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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창문을 열면 청명한 햇빛이 와락 덤벼들어요. 그때마다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신간 ‘쿠바에서는 사랑을 구걸하지 않는다’(마음의숲)의 저자 장희주 씨(51·사진)는 이렇게 말했다.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던 2010년 겨울 배낭여행을 계기로 카리브해 섬나라 쿠바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이후 쿠바 남성과 결혼해 2017년부터 수도 아바나에서 살며 여행가이드와 국립미술관 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신간은 여행자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본 쿠바의 문화, 경제 상황 등이 속속들이 담긴 에세이다. 쿠바는 2월 14일 한국과 공식 수교를 맺으면서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이 됐다. 신간 제목이기도 한 ‘쿠바에서는 사랑을 구걸하지 않는다’는 쿠바 가정법원 담벼락에 쓰인 문구다. 사랑에 있어 윤리와 도덕의 잣대를 엄격히 들이대기보다 당장의 열정을 중시하는 쿠바의 일면을 보여준단다. 그는 “최근 한국의 이혼율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쿠바에서는 애초에 결혼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이혼 자체가 별로 없다”며 “쿠바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도 남녀로 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런 문화에 대해 쿠바인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한다고. “우리 혈관의 피가 태양에 끓기 때문이죠.” 쿠바에서 살아가는 것은 잠깐 방문하는 배낭 여행과는 달랐다. 특히 미국 트럼프 정부가 강력한 쿠바 봉쇄 정책을 펼치면서 물자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생활용품이 귀하기에 오래된 물건도 형태를 바꿔 고쳐 쓰는 ‘인벤타(Inventa·뭐든 창의적으로 만들어내는 것)’를 발휘해야 했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문화도 낯설게 느껴졌다. 2022년 강타한 허리케인 이언으로 5일간 전기 없이 살기도 했다. 끝없는 불편함을 견디면서도 쿠바에 있는 이유를 묻자 “태양이 주는 이곳의 낙천적인 기질이 좋다. 여기에선 버스 옆자리 사람하고도 ‘스몰 토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집 앞에 펼쳐진 바다에서 수영을 즐길 때도 쿠바 사람들의 유쾌함을 마주한다. 1층 아주머니는 “파도가 높으니 위험해”란 말 대신 “지금 바다 나가면 파도 타고 비행기표 없이 한국 간다”고 말한다. 그는 “일상에서 유머러스함이 묻어나는 쿠바의 여유가 좋다”고 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자본주의 물결은 점차 거세지고 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정부 일자리를 통해 지급되는 쿠바 화폐(페소)만으로는 삶을 영위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최근 쿠바 정부는 개인이 해외에서 물건을 수출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쿠바는 혁명가 체 게바라의 나라 또는 미국 대문호 헤밍웨이가 좋아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 땅에 튼튼한 발을 딛고 살아가는 쿠바 사람들의 또 다른 이야기도 많답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처음엔 팔이 네 개, 눈이 세 개 달린 판다 이미지가 나오더라고요.” 1일 서울 종로구의 스터디룸에서 만난 유지현 씨(60)는 국내 첫 인공지능(AI) 컬러링북 ‘니하오, 내 사랑 판다’(헤르몬하우스)를 펴낸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AI에 명령어를 입력해 판다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종종 나왔다는 것. 신간은 중국어 온라인 스터디를 통해 친해진 50∼70대 여성 저자 12명이 함께 썼다. 책의 모든 그림은 사람이 아닌 AI가 그렸다. 주인공인 판다 ‘푸푸’가 성장해 한국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동화와, 색칠이 가능한 판다 그림으로 구성됐다. 1일 동아일보와 만난 유 씨 등 공동 저자들은 “국민적 사랑을 받은 푸바오가 3일 중국으로 떠나는 데 대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책을 펴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해 4∼11월 AI 전문가를 초빙해 강의를 들으면서 ‘AI 컬러링북’을 내자고 뜻을 모았다. 출간 전까지 각자 만든 AI 이미지만 1만 장이 넘는다. 책에 넣을 예쁜 판다 이미지를 얻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같은 명령어를 넣어도 나오는 이미지가 제각각이라 통일된 캐릭터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판다의 정확한 특징을 몰라 ‘너구리’나 ‘코끼리’를 그려 오는 이도 있었다. 수시로 온라인에서 모여 해상도가 높고, 예쁘게 그려진 판다 이미지를 골라내야 했다. 책을 검수할 때는 판다 발톱이 5개씩 있는지까지 꼼꼼히 살펴봤다. 1988년부터 12년간 컴퓨터 대리점을 운영해 ‘신문물’에 익숙했던 김행숙 씨(66)가 중심을 잡고 출간을 주도했다. 김 씨는 “처음에는 컴퓨터 마우스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분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AI 이해가 부족한 동료들을 가르치고, 컴퓨터 프로그램 ‘캔바’로 이미지를 편집했다. 김 씨는 “어떤 책에서 ‘미래에는 AI를 활용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지배한다’고 하더라”며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들여 쓴 책은 어린 손주들과 친해질 수 있는 매개체가 됐다. 공동 저자 중 최연장자인 김선아 조선대 수학과 명예교수(73)는 “할머니가 만든 책을 손자에게 선물했더니 너무 좋아하더라”며 “젊은이들과의 대화에서 뒤처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듣기 시작한 강의가 삶의 활력소가 됐다”고 말했다. 공동 저자들은 모두 AI를 활용해 각자 책을 내는 게 목표다. 윤태자 씨는 “AI 프로그램에 ‘한복’ 등의 키워드를 입력하면 일본이나 중국 관련 이미지가 뜨기 일쑤”라며 “앞으로 한국 문화를 오롯이 담은 이미지로 구성된 AI 책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국립한글박물관 한글놀이터 예약을 하려고 할 때마다 늘 매진이더라고요. 