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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소’를 상징하는 삼국시대 걸작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5월말까지 보존처리에 들어간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반가사유상의 보관(寶冠)과 정면 좌측의 발받침, 오른쪽 어깨부위에 발생한 균열을 접합, 보강하기 위한 보존처리를 위해 지난달 9일 문화재위원회 현상변경 승인을 받았다”고 10일 밝혔다. 해당 부위 균열은 일제강점기 때 발견된 것으로 언제 어떻게 금이 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박물관은 문화재위원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구체적인 보존처리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표면 부식을 촉진하는 이물질을 제거한 뒤 금이 간 곳을 에폭시수지나 접착제로 채우는 방안이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박물관은 2007년 8~11월 반가사유상의 분리된 왼쪽 옷자락 조각을 붙이고 하단 일부를 복원하는 보존처리를 시행한 바 있다. 6세기 후반 제작된 걸로 추정되는 반가사유상은 입가에 띤 고졸한 미소와 깊은 사색에 빠진 표정으로 유명하다. 높이 80㎝의 대형 불상임에도 표면두께가 2~4㎜에 불과해 뛰어난 주조기술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맞선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조치가 한류 드라마에 이어 애니메이션 분야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9일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다음달 26일 열릴 예정인 중국 항저우(杭州)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주최 측이 한국관 설치와 국내 업체의 시설대여를 8일 불허한 걸로 확인됐다. 주최 측은 롯데마트의 영업정지 처분 사유와 같은 ‘소방안전관리법 위반’을 이유로 밝혔다. 콘진원은 항저우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한국관을 설치하고 국내 애니메이션 업체 27개사의 작품을 홍보할 계획이었다. 개별업체들의 수출상담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했다. 그러나 주최 측이 시설대여 불허까지 결정함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행사 참여는 원천 차단된 것으로 보인다. 콘진원 측은 “소방안전관리법 위반 사유는 구실에 불과하다.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앞서 국내 업체들은 홍보자료, 영상을 준비해왔으며 일부 기업들은 항공편과 숙소예약까지 마친 상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1919년 3월 3일. 고종의 시신을 모신 재궁(梓宮·임금의 관)이 경운궁을 떠난다. 대한문 앞으로 견여(肩轝·재궁을 실은 상여)를 짊어진 사람들이 늘어선 가운데 주변에는 온통 일본 군인들이 도열해 있다. 눈을 감는 그날까지 망국의 한을 삼켜야 했던 고종의 비극이 한 장의 흑백사진에서 오롯이 읽힌다. 또 다른 사진에는 조선이 아닌 전통 일본식으로 치러진 장례 모습도 담겼다. 고종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던 구한말 조선인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서울역사박물관은 1919년 3월 3일 고종 국장(國葬) 당시를 조명한 ‘고종황제의 마지막 길’ 전시를 열고 있다. 전시에서는 재궁이 빈전(殯殿)으로 쓰인 함녕전을 떠나 금곡 홍릉에 이를 때까지 경로를 지도 위에 자세히 표시했다. 고종 대여 행렬은 대한문을 출발한 뒤 황금정(현 을지로)을 거쳐 훈련원에서 일본식 장례의식을 치렀다. 이어 흥인지문을 통과한 뒤 금곡 홍릉에 도착했다. 이 중 미국 언론인 앨버트 테일러(1875∼1948)가 흥인지문 옆을 지나는 국장 행렬을 촬영한 사진이 이번 전시에 처음 소개된다. 이 사진에서는 동대문부인병원과 동대문교회 등 유서 깊은 옛 건물들을 볼 수 있다. 다음 달 9일까지.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museum.seoul.kr)나 전화 안내(02-724-0274)를 참고하면 된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한 마리 ‘금빛 봉황’을 보았다. 6일 국립공주박물관 전시실에서 본 수촌리 고분 출토 금동관은 신라 금관과 또 다른 아취를 담고 있었다. 온몸에 달개를 매단 세 줄기 입식(立飾)은 정면에서 보면 꼿꼿이 세운 봉황 머리와 양옆으로 활짝 편 날개를 연상시켰다. 나뭇가지를 닮은 신라 금관의 입식과 확연히 다른 형태다. 특히 머리에 닿는 관테까지 날렵하게 이어진 곡선은 우아함을 더한다. 수촌리 고분에서 함께 나온 금동신발과 금귀고리도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삼국시대 장신구 연구 권위자인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수촌리 금귀고리는 현미경으로 200배를 확대해 봐도 만듦새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며 “백제 왕실에 소속된 최고 장인의 솜씨”라고 말했다. 그러나 4∼5세기 한성백제시대 수촌리는 백제 영토였지만 중앙과 멀리 떨어진 지방이었다. 이 1급 유물들이 왜 한성이 아닌 이곳에 묻혀 있을까.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2003∼2013년 수촌리를 발굴한 이훈 당시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발굴단장(55·현 공주대 공주학연구원 연구위원)과 현장을 찾았다.