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부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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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5-11-07~202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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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패의 이순신, 총탄 맞고도 의연”

    “하루는 전투를 독려하다 적의 유탄에 왼쪽 어깨를 맞아 피가 팔꿈치까지 흘렀다. 그러나 장군은 아무 말 하지 않다가 전투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칼로 살을 찢고 탄환을 뽑았다. 탄환이 몇 치나 파고들어가 그 모습을 본 사람은 모두 낯빛이 변했다. 그러나 그는 담소를 나누며 태연자약했다.” 중국에서 신으로까지 모시는 촉나라 맹장 관우라도 환생한 걸까. 팔 수술을 화타에게 맡기고 바둑을 두던 장면이 떠오른다. 일본에서 19세기 중반 간행된 ‘조선정벌기(朝鮮征伐記)’에 묘사된 이 대단한 장수는 바로 ‘성웅’ 이순신(1545∼1598)이다.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는 최근 출간한 연구서 ‘그림이 된 임진왜란’(학고재)에서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7∼19세기에 일본이 이 전쟁을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옛 문헌을 통해 살폈다. 물론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한 수작이 주류지만, 적이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에겐 엄청난 존경을 표시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충무공이었다. 장군의 의연함을 칭송한 글과 함께 조선정벌기에 실린 삽화는 이런 일본인의 시각을 여실히 드러냈다. 일본풍이 역력한 그림이나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뱃머리에 선 충무공은 위풍당당했다. 왼쪽 어깨에서 피가 솟구치고 있음에도, 오른손으론 장검을 굳게 잡은 채 표정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충무공에 대한 존경은 다른 문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승려 세이키(姓貴)가 1705년 펴낸 ‘조선군기대전(朝鮮軍記大全)’과 같은 해 바바 신이(馬場信意)라는 작가가 쓴 ‘조선태평기(朝鮮太平記)’는 장군을 아예 ‘영웅’으로 호칭하고 있다. 이는 일본과 대적한 조선과 명나라 인물 가운데 유일한 경우다. 김 교수는 “충무공만큼은 영웅이나 ‘불패의 장군’이라 부르며 일본도 한 수 접고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1800년 당대 인기 작가 아키자토 리토(秋里籬島)가 쓴 ‘에혼 조선군기(繪本 朝鮮軍記)’나 19세기 베스트셀러였던 ‘에혼 다이코기(繪本 太閤記)’는 충무공이 이끈 조선 수군의 용맹함을 세세히 묘사하고 있다. 특히 목판 삽화를 보면 일본 수군이 크게 패하는 장면도 나온다. 두 책 모두 당시 서민이 즐겼던 ‘가벼운 역사평전’인지라 과장이나 왜곡이 있을 법도 한데 사실관계를 상당히 정확하게 전달했다. 김 교수는 일본이 이런 태도를 취하게 된 배경으로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집필한 ‘징비록(懲毖錄)’의 공이 큰 것으로 분석했다. 일본은 왜란 직후만 해도 일방적인 승리로 미화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징비록을 번역한 ‘조선징비록’이 1695년 교토에서 출간된 이래 상대방의 성과나 인물도 조금씩 인정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일본은 이순신 외에 진주성전투의 김시민 장군(1554∼1592)이나 함경북도병마절도사로 가토 기요마사와 맞섰던 무장 한극함(?∼1593)과 같은 인물도 상당히 우호적으로 그렸다. 김 교수는 “물론 이런 대단한 상대를 이겼다는 우월감이 깔렸긴 해도, 적일지언정 용맹한 장수에겐 존경을 표하는 일본의 ‘무(武) 숭배문화’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번 저서에서 임진왜란을 다룬 일본 고문헌의 삽화 300여 점도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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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현대인은 지평선 결핍으로 병들었다

    발상을 바꿔 보자. 우리 꼭 그렇게 야외로 나가야 하는가. TV를 틀거나 신문을 펼치면 온통 아웃도어 제품 광고뿐이다. 주말이면 산과 들에 넘쳐나는 사람들. 야영장은 몇 주 전이라도 예약이 쉽지 않다. 굳이 뭐 이렇게까지…. 아무리 툴툴대도 저자의 반응은 단호하리라. 그래도 가자. 영국 소설가이자 방송인인 저자는 지금도 1년에 한 달 이상은 부인과 함께 세 아이를 모두 데리고(진짜로?) 캠핑을 떠난다. 최소한 와이프한테 주말에 애랑 좀 놀아주란 구박은 받지 않겠구먼. 근데 솔직히 책을 읽다 보면, 살짝 노홍철이 눈앞에서 아물거린다. 이 부부, 신혼 때부터 무거운 배낭을 몇 개씩 짊어진 채 자동차도 없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캠핑을 다녔단다. 심지어 유모차에 공갈 젖꼭지를 입에 문 애까지 질질 끌고서. 남의 일에 신경 안 쓰는 서양인도 그들만은 정말 이해가 안 됐나 보다. 매번 승객에게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 세례를 받았다. 심지어 어쭙잖게 캠핑길에 올랐다가 자신과 아내는 돼지 독감에 걸려 밤새 구토하고, 애들도 울다 지쳐 녹초가 된 경험도 있다. 다시 한번 묻자. 뭐 이렇게까지…. “캠핑은 주의하고 깨어있을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칙칙하고 몽롱한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내가 누구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더 확연히 바라보게 만든다. 자연 속에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일상으로 복귀할 때면, 문명은 필연적인 것이자 당연한 것이 아니라 전보다 더 독단적이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저자가 볼 때 현대인은 ‘지평선 결핍’으로 병든 상태다. 도시와 첨단문명이란 초콜릿의 단맛에 길들여져 허리와 뇌에 군살이 더덕더덕 붙어 있다. 인류가 동물과 갈라지기 전, 아니 지구의 지배자가 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인간은 자연 속에서 생존법을 배워 왔다. 지금도 유목민은 광야를 떠돌며 천막생활을 영위하지 않나. 캠핑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에 가장 부합하는 생활방식일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 무조건 배낭을 짊어지고 떠나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모험과 낭만이란 겉멋에 취해 함부로 나섰다가 후회만 잔뜩 쌓이기도 한다. 텐트를 붙잡고 몇 시간을 끙끙거리다 ‘내가 지금 여길 왜 왔나’ 짜증만 솟구친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다 챙기다 보면, 그 고치기 힘들단 ‘장비 병’에 걸려 알토란 같은 쌈짓돈을 날리기 일쑤다. 그런데도 갈수록 캠핑족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저자에 따르면 캠핑의 역사 자체에 그 해답이 숨어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서구에서 각광받은 캠핑은 도시 생활의 무력함과 허약함을 보충해주는 멀티 비타민이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야생은 줄곧 희미해져 가는 개인의 존재감을 일깨우는 최소한의 도움닫기였다. ‘캠핑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 여행가 토머스 H 홀딩(1844∼1930·현대적 텐트를 만든 이기도 하다)은 “우리 내면에서 야만적인 요소가 모조리 다 순화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책은 참 재밌다. ‘나를 부르는 숲’을 쓴 유쾌한 여행 작가 빌 브라이슨의 가족 캠핑 버전을 마주한 기분이랄까. 꽤나 멋들어진 개그 감각을 지닌 데다, 별것 아닌 듯한 거리도 깊게 파고들어 역사와 배경을 헤집는 수작이 보통 아니다. 개인적으로 아직 브라이슨의 내공까진 아니라고 우기고 싶지만, 이만한 글 솜씨를 지닌 작가를 만나 너무 반갑다. 밤하늘 별빛이 쏟아지는 야외에서 랜턴 불빛에 비춰가며 읽을거리를 찾는 이에겐 특별히 더 추천하고 싶다. 물론 지금 간 캠핑이 그렇게 여유를 즐길 만큼 편안할 때 얘기겠지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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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자 다이제스트]세상을 바꾸는 씨드 外

