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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심고 키우기만 한다고 좋은 숲이 아닙니다.” 지난달 27일 강원 춘천시 가리산. 잣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은 멀리서 봤을 땐 풍성해 보였다. 하지만 숲속으로 들어가자 키 큰 나무들 사이에 갇혀 썩은 나무들이 보였다. 김아름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사는 “다닥다닥 붙어서 자라는 탓에 햇빛을 못 봐 광합성도 못 하고 말라 죽은 것”이라며 “나무들도 전반적으로 고령화돼 탄소 흡수율이 떨어진다”고 했다. 가리산뿐만이 아니다. 국내 숲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대한민국 국토에서 산림이 차지하는 면적은 세계 평균(31%)의 2배에 달할 정도로 양적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산림 선진국에 비해 숲을 활용하지 못해 무늬만 ‘숲의 나라’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기후변화로 경제적 충격과 재난 위기가 일상화된 ‘그린스완(Green Swan)’ 시대에 숲 활용도를 높이는 과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동아일보가 지난달 26∼28일 해외 산림 선진국을 취재한 결과 일본은 ‘명품 숲’을 만들어 인구 유입과 지역 소득 향상의 계기로 삼았고, 지역소멸 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 독일은 멈춰버린 제철소 위에 도시숲을 조성해 생명을 불어넣거나 숲에서 나온 목재 부산물 등 바이오매스(생물자원)로 새로운 산업을 창출했다. 뉴질랜드는 나무를 심고 가꾸고 쓰는 선순환으로 이른바 ‘목(木)맥경화’를 뚫어냈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반세기 넘게 약 115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황폐화된 숲이 다시 푸르러졌다. 국토 대비 산림 비율(63%)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선 네 번째로 높다. 동시에 한국은 열대 목재 수입량 세계 4위로, 자급률은 15%에 그친다. 영국 프랑스 등은 자급률이 50∼80%에 달한다. 국내 숲은 탄소 저감 효과도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나무 중 77.2%가 30년생 이상이기 때문이다. 주요 수종은 심은 후 평균 25년이 지나면 탄소 흡수량이 줄어든다. 박병배 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는 “이제는 단순히 나무를 많이 심는 양적 성장을 넘어 탄소 저감, 산림안보, 지역경제와의 연계 등 숲을 제대로 활용하는 질적 성장을 꾀할 때”라고 강조했다. 31일 산림청 분석 결과 숲 활용도를 높일 경우 산림산업뿐만 아니라 관광 등 부가가치를 더한 전체 매출액은 현재 161조 원(2021년 기준)에서 2030년 206조 원, 2073년 606조 원까지 커진다. 지난해 현대자동차 매출액 162조 원의 4배 수준이다. 산림산업 일자리도 현재 61만 명에서 2073년 204만 명까지 증가한다.그린스완(Green Swan)기후변화가 초래할 사회 경제적 충격과 극단적 재난 위기 등을 일컫는 용어. 예기치 못한 경제 위기를 뜻하는 블랙스완을 변형한 것으로, 2020년 국제결제은행(BIS)이 제시했다. 韓 ‘목맥경화’… 115억그루 심었지만 늙은 나무 방치, 선순환 안돼[‘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 〈1〉 韓日 ‘숲 정책’ 살펴보니 나무 다닥다닥… 어린 나무까지 ‘골골’필요 목재 85% 수입… 年 7조 달해선진국, 청년-중년나무 고루 분포… “숲, 양적성장 넘어 이젠 질적 성장을” 성인 1명이 쉽게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로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 나무 직경은 평균 30cm에 불과했다. 양팔로 나무를 안고도 두 손이 포개질 만큼 얇았다. 다닥다닥 붙어 자란 탓에 생장이 억제돼서다. 나뭇가지도 뿌리에 가까운 아래쪽부터 많이 나 있었다. 나무는 가지가 뻗어 나간 자리에 생기는 옹이가 많을수록 목재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지난달 27일 찾은 강원 춘천시 가리산의 풍경이다.● 아직까진 ‘무늬만’ 숲의 나라 반면 같은 잣나무인데도 관리를 해준 숲의 풍경은 달랐다. 산림청이 ‘숲가꾸기 시범림’으로 관리하고 있는 공간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굵고 곧게 뻗은 나무가 많았다. 2년생 묘목을 심은 뒤 건강한 나무만 남기는 솎아베기 과정을 거쳤다. 우량한 나무 주변에 있는 병든 나무, 굽은 나무, 노쇠한 나무는 잘라줬다. 그 결과 방치된 숲의 잣나무는 직경이 30cm 안팎에 불과했지만, 관리된 숲에선 잣나무 직경이 50cm 안팎까지 자랐다. 굵을 뿐만 아니라 길고 반듯하게 자라 목재로서 쓰임새도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관리를 받은 나무는 뿌리가 깊이 들어가 산사태 발생 시 말뚝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윤석범 춘천국유림관리소장은 “국내 대부분의 산이 나무를 심기만 하고 가꿔 주지 않아 적정 밀도보다 과밀한 상태”라며 “나무도 농작물처럼 제때 ‘수확’한다는 개념이 자리 잡아야 자연이 선순환한다”고 말했다. 국내엔 전국 어디에나 푸른 숲이 있고 나무도 빼곡하게 심어져 있지만, 상대적으로 숲 관리는 빈약하다는 의미다. 국내 목재 수요량의 85%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하는 열대 목재만 매년 7조 원 규모로 세계 4위다. 수입량이 많다 보니 인도네시아에서 원목 수출을 제한하면 국내 목재 가격이 요동치기도 한다. 윤 소장은 “목재를 해외에서 벌크선으로 수입해 오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며 “자국에서 생산한 목재를 자국에서 소비하는 게 탄소 중립 면에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숲에는 30년생이 넘어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줄기 시작한 나무가 10그루 중 7그루(77.2%)가 넘는다. 중부지방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연간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30년생일 때는 1ha(헥타르)당 12.1t 이지만 60년생이 되면 1.8t으로 7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다. 국내 산림면적에서 탄소 흡수량이 비교적 높은 ‘어린 나무’가 차지하는 비율은 1∼10년생 4%, 11∼20년생 3%, 21∼30년생 11%에 불과하다. ● ‘목(木)맥경화’ 뚫어 미래 성장기반으로 산림 선진국은 나이 든 나무를 수확해 목재로 활용하고 새 나무를 심는 ‘산림 선순환’이 자리 잡았다. 어린 나무, 청년 나무, 중년 나무를 고루 분포시켜 탄소를 계속 흡수하는 효과를 거두는 것. 철근, 콘크리트, 플라스틱은 한 번 사용하면 끝이지만 목재는 수확한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으면 20, 30년 뒤에 다시 목재로 쓰인다. 사실상 지속가능하게 쓸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인 셈이다. 일본 독일 등은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며 인구 유입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국내 숲은 녹화사업 이후 숲을 활용해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발전시킨 사례가 많지 않아 이른바 ‘목(木)맥경화’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2022년 기준 국내 산촌의 89.5%가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65세 이상 인구 대비 2030세대 가임여성 인구 비율이 0.2 미만인 지역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전남 장흥군 등의 사례처럼 ‘명품 숲’을 발굴해 관광 자원화하고 산촌 주민 공동체와 연계한 소득 사업을 발굴하면 인구 절벽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장흥군은 편백숲에 치유의 숲, 숙박 및 체험시설을 조성해 연간 67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장흥군 인구 3만6000명의 18배가 넘는 방문객을 유치하고 연계소득 1240억 원을 창출했다. 경북 울진군도 금강소나무 지역에 숲길을 조성해 인구 4만7000명의 3배가 넘는 15만 명이 매년 방문하는 관광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박병배 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는 “산림 선진국은 숲을 산업과 문화관광 자원이자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양적 성장을 넘어 이젠 질적 성장으로 넘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나무를 올려다보시겠어요? 소리가 다르죠?” 지난달 28일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 기리시마(霧島)시 기리시마 긴코완 숲에서 만난 산림 세러피 가이드 우스자키 노키(臼崎のき·70) 씨가 웃으며 권했다. 삼나무,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등 사전을 찾아봐도 생소한 이름의 나무들이 하늘로 쭉쭉 뻗어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새 소리와 어우러졌다. 