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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에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법당 무량수전이 새로 들어섰다. 지난달 31일 오후 경기 파주시 군내면 JSA 안보견학관 옆에 세워진 무량수전 법당 낙성법회(사진)가 봉행됐다. 이날 법회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군종교구장 정우 스님 등 종단 주요 소임자 스님들과 1군단장 서욱 중장, 1사단장 이종화 소장 등 군부대 관계자 및 JSA 불자 장병 등 600여 명이 참석했다. 무량수전 신축 법당은 법당 82.32m²(24.9평), 종각 9m²(2.72평)의 목조 건축물로 고려시대 수덕사 대웅전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참고한 전통사찰 형식으로 지어졌다. 무량수전 내부에는 아미타 삼존불을 모시고 나라를 위해 전사한 국군장병들과 세계평화를 위해 먼 타국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한 16개국 전사자의 위패가 봉안됐다. 또한 법당 옆에는 조국통일과 세계인류 평화의 발원을 담은 무게 625관(약 2400kg)의 ‘평화의 종’도 조성됐다. 자승 총무원장은 “최근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긴장감이 감도는 판문점에서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은 무량수전의 낙성은 어느 때보다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내년부터 51세 이상 65세까지의 은퇴자도 조계종 스님으로 출가할 수 있게 됐다.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30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중앙종회 임시회를 열어 ‘은퇴출가제도’를 신설하는 ‘은퇴출가에관한특별법 제정안’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찬성 39명, 반대 5명, 기권은 8명이었다. 이 법이 발효되는 내년 1월 1일부터 51세 이상 은퇴자도 조계종을 통해 늦깎이 출가할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 종단법은 출가 연령을 13∼50세로 규정하고 있었다. 은퇴출가제도는 은퇴한 뒤 수행자의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출가의 길을 열어주기 위한 것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15년 이상 활동 경력이 있는 51세에서 65세 사이의 현업 은퇴자가 대상이다. 은퇴 출가자는 1년 이상 행자 생활을 한 후 사미·사미니계를 받을 수 있다. 5년 이상 사미·사미니 생활을 하면 비구·비구니계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견덕·계덕을 넘어서는 법계를 받을 수 없고 선거권과 피선거권도 제한된다. 이날 종회에서는 특별법이 규정한 은퇴자 자격 요건인 ‘15년 이상 활동 경력’ 조항이 모호해 가정주부나 농부, 자영업자 등은 경력을 증명하기 어려워 출가가 힘들고 선거권 및 소임 제한에 대해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국문화관광연구원(원장 김정만)과 한국정책학회(회장 이용모) 등 7개 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문화체육관광 정책 학술대회가 30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다. 이번 학술대회는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문화체육관광 정책의 성찰과 향후 과제의 모색’을 주제로 진행된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비롯해 문화콘텐츠 산업 진흥,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에 대한 대응책, 여가 시간 확보 등 현안이 되고 있는 주요 문화정책에 대한 비판과 성찰, 대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1세션에서 이윤경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미리 배포한 ‘문화체육관광 정책 중장기 어젠다’ 발표문에서 “그동안 문화행정이 정치권력에 의한 ‘문화의 정치화’로 정책의 공공성과 자율성이 침해됐다”며 “공급자 중심의 선별적 지원에서 일상 속 문화에 대한 수요자 중심의 지원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2세션은 박소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의 ‘블랙리스트 이후 예술정책 방향과 지원체계 고찰’, 이병민 건국대 교수의 ‘문화콘텐츠 산업 지원정책의 성찰과 향후 과제’, 정재용 KBS 기자의 ‘스포츠 선진국 도약을 위한 혁신 전략과 정책’ 발제로 구성된다. 3세션에서 한승준(서울여대) 명성준(경상대) 박치성 교수(중앙대)는 미국, 영국, 프랑스의 문화예술 지원정책에 대한 비교를 발제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천주교 미사 중 신자들이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답하던 것이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로 바뀐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017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20∼23일)에서 교황청 사도좌로부터 추인된 새로운 ‘로마 미사 경본’으로 12월 3일 대림절 제1주일부터 미사를 봉헌한다고 27일 밝혔다. ‘로마 미사 경본’ 한국어판은 41년 만에 바뀐다. 주교회의는 미사의 ‘입당’에 이은 ‘인사’에서 신자들이 하던 “또한 사제와 함께”를 라틴어 원문(Et cum spiritu tuo)에 가깝게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로 수정했다고 밝혔다. 성찬의 전례에서 사제가 하던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중 ‘모든 이’는 ‘많은 이’로 수정된다. 또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복된 사도들과” 사이에는 “배필이신 성 요셉과”가 추가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공동대표 현묵, 의정) 소속 수행승 1200명이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 직선제 이행 등 종단의 쇄신을 촉구했다. 조계종은 10월 자승 총무원장의 후임을 뽑는 선거를 앞두고 있다. 조계종 중앙종회는 이달 말 임시회를 열어 총무원장 선출 제도를 논의할 예정이어서 격론이 예상된다. 수좌회는 22일 ‘청정 승가 구현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총무원장은 이제 그만 권세를 내려놓고 직선제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수좌회는 “비구계와 비구니계를 수지한 모든 종도들이 철저한 검증과 공개토론을 통해 직선제로 총무원장을 뽑아야 산적한 적폐를 일소하고 청정 승가를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수좌회는 성명에서 종단 재정의 투명화를 요구하고 출가자 및 재가자 감소에 대한 종단의 책임을 물었다. 현행 총무원장 선출제는 24개 교구 본사에서 선출된 240명의 선거인단과 중앙종회 의원 81명 등 321명의 선거인단이 투표로 선출하는 간선제 방식이다. 조계종은 지난해 ‘종단 혁신과 백년대계를 위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를 열어 대안을 모색해 왔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영화 ‘재심’은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다방에서 허드렛 일을 하던 10대 소년이 택시운전사 살인사건의 억울한 누명을 쓰고 10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뒤 변호사의 도움으로 재심을 하게 되는 내용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10대 소년의 역할을 맡은 강하늘은 엄마(김해숙)와 함께 바닷가의 한적한 마을에 살고 있다. 