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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36)에게 2021년 하반기는 ‘브람스 시즌’이다.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곡 전곡을 일리야 라시콥스키(성신여대 교수)의 피아노와 함께 연주한다. 이에 앞서 8월 롯데콘서트홀이 주최한 ‘클래식 레볼루션 2021’에선 그가 리더로 있는 노부스 콰르텟이 브람스의 현악4중주곡 전곡과 다른 실내악 작품들을 연주했다. 이달 8일에는 지중배 지휘 울산시립교향악단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흐린 시월의 연휴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음악 팬들에게 유독 브람스는 ‘가을에 어울리는 작곡가’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맞는 얘기일까요. “브람스는 흐리고 바람 부는 날이 많은 독일 북부의 함부르크에서 자랐죠. 그의 작품엔 내성적이고 어두운 감성을 표현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선율에 깊이가 있는 데다 화성도 두터우며 진한 색깔을 내는 편이죠. 그의 고국 독일에서 ‘브람스=가을’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대중에게는 브람스를 ‘가을 작곡가’로 인식할 이유가 분명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바이올린 소나타 세 곡 중에서 가장 가을과 어울릴 만한 곡을 꼽는다면…. “3번의 어두운 분위기와 쓸쓸함이 가을과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요. 다른 두 곡도 절절한 선율미가 강한 곡들이기 때문에 가을에 감상하기 적당할 듯합니다.” ―이 소나타 3곡을 하루에 연주하는 건 연주자에게 어떤 도전일까요. “예를 들어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테크닉적으로 현란한 반면 소나타에는 작곡가의 내밀한 얘기들이 많이 담겼습니다. 브람스가 가진 내면과 그의 화성적 특징들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죠.” ―이번 공연에서는 번호순이 아닌 2-1-3번 순서로 프로그램을 짰는데요. “2번 소나타의 ‘표정’이 오프닝에 적합해서 맨 처음에 넣었습니다. 청중께 인사하며 ‘처음으로 드리기’ 좋은 곡이죠. 개인적으로는 1번을 가장 좋아해 무게감이 남다른 만큼 중간에 배치하고 싶었어요. 3번은 세 곡 중 가장 화려하고 길이도 길어서 콘서트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좋습니다.” ―‘어떤 브람스’가 될 걸로 기대하면 좋을까요. “브람스는 무조건 무겁고 두텁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소나타들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선율미가 돋보이고 소박한 편입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면이 많이 엿보이는 만큼 작곡가의 내면세계에 대해 많은 탐구가 필요하죠.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브람스의 본질에 다가가는 연주를 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4만∼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에게 2021년 하반기는 ‘브람스 시즌’이다.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곡 전곡을 일리야 라시콥스키(성신여대 교수)의 피아노와 함께 연주한다. 이에 앞서 8월 롯데콘서트홀이 주최한 ‘클래식 레볼루션 2021’에선 그가 리더로 있는 노부스 콰르텟이 브람스의 현악4중주곡 전곡과 다른 실내악 작품들을 연주했다. 이달 8일에는 지중배 지휘 울산시립교향악단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흐린 시월의 연휴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음악팬들에게 유독 브람스는 ‘가을에 어울리는 작곡가’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맞는 얘기일까요. “브람스는 흐리고 바람 부는 날이 많은 독일 북부의 함부르크에서 자랐죠. 그의 작품엔 내성적이고 어두운 감성을 표현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선율에 깊이가 있는데다 화성도 두터우며 진한 색깔을 내는 편이죠. 그의 고국 독일에서 ‘브람스=가을’이라는 표현이 많지 나오지는 않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대중에게는 브람스를 ‘가을 작곡가’로 인식할 이유가 분명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바이올린 소나타 세 곡 중에서 가장 가을과 어울릴 만한 곡을 꼽는다면. “3번의 어두운 분위기와 쓸쓸함이 가을과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요. 다른 두 곡도 절절한 선율미가 강한 곡들이기 때문에 가을에 감상하기 적당할 듯합니다.” ―이 소나타 3곡을 하루에 연주하는 건 연주자에게 어떤 도전일까요. “예를 들어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테크닉적으로 현란한 반면 소나타에는 작곡가의 내밀한 얘기들이 많이 담겼습니다. 브람스가 가진 내면과 그의 화성적 특징들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죠.” ―이번 공연에서는 번호순이 아닌 2-1-3번 순서로 프로그램을 짰는데요. “2번 소나타의 ‘표정’이 오프닝에 적합해서 맨 처음에 넣었습니다. 청중께 인사하며 ‘처음으로 드리기’ 좋은 곡이죠. 개인적으로는 1번을 가장 좋아해 무게감이 남다른 만큼 중간에 배치하고 싶었어요. 3번은 세 곡 중 가장 화려하고 길이도 길어서 콘서트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좋습니다.” ―‘어떤 브람스’가 될 걸로 기대하면 좋을까요. “브람스는 무조건 무겁고 두텁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소나타들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선율미가 돋보이고 소박한 편입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면이 많이 엿보이는 만큼 작곡가의 내면세계에 대해 많은 탐구가 필요하죠.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브람스의 본질에 다가가는 연주를 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문: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와 풀랑은 어떤 사이였을까?” 답: “카드게임을 함께 즐기던 게임 파트너였다.” 올해 6회를 맞은 여수 예울마루 실내악 페스티벌이 ‘러시아의 우정(Russian Friendship)’을 주제로 15∼17일 전남 여수시 GS칼텍스 예울마루 대극장에서 열린다. 올해 네 차례 열리는 공연은 근대에서 현대에 걸친 네 개의 시대를 배경으로 러시아와 소련 작곡가들이 이어온 ‘링크’를 탐색한다. 15일 오후 7시 반 공연 주제는 19세기 말 국경을 뛰어넘어 교유한 프랑스의 생상스와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보로딘의 음악을 다룬다. 16일 오후 2시엔 라흐마니노프와 후배 메트너, 경쟁자 스크랴빈의 작품들이, 오후 7시엔 20세기 초반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며 존중과 경쟁을 펼친 드뷔시와 라벨,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소개한다. 17일 오후 2시 공연에선 프로코피예프의 작품과 함께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던 그가 소련으로 귀국하기 전 카드게임 파트너이자 예술적 경쟁자였던 풀랑, 귀국 이후 소련 당국이 가하는 수난을 함께 받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대부분의 실내악 축제가 한두 연주자 또는 팀에 공연 하나씩을 맡기는 것과 달리 이 축제는 공연마다 다양한 출연자가 등장한다. 각각의 공연을 5∼7곡으로 구성했고 곡마다 다른 출연자와 새로운 편성이 등장한다. 