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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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6-02-24~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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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15%
문학/출판10%
인사일반8%
음악5%
칼럼3%
역사1%
  • 한국여성기자협회 “언론인·정치인 성희롱 취재기자 철저히 조사하고 확실히 처벌해야”

    한국여성기자협회(회장 하임숙)가 언론인과 정치인을 단톡방에서 성희롱한 취재기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협회는 28일 성명을 내고 “미디어오늘이 보도한 ‘정치권 남성 취재기자들, 단톡방서 언론인·정치인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강한 분노와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협회가 자체 파악한 피해 현황과 관련 보도에 따르면 국회와 대통령실 등을 출입하는 남성 기자 3명은 최소 8명 이상의 기자와 정치인에 대해 성희롱 발언을 했다. 외모 품평을 비롯해 피해자들이 강한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발언이 다수였고, 피해자들은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고 있다.협회는 “이 같은 행동은 개인의 품격과 존엄을 훼손한 명백한 인권침해로 사회적으로 용인 받을 수 없다”며 “특히 취재현장에서 함께 뛰는 동료 기자와 취재원을 성희롱 대상으로 삼는 것은 마땅히 지켜야 할 기자 윤리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그러면서 “여성기자를 동료가 아닌 성적대상으로 여기는 행위가 용인되지 않도록 소속 회사 차원에서 철저한 조사와 가해자들에 대한 확실한 처벌을 촉구한다”며 “특히 침묵이나 방조는 비슷한 일이 반복되게 만드는 또 다른 가해 행위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마땅한 보호를 받아 어떠한 경우에도 2차 피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덧붙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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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응노 “자화상 같은 그림”… ‘취야’ 연작 선보여

    고암 이응노(1904∼1989)의 탄생 120주년을 맞아 가나아트와 가나문화재단이 2부에 걸쳐 그의 작업 세계를 돌아보는 전시를 개최한다. 두 전시는 고암이 문인화 전통을 넘어 일상 속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 30대 시절부터 ‘군상’으로 인간 탐구 절정에 이른 말년까지 조명한다. 그중 1부 전시인 ‘고암, 시대를 보다: 사생에서 추상까지’는 26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개막했다. 1부 전시는 고암이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의 모습을 담은 풍경화에서 출발한다. 이후 고암이 반(半)추상 실험을 하고 프랑스로 이주한 후 콜라주, 문자 추상 등 독자적 추상 양식으로 넘어간 흐름도 주목한다. 특히 1950, 60년대 미공개 작품이 나와 눈길을 끈다. 여기에는 고암의 1950년대 대표작으로 꼽히는 ‘취야’ 연작에 속하는 작품 두 점이 포함됐다. 고암은 생전 “1955년 자포자기한 생활을 하는 동안 야시장의 풍경과 생존경쟁을 해야 하는 서민 생활의 따뜻한 체취가 정말로 따뜻하게 느껴졌다”며 “취야는 나에게 자화상 같은 그림”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림 속에는 탁자를 놓고 2, 3명이 앉아 술을 마시며 그 뒤로 여러 인물 군상이 배경처럼 깔려 있다. 그림 왼쪽 위 ‘외상은 안뎀이댜’(외상은 안 됩니다)라고 직접 쓴 글씨가 남겨져 있는 것도 특징이다. 또 다른 미공개 작품으로는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돼 대전, 안양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옥중에서 그린 풍경 2점과 붉은 먹으로 1988년 그린 대나무 그림 1점이 있다. ‘모락산’은 안양교도소 뒷산을 그린 것으로, 고암은 수감 시기 그림뿐 아니라 밥알을 모아 종이를 섞어 반죽해 조각을 만들기도 했다. 고암의 옥중 작업을 보여주기 위해 가나문화재단이 소장한 밥풀 조각도 함께 전시한다. 7월 2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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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격자무늬 속에 담긴 여성 노동의 변천사

    뜨거운 여름 활기를 북돋울 색색의 ‘깅엄 체크’(격자무늬)가 동그란 캔버스를 가득 채웠다. 멀리서 보면 발랄한 분위기가 가득하지만, 가까이 가면 캔버스 위에 두꺼운 삼베를 덧씌워 울퉁불퉁한 질감이 살아난다. 격자무늬 하나하나가 겹치고 쌓이며 만들어진 패턴 속에서 역사와 권력 구조를 읽어낸 미국 작가 미셸 그라브너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20일 서울 강남구 에프레미디스에서 개막한 ‘깅엄 타임’은 그라브너의 신작 회화 18점을 소개한다. 작가는 집 안의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오브제 속 숨어 있는 사회 구조를 읽어내고 추상 회화로 표현해 왔다. 격자무늬는 18세기 영국이 공업화하며 등장해 누구나 화려한 무늬를 즐기도록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다. 그 이전에 무늬는 손바느질로 수를 놓아 귀족들만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여성 노동의 변천사나 꾸밈에 대한 욕구를 담은 격자무늬를 작가는 다시 착실한 수작업으로 캔버스 위에 옮기며 그 의미를 되새긴다. 그라브너는 시카고예술대 학장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2014년 휘트니 비엔날레 큐레이터를 맡는 등 평론가이자 비영리 전시 공간 운영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주영 디렉터는 “작가는 전시를 기획하거나 비평을 하다가 작업실에서는 고요히 격자무늬 하나하나를 그리며 자신만의 내면세계로 빠져든다”고 전했다. 7월 20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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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세대 도예가 故 권순형 작품 425점 기증

    한국의 1세대 도예가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지낸 고 권순형 작가(1929∼2017·사진)의 작품 425점과 기록 4046점이 서울공예박물관에 기증됐다. 서울공예박물관은 고인의 차남 권용태 씨로부터 권 작가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과 스케치, 도안, 제작 도구 등 각종 자료를 기증받았다고 24일 밝혔다. 권 씨는 “유작을 정리하며 부친께서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 작품 활동을 하셨다는 생각이 들어 박물관에 기증하게 됐다”고 밝혔다. 기증 작품에는 권 작가의 학창 시절인 1940년대부터 2017년 88세 나이로 작고하기까지 전 생애를 망라한 자료와 작품들로 금전적 가치는 59억 원 상당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다수 작품에 제작 연도와 작가 서명이 기재돼 있어 제작과 변천 양상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또 기증 자료에는 작업 일지, 작품 거래 목록, 개인전 비망록, 재료 구매 영수증은 물론이고 수십 권의 다이어리와 수첩, 달력이 포함됐다. 서울공예박물관 측은 “기증된 기록 등을 통해 작품의 창작과 판매 과정 등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어 작가의 생활사까지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권 작가는 1955년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1959년 국비로 미국 연수를 다녀온 후 도예가의 길을 걸었다. 색이 번지고 흐르는 강렬한 추상적 도예 작품으로 현대 도예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0년대부터 30여 년간 서울대 미술대학 도예 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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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가가 붙잡은 밤, 그리고 무의식 세계

