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언

김태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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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태언 기자입니다.

beborn@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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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미술시장 1조 첫 돌파… K콘텐츠 수출 14조 사상최대

    팬데믹 국면에서도 K컬처 시장은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국내 미술시장 유통액은 처음으로 1조 원을 넘겼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4일 발표한 ‘2022 미술시장 규모 추산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미술시장에서 거래된 미술품 유통액은 1조377억 원으로 2021년(7563억 원)보다 37.2% 늘었다. 미술시장 ‘1조 원’의 동력을 이끈 큰 축은 아트페어와 화랑이었다. 지난해 아트페어 매출액은 3020억 원으로 전년(1889억 원) 대비 59.8% 증가했다. 문체부는 “아트페어 방문객 수가 2021년 77만4000명에서 지난해 87만5000명으로 13.1% 늘면서 아트페어 매출액이 늘어나는 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9월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의 공동 개최는 미술시장에 열기를 더했다.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가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열리면서 한국이 차세대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프리즈 서울 관람객도 7만 명을 넘기며 흥행했다. 다만 ‘프리즈 서울’ 매출액은 공개되지 않아 이번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MZ(밀레니얼+Z세대)세대가 새로운 컬렉터로 부상한 점도 미술시장의 활기를 더했다. 화랑을 통한 판매액도 2021년 3142억 원에서 지난해 5022억 원으로 59.8% 증가했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지난해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미술시장이 크게 성장해 외국 작품을 다루는 한국계 화랑들 창고에 재고가 없을 정도였다”며 “이배, 이건용 등 한국 인기작가들 작품 재고도 찾기 어려워 아트페어나 미술품 경매에서 전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팔리곤 했다”고 말했다. 한 유명 갤러리 관계자도 “지난해 상반기 각 전시장과 아트페어에선 작품의 판매 속도가 여느 때보다 빨랐고, 판매 가격도 전반적으로 껑충 뛰었다”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미술계에서도 한국 미술시장을 주목했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지난해 상반기(1∼6월) 1450억 원이었던 미술품 경매시장 규모는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면서 하반기(7∼12월)에는 883억 원으로 줄었다. 출판 음악 등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꾸준히 늘어 2021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21년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124억5000만 달러(약 14조 3000억 원)로 전년(119억2000만 달러)보다 4.4% 늘었다. 문체부는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 한국 가수들이 전 세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져 콘텐츠 수출액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며 “2022년 수출액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K콘텐츠에 대한 세계인의 사랑이 더욱 커져 지난해 더 많은 성과를 올린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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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전 제목이… ‘도끼를 꺼낼 때 우아함을’ ‘알잘딱깔센’

    ‘도끼를 꺼낼 때 우아함을 잃지 말 것’, ‘매달 첫 번째 주 월요일 정오 열두 시에 경보음이 울린다’. 난해하고 엉뚱하지만 왠지 모르게 눈길을 끄는 문장들. 미술 전시 제목이다. 이런 별난 제목은 일종의 도발이다. 대개 미술계에서 전시 제목은 기획자나 작가가 전시 주제나 영향력을 고려해 짓는다. 유명 원로 작가들은 자신의 이름 세 글자나 대표작을 전시 제목으로 정하기로 한다. 하지만 신생 전시관이나 젊은 작가는 이름보다는 신선함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결국 재기발랄한 제목은 곧 이들의 생존법이나 다름없다. ‘도끼를 꺼낼 때 우아함을 잃지 말 것’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열린 김영미 작가(33)의 개인전 제목이다. 작가가 2014년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무엇을 할 것인가’의 극중 대사를 차용했다. 김 작가는 “전시 제목이 작업과 바로 연결되기보다 작은 힌트로 작용하길 바랐다. 힌트를 통해 해석하는 건 관람객의 몫이다. 도끼라는 단어가 지닌 힘과 우아함이라는 섬세한 단어, 그리고 개별 작품들 간의 연결성을 관람객이 고민하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전시 내용을 담은 경우도 있다. 서울 상업화랑용산에서 지난해 12월 28일까지 진행된 ‘매달 첫 번째 주 월요일 정오 열두 시에 경보음이 울린다’는 양하 작가(29)의 개인전 제목으로, 네덜란드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그의 경험이 반영됐다. 양하 작가는 “네덜란드에서는 매달 한 번씩 사이렌을 울려 위험 상황을 경고한다”며 “전쟁과 폭력의 이미지를 다뤄온 제 작업과 조화를 이루는 제목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씨알콜렉티브는 이달 28일까지 ‘대체불가현실:□☞∴∂★∽콜렉티브’라는 다소 괴이한 제목의 전시를 열고 있다. 경기 파주시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진행했던 박현순 개인전의 제목 ‘알잘딱깔센’도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라는 말을 줄인 신조어로, 전시 콘셉트를 유머러스하게 드러냈다. 김노암 미술평론가는 “제목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관객이 전시 주제를 직접 찾아 나서게 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비영리 전시장은 상업 갤러리보다 적극적으로 관람하는 이들의 비율이 높아 창의적인 제목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김 평론가는 “작가가 ‘내 작업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정도 단서만 줘도 만날 수 있다’는 관람객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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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 오스카’ 세자르상 “성범죄 의혹시 시상식 못 와”

    ‘프랑스판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세자르상 주최 측이 성범죄로 기소되거나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은 물론이고 성범죄 의혹을 받는 사람도 시상식에 초청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다음 달 24일 열린다. 세자르상을 주최하는 프랑스 영화예술기술아카데미는 2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성범죄 혐의로 수사받는 사람은 가해자로 추정되는 단계라도, 피해자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시상식에 초청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성범죄 수사를 받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에게 상을 수여하지 않을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결정은 프랑스 영화 ‘포에버 영’(레 자망디에·2022년)에 출연한 배우 소피안 베나세르가 강간 및 폭력 혐의로 기소됐다고 보도된 뒤 나왔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이 영화에 출연한 베나세르는 세자르상 신인상 후보에 올랐지만 프랑스 영화예술기술아카데미는 최종 후보에서 그를 제외했다. 프랑스 영화예술기술아카데미는 다수의 미성년자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의혹이 제기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게 2020년 세자르상을 수여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폴란스키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폴란스키의 영화 ‘장교와 스파이’는 감독상과 의상상을 받았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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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판 오스카’ 세자르상 “성범죄 의혹 받는 사람도 시상식 초청 않겠다”

    ‘프랑스판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세자르상 주최 측이 성범죄로 기소되거나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은 물론이고 성범죄 의혹을 받는 사람도 시상식에 초청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다음달 24일에 열린다. 세자르상을 주최하는 프랑스 영화예술기술아카데미는 2일(현지 시간) 성명서를 통해 “성범죄 혐의로 수사받는 사람은 가해자로 추정되는 단계라도, 피해자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시상식에 초청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성범죄 수사를 받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에게 상을 수여하지 않을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결정은 프랑스 영화 ‘포에버 영’(레 자망디에·2022년)에 출연한 배우 소피안 베나세가 강간과 폭력으로 기소됐다고 보도된 뒤 나왔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이 영화에 출연한 베나세는 세자르상 신인상 후보에 올랐지만 프랑스 영화예술기술아카데미는 최종 후보에서는 그를 제외시켰다. 프랑스 영화예술기술아카데미는 다수의 미성년자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의혹이 제기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게 2020년 세자르상을 수여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폴란스키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폴란스키의 영화 ‘장교와 스파이’는 감독상과 의상상을 받았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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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서세옥 화백 가족 9명의 ‘색다른 추모전’