예술감독 양성원을 주축으로 한 트리오 오원, 알파를 비롯한 유명 음반사에서 현대 레퍼토리를 선보여 온 다넬 콰르텟, 리스트 콩쿠르 우승자 엔리코 파체 등 해외 출연자들과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서울대 교수), 클라리네티스트 채재일(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 국내 스타급 연주자들이 무대를 수놓는다. 3만∼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프랑스 작곡가 생상스의 대표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사진)를 국립오페라단이 7∼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구약성서의 영웅 삼손과 그를 꾀어 힘을 빼앗는 데릴라의 이야기를 담은 대작이다. 서울 서초동 국립오페라단 연습실에서 지휘자 제바스티안 랑레싱, 연출가 아르노 베르나르, 7일과 9일 삼손을 노래하는 테너 크리스티안 베네딕트와 데릴라를 노래하는 메조소프라노 이아경을 만나 공연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았다. ―무대 배경을 1938년 독일에서 일어난 ‘수정의 밤(Kristallnacht)’ 사건으로 설정했다고 들었습니다. 베르나르(연출): 나치가 하룻밤에 유대인 상점 7000곳 이상을 불태우고 유대인 3만 명 이상을 체포한 사건이죠. 현대 관객들에게 오늘날의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생상스의 음악이 매우 강렬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바로크 오페라라면 이런 시도가 맞지 않겠죠. ―음악적으로 어떤 특징을 꼽을 수 있을까요. 랑레싱(지휘): 생상스는 이 작품에 당대 오페라의 모든 영향을 녹여 넣었습니다. 오라토리오(종교적 음악극)의 특징들도 있습니다. 하나의 장면에도 열다섯 개 이상의 음악적 경향들을 발견할 수 있는 오페라입니다. 베르나르: 음악들이 길고 독백과 같은 부분이 많기에 음악과 연출이 손잡고 더 강렬한 오페라적 요소들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오페라에서 메조소프라노에게 타이틀 롤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데요. 이아경(데릴라): 독창회나 갈라콘서트에서 이 오페라의 대표 아리아인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리고’를 자주 불러왔지만 이번에는 다른 느낌이 될 겁니다. 이번 무대의 데릴라는 사랑이라곤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계략에만 충실한 히로인입니다. 비판이 많이 나올수록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테너가 부르는 노래는 잘 알려지지 않은 편입니다. 베네딕트(삼손): 3막 초반에서 체포돼 몸이 묶인 삼손이 부르는 ‘나의 불행을 보라’ 같은 아리아는 매우 강렬한 곡입니다. 합창단이 함께해야 효과가 나기 때문에 잘 불리지 않는 것뿐이죠. 3막에는 ‘네가 말할 때 나는 귀가 먹었다’라는 대사가 등장합니다. 신의 말씀에 대해 영적으로 귀먹어 듣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의 본질은 인간들의 영적인 죽음에 있습니다. 삼손을 연기할 때 이 점에 신경을 쓰려 노력합니다. ―지휘자 랑레싱과 연출가 베르나르 두 분은 그동안 ‘마농’ ‘윌리엄 텔’ ‘호프만의 이야기’ ‘피델리오’ ‘라보엠’ 등 국립오페라단이 주최한 수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오셨습니다. 매번 먼 한국으로의 여행에 선뜻 응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랑레싱: 제 경우 한국의 훌륭한 성악가들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한국의 성악 영재 밀도는 세계 최고입니다. 그들이 해외에 나가 성공을 거두고 고국 무대에도 출연하면서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이아경: 두 분은 최고의 합창단도 빼놓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죠. 특히 합창단에 고마워해야 할 공연이 될 것 같습니다. 너무 잘하고, 너무 열심히 연습하고 계십니다. 이번 공연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고 노이오페라합창단이 출연한다. 8, 10일 공연에는 테너 국윤종과 메조소프라노 김정미가 출연한다. 대사제 역은 바리톤 사무엘 윤과 이승왕이, 아비멜렉 역은 베이스 전승현이 맡는다. 1만∼1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프랑스 국민주의 음악운동 선구자 샤를 카미유 생상스(1835~1921)의 대표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를 국립오페라단이 10월 7~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구약성서 판관기(사사기)에 나오는 영웅 삼손과 그를 꾀어 힘을 빼앗는 블레셋 여인 델릴라의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든 대작이다. 연습이 진행중인 서울 서초동 국립오페라단 연습실에서 지휘자 세바스티안 랑레싱, 연출가 아르노 베르나르, 7·9일 삼손을 노래하는 테너 크리스티안 베네딕트, 그와 호흡을 맞춰 델릴라를 노래하는 메조소프라노 이아경을 만나 이번 공연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무대 배경을 1938년 독일에서 일어난 ‘수정의 밤(Kristallnacht)’ 사건으로 설정했다고 들었습니다. 베르나르(연출): 구약성서를 기본으로 한 이 오페라의 줄거리는 현대에 유대인이 당한 박해의 역사와 잘 들어맞습니다. ‘수정의 밤’ 사건이란 나치 돌격대와 독일인들이 하룻밤 사이에 유대인 상점 7000곳 이상을 불태우고 유대인 3만 명 이상을 체포한 사건이죠. 이 작품 자체에 강렬한 정치적 메시지가 있습니다. 정치적 맥락에서 이 작품이 갖는 의미를 찾아내, 현대 관객들에게 오늘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습니다. ―고대를 현대로 바꾼 시도인데, 의도가 잘 전달될까요. 베르나르: 연습을 진행하면서 독창진이나 합창단의 반응을 보면 잘 받아들이고 있고 의미가 있는 컨셉트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생상스의 음악 자체가 매우 강렬하기 때문에 이렇게 시대를 바꿔 선보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로크 오페라라면 이런 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맞지 않겠죠. ―음악 자체가 강렬하다고 했는데, 어떤 특징을 꼽을 수 있을까요. 랑레싱(지휘): 이 작품은 프랑스 낭만 오페라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생상스는 이 작품에 프랑스 오페라의 전통과 당대 각국 오페라의 모든 영향을 녹여 넣었습니다. 작품을 시작할 때는 오라토리오(무대 배경 없이 진행되는 종교적 음악극)로 계획했기 때문에 오라토리오의 특징들도 있습니다. 그 결과 비교할 만한 작품이 없는 매우 독특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중창 장면들에는 후기 베르디나 바그너의 영향도 엿보이죠. 단 하나의 장면에도 열다섯 개 이상의 음악적 경향들을 발견할 수 있는 오페라입니다. 베르나르: 오라토리오로 시작한 작품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음악들이 길고 독백과 같은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음악과 연출이 손잡고 더 강렬한 오페라적 요소들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배경으로 삼은 데는 이런 면도 작용했습니다. 작품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더 흥미롭게 꾸며야 했습니다. ―오페라의 여성 주역은 대부분 소프라노가 맡습니다. 메조소프라노에게 타이틀 롤이 주어지는 경우는 비제 ‘카르멘’ 등이 있지만 드문 편인데요. 이아경(델릴라): 그동안 독창회나 갈라콘서트에서는 이 오페라의 대표 아리아인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리고’를 자주 불러왔죠. 선율이 매우 유려하고 호소력이 깊은 노래이지만 이번에는 매우 다른 느낌이 될 겁니다. 제게도 새로운 도전입니다. 연습하면서 종종 ‘지금까지 내가 불러온 이 노래 맞나?’ 싶어요. 이번 무대의 델릴라는 삼손과 사랑이라곤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계략에만 충실한 히로인입니다. 어떻게 전혀 사랑 없이 행동할까. 이번 무대에서 제가 스스로 풀어내야 할 과제입니다. 