고층빌딩으로 가득한 대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인구가 약 12만 명에 불과한 기리시마시는 숲을 주요 관광자원으로 내세우면서 연간 560만 명(2022년 기준)의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 감소 위기를 겪는 지방으로서는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 한국과 비슷하게 국토의 75%가량이 산인 일본은 숲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닌 인구 감소를 막고 지역 경제를 살리는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2000년대 이전에는 나무를 심고 보호하는 데 주력한 반면, 이후에는 숲을 활용해 경제 효과를 극대화하고 지역 활성화를 꾀하는 쪽으로 적극 나서고 있다. ● 관리 대상에서 체험 공간으로 탈바꿈 기리시마시는 2007년 4곳의 ‘산림 세러피 로드’를 지정했다. 표고 500∼700m 높이에 길이 900m∼2.5km로 체력이 약한 사람도 천천히 1∼2시간가량 걸으면서 숲을 즐길 수 있다. 4곳 모두 지역 전통 관광 명소인 천연온천 인근에 있어 ‘산책 후 온천’을 매력으로 내세운다. 이곳에서는 4∼12월 9차례의 정기 산림 세러피 투어를 운영하며 관광객들에게 숲을 체험할 기회를 준다. 지역에서 운영하는 ‘가이드 클럽’에 신청하면 개별 투어도 가능하다. 관광객 누구나 가볍게 산책하며 숲을 즐길 수 있다. 이날 숲 인근 호텔에서는 관광버스 2대로 온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밤에는 온천을 즐기고 낮에는 숲을 산책하며 자연을 즐겼다. 하마다 겐 기리시마시 관광PR과 주무관은 “숲은 온천과 더불어 지역의 가장 소중한 자원”이라며 오사카 등 대도시 고교 수학여행 팀도 찾는다고 귀띔했다. 숲을 활용한 관광 자원과 소니 등 지역 내 대기업 공장 등의 영향으로 이 지역 인구는 2000년 12만7900명에서 지난해 12만3135명으로 20년 넘게 12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숲과 산을 활용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산림 서비스 산업이 각광받고 있다. 일본 임야청 측은 “관광, 건강,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산림을 활용해 체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이용객에게는 새로운 숲 체험 기회를 주고 해당 지역에서는 새로운 고용과 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기업 제휴 맺으며 인구절벽 해결책 활용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으로 한국에도 익숙한 일본 나가노(長野)의 시골 마을 시나노(信濃)정은 지역의 유일한 자원인 산, 숲을 적극 활용해 지역 위기 돌파에 나서고 있다. 이곳은 1960년 1만3700명에서 최근 8000명대로 인구가 줄며 인구절벽에 직면한 곳이다. 과거 여느 다른 지역처럼 도로 확장, 쇼핑센터 유치 등에 주력했던 이곳은 2000년대 들어 발상 전환에 나섰다. 우리 지역에 ‘없는 것’을 만들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 지역에만 ‘있는 것’을 찾아 가꾸자는 데 지역민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렇게 시작된 사업이 2004년 ‘에코 메디컬 힐링 빌리지 사업’이었다. 이 사업을 통해 ‘치유의 숲’ 프로그램 조성에 나섰다. 적설량이 많아 겨울 스키장으로 유명한 ‘구로히메 고원’에 1.2∼7km의 숲길을 조성하고 산림욕, 맨발 진흙체험 등을 할 수 있게 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산림 메디컬 트레이너’는 방문객에게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일본 주요 기업들이 ‘치유의 숲’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30곳 넘는 기업이 이곳과 제휴를 맺어 연간 5000여 명의 각 기업 직원이 숲을 이용한다. 제휴 기업 직원들이 숲을 이용하면서 이 지역 숙박시설, 식당 수익 증가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고향 기부금’도 납부해 옥수수, 블루베리 등 지역 특산물 구입에도 앞장서는 ‘1석 3조’ 효과를 거둔다. 제휴 기업에 화답하기 위해 시나노정은 2019년 ‘노마드 워크 센터’라는 원격 근무 시설을 만들었다. 40명 수용이 가능한 이곳에서는 기업 단위로 사용 신청을 받아 5일간 30만 엔(약 270만 원)을 받는다. 주중에 일하면서 오후에는 카약, 등산, 요가 등을 즐길 수 있다. 기업 만족도는 높다. 일본 전기부품 업체 TDK람다는 시나노정과 협정을 맺고 2008년부터 매년 신입사원 연수를 이곳 숲에서 진행한다. 그 전까지는 3년 차 미만 직원 퇴직률이 12%에 달했지만 숲 연수를 실시하면서 1%로 떨어졌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산림 면적이 2508만 ha로 국토의 68%에 달하는 일본은 고도 경제 성장기에 적극적인 산림 육성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전체 숲의 40%가 인공림이며, 일본 내 어느 산이든 키를 훌쩍 넘는 나무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과거의 ‘숲 보호’에서 벗어나 다양한 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 임야청에 따르면 휴양림 등 정부가 지정한 숲을 이용한 인구는 자국 인구보다 많은 연간 1억4000만 명에 달했다. 숲을 쉽게 접하고 즐기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기업들의 관심도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임야청 설문조사 결과 응답 기업 392곳 중 60%가 숲, 임업, 목재와 관련한 활동을 현재 하고 있거나 실시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단순한 사회 공헌 차원을 넘어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숲, 임업에 기여하려는 기업들의 의지가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전체 숲의 1.5% 정도인 26만7000ha에 597곳을 ‘레크리에이션 숲’으로 지정하고 있다. 자연 휴양림, 실외 스포츠 등 목적에 따라 지정해 이런 활동을 정부가 보유한 국유림에서 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한다. 활용 방식은 다양하다. 일본 중부 야마나시현에는 ‘포레스트 어드벤처’라는 곳이 있다. 공중 걷기 등 숲 즐기기가 가능한 시설을 숲을 해치지 않고 마련했다. 이른바 ‘자연 공생 아웃도어 파크’라는 개념으로 정비한 숲 체험 시설이다. 인기를 끌면서 전국 35개 시설로 늘어났고 연간 50만 명이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즐기고 있다. 일본 유명 리조트 기업인 호시노그룹은 투숙객에게 산림 산책, 승마, 산악자전거, 야간 곤충 관찰 등 다양한 숲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전통 목조건축 강국인 일본은 나무를 활용한 건축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2020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인 도쿄 국립경기장은 ‘산림 스타디움’이라는 콘셉트로 전국 47개 광역단체의 삼나무로 경기장 처마를 꾸미는 등 철골과 나무를 조합한 하이브리드 건축물을 지었다. 멀리서 보면 숲으로 덮여 있는 느낌이 나고 경기장 안에 들어가면 곳곳에서 목재를 활용한 것을 볼 수 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지난달 28일 오후 2시. 경북 울진군 북면 한 야산의 정상. 김영훈 울진국유림관리소장이 새까맣게 그을린 소나무의 몸통을 어루만졌다. “비가 올 때면 항상 흙냄새가 향기롭게 풍기던 곳인데 아직도 희미한 탄내가 콧속을 파고드네요.” 손에는 거무튀튀한 잿물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선 채로 죽어 있는 나무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시선을 돌리자 벌거숭이처럼 변한 휑한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린스완(Green Swan)’에 대비해 국내 숲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대형 화재 등 재난 후 신속한 복원과 사전예방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가 2년 전 대형 화재를 겪은 울진-삼척의 숲이다. 2022년 3월 4일 울진에서 시작돼 강원 삼척까지 번졌던 초대형 산불은 무려 213시간 동안 서울 면적의 약 35%에 이르는 2만923ha(헥타르)를 태웠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당시 산불 피해를 입었던 곳들에선 죽은 나무가 뿌리째 뽑인 후 경사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김 소장은 “죽은 나무는 벌채해야 하고, 일대는 민둥산이 된다”며 “대형 산사태 피해가 일어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집을 잃었던 주민 181가구 가운데 30가구는 아직도 임시 컨테이너 주택에 머물고 있었다. 산불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울진 인구의 약 22%인 1만여 명은 송이 등 임산물 채취로 생계를 이어왔지만 최근엔 수확을 못 하고 있다. 대를 이어 송이 농가를 운영해 온 이운영 씨(51)는 “죽어서 눈감을 때까지 울진에서 송이를 볼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산불 피해 범위가 워낙 방대한 탓에 복구는 여전히 더디다. 울진군에 따르면 군 전체 피해 면적 1만4140ha 중 현재까지 벌채 면적은 1800ha에 불과하다. 자연복구 지역을 제외한 인공복구 범위 6900ha를 기준으로 보면 약 26%만 벌채가 진행됐다. 