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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평소 잘 아는 엔터테인먼트업계의 지인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여기저기서 수십억, 수백억 원씩 중국 자본을 투자받고 지분을 내주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는데 과연 받아도 문제없는가 하는 내용이었다. 2013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대박을 친 후 차이나 머니의 공습이 본격화됐다. SM엔터테인먼트는 알리바바로부터 355억 원, YG엔터테인먼트는 텐센트로부터 357억 원, ‘뉴(NEW)’는 중국 화처미디어로부터 535억 원, 키이스트는 소후닷컴으로부터 150억 원….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기업이 올해 상반기에 한 국내 투자 중 70%가 한류 연예산업 분야였다. 중국 자본이 한류 콘텐츠 확보에 나선 이유는 엄청난 수익률 때문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16부 누적 시청 횟수가 총 25억 뷰가 넘었다. 이 드라마는 중국의 한 동영상 사이트가 45억 원에 구입해 1000억 원 이상의 광고 수익을 올렸다. ‘별에서 온 그대’ ‘런닝맨’ ‘나는 가수다’ 등의 수익률도 비슷하다. 한류 콘텐츠의 헐값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다. SM, YG, JYP 등 3대 기획사는 중국 시장의 매출 비율이 현재 20∼30%대인데 5년 후엔 50%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급속한 중국 의존도 심화는 한국이 ‘제2의 대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20여 년 전만 해도 대만은 ‘판관 포청천’ ‘꽃보다 남자’를 제작한 아시아의 드라마 강국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자본에 잠식되면서 대만의 제작 노하우를 갖춘 PD, 작가 등 고급 인력들이 중국으로 건너갔다. 스타들도 중국 활동에만 매달렸다. 결국 대만 콘텐츠의 질이 떨어지고 문화산업이 붕괴했다. ‘쯔위 사태’에서 보듯 현재 대만은 중국에 문화적 주권을 빼앗긴 속국으로 전락했다. 중국은 한국에서도 드라마와 예능 PD, 작가, 배우 등의 제작 인력을 끌어들여 자체 제작능력을 키우고 있다. 중국이 자동차, 휴대전화 시장에서 약진했듯이 국내 지상파 방송에서 중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 날도 머지않았다. 중국이 저작권을 쥐고 있고 한국 배우, 작가, PD들이 만든 드라마가 국내 전파를 탄다면 콘텐츠 수출입 시장은 역전되는 것이다. 요즘 SBS의 주말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의 시청률은 5∼6%대에 머물고 있다. 경쟁 프로그램인 KBS의 ‘1박2일’ 시청률(13∼14%)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된다. 그러나 중국 TV에서 리메이크한 ‘달려라 형제’가 SBS에 큰 수익을 낳고 있기 때문에 ‘런닝맨’은 폐지될 가능성이 없다. 이제는 국내 TV채널의 편성권도 중국이 쥐고 있는 셈이다. 최근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에 반발한 중국이 한류 제동 걸기에 나섰다. 그러나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중국 자본에 급속히 빨려들어가고 있는 한류 산업의 글로벌 다각화 전략을 재추진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한류 콘텐츠의 경쟁력은 미국의 팝 문화, 일본의 아이돌 문화, 유럽의 최신 음악 등 글로벌 문화를 한국 특유의 창의성 있는 스토리로 융합하면서 발전해왔다. 그러나 중국 시장에 50% 이상 의존하게 된다면 한류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매력은 떨어질 위험이 크다. 언젠가부터 중국인으로 가득 찬 제주도의 신비한 매력이 감소한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의 명품 기업은 구매력을 갖춘 중국 소비자들을 고맙게 생각하면서도, 매장에 중국인 고객만 보이는 현상을 막기 위해 고심한다. 문화는 다양성이 생명이다. 사드 보복을 위한 중국의 ‘한류 제재’가 장기적으로는 위기만이 아닌 이유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최근 영국은 51.9%의 득표로 ‘유럽연합(EU) 탈퇴’라는 중대한 국가적 사안을 결정했다. 탈퇴파가 과반수를 넘기긴 했지만, 나머지 48.1%의 민의를 모두 ‘사표’로 만들었다. 심지어 1987년 한국 대선에서는 노태우 후보가 불과 36.6% 득표율로 당선됐다. 나머지 63.4%의 의견은 사장이 된 것이다. 다수결이 실제로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일까? 일본의 경제학자인 저자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라고 생각하는 다수결의 원칙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던진다. 특히 다수결은 양자 대결이 아닌 다자 대결에서 벌어지는 ‘표의 분산’에 무척 약하다. 다수결 선거에서는 유권자가 1순위 지지 후보에게만 투표할 수 있을 뿐, 2순위나 3순위 후보에게는 전혀 표를 줄 수 없다. 이 때문에 모든 유권자를 잡기 위해 세심하게 신경을 쓸수록 불리해진다. 이기기 위해선 일정 유권자에게만 1순위로 지지를 받기만 하면 된다. 결국 다수결 선거에선 소수 집단을 위한 정치, 대립과 분열의 정치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보편성을 결여한 ‘막말 선거운동’에도 불구하고 백인 서민층의 열렬한 지지로 공화당 대선 후보에 오른 것도 같은 이치다. 저자는 다수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그중 하나는 ‘보르다 투표법’이다. 1위에 3점, 2위에 2점, 3위에 1점을 주는 식으로 점수를 매기고 그 합계로 전체 순위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투표법에서는 극단적인 세력이 일부 점수를 얻더라도 합계에서는 높은 순위가 되지 못한다. 저자는 ‘사회계약’ ‘일반의지’ ‘인민주권’ ‘시민적 자유’ 등 근대 시민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이념이 무엇이고, 어떻게 투표에 반영되는지를 설명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화가 나지만 화난 표정이 아닌, 어리고 여린 소녀지만 결연한 의지를 담고 있는 눈빛…. 2011년 12월 14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은 어느덧 온 국민이 지켜 주고 싶어 하는 ‘국민 여동생’이 됐다. 수많은 사람이 소녀상의 맨발에 양말을 신겨 주고, 비올 때는 우산을 씌워 주고, 추울 때는 목도리를 둘러 준다. 이 책은 소녀상을 만든 김서경 김운성 부부 조각가가 들려주는 소녀상 이야기다. 처음에 두 사람은 일본대사관 앞에 세울 수요집회 100회 기념비 디자인을 의뢰받았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기념비를 세우지 말라고 압력을 넣는 데 분개한 두 사람은 기념비는 물론 소녀상과 의자까지 형상화해 냈다. 작가는 소녀상에 담겨 있는 상징을 하나하나 설명해 준다. 소녀의 머리카락이 거칠게 잘려 있는 것은 그리운 가족과 고향 땅과의 인연이 무참히 끊겨 나간 것을 나타내고, 맨발의 소녀가 발뒤꿈치를 땅에 붙이지 못하고 앉아 있는 것은 전장에 끌려가서도,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차가운 시선에 불안하게 살아온 할머니들의 아픔을 표현한 것이다. 소녀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새는 자유와 해방, 평화의 상징이고, 그림자에 표현된 나비는 아픔을 겪은 할머니들의 ‘환생’을 뜻한다. 소녀상은 이후 국내의 공원과 학교는 물론 미국 등 전 세계 곳곳에 세워져 수많은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소녀상을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일본 정부는 위안부 재단에 10억 엔을 내놓는 대신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떼쓰고 있다. 그러나 13세에 위안부로 끌려가 ‘꿈을 잃은 소녀’로 비참하게 살아야 했던 길원옥 할머니는 이렇게 외친다. “일본을 다 준다고 해도 용서할 수 있을까? 내 인생 돌려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저희 공방에서 이기철 시인의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의 시 구절을 프린트하고, 벚꽃을 자수로 놓는 수업을 하려고 합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싶습니다.”(프랑스 자수 공방을 하는 이소 씨) 바야흐로 ‘1인 창작시대’를 맞아 저작권에 대한 관심이 높다. 