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설 연휴에 홍역 환자가 7명 더 늘었다. 보건당국은 연휴 기간 유럽과 동남아 등 홍역 유행지역에 다녀온 사람 중 열이 나거나 피부에 종기가 올라오는 경우 즉시 가까운 선별진료소를 찾아 달라고 당부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 12월 이후 국내에서 확인된 홍역 환자가 6일 오전 기준 50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42명은 발진 후 나흘이 지나 전염력이 없어 격리가 해제된 상태다. 나머지 8명은 격리돼 치료 및 검사를 받고 있다. 전체 홍역 환자수는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인 1일 오전(43명)보다 7명 늘었다. 추가 환자 중 4명은 경기 안산시의 기존 환자에게서 옮은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3명은 베트남과 카자흐스탄 등 유행지역에서 입국한 개별 발병 환자다. 정부는 1∼7일 해외로 떠난 출국자가 85만7000명으로 지난해 설 연휴보다 하루 평균 5.8% 늘었다고 밝혔다. 프랑스에선 지난해 홍역 환자가 2902명 발생하는 등 크게 유행하고 있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는 물론이고 미국 뉴욕주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런 지역에서 홍역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이 한꺼번에 귀국하면 국내에서도 환자가 급증할 수 있다. 홍역 잠복기(7∼21일)를 감안하면 설 연휴에 홍역 바이러스에 옮은 사람은 발열 및 발진 등 증상이 이번 주말 이후 나타날 수 있다. 김유미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관리과장은 “증상이 나타나면 가급적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지역 내 선별진료소를 찾아야 한다”며 “지역 선별진료소는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339)로 문의하면 된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끝까지 치료를 받자고 한 건 제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지도 모르겠네요.” 지난달 28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호스피스병동에서 만난 이모 씨(60·여)는 눈시울을 붉혔다. 이 씨의 어머니(80)는 지난해 10월 자궁내막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항암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설명을 듣고도 이 씨는 어머니의 치료를 고집했다. 연명의료를 포기하면 어머니가 생의 의지를 완전히 놓아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3차 항암 치료도 소용이 없자 이 씨는 열흘 전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연명의료 중단’ 얘기를 꺼냈다. 뜻밖에도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선뜻 연명의료계획서를 썼다. 이 씨는 “돌이켜보니 어머니는 진작 마음의 준비를 하셨는데 자식들의 욕심에 고통만 연장시켜 드린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달 30일까지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환자는 3만5839명이다. 이 중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직접 연명의료를 거부한 환자는 1만1555명(32.2%)이다. 나머지 2만4284명(67.8%)은 환자가 미처 뜻을 밝히지 않은 채 의식을 잃어 환자 가족들의 합의로 연명의료를 거부했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중시하겠다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취지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는 셈이다. 이는 죽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강할 때 이런 얘기를 나누지 않으면 큰 병에 걸린 뒤엔 더욱 말을 꺼내기 어렵다. 특히 환자가 먼저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고 말해도 가족들은 ‘환자의 본심은 연명의료를 계속 받고 싶다는 쪽일 거야’라며 지레짐작하기 일쑤다. 실제 지난해 존엄사법이 시행된 이후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밝혔음에도 가족들의 극렬한 반대로 제대로 된 상담조차 받지 못하고 숨지는 일이 적지 않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말기 및 임종기 환자와 가족이 차분히 상담과 심리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상담료 등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설 전날인 4일은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이 전면 시행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임종을 앞두고 회복할 가망이 없을 때 환자의 뜻대로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존엄사가 국가 제도 안으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가족끼리도 ‘품격 있는 죽음’에 대해 터놓고 대화하기를 꺼리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막상 아무런 사전 논의 없이 누군가가 임종기를 맞으면 연명의료를 계속할지를 두고 갈등을 겪는 가족이 적지 않다. 이번 설 연휴에 연명의료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는 건 무엇보다 의미가 있다. 이를 위해 기자가 ‘연명의료 상담사’가 돼 어떤 대목을 고민해야 할지 미리 살펴봤다. 》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의 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사전의향서) 상담실에 80대 여성 A 씨가 들어왔다. A 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서류를 잔뜩 꺼냈다. ‘웰다잉 학교’ 강의를 들었다는 A 씨는 ‘인공호흡기를 달지 말라’고 적은 유언장을 보여줬다. 해부용 시신 기증 서약서도 미리 작성해 놓았다. A 씨는 “죽는 것도 삶의 일부라는데 힘들게 버티다가 가고 싶지 않다”며 “공부를 웬만큼 하고 왔으니 어서 사전의향서 등록을 도와 달라”고 채근했다. 이날 A 씨가 작성한 사전의향서는 만약 임종을 앞두고 의식을 잃어 자신의 뜻을 말할 수 없게 될 경우에 대비해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미리 국가 전산망에 기록해두는 문서다. 사전의향서는 연명의료계획서(말기나 임종기에만 작성 가능)와 달리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건강할 때 써둘 수 있다. 단,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 지정한 상담실을 방문해 관련 교육을 이수한 상담사와 일대일 대면 상담을 거쳐야만 작성할 수 있다. 기자는 지난달 25일 교육을 받고 상담사 자격을 얻었다.○ “가족과 대화할 때 고마움을 먼저 말해야” 낯빛이 어두운 한 70대 남성은 “이걸(사전의향서를) 쓰면 내가 원할 때 아무 때고 죽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안락사와 혼동한 듯했다. 안락사는 약물 등으로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것으로 국내에선 불법이다. 한 30대 여성은 “아주 특정한 상황에만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이니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의향서를 작성했다. 저마다 상담을 받는 이유는 달랐지만 ‘고통을 무의미하게 연장하기보다 생을 차분하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뜻은 같았다. 기자가 주변에 “연명의료 중단에 관심이 있으면 상담을 해주겠다”고 알린 후 며칠이 지나 ‘사건’이 터졌다. 지인 B 씨가 임신 10주인 아내에게 갑자기 “사전의향서를 쓰고 싶다”고 했다가 큰 다툼을 벌였다. 아내는 B 씨가 이런 얘기를 불쑥 던진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까운 가족일수록 조심스럽게 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안내하지 않은 기자의 잘못이 컸다. 연명의료결정법을 만든 주역인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가족과 (연명의료 관련) 대화를 차일피일 미뤄도 안 되지만 서두르는 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가족과 갈등 없이 연명의료 중단을 얘기하려면 ‘죽음’보다 가족에게 평생 느껴온 고마움과 미안함을 얘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마지막 결정은 스스로 내리고 싶다는 뜻을 밝혀야 한다. 주변에 연명의료의 대상이 된 친척이나 지인을 언급하며 누구나 그런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서로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녀에게 “병원비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는 말부터 꺼내는 건 금물이다. 돈을 아끼려 인공호흡기를 뗀다는 죄책감이 들 수 있어서다.○ ‘몰라서, 멀어서’ 못 쓰는 현실 지난해 2월 4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사전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은 11만4174명이다. 65세 이상 노인 등록자만 따지면 국내 전체 노인 인구의 1.2% 수준이다. 노인의 91.8%가 연명의료에 반대한다는 2017년 보건복지부의 실태 조사를 감안하면 아직까지 매우 미미한 수치다. 기자의 상담 과정에서 대다수가 사전의향서를 모른다는 데 놀랐다. 지난해 5월 위암 진단을 받은 강기웅 씨(81)가 그랬다. 혹시 의식을 잃으면 꼼짝없이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연명해야 하는 줄 알았던 강 씨는 병원 측의 안내로 사전의향서를 쓴 뒤 안심했다. 박아경 국립암센터 사회사업실장은 “뉴스를 접할 기회가 적은 저소득층일수록 제도 자체를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사전의향서 등록 기관이 턱없이 적은 점도 문제다. 사전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는 곳은 전국에 290곳이 전부다. 거기에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197곳)를 빼면 나머지 93곳은 서울·경기(32곳), 전북(17곳) 등 일부 지역에 편중돼 있다. 충북과 제주엔 각 1곳뿐이다. 홍양희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대표는 “사전의향서 제도를 널리 홍보해야겠지만 그에 앞서 상담을 활성화해 죽음을 맞이하는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가까운 상담기관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나 전화로 확인할 수 있다. 조건희 becom@donga.com·박성민 기자}