    미국 뉴욕의 상징적 건물 중 하나인 ‘플랫아이언’. 1904년 룩셈부르크 출신 미국 사진가 에드워드 스타이컨은 우뚝 솟은 이 빌딩을 안갯속으로 사라질 듯 희미하게, 그리고 한가운데로 가로수의 나뭇가지가 팔을 뻗듯이 겹친 모습으로 묘사한다. 비가 내려 축축한 길 위로는 조명만 반짝인다. 분주했던 도시가 마치 잠에 빠져든 것 같은 광경은 인상파 화가의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플랫아이언 빌딩’(1905년), 이 작품은 작가가 회화처럼 사진에 감성을 담은 ‘픽토리얼리즘 운동’을 알린 역사적 의미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폴 앨런이 소장했던 원본이 2022년 경매에서 100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팔려 주목받은 ‘플랫아이언 빌딩’의 다른 버전이 서울 종로구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열리는 기획전 ‘밤 끝으로의 여행’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 전시는 ‘밤’을 주제로 국내외 32명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인다. 뮤지엄한미에 전시된 ‘플랫아이언’은 1906년 사진 잡지에 싣기 위해 만든 인쇄본이다. 전시는 ‘플랫아이언 빌딩’처럼 어두운 밤 고요한 도시의 모습은 물론이고 들개, 곤충 등 자연을 담은 작품들로 시작한다. 영국 작가 자나 브리스키는 밤에 지나다니는 곤충을 찍기 위해 빛으로 유인하거나, 감광지를 놓고 오랫동안 기다리다 곤충이 지나가는 순간을 포착했다. 어둡게 연출된 조명 속에서 곤충과 동물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각이 더 예민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후 전시는 사람의 내면 속 어두운 곳, 무의식의 세계로 더 나아간다. 사진 위에 드로잉을 하거나 관련 없는 두 소재를 포토몽타주(합성)해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브라사이, 제리 N 율스만의 작품과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에로틱한 꽃 정물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1900년대 초반 고전 작품부터 동시대 국내외 작품까지 폭넓게 다룬다. 전체 작품 중 66점이 뮤지엄한미 소장품이기도 하다. 26일 오후 7시에는 어두운 밤에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야간 전시 투어도 열린다. 또 29일에는 참여 작가 권도연과 김태동의 작업 방식에 대해 듣는 아티스트 토크가 열린다. 8월 25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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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진스 日 데뷔 싱글 한-일 음반 차트 1위 올라

    그룹 뉴진스(사진)의 일본 데뷔 싱글 ‘슈퍼내추럴(Supernatural)’이 발매와 동시에 한국과 일본에서 음반 차트 1위에 올랐다. 23일 어도어는 ‘슈퍼내추럴’이 발매일인 21일 일본 음반 차트인 오리콘에서 ‘데일리 싱글’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같은 제목의 타이틀곡도 라인뮤직, AWA 등 일본 현지 음원 사이트에서 이틀 연속 실시간 차트 1위에 올랐다. 뉴진스는 21일 일본 지상파 음악방송 프로그램인 후지TV ‘메자마시테레비’와 ‘메자마시 8’, 아사히 ‘뮤직 스테이션’에서 신곡 무대를 선보였다. 한국 음반 차트인 한터차트에서도 발매 당일 6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올려 일반 음반 차트 1위에 올랐다.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 상위권에 ‘Supernatural’과 ‘Right Now’가 진입한 상태다. 멜론 ‘톱100’에는 두 곡을 비롯해 지난달 공개한 ‘How Sweet’ 등 총 10곡이 올라와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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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서 8년 만의 한국 대중음악 콘서트 무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 후 8년 만에 재개될 예정이던 한국 대중음악 콘서트가 결국 무산됐다. 23일 공연계에 따르면 다음 달 12일 중국 베이징에서 단독 공연을 할 예정이었던 한국 인디밴드 ‘세이수미’의 콘서트가 취소됐다. 세이수미는 21일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7월 베이징 공연을 허가받았었다”며 “공연 포스터도 나오고 언제 공지를 하면 좋을지 기다리던 와중에 허가가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한령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나 했는데 너무 아쉽다”고 덧붙였다. 세이수미는 중국 측 제안으로 공연을 준비했고 올 5월 베이징시 문화여유국으로부터 공연 허가를 받았지만, 지난주 허가가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취소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공연은 2016년 사드 배치에 반발한 중국이 2017년 내린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이 8년째 이어지는 상황에서 주목을 받았다.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는 3일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리 대중가수의 중국 내 단독 공연이 허가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보이는바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소프라노 조수미 등 한국인의 클래식이나 재즈 공연은 최근 중국에서 열렸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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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뮌터 ‘자화상’ 뒷면 열어보니… 눈동자 데생, 원본 그림과 완벽 일치

    티센 미술관은 11월 12일부터 청기사파의 유일한 여성 화가인 가브리엘레 뮌터(1877∼1962)의 회고전을 연다. 최근 여성 화가에 대한 재조명 움직임이 일면서 뮌터는 지난해 영국 로열 아카데미 그룹전, 올해 테이트 모던 ‘표현주의’ 그룹전에도 전면에 소개됐다. 티센 미술관은 ‘위대한 여성 표현주의 예술가’라는 부제로 뮌터를 소개한다. 전시를 준비 중인 큐레이터 마르타 루이스 델 아르볼은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중 하나인 뮌터의 ‘자화상’(1908년)이 보존 복원되는 과정을 동아일보에 공개했다. 전시를 위해 상태를 체크하고 복원이 필요한 곳을 수리하기 위해 마련된 보존복원실에는 수백 년 된 작품들이 민낯을 드러낸 채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뮌터의 자화상은 판지(carton)에 그려진 것으로, 액자에서 분리하니 작은 크기였다. 뮌터가 전시를 위해서 그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캔버스보다 비교적 편한 매체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보존 복원 과정에서 연구팀은 그림 뒷면에 뮌터가 그린 눈동자를 주목했다. 이 눈동자 부분을 새롭게 사진을 찍어 원본 그림에 겹쳐 보았는데 그 모양이 완전히 일치했다는 것이다. 이는 뮌터가 자와 같은 측량기기 없이도 정확히 같은 크기와 위치를 그려낼 수 있었으며, 그만큼 훌륭한 데생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아르볼은 “뮌터는 칸딘스키의 연인이었다는 흥미 위주의 이야기로 소개됐는데, 독일에서는 아주 중요한 작가”라며 “자화상만 보고도 사진에서 뮌터를 알아볼 수 있었으며, 터치 몇 번으로 초상화나 풍경의 본질을 잡을 수 있었던 화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화상에서는 자신을 냉정하고 정직하게 바라보려는 태도를 읽을 수 있고, 이를 통해 현대 인간의 불안한 감정까지도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아르볼은 “뮌터의 회화 작품은 물론 그가 홀로 미국 여행을 떠나 찍었던 사진까지 150여 점을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드리드=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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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에 보이지 않은 세계를 찾아서… 추상미술 활짝 피다