웹툰, 게임 등 정보통신기술(ICT)과 접목된 저작물의 융·복합화가 가속화되는 글로벌 환경에서 음악, 영상, 뉴스 등을 허가 없이 함부로 사용했다간 손해배상 청구를 당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에 저작권 정보를 온라인에서 쉽게 검색하고 저작권 이용 허락 계약도 체결할 수 있는 ‘디지털저작권거래소(KDCE)’가 인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2007년에 도입한 이 온라인 저작권 거래 시스템은 8개 분야(음악, 뉴스, 영화, 방송, 이미지 등) 약 1904만 건의 저작권 이용 허락 계약 서비스를 하고 있다. 최근 경기 안산시 관광과는 홈페이지 배경음악으로 가수 이문세의 ‘붉은 노을’을 이용하기 위해 전송권 음악감상형 계약을 체결했으며, 김한백 씨는 유치진의 산문 ‘토막’에 대한 이용 계약을 체결해 지난해 충남문화재단 신진예술가 선정 공연에 활용했다. 이처럼 그동안 개인 법인 정부기관이 맺은 저작권 이용 계약 건수는 총 2만2606건에 이른다. KDCE의 홈페이지(kdce.or.kr) 게시판에는 복잡한 저작권에 대한 상담도 이뤄진다. “인터넷 광고 배경음악으로 노래를 10초 정도 사용하려는데 저작권료가 발생하는지요?”(전성기 씨) “흔히 ‘10초 이내는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아무리 짧아도 음원을 이용할 때는 저작권 이용 허락이 필요합니다.”(한국저작권위원회) KDCE 관계자는 “기존에는 저작권 이용 계약을 하려면 사무실까지 찾아와야 했다”며 “온라인 계약이 가능해진 이후로는 저작권 활용이 대중화되고 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여자들 사이에도 우정(友情)이 있을까?” 영화 ‘델마와 루이스’(1993년 개봉)에 나온 두 여주인공의 우정을 생각한다면 요즘 세상에 이런 소리 하면 몰매 맞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시대 이후 서구 역사의 첫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정에 관한 기록은 오직 남자들만의 이야기였다. 경쟁심과 질투심이 강한 여성은 우정을 나누기엔 부적합한 존재로 여겨졌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 S 루이스는 1906년에 “남자들의 무리에 여자들이 끼어드는 것은 우월한 정신적 대화를 오염시켜 ‘우정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라고 썼다. 그러나 ‘유방의 역사’ ‘아내의 역사’를 쓴 저자는 “역사는 펜을 쥔 자의 것이고, 여성이 배제된 우정의 역사도 그와 다르지 않다”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성서부터 신화, 중세 수녀원의 편지 등 수많은 역사와 문학, 철학, 종교, 대중문화 문헌을 일일이 뒤져 가며 ‘여성의 우정’의 역사를 한 권에 담았다. 17세기 영국의 문학 서클과 프랑스의 살롱은 여성이 주도하는 문화와 우정이 꽃피우기 시작한 계기였다. 또한 19세기 여성 참정권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인 수전 앤서니와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간의 일생 동안 변치 않은 깊은 우정은 ‘자매애(sisterhood)’의 상징처럼 남았다. 저자는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면 우정이 남성의 일이라는 과거의 생각은 역전된다”라고 진단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남을 배려하고, 다정하기 때문에 우정에도 더 적합한 존재라는 것이다. 최근 김혜자 나문희 등이 출연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는 홀로된 노년의 여성이 남성보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훨씬 잘 살아 갈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009년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미국 제조업 부활의 상징’인 시놀라 시계의 미국 내 판매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르 슬리프 프랑세’ ‘코뮌 드 파리’ 등 프랑스산임을 내세운 브랜드가 불티나게 팔린다. 이탈리아와 일본에서도 ‘메이드 인 이탈리아’ ‘메이드 인 저팬’ 부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선진국들이 사양산업으로 외면했던 제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산비 절감을 이유로 해외로 이전했던 공장을 자국으로 들여오는 리쇼링(reshoring) 현상도 뚜렷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비교우위가 낮은 제조업이라고 해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미국은 무너진 경제를 일으켜 세울 전략으로 제조업 부활을 선택했다. 비영리단체 ‘리쇼링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2010∼2015년 6년간 미국으로 돌아온 제조업체는 818개, 이 덕분에 ‘귀환한 일자리’도 12만4852개나 된다. 미 소비자들의 국산품 선호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모닝컨설트’ 조사에서 ‘미국산이라면 사고 싶어진다’는 답이 84%였다.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물산장려운동이 민족자본을 키우자는 약소국들의 저항운동이었다면 ‘21세기 물산장려운동’은 선진국들의 일자리 지키기 캠페인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김대중 정부는 제조업을 굴뚝산업으로 폄하했고, 이명박 정부는 금융허브를 하겠다면서 리먼브러더스가 망하기 두 달 전에 산업은행이 인수를 검토했다”며 “그때 인수했다면 함께 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제조업은 아직도 경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파리=전승훈 기자}
“요즘 프랑스는 ‘메이드 인 프랑스’에 대한 향수와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프랑스 경제일간 레제코는 최근 프랑스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이 각광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에서도 제조업 부활 움직임이 뚜렷하다. 정부는 해외 이전 기업들을 불러들이고 고부가가치 제조업 창업을 지원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소비자들은 국산품 애용 운동으로 호응한다.○ 스마트폰도 양말도 ‘메이드 인 프랑스’ ‘신(新)메이드 인 프랑스’ 붐을 이끄는 브랜드의 특징은 창업주들이 20, 30대 젊은 세대라는 점이다. 이들은 아버지나 할아버지 세대에게서 배우고 들었던 프랑스 제품에 대한 자부심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48가지 색상의 ‘100% 메이드 인 프랑스’ 양말을 판매하는 ‘아르쉬듀셰스’는 실 염색부터 제품 생산까지 모두 프랑스에서 한다. 한국의 패셔니스타 지드래곤이 착용해 유명해진 액세서리 브랜드 ‘라몸비주’도 100% 프랑스산을 강조하고 있다. 브랜드에서부터 프랑스산을 내세우는 경우도 많다. ‘코뮌 드 파리’는 2009년 생겨난 패션 브랜드다. ‘르 슬리프 프랑세’는 2011년 창업한 속옷 전문 브랜드로 지난해 매출액이 359만7400유로(약 46억3800만 원)로 전년보다 221%나 늘었다. 파리 11구 지역에 매장을 둔 ‘프렌치트로터스’는 니트 브랜드로 매장과 가까운 곳에서 생산해 운송비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있다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운다. 패션뿐 아니라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메이드 인 프랑스’가 선전(善戰)하고 있다. 2012년 5월 한국계 입양인 출신 플뢰르 펠르랭이 중소기업디지털경제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시작한 ‘프렌치테크’ 정책이 계기가 됐다. 정보통신 분야를 비롯해 환경과 바이오 등에서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랑스의 저가(低價) 스마트폰 ‘위코’는 2011년 마르세유에서 창업한 이후 3년 만에 프랑스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하며 프랑스 ‘국민폰’으로 자리매김했다. 프랑스 언론은 “위코는 세련된 디자인과 애국주의 마케팅에 힘입어 돌풍을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2015년 창립된 공기정화기 제조회사 ‘테코야’는 북부 노르망디 지역에서 제품을 만든다. ‘프랑스에서 만든 깨끗한 공기’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수출 물량의 절반이 중국에 팔린다. 2012년 대선에서는 경제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메이드 인 프랑스’ 육성이 화두였다.