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모

김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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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사회부를 시작으로 소비자경제부와 경제부, 산업부 등을 거쳤습니다. 신문과 방송, 매거진(동아비즈니스리뷰)에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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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3~202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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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 필리버스터조차 무기력…대놓고 졸고 새벽 10명만 자리 지켜

    “‘거야’(巨野)의 폭주를 국민에게 알릴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지만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로도 더불어민주당의 태도가 바뀌지 않을 것 같아 무력감을 느꼈다.”6시간 50분간 필리버스터를 진행한 국민의힘 박준태 의원은 4일 발언이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거대 야당에 맞설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는 점을 토로한 것이다. 여당은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 강행 처리를 저지하겠다며 1박 2일간 필리버스터에 돌입했지만 같은 당 의원이 졸거나 자리를 비우는 등 무기력한 모습을 노출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결기를 보여주겠다더니 창피한 모습을 남겼다”는 목소리가 나왔다.헌정 사상 세 번째 필리버스터는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의 토론 중에 우원식 국회의장이 “토론을 중지하겠다. 마이크를 꺼달라”며 의장 직권으로 종결 동의안 표결에 붙여졌다. 국회법에 따라 필리버스터 24시간이 경과된 4일 오후 6시경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의 찬성으로 강제 종료됐다.● 초선 새벽 7시간 토론 때 與 의원 10여 명만이틀 간의 토론에는 여야 의원 7명이 참여했다.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4시간19분)의 발언을 시작으로 민주당 박주민 의원(46분)-국민의힘 주진우 의원(5시간14분)-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31분)-국민의힘 박준태 의원(6시간50분)-민주당 서영교 의원(1시간57분)-국민의힘 곽규택 의원(4시간40분) 순으로 릴레이 토론이 진행됐다.국민의힘 토론 주자들은 여당을 배제한 특검 후보자 추천 등 채 상병 특검법의 ‘독소조항’ 등을 문제 삼았다. 박준태 의원은 “국가기관 조직인 수사기관을 무조건 믿을 수 없으니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임명한 특별검사가 수사해야 한다는 논리는 대체 무엇이냐”고 주장했다.초선인 박 의원은 오전 2시 31분부터 9시 21분까지 6시간 50분간 발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본회의장에는 여당 의원도 10여 명만 자리를 지켰다. 사회를 보던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국회 부의장도 박 의원 발언 시간에 눈을 감고 조는 모습을 보였다. 당내에선 “초선이 홀로 새벽 시간 때우는 모양새가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주 의원은 전날 밤 “예를 들어서 군 장비를 실수로 파손한 것이라 가정해보자. 군의 주요 시설, 한 20억짜리 되는 주요 시설에 대해서 과실로 인해서 고장이 났다고 치자”며 “만약에 군에서 조그만 실수에 대해서 잠깐 조사한 다음에 가압류를 남발한다 그러면 군의 사기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말했다가 논란이 됐다. 민주당에선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장비는 새로 사면 되지만 아들은 어디서 되느냐냐”는 고성이 터져나왔다. 주 의원은 “사법체계나 행정체계가 잘못됐을 때 객관적 시각에서 보여주려고 예시를 든 것”이라며 “몇 번이나 안타까움을 표했는데 의도를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여당 의원들의 토론 진행 중 일부 야당 의원들이 발언을 방해하는 듯한 장면도 나왔다. 주 의원의 필리버스터 도중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본회의장 의석 뒤편에서 왔다 갔다 걷는 모습을 보였다.● 잠들었던 여당 의원들 “사과”전날 본회의장에서 잠들었던 국민의힘 최수진, 김민전 의원은 이날 사과했다. 당 수석대변인인 최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당이 국민에게 호소하는 자리에서 피곤해서 졸았다”고 말했다. 당 최고위원 후보인 김 의원은 “그 전날도 밤늦게까지 국회에서 대기했다. 주경야독하는 입장”이라며 “전당대회 비전 발표회도 있고 여러 일이 많이 겹체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다”고 했다. 야당은 “국회가 침실이냐”며 집중 공세를 이어나갔다.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꾸벅꾸벅 조는 게 아니라 아주 편안하게 잔다”고 꼬집었다.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윤희숙 같은 모습이 나와 줬으면 분위기 반전이라도 꾀했을 텐데, 일부 의원 사고친 것 뒤수습하느라 바쁜 모습”이라며 한탄이 나왔다. 국민의힘 윤희숙 전 의원은 2020년 12월 최장 기록인 12시간47분을 발언해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얻었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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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野 김병주 “정신나간 국힘” 발언에… 22대 국회 첫 대정부질문부터 파행

    “야당이 진짜 특검을 통해 해병대원 죽음(의 진상)을 밝히려고 한다면 국민의힘과 타협안을 만들었어야 했다.”(국민의힘 박형수 의원) “모든 지표가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대통령을 외압의 실체에서 빼면 (사건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여야는 22대 국회 첫 대정부질의가 열린 2일 ‘채 상병 특검법’을 두고 삿대질과 고성이 오가는 극한 대치를 벌였다. 민주당은 “절대다수 국민이 찬성하는 법안”이라며 본회의에서 특검법 강행 처리 방침을 밝혔고 국민의힘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예고하면서 맞섰다. 채 상병 특검법 등을 둘러싸고 여야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대정부질의 도중 언급한 “정신 나간 국민의힘 의원들” 발언을 두고 사과를 요구하는 여당 의원들과 충돌하면서 본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결국 이날 밤 22대 국회 첫 대정부질문부터 파행되면서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은 불발됐다. 민주당은 3일 본회의에 상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통령실은 추후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예고한 가운데 윤 대통령은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대화와 합의에 기반한 합리적 시스템으로 의견차를 좁히고, 의사 결정을 이뤄내는 것이 정치의 요체”라고 민주당의 강행 처리 방침을 비판하고 나섰다. ● 野 김병주 “정신 나간 與”에 본회의 파행 이날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 첫 번째 질의자로 나선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불러냈다. 박 의원의 질의에 신 장관이 반박을 이어가자 민주당 의원석에서는 “거짓말쟁이” “미꾸라지네” 같은 고성이 나왔다. 다음 차례로 단상에 오른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은 질의에 앞서 특검법 본회의 상정 방침을 밝힌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목례하는 관례를 깨기도 했다. 이에 장내 민주당 의원들이 “인사는 해야지. 