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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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6-02-28~2026-03-30
문학/출판31%
문화 일반23%
인사일반13%
언론10%
역사7%
사회일반7%
칼럼3%
바둑3%
기업3%
  • [책의 향기]카뮈의 발길을 따라 이방인처럼 여행하다

    “그 젊음은 죽음을 껴안으면서 다시 찾아지는 젊음이다. … 그리하여 이제 나는 문명의 참다운 단 하나의 진보는 … 스스로 뚜렷이 의식하는 죽음을 창조하는 것임을 분명히 느끼게 된다.” 알베르 카뮈(1913∼1960)는 1937년경 산문 ‘제밀라의 바람’에 이렇게 썼다. 제밀라는 알제리 북쪽에 있는 고대 로마 유적. 카뮈는 이 폐허를 보며 필멸의 운명을 직시한 고대인들의 순수한 정신을 떠올렸다. 저자는 이곳을 찾아 카뮈의 글을 곱씹었다. 그리고 인간이 존재의 하찮음을 명징하게 의식하면서, 순간마다 힘을 다해 열정을 바치는 데 위대함이 있다는 뜻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여러 차례 손꼽히는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이자 카뮈의 ‘이방인’을 손수 번역했던 저자가 카뮈의 발길이 닿았던 곳을 여행하며 독자를 카뮈의 삶과 작품으로 이끈다. 부제 ‘지중해의 태양 아래서 만난 영원한 이방인’.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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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경제보복은 한국 길들이기… 독도 무력 도발 대비해야”

    “(한일 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일본이 취할 수 있는 다음 행보가 독도 도발입니다. 일본이 독도 근처에서 무력 도발하면 육군 중심인 우리가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거 같습니까?” 과거사와 현실 문제로 악화된 한일 관계가 여전하다. 최근 일본이 방위전략 홍보 영상에서 독도를 자국 영토로 표기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10만 부가 팔린 ‘일본이야기’를 냈던 김현구 고려대 명예교수(76·역사교육)가 ‘일본 다루기: 달라진 한국’(이상미디어)을 최근 출간했다. 28일 서울 송파구 자택에서 만난 김 교수는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마디로 한국 길들이기”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일본이 강제징용 판결을 핑계로 주요 품목의 대한(對韓) 수출을 규제한 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형성된 한미일 연대를 미중 패권 다툼에 따라 반중연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묵인하에 한국을 압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일본은 필요할 때 덫을 치고 기다린다”면서 “한국인은 일본을 모르면서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때 일본이 한국에서 자금을 회수한 걸 두고 화창할 때 우산을 빌려줬다가 비 올 때 가져갔다고 하지요. 그런 일을 겪고도 소재·부품 문제에 대비를 못 했던 거지요.” 그러나 일본이 조만간 추가 경제보복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국의 불매운동으로 지난해 일본의 대한 수출이 전년 대비 10% 이상 감소했다는 통계가 최근 나오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실리를 중시하는 일본이 명분을 위해 싸우는 모양새가 국내적으로 썩 유리하지 않습니다. 올해 외국인 관광객을 4000만 명으로 늘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5만 달러로 끌어올리는 동력으로 삼겠다던 아베 신조 총리의 구상이 우리의 일본 관광 불매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유행으로 타격을 입을 겁니다.” 그는 길게 봤을 때 통일을 앞두고 있는 한국이 중국을 적대하기 어렵다고 봤다. “김정은 정권은 근대화를 추진해도, 안 해도 몰락하게 돼 있어요. 통일은 대비의 문제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한데 우리 역사에서 중국에 맞선 세력이 한반도의 주인이 된 예가 없어요.” 중국은 지금도 경제적으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나라지만 향후 점점 한반도의 운명에 ‘상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김 교수는 “나쁘게 말하면 미국은 멀리 있는 깡패, 중국은 가까이 있는 깡패”라며 “한반도는 중국과 통일과 분열이라는 역사의 궤적을 같이했고, 이를 거슬렀을 때 반드시 침략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저술로 논박한 학자로 꼽힌다. 그는 ‘임나’ 관련 사료에 해설을 단 자료집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내가 공부해온 곳까지는 후학들이 헤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번 ‘일본 다루기’도 일본사를 공부한 학자의 책임감으로 내놓은 것이고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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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름 타고 내려오는 아미타불의 ‘금빛 자태’

    아미타불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과 함께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주위에는 비파와 장구, 법라(法螺·소라 껍데기로 만들어 불교 의식에 쓰는 악기) 등 여러 악기가 춤추듯 날아다닌다. 비단에 금물로 그린 조선시대 아미타삼존도(사진)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불교회화실을 최근 개편하고 처음으로 공개한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청정한 이상향, 정토(淨土)’를 주제로 회화와 경전, 사경(寫經·손으로 베낀 경전) 등 유물 23점을 불교회화실에서 새로 소개하고 있다. 조선 전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 소재 불감(佛龕·불상을 모셔 두는 방이나 집)에는 부처가 머무는 세계가 담겼다. 부처와 두 보살을 중심으로 상서로운 기운을 내뿜는 나무와 누각, 새가 앉아 있는 연못 전경이 금빛 찬란하다. 아귀도(餓鬼道·불교에서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이 죽은 뒤 가게 된다는 곳)에 떨어진 영혼이 극락에 가기를 기원할 때 쓰인 의식용 불화 ‘감로를 베풀어 아귀를 구함’도 전시에 나온다. 배고픔과 목마름에 시달리는 아귀,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불보살이 함께 등장한다. 이 밖에 극락으로 안내하는 아미타불과 인로왕(引路王)보살을 그린 그림, 왕실 기도처에 봉안된 지장삼존도, 가족의 명복을 바라며 발원한 화엄경 사경 등도 볼 수 있다. 전시는 7월 12일까지 열린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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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계 9주기… ‘다시 읽는’ 박완서

