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범

권기범 팀장

동아일보 디지털랩 전략영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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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 듣고 싶은 것만 들리는 시대. 한 쪽에만 속 시원한 기사보다는 양쪽 모두 불편한 기사를 쓰겠습니다

kaki@donga.com

취재분야

2025-11-19~2025-12-19
정치일반81%
인사일반3%
칼럼3%
정당3%
기타10%
  • [2018 대입수시 필승전략]삼육대 교과적성우수자-SDA추천, 적성고사 실시

    삼육대는 2018학년도 수시모집에서 932명을 선발한다. 정원 내 전형으로 △일반전형 △교과적성우수자전형 △SDA추천전형 △학교생활우수자전형 △신학특별전형 △실기우수자전형 △예능인재전형, 정원 외 전형으로 △농어촌전형 △기회균형전형 △특수교육대상자전형 △특성화고교전형 △서해5도전형이 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특기자를 선발했던 글로벌인재전형은 이번 전형부터 폐지됐다. 가장 많은 학생을 뽑는 일반전형에서는 예체능을 제외한 전 학과가 ‘학생부 100%’를 반영한다. 생활체육학과는 ‘학생부 50%+실기 50%’, 아트앤디자인학과와 음악학과는 ‘학생부 20%+실기 80%’로 선발한다. 학생부는 학년별 차등을 두지 않고 3학년 1학기까지의 성적을 평가한다. 모든 전형(특성화고교전형은 제외)은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중 3개 교과를 반영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교과 조합을 전략적으로 선택해 응시하면 된다. 2017학년도 수시모집에서 처음 도입됐던 적성고사는 올해도 시행된다. 교과적성우수자전형(지난해 적성전형)은 ‘학생부 60%+적성고사 40%’를 반영해 207명을 선발한다. SDA추천전형은 ‘서류 60%+적성고사 40%’를 반영해 112명을 뽑는다. 적성고사는 국어와 수학 30문항씩이 사지선다형으로 주어진다. 시험 시간은 60분이다. 인문계열인지 자연계열인지에 따라 국어와 수학의 문항당 배점이 달라진다. 지난해 출제된 적성고사 문제는 삼육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박완성 삼육대 입학처장은 “이번 수시모집은 지난해에 비해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됐다는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삼육대 학생부종합전형은 1단계에서 서류 100%로 5배수를 선발한 뒤, 2단계에서 ‘1단계 성적 70%+면접 30%’를 반영해 선발한다. 서류 단계는 학교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전공 적합성과 인성 등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단계다. 박 처장은 “서류 제출 전 학교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를 비교하며 확인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며 “자기소개서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 활동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졌는지 살펴보는 일종의 참고 자료로 활용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육대는 모든 전형에서 교차지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수능 최저학력기준도 없어 수험생들은 수능 성적과 관계없이 모든 수시모집 전형에 지원할 수 있다. 수시모집 인터넷 원서 접수는 9월 11일 오전 10시부터 15일 오후 5시까지 ‘진학어플라이’에서 진행된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 2017-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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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잊지 말라는 말 남긴 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사진)가 2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하 할머니는 중국에 머물렀던 유일한 한국 국적의 위안부 피해자였다. 할머니는 1928년 충남 서산시에서 태어났다. 3남매의 장녀였다. 아홉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어린 나이에도 남의 집 아이를 돌보고 도자기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1944년 6월 누군가 “돈을 잘 벌 수 있는 일이 있는데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뒤 찾아온 남성 2명을 따라 할머니는 집을 나섰다. 서울에서 만난 한 여관 주인이 할머니에게 ‘기미코(君子)’라는 일본 이름을 지어줬다. 같은 해 12월 할머니는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의 지칭리(積慶里)에 도착했다. 들었던 공장은 없었다. 그 대신 무서운 군복을 입은 일본군만 있었다. 일본군은 할머니에게 주사를 놓고 약을 먹였다. 나중에야 ‘아기 못 낳는 약’인 걸 알았다. 8개월간 ‘지옥살이’가 이어졌다. “말을 듣지 않은 언니들은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는 말에 도망칠 엄두도 못 냈다. 광복 후에도 할머니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찢긴 몸과 마음으로 고향을 찾을 자신이 없다’는 마음이었다. 이름도 기미코에서 딴 ‘하군자’로 바꿔 살며 남의 집 일을 해 돈을 벌었다. 1955년 중국인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남편이 데리고 온 세 딸도 정성으로 키웠다. 하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갈수록 커졌다. 문제는 국적이었다. 분단 과정에서 중국 내 ‘조선’ 국적자는 모두 북한으로 바뀌었다. 한중이 수교한 뒤인 1999년 기독교단체 등의 도움으로 할머니는 한국 국적을 되찾았다. 그리고 2003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3년 만에 다시 중국으로 갔다.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 탓이었다. 2010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할머니는 “나라가 잘살게 됐다고 불과 몇십 년 전 나 같은 사람이 있었던 걸 잊어선 안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할머니는 생전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2000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 증인으로 참석해 피해자 참상을 고발했다. 2013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개최한 ‘제1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기념행사에 참석해 “위안소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일본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고령에도 중국에서 청소 일을 계속하던 하 할머니는 지난해 2월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누군가에게 떠밀려 계단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갈비뼈가 부러지며 폐를 찔렀다. 정부와 중앙대병원 등이 도와 지난해 4월 한국에 와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상태가 호전돼 같은 해 8월 말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으로 옮겨 재활을 시작했다. 6월에는 휠체어를 타고 산책할 정도로 호전됐다. 그러나 7월부터 갑자기 신장 기능이 악화되면서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결국 이날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빈소에서 만난 할머니의 셋째 딸 류완전(劉婉珍·64) 씨는 “고달픈 삶을 내색 한번 하지 않은 위대하고 강한 어머니였다.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듣지 못한 채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프다”며 울먹였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생존자는 36명으로 줄었다. 빈소는 서울 강동경희대병원이다. 발인 30일 오전 10시. 02-440-8800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 201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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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새 놀다 출근… ‘모닝 클러빙’ 즐기는 청춘들

