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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을 둘러싼 이념·세대 간 논쟁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현대사와 관련해 ‘불티가 날아들기를 기다리는 기름 창고’와 같은 상황임을 보여 준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아직도 현대사에 대해 합의된 기억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시장’ 흥행 의미를 사회·심리학자들에게 들어 봤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을 배경으로 ‘당시 희생으로 지금의 한국을 세운 것이 아니냐’는 메시지가 현 정치 상황과 맞물리면서 논란이 커졌다. ‘변호인’ ‘광해’도 그렇지만 영화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 정치적 논쟁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영화는 오락으로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중장년 관객의 호응은 현재 세대가 과거를 망각하는 것에 대한 과거 세대의 집단 무의식적 반격으로 보인다. 복합적 과거의 결과로서 현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집단적 기억을 합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거울 효과’가 50대 이상 세대에 심리적 치유 기능을 하는 것 같다. 거울효과는 자신과 공통점을 지닌 대상에게 호감을 느끼고 유대감을 형성한다는 것인데 영화를 통해 무의식 속에 쌓인 ‘감정의 찌꺼기’를 치유하는 셈이다. 특히 50대 이상은 그동안 적절히 평가받지 못했던 생애와 가치를 영화가 긍정적으로 인정해 줌으로써 오래된 응어리를 풀어 낼 수 있다. 정양환 ray@donga.com·조종엽 기자}

“이 정도 수준도 부정하면, 한반도에서 저지른 짓은 어쩌자는 거야.” 지난해 12월 31일 한 영화평론가는 영화 ‘언브로큰’(8일 개봉) 시사회를 본 뒤 투덜거리듯 한마디 했다. 개봉 전부터 일본 극우의 성마른 반응으로 주목받은 이 영화는, 평론가 반응처럼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묘사만 놓고 보면 가소롭기 짝이 없다. 물론 작품성과 별개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루이(잭 오코널)는 언제나 부모 속을 썩이던 말썽쟁이. 어느 날 형의 권유로 육상을 시작하며 자신의 재능에 눈을 뜬다. 열아홉에 베를린 올림픽까지 출전하며 주목받는 운동선수가 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나라의 부름을 받는다. 공군으로 입대해 여러 전투를 치르던 루이는 아군 구조작전에 나섰다가 태평양에 추락하게 되는데…. 망망대해에서 동료들과 47일이나 표류하다 겨우 목숨을 건지지만, 그를 구한 건 다름 아닌 일본 군함. 전쟁포로로 수용소로 끌려간 루이 앞엔 잔혹한 일본군의 폭압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 국내에도 출간된 동명소설이 원작인 영화는 지난해 7월 세상을 떠난 루이 잠페리니(1917∼2014)란 인물의 실제 경험을 다뤘다. 원작자 로라 힐런브랜드가 7년 동안 그를 취재했을 만큼 꼼꼼한 사실에 바탕을 뒀다. 이를 조엘, 이선 코언 형제가 각본에 참여하고 스타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연출을 맡으며 화제를 모았다. 졸리 감독은 “어둠을 헤치고 빛을 찾는 젊은이의 여정이 큰 영감을 줬다”고 소회를 밝혔다. 영화는 꽤나 매끈한 이음새를 갖췄다. 잠페리니의 삶이 워낙 극적이라 담담하게 흘러가는데도 울림이 있다. 여러 차례 등장하는 “견딜 수 있으면 이길 수 있다”는 잠언도 설득력 있다. 오코널은 물론이고 와타나베 상병을 연기한 일본 록 뮤지션 미야비의 연기도 나쁘지 않다. 허나 일부겠지만 일본의 유치한 반응이 아니었다면, 그냥 ‘괜찮은 작품’이었을 영화가 이만큼 시끄러웠을까 싶긴 하다. 미 일간지 USA투데이에 따르면 일 극우세력은 졸리 입국 거부 및 영화 보이콧 운동을 벌이고 있다. 조부모가 한국계로 알려진 미야비도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 한다. 근데 솔직히 영화에서 묘사한 일본군 만행은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왜 루이만 괴롭히나 싶은 것 외엔 훨씬 잔혹하고 비열했던 당시의 일들을 순화한 듯한 기분마저 든다. 뻔한 말이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된다. 그걸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니까. 다만 일본 극우의 태도를 비난하고 싶다면 우리 모습도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맘에 안 든다며 상영을 걸고넘어진 경험. 그리 오래전도 아니다. 15세 이상 관람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 정도 수준도 부정하면, 한반도에서 저지른 짓은 어쩌자는 거야.” 지난해 12월 31일 한 영화평론가는 영화 ‘언브로큰(8일 개봉)’ 시사회를 본 뒤 투덜거리듯 한 마디 했다. 개봉 전부터 일본 극우의 성마른 반응으로 주목받은 이 영화는, 평론가 반응처럼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 묘사만 놓고 보면 가소롭기 짝이 없다. 물론 작품성과 별개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루이(잭 오코넬)는 언제나 부모 속을 썩이던 말썽쟁이. 어느 날 형의 권유로 육상을 시작하며 자신의 재능에 눈을 뜬다. 열아홉에 베를린올림픽까지 출전하며 주목받는 운동선수가 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나라의 부름을 받는다. 공군으로 입대해 여러 전투를 치르던 루이는 아군 구조작전에 나섰다가 태평양에 추락하게 되는데…. 망망대해에서 동료들과 47일이나 표류하다 겨우 목숨을 건지지만, 그를 구한 건 다름 아닌 일본 군함. 전쟁포로로 수용소로 끌려간 루이 앞엔 잔혹한 일본군의 폭압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 국내에도 출간된 동명소설이 원작인 영화는 지난해 7월 세상을 떠난 루이 잠페리니(Louis Zamperini·1917~2014)란 인물의 실제 경험을 다뤘다. 원작자 로라 힐렌브랜드가 7년 동안 그를 취재했을 만큼 꼼꼼한 사실에 바탕을 뒀다. 이를 조엘, 에단 코엔 형제가 각본에 참여하고 스타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연출을 맡으며 화제를 모았다. 졸리 감독은 “어둠을 헤치고 빛을 찾는 젊은이의 여정이 큰 영감을 줬다”고 소회를 밝혔다. 영화는 꽤나 매끈한 이음새를 갖췄다. 잠페리니의 삶이 워낙 극적이라 담담하게 흘러가는데도 울림이 있다. 여러 차례 등장하는 “견딜 수 있으면 이길 수 있다”는 잠언도 설득력 있다. 오코넬은 물론 와타나베 상병을 연기한 일본 록 뮤지션 미야비의 연기도 나쁘지 않다. 허나 일부겠지만 일본의 유치한 반응이 아니었다면, 그냥 ‘괜찮은 작품’이었을 영화가 이만큼 시끄러웠을까 싶긴 하다. 미 일간지 USA투데이에 따르면 일 극우세력은 졸리 입국 거부 및 영화 보이콧 운동을 벌이고 있다. 조부모가 한국계로 알려진 미야비도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 한다. 근데 솔직히 영화에서 묘사한 일본군 만행은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왜 루이만 괴롭히나 싶은 것 외엔 훨씬 잔혹하고 비열했던 당시의 일들을 순화한 듯한 기분마저 든다. 뻔한 말이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된다. 그걸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니까. 다만 일본 극우의 태도를 비난하고 싶다면 우리 모습도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맘에 안 든다며 상영을 걸고 넘어진 경험. 그리 오래 전도 아니다. 15세 이상 관람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독립다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사진)가 28일 344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다양성영화 1위에 올랐다. 