    “나는 내 작중인물에게 내가 그들을 창조하면서 지워준 운명대로 살게 할 수밖에 없었다.” 박완서 작가(1931∼2011)가 1977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의 후기에 적은 글이다. 최근 발간된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작가정신)에 발췌돼 다시 실렸다. 문학으로 시대의 아픔을 보듬었던 박완서 작가의 9주기(22일)를 맞아 그의 소설들이 새롭게 독자를 만나고 있다. ‘프롤로그…’는 박 작가가 소설 산문 동화의 서문과 발문에 쓴 ‘작가의 말’ 67편을 연대순으로 담았다. 오디오북도 출시된다. 문학동네는 지상파 아나운서들이 낭독한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전 7권)을 4월까지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통해 차례로 출시한다. 중단편집도 새 단장을 했다. 문학과지성사는 ‘문지작가선’의 하나로 박 작가의 중단편선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를 최근 펴냈다. 작가의 초기작 ‘도둑맞은 가난’(1975년)부터 골육상잔의 아픔을 담은 ‘빨갱이 바이러스’(2009년)까지 10편을 볼 수 있다. 문학동네도 중단편선 ‘대범한 밥상’을 표지갈이(리커버)해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출시했다. 4월 전국 동네서점이 선정하는 ‘동네서점 베스트 컬렉션’ 시리즈에도 그의 특별판이 나올 예정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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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위그림은 문자없던 시대 인류사를 풀어주는 열쇠입니다”

    지난해 7월 장석호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59)은 중국 칭하이(靑海)성 더링하(德令哈)현 소재지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네댓 시간쯤 달려 한 마을에 도착했다. 목적지는 지도에도 없는 곳. 바위그림 유적의 위치를 안다는 사람을 수소문해 차를 타고 몽골족의 여름 방목지를 찾아간 뒤 다시 계곡을 따라 수km를 걸어 들어갔다. 도중에 말, 산양, 사슴이 신화적인 모습으로 변형된 그림 등 수십 개가 그려진 바위가 풀꽃과 함께 눈에 들어왔다. “기대도 안 한 발견이었어요. 기원전 그림부터 100년이 안 넘는 것까지 섞여 있는 겁니다. 요즘도 이곳 사람들이 제사를 지낼 때 은밀하게 바위에 그림을 그리거든요.” 장 연구위원은 2018년 11월부터 1년 동안 중국 베이징대에 파견돼 중국 전역의 바위그림을 조사했다. 남쪽 윈난성부터 북쪽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까지 12개 성에 있는 바위그림 유적지 30곳을 찾아다녔다. 10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재단 연구실에서 만난 장 연구위원은 조사 때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바위 중앙에 소용돌이치는 태극이 그려져 있었다. “‘스바스티카(svastika·좌우가 뒤집힌 卍 문양)’의 변형이지요. 순환과 불멸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몽골의 산양 그림은 둥글어지다가 해의 모습을 닮습니다. 산양이 하늘이 내려준 빛의 상징인 거예요. 그게 다시 태극으로 변형되기도 합니다. 태극은 원류가 중원이 아니라 북방이에요.” 날이 저물어서야 도착한 원래 목적지는 몽골어로 회이토우타라(懷斗他拉)였다. 해발 3000m가 넘는 곳에 있는 분지다. “동물들의 놀이터더군요.” 북방민족의 바위그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류사에서 문자 시대는 불과 5000여 년. 장 연구위원은 문자가 없던 시기 사람들이 남긴 이미지를 통해 선사시대 인류사를 추적한다. 그가 저장(浙江)성의 시탕(西塘)에서 촬영한 바위그림 사진을 보여줬다. 높이가 10m가량 되는 바위에 세로로 점선이 파여 있었다. 처음에는 장 연구위원도 그저 돌을 쪼개려던 흔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뱀 모양 끝의 여성 성기 같은 기호, 꽃이나 윷판 같은 무늬, 집, 별 모양을 비롯한 다양한 형상이 점선과 결합돼 있었다. “점선은 아래와 위를 연결하는 사다리로 보여요. 은하수나 천체가 있는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무지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스칸디나비아, 러시아 북서쪽에 자리한 카렐리야공화국, 러시아 예니세이강 유역,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몽골 등 자신이 답사한 유라시아 대륙 곳곳을 열거하다가 “어디에서도 이처럼 독창적인 바위그림은 못 봤다”며 “엄청난 희열이 몰려왔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그는 광둥(廣東)성을 비롯한 중국 남방의 그림은 배와 물고기, 패턴화된 선각무늬가 특이한 양식을 이루며 중원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비롯해 여러 성과를 냈다고 했다. “울산 천전리 암각화도 원래 서석(書石)이라고 했지요. 바위그림은 문자가 없던 시절의 글자였습니다. 현실과 비현실계를 잇는 메신저 역할을 했던 바위그림이 지금은 과거와 우리를 이어주고 있는 겁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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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대서지학회 오영식 회장 “우리 문헌 모은 학술지, 하버드대 사서도 찾아읽어”

