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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창당 작업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11일 국회에서 민주당 탈당을 선언한다. 이어 늦어도 2월 초까지 신당 창당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이 전 대표는 9일 한국의희망 양향자 대표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 새로운선택 금태섭 공동대표 등과 만난다. 정치권에서는 이 전 대표의 탈당 선언 이후 제3지대 ‘빅텐트’ 구상에도 본격 속도가 날 것으로 보고 있다.이 전 대표 측 관계자는 8일 이 전 대표의 기자회견 계획을 알리며 “오랫동안 몸담은 민주당을 탈당하는 것에 대한 소회를 전하고, 본인이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설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문에는 다당제의 필요성과 함께 “합리적 진보와 따뜻한 보수가 함께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는 구상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이 전 대표 측은 이날 이준석 전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가칭)과 광주에서 합동 토론회에 나서는 등 외연 확대 작업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개혁신당 천하람 창당준비위원장은 이날 이낙연 전 대표 측 신경민 전 의원과 함께 광주에서 열린 정치 혁신 토론회에 참석해 “양대 정당이 가진 안전 의석 기득권을 깨고 싶다”고 강조했다.다만 이준석 전 대표는 이날 신당 1호 공약으로 ‘공영방송 중립화 방안’을 발표하는 등 연합 정당 논의와 별개로 신당 창당 작업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어서 향후 빅텐트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도 예상된다. 이준석 전 대표는 통화에서 “(빅텐트 논의를) 서두를 이유는 없다”며 “우리는 창당이 거의 완료된 시점이라 여유가 있다”고 했다.민주당 비명(비이재명)계인 ‘원칙과 상식’ 소속 의원 4명도 이번 주 탈당 관련 입장 표명에 나설 계획이다. 이들은 당장 이낙연 전 대표 신당에는 참여하지 않고 제3지대 연합 추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원칙과 상식 소속 이원욱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에서 “만약 우리가 탈퇴(탈당)를 한다면 이준석 전 대표, 이낙연 전 대표를 포함한 많은 신당 창당 추진 세력을 묶어 세우는 데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원칙과 상식은 금 공동대표의 새로운 선택을 비롯해 정태근 전 의원, 박원석 전 의원이 주도하는 ‘당신과 함께’와의 연합 정당 가능성을 모색 중이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주축이 된 싱크탱크 ‘리셋코리아행동’도 11일 공식 출범한다. 이들은 세 차례 세미나를 거쳐 이달 말 발기인 대회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해당 싱크탱크는 4월 총선에서 친문(친문재인)계 비례위성정당 성격을 띌 것으로 보인다. 조 전 장관 측은 “22대 총선에서 범민주진보세력이 연대해 윤석열정부 심판과 정치혁신을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5일 올해 총선 핵심 승부처인 경기도를 찾아 “경기도는 상당히 불합리한 격차가 모여 있는 곳”이라며 “격차 해소를 위해 경기도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에 비해 열세로 꼽히는 경기도에서 ‘격차 해소’를 꺼내 들어 총선 승리의 발판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한 위원장은 이날 경기 수원 경기도당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다양한 영역에서의 불합리한 격차를 줄이고 없애는 데 집중할 것”이라며 “격차 해소를 통해 개별 시민의 삶이 개선될 만한 사항이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여기 경기도”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교통 격차 문제가 중요하다”며 “특히 (서울로) 생활이 더 편입된 젊은 분들이 많은 고충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경기도 교통망 확충 등이 총선 승리의 원동력이 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표를 받아내기 위한 차원도 솔직히 있다”며 “(총선의) 에너지가 없으면 강력하게 추진할 수 없었던 문제를 모아서 할 것이다. 그래서 저희를 좀 찍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김포 등을 서울로 편입하는 ‘메가시티’ 구상에 대해 “당이 굉장히 진지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이라며 “화두는 던져졌고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이날 “어제 한 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병문안 가능 여부를 문의하였으나 아직 안정이 필요하므로 한동안 어렵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6일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이상민 의원과 일대일 오찬 회동을 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이 의원의 국민의힘 입당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수원=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조권형 기자 buzz@donga.com}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피습 사건을 계기로 올해 4월 총선 공천 때 증오 정치를 부추기는 언어를 사용한 정치인을 배제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5일 “극단적인 혐오 언행을 하는 분들은 우리 당에 있을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 핵심 관계자는 “증오 언어나 막말을 하는 정치인에게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동훈 “극단 언행땐 공천 자리 없을것” 野 “공천과정 막말 전력 살필것” 윤재옥 “막말 정치인 책임질 건 져야”野 “후보 적격 판정 보류 의원도 있어”4월 총선 중도 표심 잡기 의도도… 표현 수위 등 객관적 기준이 관건 국민의힘이 5일 “22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증오를 야기하는 발언이나 막말을 사용하는 분들의 자리는 국민의힘에 없다”고 밝혔다. 올해 총선 공천 과정에서 증오 정치를 부추기는 언어를 사용한 정치인을 배제하겠다는 원칙을 밝힌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날 총선 공천 심사를 주도하는 공천관리위원회가 출범한 뒤 공천 심사에서 증오 발언 여부를 반영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총선을 96일 앞두고 여야가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고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증오 언어 정치인 퇴출에 나섰다.● 與野 “증오 언어 뿌리 뽑아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후 경기도당 신년인사회 후 ‘극단적 언행을 하는 이들을 공천에서 배제하겠다는 원칙인가’란 본보 기자의 질문에 “자유로운 언행과 극단적 언행은 어떤 경우에 모호한 경계가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그 여부를 국민 눈높이에서 판단해 국민이 수용할 수 없는 극단적 혐오 언행을 하는 분은 당에 자리가 없는데 무슨 공천을 노리겠나”라고 답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오전 당 사무처 시무식에서도 “국민들이 공감하지 않는 극단적인 혐오의 언행을 하는 분은 당에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극단적인 갈등과 혐오의 정서는 전염성이 크기 때문에 신속하고 엄정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금세 퍼질 것이고, 주류가 돼 버릴 것이고, 그건 망하는 길”이라며 “소위 ‘개딸 전체주의’ 같은 것은 국민의힘에는 발붙일 수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 당은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을 계기로 ‘증오 정치’ 퇴출 쇄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이날 원내대책회의 후 브리핑에서 ‘막말한 정치인들에 대해 총선 공천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냐’는 물음에 “정치적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공천 심사 과정에서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출범한 공관위를 중심으로 증오 발언 여부를 공천 심사에 반영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강선우 대변인은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정치인의 막말 여부를 공천 심사 과정에 반영할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향후 공관위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총선기획단은 공직자선거후보자 검증위원회 단계에서부터 막말, 설화 등에 대해 검증하고 공천 심사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총선기획단 소속 한 의원은 “정치권의 증오 언어 문화를 이번 사태를 계기로 뿌리 뽑아야 한다”며 “총선 출마 예비 후보 검증 때 막말 여부를 보겠다고 한 만큼 공천 과정에서도 막말 전력을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실제로 막말 논란으로 예비 후보 적격 판정이 보류되고 있는 현역 의원들도 있다”고 말했다.● 증오 언어 객관적 지표 세우기가 관건 여야가 증오 발언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사들을 공천 배제까지 검토하는 배경에는 올해 4월 총선에서 ‘무당층’으로 분류되는 중도 표심을 잡기 위한 의도도 깔려 있다. ‘반드시 이번 총선에선 거야의 폭주를 막겠다’는 여당과 ‘과반 의석의 원내 1당 지위를 사수하겠다’는 야당 모두 외연 확장이 시급한 가운데 먼저 자정 움직임을 보이는 당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관건은 증오 표현 수위나 ‘사회적 물의’ 등을 객관적이고 계량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지이다. 국민의힘 윤 원내대표도 이를 의식한 듯 이날 “구체적으로 막말의 정도, 불이익의 정도를 계량화할 수 없는 사안이니까 일률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다”며 앞으로 기준을 세워 나가야 한다고 시사했다. 의원들 사이에선 ‘상임위 회의록이나 언론에 공개된 막말 발언 횟수나 빈도를 세는 것도 방법’이란 의견도 나온다. 민주당 내에서도 ‘증오 언어’를 규정하는 기준부터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친명(친이재명)계 좌장인 민주당 4선 정성호 의원은 통화에서 “여야가 극단적 발언을 한 사람은 선출직으로 기용하지 않겠다는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선 무엇이 증오 발언인지에 대한 공감대부터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안규영 기자 kyu0@donga.com수원=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부모의 품에서 멀어져 유기·방임된 아동·청년 47명을 추적한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의 ‘미아: 품을 잃은 아이들’ 시리즈가 18∼23일 5회에 걸쳐 보도되자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길 소망한다”는 응원이 쏟아졌다. 전국의 독자와 누리꾼들은 “저출산 시대에도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고 먹먹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모든 아이를 품을 수 있는 사회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미아’에게 쏟아진 응원과 공감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어 보니 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아가들아,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서 꼭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렴.”(독자 shdb****) 독자들은 먼저 시리즈에 등장한 아이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릴레이로 보냈다. 특히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의 성원이 한 주 내내 이어졌다. 베이비박스(부모가 아이를 두고 가도록 마련된 상자) 아동 유준(가명)이의 사연을 담은 1회 “왜 날 떠났나요”(18일자 A1·2·3면)가 보도되자 한 누리꾼(jung****)은 “부모가 있어도 세상은 온통 가시밭길에 진흙탕인데 저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얼마나 춥고 힘들고 외로울지…. 제발 우리 세금을 저 아이들을 위해 써주길 바랍니다”라고 댓글을 적어 많은 공감을 받았다. 방임 가정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혁재(가명)를 양육하고 있는 ‘엄마’ 김정선 씨의 2회(19일자 A1·2·3면)가 보도된 후에는 김 씨에 대한 찬사가 잇달았다. 그중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정말 존경스럽다. 또 다른 사랑의 표현 방식을 알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baay****)는 글이 큰 호응을 얻었다. 고진예 정재호 씨 부부에게 입양·위탁된 두 아들을 다룬 4회(21일자 A1·2·3 면)를 접한 독자(bisa****)는 “지독히도 혈연에 집착하는 우리나라 가족문화에 이처럼 두 아이를 입양해서 양육하기는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부부를 응원했다. 고 씨는 “따뜻한 응원 댓글이 많아서 두 아이에게 좋은 선물이 됐다”라며 감사 인사를 전해 왔다. 갓난아기부터 보육시설에서 자란 박가람 씨의 일대기를 담은 3회(20일자 A1·2·3면)에도 많은 독자들이 감정을 이입했다. 자신도 보육시설 출신이라고 밝힌 한 독자(qwe0****)는 “늘 완벽을 꿈꾸었다는 각오가 내가 느낀 그 감정이었다. 좋은 삶이 너에게 임하기를 기원한다”고 응원했다. 아동복지 전문가들은 박 씨를 비롯해 아동·청년들의 음성을 담은 디지털 콘텐츠 ‘사운드트랙: 품을 잃은 아이들’이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를 전해왔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관계자는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경험, 의견을 있는 그대로 담아서 특히 진정성이 느껴졌다”라고 했다.● “모든 아이 책임지는 공적 체계 필요” 국가와 사회가 모든 아이를 품에 안고 책임지는 ‘공적 체계’가 필요하다는 히어로콘텐츠팀의 제언에도 많은 독자가 공감했다. 한 누리꾼(wind****)은 “비록 엄마의 품은 사라졌지만…. 사회의 품, 국가의 품을 잘 만들어서 이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만들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이슈”라고 댓글을 적었다. 내년 7월부터 시행되는 ‘보호출산제’(익명으로 아이를 출산하고 지방자치단체에 인도하는 제도)에도 독자들은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한 독자는 “아는 것 같았지만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됐다”며 “미혼모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게 됐다”고 적었다. “이건 기사가 아니라 완벽한 정책보고서, 그 자체”(grea****)라는 댓글도 많은 공감을 얻었다.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2일 보호출산제 시행 추진단 1차 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시행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국회는 21일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출생정보 전자의무기록 활용 △위기임산부 상담기관(중앙 1곳, 지역 12곳) 운영 및 정보시스템 구축 등에 필요한 예산을 52억 원 증액했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은 “이번 시리즈를 계기로 가정위탁이나 입양, 보육시설 아동 멘토링 등이 활성화되고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도 많아졌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은 “관계 기관과 함께 철저히 준비해 모든 아동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미아: 품을 잃은 아이들’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해 차별화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취재: 조유라 이승우 조민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하승희,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수진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 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여하은 차설 인턴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따뜻한 요람 대신 차디찬 바닥에 놓였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사로 구현한 ‘그 아이들이 버려진 곳’(original.donga.com/2023/poom1)과 ‘사운드트랙: 품을 잃은 아이들’(original.donga.com/2023/poom2)로 각각 연결됩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조민기 기자 minki@donga.com}

아이가 보배인 저출산 시대에도 ‘품을 잃은 아이들’이 있다. 친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유기된 아이들. 그리고 부모가 방임한 아이들까지.올해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되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두 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우리 주위엔 여전히 미아처럼 품을 찾아 떠도는 아이들이 있다.그동안 이 아이들은 뭘 감내하며 살아왔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베이비박스’(부모가 아이를 두고 가도록 마련된 상자)를 500시간 동안 관찰하고, 품을 찾아 떠도는 0~29세 아동·청년 47명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말한다. “미안해 아가야.”미아 - 품을 잃은 아이들[5] 모든 아이를 품어줄 세상베이비박스의 ‘맏언니’ 소라올해 9월 4일 서울 관악구 베이비박스에 놓였던 유준(가명·본보 12월 18일자 A1·2·3면 참조)이가 다음 날 아침 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아이가 있다. 6월 30일 태어나 이미 두 달 넘게 베이비박스를 지키고 있던 ‘맏언니’, 김소라(가명) 양이다.미혼인 엄마는 임신 30주에야 소라의 존재를 알았다. 도움을 요청할 곳을 찾지 못한 채 머릿속만 하얘졌다. 구청이나 공공기관을 찾아갔다간 건강보험 청구서가 날아와서 주변에 들통날 것 같았다. 배가 불러오고 두려움과 막막함만 몰려오던 순간 소라가 세상에 왔다. 엄마는 그제야 소라의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무조건 입양 보내 주세요.”소라가 태어난 지 나흘째 되던 날. 아이를 안고 베이비박스로 온 엄마는 상담사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아이로 인해 자신의 삶이 완전히 뒤바뀔 거란 두려움이 모든 감정을 압도했다. 그렇게 베이비박스에 살기 시작한 소라가 100일 잔치를 앞두고 있던 10월 6일. 국회에선 소라와 엄마, 그리고 베이비박스의 다른 아이들을 위한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보호출산제)이 통과됐다.위기 임신부터 정부가 지원내년 7월부터 시행되는 보호출산제는 임신부가 익명으로 병원에서 출산한 후 지자체에 아이를 인도하는 제도다. 소라 엄마처럼 임신과 출산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거나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임산부들이 익명으로 찾을 수 있는 지역상담기관 10곳도 24시간 운영된다. 이곳에 상담을 요청하면 아이를 키울 때 받을 수 있는 지원 정책과 입양을 보낼 경우 절차 등을 먼저 안내받게 된다. 필요한 자원도 모두 연계 받을 수 있다.이 모든 상담을 거쳤음에도 보호출산을 택한다면 본인의 가명과 함께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하는 ‘관리 번호’를 받게 된다. 산전 검사를 위해 병원을 갈 때도 관리 번호를 제시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드는 의료비는 전액 정부가 지원한다. 출산 후 1주일의 ‘숙려 기간’에도 엄마가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입양 절차가 시작된다. 하지만 아이가 입양 허가를 최종적으로 받기 전까지는 직접 양육하겠다고 마음을 바꿀 수 있다.보호출산을 신청한 엄마는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보호출산을 선택하게 된 상황 등을 담은 ‘출생증서’를 남겨야 한다. 아기가 성인이 되면 출생증서 공개를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친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인적사항은 알 수 없다.“입양, 가정위탁 더 활성화해야”전문가들은 이 법으로 인해 사회·경제적으로 내몰렸거나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는 ‘위기 임신’ 단계부터 공공이 개입할 근거가 마련됐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보호출산제의 1차 목표가 ‘위기 임신’ 상태인 부모가 상담기관을 쉽게 찾도록 하는 데 있어서다.보호출산제가 모방한 독일의 ‘신뢰출산제’는 전국 1500여 개 임신상담센터에서 거주지와 상관없이 원하는 지역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위기 임신 상태의 부모가 언제 어디서든 접근하고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촘촘한 지원 체계를 갖춰놓은 것이다.서울 서대문구 출산지원시설 애란원의 강영실 원장은 “사실 한국도 한부모 지원 체계가 굉장히 촘촘한 편”이라면서도 “하지만 그동안 위기임신 단계를 지원할 ‘초입구’를 공공에서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출산을 앞두고 극도의 혼란을 겪는 미혼모들에게 한부모 지원 체계가 충분히 연결될 수 없었다”고 말했다.다만 보호출산제가 실효성 있게 자리 잡으려면 ‘운영의 디테일’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기 임신의 경우 임신 사실 자체를 뒤늦게 아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은 “상담사들이 상당히 훈련돼야만 하고, 전산정보가 차질 없이 공유되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아동을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해서도 세부 정책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복지부는 내년 1, 2월 중 구체적인 보호 방안을 담은 시행령을 입법예고할 계획이다.