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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여야 의원 5명이 어제 검찰과 숨바꼭질을 벌였다. 이들은 법원의 영장 실질심사에 출두하라는 통보에 응하지 않다가 검찰이 강제구인에 나서자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뺀 나머지는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신 의원도 출두를 약속하기 전 2시간 반가량 실랑이를 벌였다. 여론의 비판이 빗발치자 오후가 돼서야 김재윤 신계륜 새정치연합 의원이 출두 의사를 비쳤고 이어 조현룡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도 결국 백기를 들었다. 새정치연합은 19일 7월 임시국회 종료를 불과 10여 분 앞두고 8월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했다. 겨우 48시간 차이를 두고 22일 시작되는 8월 임시국회는 9월 정기국회를 거쳐 연말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비리 의원들의 체포를 막는 ‘방탄국회’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한 것이 새정치연합인지라 새정치연합이 주로 비난받았지만 그 당 의원들이 출두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부랴부랴 자기 당 의원들의 출두를 재촉한 새누리당도 별 다를 바 없다. 법원의 영장 심사는 본래 오전 9시 반부터 순차적으로 하기로 계획돼 있었으나 이들이 뒤늦게 출두에 응하면서 오후 2시부터 시작됐다. 구인장은 자정까지만 유효했고 자정을 넘기면 임시국회가 시작돼 국회의 체포 동의 없이는 의원들을 구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영장 전담 판사는 시간에 쫓겨 가며 이들의 구속 여부를 심사해야 했다. 출두하지 않은 것보다는 나았지만 뒤늦게 출두한 것 역시 비난을 면하기는 어렵다. 선진국에는 불체포 특권 같은 것이 없다. 많은 헌법학자는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불체포 특권은 더이상 필요치 않다고 말한다. 헌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당장 고치기는 어렵지만 이미 여야는 대선과 총선 과정에서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그럼에도 구속이 눈앞에 닥치자 다시 방탄국회의 유혹에 빠졌다. 어제의 볼썽사나운 숨바꼭질은 왜 불체포 특권을 없애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보여줬다. 검찰은 어젯밤 철도 납품비리에 연루된 송광호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오늘부터 시작되는 임시국회에 제출될 것이다. 여야는 불체포 특권 포기 공약을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연예인이 세금을 탈루했다 들킬 때 빠져나오는 방법은? 당황하지 말고, 몰랐다고 잡아뗀 뒤, 세무대리인의 잘못으로 돌리면 끝. 여배우 송혜교가 2009∼2011년 3년간 약 25억 원의 소득을 줄여 신고했다가 미납세금과 가산세를 추징당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송혜교 측은 3년간 137억 원을 벌었다고 신고했다. 이 중 필요경비로 신고한 67억 원 중 55억 원을 영수증 없이 신고했다가 조사를 받았다. 송혜교의 소속사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반성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정치권에선 송혜교에 대한 국세청의 봐주기가 더 관심이다. 미납세금은 5년 전의 탈세까지 추징할 수 있지만 국세청은 3년 치 미납세금과 가산세를 내게 하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감사원이 나중에 감사에 나서 2008년 누락분까지 1년 치를 더 추징하도록 한 것을 보면 국세청이 봐주긴 봐줬나 보다. 봐주기의 배후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한 전 청장이 송혜교 세무대리인의 신세를 크게 졌고 그 신세를 갚았다는 주장이다. ▷세무대리인이란 좋게는 절세를, 나쁘게는 탈세를 도와주는 사람이다. 1999년 가수 김건모와 신승훈의 탈세가 적발됐는데 그때도 세무대리인 회계사가 끼어 있었다. 2007년 MC 강호동과 여배우 김아중이 탈세를 했을 때도 세무대리인의 신고에 착오가 있었다는 이유를 댔다. 검찰은 지난달 가수 비와 배우 장근석 등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류 연예인들의 역외탈세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을동화’ ‘올인’ ‘풀하우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연기한 송혜교는 쌀쌀맞은 역할을 해도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최고의 여배우다. 국세청이 송 씨를 가장 많이 봐준 것은 탈루 사실이 공개되지 않도록 해준 것일 게다. 톱스타들을 동경하면서도 그들이 드라마 한 회 출연에 받아가는 막대한 돈에 심한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 대중이다. 세무대리인 잘못으로 돌린다고 믿어줄 대중도 아니다. 송 씨가 사랑받는 연예인으로 남으려면 ‘돈 번 만큼 낸다’는 마음가짐을 확실히 가져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난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천주교 시복식을 KBS TV로 지켜봤다. 처음에 다소 흥미가 가던 시복행사가 미사로 연결되면서 지루해졌다. 채널을 돌렸다. SBS와 MBC는 이미 중계를 중단했다. KBS만 그 후로도 1시간 더 넘게 미사를 중계했다. 시복식은 그 자체로 구경거리다. 그러나 끝까지 중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민영방송이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고 끝까지 중계했다면 시비 걸 이유가 없다. 하지만 KBS는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다. 국민 중에는 천주교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신교인도 있고 불교도도 있고 종교가 없는 사람도 있다. 더 절제 있게 중계를 끊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공영방송이다. KBS를 보던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렸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적자에 시달리는 KBS가 시청률을 무시하면서까지 시복식을 끝까지 중계할 이유가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특정 종교에 대한 편파적 배려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공영방송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종교적 공정성에 대한 KBS의 둔감함은 정부와 서울시가 시복식 장소로 광화문을 내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광화문을 내준 것은 천주교가 원했고 또 광화문을 배경으로 교황이 진행하는 시복식이 세계적으로 보도될 경우 한국을 선전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선례가 될 경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등장한다. 천주교 행사에 광화문 거리를 내줬으니 불교가 달라이 라마 강연을, 개신교가 빌리 그레이엄 초청 집회를 광화문에서 열겠다고 하면 또 광화문을 내줘야 하는 것인가. 시복식 경비를 위해 막대한 국가 예산이 지출됐다. 그 비용을 천주교 측이 사후 정산해 줄 리 없다. 물론 어느 행사든 큰 행사면 경찰이 동원된다. 경찰의 임무 중에는 그런 일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시복식을 광화문이 아니라 대형 운동장에서 했다면 경비비용은 훨씬 적게 들었을 것이다. 그런 행사는 대형 운동장에서 여는 것이 보통이다. 국민의 세금은 천주교인들만 내는 것이 아니다. 개신교인도 내고 불교도도 내고 종교가 없는 사람도 낸다. 