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

손효림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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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효림 기자입니다.

arysso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29~2025-12-29
문화 일반52%
문학/출판23%
연극13%
교육3%
무용3%
산업3%
학술3%
  • 3040 女작가 7명 ‘페미니즘 의기투합’

    10년간 연애하며 모든 것을 의존하게 만든 남자 친구에게 이별을 선언하는 여성(‘현남 오빠에게’), 여자 아이들을 섹스 상대로만 여기는 중학생 아들과 초경을 맞은 딸을 보며 혼란스러워하는 중년 여성(‘경년’)….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다산책방)가 출간됐다.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없는 사람’의 최정화를 비롯해 김이설 최은영 손보미 구병모 김성중 등 30, 40대 여성작가 7명이 의기투합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13일 열린 간담회에는 조남주(39), 최정화(38), 김이설 작가(42)가 참석했다. 표제작 ‘현남…’을 쓴 조 작가는 “방송작가 시절, 결혼 초기부터 딸이 중학생이 될 때까지 가정 폭력에 시달린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 있었는데 왜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지를 고민하다 작품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 속 여성은 대학 1학년 때부터 사귄 현남 오빠가 수강 과목과 식당 선택은 물론이고 이사할 집 구하기 등 모든 것을 해준다. 사서라는 직업까지 현남 오빠가 정해주자, 그에게서 벗어나기로 마음먹는다. 조 작가는 “결별을 선언하는 마지막 문장을 먼저 쓴 후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경년’을 쓴 김이설 작가는 “나이 들어가는 여성 세대에게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하는 많은 여성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모든 것을 제자리에’는 물건이든 사람이든 말끔해야 한다는 강박을 지닌 여성이 등장한다. 최정화 작가는 “여성이 스스로에게 가하는 압박이나 모순을 냉철하게 들여다보길 제안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말했다. ‘82년생 김지영’이 화제가 되고, 페미니즘 관련 책이 꾸준히 나오는 데 대해 작가들은 반가움을 나타냈다. 조 작가는 “성폭력 문제를 비롯해 일상에서 느끼는 부당함에 대해 여성들이 말하기 시작한 것이 희망적이다. 이런 목소리가 계속 나올 때 조금씩 진전이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글을 쓰며 페미니즘은 남녀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덧붙였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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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작지만 묵직한 책

    기자는 피아노 건반 도에서 그 다음 도까지 간신히 짚는다. 한마디로 손이 작다. 그런데 소설책 8권이 한 손에 가뿐하게 들렸다. 아멜리 노통브의 ‘오후 네 시’, 앙투안 로랭의 ‘프랑스 대통령의 모자’ 등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독자들이 들고 다니기 편하게 출판사가 기획한 ‘블루컬렉션’ 시리즈다. 가격은 1만 원으로 동일하다. 백팩을 메지 않을 때는 어떤 책을 핸드백에 넣을지 고민하는데 이 시리즈를 보니 반가웠다. 동시집 ‘나는 꽃이다’에 실린 작품들은 4행을 넘지 않는다. ‘울고 나면 괜찮은 거지?’(‘먹구름’), ‘개미를 따라가다 그만…’(‘지각’)처럼 1행으로 된 시도 적지 않다. 전병호 최명란 최수진 추필숙 시인이 ‘동씨’팀을 만들어 출간했다. 동씨는 어린이들이 쓰는 말이 짧다는 데 착안해 씨앗같이 짧은 동시를 쓴다는 의미를 담았다. 작고 가볍고 짧지만,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고민의 무게는 묵직하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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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단주의가 겁내는건 다양성… 문학이 이런 역할 할수있어”

    “극단주의자들이 두려워하는 건 경계를 가로지르는 창의성입니다.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북한의 위협과 독주에 맞서 한국 작가들은 비판적 사고를 유지하며 진실을 담아내는 글쓰기를 계속해야 합니다.” 198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나이지리아 작가 월레 소잉카(83)는 4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 참석해 이렇게 강조했다. 이날 소잉카 작가는 ‘해돋이가 당신의 등불을 끄게 하라’란 주제로 고은 시인(84)과 대담을 나눴다. 나흘간 열린 이 페스티벌은 두 작가의 만남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소잉카 작가는 “한국에 간다고 하니 주변에서 ‘남북한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데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며 “한반도 전역에 전쟁의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이 시점에 아시아 문학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시의적절하고 중요해 참석했다”고 말했다. 세계 곳곳에서 테러가 발생하고 국가 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진단했다. 소잉카 작가는 “내 종교만 옳고, 내가 아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믿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극단주의 성향이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건 창의적이고 다양성을 지닌 행위이고, 이런 점에서 아시아 문학은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 시인은 “유럽 문화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공통점이 많은 반면 아시아는 종교, 인종, 언어는 물론 지형까지 매우 다양하다”며 “이런 특징을 담은 아시아 문학이 본격적으로 발화한다면 또 다른 가능성의 지평이 열릴 것이다”고 했다. 두 작가는 급진주의 세력들은 자신들이 정한 물리적, 정신적 경계선 안에서만 머물기를 원한다며 그 경계를 뚫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잉카 작가는 “나이지리아의 테러단체인 ‘보코하람’은 직역하면 ‘책은 죄악이다’란 뜻이다. 이들이 학교 수업, 언어를 통한 교류를 반대하는 것은 창의성이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문학은 경계선 너머에 풍요로움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것. 고 시인은 “경계를 넘을 때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진다. 이는 세계가 생동하고 지속하는 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대담에 앞서 ‘아프리카가 아시아에게’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기조 강연에서도 소잉카 작가는 “치명적인 대결의 최일선인 이곳 한반도에 작가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는 것 그 자체가 인간의 정신을 가두고 폭력을 일삼는 세력에 대응하는 행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행사에 참석한 국내외 작가 30여 명은 이날 ‘2017 광주선언문’을 채택해 “미숙한 개인의 영혼 속으로만 함몰돼 가던 문학을 인간의 대지로 다시 불러내고, 자기 확신만 앞세우는 고집스러운 언어들과는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제1회 아시아문학상 수상자로는 몽골 시인 담딘수렌 우리앙카이(77)가 선정됐다. 우리앙카이는 몽골 문학에 직관과 통찰의 영토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았다. 상금은 2000만 원이다. 광주=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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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민항쟁 그린 소설 ‘하의도’ 출간