엄마는 아들 옥바라지를 하며 당뇨를 앓다가 시력까지 잃어버린 상태.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생계를 위해 갯벌에서 바지락을 캔다. 아들은 엄마가 안쓰러워 집에서 갯벌까지 붙잡고 갈 수 있는 밧줄을 설치해준다. 변호사 역할을 맡은 정우는 억울한 피의자의 누명을 벗겨줌으로써 TV방송을 통해 유명해지고, 출세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그는 강하늘이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바닷가 파란 지붕 집을 찾는다. 두 사람은 허름한 창고 벽에 약촌오거리 지도를 그리고, 메모지를 붙여가며 사건을 재구성한다. (모바일 뉴스가 대세인 21세기에도 할리우드 영화도, 국내 영화도 수사 장면에는 신문지 오려붙이는 장면이 꼭 나온다.) 강하늘의 집의 실제 촬영지는 전북 익산이 아니라 충남 보령시 천북면 바닷가에 있다. 서해안 쭈꾸미 낚시배가 출항하는 항구로 유명한 오천항 인근의 한적한 해안이다. 해변의 한 구석, 군부대 밑에 홀로 떨어져 있는 파란 지붕 집이 영화를 촬영하기 딱인 곳이다. 드넓은 갯벌, 불타는 듯 떨어지는 서해안의 낙조가 영화의 비극과 희극의 주요한 배경이 된다. ‘강하늘의 집’은 이 영화를 촬영하는 스태프들이 묵었던 펜션에서 바라볼 때 가장 아름답다. 넓은 바닷가에 붉은 석양이 질 때, 한적한 해변에 외로이 떨어져 있는 파란 지붕 집은 뭔가 모를 사연과 끝없는 스토리를 담고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이다. 스태프들이 묵었던 한옥 펜션 ‘오학정’은 해송이 무성한 언덕 위에 지어진 2층 한옥이다. 충남 보령 지역에서도 가장 큰 한옥으로 손꼽히는 집이다. 주인장인 정영희 씨(72)가 10년 넘게 짓고 있는 집이기도 하다. 그는 소나무를 직접 구해 바닷가에서 말리고, 둥그렇게 대패질로 깎고, 2중으로 서까래를 올려 평생의 노력이 담긴 한옥을 지어냈다. 원래 자신이 살려고 지은 집인데 늙은 부부만 살기 뭐해서 2층을 펜션으로 내놓았다. 방 안에는 주인장의 세심한 손길이 예술작품처럼 느껴질 정도다. 중국 영화에 나올 법한 아치형 나무 침대하며, 거대한 나무뿌리를 직접 캐서 사포로 곱게 밀어 만든 식탁의 다리, 대나무로 만든 옷걸이, 손수 만든 틀에 창호지를 바른 전등 갓까지 집 안 곳곳에 주인장의 손길이 안 거친 곳이 없다. 특히 황토 벽에 기대에 앉을 손님들이 등에 뭐가 묻을까 편히 쉬지 못할 것을 염려해, 사람이 앉은 등이 닿는 곳에는 소나무를 벽에 붙여놓은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띈다. 또한 1층에는 지붕을 대나무로 꾸며 마이크를 써도 천연방음벽이 되도록 했다. 노부부는 김장철에는 서해의 바닷물에 절인 배추를 담그기도 한다. 깔끔하고 시원한 절인 배추의 맛은 입소문이 자자하다. 오학정에서 가장 좋은 추억은 한적한 바닷가에서 조개를 잡고, 갯바위 위에서 낚시를 하는 것이다. 석양에 해질 무렵에 낚시를 하고, 조개를 잡다보면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듯하다. 한옥펜션 오학정(충남 보령시 천북면 오얘미길 91-28, 017-431-0203)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국내 개신교계의 대표적인 대형 교회로 꼽히는 명성교회를 둘러싼 세습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개신교계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에 있는 명성교회는 19일 저녁예배 후 공동의회를 열고, 경기 하남시에 위치한 새노래명성교회와 합병하기로 최종 결의했다. 8104명의 교인이 참석한 공동의회는 교회합병과 김하나 목사(44)에 대한 위임목사 청빙안을 통과시켰다. 김하나 목사는 명성교회 원로목사인 김삼환 목사(72)의 장남이다. 합병건은 72.1%, 김하나 목사의 명성교회 위임목사 청빙건은 74.07%의 지지를 얻어 결의됐다. 이로써 명성교회는 합병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마무리했고, 이후 소속 교단인 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교단의 총회를 거치게 된다. 등록교인 수가 10만 명이 넘는 명성교회는 개신교 장로교단에서 아주 큰 교회 중 하나다. 교회를 개척한 김삼환 목사가 2015년 12월 은퇴한 후 담임목사가 공석이어서 청빙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교계 일각에서는 이번 교회 합병과 청빙 과정을 ‘변칙 세습’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명성교회가 소속된 예장 통합 총회는 2013년 제98회 총회에서 세습금지를 골자로 법을 개정한 바 있다. 교계 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20일 성명에서 “명성교회는 새로운 후임 목사 청빙절차를 다시 시작하라”고 주장했다. 한편 김하나 목사는 19일 예배 광고시간에 “합병은 양쪽에서 합의를 해서 하는 것인데 저희 교회는 그런 면에서 전혀 준비되지 않았고 공동의회도 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실제 그가 세습을 거부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일본판 알파고’로 불리는 딥젠고와 한중일 바둑 고수들의 대진이 결정됐다. 한국기원에 따르면 20일 일본에서 열린 ‘월드바둑챔피언십’ 추첨에서 한국 대표인 박정환 9단(사진)은 22일 오전 10시 반 딥젠고와 대국을 벌인다. 이번 대회는 21∼23일 같은 시간에 두 대국씩 열린다. 대진은 21일 딥젠고와 중국 랭킹 2위인 미위팅 9단, 박 9단과 일본 6관왕인 이야마 유타 9단, 22일 박 9단과 딥젠고, 미위팅 9단과 이야마 유타 9단, 마지막 날 딥젠고와 이야마 유타 9단, 박 9단과 미위팅 9단으로 짜였다. 박 9단은 딥젠고와 2월 인터넷에서 비공개로 맞서 승리한 바 있다. 이번 대국은 제한시간 각자 3시간, 초읽기 1분 5회씩으로 정해졌다. 우승 상금은 3000만 엔(약 3억 원)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원두 60알은 내게 60가지 영감을 준다.”(루트비히 판 베토벤) 지난주 휴가를 얻어 찾았던 제주 서귀포 해변엔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사라져 무척 한적했다. 유채꽃이 활짝 핀 외돌개 해안 근처의 전망 좋은 카페가 눈에 띄었다. 카페 이름은 ‘60beans’. 커피를 사랑했던 음악가 베토벤에게서 연유한 이름이었다. 베토벤은 가장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뽑을 수 있다는 원두 60알을 세어가며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늘 완벽한 음악세계를 추구했던 베토벤은 커피 맛에서도 완벽함을 추구했던 것이다. 카페에서 제주 여행길에 가져간 박종례 작가의 ‘드림노트’를 펼쳐 들었다. 책을 읽는 대신 유서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기는 글을 내가 직접 쓰게 하는 책이다. 제주 앞바다를 보니 책의 첫 구절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땅의 끝에서 ‘세상의 끝’이라고 말하지 마라. 그 다음에는 더 광활한 바다가 시작된다. 내가 세상에 없음을 ‘삶의 끝’이라고 말하지 마라. 그 다음에는 ‘나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사랑하는 그들이 있다. 끝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국내 바둑 랭킹 1위 박정환 9단(24·사진)이 ‘일본판 알파고’로 불리는 딥젠고와 대결한다. 박 9단은 21∼23일 일본 오사카 관서기원 총본부에서 열리는 ‘월드바둑챔피언십’에 출전한다. 이 대회에는 박 9단을 비롯해 일본 6관왕 이야마 유타 9단, 중국 랭킹 2위 미위팅 9단, 딥젠고가 풀 리그를 펼쳐 챔피언을 가린다. 세계바둑대회에 인공지능이 출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1년 만에 열리는 인공지능과 인간 최강자 그룹의 대국이다. 