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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004년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 빌라를 2억9800만 원에 구입하고도 시가표준액인 1억6000만 원에 구입한 것처럼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거래가격을 실제보다 낮춰 작성하는 다운계약서가 법으로 금지된 것은 2006년부터다. 문 후보가 빌라를 구입한 시점에서 아파트는 기준시가, 연립주택은 시가표준액에 맞춰 실거래가보다 낮게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우리는 관행에 따른 다운계약서 작성이 공직 취임의 결격사유라고 보지 않는다. 다만 민주당은 정부나 여당이 지명한 주요 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 때마다 도덕성을 재는 잣대의 하나로 다운계약서 작성을 문제 삼았다. 민주당은 올 7월 김병화 대법관 후보의 다운계약서 작성 등을 따져 인사청문에서 탈락시켰다. 김 후보자의 다운계약서 작성도 관행이던 시절에 이루어진 것이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인사청문회에서 “김 후보자가 관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금 문 후보를 변호하기에 바쁘다. 이에 앞서 야권 단일화를 앞두고 안철수 전 후보의 2001년 다운계약서 작성이 논란이 됐을 때는 “당혹스럽다”는 짤막한 논평을 내는 데 그쳤다.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잣대가 다르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문 후보 측의 “등기 업무를 대행한 법무사 사무소가 당시 관행에 따라 처리한 것” “다운계약서는 일반적으로 매도자의 요구에 따라 작성되는 것으로 문 후보는 매수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는 식의 해명은 구차하게 들린다. 다운계약서는 양도차익을 줄여 매도자가 내야 할 양도세를 줄여주지만 매수자에게도 취득세와 등록세를 절감시켜 준다. 문 후보도 실제 다운계약서로 수백만 원의 세금을 덜 냈다. 문 후보는 2003년부터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과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다. 주택 실거래가 신고제는 2006년에야 시작됐지만 노무현 정부 초반부터 실거래가 신고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경제부처의 발표가 여러 차례 있었다. 문 후보는 이런 정책 방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출호이자반호이자(出乎爾者反乎爾者)라는 말이 있다. 너에게서 나온 것이 바로 너에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스스로 지키지 못할 기준이라면 남에게 함부로 적용할 일이 아니다.}

먼저 알아차린 독자도 있겠지만 이 글은 장 자크 루소의 책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의 형식을 빌렸다. 가상의 루소가 현실의 장 자크 루소를 심판하듯 가상의 철수가 현실의 안철수를 심판한다.‘단일화는 헤게모니 싸움’ 인식 부족―안은 사퇴하면서 영혼을 팔지 않았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겼다.철수: 괴테의 희곡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인생 최고의 향락을 맛보기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파는 계약을 맺는다. 안이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영혼을 팔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생길 만큼 어렵게 물리쳤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은 무엇일까. 안은 정치로 가는 다리를 건넜고 그 다리를 불살랐다.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안에게 그 유혹은 단일화의 약속을 깨고 끝까지 가서 국민 지지의 결말을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안이 아니라 문이 양보할 수도 있었을까.철수: 문이 양보하는 순간 민주통합당은 대통령이 나눠줄 수 있는 1만 개의 자리만 놓치는 게 아니라 당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민주당은 국회에서 제1당은 아니지만 127석을 지닌 강력한 제2당이다. 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대선 패배가 분명한 3자 대결도 각오했을 것이다. 3자 대결이 되면 그 책임은 어차피 안이 뒤집어쓰게 돼 있다. 안만이 양보냐 아니냐의 선택지(選擇肢)를 갖고 있었다. 안이 지게 되어 있는 치킨 게임이었다.―안은 단일화에 응하지 말았어야 했나.철수: 단일화에 응한 것이 실수가 아니라 단일화를 한다고 시한까지 못 박아 약속함으로써 퇴로를 없앤 것이 실수다. 안은 정치개혁이 단일화의 상위 개념이라고 했는데 이 약속 때문에 단일화를 위해 정치개혁을 포기하는 모순에 빠졌다. 약속에 충실했으나 약속을 맺은 이유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에 대비하지 않았다.―아름다운 단일화는 환상이었나.철수: 단일화 협상은 클로즈업이 아니라 롱샷으로 보면 야권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헤게모니 싸움이었다. 즉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보는 세력과, 역사에서 공과(功過)를 다 배우겠다는 자세로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의 묘역을 모두 찾을 수 있는 세력과의 싸움이었다. 친노와 원탁회의로서는 대권을 놓치더라도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이었으나 안의 머릿속에는 헤게모니 싸움이라는 인식 자체가 부족했다. ―안은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眞心)이라고 생각한다. 선의가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국민과 증명하려 한다”고 말했다. 안의 진심 정치는 통하지 않은 것인가.철수: 진심 정치는 근대 정치의 틀에 도전하는 야심찬 탈(脫)근대적 기획이었다. 국민을 상대로 한 진심 정치는 안의 지지도에서 보듯 어느 정도 통하는 듯했다. 그러나 안이 단일화 협상에서 처음으로 추상적 국민이 아닌 구체적 정치세력과 마주했을 때 진심은 무용지물이었다. 안이 문과 친노세력에게 배신감을 느꼈다는 데서 작가 카프카의 말이 생각난다. 선은 악을 모르지만 악은 선을 안다. 앞으로 신당 창당의 正道 걸어야―안이라는 태풍은 소멸하는가.철수: 소멸은 아니고 약화된 저기압으로 대선 때까지 간다. 문이 대선에서 패하면 그 저기압은 다시 커질 수 있다. 안은 대선 때까지 문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도, 지지하지 않기도 곤란한 딜레마에 빠졌다. 이번 대선이 안에게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이긴 했지만 하늘은 무소속 후보의 성공이라는 요행을 허용치 않았다. 안이 정치인으로 계속 남는다면 길고 힘들더라도 신당 창당의 정도를 걸어라. ‘국민이 원하면’이란 애매모호한 말 대신 자신의 판단을 말하라. 소통도 중요하지만 옳다고 여기는 일은 설사 그것이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을 때도 밀고나가는 뚝심을 보여라. 강의식 말투를 버리고 순발력 있는 언어를 배워라. 그것이 안철수 2.0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수감된 19일 밤 한상대 검찰총장은 기자들에게 e메일로 사과문을 돌렸다.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려도 모자랄 판에 e메일 사과문은 성의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 사건은 미꾸라지 한 마리가 방죽물 전체를 흐린 개인 비리로만 볼 수 없다. 검사가 내사나 수사를 미끼로 9억 원이 넘는 큰돈을 받는 동안 검찰이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면 감찰 기능의 완전한 실패를 의미한다. 한 총장은 조직 어딘가에 김 검사 같은 사람이 또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검찰의 부패는 과거 검찰이 권력에 예속됐던 권위주의 시절의 검찰 견제 세력이 사라지면서 심화하기 시작했다. 