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이진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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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이진구 기자의 대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가식적인 형식보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 떠는 듯한 편안한 인터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sys1201@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종교67%
문학/출판23%
문화 일반7%
인사일반3%
  • 초중고 몰카 전수조사[횡설수설/이진구]

    ‘몰카(몰래카메라)’를 제대로 찾으려면 건물의 모든 전원을 끈 뒤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몰카탐지기는 촬영한 영상을 저장하거나 송신할 때 나오는 전기신호를 탐지하는 방식이 가장 많은데, 비데나 전선에 흐르는 전류에도 반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중이용 시설물의 모든 전원을 끄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탐지기 반응을 보고, 의심스러운 곳을 점검하는데 천장이나 벽 틈은 파손 시 배상 문제가 있어 웬만큼 확실하지 않으면 뜯어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2018년 8월 ‘몰카 보안관’을 발족한 서울 서초구는 지금까지 누적 9300여 개 건물, 8만6000개의 화장실을 점검했지만 실제 몰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몰카로 사용되는 지름 1mm 초소형카메라의 작동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숨기는 곳은 첩보영화가 무색하게 진화하고 있다. 담뱃갑 단추 라이터 등은 이제 ‘라떼’ 몰카 취급을 받는 고전에 해당한다. 실제 물이 담긴 생수병(500mL) 카메라도 나왔는데 여분의 렌즈 가리기용 상표 스티커와 미개봉된 뚜껑도 준다. 무선공유기 화재경보기 인형 등 종류도 갖가지인데, 선물 받은 곰인형이 밤마다 눈을 돌리고 있을 생각을 하면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 ▷교육부가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몰카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지난달 경남 김해와 창녕에서 교사가 학교 여자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한 것이 적발된 데 따른 조치다. 각 시도교육청 주관으로 이달 16∼31일 긴급 점검하고, 발견되면 수사 의뢰를 하겠다고 밝혔는데 전시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점검 날짜가 공개됐는데 설치한 몰카를 그냥 놔둘 범인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경남교육청은 2018년부터 ‘불법 촬영 카메라 탐지 장비 대여 사업’을 하고 있는데 장비 대여 학교와 대여 시기가 공개된 공문을 내려보낸다고 한다. 몰카범이 교직원이라면 자신의 학교가 언제 점검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구조다. ▷학교, 특히 초등학교가 몰카 전수 점검의 대상이 된 것은 처음이다. 숙박업소나 상업시설 화장실처럼 누구나 드나드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본 데다, 학생들이 받을 정서적 영향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학교가 범죄의 장소로 걱정되고, 아이들이 ‘혹시 우리 선생님이나 교직원이…’라는 의심을 잠깐이라도 하게 되는 건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일인데, 그런 씁쓸한 현실로 우리 사회가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학교 안마저 몰카 위험지대가 된 불신을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이왕 하려면 제대로 점검해야 한다. 보여주기식 점검으로는 몰카범은 못 잡고 불신만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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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급수 수준 대응[횡설수설/이진구]

    최근 깔따구 유충(幼蟲) 수돗물 사태를 야기한 인천시가 실제 유충이 발견된 가정에 한해서만 피해를 보상하기로 했다. 그나마도 샤워기 정수기 등의 필터 구입비만 되고, 수돗물 대신 구입한 생수는 안 된다고 한다. 유충이 발견된 공동주택의 저수조 청소비는 증빙서류가 있으면 보상한다고 발표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증빙을 내야 하냐”는 문의에 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답변한다. ▷인천 유충 수돗물은 공촌·부평 정수장 등에서 관리 부실로 발생한 유충이 각 가정으로 흘러가 발생했다. 두 곳에서 공급한 물을 마시는 곳만 58만 가구에 달한다. 공업용수·농업용수로 쓰이는 4급수에 사는 깔따구는 수질 오염을 판단하는 지표 생물. 유충 발견 신고가 잇따르자 이 지역 가구에 수돗물을 마시지 말도록 권고한 게 인천시다. 그래놓고 피해보상은 유충이 발견된 250여 가구만, 그것도 생수 구입비는 빼고 주겠다니 어이가 없다. ▷인천시는 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보상 범위를 넓히는 것은 기부행위 금지 등에 관한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붉은 수돗물 사태는 피해 사실이 명확해 보상 범위가 넓었는데 이번은 다르다는 것. 육수통에 벌레가 빠져 죽었는데 그릇에서 벌레가 나온 사람만 피해자라는 식이다. 같은 국물을 먹었는데 벌레가 안 들어간 사람은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다 유충이 빠진 게 아니라 오염된 물이 문제라는 점을 왜 모르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있지만, 민간 기업들 가운데는 피해보상을 오히려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수단으로 승화시키는 곳도 많다. 상품은 물론이고 고객이 만족하지 않으면 연회비조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00% 전액 환불해주는 곳도 있다. 아예 환불을 해주는 고객센터를 입구에 배치하는 곳도 있는데 환불 시 그 금액만큼 세금도 환불해준다. 물건 몇 개 더 파는 것보다 고객 만족도를 높여 충성 고객을 양산하는 게 낫다는 전략인데 결과적으로는 매출이 증가하는 곳이 상당수다. 관공서나 공공기관의 꽉 막힌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해 인천에서 발생한 ‘붉은 수돗물’ 사태도 관리 부실이 원인이었다. 두 번 다 피해를 입은 주민도 수십만 가구에 달한다. 피해보상 규정이 어이가 없다 보니 “유충이 나온 옆집에서 빌려와 신고해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주민들도 부지기수다. 인터넷에는 “임신한 아내와 아이가 모르고 마셨다”며 가족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글이 수도 없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화만 돋우니 그 마음 씀이 4급수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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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충(幼蟲) 수돗물’[횡설수설/이진구]

    요즘 수돗물 불순물을 걸러주는 수도꼭지·샤워기 필터가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인천 서구 일대 가정에서 깔따구 유충이 발견되면서부터인데, 서울 경기 부산 등 전국으로 유충 신고가 확산되면서 폭발적으로 판매가 늘고 있다. 한 온라인 쇼핑몰은 지난 일주일 동안 샤워기 필터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00%나 급증했다. 생수 2000개를 주문한 가게도 있다고 한다. ▷최근 인천 서구 일대 수돗물에서 발견된 깔따구 유충은 이 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에서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수장 여과지에서 발생한 유충과 가정에서 발견된 것이 분석 결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충이 약 2m 두께의 여과지와 염소소독 과정을 어떻게 통과해 가정까지 갔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 욕실 바닥에서 발견된 유충은 유전자 검사 중인데 다행히 해당 오피스텔 수돗물에서는 유충이 검출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서구 일대에서 ‘붉은 수돗물’ 사태가 터지자 인천시는 대대적인 개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당시 인천시는 주민 신고에도 검사 결과 이상 없다고만 하다가 화를 키웠는데, 이번에도 최초 신고 이후 5일이나 지나서야 해당 정수장에서 유충을 발견하고 가동을 중지했다. 이 정수장은 오염원 유입 차단을 위한 밀폐시설도 갖추지 않은 채 지난해 9월부터 조기 가동됐다고 한다. ▷매를 번다는 말이 있지만 당국의 태도가 딱 그렇다. 인천시는 뒤늦게 “깔따구 유충은 학술적으로 인체 위해성이 보고된 바 없다”고 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다 자라면 1cm 정도인 깔따구는 4급수에 사는 수질 오염 지표생물. 4급수는 2급 공업용수나 농업용수로 쓰이고 어떤 물고기도 살 수 없다. 사람이 오래 접촉하면 피부병에 걸린다. 깔따구만 건져내면 마셔도 된다는 것인지 어이가 없다. ▷비싼 만큼 좋은 서비스를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가정용 상수도 요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해마다 오염사고가 터지는데도 인천 시민들은 m³당 470원(1∼20m³ 사용 시)으로 서울보다 110원이나 더 주고 쓰고 있다. ▷2012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열린 ‘세계 물맛대회’ 수돗물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7위를 차지했다. 아리수(서울) 미추홀 참물(인천) 빛여울 水(광주) 등 자체 수돗물 브랜드를 가진 곳도 상당수다. 하지만 2017년 상하수도협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사람은 7.2%에 그칠 정도로 불신이 크다. 선진국은 50%가 넘는다.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해마다 사고가 터지면 누가 믿겠나.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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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盧정권 때도 보고서 트집 잡아 날 쫓아내더니… 민주당, 안 변해”[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지난달 말 국회에서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국회예산정책처가 3차 추가경정예산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벌 떼처럼 들고일어나 예정처를 성토한 것. 일각에서는 예정처의 역할과 비중을 줄이자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예정처를 길들이려는 행태에 여론의 질타가 이어졌지만 민주당의 이런 전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6년 전인 2004년 11월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보고서를 낸 것을 트집 잡아 최광 초대 예정처장(73)을 직권면직시켰다.》 ―단도직입적으로… 왜 잘린 건가. “예정처가 행정수도 이전 비용을 노무현 정부 추산보다 과다 추계했다는 것과 내가 외부 정책토론회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는 것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국회 고위직을 모두 물갈이하려는데 내가 버티니까 그걸 구실로 강제 면직시켰다.” (예정처는 국가 예산결산·기금 및 재정 운용에 관한 사항을 연구 분석·평가하기 위해 만든 곳 아닌가.) “그러니 어이가 없다는 거다. 당시 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 정부의 최대 핵심 정책이었고 정부 추산으로만 약 45조 원이 드는 대사업이었다. 이런 국가사업을 예정처가 추계 분석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것도 의뢰가 들어와서 한 거다. 안 하면 직무유기 아닌가. 그런데 내가 정부 정책을 반대하기 위해 비용을 부풀렸다고 공격했다.” ―비용을 부풀렸다니? “비용 추계는 여러 가정을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럴 경우, 저럴 경우를 고려해 몇 가지 안이 나온다. 정부는 45조6000억 원, 예정처는 52조∼67조 원을 추계했는데 야당인 한나라당은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안으로 정부를 공격했다. 안 그래도 나를 쫓아내고 싶었는데 그걸 빌미 삼은 거다. 국회 운영위원회에 조사소위원회를 만들고 비용 부풀리기와 공문서 위조, 판공비 사용 내역, 채용 비리 여부까지 내 비리를 찾아내려고 탈탈 털었다.” (결과가?) “없다.” (없다니?) “원하는 걸 아무것도 찾지 못하니까 조사보고서도 못 만들고 흐지부지 끝났다.” ―조사위가 근거를 찾지 못했는데 국회의장이 어떻게 면직동의안을 제출할 수 있나. 사유를 명기해야 하지 않나. “김원기 의장이 제출한 면직동의안은 ‘예정처장 최광이 국회의 중요한 지원기관의 책임자로서 적절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어 국회법에 의해 운영위원회에 면직동의를 요청한다’고 돼 있다. 왜 적절치 않은지는 내용이 없다. 비리를 찾을 수가 없으니 쓸 수가 없는 거지. 면직을 시키면서 소명 기회도 주지 않았다.” (사형수도 소명 기회를 주는데 자르면서 해명도 안 들었다는 건가.) “내 죄가 뭔지 명시해야 소명하라고 부를 것 아닌가. 죄를 명시 못 하니 부를 수도 없는 거지. 결국 2004년 11월 18일 열린우리당 단독으로 처리해 강제 면직됐다. 하… 너무 야박했던 게… 다음 날 국회 기자실에서 면직의 부당함을 말하려고 했는데 국회 사무처에서 경위들을 시켜 못 들어가게 막았다, 면직됐다고. 그래서 복도에서 했다. 뭐가 두려워 그렇게까지 막았는지….” (복도에서 뭐라고 했나.) “예정처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공적 기관이지 의장의 사유물이나 특정 정당의 전리품이 아니라고….” (면직이 부당하다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처음에는 하겠다고 말했다. 사유도 밝히지 않고, 소명 기회도 안 준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그런데, 그래도 몸담았던 곳인데 수장의 체면은 세워줘야 하지 않나 싶어 안 했다.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 ※당시 국회운영위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전원 퇴장한 상태에서 열린우리당 11명과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의 찬성으로 면직동의안을 통과시켰다.―처장 재임 시 정책토론회 등에서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고 했는데…. “당시 세계 경제 호황으로 다른 나라들은 활력을 띠고 있었는데 우리는 경제성장률이 세계 평균 밑을 맴돌고 있었다. 나는 참여정부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책 전환을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열린우리당은 ‘최광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주역인 한나라당 출신 박관용 국회의장이 임명한 인물’이라는 식으로 프레임을 짜 비난했다. 난 평소 우리도 미국 의회예산처(CBO) 같은 기구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는데 마침 예정처가 생긴다고 하니 공개모집에 지원해 된 것뿐이다. 특정 정당의 추천을 받지도 않았다.” ―최근 민주당 의원들이 3차 추경의 문제점을 지적한 예정처를 성토하고 나섰다. “예정처가 정부 안에 동의만 하라는 건가? 그럼 예정처는 왜 존재하고, 국회는 뭐 하러 있나. 시오노 나나미의 한 소설(바다의 도시 이야기)에 ‘페카토 모르탈레(peccato mortale)’라는 말이 나온다. ‘용서받지 못할 죄’란 뜻인데 기업가가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것과 공직자가 예산을 낭비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가가 이윤을 남기지 못하면 회사가 망하고, 국가 예산이 흥청망청 낭비되면 나라가 망한다. 