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 초대 산업장관이던 아르노 몽트부르는 취임 직후부터 프랑스 삼색기를 배경으로 프랑스 제품 이용을 촉구하는 홍보전을 벌였다. 2009년 프랑스산 제품에 공식 라벨을 붙여 주는 ‘100% 메이드 인 프랑스’를 설립한 로맹 다비뇽은 “중국산 저가 제품에 프랑스의 패션, 구두, 자동차 등 모든 산업이 위태롭다”며 “프랑스에서 만든 질 좋은 제품을 인증해주는 것은 마케팅에 도움이 되고 일자리 창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로 돌아온 아디다스 독일에서는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의 귀환 발표가 화제다. 아디다스는 1993년 생산 라인을 아시아로 옮겼다. 내년부터는 독일에서 제품을 생산하기로 하고 지난해 말부터 독일 자동차부품 및 의료기기 제조회사와 손잡고 로봇을 이용해 운동화를 생산하는 생산시설 ‘스피드 팩토리’를 갖췄다.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 총리는 취임 후 ‘일자리 법안’을 통해 노동시장을 개혁하고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을 넓히면서 ‘메이드 인 이탈리아’ 브랜드를 부흥시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스타트업 투자 규모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12년 3500만 유로(약 460억 원)에 불과했지만 3년 만인 지난해엔 7500만 유로로 배 이상으로 늘었다. 일본의 경우 2012년 말 집권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아베노믹스를 통해 규제를 줄이고 국가전략특구를 만들며 제조업 기반 복원에 앞장섰다. 여기에 일본은행을 동원해 무제한 돈을 풀어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자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이 차츰 돌아오기 시작했다. 캐논의 미타라이 후지오(御手洗富士夫) 회장은 지난해 “생산 현장 인력의 질은 일본이 압도적으로 높다. 국내 생산 비율을 현재 40%에서 60%까지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파나소닉도 가전제품의 국내 생산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자동차업계도 앞다퉈 일본 내 생산을 늘렸다. 혼다는 지난해 9월 중국에서 규슈(九州) 구마모토(熊本) 현으로 오토바이 생산기지를 옮겼고, 도요타와 닛산도 미국 유럽 등에서 만들던 차량을 일본 안에서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미즈호종합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5월 제조업 국내 회귀를 다룬 기사는 매달 100건 이상 쏟아져 전년보다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사회적으로도 ‘모노즈쿠리(장인정신)를 되살리자’는 분위기가 나타났다. 지난해 방영된 TBS 드라마 ‘시타마치(변두리) 로켓’은 일본 중소기업이 로켓 핵심 부품을 만드는 스토리로 연간 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아베 총리도 올해 시정연설에서 이 드라마를 거론하며 “제조업 강국 일본을 만들어 낸 것은 이런 중소기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가 신흥국 경제 둔화와 이에 따른 엔화 가치 급등이라는 암초를 만나 대기업들의 고민이 적지 않다.파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올해 ‘알파고’에 이어 ‘포켓몬고’ 게임 열풍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3월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세기의 바둑 대결을 벌였을 때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담론이 팽배했다. 머지않아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불안에 식욕까지 없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현실과 게임을 접속한 ‘포켓몬고’ 열풍은 즐겁기 그지없다. ‘증강현실(AR)’ 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가득 찬 분위기다. 무엇보다 포켓몬고는 게이머들을 은둔의 골방에서 해방시켰다. 몬스터를 잡고, 부화시키려면 하루에 몇 km씩 걸어 다녀야 하기 때문에 ‘피트니스 게임’으로 불린다.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외신 보도도 들린다. 한 게이머는 “어머니가 20년 동안 내가 밖에서 노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셨는데, 포켓몬고는 이걸 하루 만에 해냈다”며 놀라워했다. 포켓몬고는 관광산업도 크게 바꾸고 있다. 포켓몬고를 즐길 수 있는 속초, 울릉도는 지역경제가 들썩일 정도다. 독도에서도 한국인이 첫 포켓몬 체육관을 개설했다는 인증샷이 올라왔다. 영화 ‘반지의 제왕’ ‘아바타’의 촬영지로 유명한 뉴질랜드는 호빗 마을에서 피카추 잡기, 눈 덮인 산에서 아이스몬 잡기를 관광상품으로 내놓았다. 게임은 수학, 물리학, 전자공학, 심리학, 사회학 등 각종 학문과 신화, 스토리 등의 콘텐츠가 결합된 상업적인 예술작품이다. 구글맵에 몬스터를 뿌려 하루아침에 전 세계를 사냥터로 만들어버린 포켓몬고야말로 창조경제의 모범 사례다. 그러나 포켓몬고가 히트하자 국내에서는 “우리는 왜 ‘한국형 포켓몬고’를 먼저 만들지 못했느냐”는 질타가 거세다. 알파고가 충격을 던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와 미래창조과학부는 ‘한국형 알파고’를 만든다며 AI 육성 예산안을 부랴부랴 만들더니, 이번에도 국산 캐릭터를 이용한 ‘뽀로로고’ 개발 계획이 발표됐다. 문화체육관광부도 게임산업을 진흥시키겠다며 청소년의 심야시간 게임 제한을 4년 만에 풀겠다고 나섰다. 이처럼 우리는 늘 유행에 따라 구호만 앞선다. 정부는 최근 국가 브랜드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를 발표했다. 그러나 ‘다이내믹 코리아’ ‘코리아 스파클링’ ‘창조경제’ ‘하이 서울’ ‘I·Seoul·U’까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브랜드가 난무해 혼란을 가중시킨다. 마치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와 같은 정권 슬로건처럼 여겨진다. 이러니 국내 최대 굴지의 게임회사인 넥슨이 창조적 게임 개발보다는 권력에 줄을 대는 게임에만 골몰하지 않았을까. 한국도 AI, AR, 가상현실(VR) 기술이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포켓몬과 같은 ‘킬러 콘텐츠’의 부족이다. 강력한 콘텐츠는 장기간의 지식재산권(IP) 육성에서 나온다. 비디오 게임으로도 성공한 적이 없는 뽀로로 캐릭터를 서둘러 AR 게임으로 내놓았다가는 졸속 복제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패스트 팔로어’ 전략과 조급하게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 유럽에서도 이번 주말 포켓몬고의 공식 서비스를 앞두고 프랑스 파리 에펠탑,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과 같은 관광 명소, 박물관 등지에서 포획한 포켓몬 인증샷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판, 영국판 포켓몬고’를 만들자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우리도 포켓몬고가 나오면 그냥 즐기자. 지루한 자책은 이제 그만, 설익은 ‘한국형 포켓몬고’도 더 이상 필요 없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정부가 게임산업 진흥을 위해 청소년들의 심야시간대 인터넷 게임을 제한하는 ‘강제적 셧다운제’를 폐지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18일 오전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 등이 참여하는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청소년보호법에 규정돼 있는 강제적 셧다운제를 폐지하고, 게임 마이스터고 설립 등을 골자로 한 ‘게임문화 진흥계획안’을 심의 의결했다. 문체부가 보고한 이번 안에 따라 2012년부터 여가부가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게임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심야시간대(자정∼오전 6시)에 인터넷 게임 접속을 제한하는 강제적 셧다운제가 4년 만에 폐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체부는 그 대신 부모가 청소년 자녀의 게임 이용을 요청하면 게임 접속 제한을 풀어주는 ‘부모 선택제’로 바꾸기로 했다. 