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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이생망이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다른 전공을 찾아야 할까요. 탈조선 시켜 주시면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26일 한 대학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이생망’은 ‘이번 생은 망했다’를 줄인 말이고, ‘탈조선’은 ‘헬(hell)조선을 탈출한다’는 뜻이다. 부모 세대에겐 동의하기 힘든 낯선 신조어지만, 2%대 저성장과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취업난에 신음하는 청년들은 시대와 사회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태어난 현실을 타박하고 ‘다음 생에서나 잘해 보겠다’고 자포자기하는 ‘이생망 세대’. 그들은 2017년 대한민국 청년의 아픈 자화상이다. 청년들의 생각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SNS는 ‘불행의 바다’로 바뀐 지 오래다. 동아일보 2020행복원정대 취재팀이 배영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팀과 20대 대학생이 주로 이용하는 페이스북 ‘대나무숲’ 페이지에 지난 1년간 올라온 게시물 1만281건을 분석한 결과 불행 관련 내용이 행복 관련 게시물의 약 5.8배로 조사됐다. 불행감이 행복감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청년의 행복을 좌우하는 요인도 드러났다. 취재팀이 10개의 행복 조건별로 행복감을 표출한 게시물 대비 불행감을 언급한 게시물을 분석한 결과 △정치·사회 문제(84.3배) △돈(29배) △취업(11.2배) △가족(10.4배) △개인(8.8배) 등의 순으로 불행 관련 게시물이 많았다. 반면 △시간 여유(0.4배) △친구(4.6배) △꿈(5.7배) △학교·학업(7.0배) 등의 요인에서는 비교적 불행감을 덜 느끼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청년들이 팍팍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을 느끼면서 일상의 작은 일과 주변 사람에게 행복을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배 교수는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낮고 불안과 불만이 많은 상황에서 청년들의 관심이 눈앞에 벌어진 현실에 매몰돼 있다”며 “요즘 청년들은 ‘소소한 일상에서의 소망과 불안’을 느끼는 세대”라고 진단했다. 이는 배 교수팀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선행조사 결과와도 비슷하다. 청년들은 ‘현재의 불안 요인’으로 △취업·고용 불안(34.7%) △경제적 상태(22.6%)를 꼽았다. ‘행복의 필요조건’으로는 △화목한 가정(29.6%) △경제적 여유(22.1%) △건강(20.6%) △시간적 여유(11.6%) △좋은 친구(10.1%)를 선택했다.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인 2020년까지 이어지는 특별기획 ‘행복 원정대 2020프로젝트’는 2017년 주제로 ‘청년 행복’을 선택했다. 미래에 대한 꿈을 잃어가는 ‘행복 불감증’ 청년들에게 행복을 되돌려주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권기범 kaki@donga.com·김아연 기자}

《 지난해 가을 서울의 한 사립대학을 졸업한 이모 씨(25·여)는 4년의 서울 생활을 접었다. 그리고 충북 충주시의 본가로 내려갔다. 이 씨는 지난해 하반기 기업 공채에 도전해 2주간 자기소개서를 35번 써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전공과 취미를 살려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이 씨는 “수차례 ‘최종탈(최종 면접 탈락)’을 하다 보니 영혼까지 ‘탈탈’ 털린 느낌이었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고향에서 쉬면서 ‘멘털 회복’부터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동아일보 2020행복원정대 취재팀과 숭실대 배영 교수팀이 지난해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페이스북 대나무숲 페이지를 분석한 결과 불행 관련 게시물이 가장 많았던 분야는 역시 정치사회 분야였다. 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정국이 계속되면서 정치사회적 현실에 대해선 불행 게시물이 행복 관련 글의 84배나 많이 올라왔다. 이 항목을 빼면 ‘취업’과 ‘돈’에 대한 고민이 학생들을 ‘불행의 늪’에 빠뜨리는 핵심 요인으로 분석됐다. 취업의 경우 행복 게시물 하나당 불행 게시물이 11.2개꼴, 돈은 29.0개꼴로 올라왔다. 배영 교수팀의 선행 조사에서도 청년들이 느끼는 불안 요인 1위는 취업·고용 불안(34.7%)이었다.○ 반복된 ‘최종탈’에 탈탈 털린 행복 “가능성이 희박한 취업으로 고민하고 있고, 돈이 없어서 알바로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빈말이라도 좋으니까 아무나 ‘일할 자리 있으니까 당분간 여기서 일해라’라고 좀 말해주시면 안될까요?” 지난해 11월 ‘고려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올라온 글이 학생들의 마음을 울렸다. 이 학생은 “취업, 돈…. 그게 뭐라고 이렇게 힘들어야 하느냐”고 적었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대학 졸업장은 빛을 잃었다. 명문대 졸업생조차 취업 고민을 피해 가지 못한다. 일자리는 행복과 직결된다.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지난달 내놓은 세계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실업자가 취업자보다 더 불행감을 느낀다. 또 어렵게 취업을 해도 실직의 고통이 ‘트라우마’로 남아 행복감을 갉아먹는 것으로 분석됐다. 배영 교수팀은 지난해 3월 21일부터 1년간 트위터에서 일자리 관련 16개 단어와 함께 언급된 단어의 등장 빈도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스펙(3만9760회) 여성(3만6231회) 취업(3만5284회) 고학력(3만2611회) 고소득(3만2415회) 등의 단어가 많이 등장했다. 청년의 관심이 취업을 위한 스펙과 조건, 그 결과로 얻는 ‘돈’에 쏠려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 것은 취업 시장에서 여성이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 ‘기-승-전-취준’ 스트레스 시달리는 청년들 한국 청년들은 ‘고3 입시 스트레스-대학 4학년 취준(취업 준비)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스트레스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취재팀이 네이버 취업 카페 ‘스펙업’의 대학생활 게시판에 최근 1년간 올라온 취업 관련 게시물 828개를 발췌해 분석한 결과 취미 활동과 교류의 공간인 ‘동아리’조차 취업과 관련한 주요 연관 단어로 등장했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권모 씨(28)는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다. 권 씨는 “교육학을 공부해 유학도 가고 싶었지만 학비를 대준 부모님께 더 부담을 드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스펙업 게시물 분석에서도 ‘대학원’의 경우 ‘부모님’이라는 단어와 높은 연결성을 보였다. 비싼 학비로 인해 부모님의 눈치를 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청년 실업의 고통이 주변 사람에게 전염되는 ‘스필오버’ 효과가 나타나 사회 전체의 불행지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로 지친 학생들은 작은 여유에도 행복한 감정을 분출했다. 대나무숲에서 ‘시간 여유’를 언급한 게시물 317개 중 230개(72.6%)가 행복 관련 게시물로 분류됐다. 행복 관련 게시물 비중이 10대 행복 조건 중 가장 높았다. ‘엑소(EXO·아이돌 그룹)’ ‘포켓몬고’(게임) ‘오버워치’(게임)를 통해 청년들은 한 템포 쉬어가며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길고양이, 여름철 매미처럼 바쁜 일상의 여유에 행복감을 표현하는 글도 많았다. 대학생 조형기 씨(26)는 “‘덕질(마니아 활동)’은 메마른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힘든 삶을 지탱해주는 빛과 같다”고 말했다. 취업난과 혼란스러운 사회 현실에 지친 청년들이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매달리는 건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난해 유행한 ‘휘게(hygge·안락하고 쾌적한 삶을 뜻하는 덴마크어)’에 청년 세대가 열광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적 영역에서 절망과 체념을 겪은 청년들이 사적 영역으로 들어가 나름대로 행복의 ‘진지(陣地)’를 구축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 어떻게 조사했나 ::동아일보 2020행복원정대 취재팀은 배영 숭실대 교수팀과 함께 페이스북, 트위터, 포털사이트 카페에 올라온 10대 행복 조건 관련 게시물의 의미를 분석한 ‘청년 행복지도’를 작성했다. 주관적인 행복감에 치우칠 수 있는 설문조사 대신 청년들이 고민과 감정 등을 털어놓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이를 위해 페이스북에서 각 대학 또는 학생회가 운영하는 익명 페이지 중 ‘페이지 좋아요’가 1만 명 이상인 45곳을 대상으로 2016년 3월∼2017년 2월 올라온 게시물 2만2117건을 수집했다. 네이버 취업 카페 스펙업의 ‘대학생활 게시판’에 같은 기간 올라온 취업 관련 게시물 828건도 수집했다. 트위터에 올라온 취업 관련 게시물도 모았다. 이 내용을 빅데이터 분석 방식인 ‘텍스트 마이닝 기법’으로 분석했다. 통계 프로그램 R 등을 이용해 단어 사이의 거리를 수치화해 연관성도 살폈다. 권기범 kaki@donga.com·김아연 기자}