    스페인 마드리드에는 미술 애호가라면 꼭 찾는 세 미술관, ‘골든 트라이앵글’이 있다. 세 미술관이 프라도 거리를 사이에 두고 삼각형 모양으로 자리해 붙여진 이름인데, 프라도 미술관, 왕립 소피아 미술관, 그리고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티센 미술관)이다. 티센 미술관은 독일 귀족인 티센보르네미사 가문이 3대에 걸쳐 수집한 컬렉션을 전시한다. 르네상스부터 현대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는데, 그중 독일 표현주의 컬렉션이 유명하다. 이 미술관에서 20세기 독일 미술을 담당하는 큐레이터 마르타 루이스 델 아르볼을 만나 바실리 칸딘스키의 두 작품, ‘세 개의 점이 있는 그림, No. 196’(1914년)과 ‘뮌헨의 루트비히 교회’(1908년)에 대해 들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위한 그림 ‘세 개의 점…’은 칸딘스키가 본격적인 추상 회화로 돌입할 무렵의 작품이다. 아르볼은 “칸딘스키는 이 시기 지금은 매우 유명한 글인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을 썼고, 이를 통해 예술이 내면의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청기사파’ 작가들과 공유했다”고 설명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붉은 태양이나 배, 사람 같은 형상을 알아볼 수 있다. 세 개의 점은 그림 가운데에 뭉쳐진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덩어리를 뜻한다. 하나하나 분석하면 형태를 식별할 수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각기 다른 형태와 색의 조합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다. “1910년 칸딘스키는 아널드 쇤베르크의 음악을 듣고 깊이 감명받았습니다. 쇤베르크가 기존 음악 형식을 파괴해 만들어 낸 새로운 소리를 듣고 칸딘스키는 형태가 없어도 감정을 촉발하는 음악과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죠.” 칸딘스키의 추상화는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 느낌, 감각을 표현하려는 시도였다. 아르볼은 “칸딘스키의 윗세대인 사실주의, 인상주의 예술가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표현했다”며 “청기사파는 보이는 것을 넘어 더 깊은 영역과 연결되려 했는데 이는 당시 지식인들이 새로운 과학과 이론에 매료된 이유도 있다”고 했다. 이 무렵 X선이 처음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X선은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게 하며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또 당대 지식인 사이에 유행한 신지학도 영향을 미쳤다. 신지학은 우주를 관통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이 있다고 봤다. 아르볼은 “칸딘스키는 다양한 형태와 색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고, 이 언어로 각기 다른 형태들의 조합을 실험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우주의 신비 같은 것을 표현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오래된 것에서 답을 구하다 ‘뮌헨의 루트비히 교회’는 칸딘스키가 완전한 추상화를 그리기 전 과도기의 작품이다. 뮌헨의 교회에서 조각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자세한 묘사보다 붓놀림을 최소화하며 대략적 형태만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검은 윤곽선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독일 무르나우 지역의 유리 그림의 영향이다. “유리 그림은 아카데미 미술과 관련 없이 민속 예술로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종교적인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거나 누군가 병에서 회복했을 때 감사의 의미로 교회에 바쳤던 그림이었고, 예술과 생활의 구분이 없었죠.” 당시 독일은 제국주의 국가로 유럽 중심의 시각에서 문화의 우열을 가렸는데, 칸딘스키를 비롯한 예술가들은 토속 문화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이 무렵은 극심한 경기 침체, 급속도의 정보 교류와 사상의 발달 등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이에 문명 밖 오래된 것에서 답을 찾으려 한 것이다. 아르볼은 “청기사파는 자신을 실제로 ‘악과 싸우는 기사’로 봤다”며 “현대 사회의 과도한 물질주의에 맞서고 모든 사람이 내면을 표현하고 마음을 열기를 바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100여 년 전에 그려졌지만, 현대사회에도 이어지는 고민이자 예술가의 오래된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마드리드=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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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회 끝난 광화문 도로에 수북이 쌓인 수백개 의자

    주말마다 일로 광화문을 찾던 김건희 작가(55)는 집회가 끝난 도로에 쌓인 플라스틱 의자들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차곡차곡 쌓인 수백 개 의자들. 거기에 앉은 사람마다 각자의 의견이 있었을 텐데 흔적만 남았구나….” 작가는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단정 짓지 말자고 마음먹는다. 김 작가는 이 일화에서 얻은 영감을 토대로 완성한 회화 작품을 전시를 통해 선보인다. 22일까지 서울 강남구 이유진갤러리에서 진행되는 개인전 ‘그렇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를 통해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이해하는 그림’보다 ‘감각하는 그림’에 집중하려 했다. 광화문 풍경과 그것을 확대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한 캔버스 회화가 전시됐다. 갱지에 그린 작품도 있는데, 이는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그리자는 생각에서 택한 재료였다. 재료비부터 100호 캔버스는 25만 원인데 갱지는 1장에 120원에 그친다. 작가는 “유화 물감을 사용했더니 갱지에 기름이 스며들어 더 단단하고 투명해지는 효과도 생겼다”고 말했다. 이유진 대표는 “팬데믹 시기 미술 시장에서 다양한 작품이 쏟아져 나온 가운데 제대로 된 그림을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제가 미대생일 때부터 실력 좋기로 유명했던 김건희 작가에게 밤에 전화해 전시하자 졸랐다. 이번 전시가 그 결과물”이라며 “신작은 2010년대 무채색에서 벗어나 다양한 컬러와 밀도 높은 표면 질감이 돋보인다”고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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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강혜 민화 작가, 두 번째 개인전 26일부터

    민화 작가인 이강혜 씨의 두 번째 개인전이 6월 26일부터 7월1일까지 서울 삼청동 피앤씨토탈갤러리에서 열린다. 주제는 “raise the curtain – 막이 오르다”로 기존에 있던 민화나 자연물들을 인생의 한부분으로 현대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했다. 영화의 도입부나 유명한 엠블럼 등은 전시의 전체적인 메시지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상징적인 의미를 두고 있으며, 그 외에도 전시를 보며 각각의 의미를 찾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 토요일인 29일 오후 5시 반에는 전시회를 기념하는 콘트라베이스 3중주 연주회도 예정돼 있다. 0507-1345-1766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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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20년 전 빵 배우러 프랑스로 떠난 신학대생은…

