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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민이 뽑은 대한민국 대표가 조선노동당 일본지부 행사에 가는 건 국민에 대한 배신 아닙니까?” 우리 정부 후원으로 ‘일본 간토(關東) 대지진 100년’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을 개최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도쿄본부 이수원 단장(76)은 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더불어민주당 출신 무소속 윤미향 의원(사진)이 1일 민단 추도식 대신 친북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행사에 참석한 것에 대해 “그 사람(윤 의원) 현주소가 어디냐고 묻고 싶다”며 비판했다. 이 단장은 “총련 간부는 북한에서 교육받고 온 확신범이자 김정은의 혁명 투사”라며 “그런 사람들이 주최하는 행사에 간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2일 페이스북을 통해 “민단에서 행사가 있다는 사실을 들었지만 초대받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올 3월 1일 민단이 도쿄에서 주최한 3·1절 기념식에는 자진 참석했다. 통일부는 사전 신고 없이 북측 인사를 접촉한 윤 의원에 대해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법에 따르면 북한 주민 접촉 신고 등을 누락하거나 허위로 한 경우 최고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적나라하게 색깔 드러낸 윤미향, 일본내 동포 쪼개려는 것” 민단 도쿄본부 단장 ‘尹의원, 총련 간토 추도식 참석’ 거센 비판 “총련 간부는 김정은 혁명 투사尹초청 안했다? 누구든 올수있어”與 “尹, 의원 자격 없다” 제명 촉구 “국회의원이 그렇게 적나라하게 색깔을 드러내는 건 일본 내 우리 동포들을 쪼개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도쿄본부 이수원 단장(76·사진)은 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단장은 더불어민주당 출신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1일 한국 정부가 후원한 일본 간토(關東) 대지진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 대신, 친북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행사에 참석한 것에 대해 “분명히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민단 도쿄본부는 우리 정부 차원의 추도식을 공식 주최했다. ―윤 의원의 총련 행사 참석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치에 벗어났다. 진보 보수를 떠나 한국을 지지하는 재일동포 구심체인 민단에 오는 게 도리다. (총련 행사에) 정 가고 싶었으면 민단 행사 끝나고 갔으면 됐다.”(민단 추도식은 1일 오전 11시 도쿄 국제포럼에서, 총련 추도 모임은 오후 1시 30분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열렸다. 두 행사장은 5km가량 떨어져 있고 차로 15분 정도 걸린다.) ―윤 의원은 민단이 초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사람 억지이고 궤변이다. 우리는 국회의원 개인을 초청하지 않는다. 누구는 부르고 누구는 안 부른다는 말 나올까 봐 한일의원연맹, 한일친선협회를 초청한다. 동포들은 한국 국회의원 와 주면 여야 상관없이 누구든 환영한다.” ―한국 정치나 한일 관계와 관련해 민단이 지향하는 노선은….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지한다. 문재인 정부 때 (한일 관계 악화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대한민국을 지지하기 때문에 강하게 반대하지 못했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보수든 진보든 자유가 있다. 그런 생각으로 민단이 목소리를 낮췄는데 (총련 행사에 가는) 그런 짓을 도도하게 한다는 건 이해가 안 간다.” ―총련도 큰 틀에선 동포 아닌가. “총련 간부는 김정은의 혁명 투사다. 끌어안을 필요도 없고 상대할 가치도 없다. 악수하고 술 한잔한다고 바뀔 것 같나. 천만의 얘기다. 다만 좌우를 잘 모르거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총련 일반 회원은 미워하지 않는다. 기회가 있으면 총련 일반 회원과는 손잡고 민단과 대한민국을 지지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편 이날 국민의힘은 윤 의원의 총련 행사 참석에 대해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자격이 없다. 국민 혈세를 받는 국회의원이 우리 정부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 입국해 정작 대한민국 존립을 위협하는 단체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며 의원직 제명을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윤 의원을 제소할 방침이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일본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년을 추모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후원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행사 대신 친북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행사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출신 무소속 윤미향 의원은 2일 페이스북에 해당 행사가 총련 주최가 아닌 “실행위원회 주최”라고 밝혔다. 또 “민단 추도 행사가 있다고 들었지만, 저는 초대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의원의 이 같은 해명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파악됐다. 윤 의원은 1일 오전 11시 일조(日朝) 협회, 도쿄도 연합회 등으로 조직된 실행위원회 주최 추도 집회에 참석했고 오후 1시 30분에는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간토대진재 조선인 희생자 추도 실행위원회’ 주최 조선인 희생자 추도 집회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이어 “총련 역시 실행위원회 참가 단체”라고 썼다. 하지만 이는 총련 측 설명과 다르다.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날 오후 1시 반 ‘도쿄 동포 추도 모임’을 총련 도쿄도 본부, 도쿄 조선인 강제 연행 진상조사단이 주최했다고 2일 발표했다. 진상조사단은 총련 내 조직이다. 기자가 이날 행사장에서 확인한 추도 모임 안내문에도 주최는 총련 도쿄도 본부라고 명기돼 있다. 윤 의원이 언급한 실행위원회는 이날 오전 11시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전을 개최했다. 이 행사는 총련 추도 모임이 시작되기 전에 마무리됐다. 재일 동포계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3일 “추도식전을 주최한 실행위원회에 총련 및 총련 회원이 참여하고 있지만, 총련과 실행위는 엄연히 다른 조직이다. 실행위에는 한일 우호에 뜻을 모으는 평범한 일본 시민 및 한국인도 다수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의원이 민단의 초대를 받지 못한 게 한국 추도식에 불참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윤 의원은 올 3월 1일 민단이 주최한 3·1절 행사에 민단 초청 없이 안민석 민주당 의원 등 동료 의원 3명과 참석하기도 했다. 민단 관계자는 “여야 누구도 국회의원 개인을 초청하지 않는다. 다만 오겠다고 하면 누구든 환영한다”고 설명했다. 민단은 관례적으로 국회의원 초청 시 국회 한일의원연맹에 공문을 보내왔다. 1일 간토대지진 추도식 때도 민단은 ‘한일의원연맹 및 간부진’을 초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회장), 민주당 윤호중 의원(간사장),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간사)이 1박 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해 한국 정부가 후원한 민단 추도식에 참석했다. 한편 1일 총련 주최 추도 모임에는 윤 의원 후임으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맡은 이나영 중앙대 교수도 참석했다. 이 이사장은 가슴 오른쪽에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를 뜻하는 핵 표시물 배지를 착용하고 총련 추도식에 참석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간토(關東) 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년을 추모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후원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행사 대신 친북 재일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행사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출신 무소속 윤미향 의원은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단에서 추도 행사가 있다는 사실을 들었지만, 저는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윤 의원은 올해 3월 1일 민단이 주최한 3·1절 행사에 민단 측의 초청 없이 참석한 것으로 본보 취재 결과 3일 확인했다. 