지금 나라가 어떤 꼴인가. 대통령과 장관들은 복지와 코로나19를 이유로 예산 늘리기에 열중하고, 행정부 실무자들은 우선순위나 불요불급을 따지지 않는다. 지자체장들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나 기초·광역의원들도 감시는 고사하고 지역구와 이익집단들 요구를 들어주느라 사업비 챙기기에만 혈안이다. 예정처마저 여기에 동조하라고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나. 더욱이 예정처의 지적은 법적 구속력도 없다. 그래서 문제이기는 한데 그런 지적조차도 못 견디겠다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 ※2009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 4대강 사업에 3조5000억 원을 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예정처가 환경부 예산 1조2873억 원 등 다른 부처에 숨겨진 4대강 예산을 찾아내면서 하루 만에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예정처는 그런 곳이다. ―국회가 스스로 예정처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초기부터 우려했던 일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설립 당시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해서는 예정처장의 임기 보장이 필수적이라고 했는데 어찌된 셈인지 법에서 빠졌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장이 바뀌면 처장도 바뀌는 게 관례처럼 됐다. 역대 처장 8명 중 5명이 국회 사무처 입법고시 출신인 점도 문제다. 3권 분립이라지만 국회 사무처는 여당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예정처에 사무처 인력이 많아지면 예정처가 제대로 된 견제와 감시를 하기 어렵다. 국회사무처와 예정처는 서로 독립된 기관이기 때문에 인적 교류를 금지하는 게 바람직한데 직원들 인사는 물론이고 사무처 입법고시 출신들이 아예 예정처장 자리를 차관 승진 개념으로 여긴다. 초기에 어렵게 뽑은 외부의 유능한 인재들이 대부분 떠난 이유기도 하다.” ―이번 추경도 그렇고 정부 예산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당신은 예산 규모 확대가 개인의 자유를 축소시킨다고 주장하는데…. “흔히 예산안 논의의 초점을 적자냐 흑자냐, 또는 급증하는 국가채무에 맞추는데 더 중요한 것은 예산의 규모, 우선순위, 낭비 여부다. 그리고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전문가들도 제대로 인식을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예산 규모가 커질수록 개인의 자유는 반비례로 감소한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 건가.) “예산은 세금 아닌가. 예산 규모가 커진다는 건 세금을 더 많이 걷는다는 뜻이다. 세금 증대분만큼 개인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몫이 제한되는 것이다. 또 예산을 나눠주는 쪽의 힘이 커지고, 수혜를 받는 국민이 국가에 종속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국가의 힘이 커질수록 국민의 자유가 줄 수밖에 없지 않나. 민주화의 길은 결국 개인의 자유를 증대해온 길이다. 그런데 알든 모르든 민주화 세력이라는 집권당이 그와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게 안타깝다.” ―국가 예산을 제대로 감시하는 게 민주화운동의 하나가 될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그래서 예산 감시가 그렇게 중요한데… 여야를 막론하고 예산의 본질과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의원들이 태반이다. 지역구 사업비 밀어 넣는 것이 예산 편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여야는 행정부 견제보다 자기들끼리 견제가 우선이고, 특히 여당은 국회 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행정부를 감시하기보다 정부 정책에 동조하는 분석을 강요하고 있다. 이번 추경 때도 보지 않았나.” ※국회예산정책처: 국가의 예산결산·기금 및 재정운용과 관련된 사항을 연구 분석·평가하고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2004년 3월 설립된 국회 내 기관. 국회의장 소속이지만 직무에 있어서는 법으로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연구인력 등 현재 13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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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사람들의 죄”[횡설수설/이진구]

    개인이 스스로를 지킬 수 없을 때 가장 마지막으로 달려가는 곳이 국가다. 어릴 적 등 뒤에 숨으면 언제나 나를 지켜줄 것 같은, 부모나 형처럼 든든한 존재라고 할까.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관계 기관 홈페이지에 숱한 사람들이 억울한 사연을 올리는 것은 나를 지켜달라는 절박한 마음의 발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을 때 심정은 어떨까. ▷지난달 26일 팀 감독 등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22세의 꽃다운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철인3종 경기 고 최숙현 선수가 6차례나 관련 기관에 진정을 넣었지만 모두 건성으로 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2월 소속 팀을 운영하는 경주시청을 시작으로 검찰 등 수사기관과 대한철인3종협회 등 관련 체육기관에 호소했지만 진심을 갖고 귀를 기울여 준 곳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최 선수는 생을 마감하기 전날인 지난달 25일에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넣었다. 20대 초반의 꽃다운 선수가 마지막까지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친 것을 생각하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딸을 대신해 경주시청에 진정을 넣은 최 선수 아버지는 “팀이 전지훈련을 갔는데 다 불러들일 수 있느냐. 고소하려면 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는 “이런 것은 벌금 몇십만 원짜리밖에 안 된다”는 말을 들었고,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는 코로나19로 관련자들을 부르기 어려우니 피해 내용은 경찰 수사로 대신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대한철인3종협회는 클린스포츠센터로 ‘퉁’쳤다. 그러는 사이에 넉 달이라는 시간이 하염없이 흘렀고, 최 선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지난 수년간 체육계에서 폭행 성폭력 등 각종 비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는 근절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지난해 1월 쇼트트랙 국가대표였던 심석희, 여자 유도 선수 출신 신유용 등의 체육계 미투가 터지자 경기단체들에 대한 전수조사까지 벌이고 자정 능력이 없는 대한체육회 등을 대신해 스포츠윤리센터를 설립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워낙 학맥 인맥으로 칡뿌리처럼 얽히다 보니 눈감아주기가 여전한 데다 우승과 메달이라는 성적 지상주의도 폭행이나 체벌이 사라지지 않고 관행처럼 내려오게 하는 이유라고 한다. ▷최 선수가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남긴 말은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줘”였다. 엄마가 무슨 힘이 있으랴마는 국가기관에 외면 받은 20대 청년이 마지막으로 호소할 곳이 가족 외에 달리 있었을까. ‘그 사람들’에는 감독 등 가해자들뿐만 아니라 절박한 호소를 귀담아듣지 않은 기관들의 무책임과 방관까지 포함되는 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아프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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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시민, 김어준이 진보? 권력집단 옹호하는 진보도 있나”[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21대 총선은 미래통합당은 물론이고 정의당에도 가치 재정립이라는 숙제를 던졌다. 진보를 표방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어제 국회 17개 상임위원회를 독식하는 등 점점 더 기득권화가 심화되는 상황. 상당 부분 한배를 탔던 정의당도 마냥 민주당과 함께 갈 수만은 없는 처지가 됐다. 정의당이 창당 8년 만에 처음으로 혁신위를 구성하고 진보 리모델링에 들어간 것도 그런 까닭이다. 혁신위에서는 진보가 민주세력과 결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고 한다. 김창인 정의당 혁신위원(30)은 “기성진보 인사들의 유통기한은 이제 다했다. 진보도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유통기한이 끝난 기성진보란 누굴 말하나. “2018년 ‘청년, 리버럴과 싸우다’란 책을 출판했는데 그 책을 쓸 때는 대표적으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tbs 뉴스공장을 진행하는 김어준 씨를 상정했다. 물론 사회 곳곳에 상층부를 형성한 86세대도 포함된다. 그들은… 이제는 기성진보도 아닌 그냥 ‘기성’이다. 더 이상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왜 그런가. 그들에게는 여전히 많은 지지층이 있고 보수진영과 싸우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들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그들의 말이 우리 사회를 진보하고 발전시키는 쪽에 있는지, 아니면 자신들이 지금까지 만들어 온 것에 대해 변호하고 강변하는 것인지. 지금은 후자에 더 가깝다고 본다.” (그들이 기득권을 옹호하는 쪽으로 변했다는 건가.) “기득권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이미 자신들이 기득권이다. 왜 스스로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아직도 자신들을 여전히 불합리한 세상과 싸우는 투사처럼 생각하고 이야기하는데 굉장히 큰 문제다.” (말하는 중간에 미안한데 심상정 대표는 기성진보에 안 들어가나.) “유 이사장 등과 약간 결은 다르지만… 기성진보인 것도, 세대교체 대상에도 당연히 들어간다. 심 대표를 넘어야 한다는 말은 너무나 식상한 얘기다. 본인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공공연히 말하는데….”※‘청년, 리버럴과 싸우다’의 부제는 ‘진보라고 착각하는 꼰대들을 향한 청년들의 발칙한 도발’이다. ―유시민, 김어준 씨나 민주당 주장을 들으면 아직도 야당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들은 자꾸 음모론을 제기하는 거다. 문재인 정권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세력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니까. 그들이 말하는 걸 보면 ‘여전히 통합당이란 거악, 토착왜구가 남아있다. 이 사람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니 우리에게 힘을 실어 달라’ 이런 투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대통령도, 국회도 민주당이 다 차지했다. 사회 곳곳의 상층부가 86세대다. 어떻게 더 힘을 실어달라는 건지… 더 나은 세상을 얘기하지 않고 통합당 없애는 것만 말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정치하는 건 굉장히 비겁한 태도다. 그들이 민주화의 형식과 절차적인 면을 만들어 온 성과는 인정한다. 다만 그들이 만들고 싶었던 세상은 이미 만들어졌다고 본다. 그분들이 좀 생각을 바꿔야 하는데…. 그리고 지금 민주당 86세대가 청년들에게 사회참여를 요구하는 것도 어찌 보면 굉장히 웃긴 모습이다.” (청년들에게 사회참여를 요구하는 게 왜 이상한가.) “그 말이 한 꺼풀 더 들어가면 결국 자신들을 지지해야 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니까. 청년들이 사회참여를 안 해서 사회가 이 모양이라는 거다. 사회가 이 모양이라면… 사회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지 왜 청년들이 참여를 안 해서인가?” ―혁신위에서 정체성 지적이 나왔는데 조국 사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 사태에서 보인 모습 때문인가. “조국 사태 때 당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 정의당이 어떤 당인지 분명하게 보여줬어야 했는데 입장이 모호했다. 그리고 사회 곳곳에 없는 사람들의 투쟁이 많은데 정작 당은 그런 곳보다 선거법 개정에 가장 절박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정치는 누구를 대변하느냐가 중요하고, 따라서 당도 누구의 편에 서 있느냐가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불분명했기 때문에 정체성 이야기가 나오는 거다. 조국 사태 때 우리는 과연 어디에 서 있었어야 했나. 조국 사태를 합법과 불법, 비리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 짚었다고 본다. 그보다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에 관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러면 정의당이 어디에 서야 했을지는 분명한 거다.” (다른 부분은 어떤가.) “지금 정의당의 정체성으로 인식된 다른 많은 부분들도 재논의할 필요가 있다. 창당 때보다 당원 수와 구성이 많이 변했다. 시대도 너무 빨리 변해가고 있고….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도 이렇게 빨리 나올지 그때는 몰랐으니까. 새로운 문제 제기는 계속 나오고 있는데 명확한 당론이 없는 것이 많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에 대한 정의당 당론이 뭐냐고 물으면 명확한 입장이 없다.” ―다른 당보다 가장 찬성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당론이 아니었나. “당 대표나 지도부 입장으로 나온 것이지 당론은 아니다. 그것도 기본소득이라는 용어로 나온 게 아니고 긴급재난지원금 같은 단어로 나왔다. 둘은 다르다고 본다. 지도부가 선언적으로 말하는 것과 강령에 명시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정의당이 말하는 정의로운 복지국가라는 노선도 처음 만들어졌을 때 생각한 개념과 지금은 시대가 다르니 다시 한번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뭘 고민해야 한다는 건가.) “정의로운 복지국가란 말을 처음 썼을 때는 아마 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을 염두에 둔 것 같은데… 우리 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게 정말 우리 당의 길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민주당과의 차별성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도…. 용어가 다소 모호해서 누구를 대변하고 싶어 하는지 정확하게 보여주기 어려운 점이 있다.” (노선이 명확해지면 반대로 보편적인 전국 정당이 되는 데는 지장이 있을 것 같은데.)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말은… 듣기에는 좋지만 사실은 아무 내용이 없는 거라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정당은 누구를 대변하는지가 명확해야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각 정치집단들이 토론하고 논쟁하고 협의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게 정치라고 보기 때문이다.” ―혁신위에서 더 이상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하지 말자고 주장한 것도 같은 이유인가. “그런 이유도 있다. 진보정당은 세상을 바꾸려는 목표를 갖고 있고, 그러려면 여러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이제는 민주당도 그 장벽이고, 그래서 같이 할 수 없다고 본다.” (진보정당 안에는 우리가 당선되지 못해도 선거연합을 안 해 통합당에 어부지리를 주는 건 절대 안 된다는 정서가 있지 않나.) “독자노선을 간다고 모든 선거연대를 하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단지 통합당을 막기 위해 선거연대가 필요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민주당에 양보하는 건 정말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온 면이 있는데 앞으로는 절대…. 