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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6년)에서 무능력한 가족이 힘을 합쳐 싸우는 장면,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년)에서 변두리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는 부분을 제일 좋아합니다. ‘썬더볼츠*’에서 아웃사이더 히어로들이 함께 힘을 합치는 모습과 비슷하지 않나요.”30일 국내 개봉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영화 ‘썬더볼츠*’의 한국계 미국인 편집 감독 해리 윤(54)은 같은 날 한국 언론과 진행한 화상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함께 간담회에 참석한 한국계 미국인 미술 감독 그레이스 윤(43)은 “우리 영화엔 주변에 있는, 땅 위를 걷는 히어로가 등장한다”며 “다른 마블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독특한 지점”이라고 했다.‘썬더볼츠*’는 어벤져스가 없는 세상에서 MCU의 새로운 영웅의 탄생기를 그린 작품이다. ‘옐레나’(플로렌스 퓨), ‘윈터 솔저’(서배스천 스탠), ‘레드 가디언’(데이비드 하버) 등 주인공들은 특별한 초능력이 없다. 전통적인 영웅상과 어긋날 정도로 결점이 가득한 일종의 ‘안티 히어로’다.특히 두 사람은 지금까지의 마블 영웅과는 다른 캐릭터를 그리는 데 중점을 뒀다. 그레이스 윤은 “레드 가디언은 ‘다 놔 버린 사람’, ‘포기하고 과거의 향수에 묻혀 사는 사람’으로 표현했다”며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사진이 가득한 공간으로 집을 꾸몄다”고 했다. 해리 윤은 “다른 마블 작품과 달리 상대를 무찌르고 파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치유하는 이야기”라며 “영웅들의 동기를 잘 설명하도록 편집에 신경 썼다”고 했다.‘미나리’(2020년), ‘패스트 라이브즈’(2023년), ‘성난 사람들’(2023년) 등 한국계가 만든 영화와 드라마에 두루 참여한 두 사람은 한국계 제작진의 성공 비결도 언급했다. 해리 윤은 “한국 사람들은 성실하고 참을성이 있다. 그런 기질이 미국 할리우드 현장에서 무척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했다. 그레이스 윤은 “한국인 특유의 따뜻한 정서, 배려의 문화가 작업 현장에서도 큰 장점이 된다. 추운 날 현장에서 해리 윤이 따뜻한 빵을 나눠주는 모습에 다들 감동한 적이 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최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기 시작했어요, 하하. 다들 주변에서 ‘아이유가 최고’라고 하더라고요.”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63·사진)는 29일 서울 종로구 씨네큐브에서 자신의 근황을 이렇게 밝혔다. ‘폭싹 속았수다’는 그가 연출했던 영화 ‘브로커’(2022년)에 출연한 아이유가 주연을 맡았다. 고레에다는 “주변에서 ‘빨리 봐라’고 해서 막 1화를 보기 시작했다”면서 “작품 소감은 다음에 물어봐 달라”며 웃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 ‘아무도 모른다’(2004년)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년), ‘어느 가족’(2018년) 등으로 세계적으로 팬층이 두껍다. 이번 방한은 씨네큐브 개관 25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별전’ 참석을 위해 이뤄졌다. 지난해 2월 영화 ‘괴물’(2023년) 홍보 이후 1년 2개월 만의 방한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오늘 점심으로 간장게장을 먹을 정도로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며 “내 작품 13편을 한 영화관에서 한꺼번에 상영하는 건 제게도 특별한 경험”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제기된 한국 영화 위기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주목했던 젊은 여성 감독들의 후속작이 나오지 않아 아쉽다”며 “한국에선 젊은 창작자들이 영화계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쪽으로 많이 옮겨 간 것 같다”고 진단했다. ‘포스트 박찬욱’이 아직 잘 드러나지 않는 한국과 달리, 하마구치 류스케(47) 등 ‘포스트 고레에다’가 등장한 일본 상황에 대해서는 “일본은 변화가 느린 덕분에 영화계가 OTT에 휩쓸리지 않았다. 극장을 지키려는 힘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답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관훈클럽(총무 김승련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30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를 초청해 관훈토론회를 개최한다. 이 후보가 기조 발언을 하고 언론인으로 구성된 패널들과 토론한다. 토론회는 유튜브 채널 ‘관훈클럽 TV’로 생중계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의 전투 장면은 싸움이라기보다 하나의 춤에 가깝다. 검 끝에서 수묵화처럼 물결이 흐르고, 화염이 피어오르며, 인물들은 화려한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싸운다. 과장된 몸짓과 선명한 색채 안엔 묘하게 절제된 기품이 흐른다. 국립군산대 일어일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감각을 일본 전통 미학인 ‘이키(粋·세련되고 절제된 멋)’로 설명한다. ‘이키’는 에도 시대(1603∼1868) 도시 서민, 특히 상공업자 계층이 만들어낸 미의식이다. 화려하되 가볍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여운을 남긴다. ‘이키’는 유곽과 가부키(歌舞伎) 극장에서 피어났다. 유곽은 진짜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아닌 사랑이 오가는 공간, 가부키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연기가 펼쳐지는 무대였다. 이 비일상의 공간에서 감정과 욕망, 아름다움이 뒤섞였고 그 속에서 ‘이키’는 삶의 태도이자 도시인의 감각으로 자리 잡았다. 1868년 근대화를 추진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전통 감각을 점점 배제했다. ‘이키’는 낡은 정서로 밀려났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일본은 다시 이 감각을 꺼낸다.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선보인 공연이 그 상징이었다.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동작, 단정한 옷매무새, 울림 있는 리듬을 앞세운 개막식 공연은 ‘이키’의 현대적 표현이자 일본이 다시 꺼내든 감성 전략으로 평가받는다. 일본 정부는 최근 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국가 브랜드 전략인 ‘쿨저팬’을 내세워 전통과 첨단을 잇는 브랜딩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모던 이키즘’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탄생하고 있다. 일본 문화 전문가인 저자는 문학과 영화, 패션, 광고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이키’라는 감각의 흐름을 촘촘하게 짚어낸다. 일본이 오래된 미의식을 되살려 정체성을 재정비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에 이르게 된다. 한국은 한류의 다음 단계를 어떤 감각으로 이어갈 것인가. 단순히 ‘잘 만든 콘텐츠’를 넘어, 그 안을 채울 우리만의 미학과 정서에는 무엇이 있을까.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0편. 올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주요 부문에 초청된 한국 영화의 수다. ‘경쟁 부문’, ‘주목할 만한 시선’ 등 이른바 칸의 본류라 불리는 섹션 어디에도 한국 영화는 없었다. 단기 부진으로만 보기 어려운 흐름이다. 2022년 ‘헤어질 결심’(박찬욱), ‘브로커’(고레에다 히로카즈) 이후 3년 연속 경쟁 부문 진출작이 없기 때문이다. 연상호의 ‘얼굴’, 김병우의 ‘전지적 독자 시점’은 출품했지만 초청받지 못했고, 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 나홍진의 ‘호프’ 같은 기대작은 후반 작업 지연으로 출품조차 하지 못했다. 국제영화제에 후보로 오를 만한 ‘새 이름’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건 더 큰 문제다. 실제로 올해 영화계 내부 분위기는 처음부터 조심스러웠다. 한 영화 제작사 대표는 “이제는 칸에 갈 수 있느냐보다 영화가 완성까지 갈 수 있느냐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제작 초기 단계에서 기획이 무산되는 사례가 잦고, 단편만 반복하다 업계를 떠나는 신예도 늘고 있다. 