    “이번 호는 한 1400쪽 될 것 같은데?”(오영식 근대서지학회장·65) “형님, 1300쪽이 넘는 걸 그냥 제본하면 책이 터져요. 이번에는 양장본으로 내자고요.”(박성모 소명출판 대표·57) “아니, 무슨 학회지를 양장본으로 내?”(오 회장) 최근 창립 만 10년을 맞은 근대서지학회의 반년간 학술지 ‘근대서지’ 20호(2019년 하반기)를 소명출판에서 만들며 오 회장과 발행인 박 대표가 나눈 대화다. 결국 원고 하나가 다음 호로 미뤄져 양장본으로 발행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박 대표는 “제작비는 신경 쓰지 말라”고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근대서지’는 우리 근대 문헌을 소개하면서 수집가와 연구자의 가교 역할을 하는 내실 있는 학술지로 손꼽힌다. 통권 17호에선 1929년 발행된 잡지 ‘중성(衆聲)’ 1권 3호의 유려한 표지 디자인이 시인 이상(본명 김해경)의 작품이라는 것을 새로 밝힌 글을 실었다. 일본의 판화연구자부터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의 사서까지 이 학술지를 빼놓지 않고 모은다. 4일 열린 20호 발간 기념회에는 회원과 연구자 등 70여 명이 몰렸다. 근대 문헌 수집가이기도 한 서지학자 오 회장을 9일 서울 송파구 개인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은 7단으로 책이 꽉 들어찬 서가가 줄지어 늘어섰다. 132m²(40평)쯤 되는 공간이 비좁았다. 이 사무실에 있는 책만 해도 2만 권이 넘는다. 귀중본 등 따로 보관한 것까지 모두 3만 권 정도 소장하고 있다. 대학 시절부터 헌책방을 드나들었고, 서울 보성고 국어교사로 일하며(2017년 퇴임) 월급을 쪼개 40년 동안 모은 책들이다. 오 회장이 서울 불암산 아래 살 때 소장 자료 목록을 정리해 사비로 내기 시작한 게 12호까지 이어진 ‘불암통신’이다. 최초의 순문학 동인지 ‘신청년 3호’나 이육사의 시 3편을 새로 발견한 소식은 일간지 문화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러다 오 회장 주도로 근대서지학회를 창립한 게 2009년. 초대 회장은 인류학자인 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누군가 근대 문헌의 원본을 안 보거나 잘못 인용했다고 가정해 보죠. 그 뒤 연구자들이 그걸 계속 재인용하면 끝내 원본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게 되지요. 사실 예전에는 국내 학문 풍토에서 이런 측면이 아예 없었다고 하기 어려워요. 뿌리인 서지학적 기초가 탄탄해야 인문학도 바로 섭니다.”(오 회장) 자료 정리가 학문 분야별로 오래전 진행된 일본에 비해 한국은 서지학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오 회장은 강조했다. 분단과 6·25전쟁을 거치며 수많은 문헌이 멸실됐고, 납북·월북 인사의 학문 연구가 오래 금기시된 탓이다. ‘숨은 자료의 공개와 공유’를 모토로 한 ‘근대서지’가 연구자들에게 단비가 되는 까닭이다. 최근에는 근대가요나 만화, 야구 등 체육사 연구자들도 이 학술지가 소개하는 자료에 주목하고 있다. 10년 동안 학회는 오 회장이 지은 ‘해방기 간행도서 총목록―1945∼1950’을 필두로 ‘책 잡지 신문자료의 수호자’(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총서 12권을 출간했다. 오 회장은 “근대문화유산인 출판물의 평가나 목록조사 사업 등에 서지 전문가가 반드시 함께 참여해야 오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퀴퀴한 옛 책 냄새를 사랑하는 까닭을 묻자 오 회장은 “헌책 수집 문화가 정착한 일본에서는 책 수집가를 은빛처럼 빛나는 흰 종이를 찾아다니는 ‘은어(銀魚)족’으로 부른다고 들었다”며 “인쇄본도 원본의 아우라가 있다”고 말했다. “(신소설의 효시인) ‘혈의 루’ 초판은 (확인된 게) 어디에도 없고, (최초의 근대 여성소설가로 꼽히는) 김명순(1896∼1951)의 창작집 ‘애인의 선물’은 지금까지는 저만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삼국시대 역사책도 아닌데 말이지요. 한데, 제 것도 뒤에 낙장이 있어요. 완전한 책을 소장하신 분이 어서 나타나야 학자들도 완전한 소설을 연구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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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족-한족간 융화가 中 왕조 승패 갈랐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1998)은 배경이 흉노와 한족의 전쟁이지만 2009년 중국 영화 ‘뮬란: 전사의 귀환’은 북위(北魏)와 유연(柔然)의 전쟁으로 바뀌었다. 중국 중세사 연구자인 박한제 서울대 명예교수(74)가 중국 영웅문학작품 ‘목란시(木蘭詩)’의 시대배경을 고증해 발표한 논문 내용이 중국중앙(CC)TV에서 방영된 결과다. 박 교수가 주창한 ‘호한(胡漢)체제’는 후한 말 이후 중국 서북방 유목민족(호족)이 중원으로 진입해 농경민족인 한족과 대립하면서도 공통된 정치, 문화체제를 형성한 과정을 가리킨다. 중국과 대만, 일본의 주요 학술지가 이 개념을 논평했고 학자들이 인용했다. 한국 학자가 창안해 해외 학계까지 유통시킨 유일한 역사용어로 꼽힌다. 최근 ‘중국중세 호한체제의 정치적 전개’와 ‘중국중세 호한체제의 사회적 전개’(이상 일조각)를 출간한 박 교수를 16일 서울 관악구 개인 연구실에서 만났다. “당나라 수도 장안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오늘날 미국으로 이민하는 것처럼 몰려들었습니다. 당나라는 이들을 번인(蕃人)이라 부르며 구성원으로 받아들였기에 세계제국이 될 수 있었지요. 그 바탕에 호한 복합사회가 있습니다.” 박 교수는 ‘삼국지’ 직후의 시대를 다룬다. 위, 촉, 오의 동원이나 토벌 대상이던 서방, 북방 유목민족들은 진(晉)이 약화되자 중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5호 16국 시대 13개 나라와 선비족이 세운 북위(386∼534)를 필두로 한 북조(北朝)가 호족왕조다. 호족 군주들은 정치, 사회적으로 한족도 동의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했다. 호한의 융화는 왕조의 성패를 갈랐다. “북조의 북주는 최약체였어요. 그러나 호한 통합의 기치 아래 형성된 ‘관롱집단(關(농,롱)集團·관중·關中과 농서·(농,롱)西 출신 중심의 지배층)’이 성공하면서 북제를 무너뜨렸고 뒤를 이은 수나라가 남조까지 평정할 수 있었습니다.” 북주는 호족만 있던 군대에 한족을 끌어들인 부병제(府兵制)로 군사력을 키웠다. 북위가 한족에 익숙한 균전(均田) 명칭과 유목민이 피정복민에 적용하던 생산방식을 결합해 균전제를 시행한 것도 호한체제의 하나다. 이런 문화는 당나라로 이어져 당 태종은 황제뿐 아니라 호족들의 수장을 일컫는 가한(可汗)으로 칭했다. 호한체제는 현재의 중국과 다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인의 형성에도 기여했다고 박 교수는 본다. 그러나 중국에서 민족 간 갈등과 충돌은 이어지고 있다. 박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현대 중국에 관한 것은 아니라고 전제한 뒤 “중국 당국이 분리주의를 철저하게 억누르고, 각 자치구의 한족 인구는 크게 증가해 가까운 미래에 중국의 분열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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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이 노할 종묘제례악?

