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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10월 28일 바르셀로나. 누더기 제복을 입고 짝짝이 신발을 신은 병사들을 향해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다. 이날은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 전 세계에서 스페인 내전(1936∼1939)에 참전하기 위해 모인 국제여단의 고별 열병식이 열리던 날이었다. 이 책은 스페인 내전에 의용군으로 참여한 세계 각국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페인 내전을 들여다본 책이다. 조지 오웰은 공화파의 편에서 무정부주의 조직의 민병대 소속으로 참전했고 귀국 후 그 경험을 ‘카탈루냐 찬가’에 남겼다. 생텍쥐페리는 파리의 일간지 특파원으로 내전을 취재했다. 헤밍웨이는 종군기자 자격으로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면서 파시스트에 반대해 게릴라로도 활동했다. 뉴욕타임스의 두 특파원이었던 하버드 매슈스와 일리엄 카니는 각각 공화파와 프랑코 지지자로서 불꽃 튀는 취재경쟁을 벌였다. 저자는 유명인뿐 아니라 학생, 의사, 간호사, 일반인 등 다양한 의용병이 남긴 기록물을 통해 잊혀진 스페인 내전의 모습을 재구성했다. 스페인 내전은 공화파 인민정부에 맞서 쿠데타를 일으킨 프랑코 군대 간 전쟁이었다. 파시즘 성향의 프랑코는 히틀러와 무솔리니로부터 병력, 무기를 지원받았지만 공화파는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은 것 외에는 다른 나라의 병력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 대신 전 세계 53개국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한 지식인 3만5000여 명이 일제 의용군 조직인 국제여단을 구성해 공화파를 위해 싸웠다. 스페인 내전에서 결국 공화파는 참혹하게 패하고 말았다. 그들에겐 제대로 훈련된 군대도, 무기도 없었다. 회고록을 쓴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이 전쟁에 관해 너무 순진하게 생각했음을 인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추구했던 이상은 거대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던 스페인 내전은 민주주의, 공산주의, 스탈린주의, 무정부주의 등 온갖 이념이 각축전을 벌인 20세기 최고의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을 안으로 삭여낸 애원성(哀怨聲)과 고고함이 깃들어 있는 청아한 목소리. 1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절창(絶唱).’ 1995년 타계한 만정(晩汀) 김소희 명창(1917∼1995)의 부음을 알린 동아일보 기사다. 예술에서나 일상에서 단아한 모습으로 국창(國唱)으로 추앙받던 만정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열린다. ‘만정김소희판소리선양회’(이사장 신영희)가 27, 28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주최하는 ‘김소희 선생을 기리는 국악인의 밤’ 무대다. 이날 무대에는 고인의 가르침을 받았던 신영희 명창(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를 비롯해 박계향 박윤초 안숙선 김일구 김영자 김수연 명창 등 만정의 제자들이 총출동한다. 또한 기악 명인인 김무길(거문고) 정화영(장단) 김청만(고법) 원장현(대금) 강정숙(가야금병창), 민요의 김혜란 이호연, 무용의 양길순 진유림 채향순 등 당대를 이끌어 가는 명인, 명창, 명무 등이 총망라된 공연이 펼쳐진다. 이 밖에 비나리 명인인 ‘이광수 민족음악원’이 동참하여 고인을 기리는 비나리를 선보인다. 이날 공연의 사회는 고인의 막내 제자였던 소리꾼 오정해가 맡는다. 만정은 1917년 전북 고창 출신으로 13세의 어린 나이로 당시 판소리 창시자 격인 송만갑 선생 문하에서 소리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65년 동안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워 국창으로 불렸다. 38세에 가산을 팔아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설립을 주도하는 등 한국 최초로 국악 교육을 제도권 공교육으로 전환시킨 국악 교육자이며, 판소리 사설(한문)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우전 신호열 선생께 한학과 서예를 사사해 국전 서예부문에 3회 입선한 서예가이기도 하다. 만정은 판소리 춘향가 ‘김소희제’를 창제하고, 인간문화재(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가 됐으며, 세계 순회공연을 통하여 한국의 역사 문화 예술을 널리 알렸다. 전통음악계에 큰 발전을 이룬 공로로 1962년 세계방송대상, 1973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을 받았으며 1995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전석 초대. 관람 신청 02-424-4999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신문이 열 냥이면 만평은 아홉 냥이란 말이 있다. 암울하고 억눌렸던 시절, 동아일보 만화는 아홉 냥짜리 값을 해냈다.”(손상익 한국만화문화연구원장) 지령 3만 호를 맞은 동아일보의 역사는 한국 시사만화의 본류를 열었다. 촌철살인의 풍자는 억압의 시대를 살아가던 독자들에게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쾌감을 선사했다. 동아 만화의 막힘없는 붓끝은 1920년 4월 1일자 김동성 기자가 그린 창간호 만평에서부터 예견됐다. 동아일보를 상징하는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손을 위로 뻗어 ‘단군의 건국이념’ 휘호가 쓰인 액자를 잡으려 하는 모습이다. 동아일보가 조선의 독립을 이루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담긴 만평이었다. 만화는 총독부의 악랄한 한민족 언로 말살에 맞서 누르면 누를수록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일본군으로 넘치는 한반도, 악마에게 물어뜯기는 조선 청년을 그린 만평이 총독부의 검열에 걸려 게재 금지 처분을 당했다. 삽화가 청전 이상범 화백은 1936년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의 주역이기도 했다. 광복 이후에도 날카로운 풍자만화는 계속됐다. 1955∼1980년 연재된 4컷 만화 ‘고바우영감’은 신문 시사만화의 전형이 됐다. 뭉툭한 코, 납작 머리에 머리카락 한 올의 ‘고바우영감’은 외모와는 달리 부당한 권력엔 깐깐하고 날카로웠다. 1958년 1월 23일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는 변소의 똥 푸는 사람마저 귀하신 어른 대접 받는다’며 자유당의 부정부패를 풍자해 김성환 화백은 시사만화가로는 처음으로 사법처리되기도 했다. 이후 ‘동아희평’(백인수) ‘나대로 선생’(이홍우) 같은 정치 시사만화뿐만 아니라 어린이 학습만화부터 성인용 연재물까지 다양한 만화가 등장했다. 2002년부터 연재된 허영만의 ‘식객(食客)’은 정치풍자 위주에서 벗어난 새로운 대중적 장르 시도로 종합일간지 신문만화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바야흐로 송년회의 계절이다. 지난주 고교 총동문회 송년회에 갔다가 선배 가수의 라이브 공연을 보게 됐다. ‘산울림’의 리더 김창완이었다. 1970년대 기발함과 창의성으로 무장한 전설적 밴드인 산울림은 늘 생각해 볼 만한 가사와 편안한 멜로디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60대의 나이에도 그는 어쩌면 눈빛이 그렇게 맑고, 목소리는 여전히 개구쟁이 같은지…. “언젠간 가겠지∼” 하는 ‘청춘’을 함께 부를 때는 왠지 모를 애잔한 마음이 들다가도,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를 부를 때는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헤드뱅잉을 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모임이 끝나고도 계속 흥얼거리도록 맘속에 남았던 곡은 ‘어머니와 고등어’였다. 어머니가 냉장고 안에 준비해주신 소금에 절인 고등어,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구이를 먹을 수 있겠네∼ 하는 행복감. 어린 시절 어머니는 무를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갈치조림을 잘 해주셨는데…. 추운 겨울, 뚝배기 속에서 보글보글 자글자글 끓어가던 어머니의 갈치조림 만드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946년 정선공연에 김옥심 대신 한정자가 갔더라면? 명곡 정선아리랑은 태어나지 않았다일제강점기 한국에서 탄압받던 아리랑이 왜 일본에서는 유행했을까?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129호 아리랑에 숨겨진 이야기를 고음반과 재현으로 감상하며, 토크와 강연으로 풀어내는 인문학 콘서트가 열린다. 12월 1일 금요일 19시 서초동 정효아트홀과 12월 17일 일요일 17시 서울시민청 바스락홀에서 각각 열리는 아리랑과 인문학의 만남(진행 김문성)은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아리랑에 얽힌 다양한 스토리를 강연과 토크, 고음반 감상과 명창들의 재현으로 꾸민 무대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후원하고 경서도소리포럼(대표 한윤정)이 주최하는 아리랑콘서트는 음악중심의 이전 아리랑 공연들과는 달리 사회문화적 영역까지 범위를 확대해 아리랑을 살펴보며, 법조인과 언론인이 참여해 아리랑에 대한 솔직한 생각들을 풀어내게 된다. 이날 공연은 크게 4개의 세션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1세션 고음반, 아리랑을 품다에서는 유성기 음반에 녹음된 최초의 아리랑들을 소개한다. 그런데 당시 아리랑의 명칭이 ‘알영설’을 중심으로 ‘卵卵타령’ 혹은 ‘알알타령’으로 표기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아리랑을 난생계통에 묶어두려는 식민사관이 갑자기 생겨난 이유를 고음반 감상과 함께 소개하게 된다. 이승은, 유근순, 홍순옥, 이춘자 명창이 옛 아리랑타령을 재현해 선보인다. 2세션 새옷입은 아리랑, 사라져간 아리랑에서는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로 소개된 신아리랑이 유행하면서 광풍처럼 번져나간 아리랑 창작의 모습을 살펴보게 된다. 