이 같은 정체는 구조적 한계의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거장 감독들이 세계 무대에서 한국 영화의 존재감을 키워온 것은 분명하지만, 그 뒤를 이을 창작자들이 체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은 부족했다. 스타 시스템은 유지됐지만, 산업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몇몇 이름이 빠졌을 때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산업 전반의 체력도 떨어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4년 한국 영화 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2억2667만 명이던 국내 관객 수는 지난해 1억2313만 명으로 줄었다. 다른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극장이 생기를 잃고, 프로젝트는 미뤄지고, 투자도 줄었다”며 “흥행이 흔들리면 실험과 다양성이 가장 먼저 사라진다. 지금 한국 영화는 그 경계에 서 있다”고 말했다. 투자 환경의 변화도 창작의 폭을 좁히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 유통 구조가 극장 기반 제작 시스템을 빠르게 대체했고, 중·저예산 영화는 투자받기 어려워졌다. 특히 실험적이거나 예술성이 강한 영화는 기획 단계에서 탈락하는 일이 잦다. 시나리오보다 투자 설명서를 먼저 써야 하고, 영화보다 숫자를 먼저 말해야 한다. 창작의 자율성은 줄고, 위험을 피하려는 논리가 투자 기준이 되는 흐름이 고착되고 있다. 물론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2021년 폐지됐던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부활을 준비 중이고, 독립영화계는 여전히 좁은 틈을 비집고 가능성을 틔우려 애쓰고 있다. 젊은 감독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 중이다. 다만 이런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생태계를 복원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제 신인 감독을 위한 시스템을 다시 짜야 할 시점이다. 단기 지원이나 일회성 공모만으로는 부족하다. 기획부터 데뷔 이후까지 연결되는 연속적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영화진흥위원회를 중심으로 신인 감독들을 위한 시나리오 개발, 공공 펀딩, 해외 영화제 전략 컨설팅 등 다층적 프로그램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물론 효과는 곧바로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창작의 흐름이 이어질 때, 비로소 한국 영화의 다양성이 회복되고 칸의 가능성도 다시 열릴 수 있다.이호재 문화부 기자 hoho@donga.com}

정유미 감독(50·사진)의 단편 애니메이션 ‘안경(Glasses)’이 올해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단편경쟁 부문에 17일(현지 시간) 공식 초청됐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이 부문에 초청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평가주간은 프랑스비평가협회가 주관하는 칸영화제의 독립 섹션이다. 신인 감독의 새로운 시도를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안경’은 억눌렸던 감정과 기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15분짜리 애니메이션이다. 대사 없이 연필 드로잉으로 작품을 그렸다. 자기 안의 그림자와 마주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정 감독은 2009년 애니메이션 ‘먼지아이’로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 감독주간에 초청된 바 있다. 이번 초청으로 두 번째 칸 입성을 이루게 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960년대 제주를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섬세한 감정선과 진심 어린 서사로 해외에서도 여전히 인기가 뜨겁다. 지극히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남미, 중동 등에서 화제를 모으며 또 한 번 ‘K콘텐츠’의 저력을 증명했다. 이른바 이러한 ‘한류(韓流)’가 가진 파급력의 원천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최근 동아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가진 샘 리처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사회학과 교수(65)는 현지에서 ‘한류 전도사’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주목받고 있는 한류 연구자다. 한국 문화 등을 분석하는 그의 유튜브 강연 영상은 최다 조회 수가 170만 회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국내외에서 관심이 높다. 미 펜실베이니아주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한 리처드 교수는 “얼마 전부터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있다”라며 “K콘텐츠가 지닌 감성의 깊이와 사회적 맥락의 결합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를 배경으로 한 가족 이야기다. 교수는 어떤 계기로 이 드라마를 보게 됐고, 외국인의 시선에서 어떤 점이 인상 깊었나. “한국인 친구들뿐 아니라 외국인 동료들로부터도 추천을 받았다. 이야기가 제주의 특별한 정서를 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단순히 제주에서 찍은 드라마가 아니라, 그곳 사람들의 감정과 언어, 공동체 의식을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최근에는 소소한 일상과 감정에 집중하는 한국 드라마들도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왜 이런 ‘잔잔한 이야기’가 사랑받는다고 보는가. “한국 드라마는 가족, 우정, 사랑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건드린다. 특히 중동이나 아시아 지역에서는 성적인 요소가 적고, 전통적 가치가 중심인 K드라마에 강한 유대감을 느낀다. 서구 콘텐츠와는 결이 다르고, 바로 그 ‘다름’이 강력한 매력 포인트다.” 실제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에서도 인기를 끌며 42개국에서 ‘톱 10’에 들었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한다. 한류가 어떻게 세계 사람들의 감정에 다가가고 있을까. “그건 정말 중요한 지점이다. 요즘 사람들은 단순한 정보보다 감정에 반응한다. K콘텐츠는 슬픔, 희망, 그리움 같은 보편적인 감정을 아주 섬세하게 전달한다. 이건 단순히 스토리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 연기, 편집까지 감정의 결을 세밀하게 다루는 기술에서 나오는 힘이다.” ―한류는 20여 년 동안 세계로 뻗어 나갔다. 그 시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보나. “20년 전과 현재의 K콘텐츠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사한 콘텐츠가 많아졌을 뿐, 그 중심을 이루는 정서적 기반과 메시지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류’의 본질은 무엇인가. 교수님은 여러 자리에서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이 한류를 움직이는 근간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한국 사회의 질서, 안전, 공동체 의식도 K컬처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책임은 단순히 도덕적인 개념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서로를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예를 들어 서구에서는 노숙자 문제나 빈곤이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한국은 그것을 사회 전체의 과제로 인식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기보다, 구성원 모두가 책임을 나눈다는 문화다. 바로 이런 점이 K콘텐츠에도 녹아들어 외국인들이 ‘이건 다르다’고 느끼게 되는 거다.” ―공동체 의식에서 ‘나보다 우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적 사고방식이 외국인들에게는 어떤 점에서 특별하게 다가갈까. “K팝 아이돌을 예로 들어 보겠다. 