    20년 이상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1호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제례악의 원형 왜곡 여부가 이번에는 제대로 논의될까. 종묘제례악은 조선의 왕실 사당인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던 음악과 춤이다. 조선 세종이 만들고 세조 때부터 실용화해 각종 의식에 본격적으로 썼다. 2001년 종묘제례와 함께 유네스코 무형유산걸작(현재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됐지만 일제강점기 형태와 내용이 변질됐다는 지적이 일어 왔다. 실제 종묘제례악의 문악(文樂)인 ‘보태평(保太平)’과 무악(武樂)인 ‘정대업(定大業)’은 일제강점기 명칭이 각각 ‘보태화(保太和)’와 ‘향만년(享萬年)’으로 바뀌어 사용됐다. 논문과 책 ‘종묘제례악 일무의 왜곡과 실제’(민속원·2002년)로 관련 문제를 지적했던 이종숙 한국전통악무연구소장에 따르면 태화는 일본 최초의 통일정권 이름인 ‘대화(大和)’와 통한다. ‘일본을 보전해 만년을 누린다’는 뜻으로 명칭이 바뀐 것이다. 제목의 왜곡은 광복 직후 고쳐졌으나 가사의 왜곡은 근래까지도 지속됐다. 왕실 선조에 대한 황(皇), 성(聖) 등의 극존칭과 일본을 지칭한 ‘도이(島夷·섬오랑캐)’뿐 아니라 일본과 관련된 악장의 제목과 내용이 통째로 바뀌었다. 가사가 원래 내용을 회복한 건 적어도 2003년 이후다. 무구(舞具) 역시 변형됐다가 원형으로 돌아갔다는 평가다. 남은 문제는 각 음의 길이와 무용 등이다. 이종숙 소장은 “지금은 선율에서 각 음의 길이를 똑같이 연주하지만 세종은 음별로 다양한 길이로 연주하도록 창제했고, 악보도 그대로 남아 있다”며 “악보대로만 연주하면 되는데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종묘제례악의 원형 왜곡 문제를 제기한 건 국립국악원 악사장을 지낸 국가무형문화재 처용무 예능보유자 김용 씨(87)다. 김 씨와 함께 복원운동을 벌이고 있는 종묘제례악원상보존시민연대 이창걸 공동대표는 “현재의 종묘제례악 일무(佾舞)는 시용무보(時用舞譜·종묘제례의 춤을 그림으로 설명한 책)와 다른 점이 상당하다”며 “일제의 왜곡 등으로 이왕직 아악부가 제대로 전수받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왜곡이라기보다 ‘변화’였다는 반론도 있다. 국립국악원 학예사 재직 당시 이 문제를 연구했던 주재근 정효국악문화재단 대표는 전화 통화에서 “춤 같은 공연 예술은 영상으로 남지 않은 한 원형을 함부로 논하기 어렵다”며 “일제가 이를 인위적으로 바꿨다기보다 그 시대를 거치며 흐트러진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부터 국정감사를 통해 제기된 원형 복원 관련 조사위원회 구성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민연대의 민원 등에 따라 문화재청이 지난해 12월 중 국립국악원 등과 함께 조사위 설립 필요성을 검토하는 회의를 개최하겠다고 문화재위원회에 보고했으나 실제로는 열리지 않았다. 연말 행사가 많아 올해 2월로 미뤘다고 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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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세계표준을 제패한 미국의 新제국주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겼음에도 지배했던 식민지를 포기한다. 필리핀이 1946년 독립한 것도 그 예다. 그럼에도 미국은 역사상 가장 강한 나라로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해외 영토를 직접 지배하면서 힘을 유지했던 이전의 제국과 미국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미국은 새로운 기술 개발로 이전의 제국이 식민지에서 확보하던 원료를 대체했다. 플라스틱과 합성소재는 고무를 상당부분 대체할 수 있었다. 미국이 만든 표준을 세계적 표준으로 만들기도 했다. 각 기업은 비용 부담을 덜 수 있기에, 필사적으로 자사의 방식을 표준으로 채택시키려고 했고 미국은 이 싸움에서 유럽에 승리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미국이 영토를 확장하던 초기부터 오늘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까지, ‘제국’으로서 미국의 면모와 역사를 다뤘다. 원제 ‘How to Hide an Empire’.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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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북아재단-中역사연구원 학술교류 12년만에 재개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도형)이 6월경 제주도에서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중국역사연구원(원장 가오샹·高翔)과 공동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해 2004∼2008년 지속된 양국 역사 연구기관의 연례 공동 학술회의가 중단된 지 12년 만이다. 동북아재단은 “중국 베이징에서 8일 중국역사연구원과 상호협력에 관한 협약(MOU)을 체결했다”고 15일 밝혔다. 협약에는 양측이 2년마다 공동으로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공동 과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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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주사 삼세불회도는 정조때 김홍도팀 작품” 강관식 교수 논문서 밝혀