독점적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기소권을 행사하는 권력기관을 견제하고 감독할 외부 기관이 없다 보니 검찰은 자정 노력을 게을리하고 무사안일에 빠져들었다. 최근 수년간 잇따라 터진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사건과 이번 김 검사 사건이 다 그 연장선상에 있다. 검찰이 특임검사를 임명해 경찰 수사를 막은 것은 검사가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경찰에 의해 구속되는 사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검찰의 특권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특임검사가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의사와 간호사에 빗대 간호사협회의 반발을 산 것도 그 오만함의 일단(一端)을 보여준다. 검찰은 비리가 터질 때마다 검찰총장 임기제 도입, 검사윤리강령 제정, 특임검사와 감찰본부 신설 같은 제도 개혁을 했지만 별로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이 터지고 나서 신설된 감찰본부도 유명무실했다. 한 총장은 사과문에서 “내부 감찰 시스템을 점검해 전면적이고 강력한 감찰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제도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검사들의 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검찰 안팎에서 검찰이 진짜 위기라는 목소리가 높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여야 모두 검찰개혁을 내걸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특별감찰관제와 상설특검제의 도입을 들고 나왔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대검 중수부 폐지와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 설치에 의견을 같이한다. 검찰 구성원들조차 상당수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검찰 스스로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특단의 쇄신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광범 특별검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저 용지 매입을 담당한 청와대 경호처가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 씨가 부담해야 할 매입비용의 일부를 떠안아 국가에 9억7000만 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앞서 검찰이 관련자 전원을 무혐의 처분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특검은 김인종 전 대통령경호처장 등 경호처 직원 3명의 배임행위로 이득을 얻은 이 대통령 가족에 대해서는 배임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남을 위해 배임을 한 사람은 기소되고, 이득을 본 사람은 기소되지 않은 것은 일반인의 상식에 비추어 형평에 맞지 않는다. 특검은 시형 씨와 김윤옥 여사의 배임 혐의에 대해 용지 분배와 가격 결정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혐의 없다’고 결정했다. 이 대통령에 대해서는 혐의 유무를 판단하지 않고 바로 ‘공소권 없음’ 결론을 내렸다. 대통령은 헌법상 재임 중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형사 소추를 당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수사기관의 수사도 받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후에는 관련 부분에 대해 수사를 받거나 기소될 수도 있다. 특검은 실소유자인 이 대통령 부부가 아들의 명의를 빌려 사저 용지를 산 명의신탁이 아니라 소유자가 시형 씨이지만 그 매입대금을 이 대통령 부부가 대신 낸 증여세 탈루라고 판단했다. 증여세 탈루는 증여 가액이 25억 원 이상이라야 국세청이 형사 고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형사처벌까지 가지 않게 된다. 타인의 명의를 빌려서 부동산을 소유하는 명의신탁은 형사처벌을 받고 과징금이 부과된다.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을 피하기 위한 청와대의 법적 대응이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다. 특검은 청와대 경호처 시설관리부장이 거래계약서를 변조한 사실도 새롭게 밝혀냈다. 경호처가 대통령 일가가 이득을 얻도록 땅을 계약하는 것을 대통령 부부가 알았는지 몰랐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경호실의 ‘과잉 충성’이었다고 하더라도 깔끔하지 않았다. 더욱이 명의신탁이든 세금 탈루든 그런 의혹을 받을 수 있는 일을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아니라 대통령 가족이 했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이 대통령 사저 의혹이 특검까지 간 데는 검찰의 잘못이 크다. 검찰은 청와대 직원을 배임으로 처벌하면 이득이 이 대통령 가족에게 돌아간다는 뜻이 된다는 납득할 수 없는 논리를 들어 관련자 전원을 불기소했다. 검찰이 법대로 청와대 직원들을 기소했다면 특검이 불필요했을 것이다. 검찰은 청와대 눈치를 보다가 수사를 그르치고 국민 신뢰를 잃었다. 깊은 자성(自省)이 따라야 할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대선 투표시간 연장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거론하는 것이 “일본이 1998년 투표 마감시간을 2시간 연장한 후 투표율이 10%가량 올랐다”는 주장이다. 이건 사실이 아니다. 일본에서 투표시간 연장 이후 처음 실시된 2000년 중의원 총선의 투표율은 62.49%. 직전인 1996년 총선의 59.65%보다 2.84%포인트 올랐을 뿐이다. 그나마 2003년 총선에서 투표율이 다시 59.86%로 떨어져 투표율 상승 효과는 사라졌다. 자살과 사망 구별 안한 공지영 물론 2005년과 2009년 총선의 투표율은 각각 67.51%, 69.28%로 크게 올랐다. 그러나 투표시간 연장의 효과가 7년 혹은 11년이 지나 나타났다고 보는 것은 누가 봐도 우습다. 이 경우 투표율 상승은 여야 간에 접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2005년 총선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우정민영화 법안 부결에 분노해 중의원을 해산하면서 격렬한 쟁점이 형성된 선거였다. 2009년 총선에서는 현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1955년 이래 11개월을 제외하고 줄곧 여당이었던 자민당을 무너뜨렸다. 작가 공지영의 최근작 ‘의자놀이’는 쌍용차 해고사태를 다룬 자칭 르포다. 그러나 르포라는 말이 무색하게 자살자의 수라는 기본적 사실조차 틀린다. 쌍용차 해고자 측에 따르면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 중 22명이 사망했고 그중 자살자는 12명이다. 그러나 작가는 “똑같은 원인으로 스물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40쪽)”라고 썼다. 148쪽에서는 더 심각한 혼동도 눈에 띈다. 작가는 “22명의 자살자까지 아무도 유서가 없다”고 하다가 바로 그 다음 문단에서 해고자 심리치료를 해온 정혜신 씨의 말을 인용해 “자살자는 12명”이라고 썼다. 모든 사망자를 자살자로 본 작가의 혼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난해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는 쪽지를 남기고 죽었다고 한 신문이 보도했다. 이 보도가 기정사실화하는 가운데 최 씨가 다니던 대학의 교수였던 소설가 김영하 씨가 ‘최 씨는 아사(餓死)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최 씨의 사인은 영양실조가 아니라 갑상샘기능항진증과 그 합병증으로 인한 발작이었다”며 “최 씨는 재능 있는 작가였으며 어리석고 무책임하게 자존심 하나만으로 버티다 간 무능한 작가가 아니었다”고 썼다. 그러나 최 씨의 죽음을 ‘아사’로 키우고 싶어 한 누리꾼들의 비난이 빗발쳤고 결국 소설가는 인터넷 절필(絶筆)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경찰 조사결과 최 씨의 쪽지에 ‘남는 밥’이란 표현은 없었다. 