    굵은 선으로 그려진 사람의 형상이 담백하면서도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가운데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가 낯선 경쾌함을 선물한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Happy Birthday! 서미림 올림.” 한국 수묵 추상의 대가 서세옥 화백을 기리는 전시 ‘삼세대(三世代): 서세옥(1929-2020)을 기리며’에 나온 작품 ‘무제’(2019년)다. 작가는 서 화백의 손녀 서미림 씨고, ‘할아버지’는 서 화백을 가리킨다. 서울 용산구 리만머핀에서 2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서 화백의 수묵화와 드로잉 7점을 볼 수 있다. 대표작 ‘People’(사람들) 시리즈는 극도로 단순화된 몇 개의 선만으로도 인물이 살아 있는 것 같은 역동성을 보여준다. 전시는 서 화백 가족 9명의 드로잉, 회화, 설치, 영상 등 작품 73점과 함께 예술가를 추모하는 색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서 화백의 아들인 설치예술가 서도호 씨와 건축가 서을호 씨의 작품도 전시장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서 화백의 자취가 3세대 가족 구성원에게까지 녹아있다는 점은 특히 흥미롭다. 손녀 서오미 씨가 동그라미와 직선을 반복해서 그린 ‘Piggybacks’(2018년)에서는 할아버지 서 화백의 추상미와 아버지 서도호 씨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유기성이 엿보인다. 서미림 씨의 종이 설치작품 ‘Suh People’(2018년) 역시 서 화백의 ‘사람들’이 종이 밖으로 튀어나와 서로 얽혀 있는 듯한 모양새다. 리만머핀은 “여러 세대의 가족이 만든 작품으로 구성한 이번 전시는 서 화백의 개방적, 실험적 접근이 3세대에 걸쳐 전승된 것을 기린다”며 “서 화백이 고민했던 ‘시공을 초월하는 공동체의 연결성’에 대한 현 세대의 답가이기도 하다”고 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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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가를 기리는 우아한 방법’…三代에 걸친 서세옥의 영향력을 살피다

    갈색 종이에 굵은 선으로 그려진 사람의 형상. 붓의 흔적이 여실히 보이는 담백한 그림이다.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림에 낯선 경쾌함을 주는 건 가운데에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다.“할아버지 사랑해요. Happy Birthday! 서미림 올림.”여기서 말하는 ‘할아버지’는 한국 수묵 추상의 대가 고 서세옥 화백(1929~2020)이다. 서 화백을 기리는 전시에 등장한 이 그림 ‘무제’(2019년)의 작가는 서 화백의 손녀 서미림이다. 서울 용산구 리만머핀은 2020년 타계 당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제대로 기리지 못한 서 화백의 작품과 그의 가족 9명의 작품 73점을 모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전시 ‘삼세대(三世代): 서세옥(1929–2020)을 기리며’는 예술가를 추모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전시의 중심에는 서 화백이 있다. 서 화백의 작품은 수묵화와 드로잉 7점. ‘자화상’(1970~1980년대)에서는 다양한 먹의 농담과 두께를 시도했던 서 화백의 노련함을 살펴볼 수 있다. 그의 대표작 ‘People‘(사람들) 시리즈는 극도로 단순화된 몇 개의 선만으로도 살아 있는 듯한 역동성을 보여주는 화업(畵業)의 정수다. 서 화백의 아들인 국내 대표 설치예술가 서도호와 건축가 서을호의 작품 또한 전시장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재미는 서 화백 가족의 몫이다. 특히 흥미로운 건 서 화백의 자취가 3세대 가족 구성원에게까지 녹아있다는 점이다. 손녀 서오미의 ‘Piggybacks’(2018년)는 동그라미와 직선이 반복적으로 그려진 것인데, 제목에서 유추하건대 사람들이 서로를 등에 업은 장면을 표현한 그림이다. 할아버지 서 화백의 추상미와 아버지 서도호의 작품에서 주로 드러나는 유기성이 엿보인다.손녀 서미림의 종이 설치작품 ‘Suh People’(2018년) 또한 서 화백의 ‘사람들’이 화면에서 튀어나와 서로 얽혀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드로잉, 회화,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이 가족 구성원들의 작품은 각각 특색이 있지만 ‘가장 귀한 존재는 사람’이라는 서 화백의 철학이 바탕에 있다. 색다른 방식으로 예술가를 추념하는 전시인 셈이다.리만머핀 측은 “서로 다른 세대의 가족 구성원이 협력해 합작한 이 작업은 서 화백의 개방적이고 실험적인 접근이 3세대에 걸쳐 전승된 것을 기리는 찬가”라며 “서 화백이 평생 고민해온 주제인 ‘시공을 초월하는 공동체의 연결성’에 대한 현 세대의 답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내년 1월 20일까지.김태언기자 beborn@donga.com}

    • 202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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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다친 마음까지 보듬어준다는 ‘펜 닥터’ 의료일지

    택배 상자에 담은 건 달랑 만년필 한 자루. 주인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몇 년간 매일 쓰던 거라 정들었는데…. 이건 아무래도 힘들겠지요?” 택배 수령자는 만년필 수리공인 저자다. 저자는 지금까지 1만 자루가 넘는 만년필을 손봤다. 전국 각지에서 수리를 부탁하며 만년필을 보내온다. 주인의 손에 다시 쥐어지기까지, 또 고장이 나기까지 다양한 사연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른바 ‘펜 닥터’인 저자가 만년필을 수리하면서 기록한 글 중 33편을 모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어느 날 강원 속초시에서 몽블랑 만년필 한 자루가 왔다. 만년필의 주인이 알린 내용은 이랬다. 큰형님이 만년필을 선물해 준 후 1년이 채 못 돼 사망했다. “형님을 추억할 유일한 도구라 제게는 의미가 각별하다”는 만년필 주인을 보고, 저자는 “모든 펜에는 온전히 작동해야 할 이유가 있다”며 꼭 고치겠노라 다짐하며 손봤다. 사실 마음이 쓰이는 이유는 있었다. 저자에게는 본인이 태어나기 전 세상을 떠난 큰형님이 있었다. 저자의 부모님은 그 상실을 마주하기 힘들어 큰아들의 사진을 모두 없앴지만, 잊는 게 많아지는 나이가 되다 보니 얼굴만이라도 기억하고 싶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그때 저자는 “어머니에게도 아들을 추억할 만한 무엇인가가 남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애정 어린 마음이 생겨났다. 이 책이 특별한 건 이런 섬세한 통찰이다. 저자는 만년필에 대한 정보를 열거하거나 사연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는다. 자신과 주변, 세상의 이치를 되돌아본다. 그리고 위로한다. 매끄럽지 않은 필기감 때문에 수리를 맡기며 “제가 예민한 걸까요?”라고 묻는 손님에게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만년필과 아주 잘 맞는 사람”이라고 말해준다. 아직도 많은 곳에서 다루기 힘들고 때로는 귀찮은 이 만년필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도 만년필 100여 자루를 소장한 ‘헤비 컬렉터’다. 그러나 그는 명품 만년필의 조건은 단 하나, ‘함께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는 죽은 만년필을 살리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다친 마음은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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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미술계 ‘프리즈 서울’ 데뷔전… 해외선 ‘AI작품’ 놓고 논쟁