개신교인과 불교도는 왜 자신들이 낸 세금이 천주교 행사를 위해 쓰여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쳐 온 사람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정상화해야 할 것은 대통령 그 자신의 종교와의 관계다. 박 대통령은 올해 석가탄신일에 조계사 법요식에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이 석탄일 법요식에 직접 참석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전례를 만든 것은 후임 대통령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 물론 박 대통령은 명동성당 미사와 명성교회 예배에도 한 번씩 참석해 균형을 맞춘 듯한 인상을 주려 했다. 세 모임 모두 명목은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추모였다. 그러나 석탄일 법요식 참석이 유독 특별했다는 것은 대통령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박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들은 개신교의 연례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왔다.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성경에 손을 얹고 대통령 서약을 하는 나라도 아닌데 대통령의 국가조찬기도회 참석이라는 것도 이상하다. 다만 대통령의 국가조찬기도회 참석은 오랜 관행이어서 묵인됐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종교, 특히 불교가 가만있지 않는다. 대통령이 이 관행부터 끊어야 다른 것을 끊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석탄일 법요식 참석은 대선 과정에서 자신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달리 대해준 불교계에 대한 보답의 성격이 짙다. 교황 방한 행사에 대한 적극적 지원은 방한준비위원장을 맡은 강우일 주교 등 천주교 내 반박(反朴)세력의 환심을 사보려는 의도도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남들에게 주문만 하지 말고 본인부터 비정상을 정상화하라.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영화 명량은 솔직히 졸작이죠.” 문화평론가 진중권이 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말이다. 모두가 본다고 명작은 아니다. 누군가는 졸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는 취향에 따라 평가가 극단으로 갈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디워’ 때 그의 평과는 달리 과도한 시비처럼 느껴진다. 영화 같은 대중문화는 팝콘과 콜라를 먹고 마시면서 기분전환으로 감상하는 문화다. 재미있게 보면 그만이지 명작인지 졸작인지 따지는 것 자체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진중권은 명량의 성공이 이순신 덕분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순신 리더십을 갈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 그럼에도 ‘성웅 이순신’ 같은 따분한 과거 영화와 비교해보면 영화 덕은 없고 이순신 덕만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명량의 성공은 이순신을 그의 인간적 고뇌까지 담아 형상화한 데다 후반부의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전반부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념 과잉의 비평가에게는 대중의 눈에는 뻔히 보이는 이런 것이 잘 안 보이는 경우가 있다. ▷진중권의 비판에는 오히려 그의 비꼬인 심리가 엿보인다. 디워 비판은 한국 사람이 만든 것이니까 무조건 다 칭찬해주고 본다는 식의 맹목적 애국심(쇼비니즘)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됐다. 그가 명량에 괜한 시비를 붙는 데서도 영화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 대한 적개심 같은 것이 느껴진다. 모든 애국심이 쇼비니즘은 아니다. 진중권의 시비는 한 번도 건전한 애국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 특유의 심리상태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진중권이 한 말은 아니지만 명량의 성공은 배급사인 CJ의 힘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순신도 위대하지만 더 위대한 것은 CJ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CJ의 마케팅이 뛰어난지 영화 개봉 전부터 설모 교사의 명량 해설 강의가 인터넷에 쫙 나돌았다. 개봉 후 영화의 메인관은 다 명량이 잡고 있어 다른 영화는 보고 싶어도 못 볼 지경이라고 한다. 진중권의 반골적 시비조차도 노이즈 마케팅처럼 흡수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서울대에 가면 추모비가 많다. 인문대에는 박종철 김세진 이재호, 자연대에는 조성만 조정식, 공대에는 황정하, 농생대에는 김상진 추모비가 있다. 모두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다 희생된 서울대생이다. 4·19혁명 때 희생된 김치문 등 6명을 기리는 4·19기념탑은 사회대 근처에 있다. 관악산 기슭 외진 곳에 있던 것을 20년 전 정문 가까운 이곳으로 옮겼다. 매년 4월 19일이면 교수와 학생 대표들이 이 앞에서 기념식을 갖는다. ▷서울대에서 6·25전쟁 때 희생된 재학생을 기리는 기념물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서울대는 1996년에 와서야 6·25에 참전했다 숨진 서울대생 27명을 찾아내 문화관 대강당 벽에 명단을 새겨 넣었다. 2009년 19명의 명단이 새로 발견돼 현재까지 확인된 전사자 수는 46명으로 늘었다. 서울대가 부산으로 피란하는 난리통에 학적부 등 관련 기록이 많이 없어져서 그렇지 전사한 서울대생이 수백 명은 될 것으로 추산된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어느 학교를 가나, 어느 소도시의 시청사를 가나 눈에 잘 띄는 곳에 그 학교 졸업생과 그곳 출신 중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바친 전몰자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침략국이었던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념물이다. 6·25 때 북한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죽은 이들이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나라를 구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 서울대에 학문과 교수의 자유는 남아 있지도 않을 것이다. ▷성낙인 서울대 신임총장이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대 4·19기념탑을 찾았다. 대통령과 총리, 여야 대표는 취임하면 국립현충원을 찾는데 서울대에는 찾을 만한 6·25 관련 시설이 없다. 서울대 출신 시인은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라”고 했다. 조국의 미래를 물을 수 있는 대학이라면 민주화만이 아니라 애국을 말해야 한다. 서울대가 내년 6월까지 서울대생 6·25 전몰자 기념 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7·30 재·보궐선거에서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두 개의 헤게모니로부터 양면 공격을 받았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수사의 촉발점이 된 권은희를 새누리당이 공격하는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고 친노세력이 가세해 비판하고 나옴으로써 김한길-안철수 지도부는 침몰했다. 