    강한 비트에 온몸이 쿵쿵 울렸다. 조명 18개가 뱅글뱅글 돌았다. 형형색색 레이저에 쉴 새 없이 눈을 깜빡였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남녀 300여 명이 일제히 몸을 흔들었다. 냅킨이 꽃가루처럼 허공에 휘날렸다. 여성은 대부분 탱크톱 등 노출 심한 옷차림이었다. 웃통을 모두 벗은 남성도 여럿 있었다. 여기저기서 남녀 커플이 몸을 밀착한 채 춤을 췄다. 곳곳에서 비명 같은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다. 25일 서울 강남의 한 클럽 풍경이다. 이태원 홍익대 앞 등 유흥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금(불타는 금요일)’ 모습이다. 하지만 토요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불금은 아니다. 클럽 분위기가 절정에 오른 순간 스마트폰 화면에 뜬 시간은 금요일 오전 8시. 해가 뜬 지 2시간이 지났다. 클럽 밖 거리는 정장 차림의 출근 인파가 가득했다.○ 클럽에서 출근하고 등교하는 손님들 이곳은 새벽에 시작해 늦은 아침에 끝나는 클럽이다. ‘애프터클럽’으로 불린다. 보통 오전 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한다. 최근 강남을 중심으로 늘면서 아침에 클럽을 찾아 즐기는 ‘모닝 클러빙(morning clubbing)’이 2030세대에 유행이다. 손님 중에는 평범한 자영업자와 프리랜서, 대학생이 많다. 직장인도 적지 않다. 보통 직장인은 오전 7, 8시까지 즐기다 바로 출근한다. 빈자리는 대학생과 자영업자 등이 채운다. 그들의 ‘불타는 금요일 아침’은 평일 오전 10시, 주말 낮 12시에 막을 내린다. 취재진이 찾은 25일 오전에도 40개가 넘는 테이블이 가득 찼다. 테이블마다 손님 2, 3명이 올라가 어지럽게 몸을 흔들었다. 강남의 한 미용실 직원인 A 씨(26·여)는 “매달 2, 3회 정도 동료들과 함께 온다”고 말했다. A 씨는 동료들과 함께 ‘클럽 계’를 만들어 한 달에 5만 원씩 낸다. 평일 오전 7시는 이른바 ‘물갈이’ 때다. 직장인들이 우르르 출근하면 300여 명의 손님은 순간 100명 안팎으로 줄어든다. 간호조무사라는 B 씨(23·여) 일행도 짐을 챙긴 뒤 클럽을 나섰다. B 씨는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오전 8시가 되자 다시 손님은 300여 명으로 늘었다. 주로 유흥업소 종사자나 술집 아르바이트생, 자영업자 등이다. 이때 여성들이 많다는 이유로 골라 찾는 손님도 있다. 연예인을 자주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애프터클럽은 입장료가 따로 없다. 그 대신 테이블을 예약하지 않으면 입장이 쉽지 않다. 테이블을 잡으려면 꽤 많은 돈이 든다. 보통 샴페인과 보드카 등 3, 4병을 주문해야 한다. 100만∼130만 원을 써야 한다. 일반 직장인이나 대학생 한 명이 내기 부담스럽다. 그래서 만들어진 문화가 ‘조각’이다. 처음 본 사람이 친구 행세를 하며 비용을 나눠 내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지를 올려 7, 8명을 모으는 방식이다. ○ 아침마다 클럽 주변에선 진풍경 오전 7, 8시 클럽 주변은 요지경 세상이다. 클럽에서 빠져나오는 차량이 출근 차량들과 뒤엉켜 때 아닌 교통대란이 일어났다. 바로 앞 편도 5차로 도로의 바깥쪽 2개는 완전히 마비됐다. 순찰차가 와서 사이렌을 두어 번 울리며 교통정리를 시도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떠났다. 만취한 한 20대 여성이 젊은 경찰관을 상대로 주정을 부리는 모습도 목격됐다. 주변 건물은 아침마다 홍역을 치른다. 한창 출근할 시간에 노출 심한 옷차림의 여성들이 건물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술에 취한 채 앉아 있기 때문이다. 클럽 바로 옆 건물의 한 경비원은 “아침마다 민망한 차림의 여성들을 쫓아내느라 바쁘다”고 말했다. 경찰도 곤혹스럽다. 보통 술집 등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는 오전 6시가 넘으면 급감한다. 하지만 강남경찰서에는 오전 7시가 지나서 신고가 접수돼 출동하는 일이 잦다. 경찰 관계자는 “보통 오전 7, 8시면 성범죄 우려가 크지 않을 때”라며 “그러나 아침까지 영업하는 클럽이 많아지면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권기범 kaki@donga.com·신규진 기자}

    • 2017-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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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트리플 장벽’ 고달프지만… 더 커져야할 ‘서울대 기회 사다리’

    모니터 앞에 앉은 유상훈(가명·24·서울대 4학년) 씨는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수강 신청 때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 씨의 수강 신청 기준은 남들과 다르다. 토론과 조별과제가 있는 강의는 ‘기피 1순위’다. 5년 전 친구들이 유 씨에게 던진 한마디 때문이다. “아, 상훈이랑 같은 조 됐어. 망했다!” 유 씨는 2011년 지방의 한 공립고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기초생활수급가정의 자녀이지만 학교에서 늘 “공부 잘한다” 소리 듣는 모범생이었다. 기회균형특별전형(기회균형)으로 서울대에 합격했을 때까지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21일 기자와 만난 유 씨는 “서울대생은 저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고 말했다.○ 성적·가난·냉대에 우는 학생들 서울대 기회균형은 올해 10년을 맞았다. 학력과 계층의 대물림을 막자는 취지로 2008년 도입됐다. 이를 통해 1500명가량이 서울대생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기회균형 입학생 비율을 5%에서 7%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기회균형의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을 먼저 고쳐 달라고 호소한다. 본보는 기회균형 출신 서울대생 12명(2명은 졸업생)을 심층 인터뷰했다. 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 출신 3명, 일반고 출신 9명이다. 학업 부진과 경제적 어려움, 주위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온 학생들이다. 유 씨의 1학년 첫 학점은 1.3(4.3점 만점). 학사경고를 받았다. 수업이 어려워 3년간 3차례 휴학했다. 생활비 마련을 위해 고깃집 서빙과 공사현장 보조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일이 끝난 자정부터 학교 도서관에서 예습했다. “그래도 기회를 주셨는데, 열심히 해야죠.” 3학년 김정은(가명·21·여) 씨는 ‘바쁜 척’으로 유명하다. 모임 때마다 늘 빠져서다. 김 씨가 과외와 휴대전화 판매 등 ‘메뚜기 알바’로 3년째 생활하는 걸 아는 친구는 없다. “‘과잠(학과 점퍼)’ 맞춰 입고 MT 가는 친구들 보면 자괴감이 들어요.” 김 씨의 집도 기초생활수급가정이다. 1학년 첫 학기 후 엄마에게 노트북을 사달라고 떼를 썼다. 엄마는 어디선가 빌린 돈으로 최신 노트북을 사줬다. 그는 한참을 울었다. “친구들은 모두 노트북 쓰는데 저는 손으로 필기하느라 수업을 못 따라간 것 같았어요. 그때 엄마한테 ‘가난 때문에 시험 망쳤다’고 쏘아붙인 게 너무 후회돼요….”○ ‘기균’ 낙인에 맞서는 학생들 올 4월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글이 올라왔다. 기회균형 학생의 지적 능력이 의심된다는 내용이다. ‘나의 노력과 성취에 흙탕물 튀기는 존재들’ ‘사회배려자 문신을 새겨야 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2012년 기회균형으로 입학한 공과대 신입생이 기숙사에서 목숨을 끊었다. A 교수는 “학업 고민과 주변의 시선 때문에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기현 교무처장은 “혹독한 경쟁을 뚫은 보상심리가 이들을 동료로 인정하지 못하는 잘못된 현상을 빚은 것 같다”며 “엄격한 절차를 거쳐 잠재력을 인정받은 학생들을 소외시키는 언행은 용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런 시선 때문에 더 독하게 마음먹는 학생도 있다. 3학년 한재준(가명·22) 씨의 별명은 ‘칠판 앞 재준’이다. 수업을 못 따라가면 옆자리 친구들을 붙잡고 질문 공세를 펼치기 때문이다. 신입생이던 2014년 그의 학점은 기숙사 입소 최저 기준인 2.7(4.3 만점)에 못 미쳤다. 기숙사에서 쫓겨난 그는 자취할 형편도 안 돼 해병대에 입대했다. 한 씨는 “다시는 나락으로 내몰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온전한 ‘계층 사다리’가 필요하다 서울대 기회균형 학생 중에는 고군분투 끝에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이도 적지 않다. 졸업생 이민재(가명·26) 씨는 올 2월 국내 한 대기업에 입사했다. 이 씨는 “좋은 집안에서 선행학습한 친구들을 보며 학교에 수재들만 있는 줄 알았다”며 “1년쯤 지내 보니 학생들 유형이 제각각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다양한 인재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이후 성적도 꾸준히 올랐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 이정미(가명·27·여) 씨는 “기회균형이 아니었다면 나 같은 사람은 서울대에 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내가 잘해야 혜택을 보는 후배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힘을 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소외계층을 돕는 변호사가 되기를 꿈꾼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에 따르면 2013∼2017년 서울대 기회균형 입학생(805명) 분석 결과 1학년 1학기 평균학점은 3.01로 전교생 평균(3.24)보다 낮았다. 하지만 격차가 차츰 줄어 4학년 2학기에는 기회균형 학생의 평균학점(3.40)이 전체 평균(3.46)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이희원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 연구부교수는 “기회균형 학생을 위한 영어 수학 등 기초과목 학습 지원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당당히 어울리도록 심리적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기회균형특별전형=2008년 서울대가 도입했다. 저소득층(기초생활수급가정, 차상위계층)과 농어촌·도서·산간 지역 출신 학생을 정원 외로 선발하는 제도다. 매년 전체 입학생의 5% 안팎을 뽑는다. 이후 다른 대학도 비슷한 전형을 도입해 시행 중이다. 김동혁 hack@donga.com·권기범 기자}

