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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소리 박정욱 명창(사진)이 20일 오후 7시 한국전통문화관 가례헌 개관 15주년 기념 국악콘서트 ‘10월의 풍류’ 공연을 갖는다. 박 명창을 비롯해 임영미, 강정민, 이민경, 강정화, 김완아 씨 등 국악인들이 수심가, 회심곡, 평안도아리랑 등을 부른다. 2003년 서울 중구 신당동에 개관한 가례헌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지난 14년간 매주 진행된 국악콘서트는 총 500회가 넘는다. 가례헌에서는 박 명창의 스승인 서도소리 인간문화재 김정연(1913∼1987)의 유품도 볼 수 있다. 김정연은 평양 권번의 마지막 기생(기명 금홍)으로 알려져 있다. 호랑이발톱으로 만든 노리개와 은장도 옥장도 호박장도에 비녀와 귀걸이까지 12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박 명창은 1987년 김정연이 작고한 뒤 배뱅이굿으로 유명한 명창 이은관(1917∼2014)을 사사했다. 박 명창은 “이번 공연은 대중가요와 전통음악을 편안하게 접하는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2232-5749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백진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59)가 2일 한국인 최초로 독일 함부르크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의 제8대 소장에 선출됐다. 2009년부터 ITLOS 재판관을 맡아온 백 교수는 2020년까지 3년간 재판소장의 임무를 맡게 됐다.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1996년 설립된 국제해양법재판소는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형사재판소(ICC)와 더불어 세계 3대 국제재판소로 꼽힌다. ITLOS는 해양경계획정, 어업 문제, 해양자원 개발 등의 분쟁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독일에서 잠시 귀국한 백 소장을 11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실에서 만났다. 》 ―소장 당선을 축하한다. “개인적으로 영광이지만 막중한 책임을 맡게 돼 부담이 크다. 북핵으로 인한 한반도 안보위기가 심각한 상황이다. 국제기구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축하보다 걱정하는 말을 더 많이 한다.” ―2일 소장 선거는 어떻게 치러졌나. “21명의 재판관이 교황 선출 방식으로 뽑는다. 재판관들은 각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후보자 이름을 종이에 적어 투표한다. 수년 전부터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한국인 최초로 소장으로 선출됐는데, 아시아에서는 몇 번째인가. “세 번째다. 2대가 인도인이었고 6대가 일본인 소장이었다. 보통 5개 대륙별 그룹이 돌아가면서 소장을 맡는다. 전전 소장이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사실 아시아 순서가 오려면 10여 년 기다려야 했다. 아주 예외적으로 다른 지역을 건너뛰고 제가 선출됐다.” 백 소장은 2009년 박춘호 재판관의 별세에 따른 보궐선거에 당선돼 재판관 직무를 시작했고, 2014년 9년 임기(2023년 10월까지)의 재판관으로 재선됐다.“동수일 경우 소장이 캐스팅보트” ―소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재판관 21명의 일원으로 재판을 공정하게 이끌어야 한다. 재판은 단심제이며 보통 3년이 걸린다. 21명 전원일치 판결이 가장 무게가 있지만, 가능하면 다수가 동의하는 판결을 이끌어내도록 소장이 노력한다.” ―소장의 특권은 없나. “의결할 때 재판관 한 명이 참석하지 못할 경우 10 대 10 동수 판결이 나기도 한다. 이때 소장이 캐스팅보트 권한을 갖는다. 소장은 표를 두 장까지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지난해 ICJ에서는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니카라과-콜롬비아 해양분쟁에서도 그랬고, 태평양의 섬나라 마셜제도가 미국 영국 인도 파키스탄 등 핵보유국에 대해 ‘핵군축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제소한 재판에서 10 대 10 동수 판결이 나왔다. 그런데 두 번 모두 프랑스인 소장이 캐스팅보트로 결론을 냈다.” ―한국의 독도 문제가 국제해양법재판소에서 제소될 가능성은…. “소장으로서 말하기 힘든 부분이다. 한국 정부는 어떤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제가 선출되니까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한국인이 소장이 돼 일본이 우려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제가 소장이 됐다고 해서 특정 국가에 유리하고 불리한 일은 있을 수 없다. 재판관에 취임할 때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판결한다는 선서를 했는데, 소장이 된 이상 더욱 회원국 모두에 공정한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국제해양법재판소는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1996년 독일 함부르크에 설립됐다. 지난해 20주년을 맞았으며 현재 168개 회원국이 소속돼 있다. 그러나 북한은 회원국이 아니다. ―북한은 유엔에 가입했는데 왜 회원국이 아닌가. “ICJ는 유엔에 가입하면 동시에 회원국이 된다. 그러나 국제해양법재판소는 유엔해양법협약을 조인한 당사국만 회원국이 될 수 있다.” ―북한이 태평양 상공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는데…. “대기권 핵실험은 방사능 낙진 때문에 환경과 생태계, 인간의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재앙이다. 이미 1963년에 미소 간에 육지와 해상에서의 대기권 핵실험을 금지했다. 프랑스가 1970년대 초까지 남태평양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대기권 핵실험을 해 호주와 뉴질랜드가 프랑스를 ICJ에 제소한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북한의 태평양 상공 핵실험은 유엔헌장, 유엔해양법, 국제환경법 등 여러 조항을 명백히 위배할 소지가 크다.” ―북한이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미사일을 쏘고, 괌을 포위사격하겠다는 위협도 했다. 공해상에 미사일을 쏘는 것은 괜찮은가.“북 ‘군사경계수역’은 불법” “유엔해양법 301조에 ‘해양은 평화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북한이 ‘공해의 자유’를 내세우지만, 미사일을 쏘는 것은 모든 국가가 누려야 할 공해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행위다. 특히 EEZ는 연안국에 자원의 탐사나 이용의 배타적인 권리를 허용하지만, 다른 나라에도 항해나 비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구역이다. 그런데 수역에 미사일을 쏘아대는 것은 연안국의 주권적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1977년 동해에서 영해의 기선으로부터 50마일(약 80km) 내에 외국의 비행기와 배의 행동을 금지한다는 ‘군사경계수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국제법에서 인정받는가. “내가 1985년 세계해양법 연차총회에서 발표한 논문 주제가 바로 북한의 ‘군사경계수역’이었다. 전시(戰時)도 아닌 평시에 다른 나라의 항해와 비행의 자유를 제약하는 엄청난 크기의 수역을 선포하는 것은 국제법상 근거도 없고, 선례도 없다.” ―북한 리용호 외무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전포고’를 했으니 미국의 공격기를 영공이 아니어도 임의로 쏘아 떨어뜨리겠다고 했는데…. “양국 간의 말싸움 과정에서 나온 말만 갖고 국제법적으로 판단하긴 어렵다. 두려운 것은 바로 이러한 위험한 발언이 오해와 오판을 낳고, 우발적인 충돌로 이어지는 것이다.” 1990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백 소장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법학석사,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각각 취득하고, 1997년부터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제재판소에서 해양 분쟁이 가장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해양은 지구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전 세계 물동량 교역의 98% 이상이 해상운송을 통해서 이뤄진다. 바다는 특정 국가에 소속돼 있지 않기 때문에 국제법만 통용되는 공간이다. 특히 21세기 들어 북극해를 비롯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심해자원 개발이 가능해졌다. 또한 해양은 ‘지구의 냉장고’로 불릴 정도로 생태계 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가 관할권을 넘어서는 해저의 생물학적 다양성, 유전자원을 어떻게 보전하고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수많은 분쟁들이 생겨나고 있다.” ―미국이 북한 핵 문제에 올인하는 사이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북핵이 핫이슈이지만 남중국해 분쟁은 여전히 굉장히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다. 