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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찾았다가 어린이 전시실 한 편에 메모지가 가득 붙은 코너를 봤다. 통일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을 써 붙이는 곳이었는데 맞춤법도, 글씨도 엉망인 아이들의 귀여운 글씨가 가득했다. 어떤 바람을 썼나 싶어 찬찬히 읽어봤는데, 한결같이 쓴 말은 이랬다. “평양냉면 먹고 싶어요!” 냉면의 인기는 익히 알았지만 그래도 놀라웠다. 경원선 신탄리역에 멈춘 철마를 타고 북한을 횡단한다거나, 백두산이나 금강산을 보고 싶다는 각양각색 바람이 있겠거니 했건만. 요즘 아이들에게 통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냉면’인가 보다. 원래 냉면은 아이들 입맛에 만만하지 않다. 평양냉면은 좀더 어렵다. ‘슴슴한’ 고기 육수에 메밀 면을 만 평양냉면은 호불호가 갈리는 먹거리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증열풍까지 부르며 본격적으로 화제가 된 건 최근 일이다. 음식 관련 프로그램에 자주 소개되면서 미식가들이 즐기는 ‘어른스러운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됐기 때문이다. ‘초딩 입맛’으론 그 진가를 알 수 없다는 맛. ‘평부심’(평양냉면에 대한 자부심)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평양냉면은 일종의 문화현상이 됐다. 화룡점정을 찍은 건 올해 봄이다.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오른 뒤에는 이렇게 ‘진짜 초딩’의 입맛까지 접수해버렸으니 말이다. 탐식의 시대. 요즘 한국인 ‘먹방 투어’는 영역이 미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요즘은 백종원이 진행하는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처럼 아예 해외로 직접 가 제대로 된 원조를 즐기는 음식방송도 화제다. 단순한 먹방을 넘어 음식의 유래, 지역문화와 전통을 살피며 지적 욕구까지 충족시켜준다. 하지만 ‘냉면의 원조’만큼은 슬픈 예외였다. 진짜 평양냉면 맛을 궁금해 했던 건, 생방송에서 시식에 나섰던 미국 CNN 진행자들이나 옥류관 냉면 맛을 상상만 해야 했던 우리나 마찬가지였다. “함흥은 없고 냉면만 남았다//함경남도 바닷가/ 집은 멀고 고향 잃은 음식이다…잇몸을 간질이는 면발을 끊어내며//척척 감아 날래 먹고 나면/왠지 섭섭한 음식//함흥은 못가고 냉면만 먹는다.” (이상국의 시 ‘함흥냉면’에서) 먹고 나서도 왠지 섭섭했던 그 맛이 평양냉면이라고 다를까. 연일 초여름 더위가 이어진다. ‘평냉 입문자’도 즐길 수 있다고 알려진 서울의 유명 냉면집들은 이른 저녁부터 골목 안쪽까지 긴 줄이 생긴다. 지금껏 냉면은 평양이든 함흥이든, 그곳은 없고 냉면만 덩그러니 있던 ‘망향의 음식’이었다. 하지만 그 슴슴한 맛이 ‘미식의 관문’이 됐고, 이제는 ‘통일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고 있다. 북미정상회담까지 앞둔 올해 다시 돌아온 ‘냉면의 계절’은 그래서 한층 각별하다. 메모지에 비뚤비뚤 쓴 아이들의 ‘맛있는 꿈’이 이뤄지길 함께 바라본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바야흐로 ‘천재들의 시대’다. 요리나 패션 등의 분야를 막론하고 조금만 뛰어나면 ‘천재’란 수식어가 붙는다. 자기계발서들은 모든 사람 안에 천재성이 잠재돼 있다고 부추긴다. 하지만 여행가인 저자는 이런 ‘천재 인플레이션’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모두가 천재라면 아무도 천재가 아니란 뜻 아닌가. 저자는 인류 지성사의 위대한 진전을 이뤄낸 ‘진짜 천재’들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른바 천재의 지리학적 탐구다. 천재의 흔적을 찾기 위해 택한 도시는 아테네, 항저우, 피렌체, 에든버러, 콜카타, 빈, 실리콘밸리다.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창조적 천재들이 득실댄 곳이었다는 점이다. 첫 행선지는 아테네다. 고대 그리스는 공식적으로 186년간 존립했지만 문명의 정점은 24년에 불과했다. 그 찰나가 아테네에서 만개했다. 소크라테스부터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 전무후무한 천재들을 배출했다. 외형적으로 아테네는 위대한 지역이 될 가능성이 낮았다. 바위투성이인 땅은 척박했다. 인구도 적었다. 그런데도 아테네는 번영을 누리며 천재들의 발상지가 됐다. 파르테논 신전을 탐사하고 아테네의 문인, 고고학자, 철학자를 찾아다니며 퍼즐 맞추기를 한 끝에 저자는 그 실마리를 얻는다. 아테네를 위대하게 한 건 산책, 시민의식, 필멸의 운명에 위축되지 않는 당당함, 불확실성과 고통의 포용이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핵심은 ‘단순함’이었다. 천재성은 결코 한 도시에서 지속되지 않는다. 아테네 몰락 후 천재성은 동쪽으로 수천 km 떨어진 항저우에서 발현됐다. 아테네 천재성의 핵심이 ‘단순함’이었다면 항저우엔 ‘전통’이 있었다. 언뜻 창조성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이 ‘전통의 발견과 계승’을 바탕으로 중국의 르네상스였던 송 왕조가 꽃 핀다. 이후 천재성은 ‘부유한 후원자들의 과감한 투자’로 항저우보다 더 장엄한 번영을 누렸던 피렌체, ‘실용성’을 바탕으로 의학과 경제학 등에서 서구 지성을 지배하는 황금기를 누린 에든버러 등으로 이동한다. 저자는 천재성의 이동 행로에 따라 시간과 대륙을 가로지르며 숨 가쁜 탐사를 지속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천재적 도시의 특성이 압축된 미국 실리콘밸리에까지 도착한다. 천재와 천재성을 열망하는 세계는 주목한다. 다음은 어디가 될까. 저자가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닌 천재의 발상지를 방문한 후 내린 결론은 ‘무질서, 다양성, 감식안’이다. 