딥젠고는 지난해 11월 조치훈 9단과의 3번기에서 1승 2패를 기록했고 국내 인터넷 대국 사이트에서 공개 실전을 통해 1316승 306패(승률 81.1%)를 거뒀다. 프로 기사들과는 615승 240패(71.9%), 아마추어 최강 그룹과는 701승 66패(91.4%)의 성적이었다. 박 9단은 딥젠고와 2월 인터넷에서 비공개로 맞서 승리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자료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게 한국기원의 전망이다. 알파고도 2015년 10월 판후이 대국에 이어 4개월 뒤 이 9단을 상대했을 때 완전히 다른 실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진은 20일 전야제에서 결정되고, 제한시간은 각자 3시간, 초읽기는 1분 5회씩이다. 우승 상금은 3000만 엔(약 3억 원)이고, 바둑TV에서는 전 경기를 생방송할 예정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그야말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시대. 한국의 정치 리더십 부재를 틈타 북한은 물론 중국, 미국, 일본 등 주변국 간의 외교전쟁이 치열하다. 이달 9일 서울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연구실에서 만난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63)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향후 30년 가까이 지속될 새로운 국제정치 질서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이라고 진단했다. 현 교수는 이명박(MB) 정부 때 2년 8개월간 통일부 장관을 맡았고, 이후에는 대통령통일정책특별보좌관으로 일했다. 장관 재직 시절인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하자 대북제재안을 밝힌 ‘5·24조치’를 입안했고,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막판까지 준비하기도 했다. 퇴임 후 고려대 정외과 교수로 복귀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북한의 동향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가. “지난 10여 년 동안 3∼5월에는 북한이 항상 도발을 해 왔다. 한미 연합훈련도 있고 북한의 각종 기념일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행정부가 바뀌거나 한국의 대선이 있는 해엔 더 심했다. 이번에도 대선을 앞두고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동시에 할 개연성이 높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시위, 한국의 대선 구도를 교란시키기 위한 다목적 노림수가 될 것이다.”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대처 움직임에도 더 도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북한은 강하게 나가야 산다고 생각한다. 민주국가인 한국이나 미국은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뀐다. 강경하게 해야 그 와중에 틈도 생기고, 내부 노선 갈등도 생길 것이라 기대한다. 김정은 정권은 북한 주민에게 내세울 정통성은 ‘위대한 핵국가’ 건설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드문제는 30년 장기전의 시작 현 교수는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 “사드는 북핵 방어용 ‘미사일 1개 포대’를 배치하는 문제일 뿐”이라며 “중국이 이를 확대, 왜곡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사드가 자국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인가. “사드 레이더의 탐지 거리는 800∼900km에 불과해 중국 본토를 위협할 수 없다. 우리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언제든 사드 배치도 철수할 것이며, 중국이 우려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도 들어가지 않을 방침이라고 여러 차례 밝혀 왔다. 그러나 우리는 사드가 중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하는 이유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중국으로부터 한번도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중국이 한국을 강하게 압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은 사드 문제를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생각하고 있다. 현재 국제질서는 탈냉전 이후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키는 시기다. 미국과 중국의 격돌 과정에서 남중국해에서 중국-필리핀, 베트남 등 주변 국가 간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고, 동중국해에서 중일 간 센카쿠 열도 영유권 다툼이 벌어졌다. 중국은 한반도 사드 문제에도 미국이 배후에 있다고 본다. 중국은 제국주의적 패권외교의 차원에서 한국에 대해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현재 국제질서가 탈냉전 이후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키는 시기라고 한 이유는…. “미소 간의 양극체제가 무너지면서 지난 25년간 미국 단일체제가 이어져 왔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최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반면 지난 10여 년 동안 두 자릿수 경제성장을 해온 중국이 미국에 도전함으로써 국제정치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 싸움은 1, 2년 안에 안 끝난다. 최소 30년 이상 갈 것이다.” 트럼프 ‘햄버거 담판’보다는 ‘압박’ ―사드 배치가 미중 간의 문제라면, 중국은 왜 미국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못 하는가. “중국은 한국을 힘으로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2000년 ‘마늘파동’ 때 보여준 것이 아닌가. 17년 전처럼 압박하면 한국이 물러날 것이고, 그러면 한미 간에 균열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다. 반면 미국은 아직까진 버거운 상대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다. 벌써 미국이 북한과 거래해 온 중국 기업에 대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시작하지 않았는가. 중국이 미국의 국채를 많이 갖고 있긴 하지만, 대미 경제의존도도 엄청나다. 미국은 중국을 제재할 수단이 훨씬 많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는가. “한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은 단기적으론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대외 이미지에 엄청난 손실을 줄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자유무역’ 수호자로 자처했는데, 이런 식이면 중국이 말과 행동이 정반대인 국가라는 이미지만 굳힐 뿐이다.” ―2010년 중국이 일본과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을 할 때 희토류 수출 금지, 관광 금지, 불매운동까지 벌였는데…. “당시 일본과 중국은 양국이 정말 한발도 물러설 수 없는 ‘영토 문제’를 놓고 맞부딪친 것이다. 