울진군 관계자는 “벌채 작업이 끝난 구역도 묘목 식재가 완전히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평균 기온이 올라 산불이 일상화되고 있어 사후 대응보다 사전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립산림과학원 권춘근 연구원은 “산불 발생 시 진화 작업에 사용할 수 있는 인공 담수지를 산불 위험 지역마다 조성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산불이 나면 진화 차량 등 장비가 진입할 수 있는 임도(林道)를 계획적으로 설치하는 것도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원전 주변이나 군부대 탄약고 주변처럼 초대형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것도 대비책으로 제시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세계 각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반도체 전쟁(Chip War)’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네덜란드가 자국 반도체장비 기업 ASML의 본사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25억 유로(약 3조6000억 원)를 투입하기로 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28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ASML 본사가 있는 에인트호번 일대의 주택, 교육, 교통, 전력망 인프라를 개선하고 법인세 인하 등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네덜란드는 이날 ASML의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한 이른바 ‘베토벤 작전’의 세부 내용을 공개하며 “ASML이 법상, 회계상, 실제 본사를 네덜란드에 유지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25억 달러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마련하기로 했다. 세계 유일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조기업인 ASML이 본사를 해외로 옮길 경우 경제 전반에 미칠 악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네덜란드 “ASML, 경제의 메시” 감세 추진 네덜란드, ‘베토벤 작전’ 본격 가동중앙-지방정부 함께 3.6조 마련본사 주변 주택-교통 인프라 등 개선ASML 해외이전 막기위해 총력 “ASML은 네덜란드 경제의 ‘메시’다.” 미키 아드리안선스 네덜란드 경제기후정책장관은 28일(현지 시간) ANP통신에 자국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의 본사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25억 유로(약 3조6000억 원)를 투입하는 ‘베토벤 작전’의 세부 내용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ASML이 네덜란드 경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세계 최고 축구선수로 꼽히는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와 맞먹으며, 이런 중요한 기업의 본사 해외 이전을 막으려면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6일 베토벤 작전을 예고한 지 한 달도 안 돼 예산 규모와 사업 내용을 구체화해 반도체 지원 속도전에 나섰다. 25억 유로는 중앙정부뿐 아니라 ASML 본사가 있는 에인트호번을 관할하는 지방정부도 함께 조달한다고 소개했다. 국가 대표 기업을 위해 중앙 및 지방정부가 ‘원팀’으로 총력을 쏟겠다는 취지다. ASML은 세계 유일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조업체다. EUV를 이용하면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에 5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이하의 극도로 미세한 회로를 새겨 넣을 수 있다. 고성능 반도체 제조를 위해 꼭 필요한 장비라는 의미다. 28일 기준 시가총액이 약 3818억 달러로 덴마크 제약업체 노보노디스크, 프랑스 명품기업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에 이은 유럽 3위다. 에인트호번 일대에는 ASML은 물론 필립스 등 주요 기술 기업이 자리했다. 또 ASML 본사 직원 약 2만3000명 중 40%가 외국인이다. 에인트호번 일대가 미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요람 ‘실리콘밸리’와 맞먹는 네덜란드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유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는 이 돈을 에인트호번 일대의 주택, 교육, 교통, 전력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쓰기로 했다. 교통 혼잡을 해결하기 위해 이 지역 고속도로, 철도 등을 새로 짓고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 에인트호번 공대에도 투자한다. 그간 ASML은 “에인트호번을 ‘기술 허브’로 키우기 위한 정부의 인프라 투자가 실패했다”고 불만을 표했다. 법인세 인하, 세금 감면 등 각종 세제 혜택을 위한 법안 또한 이미 의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앞서 2018년 정부가 배당세를 강화하자 정유기업 셸, 소비재기업 유니레버 등이 영국 런던으로 본사를 옮겼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극우 자유당이 제1당에 오르자 재계에서는 반(反)이민 정책이 강화돼 고급 외국인 인재를 유치하기 힘들고, 외국 기업의 투자 또한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실제 우파 성향이 강화된 의회는 최근 고숙련 이주 노동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없애는 안을 가결했다. 지난달 현지 기업가 설문에서는 ‘네덜란드를 사업하기에 매력적인 국가로 보지 않는다’는 답이 44%였다. 1년 전 28%보다 16%포인트 늘었다. ‘네덜란드를 떠날 것을 고려한다’는 응답도 같은 기간 13%에서 20%로 증가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ASML은 네덜란드 경제의 ‘메시’다.”미키 아드리안선스 네덜란드 경제기후정책장관은 28일(현지 시간) ANP통신에 자국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의 본사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25억 유로(약 3조6000억 원)를 투입하는 ‘베토벤 작전’의 세부 내용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ASML이 네덜란드 경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세계 최고 축구선수로 꼽히는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와 맞먹으며, 이런 중요한 기업의 본사 해외 이전을 막으려면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6일 베토벤 작전을 예고한 지 한 달도 안 돼 예산 규모와 사업 내용을 구체화해 반도체 지원 속도전에 나섰다. 25억 유로는 중앙정부뿐 아니라 ASML 본사가 있는 아인트호벤을 관할하는 지방정부도 함께 조달한다고 소개했다. 국가 대표 기업을 위해 중앙 및 지방정부가 ‘원팀’으로 총력을 쏟겠다는 취지다.ASML은 세계 유일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조업체다. EUV를 이용하면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에 5nm(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의 극도로 미세한 회로를 새겨 넣을 수 있다. 고성능 반도체 제조를 위해 꼭 필요한 장비라는 의미다. 28일 기준 시가총액이 약 3818억 달러로 덴마크 제약업체 노보노디스크, 프랑스 명품기업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에 이은 유럽 3위다.에인트호번 일대에는 ASML은 물론 필립스 등 주요 기술 기업이 자리했다. 또 ASML 본사 직원 약 2만3000명 중 40%가 외국인이다. 에인트호번 일대가 미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요람 ‘실리콘밸리’와 맞먹는 네덜란드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유다.이에 따라 네덜란드는 이 돈을 에인트호번 일대의 주택, 교육, 교통, 전력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쓰기로 했다. 교통 혼잡을 해결하기 위해 이 지역 고속도로와 철도를 새로 건설하고,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 에인트호벤 공대에도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ASML은 “에인트호번을 ‘기술 허브’로 키우기 위한 정부의 인프라 투자가 실패했다”고 불만을 표했다. 정부는 조만간 법인세 인하, 세금 감면 등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앞서 2018년 정부가 배당세를 강화하자 정유기업 셸, 소비재기업 유니레버 등이 영국 런던으로 본사를 옮겼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극우 자유당이 제1당에 오르자 재계에서는 반(反)이민 정책이 강화돼 고급 외국인 인재를 유치하기 힘들고, 외국 기업의 투자 또한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실제 우파 성향이 강화된 의회는 최근 고숙련 이주 노동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없애는 안을 가결했다. 지난달 현지 기업가 설문에서는 ‘네덜란드를 사업하기에 매력적인 국가로 보지 않는다’는 답이 44%였다. 1년 전 28%보다 16%포인늘었다. ‘네덜란드를 떠날 것을 고려한다’는 응답도 같은 기간 13%에서 20%로 증가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러시아 정보당국 수장인 세르게이 나리시킨 대외정보국(SVR) 국장(사진)이 평양을 전격 방문했다. 지난해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이 긴밀한 관계를 구축한 가운데, 러시아의 핵심 정보 당국자까지 이번에 방북한 것.