    전남 신안군의 비옥한 3개 섬인 하의 3도에서 벌어진 농민항쟁을 그린 장편소설 ‘하의도’(뿌리출판사·사진)가 출간됐다. 김남채 작가는 일제강점기 하의도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다 소작쟁의에 나선 농민들과 지주들의 첨예한 갈등, 그 속에서 피어난 사랑을 그렸다. 1623년 인조 때 농민들이 농지를 빼앗긴 후 겪어야 했던 질곡의 세월을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담아냈다. 하의도는 300여 년 동안 지주가 9번이나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농민이 목숨을 잃었다. 1956년 제헌국회 의결로 농민에게 땅이 돌아갔지만 그 후유증은 현재도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김 작가는 “농지를 되찾기 위해 투쟁하다 목숨을 잃은 이들을 위로하는 위령제에 참석한 후 농민들의 비참한 역사를 알게 돼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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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인간의 이중성 포착한 박완서 소설집… 39년 만에 재출간

    쌓여가는 촌지를 보며 부의 재분배를 고민하는 교사 김영길(‘꿈을 찍는 사진사’), 장애아를 둔 고교 동창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다 진저리를 치는 오숙경(‘우리들의 부자’)…. 또렷한 개성을 지닌 네 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계절처럼. ‘창밖은 봄’에서는 식모살이를 하다 억울하게 쫓겨나지만 욕심 없이 사는 길례의 웃지 못할 인생 역정을, ‘꼭두각시의 꿈’에서는 부모의 높은 기대에 반항심을 품은 채 재수하는 청년 혁의 성장을 그렸다. 1978년 초판이 나온 후 절판됐던 이 소설집은 39년 만에 세상에 다시 나왔다. 저자도 이 책을 갖고 있지 않아 재출간을 원했지만 갑작스레 타계하면서 끝내 바람을 이루지 못했다. 저자가 등단한 지 10년이 되지 않았을 무렵, 50세를 바라보며 글쓰기에 대한 간절함을 봇물처럼 쏟아낸 자취를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내는 솜씨는 여전하다. 다음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궁금해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 이야기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생각지도 못한 반전 혹은 아이러니에 신선한 충격을 맛보게 된다. 모순되고 허위의식에 가득 찬 인간의 속성을 예리하게 꿰뚫은 저자의 통찰은 섬세한 문장에 담겨 읽는 이의 머리와 가슴을 향해 직진한다. 고상한 척하지만 식모의 험담을 하며 쾌감을 느끼는 교수 부인, 촌지를 모아 가난한 학생들의 학비를 몰래 내주지만 별 반응이 없자 괘씸해하는 교사 김영길의 심리를 적나라하고도 현실감 있게 묘사한다. 하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는 온기가 스며 있다. 오숙경이 오갈 데 없어진 고교 동창을 보며 집의 빈방을 떠올리고, 김영길의 동료 체육 교사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학생을 업고 산동네를 아무렇지 않게 오르는 모습이 그렇다. 인간에 대한 희망의 싹 하나를 살짝 틔워놓은 것 같다고 할까. 세밀화처럼 정교하게 그린 1970년대 풍경은 아스라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흑백 사진 속으로 들어가 왕성한 창작 의욕을 보이던 당시의 저자를 만난 기분이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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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인간이 멸종시킨 동물들 “우리가 왜 사라졌냐면…”

    “사람들은 우리를 잡아 가방과 장갑을 만들었어. 이제 나는 하늘이라는 아름다운 강과 호수를 헤엄치지.” ‘양쯔강 돌고래’가 자신이 지구에서 사라진 이유를 말한다. 인간이 기름을 짜고 살을 구워 먹었던 ‘카리브해 몽크 물범’은 “나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보며 그저 웃을 뿐이야”라고 읊조린다. 몸의 반쪽에만 얼룩무늬가 있는 ‘콰가 얼룩말’, 근사한 털을 가진 ‘상아부리 딱따구리’ 등 최근 멸종된 20종의 동물들이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이 겪은 일을 들려준다. 지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가슴을 세차게 때린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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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도서관에 날개를]“아이들이 집에 가자는 소리를 안해요”

