다는 필적이 최 씨 것인지도 불확실해 견강부회가 심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오방색 천으로 뒤덮일 뻔한 숭례문거대한 굿판이 될 뻔한 대통령 취임식#.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 8명에도 포함되지 않은 일개 한복 디자이너가 왜 취임식 준비를 좌지우지하는지 전혀 몰랐죠. 그 때는...."#.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당시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측근인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 씨(53)가 국보 1호 숭례문 전체를 오방색 천으로 감싸는 행사를 기획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오방낭은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청, 황, 적, 백, 흑의 오색 비단을 사용해 만든 전통 주머니입니다. 우주와 인간을 이어주는 기운을 가져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죠.최근 최 씨의 PC에서 '오방낭' 사진이 담긴 파일이 발견돼 최 씨가 취임식에 직접 개입한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취임식 행사 총감독을 맡았던 뮤지컬 '명성황후' 연출가 윤호진 씨(홍익대 교수)도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를 증언했습니다. "오방낭 행사는 김영석 씨가 기획했다. 숭례문 전체를 대형 오방색 천으로 감싼 뒤 제막식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윤호진 교수#. "복원 공사가 완벽히 끝나지 않아 소방방재 시설도 없는 숭례문에 천을 씌우면 화재 위험이 있다. 김진선 당시 취임식 준비위원장도 김 씨의 제안에 매우 곤혹스러워했다"-윤호진 교수#. 급기야 김진선 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 끝에 겨우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오방낭' 복주머니에 국민들의 소망을 담는 행사로 바꿀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영석 씨는 정식 취임식 준비위원 8명에 포함되지 않았던 인물. 그는 '최순실 측근' 자격으로 이후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 곳곳에서 모습을 보였습니다. '대통령 측근의 측근'이죠.#. 대통령이 취임식 때 입을 340만 원짜리 한복을 제작했고, CF 감독 차은택 씨와 함께 문화융성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미르재단 이사로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최순실 씨 전남편 정윤회 씨와 함께 박 대통령 팬클럽이 주최한 2014년 독도 콘서트에도 나타났죠.#. "취임식 행사를 준비하며 수많은 개입과 마찰을 겪었다. 앞으로 이 정권에서 내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실세의 말을 거스르고 행사를 진행해 그런 듯하다"-윤호진 교수#. "최순실 씨와 김영석 씨가 오방낭 행사를 직접 챙긴 건 취임식을 '거대한 굿판'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볼 수도 있다" -문화계 한 인사#. '대통령 비선실세의 측근'은 도대체 무슨 직책일까요?왜 이런 민간인이 정부 공식 행사를 좌지우지했을까요?최순실 씨와 관련된 각종 의혹의 끝은 대체 어디일까요?참담합니다.원본: 전승훈 기자·김정은 기자기획/제작: 하정민 기자·이고은 인턴}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당시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직접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희망이 열리는 나무’(오방낭 복주머니) 제막식 행사가 당초에는 국보 1호 숭례문 전체를 오방색 천으로 감싸는 대형 행사로 기획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취임식 행사 총감독을 맡았던 뮤지컬 ‘명성황후’ 연출가 윤호진 씨(홍익대 교수)는 26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최 씨 PC에서 발견된 ‘오방낭’ 프로그램은 대통령 취임식 한복을 디자인했던 김영석 씨(53)가 기획했던 것”이라며 “김 씨는 당초 화재로 불탔다가 복원된 숭례문 전체를 대형 오방색 천으로 감싼 뒤 제막하는 행사를 하겠다고 고집했다”고 밝혔다. 