    올해 국내 미술계는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의 서울 개최로 글로벌 미술 시장에 한국의 존재감을 제대로 알렸다. 해외에선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활용한 창작 실험이 이어지며 AI가 그린 그림을 예술작품으로 봐야 하는지를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숙제 남긴 프리즈 서울가장 주목받은 건 9월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의 공동 개최였다.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가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 정착하며 한국이 차세대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았다. 프리즈 서울에선 프리즈의 트레이드마크라 불리는 ‘텐트형 공간’ 전시가 빠졌다. 프리즈는 텐트형 공간에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여 왔지만, 서울에선 이를 시도하지 못했다. 피카소, 에곤 실레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소개해 일각에서는 “판매만을 위한 장이 아니었냐”는 우려가 나왔다.체급 차이도 컸다. 키아프는 작품의 질, 기획력에서 프리즈와 큰 격차가 났다. 한국 작가를 해외 갤러리와 컬렉터에게 소개한다는 목표도 얼마나 실현될지 아직은 미지수다. 지난해부터 뜨거웠던 미술 시장이 올해 하반기 경기 침체로 급격히 얼어붙으며 미술 시장도 상당 기간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AI 작품 논쟁 가열올해는 AI 창작 실험이 활발했다. AI 작품에 대한 논란이 커진 계기는 8월 열린 150년 역사의 미국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였다.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은 게임 제작자 앨런이 문장을 입력하면 이미지가 출력되는 AI 프로그램을 이용한 회화였다. 이를 계기로 AI가 그린 것을 예술작품으로 봐야 하는지 논쟁이 뜨거워졌다.기존 그림을 조악하게 복사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 AI 그림 생성기는 완성도나 아이디어면에서 상당한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일러스트나 디지털아트 작가들 사이에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업계에서는 “AI도 결국 사람이 개입해야해 미술의 주체라기보다는 도구에 가깝다”고 말한다.○ 굵직한 전시 이어지는 2023년올해 주요 미술관에서는 문신, 권진규, 임옥상, 장미셸 오토니엘 등 국내외 작가의 개인전을 열고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소개했다. 이에 비해 단체전 상당수는 지나치게 어렵거나 메시지가 선명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건희 컬렉션’을 작품을 쪼개어 전시하다 보니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은 빈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지역 미술관은 선전했다. 작가명, 작품명, 제작 연도를 지운 채 현대미술을 맨몸으로 마주하게 한 부산현대미술관의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나 작품 앞에서 요가 등을 즐기며 미술관을 새롭게 지각하게 한 부산시립미술관의 ‘나는 미술관에 ○○하러 간다’는 획기적인 기획으로 호평을 받았다.내년에도 굵직한 전시가 이어진다. 서울시립미술관은 4월 에드워드 호퍼 개인전을 국내에서 처음 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 종로구 서울관에서 5월 미국 구겐하임미술관과 공동 기획으로 한국의 1960, 70년대 실험미술 작가들을 소개한다. 경기 과천관에서는 같은 달 동산방화랑 창립자의 기증작을 소개하는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이 열린다. 서울 중구 덕수궁관에서는 6월 장욱진 회고전을 개최한다. 리움미술관은 1월 마우리치오 카텔란, 호암미술관은 4월 김환기의 회고전을 각각 연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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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예술가 등장…이건희컬렉션 특별전…2022 미술계 ‘뜨거운 감자’는?

    올해 미술계는 지각변동이 가시화된 해였다. 열렬한 논쟁을 낳았던 올 미술계의 ‘뜨거운 감자’는 무엇이었을까.○숙제남긴 프리즈 서울 가장 큰 이슈는 9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의 공동 개최였다.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가 영국 런던, 미국 뉴욕 및 로스앤젤레스 등을 거쳐 서울에 정착하면서, 차세대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이 한국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아쉬움이 컸다. 우선 프리즈는 트레이드마크가 빠졌다. 프리즈는 텐트형 공간에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여 왔으나 서울에선 시도하지 못했다. 오히려 피카소, 에곤 실레 등 누구나 좋아할 만한 작품을 가져오면서 일각에서는 “판매만을 위한 장이 아니었냐”는 우려가 나왔다. 키아프의 체급 차이도 문제였다. 작품의 질이나 기획력 등에서 프리즈와의 비교는 피하지 못했다. 한국 작가를 해외갤러리와 컬렉터에 소개하겠다는 목표도 아직은 미지수다. 특히나 지난해부터 뜨거웠던 미술시장이 올 하반기 경기 침체로 인해 급격히 얼어붙으며 회생 가능성에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자극을 힘입어 점점 더 나아질 것이다. 젊은 작가나 근대 작가 등을 조명하는 섹션 기획을 발전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AI 예술가의 등장 여느 때보다 인공지능(AI) 창작 실험이 활발했던 해였다. 미술계에서 논란이 커진 건 8월 미국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에서다.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미드저니를 활용한 제이슨 앨런’의 그림 ‘스페이스 오페라극장’이 1위를 차지했다. 이는 게임 제작자 앨런이 문장을 입력하면 이미지가 출력되는 AI 프로그램을 이용해 만든 그림이다. 150년 미술대회 역사상 AI의 그림이 1등을 차지한 것은 처음이었다. 올해는 국내외에서 AI 그림 생성기가 산업 및 일상에 전격적으로 도입됐다. 특기할 점은 기존 그림을 조악하게 복사하던 수준이었던 과거에 비해 완성도나 아이디어 면에서 질이 높다는 것이다. 일러스트나 디지털아트 작가들 사이에선 일자리를 잃을까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AI도 결국 사람이 개입해야 하니 미술의 주체라기보다는 도구에 가깝다”고 말한다.○부진했던 단체전 올해 주요 미술관에서는 문신, 권진규, 임옥상, 장 미셸 오토니엘 등 국내외 작가의 개인전을 열고 각 작업관을 깊이 있게 소개했다. 다만 단체전은 부진했다. 단체전은 개인전에 비해 메시지에 방점이 찍혀있다. 올해 개막한 단체전은 대개 지나치게 어렵거나 메시지가 선명하지 않았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건희 컬렉션’을 쪼개어 전시하다보니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등 몇 전시는 빈약하다는 평을 피할 수 없었다. 되레 지역미술관이 선전했다. 작가명, 작품명, 제작 연도 등을 지운 채 현대미술을 맨몸으로 마주하게 한 부산현대미술관의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나 작품 앞에서 요가 등을 즐기며 미술관을 새롭게 지각하게 한 부산시립미술관의 ‘나는 미술관에 00하러 간다’는 획기적인 기획력이 돋보였다. 내년에도 굵직한 전시가 기다리고 있다. 국현은 5월 서울관에서 미국 구겐하임미술관과 공동기획으로 한국의 1960~1970년대 실험미술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린다. 과천관에서는 5월 동산방화랑 창립자의 기증작을 소개하는 ‘동산 박주환컬렉션 특별전’이, 11월에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시가 예정돼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4월 에드워드 호퍼 전시를 준비 중이며, 리움미술관은 1월 마우리치오 카텔란, 호암미술관은 4월 김환기의 회고전을 연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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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평전 통해… 독일 여성판화가 ‘케테 콜비츠’ 재조명 잇달아

    20세기 초 독일을 대표하는 여성 예술가로 꼽히는 판화가 케테 콜비츠(1867∼1945)가 최근 국내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1, 2년 사이 전시와 평전을 통해 콜비츠를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지난달 출간된 ‘케테 콜비츠 평전’(풍월당)은 콜비츠의 일기나 편지를 바탕으로 그의 인생과 작품을 풀어냈다. 나성인 풍월당 이사는 “콜비츠는 작품을 통해 ‘젊은이들을 지키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슬픔’을 자주 표현해 왔다”며 “이태원 핼러윈 참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상실이 가득한 현 시점에 그의 작품은 유효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콜비츠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아들과 손자를 잃었다. 한 청년이 팔을 치켜들고 소리치는 장면을 담은 판화 ‘다시 전쟁은 안 돼!’(1924년·사진)는 콜비츠의 자전적 서사가 담긴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콜비츠는 상실을 겪기 전에도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1903년)처럼 민중의 삶을 조명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그렸다. 콜비츠는 “고난과 슬픔, 죽음 등을 솔직하게 몸으로 드러내는 이들에게 아름다움을 느낀다”라고 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제주 서귀포시 포도뮤지엄에서 올해 5월까지 열린 전시 ‘케테 콜비츠: 아가, 봄이 왔다’도 잔잔한 화제를 모았다. 판화 원작과 조각 등 33점을 선보인 이 전시는 불의와 인간의 폭력성에 저항한 작가의 정신을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포도뮤지엄은 “콜비츠는 삶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깊이 공감하며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전하려고 노력한 작가”라고 소개했다. 콜비츠가 남성 중심의 화단에서 ‘여성주의’를 이끌어 왔다는 점도 최근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다. 당시 역사화는 철저히 남성의 영역으로 인식됐지만 그는 ‘독일 어린이들이 굶고 있다’(1924년)를 비롯해 역사를 다룬 작품을 적극적으로 그리며 성별의 경계를 뛰어넘으려 노력했다. 나 이사는 “여성에게 관대하지 않았던 당시 사회에서 콜비츠는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며 “그의 내적 갈등을 따라가다 보면 예술가가 사회에 어떤 자극을 줄 수 있는지를 살필 수 있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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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일러 주의’ 전시회