예약 팁이라도 있나요? 매번 너무 어려워요.” 66만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한 유명 맘카페에 올라온 게시글이다.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 한글놀이터는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이른바 ‘피케팅’(피가 튈 만큼 치열한 티케팅) 수준으로 예약이 치열하다. 해당 글에는 “(예약 창이 열리는) 밤 12시에 ‘땡’ 하고 들어가야 한다”, “네이버 초시계를 켜 놓으면 거의 성공” 등의 댓글이 달렸다. 국립한글박물관 한글놀이터는 미취학 아동들이 한글과 관련된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디지털 인터랙티브 체험 공간이다. 하루 7회(1회 50명)로 최대 350명이 체험할 수 있지만, 일주일 전 열리는 사전 예약 창은 보통 오픈 5분 남짓이면 마감되기 일쑤다. 국립한글박물관 이가나 학예연구사는 “아이들이 놀면서 한글을 배우는 교육적 공간이라 선호도가 높은 것 같다”며 “인기가 많다 보니 이용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중복 예약을 막아 달라는 민원도 종종 들어온다”고 말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을 ‘젤리 캐릭터’로 표현해 아이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전시관 내부는 자음 기본 글자인 ‘ㄱ, ㄴ, ㅁ, ㅅ, ㅇ’을 닮은 미끄럼틀과 매달리기, 쉼터 등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과 디지털 간판을 활용한 이름 짓기, 미로 속 글자 찾기 체험 등의 콘텐츠로 이뤄져 있다. 아이들의 안전을 고려해 모든 공간을 모서리 없이 디자인했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공간은 3면에 디지털 영상이 나오는 ‘꿈꾸는 나의 방’이다. 벽에 손을 갖다 대 ‘젤리 붓’으로 가족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쓸 수 있다. 자음과 연관된 글자를 살펴볼 수도 있는데, 화면 속 ‘ㄱ’을 누르면 ‘강아지’로 변하고, ‘ㄴ’을 누르면 ‘나비’로 변하는 식이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키즈카페를 연상케 하는 어린이 친화적 인테리어에 과학, 유물, 창작 놀이 등 다양한 교육형 전시가 어우러져 인기가 높다. 회차당 260명씩 관람 가능하며 하루에 총 5회차씩 운영된다. 2주 전부터 온라인 예약을 통해 신청을 받는다. 눈길을 끄는 건 지난해 말 새 단장을 한 ‘시간 여행 안내소’다. 어린이들이 가상으로 과거를 여행한다는 콘셉트로 박물관 실제 전시품을 알아보는 코너다. ‘기분이 좋아지는 재질은?’, ‘어느 시대로 가볼래?’ 등 키오스크 질문에 대답하면 본인이 관심 있는 전시품 이름과 위치가 담긴 티켓을 제공한다. 중앙박물관 곽신숙 어린이박물관과장은 “아이들이 진짜 유물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종의 ‘브리지 공간’을 만들려 했다”며 “박물관이 어린이 친화적인 공간으로 거듭나 가족 단위 방문객을 사로잡으려 한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전통 종이 한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가 추진된다. 문화재청은 “‘한지 제작의 전통 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하기 위해 지난달 31일 유네스코 본부에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1일 밝혔다. 최종 등재 여부는 유네스코 사무국 검토 등을 거쳐 2026년 12월 열리는 제21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 간 위원회에서 결정된다. 한지는 닥나무 껍질 섬유를 재료로 해 만든 한국 전통 종이다. 닥나무 채취를 시작으로 찌고, 두들기고, 뜨고, 말려 99번의 손질을 거친 뒤 마지막 사람이 100번째로 만진다고 해서 ‘백지(百紙)’로 불렸다. 최근 한지는 기록용뿐 아니라 친환경 건축부재와 각종 생활용품, 예술 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한지는 제조 과정에서 장인의 기술과 지식, 마을 주민들의 품앗이가 더해져 우리나라 공동체 문화를 잘 보여준다”며 “인류무형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전통 서화류를 원형대로 복원하는 모사공(模寫工)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가 열렸다. 한국문화재재단은 3월 28일부터 서울 강남구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서 ‘젊은 복원가들의 모색: 모사공, 과거와 미래를 잇다’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전통모사진흥연구회가 주관하는 이번 전시는 문화재 수리 기능자인 모사공 5명이 제작한 초상화, 탱화, 풍속화 등 29점을 전시한다. 특히 흥선대원군(1821∼1898)과 조선 후기 문신 남구만(1629∼1711) 등의 초상화 모사본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작품들의 제작 과정도 자세히 소개된다. 예를 들어 원작을 모사하기 위해 원작에 대해 현미경 등 과학조사를 거치는 것은 물론이고 원화와 동일한 재질과 색감의 바탕재를 제작한다. 관람객들은 박물관에서 보던 문화재 복원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에 열린 전시 개막식에서는 먹으로 밑그림을 그리는 ‘먹초’가 시연됐다. 연구회 관계자는 “모사는 훌륭한 옛 화가의 화법과 정신을 따르기 위한 기본 수련 방법이었다”며 “특히 인물화에서는 인물의 사람됨을 묘사하는 것까지 포함돼 수준 높은 예술 창작에 가깝다”고 말했다. 전시는 4일까지. 무료.사지원 기자 4g1@donga.com}

‘2021년 기준 1인당 총소득 전국 1위, 하지만 늙은 도시.’ 저자는 울산을 이렇게 정의한다. 부유하지만 혁신을 주도할 청년들은 떠나고 장년 노동자와 퇴직자만 넘치는 껍데기 같은 도시. 신간은 ‘대한민국의 산업 수도’ 울산의 과거와 현재를 토대로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살핀다.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조선소에서 5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9년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펴내 주목받았다. 전작이 경남 거제시에만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울산을 통해 국내 산업계 전반으로 시각을 확장했다. 울산은 공장에서 기름밥, 쇳밥을 먹던 노동자들이 식구를 부양하는 ‘제조업 신화’가 완성된 곳이다. 1962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울산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한 이후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등이 들어서 현재의 울산을 만들었다. 