사실 아닌 말, 대가 치르게 해야 어제 끝난 미국 대선 과정에서 ‘팩트 체커(fact checker·사실 확인 전문가)’가 큰 주목을 받았다. 이들의 일은 후보가 사실을 말하는지 검증하는 것이다.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TV토론에서 “공영방송 PBS의 빅버드(어린이 방송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의 주인공 캐릭터)를 좋아하지만 PBS를 계속 지원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는 광고에서 “롬니가 빅버드를 죽여 세금을 부자에게 돌려주려 한다”라고 비난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인기가 높은 세서미 스트리트는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팩트 체커에 의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대선후보와 캠프에서 성명과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곧 후보자 간 TV 토론도 진행될 것이다. 팩트 체크는 언론과 전문가들이 주로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유권자들이 사실을 말하지 않는 후보를 벌주는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누구나 최선을 다해도 틀릴 수 있다. 문제는 틀린 것을 알고도 바로잡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실 여부를 놓고 장난치는 것을 좌시하지 않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미국에서 2004년 대선을 앞두고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9/11’이 나왔다.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시작한 이라크전쟁을 신랄히 비판한 이 영화는 거짓과 왜곡이 많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큰 인기를 얻어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고 수익을 올리고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까지 받았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보수 진영에서 ‘2016년: 오바마의 미국’을 만들었다. 역시 꽤 인기를 얻어 다큐멘터리 영화 부문 역대 4위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2007년 대선을 5개월 앞두고 1980년 5·18 광주를 그린 영화 ‘화려한 휴가’가 나왔다. 당시 열린우리당 대선 예비주자들이 줄줄이 봤다. 나중에 여권 대선후보가 된 정동영 씨도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화려한 휴가’는 전두환 정권을 겨냥한 것이어서 당시 한나라당의 이명박 박근혜 대선 예비주자를 직접 겨냥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대선 구도를 ‘민주 대 반민주’로 몰아가려던 열린우리당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졌다. ▷올 대선을 코앞에 둔 이달 하순 ‘남영동 1985’와 ‘26년’이 개봉된다.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인 ‘남영동 1985’는 지금은 고인이 된 김근태 전 의원에 대한 전두환 정권의 고문 사건을 다뤘다. 인기 여배우 한혜진이 출연하는 ‘26년’은 1980년 광주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복수를 그렸다. 박정희 정권을 연상시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게 불리할 수 있다. 박 후보에게 유리한 영화도 제작되고 있다. 한은정 감우성이 주연한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로 육영수 여사를 다뤘다. 제작사 측 목표대로 대선 전에 개봉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무어 감독은 ‘화씨 9/11’을 만든 후 “부시가 대통령 직에서 제거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영동 1985’를 만든 정지영 감독도 그 노골성을 본뜬 듯이 “이 영화가 올 대선에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씨 9/11’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 존 케리 후보를 눌렀다. ‘화려한 휴가’가 상영된 뒤였음에도 이명박 후보는 정동영 후보를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로 이겼다. 이런 영화가 같은 편이 뭉치는 데는 몰라도 표 확장에는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일까.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대법원이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면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해 김정일 생일축하 e메일을 보낸 김모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국가보안법 찬양고무 혐의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1심은 김 씨의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했으나 항소심은 “김정일 생일축하 메일을 작성한 것은 단순히 의례적인 행위”라며 “국가의 존립 안전을 위협한다고 할 수 없다”고 찬양고무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김 씨가 장기간 북한 공작원과 접촉해 온 사정을 고려하면 김정일 생일축하 메일도 적극적 찬양고무로 해석할 수 있다며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이번 판결은 찬양고무죄를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적용하거나 가볍게 처벌하는 하급심 판결에 경종을 울린 의미가 있다. 노무현 정권 당시 국회 다수당인 열린우리당의 국보법 폐지 시도가 좌절된 이후 국보법 폐지론자들이 사문화(死文化)를 목표로 집중 비판하는 것이 ‘찬양고무죄’ 조항이다. 노골적인 종북세력 인물들만 김일성 일가 찬가를 부르는 게 아니다. 국내 종북 웹사이트에서는 현역 장병, 부동산 중개업자, 항공사 기장 등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까지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글을 올렸다. 이들은 법정에서도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만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치며 찬양고무죄를 조롱했다. 찬양고무죄는 1990년 헌법재판소의 한정합헌 결정을 받고 이듬해 국보법 개정 때 “국가의 존립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는 자”로 제한됐다. 이후에도 헌법소원이 꾸준히 제기됐으나 헌재는 줄곧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공포정치 체제가 존재하는 동안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르는 행위가 표현의 자유일 수 없다. 그동안 법원 판결 중에는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행위에 대해 위험성을 낮게 평가해 무죄를 선고하거나 우리 사회의 개방성을 알리고 남북교류와 협력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집행유예 등의 선처를 한 경우가 있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을 파괴하려는 세력에 선전 선동의 자유를 무제한으로 허용할 수는 없다.}