    입체적인 부처와 보살의 모습이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성화(聖畵)처럼 보이기도 하는 경기 화성시 용주사 대웅전 후불탱(後佛幀). 서양화 기법이 활용돼 20세기 초 작품이라는 해석도 나온 이 이채로운 탱화가 1790년 단원 김홍도(1745~?) 등의 도화서 화원들이 주도해 그린 궁중회화의 걸작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강관식 한성대 예술학부 교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간하는 학술지 ‘미술자료’ 최근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용주사 삼세불회도(三世佛會圖)는 김홍도 이명기 김득신 등 궁중화원 및 왕실과 가까운 화승(畵僧)들이 함께 정조(1752~1800) 대 발달했던 서양화법을 전면적으로 구사해 불화(佛畵) 사상 유례가 없는 새 양식을 창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용주사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화성으로 옮긴 뒤 명복을 빌고자 세운 절이다. 삼세여래체탱(三世如來體幀)으로도 불리는 이 탱화는 화가 등을 기록한 화기(畵記)가 없는 탓에 제작 시기를 두고 논쟁이 이어져 왔다. 강 교수는 논문에서 ‘주상전하(정조) 수만세(壽萬歲), 자궁(慈宮)저하(혜경궁 홍씨) 수만세, 왕비전하(효의왕후) 수만세, 세자저하(나중의 순조) 수만세’라고 쓰인 그림 중앙의 축원문에 주목했다. 강 교수는 “위계상 아래인 자궁을 왕비보다 앞에 쓴 건 정조가 생전 지시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밝혔다. 더구나 강 교수가 이 불화를 적외선 촬영한 결과 축원문은 원래 ‘주상 왕비 세자’의 장수를 기원했다가 이를 덮은 뒤 고쳐 쓴 것으로 드러났다. 준공 다음 해인 1791년 1월 용주사에 들른 정조가 축원 문구를 보고 자신의 어머니를 넣으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강 교수의 시각이다. 1800년까지는 순조가 세자 책봉 전인 원자(元子) 신분이었기에 제작 시기가 그 이후라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논문은 “‘한국의 불화’(전 40책)가 수록한 조선 불화의 축원문을 전수 조사한 결과 18세기에는 세자의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의례적으로 주상 왕비 세자를 축원문에 넣었다”고 설명했다. 1825년 용주사 주지 등운은 ‘용주사사적기’에 이 그림을 김홍도가 그렸다고 적었다. 수원부 관청 기록에도 정조가 김홍도 등을 감동(監董)으로 임명해 불화 그리는 일을 관리하도록 했다고 나온다. 감동은 감독일 뿐 아니라 그림을 직접 그릴 수도 있는 직책이라고 한다. 강 교수는 “1789년 동지사로 연경에 갔던 김홍도와 이명기가 천주당의 성화를 보고 돌아와 서양식 명암법과 투시법을 전통 화법과 융합해 그렸던 것”이라며 “이들이 귀국도 하기 전 용주사 감동으로 임명된 점에서도 정조가 당대의 새로운 문화를 담아 사찰을 조성하고자 이들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지시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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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 미륵신앙 성지’에 국립익산박물관 문열어

    백제 무왕의 꿈이 밴 전북 익산에 국립익산박물관이 10일 개관했다. 익산은 향가 서동요 설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무왕이 자신의 기반을 마련하고 천도하려 했던 땅이다. 이 박물관은 2009년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사리를 담아 탑에 넣는 용기)와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를 비롯해 국보와 보물 11점 등 전북 서북부에서 나온 유물 3000여 점을 상설 전시한다. 기존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이 2015년 국립으로 전환하며 삼국시대 최대 규모 절터인 금마면 미륵사지 남서쪽에 연면적 7500m² 규모로 건립됐다.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봉영기도 전시된다. 서동요의 주인공인 선화공주가 아니라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 왕후가 이 절을 창건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주목받은 유물이다. 처음 공개하는 유물도 적지 않다. 미륵사지 사리장엄구의 공양품을 감쌌던 보자기로 추정하는 비단과 금실, 백제 최대 돌방무덤 쌍릉에서 1912년 나온 나무 관(棺), 익산 제석사지에서 출토된 흙으로 빚은 승려상 머리 등이다. 박물관은 개관 특별전시 ‘사리장엄―탑 속 또 하나의 세계’를 3월 29일까지 연다. 경주 감은사지 서탑과 동탑에서 나온 것, 조선 태조 이성계가 발원한 것 등 귀중 사리장엄 15구를 한자리에 모았다. 광주 서오층석탑에서 출토된 진신사리 30여 과도 볼 수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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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무엇이든 공유합니다” 日 구독경제 성공비결