기본이 안 돼 있어”라고 소리 질렀지만 김 의원은 “인사는 존경심이 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한미일 연합훈련과 관련한 질의를 하던 중 “여기 웃고 계시는 정신 나간 국민의힘 의원들이 한미일 동맹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일제히 큰소리로 항의했고, 회의를 진행하던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사과하라”고 요구했으나 김 의원은 이를 거부했다. 김 의원 사과 문제로 여야가 충돌하면서 대정부질문 도중 파행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당초 이날 대정부질문이 종료된 후 특검법을 상정할 방침이었으나 국민의힘 의원들이 김 의원의 사과 거부를 두고 본회의 참석 불가 방침을 통보하면서 이날 본회의 상정은 무산됐다.● 野, 특검법 강행 vs 與 필리버스터 예고 민주당은 ‘채 상병 특검법’이 여론의 지지를 받는 데다 조국혁신당·진보당을 비롯해 개혁신당과 여당 일각에서도 동의하는 만큼 특검법안을 임시국회 기간인 4일까지는 처리해 정국 주도권을 이어가겠다는 기류다. 반면 국민의힘은 19∼21대 국회에서 대정부질문을 위한 본회의에서 법안을 상정해 처리한 적이 없다는 전례를 강조하며 “여야 합의 정신”을 강조했다. 국민의힘에서는 민주당이 강행 처리를 시도할 경우 필리버스터로 맞선다고 예고한 상태다. 민주당은 국회법상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의 찬성만 있으면 필리버스터 시작 24시간 이후부터는 강제 종료할 수 있다는 국회법을 활용해 범야권(192석)과 함께 이를 종료시킨다는 방침이다. 여당은 법안이 강행 처리되면 결국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채 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여야 충돌로 3일 경제 분야, 4일 사회·교육 분야 대정부질문이 파행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당초 이날 ‘방송 4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설치운영법 개정안)도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우 의장이 유보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속도 조절에 나섰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김성모 기자 mo@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 202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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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싸움에… 방통위 13개월간 7명째 수장

    윤석열 대통령이 2일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본회의 탄핵소추안 보고 직전 김 위원장 사의를 수용하고 면직안을 재가했다. 한상혁 전 위원장 면직 후 13개월간 7명째 방통위 수장 교체다. 민주당 주도의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방통위원장이 사퇴하는 것은 지난해 12월 이동관 전 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다. 7개월 만에 방통위가 정족수(2인 이상)를 채우지 못하는 비정상적 1인 체제가 된 것. 방통위는 이상인 부위원장이 직무대행을 맡는다. 민주당이 김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다음 날 김 위원장 주도로 방통위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등 공영방송 3사의 임원 선임 계획을 의결로 맞대응한 가운데 공영방송 이사진 구성 주도권을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가 ‘탄핵소추-사퇴’의 악순환으로 반복되는 형국이다. 김 위원장은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거대 야당의 탄핵소추라는 작금의 사태로 인해 국민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방송·통신 미디어 정책이 장기간 멈춰 서는 우려스러운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과 이 부위원장의 ‘2인 체제 운영’이 직권남용이라는 점을 내세운 야당의 김 위원장 탄핵소추가 야당 주도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위원장 직무가 중단되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후임 위원장으로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방송 정책에 대한 이해가 있고, 현재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 여러 대안이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했다. 민주당은 김 위원장이 사퇴하자 다른 6개 야당과 함께 ‘방송 장악 관련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방송 장악 쿠데타를 기도한 김 위원장이 탄핵을 피하려 꼼수 사퇴했다”며 “방송 장악 쿠데타에 대해 반드시 죄를 묻겠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무리한, 근거 없는 탄핵 발의안에 대한 대응”이라고 했다. 방통위 파행 부른 ‘방문진 이사’ 갈등… “친여로 교체” “친야 사수”여권 “野, MBC 사장 사수 무리수”정부, 내달 방문진 이사 교체 계획野 “김홍일 꼼수사퇴 의도 드러나방송장악 국정조사 추진할 것”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2일 취임 6개월 만에 사퇴하면서 방통위는 지난해 5월 한상혁 전 위원장 면직 이래 잦은 수장 교체로 비정상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8, 9월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라는 정부 여당의 로드맵도 새 국면을 맞을 수 있다. 방통위가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휩쓸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여야는 비정상의 원인을 서로에게 돌리고 있다. 대통령실은 “민주당의 탄핵 남발로 국정 공백이 계속된다”고 주장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주요 현안이 ‘방통위 2인 체제’에서 의결돼 위법이 누적되고 있다”며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이다. 여권 관계자는 “본질은 MBC 사장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서로 입맛에 맞게 각각 친여 성향으로 교체하거나 친야 성향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셈법”이라고 말했다. 여야가 각자에게 유리한 방송 환경을 조성하려고 팽팽히 맞선다는 의미다.● 방문진 이사 “친여로 교체” vs “친야 유지” 방통위의 가장 큰 현안은 다음 달과 9월로 예정된 MBC 대주주인 방문진과 KBS, EBS 이사진 구성이다. 야당이 김 위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를 발의한 이튿날인 지난달 28일, 당시 김 위원장은 방문진, KBS, EBS 이사 선임 계획을 의결했다. 여권은 “야당이 식물 방통위를 만들어 MBC 이사진 구성 변경 시기를 늦추기 위해 김 위원장 탄핵 소추를 발의했다”고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이 2일 퇴임사에서 “야당의 탄핵 소추 시도는 헌법재판소의 최종적인 법적 판단을 구하려는 것보다는 오히려 저에 대한 직무 정지를 통하여 방통위 운영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정치적인 목적”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 관계자는 “김 위원장 사퇴는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계획을 예정대로 이끌어 가는 데 걸림돌을 없애려는 의도”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현행 방문진 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만큼, 그 시기에 맞춰 인적 구성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 통화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사장을 새로 임명하는 것은 방송 장악이 아니라 정당한 순리”라며 “(MBC가) 민주당을 대변한다고 생각해 기존 방문진 이사 임기를 이어가려는 것이야말로 방송 장악이자 더 큰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野 MBC 사수 지나쳐” vs “방송 장악 국조” 다음 달 12일 임기가 만료되는 방문진 이사진은 의결된 계획안에 따라 14일간 공모해 국민 의견 수렴 절차 등을 거쳐 임명된다. ‘과반 찬성’으로 의결이 이뤄지는 방통위 규정상 이상인 부위원장 혼자 안건을 의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후임 위원장을 즉각 임명해 의사정족수(2인 이상)를 채운 뒤 다음 달 내로 방문진 이사 교체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민주당의 MBC 사수는 도가 지나쳤다”며 “2인 체제가 문제라면 왜 서둘러 다른 방통위원을 추천하지 않느냐”고 반발했다. 