곧 400만 명도 넘어선다고 한다.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주인공인 강계열 할머니의 근황이다. 당연하다. 감동이 컸으니, 조병만 할아버지까지 돌아가셨으니 이후 어떻게 사시는지 궁금한 게 인지상정이다. 근데 난감하다. 진모영 감독은 “관심은 고맙지만 할머님을 위해 자제해 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영화사도 “마케팅과 관련된 일에는 할머님을 절대 끌어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다행이다. 2008년 영화 ‘워낭소리’가 흥행했을 때도 주인공 어르신들이 밀려든 인파에 고초를 겪었던 터. 내년이면 강 할머니는 91세다. 제작진에 안부를 물었다. 일단 할머니는 건강하시다. 무릎이 성치 않지만 정신은 맑다고 한다. 서울 등 육남매 네를 오가시며 영화도 서너 번 봤다. 첨엔 그리 우셨는데 요즘은 할아버지 뵙는다고 반긴단다. 그런데 여기엔 안타까운 사정이 담겨 있다. 자식 집에 머무는 게 할머니 ‘뜻’은 아니란 거다. 아들딸이 잘 모실 텐데 뭔 문제냐 싶지만, 평생 살던 환경에서 벗어나 낯선 도시생활이 어찌 쉬울까. 할머니도 “언제 집에 가냐”고 여러 번 물었다고 한다. 근데 어쩌랴. 그리 만류했건만 고향은 조용하질 않다. 최근에도 한 지상파 방송이 마을을 들쑤셔 이웃이 불편을 겪었단다. 할아버지 기일인 21일에 할머니는 강원도 집에 다녀오셨다. 함께 간 진 감독과 한경수 PD는 산소 앞에서 영화 포스터와 DVD를 불태웠다. 할머니 부탁이었다. 생전에 할아버지는 감독을 ‘일곱 번째 아들’이라 불렀는데, 그곳에서 보시고 좋아하실 거라며. 잠깐 집에 들러 아궁이에 불을 때셨다. 함께 사실 땐 온기가 넘쳤다며. 그러고는 또 한참 눈물을 훔치셨단다. 제작비 1억2000만 원이 든 ‘님아…’는 29일 현재 누적 매출액이 277억 원을 넘어섰다. 수익 배분과 관련해서도 제작자는 말을 아꼈다. “할머님과 가족에게 누를 끼칠까 잠도 안 와요. 영화 탓에 힘드신데도 ‘아들 작품 잘돼 좋다’고 하시는 분이에요. 문제라도 생기면 돈이 뭔 소용입니까. 저희는 평생 죄인이 될 겁니다.”(한 PD)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전화를 끊으니 겨울바람이 낯짝을 때렸다. 그래, 이제 알겠다. 언제나 곱게 차려 입던 양반들이 잠자리까지 공개했던 이유를. 그건 제작진을 자식으로 받아들였던 맘이었다. 영화가 한 줌이라도 감동을 줬다면, 우리가 할머니를 도와드릴 차례다.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머님, 건강하세요.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28일 역대 다양성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홍보사인 ‘영화사하늘’은 “‘님아…’가 28일 오후 344만 명을 돌파해 다양성영화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고 밝혔다. 기존 다양성영화 최고 흥행작은 올 8월 개봉한 미국 영화 ‘비긴 어게인’이 세운 343만 명이었다. ‘님아…’는 25일 ‘워낭소리’(293만 명)가 세운 다큐멘터리 흥행 기록도 깼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크리스마스이브는 다들 잘 보내셨는지. 만족스러웠건 아니건 연말 연초 분위기는 성탄절부터 시작된다. 허나 ‘따신’ 구들방에 누워 TV 리모컨을 돌리는 이도 많을 터. 해마다 틀어대 어디서부터 봐도 다 아는 ‘나 홀로 집에’나 ‘다이하드’가 지겹다면 극장가로 나서 보자. 마침 딱 크리스마스는 물론이고 연말 분위기가 물씬한 미국 영화 ‘숲 속으로’가 24일 개봉했고, 프랑스 영화 ‘노엘의 선물’이 다음 달 8일 관객들을 찾아온다.○ ‘숲 속으로’ 간절히 원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인 빵집 주인 ‘베이커 부부’(제임스 고든&에밀리 블런트). 어느 날 이웃 마녀(메릴 스트립)가 찾아와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준다. 3일 남은 푸른 달이 뜰 때까지 마녀가 요구한 4개의 물건을 찾아야 하는데…. 모험에 나선 그들은 빨간 망토 소녀(릴라 크로퍼드)와 콩 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잭(대니얼 허틀스톤) 등과 만나며 일이 꼬인다. 1987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숲 속으로’는 여러 차례 토니상을 휩쓸며 명성을 떨친 뮤지컬. 2002년 ‘시카고’로 뮤지컬 영화에 일가견이 있음을 증명한 롭 마셜 감독이 연출을 맡아 관심을 모았다. 배우들 역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블런트 외엔 뮤지컬영화 출연 경험이 있거나 뮤지컬 무대 경력을 지닌 이들로 구성돼 기본기를 갖췄다. 재료가 훌륭하면 요리도 웬만해선 망하지 않는 법. 영화 ‘숲 속으로’가 딱 그렇다. 탄탄한 원작에 근사한 배우들이 어우러져 화려한 진수성찬을 펼쳐 보인다. 보통 이런 작품은 원작을 본 관객들이 더 고대하지만, ‘숲 속으로’는 몰라도 재미나다. 신데렐라부터 라푼젤, 잭과 콩 나무, 빨간 망토 등 친숙한 동화들을 맛깔나게 뒤섞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원작동화와 전혀 다른 전개에 개그 코드도 버무려 정신을 쏙 빼놓는다. 뭣보다 놀라운 건 스트립과 블런트의 노래 실력. 특히 스트립은 ‘맘마미아!’에서도 선보이긴 했지만, 누가 대신 부른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늑대 역을 맡은 조니 뎁은 짧은 분량에도 여전히 강렬한 인상을 남기나 노래는 ‘래퍼’처럼 맛만 보여준다.○ ‘노엘의 선물’ 천식을 앓는 여섯 살 꼬마 앙투완(빅토르 카발)은 성탄절 산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있다. 루돌프 썰매에 올라타 별나라로 가보고 싶은 것. 그런데 크리스마스이브에 거짓말처럼 산타(타하르 라힘)가 창문 밖에 쿵 하고 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 산타는 선물은 없이 금딱지가 어디 있는지만 궁금해한다. 이상하긴 해도 소원을 풀고자 앙투완은 산타를 뒤쫓고…. 사실은 도둑이었던 산타는 꼬마를 이용해 또 다른 빈집털이를 계획한다. ‘노엘의 선물’은 보는 내내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오르는 작품이다. 바로 ‘나 홀로 집에’ 시리즈의 케빈(매컬리 컬킨). 1990년대를 풍미했던 케빈처럼 사랑스러운 꼬마 캐릭터를 오랜만에 만나는 기쁨이 크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케빈이 하도 야무져 ‘까져’ 보였다면, 곰돌이 푸우처럼 통통한 앙투완은 순수하다 못해 다소 어수룩하다. 모르는 사람 함부로 따라가지 말란 교육도 안 받았단 말인가! 개봉 타이밍은 아쉽다. 아무리 봐도 성탄절 특집영화인데 개봉이 내년 1월 8일이다. 센 영화들 피한 맘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래도 너무 늦다. 동화에 바탕을 둔 ‘숲 속으로’와 달리 현실세계를 다루는데도 훨씬 판타지 같은 이야기 전개도 살짝 거슬린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23일 오후 4시 반 서울 중구 소공동의 한 영화관. 평소 한산한 시간대인데도 한 관은 꽤나 붐볐다. 진한 팝콘 냄새를 풍기는 20대 연인부터 왁자지껄한 40대 여성들, 그리고 백발을 빗어 넘긴 노부부까지. 영화 속에서 98세 남편이 시름시름 앓자 곳곳에서 흐느낌이 효과음처럼 퍼졌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눈가가 벌겋던 관객 강모 씨(29·회사원)는 “얼마 전 돌아가신 할머니에 부모님, 미래의 내 모습까지 떠올라 남자친구 손을 잡고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76년을 해로한 황혼 노부부의 사랑과 죽음을 다룬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잔향이 갈수록 진해진다. 휴일엔 하루 30만여 명이 몰리며 23일까지 263만 명이 관람했다. 홍보사 영화사하늘은 “이 추세라면 크리스마스(25일)에 다큐멘터리 최고 흥행작인 ‘워낭소리’(약 293만 명) 기록을 깰 것이 확실시된다”고 밝혔다. 