윤 의원은 올 3월 1일 일본 도쿄 한국중앙회관 8층 강당에서 민단 주최로 개최된 3·1절 행사에 민주당 안민석 임종성 양정숙 의원과 함께 참석했다. 윤 의원 등은 민단 행사에 참석한 뒤 도쿄 지요다구 재일본 한국YMCM로 장소를 옮겨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신청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민단 관계자는 올해 3·1절 행사에 대해 “당시 한국 국회의원을 초청하지 않았는데 윤 의원 등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민단에서 초대받지 못했다’는 윤 의원 해명에 대해 민단 측은 “여야 누구도 국회의원 개인을 대상으로는 초청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민단 관계자는 본보 취재에 “국회의원 299명을 모두 초청하지 않는 이상 누구는 불렀고 누구는 안 불렀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고 개인 초청을 하지 않는 이유를 들었다. 다만 “국회의원이 민단 행사에 오겠다고 하면 여야 상관없이 모두 환영한다”고 설명했다. 민단 및 한일의원연맹에 따르면 민단은 1일 간토대지진 100년 추도식에 앞서 국회 한일의원연맹에 ‘한일의원연맹 및 간부진’을 수신자로 초청 공문을 보냈다. 한일의원연맹은 회장단 논의를 거쳐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회장), 민주당 윤호중 의원(간사장),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간사)이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해 한국 정부가 후원한 민단 추도식에 참석했다.한일의원연맹에는 여야 국회의원 167명이 가입해 있지만, 윤 의원은 연맹에 가입하지 않았다. 연맹 관계자는 “이제까지 윤 의원 측으로부터 어떠한 연락, 소통도 없었다”며 “(윤 의원과) 서로 협조를 구하거나 내용을 문의할 관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한편 외교부는 윤 의원의 조총련 주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년 도쿄 동포 추도 모임 참석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해오고 있는 시점에서 조총련 관련 행사에 참석한 것은 더더욱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더불어민주당 출신 무소속 윤미향 의원(사진)이 1일 친북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일본 도쿄에서 개최한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년 동포 추도 모임’에 참석했다. 윤 의원은 이날 한국 정부와 한국계 동포 단체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역시 도쿄에서 개최한 추념식에는 불참했다. 총련 측은 윤 의원을 ‘남측 대표단’으로 맞이하고 행사장에서 총련 간부 옆에 자리를 마련했다. 추도식에는 허종만 의장, 박구호 제1부의장 등 총련 지도부가 대거 참석했다. 허 의장은 2020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서 북한 최고 등급으로 알려진 ‘노력 영웅’ 칭호와 국기훈장 1급을 받았다. 고덕우 총련 도쿄본부 위원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한국 정부를 “남조선 괴뢰도당”이라고 불렀다.총련 ‘남조선 괴뢰도당’ 발언에 윤미향 침묵 尹, 총련 주최 추도식 참석‘간토 학살 100주기 추도 사업 추진위원회’ 측은 “한일 정부는 역사, 정의와 평화를 향한 양국 시민의 노력과 열망을 짓밟고 한일 군사협력, 한미일 군사동맹에 박차를 가하며 주변국과의 적대를 강요하고 있다”며 한일 정부를 함께 비난했다. 윤 의원은 이날 행사가 끝난 뒤 참석 취지를 묻는 본보 기자 질문에 “간토 100주기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총련 측이 ‘남조선 괴뢰도당’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묻자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윤 의원 측은 “간토 학살 100주기 추도 사업 추진위원회 요청으로 참석했을 뿐, 총련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평소 간토 학살 진상 규명 필요성 등을 생각했기에 가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윤 의원 측은 지난달 말 국회 사무처를 통해 외교부에 공문을 보내 일본 입국 협조를 요청했다. 주일 한국대사관 측이 지난달 30일 공항으로 윤 의원을 마중 나가 숙소까지 이동편을 제공했다. 윤 의원 측은 “일본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공항에서 차를 지원받았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한국 정부 지원을 받아 한국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반(反)국가단체 행사에 참석하는 건 이상하다”고 말했다. 21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들어온 윤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시민단체인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시절 후원금 사적 유용 및 부동산 명의 신탁 의혹이 불거져 2021년 6월 민주당에서 제명돼 출당했다. 올 2월 후원금 사적 유용 1심 재판에서 벌금 1500만 원 형을 선고받았다. 친북 성향 매체 기자 출신을 4급 보좌관으로 고용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한반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살된 한국인들을 위한 추도식이 1일 일본에서 치러졌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은 이날 주일 한국대사관과 재외동포청이 후원한 ‘간토대진재 한국인 순난자(殉難者) 추념식’을 도쿄 국제포럼에서 거행했다. 순난자는 국가나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롭게 목숨 바친 사람을 뜻한다. 그동안은 민단 본부 강당에서 열렸지만 간토대지진 100년을 맞아 한일 정치인들이 참석하는 등 더 큰 규모로 열렸다. 일본 정부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실과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이날 추념식에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 연립 여당 공명당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 집권 자민당 다케다 료타(武田良太) 일한의원연맹 간사장,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郎) 자민당 의원,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穂) 사회민주당 당수 등 일본 여야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 한일의원연맹 회장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 간사장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등이 참석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일본 총리(일한의련 회장)는 조화를 보냈다. 양국 정치인 등 참석자들은 이날 태극기 아래 설치된 위패에 국화를 바치고 예를 표했다. 100년 전 대지진이 발생한 오전 11시 58분에 맞춰 고개 숙여 묵념했다. 윤 대사는 추도사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한국인들이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 그 자체”라며 “불행한 과거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단은 경과 보고를 통해 “(일본 민간인이 구성한) 자경단은 군과 정부의 비호와 용인 아래 죽창, 쇠갈고리, 곤봉, 총으로 무장하고 경찰 군대와 함께 한국인을 죽이기 시작했다”며 “당시 한국인 대량학살 비극은 천재(天災)인 동시에 인재(人災)였다”고 지적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행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일본 정부의 정보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기에 한국인 학살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이라며 “나쁜 일을 한 것에 대해서는 정직하게 (일본) 정부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마구치 대표는 “다시는 반복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헌화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는 위령 행사가 열렸다. 