윤 씨는 “아직 복원공사가 완벽히 끝나지 않아 소방방재 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숭례문에 천을 씌울 경우 화재 위험이 있어 반대했다”며 “김진선 당시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장도 김 씨의 제안에 곤혹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윤 교수는 또 “결국 김 위원장이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 끝에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오방낭’ 복주머니에 국민들의 소망을 담는 행사로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방낭은 청, 황, 적, 백, 흑의 오색 비단을 사용해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만든 전통 주머니다. 우주와 인간을 이어주는 기운을 가져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공개된 최 씨의 PC에서 ‘오방낭’ 초안 사진이 담긴 파일이 발견되면서 대통령 취임 행사에 최 씨가 직접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 교수는 “취임식 행사를 준비하면서 수많은 개입과 마찰을 겪어 이 정권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며 “적당히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 김 위원장과 내가 ‘실세’들의 말을 듣지 않고 행사를 진행해 그런 듯하다”고 말했다. 취임식 행사 준비에 참가한 한 문화계 인사는 “당시 한복 디자이너인 김영석 씨에 대해 왜 다들 어려워하는지 이유를 잘 몰랐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최 씨라는 든든한 실세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김 씨는 정식 취임식 준비위원 8명에 포함되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김 씨는 비선 실세 최 씨의 측근으로 취임식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이후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 곳곳에서 행적이 드러났다. 김 씨는 최 씨로부터 주문을 받아 박 대통령이 취임식 때 입을 340만 원짜리 한복을 제작하기도 했다. 김 씨는 이후 CF 감독인 차은택 씨와 함께 문화융성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고 미르재단의 이사로도 이름을 올렸다. 김 씨는 또한 2014년 8월 최 씨의 남편이었던 정윤회 씨와 함께 박 대통령의 팬클럽이 주최한 독도콘서트에도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문화계에서는 비선 실세들이 ‘오방낭’에 집착한 것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 인사는 “최 씨가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 등 중요 행사 때마다 입을 옷 색깔도 직접 골라줬다고 한다”며 “최 씨와 김 씨가 오방낭 행사를 직접 챙긴 것은 취임식을 ‘거대한 굿판’으로 만들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부친인 최태민 목사의 영향을 받은 최 씨가 우리 전통의 색깔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편 본보는 김 씨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전승훈 raphy@donga.com·김정은 기자}

“한식을 홍보하려면 프랑스에 한식 전문 교육기관을 세워야지, 왜 한국에 프랑스 요리학교를 세운데요?” 지난해 12월 초 파리 특파원으로 일할 때 잘 알고 지내던 한-프랑스 문화교류 기획사인 E사의 이모 대표가 화가 난 듯 전화를 걸어왔다. 당시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회의에 참석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미르재단과 프랑스 요리학교 에콜 페랑디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한-프랑스 문화교류에 대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도 받았던 이 씨는 2013년부터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진행해 온 에콜 페랑디 한식 홍보행사를 대행해왔다. 3년간의 노력 끝에 페랑디 학교 정규수업 시간에 한식조리 과정을 넣고, 우수한 프랑스 학생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한식연수를 시키는 사업이 막 성사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출범한 지 한 달도 안 된 미르재단이 갑자기 나타나 ‘한국의 집’에 에콜 페랑디 한국분교를 짓겠다는 MOU를 체결해버린 것이다. 