서구에서는 스타 한 명이 중심이 되지만, K팝 그룹은 전체가 함께 움직이고, 리더조차도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건 곧 ‘나보다 우리’를 우선시하는 문화이자, 집단을 위한 책임감의 표현이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이게 굉장히 색다르면서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면 어떤 게 있을까. “K팝 그룹이 주로 개인이 아닌 팀 전체로 활동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방탄소년단(BTS)이나 블랙핑크 등 K팝 아티스트는 대체로 그룹이 인기를 끈다. 특별한 한 사람이 두드러지기보단 그룹 전체가 주목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리더 문화는 한국 문화의 공동체 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다. 그룹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사회적 책임과 같다.” ―한국 문화가 아시아나 미국, 유럽에선 인기를 끌고 있지만, 아프리카 등에선 아직 덜 알려져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런 지역별 차이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나. “그건 물리적 거리보다도 ‘정서적 연결의 유무’에 더 가까운 문제라고 본다. 아프리카는 문화적 자립도가 높고, 유럽과의 연결이 더 깊다. 반면 한국과는 직접적인 문화적 접점이 적다. 그래서 아프리카보다는 감정 구조나 가치관이 더 비슷한 중동 지역이 현실적인 성장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K드라마가 성적인 요소가 적고, 보다 전통적인 가치관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류가 더 넓은 지역으로 퍼지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특히 어떤 지역에 주목하면 좋을지 궁금하다. “확장만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어디와 더 깊이 연결될 수 있는가’를 봐야 한다. 아프리카 진출은 어렵고 비효율적일 수 있다. 중동은 가치관, 서사, 가족 중심 문화가 한국과 닮았고, 성적 묘사가 적은 콘텐츠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서 기회를 봐야 한다.” ―K드라마와 음악이 확산하는 데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의 힘도 컸다. 어떤 방식으로 기여했을까. “넷플릭스는 단연 핵심이다. 사용자가 K드라마를 한두 편만 봐도, 알고리즘이 관련 콘텐츠를 계속 추천한다. 유튜브는 접근성이 넓고 다양한 한국 문화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보완적이다. 틱톡은 요즘 세대의 K뷰티, 음식, 패션 등을 짧고 강렬하게 전달하면서 빠른 확산에 적합하다.” ―요즘은 인공지능(AI)이 음악이나 영상 같은 콘텐츠 제작에도 쓰이고 있다. AI가 앞으로 한류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기술 발전은 한국 성장의 원동력이다. 한국은 자동차, 가전제품, 컴퓨터, 통신 기술에서 독창적인 발전을 이뤘다. 그래서 AI는 한류의 다음 성장 엔진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수용하고, 실제 응용 능력도 높다. 콘텐츠 큐레이션, 팬 맞춤형 경험, 창작 도구로서 AI는 매우 유용할 것이다. 빠른 성장보다는 ‘점진적 확장’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는데, 그 흐름을 기술이 자연스럽게 이끌 수 있다.” ―앞으로 한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어떤 점을 가장 신경 써야 할까. “가장 큰 위험은 ‘한국적이지 않은 것’을 만들기 시작할 때다. 글로벌 트렌드에 맞춘다고 하면서 한국 특유의 감성과 문법을 버리면 더 이상 한류라 부르기 어렵다. 자기복제를 하더라도 그 안에 반드시 ‘독특한 불꽃(unique flare)’, 즉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감성과 정교함이 담겨 있어야 한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 전 세계의 다른 모든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만들지 말라. 사람들은 한국 문화를 기대하고 한국 문화가 아닌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올해 2월 강의 내용을 담은 책 ‘스위트 스팟’이 국내에도 출간됐다.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나. “한국은 제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나라다. 그동안 강연이나 수업을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 왔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스위트 스팟’은 단순히 개인의 성장만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한국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고민과 감정을 함께 담아 보려 했다. 책을 통해 대화를 더 이어가고 싶었다.” ―한국 사회와 한류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외국 학자로서 한국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 “한국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역동성과 섬세함을 동시에 지닌 나라다. 너무 빠르게 달려온 만큼, 이제는 잠시 속도를 늦추고 자신만의 호흡으로 걸어가도 좋다고 생각한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전통과 감성이 어우러진 한국 콘텐츠는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이제는 더 많이 바꾸기보다, 더 깊이 있게 전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면 한국 문화는 더 오래, 더 넓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다.”샘 리처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사회학과 교수△1960년 미국 오하이오주 출생△1983년 미국 털리도대 학사△1985년 미국 털리도대 석사△1992년 미국 럿거스대 사회학 박사△199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사회학과 교수△2011년~강의 녹화한 유튜브 채널 ‘SCC 119’ 운영. 구독자 38만 명. 누적 조회 수 1억 회 이상△2023년~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석좌교수△2025년 2월 저서 ‘스위트 스팟’ 한국 출간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정양환 문화부장 ray@donga.com}

“전 세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무섭지 않았어요. 그런데 시청자들이 이렇게 무서워할 줄 정말 몰랐죠.” 9일 마지막 7, 8회가 공개된 디즈니플러스 8부작 드라마 ‘하이퍼나이프’에서 주인공 정세옥을 연기한 배우 박은빈(33)은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나 시청자 반응이 다소 의외였다고 했다. 정세옥은 반(反)사회성 인격장애를 지닌 신경외과 의사. 생명을 살리는 칼을 들고도, 필요하다면 서슴없이 살인을 택할 수 있는 냉정한 인물이다. 작품이 공개된 뒤 온라인에선 “박은빈 눈빛이 진짜 돌았다”, “맑고 똘똘한 배우가 이렇게까지 독해질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하지만 박은빈은 담담했다. 그는 “촬영하는 내내 미쳐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하이퍼나이프’는 한때 촉망받던 천재 의사 정세옥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스승 최덕희(설경구)와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메디컬 범죄 스릴러. 수술실에서 벌어지는 복수와 집착을 그렸다. 여기서 세옥은 타인에겐 무례할 정도로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인 인물. 소화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다.“세옥에게 도덕이나 윤리는 중요하지 않아요. 충동은 있는데 공감은 없는 사람이에요.” 박은빈은 2022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햇살 같은 자폐 스펙트럼 변호사 ‘우영우’를 연기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 덕에 팬들에겐 토끼의 방언인 ‘토깽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차갑고 냉혹한 얼굴을 꺼냈다.