민주당은 김 위원장의 사퇴를 두고 “기습 사퇴”라며 “방문진 이사를 친여 성향으로 꾸리려는 의도”라고 판단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선 20여 일 걸리는 국회 청문 절차 등을 거치면 7월 말쯤엔 새 방통위원장을 임명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방통위가 강행한 계획안에 따라 방문진 이사를 ‘정부 입맛’에 맞는 인선으로 꾸리려는 의도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당은 후임 위원장만 추가된 2인 방통위나 이 부위원장의 ‘1인 방통위’에서 주요 안건을 의결하는 행위 자체가 위법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김 위원장의 사퇴로 탄핵 추진이 무산되자 이를 대신해 야 6당과 함께 ‘방송 장악 관련 국정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당 최민석 대변인은 2일 “‘런동관’(이동관 전 방통위원장), ‘런종섭’(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 이은 ‘런홍일’”이라며 “국민이 심판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이날 탄핵 소추안이 송달된 대상자는 사퇴할 수 없도록 하는 ‘김홍일 방지법’(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김성모 기자 mo@donga.com안규영 기자 kyu0@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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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일 방통위원장, 탄핵안 보고 전 사의 표명…尹, 면직안 재가

    윤석열 대통령이 2일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본회의 탄핵소추안 보고 직전 김 위원장 사의를 수용하고 면직안을 재가했다. 한상혁 전 위원장 면직 후 13개월간 7번째 방통위 수장 교체다.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방통위원장이 사퇴하는 것은 지난해 12월 이동관 전 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다. 7개월 만에 방통위가 장족수(2인 이상)을 채우지 못하는 비정상적 1인 체제가 된 것. 방통위는 이상인 부위원장이 직무대행을 맡는다. 더불어민주당이 김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다음 날 김 위원장 주도로 방통위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등 공영방송 3사의 임원 선임계획을 의결로 맞대응한 가운데 공영방송 이사진 구성 주도권을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가 ‘탄핵소추-사퇴’의 악순환으로 반복되는 형국이다. 김 위원장은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거대 야당의 탄핵소추라는 작금의 사태로 인해 국민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방송·통신 미디어 정책이 장기간 멈춰서는 우려스러운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의 ‘2인 체제 운영’이 직권남용이라는 점을 내세운 야당의 김 위원장 탄핵 소추가 야당 주도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위원장 직무가 중단되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후임 위원장으로 이진숙 전 대전 MBC 사장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방송 정책에 대한 이해가 있고, 현재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 여러 대안이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했다. 민주당은 김 위원장이 사퇴하자 다른 야당 6당과 함께 ‘방송장악 관련 국정조사’를 추진하겠고 밝혔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방송 장악 쿠데타를 기도한 김 위원장이 탄핵을 피하려 꼼수 사퇴했다”며 “방송장악 쿠데타에 대해 반드시 죄를 묻겠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무리한, 근거 없는 탄핵 발의안에 대한 아마 대응”이라고 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김성모 기자 mo@donga.com안규영 기자 kyu0@donga.com}

    • 202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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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野 “김홍일 수사해야” 與 “野 방송장악 음모”

    2일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안 보고를 예고한 더불어민주당이 김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강제수사까지 언급하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1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방통위가 지난달 28일 공영방송 3사 이사진 선임 계획을 의결한 것에 대해 “KBS에 이어 MBC와 EBS까지 ‘입틀막’을 해서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시키려는 반민주적 폭거”라고 비판했다. 이어 “공수처는 국가 기관인 방통위를 위법적으로 운영해온 (김 위원장과 이 부위원장) 두 사람에 대한 강제 수사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김 위원장이 탄핵안 표결 전 사퇴하더라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탄핵 사건 조사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해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최고위원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의 ‘꼼수 사퇴’가 거론되고 있다. ‘도주 사퇴’와 상관없이 탄핵 사건에 대한 조사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법 제130조 1항에 따르면 국회 본회의에선 표결을 통해 부의된 탄핵안을 법사위에 회부, 조사하게 할 수 있다. 여당은 “야당이 방송을 장악하려는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점식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민주당의 김 위원장 탄핵 추진에 대해 “방통위를 마비시켜 MBC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교체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것”이라며 “습관성 탄핵병에 빠진 민주당은 입법탄핵을 중단하라. 거센 민심의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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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野 “尹, 극우 음모론 의지” 與 “김진표 왜곡 사과를”… 회고록 공방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가 특정 세력에 의해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 내용을 둘러싸고 여야가 28일 정면 충돌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정 운영을 극우 유튜버 음모론에 의지하나”라며 윤 대통령이 직접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김 전 의장을 향해 “스스로 본인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 관심을 끌려는 의도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며 “왜곡된 발언을 취소하고 사과하라”고 반발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김 전 의장이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 대통령과의 독대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며 “이 자리 대화를 꺼내 드는 건 국가 원로로서 할 행동이 아니다. 