저자는 “정부와 기업가, 엔지니어, 노동자 모두가 만화 드래곤볼의 ‘원기옥’을 모으는 것처럼 부자 동네 울산의 기적을 써냈다”고 말한다. 일종의 ‘생산성 동맹’이다. 저자는 한국 제조업의 위기를 동맹의 와해에서 찾는다. 노사 간 불신으로 생산직 노동자가 배제된 채 엔지니어링에 기반한 혁신이 강제됐다. 엔지니어는 수도권 본사에, 노동자는 지방에 머물면서 공간의 분리가 이뤄졌다. 저자는 영국 맨체스터, 스웨덴 말뫼 등 울산보다 앞서 몰락한 선진국 도시의 사례도 충분히 검토해 우려 섞인 견해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대한민국이 일부 선진국의 제조업 몰락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도시의 역량을 면밀히 평가해 지속 가능한 제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노동자와 기업 간 신뢰관계 회복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제조업 대신 지식기반 경제로 산업구조를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은 2020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GNP)의 27%를 제조업에 의존하는 나라다. 국가 혁신이 제조업 현장과 동떨어질 수 없는 이유다. 제조업 부흥뿐 아니라 지방소멸 위기, 계층 사다리, 젠더 갈등 등 사회학자로서 다양한 고민을 담아 눈길을 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18세기 서양이 동해를 일본이 아닌 한반도의 근해로 인식한 사실을 보여주는 네덜란드 고지도가 공개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은 18일부터 다음 달 30일까지 독도체험관에서 네덜란드 지도 출판자이자 서적상인 얀 바렌드 엘웨(1746∼1816)가 제작한 동아시아 지도를 선보인다. 1792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지도에선 한국과 중국, 일본, 필리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가로 60.1cm, 세로 50cm 크기다. 지도 속 한반도는 ‘조선왕국(R. DE COREE)’으로 표기돼 있다. 주요 마을은 물론 제주도, 울릉도, 독도도 표시돼 있다. 울릉도와 독도는 각각 ‘Fanlingtao’,‘Tchiangehantao’로 돼 있는데, 울릉도와 독도의 잘못된 한자를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한 걸로 추정된다. 동해 수역은 ‘동해 또는 한국해(MER ORIENTALE OU MER DE COREE)’로 표기됐다. 18세기 후반 서양에서 동해를 일본이 아닌 한반도의 근해로 인지한 것이다. 재단은 네덜란드 고지도를 시작으로 다른 소장 고지도들을 매달 교체 전시할 예정이다. 재단은 고지도 2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서양에서 한반도와 동해, 독도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잠깐의 혼란스러움도 있었지만 이 악물고 잘 살고 있으니까요.” 26일 크리에이터 ‘빵먹다살찐떡’으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 양유진 씨(25)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 9월 오랜 시간 머물던 자취방에서 영상을 만들어 틱톡에 올린 걸 계기로 구독자 100만 명을 거느린 크리에이터가 됐다. 이어 2022년에는 웹드라마 배우로 데뷔했다. 브이로그, 댄스 등 짧은 동영상 쇼트폼을 온라인에 주로 올린다. 그는 20일 출간한 에세이 ‘고층 입원실의 갱스터 할머니’를 통해 희귀질환 루푸스를 10년째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면역계 이상으로 자기 세포를 공격해 생기는 루푸스는 발병 후 10년 생존율이 90% 이상이지만 피부와 관절, 신장 등에 염증 반응이 수시로 나타나 관리가 필요하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피부가 노랗게 변하는 황달을 앓으며 루푸스 발병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후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이 ‘바나나’가 됐다. 증상 악화로 입·퇴원을 반복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특유의 긍정적 성격 덕분이었다. 바나나라고 놀림을 당해도 “내 별명이 하나 더 생겼네. 오히려 좋아”라고 생각했단다. “저는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성취감을 얻는 스타일이에요. 아파서 입원했을 때도 누군가에게 활기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크리에이터가 됐어요.” 신간 제목으로, 의연한 삶의 태도가 단단해 보여 그가 별명으로 지은 ‘갱스터 할머니’는 대학교 1학년 때 입원한 항암 병동에서 만났다. 병동에서 가장 많은 증상을 갖고 있던 할머니는 의사에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편한 약을 달라”고 했지만 의연히 병을 견뎌냈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남편이 결혼 생활 내내 바람을 피운 아픈 과거를 갖고 있었다. 그는 “어떤 원망도 후회도 없어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강한 분’이라고 느꼈다”며 “할머니의 삶의 태도가 나의 이상향과 같아 책 제목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병동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울고 웃는 이야기는 그에게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열망을 안겨줬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처음에는 주변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지만, 나중엔 대화에 끼어들게 됐다. 그는 “간호사에게 허락을 받고 환자들과 병동 가운데 모여 짜장면을 시켜 먹은 기억이 난다. 힘든 병실 생활 속에서도 즐거운 기억이 많다”고 했다. 책을 본 독자들이 어떤 메시지를 받았으면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보다 더 힘든 분들도 많을 텐데 내가 감히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삶의 모양이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만일 이 비석이 없었다면 고구려가 신라와 백잔(百殘·백제를 낮춰 일컫는 말)을 정벌한 일은 깊이 파묻혀 세상에 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 금석학자 나진옥(1866∼1940)이 1908년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해 쓴 글 ‘고려호태왕비발(高麗好太王碑跋)’의 일부다. 