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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이 한강 괴물과 파란 외계종족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조선 1597년 정유재란 때 명량대첩을 다룬 영화 '명량'이 개봉 6일 째인 4일 관객 수 500만 명이 넘는 신기록을 세우며 흥행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전까지 500만 명 돌파 기록은 '괴물'과 '도둑들' '설국열차' '관상' '아이언맨3'가 공동으로 세운 개봉 10일째. 명량이 무려 4일이나 앞선다. 이미 초대박 기준인 '천만클럽(관객 수 1000만 명 돌파)' 가입은 시간문제고, 역대 관객 수 1,2위인 '아바타'(1362만) '괴물'(1302만)과 비교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명량의 인기는 사실 어느 정도 예견돼왔다. 총 제작비 180억 원을 넘는 호쾌한 전쟁액션대작인데다, 극장가에 관객들이 많이 몰려 '블록버스터 시즌'이라 불리는 7월 말~8월 초에 선보였기 때문이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스님과 한민구 국방부장관, 최윤희 합참의장 등 각계 명사들이 연이어 시사회를 찾은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특히 황기철 해군 참모총장은 영화를 보고 눈시울을 붉혀 화제가 됐다. 막상 뚜껑을 여니 반응은 예상보다 더욱 거셌다. 지난달 30일 첫날부터 68만 명이 몰리며 개봉일 최대 관객(이전 55만 명)을 기록하더니, 평일 최대 관객(1일·86만 명), 최단 기간 100만 명 달성(개봉 2일째), 1일 최대 관객(3일·125만 명), 좌석점유율(3일·87.6%) 등 거의 모든 기록을 갈아엎었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 하루 관객이 100만 명을 넘은 건 처음이다. 제작사인 CJ E&M의 한응수 홍보과장은 "내부 전망은 물론 기대치까지 훌쩍 뛰어넘어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명량의 천만클럽 가입은 언제쯤 가능할까. 지금까지 누적 관객 수 1000만 명을 넘어선 영화는 아바타(1위) 괴물(2위) 등 모두 11편. 그간 1000만 돌파는 평균 개봉 1달 안팎에 이뤄졌으나, 지금 기세라면 명량은 훨씬 빠를 가능성이 크다. 영화계에선 이번 주 평일 관객 동원이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천만클럽 가입은 작품성이나 입소문 이상의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 개봉 10일 만에 500만 명을 달성했던 영화 가운데 '설국열차' '관상' '아이언맨3'는 모두 천만 문턱인 900만 명(역대 12~14위)대에서 주저앉았다. 게다가 지난달 23일 개봉해 2일까지 447만 명이 넘은 '군도: 민란의 시대'가 아직 선전하고 있고, 또 다른 대작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6일 개봉)과 '해무'(13일)가 경쟁에 뛰어드는 것도 변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스크린대전 마지막 주자가 드디어 바다안개(海霧)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 달 13일 개봉하는 ‘해무’는 앞선 ‘군도: 민란의 시대’ ‘명량’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 비해 스케일이 크진 않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기획 제작을 맡은 데다 ‘살인의 추억’(2003년) 각본을 쓴 심성보 감독의 첫 장편으로 제작 초기부터 이목을 끌었다. 때는 1998년 외환위기 직후. 고깃배 전진호의 선장 철주(김윤석)는 폐선 위기에 몰린 배를 구하려 밀항에 가담한다. 철주를 비롯한 여섯 명의 선원은 어렵사리 조선족 수십 명을 배에 태우지만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해무처럼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린다. 정양환 구가인 기자 역시 뿌연 안개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데…. 》▽구가인 기자=아, 느낌 있어. 칙칙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은근 좋았어. ▽정양환 기자=괜찮은 영화란 점은 반박할 수 없네. 근데 왠지 엄지를 추켜올리긴 망설여져. 너무 기대가 컸나. 영 께적지근하네. ▽구=뭘 바랐는데? 왁자지껄하진 않아도 이야기를 쫄깃쫄깃하게 끌고 가. 당시 한국 사회를 빼다 박은 전진호란 무대의 출렁거림이 스크린을 넘실대잖아. ▽정=짜임새가 탄탄하긴 했어. 2001년 실제 벌어졌던 ‘제7태창호 사건’을 소재로 한 원작 연극도 극찬을 받았지. 근데 너무 착착 들어맞아가는 흐름이 거슬렸어. 차림표 읽은 뒤 코스 요리 먹는 기분? 뒤로 갈수록 대충 짐작이 되더라는. ▽구=어허, 심리 스릴러의 묘미를 모르시네. 찌릿한 긴장감 자체를 즐겨야지. 마무리가 살짝 느슨하긴 했지만, 그걸 배우들의 연기가 잘 기름칠해서 넘어가던걸. ▽정=정말이지 김윤석의 스크린 장악력은 알고 봐도 놀랍던데. 전라도 사투리가 어색한 대목도 있던데, 그걸 연기로 덮고도 남더라. ▽구=잘한단 말로는 설명이 부족한 듯. 특히 마지막에 화면을 가득 채우는 힘이란. 문성근 김상호 유승목 이희준도 하나 같이 이름값 했어. 동식이(박유천) 연기도 기대 이상. 엄청나게 노력한 게 보여서, 아이돌 연기에 대한 선입견이 미안할 정도. ▽정=박유천 본인에게도 이 작품은 중요한 전환점이 되겠더라. 홍매(한예리)도 빼놓으면 섭섭하지. ‘코리아’(2012년) 북한말, ‘군도…’ 전라도 사투리, 이번엔 조선족. 연기는 둘째 치고 언어적 감각이 탁월한 배우 같아. ▽구=동식과 홍매의 로맨스는 좀 거추장스럽지 않았어? 그 와중에 정사신이 꼭 있어야 하나. ▽정=두 사람의 애정이 사건을 얽히게 만드는 뼈대잖아. 섹스 자체가 중요하진 않지만, 둘을 단단히 잇는 연결고리가 형성되는 거지. 굉장히 슬픈 장면이던걸. 하지만 좀 뻔해. ▽구=연극적인 분위기 때문 아닐까. 그걸 선호하는 관객도 많아. 오히려 ‘봉테일(봉준호 감독 별명)’ 식 디테일한 유머가 드문 게 아쉬웠어. 청소년 관람불가답게 잔인한 측면도 있고. ▽정=그건 칭찬해야지. 감독 본연의 색깔을 찾으려 노력했단 소리잖아. 하지만 뭐랄까. 제목이 해무인데 해무가 빠진 느낌은 들어. 찐득찐득한 바다의 소금기를 좀 더 살렸으면 어땠을까. ▽구=4편 모두 링에 올랐으니 순위나 매겨볼까. 오로지 취향 문제지만 ‘군도…’ ‘해무’가 가장 맘에 드네. ‘명량’은 때깔이 좋고. ▽정=신에겐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구=또 그러신다. 하긴 승자는 누구도 모르는 건가. 바다안개처럼. ▽정=물레방아처럼, 도적 떼처럼. 울돌목처럼.▼영화평론가 한 줄 평과 별점▼(★ 다섯 개 만점)강유정 연기, 시나리오, 촬영 모두 극한! 관객의 공감이 관건 ★★★김봉석 지독하게 바닥까지 파고든다. 어둡고 참담하지만, 나태하지않다. ★★★★정지욱 상업영화 옷을 입기엔 부담이 큰 예술영화. 손익분기점은 어찌 넘기려나. ★★★이해리(스포츠동아 기자) 비극과 욕망 그리고 광기의 살육전 ★★★정양환 ray@donga.com·구가인 기자 }