김광진 민주통합당 의원이 올해 1월 “새해 소원이 뭔가요”라고 묻는 질문에 이명박 대통령의 급사(急死)를 원한다는 뜻의 ‘명박 급사’라고 한 트위터 글을 리트윗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런 표현은 대통령과 관련된 문제이기 이전에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는 “동의해서 알티(리트윗)한 건 아니지 않다는 확신을 저는 가지고 있다”는 이중부정(二重否定)으로 강한 동의를 드러냈다. 비꼬인 심성의 소유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의 표현은 그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한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버릇은 의원이 되고 나서도 반복됐다. 그는 22일 6·25전쟁 영웅인 백선엽 장군을 ‘민족 반역자’라고 불렀다. 김 의원의 나이가 31세로 6·25전쟁을 알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해서 봐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백 장군은 김 의원보다 어린 26세 때 국방경비대에 들어가 북한의 남침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나라를 구했다. 백 장군이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그 세계가 전부라고 알고 살았던 청년기에 일본군 장교로 근무한 행적만 겨냥해 민족 반역자라고 부른 김 의원의 사고방식은 치졸하다. 좌파 역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부 사무국장 출신답다. 민주당 의원들의 막말은 이번뿐이 아니다. 이종걸 최고위원은 올해 8월 트위터에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를 ‘그년’이라고 칭했다. 논란이 커지자 그는 “그년은 ‘그녀는’의 줄임말” “그년은 ‘그녀는’의 오타”라고 말을 바꾸면서 유치한 변명을 늘어놓다가 “표현이 약했다. 더 세게 했어야 했다”며 확 돌아서 양식 있는 국민의 분노를 키웠다. 임수경 의원도 6월 “근본도, 개념도 없는 탈북자 ××들이 굴러 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 개겨” 같은 막말을 퍼부었다. 얼마 전에는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 측 제윤경 공동선대위원장이 이 대통령을 향해 ‘도둑놈’ ‘기생충’ ‘사이코패스’라고 표현한 사실이 드러났다. 민주당은 김 의원을 청년 비례대표로 공천해 국회로 보내줬다. 민주당이 만든 막말 의원이므로 민주당이 책임져야 한다. 김 의원은 “30세 일반 청년이 의원이 되기 전에 한 일인데, 그 정도 풍자도 용납되지 못하는 그런 나라냐”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문재인 후보의 청년특보실장이던 김 의원은 파문이 확산되자 자리에서 급히 물러났으나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문 후보가 4·11총선 당시 ‘나꼼수’ 김용민의 막말 파문을 기억한다면 앞장서서 김 의원의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영세중립국 스위스의 제네바에는 19세기부터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같은 최초의 정부간 기구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레만 호에서 흘러나가는 론 강을 중심으로 우안에 주로 국제기구가 밀집해 있다.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의 본부가 있던 ‘팔레 데 나시옹’에 유엔의 유럽본부가 들어서 있고, 사방으로 약 500m 거리에 국제노동기구(ILO),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있다. 자동차로 약 5분 거리에 세계보건기구(WHO), ICRC, ITU 등이 있다. 영어가 공용어처럼 통용되고 일상생활에서부터 문화 간 교류가 활발해 외교관들이 선호하는 근무지다. ▷유럽의 수도라고 불리는 벨기에 브뤼셀에는 유럽연합(EU) 본부, 유럽이사회, 유럽의회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EU 구역이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도 브뤼셀에 있다. 영국과 유럽 대륙을 잇는 초고속 열차도 런던∼프랑스 파리만이 아니라 런던∼브뤼셀, 브뤼셀∼파리, 파리∼런던을 삼각으로 달린다. 관광객들은 여전히 그랑 팔라스를 중심으로 하는 구(舊)시가지를 주로 찾는다. 그러나 브뤼셀은 현대식 EU 구역이 없었다면 안락하지만 정체된 도시라는 느낌을 줬을 것이다. ▷만약 우주로 가는 열차의 지구 정거장을 설치한다면 그곳은 미국 뉴욕이나 파리 혹은 런던이 돼야 할 것이다. 뉴욕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고의 도시로 부상한 것은 유엔과 그 산하기구들이 줄줄이 그곳에 자리 잡은 것과 관련이 있다. 파리에도 유네스코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누구나 들으면 단번에 알 수 있는 큰 국제기구들이 있다. 런던에도 국제해사기구(IMO) 등이 있다. 반면 독일의 베를린이나 본에는 딱히 들 만한 것이 없다. ▷우리나라가 인천 송도에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유치했다. GCF는 사무국 직원만 500여명으로 아시아 국가가 유치한 최대 규모의 글로벌 국제기구다.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 본부의 직원 수가 2000여 명이지만 ADB는 아시아 지역 기구다. 스위스나 벨기에는 유럽에서 프랑스와 독일에 낀 소국이다. 우리나라가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국제기구 유치에는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어 국제적 활력에서는 가장 앞서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미국 국무부는 한 나라의 국민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그 나라의 교과서를 연구하는 직원을 두고 있다. 교과서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나라 구성원들의 인식틀을 형성한다. 종교의 권위가 지배하던 과거 사서삼경(四書三經)이나 성경, 꾸란의 역할을 오늘날 세속 국가에서는 학교의 교과서가 수행한다. 어린 학생들은 선생님을 통해 교과서에서 배우는 내용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교과서를 책 중에서 가장 신중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공식 문자로 채택한 적이 없는데도 우리나라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다섯 종류에 그런 것처럼 허위 사실이 실려 있다. 찌아찌아족이 부족 언어를 표기할 문자가 없어 한글을 배우고 활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식 문자로까지 채택하지는 않았다. 인도네시아는 지방어 중 고유 문자가 있는 자바어 등을 제외하고는 로마자 이외의 언어 표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언론이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과장해 보도한 것을 확인 절차 없이 실었다가 오류를 범했다. ▷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안철수 대선후보가 “군대에 입대해 내무반에 들어가고 나서야 가족들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는 내용의 만화가 들어 있다. 안 후보는 2009년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입대일 새벽까지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몰두하다 가족들에게 얘기도 못하고 군대에 간 것처럼 오해를 살 만한 말을 했다. 안 후보의 부인 김미경 교수가 한 인터뷰에서 “(안 후보를 군대 가는) 기차에 태워 보내고 혼자 돌아오는데 무지 섭섭했다”고 말해 그 내용을 부인했다. 이 교과서로 배운 유권자들은 잘못된 인식으로 안 후보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 있다.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인정 체제로 바뀌면서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인물이나 사건을 많이 등장시키고 있다. 친근한 소재로 학생들의 흥미를 끌어 학습효과를 높이려 한 점은 좋지만 오류를 범하거나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국사 교과서에서는 현대사 비중을 높였다가 현대사 서술을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진영 간의 다툼이 벌어져 비중을 다시 줄이기로 했다. 