“이미지를 탈피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저 안 해본 장르, 안 해본 역할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는 대본의 첫 장면을 읽고 이 드라마에 빠져들게 됐다고 했다.“주인공이 의사인데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는 설정 자체가 낯설고 새로웠어요. 첫 장면 지문에 ‘암전(暗轉) 위로 헨델(1685∼1759)의 아리아 ‘나를 울게 하소서’가 흐른다’고 적혀 있었는데, 거기서부터 마음을 빼앗겼어요.” 캐릭터 해석에는 이론적 접근도 더했다. 서강대 심리학과와 신문방송학과를 복수전공한 박은빈은 “심리학을 전공해 인간의 성격 유형이나 병리적 특성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있었다”며 “그걸 바탕으로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더 깊이 분석하려 했다”고 말했다.“세옥을 단순한 사이코패스로 소비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보다 훨씬 입체적인 사람이에요. 자기 합리화가 심하고, 감정적으로 미숙하죠. 아이처럼 생떼를 쓰는 모습도 있어요. 그게 흥미로웠어요.” 정세옥을 추락시키고도 성장하길 바라면서 희생을 자처하는 최덕희와의 관계는 이 드라마의 중심축. 시청자들은 이 관계를 ‘피폐 멜로’라고 부르지만, 그는 다르게 해석했다.“사랑보단 애착이죠. 강한 애착. 그런 감정이 서로를 집어삼키는 게 무섭기도 하고, 동시에 슬프기도 했어요.” 이날 박은빈은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은 대본집을 들고 왔다. 질문마다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기며 해당 장면을 직접 찾아본 뒤 답변했다. 이런 꼼꼼함이 1996년 아동복 모델로 데뷔해 ‘스토브리그’(2019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0년) 등으로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보였다. 올해로 벌써 데뷔 30년 차. 그는 “어릴 땐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의사를 연기하고 있다”며 “배우란 직업은 매번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특별한 일”이라고 했다. 뇌에 미쳐 뇌수술에 집착하는 세옥과는 달리 박은빈은 ‘심장’을 언급했다.“이만큼 제 심장을 뛰게 하는 직업이 없네요. 어렸을 땐 고민도 많았지만 이제는 배우라는 선택이 저한테 맞는 일이었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하하.”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전 세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무섭지 않았어요. 그런데 시청자들이 이렇게 무서워할 줄 정말 몰랐죠.”9일 마지막 7·8회가 공개된 디즈니플러스 8부작 드라마 ‘하이퍼나이프’에서 주인공 정세옥을 연기한 배우 박은빈(33)은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나 시청자 반응이 다소 의외였다고 했다. 정세옥은 반(反)사회성 인격장애를 지닌 신경외과 의사. 생명을 살리는 칼을 들고도, 필요하다면 서슴없이 살인을 택할 수 있는 냉정한 인물이다.작품이 공개된 뒤 온라인에선 “박은빈 눈빛이 진짜 돌았다”, “맑고 똘똘한 배우가 이렇게까지 독해질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하지만 박은빈은 담담했다. 그는 “촬영하는 내내 미쳐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하이퍼나이프’는 한때 촉망받았던 천재 의사 정세옥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스승 최덕희(설경구)와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메디컬 범죄 스릴러. 수술실에서 벌어지는 복수와 집착을 그렸다. 여기서 세옥은 타인에겐 무례할 정도로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인 인물. 소화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다.“세옥에게 도덕이나 윤리는 중요하지 않아요. 충동은 있는데, 공감은 없는 사람이에요.”박은빈은 2022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햇살 같은 자폐 스펙트럼 변호사 ‘우영우’를 연기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 덕에 팬들에겐 토끼의 방언인 ‘토깽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차갑고 냉혹한 얼굴을 꺼냈다.“이미지를 탈피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저 안 해본 장르, 안 해본 역할을 만나고 싶었어요.”그는 대본의 첫 장면을 읽고 이 드라마에 빠져들게 됐다고 했다. “주인공이 의사인데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는 설정 자체가 낯설고 새로웠어요. 첫 장면 지문에 ‘암전(暗轉) 위로 헨델(1685~1759)의 아리아 ‘나를 울게 하소서’가 흐른다’고 적혀 있었는데, 거기서부터 마음을 빼앗겼어요.”캐릭터 해석에는 이론적 접근도 더했다. 서강대 심리학과와 신문방송학과를 복수전공한 박은빈은 “심리학을 전공해 인간의 성격 유형이나 병리적 특성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있었다”며 “그걸 바탕으로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더 깊이 분석하려 했다”고 말했다.“세옥을 단순한 사이코패스로 소비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보다 훨씬 입체적인 사람이에요. 자기 합리화가 심하고, 감정적으로 미숙하죠. 아이처럼 생떼를 쓰는 모습도 있어요. 그게 흥미로웠어요.”정세옥을 추락시키고도 성장하길 바라면서 희생을 자처하는 최덕희와의 관계는 이 드라마의 중심축. 시청자들은 이 관계를 ‘피폐 멜로’라고 부르지만, 그는 다르게 해석했다. “사랑보단 애착이죠. 강한 애착. 그런 감정이 서로를 집어삼키는 게 무섭기도 하고, 동시에 슬프기도 했어요.”이날 박은빈은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은 대본집을 들고 왔다. 질문마다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기며 해당 장면을 직접 찾아본 뒤 답변했다. 이런 꼼꼼함이 1996년 아동복 모델로 데뷔해 ‘스토브리그’(2019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0년) 등으로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보였다.올해로 벌써 데뷔 30년 차. 그는 “어릴 땐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의사를 연기하고 있다”며 “배우란 직업은 매번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특별한 일”이라고 했다. 뇌에 미쳐 뇌수술에 집착하는 세옥과는 달리, 박은빈은 ‘심장’을 언급했다. “이만큼 제 심장을 뛰게 하는 직업이 없네요. 어렸을 땐 고민도 많았지만, 이제는 배우라는 선택이 저한테 맞는 일이었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하하.”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바둑 기사 조훈현, 이창호 사제(師弟)를 그린 영화 ‘승부’가 12일 기준 관객 수 169만 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180만 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배우 유아인의 마약 투약 사건으로 2년 넘게 개봉이 미뤄진 ‘창고 영화’지만 지난달 26일 개봉 이후 입소문을 타고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영화의 배급을 맡은 건 2022년 영화 사업에 진출한 신생 배급사 ‘바이포엠스튜디오’다. ‘승부’뿐만 아니라 지난해 말 늦장 개봉했던 ‘소방관’ 등 팬데믹 이후 개봉이 지연됐거나 배우 리스크 등으로 배급처를 찾지 못해 떠돌던 ‘창고 영화’를 사들여 연이어 성과를 냈다. 영화업계에서는 ‘바이포엠 미스터리’란 말이 나온다.● 빈사 상태 극장가서 리스크 큰 작품으로 성과최근 바이포엠의 행보는 ‘기대작이 말랐다’고 할 정도로 고전 중인 한국 영화계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은 3년 연속 없다. 송혜교 주연 기대작 ‘검은 수녀들’도 167만 명의 관객에 그치며 손익분기점(160만 명)을 겨우 넘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포엠이 지난해 12월 개봉한 ‘소방관’은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385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2020년 촬영을 마쳤지만 팬데믹으로 개봉이 미뤄졌다가 2022년 주연배우 곽도원의 음주운전으로 배급사를 떠돌았던 영화다. 2021년 촬영을 마친 ‘승부’ 역시 이듬해 배우 유아인의 마약 투약 사건이 터지면서 개봉이 보류됐고 넷플릭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등을 떠돌았지만 현재 손익분기점을 앞두고 있다. 