‘품을 잃은 아이들’을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해 입양과 가정위탁을 더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지부가 ‘보호아동 가정형 거주로의 전환 로드맵’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2차에 걸쳐 실시한 연구용역에선 가정위탁에 유급제를 도입해 보상을 늘리되 책임감을 높이는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입양의 경우 연장아(만 1세 이상 아동)와 장애아 등 양부모들의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아이들의 입양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은 “보호출산제의 목표는 역설적으로 보호출산으로 태어나는 아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모든 아이를 품는 세상으로보호출산제가 도입되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현장에서는 ‘정상 가족’에 대한 고정 관념이 변하지 않는다면, 보호출산제를 통해 익명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계속해서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아이를 출산한 뒤 직접 양육하고 있는 미혼모들은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주위의 편견이 가장 두려웠다고 입을 모았다. 정수진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상담팀장은 “드라마에서도 미혼모는 대부분 첩, 술집 작부나 가정 파탄자로 나오지 않나”라며 “내가 아이를 키우겠다고 결정해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가정을 유지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어렵사리 주변인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려도 돌아오는 건 냉대였다. 김모 씨(22)는 임신 당시 가족, 친구 등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하다 올 9월 딸을 출산한 뒤에야 부모님에게 알렸다. 그러나 부모님은 아기 사진을 보지 않으려 할 정도로 거부했다. “임신했다는 것 자체가 눈치가 보였다”는 그는 아이를 결국 입양 보내기로 했다. 가족의 반대에 부딪혀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맡겼다가 결국 100여일 만에 집으로 데려간 이모 씨(26)는 “아이가 자라면서 아빠 없이 컸다는 놀림에 상처를 받을까 두렵다”며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엄마, 보통 아이라는 따뜻한 시선으로 품어줬으면 한다”고 했다.전국 위기임신 상담전화(가나다 순)구분운영 기관번호공공경기도 위기임산부 안심상담 핫라인010-4257-7722공공서울시 위기임산부 상담지원1551-1099공공여성가족부1644-6621공공1388청소년전화1388민간동방사회복지회 미혼모상담1588-9874민간1549임신상담출산지원센터010-2172-1549민간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02-322-5007민간한국위기임신출산지원센터1422-37자료: 각 단체 등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미아: 품을 잃은 아이들’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해 차별화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취재: 조유라 이승우 조민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하승희,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수진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 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여하은 차설 인턴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따뜻한 요람 대신 차디찬 바닥에 놓였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사로 구현한 ‘그 아이들이 버려진 곳’(original.donga.com/2023/poom1)과 ‘사운드트랙: 품을 잃은 아이들’(original.donga.com/2023/poom2)로 각각 연결됩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조민기 기자 minki@donga.com}

아이가 보배인 저출산 시대에도 ‘품을 잃은 아이들’이 있다. 친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유기된 아이들. 그리고 부모가 방임한 아이들까지.올해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되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두 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우리 주위엔 여전히 미아처럼 품을 찾아 떠도는 아이들이 있다.그동안 이 아이들은 뭘 감내하며 살아왔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베이비박스’(부모가 아이를 두고 가도록 마련된 상자)를 500시간 동안 관찰하고, 품을 찾아 떠도는 0~29세 아동·청년 47명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말한다. “미안해 아가야.”미아 - 품을 잃은 아이들[5] 모든 아이를 품어줄 세상아이와 세상의 가교“이제 두 분이서 같이 대화를 좀 하세요 어머니.”상담실 책상에 놓인 박진한 씨의 스마트폰에서 “네…” 하는 여자 음성이 나왔다. 맞은편에 앉은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가 길게 목을 빼고 망설이다가 입을 뗐다.“엄마아!” “아들!” 단 한 마디 만에, 여자의 상기된 음성 사이에 흐느낌이 섞여 나왔다.“하하 목소리가 다 컸네.” “맞죠?”“응…. 아들, 엄마 안 보고 싶어?” “너무 보고 싶어요.”아이는 목덜미를 빡빡 문지르더니 괜히 윗옷 끝자락을 잡아 내렸다. 몸을 배배 꼬는 아이를 박 씨가 쿡 찔렀다. “네가 얘기를 해야지. ‘우리 언제 보면 좋을까’ 하고!”박 씨는 면접 교섭 날짜를 정하는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들었다. 아직은 수화기 너머에만 있는 엄마는 과거 아이를 학대해 수감됐다가 가석방으로 출소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상태. 아이는 엄마의 칼에 허벅지를 찔린 뒤 분리돼 그룹홈(공동생활가정)에 나와서 살고 있다.학대받았던 아이와 뉘우치는 엄마.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갈라진 두 사람은 지금 “보고 싶다”며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다. 하지만 그리워하는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엄마가 다시는 아이를 아프게 하지 않도록 단단히 교육하고 다짐받아야 하는 것. 이 가족이 안전하게 살아가도록 모든 자원을 연계해줘야 한다. 설령 다시 위기가 생겨도 재빠르게 막을 수 있도록 오래도록 지켜보는 것 또한 그의 역할이다.때로는 ‘선생님’, 때로는 ‘박 주사’, 종종은 ‘아빠’라고도 불리는 그의 직함은 부산 강서구청의 ‘아동보호전담요원’이다.아동 보호의 ‘컨트롤타워’오전 8시. 박 씨는 크기가 제각각인 신발 수십짝이 꽉 찬 현관을 뒤로 하고 출근길에 나선다. 그의 하루가 시작하는 곳은 강서구청 별관 1층에 있는 ‘아동보호계’ 사무실이다.박 씨가 전담하는 아동은 40여 명. 최소 3개월에 한 번씩 직접 만나야 하는 ‘고객’들과의 약속은 일러야 오후 3시부터 잡을 수 있다. 대개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방과 후 수업, 학원까지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좀 있는 아이들은 아르바이트 때문에 바쁘다며 일정을 주말로 미루기 일쑤다.지난달 21일은 오후 3시에 그룹홈 한 곳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박 씨는 이날 동행 취재에 응하기 위해 전날 야근까지 하며 급한 일들을 미리 처리해뒀지만 큰 소용은 없어 보였다. ‘두루루루’ 하며 그를 찾는 전화벨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청소년 쉼터에서는 아이가 자퇴를 하려 한다며 도움 요청이 왔다. “걔한테 학교 그만두면 자립생활관(청소년자립지원관)에서도 안 받아줄 수 있다고 얘기를 해 주셔야 돼. 네네… 상황 생기면 또 말씀 주세요.”이번엔 ‘콜백’이 온 그룹홈 보호아동 친모의 근황 파악. “어머니, 저 박진한입니다. 그때 새로 결혼하신 분 있죠. 아이에게 혹시 이야기하셨어요? 네네… 제가 아이 만나보고 늦어도 4시 전엔 다시 연락드릴게요.”옆자리 동료 전담요원은 위탁가정 관계자와의 통화가 20분째 이어지고 있었다.“아이가 심리치료를 받으려면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병원에 가서 받아야 한다고 보호자한테 말씀드렸는데, 지난번 전화해보니까 여태껏 안 받았다는 거예요.”학교 선생님과 양육시설 상담사. 각종 ‘센터’ 관계자와 친부모, 친인척에 보호자까지. 전화 너머 사람은 모두 달랐다. 아이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이라면 모두가 ‘클라이언트’였다.‘사건 그 후’의 삶도 중요겨우 시간 맞춰 도착한 곳은 겉보기엔 평범한 아파트.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유기, 폭력, 방임, 지적장애 등 복잡한 사연을 지닌 남자아이 7명이 사는 그룹홈이다. 전담요원의 일 중 가장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양육 상황 점검. 아이들이 충분히 돌봄을 받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 오늘의 임무다. 이들의 일은 대부분 장기적이고 잔잔하다. 아동 유기나 아동 학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전담요원들의 역할은 ‘그 이후’를 도와주는 것이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어디에서 지내야 좋을지를 판단하고, 어떻게 지내는지를 점검하고, 언제 다시 원래의 가족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를 결정한다.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사실 아이에게는 중요한 일”이라며 그는 웃었다.박 씨가 이날 학원을 마치고 그룹홈으로 돌아온 아이들을 일대일로 만나 잘 지내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목표를 만들고 있는지를 묻는 데에는 한 명당 거의 30~40분이 걸렸다. 건물 앞에 주차된 그의 차 트렁크에는 디퓨저(방향제) 재료와 슬라임 만들기 세트가 실려있었다. 이 집 아이들을 처음 만날 때에 쓰던 것들이다. 상처가 있는 아이들은 낯선 사람 앞에서 여간해선 말문을 열지 않았지만, “오늘은 너와 친해지기 위해서 찾아온 거야”라며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물건들을 하나둘 늘어놓는 박 씨에게 아이들은 천천히 마음을 열었다.사각지대 발굴하고 ‘빈틈’ 연결전담요원은 역할은 크게 세 가지다. 사각지대 아이들을 발굴해내는 것, 곳곳이 끊어진 아동보호체계의 틈을 메우는 것, 그리고 아이들을 오래도록 지켜보는 것이다.기존 아동보호는 분절된 체계였다. 한국전쟁 이후 우후죽순 만들어진 고아원에 뿌리를 두고 입양, 가정위탁, 자립지원, 보호아동 양육 등을 모두 민간이 주도하다 보니 복잡한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보호 대상 아동 발굴과 상담, 지원, 사후관리도 전부 따로 이뤄졌다.2019년 정부가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선포한 뒤에야 전 과정을 공공에 통합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시군구가 아동보호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되면서 아동보호전담요원 제도도 이듬해 도입됐다. 전담요원 인원이 충분한 시군구에서는 아이들의 보호조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집단지성이 발휘될 수 있다. 10월 17일에 찾은 서울 노원구청에선 아동보호팀이 내부 사례회의를 열고 현재 그룹홈에서 지내는 아동의 퇴소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참석한 아동보호전담요원은 전원 6명, 서울 시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원이다. “아동은 친할머니, 할아버지와 아주 좋은 라포(친밀함)를 형성하고 있고, 친부는 10월 12일에 친권 및 양육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양육 의지가 확고해서 퇴소에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담당 요원의 ‘2분 브리핑’이 끝나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 질문과 조언을 쏟아냈다. “앞으로는 원가정이 있는 동작구가 관리해야 하는 집이니까, 가정 방문을 갈 때 아예 시간을 맞춰서 같이 가시는 게 나을 거예요.” ”가족 상담 2회기는 너무 짧아 보이는데요. 저는 예전 사례 때 최소 네 번은 했어요.” “이 사례는 저도 처음에 관여했었는데요. 어머니가 친권이랑 양육권은 포기했는데, 나중에도 채무 관계를 빌미로 가정에 개입할 수 있어서 잘 대처해야 할 것 같아요.”문제는 이런 일이 가능한 시군구가 드물다는 것이다. 전담요원 제도가 도입된 지 3년이 지났지만 기초지방자치단체 229곳 중 73곳은 전담요원이 단 한 명이거나 아예 없는 실정이다. 두 명에 불과한 곳도 부산 강서구를 비롯해 51곳이나 된다.반면 이들이 전담해야 할 ‘아동보호’의 범위는 급격하게 확장됐다. 이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자기 아이의 입양을 의뢰한 친부모를 상담하는 일이다. 70년간 민간이 맡아온 국내 입양 업무 일부분이 2021년부터 전담요원들에게 갑자기 넘어간 것이다. 전담요원들은 낯선 ‘입양실무 매뉴얼’ 책을 붙잡고 한부모 지원제도와 입양 절차를 부모들에게 설명해줘야 했다.아이를 돌보면서 부모도 챙기다 보니 박 씨는 상반된 상황에 자주 직면했다. 2년 전 미혼모시설의 한 여성이 그에게 입양 상담을 요청해왔다. 여성은 4차 상담 때 마음을 바꿔 아이를 데리고 퇴소했다. 그리고 다음에 들려온 소식은 ‘아동학대 신고’였다.‘내가 막을 수 있었던 일인데….’ 박 씨는 소식을 듣자마자 허탈감에 빠졌다. 지역 복지시설을 연계시켜봤지만, 그 시설도 난감함을 호소했다. 운전대를 잡고 복지시설을 오가는 동안 ‘그냥 입양을 보내는 게 아이에겐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만 이어졌다.어떤 여성은 아이와 분리 조치 된 뒤 몇 달째 협박 전화와 문자를 하고 있다. “죽어도 같이 죽읍시다” “우리 애한테 당신이 뭘 해줬어요?” “강서구청 주민복지과 모두 죗값을 치러야 할 거예요…” 그는 아이의 입소 동의서에 스스로 서명을 하고도 박 씨가 자기 딸을 납치해 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한번은 미혼모 가구에서 아이를 분리하고 나서 전화를 받았다. 아이 삼촌이라던 그 사람은 “내가 조폭인데, 당신 집을 알고 있으니 처와 자녀들 조심시키는 게 좋을 거요”라며 위협했다.이런 협박을 당해도 대응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한 팀에 2명이 전부여서 2인 1조 대응도 언감생심이다. 부서 예산으로 호신용품을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박 씨는 지인인 경찰에게 “내가 문제없이 살 수 있는 호신용품이 뭐가 있느냐”고 물었고, ‘호루라기’가 전부라는 답이 돌아왔다.최저임금 처우의 시간제 공무원‘아동보호의 컨트롤타워’라는 타이틀을 가진 전담요원들은 똑같은 직함을 달고도 지역마다 다른 처우를 받으며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3명 중 2명(67.5%)은 5년 임기로 채용되는 ‘시간선택제임기제 공무원’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가나다라마’ 5단계 중 가장 낮은 ‘마’급이다. 주 35시간으로 책정되고 9급 공무원의 60%를 받는다. 최저임금(월급 기준 201만580원)에 가까운 수준이다. 1년 단위 계약직도 적지 않다. 정식 공무원이 아닌 ‘공무를 하는 민간인’ 신분이라서 권한도 부족하다. 아동과 부모의 분리조치 업무를 다룰 땐 연락이 두절된 친부모를 맨바닥에서 수소문해야 한다.제도 도입 초창기엔 전국의 전담요원들이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보호아동 사례가 생기면 해결 방안을 다 같이 논의했고, 처우 개선 의견도 모았다. 하지만 한 목소리를 내기엔 각각의 고용 형태와 업무환경이 천차만별이었다. 한때 800명이 넘었던 채팅방 참여자는 현재 400명대로 내려앉았다.전담요원들은 열악한 처우와 제한된 권한 속에서도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주체들을 서로 연결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입양 업무에 이어 보호아동 보조금 집행, 자립준비청년 사후관리까지 맡고 있다. 특히 내년 7월부터 시행될 보호출산제가 이들을 더 긴장시키고 있다. 보호출산과 상담 자체는 전국에 만들어질 상담지원기관이 주도한다. 하지만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는 ‘보호대상 아동’이기 때문에 성본창설과 출생등록, 보호시설 입소, 입양 등을 전담요원이 맡아야 한다.서울 노원구청 전담요원 설한나 씨는 답답한 마음에 보건복지부 담당 직원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며칠 뒤 받은 답장은 ‘친절한 문장’으로 그를 좌절시켰다. “일에 대한 열정이 느껴집니다만, 업무분장은 각 지자체의 권한이기 때문에 저희가 관여할 수 없습니다.” 전담요원으로 일을 시작하며 설 씨가 기대했던 것은 ‘질적 향상’이었다. 기존에 공공에서 발만 걸쳤던 분야에 전담 인력이 생기면 아이들을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현실은 ‘도돌이표’였다.인력 확충 예산을 늘리기 쉽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전담요원 운영비는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가 절반씩 분담한다. 한쪽에서 늘리려 해도 다른 쪽이 호응하지 않으면 예산 확대가 어려운 구조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동학대도 아닌 아동보호는 지자체 사업 우선순위에서 상위권에 있진 않다”며 “실적이라고 내세울 게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현 정부가 정부예산 긴축 기조를 이어가면서 보건복지·사회복지 예산의 아동·청소년 예산 비중도 2년 연속 감소했다. 아동보호시설 종사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예산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아동보호 인력의 처우가 불안정하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불안정을 겪은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불안을 얹어주는 것을 뜻한다고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선욱 교수는 말한다.“업무만 늘리고 인력은 제자리라면 반드시 사각지대가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 피해를 입게 되는 건 결국 가장 약한 존재인 아이가 될 거예요.” “아동보호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지역에 모세혈관처럼 배치할 수 있는 아동보호전담요원이 사회복지 전문 역량만 갖춘다면 아동보호체계가 한층 두터워질 수 있다. 하지만 열악한 처우와 제한된 권한은 개선되지 않은 채 아동정책이 우후죽순 쏟아질 때마다 이들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또 끌려가겠군”이라며 자조한다.정책의 초점을 아동 개인에서 가족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담요원은 “아동은 간신히 회복돼도 정작 부모는 잘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 반복돼 우리 모두의 노력이 빛이 바랠 때가 많다”며 “정부 정책이 가족 전체가 아닌 아동 개인의 단기적 보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박 씨에겐 친자녀 넷과 가정위탁으로 양육 중인 8개월 아이 외에도 그를 ‘아빠’라 부르는 아이가 8명 더 있다. 과거 사회복지사로 일할 때 연을 맺은 아이들은 어느덧 상처를 딛고 성장해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있다. 아이를 돌보는 일에 보람을 느껴왔지만, 감정과 사명감만으로 할 수는 없는 일도 적지 않다.전문가들은 “아이를 지키는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은 “결국 사람이 전부다. 아동보호 인력은 장기적으로 일하며 연속성을 가져야 역량이 쌓인다”며 “그래야 아이들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성장 기반이 만들어진다”고 했다.무엇보다 아이들에겐 스스로 목소리를 낼 공간도, 투표권도 없기에 이들을 든든하게 지켜줄 존재가 중요하다. 박 씨는 말했다.“우리가 ‘전담’하는 것은 부모와의 신뢰가 깨진 아이들이 상처만 받고 가라앉는 대신, 세상으로 한 발짝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것 아니겠습니까.”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미아: 품을 잃은 아이들’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해 차별화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취재: 조유라 이승우 조민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하승희,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수진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 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여하은 차설 인턴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따뜻한 요람 대신 차디찬 바닥에 놓였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사로 구현한 ‘그 아이들이 버려진 곳’(original.donga.com/2023/poom1)과 ‘사운드트랙: 품을 잃은 아이들’(original.donga.com/2023/poom2)로 각각 연결됩니다.부산=홍정수 기자 hong@donga.com부산=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조민기 기자 minki@donga.com}