“이 나라 전체가 잘못됐다.”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발표한 직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 주변에 모인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검찰과 정치권, 언론 등을 싸잡아 비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저 앞에 모이는 지지자는 구속영장 청구 소식이 알려지면서 빠르게 늘었다. 27일 오전 11시 40분 삼성동 주변에 있던 10명 안팎의 지지자들은 관련 소식을 전해 듣자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다”는 허탈한 말과 함께 힘없이 태극기를 흔들었다. 오후 들어 상황은 급변했다. 박사모 인터넷 카페에는 “애국시민 전원은 지금 즉시 삼성동 사저로 모여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쌀쌀한 가운데 간간이 빗방울까지 떨어졌지만 태극기와 우의를 든 지지자가 계속 몰려들었다. 오후 6시경에는 지지자가 200여 명에 달했다. 정광용 박사모 회장은 확성기를 들고 “박 전 대통령은 가진 게 진실 한 조각에 불과한 여성 대통령”이라며 “무고한 대통령을 유린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지지자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탄핵 무효”를 외쳤다. 경찰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이날 오후 사저 경비 규모를 3개 중대에서 6개 중대(약 500명)로 늘렸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곳곳에서 경찰 또는 반대 측 시민과 마찰을 빚었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구속영장 청구 소식에 박 전 대통령 측도 본격 대응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유영하 변호사는 오후 3시 40분경 굳은 표정으로 사저로 들어간 뒤 3시간 10분간 머물다 돌아갔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세월호 인양을 애타게 기다린 미수습자 가족의 한을 풀기 위해선 인양 후 미수습자 신원 확인이 중요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미수습자 9명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세월호 침몰 후 정기적으로 대책회의를 열면서 준비했다. 3년 동안 수중 구조물 안에 갇혔다가 발견된 시신에 대한 보고가 없는 탓에 여러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유전자(DNA) 채취 등 모의 훈련도 마쳤다. 우선 미수습자가 발견되면 전남 장성군 광주과학수사연구소를 거점으로 전국에서 파견된 법의관과 법치의학자 유전자분석연구관 등이 모여 신원 확인에 착수한다. 첫 번째로 발견된 미수습자의 상태에 따라 해당 분야 전문가가 추가로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최영식 국과수 원장은 23일 “쉽지 않겠지만 대형 재해재난 때의 경험을 살려 최선을 다하겠다”며 “전국 대학의 법의인류학자 등과 긴밀히 연락하며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미수습자의 상태는 아직 예측하기가 어렵다. 법의학자들도 “상상하기 어렵다”며 신중한 의견이다. 국과수는 세월호 내부의 발견 지점에 따라 상태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랍화’ 상태로 발견되길 기대하고 있다. 시랍화는 사망 후 오랜 시간 물속에 있을 경우 체내 지방이 물속의 칼슘 등과 결합해 밀랍처럼 되는 현상이다. 원래 모습에 가장 가깝다. 이숭덕 서울대 의대 교수(법의학)는 “해저 온도가 낮고 미생물이 잘 자라는 환경이 아니어서 부패를 막아주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류나 물살, 날카로운 물체 등으로 인해 유골 상태로 발견될 가능성도 크다. 한 법의학자는 “유골로 성별과 연령대 신장 등을 추정하는 인류학적 감정과 유골 유전자 검사 기법 등을 총동원하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며 “분명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권기범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사저에서 근무하던 경호원이 소지했던 권총을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21일 경찰과 청와대 경호실 등에 따르면 경호원 A 씨는 16일 오후 박 전 대통령 사저에서 200m가량 떨어진 한 건물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잠시 후 A 씨는 볼일을 보기 위해 식당 화장실을 찾았고 이때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집을 풀어 변기 뒤편에 놓았다. 그러나 A 씨는 이를 챙기지 않고 그대로 화장실을 나와 식당을 떠났다. 화장실에서 권총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건물 경비원 B 씨. 처음 총을 발견한 시간은 오후 2시경이었다. B 씨는 가죽으로 된 권총집을 보고 드릴 같은 공구로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본 뒤 권총인 걸 확인하고 깜짝 놀라 근처에 있던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총기를 건넸다. B 씨는 “총에 실탄이 들어 있는 것도 확인했다”며 “20, 30분 뒤 경찰이 현장에 와서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B 씨에 따르면 오후 3시경 한 남성이 와서 권총의 소재를 물었다. B 씨의 설명 후에는 전달받은 경찰이 누구인지 물었다. 이 남성은 약 10분 뒤 다시 찾아와 “권총을 찾았다. 고맙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만 자신의 신분을 밝히진 않았다. 경호실 관계자는 “해당 경호원이 사실을 알아챈 직후 보고했으며 해당 식당에 총을 둔 사실을 알고 먼저 찾으러 간 것”이라며 “단순한 실수”라고 해명했다.권기범 kaki@donga.com·위은지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검찰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감안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박 전 대통령 조사를 준비하면서 과거 노태우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 조사 전례를 참고했다. 하지만 일부 절차에 대해선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11일 만에 검찰에 소환된 전직 대통령에겐 부적절한 특혜가 아니냐는 논란을 빚고 있다.○ 교통신호 통제로 ‘논스톱’ 이동 박 전 대통령은 21일 오전 9시 15분 서울 삼성동 사저를 나서면서 노태우, 고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 때와 비슷한 수준의 경호를 받았다. 청와대 경호실이 제공한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 차량을 이용했고, 그 차량 앞뒤로 경호 차량이 1대씩 에스코트했다. 경찰 차량 1대와 경찰 오토바이 10여 대도 경호에 참여했다. 경찰은 이동 경로 사거리마다 신호 통제를 해 박 전 대통령 일행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차례도 멈추지 않았다. 1995년 11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조사를 받은 노태우 전 대통령은 서울 연희동 사저에서 청와대 경호실이 제공한 뉴그랜저 승용차를 타고 이동했다. 당시 이동 중 취재 차량 간 경쟁이 과열되자 노 전 대통령 측은 갑자기 경로를 바꾸기도 했다. 당시 선도 경호 차량에 타고 있던 경찰 고위 간부가 무전으로 교통신호를 통제했다고 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청와대 경호실이 제공한 16인승 개조 리무진 버스(원래 42인승)를 타고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대검찰청으로 이동했다. 경찰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일행이 중간에 한 차례 고속도로 휴게소를 이용한 때를 제외하고는 360km가량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도록 교통 통제를 했다.○ ‘중앙 출입문’ 이용한 첫 피의자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은 취재진과 일정 거리를 두고 설치된 포토라인에 섰다. 취재기자나 사진기자 누구도 취재 포토라인을 넘어 박 전 대통령 근처로 다가설 수 없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검 중수부에 출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청사로 들어갈 때 평소 일과 시간에는 쓰지 않는 중앙 출입문을 이용했다. 