조선 개국을 앞둔 시기, 명 황제가 하사한 국새를 고래가 삼켜버린다. 국새를 잃어버린 조정은 혼란에 빠지고, 고래 사냥을 위해 해적은 물론이고 산적까지 바다로 몰려든다. 다음 달 6일 개봉하는 ‘해적’은 국새를 찾기 위해 해적과 산적, 개국세력이 얽혀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오락 영화다. ‘댄싱퀸’의 이석훈 감독과 드라마 ‘추노’의 천성일 작가가 뭉친 ‘해적’의 승부처는 웃음. 김남길이 오합지졸 산적을 이끄는 두목 장사정 역을, 손예진이 바다를 호령하는 해적단의 여두목 여월 역을 맡았다. ‘한국판 캐리비안의 해적’을 꿈꾸는 이 영화에 대한 정양환, 구가인 기자의 반응은 ‘명량’에 이어 이번에도 갈렸다. ▽정=애들 손잡고 가서 보기 딱이야. 올여름 스크린 대첩을 벌이는 4편 중에서 유일한 12세 관람가인데 이는 분명 강점이지. ▽구=애들 수준 무시하는 거 아니유? 너무 웃기려다 보니 개연성이 많이 떨어지던데. ▽정=웃자고 만든 영화에 정색하고 달려들지 마셔. 생각 없이 보기 딱 좋은 영화잖아. 보다가 자주 낄낄거렸어. ▽구=이야기 욕심이 너무 커. 그냥 국새만 찾으면 될 텐데, 이성계 정도전까지 나오고 역사 뒤틀기까지 시도하니 산만해. 심지어 영화 막바지 장사정 여월의 로맨스는 황당했어. 왜 꼭 남녀 주인공은 사랑해야 하는 것인가! ▽정=김남길 손예진이 나왔는데 야릇한 감정신도 안 보여주면 얼마나 아쉽냐. 게다가 조연진도 빵빵하니 이야기가 다채로울 수밖에. 유해진 이경영 오달수 김태우 박철민 신정근 김원해… 에고, 숨차. f(x) 설리도 나와! ▽구=그래, 유해진은 정말 빵 터졌어. 예상 가능한 유머 코드인데도 웃긴단 말이지. ▽정=굵직한 조연들이 많은데 배우의 매력을 다 살리진 못한 듯. 특히 오달수 아저씨가 아쉬웠어. 그 양반 나와서 안 웃기기도 힘든데. ▽구=어디서 본 듯한 설정,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 많아. ▽정=우위썬(오우삼) 감독 오마주 같은 장면도 보이더라. 의상은 ‘캐리비안의 해적’을 의식한 것 같아. 여말선초가 아무리 화려한 시대였대도 출연진이 너무 서양 해적 같아서 불편했어. ▽구=근데 김남길은 조니 뎁 닮은 거 같지 않아? ▽정=뜬금없이 외모 칭찬은. 하여간 잘생기면 너그럽더라. 오히려 손예진이 역시나 싶더구먼. 첫 사극에 첫 액션영환데 어색하지 않았어. 해적 여두목도 은근히 잘 어울리던데. 키라 나이틀리 생각도 나고. ▽구=외모 따지는 게 누군지 모르겠네. 무슨 해적이 그렇게 메이크업과 헤어가 자주 바뀌나. 두목은 코디도 있는 건가? 부하들은 짐승 같은데 혼자만 말갛다니! 또 다른 주인공인 고래는 어땠어? 제작비(130억 원) 상당 부분을 고래님 컴퓨터그래픽(CG)에 투자했단 소문이 돌았는데. ▽정=기대보단 ‘눈빛 연기’가 꽝이더라(웃음). 고래는 둘째 치고 거대한 물레방아 바퀴나 폭발 신은 살짝 닭살 돋았어. ‘명량’ 해상 전투를 봐서 그런가. 영 성에 안 차. ▽구=액션 장면은 그만하면 합격점. 그럭저럭 속도감도 있고. 칼싸움도 하고 화살도 쏘고, 포도 팡팡 터지고. ▽정=액션만큼은 ‘군도: 민란의 시대’나 ‘명량’보다 약한 듯. 그래도 하나는 확실해. ‘해적’은 무더운 여름날 아이 데리고 가족끼리 극장 가서 시원하게 웃다 나오기엔 충분하지 않을까.▼영화평론가 한 줄 평과 별점▼ (★ 다섯 개 만점)김봉석 코미디에 집착하면서 인물과 이야기의 일관성을 잃었다 ★★윤성은 유해진의 어깨에 많은 무게가 실린 오락영화 ★★★정지욱 우왕좌왕 떼로 몰려다니며 애타게 노력했건만 정신만 쏙 빼 놓았 을 뿐 ★★☆이해리(스포츠동아 기자) 계산과 이성을 내려놓으면 꽤 흥미 있는 오락 영화 ★★★☆구가인 comedy9@donga.com·정양환 기자 }

미국 감독 스탠리 큐브릭(1928∼1999)은 20세기 영화 팬을 자처하는 이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 ‘시계태엽 오렌지’(1971년) ‘샤이닝’(1980년) ‘풀 메탈 자켓’(1987년) 그리고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1999년)까지. 그가 만든 영화는 모두(물론 초기 범작도 일부 있지만) 찬사와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의외로 그의 인물 됨됨이에 대해선 그다지 알려진 게 없다. 기획부터 시나리오, 심지어 홍보 문구까지 일일이 체크하는 완벽주의자. 미국의 공고한 영화계 시스템과 자본의 간섭에서 거의 유일하게 벗어나 자유롭게 영화를 찍었던 독불장군(?)이란 점을 빼면, 그냥 수염 텁수룩하고 고집 세 보이는 할아버지 얼굴만 떠오른다. 그런 이에게 이 책은 이미지만 기억되는 한 거장 감독과의 거리를 좁혀주는 좋은 매개체가 되리라.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그에 대한 시각이 크게 바뀔 것 같진 않다.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그가 들이는 공을 엿보노라면, 오히려 정말 ‘영화에 미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프로급 체스 실력을 가진 감독이 호적수인 기자와 장소를 옮겨가면서 새벽까지 자웅을 겨루는 대목은 매사에 열정적인 그의 성격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단순히 정열만 넘치는 게 아니라, 자기 영화의 모든 부분에 대해 해박해지려 노력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국내에 큐브릭 감독을 집중적으로 소개한 첫 번째 책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만 1959년부터 1987년까지 여러 기자가 인터뷰한 기사를 모아 놓은 거라 한계가 분명하다. ‘풀 메탈 자켓’이 개봉되던 시점 이후의 삶을 가늠할 수 없단 점도 아쉽다. 그러나 그의 영화가 난해한 이유에 대해 “나 역시 쉬운 대답을 갖고 있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위대한 영화 철학자를 만나는 건 더 없이 반갑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하정우 “고개 까딱이는 도치, 윤감독의 평소 모습” ▼단순히 분노하는 백성이 아닌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민초 그려“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는 흥겹게 즐기는 오락영화입니다. 어떤 작품이든 아쉬움은 남지만, 윤종빈 감독이나 저나 한 발 더 나아갔다고 확신합니다.” 소문대로였다. 23일 개봉한 ‘군도…’에서 주인공 도치(혹은 돌무치)를 맡은 배우 하정우(36)는 달변가로 알려져 있다. 1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나 보니 점잖으면서도 유쾌함이 물씬했다. 차 한 잔이 아니라 술 석 잔을 마셔도 들을 얘기가 있을 듯한 분위기는 그의 엄청난 ‘무기’다. 그런 하정우가 무지렁이 백정 역이라…. 얼핏 잘 이어지질 않지만, 그는 극 중에서 이를 매끄럽게 체화했다. “핵심은 ‘성장’이었습니다. 물정 모르던 백정이 가족을 잃고 도적의 무리에 합류해 복수를 꿈꿔요. 하지만 태생적 한계는 여전하죠. 거기서 오는 불균형이 웃음도 유발하고요. 그 미묘한 줄타기 속에서 도치는 뭔가를 깨달아 갑니다. 단지 억압에 분노하는 백성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민초의 과정을 담은 거죠.” 묵직할 줄 알았던 민란에 B급 유머를 입힌 것도 의도된 것이란다. 윤 감독과 “무조건 재밌는 작품으로 만들자”며 의기투합했다. ‘용서받지 못한 자’(2005년)부터 ‘비스티 보이즈’(2008년)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년)까지 세 작품을 함께했던 두 사람은 대학 선후배로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 군도 역시 구상 초기부터 함께 논의했다. “영화에서 틱 장애처럼 고개를 까딱거리는 버릇이 나와요. 그거 윤 감독 따라 한 겁니다. 본인도 재미있다고 웃던데요? 하하, (윤 감독은) 정직하고 바른 사람입니다. 함께 영화를 만들고 함께 커 왔다는 동지 같은 믿음도 있죠. 군도 역시 베스트를 뽑았어요. ‘범죄와의 전쟁…’보다도 더 만족스러워요.” 지난해 ‘롤러코스터’를 통해 감독으로도 데뷔한 하정우는 중국 작가 위화의 소설이 원작인 ‘허삼관 매혈기’를 촬영하고 있다. 이번엔 감독에 주연까지 맡았다. 화가로서도 주목받은 그는 내년 2월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가만히 있질 못하는 성격이에요. 뭔가를 경험하고픈 욕구가 큽니다. 항상 모자란 걸 채우고 싶다고나 할까. 물론 쉬기도 합니다. 전남 순천에서 촬영하다 근처 편백나무 숲에서 꼭 산책을 해요. 휴식도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 강동원 “풀어헤친 긴머리가 그렇게 멋있었나요” ▼군도가 맞서는 ‘악의 축’ 조윤役… 서자 출신 상처 많은 삶에 공감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강동원(33)과의 인터뷰 장소는 여기자들로 북적거렸다. 