진도아리랑, 대구아리랑 등 지역명이 붙은 아리랑이 생겨나고, 아리랑우지마라, 그리운아리랑, 마지막아리랑 등 창작 아리랑이 유행하던 시대의 명암을 소개하며, 차수연, 한대식 등 중견 명창이 창작 아리랑을 재현하고, 정남훈, 김혜영명창이 만담형태로, 천재 판소리 남매인 최재명, 최보길 학생이 창극 형태로 아리랑 무대를 빛낸다. 3세션 해외로 간 아리랑은 일본과 미국에서 대유행하며 다양한 형태의 음악으로 정착하는 아리랑의 모습을 음반 감상과 토크로 소개하는 코너이다. 특히 많은 해외 공연활동을 하며 아리랑 보급에 힘써온 최영숙, 이선영 등 아리랑 명창이 출연해 직접 정선아리랑 등을 불러준다. 4세션 시민속으로 간 아리랑은 아리랑이 단순히 음악적으로 기능하는데 머물지 않고 사회와 소통하는 모습을 토크를 통해 확인하는 코너이다. 이날 토크에는 법조인과 언론인이 특별 게스트로 참여해 아리랑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12월 1일에는 법무법인 정성 대표 변호사이자 직장인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문화이야기 대표인 양종윤 변호사가 토크에 참여해 아리랑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는다. 특히 7,80년대 노동현장, 대학가에서 아리랑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연을 진행하는 국악평론가 김문성씨는 고음반을 주제로 활발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으며, 특히 고음반과 기생을 주제로 한 ‘반세기’ 공연은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김문성씨는 ‘아리랑을 음악적으로 한정해 이해하거나 문학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은 더 이상 대중과 소통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공연을 기획해, 하나의 콘텐츠로 구축하기 위해 공연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에서 재현무대를 꾸밀 소리꾼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우선 지난 11월 16일 재담소리 인간문화재가 된 최영숙 명창과 경서도소리를 가장 완벽하게 부른다고 평가받는 이선영 명창이 무대에 오른다. 가야금병창계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차수연명창이 제주아리시리를 불러주며,정가분야에서 독보적인 소리로 인기많은 한대식명인이 일제강점기 명기 장일타홍의 아리랑우지마라와 선우일선의 꽃을잡고를 부른다. 재담소리의 두 젊은 주자 정남훈과 김혜영 명창은 만담 아리랑 레뷰를 재현한다. 일찌감치 국악신동으로 알려진 최보길(국악중)은 남자 송소희로 불리는 오빠 최재명(남원국악고)와 함께 사랑가와 진도아리랑 공연을 펼친다. 경서도소리포럼 한윤정 회장은 ‘지금은 사장된 일제강점기에 창작된 많은 아리랑들의 가치가 저평가 되어 있는데, 이러한 토크쇼를 통해서 재현함으로서 아리랑 콘텐츠가 풍성해지며, 그것이 인문학 강의의 밑거름으로 역할하게 된다는 점에서 향후 더 많은 강의형 콘텐츠를 보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공연장을 방문한 관객에게는 진행자가 특별히 엄선한 아리랑들을 수록한 ‘김문성의 아리랑’ 음반을 무료로 나눠준다. 이 음반에는 전설적인 기생 출신 가수 왕수복의 명곡 ‘마지막 아리랑’, 일본의 명가수 고바야시 치요코의 ‘달아리랑’을 비롯해 가수 김정구의 친형이자 유명한 음악가인 김용환의 일본어 버전 ‘신아리랑’, 가수 이난영이 일본에서 오까랑꼬라는 이름으로 일본어로 부른 ‘아리랑’, 1930년대 말 일본 음악 교과서에 실린 이옥화의 ‘강원도아리랑’,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성악가로 월북한 것으로 알려진 박경희의 ‘아리랑’, 선우일선의 ‘긴아리랑’ 등 18곡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한국전쟁 참전으로 애인과 이별을 앞둔 미군의 심정을 노래한 1954년 발매된 잭플리스의 아리랑도 실려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탑 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양현모 씨(54)가 이달 30일부터 12월 27일까지 한 달간 미국 뉴욕 맨해튼 소호의 ‘월터 위키저 갤러리’에서 ‘한국의 탑’ 사진전을 개최한다. 양 작가는 중앙대에서 사진학으로 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 대표 사진가인 구본창 작가(64) 조수로 활동했다. 이후 이탈리아 사진학교 ‘인스티튜토 이탈리아노 디 포토그라피아(Instituto Italiano di Fotograpia)’를 수석 졸업했다. 특히 그는 2014년 4월부터 2015년 3월까지 동아일보에 본인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찍은 탑 사진들을 ‘한국의 석탑’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해 이름을 알렸다. 이번 뉴욕 전시 또한 이 때 연재한 사진 위주로 이뤄진다. 양 작가는 석탑 뒤에 검은 장막을 내려 탑이라는 피사체만 조명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를 통해 한국 석탑의 단아함, 깨끗한 아름다움, 완벽한 비례미 등을 강조하겠다는 의도다. 그는 “오롯이 나를 향해 빛나는 탑의 자태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며 “미국 관객에게도 한국 탑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월터 위키저 갤러리 주소는 210 Eleventh Ave. Suite 303, NY NY 10001이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 1995년 1월 17일 발생한 일본의 고베 대지진은 도시 직하형 지진이라 피해가 컸다. 도시에서 발생한 경북 포항 지진도 고베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서울국제안전포럼’에 참가한 일본 지진 전문가 오키무라 다카시 고베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74)를 만났다. 그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고베시에서 ‘지진 시의 사면 불안정화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고베 대지진의 복구작업과 피해방지 연구를 진두지휘했다. 》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 일본 간사이 지방 효고현 고베시와 한신 지역에서는 리히터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했다. 도시 밑바닥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도시직하형 지진이라 인구 집중지역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총 6435명이 목숨을 잃었고 효고현 총생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10조 엔(약 110조 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당시 직접 지진을 겪었던 경험은…. “새벽에 잠을 자다가 큰 충격을 느꼈다. 집 전체가 크게 흔들린 뒤 거실로 나와 보니 냉장고가 넘어져 있었고, 피아노가 50cm 정도 움직여 있었다. 찬장이 쏟아져 그 안에 있던 커피잔과 접시가 다 깨졌다. 집안의 보물처럼 아끼던 값비싼 도자기도 깨졌다. 고베 지진 이후로 일본 가정집에서는 앞뒤로 열리는 ‘여닫이문’을 없애고 대부분 옆으로 여는 ‘미닫이 문’으로 바꿨다. 여닫이문은 지진으로 흔들리면 안에 있던 물건들이 문을 밀게 되니까 다 쏟아져버리기 때문이다.” “고베시 지하에 저류조 200개” ―당시에 정부의 지진대응은 어땠나. “고베 대지진이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지진 안전지대로 알려진 곳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고베 사람 중에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풍수해나 태풍에는 대비책이 갖춰져 있었지만, 지진에는 전혀 준비가 안 됐던 것이다. 10만여 채의 주택이 전파됐고, 사흘간의 화재로 약 7000동의 건물이 전소됐다. 그런데 소방수가 불을 꺼야 하는 데 물이 없었다. 소화용수를 공급하는 상수도관이 깨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소방헬기 창고가 무너져 헬기도 출동하지 못했다. 사망자 중에서는 즉사한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 구호가 늦어서 유명을 달리했다. 구조대와 의사가 빨리 접근할 수 있었으면 많은 사람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고베 대지진 피해조사팀을 이끌었던 오키무라 교수는 “고베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도로와 철도, 항만시설 등 사회간접자본(SOC) 인프라 시설 복구에만 1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고베시는 10년 동안 6개 분야 54개 테마로 나눠 고베 대지진 검증작업을 하고, 이를 토대로 459개 항목으로 대응방법을 정리했다고 한다. ―고베 대지진을 겪은 후 지진대비책은 어떻게 변했나. “‘레벨1’은 30년에 한 번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지진 대비책이다. 누구나 일생에 한번쯤은 겪을 수 있는 지진이다. ‘레벨 2’는 수천 년에 한 번 일어날까 한 강도의 지진에 대비하는 시스템이다. 대지진 이후 도로, 철도, 항만 등 주요 인프라와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레벨2의 지진에도 견디도록 건물 구조를 강화시켰다.” ―지진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이전에는 지진 재해를 막는 ‘방재(防災)’에 초점을 맞췄다면, 대지진 이후에는 ‘감재(減災)’가 목표가 됐다. 지진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 대신 우리가 할 일은 피해를 감소시키는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장 큰 변혁이고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고베시는 지진 당시 무너져 내렸던 한신고속도로(오사카∼고베)의 철근 강도를 3배로 높이고 교각의 기둥도 폭을 2배로 키웠다. 건물 90%가 파괴되거나 불타버린 고베시 나가타(長田)구의 목조건물 밀집촌은 단단한 최신식 주택으로 바뀌었다. 