권은희가 공천감이면 공천감이고 아니면 아니지 7·30 선거에는 차례가 아니고 다음 선거에는 차례라는 것은 무슨 논리인지, 권은희로 인해 그 자리에서 친노인 천정배가 밀려났다는 게 반발의 원인일 것이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도 안철수는 두 개의 헤게모니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세력만이 아니라 문재인을 지지하는 친노세력으로부터도 공격을 받았다. 난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가 문재인에게 후보를 양보했을 때 박근혜 지지자들의 어두운 얼굴에 돌아온 희색을 기억한다. 그때 그들은 정권을 이미 잡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이 무서웠던 상대는 안철수였지 문재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친노세력을 상대로는 언제든지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신에 차 있었다. 새누리당은 대선 승리 이후에도 안철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새누리당이 원하는 것은 새정치연합이 새정치를 배제하고 친노세력 주도의 도로 민주당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친노세력은 서로 싸우면서도 서로에게 기대 살아가는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다. 새누리당의 일부 세력은 이 적대적 공생관계를 타협의 정치라고 부르면서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그 관계의 지속 가능한 토대를 마련해줬다. 1등이면 좋고 2등이어도 상관없는데 최소한 2등은 가능할 때 새누리당도 친노세력도 새정치를 원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두 헤게모니 진영의 협공 속에 안철수는 실패했다. 그게 안철수라서 실패했는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분명히 안철수는 변명의 여지가 없이 실패했다. 그는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 신당 창당, 그리고 합당을 통한 야당 주도권 장악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도전해봤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안철수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그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새누리당과 친노세력이 공동의 적으로 삼은 것은 두 진영 사이에 어른거리는 무엇이지, 그 무엇인가가 안철수인지 다른 누구인지는 부차적일 뿐이다. 안철수가 새정치였는지는 논란이 많으므로 새정치에 괄호를 치자. 다만 안철수의 ‘새정치’에 대한 비판에는 정치 신참에 대한 텃세라고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감정이 느껴진다. 안철수가 항의한 것이지만 안철수가 누구를 공천하면 자기 사람을 심는다고 비판하고 누구를 배제하면 자기 사람도 못 심는다고 비판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불공정하다. 비판은 하나의 관점을 취해야지, 관점을 정반대로 옮기면서 비판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노골적인 증오의 표출일 뿐이다. 기초공천만 해도 과거에는 여야 할 것 없이 앞다퉈 폐지를 주장해놓고도 안철수가 주장하니까 현실 모르는 주장이라는 딴소리를 했다. 눈앞의 정치적 이익 앞에 공약이고 뭐고 다 팽개친 적반하장이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노동당을 개혁할 당시 이런 말을 했다. “노동당에는 세 가지 유형의 세력이 있다. 첫째 절대 승리할 수 없는 낡은 세력, 둘째 인기 없는 보수정권에 대한 반발로 한 번은 승리할 수 있는 평범한 세력, 셋째 승리를 이어갈 수 있는 신진 세력이다.” 야당은 지금 절대 승리할 수 없는 친노세력을 중심으로 보수정권이 인기가 없을 때나 승리를 기대하는 어부지리 세력의 정당이 돼 있다. 야당의 미래를 위해서도, 정치 전체의 미래를 위해서도 새정치의 시도는 계속돼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대동(大同)은 요즘 말로 지도자의 소통을 의미한다. 옛 중국 주나라에서 나라에 결정하기 어려운 큰일이 있을 때 임금은 우선 자신에게 묻고, 다음 신하에게 묻고, 그 다음 백성에게 묻고 그래도 의문이 풀리지 않으면 점을 쳐서 하늘의 뜻을 구한다고 했다. 임금과 신하와 백성과 점괘가 일치하면 이를 대동이라고 했다. 언젠가 한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식사를 하면서 그가 박근혜 대통령을 너무 어렵게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박 대통령이 수석이나 장관도 잘 만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최근에 나왔다. 만기친람(萬機親覽)의 박 대통령은 직접 수많은 보고서를 검토한다고 하니 자신에게는 많이 묻는 모양이다. 그러나 수석이나 장관도 잘 만나지 않고, 여론에도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듯하다. 하늘의 뜻을 구하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하(신하)에게 묻고 국민(백성)에게 묻는 것은 대동의 시대로부터 이어져오는 지도자의 자세다. 만기친람의 박 대통령이라고 했지만 만기친람이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19세기 비스마르크 총리와 함께 독일 통일을 주도했던 폰 몰트케 장군은 지도자를 똑똑하면서 부지런한, 똑똑하면서 게으른, 우둔하면서 부지런한, 우둔하면서 게으른 등 4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몰트케가 최선으로 여긴 것은 똑똑하면서 부지런한 지도자가 아니라 똑똑하면서 게으른 지도자다. 몰트케가 최악으로 여긴 것은 우둔하면서 게으른 지도자가 아니라 우둔하면서 부지런한 지도자다. 몰트케는 장교의 유형으로 분류한 것이지만 황제의 간섭에 대한 우회적인 경고도 있었다고 본다. 지도자의 만기친람이 권위주의와 연결되는 사례는 많다. 중국 청나라의 황제들은 근면성만큼은 역대 어느 왕조의 황제들도 쫓아갈 수 없었다. 특히 옹정제가 부지런했다. 엄청나게 많은 상주문을 일일이 읽고 의견을 다느라 잠도 4시간밖에 자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죽음은 과로가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황제란 모름지기 완전한 독재자가 돼야 하며 그러기 위해 스스로 부지런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는 자신에게 대드는 자를 용서하지 않았고 ‘문자(文字)의 옥(獄)’으로 불리는 처절한 사상 탄압을 행했다. 만기친람 한다는 것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그러나 몰트케는 똑똑한 쪽이든 우둔한 쪽이든 상관없이 지도자로서는 부지런한 쪽보다는 게으른 쪽을 더 높이 평가했다. 박 대통령도 부지런하기보다 게으른 지도자가 돼 보라. ‘똑똑한’ 대통령이 보기에 맘에 안 드는 것이 있어도 수석이나 장관에게 맡겨 보라. 수석이나 장관이 반드시 옳아서가 아니다. 자신이 믿고 뽑은 수석이나 장관이라면 곧 옳은 결정을 찾아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 사이에는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 자신이 항상 옳을 수는 없을뿐더러 대통령 눈에 옳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수석이나 장관의 판단이 옳은 것으로 판명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게으를 수 있다. 나라든 기업이든 어느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우둔하면서 부지런한 지도자다. 그런 지도자 밑에서는 새벽부터 한밤까지 노력은 노력대로 하면서도 성과를 내지 못한다. 설혹 똑똑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은 자신이 이런 유형의 지도자는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스스로는 똑똑하다고 여기지만 남들 보기에는 우둔할 수 있다. 지도자가 게으르다는 것은 논다는 것이 아니라 보고서에서 눈을 떼고 한발 물러서서 세상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책이든 인사든 결정권을 다 움켜쥐고 있지 말고 수석이나 장관의 말을 듣고 여론에도 귀를 기울이라. 