강의할 때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남중국해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가 하면 ‘독도가 100개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분쟁은 단순히 중국과 베트남, 중국과 필리핀 간의 문제가 아니다. 베트남과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6개의 분쟁 당사국이 서로 치고받고 있는 상황이다. 다자적인 접근이 필요하고, 충돌 방지를 위한 신뢰 구축 조치도 필요하다.” “차세대 국제법 전문가 키워야” ―해양 분쟁은 ICJ, ITLOS, 상설중재재판소(PCA) 등에 각각 제소할 수 있다. 어떤 차이가 있나. “1969년의 북해대륙붕사건 이후 40년 가까이 국제사법재판소가 다룬 사건의 절반 이상이 해양 분쟁이었다. 그래서 1996년 해양 분쟁을 전담하는 국제해양법재판소가 생긴 것이다. 분쟁 당사국이 선호하는 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다. 지난해 20주년을 맞은 국제해양법재판소는 출범 후 가장 많은 해양 분쟁 재판을 맡아왔다.” ―국제재판소의 판결의 제재 수단이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하는데…. “국제재판소의 판결은 엄격한 구속력을 갖는다. 재판의 당사국들은 국제재판소의 판결을 수락하고, 이행해야 할 법적인 의무가 있다. 그러나 국내법처럼 경찰이나 집달관이 없기 때문에 강제로 집행할 방법은 없는 게 사실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의문을 채택하고, 제재를 할 수도 있지만 안 지키면 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 판결을 지키는 것이 관행이다. 2주 전에 우리 재판소에서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간의 해양경계 재판 판결을 내렸다. 양국 간의 분쟁수역에 가나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하는 엄청난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었다. 판결이 끝나자마자 양국 장관들이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지역평화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백 소장은 “한국은 최근 조선, 해운에서 큰 위기를 겪고 있지만 세계에서 손꼽히는 해양강국”이라며 “특히 심해저 광물자원 개발 분야에서는 굉장히 앞서가는 선행 투자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대국이 힘을 겨루는 해양 환경에서 한국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국제법 분야에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이 된 계기는…. “1996년 국제해양법재판소가 출범하기 전에 준비위원회가 있었다. 1990년부터 우리 정부 대표로 준비위원회에 참가해 오면서 나도 언젠가는 재판관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선임이었던 박춘호 재판관이 임기 중 병환으로 돌아가셔서 보궐선거를 치르게 됐는데, 우리나라 후보로 제가 지명돼 선출됐다.” ―국제법 전문가를 양성하려면…. “대학 시절 국제법 국비유학생 제도 덕분에 미국 컬럼비아대 석사,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까지 공부할 수 있었다. 국제법을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영어와 프랑스어도 잘해야 하고, 법률과 함께 각국의 역사와 문화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엔 로스쿨 제도가 들어선 이후 젊은이들이 점점 더 국제법을 기피하고 있다. 다들 국내법을 공부해서 판검사 되고, 로펌 변호사가 되는 목표만 세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이사를 갈 수 없는 이상 지정학적 위치는 숙명이다. 통상국가인 한국에서 국제법 전문가를 키우는 것은 미래가 걸린 일이다. 소명의식을 가진 소수라도 계속 키울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문인 이광수의 문학적 업적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언론인이자 논객으로 활동했던 사실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남선, 홍명희도 언론인으로 큰 발자취를 남겼지만 문인으로만 알려져 있는 것도 비슷합니다.” 한국 언론사 연구의 권위자인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78)가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1892∼1950)의 언론인으로서의 활동을 실증적으로 조명한 책을 펴냈다. ‘언론인 춘원 이광수’에서 정 교수는 일본 경찰의 비밀 기록과 신문 잡지를 조사하고, 춘원의 글을 찾아내 그의 언론 활동을 추적했다. 정 교수는 책에서 “이광수는 기행문과 회고록으로 자신의 행적을 기록하거나 스스로를 소설의 모델로 삼기도 했다”며 “그의 삶 자체가 일반 대중에게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었고 소설보다 더 흥미로운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광수는 양친을 여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평생 병마와 싸웠다. 그러나 정 교수는 “춘원은 일본 유학을 경험하고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직접 만났다”라며 “공간적으로도 그만큼 넓은 견문을 갖추었던 사람은 흔치 않았다”고 했다. 춘원은 1919년 도쿄 유학생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뒤에는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와 긴밀한 관계였던 ‘독립신문’을 발행하면서 창간사를 통해 5가지 사명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독립신문의 개방적인 사실보도 원칙에 대해 적에게 비밀이 누설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춘원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적의 눈을 가리우기 위하야 동포의 눈을 가리우는 어리석음을 배우지(學) 아니하리라. 또 동포를 격려할 필요를 아노라. 그러나 사실을 과장하거나 한갓 허장성세의 논설로 동포를 속이는 죄를 짓지 아니하리라. 허위나 과장이나 논(論)을 위한 논, 문(文)을 위한 문은 아등의 결코 취하지 아니할 바라.” 춘원은 귀국 후에는 동아일보 편집국장 두 차례, 조선일보 부사장 겸 편집국장으로 재직했다. 동아일보 재직 시절에는 아산 현충사 유적 보존 운동을 벌이면서 역사소설 ‘이순신’을 직접 써서 연재했고, 농촌 계몽과 한글 보급을 위한 브나로드 운동을 할 때는 신문 캠페인 소설 ‘흙’을 연재했다. 정 교수는 “춘원의 문학 활동은 언론인으로서의 활동과도 깊이 연관돼 있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춘원은 일본 유학 시절부터 늘 우리말과 한글의 우수성을 예찬해 왔다”며 춘원이 러시아에서 발행된 ‘대한인정교보’에서 일할 당시에 한글 가로쓰기와 풀어쓰기, 한글 필기체를 제안했던 희귀 자료도 발굴해 소개했다. 그는 “친일 논란에도 불구하고 춘원은 근대문학의 씨앗을 뿌린 개척자이자 끊임없는 논쟁의 중심에 섰던 논객으로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취임 100일을 맞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사진)은 26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까지 발견돼 진상조사위 조직 확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도 장관은 이날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법무부로부터 검사를 파견받아서 진상조사위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며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에서 발견한 추가 문건이 검찰에 가 있어 파견 검사를 통해 협조를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도 장관은 진상조사위가 형사적 문제를 발견했을 때 형사고발 조치를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대해 “검사를 파견받은 건 그런 부분까지 포함한 것”이라고 답했다. 도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 시절 문인으로서 겪었던 정치적 간섭과 지원 배제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유인촌 장관 때 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정부로부터 “(회원들이) 불법 집회나 시위에 참여했다가 발각되면 지원금을 모두 반납하겠다는 서약서를 쓸 것을 종용받았다”고 말했다. 도 장관은 “당시 이게 말이 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많은 사람 중 누가 시위에 참여했는지 알 수 없고 불법 시위인지도 알 수가 없는데 발견되면 지원금 받은 걸 다 반납하겠다는 각서를 쓰라 하니 너무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 당시 이른바 ‘MB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한 유 전 장관의 발언에 대한 반론이다. 유 전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문체부 장관으로) 있을 때 문화예술계를 겨냥한 그런 리스트는 없었다”면서 “요새 세상(정권)이 바뀌니까 그러겠구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도 장관은 현재 시급한 현안으로 평창 겨울올림픽 안전 문제를 꼽았다. 