창조성은 늘 이 세 가지 조건에서 발현됐다. ‘실리콘밸리 모델’을 베끼려는 각국의 시도가 대부분 성과가 없었던 까닭이다. “나라에서 존경받는 것이 그곳에서 양성될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말처럼 천재는 인프라가 아니라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천재의 발상지는 낙원이 아니며 오히려 결핍과 제약, 마찰 가운데 창조력이 극대화됐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이런 결론은 ‘제2의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도시계획자들뿐 아니라 아이를 천재로 키우고 싶다는 미련을 못 떨친 부모들에게도 시사점이 있다. 실제로 저자는 아홉 살 딸 앞에서 “팬티를 머리에 써 보이는 도식 위반을 실천하거나 녹색 음식을 먹는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는 것 등으로 아이의 천재성(?)을 깨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한다. 천재의 흔적을 찾겠다는 저자의 의욕이 낯선 도시를 방랑하는 가운데 표류하다 점점 구체화돼 가는 과정이 구구절절하면서도 위트 있게 그려졌다. 각 도시의 유래나 천재성에 대한 최신 연구, 마윈 등 직접 발품을 팔아 만난 다양한 인물과의 인터뷰가 녹아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성적도 좋지 않고, 늦잠 잘 자는 삼이. 엄마는 삼이가 못마땅해 늘 “바보야”라고 혼낸다. 엄마 말에 고민하던 삼이는 ‘진짜 바보’가 되기로 결심한다. 엄마가 자신에게서 ‘좋은 바보’가 될 씨앗을 발견해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 믿으며. 친구들이 놀려도 웃고 누가 보지 않아도 열심히 청소한다. 친구는 물론이고 약한 동물까지 돕는 삼이는 친구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한다. ‘진짜 바보’가 돼 삼이는 행복하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어른들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곤히 잠든 할아버지.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 흰둥이가 꿈에 나타났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할아버지가 추억을 되짚는다. 하지만 흰둥이는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잠에서 깬 할아버지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다음 날 아침, 공원에서 혼자 요기를 하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가만 보니, 까만색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고 있다. 흰둥이를 대신할 새 친구가 나타난 걸까. 할아버지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진다.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법한 슬픔을 아련하게 그려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일에 치여 은행 갈 시간 없는 은행원, 셀프 간호하는 간호사…. 직장인의 애환을 위트 있게 그려온 웹툰작가 양경수 씨는 최근 고군분투하는 직업인들의 ‘웃픈’ 현실을 다룬 ‘잡다한 컷’(위즈덤하우스)을 펴냈다. 그는 “사회 분위기가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져도 여전히 매일 잦은 야근에, 박봉에, 월요병에, 상사에게 치이고 일에 치이며 살고 있는 우리들”이라고 자조한다. 하는 일은 다 달라도 과로 중인 건 똑같아서다. 최근 ‘주 52시간 근무제’를 비롯한 근로시간 단축이 한국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디지털 시대 과노동 문제를 다룬 책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각국의 장시간 노동문제와 해법을 모색하는 인문서부터 ‘사축’(社畜·회사 가축처럼 일하는 직장인) ‘쉼포자’(휴식을 포기한 사람) 등으로 대변되는 현실을 털어놓는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23일 인터넷서점 예스24에 따르면 노동·근로 문제를 다룬 도서는 주 52시간제 시행이 발표된 2월 이후 현재까지 총 19건이 출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8권)의 약 두 배에 이른다. 인문분야 책들은 특히 근로시간 단축과 근로여건 양극화 등 현재 우리 사회의 고민에 시사점을 주는 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의 경제학자이자 노동전문가인 저자가 세계적 추세가 된 과노동 문제를 파헤친 ‘죽도록 일하는 사회’(지식여행), 유럽 노동시장에서 열띤 논쟁 중인 프랑스의 ‘주 35시간 근무’를 다룬 ‘주4일 근무시대’(율리시즈), 노동 선진국으로 알려진 독일의 불법노동 현실을 진단한 ‘버려진 노동’(나눔의집) 등이 대표적이다. 최연순 지식여행 본부장은 “과로, 야근 등 한국적 근로문화에 대한 반발이 지난해부터 출판계에서 꾸준히 나왔다면 이제는 그런 변화의 열망, 구조적 요인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려는 움직임이 생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격무나 경쟁에 치인 직장인들의 경험담과 반기를 든 사례를 앞세워 공감을 끌어내는 책들은 에세이 분야에서 인기다. 속도전에 지쳐 사표를 쓰고 느린 인생을 자청한 경험담인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웅진지식하우스)는 출간 한 달도 안 돼 5쇄를 찍었다. 황인화 편집자는 “지쳐 있는 이들이 많음을 방증하듯 ‘내 이야기 같다’고 공감하는 독자가 많다”고 전했다. ‘월화수목금금금’인 회사에서 살아남는 꼼수를 모색하는 ‘어차피 다닐 거면 나부터 챙깁시다’(허밍버드) 등 너무 애쓰며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위트와 감성을 담아 건네는 에세이는 꾸준히 늘고 있다. 