    “한 시간 넘게 있었는데 아이들이 집에 가자는 말을 안 하네요. 그만큼 편안하다는 거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칠까,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게 정말 좋아요.” 전북 군산시 구암작은도서관의 어린이방에서 지난달 30일 만난 주부 김미희 씨(37)는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김 씨의 아들(5)과 딸(3)은 푹신한 오렌지색 소파에 앉거나 누워 느긋하게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이날 정식 개관한 도서관에는 어린이방이 새로 만들어졌다. 한문, 미술, 영어 수업 등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실에는 긴 책상과 의자들이 놓였다. 이전에는 온돌식이었다. 70, 80대 주민들은 “무릎과 허리가 아파서 바닥에 앉기가 힘들었는데 의자가 생겨 한결 편해졌다”며 반겼다. 도서관 개관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과 군산시가 주관하고 KB국민은행과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했다. 2007년 문을 연 구암작은도서관은 166m²(약 50평) 규모로 다양한 수업을 개설해 하루 평균 200명 안팎의 주민들이 이용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시설이 낡고 서가가 빽빽하게 들어서 오랜 시간 책을 읽기 힘들다며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새로 단장한 도서관은 서가의 높이를 낮추고 원목 가구들을 배치해 밝고 아늑한 느낌을 줬다. 서가에 책상과 의자도 배치해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게 했다. 리모델링한 도서관은 주민들의 요청으로 정식 개관하기 전인 9월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 신승혁 군(7)은 “틈날 때마다 도서관에 와서 2, 3권씩 책을 읽는다”며 “역사책을 특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쉬는 날마다 와서 책을 보고 미술, 영어 수업도 들었다는 김도은 양(8)은 “놀이터처럼 재미있는 도서관이 환해지고 예뻐져서 더 자주 오고 싶다”고 말했다. 최영춘 씨(73)는 읽고 싶은 신간을 구매해 달라고 신청하는 방법을 묻기도 했다. 군산시는 군산시립도서관뿐 아니라 지역별 작은도서관에도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가진 시청 소속 직원을 배치해 각종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문동신 군산시장은 “구암작은도서관을 리모델링하기 전에는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주로 찾았는데, 재단장을 하고 나니 멀리서 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연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는 “주민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통해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정도 주고받으며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군산=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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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본성 더 알려 노력… 한국인 생각 매혹적”