효고현이 독자 개발한 ‘피닉스 방재시스템’에 따라 지진피해 규모 파악과 구조대 투입, 주민 대피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지는 체계도 구축했다. 오키무라 교수는 “고베의 경험은 일본 전역의 도시 지진 재해구호 시스템 개선에 모델이 됐다”고 말했다. ―고베 지진 당시 무용지물이었던 소방시스템은 어떻게 고쳤나. “화재 진압용 소방용수 공급이 끊기지 않도록 대용량 송수관을 두 줄기로 만들었다. 한 줄이 깨지더라도 나머지 다른 라인이 기능할 수 있게 했다. 만약 두 줄이 모두 깨지더라도 소방수를 긴급하게 끌어다 쓸 수 있는 지하저류조도 만들었다. 고베 시내 곳곳의 지하에 개당 100t짜리 방화 수조 200개가 설치됐다.”“학교, 최고의 내진설계해야” ―우리나라에서는 포항 지진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주일 연기되기도 했다. 학교 건물이 지진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일본에선 학교가 가장 튼튼한 건물이다. 고베 지진 이후 학교 건물이 최고의 내진설계를 갖추도록 방침을 정했다. 왜냐하면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지진 발생 시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대피소로 쓰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도시엔 고층빌딩이 밀집돼 있는데 지진 대비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서울에 와보니 통유리로 장식된 멋진 초현대식 건물이 인상적이다. 건물의 뼈대나 벽체 구조는 튼튼해 보이는데 지진으로 흔들리면 유리창이 먼저 깨질 위험성이 크다. 만약에 그 길을 통과하는 시민이 지진을 만나게 되면 ‘글라스 샤워’(유리파편이 쏟아져 내리는 사고)를 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지진이 일어나면 전부 다 빌딩이 넘어가서 피해를 많이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외벽이나 인테리어, 천장, 유리창 같은 비(非)구조물이 떨어져 발생하는 2차 피해가 훨씬 심각하다.” 오키무라 교수는 “고베 지진 당시에도 고층 건물이 진짜로 넘어간 것은 한 동밖에 없었다”며 “그것도 지진이 온 후 이틀 뒤에 넘어갔을 뿐”이라고 말했다. 고베에서 지진으로 건물이 붕괴돼 죽은 사람은 17%에 불과하며, 70% 이상은 건물의 마감재가 떨어지는 바람에 사망했다는 조사도 있다. ―포항 지진에서 ‘필로티 건물’이 지진에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일본에서도 지진 이후 1층에 기둥만으로 주차장을 만든 필로티 건물에 대한 지속적인 보강책을 마련해왔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경사재를 넣어 ‘X밴드’로 묶어두거나, 그 벽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필로티 건물 주차장에는 적어도 한 면에는 벽을 만들어주는 게 좋다. 내진 진단을 통해서 지진이 올 때 가장 힘을 받았던 아픈 곳을 찾아서 벽을 만들면 된다.” ―일본에서는 민간 건축물 내진설계 보강은 어떻게 진행하나. “지진이 발생하면 1주일 이내에 전문가가 응급 위험도 판정을 내린다. 이후 건물에 붉은색은 출입금지, 노란색은 경고, 녹색은 안전하다는 표시를 붙인다. 민간주택의 내진 진단 및 보강을 할 때는 주민이 약 30%를 부담하고, 나머지 70%는 공적보조금이 부담해줬다. 다만 집안의 가구 전도 방지대책은 주민 스스로가 100% 책임져야 할 일이다.” “지속적인 대피훈련 절실” ―포항에서는 리히터 규모 5.4의 지진이었는데 왜 이렇게 피해가 컸을까. “지진의 규모는 발생하는 지점의 에너지이다. 같은 규모라고 해도 진원까지의 거리, 지반의 딱딱한 정도에 따라 다르다. 특히 지진파는 연약 지반을 만나면 증폭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규모가 똑같아도 연약한 지반에서는 피해가 큰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지진의 ‘규모’보다는 지표면에서 흔들리는 정도를 표시하는 ‘진도’를 더욱 중요시한다.” ―포항 지진 후 액상화 현상(지반이 반죽처럼 물러지는 현상)이 의심되는 곳이 나타났는데…. “고베 대지진 때도 액상화 현상이 심했다. 액상화는 지반이 연약한 매립지이거나 지하수 수위가 높은 곳에서 잘 발생한다. 연약 지반인 고베는 액상화로 암벽이 앞으로 이동하면서 항구시설이 바다 쪽으로 기울어 배들이 접안을 하지 못했다. 반면 고베 앞바다의 인공섬 두 군데는 액상화를 고려한 설계로 피해를 면했다.” ―부산에는 해변에 고층빌딩이 밀집돼 있는데…. “지반이 연약한 곳에 고층빌딩을 지을 때는 기초 말뚝을 아주 딱딱한 지반까지 완전히 내려서 지지를 해야 한다. 또한 지진 시 기초 기둥이 부러지지 않도록 설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1964년도 니가타 지진 당시에 지반 속에 세운 기둥이 부러져 아파트가 넘어간 적이 있다. 이 지진 이후 설계부터 기초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됐다. 해안가 고층빌딩이라고 해도 기초를 어떻게 설계했느냐에 따라 다르다.” ―일본에서 지진으로 원전이 영향을 받는 적이 있는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지진에 의해서 원자로가 깨지거나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다. 쓰나미로 인해 수해를 입어 원자로가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지진의 흔들림에 의한 시설물의 피해는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고베처럼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은…. “지진이라는 것은 과거의 역사로부터 기록이 돼 온 것이다. 과거의 역사적 기록을 넘어서는 지진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강진이 많았던 일본에서는 어디서든 대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키무라 교수는 “방재의 최종적인 목표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재해로부터 생명을 살리는 데는 3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구조물의 내진설계를 강화하는 하드웨어다. 두 번째는 경계경보, 대피 시스템과 같은 소프트웨어다. 두 가지 모두 행정기관이 앞장서야 할 대책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휴먼웨어’라고 설명했다. “모든 건물을 완벽히 내진설계를 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또한 지진 정보나 경보를 내려줘도 주민이 대피행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죽는다. 일본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10년 전에도 지진 겪어봤는데, 괜찮겠지’ 하면서 피난을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휴먼웨어’는 주민들이 함께 긴급 대피를 하는 힘으로 ‘지역력’ 또는 ‘주민 방재력’으로 부르기도 한다. 생명을 지키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선 당국과 주민 간의 지속적인 대피훈련이 필요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국ABC협회(회장 이성준)가 올해 일간신문 163개사에 대한 유료부수 인증 결과 동아일보가 국내 일간지 중 2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ABC협회는 22일 인증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2017년(2016년 발행부수 및 유가부수 기준) 일간신문 163개사에 대한 발행부수와 유료부수 인증 결과를 발표했다. ABC협회 조사 결과 동아일보의 유료부수는 72만9414부로 집계됐다. 이날 공개된 유료부수 현황에 따르면 동아일보는 전체 언론사 중 2위로 나타났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3만383부(4.04%)가 줄어들어 3위를 차지했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73만1788부에서 2374부(0.32%)만 줄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보다 유료부수가 1만2466부(0.98%) 줄어들었다. ABC협회 관계자는 “유료부수는 전체 발행한 부수 중 정기구독자, 가판 등에서 실제 판매된 부수를 집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발표된 163개 매체 유료부수 순위에서는 동아일보 자매지인 스포츠동아가 13위(12만2464부), 어린이동아가 19위(7만7801부)에 올랐다. 어린이동아는 어린이 대상 신문 중에서 발행부수 및 유료부수 1위, 스포츠동아는 스포츠신문 중에서 유료부수 2위를 차지했다. 동아일보는 ABC협회가 6월 2일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한 ‘2017년 종합편성채널케이블TV 겸영 일간신문 23개사에 대한 유료부수 인증심사’에서도 전체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동아미디어그룹은 최근 ‘2016년 매체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 조사에서 신방 겸영 언론사 중 조선일보, 중앙일보 계열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가 종이신문, TV, 라디오, 인터넷 등 전체 뉴스 매체를 합산한 ‘2016년 뉴스이용창구 기준 여론영향력 점유율’ 조사 결과 동아미디어그룹은 여론영향력 점유율이 7.1%로 포털 사이트(네이버, 다음)를 제외하면 KBS에 이어 전체 2위로 나타났다. 한편 ABC협회 조사 결과 전국 일간지 총발행부수와 유료부수는 각각 967만3885부, 713만5778부로 나타났다. 조성겸 ABC협회 인증위원(전 한국언론학회장)은 “세계적으로 종이신문의 유가 및 발행부수는 하락해 왔는데 한국의 경우는 유가부수가 소폭 감소세를 보여 다른 나라와는 달리 하락세가 진정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주꾸미 낚싯배 출항지로 유명한 충남 보령의 오천항 인근 한적한 바닷가에는 갈매못 성지가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프랑스 선교사인 다블뤼 주교, 오메트로 신부, 위앵 신부 등 5명의 천주교도인이 순교한 곳이다. 