언뜻 ‘부흥회장’ 분위기도 났다. 농담 삼아 ‘안구 정화’ 하러 왔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삼삼오오 진행된 그룹 인터뷰에서 여기자들은 강동원이 말할 때마다 일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23일 개봉한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는 그의 복귀작. 그사이 공익근무를 마쳤고 휴식기를 가졌다. 그는 “오랜만의 촬영이라 긴장해선지 촬영 내내 뒷목이 뻣뻣했다”면서도 “좋은 선배들과 작업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고 했다. 영화에서 강동원이 맡은 역은 세도가 조윤. 도치(하정우)를 비롯해 ‘군도’가 맞서는 영화 속 ‘악의 축’이다. 그는 조윤에 대해 “서자로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상처가 있다. 악역이지만 공감 가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출연을 결심한 데는 윤종빈 감독에 대한 믿음이 컸다. “시나리오 작업 전에 만났어요. 보면 ‘감’이 오는 사람이 있는데 감독님이 그랬죠. 악역인데 괜찮겠냐고 하셨을 때 그 자리에서 하겠다고 했죠.” 강동원은 ‘군도’의 ‘때깔’을 위해 스스로를 꽤 괴롭혔다. 칼 쓰는 장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다섯 달가량 검술을 배우고 4kg 정도 살을 뺐다. “저도 체중에 따라 이미지가 꽤 달라져요. 평소 68∼69kg 정도인데 ‘샤프’해 보이려고 살을 많이 뺐죠. 64kg이 마지노선이에요. 더 빼면 불쌍해 보이거든요.” 영화 속에서 상투가 잘려 긴 머리를 풀어헤치는 모습은 시사회 때부터 화제였다. 이 작품의 ‘숨은 여주인공은 강동원’이라는 농담도 돌았다. “그 장면은 제작진도 무척 좋아하셨어요. 감독님은 다음 작품에서 계속 머리 풀고 한번 찍자고 하시더군요.” ‘군도’ 이후에는 9월 개봉하는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송혜교와 연기 호흡을 맞췄다. 데뷔 초 꿈을 ‘지구 정복’이라고 말했던 그는 앞으로 세계시장 진출을 고려해 외국어 공부도 하고 있다. 영어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 중국어와 일본어도 도전할 예정이라고. 연애는 안 하나? 늘 해온 공식 답변은 “있어도 없고 없어도 없다”. 그러나 여성 팬들을 위해 ‘공공재’로 남을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는 단호했다. “어머니 들으시면 얼마나 서운해하시겠어요. 연애하며 살아야죠. 저도 사람인데….”정양환 기자 ray@donga.com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최민식 류승룡이 주연한 영화 ‘명량’(30일 개봉)은 줄거리만 놓고 보면 단순한 작품이다. 조선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최민식)이 전남 진도 앞바다 울돌목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명량대첩’에 오롯이 초점을 맞췄다. 해상전투신만 1시간이 넘는 대작 전쟁영화를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군도’를 본 뒤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던 정양환 기자와 구가인 기자는 ‘명량’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구=아, 관전평 하기 너무 조심스러워. 영 충무공을 디스하는(깎아내리는) 것 같아 부담스럽네. ▽정=작품이 잘 나왔잖아. 기대했던 만큼 스펙터클이 화면을 꽉꽉 채워주던걸. ▽구=음, 난 기대치도 딱히 높지는…. 경쟁작에 하정우 강동원(군도), 김남길(해적), 박유천(해무)이 쏟아지는데 최민식 류승룡 아저씨한테 크게 맘이 가진 않았어. ▽정=뭔 소리야. 좌중을 압도하는 두 양반 눈빛이 가슴을 후벼 파잖아. 류승룡의 스모키 화장이 좀 과하긴 했지만. ▽구=연기 잘하는 배우들인 건 인정. 그 큰 스크린에 얼굴이 정면 클로즈업되는데도 흡인력이 상당했어. 하지만 영화적인 측면에서 매력 있는 캐릭터는 아님. ▽정=네, 이놈! 감히 장군을 욕보이려 드느냐. 나라 위해 초개같이 한 몸을 던지는 공의 충정을…. ▽구=남자들은 꼭 이러더라. 또 영웅본색 보고 성냥 입에 물었네. 다양한 갈등을 보여주는 입체적 인물 묘사는 아니었단 얘기죠. 위대한 리더인 건 틀림없으나, 21세기 관점에서 보면 부하들과의 소통도 부족하고. ▽정=그게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긴 하지. 온 국민이 존경하는 ‘안티 없는’ 위인이니 함부로 덧칠하기 어려웠을 거야. 그래도 죽은 부하 원혼에게 “내 술 한 잔 받으시게” 하던 장면은 잊혀지질 않아. 아, 저 비장감은 최민식 아니면 누구도 안 되겠구나 했어. ▽구=그 묵직함이 관객에겐 불편할 수 있어. 2시간 내내 어깨를 짓누르잖아. 팝콘 씹거나 음료수 빨았다간 혼날 것 같은 느낌? ▽정=그 넘치는 박력이 얼마나 근사해. 150인조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배경음악에 가슴이 쿵쾅거리잖아. ▽구=스피커 찢어지겠더라. 뒤에 나오는 전쟁신은 좋았어. 1시간이 넘는데도 지루한 줄 몰랐으니까. ▽정=그 정도가 아니야. 감히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전쟁신이라 부르리다. 노 젓는 나무배 싸움을 속도감 넘치는 공중전처럼 만들어낸 제작진에 경배를! ▽구=오히려 이 전투에서 민초를 제대로 살린 게 미덕이라고 봐. 배 밑에서 노를 저으며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백성들의 손바닥은 찌릿찌릿했어. 다만 시종일관 어디서 애국가가 들리는 분위기는 좀…. ▽정=월드컵 본선 진출 마지막 티켓 놓고 일본과 맞닥뜨린 기분은 들더라. ▽구=이순신이란 거대한 태양에 가려 다른 별은 보이지 않는 것도 아쉬웠어. 특히 류승룡이 맡은 구루지마는 이순신에 비해 매력이 떨어져. 우리 편이라고 이순신만 너무 편애한 것 같아. ▽정=어쩔 수 없지. 류현진이 마운드에 섰는데 상대 타자 홈런 나오길 기다리나. 다들 적절하게 선을 지켰다고 봐. ▽구=돌직구만 던져대니 다음 공이 뻔히 보이는 것도 약점. 하긴 명량대첩 결말을 세상이 다 아는데 반전이 있을 수 있나. ▽정=그렇기에 정답은 정공법이 아닐까. 곁눈질하지 않고 그냥 직진하잖아.▼영화평론가 한 줄 평과 별점▼ (★ 다섯 개 만점)강유정 굴욕의 미학, 치욕의 카타르시스 ★★★☆김봉석 긴장감이 끊길 새 없이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 ★★★★정지욱 해상전투신은 백미. 그 이상, 이하도 없었다 ★★★☆이해리(스포츠동아 기자) 압도적 최민식과 느슨한 류승룡의 불균형 ★★★정양환 ray@donga.com·구가인 기자 }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최민식 류승룡이 주연한 영화 명량(30일 개봉)은 줄거리만 놓고 보면 단순한 작품이다. 조선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최민식)이 전남 진도 앞바다 울돌목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명량대첩'에 올곧이 초점을 맞췄다. 해상 전투신만 1시간이 넘는 대작 전쟁영화를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군도'를 본 뒤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던 정양환 기자와 구가인 기자는 '명량'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구=아, 관전평하기 너무 조심스러워. 영 충무공을 디스하는(깎아내리는) 것 같아 부담스럽네.▽정=작품이 잘 나왔잖아. 기대했던 만큼 스펙터클이 화면을 꽉꽉 채워주던 걸.▽구=음, 난 기대치도 딱히 높지는…. 경쟁작에 하정우 강동원(군도) 김남길(해적) 박유천(해무)이 쏟아지는데, 최민식 류승룡 아저씨한테 크게 맘이 가진 않았어.