    한 사람의 인생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운명이 정한 대로 살아지는 것일까. 모든 걸 내 뜻대로 하겠다며 잔뜩 힘을 줬다가 큰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어느 날은 힘을 빼고 흐름에 맡겼더니 뜻밖의 길이 열리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삶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가운데 그저 조용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인 서용상, 양승희 부부가 2007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에 빵집을 내고 지난해 한국에 지점을 내기까지의 여정도 그러했다. 부부는 2002년 돌연 프랑스로 떠났는데, 목회자가 되려고 신학대학원을 다니던 남편이 갑자기 제과제빵을 배우겠다고 한 게 이유였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방 땅에서 두 사람은 어떻게 정착했을까. 20여 년의 여정을 부부는 번갈아 가며 글로 써 내려간다. 부부는 어학연수로 만난 프랑스어 선생님이 제과제빵 회사에서 일하는 지인을 소개해줘 연수 기회를 얻은 걸 계기로 2007년 파리에 가게를 연다. ‘엄마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아들의 말에 갖게 된 안식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매장을 여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는 등 우여곡절이 펼쳐진다. 때로 두렵지만 과감하게 나아가고, 때론 불안해하며 그저 흐름에 맡기는 삶의 과정 속에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책이 나오게 된 과정도 흥미롭다. 편집자가 부부에게 책을 제안한 것은 2011년. 한국인 최초로 파리에 빵집을 열고 난 뒤였다. 그러나 수년이 지나도 원고에 진척은 없었다. 편집자는 “두 번째로 파리 출장을 갔다가 고된 노동으로 어깨 근육이 파열돼 붕대를 감고 새벽 출근에 나서는 모습을 보며 오랜 시간 침묵했다”고 회고한다. 이후 2013년 파리 전통 바게트 대회 입상, 2019년 자체 브랜드 빵집인 ‘밀레앙’ 오픈, 2023년 일드 프랑스 플랑 대회 그랑프리 수상까지. 13년 동안 부부의 삶은 더 풍성하게 무르익었고, 그제야 써나가기 시작한 원고는 드디어 책으로 완성됐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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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현대 미술가들의 전략, 신화의 힘[영감 한 스푼]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방대한 세계관을 이어가고 있는 ‘스타워즈’.첫 트릴로지의 마지막 편인 ‘제다이의 귀환’을 발표한 1983년 조지 루커스 감독은 자신의 집으로 79세의 학자를 초대해 영화를 보여주는데요.그는 ‘20세기 최고의 신화 연구자’로 꼽힌 조지프 캠벨(1904~1987). 루카스는 캠벨이 해석한 신화들 덕분에 ‘스타워즈’를 쓸 수 있었다며 캠벨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고전이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탐구와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으로 살아남는 것이라면, 신화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예술 작품 중 하나일 것입니다.이번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눈길을 끈 두 국가관의 모습, 그 속에 드러난 신화의 끊임없는 생명력에 관해 소개합니다.작은 폭포는 깊고 푸른 바다가 되어지난번 뉴스레터에서 독일관을 소개했는데요. 사실 베네치아 자르디니 공원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감각적으로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프랑스관이었습니다.전시장에 입장하면 부드러운 형광의 설치 조형물이 곳곳에 매달려 있고, 귀로는 리드미컬한 타악기가 중심이 되는, 그러나 어딘가 현대적인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코로는 말린 라벤더를 재료로 한, 향수와 약재 그 사이쯤에 있는 향이 느껴졌습니다.이 전시는 카리브해 출신 흑인 최초로 프랑스관을 대표하게 된 예술가인 줄리앙 크루제(38)의 개인전입니다.크루제는 비교적 젊은 나이로 프랑스관 대표 작가가 되었는데, 이미 2021년 마르셀 뒤샹 상 후보에 오르며 프랑스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크루제는 이번 전시에서 아프리카와 유럽, 과거와 미래, 자연과 도시 등 여러 상반되는 요소를 섞어 어딘가 익숙하지만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이를테면 전시장 속 나무 조각은 어떤 면으로 보면 아프리카 목조각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감각적인 마무리로 토속적 요소를 제거해 대도시 어딘가에 놓인 세련된 조각으로도 보이죠. 향과 음악이 내뿜는 이미지도 이러한 것이었습니다.이런 가운데 전시의 제목은 ‘아틸라 폭포, 푸른 봉우리 발치에 있는 그 시작은 푸른 심연의 큰 바다로 흘러가리라’. 프랑스어로 읽으면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시적인 문구입니다.이렇게 젊은 작가 크루제는 자신이 자란 카리브해의 환경과 유럽에서의 예술 교육을 감각적으로 활용해 시각, 후각, 청각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었습니다.그런 가운데 이런 감각이 단순한 기교나 흥미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요소 중 하나가 신화와 사회에 대한 관심입니다.크루제는 영상 작품에서 그리스 조각상이 위아래가 뒤집힌 채 눈물을 흘리며 물속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의 주제가 유럽 중심의 예술관에서 벗어나 보자고 제안한 것에 호응하는 대목입니다.이 영상을 보고 전시장을 돌아보면 전체가 물속에 잠긴 듯 연출됐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스는 물론 수많은 신화와 문화적 모티프를 흐르는 물속에 담그고 유연하게 보려는 목소리가 읽혔습니다.그녀의 신화와 춤을신화 속 요소를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것은 아르세날레 전시장에 마련된 레바논관 작가 무니라 알 솔(46)이었습니다.프랑스관보다 규모는 작지만 드로잉부터 가면을 모티프로 한 조각, 천정에 걸린 캔버스 회화, 그리고 가운데 배를 활용한 설치까지 약 40여 점으로 알차게 구성한 전시입니다.가장 먼저 눈에 띄는 회화 작품에서 바닥에 누운 여인이 소가 그려진 항아리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그림은 레바논과도 연관이 있는 그리스 신화 속 ‘에우로페의 납치’를 작가가 자신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입니다.‘에우로페의 납치’는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를 흰 소로 변신한 제우스가 꼬드겨 바다를 건너 크레타섬으로 데려가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소의 등에 올라탄 채 바다로 향하는 에우로페의 모습은 티치아노, 렘브란트 등 미술사에서 수많은 거장이 다루었던 소재입니다.알 솔은 이런 에우로페를 납치당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소의 머리를 갖고 노는 과감한 인물로 표현합니다.그녀의 발에는 하트 모양이 그려진 깃발이 꽂혀 있고, 바닥에 편히 누워 관객을 응시하고 있죠. 영상 작품에서는 ‘멋진 소를 찾은 줄 알았더니 염소였네’라는 대목이 나오기도 합니다.또 가면 모양의 조각 작품은 신화 속 등장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귀걸이로 플라스틱 줄자가 걸려 있거나 테이크아웃 커피잔, 바람개비 등 현대의 오브제들이 매달려 현재와 과거를 섞고 있습니다.알 솔 역시 크루제처럼 유럽인들이 익숙한 신화에 기대면서 그것을 낯설게 만들며 자신만의 시각 언어를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신화가 이렇게 현대 미술가들에게도 끊임 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은, 그것이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며 다듬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분명한 결말이 있는 교훈적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 탐욕, 좌절, 희망 등 여러 가지 단면을 수수께끼처럼 신화는 풀어내죠.그 틈새를 파고들어 다르게 만들거나 비틀기를 하면서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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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두운 인간 본성 파헤친 전쟁 회화… 근대 미술의 門 열어