고려호태왕비발은 고구려의 시호와 광개토대왕의 재위 기간 및 사망한 해, 비문 중 장례일자 등을 토대로 광개토비의 건립 연도를 414년으로 고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고고학지 29권에는 고려호태왕비발 등 중국 학자들이 광개토비에 대해 쓴 글 11편이 한글로 번역돼 실렸다. 이 자료들은 그동안 비석 건립 시점이나 탁본 제작 과정을 살펴보는 근거로 활용돼 왔다. 논문을 통해 일부가 번역된 적은 있지만, 전문을 번역해 역주를 단 것은 처음이다. 박물관은 비문 원석 탁본인 청명(靑溟)본 구입과 비석 디지털 복원본 공개를 계기로 역주 자료를 작성했다. 이태희 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그동안 광개토비 관련 중국 자료를 일부만 번역해 소개하다 보니 내용의 전후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이번 역주 자료가 비석을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고고학지 29권은 고구려의 영토 확장과 고분벽화 등을 다룬 논문을 포함해 ‘고구려 특집’으로 구성됐다. 이번 자료는 박물관이 진행 중인 선사고대관 내 고구려실 개편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박물관은 신라나 백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고구려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다. 현재 상설관 내 고구려실 면적은 258㎡로 신라실(718㎡)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고구려의 영토가 현재의 북한이나 만주 지역에 걸쳐 있어 신라, 백제에 비해 발굴 유물이 적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올해 말까지 고구려실 면적을 두 배 가까이(478㎡)로 늘리고, 관련 전시품도 확대할 예정이다. 윤상덕 박물관 고고역사부장은 “1990년대 이후 남한에서 발굴된 유물도 새롭게 전시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발굴 조사가 진행된 고구려 성곽인 경기 연천군 호로고루(瓠蘆古壘) 유적이 대표적이다. 고구려 초석 건물터와 지하 집수정 등이 발견된 호로고루는 5세기 고구려의 남진 정책을 위한 군사 요충지로 활용됐다. 2004년 사적으로 지정된 ‘아차산 일대 보루군(堡壘群)’에서 출토된 생활용구와 무기류도 고구려실 전시에 포함될 예정이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신라 왕성(王城)이 있던 경주 월지의 출토품에서 고려시대 기와로 추정되는 유물 200여 점이 최근 발견됐다. 고려왕조가 들어선 후에도 통일신라시대의 일부 궁궐이 존속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근거다. 25일 국립경주박물관은 “1976년 월지에서 출토된 유물 3만3000여 점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고려시대 추정 기와 200여 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2032년까지 수장고에 보관된 월지 출토품 전량을 재조사하는 프로젝트를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다. 고려시대 추정 기와는 ‘옥간요(玉看窰)’가 새겨진 기와 1점과 평평한 면에 원형 돌기 문양을 새긴 일휘문(日輝文) 수막새 8점, 국화무늬 수막새 200점이다. 옥간요와 일휘문 기와는 각각 10세기 후반, 11세기 이후 등장하는 고려 기와로 분류된다. 그런데 가장 많은 양이 나온 국화무늬 수막새는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사용됐다. 박물관은 이것도 고려시대 때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경주 천관사지와 천룡사지에서 출토된 국화무늬 수막새에서 기와를 끊어 제작하는 고려시대 기법이 발견돼서다. 이현태 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천관사지·천룡사지 출토 기와와 월지 출토 기와를 비교해 정확한 제작 시기를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여 점 모두 고려 기와로 최종 확인되면 고려 왕조가 들어선 뒤에도 통일신라의 일부 궁궐을 유지하기 위해 보수를 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멸망한 왕성의 궁궐은 철저히 파괴된다는 기존 통념을 뒤엎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학계에선 끝까지 결사 항전한 후백제와는 달리 신라는 정권이양이 상대적으로 순조로웠기에 궁궐 일부를 남겨 놓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는 “신라 경순왕은 대세가 기울자 왕건에게 나라를 바친 것으로 기록돼 있다”며 “경순왕이 고려 초 경주를 관리하는 사심관으로 임명된 만큼 월지 근처에 그의 별궁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월지는 조선시대에도 경치가 좋은 ‘안압지’로 알려진 만큼 정자와 같은 건물이 존속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고려사에 언급된 조유궁(朝遊宮)이 월지 근처에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고려사에는 ‘1012년 황룡사 탑을 수리하기 위해 경주 조유궁을 헐어 목재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현태 학예연구사는 “무거운 목재를 옮기려면 황룡사 인근의 월성이나 월지에 조유궁이 있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며 “기와로 보수된 건물이 조유궁이 맞는다면 신라가 망하고도 전각이 일시에 파괴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번 발견이 학계에서 정설로 굳어진다면 월지 출토 유물을 모두 통일신라시대 이전 것으로 본 기존 학설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예를 들어 월지에서 나온 청동거울(동경) 2점은 중국 요나라 양식에 가깝다. 이 같은 양식의 청동거울이 출토된 요나라 무덤은 통일신라가 멸망한 해(935년)보다 60, 70년이 지난 11세기 초에 지어졌다. 하지만 학계는 청동거울이 월지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이를 통일신라 유물로 간주해왔다. 경주박물관 관계자는 “출토 기와를 재검토해 월지 유물의 연대가 고려시대까지 확장되면 연대 해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일본인 소장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사진)이 광복 후 처음으로 국내에 공개된다. 호암미술관은 27일부터 6월 16일까지 여는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에 7세기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을 선보인다고 25일 밝혔다. 