교과서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를 다룰 때는 사실 여부를 철저히 확인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옷을 입을 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나머지 단추도 줄줄이 어긋나는 법이다. 지난해 무상 급식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더니 이제는 무상 보육의 단추도 어긋나고 있다. 서구 선진국의 보육과 급식 정책은 아동수당 지급을 전제로 한다. 우리나라가 아동수당 같은 큰 틀을 정하지 않고 표심을 앞세워 임시변통적으로 정책을 수립하다 보니 그 모양이 자꾸 이상해지는 것이다. 서구에서 아동 수당은 출산 장려를 위해 생겼다. 아이가 태어나서 성년이 될 때까지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일정액을 지급한다. 이 돈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는 학용품비나 급식비가 되는 셈이다. 서구 선진국에 대체로 학교 급식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무상이 아닌 것은 아동수당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복지 원칙에 어긋난 양육보조금 스웨덴은 특별한 경우다. 스웨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호황기에 노동력 부족으로 여성을 대거 근로현장에 끌어들였다. 영국 프랑스 독일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들 나라는 힘든 일에는 외국 노동자를 썼다. 그러나 외국인에 배타적인 스웨덴은 자국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스웨덴의 여성 취업률이 영국 프랑스 독일에 비해서도 훨씬 높은 이유다. 스웨덴에서는 일할 의지가 있는 여성은 거의 모두 일한다고 보면 된다. 이런 스웨덴이니까 무상 급식이 도입됐다. 우리나라는 많은 주부들이 집에 있는데 무상 급식이라니 앞뒤가 안 맞는다. 보육 서비스는 출산 장려가 아니라 여성의 경제활동 장려, 즉 맞벌이 여성 지원을 위한 제도다. 보육 서비스에 대해서는 모든 여성이 똑같은 권리를 갖는 것이 아니라 직장을 가진 여성이 우선권을 가진다. 문제는 전업 주부다. 이들이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못할 경우 대신 양육보조금을 지원해야 하는가. 원칙적으로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서구 국가와 달리 직장 여성보다 전업 주부가 훨씬 많다. 전업 주부들이 직장 여성 우선의 서비스에 반발하자 정부가 굴복해 양육보조금을 만들었다. 서구에서 보육은 0∼2세와 2세 이후가 큰 차이가 있다. 0∼2세는 집에서 키우는 것이 원칙이다. 2세까지는 엄마와 같이 있는 것이 아이에게 좋다는 이유에서다. 이 기간에도 국가는 아동수당 외의 지원은 하지 않는다. 엄마가 아기를 키우려면 다니던 직장에서 휴가를 내야 하는데 줄어든 수입은 어떻게 보충할 것인가. 스웨덴에서는 개인 절반, 기업 절반으로 미리 직장에서 기금을 적립했다가 월급의 80% 정도를 2년간 지급한다. 이런 방식도 대부분 여성이 직장에 다닐 때 가능하므로 우리와는 동떨어진 얘기다. 일자리 없는 아동복지는 낭비다 정부가 얼마 전 0∼5세 전면 무상 보육과 양육보조금 지급에서 0∼2세를 보류하자 정치권에서 일제히 반발했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선후보는 “0∼5세까지 보육시설 이용과 양육보조금 지원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전 계층에 지원해야 한다는 것은 새누리당의 약속”이라며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도 같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양육보조금은 경제활동을 장려하기는커녕 일하려는 여성도 주저앉히는 지원인 만큼 없애는 것이 옳다. 그 대신 서구처럼 아동수당을 주는 방향으로 가되 실정에 맞게 소득 상위층을 제외하는 것이 방법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아동 복지가 일과 결합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스웨덴에서 무상 급식과 보육이 있고 나서 여성들이 취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취업을 하면서 이들이 시간 대신 세금을 내는 대가로 무상 급식과 보육이 확대됐다. 이 관계가 우리나라에서는 뒤집혔다. 우리나라는 자녀의 학원비라도 벌어볼까 해서 일하고 싶어 하는 여성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여성을 위한 일자리는 고사하고 남성 가장을 위한 일자리도 모자라는 형편이다. 대선후보들이 아동 복지를 늘려주고 싶으면 먼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올해 3월 세 번째 집권을 한 뒤 군중집회에서 눈물을 보였다. 정보기관 출신의 냉정함에 야성미를 뽐내온 그가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 “그런 남자도 우냐”는 반응이 나왔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장관은 강행군인 선거 일정 속에 “머리 손질은 누가 도와주냐”는 질문을 받자 “쉽지 않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힐러리 캠프는 미국판 철의 여인이 그토록 바라던 인간적 면모를 보여줬다고 반겼다. 정치인이 우는 것은 아기가 관심을 받기 위해 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분석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눈물 정치’의 덕을 본 적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 3위에 머물고 당 소속 의원이 이탈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문성근의 지지 연설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는데 그 모습이 TV 광고로 제작돼 그의 인간성을 부각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박근혜 후보는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핵과 ‘차떼기당’ 역풍에 시달릴 때 천막당사 출범 소감을 밝히는 눈물의 TV 연설로 예상외 선전을 이끌었다. ▷정치인의 눈물도 흔해지면 식상한 법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한 달 사이 두 번이나 울었다. 지난달 21일 쌍용차 해고 근로자 가족들을 만나 사연을 듣고 울 때만 해도 ‘감성적인 후보’라는 느낌을 줬는데 최근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면서 눈물을 훔쳤다는 소식에는 차라리 ‘감상적인 후보’라는 인상이 든다. 남자도 나이가 들면 여성호르몬이 나와 쉽게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중년 남성이라면 굳이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남이 보는 데서 TV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울지 않을까 조심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천안함 영결식장에서 추모 연설 도중 북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차가운 바다에 부하를 수장한 국군 통수권자로서의 참담한 심정을 나타내는 것이었는데도 위엄을 보이지 못했다는 일각의 비판을 받았다. 힐러리 장관은 눈물 덕분에 지지율을 일시 만회했지만 “대통령에 오를 만큼 강하지 않다”는 인상을 줘 결국 패했다. 존 베이너 미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회고하다 자주 울어 울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치인의 눈물이 꼭 득이 된다고 할 수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그제 대선을 71일 남겨두고 투표시간을 오전 6시∼오후 6시로 정한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민변은 이 조항이 투표일에도 일하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투표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같이 헌재가 최대한 신속히 처리한 사건도 결정까지 63일 걸렸다. 