    세상을 바꾸는 씨드슈테판 쉬르 외 지음·유영미 옮김/232쪽·1만6800원·프롬북스건축 디자인 예술 로봇학 교육 등 9개 분야에서 모험적인 아이디어로 새로운 가치를 찾은 혁신가들, 즉 ‘이노베이션 스턴트맨’ 9명을 소개했다. 친환경 일회용 변기 ‘피푸’를 개발한 안데르 빌헬손, 주민이 참여하는 협동조합형 ‘피플스 슈퍼마켓’을 만든 아더 도슨, 아프리카인들이 프로그래머를 고용하지 않고도 쉽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는 개방형 데이터 키트를 고안한 요 애노콰 등 인간 중심의 따뜻한 혁신을 꿈꾼 이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일이 반드시 국가나 기업, 단체일 필요가 없다는 깨우침을 준다.             왜 로봇의 도덕인가웬델 월러치 외 지음·노태복 옮김/448쪽·2만1000원·메디치영화 ‘터미네이터’에서는 인공지능 컴퓨터 ‘스카이넷’이 세상을 멸망시킨다. 현실 세계에서도 인간 없이 스스로 판단하는 인공지능 연구는 크게 발전하고 있다. 예일대 생명윤리센터 소속 윤리학자와 인디애나대 인지과학 교수가 공동 집필한 이 책은 로봇을 비롯해 모든 지능적 기계에 지침이 될 윤리적 규칙을 설명한다. 공상과학소설부터 첨단 로봇공학 연구 결과까지 다양한 자료를 들어가며 로봇의 도덕에 관한 연구가 현 시점에서 왜 필요하고, 기술적으로 어떻게 이뤄낼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              중앙유라시아 세계사크리스토퍼 백위드 지음·이강한 류형식 옮김/820쪽·4만2000원·소와당미국 인디애나대 중앙유라시아학과 교수인 저자가 유럽과 아시아를 통합한 세계사를 수십 년 동안 연구한 결과물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유럽과 아시아에 세워진 문명은 얼핏 전혀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뿌리를 자양분 삼아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아 왔다는 것. 특히 저자는 유라시아 세계사에 한국과 일본사도 비중 있게 포함시켜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전차와 무역 같은 키워드를 통해 전체 틀을 풀어내 설득력도 상당하다. 미국출판협회(AAP)가 ‘세계사·전기 부문’에서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다.                경제학자의 영광과 패배히가시타니 사토니 지음·신현호 옮김/416쪽·1만6000원·부키부제는 ‘케인스에서 크루그먼까지 현대 경제학자 14명의 결정적 순간’. 20세기 주요 경제학자들의 인생과 대표 이론, 영광과 패배의 순간을 추렸다. 일본의 경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현대 경제학의 토대를 쌓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에만 90쪽가량을 할애했다. 이어 영국에서 시작된 케인스 경제학을 받아들인 미국의 케인스주의자들, 케인스 경제학을 비판하며 융성한 통화주의자와 신고전학파 학자들을 다룬다. 케인스 경제학에서 미국의 경제학으로 이행해 가는 과정에서 미국으로 이주하면서도 사상의 독자성을 유지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출신 경제학자들, 신케인스주의자들의 고투까지 그렸다.}

    • 201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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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세 천경자 화백 어디서 어떻게 지내나?

    천경자 화백(90·사진)이 받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수당의 지급이 중단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천 화백은 1998년 섬유공예가인 맏딸 이혜선 씨(69)가 살고 있는 미국으로 건너간 뒤 2003년 뇌출혈로 쓰러졌다. 거동이 힘든 상태로 알려졌을 뿐 가족 외에는 직접 만난 사람이 거의 없어 천 화백의 상태를 놓고 온갖 소문만 무성했다. 예술원은 11일 “예술원 회원(현재 21명)은 월 180만 원씩 수당을 받는데, 천 화백의 경우 생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올 2월부터 수당 지급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예술원 관계자는 “천 화백이 거주하는 뉴욕의 총영사관에도 확인을 부탁했으나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예술원 측에서 수당 지급을 잠정 중단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자 이 씨는 어머니의 회원 탈퇴를 요청했다. 이 씨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사퇴서를 낸 것은 사실이며 이와 관련해 청와대, 국무총리실 등에 민원을 냈는데 연락이 없다”며 “아픈 어머니와 나뿐인데 우리가 무슨 힘이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어머니에 대해 아팠다, 죽었다 별 소문이 다 날 수 있지만 본인과 보호자가 아닌 사람에게 환자 상태를 알려주는 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투병 중인 천 화백을 모시고 있는 그는 “어머니의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묻기도 하지만 그런 걸 왜 우리가 밝혀야 하나. 가족이 아팠을 때 남에게 시시콜콜 말하거나 보이기 싫은 게 당연하지 않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예술원이 어떻게 하든 신경 안 쓰겠다”며 “그저 어머니가 옆에 계신 것으로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천 화백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해 말 예술원 개원 60주년 전시 ‘어제와 오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예술원에 따르면 이 씨는 ‘미인도’ 위작 시비와 관련된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전시에 작품을 낼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결국 4월 개막한 전시에는 예술원이 소장한 천 화백의 작품 2점이 걸렸다. 예술원의 윤명로 미술분과위원장(화가)은 “탈퇴 요청이 천 화백 본인 의사인지 확인되지 않은 데다 회원 가입과 탈퇴는 총회 인준을 받아야 할 사항인 만큼 천 화백의 회원 자격은 유효하다”고 말했다. 천 화백은 1998년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 90여 점을 기증해 미술관 2층에 ‘천경자 상설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지난해 초 한국을 방문한 이 씨는 ‘관리 소홀’ 등을 이유로 기증 작품의 반환을 서울시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미석 mskoh119@donga.com·정양환 기자}