이날 오후 같은 자리에서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는 극우 성향 시민단체 회원들이 추모비 쪽으로 접근하려 하자 차별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가로막으며 “차별주의자는 돌아가라”고 외치기도 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1일 친북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주최한 ‘간토대지진 100년 조선인 학살 추도식’에 참석했다. 이날 한국 정부와 한국계 동포 단체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개최한 추념식 행사에는 불참했다.윤 의원은 이날 오후 총련이 일본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개최한 추도식에 ‘남측 대표단’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 추도식에는 허종만 의장, 박구호 제1부의장을 비롯한 총련 지도부가 대거 참석했다. 허 의장은 2020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북한 최고 등급으로 알려진 ‘노력 영웅’ 칭호와 국기훈장 1급을 받았다.고덕우 총련도쿄본부 위원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한국 정부를 “남조선 괴뢰도당”이라고 불렀다. ‘간토 학살 100주기 추도 사업 추진위원회’ 측은 “한일 정부는 역사, 정의와 평화를 향한 양국 시민의 노력과 열망을 짓밟고 한일 군사협력, 한미일 군사동맹에 박차를 가하며 주변국과의 적대를 강요하고 있다”며 한미일 협력 강화를 비난했다.윤 의원은 참석 취지를 묻는 본보 기자 질문에 “간토 100주기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총련 관계자가 ‘남조선 괴뢰도당’이란 표현을 쓴 것에 대한 견해를 묻자 대답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윤 의원 측은 국회 사무처를 통해 외교부 측에 공문을 보내 일본 입국 협조를 요청했다. 주일 한국대사관 측은 그의 일본 공항 입국 수속을 지원하고 숙소까지 차량을 제공했다.윤 의원실 측은 “일본에 입국해서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공항에서부터 차량을 지원 받았다. 그 외 이동 및 숙소 지원은 없었다”고 밝혔다. 친북단체 행사 참석에 대해 윤 의원실 측은 “총련 주최라 간 건 아니고, 간토 학살 100주기 추도 사업 추진위 요청 때문에 간 것이며 남측 대표단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한국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반(反)국가단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 정부 지원을 받아 온 것은 이상하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3일 귀국한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조선인들이 칼을 들고 활보한다고 순경이 말하면서 조선인이 오면 죽이라고 했어요.’ 31일 일본 요코하마시에서 열린 한 전시에는 100년 전 일본 초등학교 6학년생이 쓴 이 같은 내용의 작문이 전시돼 있었다. 현지 시민단체 ‘기억을 이어가는 가나가와 모임’ 주최로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반성하는 ‘전쟁의 가해전(展)’이었다. 8회째를 맞은 이 전시회에서 올해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주제로 특별 코너를 마련했다. 전시회에서는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직후 요코하마 초등학생들이 당시 끔찍했던 참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작문들이 소개됐다. ‘순사가 조선인에게 칼을 빼들고 있었습니다. 앞에 있던 아버지가 쇠몽둥이로 죽여 버렸습니다.’ ‘이틀째 저녁 조선인의 목이 잘려져 있어서 오싹했습니다’ 등 조선인들이 희생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일본 초등학생들의 글이 전시됐다. 행사를 주최한 시민단체의 다케오카 겐치(竹岡建治) 씨는 “당시 조선인 피해자 수는 도쿄가 많았지만 인구 대비로는 요코하마가 훨씬 많았다. 요코하마에 군수 산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건너온 조선인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가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입증할 기록이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에 대해 “자료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실을 인정하면 (한국, 중국에) 사과해야 하므로 그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일본 도쿄신문은 31일 간토대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자국 정부를 향해 “부정적인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면 비판을 부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중앙방재회의 보고서에서 (조선인 학살에 대한) 기술은 전문가가 집필한 것으로 정부 견해를 나타낸 것은 아니다”라며 역사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31일 일본 요코하마시에서는 현지 시민단체 ‘기억을 이어가는 가나가와 모임’ 주최로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반성하는 ‘전쟁의 가해 전(展)’이 열렸다. 8회째를 맞은 이 전시회에서 올해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주제로 특별 코너를 마련했다. 전시회에는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직후 요코하마 초등학생들이 쓴 작문이 소개됐다. 주최 측은 “2010년 요코하마 미나미요시다 초등학교 관계자가 당시 작문이 학교에 보관돼 있다고 알려줬다. 조선인 학살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당시 글을 사진으로 찍어 담았다”고 밝혔다. 100년 전 초등학생들의 글에는 당시의 끔찍했던 참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한 초등학생 6학년의 작문에는 “조선인들이 칼을 들고 활보한다고 순경이 말하면서 조선인이 오면 죽이라고 했어요”라고 쓰여 있었다. 전시회에는 당시의 장면을 목격한 초등학생 글이 소개됐다.“순사가 조선인에게 칼을 빼 들고 있었습니다. 앞에 있던 아버지가 쇠몽둥이로 죽여버렸습니다” “이틀째 저녁 조선인이 목이 잘려져 있어서 오싹했습니다” “다리 위에서 조선인을 향해 많은 사람이 칼로 찌르거나 곤봉으로 때리고 창으로 찌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강물로 던져 버렸습니다” 심지어 학살에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 초등학생의 글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모두 몽둥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왜냐고 물어보니 조선인이 모두를 곤란하게 하기 때문에 쿡쿡 찌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형과 나갔는데 모두 조선인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나도 따라 했더니 픽 죽어 버렸습니다.”행사를 주최한 시민단체의 다케오카 겐치(竹岡建治) 씨는 “당시 조선인 피해자 수는 도쿄가 많았지만, 인구 대비로는 요코하마가 훨씬 많았다. 요코하마에 군수 산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건너온 조선인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가 학살의 사실관계 기록이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에 대해 “자료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실을 인정하면 (한국, 중국에) 사과해야 하므로 그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도쿄신문은 이날 간토대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자국 정부를 향해 “부정적인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면 비판을 부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중앙방재회의 아래에 설치된 재해 교훈의 계승에 관한 전문가 조사회가 정리한 보고서에서 (조선인 학살에 대한) 기술은 전문가가 집필한 것으로 정부 견해를 나타낸 것은 아니다”라며 역사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요코하마=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외국 기자 여러분이 끔찍했던 100년 전 학살을 보도해 주셔야 합니다. 해외에서 문제를 제기해 주지 않으면 일본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1923년 9월 1일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죄를 요구하는 한중일 시민 대표단이 30일 일본 도쿄 외국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세계 언론의 관심을 촉구했다. 