    1808년 5월 스페인 마드리드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침략과 보복이 가득한 아수라장이었다. 5월 2일에는 스페인으로 쳐들어온 프랑스군을 시민들이 무참히 죽였고, 다음 날 프랑스군은 마드리드 시민 수백 명을 학살한다. 6년 뒤 스페인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는 두 날 일어난 일을 대형 회화 두 점으로 남겼다. 이 중 프랑스군의 시민 학살을 그린 ‘1808년 5월 3일’(5월 3일)은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막시밀리안의 처형’으로, 파블로 피카소가 ‘한국에서의 학살’ ‘게르니카’에 영향을 주며 프라도 미술관의 대표작으로 남았다. 그 이유는 고야의 ‘5월 3일’이 역사 속 사건을 단순히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라도 미술관의 큐레이터 구드룬 마우러는 이 그림을 “인간 본성에 관한 탐구”라고 설명했다.● 그림 속 이중적 의미 ‘5월 3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흰옷을 입고 두 손을 들어 올린 남성이다. 남성의 포즈와 하얗게 빛나는 옷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연상케 한다. 따라서 첫눈에는 스페인을 침략한 프랑스군에 맞서 싸운 마드리드 시민을 영웅처럼 묘사한 것으로 읽힌다. 마우러는 “예수상은 스페인에서 아주 중요한 이미지였기에 그림을 본다면 누구나 이 남자가 예수에 빗대어 그려졌음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그림에는 종교화 같지 않은 요소도 있다. 마우러는 “종교화에서는 항상 신의 빛, 천사, 신의 존재가 등장하는데 이 그림에는 없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남성을 비추는 빛은 신이 있는 하늘이 아닌 바닥의 등불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또 그림 오른쪽 뒤에 보이는 교회는 불이 꺼진 채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인다. “이를 통해 고야가 분명히 하는 것은 이 사람이 곧 총에 맞아 죽게 된다는 것. 그 죽음 뒤에 구원은 없을 것이고 그저 비극적인 종말이 결론이라는 점입니다. 이 인물은 ‘순교자’가 아닌, 구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희생자’인 것이죠.” 구드룬의 이러한 설명은 그림 왼쪽 아래 피를 흘리며 참혹하게 죽어 나간 사람들, 또 그 시신 옆에서 무언가를 가져가고 있는 듯한 희미한 여인의 모습을 통해 선명히 드러난다. 즉, 고야는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에서 죽어간 시민들의 영웅적 모습과 비극적 결말을 한데 엮어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마우러에 따르면 이러한 복합적인 구조는 또 다른 그림 ‘1808년 5월 2일’(5월 2일)을 함께 보면 더욱 극적으로 나타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5월 2일’은 표면적으로는 마드리드에 쳐들어온 프랑스군에 용감히 맞서 싸운 시민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 역시 자세히 보면 잔혹함이 가득하다. 마우러는 “5월 3일에서는 프랑스군이 얼굴 없이 기계처럼 민간인을 쏘고 있다면, 이번엔 스페인 사람들이 끔찍하고 폭력적으로 묘사된다”고 했다. 이미 칼에 맞아 쓰러져 말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다시 한번 찌르려 하는 남자, 또 이 남자와 같은 표정을 하는 프랑스군.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은 국가 간의 전쟁을 넘어 인간 본연의 폭력성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 고야는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고 되묻고 인간의 마음속 어두운 곳을 파헤치고 있다는 것이다. 고야는 4명의 왕이 바뀌는 동안 평생 궁정화가로 지내며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계몽주의자들과 교류하며 사회에 많은 관심을 갖고 관련 서적을 즐겨 읽었다. 그러면서 20세기 철학자,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무의식과 자아를 언어로 표현하기 전 시각 언어로 먼저 나타내 “근대 미술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우러는 “두 작품 외에도 고야는 전쟁을 다룬 판화를 통해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폭로하는 작품을 여러 점 남겼다”며 “이러한 사상가적 면모는 19∼20세기 프랑스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재발견됐고, 이를 계기로 고전 미술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고 했다. 마드리드=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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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야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판화에 철학적 메시지 담아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해 설명한 프라도 미술관 큐레이터 하이에르 포르투스 페레스는 “벨라스케스가 표현에서 새로운 길을 열었다면, 고야는 인간 내면을 표현하는 길을 열었다”며 “개인적으로 더 매력을 느끼는 예술가는 고야”라고 했다. 구드룬 마우러 역시 “수십 년간 고야를 연구했지만, 답을 찾았다고 생각하면 끊임없이 새 질문이 나오는 작가”라며 “고야의 예술 세계를 탐구하기로 한 것은 내 생애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라고 했다. 이렇게 전문가들을 고야가 매료시키는 것은 그가 인간 본성, 자아, 정체성 등 철학적 주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이는 종교나 국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루는 것이 목적이었던 서양 미술 역사의 새로운 흐름이다. 이런 고야의 예술 세계를 그의 고향 사라고사에 있는 고야 미술관의 판화를 통해 더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보통 의뢰를 받아야 그릴 수 있는 유화는 주로 왕이나 귀족, 교회를 위해 그려진다. 그러나 판화는 비교적 제작비가 저렴하고 여러 장 찍을 수 있기에 대중에 유통하고 판매하는 목적으로도 만들 수 있었다. 고야는 이런 판화의 특성을 활용해 ‘전쟁의 참상’ ‘카프리초스’ 등 좀 더 솔직한 자기 생각을 담은 판화집을 만들었다. ‘카프리초스’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같은 상징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마우러는 “고야가 만든 판화집 중 ‘보편적 언어’라는 제목을 단 것도 있다”며 “이것을 보면 고야가 시각 언어를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 본질을 담아내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그가 말년에 자택 벽에 남긴 벽화인 ‘블랙 페인팅’ 역시 가짜 뉴스, 마녀사냥 등 현대 사회에도 문제로 떠오르는 주제들을 다룬다. ‘블랙 페인팅’이 전시된 갤러리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으로 꼽힌다. 사라고사=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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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의 사진작가는 어떤 장면에 꽂혔나