지금까지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고위 관료, 재벌 총수 등 누구도 예외 없이 청사 현관 서쪽 출입문으로 들어가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하지만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 청사에서 조사를 받는 첫 전직 대통령이라는 점과 경호 문제 등을 감안해 중앙 출입문 통과를 허용했다. ○ ‘휴게실 찾아가 차 대접’ 논란 박 전 대통령은 조사를 받기 전 10분가량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검사장급)로부터 차 대접을 받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안강민 당시 중수부장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인규 당시 중수부장과 차를 마셨다.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중수부장과 같은 검사장 직급이지만 보직 자체가 갖는 중량감은 중수부장에 비해 낮다. 검찰은 특수본 본부장인 이 지검장이 차 대접을 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하지만 고검장급인 이 지검장이 차 대접을 할 경우, 박 전 대통령을 특별 대우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노 1차장검사가 차 대접을 맡게 됐다. 하지만 노 1차장검사가 자신의 방이 아니라 조사실 옆 휴게실로 찾아가 박 전 대통령을 만난 게 지나친 예우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검찰은 경호 문제로 박 전 대통령 동선을 줄이기 위해 이렇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은 청사 안에서 층간 이동을 할 때 직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간부 전용 금색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경우 지나친 예우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 피의자 신분이지만 영상녹화 안 해 조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특수본은 박 전 대통령에게 조사 과정의 영상녹화를 하는 데 동의하는지 물었다. 법적으로 박 전 대통령은 피의자 신분이기 때문에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검찰은 사전 고지만 하면 영상녹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특수본은 박 전 대통령의 뜻을 존중해 영상녹화를 하지 않았다. 특수본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진술을 듣는 게 중요한데 녹화 문제로 실랑이하다 시간을 빼앗길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다른 전직 대통령 때와 달라진 점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은 1995년에는 영상녹화 제도 자체가 없었지만 검찰은 녹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영상녹화에 동의해 조사 상황이 영상으로 남아 있다.전주영 aimhigh@donga.com·권기범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소환을 하루 앞둔 20일 서울 삼성동 사저 안팎의 긴장감은 한층 고조됐다. 사저 내부는 검찰 조사에 대비한 막바지 준비로, 외부는 지지자들의 집회로 하루 종일 긴박한 모습이었다. 지난주 세 차례 박 전 대통령 사저를 찾은 유영하 변호사(55)는 이날 오전 9시 19분 모습을 나타냈다. 잠시 뒤에는 정장현 변호사(56)가 도착했다. 정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사저로 옮긴 뒤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탄핵심판 사건 때 대통령 대리인단이었던 정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을 앞두고 선임계를 낸 변호사 9명 중 한 명이다. 두 사람은 약 6시간이 지난 오후 3시 37분 함께 나와 차량을 타고 떠났다. 이영선 경호관(39)도 낮 12시 10분 걸어서 사저 안으로 들어간 뒤 약 2시간 20분 후 나와 현장을 떠났다. 21일 오전 사저 안팎의 혼란에 대비한 경찰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사저에서 서울중앙지검까지 걸리는 시간은 20분 남짓. 경찰은 박 전 대통령이 가급적 지정된 속도를 지켜 가며 이동하도록 할 계획이다. 필요하면 이동 경로에 있는 신호 간격을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사저 주변의 경비 인력도 늘어난다. 사저 주변의 혼잡은 계속되고 있다. 20일 오전 10시 근처 삼릉초교 학부모와 강남녹색어머니연합 회원 등 70여 명은 아이들의 안전한 등교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녹색 점퍼를 입은 학부모들은 ‘예전처럼 공부하고 싶어요’, ‘학교 다니기가 무서워요’ 등의 손팻말을 들고 30분가량 침묵 행진을 했다. 지지자들은 여전히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박 전 대통령 지지자 50여 명은 인근 삼성2동주민센터 앞에서 탄핵 무효 집회를 열고 “박 전 대통령 구속 불가”,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박영수 특검”이라고 외쳤다. 한편 오후 4시경에는 50대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벌거벗은 채 사저 앞을 뛰어 다니며 “내가 정도령이다”라고 외치다 경찰에 제지당하는 소동이 벌어졌다.권기범 kaki@donga.com·최지선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을 사흘 앞둔 18일 서울 곳곳에서 ‘태극기 집회’가 이어졌다. 10일 탄핵 심판 당일 헌법재판소 앞처럼 폭력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와는 달리 집회는 큰 충돌 없이 끝났다. 집회에서는 “탄핵 무효”를 비롯해 헌재와 검찰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았고 “대선을 향해 투표 조직화를 해야 할 때”라는 주장도 나왔다. 대통령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일대에서 ‘애국열사 국민장 영결식’과 ‘국민저항 2차 국민대회’를 차례로 열었다. 이들은 10일 시위 중 숨진 3명을 추모하는 행사와 함께 김모 씨 시신을 실은 운구차를 앞세워 행진했다. 시위 행렬은 4차로 정도만 차지했지만 본행사가 열린 오후 3시 반이 지나고 사람들이 늘면서 서울시의회 앞부터 플라자호텔 인근까지 경찰은 도로를 통제했다. 주최 측은 482만 명이 모였다고 밝혔지만 10일 이후 많이 줄어든 모습이었다. 10일 숨진 김 씨의 외조카라고 밝힌 이설화 씨는 이날 집회에서 “저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대통령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탄핵 당했다는 것은 안다”며 “삼촌의 죽음이 억울하지 않게 해달라”고 말했다. 정광용 국민저항본부 공동대표는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불법 탄핵 진상 조사위원회가 발족할 것”이라며 “이번 탄핵은 무효라는 것을 알려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자유한국당 조원진 김진태 의원도 단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 의원은 운구차 이동 행렬에도 동참했다. 김 의원은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며 “막강한 태극기가 있는데 앞으로 종북(從北)세력이 마음대로 대한민국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외쳤다. 조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을) 찾아뵙고 80분간 말씀을 들었다. 오로지 대한민국 국민만 걱정하고 계신다”며 “500만 애국 국민이 피눈물을 닦아드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 측 대리인단 서석구 변호사(73)는 현장에서, 김평우 변호사(72)는 영상편지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김 변호사는 “박 대통령께 사죄하러 찾아갔지만 천만뜻밖에도 환하게 웃으시며 밝은 표정이셨다”며 “우리 국민들은 기필코 당신(박정희)의 따님을 복권시키겠다”고 말했다. 탄핵에는 반대하지만 “이제는 대선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오후 2시 청계광장에서 열린 ‘위헌탄핵 규탄 태극기집회’에 참가한 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서경석 목사는 “박 대통령 조사를 대선 뒤로 넘겨야 한다” “투표로 승리하자” 같은 발언을 잇달아 내놨다. 신혜식 ‘신의한수’ 대표는 “심판인 헌재가 잘못했다. 헌재 심판이 매수됐다” “우리가 분열하면 김정은이 원하는 빨갱이 세상이 되는 것”이라며 원색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편 박 전 대통령 자택 인근 삼성2동 주민센터 앞에서 200여 명이 참석해 열린 집회에서는 “비폭력은 안 될 말” “계엄령을 선포하라” “김수남과 박영수를 지체 없이 체포하라” 등의 감정 섞인 구호가 쏟아졌다. 정창화 목사는 “헌법재판관들은 국가반란군”이라고 주장하며 “군대여 일어나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대전에서 왔다는 한 참가자는 “비폭력 탄기국 집회는 절대 안 된다”며 “강도 촛불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권기범기자 kaki@donga.com황하람기자 yellowriver@donga.com}