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을 대거 제공 중인 가운데,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나리시킨 국장이 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나 전투기 개량 등과 관련해 협력을 약속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은 김일성 생일(태양절)인 다음 달 15일을 전후해 4차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한미 정보당국은 보고 있다.● “적대 세력 정탐 모략 책동 대처” 28일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나리시킨 국장은 25∼27일 평양을 방문해 북한 국가보위상 리창대와 회담했고, SVR 대표단과 국가보위성 간부들 간 실무 회담도 이뤄졌다. SVR은 러시아 대통령 직속의 해외 첩보기관이고, 국가보위성은 북한의 공안·첩보기관이다. SVR은 연방보안국(FSB)과 함께 러시아의 양대 정보기관으로, 미국의 중앙정보국(CIA)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 통신은 북-러 정보 수장이 이번 회담을 통해 “적대 세력들의 가증되는 정탐 모략 책동에 대처하여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실무적 문제들을 폭넓고 진지하게 토의했다”고 주장했다. 또 “시종 동지적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회담들에선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완전한 견해 일치를 보았다”고도 했다. 북한이 나리시킨 국장의 방문을 공개한 건 2011년 이후 13년 만이다. 통상 정보당국 수장의 방문은 공개하지 않는 게 관례지만 최근 양국 간 긴밀한 관계를 과시하기 위해 나리시킨 국장이 평양을 떠난 지 하루 만에 공개한 것으로 풀이된다. 나리시킨 국장은 이번 방북에서 우크라이나 정세를 교환하고 양국 군사협력을 한 단계 높이는 방안을 논의했을 것으로 정보 당국은 보고 있다. 특히 북한이 곧 4차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와 관련한 협력을 약속했을 가능성도 크다. 우리 당국은 러시아가 이미 북한에 정찰위성 발사 관련 기술적 지원을 해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리 군 소식통에 따르면 군 당국은 북한이 정찰위성을 탑재해 발사할 로켓 동체 일부로 추정되는 물체를 서해 동창리 발사장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습 등을 최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미 방북을 약속한 만큼 나리시킨 국장이 이번에 푸틴 대통령 방북 관련 메시지를 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 경제대표단이 27일(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했다고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러시아 천연자원부 장관이 밝히는 등 북-러는 최근 각급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 韓에 “패트리엇 미사일 지원” 요구 이런 가운데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우리 정부에 패트리엇 미사일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살상무기인 포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돕는 게 전략적 안보 이익이라고 주장한 것. 쿨레바 장관은 27일(현지 시간) 온라인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엇 방공 체계와 관련해 요격 미사일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한다”며 “이는 본질적으로 매우 인도주의적인 원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제가 아는 한 한국은 패트리엇 방공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며 “패트리엇은 미사일을 격추하고 미사일을 제외한 아무도 파괴하지 않는 비살상무기”라고도 했다. 쿨레바 장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하면 한국의 안보도 불리해질 것으로 봤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성공하면 결국 세계적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다”라며 “내 생각에 이는 북한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며 최고의 안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은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것(패트리엇 미사일 지원)은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지는 치명적인 탄도미사일로부터 아이와 가족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부정하면 독일에서 받는 처벌은 무엇인가.” 독일이 앞으로 귀화시험에 제2차 세계대전 나치의 홀로코스트 등 과거사에 대한 책임 등을 다룬 질문들을 추가하기로 했다. 일본 등과 달리 유대인에 대한 사죄를 지속해 온 독일 정부가 “과거사 책임은 독일 정체성의 일부이며, 이런 가치를 공유하지 않으면 독일 시민이 될 수 없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26일 독일 주간지 슈피겔 등에 따르면 독일 내무부는 성명에서 “귀화시험에 출제될 예상 문제 300여 개로 구성된 목록이 곧 수정될 예정으로 최종 승인을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수정 예상 문제에 들어갈 질문은 ‘유대인 예배당의 명칭은 무엇인가’ ‘이스라엘 건국 시기는 언제인가’ ‘독일이 이스라엘에 특수한 책임을 지고 있는 이유는 뭔가’ 등이다. 추가 질문들에는 유대인과 관련된 단순 지식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서 독일의 과거사 책임과 처벌 방식을 묻는 질문들을 상세하게 포함했다. 독일 귀화시험은 독일 시민권을 받기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다. 33개 질문으로 구성되며, 응시자는 1시간 내에 객관식 문제를 최소 17개를 맞혀야 통과한다. 낸시 페저 독일 내무장관은 슈피겔에 “과거 독일은 홀로코스트라는 인류를 배반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며 “그 결과 우리에게는 유대인과 이스라엘 보호라는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수정 취지를 설명했다. 나치는 홀로코스트 때 유대인 약 60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 정부의 이번 결정은 동부 작센안할트주(州)가 지난해 12월 주에서 귀화 요건으로 ‘이스라엘이 국가로 존재해야 할 권리’를 서면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밝힌 뒤 몇 달 만에 나온 것이다. 독일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건 불법 행위로,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반(反)유대주의는 그 자체로는 불법이 아니지만, 범죄의 동기로 판명되면 가중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독일에서는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뒤로 반유대주의 관련 사건이 2000건 넘게 발생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으로 벌어진 전쟁이지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인도주의적 위기가 심각해지자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지난주 독일에선 올라프 숄츠 총리의 연설이 논란이 됐다. 숄츠 총리는 20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도서전에서 연설에 나섰다가 여러 차례 중단해야만 했다. 연설 도중 관중 세 명이 돌아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총리실이나 행사 주최 측으로선 작지 않은 사고였다. 소셜미디어에 퍼진 이날 영상을 보면 한 여성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영어로 40초 넘게 “숄츠 씨, 당신은 민주주의를 논할 수 없다. 당신이 모은 돈과 무기가 가자와 서안지구에 있는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죽이고 있다”고 외쳤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른 쪽에서 한 남성이 우뚝 서서 “이스라엘에 무기 보내는 걸 중단하라”, “당신은 (전쟁) 공범이다”라고 소리쳤다. 또 다른 여성도 독일어로 약 40초간 분노에 찬 목소리를 냈다. 총리 연설이 여러 차례 중단되는 사고에 총리실 등 관계자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영어로 연설한 여성에겐 행사 관리자로 보이는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와 설득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곳에서 촬영된 영상에도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속삭이며 여성을 다독였다. 마지막으로 나선 남성은 결국 경호원들에게 이끌려 행사장을 나갔다. 하지만 반복된 고성에도 요즘 국내에서 회자되는 ‘입틀막(입 틀어막기)’은 보이지 않았다. 이 남성은 행사장에서 퇴장당하는 순간까지 약 20초간 총리를 비난했다. 어쩌면 독일 총리실도 내심 강경하게 대응하고 싶었을 수 있다. 요즘 숄츠 총리는 경기 침체에다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초기에 강력히 지지한 탓에 인기가 추락하며 신경이 곤두서 있다. 지난해 9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7%까지 곤두박질쳤고, 최근에도 20%대로 크게 회복되질 못하고 있다. 응답자의 64.3%가 ‘숄츠 총리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에게 총리직을 넘기길 원한다’고 답해 숄츠 총리에게 굴욕을 안겼을 정도다. 