    • 201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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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亞太센터 주관 국제회의에 北정부기구 첫 참석

    한국 정부가 이달 말 몽골에서 공동 개최하는 무형유산보호 협력회의에 북한 정부 기구가 처음으로 참석한다.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사무총장 이삼열·이하 아태센터)는 10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30일∼7월 1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아태센터와 유네스코 베이징사무소, 몽골 교육문화부 주최로 열리는 ‘동북아시아 무형유산 네트워크와 정보교류 강화 협력회의’에 북한이 참가 의사를 밝혀왔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기관이 주최하는 무형유산 관련 국제회의에 북한이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회의에는 북한 무형유산보호청의 노철수 차장을 비롯해 관계자 6명이 참석한다. 지난해 신설된 무형유산보호청은 한국 문화재청과 동급 기관으로, 노 차장은 국장급 이상 고위급 인사다. 북한은 2008년 11월 세계에서 105번째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에 가입했으며, 아태센터와 베이징사무소의 지속적 요청으로 아태 지역 회의에 처음 참가하게 됐다. 한국은 2003년 발표된 보호협약에 2005년 2월 세계 11번째로 가입했다. 이번 협력회의는 동북아 지역 무형유산보호를 위한 공공협력사업 발굴을 목적으로 마련된 자리다. 인도네시아와 인도 국제전문가도 참여해 사업 발굴 가능성을 높일 예정이다. 이 총장은 “북한 무형유산의 현황을 파악할 기회를 얻는 한편, 무형유산을 매개로 북한과 교류 활로를 개척할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아태센터는 2009년 유네스코 제35차 총회에서 공식 승인받은 뒤 2011년 문화재청 산하 특수법인으로 설립된 국내 유일의 문화 관련 국제기구다. 국제·국내법에 따라 ‘유네스코 카테고리2 기구’로 세워진 센터는 유네스코가 직접 관리하는 카테고리1 기구와 달리 설립 회원국이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아태센터는 한국 중국 일본이 각각 △정보와 네트워킹 △훈련 △연구로 기능을 분담해 공동 협력을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아태센터는 26∼28일 전북 전주시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세계 30여 개국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 200여 명이 참석하는 ‘2014 무형유산 NGO(비정부기구) 국제회의’도 개최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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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산 왕궁리 유적’ 발굴 25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 열려

    사적 제408호인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 발굴 조사 25주년을 기념한 국제학술심포지엄 ‘동아시아 고대 도성과 익산 왕궁리 유적’이 11일까지 열린다. 이 심포지엄은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와 전북 익산시가 주최하는 행사로 한국 중국 일본 학자 20여 명이 참여했다. 10일 한중일 동아시아 도성제도와 도성조사연구의 방법론에 이어 11일에는 ‘고대도성조사의 연구 성과와 보존복원’에 대해 다룬다. 1989년 발굴 조사가 시작된 익산 왕궁리 유적은 마한의 도읍에서 출발해 백제 무왕이나 후백제 견훤 시대로 이어지는 중요한 유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성벽과 내부조사가 마무리되며 정원과 후원, 화장실과 같은 다양한 시설의 면모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현재 궁성 외곽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궁성의 복원 정비도 추진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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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무공 장검이 일본도?… 그 說을 단칼에 베어라

    《 “충무공의 장검은 조선 환도를 기본으로 외래적 요소가 부분적으로 결합돼 만들어진 우리 고유의 칼이다.” 보물 제326호로 지정된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의 장검 2자루는 어쩌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칼이다. 조선 도검 자체가 드물게 남은 데다 왜란의 풍파에서 조국을 수호했다는 상징성까지 더해져 민족의 가슴에 자긍심으로 자리 잡았다. 실물은 아니지만, 서울 광화문에 선 장군 동상의 허리춤을 줄곧 지켜와 대중에게 익숙하다. 》올해는 1594년 장검이 제작된 지 7주갑(周甲), 420주년을 맞는 해. 하지만 국민적 사랑을 받는 보물임에도 실체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오히려 세간에 여러 설이 난무하며 오해받는 대목이 많다. 그런데 최근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가 펴낸 전시도록 ‘겨레를 살린 두 자루 칼, 충무공 장검(8월 31일까지)’에 실린 이석재 경인미술관장의 ‘이 충무공 장검 분석―성웅의 칼, 그 속설과 실체’를 보면 그간의 궁금증을 상당히 풀 수 있다. 먼저 충무공 장검이 일본도란 시각은 사실이 아니다. 단지 필요에 의해 일본도 양식을 일부 받아들였을 뿐이다.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전까지 200년이 넘는 평화 시기를 보냈다. 이 때문에 오랜 전란을 겪은 일본처럼 도검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짧고 가는 칼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맞붙자 우수한 무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길고 강한 일본도의 칼날을 수용한 것이다. 이 관장은 “왜군이 조총을 앞세워 쳐들어오자 이에 대항해 조선도 조총을 생산해 맞선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당시 의병장 곽재우(1552∼1617)와 권응수(1546∼1608)의 장검도 일본도의 칼날을 본떴다. 그럼에도 이순신 장검이 우리 것이라 할 수 있는 건 다른 양식은 대부분 조선식이기 때문이다. 칼자루와 칼집 형태, 장식이나 입사문양, 가죽 끈도 모두 한반도에서 자생했거나 오래전 중국에서 건너와 토착화한 방식이다. 흔히 장검 자체가 휜 것을 두고 “전통 도검은 직선적 형태뿐”이라 주장하는데, 고려 기록에 이미 곡도(曲刀)가 등장한다. 이와 관련해 충무공 동상의 장검도 풀 오해가 있다. 한때 일본도를 차고 있다는 논란이 컸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 관장은 “일본 전문가들도 자국의 가타나(刀)와 관련 없다고 확언했다”고 말했다. 동상의 칼은 일본도를 흉내 낸 조선식이 맞다. 다만 원본과 비례도 맞지 않고 장식 크기나 간격도 왜곡됐다. 고증이 부족한 ‘졸작’인 건 분명하지만, 일본도는 아니다. 충무공의 장검은 2자루가 각각 197.2cm와 196.8cm(무게 약 4.3kg)에 이른다. 그래서 자신의 키보다 큰 칼을 휘두르는 장군의 모습을 떠올리는 이가 많다. 이 관장은 “이 칼들은 실전이 아닌 의장용”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칼날에 격검흔(擊劍痕·검이 부딪친 흔적)이 없다. 게다가 조선후기 문신 박종경(1765∼1817)이 지은 ‘원융검기(元戎劒記)’에 “공이 실제 사용한 검은 쌍룡검(雙龍劒)”이란 문구가 나온다. 쌍룡검은 양날을 쓰는 검으로 길이가 90∼100cm로 추정된다. 의전 목적이었다고 수준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과학적 분석 결과 충무공 장검은 열처리 흔적이 확인됐으며, 오랜 세월에도 부식이 현저히 낮다. 잡 성분이 섞이지 않은 양질의 쇠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담금질했단 뜻이다. 이 관장은 “충무공 장검은 조선의 수준 높은 제철 기술과 공예 문화를 바탕으로 적의 무기 양식마저 우리 것으로 받아들인 특급 명품”이라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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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조선과 중화’ 펴낸 배우성 교수