《설 전날인 4일은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이 전면 시행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임종을 앞에 두고 회복할 가망이 없을 때 환자의 뜻대로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존엄사가 국가 제도 안으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가족끼리도 ‘품격 있는 죽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걸 꺼리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막상 아무런 사전 논의 없이 누군가가 임종기를 맞으면 연명의료를 계속할지를 두고 갈등을 겪는 가족들이 적지 않다. 이번 설 연휴에 연명의료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는 건 무엇보다 의미가 있다. 이를 위해 기자가 ‘연명의료 상담가’가 돼 어떤 대목을 고민해야 할지 미리 살펴봤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의 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사전의향서) 상담실에 80대 여성 A 씨가 들어왔다. A 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서류를 잔뜩 꺼냈다. ‘웰다잉 학교’ 강의를 들었다는 A 씨는 ‘인공호흡기를 달지 말라’고 적은 유언장을 보여줬다. 해부용 시신 기증 서약서도 미리 작성해 놓았다. A 씨는 “죽는 것도 삶의 일부라는데 힘들게 버티다가 가고 싶지 않다”며 “공부를 웬만큼 하고 왔으니 어서 사전의향서 등록을 도와 달라”고 채근했다. 이날 A 씨가 작성한 사전의향서는 만약 임종을 앞두고 의식을 잃어 자신의 뜻을 말할 수 없게 될 경우에 대비해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미리 국가 전산망에 기록해두는 문서다. 사전의향서는 연명의료계획서(말기나 임종기에만 작성 가능)와 달리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건강할 때 써둘 수 있다. 단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 지정한 상담실을 방문해 관련 교육을 이수한 상담사와 1 대 1 대면 상담을 거쳐야만 작성할 수 있다. 기자는 지난달 25일 교육을 받고 상담사 자격을 얻었다.● “가족과 대화 때 고마움을 먼저 말해야” 낯빛이 어두운 한 70대 남성은 “이걸(사전의향서를) 쓰면 내가 원할 때 아무 때고 죽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안락사와 혼동한 듯했다. 안락사는 약물 등으로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것으로 국내에선 불법이다. 한 30대 여성은 “아주 특정한 상황에만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이니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의향서를 작성했다. 저마다 상담을 받는 이유는 달랐지만 ‘고통을 무의미하게 연장하기보다 생을 차분하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뜻은 같았다. 기자가 주변에 “연명의료 중단에 관심이 있으면 상담을 해주겠다”고 알린지 며칠 후 ‘사건’이 터졌다. 지인 B 씨가 임신 10주인 아내에게 불쑥 “나는 사전의향서를 쓰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가 큰 다툼을 벌였다. 아내는 B 씨가 이런 얘기를 불쑥 던진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까운 가족일수록 조심스럽게 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안내하지 않은 기자의 잘못이 컸다. 연명의료결정법을 만든 주역인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가족과 (연명의료 관련) 대화를 차일피일 미뤄도 안 되지만 서두르는 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가족과 갈등 없이 연명의료 중단을 얘기하려면 ‘죽음’보다 가족에게 평생 느껴온 고마움과 미안함을 얘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마지막 결정은 스스로 내리고 싶다는 뜻을 밝혀야 한다. 주변에 연명의료의 대상이 된 친척이나 지인을 언급하며 누구나 그런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서로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녀에게 “병원비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는 말부터 꺼내는 건 금물이다. 돈을 아끼려 인공호흡기를 뗀다는 죄책감이 들 수 있어서다.● ‘몰라서, 멀어서’ 못 쓰는 현실 지난해 2월 4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사전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은 11만4147명이다. 65세 이상 노인 등록자만 따지면 국내 전체 노인 인구의 1.2% 수준이다. 노인의 91.8%가 연명의료에 반대한다는 2017년 보건복지부의 실태 조사를 감안하면 아직까지 매우 미미한 수치다. 기자의 상담 과정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사전의향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여전히 모른다는 데 놀랐다. 지난해 5월 위암 진단을 받은 강기웅 씨(81)가 그랬다. 혹시 의식을 잃으면 꼼짝없이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연명해야 하는 줄 알았던 강 씨는 병원 측의 안내로 사전의향서를 쓴 뒤 안심했다. 박아경 국립암센터 사회사업실장은 “뉴스를 접할 기회가 적은 저소득층일수록 제도 자체를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사전의향서를 쓸 수 있는 기관이 턱없이 적은 점도 문제다. 사전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는 곳은 전국에 290곳이 전부다. 거기에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197곳)를 빼면 나머지 93곳은 서울·경기(32곳), 전북(17곳) 등 일부 지역에 편중돼 있다. 충북과 제주엔 각 1곳뿐이다. 홍양희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대표는 “사전의향서 제도를 널리 홍보해야겠지만 그에 앞서 상담을 활성화해 죽음을 맞이하는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가까운 상담기관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lst.go.kr)나 전화(1855-0075)로 확인할 수 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국내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환자 3000여 명의 부모들은 1년 4개월째 가슴을 졸이고 있다. 어린이용 인공 심장혈관 수입이 2017년 9월 말 국내에 하나뿐인 업체 사정으로 중단됐기 때문이다. 인공혈관을 이식받지 못하면 심방과 심실을 각 1개밖에 쓸 수 없는 상태가 돼 심부전이나 부정맥 등이 생길 위험이 크다. 최동훈 용인세브란스병원장(심장내과 교수)은 “선천성 심장병 같은 희귀 질환은 꼭 필요한 의료기기가 국내에 없으면 환자가 복잡한 절차를 거쳐 외국에서 사오거나 아예 ‘원정 시술’을 해야 해 많은 고통을 겪는다”고 말했다. 앞으로 이런 희귀 질환자의 불편이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6월부터 의학적 필요성이 큰데도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는 의료기기를 직접 사와 환자들에게 공급하기로 했다. 식약처는 어린이 심장병 환자를 위한 인공혈관을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을 통해 우선 들여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유전성 망막염 환자를 위한 인공 망막과 어린이 당뇨 환자가 쓰는 혈당 연속 측정기 등이 우선 구입 대상이다. 이에 앞서 3월부터는 희귀 및 난치 질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대마 성분 의약품 수입이 허용된다. 소아 간질 환자를 위한 미국의 에피디올렉스, 다발성경화증 환자의 경련을 줄일 수 있는 영국의 사티벡스 등이 그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에선 의약품이더라도 대마 성분이 있으면 수출입이 전면 금지돼 있다. 식약처는 또 임상시험 중인 해외 의약품 가운데 난치병 환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의약품이라면 5월부터 국내에 들여와 치료 목적으로 쓸 계획이다. 지금은 국내 임상 의약품에 한해서만 허용하고 있다. 승인까지 걸리는 기간도 현행 7일에서 ‘즉시’로 대폭 단축한다. 10월부터는 난치 환자에게 신약 임상시험 일정과 참여 병원 등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예정이다. 개발이 어려운 희귀·난치 질환 의약품에 ‘신속심사제도’도 적용할 예정이다. 현재 제약사가 임상시험 계획을 제출하면 일괄적으로 30일간의 처리 기간을 두고 있는데, 희귀·난치 질환 의약품은 처리 기간을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9월 도입할 예정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자문기구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 행사 여부를 논의한 지 엿새 만에 다시 소집된다. 