도 장관은 “해외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말폭탄을 보며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불안 요소를 해소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적극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프랑스 체육부 장관은 평창 올림픽 불참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이후 문체부 노태강 2차관이 프랑스 장관을 직접 만나 안전성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독일에서도 연이어 불참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다. 도 장관은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뿐 아니라 올림픽 참가 국가의 한국 공관에서도 담당 장관을 직접 만나 안전하게 올림픽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하기로 결정했다”며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직접 나서 북한의 올림픽 출전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취임 100일을 맞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6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까지 발견돼 진상조사위 조직확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도 장관은 이날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법무부로부터 검사를 파견받아서 진상조사위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며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에서 발견한 추가 문건이 검찰에 가 있어 파견 검사를 통해 협조를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도 장관은 진상조사위가 형사적 문제를 발견했을 때 형사고발 조치를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대해 “검사를 파견받은 건 그런 부분까지 포함한 것”이라고 답했다. 도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 시절 문인으로서 겪었던 정치적 간섭과 지원 배제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유인촌 장관 때 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정부로부터 “(회원들이) 불법 집회나 시위에 참여했다가 발각되면 지원금을 모두 반납하겠다는 서약서를 쓸 것을 종용받았다”고 말했다. 도 장관은 “당시 이게 말이 되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많은 사람 중 누가 시위에 참여했는지 알 수 없고 불법 시위인지도 알 수가 없는데 발견되면 지원금 받은 걸 다 반납하겠다는 각서를 쓰라 하니 너무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 당시 이른바 ‘MB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한 유 전 장관의 발언에 대한 반론이다. 유 전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문체부 장관으로) 있을 때 문화예술계를 겨냥한 그런 리스트는 없었다”면서 “요새 세상(정권)이 바뀌니까 그러겠구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도 장관은 현재 시급한 현안으로 평창동계올림픽 안전 문제를 꼽았다. 도 장관은 “해외에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말폭탄을 보며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불안요소를 해소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적극 대처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프랑스 체육부 장관은 안전성을 이유로 평창올림픽 불참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이후 문체부 노태강 2차관이 프랑스 장관을 직접 만나 안전성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독일에서도 연이어 불참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다. 도 장관은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뿐 아니라 올림픽 참가 국가의 한국 공관에서도 담당 장관을 직접 만나 안전 올림픽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하기로 결정했다”며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도 직접 나서 북한의 올림픽 출전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군사도시’ 강원 원주가 춤바람으로 들썩이고 있다. 대형 전광판 카메라에 잡힌 관람객들은 몸을 흔들며 춤을 췄고,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브라질 리우 카니발만큼 흥겹다면 과장일까. 24일 폐막한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에는 매일 1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렸다. 이 카니발에 참가한 일본, 필리핀, 러시아 등 해외 팀은 모두 자비로 비행기표를 사서 30∼50명 단위로 찾아 왔다. 또한 국내에서도 동네 벨리댄스팀부터 노인정, 학교 응원단, 군부대 팀까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총상금 1억8000만 원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관객 심사위원의 점수가 전광판에 공개될 때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참가자만 152개 팀 1만2000여 명. 6일간 50여만 명의 관객이 몰렸다. 지역 경제에 끼친 효과는 350억 원가량으로 추산됐다. 먹거리 장터에 품바타령, 유명 연예인 초청…. 요즘 난립하는 수많은 지방축제는 대부분 비슷하다. 그러나 원주 댄싱카니발은 관(官)이 아니라 ‘춤추고 싶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열정으로 한국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축제를 만들어냈다.원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달 31일 강원 춘천 강원대병원 어린이병원 1층 로비. 오랜 병원 생활에 지친 아이들과 부모들이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설화의 뒷이야기를 재해석한 뮤지컬 ‘연이와 야생소년’ 공연을 보며 환한 미소와 박수를 보냈다. 이 작품은 평강공주가 가장 사랑하는 애장품 거울을 훔친 시녀 연이가 숲속에서 야생소년을 만나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는 이야기다. 공연이 진행되자 로비에는 어린이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로비 의자에서 관람하던 이수하 양(11)은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하다 보니 공연이 있을 때마다 종종 와서 보는 편인데 클래식 연주회가 아닌 연극 공연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강원대병원학교 빈명신 교사는 “병원 로비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누구나 지나가면서 보기에도 부담스럽지 않다”며 “병원의 자체 예산으로는 할 수 없는 ‘신나는 예술여행’ 공연으로 환자 어린이들이 정서적으로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문화 인프라 시설이 부족한 소외지역을 위한 문화복지사업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추진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복권위원회가 함께하는 ‘복권기금 문화나눔’ 사업은 400여 개 예술단체가 농어촌 산간지역이나 도시의 복지시설, 군부대, 교정시설 등 문화 소외 지역에 직접 찾아가 공연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사업은 2004년부터 사회적 경제적 지리적 소외 지역에서도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시작됐다. 병원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신나는 예술여행’뿐 아니라 지방의 문예회관에 공연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일상생활에서 문화예술 활동이 가능하도록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는 ‘생활문화 공동체 만들기’ 등 지금까지 4500여 회 프로그램이 진행돼 왔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MBC 드라마 ‘병원선’처럼 낙도를 돌아다니며 문화공연을 펼치는 예술공연팀도 생겨나고 있다. 복권기금 문화나눔을 통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평생 처음으로 경험했다는 주병윤 씨(경북 구미시)는 “마을에서 종종 잔치를 하는데, 평생 처음 경험하는 즐거운 잔치였다”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 하얀문화의집에서 열린 아트마켓에 참여한 주민 정혜경 씨는 “늘 서울의 문화시설을 부러워했는데, 동네에서 수준 높은 예술작품과 공연을 접하게 되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옛날에 나라를 대표하는 악기엔 나라 이름을 붙였어요. 