    (※아래 기사에는 전시 ‘마틴 마르지엘라’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만 ‘스포일러’가 있는 게 아니다. 전시도 미리 내용을 알면 재미가 반감될 수 있다.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24일 개막한 ‘마틴 마르지엘라’는 반전 요소가 강해 웬만하면 사전정보를 모른 채 감상하길 권한다. 마틴 마르지엘라(65)는 프랑스 유명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창립자인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2008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더니 지난해부터 순수미술에 전념하며 전시 활동을 이어왔다. 조각과 회화 등 50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개인전이다. 미술 전시에 스포일러란 표현을 쓴 건 마지막에 배치된 작품을 볼 때까지 전시가 난해하기 때문이다. 신체의 일부를 확대한 듯한 조각이나 회화 등이 여럿인데, 쉽게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그런데 마지막 작품 ‘라이트 테스트’(2021∼2022년)를 마주하고 나면 의문이 확 해소되는 기분이 든다. 이 때문에 ‘라이트 테스트’를 본 뒤 다시 한번 감상해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라이트 테스트’는 금발의 여성을 촬영한 짧은 화면이 반복 재생되는 영상작품. 카메라를 등졌던 여성이 서서히 몸을 돌려 얼굴을 드러낸다. 한데 이목구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수북한 머리카락만 가득할 뿐 얼굴이 없다. 그리고 정면을 마주한 여성은 기괴한 소리의 웃음을 터뜨린다. 마치 “아름다운 얼굴을 기대했니? 그런 건 없어”라며 조소하는 것 같다. ‘라이트 테스트’를 보고 나면 마르지엘라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아름다움이란 게 도대체 뭐냐”고 묻는 것이다. 예를 들어 ‘레드 네일스’(2019년)와 ‘레드 네일스 모델’(2021년)은 둘 다 붉은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을 형상화했다. 그런데 매력적인 레드 네일스 모델과 달리, 높이 197cm로 대략 5배쯤 큰 레드 네일스는 불편하게 느껴진다. 롯데뮤지엄은 “똑같은 생김새라도 모양과 크기에 따라 아름다움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며 “마르지엘라는 인체와 시간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했다. 내년 3월 26일까지. 9000∼1만9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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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만 스포일러 주의해야 하나요? 스포일러 주의 ‘전시’도 있습니다

    ※아래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 문구를 영화 기사만 쓰는 게 아니었다. 전시에도 스포일러가 있다. 24일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개막한 전시 ‘마틴 마르지엘라’가 그렇다.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창립자인 마르지엘라(65)는 2008년 돌연 패션계를 은퇴한 뒤 지난해부터 예술가로 전시 활동을 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의 설치, 조각, 페인팅 등 작품 50점을 선보이는 국내 첫 개인전이다. 마지막 장면을 봐야만 이전 신(Scene)들이 이해되는 어느 영화나 드라마처럼, 이 전시에도 나름의 반전이 있다. 전시장에는 신체 일부를 확대한 조각과 회화, 머리카락 등을 사용한 작품들이 놓여있다.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의미를 가진 작품이라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둥둥 떠다닌다. 마지막에 전시된 작품 ‘라이트 테스트’(2021~2022년)를 보기 전까지 말이다.‘라이트 테스트’는 금발머리를 한 여성을 촬영한 짧은 영상이 반복 재생되는 작품이다. 여성은 카메라를 등진 채 서있다. 서서히 몸을 돌려 빛에 얼굴을 드러내 보인다. 그런데 사람의 얼굴은 온데간데없다. 이목구비가 있어야할 자리엔 수북한 모발이 가득할 뿐. 그리고 카메라가 정면을 조준한 순간, 여성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웃는다. 관람객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깔깔대는 소리. 마치 “아름다운 얼굴을 기대했니? 그런 건 없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를 마주한 때, 앞서 지나온 작품들이 모두 ‘아름다움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일례로 붉은 손톱을 형상화한 두 작품 ‘레드 네일즈’(2019년)와 ‘레드 네일즈 모델’(2021년)은 같은 형태지만 크기가 다르다. 5배나 더 큰 ‘레드 네일즈’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보다는 반감이 앞선다. 모양과 크기 등 여러 요소에 따라 미(美)에 대한 생각이 쉽게 달라진다는 것을 시각화한 셈이다. 마르지엘라가 미디어 노출을 극도로 꺼린 것도 무엇이든 쉽게 평가하는 세상에 대한 반항이었던 걸까. 그는 성분표가 지워진 데오도란트 사진을 크게 인화해 설치한 작품 ‘데오도란트’(2020~2022년)를 통해 자연스러운 체취를 은폐하는 현대 사회를 고발한다. 밝은 색 모발을 가진 두상부터 회색빛 모발을 가진 두상까지 5점을 일렬로 놓은 ‘바니타스’(2019년)를 통해서는 인생을 표현해냈다. 뮤지엄 측은 “사람들은 대개 인위적인 방법으로 자연스러움을 가리려 하지만 종국에는 패배한다. 마르지엘라는 인체와 시간에 대한 개념을 다시 환기시킨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26일까지. 9000~1만9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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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나쁜 사람 변화시키는 할머니 역할 있나요?”

    “내 나이를 쓰려거든 ‘수천 살’이라고 해줘요.” 배우 김혜자가 기자들을 만날 때 하는 말이다. 배역을 맡으면 온전히 ‘그 사람’이 되어야 했던 그는 정말로 그 삶을 다 살아낸 듯 연기해 왔다. 1961년 KBS 공채 1기 탤런트로 데뷔해 ‘전원일기’(1980∼2002년), ‘엄마가 뿔났다’(2008년), ‘마더’(2009년) 등 60여 년간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동한 배우 김혜자.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2004년) 이후 18년 만에 내놓은 이 책은 연기 인생에 대한 그의 고백을 담았다. 책은 편집자가 저자와 인터뷰하고 저자의 일기, 인터뷰 기사 등을 토대로 초고를 만든 뒤 저자가 다시 수정하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저자가 기억하는 최초의 무대는 여섯 살 때였다. 당시 연세대 의과대 학생들이 공연한 연극 ‘생의 제단’에서 그는 개에게 물려 죽는 아이 역을 맡았다. 이름은 혜자. 이후에도 드라마 ‘청담동 살아요’ ‘눈이 부시게’에서 저자가 맡은 배역의 이름은 모두 본명 혜자였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하며 “연기는 곧 나였다”고 말한다. 베테랑 연기자의 작품 선택 기준은 뭘까. ‘배역이 아무리 인생의 속박에서 고통받는 역이라 해도 그 속에 바늘귀만 한 희망이 보이는가’이다. 그는 “삶의 밑바닥을 헤매도 그곳에 희망이 있는지, 희망을 연기할 구석이 있는지를 살핀다. 내일의 이야기를 찾고 그것을 연기하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실제 그는 살면서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작품에 뛰어드는 것으로 어려움을 이겨낸다고 한다. “나는 신이 모든 인간 각자에게 한 가지씩의 재능은 꼭 심어준다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헤쳐가라고.” 그가 죽기 전 하고 싶은 역할은 ‘나쁜 사람을 변화하게 해주는 할머니’라고 한다. 사람과 세상과 사랑의 힘을 믿는 저자이기에 할 수 있는 말 아닐까.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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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영웅 혹은 인간… 그 삶의 궤적서 마주한 시대의 얼굴