○ 묘제(墓制) 세 번이나 바뀐 사연 충남 공주시 수촌리 야트막한 구릉에 오르자 정상에 봉분 6기가 원형을 이루며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래로도 고분 10여 기가 늘어서 있는데 절벽 끄트머리에 제단(祭壇)을 이루는 돌무더기가 깔려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이 중 나란히 조성된 무덤 세 쌍은 부부 관계임이 확인됐다. 한쪽 무덤에서 남성 수장이 죽을 때 몸에 씌우는 금동관과 금동신발, 둥근고리큰칼(환두대도)이 나온 반면 다른 쪽에서는 여성 시신에 걸치는 구슬 장식, 굵은고리 금귀고리 등이 나온 것. 이훈은 “수촌리는 4세기 말∼5세기 중엽까지 약 60년에 걸쳐 4세대가 묻힌 지방 지배층의 가족묘”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건 무덤들이 조성된 양식이 빠르게 변한 흔적이다. 시대순에 따라 덧널무덤(토광목곽묘)과 구덩식 돌덧널무덤(수혈식 석곽묘), 앞트기식 돌덧널무덤(횡구식 석곽묘),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이 모두 발견됐다. 유물로 보면 분명 같은 집단인데 불과 60년 동안 묘제가 세 번이나 바뀐 셈이다. 이훈은 “수촌리 지배집단이 백제 중앙과 교류하면서 돌무덤을 들여온 것”이라며 “최고 수준의 금동관, 금동신발, 중국 자기들이 부장된 걸 보면 이들이 백제 왕실과 돈독한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백제가 한성(서울)에서 웅진(공주)으로 천도한 배경일 수도 있다. 학계는 4∼5세기 백제 왕실이 지방 유력자들을 통해 간접지배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충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들에게 금동관 등을 사여한 걸로 보고 있다. ○ 1600년간 제자리 지킨 목관 꺾쇠·관못 2003년 11월 3일 발굴팀은 광복 이후 처음으로 백제 금동관을 발견했다. 지금껏 발견된 백제 금동관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덧널무덤인 1호분 내부를 十자형으로 팠는데 바닥에서 금동관과 환두대도가 함께 나왔다. 이훈은 직접 만든 대나무칼로 푸르스름한 청동녹이 낀 금동관을 조금씩 땅 위에 노출시켰다.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자 그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도움을 요청했다. 바깥 공기에 취약한 청동유물 특성상 보존과학 전문가들이 흙과 함께 통째로 수습하는 게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물도 화려했지만 사실 학문적으로 더 중요했던 건 조성 당시 위치를 간직한 목관 꺾쇠와 관못이었다. 발굴팀은 3열에 걸쳐 목관을 두른 총 90여 개의 꺾쇠를 지표 20cm 아래서 찾아냈다. 통상 오랜 세월이 흘러 목관이 썩으면 물이 흘러들어가 꺾쇠나 관못의 위치가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운 좋게도 1호분은 물 대신 모래흙이 목관 안으로 조금씩 흘러들어가 부속품이 고정될 수 있었다. 덕분에 발굴팀은 백제 지방 지배층이 사용한 목관의 형태와 크기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내세에도 다시 만나리 “야, 이게 정말로 딱 붙습니다!” 2004년 7월 발굴팀에서 사진을 담당한 이형주 연구원이 흥분한 목소리로 갑자기 외쳤다. 수촌리 고분 출토 유물들을 늘어놓고 촬영하던 이형주가 4호분과 5호분에서 각각 나온 대롱옥(관옥) 2점을 우연히 맞춰봤는데 거짓말처럼 아귀가 맞았다. 원래 하나였던 대롱옥을 두 개로 부러뜨린 뒤 남편과 아내 무덤에 각각 부장한 것이었다. 생전에 금실 좋던 부부가 내세에 가서도 다시 만나자는 의미로 쪼갠 게 아닐까.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떠올리는 역사의 내러티브는 때론 소설보다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 공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경남 함안 성산산성(城山山城) 출토 목간에서 연도(592년)가 확인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실로 판명되면 성산산성은 6세기 말∼7세기 초 백제와 왜(倭)의 침공에 대비해 세워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신라가 아라가야를 멸망시킨 직후인 561년 무렵 대가야를 공격하기 위한 교두보로 성산산성을 세웠다는 학계의 기존 견해와 다른 주장이다. 손환일 대전대 서화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의 의미와 서체’ 논문에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지난달 공개한 목간 1점에서 ‘임자년(壬子年)’ 간지가 확인됐으며 이는 서기 592년(진평왕 14년)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지금껏 성산산성 출토 목간에서 연도가 확인된 적은 없다. 앞서 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4∼2016년 성산산성 17차 발굴조사에서 목간 23점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중 ‘王子寧(왕자녕)○○大村(대촌)○刀只(도지)’로 해석된 21번 목간을 손 책임연구원은 ‘壬子年(임자년)○○大村(대촌)○刀只(도지)’로 봤다. 본래 임자년으로 쓴 글자를 왕자녕으로 잘못 읽었다는 얘기다. 가로 4cm, 세로 22.7cm 크기의 이 목간은 뒷면에 쓰인 ‘米一石(쌀 한 섬)’ 글자를 고려할 때 물건의 꼬리표로 추정된다. 앞뒷면을 합쳐 보면 “임자년 ○○대촌의 ○도지가 쌀 한 섬을 보냈다” 정도로 해석된다. 여기서 임자년 간지는 6세기로 한정할 경우 532년 혹은 592년이 된다. 