한중일 시민 대표단은 간토대지진 100년을 맞아 “자료가 없다”며 사실 인정 및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에 대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미 역사상 최악의 인종 폭력 사건인 ‘털사 인종 학살’ 100주기에 공식 추모 성명을 발표했다”며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 대변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며 기존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당시) 유언비어가 퍼져 많은 조선인이 군, 경찰, 자경단에 살해됐다고 전해진다’는 질문에도 마쓰노 장관은 반성 사죄 교훈 같은 단어를 전혀 입에 올리지 않았다. 후지모토 야스나리(藤本康成) 일본 평화포럼 대표는 “일본은 9월 1일을 ‘방재의 날’로 기리지만 많은 조선인이 군인, 경찰, 민간인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며 “기록이 없다는 식으로 외면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철수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사무국 차장은 “조선인 학살은 단순히 재해로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1800년대 후반부터 반복된 학살의 연장선”이라며 일본의 반성을 촉구했다. 린 보야오 간토대학살 100년 추도식 공동 집행위원장은 “조선인 6000명 이상과 중국인 형제 800명 이상도 무고하게 학살됐다. 100년 전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현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료가 없다는 일본 정부 주장도 반박했다. 다나카 히로시(田中宏)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는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이던 일본은 당시 외무성이 이 문제를 조사해 중국에 대해 20만 엔 배상을 준비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이는 당시 일본 정부가 국가로서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미국 달러화, 유로화와 함께 세계 3대 기축통화로 꼽히는 일본 엔화의 구매력이 5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30일 보도했다. 경기가 30여 년간 침체한 ‘잃어버린 30년’을 겪고 있는 가운데 화폐를 찍어내 유동성을 푸는 금융 완화 정책이 길어지면서 엔화 가치가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에서는 휘발유 값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등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엔-달러 환율 상승 등으로 가계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 역시 환율 하락으로 구매력이 낮아지고 있어 한일 양국이 비슷한 길을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통계에 따르면 엔화의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2020년을 100으로 볼 때 올 7월 기준 74.31이었다. 이는 엔화 환율이 달러당 360엔으로 고정된 1970년 이후 가장 낮았던 지난해 10월(73.7)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한 나라 화폐가 다른 나라 화폐보다 구매력이 실제로 얼마나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실질실효환율이 낮아지면 그만큼 해당 화폐를 가진 사람의 구매력은 떨어진다. 엔화 구매력이 기록적으로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수입 물가, 특히 에너지 가격 상승에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날 일본 휘발유 평균 가격이 L당 185.6엔으로 역대 가장 비쌌다. 일본 수입물가지수는 2021년 말 대비 10%가량 상승했다. 지난해 엔-달러 환율이 한동안 떨어졌다가 다시 상승하면서 엔화 가치가 하락했다. 29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엔-달러 환율이 147엔을 넘은 가운데 30일 도쿄 외환시장에서는 146.18엔을 기록했다. 환율이 오르면 그만큼 해외에서 물건을 살 때 지불해야 하는 값이 올라 수입 물가가 오른다. 일본 최대 귀금속 기업인 도쿄 다나카귀금속공업에서는 이날 오전 금 1g 판매가가 1만50엔(약 9만 원)으로 책정되며 사상 처음으로 1만 엔대를 돌파했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투자자들이 엔화를 팔고 달러화나 금 매입에 몰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닛케이는 엔화 가치 하락으로 수입 물가는 올랐지만 수출은 늘어나지 않고 있다며 “국내 부(富)가 외국으로 유출되고, 또다시 엔저(低)가 진행되기 쉬운 환경”이라고 짚었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일본 기업 해외 생산 비율은 26%로 20년 새 2배로 높아졌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골드만삭스 카마크샤 트리베디가 이끄는 전략가들은 최근 보고서에서 “앞으로 6개월에 걸쳐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55엔까지 치솟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올 4월 취임한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현재 금융 완화 정책을 당분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한국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한때 4% 넘게 오르며 세계 시장에서 일본 엔화와 더불어 대표적인 가치 하락 통화로 꼽히고 있다.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교역 조건 악화는 한일 양국이 함께 겪고 있는 과제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외국 기자 여러분이 끔찍했던 100년 전 학살을 보도해 주셔야 합니다. 해외에서 문제를 제기해 주지 않으면 일본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1923년 9월 1일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죄를 요구하는 한중일 시민 대표단이 30일 일본 도쿄 외국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세계 언론의 관심을 촉구했다.한중일 시민 대표단은 간토대지진 100년을 맞아 “자료가 없다”며 사실 인정 및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에 대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미 역사상 최악의 인종 폭력 사건인 ‘털사 인종 학살’ 100주기에 공식 추모 성명을 발표했다”며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러나 일본 정부 대변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며 기존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당시) 유언비어가 퍼져 많은 조선인이 군, 경찰, 자경단에 살해됐다고 전해진다’는 질문에도 마쓰노 장관은 반성 사죄 교훈 같은 단어를 전혀 입에 올리지 않았다.후지모토 야스나리(藤本康成) 일본 평화포럼 대표는 “일본은 9월 1일을 ‘방재의 날’로 기리지만 많은 조선인이 군인 경찰 민간인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며 “기록이 없다는 식으로 외면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김철수 조선인 강제 연행 진상조사단 사무국 차장은 “조선인 학살은 단순히 재해로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1800년대 후반부터 반복된 학살의 연장선”이라며 일본의 반성을 촉구했다.린 보야오 간토대학살 100년 추도식 공동 집행위원장은 “조선인 6000명 이상과 중국인 형제 800명 이상도 무고하게 학살됐다. 100년 전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현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자료가 없다는 일본 정부 주장도 반박했다. 다나카 히로시(田中宏)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는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이던 일본은 당시 외무성이 이 문제를 조사해 중국에 대해 20만 엔 배상을 준비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이는 당시 일본 정부가 국가로서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 도요타자동차의 일본 내 모든 공장의 가동이 중단됐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일본 언론이 29일 보도했다. 가동이 언제 재개될지는 알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닛케이 등에 따르면 도요타그룹의 일본 14개 공장 중 후쿠오카와 교토 2곳을 제외한 12곳이 이날 오전에, 나머지 2곳도 오후에 가동이 각각 중단됐다. 