바이포엠이 올해 1월 배급한 권상우 주연 영화 ‘히트맨2’도 완성도가 높지 않다는 평가 속에서도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처음부터 ‘중박’ 노린 SNS 마케팅 등 주효영화계에서는 바이포엠의 성공 요인으로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꼽는다. 애초에 대박보다는 관객 200만∼500만 명 사이의 ‘중박’ 영화를 노리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한 전략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체 마케팅 예산의 약 40%를 개봉 이후에 투입했고, 관람객 반응에 따라 SNS 홍보 콘텐츠 방향을 즉각 조정했다. 예를 들어 영화 ‘승부’에서는 이병헌(조훈현 역)의 실제 아내인 배우 이민정이 유튜브 쇼츠 콘텐츠에 출연해 ‘입소문 조력자’ 역할을 했다. 명장면과 명대사를 요약한 짧은 클립은 인스타그램과 틱톡에 확산되며 홍보 역할을 했다. 배우 관련 논란이 부각되지 않도록 하는 데도 공들였다. ‘승부’ 포스터 등은 유아인 없이 이병헌을 전면에 내세워 원톱 마케팅을 펼쳤다. 영화 ‘소방관’ 홍보 때는 배우 곽도원을 지운 대신 관객이 영화를 볼 때마다 일정 금액을 소방관에게 기부하게 되는 ‘119 챌린지’를 앞세웠다. 한상일 바이포엠 영화·드라마사업 이사는 “악재가 있지만 마케팅 전략에 따라 성공할 영화라고 봤다”며 “이렇게 적정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작품군이 다양해져야만 산업 전반이 회복세를 탈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바이럴 마케팅이 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영화 제작사 대표는 “과도한 마케팅은 좋은 영화가 죽고, 나쁜 영화가 살아남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승부’와 ‘소방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줬기 때문에 관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며 “바이포엠이 앞으로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가 진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우리는 보통 건강이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유전, 식습관, 운동, 병원에 가는 습관 같은 것이 건강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미국 미시간대 공공보건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사회가 불공정하면 사람의 마음뿐 아니라 몸도 망가진다고 말한다. 인종, 계급, 성별, 이민자 여부처럼 사회적 위치에 따라 자주 겪는 차별이 사람을 점점 병들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웨더링(Weathering)’이란 개념을 제시한다. 원래는 바위가 바람과 비에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현상을 뜻한다. 저자는 이 말을 ‘차별과 스트레스가 사람의 몸을 서서히 해친다’는 뜻으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나이는 같아도 반복적으로 차별을 받은 흑인 여성은 그렇지 않은 백인 여성보다 몸이 더 빨리 늙는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세포가 손상되고, 질병에 더 쉽게 걸린다. 실제로 고혈압, 당뇨, 심장병 같은 병도 더 일찍 나타난다. 특히 이민자에 대한 차별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건강을 해친다. 특히 단속 대상이 아니더라도 사회가 자신을 위험하게 본다는 느낌만으로도 몸이 나빠진다. 예를 들면 2008년 미 아이오와에서 라틴계 노동자들이 일하던 공장에서 대규모 이민 단속이 있었다. 이후 임신 중이던 라틴계 여성들의 조산율이 주(州) 전역에서 높아졌다. 2001년 9·11 테러 직후에는 미국에 사는 아랍계 여성들의 출산 건강도 급격히 나빠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흑인 여성조차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을 수 있다. 성공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많은 차별과 스트레스를 겪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저자는 “열심히 살수록, 몸이 더 빨리 망가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백인 빈곤층도 예외는 아니라고 말한다. 켄터키주 같은 지역에서는 수입이 낮은 백인 중 절반만이 50세 이전까지 큰 병 없이 살아간다. 마약이나 총기 폭력이 아닌, 차별과 스트레스로 인한 고혈압, 심장병, 암 등이 주요 원인이다. 이들도 단순히 가난해서가 아니라, 사회 안에서 오랫동안 멸시받은 경험을 반복해서 겪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연구자일 뿐 아니라,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차별을 겪어 본 당사자이기도 하다. 동유럽에서 온 유대인 이민자의 딸로 자라며, 가족이 겪은 차별과 질병의 연관성을 몸으로 체험하며 성장했다. 자신이 직접 겪은 차별에 대해 담담하게 털어놓는 저자의 솔직함은 이 책의 주장에 공감과 설득력을 더해준다. 물론 책에서 제안하는 해결책은 다소 추상적이다.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의 삶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식의 주장은 제도 변화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건강이 단지 개인의 생활 습관이나 유전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주제 자체는 무척 흥미롭다. 한국에서도 청년 빈곤, 이주 노동자 차별, 지역 간 건강 격차 같은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우리는 보통 건강이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유전, 식습관, 운동, 병원에 가는 습관 같은 것이 건강을 좌우한다고 믿는다.하지만 미국 미시간대 공공보건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사회가 불공정하면 사람의 마음뿐 아니라 몸도 망가진다고 말한다. 인종, 계급, 성별, 이민자 여부처럼 사회적 위치에 따라 자주 겪는 차별이 사람을 점점 병들게 만든다는 주장이다.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웨더링(Weathering)’이란 개념을 제시한다. 원래는 바위가 바람과 비에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현상을 뜻한다. 저자는 이 말을 ‘차별과 스트레스가 사람의 몸을 서서히 해친다’는 뜻으로 사용했다.예를 들어 나이는 같아도 반복적으로 차별을 받은 흑인 여성은 그렇지 않은 백인 여성보다 몸이 더 빨리 늙는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세포가 손상되고, 질병에 더 쉽게 걸린다. 실제로 고혈압, 당뇨, 심장병 같은 병도 더 일찍 나타난다.특히 이민자에 대한 차별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건강을 해친다. 특히 단속 대상이 아니더라도 사회가 자신을 위험하게 본다는 느낌만으로도 몸이 나빠진다.예를 들면 2008년 미 아이오와에서 라틴계 노동자들이 일하던 공장에서 대규모 이민 단속이 있었다. 이후 임신 중이던 라틴계 여성들의 조산율이 주(州) 전역에서 높아졌다. 2001년 9·11 테러 직후에는 미국에 사는 아랍계 여성들의 출산 건강도 급격히 나빠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흑인 여성조차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을 수 있다. 성공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많은 차별과 스트레스를 겪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저자는 “열심히 살수록, 몸이 더 빨리 망가진다”고 말한다.저자는 백인 빈곤층도 예외는 아니라고 말한다. 켄터키주 같은 지역에서는 수입이 낮은 백인 중 절반만이 50세 이전까지 큰 병 없이 살아간다. 마약이나 총기 폭력이 아닌, 차별과 스트레스로 인한 고혈압, 심장병, 암 등이 주요 원인이다. 이들도 단순히 가난해서가 아니라, 사회 안에서 오랫동안 멸시받은 경험을 반복해서 겪었기 때문이다.저자는 연구자일 뿐 아니라,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차별을 겪어 본 당사자이기도 하다. 동유럽에서 온 유대인 이민자의 딸로 자라며, 가족이 겪은 차별과 질병의 연관성을 몸으로 체험하며 성장했다. 자신이 직접 겪은 차별에 대해 담담하게 털어놓는 저자의 솔직함은 이 책의 주장에 공감과 설득력을 더해준다.물론 책에서 제안하는 해결책은 다소 추상적이다.