▽정=뭔 소리야. 좌중을 압도하는 두 양반 눈빛이 가슴을 후벼 파잖아. 류승룡의 스모키 화장이 좀 과하긴 했지만.▽구=연기 잘하는 배우들인 건 인정. 그 큰 스크린에 얼굴이 정면 클로즈업되는데도 흡인력이 상당했어. 하지만 영화적인 측면에서 매력 있는 캐릭터는 아님.▽정=네, 이놈! 감히 장군을 욕보이려 드느냐. 나라 위해 초개같이 한 몸을 던지는 공의 충정을….▽구=남자들은 꼭 이러더라. 또 영웅본색 보고 성냥 입에 물었네. 다양한 갈등을 보여주는 입체적 인물 묘사는 아니었단 얘기죠. 위대한 리더인 건 틀림없으나, 21세기 관점에서 보면 부하들과 소통도 부족하고.▽정=그게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긴 하지. 온 국민이 존경하는 '안티 없는' 위인이니 함부로 덧칠하기 어려웠을 거야. 그래도 죽은 부하 원혼에게 "내 술 한 잔 받으시게"하던 장면은 잊혀지질 않아. 아, 저 비장감은 최민식 아니면 누구도 안 되겠구나 했어.▽구=그 묵직함이 관객에겐 불편할 수 있어. 2시간 내내 어깨를 짓누르잖아. 팝콘 씹거나 음료수 빨았다간 혼날 것 같은 느낌?▽정=그 넘치는 박력이 얼마나 근사해. 150인조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배경음악에 가슴이 쿵쾅거리잖아.▽구=스피커 찢어지겠더라. 뒤에 나오는 전쟁신은 좋았어. 1시간이 넘는데도 지루한 줄 몰랐으니까.▽정=그 정도가 아니야. 감히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전쟁신이라 부르리다. 노 젓는 나무배 싸움을 속도감 넘치는 공중전마냥 만들어낸 제작진에 경배를!▽구=오히려 이 전투에서 민초를 제대로 살린 게 미덕이라고 봐. 배 밑에서 노를 저으며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백성들의 손바닥은 찌릿찌릿했어. 다만 시종일관 어디서 애국가가 들리는 분위기는 좀….▽정=월드컵 본선진출 마지막 티켓 놓고 일본과 맞닥뜨린 기분은 들더라.▽구=이순신이란 거대한 태양에 가려 다른 별은 보이지 않는 것도 아쉬웠어. 특히 류승룡이 맡은 구루지마는 이순신에 비해 매력이 떨어져. 우리 편이라고 이순신만 너무 편애한 것 같아.▽정=어쩔 수 없지. 류현진이 마운드에 섰는데 상대타자 홈런 나오길 기다리나. 다들 적절하게 선을 지켰다고 봐.▽구=돌직구만 던져대니 다음 공이 뻔히 보이는 것도 약점. 하긴 명량대첩 결말을 세상이 다 아는데 반전이 있을 수 있나.▽정=그렇기에 정답은 정공법이 아닐까. 곁눈질하지 않고 그냥 직진하잖아.구가인기자 comedy9@donga.com정양환기자 ray@donga.com}

“어? ‘만수르’가 아니네.” KBS2 ‘개그콘서트’에서 13일 새롭게 선보였던 코너 ‘만수르’가 한 주 만인 20일 ‘억수르’로 변경했다. 만수르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축구클럽 맨체스터 시티의 갑부 구단주인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하얀(44)을 소재로 만든 개그 코너. 개그맨 송중근(사진)이 만수르 역을 맡아 첫 방송부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방영 뒤 제작진은 예기치 않은 방문(?)을 받았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가 찾아와 국제석유투자회사(IPIC) 사장이자 아랍에미리트 부총리의 실명을 쓰는 건 외교적 결례란 의견을 전달한 것. 개콘 측은 “만수르는 어떤 반응도 없었지만 공사가 사전에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며 “제목이 큰 이슈는 아니어서 ‘엄청나게 웃기고 싶다’는 뜻에서 경상도 사투리와 섞은 ‘억수르’로 바꿨다”도 설명했다. 만수르는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의 동생으로 개인 재산만 28조 원. 아부다비 왕가인 집안 전체 자산은 1000조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누리꾼들은 “모든 걸 가진 남잔데 좀 희화화한들 대순가” “공무원들 또 지레 겁먹었네” “아내 역은 누가 맡나” 같은 댓글을 남겼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올해로 18회째를 맞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가 11일간의 영화 축제를 시작했다. 17일 경기 부천시 원미구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개막식으로 문을 연 PiFan은 48개국 210편(장편 123편, 단편 87편)의 다양한 영화를 선보인다. 개막작으로는 독일 감독 막시밀리언 엘렌바인이 연출한 ‘스테레오’가 상영됐다. 갱스터 장르를 기본 줄기로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이다. 올해는 다양한 기획전도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거대 괴수 고지라 탄생 60주년을 맞아 마련된 ‘괴수대백과: 고지라 60주년’과 아르헨티나국립영화연구소의 후원을 받아 남미 영화들을 집중적으로 살핀 ‘낯선 환상, 금지된 욕망의 대륙: 라틴 아메리카’가 열린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과 중국 베이징영화학교가 2005년부터 공동으로 단편영화 제작사업을 지속해온 결과물인 ‘한중 10년의 동행: 합작영화 10주년 작품전’도 만날 수 있다. 폐막작은 2007년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을 연출했던 이권 감독의 신작 ‘내 연애의 기억’(송새벽 강예원 주연)이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pifan.com)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3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2’를 보는 관객은 어쩌면 이렇게 되뇔지도 모르겠다. “정말 개…, 아니 용(龍)판이구먼.”이 영화는 개체 수만 놓고 보면 ‘드래건 계의 오승환(끝판왕)’이다. 용이 한 1000마리쯤 날아다닌다. 날개가 넷이거나 얼음을 뿜는 등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최근 드래건은 영화나 TV의 인기 소재다. 지난달 시즌4가 종영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영화채널 스크린)에는 무럭무럭 커가는 용 세 마리가 나왔다. 내년 시즌5로 돌아온다. 지난해 12월 영화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위용을 드러낸 거룡 스마우그(Smaug)도 올해 말 ‘호빗: 다섯 군대의 전투’로 다시 만난다. 현재 누적 관객 약 500만 명인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엔 로봇 공룡(恐龍)이 나온다.(서양 신화의 드래건은 공룡이 기원이란 학설도 있다.)흥미로운 건 같은 용이라도 작품마다 해석 방식이 다르단 점이다. 서구 중세의 ‘전통적(orthodox)’인 드래건부터 오히려 동양사상에 어울리거나 혼종적인 성격을 지닌 용도 있다. 동서양 신화에 해박한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의 도움말과 영국학자 칼 슈커가 쓴 ‘드래건의 자연사’(1995년)를 통해 21세기 미디어 속 서양 용을 살펴봤다. 》 ▼ ‘호빗’ 스마우그 ▼탐욕과 파괴의 화신… 중세적 세계관 반영지난해 영화 ‘호빗’에서 분노에 가득 차 성을 뛰쳐나간 스마우그. 올해 말 선보일 영화에서 제대로 분탕질을 선보일 이 드래건은 전형적인 서구문화 용 이미지에 가장 가깝다. 그런데 ‘용=악한 괴물’ 설정은 유럽 중세시대에 자리 잡은 개념이다. 드래건은 고대 그리스어 ‘드라콘’에서 유래했는데, 주로 커다란 뱀을 지칭했다. 기독교 세계관에서 뱀은 인간에게 원죄를 떠안긴 장본인. 때문에 성화에는 성모가 용을 발로 밟고 있는 묘사가 잦다. 스마우그가 황금에 대한 탐욕이 남다르며, 매우 포악하고 교활한 성격을 지닌 것에도 이런 의식이 깔려 있다. 머리 하나가 사람 몇 배나 되는 스마우그의 엄청난 덩치도 전통이 깊다. 