이런 분위기에도 숄츠 총리는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잠시 연설을 멈추고 객석에 나온 반대 목소리를 들었다. 그 뒤 “소리를 지르는 것과 민주주의를 혼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들께 이 대화와 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길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답했다. 이에 또 다른 야유도 나왔지만, 대부분은 차분하게 박수를 보냈다. 현지에선 ‘총리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잘 대응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물론 독일에서도 총리의 연설을 방해한 이들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다소 매너는 아니었더라도 ‘표현의 자유’라는 대의에 수긍하는 반응이 훨씬 많다. 독일 역시 과거 국가와 민족을 앞세워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던 전체주의 역사를 겪었다. 그래서 더욱 누구의 입도 함부로 막아선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만약 총리의 연설을 방해한 시민들이 어디처럼 ‘입틀막’으로 제지를 당했다면 엄청난 역풍이 불었을 것이다. 다른 유럽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불리한 여건에 처해도 소통을 멈추지 않는다. 숄츠 못지않게 요즘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그렇다. 계란 세례에 심지어 뺨까지 맞았으면서도 현장으로 달려가 대화를 시도한다. 그가 20%대 지지율에도 연금 개혁, 이민 개혁 등 각종 개혁 릴레이를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은 이런 끝없는 소통 노력 덕분이란 게 현지 반응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3년 전 한 시민에게 뺨을 맞은 직후 현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은 지금 우리 정치권에 던지는 충고로 손색이 없다. “국민들 중엔 항상 (폭력적인) 소수가 있다. 하지만 압도적인 다수는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다. 그렇기에 난 토론을 멈추지 않는다.” 근본적인 답을 찾으려면 소통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조은아 파리특파원 achim@donga.com}

“둥둥 둥둥둥!” 강한 박자의 모던한 음악이 무대에 울려 퍼지자 중앙 대형 스크린에 검정 탱크톱과 가죽 레이스가 돋보이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흑인 아바타가 등장했다. 아바타가 스크린 안에서 워킹을 시작하자 실제 흑인 모델이 같은 의상을 입고 스크린 앞 런웨이를 걸어 나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와 처음 시도한 ‘모드 엣 파리’ 패션쇼가 22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시내 웨스틴 방돔 호텔에서 열렸다. 세계 유명 브랜드들이 쇼를 여는 곳이다. 이날 유럽 패션 관계자와 인플루언서 등 약 200명이 패션쇼를 지켜봤다. 쇼에 참석한 프랑스 인플루언서 나피 벨라 씨는 “모델이 등장하기 전에 큰 화면에 아바타가 나타나는 장면이 정말 멋졌다”며 “파리에서 열리는 쇼에선 정말 보기 드문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패션 행사 기업 피티 이매진의 프란체스카 타코니 코디네이터는 “한국 패션뿐 아니라 문화 자체가 상당히 많은 영감을 주고 재미있다”고 했다. 쇼 배경음악도 특징적이었다. 밴드 잠비나이의 이일우 씨와 인공지능(AI)이 함께 만들어 낸 음악이다. 이 씨는 쇼에 등장하는 패션 브랜드들과 잘 어울리는 음역대, 박자, 악기 등을 AI의 데이터학습으로 추려내 곡을 만들었다. 콘진원과 제페토가 이러한 ‘신기술 패션쇼’에 나선 이유는 메타버스, AI 등 신기술이 오랜 전통의 명품들로 공고한 유럽의 패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무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희선 콘진원 음악패션팀 부장은 “10대 후반∼20대 초반인 메타버스 이용자들이 향후 패션산업의 유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둥둥 둥둥둥!”강한 박자의 모던한 음악이 무대에 울려 퍼지자 중앙 대형 스크린에 검정 탱크톱과 가죽 레이스가 돋보이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흑인 아바타가 등장했다. 아바타가 스크린 안에서 워킹을 시작하자 실제 흑인 모델이 같은 의상을 입고 스크린 앞 런웨이를 걸어 나왔다. 모델과 아바타가 같은 의상을 동시에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와 처음 시도한 ‘모드 엣 파리’ 패션쇼가 22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시내 웨스틴 방돔 호텔에서 열렸다. 세계 유명 브랜드들이 쇼를 여는 곳이다. 이날 유럽 패션 관계자와 인플루언서 등 약 200명이 패션쇼를 지켜봤다.이날 선보인 브랜드는 콘진원이 공모로 선발한 두칸, 메종니카, 므아므, 본봄, 분더캄머, 뷔미에트, 비건타이거, 아이아이, 줄라이칼럼, 한나신 등 10개. 각자 두 벌씩 대표 의상을 선보였다. 이 의상들은 2024년 봄여름 시즌 컬렉션으로 제페토에서 공개된 바 있다.쇼에 참석한 프랑스 인플루언서 나피 벨라 씨는 “모델이 등장하기 전에 큰 화면에 아바타가 나타나는 장면이 정말 멋졌다”며 “파리에서 열리는 쇼에선 정말 보기 드문 모습”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이탈리아 패션행사기업 피티 이매진의 프란체스카 타코니 코디네이터는 “한국 패션뿐 아니라 문화 자체가 상당히 영감을 주고 재미있다”고 했다. 쇼 배경음악도 특징적이었다. 밴드 잠비나이의 이일우 씨와 인공지능(AI)이 함께 만들어낸 음악이다. 이 씨는 쇼에 등장하는 패션 브랜드들과 잘 어울리는 음역대, 박자, 악기 등을 AI의 데이터학습으로 추려내 곡을 만들었다.콘진원과 제페토가 이러한 ‘신기술 패션쇼’에 나선 이유는 메타버스, AI 등 신기술이 오랜 전통의 명품들로 공고한 유럽의 패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무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제페토에서 6주간 열린 2023년 가을겨울 컬렉션에 참여한 약 330만 명 중 무려 95%가 해외 유저였다. 세계 누적 가입자 수가 4억 명인 제페토에서 유럽 국가 중 가입자 수가 가장 많은 국가가 프랑스다. 서희선 한국콘텐츠진흥원 음악패션팀 부장은 “메타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들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데 이들이 향후 패션산업의 유저가 될 수 있어 메타버스를 활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불붙인 ‘우크라이나 파병론’이 유럽 곳곳으로 번지는 조짐이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폴란드의 외교장관은 서방 병력의 우크라이나 주둔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발언해 주목받았다. 마침 전날 러시아 정보국장은 프랑스가 2000명 규모의 파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혀 파병설을 더 구체화했다. 이에 서방 국가들이 공식 파병을 위한 ‘군불 지피기’에 나선 것인지, 서방 국가들이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다툼인지 묘한 궁금증을 낳고 있다. 최근 한 달 새 파병론을 다섯 차례나 언급한 마크롱 대통령은 19일 우람한 팔뚝으로 복싱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웃통 벗기’ 사진을 통해 강인함을 과시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서방 우크라 파병, 공공연한 비밀”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파리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 국제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나 유럽연합(EU) 일부 국가의 우크라이나 파병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밝히며 파병론에 처음 불을 지폈다. 이에 미국, 독일 등이 파병 가능성을 부인하고 정치인들이 비판에 나서는 등 서방 국가들이 발칵 뒤집어졌다. 그럼에도 마크롱 대통령은 7일 자국 정당 지도자와의 회의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키이우와 오데사에 진격하면 개입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방향까지 내놨다. 독일 및 폴란드 총리와의 3국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4일에는 “옵션들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했고, 다음 날 공개된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 인터뷰에서도 “어쩌면 어느 시점에서는 러시아 병력에 맞서기 위해 지상작전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서방 분열을 노리는 러시아뿐 아니라 나토 회원국 내부에서도 혼란스러운 소식들이 이어져 파병론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교장관까지 20일 dpa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큰 나라들의 군대가 이미 우크라이나에 있다”며 “폴란드어에 모두가 아는 비밀을 뜻하는 ‘타옘니차 폴리시넬라’란 말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19일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세르게이 나리시킨 러시아 대외정보국(SVR) 국장이 “SVR에 전달되는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파견될 (프랑스) 파병부대가 이미 준비 중이다. 