비판이 많이 나올수록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삼손 역에게는 실례되는 질문일지 모르지만, 이 작품의 메조소프라노는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리고’라는 유명한 노래를 부르지만 테너의 경우 어디가 하이라이트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베네딕트(삼손): 저는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마린스키 극장과 바스티유 오페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에서 삼손 역을 노래해 왔죠. 독집 앨범에도 이 오페라의 아리아를 두 곡이나 넣었습니다. 3막 초반에서 체포돼 몸이 묶인 삼손이 부르는 ‘나의 불행을 보라’ 같은 아리아는 매우 강렬한 곡입니다. 합창단이 함께 해야 효과가 나기 때문에 잘 불리지 않는 것 뿐이죠. 이 작품의 3막에는 ‘네가 말할 때 나는 귀가 먹었다’라는 대사가 등장합니다. 신의 말씀에 대해 영적으로 귀가 먹어 듣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적인 가치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나치가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고 지금도 세계 어디선가 학살이 일어나지만, 이 모든 문제의 본질은 인간의 영적인 죽음에 있습니다. 삼손을 연기할 때 이 점에 신경을 쓰려 노력합니다. ‘수정의 밤’을 배경으로 한 이번 연출은 매우 강렬해서 제가 기대하는 점에 잘 맞습니다. ―델릴라와의 ‘케미’도 좋습니까. 베네딕트: 이아경 씨와 엄청나게 잘 맞죠. 주연 사이에 생각이 안 통하면 연습 과정이 처음부터 내내 지루해집니다. 이번 연습은 처음부터 내내 즐겁습니다. 이아경: 상대역인 베네딕트의 ‘파워풀한 삼손’이 제 힘을 더 이끌어내 줄 수 있을 걸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조금만 나를 밀어주면 좋겠다’, ‘한두 발자국 더 오면 자연스럽겠다’ 같은 요구에도 즉각적으로 서로 이해하는 편이죠. 그가 펼칠 ‘영적인 삼손’과 내가 연기할 ‘계략적 델릴라’가 만나면 멋진 효과를 낳을 것 같습니다. ―지휘자 랑레싱과 연출가 베르나르 두 분은 그동안 ‘마농’ ‘윌리엄 텔’ ‘호프만의 이야기’ ‘피델리오’ ‘라보엠’ 등 국립오페라단이 주최한 수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오셨습니다. 매번 먼 한국으로의 여행에 선뜻 응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랑레싱: 제 경우 한국의 훌륭한 성악가들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한국의 성악 영재 밀도는 세계 최고입니다. 그들이 해외에 나가 성공을 거두고 고국 무대에도 출연하면서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저로서는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것도 이유입니다. 집에서도 만들어 먹고, 김치는 떨어지지 않습니다.(웃음) 이아경: 최고의 합창단도 빼놓을 수 없다고 말씀 하셨죠. 이번 공연은 특히 합창단에게 고마워해야 할 공연이 될 것 같습니다. 너무 잘하고, 너무 열심히 연습하고 계십니다. 랑레싱: 그렇습니다. 한국에는 젊고 뛰어난 합창단이 있습니다. 이번 공연을 연습하면서 제가 전 세계에서 최근 함께 작업한 합창단 중 최고라고 느꼈습니다. 베네딕트: 특히 삼손 역은 합창단과 잘 조화를 이뤄야 성공할 수 있죠. 훌륭한 델릴라, 훌륭한 합창단과 함께 어서 무대에 올라 이 모두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공연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고 노이오페라합창단이 출연한다. 8, 10일 공연에는 테너 국윤종과 메조소프라노 김정미가 출연한다. 대사제 역은 바리톤 사무엘 윤과 이승왕이, 아비멜렉 역은 베이스 전승현이 맡는다. 7, 8일 오후 7시 반, 9, 10일 오후 3시 공연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기초지방자치단체 주관 클래식 행사 중 국내 최대인 마포M 클래식축제가 ‘그린 위드 클래식(Green with Classic)’을 주제로 5∼30일 열린다. 올해 여섯 번째를 맞는 이번 축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에 이어 대부분의 행사가 유튜브와 네이버TV 마포문화재단 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지난해 마포M 클래식 축제는 약 20만 명의 온라인 관객을 동원해 서울시 자치구 우수축제로 선정됐다. 올해 온라인 콘서트는 세 개 줄기로 짜였다. 9일 오후 7시 열리는 메인콘서트 ‘당인리 패션 클래식’은 당인리 화력발전소 자리에 새로 생긴 마포새빛문화숲에 특설무대를 설치해 클래식 콘서트와 함께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의 컬래버레이션 패션쇼를 펼친다.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보컬 앙상블 ‘포르테 디 콰트로’ 등이 출연한다. 올해 마포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녹화한 영상 프로젝트 ‘마포사계’는 5일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반 온라인으로 공개한다. 5일 겨울편부터 첼리스트 양성원, 앙상블 비바체, 볼체 콰르텟, 첼리스트 임희영이 차례로 출연한다. 밤섬, 용강동 벚꽃길, 상암 DMC 등의 사계절을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담아낸다. 마포아트센터 스튜디오에서 생중계하는 ‘클래식 온 라이브’는 트리오 아티스트리, 기타리스트 박종호, 첼리스트 심준호, 하모니카 연주자 박종성 등이 총 다섯 차례의 무대를 마련한다. 이달 7, 15, 21, 25, 27일 오후 7시 반에 열린다. 송제용 마포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전 지구의 문제인 환경보호 메시지를 음악에 담아 의미 있게 전달하려는 뜻에서 ‘그린 위드 클래식’을 주제로 삼았다”고 밝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오늘날 ‘계몽(啓蒙)’이란 철 지난 단어처럼 들린다. 17, 18세기 유럽의 계몽사상가들은 이성과 합리의 힘으로 인류 사회가 진보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을 파괴했고, 인류 전체를 파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가 지구 전체를 겨누고 있다. 기후위기가 심각한 경보음을 울리지만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이런 시대에 인간 이성에 기대 계몽을 논하는가. 전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2012년)에서 인류 사회의 폭력이 계속 감소해 왔음을 밝힌 저자는 여전히 계몽과 이성에 대해 강한 신뢰를 펼친다. 계몽이 인기 없는 관념이 됐다는 점은 그의 눈에도 분명하다. 2010년대 출현한 대중운동들은 “세계주의가 아니라 부족주의를 내걸고,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를 칭송하며, 전문가를 경멸하고 목가적인 과거를 그리워한다”. 이 공격들로부터 계몽을 지키기 위해 그는 ‘21세기의 개념으로’ 계몽주의 이념을 다시 쓰고자 한다. 오늘날의 방식인 데이터를 동원하는 것이다.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2부는 인간이 이전 시대에 비해 얼마나 계몽의 혜택을 누리는지 데이터를 통해 드러낸다. 여러 부분에서 한스 로슬링의 역저 ‘팩트풀니스’(2018년)를 떠올리게 한다. 전 세계에 걸쳐 기대수명과 복지 지출, 민주 정부의 수, 성적·인종적 평등, 교육·지식의 보급은 극적으로 확대됐으며 부(富)의 팽창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과소평가돼 왔다. 값싸고 품질 좋은 상품들이 비싸고 열악한 제품을 대체해온 것은 생산 통계에 드러나지도 않는다. 반면 영양실조와 발육 부진, 영아·산모 사망률, 오염물질 배출, 전쟁 희생자, 사고 및 범죄 희생자, 노동시간은 극적으로 줄었다. 환경파괴의 대명사인 아마존 벌채 속도조차 1990년대를 정점으로 줄었다. 테러리즘은 이 시대 가장 큰 공포이지만 사상자 수는 다른 범죄에 비해 미미하다. 이 모든 진보들을 실제 데이터로 일일이 설명한다. 그럼에도 계몽과 이성에 대한 믿음은 이 세계에 안전하게 자리 잡지 못했다. 저자가 보기에 계몽주의의 적들은 ‘세계가 점점 더 깊이 위기에 빠져들고 있으므로 근대적(계몽주의적) 제도들을 파멸시켜야 세계가 더 나은 곳이 될 수 있다’고 선동한다. 열린 세계 대신 민족애로 포장한 부족주의를, 민주주의 대신 권위주의를 칭송하며 전문가를 경멸하고 계몽 이전의 목가적인 과거를 이상향으로 선전한다. 그럼에도 저자의 전망은 낙관적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로 상징되는 포퓰리즘은 정점에 도달했고 차차 소멸의 길에 들어설 것으로 진단한다. 