아이가 보배인 저출산 시대에도 ‘품을 잃은 아이들’이 있다. 친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유기된 아이들. 그리고 부모가 방임한 아이들까지.올해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되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두 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우리 주위엔 여전히 미아처럼 품을 찾아 떠도는 아이들이 있다.그동안 이 아이들은 뭘 감내하며 살아왔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베이비박스’(부모가 아이를 두고 가도록 마련된 상자)를 500시간 동안 관찰하고, 품을 찾아 떠도는 0~29세 아동·청년 47명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말한다. “미안해 아가야.”미아 - 품을 잃은 아이들[4]품을 내어준 새부모“겁이 없으시네요”6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둔 12월 23일. 고진예(52), 정재호(47) 부부의 집은 밤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진예 씨는 다음날 인천시 미추홀구 용현동 해성보육원에서 열리는 성탄절 행사에서 희재를 처음 만나기로 돼 있었다.희재는 1년 동안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재호 씨가 “눈도 똘망하고 웃는 것도 너무 예쁘다”고 연신 자랑하던 다섯 살 아이였다. 하지만 부부에겐 기대 못지않은 걱정도 밀려왔다.“겁도 없이 큰 아이를 입양하시네요. 그냥 평범하게 어린아이로 입양하세요.”입양 결정 소식을 듣고 주위에서 만류하던 말들이 부부의 마음을 마지막까지 망설이게 만들었다. 입양 절차를 문의하러 찾았던 입양 상담사에게 받은 상처 역시 아직도 선명하다. 그 상담사는 “보육원에서 3년 이상 자란 아이는 부모와 애착도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며 “키우기 어려우니 포기하시는 게 좋다”는 말을 부부에게 툭 던졌다.“아이를 낳아 본 적도 없는데…. 다 큰 아이와 함께 잘 지낼 수 있을까?”부부는 기대감과 불안감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결혼 후 5년이 지나도록 부부에겐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7남매였던 진예 씨와 4남매였던 재호 씨의 가족은 양가 합쳐 40여 명에 달하는 대가족이다. 진예 씨의 막냇동생이 이제 막 조카를 낳아 가족 모임 때 대화는 아이들 이야기로 채워졌다. 하지만 모임에 참석한 부부의 얼굴에는 늘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그런 그들을 불러세운 건 진예 씨의 어머니였다. “혹시 입양은 알아 봤니? 주변에 들어보니 요샌 입양해서도 잘 산다고 하던데….”남에서 형과 이모로마침 먼저 아이를 입양한 지인 부부가 아이 얘기를 할 때마다 관심이 가던 차였다. 재호 씨는 2017년 1월 해성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만 6세 미만 아이들만 보호하는 보육원에서 아이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배워 보고 싶었다.5, 6세 ‘최고참’들이 모인 별빛반의 놀이도우미가 된 재호는 이곳에서 희재를 처음 만났다. 힘이 좋은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하고 자전거를 타며 빠르게 친해졌다. 아이들도 재호 씨가 오는 날이면 신발도 신지 않고 현관으로 달려와 반겼다. 똘똘하고 밝은 성격의 희재는 서른여섯 살 위의 재호 씨를 ‘형’이라고 부르며 먼저 마음을 열었다. 재호 씨도 “앞으로 재밌게 놀아보자”며 손을 붙잡고 눈도장을 찍었다. 둘은 책 읽기, 게임, 만화 캐릭터 이야기를 하며 빠르게 친해졌다. 재호 씨도 아이들을 만날 주말을 손꼽아 기다렸다.시간이 쌓이자 사랑에 목마른 아이들의 애교가 눈에 점점 밟혔다. 아이들은 낯을 가릴 줄 몰랐다. 잘 걷지도 못하는 아기가 동전만 한 손바닥을 뻗으며 안아 달라고 보채기도 했다. 해성보육원은 영유아 보육원이라 만 6세까지만 있을 수 있었다. 별빛반 8명 중 5명은 돌아갈 친부모가 있었고, 두 명은 가정 위탁이 결정됐다. 가장 고민인 건 ‘동생’ 희재였다. 갈 곳 없는 희재는 이듬해 이곳을 떠나야 했다. ‘형’ 재호 씨의 걱정이 커졌다.재호 씨의 고민을 들은 진예 씨는 얼마 전 아이를 가정위탁 한 선배 부부 이야기를 떠올렸다. 7세 아이를 2년 동안 키우기로 했던 그들은 1년 만에 아이를 보육원으로 돌려보냈다. “의지할 어른이 없다가 부모가 생겼다고 너무 매달리는 통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부부는 걱정했다. “아이가 한 번이라도 부모랑 떨어지는 상처를 겪으면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 하거나 반대로 집착이 심해지기 마련이래. 그 집 사정 자세히는 모르지만, 죄 없는 애만 악순환을 겪는 거야.”재호 씨는 희재가 평생 보육원과 보호시설을 떠돌며 상처받는 모습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진예 씨도 희재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괴로워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희재, 우리 가족으로 데려오는 건 어때요?”부부는 입양기관을 방문하고 관련 모임에 참여해 입양 방법과 과정을 배우기로 했다. 결심만 어렵고 이후엔 수월할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처음으로 부딪힌 벽은 가장 먼저 입양을 권유했던 진예 씨의 친정어머니였다.“왜 데려와도 큰 아이를 데려오려 그러니! 말 안 들으면 부모가 고생한다는데….” 6년 동안 보육원에서 살던 아이를 데려온다는 말에, 그는 딸과 사위에게 걱정을 쏟아냈다. 다른 가족도 “갓난아이를 데려온다더라”며 말렸다. 예비 양부모 교육을 담당하던 한 직원은 “양육 경험도 없는 분들이 곧 초등학교 들어가는 아이를 데려오는 건 무모하다”고도 했다. 양부모 자격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는 원칙엔 동의했다. 하지만 만류가 반복될수록 부부의 마음이 위축되고 있었다. “우리가 아이에게 잘못하는 건 아닐까” 자신감이 떨어져 갈 즈음, 부부는 일단은 희재를 만난 후 마음을 정하기로 했다. 성탄절의 선물그렇게 찾아간 성탄제, 진예가 처음으로 본 희재는 산타 복장을 한 동생 6명과 함께 동요 ‘꿈꾸지 않으면’을 부르고 있었다. 흰 상의와 청바지를 입고 무대 중앙에서 멜로디에 맞춰 부지런히 수화로 노랫말을 그려 나갔다.“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 하네….”키 120cm에 몸무게 20kg, 다섯 살 치고도 작은 체구였지만 똘망한 눈빛엔 에너지가 가득했다. 부부는 성탄절 선물처럼 다가온 희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내 안고 살았던 고민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희재에게 품을 잃은 슬픔보다 품에 안기는 기쁨을 전해주고 싶었다. “다섯 살 아이나 갓난아이나 가족을 원하는 마음은 똑같을 거야.”다음 날 부부는 보육원을 다시 찾아 결심을 전했다. 고민은 끝났지만 과정은 이제 시작이었다. 입양 의뢰 후 △상담 △입양 기관 신청 △가정조사 및 교육 △가정조사서 발급 △아동결연 △가정법원 서류 제출 △법원 입양 허가 △아동 인도 △입양 신고 △사후관리 최소 10단계에 걸친 절차를 거치려면 빨라야 1년이 걸린다고 했다. 깐깐한 건강검진에 약물검사까지 했다. “친자식도 임신 10개월이면 낳는데…” 절차는 부부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길고 복잡했다. 서류만 24개를 썼다.예비 양부모 교육을 받기 위해 연차도 번갈아 썼다. 양육 안내서를 사고 대학 강의도 들었다. 매주 한 번씩 희재를 보육원에서 데리고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희재는 부부의 삶에 서서히 녹아들었다. 희재가 처음 부부의 집에 온 날, 재호 씨는 일할 때 말곤 써본 적 없던 컴퓨터를 켜고 밤새 희재가 좋아하던 게임을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함께했다. 바닷가에 놀러 가 거대한 풍력 발전기 앞에서 목말을 태우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쯤 됐을까. 부부와 함께 경주 여행을 다녀온 날 희재는 갑자기 물었다. “형이 내 아빠하고 이모가 내 엄마 해주면 안 돼요?”1분 1초라도 빨리 함께 가족이 되고 싶었다.가정법원의 결정을 앞둔 2018년 2월 말, 희재는 부부의 집에 들어왔다. 법적으로 명시된 제도는 아니지만, 부모와 아이가 공식 입양 허가 전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한 ‘입양 전 위탁(사전위탁)’이다. 큰 아이를 데려온다고 걱정하던 진예 씨의 어머니도 예비 손주를 환영하기 위해 손수 집을 꾸몄다. 온 가족이 모인 집에 풍선과 현수막, 그리고 희재 이름이 들어간 케이크까지, 환영을 위한 준비는 완벽했다.정체성의 혼란과 신데렐라하지만 집에 들어선 희재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또래인 사촌 동생이 인사를 건네도 본체만체했다. 좋아하는 초콜릿을 내밀어도 웃지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여기가 아닌데… 아, 진짜 여기가 아닌 거 같고, 잘못 온 것 같은데…”아이는 콧물을 훌쩍이며 알 수 없는 말만 중얼거렸다. 부부는 “괜찮아. 오늘부터 함께 살 가족들이야. 행복하게 잘 지내보자”며 허둥지둥 아이를 달랬다. 하지만 희재의 시선은 외삼촌 품에 안겨 떠나가는 한 살배기 아이에게 멈췄다.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힘겨운 상견례를 마친 뒤에야 희재는 입을 열었다. “생각했던 모습과 너무 달라요….”희재는 이날 친부모에게 안긴 갓난아기를 처음으로 만났다. 희재의 눈에는 앞으로 친해질 사촌이 아닌, 희재가 누리지 못 한 ‘부모의 품’을 독차지한 아이로 보였다. “보육원에서 부모님 만나러 간다고 해서, 그래서 진짜 엄마아빠 만나러 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요.”희재는 중얼대며 눈을 감았다. 부부를 원망한 건 아니었지만 친부모를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다. 입양을 권유하던 지인들이 건넨 우려가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부부는 ‘똘똘한’ 희재를 믿어보기로 했다. 두 사람은 희재의 이야기를 동화처럼 만들어 잠들 때마다 들려줬다. “옛날옛날에, 서로를 너무 사랑한 남자와 여자가 있었어요”.부부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친부모가 희재를 너무 아꼈지만 어쩔 수 없이 보육원에 맡겨야만 했던 사정을 덤덤하게 풀어냈다. 처음엔 듣기 싫어하던 희재는 “항상 친부모님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았어요”라며 마음을 열었다. “내가 미워서 두고 간 건 아니었구나” 안심하기도 했다.어느 순간 희재는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라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슬퍼 보이지는 않았다. 진예 씨는 희재가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싶다는 느낌을 담아 부르는 것 아닐까, 짐작했다.그해 10월 가정법원은 진예 씨 부부의 입양 신청을 인용했다. 부부가 처음 희재의 손을 잡은 지 1년 11개월 만에 ‘진짜 가족’이 된 것이다. 보육원에서 열린 네 번째 생일 파티 날, 생활지도원 ‘이모’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마중 나오던 ‘진짜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을 보냈다”고 했던 희재. 아이는 그렇게 새로운 엄마아빠의 품에 안겼다.‘입양 가족’이란 정체성“엄마아빠 없는 후레자식!”이듬해 희재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날. 친구들에게 입양아라는 것을 밝힌 희재는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희재는 “학교 가기 너무 싫어. 친엄마아빠가 보고 싶어”라고 울먹였다. 부부는 마음을 다잡았다. 알 것 다 아는 나이, 7살에 입양됐는데 친부모를 찾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부부는 희재와 인연이 닿았던 모든 기관을 반년간 수소문해 친부모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만나고 싶지 않다”는 단 한 줄. 몇 달 동안의 노력이 무색했다.그래도 부부는 희재를 아침마다 안아주며 말했다.“희재가 잘못해서 보육원에 맡겨진 게 아니고, 우리가 잘못을 해서 입양을 한 것도 아니야. 놀림 받을 이유는 전혀 없어.” 아이가 주눅이 든 날이면 더 많이 얘기했다. “희재가 우리 집에 와서 엄마아빠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단다.”가랑비에 옷 젖듯 희재에겐 조금씩 확신이 쌓여가는 것 같았다. 입양아라 놀리는 친구들의 눈을 피하는 대신에 당당하게 나섰다. 희재는 어느새 “입양에 대해 잘 알지도 않고 하는 말에 대꾸해줄 필요 없잖아요”라고 말했고, 부부는 그 순간 희재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친부모가 보고 싶다고 눈물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 대신 다짐을 밝혔다.“나중에 크면 저를 낳아 주신 엄마 아빠를 꼭 만나러 갈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낳아주셔서 감사하고 덕분에 이렇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고요.”희재는 엄마아빠의 ‘껌딱지’가 됐다. 엄마가 밥을 준비하며 쌀을 씻거나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간 잠깐의 순간에도 안겨 있었다. 매일 밤 부부 사이에서 잠을 자고 싶어 하는 통에 안방은 온 가족의 침실이 되고 희재의 방은 창고가 돼 버렸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가 모든 시간을 함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희재는 “동생이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희재의 입양과정이 그토록 지난했지만, 그래도 자식이 원하는 것은 반드시 해주는 것이 부모라고 했던가. 부부는 동생 입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그러나 2020년 양부모가 생후 8개월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정인이 사건’ 이후 입양 절차가 더 복잡해졌다. 교육이 강화됐고, 입양 전 대면 상담이 의무화됐다. 2021년 경기 화성에서 보육원에서 만난 아이를 입양했던 부모가 아이를 숨지게 한 사건이 연달아 벌어지면서 특정 아동을 지정해 입양하는 것도 금지됐다. 입양 자체가 어려워지자 민간 입양기관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앞서 희재를 입양했던 기관으로부터 “무모하다”는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던 부부는 다른 기관에 입양을 문의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은 “왜 굳이 새로운 기관에서 하느냐”였다. 담당자는 “지금 당장은 입양이 어려우니 내년에 다시 문의 주세요”라고 했다.어쩌다 가족그즈음, 해성보육원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희재 동생을 하면 좋을 것 같은 아이가 있는데, 얼마 전 다른 보육원으로 갔다가 적응을 잘 못하고 있데요. 한 번 만나보시겠어요?”한걸음에 달려간 부부는 지난해 8월 나종민 군을 처음 만났다. 2016년 태어난 종민이는 여러모로 희재와 닮은 아이였다. 해성보육원 출신에 활발한 일곱 살, 그리고 친부모를 모르는 아픔까지. 희재와 종민이라면 형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희재처럼 아이를 지정해 입양할 수는 없었다. 수소문 끝에 “오래 위탁한 아이라면 나중에라도 예외적으로 ‘지정 입양’이 가능한 사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친권 없이 아이를 맡아 기르는 제도인 ‘가정 위탁’은 입양보다 절차가 간단하다는 장점도 있었다.넉 달의 위탁 준비 과정을 거쳐 종민이는 진예와 재호의 둘째 아들이 됐다. 그해 12월 25일 성탄절이었다.종민이가 집에 온 첫날 희재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보드게임을 모조리 꺼내 들고, 꽁꽁 아껴뒀던 포켓몬 카드도 전격 공개했다. “이렇게 즐거울 수 없어요”라며 행복한 표정으로 잠이 들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부부는 아이의 빠른 적응을 위해 종민이에게 집중했다. 종민이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증상을 알아차린 뒤엔 더 그랬다. 여러 양육시설을 옮겨 다닌 불안감 때문에 후천적으로 나타난 것 같다고, 상담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희재는 평소 입에도 대지 않았던 물냉면과 ‘뼈 있는 치킨’이 식탁에 올라오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밤마다 희재의 전용석이었던 ‘엄마아빠 사이 자리’도 동생과 함께 누워야 했다. 외로움 때문에 동생을 원했는데, 동생 때문에 더 외로워지다니… 어느 날 희재는 말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는 말이 있던데요, 제가 오히려 장난감이 될 줄은 몰랐어요.”겨울방학이 끝나갈 즈음. 네 가족이 모여 사진 앨범을 펼쳐보던 중 형제는 문득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앨범은 같은 추억으로 가득했다. 엄마처럼 따랐던 생활지도사 ‘이모’ 사진을 짚으며 “지금도 잘 지내실까?”하고 그리워하고, 보육원에 남은 친구들 이야기를 하며 과거를 그리워했다. 그렇게 형제는 서로에 대한 공감대를 조금씩 싹틔웠다.엄마아빠를 두고 경쟁했던 형제는 서로 적응하며 양보하는 법을 길러 나갔다. 희재는 자신이 아끼던 자전거를 동생에게 물려줬다. 종민이도 차분히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어쩌다 이뤄진 가족이었지만 끈끈한 연과 유대로 묶여가기 시작했다.아무도 가지 않은 길“형 진짜 부럽다….”종민이가 온 지 1년이 됐을 무렵. 거실 가족사진을 본 종민이가 혼잣말을 했다. 엄마와 아빠, 희재 세 사람이 밝게 웃고 있었다. 그 후 종민이는 가족과 등산을 갔을 때 돌로 탑을 쌓으며 소원을 빌었다.“하루빨리 제 이름이 ‘나종민’에서 ‘정종민’이 되게 해주세요.”종민이의 바람과 달리 입양은 쉽지 않다. 최근 민간 입양기관 인력이 과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면서 입양을 의뢰하는 데만 최소 2년은 기다려야 했다. 종민이처럼 특정 아이를 입양하려면 시간이 더 걸렸다. 구청과 입양기관에 전화를 돌릴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매번 “2~3년 후 다시 연락 주세요”였다.2025년 7월 입양특례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민간기관이 수행하던 입양 업무가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이관된다. 이 때문에 민간기관도 선뜻 인력을 늘리지 않고 있다.“사전 검증도 정말 중요하죠. 하지만 결연 이후 과정을 더 검증한다면 입양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의 입장도 헤아려주면 좋겠어요.”부부는 현실의 벽 앞에 답답해졌다. 두 아들을 보면서 부부는 “돌 지난 애들은 입양해서 키우기 어렵다”고 했던 주위의 만류를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 말 듣질 않길 잘했다고. ‘생후 1년’이라는 시간을 놓친 아이는 아무리 부모를 원해도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입양된 182명 중 종민이 같은 만 3세 이상 아동은 13명(7.1%)에 그쳤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도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이들이라고 부부는 굳게 믿고 있다.가족은 올 추석을 충북 청주에서 보냈다. 2년 전 온라인 입양 커뮤니티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스물네 살 정수진(가명)도 함께였다. 무연고아동 출신으로 보육원을 퇴소한 그는 “제 엄마아빠가 돼 주실 분을 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사회생활 요령이 전혀 없는 상태로 사회에 나오니 매일 죽고 싶은 마음”이라고 털어놨다.부부는 그런 수진을 ‘큰딸’로 맞았다. 수진은 부부와 명절과 주말을 함께 보내며 인생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의지한다. 희재와 종민이도 정 씨를 자연스럽게 누나로 여긴다. 연휴 내내 아이들은 수진의 품에 안겨 나뭇가지로 솔방울을 치며 골프를 치거나 수진이 키우는 강아지와 뛰어놀았다. 부부는 “나이를 조금 먹은 아이들도 사랑받고 싶어 하는 것은 똑같다”고 입을 모았다.곧 사춘기를 맞는 희재는 “엄마 배 속에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부부는 “아들이 어둠을 털어내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준비할 수 있게 해주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희재는 엄마아빠, 그리고 종민이 사이에 누워 보육원에서 불렀던 동요를 흥얼거린다.“아름다운 꿈 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 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정희재의 입양이야기―2일 광주에서 열린 입양 말하기 대회에서 낭독한 편지안녕하세요. 저는 정희재라고 합니다. 먼저 제가 누구인지 아셔야 하니까 제 이야기를 먼저 해보겠습니다. 저는 해성보육원이라는 곳에서 6살 때까지 별빛반이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7살이 되어서 다른 보육원으로 떠나야 할 때 해성보육원에서 무료봉사를 하고 계셨던 우리 아빠인 정재호 아빠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해성보육원을 떠나기 전에 간디학교 교가라는 것을 수화(손으로 말하는 말)로 공연을 했는데 저희 엄마인 고진예 엄마가 공연을 보고 정재호 아빠한테 입양하자고 하시고 입양 과정을 거쳐서 저를 입양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엄마랑 아빠랑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저의 소개는 간단하게 여기서 마치도록 하고 처음 입양 됐을 때를 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처음 입양됐을 때는 모든 것이 다 신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보육원에 있었을 때는 많은 것을 못 보았기 때문이지요. 입양이 된 첫째 날 아빠가 게임을 무진장 시켜주셨습니다. 얼굴이 빨개지도록요. 하지만 이런 것을 아이한테 많이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아신 엄마아빠는 그 뒤로 게임을 1주일에 한 번 10분을 시켜주셨습니다. 지금은 1주일에 2시간입니다. 많이 달라졌지요. 엄마아빠를 만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희 아빠는 평소에는 엄청 착하시지만 한 번 화내시면 엄청 무섭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제가 아빠를 무서워합니다. 참, 그리고 제가 입양아라는 것을 친구들에게 말해 보았는데 제가 친구들에게 입양아라는 걸 처음 말했을 때는 8살이었습니다. 친구들 중에는 그냥 ‘그렇구나’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어떤 애는 호로자식이라고 욕한 적도 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참 슬펐지요. 가서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어쨌든 입양아는 호로자식이 아닌 것을 모르는 그냥 상식이 없는 애를 때려서 뭐하겠습니까. 입양아는 호로자식이 아닙니다. 내 동생 종민이(갑자기 이야기): 갑자기 제 동생 종민이를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아까 가족을 소개할 때 미처 말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제 동생 종민이는 2022년 12월 24일에 우리집으로 위탁되어 왔습니다. 사실상 말만 위탁가정이지 실제로는 입양과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애가 왜 들어왔느냐면 저는 엄마아빠가 없을 때는 혼자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동생이 있으면 같이 놀 수도 있어서 엄마아빠한테 입양해 달라고 조른 적이 많습니다. 속담 중에 동생은 내 장난감이라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위탁가정 했는데 공부도 잘하고(나보다는 아니지만) 운동도 잘하는(나보다는 아직 훨씬 부족하지만) 종민이를 위탁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동생이 생겨보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며 사랑을 독차지 했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내 장난감이 아니라 내가 동생 장난감인 것처럼 종민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신데렐라 마냥 들어줘야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니까 잘 해주려고 합니다. 자, 이야기가 많이 비틀려 갔군요.그리고 마지막입니다. 저에게 입양을 감정으로 표현해 보면 ‘감사’입니다. 저를 입양해준 엄마아빠한테도 감사하고 보육원에서 저를 잘 길러주신 이모들한테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다른 아이들도 다 이런 느낌일까를 생각해 보면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끝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미아: 품을 잃은 아이들’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해 차별화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취재: 조유라 이승우 조민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하승희,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수진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 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여하은 차설 인턴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품 밖으로 내몰렸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디지털 콘텐츠로 구현한 ‘그 아이들이 버려진 곳’()과 ‘사운드트랙: 품을 잃은 아이들’()로 각각 연결됩니다.광주=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광주=조민기 기자 minki@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아이가 보배인 저출산 시대에도 ‘품을 잃은 아이들’이 있다. 친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유기된 아이들. 그리고 부모가 방임한 아이들까지.올해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되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두 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우리 주위엔 여전히 미아처럼 품을 찾아 떠도는 아이들이 있다.