부모 선택제가 시행되면 16세 미만의 청소년이라도 부모의 허락 절차를 거쳐 당국에 신청하면 미성년자의 ID로도 심야시간대에 온라인 게임에 접속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성희 문체부 게임콘텐츠산업과 과장은 “부모 선택제의 세부적인 신청 절차는 현재 여가부와 함께 논의 중”이라며 “그러나 심야시간대 청소년의 PC방 출입은 또 다른 법안에 따른 규제이기 때문에 당장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체부와 여가부는 막판 협상을 거친 후 20대 국회에서 부모 선택제를 내용으로 하는 청소년보호법 개정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현재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도 과도한 게임 몰입에 대한 사회 문제가 여전한 상황에서 시류에 따라 국가 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와 청소년 보호 단체들은 셧다운제가 청소년의 건강을 지키는 수면권을 보장해 주고, 게임으로 인한 부모와 아이들 간 갈등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실태 조사를 한국경제연구원이 종합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2년 제도 시행 이후 게임 과몰입군의 비중은 전년(2.50%) 대비 67% 줄어든 0.82%로 낮아졌다. 과몰입위험군 비중도 유사한 움직임을 보였다. 헌법재판소도 2014년 셧다운제에 대한 위헌심판 청구소송에서 “청소년들의 높은 인터넷 게임 이용률과 게임 과몰입에 따른 부정적 결과 등을 고려할 때 과도한 규제라고 보기 어렵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윤태용 문체부 문화콘텐츠산업실장은 이번 진흥계획안에 대해 “포켓몬 고, 알파고 열풍에서 보듯 게임은 디지털시대의 보편적 여가문화이자 주요한 콘텐츠 산업”이라며 “‘게임은 마약’이 아니라 ‘게임은 문화’로 보는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게임업계 측은 “셧다운제가 게임에 대한 이미지를 악화시켜 한국의 게임산업 발전을 크게 위축시켜 왔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희범 공교육 살리기 학부모연합 사무총장은 “게임산업 진흥과 청소년과 가정의 보호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포켓몬 고, 알파고와 같은 세계시장에 내놓을 게임을 개발하려면 콘텐츠 산업에 대한 연구개발(R&D)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지 심야시간대 게임을 하는 청소년 유저를 늘린다고 해서 과연 가능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교육부총리를 지낸 황우여 전 의원은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청소년 관련 법안은 ‘게임산업의 진흥’이라는 측면에서만 봐선 안 되며 청소년 보호와 교육권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전문가들이 위험성을 인정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청소년 보호라는 국가적 임무를 부모의 선택에 떠넘기기보다는 국가가 법률로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문체부는 학교 교육에도 게임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선 2019년까지 게임 관련 직업을 희망하는 청소년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게임 마이스터고가 설립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2017∼2018년 게임 관련 맞춤형 교과과정을 개발하고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초등학생의 방과후 학교, 중고교의 자유학기제·자율동아리활동과 연계해 게임을 활용한 창의성 교육 및 진로개발 프로그램을 확대할 예정이다.전승훈 raphy@donga.com·이지은 기자}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이후 26년 만에 영국에서 두 번째 여성 총리 탄생이 유력시되고 있다. 영국 차기 총리를 정하는 보수당 대표 경선 1차 투표에서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59·사진)이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올랐다. 모두 5명의 후보가 출마한 5일 경선에서 메이 장관은 총 329표 중 과반수인 165표를 얻었다. 이어 ‘EU 탈퇴파’ 여성 후보인 앤드리아 레드섬 에너지차관(53)이 66표로 2위를 차지했다. 이 구도대로라면 최종 후보 2명 모두 여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메이 장관은 1차 투표 후 “당과 나라를 통합하고 유럽연합(EU) 탈퇴 협상에서 최선의 합의를 얻어 모든 사람을 위한 영국을 만들어야 하는 커다란 임무가 있다”며 “세 가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메이 장관은 지난달 23일 치러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에서 ‘EU 잔류’를 지지했지만 적극적으로 투표 운동에 나서진 않았다. 메이 장관은 경쟁 후보들이 ‘신속한 EU 탈퇴’와 ‘이민 통제’를 내세우며 영국의 고립주의 우려를 키우는 것과 달리 EU 탈퇴 속도 조절과 균형론을 내세워 불안감을 잠재우는 리더십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는 연내에 EU 회원국의 탈퇴 절차를 규정한 리스본조약 50조를 발동해선 안 되며 사전에 충분한 협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메이 장관은 옥스퍼드대(지리학과)에 다니던 시절 보수당원으로 활동하다가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 소개로 지금의 남편인 필립 메이를 만났다. 대학 졸업 후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 영국지불교환협회에서 일하다 1997년 메이든헤드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인 2002∼2003년 보수당의 첫 여성 의장으로 활약했고 2010년부터 5년 넘게 내무장관직을 맡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정치적 배신이 난무하는 영국 정계에서 메이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정치인”이라며 “시끌벅적하고 흥분하기 쉬운 공립학교 남학생들로 가득 찬 교실에서 침착하게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는 여교장과 같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메이 장관을 지지하는 가이 오퍼먼 보수당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메이는 강인하고, 친절하고, 성실하다. 때때로 지독하게 어려운 여자지만 최고의 총리가 될 것”이라고 올렸다. 독일 TV평론가인 볼프람 바이머는 “메이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초연하고 냉정한 태도로 일을 한다. 그러나 항상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남성들의 정치적 잿더미에서 여성들이 부상하고 있다”며 보수당뿐만 아니라 노동당에서도 여성 리더십이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당의 불신임을 받은 제러미 코빈 당수의 후임으로 앤절라 이글 부당수가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알린 포스터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반, 린 우드 웨일스 민족당 대표 등 영국을 통치하는 지도자들이 모두 여성이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연합(EU)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을 벌일 영국 차기 총리를 뽑는 보수당 대표 경선이 두 여성 정치인의 맞대결로 압축되고 있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이후 26년 만에 여성 총리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영국의 보수당 의원 331명은 5일 대표 후보 5명을 놓고 1차 투표를 했다. 최저 득표자를 1명씩 걸러내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7일과 12일 추가로 투표를 해 최종 후보 2명을 정한다. 이후 당원 15만 명이 참여하는 우편투표를 통해 9월 8일 새 총리를 선출한다. 현재 보수당 내 의원들의 지지에서는 EU 잔류파에 속하는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59)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탈퇴파의 여성 후보인 앤드리아 레드섬 에너지차관(53)이 그 뒤를 추격하고 있다. 두 후보는 영국의 EU 탈퇴 협상 속도를 놓고 맞서고 있다. 