수탁자전문위가 23일 1차 회의에서 사실상 부결된 주주권 행사를 재논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8일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 등에 따르면 수탁자전문위는 29일 서울 모처에서 2차 회의를 열 예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23일 1차 회의가 끝난 뒤 9명의 위원 중 3명 이상이 추가 회의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2차 회의는 공식적으로는 28일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복지부와 한진그룹 간 비공개 면담 결과를 듣기 위해 마련됐다. 전문위의 한 위원은 “1차 회의 당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이사 연임에 도전할지, 한진그룹이 국민연금의 요구사항에 응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했다. 1차 회의에서 수탁위 위원 절반 이상은 조 회장이 대한항공의 3월 주총에서 연임을 시도할 경우 반대하자는 의견을 냈다. 복지부와 국민연금 등은 조 회장이 실제 연임을 시도할 것인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한진그룹과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아울러 국민연금이 경영 참여를 선언할 경우 발생할 손실 추정액도 재검증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1차 회의 때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주식 단기매매를 통해 최근 3년간 469억 원의 수익을 올렸고 다음 달 1일 국민연금이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꾸면 약 44억 원의 수익을 반환해야 한다는 추정치를 제시했었다. 복지부는 “2차 회의에서 적극적 주주권 행사 여부나 행사 범위는 안건이 아니며 재논의할 계획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불과 사흘 앞두고 회의를 열면 그 자체가 기금운용위에 압박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2차 회의에서 ‘1차 회의 결과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나올 경우 기금운용위가 1차 수탁자책임위의 논의 결과를 무시할 명분을 주게 될 것”이라고 했다.이건혁 gun@donga.com·조건희 기자}

“이제 그만 인터뷰를 마쳐야 할 것 같아요. 아들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야 할 시간이거든요.” 지난해 10월 30일 덴마크 스뫼룸 시의 보청기 기업 오티콘에서 만난 토마스 옌센 씨(44)는 덴마크 직장인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다가 말을 멈췄다. 시계는 오후 2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벌써 아이를 데리러 간다고?’ 어리둥절해하는 기자를 앞에 두고 옌센 씨와 그의 동료들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그때 깨달았다. 워라밸 취재를 위해 제대로 찾아왔음을….○ 오후 3시 반 ‘퇴근 러시아워’ 동아일보 워라밸 특별취재팀이 세 번째로 찾은 곳은 ‘휘게(Hygge)’의 나라 덴마크다. 휘게는 장작불 옆에서 코코아를 마시는 것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상태를 뜻하는 덴마크어다. 옥스퍼드사전은 2017년 휘게를 ‘올해의 단어’ 후보에 올렸다. 지난해 유엔 세계행복지수에서 156개국 중 3위를 차지한 덴마크 시민들의 행복은 휘게로 상징되는 워라밸에서 비롯된다. 옌센 씨를 따라 나서니 1시간 전만 해도 한산한 도로에 차량이 가득했다. 보육시설에 맡긴 아이를 데리러 가는 직장인들의 러시가 시작된 것이다. 덴마크 근로자 대다수는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3, 4시에 퇴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덴마크 임금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2016년 기준)은 1416시간으로 한국(2052시간)의 3분의 2 수준이다. 옌센 씨가 회사에서 차로 15분가량 떨어진 민간 어린이집에 들어서자 세발자전거를 타던 세 살배기 아들이 달려와 안겼다. “오늘 뭐하고 놀았느냐”는 옌센 씨의 질문에 아이는 “핼러윈이라서 피망에 얼굴을 그렸다”고 했다. 옌센 씨 부부는 맞벌이다. 부부가 모두 늦게 퇴근하면 장모에게 아이를 부탁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한 해 동안 서너 번에 불과하다고 했다. 부부가 모두 늦게 퇴근할 때가 거의 없단 얘기다.○ “직원이 출퇴근시간 정하면 충성도 높아져” 오티콘사의 글로벌 프로그램 매니저인 키르스텐 슈미트 씨(50·여)는 시차 때문에 저녁에 해외 파트너와 화상회의를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자기가 원하는 날 대휴를 쓴다. 반대로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 때문에 일찍 퇴근할 일이 생기면 필요할 때 초과근로를 한다. 상사가 일일이 근로시간을 세지 않는다. 슈미트 씨는 “근로자에게 업무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재량을 주면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진다는 게 경영진의 오랜 믿음”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회사가 직원을 믿고, 직원이 그 믿음에 부응하는 자율적인 탄력근로 문화가 덴마크 워라밸의 핵심이다. 덴마크 정부는 일률적으로 근로시간을 정하거나 탄력근로의 범위를 법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각 사업장에서 노사가 협의해 최적의 방안을 찾을 뿐이다. 덴마크는 유럽 경영대학원 인시아드 등이 21일 발표한 ‘인적경쟁력지수’ 중 노사협력 부문에서 125개국 가운데 4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120위에 그쳤다. 덴마크의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에서 일하는 이탈리아인 알라인 프로이에티 씨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데 덴마크처럼 워라밸을 중시하는 곳은 처음”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한 제약사에서 일할 땐 상사가 퇴근하기 전까지 부하직원들은 자리를 지켜야 하는 불문율이 있었다고 한다. 몇 해 전 지금 일터로 옮긴 뒤로는 삶의 질이 달라졌다. 오후 4시면 퇴근해 여덟 살 아들과 공터에서 축구를 즐긴다. 그는 “‘내가 평생 아이와 이렇게 사이가 좋았던 적이 있나’ 싶다”며 “이곳에서 내가 만약 상사에게 ‘퇴근해도 되냐’로 물으면 아마 ‘내가 당신의 시간을 대신 관리해줄 수 없는데 그걸 왜 묻느냐’고 반문할 것”이라며 웃었다.○ 덴마크 남성의 집안일 시간, 한국의 4배 지난해 11월 2일 오전 8시경 코펜하겐시 북쪽 외스테르 파리마그스가데스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는 등교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로 붐볐다. 자전거 보조의자에 아이를 태우거나 손을 잡고 걷는 등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눈에 띄는 건 아이의 등교를 책임지는 부모의 성별이었다. 20분간 지켜보니 아이와 동행한 어른 중 남성이 54명, 여성이 65명으로 비슷했다. 인근 공원에서 유모차를 끄는 젊은 남성을 만나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덴마크에선 이처럼 남성이 육아 부담을 나눠 지는 게 자연스럽다. OECD에 따르면 덴마크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4시간 3분으로 한국 여성(3시간 47분)과 16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반면 덴마크 남성은 하루 평균 3시간 3분을 가사노동에 사용해 한국 남성(45분)의 4배가 넘었다. 노보노디스크의 부사장 메테 아트루프 씨(48·여)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저녁을 자녀와 함께 먹는다. ‘저녁은 가족과 함께 먹는 것.’ 아트루프 씨가 ‘휘게’를 위해 다짐한 원칙이다. 의사인 남편과 육아를 평등하게 분담하고 저녁식사 준비도 하루씩 번갈아가며 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트루프 씨는 “남편과 짐을 나누는 덕에 육아 부담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초등생 돌봄교실 참여율 OECD 1위▼한국 12.5%… 평균치의 절반 수준미취학 아동에 대한 정부의 보육 서비스는 한국이 덴마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한국에선 어린이집 비용을 전액 정부가 대준다. 이용 시간도 원칙적으로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7시 반까지 하루 12시간이다. 덴마크에선 공립어린이집 비용이 월 평균 1만4892크로네(약 253만 원)에 이른다. 지방자치단체가 75%를 대준다고 해도 3723크로네(약 63만 원)를 부모가 부담해야 한다. 이용 시간도 오전 6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 하루 10시간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돌봄 절벽’이 생긴다. 2017년 기준 국내 초등학생 267만 명 중 초등 돌봄교실 등 공적 돌봄 서비스를 이용한 어린이는 33만 명(12.5%)에 불과했다. 참여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8.4%)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반면 덴마크엔 이런 ‘돌봄 공백’이 없다. 초등학생의 돌봄 참여율이 63.5%(2016년 기준)로 OECD 회원국 중 1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저학년(6∼8세)의 돌봄 참여율은 76.7%로 OECD 평균(34.1%)의 2배가 넘는다. 돌봄 교실에선 학업보다는 ‘사회적 교육’에 초점을 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보육교사인 ‘페다고’가 학급마다 1명씩 배정돼 아이들을 인솔하고 안전 관리를 책임진다. 그런다고 아이들이 정규 수업을 마친 후 해가 기울 때까지 학교에만 있는 건 아니다. 돌봄 참여 시간이 주당 평균 9시간 12분으로 OECD 평균(9시간 36분)보다도 짧기 때문이다. 