그동안 이 아이들은 뭘 감내하며 살아왔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베이비박스’(부모가 아이를 두고 가도록 마련된 상자)를 500시간 동안 관찰하고, 품을 찾아 떠도는 0~29세 아동·청년 47명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말한다. “미안해 아가야.”자립준비청년. 성인이 된 청년들에게 ‘자립준비’라는 모순적인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남들보다 빠르고 외로운 홀로서기를 맞닥뜨리기 때문일 것이다.과거 ‘보호종료아동’이라 불렸던 자립준비청년은 아동양육시설(보육원), 공동생활가정(그룹홈), 가정위탁 등의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된 이들을 뜻한다. 친부모의 손에 자랄 수 없었던 각자의 사정은 모두 다르지만, 보호가 종료되는 순간부터 의지할 곳이 사라진다는 점은 같다. 2020년 유권자 연령이 하향되면서 만 18세는 선거에서 투표권도 행사할 수 있는, 거의 완전한 ‘법적 성인’인 나이가 됐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진학과 취업 같은 거대한 결정들 앞에 선 막막한 청년들이기도 하다. 세상의 편견도 날 것 그대로 마주해야 한다. 지난해 광주에서는 보육원에서 자란 자립준비청년 2명이 연달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이들의 유서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 “삶이 고달프다”라는 글이 남겨져 있었다.정부는 올해부터 자립 수당을 인상하고 맞춤형 사례관리를 강화하는 등 정책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돈과 제도만으로는 해소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10대부터 20대까지의 자립준비청년 35명을 만났다. 청년들은 말했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삶의 고비에서 도움을 줄 ‘믿을 만한 어른’, 눈치 보지 않고 꿈을 향해가라는 응원, 그리고 자신들을 있는 그대로 봐줄 편견 없는 시선이라고.이 가운데 4명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실어봤다. 링크를 통해 인터랙티브 기사 ‘사운드트랙: 품을 잃은 아이들()’에 접속하면 자립준비청년과 현재 보호를 받고 있는 아동들의 실제 음성으로 담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조병익(19·보육원 퇴소)친부모를 알 수 없는 무연고 아동으로 보육원에서 살다가 만 18세가 된 올해 퇴소했다. 올해 3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5월까지 수술을 받지 못한 채 ‘방 안에만 누워 뼈아픈’ 19번째 생일을 보냈다. 아직 만 19세 미만이라 수술을 받기 위해선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데, 시설에서 퇴소해 후견인은 없는 ‘공백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홀로서기의 첫걸음을 내딛는 대학교 1학년에 겪은 그 일로 그는 인간관계 범위도 좁아지고 아르바이트도 더는 할 수 없었다. 치료를 마친 뒤 그는 노래 작사, 책 집필 등 세상을 향한 ‘날개’를 조금씩 펼치고 있다.후견 공백으로 수술 못 받고 방에서 은둔한 ‘19번째 뼈 아픈 생일’올해 3월에 전동킥보드를 타고 가다가 신호위반 차량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어요. 근데 생일인 5월 말까지 수술받지 못해서 집에 누워만 있었어요. 병원에서는 제가 만 19세 미만이라 보호자 동의가 없으면 수술을 안 해준다는데, 시설에선 퇴소 후에는 (후견인 역할을) 해줄 수 없다고 해서요. 두 달 동안 진통제와 항생제 처방만 받고 거의 은둔하면서 살다가 5월에 수술받았죠. 그동안 손목 인대도 파열되고 잃은 게 많아요. 스트레스 때문에 불면증까지 왔어요. 정부도 병원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하고, 세상이 다 부정적으로 보이더라고요.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까 보육원 과장님이랑 선생님만 주구장창 찾아갔어요. 혼자 사는 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저처럼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겨요. . 보호종료 후에 이런 공백이 생기지 않게 후견인 제도가 개선되어도 좋을 것 같아요. 예외적인 상황에선 본인이 혼자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어요. 부모 없이 혼자서 컸다는 게 제 잘못은 아니잖아요어렸을 땐 부모님 없는 보육원 애는 불쌍하고 딱하다는 인식이 박혀있었던 것 같아요. 학교 친구들도 제가 보육원에 산다는 소문을 듣고 나서부터 저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보육원 선생님은 ‘보육원 출신은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니야. 오히려 또래 애들보다 풍족할걸? 누가 불쌍하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너희도 우리처럼 돈 많니’라고 당당하게 나서라’고 말해주셨어요. 고등학교에 가서야 비로소 학기 첫날에 반 친구들에게 “나 보육원 출신이야”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실제로 저희는 돈 관리도 일찍 배웠고, 삶에 대한 경험이랑 지식도 다양하게 얻었어요.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아유, 불쌍한 것” 하기보다 “우리와는 다르지만 잘 사는 것 같다”, “대견하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최근에 가사를 쓴 자작곡 ‘웃고 있네’에도 이런 마음을 담았어요.김민정 (23·가명·그룹홈 퇴소)부모님이 이혼한 뒤 아버지와 살며 심한 폭력과 방임을 당했다. 한겨울에도 찬물로 씻고 반찬은 김치뿐인, ‘쓰레기장’에 가까운 집에 살았다.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의 아동학대 신고로 그룹홈으로 분리됐다. 하지만 아버지의 집에서도, 그룹홈에서도, 자립한 뒤에도 그는 든든히 의지할 곳 없이 눈치를 보는 생활을 해야만 했다. 아동복지 전문기관 초록우산이 지원하는 경기 남부 청년 자조모임 ‘청자기’를 만나며 조금씩 자신감을 찾은 그는 정책 제안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나중에 결혼할 때 혼주석에 앉을 사람이 없어요제가 가족에 얽힌 사연을 꺼내서 이야기하면 듣고 ‘잘 컸다’고 다독여줄 사람은 없을 것 같아서 두려워요. 나중에 제가 결혼을 할 때를 상상해도, 혼주석 자리에 누가 앉을까 생각하면 좀 슬퍼져요. 진짜 앉을 사람이 없거든요.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랑 정말 풋풋하고 귀엽게, 꽤 오래 사귀었어요. 1년 정도 만났을 때 남자친구 군입대를 앞두고 (남자친구) 어머니께 처음 제 이야기를 해드렸어요. 그분께서 그동안 계속 제게 부모님에 대해 질문하셨는데 매번 둘러대고 거짓말했거든요. 근데 그분이 제가 자라온 이야길 듣고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야. 너는 결혼식 작게 해야겠다”였어요. 그리고 “너는 상대방 부모님이 좀 세야겠다. (남들이) 너 못 건드리게”였어요. 절 그렇게 깎아내리실 줄은 몰랐어요. 저는 노력 되게 많이 했거든요. “이렇게 자랐지만 할 수 있는 게 많다”라는 걸 보여주려고요. 남자친구 집에서 놀고 나서도 굳이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했어요. 내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은 사이가 좋아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해도 결국 돌아오는 건 “너 이젠 우리 집 오지 말아라”는 한마디 였어요.지원책이 있으면 뭐 해요. 필요할 때 옆에 있어 주지 않는데.“정부가 하는 자립지원통합서비스에 대해 정말로 할 말이 많아요. 최대 5년까지 주기적으로 맞춤형 지원을 해준다는 정책이거든요. 근데 실제로는 일대일로 배정되는 상담사 개인 성향에 따라 너무 달라져요.최근에 제가 치과 진료비를 최대 1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큰맘 먹고 치과에 갔어요. 선천적으로 이가 안 좋아서 임플란트를 해야 했거든요. 담당자분께도 시간 맞춰 와달라고 말씀을 드렸죠. 근데 그분이 약속 시간이 한 시간 넘게 지났는데 전화도 안 받는 거예요. 겨우 통화가 됐는데 “카드 번호만 알려줘도 결제 가능하다니까 안 갈게요” 하더라고요. 전 병원 직원이랑 다른 환자들에게 민폐 덩어리가 돼서 눈치를 보는 동안, 본인은 그냥 여기까지 오는 게 귀찮다고 당일에서야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한 거죠. 한두 번이 아니에요. 처음에도 다짜고짜 “과거 얘기 좀 해보세요” 하기에 기분이 나빠서 “조금 불친절하신 것 같네요”라고 했더니 “일이니까”라고 대꾸하더라고요. 한 번은 제가 너무 열이 나고 아파서 아침 일찍 전화를 건 적이 있어요. 근데 바로 거절하고 문자로 “오전 9시~오후 6시 사이에 연락해주세요”라고 답장이 온 거에요. 너무 서러웠어요. 당장 와달라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약값이나 병원비 지원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려던 건데 너무 매몰찼어요.물론 제가 필요했던 게 지원금이긴 해요. 하지만 지원제도의 가장 큰 취지는 옆에서 지켜줄 어른을 만들어주겠다는 것 아닌가요? 정말 필요할 때 옆에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정혜세(22·보육원 퇴소)정혜세의 엄마는 건강이 좋지 않은 미혼모였다. 태어나자마자 보육시설에서 여러 ‘엄마’(생활지도원)의 손에 자랐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보통 아이들의 엄마는 1명뿐이라는 걸, 엄마는 ‘출근’하거나 ‘퇴근’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태어나 첫 충격에 빠졌다. 사춘기에 꽤나 방황하다 “야, 엄마아빠 없는 게 네 잘못은 아니잖아”라는 같은 반 친구의 말에 큰 위안을 받았다. 현재 LH 매입임대주택에서 살며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그는 자신에게 여전히 집요하게 따라붙는 ‘부모님 관련 질문’에서 벗어나고 싶다. 대한민국에선 모든 질문이 ‘부모님은?’으로 끝나요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그럼 사람들이 “부모님이 용돈 안 주냐”고 물어보죠. 부모님이 맞벌이라고 둘러대기는 좀 그래서 “그냥 제가 용돈 벌려고요”라고 얘기하면 또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시냐”고 해요. 제가 “부모님이 괜찮다고 하셨어요” 해도 “그래도 학생 때 공부를 해야지” 하고 이어져요. 그나마 학생이었을 땐 제가 좀 무례하게 대답해도 “애가 사춘기라 예민하네” 하면서 넘어가 줬거든요? 성인이 되고 나니까 함부로 쳐내기가 더 힘들어졌어요. 요즘은 사람들이 물어봐도 대꾸를 안 하게 돼요. “(가족들과) 집에서 살아요?” 하고 물어보면 “아, 예, 그냥 혼자 살아요.”하고, “부모님은?” 이러면 “뭐, 알아서 잘 사시겠죠.” 이런 식으로 넘겨요. 대한민국에서는 뭐만 하면 ‘부모님’으로 끝나는 거예요. 확실히 부모님이 있다는 게 디폴트(기본값)에요. 없다는 게 창피하거나 부끄럽진 않은데, 뒤에서 사람들끼리 제 얘기를 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런 게 왜 궁금한지 모르겠어요. 저는 살면서 남의 부모님이 궁금한 적이 없었거든요.부모님이 없는 게 꼭 ‘마이너스’는 아닌 것 같아요가족관계증명서를 떼면 전 아무도 없어요. 스무살 때 군대 면제 처리할 때 구청 직원분께 증명서를 보내드렸더니 ‘오, 혜세 씨 깔끔한데요’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둘이서 “어유 좋은 거죠” “깔끔해요, 빨리빨리 처리할 수 있네요” 하고 농담했죠, 하하.부모님이 없는 게 제게 꼭 ‘마이너스’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집도 좋은 곳을 지원받아서 살고 있고요. 물론 부모님이 있으면 ‘플러스’일 수도 있지만 늘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부모가 자기 애들을 학대하거나 빚을 물려주는 경우도 많더라고요.제 친구는 미술 쪽에 재능이 있어요. 그런데 자기 부모님께 “저 부모님 가게 물려받기보다 미술을 하고 싶다”라고 얘기했다가 곧바로 거절당했어요. “무슨 미술이야. 와서 일이나 도와. 우리한테는 네가 짐이야” 이런 식으로 얘기하셨다더라고요. 어떻게 반응을 해야 될지 딜레마였어요. 친구 부모님을 욕할 수도 없잖아요.이동권(28·가정위탁 종료)초등학생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 큰아버지와 같이 살았다. 아버지는 2, 3일씩 집을 비웠고, 큰아버지는 동권을 자주 때렸다. 두 사람이 피운 담배 냄새는 어린 동권의 온몸에 깊이 스며들었다. 같은 반 아이들은 ‘담배 피우는 아이’라며 동권을 따돌렸다. 13살 때 이모 집에 위탁돼 사촌들과 함께 자랐다. 독립한 뒤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현 아동권리보장원에 통합됨)에서 운영한 가정위탁정책참여단 ‘라온제나’에서 활동했다. 남들이 꿈과 진로를 얘기할 때 저는 꺼낼 말이 없어요저는 중학교 때부터 역사에 정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 진학할 땐 이모와 집안 어른들한테 갑작스럽게 진로를 부정당하면서 어른들에 대한 신뢰도 잃었고, 의지할 곳도 없었어요. 그러면서 방황이 시작됐어요. 선생님들도 저를 굉장히 불쌍하고 도움을 줘야 되는 존재, 군대로 치면 관심 병사로 취급하는 게 느껴졌어요. 지금도 남들이 꿈이라던가 진로 얘기를 할 때 저는 사실 얘기할 게 없어요.‘라온제나’를 접하고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였어요. 먼저 들었어요. 그동안 주변 애들은 다 정상적으로 엄마 아빠 밑에서 자라는데 나는 왜 이모 밑에서 이렇게 커야 하는지 의문이었거든요. 그런데 저처럼 ‘가정위탁’이란 울타리 안에서 지원받는 친구들이 상당히 많고, 활발하게 잘 지내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처음 본 거죠.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감정은 ‘나도 나중에 저렇게 잘 자립할 수 있겠구나’라는 안도감이 가장 컸어요. 그전까지는 제 미래가 아예 어두컴컴한 느낌이었다면, 그때부터 길이 여러 갈래 보이는 느낌이었죠.너무나 다른 ‘자립준비청년’들, 한 명 한 명 기댈 곳 생겼으면최근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긴 했는데, 여전히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것들도 반반인 것 같아요. 단순히 ‘지원금 주면 되겠지’ 멘토 붙여주면 되겠지’ 하는 식으로요. 근데 장학사업을 예로 들자면, 솔직히 자신의 꿈을 이미 명확하게 정한 친구들만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일반 가정에서 자라는 친구들도 진로를 못 찾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시설이나 위탁으로 자란 친구들은 더욱 그렇거든요.자립준비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을 하나 고르기엔. 각자의 차이도 너무 커요. 보호시설과 가정위탁이 다르고, 특히 가정위탁의 경우에는 집집마다 환경이 더 달라요. 어떤 집은 보호가 종료된 뒤에도 정말 친자식처럼 여길 수 있지만, 보호기간에만 보살피는 집도 있죠. 지금도 지역별 자립지원전담기관에서 가장 연락이 안 되는 아이들이 가정위탁이래요. 보호자가 연락을 안 받으면 방법이 없으니까요.당사자에게 여러 선택지를 주고 고르라고 하기보단, 차라리 아이들이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센터를 활성화하고 그곳에서 각 아이에게 맞는 자원을 배분해 준다면 좋겠어요. 사실 갓 스무살 된 친구들은 자기에게 뭐가 부족한지 자체를 알기 어려워요. 특히 돈 관리는 정말 닥쳐봐야 알거든요. 저도 대학생 때 신용카드 발급이 된다기에 해봤다가 연체된 적도 있었어요. 보호가 종료되기 전, 아직 보호 중일 때부터 지원이 시작되면 아이들이 덜 헤맬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미아: 품을 잃은 아이들’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해 차별화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취재: 조유라 이승우 조민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하승희,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수진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 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여하은 차설 인턴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품 밖으로 내몰렸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디지털 콘텐츠로 구현한 ‘그 아이들이 버려진 곳’()과 ‘사운드트랙: 품을 잃은 아이들’()로 각각 연결됩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조민기 기자 minki@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아이가 보배인 저출산 시대에도 ‘품을 잃은 아이들’이 있다. 친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유기된 아이들. 그리고 부모가 방임한 아이들까지.올해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되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두 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우리 주위엔 여전히 미아처럼 품을 찾아 떠도는 아이들이 있다.그동안 이 아이들은 뭘 감내하며 살아왔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베이비박스’(부모가 아이를 두고 가도록 마련된 상자)를 500시간 동안 관찰하고, 품을 찾아 떠도는 0~29세 아동·청년 47명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말한다. “미안해 아가야.”미아 - 품을 잃은 아이들[3] 소년의 품에 남은 상처“부모도 없는 새끼가 뭔데 이런 데서 공부하는 척하고 앉아있냐.”그 순간, 이가람의 머릿속 수류탄 안전핀이 뽑혔다. 기말고사가 다가오던 2013년 여름. 열람실엔 시험공부를 하러 온 중학생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문제집을 넘기고 있었다. 양평군립도서관의 큼직한 책상을 사이에 두고 가람과 민혁(가명)에게만 살기가 흘렀다.전날 둘 사이엔 이미 전조가 있었다. “너 엄마도 없잖아”라는 말을 눈앞에서도,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도 민혁은 쉽게 꺼냈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끼리는 별 타격감이 없는 욕이었다. 하지만 가람에겐 그 수류탄을 터뜨릴 수 있는 뇌관이었다. 둘 사이에 주먹이 오갔다. 중학생 특유의 야생성이 교실 안을 가득 메웠다.다음날 열람실에서 둘은 다시 마주쳤다. 잡담을 하는 가람에게 민혁의 신경이 곤두섰다.“야! 시끄럽다고. 조용히 해라.”“지금 대화 중이잖아. 끼어들지 마라.”낮은 소리로 으르렁댈 때, 거기서 멈춰야 했다. 민혁은 가람의 약점을 잘 알았고, 너무나 결정적일 때에 건드렸다.가람은 퍼뜩 가방에 무슨 물건이 들어있는지 기억해냈다. 전날 저녁 친구와 가지고 놀다가 가방에 넣어놓은, 중학생이 들고 다녀선 안 될 물건이었다. 첫 이름, 이순신가람의 첫 이름은 ‘이순신’이었다. 충무공 탄신일인 4월 28일에 가로등 아래서 발견됐다는 이유였다. 영아원이었던 서울성로원 아기집에서 3년간 이순신으로 살다가 경기 양평의 보육원 ‘신망원’으로 옮겨졌다. 신망원 이사장은 출생신고를 할 때 “애 이름을 이순신이라고 지으면 커서 놀림 받는다”라며 ‘이가람’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줬다.그곳에선 10명 가까운 사내아이가 한방을 썼다. 모르는 아이들과 두 줄로 머리를 맞대고 각자의 이불을 덮고 잤던 그날, 하지만 아침이 되니 서로의 이불이 뒤섞인 채 엉켜있던 그날. 가람의 생애 첫 기억이다.일반 가정에서 외동으로 태어난 아이가 혼자서 부모 두 명의 사랑을 옴팡 받고 자라는 동안, 가람은 매일 바뀌며 출퇴근하는 생활지도원 ‘이모’의 관심을 수많은 아이들과 나눠가져야했다. 가끔 ‘삼촌’도 있었다. 가람의 기억에 남은 삼촌은 두 명이다. 그나마도 한 명은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나갔다.그 시절의 생활을 결정지은 건 착한 형 세 명이 아니라, 못된 형 한두 명이었다. 기분이 좋으면 좋아서, 나쁘면 나빠서 동생들을 때렸다. 한여름엔 쓰레기장에 한 시간 동안 세워놓고 모기의 제물이 되게 만들었고, 각종 힘든 자세를 만들어 아이들을 ‘고문’시켰다. “지금 그랬다면 당장 소년원 갈 수준이었죠”라고 가람은 회고했다.가람은 형들이 때리고 괴롭힌다고 이모들에게 일렀다. 그래봐야 해결책 없는 고자질에 불과했다. 이모들이 서류 결재를 받고 전화를 받으러 사무실로 나가면 괴롭힘은 다시 시작됐다. 가족이면서도 가족이 아닌 아이들과 살기 위해선 서열 속에서 각자도생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형들에게 당한 괴롭힘이 가람의 손에도 익어갔다.들켜선 안 되는 치부신망원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반이 하나인 ‘미니학교’였다. 출중했던 가람의 장난기는 많은 아이를 울렸다. 사마귀 뱃속에서 뽑은 연가시, 뜨거운 물에 담가 노랗게 변한 ‘황금 여치’를 아이들 책상에 던졌다.가람이 4학년이었던 2010년 말 교무실에서 작은 신경전이 벌어졌다. 모든 교사들이 5학년 담임을 기피했다. 가람을 맡기 무서워해서다. 결국 4학년 담임교사가 “어떻게든 1년만 더 해보겠다”며 총대를 멨다.다음 해 어느 날, 가람의 담임은 복도에서 눈물을 흘렸다. “내가 너 나쁜 행동들 뜯어고치려고 했는데 더 이상은 못하겠다….” 담임은 한 마디를 남기고 등을 보였다. 잠시 뒤 흐느끼는 소리가 화장실에서 들려왔다. 복도 한가운데에 선 가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해 가람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전교생이 1000명이 넘는 큰 학교였다. 신망원에서 여기에 온 아이는 가람이 처음이었다. 전학 첫날, 교실 창밖에 아이들이 벌떼같이 몰려왔다. 책가방을 툭 쳐서 떨어뜨리고 도망가는 아이들도 있었다.하지만 가람의 ‘집’에 대해선 아무도 몰랐다. 생존본능과 흥미가 동시에 발동했다. 가람이 태어나 처음으로 ‘보육원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뗀 순간이었다.‘애들이 알면 난 먹잇감이야…’가람은 기를 쓰고 출신을 숨겼다. 소위 ‘사고 치는’ 무리들과 한 패로 어울렸다. 신망원 아이들처럼 셔틀버스를 타고 등하교하는 대신 방과 후의 자유를 갖게 된 가람이 친구들과 온 동네를 쏘다니다 보면 해가 금세 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신망원 이모들은 가람에게 전화를 했다. 그날도 가람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정선 이모’라는 글자가 떴다.“이가람, 넌 왜 맨날 이모한테 전화가 와? 부모님이 아니고?”순간 가람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 좀, 그냥 번호 저장을 이모라고 한 거야.”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이 흘러나왔다. 지난번에도 “그냥 엄마, 아빠가 바쁘다”고 횡설수설하며 둘러댔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다른 물음표를 이어 붙이지 않았다. 이듬해 신망원 동기 1명이 전학을 왔다. 가람과 친했던 동갑내기 아이가 축구부에 스카우트된 것이다. 영아원에서부터 같이 손잡고 온 가장 오래된 친구였다. 하지만 가람은 편치 않았다. 신망원에서 경의중앙선 신원역까지 가는 30분 동안 가람은 친구에게 당부했다. “우리 일단은 모른척하자. 나중에 자연스럽게 친해진 척하면 돼.”14분 뒤 전철에서 내리고 나서부터 둘은 남남처럼 걸었다. 가람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얘랑 같은 출신인 거, 애들한테는 들키면 진짜 안 돼.’남들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 다른 사람의 약점을 먼저 잡고 다니는 가람 때문에, 신망원 직원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교무실에 불려 왔다. 그런 날 이모는 집에 가는 길에 ‘돈까스클럽’을 들르곤 했다. “먹고 싶은 거 골라봐”라는 이모의 말에 왕돈가스와 토마토 스파게티를 실컷 주문했다. 재미없는 학교 수업도 일찍 끝나고, 이모랑 단둘이 귀가하는 날. 가람은 그날이 좋았다.그런 날이 아니라면 가람은 언제나 혼자서 귀가했다. 전철역을 나오면 남한강 너머 기울어가는 오후의 해가 강물에 번쩍이며 비쳤다. 동네 할아버지들을 지나쳐 고불고불한 시골길을 오르다 보면 큼직한 차를 한 대씩 마주치곤 했다. “도련님!”갑자기 가람 앞에서 차가 멈추고 문이 탁 닫힌다. 멀끔한 양복 차림의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다.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타시죠.”기다려왔던 순간이다. 내 출생의 비밀이 드디어 나타나는구나, 마침내 엄마가 나를 찾고 있구나. 저택에 도착하자 누군가가 다시 안내한다. “곧 회장님이 도착하십니다. 앞으론 이곳에서 회장님의 사업을 물려받기 위한 경영수업을 듣게 될 겁니다….”