    《어느 해라고 힘들지 않았겠습니까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등 국내외에서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책에서 삶에 대한 위로와 공동체의 나아갈 길을 찾고픈 열망 때문일까요. 출판인, 학자 등 30명이 뽑은 ‘2022년 동아일보 올해의 책’은 소설과 시, 과학서, 평론집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고루 뽑혔습니다. 그리고 유독 ‘애도’를 다룬 책이 여럿 눈에 띕니다. 선정위원마다 3권씩 추천을 받아 그 가운데 상위 10권을 추려 소개합니다. 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학술팀》각계 전문가들이 선정한 2022년 ‘최고의 책’은 김훈 작가(74)의 장편소설 ‘하얼빈’과 미국 과학전문기자 룰루 밀러의 교양과학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뽑혔다. 각각 6표를 얻었다. 독자에게 익숙한 한국 대표 작가와 생경한 해외 작가의 책이 동시에 선택됐다는 게 한국 출판시장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척도로 읽힌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저격하는 운명적인 역사를 다룬 작품이다. 안 의사가 거사를 실행하기 약 일주일 전인 1909년 10월 19일 무렵부터 이토를 저격한 26일 전후까지로 초점을 맞췄다. 안 의사와 이토가 각자 하얼빈으로 가는 행로와 과정을 3인칭으로 풀어내, 이순신 장군의 1인칭 시점으로 썼던 장편소설 ‘칼의 노래’(2001년·문학동네)보다 더욱 절제된 화법이 돋보인다. 출판인과 학자들은 고루 ‘하얼빈’을 역작이라 꼽았다. 안병현 교보문고 대표는 “위인 안중근에 대해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안중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신선하다”고 했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안중근이 살아있는 인간으로 다가오고, 그래서 오히려 진정한 영웅으로 느껴진다”고 평했다. “2022년에 안중근의 삶을 김훈의 소설로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오늘의 한국 사회와 겹쳐 마음을 괴롭게 했다”(김형보 어크로스 대표)는 의견도 있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밀러가 미국 어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1851∼1931)의 생애를 따라가면서 자신의 인생을 풀어나간 책이다. 교양과학서지만 인간 자체를 사유한다는 점에서 인문에세이로도 볼 수 있다. 밀러는 ‘미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보디상을 수상한 유명 작가지만 국내에선 비교적 낯선 편. 중소 출판사가 별다른 마케팅 없이 출간한 책이 입소문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점도 주목받았다.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베스트셀러의 상식을 뒤엎는 책이다. 우리가 자연에 선을 긋고 종(種), 과(科)로 나누고 가르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하며 편견일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고 말했다. 정지혜 블러썸크리에이티브 IP사업팀장은 “관념은 뒤집힐 수도 있다는 발칙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했다. “잔인한 혐오에 대한 명철한 질책,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자연의 질서에 대한 뭉클한 탐사”(박상준 민음사 대표)라는 평가처럼 책이란 존재가 가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H마트에서 울다미셸 자우너 지음·정혜윤 옮김·408쪽·1만6000원·문학동네“엄마와 딸, 음식과 정체성, 사랑과 애도에 대해 담담하고 섬세하게 풀어낸 멋진 에세이.”(권은희 까치글방 편집팀장) 미국 팝 밴드의 보컬로 활동 중인 한국계 미국인 저자가 쓴 자전적 에세이로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의 추천 도서로도 화제를 모았다. 다른 친구들의 엄마와 다른 자신의 한국인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었던 저자는 엄마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뒤 한국마트를 드나들며 추억을 되짚는다. “올해 본 책 가운데 가장 많이 울었던 책”(박성열 사이드웨이 대표)이란 평처럼 섬세하고 감동적인 글이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 지음·268쪽·1만5000원·창비“2022년 한국 문학의 최대 수확. 우리도 이제 ‘남쪽으로 튀어’(오쿠다 히데오)에 버금가는 작품을 갖게 됐다.”(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빨치산의 딸’(1990년)을 쓴 소설가가 32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사흘 동안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놀랍도록 흥미롭게 엮어냈다. 묵직한 현대사의 질곡을 짚어내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한 흐름을 잃지 않아 “오랜만에 만난 모든 것을 갖춘 소설”(김기중 더숲 대표)이란 극찬도 나왔다. MZ세대에게는 생경한 작가가 묵직한 시대적 배경을 다룬 소설임에도 소셜미디어에서 큰 화제를 모은 점도 눈길을 끌었다. ■녹스앤 카슨 지음·윤경희 옮김·192쪽·5만5000원·봄날의책캐나다 시인이자 번역가, 고전학자인 저자가 22년 동안 얼굴도 보지 못하고 헤어져 지내던 오빠가 세상을 떠나자 그를 애도하기 위해 만든 책. 고대 로마 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빠의 부재에 대한 상념을 자신의 수첩에 쓰고 그리고 오리고 붙인 것을 책으로 완성했다. 국내판 역시 “원본의 고유성을 잘 유지한 물성의 예술품”(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으로서 소장 가치가 높다는 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흔적을 어루만지고 그의 손때와 온기, 사라짐까지 남기는 애잔한 틀로서의 비망록”(박상준 민음사 대표)이 이만한 결과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인간은 결국 홀로 떠나지만, 결코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일깨운다. ■인생의 역사신형철 지음·328쪽·1만8000원·난다문학평론집이 이례적으로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가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시 25편과 이에 얽힌 작품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평론집. 10월 출간 일주일 만에 2만 부가 넘게 판매되며 저력을 과시했다. 문학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와 에세이 ‘느낌의 공동체’(문학동네) ‘정확한 사랑의 실험’(마음산책) 등을 통해 탄탄한 독자층을 구축한 저자는 이번에도 “전통 시화를 21세기 문학 형식으로 되살린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만들다)’의 표본”(안대희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을 선보였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진은영 지음·140쪽·1만2000원·문학과지성사“시집은 천천히 읽어야 좋겠지만 그의 시집은 하룻밤 새 다 읽어버렸다.”(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문제의식을 철학적 사유로 풀어낸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시인이 10년 만에 선보인 시집이다. 작품 활동의 공백기가 “시가 지녀야 할 사회적 역할을 돌아본 시간”이었다는 저자의 신작은 시집으로는 드물게 한 온라인 서점 종합순위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어쩌면 “아무도 끝낼 수 없을 것 같은 미움의 시대에 비춰준 가느다란 빛”(황서현 휴머니스트 편집주간)처럼 와닿았기 때문일까. 2014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 유예은 양(단원고 2년)을 위한 시 ‘그날 이후’도 함께 실렸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나다 도요시 지음·황미숙 옮김·232쪽·1만5500원·현대지성일본 영화전문지에서 일했던 독립 칼럼니스트가 영화를 영화관이 아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관람하는 현 상황을 고찰했다. 저자는 특별한 공간에서 수동적으로 감상하던 영화를 이제 안방이나 카페에서 자유롭게 건너뛰며 보는 현상에 대해 “길고 어려운 콘텐츠 대신 짧고 이해하기 쉬운 것을 선호하는 시대”(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라고 짚어낸다. 저자가 볼 때 이 같은 효율성의 극단은 결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콘텐츠의 공급 과잉과 ‘가성비’ 지상주의가 만연한 시대상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 사회의 트렌드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 알고 싶은 이들에게 훌륭한 통찰력을 제공”(안병현 교보문고 대표)한다. ■정상은 없다로이 리처드 그린커 지음·정해영 옮김·600쪽·3만3000원·메멘토미국 조지워싱턴대 인류학과 교수인 저자가 역사적으로 정상이란 허구에서 비켜난 이들에게 인류사회가 어떻게 낙인을 찍어 왔는지를 짚었다. “올해 큰 화제를 모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신드롬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박성열 사이드웨이 대표)에게 추천한다는 평이 나왔다. 자본주의와 전쟁, 의료화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정신질환과 장애에 대한 낙인의 역학을 탐구한 책은 문화인류학적 고찰을 통해 낙인이란 한계를 극복하려는 진정성이 묻어난다.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에 대한 상식을 뒤엎는, 성숙한 한국 사회를 위한 모두의 필독서.”(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한청훤 지음·304쪽·1만7000원·사이드웨이패권적인 ‘제국의 길’을 선택한 중국이 왜 세계 여러 나라와 마찰을 거듭하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10년 넘게 중국 산업현장에서 일한 저자는 중국과 관련된 다양한 현안을 다뤘다. “학문적 중국 전문가는 적지 않으나 중국 관련 비즈니스에 종사하며 중국의 겉과 속을 정확하게 풀어낸”(표정훈 출판평론가) 글이기에 더욱 시사하는 바가 컸다. 산업 굴기와 첨단산업 및 반도체 기술, 미국과의 패권 경쟁, 농촌 문제와 정치 리스크 등 중국이 당면한 주요 현안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다. 진지한 통찰력이 돋보이면서도 “쉽고 설득력 있으며, 경험을 밑천으로 필력까지 갖춰”(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더 흥미롭게 읽힌다. 다양한 장르 사랑받은 한 해… 애도 속 ‘그리움’ 담은 시집 눈길 그 외 눈여겨볼 책들12위는 없었다. 올해는 1표씩을 받은 책 51권이 함께 ‘공동 11위’를 차지했다. 소설과 에세이, 교양서뿐 아니라 시집과 각본까지…. 올해의 책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두루 사랑받은 ‘거의 올해의 책’이 유난히 많았다. 특히 유난히 누군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시집들이 눈길을 끌었다. 올해의 책에 포함된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진은영 지음·문학과지성사) 외에도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고명재 지음·문학동네) ‘파울 첼란 전집 1∼5’(문학동네) ‘슬픔이 택배로 왔다’(정호승 지음·창비) 등 시집의 약진이 눈부셨다. 시집이 올해의 책에 든 것도 최근 10년 만에 처음이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멍든 가슴이 여전히 시퍼렇게 남아 있어서일까. 루마니아 시인 ‘파울 첼란 전집’을 추천한 김민정 난다 대표는 “참사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 ‘눈물자국의 가장자리에서 배우렴/ 사는 것을’이란 구절이 눈에 밟혔다.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뭘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눈물과 자국과 가장자리와 삶이란 단어를 읽고 또 읽었다”고 했다. 고세규 김영사 대표도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를 추천하며 “그저 허무에 머무르지 않고 구원의 길을 찾아 우리를 위로해주는 시인의 맑은 마음”을 주목했다. 과학책은 5권이 공동 11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 가운데 해리 클리프 영국 케임브리지대 물리학과 교수가 펴낸 ‘다정한 물리학’(다산사이언스)에 대해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면 어려운 이론물리학의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며 추천했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닐 슈빈 지음·부키)와 ‘과학은 어떻게 세상을 구했는가’(그레고리 주커만 지음·브론스테인) ‘빙하여 안녕’(제마 워덤 지음·문학수첩) ‘내 생의 중력에 맞서’(정인경 지음·한겨레출판사)도 비슷한 공통점을 지녔다. 과학정보는 물론이고 인문학적 사색도 담아 ‘과포자’(과학포기자)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이런 책들 덕분에 우리는 과학이라는 일상을 더욱 다채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신지혜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는 평처럼 진입장벽을 낮추고 편안하게 다가온 교양과학서가 내년에도 많아지길 기대해본다.올해의 책 선정위원(30명·가나다순)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강인욱(경희대 사학과 교수) 고세규(김영사 대표) 권은희(까치글방 편집팀장) 김기중(더숲 대표) 김민정(난다 대표) 김영민(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형보(어크로스 대표)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김효형(눌와 대표) 박상준(민음사 대표) 박성열(사이드웨이 대표) 박윤우(부키 대표) 박정재(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백지숙(서울시립미술관장) 신지혜(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안병현(교보문고 대표) 안지미(알마 대표) 윤범모(국립현대미술관장) 이구용(KL매니지먼트 대표) 이기진(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장은수(출판평론가)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정지혜(블러썸크리에이티브 IP사업팀장) 조성웅(유유출판사 대표) 주연선(은행나무 대표) 표정훈(출판평론가) 황서현(휴머니스트 편집주간)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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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속 ‘숨은 이야기’ 찾기