게으른 지도자가 대동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축구에서 2점 차는 어려워도 해볼 만하다. 3점 차가 되면 싸울 의욕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알제리에 전반 3-0까지 져봐서 느낌 안다. 브라질은 전반 24분 독일에 세 번째 골을 허용했을 때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4-0, 5-0, 6-0, 7-0의 행진. 후반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 브라질이 한 골을 넣었으나 별 의미는 없었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1950년 월드컵도 브라질에서 열렸다. 그때만 해도 세계가 아직 제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4년 뒤 스위스 대회 때부터 비로소 축구강국 대부분이 참가한 월드컵이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그 대회에 사상 처음으로 출전했다. 그리고 다시 4년 뒤 1958년 스웨덴 대회에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선수’ 펠레가 등장해 브라질에 첫 월드컵 우승을 안겼다. 이후 월드컵 3회 우승으로 쥘리메컵을 영구히 차지한 브라질의 축구신화가 쓰였다. ▷펠레 이후 호마리우 호나우두 히바우두 등 제2의 펠레로 불린 선수는 많았다. 하지만 모두 그 별명에는 뭔가 미치지 못했는데 이번에야말로 진짜 제2의 펠레가 나타났다는 말이 무성했다. 네이마르 때문이다. 그런데 네이마르가 직전 콜롬비아전의 척추 부상으로 뛰지 못하게 됐다. 처음에는 천재를 시샘하는 신의 저주라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천만다행이었다. 네이마르라고 무자비한 독일 전차군단을 막아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는데 모두 네이마르가 없어서 졌다고 생각한다.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월드컵 개막식에 모습을 보였을 때 관중은 야유를 보냈다. 전임 룰라 때 4%를 넘던 경제성장률이 2%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브라질이 선전하면서 비난은 잦아들었다. 올 10월 재선을 위해 뛸 호세프 대통령에게 청신호가 켜지는 듯했다. 하지만 브라질은 사상 최악의 참패로 정국마저 혼미에 빠져들었다. 상파울루에서는 시위대가 버스를 불태우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날 조짐마저 보인다는 소식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서울대 강연에서 한중우호를 상징하는 인물로 처음 든 것은 서복(徐福)이다. 서복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기자들도 잘 모르는 이름이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적당하지 않다고 봐서 그런 것인지 서복이 거론되지 않은 관련 기사도 많다. 진시황 때 불로초를 찾아 동방으로 갔다는 도사라고 설명하면 ‘아, 그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은 ‘바다를 건너 제주도로 간 서복’이라고 소개한다. 서복의 얘기야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것이니까 그렇다 치자. 그러나 ‘사기’에도 그가 제주도에 갔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제주도에 서복이 와서 문물을 전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서복의 얘기에 꿰맞춘 전설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떤 역사학자도 그걸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 시 주석은 2006년 저장 성 서기로 있을 때 제주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이세기 한중친선협회장의 안내로 서복기념관을 방문했다. 서복기념관은 서귀포시가 2003년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당시 이 회장이 서복기념관에 가자고 했더니 시 주석은 “왜 그게 중국에 있지 않고 한국에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일이 시 주석에게 무슨 깊은 인상을 남겼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중국의 서복’이 아니라 ‘제주도의 서복’은 관광업 진흥을 위해 만들어진 인물이다. 그것을 역사 속의 인물인 것처럼 언급하는 것은 대학에서 할 소리는 아니다. 게다가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이, 서복이 제주도에 간 것처럼 말하면 어딘가 제국주의적 냄새가 난다. 시 주석은 또 한중 양국이 환란에 서로 도운 사례로 임진왜란(정확히는 정유재란) 때 명나라 장군 등자룡(鄧子龍)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노량해전에서 싸우다 전사한 사실을 들었다. 등자룡의 상급자인 명나라 제독 진린(陳璘)의 후손이 진씨 성을 갖고 한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의 승리에 중국이 큰 도움을 줬다는 듯이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듣기 거북하다. 진린은 전투에는 소극적이고 공적에 욕심이 많았던 인물이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 자신의 전과를 몇 차례 양보한 후에야 이순신 장군과 화해할 수 있었다. 그가 중국에서 끌고 온 배는 작아서 전투에 쓸모가 없었고 조선 수군의 판옥선을 빌려 타야 하는 신세였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왜적과 싸우는 데 써야 할 병력의 일부를 왜적에 포위된 진린을 구하는 데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시 주석이 거론한 인물 중에서 또 한 명 거슬리는 것은 정율성(鄭律成)이다. 정율성이 한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이름을 날린 몇 안 되는 근현대사의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를 한중우호의 상징적 인물로 거론하는 데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시 주석이 그를 한국인들 앞에서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으로 소개한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한중이 지금은 평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중국인민해방군은 6·25전쟁 때만 해도 우리 측에 많은 피를 흘리게 한 적군이었다. 정율성이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했다고 소개하지 않아도 달리 소개할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중국은 사실 한국을 잘 모른다. 잘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나 중국을 알려고 야단이지 중국에서 한국은 국경을 인접한 많은 나라 중 하나일 뿐이다. 중국 정치인의 외교적 수사만 듣다가 역사 강의 같은 강연을 들으니 그것이 확실해졌다. 중국 지도자의 한국 대중 강연은 처음이다. 친근해지려는 의지는 전달됐다. 다만 친근함이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남이 어떻게 느낄지 미리 알아서 배려해 말할 수 있어야 진짜 친근한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직후 홍명보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선수단의 맏형 홍명보의 말에는 뜻밖에 히딩크에 대한 반감이 서려 있었다. 그는 히딩크가 비생산적 선후배 질서를 깼다는 평가에 대해 “원래부터 축구장에서 후배들은 종종 날 보고 ‘홍명보’ ‘홍명보’라고 불렀다. 그러나 축구장 밖에서는 선배들을 깍듯이 대하라고 후배들에게 가르쳤다. 