즉, 직장 내 워라밸이 지켜지면서 정규 수업 후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생기는 ‘돌봄 공백’이 그만큼 짧다는 의미다. 많은 아이들이 보편적으로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이유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이런 덴마크의 초등 돌봄 시스템을 참고해 국내 초등 돌봄 참여 학생을 2022년까지 53만 명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하루 4, 5시간에 불과한 정규수업 시간을 6, 7시간으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덴마크는 2014년 교육 개혁을 통해 초등학교 저학년의 정규 수업종료 시간을 낮 12시 반에서 오후 2시로 늦췄다. 코펜하겐·스뫼룸=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이제 그만 인터뷰를 마쳐야 할 것 같아요. 아들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야 할 시간이거든요.” 지난해 10월 30일 덴마크 스뫼움 시의 보청기 기업 오티콘에서 만난 토머스 젠슨 씨(44)는 덴마크 직장인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다가 말을 멈췄다. 시계는 오후 2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벌써 아이를 데리러 간다고?’ 어리둥절한 기자를 앞에 두고 젠슨 씨와 그의 동료들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그때 깨달았다. 워라밸 취재를 위해 제대로 찾아 왔음을….● 오후 3시 반 ‘퇴근 러시아워’ 동아일보 워라밸 특별취재팀이 세 번째로 찾은 곳은 ‘휘게(Hygge)’의 나라 덴마크다. 휘게는 장작불 옆에서 코코아를 마시는 것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상태를 뜻하는 덴마크어다. 옥스퍼드사전은 2017년 휘게를 ‘올해의 단어’ 후보에 올렸다. 지난해 유엔 세계행복지수에서 156개국 중 3위를 차지한 덴마크 시민들의 행복은 휘게로 상징되는 워라밸에서 비롯된다. 젠슨 씨를 따라 나서니 1시간 전만 해도 한산한 도로에 차량이 가득했다. 보육시설에 맡긴 아이를 데리러 가는 직장인들의 러시가 시작된 것이다. 덴마크 근로자 대다수는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3~4시에 퇴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덴마크 임금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2016년 기준)은 1416시간으로 한국(2052시간)의 3분의 2 수준이다. 젠슨 씨가 회사에서 차로 15분가량 떨어진 민간어린이집에 들어서자 세발자전거를 타던 세 살배기 아들이 달려와 안겼다. “오늘 뭐하고 놀았느냐”는 젠슨 씨의 질문에 아이는 “핼러윈이라서 피망에 얼굴을 그렸다”고 했다. 젠슨 씨 부부는 맞벌이다. 부부가 모두 늦게 퇴근하면 장모에게 아이를 부탁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한 해 동안 3, 4번에 불과하다고 했다. 부부가 모두 늦게 퇴근할 때가 거의 없단 얘기다.● “직원이 출퇴근시간 정하면 충성도 높아져” 오티콘 사의 글로벌 프로그램 매니저인 키어스튼 슈미트 씨(50·여)는 시차 때문에 저녁에 해외 파트너와 화상회의를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자기가 원하는 날 대휴를 쓴다. 반대로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 때문에 일찍 퇴근할 일이 생기면 필요할 때 초과근로를 한다. 상사가 일일이 근로시간을 세지 않는다. 슈미트 씨는 “근로자에게 업무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재량을 주면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진다는 게 경영진의 오랜 믿음”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회사가 직원을 믿고, 직원이 그 믿음에 부응하는 자율적인 탄력근로 문화가 덴마크 워라밸의 핵심이다. 덴마크 정부는 일률적으로 근로시간을 정하거나 탄력근로의 범위를 법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각 사업장에서 노사가 협의해 최적의 방안을 찾을 뿐이다. 덴마크는 유럽 경영대학원 인시아드 등이 21일 발표한 ‘인적 경쟁력 지수’ 중 노사협력 부문에서 125개국 중 4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120위에 그쳤다. 덴마크의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에서 일하는 이탈리아인 알랑 프루에이티 씨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데, 덴마크처럼 워라밸을 중시하는 곳은 처음”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한 제약사에서 일할 땐 상사가 퇴근하기 전까지 부하직원들은 자리를 지켜야 하는 불문율이 있었다고 한다. 몇 해 전 지금 일터로 옮긴 뒤로는 삶의 질이 달라졌다. 오후 4시면 퇴근해 여덟 살 아들과 공터에서 축구를 즐긴다. 그는 “‘내가 평생 아이와 이렇게 사이가 좋았던 적이 있나’ 싶다”며 “이곳에서 내가 만약 상사에게 ‘퇴근해도 되냐’로 물으면 아마 ‘내가 당신의 시간을 대신 관리해줄 수 없는데 그걸 왜 묻느냐’고 반문할 것”이라고 웃었다.● 덴마크 남성의 집안일 시간, 한국의 4배 지난해 11월 2일 오전 8시경 코펜하겐 시 북쪽 외스터 파이막스거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는 등교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로 붐볐다. 자전거 보조의자에 아이를 태우거나 손을 잡고 걷는 등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눈에 띄는 건 아이의 등교를 책임지는 부모의 성별이었다. 20분간 지켜보니 아이와 동행한 어른 중 남성이 54명, 여성이 65명으로 비슷했다. 인근 공원에서 유모차를 끄는 젊은 남성을 만나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덴마크에선 이처럼 남성이 육아 부담을 나눠지는 게 자연스럽다. OECD에 따르면 덴마크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4시간 3분으로 한국 여성(3시간 47분)과 16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반면 덴마크 남성은 하루 평균 3시간 3분을 가사노동에 사용해 한국 남성(45분)의 4배가 넘었다. 노보노디스크의 부사장 메데 애트룹 씨(48·여)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저녁을 자녀와 함께 먹는다. ‘저녁은 가족과 함께 먹는 것.’ 애트룹 씨가 ‘휘게’를 위해 다짐한 원칙이다. 의사인 남편과 육아를 평등하게 분담하고, 저녁식사 준비도 하루씩 번갈아가며 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애트룹 씨는 “남편과 짐을 나누는 덕에 육아 부담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초등 ‘돌봄 절벽’ 이겨낸 덴마크…학업보다 ‘사회적 교육’에 초점 ▼미취학 아동에 대한 정부의 보육 서비스는 한국이 덴마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한국에선 어린이집 비용을 전액 정부가 대준다. 이용시간도 원칙적으로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7시 반까지 하루 12시간이다. 덴마크에선 공립어린이집 비용이 월 평균 1만4892크로네(약 253만 원)에 이른다. 지방자치단체가 75%를 대준다고 해도 3723크로네(약 63만 원)를 부모가 부담해야 한다. 이용 시간도 오전 6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 하루 10시간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돌봄 절벽’이 생긴다. 2017년 기준 국내 초등학생 267만 명 중 초등 돌봄교실 등 공적 돌봄 서비스를 이용한 어린이는 33만 명(12.5%)에 불과했다. 참여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8.4%)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반면 덴마크엔 이런 ‘돌봄 공백’이 없다. 초등학생의 돌봄 참여율이 63.5%(2016년 기준)로 OECD 회원국 중 1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저학년(6~8세)의 돌봄 참여율은 76.7%로 OECD 평균(34.1%)의 2배가 넘는다. 돌봄 교실에선 학업보다는 ‘사회적 교육’에 초점을 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보육교사인 ‘페다고’가 학급마다 1명씩 배정돼 아이들을 인솔하고 안전 관리를 책임진다. 그런다고 아이들이 정규 수업을 마친 후 해가 기울 때까지 학교에만 있는 건 아니다. 돌봄 참여 시간이 주당 평균 9시간 12분으로 OECD 평균(9시간 36분)보다도 짧기 때문이다. 즉, 직장 내 워라밸이 지켜지면서 정규 수업 후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생기는 ‘돌봄 공백’이 그만큼 짧다는 의미다. 많은 아이들이 보편적으로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이유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이런 덴마크의 초등 돌봄 시스템을 참고해, 국내 초등 돌봄 참여 학생을 2022년까지 53만 명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하루 4~5시간에 불과한 정규수업 시간을 6~7시간으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덴마크는 2014년 교육 개혁을 통해 초등학교 저학년의 정규 수업 종료 시간을 낮 12시 반에서 오후 2시로 늦췄다.코펜하겐·스뫼움=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지난해 4월 충남 서산시에서 오토바이를 타던 한 시민이 사고로 중태에 빠졌다. 뇌출혈이 의심돼 천안시 단국대병원에 대기 중인 응급환자 전용 헬기(닥터헬기)에 출동 요청이 전달됐다. 하지만 사고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운동장 내 헬기장은 마라톤대회 준비로 이용할 수 없었다. 이 헬기는 환자를 공중에서 끌어올릴 수 있는 호이스트(권상기)가 장착돼 있지 않은 소형 기종이라 반드시 헬기장에서만 환자를 태울 수 있다. 결국 닥터헬기는 사고 장소에서 28km나 떨어진 다른 헬기장에 내렸다. 환자 역시 119구급차에 실려 그 헬기장까지 이동해야 했다. 