그리고 이제는 선거연대로 민주당이 당선된들 큰 의미도 없다. 이번 총선은 민주당의 승리 이전에 거대 양당의 승리다. 양당의 비율이 더 커졌으니까. 우리가 넘어서야 할 것은 통합당만이 아니라 거대양당 체제다.”※거대 양당 의석수는 20대 총선 245석(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에서 이번 총선에서는 279석(민주당 176석, 통합당 103석)으로 늘었다. 정의당은 6석으로 같다. ―민주당은 여전히 진보정당을 표방한다. “그건 말도 안 된다. 나는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보는 게 진보라고 생각한다. 시스템 자체는 이상이 없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 것이니 잘 고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보수고. 지금 민주당은 완전히 후자 아닌가? 30년 이상 지속되면서 이제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거대 양당체제를 바꾸는 것은 고사하고 향유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누가 주도권을 가졌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거대양당이 정치와 국정을 주도한 시스템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의당은 서민을 위한 정당을 표방하고, 정책도 그런데 선거에서 서민들이 많이 지지하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결국 실력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정책, 조직 등도 다 포함해 포괄적으로. 소선거구제로 피해를 보는 건 사실이지만, 이번 총선의 비례위성정당만 봐도 어차피 거대양당은 규칙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 힘을 갖고 있다. 설사 어느 정도 합리적인 제도가 만들어진다 해도 어떻게든 결함을 찾아 비집고 들어올 텐데 제도 탓을 하는 게 소용이 있을까? 불리함 속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선거 결과로만 판단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진보정당이 뛰는 무대는 아주 여러 분야에 걸쳐 있는데 언젠가부터 선거 결과가 마치 모든 것인 것처럼 여겨진 면이 있다. 선거는 중요하지만 의석수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 김창인2014년 중앙대 철학과 재학 중 재단의 학교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자퇴한 뒤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청년지식공동체 ‘청년담론’을 설립하며 진보의 세대교체를 주장하고 있고, 지난해 정의당에 입당해 이번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 대변인을 맡았다. 현재 정의당 상근혁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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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틴의 살균터널[횡설수설/이진구]

    1978년 영국을 방문한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악수한 뒤 면전에서 소독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만찬 음식도 수행원들이 먼저 먹어본 뒤 먹었고, 가구와 침대는 본국에서 소독한 것을 공수해 사용했다. 차우셰스쿠가 돌아간 뒤 여왕은 제임스 캘러헌 총리를 불러 어떻게 저런 인간을 초대했느냐고 질책했는데 여왕이 총리에게 이 정도로 화를 낸 적은 지금까지도 없다고 한다. ▷늘 암살의 두려움을 안고 사는 독재자들은 독약이나 세균, 바이러스 등에 피해망상에 가까울 정도의 노이로제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자연적인 감염에 대한 공포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가 유행하자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은 사망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34일이나 잠적했다가 최근 나타났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봄 20일간 잠적했을 때도 코로나19 때문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1일 공장 준공식에 나타나 잠적을 끝낸 이후에도 원산과 평양 외곽 강동군에 머물렀는데 평양의 코로나19 상황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죽은 사람이 감염될 리도 없을 텐데 이런 과민반응은 사망한 ‘최고 존엄’에도 적용된다.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에 들어가려면 외투와 소지품을 모두 맡긴 뒤 신발 바닥 소독기와 멸균대를 지나야 한다. ‘초강력 흡입여과실’도 있는데 볼살이 일그러질 정도의 강풍이 일면서 진공청소기처럼 온몸의 먼지를 빨아들인다. ▷러시아가 17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관저와 크렘린궁에 특별 살균터널이 설치돼 있다고 밝혔다. 사람이 지나가면 천장과 벽에서 소독약이 뿌려지는데 관저와 크렘린궁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푸틴은 3월부터 크렘린궁 집무실 대신 주로 관저에 머물며 원격 시스템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고 한다. 24일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5주년 군사퍼레이드에서 단상에 함께 앉을 참전군인 80명은 푸틴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 격리 중이다. ▷독재자들의 감염 노이로제는 자업자득이다. 오랜 독재로 나라가 어렵다 보니 의료체계가 부실한 데다 국민의 건강 수준도 낮아 감염병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니카라과 정부는 코로나19에 아예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고,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해 방역당국이 암매장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의 코로나19 확진자는 55만여 명, 사망자는 7000여 명이지만 과소 추계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19 청정국을 자처하지만 믿는 사람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눈치 볼 필요가 없는 독재자들이 비정상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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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민주당 모습 보고… DJ가 지하에서 통곡하고 있을 것”[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요즘 더불어민주당은 이상한 것투성이다. 국가권력 확대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게 진보이건만,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이 국회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갖겠다고 힘 과시를 서슴지 않았다. 소수의 목소리를 경청하기는커녕 당내 이견에는 되레 징계를 내렸다. 대표적인 진보사회학자인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75·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 이사장)는 “상대를 척결해야 할 적으로 보는 운동권적 선악논리자들이 권력을 가지면서 진보권위주의라는 이상한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말했다.》 진보(進步).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하는 것 또는 그 세력. 지금 그들은 얼마나 그에 부합하고 있을까. 권력과 결합한 진보가 더 이상 진보적이 될 수 있을까. ―상대를 인정하는 게 민주주의인데 민주화 세력이 집권한 뒤 진영 갈등이 더 커지고 있다. “적과 동지를 날카롭게 구별하고 흑백, 선악으로 나누는 지금 진보진영의 성향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형성됐다. 그게 지금까지 유지돼 보수를 파트너가 아니라 쓰러뜨려야 할 적으로 본다. 진보·보수가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서로 존중하며 발전해 가는 게 민주주의인데 일종의 정복 대상으로 보는 거다. 적폐 청산 얘기를 계속하는 이유가, 어떤 말로 포장해도 본심은 이번 기회에 저 집단, 저 정당을 확실하게 쓰러뜨리자는 것 아닌가. 총선 압승으로 민주당은 평소에 내재된 이런 욕구를 더 거리낌 없이 드러낼 것 같다. 당분간은 누가 막기도 어려운 상황이고….”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 시절에는 진영 논리가 그리 강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YS는 극좌로 분류되던 민중당 출신의 이재오 전 의원을 영입하고, DJ는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와 손을 잡지 않았나.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제1당이 되면서부터 지금 같은 진영 논리가 강화됐다고 본다. 당시 전북 무주에서 열린 의원연찬회에서 원내 절반을 넘는 정당이 됐으니 절대 이념으로 가지 말고 실용으로 가라고 당부했다. 말을 끝내자마자 질문이 쏟아졌는데….” (108번뇌라고 불렸던 그 초선들인가.) “그런 것 같다. ‘실용이 이념입니까?’ ‘우리는 이념으로 가야 합니다’라고 하더라. 그리고 국가보안법 등 4대 악법 폐지를 밀어붙였다. 그때도 지금처럼 10년, 20년 집권한다고 떠들었는데 그러다 쫄딱 망했지. 이번 총선 끝나고 이해찬 대표가 그때 기억을 잊지 말자고 했지만 말만 그럴 뿐 하는 행태는 그때랑 똑같다. 하… 안타깝지.” (민주당이?) “대한민국이.” ―조국·윤미향 사태에서 보인 민주당의 비상식적인 모습도 진영 논리 탓이라고 보나. “잘못이 있으면 반성하면 되는데 민주당 안에는 잘못을 인정하는 건 자살 행위이고, 하나로 끝나지 않고 둑을 무너뜨릴 거라는 인식이 있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왜 저렇게까지 우기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강변을 한다.” (당신은 민주당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아나.) “민주당이 2012년 18대 대선에서 패한 뒤 내가 대선평가위원장을 하면서 속을 봤으니까.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책임을 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심하다. 책임윤리가 없다고 하는 건 그나마 좋게 표현한 거다. 자신들은 항상 선한 의지, 좋은 목적으로 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잘못의 원인을 늘 밖에서 찾는다.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늘 일어나는 게 정치다. 그걸 인정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면 되는데 민주당은 상대가 나쁘게 해서 잘못된 거라고 적에게 책임을 씌운다. 그러니 모든 게 적폐청산식으로 가는 거다. 조국·윤미향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게 있지 않나. 왜 저렇게까지 억지 강변을 할까 하는 것. 약간의 실수는 있지만 책임질 일은 없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나는 이대로 가면 진보권위주의를 넘어 진보독재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진보독재는 좀 많이 나간 느낌인데…. “최근 세계 30대 대도시 시민의식을 조사했는데, 거의 대부분에서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더 국가권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었다.” (진보는 통상 국가권력이 과도해지는 걸 반대하지 않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진보는 인권, 다원성, 약자·소수자와의 공존, 국가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 등의 쪽에 선다. 보수는 국가권력과 국가의 이익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고. 그런데 코로나19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진보의 성향 변화와 무슨 관계가 있나.) “아직은 가설이지만…. 진보는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와 갈등을 해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사고 경향을 갖고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인 엄청난 장애인데 이걸 극복하려면 국가가 강제로 시민의 생활을 통제할 수밖에 없다. 원래 국가가 시민을 통제하면 진보는 저항하는 게 맞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적을 극복할 주체가 국가밖에 없다 보니 그 권력을 강화하고, 통제가 심화되는 것을 옹호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나타나는 거다.” ―코로나19가 민주당의 독주에 더 힘을 실어줄 거라는 건가. “민주당은 이미 권력중독에 빠졌다. 권력중독은 타의에 의해 빼앗기기 전까지는 스스로 치료하기 힘든 병이고, 안 빼앗기기 위해 모든 권력을 동원하는 등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권력자에게는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지만, 코로나19로 국가권력을 강화하고 국가 중심적으로 가는 데 굉장히 유리한 상황을 맞았다.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조직을 늘리겠다는데, 경제가 어려워 돈을 풀겠다는데 누가 안 된다고 반대하겠나. 저항이 거의 없는 거지. 이번 선거에서 보지 않았나. 이렇게 결합돼 가면 진보권위주의 또는 진보독재가 안 벌어질 거라 장담하기도 어렵다.” (금태섭 전 의원에 대한 징계도 괴물이 돼 가는 과정 중 하나라고 보나.) “하… 그건 정말, 민주당의 치욕이다. 그게 무슨 진보인가. 도그마에 빠진 거지. 우리가 옳다는 자기 확신. 그걸 반대하는 건 곧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니 자중 요구 정도로는 안 되고 금지시켜야 하고, 그러자니 원흉을 처벌할 수밖에 없고…. DJ는 정의를 추구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처럼 징벌적 정의를 목표로 하지는 않았다. 야당이 반대해도 배척하지 않았고, 자신을 탄압했던 사람들도 용서했다. 지금 민주당과 청와대에는 이런 게 사라졌다. DJ가 지금 민주당 모습을 보면… 지하에서 통곡을 하고 있을 것이다.” ―DJ와 인연이 깊나. “1988년부터 DJ를 도왔으니까…. 당시만 해도 국립대(서울대) 교수가 그것도 DJ를 공개적으로 돕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주변에서도 만류를 많이 했고….”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정치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돕기는 한다. 하지만 학자가 직접 정치를 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나로서는 일종의 금도라고 할까….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9월경인데 DJ 사저에서 공부모임을 할 때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달라고 했다. 이번에 될 것 같은데 제발 나를 정치에 부르지는 말아달라고…. 의아하게 쳐다보더니 ‘약속하지’라고 하더라. 그 뒤로도 청와대 참모진에게서 의사타진이 왔지만 DJ가 약속했다는 말로 다 거절했다.” ―지금처럼 권력과 진보세력이 한 몸이 되면 권력에 대한 저항은 누가 하나. “공백까지는 아니지만 그 부분이 큰 빈터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지금 진보 시민세력은 정치권력과 같은 패가 돼 움직이는 면이 있으니까. 지금 권력과 함께 움직이는 진보 시민단체를 관변단체라고 못 부를 이유가 없다. 스스로는 진보라고 하지만…. 