손 책임연구원은 “목간이 나온 부엽층에서 함께 나온 토기 양식을 감안할 때 592년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성산산성 출토 토기의 제작시기를 7세기 전반 이후로 보는 이주헌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의 견해를 준용한 해석이다. 목간 연대가 592년이 맞는다면 성산산성 축성 시기는 빨라도 6세기 말 이후라는 결론이 나온다. 목간이 나온 부엽층은 축성 당시 목간 폐기물과 나뭇가지로 땅을 다진 곳이기 때문이다. 손 책임연구원은 6세기 말∼7세기 초 성산산성을 쌓은 배경으로 602년 백제 무왕이 왜와 동맹을 맺고 전북 남원 일대의 신라 영토를 공격한 ‘아막성 전투’를 들고 있다. 백제-왜의 협공에 맞서 신라가 성산산성을 쌓고 병력을 집결시킨 게 아니냐는 것이다. 임자년 주장에 대해 학계 일각은 수긍하기 힘들다는 분위기다. 성산산성 목간을 연구해온 윤선태 동국대 교수는 “필획으로 볼 때 녕(寧)자를 년(年)자로 판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목간을 발굴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적외선 사진 판독 결과 임자년으로 보기 힘들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다시 한 번 학술 자문회의를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나는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다. 요즘 같은 애완견 전성시대에 돌팔매질을 당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개고기 대신 물고기로 단어를 바꾸면 적어도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진 않는다. 상당수 채식주의자들조차 물고기는 먹으니 말이다. 전기 충격으로 물고기를 잡아서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상태에서 회를 쳐도 일반인들은 죄책감 비슷한 걸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 저자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한다. 심지어 물고기도 개처럼 학대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개고기 먹는 자로서 나는 저자의 주제의식에 약간의 거부감을 느꼈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놓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예로 든 수많은 일화와 과학 실험 데이터를 접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모든 생물의 존엄성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달라이 라마의 추천사가 어느 정도 수긍이 갈 것이다. 저자는 물고기도 사람이나 개와 같은 포유류처럼 인지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회를 칠 때 물고기의 아픈 표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 통증을 느낀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일부 동물학자들은 대뇌를 구성하는 부위로 통증을 인지하는 신피질이 어류에 없다는 점을 들어 물고기는 아픔을 느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류에 대한 통증실험은 신피질 없이도 통증 인지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예컨대 벌독이나 식초, 바늘로 통증을 유발한 물고기의 아가미 개폐 횟수는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월등히 높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 정도가 높을수록 아가미를 열고 닫는 횟수가 늘어난다. 미끼로 인해 상처를 입은 물고기가 갈고리를 피하는 현상도 잉어의 경우 최대 3년이나 지속된다는 실험결과가 나와 있다. 군집을 이뤄 소통하는 사회성에서도 물고기는 일반인들의 편견을 뛰어넘는다. 무리를 지어 역할을 분담하고 먹잇감을 모는 ‘협동 사냥’은 아프리카 사바나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탁 트인 바다에서 민첩하게 헤엄치는 그루퍼는 곰치와 함께 협동 사냥을 벌인다는 사실이 2006년 밝혀졌다. 산호초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먹이를 쫓는데 곰치가 한 수 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레오파드코랄 그루퍼는 목표물의 위치를 파트너에게 알려주기 위해 물구나무까지 선다. ‘왕따’ 비슷한 것도 물고기들 사이에서 이뤄진다. 구피 수컷들은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곤 하는데 일단 싸움에서 진 쪽은 구경꾼 수컷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는 걸로 나타났다. 이쯤 되면 인간 사회의 어두운 면까지 닮은 행태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생물의 도덕적 지위는 지능이 아닌 의식 내지 인지능력에 달렸다고 말한다. 정신지체나 정신이상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고기도 개나 고양이처럼 동물보호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저자의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할지는 독자들의 몫이지만, 적어도 물고기에 대한 여러 편견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한반도 선사고고학 태동기인 일제강점기 연구실태를 정리한 자료집이 발간됐다. 국립김해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자료 공개 차원에서 도쿄제국대 교수였던 도리이 류조(鳥居龍藏·1870∼1953)가 촬영한 사진들을 모은 ‘석기시대 도리이 류조 조사 유리건판’ 자료집을 최근 내놓았다. 