역대 다양성영화 1위인 ‘비긴 어게인’(약 343만 명)을 넘어서는 것도 시간문제다. ‘님아…’의 제작비는 약 1억2000만 원. 23일 현재 누적 매출은 204억3000여만 원으로 제작비의 170배 넘게 벌어들였다. 영화사하늘의 최경미 실장은 “중장년층은 비슷한 경험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청년층은 보편적 정서에 공감하며 76년을 해로한 노부부를 통해 ‘영원한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님아…’ 돌풍은 올해 문화계 전반을 흔드는 ‘어르신 신드롬’과 맞닿아 있다. ‘어르신 신드롬’은 그동안 비주류로 여겨지던 노년세대를 전면에 내세운 문화콘텐츠들이 ‘대박’을 치는 현상을 일컫는다. 중장년층 이상을 타깃으로 삼아 그들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판매하는 실버마케팅과는 결이 다르다. ‘돌아온 봄(回春)’은 특정 문화 장르에 국한되지 않았다. TV는 예능이 불을 댕겼다. 지난해부터 탄력 받은 tvN ‘꽃보다 할배’ 시즌2와 ‘꽃보다 누나’가 뜨거웠다. 하반기 최고 인기 예능인 ‘삼시세끼’ 역시 백일섭 윤여정 등이 출연해 관심을 모았다. 드라마에선 63세 가장 차순봉(유동근)이 중심인 KBS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가 시청률 40% 안팎에 이르며 고공행진하고 있다. 영화에선 ‘님아…’ 이전에 70대 할머니의 회춘을 다룬 ‘수상한 그녀’가 약 866만 명을 끌어모았다. 6월 스웨덴 영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도 화제였다. 동명소설은 올해 교보문고 집계 종합베스트셀러 1위(45만 부)에 올랐다. 공연에서도 이순재 신구 나문희 씨가 출연한 연극 ‘황금연못’(9∼11월)이 인기를 끌었다. 어르신 신드롬의 특징은 모든 세대를 아우른다는 점이다. CGV에 따르면 ‘님아…’는 관객의 약 70.6%가 10∼30대였다. 연극 ‘황금연못’도 30대 이하가 65.7%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신드롬의 바탕엔 ‘진정성’에 대한 사회적 목마름이 배어 있다고 분석했다. ‘존경할 만한 어른’을 찾기 힘든 시대에 오랜 연륜에서 우러나는 경험치를 배울 수 있고, 골치 아픈 정치색이나 계층 갈등에서 비교적 자유로워 어느 나이대나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며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문화를 통해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라며 “다만 노년의 삶을 매력적인 부분만 부각시키거나 노인을 친근한 캐릭터로 포장함으로써 노년의 현실을 다소 왜곡해서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양환 ray@donga.com·이새샘 기자}

여느 해처럼 2014년 영화계도 다사다난했다. 김한민 감독의 ‘명량’이 종전 국내 흥행기록을 모조리 갈아 치운 가운데 ‘인터스텔라’까지 천만클럽(관객 1000만 명 넘은 영화) 작품도 4편이나 됐다. ‘비긴 어게인’이 다양성영화 신기록을 세우는 등 작지만 강한 영화의 선전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한국영화는 개봉 편수가 지난해보다 늘었음에도 2010년 이후 4년 만에 외화에 밀려 점유율이 50% 아래로 떨어졌다. 7월 개봉한 ‘명량’의 광풍은 거셌다. 일일 관객 100만 시대를 열며 승승장구하더니 1761만 명을 넘겨 2009년 ‘아바타’(1362만 명)를 제치고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사회적으로도 이순신 신드롬을 일으키며 리더십이라는 화두를 던진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명량’에 앞서 ‘변호인’과 ‘겨울왕국’도 올 초 천만클럽에 가입했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변호인’(1138만 명)은 1월 19일 1000만 명을 넘어섰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변호인’은 정치영화로는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렛잇고’를 히트시킨 ‘겨울왕국’(1030만 명) 역시 애니메이션 최초의 천만클럽 입성이었다. 20일 현재 989만 명을 넘겨 이번 주에 1000만 명이 확실시되는 ‘인터스텔라’까지 올해 천만클럽 영화가 4편인 것도 새로운 기록이다. 8월 개봉한 음악영화 ‘비긴 어게인’은 약 343만 명이 들며 역대 다양성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종전 기록은 2008년 ‘워낭소리’가 세운 293만 명.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77만 명), 인간과 인공지능컴퓨터의 사랑을 다룬 ‘그녀’(35만 명)도 사랑받았다. 큰 화제를 모은 소규모 국내영화도 눈에 띈다. 4월 개봉한 ‘한공주’는 배우 천우희의 열연이 돋보였던 수작이다. 지난달 27일 개봉해 20일 현재 210만 명을 넘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기세도 엄청나다. 하지만 한국영화 전체로는 흉작에 가깝다. ‘명량’을 제외하면 올해 개봉한 영화 가운데 500만 명을 넘긴 작품이 ‘해적: 바다로 간 산적’(867만 명)과 ‘수상한 그녀’(866만 명) 2편밖에 없다. 허리에 해당하는 중간급 흥행작(300만∼500만 명)도 ‘군도: 민란의 시대’ ‘타짜-신의 손’ ‘역린’ ‘신의 한 수’ ‘끝까지 간다’ 5편뿐. 한국영화는 20일 현재 개봉작이 217편으로 지난해(183편)보다 늘었지만 점유율은 지난해 59.7%보다 10%P 이상 떨어진 48.6%에 그쳤다. 세월호의 아픔은 영화계로도 전이됐다. 4월 한 달간 지난해 동월 대비 약 206만 명(1126만→920만 명)이 줄었다. 5월부터 수치상으론 회복세에 들어섰지만 극장가 분위기는 오랫동안 경색됐다. 국내 4대 배급사의 성적은 엇갈렸다. CJ엔터테인먼트는 ‘명량’과 ‘수상한 그녀’가 대박을 친 데다 17일 개봉한 ‘국제시장’까지 20일 현재 110만 명을 넘기며 순항하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해적…’이 히트를 쳤고 ‘역린’ ‘타짜…’도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쇼박스는 대작 ‘군도…’가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신의 한 수’와 ‘끝까지 간다’로 체면치레했다. 대기업 계열사가 아닌 신생 배급사로 지난해 ‘7번방의 선물’ ‘숨바꼭질’ ‘감시자들’ ‘신세계’ 등 히트작을 줄줄이 내놓았던 뉴(NEW)는 ‘변호인’이 천만 영화에 올랐지만, 올여름 ‘해무’는 흥행 경쟁에서 밀렸고 이후 눈에 띄는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쌩한 바람에 머리털도 얼 지경이지만 스크린은 다시 달궈지고 있다. ‘명량’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등 한국 영화 대작 4편이 맞붙었던 여름마냥, 열흘 남짓 남은 올해 또 다른 기대작들이 몰려온다. 17일 먼저 개봉한 ‘국제시장’(CJ엔터테인먼트), 24일 선보이는 ‘상의원’(쇼박스)과 ‘기술자들’(롯데엔터테인먼트)이 주인공. 외화 ‘호빗: 다섯 군대 전투’와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만만찮은 가운데 국내 극영화 3편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갈까. ▽정양환=일단 ‘국제시장’은 개봉 첫날 20만 명을 넘으며 산뜻하게 출발했네. 때깔이 좋았어. 기자 시사에서도 많이들 울더라. ▽구가인=140억 원(순제작비) 어디 썼나 했더니 돈 바른 티가 잔뜩. 윤제균 감독 작품 가운데 가장 몰입도가 높았다는. 벌써부터 천만이 거론되는 정도이니. ▽정=명량처럼 군더더기가 없어 좋아. 덕수(황정민) 이야기에 집중해 깔끔했어. 신파이긴 해도 짜임새가 좋아 통한다고 봐. ▽구=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크게 4개 에피소드가 등장해. 흥남 철수와 파독 광부, 베트남전쟁, 이산가족찾기. 흐름이 매끄러웠어. 다만 감독은 일부러 정치는 뺐다는데, 그것도 일종의 정치적 선택 아닌가. ▽정=맞는 말인데, 감독의 자유지 뭐. 그걸 “영리하다”고 하건 “여우같다”로 보건 그것 역시 관객의 몫이고. 