과노동 문제에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나 ‘북유럽식 해법’으로 대처하려는 움직임이란 분석도 나온다. 출판평론가인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최근 출판에선 글로벌화, 자동화로 누적된 노동문제를 진단하거나 노동의 미래를 모색하는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며 “노동 문제가 사회의 중요 의제가 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사고가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기 계발서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성공, 재테크 등 성과 지향적인 주제의 책들을 탈피해 ‘워라밸’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이 알아야 할 시간 관리의 기술이나 감정 관리의 비법들을 전수해주는 책들이 늘고 있다. 최근 출간된 ‘하우투 워라밸’(미래의창) ‘스마트 워라밸’(당신의서재) 등은 워라밸을 망치는 업무 부탁을 제대로 거절하는 법이나 꼰대 대처법, 의도적으로 휴식과 쉼을 갖는 방법 등을 상세히 일러준다. 일로 능력을 인정받는 것만큼이나 제대로 된 ‘워라밸’을 삶에 적용하는 데 관심이 높아졌음을 가늠하게 하는 책들이다. 실제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93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봉보다 워라밸을 이직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이들이 전체 58.3%로 절반을 웃돌았다. 한국의 근로문화 바탕에는 조직 내의 관계나 타인의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던 만큼, ‘워라밸’을 망치지 않기 위해 감정·마음 챙김의 기술을 강조하는 책들도 큰 인기다. 교보문고 인문서 베스트셀러 1위인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다산초당)는 예민함은 오히려 관계, 직장생활 모두에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일터에서도 승진, 소문 등에 신경을 끄고 둔감해질 것을 권한다. ‘신경 끄기의 기술’(갤리온)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가나) 등 같은 맥락의 책들 역시 올해 들어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영화 ‘레옹’으로 유명한 프랑스 영화감독 뤽 베송(59)이 여배우를 성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했다. AP통신 등은 “한 여성 배우(27)가 베송 감독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고 19일(현지 시간) 전했다. 이 여성은 17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 호텔에서 베송 감독이 자신에게 약을 먹이고 성폭행한 뒤 돈 뭉치를 남기고 떠났다고 주장했다. 고소인은 “차 한 잔을 마신 뒤 의식을 잃었으며, 정신이 들었을 땐 이미 성적으로 학대당하고 있었다”며 “약 2년 간 감독과 알고 지냈는데 직업적 이유로 친하게 지내야한다는 압력을 느꼈다”고 밝혔다. 베송 감독 측은 즉각 부인했다. 감독의 변호사는 “몽상가가 제기한 고소”라며 “결코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1983년 데뷔한 베송 감독은 프랑스 영화계의 ‘누벨 이마주’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니키타’ ‘제5원소’ ‘택시’ ‘테이큰’ 등 미국 할리우드와 프랑스 등을 오가며 100편 가까운 작품을 연출하거나 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 4번 결혼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도시로 이사 온 메이는 정원이 없어져 풀이 죽는다. 나비가 그리워 바닥에 낙서해 보지만 비에 씻겨내려 간다. 이삿짐에 꽃과 나무, 벌레 친구들을 그려보지만 짐이 정리되면 사라져버린다. 산책에 나선 메이는 싱그러운 나무와 풀로 가득한 꽃집을 발견한다. 메이는 길 위에서 주워 온 초록색 싹 하나를 화분에 심는다. 화분에서 시작한 초록색 물결이 메이의 방으로, 도시 전체로 퍼진다. 메이가 꿈꾸던 정원이다! 생명이 깃든 공간의 소중함이 푸른 색감의 그림으로 표현됐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구두점과 맞춤법에 명예를 건 교열자와 단어 하나를 손보는 데 몇 달을 매달리며 황홀경에 빠지는 사전 편찬자. 단어, 문장과 씨름하는 것을 평생의 업이자 명예로 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란히 출간됐다. ‘뉴욕은 교열 중’은 ‘뉴요커’에서 35년 넘게 일한 책임 교열자가 교정 업무와 관련한 다양한 경험담과 문장, 문법에 대한 철학을 담아낸 책이다. 마침표, 쉼표 하나 그냥 넘기지 않는 저자의 별칭은 ‘콤마퀸’. 이 회사에만 있는 오케이어(Ok‘er)란 직책을 맡고 있다. 기계적인 교열 업무를 넘어 인쇄 직전까지 원고를 완벽하게 가다듬는 자리다. 사람들은 교열자를 ‘하이픈으로 찌르거나 콤마 한 상자를 강제로 먹일 것 같은 마녀(?)’로 여기거나 작가가 되려다 실패해 출판업 주변부에서 사사건건 시비 거는 괴짜로 여기기도 하지만 저자는 정확한 교정에 늘 최선을 다해 임한다. 유명 작가, 편집자들과 단어나 철자 하나의 교정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신경전이나 사소한 인용 오류까지 잡아낸 저자의 철저함에 “같이 살고 싶다”고 말해버린 미국 유명 작가 필립 로스의 제안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언론사는 표기법에 관해 회사별로 규칙을 두는데 ‘뉴요커’의 경우 ‘웹스터’ 사전을 기준으로 한다. 자연히 저자의 교열 에피소드에서 ‘웹스터’를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회사에서 마치 ‘성서’처럼 집착하는 이 사전의 정체가 궁금해 편찬자 노어 웹스터 전기를 찾아보기도 하고 실제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의 사무실을 탐방한 후기도 소개한다. 