‘장미 대선’이 53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당들이 일반 국민까지 대선 후보 선거인단에 포함시키는 국민경선 방식에 대한 관심이 높다. 대선 분위기가 달아오르면서 선거인단에 가입하거나 다른 사람의 가입을 독려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그러나 독려를 넘어 선거인단 가입, 모집을 압박하거나 강요하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교수가 제자에게 “가입하라” 이 같은 ‘강권’ 현상은 정당과 대선 주자 지지율에서 1위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의 선거인단 모집에서 두드러진다. 지난주 서울 한 사립대 전문대학원 A 교수는 학생들에게 “민주당 선거인단에 가입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학생 이름과 전화번호, 선거인단에 가입하면 휴대전화로 받는 인증번호를 기록한 명단을 요구했다. 학생들은 혼란에 빠졌다. “정치적 강요”라며 불쾌하다는 학생도 있었다. 결국 ‘사다리를 타서’ 선거인단에 가입할 100명을 추리기로 했다. 실습을 받는 전문대학원생이 교수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다. A 교수의 전공 관련 단체는 아예 “정치는 숫자 게임”이라며 단체의 간부까지 나서 회원들에게 선거인단에 가입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상급단체가 하급단체를 압박해 회원을 동원하기도 한다. 지난달 21일 수도권의 한 교육 관련 단체의 온라인 카페에는 “선거인단 신청 뒤 인증번호를 보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인증번호를 보낼 곳은 이 단체의 전국연합회 사무국 직원으로 명시됐다. 6일 뒤, 다른 지역 단체에도 “이번 주 (인증번호를) 수합해 보내 달라”는 글이 떴다. 지역 연합회의 이 같은 ‘요청’은 이달 초까지 계속됐다.○ 대놓고 “실적이 필요해” 간호조무사협회는 회장이 직접 선거인단 확보에 나섰다. 이 협회가 회장 명의로 최근 배포한 문자메시지에는 “적정한 수의 선거인단을 마련해 각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회원들에게 인원을 할당하려는 듯 “더 많은 분들(3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해 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이에 대해 협회 관계자는 “협회 차원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자는 게 아니라 국가적 행사에 참여하자는 순수한 독려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4·13총선에서 서울 한 지역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던 황창화 전 국회도서관장은 지난달 자신의 트위터에 “선거인단을 모집한 뒤 성명, 지역, 연락처와 인증번호를 알려 달라. 실적이 필요하다”고 남겼다. 비판이 계속되자 황 전 관장은 해당 글을 지우고 사과했다. 이같이 선거인단을 끌어 모으는 까닭은 해당 후보나 정당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는 지적이 나온다. “내가 혹은 우리 단체가 이만큼 힘을 썼으니 무시하지 말라”는 암묵적 압박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나 정당에 미리 ‘눈도장’을 찍으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강권’에 시달리는 일반인도 적지 않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B 씨(42·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학부형 단톡방(단체 채팅방)’에서 간사 역할을 하는 인사로부터 “민주당 선거인단에 등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내키지 않았지만 자칫 아이가 학교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가입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이 같은 무리한 가입, 모집은 또 다른 ‘동원 선거’에 가깝다”며 “정당과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권기범 kaki@donga.com·차길호·성혜란 기자}

12일 청와대에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로 거처를 옮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틀째인 13일 하루 종일 집 안에 머물렀다. 전날 사저에 도착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이날은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퇴거가 갑작스럽게 이뤄진 탓인지 이날도 갖가지 생활용품이 반입됐다. 오전 8시 50분경 정수기와 물통 2개가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승용차와 승합차가 바쁘게 사저 안팎을 오갔다. 오전 10시에는 자유한국당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인 조원진 의원이 사저를 찾았다. 1시간 10분가량 박 전 대통령을 만난 조 의원은 “거실이 너무 춥고 발목도 조금 다쳐 (박 전 대통령께서) 힘들어하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전날 청와대 관저에서 나오다가 (발목을) 삐끗하셨다고 하는데 몸 상태는 나쁘지 않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조 의원 방문을 신호탄으로 박 전 대통령이 ‘삼성동 정치’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측근들과 계속 접촉하는 동시에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 등으로부터 보좌를 받으며 검찰 수사 등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이날 새벽에는 동아일보 등 주요 종합일간지와 경제지 5, 6개가 사저로 배달되는 모습도 포착됐다. 또 오후 9시 20분에는 허원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사저를 찾았다. 하지만 입구에 취재진과 경찰이 많은 걸 보고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전날 사저 앞을 찾은 지지자들은 13일 오전 1시 15분경 2층의 불이 꺼지자 “박 대통령님 안녕히 주무십시오!”라고 외치는 등 새벽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10명가량은 아예 밤을 지새웠다. 날이 밝자 지지자들이 다시 사저 앞에 모였고, 이들은 ‘사저 경호대’를 자처하고 나섰다. 난과 장미꽃을 들고 사저를 찾은 지지자들도 있었다. 오후 2시 사저 옆에서는 ‘박근혜 지킴이 결사단’ 회원 수십 명이 출범식을 갖고 탄핵 무효 서명운동도 진행했다. 이날 오후 사저 근처에 모인 지지자가 100명 정도로 늘어나면서 현장 분위기가 또 격화됐다. 이들은 “탄핵 무효”를 주장하며 경찰, 취재진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이모 씨(67)가 경찰을 밀어 다치게 한 혐의로 연행되는 등 2명이 입건됐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탄핵 선고 당일 어느 한쪽은 상당한 울분을 표출할 것이 예상돼 ‘전략적 인내’를 했다”며 “지금부터는 집회 폭력에 엄정히 대처하고 현장에서 체포할 방침이다”고 밝혔다.권기범 kaki@donga.com·최지연·최지선 기자}

‘그래도 대한민국은 꼭 잘돼야 합니다.’ 누나의 불행에 앞서 나라가 걱정된 걸까? 아니면 예상했던 결과가 나온 탓일까? 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 직후 남동생 박지만 씨(59·EG 회장)는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심경을 밝혔다. 박 씨는 지인들이 보낸 위로 메시지에 이런 내용으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씨는 이날 평소와 다름없이 서울 강남구의 자택에서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EG 사무실로 출근했다. 오전에 특별한 일정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사무실에서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 생중계를 시청한 것으로 보인다. 박 씨의 벤츠 승용차도 낮 동안 사무실이 있는 건물 주차장에 계속 세워져 있었다. 몇몇 취재진이 EG 사무실을 찾았지만 박 씨는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직원들도 담담한 모습으로 평소와 다름없이 근무했다. 이날 EG의 주가는 전날보다 14.19% 급락한 8710원을 기록했다. 지인들에 따르면 박 씨는 최근 “탄핵이 인용되지 않겠느냐”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기에 이날 선고를 담담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악연’이 끝나길 진심으로 바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인들에게 “어차피 저질러진 일인데…. 