이제는 시민사회를 대변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역으로 보수가 자신들이 대변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서 시민사회를 대변할 수 있다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다.” ―당신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진보학자인데 민주당을 지적하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나. “난 나 자신을 진보라고 규정지은 적이 없다. 그런 구분에서 벗어나고도 싶고…. 단지 사람들이 진보라는 범주 안에 왜 나를 포함시키는지 생각해 본 적은 있다.” (왜 포함된 건가.) “유학을 마치고 1981년 서울대에 왔을 때 학생운동이 대단했다. 이념적으로 굉장히 급진적인 학생들과 젊은 지식인이 많았는데 당시 대부분의 교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학문적인 준비가 안 돼 있었다. 난 그런 부분에 대해 논문도 쓰고 공부도 좀 해서 서로 논쟁이 가능했다. 그래서 당시 정통 진보 쪽에서는 나를 보수는 확실히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들과 같은 진보 유형은 아닌데 그래도 대화는 되는… 그런 정도의 사람으로 봤다. 그러면서 점차 진보라는 카테고리에 포함된 것 같다. 내가 보수는 아니지만, 학생운동이나 진보적인 생각도 무조건 지지하지는 않았다. 이해는 하면서도 비판할 건 비판하는 입장이라 할까…. 그렇다 보니 정통 진보 쪽에서는 나를 늘 물음표를 붙여서 봤다. 개량진보라고 부르기도 하고…. 진보가 인권, 약자와 소외된 집단 등의 권리를 신장시키고 대변하고 싶다면… 서로 비판할 건 비판하고, 그 비판에 대응하면서 발전하는 것 아닌가.”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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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꼼수로 黑을 白으로 만든 위성정당 창당… 코미디 잘 보고 갑니다”[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당대의 국수(國手)가 보는 정치가 궁금해 해마다 가진 인터뷰가 이제 네 번째. 그동안 그는 “하수인 나도 수가 보이는데 고수들이 왜…”라며 잡힐 게 뻔한 축(逐)만 계속 두는 소속 정당을 안타까워했지만, 그 자신 또한 그 축 속의 돌이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차이가 있다면 자신의 행보가 꼼수임을 인정한다는 정도가 아닌지. 꼼수임을 알면서도 놓여야 하는 돌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제 마지막 대국을 둔다.》● 4년간 당적이 4번이나 바뀔 정도로 파란의 연속이었다.○ 프로 기사 시절 별명이 ‘제비’였는데… 하하하, 의도한 건 아닌데 철새가 됐네 그려. (정치를 한 걸 후회하나.) 그렇지는 않고… 처음부터 정치보다는 바둑계를 위한 역할을 하고 싶어 온 거니까. ‘도둑놈’ 소리도 듣고 별일 다 있었지만 그래도 숙원이던 바둑진흥법도 통과돼 역할은 했다고 생각한다. (누가 도둑이라고 하던가.) 하루는 바둑 팬이라는 한 유투버가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카메라에 대고 석고대죄를 하라는 거야. 황당해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박근혜당은 도둑놈당이니 너도 도둑놈 아니냐고 하더라고. 뭐라고 대꾸를 하면 또 찍어서 내보낼 테니 참기는 했는데 뿔따구가 나서…. 끝날 때면 시원섭섭해야 하는데… 솔직히 시원은 한데 섭섭하진 않다. 붙잡으며 가지 말란 사람도 없고. (마음고생이 좀 있었나.) 들어오고 얼마 후부터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여야 모두 마찬가지지만, 상대방이라고 모두 잘못된 건 아닌데 무조건 잘못이라고 비난하고 반대하는 게… 무슨 꼼수를 쓰더라도 흰 돌을 검은 돌로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제대하는 느낌? 무사히 마쳐서 다행이긴 한데 적임자가 아닌 데 있었다는 것은 반성하고 있다.● 당신은 무사히 마쳐서 다행이지만 당은 전보다 더 망했다.○ 나야 하수인데 뭘 알겠어. 사람들은 지나가는 말로 신의 한 수가 없냐고 묻지만 정치에 신의 한 수가 따로 있나? 한 수 한 수 정석대로 두지 않고 악수와 꼼수만 둔 결과가 쌓여서 그렇게 된 건데…. 바둑도 묘수보다 실수를 덜한 쪽이 이긴다. 인생도 정치도 마찬가지 아닐까. 현 정부의 숱한 잘못과 오만에도 총선 결과가 그렇게 나온 건 우리가 더 많이 실수했다는 뜻이라고 본다. 우리만 몰랐을 뿐…. (훈수는 좀 안 뒀나.) 할까 말까 목구멍까지 말이 올라온 적은 있는데… 그런데 내가 말이 좀 달린다. 논리적으로 말을 이어야 하는데 말싸움에 약하거든. 그래서 못 했다.● 다른 정치 판세를 묻기는 좀 그렇고… 종로에 사는데 황교안 전 대표 선거는 어떻게 봤나.○ 여기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데… 솔직히 나는 황 전 대표가 왜 지는 바둑을 뒀는지 이해가 안 갔다. 전임자였던 정세균 국무총리가 조직을 너무 잘 다져놨거든. 그걸 그대로 물려준 데다 황 전 대표는 여기에 조직도, 사람도 없었고 그나마도 늦게 뛰어들지 않았나. 지지율도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더 높았고. (당 대표가 결사항전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여론이 크지 않았나. 황 전 대표로서는 지더라도 둬야만 하는 바둑이 아니었을까.) 명분이 실리보다 더 중요한 경우도 물론 있다. 대선이었다면 지더라도 모든 걸 걸고 나가야지. 그런데 본선이 남아 있는데 예선에서 장렬히 전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염치 불고하고 텃밭에 나가 의원이 되든지, 아니면 아예 불출마를 선언하고 전국을 돌며 후보 지원 유세를 하든지. 그랬다면 오세훈 후보처럼 박빙으로 진 곳들은 이겼을지도 모른다. 총선을 졌더라도 지금 정도가 아니었다면 물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당에서도 무슨 근거에서인지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 제대로 된 수읽기는 물론이고, 끝나고 나서 복기도 제대로 안 하고 있고. (조언을 좀 해주지 그랬나.) 그 정도는 당에서 다 알 거라 생각했는데… 이기면 단번에 모든 게임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마치 로또처럼…. 물러나는 마지막 모습도 안 좋게 보였다. ※황 전 대표는 장고 끝에 2월 7일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서울 광진을에서 당선된 고민정 후보(50.4%)와 오세훈 후보(47.8%)의 차이는 2.6%포인트였다.● 마지막 모습이라니?○ 투표 당일 밤에 사퇴했는데… 전체적인 윤곽은 나왔지만 아직 모든 개표가 다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비례대표도 최종적으로 17석일지, 19석일지 모를 때였고…. 책임은 져야겠지만 최종 결과가 나온 뒤에 직무대행도 선임하고 마무리를 진 뒤 물러나도 늦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바둑 두다 진 게 확실하니까 그냥 자리 털고 일어난 거 같은 거지. 그러다 보니 누가 직무대행을 하느냐를 놓고 또 혼선을 빚었지 않나. 지더라도 예의가 있는 건데….● 이번 총선의 코미디 중 하나가 여야의 비례 위성정당 창당이다. 정치를 더 할 것도 아니라면서 왜 간 건가.○ 꼼수 맞다. 우리 당도 잘한 일은 아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도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순수한 의도로 밀어붙인 건 아니니까…. 당에서 비례대표용 정당을 만들고 1차로 5명을 보내는 게 계획이었는데 가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보고 가달라고 하더라고. 난 뭐, 여기나 거기나 매한가지고… 당에 별로 도와준 것도 없어서 그러겠다고 했다. 근데 가니까 또 사람 없다고 사무총장도 하라고 하더라. (당 살림은 모르지 않나.) 그렇지. 그래서 무슨 소리냐고 했는데 별로 할 일도 없으니 그냥 앉아만 있으면 된다고 하더라고? 앉아만 있으면 되긴…. 최고위원에 공천관리부위원장까지 했다. (주변에서 말리지는 않던가.) 뭐라는 말은 없었는데 정치 계속할 생각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졌다. 안 그러면 옮길 이유가 없다고 본 거 같다. 4년 내내 안 그러다가 갑자기 사무총장도 하니까… 난 아니지만 그렇게도 보일 수 있겠지.● 덕분에 고발까지 당했다.○ 민주당이 정당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한선교 대표와 나를 검찰에 고발했더라고. 미래한국당 창당으로 개정선거법과 국민의 의사가 무력화되고, 자유로운 선거를 방해했다는 건데… 또 중앙선관위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했다고 공무집행방해죄로도 걸었다.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하기 전이다. 그땐 있는 욕 없는 욕 다하더니… 결국 자기들도 만들지 않았나.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있을까? 옛날에 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나보다 더 웃긴 사람들이 많다”고 했던 말이 이해가 되더라. 코미디 한 편 잘 보고 가긴 한 것 같다. (조사는 받았나.) 아직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민주당은 2월 13일 한 대표와 사무총장이던 조 의원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한국당 창당에 대해 당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정치를 장난으로 만드는 것”이라 했고, 이재정 대변인은 “태생적 위헌 정당”이라 했다. 이후 민주당은 3월 18일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했다.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코미디언 이주일은 1996년 1월 불출마를 선언하며 “여기에는 나보다 더 코미디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4년 동안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간다”라고 말했다. 그는 코미디언이었지만 “딴따라가 뭘 안다고 정치냐”란 말을 듣지 않으려고 진지하게 국정활동을 했다고 한다.● 한국당 공천이 사달이 났는데 왜 사전에 조율이 안 되고 발표 후에 난리가 난 건가.○ 발표 전에 알긴 했지만 공천관리위원이 나 빼고 전부 한 대표 편이라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국당에 가고 나서 내가 어이가 없었던 게… 최고위원도 5명 중에 3명이 한 대표 쪽이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제어 장치가 전혀 없었던 거다. 공천관리위원 구성도 그렇고 자기 정치를 할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다시 합칠 게 너무 뻔한데 왜 그런 무리수를 뒀을까. 원유철 대표도 통합을 늦추려다 반발을 사고….) 속내야 알 수 없지만… 처음에는 민주당이 비례 위성정당을 안 만들면 한국당이 27석 안팎을 얻을 거란 전망도 있었다. 그러면 민주당, 통합당에 이어 원내 제3당이 되지 않나. 교섭단체도 되고, 국회 부의장 몫도 생기니까 엄청난 메리트가 있는 거지. 전부 비례대표니 탈당도 못하고. 갈 때와 생각이 달라졌겠지. 정치가 그렇더라고.● 앞으로 뭘 할 건가. 바둑계로 복귀하나.○ 의원 될 때 한국기원에 휴직계 내고 왔으니까 복직을 해야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회에 나가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옛날 실력이 안 나온다. 단수도 안 보일 때가 있으니까. 지금은 실력으로 비교하면 아마 300등도 안 될 거다. 조훈현도 이젠… 통하지 않는다. (스스로 초보라고는 하지만 4년이 지났는데 정치 급수는 어떤가. 여전히 18급인가.) 그건 조금 올려주면 안 되나? 9급? 하하하. ※4년 전 그의 랭킹은 프로기사 380여 명 중 65위였다고 한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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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코로나 사망 10만[횡설수설/이진구]

    미국 내 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27일 10만 명을 넘었다. 워싱턴포스트는 1면에 추모특집 기사를 게재하며 ‘뉴욕시 3만5000명’ ‘시카고 4600명’ 등 도시별 사망자 수를 적었는데 모두 ‘more than(이상)’이란 전제를 달았다. 정확한 사망자 수는 알 수 없고, 발표된 수치는 ‘최소한’이라는 의미다. ▷그냥 10만 명이라면 감이 잘 안 오지만 이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미군(11만6000여 명)에 육박하는 규모다. 지난달 미 백악관 발표 자료에 따르면 남북전쟁은 49만 명, 제2차 세계대전 40만 명, 베트남전 9만200여 명, 6·25전쟁 5만4000여 명이 전사했다. 2월 6일 첫 사망자가 나온 지 석 달여 만에 2년 동안 참전한 1차대전 규모의 전쟁을 치른 셈이다. 백악관은 최대 24만 명 이상이 사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확진자만 최소 169만 명을 넘으니 과장된 전망은 아닌 것 같다. 24만명까지 이르면 코로나 19는 미 건국 이래 세 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이 된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지만 한 꺼풀 벗기고 들여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선 파악 등 역학조사도 지금은 작은 도시나 새로 발생한 곳 정도에서만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정부와 국민의 안일한 인식으로 초기 대응이 늦어 이미 손쓸 수 없이 광범위하게 퍼진 탓에 조사가 무의미한 상태라는 것이다. 고령자와 함께 불법 이민자가 많은 지역, 저소득 유색인종 계층 등에 사망자가 집중됐는데, 잡힐까 봐 또는 의료보험이 없어 집에서 버티다 목숨이 경각에 이르러 병원에 실려 가서라고 한다. ▷연방정부기관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우리 질병관리본부처럼 매일 확진자 및 사망자 수를 발표하지 않는다. 주 정부에서 검증 안 된 자료를 보내는 경우가 꽤 있어 공신력 때문에 이를 다시 검증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려서라고 한다.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전국 병원 응급실과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존스홉킨스대에 시설 등을 지원하고 발표를 맡기고 있다. ▷코로나19는 미국의 공공의료 취약성과 위험할 정도로 벌어진 사회계층 간의 격차를 무참하게 드러냈다. 노숙자, 촘촘하지 못한 행정망 등으로 숨진 뒤 발견된 사람은 검사도 안 하기 때문에 실제 사망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은 날 첫 민간 유인 우주선 발사를 축하하기 위해 케네디우주센터를 찾아 “오늘은 우리나라에 매우 흥분되는 날”이라고 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슈퍼대국이 안고 있는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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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합당, 청년 정치 바라면 고인 물인 당 청년조직부터 없애야”[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정치권에 ‘젊은 피 수혈’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늘 수혈로만 연명하는 조직이 정상일까. 적지만 늘 일정수의 청년 국회의원들이 당선되고, 각 당에는 청년 조직이 수두룩한데 왜 여전히 청년 수혈이 필요한 걸까.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35)은 “비례대표, 당 최고위원에 청년 몫을 배정하는 건 뭔가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청년 정치를 마이너리그로 계속 남겨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12월, 26세의 나이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20대와 이번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비례대표에 청년 몫을 배려하는 게 마이너리그를 만드는 일이라니…. “청년 정치, 청년 정책이란 게 별도로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다. 허상을 만들어 놓은 게 아닌가 싶은데…. 예를 들어 경제가 살아나면 전체 일자리가 늘면서 청년 취업도 함께 느는 거지 청년만 콕 집어 늘릴 방법은 없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청년 정치가 뭔지 규정도 못한다. 그러다 보니 비례대표의원에 청년 한두 명 집어넣고 청년 정책을 하라는 게 청년 정치처럼 됐다. 가장 힘없는 초선 비례의원에게. 지금 정치권에서 청년 몫으로 자리를 주는 것은 젊은층에 대한 배려나 시혜성이 아닌가 싶다.” (당신은 청년 몫 혜택을 보지 않았나?) “나는 ‘청년’ 타이틀이 붙은 자리를 한 번도 맡은 적이 없다. 바른미래당 전당대회에 출마했을 때도 청년 최고위원 분야가 아닌 일반 최고위원으로 출마했다. 