    “수상이 너무나 뜻밖이어서 놀랍고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언어, 인간의 본성, 세계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 글을 씁니다. 문장과 종교적 성찰, 아이디어, 기교까지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제7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인 영국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 작가(81)는 28일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영상으로 수상 소감을 밝혔다. 바이엇 작가는 건강이 좋지 않아 한국에 오지 못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마틴 프라이어 주한 영국문화원장이 대신 참석했다. 프라이어 원장은 “영국 작가가 처음 박경리문학상을 받게 돼 영국 문단에 큰 영광이다”며 “언어의 경계를 넘어 독자와 깊이 교감하는 바이엇 작가 고유의 강점을 인정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영주)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강원도, 원주시,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박경리문학상은 박경리 선생(1926∼2008)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됐다. 올해 수상자인 바이엇 작가는 소설 ‘소유’ ‘천사와 벌레’ ‘바벨탑’ 등을 통해 사회 구조와 관습 등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담아내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깊이 있게 성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유’로 맨부커상(1990년)을 수상했고, 1999년 대영 제국 기사 작위 훈장(DBE)을 받았다. 바이엇 작가는 요즘 박경리 선생의 작품에 푹 빠져 있다. 그는 “침묵의 가치를 믿는 퀘이커 교도들이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며 언어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았다”며 “정치나 종교적 신념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쓰는데, 한국인의 생각은 내가 모르는 영역이기에 더욱 매혹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녀 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새로운 말과 표현을 연구하고 있다”며 “신선한 아이디어로 독창적인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하며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우창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장은 “바이엇 작가는 인간이 태초의 대자연과 역사, 사회 구조에 영향을 받지만 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융합해 내는 정신성을 지닌 존재임을 예리하게 통찰했다”며 “오랜 학문적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뿐 아니라 지구의 식물과 동물 등 여러 생명체가 어떤 방식으로 발전했는지도 문학적으로 그려냈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원창묵 원주시장, 유재천 전 상지대 총장, 오정희 소설가, 김기선 자유한국당 의원,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주간 등이 참석했다.  원주=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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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신성장 기업]한국의 아름다움 알리는 ‘우수문화상품’ 선정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국경을 초월해 많은 이들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섬세한 예술성에 세련미를 더한 디자인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주요 요소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우수문화상품 지정제도’를 시행해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문화 상품을 발굴하고 널리 알리도록 지원하고 있다. 공예, 한복, 한식, 식품, 문화콘텐츠, 디자인상품 등에서 우수문화상품을 지정해 ‘케이리본’이라는 마크를 붙여 홍보와 유통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주최하고 진흥원이 주관한 우수문화상품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지정한다. 작품에 담긴 이야기와 생산 철학, 그 안에 담겨 있는 전통적 가치 등을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올해 우수문화상품으로 지정된 한복브랜드 ‘사임당 by 이혜미’의 ‘도포자락 조끼’는 조선시대 선비가 입던 도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고고한 자태를 구현해 선비 정신을 계승하면서 일상에서도 편하게 입고 활동할 수 있도록 실용성을 높여 호응을 얻고 있다. 수제 도자기 브랜드인 ‘식탐쟁이 그릇’이 제작한 ‘백자 천공 주병 세트’는 전통적인 주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찻잔 세트로 활용하게 했다. 밤하늘의 별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상품으로, 불빛을 비추면 제품 안쪽의 색이 은은하게 투과돼 별처럼 빛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상품은 전통의 문화적 가치를 이해해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진흥원은 전시, 연구, 국제 교류 및 유통 활성화 등을 통해 우리 공예와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창업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와 청년 공예디자이너 육성, 지역 전통공예 등도 지원하고 있다. 최봉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은 “누구나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공예·디자인 문화를 만들어 삶의 질을 높이고, 우수문화상품 하나하나에 담긴 고유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알려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이 한국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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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남편의 죽음… 아픔 인정하자 일상이 돌아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는 2015년 멕시코 휴양지 호텔에서 남편 데이브 골드버그가 헬스장에서 쓰러져 숨지자 가슴과 폐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고 말한다. 초등학생인 아들딸을 홀로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했고, 자신감은 하루아침에 부서져 가루가 됐다. 여성들에게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성취하라고 독려한 베스트셀러 ‘린인(Lean In)’의 저자이지만 아들의 운동화를 사주는 것까지 상의할 정도로 자상했던 남편을 잃자 무너지고 만다. 와튼스쿨 심리학 교수이자 ‘오리지널스’ ‘기브 앤 테이크’를 쓴 애덤은 친구 셰릴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었다. 책에는 셰릴이 고통을 극복한 방법과 과정이 세세하게 정리돼 있다. 셰릴이 화자로, 애덤은 제3자로 등장하는 방식으로 썼다. 데이브는 심장부정맥으로 순식간에 숨졌지만 셰릴은 남편을 일찍 발견했다면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감에 휩싸였다. 고통이 일상의 모든 것을 뒤덮은 채 영원히 지속될 것이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자신과 아이들을 챙기는 부모, 형제들에게는 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계속 미안하다고 말한다. 애덤은 자책하지 말고, 훨씬 더 나쁜 상황을 생각해 보라고 조언한다. “데이브가 두 아이를 차에 태우고 운전하다 심장부정맥을 일으켰을 수도 있잖아요”라는 애덤의 말에 셰릴은 기겁했다. 아이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미치도록 감사하는 마음이 슬픔을 얼마간 덮었다. 매일 일기를 쓰며 작은 일이라도 감사하고 즐거웠던 순간들을 꼽아보는 것도 도움이 됐다. 눈물이 터져 나오면 참지 말고 엉엉 울며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 애썼다. 완벽하게만 보였던 셰릴이 힘겨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한 걸음씩 내딛는 과정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정점에 있을 때 자신이 쏟아냈던 말을 겸허하게 돌아보는 모습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는 “린인하라고? 두 발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린인’에서 배우자를 진정한 동반자로 만들어 육아와 집안일을 공평하게 분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 싱글맘에게는 둔감하고 무익한 글이었다고 고백한다. 애덤이 고통을 겪은 후 이전보다 더 성장한 사람들이 있다며 과거 셰릴이 자주했던 말(“누구든 눈으로 목격하지 못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을 인용하자 짜증스러워하는 모습도 인간적이다. 셰릴은 경제적 여유가 있고,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을 충분히 받았다는 점에서 운이 좋았음을 인정한다. 개인적 경험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통을 겪는 이들이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짚어낸 점도 의미 있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현실을 지적하며 여성의 낮은 임금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배고픔 때문에 음식을 훔치다 전과자가 되는 아이들에게는 양질의 식사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셰릴은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비영리조직 ‘OptionB.org’를 세우고 책의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며 행동에 나섰다. 제목은 인생의 암초를 만났을 때 차선의 삶을 받아들이는 법을 제안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원제는 ‘Option B’.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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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 소셜미디어 통해 진화하다

    구겐하임미술관, 퐁피두센터 등 세계 유명 미술관이 소셜미디어로 관람객과 소통하는 전략을 모색하는 행사가 열린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28일 오후 1시 반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민주평화교류원에서 ‘ACC 라운드 테이블: 문화기관과 소셜미디어의 현재’를 주제로 각국 미술관의 홍보담당자들이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홍보 사례를 발표하고 미래 전략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구겐하임미술관은 직원들이 전시회를 소개하는 생방송을 소셜미디어로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을 방송에 곧바로 출연시켜 현장감을 높이기도 한다. 미국 뉴욕, 스페인 빌바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각각 자리한 미술관은 건축물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만큼 이들 건축물의 특징을 소개하는 내용도 올린다. 하리네타 리가토스 구겐하임미술관 디지털 마케팅 매니저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구체적인 방안도 소개할 예정이다. 퐁피두센터는 감각적인 그림과 사진을 올려 호기심을 자극한다. 유명한 그림 속 풍경과 인물들이 움직이도록 디지털 작업을 한 후 이를 올리기도 한다. ‘수영장’ ‘스플래시’ 등 유명 팝아티스트인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띄워 눈길을 사로잡는다. 음악 전용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전시회를 청각적으로 소개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브누아 파레이르 퐁피두센터 커뮤니케이션 및 파트너십 최고책임자는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을 이용해 미술관을 친근하게 여기게 만드는 방법을 설명한다. 뉴욕 브루클린미술관은 맨해튼을 여행하는 이들이 공략하기 위해 휘트니미술관과 협업해 전시회를 열고 이를 알린다. 브루클린의 지역적 특성을 살려 흑인, 여성 등 소수자에게 초점을 맞춘 전시회를 기획하고 작품을 소개해 다양성을 추구하는 미술관임을 강조한다. 베이징의 비영리 미술관인 엠 우드 공동 창립자인 마이클 쉬푸 황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예술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전략을 발표한다. 크리스티 리 홍콩 아시아아트아카이브 커뮤니케이션 부장은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사례를 소개할 예정이다. 방선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은 “해외 유명 미술관들은 세계 여성의 날, 대통령 선거 등 사회적 이슈를 전시와 연계해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행사는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와 연결된 유기적 공간으로 진화하는 세계 문화기관의 변화와 흐름을 살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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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이름 붙인 장미처럼 향기로운 생명의 詩 피울게요”

