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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대규모 ‘오물 풍선 테러’ 하루 만인 30일 미사일 20발 가까이를 무더기로 동해상을 향해 발사했다. 전날에 이어 이날 이틀 연속 서해에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전파 교란 공격도 감행했다. 오물 풍선 테러 이유로 내세운 민간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하게끔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한국 내 사회 혼란 및 남남갈등까지 증폭시키려는 의도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군사정찰위성 발사 실패한 북한이 이에 따른 내부 혼란을 막고 체제 결속을 위해 대남 도발 카드를 급하게 꺼내든 것일 가능성도 크다.군에 따르면 30일 오전 6시 14분경 평양 순안 일대에서 20발에 가까운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이 동해상으로 발사돼 350여 km를 비행한 후 낙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행 속도·고도 등을 볼 때 초대형방사포(KN-25)를 일제히 쏜 것으로 추정된다. 대남 전술핵 공격 수단인 초대형방사포는 이동식발사차량에 설치된 4~6개의 발사관에서 연속 사격할 수 있다. 군 관계자는 “2022년 말 SRBM 등 10여 발을 동해로 쏜 이후 20발가량 동시에 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이날 미사일 도발 1시간 반 뒤엔 GPS 교란 공격도 이어졌다. 오전 7시 50분경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연평도와 인천 등 남쪽으로 GPS 교란 전파를 쏜 것. 이틀 연속 대남 GPS 교란 공격에 나선 것이다. 이날 해경에 따르면 민간 상선과 여객선 어선 등 103척이 GPS 수신 장애로 운항과 조업에 혼란을 겪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통일·민족 지우기에 나선 북한이 주민들에게 자녀 이름까지 ‘통일’ ‘한국’ ‘하나’ 단어를 쓰지 못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통일부 당국자는 30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은 대남기구 개편, 각종 홈페이지 정리, 남북관계·통일을 연상시키는 용어 통제, 한반도 조형물 제거 등 대남 흔적 지우기를 지속하고 있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자녀 이름과 관련한 지시는 올해 2월경 하달된 것으로 전해졌다.북한의 해외 공관에서 남북 관계나 통일 관련 서적을 폐기한 정황도 포착됐다. 북한 외무성 홈페이지엔 ‘조선은 세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국’이라는 표현이 담긴 ‘지리’ 항목이 사라졌고, 선전매체 내나라 홈페이지엔 자주·평화통일 등 문구가 담긴 ‘사회주의헌법’ 배너가 비활성화됐다.다만 통일부는 이 같은 ‘대남 지우기’ 작업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동향들도 파악됐다고 전했다. 평양 신미리애국열사릉 석판에 ‘통일’이라는 문구가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이 최근 조선중앙TV에 포착되거나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을 없애면서도 1991년 세워진 통일전선탑이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이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됐기 때문.북한이 다음달 하순 개최를 예고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직후 최고인민회의가 개최될 가능성도 있다고 통일부는 내다봤다. 통일부 당국자는 “전원회의에서 개헌을 비롯한 ‘적대적 두 국가 관계’ 논의를 하고 최고인민회의 후 외무성을 통해 대남 조치를 발표하거나 경의선 단절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는 조치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28, 29일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 방한 기간 UAE 국방·방산 주요 인사들이 경기 평택시 오산 공군작전사령부(공작사)를 방문해 우리 군의 다층 방공시스템을 둘러본 것으로 알려졌다. UAE는 친이란 성향인 예멘 후티 반군의 탄도미사일, 무인기 등 도발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런 만큼 각기 다른 방공 무기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 운용하는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등 우리 방공시스템에 관심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29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전날 UAE 측은 오산공군기지 내 방공지휘통제 관련 시설을 시찰했다. 소식통은 “저고도부터 고고도까지 이어지는 우리 군 방공시스템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당초 이 일정에 무함마드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상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UAE는 우리 군이 내년부터 양산에 돌입하는 장거리 지대공미사일(L-SAM) 도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최근 우리 군은 이 미사일에 대해 ‘전투용 적합 판정’을 내렸다. 이미 UAE는 2022년 4조 원대 규모의 중거리 지대공미사일(M-SAM) 수출 계약도 맺은 바 있다. 정부 소식통은 “UAE 측은 계약한 M-SAM 물량 중 일부를 향후 개발이 완료될 L-SAM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기류”라고 전했다. L-SAM과 M-SAM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패트리엇(PAC-3) 등과 함께 탄도미사일을 하강 단계에서 요격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날 방위사업청은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고 L-SAM과 M-SAM의 요격 고도를 기존보다 1.5∼2배 늘리기로 의결했다. L-SAM의 요격 고도는 50∼60km이나 향후 개발될 L-SAM-Ⅱ의 요격 고도는 1.5배 늘어난다. 고도 100km 이내에서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게 되는 것. M-SAM-Ⅲ 요격고도 역시 M-SAM-Ⅱ(20∼40km) 대비 2배로 늘어난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은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의 방한에 앞서 친교 일정 장소인 창덕궁 일원 산책길을 미리 둘러보며 동선을 점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UAE 도착 직후 무함마드 대통령의 친동생인 압둘라 알 나하얀 외교장관으로부터 ‘행운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발언과 함께 최상의 예우를 받은 바 있다. 환대에 대한 답례이자 UAE 정상에 대한 각별한 예우를 위해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선 셈이다. 복합 위기 속 경제 활로를 ‘제2의 중동 붐’으로 타개하려는 윤 대통령은 UAE 국빈 방문에서 300억 달러(약 40조 원) 투자 약속을 이끌어냈다. UAE 국가 간 투자협약 사상 최대 규모다. 이에 대한 진행 상황과 방산, 원전 등 주요 협력 강화 방안이 논의된다.● “UAE, 韓 방공 시스템 도입에 관심” 무함마드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지난해 1월 한국 정상으로 처음 UAE를 국빈 방문해 가진 정상회담에서 결정된 3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약속에 대한 점검이 이뤄질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약속된 3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약속에 대한 점검과 과학기술 분야 협력 방안 등 다양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윤 대통령이 UAE를 방문했을 때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원자력·에너지·투자·방산 분야에서 양국 간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양해각서(MOU) 13건이 체결됐다. UAE는 그동안 장거리 지대공미사일(L-SAM) 등 요격 무기뿐만 아니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에 포함되는 방공 시스템 도입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UAE 주변국의 위협 강도가 북한의 대남 도발 위협 강도와 유사하다고 보고 각기 다른 방공 무기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 운용하는 우리 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다는 것. 여권 고위 관계자는 “무함마드 대통령 방한에 맞춰 관련 일정도 검토될 수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때 함께 경기 평택시 오산 공군작전사령부 항공우주작전본부(KAOC)를 방문하기도 했다.● 창덕궁 후원서 고려 궁중무용 함께 관람 28일 무함마드 대통령이 탑승한 UAE 대통령기가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하자 공군 전투기(F-15K) 4대가 호위에 나섰다. 전투기 4대의 호위를 받으며 무함마드 대통령이 탑승한 항공기는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지난해 1월 윤 대통령이 탑승한 공군 1호기가 UAE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자 UAE 전투기가 이를 호위한 적이 있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이날 오후 무함마드 대통령과 창덕궁에서 친교 일정을 가졌다. 이들은 창덕궁 후원의 중심 정원인 부용지 일대를 함께 산책했다. 