중국엔 당금(당나라 금)이 있듯이 가야금은 가야제국 시절부터 우리 민족과 애환을 같이해 온 악기죠.” 30일 오후 3시 경기 의정부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는 한국이 가야금의 종주국임을 알리는 ‘천사금(1004琴)의 어울림’ 공연이 펼쳐진다. 너른 잔디밭에서 펼쳐지는 공연에는 4세부터 77세 어르신까지 전국에서 온 1004명의 가야금 연주자가 하모니를 펼친다. 이 행사를 주최하는 건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가야금 산조 및 병창) 보유자인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문재숙 교수(64)다. 그가 이 공연을 마련한 것은 가야금을 자국의 문화재로 지정한 중국이 2013년에 854명이 출연하는 대규모 가야금 공연을 해 기네스북에 올리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까지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2013년에 제가 중국 연변대에서 열리는 세미나를 갔는데 가야금 하는 조선족 제자들이 한 명도 안 보이는 거예요. 다들 어디 갔냐고 물었더니 가야금 기네스북에 올리는 공연 연습을 갔다고 하더라고요. 중국이 벌써 1000명 이상이 함께 추는 장구춤 상모춤을 기네스북에 올렸는데, 가야금까지 중국의 악기로 뺏기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 교수는 “중국은 ‘조선족의 문화는 곧 중국의 문화’라는 논리로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문화를 하나씩 빼앗아가고 있다”며 “4년 전 한국을 대표하는 악기인 가야금까지 뺏기겠다 싶어 청와대에 민원을 넣어 대책 마련을 호소했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공연에 참가하는 가야금 연주자 신청자는 13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이 함께 연주할 가야금 곡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문 교수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로 한반도 정세가 위기인 상황에서 우리 민족이 함께 연주해 온 가야금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가야금을 연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에는 문 교수의 두 딸인 가야금 연주자 이슬기 씨와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이하늬 씨도 함께 참여한다. 특히 이하늬 씨는 무대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악계의 아이돌 김준수와 함께 행사 진행도 맡는다. 문 교수는 “배우인 하늬는 드라마 속에서도 한국무용이나 가야금 등 우리 문화를 잘 알리고 있어 늘 기특하게 생각한다”며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자신을 맘껏 활용해 달라고 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02-582-4470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역대 최대 규모의 ‘2017 원주 다이내믹 댄싱카니발’이 20∼24일 원일로, 따뚜경기장, 문막 등 원주시내 7곳의 특설무대에서 펼쳐진다. 국내외 152개 팀 1만2000여 명이 참가하는 댄싱카니발과 프리댄싱페스타 이외에도 축제기간에 요일별 테마를 주제로 한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19일 전야제는 나비 퍼포먼스로 평창 겨울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20일 개막식에서는 1000여 명의 시민합창단과 가수 양희은 씨가 콜라보 공연을 선보인다. 21일부터는 향토사단인 육군 제36보병사단의 군악축제, 청소년오케스트라와 꿈의오케스트라, 6090청춘합창단 공연, 댄싱카니발 경연 ‘스페셜 베스트 15’와 ‘파이널 베스트 15’에 선정된 30개 팀, 프리댄싱페스타 우수 팀의 공연 등이 진행된다. 수상 팀에는 총 1억80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033-763-9401∼2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018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역대 최대규모의 ‘2017 원주 다이내믹 댄싱카니발’이 20~24일 원일로, 따뚜경기장, 문막 등 원주시내 7곳의 특설무대에서 펼쳐진다. 축제 기간 동안 국내외 152개팀 1만2000여명이 댄싱카니발 경연을 펼치고, 신설된 프리댄싱페스타에 2000여명이 참가해 총상금 1억8000만원의 주인공을 가린다. 또한 축제기간동안 요일별 테마를 주제한 다양한 공연도 펼쳐진다. 19일 전야제는 나비 퍼포먼스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한다. 20일 개막식에는 1000여명의 시민합창단과 가수 양희은 씨가 콜라보 공연을 선보인다. 21일부터는 향토사단인 육군 제36보병사단의 군악축제, 청소년오케스트라와 꿈의오케스트라, 6090청춘합창단 공연, 댄싱카니발 경연 ‘스페셜 베스트 15’와 ‘파이널 베스트 15’에 선정된 30개 팀, 프리댄싱페스타 우수 팀의 공연 등이 진행된다. 2011년 처음 시작된 원주 다이내믹 댄싱카니발은 지난해 문화관광 유망축제로 선정된 지 불과 1년 만에 우수축제로 격상되는 등 빠른 성장으로 국내외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해외 팀은 2012년 1개팀이었던 것이 2014년 3개국 12개팀, 지난해 8개국 42개팀에서 올해 13개국 45개팀 1600명으로 큰 폭으로 늘어 명실상부한 세계적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올해는 아시아 거리 축제를 대표하는 5개국이 퍼레이드 네트워크 협의체를 발족한다. 일본 요사코이 소란 마츠리에서 활동하는 ‘수가 재즈댄스 스튜디오’는 댄싱카니발 1회부터 올해까지 7년 연속 참가하고 있으며 필리핀 세부 시눌룩 페스티벌 힙합 부문에서 3년 연속 대상을 차지한 ‘돈 주앙’과 일본 삿포요사코이 페스티벌 대상팀인 ‘히라기시텐진’도 3년째 참가한다.댄싱카니발 프린지 축제는도 볼만하다. 올해는 187개팀 1500여명의 공연단이 문화의 거리, 자유시장 시계탑 앞 등 곳곳에서 350여 차례에 걸쳐 각종 공연을 펼친다. 마임, 마술, 퓨전국악, 탭댄스, 아카펠라 등의 분야는 전국에서 약 140개 공연 팀이 몰려들어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25개팀을 선별했다. 또한 지역 동아리들이 참여하는 통키타, 색소폰, 무용, 버스킹 등의 공연도 마련됐다. 어린이와 함께 참여하는 가족 관람객을 위해 ‘체험 존’이 확대 개편됐다. 따뚜 공연장 1층 복도 및 연습실, 야외 소공연장 등에서 ‘환경’을 주제로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어린이 타악놀이극 ‘드림스케치’, 상상놀이터 ‘비밀의 마을’, 문화예술교육 체험 ‘잃어버린 환경을 찾아서’가 진행된다.원주문화재단 관계자는 “지난해 6일의 축제 기간 원주시민을 비롯 댄싱카니발 참가자, 관람객 등 47만 명이 축제를 즐겼고 경제효과도 339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올해는 축제 기간과 공간이 더욱 늘어나 더 큰 문화·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 한다”고 말했다. 033-763-9401~2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 “무릎 꿇은 장애아 어머니들을 보고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20년 전 우리가 당한 고통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똑같은 현실이라니 너무나 참담합니다.” 13일 서울 강남구 일원로 밀알학교에서 만난 홍정길 밀알복지재단 이사장(75)에게 최근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장애아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은 영상을 봤느냐고 했더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던 그는 2, 3분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가 열리는 줄 알았다면 현장에 쫓아갔을 겁니다. 그런데 몰랐어요…. 미안합니다.” 올해로 개교 20년을 맞은 밀알학교는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유치부, 초·중·고등부, 전공과정에 현재 206명이 다니고 있는 특수학교다. 그러나 1997년 설립 당시 아파트 값 하락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대 시위와 소송으로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개신교계의 원로목사(남서울은혜교회)인 홍 이사장에게서 당시 이야기를 들었다. 》 “내 아이를 먼저 데려가 달라”―특수학교를 짓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1990년대 초 교회의 한 신자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밑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아, 목사님,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해요. 예배가 끝나고 집을 둘러보다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식을 지하에 가둬서 키우고 있었습니다. 당시엔 유전자(DNA)에 문제가 있다고 알려지면 다른 자녀들까지 혼사길 망친다고 장애아를 밖으로 데려나가지 않았어요.” 홍 목사는 이후 “똑같은 영혼인데 우리와 다르게 보인다고 해서 어떻게 가둬서 키우는가. 하나님 앞에 범죄”라며 장애아들을 교회로 데리고 오도록 했다. “어느 날 한 장애인 엄마가 기도회에서 울면서 ‘제가 죽기 1년 전에 제 아이를 제발 먼저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세상에 부모가 자식을 먼저 죽여 달라고 하는 기도는 처음 들었어요. 1975년부터 몸담았던 서울 반포 남서울교회 담임목사직을 포기하고, 장애인 특수학교를 짓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1992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인근 1만500여 m² 규모의 초등학교 터를 매입했다. 