가람의 상상은 이어졌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떤 차도 멈춰서지 않았다. 멀어져가는 엔진소리를 들으며 그는 계속 걸었다. 집에 들어가기 싫을 때마다 가람의 상상은 길어지곤 했다. 어른에 대한 신뢰가 깨지다중학교 1학년 때. 담임 교사가 어느 날 가람과 함께 다니는 아이들을 타이르기 위해 따로 불렀다.“너희에게 가람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가람이는 너희처럼 부모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그러니까 사고 치지 않게 너희가 도와줘야 해.”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저희 다 알아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말씀해줬어요.”5학년 때면 벌써 2년 전이었다. 그 교사는 “나도 걔는 어떻게 못 해. 걔 고아원 사니까 원장님한테 직접 연락해봐”라면서 신망원 전화번호까지 친구들에게 알려줬다고 했다. 담임은 가람을 불러 이 얘기를 전했다.가람은 그날 남은 수업을 듣지 않고 복도에서 종일 울었다. 창피함도, 슬픔도 아니었다. 쭈뼛대며 다가온 아이들은 모른 척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가람의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얼마나 힘들게 애들을 속였는데, 그래서 다들 모르는 줄 알았는데…. 나만 바보였네.’엄마 없는 아이라는 걸 약점으로 잡는 건 애들이나 할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 짓을 다른 사람도 아닌, 선생님이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가람은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어른에 대한 신뢰였다.모든 게 드러나면서 “애미 없는 새끼”라는 폭언을 함부로 꺼내는 아이들도 늘기 시작했다. 가람에게는 모든 치부를 까발리는 폭탄 같은 말이었다. 바로 그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 그동안 발버둥 쳐 왔는데…. 두려움이 현실화된 것이다.그때부터 가람은 집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친구네 집을 돌아가며 잤다. 1학년이 끝나가던 초겨울, 친구 한 명이 자신만만하게 자고 가라며 자기 집으로 불렀다. 반지하였다. 집에 들어서자 치킨 냄새가 진동했다. 친구 부모님은 식탁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들어왔니? 너네 어차피 술 먹고 다니는 거 다 알아. 여기 앉아. 너네도 한잔해.”가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친구를 쳐다봤다. 친구는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람도 언제나 누구에게나 솔직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가람의 ‘집’에선 규칙을 조금만 어기면 “다른 애들이 따라 하니까 안 돼”라는 말이 귀에 못이 박혔다. ‘다른 애들’이라는 게 없는 집, 아이와 부모만 있는 ‘보통 집’을 보며 부러움이 자랐다.치킨을 다 먹은 뒤 친구의 앨범을 펼쳤다. 그 속에는 아기에서 소년으로 자란 친구, 얼굴에 조금씩 주름이 늘어나는 부모님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가람은 현관문을 바라봤다. 친구가 들어올 때마다 엄마와 아빠가 “들어왔니”라고 반기는 장면이 필름처럼 돌아갔다.가람에게도 사진은 많았다. 그 속의 가람은 늘 혼자였다. 가끔 신망원을 찾아오던 후원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이름도 가물가물했다. 이걸 가지고 누구랑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어렸을 때 얘기를 나눠줄 사람 없었다.이모와 삼촌은 이틀에 한 번씩 교대했다. 그들은 자주 그만뒀고, 자주 새 사람으로 교체됐다. 편애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다 느꼈다. 알아서 각자의 사랑을 찾아야 했다.가람이 정말 좋아했던 이모가 있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다가가서 칭얼대면 잠이 들 때까지 안아줬다. 주말이면 데리고 나가서 애정을 담아 놀아줬다. 언젠가 그 이모의 손을 잡고 터널길을 걸었던 기억이 났다. 맛있는 것을 너무 많이 먹고 마셔서, 긴 터널길을 걸어가는 내내 자꾸 화장실이 가고 싶어 보챘던 것 같은 기억이 났다. 과거를 회상하고 서로 놀리며 그런 추억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그 이모는 몇 년 만에 신망원을 그만뒀다. 그때의 기억도 이모가 갖고 사라졌다. 새로 온 이모는 과거의 가람을 몰랐다. 가람을 1부터 100까지 지켜본 사람은 가람뿐이었다.“엄마인 척하지 마요”외박이 이어지자 박명희 원장이 결국 학교로 찾아갔다. 불려 나온 가람은 눈을 사납게 치켜떴다. 걱정돼서 찾아왔다는 말에 가람은 딱 한 마디를 내뱉었다.“엄마인 척하지 마요.”이상했다. 가람의 말이 박 원장에겐 “엄마가 돼 주세요…”라는 환청으로 들렸다. 2009년 원장이 되고 지금까지 지켜본 가람은 반성이란 걸 모르는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의 말이 그날따라 다르게 들렸다. 모든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는 건, 스스로를 탓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질까 봐 그런 것 아닐까. 이 녀석이 혹시 진짜 가족을 갈구하는 거였다면…. 그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봤다.“내가 네 엄마는 아니지만, 원장으로서 널 데리고 키우잖아. 너 신망원이 그렇게 싫으면 차라리 우리 집에 와서 좀 지낼래?”사나웠던 가람의 눈가가 그 순간 살짝 불그스름해졌다. 그는 자신의 판단이 맞다고 확신했다. 그날 저녁 세 딸을 모아놓고 말했다.“가람이가 요즘 많이 힘들어해서 우리 집에 와서 지내도 좋겠다고 했어. 그러면 너희들이 방을 같이 써야 하는데 괜찮겠니?”“걔가 온대? 그럼 그러자.”가람과 동갑인 큰딸이 쿨하게 답했다. 하지만 그날도 다음날도 가람은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가람에겐 갈 수 있는 친구 집이 너무 많았다.가람은 어른을 외면하고 친구들에게 매달렸다. 자러 갈 친구 집이 마땅치 않은 밤엔 노숙을 했다. 벼를 베어내고 빈 겨울 논두렁에 볏짚을 쌓아서 불을 지피고 모여 잔 적도 있다. 저녁거리는 마트에서 훔쳤다. 공사장에 남은 대리석 같은 걸 주워다가 강다리 밑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 와중에도 학교를 빠지진 않았다. 점심은 먹어야 하니까.경찰서를 처음 간 건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가 접수되면서다. 경찰관은 뒤로 깊이 기대앉아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했다. “네가 부모가 없고 하니까, 쟤가 부모가 있어서 부러워서 때렸다고 해. 상대방한테 좀 불쌍하게 여겨져야 선처를 받을 수 있어.”가람에게 부모가 없다는 사실은 그에겐 그저 귀찮은 사건을 빨리 해결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아이의 상처를 약점으로 삼지 않을 것이라는, 어른에 대해 남아있던 일말의 믿음이 다시 한번 무너졌다. ‘나는 그냥 불쌍한 존재구나.’ 그리고 경찰이 하라는 대로 했다. 가람은 오늘만 보고 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부모 있는 게 부러워서 그랬다고 써”2013년 7월 양평도서관에서 민혁과 마주한 가람은 “부모가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라”라는 말에 벌떡 일어섰다.문득 머릿속에 지난밤 일이 스쳐 지나갔다. 그날 같이 놀던 친구는 일본 애니메이션 ‘나루토’를 좋아했다. “심심한데 나루토 표창 던지기나 따라해 보자”며 그들은 집에서 휴대용 과도를 들고 동네 공원으로 나섰다. 나무 기둥에 아무리 던져봐야 과도가 꽂힐 리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친구는 방바닥에 팽개쳐져 있던 가람의 가방에 과도를 던져 넣었다.가람은 가방에서 그 칼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고 민혁에게 휘둘렀다. 배에 스쳤지만 옷조차 찢지 못했다. 그다음엔 팔꿈치에 스쳤다. 역시 피는 나지 않았다. 머리채를 잡고 목에 과도를 갖다 댔다. “아까 그 소리 다시 한번 해봐라.” 눈으로만 힐끔대던 사람들이 낮게 웅성댔다. 민혁이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받쳐 잡았다. 벌어진 살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가람은 칼을 떨어뜨렸다. 민혁은 가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로 말했다. “경찰에 신고한다.”그날 가람은 처음으로 수갑을 찼다. 경찰서에서 똑같은 말을 들었다. “쟤가 부모가 있어서 부러워서 그랬다고 적어.”부모가 있는 게 부럽기만 했던 게 아니다. 부모가 없는 것이 드러날 때마다 지독하게 무시 받는 것이 지긋지긋할 뿐이었다. ‘고아원 사는 애’라는 낙인은 그 무엇으로도 덮을 수 없는 약점이었다.그때 민혁의 아버지가 경찰서에 왔다. 먼저 와있던 박 원장은 마음을 졸였다. 가람은 덤덤했다. 뺨 정도 맞지 않을까 싶었다. 민혁의 아버지는 호통을 시작했다. 그런데 방향이 예상과 반대였다.“야, 너는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어? 사람이 해야 될 말이 아닌데 왜 그딴 소리를 해!”그는 “아들이 원인제공을 한 것 같다”며 가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른에게 사과를 받는 것은 가람의 삶에서 극히 드문 일이었다. 심지어 칼에 베인 건 가람이 아닌 민혁이었다. 가람은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죄송하다”고 얼버무렸다. ‘혹시 내가 어른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나….’잠시 떠올랐던 생각은 이내 가라앉았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진술서 작성을 강요했던 경찰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어쨌든, 이번에도 ‘부러워서’라는 진술은 해야 했다.다시 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중학교 2학년. 가람은 신망원을 나왔다. 흡연, 절도, 욕설, 교권침해, 폭력, 감정조절의 어려움…. 박 원장이 법원에 보낸 통고(소년 사건을 법원에 바로 신청하는 제도) 서류에는 가람이 저지른 행각이 빼곡히 적혔다. 보육원은 가람을 더는 감당하기 어려웠다.가람은 경기 안양시 서울소년분류심사원(미성년자들이 소년보호재판을 받기 전 머무는 시설)에서 강간범, 차량 절도범들과 열흘을 같이 지냈다. 그곳에서 10단계 보호처분 중 6호 처분(민간 시설의 감호 위탁)을 받고 전주의 법무부 관할 보호시설로 옮겨졌다.신망원에선 가람이 큰형에 속했지만, 전주에선 다시 막내였다. 형들에게 발로 걷어차여 코에는 금이 가고 이빨도 부러졌다. 가람은 밤마다 ‘태생’을 생각하다 잠들었다.‘내가 만약 보통 가정에서 멀쩡하게 태어나서 자랐으면 어땠을까….’원장인 임영숙 수녀는 그나마 기댈 수 있는 존재였다. 주말엔 아이들 밥을 손수 지었고, 아픈 아이가 생기면 직접 병원을 데리고 갔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조금씩 벗어나던 가람이 과거의 관성대로 대들고 나서도 후회라는 것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임 원장도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가람은 아무 종교도 믿지 않았지만 자기 전 매일 기도했다.“제가 한 행동들에 대해서 정말 반성하고 있으니까 빨리 신망원에 보내주세요. 이 순간들이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제발요.”한편 가람을 퇴소시킨 박 원장은 초조했다. 원장으로선 해야 할 조치였지만 인간적으로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가람과 같이 뿌리를 전혀 모르는 ‘무연고’ 아이들은 부모가 누구인지는 아는 아이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생고아”라고 일컬었다. 외로움과 분노에 가득 찬 가람이 세상마저 등 돌린 생고아가 됐다고 생각할까 봐 마음이 쓰였다.반면 가람은 박 원장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가출을 일삼던 시절에도 가람은 박 원장에게 긴 카톡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죄송해요. 지금 제가 하는 행동들이 잘못이라는 건 알아요. 금방 고칠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가람 마음 깊은 곳에는 다시 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랬던 자신을 박 원장이 공식적으로 내친 것이었다.그래도 박 원장은 ‘정선 이모’와 함께 간간히 전주로 찾아왔다. 그리곤 가람에게 해마다 약속했다. “1년 뒤에 데리러 올게.” 2016년 가람이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엔 다짐도 했다. “너 3년 후에 고등학교 졸업하면 같이 제주도로 여행 가자.” 허황하게 들리는 기약들 속에서 두 사람은 서서히 익숙해졌다. 가람의 ‘사고 빈도’도 점차 낮아졌다. 물론 보호관찰기간 동안 더 문제를 일으키면 다음 순서는 소년원이라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 하지만 거칠었던 친구들이 사라진 자리를 ‘전주엄마’ 임 원장과 ‘양평엄마’ 박 원장이 채우면서 가람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은 가람의 생활기록부에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라고 적었다.최초의 가로등을 찾아가다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다. 가람은 키가 컸다. 아무리 먹어도 살도 찌지 않았다.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비슷한 처지의 주변 친구들 중에서는 경찰서에서 부모의 연락처를 찾은 사람도 있다고 했다.고등학교 1학년이 되자 가람은 세 살까지 살았던 영아원에 연락했다. 주택가 가로등 아래에서 발견됐다는 내용, 신고자의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서울 중랑구 신내동 XXX’라는 주소를 받아적어 찾아갔다. 식당과 주차장, 낡은 연립빌라 사이에서 가람은 두리번거렸다. 가로등이 많았지만 여기다 싶은 지점은 없었다.지구대와 경찰서도 찾아갔다. DNA를 채취해 실종아동찾기 데이터베이스에 올려두겠다는 얘기, 만약 그걸로 친모를 찾더라도 친모가 동의해야만 연락할 수 있다는 얘기뿐이었다. DNA 채취는 이미 오래전 신망원에서도 했던 것이었다. 다른 자료는 없느냐고 묻자 경찰은 말했다. “그때만 해도 옛날이라 다 수기로 적어가지고 폐기됐을 건데….“친부모를 찾게 된다면 무엇부터 하려고 했느냐고 묻자, 가람은 “싸대기 한 대씩 때려주고 끝내고 싶어요. 여자 한 대, 남자 한 대요”라고 말했다. 아마 빚이 많을 테니 알고 지내고 싶진 않았다. 다만 단 한 가지, 친부모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긴 했다. “대체 어떤 상황이었기에 저를 낳아서 버렸어야 했나요.” 더 이상 직접 물어볼 수 없어진 질문이었다.남은 건 신고자 연락처였다.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다. 나이 든 남자가 받았다. 신고한 것은 자기의 딸인데, 당시 일로 너무 충격을 받았으니 더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 딸은 가람의 가장 어릴 적 모습을 본, 유일한 인물이었다. 가람은 1년에 두세 번씩 모두 다른 시간대에 전화를 걸었다. 매번 그 남자가 받았다.대학교까지 마친 지난해, 전주를 떠나려 이삿짐을 정리하던 가람은 그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메모지를 발견했다. 오랜만에 다시 전화번호를 눌렀다. 이번에도 통화가 안 되면 그만할 참이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처음으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옛날 기억을 하나씩 더듬어 설명해줬다.“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밖에서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나가 보니까 아기가 있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경찰서에 데려다줬는데, 주변에 어떤 할머니가 서성대고 있었어요. 그 할머니께서 경찰서까지 따라오셨는데 아무 말씀도 없으셨어요. 지금은 어떻게 지내요?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어요?”“아, 저, 이제 대학 막 졸업했고요, 취업해서 이사 갈 예정이고….” 갑작스런 질문에 가람이 얼떨결에 답하자 그는 말했다. “잘 커 줘서 고맙네요.”잠시 말을 잇기 어려웠지만 가람은 용기를 냈다. “다음에 한 번 올라가면 뵙고 싶어요”라는 말에 그는 “언제든 괜찮으니, 연락 한번 하고 와요”라고 답했다.가람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도어락에 지문을 얹고 ‘가족’이 되었다올해 다시 찾아온 충무공 탄신일 4월 28일. 가람과 여자친구, ‘엄마’와 ‘아빠’가 생일맞이 식사를 하러 모였다. 그 자리에서 박 원장이 입을 뗐다.“딸들한테 네 입양 동의 받았어.”옆자리 여자친구를 의식한 가람은 그 순간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간신히 눌렀다. 가람은 그때 박 원장 부부를 엄마아빠로 부르고 수시로 집에도 드나들었다. 하지만 서류상 가족이 아닌 상황에서 가람은 늘 눈치를 봤다. 친척 경조사 때는 자신이 박 원장을 ‘엄마’라고 부르는 이유를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 박 원장 부부는 드문드문 ‘성인 입양’ 얘기를 꺼냈지만, 가람은 별 희망을 품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커다란 생일선물을 받은 것이다.입양 절차를 마치고 얼마 후 박 원장은 집 도어락을 최신형으로 교체했다. 이가람에서 ‘박가람’으로 성도 바꾼 그는 가족의 지문을 등록하는 기계에 자신의 엄지손가락도 얹었다. 이젠 진짜 가족이 됐다. 믿을 수 있고 흔들리지도 변하지도 않는 어딘가에 속해있고 싶다는 안정감. 가람이 평생에 걸쳐 원해온 걸 얻은 순간이었다.성인이 된 가람에게 ‘부모 없는 놈’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대신 동정과 의심이라는 상반된 시선이 따라붙었다. 일터의 동료는 “너 자취하잖아”라는 핑계로 반찬이며 선물을 자꾸 챙겨줬다. 그는 자취하는 다른 직원들에겐 그런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대학 때 일했던 카페 사장도 가람이 보육원 출신이라는 걸 안 뒤 30만 원이 든 봉투를 챙겨주며 속삭였다. “다른 애들한텐 휴가비로 5만원씩만 줬으니까 비밀로 해.”아무 일도 없을 땐 연민을 샀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1순위 용의자가 됐다. 술집에서 일할 때 사장은 “계산이 안 맞는다”며 전 직원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첫 번째로 가람을 호명했다. 이런 누명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가람은 아득바득 완벽을 추구하며 살았다.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를 동정하고 의심하게 되기도 했다.현재 가람은 내년을 목표로 미국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에서 전공한 호텔조리학과 식당에서 직접 일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요식업 분야의 사업을 배워볼 생각이다. 그의 휴대전화 잠금화면은 흰 바탕에 고딕체로 적힌 영어단어들로 빽빽했다.“제가 원래 낯선 곳에 새로 적응하는 것을 좋아해요. 재미있잖아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안다. 아마도 한국에 다시 돌아올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다고 가람은 말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휘둘렸던 과거를 모두 갈아엎는 새출발을 그는 갈망하고 있었다. 사람은 무서워하지 않지만 귀신은 무서워했던 아이, 가출을 일삼다가도 밤늦게 귀가할 땐 깜깜한 시골길이 무서워 한 가로등에서 ‘흐읍’ 심호흡한 뒤 다음 가로등까지 숨을 참고 달려야 했던 아이, 언제나 온전한 사랑을 원했던 아이가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은 것은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가람은 신망원에서 배우 강동원을 만난 기억을 떠올렸다. 베이비박스(부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만든 상자)를 다룬 영화 ‘브로커’에서 그는 심성이 따뜻한 보육원 출신 청년을 연기했다. 연기를 앞두고 가람에게 조언을 구하러 온 강동원은 “내가 이번 영화에서 연기할 때 어떤 마음으로 임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가람은 잠시 고민하다가 짧게 답했다.“그냥, 이 아이들이 마냥 사회의 악(惡)으로 비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미아: 품을 잃은 아이들’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해 차별화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취재: 조유라 이승우 조민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하승희,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수진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 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여하은 차설 인턴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품 밖으로 내몰렸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디지털 콘텐츠로 구현한 ‘그 아이들이 버려진 곳’()과 ‘사운드트랙: 품을 잃은 아이들’()로 각각 연결됩니다.양평=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조민기 기자 minki@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아이가 보배인 저출산 시대에도 ‘품을 잃은 아이들’이 있다. 친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유기된 아이들. 그리고 부모가 방임한 아이들까지.올해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되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두 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우리 주위엔 여전히 미아처럼 품을 찾아 떠도는 아이들이 있다.그동안 이 아이들은 뭘 감내하며 살아왔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베이비박스’(부모가 아이를 두고 가도록 마련된 상자)를 500시간 동안 관찰하고, 품을 찾아 떠도는 0~29세 아동·청년 47명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말한다. “미안해 아가야.”미아 - 품을 잃은 아이들[2] 차가웠던 부모의 품프롤로그봄기운 완연한 햇살 속에서 김정선은 초조하게 아이를 기다렸다. ‘울산광역시 가정위탁지원센터’라고 적힌 간판이 걸린 건물 1층의 카페였다. 남편 박상섭이 계속 말을 건넸지만, 정선은 손끝만 매만졌다.‘내가 잘 결정한 걸까….’2주 전 정선은 센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부모의 방임으로 갈 곳이 없어진 아이를 어른이 될 때까지 키워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미 2017년부터 아이 한 명을 위탁받아 키우고 있던 ‘경험자’ 정선에게 다시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정선이 ‘가정위탁’이란 낯선 제도를 알게 된 것은 외동아들의 군 입대 후 텅 빈 거실에서 본 ‘인간극장’에서였다. 친부모 대신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중년 부부의 눈빛엔 희열이 가득했다. 방송 말미 ‘위탁부모를 모집한다’는 자막이 정선의 마음을 홀렸고, 그렇게 만난 아이가 둘째 아들 다정(가명)이다.센터 직원에게 “생각 좀 해볼게요” 하며 일단 전화기를 내려놓고, 정선은 한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다.“엄마, 우리가 하면 안 돼? 내가 많이 도와줄 테니까 우리가 데려오자.”아파본 사람이 남의 아픔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다정이 덕분에 다시 용기를 냈다. 하지만 이번 아이는 상황이 녹록지 않아 보였다. 휴대전화 벨소리에 정선은 현실로 돌아왔다.“아이 왔습니다! 센터로 올라오시면 됩니다.”2022년 4월 8일 오후 2시 30분. 정선은 외할아버지 품에 안겨 있는 혁재(가명)를 만났다. 아이는 눈썹을 갈매기 날개 모양으로 찌푸렸다. 