재밌게도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가 바로 이 ‘웹스터’의 스프링필드 사무실에서 사전을 편찬하는 편집자가 쓴 책이다. 어릴 때부터 언어의 신비에 매료됐던 저자는 자신을 놀리는 친구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전을 활용했다. 혈거인(troglodyte), 허풍쟁이(cacafuego)처럼 친구들이 잘 모르는 어려운 단어를 찾아 면전에서 조용히 날려줬다는 것. 대학 진학 후에도 고대 영어와 중세 영어, 셰익스피어를 넘나들며 단어 탐험을 계속하던 저자는 결국 웹스터에서 사전 편집 일을 시작한다. “언어의 잡초 밭에 수시로 걸려 넘어지고, 한 항목을 머리 뜯으며 검토하다 종국엔 자기가 무슨 언어로 말하는지조차 헷갈리게 만드는 일”이다. 단어가 사전에 등재되기까지의 과정은 무척 복잡하고 치밀하다. ‘우주가 꺼질 때까지 완벽한 침묵’ 속에서 노동하지만 그만큼의 노고를 인정받지도 못한다. 저자는 새뮤얼 존슨의 말을 인용해 “사전 편찬자들은 무해한 노역자”라고 정의한다. 글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문장부호 하나, 단어 하나 매만지는 데 온 하루를 바치는 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것 같다. 투덜대면서도 일에 대한 자부심을 놓지 않는 유쾌한 인생관, 빼어난 유머감각까지 비슷하다. 미국 저자들이라 영어 예시가 많긴 하지만 방대한 단어와 문장부호의 세계를 위트 있게 탐험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시끄러운 도시에서 택시를 잡아타면 라디오에서 달콤한 사랑 노래가 흘러나와. 새로운 냄새, 그건 모두 삶의 냄새야.’ 시적인 문장들로 사랑의 소중함을 일러주는 그림책이다. 첫아이를 만난 부모의 말과 표정은 모두 사랑이다. 손자와 낚시하는 할아버지의 깊은 주름도 사랑이다. 사랑은 때로 아프고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거리 연주자의 노랫소리, 삼촌의 농담까지 주변의 모든 것이 사랑이다. 일상을 지탱해 주는 사랑의 힘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휩쓸며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편혜영 소설가(46)가 2년 만에 장편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현대문학)을 펴냈다. 특유의 단단하게 직조된 문장과 감정이 절제된 신중한 묘사로 인물을 탐색해가면서도 전체 서사가 뚜렷해 빠른 호흡으로 읽히는 작품이다. 배경은 조선업 발달로 성장하다 몰락 중인 이인시의 한 종합병원. 서울 대학병원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이곳에 오게 된 무주는 병원에서 가장 평판이 좋았던 직원 이석의 비리를 알게 되자 고민 끝에 내부고발을 한다. 나름의 정의감에 한 행동이었지만 이후 무주는 오히려 동료들의 외면을 받고 한직으로 밀려난다. 그가 전 직장에서 관행이란 미명하에 장부조작을 하다 해고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입장은 더 난처해진다. 해직된 줄 알았던 이석이 당당히 복귀하며 무주의 혼란과 이석과의 긴장관계는 최고조에 이른다. 하지만 작가는 두 사람의 대치와 내적 고민이 무색하리만치 크게 버티고 선 거대한 부조리의 그림자 역시 서서히 드러내 보인다. “감추어진 진실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무주)는 겹겹이 쌓인 거대한 기만의 구조와 대면하며 동시에 그에게 함께 생존할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 적대적인 사회조직과 마주친다.”(황종연 문학평론가) 소설은 배경, 장소, 인물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설계됐다. 작가는 17일 전화 인터뷰에서 “딜레마에 빠진 인물을 다루는 작업은 항상 흥미롭다”며 “도덕적 결함이 있지만 공익에 부합하기 위해 내부고발을 하는 ‘모순적 인물’을 떠올리는 것에서 이번 소설이 출발했다”고 말했다. 선악을 구분 짓기 힘든 인물들의 모순을 선명히 보여주기 위해 극심한 생존 투쟁이 벌어지는 쇠락한 ‘산업도시’를, 윤리성이 요구됨에도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병원’을 무대로 삼았다. 작가가 설계한 이 가상의,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누구를 옹호하고 비난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이 작품은 소설집 네 권, 장편 다섯 권을 펴낸 작가의 아홉 번째 책이다. 그는 “처음에 책을 내면 신기하고 기뻤는데 이제는 보통 일을 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게 끝났으니 다른 건 뭐하지’ 하고 덤덤히 생각한다”며 “출간이 끝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웃었다. 여전히 “하루 종일 앉아서 소설 쓸 때가 가장 좋다”는 그는 에세이, 칼럼 등 다른 종류의 글쓰기는 최대한 자제하며 소설에 모든 걸 투자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등장인물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인간이 마냥 단순하지 않은 존재임을 함께 고민해보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문학잡지’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것들이 있었다. 정색하고 봐야 할 것 같은 두툼한 두께와 빼곡한 활자, 난해한 비평. 그런데 부쩍 이 공식을 파괴한 잡지가 많아졌다. 화보집 같은 사진에 감각적인 일러스트, 눈이 시원한 레이아웃에 소설이나 시를 담아낸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격월간 문학잡지 ‘악스트’(Axt·은행나무)가 있다. 30년 넘게 창비나 문지 등 계간지 스타일로 굳어진 한국 문학잡지에 ‘파격의 포문’을 연 첫 잡지였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Axt)여야 한다”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 서문에서 이름을 따 온 악스트가 새로운 실험을 한 지 3년을 맞았다. 