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의 삶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식의 주장은 제도 변화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기가 어렵다.그럼에도 건강이 단지 개인의 생활 습관이나 유전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주제 자체는 무척 흥미롭다. 한국에서도 청년 빈곤, 이주 노동자 차별, 지역 간 건강 격차 같은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봉준호 감독(55)의 ‘자막이라는 1인치 벽만 넘으면 더 많은 훌륭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을 굳게 믿어요.”미국 로스앤젤레스(LA) 아카데미영화박물관의 에이미 호마 관장은 10일 동아일보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이 한마디를 유독 강조했다. 봉 감독이 2020년 영화 ‘기생충’(2019년)으로 제77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남겼던 소감이다. 호마 관장은 “미 영화 팬들에게 한국 감독의 전시를 처음으로 선보이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 적절한 표현”이라고 짚었다.“봉 감독은 대담한 이야기와 장르의 융합, 독창적인 서사 방식으로 세계 영화계에서 강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어요. 관람객 모두가 그의 창작 방식과 영감의 원천을 흥미롭게 배우고 가기를 바랍니다. 그의 작품을 잘 모르는 관람객이라도 전시를 통해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커지게 될 겁니다.”아카데미영화박물관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재단이 2021년 로스앤젤레스에 설립한 미 최대 규모의 영화 전문 박물관이다. ‘디렉터스 인스피레이션(Director’s Inspiration·감독의 영감)’을 주제로 한 시리즈를 진행 중인데, 스파이크 리(미국)와 아녜스 바르다(프랑스)에 이어 세 번째 주인공으로 봉 감독을 택했다.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개막한 전시 ‘디렉터스 인스피레이션: 봉준호’는 2027년 1월 10일까지 이어진다.박물관 측은 봉 감독의 서울 작업실을 직접 방문한 뒤 전시 설계를 시작했다고 한다. 박물관 수석 큐레이터인 미셸 푸에츠는 “방문 당시 봉 감독의 작업실은 벽 전체가 스토리보드로 가득했고, 테이블엔 촬영 당시 메모와 노트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며 “그 공간 자체가 창작의 기록이자 구조물이었다. 그걸 전시장에 고스란히 옮겨오려 했다”고 회고했다.전시는 박물관 2층 전체를 활용해 구성됐다. 중심부에는 봉 감독이 실제 작업에서 사용했고, 영화 ‘설국열차’(2013년) 마지막 장면에도 나왔던 책상이 놓여 있다. 벽면엔 수십 장의 스토리보드가 걸렸고, 책장에는 각 영화와 관련된 소장품과 메모가 전시됐다.푸에츠 큐레이터는 “봉 감독은 촬영 전 단계에서 머릿속으로 영화를 완성해 둔다. 그의 스토리보드는 단순한 참고자료가 아니라 배우와 스태프가 함께 공유하는 시각적 대본”이라고 설명했다.전시엔 봉 감독의 창작 원천을 보여주는 기록도 다수 포함돼 있다. 연세대 영화 동아리 활동 당시 작성한 문서, 초기 습작 노트, ‘기생충’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직접 찍은 사진 등이다. 푸에츠 큐레이터는 “배우 조여정, 이선균이 함께 웃는 장면이 담긴 사진은 연출가가 아닌 동료이자 기록자로서의 봉 감독을 보여준다”며 “영화라는 공동 작업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다”고 했다.전시장 벽엔 봉 감독이 창작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인생 영화 20여 편의 포스터도 걸려 있다. ‘택시 드라이버’(1976년), ‘양들의 침묵’(1991년) 등이다. 봉 감독의 영화에 등장했던 상징적인 소품들도 함께 전시됐다. 예를 들어 ‘기생충’에서 계급적 욕망과 불운의 상징으로 쓰였던 ‘수석(壽石)’이나 ‘옥자’(2017년)에 나온 슈퍼 돼지 옥자의 머리 모형 등이다.푸에츠 큐레이터는 “‘살인의 추억’(2003년) 대본 옆 메모, ‘플란다스의 개’(2000년) 촬영 당시 작성한 콘티를 보면, 그는 끊임없이 영화를 공부하는 감독이란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고도 했다.이번 전시는 CJ ENM이 아카데미영화박물관과 한국 영화의 세계화를 위해 올 3월 체결한 3년 파트너십의 첫 결과물이다. CJ ENM은 올 1월 창립 30주년을 맞아 독보적인 성과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비저너리(Visionary)’ 작품으로 봉 감독의 ‘설국열차’, ‘기생충’을 선정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봉준호 감독(55)의 ‘자막이라는 1인치 벽만 넘으면 더 많은 훌륭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을 굳게 믿어요.”미국 로스앤젤레스(LA) 아카데미영화박물관의 에이미 홈마 관장은 10일 동아일보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이 한 마디를 유독 강조했다. 봉 감독이 2020년 영화 ‘기생충’(2019년)으로 제77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남겼던 소감이다. 홈마 관장은 “미 영화 팬들에게 한국 감독의 전시를 처음으로 선보이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데 적절한 표현”이라고 짚었다.“봉 감독은 대담한 이야기와 장르의 융합, 독창적인 서사 방식으로 세계 영화계에서 강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어요. 관람객 모두가 그의 창작 방식과 영감의 원천을 흥미롭게 배우고 가기를 바랍니다. 그의 작품을 잘 모르는 관람객이라도 전시를 통해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커지게 될 겁니다.”아카데미영화박물관은 아카데미시상식을 주관하는 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재단이 2021년 LA에 설립한 미 최대 규모의 영화 전문 박물관이다. ‘디렉터스 인스퍼레이션(Director’s Inspiration·감독의 영감)’을 주제로 한 시리즈를 진행 중인데, 스파이크 리(미국)와 아녜스 바르다(프랑스)에 이어 세 번째 주인공으로 봉 감독을 택했다. 지난 달 23일(현지 시간) 개막한 전시 ‘디렉터스 인스퍼레이션: 봉준호’는 2027년 1월 10일까지 이어진다.박물관 측은 봉 감독의 서울 작업실을 직접 방문한 뒤 전시 설계를 시작했다고 한다. 박물관 수석 큐레이터인 미셸 푸에츠는 “방문 당시 봉 감독의 작업실은 벽 전체가 스토리보드로 가득했고, 테이블엔 촬영 당시 메모와 노트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며 “그 공간 자체가 창작의 기록이자 구조물이었다. 그걸 전시장에 고스란히 옮겨오려 했다”고 회고했다.전시는 박물관 2층 전체를 활용해 구성됐다. 중심부에는 봉 감독이 실제 작업에서 사용했고, 영화 ‘설국열차’(2013년) 마지막 장면에도 나왔던 책상이 놓여있다. 벽면엔 수십 장의 스토리보드가 걸렸고, 책장에는 각 영화와 관련된 소장품과 메모가 전시됐다. 푸에츠 큐레이터는 “봉 감독은 촬영 전 단계에서 머릿속으로 영화를 완성해 둔다. 그의 스토리보드는 단순한 참고자료가 아니라, 배우와 스태프가 함께 공유하는 시각적 대본”이라고 설명했다.전시엔 봉 감독의 창작 원천을 보여주는 기록도 다수 포함돼 있다. 연세대 영화 동아리 활동 당시 작성한 문서, 초기 습작 노트, ‘기생충’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직접 찍은 사진 등이다. 푸에츠 큐레이터는 “배우 조여정, 이선균이 함께 웃는 장면이 담긴 사진은 연출가가 아닌 동료이자 기록자로서의 봉 감독을 보여준다”며 “영화라는 공동작업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다”고 했다.전시장 벽엔 봉 감독이 창작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인생 영화 20여 편의 포스터도 걸려 있다. ‘택시 드라이버’(1976년), ‘양들의 침묵’(1991년) 등이다. 봉 감독의 영화에 등장했던 상징적인 소품들도 함께 전시됐다. 예를 들어 ‘기생충’에서 계급적 욕망과 불운의 상징으로 쓰였던 ‘수석’(壽石)이나 ‘옥자’(2017년)에 나온 슈퍼 돼지 옥자의 머리 모형 등이다.푸에츠 큐레이터는 “‘살인의 추억’(2003년) 대본 옆 메모, ‘플란다스의 개’(2000년) 촬영 당시 작성한 콘티를 보면, 그는 끊임없이 영화를 공부하는 감독이란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고도 했다.