민주당스러운 행동이다”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이날 “회고록 내용이 사실이라면 지난 1년 8개월 동안 민주당은 왜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느냐”고 비판했다. 박준태 원내대변인도 “민주당 출신으로, 국회의장을 지낸 분이 그런 말씀을 하니 너무 실망스럽다”고 했다.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로 출마한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실이 (대통령이) 그런 취지의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낸 걸 봤다”며 “그 말을 신뢰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나눈 이야기를 아직 대통령 임기 중에 이렇게 밝히는 것이 옳은가”라며 “당연히 김 전 의장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이 (해석의 여지가 없도록) 분명하게 선을 그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총공세에 나섰다. 박찬대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참사 이후 윤 대통령이 보인 비정상적인 행보를 보면 김 전 의장의 회고록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며 “대통령실의 해명만 듣고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김 전 의장이 만났을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박홍근 의원도 페이스북에 “이태원 참사에 관한 대통령의 매우 잘못된 인식을 드러낸 대화도 저는 (당시 김 전 의장으로부터) 생생히 전해 들어서 지금도 메모장에 그대로 남아 있다”며 “2022년 12월 5일 국가조찬기도회에 두 분이 함께 참석한 뒤 오전 9시 15분경부터 30∼35분가량 따로 만나서 나눴다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이태원참사특별대책위원회도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장 회고록의 무게를 생각하면 그런 얘기를 듣지도 않고 회고록에 쓸 리는 만무하다”며 “신속히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김성모 기자 mo@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

    • 202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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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대표 선호도 한동훈 38% - 나경원 15% - 원희룡 15% - 윤상현 4%… 與지지층선 韓 55%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선호도 조사에서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심과 민심에서 다른 후보들을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28일 나왔다. 국민의힘 차기 대표는 당원 투표 80%, 일반 여론조사 20% 비율로 반영해 선출하는데 28일 한국갤럽이 이 기준을 토대로 국민의힘 지지자와 무당층 518명(25∼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대상, 표본오차 ±4.3%포인트)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38%가 한 전 위원장을 당대표로 지지했다. 이어 나경원 의원과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각각 15%, 윤상현 의원이 4%를 얻었다. 한국갤럽은 “국민의힘 지지자와 무당층 기준으로 보면 한동훈 대 비(非)한동훈 구도는 38% 대 34%로 막상막하”라고 했다. 한국갤럽이 같은 기간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에게 물은 결과 국민의힘 지지자(308명, 표본오차 ±5.6%포인트)는 55%가 한 전 위원장을 당대표로 꼽았다. 이어 원 전 장관 19%, 나 의원 14%, 윤 의원 3% 순이었다. 응답자 1002명(표본오차 ±3.1%포인트) 전체를 대상으로 한 선호도 조사에선 한 전 위원장이 28%였고, 나 의원 19%, 원 전 장관 13%, 윤 의원 7% 순이었다. 이번 조사는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1.8%, 신뢰수준 9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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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힘 지지층 55% 한동훈 선호… 韓 대 非韓 구도론 막상막하”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선호도 조사에서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심과 민심에서 다른 후보들을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28일 나왔다. 국민의힘 차기 대표는 당원 투표 80%, 일반 여론조사 20% 비율로 반영해 선출하는데 28일 한국갤럽이 이 기준을 토대로 국민의힘 지지자와 무당층 518명(이달 25~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대상, 표본오차 ±4.3%포인트)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38%가 한 전 위원장을 당 대표로 지지했다. 이어 나경원 의원과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각각 15%, 윤상현 의원이 4%를 얻었다. 한국갤럽은 “국민의힘 지지자와 무당층 기준으로 보면 한동훈 대 비(非)한동훈 구도는 38%대 34%로 막상막하”라고 했다.한국갤럽이 같은 기간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에게 물은 결과 국민의힘 지지자(308명, 표본오차 ±5.6%포인트)는 55%가 한 전 위원장을 당 대표로 꼽았다. 이어 원 전 장관 19%, 나 의원 14%, 윤 의원 3% 순이었다. 응답자 1002명(표본오차 ±3.1%포인트) 전체를 대상으로 한 선호도 조사에선 한 전 위원장이 28%였고, 나 의원 19%, 원 의원 13%, 윤 의원 7% 순이었다.이번 조사는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1.8%, 신뢰수준 9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4-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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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모인들의 모(毛)자란 꿈[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탈모 동지’의 배신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의 스펜서 맥노턴 기자(33)는 튀르키예로 모발 이식을 받으러 다녀온 체험기를 지난달 12일(현지시간) 공개했다. 기사는 국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탈모’를 해결하는 완벽한 치료제가 아직 없고, 모발 이식에 관한 관심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2022년 8월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피트니스 센터 수영장. 맥노턴은 절친 베넷이 모자를 벗었을 때 행복과 질투, 충격, 두려움 등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휑했던 베넷의 머리가 풍성해졌기 때문이다. 베넷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모발 이식을 받고 왔다고 했다. 맥노턴은 평소 본인보다 나이가 3살 많고 탈모가 더 진행된 베넷을 ‘탈모 멘토’로 여기고 있었다. 맥노턴은 24살 때 친구가 찍은 동영상에서 자기 머리에 동전만 한 구멍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8년간 대표적인 치료 방법을 다 써봤다.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한 발모제를 두피에 바르고 치료제도 복용했지만, 탈모는 계속 진행됐다. 줄어든 머리카락만큼 자존감은 떨어졌다. 밖에서는 탈모 부위를 보기 싫어서 보안 카메라나 거울을 피해 다녔다. 부모와 탈모에 관해 얘기할 때는 울음이 터졌다. 우울함이 극심해지면 (휑한 이마를 감추려) 뒷걸음질로 방에서 걸어 나오기도 했다. 결국 그는 탈모에 대한 집요한 생각을 떨쳐내려고 항우울제를 복용했다. 