그러나 사드 배치는 한국에는 치명적인 안보의 문제지만, 중국에는 사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중국과 일대일로 맞대응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일본은 일치된 국론 속에 단호한 대처로 1년 여 만에 이겨냈다.” ―한국의 일부 야당 정치인들이 중국에 가서 사드 배치를 다음 정권에서 철회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는데…. “사드 배치는 한국의 안보 문제일 뿐 아니라 한중 간, 한미 간, 미중 간의 글로벌 국제정치의 변화에서 살아남는 문제다. 앞으로 사드보다 더 큰 일이 계속될 것이다.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 사드조차도 우리 국가 안보의 필요에 따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향후 더 큰 문제는 손도 못 댈 것이다. 정치인들이 국내 정치의 유불리라는 ‘우물 안 개구리식’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 교수는 15일 시작되는 미국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한중일 3개국 방문이 미국의 한반도 정책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방문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전형적인 정치인 출신이 아니라 때로는 매우 저돌적이고, 때로는 순간적인 판단을 통한 정책을 펼 가능성이 있다”고 예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으로 보는가. ‘햄버거 담판’부터 ‘선제타격’론까지 다양한 예측이 나오는데…. “햄버거 담판은 물 건너갔다고 본다. 담판은 합리적인 딜을 할 수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기본적인 전제가 돼 있어야 한다. 지금 김정은은 그런 상대로 비치지 않고 있다. 선제타격도 ‘콜레터럴 대미지’(군사작전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민간인의 희생) 여파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선제타격이 아니더라도 무력시위 등 여러 가지 군사적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그것 자체도 북한에는 굉장히 심리적 압박을 줄 것이다.” ―지난 8년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었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당시 우리 정부와도 깊은 대화를 통해 만들어낸 정책이다. 당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부 장관이 ‘우리는 같은 말(horse)을 두 번 사지 않는다’고 한 말에 ‘인내’의 뜻이 숨어 있다. 대화가 안 되더라도 인내하고, 압박하면서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오바마의 대북정책이 북한 핵 개발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는데….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돼 온 북핵 문제가 100% 해결되지 못했다고 해서 오바마 행정부 탓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오바마는 미국의 금융위기, 재정위기 등 최악의 경제 상황을 물려받았고, 이라크전쟁 등 중동에 깊숙이 개입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서도 빠져나오는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지난 8년간 오바마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최우선 순위로 전력투구하지 못했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트럼프는 중동보다 대북정책을 우선시할 것으로 보는가. “지금의 중동 상황은 부시-오바마 행정부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이슬람국가(IS)도 상당히 약화됐고, 이란 핵협상도 파기되지 않은 상태다. 미국이 중동 문제에서 여력이 생긴 만큼,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압박과 중국에 대해 보다 공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돈으로 사는 ‘정치쇼’ 정상회담 포기 ―김정은 정권이 현 시점에서 김정남을 제거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정은은 집권 후 리용호 총참모장, 고모부 장성택,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김원홍 국가보위상 등 주요 정적들을 모두 제거했다. 이제 밖에 있던 ‘목의 가시’를 제거한 것이다. 김정남이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미래의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미래의 불안정성도 남겼다. 지금은 북한 주민들이 김정남 살해에 대해 모르지만 언젠가는 알려지게 된다. 김정은이 백두혈통의 장자인 이복형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실이 알려지면 정통성에 흠집이 생길 것이다.” 현 교수는 “이명박 정권 초기 남북정상회담이 거의 성사 단계까지 갔다가 무산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김정일 정권에서 정상회담을 먼저 원했다”며 “막판에 한두 가지만 해결하면 성사될 수 있는 중요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결국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당시 김정일 정권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정상회담을 여는 대가로 쌀, 비료, 현금, 아스팔트 피치 등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회담 결과 북핵 문제 해결에 어느 정도 진전이 이뤄지는 조건이라면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회담을 여는 것만으로 대가를 지불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겉으로만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듯 보이고,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적 쇼’는 수없이 경험한 것 아닌가. 왜곡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선 이런 관행은 안 된다는 원칙을 지켰다.” 현인택은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대학원 박사(국제정치학)△ 고려대 정외과 교수(1995년∼)△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제35대 통일부 장관(2009∼2011년)△ 대통령통일정책특별보좌관△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원장(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인공지능(AI)의 시대에는 내 마음을 자각하고, 타인과 만물과 공유하고, 연결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불교의 선수행과 명상이 현대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치유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미국의 선(禪) 스승으로 꼽히는 노먼 피셔(71) ‘에브리데이 젠’ 공동체 설립자는 8일 오전 서울 조계사 앞 템플스테이정보센터에서 방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선 수행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우리가 미래 기술에 대해 생각할 때 인간에 대한 성찰이 빠져 있다”며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가치를 강화하는 긍정적인 방향에 부합한다면 잘 습득하고, 역행한다면 저항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일보한 컴퓨터에서는 우리 의식의 모든 것을 내려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몸이 다했을 때는 의식을 로봇에 이식하고, 또 다른 몸을 받아서 살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삶이 가능하다면 죽음이란 것도 없고, 인간도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돌아갈 길이 필요합니다. 