이번 기회에 최순실하고 인연이 확실히 끊어져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정말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다”며 회의적인 반응도 함께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랜 기간 소원한 관계였지만 악화된 여론 탓에 누나 걱정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헌재 선고 얼마 전부터 “누나의 안전이 가장 걱정”이라면서 탄핵 후 청와대에서 언제 나와야 하는지, 누가 살림을 도울지 등 아무 정보를 얻지 못해 답답해했다고 한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의 여동생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은 이날 오후 본보 기자와 만나 “억울한 탄핵이다. 참담한 심정”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 전 이사장은 탄핵을 추진한 국회와 찬성한 시민단체를 언급하며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려던 국내외 주요 정책에 동의하지 않고 민생 걱정도 하지 않은 세력의 손을 (헌재가) 들어준 것”이라며 불복 의사를 밝혔다. 박 전 이사장은 탄핵 선고를 서울 송파구의 자택에서 혼자 TV로 지켜봤다. 그는 “남편이 집회 참가를 권했지만 오늘은 조용히 있고 싶어 집에 남았다”고 말했다. 남편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헌재 앞 태극기집회에 참가해 “(탄핵은) 을사늑약 이후 최고의 국치”라고 외쳤다. 박 전 이사장은 박 전 대통령 지지 의사를 재확인했다. 그는 “대통령은 특별감찰관법까지 만들어 우리와 거리를 두는 등 측근 비리를 경계했던 분”이라며 “다만 최순실이 문제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을 직접 도울 것이냐고 묻자 “언니의 뜻을 존중해 당장은 나서지 않을 것”이라며 “먼발치에서 지켜주는 가족으로 대통령의 뜻을 지키겠다”고 말했다.권기범 kaki@donga.com·김동혁 기자}

지난해 4월 서울 강남구의 한 어린이집에 다니던 이모 군(당시 2세)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손으로 자신의 얼굴과 가슴을 때리고 방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 군의 부모는 ‘혹시나’ 하는 걱정에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아동학대 맞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어린이집 교실 내부를 찍은 폐쇄회로(CC)TV 기록을 통해 이 군이 지속적으로 학대를 받았다고 판단했다. 영상에는 소파에 있던 이 군이 교사에게 붙잡혀 밀려 넘어지는 모습, 이 군을 구석으로 데려가 테이블로 막고 훈계하는 교사의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같은 반 어린이 모두가 떡을 받았는데 이 군 혼자만 받지 못해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경찰이 의뢰한 전문기관은 이 군 사례를 학대로 봤다. 서울시아동복지센터 산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교사들의 행동을 ‘정서학대’로 판단한 것이다. 교사들의 행동이 이 군의 정서적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본보 의뢰로 CCTV 영상을 살펴본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관계자는 “교사들의 행동이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에 따라 경찰은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련 특례법 위반 혐의로 당시 어린이집 교사였던 김모 씨(25·여)와 조모 씨(28·여)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두 사람이 26일간 47차례에 걸쳐 이 군을 학대한 것으로 보고 같은 해 6월 서울중앙지검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검찰, “사회통념상 한계 넘지 않아” 하지만 검찰 수사에서 경찰의 판단이 뒤집혔다. 서울중앙지검은 증거 불충분으로 지난달 중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두 교사가 이 군을 넘어뜨리는 등의 행동을 한 것은 맞지만 보육 또는 훈육의 일환으로 볼 여지가 많다고 봤다. 정서학대도 사회 통념상 한계를 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규정에 따라 아동학대사건관리회의를 열어 사건 내용을 모두 확인했고, 정서학대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얻었다”며 “다른 의도가 있다거나 수사가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군 부모 등 가족들은 “검찰 처분을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당시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아이는 지난달까지 상담센터를 다니는 등 치료를 받았다”며 “가족에 대한 검찰 면담도 겨우 이뤄졌고 수사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는 게 가족들 주장의 취지다. 가족들은 변호사 등과 상의해 고검에 항고할 계획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모호한 아동학대 판정 기준과 CCTV 설치 기준 강화 등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아동학대 전문 검사와 판사를 양성하는 등 관련 사건에 대한 감수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며 “아동학대에 대한 판단 척도도 더 세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필리핀에서 성매매 혐의로 체포돼 조사받는 장면이 6일 현지 언론에 의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공개된 한국인 중 일부가 국내 한 공기업 직원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해당 지역에 위치한 식품업체 대표 등도 함께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본보 취재 결과 4일(현지 시간) 필리핀 세부의 한 빌라에서 성매매 혐의로 체포된 한국인 남성 9명 중 A 씨와 B 씨 등 2명은 충남의 한 공기업에 근무 중이다. A 씨는 경영 관련 부서의 차장급이고 B 씨는 과장급이다. 이들은 직장에 휴가를 내고 여행을 갔다. 해당 공기업 측도 이들이 필리핀에서 체포된 한국인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공기업 관계자는 “관련 사실을 전해 들은 뒤 곧바로 무보직 발령 조치했다”며 “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필요하면 징계심사위원회 등을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함께 적발된 7명 중 일부는 충남 지역에서 식품업체와 식당 등을 운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동행한 공기업 직원들의 여행비용을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여행사 등에 따르면 3박 4일 일정의 필리핀 여행은 상품에 따라 천차만별이나 중년층이 이용하는 패키지 상품의 경우 100만∼200만 원이다. 그러나 적발된 한국인들은 현지 조사에서 접대성 여행 의혹을 부인했다. 현지 외교당국 관계자는 “원래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온 것이고 돈도 각자 냈다고 주장했다”며 “필리핀 현지에 있는 한국인 지인을 통해 여성들을 소개받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당초 여행 일정상 이들은 5일 오전 귀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성매매 혐의로 체포된 뒤 무혐의로 풀려난 2명은 7일 오후 귀국했고 나머지 7명은 우리 돈으로 한 사람당 약 380만 원에 달하는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 필리핀 당국의 출국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빨라야 9일에나 귀국할 것으로 보인다.권기범 kaki@donga.com·최지선 기자}