그는 당시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와 밀알복지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던 평생지기 손봉호 박사에게 특수학교 운영을 맡겼다. 그러나 특수학교를 짓는다는 소식에 주변 아파트 벽에 반대 플래카드가 빼곡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공사장에 굴착기나 기중기 같은 건설장비가 들어오면 바로 주민 수백 명이 몰려와 몸으로 막았다. “주민들과 대화하며 별 수모를 다 겪었습니다. 발길로 걷어차이고, 멱살을 잡히고…. 당시 손 박사가 ‘장애인은 우리가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고 설득했더니 주민들이 ‘당신 집안이나 대대로 장애인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라고 퍼붓더군요.” 당시 특수학교 건립 허가는 구의 권한이었다. 강남구청장은 홍 목사에게 “장애인 학교가 들어오면 아파트 값이 떨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며 “집값 하락분을 목사님이 보상해 준다는 각서를 써주면 건립을 허가해 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찌나 어이가 없고 화가 나던지. 제가 대놓고 말했어요. ‘대한민국 지자체 1번지로 꼽히는 강남구청장이 이따위 소리를 하는 대한민국은 참 불행한 나라’라고 말이죠. 그런데 돌이켜보면 제가 이런 역제안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집값 하락분은 제가 보상해줄 테니, 만일 집값이 오를 경우엔 상승분의 10%만 나를 주면 안 되겠습니까.’ 그랬으면 제가 ‘떼부자’가 됐을 거예요.” “특수학교 개교에도 집값 상승률 최고” 밀알학교는 1994년 법이 개정돼 허가권이 구에서 서울시교육청으로 바뀌어 학교 설립 허가가 났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는 계속됐다. 주민들은 105억 원에 이르는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했다. “한겨울에 중년의 여성들이 밍크코트를 입고 와서 학교를 점령했어요. 세상에 밍크코트 입고 데모하는 사람은 처음 봤죠. 이분들이 공사 차량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밀치고 하다가 밍크코트 단추가 떨어진 것까지 전부 보상 요구 액수에 포함했습니다. 당시 주민대표 소송 대리인이 고승덕 변호사예요. 나중에 그가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나왔을 때 참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법원은 1996년 2월 밀알학교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전국의 장애인 시설은 주민들의 반대로 신규 허가는 물론이고 증개축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밀알학교가 승소하자 그동안 보류됐던 250여 개 장애인 시설 문제가 모두 풀렸다. “힘들었지만 우리가 고통을 당한 결과 장애인들을 묶고 있던 사슬을 풀어 버렸다고 생각하니까 기뻤어요. 이후엔 그런 문제가 없어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장애인 부모들이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은 21세기 우리의 초라한 자화상입니다.” ―학교가 들어선 이후 실제로 집값이 떨어졌습니까. “당시 30평대 아파트가 2억 원대였는데 지금은 11억∼12억 원 합니다. 일원동은 강남 전체 지역 중에서도 집값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곳입니다.” ―당시 주민들이 반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얘기를 들어보니 주민들이 학교가 아니라 ‘장애인 수용소’를 짓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일단 매일 아침부터 장애인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게 싫다는 거예요. 또 발달장애아는 한번 감정이 폭발하면 셀프컨트롤이 안 된다는데, 갑자기 동네로 들어와서 우리 애들에게 해코지하면 어떡하느냐고 억지소리도 늘어놓았습니다.” ―장애아들이 실제로 동네 아이들을 위협하는 일이 있었습니까. “개교 후 그런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이제 주민들도 자폐아들이 위험하다고 했던 말들이 모두 공포감이고 선입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죠. 당시 반대하던 주민 중에 밀알학교 체육관에서 예배를 보는 우리 교회 신자가 된 분들도 많아요.” 밀알학교는 2001년에 카페, 빵집, 미술관, 음악홀 등 주민 편의시설을 갖춘 ‘밀알아트센터’를 개관했다. 특히 중국의 유명 도예가 주러겅(朱樂耕)의 세라믹 작품으로 만든 벽화와 음향판으로 시공된 세라믹팔레스홀은 뛰어난 음향으로 베를린필하모닉 스트링퀸텟,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 등 세계적인 연주자들도 자주 찾는다.“사람들은 누구나 잠재적 장애인” “대부분의 특수학교엔 장애아, 교사, 학부모만 출입해요. 경기도의 한 특수학교 학부모가 학교 주변에서 사람들과 마주치면 ‘쳇’이나 ‘쯧’ 하는 소리가 들린대요. 그럴 때마다 ‘나는 장애인 자식을 둔 천형받은 인생이구나’ 하는 자괴감에 빠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밀알학교는 그렇지 않아서 부럽대요. 학교에 교회 신자와 일반 주민이 수시로 들락거려 장애인 부모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아서 좋다면서 울어버리더군요.” ―장애아를 일반학교에 보내는 경우도 있는데 특수학교가 필요한 이유는…. “사실은 일반학교에 특수학급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장애학생들이 비장애학생과 섞여서 수업하다 보면 학업을 따라가지 못해 놀림감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정상이라고 생각해서 될 수 있으면 일반학교에 보냅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멸시받을 대로 다 받고, 버려진 다음에 특수학교로 옵니다. 그렇게 대인공포증이 생긴 다음에 특수학교로 오면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세상에서 가장 슬픈 졸업식 안 돼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장애학교를 기피시설로 생각하는 이유는…. “서양에서 장애인을 보호하는 것은 하나의 공통된 언어입니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음속에 장애인을 용납하지 않는 뿌리 깊은 관념이 있어요. 아마도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며 조선시대부터 몸이 온전하지 못하면 불효자식이라고 멸시해온 탓도 클 겁니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장애인입니다. 의식 개혁이 국민운동으로 펼쳐지지 않으면 많은 세월이 걸릴 것입니다.” 홍 목사는 “특수학교 졸업식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졸업식’이 된다”며 “장성한 아이가 졸업을 하면 집에서 부모가 24시간 감당해야 하는데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유치부부터 고교까지 13년 교육과정 졸업 후 장애인 직업훈련을 위한 2년 과정의 전공과를 만들었다. 도자기 제작, 구슬 공예도 가르쳤지만 2년간 학교생활이 연장됐을 뿐 사회에서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결국 그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 끝에 찾아낸 것이 미국의 ‘굿윌스토어’. 기증받은 물건을 장애인들이 간단히 수선해서 파는 가게다.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만든 물건을 한 번은 사줍니다. 그러나 장애인이 만든 물건이나 액세서리를 실제로 사용하진 않아요.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굿윌스토어’는 장애인이 만든 것이 아니고 기증받은 헌옷이나 물건을 수선해서 파는 가게입니다. 밀알복지재단 내에 4개의 굿윌스토어에서 현재 130여 명의 장애인이 일하면서 최저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130만∼140만 원 정도의 첫 월급을 받고 얼마나 좋아하던지, 아이들은 물론이고 온 가족이 울더군요.” 홍 목사는 “13년간의 정규교육, 2년간의 전공과정에도 자폐아들은 자기 세계에만 갇혀 있었는데, 1년간 돈을 벌면서 15년간의 교육 기간보다 더 큰 변화가 생기는 걸 보고 장애인도 직업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장애인 ‘그룹홈’을 만드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죽기 1년 전 자식을 죽여 달라’는 장애인 부모의 기도가 평생 마음에 걸려 있습니다. 부모가 죽어도 장애인들끼리 함께 살 수 있도록 그룹홈을 7개 만들었습니다. 월∼금요일에 장애인 4명과 봉사자 1명이 함께 사는 집입니다. 주말에는 집으로 부모를 만나러 갑니다. 서울 집값이 너무 비싸 정말 어렵긴 하지만, 제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입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에 이르는 시대. 그러나 반려견의 목줄을 채우지 않아 이웃 간에 싸움이 벌어지는 등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독일에서는 개를 키우기 위한 자격증 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 독일 니더작센주에서는 2011년 7월 1일부터 반려견의 크기, 품종에 상관없이 모든 견주는 자격증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시험은 이론과 실습으로 나뉜다. 