청년으로 나오면 기탁금이 1000만 원인데 일반은 5000만 원이다. 그리고 당 청년위원회를 없애겠다고 공약했다.” ―청년 정치인이 청년위원회를 없애겠다고 공약했다고? “2011년 12월 한나라당 비대위원이 되니까 지역별 당 청년위원장들이 술 한잔하자고 해 만났다. 그랬더니 ‘형들이 열심히 해왔으니 우리를 잊으면 안 된다’는 거다. 지금 정당의 청년위원회는 솔직히 ‘야인시대’에 나오는 조직과 별로 다르지 않다. 폭력을 쓴다는 건 아니고 돈과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버티며 연공서열을 형성하는 구조다. 이 구조가 새 물이 들어오는 데 장벽을 만든다. 통합당이 구조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느냐면, 청년위원회가 워낙 고인 물인데 없앨 수가 없으니까 회피해서 대학생위원회 미래세대위원회 차세대여성위원회 이런 걸 별도로 자꾸 만들게 된다. 당신이 전에 인터뷰한 손수조 전 새누리당 부산 사상 당협위원장이 미래세대위원장을 한 이유가 그런 까닭이다.” ―문제의식은 알겠는데 그렇게라도 배려하지 않으면 어떻게 키우나. “청년 타이틀에 연연하지 말고 사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을 공정하게 선발해 당직을 주고 활동할 수 있게 하면 된다. 나이를 따질 필요도 없다. 신인이 당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 없이 의원만 몇 석 청년 몫으로 떼 주는 지금 방식은 뭔가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계속 마이너리그를 만드는 거다. 물론 동시에 너무 짠 당원 구조를 희석시키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 (짜다는 건…국민의 보편적 성향과 차이가 크다는 말인가.) “지금 통합당은 젊은 도전자들이 자기만의 참신함, 감각으로 정견·정책을 말해도 그에 호응하는 당원이 적다. 이게 청년들의 도전을 위축시키는 이유다. 더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생각을 가진 당원들을 늘려 젊은 도전자들의 말에 호응하고 표를 주는 변화가 생긴다면 굳이 청년이란 타이틀을 붙인 자리를 만들 필요도 없다.” ―청년 정치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지역구 관리다. 조직책들에게 활동비도 줘야 하고…. “난 4년 동안 관리하면서 한 번도 활동비를 준 적이 없다. 그래서 떨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아마 모든 통합당 당협위원장들이 겪는 문제일 텐데, 지역에 공화당 민정당 때부터 내려오는 고문, 자문위원분들이 있다. 20대 총선 때인데 그분들 중 일부가 취해서 나타나 자원봉사자들에게 ‘커피 내와라’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사고를 쳤다. 다음 날 자원봉사자들이 전부 그만두겠다고 하더라. 이번 총선에서는 처음부터 ‘지역 유지 쫓아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욕 많이 먹었을 것 같은데….) “선거 전날까지 엄청 씹어대는 사람들도 있고, 누구는 또 700표는 날아가게 하겠다고도 하고… 근데 솔직히 지금 대한민국의 어떤 유지도 ‘누구 찍어라’ 이러지 않는다. ‘찍지 마라’는 더더욱. 정치하려는 젊은 사람들이 그런 부분에 너무 과도하게 휘둘리지 않았으면 한다.” ―통합당은 강성보수 유튜버에게 더 휘둘리지 않나. “나는 유튜브 채널을 안 한다. 선거에 영향이 없어서다. 100만 구독자라 해도 전국 250개 지역구로 나누면 동네에서는 4000명밖에 안 된다. 10만이면 400명이고.” (400명이 적은가?) “그 400명은 굉장히 보수 성향이 강한 사람들인데…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우리를 찍을 사람들 아닌가. 유튜브는 구독자를 타기팅해서 모으기가 어렵기 때문에 동네 선거에서는 영향력이 별로 없다. 이번에도 보수 유튜브 채널 가보면 ‘바람이 분다’ ‘판세가 뒤집어졌다’고 했지만 바람이 어디서 불었나. 영향이 없다는 게 증명된 거지. 서로 뻥만 쳐주는 방송을 한 거다.” ―좀 지나긴 했지만 총선에서 당 지도부 역할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19대 총선 때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비교해 보면 황교안 대표는 누군가를 제지해야 할 때 못했고,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할 때 안 했고, 책임져야 할 때 책임지지 않았다. 뭘 안 했음으로 다 귀결됐다. 차명진 후보의 막말 사건 때 황 대표가 회의에서 중앙당 윤리위가 차 후보 제명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차 후보는 당시 당협위원장이 아니라서 당헌·당규상 경기도당 윤리위에서도 제명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박근혜 비대위에서 몇 번 그렇게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도당 운영위를 소집해 최종 처리해야 하는데 운영위원들이 다 모이지 않을 것 같다고 하더라. 운영위원 대부분이 선거 후보들이다. 자기 지지율이 뚝뚝 떨어지는데 소집하면 명함 돌리다가도 온다고 했지만 결정을 못했다. 그래서 아니면 최고위원회는 당무에 관한 전반적인 상황을 논의할 수 있으니 긴급징계권을 쓰라고 했는데 그것도 안 쓰겠다고 했다.” (왜?) “갑자기 법학자가 됐다. 3일 후 박형준 공동선대위원장에게 전화가 와 주말 사이에 지지율이 푹 떨어졌다고 빨리 회의에 와 달라고 했다. 그런데 차 후보에게 우호적인 위원들이 안 와서 정족수가 안됐다. 화상통화로 회의를 열어 제명안을 통과시켰는데 그때 쓴 게 긴급징계권이다. 그때가 만약 당 상황이 아니라 국가적 재난 또는 전쟁이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박 전 비대위원장은 달랐나. “19대 총선에서 강남 서초 송파는 현역 의원을 전부 날린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그렇게 했는데 송파을 유일호 의원만 예외로 살아남았다.” (이름 덕일까?) “응? 예외가 없었으면 모르겠는데 생기니까 당시 김종인 이상돈 비대위원과 함께 모 의원을 살려 보자고 작전을 짰다. 다음 날 아침에 박 비대위원장과 조찬이 있으니까 내가 운을 띄우고 두 분이 지원사격을 해주는 걸로. 만나서 내가 ‘저… 위원장님, 모 의원은 열심히 했고…’ 하고 운을 띄웠는데 나를 딱 보더니 ‘저보다 그분을 더 잘 아세요?’라고 하더라. 아이고, 무서워라. 정말 무서웠다.” (지원사격은?) “지원사격은 무슨… 암말도 못하더라. 사실 예외가 생겨서 좀 소란스러웠는데 한 방에 정리한 거지.” ―있는 사람에게 좀 미안한 질문인데, 통합당에 희망이 있다고 보나. “미련을 못 버린 부분이 있어서….” (미련?) “바른정당, 바른미래당 시도를 해보면서 기존 보수정당이 있는데 새로운 걸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렵다고 느꼈다. 있는 걸 고쳐 써야 하는 게 현실인데… 2011∼2012년 이명박의 한나라당이 박근혜의 새누리당으로 바뀌는 과정에 내가 비대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변화가 완전히 밭을 뒤엎어 버릴 정도의 큰 과정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구체적으로 뭘 하면 달라질 거라는 건가.) “앞서 말했지만 탄핵, 선거 참패, 탈당 등을 거치면서 당 하부 구조의 짠맛이 너무 강해졌다. 그런 당원 위에 전국위원회, 최고위원회, 당 대표, 대선 주자들이 있다 보니 국민의 평균적인 상식 및 생각과는 너무 다른 말과 행동들이 버젓이 나오는 거다. 염도가 너무 높아 눈에 닿으면 실명할 정도로….” ―김세연 의원이 당 해체를 주장하는 이유도 같은 문제의식 때문인 것 같은데…. “김 의원은 당을 해체한 뒤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모이면 국민 평균에 가깝게 갈 거라 보는 거고, 나는 당원을 늘려 그 짠맛을 희석시키자는 쪽이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여론조사 표 빼고, 선거인단 투표에서 황 대표가 5만3000표를 받았다. 2위인 오세훈 후보는 2만1000표. 당내 온건 보수와 강경 보수의 차이가 이 3만 명 정도인 셈인데 이 정도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좀 더 젊고, 상식적인 당원 3만 명만 더 들어오면 지금의 강한 짠맛을 이겨낼 수 있다. 지금까지 보수정당에서는 이런 시도가 없었는데, 당의 모습을 놓고 다들 걱정하지만 사실 그렇게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라고 본다.”※국회 본관에서 인터뷰를 끝내고 그는 임시출입증을 반납하러 민원안내실로 향했다. 당연한 일을 굳이 언급한 것은 의원은 아니라도 당 최고위원이 임시출입증을 받아 드나드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의도 정치에 한 발만 걸쳐도 그들은 출입증도 없이 국회를 제 집처럼 드나드는 걸 당연시 여긴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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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도병식 공천은 그만… 나도 준비없이 공천받아선 안 됐다”[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우리도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같은 청년 정치인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사람을 길러내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정당들은 선거철마다 화제가 되는 청년을 빌려오는 데만 급급하고, 낙선하면 버린다. 그리고 이런 지적은 잘 안 하지만… 나이 외에는 자신이 기성 정치인과 뭐가 다른지 답을 못 하는 청년 정치인도 많다. 27세에 19대 총선에 출마했던 손수조 전 새누리당 부산 사상 당협위원장(35)은 “청년을 길러내는 당 시스템과 이번이 아닌 다음을 준비하는 청년이 결합되지 않으면 요원한 일”이라며 “나도 그렇게 공천을 받아서는 안 됐다”고 말했다.》 ―21대 총선에는 왜 안 나왔나. “19대 때 떨어지고 4년 동안 20대 총선을 준비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나는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자꾸 적만 더 생기더라. 그렇게 선거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면서 정치와는 좀 멀어졌다. 2015년 결혼해 애 둘 낳고, 지금은 작은 돼지고기 외식업 사업을 하고 있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솔직히 당시 너무 어렸던 것 아닌가. “말이 좋아 청년이라고 하는 거지… 어리다는 건, 손수조가 해서는 안 된다고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이유였다.” (상대 당에서 공격했나.) “아니, 내부에서. 원외당협위원장이 상대당과 싸우는 일은 1도 없다. 당내 경쟁자들이 끌어내리기 위해 ‘어려서 싸가지 없다, 버릇없다’는 식으로 말을 퍼뜨린다. 행사장에서 ‘어이, 과자나 먹어’ 하면서 툭 던지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렇게 당협위원장을 하면서 진이 다 빠졌다.” (청년을 키워주지는 못할망정 왜?) “젊으니까 저거 되면 아주 오래 한다고….” ―지역구 관리는 기성 정치인도 힘든데…. “남들은 왜 관리를 잘하지 못했냐고 하지만… 지역구에 동이 12개인데 동마다 남성 여성 청년회장을 둔다. 사람 구하기도 어렵지만 간신히 구해서 서로 얼싸안고 좋아하면, 며칠 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경쟁자들 쪽에서 데려가더라. 경쟁자도 똑같이 동마다 조직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직을 못 만들게 훼방을 한 거지.” (돈은 어떻게? 다른 직업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알바는 안 했고… 사무실 경비와 조직 관리 등으로 한 달에 800만 원 정도 들었는데… 정말 힘들었다. 앞서 말한 동 조직 외에도 산악회, 여성위원회, 청년위원회 등 각종 조직을 만드는 데 돈이 꽤 든다.” (왜?) “그냥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활동비를 줘야지. 조직이 탄탄하다는 말은 결국 이 사람들에게 어디까지, 얼마나 줄 수 있느냐는 말이다. 나처럼 없으면 금방 와해되는 거고….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엄마 카드로 돌려 막다가 결국 못 막은 일이 있었다. 너무 힘드니까 엄마가 내 앞에서 울더라. 그런데 기가 막힌 게, 그 앞에서 나는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면서 ‘엄마, 우리 버텨야 해’라고 했다. 너무 어이없지 않나? 명색이 청년 정치인이라면서…. 몇 년 하면서 나도 괴물이 된 거다.” (갚았나.) “지금 꼬박꼬박 갚고 있다. 원외도 후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정치자금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청년도 별수 없다.” ―불리한 점도 있지만 정치인에게 젊다는 건 큰 무기 아닌가. “젊음이 공중전이나 대중적 이미지로는 장점인데, 사람 만나고 뛰는 바닥 지상전에서는 불리한 점도 많다. ‘어린 게 뭘 알겠어?’ 이거지. 솔직히 내가 어리기는 했지만 어디에 뭘 입고 가야 할지 모를 나이는 아니지 않나. 그런데 어디 가면 왜 청바지 입고 왔냐고 하고, 하도 그래서 정장을 입으면 왜 애늙은이처럼 하고 왔냐고 한다. 하하하.” (어쩌라고?)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지만 그래도 국회의원 후보면 나름 정치인인데… 한번은 아예 뽀글뽀글 아줌마 파마를 하고 행사에 갔더니, 어르신들이 ‘아이고야∼ 인자 좀 어른 같네∼’ 하시더라.” ―청년 정치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전문성이나 경륜보다 젊은이다운 정의감과 패기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20대 총선이 막장공천으로 지탄을 받는데도 당신은 가만히 있었다. “…못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쉬운 점이고. 변명 같지만 그때는 후보로 뛰고 있어서 막장공천을 비판하기보다 당면한 내 현실 문제가 더 급했던 것 같다. 솔직하게 내 선거에만 매몰돼 있다 보니 그런 모습이 안 보였고, 어떻게 중심을 잡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못 했다.” (공천을 못 받을까 걱정해서는 아닌가.)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가만히 있었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런 비판을 내가 해야 한다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19대 총선에서 ‘3000만 원으로 선거 뽀개기’가 청년다운 신선한 발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나중에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선거에 몇 억씩 들인다는 게 이해가 안 갔다. 그래서 내가 3000만 원은 준비할 수 있으니까 여기에 후원금을 포함한 돈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말했다. 후원금은 정상적인 돈이니까. 그런데 웬일인지 후원금 얘기는 빠지고 3000만 원만 부각됐다.” (왜 바로잡지 않았나.) “그래야 했는데… 회의에서 ‘선거는 그렇게 가야 한다. 진짜 3000만 원으로 해내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 그냥 ‘좋아요’ 해버렸다. 내 처음 의도와는 달랐지만… 대중이 열광하는 걸 보니 호응하고 싶었다.” (그게 기성 정치인과 다른 모습을 보이겠다는 청년의 자세는 아닌 것 같은데….) “나중에는 아무리 쪼개고 쪼개도 안 되더라. 3000만 원을 고집했다가는 벽보도 컬러로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많이 넘지는 않았다. 거짓말 논란이 한창일 때 너무 힘들었는데 지원 유세 온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차 뒤로 조용히 데려가더니 ‘지킬 수 있는 공약만 하세요’라고 하더라.” ※ 그는 19대 총선 선거운동 시작 일주일 전 블로그를 통해 예비후보 기간에 비용을 거의 사용해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으며, 기탁금 1500만 원도 당 지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중앙선관위에 신고한 선거비용은 3442만 원으로 당시 경쟁했던 문재인 후보는 1억7782만 원을 신고했다. 3000만 원은 아니지만 극단적으로 줄인 것은 사실이다. ―20대 때는 왜 안 했나. 꼭 3000만 원이 아니더라도 고비용 선거는 우리 정치의 고질병 중 하나인데…. “살고 싶었던 거지. 그때는 쓸 만큼 썼다. 유급 자원봉사자도 다 썼고…. 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나중에 정말 후회했다. 19대 때 정신을 끝까지 유지했어야 했는데…. 선거에 나가면 정신도 없고, 철학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주변에서 그런 지적을 해준 선배도 없었고….” ―‘박근혜 키즈’로 불렸는데 도움은 좀 받았나. “당시 박 비대위원장은 선거 운동 시작되고 지원 유세 왔을 때 본 게 처음이었다. 