로마시대 작가인 클라우디우스 아엘리아누스는 저서 ‘동물의 본성’에서 “용은 최대 180피트(약 55m)까지 자란다”고 묘사했다. 수명도 1만5000∼2만 년이다. 사료에 최초로 등장하는 드래건은 어떤 모습일까. 학자들은 기원전 2000년 전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괴물 훔바바(humbaba)를 용의 원류로 친다. 입으로 불과 독을 내뿜고 꼬리가 뱀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론 거인의 형상이었다. 공룡 등에 박쥐 날개가 달린 익숙한 생김새는 영문학 최초 서사시인 ‘베어울프(Beowulf·8세기경)’에서 찾을 수 있다. 영웅 베어울프가 화룡(火龍)을 무찌르는 대결구도 역시 등장한다. ▼ ‘왕좌의 게임’ 드로곤 ▼왕을 상징하는 매개체… 동양적 용에 가까워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대너리스 공주(에밀리아 클라크)는 칠왕국을 다스렸던 타르가르옌 왕조의 적통. 하지만 반란으로 나라를 뺏긴 뒤 이국에서 떠도는 거지 신세로 전락한다. 막다른 길에 몰린 공주에게 부활의 명분을 선사하는 존재가 바로 용이다. 불 속에서 품은 알에서 드로곤(Drogon) 등 3마리의 드래건이 깨어남으로써 공주는 ‘용의 어머니’로 여왕의 정당성을 획득하게 된다.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로서 용은 서양보다 동양적 정서에 부합한다. 동양 용은 고대 인도신화에서 출발해 동북아시아에서 꽃피는데, 제왕의 권력을 나타내는 피조물이었다. 특히 농업과 어업이 중요했던 한국과 중국에서 용은 기후를 다스리는 존재로 추앙받았다. ‘왕좌의 게임’에서 드래건이 몇백 년 동안 나타나질 않자 사람들은 미신으로 치부하거나, 이미 멸종했다고 여기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조선시대엔 용의 실존 여부를 놓고 조정에서 격론이 벌어진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 세종 18년(1436년) 제주 안무사로부터 ‘용 다섯 마리가 승천했다’는 보고가 올라온 것. 천 관장은 “이 보고를 두고 대소 신료가 4년이나 논쟁을 벌였지만 끝내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특이한 건 만사를 과학적으로 봤던 실학자 이수광(1563∼1628)과 이익(1681∼1763)도 각각 전북 익산과 경기 포천에서 용을 직접 봤다는 글을 남겼다. ▼ ‘드래곤 길들이기2’ 투슬리스 ▼인간을 지키는 든든한 존재… 바이킹 시대에 부합1편에 이어 주인공 히컵의 다정한 벗인 드래건 투슬리스(Toothless)는 애매한 존재다. 하늘을 날고 불을 뿜는 용은 확실한데, 전통적인 드래건과는 다르다. 딱 타기 좋은 말만 한 크기에 혀로 주인을 핥는 강아지나 할 법한 행동을 한다. 해맑은 눈망울을 보라. 실제로 많은 관객들이 1편을 보고 나서 “애견이 떠올라 뭉클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영화에서 드래건은 괴수보단 반려동물에 가깝다. 이런 ‘하이브리드(hybrid·혼종)’ 드래건은 분명 미국 할리우드의 상업적 의도가 작용했을 터.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도 그다지 틀린 건 아니다. 중세 이전 드래건은 예상보다 긍정적이고 친근하게 그려진 경우가 적지 않다. 학계에선 용에 대한 개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문명 때부터 이미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초기엔 드래건에 대한 선악의 잣대가 엇갈렸다.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유럽 상당수 지역에선 인간의 재물을 지켜주는 착한 동물로 여겼다. 영화 속 히컵의 종족인 ‘바이킹’이 대표적이다. 8∼10세기에 바다를 주름잡았던 노르만족은 배에 용 그림을 새기곤 했다. 거친 날씨와 적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는 신수(神獸)로 믿었기 때문이다. 천 관장은 “종교적 세계관에 자연을 인간의 정복 대상으로 보는 근대적 사고방식이 겹치며 용을 무찔러야 할 상대로 보는 고정관념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올여름, 사상 초유의 스크린 대전이 펼쳐진다. ‘7말 8초’ 극장가는 전쟁터. 지난해 이 무렵엔 하루 평균 100만 명의 관객이 몰렸다. 올해는 한국 영화 대작 4편이 맞붙는다. 23일 ‘군도: 민란의 시대’(쇼박스)를 시작으로 ‘명량’(30일·CJ E&M), ‘해적: 바다로 간 산적’(8월 6일·롯데엔터테인먼트), ‘해무’(8월 13일·뉴)가 일주일 간격으로 속속 개봉한다. 편당 총제작비만 해도 100억∼200억 원 선. 국내 4대 배급사의 대작들이 한꺼번에 몰린 건 극히 드문 일. 영화계에선 ‘600억 대전’이라고 부른다. ‘갑오년 대첩’의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관계자들은 “잠을 못 잔다” “입이 쩍쩍 마른다”고 하소연이지만 팬들의 마음은 설레기만 한다. 동아일보 영화담당 기자가 4편을 시리즈로 관전평을 나누고, 전문가들의 평을 미리 구했다. 먼저 포문을 여는 윤종빈 감독, 하정우 강동원 주연의 영화 ‘군도…’를 만나보자. 》▽정양환=이건 뭐, 조선 철종 시대 민란이 배경인데 서부영화 ‘장고’(1966년)잖아. 음악부터 웨스턴 분위기를 제대로 내던데? 돌무치(하정우)의 쌍칼은 쌍권총이 떠올랐어. ▽구가인=백정인 돌무치가 세도가 조윤(강동원)에게 가족을 잃고 군도에 합류해 복수하는 구조가 딱 그래. 원래 윤종빈 감독이 시대물에 장르적 특성을 잘 입히는 감독 아닌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년)도 1980년대를 갱스터물로 해석했으니까. ▽정=순 제작비만 135억 원 들였다더니 때깔이 좋더군. 영화가 예상보단 무겁지 않고 편안했어. ▽구=예고편 속 ‘뭉치면 백성, 흩어지면 도적’이란 말에 낚였네. 선이 분명한 오락영화지. 스타 캐스팅, 적절하게 웃기고 볼거리 풍부. 다만 윤 감독 팬으로선 아쉽다는. 이번엔 그저 가볍기만 해. ▽정=이성민 조진웅 김성균 마동석…. 조연도 화려했어. 거의 ‘어벤져스’ 수준. 힘센 마동석이 ‘헐크’라면 수다스러운 조진웅이 ‘아이언맨’? 홍일점 윤지혜가 ‘블랙 위도우’, 하정우는 ‘캡틴 아메리카’. ▽구=근데 출연진이 왜 이리 많아. 몇몇 캐릭터는 사연이 꽤 있어 보이는데, 영화에선 무척 단편적이야. 편집에서 많이 잘린 게 아닐까. ▽정=아니지! 등장인물 다 챙기면 산만해지잖아. 돌무치와 조윤이 중심을 잡아줘 명쾌하던데. ▽구=연기는 좋은데, 사투리는 영…. 배경이 전남 나주인데 강동원은 부산 사투리 못 고친 서울사람이야. 감독이 부산 출신이라 전라도 사투리에 약한가 봐. 차라리 그냥 표준어로 밀든지. ▽정=하정우는 괜찮지 않았나? 물론 돌무치는 백정인데 아주 무지렁이 같진 않았어. 하정우란 배우의 아우라 때문인가. ▽구=두 배우의 머리 크기 차이를 좀 걱정했는데…. ▽정=별 걱정 다 한다. ▽구=예상외로 화면에선 그다지 차이가 없어 감독의 배려심(?)을 느꼈다고나 할까. 강동원이 하정우에 밀릴 줄 알았더니 전∼혀. 장검을 휘두르는 강동원은, 아! 나쁜 놈인데도 진짜 아름답지 아니한가! ▽정=머리 풀어헤친 강동원은 남자가 봐도 예쁘더라. 그때 깨달았지. 아, 그가 숨은 여자 주인공이었구나. 난 그래도 강동원보단 하정우가 갑. 우수어린 눈빛보단 굵직한 카리스마지. ▽구=액션은? 단조롭진 않던데. 칼싸움에 총싸움까지 이어지고. 떼로 말 타고 질주하는 장면은 음악이랑 어우러져 꽤 멋졌어. ▽정=와이어도 안 쓰고 색다른 액션을 보여주려는 노력은 높이 살 만. 허나 ‘와호장룡’(2000년) ‘짝패’(2006년)처럼 신선하진 않았어. ▽구=액션과 코미디가 섞이다 보니 그런 거 아닐까. B급 개그를 자주 시도하던데. ▽정=웬 걸. ‘하정우 18세’ 설정은 빵 터졌는데 그 외엔 피식 정도? 성우 내레이션은 키치(의도적으로 통속성 추구 기법) 분위기를 내려 했으나 효과는 그다지…. 기대가 너무 컸나. 올여름 대전의 압도적 강자란 느낌은 일단 보류. 남은 작품을 봐야 할 듯. ▽구=그래도 500만 명은 넘기지 않을까. 하정우 강동원, 그것만으로도 당기잖아. ▼영화평론가 기자 한 줄 평과 별점▼ (★ 다섯 개 만점)강유정 하정우 강동원은 있는데 윤종빈은 없다 ★★★김봉석 오락 활극으로서는 성공, 다만 윤종빈 전작에 비교하면 너무 전형적 ★★★☆ 정지욱 김치 웨스턴의 새로운 창조라고 할까 ★★★☆이해리(스포츠동아 기자) 카페인 과다복용의 짜릿한 효과 ★★★★☆구가인 comedy9@donga.com·정양환 기자}