이 원칙은 히딩크 감독이 오기 전과 후에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난 속으로 ‘이 사람은 선수는 해도 감독은 해선 안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히딩크는 단지 축구장에서 선후배 관계를 무시해도 좋다고 가르쳤는지 모르지만 축구장 밖에도 영향을 미쳤다. 반대로 홍명보는 그때나 지금이나 축구장 밖에서는 선배들을 깍듯이 대하라고만 후배들을 가르쳤는지 모르지만 축구장 안에도 영향을 미쳤다. 축구장 안과 밖이 그렇게 명확히 갈리지 않는다. 그 미묘함을 모르는 사람이 감독을 잘할 수 없다. ▷축구를 해본 사람은 축구장 안은 실력만이 해결책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2002년 국가대표팀의 막내 박지성이 했던 역할을 이번에는 막내 손흥민이 했어야 하는데 할 수 없었다. 히딩크가 가까스로 마련해 놓은 ‘실력 축구’의 토대가 홍명보의 ‘의리 축구’에 의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홍명보가 벤치에 죽치고 있었던 박주영을 믿었다는 것 자체가 요행을 바란 것이다. 게다가 박주영은 후배들이 어떻게 해보기 어려운 그라운드 안의 맏형이었다. ▷대한축구협회가 홍명보의 감독 유임을 결정했다. 홍명보는 히딩크에게 하나도 배우지 못했다. 홍명보는 히딩크가 이동국을 자르듯이 박주영을 내치지 못했다. 히딩크처럼 박지성 송종국 같은 실력 있는 선수를 발굴할 줄도 몰랐다. ‘모 아니면 도’인 경기에서 히딩크는 수비수를 빼고 공격수를 넣는 강단으로 역전했지만 홍명보는 감독의 존재감을 느낄 만한 전략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알제리가 러시아보다 강팀인지를 몰랐다. 그런 감독이 이끄는 ‘의리 축구’ 시즌 2를 내년 1월 아시안컵 대회까지 봐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신문은 논평에서 출발했다. 최초의 신문은 일종의 정치적 팸플릿이었다. 그 신문을 읽고 커피하우스(영국) 살롱(프랑스) 만찬회(독일)에서 갑론을박한 것이 여론의 시작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고, 또 신문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사실 보도의 기능이 커지긴 했지만 논평은 여전히 신문의 본질로 남아 있다. TV와 달리 신문에서 논평이 중심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다. ▷그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중앙일보 재직 시절 쓴 칼럼에 대해 사과함으로써 언론인 스스로 논평의 자유를 제한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관련 칼럼에서 “공인으로서의 행동이 적절치 못했다”고 쓴 데 대해 “유족들과 국민께 불편한 감정을 갖게 해드렸다면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해 “비자금 조성과 해외 재산 도피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고 쓴 데 대해선 “가족과 그분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서운한 감정을 갖게 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사실 논란과 관련 없는 순전한 논평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논평은 비판이다. 비판받는 쪽은 서운하기 마련이다. 어느 사회도 자살에 호의적이지 않다. 이를 비판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범주의 논평일뿐더러 지극히 정상적인 논평이다. 그런데도 주필까지 지낸 사람이 ‘표현의 미숙함’ 운운하며 논지를 흐리는 것은 직필(直筆)을 곡필(曲筆)로 바꾸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 후보자가 유독 노·김 전 대통령 관련 칼럼에 대해서만 사과한 것은 친노계와 DJ계를 달래려는 제스처로 보인다. 그러나 칼럼니스트가 칼럼을 갖고 사과하면 칼럼도 사과도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으로 내정된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문 후보자는 언론인으로서의 자기 삶도 부정한다”는 트윗을 날렸다. 분명한 의견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던 칼럼니스트가 다양한 견해를 조율하는 총리가 되는 길이 순탄치 않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학자의 글에는 날카로움이 있어야 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성공회대 사회학 교수)의 글은 장황하고 절충적이어서 그런 맛이 없다. 그래도 그는 대체로 성실한 학자라는 평가는 받는 모양이다. 다만 이런 애티튜드(attitude)에 대한 평가 속에 ‘진보’라고만 막연히 알려진 그의 이데올로기는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 조 교수는 저서 ‘동원된 근대화’(2010년)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스탈린 독재와 히틀러 독재는 독재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민중의 동의를 창출하는 데 일정하게 성공했지만 박정희 체제는 ‘대단히 불안정한 독재’였다. …스탈린 독재나 히틀러 독재와는 달리 박정희 독재는 그렇게 광범한 동의적 기반을 구축하지 못했다.” 박정희 독재가 독재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20세기 인류사의 수치인 스탈린 독재나 히틀러 독재보다 더 독재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스탈린 독재나 히틀러 독재보다 더 독재적인 시대를 산 사람들이 그 독재자의 딸을 지지해 대통령으로 만드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현실이 싫어도 현실이다. 조 교수는 창작과비평사가 펴낸 책 ‘87년 체제론’(2009년)에 기고한 글에서 87년 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정치적 기반을 이렇게 정리한다.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시장자유주의를 내적인 성격으로 가진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약 자유주의 세력들의 적극적 분화가 나타나게 된다면 사회적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급진적 세력의 연합을 통한 국민적 전선을 재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조 교수는 자유주의가 기본적으로 시장자유주의여서 싫고, 자유주의 중의 사회적 자유주의는 단지 포섭 대상일 뿐이라고 한다. 그의 포지션은 일단 사회민주주의인 것처럼 보이는데 정확히는 급진적 세력과 연대하는 사민주의다. 이런 의미의 사민주의는 독일 사민당(SPD)에서도 오늘날 위험시되고 있다. 조 교수가 취한 정치적 노선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정확히 현실화됐는데 그것이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연대다. 조 교수는 함세웅 신부가 엮은 ‘곽노현 버리기’(2012년)라는 냉소적 제목의 책에 글 한 편을 실었다. 그는 이 글에서 사전에 박명기 교수와 후보 단일화 대가로 금전을 지급하기로 약속하지는 않았다는 곽 씨의 주장을 ‘진심 어린 항변’이라고 표현하는 반면에 곽 씨를 단죄한 여론을 ‘상식화된 편견’이라고 비판한다. 곽 씨를 단죄한 여론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서 다 나온 것이다. 함 신부를 매개로 해서 곽 씨와 조 교수 사이에 상식을 넘어서는 긴밀한 유대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임 진보 교육감들이 무상급식으로 포문을 열었듯이 이번 진보 교육감들은 자사고 폐지로 포문을 열었다. 선진국에서 어떻게 급식을 하는지 듣도 보도 못한 얼치기 교육감들이 전면 무상급식이 글로벌 스탠더드인 양 선전하고, 외국 생활 중 유학생이라는 특수한 신분 때문에 돈 한 푼 내지 않고 아이들을 키운 ‘빌어먹은’ 학자들이 그게 모두에게 적용되는 양 선전하는 통에 국민은 현혹됐다. 우리나라식의 자율형사립고 같은 학교는 선진국에 훨씬 더 많다. 나의 특파원 시절 경험으로 보면 선진국 중에서 평준화에 앞선다는 프랑스도 20% 이상의 초중고교 학생들이 사립학교에 다닌다. 