초기 병력은 약 2000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美가 힘 못 쓰니 마크롱이 나서” 마크롱 대통령이 ‘외교적 파괴자(diplomatic disruptor)’라는 비판 속에도 한 달 새 다섯 차례 파병 발언을 쏟아내는 것을 두고 ‘약한 미국’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BBC는 “마크롱 대통령은 러시아가 공격성을 완전히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본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더 이상 동맹국으로 신뢰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판단해 일부러 강경한 어조로 유럽이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공교롭게 19일 마크롱 대통령 전속 사진작가 소아지그 드 라 무아소니에르의 인스타그램에는 마크롱 대통령이 강렬한 표정으로 팔뚝을 드러내며 복싱하는 사진이 두 컷 올라왔다. BBC는 “이 사진은 자신의 건강함을 보여 주려 웃통을 벗고 계속 사진을 찍는 크렘린궁의 적수(푸틴)에게 인상을 남길 것”이라고 평했다. 국제사회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취지란 분석도 있다. 도미니크 드빌팽 전 프랑스 총리는 프랑스 BFM TV에 “우리는 외교 싸움, 영향력과 신뢰를 위한 싸움에서 밀리고 있다”면서 이를 만회하려는 행보로 해석했다. 올 6월 예정된 유럽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한 친(親)러시아 극우 세력을 저지하려는 저의로 보는 시각도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마크롱 대통령은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을 저지하기 위한 카드로 우크라이나 지원안을 활용할 것”이라고 봤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역사적인 공간을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김수자 작가의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프랑수아 피노 케링그룹 회장) 구찌와 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케링그룹의 프랑스 파리 피노컬렉션 전시관이 19일(현지 시간) 한국 설치미술가 김수자 작가(67)의 작품 40여 점을 공개했다. 유럽 예술계의 ‘큰손’으로 불리는 케링그룹이 피노컬렉션에서 한 작가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조명하는 건 이례적이다. 전시관 측에 따르면 부르스 드 코메르스(증권거래소) 건물에 있는 피노컬렉션은 김 작가에게 전시 기획의 전권을 주는 ‘카르트 블랑슈(Carte Blanche)’를 부여했다. 중앙 메인 전시 장소인 ‘로통드(rotonde)’와 24개 쇼케이스, 지하 공간까지 내준 것도 2021년 개관 이래 두 번째로, 아시아 작가에겐 처음이라고 한다. 첫 번째는 알바니아계 세계적인 미술가 안리 살라였다. 김 작가의 작품들은 20일 개막해 9월 2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흐르는 대로의 세상(Le monde comme il va)’에서 소개된다. 해당 전시는 제프 쿤스와 신디 셔먼, 마우리치오 카텔란 등 이른바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 받는’ 작가들의 작품이 가득하다. 모두 29명의 작가가 참여했는데, 김 작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된 셈이다. 실제로 전시관을 둘러보니 로통드관부터 김 작가의 설치작 ‘호흡’이 관객을 맞았다. 지름 29m 크기의 원형 전시장 바닥 전체에 주로 사각 형태인 거울 418개를 깔아놓은 작품. 거울 바닥은 맑은 호수처럼 돔형 천장의 투명 유리와 19세기 프레스코화를 고스란히 비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김 작가는 “로통드 건축구조 자체를 모든 것을 싸고 있는 보따리라 여겼다”며 “두 개의 반구를 붙여 달항아리를 만들 듯 실재하는 공간과 거울이 만들어낸 가상 공간이 만나 하나로 연결되는 세계를 만들려 했다”고 했다. 미술전시관의 원형 공간을 로통드라 부르나, 어원은 19세기 여성이 입던 둥근 망토임을 떠올리게 하는 해석이다. 김 작가는 또 “관객들이 거울을 바라보며 반응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대중을 설치예술의 퍼포머(행위자)로도 초대한 셈”이라고 했다. 피노컬렉션을 설립한 피노 회장은 “로통드 전시관에 관한 기존 인식을 뒤집기 위해 거울을 사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며 “방문객에게 단순히 관람자 이상의 역할을 부여하고, 무한한 깊이를 지닌 공간 배치로 주체가 될 기회를 제공하는 점도 좋았다”고 했다. 이날 전시관을 찾은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도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깊은 한국을 대표하는 김 작가의 멋진 작품을 파리에서 만나니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지하 전시공간에선 피노컬렉션 소장품이기도 한 김 작가의 미디어아트 ‘바늘 여인’이 상영된다. 상하이와 델리, 도쿄, 뉴욕 등을 배경으로 작가의 뒷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세계 곳곳에서 촬영한 16mm 필름 연작 ‘실의 궤적’은 6편 전편이 처음 공개된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7월 파리 올림픽에 ‘개인중립선수(Individual Neutral Athletes·AINs)’ 자격으로 출전하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의 개막식 행진 참여를 불허하기로 했다.IOC는 19일(현지 시간) 스위스 로잔의 본부에서 집행위원회를 열어 개인중립선수의 파리 올림픽 출전 규정을 결정했다. 이에 따르면 개인중립선수 자격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도록 승인된 러시아와 벨라루스 출신 선수들은 개막식이 열리는 센강 인근에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만 갖게 된다. 개인중립선수는 IOC의 자격을 충족하고 종목별 국제연맹(IF) 주관 대회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해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를 통칭하는 용어다. AP통신에 따르면 IOC는 이날 “러시아 여권을 가진 개인중립선수 약 36명과 벨라루스 여권을 가진 22명이 파리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IOC와 국제스포츠기구는 2년 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이를 지원한 벨라루스에 대해 국제대회 개최 금지, 국제대회 출전 금지와 같은 징계를 유지하고 있다.IOC는 ‘정치와 스포츠를 구별해야 한다’는 올림픽 정신에 따라 군대나 국가 보안기관에 속해있지 않고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에 대해 개인 자격으로 파리 올림픽 출전을 허용했다. 다만 올림픽 무대에서 자국 국기나 국가를 사용할 수 없다. 또 이들이 획득한 메달은 국가별 전체 메달 순위에서 합산되지 않는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리들이 집에서 가까워요? 좋겠다!”프랑스 파리에서 만나는 학부모들과 이런 이야기를 자주 나누곤 한다. 파리지앵들도 그만큼 할인 마트 리들을 많이 찾는다. 프랑스계 카르푸, 프랑프리에서 100유로(약 14만 원)가량에 살 식재료를 독일계 할인 마트 리들에선 50~60유로에 살 수 있기 때문. 약간 과장을 보태자면 주부들 사이엔 리들이 가까운 ‘리들세권’이 선호되는 분위기다. 이에 기존 대형마트들도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 영국에선 대중적인 마트 테스코가 최근 회원 카드에 리들처럼 파란 바탕에 노란 원을 그린 로고를 썼다가 파장이 일었다. 테스코는 흔히 쓸 수 있는 색상과 디자인이라고 주장했지만 리들은 로고가 도용됐다고 봤다. 테스코가 값싼 할인 마트란 이미지를 강조하려 했다는 얘기다. 결국 테스코가 소송에 패하며 회원 카드를 교체해야 할 상황이 됐다.● 콧대 높던 파리에 매장 확장리들은 2022년 매출액이 1150억 유로(약 167조 원)에 달하는 유럽 최대 유통기업이다. 1930년대 독일에서 처음 문을 연 뒤 꾸준히 성장하며 고품질에 저렴한 제품을 판다는 평판을 쌓았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고물가가 심각해지며 중부 및 동부 유럽에서 시장을 넓히고 있다. 영국에서는 시장 점유율이 2022년 초반 6.2%였지만 약 1년 만에 7.6%로 성장했다. 자국 유통기업 위상이 워낙 확고했던 프랑스에서도 리들의 시장 점유율은 2022년 기준 8%였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통업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유통 프렌차이즈 세인즈베리는 리들과 비슷한 할인 마트 알디를 의식해 ‘알디 가격에 맞추기’ 캠페인까지 내걸었다. ‘미식의 나라’로 식재료에 민감해 할인 마트가 크게 주목을 못 받았던 파리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지 매체 카피탈은 지난해 9월 “모노프리, 프랑프리, 카르푸 등 전통 프랑스 유통기업들이 고객을 잃는 동안 리들은 더 많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파리에서조차 할인 매장 소비가 늘자 리들은 12구의 매장을 확장해 파리 최대 리들 매장을 만들 방침이다. 상품 진열 방식이나 상품의 품질도 고급화했다. 르파리지앵은 “고객들은 리들이 더 이상 과거의 리들이 아니라고 한다”며 “선반이 잘 정돈돼 있고 과일과 야채가 다양하게 팔린다”고 소개했다.● ‘저가 출혈 경쟁’으로 순이익은 감소기술 전문 매체 미디엄에 따르면 리들이 성장하는 비결로는 비용 절감 노력이 꼽힌다. 우선 물류망을 효율화하고 운영을 간소화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려 노력했다. 