    200년 전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된 후 사진은 기록을 넘어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국내에선 독일 작가를 중심으로 현대 사진 작품이 소개됐는데, 성곡미술관이 프랑스 현대 사진의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프랑스 현대 사진전’을 지난달 30일 개막했다. 이수균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이 “2008년 이후 16년 만에 선보이는 대규모 프랑스 현대 사진전”이라고 한 이번 전시는 파리 퐁피두센터와 파리시립미술관에서 사진 전문 큐레이터를 지낸 에마뉘엘 드 레코테가 공동기획을 맡았다. 현재 파리에서 열리는 사진축제 ‘포토 데이즈’의 디렉터인 드 레코테는 “다양한 세대를 아울러 프랑스 현대 사진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다. 전시는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중견작가 22명의 사진 작품 83점과 영상 작품 3점을 자연, 정물, 인간, 공간의 네 가지 키워드로 분류해 소개한다. 드 레코테는 “정물부터 풍경까지 참여 작가들의 작업 소재에서 자연에 대한 관심과 미래의 자연에 대한 우려를 살펴볼 수 있다”며 “작가들은 자연스러운 전통 기법을 활용하거나, 오래된 장소와 사물을 주제로 삼으면서 겸허하게 생명의 순환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전쟁 보도 사진기자로 활동한 소피 아티에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원시 자연의 장소를 찾아가 사진을 남긴다. 그 결과물에는 어떠한 보정이나 수정도 가하지 않는다. 또 쥘리에트 아넬은 수천 년 된 암석 동굴에서 맨눈으로 볼 수 없는 결정을 촬영해 생명의 신비를 일깨우기도 한다. 기후학자, 물리학자 등 과학계와 교류하며 정교한 연구를 출발점으로 삼아 새로운 기법을 실험하기도 한다.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인화지에 바로 형태를 새기는 ‘포토그램’이나 밀랍, 색소 같은 재료를 더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 작품이 소개됐다. 브로드베크와 드 바르뷔아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가상의 역사 속 사진을 만들고, 장프랑수아 르파주는 필름을 긁어내거나 인화된 사진을 다시 채색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8월 1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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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르지 않는 샘, 신화의 힘[김민의 영감 한 스푼]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방대한 세계관을 이어가고 있는 ‘스타워즈’. 첫 트릴로지의 마지막 편인 ‘제다이의 귀환’을 발표한 1983년, 조지 루커스 감독은 자기 집으로 79세의 학자를 초대해 영화를 보여주는데요. 그는 ‘20세기 최고의 신화 연구자’로 꼽힌 조지프 캠벨(1904∼1987)입니다. 루커스는 캠벨이 해석한 신화들 덕분에 ‘스타워즈’를 쓸 수 있었다며 캠벨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고전이 인간 본성에 관한 깊은 탐구와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으로 살아남는 것이라면, 신화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고전 예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번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눈길을 끈 두 국가관의 모습, 그 속에 드러난 신화의 끊임없는 생명력에 관해 소개합니다.작은 폭포는 깊고 푸른 바다가 되어 지난번 뉴스레터에서 독일관을 소개했는데요. 사실 베네치아 자르디니 공원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감각을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프랑스관이었습니다. 전시장에 입장하면 부드러운 형광의 설치 조형물이 곳곳에 매달려 있고, 귀로는 리드미컬한 타악기가 중심이 되는, 그러나 현대적인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코로는 말린 라벤더를 재료로 한, 향수와 약재 그 사이쯤에 있는 향이 느껴졌습니다. 이 전시는 카리브해 출신 흑인 최초로 프랑스관을 대표하게 된 예술가인 쥘리앵 크뢰제(38)의 개인전입니다. 크뢰제는 비교적 젊은 나이로 프랑스관 대표 작가가 되었는데, 이미 2021년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 후보에 오르며 프랑스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크뢰제는 이번 전시에서 아프리카와 유럽, 과거와 미래, 자연과 도시 등 여러 상반되는 요소를 섞어 어딘가 익숙하지만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전시장 속 나무 조각은 어떤 면으로 보면 아프리카 목조각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감각적인 마무리로 토속적 요소를 제거해 대도시 어딘가에 놓인 세련된 조각으로도 보이죠. 향과 음악이 내뿜는 이미지도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전시의 제목은 ‘아틸라 폭포. 녹색 봉우리 발치에 있는 그 시작은, 차고 지는 달의 눈물로 우리를 담갔던 푸른 심연의 큰 바다로 흘러가리라’. 프랑스어로 읽으면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시적인 문구입니다. 이렇게 젊은 작가 크뢰제는 자신이 자란 카리브해의 환경과 유럽에서의 예술 교육을 감각적으로 활용해 시각, 후각, 청각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감각이 단순한 기교나 흥미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요소 중 하나가 신화와 사회에 관한 관심입니다. 크뢰제는 영상 작품에서 그리스 조각상이 뒤집힌 채 눈물을 흘리며 물속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의 주제가 유럽 중심의 예술관에서 벗어나 보자고 제안한 것에 호응하는 대목입니다. 이 영상을 보고 전시장을 돌아보면 전체가 물속에 잠긴 듯 연출됐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스는 물론이고 수많은 신화와 문화적 모티프를 흐르는 물속에 담그고 유연하게 보려는 목소리가 읽힙니다.그녀의 신화와 춤을 신화 속 요소를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것은 아르세날레 전시장에 마련된 레바논관 작가 무니라 알 솔(46)이었습니다. 프랑스관보다 규모는 작지만 드로잉부터 가면을 모티프로 한 조각, 천장에 걸린 캔버스 회화, 그리고 가운데 배를 활용한 설치까지 약 40점으로 알차게 구성한 전시입니다. 회화 작품에서 바닥에 누운 여인이 소가 그려진 항아리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그림은 레바논과도 연관이 있는 그리스 신화 속 ‘에우로페의 납치’를 작가가 자신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입니다. ‘에우로페의 납치’는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를 흰 소로 변신한 제우스가 꼬드겨 바다를 건너 크레타섬으로 데려가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소의 등에 올라탄 채 바다로 향하는 에우로페의 모습은 티치아노, 렘브란트 등 미술사에서 수많은 거장이 다루었던 소재입니다. 알 솔은 이런 에우로페를 납치당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소의 머리를 갖고 노는 과감한 인물로 표현합니다. 그녀의 발에는 하트 모양이 그려진 깃발이 꽂혀 있고, 바닥에 편히 누워 관객을 응시하고 있죠. 영상 작품에서는 ‘멋진 소를 찾은 줄 알았더니 염소였네’라는 대목이 나오기도 합니다. 또 가면 모양의 조각 작품은 신화 속에 등장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귀걸이로 플라스틱 줄자가 걸려 있거나 테이크아웃 커피잔, 바람개비 등 현대의 오브제들이 매달려 현재와 과거를 섞고 있습니다. 알 솔 역시 크뢰제처럼 유럽인들이 익숙한 신화에 기대면서 그것을 낯설게 만들며 자신만의 시각 언어를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화가 이렇게 현대 미술가들에게도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은, 그것이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의 입으로 전하며 다듬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결말이 있는 교훈적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 탐욕, 좌절, 희망 등 여러 가지 단면을 수수께끼처럼 신화는 풀어내죠. 그 틈새를 파고들어 다르게 만들거나 비틀기를 하면서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단단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 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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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시녀들’… 피카소도 반해 58차례 오마주