    그는 노래했다. ‘시간이 있을 때 장미를 따라’고. 장미는 황홀한 생의 순간을 의미한다. 문정희 시인(70), 그의 이름이 진짜 장미가 된다. 일본 조사이국제대가 7년간 공들여 개발한 장미 품종에 ‘문정희’라는 이름을 붙여 조만간 내놓을 예정이다.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23일 문 시인을 만났다. “자그마한 꽃송이의 흑장미였어요. 내 이름을 딴 장미가 끊임없이 피고 지며 생명을 이어간다는 건 무한한 축복이자 행운이에요!” 트레이드마크인 머플러를 멋스럽게 두른 그의 두 뺨은 살짝 상기돼 있었다. 이 대학이 그동안 개발한 장미에 붙였던 이름은 프랑수아즈 사강(프랑스), 안네 프랑크(유대계 독일인) 등이다. 모두 생명의 존엄과 평화를 아름답게 쓴 작가들로, 문 시인도 같은 이유로 선정됐다. 그의 대표 시선집인 ‘지금 장미를 따라’는 일본에도 소개돼 사랑받았다. 동명의 시는 그가 멕시코 여성 화가인 프리다 칼로의 집에서 받은 영감을 풀어냈다. 그는 “요즘 최고의 순간을 누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이 보내는 환호 때문이 아니라 내면의 흔들림과 갈증이 잦아들고 헛것을 추려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는 것. 70세를 맞아 스스로에게 줬다는 선물은 여행 정도를 떠올렸던 기자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정확한 언어를 쓰겠다는 다짐이에요. 돌이켜 보니 시를 쓸 때 과장하고, 미화하는 수식어를 많이 사용한 것 같아요. 정직하고 정확한 언어를 써야 시 정신이 늙지 않을 테니까요.” 고교 시절 미당 서정주 시인이 발문을 쓴 시집 ‘꽃숨’(1965년)을 출간하며 ‘천재 소녀 시인’으로 불렸고, 여성의 억압된 삶을 앞서 토해내는가 하면 뜨거운 에너지와 삶의 본질을 꿰뚫는 작품들로 우뚝 선 그가 아닌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9개 언어로 번역된 시집 12권은 해외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근래에 받은 상만 해도 스웨덴의 유명 문학상인 시카다상(2010년)을 비롯해 육사시문학상(2013년), 목월문학상(2015년), 올해 선정된 삼성행복대상 등 나열하기 벅찰 정도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문학적 성취를 이루려면 한참 멀었어요. 시를 쓴 뒤 다시 읽어 보면 화살이 과녁의 정중앙을 뚫은 것 같은 전율이 오지 않을 때가 태반이에요. 다만, 지금도 잉크가 마를 새 없이 계속 시를 쓰고 있다는 그 자체로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그는 매일 오전 7시에 일어나 곧장 책상 앞에 앉는다. 전날 쓴 글을 고치고 새 글을 쓴다. 집 안 곳곳에 생각날 때마다 빼곡히 글을 써 놓은 냅킨, 메모지 등이 꽉 차 있다. 책은 손에서 떠나는 법이 없다. 요즘은 시리아 시인인 아도니스의 시집, 독일 출신의 미국 소설가이자 시인인 찰스 부코스키의 작품을 읽고 있다. “나이를 먹으며 걱정되는 건 딱 두 가지예요. 눈이 나빠지지 않을까, 호기심이 줄어들지 않을까. 자기 복제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기도 해요. 우리 사회가 빠르게 성장하며 잃어버린 가치인 생명을 밀도 있는 시어로 이야기하며 계속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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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너무 멀리 가지 마라”