이번 전시는 CJ ENM이 아카데미영화박물관과 한국 영화의 세계화를 위해 올 3월 체결한 3년 파트너십의 첫 결과물이다. CJ ENM은 올 1월 창립 30주년을 맞아 독보적인 성과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비저너리(Visionary)’ 작품으로 봉 감독의 ‘설국열차’, ‘기생충’을 선정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 특별한 일을 해내는 ‘언더도그(Underdog·이길 가능성이 작은 선수)’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사랑받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년)와도 결이 비슷하죠.” 미국 배우 라미 말렉(44)은 9일 국내 언론과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신작 ‘아마추어’에서 연기한 주인공 찰리 헬러의 특징을 ‘언더도그’라고 설명했다. 그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영국 록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1946∼1991)를 연기해 2019년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말렉은 영화 ‘아마추어’에선 총 한 발 못 쏘지만, 부인이 숨진 뒤 복수를 꿈꾸는 미 중앙정보국(CIA) 암호 해독가인 헬러로 열연했다. 그는 “헬러와 머큐리는 처음엔 과소평가되지만 나중엔 영웅처럼 변한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있다”며 “전형성을 깬 인물을 통해 관객들이 스릴을 넘어서 감정적 울림까지 경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9일 개봉한 영화는 현장 경험이 전무한 헬러가 아내를 살해한 테러 집단에 복수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헬러가 복수와 정의를 위해 선택한 무기는 ‘총’이 아니라 ‘두뇌’다. 해킹과 감시 회피 기술로 무장한 만큼, 몸싸움을 벌이는 전형적 액션 영화나 치열한 수싸움이 난무하는 스파이 영화와 다르다. ‘아마추어’는 1981년 발표된 미국 작가 로버트 리텔의 동명 스파이 소설을 현대적으로 각색했다. 시간적 배경은 냉전 시대에서 현대로, 공간적 배경은 스파이들의 주요 활동 거점이던 체코 프라하에서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바꿨다. 휴대전화와 여러 감시 기술도 추가했다. 주인공의 심리 변화도 눈여겨볼 점이다. 말렉은 “주인공은 머리도 좋지만, 감정적으로도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고 취약성도 보인다”며 “사랑하는 사람(아내)을 잃으면서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고 완전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다”고 했다. 말렉은 인터뷰 내내 한국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한국이 내놓은 훌륭한 영화들을 통해 많은 걸 배웠습니다. 훌륭한 나라의 관객이 제 영화(보헤미안 랩소디)를 사랑해 줬다는 게 행복합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21사태 당시 북한 무장공비로 남파됐다가 생포된 뒤 귀순해 목회자의 길을 걸었던 김신조 목사가 9일 생을 마감했다. 향년 83세.194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김 목사는 1968년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목적으로 남한에 침투했다가 유일하게 생포돼 귀순했다. 이후 한국에 정착해 안보 강연과 목회 활동에 해왔다. 이른바 ‘1·21사태’는 1968년 1월 21일 북한이 무장공비 31명을 서울에 침투시켜 청와대를 기습하려 했던 사건이다. 당시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124군 부대 소위였던 김 목사는 무장한 채 서울 세검정 고개까지 잠입했지만, 우리 군경과의 교전 끝에 홀로 살아남았다. 당시 총격전에서 최규식 종로경찰서장과 정종수 경사가 순직했다. 김 목사는 투항 직후 “왜 내려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라고 답했다. 김 목사는 효자동 방첩대에서 2년여 동안 조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내부 정보를 제공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 석방됐다. 사위 김근환 씨(57)는 “아버님은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자 노력했고 안보 교육에 매진했다”며 “한국의 방위 체제 발전에 이바지한 것을 자랑스러워하셨다”고 말했다. 1·21사태로 육군 병 복무 기간이 2년 6개월에서 3년으로 늘었다. 같은 해 11월부터는 전국 성인을 대상으로 주민등록증이 발급되기 시작했다.김 목사는 귀순 3년째인 1970년 자신을 위로해주던 아내 최정화 씨(80)와 결혼했고, 최 씨의 권유로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침례신학대 신학을 전공한 후 1997년 1월 22일 목사안수식을 갖고 정식 목사가 됐다. 유족에 따르면 김 목사는 전국 4000곳이 넘는 교회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다. 김 목사는 폐렴과 폐동맥 색전증을 앓다 병세가 악화돼 별세했다. 빈소는 10일 서울 영등포구 교원예움 서서울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이후 청와대를 찾는 관람객 수가 늘었다.청와대 재단에 따르면 탄핵 선고가 이뤄진 이달 4일 직후인 5일과 6일 이틀 동안 청와대를 찾은 관람객은 총 1만6038명이다. 5일에는 5324명, 6일에는 1만714명이 입장했다.이는 직전 주말이었던 지난달 29일(6164명), 30일(4622명)의 총 1만786명과 비교해 5252명이 늘어난 수치다. 시위가 중단된 영향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의 청와대 복귀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청와대를 다시 찾는 시민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윤 전 대통령은 2022년 5월 10일 취임 직후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으로 이전했고, 청와대는 같은 날 일반에 개방됐다. 하지만 이달 4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 대통령 집무실의 위치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다시 불거졌다. 현재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세종시, 청와대 등 여러 대안이 거론되고 있다.이에 따라 청와대가 다시 대통령 집무 공간으로 전환되기 전에 관람하려는 발걸음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청와대는 개방 2년 10개월 만인 지난달 누적 관람객 700만 명을 돌파하며 복합 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또 베토벤?’이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운명 교향곡’, ‘월광 소나타’, ‘합창’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베토벤은 친숙한 이름이니까.하지만 영국 클래식 음악 평론가인 저자는 “지금이야말로 베토벤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상이 멈췄던 시기에도 세계 곳곳에서 베토벤의 음악은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고립과 불안 속에서도 사람들을 잇는 힘이 음악에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베토벤의 음악을 “몽블랑산처럼 언제나 거기 있는 존재”라고 비유한다.이 책은 베토벤의 음악을 중심으로 그의 삶과 시대, 그리고 작품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대중서다. 전기나 이론서처럼 딱딱하지 않다. 3∼5쪽 분량의 짧은 글들로 구성돼 있어 어느 장을 펼치더라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저자는 “베토벤은 한 곡 안에서도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며 곡에 얽힌 역사와 주변 인물, 작곡 당시의 상황을 함께 소개해 베토벤 음악을 시대와 인간의 맥락 속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직관적이고 유머러스한 비유가 많다. 예컨대 교향곡 3번 ‘영웅’의 도입부를 두고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는 몽둥이처럼,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은 대포처럼 지휘한다고 설명하는 식이다.연주자에 대한 평가도 이 책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1915∼1997), 에밀 길렐스(1916∼1985) 등 대표적인 음악가들이 베토벤의 작품들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비교한다.베토벤의 인간적인 면모도 조명한다. 청력을 잃은 뒤 쓴 유서,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 매일 아침 빠짐없이 마셨던 진한 커피까지. 