    4일 저녁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배우성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의 목소리는 왠지 편안한 야구중계 해설자 같았다. 극적 순간에도 흥분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정세를 분석하는 느낌이랄까. 그가 이번에 펴낸 ‘조선과 중화’(돌베개)가 ‘중화(中華·중국 중심의 세계관)’를 대하는 입장도 그랬다. 껄끄러운 주제인데도 배 교수는 “당대에 실제로 벌어진 역사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반적으로 중화주의는 사대주의의 원류라고 탐탁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일단 주의부터 떼자. 주의라고 하면 하나의 학설이나 이론으로 한계가 지어진다. 하지만 고려 말부터 대한제국까지 이어진 중화는 당시 한반도를 관통하는 주류적 세계관이자 사고방식이었다. 그 시대에 중화가 어떤 식으로 작용했는지 차분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왠지 중화에 대한 옹호론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그런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리 받아들이는 건 정말 이 책을 오독하는 거다. 우리는 역사의 인과관계를 따질 때 너무 몇몇 현상만 과장하거나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디 세상일이 그런가. 마찬가지로 중화도 동전의 양면, 아니 수십 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겐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물론 우리로선 아쉬운 점도 있다. 좀더 넓은 세계관과 현실인식을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과 똑같은 가정이다. 삼국인 모두가 그저 치열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중화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는 사례를 꼽는다면…. “단재 신채호 선생은 민족주의에 입각해 중화주의를 노예적 사상으로 비판했다. 그런데 조선 후기 학자 이종휘(1731∼1797)만은 ‘요동회복론’을 내세워 단군과 고대사를 자주적으로 이해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요동회복론은 중화적 시각의 산물이었다. 오랑캐(만주족)로부터 중화의 본산 명나라와 계승자인 조선을 지키자는 인식이었다. 중화를 예속적 가치로 판단하는 것도, 여기서 자주나 민족을 읽어내려 하는 것도 이분법적인 접근법이다.” ―역사에 함부로 잣대를 들이대지 말자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나. “후대에선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자면 중화가 마뜩잖은 점이 많은 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색안경을 벗고 다가가되 최소한의 냉정한 거리는 유지하는 게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길이라고 봤다. 옹호나 비판하기에 앞서 중화란 세계관이 만들어낸 궤적에 주목하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 중화 다음으로 요즘 관심을 갖는 주제는 ‘사대(事大)’다. 사대는 주체성 없이 대국을 섬긴 굴욕적 외교일까, 대륙의 압력에서 나름 생존의 길을 모색한 방식일까. 이 역시 판단은 좀 미뤄두고 역사 자체를 읽으려 한다. 중화도 마찬가지지만 사대 역시 무 자르듯 이야기할 수 없다. 역사란 인간의 삶이다. 세상은 다양하고 복잡한 변수가 뒤섞여 이뤄지는 것 아닌가.”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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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승 지낸 송시열은 왜 관복입은 인물화가 없을까

    조선 후기 유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은 노론의 영수로 주자학의 대가라는 상찬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런 우암이 조선시대 사대부 가운데 초상화로 가장 많이 그려진 인물이라는 점이 새롭게 밝혀졌다. 최근 국립춘천박물관이 펴낸 전시 도록 ‘초상화로 보는 강원의 인물’에 실린 이혜경 학예연구사의 논문 ‘조선시대 초상화의 제작 목적’은 전해져 내려온 우암의 초상화만 30점이 넘는다고 밝혔다. 경기 화성의 매곡서원부터 전북 정읍의 고암서원, 충북 충주의 누암서원, 경남 거제의 반곡서원에 이르기까지 전국 곳곳의 사원과 영당(영정을 모신 사당)에 봉안됐다. 조선 유학자를 대표하는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의 초상화는 조선시대 것이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압도적 다수다. 우암의 초상화가 이토록 많이 제작된 건 당시 주류 성리학자의 절대적 신봉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자(朱子) 제일주의자’였던 우암은 “조선 후기 정치계와 사상계를 호령했던 인물”(정성희 실학박물관 학예연구사)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3000여 번이나 등장하며, 사약을 받고 숨졌음에도 문묘(文廟)에 배향됐다. 게다가 유배와 복권을 반복한 극적인 생애와 출사보단 사림을 지킨 자세가 더해지며 후대로 갈수록 신화적 추종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우암의 초상화는 하나같이 관복이 아닌 유복(儒服)을 입은 모습으로만 그려졌다. 주로 복건(幅巾)에 심의(深衣·선비의 겉옷)를 걸친 모습이다. 관직 생활이 짧긴 했어도 좌의정까지 지냈던 걸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는 우암의 의도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였다. 우암의 시문집 ‘송자대전(宋子大全)’에 기록된 제자 권상하(1641∼1721)와의 대화를 보면 그 뜻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우암은 “간혹 조정에 나가긴 했으나 그때마다 다른 이의 공복(公服)을 빌려 입었다”며 “스스로 공복을 지은 일이 없으니 심의가 가장 적당하다”고 말했다. 스스로 유학자의 복장이 자신에게 가장 어울린다고 여긴 것이다. 이는 후대 사대부의 초상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제자나 그를 따랐던 문인인 권상하와 정호(1648∼1736), 권섭(1671∼1759)도 유복 차림의 초상화만 만들었다. 이혜경 학예사는 “유복 차림 초상화는 20세기 초 유학자들에게까지 전통으로 이어져 하나의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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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상하는 흰개미… 강릉 선교장도 위험하다