민주주의와 자유, 부와 복지는 상승세에 올라탔으며 이는 역전되지 않을 것이다. 남은 것은 이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비관주의는 우리가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는 불행에 관심을 갖게 해준다. 하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의 불행은 대부분 세계가 그만큼 몰락한 징표가 아니라 우리의 기준이 상승한 징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제5회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본선 경연이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 음악관 콘서트홀에서 28, 29일 열렸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동아꿈나무재단과 서울교대, 라율아트홀이 후원한 이번 콩쿠르는 초등, 중등, 고등부의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부문으로 치러졌다. 126명이 참가 신청을 해 14∼16일 열린 예선을 거쳐 48명이 본선에 올랐고 각 부문 1위 9명 등 31명이 수상했다. 중등부 각 부문 최상위 수상자에게는 서울 서초구 라율아트홀이 제공하는 무료 독주회 특전이 제공된다. 중등부 바이올린 부문에서 1학년생으로 1위의 영예를 안은 이미현 양(13·예원학교 1년)은 “권위 있고 유명한 콩쿠르여서 내심 부담이 됐고 학교 시험기간과도 일부 겹쳤다. 하지만 늘 연습하던 대로 꾸준히 준비했고, 기대 이상의 상을 받았다”며 웃음을 지었다. 10월 8일 오전 10시 이후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홈페이지(www.donga.com/concours/juniormusic)에서 심사위원별 채점표를 확인할 수 있다. 심사평도 함께 게재되며 본선 연주 동영상은 10월 중 유료로 서비스한다. 다음은 수상자 명단. ◇고등부 ▽피아노 △2위 김준엽(16·서울예고 2년) △3위 이채민(17·서울예고 2년) ▽바이올린 △2위 최윤수(18·선화예고 3년) ▽첼로 △1위 김나영(16·서울예고 1년) △2위 권세은(16·서울예고 1년) △3위 한예린(17·서울예고 2년) ▽플루트 △2위 윤서영(16·덕원예고 2년) ◇중등부 ▽피아노 △2위 이서은(13·예원학교 1년) △3위 이채현(14·예원학교 2년) ▽바이올린 △1위 이미현(13·예원학교 1년) △2위 이민슬(14·예원학교 2년) △3위 김희연(15·예원학교 3년) ▽첼로 △1위 문설윤(15·예원학교 3년) △2위 채지웅(13·예원학교 2년) △3위 고신영(15·예원학교 3년) ▽플루트 △1위 김채은(13·예원학교 1년) △3위 박혜령(14·예원학교 2년) 송유진(14·선화예중 3년) ◇초등부 ▽피아노 △1위 강서영(11·경복초 5년) △2위 남예서(11·경기신현초 5년) △3위 류선우(12·양전초 6년) ▽바이올린 △1위 손지우(12·서울방일초 6년) △2위 이현정(10·버들초 5년) △3위 김예은(11·홈스쿨링) ▽첼로 △1위 김정아(10·청목초 4년) 장주하(12·압구정초 6년) △3위 조민(12·정발초 6년) ▽플루트 △1위 박지인(12·대구동일초 6년) △2위 이서현(10·내정초 4년) △3위 최은하(12·성남정자초 6년)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올해 서거 100주년을 맞은 프랑스 국민주의 음악의 대가 생상스는 생전 13편이나 되는 오페라를 썼다. 푸치니보다도 많은 숫자이지만 이 중에서 오늘날 세계 오페라극장의 표준 레퍼토리로 정착한 작품은 ‘삼손과 델릴라’(1877년) 단 한 곡이다. 구약성서 판관기(사사기)에서 블레셋인과 싸운 영웅 삼손의 이야기를 극화했다. 2막에서 힘의 근원인 머리카락을 잘린 삼손은 블레셋인들의 포로가 된다. 3막에서는 삼손을 묶어 꿇어앉힌 블레셋인들이 흥겨운 축제를 펼친다. 이때 관현악의 연주와 함께 펼쳐지는 발레 장면을 ‘바카날’이라고 부른다. 로마시대 술의 신 바쿠스를 찬미하던 축제처럼 난잡하고 광포하게 펼쳐지는 축제 장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장면 시작부터 오보에의 아련한 선율이 귀에 쏙 들어온다. A단조의 ‘라-솔#(샤프)-파-미’로 이어지는 선율이다. 듣는 순간 아랍 세계의 아련한 환영이 머리에 떠오른다. 현악기의 흥겨운 리듬과 함께 분위기가 고조되고, 이번에는 여러 목관이 번갈아 D단조로 ‘시도시라솔#/시라솔#파미’의 멜로디를 연주한다. 예전 청소년 대상 강의에서 이 부분을 들려주고 물었다. “어떤 느낌이 들죠?” “뱀 나오는 것 같아요.” “터번을 쓴 사람이 피리를 불며 코브라를 놀리는 느낌요.” 이 음악의 어떤 요소가 뱀을 떠올리게 했을까. 이 장면의 주요 선율은 ‘헝가리 집시 음계’로 되어 있다. 통상의 단조 음계는 ‘라-시-도-레-미-파-솔’ 7음을 사용하지만, 이 음계에선 ‘레’대신 레#, ‘솔’ 대신 솔#가 들어간다. 낭만주의 시대부터 서양 음악가들은 동방이나 아랍의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마다 솔#를 중심으로 선율이 ‘놀게’ 하면서 이국적 분위기를 강조했다. 헝가리 집시 음계 외에 ‘아랍 음계, 집시 음계’로 불리는 ‘이중화성음계’도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솔을 솔#로 바꾸는 점은 같다. ‘집시풍’이란 뜻을 가진 사라사테의 바이올린곡 ‘치고이너바이젠’도 이 음계를 사용했다. 곡 서두에 반주부가 강렬한 서주를 울리고, 바이올린이 미끄러지듯이 올라가는 음계(스케일)를 연주한다. 전형적인 C단조의 헝가리 집시 음계다. 서양 클래식 음악만 이런 음계를 쓰는 건 아니다. 노라조가 부른 가요 ‘카레’를 들어보자. 전주부터 C#단조로 솔#가 두드러진 색깔을 내며 이국의 분위기를 강조한다. 커리 향이 코에 스며드는 듯하다. 아랍과 인도는 다른 문화권이지만 실제 두 문화권 모두에서 서양 음계의 ‘파-솔#-라’로 해석되는 음계가 주로 사용된다. 읽기만 해서는 알 수 없으니 직접 들어보기 권한다. 백독(百讀)이 불여일청(不如一聽). 그런데 낭만주의 이전에는 사정이 달랐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 고전주의 시대의 여러 음악가가 ‘터키 행진곡’을 썼다. 실제 터키 군악대의 리듬을 모방한 행진곡이었지만 이 시대에는 터키의 음계까지 모방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사용한 터키 행진곡은 ‘터키 리듬, 서양 음계’를 사용한 반쪽짜리라고 할 수도 있다.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알렉세이 이구데스만과 한국 출신 피아니스트 주형기의 ‘이구데스만 앤드 주’ 듀오가 이 점에 착안해서 터키 음계를 차용한 새 ‘모차르트 터키 행진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아예 음계를 흩뜨리는 반음계 선율로 동방의 느낌을 강조하기도 했다. ‘삼손과 델릴라’에서 여주인공 델릴라가 삼손을 유혹하는 노래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리고’도 천천히 반음으로 하강하는 선율이 고혹적인 아랍의 ‘팜 파탈’(치명적인 여주인공)을 묘사한다. 같은 시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서 카르멘이 부르는 ‘하바네라’도 마찬가지다. 국립오페라단이 생상스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10월 7~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삼손과 델릴라’를 공연한다. 삼손 역에 테너 크리스티안 베네딕트와 국윤종, 델릴라 역에 메조소프라노 이아경과 김정미가 출연한다. 국내 무대에서 여러 차례 높은 평가를 받은 세바스티안 랑레싱 지휘, 아르노 베르나르 연출이라는 ‘믿을맨’들의 프로덕션이다. 생상스 특유의 화려한 관현악과 함께 중동 여행이 취미였던 그가 묘사한 ‘중동의 향기’도 느낄 수 있는 기회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피아졸라의 음악을 가장 원형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형태는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더블베이스, 반도네온(아코디언 비슷한 건반악기)까지 다섯 악기로 구성된 퀸텟(5중주)이죠. 피아졸라 자신도 생전에 두 개의 5중주단을 만들어 활동했습니다.”(훌리안 바트·아스토르 피아졸라 퀸텟 음악감독) 올해는 ‘탱고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스토르 피아졸라(1921∼1992)의 탄생 100주년. ‘공식 피아졸라 오리지널 앙상블’인 아스토르 피아졸라 퀸텟이 2년 만에 내한공연을 갖는다. 이들은 공연에 앞서 27일 서울 서초구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아스토르 피아졸라 퀸텟은 피아졸라 사후 부인 라우라가 설립한 공식 앙상블.