    신문뿐 아니라 영화나 음원, 심지어 면도날까지 ‘구독(Subscription·서브스크립션)’하는 시대다. 제품과 서비스를 일정 기간 이용하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서브스크립션’은 여러 분야에서 대중화돼 있다. 월정액 주차장이나 휴대전화의 월정액 무제한 통화도 그에 해당한다. 최근의 ‘구독 모델’이 과거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첫째, 대기업의 진출이다. 일본 자동차 기업 도요타는 월정액으로 신차를 마음대로 골라 탈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다음으로 공유다. 월정액으로 명품 가방이나 아이들 장난감을 제한 없이 대여할 수 있는 서비스가 그 예다. 마지막으로 개인별 맞춤 서비스다. 일본에서 구독 모델로 성공한 24개 기업의 사례 분석과 성공을 위한 5가지 비결을 담았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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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동주 친필 원고, 보물 될까

    시인 윤동주의 친필 원고, ‘조선말 큰 사전’ 원고, 고종이 외교 고문에게 선물한 현존 최고(最古)의 ‘데니 태극기’…. 우리 근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소중한 유물이지만 국보, 보물 같은 국가지정문화재가 아니라 등록문화재(근대문화유산 가운데 가치가 커 관리하는 문화재)다. 이 같은 근대 문화재를 보물로 지정하는 일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근대 동산(動産) 국가등록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조사를 올해 착수한다”고 밝혔다. 근대문화재는 현재 국보에는 한 건도 없고, 보물로는 안중근 의사 유묵을 비롯해 총 33건이 지정돼 있다. 국보(342건)와 보물(2188건)을 합쳐 총 2530건(지난해 12월 31일 기준) 가운데 약 1.3%에 불과하다. 상대적으로 오늘날과 시기가 가깝기에 오히려 문화재 지정의 사각에 놓였던 셈이다. 이에 따라 문화재위원회는 “등록문화재 가운데 역사 학술 예술적 가치가 있는 대상을 보물로 선제적으로 지정하기 위한” 소위원회를 지난해 두 차례 열기도 했다. 일단 윤동주 친필 원고 등 3건을 비롯해 백범 김구가 서명한 태극기와 조선 말기 의병장 고광순이 사용한 ‘불원복(不遠復·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이 수놓인 태극기, 진관사 소장 태극기와 독립신문 종류, ‘말모이’ 원고, 이봉창 의사 선서문 등 모두 9건이 1차 지정조사 대상으로 최근 결정됐다. 지난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만오 홍진 선생의 유족이 국회에 기증한 임시의정원 관인 등도 추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근대 유물이어서 희소성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점도 있다. 일례로 서적이나 신문 등 인쇄본은 나중에라도 여러 점이 추가로 나올 수 있다. 박수희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연구관은 “시기적으로는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등록 문화재를 대상으로 우선 검토할 계획”이라며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올 하반기에는 1차 조사 대상의 보물 지정 여부가 최종 결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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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안함 폭침 사과 놓고 北과 물밑 협상… 타결 직전 무산”