선거 끝나고 준석이(이준석 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가 박 비대위원장은 도리어 나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고 하더라. ‘지역 분들이 이해하시겠어요…’라고.” (줄도 없었다면서 어떻게 입문한 건가.) “원래 정치를 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몰랐다. 그런데 19대 총선을 몇 달 앞두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내 고향인 부산 사상구에 출마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때 그냥 번쩍하면서 선거에서 어떤 역할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출마를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다른 방법도 모르고 해서 그냥 예비후보 등록하고 띠 메고 뛰었다.” (잘 안 믿기는데….) “진짜 무데뽀였다. 그리고 당시 이상돈 당비대위 정치개혁·공천분과위원장에게 매일 메일을 보냈다. 예비후보 등록은 했지만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한두 번 보내면 되지 왜 매일?) “계속 ‘안 읽음’으로 돼있으니까. 내 이메일이 아래 있으면 안 볼 것 같아서 가장 맨 위에 있게 하려고 오전 6시, 7시, 9시 등 시간을 달리해서 계속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읽음’으로 표시되는데… 감전된 것 같았다. ” (효과가 있었나.)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부산의 김세연 의원, 서병수 의원에게서 사무실로 와보라는 연락이 왔다.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는지 등 이런저런 걸 묻더라. 조동성 비대위 인재영입위원장에게서도 연락이 와서 심층면접을 봤다. 공천심사 전, 예비후보였을 때였다.” ―직접 겪어봤는데, 청년 정치인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안 그래도 관련해서 10월쯤 책을 내려고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열정 봉사 식이 아니라 자리와 권한, 월급을 주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에 부대변인, 여의도연구원 부소장, 청년최고위원 같은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그런 과정을 순차적으로 밟으며 훈련된 친구들을 만들어야 한다. 일회성 흥행 불쏘시개로 쓰는 학도병 공천은 그만해야 한다.” (그러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 않나. 청년도 솔직히 바로 공천받고 의원 되고 싶은 거 아닌가.) “바로 되는 건… 올바르지 않다. 사실 나도 그렇게 공천을 받아서는 안 됐다. 지금부터 준비해서 다음 선거에서 한번 해보자, 이렇게 했어야 했다.” (정치에서 ‘다음번’이 있나? 이번에도 미래통합당 서울 영등포갑은 청년 당협위원장이 바닥을 닦아 놨더니 기성 정치인이 선거를 코앞에 두고 뺏어갔다.) “그래서 사람이 안 키워진다. 그런 일이 되풀이되면 누가 미리 준비하고 바닥을 닦겠나.”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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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업무추진비도 없는데… 그렇게 빡빡 긁어 마스크 샀죠”[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마스크 대란이 한창이던 2월 26일 정부는 긴급 공급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물량 확인도 없이 발표부터 한 탓에 혼선만 가중되고, 시중에선 마스크를 구할 수 없었다. 같은 날 부산 기장군에서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전 군민(7만 가구·16만7000여 명)에게 마스크 무상공급을 시작했다. 오규석 기장군수(62)는 “중국에서 퍼지면 우리나라는 시간문제라 생각하고 미리 뛰었다”고 말했다. 한의사 출신인 그는 1995년 신한국당 소속으로 민선 초대 기장군수를 지낸 뒤 2010년부터는 무소속으로 3선을 하고 있다.》 ―정부도 충분히 예측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미리 준비한 겁니까.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 경험이 컸는데… 백신도, 치료제도 없으면 방법은 마스크와 손소독제뿐이더라고요. 중국 확산 소식 듣고 1월 말 바로 예비비 편성하고, 직원들에게 전국의 마스크 업체를 샅샅이 찾아서 무조건 ‘구하라’고 했습니다. 아직 다른 지자체에서는 달려들지 않을 때였지요. 2월 26일 1차로 7만여 가구에 35만 장, 노인 어린이 등 감염병 취약층에는 그보다 먼저 배포했는데, 지금까지 모두 170만 장 정도 됩니다. 제가 한의사 출신인 것도 좀 도움이 된 것 같고….” (그래도 전화만 걸면 살 수 있을 때는 아니지 않았습니까.) “미리 뛰긴 했지만 가만히 있어도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요. 이런 게 작은 팁인데, 계약할 때 보통 공무원들은 업체 사람들에게 오라고 합니다. ‘사줄게 들어온나’ 이런 식이지요. 한시가 급한데, 오느라 시간도 걸리고, 그러다 보면 업체들은 중간에 돈을 더 주겠다는 쪽이 생기면 옮깁니다. 우린 ‘도와도’ 했지요. 우리가 가서 계약하고, 포장만 해놓으면 직접 가지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인력 지원도 했고요.” ―기술자를 지원한 건가요. “어데요, 그건 아니고… 공장에 가보니 환경이 너무 열악하고, 일도 고되더라고요. 와, 난 못하겠습디다. 그런데 그분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게… 정부가 여건은 마련해주지 않고 무조건 물량을 대라고만 한다는 겁니다. 사람도, 원자재도 부족한데 무조건 많이 만들라고…. 요새 영세업체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제가 간 곳도 일손이 없어 생산라인 하나는 못 돌리고 있었지요.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기술자들이 제조만 하는 게 아니라 잡일까지 여러 일을 동시에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을 대신 해주면 기술자들을 더 생산라인에 투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자원봉사자들은 물론이고 주말에는 군청 간부들도 도왔습니다.” ―마스크 나눠줄 때는 많이 혼잡했겠습니다. “어데요, 아파트는 경비실에 놔둘 테니 내려와 가져가라 했고, 자연 부락은 이장님들더러 직접 방문하며 나눠주라 했지요. 받으러 오라고 하면 줄서서 기다리느라 또 감염 우려가 있지 않겠습니까. 메르스 때는 우리 직원들이 집집마다 문고리에 10장씩 일일이 걸어줬는데요. 그에 비하면 이번에는 많이 아쉽지요.” (7만 가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 메르스는 전파 속도가 빠르지 않아 가능했는데, 코로나는 워낙 빨라 그렇게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경비실에 놔두고 가져가는 방식으로 했지요. 경비실이 없는 곳은 아파트 관리실에서 배포했는데 동별로 시차를 두고, 줄도 앞뒤 좌우 3m씩 떨어지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생각은 언제 하는 겁니까.) “저는 늘 깨어 있으니까….” (스스로 깨어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건 좀….) “하이고, 그게 아니고… 하루에 4시간 정도 자는데 그나마도 자주 깹니다.” ―기장군 내 코로나19 감염 상황은 어떻습니까. “지역 내 감염은 다행히 아직 없지요. 확진자는 2명인데 모두 해외 입국자고, 한 명은 퇴원했습니다. 자가 격리자는 147명이 있는데 모두 해외 입국자고요. 직원들이 7, 8명씩 전담해 매일 상황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해외 입국자와의 접촉으로 인한 자가 격리자도 없다는 말입니까.) “대부분 입국 때부터 스스로 안전 수칙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첫 확진자는 지난달 26일 미국에서 온 20대인데…. 그때는 미국발 입국자에게는 의무 자가 격리가 적용되지 않을 때였는데, 아버지가 인천국제공항까지 차를 몰고 가 데려왔습니다. 도착해서는 스스로 자가 격리에 들어갔고요. 증상이 있어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 판정이 나왔지만 지금은 퇴원했습니다. 유일한 접촉자인 아버지도 다행히 음성으로 나왔지요.” (입국부터 확진까지 3일 정도 지났는데….) “아, 아주 식겁했지요. 지난달 28일 오전인데, 확진자의 친척이 미국에서 온 조카가 검사를 받았다고 전화를 해 줘 알게 됐습니다. 진단 결과는 그날 오후 6시에 나온다는데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 싶었지요. 바로 감염병방역단 비상소집하고, 검사한 의료진을 만났는데 증상을 보니 확진에 가까운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후 대응은 어떻게 했습니까. “확진자가 자가 격리 중이던 곳 인근 읍면 전체를 소독하고, 전 주민에게 오늘은 절대 외출하지 말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보건소장에게는 오후 4시부터 확진자 숙소 앞에 앰뷸런스를 대기시켜 놓으라고 했지요. 확진 통보를 받은 뒤에 데리러 가면 시간이 너무 지체될 테니까요. 통보받자마자 바로 싣고 병원에 가려고 한 거지요. 근데 그것도 못 기다리겠더군요.” (결과를 당겨서 알려달라고 한 겁니까.) “어데요, 일단 싣고 달렸지요.” (네?) “그때가 오후 4시 10분경인데 통보 전이지만 일단 앰뷸런스에 태우고 부산의료원으로 달렸습니다. 병원 앞에 도착해 있다가 확진 통보 오면 바로 입원시키려고…. 음성이면 다시 돌아오면 되니까. 가면서 병원에 병상 확보 부탁하고. 그래서 통보받자마자 바로 입원할 수 있었지요. 두 번째 확진자는 아예 우리 공중보건의가 집에 찾아가 검사를 했습니다.” ―코로나19 대응 문제로 보건소 직원들을 징계했다고 하던데요. “징계는 아니고 다른 부서로 전보 조치했는데… 차도 없고, 걷기는 먼데 어떻게 진단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느냐는 물음에 택시 타고 오라고 해서….” (그게 규정을 어긴 겁니까?) “진단검사 희망자를 어떻게 데려와야 한다는 지침은 없기 때문에 규정을 위반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감염병은 늘 선제적으로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대응하라고 말해왔습니다. 공무원이 다른 이동수단을 고민해, 찾아서 제공하면 안 됩니까? 군청 차를 제공하든지….” (마음은 알겠는데 너무 과도한 요구 아닌가요.) “그런 면도 있는데… 그 사람이 음성이라 다행이지 만약 감염된 무증상자라면 어쩔 뻔했습니까. 이동하면서 전파됐을 거고, 아예 귀찮아서 검사를 안 받기라도 했으면….” ―기장군은 재정이 넉넉한가 봅니다. “어데요, 우리도 재정자립도가 40%가 안 됩니다. 하지만 쌀독을 빡빡 긁는 심정으로 가용 비용을 최대한 끌어모은 거죠. 전 업무추진비도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일을 합니까.) “보통 직원들과의 식사나 경조사비로 많이 나가는데… 저는 이런 걸 꼭 세금으로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디다. 그리고 직원들이 불편해서 나랑 밥 잘 안 먹으려고 해요. 밥 먹다 업무 지시해서…. 1년에 한 5000만 원 정도 됐는데 실제로 거의 쓰지도 않아서 2016년부터는 아예 편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간부들과 부서에서도 3분의 1로 업무추진비를 줄였는데 일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더군요. 해보니까 되더라고요. 그런 돈을 모아서 예비비로 편성했는데 그래서 우리가 예비비는 좀 넉넉한 편입니다. 거기서 마스크 등을 지원한 거죠.” ―전국에서 가장 먼저 재난기본소득(1인당 10만 원)을 지급했는데 선별적으로 줘야 한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까. “저도 처음에는 기준을 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법도, 규정도 없어 정할 수가 없었어요. 기준을 정하다가 시간이 다 갈 것 같기도 했고요.” (재해피해 지원 기준은 있지 않습니까.) “그것과는 많이 다르지만… 재해피해 지원도 늘 아주 좁게 해석해서 보상이 미미합니다. 폭우로 물난리가 나도 완파돼야 쥐꼬리만큼 나오고, 반파는 아예 없어요! 감염병은 아기부터 노인까지 똑같이 걸리는데….” (마음이야 누군들 안 주고 싶겠습니까.) “빡빡 긁어보니 170억 원은 가능하겠더군요. 그래서 역산으로 10만 원이 된 겁니다. 처음부터 얼마를 주자고 정한 게 아니고요. 여유가 있는 사람은 신청을 안 하기도 하고,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고 자신이 받을 재난기본소득을 기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아예 기부 창구를 만들었지요.” ―전 군민에게 감염병 보험을 들어주려고도 했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아, 그게 해보려고 했는데 방법이 없더라고요. 작년에 재해나 범죄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1000만 원 한도에서 보상해주는 ‘군민안전보험’에 가입했습니다. 여기에 감염병도 추가하려 했는데 보험회사에서 상품 개발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얼마나 감염될지 예측이 안 되고, 타산도 안 맞을 거 같아서가 아닌가 합니다.” (보상 내용이나 가입 절차는 어떻게 됩니까.) “보험료는 군이 내주는데, 군민이면 자동 가입되고 전출 시 해지됩니다. 재해나 사고, 범죄 피해 등 보장 내용이 20여 개 있는데 최대 1000만 원 한도지요. 예를 들어 성폭력 범죄나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 스쿨존에서 아이들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등도 최대 1000만 원을 보상해줍니다.” (기장군은… 스위스입니까?) “어데요, 아직….”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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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대 정당들[횡설수설/이진구]

    무려 35개 정당이 난립한 21대 총선 비례대표 선거에서 30곳이 의석 배정 기준인 3% 득표에 미달했다. 0.0%대 정당도 15개나 된다. 역대 최장이라는 48.1cm의 비례대표 투표용지와 수개표에 들어간 노력이 안쓰러울 정도다. ▷원내교섭단체였던 민생당은 2.71%(75만8778표)에 그쳤고, 우리공화당은 0.74%(20만8719표), 친박신당은 0.51%(14만2747표)였다. 여성추천보조금 8억4000만 원을 챙긴 허경영 대표의 국가혁명배당금당은 지역구 257명 외에도 비례 22명을 후보로 냈는데 비례득표는 0.71%(20만657표)였다. ▷창당은 쉬운 일이 아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중앙당창당준비위원회 결성신고를 한 날부터 6개월 안에 등록신청을 마쳐야 하는데, 17개 광역지자체 중 5곳 이상에 시도당을 구성해야 한다. 한 곳당 최소 1000명의 당원이 필요한데, 주소를 둔 당원을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이번 총선을 목표로 결성신고를 냈지만 당원 5000명을 채우지 못한 선관위 등록 ‘창준위’도 24개에 달한다. 자칫 1m 투표용지를 볼 뻔했다. ▷비례대표 후보를 낸 정당은 단 한 명만 당선돼도 모든 후보의 기탁금(1인당 500만 원)과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다. 기탁금은 원래 1500만 원이었는데 지난달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면서 소수정당의 참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낮췄다. ▷정당이든 개인이든 0.0%대 득표라면 ‘무슨 생각으로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나미 교수에 따르면 무모해 보여도 나름대로 계산된 행동이라고 한다. 선거 기간에는 군소정당 대표도 어느 정도 대우를 받는 데다, 잠시지만 정치 거물이나 유명인과 같은 반열에 선다는 만족감도 큰 이유라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이 강한 사람은 선거를 당락과 관계없이 거리 곳곳에 자신의 얼굴을 걸 수 있는 무대로 여기기도 한다고 한다.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전문직에서는 자신의 공신력과 홍보를 위해 출마하기도 한다. 물론 된다는 착각도 있다. 과거 서울 구의회 의원에 출마했던 지인의 아버지는 온 가족이 당선은 턱도 없다고 만류했지만 “사나이 가는 길 막지 말라”고 하다가 370표를 얻고 떨어졌다. ▷전문 분야에 특화된 소수정당은 바람직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바람과는 거리가 먼 것이 현실이다. 이번 총선에 출마하면서 공약 이행 기간을 2016년 6월∼2020년 6월로 적어 선관위에 제출한 당도 있다. 득표율로 참정권을 제한할 수는 없지만, 머릿수만 채우면 정당을 만들 수 있는 것도 뭔가 개운치는 않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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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정의 韓日 전세기[횡설수설/이진구]