빌 브라이슨, 그가 돌아왔다. 뭐 다른 말이 필요한가? 막상 쓰고 보니 오글거린다. 찾아 보니 이 아저씨도 언제부턴가 1년에 한두 권씩 국내에 책이 나왔다. 히가시노 게이고 수준은 아니지만 살짝 선도는 떨어지네. 그래도 저자가 상당한 고정 팬을 확보한 데는 이유가 있다. 글이 재밌으니까. 대체로 그의 책은 두 종류로 나뉜다. 여행기 혹은 역사·과학을 넘나드는 잡다한(?) 평설. 개인적으로 여행기가 더 탁월한 듯한데, 이번 책은 후자 쪽이다. 1927년 미국은 책의 부제처럼 ‘꿈과 황금시대’를 만끽하던 시절이었다. 세계 물자 총생산량의 42%를 담당했으며 금 보유량이 나머지 나라들의 보유 총량과 맞먹었다. 말 그대로 세계 유일한 초강대국이었다. 흥겨운 재즈 리듬이 어울리던 당대의 번영을 저자는 유쾌한 필치로 따라잡는다. 하지만 거기서 멈춘다면 브라이슨이 아니지. 그 흥청망청한 낙관주의 속에 감춰진 불안도 예리하게 짚어낸다. 그해 8월 사회적 편견 속에 억울하게 사형당한 이탈리아계 이민자 니콜라 사코와 바르톨로메오 반제티는 그 대표적 사례였다. 저자에 익숙하다면 또 한 번 즐거운 경험이 되겠지만 사실 내용은 좀 거리감이 있다. 영미에선 낯익은지 몰라도, 우리로선 다소 생경한 풍경이 잦다. 겨우 서너 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우리 관심 밖의 시시콜콜한 내용도 있다. 책을 덮고 나니, 문득 1927년 한반도가 궁금해졌다. 일제강점기니 흥겨울 리 만무할 터. 역시 그해 일제는 광화문을 해체하고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었다. 브라이슨이 한반도에 돋보기를 들이밀었다면 어떤 글이 나왔을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그놈의 학교엔 17년째 귀신이 산다. 2일 개봉한 영화 ‘소녀괴담’은 ‘여고괴담’(1998년)의 DNA를 물려받았다. 제목이나 설정도 그렇고 오마주다 싶은 장면도 눈에 띈다. ‘학원 공포물’의 계보를 제대로 이었다. 흥행도 괜찮다. 8일 영화진흥위원회 기준 약 34만 명이 관람했다. 여고괴담이 그해 한국영화 흥행 2위(150만여 명)였던 수준은 아니라도, 대작 틈바구니에서 나름 선전. 여고생 귀신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월계관을 내려놓지 않았다. 영화 속 등장인물과 같은 나이대인 여고생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여고괴담이 개봉했을 때 고2였던 주부 이성혜 씨(34)와 고3이던 전문직 여성 A 씨(35), 4일 서울 용산구의 한 영화관에서 소녀괴담을 본 여고 1학년생(16) 2명을 만났다. △이 씨=여고괴담이 학교 현실을 반영했다? 꽥꽥 소리 지른 기억뿐인데…. 나중에 그런 면도 있구나 알게 됐지. 공포영화 보며 뭘 찾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일단 무서워야지. △여고생 B 양=헐, 대박(이 말을 거의 문장마다 사용). 시간 때우려 봤어요. 별 ‘쇽(쇼킹)’하지도 않던데. 그냥, 강하늘 짱! 김정태는 쩔어요(웃겼단 뜻이라고). 하긴 왕따는 어디나 있죠. 근데 고딩은 아니고 초딩, 중딩 때 난리죠. 지금은 서로 관심 없고 바쁘니까. 서너 명씩 베프(가장 친한 친구) 먹고, 딴 애들은 띄엄띄엄 보죠. 서로가 따 시킨다고나 할까. △A 씨=여고괴담엔 변태 선생 나오잖아. 어느 학교나 1명씩 있었어. 우린 체육선생. 애들 지각하면 양동이에 물 떠와선 양말 벗고 발 씻으라 그랬어. 그걸 지긋이 바라보는 거야. 아, 지금 생각해도 짜증난다. 옆 학교엔 그렇게 허리 꼬집는 선생이 있었대. △여고생 C 양=헐, 대박. 그걸 왜 참아요? 폰카로 찍어 웹에 올려버리지. 요즘엔 그런 쌤 없는 듯. 물론 찌질 쌤은 있는데, 안 엉키면 됨. 그래도 예쁘면 좀 대접받죠. 대신 조심해야 돼요. 나대면 일진들이 밟거든. △이 씨=그땐 참는 게 당연한 줄 알았지. 학생주임도 꼭 자는 애 깨울 때 손등으로 뺨을 쓰윽 비볐어. 여고괴담에서 귓불 만지는 장면에서 그 선생이 떠올랐어. 대신 우리 땐 왕따는 심하지 않았지. 없진 않고, 너무 잘난 척하면 반에서 은근히 따돌림 당했지. 지금 생각하니 그것도 철없었네. △C 양=영화처럼 여자 일진이 남자애 때리고, 남짱이 여학생 빵셔틀 괴롭히는 건 어색해요. 교실에선 남자 여자는 서로 안 건드려요. 급 떨어지게…. 재수 없게 구는 남짱 여친은 있어요. 칠판에 ‘누구누구 잤다’고 쓰는 거? 어유, 애들인가. △이 씨=공학 다녔는데, 학교 커플은 그때도 있었지. 근데 상급생 오빠랑 사귀는 경우가 많았어. 대학생 만나는 애들도 드문드문 있었고. △A 씨=성적, 가정형편이 잣대인 분위기는 확실히 있었어. 그건 여고괴담이 잘 담았어. 그때 그래서 어디 단체가 항의도 했을걸.(한국교총이 상영 중단을 요구했다.) 그렇다고 뭐가 바뀐 거 같진 않은데. △C 양=지금도 비슷하죠. 누구네 집 딸내미는 쌤도 터치 못함. 빽이 짱이죠. 글고 얘(B 양)는 강하늘 좋다는데, 영화처럼 귀신 보는 애라면 깨요. 어릴 땐 분신사바니 뭐니 유행했지만. 빨간 마스크도 언제 적 얘긴데, 요샌 동네 아저씨가 더 무서워. △B 양=근데 왜 공포영화 보냐구요? 여름에 쌩하잖아요. 그럼, 배트맨은요? 초인이나 귀신이나.정양환 기자 ray@donga.com}

700년의 세월을 품은 고려 관음보살이 머나먼 미국 땅에서 확인됐다. 고려불화는 전 세계에 160여 점밖에 알려지지 않아 국제 경매시장에서도 ‘부르는 게 값’일 만큼 가치가 높다. 미국의 유명 미술대학으로 꼽히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의 미술관이 희귀한 고려불화 1점을 소장하고 있다는 소문은 몇 년 전부터 조금씩 퍼졌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 일본 고미술상을 통해 이 작품을 입수한 미술관 측은 처음엔 ‘수준 높은 중국불화’로 여겼다. 하지만 아시아 예술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조심스레 고려불화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 불화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2년 전쯤 찾아왔다. 미술관과 친분이 깊던 조인수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가 직접 이 작품을 볼 기회를 얻었다. 조 교수는 “예술적 가치도 탁월했지만 기존에 익숙한 ‘반가좌 수월관음도’와 다른 결가부좌를 튼 도상에 깜짝 놀랐다”며 “초특급 고려불화임을 직감하고 국내 최고 권위자인 정우택 동국대 교수에게 의뢰하라고 미술관에 조언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 교수는 지난해 미 워싱턴에 있는 프리어 미술관의 연락을 받았다. 한국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미국 내 고려불화 데이터베이스 구축’ 프로젝트를 시행하니 주 연구자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이 온 것. 올해 초 정 교수는 로드아일랜드로 가 ‘결가부좌 수월관음도’를 만났다. 정 교수는 “고려불화 중에서도 수월관음도는 약 46점만 알려졌는데 대부분 반가좌 형태이고 결가부좌는 일본 오카야마(岡山) 현의 조라쿠지(長樂寺) 소장품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딱 2점밖에 없는 것”이라며 “RISD가 소장한 작품은 보존 상태도 좋고 예술성도 탁월한 명품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번에 세 번째로 확인된 ‘결가부좌 수월관음도’는 희귀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예술적 완성도 역시 빼어난 작품이다. 은은하게 밴 관음의 미소는 물론이고 전체 색감이 조화롭고 묘사도 세련됐다. 정 교수는 “기존의 고려불화와 비교해도 종교적 성취와 예술성 감흥을 함께 풍기는 걸작”이라고 평했다. 