새로 사 입힌 체육복은 한참 커서 팔다리 소매가 두어 번 접혀 있었다. 18개월이라고 했는데 갓 100일 된 아이 같았다.외할아버지는 눈물을 훔치며 혁재를 건넸다. 빼빼 마른 아이는 신생아처럼 가벼웠다. 정선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팔은 무게추를 단 듯 쑥 내려갔다. 묵직한 책임감이 두 팔을 짓눌렀다. 정선과 혁재는 그렇게 가족이 됐다. 혁재가 죽음의 문턱에서 구조된 지 한 달 만이었다.#1. 불완전한 만남, 준비없던 생명그해 3월 3일. 혁재는 아사(餓死) 직전 발견됐다.혁재 엄마 김유민(가명)은 당시 스물 한 살이었다. 김유민의 부모는 불화가 심했고, 어린 김유민은 할머니에게 떠넘겨졌다.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했다. 중학교 3학년, 졸업도 포기하고 자퇴하겠다는데도 김유민을 붙잡는 교사는 없었다.김유민은 못 받은 사랑을 남자들에게 갈구했다. 18세 때 만난 남자와 첫 딸 재은(가명)을 낳고 성인이 되자마자 혼인신고를 했다. 훗날 김유민을 변호한 김태엽 변호사는 “자기한테 관심을 가져주고 본인을 지켜줄 수 있다고 얘기해 주는 남성들에게 너무너무 심하게 의존했다”고 했다.첫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다. 경제능력이 없는 남편에게 실망한 김유민은 이혼도 하지 않은 채 집을 나왔다. PC방을 전전하던 김유민 앞에 나타난 건 일곱 살 연상 임훈석(가명)이었다. 그는 부모가 이혼한 뒤 보육원에서 자랐다. 성인이 되면서 보육원을 나왔고, 자립정착금을 받아 독립했다. 김유민은 딸을 데리고 그와 동거를 시작했다.동거 7개월 만인 2020년 9월 29일 혁재가 태어났다. 하지만 아이가 생겼다고 달라진 건 없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PC방을 전전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했다.#2. 받지 못 한 사랑, 줄 수 없던 사랑재은이는 13개월이었던 2020년 9월부터 울산 남구의 한 어린이집을 다녔다. 교사들의 말과 놀이에 반응이 없고 무기력했다. 한겨울에도 맨발에 내복만 입었다. 식사 시간마다 재은이는 누가 뺏어갈세라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다. 교사들은 이후 검찰에 “아이가 항상 계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했다”고 진술했고, 법원은 부부가 이때부터 재은이와 혁재를 제대로 양육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방임이 알려질까 겁난 김유민은 2021년 6월 30일부터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0~6세 아동을 가정에서 돌보는 부모에게 지급되는 양육수당을 받았다. 울산 남구청은 재은이 앞으로 총 270만 원, 혁재 앞으로 330만 원을 지급했다. 아동수당 10만 원도 매달 입금됐다. 만 8세 미만 대한민국 국적 아동 모두가 받는 돈이다. 32개월 동안 재은이 앞으로 320만 원, 18개월 동안 혁재 앞으로 180만 원을 받았다. 양육·아동수당은 부부의 식비와 PC방비, 담뱃값, 강아지 두 마리 사료비와 미용비로 지출됐다.2021년 10월부터 아이들은 더 방치됐다. 부부는 ‘관계 악화’와 ‘육아 스트레스’를 핑계로 각각 자주 외출했다. 재은이는 하루에 한 끼를 가까스로 먹었다. 라면 국물에 만 밥이나 아빠가 남긴 반찬이 대부분이었다. 혁재는 아주 가끔 분유만 먹었다.부부가 아이들을 전혀 돌보지 않아도 수당은 문제없이 지급됐다. 현행 아동수당법은 아동수당을 받는 아동이 제대로 부모의 양육을 받고 있는지 관리·감독하는 내용이 빠져 있다. 지자체는 재은이와 혁재의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2022년 1월 29일 네 사람은 인근 다가구 원룸으로 이사했다. 이때부터 아이들의 공간은 매트리스 한 칸이 전부가 됐다. 부부는 아이들이 집을 어지럽힌다며 매트리스 주변을 박스 4개로 막았다. 재은이는 매트리스를 탈출해 애완견의 사료와 배변을 집어먹었다. 허기진 탓에 울지도 못했다. 이웃들은 이 집에 두 아이가 산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이사 34일째. 외출했다 돌아온 임훈석은 오후 7시 2분경 냉장고 앞에 쓰러져 있는 재은이를 발견했다. 허기에 시달리다 박스들을 밀어내고 가까스로 매트리스를 탈출했지만 끝내 냉장고 문을 열지 못한 채 쓰러졌고, 오후 8시 5분 31개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영양실조와 뇌출혈. 부검 결과 위 안에는 당근 1조각만 있었고, 사망 당시 키는 78.3cm, 몸무게는 6.5㎏였다. 또래 여아의 표준 체중의 절반에 불과했다.#3. 삶을 거둔 누나, 살아남은 동생누나와 함께 이 모든 것을 겪은 혁재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매트리스에서 발견된 혁재는 너무 마른 탓에 피부가 쪼그라들어 마디마디 뼈의 형태가 보일 정도였다. 사타구니는 빨갛게 헐었고 기저귀는 언제 갈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의 몸무게는 5kg였는데, 또래 평균 몸무게는 10.7kg이었다.경찰은 급히 아이를 병원으로 옮겼다. 혁재는 말을 하지도, 음식을 씹지도, 앉아 있지도 못했다. 주사를 7차례나 맞는 동안에도 울지 못했다. 누군가가 눈을 맞추거나 따뜻하게 안아준 적도 없는 혁재는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한 달간 몸무게가 회복돼 7.8㎏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17개월간 멈췄던 성장이 쉽게 재개되진 않았다. 보통 아이들은 생후 4~6개월부터 이유식을 먹지만, 부모가 혁재에게 준 음식은 분유뿐이다. 혁재가 김유민, 임훈석과 함께 살던 2021년 2월 의사가 “아이 몸무게가 잘 늘지 않으니 큰 병원에 가 보라”며 진료의뢰서를 써줬지만, 부부는 이를 무시했다. 그해 7월 이후로는 병원도 가지 않았다.혁재는 말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래서 혁재는 말 대신 비명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엄마, 아빠 등 여러 단어를 구사할 나이였지만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오직 “으아아아” 뿐이었다. 이름을 부르고 말을 걸어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두 사람은 혁재에게 걸음마도 연습시키지 않았다. 다리와 허리에 힘이 없는 혁재는 어딘가에 늘 비스듬히 기대앉았다. 기는 대신 엉덩이로 다리를 밀면서 다녔다. 또래 아이들이 뒤집기에 성공하고, 첫걸음을 떼고, 처음으로 “엄마”를 불러 기념했을 순간들이 혁재에겐 없었다. 김유민과 임훈석은 혁재에게 밥만 주지 않은 게 아니라 미래도 앗아갔다.#4. 쏟아부은 애정, 두발로 선 아이18개월의 삶에서 혁재가 가졌던 것은 보행기 한 대와 분유병, 내복 한 벌, 포대기 하나가 전부였다. 하지만 정선은 혁재와 가족이 된 첫날, 아이의 짐을 정리하며 알 수 없는 막막함을 느꼈다. 몇 개의 짐조차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혁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울음은 더 커졌다. 어두운 방에 평생 갇혀 살았던 아이는 유난히 어둠을 싫어했다. 정선은 소파에 기대 혁재를 안고 동이 틀 때까지 달래고 달랬다. 팔과 팔목이 남아나지 않았다. 아랫집 사람들도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것 같았다. 정선도 밤마다 혁재를 따라 울고 싶었다. 하지만 속으로 삼켰다.‘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이 정도는 견디자….’그때 혁재의 울음소리 사이로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정이었다.“엄마 미안해, 우리 엄마 불쌍해 죽겠어. 내가 괜히 혁재 데려오자고 해서 엄마가 고생하는 것 같아. 나 때문에….”정선은 벌떡 일어나 다정이 방으로 달려갔다. 다정은 엉엉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정선은 “엄마, 미안해”를 반복하는 다정이를 꼭 껴안았다. “괜찮다, 엄마는 괜찮아. 고마워 다정아.” 정선도 함께 울었다.혁재의 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구조 직후부터 혁재를 치료했던 울산대병원 의료진은 퇴원 전, 아직 혁재를 만나보지도 못한 정선에게 전화를 걸어 갖은 신신당부를 전했다. “애가 소리를 잘 못 듣는 것 같으니까 이비인후과 가봐야 하고요. 아까 안과랑 재활의학과도 말씀드렸죠? 다 하면 한 달에 6번 정도 되실 거예요.” “네네.” “아직 소화도 안 되니까 땅콩, 견과류 이런 거 절대 주시면 안됩니다.” “네네네.”실제 만나보니 안 아픈 곳이 없는 아이였다. 울산대병원엔 주 2회 꼬박꼬박 발도장을 찍었다. 진작 마쳤어야 했던 예방접종도 1주일에 3번씩 맞았다. 지난해 추석에도 혁재를 안고 병원을 찾아다녔다. 천식 발작으로 제대로 호흡하지 못하며 밤새도록 설사를 해서다.집에서 해내야 할 일들은 더 큰 숙제였다. 의료진은 “당장 삼키질 못해도 주르륵 흐르는 미음이 아니라 현미밥처럼 ‘꼬들꼬들’한 음식을 자꾸 씹어야 한다”며 ‘씹는 연습’을 시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정선은 처음으로 이유식이란 것을 만들었다. 친아들에겐 집밥조차 제대로 해준 적이 없었다. 장사를 하느라 늘 바빠 아들 손에 용돈을 쥐어주며 “밖에서 사 먹어라”고 했던 그였다.정선이 애쓰는 동안 혁재는 억눌린 감정을 표출했다. 소파 밑, TV장 밑엔 혁재가 던진 포크들이 굴러다녔다. 말로 표현을 하지 못할 뿐 화가 많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던지고 사람을 깨물었다. 정선은 혁재가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에 감정 표현을 하는 법을 모르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잡아야 할 건 바로 잡는 게 ‘위탁 엄마’가 할 일이었다.집에 온 지 두 달 만인 6월 혁재는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갔다. 덩치는 여전히 친구들의 반도 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의자에 앉으면 바닥에 발이 닿는데, 혁재 혼자만 허공에 둥둥 발이 떠 있었다.“제대로 걷지도 몬하고 아직도 궁디이만 끌고 댕기는데, 아한테 장애가 있는 거 아이가?”주위 사람들은 속도 없이 보챘다. ‘장애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열심히 살면 되지. 내 아인데 기꺼이 받아들일 거야.’ 정선은 속으로만 답했다.두 달 뒤 혁재는 자기 힘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똑바로 걷지는 못했다. 뒤뚱거리는 아이를 붙잡고 정선은 주문을 외듯 말했다. “괜찮다. 우리 아들은 잘 걸을 거야. 아직 서툴고 힘이 없어서 그래.” 매일 밤 혁재의 다리를 몇 시간이고 주무르고, 굽혔다 폈다 하면서 빌었다. 혁재가 신나게 뛰어다닐 수 있도록, 다리에 힘이 생기게 해 달라고.#5. 순간의 선택, 평생의 행복“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혁재가 어린이집에 간 지 두 달 만인 8월. 교사가 정선에게 동영상을 보여줬다. 혁재가 물병에 달린 빨대로 물을 마시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정선은 왈칵 눈물이 터졌다.분유 하나만으로 생명을 지탱해온 혁재. 살기 위해 젖병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 텅 빈 젖병을 뜯어대느라 젖꼭지 부분이 며칠 만에 해지곤 했다. 그랬던 혁재가 처음으로 다른 도구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는데 필요한 행위를 스스로 해냈다는 대견함, 앞으로 찾아올 어려움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란 안도감에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정선은 혁재와 함께한 모든 순간 중에서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어머니, 진짜 제가 잘 키워볼게요. 혁재가 저한테 온 것도 인연일 텐데 정말 최선을 다해서 정성껏 키울게요.” 교사와 정선은 서로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혁재는 이제 건강하게 뛰어다니는 네 살 어린이가 됐다. 정선은 매일 오후 3시 혁재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간다. “혁재야, 엄마 왔다!” 정선이 문 앞에서 큰소리로 외치면 혁재가 튼튼한 두 다리로 전속력으로 달려와 안긴다. 뜀박질하는 걸음마다 바가지 모양 머리칼이 휘날리는 게 그렇게 이뻐 보일 수가 없다. 고작 6시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며칠은 떨어졌다 만난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꼭 껴안는다.혁재는 물김치와 나박김치를 좋아하는 ‘한식파’다. 죽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던 아이가 소고기 국물이 들어간 이유식을 시작으로 진밥을 거쳐 된밥까지 섭렵했다. 과거를 보상받으려는 듯 식사량도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세 끼는 기본, 매일 간식으로 소시지 2개와 요플레 2개, 빵 2개를 먹어야 배가 부르다.저녁은 꼭 상섭(아빠) 옆에 달라붙어 먹는다. 아빠가 먹는 음식도 다 좋아한다. 정선은 혁재의 배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살살 문지른다. 어른 손바닥 2개로 가려지는 작은 배에 그 많은 음식이 들어가는 게 신기해서다. 볼록 나와 있던 배는 자고 일어나면 쑥 들어갔다. 혁재의 몸무게는 2년 반 만에 세 배 넘게 ‘폭풍성장’ 중이다.#에필로그김유민과 임훈석은 올해 4월 27일 대법원에서 각각 30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김유민은 재은이와의 기억을 곱씹으며 일주일에 두 번씩 반성문을 썼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김유민은 반성문에 “사랑을 못 받았기 때문에 주는 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고 적었다. 김유민의 수감생활을 지켜본 교도소 직원들은 “옥중에서 낳은 셋째를 홀로 키우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범행을 저지른 데에는) 유년 시절 보호를 못 받았던 영향이 큰 것 같다”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김유민의 어머니는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며 자책했다. 김유민이 아이였을 때 직접 키웠더라면, 사랑을 더 많이 줬더라면 딸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란 후회가 그를 뒤덮었다. 그는 “아이(재은이)에게 미안하고 죄스럽다”고 한탄했다.정선은 김유민이 안타까울 뿐 다른 감정은 없다고 했다. “부족한 어미지만…. 그 어린 아이(김유민)가 뭘 알았겠어요. 가정이 안 좋으니까 집을 나와서 살았고, 열심히 사는 법을 못 배웠을 거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을 거고…. 세월이 흐르면 자기 잘못을 뉘우치겠지요.” 정선은 “혁재는 지금 아주 건강하다고, 엉덩이에 살도 흐르고 너무 좋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매일 저녁 정선이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려 하면 혁재가 베란다로 뛰어간다. 엄마가 “아이고, 아들 괜찮아”라고 손사래를 쳐도 혁재는 고사리손으로 쓰레기통을 들고나온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화장실에 갈 때 까치발을 들어 전등을 켜는 것도 혁재의 몫이다. “아이가 커서 우리와 주고받은 행복이나 사랑을 사회에 돌려줄 거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죠.”사랑을 받기만 원할 줄 알았는데, 언제부턴가 우리가 혁재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자식처럼 키웠는데… 친권 없어 고개숙이는 위탁가정김정선 씨와 혁재(가명)는 ‘가족’이지만 법적으로는 ‘남남’이다. 두 사람이 ‘가정위탁’이라는 제도로 만났기 때문이다.가정위탁은 아동 학대나 경제적 사정, 이혼 등으로 친부모가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없는 경우 다른 가정이 돌보도록 하는 제도다. 원칙적으로는 친부모의 상황이 나아지면 원래 가족으로 돌아가는 게 목적이다. 친부모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만 18세가 될 때까지 위탁 가정에서 지낼 수 있다. 가정의 돌봄이 절실한 아동과, 아이를 돌볼 수는 있지만 입양까진 어려운 가정을 맞춤형으로 연결하는 제도인 셈이다.위탁 부모가 되려면 소득 등 조건을 갖춰야 하고, ‘예비 위탁부모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위탁 아동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월 30만~50만 원의 양육보조금을 받는다. 위탁 부모 경력 3년 이상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학대를 당한 아이나 장애가 있는 아이, 36개월 미만 아이도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월 100만 원을 추가로 더 지원한다.가정위탁으로 맺어진 부모와 아동은 주민등록상 ‘동거인’에 불과하다. 입양이 이뤄지면 친권을 양부모가 갖지만, 가정위탁은 친부모에게 친권이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수급비 영수증을 일일이 증명하도록 하는 등 위탁 부모를 더 까다롭게 감시한다.친권이 없는 위탁 부모는 어려움이 많다. 36개월 아랑(가명)이를 7개월 때부터 위탁받아 키우고 있는 이숙진 씨(43)는 아버지 칠순을 기념해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친부모의 동의 없이는 영문가족관계증명서가 발급이 안 돼 아랑이와 남편은 국내에 남았다. 친부모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이 씨는 “휴대전화 개통, 보험 가입도 불가능하다. 학교 갈 날이 다가올수록 답답한 마음이 커져간다”고 했다.김민정 세이브더칠드런 부산가정위탁지원센터장은 “위탁 부모들이 아이를 기르는 동안이라도 병원 입원이나 수술 등 친권이 필요한 상황에서 친권을 대리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미아: 품을 잃은 아이들’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해 차별화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취재: 조유라 이승우 조민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하승희,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수진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 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여하은 차설 인턴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따뜻한 요람 대신 차디찬 바닥에 놓였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사로 구현한 ‘그 아이들이 버려진 곳’()으로 연결됩니다.울산·부산=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울산·부산=조민기 기자 minki@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아이가 보배인 저출산 시대에도 ‘품을 잃은 아이들’이 있다. 친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유기된 아이들. 그리고 부모가 방임한 아이들까지.올해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되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두 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우리 주위엔 여전히 미아처럼 품을 찾아 떠도는 아이들이 있다.그동안 이 아이들은 뭘 감내하며 살아왔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베이비박스’(부모가 아이를 두고 가도록 마련된 상자)를 500시간 동안 관찰하고, 품을 찾아 떠도는 0~29세 아동·청년 47명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말한다. “미안해 아가야.”미아 - 품을 잃은 아이들[1] 베이비박스에 놓인 유준이눈을 뜬 지 사흘. 이유준(가명)은 세 번째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산부인과 분만실의 바퀴 달린 이동식 침대, 산동네 언덕배기 ‘베이비박스’의 나무 침대를 거쳐 아동일시보호소의 침대에 지금 막 도착했다. 중간에 잠시 들렀던 병원 검진실과 수유실, 상담실의 침대까지 포함하면 사흘간 옮겨 다닌 침대는 6개나 된다.유준이가 거쳐 간 품은 이보다 훨씬 많았다.유준이를 가장 먼저 품었다가 가장 먼저 떠난 사람은 엄마다. 9월 2일 오전 11시 22분 엄마 배 속을 나온 유준이는 병원에서 두 밤을 보냈다. 소나기가 남긴 축축한 습기를 맡으며 퇴원한 아이가 향한 곳은 엄마의 집이 아니었다.차로 40분을 달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베이비박스에 도착했다. 작은 십자가가 솟은 붉은 건물 외벽에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라고 적힌 간판이 보였다. 아이를 안은 엄마가 반층 계단을 올라 현관에 들어서자 플라스틱 차양 밑으로 푸른빛이 비쳤다. 하늘색 앞치마를 입은 보육사가 나왔다.보육사는 유준이를 건네받아 ‘베이비룸’으로 들어갔고, 엄마는 현관 아래 ‘상담실’로 향했다. 이 순간부터 아이와 엄마는 아무 관계가 없는 남남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남기는 편지 맨 윗줄에 ‘이유준. 2023년 9월 2일’이라고 적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아이는 밤새 울었다. 목이 터져라 울음을 토해내는 3.5㎏ 아이를 야간 보육사와 자원봉사자들이 번갈아 달랬다. 공갈젖꼭지를 물려도 아이는 계속 뱉어냈다.“그래도 좀 있으면, 내일 아침이면 나가니까….”보육사는 아이에게 공갈젖꼭지를 다시 물렸다. 부모가 있지만 없는,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유기아동 유준이 인생의 여정은 이렇게 출발했다.유준이가 겪은, ‘인수인계’“주사랑공동체예요. 아이가 한 명 들어왔어요.”날이 밝았다. 전화를 받은 관악경찰서 난우파출소 경찰관이 베이비박스를 방문했다. 2009년 말 만들어진 베이비박스는 법적 근거가 있는 아동보호시설이 아니라 비인가 시설이다. 엄마가 아이를 두고 간 ‘영아 유기’ 범죄가 벌어졌다는 ‘신고 전화’는 그렇게 차분했다.폐쇄회로(CC)TV 8대로 둘러싸인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무턱대고 버리는 부모는 이제 거의 없다. 24시간 상주하는 직원과 상담한 뒤 아이를 두고 떠나는 부모들이 영아 유기 범죄자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비교적 안전한 곳에 아이를 맡긴 것인지를 놓고 지금까지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경찰과 서울시, 정부 등 관계기관은 아이를 버린 엄마와 아이를 거둔 주 사랑공동체를 묵인했고, 2000명이 넘는 아이가 이곳을 거쳐 갔다.유준이를 만나러 출동한 경찰관 역시 차분했다. 그는 “아이를 버린 엄마가 누구냐”고 캐묻지도, CCTV를 보여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익숙한 일인 듯 아이의 이름, 생년월일, 예방접종 여부만 물으며 몇 줄의 진술을 받았을 뿐이다. 그는 아이 사진을 찍고, 아이 입에 면봉을 넣어 DNA(유전자)를 채취하고는 파출소로 복귀해 영아유기발견통보서를 작성했다.2시간 후. 베이비박스 건물을 촬영하는 CCTV 화면에 승합차가 나타났다. 관악구청에서 아이를 데리러 나온 아동보호전담요원들이었다.“분유는 9시에 35밀리리터 정도 먹었어요. 애가 혀가 조금 말려서 분유를 잘 못 빨아요.”유준이를 겉싸개로 감싸 품에 안은 보육사가 밤새 파악한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아이의 이삿짐은 엄마가 입혔던 옷과 분유가 담긴 종이가방,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수유패드가 전부였다. 승합차에 이삿짐을 옮기는데 5분이면 충분했다. 듬직한 체격의 아동보호전담요원 박경태 씨가 아이를 넘겨 들곤 익숙하게 받쳐 안았다. 이들은 서초구 시립어린이병원을 먼저 들렀다. 박 씨가 이 일을 시작한 지 3년이 넘었는데도 건강검진을 받으러 올 땐 마음이 늘 불편하다. 보통의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진 혈액검사라는 걸 받을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친부모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아이는 신생아라도 혈액검사를 받아야 했다.생후 사흘 된 유준이는 혈관이 잘 잡히지 않았다. 의료진은 성인 손가락만 한 팔뚝을 붙잡고 한참을 씨름하다가 결국 머리에서 피를 뽑기로 했다. 아이는 분유를 게워가며 울고 또 울었다. 채혈은 30분이나 걸렸다.간신히 검진을 마친 뒤 한적한 길을 20분 달려 강남구 수서동의 한 벽돌 건물에 도착했다. 1998년 세워진 이곳은 서울에 유기된 아동들이 모두 거치는 일시보호시설, ‘서울특별시 아동복지센터(센터)’였다.1층 상담실에 도착한 박 씨는 각종 서류와 물품을 넘기고, 아동신병인수인계서에 서명한 뒤 텅 빈 유아차를 승합차에 싣고 떠났다. 