가동 중단 원인으로는 부품 발주를 관리하는 시스템 불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이치현 도요타시 공장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오전 6시에 출근했는데 생산 라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상사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도요타 거래처 관계자는 “도요타자동차 측으로부터 28일 밤 가동 중단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산업 주무 장관인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산업상은 이날 “회사 측으로부터 사이버 공격에 따른 문제는 아니라고 들었다. 원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도요타는 지난해 3월 거래처가 사이버 공격을 받아 일시적으로 모든 공장의 가동을 중단한 바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계열사를 포함해 지난해 전 세계에서 자동차 1061만 대를 생산했고 이 중 365만 대를 일본에서 제작했다. 일본 전체 수출에서 자동차 비중은 20%에 달할 만큼 커서 가동 중단이 길어질 경우 일본 산업 전체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우리 동포들은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를 기억하고 잊지 않을 것이다.” 재일동포 대표 단체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여건이 단장(75·사진)은 29일 일본 도쿄 민단 본부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이 일본에 대한 역사 인식의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밝혔다. 일본에 사는 동포에게 1923년 간토대학살은 분명히 가슴 아픈 기억이다. 하지만 일본에 생활 기반이 있기에 미움만으로 살 수는 없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동포 3세, 4세는 더 그렇다. 여 단장은 “정확하게 역사를 기록하고 배우고 기억해야겠지만 반일(反日)이 되면 우리는 참 어렵다. 특히 정치인이 역사를 이용해 양국 관계가 나빠질 때마다 가장 피해를 보는 건 동포들”이라고 털어놨다.● “역사를 잊어도, 역사만 고집해도 미래 없어”“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지만, 역사만 고집하는 민족도 미래가 없긴 마찬가지다. 용서하되 잊지 않는 것, 그렇게 정신적으로 우위에 서면 된다.” 여 단장은 간토대학살을 언급하면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이야기를 꺼냈다. 차별당하며 비참하게 살던 흑인들을 “역사는 잊지 말되 용서하자. 용서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설득해 백인들과의 화해를 이끌어냈기 때문에 만델라 전 대통령이 지금까지도 추앙받고 있다는 것이다. 100년 전 학살을 애써 축소하거나 아예 부정하는 세력도 있지만 기억하고 추도하는 일본인이 더 많다고 여 단장은 생각한다. 그는 “지진으로 10만 명 이상 죽었으니 일본인도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선인을 학살한 군경도 있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조선인을 보호해준 경찰도 있었다. 100년 전 일본도 인간 사회였다”고 말했다. 여 단장은 “자경단 학살 피해가 컸던 사이타마현 구마가야시, 혼조시 등은 지방자치단체가 추도식을 열고 민단이 동포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다. 지금까지 유골 발굴 작업을 펴기도 한다”며 “반성하고 추도하는 일본인이 많다는 사실이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추도사 거부 도쿄도지사에 뭘 기대하겠나”7년 연속 조선인 희생자 추모식에 추도사를 보내지 않은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 얘기를 꺼내자 여 단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극우(極右)였다는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도 추도사를 보냈는데 말이지. 화가 나기보다 웃음밖에 안 난다. 고이케 지사는 한국학교 승인 취소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 후 이를 실행한 사람이다. 기대할 필요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런 바보 같은 사람에게는 항의하는 것도 에너지 낭비다.” 여 단장은 “(일본에서) 또 지진이 발생해 공포심이 생기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며 “역사에 눈을 감으면 안 된다”고 일본 정부에 당부했다. 간토대지진 학살 100년인 올해 민단은 주일 한국대사관, 재외동포청 후원으로 도쿄 중심가 대형 전시장 도쿄국제포럼에서 9월 1일 추도식을 개최한다. 한일 양국 유력 정치인들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또 민단은 독립기념관과 함께 간토대지진 100년 특별기획전 ‘1923∼2023 역사의 증언자들’을 9월 1일∼11월 24일 도쿄 민단 본부 산하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에서 연다. 민단 측은 “생명 존중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인류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에 간토대지진 100년은 현재, 미래와도 이어지는 것”이라고 개최 취지를 밝혔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총에 맞아 숨진 지난해 7월 일본 후쿠오카 한국총영사관은 안내문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우리 국민 대상 혐오범죄 가능성이 제기됐다”며 위험 지역에 접근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국내에서는 “아베 사망과 한국인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의문이, 일본에서는 “근거 없이 일본인 혐오를 조장하지 말라”는 반발이 나왔다. 안내문은 삭제됐다. 자위대 출신 일본인이 범인으로 밝혀지며 논란은 사그라졌다. 하지만 이 소동은 재일동포 사회가 안고 있는 트라우마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일본에서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언제 어디서 공격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당시 일본 SNS에는 “용의자 국적을 밝히라”며 재일 한국인일 수 있다고 의심하는 글이 올라왔다. 1923년 9월 1일 도쿄 등을 강타한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에 일본 군경과 민간 자경단은 식민지 백성이던 조선인을 무차별 학살했다. 간토대학살을 나치 홀로코스트만큼 끔찍한 제노사이드(인종 말살)로까지 평가하는 시각이 역사학계에 적지 않다. 100년 전 역사로 묻어 버릴 일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한국인, 특히 재일동포에 대한 악성 루머는 계속된다. 2021년 2월 미야기현 앞바다에 규모 7.3 지진이 발생했을 때 SNS에는 ‘조선인이 후쿠시마 우물에 독을 넣고 있는 것을 봤다’는 글이 올랐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때도 비슷한 유언비어가 SNS에 퍼졌다. 2019년 교토 애니메이션(교애니) 건물 방화로 수십 명이 숨지자 일본 포털 사이트에는 “방화는 한국인 습성” “재일 한국인이 웃고 있다” 같은 혐한(嫌韓) 댓글이 번졌다. 일본에서 자연재해나 심각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혐한 유언비어가 발생하는 것은 묵과하기 어렵다. 인터넷 시대라 유언비어가 퍼지는 속도만큼 사실이 밝혀지는 속도가 빠른 게 그나마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런 인터넷 유언비어 유포를 일본 정부 책임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는 ‘공기(空氣)’라는 게 있다. 한번 형성된 분위기는 많은 사람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휩쓸린다. 한일 관계가 나빴던 최근 10여 년간 일본 정부와 정치권이 조성한 혐한 공기는 재일 한국인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2017년 아베 전 총리 시절 일본 정부 홈페이지에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기술한 보고서가 슬그머니 사라진 일이 대표적이다. 이를 비판하는 보도가 잇달아 보고서는 복구됐지만 이는 일본 사회에 ‘간토대학살은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공교롭게도 그해 9월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는 1967년 이후 모든 도쿄도지사가 한 조선인 학살 추도사 보내기를 중단했다. 보수적이고 움직임 느린 일본 사회에서 한번 틀어진 발걸음은 웬만해서 바로잡히지 않는다. 한일 관계가 개선됐다지만 일본에서 당시 학살을 반성하자는 목소리는 일부 언론과 양심 있는 시민단체 정도 말고는 찾기 어렵다. 간토대학살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강제 징용과 성격이 다르다. 