    “너무 멀리 가지 마라.” 영화 ‘남한산성’ 마지막 장면에서 대장장이 날쇠가 어린 나루에게 하는 말이다. 원작 소설을 쓴 김훈 작가는 이를 듣는 순간 ‘저거다!’ 싶었단다. 그는 “소설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끙끙댔다”고 했다. 날쇠의 당부는 누구나 어린 시절 많이 듣던 말이다. 투박하게 툭 던지는 듯한 이 한마디에는 애정이 담겨 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삶은 도도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며 긴 여운을 남긴다. 소설은 나루가 ‘초경을 흘리는’ 것으로 끝난다. 이는 생명성을 의미하며, 살아서 미래를 기약하자는 뜻을 담았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인기 소설을 영화로 만들 경우 성공할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 원작을 영상과 대사로 재해석해 내는 작업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쇼생크 탈출’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시리즈 등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 ‘남한산성’은 그 자체로도 빼어난 완성도를 지닌 동시에 소설의 영화화에 성공한 사례로 꼽힐 만하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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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죄 많은 소녀’ ‘폐색’… 부산영화제 뉴커런츠상 수상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21일 막을 내렸다. 경쟁 부문인 뉴커런츠상은 김의석 감독의 ‘죄 많은 소녀’(사진)와 이란 모흐센 가라에이 감독의 ‘폐색’이 수상했다. 올해의 배우상은 ‘밤치기’에 출연한 박종환과 ‘죄 많은 소녀’의 전여빈에게 돌아갔다. 박배일 감독의 ‘소성리’, 일본 하라 가즈오 감독의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은 비프메세나상을 받았다. 선재상은 곽은미 감독의 ‘대자보’, 인도네시아 시눙 위나요코 감독의 ‘마돈나’가 수상했다. 올해 영화제를 찾은 관객은 19만2991명으로 지난해보다 17% 늘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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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미국사회의 인종 차별에 날린 독한 한방

    미셸 오바마는 백악관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은 한 백인 여성이 자신을 ‘원숭이’로 조롱한 발언이라고 털어놓았다. 미국 최초의 흑인 영부인이었지만 피부색에 대한 높고도 견고한 편견의 벽을 또다시 확인해야 했다. 미국에서 노예제도는 폐지됐지만 피부색에 따른 차별은 여전하다. 흑인인 저자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차별을 할 바에는 아예 과거처럼 인종에 따라 버스 좌석, 도서관, 학교 등을 분리하자고 제안하는 장편소설을 통해 현실을 맹렬하게 풍자한다. 이 소설은 지난해 심사위원단 만장일치로 영국 최고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받았다. 미국 작가가 맨부커상을 받기는 48년 맨부커상 역사상 처음이다. 이 책은 화자인 흑인 남성 ‘미(Me)’의 자기소개부터 예사롭지 않다. ‘흑인 남자가 이렇게 말하면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나는 물건을 훔쳐 본 적이 없다. 세금이나 카드 대금을 내지 않은 적도 없다. 빈집을 턴 적도 없다….’ 이런 그가 대법원 재판에 회부됐다. 노예를 부리고 공공연하게 인종분리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도 할 말은 있다. 그가 살던 로스앤젤레스 인근 흑인들이 주로 몰려 살던 빈민촌인 디킨스시(가상도시)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자 사람들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이 흑인들을 결집시킨 사실을 떠올리며 이를 마을에 적용시킨다. 버스에 노약자, 장애인과 더불어 백인 우대석을 도입하고, 공공도서관의 이용 안내판을 ‘일요일∼화요일: 백인 전용, 수요일∼토요일: 유색 인종 전용’이라고 바꾼 것. 무명의 흑인 배우였던 80대 마을주민 호미니는 정체성 혼란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노예가 되기를 간청해 그는 ‘어쩔 수 없이’ 주인이 된다. 한데 호미니는 고분고분하지 않다. 집 안에 들어온 송아지를 데리고 나가 달라고 부탁하면 “가축 돌보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며 단호히 거절한다. 그는 수없이 호미니를 ‘해방’시키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노예 주인 노릇은 ‘포주 짓도 쉽지 않다’는 말을 떠올리게 할 정도라며 투덜댄다. 흑인들의 모임은 제 시간에 시작하는 법이 없고, 흑인은 제대로 매듭도 묶을 수 없다며 흑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대놓고 비꼰다. 서글픔도 묻어나온다. 괴짜 심리학자인 그의 아버지는 경찰에 몇 마디 항의를 하다 총에 맞아 숨진다. 피 흘리며 숨져 있는 아버지를 보고도 흑인의 고통을 가르치기 위해 아버지가 꾸민 연극이라고 믿으려는 ‘미’의 모습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미’의 이야기는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랩 같다. 넘실대는 말의 향연에는 흑인 인권 운동의 역사와 인종 갈등으로 벌어진 사건, 미국 대중문화가 빼곡히 녹아들어 있다. 1787년 필라델피아 회의에서 하원 구성 비율을 결정하는 인구를 산출할 때 흑인 노예를 백인 자유인의 5분의 3으로 세는 타협안이 승인된 ‘5분의 3의 타협’, 노예로 태어나 19세기 미국의 영향력 있는 작가가 된 프레더릭 더글러스, 공공장소에서 인종분리를 시행한 짐 크로 법 등이 줄줄이 나온다. 미국 역사와 문화에 해박한 이들은 자유자재로 역사와 현실을 비틀어대는 블랙 코미디에 무릎을 치고 감탄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들은 각주를 일일이 확인해야 이해가 가능하다.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인종 차별의 심각성을 웃음과 눈물, 조롱으로 한바탕 고발하는 광대극 한 편을 보는 듯하다. 원제는 ‘The Sellout’.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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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상 르 클레지오 “이 작품을 제주해녀에게 바칩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소설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7·사진)가 제주 해녀에게 영감을 받아 쓴 소설 ‘폭풍우’(서울셀렉션)가 최근 국내 출간됐다. 책의 첫 페이지에는 ‘제주 우도의 해녀들에게’라는 헌사를 실었다. 여덟 살 때 잡지에서 본 제주 해녀의 사진과 기사에 사로잡혔던 르 클레지오는 2007년 처음 제주를 찾았다. 이후 수차례 제주에서 해녀들을 만나며 맨몸으로 전복과 문어 등을 잡는 모습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꼈다. 르 클레지오는 2011년 명예 제주도민이 됐다. ‘폭풍우’는 우도를 배경으로 해녀 어머니와 사는 열세 살 소녀 준과 세상을 떠난 연인의 흔적을 찾아온 전직 종군기자 필립 키요를 통해 생의 의지를 그렸다. 흑인 군인인 생부에게 버림받은 준은 낚시를 하던 키요와 만나 조금씩 가까워진다. 베트남전쟁을 취재하던 중 군인들이 성폭행을 저지르는 것을 방관한 죄로 옥살이를 한 키요는 사랑했던 연인마저 함께 여행 온 우도의 바다에 몸을 던지자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다. 준과 키요의 시선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가운데 우도의 바다 내음과 해녀들이 물질하는 광경이 세밀하게 펼쳐진다. ‘아후히히’, ‘이야’ 등 해녀들이 바다 위로 올라와 내뱉는 숨비 소리가 원시 언어처럼 들려오고, 바다 위에서 쉴 때 쓰는 색색의 테왁이 파도에 출렁인다. 목이 거북처럼 주름지고 손톱은 다 까진 늙은 해녀들은 따 온 소라와 전복을 평평한 바위 위에 널어놓는다. 우도의 바다와 해녀들이 뿜어내는 생명과 성장의 힘은 작품에 그대로 투영됐다. 준은 자신을 괴롭히던 남자아이를 혼내주는 키요에게서 아버지 같은 사랑을 느끼지만, 훌쩍 떠나버린 그를 보며 비로소 엄마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키요는 에너지를 한껏 머금은 준과 함께하며 차츰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본다. 우도의 풍경 속에서 상처 입은 이들이 서로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보노라면 제주에 대한 작가의 진한 애정이 느껴진다. 르 클레지오가 서울을 배경으로 쓴 ‘빛나’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 ‘빛나 언더 더 스카이(Bitna Under the Sky)’도 12월에 국내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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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외 문인 30여명 ‘새로운 아시아’ 머리 맞댄다