지난해 3월 경기 의정부시의 한 노래방. 40대 남성 A 씨는 캔맥주와 족발을 시켰다. 노래방 주인에게 여성 도우미도 한 명 불러 달라고 했다. 노래방에서 술을 팔거나 도우미가 술시중을 들면 불법이다. 하지만 주인 B 씨는 최 씨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다. 얼마 뒤 술에 취한 A 씨가 돌변했다. 그는 “1종 유흥주점도 아니면서 술을 팔았으니 신고하겠다”며 주인을 협박했다. 겁이 난 B 씨는 술값을 받기는커녕 현금 30만 원가량을 A 씨에게 빼앗겼다. A 씨는 비슷한 수법으로 근처 노래방 6곳을 돌며 300만 원을 챙겼다. 경찰은 A 씨를 구속했다. 그러나 신고한 B 씨의 불법 영업 책임은 묻지 않았다. 경찰청이 ‘동네 조폭’ 신고자의 경우 가벼운 불법 행위는 형사·행정 책임을 면제하는 ‘경미 범죄 면책 제도’를 특별단속 기간인 5월까지 적극 실시하기로 했다. 동네 조폭은 상습적으로 주민을 폭행하거나 협박해 금품을 빼앗는 생활 주변의 폭력배를 말한다. 그러나 ‘위법불감증’을 초래하거나 일부 악덕 업주의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의견도 만만찮다.○ “약자 보호하는 제도” 7일 경찰청에 따르면 면책 제도는 불법이라는 약점 탓에 신고하지 못하는 업주들을 감안한 것이다. 2014년부터 매년 한시적으로 실시했지만 앞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 동네 조폭 검거를 늘릴 방침이다. 신고자 면책은 정해진 기준에 따라 이뤄진다. 예를 들어 술을 팔거나 도우미를 고용한 노래방, 무면허 안마사를 고용한 안마방, 미성년자인 줄 모르고 방을 내준 숙박업소, 신고 없이 영업한 식당 등이다. 단, 성매매 업소처럼 불법 행위를 위해 만들어진 업소나 기업형 및 조직적 행위, 청소년 대상 행위 등은 제외된다. 결정은 경찰서에 설치된 피해자 면책 심의위원회가 한다. 신고자로부터 준법서약서도 받는다. 동종 전과가 있으면 검찰에서 ‘준법서약서조건부 기소유예’ 조치를 하고 경찰은 지방자치단체에 행정처분 면제를 요청한다. 노래방 업계에서는 경찰의 방침을 반긴다. 동네 조폭들에게 당한 피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노래연습장업협회 관계자는 “값싸게 술 마시고 노래하려는 손님을 다 거절하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며 “벌금과 영업정지보다 건달에게 돈을 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업주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제도다”라고 말했다. 신고 없이 운영되는 영세한 식당과 포장마차도 대상이다. 지난해 3월 경남 지역의 한 시장에서 포장마차 주인이 손님에게 폭행을 당했다. 주인은 미신고 포장마차라 신고를 하지 못하다 면책 제도를 알고 나서야 경찰에 피해 내용을 털어놓았다.○ “양심 지킨 업주만 손해” 아무리 가벼운 불법이라도 경찰이 눈감아선 안 된다는 반론도 많다. 술과 도우미를 제공하는 노래방에서 음성적으로 벌어지는 유사성행위 등 음란영업에 자칫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 종로의 한 노래방 주인은 “돈 벌 생각만 하면 불법 영업을 하고 싶지만 처벌보다 양심 때문에 참는데 억울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윤동호 국민대 법학부 교수는 “사법제도를 두고 공권력과 시민이 거래하는 형태라서 이를 일종의 거래로 보고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도 사법 협조자의 면책 제도를 실시하는 곳이 있다. 미국의 ‘플리바기닝’이 대표적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면책 제도에 찬성하면서도 “자체 심사와 준법서약서 작성보다 더 구체적인 심사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며 “생활 주변 폭력배 검거에만 매달려 신고자의 불법 행위를 가볍게 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권기범 기자}

지난해 4월 경기 고양시의 한 오피스텔 복도에 A 씨(34·여)가 비명을 지르며 나타났다. A 씨는 알몸에 손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놀란 경비원이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A씨를 구하고 오피스텔에서 황모 씨(37)를 붙잡았다. 황 씨는 A 씨의 남자친구였다. 황 씨는 여자친구를 오피스텔에 감금하고 괴롭히다가 왼손 새끼손가락에 가위질까지 했다. 황 씨는 경찰 조사에서 “열 손가락을 모두 자르려 했다”는 끔찍한 말까지 했다. “혼인신고를 하자”는 자신의 제의를 A 씨가 거부했다는 이유다. 같은 해 7월 인천에서는 40대 남성 B 씨가 30대 여성 C 씨의 고등학생 딸을 납치한 뒤 감금했다. B 씨는 내연 관계였던 C 씨가 “관계를 끝내고 헤어지자”고 요구하자 지금까지 쓴 데이트 비용을 돌려받으려 범행을 저질렀다. 그가 납치극으로 받으려던 돈은 500만 원이었다. B 씨는 2개월 후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또 C 씨를 찾아갔다가 출동한 경찰에 제지당하기도 했다. 데이트 폭력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범죄 수법이 갈수록 잔인해지고 있다. 2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 폭력으로 입건된 피의자는 모두 8367명이고 이 중 449명이 구속됐다. 이전 5년간(2011∼2015년) 연평균(약 7200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남녀 사이의 사랑싸움이나 손찌검 수준을 넘어선 강력범죄도 자주 일어난다. 폭행 및 상해가 69.2%로 여전히 높지만 성폭력, 살인, 살인미수도 8.1%나 됐다.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에 따르면 2011∼2015년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살인·폭행치사 사건으로 붙잡힌 사람은 296명, 살인미수 혐의 검거자는 309명에 달한다. 이에 따라 경찰은 데이트 폭력 특별대책을 내놓았다. △112 시스템에 ‘데이트 폭력’ 코드 신설 △긴급 상황 시 수사전담반 현장 출동 등의 내용이 담겼다. 데이트 폭력 신고 이력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관련 시스템도 개선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경찰은 신고 접수 초기에 데이트 폭력 사건 여부를 미리 알 수 있다. 경찰은 또 데이트 폭력 피해자를 위해 보호시설 제공과 신변 경호 등의 대책도 마련했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25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선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에 불복해야 한다는 선동이 등장했다. 또 박 대통령 탄핵과 무관한 주장과 구호가 쏟아졌다. 탄핵심판의 박 대통령 대리인단 소속 김평우 변호사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인근에서 열린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집회 단상에 올라 “여기가 조선시대냐. (헌법재판소가 판결에) 복종하라면 복종하는 노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22일 헌재 탄핵심판 변론에서 ‘사기극’ ‘대역죄’ ‘내란’ 등의 막말을 쏟아낸 데 이어, 탄핵이 인용될 경우 불복해야 한다고 선동한 것. 집회 참가자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박수를 치며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이었다. ‘폭압 특검 해체하라’고 쓰인 빨간색 깃발도 펄럭였다. 헌재를 압박하는 발언도 나왔다. 정광용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는 “악마의 재판관 3명 때문에 탄핵이 인용되면 아스팔트에 피가 뿌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과 강일원 탄핵심판 주심에 대해 “(우리는) 당신들의 안위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위협 섞인 발언을 했다. 김 변호사는 “원로들과 일부 국회의원이 헌재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탄핵안이) 사기라는 걸 알고 하는 소리냐”라고도 했다. 같은 시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7차 촛불집회에서는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 석방” “비정규직 철폐” “사드 배치 철폐” 등 탄핵과 관련이 없는 구호와 주장이 한동안 이어졌다. 권기범 kaki@donga.com·구특교 기자}

21일 오후 제주 제주시 신시가지에 있는 한 오피스텔. 지난해 11월 한국을 찾은 김정남 암살 사건의 용의자 도안티흐엉(29·베트남)이 체류 예정지로 밝힌 원룸이 있는 곳이다. 10층이 넘는 오피스텔은 큰길 옆에 있다. 오피스텔에는 주거용 외에도 병원과 보험대리점 등 다양한 사무실이 입주해 있었다. 흐엉이 밝힌 주소지의 원룸은 49.5m²(약 15평) 크기로 세탁기와 TV 냉장고 침대가 기본으로 제공되는 곳이다. 이날 동아일보 기자가 찾았을 때 원룸 안에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우편함도 텅 비어 있었다.○ 흐엉 ‘교습소’에서 묵었나 흐엉은 제주공항 입국 심사 때 오피스텔 주소를 밝히며 “남자 친구 S 씨를 만나러 간다”고 말했다. 건물 관리인과 원룸 소유주 강모 씨(51)에 따르면 흐엉이 체류 예정지로 적은 원룸은 실제로 A 씨가 임차해 과외 교습소로 사용 중이다. A 씨는 같은 오피스텔 원룸에서 살면서 이곳을 교실처럼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개인에게 임대해준 곳이다. 