헌재가 민변의 헌소를 서둘러 진행해 설혹 인용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국회에서 선거법을 개정하고 선거의 실무준비를 하자면 올해 안에는 힘들다. 민변의 헌소가 정치 공세로 보이는 이유다. 민주통합당은 지난달 4일 여론 수렴도 없이 투표시간을 오후 9시까지 늘리는 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새누리당의 반대로 상임위 통과가 무산됐다. 헌재에서 투표시간을 연장하는 취지의 결정이 나더라도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법 개정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젊은층의 투표율이 노장층에 비해 저조한 것이 사실이다. 젊은층의 지지가 높은 야권은 노장층은 오전에 투표하고 젊은 세대는 오후에 투표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투표시간 마감을 연장하면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정략적으로만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일본이 1998년 투표시간 마감을 오후 6시에서 오후 8시로 2시간 연장해 투표율 상승효과를 거뒀지만 투표일이 평일 근무일이어서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미국과 영국의 투표시간이 오후 9시나 10시까지로 늦게 끝나는 것도 일본처럼 평일에 투표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투표일을 임시 공휴일로 정해 일요일을 이용해 투표하는 프랑스와 독일보다도 더 큰 편의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투표시간을 연장해도 투표율 상승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 투표시간 연장은 인적 물적 비용의 증가나 투표관리의 효율도 함께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투표시간 연장이 투표율을 높이는 유일한 대안도 아니다. 투표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투표할 시간을 주는 고용주에게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법도 있다. 젊은층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투표시간 연장이 꼭 필요하다면 충분한 시일을 두고 과학적 실태 조사를 벌인 뒤에 추진하는 것이 옳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방송극에 나온 이후 청소년 사이에서 널리 애송되기 시작한 안도현의 시다. 안 시인은 일상의 작고 하찮은 것에서 소재를 찾아 감동을 주는 시를 썼다. 그가 얼마 전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의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더니 4·11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 된 도종환 시인과 함께 문 후보의 멘토단을 조직하는 데 앞장섰다. 두 시인이 포함된 멘토단 37명 중 31명이 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 문학계 인사다. ▷안 시인은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다. ‘접시꽃 당신’의 도 시인 역시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으로 전교조 충북지부장을 지냈다. ‘고양이 학교’라는 아동 판타지 소설을 쓰기도 한 김진경 시인은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교육문화비서관을 지냈다. 원로뻘의 신경림과 정희성 시인은 둘 다 민주당 경선과정에서는 김두관 후보를 지지했다가 이번에는 문 후보의 멘토로 이름을 올렸다. 그 밖에 일반인에게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인 13명이 더 있다. ▷미국 정치는 선거 때 할리우드 스타들의 도움을 받는다. 얼마 전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공화당 밋 롬니 후보의 유세장에서 빈 의자를 세워놓고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을 신랄히 비판해 화제가 됐다. 할리우드는 사실 공화당보다 민주당 성향이 강하다. 가수 레이디 가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배우 조지 클루니 등이 민주당을 지지한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연예인은 유명하니까 정치가 그 이름을 빌리려 한다. 그러나 문인의 인지도는 몇몇 베스트셀러 작가를 제외하고는 초라하다. 시인들이 보잘것없는 인지도를 이용해 특정 후보의 지지를 유도하는 모습은 시인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시인이 정치에 참여하고 싶으면 시로써 하는 것이 좋다. 물론 시인이 시로써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즉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을 때 시인은 정치에 뛰어들거나 정치적 행동을 할 수 있다. 유신 시절의 저항 시인 김지하가 그랬다. 그런 시절은 지났다. 시인에게 혁명가는 몰라도 현실 정치인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된 도종환 시인에게 ‘근조(謹弔)’라는 리본이 달린 화분을 보낸 사람의 생각도 아마 그럴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가 선대위에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불협화음이 생기고 있다. 박 후보는 지난달 28일 대구·경북 선대위 출범식에서 국민적 인기가 높은 런던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범 선수에게 직접 공동 선대위원장 임명장을 전달했다가 사흘 뒤 취소했다. 김 선수는 친분이 있는 경북도당 청년위원장이 ‘식사나 하러 오라’고 해 갔다가 현장에서 제의를 받고 즉석에서 자리를 맡았다고 한다. 김 선수는 그의 새누리당행을 비난하는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결국 스스로 물러났다. 김 선수의 정치적 의지를 충분히 따져보지 않고 인기만 탐낸 새누리당의 과욕(過慾)이 빚은 망신살이다. 새누리당은 또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 지난달 28일 연극배우 손숙, 김성녀 씨와 시인 김용택 씨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가 당일 저녁 명단에서 삭제하는 소동을 벌였다. 김대중(DJ)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지낸 손숙 씨는 “새누리당과는 정치적 성향이 다른데 내가 어떻게 박 후보 캠프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겠느냐”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새누리당 국민대통합위원장 자리에 거론된 박정희 시대의 저항시인 김지하 씨는 공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정치할 뜻도 없는 김 시인이 선거용 소모품으로 쓰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정책이 큰 틀에서 서로 수렴하면서 세 후보 모두 외연(外延)을 확대할 수 있는 인물 영입 경쟁에 애쓰는 모습이다. 박 후보가 2030세대와 중도층에 호소력 있는 인물 영입에 사활을 거는 사정을 모르지는 않지만 너무 조급하다는 인상을 주면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를 낼 수 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새누리당의 인물 영입 방식은 과거 그대로인 것 같다.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공을 들여도 쉽지 않은 인물을 언론에 이름부터 띄워놓고 당사자의 반응을 보자는 식이다. 유력 후보가 불러주면 앞다퉈 달려올 정도의 사람이라면 영입 가치도 없다. 새누리당은 친노(親盧) 중심의 민주당에서 홀대를 받은 한광옥 김경재 등 옛 DJ계 인사들의 영입도 타진하고 있다. 오랜 세월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DJ계 인사의 영입이 새누리당에 화해와 통합의 의미를 줄 수는 있겠지만 그들을 따라 DJ 지지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옮겨올지는 미지수다. 이미지 쇄신을 위한 ‘묻지 마’ 영입은 핵심 지지층의 이반(離反)을 불러올 수도 있다.}