이 불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물병을 든 채 자비로운 미소를 띠고 있으며 높이는 28㎝다. 1907년 충남 부여군 규암리 밭에서 발견됐으며, 1922년 대구에 살던 일본인 의사에게 팔려 일본으로 반출됐다. 2018년 6월 불상의 존재가 뒤늦게 알려져 문화재청이 42억 원에 매입을 추진했지만 일본인 소장자가 150억 원을 요구해 협상이 결렬됐다. 이번에 대여 형식으로 국내 전시장에 들어오는 것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국내 불상 중 출토지와 소장 경위가 확인된 것은 이 불상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사찰이 소유한 15세기 조선 ‘석가탄생도’와 독일 쾰른 동아시아미술관이 소장한 ‘석가출가도’도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다. 둘 다 석가모니의 탄생과 출가를 묘사한 불화로, 한 세트로 추정된다. 일본과 독일에 흩어져 있는 두 불화가 한자리에서 나란히 전시되는 건 처음이다. 이번 전시에선 해외 컬렉션 27개에서 모은 불화, 불상 등 불교 미술품 총 92건을 선보인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조선 후기 실학자 혜강 최한기(1803∼1877)가 쓴 ‘통경(通經·사진)’ 실물이 처음 발견됐다. 방대한 유교 경전들을 독창적으로 주석한 해설서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부여 함양 박씨 종가가 기탁한 고문헌 자료를 연구하다가 통경을 발견했다고 25일 밝혔다. 최한기는 유교와 서구 문명의 통합을 구상하며 ‘농정회요(農政會要)’ ‘심기도설(心器圖說)’ 등 1000권 이상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지만 대부분 유실됐다. 통경은 논어, 맹자, 시경, 서경 등 유교 핵심 경전인 십삼경(十三經)을 주제별로 분류해 해설한 책이다. 20책 53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최한기가 28세 무렵 저술한 초기작으로 추정된다. 장원석 장서각 책임연구원은 “십삼경 전체를 다루는 방대한 저술은 동양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한기는 통경에서 십삼경의 내용을 학부(學部)·사물부(事物部)·의절부(儀節部)로 구분하고, 각 부 밑에 조목(條目) 271개를 넣었다. 또 십삼경 각각이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 찾을 수 있는 색인과 시각적 이해를 위한 250개의 그림도 있다. 통경을 발견한 이창일 책임연구원은 “통경은 유교의 모든 분야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정밀하게 구성돼 있다”며 “유교 지식을 정리하는 차원을 넘은 독창적 방식”이라고 말했다. 한중연 장서각은 책을 발견한 뒤 수개월간 분석했다. 저자명이 적혀 있지 않아 최한기가 쓴 책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분석 결과 기존에 알려진 서문 내용과 책의 일부 내용이 같고, 최한기의 주요 사상과도 일맥상통한 점이 확인됐다. 한중연은 이번 발견 성과를 알리는 온라인 발표회를 26일 개최한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김혜순 시인(69)이 시집 ‘날개 환상통’(사진)으로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BCC상)을 수상했다. 한국 문학 작품이 NBCC상을 받는 건 처음으로, 번역 시집이 이 상을 받은 것도 전례가 없다. 21일(현지 시간) NBCC는 미국 뉴욕 뉴스쿨에서 열린 ‘2023 NBCC상’ 시 부문 수상작으로 ‘날개 환상통’의 영어판 시집(Phantom Pain Wings)을 선정 발표했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NBCC상은 1년간 미국에서 영어로 쓰인 최고의 책을 선정해 시, 소설, 논픽션, 전기, 번역서 부문별로 수상자를 정한다. 이날 김 시인은 출판사를 통해 “전혀 수상을 기대하지 못했다. 아시아 여자에게 상을 준 것이 놀랍고 기쁘다”며 “훌륭한 번역으로 오래 함께해 온 최돈미 씨에게 감사하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에 대신 참석한 미국 출판사 뉴디렉션퍼블리싱의 제프리 편집자는 “젠더는 명사가 아닌 동사다. 이렇게 또 하나의 여성을 택해줘서 고맙다”는 김 시인의 소감을 대신 전했다. ‘날개 환상통’은 김 시인의 등단 40주년을 맞아 2019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13번째 시집이다. 동명의 표제시에서 화자인 ‘나’와 ‘새’는 권력자들로부터 추방당한 채 함께 환상통(幻想痛)을 겪는 존재로 그려진다. 김 시인은 ‘새 하기(새가 되기)’라는 개념을 통해 젠더 차별을 넘어서는 내용을 담았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새를 주어도 목적어도 아닌 동사로 만들어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허무는 시적 효과를 증폭시켰다”고 말했다. ‘날개 환상통’은 한국계 미국인인 최돈미 시인(62)의 번역을 거쳐 지난해 5월 미국에서 출간돼 현지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말 이 시집을 ‘올해 최고의 시집 5권’ 중 하나로 선정했다. 김 시인은 한국 문단에서 ‘여성시의 기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으로 입선한 뒤 1979년 계간지 ‘문학과지성’을 통해 시로 등단해 총 14권의 시집을 내놓았다. 문단에선 여성적 특성을 수용해 새로운 인간상과 세계에 대한 비전으로 만들어내는 김 시인의 작품 성향이 서양의 페미니즘과 다른 의미에서 독특하게 받아들여졌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김 시인은 여성으로서 정체성에서 인간 종의 문제로까지 작품세계를 확장해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도전을 하고 있다”며 “동시대와 호흡하고 있는 시인으로서의 보편성이 국제무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논픽션이나 소설에 비해 번역이 까다로운 시 부문에서 수상작이 나온 것도 이례적이다. 김 시인은 이번 수상에 앞서 ‘죽음의 자서전’으로 2019년 캐나다의 그리핀 시문학상을 비롯한 4개의 해외 문학상을 받았다.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은 “2010년대 이후 최돈미 시인 겸 번역가처럼 한국어와 영어에 모두 밝은 번역가들이 등장해 번역의 질이 높아지면서 해외 문학상 수상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좋은 일자리, 좋은 돈벌이, 더 나은 인생을 위해 찾아갈 곳은 캐나다 앨버타주 북부의 ‘오일샌드(원유 성분이 함유된 모래)’ 광산이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고향인 캐나다 동부의 해변마을 케이프브레턴을 떠나려고 한다. 