여행사 등에서 숙박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S 씨(25)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흐엉이 주소를 전달받아 입국 때 사용했을 수 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흐엉은 베트남에서 현지 가이드로 일했다. S 씨도 베트남에서 수개월간 가이드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S 씨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친구인 베트남인 B 씨는 “두 사람이 베트남에서 함께 일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S 씨는 또 해당 원룸을 빌려 쓰고 있는 A 씨와 서로 아는 사이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황을 볼 때 흐엉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주소지가 없어 입국이 어려워지자 S 씨에게 도움을 청했고 S 씨가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알려줬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흐엉이 실제로 해당 원룸에 묵었는지 여부인데 현재까지 정확한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S 씨, “억울하다” S 씨의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 사진 등에서 흐엉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자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은 여러 장 올라와 있었다. 당초 S 씨는 김정남 암살 다음 날인 14일 프랑스로 출국해 의문이 제기됐다. S 씨 프로필 사진에는 파리 밤거리에서 에펠탑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등만 새로 올라왔다. 평범한 관광객의 모습이다. ‘의문의 출국’이라고 하기엔 특별한 점이 별로 없어 보였다. S 씨는 취재진과의 메신저 대화에서 “제가 억울한 점에 대해 한국 정보 당국 관계자들에게 말했다”며 “정보 당국 관계자들도 ‘억울한 걸 이해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취재진이 “흐엉과 일면식도 없느냐”고 질문하자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이어 “더 이상의 얘기는 할 수 없다”며 “귀국 후 조사를 받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S 씨의 SNS에는 그가 베트남에 머물렀거나 활동했을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남아 있다. 그가 올린 사진에 스스로 ‘베트남 출신’이라고 밝힌 인물들이 ‘좋아요’를 누른 기록이 발견되기도 했다. 또 다른 친구는 S 씨가 올린 글에 “이제 베트남에는 안 오느냐”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물론 S 씨의 출국 시기가 우연히 겹친 것일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S 씨의 SNS에는 ‘(내년) 2월에 배낭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내용이 있다. 정부 소식통은 “현재까지는 S 씨가 이번 사건과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국에서 흐엉의 구체적인 행적을 알려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흐엉이 베트남 귀국 항공편을 11월 9일 자로 예약해 놓고 입국 심사 때는 7일이라고 한 뒤 실제로는 5일에 귀국한 의도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권기범 kaki@donga.com / 제주=임재영 / 손효주 기자}
운전 중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인 ‘포켓몬고’를 하다 교통사고를 낸 30대 남성이 경찰에 입건됐다. 포켓몬고로 인해 발생한 국내 첫 교통사고다. 16일 대전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7일 포켓몬고 게임을 하면서 운전을 하던 원모 씨(31)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한모 씨(33)를 차로 친 혐의(교통사고특례법 위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원 씨는 이날 포켓몬고 게임을 하며 대전 서구 도안동의 한 공인중개사 앞 사거리 근처를 지나던 중 스마트폰 화면 왼쪽에 포켓몬이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마음이 급해진 원 씨는 급히 좌회전을 했고, 마침 횡단보도를 건너던 한 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부딪혔다. 한 씨는 타박상 등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경찰 관계자는 “신호등이 없는 사거리에서 시속 30km 정도로 주행하다 난 사고이기 때문에 사고 자체는 경미했다”면서 “원 씨가 발견한 포켓몬이 어떤 종류인지는 따로 진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포켓몬고는 지난달 24일 한국 출시 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계속 이동하면서 몬스터를 잡는 게임 특성 때문에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권기범기자 kaki@donga.com}

“한국에서 ‘스노폴’ ‘파이어스톰’을 만든다고?” 지난해 2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인터랙티브 기획취재 지원 모집공고가 떴을 때 처음 든 생각이었다. ‘2013년 퓰리처상 기획보도’ 부문을 차지해 전 세계 언론에 엄청난 충격을 던진 뉴욕타임스(NYT)의 스노폴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놀라움을 선사한 가디언의 ‘파이어스톰’ 속 화려한 영상들이 스쳤다. 각종 동영상과 인포그래픽이 넘실대며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줬던 그 기사, ‘읽지 않고 시청하는’ 기사의 신기원을 만들어낸 그 기사를 과연 한국 언론이 구현할 수 있을까. 게다가 우리가 그 일에 도전해야 한다고? 오 마이 갓! 그냥 지나치기에는 ‘최대 6000만 원’이라는 지원금의 유혹이 너무 컸다. 또 디지털 부서에서 일하는 이상 무슨 일이라도 시도해봐야 했다. 인터랙티브나 웹 언어를 모르고 개발자와 디자이너와의 협업 경험도 전혀 없는 평범한 신문기자들의 ‘삽질’은 이렇게 시작됐다. ○‘드론’을 선택한 이유 기획취재 주제는 ‘드론’으로 잡았다. 팀원 중 드론을 아는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드론이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도 있었다. 그냥 정보기술(IT)과 관련이 많고 디지털 느낌이 물씬 난다는 막연한 이유에서 ‘드론’을 택했다. 누군가 말했다. “있어 보이잖아.” 서점으로 달려가 드론 관련 책들을 샀다. 책 몇 권 분량에 달하는 드론 관련 기사들도 찾았다. 책 몇 권과 기존 기사를 읽어보니 살짝 감이 오는 듯도 했지만 여전히 막막했다. 그냥 세계 유명 드론업체를 방문해 신문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신문 기사도 쓰고 동시에 인터랙티브 웹페이지도 만들어야 한다니 두통이 몰려왔다. 취재 지원작으로 뽑힐 지 알 수 없으니 기획안이나 써보자는 심정으로 드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중후장대’를 좋아하는 데스크의 성향을 반영해 프로젝트 제목도 ‘드론이 바꾸는 세상’이라고 거창하게 뽑았다. 10장에 달하는 기획안을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썼다. 고3 때 논술 시험을 이렇게 했으면 지금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진흥재단에 지원서를 접수했다. 약 3주 후 “축하합니다”라는 회신이 왔다. 회사 통장에는 연봉에 맞먹는 거금까지 들어왔다. 이제 물러설 곳이 없었다. ‘스노폴’은 못 만들어도 화면에 눈송이 하나는 날려줘야 했다. ○섭외하는 데만 6개 월 공들여 2016년 3월부터 중국 DJI와 이항, 프랑스 패럿, 이스라엘 엘빗시스템과 IAI 등 세계 유명 드론업체에 취재 요청 메일을 보냈다. 이중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한 곳은 패럿.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가상현실(VR) 드론을 만든 패럿의 문을 여는 데 무려 6개월이 걸렸다. 한국 언론에 한 번도 프랑스 파리 본사를 공개하지 않았던 패럿은 이메일을 계속 무시했다. 본사 홍보 담당자 ‘바네사’에게만 20통이 넘는 이메일을 보냈다. 3개월 후에야 첫 답변이 왔다. “여름 휴가 때문에 힘들 것 같아.” 온갖 험한 욕이 튀어나오려 했다. 굴하지 않고 계속 메일을 보냈지만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같은 해 8월이 되니 중국, 미국, 이스라엘, 일본을 방문한 기자들이 속속 취재를 마쳤다. 유럽만 남은 상황에서 패럿만 기다릴 수 없었기에 ‘포기 아닌 포기’를 했다. 독일과 스위스의 VR 비행 및 드론 전문가와 취재 약속을 잡고 9월 말 유럽으로 떠났다. 열심히 취재를 마치고 귀국을 하루 앞둔 날. 독일 본의 아름다운 라인 강변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바네사가 메일을 보내왔다. “우리 지금 만나.” “진짜?” “응.” 즉시 서울행 비행기를 파리행으로 바꾸고 숙소와 통역을 구한답시고 난리를 쳤다.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바쁘다’는 말을 실감했다. 이런 소동을 겪은 끝에 2016년 10월 3일 파리 10구에 있는 패럿 본사에 당도했다. 본사 2층에서 VR드론 ‘디스코’를 직접 조종해본 경험은 기자 인생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다. 고글 하나를 쓰고 아이들 장난감 같은 드론을 잠시 조종했을 뿐인데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신’이 된 기분이었다. 