도리이 류조는 1911∼1923년 9차례에 걸쳐 한반도 선사유적을 조사했다. 당시만 해도 일본 고고학계는 한반도에 석기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봤다. 그러나 도리이는 한반도에서 돌도끼가 발견된 사실과 중국 만주지역에서의 조사 경험을 토대로 학계 견해를 반박했다. 그는 제주도에서 함경북도까지 한반도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선사시대 흔적을 찾았다. 이 중 김해 회현리 패총은 그가 확인한 대표적인 선사 유적이다. 도리이는 조사 과정에서 총 3800여 장에 달하는 유적, 유물 사진을 촬영했는데 이번 자료집에는 이 중 430장을 선별해 실었다. 도리이의 회고록을 참고해 그의 조사 여정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수록했다. 박물관은 “도리이의 조사 자료를 광복 이후 처음으로 정리해 발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한반도 선사고고학사 연구에 중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Hold the line! Stay with me! Roma victor!(대열을 지켜라! 나를 따르라! 로마 만세!) 영화 ‘글래디에이터’(2000년)에서 로마군 사령관 막시무스가 게르마니아에서 진격하는 장면은 많은 영화 팬들이 꼽는 명장면 중 하나다. 로마군의 용맹이 남자들에게 내재된 짐승(?) 본능을 일깨운달까. 나는 영화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막시무스의 대화를 특히 인상적으로 봤다. “막시무스 자네에게 로마는 뭔가?” “제가 봐왔던 세상은 잔혹함과 암흑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로마는 달랐습니다.” “자네는 로마가 진짜 어떤 곳인지 모르는군.” 이민족 출신으로 사령관에 오른 막시무스가 목숨을 걸고 싸운 이유는 단 하나. ‘팍스 로마나(Pax Romana)’였다. 토머스 홉스가 강조한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폭력성을 체험한 막시무스에게 힘을 통한 질서와 평화를 추구한 로마는 일종의 구세주였다. 그러나 팍스 로마나 이면에 도사린 로마 정치의 음험함과 패악이 마침내 그를 덮치게 된다. 권력에 눈이 먼 황태자에 의해 아내와 어린 아들을 잃고서야 로마의 참모습을 목도한 것이다. 이 책은 카이사르가 세운 로마제국 초기의 부패와 타락을 황제와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적나라하게 서술했다. 예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처럼 소설 기법의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읽는 재미를 준다. 저자는 광범한 사료를 인용해 팍스 로마나에 감춰진 로마 정치의 이면을 드러낸다. 카이사르의 양자로 제정(帝政)을 연 아우구스투스는 프린켑스(1등 시민)라는 허울에 숨어 자신을 철저히 포장한 권모술수의 대가였다. 그는 양부 카이사르의 죽음과 폼페이우스, 스키피오의 몰락에서 교훈을 얻었다. 로마 공화정 500년의 전통을 결코 무시할 수 없으며, 시민들이 스스로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착각을 끊임없이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거다. 독재를 우려해 스키피오를 내쳤던 로마는 아우구스투스에 이르러선 세습 군주정까지 받아들이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해묵은 한일 갈등을 우리 아이들은 풀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은 2011∼2015년 양국 초등학생 76명이 주고받은 그림편지를 묶은 것이다. 서로의 일상과 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편지를 선별해 엮은 편집자들은 한국과 일본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의 소통이 양국 갈등을 풀 단초가 될 거라는 믿음에서 책을 기획했다. 자기소개부터 좋아하는 만화 이야기, 여름방학 생활, 운동회 등 아이들의 소소한 일상과 더불어 전통문화, 장래희망, 평화와 같은 진지한 주제도 편지에 담겼다. 어린이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기발한 그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경주 낭산(狼山)은 예부터 신들이 노닌다는 신유림(神遊林)이 있던 상서로운 곳이다. 20일 문무왕 화장터로 알려진 능지탑을 거쳐 선덕왕릉에 다다르자, 낭산 아래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펼쳐졌다. 숲길을 10분쯤 내려갔을까. 철길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폐사지 한 곳이 보였다. 통일신라시대 으뜸가는 호국사찰이던 사천왕사(四天王寺) 터다. 2006∼2012년 7년에 걸쳐 발굴이 이뤄진 사천왕사에는 금당과 목탑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주춧돌과 귀부(龜趺·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 당간지주(幢竿支柱)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이곳에서 동아시아 최강국 당나라와의 전쟁을 목전에 둔 문무왕이 온 백성의 염원을 담아 부처의 도움을 갈구했다.○ 신라의 미켈란젤로가 남긴 걸작 갑옷을 입고 칼을 쥔 채 악귀를 엉덩이로 깔고 앉은 신장의 위세가 당당하다. 커다란 코에 부리부리한 눈은 언뜻 봐도 위협적이다. 얼굴만 봐도 악귀들이 감히 불법(佛法)을 넘보지 못할 것 같다. 사천왕사에서 출토된 녹유신장벽전(綠釉神將벽塼·녹색 유약을 칠한 신장 조각 벽돌)은 승려 양지가 남긴 수작으로 손꼽힌다. 영묘사 장육삼존상과 천왕상을 제작하기도 한 양지는 ‘신라의 미켈란젤로’로 통한다. 