목표는 단 하나. 돈을 벌어 대학 학자금 대출을 단번에 갚는 것이다. 신간은 캐나다 유명 만화가인 저자가 명성을 얻기 전인 2005년 오일샌드 광산에서 보낸 2년을 그린 그래픽 노블(만화형 소설)이다. 야생동물과 오로라 등 앨버타의 장엄한 자연을 담아낸 그림과, 광산에서 만난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글이 눈길을 끈다. 캐나다 최대 오일샌드 채굴업체 ‘싱크루드’의 공구 담당 직원이 된 저자의 하드코어 ‘미생(未生)’이 펼쳐진다. 그가 맡은 업무는 현장 노동자에게 필요한 장비를 대여해주는 간단한 일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열악했다. 살가죽을 벗겨내는 듯한 영하 40도 이하의 강추위를 매일 견뎌야 했고, 채굴 과정에서 오염된 공기 탓에 기침과 가래가 끊이지 않았다. 햇빛이 들지 않는 광산에선 아무리 쾌활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우울함을 이길 수 없었다. 무엇보다 힘든 건 남녀 비율이 50 대 1인 근무 환경에서 벌어지는 일상적 성폭력이었다. 무얼 하든 남성들의 불쾌한 관심을 받아야 했던 그녀는 마치 ‘어항 속 금붕어’ 같았다. 첫 만남에 ‘귀염둥이’로 불리는 건 애교였고, 성적 농담이 수시로 오갔다. 남성들이 그녀를 구경하기 위해 건물 앞에 줄을 섰고, 호시탐탐 숙소 앞을 지키기도 했다. 매니저에게 항의해도 돌아오는 말은 차가웠다. “여기에 발 들였을 때부터 남자들 세상이란 걸 알고 있었잖아.” 결국 저자는 잠시 광산을 떠난다. 은퇴자들의 부유한 도시인 빅토리아섬의 해양박물관에서 일한다. 이곳에선 광산 노동자들의 성희롱 대신 동료로서 존중을 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낮은 급여. 박물관은 주 최대 노동시간이 21시간이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도 학자금 대출을 갚기에는 부족했다. 결국 저자는 앨버타 광산으로 돌아온다. 책의 묘미는 저자가 온전한 피해자로만 묘사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석유 채굴 작업 후 남은 오염수 웅덩이인 ‘테일링 연못’에선 수백 마리의 오리가 죽어간다. 계약직 노동자가 중장비에 깔려 숨져도 회사는 “근로 손실 재해 없이 노동시간 300만 시간을 달성했다”며 자축한다. 저자에게 학자금 대출을 갚을 돈을 준 광산회사는 인근 원주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을 파괴한 악덕 기업이었다. 저자는 늘 폭력을 당하는 쪽이라고 여겨온 자신이 환경을 파괴하고 원주민의 삶을 망가뜨린 가해자에 가담했다는 사실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모두 저마다의 오일샌드를 경험했다. 이것은 내가 겪은 오일샌드다.” 저자는 산전수전 겪은 오일샌드를 단순히 나쁜 곳 혹은 좋은 곳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힘든 와중에 저자에게 따뜻한 말을 건넨 ‘아빠 같은’ 사람들도 그곳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오일샌드의 끔찍한 면을 알려달라”고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보다 광산 동료들에게 더 동질감을 느끼는 것도 그래서다. 노동 소외, 성폭력, 환경 파괴 등이 점철된 오일샌드 광산은 한국의 현실과도 동떨어져 있지 않다. 책을 읽다 보면 치열한 사회생활 속에서 ‘나의 오일샌드’가 어딜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안전하게 류하(流下·아래로 흐른다는 의미)시켜 목적을 달성하는 전문약. 효과 없는 약으로 실패하신 분들은 월경 중지 개월 수를 적어 편지로 문의하세요. 다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안심하고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비밀리에’ 알려드립니다.’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일본어로 발간된 신문인 경성일보의 1931년 1월 7일 자 ‘쓰키야쿠(月藥·월경 관련 약품)’ 광고다. 광고 문구만 얼핏 보면 월경 불순 치료제로 보이지만, 실상은 임신 중절약을 판매하는 내용이다. 최근 쓰키야쿠 광고가 일제강점기 여성들의 은밀한 임신 중절 통로였음을 보여주는 연구가 나왔다. 배홍철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은 16일 한국여성사학회 월례발표회에서 ‘침묵하는 월경(月經): 1920∼30년대 국내 일본어 간행 신문의 ‘쓰키야쿠’ 광고 지면을 중심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경성일보, 조선신문, 조선시보 등 국내에서 간행된 3개 일본어 신문의 쓰키야쿠 광고 1211건을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쓰키야쿠 상품은 주로 약품(1062건·88%)으로, 일본에 본사를 둔 광고주가 우편 거래와 상담을 제공했다. 배 연구원은 “일본어 신문을 읽던 조선 내 일본인 거주자나 상류층 조선인 여성들이 광고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쓰키야쿠 광고는 ‘월경 불순 치료’를 명시한 일반 광고와는 달랐다. ‘비밀 보장’, ‘신체 무해’, ‘복용 경험’, ‘후불제’ 등의 문구를 삽입하면서도 투약 목적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1921년 1월 12일 자 경성신문의 쓰키야쿠 광고에는 ‘월경이 없는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임신, (중략) 여성은 조금이라도 서둘러 통경(通經) 전문약을 복용하는 게 좋다’는 문구가 나온다. 배 연구원은 “예외적으로 월경이 오지 않는 배경과 해결 방안을 기술한 광고”라며 “당시 쓰키야쿠 광고가 임신 중절용임을 추론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24년 21건에 불과하던 쓰키야쿠 광고는 1932년 210건으로 약 10배로 급증했다. 1930년대 업체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대놓고 ‘임신 조절’ 문구를 명시하는 광고도 나왔다. 미국에서 산아 제한 운동을 창시한 마거릿 생어(1879∼1966)를 내세운 신문광고도 많았다. 일제강점기 총독부는 임신 중절과 피임을 법으로 막았다. 1912년 일본 형법을 조선에 적용한 ‘조선형사령’에 따르면 낙태를 한 여성에게 1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었다. 1930년에는 ‘유해 피임용 기구 취체규칙’을 제정해 피임 핀이나 자궁주입기 등의 피임 기구 사용을 금지했다. 배 연구원은 “일제의 피임 금지는 출산을 늘려 더 많은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한 조치였다”며 “쓰키야쿠 광고는 일제강점기 여성들이 국가의 감시를 피해 피임을 시도한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문화재청이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경남 합천 해인사의 대장경판을 디지털화하는 ‘팔만대장경 디지털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사업’을 내년까지 추진한다고 18일 밝혔다. 