환자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치료 골든타임’을 놓친 탓에 지금도 후유증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은 정부가 연간 200억 원을 들여 운영하는 닥터헬기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닥터헬기가 간절한 응급환자는 차가 꽉 막힌 고속도로 한가운데나 바다 위 선박 등 헬기가 착륙할 수 없는 곳에서도 발생한다. 하지만 현재 가천대 길병원 등 전국 병원 6곳에서 운영하는 닥터헬기는 모두 중소형으로 호이스트 구조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닥터헬기가 출동했다가 적당한 착륙장을 찾지 못해 되돌아오거나 아예 출동조차 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닥터헬기가 도입된 2011년 9월 이후 지난해 6월까지 ‘착륙장 사용 불가’로 환자를 헬기에 태우지 못한 사례는 143건에 이른다. ‘닥터헬기 무용론’의 뿌리엔 불합리한 규제가 자리 잡고 있다. 현행 응급의료법상 닥터헬기의 기령(機齡)은 ‘생산 10년 이내’로 제한돼 있다. 한정된 예산(대당 연간 30억∼40억 원)으로 10년 이내 최신 기종을 구입하려면 호이스트를 장착할 수 있는 대형 헬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비를 잘한 중고 헬기는 새것과 큰 차이가 없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엔진 등 주요 부품을 모두 교체해 안전성 면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쌍용 구미대 헬기정비과 교수는 “국군의 주력 헬기도 20년이 넘은 것들인데 닥터헬기 기령을 10년으로 제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도 ‘10년 제한’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새 제품일수록 안전하다고 보고 이런 조항을 둔 것 같은데, 구체적 근거는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닥터헬기를 ‘긴급항공기’로 분류한 항공안전법도 문제로 지적된다. 긴급항공기는 소방헬기 같은 ‘국가기관 항공기’와 달리 출동 후 경로를 바꾸려면 반드시 지상에서 근무하는 운항관리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는 응급의료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탁상 규제’의 전형이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5월 국내 일곱 번째 닥터헬기 도입을 앞두고 이런 규제를 풀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호이스트를 장착할 수 있는 중고 대형 헬기를 구입해 환자를 어디서든 구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복지부는 닥터헬기의 기령 제한을 완화하려면 정책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는 닥터헬기를 ‘국가기관 항공기’로 재분류하면 중앙정부의 안전 감독에서 제외돼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며 공식 거부했다. 하지만 이는 소방헬기 등이 이미 지방자치단체의 감독을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승희 의원은 이런 불합리한 규제를 바로잡기 위해 항공안전법 개정안을 곧 발의할 예정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 행사에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냄에 따라 다음 달 초에 열리는 기금운용위원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금운용위가 수탁자책임위의 결정을 뒤집는 데는 당장 부담이 따를 순 있지만 이를 무시하고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강행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시장의 분석이 나온다. 현재 기금운용위의 위원 구성을 봤을 때 친(親)정부, 친노동 성향 인사가 많은 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 적용을 주문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24일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등에 따르면 다음 달 1일 국민연금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에서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 여부가 결정된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 7.34%와 대한항공 지분 11.56%를 보유하고 있다. 앞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수탁자책임위는 한진칼에 대해 5 대 4, 대한항공에 대해 7 대 2로 주주권 행사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국민연금 안팎에서는 기금운용위 위원들의 성향을 고려하면 주주권 행사 쪽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도 크다는 예측이 나온다. 기금운용위는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부 인사 5명, 외부 추천인사 14명 등 총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정부 측 인사는 기획재정부 등 각 부처 차관 4명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이날 출석을 한다면 사실상 정부 방침을 따라 의견 표명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부 인사 14명 중에서도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측 인사 2명을 제외하면 노동계 및 참여연대를 포함한 시민단체 추천·소속 인사, 국책연구원장(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한국개발연구원장) 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금운용위는 위원 절반 이상이 회의에 참석하고 참석자 과반이 찬성하면 안건이 통과된다. 이에 따라 기금운용위의 현재 구성이 정부 쪽에 지나치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금운용위 A 위원은 “자신을 추천한 기관의 입장이나 정치적 신념에 따라 표결이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금운용위 구성 자체가 정부에 유리한 상태”라고 말했다. 또 민간 위원들 가운데 기금 운용 또는 경제·금융시장 전문가가 거의 없다 보니 수익률 제고를 위한 합리적 근거보다는 이념적 성향에 따라 표결을 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기금운용위는 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한 독립적인 의사 결정을 못 하고 정부의 입김에 따라 흔들린 적이 많았다. 일례로 국민연금은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때마다 정치권이나 당국으로부터 증시 부양의 ‘구원투수’로 나서야 한다는 요구를 받아왔다. 현 정부에서도 국민연금을 공공 임대주택에 투자해 주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한편 청와대는 전날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연금 사회주의’ 논란이 재차 불거지자 해명에 나섰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4일 서면 브리핑에서 “기업의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 활동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투명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행사한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적극적 주주권 행사 여부와 범위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논의 결과를 참고해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결정할 사항”이라고 덧붙였다.이건혁 gun@donga.com·문병기·조건희 기자}
24일 정신질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임신 5개월인 의사의 손가락이 찢어지는 아찔한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해 12월 31일 환자의 흉기에 유명을 달리한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참극이 재발할 뻔한 것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24일 오후 서울 은평구 서울은평병원(시립 정신병원)에 방문한 정신질환자 A 씨는 임신 5개월째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B 씨(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가까이 있던 다른 환자와 직원들이 A 씨를 제압한 덕에 B 씨의 신체 부상은 새끼손가락이 찢어지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B 씨는 사건 직후 정신적 충격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를 말리던 다른 환자도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다. A 씨는 이 병원에서 격리 입원 치료를 받다가 전날 퇴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교수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유사한 사건이 벌어지자 의료계에선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진에 대한 안전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7월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경찰관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중증 정신질환자 지원 및 관리 강화책을 발표했지만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임 교수 사건 이후 ‘임세원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에 제출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등 27개의 법안도 아직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위원 과반이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 적용 1호 대상으로 한진그룹을 겨냥했던 국민연금의 행보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는 23일 박상수 위원장(경희대 교수) 등 9명으로 구성된 주주권 행사 분과위원회를 열고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해 이사 해임이나 사외이사 선임, 정관 변경 등의 안건을 직접 제안하는 ‘적극적 주주권 행사’ 여부를 논의했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 7.34%와 대한항공 지분 11.56%를 보유하고 있다. 