제품은 다양하게 공급하기 보다는 필수적인 품목을 양질로 제공하는 데 공을 들인다.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한 셈이다.매장도 효율적으로 배치하려고 애썼다. 여러 차선으로 인파를 분산해 소비자들이 빠르게 진입해 빠르게 나올 수 있게 구성한다. 선반마다 라벨도 가격과 할인 정도가 눈에 잘 띄도록 부착했다.자체 상표를 단 제품도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리들이 식품, 가정용품, 생활용품 등 다양한 품목에서 자체 상표를 운영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소비자들을 붙잡으려 ‘저가 경쟁’을 벌이다 보니 어려움도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리들은 2023년 연간 성장률이 22.6%였지만 순이익률은 2%로 전년(3.5%)에 비해 떨어졌다. 이 때문에 리들은 더욱 고삐를 죄고 있다. 최근엔 자체적으로 아이스크림, 빵 반죽 제조시설을 운영하고 유통 컨테이너 선박과 재활용 업체까지 굴리고 있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아시아 담당 부소장 겸 한국 석좌는 18일(현지 시간) “미국은 올해 한반도 긴장을 우려해 대북 제재 완화까지 포함한 북한과의 다양한 대화에 나설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또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11월 대선에 재선에 성공하면 한국이 자체 핵무장에 나서도 용인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차 석좌는 이날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특파원단과 만나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올해 11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한반도 정세에 대해 전망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 행정부는 북한과 전제조건 없이 대화할 의지가 있다”며 “핵실험 금지나 대북제재 완화든 다양한 사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북-미 대화는 6자회담 복귀 같은 다자틀보다 양자 간 ‘더 작은 단계’의 대화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 석좌는 이에 대해 미 행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북한의 도발로 인한 한반도 긴장이 높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소개했다. 그는 “북한이 18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민주주의 정상회의 참석 차) 서울에 있는 동안 미사일 세 발을 발사한 만큼, 북한이 ‘뉴욕에서 만나자’고 하면 미국은 ‘알겠다’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시사했다. 차 석좌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늘 ‘한국은 부유한 나라이고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왜 우리가 그들을 방어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해왔다”고 전했다. 이에 주한미군 철수,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 제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차 석좌는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이 장거리 미사일을 구축하길 원하든, 핵무장을 원하든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핵우산을 통한 대북 억지에 방점을 둔 조 바이든의 행정부와 달리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용인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그는 “미국이 일본이나 한국에서 병력을 빼서 미 캘리포니아에 주둔시킨다면, 이는 미국에겐 더 값비싼 비용을 치르는 일이 된다는 걸 (트럼프 측에) 설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17일 치러진 대선에서 77%대 투표율에, 9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5선 고지에 오르며 더욱 강력한 ‘푸틴의 시대’를 예고했다. 야권 유력 인사의 대선 후보 등록을 막고, 최초로 온라인 투표(원격 전자투표)까지 도입하며 거머쥔 기록이지만 역대 최고 투표율과 득표율로 1인 장기 독재의 명분을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승리 확정 직후 연설에서 “유권자들이 러시아가 전진하는 데 도움이 될 정치적 통합을 창출했다”, “강한 러시아, 발전된 러시아를 만들 여건을 만들어줬다”고 자평했다. 푸틴 대통령은 압승에 대한 자신감으로 ‘강한 푸틴’의 면모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는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직접 충돌하면 3차 세계대전에 한층 가까워질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 “러-나토 충돌하면 3차 세계대전 온다” 러시아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러시아 대선 전국 투표율은 최종 77.44%로 집계됐다. 1996년 69.81%를 뛰어넘는 러시아 최고 투표율이다. 득표율은 더 압도적이었다. 개표율 99.76% 기준 푸틴 대통령은 87.29%를 득표했다. 스푸트니크통신은 “소련 붕괴 뒤 역대 가장 높은 대선 득표율”이라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2018년 대선 당시 자신의 득표율(76.7%)도 경신했다. 푸틴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이번 대선을 통해 철권통치와 우크라이나 침공의 정당성을 동시에 확보한 셈이 됐다. 선거 결과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더욱 강력한 집권 5기를 열어갈 것이 확실시된다. 현지 언론 콤메르산트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승리 직후 모스크바에 있는 선거운동본부에서 “러시아인의 의지를 외부에서 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러시아는 더 강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서방 압박에 대한 수위도 끌어올렸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파병 시사 등으로 인한 러시아와 나토의 직접 충돌 가능성에 대해 “현대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며 “(직접 충돌한다면) 본격적인 3차 세계대전과 한층 가까워진다는 건 모두에게 분명한 사실”이라고 위협했다. 지난달 16일 옥중 의문사한 최대 정적(政敵) 알렉세이 나발니의 이름을 사망 후 처음으로 공개 언급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가 세상을 떠났다. (죽음은) 항상 슬픈 일”이라며 “나발니 씨”라고 호칭했다. 지금까지는 나발니를 ‘그 사람’ 또는 ‘블로거’로만 지칭했다. 이어 “나발니 씨가 숨지기 전에 러시아를 떠나는 조건으로 서방 감옥의 러시아 죄수와 교환하자는 정부 구성원들이 아닌 동료들의 아이디어에 나는 동의했다”고 말했다. 나발니를 언급하는 게 더는 위협 요인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발언으로 보인다. ● “러 점령지에서 주민 정체성 말살” 서방에선 푸틴 대통령의 종신집권 길이 열린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 선거는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러시아 독재자가 또 다른 선거를 치르는 시늉만 했다”고 비꼬았다. 미 인권단체 휴먼라이츠파운데이션의 케이시 미셸 이사는 17일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기고한 글에서 “푸틴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하면 광범위한 전쟁 위협이 임박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이날 강제병합 10년을 맞은 크림반도에서 자행해온 ‘주민 정체성 말살 정책’을 우크라이나 점령지에도 적용하고 있다는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AI)의 보고서도 나왔다. AFP통신에 따르면 AI는 17일 보고서에서 “러시아는 크림반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불법화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폭로했다. 아울러 “러시아 당국이 자포리자와 헤르손, 다른 점령지의 학교에서 자행한 지독한 세뇌와 강요의 증거를 문서화했다”고 밝혔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17일 치러진 대선에서 74%대 투표율에, 9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5선 고지에 오르며 더욱 강력한 ‘푸틴의 시대’를 예고했다. 야권 유력인사의 대선 후보 등록을 막고, 최초로 온라인 투표(원격 전자투표)까지 도입하며 거머쥔 기록이지만 역대 최고 투표율과 득표율로 1인 장기 독재의 명분을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승리 확정 직후 연설에서 “유권자들이 러시아가 전진하는 데 도움이 될 정치적 통합을 창출했다”, “강한 러시아, 발전된 러시아를 만들 여건을 만들어줬다”고 자평했다. 푸틴 대통령은 압승에 대한 자신감으로 ‘강한 푸틴’의 면모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는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의 직접 충돌하면 3차 세계대전에 한층 가까워질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 “러-나토 충돌하면 3차 세계대전 온다”러시아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러시아 대선 전국 투표율은 최종 77.44%로 집계됐다. 1996년 69.81%를 뛰어넘는 러시아 최고 투표율이다. 