부산 출신인 내가 보기엔 제목과 달리 저잣거리의 애환이 별로 다뤄지지 않아 아쉬웠어. ▽구=황정민 노인 분장도 걸려. 70대가 아니라 80, 90대로 보였어. 요즘 어르신들 얼마나 피부가 좋은데.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한 20대가 차라리 나았어. ▽정=조연들의 연기는 플러스 점수. 라미란 김슬기는 정말 맛깔스럽더라. 진짜 든든한 고모랑 철딱서니 없는 동생 같더군. ▽구=입양 여동생(초이 스텔라 김)도 빼면 섭섭하지. 리얼리티 짱. 이래도 안 울래 싶더라니까. ▽정=‘상의원’은 다소 산만했어. 돌석(한석규)과 공진(고수)을 비롯해 여러 명이 이리저리 얽혀 집중력을 흩뜨렸어. ▽구=그래도 이야기 자체는 매력적이야. 조선 왕실의 의복과 재물을 담당하는 상의원(尙衣院)이란 배경도 신선했고. 근데 기대가 컸던 탓일까. 왠지…. ▽정=처음 20분은 몰입하면서 봤어. 이원석 감독의 전작 ‘남자사용설명서’ 같은 재기발랄함도 엿보이고. 근데 갈수록 우왕좌왕하는 기분이었어. ▽구=결정적으로 한복이 별로. 천재 디자이너 공진이 만든 옷의 매력이 당최 뭔지 모르겠어. 몇몇 한복은 어디서 그냥 대여한 느낌? 보는 내내 돌석의 연기가 안타깝더라는. 너무 좋은데 극이랑 잘 안 붙어. ▽정=한석규는 이젠 사극 장인이시니. ▽구=한복보다는 음악이 와 닿더라. ‘광해, 왕이 된 남자’ ‘도가니’로 유명한 영화음악감독 모그의 진가가 발휘됐어. ▽정=상의원에서 한석규가 중심을 잡아줬다면, ‘기술자들’은 조사장(김영철)이 딱 버텨주더구먼. 자꾸만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영화 ‘달콤한 인생’ 대사)가 떠오르긴 했어도. ▽구=그냥 이 영화는 ‘김우빈 종합선물세트’였어. 손발이 오그라들거나 식상한 장면인데도 그가 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돼. 딴 사람이면 욕했을 거야. ▽정=차진 윤기가 돌긴 하더라. 특히 맨발에 로퍼를 신은 장면은 여러 번 보여주던데. ‘발목 남신’ 탄생이여. ▽구=‘도둑들’ ‘범죄의 재구성’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어. ▽정=거기에 비하면, 그냥 단출하지만 정갈한 소반이지. 하지만 간접광고는 좀 지적해야겠어. 마트 커피숍에 캔커피 소주까지…. 다 배급사의 계열회사 상품인 건 거슬려. ▽구=정리해봅시다. 여름과 비슷한 판도가 되지 않을까. 국제시장 보고 뜨겁게 울고, 페이스메이커 기술자들로 열기 식히는 흐름이 될 것 같아. ▽정=거의 동의. ‘원 톱’일지 ‘쌍끌이’일지가 관건일 듯. 정양환 ray@donga.com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공진은 천재라기보다는 남들과 다른 사람입니다.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어 하죠. 누구나 그렇게 살진 않지만 한 번쯤 꿈꾸는 삶이 아닐까요.” 24일 개봉하는 영화 ‘상의원’에서 천재 디자이너 공진으로 나오는 고수(36)는 아직도 배역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 보였다. 대화를 나누다 뚝 끊긴 채 허공을 응시하는 게 작품에서처럼 테이블 위로 뛰어 올라가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평소 반듯한 이미지완 달라 보인다 했더니 “얽매이는 거 싫어한다. 물론 법은 잘 지켜야 한다”며 웃었다. ―사극은 첫 도전이었다. “정말 좋아하는 장르인데 이제야 하게 됐다. 원래 맛있는 건 아껴뒀다가 나중에 먹지 않나. ‘상의원’은 퓨전 사극인데 연기를 하면서 나중에 정통사극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다만 이번엔 천민이었으니 나중엔 왕을 해보고 싶다. 천민 신분으로 궁에 들어가니 매번 조아리고 분위기에 압도되더라.” ―조선의 천재 디자이너도 주눅이 드나. “물론 예의와 법도를 중시하는 돌석(한석규)과 달리 공진은 제 뜻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세상이 그를 품지 못하니 안타까움이 왜 없겠나. 게다가 신분의 속박 때문에 왕비(박신혜)를 향한 연정조차 숨겨야 하는 처지 아닌가. 마지막에 공진이 세상을 떠난 뒤 눈 오는 장면이 있다. 별 생각 없이 촬영장에 놀러갔다가 그 공백이 주는 울림에 펑펑 울었다. 지금도 그때 흐르던 헨델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를 들으면 울컥해진다.” ―역할에 흠뻑 빠지는 체질인가 보다. “연기는 잘하고 못하고가 없는 것 같다. 각자의 방식이 있는데 캐릭터에 몰입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예전엔 배우가 너무 멀고 높아 보였는데, 이젠 열심히 하다 보면 뭔가 이루지 않을까 싶다. 공진은 겉보기엔 천재지만 돌석과 마찬가지로 바느질로 손이 엉망이 된 인물이다. 노력이 중요하다.” ―영화에서도 왕비에게 ‘꿈을 꿀 수 있어 좋았다’고 말한다. “그게 공진의 옷과 왕비를 향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그는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옷을 입고 기뻐하길 바라는 인물이다. 왕비 역시 자신의 맘을 받아 달란 게 아니라, 공진의 옷을 입고 더욱 아름다워져서 왕(유연석)과 행복하길 기원한다. 뒤에서 누군가의 행복을 빌 수 있는 꿈을 꾼다는 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다.” ―본인도 그런 배우인가.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디자이너가 옷을 짓듯 우리가 힘껏 만든 영화에 관객이 공감하는 것만큼 고마운 일은 없다. ‘상의원’은 아름다운 의상을 쫙 펼쳤다가 애절한 사랑으로 폭 감싸 안는 영화다. 그 안엔 지금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생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올해 스크린은 뜨거웠다. 연초 ‘변호인’과 ‘겨울왕국’이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여름엔 ‘명량’이 1700만 이상을 동원해 세월호 사고 이후 이어진 극장가 침체를 깨고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약 220편의 한국영화가 개봉했으며, 총 1000편 이상의 영화가 관객을 만났다. 지난해보다 한국영화는 40편 가까이, 전체적으로는 100∼200편 많은 수치다. 본보 영화담당 기자 둘이 ‘우리끼리 어워드’를 통해 뜨거웠던 올 한 해 영화계를 정리했다. 여느 시상식처럼 작품성이나 연기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고 주장)하는 대신 가장 주관적인 잣대로 깨알같이 빛났던 캐릭터와 심쿵(심장이 쿵) 장면을 선정했다. △오 마이 캡틴 상=좋은 리더를 갈구하는 한 해였다. ‘명량’의 충무공(최민식)이 주목받은 이유다. 그러나 장군의 소통 기술이 21세기 조직에도 맞을까.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의 캡틴(크리스 에번스), ‘퓨리’의 워대디(브래드 피트) 등 여러 할리우드 리더가 후보에 올랐지만 단연 돋보인 건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의 시저였다.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 “인간의 땅은 거기, 유인원의 땅은 여기” 대사만 봐도 올해의 대장은 시저다. △등 근육 상=액션이건 에로건 남자 배우의 노출이 빛났다. 식스팩에서 등 근육 경쟁으로 옮겨간 게 특징. ‘신의 한 수’와 ‘마담 뺑덕’에서 몸을 던진 정우성, ‘인간중독’의 송승헌, 24일 개봉하는 ‘상의원’의 유연석도 훌륭했지만 가장 화제를 모은 등 근육은 ‘역린’의 정조(현빈)였다(곤룡포가 시스루였다면 관객이 늘었을지도). 허나 수상자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알란 할배(로베르트 구스타프손)다. 낑낑대며 요양원을 탈출하는 어르신의 굽은 등을 어찌 모른 척할 수 있나. △천상 서울사람 상=사투리와 외국어가 스크린에서도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지만, 어설픈 발음으로 ‘서울사람’ 정체성을 강조하는 배우도 있다. ‘타짜-신의 손’ 최승현(탑)은 시골 청년보단 유학 다녀온 서울사람 같았다. 반대로 미국 입양아 출신으로 나오는 ‘우는 남자’ 장동건은 자꾸 영어 욕을 해대도 숨길 수 없는 서울사람이었다. 그래도 수상자는 ‘군도: 민란의 시대’의 강동원이다. 전라도 양반임에도 ‘포준어(?) 