그 길은 침묵과 사랑입니다.” 피셔는 1995∼2000년 미국 불교의 발원지로 꼽히는 샌프란시스코 선 센터의 주지를 지냈으며 2000년에는 ‘에브리데이 선’ 공동체를 설립해 선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특히 그는 비즈니스, 법률, 테크놀로지, 호스피스 프로젝트 등 현대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선불교를 적용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 왔다. “선을 수행할 때 내 안에 있는 삶의 에너지, 생명의 힘에 대한 자각 능력이 커집니다. 다른 사람, 만물과도 이해하고 공유하고 연결시키는 능력이 커집니다. 구글에서는 창의적인 발견은 늘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팀 활동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피셔는 선 수행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청년 시절 히피 문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며 “부모님 세대의 문화를 더 이상 따를 수 없고 우리 스스로가 뭔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선 수행에서 자연스럽게 답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 선불교를 수행해 온 사람으로서 아시아 국가에 올 때마다 ‘내가 집에 왔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피셔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대한 질문에 “사람이 먼저”라고 대답했다. 그는 “인간만이 우선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식물도, 공기와 물도, 산도 모두 퍼스트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갈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비슷한 일을 겪고 있고, 일각에서는 대통령 탄핵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사회적 혼란이 있을 때 사람들은 부정적 감정이 격화된다. 격렬한 감정이 서로에게 반응하고 확대 재생산된다. 이럴 때일수록 침묵 속에 분별심(Sanity)을 찾고 차분한 정신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피셔는 8∼21일 서울과 부산, 전남 해남에서 총 6차례 강연과 법회, 수행 등에 참석할 예정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불교는 ‘뺄셈의 종교’입니다. 사찰 음식에서도 육류나 생선, 제철음식이 아닌 귀한 것, 자극적인 조미료 등을 뺍니다. 음식에서부터 욕심을 내려놓는 수행을 하는 것이죠.”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불광출판)를 펴낸 사찰음식 전문가 선재 스님과 일본의 사찰음식인 ‘쇼진(精進)요리’의 대가인 후지이 마리(藤井まり·70) 씨가 지난주 한일 사찰요리 비교 시연회를 가졌다. 선재 스님은 강연을 시작하며 2014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슬로푸드대회에서 한 일본인 참가자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폭이 터졌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전통적인 장을 먹었던 사람들이라고 들었다”며 “선재 스님께서 일본을 좀 도와달라”고 했던 말을 소개했다. “현대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미소 된장은 유전자 조작 콩에 발효 과정 없이 만들어지는 것이라 천연 항암 효과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지금 전통 장독대를 지키는 사람들이 한국의 스님들이라는 말을 듣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지요.” 일본 가마쿠라에서 ‘쇼진요리’ 교실인 선미회(禪味會)를 이끌고 있는 후지이 씨는 남편인 고(故) 후지이 소테쓰 스님의 뒤를 이어 일본 사찰요리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인물. 그는 “2000년대 초반 한국에 와서 선재 스님이 담근 한국 사찰의 수십 년 된 장맛을 본 이후로 사찰요리를 배우기 위해 한국을 자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선재 스님은 “한국의 사찰요리가 일본으로 본격적으로 건너가게 된 계기는 임진왜란”이라며 “서산대사, 사명대사가 이끌던 승병들의 활약을 보고 일본인들이 육식을 하지 않는 한국의 스님들이 어떻게 그런 기운과 지혜가 나는지 사찰에서 먹는 약초와 채소, 장을 배워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말했다. 선재 스님은 “한국 사찰음식에 대한 연구는 일본에서 더 활발하다”며 “한국의 산초와 제피의 임상실험 결과 항암 효과가 탁월하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충북 제천의 산초, 경북 포항, 울산의 제피는 일본에서 전량 수입해 간다”고 말했다. “산초와 제피를 음식에 넣으면 살균 작용도 하고, 면역력도 키워주고, 중풍 예방에도 좋습니다. 그래서 추어탕에 넣어서 먹는 거죠.” 선재 스님은 사찰음식의 기본 원리를 불교 경전인 ‘유마경’에 나온 “일체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라는 말에서 찾았다. “TV 드라마에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말이 나온 적이 있죠? 자연 속 모든 생명과 내가 한 몸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스님들은 육식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채소도 함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불가에서는 콩나물도 뿌리까지, 배추도 꽁지까지 함부로 버리지 않고 일물전체(一物全體)를 다 먹습니다. 제철음식이 아닐 경우 인공적인 방법이나 첨가물로 키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청정한 생명이 아니라 피합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자전거를 타고 넘는 거친 숨소리. 지난달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사진)이었다. 희귀암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20대 청년 윤혁이 ‘투르 드 프랑스’ 3500km 풀코스를 완주한 실화를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죽음을 앞둔 청년의 도전도 대단했지만, 더 눈길을 끈 것은 그 꿈을 돕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었다. 함께 자전거를 달려준 휴학생, 자전거 수리점을 하는 선배, 두 달간 휴가를 낸 의사, 저예산 영화감독…. 영화는 아름다운 장면만 나오지 않는다. 