    • 2017-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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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학교 여학생 ‘치마몰카’ 찍어 돌려본 중학생들

    남학생 2명이 같은 학교 여학생 6명의 치마 속 사진을 찍었다. 다른 남학생 5명이 가세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몰래카메라(몰카) 사진을 유포했다.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24일 경찰과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5월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에서 몰카 사건이 터졌다. 3학년 A, B 군(14) 등 7명이 여학생 6명의 몰카를 찍고 사진을 유포한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몰카 촬영은 지난해 11월 시작됐다. A, B 군은 스마트폰으로 여학생들의 치마 속을 몰래 찍었다. 이를 전달받은 다른 남학생 5명은 SNS 메신저로 다른 친구들에게 사진을 퍼 날랐다. 학교가 이 사실을 파악한 건 5월 하순. 학교 측은 경찰에 신고했다. 6월 초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열렸다. 몰카를 찍은 두 명은 전학, 나머지는 각각 출석정지, 사회봉사, 교내봉사 등 징계를 받았다. 경찰은 이들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스마트폰 속 사진은 이미 삭제됐지만 디지털 포렌식으로 대부분 복구했다. 학생들의 범행이 사실로 드러나 경찰은 22일 7명 모두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사진 유포 과정에 금전 거래가 있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경찰 조사에서 이런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다. 해당 학교가 있는 곳은 강남의 대표적 부촌(富村) 중 하나다. 사건이 알려지자 다른 학부모들까지 크게 술렁였다고 한다. 학교 관계자는 “문제가 발생한 뒤 곧바로 서울시교육청에 보고했고 후속 절차를 밟았다”며 “금전 거래는 유언비어일 뿐”이라고 말했다. 일단 외형적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워낙 충격이 커 학교 분위기는 여전히 뒤숭숭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과 SNS 발달은 10대까지 몰카 유혹에 빠뜨리고 있다. 몰카를 범죄로 보는 대신 장난으로 여기는 청소년도 많다. 교실과 학원은 더 이상 몰카 안전지대가 아니다. 최근 경기 파주시 일대 중학교 세 곳에서도 남학생 9명이 5개월 동안 같은 학교 여학생의 신체를 스마트폰으로 몰래 찍어 논란이 됐다. 피해 여학생은 20명이 넘었다. 가해 학생들은 모바일 메신저 단체채팅방에 사진을 공유했다. 경찰은 “남학생들이 몰래 찍은 여학생 신체 사진을 채팅방에 올리고 얼굴이나 몸매를 언급했다”고 말했다. ‘청소년 몰카범’은 해마다 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를 위반한 혐의로 입건된 청소년(19세 미만)은 2011년 87명에서 지난해 601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몰카 범죄자 중 청소년 비율은 6.0%에서 13.6%로 뛰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자극적인 내용에 자주 노출된 10대들은 몰카 촬영과 유포를 범죄라고 여기지 않는다”며 “SNS 때문에 유포 속도와 강도가 훨씬 강해져 사전 예방 노력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최지선 aurinko@donga.com·권기범 기자}

    • 2017-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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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률사무소 살인극 뒤엔… 재일교포 수백억 재산 다툼?

    영화 미술감독 고모 씨(45) 살인사건의 피의자 조모 씨(28)는 미리 예리한 흉기를 준비한 뒤 대낮 서울 도심의 법률사무소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범행 현장에서 달아나지 않은 채 출동한 경찰 앞에서 순순히 범행을 시인했다. 조 씨는 경찰에서 “약속한 돈을 받지 못해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더 이상 자세한 진술을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난 배경에 한 재일교포 출신 사업가의 재산을 둘러싼 후손들의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혹이 커지고 있다. 22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고 씨는 21일 오전 11시 40분경 서초구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조 씨를 만났다. 변호사 A 씨가 동석했다. 고 씨는 외할아버지인 B 씨(99)의 재산 증여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조 씨를 만났다. 이 과정에서 ‘수고비’ 문제가 나오며 언쟁이 격해졌고 조 씨는 종이가방에서 날카로운 흉기를 꺼내 고 씨의 목을 한 차례 찔렀다. 조 씨는 경찰에서 “고 씨가 재산권 분쟁에서 유리한 정보를 주면 2억 원가량 사례하기로 해놓고 ‘1000만 원밖에 줄 수 없다’고 말을 바꿔 분노가 치밀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날 살인 혐의로 조 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고 씨의 외조부 B 씨는 일본 교토(京都)의 4성급 호텔을 소유하고 있다. 18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굴지의 사업가로 성장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서울에도 적지 않은 부동산을 보유하는 등 최소 수백억 원대 자산가로 알려졌다. 2000년대 중반 국내에서 활발한 기부활동으로 화제가 됐다. 그러나 B 씨가 거의 모든 재산을 장손에게 주기로 하면서 다른 자녀들과의 다툼이 시작됐다. 고 씨는 어머니를 도와 B 씨의 장남(72)과 장손을 상대로 한 재산권 분쟁에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B 씨가 장남에게 넘긴 서울 종로구 단독주택을 둘러싸고도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 다른 자녀들이 올 3월 법원에 낸 부동산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장남은 주택을 처분할 수 없게 됐다. 경찰은 조 씨가 B 씨 가족의 재산권 분쟁에 연루된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 조 씨는 별다른 전과도 없다. 조 씨는 일본 유학 시절 B 씨의 장손과 가깝게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B 씨 장남은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고 씨가 살해된 사실도 21일 오후 6시 이후에 알았고, 조 씨가 재산권 분쟁과 관련해 고 씨 측을 찾아갔다는 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고 씨의 부인인 배우 송선미 씨(42) 측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조 씨가 17일경 갑자기 연락해 소송 관련 정보를 주겠다며 접근했고 사건 당일까지 세 차례 만난 것이 전부”라며 “어떤 자료가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액을 주기로 약속할 수도 없었다”고 밝혔다.최지선 aurinko@donga.com·권기범 기자}

    • 2017-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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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역 살인범, 피해자 부모에 5억 배상” 판결

    “고맙습니다.” 소송에서 이겼지만 부모는 이 말밖에 하지 못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해자 부모가 범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1부(부장판사 명재권)는 22일 이 사건의 범인 김모 씨(35)가 숨진 여성 A 씨(당시 23세) 부모에게 “5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지난해 5월 17일 조현병을 앓던 김 씨가 서울 서초구의 한 화장실에서 A 씨를 살해한 사건이다. 김 씨는 올 4월 유죄가 확정돼 징역 30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앞서 A 씨 부모는 5월 “딸이 60세까지 얻을 수 있었던 수익금 3억7000만 원과 부모가 입은 정신적·육체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2억 원을 각각 물어내라”며 김 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김 씨는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고 의견서도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재판은 무변론 판결로 끝났다. 민사재판에서 피고가 소송에 응하지 않으면 재판부는 원고의 청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재판부는 김 씨에게 A 씨 부모가 이미 받은 범죄피해구조금 700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배상하도록 했다. A 씨 부모는 이날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대신 소송을 진행한 대한법률구조공단 관계자에게 전화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공단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피해자 부모의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조금이나마 위로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A 씨 부모가 김 씨로부터 배상금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 씨의 재산 규모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단은 김 씨의 재산 상태를 파악해 실제 배상이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 2017-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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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窓]“이달초 휴가 나와 공장 일 돕다간 아들… 마지막일 줄이야”