    《경기 광주시의 한 미술관.토끼장에 있던 토끼가 무더기로 실종된다.이 일은 미미한 재산 피해 사건으로 종결됐지만 담당 형사는 찝찝함을 떨칠 수 없다.형사는 경찰서에 휴직계를 낸 뒤 소설가로 가장한 미술관 입주 작가가 된다.잠입 수사를 진행하던 형사는 미술관에서 계속 사라지는 다른 존재들을 발견하는데….》 어느 소설의 줄거리가 아니다. 한국화를 그리는 정해나 작가(37)의 작업일지에 담긴 내용이다. 토끼장을 그린 ‘의문의 방문객’(2020년)을 시작으로 한 그의 2020년 작품들은 형사의 눈에 비친 사람들과 장면을 기승전결에 따라 화폭에 담은 것이다. 정 작가는 개인전을 열 때마다 한 편의 가상 이야기를 구상해 글로 적고 관람객에게 공개한다. 최근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는 암묵적인 철칙에 틈이 생기고 있다. 그림에 스토리텔링이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움직임은 꽤 활발하다. 작품에 별도의 설명이 없는 경우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다는 장점이 있지만 어렵게 느껴질 때도 많다. 대중과의 적극적 소통을 위해 작가들은 작품에 이야기나 세계관을 넣는다. 최수진 작가(36)는 자신의 작업을 도와주는 제작자들을 그린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실존 인물이 아니란 것. 2015년부터 이어온 ‘제작소 사람들’ 시리즈는 열매에서 색을 추출하거나 종류별로 분류하는 가상의 존재들이 작품에 등장한다. 작가는 이들을 본인 대신 색을 주워 모아주는 ‘동료’라고 말한다. 그는 “화가는 대개 혼자 모든 것을 판단한다. ‘의지할 동료가 있으면 어떨까’ 고민하다 생각해냈다”고 말했다. 간판 캐릭터를 만든 뒤 이를 활용해 작품의 세계관을 설정하는 경우도 있다. 도파민최 작가(36)가 대표적이다. 2015년부터 그의 작품에는 분홍색 몸통을 가진 괴생명체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의인화한 캐릭터다. 도파민들이 아이스크림을 공중에 힘껏 던지거나, 울부짖는 공룡 앞에서 달리는 모습 등을 작품에 담았다. 작가는 “뇌 안에서 벌어지는 엉뚱한 상상과 그 안에서 바삐 움직이는 도파민들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미술 작품에 이야기를 입히는 작업을 계기로 본격 글을 쓰는 작가도 있다. 박민준 작가(51)는 장편소설 2권을 집필했다. 그는 소설과 소설 속 등장인물 및 사건을 재현한 회화 작품을 함께 발표해 왔다. 천재 곡예사인 형 라포와 평범한 동생 라푸의 이야기를 그린 그의 첫 번째 소설 ‘라포르 서커스’(2018년)는 작가의 회화 작품 속 캐릭터에 대한 설명글이 토대가 됐다. 한 미술사학자가 600년 전 활동한 화가의 최후 작품을 추적한 두 번째 소설 ‘두 개의 깃발’(2020년)은 소설을 먼저 쓴 뒤 관련 회화 작품을 완성했다. 내년 2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박 작가의 개인전 ‘Ⅹ’는 이전 전시보다 서사를 생략하고 즉흥적으로 그린 작품도 많지만 이야기가 아예 없진 않다. 동물 가면을 쓴 9명의 초상회화 ‘콤메디아 델라르테’ 연작(2022년)이 대표적이다. 그는 “각 캐릭터만의 복식과 성격을 고려해 그들이 할 법한 대사를 작성해 전시장 초입에 리플릿 형식으로 배치했다”며 “글쓰기는 제 작품을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시작한 작업이다. 글과 그림의 관계를 살펴 감상하면 좋겠다”고 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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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에 ‘서사’ 한 스푼을 더하다…세계관으로 대중과 소통 꾀하는 미술작가들