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을 시작으로 대구 전주 광주 인천까지 다섯 도시에서 콘서트를 갖는다. 이번 공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해외 연주가가 단체로 격리를 면제받은 첫 사례다. 아스토르 피아졸라 퀸텟은 올해 전 세계를 돌며 공연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의 기세가 잡히지 않아 여러 공연이 취소되었다. 아시아에서도 싱가포르 일본 등에서 공연을 예정했지만 한국에서만 공연하기로 했다. 바트 음악감독은 “한국만이 공연 곡목을 제안하는 등 가장 적극적이었다. 피아졸라에 대해 잘 아는 팬이 많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피아졸라가 쓴 탱고 2500곡 중 대부분은 세계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가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프로그램 음악으로 선택해 우리에게 익숙한 ‘아디오스 노니노’ 등 다양한 곡을 들려준다. 바리톤 이응광도 출연해 ‘망각(Oblivion)’ 등 두 곡을 노래할 예정이다. 10월 3일 전주 공연에서는 아쟁 명인 김영길이 흥부가 중 ‘화초장’과 피아졸라의 ‘망각’을 콜라보한 무대를 선보인다. 바트 음악감독은 “피아졸라도 생전에 여러 장르 음악가들과 콜라보 무대를 가졌다”고 설명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피아졸라의 음악을 가장 원형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형태는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더블베이스, 반도네온(아코디언 비슷한 건반악기) 등 다섯 악기로 구성된 퀸텟(5중주)이죠. 피아졸라 자신도 생전에 두 개의 5중주단을 만들어 활동했습니다.”(훌리안 바트·아스토르 피아졸라 퀸텟 음악감독) 올해는 ‘탱고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1921~1992)의 탄생 100주년. ‘공식 피아졸라 오리지널 앙상블’인 아스토르 피아졸라 퀸텟이 2년 만에 내한공연을 갖는다. 이들은 공연에 앞서 27일 서울 서초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공연에 임하는 자세와 의욕을 설명했다. 아스토르 피아졸라 퀸텟은 피아졸라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부인 라우라가 설립한 공식 앙상블.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을 시작으로 대구 전주 광주 인천 등 다섯 도시에서 콘서트를 갖는다. 이번 공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해외 연주가가 입국해 단체로 격리를 면제받은 첫 사례다. 아스토르 피아졸라 퀸텟은 피아졸라 기념 연간인 올해를 맞아 전세계를 돌며 공연할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의 기세가 잡히지 않으면서 여러 공연이 취소되었다. 아시아에서도 싱가포르 일본 등에서 공연을 예정했지만 한국에서만 공연하기로 했다. 바트 음악감독은 “아시아에서 한국만이 공연 곡목을 제안하는 등 가장 적극적이었다.피아졸라에 대해 잘 아는 팬이 많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탱고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피아졸라이지만 그가 쓴 2500곡 중 대부분은 세계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더블베이시스트 다니엘 팔라스카는 “탱고는 국적을 떠나 열정 사랑 분노 슬픔 같은 인간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므로 누구나 느끼고 이해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프로그램 음악으로 선택해 낯익은 ‘아디오스 노니노’ 등 피아졸라 활동기 전반에 걸친 다양한 프로그램을 들려준다. 바리톤 이응광도 출연해 ‘망각(Oblivion)’ 등 두 곡을 노래할 예정이다. 10월 3일 전주소리축제 일환으로 열리는 전주 공연에서는 아쟁 명인 김영길과도 흥부가 중 ‘화초장’과 피아졸라의 ‘망각’ 등 두 곡의 콜라보 무대를 선보인다. 이응광은 “예전에 탱고를 깊이 알지 못했지만 아르헨티나 식 스페인어를 공부해가면서 즐겁게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탱고에 반한 상태”라고 말했다. 바트 음악감독은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출발한 음악이지만 클래식을 비롯한 여러 음악적 요소가 녹아있는 열린 장르”라며 “피아졸라도 생전에 여러 장르 음악가들과 많은 콜라보 무대를 가졌다”고 설명했다. 투르크메니스탄 출신인 바이올리니스트 세르다르 겔디무라노프는 “아쟁은 한국에선 낯익은 악기겠지만 우리에게 동양의 악기와 퓨전을 이룰 수 있는 기회는 새로운 것이어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슈만의 거실에서 열리는 하우스콘서트에 초대합니다. 1850년대 독일 뒤셀도르프로 가는 타임머신을 타시는 방법은 먼저 ‘유시연의 테마콘서트’ 티켓을 구입하시고, 자신의 옷장에서 가장 낭만적인 향기가 나는 옷을 입고 오시면 어떨까요?”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숙명여대 교수)이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유시연의 테마콘서트 열여섯 번째 공연 ‘슈만의 거실에서’ 안내 게시물이다. 다음 달 7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콘서트에서 그는 피아니스트 박수진과 클라라 슈만 ‘세 곡의 로망스’ 두 번째 곡과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연주한다. 이어 비올리스트 이수민, 첼리스트 최정주와 슈만 피아노 4중주 1번 등을 선보인다. 이번 공연의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왜 1850년대 뒤셀도르프입니까. “그해 슈만은 뒤셀도르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감독으로 초청돼 1854년 정신병이 깊어질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죠. 브람스가 그를 찾아와 인연을 맺은 것도 이때입니다. 슈만 부부와 브람스의 작품에 들어 있는 감정과 생각을 연주와 내레이션, 영상으로 섬세하게 표현한다면 관객이 170년 전 작곡가와 생생하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상과 내레이션이라면…. “오페라 세팅처럼 무대와 바닥, 벽면까지 슈만의 거실을 영상으로 재현하고, 그 안에 연주자들이 들어옵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세 사람이 이 작품들을 작곡할 당시의 생각과 감정을 내레이션과 영상으로 표현합니다. 슈만의 집에서 열린 콘서트에 초대됐던 청중이 보고 느꼈을 순간들을 그대로 오늘의 청중 앞에 재현하려 합니다.” ―내레이션은 직접 준비하셨나요. “여름 내내 대본을 써서 제 목소리로 녹음했습니다. 시대적 배경과 작품들에 대한 설명, 슈만 부부와 브람스가 느꼈을 감정들을 이야기합니다.” ―연주곡은 어떻게 정했는지요. “슈만 부부의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담은 곡들을 선곡했고, 클래식 음악의 경험이 짧은 청중을 위해 귀를 쉽게 사로잡는 짧은 곡들도 포함했습니다.” ―슈만의 음악에 대해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당대 낭만파 음악의 대세였던, 화려하고 기교 넘치는 음악을 슈만은 혐오했습니다. 그는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가 이룩한 이전 예술의 아름다움이 다시 한번 사람들 사이에서 영광을 누리게 하자’며 순수한 아름다움이 깃든 ‘낭만주의 이상향’을 제시했습니다. 이번 연주에서 슈만과 그의 추종자들이 나누었던 가슴 벅찬 동지애를 재현하고 싶습니다.” 유시연은 2002년부터 2018년까지 열다섯 차례의 테마콘서트를 열면서 고전 레퍼토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함께 세계 민속음악과 바로크, 교회음악 등 서양 음악사의 다양한 면모들을 조명해 왔다. 그는 “이번 콘서트는 벽산엔지니어링의 ‘벽산 1% 나눔 매칭운동’ 기금으로 열리게 되었고 벽산문화재단 후원으로 1710년 제작된 조반니 과르네리 바이올린을 대여 받아 연주한다”며 벽산 직원들의 귀한 동참에 감사하다고 밝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세종대왕=이곳 천상계에서 인류사의 위대한 정신들과 담론하기가 즐겁기 그지없습니다. 