녹유신장벽전은 조각가 이름과 제작 시기(679년)가 모두 확인되는 신라 불교조각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2009년 5월 국립경주박물관 사천왕사 특별전에서 공개한 녹유신장벽전 복원품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일제강점기에 수습된 벽전 조각과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조각이 90여 년 만에 결합돼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일대 사건이었다. 이는 2006년부터 발굴을 맡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윤근일 당시 소장(70·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과 윤형원 학예연구실장(51·현 국립부여박물관장), 최장미 학예연구사(38·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차순철 전문위원(49·현 서라벌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단장)의 노력 덕에 가능했다.○ 목탑 ‘면석 장식’ 역할 밝혀져 “당초(唐草·덩굴) 무늬가 살짝 보인다!” 2006년 10월 12일 사천왕사 서쪽 목탑 터 발굴 현장. 계단 돌이 쓰러져 생긴 틈 사이로 차순철이 조각상을 발견했다. 목탑의 기단 면석을 장식한 당초 무늬 벽전과 녹유신장벽전 조각이었다. 파괴된 계단 돌이 벽전 쪽으로 쓰러진 건 발굴팀엔 행운이었다. 흙더미 속에서 계단돌이 감싸준 덕에 녹유신장벽전이 토압에 휩쓸리지 않고 제 위치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고학에서 유구 조성 당시 유물의 본래 위치를 파악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유물의 성격을 규정짓는 핵심 단서가 될 수 있어서다. 사천왕사 발굴도 예외는 아니었다. 발굴 전 녹유신장벽전은 탑 안에 봉안돼 있었을 거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006년 발굴에서 목탑 기단의 계단 옆에 녹유신장벽전이 서 있던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이것은 탑 면석(面石)이었음이 밝혀지게 됐다. 조사 결과 목탑 기단부 네 면에 걸쳐 24개의 신장벽전이 화려하게 장식돼 있었다.○ 신장상…사천왕 vs 팔부중 논쟁 녹유신장벽전에 조각된 험상궂은 신장들의 정체는 뭘까. 사실 이 부분은 고고미술사학계의 오랜 논쟁거리 중 하나다. 학계 일각에서는 사천왕사의 명칭과 관련지어 신장상은 사천왕(四天王·수미산 중턱 사왕천에서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을 묘사한 걸로 봤다. 그러나 ‘사천왕사 탑 밑에 팔부신장이 새겨져 있다’는 삼국유사 기록을 근거로 팔부중(八部衆·육욕천 등에 머물며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신)으로 보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2008년 7월 3일 사천왕사 동쪽 목탑 터 발굴 성과가 주목된다. 이곳 기단부 계단 옆으로 세 종류의 녹유신장벽전이 나란히 발견됐기 때문이다. 서쪽 목탑에서 나온 녹유신장벽전도 이 세 가지(A, B, C) 유형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더구나 이들의 출토 위치도 조성 당시 그대로여서 신장벽전의 배치 순서도 파악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당시 목탑 기단은 ‘A-B-C-계단-A-B-C’ 순으로 구성됐던 것이다. 이에 따라 녹유신장벽전 3개가 한 세트임을 감안할 때 신장상의 정체는 사천왕이나 팔부중이 아닌 제3의 존재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불교조각 연구자인 임영애 경주대 교수는 “탑의 가장 아래인 기단에는 신격(神格)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신왕상(神王像)이 조각됐을 걸로 본다”며 “그보다 위인 사천왕상은 목탑 안에 봉안됐을 것”이라고 말했다.●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 경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공세가 거센 가운데 올해 상반기 예정됐던 공립미술관의 한중 수교 25주년 기념전시가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최은주 경기도미술관장은 “올 상반기에 공립미술관 5곳이 참여하는 한중 수교 기념전을 개최키로 하고 중국 측과 지난해 초부터 협의했다”며 “그런데 돌연 작년 가을 중국 측이 전시를 같이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22일 밝혔다. 기념전은 중국 문화부 후원을 받아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중국 인민일보가 공동으로 주최할 예정이었다. 경기도미술관을 비롯해 경남도립·제주도립·수원시립·청주시립미술관이 참여할 계획이었다. 경기도미술관은 기념전 대신 한중 양국 작가 15명이 참여하는 ‘뉴 패밀리즘’ 전시를 개최하기로 했다. 앞서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과 관련해 다음달 18일로 예정됐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중국 구이양(貴陽)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취소됐다. 소프라노 조수미와 발레리나 김지영의 공연도 무산된 바 있다. 공연계 일각에서는 미술 분야까지 중국 한한령의 영향을 받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김민희가 베를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홍상수 감독의 최신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22일 “남녀간 불륜으로 인한 고통과 후회, 방황을 다룬 영화 주제가 청소년에 유해하다. 