    지난달 31일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의 이바토 국제공항에서 우리 교민들을 태운 전세기가 이륙했다. 이날 공항을 이륙한 유일한 비행기였다. 마다가스카르는 코로나19로 지난달 21일 보건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공항이 폐쇄된 상태. 국제선 정기편은 이미 끊겼고, 전세기 운항도 거의 허가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이 전세기는 우리 교민들과 주마다가스카르 한국대사관이 힘들게 마련한 ‘탈출선’이었다. ▷102명이 탈 수 있는 이 전세기에는 우리 교민 26명과 71명의 외국인이 동승했다. 공항과 국경이 폐쇄되는 상황에서 자국민 이송 방법을 찾지 못하던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 해외 공관들이 우리의 전세기 확보 소식을 듣고 탑승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마다가스카르는 인구 2700만 명에 달하지만 중증 코로나19 환자에게 쓸 산소호흡기가 12개밖에 없을 정도로 의료·보건 인프라가 열악하다고 한다. ▷마다가스카르의 우리 교민은 약 240명인데 감염병에 취약한 어린이, 노약자 등 26명만 탑승을 신청했다. 남는 자리는 일본인 7명을 비롯해 미국 독일 등 외국인들에게 제공됐다. 한국인이나 외국인 모두 항공비는 자비 부담이었다. 우리 교민들은 에티오피아를 거쳐 이달 1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후 우리 정부가 세계 곳곳에 투입한 전세기들에 동승해 현지를 빠져나온 일본인은 카메룬 56명, 케냐 50명, 필리핀 12명 등이나 된다. 한 일본인은 “케냐에 있던 지인이 ‘꼼짝 못하고 있는데 이웃이라며 손을 내밀어 준 한국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12일 외무성 발표를 인용해 코로나19에 한일 양국이 힘을 합쳐 대응하고 있다며 마다가스카르 전세기 사례를 들었다. ▷경북 구미에 있는 일본계 기업인 도레이첨단소재는 우리 정부 요청으로 설비를 개조해 지난달 말부터 마스크용 특수 부직포인 멜트블론(MB)필터를 생산하고 있다. 하루에 마스크 650만 장을 만들 수 있는 분량인데, 일본에 보내지 않고 한국 내 마스크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2017년 11월, 포항 강진(强震)이 발생하자 20대 일본 여성인 이와타 메구미 씨는 추위를 덜어줄 ‘핫팩’ 240여 개와 세안 및 간이 화장실 용품 등을 보내면서 포항시 트위터 계정에 재난 대응 요령을 담은 파일 60여 개를 올렸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한국이 많이 도와준 것이 생각나서였다고 한다. 과거사 등을 둘러싸고 한일관계는 얼음장이지만 인류 공동의 재난 앞에서는 서로를 돕는 훈훈한 마음이 이어졌으면 한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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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부터 마지못해 답하니… 천안함 음모론이 사라지겠나”[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지난달 27일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한 백발의 할머니가 문재인 대통령을 붙잡고 “천안함 폭침이 누구 소행인가 말씀 좀 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폭침으로 아들(고 민평기 상사)을 잃은 윤청자 씨(77)였다. 문 대통령은 “북한 소행이라는 게 정부 입장”이라 했고, 언론은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지만 대통령 연설문에 그런 내용은 없다. ‘북한 소행’ 발언은 돌발 상황에 엉겁결에 나왔을 뿐이다. 윤덕용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민간 측 공동단장(80)은 “사회지도자들이 당당하게 말 못 하니 이상한 주장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 아니냐”며 답답해했다.》 ―10년이 지났는데 참여연대 등은 여전히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지도자들이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통령도 붙잡고 물어보니까 마지못해 답하고…. 윤 할머니 기사를 보고 문 대통령도 당당하게 말할 자신은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폭침 당시에도 도올 김용옥 교수처럼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보고서도 제대로 보지 않고 0.0001%도 안 믿는다고 했다. 어뢰도 찾고, 4개국 외국 조사단까지 인정한 결과를 안 믿으면 어쩌자는 건지. 6·25를 남한이 일으켰고, 달 착륙도 조작됐다는 사람들이 아직 있긴 하지만….” ※천안함 폭침은 2010년 3월 26일 발생했다.―조사단은 수거된 ‘1번’ 글씨가 적힌 어뢰를 가장 중요한 증거로 제시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어뢰가 실제 사용됐다면 폭발 때 고열로 글자를 쓴 잉크가 녹았을 거라 한다. “글자는 어뢰 후부 추진체를 칠한 페인트 위에 적혀 있었다. 그 페인트가 130도 이상에서는 녹는 페인트인데 폭발에도 불구하고 안 녹았다는 건데, 가장 기초적인 열역학 제1법칙만 알아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차가운 바닷속이라 폭발로 고열이 발생해도 순식간에 온도가 내려가고, 뒷부분은 폭발로 뒤로 밀려나기 때문에 열전달이 더 안 된다. 촛불에 손가락을 빨리 넣었다 빼면 안 뜨거운 것과 마찬가지다.” ※당시 KAIST 송태호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폭발 순간 어뢰 앞부분에서 3000도의 고열이 발생해도 0.1초 후에는 28도로 떨어졌다. 어뢰 뒷부분은 폭발 순간이나 0.1초 후나 3도였다. ―어뢰의 부식 조사를 육안으로만 한 것도 논란이 됐다. “수거된 어뢰가 증거가 되려면 천안함이 공격당한 위치·시간과 일치해야 했다. 천안함 인양 지점 인근에서 어뢰가 수거됐기 때문에 위치는 맞다고 봤다. 하지만 몇 년 전에 가라앉은 어뢰가 우연의 일치로 인양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배와 어뢰의 부식 상태가 비슷하다면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왜 육안으로만 했나. 정밀분석을 안 하고.) “내가 재료공학을 해서 그 부분은 잘 아는데… 바닷속에서의 부식은 재질, 상태, 해수의 염기도, 용존산소량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분석을 해도 정확하게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이 어뢰가 몇 년 전에 가라앉은 거냐 아니냐는 차이 정도만 봤다. 그 정도는 육안으로도 비교할 수 있다.” ※천안함 함미는 어뢰 발견 지점에서 북쪽으로 150m, 함수는 남쪽으로 45m 떨어진 곳에 가라앉았다. ―인양될 때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는 약 200m 넘게 떨어져 있었다. 어뢰가 수거된 위치가 증거가 되기에는 너무 범위가 넓은 것 아닌가. “당시에 발견된 컴퓨터 얘기를 자세히 안 하고 증거물 목록에만 올려놓은 게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쉽다. 컴퓨터 설명을 자세하게 했다면 수거된 어뢰가 결정적 증거라는 걸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는데….” (컴퓨터라니?) “배같이 큰 물체는 공격받아 침몰하면서도 어느 정도 떠내려가기 때문에 배 인양 장소가 바로 공격받은 지점이 아닐 수 있다. 반면 작지만 무거운 물체는 배에서 떨어지면 바로 가라앉는데, 천안함에 설치된 컴퓨터가 쌍끌이 어선에 발견됐다. 배가 동강나자마자 가라앉은 거다. 어뢰는 그 컴퓨터가 인양된 곳에서 같은 날 나왔다.” (그 컴퓨터가 천안함 것이라는 건 어떻게 아나.) “이름이 적혀 있으니까. 관리책임관 상사 오동환이라고. 생존자다.” ―쌍끌이 어선으로 어뢰를 찾을 생각은 어떻게 한 건가. “세계 역사상 공격한 어뢰를 다시 찾아서 조사한 경우가 거의 없다. 어뢰란 게 전쟁 때 사용된 건데 그 난리 통에 누가 다시 찾을 생각을 하겠나. 미국 조사단도 인양된 천안함 상태를 보자마자 어뢰의 버블제트로 인한 파손이라 했지만 물증을 찾기 전까지는 결론을 내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엄청나게 깐깐했다. 그러던 중 합조단에 파견 온 한 공군 대령이 과거 동해에 전투기(F-15K)가 추락했을 때 쌍끌이 어선을 동원해 300m 깊이에서 잔해를 수거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 귀가 번쩍 뜨였다. 그래서 그 전투기를 수거했던 대평호 김남식 선장을 수소문해 어뢰를 찾은 거다. 사실 시작할 때만 해도 미국 조사단도 그렇고 우리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잔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상태로 있을지, 산산조각 나 아무것도 없을지 아무도 몰랐으니까. 완전히 천운이었다.” ―만약 어뢰가 발견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어뢰 발견 전까지는 사실… 파손 상태를 보고 무기와 공격 방법 등을 추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뢰냐 기뢰냐를 놓고 논의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는데 기뢰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과거에 우리 군이 설치한 적이 있지만 대부분 제거했고, 서해에 배가 그렇게 많이 다니는데 여전히 남은 게 떠다닌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또 기뢰는 닿으면 배 옆에서 터지지 배 바닥으로 들어가 터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 정도로 마무리하고 어뢰로 결론을 내리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외국 조사단이 반대했다. 가능성이 99%지만 100%는 아니라고. 자신들의 명예는 물론이고 자기 나라를 대표해서 왔기 때문에 확증이 없다면 넘어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하더라. 그때 어뢰가 나온 거다. 외국 조사단이 어뢰를 보더니 집에 빨리 갈 수 있게 됐다고 좋아하더라.” ―당시 미, 영, 호주, 스웨덴 등 4개국 외국 조사단이 참여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나. “각자가 속한 분과에 들어가 모든 회의에 다 참석했다. 조사과정에 대한 검증은 물론이고 직접 아이디어도 냈는데 자신들도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미국 조사단은 가져온 장비로 ‘디싱(dishing)’을 확인해줬는데… 어뢰에 의한 버블제트 공격을 받았을 때 선체에 나타나는 특징을 말한다. 버블제트 압력으로 선체 철판이 뼈대 사이사이로 움푹움푹 밀려들어간 현상인데 마치 접시 바닥처럼 들어갔다고 해 이렇게 부른다고 하더라. 충격 지점에서 멀어질수록 파인 깊이가 엷어지고… 직격탄을 맞으면 생기지 않는 모양이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조사의 신뢰성을 제기한다.) “합조단에 파견된 사람들은 대부분 해군이 아닌 육군이었다. 군 측 공동단장도 육군 박정이 중장이었고.” (육군이 어뢰에 대해 뭘 아나.) “조사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국방부가 그렇게 한 것 같다. 팔이 안으로 굽으면 안 되니까. 여기에 외국 조사단, 나 같은 민간인도 30여 명이나 있었는데… 일각에서 조작 의혹도 제기하지만 130여 명이나 되는 조사단을 모두 어떻게 속이겠나.” ―괴담 수준의 주장도 난무했는데…. “조사가 끝나고 어뢰를 전시했는데 그때 사람들이 찍은 사진 중에 어뢰에 붉은 뭔가가 묻어 있는 게 있었다. 우리가 조사할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게 동해에만 서식하는 붉은 멍게 잔해라는 주장이 나왔다. 서해에서 수거된 어뢰가 아니라는 거지. 하도 논란이 이니까 나중에 국방부가 분석을 했는데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생명체는 아닌 걸로 판명됐다. 내 생각에는 그 어뢰의 북한 측 실물 사진을 보면 탄두 부분을 빨간 페인트로 칠했는데 그게 순간적으로 폭발하면서 묻은 게 아닌가 싶다. 잠수함 충돌설은 이스라엘 잠수함이 서해에 와서 훈련하다 충돌했다는 건데… 둘 다 당시 민주당이 민간위원으로 추천한 신상철이란 사람이 제기했는데 그는 합조단 발족 후 한참 후에 와서 회의 한 번 참석하고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신상철 씨가 제공한 사진을 근거로 붉은 멍게설을 보도한 오마이뉴스는 2011년 4월 6일자로 사과보도를 냈다. ―아직도 조사 결과를 안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쉬움은 없나. “천안함 폭침이 발생한 그해에는 지속적으로 추가 설명회를 가졌다. 하지만 이듬해부터는 팀도 다 해산돼 보완이나 수정 설명을 못 했다. 당시 정부 입장에서는 결론이 명백하게 끝난 사안이라고 봤기 때문에 추가 설명을 할 필요도 못 느낀 것 같다. 다시 보충 설명한다고 하면 뭔가 조사가 잘못된 것이라는 오해를 부를 수도 있고…. 당시 보고서에 활용되지 못한 의미 있는 자료들이 많기 때문에 나중에 정치적으로 문제가 없을 때가 되면 누군가 조사 과정을 학문적으로 깊게 연구했으면 좋겠다. 외국 같으면 벌써 관련된 박사학위는 물론이고 논문이 몇 개는 나왔을 텐데…. 그때쯤 되면 지금 같은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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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화하는 마스크[횡설수설/이진구]

    마스크(Mask)의 어원인 라틴어 마스카(Masca)는 본래 공연에서 배우가 쓰는 가면을 말한다. 이탈리아어의 마스케라타(mascherata·가면무도회), 스페인어의 마스카라르(mascarar·얼굴을 칠하다), 속눈썹을 돋보이게 하는 화장인 마스카라도 여기서 파생했다. 요즘은 마스크라고 하면 먼저 호흡기 질환을 예방하는 의료용 마스크를 떠올리지만 본래는 얼굴을 가리고 화려하게 돋보이기 위해 썼던 셈이다. ▷천 마스크가 대부분이던 2003년 봄, 국내 한 대형마트에서 영국에서 처음으로 직수입한 일회용 황사 전용 마스크 4000개가 하루 만에 품절돼 화제가 됐다. 0.3μm(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입자를 95%까지 걸러낼 수 있다는 제품인데, 황사와 함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병 우려가 커지자 동이 난 것이다. 마트 측은 1만5000장을 추가 주문했지만 언제 올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전 세계에서 동시에 1500만 장이나 주문이 폭주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황사와 감염병이 고기능 마스크 시대를 연 것이다. ▷그냥 마스크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요즘 마스크는 고수준이다. 0.4μm 크기 입자를 94% 이상 차단하는 KF94 마스크가 평범할 정도다. 그것도 못 미더워서 0.02∼0.2μm 입자를 95% 이상 차단하는 미국 N95 호흡기를 쓰기도 한다. ▷코로나19 사망자만 1만3000명이 넘는 이탈리아에서는 슈퍼카를 만드는 람보르기니가 마스크와 보호 장구 등을 생산해 기부한다고 한다. 마스크는 인테리어 부서에서 만드는데 역대 람보르기니 모델 중 가장 많이 팔린 가야르도의 대표 색인 오렌지색으로 만들었다. 명품 브랜드들도 마스크 제작에 나섰다. 구찌는 공장 설비를 개조해 마스크 110만 개, 보호복 5만5000벌을, 프라다는 마스크 11만 개와 의료작업복 8만 개를 만들어 기부할 예정이다. 아르마니는 일회용 의료용 작업복을 만든다. 프랑스에서도 샤넬과 디올이 마스크 제조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한정판과 마찬가지니 소장용으로 구입하고 싶다는 철없는 소리도 나온다. ▷이들 명품업체의 마스크 생산은 위기 극복 차원이지만 마스크로 감염병 예방과 패션을 동시에 노리는 업체가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의 한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공기필터가 장착된 마스크는 7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스포츠용품 회사는 운동할 때 쓸 수 있는 마스크도 만들고 있다. 유쾌하지 않은 이유로 마스크의 신세계가 열리고 있는데, 어쩌면 원래 마스크의 목적으로 되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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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료진 밤샘사투 마음 알지만… CDC는 하루 최대 12시간 이상 못하게 해”[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감염병 발생 때마다 인용되는 말이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이다. 지난해 예산만 73억 달러(약 9조3000억 원)에 이르는, 전 세계 공중보건 기구의 모델.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에도 미국 국민의 75%가 CDC를 신뢰했다(트럼프는 42%). 