    “눈물로 키운 자식인데…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싫은 소리 한 번 한 적 없는 착한 아들이에요.” 20일 오후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앞. 18일 오후 강원 철원군 육군 모 부대에서 K-9 자주포 사격훈련을 하던 중 포가 폭발하는 사고로 순직한 정모 상병(22·추서 전 일병)의 아버지(51)는 연거푸 담배를 피웠다. 충혈된 눈으로 멍하니 허공만 바라봤다. 한 마디 한 마디 말을 힘겹게 이어갈 때마다 눈시울을 붉혔다. 정 상병은 사고 당시 큰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19일 오전 3시경 끝내 숨졌다. 대학에서 전자 관련 학과를 전공한 정 상병은 졸업 한 학기를 남기고 지난해 12월 입대했다. 학교를 다닐 땐 틈틈이 부모님이 운영하는 서울의 봉제공장에서 부모님을 도왔다. 정 상병은 부모님 두 분 모두 몸이 편치 않아 늘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정 상병은 군 입대 전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80만 원을 ‘엄마 용돈’이라며 내놓기도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면회를 가겠다고 하면 극구 만류하면서 “내 군 생활 신경 쓰지 말고 부모님 몸 건강하도록 일 좀 조금만 하시라”고 당부했다. 또 “군 복무를 마치고 봉제공장 일을 도울 생각인데 괜찮으시겠느냐”고 제안했다. 정 상병은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처음엔 정 상병이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입대 당시 아버지는 “군 동기들과 잘 지내고 상사에게 절대 말대꾸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군에서 집으로 전화를 건 정 상병은 늘 씩씩했다고 한다. 통화를 할 때마다 “부모님 생각처럼 군 생활이 어렵지 않다. 잘하고 있다”고 안심시켰다. 정 상병은 군에서 동료들에 비해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훈련을 받을 때 뒤처지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훈련 성과를 끌어올렸다고 한다. 이를 높게 평가한 군 지휘관이 7월 말 “대단하고 기특하다”며 정 상병에게 8일간의 포상휴가를 줬다. 정 상병은 휴가 중 하루 동안 봉제공장 설비 설치를 돕고 이달 4일 부대로 복귀했다. 가족이 본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정 상병의 아버지는 “휴가 때 아들과 식사를 두 번밖에 하지 못했다”고 했다. 매일 주말도 없이 오후 10시, 11시까지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식들 밑천을 마련해 주려고 쉬지 않고 일했는데 이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열 손가락 끝은 고된 공장 일 때문에 새까맸다. 정 상병과 함께 사고를 당해 순직한 이 상사(26·추서 전 중사)의 빈소에는 그와 함께 복무했던 전역 병사들이 여럿 찾아왔다. 부대원들의 조문을 받은 이 상사의 아버지는 오히려 “너무 슬퍼하지 말라”며 부대원들을 다독였다. 이 상사는 부인과 18개월 된 아이를 남기고 떠나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19, 20일 두 순직 장병의 빈소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장병 등 1000여 명이 추모와 헌화를 했다. K-9 자주포 제조업체인 한화의 관련 계열사 임직원도 빈소를 찾아 애도했다. 군은 두 순직 장병에게 각각 1계급 진급을 추서했다. 21일 오전 7시 반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두 순직 장병 합동영결식이 5군단장(葬)으로 엄수된다. 육군은 사고가 장비 결함에 따른 폭발이라는 추정에 대해 “사고 원인을 아직 단정할 수 없다”며 “외부기관이 포함된 대규모 민관군 합동조사단을 꾸려 사고 원인을 정밀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성남=권기범 kaki@donga.com / 손효주 기자}

    • 201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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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계란 사라진 김밥-냉면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분식점 주인 이모 씨(40)는 ‘살충제 계란’ 보도를 보자마자 가게에서 쓰는 계란에 새겨진 번호를 확인했다. 다행히 문제가 된 농장의 지역 표시인 ‘08’(경기 생산)이 아니라 ‘14’(경북 생산)였다. 이 씨는 ‘14’ 계란을 사들여 놓으려고 했다. 신선도를 포기하더라도 살충제 계란이 들어올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16일 마음을 고쳐먹었다. 충남과 전남 등에서도 살충제 계란이 등장했다는 정부 발표를 듣고 나서였다. 이 씨는 “앞으로는 정부 발표를 실시간 확인해 문제가 없는 지역의 계란만 조금씩 주문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날 들여온 계란이 어느 지역, 어느 농장 것인지도 손님들에게 알려주겠다고 했다. 계란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 이후 다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이날 살충제 계란 농가가 추가되면서 혼란은 가중됐다. 그런 가운데 ‘자구책’을 마련하는 모습도 엿보였다.○ “안전하다고만 말하면 다인가” “각종 인증 표시가 있어 철석같이 믿었을 뿐인데요….” 직장인 A 씨(35)는 16일 새벽 잠에서 깨자마자 냉장고부터 열었다. 지난주에 산 계란 5개가 있었다. 표면에는 ‘판정’ 표시가 선명했다. 계란을 담은 곽을 보니 무항생제, 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도 받았다. 그러나 표면을 다시 들여다보니 ‘판정’이라고 찍힌 반대쪽에 ‘08○○’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다행히 전날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 농장 것은 아니었지만 남은 계란 5개를 버린 후 출근했다. A 씨는 “또 다른 농장에서도 살충제 계란이 나왔다고 하니 ‘08’만 피하면 된다는 것도 옛말이 돼 버리지 않았느냐”며 “당분간 계란이 들어간 음식은 안 먹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햄버거 전문점은 대부분의 메뉴에 들어가는 계란프라이를 빼고 손님이 선택할 수 있는 토핑 종류로 바꿨다. 업체 관계자는 “우리가 쓰는 계란은 안전한 것으로 파악됐지만 고객의 불안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아 이런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식당은 자신들이 쓴 계란이 전국 어느 지역 어느 농장에서 나온 건지 밝히지 않았다. 박모 씨(40·여)는 이날 오전 서울의 한 백화점 빵집에서 20대 점원과 ‘상담’을 했다. 박 씨는 “빵에 들어간 계란이 (문제의 농장인) ‘08마리’ ‘08LSH’ 것이 아닌지 확인했느냐”고 캐물었다. 점원은 “확인 결과 이상은 없었다”는 말만 반복했다. 박 씨는 팔짱을 끼고 빵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다 고개를 가로젓고는 빈손으로 떠났다. 이날 이 백화점의 제과점 10여 곳 중 계란의 생산지를 안내하는 게시물을 붙여 놓은 곳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부 문제없는 매장은 품귀 현상 매장 알림판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문제없는 계란을 쓴다’고 강조하는 점포도 늘고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식용란 살충제 검사 결과 증명서’를 메뉴판이나 가게 벽면에 붙여 놓기도 했다. SNS에도 검사 결과표를 올리며 안전을 강조하는 점포의 글이 수십 개 올라왔다. 살충제를 쓰지 않은 계란을 파는 매장은 품귀 현상을 빚었다. 주부 B 씨는 이날 “근처 친환경 식료품점에서 ‘안전한’ 계란을 사용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부리나케 매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30분 동안 줄만 서다 돌아왔다. 그새 동이 난 것이다. 매장 관리자가 “찾는 손님이 많아 종류에 관계없이 1개(팩)씩만 팔겠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학교 개학과 맞물리면서 전국 각 시도교육청도 비상이 걸렸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학교 급식에 계란을 사용하지 말라는 취지의 공문을 각 학교로 보냈다. 정부의 전수조사가 완료되는 17일까지 계란이 들어가는 식단은 변경하라고 공지했다. 부산시교육청도 18일까지 잠정적으로 급식에서 계란 사용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대전시교육청과 충북, 전북, 경남도교육청 등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15일부터 발 빠르게 계란과 계란이 들어간 메뉴 등을 팔지 않던 대형마트와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 가운데 일부는 이날 판매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혼란스럽다. 두 살짜리 아들을 둔 정모 씨(32·경기 부천시)는 “살충제 계란이 검출되는 농가는 늘어나는데도 ‘안전하다’고만 하니 더 헷갈린다”고 말했다.권기범 kaki@donga.com·신규진·김하경 기자}

    •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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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드 전자파, 기준치 600분의 1 “인정 못해” “안도” 갈라진 주민