내가 다스렸던 나라의 의사가 재미있는 책을 썼기에, 책에 언급된 분들을 이렇게 한자리에 초대했습니다. ▽가우디=영광스럽게도 대왕님과 제 이름이 같이 제목에 올랐군요. 저는 지상에서 관절염으로 고통을 받았었습니다. 어느 의사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저자가 병명을 정확히 짚어냈군요. 여섯 살 때 생겼으니 퇴행성관절염은 아니고, 양쪽 발에 통증이 집중되었으니 ‘소아기 특발성 관절염’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군요. 속이 시원합니다. ▽니체=논리 전문가인 철학자의 입장에서 읽어 보니 각 장의 체제가 매우 논리적이군요. 유명인을 괴롭힌 질환의 후보군을 넓게 추려본 뒤 정밀한 검토를 통해 하나씩 용의선상에서 배제하는 방식이에요. 제 경우 두통으로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했는데, 당시엔 신경매독이라는 진단을 받았죠. 신경매독 환자는 식욕이 떨어지는데 저는 폭식을 했으니 신경매독이 아니라고 저자가 설명하네요. 억울함이 풀렸습니다. 제 경우 뇌종양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군요. ▽도스토옙스키=작가인 제 눈으로 볼 때 병 외에도 명사들의 내밀한 사연들을 풀어 나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부끄럽지만 제 경우 ‘세계적인 대문호가 도박꾼이 된 사연’을 키워드로 삼았어요. 두 번째 아내 스닛키나와의 인연도 흥미롭게 소개했고요. 제가 뇌전증(간질) 환자였던 건 알려져 있죠. 저자는 제 도박중독도 뇌전증과 연관시켜 설명했습니다. 저와 같은 뇌를 가진 사람은 흥분성 신경전달 물질이 많아 도박에 쉽게 빠진다고요. 본래 성격이 나빴던 건 아님을 밝혀준 거죠. 제가 소설 속에 묘사한 뇌전증 증세들도 세밀히 분석했어요. 덧붙이자면 저는 한국어를 잘 모르지만, ‘대문호는 끝까지 짜인 치약처럼 재산을 털렸다’(제 얘깁니다) ‘모차르트는 오롱이조롱이 뽑아낸 선율로 모두를 매혹했다’처럼 글맛을 잘 살린 점도 돋보였습니다. ‘무엇이 밥 말리를 말려 죽였는가?’ 같은 아재 개그도 놓치지 않았군요. ▽모차르트=저는 한창 재능이 피어나던 35세 때 더 명곡을 내놓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게 한스러웠는데, 저자는 제 병명을 ‘연쇄구균 감염 후 사구체신염’으로 진단했어요. 당시 오스트리아 빈에 유행했던 병이라고 하는군요. 다른 예술가들을 들면 화가 로트레크를 난쟁이로 만든 유전병, 모네의 화풍을 변화시킨 백내장 등은 이미 어렴풋이 알려졌던 내용이지만 저자가 더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세종대왕=내가 운동을 못한 이유도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강직성 척추염 때문이었다는 점이 이 책으로 밝혀졌습니다. 내가 지금도 그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면 큰 벼슬을 내려 주었을 터인데…. 헤어지기 전에, 이 모임은 저자가 의도한 게 아니라 기자가 상상 속에서 마련한 자리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다들 추석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아차, 나라마다 풍속이 서르 사맛디 아니하니…. 어쨌든 푸른 가을 하늘과 보름달을 한껏 누리시기 바랍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올해 국내 최초로 고음악학과를 예술전문사(대학원) 과정에 개설한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고음악 페스티벌을 연다. 27∼30일 한예종 내 이강숙홀에서 나흘 동안 네덜란드 초기 바로크 작곡가 얀 스베일링크(1562∼1621·사진)의 작품을 주제로 축제를 개최한다. 각각의 연주회는 한예종 유튜브 채널에서 중계한다. 고음악이란 바로크 이전 음악을 작품이 나온 시대의 악기와 연주관습대로 연주하는 것을 뜻한다. 한예종은 2000년부터 오자경 교수(기악·오르간 전공) 주도로 바로크 연주법과 실내악 수업을 개설하고 고음악연구소를 설립해 고음악 학과를 준비해왔다. 첫날인 27일 오르간 독주회를 여는 오 교수는 ‘올해 서거 400주년을 맞는 스베일링크는 북스테후데에서 바흐로 이어지는 북독일 오르간 악파의 선구가 된 작곡가’라고 설명했다. “당시 네덜란드가 가톨릭에서 칼뱅파 신교로 바뀌면서 교회에서 오르간을 사용하지 않게 됐죠. 이때 스베일링크가 처음으로 종교적 목적이 아니라 오르간만을 위한 독주회를 열었고, 당시 무역으로 번성하던 암스테르담에 독일 음악가들이 와서 제자가 되었습니다.” 페스티벌 첫날 순서인 오자경 오르간 독주회는 죽음을 애도하는 스베일링크의 ‘내 젊은 생은 이제 끝났네’로 시작한다. 스베일링크의 독일인 제자가 전해준 세속 노래를 바탕으로 한 곡이다. 이어 바흐의 임종 코랄인 ‘주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며’를 연주한다. 오 교수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강숙 초대 한예종 총장을 추모하는 뜻에서 연주곡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이어 28일에는 젊은 오르가니스트 안효주와 박준호의 스베일링크 리사이틀이 열린다. 29일엔 전문사 고음악 전공 재학생들이 스베일링크 시대의 악기로 스베일링크와 그의 제자, 동시대 음악가의 곡들을 현악과 관악, 합창까지 더한 다채로운 무대로 꾸민다. 30일에는 한예종에서 오르간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암스테르담 음악원 피터르 판데이크 교수와 온라인으로 가진 마스터 클래스의 성과를 무대에 올린다. 올 3월 첫발을 뗀 한예종 예술전문사과정 고음악학과는 3년 과정으로 바로크 시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플루트, 오보에, 바순, 호른, 트럼펫, 트롬본, 비올라 다 감바(비올족 악기의 대표로 첼로와 비슷한 크기), 비올로네(바로크 콘트라베이스), 테오르보와 류트(바로크 시대 뜯는 현악기),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조상 격), 오르간 등 다양한 전공으로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리코더 전현호, 김규리, 바로크 바이올린 김지영, 비올라 다 감바 강지연, 쳄발로 김희정, 콘티누오(통주저음) 연주법과 역사적 조율법 이민주 등 실력을 인정받아 온 강사진이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오 교수는 “3, 4년 뒤에는 바로크 오케스트라를 구성해서 연주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매년 고음악학과가 외국인 고음악 지휘자들을 초청해 프로젝트를 꾸밀 예정이며 이에 맞춰 다양한 주제의 축제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

7일 낮 서울 서초동 코스모스홀. 중년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에 섰다. 드보르자크의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가 그의 악기에서 흘러나왔다. 감정이 고조되고 멜로디를 한 옥타브 올려 연주하기 직전, 격정에 찬 연주자의 입에서 흐윽, 한숨이 터져 나왔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45·한양대 교수)의 새 앨범 ‘다스 레벤(인생)’ 발표 현장이었다. 아내인 피아니스트 채문영과 함께 연주를 마친 그는 “우리 인생이 겪어야 하는 희로애락을 바이올린에 담아내고 싶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제게 음반은 삶의 기록입니다. 혼자만의 기록이 아니라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서죠.” 2016년 아버지, 지난해 어머니를 잃었다. 삶과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테마를 음반에 담고 싶었다. 2017년 펴낸 음반 ‘동경’이 그의 ‘자전적 이야기 볼륨 1’이라면 이번 음반은 ‘볼륨 2’라고 그는 설명했다. 어머니가 사랑했던 엘가 ‘사랑의 인사’를 첫 곡으로 넣고 싶었지만 첫 순서는 삶의 희로애락을 다룬 드보르자크의 ‘네 개의 낭만적 소품’에 양보했다. 그에게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동기를 불어넣어 준 ‘파라디스 작곡 시실리엔’(실제로는 바이올리니스트 더슈킨의 곡)도 음반에 넣었다. 연주자로서 삶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2004년 스페인 마리아 카날스 듀오 소나타 부문에 갓 결혼한 아내와 함께 나간 것도 생활비가 모자라 상금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1등, 3000만 원을 손에 쥐었지만 그해와 2006년 잇따라 안면 마비가 찾아왔다. 