    《유럽 미술관 하면 흔히 르네상스 예술이 있는 이탈리아나 인상파 예술이 있는 프랑스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두 사조만큼 미술사에서 중요한 흐름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볼 수 있다. 베네치아부터 플랑드르 예술과, 벨라스케스와 고야, 피카소까지. 스페인 유명 미술관의 대표 작품들을 전문 큐레이터의 설명을 더해 소개한다.》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은 프랑스 루브르, 러시아 에르미타주와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프라도 미술관을 대표하는 예술가는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 등 17∼18세기 스페인 작가들이다. 두 미술가는 인상파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프라도 미술관의 대표작인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1650년)은 “예술의 진정한 철학” “회화의 종교학”이라 불리며 미술 역사상 가장 많은 해석과 비평이 더해진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도 ‘시녀들’을 다양한 형태로 변주한 작품을 58점이나 남겼다. ●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하다 이 그림이 미술사에서 독보적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얼까. 프라도 미술관 큐레이터 하비에르 포르투스 페레스는 그 첫 번째 이유로 ‘움직임’을 포착했다는 점을 꼽았다. “벨라스케스는 ‘마무리(finishing)’의 대가였다. 가까이 보면 선과 붓 터치만 있어 미완성인 듯하지만 멀리서 보면 모든 것이 선명히 드러난다”고 했다. 이러한 마무리 방식은 선 원근법이나 해부학을 이용해 대상을 그렸던 라파엘로 등 일부 르네상스 화가들의 방식과 다르다. 라파엘로의 그림에선 모든 것이 얼어붙은 느낌이라면, 벨라스케스의 회화는 일상 속 움직이는 사람들의 순간을 포착한 느낌을 자아낸다. 페레스는 “인간의 눈에 보이는 풍경은 언제나 움직인다. 정적일 때는 거의 없다”며 “이런 실질적 시각을 충실히 표현하는 것이 벨라스케스의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기법을 더 밀고 나아가 빠르게 변하는 도시 풍경을 담은 것이 인상파 예술이다. 벨라스케스는 그림 속 인물의 배치를 통해서도 율동감을 만들었다. “치마의 큰 폭을 활용해 인물이 점유하는 ‘공간’을 창조해낸 것을 볼 수 있다”며 “이 그림은 실제로는 바닥에서 가까운 낮은 위치에 걸려 있었는데, 방에 들어서면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고 전했다고 큐레이터는 설명했다. ‘시녀들’은 주제도 파격적이다. 이 그림에서 확실한 것은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 중 가운데 위치한 중심인물이 다섯 살의 공주 ‘마르가리타 테레사’라는 것. 궁정 작가였던 벨라스케스는 가장 왼쪽의 이젤 앞에 서 있다. 작품 중앙부 뒤편 벽에 내걸린 거울 속에는 당시 왕인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왕비가 서 있다.● 초상화? 역사화? 수수께끼 그림 이 그림을 왕실 구성원들의 초상화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여백이 많다. 보통 왕실 초상화는 인물을 중심으로 화려한 배경을 채우거나, 말을 타는 모습 등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시녀들’에서는 인물들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실제로 ‘시녀들’은 1666년 스페인 왕실 소장 미술품 목록에선 “시녀들 및 여자 난쟁이와 함께 있는 공주의 초상화”로 기술돼 있었고, 17세기 말 몇 궁정 문서에선 “벨라스케스 자신의 초상화”라고 언급됐다. 무엇이 답일까. 페레스는 “‘시녀들’은 수많은 질문과 답이 교차하는 그림”이라며 “내용을 보면 초상화이지만 공간, 행동, 의미의 복잡성을 따져 보면 르네상스 시대 역사화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벨라스케스가 후대에 기억될 것을 인식하고 과감하게 펼친 미래를 향한 유산”이라고 했다. 미술의 역사에서 이 같은 파격은 혼란기에 등장했다. 르네상스 예술은 전쟁과 흑사병으로 인한 혼란기를 겪던 이탈리아 도시 국가에서 탄생했고, 인상주의 예술은 산업혁명과 도시화를 배경으로 했다. ‘시녀들’이 탄생할 때도 스페인 왕실은 후계자 문제, 포르투갈과 카탈루냐의 독립 문제와 세비야 인구 절반이 사망한 전염병 문제를 겪고 있었다. 혼란기는 과거의 권위는 내려놓고 오래된 경계를 넘어가려는 시도가 발생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페레스는 “이때 스페인 대표 극작가인 칼데론도 활약했다”며 “가톨릭 이슬람 유대 문화 등 다양한 문화가 혼합된 가운데 스페인 특유의 소탈한 현실에 대한 애정이 스페인 궁정 문화의 황금기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국제적인 언어’로서 미술 조명 프라도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컬렉션 중 하나인 17세기 스페인 미술의 보존과 연구를 담당해 온 페레스는 1999년부터 미술관에서 일하며 변화를 지켜본 산증인이다. 그는 프라도 미술관이 ‘스페인 미술’, ‘이탈리아 미술’, ‘플랑드르 미술’ 등을 국가별로 나눠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언어’로서 예술을 조명하고 있음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실제 프라도 미술관은 이러한 왕실 소장품을 기반으로 유럽의 화가들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국제적 흐름을 반영한 큐레이팅을 보여 주고 있었다. 메인 갤러리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색채 사용을 보여 주었던 베네치아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고 그다음으로는 플랑드르 화가인 루벤스의 작품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미술관의 가장 중심이 되는 큰 공간에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걸려 있다. 페레스는 “벨라스케스는 베네치아 화가들의 아들이자 루벤스의 형제와도 같다”며 “18세기부터 미술사가 국가를 관점으로 쓰여 왔는데, 이것이 15∼17세기 활발한 이동과 교류가 있던 시대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프라도 미술관은 현재 큐레이팅에서 국경을 넘는 예술가들의 ‘연결’을 강조하고, 사실상 미술이 국제적인 언어였음을 강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드리드=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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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은 땅서 만난 무한한 자연… ‘연결된 외로움’을 작품으로”