센터 직원들은 유준이를 2층 신생아방 침대로 옮겼다. 보육사가 기저귀를 열어보는 동안 유준이가 모빌 아래서 팔다리를 버둥거렸다.“편하게 해줄게요. 다 됐어요~”새 배냇저고리와 속싸개가 몸을 덮자 비로소 안정을 되찾은 아이는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유준이는 몰랐다. 한 주 후 이사를 또 해야 한다는 것을.생후 열하루째 되던 날. 센터 앞에 베이지색 차량이 멈춰 섰다. 빨간 셔츠의 여성이 운전석에서 내려 센터 출입문을 열었다. 노원구의 아동양육시설‘성모자애드림힐’(성모자애)의 김윤현 양육팀장이었다. 때맞춰 센터 직원도 유준이를 안고 상담실에 등장했다.“오구 오구 이뻐라. 세상에, 세상에나.”5명이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놀란 유준이가 울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돌본지 20년 차인‘베테랑’ 김 팀장은 스마트폰을 유준이의 얼굴 앞으로 가져가 사진을 찍었다. “목소리가 크십니다? 존재감이 있는데?” “애가 표현이 확실하더라고요.”인수인계가 다시 시작됐다. 소아청소년과 검진 결과와 건강 상태 설명이 끝난 후 유준이는 간호사 품에 안겨 뒷좌석에 올랐다. 서울 동부간선도로를 40분간 달리는 동안 한 번 울지도 않았다. 구름 모양 간판을 단 성모자애 건물에 두 사람이 아이를 안고 들어섰다.“어머나 예뻐라!” 여기서도 똑같은 탄성과 절차가 이어졌다. “이 아이는 황달이 있어요?”회색 수녀복을 입은 노은희 원장이 유준이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일주일 새 조금 빠지긴 했지만, 아이 얼굴은 여전히 노란빛을 띠었다. 신생아들이 머무는 4층 방으로 옮겨진 유준이를 먼저 와있던 형들 옆에 보육사가 눕혔다. 간호사는 센터에서 들려준 주의사항을 전하며 세 번째 인수인계를 마무리했다. 보육사는 아이의 귀에 체온을 재고, 한 번 더 사진을 찍고, 온수에 씻기고, 배냇저고리를 갈아입혔다. 벌써 유준이가 누운 네 번째 잠자리다. 또다시 낯선 곳에서 칭얼거리던 아이는 젖병을 물리자 이내 잠잠해졌다.“빠는 힘은 좋네.”보육사는 혼잣말을 했다.아이 앞에 펼쳐진 두 갈래 인생신생아방엔 이미 두 아이가 있었다. 보육사 한 명이 돌볼 수 있는 신생아는 최대 두 명이다. 유준이가 오면서 정원을 초과한 것이다. 그래도 아이를 받아야 했다. 서울에서 베이비박스 남자아이를 우선적으로 받는 양육시설은 성모자애를 포함해 3곳뿐이었기 때문이다.이곳에 있는 동안 아이 앞으로 많은 서류가 만들어졌다. ‘미상’으로 기재됐던 본적은 성본창설이 마무리되면서 ‘한양 이 씨’로 정해졌다. 출생신고는 노원구청에서 생후 44일에야 이뤄졌다.가장 어려운 단계는 지금부터다. 지난해 아동보호정책이 개편되면서 ‘가정형 보호 우선’ 원칙이 도입됐다. 최우선은 원래의 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지만, 그럴 수 없다면 일반적인 가족에 가장 가까운 ‘입양’, 다음으로 일시적으로 아동을 맡아 기르는 ‘가정위탁’, 그리고 소규모의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을 차례대로 고려해야 한다. 흔히 보육원이라 부르는 아동양육시설은 이 모든 게 불가능할 경우 선택하는 마지막 ‘집’이다.유준이가 온 성모자애는 마지막 순위인 보육원이다. 아직 종착지는 아니다. 이곳에서 살면서 입양이 되길 기다려야 한다.서울시 아동복지센터는 올해 5월 입양에 적극적인 보육원 네 곳에 베이비박스 아동을 집중적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길고 복잡한 입양 절차를 단축하기 위해서다. 김민주 센터 소장은 “아이가 어릴수록 입양가정에 가서도 쉽게 적응하니까 기간을 줄이는 게 좋다”며 “근데 입양이란 게 시설장의 경험과 의지가 무척 중요한 일이라 유기아동 전담보호시설을 선정했다”고 말했다.그 네 곳 중 하나가 성모자애다. 지난달 21일 유준이는 ‘입대확인서(입양대상아동확인서)’를 받았다. 그새 황달기가 완전히 빠지고 토실토실하게 살도 올랐다. “생후 80일 만에 나온 거니까 예전보단 훨씬 빨라진 편이에요” 김윤현 팀장이 말했다. 유준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옆자리에 있었던 형은 벌써 예비 양부모를 만났다.하지만 유준이가 언제 어떻게 어떤 양부모와 맺어질지까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이제부턴 시간 싸움이다. 국내 입양에선 이왕이면 어린아이, 기왕이면 아들보다 딸을 원하는 부모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돌이 지나고 나이가 점점 들면,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이곳을 ‘우리집’으로, 여기의 직원들을 ‘이모’나 ‘삼촌’으로 부르며 성인으로 자랄 것이다.유준이의 ‘선배’ 아이들71명의 아이가 사는 성모자애엔 유준이의 ‘선배’가 많았다. 베이비박스를 통해 온 아이만 65명에 이른다. 베이비박스가 만들어진 건 2009년 12월이지만, 아이들이 급증한 건 2012년 말부터다.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출생신고가 이뤄진 아이’만 국내 입양이 가능해지면서 여러 사정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부모들이 몰려온 것이다. 부모가 “당장 키울 수 없으니 잠시 맡아달라”며 맡긴 아이까지 포함해,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는 2012년 79명에서 이듬해 252명으로 치솟았다. 출생아 10만명당 아이 수로 따지면 58명에 이른다. 이 수치는 2018년 66명까지 올랐다가 다소 줄었지만 지난해에도 여전히 42명이었다.그렇게 성모자애로 넘어온 아이들의 눈엔 불안감이 자주 비쳤다. 때때로 조증(躁症)이 온 것처럼 조급하고 예민해졌다. 명랑한 아이는 숨이 넘어갈 듯 깔깔댔고, 화가 많은 아이는 수류탄처럼 위험해졌다. 아이들은 일상에서 늘 사랑과 관심을 갈구했다. 하지만 너무나 거칠게 갈구한다는 게 문제였다. 날이 우중충하거나 비가 오면 아이들의 예민함은 더 극에 달했다. “다녀왔습니다!”하교한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가 신발주머니로 풍차를 돌리며 악을 썼다. 유준이처럼 베이비박스에서 이곳으로 온 아이다. 웃옷은 바지에서 삐져나왔고 가방도 절반쯤 열렸다. 저 상태로 방에 들어가면 다른 아이들과 부딪히며 싸울 것이 분명했다. 노 원장이 아이를 붙잡고 찬물과 과자를 주며 진정시켰다.“자자, 신난 건 알겠어. 그러다 울지도 몰라. 일단 물 좀 마셔라.”조금 뒤 발을 구르며 들어온 2학년 남자아이는 눈썹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얼굴로 혼자 씩씩댔다. 생활관은 4층이었지만 분기탱천하는 화를 이길 수 없었는지 엘리베이터를 그냥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꽝꽝’하고 부서져라 계단을 밟는 소리가 회랑에 울렸다. 김 팀장은 휴대전화 통화 버튼을 눌렀다.“네, 선생님. 방금 올라간 아이 좀 얼굴이 안 좋아요. 잘 보셔야겠어요.”학교에서도 아이들은 감정조절에 애를 먹었다. 선생님들도 종종 성모자애에 ‘SOS 전화’를 걸었다. 한 아이가 수업 시간에 가벼운 지적을 받자 책상을 밀치고 유인물을 갈기갈기 찢은 다음 날이었다. 담임 교사는 통화에서 한숨을 푹 쉬었다.“집(보육원)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솔루션 같은 게 있으면 페이퍼(문서)로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매일 바뀌는 엄마, 자꾸 떠나는 이모‘아이들은 무슨 일을 겪고 있는 걸까.’총신대 사회복지학과 오혜정 교수는 올해 초 성모자애 등 서울 시내 양육시설 34곳에 사는 베이비박스 아동에 관해 연구에 착수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아동양육시설 평가위원으로 현장 조사를 다니면서 동료에게 들었던 말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아서다.“개인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베이비박스 아이들이 좀 어려움이 많은 편인 것 같아요.”오 교수는 베이비박스 출신 초등학생(3~6학년) 241명을 설문 조사해봤다. 조사 대상의 절반이 넘는 아이들은 “현재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라고 답했다. 2016년 경기도가 양육시설 아동을 대상으로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나온 수치(25%)의 두 배를 넘었다. 생각보다 높은 수치였지만,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상담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더 주목해야 할 결과가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인 ‘생활지도원’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지에 대한 조사였다. ‘가장 짧게 생활한 사람과 보낸 시간’을 묻자 “1년이 되지 않는다”라는 아이가 73%나 됐다. 제일 길었던 사람과 보낸 시간은 ‘3년 미만’이 절반이었다. 오 교수는 “이렇게 자주 바뀔 줄은 몰랐는데, 숫자를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했다.베이비박스에 온 아이들은 대부분 ‘원치 않은 임신’으로 태어났다. 부모들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오면서 남긴 쪽지엔 그때의 감정이 온전히 담겨있다.“너의 존재를 알았을 때 정말 죽을 것 같았어.”“10개월 동안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 텐데 미안해.”“좋은 것만 먹고 행복한 생각만 하는 다른 엄마들이랑 달랐으니까….”엄마 뱃속에서부터 이어진 불안은 성장 과정에서도 일상이었다. 보육원에선 3교대로 근무하는 생활지도원의 손에 자랐다. 아이들이 이모와 삼촌으로 부르는 그들은 밤낮으로 맞교대하는 것은 물론, 입사와 퇴사도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이별에 익숙해졌다. 오 교수가 만난 한 생활지도원은 다리를 다쳐 입원한 일을 털어놓았다. 며칠 만에 퇴원한 그가 보육원으로 돌아오자 한 아이가 달려와 안기며 “엄마가 그만둔 줄 알았어요. 가버린 줄 알았어요”라고 엉엉 울었다.그 이야기를 듣는 오 교수의 마음은 복잡했다. 그에게도 아들이 있다. 엄마가 얼굴을 찌푸린다거나 잠시 먼 곳에 다녀온다고 해도 아들은 “엄마가 날 버린 걸까”라는 의심을 떠올릴 리가 없었다. 그런데 오 교수가 조사한 아이들은 달랐다. 가족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떠나지 않는 존재여야 하는데, 아이들에겐 그런 사람이 없었다. 한 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가 아니었던 것이다.“나를 왜 버리고 갔어요?”성모자애 직원들은 첫 베이비박스 아동인 준서(가명)와 민서(가명)가 들어왔던 2013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신생아를 볼 일은 드물었는데,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갓난아기가 6명이나 들어온 것이다.“첫해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사랑을 진짜 많이 받고 자랐거든요.”아이들은 다달이 차례대로 들어왔고, 보육사들도 비록 교대로 근무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사랑을 쏟아줄 여력이 충분했다. 김윤현 팀장도 사무실 직원들과 쉬는 시간마다 “막둥이 보러 가자”라며 우르르 올라가 앞다퉈 안아주고 얼러줬다. 생애 첫 100일 동안 온 식구들의 관심을 담뿍 받은 아이들은 당차고 호기심이 넘쳤다.“제가 생각하는 멋진 어른은요, 얼굴이 잘생긴 건 상관은 없어요. 양심이 있고, 그다음에 배려심 많은 사람! 잘생긴 건 그다음이에요…. 근데 선생님(기자)은 몇 살이에요?”(준서)“10년 뒤에는 소설가나 만화가가 되고 싶어요. 일본에서 만화가로 데뷔한 다음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친구들한테 자랑할 거예요. 지금 일본어 공부도 하고 있어요.”(민서)2014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매년 두 자릿수씩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생활지도원 혼자서 젖먹이 7명을 돌봐야 했고, 준서·민서와 같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긴 어려웠다. 분유를 먹이고 잠을 재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유아 시절 아이와 양육자 간 형성되는 애착은 아이의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 애착 형성의 ‘골든타임’을 놓친 ‘1세대 베이비박스 아동’들은 이제 사춘기의 길목에 서 있다. 자신도 어쩔 줄 모르는 감정 기복과 불안 속에서 부모가 자신을 떠났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는 엄마 아빠가 없는 줄 알고 선생님들한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엄마 아빠가 바빠가지고, 그래서 저를 여기에 잠시 내버려 둔 거라고 했어요.”(건우·9·가명) ‘이모’들은 아이들이 ‘낳아준 엄마와 아빠’에 관해 물어올 때마다 대답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베이비박스’라는 단어를 먼저 언급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눈치 빠른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4학년생 여자아이들의 스마트폰을 살펴보던 김 팀장은 검색기록에 ‘베이비박스’, ‘미혼모’ 같은 단어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어른들이 답해줘야 할 아이들의 질문은 결국 한 곳으로 귀결됐다. “엄마. 아빠. 나를 왜 버리고 갔어요?”(민서)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미아: 품을 잃은 아이들’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해 차별화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취재: 조유라 이승우 조민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하승희,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수진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 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여하은 차설 인턴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따뜻한 요람 대신 차디찬 바닥에 놓였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사로 구현한 ‘그 아이들이 버려진 곳’()으로 연결됩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조민기 기자 minki@donga.com}

최근 서울대 징계위원회에서 의결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교수직 파면안의 효력이 발생한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이에 따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연구실에 붙어있던 조 전 장관의 명패도 떼어졌다. 서울대는 지난달 13일 조 전 장관을 교수직에서 파면하기로 의결했다. 해당 파면안의 효력은 조 전 장관이 관련 의결서를 받은 직후 발생하는데, 이달 초 서울대는 의결서를 조 전 장관 측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법학관 5층 출입문 앞에 붙어있던 조 전 장관의 명패도 떼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조 전 장관이 쓰던 504호실이 빈 칸으로 바뀐 것. 파면 효력이 발생되기 전인 이달 초까지 연구실 앞에는 여전히 조 전 장관의 이름이 걸려있었다고 한다.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이제 로스쿨이 우수한 대학생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어요.” 4일 수도권 대학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관계자는 “최근 인문계뿐 아니라 이공계 학생들까지 대거 로스쿨 시험 준비에 뛰어들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등에 따르면 올해 로스쿨 입학을 위한 법학적성시험(LEET·리트) 지원자는 1만7360명으로 지난해(1만4620명)보다 18.7% 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자는 5년 전과 비교하면 65% 급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매년 응시율이 90% 안팎을 기록했던 점을 감안하면 23일 치러지는 리트 응시자 수도 1만5000명 안팎으로 지난해(1만3193명)보다 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트 응시자가 늘어난 것을 두고 최근 낮은 급여 등을 이유로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식자 대학생들이 로스쿨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경기가 둔화되면서 직장인 중에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며 로스쿨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공무원은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인기가 높았지만 고물가 상황에서 낮은 급여와 경직된 조직문화 때문에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더 이상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게 된 것”이라며 “고용 불안을 겪지 않는 동시에 높은 연봉을 받길 원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전문직이 되기 위해 로스쿨로 쏠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리트’ 지원 19% 늘어 1만7360명행정고시 응시자는 2년새 25% 줄어“장래 불안” 직장인도 퇴근후 열공 “물가는 높아지고 경기는 둔화되니 불안감이 커지더라고요. 시험에 투자한 시간과 공무원으로 일하며 받는 월급을 비교해 보니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달 3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학원가에서 만난 조모 씨(26)는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조 씨는 “올해까지 3년 동안 준비해 온 국가공무원 5급 행정직 공채(행정고시) 준비를 그만두고 로스쿨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며 “불안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선 공무원증보다 전문직 자격증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리트 지원자 5년 만에 65% 늘어 리트 응시자 수는 매년 늘며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로스쿨 정원이 2100명가량으로 고정돼 있는데 응시자 수가 늘면서 경쟁률도 매년 높아져 지난해는 응시자 중 합격률이 17%까지 떨어졌다. 응시자가 늘어난 것은 인문계와 이공계 학생, 대학생과 공시생, 직장인 등을 가리지 않고 로스쿨 열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무원에 대한 선호가 줄면서 행정고시나 7급 공무원 공채시험인 공직적격성평가(PSAT) 등을 준비했던 공시생들이 로스쿨 시험 준비에 뛰어들고 있다. 실제로 매년 1만 명대를 기록했던 행정고시 응시자 수는 2021년 1만2038명, 지난해 1만495명에 이어 올해 9044명까지 줄며 2년 만에 25% 가까이 감소했다. 광주에서 2년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박모 씨(28)는 지난달 서울 강남에 있는 한 로스쿨 입시 전문 학원에 등록했다. 박 씨는 “올해부터 지방 로스쿨은 15%를 지역 인재로 뽑는 만큼 단기간 바짝 공부하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로스쿨을 나온 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면 서울에서든 지방에서든 일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공무원 정원을 늘리지 않겠다”고 밝힌 것과 중앙 부처 상당수가 세종시 등 비수도권에 자리 잡은 것도 우수 인재의 공직 지원이 줄어드는 이유로 꼽힌다. 최근 리트 시험 준비를 시작한 최모 씨(31)는 “학원비, 교재비에 월 200만 원을 쓰는데 이렇게 어렵게 합격하더라도 공무원 월급이 200만, 300만 원 남짓이라는 걸 생각하니 대안이 필요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직장인 “퇴근 후 스터디 모임”최근 물가가 높아지고 경기가 둔화되면서 퇴근 후 스터디모임을 꾸려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올 1월부터 직장인 3명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주 2회 리트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다는 박모 씨(30)는 “암기 과목도 행정고시만큼 많지 않고 문제 유형만 익히면 상대적으로 합격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 퇴근 후 시간을 따로 내서 준비하기 시작했다”며 “불안정한 직장 생활에 의존하지 않고 전문직 자격증을 따 노후에 대비하려 한다”고 했다. 학원가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전문직 자격증으로 불확실성에 대응하려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만 로스쿨 정원과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1700명가량)는 늘지 않는 상황에서 무작정 로스쿨 준비를 하는 게 답이 아니란 지적도 나온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로스쿨에 합격하더라도 변호사 시험 합격률은 절반 남짓에 불과하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들이 다 한다고 로스쿨을 준비하기 전에 본인의 적성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이제 로스쿨이 우수한 대학생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어요.” 4일 수도권 대학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관계자는 “최근 인문계 뿐 아니라 이공계 학생들까지 대거 로스쿨 시험 준비에 뛰어들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등에 따르면 올해 로스쿨 입학을 위한 법학적성시험(LEET·리트)에 응시한 지원자는 1만7360명으로 지난해(1만4620명)보다 18.7% 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자는 5년 전과 비교하면 65% 급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매년 응시율이 90% 안팎을 기록했던 점을 감안하면 23일 치러지는 리트 응시자 수도 1만5000명을 늘어 지난해(1만3193명)보다 많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트 응시자가 늘어난 것을 두고 최근 낮은 급여 등을 이유로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식자 대학생들이 로스쿨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경기가 둔화되면서 직장인 중에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며 로스쿨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공무원은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인기가 높았지만 고물가 상황에서 낮은 급여와 경직된 조직문화 때문에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더 이상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게 된 것”이라며 “고용 불안을 겪지 않는 동시에 높은 연봉을 받길 원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전문직이 되기 위해 로스쿨로 쏠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물가는 높아지고 경기는 둔화되니 불안감이 커지더라고요. 시험에 투자한 시간과 공무원으로 일하며 받는 월급을 비교해 보니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달 3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학원가에서 만난 조모 씨(26)는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조 씨는 “올해까지 3년 동안 준비해온 국가공무원 5급 행정직 공채(행정고시) 준비를 그만두고 로스쿨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며 “불안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선 공무원증보다 전문직 자격증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리트 지원자 5년 만에 65% 늘어 리트 응시자 수는 매년 늘며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로스쿨 정원이 2100명 가량으로 고정돼 있는데 응시자 수가 늘면서 경쟁률도 매년 높아져 지난해는 응시자 중 합격률이 17%까지 떨어졌다. 