    국내외 문인들이 아시아의 수난과 상처를 공유하고 인류 평화를 기원하는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이 다음 달 1∼4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18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간담회를 열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월레 소잉카(나이지리아)를 비롯해 시인 둬둬(중국), 샴스 랑게루디(이란), 사가와 아키(일본)와 소설가 현기영, 시인 이시영 안도현 신현림 등 국내외 작가 30여 명이 이번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 행사의 주제는 ‘아시아의 아침’이다. 공초 오상순 시인(1894∼1963)이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에서 ‘아시아는 밤이 지배한다’고 노래한 지 한 세기 뒤에 한국 시인들이 앞장서서 새로운 아시아 정신을 모색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아시아문학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인 고은 시인은 “아시아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밀접성이 확장되고 있지만 아시아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식민지 지배를 받다 아침을 맞이한 아시아의 문학을 정면으로 만나보자는 취지로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올해는 시인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위해 활동해 온 작가들이 많이 초청됐다. 사가와 아키는 강제징용자, 위안부 피해자 등 일본의 침략으로 고통받은 이들을 주제로 시를 썼고, 아유 우타미(인도네시아)는 독재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퇴진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브레이튼 브레이튼바흐(남아프리카공화국)는 인종 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글을 써서 투옥됐다.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클로드 무샤르(프랑스)와 통합과 조화를 노래하는 작품을 쓰는 안토니오 콜리나스(스페인)도 온다. 오랑캐 부족 이름을 필명으로 쓰며 현자로 존경받는 담딘수렌 우리앙카이(몽골), 중국 시가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둬둬도 참가한다. 작가들은 다음 달 1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한다. 2일에는 콜리나스, 브레이튼바흐, 무샤르가 강연한다. 4일에는 소잉카가 기조강연을 한 후 고은 시인과 함께 ‘해돋이가 당신의 등불을 끄게 하라’를 주제로 대담을 한다. 이어 작가들은 ‘아시아의 아침, 민주 인권 평화의 진전을 위하여’를 주제로 토론한 뒤 선언문을 발표한다. 제1회 아시아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해 시상식도 연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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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썼다 지웠다… 작가의 고뇌 고스란히 박힌 원고

    김승옥의 ‘무진기행’, 최인호의 ‘지구인’,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작가들이 손으로 직접 쓴 원고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 종로구 영인문학관은 1960, 70년대 등단한 작가들의 원고를 소개하는 ‘육필로 삶을 말하다’ 전시회를 20일부터 11월 30일까지 연다. 박완서의 ‘아이고, 하느님’, 이청준의 ‘겨울광장’, 조정래의 ‘회색의 땅’, 이문열의 ‘삶에 대하여’ 등 작가 84명의 원고를 모았다. 자료는 1972년부터 월간 ‘문학사상’을 간행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보관해 둔 것이다.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은 “육필 원고에는 작가의 성격과 글 쓸 때의 기분은 물론이고 지우고 다시 쓴 자국에 서린 창작의 고뇌까지, 작가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전시 기간에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문학 강연회가 열린다. 소설가 은희경 권지예 김주영, 시인 오세영 김화영 순으로 참여한다. 입장료는 성인 5000원, 학생 3000원. 02-379-3182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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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아흔 살 시인이 세상에 내민 선물 보따리