한국 문학계가 갖가지 변화의 파고를 겪는 동안 악스트는 1만 권에 이르는 발행 부수와 인지도 면에서 자리매김에 성공했다. 그리고 변화를 선도해 왔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6일 만난 백다흠 편집장(39)은 “가장 단순하게 ‘잡지란 매체 특성에 충실한 잡지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악스트 이후 ‘릿터’(민음사), ‘문학3’(창비) 등 비슷한 포맷의 새 문학잡지가 나왔지만 당시만 해도 문학을 이렇게 다루는 건 낯선 시도였다. 신인상과 문학비평, 시 없이 소설만 다룬다는 콘셉트도 특이했다. 백 편집장은 “기존 문학 계간지는 단행본에 가까운 발행물이지 잡지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젊은 독자를 흡수하기도 쉽지 않은 형태였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잡지는 왜 영화잡지처럼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킨포크나 일본의 리빙잡지 등 다양한 형태의 잡지를 참고했다”고 말했다. 표지부터 레이아웃까지 파격적으로 만들었지만 처음에는 그도 “‘문단 어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좀 걱정이 됐다”며 웃었다. 하지만 시대에 발맞춘 변화에 20∼40대 독자들은 크게 호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획으로는 첫 호에 실은 천명관 작가 인터뷰를 꼽았다. 당시 천 작가는 대학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문단 권력이 한국 문학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해 화제가 됐다. 백 편집장은 “논란을 의도해 기획했던 건 아니었다”며 “돌이켜보니 새로 출발하는 저널을 믿고 작가가 자신 있게 내질러줬던 목소리 같다”고 말했다. 창간 3년을 맞아 악스트는 변화를 모색 중이다. 가장 큰 변화는 가격. 한 권에 2900원인 가격을 1만 원으로 올린다.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파격적인 가격정책을 유지해 왔지만 ‘너무 많은 희생이 필요한 가격’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다양한 기획을 더할 예정이다. 문학계를 진단하는 르포도 싣고 작가 발굴에도 공을 들일 예정이다. 격동하는 정세와 매일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독자들은 문학에서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쉽지 않은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문학잡지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삶을 사는 속도와 리듬이 뉴스의 속도만큼 빨라지고 있어요. 하지만 무한정 빨라질 수는 없으니 결국은 뭔가가 필요한데 문학이 그 역할을 해야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문학에 대한 논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든 ‘문학이 계속 이야기 되게끔 하는 것’ 그게 저희의 몫이겠죠.”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봉은사(주지 원명)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도량 내 형형색색 3만여 개의 오색연등을 밝혀 부처님 오심을 찬탄하고 다채로운 행사를 봉행한다. 3일에는 올해로 20회를 맞은 봉은사의 전통등 점등식을 열고 불기 2562년인 올해 부처님 오신 날 축제의 시작을 처음으로 알렸다. 봉은사 측은 “진여문에서 법왕루까지 장엄한 오색 봉축등이 한 등 한 등 저마다의 서원을 담아 밝게 빛나고 있다”며 “대웅전 앞마당뿐 아니라 전각들 사이사이 오솔길에도 빼곡하게 매달린 아름다운 연등에는 나와 가족, 이웃을 넘어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까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전통등은 27일까지 전시될 에정이다. 전통등 점등식을 시작으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한 봉은사는 지역, 기관과 연계한 다양한 자비나눔 실천 행사를 꾸준히 마련해 왔다. 6일에는 미륵광장에서 ‘연희 한마당’을 열고 아름다운 율동과 군무로 장엄하게 부처님 탄생의 기쁨을 알리고 봉축 분위기를 선도했다. 12일 연등행렬 날에는 축제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템플 특별 이벤트’가 열렸다. 25개국 200여 명의 외국인을 초청해 전통국악과 K팝 등의 공연 관람과 다도체험을 함께 했다. 동국대에서 조계사까지 연등행렬도 진행됐는데 봉은사 사부대중 1000명 정도가 장엄등을 들고 동참해 봉축의 의미를 되새겼다. 13일에는 인사동에서 조계사까지 연등놀이가 펼쳐졌다. 봉은사 연희단이 중심이 되어 화려한 춤과 신나는 율동으로 모두의 행복과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신명나는 축제의 자리를 만들었다. 18일에는 지역 내 경로효친 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한 ‘어르신을 위한 효(孝) 큰잔치’를 열 예정이다. 부처님 오신 날 당일인 22일에는 이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가족과 이웃의 행복과 소망을 담은 연등을 환하게 밝히는 봉은사의 ‘봉축 법요식’과 ‘봉축 점등식’을 봉행한다. ‘봉축 법요식’은 대웅전 앞 특설무대에서 오전 10시 봉행된다. 사부대중과 내빈, 많은 불자들이 함께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을 되새기며 부처님같이 살기를 발원하는 자리다. ‘봉축 점등식’은 오후 6시 반부터 대웅전 앞 특설무대에서 진행된다. 