응시자가 늘어난 것은 인문계와 이공계 학생, 대학생과 공시생, 직장인 등을 가리지 않고 로스쿨 열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무원에 대한 선호가 줄면서 행정고시나 7급 공무원 공채시험인 공직적격성평가(PSAT) 등을 준비했던 공시생들이 로스쿨 시험 준비에 뛰어들고 있다. 실제로 매년 1만 명대를 기록했던 행정고시 응시자 수는 2021년 1만2038명, 지난해 1만495명에 이어 올해 9044명까지 줄며 2년 만에 25%가까이 감소했다. 광주에서 2년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박모 씨(28)는 지난달 서울 강남에 있는 한 로스쿨 입시 전문 학원에 등록했다. 박 씨는 “올해부터 지방 로스쿨은 15%를 지역 인재로 뽑는 만큼 단기간 바짝 공부하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로스쿨을 나온 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면 서울에서든 지방에서든 일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공무원 정원을 늘리지 않겠다”고 밝힌 것과 중앙 부처 상당수가 세종시 등 비수도권에 자리잡은 것도 우수 인재의 공직 지원이 줄어드는 이유로 꼽힌다. 최근 리트 시험 준비를 시작한 최모 씨(31)는 “학원비, 교재비에 월 200만 원을 쓰는데 이렇게 어렵게 합격하더라도 공무원 월급이 200만, 300만 원 남짓이라는 걸 생각하니 대안이 필요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직장인 “퇴근 후 스터디 모임” 최근 물가가 높아지고 경기가 둔화되면서 퇴근 후 스터디모임을 꾸려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올 1월부터 직장인 3명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주 2회 리트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다는 박모 씨(30)는 “암기 과목도 행정고시만큼 많지 않고 문제 유형만 익히면 상대적으로 합격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 퇴근 후 시간을 따로 내서 준비하기 시작했다”며 “불안정한 직장 생활에 의존하지 않고 전문직 자격증을 따 노후에 대비하려 한다”고 했다. 학원가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전문직 자격증으로 불확실성에 대응하려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 리트 학원 관계자는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면서 학원에 등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로스쿨 경쟁률이 높아지자 대학교 2, 3학년부터 리트를 준비하는 대학생들도 있어 수요는 꾸준히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로스쿨 정원과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1700명 가량)는 안 늘어나는 상황에서 무작정 로스쿨 준비를 하는 게 답이 아니란 지적도 나온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로스쿨에 합격하더라도 변호사 시험 합격률은 절반 남짓에 불과하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들이 다 한다고 로스쿨을 준비하기 전에 본인의 적성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최미송 기자 cms@donga.com}

“물막이판(차수판)을 설치하면 뭐 합니까. 하수구가 역류해 물이 차오르니 방법이 없더군요.” 3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유모 씨(74)는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유 씨가 사는 주택은 2019년 물막이판을 설치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기록적 폭우 당시 배수구에서 역류한 물이 허리 높이까지 차올랐다. 유 씨는 “이웃 도움으로 겨우 목숨만 건졌는데 이후 빗소리만 들어도 잠을 설친다”며 “돈이 없어 반지하를 떠날 수 없으니 여름 동안이라도 지인이나 친척 도움을 받아 신세질 곳을 찾고 있다”고 했다. 최근 전국에 폭우가 쏟아지며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하자 지난해 침수 피해를 겪었던 반지하 주택 주민들이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물막이판을 설치하거나 모래주머니를 쌓기도 하고, 유 씨처럼 임시 거처를 수소문하는 이들도 있다. 전날 침수가 발생한 서울 동작구 상도동 주민 일부는 이날 집 앞에 모래주머니를 쌓고 있었다. 전날 주택 반지하 창고가 침수됐던 집주인 한모 씨(86)는 “업자를 불러 배수관을 수리하는 동시에 지하실을 전부 비우고 입구 주변에 가림판을 설치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 주택은 지난해 8월 폭우 때 50대 여성이 사망한 반지하 주택에서 1km 거리에 있다. 인근 반지하 주민 최성호 씨(42)는 “폭우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20만 원을 들여 미세하게 금이 갔던 창문 유리창을 교체했다”며 “물막이판이 아직 설치되지 않아 임시방편으로 물이 들이치지 않도록 조치했는데 솔직히 걱정된다”고 했다. 다른 상도동 주민 이모 씨(70)는 “지난해 침수로 집이 다 잠겼다”며 “올해는 장마 기간 동안에만 집주인에게 지상층 방 하나를 빌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살림살이를 임시로 담아 둘 대형 비닐봉지 등을 구매하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 관악구 반지하에 사는 임모 씨(30)는 “지난해 여름 가전제품과 가구가 전부 침수돼 고생했다”며 “물막이판 설치를 알아보니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더라. 출장이 잦아 집을 비울 일이 많은 만큼 현실적 대안으로 대형 비닐봉지를 사서 침대 등을 덮어두려 한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집에서 집게 등을 들고 나와 집 앞 빗물받이를 직접 청소하기도 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반지하 주민 박모 씨(56)는 “자치구에서 청소해주기만 기다리다가 집이 잠기면 누가 책임져주느냐”며 “물막이판도 없다 보니 불안해 폭우 전후에 시간을 내 빗물받이 안에 쌓여 있던 담배꽁초 등을 치웠다”고 했다.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이 집에 30년 동안 살았는데 반지하에 발목까지 물이 차오른 건 처음이에요.” 수도권 일대 집중호우가 쏟아진 2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한 다가구주택 앞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집주인 한모 씨(86)는 “바가지로 아무리 퍼내도 물이 계속 차올라 이러다 큰일 나는 줄 알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낮 12시 49분경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인 이 주택 반지하 창고에는 배수관에서 흘러넘친 빗물이 유입되며 순식간에 물이 차올랐다. 집주인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 당국이 펌프차 1대를 동원해 간신히 물을 빼낼 수 있었다. 이 주택은 지난해 8월 폭우 피해로 50대 여성이 사망한 반지하 주택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대에 있어 이 주택과 인근 주택에는 물막이판(차수판) 등 침수 대비 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 주택 인근 반지하에 거주하는 박모 씨(52)는 “지난해 폭우 때 피해가 없어 굳이 차수판까지 설치해야 하나 싶었는데 막상 옆집에서 물이 차오르는 걸 보니 미리 대비를 안 한 게 후회된다”고 했다.● 잇따른 침수 피해… 2명 숨져이날 전 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수도권에서는 피해가 잇달았다. 폭우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청소년이 숨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29일 오후 2시 55분경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 장호원교 인근 하천에서 수영을 하던 A 군(17)이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것. 경찰은 A 군이 불어난 하천 물에 휩쓸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고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전남 함평군에서 비 피해를 막기 위해 수문을 살펴보다가 27일 실종됐던 수리시설 관리원 오모 씨(67·여)도 이틀 만인 이날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침수 피해도 이어졌다.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성산로에 있는 서대문경찰서 교통센터가 침수돼 센터 내부에서 사용하는 무전기가 일시적으로 먹통이 됐다. 센터에서 10m가량 떨어진 도로 인근에서 치솟아 오른 물이 교통센터 내부로 들이닥친 것이다. 상습 침수지역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도 빗물받이가 쓰레기에 막혀 도로 일부가 침수됐다.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 맨홀에서는 빗물이 역류했고, 남산1호터널 한남대교 방향 도로가 침수됐다. 서울시와 소방 당국은 이날 오후 5시까지 빗물받이 배수 등 모두 198건의 안전 관련 조치를 취했다. 경기도와 인천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다. 경기 화성시 마도면 송정리에서는 이날 오후 2시 반경 주택 옹벽이 무너져 안전조치가 이뤄졌고, 광주시 반지하 주택 6가구는 물에 잠겨 배수 작업을 벌였다. 고양시 일산동구 자유로 장항나들목 인근에선 승용차가 미끄러지며 가로수를 들이받은 뒤 화재가 발생했지만 운전자가 바로 탈출해 큰 부상을 입진 않았다. 인천에선 이날 오전 10시 20분경 남동구 간석동에서 빌라 옆 약 1m 높이의 담벼락이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다. 시간당 6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진 충남 서산과 태안에서도 화물차 2대가 물에 잠기는 등 침수 피해가 이어졌다. 충남소방본부에는 도로 침수와 가로수 쓰러짐 등 40건 이상의 신고가 접수됐다.● 30일 남부지방 폭우… 다음 달 3일부터 또 장마 29일 수도권과 중부지방에 150mm 이상의 비를 내린 장마전선은 30일 남쪽으로 이동한다. 29일 저녁부터 30일까지 전라권과 제주에는 100∼200mm, 많은 곳은 최대 250mm의 물 폭탄이 예보됐다. 시간당 30∼60mm 수준의 강한 비인데 천둥과 번개, 돌풍까지 동반해 피해가 우려된다. 기상청은 “이미 27일까지 많은 비가 내려 지반이 약해진 상태에서 또 폭우가 쏟아질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대비를 당부했다. 29일 오후 6시까지 누적 강수량은 서울(중랑) 67.0mm, 경기 화성 79.0mm, 강원 춘천 104.0mm, 충남 태안 99.5mm 등이다. 29일 호우가 집중됐던 수도권 등 중부지방은 30일은 비가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이후 다음 달 3일 남부지방을 시작으로 4, 5일엔 다시 전국에 장마가 올 가능성이 크다고 기상청은 내다봤다.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이 집에 30년 동안 살았는데 반지하에 발목까지 물이 차오른 건 처음이에요.”수도권 일대 집중호우가 쏟아진 2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한 다가구주택 앞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집주인 한모 씨(86)는 “바가지로 아무리 퍼내도 물이 계속 차올라 이러다 큰일 나는 줄 알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낮 12시 49분경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인 이 주택 반지하 창고에는 배수관에서 흘러넘친 빗물이 유입되며 순식간에 물이 차올랐다. 집주인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 당국이 펌프차 1대를 동원해 간신히 물을 빼낼 수 있었다. 이 주택은 지난해 8월 폭우 피해로 50대 여성이 사망한 반지하 주택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대에 있어 이 주택과 인근 주택에는 물막이판(차수판) 등 침수 대비 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 주택 인근 반지하에 거주하는 박모 씨(52)는 “지난해 폭우 때 피해가 없어 굳이 차수판까지 설치해야 하나 싶었는데 막상 옆집에서 물이 차오르는 걸 보니 미리 대비를 안 한 게 후회된다”고 했다.● 잇따른 침수 피해…2명 숨져 이날 전 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수도권에서는 피해가 잇달았다. 폭우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청소년이 숨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29일 오후 2시 55분경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 장호원교 인근 하천에서 수영을 하던 A 군(17)이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것. 경찰은 A 군이 불어난 하천에 휩쓸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고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전남 함평군에서 비 피해를 막기 위해 수문을 살펴보다가 27일 실종됐던 수리시설 관리원 오모 씨(67·여)도 이틀 만인 이날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침수 피해도 이어졌다.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성산로에 있는 서대문경찰서 교통센터가 침수돼 센터 내부에서 사용하는 무전기가 일시적으로 먹통이 됐다. 센터에서 10m가량 떨어진 도로 인근에서 치솟아 오른 물이 교통센터 내부로 들이닥친 것이다. 상습 침수지역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도 빗물받이가 쓰레기에 막혀 도로 일부가 침수됐다.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 맨홀에서는 빗물이 역류했고, 남산1호터널 한남대교 방향 도로가 침수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소방 당국에서 출동하기도 했다. 서울시와 소방 당국은 이날 오후 5시까지 빗물받이 배수 등 모두 198건의 안전 관련 조치를 취했다. 경기도와 인천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다. 경기 화성시 마도면 송정리에서는 이날 오후 2시 반경 주택 옹벽이 무너져 안전조치가 이뤄졌고, 광주시 반지하 주택 6가구는 물에 잠겨 배수 작업을 벌였다. 고양시 일산동구 자유로 장항나들목 인근에선 승용차가 미끄러지며 가로수를 들이받은 뒤 화재가 발생했지만 운전자가 바로 탈출해 큰 부상을 입진 않았다. 인천에선 이날 오전 10시 20분경 남동구 간석동에서 빌라 옆 약 1m 높이의 담벼락이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다.시간당 6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진 충남 서산과 태안에서도 화물차 2대가 물에 잠기는 등 침수 피해가 이어졌다. 충남소방본부에는 도로 침수와 가로수 쓰러짐 등 40건 이상의 신고가 접수됐다.● 30일 남부지방 피해 예상…다음 달 3일부터 또 장마 29일 수도권과 중부지방에 150mm 이상의 비를 내린 장마전선은 30일 남쪽으로 이동한다. 29일 저녁부터 30일까지 전라권과 제주에는 100~200mm, 많은 곳은 최대 250mm의 물 폭탄이 예보됐다. 시간당 30~60mm 수준의 강한 비인데 천둥과 번개, 돌풍까지 동반해 피해가 우려된다. 기상청은 “이미 27일까지 많은 비가 내려 지반이 약해진 상태에서 또 폭우가 쏟아질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대비를 당부했다. 29일 오후 6시까지 누적 강수량은 서울(중랑) 67.0mm, 경기 화성 79.0mm, 강원 춘천 104.0mm, 충남 태안 99.5mm 등이다. 29일 호우가 집중됐던 수도권 등 중부지방은 30일은 비가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이후 다음 달 3일 남부지방을 시작으로 4, 5일엔 다시 전국에 장마가 올 가능성이 크다고 기상청은 내다봤다.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검찰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관계사에서 628억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강종현 씨(41)의 주가 조작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원영식 초록뱀그룹 회장(62·사진)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채희만)는 28일 원 회장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배임) 혐의로 27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강 씨는 2021년 빗썸 관계사에서 전환사채(CB)를 발행한 후 호재성 정보를 유포하며 주가를 띄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과정에 원 회장도 관여한 것으로 판단해 강 씨의 공범으로 보고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 회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29일 오전 10시 반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다. 초록뱀미디어는 장윤정, 문희준 등 유명 가수가 다수 소속된 연예기획사 초록뱀이앤엠을 자회사로 둔 엔터테인먼트 제작사다. ‘주몽’, ‘거침없이 하이킥’ 등 드라마를 제작했다. 이에 대해 초록뱀그룹 관계자는 “원 회장과 관련해 드릴 말씀이 없다”고만 밝혔다.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한국 축구대표팀 황의조 선수(31·사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의 사생활 관련 글과 영상 등을 올린 게시자를 고소했다. 황 선수 측은 27일 “SNS에 관련 게시물과 영상을 올리고 협박 메시지를 보낸 A, B 씨를 정보통신망법상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과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상 협박 등의 혐의로 전날(26일) 서울 성동경찰서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A 씨는 25일 “내가 황의조의 전 연인”이라고 주장하며 “황의조가 다수의 여성과 관계를 맺고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이어 “황의조가 여러 여성을 가스라이팅해 수집한 영상과 사진이 있다. 휴대전화에 여성 동의 여부를 알 수 없는 영상도 다수 존재한다”며 사진과 영상을 공유했다. 해당 글과 영상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을 통해 급속하게 유포됐다. 논란이 커지자 황 선수의 매니지먼트사인 UJ스포츠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SNS를 통해 공유된 내용은 모두 사실이 아니며 불법으로 취득한 사생활을 유포하고 선수 명예를 실추시킨 점에 대해 강력하게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UJ스포츠 관계자는 “황 선수가 지난해 11월 해외 소속팀 숙소 생활 중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후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사생활 관련 사진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며 “사생활 관련 사실 무근 루머를 유포한 이에 대해 수사 의뢰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황 선수의 변호인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전 여자친구라고 주장한 A 씨 외에도 지난해 11월경 황의조의 휴대전화를 훔쳐 올 5월부터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B 씨도 함께 고소했다”며 “황의조는 A 씨와 교제한 적 없고, A 씨가 주장한 것처럼 유포된 영상이 몰래카메라 등 불법적으로 촬영됐다는 주장도 허위”라고 밝혔다. 상호 동의하에 촬영된 것이란 취지다. 변호인은 또 “영상이 SNS상에서 유포·거래되는 상황을 주시하며 추가 고소도 할 예정”이라며 “한국 축구에 기여한 선수의 내밀한 사생활이 퍼져 선수가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소장을 접수하고 내용 분석 및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김정훈 기자 hun@donga.com}

“28일 0시부터 가게에서 술 마시는 2004년생 중 생일이 지나지 않은 손님은 쫓아내야 하나요?” 서울 강남구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장모 씨(49)는 28일부터 시행되는 ‘만 나이’ 통일법이 이해가 잘 안 간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른 주점 사장 민모 씨(51)도 “앞으로 손님들 생일까지 일일이 확인하고 계산해야 하는 거냐”고 걱정했다. 이처럼 28일 만 나이 통일법 시행 이후 익숙지 않은 나이 계산법 때문에 혼란스럽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28일부터 공식 나이는 모두 만 나이 계산법으로 통일된다. 지금까지는 선거권 부여, 연금 수령, 정년, 경로 우대, 보험 적용 등에서 만 나이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런데 앞으로는 공식 나이 표기 등도 모두 만 나이로 계산하는 게 원칙이다. 다만 주류 및 담배 구입이나 병역검사, 초등학교 입학 등은 여전히 현재 연도에서 출생 연도를 뺀 ‘연 나이’ 기준이 통용된다. 이 때문에 술을 팔면서 생일까지는 계산을 안 해도 되지만 주점이나 편의점 주인 중에는 이 같은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부모들은 아이들 사이에서 시비가 발생할까 봐 걱정이다. 학부모 이모 씨(41)는 “놀이터만 가도 한 살 차이로 텃세 부리는 아이들이 많은데 학급 내에서 나이로 서열이 생길까 싶어 걱정”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교사 정모 씨(28)는 “실제로 아이들 사이에선 ‘이제 내가 형이다’ 등의 장난이 이어지고 있는데 자칫 시비로 번질까 봐 우려스럽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곽민수 씨(38)는 “아이들이 특히 나이에 민감한데 나이가 적어진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9일 면접을 앞둔 취업준비생 권모 씨(28)는 “자기 소개할 때 몇 살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만 나이로 얘기하면 실제보다 어리게 볼까 봐, 원래 나이로 소개하면 ‘나이 계산 원칙이 바뀐 걸 모르느냐’는 말을 들을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1963년생 주부 박모 씨는 26일로 환갑을 맞아 다음 달 1일 가족들과 식사하려고 했다가 취소 여부를 고민 중이다. 박 씨는 “만 나이로 환갑을 따지면 내년이 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에 가족과 상의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올해 생일이 지나지 않은 경우 두 살이 어려진다는 점 때문에 만 나이 통일법을 반기는 이들도 있다. 직장인 정희연 씨(29)는 “생일이 12월이다 보니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두 살이 돼 억울했는데 이제야 진짜 내 나이를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만나이현재 연도에서 출생 연도를 뺀 나이를 적용하되, 생일이 지나지 않았을 때는 한 살을 더 빼는 방식.연 나이생일과 관계 없이 현재 연도에서 출생 연도를 빼서 계산하는 방식.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최미송 기자 cms@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