    사드 레이더 전자파 양은 기준치의 600분의 1에 불과했다. 그것도 최대치다. 조만간 소규모 환경영향평가가 마무리되고 사드 배치 공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12일 경북 성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에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현장 확인 절차가 진행됐다. 국방부, 환경부, 경북도, 성주군, 김천시 관계자와 기자단 등 총 40여 명은 반대 시위자들을 피해 군용헬기로 기지에 들어갔다. 검증단은 레이더에서 100m, 500m 떨어진 지점, 관리동(600m), 발사대(700m) 등 총 4개 지점에서 전자파와 소음을 측정했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사드 레이더는 발사대와 비슷한 크기에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레이더가 켜지자 좌측 경고등이 깜빡였고 100m 밖에서도 “징” 하는 소리가 울렸다. 측정 담당자가 약 20초 뒤 삼각대 위에 올린 손바닥 크기의 측정기를 켰고 정확한 측정을 위해 검증단 모두 1m 밖으로 물러났다. 6분간 측정한 평균값은 4개 지점 모두 m²당 0.000886∼0.01659W(와트)로 전자파법이 규정한 전자파 인체보호기준 10W의 600∼1만분의 1 수준이었다. 소음 역시 50dB(데시벨) 안팎으로 2km 이상 떨어진 민가에는 사실상 영향이 없을 것으로 판단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대화할 때와 비슷한 정도의 소리”라고 설명했다. 1년여 논란이 무색할 정도의 낮은 수치가 이어지자 군 관계자들 얼굴엔 안도감이 스쳤다. 반면 검증단 사이에는 다소 허무하다는 표정이 오갔다. 전자파 및 소음 확인을 통과함에 따라 이르면 다음 주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는 마무리될 것 같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번 주 초 오수처리시설과 유류고 등을 추가로 확인한 뒤 최종 검토회의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조만간 사드 기지 내 전기 및 콘크리트 기반공사와 관리동 리모델링 공사를 준비할 계획이다. 한 고비를 넘기는 셈이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사드 잔여 발사대 4기는 아직 반입조차 못했다. 정부는 주민 설득을 통해 4기를 추가 임시 배치하겠다는 방침이지만 2기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에도 반발하는 상황에서 가능할지 미지수다. 전체 공여부지에 시행하기로 한 일반 환경영향평가도 남아있다. 일반 평가는 주민공청회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난항이 예상된다. 사드 기지와 2km가량 떨어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의 사드 반대 주민들은 이날 소규모 평가 현장 확인 결과에 대해 “수용 불가”라고 밝혔다. 사드저지종합상황실 관계자는 “고출력 사드가 돌아가고 있는데 도심에서 잰 것보다 낮은 전자파 수치가 나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우리 측이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를 불러 측정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소성리 외 지역에선 안도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성주읍 주민 김모 씨(51)는 “사드 전자파 유해 논란 해소로 찬반 주민들이 화합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토머스 밴들 미8군사령관은 소성리를 사과 방문하기로 했지만 주민들 거부로 취소됐다. 4월 26일 사드 반입 당시 일부 미군이 차 안에서 항의하는 주민들을 향해 웃으며 사진을 찍은 행동을 사과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결국 기지 내부에서 성명서만 읽었다. 성주=이미지 image@donga.com·권기범 기자}

    • 201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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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생활 10년만에 첫 두려움”… 현금 준비하는 외국인들

    10일 오후 2시경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의 한 은행 앞. 금발의 한 젊은 외국인 여성이 불안한 표정으로 은행 문을 열고 나왔다. 손에는 하얀 봉투가 있었다. “아침에 북한 뉴스를 봤다. 혹시 몰라 일단 현금을 조금 갖고 있으려 한다”고 말한 뒤 급히 자리를 떴다. 북한과 미국의 발언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자 그동안 여러 차례 긴장 상황을 경험했던 국내 거주 외국인 사이에서도 “과거와 다른 것 같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이 타격 위치로 괌을 특정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는 것에 주목했다. 한 로펌 소속 변호사인 영국 출신의 마크 벤턴 씨(45)는 10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에서 생활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북한의 위협도 위협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두려움의 이유로 꼽았다. 벤턴 씨는 “서울의 안보가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외교 정책에 좌지우지된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달 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예상을 뛰어넘는 북한의 공격 무기 개발 속도도 걱정거리다. 경기 의정부시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는 개브리얼 조 씨(29·여)는 최근 미국에 있는 부모님과의 통화가 잦아졌다. 조 씨는 “아버지가 전화할 때마다 ‘시카고까지 오는 미사일을 북한이 가졌다는 게 정말이냐’고 묻는다”며 “온 가족이 다 내 걱정만 하고 있어서 나도 불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일부 외국인은 평소와 다름없는 한국인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북한 도발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 컨설팅사에서 일하는 대만 출신 리산위안 씨(33)는 “한국 사람들은 반세기 동안 이런 위협 속에서 살았으니 별 반응이 없는 게 이해가 된다”면서도 “하지만 이번 상황은 훨씬 심각해 보이는데도 별로 불안한 모습이 없어 놀라울 정도”라고 말했다. 캐나다인 앨릭스 리 씨(46·여)는 “‘마초’ 트럼프와 미친 김정은이 대결하는 지금 상황은 과거와 분명 다르다”면서 “캐나다였다면 평화를 요구하는 집회라도 열릴 텐데 한국은 너무 조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 의식에서 이유를 찾는 외국인도 있었다. 프랑스 여행객 레날드 씨(34)는 “프랑스도 반복되는 테러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평소에는 아주 평온하다”며 “한국은 대비가 잘돼 있어 쉽게 동요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이 같은 반응에 시민들은 “그럼 라면 사재기라도 해야 하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일상에 충실하고 정부는 안보에 충실하면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직장인 정모 씨(33)는 “물론 ‘북한이 설마 우리한테 핵을 쏠까’라는 안이한 생각을 해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사회가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한다면 더 이상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만 북한이 ‘괌’을 미사일 대상으로 특정하자 괌 여행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시민도 있었다. 이날 오전 회원 36만 명의 괌 자유여행 온라인 카페에는 관련 글이 수십 개 올랐다. 22일 출발 예정인 김모 씨(45·여)는 “500만 원어치 예약을 했는데 위약금을 200만 원이나 내야 한다고 해서 일단 눈치를 보고 있다”고 했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위약금 부담이 작은 9월 이후 예약 고객은 취소한 경우도 있었다”고 귀띔했다.권기범 kaki@donga.com·구특교·김배중 기자}

    • 2017-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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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지통]새 수입차로 시속 234km 광란 질주… 결말은 폐차

    6월 14일 오후 경기 가평군 서울양양고속도로 설악 나들목 인근에 스포츠카들이 나란히 섰다. 동호인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닛산 350Z’와 ‘벤츠 E200 쿠페’에는 문모 씨(31)와 백모 씨(31)가, ‘마쓰다 RX-7’에는 이모 씨(32)가 탔다. 문 씨, 이 씨는 유명 자동차 수리업체의 수입차량 주행 테스트 담당이고, 백 씨는 수입차 판매원이었다. 이들은 오후 11시 반경 서울 올림픽대로 김포공항 방면으로 들어섰다. 제한속도 시속 80km인 구리암사대교 인근 회전 구간에 들어섰을 때였다. 시속 234km로 달리던 문 씨의 닛산이 1차로에서 4차로로 미끄러지며 김모 씨(42)의 차량을 들이받았다. 시속 176km로 따라오던 백 씨의 벤츠가 다시 김 씨의 차를 들이받았다. 김 씨의 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졌다. 김 씨는 전치 8주의 상처를 입었다. 이 씨는 운 좋게 사고를 면했다. 세 사람 중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닛산과 벤츠는 폐차됐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이들 세 명을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상)과 도로교통법 위반(난폭운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8일 밝혔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 2017-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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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졸음운전 버스 업주에 업무상 과실치사로 첫 영장 신청