당시 대원군은 고종이 국혼을 앞두고 있어 한양에서 250리 떨어진 바닷가에서 처형하라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지난 주말 갈매못 순교 기념성당에 들렀다가 스테인드글라스(사진)에 비친 햇빛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붉은 핏방울이 방울져 내리는 모양의 유리 조각이 반짝이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핏방울 하면 슬프거나 끔찍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 정반대였다. 최근 서울 돈화문 음악당에서 관람했던 음악극 ‘적로(赤露)’를 보고 난 느낌도 비슷했다. 이 작품의 실제 모델이었던 대금산조의 명인 박종기는 말년에 폐병을 앓았다고 한다. 어느 날 연주 도중 그의 대금에서는 붉은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고 한다. 그가 토해낸 핏방울이었다. 연주를 마친 후 그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핏방울은 늘 인간이 유한한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때로는 영원한 예술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KBS 문제는 이제 KBS인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습니다. 공영방송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이 직접 나설 때입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이인호 KBS 이사장(사진)이 15일 임시이사회에서 자신과 고대영 사장의 퇴진이 방송의 독립성을 저해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이사장은 이날 ‘KBS는 국민의 방송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란 제목의 입장문에서 “KBS가 사원 5000명, 연간 예산 1조5000억 원의 엄청난 인적, 물적 잠재력을 가진 조직임에도 방송인들 스스로가 자부할 만한 수준과 품격의 방송을 창출해 내지 못하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했다. 또 “KBS가 거대한 공룡처럼 스스로 몸도 가누지 못하게 된 지는 오래된 일”이라며 “이는 방송사가 정치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막아내지 못하고 방송노조 스스로가 정치권력화함으로써 방송인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기 시작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적폐청산’이라는 포괄적 구호 아래 국가권력을 무소불위로 동원하는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도 새노조는 방송장악 계획을 실천에 옮기려는 새 정권의 홍위병 노릇을 자처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국회가 나서 방송법을 서둘러 개정할 것과 정부가 KBS 사장·이사장·이사들을 범죄인으로 모는 행위를 중단시켜 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여야의 나눠 먹기식 이사 추천 방식과 일부 노조의 외부세력과의 연대 때문에 방송이 정치도구화하는 것을 막기가 어려웠다”며 “국회 청문회를 거쳐 임명되는 KBS 사장의 임기 보장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성을 지켜내는 마지막 법적 보루”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용) 내역이 나와 있는 업무추진비를 세밀 감사하겠다며 무려 7인의 감사 요원을 4주간이나 투입하고, 접촉한 인사들의 실명과 상담 내용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권력을 동원한 이런 식의 정신적 압박과 모욕, 감사 대상 액수의 몇 배의 비용이 감사요원의 봉급과 활동비로 지출되는 혈세 낭비야말로 청산돼야 할 적폐가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 이사장은 끝으로 “양대 공영방송의 사장이 임기 전에 강제로 물러난다는 것은 방송 독립의 종언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인 법치의 무력화, 언론과 양심의 자유의 종식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시청자와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 달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권 추천 이사인 권태선 이사는 이 이사장의 입장문에 대해 “겉으로 드러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것을 회복하자는 노조의 주장이 어떻게 언론의 자유 침해인가”라고 반박했다. 한편 강규형 이사(명지대 교수)는 이날 “KBS 노조가 매일 이사직 사퇴를 요구하며 학교에서 시위를 벌여 한때 사의를 표명하는 등 어려움이 적지 않다”며 “하지만 부당한 요구에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 raphy@donga.com·조윤경 기자 ▼ [전문] KBS 파업 관련 이인호 이사장 입장문 ▼‘KBS는 국민의 방송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 KBS가 국민의 방송으로 제 역할을 다하도록 지원하고 독려하며 국민 앞에 책임을 져야 하는 KBS 이사장으로서 무엇보다도 먼저 시청자-국민 여러분들께 대단히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부터 드립니다. KBS 방송이 여러분들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고 있으며 국민들 사이에서 공영방송의 앞날에 대해 심각한 우려가 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책임을 통감하면서도 사퇴하지 않고 대신 온갖 불법적이고 굴욕적인 폭압과 회유 앞에서도 자리를 지켜온 것은 임기 도중 사퇴는 KBS가 직면하고 있는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이 나라 대표 공영방송 지킴이로 위임 받은 책임의 방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두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방송 파행은 KBS 노조가 지난 대선 이후부터 고대영 사장 퇴출과 그를 선임하고 지원한 이사장과 이사진의 사퇴를 요구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하지만 보다 큰 그림으로 본다면 KBS가 사원 5,000명, 연간예산 1조 5,000억원의 엄청난 인적 물적 잠재력을 가진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국민이 기대하고 방송인들 스스로가 자부할 만한 수준과 품격의 방송을 창출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 방송문화의 견인차였던 KBS가 거대한 공룡처럼 스스로의 몸도 가누기 어렵게 된지는 훨씬 오래된 일입니다. 모두에게 불행한 그러한 사태의 연원에 대한 설명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방송사가 정치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막아내지 못하고 권력을 견제한다는 명분 아래 방송노조 스스로가 정치권력화 함으로써 방송인들이 방송인으로서의 본문을 망각하기 시작한 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KBS와 함께 공영방송의 양대 축이었던 MBC 김장겸 사장이 11월 13일, 임기 2년 반을 앞두고 강제퇴출 당한 것이 가장 비근한 사례입니다. 언론은 국가권력을 구성하는 3부(입법, 사법, 행정) 밖에서 작동하는 제 4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론, 그 중에서도 특히 방송은 권력의 속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방송의 독립, 곧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은 방송인 누구나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는 가치라는 말입니다. 자유언론의 대표적 표상인 방송이 정치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오염되면 인체의 피가 오염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사회가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그 때문에 현행 방송법도 정당정치에 연루될 가능성이 있는 인사는 방송사의 최고의결 기구인 이사회의 구성에서 배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야 나눠먹기 식의 이사 추천방식과 일부 노조의 민노총 같은 외부세력과의 연대 때문에 방송이 정치도구화 되는 것을 막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국회 청문회를 거쳐 임명되는 KBS 사장의 임기 보장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성을 지켜내는 데 필요한 마지막 법적 보루인 것입니다. 모든 권력은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으면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이 인류 사회의 보편적 역사적 체험에서 얻어낸 상식이며 문재인 정부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과거 정권들도 모두 방송장악을 시도했고 사장이나 이사장을 임기 중 퇴출시킨 사례가 많습니다. 그래도 그 때는 방송 노조가 정치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맞서는 모양새라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정부가 ‘적폐청산’이라는 포괄적 구호 아래 옛 공산당의 ‘정적 숙청’을 상기시킬 정도로 국가권력을 무소불위로 동원하는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도 민노총의 산하기구인 ‘언론노조 KBS 본부’ 일명 새노조는 방송장악 계획을 실천에 옮기려는 새 정권의 홍위병 노릇을 자처하는 상황입니다. 언론은 거대 사건뿐 아니라 각종 권력의 뒷모습까지 냉정하고 비판적으로 조명함으로써 국민의 권익과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기간방송이 국가권력과 한편에 선다면 결코 완전무결할 수는 없는 새 정권이 잘못된 길을 갈 때 진실되고 공정하며 신속한 보도와 균형 있는 논평으로 국민을 일깨움으로써 나라를 바로잡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낼 힘이 어디에서 나올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KBS의 진정한 주인인 시청자들의 불만과 우려가 큰 만큼 KBS 방송인들의 고충도 큽니다. 