또 환영의 의미를 담은 고려시대 궁중 무용 ‘학연화대무(鶴蓮花臺舞)’를 관람했다. 국조(國鳥)가 있을 정도로 새를 좋아하는 UAE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의미에서 준비됐다. 또 양 정상은 친밀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차담을 했다. 윤 대통령은 만찬에서 “양국의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자”고 했다. 무함마드 대통령은 환대에 사의를 표하며 방한 일정과 성과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윤 대통령은 29일 무함마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윤 대통령과 무함마드 대통령은 전통적 에너지와 청정 에너지, 평화적 원자력 에너지, 경제와 투자, 국방과 국방기술 등 4대 핵심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상회담에 앞서 열리는 공식 환영식에는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의 축하 비행도 진행될 예정이다. 공식 환영식에는 전통 의장대와 취타대 100명, 아크부대원 500여 명, 어린이 환영단 130여 명이 참여한다. 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사진)이 28일 윤석열 대통령 초청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UAE 현직 대통령의 한국 방문은 처음이다. 지난해 윤 대통령의 UAE 국빈 방문에 이은 답방이다. 두 정상은 문재인 정부 당시 삐걱거렸다는 평가를 받은 양국 관계를 정상화한 데 이어 양국 국방 방산 협력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강화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후티 반군의 탄도미사일, 무인기 등 도발 위협을 받고 있는 UAE는 그동안 장거리 지대공미사일(L-SAM) 등 요격 무기뿐만 아니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에 포함되는 방공 시스템 도입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UAE 측에서 29일 이런 방산 관련 일정을 가지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이날 방한한 무함마드 대통령과 창덕궁 부용지 일원을 산책하고 전통 공연 관람, 차담 등을 함께했다. 29일 이뤄질 공식 회담에서는 지난해 정상회담에서 UAE가 약속한 300억 달러(약 40조 원) 규모의 투자 약속에 대한 평가와 함께 추가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에너지와 국방·방산, 건설, 첨단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관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도 경제 협력 논의를 위해 28일 무함마드 대통령과 만났다. 이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등 총수들을 포함한 기업인 20명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서울에서 무함마드 대통령과 1시간가량 간담회를 진행했다. 재계에서는 UAE가 추진하는 탄소 중립 스마트시티인 ‘마스다르 시티’ 관련 협력 및 바라카 원전 이후 추가 원전 수주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나왔다.‘오일머니’ 의존 낮추려 산업 다각화-중동개혁… 빈 살만에 영향 줘 [UAE 대통령 첫 국빈 방한]‘MBZ’ 무함마드 UAE 대통령은MB와 ‘원전 인연’ 오늘 자택 방문맨시티 구단주인 만수르가 동생 이름 앞글자를 딴 ‘MBZ’로 널리 알려진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63)은 ‘오일머니’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산업 다각화, 여성의 사회 진출 등 중동 주요국에 부는 국가 개혁 바람을 주도한 인물이다. 28, 29일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한 그는 왕세제 시절인 2006년 처음 한국을 찾았다. 이번이 다섯 번째 방문일 정도로 한국과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무함마드 대통령은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하얀 초대 대통령의 셋째 아들로 영국 샌드허스트 왕립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자이드 전 대통령의 첫째 아들이자 자신의 형인 할리파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전 대통령이 2022년 5월 별세하자 3대 대통령이 됐다. 2014년 할리파 전 대통령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이후 8년간 그가 국정을 운영했다. 2009년 한국이 UAE 바라카 원자력발전소를 수주할 당시 아부다비 왕세제였던 무함마드 대통령이 먼저 한국 측에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통화를 요청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이때 맺은 인연으로 2011년 한국의 첫 비(非)분쟁지대 파견 사례인 아크부대의 UAE 파병을 이끌어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외교 회의에서 스스로 커피를 따라 마시는 등 중동 왕족의 전형성을 탈피한 모습을 보였다. 필요하다면 미국 하급 관리와도 직접 만났다”고 전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과도 친밀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무함마드 대통령이 집권하자 “오랜 친구 MBZ의 집권을 축하한다”고 반겼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권 때는 미국의 이란 견제 정책에 적극 동참했다. 무함마드 대통령은 ‘MBS’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39)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로도 유명하다. UAE의 경제 실권자로 꼽히는 타흐눈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국가안보보좌관은 무함마드 대통령의 친동생이다. 영국 축구팀 맨시티 구단주로 유명한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부총리 또한 그의 또 다른 동생이다. 무함마드 대통령은 29일 이 전 대통령의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을 찾기로 했다. 이명박재단은 “이번 만남이 UAE 측 요청으로 성사됐다”며 타국 현직 정상이 퇴임 10년이 넘은 전직 대통령을 만나자고 청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군기 훈련(일명 얼차려)을 받던 중 쓰러져 이틀 뒤 사망한 훈련병이 훈련 당시 24kg 안팎에 달하는 군장을 메고 연병장 내 선착순 달리기를 한 정황이 추가로 확인됐다. 군 수사당국은 “해당 부대 중대장(대위)과 부중대장(중위)에게 훈련병을 사망에 이르게 한 중대 과실이 있다”고 보고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민간 경찰로 사건을 28일 이첩했다. 28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사건 당일인 23일 오후 이 훈련병은 완전 군장을 한 채 보행-구보-팔굽혀펴기 등이 반복되는 훈련을 받았다. 이에 더해 약 300m 길이 연병장 한 바퀴를 돌아 선착순으로 돌아오는 훈련도 했다. 이는 육군의 군기훈련 규정에 없는 훈련이다. 이 훈련병은 동료 5명과 함께 선착순 달리기를 했고,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통증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훈련 현장에서 전투화 등 필수 물품으로 채워진 군장 내에 빈 공간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자 조교들 지시로 책 여러 권을 넣어 군장을 더 무겁게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훈련병은 쓰러진 뒤 다리가 시퍼렇게 변하고 진한 갈색 소변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훈련병이 사고 직후 이송된 국립병원 및 민간병원에선 횡문근(横紋筋)융해증과 열사병 증상이 의심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횡문근융해증은 무리한 운동, 과도한 체온 상승 등으로 근육이 손상돼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병이다. 이날 질병관리청은 숨진 훈련병을 올해 첫 열사병 추정 사망자로 분류했다. 훈련 현장에는 초기엔 부중대장이 있었고, 중대장은 훈련 중간에 합류해 훈련을 지시·통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소식통은 “중대장 등 2인이 훈련병을 사망에 이르게 한 정황이 다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미국,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일찍이 ‘글로벌사우스’(남반구 개발도상국·신흥국) 핵심 요충지로 떠오른 아프리카 대륙에 주목해왔다. 아프리카가 갖는 경제산업·외교안보 분야의 전략적 가치를 고려해 미래를 위한 협력을 강화해온 것. 아프리카 지역 주재 공관장들은 올해 4월 재외공관장 회의차 귀국해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앞으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한 바 있다. 아프리카에서도 미중 패권 경쟁은 심화되는 양상이다. 중국은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빈틈을 가장 먼저 파고들었다. 