메이 장관은 “영국의 EU 탈퇴 협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며 “(EU 회원국의 탈퇴 절차를 규정한) ‘리스본조약 50조’를 연내 발동하지 않을 것이며 사전 협상을 충분히 한 다음에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레드섬 차관은 “내가 총리가 되면 브렉시트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은 제로”라며 “이르면 내년 봄 영국이 EU를 떠날 수 있는 ‘패스트 트랙(fast-track)’ 일정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남부 이스본에서 태어난 메이는 옥스퍼드대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뒤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에 들어갔다. 이어 민간기업에서 금융컨설턴트로 12년간 일했으며 1997년 하원에 입성했다. 메이는 1998년 예비내각에 기용된 이래 교육, 교통, 문화미디어, 고용연금 담당과 원내총무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10년 보수당이 정권을 탈환한 후 내무장관에 기용된 이래 최장 내무장관직 재임 기록을 유지해 오고 있다. 워릭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레드섬 차관은 바클레이스은행과 자산운용회사 등 금융업계에서 25년간 일했다. 2010년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2013년 재무부의 경제담당 차관을 지낸 뒤 2015년 에너지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BBC 집계에 따르면 6일 현재 메이 장관은 전체 331명의 의원 중 115명을, 레드섬 차관은 40명을 지지 세력으로 확보했다. 이어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 26명, 스티븐 크래브 고용연금장관 23명, 리엄 폭스 전 국방장관 9명 순이다. 118명의 의원은 아직 누구를 지지할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EU 탈퇴 캠페인을 이끌었다 최근 경선 불참을 선언한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경선 하루 전인 4일 레드섬 차관 지지를 표명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존슨의 레드섬 지지는 약속을 어기고 경선 출마를 발표한 고브 장관에 대한 보복이라고 전했다. 존슨은 측근인 고브 장관의 배신에 결국 총리 꿈을 접었다. 존슨의 지지를 받는 레드섬 차관이 2위로 올라설 경우 고브 장관이 최종 2인에 들어갈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진다. 보수당 소속 의원들이 압도적으로 메이 장관을 지지하고 있지만 결선투표가 두 여성 후보 대결로 갈 경우 팽팽한 대결이 예상된다. 의원 지지에선 메이가 압도적이지만 일반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레드섬에 대한 지지가 메이에 뒤지지 않는다. 실제로 보수당 지지 활동가들이 만든 웹사이트 ‘컨서버티브홈’이 4일 1214명을 조사한 결과 레드섬 지지율은 38%로 오히려 메이(37%)보다 앞섰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기업들의 ‘탈(脫)영국 러시’에 대응해 법인세를 낮추겠다고 밝혔다.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은 3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이 브렉시트 충격에서 살아남으려면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20%인 법인세율을 15% 이하로 낮추겠다”고 말했다. 영국이 법인세를 15% 수준으로 내리면 런던을 대체할 금융허브 중 하나로 꼽히는 아일랜드 더블린(12.5%)보다 약간 높아지게 된다. 더블린이 유럽에서 최저 법인세율을 내세워 기업들의 절세 안식처로 각광받는 것처럼 파격적인 법인세 인하를 통해 브렉시트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법인세율은 25%다. 오즈번 장관은 법인세 인하 외에도 △중국발(發) 투자 유치 확대 △은행 대출 지원 확충 △잉글랜드 북부 지방 친기업화 투자 △영국 재정 신뢰도 개선 등 5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그는 다른 국가들과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며 중국을 방문해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플랜도 밝혔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은행 임원들의 ‘보너스 상한선’에 대한 EU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점도 글로벌 금융회사엔 호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법인세 인하는 세수 감소를 초래해 영국 국민들이 부담하는 소득세와 상속세 부담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브렉시트 찬성에 따른 재정 부담이 국민들에게 전가되는 셈이다. 영국이 떠나려는 기업을 붙잡기 위해 법인세 인하라는 당근책을 검토하는 사이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프랑스 파리, 아일랜드 더블린 등 유럽 도시들은 브렉시트 이후 약화될 런던의 금융허브 지위를 뺏어 오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캠페인을 주도하며 영국의 차기 총리 ‘0순위’로 거론된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52)이 지난달 30일 전격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국민투표 때 늘어놨던 ‘공약(公約)’들이 빈껍데기 ‘공약(空約)’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존슨 전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동료들과 논의했고, 의회 여건을 고려해 내가 총리가 될 사람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불출마 선언은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49)이 경선 참여를 깜짝 발표한 지 9시간 만에 나왔다. 옥스퍼드대 시절부터 30년 친구이자 브렉시트 캠페인 동지로 총리 경선에 러닝메이트로 나서기로 한 고브 장관은 막판에 존슨 전 시장이 자질이 부족하다며 비판하고 등을 돌렸다. 영국 언론들은 “카이사르를 배신한 브루투스처럼 고브 장관이 존슨 전 시장의 정면에서 칼을 찔렀다”고 표현했다. 고브 장관은 “EU 탈퇴가 더 나은 미래를 줄 것이라고 주장해온 존슨 뒤에서 팀을 이뤄 돕기를 원했지만 그가 리더십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출마의 변을 밝혔다. 고브 장관은 1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동의 자유를 끝낼 것이다. 호주의 포인트 방식(일정한 점수를 쌓아야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음)의 제도를 도입해 이민자 수를 낮출 것”이라고 공약했다. 존슨 전 시장이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남발했던 ‘장밋빛 포퓰리즘’이 ‘대국민 사기극’으로 드러나자 보수당 내에서도 ‘보리스 빼곤 다 좋다(Anyone but Boris)’란 말이 나왔다. 그는 이민자를 대폭 줄이겠다는 공약과 EU에 지출했던 주당 3억5000만 파운드(약 5330억 원)의 분담금을 국민보건서비스(NHS)로 돌리겠다는 약속을 뒤집었다. 최근 일간 텔레그래프에 기고한 ‘독립 영국의 비전’이란 칼럼에선 ‘영국이 EU를 탈퇴한 뒤 EU 회원국 국민의 영국 이주를 제한하면서도 EU의 단일시장에 잔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가 EU 외교관들로부터 비웃음만 샀다. 보수당 원로 헤슬타인 경은 BBC에 출연해 존슨 전 시장이 “영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헌법적 위기를 불러왔으며 보수당을 찢어놓은 인물”이라며 “마치 병사를 전쟁터에 진군시켜 놓고 전쟁터를 떠난 치욕스러운 장군과 같다”고 비판했다. 존슨 전 시장은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59)에게 자신이 이번 보수당 당수 후보에서 사퇴하는 대신 2020년 경선에서는 자신에게 총리직을 양보해달라며 뒷거래를 제안했지만 퇴짜를 맞았다고 더타임스가 1일 보도했다. 존슨 전 시장의 낙마로 ‘제2의 마거릿 대처’ ‘영국의 메르켈’로 불리며 영국인들의 신임을 얻어 온 메이 장관이 유력한 총리 후보로 떠올랐다. 마거릿 대처 이후 26년 만에 영국 여성 총리를 노리는 메이 장관은 브렉시트를 반대했지만 지난달 30일 출마를 선언하면서 “재투표는 없다”며 국민의 뜻인 브렉시트를 진행할 뜻을 밝혔다. 메이 장관은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를 뜻한다”며 “국민이 결정을 내렸다. EU 잔류를 위한 시도는 없어야 하고, 뒷문을 통해 재가입하려는 시도도 없어야 한다. 제2의 국민투표도 없다”고 일축했다. 고브 장관, 메이 장관에 이어 리엄 폭스 전 국방장관(54), 스티븐 크랩 고용연금장관(43), 앤드리아 리드섬 에너지부 차관(53) 등 모두 5명의 후보가 출마를 선언하고 총리 자리를 놓고 경합하고 있다. 