청소년이 관람하지 못하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홍 감독과 불륜설에 휘말린 배우 김민희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이 영화는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른 여배우가 강릉으로 여행을 떠나 고뇌하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김민희는 지난 18일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았다. 영등위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음주, 흡연 장면도 문제 삼았다. 영등위는 “흡연 장면이나 남녀가 술을 마시면서 대화하는 장면이 영화에 자주 나온다”며 “성적 표현이 들어간 대사도 청소년이 보기는 부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홍 감독이 연출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등도 모두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공룡의 시대로 통하는 백악기(1억4500만∼6600만 년 전) 한반도에 캥거루처럼 뒷발로 점프를 하는 소형 포유류가 존재한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백악기 시대 포유류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적은 있지만, 뜀뛰기를 한 흔적이 드러난 건 세계 최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경남 진주시 단독주택 공사 현장에서 중생대 백악기 때 서식한 포유류의 ‘뜀걸음 발자국 화석’을 발견했다”고 21일 밝혔다. 화석이 발견된 곳은 천연기념물 제534호로 지정된 진주 호탄동 익룡,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産地)와 200m가량 떨어져 있다. 연구소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발자국 화석은 총 9쌍의 뒷발자국으로 구성돼 있으며, 모두 뜀뛰기 형태를 갖추고 있다. 지금까지 뜀뛰기 모양의 포유류 발자국 화석은 중생대 쥐라기의 아메기니크누스(Ameghinichnus) 화석과 신생대의 무살티페스(Musaltipes) 화석만 확인됐다. 화석이 발견된 지층은 약 1억100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중생대 백악기 진주층. 이에 따라 화석 이름(학명)은 한국의 진주층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이라는 의미의 ‘코리아살티페스 진주엔시스(Koreasaltipes Jinjuensis)’로 명명됐다. 코리아살티페스 화석은 기존에 확인된 아메기니크누스나 무살티페스 화석과 발가락 형태나 각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발자국 9쌍의 길이는 총 32.1cm로 발자국 한 개 길이는 평균 1cm에 불과하다. 연구소는 평균 보폭(4.1cm) 등을 고려할 때 이 동물의 신장은 약 10cm에 불과했던 걸로 보고 있다. 비슷한 몸집으로 뒷다리가 긴 현재의 캥거루쥐와 유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문화유산과 게임 아이템의 궁합은 어떨까. 요즘 천년고도(千年古都) 경주에 가면 스마트폰을 눈에서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1급 신라 문화재의 총본산인 국립경주박물관이 그렇다. 이곳에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 아이템이 대거 몰려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때아닌 증강현실 게임 소동에 박물관은 비상이 걸렸다. 게임에 빠진 일부 팬들이 폐관시간 이후에도 무단 침입한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포켓몬고 열풍은 고궁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경복궁과 덕수궁도 아이템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두 궁궐의 입장객 수는 예년에 비해 30%나 늘었다. 문화재청은 고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계기가 됐다며 포켓몬고 열풍을 환영하고 있다. 아예 증강현실을 고궁 안내 서비스에 접목하는 방안까지 고민하고 있다. 문화재와 게임 아이템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오길 기대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집트 보물전-이집트 미라 한국에 오다’가 19일 개막 두 달 만에 관람객 20만 명을 돌파했다. 방학을 맞은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세계 4대 문명인 이집트 문화에 대한 대중들의 높은 관심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지난달에만 이집트전 관람 인원은 5만 명에 이어 10만 명을 연이어 경신했다. 이달 초에는 네이버와 전시 생중계를 진행해 실시간 조회수 5만 건을 기록하기도 했다. 20만 번째 입장객에게는 200만 원 상당의 황금열쇠를 증정했다. 박물관은 관람객들을 상대로 뮤지컬·영화티켓을 비롯해 식사권, 특급호텔 숙박권 등 푸짐한 경품을 내건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관람료는 성인 1만3000원, 초등학생 8000원. 4월 9일까지.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나 전화(1688-9891) 안내를 참고하면 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지난해 여름 제주도 곶자왈을 찾았을 때 ‘숨골’을 발견하고 놀란 기억이 있다.