아프리카 최대 투자·무역국으로 거듭난 중국은 거대 자본을 앞세워 현지 인프라 건설 투자를 확대하는 등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의 경제, 군사, 영토 확장 사업)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대아프리카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중국은 특히 외교부장(장관)이 1991년부터 새해 첫 방문지로 아프리카를 순방하는 전통을 34년째 이어오고 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도 올해 1월 첫 해외 순방지로 이집트, 토고, 코트디부아르, 튀니지를 방문했다. 2006년 중국은 아프리카 54개국 지도자들에게 초청장을 보내며 처음으로 베이징에서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 정상회의(FOCAC)를 개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21년엔 이 정상회의에서 400억 달러(약 54조5200억 원)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아울러 2017년 동아프리카 지부티에 첫 해외 해군기지를 구축하는 등 최근 아프리카 대륙을 안보 분야의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런 가운데 2022년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2014년 이후 8년 만에 미국-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핵심 광물의 탈중국화와 자국 내 청정에너지 산업 공급망을 확충하기 위한 차원에서 아프리카에 다시 공을 들이고 있는 것.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리카연합(AU) 49개 정상 및 고위급 대표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미국은 아프리카의 미래에 올인하겠다”고도 했다. 이 회담에서 미국은 향후 3년 동안 기후변화, 식량안보, 보건 등 분야에서 아프리카에 총 550억 달러 규모의 원조를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일본 정부도 1993년 처음 열린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를 3년마다 개최하면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2022년 열린 TICAD에서 일본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총 300억 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이 밖에도 인도와 튀르키예, 프랑스, 러시아, 영국 등도 아프리카와 정상급 회의를 통해 이들 국가 지도자를 초청해 교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주요국들의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아프리카 국가들 사이에선 ‘협력을 가장한 약탈’이란 비판적인 목소리도 일부 나온다. 올해 1월 로마에서 열린 이탈리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교육, 보건 등 분야에 55억 유로(약 8조1367억 원)를 투자하는 대가로 유럽으로 오는 불법 이민자들을 아프리카 정부가 억제해 달라”고 요청하자 무사 파키 AU 집행위원장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거지가 아니다”면서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돈 줄 테니 알아서 불법 이민자를 막으라’는 요구에 날카롭게 응수한 것이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일명 ‘얼차려’로 불리는 군기 훈련을 받던 중 쓰러져 이틀 뒤 사망한 훈련병이 24kg 안팎 무게의 군장을 메고 연병장 내 ‘선착순 달리기’를 하는 등 가혹행위에 준하는 훈련을 받은 정황이 추가로 확인됐다. 훈련병이 든 군장 무게를 늘린다며 전투화 등으로 채워진 군장 빈 공간에 책 여러 권도 넣었다고 한다. 군 수사당국은 해당 부대 중대장(대위)과 부중대장(중위)에게 훈련병을 사망에 이르게 한 중대 과실이 있다고 보고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를 적용해 민간 경찰로 사건을 28일 이첩했다. 28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사건 당일인 23일 오후 훈련병은 24kg 안팎에 달하는 무게의 완전 군장을 한 채 보행-구보-팔굽혀펴기-선착순 달리기 등이 반복되는 훈련을 받았다. 군기훈련 방법에 따르면 완전 군장을 한 채 구보나 팔굽혀펴기를 하는 건 육군 규정 위반이다. 선착순 달리기 역시 규정에 아예 없는 훈련이다. 이 훈련병은 약 300m 길이 연병장 한 바퀴를 동료 훈련병 5명과 함께 선착순으로 돌아오는 훈련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통증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훈련 현장에서 전투화 등 필수 물품으로 채워진 군장 내에 빈 공간이 많아 군장이 무겁지 않다며 책 여러 권을 넣어 군장을 더 무겁게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훈련병은 완전 군장 후 선착순 달리기 한바퀴에 더해 보행, 구보, 팔굽펴펴기 등의 훈련을 반복해 받았고 구보를 하던 중 쓰러졌다. 쓰러진 순간은 오후 5시 10분으로 훈련이 시작된 지 약 40분 후로 파악됐다. 훈련병은 쓰러진 뒤 다리가 시퍼렇게 변하고 콜라색 소변을 보는 등 상태가 심각했다고 한다. 훈련병이 사고 직후 이송된 국립병원 및 민간병원에선 이 훈련병에 대해 ‘횡문근 융해증’과 열사병 증상이 의심된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횡문근 융해증은 무리한 운동이 원인이 돼 발생하는 질환으로 팔이나 다리 등 움직임이 있는 부위의 골격근인 횡문근(横紋筋)이 융해되는 증상이다. 이와 관련해 이날 질병관리청은 숨진 훈련병을 올해 첫 열사병 추정 사망자로 분류했다.훈련 현장에는 초기엔 중위인 부중대장이 있었고, 중대장인 대위는 훈련 중간에 현장에 합류해 훈련을 지시·통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소식통은 “훈련이 육군 규정을 위반해서 가혹하게 진행된 정황이 다수 포착됐다”고 전했다. 사건에 대한 초동 조사를 진행한 군 수사당국은 중대장과 부중대장이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해 훈련병들에게 가혹한 훈련을 지시한 정황이 비교적 뚜렷하다고 보고 28일 사건을 강원지방경찰청에 이첩했다. 경찰은 이들 두 간부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을 적용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우석 육군 공보과장은 브리핑에서 “군기 훈련 중 식별된 문제점에 대해서는 경찰의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이첩했다”며 “육군은 사건 이첩 이후에도 한 점 의혹 없이 투명하게 정확하게 규명되도록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리창(李强) 중국 총리가 27일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를 갖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안정·번영이 우리의 공동 이익이자 공동 책임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안보 최대 현안인 북한 비핵화 문제를 둘러싼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2019년 중국 청두 회의 등 기존 한중일 정상회의 성명에 6차례 명시됐던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표현에 이르지는 못했다. 미중 갈등 격화 속 신냉전 구도가 또렷해지면서 한중일 3국이 정상회의 정례화에 합의하면서도 북핵 위협과 대만 문제 등 안보 현안에서 접점을 찾지는 못한 것이다. 특히 중국은 3국 간 경제통상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에 동참하지 말라는 뜻을 표출하는 등 미중 갈등과 연동될 수밖에 없는 한중일 관계의 현주소가 이번 회의로 묻어났다. 3국 정상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강조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 한국과 일본이 강조한 한반도 비핵화와 납북자 문제를 각각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3국 공통의 핵심 이익인 역내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도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안정이 3국에 공동의 이익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했다. 반면 리 총리는 비핵화에 대한 언급 없이 “중국은 시종일관 한반도 평화와 안정,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추진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리 총리와 별도 환담을 갖고 탈북민 문제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중국에 탈북민 북송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리 총리는 “한국 측 우려를 잘 알고 있다. 앞으로 계속 소통해 나가자”고 했다. 3국 정상은 4년 5개월 만에 개최한 회의 뒤 성명에서 “정상회의의 정례적 개최를 통해 3국 협력의 제도화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했다. 3국 정상은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FTA) 실현을 목표로 하는 3국 FTA 협상을 5년 만에 재개해 속도를 내기로 했다. 리 총리는 3국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경제·무역 문제, 범정치화, 범안보화를 반대해 무역보호주의와 디커플링을 반대해야 한다. 집단화와 진영화를 반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尹-기시다 “北 비핵화” 리창 “자제 유지”… 공동선언 ‘안보 이견’ [한중일 정상회의]접점 못찾은 ‘안보 공동선언’… 공동선언 초안 “한반도 비핵화” 문구한일, 막판까지 요구했지만 中 거부… 한중일, 각자 입장 표명으로 대체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실현하는 목표 아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윤석열 대통령)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안정이 3국 공동의 이익이다.”