좋은 뜻으로 생업까지 포기하고 도와주러 나섰던 팀 동료들끼리 싸우고 상처 입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엔딩 장면에서 윤혁은 병상에서 죽음을 앞두고 영화 편집본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내겐 암세포가 꿈을 실현할 기회였다”며 도와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과연 평생 한 번이라도 다른 이의 간절한 꿈을 이루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영화가 끝난 후 떠오른 고민이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5세 소녀의 도움이 저를 어둠 속에서 구해줬습니다. 신(神)은 제게 밥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우간다 출신의 리치먼드 완데라 목사(35)는 지난주 한국을 방문해 국제어린이양육기구 한국컴패션의 후원자들에게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컴패션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성장해 자립한 것을 기념하는 ‘아주 특별한 졸업식’에 우간다, 페루, 필리핀에서 온 청년들과 함께 참여해 감동스러운 연설을 했다. 완데라 목사는 “우간다는 내전과 유혈 사태로 수많은 아이가 아버지를 잃는 바람에 전 국민의 70%가 30세 미만으로 평균 연령이 낮다”고 소개했다. 그도 8세 때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홀어머니와 6명의 형제와 함께 우간다의 나구루 빈민가에서 굶주림과 질병에 허덕이던 그에게 15세 소녀가 일대일 결연으로 보내준 후원은 한 줄기 빛이었다. 컴패션은 6·25전쟁 이후 쓰레기처럼 나뒹구는 전쟁고아들의 시신을 목격한 미국인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창립한 단체. 긴급구호가 아니라 후원자와 일대일로 결연해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장기적인 양육지원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은 2003년 수혜국이 아닌 지원국으로 변신했다. 그는 “후원자 덕분에 컴패션 어린이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학용품도 지원받았고 미국 컴패션 리더십 프로그램을 통해 신학교육을 받아 목사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우간다 수도 캄팔라 컴패션 어린이센터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어린이들을 양육하고, 개발도상국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과 설교 활동을 하고 있다. 완데라 목사는 “매년 전 세계에서 2만5000명의 어린이가 예방 가능한 원인들로 죽어가고 있다”며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을 대신해 한국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017년의 시작은 대혼란이다. 탄핵과 조기 대선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한중일 간 외교 갈등에도 속수무책이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이어령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83)은 10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연구실에서 기자와 만나 “2016∼2017년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문명사적으로도 대전환기”라고 진단했다. 국경 없는 글로벌 사회로 나아가던 지구촌 문명에 갑자기 곳곳에서 높은 벽이 등장하는 퇴행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던 이 이사장은 2006년 ‘디지로그’를 통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통합을 역설했고, 2008년 리먼 사태 당시에는 금융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생명자본주의’ 운동을 제안했다. 수년 전 건강 문제로 외부 활동을 끊은 채 ‘한국인 이야기’ 집필에 몰두해 왔던 그는 지난해 3월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 이후 은퇴를 번복했다. 그는 최근 인공지능(AI)이 불러올 미래 문명에 대한 연구와 강연 등 다시 활발한 활동에 나섰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은 1차, 2차, 3차처럼 순차적으로 오는 물결이나 파도가 아니다”라며 “순식간에 튀어나와 모든 것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쓰나미 같은 혁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문학과 첨단 기술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으로 전 세계가 처한 위기와 한국이 나아갈 길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을 2시간 넘게 쏟아냈다. 올해의 화두는 ‘벽을 넘어서’ ―현재 우리 앞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올해의 키워드가 뭐라고 생각하시는가. “내가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전 세계에 보냈던 메시지인 ‘벽을 넘어서’가 올해 다시 화두다. 당시에는 동서 냉전과 남북 분단의 장벽을 비롯해 빈부, 세대, 남녀 간 젠더의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후 수십 년간 실제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유럽이 통합하고, 글로벌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갑자기 지난해부터 높고 두꺼운 벽들이 다시 출현했다.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월(Wall)’이 대표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대륙과 해양 세력 간의 갈등이 재연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아베 신조 등 포퓰리즘을 등에 업은 강력한 내셔널리즘이 대두하고 있고, 중국도 사드 배치를 이유로 한류에 대해 다시 만리장성을 쌓고 있다.” 이 이사장은 우리 사회 내부에도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광화문에 촛불과 태극기 시위로 둘로 나뉜 높은 장벽이 생기고 있다”며 “올해 보혁(保革) 간 ‘방휼지쟁(蚌鷸之爭)’의 벽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라고 말했다. ‘방휼지쟁’은 조개와 도요새가 다투다가 함께 어부에게 잡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 제3자만 이롭게 하는 싸움을 뜻한다. 그는 “우리에겐 함께 풀지 않으면 민족 생존이 불가능한 더 큰 분단의 벽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온 세상에 새로운 벽이 쌓여 가는 시대, 벽을 넘기 위한 방법은 뭔가. “만리장성과 로마 가도(街道)를 만드는 공법은 똑같다. 만리장성을 옆으로 눕히면 평탄한 로마 가도가 되고, 로마 가도도 세우면 높은 장벽이 된다. 절벽에 부딪힌 인류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은 AI와 4차 산업혁명이다. 산업화가 육체의 확산이었다면, AI는 뇌의 확산이다. 지난해 알파고가 왜 한국에서 바둑을 두었을까. 바둑의 종주국인 중국과, 바둑을 전 세계에 전파한 일본을 제치고 말이다. 알파고가 보여 준 것은 바둑 대결이 아니다. 미래 문명에 대한 선언이었다. 대륙과 해양 세력의 문명이 교차해 온 한반도에서, 그것도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이 사건이 열린 것은 의미심장하다.” ―알파고가 인간 최고의 바둑 고수를 꺾은 것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AI에 대한 공포심도 컸는데…. “나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에서 거꾸로 인간의 뇌에서 희망을 봤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는 데 소비한 전력은 25만 kW였던 반면, 이세돌의 뇌가 소비한 에너지는 겨우 20W에 불과했다. 