가속화하는 방송통신 관련 기술변화와 상승하는 제작비용 앞에서 파당정치에 볼모 잡힌 KBS 수신료는 38년째 2,500원에 묶여있고 방송 광고시장 규모는 위축되니 공영방송인 KBS조차도 시청자들의 생각과 취향을 선도하기 보다는 대중적 인기에 영합해서 시청률을 높여야 하는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정치의 영향으로 2년이 멀다 하고 자주 바뀌는 사장과 집행부가 강력한 노조와 노동법 앞에서 경영합리화를 하는 데는 심한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에 사원들은 집행부가 바뀔 때마다 새 임원진과 강성 노조의 눈치를 번갈아 가며 살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능력과 소신껏 방송제작에만 몰두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꿈으로 가득 차고 탁월한 능력을 지닌 젊은 사원들 조차도 점점 더 냉소와 기회주의 풍토에 젖어 들게 되는 것이 KBS의 현실입니다. 현 KBS 사태는 그간 사원들 사이에서 누적되었던 불만과 불안, 의기소침 등이 민노총 산하기구인 새노조 집행부의 정치적 의도와 맞물리면서 고대영 사장 퇴출과 사장 선임과 해임권을 갖고 있는 이사장과 이사진 사퇴요구로 폭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장에 대한 사원들의 불신임률이 높다 하더라도 이런 복합적인 문제들이 사장과 이사진 퇴출로 해결될 것이라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사장이 노조나 정부의 압력으로 임기 전에 밀려나는, 방송의 자율과 독립성에 직접적으로 저해가 되는 나쁜 선례가 또 하나 추가될 뿐일 것입니다… KBS 문제는 이제 KBS인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습니다. 공영방송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이 직접 나설 때입니다. 국민을 대표해서 입법권을 갖고 계신 국회의원들께 호소합니다. 방송법 개정을 서둘러 주십시오. 전문가적 능력뿐 아니라 도덕적 품격이나 지도자적 안목에서 사원들뿐 아니라 시청자-국민 전반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이사진과 사장이 정치권의 개입 없이 선출될 수 있게 선거인단 규모를 확대 개편하고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선출된 사람들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관건일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에 호소합니다. KBS 사장과 이사장 그리고 일부 이사들을 강제 퇴진시키기 위해 그들 주변을 괴롭히거나 그들을 범죄자로 엮으려 하는 비열한 행위를 즉각 중단시켜 주십시오. 만약에 그것이 정부가 직접 연루된 일이 아님을 증명하려면 이사장 포함 8인의 이사들이 정해진 범위 내에서 카드로 집행하여 이미 내역이 나와 있는 업무추진비를 세밀 감사하겠다고 무려 7인의 감사요원을 4주간이나 투입하고 접촉한 인사들의 실명과 상담내용을 밝히라는 부당한 요구까지 하게 된 경위를 소상히 밝혀주십시오. 법 집행의 엄격성에도 공익성과 형평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권력을 동원한 이런 식의 정신적 압박과 모욕 그리고 감사대상 액수의 몇 배의 비용이 감사요원의 봉급과 활동비로 지출되는 혈세낭비야말로 청산되어야 할 적폐가 아닌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사원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KBS에 대한 여러분의 충정과 현재의 고충을 십분 이해합니다. 하지만 빨리 파업을 풀고 일자리로 돌아 오십시오. 국민이 KBS를 보는 눈은 지금 곱지 않습니다. 고액의 연봉에 버금가는 수준의 일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데 KBS가 없어진다고 걱정할 것이 있느냐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려움 속에서라도 우리 모두가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를 반성해야 합니다. 국가적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 정확하고 신속하며 사려 깊은 보도를 통해 재난의 폐해를 최소화하고 빠른 회복과 치유를 위해 국민을 격려하고 결속시키기 보다는 부정확하고 선정적인 방송으로 오히려 피해를 확산시키고 사회적 분열을 조장한 면은 없지 않았는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말 지킴이어야 할 공영방송이 우리말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쓰지 못하고 불필요하게 외래어나 비속어를 유포시킴으로써 “KBS가 우리말 파괴에 앞장서느냐”는 국내외 시청자들의 불평을 샀을 때 그 비판이 근거 없다고 대응할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봅시다. 설사 사장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사장퇴출이라는 빈대잡기를 하다가 방송의 독립, 더 나아가서 언론의 자유, 양심의 자유라는 초가삼간을 태워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깊이 생각해 봅시다. 파업을 계속할 경우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온 국민, 아니 전 세계인들이 입게 될 손해와 봉급삭감으로 여러분들의 가족이 겪을 고충도 생각합시다. 정치권력의 개입을 전면 차단하는 쪽으로 방송법을 개정한 후에 사장을 교체한다고 큰일 날 일은 없습니다. 고대영 사장께 부탁합니다. 노조의 사장퇴진 요구가 아무리 부당하다 하더라도 사원들과 대화와 상호배려의 끈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특히 사원들이 고사장 지지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자기들끼리 서로 반목하게 되는 후유증을 앓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KBS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양대 공영방송의 사장이 임기 전에 강제로 물러난다는 것은 방송 독립의 종언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인 법치의 무력화와 언론의 자유, 양심의 자유의 종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방송 문제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방송의 주인인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갖고 챙기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대한민국의 대표방송인 KBS가 머지않아 특정세력의 정치도구로 전락하거나 아예 사라지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입니다. KBS가 새롭게 힘을 내도록 여러분이 도와주십시오. KBS는 국민의 방송으로 바로서야 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KBS 이사장 이인호 2017년 11월 15일}

‘스리, 투, 원!’ 카운트다운과 함께 스키점프대를 출발한 스키어의 불빛이 청계천 폭포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평창 겨울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가 횃불을 들고 성화를 봉송하고, 봅슬레이를 타고, 피겨스케이팅을 한다. 요즘 서울 청계천의 밤은 평창 겨울올림픽 주요 종목을 표현한 예쁜 등불을 사진에 담으려는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19일까지 펼쳐지는 ‘2017 서울빛초롱축제’의 박재호 총감독(57)은 “올해 청계천 등축제의 주제는 평창 겨울올림픽”이라며 “서울 한복판에서부터 평창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에는 청계천에 전통 한지등과 함께 최첨단 발광다이오드(LED)등불이 등장했다. 수호랑과 반다비가 알파인스키, 프리스타일스키, 아이스하키,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 스키점프, 휠체어 컬링, 루지, 봅슬레이 등 12개 종목의 경기를 하는 모습을 LED등으로 표현한 것이다. 박 감독은 “철사골조에 휘어지는 LED등을 붙여 무척 밝고 컬러풀한 색상을 자유자재로 표현한 최첨단 등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청계천 빛초롱축제가 끝나면 이 등은 강원 평창, 정선, 강릉 등 올림픽이 치러지는 도시의 경기장 앞으로 옮겨져 전시될 것”이라며 “눈이 많이 올 경우 전통 한지등은 찢어질 위험이 있는데 LED등은 어떤 날씨에도 끄덕없이 밝게 비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감독은 올해 9회를 맞은 ‘서울빛초롱축제’ 중 8번을 연출했고, 2016년부터 ‘정조대왕 능행차행렬’을 총감독하는 등 길거리 축제 분야에서는 손꼽히는 전문 연출가다. 그는 “매년 11월에 열리는 청계천 등축제는 연인원 250만∼300만 명이 관람하는 서울의 대표적 축제”라며 “그중 외국인이 70만 명 넘게 관람하기 때문에 서울에서 평창 겨울올림픽을 홍보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예쁜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 전 세계에 평창 겨울올림픽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고교 동창회에 몇십 년 만에 가보면 공부 잘했던 친구들은 그저 그렇게 월급쟁이나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말썽쟁이 친구들 중 몇몇은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고 술값을 도맡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은퇴를 하고 나면? 젊은 시절에 수재소리를 들었든 못 들었든, 미인이었든 아니든, 일류 기업에 근무했든 아니든 은퇴 후 모습은 대개 비슷하다. 작가는 “사회적으로 ‘끝난 사람’이 되고 나니 다 똑같았다. 일렬횡대다”라고 말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대형은행에 입사해 한동안 승승장구하다 임원 진급에 실패해 자회사로 좌천된 이후 정년을 맞이한 인물이다. 회사는 젊은 직원을 엘리트라고 한껏 띄우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는 냉혹한 곳이다. 