이 중 고브 장관, 폭스 전 장관, 리드섬 차관 등 3명은 EU 탈퇴 운동에 적극 나섰던 후보들이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23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에서 지역별 최고의 찬성률(61.3%)로 탈퇴를 지지했던 잉글랜드 북동부 공업도시 선덜랜드. 원했던 ‘EU 탈퇴’를 손에 쥐었지만 개표 후 일주일도 안 돼 주민들 사이에서 후회의 물결이 일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8일 보도했다. 일본 자동차회사 닛산이 브렉시트로 인해 선덜랜드에서 발을 뺄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닛산은 선덜랜드에 영국 최대 규모의 자동차 생산 공장을 두고 생산 차량(연간 47만6589대)의 55%를 EU 회원국들에 수출하고 있다. 닛산이 38억5000만 파운드(약 5조9721억 원)를 투자한 이 공장은 7000여 명의 현지인을 고용하고 있다. 닛산이 철수할 경우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선덜랜드 주민들은 브렉시트가 가결되더라도 닛산이 철수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탈퇴 쪽에 표를 던졌다. 하지만 영국이 EU를 탈퇴한다면 다른 EU 회원국 시장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불가능해 닛산으로선 영국 철수 또는 대규모 인원 감축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닛산 공장에서 근무하는 30대 남성 스티븐 씨는 “안 그래도 정리해고의 두려움에 떨고 있던 공장 인부들 사이에 어두운 구름이 드리워졌다”며 “지난 국민투표에서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결정을 후회하는 이른바 ‘리그렉시트(Regrexit)’ 여론이 영국 내에서 확산되고 있다. ‘후회(Regret)’와 ‘브렉시트(Brexit)’를 합친 신조어다. 특히 청년층에서 후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많은데 노년층이 우리의 미래를 함부로 결정했다”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시위대의 맹렬한 분노는 정치인들에게로 향하고 있다. EU 탈퇴 캠페인을 이끈 정치인들이 국민투표 이후 말 바꾸기를 하면서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는 불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앨릭스 샐먼드 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제1장관은 28일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 때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670쪽짜리 공약집을 준비했다”며 “그런데 브렉시트 진영은 국민투표 후 어떤 계획도 없이 정쟁에만 몰두했다”고 비판했다. 유럽 금융의 허브인 ‘시티오브런던’에 본사를 둔 은행과 투자회사들은 엑소더스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엔 영국 내 금융사들이 예전처럼 EU 국가 고객들에게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자유롭게 팔 수 있는 권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유럽중앙은행(ECB)이 경고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28일 EU 정상회의가 열린 브뤼셀에서 “영국은 앞으로 유로화 거래 청산(clearing)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CNN머니는 28일 프랑크푸르트, 룩셈부르크, 파리, 더블린, 베를린, 암스테르담, 에든버러 등 EU 역내 7개 도시가 새로운 세계 금융 허브로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향후 투자 전망도 깜깜하다. 영국의 관리자협회가 최근 회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분의 1 이상이 브렉시트 때문에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응답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8일 보도했다. 응답자의 4분의 1은 영국에서 신규 고용을 중단하겠다고 답했고, 22%는 일부 사업을 영국 이외 지역으로 옮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블룸버그는 27, 28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3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1%가 영국이 경기 침체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고 29일 보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 닷새 만인 28일(현지 시간) 영국에선 자신들의 선택을 후회하는 ‘리그렉시트(Regrexit·후회를 뜻하는 regret와 exit의 합성어) 여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파운드화 가치가 연일 급락하고, 글로벌 기업들의 ‘영국 엑소더스(대탈출)’ 움직임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브렉시트 캠페인을 이끈 정치인들은 ‘장밋빛 공약’에 대한 말 바꾸기로 난타를 당하고 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국민투표 가결을 위한 선동에만 몰두했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선 공화당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경제적 독립’을 내세워 신(新)고립주의 무역정책을 발표하고 나섰다. 최근 트럼프의 상승세가 주춤하고는 있지만 미국 역시 백인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불만이 팽배해 있어 연말 미국 대선 결과를 예측하긴 쉽지 않다. 각계 원로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브렉시트의 한국판’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양극화 심화에 따른 불만과 분노,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 세대의 생존 불안 등 각종 사회 갈등 요인이 대선을 계기로 한꺼번에 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국가 재정으로 감당할 수 없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공약 경쟁으로 치닫거나 국가 명운과 관련된 안보 현안을 놓고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편 가르기 공약이 판을 치고 유권자들이 이에 현혹돼 그릇된 선택을 할 경우 브렉시트 못지않은 ‘코렉시트(Korexit·Korea와 exit의 합성어)’의 길로 빠져들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각계 원로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2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2013년 말 ‘안녕들하십니까’와 같은 대자보 한 장에 사회 전체가 동요할 정도로 한국 사회는 취약하다”며 “내년 대선은 경제적 양극화가 정치적 양극화로 극대화될 수 있는 시점”이라고 우려했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는 “브렉시트는 정치인들이 국가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포퓰리즘 선동을 통해 자신들의 단기적 이해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치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포퓰리즘의 광풍’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리그렉시트는 내년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에 선동과 편 가르기로 공멸할 것인지, 희생과 통합으로 재도약에 나설 것인지를 묻고 있는 셈이다.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파리=전승훈 특파원 /세종=손영일 기자}