양국 간 첨예한 외교 사안도 아니고 한일 청구권 협정과도 관련이 없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역대 어떤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에 이에 대한 책임 인정 및 사과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간토대학살을 대하는 일본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는 일본의 역사 인식을 보여줄 바로미터다. 역사 사실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감수하고 모르쇠로 일관할지, 진정성 있는 사과로 역사와 화해할지 일본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 단,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일본이 오롯이 짊어지게 될 것이다.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 도요타자동차의 일본 내 모든 공장의 가동이 중단됐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일본 언론이 29일 보도했다. 가동이 언제 재개될지는 알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닛케이 등에 따르면 도요타그룹의 일본 14개 공장 중 후쿠오카와 교토 2곳을 제외한 12곳이 이날 오전에, 나머지 2곳도 오후에 가동이 각각 중단됐다.가동 중단 원인으로는 부품 발주를 관리하는 시스템 불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이치현 도요타시 공장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오전 6시 출근했는데 생산 라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상사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도요타 거래처 관계자는 “도요타자동차 측으로부터 28일 밤 가동 중단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산업 주무 장관인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산업상은 이날 “회사 측으로부터 사이버 공격에 따른 문제는 아니라고 들었다. 원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도요타는 지난해 3월 거래처가 사이버 공격을 받아 일시적으로 모든 공장 가동을 중단한 바 있다.도요타자동차는 계열사를 포함해 지난해 전 세계에서 자동차 1061만 대를 생산했고 이 중 365만 대를 일본에서 제작했다. 일본 전체 수출에서 자동차 비중은 20%에 달할 만큼 커서 가동 중단이 길어질 경우 일본 산업 전체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 해양 방류 후 중국 내 반일 감정이 부쩍 거세지고 양국 관계 또한 악화하고 있다. 방류와 아무 관계가 없으며 무고한 학생들이 다니는 중국 내 일본인학교에 돌과 계란을 던지거나 항의 전화를 하는 등 일본 정부가 아닌 일본인 전체를 문제 삼겠다는 조짐이 뚜렷하다. 일본 곳곳의 상점, 학교 등에도 중국인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자 28일 일본 정부는 우장하오(吳江浩) 주일 중국대사를 초치했다.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일본 관방장관 또한 “매우 유감이고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같은 날 “중국은 법률에 따라 재중 외국인의 안전과 권익을 보호한다”면서도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시하고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일본의 행태에 이웃 국가들과 국제사회가 비판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현 사태의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中 일본인학교에 돌-계란 날아와 28일 일본 NHK방송,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 24일 산둥성 칭다오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은 “한 중국인이 지역 내 일본인학교에 돌을 던졌다가 공안에 구속됐다”고 밝혔다. 25일 장쑤성 쑤저우의 일본인학교에도 계란 여러 개가 날아들었다. 상하이 일본인학교에도 방류에 항의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칭다오 일본총영사관 인근에는 일본인을 경멸하는 낙서까지 등장했다.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현지에도 중국인의 ‘전화 테러’가 빗발치고 있다. 후쿠시마현 일대 학교, 음식점 등에도 오염수 방류에 항의하는 중국발(發) 국제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도쿄의 한 라멘집 또한 TV아사히에 “하루에만 1000여 통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며 피해를 호소했다. 이에 28일 일본 외무성은 우 대사를 초치해 중국에 머무는 일본인 및 일본 공관의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일본산 식품에 대한 수입 규제 조치의 즉시 철폐 또한 촉구했다. 마쓰노 장관 또한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중국 측에 국민을 대상으로 한 냉정한 행동 호소, ‘처리수’(오염수의 일본식 표현)에 대한 정확한 정보 발신 등 적절한 대응을 요청한다”고 했다. 주요 온라인 여행 사이트에서도 일본 관광 상품이 속속 사라지고, 예약해뒀던 일본 단체 여행을 취소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대형 여행사들 또한 자사 웹사이트의 첫 페이지에 일본 관련 여행 상품이 나타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두 나라가 일본이 실효 지배 중인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영유권 분쟁을 벌였던 2012년과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중국 전역에서 대대적인 반일 시위가 발생해 중국 내 일본인학교가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 주베이징 일본대사관에도 돌, 플라스틱 병 등이 날아들었다. ● 中 관영매체, 美日 동시 비판 중국 측은 현 상황이 무조건 일본 책임이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방류 당일 중국 본토와 마찬가지로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을 규제한 홍콩은 추가 규제 가능성을 거론했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관영 신화통신 인터뷰에서 “방사능 오염은 시간이 갈수록 축적된다. 국민 보건과 식량 안전에 방류가 미칠 악영향을 대비해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미국도 비판했다. 이 매체는 27일 “전 세계적인 분노와 우려를 불러일으킨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과정에 대해 미국은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정작 미국이 일본산 수산물과 사케 수입을 가장 많이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일본 농림수산성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미국의 일본산 농산물 수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3억 엔(약 750억 원) 줄었다.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간토(關東) 대지진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일본에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또다시 지진이 일어났을 때 범죄를 부추길 수 있는 유언비어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재일 조선인 연구 권위자로 꼽히는 도노무라 마사루(外村大) 도쿄대 교수(역사학·사진)는 22일 일본 도쿄대 캠퍼스 연구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며 이같이 말했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7년째 간토대지진 학살 추도식에 추도문 발송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도노무라 교수는 “실제 재난이 닥쳤을 경우 사회를 유지하는 데 (고이케 지사 같은 행동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루머가 또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고한 조선인들이 위험 집단으로 몰려 희생된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학살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인에게 상처로 남아 있다. 도노무라 교수는 “1920년대 들어 한반도 농촌에서 살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일본의 공장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에 사는 조선인이 늘면서 일본인들 사이에서 조선인을 경계하고 위험하게 여기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분석했다. 