그에게 정년퇴직은 ‘생전에 치르는 장례식’과 다름없다. 그는 은퇴 후 모두가 똑같아질 것을 알았다면 자신이 왜 도쿄대 법학부에 들어가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은행에서 출세하려고 아등바등 몸부림을 쳤던가 후회한다. 어느 선승의 말처럼 “떨어진 벚꽃, 남아 있는 벚꽃도 다 지는 벚꽃”인 세상이다. 그는 취미로 도자기를 굽는다든가, 수제 메밀국수를 만드는 일 따위로 허전함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끊임없이 일을 찾아 나선다. 삼시세끼 밥을 챙겨줘야 하는 아내의 따가운 시선, 문화센터에서 만난 여성과의 어설픈 로맨스, 대학원 공부, 젊은 벤처사업가의 뜻밖의 제안까지 좌충우돌하는 그의 삶은 너무도 현실적이다. 일본에서는 50대 이상의 독자들로부터 “나 자신이 벌거벗겨진 기분이 들 정도로 무섭고 리얼하다”는 평을 받았다. 일본에서 2015년 출간돼 15만 부 이상이 팔린 장기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이 소설은 ‘품격 있는 쇠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한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60대가 넘어 복싱 심판으로 일하는 친구를 부러워한다. 그 친구는 자신보다 학벌도, 직장도 좋지 못했지만 40대 중반부터 취미로 즐기던 복싱 심판 자격증을 땄던 것이다. 이 책이 은퇴가 한참 남은 젊은 직장인이 읽어도 좋은 이유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송중기 송혜교 커플의 결혼식은 철저한 비공개로 치러졌다. 하루 전에 불의의 사고로 숨진 배우 김주혁에 대한 애도 분위기 속에서 하객들에 대한 포토라인 행사도 없앴다. 그런데 결혼식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하늘에 드론 2, 3대가 날아다니는 순간 주최 측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이 드론은 중국의 인터넷매체가 띄운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웨이보에는 드론을 통해 불법 촬영된 결혼식 장면이 생중계됐다. 신라호텔 등 서울시내 다중이용시설은 A급 비행금지 구역으로 드론 비행이 명백한 불법이다. 요즘 세계적으로도 ‘드론 파파라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14년 팝가수 리애나의 저택과 배우 앤 해서웨이의 비공개 결혼식이 드론에 찍혀 대중에게 알려졌다. 가수 마일리 사이러스는 자택 위를 날고 있는 드론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사생활 침해를 호소하기도 했다. 영국의 다이애나 비는 죽을 때까지 파파라치 차량에 쫓겼다. 요즘엔 하늘에서 매의 눈으로 쫓아오는 드론까지 신경 써야 할 판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대금 산조 창시자 박종기와 김계선의 삶과 음악이 극으로 되살아난다. 서울돈화문국악당(예술감독 김정승)은 자체 제작 브랜드 공연 ‘적로―이슬의 노래’를 11월 3∼24일 공연한다. 음악극 ‘적로’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금 명인 박종기(1879∼1941)와 김계선(1891∼1943) 두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다. 박종기는 대금 산조의 창시자로, 진도아리랑을 창작했다. 김계선은 조선정악전습소 회원으로, 이왕직아악부의 간판스타였다. 그는 궁중의 악사 신분으로 민요, 무기반주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했다. 배삼식 작가는 두 명인의 삶에 상상력을 덧붙이고, 가상 인물인 기생 산월을 더했다. 최우정 작곡가는 전통음악과 스윙재즈 등 당시 유행하던 대중음악까지 다양한 장르를 선보인다. 배경은 1941년 초가을 경성. 젓대(대금) 연주로 명성이 자자하던 두 사람 앞에 십수 년 전 불현듯 사라져버린 산월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세 사람은 술잔과 음악을 주고받으며, 옛 시절과 인연들을 반추한다. 배삼식 작가는 “‘적로’는 방울져 떨어지는 이슬(滴露), 악기를 통해 흘러나온 입김에 의한 물방울(笛露), 예술가의 혼이 서린 악기 끝의 핏방울(赤露)의 의미를 갖고 있다”며 “‘한 소리’를 찾아 평생을 떠돈 사람들, 필멸의 소리로 불멸을 붙잡으려 헤매며 한 생을 지나갔던 이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박종기 선생님은 항상 술에 취해서 녹음실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순간에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음악을 붙드는데 얼마나 멋쩍고 불편했겠어요. 적로는 빼어난 예술가의 업적을 기리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삶의 덧없음’을 마주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적로’는 돈화문국악당이 개관 1주년을 기념해 내놓는 브랜드 공연이다. 돈화문국악당은 마이크나 스피커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음향을 들을 수 있다. 주인공 박종기와 기생 산월은 소리꾼과 가객(정가) 출신 배우인 안이호와 하윤주가 연기한다. 김계선 역에는 신예 정윤형이 발탁됐다. 박종기 명인의 고손자 박명규(대금)를 비롯해 한림(아쟁), 김준수(타악), 이승훈(클라리넷), 황경은(건반)이 연주한다. 전석 2만 원. 02-3210-7001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4일 공개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위원장 유세경) 조사에 따르면 종이신문, TV, 라디오, 인터넷 등 전체 뉴스 매체를 합산한 ‘2016년 여론영향력 점유율’ 조사에서 네이버가 20.8%로 1위, 다음이 9.3%로 3위로 나타났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들은 콘텐츠를 제공받아 진열하고 배치하는 유통사업자이기 때문에 기존 언론사와 동일한 차원에서 점유율 수치를 영향력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포털들이 광고시장을 지배하면서 선정적인 저널리즘을 부추기는 현상에 대한 우려도 심각하다. 홍문기 한세대 미디어광고학과 교수는 21일 한국언론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포털 사업자가 언론사의 기사나 방송 콘텐츠를 제공받아 유통하는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사와 같은 광고 시장에서 수익사업을 하며 경쟁을 하는 것이 경업(競業) 금지 의무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지 않는 포털을 제외하면 기존 언론사 중에서 매체 합산 여론영향력 1위는 KBS 계열(16.2%)이고 2위는 동아미디어그룹(7.1%)으로 나타났다. 동아미디어그룹의 여론영향력 점유율은 신방 겸영 언론사 중 1위이며 지상파 방송인 MBC, SBS보다도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뉴스이용창구 기준 매체 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은 2014년과 비교할 때 변화의 폭이 컸다. 동아미디어그룹은 6.2%에서 7.1%로 0.9%포인트 상승했다. KBS 계열은 18.8%에서 16.2%로 2.6%포인트, 조선일보 계열도 9.0%에서 6.9%로 2.1%포인트 하락했다. MBC 계열은 7.2%에서 6.7%, SBS 계열도 6.5%에서 4.7%로 각각 떨어졌다. 중앙일보 계열은 4.2%에서 4.6%로 올랐다. 이 위원회는 신문, TV, 라디오, 인터넷 등 네 가지 매체 중 어떤 매체가 전체적인 공론을 만드는 데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조사해 3년에 한 번씩 공식 보고서를 발표해 왔다. 매체합산 여론 영향력을 산정할 때는 한국언론재단의 ‘언론수용자 의식조사’를 통해 이용자들이 생각하는 각 매체의 영향력을 토대로 ‘여론 영향력 가중치’를 산정한다. 종이신문보다 TV와 인터넷뉴스 부문에 3∼5배 더 큰 가중치가 주어진다. 위원회는 2010년부터 제1, 2기가 각각 3년씩 활동한 데 이어 제3기가 2016년부터 활동 중이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요즘 사람들은 하나의 미디어만 소비하지 않기 때문에 여론 영향력을 파악할 때는 신문열독률, TV시청률 같은 지표보다는 여러 매체를 아우르는 매체 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25일 발표한 입장 자료에서 “3기 위원회는 2018년 12월에 공식 보고서를 공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문체부의 한 관계자는 “공식 보고서는 아니지만 이번 조사 결과의 팩트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동아미디어그룹이 2016년 매체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에서 신방겸영 언론사 중 조선일보, 중앙일보 계열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동아미디어그룹은 또 지상파 방송인 MBC와 SBS 계열보다도 여론영향력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가 종이신문, TV, 라디오, 인터넷 등 전체 뉴스 매체를 합산한 ‘2016년 뉴스이용창구 기준 여론영향력 점유율’ 조사 결과 동아미디어그룹은 전체 4위를 차지했다. 포털 사이트(네이버, 다음)를 제외하면 KBS에 이어 전체 2위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동아미디어그룹은 동아일보, 채널A, 동아닷컴 등을 포함한 매체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이 7.1%로 신방겸영 언론사 중에서는 가장 높았다. 조선일보와 TV조선, 조선닷컴을 소유한 조선일보 계열의 여론영향력은 6.9%로 5위를 차지했다. 조선일보 계열은 2014년 9.0%를 기록했으나 2년 만에 2.1%포인트 하락했다. 매일경제 계열은 5.0%로 7위, 중앙일보 계열은 4.6%로 10위에 머물렀다. 지상파 방송인 KBS계열은 16.2%로 전체 2위를 차지했고, MBC계열은 6.7%로 6위, SBS계열은 4.7%로 9위를 차지했다. 윤영철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21일 일본 도쿄 게이오대에서 열린 게이오-연세 미디어앤커뮤니케이션 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문체부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 ‘2016년도 매체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을 발표했다. 