이론 시험은 반려견을 입양하기 전에 치르고, 실습 시험은 반려견을 들인 첫해에 치러야 한다. 이 책은 운전면허 시험용 참고서처럼 개를 키울 수 있는 자격증 시험 대비서다. 독일의 법규에 따르면 견주는 반려견의 배설물을 즉시 치워야 한다. 반려견이 배변한 곳이 숲, 초원, 들판, 공원, 도로 등 어디라도 예외는 없다. 생후 6개월이 된 반려견에게는 예외 없이 마이크로칩을 왼쪽 목덜미 피부 아래에 이식해야 한다. 또한 견주는 반려견 양육 관련 책임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반려견 동반 외국여행을 할 때는 국제표준화기구 마이크로칩을 이식한 후 유럽연합(EU) 반려동물여권을 발급받아야 한다. 법에 따르면 동물 보호를 위해 반려견의 꼬리를 자르는 것은 법률로 금지돼 있다. 또 이미 꼬리가 잘린 반려견을 반입하거나 키우는 것도 안 된다. 이 법의 가장 큰 목적은 ‘위험’을 방지하는 것. 이를 위해 책은 입마개 착용 훈련, 몸의 접촉 견디기 훈련 등 다양한 훈련법을 제시한다. 마지막 장에는 보호자를 위한 기본 지식 테스트 문항도 실려 있다. 책을 다 읽은 후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과연 나는 개를 키울 자격이 충분한가?’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와 독일에서 ‘아리랑’을 부르면 우리말을 모르는 외국인들도 후렴구를 다 따라 불러요. 그들이 진중하게 우리 민요를 감상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놀라요.”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인 이춘희 명창(70)은 한국을 넘어 세계 속에서 통하는 소리꾼이다. 그가 16일 오후 9시 서울 중구 장충단로 국립극장에서 자신의 삶과 노래를 풀어내는 ‘춘희 춘희 이춘희 그리고 아리랑’ 공연을 갖는다. 그가 꼽는 인생 최고의 ‘아리랑’ 공연은 2012년 12월 5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 회의장에서 불렀던 노래다. 그는 당시 아리랑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회의에서 축하공연을 하기 위해 오전 9시부터 한복을 입고 회의장에서 11시간을 꼬박 기다렸다. “오후 10시가 넘어서 아리랑 등재 소식이 발표된 후 제게 주어진 시간은 2분도 채 안됐어요. 짧은 시간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을까 고민했죠. ‘아리랑∼’ 하고 시작하면 묻힐 것 같아서 시작부터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하고 치고 나갔어요. 1초라도 놓칠까 봐 무대 뒤에서 나가면서부터 불렀지요. 긴 회의에 피곤했던 사람들이 ‘이게 웬 아름다운 소리야?’ 하며 환희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박수갈채를 보내는데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신이 나서 2절까지 거푸 불렀지요. 노래가 끝나자마자 모두들 몰려나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어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다 부둥켜안고 울었지요.” 이 명창은 “유네스코 세계 대표들에게 ‘역시 아리랑은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믿음을 심어준 게 너무 영광스럽고 보람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후에도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상상축제’와 독일에서도 아리랑 공연을 했다. 2014년에는 라디오프랑스를 통해 ‘아리랑과 민요’ 음반을 발매했다. 이 음반은 그해 독일음반비평가상 시상식에서 월드뮤직상을 받았다. “어릴 적 서울 한남동에 살았는데 유일한 즐거움은 유성기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소리였어요. 당시 황금심이 부른 ‘장희빈’의 주제가와 경기민요 소리에 홀딱 반했죠.” 그는 16세부터 명창 이창배, 안비취 선생의 제자로 들어갔고 1997년 50세의 나이에 경기민요 문화재 보유자가 됐다. 한때 대중가수를 꿈꿨던 그는 경기민요를 배우면서 “야즐자즐한 그 맛에 환장을 하겠더라”고 했다. 이 명창은 “판소리는 탁한 목소리인 반면 경기민요는 유리그릇처럼 투명하고 맑은 시냇물 같은 소리”라며 “경기민요에는 밝고 경쾌한 민요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맑고 청아한 슬픔을 담은 소리도 있다”고 소개했다. 영화 ‘취화선’에서 주인공 배우 최민식이 떠날 때 배경으로 깔리던 ‘이별가’가 그의 목소리다. 이 명창은 “이춘희에게 인생은 노래였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평생 아리랑을 불러보니 슬픔과 한의 노래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며 “슬픔을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우리 민족의 힘과 지혜가 담긴 노래”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국악이나 서양오케스트라나 인간이 하는 음악은 통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음악가로서 지향해야 할 지점은 늘 소리의 ‘밸런스’(균형)와 단순화라고 생각합니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25년간 이끌었던 임헌정 서울대 교수(64)는 뚝심의 지휘자다. 국내 교향악단이 거의 시도해보지 않았던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1999∼2004년),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2014∼2016년)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엔 국악관현악단의 지휘봉을 든다. 28일 오후 8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리는 ‘국립국악관현악단 2017 마스터피스―임헌정’이란 공연이다. 그가 국악 지휘봉을 잡은 것은 2015년에 이어 두 번째. 그는 국악에 문외한이지만 아쟁과 해금, 가야금 연주를 직접 들으며 소리의 차이를 연구해왔다. 2015년 첫 공연 당시 가장 신선하면서도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국립국악관현악단 연주에서 마이크와 음향장치를 빼고 자연음으로 연주한 것이었다. 국악에서는 악기 간에 음량 차이가 커 관현악 연주의 경우 음향시설이 필수라고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소리가 너무 많으면 중요한 소리가 뭔지 모릅니다. 타악기나 태평소가 나오면 가야금, 거문고 소리가 다 사라져버려요. 가야금이 한꺼번에 아르페지오를 하는데 하프 10대가 함께 치는 것 같았어요. 소리를 솎아내며 연습하다 보니 점차 깨끗한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무대에서 마이크로 확성을 하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자연음향으로 해보자고 설득했죠.” 그의 2015년 ‘자연음향’ 국악 공연은 섬세한 밸런스와 곡 해석으로 국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최근에는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면당도 마이크를 전혀 쓰지 않는 자연음향 홀로 바뀌었다. 그는 “모든 예술의 최종 단계는 단순화”라며 “백화점 명품점에 가도 꼭 한 작품만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악관현악단 단원들에게 과도한 농현(弄絃·줄을 위아래로 눌러서 연주하는 장식음)도 자제해 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북한 작곡가 최성환의 ‘아리랑 환상곡’을 연습하는데, 맨 처음부터 ‘아∼∼∼리랑, 아∼∼∼리랑’ 하는데 농현을 넣더라고요. 여러분의 관습도 존중하지만 그래도 저와 처음 만났으니 첫 두 마디만 농현을 참아달라고 했어요. 저는 브루크너 교향곡을 하면서도 ‘논(non) 비브라토’를 많이 시켰어요. 화장하지 않은 순수한 소리가 더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아요.” 임 지휘자는 이번 공연에서 전래 민요 ‘새야새야 파랑새야’를 주제선율로 사용한 황호준 작곡가의 ‘바르도(Bardo)’, 고구려 고분 안에 그려진 사신도(四神圖)에서 영감을 받은 김성국 작곡가의 ‘영원한 왕국’, 하와이대 작곡과 교수인 도널드 워맥의 가야금 협주곡 ‘흩어진 리듬’을 선보인다. 그는 워맥의 가야금 협주곡에 대해 “서양음악 작곡가인데 깜짝 놀랄 정도로 국악의 아름다움을 잘 살렸다”고 평했다. 그는 “국내 오케스트라가 해외에 나가서 연주할 곡은 아직도 안익태의 ‘한국 환상곡’ 정도밖에 없다”며 “서양오케스트라 곡보다는 국악관현악에서 국내외 작곡가에게 의뢰해 창작하는 작품이 한국을 대표할 현대음악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2만∼5만 원. 02-2280-4114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왜 동아일보 사회부 이서구 기자는 비행사 이기연의 추락사고 사망 소식을 그의 가족 대신 기생 이진봉에게 먼저 알렸을까?” “‘기생을 아내로 들일 수 없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어머니와 기생 앞에서 자살한 엘리트 남성, 그리고 평생 죄의식 속에서 삶을 살아야 했던 명기 이진홍.” ‘해어화(解語花)’로 불렸던 일제강점기 기생들의 사랑에 얽힌 이야기를 고음반 감상과 토크쇼로 풀어내는 공연이 열린다. 고음반 연구가이자 민요 평론가인 김문성 씨가 9일 오후 5시 서울시민청 바스락홀에서 여는 ‘반세기(盤世紀)―백년의 음악을 풀다’. 1부 ‘4기4색(四妓四色)’에서는 전설적인 기생 소리꾼 4명의 사랑 이야기를 소개한다. 평양권번 명기 장학선, 조선권번 김옥엽, 한남권번 이진홍, 달성권번 박록주 등 판소리와 민요 분야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4명의 소리꾼의 음반을 통해서다. 