꿈의 무대인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직후 커리어가 뻗어 나가는 시점이었다. 2006년 14회로 예정된 러시아 순회연주도 취소해야 했다. 2012년 귀국해 한양대 교수가 된 것도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부모님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라고 담담히 털어놓았다. 음반에 넣은 루토스와프스키의 수비토(이탈리아어로 ‘갑자기’ ‘곧’이라는 뜻)에도 인생이 가져다주는 예측할 수 없는 돌연함의 의미를 담았다. 그의 바이올린 연주는 20세기 초중반의 전설적 명인들이 가진 따뜻한 음색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다비트 오이스트라흐(1908∼1974)를 롤 모델로 꼽았다. “그의 다큐에 옆집 소년이 ‘밤낮으로 연습해서 잠을 안 주무시는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처럼 예술에 헌신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24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음반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연다. 삶과 예술의 동반자인 채문영의 피아노와 함께 음반에 실린 작품들과 야나체크의 소나타, 모차르트 소나타 21번 등을 연주한다. 그는 “야나체크의 소나타는 죽음을 다뤘고, 모차르트의 소나타 21번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쓴 작품”이라고 했다. “여러 일들을 겪은 후에는 늘 ‘끝’을 생각합니다. 내가 가장 잘하고 싶은 연주는 마지막 연주입니다. 그것을 위해 연습을 합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기억아, 기억아, 뭘 원하느냐 가을은/지빠귀가 단조로운 대기 속을 날게 하고/태양은 지루한 빛을/북에서 바람 불어오는, 노랗게 물드는 숲으로 던지는구나.”(폴 베를렌, ‘네버모어’) 가을이 단조롭거나 지루할 리 없다. 시인은 ‘가을(l‘automne)’과 ‘악센트 없는(atone)’, ‘단조로운(monotone)’으로 압운(押韻)을 맞추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찬연한 색채로 물들어가는 가을날 오후가 어느 순간 악센트 없고 단조로운 상실감으로 심장을 쿵, 내려앉게 만들곤 한다. 살면서 내가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지금 집이 없는 자’는 마음의 정처(定處) 없음에 불안하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이 이런 날 제격이다. 3악장의 달콤한 서주에 이어지는 클라리넷의 솔로는 기억 뒤편의 먼 시간, 흔들리는 나뭇잎들 사이로 비쳐들던 9월 오후의 햇살을 떠올리게 한다. 4악장, 바이올린을 비롯한 현악부가 펼쳐내는 서늘한 두 번째 주제는 가을의 끝없이 깊고 푸른 하늘, 가슬가슬하니 살갗을 어루만지는 바람을 느끼게 만든다. 중부 유럽의 가을은 궂은날이 많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중에서 헤르만 헤세의 시에 곡을 붙인 ‘9월’은 비 오는 초가을을 그려낸다. “정원이 애도한다/꽃 속에 찬 빗방울 떨어진다/여름은 가만히/그 끝을 향해 몸을 떤다.” 비가 그치면 9월은 한층 깊어지고 바람은 더 선뜻해질 것이다. 혼자만의 고적함에 잠겨 보고 싶어지는 시간이다. 브람스의 피아노 소품집 작품 118 중 제2곡. ‘간주곡’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다. 이 작품은 ‘하염없다’는 형용사를 떠올리게 한다. 하염없이 동경하고, 하염없이 소망하고, 하염없이 지샌다. 어디를 향한 것이었던가, 이 작곡가의 하염없음은. 기온이 내려가면 서늘함 속에서 눈을 뜨는 때가 많아진다. 때로는 악몽에 시달리지만 고맙게도 아침의 찬 기운이 잠을 깨워주고, 여느 때와 같은 평온한 하루라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포레의 레퀴엠(장송미사곡) 중 아뉴스데이(신의 어린 양)는 그렇게 악몽으로부터 구원의 손길을 건네는 신선한 가을 아침 공기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꿈속에 그리운 사람이 나오기도 한다. 서운한 얼굴로 헤어진 것 같아서 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다시 꿈에 나와서 따뜻한 한마디를 마저 나눠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날엔 엘가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중에서 두 번째 느린 악장을 귓가에 하염없이 흘려보낸다. 가을밤은 외롭다. 마치 어린 시절 우연히 집이 비어서 식구 중 누구든지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유난히 짧아진 해가 능선 너머로 꼴깍 잠기고, 땅거미가 길어지던 그런 저녁나절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과 두려움을 간직하며 사는 존재이지만 이제 떠올리는 노래 속의 주인공은 곧 다가올 불운을 직감하며 더욱 불안과 고독에 휩싸인다.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중에서 남편의 맹목적인 불신과 질투를 감당하는 여주인공 데스데모나의 아리아 ‘버들의 노래’다. 일상은 때로 마음에 이런저런 생채기를 남긴다. 때로는 위로의 말조차 성가시다. 지나치게 알려지지는 않은 선율 중 하나로 위안을 대신하게 한다면. 낭만주의 중기 작곡가 카를 라이네케의 호른, 오보에, 피아노를 위한 3중주곡 중에서 2악장을 소환한다. 때로 울컥해지기도 하지만, 세 악기는 나지막하게 서로를 다독이며 위안의 메시지를 건넨다. 가을은 누구에게나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권세가 있는 자든 없는 자든, 가진 자든 없는 자든 마찬가지다. 9월 늦은 오후가 배경인 푸치니 오페라 ‘외투’에서 센강 바지선 선장의 아내인 여주인공은 물 위에서의 삶을 따분해하며 어릴 적 살던 동네를 그리워한다. 붉게 기울어진 햇살이 구름 속에서 나타나듯 쨍한 트럼펫의 일성(一聲)이 터진다. 절절한 지난 시절의 그리움으로 불타는 2중창, ‘내 꿈은 달라요’다. “이 갈망, 이 이상한 노스탤지어/저기 파리가 우리를 부르는데. 천 개의 행복한 목소리로 그 끝없는 매혹을 말해주듯이.” 그런 9월이다. 이상한 노스탤지어, 천 개의 목소리가 부르는 매혹이 우리를 마법처럼 꾀는.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3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폐막한 제63회 페루초 부소니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 박재홍(22)과 김도현(27)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박재홍은 1위 외에도 실내악 특별상, 부소니 작품 연주상, 알리체 타르타로티상, 건반악기 트러스트상 등 4개 특별상을 휩쓸었다. 김도현은 현대작품 최고 연주상도 받았다. 3위는 오스트리아의 루카스 슈테르나트가 수상했다. 부소니 콩쿠르는 1949년 시작돼 외르크 데무스, 마르타 아르헤리치, 개릭 올슨 등 유명 연주자들을 우승자로 배출해 왔다. 한국인으로는 문지영이 2015년 처음 우승을 차지했고 서혜경(1980년) 이윤수(1997년)가 1위 없는 2위, 조혜정(2001년) 원재연(2017년)이 2위, 손민수(1999년) 임동민(2001년) 김혜진(2005년)이 3위 수상자에 올랐다. 올해 우승자 박재홍은 2014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했으며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음악과 전체 수석으로 입학해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수상 후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박재홍은 “참가자들의 수준이 높아 끝까지 우승을 확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9년 이 콩쿠르에 처음 도전해 본선에서 탈락한 뒤 2년 동안 치열하게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는 “부소니 콩쿠르는 오케스트라 협연, 실내악 연주 등 피아니스트로서의 종합적 역량을 평가하는 게 특징”이라며 실내악 경연에서 브람스 피아노5중주를 연주해 실내악 특별상을 받으면서 본상 상위 입상을 예감했다고 말했다. 박재홍은 결선곡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골랐다. 연주시간만 약 45분이 걸리며 온갖 난기교가 동원되는 작품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 이 곡을 듣자마자 반했다.