윤 교수는 이날 ‘신뢰할 수 있는 저널리즘을 위한 새 알고리즘 개발’을 주제로 한국 미디어 시장의 변화를 분석했다. 윤 교수는 세미나에서 “동아일보의 경우 종이신문과 케이블TV, 웹사이트 등 다양한 출구로 유통되는데 이를 모두 합치면 ‘매체합산 여론영향력’ 통계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연구들이 조선일보가 영향력 면에서 넘버 원 신문이라고 하지만, 신문 케이블TV 인터넷 등 뉴스의 모든 유통경로를 전수조사할 경우 동아일보의 영향력 점유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동아미디어그룹 여론영향력이 높게 나온 것은 채널A의 여론영향력이 TV조선, JTBC 등 다른 종편 채널보다 높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매체합산 여론영향력을 계산할 때는 TV 보도프로의 영향력(시청률, 보도시간 등 기준)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둔다는 설명이다. 한편 2016년 여론영향력 점유율 1위는 포털사이트 네이버(20.8%)가 차지했다. 네이버는 2015년 여론영향력 점유율 18.1%로 KBS를 제치고 1위에 등극한 이후로 점유율 격차를 더 늘렸다. 다음도 9.3%로 전체 3위를 차지했다. 윤 교수는 도쿄 학술대회에서 “네이버가 여론영향력 1위를 바탕으로 광고시장에서도 7000여 개의 신문(인터넷 포함)과 지상파방송 3사를 더한 것보다 큰 비율을 먹어치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포털에서 뉴스 유통이 늘어나면서 눈길을 끌기 위한 엔터테인먼트나 센세이셔널 뉴스, 편파적인 뉴스가 양산돼 퀄리티 저널리즘을 저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교수는 “포털 사이트는 뉴스기업이 아니라 정보기술(IT) 회사라고 주장하지만 여론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현실”이라며 “흥미나 상업주의가 아닌 공공의 이익에 기반을 둔 고품질 저널리즘을 위한 새로운 알고리즘 개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는 2010년 출범한 정부 위원회로 매년 여론영향력 점유율을 조사해 3년에 한 번씩 공식 보고서를 낸다. 윤 교수는 2013년부터 3년간 제2대 여론집중도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두 달 전이었다. 지인이 추천해 준 ‘만보기 앱’을 계기로 걷기를 시작했다. 이 앱은 단순한 걸음 수를 측정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친구와 일대일 대결을 펼칠 수 있고, 전체 사용자 중에 내가 랭킹 몇 %에 들어가는지 알려주는 앱이었다. 처음엔 별 관심 없었는데, 열심히 걷는 사람들의 랭킹을 보니 은근히 자극을 받았다. 새벽부터 개를 산책시키고, 출퇴근할 때 두 정거장 먼저 내려 청계천을 걷고, 점심시간에 또 걷고…. 아내와 친구, 직장 동료와 일대일 대결을 펼치다 보니 어느 날은 퇴근길에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넌 적도 있다. 요즘엔 하루 2만 보 이상 걸으며 도시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재미가 크다. 베스트셀러인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에는 ‘습관’이란 뜻의 ‘하비투스(habitus)’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하비투스란 원래 ‘수도사들이 입은 옷’을 지칭했다고 한다. 수도사들이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기도와 노동, 식사)을 하기에 습관이란 뜻이 파생된 것이다. 처음엔 게임처럼 시작했지만, 두 달 이상 걷기가 몸에 배니 이제 ‘행복한 중독’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도소리 박정욱 명창(사진)이 20일 오후 7시 한국전통문화관 가례헌 개관 15주년 기념 국악콘서트 ‘10월의 풍류’ 공연을 갖는다. 박 명창을 비롯해 임영미, 강정민, 이민경, 강정화, 김완아 씨 등 국악인들이 수심가, 회심곡, 평안도아리랑 등을 부른다. 2003년 서울 중구 신당동에 개관한 가례헌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지난 14년간 매주 진행된 국악콘서트는 총 500회가 넘는다. 가례헌에서는 박 명창의 스승인 서도소리 인간문화재 김정연(1913∼1987)의 유품도 볼 수 있다. 김정연은 평양 권번의 마지막 기생(기명 금홍)으로 알려져 있다. 호랑이발톱으로 만든 노리개와 은장도 옥장도 호박장도에 비녀와 귀걸이까지 12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박 명창은 1987년 김정연이 작고한 뒤 배뱅이굿으로 유명한 명창 이은관(1917∼2014)을 사사했다. 박 명창은 “이번 공연은 대중가요와 전통음악을 편안하게 접하는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2232-5749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백진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59)가 2일 한국인 최초로 독일 함부르크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의 제8대 소장에 선출됐다. 2009년부터 ITLOS 재판관을 맡아온 백 교수는 2020년까지 3년간 재판소장의 임무를 맡게 됐다.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1996년 설립된 국제해양법재판소는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형사재판소(ICC)와 더불어 세계 3대 국제재판소로 꼽힌다. ITLOS는 해양경계획정, 어업 문제, 해양자원 개발 등의 분쟁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독일에서 잠시 귀국한 백 소장을 11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실에서 만났다. 》 ―소장 당선을 축하한다. “개인적으로 영광이지만 막중한 책임을 맡게 돼 부담이 크다. 북핵으로 인한 한반도 안보위기가 심각한 상황이다. 국제기구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축하보다 걱정하는 말을 더 많이 한다.” ―2일 소장 선거는 어떻게 치러졌나. “21명의 재판관이 교황 선출 방식으로 뽑는다. 재판관들은 각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후보자 이름을 종이에 적어 투표한다. 수년 전부터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한국인 최초로 소장으로 선출됐는데, 아시아에서는 몇 번째인가. “세 번째다. 2대가 인도인이었고 6대가 일본인 소장이었다. 보통 5개 대륙별 그룹이 돌아가면서 소장을 맡는다. 전전 소장이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사실 아시아 순서가 오려면 10여 년 기다려야 했다. 아주 예외적으로 다른 지역을 건너뛰고 제가 선출됐다.” 백 소장은 2009년 박춘호 재판관의 별세에 따른 보궐선거에 당선돼 재판관 직무를 시작했고, 2014년 9년 임기(2023년 10월까지)의 재판관으로 재선됐다.“동수일 경우 소장이 캐스팅보트” ―소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재판관 21명의 일원으로 재판을 공정하게 이끌어야 한다. 재판은 단심제이며 보통 3년이 걸린다. 21명 전원일치 판결이 가장 무게가 있지만, 가능하면 다수가 동의하는 판결을 이끌어내도록 소장이 노력한다.” ―소장의 특권은 없나. “의결할 때 재판관 한 명이 참석하지 못할 경우 10 대 10 동수 판결이 나기도 한다. 이때 소장이 캐스팅보트 권한을 갖는다. 소장은 표를 두 장까지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지난해 ICJ에서는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니카라과-콜롬비아 해양분쟁에서도 그랬고, 태평양의 섬나라 마셜제도가 미국 영국 인도 파키스탄 등 핵보유국에 대해 ‘핵군축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제소한 재판에서 10 대 10 동수 판결이 나왔다. 그런데 두 번 모두 프랑스인 소장이 캐스팅보트로 결론을 냈다.” ―한국의 독도 문제가 국제해양법재판소에서 제소될 가능성은…. “소장으로서 말하기 힘든 부분이다. 한국 정부는 어떤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제가 선출되니까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한국인이 소장이 돼 일본이 우려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제가 소장이 됐다고 해서 특정 국가에 유리하고 불리한 일은 있을 수 없다. 재판관에 취임할 때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판결한다는 선서를 했는데, 소장이 된 이상 더욱 회원국 모두에 공정한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국제해양법재판소는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1996년 독일 함부르크에 설립됐다. 지난해 20주년을 맞았으며 현재 168개 회원국이 소속돼 있다. 그러나 북한은 회원국이 아니다. ―북한은 유엔에 가입했는데 왜 회원국이 아닌가. “ICJ는 유엔에 가입하면 동시에 회원국이 된다. 그러나 국제해양법재판소는 유엔해양법협약을 조인한 당사국만 회원국이 될 수 있다.” ―북한이 태평양 상공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는데…. “대기권 핵실험은 방사능 낙진 때문에 환경과 생태계, 인간의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재앙이다. 이미 1963년에 미소 간에 육지와 해상에서의 대기권 핵실험을 금지했다. 프랑스가 1970년대 초까지 남태평양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대기권 핵실험을 해 호주와 뉴질랜드가 프랑스를 ICJ에 제소한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북한의 태평양 상공 핵실험은 유엔헌장, 유엔해양법, 국제환경법 등 여러 조항을 명백히 위배할 소지가 크다.” ―북한이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미사일을 쏘고, 괌을 포위사격하겠다는 위협도 했다. 공해상에 미사일을 쏘는 것은 괜찮은가.