    90년이라는 시간은 감사하는 마음은 더 깊게, 햇살 한 줄기에도 행복을 느끼는 촉수는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지난달 90세 생일을 맞은 시인은 18번째 시집에서 이런 순간순간을 고이 담아냈다. 시 63편에는 구도자의 자세로 걸어온 그의 삶이 투영돼 있다. 시인은 무심한 듯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을 누리는 그 자체가 축복임을 넌지시 알려준다. ‘내 몸의 뼈의 골수까지도/햇빛 쪼이니/복 받는 일 아닌가/복 받는 거 모른다면/안 되는 일 아닌가.’(‘햇빛 쪼인다’) 산불에 가슴 졸이는 모습에서는 그 무엇이 되었든 생명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느껴진다. 시간의 흐름 앞에서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음을 온몸으로 깨달았기에 시어는 더 절절해진 게 아닐까. ‘산불이/달리는 군대처럼 지나간 후/개미굴은 무사할까/…/산새들 꿀벌들은 무사할까/…/마지막 한 부스러기의 희망은/남아 있는지/그렇다면 된다/모든 살아 있는 것의 붉은 허파가/맥박 치면 된다’(‘문안·2) ‘젊은 시인들에게·2’에서 ‘분노와 좌절에도/발 구르며 세상을 꾸짖지 말고/허리를 구부려/그 짐을 지거라’고 말하는 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행동으로 묵묵히 실천하는 한 명 한 명에게 있음을 따뜻하고도 위엄 있게 당부하는 듯하다. 속마음을 아이처럼 천진하게 드러내는 대목에서는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삶을 관조하는 여유로움이 이런 고백도 가능케 했으리라. ‘시계가 나에게 묻는다/그대의 소망은 무엇인가/내가 대답한다/내면에서 꽃피는 자아와/최선을 다하는 분발이라고/그러나 잠시 후/나의 대답을 수정한다/사랑과 재물과/오래 사는 일이라고//시계는/ 즐겁게 한판 웃었다.’(‘시계’) 정갈하게 써 내려간 문장을 천천히 읽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고요해지고 맑아진다. 삶에 대한 긍정과 사랑에 대한 염원을 노래한 작품들은 그가 세상을 향해 내민 선물 보따리 같다. 첫 시집 ‘목숨’(1953년)을 낸 후 64년째 시를 쓰는 시인은 “가능하다면 이후에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내고 싶다”고 했다. 영원한 현역을 꿈꾸기에 그는 여전히 청춘이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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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척박한 시대, 누군가의 심장에 다가가는게 詩의 역할”

    “사람에 대한 아픔을 느낀 사건을 겪었어요. 이뤄지지 못한 데서 오는 고통과 허전함이 컸다고 할까요….” 다섯 번째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문학과지성사·사진)를 출간한 이병률 시인(50)은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지금 중국 시안(西安)에 머물고 있다. 감성적인 시어로 사랑받고 있는 그는 4년 만에 출간한 새 시집에서 슬픔과 고독을 켜켜이 토해냈다. ‘산 하나를 다 파내거나/산 하나를 쓰다 버리는 것/사랑이라 한다’(‘사랑의 출처’)고 하고, ‘한 사람이 상처를 받는 것은/…/지구의 뼈가 발리고 마는 것’(‘지구 서랍’)이라고 썼다. 이전 시집에서도 외로움과 아픔을 담았지만 이번에는 농도가 더 짙어졌다. “예전과 달리 교정지를 보면서 여러 번 울컥했어요. 사람의 의미를 절실하게 느끼게 된 일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일’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110여 개국을 여행한 그는 낯선 이들에게서 온기를 채운다고 했다. 시의 뼈대가 되는 문장 한두 줄을 선물처럼 선사하는 것도 여행이다. 이번 시집에도 이국의 풍경 속에 놓여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나는 이제 사라지기 위해 아이슬란드 폭포에 와 있습니다/…/눈보라가 칩니다/바다는 잘 있습니다/우리는 혼자만이 혼자만큼의 서로를 잊게 될 것입니다’(‘이별의 원심력’) “먼 곳으로 떠나면 텅 빈 마음에 어떤 무늬가 생기는 것 같아요. 작은 입자가 문장이 돼 들어온다고 할까요. 그 순간과 마주하기 위해 기다리는 거죠.” 여행 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끌림’,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그를 여행 작가로 아는 독자도 있단다. “제가 시인인 걸 모르는 독자들을 만나면 삶에서 시가 있을 자리도 안배해야 한다고 얘기해요. 산문을 쓰는 힘도 시를 통해 키운 거니까요.” 충북 제천시의 산골 마을이 고향인 그는 자연 속에서 뛰어놀며 자랐다. “중학생 때 고향에 전기가 들어왔어요. 학교는 서울에서 다녔지만 고등학생 때까지 방학마다 고향에 내려가 살았어요. 꽃과 나무 옆에 앉아 있으면 시가 옮겨올 거라고 여긴 건 이런 경험 때문인 것 같아요.” 그는 중국에 머문 경험을 담아 다음 시집을 낼 예정이다. 중국은 어린 시절의 색감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 많아 갈 때마다 푹 젖어든다고 했다. “예전에 느낀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하며 누군가의 심장에 다가가는 게 시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척박한 시대를 적셔주는 시를 다같이 마음껏 쓸 수 있는 판을 짤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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