    지난달 30일 강원 강릉시 선교장(船橋莊·중요민속자료 제5호). 며칠째 한여름마냥 30도를 훌쩍 넘던 날씨는 이날 역시 만만치 않았다. 오전 9시를 갓 지났건만 내리쬐는 땡볕에 살갗이 따가웠다. 하지만 선교장은 99칸 사대부가답게 말끔하게 탁 트여 청량감을 뽐냈다. 전날부터 강릉 지역 문화재를 점검해온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흰개미조사팀은 표정이 심각했다. 흰개미 활동 탐지견인 보람과 보배(잉글리시 스프링어 스패니얼)가 연신 목조건물 앞에 멈춰 섰기 때문. 탐지견들은 흰개미 냄새를 맡으면 그 자리에 코를 대고 정지하도록 훈련받았다. 선교장의 18개 동 대부분에선 흰개미 흔적이 감지됐다. 사랑채인 열화당(悅話堂)은 7군데나 됐다. 함수율(수분 포함 비율)도 모두 흰개미가 침입하기 적당한 20∼60% 범위 내였다. 조사팀의 서민석 박사는 “진동탐지기상으론 현재 흰개미가 살고 있지 않지만 이미 피해를 입히고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한국에선 흰개미로 인한 문화재 피해가 2007년 7.6%에서 지난해 11.5%로 증가해 왔다. 흰개미의 북방한계선은 원래 북위 32도였지만 계속 북상해 강원도도 안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학계에선 개마고원(북위 42도) 이남은 모두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전날 점검한 강릉의 대표적 목조문화재인 해운정(海雲亭·보물 제183호)과 오죽헌(烏竹軒·보물 제165호)에서도 흰개미 흔적이 탐지됐다. 서울의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됐다. 썩은 나무를 분해해 자연으로 되돌리는 흰개미는 생태계 측면에선 보탬이 되는 익충(益蟲)이다. 한반도에 서식하는 흰개미는 일본 규슈(九州) 흰개미 1종으로 동남아 흰개미에 비해 온순한 성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숲이 줄어들자 ‘이미 죽은 나무인’ 목조문화재에까지 달려들고 있는 것. 문화재청은 연간 13억 원을 들여 훈증과 방충제 도포, 지반 약품 처리, 부비트랩 설치와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흰개미의 피해를 최소화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1박 2일 현장을 동행해본 결과 인력이나 예산 부족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조사팀은 이틀간 강릉 지역 3군데를 점검하기도 빠듯했다. 국가지정문화재 가운데 목조문화재는 전국에 모두 321건. 서 박사는 “현재 인원으론 1년에 많아야 2, 3개 도의 점검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시도지정문화재(2019건)는 점검할 엄두도 못 낸다. 탐지견도 2마리뿐. 한 마리당 2억 원 안팎의 훈련 비용이 드는 탐지견은 문화재 지킴이 협약을 맺고 있는 삼성생명 탐지견센터에서 지원하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건물은 흰개미가 살기에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갖춰져 특히 취약하다. 최근 극심한 피해를 입은 전북 부안군 내소사(전북도 기념물 제78호)의 지장암과 경남 창녕군 술정리 하씨 초가(중요민속자료 제10호)의 한 가옥은 모두 사람이 거주하는 건축물이었다. 정소영 학예연구관은 “미국은 목조건물의 흰개미 피해를 화재와 똑같은 수준으로 취급한다”며 “이제 강원도도 안전지대가 아닌 만큼 위기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강릉=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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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소가 된 나무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이…

    서울 종로구 청와대로 갤러리인에서 열린 김명범 작가(38)의 개인전 ‘시소(SEESAW·사진)’에 전시된 작품들은 하나같이 그냥 스쳐 지나가기 어렵다. 망치와 곡괭이에 지팡이가 달려 있거나 풍선에 사랑니나 물고기가 매달린 형태의 작품들이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 갸우뚱거려진다. 전시 제목이자 메인 작품인 시소는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다. 커다란 졸참나무로 만들었다는 작품은 어린 시절의 추억과 왠지 모를 쓸쓸함이 교차한다. 한때는 살아있는 생명체였으나 이제는 시소가 된 나무에서 작가는 “운동성과 생명성이 이어져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현실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여타 전시작도 마찬가지다. 곡괭이와 결합된 지팡이는 예술이란 노동 속에서 나이를 먹어가는 작가 본인을 상징한다. 21일까지. 02-732-4677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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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끊임없는 회의에서 탈진하지 않으려면…

    조직에서 회의는 정말 필수불가결한 요소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조직이 굴러가려면 회의를 통한 조정과 결정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효율적인’ 회의에만 해당되는 말이다.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는 회의, 너무 많다. 미국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저자는 그런 쓸데없는 회의가 안타깝다. 오죽하면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회의가 조직을 취약하게 만든다”고 했을까. 하지만 명확한 개념을 갖고 진행하는 회의는 조직은 물론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저자는 이를 ‘모던 미팅(modern meeting)’이라고 부른다. 모던 미팅에 필요한 7가지 법칙은 의외로 간단하다. △의사결정을 위한 회의는 지양하고(회의에서 어떤 결론을 내려는 건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란다) △빠르게 진행하며 예정대로 끝내야 한다. △꼭 필요한 사람만 참석하고 △준비가 안 된 이는 과감히 빼야 한다. △명확한 실행 계획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고 △단순히 정보 교환을 위한 회의는 불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브레인스토밍을 곁들이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조직원 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다. 수직적이건 수평적이건 간에 어떤 의견도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먼저 조성돼야 한다. 리더가 귀는 닫은 채 주장만 되풀이하고, 조직원은 책임질 마음도 없이 눈치만 본다면 모던 미팅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 책이 제시하는 기법이 그리 와 닿지는 않는다. 구체적 사례 없이 명언집처럼 “…하라”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다 읽고 책을 덮었는데 다시 펼쳐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다음 회의 때 조금은 자세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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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행복은 개를 서핑하게 만드는 새우깡”