    《경기 광주의 한 미술관, 토끼장에 있던 토끼가 무더기로 실종된다. 사건은 미미한 재산 피해로 종결되지만 찝찝함이 남은 형사. 그는 경찰서에 휴직계를 낸 뒤 소설가로 분장해 미술관 입주작가가 된다. 1월부터 7월까지 잠입수사를 진행하던 형사는 미술관에서 계속 사라지는 다른 존재들을 발견하는데….》 어느 소설의 줄거리가 아니다. 한국화를 그리는 정해나 작가(37)의 작업일지다. ‘의문의 방문객’(2020년)을 시작으로 한 그의 2020년 작품들은 형사의 눈에 비친 사람들과 장면을 기승전결에 따라 화폭에 담은 것이다. 정 작가는 개인전을 열 때마다 한편의 가상 이야기를 구상해 글로 적고 관람객들에게 공개한다. 최근 만난 그는 “결국 글은 사라지고 그림만 남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조언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제 작품에 깊게 공감해주는 소수의 관람객만 있어도 살 수 있는 게 작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는 암묵적인 철칙에 틈이 생기고 있다. 그림에 스토리텔링이 입혀지면서부터다.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이 움직임은 꽤나 흥미롭다. 작품에 별도의 설명이 없는 경우 해석의 여지를 넓게 열어둔다는 장점이 있지만 되레 어렵게 느껴질 때도 많다. 그래서 젊은 작가들은 작품에 ‘이야기’나 ‘세계관’을 삽입한다. 이들의 작업 향방을 살펴보면 대중과의 적극적 소통 가능성을 기대해볼 수 있다. 최수진 작가(36)는 자신의 작업을 도와주는 제작자들을 그린다. 그런데 실존 인물은 아니다. 2015년부터 이어온 ‘제작소 사람들’ 시리즈를 보면, 화폭 속에는 열매에서 색을 추출하거나 종류별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들이 본인 대신 색을 주워 모아주는 ‘동료‘라고 말한다. 이 설정은 최 작가의 고독함에서 비롯됐다. 그는 “화가는 대개 혼자 모든 것을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막연함을 느꼈다. 그때 ‘같이 작업을 꾸리고 의지할 동료가 있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올해 그는 ‘제작소 사람들’로부터 한 단계 도약을 목표하고 있다. “제작소 사람들은 이상적인 회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친구들이다. 이제는 그 ‘이상적인 회화’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만들 때”라며 말이다. 좀 더 직접적인 세계관 설정법이 있다면, 간판 캐릭터를 활용하는 것이다. 도파민최 작가(36)가 대표적이다. 2015년부터 그의 작품에는 분홍색 몸통을 가진 괴생명체가 항시 등장한다. 도파민을 의인화한 캐릭터다. 도파민들은 아이스크림을 공중에 힘껏 던지거나, 울부짖는 공룡 앞에서 달리고 있다. 작가는 “뇌 안에서 벌어지는 엉뚱한 상상과 그 안에서 바삐 움직이는 도파민들을 장면화한 것”이라고 했다. 세계관이라는 관념에 글이 더해지면 내용은 풍성해진다. 박민준 작가(51)는 집필한 장편 소설만 벌써 2권이다. 그는 본인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을 회화로 재현한 작품들을 소설과 함께 발표해왔다. 천재 곡예사인 형 라포와 평범한 동생 라푸의 이야기인 ‘라포르 서커스’(2018년)는 캐릭터 설명글을 쓰다 소설로 발전했으며, 한 미술사학자가 600년 전 활동한 화가의 최후 작품을 추적하는 ‘두 개의 깃발’(2020년)은 처음부터 소설을 염두에 둔 작업이었다. 본인이 만든 세계에 관심이 많다고 말하는 박 작가. 올해엔 조금 힘을 뺐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진행되는 그의 개인전 ‘Ⅹ’(12월 21일~내년 2월 5일)에 신작 소설은 없다. 출품작 40여 점 중에는 서사 없이 즉흥적으로 그려진 작품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포함된 작품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동물 가면을 쓴 9명의 초상회화 ‘콤메디아 델라르테’ 연작(2022년)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각 캐릭터만의 복식과 성격을 고려해 그들이 할 법한 대사를 작성해 전시장 초입에 리플렛 형식으로 배치했다”며 “제 작품을 말로 설명하는 것이 어려워 시작한 글쓰기다. 글과 그림의 관계를 다각도로 살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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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멜로 퀸’ 송혜교, 인생 건 복수… 김은숙 작가 첫 ‘19금 장르물’

    ‘로맨스물의 귀재’로 불리는 김은숙 작가가 처음 선보이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장르물은 어떨까. 넷플릭스에서 30일 공개되는 드라마 ‘더 글로리’는 ‘도깨비’(2016∼2017년), ‘미스터 션샤인’(2018년), ‘태양의 후예’(2016년) 등을 쓴 ‘히트 메이커’ 김은숙 작가(사진)가 내놓은 복수극이다. 고등학교 시절 지독한 학교폭력을 당한 문동은(송혜교)이 일생을 걸고 준비한 복수를 펼치는 이야기다. 송혜교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데뷔작으로, 드라마 ‘비밀의 숲’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만든 안길호 감독이 연출했다. 총 16부작으로, 1부와 2부로 나눠 선보인다. 2부는 내년 3월 공개할 예정이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호텔에서 20일 열린 ‘더 글로리’ 제작발표회에서 김 작가는 “고등학생 딸을 둔 제게 학교폭력이라는 소재는 가까운 화두였다”며 “어느 날 딸이 ‘엄마는 내가 누군가를 죽도록 때리는 것과 누군가에게 죽도록 맞는 것 중에 뭐가 더 가슴 아플 것 같아’라고 질문했다.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졌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날 제작발표회에는 안 감독과 배우 송혜교 이도현 염혜란 정성일이 참석했다. 끔찍한 학교폭력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사는 피해자 동은 역을 맡은 송혜교는 “어린 동은은 무방비 상태로 큰 상처를 받은 인물이지만, 그 후 오랜 시간 복수를 계획하는 인물이기에 불쌍하기보다는 단단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멜로 퀸’이라 불리는 송혜교 역시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장르물에 도전한다. 그는 “항상 이런 장르와 캐릭터에 배고팠는데 드디어 만났다”고 했다. 안 감독도 “처음부터 송혜교를 염두에 뒀다”며 “강하고 연약한 느낌을 모두 갖고 있는 흔치 않은 배우”라고 말했다. 극은 동은을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그의 복수극에 휘말리는 캐릭터에도 이입하게 만든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주여정(이도현)이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성형외과 의사 여정은 동은의 복수극에 동참하면서 스스로 상처를 이겨낸다. 이도현은 “여정은 소탈해 보이지만 이면을 지닌 인물이다. 그 불분명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드라마는 19세 이상 관람가다. 김 작가는 “19금을 단 이유는 욕설도 등장하고 학교폭력 내용도 굉장하지만 사법체계 안에서의 복수가 아니라 사적 복수를 선택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안 감독 역시 “가해자가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에서는 최대한 사실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니 객관적으로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자료 조사를 해보니 피해자들은 현실적인 보상보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원했어요. 저는 ‘사과로 얻어지는 게 뭘까’ 고민했는데, 얻는 게 아니라 되찾고자 하는 거였어요. 학교폭력은 인간의 존엄, 명예, 영광을 잃게 해요. ‘그걸 되찾는 게 시작이구나, 원점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 드라마가 피해자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김 작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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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거주 아프리카인들의 문화, 렌즈에 담았죠”