    경찰이 경부고속도로에서 7중 추돌 사망사고를 낸 버스업체 오산교통 경영진에 대해 사고 책임이 있다고 보고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졸음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버스운전사 김모 씨(51·구속)뿐만 아니라 김 씨가 안전 운행을 하도록 관리 감독해야 할 의무를 저버린 운수업체에도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9일 발생한 사고로 50대 재봉사 부부가 숨지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 “휴식 보장 않은 업주도 책임” 서울지방경찰청 교통범죄수사대는 3일 오산교통 대표 최모 씨(54)와 전무급 임원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수사당국이 운수업체 경영진을 실제 사고 운전사의 공동정범으로 간주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한 사례는 처음이다. 경찰은 지난달 오산교통을 압수수색해 사고 버스의 디지털운행기록계와 근무일지 등을 분석한 결과 회사 측이 김 씨의 무리한 운행을 사실상 종용한 정황을 다수 확보했다. 현행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운수업체는 버스운전사가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다시 운전하기까지 최소 8시간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오산교통은 김 씨가 6시간 반만 쉬고 다시 운행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근무표를 짜는 등 휴식 보장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가 8시간 이상 휴식을 취한 횟수는 사고 몇 달 전부터 현저히 적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3월 오산시가 오산교통 측에 근무 여건 개선을 여러 번 지적했음에도 경영진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산시의 이 같은 조치는 오산교통 운전사들이 “동료 운전사가 과로로 쓰러졌다”며 열악한 근무 환경을 호소한 끝에 이뤄진 것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운수업체의 잘못된 운영 행태가 사고 원인으로 작용했다면 업체 대표에게도 직접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검찰도 최 씨 등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사고와의 연결고리 찾기가 관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는 업무 수행 중 고의가 아니더라도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숨지게 한 경우 과실과 사고 발생 간에 인과관계가 뚜렷할 때 적용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휴식시간을 보장하지 않은 버스업체의 행위가 실제 사고를 야기했다는 가설이 얼마나 탄탄히 입증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지하철 안전문 정비원 사망 사고를 수사한 서울동부지검은 옛 서울메트로 전 사장 이모 씨(53)와 정비업체 대표 등을 기소하며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정비 작업은 ‘2인 1조’로 해야 한다는 안전규정을 알면서도 1명만 투입하는 현장 관행을 방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사고 선박 회사인 청해진해운의 김한식 대표 등 간부들에게도 같은 혐의가 적용됐다. 법원은 김 대표 등 경영진이 화물 과적과 고박 부실 등 안전관리를 소홀히 해 사고를 일으킨 책임 등을 인정해 금고 2년에서 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기소된 이준 당시 삼풍그룹 회장(2003년 별세)도 이 혐의 등으로 징역 7년 6개월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경찰은 최 씨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운전사들에게 차량 수리비를 절반씩 분담시켜 30차례에 걸쳐 약 4000만 원을 내도록 하고, 불법 차량 정비를 한 혐의도 포함시켰다.권기범 kaki@donga.com·최지선 기자}

    • 2017-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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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진실 딸 “외할머니가 폭행” SNS에 글

    배우 최진실 씨(2008년 사망)의 딸 최준희 양(14)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외할머니 정모 씨(72)로부터 가정폭력과 폭언에 시달렸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이다. 최 양과 정 씨의 다툼으로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벌어졌다. 최 양은 SNS에 정 씨와의 갈등을 폭로하는 장문의 글을 주말 이틀 동안 연달아 올렸다. 5일 오전 2시경 페이스북에 올린 첫 번째 글에서 최 양은 “외할머니(정 씨)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 이후 줄곧 우울증에 시달렸다. 수차례 폭행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글에서 “가족 여행을 갔을 때, 외할머니가 나를 방으로 불러 ‘엄마가 잘못 낳았다’며 옷걸이로 때리고 목을 졸랐다” “자신의 아이라이너가 없어졌다고 나를 도둑으로 몰고 ‘도둑×’이라고 불렀다”고 적었다. 6일 밤 12시에는 인스타그램에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천벌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가정폭력이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최 양은 이 글에서 “폭행과 훈육은 다르다. 그 훈육이 최진실의 딸을 죽이려 했고 자살을 유도했다”고 썼다. 한 방송사의 연예인 육성 프로그램에 출연하려는 것을 정 씨가 막았다는 주장도 했다. 최 양의 페이스북 계정은 5일 낮 비공개로 전환됐다가 6일 오후 다시 공개됐다. 6일 인스타그램 글은 삭제됐다. 최 양은 5일 페이스북에 첫 글을 올리기 직전 정 씨와 크게 다퉜다고 한다. 최 양의 오빠 최환희 군(16)은 4일 오후 11시경 “서울 서초구 잠원동 집에서 두 사람이 다투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를 했다. 정 씨가 저녁식사 후 “뒷정리를 제대로 안 했다”면서 최 양을 나무라며 수건으로 때렸고, 최 양이 이에 반발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가벼운 몸싸움이 벌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두 사람이 모두 상대방의 형사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히자 형사입건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 양은 “너무나 지치는 인생인데 호흡을 멈추는 게 두렵다”는 내용의 글을 3월 말 SNS에 올리는 등 그동안 심리적인 불안감을 자주 호소해왔다. 6월 5일에는 목을 맨 여자 사진과 함께 “가족이라는 사람들의 상처가 너무 크다. 진짜 살려주세요”라는 글을 올려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최 양은 그로부터 이틀 뒤 “걱정하지 마라. 아직 버틸 만하다”는 안부 글을 올렸다. 이후 한동안 잠잠히 지내는 듯했던 최 양은 6월 하순 인스타그램에 토끼가 주인공인 웹툰을 직접 그려서 올리며 다시 불안한 심리 상태를 드러냈다. 문제의 웹툰에는 주인공인 토끼가 눈물을 흘리며 “가깝고 사랑하던 사람이 ‘잘 자’라는 말조차 못하는 사이가 되면 마음에 큰 흉터가 생겨 평생 아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포함돼 있다. 최 양 주변에서는 웹툰 속 토끼의 독백이 최 양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최 양은 경기도의 지인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최 양에게 경찰에 출석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며 “필요할 경우 외할머니 정 씨도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 2017-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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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가락 통증’ 박근혜 前대통령, 구치소밖 진료

    박근혜 전 대통령(65)이 발가락 통증 치료를 위해 28일 외부 병원을 찾았다.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 밖으로 외출한 것은 3월 31일 구속 수감된 이후 처음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재판에 출석했다. 법정에 들어서는 박 전 대통령의 걸음걸이는 거동이 크게 불편한 모습은 아니었다. 발가락 통증이 생긴 이후 처음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던 14일 왼쪽 다리를 살짝 절던 것과 비교하면 꽤 호전된 듯했다. 그러나 연일 이어진 재판에 지친 탓인지 최모 전 청와대 행정관에 대한 증인신문 내내 박 전 대통령은 피고인석에서 고개를 숙인 채 졸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점심식사 시간을 따로 갖지 않고 진행된 재판은 평소보다 이른 오후 1시 15분 마무리됐다.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재판을 받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62)의 외부 일정 때문이었다. 신 회장 측이 이날 오후 6시부터 문재인 대통령 주최 기업인 간담회가 예정돼 있다며 오후 4시 이전에 재판을 끝내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그로부터 한 시간 뒤인 오후 2시 17분경 법무부 호송차량을 타고 법원 인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을 찾았다. 박 전 대통령은 병원에서 발가락 부위 엑스레이,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등 정밀검사를 받았다. 병원 안팎에는 경찰 1개 중대 병력과 병원 직원 50여 명이 배치돼 박 전 대통령과 외부인의 접촉을 차단했다. 병원 측은 천으로 이동경로에 장막을 치고, 박 전 대통령이 누운 침대를 흰 이불로 완전히 덮어 ‘비밀작전’을 벌이듯 박 전 대통령을 호송했다. 박 전 대통령은 병원 도착 약 3시간 만인 오후 5시 13분경 호송차를 타고 병원을 떠났다. 교정당국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화장실 문지방에 여러 차례 발가락을 찧었다. 왼발 셋째, 넷째 발가락이 빨갛게 부어올라 구치소 내에서 엑스레이 촬영도 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다친 발가락에서 발톱의 양끝이 살 속으로 파고들며 자라 통증을 유발하는 내성 발톱(내향성 발톱) 증상이 나타났다. 내성 발톱은 발가락이 꽉 조이는 뾰족한 구두나 하이힐을 즐겨 신는 젊은 여성들에게 자주 발생한다. 간혹 박 전 대통령처럼 발가락에 충격을 받은 경우에도 생긴다. 박 전 대통령은 통증 때문에 10일과 11일, 13일 열린 재판에 연거푸 출석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박 전 대통령이 계속 통증을 호소하자 구치소장은 구치소 의무과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날 외부 병원 진료를 허용했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구치소장은 수용자가 외부 의료시설에서 치료받기를 원하면, 구치소에 근무하는 의사의 의견을 고려해 이를 허가할 수 있다. 외부 진료에 드는 비용은 수용자 본인이 내야 한다. 전국 구치소에서 수용자가 이처럼 허가를 얻어 외부 진료를 받는 건수는 매년 1만5000여 건에 달한다.권오혁 hyuk@donga.com·전주영·권기범 기자}