    세상에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 인간이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은 행복을 원한다. 그게 물질적인 보상이든, 정신적인 충만이든 행복은 삶의 목표가 된다. 그런데 이 책, 행복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지난해 여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행복을 진화론의 관점에서 ‘쉽게’ 설명하는 첫 저서를 집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바로 이 책이다. 행복은 진화의 산물이며, 인간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도구란 설명이다. 갑자기 과학 얘기라 머리 아프다고? 전혀 걱정할 것 없다. 이 책, 두껍지도 않거니와 정말 문장이 쉽고 깔끔하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한국 학자들 솔직히 대부분 글이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도 편안하게 읽힌다. 내용도 간명하다. 행복은 “개를 서핑하게 만드는 새우깡”이다. 오랜 훈련을 통해 서핑 보드를 탈 수 있는 개가 있다고 치자.(실제로 있다.) 개는 서핑을 하겠단 생각을 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됐다. 주인이 새우깡으로 유혹해 바다로 이끌었고, 보드에 올라타게 했다. 인간에게 행복이 이런 존재다. 생존이란 보드에 올라타도록 주어지는 새우깡이 바로 행복(쾌감)이다. 인간을 업신여긴다고 반발하는 이도 있겠다. 그런데 사실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그간 너무 높게 봐왔다. 인류가 동물과 갈라져 문명을 이룬 시간이 얼마나 될까. 인류의 역사를 365일로 치면 고작 2시간 정도다. 나머지 364일 22시간은 싸움과 사냥, 짝짓기에 전념해왔다. 인간은 동물이니까. 행복은 그런 동물을 특별한 진화로 이끈 매개체 가운데 하나였다. 상호 교류가 주는 쾌감 덕분에 집단 사회를 이루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솔직히 서평이 필요 없는 책이다. 그냥 읽어보시라. 왜 한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의 국민은 북유럽 국민보다 행복하지 않은지, 행복이 진화의 산물이라면 유전자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결국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공감하고 안 하고는 각자의 몫이나, 시중의 수많은 행복지침서와 비교를 불허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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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제국 배경의 영문 모험소설, ‘시카고의 공주’ 초판 국내 첫 공개

    20세기 초 대한제국에서 한 서양인 남녀가 겪은 모험담을 그린 영문 소설 ‘시카고의 공주(A Chicago Princess)’ 1904년 초판(사진)이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시기 한반도를 소재로 다룬 서양소설의 존재도 처음 밝혀졌거니와, 작가 로버트 바(1849∼1912)는 셜록 홈스 패러디 소설의 개척자로 알려진 인물이라 관심을 끈다. 한국 관련 해외 서지자료를 수집하는 ‘아트뱅크’의 윤형원 대표(68)는 28일 “미국 뉴욕의 프레더릭 A. 스토크스 출판사가 1904년 출간한 소설 ‘시카고의 공주’ 1쇄본 2권을 최근 해외 고서적 경매시장에서 구입했다”고 밝혔다. 소설은 총 306쪽에 이르는 장편이다. 소설 내용은 한국인 시각에서 보면 다소 황당한 면도 없지 않다. 동양 황실에 관심이 많은 미국 백만장자의 딸이 영국 전직 외교관의 도움을 얻어 일본과 한국을 방문한다. 배를 타고 제물포로 입항한 이들은 서울에서 대한제국 황실과 접견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서양 여인의 미모와 매력에 반한 황제가 그녀를 부인으로 맞고 싶어 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결국 이들이 천신만고 끝에 조선을 탈출해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100% 허구의 내용이다. 윤 대표는 “작가가 당시 한국에 대한 구체적 정보 없이 상상력을 발휘해 쓴 작품”이라며 “그래도 ‘Emperor of Corea’와 같은 표현으로 미뤄보건대 대한제국의 존재는 정확히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캐나다 국적인 소설가 바는 미국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1881년 영국으로 건너간 뒤 소설가로 활발히 활동했다. 1892년 그가 창간한 문예지 ‘아이들러(The Idler)’엔 평소 친분이 깊던 코넌 도일과 마크 트웨인이 참여하기도 했다. 특히 코넌 도일과는 막역한 사이로, 그의 허락을 얻어 ‘루크 샤프(Luke Sharp)’라는 필명으로 쓴 소설 ‘페그람의 괴사건’은 세계 최초의 셜록 홈스 패러디 문학으로 유명하다. 윤 대표는 “주로 탐정물을 썼던 작가가 한국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배경으로 로맨스 가득한 모험활극을 집필했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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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대 200여년 걸쳐 평균수명 80세… 농암 가문 장수 비결은 ‘積善愛日’

    예부터 민간신앙은 세속적 바람과 관련된 게 많다. 난초가 자손 번창을 이끈다거나 모란이 부귀영화를 부른다는 식이다. 무병장수 역시 대표적 욕망 가운데 하나. 그런데 이 오래 사는 비법은 ‘어부가’로 유명한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1467∼1555)의 집안에서 배우는 게 나을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최근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상설전시실에 마련한 전시 ‘영천 이씨 농암 이현보의 가족 이야기’에 소개한 자료를 살펴보면 농암 집안의 무병장수는 거의 미스터리급이다. 농암 본인도 88세까지 장수했지만 윗대와 자손 역시 놀라울 정도다. 고조부(84세)와 증조부(76세)를 비롯해 할아버지 할머니(84, 77세), 아버지 어머니(98, 85세)도 오래 살았다. 숙부와 외조부, 외숙부는 졸수(卒壽·90세)를 훌쩍 넘겼다. 농암의 여섯 아들은 평균 76.5세를 살았고, 손자와 증손자도 장수했다. 7대 200여 년 동안 집안 평균 연령이 80세 안팎이었다. 농암 집안 장수의 비결은 뭘까. 사료를 훑어봐도 무슨 비전(秘傳)의 묘약이나 수련법은 보이지 않는다. 최순권 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효를 바탕으로 한 가족의 우애와 이런 행복을 주위에도 베푸는 어진 가풍”을 으뜸 이유로 꼽았다. 농암은 세상을 떠난 뒤 나라에서 ‘효절(孝節)’이란 시호를 받았을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고 집안 화목을 중시했다. 70세 넘은 노구를 이끌고 부모를 위해 때때옷을 입은 채 춤을 춘 일화는 유명하다. 이때 부친을 포함해 고향 안동 인근 아홉 노인을 모셨던 잔치가 바로 ‘구로회(九老會)’다. 중국의 전설적 효자 노래자(老萊子)의 사례를 본보기로 삼았다고 한다. 구로회는 농암이 열었지만, 세상에 알린 이는 장남인 벽오 이문량(碧梧 李文樑·1498∼1581)이었다. 벽오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아 농암이 팔순이던 1547년부터 매년 구로회를 열었다. 형제들 또한 언제나 함께 도우며 우애를 다졌다. 최 학예관은 “넉넉한 가세가 아니었음에도 농암 집안은 가족 사랑과 지역사회 기여를 꾸준히 이어갔다”며 “20세기인 1902년까지 구로회를 개최한 기록이 있다”고 설명했다. 농암의 여섯 아들은 서로를 아끼는 마음도 남달랐다. 벼슬살이에 나섰던 형제는 모두 더 큰 관직을 사양하고 하루 이틀 거리에 모여 살았다고 한다. 부모를 모시고 매달 1일과 15일 함께 모였는데, 이 집안 행사는 부모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지속됐다. 굳건히 새겨진 가풍은 세월이 흘러도 흔적을 남긴다. 효와 나눔의 정신이 가득한 구로회는 1979년과 2012년에도 그 뜻을 기리며 재연됐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농암종택은 현재 종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80세 이상 부모를 모시고 오면 가족 모두의 아침 식사비를 받지 않는다. ‘적선애일(積善愛日·선행을 쌓고 하루도 아끼며 효도하라).’ 이것이야말로 대대로 이어온 농암 집안의 가훈이자 장수법이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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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존 最古 고려 청동바라 찾았다