앞으로의 관건은 어떻게 인간의 뇌처럼 적은 에너지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AI를 만드는가 하는 싸움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모든 물건이 AI 컴퓨터와 연결된다는 사물인터넷(IoT)에 대한 구상도 엉터리가 된다.” 이 이사장은 “전 세계 모든 사물이 인터넷을 통해 AI와 연결돼 범용인공지능(AGI)이 생겨났을 때 엄청난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난다고 한다”며 “인간의 뇌 수준의 에너지 효율성을 갖춘 AI 컴퓨터를 개발하면 원자력발전소 100만 기를 대체하는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알파고 25만 kW 대 이세돌 20W ―알파고 이후 세계 각국의 인공지능 경쟁은…. “한국에서는 지난해 3월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 이후 ‘AI 위협설’로 호들갑을 떨다가 금세 관심이 시들해졌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는 포스트 알파고 1년 만에 엄청난 대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알파고가 화상 인식, 음성 인식, 문자 인식을 통해 스스로 바둑을 배운 ‘딥러닝’(심화학습) 기술은 바둑뿐 아니라 의료 기기, 복지, 법률, 안전, 엔터테인먼트 등 전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딥러닝’을 개발한 캐나다 3인방 중의 한 명인 세계적인 AI 권위자 앤드루 응은 현재 중국 바이두로 자리를 옮겼다. 중국은 최근 ‘AI 굴기(굴起)’를 공식 선언했다.” ―미국 정부가 AI의 대두로 47%의 직업이 사라지고 빈부 격차는 더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AI 위협설은 영국 옥스퍼드대의 마이클 오즈번 교수의 연구 결과를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오즈번 교수는 사라지는 직업 이상으로 새로운 직업이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가 실용화되면 80대 할머니도 양로원을 나와 근육질의 젊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던 대형트럭을 운전하는 직업을 갖게 될 수도 있다.” ―한국의 AI에 대한 준비는…. “우리는 1990년대에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기술(IT)은 앞서가자’는 슬로건을 내세워 눈부신 약진을 했다. 그런데 현재 AI 분야에서는 세계 10위권에도 못 든다.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한테도 뒤지고 있다. 구한말 산업화에 늦어서 패권주의 국가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역사를 되풀이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앞에선 진보, 보수가 따로 없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는데 1등칸, 3등칸 손님이 따로 있나. 카지노에서 돈을 땄든, 잃었든 무슨 차이가 있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트럼프의 이민 제한 정책 이후 딥러닝을 개발한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소에는 수많은 AI 전문가가 모여들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아닌 캐나다 변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면 우리도 사람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인도 태생인 구글의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가 방한해서 젊은이들에게 ‘실패하라’는 말을 했다. 악담 같은 말이 약이 된다. 늙은이는 쓰러진 자리가 무덤이 되지만, 젊은이들에게는 넘어진 자리가 바로 성공의 출발점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오늘은 어둡다. 내일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는 젊은이들에겐 모레, 글피가 반드시 있다.” 이 이사장은 인터뷰 동안 현실 정치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내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살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문체부 초심으로 돌아가야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최순실 국정 농단, 블랙리스트 논란 등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서 현 사태를 바라보는 소회는…. “문체부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다. 내가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취임했을 때 세 가지 이야기를 했다. 첫째, 문화의 불을 지필 수 있는 ‘아궁이의 부지깽이’가 되라는 거였다. 둘째는 누구나 목을 축일 수 있도록 ‘우물가의 두레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의 인프라 구축에 관한 이야기다. 마지막은 ‘바위의 이끼’ 역할이다. 메마르고 단단한 바위 같은 사회를 부수려 하기보다는 생명의 이끼로 덮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라이더는 혼자 날 수 없다. 처음엔 견인차가 끌어 주다가 날게 되면 줄을 풀어 줘야 한다. 아니면 다시 떨어진다. 문화에 불을 붙여, 물을 축이게 하고, 생명의 이끼로 덮어 스스로 날 수 있게 됐는데도 정부가 계속 줄을 잡고 끌고 다니면 문화는 생명을 잃는다.” ―88 서울 올림픽 때 ‘굴렁쇠 소년’의 아이디어로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줬다. 평창 겨울올림픽이 전달했으면 하는 메시지는…. “강원도와 평창이 어떤 곳인지는 꼭 알려주었으면 한다.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했을 때 임금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이곳은 산간 지역이라 낮은 짧고, 밤은 길고, 여름은 짧고, 겨울은 길다. 어떤 곡식도 자라지 않아 가난하니 부디 세금을 면해 달라’는 내용이다. 그렇게 열악한 자연환경이 현대에는 겨울 스포츠의 천혜 조건이 된 것이다. 평창처럼 가난했던 지역이 올림픽 개최지로 변신한 역사를 알려 전 세계 비슷한 처지의 지역에 희망을 던져 줬으면 한다.” 이 이사장은 “평창 올림픽 준비가 늦어져 여러 가지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며 “그러나 한국인은 원래 닥쳐야 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잘한다. 정치적인 문제를 잘 극복하고 단합한다면 틀림없이 잘 치러 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평생의 친구이던 민음사 박맹호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소회는…. “박 회장을 문상하면서 어리석은 자는 사후에 ‘돈’을 남기지만 슬기로운 자는 ‘사람’을 남긴다는 말을 생각했다. 박 회장은 출판을 통해 저자와 독자들 같은 많은 사람을 남겼다. 또한 그보다 더 귀한 ‘일’을 남기고 갔다. 책을 쓰고 읽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 가는 바로 그 일 말이다. 신기술의 개발은 과학자의 몫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회에 적용하고 실행할 것인가는 인문학자의 역할이다.” 