좋은 공립학교에 가려면 좋은 학군에 살아야 하는데 그 비용에 비하면 사립고에 보내는 게 더 낫다. 나는 민족사관학교를 직접 취재한 적이 있고 용인외국어고의 소식도 지인으로부터 자주 전해 듣는다. 내 자식이 그 정도 수준은 못 돼서 유감이지만 정말 똑똑한 아이들이 있다. 제발 그런 아이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내버려뒀으면 좋겠다.[바로잡습니다] ◇10일자 A35면 ‘송평인 칼럼’ 중 ‘백기완 씨의 말처럼 박정희 시대는 3만 명이 괴로웠고 3000만 명이 행복했던 시대’라는 말을 백 씨는 한 적이 없다고 통일문제연구소 측이 알려왔습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한국의 1980년대는 서구의 1960년대처럼 격변의 시기였다. 오늘날의 젊은이가 1980년대를 연구한다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황당한 논쟁 하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름만 들어도 골치가 아파오기 시작하는 사회구성체론이다. 그 현실과 괴리한 현학성이 마치 중세 신학자들이 바늘 끝에 악마가 몇 마리 앉을 수 있는지를 놓고 벌이는 논쟁과 다를 바 없다. ▷쉽게 사회구조(social structure)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사회구성체라고 말하기 좋아하는 부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다. 그런 번역어 자체가 현실과 괴리된 채 이론 논쟁만 하는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대중성, 즉 쉬운 걸 좋아하는 주사파들은 굳이 이런 어려운 말을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무슨 심오한 사회과학을 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 했던 민중민주(PD) 계열이 이런 말을 즐겨 사용했다. ▷스마트폰에 빠진 요새 10대들만 약어를 즐겨 쓰는 게 아니다. 1980년대 운동권도 그랬다. ‘사사방’은 당시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생이었던 이진경 씨가 쓴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을 말한다. ‘국독자론’은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식반론’은 ‘식민지 반봉건사회론’, ‘신식국독자론’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약자다. 1985년 ‘창작과 비평’에 박현채 교수가 ‘국독자론’을 발표하고 ‘식반론’자들이 반박했다. 여기에 이 씨가 신식국독자론을 펼치며 두 이론의 빈약함을 비판했고 이후 변형된 국독자론, 변형된 식반론, 변형된 신식국독자론 등이 파생돼 나왔다. ▷각각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본래도 생산적이지 못했지만 그마저 1990년대 현실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수그러들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는 이 논쟁을 ‘한국사회구성체논쟁’이라는 제목 아래 4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무익함에 비해서는 너무도 진지하게 연구한 학자다. 그것을 성실하다고 해야 할지, 답답하다고 해야 할지는 독자들이 판단하시라. 아무튼 그 사람이 서울시교육감을 맡게 됐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둬야 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안 이달고는 올 2월 프랑스 파리의 첫 여성 시장이 돼 화제가 된 인물이다. 프랑스 한인들은 파리에서도 특히 15구에 많이 사는데 이달고는 15구 구청장 후보로 여러 차례 출마했다. 내가 프랑스 특파원으로 있던 2008년 지방선거에도 이달고가 출마했다. 나도 집이 15구에 있어 집으로 배달된 선거 팸플릿에서 이달고의 이름을 자주 접했다. 그는 15구 구청장은 되지 못했지만 더 큰 파리 시장의 꿈을 이뤘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최초 여성 시장 리스트를 찾아보면 인구 100만 이상 도시에서는 올해 프랑스 파리 외에 2010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2009년 일본 요코하마와 불가리아 소피아, 2006년 이탈리아 밀라노와 폴란드 바르샤바, 2002년 그리스 아테네, 1988년 브라질 상파울루 등에서 첫 선출직 여성 시장이 나왔다. 한국은 여성 대통령이 나온 나라이지만 아직까지 여성 광역시장이나 도지사는 한 명도 없다. ▷기초단체장은 좀 다르다. 서울의 강남 3구(서초 강남 송파) 구청장을 다 여성이 차지했다. 재선인 신연희 강남구청장과 박춘희 송파구청장에 조은희 서초구청장 당선자가 가세했다. 양천구에서도 여성인 김수영 후보가 당선됐다. 부산의 김은숙 중구청장과 대구의 윤순영 중구청장이 첫 3선 여성 단체장이 됐고, 부산의 송숙희 사상구청장과 인천의 홍미영 부평구청장은 재선했다. 경기 과천에서는 신계용 후보가 최초 여성 시장이 됐다. 다만 농촌 지역의 군수에는 여성 당선자가 한 명도 없다. ▷1995년 지자체장 선거가 시작돼 전재희 씨가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경기 광명시장에 당선됐다. 이후 여성 기초단체장은 2002년 2명, 2006년 3명, 2010년 6명에 이어 이번에 9명으로 조금씩 늘었다. 반면 여성 광역단체장은 제로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광명시장에 이어 국회의원을 세 번 지낸 전 씨 정도면 광역단체장에 도전해볼 만도 했을 텐데 2012년 총선에서 떨어져 물러났다. 기초단체나 국회에서 탄탄하게 경력을 쌓은 여성들이 많아져야 여성 광역단체장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미국에서 대통령 부인은 퍼스트레이디(first lady), 부통령 부인은 세컨드레이디(second lady)다. 주(州)지사의 부인은 그 주의 퍼스트레이디라고 부른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서울시장의 부인은 수도 서울의 퍼스트레이디다. 우리나라는 부통령이 없고 총리와 장관이라고 해봐야 선출직이 아니다. 선출직으로 따지면 서울시장 부인이 이 나라의 세컨드레이디라고도 할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부인 강난희 씨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본보 사진 자료를 찾아보니 강 씨는 2012년 10월 대선 투표일에 박 시장과 함께 투표하는 사진과 2012년 1월 적십자사 서울지사에서 봉사활동에 나선 사진이 있을 뿐이다. 시민들은 박 시장이 왜 미인 부인을 동반하고 다니지 않는지 궁금해한다. 세간에서는 성형이니 어쩌니 말이 많지만 사실인지도 알 수 없고, 성형을 했다 하더라도 요즘 같은 세상에 그게 문제가 되는지도 알 수 없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경우 정 후보 본인보다 부인 김영명 씨가 좋아서 지지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김 씨는 이번 6·4지방선거를 앞두고 남편과의 거리 유세나 각종 봉사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홀로 다니는 박 시장과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김 씨 역시 미인인 데다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딸로 미국 명문 웰즐리여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엘리트다. 서민으로선 오히려 거부감이 갈 만도 한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늘 남편 옆에서 성실히 내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퍼스트레이디는 어느 나라 법에서도 공적인 자리가 아니지만 사실상의 공인이다. 왜 그런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한 이불 속 베갯머리 권력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자는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남자라고 큰소리를 치지만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다. 