경내 연등의 불 밝힘은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가 온 세상을 밝히기를 발원하는 봉축 행사의 하이라이트다. 봉은가족 장기자랑 한마당은 대웅전 앞 특설무대에서 열린다. 봉은사 사부대중 모두가 참여한 가운데 신명나는 축제의 장이 열릴 예정이다. 이와 함께 주차장 일대와 종루 앞 부스에서는 ‘자비나눔장터’ ‘템플문화한마당’ ‘계층포교활동’ ‘법인 홍보관’ 등 다채로운 볼거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봉은사 측은 “다채로운 체험부스를 운영해 신도들뿐 아니라 일반인, 어린이나 청소년 등 국내외 방문객들에게도 불교 문화를 체험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나 머리 묶는 게 나아, 푸는 게 나아?” 밥 먹다 말고 훅 치고 들어오는 여자의 질문. 보통의 남자라면 “둘 다”라고 무난하게 (하지만 다분히 기계적으로) 말하겠지만, 이 남자는 여자를 응시하다가 이렇게 되묻는다. “오늘? 아니면 평소에?” 요즘 ‘폭발적 매력’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하트시그널 2’의 출연자 김현우 이야기다. 질문자의 의도가 ‘어떤 스타일이 예쁜지에 대한 설명’에 있는 게 아니라 ‘세심한 관심’에 있음을 이해한 답변이다. 행동, 말투, 반응에 이르기까지 여자들이 남자에게 원하는 것들을 완벽하게 보여줘 “사람 아니고 홀로그램인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4주 연속 TV 프로그램 화제성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 ‘러브라인 추리 예능’엔 관전 포인트가 여럿이다. 그중 연애세포를 자극하는 선남선녀들의 달달한 로맨스만큼이나 흥미로운 건, 다양한 성격과 개성의 출연진이 상대의 마음을 얻어가는 치열한 과정이다. 출연자들의 행동을 놓고 ‘팔꿈치 효과’ ‘초두 효과’ 등으로 분석하는 패널들의 재치 있는 설명은 2049 타깃 시청층으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 사실 ‘마음을 얻는 기술’은 연애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까운 인간관계에서부터 영업, 정치, 외교 영역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이끄는 힘은 무척 중요하다. 하트시그널에서도 출연자들의 행동을 분석하기 위해 언급했던 이 분야 고전 중 ‘유혹의 기술’이란 책이 있다. 상대가 기꺼이 내가 원하는 것을 내주도록 하는 것이 권력보다 막강함을 일러주는 책이다. 특히 저자는 “지위나 권력, 재력으로 누군가를 누르거나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사회 전 분야에서 더는 용인받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며 “부드럽고 우회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어내는 기술이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사회의 최우선 가치들로 공정성과 평등이 부각되기 시작한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능력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최근 한 항공 재벌 3세의 ‘물컵 투척’을 계기로 그간 저질렀던 사주 일가의 무소불위 갑질에 대한 폭로가 쏟아지고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살 노력 자체가 필요 없던 특별한 환경에서 ‘비뚤어진 특권의식’이 싹텄을 것이다. 그래선지 온 가족이 수사 대상에 오르고 항공면허 취소까지 검토되는 위기 상황에서도 대처가 특이하다. 각종 갑질에 대한 성토에 “청소의 기본은 환기이므로 지적했을 뿐” “뚝배기는 한식에서 사용되며 외국인 셰프가 만들 리 만무하다”고 반박해 여론은 더 나빠졌다. 그런 걸 따지자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위력과 권위에 기댄 횡포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없게 된 시대에는 누구에게나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사회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갑질 재벌들이 금요일 밤 이 예능을 보며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을 좀 연구해 보면 어떨까 싶다. 김현우의 ‘홀로그램급’ 전략까지 흉내 내진 못해도 연일 최악의 수를 두는 건 피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
‘어벤져스3’가 13일 누적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역대 21번째로 1000만 영화 반열에 오른 것. 외화로는 ‘아바타’(1362만 명·2009년), ‘인터스텔라’(1027만 명·2014년), ‘겨울왕국’(1029만 명·〃),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1049만 명·2015년)에 이어 다섯 번째다. 개봉 19일 만인 이날 1000만 관객을 넘어선 ‘어벤져스3’는 전작인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개봉 25일째에 세운 최단 기간 1000만 관객 돌파 외화 기록을 갈아치웠다. 역대 최다 예매량(122만 장), 최고 예매율(97.4%), 최다 오프닝 관객 수(98만 명) 기록도 새로 썼다. 또 개봉 이틀째 100만 명을 넘기면서 역대 개봉 외화 중 누적 관객 수 최단 기록을 경신했다. 전날까지 국내 누적 매출액은 877억8104만 원이었다. 전 세계에서는 누적 매출 14억 달러(약 1조4938억 원)를 앞두고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나 머리 묶는 게 나아, 푸는 게 나아?” 밥 먹다 말고 훅 치고 들어오는 여자의 질문. 보통의 남자라면 “둘 다”라고 무난하게 (하지만 다분히 기계적으로) 말하겠지만, 이 남자는 여자를 응시하다 응시하다가 이렇게 되묻는다. “오늘? 아니면 평소에?” 요즘 ‘폭발적 매력’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하트시그널 2’의 출연자 김현우 이야기다. 