(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관련 측은 자제를 유지하고, 사태가 더 악화하고 복잡해지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리창 중국 총리)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 이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비핵화 문제를 두고 한일과 중국이 엇갈렸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며 북핵 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반면 리 총리는 북한을 명시하지 않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리 총리의 “관련 측” 발언을 두고 “남북을 모두 담는 표현”이라고 했다. 3국 정상이 4년 5개월 만에 한중일 정상회의 회담 테이블에 마주 앉아 상호 협력 제도화와 경제 사회 문화 협력에 한목소리를 냈지만 북한 비핵화 등 핵심 안보 이슈에 대해서는 접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미중 갈등과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구도 속에 중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협력’ 등 이전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합의에 도달했던 문구들의 공동선언문 포함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中 반대로 ‘3국의 한반도 비핵화 노력’ 문구 빠져” 3국은 이날 발표한 제9차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공동선언에서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며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긍정적인 노력을 지속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이 각각 한반도 비핵화와 납북자 문제를 더 강조하면서 함께 목소리를 냈고, 반면 중국은 비핵화 명시를 거부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더 중점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중일 3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약속·지지한다는 문구는 앞서 8차례 정상회의 공동선언 가운데 7차례 포함됐지만 이번엔 포함되지 않았다. 그 대신 한중일 3국은 정상회의 공동선언에서 3국이 각자 입장을 재강조하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직전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린 2019년 3국은 ‘향후 10년 3국 협력 비전’에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협력” 등을 명시했다. 2018년 7차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선언에도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다”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에 따라 협력” 표현이 포함됐다. 정상회의에 앞서 한일은 공동선언에 한반도 비핵화 문구를 전례대로 포함시키는 방안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막판까지 중국에 이를 강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3국의 공통 목표”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대화와 외교, 유엔 안보리 결의 이행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문구가 공동선언 초안에 반영됐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상회의 직전 중국의 반대로 이 문구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반도 비핵화 문구에 대한 중국의 입장 변화는 미중 전략 경쟁과 신냉전 구도가 심화되는 현 상황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헌법에 핵보유를 명시한 뒤 핵개발을 가속화하고 노골적으로 비핵화와 관련한 대화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미중 갈등 수위는 더욱 대립함에 따라 그간 중국도 호응했던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에 선뜻 동의하지는 못한 셈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미중 전략 경쟁이 없었던 과거와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며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을 더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중국이 2023년 이후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쓰지 않을 정도로 북한 문제와 관련해 이견이 있다”며 “최근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할 때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중국으로부터 과거와 같은 합의를 끌어내긴 어렵다”고 했다. 그는 “(한국 입장으로 포함됐지만) 중국이 지난해부터 대외적으로 쓰지 않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공동성명에 포함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납북자 문제에 대한 표현이 후퇴한 것도 중국이 북한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19년 제8차 한중일 정상회의 때는 “납치 문제가 대화를 통해 가능한 한 조속히 해결되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2018년 제7차 회의 공동선언에도 같은 문구가 포함됐다.● 리창 “핵심 이익-중대 관심사 배려해야” 중국은 미중 경쟁이 심화된 2022년 이후에는 “미국이 대중국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어떠한 공조에도 협력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유엔 안보리의 북한 관련 제재 논의를 거부해왔다. 윤 대통령은 이날 리 총리와의 별도 환담에서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글로벌 핵비확산 체제 유지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리 총리는 “중국이 그동안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정세 안정도 중요하다고 본다”며 “한국 측의 우려를 잘 알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소통해 나가자”고 했다. 한일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도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문구를 공동선언에 포함시키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결국 포함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 총리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3국은 예민한 문제와 갈등 이견을 타당하게 처리하고, 서로의 핵심 이익과 중대 관심사를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 입장 존중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장관석 기자 jks@donga.com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실현하는 목표 아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안정이 3국 공동의 이익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관련 측은 자제를 유지하고, 사태가 더 악화하고 복잡해지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 (리창 중국 총리)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 이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비핵화 문제를 두고 한일과 중국이 엇갈렸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며 북핵 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반면 리 총리는 북한을 명시하지 않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리 총리의 “관련 측” 발언을 두고 “남북을 모두 담는 표현”이라고 했다. 3국 정상이 4년 5개월 만에 한중일 정상회의 회담 테이블에 마주 앉아 상호 협력 제도화와 경제 사회 문화 협력에 한 목소리를 냈지만 북한 비핵화 등 핵심 안보 이슈에 대해서는 접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미중 갈등과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구도 속에 중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협력’ 등 이전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합의에 도달했던 문구들의 공동선언문 포함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中 반대로 ‘3국의 한반도 비핵화 노력’ 문구 빠져”3국은 이날 발표한 제9차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공동선언에서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며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긍정적인 노력을 지속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이 각각 한반도 비핵화와 납북자 문제를 더 강조하면서 함께 목소리를 냈고, 반면 중국은 비핵화 명시를 거부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더 중점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한중일 3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약속·지지한다는 문구는 앞서 8차례 정상회의 공동선언 가운데 7차례 포함됐지만 이번엔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한중일 3국은 정상회의 공동선언에서 3국이 각자 입장을 재강조하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직전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린 2019년 3국은 ‘향후 10년 3국 협력 비전’에는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협력” 등이 명시됐다. 2017년 7차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선언에도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다”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에 따라 협력” 표현이 포함됐다.