    역대 통일부 장관(국토통일원 제외) 가운데 재임 기간이 가장 긴 이가 국제정치학자 현인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66)다. 이명박 정부에서 2009년 2월∼2011년 9월 2년 7개월여 일했다. 취임하자마자 북한이 개성공단 근로자를 억류하는 상황을 맞았고 천안함 폭침(2010년 3월)과 연평도 포격 도발(2010년 11월)이 일어났다. 현 교수는 다음 달 25년간 몸담았던 고려대를 정년퇴임한다. 석사를 마치고 1982년 이 학교 강단에 선 것부터 따지면 38년 만이다. 주요 논문을 모으고 새 글을 붙인 ‘헤게모니의 미래’(고려대출판문화원)도 곧 출간할 예정이다. 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난 현 교수는 “천안함 폭침 사건 발발 약 1년 뒤인 2011년 5월 남북 물밑협상에서 북한이 폭침에 사과한다는 논의가 타결 직전까지 갔었으나 막판에 무산됐다”는 비화를 최초로 공개했다. ―통일부 장관 재임 시 일화가 있다면…. “금강산에서 박왕자 씨의 피살 뒤 남북관계가 급랭했다. 북한은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조문으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김기남 당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통전부) 부장을 1시간 40분 정도 만났다. 내가 앞으로 핵 문제를 테이블에 올리는 바탕 아래서 어떤 대화든 할 수 있고, 결과에 따라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우리가 제시한 ‘비핵개방3000’은 비핵화하면 10년 안에 북한의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끌어올린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끝나고 나오는데 김양건이 문 밖에서 귓속말로 ‘비핵개방3000 정책을 믿어도 됩니까’라고 묻더라. 그래서 ‘믿으세요. 믿고 시행하면 그대로 합니다’라고 답했다. 공식적으로는 우리를 비난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진심을 파악하고 싶었던 거다.” ―이명박 정부 때 남북 정상회담이 없었다. “정상들이 그저 만나는 것만으로 무슨 의미가 있나. 김 전 대통령을 조문하고 돌아간 뒤 물밑 접촉이 있었지만 성사가 안 됐다. 우리는 ‘대북 지원 할 수 있다. 그러나 핵 문제 해결 노력에 진전을 보여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다’고 했고 김양건은 ‘그건 내가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상 두 분이 만나면 뭔가 얘기가 나오지 않겠나’라고 했다. 정상회담을 하려면 최소한 의제 정도는 정리가 돼야 한다. 마지막까지 고민했지만 북측이 비핵화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정상회담은 북한이 원했지만 비핵화 결단을 못 해 안 이뤄진 것이다.” ―‘비핵개방3000’은 대북 압박 정책이라고 비난받았다. “비핵화 뒤가 ‘붕괴’가 아니라 ‘개방3000’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경제학적으로 가능한 시뮬레이션도 다 해봤다. 이를 두고 햇볕정책을 무력화했다는 건 비핵화에 관심 없는 사람들 얘기다. 이념을 떠나 앞으로도 북한은 비핵화하고, 우리는 경제성장을 돕는 것 말고 한반도의 미래에 어떤 대안이 있는가?”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은 왜 벌어졌다고 보는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스트로크(stroke·뇌졸중) 후유증을 오래 겪었다. 김정일이 와병 뒤 승계를 염두에 두고 군부에 권력을 집중시킨 상황에서 군부가 모험적인 행동을 벌인 것이다. 김정일이 한동안 100% 이성적인, 북한 입장에서는 전략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본다. 2011년 말 숨질 때까지 북한은 중요 순간마다 결정을 못 했다. 북한은 비핵화에 대한 얘기는 없이 쌀 비료 등 어마어마한 지원을 요구했다. 자기들 요구를 안 들어주자 천안함 폭침을 일으킨 것으로 본다.” 현 교수는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011년 5월 남북 물밑 협상에서 북한이 폭침에 사과한다는 논의가 타결 직전까지 갔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됐던 건가. “2011년 봄 천안함 폭침에 공식 사과하면 남북 대화와 대북 지원을 재개하겠다는 전제하에서 물밑 협상을 했고, 논의가 상당히 진척돼 북한이 사과에 거의 동의했으나 막판 타결 직전 판이 엎어졌다.” 현 전 장관에 따르면 당시 협상은 사과 수위를 놓고 북측 대표들이 “여기까지는 사과하겠다”고 했고 우리 측은 “더 해야 한다”고 하는 수준까지 나아갔다고 한다. 현 전 장관은 “북측은 폭침을 인정하는 일이라 굉장히 신중했고 우리 측은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의 유감 표명보다 더 나아가, 주체를 명확히 밝히는 사과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협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방문 도중 급거 귀국하면서 깨졌다. 현 전 장관은 “김정일이 이틀가량 남았던 방중 일정을 전격 취소하고 돌아온 뒤 바로 회의를 소집해 남북 물밑 협상을 깼다”며 “폭침을 인정하면 향후 남북관계에서 북한의 입지가 너무 좁아진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2011년 6월 우리 정부가 정상회담 전제 조건으로 천안함 유감 표명을 해 달라고 매달렸고 북한 대표에게 돈봉투를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현 전 장관은 “북측이 판을 깨려고 엉뚱한 얘기를 들고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평도 포격 도발은…. “2010년 8월쯤 해서 북과 물밑 대화를 다시 시작했고 그해 11월 25일 남북 적십자회담을 열기로 10월쯤 합의를 했다. 한데 회담 이틀 전인 23일 연평도를 포격했다. 굉장히 이례적이다. 북한 권력의 정책 결정에 상당한 난맥이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나는 통전부 쪽에서는 대화로 남북관계를 변화시키고자 했고, 군부는 이를 반대하는 강력한 흐름이 있었다고 본다. 김정일이 왔다 갔다 했을 거다. 대화에 손들어줬다가 연평도 포격도 손을 들어줬던 거 아니겠나.” ―진보 정부의 외교정책을 평가한다면…. “햇볕정책은 의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했다. 현 정부는 너무 북한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를 중심으로 문제를 풀려는 경향이 강하다. 한데 북한의 의도나 전략적 사고를 잘못 인식하면서 여러 가지가 꼬여 외교 안보면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잇따른 남북미 정상회담에도 진척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이 애초에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전략적 오판이다.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북한이 국제정치의 판을 흔들고 살길을 찾을 수 있을까? 없다. 핵은 어차피 쓸 수도 없다. 위협은 할 수 있지만 이제 위협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 우리 입장에서도 완전한 비핵화 없이, 북핵이라는 불씨를 지닌 어정쩡한 상태로 한반도에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 ―명·청 교체기의 조선보다 지정학적 조건은 오늘날 한국이 나쁜 것 같다. “한국은 헤게모니 경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놓여 있는 ‘변방국’이다. 그나마 국력은 조선 때보다 탄탄하다. 세계 일류 기업도 있고, 경제 규모도 세계 10위권이어서 강대국들이 훅 불면 없어질 정도는 아니다. 군사·경제적으로 상대가 우리를 타격했을 때 똑같은 정도로 비례 타격은 못하더라도, 반격(bounce back)이 가능한 정도까지는 국력을 키워야 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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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안 마갑총 말갑옷 등 가야문화재 5건 보물 지정

    문화재청은 경남 함안군 마갑총(馬甲塚)에서 출토된 말갑옷과 고리자루큰칼 등 가야문화재 5건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6일 밝혔다. 조선시대 전적(典籍)과 도자기 등 3건도 보물로 지정했다. 마갑총 출토 철제 말갑옷과 고리자루큰칼은 5세기 아라가야에서 제작한 것으로 1992년 무덤 주인공 좌우에서 발굴됐다. 말갑옷은 말머리를 가리는 투구, 목과 가슴을 가리는 경흉갑(頸胸甲), 말의 몸을 가리는 신갑(身甲)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나왔다. 큰칼은 가야인들의 철 조련 기술과 공예 기법, 조형 감각을 동시에 엿볼 수 있는 유물로 평가된다. 이 밖에도 합천 옥전 고분군에서 출토된 고리자루큰칼 여러 자루와 금귀걸이, 1401년 판각해 간행한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조선 시대 풍수지리서 ‘지리전서동림조담’, 15, 16세기에 제작된 백자 청화매조죽문 항아리도 함께 보물로 지정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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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대학생, 봉준호 영화로 한국어 배운다