득표율은 더 압도적이었다. 개표율 99.76% 기준 푸틴 대통령은 87.29%를 득표했다. 스푸트니크통신은 “소련 붕괴 뒤 역대 가장 높은 대선 득표율”이라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2018년 대선 당시 자신의 득표율(76.7%)도 경신했다. 푸틴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이번 대선을 통해 철권통치와 우크라이나 침공의 정당성을 동시에 확보한 셈이 됐다. 선거 결과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더욱 강력한 집권 5기를 열어갈 것이 확실시된다. 현지 언론 코메르산트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승리 직후 모스크바에 있는 선거운동본부에서 “러시아인의 의지를 외부에서 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러시아는 더 강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서방 압박에 대한 수위도 끌어올렸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파병 시사 등으로 인한 러시아와 나토와의 직접 충돌 가능성에 대해 “현대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며 “(직접 충돌한다면) 본격적인 3차 세계대전과 한층 가까워진다는 건 모두에게 분명한 사실”이라고 위협했다.지난달 16일 옥중 의문사한 최대 정적(政敵) 알렉세이 나발니의 이름을 사망 후 처음으로 공개 언급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가 세상을 떠났다. (죽음은) 항상 슬픈 일”이라며 “나발니 씨”라고 호칭했다. 지금까지는 나발니를 ‘그 사람’ 또는 ‘블로거’로만 지칭했다. 이어 “나발니 씨가 숨지기 전에 러시아를 떠나는 조건으로 서방 감옥의 러시아 죄수와 교환하자는 정부 구성원들이 아닌 동료들의 아이디어에 나는 동의했다”고 말했다. 나발니를 언급하는 게 더는 위협 요인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발언으로 보인다. ● “러 점령지에서 주민 정체성 말살”서방에선 푸틴 대통령의 종신집권 길이 열린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 선거는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러시아 독재자가 또 다른 선거를 치르는 시늉만 했다”고 비꼬았다. 미 인권단체 휴먼라이츠파운데이션의 케이시 미셸 이사는 17일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기고한 글에서 “푸틴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하면 광범위한 전쟁 위협이 임박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러시아가 이날 강제병합 10년을 맞은 크림반도에서 자행해온 ‘주민 정체성 말살 정책’을 우크라이나 점령지에도 적용하고 있다는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AI)의 보고서도 나왔다. AFP통신에 따르면 AI는 17일 보고서에서 “러시아는 크림반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불법화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폭로했다. 아울러 “러시아 당국이 자포리자와 헤르손, 다른 점령지의 학교에서 자행한 지독한 세뇌와 강요의 증거를 문서화했다”고 밝혔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종신집권 초석을 다지는 러시아 대선이 17일 마무리됐다. 사상 최고 득표율이 예상되지만 일부 투표소에선 푸틴 정권에 반발하는 방화와 염료 투척 등 ‘선거 방해’ 사건들도 잇따랐다.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政敵)으로 지난달 의문사한 알렉세이 나발니의 측근들도 시위를 촉구해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선거 첫날, 러시아의 오데사 공격으로 최소 20명이 숨진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러시아 점령지인 동부 자포리자 투표소와 러시아 본토까지 공격에 나섰다.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親)정부 세력의 결집 계기로 삼으려는 모양새다.● 모스크바 검찰청 최대 5년 징역형 경고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기준으로 15일 오전 8시에 시작된 러시아 대선은 17일 오후 8시에 종료됐다. 로이터통신은 “17일 저녁이면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푸틴 대통령은 5월 취임식을 가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푸틴 대통령의 5선은 확정된 분위기지만 푸틴을 반대하는 사건들은 곳곳에서 벌어졌다. 러시아 독립 언론 모스크바타임스는 또 다른 독립 매체 소타를 인용해 “선거 첫날인 15일 러시아 전역에서 최소 4명이 투표소에서 방화 공격을 했다”고 보도했다. 모스크바에선 한 고령의 여성이 투표소에 불을 지른 혐의로 구금되기도 했다. 모스크바타임스에 따르면 같은 날 투표함에 녹색 염료를 쏟아 투표용지를 훼손하는 사건들도 발생했다. 엘라 팜필로파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염료 투척으로 체포된 사람들은 돈을 약속받고 사건을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투표가 시작된 뒤 “원격 전자투표에 대한 분산서비스거부(DDoS·디도스) 공격은 약 28만 건이 차단됐다”고도 밝혔다. 지난달 16일 숨진 나발니의 부인 율리야 나발나야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17일 정오 투표소로 나와 푸틴 정부에 대한 반대 의사를 보여주자”고 호소했다. 실제로 이날 정오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은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인파가 집결했다. 모스크바 검찰청은 집회에 참여하면 현행법상 최대 5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최소 47명이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발나야는 독일 수도 베를린에 있는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 대선 마지막 날 오전, 역대 득표율 근접 선거 첫날 러시아 공격으로 인명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는 적극적으로 반격하며 빼앗긴 자국 영토에서 시행되는 선거에 반발했다. 러시아는 16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인 자포리자의 한 투표소에 무인기(드론)로 포탄을 떨어뜨렸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날 러시아 본토까지 공격을 감행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공격을 친정부 지지자 결집의 계기로 삼고 있다. 러시아 점령지인 도네츠크의 러시아 관리들은 “야만적인 공격으로 어린이 3명이 숨졌다”고 비난에 열을 올렸다. 러시아 외교부도 “대선을 방해하려는 도발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외에서 사건이 끊이지 않지만 푸틴 대통령의 대선 승리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투표장 사진에서 보듯, 투명 투표함에 펼쳐진 투표지를 넣고 있어 사실상 공개 투표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나발니를 비롯해 주요 경쟁자들은 일찌감치 숙청되거나 선거에 나서지 못했다. 러시아 국영 통신사 타스에 따르면 17일 오후 1시 50분 기준 투표율은 67.54%로 집계됐다. 투표 종료를 6시간여 앞두고 2018년 대선 투표율(67.54%)을 넘어선 것이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투표율은 우리에게 영향을 주려고 했던 세력들에 대한 반응”이라고 평했다. 푸틴 대통령은 5선에 성공하면 2030년까지 30년을 집권하게 된다. 2012년 개헌으로 6선도 가능하게 만들어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6선까지 하면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30년 통치 기록을 넘어선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인구 대비 6·25전쟁 최다 파병국인 룩셈부르크 참전용사 2인의 묘지가 영구 보존된다. 20대에 참전해 이국땅에서 전사했으나 후손이 없어 영영 잊힐 뻔했던 이들이다. 룩셈부르크 한국전 참전협회(참전협회)는 16일(현지 시간) 현지에서 룩셈부르크 6·25 전사자인 로저 슈튀츠 씨와 로버트 모레스 씨의 묘지 재건립 기념행사를 열었다. 룩셈부르크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슈튀츠 씨는 20세이던 1950년 9월 자원해 6·25전쟁에 참전했다. 그러나 1952년 8월 22일 수류탄에 치명상을 입고 숨졌다고 기록돼 있다. 참전 당시 24세였던 모레스 씨는 1952년 9월 26일 중공군의 박격포 공격으로 부상당한 동료들을 구하려다 전사했다. 다만 어디서 전사했는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1953년 3월 룩셈부르크군 주관으로 장례가 엄수됐고 이후 각각 고향 묘역에 안장됐다. 하지만 둘 다 자녀가 없어 수십 년간 묘지가 사실상 방치돼 있었다. 이에 참전협회와 룩셈부르크 한인회는 정전협정 70주년이던 지난해부터 묘지 재건립과 보존을 추진했다. 비용은 현지 진출 한국 기업 및 개인 성금으로 마련했다. 룩셈부르크는 6·25전쟁 당시 100명의 전투 병력을 자원 모집해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 소속으로 파병했다. 22개 참전국 중 인구 대비 최다 파병국으로 기록돼 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