맥노턴은 “내가 매력적이지 않고, 더 이상 남성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며 “너무 빨리 늙어가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그는 2023년의 대부분을 베넷을 떠올리며 보냈다. 10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 머리를 심을지, 얼마 남지 않은 머리를 밀어 버릴지 스스로 물었다. 베넷이 성공 케이스로 보였지만 외국에서 수술받아야 한다는 점과 수술 자체의 안전성 등이 마음에 걸렸다. 맥노턴은 직업 정신을 살려 튀르키예 모발 이식 수술을 자세히 살펴봤다. 친구의 주치의였던 서칸 아이진 박사는 평이 좋아 보였다. 모발 이식 수술과 관련해 상을 받은 적이 있었고, 권위 있는 출판물에서 전문가로 인용되기도 했다. 미국의 저명한 대학 의료진들이 포함된 국제 피부과 학회의 회원이기도 했다. 그는 취재하다 보니 이스탄불에서 머리를 심고 온 사람이 주변에 꽤 있었다는 점도 알게 됐다. 집 근처 헤어샵의 미용사와 헬스장 직원, 친구 2명 등 튀르키예에 다녀온 뉴요커가 최소 4명은 더 있었다. 이들은 모두 훌륭한 경험이었다며 후기를 공유했다. 맥노턴은 튀르키예 이스탄불행 항공권을 구매했다. 탈모인 성지 ‘헤어스탄불(헤어+이스탄불)’지난해 12월 터키항공 비행기에 탄 맥노턴은 양옆 탑승객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터키항공을 ‘모발’과 ‘에어라인’을 합쳐 ‘헤어라인’이라고 부름) 왼쪽에 앉은 뉴저지주 출신의 21살 청년과 오른쪽에 탄 청년의 사촌도 모발 이식을 받으러 간다고 해서다.전 세계 탈모인들이 모발 이식을 하러 튀르키예까지 가는 가장 큰 이유는 그만큼 저렴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모발 이식 비용은 대략 1만 달러(약 1400만 원)에서 2만 달러(2800만 원) 사이다. 맥노턴은 아이진 박사가 있는 병원에 3500달러(약 480만 원)를 선불로 냈다. 상담과 수술, 사후 관리, 숙박비(4성급 호텔에서 3박), 현지 교통비 등을 포함한 금액이다. 항공료 2000달러(약 280만 원)를 따로 내야 하지만 그래도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튀르키예는 다른 나라보다 물가와 임금이 낮은데다 정부가 의료 관광 산업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편이다. 튀르키예 정부는 의료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병원에 보조금을 주고 세금도 깎아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발 이식 비용이 다른 나라보다 싸다. 그 덕분에 튀르키예 의료 관광은 2019년 이후 50% 늘었다. 2022년에만 외국인 100만여 명이 모발이식을 하려고 튀르키예를 찾았다.맥노턴은 아이진 박사가 있는 클리닉에서 여러 명의 탈모 동료들과 마주했다. 아이진은 의사 20명, 모발 이식 기술자 80명, 마취과 전문의 8명과 하루 20~22건의 모발 이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이진은 3차원(3D) 촬영으로 맥노턴의 건강한 모발을 분류했다. 맥노턴은 검사 결과 사진을 보면서 손상된 모낭과 탈모 상태에 대해 들었다.모발 이식 25년 경력의 아이진은 색연필로 맥노턴의 머리에 모발을 옮겨 심을 곳을 모내기하듯 구획을 나눠 표시했다. 아이진은 머리카락이 아직 나고 있는 뒤통수에서 3400개의 모낭을, 수염에서 600개를 채취해 머리에 이식할 것을 제안했다. 이식한 모낭에선 2~3가닥의 새로운 머리카락이 나온다고 했다.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8000개가 넘는 새로운 모발이 자라난다는 뜻이다. 아이진은 맥노턴에게 거울을 들이대며 “마음에 들 것”이라고 말했다. 머리에 새로운 헤어라인이 그려져 있었다. 15분의 상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모(毛)자란 기자의 모발 이식 후기 수술대에 누운 맥노턴은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을 맞고 마사지를 받는 자세로 엎드렸다. 아이진과 마취 의사 한 명, 기술자 4명이 수술실에 들어왔다. 뒤통수에 마취하고 약 3시간 동안 모낭 채취 작업이 시작됐다. 기술자 중 한 명은 모발 이식 과정을 뜨개질에 비유했다. 손재주와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후 2시에 시작한 모발 이식은 8시간이 지난 10시쯤 끝났다. 맥노턴은 카페테리아로 이동해 직원들이 준 닭가슴살과 주스를 먹었다. 그는 막 수술을 끝낸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온 손님과 이야길 나눴다. 맥노턴은 “어지러웠지만,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웠다. 성취감을 느꼈다. 우리는 그 빌어먹을 일을 해냈다”며 감동했다. 모발 이식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식받은 모발을 유지하려고 탈모약도 함께 먹어야 했다. 한 달간 써야 할 샴푸와 (두피에 바르는) 로션 사용법도 들었다. 2달 동안에는 낮에 외출 시 모자를 써야 한다고 했다.수술 4개월이 지나자 새 머리가 맥노턴 이마의 일부를 채웠다. 반년이 지나면 수술 효과가 더 나타난다고 했다. 맥노턴은 “이제는 친구와 가족과 사진을 찍을 때 포즈를 취하고 싶다. 회의에서도 자신감이 생겼다”고 전했다.맥노턴은 ‘헤어스탄불’을 다시 찾아야 할 수도 있다. 아이진은 처음 머리를 완전히 메우려면 2번의 시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절친 베넷은 현재 두 번째 시술을 받으러 다녀왔고 결과에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맥노턴은 “이번에는 이 모든 여정에 영감을 준 베넷이 수영장에서 제 새로운 머리를 보고 놀라 쓰러질 차례”라고 전했다. 모발 이식의 아버지 ‘노만 오렌트라이히’ 모발 이식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 1897년 튀르키예의 한 의사가 머리가 빠진 부위에 건강한 두피를 이식한 사례를 시작으로 꼽는다. 공여부(모발 제공하는 부위)의 모발이 수여부(모발 이식받는 부위)에서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한 사례다. 실질적으로 모발 이식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은 노만 오렌트라이히(1922~2019) 박사였다. 뉴욕시립대에서 생물학과 화학을 전공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의무대에 징집되면서 의학에 발을 들였다. 전쟁이 끝나고 뉴욕대 의과대에 다시 입학했고, 졸업 이후에는 뉴욕대 의료센터 피부과에서 일하며 대학원 과정도 마쳤다.오렌트라이히는 1953년 뉴욕대 의료센터의 모발 클리닉 책임자를 맡게 됐는데, 당시에는 모발 성장과 탈모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기였다. 마땅한 치료법도 없었다. 그는 모발 성장과 탈모에 대해 알아보려고 두피 일부를 떼어내 보기도 하고, 뒤통수에서 모발을 떼어내 머리의 다른 부위에 심어보기도 했다. 오렌트라이히는 이 과정에서 이식한 모발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계속 자라나는 것을 발견했다. 또, 다른 부위의 털을 머리에 이식해도 성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도 알게 됐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오렌트라이히에게 유레카의 순간이었다”며 “그는 모발 이식을 본격적으로 치료법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그의 아이디어가 너무 급진적이어서 연구는 몇 년 지난 1959년 뉴욕과학아카데미 연보에나 실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사실, ‘모발 이식의 아버지’인 오렌트라이히는 피부 미용 전문가로 더 알려져 있다.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 5번가에 있는 그의 클리닉에 유명인들이 몰렸다. 뉴욕매거진은 1968년 “오렌트라이히가 간호사에게 유명 배우인 캐리 그랜트를 계속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기자가 우연히 들었다”고 전했다. 미국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 역시 그의 고객이었다. 패션 매거진 코스모폴리탄의 전 편집장 헬렌 걸리 브라운은 “한 달에 한 번씩 주사를 맞으러 오렌트라이히를 찾는데 항상 건물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사람들로 가득했다”고 전했다.오렌트라이히는 1967년 미 패션지 보그 8월호에 피부 관리법을 주제로 한 글을 올렸는데, 이 글을 레너드 앨런 로더가 유심히 봤다. 레너드 로더의 어머니는 화장품 회사를 창업한 에스티 로더다. (보그 글은 피부 관리는 클렌징-각질 제거-보습의 3단계를 거치는 게 좋다는 내용. ‘피부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고 여겨지던 시절이라 반응이 뜨거웠다) 로더는 오렌트라이히를 스카우트해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게 했다. 