    • 2017-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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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窓]“37명 남은 위안부 할머니, 시간이 없다”

    “우리의 이름은 위안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엄연한 김군자고, 이용수입니다. 우리를 위안부로 만든 것은 단지 일본일 뿐입니다.” 이용수 할머니(89)의 목소리가 떨렸다. 말하는 중간중간 울음이 배어 나왔다. 25일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열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91) 영결식에서 이 할머니는 오랜 ‘동지’를 위해 추모사를 읽었다.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던 이 할머니는 김 할머니의 영정 앞으로 다가가 “오늘만 울고, 울지 않겠다. 웃으면서 가시라”고 나직이 읊조렸다 . 두 할머니는 오랜 기간 친구처럼 지낸 언니 동생이자 어려움을 함께한 동지였다. 2007년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가 마련한 인권보호 청문회에 용기를 내 참석한 증인도 바로 두 할머니였다. 23일 김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빈소에 온 이 할머니는 “간다고 말도 안 하고 왜 그렇게 빨리 갔노, 연락도 없이 갔노…. 편안하게 잘 있어. 위안부 문제 해결하고 언니 뒤따라갈게”라며 흐느꼈다. 절을 하고 일어나 머리부터 가슴까지 십자가를 그렸다. 두 사람은 천주교 신자다. 이 할머니는 사실상 상주 역할을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등 주요 인사들은 하나같이 이 할머니에게 다가가 위로했다. 이 할머니는 그때마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혜훈 대표에게는 “화해·치유재단을 해체한 뒤 일본이 준 10억 엔을 돌려주고 증서를 받아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생전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수차례에 걸쳐 전 재산을 기부한 김 할머니의 빈소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 명복을 빌었다. 사흘간 빈소를 찾은 사람은 약 1000명. 지방 곳곳에서 조문객이 왔고 진료나 병문안을 왔다가 빈소를 찾아 국화꽃을 올린 사람도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것을 비롯해 70개가 넘는 화환과 조기가 장례식장을 가득 채웠다. 영결식 다음 날인 26일 나눔의집에는 깊은 침묵이 찾아들었다. 지친 할머니들은 대부분 방을 지켰다. 사흘 내내 빈소를 지킨 이 할머니는 결국 근처 병원을 찾아 수액주사를 맞았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이제 정말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시간이 없다”며 “김 할머니 빈소에 보여준 관심이 위안부 재협상과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추진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생존자는 이제 37명뿐이다.광주(경기)=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 2017-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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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평 원룸서 막 내린 ‘커피왕 신화’

    프랜차이즈업계에서 그는 전설적인 인물로 통했다. 만 서른에 커피전문점 할리스커피를 공동 창업하고 카페베네의 전성기를 이끈 그에게 사람들은 ‘커피왕’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적어도 주스전문점 망고식스의 실패를 맛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강훈 KH컴퍼니 대표(49·사진)는 24일 서울 서초구 자택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는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강 씨가 회사를 운영하면서 금전적 어려움을 겪었고 사망 전날 지인에게 처지를 비관하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고 밝혔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지만 타살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강 씨는 현재 이혼한 상태로 최근 이사한 10평 남짓한 원룸에서 혼자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강 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업계에도 큰 충격을 줬다. 커피전문점업계 한 관계자는 “예비 창업자들의 롤모델로 꼽히던 강 씨의 사망 소식에 만감이 교차했다. 성공의 아이콘인 그의 죽음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했다. 강 씨는 1992년 스물넷의 나이에 신세계에 입사했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그의 인생은 1997년 완전히 뒤바뀌었다. 신세계는 당시 미국 스타벅스와 합작해 국내 론칭을 준비하고 있었다. 태스크포스(TF)팀의 일원이었던 그는 미국에서 커피전문점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접했다. 그해 말 외환위기가 닥쳐 브랜드 론칭이 지연되자 그는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퇴직금 1500만 원을 토종 커피브랜드 1호인 ‘할리스커피’를 공동 창업하는 데 모두 투자했다. 당시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이 김도균 탐앤탐스 대표다. 할리스커피는 국내에 분 아메리카노 열풍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했다. 서울 강남역 지하의 46m² 크기 매장으로 시작한 할리스커피는 창업 5년 만에 매장을 50개까지 늘렸다. 할리스커피가 한창 잘나가던 2003년 강 씨는 돌연 회사를 떠났다. “늘 새로운 도전을 갈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강 씨는 2008년 커피업계에 다시 발을 들였다. 김선권 카페베네 창업자와 손을 맞잡은 것이다. 김선권-강훈 체제의 카페베네는 3년 만에 가맹점 500개, 연 매출액 1000억 원을 돌파하며 업계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강 씨는 커피 프랜차이즈업계에서 단연 스타 최고경영자(CEO)로 대접받았다. 강 씨의 도전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2011년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생소했던 주스전문점이 다음 타깃이었다. 업계는 그가 야심 차게 론칭한 ‘망고식스’의 성공 여부에 주목했다. 사업에 관한 그의 철학은 2015년 출간한 저서 ‘따라하지 말고 선점하라’에서도 잘 드러난다. 강 씨는 책에서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각오로 사업을 한다”며 “나는 사업에 관한 한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이 과감성이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 것으로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창업 당시 강 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국내에 점포 300개, 중국에선 3000개를 여는 것이 목표”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창업 초기의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망고식스의 매출은 2015년부터 하락세로 돌아섰고 지난해만 60개 점포가 폐점했다.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강 씨는 올해 초 자신의 특기를 살린 커피전문 서브 브랜드 ‘망고식스 미니’를 만들어 반전을 시도했다. 국내 사정이 여의치 않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해외 진출도 추진했지만 끝내 재기에 실패했다. 올해부턴 직원들에게 임금을 주지 못할 정도로 사정이 어려워졌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가맹본부 정보공개서에 따르면 망고식스와 망고식스를 운영하는 KH컴퍼니는 2015년 10억 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내며 자본잠식에 빠졌다. 강 씨는 결국 14일 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18일 법원은 재산보전 처분과 포괄적 금지 명령을 내렸다. 강 씨가 주검으로 발견된 24일은 그가 법원 심문을 받기로 한 날이었다. 강 씨의 전 직장 동료는 “늘 새로운 도전을 하며 성공만을 해온 그에게 잇따른 실패는 큰 상처가 됐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강승현 byhuman@donga.com·권기범 기자}

    • 201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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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窓]김군자 할머니 ‘양지’로 이끈 前사회복지사의 눈물