해인사 대장경판은 고려 고종(재위 1213∼1259년) 때 부처님의 힘을 빌려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불교 경전을 새긴 목판이다. 목판의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해 ‘팔만대장경’으로도 불린다. 현재 해인사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인 장경판전(藏經板殿)에 보관돼 있다. 해인사 대장경판은 경판에 먹을 입혀 인쇄한 인경본(印經本)이 있지만 국내에 일부만 남아 있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고려 시대 때 일본에 전해진 책도 구성이나 내용이 완전하지 않다. 이에 문화재청은 올해부터 경판을 정밀하게 기록하고 보존 상태를 조사해 인터넷으로 대장경판을 볼 수 있는 웹사이트를 구축할 방침이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저는 제가 잘 아는 장소의 불안정하고 어른어른 빛나는 버전을 만들고 싶었어요.” 신간 ‘우주의 알’(은행나무)의 저자 테스 건티(31)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22년 전미도서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 장편소설은 그의 데뷔작이다. 건티는 1960년 스물일곱 살에 전미도서상을 받은 필립 로스 이후 가장 젊은 수상자다. 미국 노터데임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뉴욕대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스물세 살에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해 완성까지 5년 가까이 걸렸다”며 “고향인 미국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를 떠나 뉴욕에 살면서 다층적인 소설의 구조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소설은 쇠락해가는 미국의 가상 도시 바카베일의 한 저가 아파트 주민들이 7월 한 주 동안 겪은 일을 다룬다. 바카베일은 자동차 산업으로 한때 번영했다가 쇠락한 그의 고향을 닮았다. 소설 원제인 ‘토끼장(The rabbit hutch)’과 같은 아파트에서 다닥다닥 붙어 사는 주민들은 저마다 배경은 다르지만 모두 외로움을 안고 산다. 그는 “고향에 미국에서 가장 큰 자동차 공장이 있었지만 갑자기 문을 닫아 지역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졌다”며 “소설의 배경은 미국 전역의 이런 탈공업화 도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주인공들은 팍팍한 현실을 이기기 위해 기묘한 행동을 한다. 나이가 차 위탁가정에서 독립해야 했던 열여덟 살 소녀 블랜딘은 우연히 가톨릭 여성 신비주의자들의 이야기를 접한 뒤 초자연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육체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자신의 몸을 칼로 찌르는 의식을 치른다. 건티는 “블랜딘은 항상 내가 보고 싶었던 ‘영웅’이다. 매번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마주치는 모든 것에 대해 열성적인 호기심을 갖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블랜딘은 위탁가정을 벗어나는 아이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소년 세 명을 만나 함께 산다. 그 과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불안한 면모가 잘 부각된다. 건티는 “미국의 위탁 청소년 중 절반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명 중 1명은 위탁가정에서 독립하는 동시에 집이 없는 상황에 처한다”며 “집에서 쫓겨난 아이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훨씬 많은 재원이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작품에는 모공에서 색색의 섬유가 자란다고 믿는 50대 남자, 자신의 부고 기사를 직접 작성하면서 죽음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유명 여배우 등이 등장한다. 건티는 “‘낯설게 하기’는 내 글쓰기 과정의 필수”라며 “글을 살아 숨쉬게 하려면 모든 문장에 나 자신이 놀라야 한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미국 문단의 샛별로 떠오른 그는 ‘준비된 작가’다. 20대 때 시를 많이 쓴 그의 아버지는 매일 밤 어린 건티에게 책을 읽어줬고, 매년 핼러윈마다 지역 도서관에 열리는 ‘어린 작가 콘퍼런스’에 참여해 작품을 발표하도록 했다. 그는 현재 두 번째 소설을 집필 중이다. 그는 “나는 기억할 수 있는 한 항상 이야기를 써왔다”며 “앞으로는 희곡과 시나리오, 시 등 새로운 형식의 글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네이버가 언론보도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로부터 온라인으로 정정 및 반론 보도, 추후 보도 청구를 직접 받겠다고 15일 밝혔다. 정정·반론·추후 보도 청구가 들어온 기사에는 포털 검색 결과 페이지에 ‘정정 보도 청구 중’이라는 문구를 노출하기로 했다. 언론중재위원회 결정이 나오기 전 포털에 정정 요청만 해도 기사에 문제 소지가 있다고 표시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네이버는 서면과 등기우편 등으로 접수하던 정정·반론·추후 보도 청구를 온라인으로 손쉽게 진행할 수 있도록 이달 28일 청구용 웹페이지를 신설한다고 15일 밝혔다. 또 네이버에 온라인으로 정정 보도 청구가 접수돼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포털 검색 결과 페이지에서부터 해당 문구를 표시하기로 했다. 네이버는 정정 요청이 들어온 경우 언론사에 해당 기사의 댓글을 일시적으로 닫는 방안을 적극 요청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뉴스 유통업체에 불과한 포털이 언론사의 기사 편집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뉴스 서비스를 독점하는 거대 포털이 오류로 판명되지 않은 기사에 낙인을 찍어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온라인 정정 보도 청구가 악용될 소지가 커진 가운데 언론의 추가·후속 보도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네이버가 독자적으로 뉴스에 ‘품질이 안 좋은 뉴스’라는 딱지를 붙이겠다는 것”이라며 “언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네이버, 중재위 판단前 기사에 ‘정정 청구중’ 표시… 法 위반 논란“정정보도 온라인 접수”법조계 “정정보도, 서면청구 규정포털, 온라인 접수땐 법위반 소지” 언론중재법 15조 1항에 따르면 언론사에 대한 정정 보도 등은 서면으로 청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네이버는 제17조의 2 ‘인터넷 뉴스서비스 사업자는 지체 없이 정정 보도 청구 등이 있음을 알리는 표시를 하고 언론사 등에 청구 내용을 통보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들어 정당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조계 해석은 다르다. 