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였는데 바위틈 작은 구멍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숲속 에어컨 같은 느낌이랄까. 나중에 알고 보니 숨골은 제주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생태환경을 제공했다. 예부터 숨골은 홍수 때 물이 빠지는 통로인 동시에 가뭄 땐 식수원으로 기능해 왔다. 숨골이 없었다면 농사를 짓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생존 자체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조선시대 자연생태가 인간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당대 사대부 문집 등 다양한 문헌에 기록된 생태계의 흔적을 추적했다. 나는 생태계가 사람들의 삶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제주 숨골에서의 경험을 이 책에서 더 깊이 있게 깨칠 수 있었다. 저자는 생태계 변화는 필연 자원 이용 행태를 바꾸므로 삶의 양태도 변화시킨다고 설명한다. 문익점의 목화씨 도입이 우리나라 농촌 경관을 바꾸고 나아가 왜, 여진과의 무역에서 비교우위로 이어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늘 자연을 존중하고 인위적 요소를 배격한 걸로 알려진 조선시대 이미지도 이 책을 보면 깨진다. 조선은 개국 초 ‘산림천택여민공지(山林川澤與民共之·산림과 하천의 이익을 백성과 함께 누리겠다)’를 내걸고 적극적인 토지 개간을 시도했다. 이는 흐르는 하천과 못을 막아 둑을 쌓고 물을 대는 것으로, 당시로선 엄청난 자연환경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하천 주변 상습 침수지(‘무너미’)를 개간하는 건 미국 서부개척 시대에 맞먹는 위험을 무릅쓴 행위였다. 장마에 따른 홍수와 야생동물의 습격 등에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고려시대 각종 기록을 통해 들여다본 한반도의 생태·인문 환경이 지금과 사뭇 달랐다는 점도 흥미롭다.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은 설화가 많이 남아 있는 데서 엿보이듯,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골짜기와 평지엔 호랑이, 멧돼지 등 맹수가 들끓었다. 이 시대 장거리 여행자는 맹수의 습격을 항시 대비해야 할 정도였다. 개발에 대한 자연의 반격에서 조선시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농지 개간이 적극 이뤄진 15세기 이후 조선에서는 이질 같은 전염병이 급증했다. 국왕이 이질에 걸려 국정을 일시 중단하거나 중신들이 이질을 사유로 사임한 사례가 실록에 자주 등장한다. 벼농사 확대와 이질 발병의 상관관계는 무얼까. 논에 장기간 고인 물이 사람들의 인분으로 오염되자, 수인성 전염병을 일으키는 세균들이 급속히 번식했다는 것이다. 당시 식량 증산으로 늘어난 인구는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동물의 가축화에 따른 조선시대 홍역, 천연두 유행도 비슷한 맥락이다. 인구 증가로 사육하는 소의 마릿수가 늘면서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인 홍역, 천연두 감염도 급증했다. 특히 17세기 후반 중국 청나라의 대규모 군사원정은 미생물의 확산과 변이를 촉진시켜 조선반도의 홍역 대유행에 한몫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 군집의 변화는 인간의 삶을 바꾸었고 역사를 변화시켰다”고 썼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각종 항아리와 그릇받침(기대·器臺) 등 토기 무더기가 유리 진열장에 가득 늘어서 있다. 대구 노변동 무덤들에서 출토된 토기들인데 전면을 채운 압도적인 물량에 우선 놀라게 된다. 2만여 점의 유물을 한꺼번에 풀어놓은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 신안해저선 특별전의 데자뷔처럼 느껴진다. 국립대구박물관의 ‘마침내 찾은 유적, 고대 마을 시지’ 특별전은 선사∼조선시대를 아우르는 대구 시지(時至) 유적을 제대로 조명한 전시로 주목받고 있다. 시지에선 화려한 유물이나 대형 건물터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총 2150만 m²에 걸쳐 마을과 무덤, 가마터 등 55개 유적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왕이나 귀족이 아닌 고대인들의 일상적인 삶과 죽음을 동시에 들여다볼 수 있어 생활사 연구의 핵심 자료로 손꼽힌다. 특별전에서는 1992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시지 발굴에서 건져 올린 4만 점의 유물 중 1만 점을 선보인다. 발굴품의 25%를 내놓는 전례 없는 시도다. 시지는 ‘때 맞춰 도착한다’는 뜻으로, 조선시대 숙박시설인 원(院)이 이곳에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이번 특별전 기획전시실Ⅰ에서는 유적 발견 과정과 더불어 선사∼조선시대 시지 유적을 소개한다. 이 중 시지에서 출토된 ‘여러면 석기’는 대구에서 확인된 첫 구석기다. 원삼국시대 무덤에서 발굴된 칠초철검, 토기 등을 비롯해 고려∼조선시대 기와, 자기, 청동수저도 전시된다. 기획전시실Ⅱ에서는 삼국시대 토기가마에서 나온 토기, 제작도구와 각종 철기 제작도구를 선보인다.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와 철기, 공예품도 눈길을 끈다. 고고학자들은 4∼6세기 시지 유적에 40여 기의 토기가마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5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이곳에서 철기가 만들어졌다. 