정청래 의원 등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 20명과 최근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무소속 강동원 의원이 유신헌법 철폐 결의안을 발의했다. 결의안은 유신헌법이 내용과 형식에서 무효임을 천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겨냥한 정치 공세의 의미가 짙은 결의안이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지지할지는 미지수이지만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과거사를 반성했다면 그 잘못을 인정한 유신헌법 철폐안에 앞장서야 한다”고 압박했다. 유신헌법은 1980년 제5공화국 헌법의 출현과 함께 사라졌고 5공화국 헌법은 1987년 현행 헌법이 만들어지면서 사라졌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유신헌법이 도대체 어디에 있다고 철폐하겠다느니 마느니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과거 헌법의 철폐는 그에 기초한 법률관계를 흔들어 놓아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헌법의 제정과 폐지는 궁극적으로 국민투표로 이뤄진다. 내용이야 어찌됐든 국민투표를 거쳐 제정된 유신헌법을 국회 표결만으로 폐기한다는 것도 법률체계상 맞지 않는다. 또 민주당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유신시절 사망한 장준하 씨의 사인(死因) 관련 증인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장 씨의 죽음에 대해서는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장준하 선생 사인 규명 진상조사위원회’와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재조사를 벌였으나 실족사(失足死)라는 최초 수사의 결론을 뒤집지 못했다. 이번에 이장(移葬)을 계기로 함몰 흔적이 있는 유골이 새로 공개됐으나 검시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사인 재규명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대선이 코앞인데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의 국정감사는 적절치 못하다. 박 후보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와 안철수 후보의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에 대해 다수 국민이 지지를 보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국립현충원에 들르면서도 박 전 대통령 묘역에 가지 않았고 뒤늦은 참배에 대해서도 여러 모로 저울질을 하고 있다. 국민은 박정희의 과(過)만큼이나 공(功)도 잘 알고 있다. 문 후보가 통합의 지도자가 되려면 유신헌법 철폐안 같은 발상을 비판하고 장준하 사건 의혹 규명을 대선 이후로 넘기자는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소액주주 운동으로 유명한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 캠프로 갔다. 그는 안 후보 캠프에서 경제민주화 정책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는다. 일간지에 고정 칼럼을 쓰는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와달라는 제의를 받고 고민하는 모양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캠프에도 북한 전문가 고유환 동국대 교수 등이 새로 가담했다. 각 캠프에서 공식 직함을 가진 교수가 수십 명에 이르고 물밑에서 도와주는 교수까지 합치면 캠프별로 100∼300명에 이른다. 작은 대학교를 하나 만들어도 될 만한 인원이다. 대선후보들은 교수의 전문성을 활용하기보다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교수를 영입해 후보의 이미지를 높이려고 한다. 박 후보 캠프의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전공이 국제환경법이라고 하지만 환경과는 동떨어진 정치쇄신특위 위원으로 일한다. 캠프에 몸담지는 않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이심전심 야권을 돕는 조국 서울대 교수는 전공(형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종횡무진이다. 정치권 주변에서 얼씬거리는 교수들의 행태를 보면 폴리페서(polifessor·politics+professor)란 말은 너무 점잖고 폴리티션(politician·정치인) 교수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정도다. 교수가 정치를 겸업하면 본업인 연구와 강의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교수가 학기 중에 갑자기 캠프에 뛰어들면 학생들이 최대의 피해자다. 개인지도가 중요한 대학원생은 교수 때문에 논문 작성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교수의 현실정치 참여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정치가 정책 경쟁이 되려면 전문가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야 한다. 교수는 중요한 전문가 그룹 중 하나다. 하지만 현실 경험이 부족한 교수의 섣부른 정치 참여는 부작용을 낳기 쉽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참모였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경제학의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인 헨리 조지의 토지 공개념을 들고나와 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흔들었다. 그는 이번에 다시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교수를 선호해 정권 초기 청와대 비서진을 교수 중심으로 꾸렸다가 촛불시위에 호되게 당하고 나서 모두 교체했다. 교수들은 지지 후보가 당선되면 정권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겠지만 떨어져도 학교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본업보다 부업(副業)에 열심인 이들이 밤늦게까지 연구실의 불을 밝히는 교수들의 의욕을 꺾지 말아야 할 것이다.[바로잡습니다]‘대선 캠프에 몰려드는 교수들의 본업과 副業’ 제하의 사설 중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경제학의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인 헨리 조지의 토지 전면 국유화 주장을 들고 나와”라는 대목에서 “헨리 조지의 토지 전면 국유화 주장”이라는 표현을 “헨리 조지의 토지 공개념”으로 바로잡습니다. 이 교수는 “토지 공개념은 토지의 전면 국유화가 아니라 거래세를 인하하고 보유세를 인상하자는 것이 핵심 주장”이라고 알려왔습니다.}

책사(策士)는 예로부터 자기를 써주는 사람을 찾아다니는 법이다. 맹자는 추나라 사람이지만 위나라에서 혜왕의 멘토 역할을 하다가 그 아들 양왕이 도무지 임금답지 못하자 제나라로 떠나 거기서 선왕의 멘토 역할을 했다. 그 전에 공자도 마찬가지였다. 공자는 노나라 사람이지만 제나라로 가서 자리를 구했다. 그러나 결국 뜻을 이루진 못하고 돌아와 제자를 키우는 데 여생을 바쳤다. 노자의 눈에는 이런 공맹의 무리가 자리에 연연하는 해바라기 지식인으로 비치기도 했다. ▷한나라당 이회창의 책사였던 윤여준이 민주통합당 문재인의 캠프로 갔다.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의 김종인은 현 민주당의 한 전신인 새천년민주당에서 부대표까지 지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후 구조조정을 지휘했던 이헌재는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 캠프에 가 있다. 대선후보들이 지지 유권자의 확장을 위해서라면 반대 진영의 인물을 끌어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정체성 없는 ‘묻지마 영입’으로 정당정치를 훼손한다는 비판과 함께 이종교배로 극단의 정치를 완화한다는 긍정의 목소리도 나온다. ▷윤여준과 김종인은 지난해 안철수에게 정치적 조언을 해주다가 사이가 틀어져 떨어져 나갔다. 