따라하는 경상도 입양아’로 헷갈리게 할 만큼 ‘서울 사랑’이 컸다. △백팔가면 상=유해진, 오달수 등 1세대 신스틸러(주연 못지않게 주목받은 조연)들이 대작 한두 편에 출연하는 반면 라미란, 배성우, 김원해 등은 서너 달이 멀다 하고 스크린에 얼굴을 내밀며 차세대 신스틸러로서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이들도 이경영을 따라잡진 못했다. 이경영은 ‘무명인’ ‘백프로’ ‘관능의 법칙’ ‘군도: 민란의 시대’ ‘해적: 바다로 간 산적’ ‘타짜: 신의 한 수’ ‘제보자’ ‘패션왕’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나왔다. 이 정도면 ‘올해의 이경영 상’을 따로 둬도 되지 않을까. △베스트 과외수업=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부러워하는 한국인의 교육열은 영화 흥행의 변수다. 사극 ‘명량’ ‘역린’은 한국사 학습용, ‘겨울왕국’은 영어 교재로 활용됐다. 이 중 베스트는 ‘인터스텔라’. 세계적인 물리학자 킵 손이 자문에 응한 영화는 영미권에선 흥행이 저조했지만 국내에서는 재관람 열풍이 불며 1000만 고지를 앞두고 있다. △‘민증 까봐’ 상=세월에 도전하는 배우가 많았다. ‘두근두근 내 인생’ 송혜교야 여고생이라 해도 그러려니. ‘수상한 그녀’ 심은경은 그 안에 나문희 있다고 치자. ‘나의 독재자’ 설경구와 ‘국제시장’ 오달수의 20대 ‘회춘’은 좀 그랬다. 그러나 정말 경찰이 신분증을 요구할 대상은 ‘군도’ 돌무치(하정우). 36세의 몸으로 ‘뻔뻔스레’ 열여덟 청소년 행세를 해 가산점을 받았다. △베스트 드레서=영화가 패션을 주목했다. 성적보다 ‘간지’가 중요한 10대 이야기 ‘패션왕’이나 조선시대 디자이너를 그린 ‘상의원’도 있다. ‘아트버스터’ 별칭을 얻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엘사 드레스를 유행시킨 ‘겨울왕국’도 주인공 의상이 화제가 됐다. 그러나 수상자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조병만, 강계열 노부부다. 눈싸움 할 때도 커플룩(그것도 한복)을 고수하는 이들은 진정한 패셔니스타! △맛있는 ‘병맛’ 상=‘병맛’(B급 취향)은 이제 비주류가 아니다.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처럼 할리우드도 병맛을 좋아한다. 단연 빛났던 병맛은 ‘족구왕’이다. 웃음뿐 아니라 울림도 있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 다 족구하자. △끝내주는 한마디=영화는 말을 남긴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명량’) “국가란 국민입니다”(‘변호인’) “렛잇고∼”(‘겨울왕국’)처럼 국민 유행어도 있지만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한공주’) “생활비 벌러 나와요. 반찬값 아니고”(‘카트’)처럼 가슴을 먹먹하게 한 대사도 있었다. 하지만 수상의 영예는 ‘해적’ 속 유해진의 애드리브에 돌아갔다. “음파∼ 음파∼!” 기억하자, “음파음파 하면 살고 파음파음 하면 죽는다.”구가인 comedy9@donga.com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마이 프레셔스∼.” ‘반지의 제왕’ 3부작과 ‘호빗’ 3부작은 여기서 승부가 갈린 게 아닐까. ‘볼매(볼수록 매력 있는)’ 골룸이 없으니. 2001년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로 출발한 피터 잭슨 감독의 ‘중간계(원작자 J R R 톨킨이 창조한 가상세계) 6부작’이 끝에 다다랐다. 17일 ‘호빗: 다섯 군대 전투’의 개봉으로 13년에 걸친 작업이 드디어 매조지 된다. ‘해리포터’와 함께 21세기 판타지 영화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시리즈의 피날레를 목도할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아쉬울 터. 하지만 국내에선 3편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2003년) 같은 열기가 재현될지는 의문이다. 물론 호빗 3편 역시 대장정의 마무리답게 화끈한 전투가 펼쳐진다. 간달프(이언 매켈런)와 레골라스(올랜도 블룸)도 여전히 매력 있다. 근데 미적지근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 해외 흥행 성적에선 호빗과 반지 시리즈의 차이가 크지 않다. 반지 3편은 모두 30억 달러(약 3조2600억 원)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호빗: 뜻밖의 여정’(2012년)과 ‘…스마우그의 폐해’(2013년) 역시 각각 10억 달러 안팎의 수익으로 20억 달러가량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국내 극장가에선 온도차가 컸다. 반지 시리즈는 1편 387만 명, 2편 ‘…두 개의 탑’ 518만 명, 3편이 596만 명을 끌어모았다. 허나 호빗은 1편이 281만 명, 2편이 228만 명에 그쳤다. 반지는 시리즈가 나올수록 관객이 늘었으나, 호빗은 줄어드는 형세다. 이는 호빗의 태생적 한계에 기인한다. 호빗은 반지의 제왕보다 앞선 시기를 다루는 ‘프리퀄’이다. 뒷얘기를 다 아는 상황인지라 몰입도가 떨어진다. 국내에선 특히 프리퀄이 인기가 없는 편이다. 원작 소설도 반지의 제왕보다 박진감이 떨어진다. 반지의 제왕은 절대반지를 중심으로 선과 악이 제대로 맞붙는 깔끔한 구조인 데 비해, 호빗은 인간과 난쟁이, 요정, 오크 등 여러 족속의 이해관계가 산만하게 얽히며 느슨하다. 반지에선 주인공 프로도(일라이자 우드)가 확실히 얘기를 끌고 가지만, 호빗은 주인공인 프로도 삼촌 빌보(마틴 프리먼)의 존재감이 깃털처럼 날린다. 물론 ‘…다섯 군대 전투’는 그 자체로도 볼거리가 많다. 호빗 1편부터 HFR(초고속프레임·기존 영화의 2배인 초당 48프레임) 기술로 찍어 영상이 매끄럽고 선명하다. 3차원(3D) 아이맥스 버전으로 영화를 보노라면, 장대한 풍경 아래 펼쳐지는 호쾌한 전쟁의 긴장감에 흠뻑 빠져든다. 반지 3편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11개 부문을 싹쓸이하고 1, 2편 역시 6개의 상을 거머쥔 저력은 호빗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하지만 영화 호빗은 스토리 얼개가 헐겁다. 2편 엔딩에서 큰 기대를 걸게 했던 ‘최강 드래건’ 스마우그가 3부 초반에 어이없이 죽어버린다. 근사한 캐릭터 가운데 하나인 난쟁이 왕자 ‘참나무 방패’ 소린(리처드 아미티지)의 번뇌는 일면적이다.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이나 전투는 치열한데, 딱 그 수준이란 점도 아쉽다. 관객은 10여 년 전 눈높이에 머물러 있질 않으니까. 어쩌면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변한 걸지도. 이제 긴 여정을 마친 잭슨 감독도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나 보다. 먼 길 걸어온 그에게 석별의 건배를.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무도 내 말 들어주지 않아요. 저는 어떻게 해요….” 경남의 바닷가 마을. 베트남에서 시집온 투이(닌영란응옥)는 자상한 시아버지(명계남)와 치매 걸린 시어머니(김미경)를 모시고 산다. 그러던 어느 날, 마실 나간 남편이 오토바이 운전 도중 추락사했다는 비보가 들려온다. 투이는 자전거도 못 타는 남편이 오토바이를 몰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여기저기 도움을 청해보는데 어쩐 일인지 경찰과 마을사람들은 냉담하기만 하다. ‘안녕, 투이’(감독 김재한)는 한국에서 베트남 배우가 주연을 맡은 첫 번째 극영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입소문을 탄 이 영화는 하와이국제영화제와 두바이국제영화제 등 여러 곳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홍상수 감독도 “농촌사회의 문제점인 국제결혼이란 소재를 꾸미지 않고 잘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작품이 설득력을 지니게 된 데는 여 배우의 힘이 크다. 배우 및 가수 출신으로 현지 오디션을 통해 투이 역에 낙점됐는데, 한국말은 더듬거리고(원래 그렇잖나) 베트남어는 생경해 대사 소화력은 가늠이 안 된다. 하지만 특유의 처연함이 가득한 눈빛만으로 스크린이 꽉 찬다. 