영국 내에서 브렉시트 결정을 후회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는 가운데 재투표를 요구하는 움직임도 구체화하고 있다. 영국과 유럽연합(EU)이 진행할 브렉시트 협상의 내용과 일정에 큰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28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막한 EU 정상회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상회의는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처음 열리는 것으로 영국의 EU 탈퇴 협상 문제를 집중 논의한다. 현직 각료인 제러미 헌트 영국 보건장관은 27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기고에서 “탈퇴를 위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곧바로 발동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민자를 자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국경통제권을 놓고 EU와 새로운 협상이 보장된다면 재국민투표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영국해협을 오가는 자유통행 규정에 관한 합리적인 타협과 함께 단일 시장에의 완전한 접근권을 주는 ‘노르웨이플러스’ 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유명 칼럼니스트 기디언 래크먼은 브렉시트가 실제 벌어질 경우 영국과 EU 모두에 큰 피해가 예상돼 양측이 재투표에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래크먼은 덴마크와 아일랜드 역시 투표를 통해 EU 가입을 거부했다가 EU로부터 양보를 얻어낸 뒤 재투표에서 가입조약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CNN, BBC 등 외신에 따르면 브렉시트에서 다시 ‘탈출(exit)’하는 방법으로는 △영국 정부가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하지 않아 EU와 협상을 아예 시작하지 않는 방안 △스코틀랜드나 북아일랜드 의회가 브렉시트 투표 결과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안 △조기총선 공약에 국민투표 결과를 포함시켜 총선에서 재심판을 받는 방안 등이 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지 현실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영국이 EU 탈퇴 협상 개시를 머뭇거리면서 ‘시간 끌기’ 작전을 펼치자 EU 중심국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3개국 정상이 27일 베를린에 모여 “영국이 탈퇴신청서를 제출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협상도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도 28일 EU 정상회의 개막을 수시간 앞두고 “영국은 조속히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영국이 공식적으로 EU를 떠나고 싶다고 통보해 올 때까지 어떠한 비공식 비밀 협상도 금지한다”고 못 박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27일 하원 연설에서 “국민투표 결과에 대한 의문은 있을 수 없다”며 “결정 이행 과정은 시작돼야 한다”며 재투표 불가 입장을 밝혔다. 캐머런 총리는 이 자리에서 EU 탈퇴 후속 절차를 진행할 새로운 정부 부처를 만든다는 계획도 밝혔다. 당초 10월로 알려졌던 영국의 EU 탈퇴 협상 개시는 9월 초로 한 달가량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캐머런 총리가 10월 사임 발표와 함께 탈퇴 협상 개시 결정권을 후임 총리에게 넘기겠다고 밝힌 이후 EU 국가들이 “신속하게 협상을 개시하라”고 압박한 데 따른 것이다. 영국에서도 새 총리 인선 시기가 9월 초로 앞당겨질 것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브렉시트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27일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EU 지도자들에게 책임 있고 전략적인 대처를 주문했다. 케리 장관은 “침착하지 못하거나 보복적인 전제를 깔고 일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후 케리 장관은 영국 런던으로 이동해 필립 해먼드 영국 외교장관과 회담을 갖고 “굳건한 미국과 영국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왔다”고 밝혔다. EU 의장국인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터 총리는 네덜란드 의회 답변에서 “영국이 EU를 빨리 떠나도록 강요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영국에 시간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브렉시트를 선택한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이혼 절차(divorce process)’를 논의하는 EU 정상회의를 앞두고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 영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줄줄이 낮췄다. 28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EU 정상회의에서 대면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EU 27개국 정상들은 영국의 EU 탈퇴 협상을 언제 시작하느냐를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국제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7일 영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두 계단 낮췄다. S&P는 성명에서 “(브렉시트로) 영국 정부의 재정 능력이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신용평가회사인 피치도 이날 영국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계단 낮췄다. 브렉시트 논의를 위한 EU 정상회의 참석차 브뤼셀을 방문한 캐머런 총리는 28일 첫날 만찬 연설을 통해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의 혼란상과 향후 대책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탈퇴 협상 개시 시기를 밝히라’는 EU 정상들의 요구에는 “(영국의 EU 탈퇴를 공식 선언하는) 리스본조약 50조 발동은 후임 총리가 결정할 일”이라고 맞섰다. 영국은 EU 탈퇴 협상을 시작하기에 앞서 EU와의 비공식 협상을 통해 포괄적 자유무역협정(FTA)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반면 EU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8일 연방의회 연설에서 “사전협상도, 어떤 예외특권도 (영국에) 허용해 줄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어 향후 영국과의 탈퇴 협상에서 좋은 것만 골라 취하려는 ‘체리 피킹(Cherry picking)’ 원칙은 배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영국 내에서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재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재투표 요구 청원서에 서명한 사람이 390만 명을 넘어섰고, 27일에는 제러미 헌트 영국 보건장관이 “공식 탈퇴서를 내기 전에 우선 EU와 협상을 한 후 그 결과를 두고 다시 국민투표를 하거나 총선 공약 형식으로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캐머런 총리는 이날 “투표 번복은 없다”며 재투표 불가 방침을 분명히 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EU) 정상들이 ‘포스트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대책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국을 응징하려는 일부 회원국의 자제를 당부하며 “합리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통합을 향해 달려온 ‘EU호(號)’에 균열을 남긴 영국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감정이 앞서지만 지금은 브렉시트 충격을 최소화하고 사태를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에서다. 당장 28, 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28개 회원국 정상회의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스를 비롯한 강성 회원국들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이후에도 EU 탈퇴 협상 개시를 머뭇거리고 있는 영국을 성토하고 있다. 10월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정상회의에 참석하지만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캐머런 총리는 28일 만찬에서 다른 국가 정상들로부터 영국을 EU 탈퇴로 몰고 간 책임을 추궁당할 것으로 보인다. 회의 둘째 날인 29일에는 캐머런 총리를 제외한 27개국 정상이 모여 영국과의 ‘이혼 절차’를 논의하는 비공식 회의를 갖는다. 회의에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참석해 세계적인 브렉시트 충격 최소화 및 유럽-미국 간 공조 등 대응 방침을 논의한다. 