박 시장이 오늘 6·4지방선거 사전투표를 할 때 부인 강 씨가 함께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한다. 이번 기회에 불필요한 논란이 싹 해소됐으면 좋겠다. 서울시의 퍼스트레이디라면 시민이 얼굴은 자주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해 변호사 개업 이후 열 달간 늘어난 재산 11억 원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밝혔다. 총리 자리를 얻기 위한 기부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좋은 뜻을 좋게 받아들여주면 감사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사후 기부’를 좋은 뜻으로 한다고 해서 전관예우나 과다 수임료 문제가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 논란을 피해 가려는 듯한 태도는 옳지 못하다. 안 후보자가 지금까지 기부한 4억5000만 원 중 3억 원도 순수하게만 보기 어렵다. 안 후보자는 정홍원 총리 사퇴론이 여당에서 공개 거론된 바로 다음 날인 지난달 24일 유니세프에 기부에 대해 문의했다. 기부를 한 5월 19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날이고 총리 후보자 발표 사흘 전이었다. 정 총리 사퇴론이 나올 때부터 후임 물망에 올랐던 안 후보자가 자신의 내정 사실을 알고 인사검증과 인사청문회를 의식해 기부했다는 의혹을 받을 만하다. 안 후보자는 거절하기 힘든 지인이 아니면 형사사건과 대법원 상고사건을 수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한 대부업체 대표의 형사사건 상고심을 맡아 2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것을 무죄 취지로 승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사사건 상고심도 4건을 맡아 3건은 패소하고 1건은 승소했다. 대법원 사건은 승소 여부에 관계없이 수임료가 높다. 안 후보자는 월평균 2억 원 넘게 벌어들였다. 사법부의 전관예우 관행을 개혁해야 한다는 사회 움직임이 무색해지는 큰돈이다. 안 후보자는 서울 강남 개발 붐이 일던 1978∼85년 주소지를 서대문구 수색동에서 강남구 도곡동 압구정동 등으로 13차례 옮겼다. 강남과 강북을 오가며 7개월에 한 번꼴로 주소가 바뀌었다. 부인과 아들은 2001년과 2007년 따로 주소를 옮겼다가 다시 합쳤다. 위장전입을 의심할 수 있다. 안 후보자의 신고 재산에는 현금 수표가 5억1950만 원이나 된다. 왜 거액의 현금과 수표를 은행에 넣지 않고 보관했는지도 궁금하다. 안 후보자는 2006년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 “퇴임 후 변호사로 개업을 하더라도 자문 위주로 하고 구체적 사건은 맡지 않겠다”고 말했다. 전관예우로 의심받을 일은 아예 하지 않겠다는 그 말은 이제 허언(虛言)이 됐다. 박근혜 정부 첫 총리 후보자였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낙마한 이유에는 7개월 7억 원 수임료도 들어 있다. 최고의 전관예우를 받았던 총리가 관피아 척결에 나서는 것을 국민이 어떻게 볼지 안 후보자의 고민이 따라야 할 것이다.}

예민함도 지나치면 병이다. 세월호 희생자 수를 일반 교통사고 사망자 수와 비교한 KBS 보도국장의 발언을 노조에 ‘고발한’ 과학재난부 기자, 보도국장이 어리석긴 했지만 사석에서 한 발언인데 옹호해주기는커녕 희생양으로 삼아 사표를 종용한 사장, 구조작업이 진행 중이니 해경 비판을 자제해 달라는 청와대의 요청조차 외압이라고 느끼는 보도국장, 모두 지나치게 예민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태도는 KBS의 회사 분위기, 즉 윗사람이 얘기를 하면 무슨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지 않나 의심하고 보는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KBS가 이렇게 각박해진 이유가 역대 정권의 언론 장악 시도 때문인지, 아니면 노조의 정권 길들이기 때문인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을 지지하든 한 가지 전제는 공유하고 해결책을 추구한다. KBS는 예전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있어야 한다는 전제다. 하지만 KBS가 왜 이대로 계속돼야 하는지 난 의문이다. 공영방송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국가 재난 방송이다. KBS 역시 국가 재난 주관 방송사다. 하지만 이번에 세월호 참사 재난 보도에서 봤듯 KBS가 없다고 해서 누구도 알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고 느낄 것 같지 않다. 정보의 질을 따져 봐도 마찬가지다. KBS가 있다고 해서 더 나은 보도를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KBS가 없다고 해서 더 못한 보도를 접하게 될 것도 아니다. KBS는 과거 방송 개척 시대에 공영방송으로서 방송산업을 선도했다. 오늘날 KBS는 더이상 그런 역할을 맡을 필요도, 맡을 능력도 없다. SBS 등 지역 민영방송이 시작됐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 케이블 방송이 등장했으며, 모든 분야를 다루는 종합편성채널도 나왔다. 더구나 국민은 점차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더 많은 정보와 재미를 얻고 있다. KBS가 없어도 국민이 불편할 게 별로 없다. 물론 없어도 불편할 게 없는 것이 KBS만은 아니다. 다른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KBS는 국민이 TV수상기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청료를 내야하는 유일한 방송이다. 나는 국내에서 출입처를 나갈 때는 잘 몰랐는데 해외에서 특파원을 하면서 KBS를 좀 더 잘 알 수 있었다. SBS에서는 경비 절감을 위해 취재기자만 특파원으로 나온다. 카메라기자는 현지에서 고용한다. KBS는 취재기자와 카메라기자가 함께 나오는 곳이 많다. 카메라기자 한 명 파견에 연봉 1억 원과 주거비 등을 합치면 한 해 3억 원가량의 비용이 든다. 그럼에도 현지어 구사능력이나 현지에 대한 정보는 연봉 수천만 원인 SBS 카메라기자에 훨씬 못 미친다. 감사원이 지난해 KBS 경영실태를 조사한 결과 1급 이상 직원 382명 가운데 보직 없는 사람이 열에 여섯 명꼴이다. 1급의 평균 연봉은 1억 1600만 원이 넘는다.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심의실 라디오센터 송신소 등에 필요인원 이상이 배치돼 시간을 보낸다. 이런 비효율적인 KBS에 우리는 꼬박꼬박 시청료를 냈다. 나도 좋아하는 KBS의 프로그램이 있다. KBS 제1FM 클래식 방송을 좋아하고, KBS 수신료 일부로 운영되는 EBS의 ‘한국기행’ 같은 교양물을 좋아한다. 그러나 ‘개그콘서트’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굳이 KBS에서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민간영역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민간영역에 넘겨줘야 한다. 그렇게 하고도 남는 것, 그것이 공영방송이 맡아야 할 고유한 영역이다. 공영방송의 뉴스는 건조(dry)해야 한다. 일본 공영방송 NHK의 뉴스가 재미없을 정도로 건조하다. 기자들이 쓸데없는 데서 예민해져서 뉴스를 촉촉(wet)하게 만들려다 보니 국민이 동감하기 힘든 포인트에서 격렬한 불꽃을 튀기며 싸우는 것이다. 최근 KBS 내홍이 그렇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정정보도문본보 2014년 5월 27일자 A35면의 ‘KBS는 과연 필요한가’라는 제하의 ‘송평인 칼럼’ 중 세월호 사고를 교통사고와 비교한 KBS 전 보도국장의 발언을 ‘KBS 과학재난부 여기자’가 노조에 ‘고발’하였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5개월간 변호사로 벌어들인 수입이 무려 16억 원에 이른다. 하루 약 1000만 원씩을 번 셈이다. 안 후보자의 올해 수입은 파악되지 않아 계산하지 않은 것이 이 정도다. 그는 대검 중수부장, 서울고검장 등 검찰 고위직을 지낸 뒤 대법관을 6년 했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변호사지만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큰 수입이다. 