“북 ‘군사경계수역’은 불법” “유엔해양법 301조에 ‘해양은 평화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북한이 ‘공해의 자유’를 내세우지만, 미사일을 쏘는 것은 모든 국가가 누려야 할 공해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행위다. 특히 EEZ는 연안국에 자원의 탐사나 이용의 배타적인 권리를 허용하지만, 다른 나라에도 항해나 비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구역이다. 그런데 수역에 미사일을 쏘아대는 것은 연안국의 주권적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1977년 동해에서 영해의 기선으로부터 50마일(약 80km) 내에 외국의 비행기와 배의 행동을 금지한다는 ‘군사경계수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국제법에서 인정받는가. “내가 1985년 세계해양법 연차총회에서 발표한 논문 주제가 바로 북한의 ‘군사경계수역’이었다. 전시(戰時)도 아닌 평시에 다른 나라의 항해와 비행의 자유를 제약하는 엄청난 크기의 수역을 선포하는 것은 국제법상 근거도 없고, 선례도 없다.” ―북한 리용호 외무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전포고’를 했으니 미국의 공격기를 영공이 아니어도 임의로 쏘아 떨어뜨리겠다고 했는데…. “양국 간의 말싸움 과정에서 나온 말만 갖고 국제법적으로 판단하긴 어렵다. 두려운 것은 바로 이러한 위험한 발언이 오해와 오판을 낳고, 우발적인 충돌로 이어지는 것이다.” 1990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백 소장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법학석사,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각각 취득하고, 1997년부터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제재판소에서 해양 분쟁이 가장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해양은 지구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전 세계 물동량 교역의 98% 이상이 해상운송을 통해서 이뤄진다. 바다는 특정 국가에 소속돼 있지 않기 때문에 국제법만 통용되는 공간이다. 특히 21세기 들어 북극해를 비롯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심해자원 개발이 가능해졌다. 또한 해양은 ‘지구의 냉장고’로 불릴 정도로 생태계 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가 관할권을 넘어서는 해저의 생물학적 다양성, 유전자원을 어떻게 보전하고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수많은 분쟁들이 생겨나고 있다.” ―미국이 북한 핵 문제에 올인하는 사이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북핵이 핫이슈이지만 남중국해 분쟁은 여전히 굉장히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다. 강의할 때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남중국해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가 하면 ‘독도가 100개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분쟁은 단순히 중국과 베트남, 중국과 필리핀 간의 문제가 아니다. 베트남과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6개의 분쟁 당사국이 서로 치고받고 있는 상황이다. 다자적인 접근이 필요하고, 충돌 방지를 위한 신뢰 구축 조치도 필요하다.” “차세대 국제법 전문가 키워야” ―해양 분쟁은 ICJ, ITLOS, 상설중재재판소(PCA) 등에 각각 제소할 수 있다. 어떤 차이가 있나. “1969년의 북해대륙붕사건 이후 40년 가까이 국제사법재판소가 다룬 사건의 절반 이상이 해양 분쟁이었다. 그래서 1996년 해양 분쟁을 전담하는 국제해양법재판소가 생긴 것이다. 분쟁 당사국이 선호하는 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다. 지난해 20주년을 맞은 국제해양법재판소는 출범 후 가장 많은 해양 분쟁 재판을 맡아왔다.” ―국제재판소의 판결의 제재 수단이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하는데…. “국제재판소의 판결은 엄격한 구속력을 갖는다. 재판의 당사국들은 국제재판소의 판결을 수락하고, 이행해야 할 법적인 의무가 있다. 그러나 국내법처럼 경찰이나 집달관이 없기 때문에 강제로 집행할 방법은 없는 게 사실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의문을 채택하고, 제재를 할 수도 있지만 안 지키면 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 판결을 지키는 것이 관행이다. 2주 전에 우리 재판소에서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간의 해양경계 재판 판결을 내렸다. 양국 간의 분쟁수역에 가나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하는 엄청난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었다. 판결이 끝나자마자 양국 장관들이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지역평화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백 소장은 “한국은 최근 조선, 해운에서 큰 위기를 겪고 있지만 세계에서 손꼽히는 해양강국”이라며 “특히 심해저 광물자원 개발 분야에서는 굉장히 앞서가는 선행 투자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대국이 힘을 겨루는 해양 환경에서 한국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국제법 분야에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이 된 계기는…. “1996년 국제해양법재판소가 출범하기 전에 준비위원회가 있었다. 1990년부터 우리 정부 대표로 준비위원회에 참가해 오면서 나도 언젠가는 재판관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선임이었던 박춘호 재판관이 임기 중 병환으로 돌아가셔서 보궐선거를 치르게 됐는데, 우리나라 후보로 제가 지명돼 선출됐다.” ―국제법 전문가를 양성하려면…. “대학 시절 국제법 국비유학생 제도 덕분에 미국 컬럼비아대 석사,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까지 공부할 수 있었다. 국제법을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영어와 프랑스어도 잘해야 하고, 법률과 함께 각국의 역사와 문화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엔 로스쿨 제도가 들어선 이후 젊은이들이 점점 더 국제법을 기피하고 있다. 다들 국내법을 공부해서 판검사 되고, 로펌 변호사가 되는 목표만 세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이사를 갈 수 없는 이상 지정학적 위치는 숙명이다. 통상국가인 한국에서 국제법 전문가를 키우는 것은 미래가 걸린 일이다. 소명의식을 가진 소수라도 계속 키울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문인 이광수의 문학적 업적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언론인이자 논객으로 활동했던 사실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남선, 홍명희도 언론인으로 큰 발자취를 남겼지만 문인으로만 알려져 있는 것도 비슷합니다.” 한국 언론사 연구의 권위자인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78)가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1892∼1950)의 언론인으로서의 활동을 실증적으로 조명한 책을 펴냈다. ‘언론인 춘원 이광수’에서 정 교수는 일본 경찰의 비밀 기록과 신문 잡지를 조사하고, 춘원의 글을 찾아내 그의 언론 활동을 추적했다. 정 교수는 책에서 “이광수는 기행문과 회고록으로 자신의 행적을 기록하거나 스스로를 소설의 모델로 삼기도 했다”며 “그의 삶 자체가 일반 대중에게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었고 소설보다 더 흥미로운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광수는 양친을 여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평생 병마와 싸웠다. 그러나 정 교수는 “춘원은 일본 유학을 경험하고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직접 만났다”라며 “공간적으로도 그만큼 넓은 견문을 갖추었던 사람은 흔치 않았다”고 했다. 춘원은 1919년 도쿄 유학생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뒤에는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와 긴밀한 관계였던 ‘독립신문’을 발행하면서 창간사를 통해 5가지 사명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독립신문의 개방적인 사실보도 원칙에 대해 적에게 비밀이 누설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춘원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적의 눈을 가리우기 위하야 동포의 눈을 가리우는 어리석음을 배우지(學) 아니하리라. 또 동포를 격려할 필요를 아노라. 그러나 사실을 과장하거나 한갓 허장성세의 논설로 동포를 속이는 죄를 짓지 아니하리라. 허위나 과장이나 논(論)을 위한 논, 문(文)을 위한 문은 아등의 결코 취하지 아니할 바라.” 춘원은 귀국 후에는 동아일보 편집국장 두 차례, 조선일보 부사장 겸 편집국장으로 재직했다. 동아일보 재직 시절에는 아산 현충사 유적 보존 운동을 벌이면서 역사소설 ‘이순신’을 직접 써서 연재했고, 농촌 계몽과 한글 보급을 위한 브나로드 운동을 할 때는 신문 캠페인 소설 ‘흙’을 연재했다. 정 교수는 “춘원의 문학 활동은 언론인으로서의 활동과도 깊이 연관돼 있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춘원은 일본 유학 시절부터 늘 우리말과 한글의 우수성을 예찬해 왔다”며 춘원이 러시아에서 발행된 ‘대한인정교보’에서 일할 당시에 한글 가로쓰기와 풀어쓰기, 한글 필기체를 제안했던 희귀 자료도 발굴해 소개했다. 그는 “친일 논란에도 불구하고 춘원은 근대문학의 씨앗을 뿌린 개척자이자 끊임없는 논쟁의 중심에 섰던 논객으로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