당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 수도권에는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탄다’는 유언비어가 횡행했다. 도노무라 교수는 “의도적으로 권력이 개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일본에는 군국주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았다”며 “적(敵)은 죽여도 된다는, 적이 있으면 위험하니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매년 9월 1일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를 기리는 추도식에는 극우 성향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를 비롯한 역대 모든 도쿄도지사가 추도문을 보냈다. 하지만 고이케 지사는 7년째 추도문 발송을 거부하고 있다. 최근 한일 관계 개선으로 젊은 세대에서 서로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그는 이럴 때일수록 올바른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역사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한일 젊은이들의 교류에도 곤란한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역사에 여러 의견이 있다는 식의 속임수는 하지 않는 게 일본인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 해양 방류 후 중국 내 반일 감정이 부쩍 거세지고 양국 관계 또한 악화하고 있다. 방류와 아무 관계가 없으며 무고한 학생들이 다니는 중국 내 일본인학교에 돌과 계란을 던지거나 항의 전화를 하는 등 일본 정부가 아닌 일본인 전체를 문제 삼겠다는 조짐이 뚜렷하다.일본 곳곳의 상점, 학교 등에도 중국인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자 28일 일본 정부는 우장하오(吳江浩) 주일 중국대사를 초치했다.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일본 관방장관 또한 “매우 유감이고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반면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같은 날 “중국은 법률에 따라 재중 외국인의 안전과 권익을 보호한다”면서도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시하고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일본의 행태에 이웃 국가들과 국제사회가 비판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현 사태의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中 일본인학교에 돌-계란 날아와28일 일본 NHK방송,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 24일 산둥성 칭다오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은 “한 중국인이 지역 내 일본인학교에 돌을 던졌다가 공안에 구속됐다”고 밝혔다. 25일 장쑤성 쑤저우의 일본인학교에도 계란 여러 개가 날아들었다. 상하이 일본인학교에도 방류를 항의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칭다오 일본총영사관 인근에는 일본인을 경멸하는 낙서까지 등장했다.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현지에도 중국인의 ‘전화 테러’가 빗발치고 있다. 후쿠시마현 일대 학교, 음식점 등에도 오염수 방류를 항의하는 중국발(發) 국제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도쿄의 한 라멘집 또한 TV아사히에 “하루에만 1000여 통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며 피해를 호소했다. 이에 28일 일본 외무성은 우 대사를 초치해 중국에 머무는 일본인 및 일본 공관의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일본산 식품에 대한 수입 규제 조치의 즉시 철폐 또한 촉구했다. 마쓰노 장관 또한 같은 날 28일 기자회견에서 “중국 측에 국민을 대상으로 한 냉정한 행동 호소, ‘처리수’(오염수의 일본식 표현)에 대한 정확한 정보 발신 등 적절한 대응을 요청한다”고 했다.주요 온라인 여행 사이트에서도 일본 관광 상품이 속속 사라지고, 예약해뒀던 일본 단체 여행을 취소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대형 여행사들 또한 자사 웹사이트의 첫 페이지에 일본 관련 여행 상품이 나타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요미우리신문은 두 나라가 일본이 실효 지배 중인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영유권 분쟁을 벌였던 2012년과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중국 전역에서 대대적인 반일 시위가 발생해 중국 내 일본인학교가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 주베이징 일본대사관에도 돌, 플라스틱 병 등이 날아들었다. ● 中관영매체, 美日 동시 비판 중국 측은 현 상황이 무조건 일본 책임이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방류 당일 중국 본토와 마찬가지로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을 규제한 홍콩은 추가 규제 가능성을 거론했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관영 신화통신 인터뷰에서 “방사능 오염은 시간이 갈수록 축적된다. 국민 보건과 식량 안전에 방류가 미칠 악영향을 대비해 대처하겠다”고 말했다.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미국도 비판했다. 이 매체는 27일 “전 세계적인 분노와 우려를 불러일으킨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과정에 대해 미국은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정작 미국이 일본산 수산물과 사케 수입을 가장 많이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일본 농림수산성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미국의 일본산 농산물 수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3억 엔(약 750억 원) 줄었다.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간토(關東) 대지진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일본의 지진 대비를 위해서도 매우 위험합니다. 또다시 지진이 일어났을 때 범죄를 부추길 수 있는 유언비어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일본의 재일 조선인 연구 권위자로 꼽히는 도노무라 마사루(外村大) 도쿄대 교수(역사학)는 22일 일본 도쿄대 캠퍼스 연구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7년째 간토대지진 학살 추도식에 추도문 발송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도노무라 교수는 “실제 재난이 닥쳤을 때 사회를 유지하는데 (고이케 지사 같은 행동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나라를 잃고 살던 무고한 조선인이 목숨을 잃은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학살은 지금까지도 한국인에게 역사의 상처로 남아 있다. 한일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한 도노무라 교수에게 간토대지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들어봤다. ―100년 전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 기록이 아직도 불명확하다. “죽은 조선인이 6000명을 넘었다는 기록, 그보다 적다는 추정 등이 있다. 지금처럼 정확히 관청에 주민등록을 하던 시대가 아니었고, 당시 피해자 유족이 보상 등을 신청한 것도 아니었다. 목숨을 잃진 않았어도 죽음의 공포를 느낀 사람도 많다. ‘진달래꽃’의 시인 김소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도 간토대지진을 겪고 한반도로 돌아갔다. 엄청난 공포를 겪었을 것이다. 슬픈 현대사다.”―당시 왜 그런 사건이 발생한 것인가. “당시 일본 신문을 보면 조선인을 위험한 존재로 보는 기사가 자주 등장한다. 조선인이 일본인을 살상했다는 기사도 볼 수 있다. 그런 가운데 1920년대 들어 일본에 온 조선인이 크게 늘었다. 한반도 농촌에서 살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일본의 공장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에 사는 조선인이 늘어나면서 경계하고 위험하게 여기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일본의 군, 경찰이 주도했다는 말도 있다. “지진 발생 후 유언비어가 퍼졌다. 의도적으로 권력이 개입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당시 일본 사람들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을 겪으며 군국주의 교육을 받았다. 