    2023년 미국 콜로라도주 샌루이스의 광활한 벌판. 오랫동안 이어진 농작과 극심한 가뭄으로 황폐해진 이곳을 밤에 걷던 프랑스 출신 미술가 마르그리트 위모(38)는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외로움’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 지역은 밤에 불을 켜지 못하도록 해 별이 찬란하게 보였고, 걷다 보면 동물들이 파 놓은 굴에 발이 푹 빠졌어요. 분명 검은 들판에 나 혼자인데 보이지 않는 무한한 자연과 맞닿은, ‘연결된 외로움’을 느꼈죠.” 위모는 죽은 듯한 땅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약 66만 ㎡(약 20만 평)에 달하는 지역 곳곳에 작품을 놓은 초대형 대지 미술 작품 ‘기도(Orisons)’다. 이 ‘기도’를 변주한 설치, 사진, 드로잉 작품이 서울 강남구 화이트큐브 서울에서 7일 개막하는 개인전 ‘DUST(먼지)’를 통해 소개된다. 4일 그를 갤러리에서 만났다. 이번이 아시아 첫 개인전이지만 위모는 2016년 프랑스 파리 팔레 드 도쿄를 시작으로 영국 런던 테이트 브리튼(2017년), 미국 뉴욕 뉴뮤지엄(2018년) 등에서 개인전을 열며 젊은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각 분야 전문가와 협업해 인간 존재의 신비와 미스터리를 탐구했는데, ‘기도’에서도 조류학자, 야생동물 전문가는 물론이고 지역 주민과 풍수사까지 만났다. “일종의 심령술사인 풍수사와 함께 땅 곳곳을 다녔는데, 1850년대 이곳에 살았던 여성의 원혼이 땅에 갇혀 있다고 했어요. 또 수맥은 어디에 있는지, 동물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파악했죠. 이번 전시에는 그런 땅에 관한 경험을 일종의 지도를 만든다고 생각해 풀어냈습니다.” 전시장 벽면에는 황량한 대지에서 찍었던 사진이, 중앙에는 섬유와 금속, 테라코타 등을 재료로 땅을 재해석한 조각이 전시됐다. 촘촘히 짜인 그물망이 만든 공간, 그 속의 작은 동물과 땅까지 소우주를 보는 듯한 광경이 펼쳐진다. 올해 광주 비엔날레에도 참여하는 위모는 “한국 생물학자와 협업해 생물 표본을 채집하고, 고생대 한국의 환경을 복원해 볼 예정”이라며 “태초에 생명이 탄생했을 때 어떤 모양이고 어떤 리듬을 가졌을지를 상상해 보려 한다”고 말했다. “한국 밴드 이날치의 멤버 송희에게 실험적 판소리를 작곡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태초의 생명체가 태어났을 때의 리듬과 판소리의 기교만 활용한 새로운 음악의 리듬이 합쳐지는 풍경이 될 것 같아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영국 왕립예술대(RCA)에서 공부한 위모는 “가장 친한 친구가 한국인이고 룸메이트로도 함께 지내 주말마다 해물파전을 만들어 먹었다”며 “8월 작품 설치를 위해 한국에 오래 머물게 돼 기대 중”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8월 17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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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모함, 나의 정체성”… 틈 비집고 30년째 새로운 예술적 시도

    《제9회 박수근미술상 홍이현숙 작가 미술 작가 홍이현숙 씨(66·사진)가 제9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5일 선정됐다. 동아일보와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강원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이 상은 박수근 화백(1914∼1965)을 기리는 뜻에서 2016년 제정됐다.홍 작가는 1988년부터 특정한 매체 혹은 주제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퍼포먼스,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하고 있으며 여러 공공미술 프로젝트 기획을 통해 낙후되거나 사라지는 터전과 지역민의 삶을 고민하는 협업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심사위원장인 임근혜 아르코미술관장은 “지난 30여 년간 예술적, 사회적 의미 사이에서 치열한 문제의식을 갖고 여성, 환경, 생태, 공생 문제 등을 진지하게 고민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14일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다.》1980년대 홍익대 조소과를 다녔던 홍이현숙 작가(66)는 첫 개인전에서 베어진 가로수 나무를, 두 번째 개인전에선 돌아가신 아버지의 옷을 전시했다. 조각을 공부했던 그는 설치 작품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한없이 삐치고 싶었다”고 말했다.“조소과는 남녀 성비가 반반이었는데 프로젝트 선정 등 여러 기회가 남학생 위주로 돌아갔어요. 우리 과 후배로 이불 작가가 있었는데, 이불도 퍼포먼스와 설치를 했잖아요. 나도 그 판에 섞이려 애쓰기보다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리고 설치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죠.”그 후 홍이현숙의 작업은 ‘폐경 의례’(2012년) 같은 도발적 퍼포먼스부터 길고양이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 ‘석광사 근방’(2020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이어졌다. 그의 작품은 젊은 큐레이터와 비평가에게 주목받고 있는데 최근 5년간 아르코미술관 개인전, 광주비엔날레 등에 참여한 데 이어 올해도 부산비엔날레,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인전을 앞두고 있다.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 홍이현숙의 작품을 소개한 독립큐레이터 임수영은 “퍼포먼스와 영상, 참여 작업을 아우르는 매체를 통해 새로운 감각을 탐구하려는 노력을 30여 년간 이어 온 드문 여성 작가”라고 평했다. 이슬비 평론가는 “어떻게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는지에 대한 주제를 유행으로 좇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오랫동안 탐구해온 작가”라고 했다.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작업실에서 만난 홍이현숙은 “처음 수상 소식을 듣고 내가 받아도 되나 생각했지만, 한 동료 작가가 ‘상이란 그 상을 받는 사람이 상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해줘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칠고 무모한 것이 원래 나의 정체성인데 좀 더 바깥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그는 자신을 ‘여성주의 작가’로 보는 시선에 대해 “내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제가 여성이었기에 조각이 아닌 다른 방식을 찾으려 했고, 짜인 판 밖으로 나와 관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 동물과 인간이 전쟁한다면? 난 기꺼이 동물 편에 서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퍼포먼스 영상 속 그녀는 맨발과 맨손으로 산을 오르고, ‘축지법과 비행술’을 배운다며 건물 사이를 뛰어넘는다. 홍이현숙은 “한없이 삐치되 한 발짝 물러나 유머와 해학을 갖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분노가 끓어오를 때도 있지만 화를 내면 좋은 작업을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아마도 이런 태도가 여성적인 것 아닐까요?”그는 자신을 버티게 해 준 원동력으로 ‘고집’을 꼽았다. “스스로 나 잘났다 여기며 일으키고 불 지르고 부추겨야 해요. 자기가 잘났다는 걸 알아야 하죠. 후배 작가들도 보면 저마다 예쁘고 훌륭한 면이 있어요. 그에 대한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그는 뻔한 작업을 하지 않기 위해 매일 이동하는 길도 하루는 버스를 타보고 다른 날은 자전거를 타며 ‘다름’을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무모해 보이지만 결국에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그는 수상을 계기로 “박수근의 미술 세계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제9회 박수근미술상은 운영위원회(위원장 이인범 아이비리인스티튜트 대표)가 추천위원 10명을 위촉했고, 추천위원이 후보 9명을 선정해 심사위원회를 거쳐 수상자를 선정했다. 심사위원회는 임근혜 아르코미술관장이 위원장을, 김주원 상명대 겸임교수, 이준 미술평론가, 조은정 고려대 초빙교수, 최형순 충남도립미술관 개관준비단장이 심사위원을 맡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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