이 외에도 문화재청 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또 다른 국보급 고려불화가 2점이 더 발굴됐다. 미 보스턴 미술관이 1911년에 구입한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반가좌 수월관음도’(1929년 구입)의 존재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 두 작품 모두 14세기 중반과 후반 고려불화의 전형적인 양식이 훌륭하게 표현된 작품이다. 그간 고려불화는 일본에 130여 점, 한국과 미국에 10여 점씩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조사를 통해 미국에서 더 많은 고려불화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프리어 미술관은 내년 말 이 프로젝트의 성과를 인터넷을 통해 전면 공개할 방침이다.:: 결가부좌와 반가좌 ::결가부좌는 흔히 말하는 양반 다리처럼 양다리를 함께 접고 앉은 자세를 가리킨다. 반가좌는 한쪽 다리는 접고 다른 쪽 다리는 내리는 자세다. 결가부좌는 주로 부처가 취하는 자세로, 관음보살은 대부분 반가좌를 한 경우가 많다. 관음보살이 결가부좌를 튼 불화나 불상은 매우 희귀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혹성탈출-반격의 서막’ 같은 영화는 소개하기가 애매하다. 일단 반전을 기대할 수 없다. 1968년 원작을 기억하는 이라면 이미 물에 잠긴 자유의 여신상까지 본 터. 그 프리퀄(전편보다 앞선 이야기)인 2011년 작 ‘진화의 시작’에서 이어진 내용이니…. 그래, 원숭이들이 갑이다. 인류를 재앙에 빠뜨린 바이러스가 창궐한 지 10년. 그간 유인원(ape)들은 집단사회를 건설했다. 1편에서 그들을 이끌고 숲으로 향했던 주인공 시저는 여전히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하지만 평화롭던 유인원 사회는 2년 만에 우연히 마주친 인간들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한다. 끝장난 줄 알았던 인류가 일부나마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살아남았던 것. 삶을 재건하고 싶은 그들에겐 전기가 필요하고, 유인원이 지배하는 산속의 댐이 유일한 희망이다. 4년 만에 돌아온 혹성탈출은 스케일 자체가 확 달라졌다. 인간 틈에서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던 유인원들이 이젠 독자적인 거대 세력을 구축했다. 이제 대등한 입장의 ‘사회 대 사회’가 부딪치니, 말 그대로 문명의 충돌이자 전쟁이다. 하지만 영화는 인류와 유인원의 투쟁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생존 자체가 급선무인 인류보다 원시 수준에서 벗어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유인원의 진화가 중심 얼개다. 생존 앞에 일치단결했던 유인원들이 이젠 분열과 갈등을 겪으며 역사를 건설하는 과정에 들어서 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시저의 한마디는 뜨끔할 정도로 전율스럽다. “난 항상 유인원이 인간보다 나은 존재라 여겼어. 그런데 우린 인간과 너무나 닮았어.” 최소한 이 영화에선 ‘에이프(ape)’를 ‘유인원(類人猿)’이라고 해석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그들의 눈에 인간은 ‘에이프를 닮은 동물들’일 뿐이다. 언젠간 나올 3편에선 정말 감정적으론 불편한 ‘인류의 종말’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참, 혹성탈출은 원래 16일로 예정됐던 개봉 날짜를 10일로 앞당겼다. 이 때문에 영화계에선 변칙 개봉이라며 성토의 목소리가 높다. 흠, ‘신뢰’를 금쪽처럼 여기는 시저는 이런 상황 마뜩지 않을 텐데. 12세 관람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관 스크린이 한국에 생겼다. 롯데시네마는 3일 “서울 송파구 제2롯데월드의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영화관에 만든 ‘수퍼플렉스G’ 스크린이 세계 최대 크기를 인정받아 영국 기네스북에 등재됐다”고 밝혔다. 이 스크린은 가로세로 34×13.8m 규모로, 이날 잭 블록뱅크 기네스 기록심판관이 직접 공식인증서를 전달했다. 프랑스에서 제작된 이 스크린은 가로로 사람이 팔을 뻗고 서면 34명이 모여야 가득 찰 정도의 크기. 이 때문에 설치하는 데에만 6개월 이상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시네마 측은 “측면에선 보기 부담스럽지 않으냐고 우려하는데, 어느 관람석에서 봐도 관객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균일한 밝기와 화각을 유지하도록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객들이 언제부터 이 스크린에서 영화를 볼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개관 허가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본격적인 상영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다음 주면 6·25전쟁이 발발한 지 어언 64년이 된다. 해마다 이쯤엔 관련 서적이 상례처럼 쏟아지는데, 올해는 전쟁을 직접 치른 군인들의 회고록이 많다. 공군 조종사로 참전해 당시 현장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이강화 장군(준장 예편)의 ‘대한민국 공군의 이름으로’(플래닛미디어)와 1950년 11∼12월 벌어진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미국 해병의 실화를 담은 ‘폭스 중대의 최후의 결전’(진한M&B)도 눈에 띈다. 그 가운데 ‘어느 서울대…’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군인(?)의 이야기다. 저자인 고 김형갑 전 캐나다 매니토바대 교수는 1930년 전북 정읍 출신으로 서울대에 다니다 남침한 북한군에 강제 징집돼 ‘인민해방군’이 됐다. 낙동강 전선부터 두만강까지 이리저리 끌려 다녔으나 1952년 4월 원산에서 조각배를 타고 탈출해 다시 남한으로 돌아왔다. 휴전 이후인 1958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한평생 타향살이를 했다. 이 책은 원래 출판을 염두에 뒀던 글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김 교수가 세상을 떠난 뒤 유족들이 우연히 발견한 글을 정리해 세상에 내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문장이 다소 거칠고 분량도 짤막하다. 하지만 그런 약점이 이 글이 지닌 묵직한 힘을 가리진 않는다. 억울한 심정에 분노하거나 염세적일 수도 있는 상황이건만, 자신이 겪은 전쟁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전달한다. 저자는 육체적 고통도 컸지만 정신적 힘겨움이 더 버거웠던 듯하다. 하루 종일 행군과 사역을 한 뒤 지친 몸으로 매일매일 북한의 사상수업을 받는 일은 가혹한 고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의문을 품거나 실수하면 곧장 자아비판을 벌여야 하는 상황도 견디기 쉽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건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탈출한 남한에서도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고초를 겪긴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꿈에 그리던 복학도 인민군이었단 이유로 좌절됐다. 저자는 1993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뒤늦게 2012년 모교인 서울대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사실 고인은 당시로선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다. 