정상회의에 앞서 한일은 공동선언에 한반도 비핵화 문구를 전례대로 포함시키는 방안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막판까지 중국에 이를 강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3국의 공통 목표”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대화와 외교, 유엔 안보리 결의 이행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문구가 공동선언 초안에 반영됐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상회의 직전 중국의 반대로 이 문구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한반도 비핵화 문구에 대한 중국의 입장 변화는 미중 전략 경쟁과 신냉전 구도가 심화되는 현 상황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헌법에 핵보유를 명시한 뒤 핵개발을 가속화하고 노골적으로 비핵화와 관련한 대화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미중 갈등 수위는 더욱 대립함에 따라 그간 중국도 호응했던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에 선뜻 동의하지는 못한 셈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미중 전략 경쟁이 없었던 과거와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며 “중국 입장에서는 더 북한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중국이 2023년 이후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쓰지 않을 정도로 북한 문제와 관련해 이견에 있다”며 “최근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할 때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중국으로부터 과거와 같은 합의를 끌어내긴 어렵다”고 했다. 그는 “(한국 입장으로 포함됐지만) 중국이 지난해부터 대외적으로 쓰지 않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공동성명에 포함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납북자 문제에 대한 표현이 후퇴한 것도 중국이 북한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19년 제8차 한중일 정상회의 때는 “납치 문제가 대화를 통해 가능한 한 조속히 해결되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2018년 제7차 회의 공동선언에도 같은 문구가 포함됐다.● 리창 “핵심 이익-중대 관심사 배려해야”중국은 미중 경쟁이 심화된 2022년 이후에는 “미국이 대중국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어떠한 공조에도 협력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유엔 안보리의 북한 관련 제재 논의를 거부해왔다. 윤 대통령은 리 총리와의 이날 별도 환담에서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글로벌 핵비확산 체제 유지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리 총리는 “중국이 그동안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정세 안정도 중요하다고 본다”며 “한국 측의 우려를 잘 알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소통해 나가자”고 했다.한일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도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문구를 공동선언에 포함시키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결국 포함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 총리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3국은 예민한 문제와 갈등 이견을 타당하게 처리하고, 서로의 핵심 이익과 중대 관심사를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 입장 존중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27일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중국 측에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아닌 ‘2인자’ 리창(李强) 총리가 참석한다. 중국은 첫 한중일 정상회의가 개최된 2008년 이후 이번까지 9차례 모두 총리를 참석시켰다. 중국 입장에선 관례대로 총리를 참석시키는 것이라 주장할 수 있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정상이 참석하는 것을 감안할 때 격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이 3국 정상회의에 총리를 보내는 건 주석은 정치·외교·군사, 총리는 경제 분야와 내치를 맡는 방식으로 국제 행사 등 업무 분담을 해온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한중일 정상회의가 처음 개최된 건 2008년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재임 시절이던 이때 중국에선 당시 경제 분야에서 상당한 전권을 행사하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참석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이 2013년 집권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시 주석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1인 체제’가 크게 강화된 것. 앞서 시 주석은 3월 국무원조직법 개정을 통해 총리 권한과 역할을 대폭 축소하고, 당정분리 원칙도 사실상 폐기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외교가에선 한중일 정상회의 의제가 지역, 안보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데다 경제 이슈에 대한 중국 총리의 역할이 약화된 만큼 주석이 직접 참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리창(李强) 중국 총리와의 양자 회담에서 한중 외교안보 대화 신설에 합의했다. 고위급 협의 채널을 가동해 현 정부 들어 악화된 대(對)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풀어 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 윤 대통령은 리 총리에게 “어떤 대내외 환경 속에서도 양국 소통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래야만 서로 존중하면서 공동 이익을 추구하고 역내 평화·번영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회담 후 브리핑에서 “한중 외교안보 대화를 신설해 6월 중순에 첫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중 외교·국방 ‘2+2’ 대화를 열기로 합의한 것. 한중 외교안보 대화는 앞서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개최에 합의해 2015년 1월까지 두 차례 열린 바 있다. 하지만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에 따른 한중 관계 악화로 중단됐다. 이번 한중 양자 회담에선 이 대화를 9년 5개월 만에 정례 협의체로 가동하되 외교부에선 차관, 국방부에선 국장급으로 기존보다 급을 높이기로 했다. 한중 양국은 정부 인사들에 민간 전문가들이 더해진 ‘반관반민(半官半民)’ 형태의 1.5트랙 대화 및 외교차관 전략대화도 올해 하반기부터 재개하기로 했다. 정부 소식통은 “2022년부터 외교안보 분야 고위급 채널 재개를 중국과 논의했지만 협의가 진전되지 않았다”면서 “이번에 최고위급 차원에서 막힌 혈을 뚫어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한중 양자 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북한 핵 개발, 북-러 군사협력이 지속되는 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평화의 보루 역할을 해달라”고 말했다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전했다. 대북제재 위반 여부를 감시하는 유엔 전문가 패널 활동이 지난달 종료된 가운데, 북한 문제를 두고 향후 중국에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한 것. 이 관계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활용한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가 임박해 있고, 다른 각종 미사일 도발도 섞어 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고도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문제나 윤 대통령의 방중 문제가 구체적으로 거론된 자리는 아니었다”고 전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윤 대통령이 회담에서 “한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며 이 같은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내용은 대통령실 발표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해 윤 대통령은 외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를 겨냥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고 밝혔고, 중국 당국은 이에 강한 불만을 제기한 바 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하루 앞둔 26일까지도 3국은 정상회의 공동선언 문구와 관련해 막판 조율 작업을 계속했다. 3국은 공동선언에 ‘(3국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 한다’는 취지의 문안을 포함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일본은 중국에 “북한 문제에 대한 건설적 역할”을 촉구해 왔다. 