한국에서 베트남 여성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딱 저런 표정으로 어깨가 처져 있겠구나 싶다. 도시와는 또 다른, 시골의 ‘이면’을 적확하게 짚어낸 점도 매력적이다. 2008년 문학수첩작가상을 받았던 주영선 작가의 소설 ‘아웃’이 떠오른다. 촌은 언제나 정감 넘치는 곳으로 그려지지만 농촌(혹은 어촌)은 진입 장벽이 높은 ‘갇힌 사회’인 경우가 많다. 투이뿐만 아니라 전근 온 경찰 상호(차승호)도 이 벽에 부딪힐 정도니까. 투이의 설움은 소수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18세 이상 관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세월호 참사 등으로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2014년 갑오년이 저물고 있다. 경제상황도 녹록하지 않았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기업과 공공기관 등은 각 분야에서 이견이 없을 정도로 눈에 띄는 제품 서비스 콘텐츠 등을 내놓았다. 동아일보가 각계 전문가 및 업계에 자문해 올해 각 분야의 ‘최고 중의 최고(Best of best)’를 선정해 시리즈로 다룬다. 》중국 현지 언론의 뜨거운 관심 속에 영화 ‘명량’이 12일부터 중국 전역 3000여 개 극장에서 개봉했다. 올 한 해 한국영화계와 콘텐츠업계의 지형도를 바꿔놓은 ‘명량’이 한류 열풍이 뜨거운 중국에서 어떤 성적을 올릴지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된다. 이에 앞서 8월 15일 미국과 캐나다에서 개봉한 명량은 12월 6일까지 약 259만 달러(약 28억5000만 원)를 벌어 이전까지 북미 지역에서 가장 많은 흥행수익을 올렸던 한국영화인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4년·238만 달러)을 넘어섰다. 한국 시장 석권에 이어 해외에서 또 한 번 신기록 수립을 노리고 있는 ‘명량’을 동아일보가 선정한 ‘2014 베스트 오브 베스트’에 올리는 데 이견은 없었다. 7월 30일 개봉돼 문화를 넘어 한국사회 전반에 이순신 신드롬을 일으키며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최종 집계가 나오지 않은 가운데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명량은 약 1761만 명이 관람했다. 개봉 첫날 68만 명이 몰리고 역대 하루 최대 관객 수인 125만 명(8월 3일)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한 명량은 개봉 18일 만에 기존 역대 1위였던 2009년 미국영화 ‘아바타’(1362만 명)를 가뿐히 넘어섰다. 명량이 지금까지 올린 매출액은 1357억1905만 원. 3차원(3D) 영화인 아바타(1284억 원)를 넘어선 역대 1위다. 투자배급사인 CJ E&M이 분배받은 수익만 약 556억 원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사회는 왜 이토록 명량에 열광했을까. 명량은 개봉 전부터 흥행이 예상되긴 했다. 영화 성수기에 제작비 180억 원을 들인 대작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이순신 장군(1545∼1598)은 안티가 없는 영원한 국민 영웅이다. 하지만 조선 선조 30년(1597년) 울돌목에서 벌어진 명량대첩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역사적 사실이라 흥미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한 이도 적지 않았다. 2014년을 ‘명량의 해’로 만든 것이 오롯이 영화의 힘만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편장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은 “세월호 사고와 윤 일병 사건 등 사회적 이슈가 영향을 미쳤다”며 “위로가 필요한 대중에게 이순신이란 슈퍼히어로의 등장은 무척이나 반가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명량 속 이순신 장군이 민주적인 21세기형 리더는 아니다”며 “지속적인 경제위기와 사회적 혼란으로 국민이 절대적인 리더십을 열망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국내 천만 영화의 단골 주제인 민족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애국심 마케팅’도 한몫했다. 또 40, 50대가 역사교육을 목적으로 자녀를 동반하거나 부모님을 모시고 관람하며 명량의 흥행을 도왔다. 멀티플렉스 CGV에 따르면 명량의 경우 40대 관객의 비율이 32%로 기존 영화의 주 관객층인 20대(29%)와 30대(29%)보다 높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일본 추리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엔 꼭 이런 대사가 나온다. “범인은 이 안에 있습니다!” 트릭을 풀어낸 탐정이 좌중을 향해 던지는 선전포고. 캬, 멋지지 아니한가. 근데 평소 무심코 지나쳤지만 그 말을 듣는 이들은 어떤 기분일까. 죄가 있건 없건 심장이 벌렁거릴 터. 상황은 다를지언정 범죄현장에서 이런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흔히 접하는 신문을 보라. 때론 넘겨짚고 때론 으름장을 놓으며 여러 방식으로 죄를 자백하게 만들려 애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이 지점에 주목했다. 현 법체계 아래 이뤄지는 피의자 신문은 과연 적절한 선을 지키고 있는가. 결론부터 보자면, 저자가 보기엔 상당히 문제점이 많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형사사법제도는 ‘대립 당사자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공정한 판단자인 법원과 배심원 앞에서 검찰과 피의자 및 피고인이 ‘대등한 당사자’로서 공방을 벌여 진실을 밝히는 형사소송 구조”다. 죄를 가리기 전엔 누구나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평등하게 법 앞에 선다는 뜻이리라. 한데 문제는 이보다 앞서 벌어지는 경찰 수사가 공정성과 중립성을 해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경찰로선 억울할 수 있겠으나 기본적인 지향점이 기소에 맞춰지는 한 피의자는 약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안은 바로 ‘전자 녹화’다. 피의자 신문 과정을 모두 영상으로 촬영하면 인권침해가 사라질 수밖에 없단 얘기다. 실제로 미국에선 여러 주가 활용하고 있는데 효과는 긍정적이다. 피의자도 보호할뿐더러 신문이 진술과 자백 확보에 치중하지 않고 ‘객관적 정보’를 얻는 방향으로 바뀌어 사건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다소 어렵긴 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명확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상위로 고려해야할 대상은 인권이며 공권력의 효율성을 위해 이를 해치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 최근 미국은 ‘퍼거슨 시 사태’로 촉발된 경찰의 과잉수사와 인종차별 논란으로 시끄럽다. 오죽하면 신문 과정을 녹화하잔 얘기까지 나오겠는가. 허나 한국 사법체계 역시 뭐 하나 낫다고 말할 처지가 아니다 보니 되레 입맛이 쓰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얼마 전 영화 ‘국제시장’ 시사회 날. 극장을 나서며 울컥한 맘을 추스르는데 연신 전화벨이 울렸다. 평소에도 감상평을 묻는 이들이야 있었지만, 경쟁사들까지 이리 무더기로 묻는 건 처음. 헌데 옆 여기자 휴대전화는 감감무소식. 이유를 물어봤더니 깔깔 웃는다. “딱, 40대 남성이시잖아요!” 17일 개봉하는 ‘국제시장’은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봐달라고 대놓고 소리치는 영화다. 이는 극장을 찾는 데 가장 인색한 관객도 끌 수 있단 자신감의 발로이며, ‘천만 영화’를 노린 포석이다. 벌써부터 입소문이 심상치 않은 ‘국제시장’은 천만클럽에 입성할 수 있을까. 》 ○ Yes, 더할 나위 없다 1950년 흥남부두에서 피란 배에 오른 덕수(황정민)네 가족. 