탁상우 전 CDC 역학조사관(52·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부교수)은 “CDC는 간부 대부분이 역학조사관 출신이고, 위기에도 현상에만 급급하지 않고 국가 보건 기능 전체를 보고 대응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미 매사추세츠대에서 건강환경 분야 박사를 취득한 뒤 CDC에서 6년, 미 국방부 역학조사관 등으로 5년간 일했다.》 ―감염병 위기를 빨리 끝내려면 모든 인력과 자원을 동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얼핏 그래야 할 것 같지만… CDC가 코로나19 같은 공중보건위기에 대응한다고 할 때 핵심은 감염병만 잡는 게 아니라 감염병을 잘 차단하면서 동시에 다른 공중보건 기능도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그래서 상황이 터지면 긴급상황실(EOC·Emergency Operations Center)을 가동하고 여기서 모든 대처를 한다.” (다른 부서는 관여를 안 하나.) “긴급상황실은 평상시에는 작은 방에서 상시 모니터링 정도로 소규모다. 그러다 터지면 200∼300명이 쫙 들어와 대응한다. CDC 내 각 부서에서 오는데 왜 이렇게 하냐면… 위기에 대처하면서도 다른 공중보건 기능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이게 안 되면 감염병은 막을지 몰라도 다른 부분에서 사망자가 속출한다. 감염병이 발생해도 치료 받아야 할 다른 환자가 많지 않나.” ―우리는 방역 당국은 물론이고 의료계까지 총동원된 상태다. “마음은 백번 이해하고,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의료진의 밤샘 사투는 지양해야 한다. CDC에는 재난 상황에서도 하루 최대 12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게 하고, 그걸 점검하는 문화가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그러나.) “지금 현장 의료진이 초긴장 상태로 수십 일을 보내고 있는데… 그렇게 쪽잠 자는 상황이 계속되면 모든 의료진이 탈진할 거다. 위기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때는 의료진의 건강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이 없으면 대응을 할 수가 없으니까. 감염병에 따라서는 의료 인프라가 흔들릴 수 있다는 큰 그림까지 봐야 한다.” ―큰 그림이라니….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발생했을 때 초기에는 잘 몰라서 사망자 중 의료진이 15%나 됐다. 그런데 에볼라가 끝난 뒤 주 발병국의 보건지표가 10년 전으로 후퇴했다. 의료진 사망으로 의사 간호사 없이 출산하는 상황 같은 게 벌어진 거다. 그 과정에서 산모가 사망하고…. 그래서 현장 의료진의 건강과 안전이 중요한 거고, 감염은 물론이고 다치거나 과로해서도 안 된다. 자원봉사자도 먼저 자기 몸에 기저질환이나 이상이 없는지 점검하고 가야 한다. CDC에서 역학조사관으로 현장에 파견 가려면 건강 상태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턱수염이 있어도 보내지 않는다.” ―턱수염이 무슨 상관인가. 건강 상태를 업데이트하다니? “미국은 N95(우리의 KF94등급) 마스크를 마스크라고 부르지 않고 호흡보호구라고 한다. 보건의료 인력이나 긴급대응 요원이 N95를 쓰려면 원칙적으로 의사에게 써도 문제가 없다는 허락을 받아야 한다. 등급이 높은 만큼 호흡이 불편하기 때문에 기저질환이나 호흡기가 약한 사람들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얼굴에 잘 밀착되는지 핏(Fit) 테스트도 하는데 수염이 길면 공기가 새기 때문에 안 된다. 종교적 이유로 턱수염을 안 깎았는데 현장에 나갈 수 없어 내근만 한 경우도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제대로 된 역학조사관을 양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큰 오해가 있는데… CDC 역학조사 전문요원 양성 과정(EIS)은 현장에서 접촉자 동선 파악 기술을 가르치는 과정이 아니다. 미국 내 공중보건기관의 리더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교육하는 곳이다. 각종 재난 상황에서 현장에서 사령탑인 본부까지 어떻게 대응하고 움직이는지 총괄적인 시각을 갖도록 해준다. 특히 핵심 과정 10여 개가 있는데 이걸 통과하지 못하면 수료증을 안 준다. 그중 하나가 CDC 기관지에 리포트를 게재하는 것이다.” (많이 어렵나.) “일반인도 볼 정도로 독자층이 매우 넓기 때문에 아주 쉽게 써야 하는데 900단어와 그림 하나 표 하나로 해야 한다. 일반 논문이 4000단어 정도니 그걸 줄여 쉽게 쓰기가 굉장히 어렵다. 나도 처음에는 20번 정도 퇴짜를 맞은 것 같다.” ―주로 뭘 지적하던가. “하도 많아서… 용어의 부정확성이 많았다. ‘아마’, ‘…일 수 있다’ 식의 애매한 표현은 못 쓴다. 불확실하면 명확하게 불확실하다고 하고, 쓰는 목적도 분명히 하도록 요구한다. CDC 센터장 직속으로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국장이라는 엄청나게 중요한 자리가 있는데 우리의 공보실과는 차원이 다르다. 센터장이 해야 할 말, 하면 안 되는 말 등을 모두 조정한다. CDC 간부들이 언론 인터뷰나 브리핑에서 거의 말실수 없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고 정제된 표현을 하는 것은 이런 훈련을 역학조사관 양성 과정부터 끊임없이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인터뷰를 해도 일관된 메시지가 나오는데 CDC가 미 국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기관이 된 데는 이런 노력이 숨어 있다.” (예를 들면 어떤 표현을 말하나.) “같은 상태라도 ‘죽을 만큼 위중하지는 않다’가 아니라 ‘힘든 부분이 있지만 아직 상태가 양호하다’는 식으로. 현장에서는 조사관이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협조 여부가 갈리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을 주는 건 피해야 한다.” ―역학조사관 양성 프로그램이 리더를 기르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재정이 쓰이는 방식, 행정이 움직이는 과정, 서류 절차는 어떻게 되고 그게 입안이 되면 어떤 효과를 내는지 등도 배운다. EIS를 나온 사람들은 CDC뿐만 아니라 미국 내 연방정부, 주정부 보건 분야의 고위층이 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감염병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전체 보건 분야를 다 다룬다. 전문 분야 깊이도 현 로버트 레드필드 센터장 등 최고위 간부들은 대부분 의학박사(MD) 등 학위를 두세 개씩 갖고 있다. 공중보건학 석사(MPH)는 흔하고 최근에는 공중보건학에서 과학(Science) 부분을 더 깊게 한 MSPH 학위를 취득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시너지를 위해 사회학, 인류학, 심지어 정치학 박사들도 뽑는다.” ―인류학이 공중보건과 어떤 관계가 있기에…. “우리는 역학조사를 환자와 면담해 동선을 파악하는 걸로 생각하지만… 진짜 역학조사의 목적은 질병의 경향과 특성을 파악해 확산을 막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의학적 지식이 필요한 것 아닌가.) “질병은 단순한 요인으로 생기지 않는다. 문화 습관 인종 정치·경제적 상태 등등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인간의 건강 문제에 나타난 것이다. 특정 인종의 식습관은 질병과 밀접하지만 문화인류학자는 알아도 의사는 모른다. 물론 보건학 지식이 필요하지만 그 정도는 교육 중 배우면 충분하다고 CDC는 본다. 대신 어떤 전공이든 자신이 잘하는 걸 갖고 와 시너지 효과를 내달라는 거다. CDC 손상예방통제센터(NCIPC)는 예를 들어 교통사고가 많이 나는 특정 지역에 대한 역학조사도 한다. 만약 운전을 방해하는 사각지대가 숨어 있었을 경우 교통 관련 전공자라면 현장에서 바로 알 수 있지 않겠나.” ―질병은 정치사회 문제와 연관되기 쉬운데 CDC는 어디까지 관여하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불법 이민자들이 멕시코 국경을 넘은 뒤 아이들을 버리는 일이 사회문제가 됐다. CDC가 감염병 유포 등 공중보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해 바로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대응했다. 불법 이민은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고, 아이들 인권 문제도 있지만 개입한 거다.” (운영은 독립적인가.) “CDC는 미 보건사회복지부(HHS) 산하지만 인사와 예산을 스스로 짠다.” (우리 질병관리본부장은 5급 이상 인사도 못하는데….) “더 중요한 건 CDC가 예산을 어떻게 쓰는가인데… 절반 이상을 주 정부 등 지방정부 보건 분야 지원에 쓴다. 각 지방정부의 보건 역량이 강화되고, 거기서 정확한 자료와 통계가 신속하게 올라와야 연방정부가 제대로 대응할 수 있으니까. CDC만 강화하겠다고 예산을 쓰지 않는다. 가짜 뉴스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그런 것도 CDC가 대응하나. “긴급상황실이 가동되면 그 안에 합동정보센터(JIC·Joint information center)가 만들어지는데 쉽게 말해 잘못된 정보에 CDC 이름으로 댓글을 다는 일을 한다. 그건 잘못된 사실 같으니 여기로 가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식으로. JIC 안에 팀만 15개 이상 있다.” (하… 너무너무 부럽다.) “갈수록 이 부분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더라. 큰 언론, 브리핑도 신경 써야 하지만 위기 소통의 대상을 보는 관점을 더 넓혀야 한다. 잘못된 걸 바로잡아 주면서 정부기관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 ―미국에서 왜 갑자기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는 건가. “웃긴 게… 오바마 전 대통령이 에볼라 사태를 겪으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감염병을 대비하는 ‘세계 보건안보팀’을 만들었다. 그걸 해체한 게 트럼프다. 당시 그 팀이 감염병 팬데믹이 올 수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고 했는데….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도 왜 CDC가 아니라 연방재난관리청(FEMA)에 맡겼는지 모르겠고. CDC 예산도 해마다 줄이고 있는데 CDC가 아무리 최고의 집단이라고 해도 힘들 것 같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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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탈리아의 부고란[횡설수설/이진구]

    이달 중순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 베르가모의 지역 신문인 ‘레코 디 베르가모’는 10개 면의 부고면을 발행했다. 평소 1∼3개 면인데 코로나19로 사망자가 급증해 150여 명을 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가족이 사망하면 신문을 통해 소식을 알리는 문화가 있어 대부분 언론이 홈페이지에 부고(Necrologie)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비용을 내고 고인의 사진과 내용을 보내면 게재해 준다. ▷20일 현재 이탈리아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3405명으로 집계되면서 중국의 누적 사망자 3248명을 넘어섰다. 이탈리아는 최근 매일 400명 안팎의 신규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누적 확진자도 4만1000여 명으로 8만여 명인 중국의 절반에 이른다. 폭증하는 사망자로 관혼상제 전통까지 흔들리고 있다. 자가 격리된 가족이 많아 상당수 장례식은 성직자와 장례업체 직원들에 의해 치러지고 있다. 사제가 죽음을 앞둔 병자를 찾아 기도문을 외우며 성유를 발라주는 ‘병자성사(病者聖事)’도 감염 우려로 중지된 곳이 많다. ▷이탈리아의 상황은 의료 인프라 누수를 방치한 공공 의료 체계가 키운 화라는 지적이 많다. 이탈리아 의료 시스템은 공공 의료와 사설 의료로 나뉘는데 공공 의료 체계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공무원으로 간주돼 급여가 사설 병원 의사보다 낮고, 의사 수도 예산에 연동돼 쉽게 늘리기 어렵다. 여기에 보건예산도 줄고 있는 추세라 2005∼2015년 10년간 무려 의사 1만여 명, 간호사 8000여 명이 다른 유럽연합(EU) 국가로 떠났다. ▷공공 의료 전문의 진찰을 받으려면 먼저 주치의를 거쳐야 한다. 주치의가 판단한 4가지 상태에 따라 전문의 진료일이 예약되는데 가장 긴급한 상태도 사흘이 걸릴 수 있다. 다음은 열흘 이내, 그다음은 1∼2개월, 네 번째는 최대 반년 정도가 걸린다. 발병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이런 의료 시스템 탓도 있을 것이다. ▷6000여만 명이 사는 나라에서 사고나 앓고 있던 병 때문이 아니라 돌발적인 전염병으로 하루 400명이 목숨을 잃는 것은 21세기 선진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비극이다. 그래도 이탈리아 도시의 발코니와 창문에는 ‘다 잘될 거야(Andr‘a tutto bene)’라고 적힌 무지개 그림이 곳곳에 걸리고 있는데, 이동제한령이 내려진 시민들이 서로를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발코니에서 노래와 연주로 이웃을 위로하는 사람들도 있다. 상황은 어렵지만 그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 인간만이 가진 특징이다. 언제나 그랬듯, 질병이 인간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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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뻥 뚫린 제주해군기지[횡설수설/이진구]

    2010년 창설된 해군 최초의 기동부대인 제7기동전단은 ‘세계 어디서나 작전 수행이 가능하고, 적이 넘볼 수 없는 부대’가 창설 목표다. ‘신의 방패’라 불리는 최첨단 이지스함(AEGIS)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부대의 본부가 있는 제주해군기지가 민간인 시위대 2명에게 뚫리는 망신을 당했다. ▷7일 오후 2시경 시위대 2명이 기지 외곽 펜스를 가정용 펜치로 절단하고 들어와 1시간 반 넘게 부대를 활보했다. 어제 합동참모본부 발표에 따르면 침입 장소는 감시초소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곳이었다. 능동형 감시 시스템인 외곽 경계용 폐쇄회로(CC)TV는 녹화만 됐을 뿐 경보음은 작동하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 태풍에 훼손된 CCTV 15개 중 일부를 신형으로 교체했는데, 기존 프로그램과 호환이 되지 않아 소리가 나지 않는데도 그동안 방치했다고 한다. 침입 1시간여가 지나서야 펜스가 뚫린 사실을 발견했고, 5분대기조는 당직사관의 미흡한 대응으로 40분이 더 지난 후에야 출동했다. 군견 한 마리 몫도 못한 경계 태세다. ▷우리 군부대가 동네 마실 다니듯 무방비로 뚫린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2012년 10월에는 북한군 병사가 강원 고성 지역 3중 철책을 넘어 우리 군 전방초소(GOP) 생활관 문을 두드린 일명 ‘노크 귀순’이, 지난해 6월에는 북한 주민 4명이 탄 목선이 강원 삼척항까지 아무 제지 없이 들어온 ‘해상판 노크 귀순’이 벌어졌다. 2015년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는 밤에 부대 안에 들어온 민간인 차량을 10여 분간 찾지 못해 부대가 발칵 뒤집혔다. 차는 다시 위병소에 나타났지만 신원 확인 중에 부대 밖으로 도주했고, 경찰 협조로 잡았다. ▷경계 실패가 발생할 때마다 군은 관련자 징계와 재발 방지를 천명하지만 개선은 고사하고 더 악화되는 것 같다. 지난해 7월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는 경계 실패를 덮기 위해 부대 장교가 병사에게 허위자백을 종용했다. 군 안팎에는 ‘상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까’, ‘나 있을 때만 터지지 않으면 되지’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한다. 잇단 경계 실패는 이런 면피와 눈치 보기에 길들여진 군 문화가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제7기동전단에 배속된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은 1000km 밖의 항공기나 미사일을 찾아낼 수 있고, 동시에 900여 개의 목표물을 추적할 수 있다. 그런 무기가 있는 곳이 고작 가정용 펜치에, 그것도 대낮에 뚫리다니 어이가 없다. 군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방패다. 자기 집도 못 지키는 방패를 어찌 믿을까. 부대를 지키는 파출소라도 둬야 하나.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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