위대한 작곡가이기 이전 인간 베토벤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입문자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책에 소개된 베토벤의 음악을 함께 들으며 읽는다면 더 흥미로운 감상이 가능할 듯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세월이 흘러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어느새 ‘싱글맘’이 됐다. 그런데도 브리짓 존스(러네이 젤위거)는 여전히 파자마 차림으로 아침부터 술을 마신다. 남성과의 어색한 데이트를 하다가 연거푸 실수를 저지른다. 16일 국내 개봉하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는 1편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년) 이후 관객과 함께 나이 들어 온 브리짓의 네 번째 이야기다. 브리짓의 임신을 그린 3편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2016년) 이후 9년 만의 신작이다. 철없던 30대 싱글녀는 이제 50대 워킹맘이 됐다. ‘혼자 먹는 저녁’ 대신 ‘아이들 도시락’을 고민한다. 새로 나온 4편의 시작은 ‘상실’이다. 브리짓은 마크 다아시(콜린 퍼스)와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평온한 일상을 누리는 듯했다. 하지만 남편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브리짓은 홀로 두 아이를 키운다. 방송국 PD로 복직했지만, 일상은 여전히 엉망진창이다. 아침은 술로 버티고, 집 안은 장난감과 서류로 난장판이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애써 눌러 담고, 아이들 앞에선 괜찮은 척 웃는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히 흔들림이 찾아온다. 데이팅 앱에서 젊고 잘생긴 연하의 생물학자 록스터(리오 우돌)를 만나게 되는 한편, 아들의 과학교사 월리커(추이텔 에지오포)와도 뜻밖의 감정이 싹튼다. 브리짓은 누군가와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까. 브리짓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허당미’는 지금도 건재하다. 젊어 보이려 입술에 필러를 맞았다가 부작용으로 입술만 툭 튀어나온 채 방송국을 돌아다니고, ‘남친’들과의 데이트 중엔 실수 연발이다. 학부모로 찾아간 학교에선 나이 든 엄마 취급도 받는다. ‘몸짱’ 연하남의 근육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등 브리짓 특유의 주책스러운 개그는 웃음을 자아내는 저력이 여전하다. 하지만 깊어진 주름만큼 농후해진 농담들 속에 담긴 진심은 전편들과 다름없이 빛난다. 이번 영화에는 마크 다아시 역의 퍼스가 등장하지 않는 건 무척 아쉽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팬들이라면 반가워할 얼굴이 다시 나타난다. 전 남친 다니엘 클리버(휴 그랜트)다. 기대대로 ‘간질간질한’ 농담을 던지며 주변을 휘젓고 다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그랜트가 다시 돌아와 대사 하나하나에 특유의 재기발랄함을 쏟아낸다”며 “그가 등장할 때마다 화면에 생기가 돈다”고 극찬했다. 이젠 브리짓과 젤위거(55)는 ‘이음동의어’에 가깝지만, 그의 외모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볼은 야위었고, 표정은 차분해졌다. 젊음 대신 무게를 얻은 얼굴로 그는 ‘다시 살아보려는 여성’을 더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젤위거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마크의 죽음을 듣고 진심으로 울었다”며 “퍼스와 함께했던 시간이 한순간 끝나는 것 같아서 감정이 복잡했다”고 털어놓았다. 연애와 이별, 결혼, 출산, 상실…. 브리짓은 나이 들고, 살아내고, 실수하면서 성장했다. 관객 역시 함께 나이 들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라이즈’ 3부작이 우리의 주름살과 함께 사랑의 변화를 그렸다면, ‘브리짓 존스’ 4부작은 한 여성의 덕지덕지한 삶을 모두가 함께 유쾌하게 감싸 안는 듯하다. 미국 영화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의 평론가 평가 신선도 지수는 89점. 미 뉴욕타임스(NYT)는 “전작의 활기를 되살린 귀환”이라고 호평했다. 젤위거는 NYT 인터뷰에서 “브리짓의 실수와 불완전함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본다”라며 “그래서 브리짓이란 캐릭터는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다”고 자평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세월이 흘러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어느새 ‘싱글맘’이 됐다. 그런데도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는 여전히 파자마 차림으로 아침부터 술을 마신다. 남성과의 어색한 데이트를 하다가 연거푸 실수를 저지른다. 16일 국내 개봉하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는 1편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년) 이후 관객과 함께 나이 들어온 브리짓의 네 번째 이야기다. 브리짓의 임신을 그린 3편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2016년) 이후 9년 만의 신작이다. 철없던 30대 싱글녀는 이제 50대 워킹맘이 됐다. ‘혼자 먹는 저녁’ 대신 ‘아이들 도시락’을 고민한다.새로 나온 4편의 시작은 ‘상실’이다. 브리짓은 마크 다아시(콜린 퍼스)와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평온한 일상을 누리는 듯했다. 하지만 남편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브리짓은 홀로 두 아이를 키운다. 방송국 PD로 복직했지만, 일상은 여전히 엉망진창이다. 아침은 술로 버티고, 집안엔 장난감과 서류로 난장판이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애써 눌러 담고, 아이들 앞에선 괜찮은 척 웃는다.그러던 어느 날, 조용히 흔들림이 찾아온다. 데이팅 앱에서 젊고 잘생긴 연하의 생물학자 록스터(레오 우달)를 만나게 되는 한편, 아들의 과학교사 월리커(치웨텔 에지오포)와도 뜻밖의 감정이 싹튼다. 브리짓은 누군가와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까.브리짓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허당미’는 지금도 건재하다. 젊어 보이려 입술에 필러를 맞았다가 부작용으로 입술만 툭 튀어나온 채 방송국을 돌아다니고, ‘남친’들과의 데이트 중엔 실수 연발이다. 학부모로 찾아간 학교에선 나이든 엄마 취급도 받는다. ‘몸짱’ 연하남의 근육에 어쩔 줄 몰라하는 등 브리짓 특유의 주책스러운 개그는 웃음을 자아내는 저력이 여전하다. 하지만 깊어진 주름만큼 농후해진 농담들 속에 담긴 진심은 전편들과 다름없이 빛난다. 이번 영화에는 마크 다아시 역의 콜린 퍼스가 등장하지 않는 건 무척 아쉽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팬들이라면 반가워할 얼굴이 다시 나타난다. 전 남친 다니엘 클리버(휴 그랜트)다. 기대대로 ‘간질간질한’ 농담을 던지며 주변을 휘젓고 다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그랜트가 다시 돌아와 대사 하나하나에 특유의 재기발랄함을 쏟아낸다”며 “그가 등장할 때마다 화면에 생기가 돈다”고 극찬했다.이젠 브리짓와 젤위거(55)는 ‘이음동의어’에 가깝지만, 그의 외모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볼은 야위었고, 표정은 차분해졌다. 젊음 대신 무게를 얻은 얼굴로 그는 ‘다시 살아보려는 여성’을 더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젤위거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마크의 죽음을 듣고 진심으로 울었다”며 “퍼스와 함께했던 시간이 한순간 끝나는 것 같아서 감정이 복잡했다”고 털어놓았다. 연애와 이별, 결혼, 출산, 상실…. 브리짓은 나이 들고, 살아내고, 실수하면서 성장했다. 관객 역시 함께 나이 들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라이즈’ 3부작이 우리의 주름살과 함께 사랑의 변화를 그렸다면, ‘브리짓 존스’ 4부작은 한 여성의 덕지덕지한 삶을 모두가 함께 유쾌하게 감싸 안는 듯하다.미국 영화평점사이트 로튼토마토의 평론가 평가 신선도 지수는 89점. 미 뉴욕타임스(NYT)는 “전작의 활기를 되살린 귀환”이라고 호평했다. 젤위거는 NYT 인터뷰에서 “브리짓의 실수와 불완전함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본다”라며 “그래서 브리짓이란 캐릭터는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다”고 자평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