    한반도에 현존하는 타악기 바라(발(나,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고려 11세기 청동 바라 두 쌍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바라 중에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곡성 태안사 청동 대바라(제956호)’보다 4세기가량 앞서 보물급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동국대박물관(관장 정우택)은 27일 “본교 건학 108주년을 기념한 상설전시실 재개관에 맞춰 수장고 유물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1087년에 제작된 고려시대 청동 바라 4점을 새로이 찾았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1970년 입수해 지금까지 수장고에 잠들어 있던 이 바라를 최근 재개관과 함께 일반에 첫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바라 4점은 각각 지름 30cm 크기로 2쌍으로 구성됐다. 3점에는 24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명문에 따르면 이 바라는 ‘대안(大安) 3년 음력 7월’에 제작됐다. 대안은 중국 요(遼)나라 도종(道宗)의 연호로, 고려 선종(宣宗·1049∼1094) 4년인 1087년에 해당한다. 바라를 제작한 이는 이름 없이 광주목관(廣州牧官)이라고만 적혀 있다. 고려시대 광주목은 지금의 경기 광주시와 성남시, 서울 강남·관악구 일부가 포함된 지역. 목관은 목을 다스리는 관리의 직함으로, 이 바라가 관아에서 정식으로 의뢰 제작한 공공기물임을 알 수 있다. ‘반야도량발자(般若道場발者)’라는 문구도 눈길을 끈다. ‘반야도량’은 고려시대 ‘반야바라밀다경’을 강설하는 불교의식을 뜻하고 ‘발자’는 바라를 일컫는 말이다. 나라에 가뭄이 들거나 전염병이 돌 때 이를 물리치기를 바라는 현세구복(現世求福)의 기원이 담긴 것이다. 김순아 학예연구원은 “이 바라는 개인적 연주를 위해 만든 게 아니라 광주목이란 정부기관이 주최하는 불교행사의 의례용 악기였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바라는 전남 곡성군 태안사에서 소장한 청동 대바라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앞선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태안사 바라는 조선 세종 29년(1447년) 효령대군이 동생 세종과 왕비, 세자의 복을 빌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보다 360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셈이다. 정 관장은 “현존 최고(最古)의 바라로 확인된 만큼 더욱 세밀한 학술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동국대박물관은 이번 재개관과 함께 그간 보존 관리 문제로 오랫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국보와 보물 상당수도 일반에 공개했다. 안중근 의사 유묵(遺墨·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 가운데 가장 유명한 보물 제569-2호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은 10년 만의 공개다. 국보 제176호인 ‘백자 청화 홍치2년명 송죽무늬 항아리’와 보물 743호 ‘정조필 파초도’도 2006년 특별전 이후 8년 만에 실물을 볼 수 있게 됐다. 무료. 02-2260-3722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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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 금동관모-신발… 경기지역서 첫 출토

    경기 화성시에서 백제 유물로 추정되는 금동관모와 금동신발이 출토됐다. 경기 지역에서 4∼5세기 백제의 금동관모와 신발이 발굴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26일 “화성시 향남2지구 동서간선도로 인근에서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한국문화유산연구원이 덧널무덤(목곽묘)에서 금동관모와 신발, 금귀고리, 환두대도(環頭大刀·손잡이에 둥근 고리가 있는 큰 칼)를 찾았다”고 밝혔다. 그간 백제 금동관모는 충청과 전라 지역에서 7차례, 금동신발은 10여 차례 나왔다. 출토된 금동관모는 풀과 꽃무늬(草花紋)가 투조(透彫·면을 도려내 형태를 드러내는 조각법)됐고, 안쪽엔 백화수피(白樺樹皮·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내관(內冠)이 들어 있는 형태. 금동신발은 현장 수습이 진행되고 있다. 현남주 한국문화유산연구원 학예실장은 “유물 수준으로 볼 때 한성백제시대 이 지역을 지배하던 상류층의 무덤으로 보인다”며 “경기 지역에서 백제 금동관모와 신발이 나온 게 처음인 만큼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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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릿한 채색에 몽환적 느낌… 자연의 아름다운 공존 묘사

    중국을 대표하는 현대 수묵화가 톈리밍(田黎明·59)의 국내 첫 개인전 ‘햇빛 공기 물: 톈리밍 중국화전’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모두 33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부드러운 햇살과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사람과 자연의 아름다운 공존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중국 전통 수묵화 기법에 바탕을 둔 작품들은 옅고 흐릿한 채색으로 몽환적인 느낌이 강하다.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소녀나 어린아이들은 동그란 얼굴에 신비한 눈빛과 미소를 머금었다. ‘자동차 시대’ ‘도시의 소리’ ‘도시인’처럼 빌딩 숲을 소재로 했을 때조차도 다소 촌스러울 정도로 소박한 분위기다. 6월 15일까지. 02-720-1524∼6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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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책 vs 책]‘환경’ 외치는 대통령보다 쓰레기 줍는 市長이 낫다