중국은 당초 북한 문제의 공동선언 포함을 꺼린 것으로 전해졌지만 최근 북한 핵·미사일 개발이 가속화된 만큼 최소한의 한반도 안보 관련 문안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한일 당국의 요청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26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회의에서 동북아 및 한반도 안보 정세 관련 논의는 경제협력 등과 비교해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3국의 공통적인 목표’라는 점과 ‘한반도·동북아시아 평화 및 안정 유지가 공동의 이해이자 책임’이라는 점은 공동선언에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문구들은 그동안 역대 8차례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선언 가운데 6차례 담겼다. 이런 가운데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이번 정상회의 공동선언 초안에 3국이 ‘힘 또는 위압에 따른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국제법과 국가 간 합의에 기초한 의무 준수의 중요성을 확인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25일 보도했다.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는 남중국해와 대만 등에서 중국의 위협적 행동을 겨냥한 표현이다. 이 때문에 “북한 문제 및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 반대’ 관련 문구 등에 중국이 반발해 (3국 간 막판) 조율이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경제협력과 무역 분야와 관련해선 3국이 공동성명 초안에 ‘규범에 근거해 개방적이고 공정한 국제 경제질서 유지·강화에 공동 책임이 있고 3국 무역량을 늘려 나간다’는 등 목표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3국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협의 가속 방침이나 3국 정상, 장관 등이 참여하는 정기 회의 개최 필요성도 초안엔 포함됐다고 한다.다만 정부 고위 소식통은 “초안은 말 그대로 초안”이라며 “일부 이견 등을 좁히고 공동선언 최종 문안이 확정되는 건 27일 3국 정상회의 직전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앞서 우리 정부는 이번 공동선언에 인적 교류, 기후변화 대응, 경제통상, 보건·고령화 대응, 과학기술·디지털 전환, 재난·안전 등 우리 정부가 일본과 중국에 제시한 6개 분야 협력방안이 담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27일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중국 측에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아닌 ‘2인자’ 리창(李强) 총리가 참석한다. 중국은 첫 한중일 정상회의가 개최된 2008년 이후 이번까지 9차례 모두 총리를 참석시켰다. 중국 입장에선 관례대로 총리를 참석시키는 거라 주장할 수 있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정상이 참석하는 만큼 중국도 격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이 3국 정상회의에 총리를 보내는 건 주석은 정치·외교·군사, 총리는 경제 분야와 내치를 맡는 방식으로 국제 행사 등 업무 분담을 해온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에선 1982년 덩샤오핑(鄧小平) 주석이 개헌을 통해 도입한 당정분리 원칙에 따라 이러한 원칙이 생겼다. 정부 소식통은 “경제 협력은 꾸준히 3국 회의의 주요 의제였다”면서 “그런 만큼 한일이 (중국의 총리 참석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한중일 정상회의가 처음 개최된 건 2008년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재임 시절이던 이때 중국에선 당시 경제 분야에서 상당한 전권을 행사하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참석했다.하지만 시진핑 주석이 2013년 집권하면서 상항이 달라졌다. 시 주석에서 권력이 집중되는 ‘ 1인 체제’가 크게 강화된 것. 앞서 시 주석은 3월 국무원조직법 개정을 통해 총리 권한과 역할을 대폭 축소하고, 당정분리 원칙도 폐기했다. 리 총리는 시 주석의 저자성 성장 및 당 서기(2002~2007년) 비서실장을 맡은 측근이기도 하다.외교가에선 한중일 정상회의 의제가 지역·안보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데다 경제 이슈에 대한 중국 총리의 역할이 약화된 만큼 주석이 직접 참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한미일 협력 제도화 성과와 별도로 한중일 3국 협력 강화를 위한 물밑 교섭과 진통을 계속해 왔다고 밝혔다. 26, 27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는 소통의 결과물이자 신뢰, 협력 강화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강제징용 배상 문제로 불거진 한일 관계 경색과 관계 정상화 등 4년 5개월 만에 회담이 성사되기까지 진통이 적지 않았다. 한계도 묻어난다. 미중 관세 전쟁 등 미중 경쟁 심화, 북핵 고도화라는 지정학적 조건 속에 3국 협력의 퍼즐을 맞춰야 하는 만큼 경제·공급망 협력 수위, 대만 문제, 북핵과 대북 제재 이행 등에 대한 이견도 적지 않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북한 비핵화 문제, 남북 관계는 한일중 3국이 간단하게 짧은 시간에 깨끗한 합의 결과를 내기 어렵다”고 밝힌 것도 3국 관계의 복잡성이 묻어난 장면이다.● 대통령실 “3국 협력 체제 완전히 복원, 정상화” 윤 대통령은 26일 리창(李强) 총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각각 양자 회담을 갖는다. 리 총리의 방한은 지난해 3월 총리 취임 이후 처음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양국 간 전략적 소통 증진, 경제통상 협력 확대, 중국 내 우호적 투자 환경 조성, 인적 문화 교류 촉진, 한반도 정세를 포함한 지역 및 글로벌 현안에 대한 협력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우호적 분위기를 내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로 성사가 예상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으로 연결하려는 심리도 엿보인다. 기시다 총리와 갖는 한일 정상회담에선 공고화된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최근 불거진 라인야후 사태를 논의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혹시라도 양국 정상이 각자 꼭 제기하고픈 의제가 있으면 현장에서 제기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27일에는 3국 정상회의와 비즈니스 서밋이 열린다. 협력 지역적 범위를 인도태평양 지역 및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한일 정상이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 자세를 요청할 가능성을 비롯해 북핵 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대다수의 시간은 경제, 민생 관계, 무역, 산업, 공급망 등에 할애될 것”이라며 “한일중 3국 협력 체제를 완전히 복원하고 정상화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차장은 “논의 결과는 3국 공동선언에 포함될 것”이라며 “정상들의 협력 의지가 결집한 결과물인 만큼 각급별 협력 사업의 이행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중일, 안보문제 합의 어려울 듯 한중일 정상회의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관세 전쟁 등 경제 이슈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와중에 열린다. 한국, 일본은 미국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중국은 미국 견제에 초점을 맞추는 만큼 공동성명 문안 수위를 놓고는 이견이 적지 않다고 한다. 3국은 보호무역 심화에 따른 자유무역 훼손, 글로벌 공급망 불안 등 역내 경제안보 분야 도전 과제에 대한 공동 대응 필요성엔 공감하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자유무역, 다자주의를 인정하고 3국이 기업 친화적 환경을 조성해 공정 경쟁의 장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역내 경제안보 불안정성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인도태평양 지역 내 한미일 공조 강화에 따라 남중국해·대만 문제나 북핵 문제 등에서 한일, 중국의 입장 차가 극명해 세부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문안은 담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반도체 등 자국 첨단 기술에 대한 미국 수출 규제에 맞서 3국의 자유무역 확대를 원하지만 경제 안보에서 미국과 밀착 중인 한일은 신중해 보인다. 