당초 케리 장관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협상 논의를 위해 이탈리아 로마를 찾으려 했으나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 브렉시트 해법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EU의 삼두마차 중 하나였던 영국의 이탈 이후 더욱 무거운 짐을 지게 된 독일과 프랑스는 모든 회원국 정상이 총출동하는 EU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견 해소에 나섰다. 메르켈 총리는 26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통화한 데 이어 27일 베를린에서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까지 포함한 독-프-이 3국 정상회의를 갖고 브렉시트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영국의 EU 탈퇴 협상 개시 시한에 대해서는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25일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 등 EU 대표들은 “영국은 조속히 떠나라”며 신속한 협상을 촉구했다. 영국의 신속한 EU 탈퇴에 대해선 프랑스가 가장 강경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경제장관은 “불확실성이 길어질수록 영국과 유럽 금융시장의 고통은 더욱 커진다”며 “가능한 한 빨리 투명한 절차를 통해 탈퇴 협상이 마무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국의 EU 탈퇴를 특별히 서두를 이유가 없다. 즉각적인 이탈을 압박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메르켈 총리가 독일 산업계의 요구를 주의 깊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지난해 독일의 대(對)영국 수출은 830억 달러(약 97조1100억 원)로 영국의 대독일 수출 규모의 두 배에 가깝다. 독일 산업계는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더라도 별도의 무역협상을 통해 관대한 조건의 파트너십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연합(EU)의 중심국인 독일과 프랑스 정상이 26일(현지 시간) 전화 회담을 하고 영국에 EU 탈퇴 협상 일정을 명백하게 밝힐 것을 강력히 요구하기로 했다. 프랑스 엘리제궁(대통령 집무실)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30분간 통화를 통해 “브렉시트 후속 조치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했다”며 “불확실성을 피하고 최선의 투명함을 추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이어 27일에도 독일 베를린에서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와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만나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EU는 내부 결속 차원에서 “영국은 당장 나가라”며 으름장을 놓으면서도 브렉시트를 무위로 돌리겠다면 받아들이겠다는 ‘화전양면(和戰兩面)’책을 구사하고 있다. 28일부터 벨기에 브뤼셀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열리는 EU 28개 회원국 정상회의에서는 영국의 EU 탈퇴 협상 일정을 논의하고 ‘도미노 이탈’을 막기 위한 EU 개혁안의 방향이 결정된다. EU 정상회의에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참여할 예정이다. EU는 영국과 브렉시트 관련 비공식 협상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브렉시트를 선택한 영국에 명확한 책임을 묻고 압박하기 위해서다. 키를 쥔 메르켈 총리는 27일 “영국은 유럽연합 탈퇴에 관한 일을 분석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면서도 “이 문제를 장시간 미해결의 현안으로 놔두는 것은 양쪽 경제의 이익에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U 정상들이 브렉시트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영국에서는 국민투표 재검토 요구가 빗발쳤다. 스코틀랜드 자치의회는 국민투표 결과를 무효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재투표를 해야 한다는 의회 청원에는 사흘 만에 350만 명이 넘게 서명했다. 이런 가운데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심각한 분열상을 보였던 영국 보수당의 원로들은 27일 총리 선출을 위한 경선 일정 논의를 시작했다. 당론으로 잔류를 밀었음에도 브렉시트 저지에 실패한 제1야당 노동당 역시 제러미 코빈 대표의 리더십에 반대하는 노동당 예비내각 11명이 이날 한꺼번에 자진 사임하는 등 내홍을 겪고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연합(EU)이 주요 회원국인 영국 탈퇴(브렉시트)의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신속하게 체제 정비에 착수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통과 이후 EU 지도부와 주요국들은 영국에 대해 “10월까지 탈퇴 협상을 기다리지 말고 EU를 빨리 떠나라”고 촉구했다. EU 창설을 주도했던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6개국 외교장관들은 “브렉시트로 생긴 금융 혼란과 정치적 불안정이 장기화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도 “영국이 보수당 내 파벌 싸움에 유럽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비난하며 조속히 떠나줄 것을 요구했다. EU는 다음 달 1일까지 영국 없는 EU 체제를 조속히 안정시키기 위해 ‘운명의 1주일’ 동안 릴레이 회의를 연다. 가장 주목받는 회의는 28, 29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참석하는 EU 정상회의다. EU는 첫 탈퇴국인 영국에 대해 ‘본때’를 보이겠다며 벼르고 있다. 아울러 각국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유연화 개혁을 통해 브렉시트가 방아쇠를 당긴 ‘이탈 도미노’를 사전에 차단하기로 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EU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강화뿐만 아니라 치안과 국방, 이민자들에 대한 국경 단속,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우리는 EU를 좀 더 공정하고 인간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국 없이도 EU는 견딜 수 있다”며 EU가 외연을 확장하는 ‘더 많은 유럽’보다 개혁 조치를 동반한 ‘단단한 유럽’으로 향해 나아갈 뜻을 분명히 했다. 영국인들도 큰 충격에 휩싸였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재투표를 요구하는 의회 청원에 300만 명이 넘게 서명했다. 영국 하원은 10만 명 이상이 서명한 안건에 대해 논의 여부를 검토해야 하지만 캐머런 총리가 재투표는 없다고 못 박아 재투표 가능성은 높지 않다. 런던에서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EU에 합류해야 한다’는 청원에 16만1200여 명이 서명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은 “지금처럼 투표 결과를 되돌릴 마법을 원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애통한 마음을 전했다. 슬로바키아의 극우 정당이 ‘슬렉시트’ 투표를 주창하고 나선 것을 비롯해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에서 분열 움직임이 거세다. 영국도 350년 만에 ‘리틀 잉글랜드’로 전락할 위기에 빠졌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EU에 남기 위한 즉각적인 협상 개시를 추구할 것이며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 재실시를 위한 조치도 취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기로 함에 따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영국이 주도했던 전후 세계 질서에 균열이 가고 ‘신(新)고립주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사설에서 “EU는 패배했다. 안으로 약해졌으며 밖으로도 쇠퇴하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고 논평했다. 런던=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