    다음 달 4일이면 한국에선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하지만 요즘 암울한 사회적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왠지 모르게 열기가 떨어진다. 지방선거가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을 세우는 중요한 일이란 걸 모르진 않건만, 아무래도 훨씬 ‘정치적으로 중요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보단 관심이 덜해 보인다. 하지만 최근 연달아 나온 ‘뜨는 도시 지는 국가’와 ‘작은 도시 큰 기업’을 읽는다면 이런 생각이 조금은 바뀔 듯도 싶다. 사실 두 책은 선거나 정치 관련 서적은 아니다. 담고 있는 내용도 결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관심이 왜 중요한지, 거창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생활 속 실천에 따른 변화가 왜 필요한지를 체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함께 읽어봄 직하다. 먼저 미국 뉴저지 주 럿거스대 명예교수인 노장 사회학자가 쓴 ‘뜨는 도시…’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식에 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는 책이다. 누구나 인식하듯, 현 지구는 기후변화와 민족·종교 갈등, 테러와 빈곤 같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더이상 국가(혹은 정부)는 이를 해결하거나 조율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책상머리에서 입씨름이나 하는 정부 간 국제기구에도 기대할 게 없다. 더이상 정부에 의존하지 말고, 한계에 봉착한 국가를 뛰어넘는 ‘도시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얼핏 과격하게 들리는 이 제안은 기본바탕을 잘 살펴봐야 한다. 저자는 국가의 대안으로 도시를 설정한 게 아니다. 국가 정부라는 거인들의 틈새시장에서 비교적 유연하고 발 빠른 대처가 가능한 시 정부의 시스템이 효율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제언이다. 다시 말해, 정부기구에 비해 훨씬 덜 정치적이고 보다 더 생활밀착적인 도시기구가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는 논리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거대강대국 미국과 중국의 상황을 보라. 나름 지속적으로 갈등 해결에 전력을 투구하는 것처럼 보이긴 하나, 막상 나오는 결과물은 속 시원한 게 없고 그저 그런 수준이다. 하지만 이를 뉴욕과 홍콩, 또는 워싱턴과 상하이 같은 도시가 협력을 추구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치적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현실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실제로 최근 ‘세계 도시 네트워크’는 상당히 활발하게 작동 중이다. 지난해 서울이 사무국을 유치해 화제를 모았던 아시아·태평양 지역 다자간 지방정부연합체인 시티넷(CITYNET)을 비롯해 다양한 도시 연합기구들이 가시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지역경제는 물론이고 환경과 안보 같은 이슈에서도 느릿느릿한 국가 연합체에 비해 신속하게 합의를 이뤄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각 도시로 적용하는 과정도 아무래도 정부보다는 체감속도가 높다. ‘뜨는 도시…’가 도시 중심의 변혁이란 거대담론을 다루고 있다면, ‘작은 도시…’는 보다 실제적인 도시 번영의 현장을 살핀 책이다.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로 미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위원인 저자는 세계적 기업들이 본사를 두고 있는 작지만 내실 있는 해외 중소도시들을 직접 찾았다. 저자가 보기에 이 도시들은 대기업을 유치했기에 경쟁력을 획득한 게 아니다. 자체적으로 특색 있는 도시문화를 잘 가꾼 덕분에 훌륭한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자양분을 공급하는 저력을 갖추게 됐다. 세계적인 가구회사 이케아의 본사가 있는 스웨덴 알름훌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총 인구가 1만 명이 채 되지 않지만, 근검절약과 실용주의 정신을 최고 미덕으로 치는 곳이었다. “저렴하고 실용적이며, 단순하면서 깔끔한” 이케아의 기업문화는 바로 대대로 이어진 도시의 생활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스타벅스가 탄생한 미국 시애틀이나 프랑스 항공 산업의 허브가 된 툴루즈 역시 지방도시와 기업이 문화와 가치관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한 본보기다. 물론 두 책의 기본적 ‘대전제’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모든 도시는 국가에 속한다. 도시 중심의 혁신도 국가가 받쳐줄 때나 가능하다. 자기 도시의 이득이란 근시안에 빠져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꽤나 많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미 현대사회에서 도시 인구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개발도상국은 78%)을 차지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이 원칙에 얽매이는 동안, 시장(市長)은 쓰레기를 줍는다”는 제언은 참 의미심장하다. 오히려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염증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도시 문제에 훨씬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지방선거에서 목소리만 큰 사람이 아니라 진짜 우리의 앞마당을 쓸고 닦을 인재를 뽑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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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원불멸의 길’ 아시아 道敎판화의 세계

    지난해 12월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의 도교 문화’ 전에 이어 강원 원주시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이 23일부터 특별전 ‘아시아 도교 판화의 세계’를 개최하며 연이어 도교 유물전을 선보인다. 부처님 모시는 사찰 부설 박물관이 도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뭘까. 도교가 흥했던 시점을 보면 얼추 답을 찾을 수 있다. 한선학 관장은 “왕조 교체기처럼 세상살이가 팍팍할 때 도교는 민초에게 현세적 희망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동아시아 판화 100여 점 역시 민간신앙과 결부돼 답답한 삶을 타개하고픈 기층민의 욕망이 투영돼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은 중국 명나라 수성노인도(壽星老人圖)다. 무병장수를 축원하는 뜻이 담긴 이 가채판화(목판으로 밑그림을 찍고 붓으로 색칠한 판화)는 ‘융경(隆慶·명 목종의 연호) 임신년’(1572년)이란 제작연대가 나와 있다. 박물관이 지난해 유럽에서 입수한 것으로 이 정도 대형 판화(148×74cm)는 중국에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중국 작품이 다수지만 다른 나라 작품도 인상적이다. 소리 내 읽으면 악귀를 쫓고 질병도 낫게 한다는 옥추경(玉樞經·강원 유형문화재 제154호)은 1570년(선조 3년) 전남 무등산 안심사(安心寺)에서 간행한 목판본이다. 구체적 법문은 물론이고 다양한 신선의 모습을 세세하게 묘사해 민간 도교 연구에 중요한 사료다. 일본의 시치후쿠진(七福神) 판화는 중국 도교를 자체적으로 해석해 행운의 신 7명을 모시는 토착사상이 담겨 흥미롭다. 10월 12일까지. 3000∼5000원. 홈페이지(www.gopanhwa.or.kr) 참조. 033-761-7885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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