이 씨는 당시의 심경을 프랑스의 교민신문 ‘한위클리’에 털어놓았다. 당시 페랑디 측은 “미르재단이 구체적인 사업계획도 없이 무조건 MOU에 사인만 해달라고 사정한다. 미르재단이 도대체 어떤 곳이냐”고 이 씨에게 물었다고 한다. 페랑디 측은 “우리는 국가 산하기관이라 정치적인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했다”고 미안해했다고 한다. 결국 이 씨는 3년간 공들여 온 페랑디와 aT의 협력관계를 모두 포기해야 했다. 이 씨는 “상도의도 없는 사람들”이라며 허탈해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페랑디와의 MOU 체결’을 미르재단의 성과라고 치하했다. 그러나 미르재단이 중간에 끼어들면서 오히려 페랑디의 교육과정에 한식을 포함시키는 사업은 흐지부지돼 버렸다. 반면 페랑디는 설립 100년을 앞두고 첫 해외 분교 설립에 기뻐하고 있다. 한식을 홍보한다며 대기업 돈을 모은 재단이 결국은 프랑스 음식의 글로벌 진출만 도운 꼴이다. ‘창조경제’ ‘한류 확산’을 내건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의 사업이 대부분 이런 식이다. 최순실, 차은택 씨 등 권력을 등에 업은 비선 실세의 ‘갑질’은 염치도 눈치도 없었다. 한국스포츠개발원이 2년간 공들여 온 ‘코리아체조’가 한 달 만에 개발한 ‘늘품체조’로 뒤바뀌고, 밀라노 엑스포도 개막 5개월을 앞두고 갑자기 총감독이 교체됐다. K스포츠재단은 아예 최 씨가 딸의 승마 훈련을 위해 사유화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창조경제를 통해 미래를 위한 새로운 먹거리를 창조해 내기는커녕 남의 밥그릇 뺏기에 바빴던 것이다. ‘문화 융성’을 내건 현 정부의 문화정책도 마찬가지다. 1974년부터 40여 년간 연극 무용 문학 등 순수예술을 지원해 왔던 문화예술진흥기금이 2018년에 완전 고갈될 위기에 처했다. 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융복합 콘텐츠’를 지원한다는 문화창조융합본부는 연간 1000억 원대의 예산을 지원받았다. 한 중견 뮤지컬 연극 연출가는 “가서 보면 공연 수준은 허접하기 그지없는데, 무대에 영상 틀고 ‘융복합’이란 제목만 달면 엄청난 지원을 받는다”고 개탄했다. 듣도 보도 못한 이들이 문화 권력으로 득세하는 사이, 문화체육계의 조직과 예산은 ‘차은택의 놀이터’ ‘최순실의 쌈짓돈’이 돼 버렸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전통연희를 통해 우리 국민들의 갈등과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고 서로 화합하자는 의미에서 페스티벌의 주제를 ‘화락(和樂)’으로 정했습니다.” 21∼23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 평화의 공원 별자리 광장에서 ‘2016 전통연희 페스티벌’이 열린다. 김승국 예술감독(64·수원문화재단 대표·사진)은 “‘뛸판, 놀판, 살판’으로 정한 슬로건처럼 한바탕 신명나는 축제의 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과 노래, 춤, 극, 놀이의 요소가 어우러진 연희(演희)는 서민들의 문화와 애환을 담은 한국 종합문화예술의 뿌리”라고 말했다. 영화 ‘왕의 남자’에 등장하는 ‘줄타기’를 비롯해 각 지역에서 전승돼 온 판소리, 농악, 탈춤, 북춤, 전통 민속놀이, 재주 부리기, 무예 등을 망라하는 개념이다. 김 감독은 이번 축제에서 가장 눈여겨볼 공연으로 22일 오후 6시에 공연되는 ‘산대(山臺·공터 등에서 펼쳐지는 조선시대 거리축제)’와 ‘채붕(綵棚·가설 누각무대 공연)’을 꼽았다. 그는 “우리나라가 자랑할 만한 고유의 무대 공연인데 아는 분들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발견된 220년 전 채색본 ‘정리의궤’에 근거해 ‘채붕’을 복원한 공연을 선보일 계획이다. 첫날 개막 공연 직전 열리는 ‘기지시 줄다리기’도 야심 찬 기획이다. 김 감독은 “충남 당진 기지시리에서 전승되어 온 이 줄다리기는 지난해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자랑스러운 전통유산”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길이 50∼60m, 지름이 최대 1m가 넘는 줄에 사전 신청을 한 400여 명이 매달려 겨루기가 진행된다. 또한 전통연희를 소재로 현대적으로 재창작한 창작연희 작품 공모 선정작도 공연된다.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악·가·무 연희극으로 제작한 극단 거목의 ‘만복사저포기’, 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를 소재로 제작한 창작인형극 광대생각의 ‘문둥왕자’, 논버벌 퍼포먼스 타악극인 놀이마당 울림의 ‘세 개의 문’이다. 