    ‘같은 땅을 밟고 있어도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사진작가 최원준(43)의 눈에 비친 한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의 모습이다. 최 작가는 2020년부터 2년간 경기 동두천, 파주 일대를 돌며 그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에서 31일까지 열리는 사진전 ‘캐피탈 블랙’을 통해 그 결과물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이 사진의 배경이 한국이 맞나’란 의문이 든다. 총 24점의 사진에는 우리에겐 생소한 아프리카 문화가 짙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파티들, 동두천’(2022년)은 나이지리아 이보족의 다양한 파티 현장을 포착한 사진이다. 돈을 하늘에 뿌리거나 얼굴에 붙이는 등 서아프리카 지역의 전통 축하 의식이 담겼다. 평범한 가족사진인 듯한 ‘나이지리아에서 온 이구웨(왕) 찰스와 호프 그리고 한국에서 자녀들, 동두천’(2021년)도 가만 보면 왕관, 낯선 문양의 옷이 보인다. 아프리카의 왕족 문화가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 작가는 “아프리카인은 미군이 줄어 월세가 비교적 싼 편인 미군부대 인근, 근무지인 제조업 공장지대 주변에 머물며 마을을 형성한다. 한국 제도권으로 들어갈 수 없는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들만의 문화와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고 했다. 작가는 동두천으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이 공동체에 몸담았다. 대표적인 협업물이 음악이다. 전시장에는 영상 작품 2점이 있다. 두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는 모두 가나인 래퍼나 나이지리아인 가수 등 아프리카인이 참여했다. 그중 뮤직비디오 ‘저의 장례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2022년)는 한 아프리카인이 세상을 떠나자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다국적 인물들이 모여 함께 신발 모양 관을 들고 곳곳을 다니며 애도하는 내용을 담았다. 최 작가는 “가나에서는 고인이 좋아한 물품으로 관을 짜는데, 그 전통을 차용했다”며 “아프리카인의 사진을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민중의 초상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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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두천 아프리카 타운엔 ‘왕’이 산다

    같은 땅을 밟고 있어도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사진작가 최원준(43)의 눈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이 그랬다. 2020년부터 2년간 동두천, 파주 등을 돌며 그들의 일상을 좇았던 최 작가의 결과물이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진행 중인 전시 ‘캐피탈 블랙’에서 선보여진다.전시장을 둘러보다보면 ‘이 사진의 배경이 한국이 맞나’ 의문이 들 정도다. 사진 24점에는 우리에게 생소한 아프리카 문화가 깊숙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파티들, 동두천’(2022년)은 나이지리아 이보족의 다양한 파티 현장을 포착한 사진이다. 공통적으로 보이는 장면은 이들이 돈을 하늘에 뿌리고 얼굴에 붙이는 것인데, 이는 서아프리카 지역의 축하 의식이라고 한다.평범한 가족사진인 듯한 ‘나이지리아에서 온 이구웨(왕) 찰스와 호프 그리고 한국에서 자녀들, 동두천’(2021년)도 가만 보면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꽃무늬 벽지와 갈색 가죽 소파가 전형적인 한국 가정집을 유추하게 하지만, 가장인 찰스의 머리에는 왕관이 씌워져있다. 낯선 문양의 옷을 입고 있는 그는 동두천 아프리카 타운 주민들이 추대한 왕이다. 아프리카의 왕족 문화가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최 작가의 작품 속 아프리카인들은 ‘외국인 노동자’보다는 ‘민중’으로 등장한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최 작가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동두천으로 작업실까지 옮겼다”고 했다. 그는 “아프리카인들은 미군이 감소하며 자연스레 월세가 값싸진 미군부대 인근, 혹은 본인들의 근무지인 제조업 공장지대 인근에 머물며 타운을 만든다. 한국 제도권으로 들어갈 수 없는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들만의 문화와 공동체를 결속해간다”고 했다.작가가 아프리카인들의 문화적 고립을 막기 위해 협업한 것이 음악이다. 전시장에는 2점의 영상작품이 있는데, 모두 가나인 래퍼나 나이지리아인 가수 등 아프리카인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그중 안쪽 방에서 상영되는 뮤직비디오 ‘저의 장례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2022년)는 거대 기념비 형태의 신발 모양 설치물과 전시돼 눈길을 끈다. 한 아프리카인이 죽자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다국적 인물들이 모여 함께 신발 모양 관을 들고 고인의 발이 닿았던 곳들을 돌아다니며 애도하는 내용이다.최 작가는 “작년과 올해 아프리카인 사망자의 시신 2구를 본국으로 송환하는 데 도움을 줄 기회가 있었다. 가나에서는 고인이 생전 좋아했던 물품으로 관을 짜는데, 그 전통을 차용해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전시가 국내 아프리카 이주민에 연구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판매금 절반을 이주민센터 등에 기부할 예정이다.전시는 이달 31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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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파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동 ‘뮤지엄한미’로 재탄생

    서울 종로구 삼청동 거리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베이지색 건물이 있다. 2000m² 규모의 ‘뮤지엄한미 삼청’(사진). 한국의 첫 사진전문 미술관인 한미사진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새로 지은 건물로, 건축계 거장 김수근(1931∼1986)의 제자인 민현식 건축가가 설계했다. 서울 송파구에 있던 한미사진미술관은 사진 관련 도서관으로 활용하고, 전시는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진행한다. 개관을 맞아 미술관은 21일부터 내년 4월 16일까지 한국사진사를 조명한 전시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를 연다. 1929년은 한국인 첫 개인 사진전인 정해창의 ‘예술사진 개인전람회’가 열렸던 해다. 1982년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임응식 회고전’이 개최돼 사진이 순수미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전시는 주명덕, 현일영, 이해선, 임응식 등 유명 한국 사진가 42명의 빈티지 프린트, 디지털 프린트 작품 207점으로 구성했다. 대개 작가별로 전시돼 있지만 20세기 한국을 살펴보는 전시로 여겨도 무방하다. 학도병을 담은 임인식 작가의 ‘6·25전쟁―군번 없는 학도병’(1950년), 구직이라는 팻말을 허리에 걸고 일자리를 구하는 청년을 찍은 임응식의 ‘구직’(1953년)이 대표적이다. 저온 수장고에 보관된 작품 중 일부는 ‘보이는 수장고’ 형식으로 관람객에게 공개한다. 국내에 사진을 최초로 도입한 황철 작가의 ‘원각사지 10층 석탑’ 원본(1880년대)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고종의 초상(1884년경)과 흥선대원군의 초상(1890년대) 원본도 10년 만에 전시된다. 5000∼6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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