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경험도 있어 쉽게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피지컬’이 출중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키가 187cm다. 이 덕분에 무대 위에서 나오는 존재감이 있다. 손도 커서 12도(도에서 다음 옥타브 파)까지는 편하게 짚는다”며 웃었다. 2등상을 수상한 김도현은 서울대 기악과 재학 중 미국으로 건너가 클리블랜드 음악원 전문연주자과정에 재학 중이다. 이번 결선에서는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선택했다. 그는 “안 틀리기보다 내 음악을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임했고, 실수를 많이 했는데도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콩쿠르 결과 박재홍은 1위 상금 2만2000유로(약 3020만 원)와 실내악 특별상 부상으로 2023년 슈만 콰르텟과 투어 협연 기회를 얻게 됐다. 김도현은 2위 상금 1만 유로(약 1370만 원)를 받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폐막한 제63회 페루초 부소니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 한국인 박재홍(22)과 김도현(27)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박재홍은 1위 외 실내악 특별상, 부조니 작품 연주상, 앨리스 타르타로티상, 건반악기 트러스트상 등 4개 특별상을 휩쓸었다. 김도현은 현대작품 최고 연주상도 받았다. 3위는 오스트리아의 루카스 슈테르나트가 수상했다. 부소니 콩쿠르는 1949년 시작돼 외르크 데무스, 마르타 아르헤리치, 개릭 올슨 등 유명 연주자들을 우승자로 배출해 왔다. 한국인으로는 문지영이 2015년 첫 우승을 차지했고 서혜경(1980년) 이윤수(1997년)가 1위 없는 2위, 조혜정(2001년) 원재연(2017년) 2위, 손민수(1999년) 임동민(2001년) 김혜진(2005년)이 3위 수상자에 올랐다.올해 우승자 박재홍은 2014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했으며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음악과 전체 수석으로 입학해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올해 5월에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주최 ‘파이브 포 파이브’ 시리즈에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을 협연했다. 수상 후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박재홍은 “참가자들의 수준이 높아 끝까지 우승을 확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9년 이 콩쿠르에 처음 도전해 본선에서 탈락한 뒤 2년 동안 치열하게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는 “부소니 콩쿠르는 오케스트라 협연, 실내악 연주 등 피아니스트로서의 종합적 역량을 평가하는 게 특징”이라며 실내악 경연에서 브람스 피아노5중주를 연주해 실내악 특별상을 받으면서 본상 상위 입상을 예감했다고 말했다. 박재홍은 결선곡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골랐다. 연주시간만 약 45분이 걸리며 온갖 난기교가 동원되는 작품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 이 곡을 듣자마자 반했다.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경험도 있어 쉽게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체력을 소진시키는 라흐마니노프 곡에 걸맞게 ‘피지컬’이 출중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키가 187㎝다. 부모님이 체격이 크게 낳아주셨는데 덕분에 무대 위에서 나오는 존재감이 있다. 손도 커서 12도(도에서 다음 옥타브 파)까지는 편하게 짚는다”며 웃었다. 그는 “자기 개성을 표현하기보다 작곡가의 생각을 옮기는 ‘메신저’ 같은 연주자가 되고 싶다”며 “김대진(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선생님께 9년째 많은 것을 배워왔다. 선생님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2등상을 수상한 김도현은 서울대 재학 중 미국으로 건너가 클리블랜드 음악원 전문연주자 과정에 재학 중이다. 이번 결선에서는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선택했다. 그는 “안 틀리기보다 내 음악을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임했고, 실수를 많이 했는데도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콩쿠르 결과 박재홍은 1위 상금 2만 2000유로(약 3020만 원)와 실내악 특별상 부상으로 2023년 슈만 콰르텟과 투어 협연 기회를 얻게 됐다. 김도현은 2위 상금 1만 유로(약 1370만 원)를 받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 ‘가장 피트니스를 잘한 자의 생존’으로 읽히는 시대. 이 책의 목적은 피트니스 산업의 현황이나 최신의 경향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독일의 역사학 교수이자 한 해 6000km를 달리는 자전거광인 저자는 몸만들기에 대한 사회적 담론의 역사와 그 현대적 의미를 돌아본다. 피트니스의 사회적 의미론이라고 할 만하다. 책의 기본 전제는 ‘피트니스 담론은 정치적’이라는 점이다. 혁명의 18세기에 등장한 시민계급은 귀족계급처럼 비만해서도, 노동계급처럼 혹사당한 모습이어서도 안 되었다. 19세기의 다윈주의는 말 그대로 ‘핏(fit)한’ 개체의 생존을 부각했다. 파시즘은 민족공동체를 위한 몸만들기를 강조했고 이는 전쟁과 냉전으로 더욱 퍼져나갔다. 전후 서방의 호경기와 함께 유연한 몸은 유연한 자본주의의 기호가 되었다. 섹스와 ‘섹슈얼함’의 위상이 높아진 점도 몸만들기 경쟁을 가속화했다. 과거 전쟁이 제공했던 영웅주의는 스포츠 영웅과 비슷하게 보이는 ‘피트니스 영웅’들을 불러냈다. 그리하여 핏한 몸이 들려주는 담론은 이렇다. 사회는 생산적이고 정력적이며 싸울 준비가 된 시민을 요구한다는 것. 뚱뚱한 자는 실패자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답을 주지 않는다. 이런 현실이 문제라고 선언하지도 않는다. 섣부른 ‘충고 조언’이 없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이 책의 미덕일지 모른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후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각인될 것 같아 다른 작곡가들을 다뤄 왔죠. 이제 쇼팽을 다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27·사진)이 9개월 만에 국내 무대에 선다. 최근 DG(도이체 그라모폰) 레이블 다섯 번째 음반을 내놓은 그는 4일 전북 전주를 시작으로 서울, 대구, 전남 여수 등 7개 도시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음반에는 쇼팽 스케르초 4곡 전곡과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 등을 실었다. 콘서트에서는 쇼팽 스케르초 4곡과 라벨 ‘밤의 가스파르’ 등을 연주한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3일 기자간담회를 가진 조성진은 “쇼팽 스케르초 2번을 연주하면서 지휘자 정명훈, 은사 신수정 선생과 인연이 생겼기 때문에 내게 특별한 곡”이라고 말했다. 쇼팽 협주곡 2번에 대해서는 “2악장은 쇼팽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1번보다 섬세한 곡”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좋은 연주를 할 때 행복하니 더 만족할 만한 연주를 하는 게 목표”라며 다음 앨범엔 헨델 등 바로크 작곡가들의 작품이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콘서트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18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앙코르 콘서트를 열고 네이버TV로 유료 중계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