아버지(정진영)와 헤어졌지만 부산 남포동 국제시장에 먼저 터를 잡은 고모(라미란)의 도움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남동생 승규(이현)가 서울대에 합격해 목돈이 필요해지자 덕수는 ×알친구 달구(오달수)와 독일로 광부 일을 하러 떠난다. 그곳에서 간호사로 파견 나온 영자(김윤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잠깐 스토리만 들어봐도 찌릿 감이 온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게 아니었던 것이 아니었다”라는 변사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 일흔이 넘은 덕수의 회상 속에 그려지는 그의 젊은 시절은 한국 현대사와 맞닿아 있다. 6·25전쟁부터 1960, 70년대 ‘파독광부’와 월남 파병,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까지…. 누구나 ‘붓 잡으면 책 열 권은 쓴다’던 애절한 시대가 켜켜이 쌓이며 목이 멘다. 2009년 영화 ‘해운대’로 이미 천만클럽(1145만 명)에 가입한 윤제균 감독은 식상할 법했던 이야기 가닥을 쫄깃하게 비벼냈다. 덕수와 영자가 실제 양친 존함임을 밝히며 눈시울을 붉혔던 윤 감독이 온 힘을 들이부은 기운이 불끈불끈 느껴진다. 황정민은 극에 생명력을 활활 불어넣었다. 젊은 20대부터 스웨덴 특수분장팀까지 동원해 만들었다는 70대 노인까지 ‘잔 근육도’ 자연스러웠다. 오달수 역시 모처럼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했고, ‘월드스타’ 김윤진은 사투리는 어색했으나 제몫을 했다.○ No, 이건 아쉽네 매끈하게 잘 빠진 건 부인하기 힘들다. 제작비(180억 원)만큼 흥행 스코어도 엔간히 올릴 터. 하지만 모두가 만족할 영화인지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한국 현대사를 다루면서 ‘정치’는 빠뜨렸다. 영화 초반에 나비가 펄럭이며 시장 전경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국제시장은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1994년)가 되겠노라 선언한다. 하지만 약점까지도 닮았다는 게 문제. 검프만큼 역사를 뒤죽박죽 희화화하진 않았지만, 동전의 한쪽 면만 바라보는 순진한 시각은 아쉽다. 월남전 당시 한국이 베트남을 돕는 입장처럼 묘사하는 대목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는 감독의 선택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 반대편만 부각하는 작품도 즐비한 판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건’ 죄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 홍보글귀처럼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라기엔 왠지 ‘우리들만의’ 이야기에 갇혀버린 건 아닌지. “진짜 재밌다”고 강추는 하는데, “훌륭하다”고 하기엔 머뭇거려지는 이유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얼마 전 영화 '국제시장' 시사회 날. 극장을 나서며 울컥한 맘 추스르는데 연신 전화벨이 울렸다. 평소에도 감상평을 묻는 이들이야 있었지만, 경쟁사들까지 이리 무더기로 묻는 건 처음. 헌데 옆 여기자 휴대전화는 감감무소식. 이유를 물어봤더니 깔깔 웃는다. "딱, 40대 남성이시잖아요!" 17일 개봉하는 '국제시장'은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봐달라고 대놓고 소리치는 영화다. 이는 극장 찾는데 가장 인색한 관객도 끌 수 있단 자신감의 발로이며, '천만 영화'를 노린 포석이다. 벌써부터 입소문이 심상치 않은 '국제시장'은 천만클럽에 입성할 수 있을까. ●Yes, 더할 나위 없다 1950년 흥남부두에서 피난 배에 오른 덕수(황정민)네 가족. 아버지(정진영)와 헤어졌지만 부산 남포동 국제시장에 먼저 터 잡은 고모(라미란)의 도움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남동생 승규(이현)가 서울대에 합격해 목돈이 필요해지자 덕수는 X알친구 달구(오달수)와 독일로 광부 일을 하러 떠난다. 그곳에서 간호사로 파견 나온 영자(김윤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잠깐 스토리만 들어봐도 찌릿 감이 온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게 아니었던 것이 아니었다"라는 변사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 일흔이 넘은 덕수의 회상 속에 그려지는 그의 젊은 시절은 한국 현대사와 맞닿아있다. 6·25전쟁부터 1960~70년대 파독광부와 월남파병,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까지…. 누구나 '붓 잡으면 책 열권은 쓴다'던 애절한 시대가 켜켜이 쌓이며 목을 메인다. 2009년 영화 '해운대'로 이미 천만클럽(1145만 명)에 가입한 윤제균 감독은 식상할 법 했던 이야기 가닥을 쫄깃하게 비벼냈다. 덕수와 영자가 실제 양친 존함임을 밝히며 눈시울을 붉혔던 윤 감독이 온 힘을 들이부은 기운이 불끈불끈 느껴진다. 황정민은 극에 활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젊은 20대부터 스웨덴 특수 분장팀까지 동원해 만들었단 70대 노인까지 '잔 근육까지도' 자연스러웠다. 오달수 역시 모처럼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했고, '월드스타' 김윤진은 사투리는 어색했으나 제몫을 했다. ● No, 이건 아쉽네 매끈하게 잘 빠진 건 부인하기 힘들다. 제작비(180억 원)만큼 흥행 스코어도 엔간히 올릴 터. 하지만 모두가 만족할 영화인지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한국 현대사를 다루면서 '정치'는 빠뜨렸다. 영화 초반에 나비가 펄럭이며 시장 전경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국제시장은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1994년)가 되겠노라 선언한다. 하지만 약점까지도 닮았다는 게 문제. 검프만큼 역사를 뒤죽박죽 희화화하진 않았지만, 동전의 한쪽 면만 바라보는 순진한 시각은 아쉽다. 월남전 당시 한국이 베트남을 돕는 입장처럼 묘사하는 대목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는 감독의 선택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 반대편만 부각하는 작품도 즐비한 판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건' 죄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 홍보글귀처럼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라기엔 왠지 '우리들만의' 이야기에 갇혀버린 건 아닌지. "진짜 재밌다"고 강추는 하는데, "훌륭하다"기엔 머뭇거려지는 이유다.정양환기자 ray@donga.com}