오렌트라이히는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스킨케어 라인 ‘크리니크(Clinique)’를 선보였다. 크리니크는 1969년 영국을 시작으로 80개국 이상에서 매장을 열었고, 에스티로더 그룹의 핵심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NYT는 “오렌트라이히는 피부과, 성형외과 의사들이 기업가처럼 자신의 이름으로 스킨케어 브랜드를 개발하고 판매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고 평했다. 크리니크 직원들이 병원 의료진처럼 흰 가운을 입는 이유가 있었다. 털을 자라나게 하는 약물들 사실, 많은 탈모인이 모발 이식보다는 치료제를 먼저 떠올린다. 머리를 심는 것은 너무 큰 결심이 필요하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빠져버린 머리카락을 완벽하게 다시 나게 하는 약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FDA는 1988년 ‘미녹시딜(제품명 로게인폼)’ 성분을 탈모 치료제로 처음 공식 인증했다. 미녹시딜은 원래 1950년대에 미국 제약사 화이자가 궤양을 치료하려고 만든 약물이다. 그런데, 궤양에는 효과가 없고 혈관을 확장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화이자는 고혈압 치료제로 미녹시딜을 선보였는데, 환자들 사이에서 털이 자라는 부작용이 발견됐다. 혈관이 확장돼 혈류량이 증가하면서 모근에 영양이 공급되는 효과가 있었던 것. 모낭 크기가 커지고, 모발이 빠지고 다시 자라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줄었다. 제약사는 FDA에서 미녹시딜을 바르는 로션 형태의 탈모약으로 승인받았는데, 실제로는 알약으로도 많이 처방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호주 멜버른대의 로드니 싱클레어 박사가 한 여성 탈모 환자를 진료하다가 바르는 미녹시딜을 처방했다. 그런데, 환자 피부에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났다. 싱클레어 박사는 고민 끝에 미녹시딜 알약을 4등분으로 잘라줬다. 그 결과, 머리카락은 자랐지만, 혈압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싱클레어 박사는 1만 명 이상의 탈모 환자를 미녹시딜 알약으로 치료해 효과를 봤다고 밝혔다.다만, FDA는 미녹시딜 탈모약을 저용량의 로션 성분으로만 승인했기 때문에 알약 형태는 아직 탈모 치료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 제약사들은 20년 가까이 미녹시딜 알약의 효과에 대한 임상시험을 하지 않았다. 미녹시딜을 하루 먹는 데 드는 비용이 1센트(약 14원)에 불과해 돈이 되지 않기 때문. NYT는 “몇 푼 안 되는 오래된 약이 새 머리카락을 자라게 한다”고 보도했다. 탈모 전문가들은 미녹시딜이 탈모 환자의 30~40%에게만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게다가 약을 계속 먹어야 효과가 있다. 복용을 중단하면 다시 탈모가 진행할 확률이 높다. 미녹시딜에 이어 두 번째 FDA 승인을 받은 ‘피나스테리드(제품명 프로페시아)’는 미녹시딜보다 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탈모치료제다. 피나스테리드 역시 처음에는 다른 치료제로 등장했다. 글로벌 제약사 머크는 1992년 FDA에서 피나스테리드를 고령 남성에게 흔히 발생하는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제품명 프로스카)로 승인받았다. 머크는 프로스카가 연 10억 달러(약 1조4000억 원) 수익을 안겨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기대만큼 이익을 거두진 못했다. 대신, 미녹시딜처럼 이 성분이 탈모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FDA는 1997년 피나스테리드 1mg이 담긴 머크의 신약 프로페시아를 탈모 치료제로 승인했다”며 “의학이 태동한 이래 남성들이 간절히 원했던 치료제가 드디어 등장한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부작용이 없는 약은 효과가 없는 약?세계적인 국제학술지인 미국의학협회 피부과학저널(JAMA Dermatology)은 탈모 치료제들의 효과를 비교한 연구를 2022년 발표했다. JAMA에 따르면 탈모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하루 0.5mg의 두타스테리드를 복용하는 것이다. 두타스테리드는 피나스테리드와 같은 원리의 약물로 FDA에서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로 허가받았다.피나스테리드(5mg 복용)가 2위를, 경구용 미녹시딜(5mg)이 3위를 차지했다. JAMA는 “피나스테리드는 복용 이후 48주째에, 미녹시딜은 8주 뒤에 모발이 가장 많이 증가했다”고 했다. 웨이크포레스트 의료센터의 에이미 맥 마이클 박사는 “가장 좋은 약은 부작용이 없는 약”이라며 “시간을 되돌리기보다 현재 모발을 유지하는 게 훨씬 낫다”고 설명했다.피나스테리드와 두타스테리드는 효과는 뛰어나지만, 성욕 감소, 발기부전 같은 성기능 장애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혈관을 확장하는 미녹시딜과 다르게 남성 호르몬을 억제하는 원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대머리를 고치기 위해 망가지는 것을 감내할 건가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해 4월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수천 명의 남성들이 피나스테리드로 인해 치명적인 부작용을 겪고 있다고 소개했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는 미용사의 이야기를 들은 20대 대학원생 벤은 머리카락에 대한 집착이 갈수록 심해졌다. 잠들기 직전까지 탈모에 대해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는 베개에 흐트러진 머리카락들을 헤아렸다. 벤은 미녹시딜을 사용해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는 탈모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피나스테리드 약을 먹을지 고민했다. 비용 때문이 아니었다. 2013년 특허가 만료된 이후 저렴한 제네릭(복제약) 치료제들이 많았다. 그가 고민한 이유는 우울증, 성 기능 장애 같은 부작용 때문이다. 일부 남성들은 복용을 중단한 이후에도 부작용이 지속된다고 믿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를 ‘피나스테리드 복용 후 증후군(PFS)’이라 불렀다.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벤은 집에 머물면서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봤다. 한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이 과거에 다정다감한 성격의 지인에 대해 했던 말도 떠올랐다. “대머리잖아.” 벤은 정신과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피나스테리드를 복용해보라고 조언했다. 2021년 봄 벤은 피나스테리드를 먹기 시작했는데, 친구들과 여자친구가 벤의 마음을 되돌렸다. 그의 여자친구는 “머리가 좀 빠지면 어때”라고 말했다. 벤은 남은 처방전을 버렸다. 그런데 며칠 후 폭풍우가 몰아쳤다. 낮은 확률이지만 무서운 부작용어느 날 쇼핑센터 식당을 지나다 벤의 심장이 요동쳤다. 주변에서 비명 같은 소음이 들렸고 정신이 혼미했다. 공황 발작 비슷한 증상은 몇 시간 지나고 사라졌다. 벤은 온라인에서 피나스테리드를 복용하고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남성들을 발견했다. 첫 발작 이후 벤의 증상은 더 심해졌다. 근육이 빠르게 사라졌고, 성욕도 줄었다. 벤은 몇 개월 동안 하루 4~5번의 공황 발작을 겪었다. 진정제를 먹어야 하루 3시간이라도 잘 수 있었다. 벤은 자살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호르몬 처방을 거부한 이후에는 주차장 꼭대기까지 차를 몰고 가 차에서 내려 가장자리로 걸어가기도 했다. 벤은 투신하지 않았다. 그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증상을 털어놓고 호르몬 수치를 되돌릴 수 있는 병원을 함께 찾아다녔다. 벤은 일주일에 세 번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회복하고 있다. 기분의 기복이 아직 크지만 발작 증세는 현저히 줄었다.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머크는 피나스테리드 1mg 복용 임상시험에서 약 3.8%의 환자가 발기 부전 등의 성적 부작용을 경험(위약 그룹은 2.1%)했다. 또, 환자가 약물 복용을 중단하면 부작용이 해결된다고 밝혔다. 머크는 피나스테라이드가 영구적인 성적 또는 심리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이코노미스트는 “머크는 2009년에 자살 충동, 우울증 등 200건의 부작용 사례를 보고받았다”며 “FDA는 이후 843건의 자살 충동과 200건의 자살 보고를 추가로 접수했다”고 전했다. 