    24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차병원에 차려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의 빈소에 한 여성이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상주에게 자신을 소개하자 상주는 고맙다고 말하며 여성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강원 정선군에서 사회복지상담사로 근무했던 원모 씨(70·여)였다. 원 씨와 김 할머니의 인연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어느 날 초라한 행색의 한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으며 군청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건강보험 한도가 초과됐다. 돈이 부족해서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없다”며 원 씨에게 하소연했다. 원 씨는 ‘김군자’라는 이름의 할머니를 보며 비슷한 나이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래서 구체적인 상황을 알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김 할머니는 “산속에서 자식도 없이 혼자 산다”고 말한 뒤 더 이상 언급을 꺼렸다. 원 씨는 무작정 김 할머니를 따라갔다. 계곡 깊숙한 곳에 이르자 작고 낡은 초가집이 보였다. 방에는 이불, 탁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세상 창피해 얘기 못 한다. 말 못 할 사연이 있다”며 입을 굳게 닫았다. 원 씨는 계속 김 할머니를 찾았다. 만남이 계속되자 김 할머니는 경계심을 늦추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어느 날 김 할머니는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1942년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간 뒤 정선에 살기까지 반세기에 걸친 기구한 사연을 들려줬다. 고향에 정착할 수 없어 여러 지역을 떠돌다 몸과 마음이 지쳐 산에 숨었다고 말했다. 세상을 등진 듯 살기로 했다는 것이다. 원 씨는 할머니에게 위안부 피해자로 정부의 공식 인정을 받자고 제안했다. 김 할머니는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않겠느냐”며 단칼에 거절했다. 원 씨는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라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결국 김 할머니는 원 씨의 도움을 받아 정부의 위안부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얼마 뒤 김 할머니는 갑자기 “제주도에 가야 한다”며 짐을 쌌다. 이전부터 김 할머니와 연락을 주고받던 한 종교단체가 제주도로 가라고 했다는 것. 당시 김 할머니는 몸이 불편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제주도로 가기 전날 원 씨는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 가운데 김 할머니를 찾아가 간곡히 설득했다. 진심을 담은 원 씨의 말에 할머니는 결국 정선에 남기로 했다. 원 씨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읍내에 거처를 마련하고 김 할머니를 모셔 왔다. 김 할머니가 사용할 TV, 세탁기 등 가전제품도 구했다. 김 할머니는 원 씨의 조언으로 천주교 신자가 돼 ‘요안나’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원 씨는 종교적 후견인인 대모(代母)가 됐다. 원 씨는 김 할머니가 1998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복지시설인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살뜰히 챙겼다. 지난밤 원 씨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 탓이다. 그는 “위안부 피해자 인정을 받은 뒤 주변에 자랑할 정도로 할머니도 좋아하셨다”며 “최근 몇 년 동안 건강 때문에 연락을 못 드리다 이제 좋아져서 다음 주에 아들과 함께 찾아뵈려 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빈소에는 이낙연 국무총리 등 각계 인사를 비롯해 학생, 시민 등 일반인 추모 행렬도 이어졌다. 이틀간 조문객은 400여 명에 이른다.성남=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 오승은 인턴기자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 2017-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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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의회서 ‘위안부 참상’ 증언… 명예회복 恨 못풀고 별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사진)가 2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김 할머니는 생전 미국 하원 청문회에 나가 생생한 피해를 증언해 위안부 강제 동원 규탄 결의안 채택을 이끌어냈다. 김 할머니가 숨지기 직전까지 살았던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집 관계자는 “‘여장부’였던 할머니가 많이 그리울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김 할머니가 숨져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생존자는 37명이 됐다. 김 할머니는 1926년 강원 평창군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고아가 돼 친척집에 살다 16세이던 1942년 한 남자와 결혼을 약속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에 붙들려 위안부로 강제 동원됐다. 중국 지린(吉林)성 훈춘(琿春) 위안소로 끌려갔다. 김 할머니는 일본군에 맞아 고막이 터지는 바람에 왼쪽 귀 청력을 잃었다. 도망치려다 들켜 ‘죽지 않을 만큼’ 구타를 당했다. 몸 곳곳에 흉터가 남았다. 3년 동안 7번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했다. 광복된 뒤 38일을 꼬박 걸어 두만강을 건너 고향에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와 결혼을 약속한 남자를 다시 만났지만 결국 가정을 꾸리진 못했다. 혼자가 된 김 할머니는 가사도우미, 미제(美製) 물건 노점상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 나갔다. 1998년 72세가 됐을 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위한 나눔의집에 들어갔다. 2007년 2월 김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89) 등과 함께 미 하원 외교위원회가 연 인권보호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김 할머니 등은 참혹했던 과거를 적나라하게 증언했다. 그로부터 5개월 뒤 “잔학성과 규모면에서 전례가 없는 20세기 최대 규모의 인신매매”라며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김 할머니는 2015년 말 박근혜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를 체결하자 “인정 못 한다. 우리를 너무 무시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듬해 ‘화해·치유재단’이 지급하는 돈도 받지 않았다. 이달 초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나눔의집을 찾았을 때도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생전에 입버릇처럼 “나눔의집 생활을 하며 받은 도움을 갚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0년과 2006년에는 “부모 없는 학생들 공부에 써 달라”며 총 1억여 원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다. 정부 지원금 등을 쓰지 않고 모아서 내놓은 것이다. 2015년에도 평소 다니던 성당에 1억여 원을 기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빈소에 화환을 보내고, 페이스북에 “강인한 생존자, 용감한 증언자였다”며 “하늘에서 평안하시라”고 적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빈소를 찾아 “(위안부 합의에 대해) 흡족한 답을 못 얻으신 가운데 (돌아)가셔서 많이 안타깝다”며 고개를 숙였다. 영정 앞에 선 이용수 할머니는 “왜 그리 빨리 갔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할머니의 유골은 화장 후 나눔의집에 안치된다. 빈소는 경기 성남시 분당차병원, 발인 25일 오전 8시.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박성진 기자}

    • 2017-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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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픈 건 잠깐, 이식받는 사람의 건강은 평생”

    20일 오전 7시경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수술실 앞. 환자복을 입은 김영철 씨(51)를 부인 서유연 씨(51)가 휠체어에 태워 밀고 왔다. 남편 김 씨는 다소 긴장한 듯했다. 살면서 첫 입원과 수술이라고 했다. 반면 서 씨는 여유로웠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 서 씨는 김 씨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서 씨는 “내가 경험자여서 아는데 잘 끝날 것”이라며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웃어 보였다. 김 씨는 이날 20년간 만성신부전을 앓은 이인만 씨(43)에게 자신의 신장을 내어주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다. 이 씨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다. 김 씨의 신장 기증은 사실 부인 때문이다. 서 씨는 신장 기증자로서는 ‘선배’다. 2003년 TV 프로그램에 나온 만성신부전 환자가 “물 한 모금, 과일 한 조각 마음껏 먹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선뜻 기증을 결심했다. 이식받은 사람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40대 남성이었다. 서 씨에게 감동한 이 남성의 부인도 자신의 신장을 남에게 내어줬다. 그런 부인을 곁에서 지켜본 남편도 장기 기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5년 부인을 따라 사후 장기기증에 서약했다. 신장 기증·이식자 모임인 새생명나눔회에도 함께 나갔다. 기증자들의 밝은 표정이 김 씨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김 씨는 ‘기증자의 남편’이 아니라 ‘같은 기증자’가 되고 싶었다. 김 씨는 이날 수술을 위해 1년간 몸무게를 78kg에서 66kg까지 감량했다. 지난해 부인과 함께 시작한 건강보조식품 사업도 몸 관리에 도움이 됐다. 5월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기증 의사를 밝힌 뒤 집이 있는 부산에서 서울을 몇 차례 오가며 기증을 준비했다. 수술은 약 4시간 만에 무사히 끝났다. 김 씨는 이르면 다음 주에 퇴원한다. 부부는 이로써 국내 18번째 ‘부부 신장 기증인’이 됐다. 2013년 17번째 부부 기증인이 나온 지 4년 만이다. 서 씨는 “내가 신장 기증을 하려고 수술을 받았을 때는 아픈 것도 못 느꼈는데, 신랑은 얼얼하다고 한다”며 “아픈 건 잠깐이지만 이식받은 사람의 건강은 평생”이라며 웃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 2017-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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