사람을 죽인 경험이 많았고 일본제국의 적은 죽여도 된다는, 적이 있으면 위험하니 죽여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지금도 한국에서는 일본이 반성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당시 일본의 시각으로 보자면 조선인은 일본제국의 일원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같은 국민인데 이런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점, 보호를 제대로 못 받았다는 것 그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최근 일본에서 법의 지배에 근거한다는 표현을 쓰는데, 당시 법에 근거하지 않고 누군가를 잡거나 죽였다. 그 자체를 반성해야 한다. (일본 내에서 이런 논의에) 일부러 도망치고 피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다. 오늘날의 일본인은 당시 조선인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고이케 지사의 대지진 학살 추도문 거부가 계속되고 있다. “(고이케 지사가)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런 행동을 좋아하는 건 한국을 정말 싫어하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인 학살이 없었다고) 믿는 사람이 있겠지만 일본 사회의 주류는 아니다. 그런 행동은 일본의 재난 대비를 위해서도 매우 위험하다. 정말로 지진이 일어났을 때 범죄를 부추길 수 있는 루머가 또 발생할 수 있다. 그럴 때 가장 곤란한 건 치안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회를 유지할 수 있을까. 고이케 지사의 행동 때문에 오히려 반대될 가능성이 있다.”―간토대지진을 대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가 바뀔까. “올해 3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국회 답변을 통해 증오 발언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재일 한국인 집단 거주지인) 우토로 사람들과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내놓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는 있다.”―한일 젊은 세대들의 우호 교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본에 군국주의가 있었다는 것, 식민지 지배와 조선인 차별이 있었다는 것 등을 가르치고 역사를 알려줘야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이)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한일 젊은이들의 교류에도 곤란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역사를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거나 여러 의견이 있다는 식의 속임수는 하지 않는 게 일본인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100년 가까이 공개되지 않았던 조선인 학살 그림을 펼쳐 보겠습니다.” 26일 일본 도쿄 신주쿠 고려박물관. 14m 길이의 두루마리 그림이 펼쳐지자 관람객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아라이 가쓰히로(新井勝紘) 고려박물관장은 “일본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이뤄진 조선인 학살 장면이 이 정도로 생생히 담긴 그림은 흔치 않다”고 말했다. 1923년 9월 1일 발생한 대지진으로 극심한 혼란을 틈타 재일조선인 수백∼수천 명이 무고하게 학살됐다. 그로부터 100년, 일본 정부는 여전히 당시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일본 일각에서는 “역사를 직시하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26일 오후 일본 도쿄 신주쿠 고려박물관. 민간 박물관인 이곳에서 의미 있는 이벤트가 열렸다. 간토(關東)대지진 100년을 맞아 당시 조선인 학살 장면을 담은 두루마리 그림이 일반에 공개된 것이다. 길이 14m, 폭 36cm의 긴 그림에는 1923년 9월 1일 일본 수도권을 강타해 10만 명 이상이 숨진 간토대지진 참상이 영화 필름처럼 담겨 있었다. 1926년 기코쿠(淇谷)라는 이름의 화가가 그린 그림에는 평온했던 마을이 지진으로 혼란에 빠지는 모습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생히 묘사돼 있다. 집이 부서지고 화재가 일어난 장면이 지나가자 누런 일본군 군복을 입은 이들이 일반인과 함께 칼, 죽창을 들고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죽이는 장면이 담겨 있다. 붉은 피를 흘리는 장면도 선명했다. 잔인한 학살 장면이 끝나는 그림 후반부에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쌓인 시체들이 불타는 모습이 담겼다. 관람객 40여 명은 펼쳐지는 그림 속 장면에 눈을 떼지 못했다. 아라이 가쓰히로(新井勝紘) 고려박물관장(전 센슈대 역사학 교수)은 인터넷 경매로 2년 전 이 그림을 입수했다. 그는 “당시 일본에서 조선인은 인간 대우를 받지 못했다. 군인, 경찰, 일반 시민이 공공연히 보는 앞에서 조선인을 죽이는 장면이 이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9월 1일을 ‘방재의 날’로 정했다. 지진 대비를 잘해야 한다는 교훈을 새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나라를 잃고 살던 조선인들이 일본인의 손에 무고하게 학살당한 사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한일 양국이 진정한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려면 간토대지진의 역사적 진실을 일본이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물에 독 풀었다’며 무차별 학살 일제강점기인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도쿄, 요코하마 등 일본 수도권 일대에 최대 규모 8.3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다음 날까지 규모 6 이상의 여진이 이어지면서 일본 정부 공식 기록으로 10만5385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수십만 명이 다쳤다. 큰 피해로 극심한 혼란이 이어지면서 유언비어가 퍼졌다. 지진 당일인 1일에는 “사회주의자와 조선인 방화가 많다”, 다음 날에는 “불령선인(불온한 조선인)의 습격이 있다” 등의 소문이 나돌았다.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을 지낸 일본 내무상 미즈노 렌타로(水野錬太郎)는 ‘도쿄 부근에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경계 통지를 주요 기관에 내렸다. 앞서 지진 4년 전인 1919년 3·1운동으로 한반도에 두려움과 불쾌감을 느꼈던 일본 정부는 유언비어를 확산시켰다. 이는 민간인들의 공포심을 자극해 무자비한 학살을 조장했다. 조선인이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던 “주고엔 고주센(15엔 50전)”을 시켜 어눌하면 바로 살해하는 식이었다. 사투리가 심한 지방 출신 일본인이 살해당하기도 했다. 지진 직후 일본 언론에는 “조선인이 곳곳에서 난도질” “조선 독립 음모단이 광산에서 폭탄 절도” 등의 기사가 담겼다. 지진 발생 한 달이 지난 10월 중순에야 유언비어 때문에 무고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이미 수많은 조선인이 목숨을 잃은 뒤였다.● 日정부 “기록 없다” 책임 회피 그나마 한반도에는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동아일보 등이 일본 현지 계엄사령부, 내무성, 경시청 등에서 진상을 취재했지만, 조선총독부 검열에 막혀 보도되지 못했다. 이후 일본의 보도 통제가 풀린 뒤에야 보도되기 시작됐다. 동아일보에는 그해 10월 15일 ‘사이타마현 자경단이 (조선인) 남녀 100여 명을 학살’ 기사가, 20일 ‘사이타마현에 학살이 우심(尤甚·더욱 심함)함은 현의 통달문이 그 원인’ 기사 등이 실렸다. ‘조선인들이 나쁜 짓 할 염려가 있으니 경계를 담당하라’는 사이타마현 당국의 지시가 학살을 부추겼다는 내용이다. 일본 정부는 간토대지진 당시 유언비어로 조선인이 학살당한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올 6월 일본 참의원에서 야당 사민당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穂) 대표는 질의를 통해 당시 일본 정부가 각 지방에 보낸 전보 등을 제시하며 일본 정부가 스스로 유언비어를 조장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일본 경찰청 측은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없다”며 그동안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아라이 관장은 “당시 일본이 자료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이 없는 것이다. 가능한 한 은폐하고 감추면서 없었던 일로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간토대지진 100년을 맞아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일본 정부는 제대로 된 조사와 책임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