질문자의 의도가 ‘어떤 스타일이 예쁜지에 대한 설명’에 있는 게 아니라 ‘세심한 관심’에 있음을 이해한 답변이다. 행동, 말투, 반응에 이르기까지 여자들이 남자에게 원하는 것들을 완벽하게 보여줘 “사람 아니고 홀로그램인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4주 연속 TV프로그램 화제성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 ‘러브라인 추리 예능’엔 관전 포인트가 여럿이다. 그중 연애세포를 자극하는 선남선녀들의 달달한 로맨스만큼이나 흥미로운 건, 다양한 성격과 개성의 출연진들이 출연진이 상대의 마음을 얻어가는 치열한 과정이다. 출연진들의 행동을 놓고 ‘팔꿈치 효과’ ‘초두효과’ 등으로 분석하는 패널들의 재치 있는 설명은 2049 타깃 시청층으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 사실 ‘마음을 얻는 기술’은 연애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까운 인간관계에서부터 영업, 정치, 외교영역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이끄는 힘은 무척 중요하다. 하트시그널에서도 출연자들의 행동을 분석하기 위해 언급했던 이 분야 고전 중 ‘유혹의 기술’이란 책이 있다. 상대가 기꺼이 내가 원하는 것을 내주도록 하는 것이 권력보다 막강함을 일러주는 책이다. 특히 저자는 “지위나 권력, 재력으로 누군가를 누르거나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사회 전 분야에서 더는 용인 받지 용인받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며 “부드럽고 우회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어내는 기술이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사회 최우선 가치들로 공정성과 평등이 부각되기 시작한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능력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최근 한 항공재벌 3세의 ‘물컵 투척’을 계기로 그간 저질렀던 사주일가의 무소불위 갑질에 대한 폭로가 쏟아지고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살 노력 자체가 필요 없던 특별한 환경에서 ‘비뚤어진 특권의식’이 싹텄을 것이다. 그래선지 온 가족이 수사 대상에 오르고 항공면허 취소까지 검토되는 위기 상황에서도 대처가 특이하다. 각종 갑질에 대한 성토에 “청소의 기본은 환기임으로 지적했을 뿐” “뚝배기는 한식에서 사용되며 외국인 셰프가 만들 리 만무하다”고 반박해 여론은 더 나빠졌다. 그런 걸 따지자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더이상 위력과 권위에 기댄 횡포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없게 된 시대에는 누구나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사회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갑질 재벌들이 금요일 밤 이 예능을 보며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을 좀 연구해보면 어떨까 싶다. 김현우의 ‘홀로그램급’ 전략까지 흉내 내진 못해도 연일 최악의 수를 두는 건 피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박선희 기자teller@donga.com}

“거지가 글을 썼습니다. 전쟁 마당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얻어먹기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어찌나 배고프고 목말라 지쳐버린 끝에, 참다 못해 터뜨린 울음소리가 글이 되었으니 글다운 글이 못 됩니다.” ‘참다 못해 터뜨린 울음소리가 글이 됐다’는 말이 이 서문에서처럼 서늘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사찰 집사로 교회 새벽종을 치며 습작에 매달린 지 17년 만에 출판된 첫 동화집 ‘강아지똥’(1974년) 초판에서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1937∼2007)은 이렇게 썼다. 거지가 글을 썼다고. 고대하고 사무쳤을 첫 책에 터놓은 이 거침없는 고백이 읽는 이의 가슴까지 저미게 한다. 수사가 아니라 전쟁과 분단을 겪은 그의 삶이 문자 그대로 그랬다.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그의 작품은 많은 이들이 알지만,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파고든 전기는 없었다. 이 책은 한국 아동문학의 대표 작가 권정생 선생의 타계 11주년을 맞아 전기문학 작가인 저자가 2년간 취재해 재구성해 낸 일대기다. 집도, 돈도, 친구도, 배운 것도,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던 병약한 소년이 모두를 울리는 아름다운 동화를 써내기까지 일흔 해 동안의 가슴 시린 여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선생의 삶에는 우리의 굴곡진 근현대사가 농축돼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살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 고생만 하다 가신 그리운 어머니, 짐이 되기 싫어 일부러 멀리 보낸 동생. 생계가 막막했지만 19세 때 발병한 폐결핵에 늑막염을 평생 앓느라 일을 구할 수도 없었다. 결핵균이 방광까지 퍼져 수술을 받은 후로는 소변 줄인 고무호스를 옆구리에 꽂고 지내야 했다. 그런 그의 유일한 힘이 신앙과 글쓰기였다. 그의 시선은 불우한 이웃, 천대받는 사람들, 전쟁과 분단의 아픔 속에 짓밟히고 희생됐던 평범한 이들의 삶에 맞춰져 있었다. ‘강아지똥’은 그의 분신이었고, ‘몽실언니’는 전쟁 발발 전 그가 봤던 이웃이자 친구였다.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아픔과 불행, 가난을 다룬 그의 동화는 한국아동문학의 독창적 영역을 일군다. 