머크 측은 자사 약물과 극단적인 사건 사이의 인과 관계를 입증할 충분한 데이터가 없다고 주장했다. FDA는 2010년 머크에 우울증 위험 경고를, 2012년 지속적인 성기능 장애 위험에 대한 경고를 약품 포장에 추가하도록 요청했다. 2022년에는 자살 충동도 위험 목록에 넣게 했다.그 많던 머리카락은 다 어디로 갔을까평균적으로 한 사람의 머리에는 약 10만 개의 머리카락이 있다. 보통 하루 50~60개 머리카락이 빠지고 채워지며 순환한다. 머리카락이 5년 정도 생존하다가 빠지면 탈모라고 하지 않는다. 1~2년 정도 유지하다가 빠지면 탈모라고 볼 수 있다. 하루에 100여 개 머리카락이 빠지는 건 심각한 일은 아니다.우리는 일상적으로 매달 머리를 자른다. 삶의 일부일 뿐, 머리카락의 존재에 대해 (미용적인 것을 제외하고)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머리카락은 자체적인 규칙과 분자, 염증 메커니즘을 가진 엄청나게 복잡한 기관이다. 모발은 세포 분열로 생명을 유지한다. 인체에서는 유전 정보가 담긴 염색체가 복제하는데, 모발 세포는 15~25회 분열한다. 한 번 빠진 머리카락이 최대 25번가량 다시 자란다는 뜻이다. 피부과 의사인 아라시 모스타기미 하버드 의과대 부교수는 “두피 모낭은 기본적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신체 기관”이라며 “모낭은 자체 줄기세포를 가지고 있어 스스로 재생한다”고 말했다. 탈모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 있다. 생명과학의 문제다.탈모는 비만 못지않은 인류의 난제이기도 하다. 특히, 남성들에게 그렇다. 남성의 약 90%는 평생 어떤 형태로든 탈모를 겪게 된다고 한다. 50대가 되면 남성의 절반이 남성형 탈모(앞머리나 정수리 모발이 빠지는)를 경험한다. FDA에 따르면 3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심각한 원형 탈모증을 앓고 있다.다행히, 탈모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시장이 커지면서 제약사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탈모를 미용상의 문제로 치부했던 과거와 다르게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불안과 우울증을 유발하는 관리해야 할 질환으로 인식하게 된 점도 긍정적이다.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2년 북미 탈모 치료제 시장은 19억4800만 달러(약 2조7000억 원) 수준이었다. 스태티스타는 2030년에는 탈모약 시장이 30억8100만 달러(약 4조300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모발 이식이나 탈모 관련 미용용품까지 더하면 실제 탈모 관련 시장은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의사들은 탈모가 시작하면 빠르게 병원을 방문하라고 조언한다. 제대로 된 상담을 통해 약 등을 적절히 처방받아 진행을 막으라는 것이다. 부작용 없는 약은 효과가 없는 약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를 우려해 약을 멀리하는 남성들이 아직 많다. 최근 전 세계를 뒤흔든 비만약 ‘위고비’처럼 부작용이 적은 약이 나올 순 없을까. 전문가는 그동안 모발 관련 연구가 많이 진행된 만큼 (위고비처럼) 갑작스럽게 효과적인 치료약이 등장해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모스타기미 부교수는 “탈모 문제가 난치병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미녹시딜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광범위한 치료법이 나올 수 있다”며 “하룻밤 사이 성공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40년이 걸린 일”이라고 말했다. “이 약 사려고 ‘투잡’ 뛰고 있습니다”[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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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전기차가 테슬라를 대신할까요[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풉, 비야디(BYD)요?” “중국 전기차 비야디(BYD)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미 블룸버그TV 기자)“하하하하하… 그 회사 차 본 적은 있으세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2011년 11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미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를 비웃었다. 기자가 “왜 자꾸 웃느냐”고 되물었을 정도.그랬던 머스크는 지금은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그는 올해 1월 실적발표에서 “(중국에) 무역장벽을 세우지 않으면 전 세계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정부에 관세를 높여달라고 대놓고 요청한 것이다. 전 세계 전기차(EV) 리더십을 이끌어 온 테슬라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4분기 테슬라는 처음으로 순수 전기차 판매에서 비야디에 추월당했다. 테슬라는 비야디보다 4만1900여 대 적은 48만4500여 대의 순수 전기차를 판매했다. 올해 1분기 테슬라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8.5% 감소한 38만6800여 대를 판매했다고 지난달 2일(현지 시간) 밝혔다. 비야디(순수 전기차 약 29만 대)는 다시 제쳤지만, 시장 예상치(45만7000여 대)에 크게 못 미쳐 뉴욕증시에서 주가가 5% 가까이 빠졌다. 테슬라 전기차 인도 규모가 전년보다 감소한 것은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2분기 이후 처음이다.실적이 부진한 테슬라는 직원 중 10%를 줄이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머스크는 사내 이메일을 통해 “회사가 다음 성장 단계를 준비하려면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향상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직을 엄격하게 재검토했고, 직원을 10%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테슬라 직원은 지난해 말 기준 14만473명 수준이다. 1만4000여 명이 감원 대상이다. 테슬라는 지난해 2월에도 전체 직원의 4%를 정리해고했다.일부 핵심 임원들도 회사를 떠났다. 2010년 테슬라에 합류해 ‘차기 CEO’로 꼽혀온 재커리 커크혼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지난해 8월 사임했다. 드류 바글리노, 로한 파텔 부사장도 각각 18년, 8년 만에 최근 테슬라를 떠났다.테슬라 주가는 올해 초 250달러 수준에서 4월 말 130달러대까지 추락했다. 블룸버그는 “올해 테슬라 주가는 (여러 번 비행기 사고를 낸) 보잉보다 더 떨어졌다. S&P500 지수에서 최악의 실적을 기록 중”이라며 “테슬라 차량의 문이 터지진 않았지만(보잉의 비행기 문짝 사고를 비유), 바퀴에 흔들림이 있다”고 지적했다. 테슬라가 부진한 이유전반적으로 전기차 시장의 열기가 식어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순수 전기차 및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판매량은 전년보다 두 배 이상으로 뛰었고 2022년에도 62%나 늘었지만, 지난해에는 3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올해는 21%까지 둔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판매량이 여전히 증가하고는 있지만,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는 모양새다.지난해 4분기 미국 신차 판매량의 8%가량이 전기차였다. 하지만, 성장 추세는 꺾인 듯하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에 따르면 올해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11%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60%), 2023년(47%)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지는 수치다. 중국도 비슷한 분위기다. 중국 승용차협회(PCA)에 따르면 중국 전기차 출하량은 2022년과 2023년 각각 96%, 36% 증가했었다. PCA는 올해 중국 전기차 출하량이 전년보다 25%가량 많은 1100만 대 수준으로 예측했다. 첨단 기술 국가들의 전기차 확산세는 더디기만 하다. 지난해 일본에서 판매된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은 1.8%에 불과했다. 한국 역시 6.2%로 아직 전기차 수요가 많지 않은 편이다.