김옥엽의 잡가 ‘토끼화상’은 조유순 명창(서울잡가보존회 이사장)이, 이진홍의 잡가 ‘혈죽가’는 남혜숙 명창(서울소리보존회 이사장)이 재현하며, 장학선의 ‘서도회심곡’은 대전문인협회 김명이 시인과 경기민요 이승은 명창이 컬래버레이션 형태로 공연한다. 2부 ‘근대에 스민 신민요’에서는 선우일선의 데뷔 음반인 ‘꽃을 잡고’, 황금심의 대히트곡인 ‘울산큰애기’, 가요계의 전설 이난영과 국악계의 전설 김옥심의 음악과 살아온 세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선착순 무료입장. 관객 전원에게 기념음반 제공. 070-7568-6051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강원 평창군 방림면에 있는 계촌마을에는 하루 종일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골목길 가로등엔 첼로, 트럼펫, 바이올린 등 악기 모양이 앙증맞게 조각돼 있다. 계촌초등학교와 주택가 담벼락에는 모차르트, 비틀스의 얼굴, 오선지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마을 앞 시냇가에는 피아노 건반 모양이 장식된 일명 ‘피아노 다리’가 놓여 있다. ‘계촌 클래식마을’은 2009년 폐교 위기에 몰린 계촌초등학교 교장이 전교생을 단원으로 하는 ‘별빛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2014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진이 정기적으로 찾아와 학생들에게 레슨을 해주고, 주민들은 하루 일과를 마친 저녁에 마을회관에서 클래식 음악 강좌를 듣는다. 지난달에는 제3회 ‘계촌클래식 마을축제’가 열려 산골마을이 음악으로 들썩였다. 계촌초등학교에는 수도권은 물론이고 캐나다에서도 전학 오는 학생이 늘어났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찾아온 외국 대표들은 산골 아이들의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처럼 클래식 음악이 아이들과 마을을 바꾸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된다.평창=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국악극 ‘꼭두’에서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현실의 공간이고, 무대는 주인공들이 도착한 상상 속 ‘꼭두의 세계’입니다. 꼭두의 춤과 음악으로 이승과 저승 사이의 환상 세계를 영화적으로 형상화하고 싶습니다.” 영화배우 탕웨이의 남편으로도 잘 알려진 김태용 영화감독(48)이 국악과 영화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창작극을 연출한다. 30일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꼭두’ 제작 발표회에서 김 감독은 “영화와 무용, 국악을 넘어선 새로운 예술 체험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무척 흥분된다”고 말했다. 10월 4일부터 22일까지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공연되는 국악극 ‘꼭두’는 아이들이 치매 걸린 할머니의 꽃신을 찾아 시장을 헤매다가 환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이야기. ‘꼭두’는 상여에 장식된 조각으로 망자(亡者)를 저승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나무인형이다. 국립국악원은 이미지를 깨기 위해 김태용 영화감독에게 연출을 맡기고, 영화 ‘군함도’ ‘부산행’에 출연한 아역 스타 김수안과 영화배우 조희봉까지 캐스팅했다. 제작진은 지난여름 전남 진도에 내려가 30분 분량의 영화를 촬영했다. 김 감독은 “서울 대학로에 있는 꼭두박물관에서 죽은 자의 영혼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꼭두를 처음 본 이후로 영화로 만들고 싶어 몇 년 동안 마음에 담아 왔다”고 말했다. 그는 “꼭두는 외롭고 험한 길 위에서 길잡이가 되고, ‘호위무사’도 되고, ‘시중’을 들거나 ‘광대’가 돼 웃기기도 한다. 어쩌면 국악이 오랫동안 우리 민족에게 해왔던 일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전북 무주에서 촬영한 ‘필름 판소리 춘향뎐’(2016년), 흥보가를 레게음악에 맞춰 풀어낸 ‘레게 이나 필름, 흥부’(2017년) 등 국악과 영화를 결합한 실험적인 작업을 해왔다. “2013년에 개봉한 단편영화 ‘그녀의 연기’를 촬영할 때였어요. 배우 공효진 씨가 병원에 계신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춘향가’의 한 대목을 불러드리는 장면인데, 갑자기 공효진 씨가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당시 스태프까지 울컥하게 만든 국악의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의 정체를 찾기 위해 국악과 영화를 결합한 작업을 해왔습니다.” 김 감독은 “이번 초연 무대에서는 주인공의 현실 세계를 영화로 제작해 상영한다”며 “초연 후에는 공연의 주 무대인 ‘꼭두의 세계’ 부분까지 추가 촬영해 ‘국악 판타지’ 영화를 완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의 음악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라디오스타’ ‘군함도’ 등으로 잘 알려진 방준석 음악감독이 맡았다. 방 감독은 “국악이 굉장히 멀리 있다고 느꼈는데 우리 뼛속까지 침투된 선율이며 동작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 많아 작업이 즐겁다”고 했다. 국악극 ‘꼭두’ 가격은 3만∼5만 원. 02-580-3300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소설 ‘군함도’의 작가 한수산 씨(71)를 만났다. 영화 ‘군함도’는 ‘국뽕’ 영화부터 ‘친일 영화’라는 비판까지 다양한 논란을 낳았다. 그러나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커질수록 군함도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졌다. 이 때문에 한 씨가 27년간의 치열한 취재와 집필 끝에 지난해 펴낸 소설 군함도가 큰 조명을 받았다. 》 한 씨는 1989년 일본 고서점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우연히 발견한 후 군함도(일본명 하시마·端島)를 알게 됐다. 그는 “나가사키에서도 조선인 피폭자가 수만 명에 이르고, 그중에서 90% 이상이 징용으로 끌려온 노동자들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30년 가까이 일본에서 강제징용 관련 기록과 문서, 피해자의 증언을 취재하고 소설로 집필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1990년에는 하시마 탄광에서 일했던 서정우 씨(1928∼2001)와 함께 군함도를 찾기도 했다. “조선인이 수용됐던 숙소에는 빈 링거병 같은 의료용 쓰레기만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 숙소는 1960년대부터는 전염병 환자를 수용하는 격리병동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갱도 입구에 30m 정도 들어가 보니 콘크리트로 막혀 있었다. 폐허가 된 숙소와 갱도 앞에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잊혀진 이들을 기억했다.” “강제징용 무관심은 직무유기” ―하시마 탄광은 왜 인권의 사각지대일 수밖에 없었나. “처음에는 영국이 투자 개발한 탄광이었지만 일본이 뺏어 관영탄광이 됐다. 인력이 부족하니까 나가사키 형무소에 있는 죄수들까지 갱도에 투입했다. 죄수사역 때문에 폭력이 난무하는 강제노동이 군함도의 전통으로 남았다.” ―군함도는 왜 일본 군부가 중요시했나. “군함도는 석탄 채굴량도 많고, 일본 최고 양질의 석탄이 나왔다. 발열량이 높아 연료용이 아닌 제철용으로 활용됐다. 하시마 탄광을 소유한 미쓰비시는 제로센 비행기, 군함, 어뢰, 대포 등을 만들어낸 대표적 전범기업이었다. 무기 제작용 연료를 생산하는 하시마 탄광은 군부에서 특별 관리했다.” ―하시마의 강제노동은 어땠나. “지하 700∼1000m의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 15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당시 법정노동 시간은 12시간이었지만 갱도 내 작업 시간만 계산했다. 승강기를 타러 가고, 준비하는 시간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조선인 노동자는 600명 정도였는데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1000명으로 늘었다. 사할린에 강제징용을 갔던 조선인까지 하시마로 끌고 온 것이다.” ―군함도 징용자들은 정말 임금을 한 푼도 못 받았나.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일제는 숙박비, 식비, 옷값, 신발값, 건강보험료를 받았고, 채권까지 사도록 했다. 서류상으론 월급을 줬지만 비용을 제하면 실수령액은 0원에 가까웠다. 1945년 말까지 귀국 조치된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손에 쥔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영화에서처럼 군함도에도 위안부가 있었나. “3곳이 있었다고 기록에 나온다. 두 곳은 일본인 전용이고, 한 곳은 조선인 주인이 운영했다. 여성들은 미쓰비시 회사의 탄광 노무계에서 직접 관리했다. 그래서 ‘기업 위안부’라는 용어가 나왔다. 당국으로부터 ‘병이 제일 없는 곳’이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여기 있던 조선인 젊은 여성이 음독자살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래서 제 소설 속에도 젊은 조선 여성이 바다에 투신해 죽는 장면을 그렸다.” ―그동안 위안부 문제에 비해 강제징용 문제는 왜 관심을 덜 받았나. “나도 의문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이 끌려가서 혹사당하고 죽었는데 무관심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미쓰비시는 2015년 중국인 강제징용 노동자 200명에 대해 사죄도 하고 배상도 했다. 