주요 작품들의 집필 배경을 중심으로 아동문학가 이오덕과 버팀목이 돼 준 문단 동료들과의 교류, 이루지 못한 첫사랑 이야기도 재구성된 대화를 통해 세밀하게 복원했다. 그의 삶을 따라가는 내내 울음을 삼키게 된다. 겨울 문간방 이불을 파고든 생쥐조차 내쫓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이 베어버리려 하는 교회 마당 대추나무를 부둥켜안고 운 작가. 냉골에 배를 곯으면서 인세를 속이는 출판사와 시비 가리지 않던 작가. 입고 갈 옷이, 여비가 없어 시상식조차 못 가는 처지가 값싼 동정을 받아도 차마 싫은 소리 한 번 못 했던 작가. 하지만 투병의 고통, 고독한 노후에 쓴 유서에조차 여유를 잃지 않는 그 내면은 누구보다 단단해 보인다. “만약 다시 죽은 뒤 환생할 수 있다면… 연애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도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생각해봐서 환생은 그만둘 수도 있다.” 역사의 상처와 아픔을 평생 동화로 끌어안고 산 작가. 삶 자체가 슬프고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였던 인간 권정생을 만나고 나면 그의 작품을 다시 읽고픈 마음이 간절해진다. 영국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가 쓴 고전동화 ‘피터 래빗’ 27권을 모두 모은 전집도 나왔다. 빅토리아 시대 신분제도의 모순과 급격한 산업혁명의 폐해 속에서 자유, 자연을 향한 갈망을 토끼 가족 이야기로 풀어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어디에선가 흘러나오는 울적한 음악소리를 들은 아이. 소리를 따라가 보니 ‘피아노 애벌레’가 슬퍼하는 소리다. 아이는 애벌레를 위로해주기 위해 애쓰지만 소용이 없다. 고민 끝에 다른 악기들을 가져가 함께 연주한다. 처음 들어본 화음에 깜짝 놀라지만 마침내 즐거워하게 된 피아노 애벌레. 잠시 후 나비가 돼 훨훨 날아다니며 신나는 음악을 연주해준다. 음악으로 누군가를 위로하는 법, 신나는 음악을 함께 즐기는 법을 독특한 상상력을 통해 일러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낙엽 속에 버려진 깡통. 알고 보면 그냥 깡통이 아니다. 그 안에는 개구리 그린피스가 있다. 이 깡통은 그린피스의 집으로 가는 현관문이기 때문이다. 집은 깡통 아래로 이어진 깊은 땅속에 있다. 멋진 소파, 책, 각종 보물로 채워진 수많은 방이 있다. 어느새 겨울이 온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땅만 보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그 아래에는 멋진 집과 겨울잠에 든 그린피스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의 이면을 그려보는 즐거움을 준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백과사전은 고리타분하다고들 생각하죠. 한국에서 종이 백과사전이 나오지 않은 지 20년이 넘었어요. 하지만 근대 개화와 문명의 축적을 종이를 넘길 때마다 알아가는 즐거움은 정말로 큽니다. 이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요.” 서해문집 김흥식 대표(61)는 몇 년 전부터 각국의 오래된 백과사전을 사 모으는 재미에 푹 빠졌다. 해외 고서적 거래 사이트를 뒤지고 해외에 나갈 땐 꼭 고서점 거리를 찾아다니며 20여 종을 모으느라 쓴 돈만 1억 원이 넘는다. ‘체임버스 백과사전’(1728년·영국)처럼 비싼 건 한 질 가격이 3000만 원을 호가한다. 김 대표는 출판이라면 무릇 고전과 기록물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고전 신봉주의자’다. 책이란 ‘언론’ ‘기록’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믿는 ‘원칙주의자’이기도 하다. 그의 남다른 취미생활 역시 사명감으로 추진 중인 출판문화 아카이브(체계적 수집과 보존) 작업의 일환이다. 김 대표는 경제논리에 밀리고 영상의 홍수 속에서 위축된 출판문화를 복원, 기록하기 위해 ‘출판 아카이브총서’ 시리즈를 기획했다. 4년 준비 끝에 지난달 1권 ‘광고로 보는 출판의 역사’(일제강점기편·사진)를 펴냈다. 일제강점기 신문에 실린 출판 광고를 통해 당대의 시대상을 유추할 수 있게 정리한 책이다. 출간해도 손해 보는 책인 걸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맥락을 아는 데서 진짜 논리와 지식이 나온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옛날 신문을 좋아해 거의 모든 신문을 섭렵한 그는 “이 자료를 이렇게 그냥 두면 안 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촛불혁명은 잘 알아도 그게 일어나기까지 누적된 민주주의 전통에는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시민들이 적극 참여한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도 민주주의를 진전시킨 중요한 역사지만 잘 모르잖아요. 문명은 조각나 있으면 의미가 없어요. 오늘과 연결된 과거를 모르면 논리 없이 부분만 보다 끝나버립니다.” ‘출판 아카이브총서’ 시리즈는 전문 연구자들과 함께 광고로 본 잡지, 영화, 성명서 등으로 이어질 계획이다. 각국의 오래된 백과사전 역시 아카이브총서의 하나로 준비 중이다. 백과사전이 다루는 사안의 분량과 방식, 집필자의 시각, 백과사전의 사회적 위상 등 시대상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신문과 백과사전의 아카이브 작업은 꼭 끝마치고 싶다”고 소망했다. 김 대표는 “문명을 축적하는 작업은 결국 시간과 돈이 필요한데 경제적 효율만 따지면 하기 힘들다”며 “우리는 압축적으로 성장하는 데 주력해 여기에 소홀했다”고 말했다. 그는 “휘발되는 것들, 찰나의 것들 대신 묵묵히 축적돼온 문명의 흔적에 좀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며 “작은 출판사로서 힘겹게 분투 중이긴 하지만 아카이브 자료가 다양하게 활용된다면 출판인으로서의 몫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