그는 “전통 공연과 현대적 감각으로 창작한 공연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음악, 게임, 캐릭터, 방송, 문화기술(CT)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콘텐츠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2016 K콘텐츠 페어’가 15, 16일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코엑스에서 열린다. ‘콘텐츠, 그 이상의 콘텐츠’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번 축제에서는 K팝 콘서트와 한류 가수들의 미니 콘서트, 크리에이터들의 특별한 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16일 코엑스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융합, 공연, 체험, 기술, 전시 등 5가지 즐거움을 뜻하는 ‘오락(五樂)캠프’라는 주제 아래 5개의 테마관과 2개의 특별관으로 구성된다. △다양한 융복합 문화콘텐츠를 선보이는 ‘K컨버전스’ △홀로그램, K팝 콘서트, 온라인 생방송을 관람할 수 있는 ‘K쇼’ △가상현실(VR) 기술과 다양한 장르의 게임 체험이 가능한 ‘KVR’와 ‘K플레이’ △최신 문화기술을 접목한 교육전문 콘텐츠를 다룬 ‘K투모로우’ △한국의 문화적 가치를 담은 문화상품을 전시하는 ‘K리본 실렉션’ △애니메이션, 드라마, 캐릭터 등을 전시한 ‘K드림’ 등이 선을 보인다. 전시관 내에 설치된 특별무대에서는 NCT, 틴탑, 에릭남, 김필 등 인기 가수들의 미니 콘서트가 펼쳐지며, 고전 ‘햄릿’을 각색한 뮤지컬 ‘라비다’의 음악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는 라이브 공연과 논버벌 ‘탈 퍼포먼스’ 등 색다른 무대가 펼쳐진다. 또한 라뮤끄와 라임튜브, 울산큰고래, 채채TV, 유준호 등 인기 크리에이터가 진행하는 MCN(다중채널 네트워크) 방송과 융복합 뮤지컬 갈라쇼, 아트 액션 퍼포먼스도 쉴 새 없이 펼쳐질 예정이다. 개막일인 15일에는 코엑스 동문광장에서 3시간 동안 K팝 콘서트도 열린다. 이 콘서트에는 샤이니를 비롯해 NCT, 세븐, 크레용팝 등 한류 스타 10팀이 참여한다. 이번 공연은 엠넷(Mnet)의 ‘M-슈퍼콘서트’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송성각 원장은 “대한민국 최대 쇼핑관광축제인 ‘코리아 세일 페스타’와 연계해 열림으로써 외국인 관광객 포함 1만2000여 명의 국내외 관람객들의 방문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는 차은택 씨(47·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는 5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을 부인했다. 유명 CF·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그는 홍익대 대학원 시절 은사인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외삼촌인 김상률 전 대통령교육문화수석, 광고업계에서 인연을 맺은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등 이른바 ‘차은택 사단’을 통해 문화 권력을 휘둘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차 씨가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불리는 최순실 씨와 가까운 사이라는 야당 의원들의 주장도 제기돼 왔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문화계에서 차은택에게 줄을 서야만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고 주장했다. 한 달 전부터 웹드라마를 제작하느라 중국에 머무르고 있는 차 씨는 최 씨와의 관계에 대해 “그분(최순실)에 대해선 저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차 씨는 또 “한 번도 박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에 대해서는 “제자인 제가 어찌 장관에 추천하느냐. 답답하다”며 “저를 아꼈던 스승이었는데 관련 의혹이 나오자 저를 멀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혹이 집중되고 있는 미르재단과 관련해 “(연세대 박사 과정에서 알게 된) 스승 김형수 연세대 교수가 이사장이 돼 그분과 일할 수 있는 이사 몇 분을 추천드린 것일 뿐인데 일이 커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차 씨는 인터뷰 중 여러 차례 감정적인 표현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저라는 존재가 주변 분들에게 피해만 주고 있어 정말 괴롭다”며 “문화계에서 저같이 미약한 인간이 이런 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죽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김정은 kimje@donga.com·전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