윤여준은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쪽에서 자신을 찾지 않는 데 서운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는 얼마 후 진보 원로 백낙청의 계간지 ‘창작과 비평’에 보수 측 인사로는 보기 드물게 대담자로 등장하더니 이번에 문재인 캠프로 갔다. 김종인은 이번 대선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구도로 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얼마 후 박근혜에게 갔다. 안철수의 새 멘토 자리는 이헌재가 차지했지만 자리가 탄탄하지는 않은 듯하다. ▷올해 윤여준의 나이 73세, 김종인은 72세, 이헌재는 68세다. 요새는 70세는 돼야 노인이라니까 그 기준으로 보면 윤여준과 김종인은 노인뻘이고 이헌재도 곧 노인이 된다. 기자 출신의 윤여준은 전두환 정부에서부터 청와대 비서관 근무를 했다. 경제학자 출신의 김종인은 전두환의 집권당인 민정당의 창당 국회의원이었다. 이헌재는 박정희 정권에서 잘나가던 재무부 관리였다. 높은 자리를 다 해본 이들이 또 무슨 욕심이 있어서 저러는가 흘겨보는 눈길도 있지만 그들의 경륜이 후보의 안정감과 균형감을 높이고 있는 점도 있을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5·16, 유신, 인혁당 재판이 헌정가치를 훼손했다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사과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불효(不孝)인가 아닌가.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처럼 난해해 보이는 이 질문은 사실 중요한 윤리적 의미를 담고 있다. 대학 시절 읽은 소학(小學)에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대목이 있다. 아버지가 잘못했을 때 자식의 처신, 임금이 잘못했을 때 신하의 처신, 스승이 잘못했을 때 제자의 처신을 다룬 대목이다. 아버지가 잘못했을 때 자식은 그 잘못을 감추는 일은 있어도 고치겠다고 나설 수는 없다. 그러나 임금이 잘못했을 때 신하는 임금의 얼굴색이 변해도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스승이 잘못했을 때는? 그런 경우는 없다. 스승에게 지적할 잘못이 있으면 이미 스승이 아니다. 소학이 답할 수 없는 윤리적 난제 박근혜가 박정희재단의 이사장 정도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아버지의 잘못이 있더라도 불가피했다고 옹호하는 것이 효(孝)다.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비판할 수 없지만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으로 대통령이었던 아버지를 비판할 수 있는가. 소학은 부자(父子)의 윤리와 군신(君臣)의 윤리는 다르다고 했지만 부자가 곧 군신인 경우의 윤리는 답하지 않았다. 일본 에도(江戶) 시대 유학은 치자(治者)의 윤리와 피치자(被治者)의 윤리를 구별해 그 해답을 추구했다. 46인의 사무라이가 억울하게 죽은 주군의 원수를 갚았다. 이들을 처형해야 하는가가 논란이 됐다. 사무라이의 복수는 의롭다고 하겠지만 그 의로움은 그들 무리에서나 한정되는 얘기다. 막부는 그들을 처형했다. 사무라이의 의리는 사적으로 옳지만 공적으로 옳지 않다. 일본 유학은 개인 윤리와 정치 윤리의 연속성을 끊음으로써 공(公)을 사(私)로부터 분리시키고 근대화를 준비했다는 것이 일본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의 주장이다. 조선 효종 사후의 예송(禮訟)은 그 함의를 끝까지 밀고 나갔다면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을지 모른다는 게 사회학자인 경희대 김상준 교수의 생각이다. 송시열과 허목은 죽은 소현세자의 동생인 효종을 인조의 맏아들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갖고 논쟁을 벌였다. 나중에 논쟁에 끼어든 윤휴는 효종은 임금이기 때문에 맏아들이라고 함으로써 가례(家禮)로부터 왕례(王禮)의 독자성을 주장했다. 치자의 윤리가 피치자의 윤리로부터 분리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왕(王)도 신(臣)도 똑같은 인륜에 지배된다는 노론의 이념이 지배한 조선 후기 사회는 그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다. 자식이 아버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개인 윤리에서는 불효다. 그러나 통치자는 아버지라도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는 게 도리다. 동생이 형을 꾸짖는 것은 집에서는 예의가 아니지만 그 동생이 대통령이라면 주저없이 해야 한다. 그것을 못해서 노건평 씨와 이상득 씨가 감옥에 갔다. 박씨 집안의 장녀로서가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박근혜의 아버지 비판은 따라서 윤리적이다. 박근혜가 아버지의 명예회복에 사로잡혀 있는 한 효녀는 될지언정 통치자는 될 수 없다. 박정희 역시 자기 시대의 제약 속에 살았던 사람이다. 유신은 헌정(憲政)을 유린한 독재였고 인혁당 사형선고는 그 시대의 가장 암울한 순간이었다. 아버지라도 넘어서는 게 정치의 윤리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사용해 정신적 부친 살해가 문명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했다. 황금시대가 과거에 있었다고 보는 사회에서 오이디푸스는 있어서는 안되는 인간이다. 그러나 미래가 과거보다 나을 것으로 보는 사회는 정신적 부친 살해를 감행한다. 박정희라면 개인의 윤리와 구별된 정치의 도리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저승에서 딸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표현할지 모른다. “내가 죽도록 사랑한 이 나라를 네가 발전시키고 싶다면 네가 먼저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997년 1월 20일 부산교도소. 감방 화장실 환풍구의 쇠창살 2개가 뜯겨 있고 죄수 신창원이 사라졌다. 탈옥 준비는 치밀했다. 교도소 작업장에서 쇠톱 2개를 신발 밑창 고무에 홈을 내 숨긴 뒤 감방으로 들여왔다. 창살 절단 작업은 소음을 숨기기 위해 음악 방송이 나오는 오후 6∼8시에 했다. 작업이 끝나면 껌으로 절단 부위를 붙여놓아 교도관들을 속였다. 가로 33cm, 세로 30cm 크기의 환풍구를 빠져나가기 위해 80kg이던 체중을 60kg으로 줄였다. ▷탈옥에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手)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미국 TV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천재 건축가 마이클은 형 링컨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을 선고받자 탈옥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는 교도소 설계도를 온몸에 문신으로 새긴 뒤 일부러 은행을 털고 감옥에 간다. 그들은 화장실 변기를 뜯어내고 하수구를 통해 탈옥한다. 영화 ‘쇼생크 탈출’도 탈옥 얘기다. 주인공 앤디의 감방에는 1940년대 할리우드 섹시스타 리타 헤이워스의 핀업 사진이 붙어 있다. 앤디의 탈옥 소식에 교도소장이 감방을 찾아 핀업 사진을 뜯어내자 앤디가 탈옥을 하기 위해 뚫은 구멍이 나타났다. ▷1970년대 홍콩에는 ‘고무 인간’으로 불리던 도둑 쉐용선이 있었다. 창문 하나 없는 특별감방에 수감된 그는 꾀병을 부려 의무실로 실려 간 뒤 의사를 묶고 너비 20cm도 안 되는 작은 창문 앞에 섰다. 그의 곧았던 허리가 구부러졌다. 이어 툭 하는 소리가 나고 어깨가 탈골된 것처럼 축 처졌다가 가슴 앞으로 접혔다. 가슴과 머리가 차례로 안쪽으로 구부러졌다. 고무 인간의 몸이 절반으로 줄어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17일 대구 동부경찰서에서 전과 25범 최모 씨가 경찰관이 조는 틈을 타 가로 45cm, 세로 16cm의 직사각형 배식구를 통해 유치장을 탈출했다. 세로가 성인의 손바닥 길이보다도 3∼4cm 짧은 곳으로 성인의 머리가 빠져나갔다. 범인이 키 165cm, 몸무게 52kg으로 왜소한 체구라고 하지만 믿기지 않는다. 최 씨는 베개에 이불을 덮어놓아 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경찰이 착각하게 만들었는데, 이 수법은 영화 ‘알카트라스 탈출’에서 배운 모양이다. 경찰서 유치장 배식구만이 아니라 가정집 보안용 창살도 고무 인간의 사이즈에 맞춰 줄여야 할 판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