무작정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긴 했어도, 줄곧 후방 작업에만 투입돼 총부리를 겨누고 누군가의 목숨을 앗는 비극은 겪질 않았다. 수많은 미 함대와 공군의 포격을 겪었지만 크게 다친 적도 없었다. 본인도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꿈 많던 스무 살 젊은이에게 파리 목숨처럼 취급받으며 세상의 강압에 휩쓸렸던 시간은 이후 평생의 낙인으로 남았다. 그리고 6·25전쟁은 지금도 휴전 중이다. 어떤 거창한 명분을 내걸건 피눈물을 쏟은 건 민초들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별다른 설명 없이 ‘프랑스와 네덜란드 여행기’라고 하면, 요즘 관심 가질 이가 많지 않을 성싶다. 여행기가 줄기차게 나온 지 오래되다 보니 별의별 주제를 다룬 책이 많다. 최근엔 음식 관련 기행문이 서점에서 꽤나 눈에 띈다. 이 책처럼 미술 관련 서적도 기존에 없었던 건 아니다. 세계적 미술관을 꼼꼼하게 정리해놓은 책도 상당하다. 하지만 제목처럼 저자는 인상파 화가들이 붓을 들었던 ‘빛이 그린 풍경’ 현장을 직접 찾으며 얻은 소회를 정보와 함께 엮었다. 일종의 ‘하이브리드’ 여행서인 셈이다. 이화여대 장식미술과를 나와 오랫동안 출판·잡지계에 몸담았던 저자는 2006년부터 여행 작가로 나섰다. 하지만 주로 발길 닿는 대로 움직였던 종전 스타일과 달리, 인상파 화가에 초점을 맞춘 이번 여행은 “한 시대를 뜨겁게 달궜던 화가들의 꿈과 열정이 새삼 인생 속으로 쑥 들어오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실제로 책 속에도 사진과 그림이 함께 등장하는, 클로드 모네(1840∼1926)가 그린 작품 ‘에트르타의 석양’과 똑같은 시점의 해변에 서 있는 기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감흥일 것이다. 다양한 정보를 버무렸음에도 신변잡기적(?) 기조를 유지하는 문체도 맘에 든다. 이런 류의 책들은 너무 전문 지식에 얽매이다 에세이인지 논문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경우가 잦다. 여행이란 어떤 목적을 지녔건 느긋한 여유가 넘쳐야 제맛이니까. 물론 작업하는 작가야 발에 땀이 나도록 고생했겠지만. 문득 모네가 수련 연작을 탄생시킨 프랑스 지베르니 정원의 연못가에 앉아 딱 한나절만 뒹굴뒹굴하고 싶다. 여행기는 이래서 요물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국보 제135호 ‘신윤복 필 풍속도 화첩 (申潤福筆風俗圖畵帖·일명 혜원전신첩)’의 30여 그림 가운데는 ‘쌍검대무(雙劍對舞)’란 작품이 있다. 7명으로 구성된 악공의 연주에 맞춰, 화려한 복장을 한 무희 2명이 멋들어지게 칼춤을 춘다. 그리고 왼쪽 위엔 한눈에도 돈푼깨나 있음 직한 무리가 느긋하게 이를 감상한다. 혜원 신윤복(1758∼?)이 그린 이 그림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이지만 생각을 가다듬어 보면 살짝 의문이 든다. 담박한 유교문화를 정신적 기반으로 삼았던 조선사회에서 이 ‘흥청망청한’ 그림이 어떻게 등장할 수 있었을까. 기생을 끼고 앉아 유희를 즐기는 모양새가 그리 교훈적이지도 않건만. 》풍속화 연구가인 이중희 계명대 미술대 교수(64)는 최근 펴낸 연구서 ‘풍속화란 무엇인가’(눈빛)에서 이를 “동북아시아 봉건사회 해체기에 등장하는 주류사회에 대항하는 여항문화(閭巷文化·중인 계층 중심의 문화)의 산물”이라고 분석했다. 18, 19세기 경제적 발전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계층이 기존 지배계급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향유하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풍속화를 비롯한 판소리, 방각본소설(坊刻本小說·조선 후기 상업문학)이란 설명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쌍검대무를 보면 색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연회를 즐기는 집단이 사대부라면, 이 작품은 앞에선 청빈탈속을 외치면서 뒤로는 호박씨 까는 양반네의 이중적 태도를 비꼬는 속내가 담겼다. 반면 돈 많은 중인 계층이라면, 기존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문화를 향유하는 ‘부르주아의 생활’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복장만으로 구별하긴 애매하지만 어느 쪽이어도 기득권과 차별화된 문화적 양상이다. 이 교수는 특히 풍속화가 만개한 시점에 주목했다. 한국 회화사에서 ‘풍속화 시대’는 김홍도(1745∼1806?), 신윤복, 김득신(1754∼1822)이 활약한 시대를 일컫는다. 영조, 정조, 순조가 재위했던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에 해당한다. 이 교수는 “정신적인 면을 중시했던 산수화나 인물화 중심 화풍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 자체를 들여다보는 풍속화의 등장은 봉건시대의 논리가 한계에 봉착하던 시기와 궤를 같이한다”고 말했다. 이는 조선만의 상황도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인 17∼19세기 일본의 풍속화 ‘우키요에(浮世繪)’가 유행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사실 일본에서 세속화는 이미 10세기부터 출현했으나 에도(江戶·도쿄의 옛 이름)를 중심으로 꽃핀 화려한 채색목판화인 우키요에는 18세기 후반부터 번성했다. 역시 상위 계층인 사무라이 문화의 엄격함과는 동떨어진 유흥과 생활밀착형 소재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조선 풍속화와 일본 우키요에는 지향점에서 크게 차이가 났다. 풍속화는 당대에 문인화보다 저평가를 받긴 했어도 비영리적 ‘순수 예술’이었다. 하지만 우키요에는 주로 유명 유곽이나 관광지를 소개하는 목적을 지닌 철저히 상업적 작품이었다. 아이러니한 건 이토록 ‘돈냄새 풍기는’ 그림들이 19, 20세기 ‘자포니즘(Japonism·일본풍)’의 첨병이 돼 서양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단 점이다. 이 교수는 “양국 풍속화에는 경제 활황 속에서 자라난 시대적 비판의식과 비지배 계급도 문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단 자신감이 깔려 있다”고 해석했다. 풍속화는 동북아에서 새로이 솟아오르는 ‘근대의 여명’을 비추는 거울이었던 것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목탄화가’ 이재삼 화백(54)의 개인전 ‘달빛-물에 비치다’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6길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개최됐다. 20년 넘게 목탄화에 천착해온 이 화백은 그간 대나무나 소나무 매화와 같은 한국화에 주로 쓰는 소재를 선택해 한국적 정서를 담았다. 이번에 선보인 ‘물에 비친 달’ 수중월(水中月) 역시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 고유의 감수성을 건드린다. 달빛이란 제목이 붙은 작품들은 하나같이 대형 캔버스 위에서 압도적이면서도 은은한 정취를 자아낸다. 다소 정적일 수밖에 없는 흑백 톤임에도 감출 수 없는 생명력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랄까. 묘사 자체도 멋들어지지만 전체적 분위기에서 물씬 풍기는 향취가 매혹적이다. 작가는 “이전 작품들이 산문적인 언어였다면 이번 작품들은 시적인 언어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7월 2일까지. 02-725-1020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