전관예우(前官禮遇)를 받아본 변호사들조차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할 지경이다. 안 후보자는 2012년 7월 대법관 임기를 마치고 정확히 1년 후인 지난해 7월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2011년부터 시행된 개정 변호사법(일명 전관예우 금지법)에 의해 판검사는 최종 근무지에서 1년 동안 수임이 금지돼 있다. 요새 대법관 출신들은 퇴임 후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등으로 1년을 보낸 뒤 변호사 사무실을 여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전관예우는 단지 1년 늦춰졌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주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에서 국가를 개조한다는 각오로 민관 유착과 관피아를 척결하겠다고 밝혔다. 민관 유착의 원조가 다름 아닌 법조계 전관예우다.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를 만든 행정 부처의 전관예우는 법조계의 전관예우를 흉내 낸 것이다. 안 후보자가 전관예우로 그 많은 수입을 벌어들인 것이라면 그가 민관 유착과 관피아 척결에 앞장설 총리로서 적임자인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일단 안 후보자는 “거절하기 힘든 지인이 아니면 형사사건과 대법원 상고사건 수임을 하지 않았고 조세사건을 주로 맡았다”고 해명했다. 아직은 정확한 수임명세가 밝혀지지 않아 전관예우로 의심되는 수임 건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안 후보자는 16억 원 중 6억 원은 세금으로 내고 4억7000만 원은 기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관예우는 사후뇌물죄에 해당한다는 엄한 시각도 있다. 전관예우로 번 돈이라면 기부했다고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때인 2011년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는 민정수석비서관 출신인 데다 로펌 재직 시 월평균 1억 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는 비판이 더해져 청문회 전에 자진 사퇴했다. 그 액수와 비교해 봐도 안 후보자의 수입은 과다한 것이다. 안 후보자는 2006년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 전관예우에 대한 질문을 받고 “변호사들은 적절한 보수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답했다. 전관예우 논란을 차치하고라도 안 후보자는 자신이 받은 보수가 적절한지부터 생각해보기 바란다.}
검찰이 전방위적인 민관(民官)유착 수사에 나선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어제 검사장 회의에서 전국 지검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해 민관유착 비리 수사에 나설 것을 지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낳은 병폐로 민관유착을 지적하면서 관(官)피아(관료+마피아) 비리 척결이 국가 개조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검찰은 이미 해운 분야 전반에 걸쳐 민관유착을 파헤치고 있다. 검찰은 해양수산부 고위 관료 출신으로 2010∼2013년 한국해운조합 이사장을 지낸 이인수 인천항만공사 항만위원장의 횡령 혐의를 포착하고 출국금지 조치했다. 또 인천해양경찰서 해상안전과장으로 근무할 때 선주 모임에서 수백만 원 상당의 향응을 받고 여객선 승선 인원 초과를 눈감아준 동해지방해양경찰청 장모 특공대장을 구속했다. 민관유착은 해운 분야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수십 년간 쌓인 병폐다. 해운 분야 민관유착이 세월호 침몰이라는 참사를 낳았다면 다른 곳곳에서 벌어지는 민관유착은 어떤 비극을 잉태하고 있을지 불안하다. 이번 대검 회의에서는 각종 인허가 규제, 정부 지원 보조금 비리, 대형 건설사업 발주 비리 등 온갖 분야에서의 민관유착 유형이 거론됐다. 전국에서 전 분야에 걸쳐 고위직뿐 아니라 중하위직 공무원까지를 모두 대상으로 하는 유례없는 반(反)부패 수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민관유착 수사에서 검사도 예외일 순 없다. 부장검사가 내사 중인 기업 등으로부터 10억 원대의 뇌물을 받아 징역 7년을 선고받은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민관유착 수사는 깊숙이 들어갈수록 관행과의 싸움이 된다. 과거 ‘떡값’이란 명목으로 사법처리를 모면했던 삼성 떡값 유의 사건도 되풀이돼선 안 된다. 관피아는 전관예우에서 출발한다. 전관예우로 말하자면 법조계가 가장 심하다. 법조계의 전관예우까지 손본다는 각오로 검찰은 수사에 임해야 한다. 수없이 부패 척결을 외쳤지만 민관유착이 여전히 문제라는 것은 그만큼 뿌리 뽑기가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피아에서 ‘(마)피아’를 떼내 관피아라는 용어 자체를 없애는 작업은 쉽지 않다. 그러나 국가 개조를 위한 수사라면 지금까지와는 달라야 한다. 어떤 관행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건드리지 않은 것이 많다.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적폐가 됐다. 이번 수사가 바로 그 적폐를 털어내는 계기가 돼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석에서 자주 울었다. 감정이입을 잘하는 건 좋은데 지도자는 감정과 거리도 둘 줄 알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 희생자 영결식장에서 눈물을 보였다. 참담한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국군통수권자의 위엄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어느 화장실 변기 위에서 ‘남자가 흘려서는 안 되는 것이 눈물만이 아니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중년 남자라면 다른 것도 흘려선 안 되지만 특히 눈물은 참을 줄 알아야 한다. ▷서구에서 평가받는 여성 리더의 자질도 남성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철의 여인으로 불렸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독일의 대처로 불린다. 미국인도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의 대처이기를 바랐다. 힐러리는 2008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강행군 도중 “머리 손질을 누가 도와주느냐”는 질문에 “쉽지 않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덕분에 지지율을 일시 만회하는 것 같았으나 대통령을 할 만큼 강인하지 않다는 인상을 줘 결국 패했다. ▷한국은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서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칭찬은 고사하고 ‘아이를 안 키워봐서’ ‘감정이 메마른 얼음공주여서’ 그렇다느니 비난받는 나라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 줄도 모르고 어른들의 잘못된 안내방송을 끝까지 믿고 기다리던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안타깝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그것도 여성 대통령이 공석에서 울지 않은 게 대단하다고 여겼다. ▷박 대통령이 어제 결국 눈물을 보였다. 대국민담화 막판에 자신의 구명조끼마저 벗어주고 희생된 학생과 승무원 얘기를 하다 감정이 북받쳤나 보다. 여기에까지 박 대통령이 정치적 효과 만점의 눈물을 구사한 것이라느니, 한나라당 천막당사를 시작할 때도 그런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느니 분석하는 사람은 정나미가 떨어진다. 다만 지도자의 눈물에 야박한 나로선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다. 대통령은 눈물 흘리는 사람이 아니라 눈물 닦아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