논의 결과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대해서는 5명이 주주권 행사를 반대하고 4명이 찬성했다. 또 대한항공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7명이 반대하고 2명만 찬성했다.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찬성하는 위원들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필요하다”며 대한항공·한진칼에 대한 이사 해임, 사외이사 선임 등을 제안했다. 이에 반대하는 위원들은 주주권 행사를 강행했을 때 기금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섰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국민연금이 지분 보유 목적을 현재의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바꾸면 지분 변동 명세를 신고해야 하고 6개월 이내 단기매매 차익은 반환해야 한다. 수익률 관리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위원들은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 여부에 대해 별도의 결론이나 합의안을 내지 않고 각자 의견을 그대로 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하기로 했다. 기금운용위는 이르면 이달 말 회의를 열고 한진그룹에 대한 주주권 행사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현재로서는 기금운용위가 절반이 넘는 수탁자위원회 위원들의 반대 의견을 뒤집고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강행하기에는 부담이 따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날 회의에서 위원들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이사 연임 안건이 3월 주주총회에 상정됐을 경우 국민연금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놓고도 의견을 나눴다. 복수의 참석자들은 위원 중 과반이 조 회장의 이사 연임에 반대하자는 의견을 냈다고 전했다. 다만 위원들은 논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이 사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투표를 진행하지는 않았다.이건혁 gun@donga.com·조건희 기자}

‘팔자(八字)이니 받아들여야 한다.’ 치매에 대한 가장 큰 오해다. 실제론 치매를 일찍 발견해 치료를 시작하면 진행을 늦추거나 멈추는 것까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치매환자는 급증해 5년 뒤에는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조기 진단 및 치료’가 중요한 이유다. 국책연구단이 치매 조기 발견을 위해 간단한 타액 검사만으로 치매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2일 내에 95% 정확도로 치매 예측 조선대 치매국책연구단은 “기존 치매 유전자(DNA) 검사의 정확도를 대폭 높인 새로운 검사법을 개발해 지난해 12월 국내 특허를 획득했다”고 23일 밝혔다. 침을 뱉거나 입안 세포를 면봉으로 긁어내 DNA를 채취한 후 분석하는 간단한 검사만으로도 이틀 안에 95%의 정확도로 알츠하이머성 치매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있는 방식이다. 현재 국내외 의료기관이 쓰는 치매 검사법은 DNA 속 아포지질단백(ApoE)이 e2, e3, e4 등 세 가지 형태 중에서 어떤 것인지를 검사기를 통해 가려내는 방식이다. 이 중에서 e4 유전자가 치매를 유발한다. 다만 이 방식만으론 정확도가 70% 수준이다. 더구나 똑같이 e4 유전자를 갖고 있어도 실제 치매 발병 위험도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크다.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까지 실시해야 치매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이에 연구단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e4 유전자가 T형과 G형의 두 가지 변이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연구단이 보유한 유전체 빅데이터 4만여 명분과 대조해보니 T형 유전변이를 지닌 사람은 95%의 확률로 알츠하이머성 치매 증세를 보였고, 그 발병 위험이 G형의 2.5배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검사법이 ‘설탕과 소금’을 구별하는 수준이었다면, 새 방식은 소금이 ‘암염인지 천일염인지’ 솎아내는 것에 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은 이번에 밝혀낸 T형 변이를 서양인보다 더 많이 지니고 있어, 치매 발병 위험이 2배 이상으로 높다는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조기진단·치료가 치매 부담 해결책 연구단은 올 상반기 광주 치매예방센터에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새 검사법을 통한 치매 검사를 시범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이를 연구단이 기존에 개발한 MRI 기반 치매 조기진단 지원 소프트웨어 ‘뉴로아이’(본보 2017년 6월 5일자 A1·2면)와 결합하면 치매 위험을 거의 완벽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게 연구단의 설명이다. 이런 검사를 거쳐 치매 위험군으로 분류되면 뇌 속에 베타아밀로이드 등 치매 유발 물질이 쌓이지 않게 해주는 의약품을 조기에 투약하는 등의 방식으로 치매의 진행을 늦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올해 81만3000명인 60세 이상 치매 환자는 2024년 100만 명을 돌파해 2030년 139만4000명, 2040년 22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60세 이상 인구 중 치매 환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올해 7.2%에서 2030년 8.1%, 2040년 10.5% 등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조선대 이건호 치매국책연구단장(의생명과학과 교수)은 “한국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2026년 이전에 치매 부담을 대폭 줄일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최근 대구 파티마병원 등에서 비롯된 홍역 유행으로 22일까지 집계된 환자는 총 31명이다. 정부는 홍역처럼 전파력이 강한 질환을 ‘법정 전수감시 대상’ 감염병으로 분류해 환자가 발생하면 반드시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전수감시 감염병 59종(결핵, 에이즈 제외)의 환자 수가 지난해 17만1367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 환자 수는 감시를 시작한 2001년 이후 17년 만에 최대치이고, 5년 전보다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와 어린이집, 병원이 바이러스와 세균에 무방비로 노출된 탓이다.○ 열 내렸다고 등교시키면 다시 유행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감염병 전수감시가 시작된 2001년엔 환자가 3만2186명이었다. 2012년까지 5만 명 안팎을 유지했다. 그런데 무상보육이 전면 시행된 2013년 환자가 7만2470명으로 불어나더니 2016년(10만4028명)에는 10만 명을 돌파했다. 이런 추세라면 2020년 20만 명 돌파가 예상된다. 환자 수를 크게 늘린 주범은 수두(지난해 9만6470명)와 유행성이하선염(볼거리·1만9271명), 성홍열(1만5782명)이다. 이 3가지 감염병 환자 중 10세 미만 비율이 94%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 등 집단생활을 하는 보육·교육기관이 ‘감염의 온상’이란 얘기다. 전문가들은 증상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회복기가 바이러스나 병균을 옮기기 가장 쉬운 시기라고 경고한다. 볼거리에 걸리면 고열과 구토 등 증상이 나타난 뒤 최소 닷새는 격리해야 전파력이 사라진다. 수두는 모든 물집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큰 증상은 이틀 정도 지나면 대부분 가라앉아 겉으로 보면 다 나은 것처럼 보인다. 이때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이유로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보내면 다시 유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번 홍역 유행처럼 병원에서 주로 전파되는 감염병도 크게 늘었다. 여러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인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속균종(CRE) 감염증은 2017년부터 전수감시 대상에 포함됐는데, 환자가 1년 만에 5716명에서 1만1918명으로 늘었다. 의료기구의 소독과 멸균 등 감염 관리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근본 처방은 예방접종 강화 예방접종을 선진국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두 예방접종은 생후 12∼15개월에 한 차례 무료로 맞을 수 있다. 