직전 회의인 2019년 3국이 채택한 ‘향후 10년 3국 협력 비전’ 문서에 담긴 “자유무역협정(FTA) 실현을 목표로 관련 협상을 가속해 나갈 것”이라는 문구도 이번 공동선언에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북한의 대남 기구인 통일전선부 명칭이 ‘노동당 중앙위 10국’으로 변경된 가운데 북한 내부에서 이 조직이 ‘대적지도국’이라는 별도의 명칭으로 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 관계를 적대국 관계로 규정한 뒤 대남 기구를 정리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기존 우리 정부의 국가정보원과 통일부 기능을 모두 갖춘 통전부가 보다 노골적인 대남 공작 전문 조직으로 개편된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23일 “북한에서 ‘대적지도국’이라는 노골적인 명칭이 사용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사실상 한국을 적으로 규정한 적나라한 표현으로 통일 명칭을 지우는 수준을 넘어 옛 통전부의 공작 기능을 대폭 강화해 나가겠다는 조직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대남 공작 기능을 제외한 남북 대화 등 나머지 대남 사업 부문을 담당하는 통전부 내 일부 인원들이 이번 조직 개편으로 외무성으로 흡수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 외무성이 조태열 외교부 장관 방중을 비난하는 담화에서 ‘정객(政客)’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이례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당시 박명호 외무성 부상은 “한국 외교관들이 20세기 케케묵은 정객들의 외교 방식인 청탁과 구걸 외교로 그 누구에게 건설적 역할을 주문한다고 해도 우리는 생명과도 같은 주권적 권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정부 소식통은 “정객은 예전 통전부 산하에 있다가 내각 산하로 이동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자주 쓰던 표현”이라며 “대남 담당 인원이 외무성에 흡수돼 현 조직 규모는 통전부 시절보단 줄어든 것으로 평가한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관련 질의에 “통전부 개편과 관련 조직, 인원의 재배치 동향 등을 지속적으로 추적, 확인 중에 있다”고 밝혔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국가통합인증마크(KC) 없는 해외 일부 품목의 직접구매(직구)를 금지하겠다는 정책이 사흘 만에 철회된 데 이어 고령자의 운전자 자격 제한 정책 발표를 둘러싸고도 혼선이 이어지면서 정부의 정책 조율 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여권에서는 정부 내 레드팀(Red Team)의 부재 때문에 정책 혼선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레드팀은 ‘헛발질 정책’ 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역풍과 부작용을 점검하기 위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는 조직을 뜻한다. 정책 추진에 따른 파장을 예상하고 대응할 정무 역량을 갖춘 인사들이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들에 부족한 탓에 정책 리스크 대응 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22일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통령실과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대로 된 레드팀 역할을 하는 조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주 69시간 근무’ 논란 이후 대통령실 내에서 정책 조정 기능 강화 필요성이 거론됐고 이후 정책실장 신설 등으로 기능을 보강했지만 레드팀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지난해 국정기획수석비서관실 소속 젊은 행정관들에게 정책에 대한 다양한 여론을 청취하고 의견을 내는 역할을 맡긴 적은 있다. 여권 관계자는 “젊은 행정관들이 의견을 내면서 비공식적으로 일종의 레드팀 역할을 한 측면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 역시 어디까지나 의견을 들어보자는 차원이었다”고 했다. 최근에는 젊은 행정관들의 목소리를 듣는 분위기도 약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부처에도 레드팀이 안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해외 직구 종합 대책 태스크포스(TF) 내에서 ‘소비자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우려가 나왔음에도 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한 부처의 국장급 공무원은 “소관 부처가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면서 레드팀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여당 의원은 “정책 의사 결정 과정의 경직화 분위기가 정부 여당을 휘감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정책 엇박자는 공매도 재개를 두고도 드러났다.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를 시사한 뒤 시장이 들썩이자 대통령실은 22일 “불법 공매도 해소, 투자자 신뢰 시스템이 갖춰질 때까지 공매도를 재개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레드팀조직 내부에서 의도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고, 조직을 혹독하게 검증하는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하는 팀. 의사 결정 결과로 발생할 수 있는 역풍 등을 미리 점검하는 기능을 한다.정책리스크 대응 전문가 없어… “제 기능 못하는 정무 복원 시급”[정책 혼선, 구멍난 대응체계] ‘레드팀’이 안보인다추경호 “당과 정책협의 촉구” 당일… 정부, ‘고령자 운전자격 제한’ 발표국조실 “직구금지, 홍보 가능한 이슈”… 보고 받은 대통령실, 정무 판단 놓쳐與지도부 잦은 교체, 당정 소통 약화 21일 오전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 비공개 회의에서 정점식 정책위의장은 정부가 고령자에 대한 ‘조건부 운전면허’ 도입을 검토한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정부에 시정을 요구했다. 애초에 당에 보고가 되지 않았던 내용을 언론을 통해 범부처 종합대책으로 접한 데다 전국 500만 명에 달하는 고령자의 이동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뒤늦게 경찰청은 해명 자료를 배포했다. 국가통합인증마크(KC) 인증을 받지 않은 80개 품목의 해외 직접구매(직구) 금지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가 20일 오전 “정부는 국민 민생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 정책 입안 과정에 당과 충분히 협의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음에도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은 여당과 협의 없이 당일 오후 고령자 운전자격을 제한하는 취지의 정책을 발표했다.● 국조실, 대통령실에 “해외 직구 금지는 홍보 이슈” 22일 여권에 따르면 정부 정책을 둘러싼 혼선이 계속되고 있는 구조적 원인으로 레드팀(Red Team) 부재와 함께 정책 추진에 따른 영향과 파급력을 두루 살필 정무 역량을 겸비한 인사가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에 부족한 것이 꼽힌다. 국민 여론이나 예상 반응, 정책의 부작용이나 역풍 가능성을 정책 구상 초기부터 살펴봐야 하는데 이런 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해 정책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해 주 69시간 근무 정책 발표로 불거진 논란으로 정책 리스크 대응 필요성을 대통령실이 절감했다”며 “이 시기 윤석열 대통령이 위기 대응을 적극적으로 하라고 주문해 시스템 개편도 이뤄졌다”고 말했다. 정책 조정 기능 강화를 위해 대통령실에 입성했던 이관섭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을 맡던 때다. 한 관계자는 “이 시기 정책 리스크 대응에 어느 정도는 체계가 잡혔다”면서도 “4·10총선 국면과 이후 대통령실 내 참모 교체가 이어지는 등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측면이 있다”고 했다. 해외 직구 금지 정책 발표 전 국무조정실은 “대국민 안전 강화를 위해 홍보할 수 있는 이슈”라고 대통령실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들의 반발 등 정책 발표가 가져올 역풍을 살펴보지 않은 단선적 보고였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역시 국민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데도 제동을 걸지 못한 셈이다. 여권 관계자는 “국무조정실에서 안전을 강화하는 만큼 홍보할 수 있는 이슈라고 대통령실에 보고를 한 것으로 안다”며 “파급력이 크고 민감한 이슈였는데 이를 정무적으로 잘 판단했다면 대통령실에서 시정하라고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 내부에서는 정책 총괄·조정 역할을 하는 국무조정실이 정책 수립 과정에서 정무적 판단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해외 직구 정책 철회 사태에선 TF 협의부터 발표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미인증 제품 직구 금지’라는 단정적 표현 사용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던 점이 아쉽다”며 “정책 위험 요인에 대한 분석만을 담당하는 인원을 두는 등 정책이 어떻게 수용될지 정무적 완성도를 높여야 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개별 부처 실무자에게까지 정무적 판단을 요구하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조급함도 정책 혼선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 관계자는 ‘해외 직구 정책 철회’ 논란과 관련해 “정부가 국민 안전에 손놓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안전 대책을 빨리 내놓으려다가 시간에 쫓겨 설익은 정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정책 조정-정무 판단 기능도 약화” 여당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준석 초대 당 대표부터 최근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까지 9차례 지도부가 바뀐 것이 당정 간 소통과 정책 조정, 정무 조정 기능 약화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2년 5월 정부 출범 후 2년간 여당은 4차례의 비상대책위원회를 거치고, 권한대행 직무대행 체제를 5차례 겪는 등 당 지도부 와해 및 재구성을 수시로 겪었다. 