이어령은△서울대 국문학과△이화여대 교수△문학사상사 주간△1990∼91년 초대 문화부 장관△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총괄기획△2002년 한일월드컵조직위원회 공동의장△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저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생명이 자본이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기본선원 조실 설악무산(오현) 스님은 10일 발표한 동안거 해제법어를 통해 정치인들에게 “먼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며 “자기 허물을 먼저 볼 줄 아는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사람이 이번에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악무산 스님은 “우리는 매일같이 각종 매체에 크고 작은 사건들이 보도되고 있는 것을 보는데 그것이 다 살아 있는 무진법문(無盡法門)”이라며 “고위공직자, 대통령, 국회의원, 대기업회장 그리고 온갖 잡범들을 형무소에 보내는 것은 검사 판사가 아니다. 그들 행위의 그림자가 붙들어 쇠고랑을 채우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고 지적했다. 설악무산 스님은 조기대선이 예상되는 현실에 대해 “대통령이 되겠다고 떠들어대는 정치인들의 추태가 점입가경”이라며 “자기의 허물은 감추고 남의 허물은 들춰내는 것이 마치 선거 때마다 남발하는 공약 같다고 한다. 자고나면 남을 헐뜯으며 깎아내리는 종잡을 수 없는 유언비어가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스님은 “중생들은 남의 삶, 남의 죽음, 남의 허물을 다 보면서 정작 자기의 삶, 자기의 죽음, 자기의 허물은 못본다”며 “그래서 국민적 존경을 받던 인물도 청문회에 나가면 생매장을 당하는 꼴을 우리는 많이 봐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기 허물을 보았더라면 아무리 높은 자리를 줘도 무서워서 사양했을 것인데, 자기 허물을 못 보는 이유는 다 삼독(三毒)의 불길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설악무산 스님은 “삼독의 불길을 잡은 사람은 자기 허물을 보는 사람이고, 자기 허물을 보는 사람은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사람이고, 이번에 공명정대한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설악무산 스님은 “사실상 지금 세계는 삼독의 불바다”라며 “모름지기 수행승은 삼독의 불길을 잡는 소방관이 되어야 그림자가 부끄럽지 않다. 우리 모두는 그림자가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며 수행승들을 독려하며 해제법어를 마쳤다. 설악무산 스님은 1959년 출가해 직지사에서 성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으며 1968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계림사, 해운사, 봉정사, 신흥사 주지 및 제8·11대 중앙종회 의원을 역임, 지난 4월 조계종 최고 품계인 ‘대종사(大宗師)’ 법계(法階)를 받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울 청계천은 포세권이다. 세종로 사거리에 포켓스톱도 많고, 청계천변에서는 포켓몬들이 잘 잡힌다. 청계천에는 물가에서 잉어가 튀어나오고 올챙이, 참새, 벌레 등 갖가지 몬스터들이 득시글댄다. 요즘엔 헬스클럽을 가는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걸어서 퇴근하기도 한다. 청계천에서 세운상가, 장충단공원까지 걸으며 평생 한 번도 안 가봤던 도심의 골목길과 유적지, 조각품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추운 겨울인데도 청계천을 걷게 된 계기는 초등학생 아들 때문이었다. 포켓몬 체육관에서 힘센 몬스터들에게 늘 짓밟혀 슬퍼했던 아들은, 퇴근길에 아빠가 멋진 몬스터를 많이 잡아오면 환호성을 질러댔다. 내 어린 시절엔 아버지가 사오시던 호떡을 기다렸는데…. 돈 벌어다 주기에도 바쁜 아빠는 이제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어느 날 밤 청계천에서 포켓몬을 잡기에 여념이 없던 내 앞에 갑자기 길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순간 저 고양이가 처음보는 '희귀 몬스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들이댔다. 본능적으로 몬스터볼을 던져 고양이를 잡으려하는 내 자신을 보며 입맛이 쩍 다셔졌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에 대처하기에는 한 종교의 목소리만으론 부족합니다. 여러 종교가 함께 목소리를 내면 더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로마교황청 종립대학인 안젤리쿰대학의 신학대학장인 스테판 주릭 신부(67)는 6일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에서 자승 총무원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가톨릭과 불교 간 교류 방안을 논의했다. 주릭 신부를 비롯해 안젤리쿰대학 석좌교수인 미켈 푸스 신부(69)와 이재숙 교수(63)는 7일 조계종 종립대학인 동국대와 학술교류 업무협약(MOU)을 맺을 예정이다. 자승 총무원장은 “오랜 노력 끝에 111년 역사의 동국대와 795년 역사의 안젤리쿰대학이 역사적인 자매결연을 하게 됐다”며 “앞으로 종교 간에 많은 이해를 하고 교류의 폭을 넓혀갔으면 한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푸스 신부는 “종교 간에 생기는 오해는 무지에서 기인한다”며 “종교 비교연구에 관심을 두게 됐고 연구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종교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고 강조했다. 안젤리쿰대학은 1222년 도미니칸회 신부들이 건립한 교황청 종립대학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도미니크 피르 신부 등 가톨릭 지도자들을 배출해온 명문이다. 안젤리쿰대학 측 신부와 교수진은 8, 9일 동국대 경주캠퍼스와 해인사, 불국사, 석굴암 등을 방문해 템플스테이 등을 체험할 예정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사진)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제22대 대표회장에 재선출됐다. 이 목사는 2015년과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세 번째 한기총 대표회장직을 수행하게 됐다. 한기총은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정기총회를 열어 단독 출마한 이 목사를 기립박수로 추대했다. 한기총 선거관리위원회 규정 제8조 단일후보일 때는 박수로 추대할 수 있다는 규정에 근거했다. 이번 한기총 선거에는 김노아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성서총회)가 입후보했으나, 한기총 선관위는 ‘원로목사 및 은퇴 목사는 피선거권이 없다’는 규정에 따라 김 목사를 후보에서 제외했다. 이 목사는 “소수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며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연합과 개혁을 위해 전심전력하고, 기독교가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일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한 이 목사는 미국 템플대에서 종교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세대 교수와 미국 워싱턴순복음제일교회·로스앤젤레스 나성순복음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와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여의도 총회장을 맡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