접종률이 2017년 기준으로 97.4%나 된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백신을 맞았는데도 수두에 걸리는 아이가 많아진다. 이른바 ‘돌파 감염’이다. 항체가 4∼6세 무렵 힘을 잃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과 캐나다, 독일 등은 이 나이 때에 다시 한번 수두 무료 접종을 한다. 전수감시 감염병 중 발생 2위인 볼거리는 생후 12∼15개월과 4∼6세에 총 두 차례 홍역·볼거리·풍진(MMR) 백신으로 예방한다. MMR 백신은 홍역과 볼거리, 풍진을 한꺼번에 예방하는 백신이다. 문제는 2001년 이 백신을 맞았다면 볼거리 항체가 없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당시 국내에서 홍역 환자가 2만 명 넘게 발생하는 ‘홍역 대유행’ 사태가 일어나는 바람에 급하게 볼거리 항체가 없는 중국산 MR(홍역·풍진) 백신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국내에 유통되는 수두 백신 중 절반이 제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백신 효과를 검증하고 접종 횟수를 늘려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국민연금개혁특위’가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당초 계획했던 온라인 댓글 등 빅데이터의 분석을 보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보건복지부와 연금개혁특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8일 열린 제7차 회의에서 특위 위원들은 특위 차원의 여론 수렴 조사를 보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별도의 조사나 연구도 추가하지 않기로 했다. 당초 특위는 올 1, 2월 빅데이터 분석과 집단심층면접 등을 통해 국민연금 개편 방향에 대한 국민 여론을 취합할 계획이었다. 특위가 구성된 이유가 ‘대국민 여론 수렴을 통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발표된 4차 재정추계 결과 국민연금고갈 시기는 2057년으로 당초보다 3년 앞당겨졌다. 이를 토대로 보험료를 인상하는 내용의 연금제도발전위 개편안이 발표됐다. 하지만 세대 간 의견 차 등 개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지자 경사노위는 지난해 11월부터 연금특위를 구성해 여론을 수렴해왔다. 특위가 입장을 선회한 것은 댓글 빅데이터 분석 과정에서 온라인을 주로 이용하는 젊은층 등 특정한 의견이 과도하게 표출돼 ‘여론’으로 읽히는 부작용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 개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많을 경우 국회 입법 과정에서 혼란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7차 회의에 참석한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해 국민연금 홈페이지에 올라온 2700여 건의 의견을 분석해 보니 90%가 국민연금 폐지를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특위는 4가지 정부 개편안 발표 후 의견 수렴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특위가 여론이 부정적일 것을 우려해 빅데이터 조사 등을 하지 않는 것은 특위 결성 목적은 물론이고 연금 개편의 일관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특위는 4월 정기국회 일정을 고려해 3월 말까지 합의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특위안에서 합의안을 도출하는 과정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특위는 민노총 등 노동계와 경총 등 경영계 각 2명, 청년단체 2명, 비사업장 가입자단체 4명, 정부 3명, 공익위원 3명으로 구성돼 있다. 노동계 측 위원은 소득대체율 45%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경영계 측 위원은 “현행(40%)대로 유지해야 기업에 부담이 적다”고 맞서고 있다. 특위 내에서도 견해차가 큰 만큼 정부가 제시안 4가지 개편안 중 하나를 고르기보다는 새로운 버전의 합의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장지연 연금개혁특위 위원장은 16일 경사노위 간담회에서 “4가지 개편안을 섞은 안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개편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면서 단일안을 내지 않은 이유에 대해 “국민에게 선택권을 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의 4가지 개편안은 △현행 소득대체율(소득 대비 연금 비율) 40%와 보험료율 9% 유지안 △현행 제도를 유지하되 기초연금을 25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인상하는 안 △소득대체율 45%, 보험료율 12%로 인상하는 안 △소득대체율 50%, 보험료율 13%로 인상하는 안이다. 박성민 min@donga.com·조건희 기자}

지난해 12월 31일 환자의 흉기에 유명을 달리한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유가족이 조의금 1억 원을 후학 양성에 써달라며 대한정신건강재단에 기부했다. 이 재단 이사이자 임 교수의 친구인 백종우 경희대병원 교수는 “유족 분들이 조의금을 강북삼성병원에 기부하려 했지만 병원이 사양해 이같이 결정하게 됐다”며 “임 교수의 모교인 고려대 의대 동문회의 성금을 더해 ‘임세원상’을 만들어 후학을 격려하기 위해 쓰겠다”고 밝혔다. 임 교수가 근무한 성균관대는 3월부터 전체 학부생을 대상으로 임 교수가 생전에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보고 듣고 말하기’ 자살 예방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임 교수의 부인은 “(임 교수가) 가장 기뻐할 소식”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균관대는 ‘임세원 강의실’을 지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부부 한 쌍이 아이를 한 명도 낳지 않는 초저출산 시대에 접어들었다. 한국은 물론 어느 선진국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다. 출산 장려와 함께 ‘저출산 적응 대책’도 신속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관계자는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96∼0.97명으로 추산됐다”며 “출생아 수도 32만5000명으로 2017년(35만7771명)보다 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0월까지 통계청이 집계한 인구 동향을 토대로 추산한 것이다. 합계출산율은 한 여성이 가임 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다.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통계청 집계가 시작된 1970년 이래 한 번도 없다. 1970년 합계출산율은 4.53명이었다. 1977년2.99명, 1984년 1.74명으로 각각 3명대와 2명대가 깨졌다. 이후 34년 만에 1명대마저 무너진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960∼2016년 회원국들의 합계출산율을 조사한 결과 1명대 미만으로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2017년 기준 224개국 통계를 보면 싱가포르(0.83명)와 마카오(0.95명)뿐이다. 모두 작은 도시국가다. 한 인구학자는 “먼 옛날 로마가 망했을 때나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으로 떨어졌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응은 더디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을 수정한 ‘재구조화’ 방안을 발표했다. 저출산 추세는 ‘극복’이 아닌 ‘적응’의 대상이라는 인식 속에 정책 패러다임을 ‘출산 장려’에서 ‘삶의 질 향상’으로 바꾸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 아동 의료비 지원과 같은 상당수 정책은 2021년 이후 시행된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정책학과 교수)은 “인구 구조에 큰 상처가 났는데 정부와 국회는 돈 몇 푼 쥐여주는 응급처치만 하고 있다”며 “대수술이라고 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 좌절한 청년들을 일으켜야 한다”고 지적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지만 결코 즐길 수 없는 미세먼지. 결국 조금이라도 피할 방법을 찾는 게 최선입니다. 여기에 검증된 미세먼지 예방법을 모았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곧장 소파나 침대에 파묻히고 싶은 유혹이 듭니다. 그런데 잠깐, 외투에 묻은 먼지는 털었나요? 밖에서 먼지바람을 맞은 털옷은 미세먼지를 쭉 빨아들이는 ‘미세먼지 깔때기’나 다름없습니다. 대문 밖에서 봄날 이불 털듯 팡팡 털거나 솔이나 테이프클리너로 정돈한 뒤 옷장에 넣어두세요. 머리카락 사이사이와 두피에 붙은 미세먼지는 머리를 감아야 완전히 떨어집니다. 그전에 대문 밖에서 머리를 터는 것도 잊지 마세요. 고등어가 ‘미세먼지 주범’이란 오명을 쓴 건 다들 기억하시죠? 실제 조리할 때 프라이팬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는 6, 7m 떨어진 거실까지 날아갑니다. 그러니 레인지후드는 조리가 끝난 뒤 10분 정도 더 틀어두는 게 좋습니다. 미세먼지가 가라앉기까지 10분 이상 걸리거든요. 별도의 환기 시스템이 있다면 같이 틀어두세요. 청소할 때 진공청소기를 쓰면 빨아들인 먼지가 사방팔방 다시 날릴 수 있어요. 배기부에 미세먼지를 잡아주는 헤파(HEPA) 필터가 달렸는지 확인해보세요.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해보니 미세먼지 제거율이 99.95% 이상인 H13, 14 등급 필터는 전부 ‘합격’이었습니다. H10 등급(미세먼지 제거율 85%)인 제품 5개 중 2개는 규격 미달이었어요. 헤파 필터 성능이 낮다면 진공청소기 대신 물걸레로 청소하는 게 낫습니다. 공기청정기를 고를 땐 헤파 필터가 있는지는 물론이고 ‘표준 사용 면적’을 눈여겨보세요. 이 수치가 최소한 거실 크기 이상인 제품을 골라야 제 성능을 냅니다. 필터는 6개월마다 교체해주세요. 또 가습기를 같이 틀어 실내 습도를 50% 정도로 맞추면 물 분자가 미세먼지를 무겁게 만들어 공중에 덜 날리게 해줍니다. 