그러나 한국인에 대해서만 유독 ‘당시에 한국이 있었나. 다 일본인 아니었나’란 야만적 표현을 쓰면서 뻔뻔하게 나왔다. 한일청구권협상으로 다 끝났다는 일본의 주장에 반박하지 못한 정부는 물론 소설가를 포함한 문화인들의 부끄러운 직무유기다.” 그의 소설 군함도는 2009년 일본어판으로도 출간됐다. 당시 아사히, 요미우리 등 일본의 주요 언론들로부터 “역사의 어두운 면,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면을 뜻하는 ‘부(負)’의 역사까지 낱낱이 밝혀준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영화 속 내용은 현실과 동떨어져” ―작가들은 어느 정도 취재한 뒤 상상을 덧붙여서 소설을 완성하지 않는가. “과거사 문제에서만큼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저널리스트보다 더 사실을 꼼꼼히 취재했다. 군함도 문제를 아는 일본인과 만났을 때 내가 한 발이라도 더 들어가야겠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내 소설에 쓴 에피소드의 80% 이상은 기록과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이다. 사소한 것 하나도 함부로 상상해낸 것은 없다.” 그는 또 “과거사 문제는 철저히 교차 검증을 하고, 그 검증을 거쳐 합리적인 추론을 해야 한다”며 “어설픈 추론이나 부정확한 서술을 했다가는 일본에 꼬투리를 잡혀 반격 기회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 군함도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일본에서 강제징용과 원폭의 희생자였던 90대 할아버지가 이 영화를 보고 전화를 걸어왔다. 군함도에서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지고, 무슨 놈의 전쟁을 하더라. 현실과 동떨어진 영화라 씁쓸했다고 한다. 판타지가 너무 강하면 오히려 진실이 가려진다.” ―군함도에서 실제로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없었나. “한두 사람은 성공했을 수 있다. 그러나 몇백 명의 집단 탈출은 불가능했다. 또한 탈출한들 일본인데 어디로 갈 것인가. 대부분 탈출보다는 자살을 택했다. 영화에서처럼 200∼300명씩 탈출해서 갈 곳이 있었다면야 오죽 좋았겠는가.” ―또 다른 부정확한 서술은…. “1925∼1945년 군함도 사망자 명단이 담긴 ‘화장매장인허증’이란 문서에는 120여 명의 조선인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흔히들 ‘강제징용자 120명 사망’이라고 말한다. 명단엔 산모도 있고, 10개월과 다섯 살짜리 아이도 있다. 1925년엔 강제징용이 없었다. 징용은 1939∼1945년에 이뤄진 것이다. 또한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뉴욕에서 선보인 광고에는 ‘120 killed’라고 나온다. ‘120명이 살해됐다’는 표현도 과하다. 하시마 탄광의 갱도가 섭씨 40도가 넘어 50∼60도였다는 말도 나온다. 그 온도에서 사람이 어떻게 작업을 하는가. 작은 꼬투리 때문에 전체적인 진실이 위협받아선 안 된다.” ―소설 속에서 조선인 젊은 광부가 갱내에서 죽었을 때 동료들이 이름을 부르는 장면에서 울컥하게 되는데…. “눈물나게 하려고 지어낸 게 아니다. 땅속에서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부르면서 올라가는 건 일본 규슈지방의 오래된 전통이다. 시신만 올라가면 영혼이 땅속에서 헤맨다고 이름을 부르며 올라간다. 조선인 노동자들도 그랬겠구나. ‘창수야, 창수야, 올라가자!’고 한국 이름을 외치며 올라가도록 한 것이다.” ―소설에서 나가사키 원폭 투하 때도 조선인 피폭자는 차별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누구나 피 흘리고 아프면 모국어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아이고! 어머니, 아버지. 물 좀 주세요! 사람 살려!’ 같은 말이다. 그러면 들것에 환자를 싣고 가다가도 ‘조센진이네’라면서 길가에 버렸다고 한다. 내 소설의 원제인 ‘까마귀’는 탄광에서 온통 까맣던 조선인 광부, 원폭에 희생된 조선인 시신을 까마귀 떼들이 파먹던 모습을 상징한 것이다.” ―군함도 징용자들도 원폭을 맞았나. “군함도는 원폭 피해가 없었지만 조선인 징용자들이 나가사키 원폭 구조대로 들어갔다는 기록은 있다. 아사히에서 출간된 책 ‘원폭 전후’에는 ‘구조대에 참여한 젊은 조선 징용공 제군의 활약은 잊을 수가 없다’는 구절이 나온다. 너무 눈물이 났다. 원폭 당시 일본인은 조선인을 버렸지만 조선인은 인간의 길을 걸어갔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졸렬했던 외교부의 군함도 대응” ―2015년 군함도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때 우리 외교부의 대응은…. “한마디로 졸렬했다. 뒤늦게 호들갑을 떨다가 ‘한국이 발목을 잡는다’는 인상만 주고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강제징용이 이뤄진 곳이라 세계유산으로 등재해선 안 된다는 논리는 말이 안 된다. 노예시장, 만델라 감옥,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반인륜 범죄가 행해진 곳도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우리의 목표도 처음부터 세계유산 반대가 아니라 강제노동의 역사적 사실을 적시하라는 점에 집중했어야 한다.” ―평생의 과제로 ‘기억의 3부작’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강제징용자 문제에 이어서 남은 주제는 무엇인가. “‘근로정신대’와 ‘B급, C급 전범’으로 재판을 받은 조선인들의 문제를 다루고 싶다. 위안부 할머니에게 ‘근로정신대’라고 한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었다. 근로정신대로 끌려간 소녀들은 대부분 병기공장이나 제사공장 등에서 일했다. 그런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정신대라고 이름 붙여 놓으니까 근로정신대를 다녀온 할머니들까지 사회적인 눈총 때문에 평생을 치욕과 고난 속에 살았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한국과 일본 법원에 임금청구 재판을 하는 법정소설을 쓸 생각이다. 소설을 통해서나마 명예를 회복하고, 한을 풀어드리고 싶다.” 한 작가는 “영화 군함도가 역사를 왜곡했느니 하는 논란마저도 감사하다”며 “잊혀졌던 징용 문제를 수면 위로 꺼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청산되지 않은 역사를 오늘의 문제로 만드는 것은 문화인들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춘천의 한 극단이 제 소설을 ‘까마귀’라는 제목의 연극으로 올렸다.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배우들이 10kg 이상씩 살을 뺀 모습이 눈물겨웠다. 군함도는 앞으로 더 많은 영화, 연극, 뮤지컬, 드라마로 만들어져야 한다. 역사가 법적, 정치적으로 청산이 어려울 때는 문화적으로라도 기억해야 한다. 홀로코스트 영화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우리가 식민시대의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일본이 뻔뻔스럽게 나오지 않게 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국악의 세계화에 앞장섰던 고 성창순 명창(1934∼2017)의 유품 1295점이 국립국악원에 기증됐다. 15일 국립국악원은 성 명창이 올해 1월 세상을 뜨기 전까지 사용했던 악기, 옷과 소품, 앨범, 육필노트, 음반, 공연실황 사진 등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성원목 판소리 명창의 딸인 성창순 명창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로, 보성제 판소리의 계보를 잇는 핵심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991년 국악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도 올랐다. 국악원에 따르면 이번 기증품 중에는 미국 어바인대 인류학과 로버트 가피어스 교수가 1966년 한국음악 조사 당시 고인이 철현금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기록했던 영상도 있다. 김희선 국악원 국악연구실장은 “기증받은 유품을 통해 성 명창의 삶과 근현대 전통공연예술을 조망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성 명창의 유품은 국악박물관 및 국악아카이브에서 보존 처리와 디지털 변환을 거친 뒤 전시와 연구에 다양하게 활용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저 멀리 들판에서 아지랑이처럼 너울대던 ‘날라리’ 소리. 풍요로운 가을 들판에서 민초들이 평화로운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춤추고 노래할 때 빠질 수 없는 악기가 태평소(太平簫)다. 애절한 듯하면서도, 신나는 선율을 뿜어내는 태평소는 농악, 대취타 같은 군대 행진곡과 야외음악에 주로 쓰였다. 그런데 요즘 ‘퓨전국악’의 시대에 가장 핫한 악기가 태평소다. 서태지가 ‘하여가’에서 강렬한 록 사운드에 태평소 연주를 접목한 이후로 힙합, 록 공연에 태평소가 독주 악기로 인기다. 워낙 큰 음량 때문에 마이크를 쓰지 않아도 웬만한 전자악기나 드럼 소리에 묻히지 않아 퓨전음악을 이끄는 국악기가 된 것이다. 태평소는 국악 실내악에서도 화두다. 다만 마이크 없는 자연음향 국악 공연장에서 소리가 너무 커 가야금, 거문고와 합주가 불가능한 것이 단점이었다. 국립국악원은 최근 3년간의 연구 끝에 실내악용 태평소(사진)를 개발해 특허등록을 했다고 밝혔다. 태평소의 내경을 줄여 음량을 절반 가까이(3dB) 줄였다. 이제 한옥 마루에서도 고즈넉하게 태평소 연주를 감상할 기회가 올 것인지 기대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