    봉준호 감독(51·사진)의 영화 4편이 미국 명문대 조지아공대 강의 교재로 사용된다. 3일(현지 시간) 미 교민매체 뉴스앤드포스트에 따르면 조지아공대는 올해 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고급 한국어 강좌로 ‘한국영화: 봉준호 특집’을 개설했다. 수강생들은 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2019년), ‘살인의 추억’(2003년), ‘괴물’(2006년), ‘마더’(2009년) 등 봉 감독의 대표작 4편을 공부한다. 수강 신청은 이달 3∼10일이며 재학생이 아니더라도 청강이 가능하다. 이 학교는 미 시사잡지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뽑은 ‘2020 미 대학평가 우수 공립대’ 순위에서 5위에 올랐다. 조지아공대 내 한국어 강좌는 2002년 한인 학생들의 주도로 시작됐다. 이후 규모가 점점 커져 외국인을 위한 4년 과정, 그리고 2013년부터는 온라인 1학년 과정 등이 생겨났고 현재 정식 부전공으로 자리 잡았다. 이 학교에서 한국어 강의를 담당하고 있는 김용택 교수는 “영화를 소재로 한국 근현대사 수업을 하는 건 처음”이라며 “봉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고 아카데미 후보에도 올라 그 어느 때보다 학생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고 개설 이유를 밝혔다.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57)가 두 손으로 ‘기생충’의 주연 배우 송강호와 손을 맞잡은 사진도 화제다. ‘기생충’의 미국 배급사인 네온은 3일 트위터에 이 사진과 ‘When Song Kang Ho fan Brad Pitt met Song Kang Ho…(송강호의 팬 브래드 피트가 송강호를 만났을 때)’란 글을 올렸다. 사진 속 피트는 송강호 쪽으로 몸을 한껏 기울인 채 기쁜 표정을 지었다. 이 자리에는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이선균 이정은도 동석해 두 사람의 뒤에서 환하게 웃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피트는 이날 미 영화연구소(AFI)의 시상식에 참석했다가 ‘기생충’ 관계자들을 발견하고 인사를 나눴다. 피트는 이달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시상자로 나선다. ‘기생충’은 골든글로브 감독상, 각본상, 최우수외국어영화상까지 3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다. 다음 달 9일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및 주제가상의 예비 후보로도 올랐다.신아형 abro@donga.com·조종엽 기자}

    • 20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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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조지아공대, 봉준호 영화 4편 강의 교재로 활용

    봉준호 감독(51)의 영화 4편이 미국 명문대 조지아공대 강의 교재로 사용된다. 3일(현지 시간) 미 교민매체 뉴스앤드포스트에 따르면 조지아공대는 올해 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고급 한국어 강좌로 ‘한국영화: 봉준호 특집’을 개설했다. 수강생들은 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2019년), ‘살인의 추억’(2003년), ‘괴물’(2006년), ‘마더’(2009년) 등 봉 감독의 대표작 4편을 공부한다. 수강 신청은 이달 3~10일이며 재학생이 아니더라도 청강이 가능하다. 이 학교는 미 시사잡지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뽑은 ‘2020 미 대학평가 우수 공립대’ 순위에서 5위에 올랐다. 조지아공대 내 한국어 강좌는 2002년 한인 학생들의 주도로 시작됐다. 이후 규모가 점점 커져 외국인을 위한 4년 과정, 그리고 2013년부터는 온라인 1학년 과정 등이 생겨났고 현재 정식 부전공으로 자리 잡았다. 이 학교에서 한국어 강의를 담당하고 있는 김용택 교수는 “영화를 소재로 한국 근현대사 수업을 하는 건 처음”이라며 “봉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고 아카데미 후보에도 올라 그 어느 때보다 학생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고 개설 이유를 밝혔다.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57)가 두 손으로 ‘기생충’의 주연 배우 송강호와 손을 맞잡은 사진도 화제다. ‘기생충’의 미국 배급사인 네온은 3일 트위터에 이 사진과 ‘When Song Kang Ho fan Brad Pitt met Song Kang Ho…(송강호의 팬 브래드 피트가 송강호를 만났을 때)’란 글을 올렸다. 사진 속 피트는 송강호 쪽으로 몸을 한껏 기울인 채 기쁜 표정을 지었다. 이 자리에는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이선균 이정은도 동석해 두 사람의 뒤에서 환하게 웃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피트는 이날 미 영화연구소(AFI)의 시상식에 참석했다가 ‘기생충’ 관계자들을 발견하고 인사를 나눴다. 피트는 이달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시상자로 나선다. ‘기생충’은 골든글로브 감독상, 각본상, 최우수외국어영화상까지 3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다. 다음 달 9일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및 주제가상의 예비 후보로도 올랐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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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신]BTS CNN 10대 아티스트 선정

    ■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CNN의 ‘2010년대 음악을 변화시킨 10대 아티스트’에 지난해 12월 31일(현지 시간) 선정됐다. CNN은 “인상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음악 산업의 변화를 이끈” 아티스트 가운데 하나로 방탄소년단을 꼽으면서 “케이팝을 주류 음악으로 이끌었다”고 밝혔다. 비욘세와 켄드릭 라마, 레이디 가가 등도 함께 뽑혔다.}

    •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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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신]국립중앙도서관 동아DB 제공

    ■ 국립중앙도서관은 동아일보의 창간호∼최근호 아카이브를 비롯한 국내외 학술 데이터베이스(DB) 18종을 2일부터 도서관 이용자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15∼18세기 유럽 출판 문헌이 담긴 ‘얼리 유러피언 북스(Early European Books)’와 중국 미술 컬렉션 DB인 ‘차이나 아트 디지털 라이브러리(China Art Digital Library)’, 영문학 DB인 ‘라이언(LION·Literature Online)’ 등도 추가했다.}

    •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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