미세먼지가 가시면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하는 게 좋습니다. 다만 창틀이나 방충망을 물걸레로 한번 닦아야 한동안 쌓인 미세먼지가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있어요. 미세먼지가 심한 날 외출할 때는 포장지에 ‘KF80’(평균 0.6μm 크기의 미세먼지를 80% 이상 차단)이나 ‘KF94’(평균 0.4μm 크기의 미세먼지를 94% 이상 차단)라고 적힌 마스크를 쓰세요. 3세 이하 영·유아는 외출을 삼가는 게 좋지만 꼭 나가야 한다면 KF80 마스크를 씌우세요. KF94를 쓰면 숨이 막힐 수 있어요.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자, 이제 본격적으로 내 소개를 하지. 다들 내 이름은 알지? 그래 맞아. 초미세먼지(PM2.5)! 근데 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더군. 먼저 나는 그냥 먼지가 아니야! 갈매기살이 갈매기 고기가 아니듯 난 네 책상 위에 내려앉은 그런 먼지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그런데도 한국인들이 멋대로 내 이름에 먼지를 붙였으니 내가 열 받지 않겠어? 내 영어 이름을 보자고. Particulate Matter. 그래서 약자가 PM인 거야. 이걸 한국말로 풀면 ‘작은 입자의 물질’ 정도겠지. 정확히 말하면 대기오염물질에 탄소 등이 섞인 화합물이라고. 우리 ‘미세먼지(PM10)’ 형은 입자 지름이 10μm(마이크로미터·1μm은 100만분의 1m 이하)야. 난 지름이 2.5μm 이하로 훨씬 작지. 그래서 ‘초’미세먼지라고 불리는 거야. 머리카락 굵기의 30분의 1 정도니 너희들 눈엔 보이지도 않아. 그럼 이제 너희들이 궁금한 걸 물어봐. Q. 넌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거야? A. 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너희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고선! 물론 꽃가루나 흙먼지 등으로도 만들어지긴 해. 하지만 보일러나 발전시설의 배기가스, 공사장의 날림먼지 등에서 훨씬 많이 만들어진다고.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있지. 나의 사랑, 노후 경유차! 경유차에서 내뿜는 질소산화물이 나의 부모인 셈이지. Q. 네가 요즘 부쩍 많아졌다고 느껴지는 건 왜지? A. 하하하, 네 삶의 일부가 됐다니 기분이 좋네. 하지만 속상하게도 실은 내가 점점 줄고 있어. 못 믿겠다고? 수치상으로는 그래. ㎥당 서울시 초미세먼지 농도는 2000년 평균 46㎍(마이크로그램)에서 2017년 25㎍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오히려 1970, 80년대에는 스모그 현상이 지금보다 훨씬 심했지. 네가 애독하는 동아일보를 찾아봐. 1989년 11월 27일자를 보면 ‘서울 스모그 갈수록 重症(중증)’이란 기사가 있잖아. 어쨌든 나는 줄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내가 많아졌다고 느낄까? 사실 나도 미스터리야. 사람들이 공기 질에 더 예민해진 탓이 아닐까? 또 세계 최대 석탄 소비국이자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이 바로 옆에 딱 붙어 있으니 그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거야. Q. 스모그나 황사도 네 형제인 거야? A. 노노! 황사는 중국 내륙 네이멍구 사막에서 온 흙먼지야. 나랑은 차원이 달라. 비슷하게 생각 안 해줬으면 좋겠어. 스모그는 내 사촌쯤 돼. 스모그는 광범위한 대기오염 상태를 말하는 거거든. Q. 왜 남의 나라까지 와서 우릴 괴롭히는 거야? A. 남의 나라? 아, 중국! 우리도 모이면 어디 출신인지부터 물어봐. 보통 때는 30~50%는 중국에서 왔더라고. 13~15일처럼 전국이 ‘매우 나쁨’일 때는 최대 80%가량이 중국 애들인 경우도 있어. 하지만 그 애들이라고 여기까지 오고 싶었겠어. 그저 바람 따라 정처 없이 온 거지. 탓하려면 겨울철 중국에서 한국으로 불어오는 편서풍을 탓해야지. 나도 하나 물어보자. 중국 탓하면 뭐가 달라져? 아까 말했지. 난 석탄이나 석유를 태울 때 나오는 배기가스와 매연 등에서 많이 생긴다고. 한국에도 공장이 얼마나 많아? 화력발전소는 또 어떻고. 경유값 싸다고 경유차는 또 얼마나 많이 타고들 다니는지….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당장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보라고. Q. 넌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 거야? A. 내가 너희들에게 얼마나 몹쓸 놈인지 설명하려니 좀 민망하네. 일단 난 중금속과 유해화학물질로 만들어져 있잖아. 근데 또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아요. 코나 기도에서 걸러지지 않고 곧바로 폐로 슝~ 들어간다고. 미세먼지보다 초미세먼지를 더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야. 나한테 오래 노출되면 기침이 잦아지고 천식, 호흡기, 심혈관계 질환이 생길 수 있어. 그러니 어린아이나 노인, 임신부, 순환기 질환이 있는 사람은 나를 잘 피해 다니라고. 나니까 이런 얘기도 해주는 거야! 어때? 이제 나에 대해 파악이 좀 돼? 너희들이 나 싫어하는 거, 나도 알아. 나 때문에 어린애들이 귀여운 얼굴을 마스크로 다 덮고 다닐 때는 나도 좀 미안하더라. 그렇지만 뭐 어쩔 수 없잖아? 아직 겨울은 많이 남았다고. 이번 주말도 나와 함께 보내자고~.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주말 미세먼지 ‘나쁨’…검증된 미세먼지 예방법 6가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지만 결코 즐길 수 없는 미세먼지. 결국 조금이라도 피할 방법을 찾는 게 최선입니다. 여기에 검증된 미세먼지 예방법을 모았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곧장 소파나 침대에 파묻히고 싶은 유혹이 듭니다. 그런데 잠깐, 외투에 묻은 먼지는 털었나요? 밖에서 먼지바람을 맞은 털옷은 미세먼지를 쭉 빨아들이는 ‘미세먼지 깔때기’나 다름없습니다. 대문 밖에서 봄날 이불 털듯 팡팡 털거나 솔이나 테이프클리너로 정돈한 뒤 옷장에 넣어두세요. 머리카락 사이사이와 두피에 붙은 미세먼지는 머리를 감아야 완전히 떨어집니다. 그전에 대문 밖에서 머리를 터는 것도 잊지 마세요. 고등어가 ‘미세먼지 주범’이란 오명을 쓴 건 다들 기억하시죠? 실제 조리할 때 프라이팬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는 6, 7m 떨어진 거실까지 날아갑니다. 그러니 레인지후드는 조리가 끝난 뒤 10분 정도 더 틀어두는 게 좋습니다. 미세먼지가 가라앉기까지 10분 이상 걸리거든요. 별도의 환기 시스템이 있다면 같이 틀어두세요. 청소할 때 진공청소기를 쓰면 빨아들인 먼지가 사방팔방 다시 날릴 수 있어요. 배기부에 미세먼지를 잡아주는 헤파(HEPA) 필터가 달렸는지 확인해보세요.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해보니 미세먼지 제거율이 99.95% 이상인 H13~14 등급 필터는 전부 ‘합격’이었습니다. H10 등급(미세먼지 제거율 85%)인 제품 5개 중 2개는 규격 미달이었어요. 헤파 필터 성능이 낮다면 진공청소기 대신 물걸레로 청소하는 게 낫습니다. 공기청정기를 고를 땐 헤파 필터가 있는지는 물론이고 ‘표준 사용 면적’을 눈여겨보세요. 이 수치가 최소한 거실 크기 이상인 제품을 골라야 제 성능을 냅니다. 필터는 6개월마다 교체해주세요. 또 가습기를 같이 틀어 실내 습도를 50% 정도로 맞추면 물 분자가 미세먼지를 무겁게 만들어 공중에 덜 날리게 해줍니다. 미세먼지가 가시면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하는 게 좋습니다. 다만 창틀이나 방충망을 물걸레로 한번 닦아야 한동안 쌓인 미세먼지가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있어요. 미세먼지가 심한 날 외출할 때는 포장지에 ‘KF80’(평균 0.6μm 크기의 미세먼지를 80% 이상 차단)이나 ‘KF94’(평균 0.4μm 크기의 미세먼지를 94% 이상 차단)라고 적힌 마스크를 쓰세요. 3세 이하 영유아는 외출을 삼가는 게 좋지만 꼭 나가야 한다면 KF80 마스크를 씌우세요. KF94를 쓰면 숨이 막힐 수 있어요.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내년부터는 국민연금이 임원 선임을 두 차례 반대했는데도 강행하는 기업은 ‘경영 참여권 행사’까지 가능한 중점 관리 대상으로 분류된다. 중점 관리 대상이 되면 비공개 대화 등을 통해 개선을 유도하고, 그래도 변화가 없으면 기금운용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임원 해임 등 경영 참여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투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시행하는 것이다. 17일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의 ‘국민연금기금 국내 주식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을 16일 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했다.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후 이를 구체화한 기금운용위원회의 내부 지침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연금은 △최근 5년 내에 이사 및 감사 선임에 대해 국민연금이 2회 이상 반대했는데도 개선하지 않거나 △횡령이나 배임, 부당 지원(일감 몰아주기), 경영진의 사익 편취가 우려되거나 △경영 성과에 비춰 이사의 보수 한도가 지나치게 높은 기업을 ‘중점 관리 기업’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이사 선임에 2회 반대한 기업을 중점 관리 대상으로 분류하는 것은 기업의 입장에선 국민연금이 단 한 차례만 반대해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10월 726회의 주주총회에 참석해 535건의 반대표를 행사했으며, 이 중 ‘이사 및 감사 선임’이 225건(42.1%)으로 가장 많았다. 기업 가치 훼손 여부의 판단 근거를 법원의 확정 판결이 아닌 ‘국가기관의 조사 등’으로 규정한 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검찰이나 경찰,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국민연금이 칼을 휘두를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조건희 becom@donga.com·박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