류형우 법률사무소 눈 대표변호사는 “‘지체 없이’ 알리라는 의무는 서면 요청을 받은 뒤 언론사에 빠르게 전달하라는 것”이라며 “서면이 아닌 온라인으로 접수하는 것은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언론계에서는 네이버의 조치가 위헌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오류가 명백하게 증명되지 않은 기사에 대해 사기업인 네이버가 ‘정정 보도 청구 중’이라는 문구를 내세워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을 어겼다는 해석이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네이버라는 대형 포털이 언론의 기본 역할을 침해했다. 위헌 가능성이 높은 명확한 언론 자유 침해”라고 했다. 언론중재위원회가 분쟁을 조정 및 중재하는 과정에서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기 위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것과도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정정 보도 청구 중’이라는 문구 등이 노출됐을 때 사람들에게 해당 기사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인식될 소지가 크다”고 했다. 사기업인 네이버가 언론중재법에 따라 설립된 준사법적 독립기구인 언론중재위원회의 역할을 과도하게 넘본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유홍식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네이버 정책으로 인해 언론중재위원회의 공식 절차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총선을 앞두고 네이버의 새로운 정책 발표 시기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종수 세종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검증 대상이 되는 고위공직자, 정치인이 자신한테 비판적인 기사라는 이유만으로 정정 보도를 요청해 댓글 창이 막힐 수 있다”며 “의혹이 충분히 있다고 느껴져도 기사를 조심해서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온라인신문협회는 이날 네이버의 발표 직후부터 일부 소속사 대표자들의 문제 제기가 잇따르면서 공론화 수순을 밟고 있다. 한 관계자는 “네이버가 뉴스 유통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언론사들의 저질 연성 기사 생산을 부추기는 근본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정정 보도 청구를 이유로 언론사들에 대한 영향력과 규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는 함경북도 명천의 칠보산(七寶山)의 절경을 디지털로 구현한 전시가 한국과 미국에서 함께 열린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5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과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에서 ‘작은 금강, 칠보산을 거닐다’ 전시를 동시 개막했다고 밝혔다.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소장한 칠보산도병풍(七寶山圖屛風)을 폭 22m, 높이 4.7m에 달하는 디지털 화면 3면에 영상으로 구현한 전시다. 미국 전시에선 디지털 영상과 함께 실물 병풍도 선보인다. 국내 전시는 5월 26일까지, 미국 전시는 9월 29일까지 진행된다. 칠보산도병풍은 함경북도 명천에 있는 칠보산을 그린 그림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병풍은 19세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작자는 미상이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1억2986만4880권. 2010년 구글북스가 추산한 세상에 존재하는 책의 수다. 작가이자 희귀 서적 수집자인 저자는 이 중 증쇄를 거듭해 지금까지 읽히는 ‘위대한 고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 몇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수많은 장서 가운데 버려지고 잊혀졌지만, 반짝이는 보석 같은 책을 찾아 헤맨다. 연구도 증쇄도 되지 않아 세상에 딱 한 권씩만 남은 책들. 그러나 저자는 “이 책들은 너무 이상해 어떤 범주에도 집어넣을 수 없지만, 명성을 떨친 책들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만큼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책의 첫 장인 ‘책이 아닌 책’에서는 입을 수 있는 책, 먹을 수 있는 책, 상해를 입히는 책 등 희한한 책들을 다룬다. 예를 들어 자동차 브랜드 랜드로버는 두바이 고객을 대상으로 사막에서 자동차가 고장 날 경우 생존을 돕는 지침서를 발간했다. 불 피우는 법과 야생동물 사냥법 등이 담긴 책은 먹을 수 있는 종이와 잉크로 만들어졌다. 랜드로버는 “최후의 방편으로 책을 먹으라”며 “책이 치즈버거에 버금가는 영양가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네 번째 장 ‘출판 사기’에서는 세상을 속이고 기만한 책들을 살펴본다. 2005년 영국 문학 평론가 A N 윌슨은 시인 존 베처먼의 미공개 연애편지가 담긴 전기를 출간했다. 그런데 이 편지는 윌슨이 자신의 책을 비난하자 앙심을 품은 역사학자 베비스 힐리어가 멋대로 날조해 윌슨에게 보낸 것이었다. 편지 각 행의 첫 글자만 모아 ‘세로 읽기’를 하면 ‘A N 윌슨은 상놈의 자식(A N Wilson is a shit)’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 외에도 신간은 중세의 상상 속 동물을 모은 백과, 마법사의 마도서, 천사와 소통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 등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온갖 괴짜 책을 소개한다. 독서하며 엄숙하고 무거운 지식을 지향해 온 우리는 황당한 책들 앞에서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상력에 금기가 없음을 몸소 증명하는 도발적 매력에도 흠뻑 빠질 것이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