이 외 ‘세계 최초의 드론 택시’를 발명한 슝이팡 이항 창업자(28), 한 대에 100억 원을 호가하는 고가 군사용 드론을 생산하는 이스라엘 업체들을 한국 언론 최초로 직접 취재한 것은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각종 규제 등으로 중저가 드론 시장은 중국에, 고가 드론 시장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내주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우리 한국어로 대화하고 있죠?” 취재를 완료하고 인터랙티브 웹페이지 제작에 돌입했다.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군과 협업해야 했지만 제작 쪽 인력도 기자들도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전무했다. 약 10명의 인원이 모인 첫 회의 날. “저희도 인터랙티브는 잘 모르지만 NYT 스노폴 아시죠? 대충 그런 느낌 나게…” “페이지 넘어갈 때 스크롤 다운과 슬라이드 중 어떤 걸로 할까요? 인덱스 기능은? API 코드는?” “네? 뭐라고요?” 서로가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어로 얘기하는데 이렇게 외계어처럼 들릴 수 있구나 싶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는 “어떻게 구현해 달라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고 가슴을 쳤고, 기자는 “태어나서 처음 이런 일을 해보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한숨을 쉬었다. 원시 부족이 벽화 속 그림으로 대화하듯 떠듬떠듬 그림을 그려 “이렇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면서 어느 정도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촉박한 일정, 부족한 인력과 자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도 대충 감이 왔다. 기본 플랫폼은 집으로 말하면 일종의 ‘모듈 주택’인 제로보드를 택했다. 쉽고 빨리 각종 동영상과 콘텐츠를 얹을 수 있는데다 개발자나 디자이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취재 기자들이 세계 각국 드론업체에서 찍어온 사진과 동영상, 국내 드론 전문가들이 촬영한 드론 이미지와 동영상, 각종 드론 전문가들이 제작한 드론 관련 콘텐츠가 하나둘씩 쌓이며 서서히 인터랙티브 웹페이지의 위용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스노폴’과 ‘파이어스톰’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어디 내놓기 크게 부끄럽지 않은 수준은 된다는 확신이 섰다. 천신만고 끝에 역작(?)을 완성했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기사 게재 시작 및 인터랙티브 웹페이지 오픈이 한 달 넘게 미뤄졌다. 기다림 끝에 2016년 11월 25일 ‘드론이 바꾸는 세상()’을 세상으로 내보냈다. ○1년 간의 ‘삽질’이 준 교훈 부끄럽지만 디지털 부서에 오기 전에는 디지털 혁신에 관해 “기사를 빨리 써서 온라인으로 송고하고 사진과 표를 좀 많이 붙이면 되는 거 아니냐” “편집과 사진 촬영까지 취재 기자가 곧 하게 되겠네”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업무를 시작한 후에는 “그래봐야 젊은 친구들이나 보는 스낵 컬처(snac culture) 아니냐. 깊이가 없다.” “디지털로 돈을 벌 수 있느냐”는 시선이 생각보다 널리 퍼져있음을 알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처럼 디지털 콘텐츠 생산과 이를 통한 미디어 혁신에 대한 기자들의 생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 듯 하다. 권력 감시라는 저널리즘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쪽, ‘종이’가 아니라 ‘모바일과 소셜미디어’라는 신생 플랫폼에 특화된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는 쪽, 둘 다 맞지만 한 쪽으로만 치중하긴 어려우니 둘 다 잘해야 한다는 쪽. 세 가지 주장 모두 옳다. 또 일선 기자에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결정권도 없다. 분명한 점은 세상이 변했고 사회와 독자는 언론인에게 점점 더 많은 역량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본질에 충실한 묵직한 기사도, 톡톡 튀는 감각으로 무장한 다양하고 차별화한 콘텐츠 모두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사도, 언론인 개개인도 살아남을 수 없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어디에 우선점을 두느냐는 논쟁은 이미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드론이 바꾸는 세상’ 특별취재팀하종대·하정민·이영혜·송충현·권기범 기자}

15일 오후 서울의 한 탈북단체 사무실 앞. 굳게 닫힌 문에는 잠금장치 2개가 달려 있었다. 각각 비밀번호와 지문을 입력하는 방식이다. 옆에 있는 인터폰을 통해 들려온 목소리는 무겁고 조심스러웠다. 이들은 신분을 물은 뒤 1분 가까이 지나서야 문을 열었다. “얼마 전만 해도 중국 정부가 잘 보호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몇 년을 조심하다가도 잠깐만 방심하면 이렇게 죽어 버리는구나 싶더군요.” 탁자 위에 놓인 신문을 바라보며 A 씨는 허탈한 듯 말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북한을 탈출했다. 전날 언론을 통해 김정남 피살 소식을 접했다는 A 씨는 대화 내내 수시로 신문을 내려다봤다. 가끔 김정남 사진에 손가락을 대고 동그라미를 그리기도 했다. 그는 이날 오전 담당 형사와 경호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그나마 한국에 있어서 안전하긴 해요. 그래도 당분간 몸조심해야죠.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탈북자들 충격과 공포 소식을 전해들은 국내 탈북자들과 탈북단체 측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김정남이 오래전부터 수차례 살해 위협을 받은 것 때문이다. 현인애 남북하나재단 이사(60·여)는 “김정은 입장에서는 중국의 보호를 받는 김정남이 항상 두려웠을 것”이라며 “북한의 김정남 암살 시도가 계속됐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언젠가 일어날 일’로 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탈북자 B 씨는 “숙청된 장성택이 김정남에게 해외 도피 자금을 제공했다고 들었다”며 “탈북자 사이에서는 장성택 처형 후 ‘김정남은 필연적으로 죽을 목숨’이라는 말이 오갔다”고 설명했다. 탈북자들도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탈북자들이 사용하는 모바일 메신저에는 ‘김정은이 무섭다’는 글이 끊이지 않았다. 김정아 통일맘연합 대표는 “수십 명의 탈북자가 참여하는 대화방에서 ‘친형이나 다를 바 없는 김정남을 죽인 걸 보면 김정은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김정남이 공공장소인 공항에서 피살되면서 “한국에서도 안심할 수 없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분위기다. 그동안 공개적으로 활동하며 북한을 비판해온 탈북자들의 활동이 당분간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방송 등에서 김정은 체제를 수차례 비판했던 탈북자 C 씨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공항에서 대담하게 벌어진 암살에 크게 놀랐다”며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물건으로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갈 수 있다니 무서울 뿐”이라고 말했다. 북한인권단체 관계자인 D 씨도 “그간 공개적으로 활동하던 탈북자들이 다른 탈북자와의 만남도 꺼리게 될 것”이라며 “북한인권 관련 활동이 위축될까 걱정”이라고 진단했다.○ 경찰 경호도 초비상 경찰은 “주요 탈북인사 등에 신변보호팀을 추가로 배치했다”고 15일 밝혔다. 특히 경찰 2명이 24시간 밀착 경호하는 ‘가급’ 인사의 경호를 강화했다. ‘가’ ‘나’ 등으로 분류되는 인사 중 가장 높은 단계인 ‘가급’ 인사는 현재 국내에 수십 명으로 추정된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자인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그리고 대북전단 살포 등으로 2011년 독침 암살 대상으로 지목됐던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담당하는 탈북 인사에게 해외 출국 자제를 요청하거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상담에 나서기도 했다. 일반 시민들도 불안함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이 북-중 관계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주부 서계연 씨(49)는 “미사일을 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정은이 형제를 죽였다고 하니 나라 안팎이 불안해질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권기범 kaki@donga.com·김배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