이런 과정에서 당정 정책 조정을 총괄하는 정책위의장도 여러 번 교체됐다. 당정 간 소통 연속성이 자연스럽게 약화됐다는 것이다. 당정 소통 상황을 잘 아는 한 전임 지도부 관계자는 “그립을 쥐고 정부에 압박하고 군기도 잡을 정책위의장이 계속 바뀌는데 정책위에서 무슨 힘이 생기겠느냐”며 “정부가 만약 당의 눈치를 살폈다면 이런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총선 참패 이후 당 지도부 공백 사태를 겪다 황우여 비대위가 출범하기까지 기간 동안 당정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문제점이 노출되자 새 원내지도부는 당정 소통 강화에 역점을 두기로 했다. 정책 조율을 위한 부처 장관과의 면담을 확대하고 당 정책조정위원회(정조위) 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당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가 너무 편하게 일을 했다”며 “이제부터는 직접 장관이나 부처 사람들이 와서 정책을 설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조위의 경우 22대 국회 개원 이후 국회 상임위원회가 구성된 뒤 활동할 수 있어 한동안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상화가 김일성 김정일 등 선대 초상화와 나란히 걸린 사진을 관영 매체를 통해 처음 공개했다. 김 위원장 위상이 선대와 같은 반열에 올랐다는 점을 드러내면서 그에 대한 독자적인 우상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주민들이 보는 대내 매체 노동신문은 22일 1∼4면에 걸쳐 김 위원장이 전날 평양 금수산지구 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준공식에 참석했다면서 여러 장의 사진을 보도했는데 그중엔 교내 혁명사적관 외벽에 김씨 3대의 대형 초상화가 걸린 모습이 담겼다. 김 위원장이 방문한 학교 교실 칠판 위에도 이들 초상화가 배치됐다. 그간 김 위원장 초상화만 별도로 포착된 적은 적지 않았지만 선대와 같은 반열로 내걸린 게 파악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앙간부학교에는 김 위원장 연설 장면을 형상화한 단독 모자이크 벽화도 들어섰다. 이 사진들은 노동신문뿐만 아니라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도 공개됐다. 통일부는 “북한 보도에서 김씨 3대 사진이 나란히 걸린 건 이례적”이라면서 “최근 김정은 혁명사상 등 사상 지도자로서의 위상 과시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정부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집권 10년을 넘기면서 본인이 선대들과 같은 반열에 올랐고 그들의 후광에서 벗어나 2010년대 말 등장한 ‘김정은주의’를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준공식에서 “중앙간부학교를 세계적인 학원으로 건설하는 것은 김일성-김정일주의 당의 명맥과 백전백승의 향도력을 천추만대로 이어 나가기 위한 최중대사(가장 중요한 일)”라고 말했다. 북한의 최근 선대와 차별화된 김 위원장 우상화를 강화하면서도 김 위원장의 혁명 사상이 김일성·김정일 등 선대의 이념의 토대 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3대 초상화가 내걸린 혁명사적관 맞은편 건물에는 사회주의 이론의 근간을 세운 사상가인 카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다. 김씨 3대와 마르크스·레닌 초상화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구도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지금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 체제에 반항하는 크고 작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 소중한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오가와 하루히사(小川晴久·84) 도쿄대 명예교수는 21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가와 교수는 30년간 북한 인권 운동에 헌신해 일본에서 ‘북한 인권 운동의 시조’로 평가받는다. 그는 북한 인권단체 물망초(이사장 박선영)가 선정한 제3회 ‘물망초인(人)’으로 선정돼 이날 방한했다. 오가와 교수는 최근 북한 당국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는 등 북한 주민들을 옥죄고 있지만 한국 문화 유입 등으로 젊은 세대의 인식이 변하고 있는 현 상황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은 계속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북한 사회에 알리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면서 “이는 북한의 변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오가와 교수는 “북한 당국은 아직도 정치범수용소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놀라운 거짓말”이라며 “정치범수용소는 여전히 노예 노동의 생산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던 한 일본인이 정신 이상으로 수용소에서 나온 지 한 달 만에 사망한 사례를 언급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오가와 교수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두고 “과거 민주화운동에 성공한 세력이 북한 인권 유린 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는 상황이 안타까웠다”고 평가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친북 성향 때문에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소중한 시간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지체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2002년 ‘북한 정치범수용소 해체 운동본부’라는 한국 단체가 창설됐다가 당시 정부가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북한 민주화 운동본부’로 명칭을 변경시킨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1960년대 초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매료돼 재일 한국인 북송을 지지하는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했던 도쿄대 학생이었다. 1993년 8월 정치범수용소가 북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뒤 1994년 일본에서 ‘북조선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었다. 1996년 한국 최초의 북한 인권단체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창립되기 2년 전이다. 2008년엔 북한 정치범수용소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 ‘No Fence’를 창설해 지금까지 대표를 맡으면서 강연회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최근 출간된 문재인 전 대통령 회고록에 대해 “북한의 능력을 무시한 채 의도에만 초점을 맞추면 정세를 오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이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적은 문 전 대통령 주장을 정부 고위 당국자인 김 장관이 처음으로 강도높게 비판한 것이다. 김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의도를 전적으로 믿는다면 대단히 부정적인 안보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1938년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와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이 당시 체결한 뮌헨협정을 거론했다. 김 장관은 “체임벌린 총리는 히틀러의 의도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것이 대표적인 유화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며 “그 결과 히틀러가 이듬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고 했다. 아울러 “(문 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 실패를 미국의 책임, 동맹국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잘못됐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2019년 11월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을 언급하면서 “지난해 동해, 서해에서 어선을 타고 탈북한 두 가족이 있는데 이중 한명이 ‘문재인 정부가 아직 있다면 탈북을 결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당시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2020년 서해에서 북한군에게 피살된 공무원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는 문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당시 사건을 언급하며 “북한에 연락할 길이 없어 속수무책이었다”고 밝힌 데 대해 “서욱 당시 국방부 장관은 ‘(북한과의) 채널은 존재하지만 군사 기밀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나에게 얘기했다. 이인영 당시 통일부 장관도 ‘북한에 연락을 계속 취하고 있는데 수십 번 연락하면 한두 번 응답 한다’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이 씨는 “여러 (대북) 채널이 있었음에도 직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며 “회고록은 문 전 대통령의 범죄 자백서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