기획전시실Ⅰ은 8월 6일까지, 기획전시실Ⅱ는 4월 2일까지 열린다. 053-760-8543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팔작지붕에 정면 7칸, 측면 3칸짜리 대형 전각(殿閣) 주변으로 잡초가 무성하다. 1661년 숙종이 태어났고 한때 왕과 왕비의 침소였던 곳이지만, 거의 무릎까지 자란 잡초들로 둘러싸였다. 이 전각에 연결된 행각 기둥으로는 덩굴이 타고 올라가 지붕까지 이어져 있다. 조선말기 왕실의 쇠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인 듯하다. 전각 안에선 궁궐 나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 갑자기 사진기를 들이댄 서양인을 잔뜩 경계했으리라. 국립민속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프리실라 웰본 에비 여사(80)의 기증자료집에는 대한제국 시절 ‘경희궁 회상전(會祥殿)’을 찍은 희귀 사진이 실렸다. 1930년대에 화재로 소실된 회상전의 구한말 사진은 이것이 유일하다. 일제는 한일 강제병합 직후인 1911년 경희궁에 경성중학교를 세우면서 회상전을 임시소학교의 교원 기숙사로 사용했다. 회상전은 1930년대 일본 사찰 사무실로 전용되기도 했다. 고종이 경복궁과 경운궁에 주로 기거함에 따라 경희궁은 상대적으로 방치됐다. 1865∼68년 경복궁 중건 당시 부재를 확보하기 위해 경희궁의 일부 전각을 해체하기도 했다. 민속박물관 관계자는 “사진 속 회상전 주변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건 이런 연유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기증자 에비 여사의 할머니이자 구한말 선교사로 활동한 새디 웰본 여사가 생전 소유했다. 고인은 마찬가지로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된 아서 웰본과 결혼해 후에 미군정청 통역관으로 근무하게 되는 헨리 웰본을 낳는다. 민속박물관은 에비 여사로부터 대한제국 시기 사진과 헨리 웰본이 수집한 자료 등 총 648점을 기증받았다. 한반도와 깊은 인연을 맺은 미국인 3대가 바라본 구한말과 광복 직후 상황이 생생하게 담긴 역사적인 자료인 셈이다. 이 중 1946년 7월 경상남도 미군정청 정보과장 및 공보부장으로 임명된 헨리 웰본의 자료가 눈길을 끈다. 당시 그의 주된 업무는 한국인들의 여론을 수집하고 미군정의 정책을 홍보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그가 작성한 ‘한국인을 위한 한국 쌀’이라는 제목의 문서는 “한국에서 추수한 쌀은 오직 한국인의 밥상에 오를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 국내에서 생산된 쌀을 군정이 해외로 반출하지 않고 있으며, 쌀을 암시장에서 불법으로 유통하지 말 것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미군정의 식량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촉발된 ‘10월 항쟁’ 이후 민심을 서둘러 수습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박물관은 자료집에서 “당시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미곡 수매가가 암시장 가격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며 “일방적으로 농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게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삼국시대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소형 금동불이 적지 않았다. 이런 불상은 바다 건너 일본 열도로 유입돼 한일 불교문화 교류에 크게 기여했다. 반면 불상의 이동성은 출처 파악을 힘들게 함으로써 진위 검증을 어렵게 하는 측면도 있다. 고고, 미술사학자들이 정확한 출토지가 확인된 불상을 특히 중시하는 이유다. 국립대구박물관의 ‘흙에서 찾은 불상’ 테마전에서 선보이는 소조불상(塑造佛像) 4점과 동제불상(銅製佛像) 2점은 출토지가 명확한 문화재들이다. 소조불은 ‘개심사지 오층석탑’(보물 제53호)이 있는 경북 예천군 남본리 유적에서 발굴됐다. 동제불은 경북 영양군 산해리 하천가에서 지역 주민이 발견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불상들이 어떻게 발견됐으며 어떤 방식으로 제작됐는지를 자세히 소개한다. 특히 동제불에 대해 성분분석을 처음 했는데, X선 형광분석(XRF) 결과 구리와 칼슘, 공작석 등이 검출됐다. 박물관은 구리 위에 백토(칼슘)를 바르고 그 위에 다시 채색안료(공작석)를 칠한 것으로 분석했다. 소조불은 점토를 빚은 것으로 깨지기 쉬워 남아 있는 유물이 많지 않다. 동제불은 동을 제련하고 주조하는 기술이 따로 필요하기 때문에 민간에서 흔히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게 박물관의 설명이다. 9월 10일까지. 053-760-8542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요즘 심마니들은 산삼을 발견하면 ‘심봤다!’를 외치기 전에 스마트폰부터 꺼낸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을 켜고 채취한 산삼의 위치를 표시한 뒤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일자별 장소를 분석하면 다음 번 채취 때 어디부터 찾아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또 산삼이나 약초 사진은 인터넷 카페에 올려 온라인 직거래를 시도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강원도 식물민속 약초상과 심마니’(사진) 조사보고서는 전통을 중시하는 심마니와 약초꾼의 삶도 시대에 따라 서서히 바뀔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박물관은 지난해 3∼11월 강원 평창군 진부면 일대 약초꾼과 심마니들을 대상으로 이들의 실제 삶과 문화를 조사한 결과를 보고서에 담았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