“국악은 듣는 이의 정신을 치유하는 깊은 울림을 지녔습니다. 유럽에서 손꼽히는 음악축제에서 관객들을 사로잡은 최고의 인기 음악이기도 합니다.” 폴란드 바르샤바 주폴란드한국문화원(원장 김현준)에서 만난 크로스컬처 바르샤바 페스티벌의 마리아 포미아노프스카 예술총감독. 그는 내년에 열리는 11회 페스티벌에서 국악을 조명하는 특별프로그램 ‘포커스 온 코리아’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매년 9월 관객 1만∼2만 명이 몰리는 폴란드 최대 음악축제인 바르샤바 페스티벌에서 남미나 아프리카 대륙 섹션을 연 적은 있지만 한 국가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동·중부 유럽에서 권위 있는 음악축제가 국악에 매료된 이유는 뭘까. “2012년 안숙선 명창을 초청했을 때 공연장을 찾은 2000여 명이 숨소리도 내지 않고 흥부가에 빠졌습니다. 올해 바르샤바를 찾은 창작국악듀오 ‘숨’은 설문조사에서 ‘2014 최고의 공연팀’에 뽑혔고요. 포커스 온 코리아는 더 많은 국악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겁니다.” 크라쿠프국립음악원 교수인 그는 폴란드 전통음악과 국악이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12세기부터 이어진 민속춤곡 마주르카 리듬은 국악에 쓰이는 3박자와 닮았다. 한국 전통음계가 5도화음인 것처럼 폴란드도 5음계로 이뤄진 펜타토닉 스케일을 주로 쓴다. 포미아노프스카 감독은 “잦은 외세 침략에 고통 받은 역사를 지닌 탓인지 두 나라 국민의 정서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1996년 첫 방한 때 판소리를 듣고 전율했던 충격을 잊지 못한다”는 포미아노프스카 감독은 아쟁과 해금을 연주하는 국악 애호가. 이날 인터뷰 장소에도 분홍색 개량한복을 입고 나왔다. 올 10월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참석했다가 사 입었다고 했다. “세계 민속음악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국제월드뮤직페어’에서는 3, 4년 전부터 한국의 국악에 대해 ‘이렇게 대단한 음악이 있었느냐’며 관심을 보여요. 이런 수준 높은 전통음악을 보유했다는 걸 한국인들은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내년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국악연주가 ‘노름마치’와 ‘거문고팩토리’의 공연이 벌써부터 기대되네요.”바르샤바=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중국 만화가 리 선생은 골동품 시장에 마실 나갔다 우연히 그림 하나를 소개받는다. 1894년 일본인이 청일전쟁을 다룬 이 그림에서 리는 전황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각에 흥미를 느낀다. 좀 더 연구해 볼 목적으로 골동품 업자와 상의하던 중, 당시 일본 종군기자들이 찍은 희귀한 사진이 있단 사실을 알게 되고…. 리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본격적으로 사진들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2012년 국내에도 출간된 만화 ‘중국인 이야기’를 그린 저자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고교 졸업 직후 오랜 세월 군에 몸담으며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다. 이후 신문사 디자이너 등으로 일하다 만화 창작에 뛰어들었다. ‘중국인 이야기’는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서 대상 후보에 오르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자신의 경험을 담은 ‘내 가족의 역사’는 솔직히 매우 흥미로운 얘긴 아니다. 그림도 깔끔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 확 눈길을 끌진 않는다. 하지만 왠지 모를 긴장감 속에 묵직한 울림이 있는데, 이는 한국도 무관하지 않은 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만화 속에서 상당히 많은 면을 할애한 청일전쟁 사진들은 지금은 잊혀져 가는, 허나 결코 잊어선 안 되는 과거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뭣보다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아픔이나 분노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이는 한국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도 마찬가지다. 이를 되새겨 보는 작업들은 진정으로 공존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함이 아닐까. 이를 저자는 묵묵한 필치로 풀어내는데, 다소 국수적 입장이 배어나는 대목도 있어 살짝 아쉽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인간은 짐승이다. 솔직히 인간을 다른 동물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려놓을 아무런 근거가 없다.”(스티븐 로클리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 과연 그럴까. 미국 영화 ‘혼스’와 일본 영화 ‘갈증’을 보면 인간이 짐승보다 훨씬 못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둘 다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 머리에서 ‘뿔’이 자라는 혼스,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를 다룬 갈증. 두 영화는 진실에 다가갈수록 사랑하는 사람들의 ‘실체’를 마주하는 가혹한 운명을 그렸다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모두 18세 이상 관람가.○ 혼스, 사랑이란 이름의 무게 “죽을 때까지 사랑할게.”(이그·대니얼 래드클리프) “내가 죽을 때까지만 사랑해줘.”(메린·주노 템플) 영화 서막을 여는 대사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어릴 때부터 서로만 바라본 커플 이그와 메린. 하지만 메린이 시체로 발견되며 정말 ‘죽음’이 그들의 사랑을 파고든다. 사건 전날 메린과 다툰 뒤 만취했던 이그는 용의자로 지목되고, 억울해하던 이그는 어느 날 아침 머리에서 뿔이 나기 시작한다. 모두가 악마라 비난한 남자가 진짜 악마처럼 뿔이 솟는 혼스는 얼핏 황당무계하다. 게다가 뿔이 생긴 뒤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듯 그에게 감춰뒀던 흑심을 털어놓는다. 심지어 아버지와 어머니조차. 그들의 속내를 알게 되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그. 조금씩 드러나는 무거운 진실을 그는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의 묘미는 의외성이다. 농담 같은 설정인데 무겁고, 사랑 얘긴데 잔혹하다. 더 뜻밖인 건 주연을 맡은 래드클리프다. ‘해리 포터’ 잔상 탓인지 꽤 많은 후속작을 찍었는데도 이미지가 흐릿했는데, 혼스에서 제대로 ‘포텐’(포텐셜·가능성)이 터졌다. 어쩌면 아역배우 출신의 연기자가 대단한 배우로 발돋움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기회일지도.○ 갈증, 본능이란 위선의 그늘 전직 형사 아키카주(야쿠쇼 고지)는 전처인 기리코(구로사와 아스카)로부터 실종된 딸 가나코(고마쓰 나나)를 찾아 달란 부탁을 받는다. 착하고 예쁜 모범생 딸인지라 별걱정 없이 주위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들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딸의 실체는 충격을 넘어서 두렵기까지 하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년) ‘고백’(2010년)을 연출한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의 세계관은 원래가 스산했다. 화면 구성이나 편집은 세련됐지만, 인간에 대한 시선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말종’이라 불러도 좋을 캐릭터가 쏟아지는데, 갈증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강력한 이야기를 완벽한 전율로 끌어올리는 건 아키카주와 가나코의 힘이다. ‘쉘 위 댄스’(1996년), ‘실락원’ ‘우나기’(이상 1997년)로 국내에도 친숙한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야 믿고 보는 연기자니 패스. 고마쓰는 갈증이 데뷔작인데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낸다. 신인 배우가 천사와 악마를 이리도 매끄럽게 넘나들다니, 물건 하나 나왔다 싶다. 여기에 오다기리 조와 쓰마부키 사토시, 나카타니 미키의 출연은 보너스. 이런 좋은 배우들을 데리고 감독이 완성한 현대사회는 말 그대로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여기엔 규칙이란 게 없다. 강자의 놀음에 약자는 휩쓸릴 뿐. 그 속에서 아버지, 그리고 가족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그 끔찍한 갈림길에다 감독은 관객들을 내동댕이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