이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실리콘밸리 기술 컨설턴트인 제프리 무어 박사의 ‘캐즘이론(Chasm Theory)’에 따르면 신기술이 적용된 제품은 처음 관심이 몰리다가 어느 순간 깊은 계곡을 지나는 것처럼 정체기를 거치고 그다음 급속히 대중화된다. 현재 전기차 시장이 계곡을 지나는 시점에 있다는 분석이다. 얼리어답터 중에 전기차 살 사람은 다 샀다는 의미다. 충전 같은 인프라 문제나 화재 우려 등이 사라지면 전기차가 급속도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그러나 당장의 수요는 예전만 못하지만, 경쟁은 훨씬 치열해졌다. 미 자산운용사 번스타인에 따르면 현재 출시된 전기차 모델만 500여 개에 달한다. 지난해 220여 개가 나왔고, 올해도 약 180개의 신제품이 등장할 것으로 번스타인은 예상했다. 테슬라가 특정 모델에만 의존한다는 지적도 있다. 테슬라는 5개의 모델(사이버트럭까지 포함)만 제조하는데, ‘모델3’와 ‘모델y’의 판매 비중이 90%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력 모델들이 식상해지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다. 모델3는 2017년에, 모델y는 2020년에 출시됐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자동차 업계에선 디자인을 2~4년마다 페이스리프트하고, 4~7년마다 풀체인지하는 것이 경험칙”이라고 꼬집었다. 올해 1분기 미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 점유율은 약 51%로 전년 동기(62%)보다 하락했다.‘테슬라 킬러’의 등장낮은 가격을 앞세운 중국 전기차들과의 경쟁이 가장 큰 부담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전기차의 약 절반이 중국 브랜드다. 가격 경쟁력에서 차이가 크다. 중국 전기차 브랜드 비야디의 가장 저렴한 모델(시걸)은 1만 달러(약 1370만 원) 수준. 테슬라에서 가장 저렴한 모델y(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림)의 미국 가격은 세금 공제까지 하면 3만5000달러(약 4800만 원)다. UBS는 “평균적으로 중국 전기차는 북미, 유럽 브랜드에 비해 25% 이상 가격에서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테슬라가 지난해 전기차 가격을 인하할 때마다 판매가 반짝 늘었지만 마진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중국 전기차가 대체로 저렴한 배경에는 배터리가 있다. 전기차에서 가장 비싼 부품인 배터리에는 리튬, 코발트, 망간, 희토류 같은 소재가 들어가는데 중국 정부가 재료의 채굴과 가공 등 공급망을 통제하고 있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셀의 80% 이상이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있고, 중국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소재를 공급받고 있다.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빠르게 테슬라를 추격한 데에는 정부의 지원이 컸다. 전기차 대중화를 전략적으로 추진한 중국 정부는 보조금으로 자국 브랜드들을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중국 정부는 2012년부터 10년 동안 전기차 가격을 최대 6만 위안(약 1130만 원)까지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원해줬다. 전기차 제조업체에도 보조금을 직접 지급했다. 이 덕분에 중국에는 전기차 업체가 500개가 넘기도 했다. (지난해 100여 곳으로 줄었음) 중국 전기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공급과 수요를 모두 챙긴 것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중국이 2009년부터 2022년까지 전기차 등에 보조금으로 약 1730억 달러(약 239조 원)를 지출했다고 분석했다. 인프라도 적극적으로 구축했다. 중국에는 현재 630만 개 이상의 전기차 충전기가 설치돼 있다.중국의 비야디 역시 중국 정부로부터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고 성장했다. 독일 킬세계경제연구소의 지난달 보고서에 따르면 비야디는 2018∼2022년 중국 정부로부터 보조금 약 35억 달러(약 4조8000억 원)를 받았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중국이 테슬라 킬러, 비야디를 만든 방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2년간 비야디는 100만 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며 “비슷한 사례로 미국에서 1년 동안 판매 100만 대를 달성한 자동차 제조사로 GM이 있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으로 4년 동안 중단했던 자동차 판매를 재개한 직후였다”고 전했다. 버핏 “세계 최대 전기차 회사가 될 것” 비야디는 원래 배터리 회사였다. 1993년 중국 베이징 유색금속연구원은 선전에 배터리 회사를 설립했는데, 중난대(배터리 화학 연구로 유명)에서 야금물리화학을 전공한 왕촨푸(王傳福) 연구원을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당시 그는 배터리에 필수적인 희토류를 연구하고 있었다.그런데, 회사에서 배터리 산업의 비전을 본 왕촨푸는 얼마 안 돼 사직서를 던졌다. 직접 배터리 회사를 차리기로 한 것이다. 그는 부동산 사업을 하던 사촌 형에게서 돈을 빌려 1995년 창업했다. 회사명은 사무실이 있던 중국 선전시 야디촌에서 따왔다. 알파벳 목록의 앞에 들기 위해(판촉을 고려해) 별 뜻 없는 ‘비(bi)’를 ‘야디’ 앞에 붙였다. (비야디의 회사 슬로건인 ‘Build Your Dreams’는 나중에 꿰맞춘 것이다) 비야디는 휴대전화와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주로 제조했다. 왕촨푸는 일주일에 70시간을 일하며 니켈 카드뮴 전지부터 리튬 배터리 분야까지 사업을 확장하려고 애썼다. 그 덕분에 모토로라와 일본 소니, 산요전기 등에 배터리를 납품할 수 있었다. 비야디는 2003년 시안친촨자동차를 인수하면서 갑자기 자동차 산업 진출을 선언했다. 배터리를 만들던 회사가 갑자기 자동차라니. 투자자들이 크게 반대했고 주가도 급락했다. 내연기관 자동차 제조에 경험이 전혀 없었던 비야디는 예상대로 사업 운영에 애를 먹었다. 결함이 있는 자동차들이 계속 나타나면서 “고물차를 만든다”는 평을 받았다. 2007년 비야디는 광저우 모터쇼에서 신형 자동차를 선보였는데, 고르지 않은 도색과 제대로 맞지 않는 문짝으로 망신당하기도 했다. (비야디 차를 비웃은 사람은 머스크가 처음은 아니었다) 배터리 전문가였던 왕촨푸는 2008년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신차 ‘F3DM’을 선보이며 반전을 꾀했다. 왕촨푸와 비야디를 눈여겨본 인물이 있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절친인 찰리 멍거 버크셔헤서웨이 부회장(1924~2023)이다. 버크셔헤서웨이는 2008년 멍거의 주도로 당시 잘 알려지지 않던 비야디에 50억 달러(약 6조7500억 원)를 투자했다. 멍거는 “왕촨푸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과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전설적인 경영자 잭 웰치를 섞어놓은 것 같은 사람”이라며 워런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을 설득했다. 사실, 멍거는 처음 ”파산한 자동차 회사를 왜 사려고 하느냐. 무덤으로 향하는 길”이라며 비야디의 시안친촨자동차 인수를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왕촨푸의 추진력과 최초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출시 등을 보면서 투자를 주도했다. 버크셔헤서웨이가 비야디에 투자한 뒤, 버핏은 “전기차 시대에서 BYD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멍거는 2022년 한 팟캐스트에서 “비야디는 그야말로 기적”이라며 회사의 성장을 기뻐했다. 수직 통합이 가장 잘 돼 있는 회사테슬라가 고가 세단을 내놓을 때 비야디는 ‘통근 버스’와 중저가 승용차 시장부터 공략했다. (F3DM이 해외에서 관심을 못 받은 것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2009년부터 전기버스 양산을 시작한 비야디는 2010년 후난성에서 1000대를 수주받았다. 비야디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독일 프랑크푸르트,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 해외에도 전기버스를 수출했다. NYT는 “회사원들을 전기버스에 태우는 것은 전기차에 대한 브랜드 인지도나 수용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전기차 충전기, 전기 지게차, 에너지 저장 장치 등 판매도 다각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디자인에서도 혁신을 꾀했다. 알파로메오, 아우디, 세아트 등에서 책임자로 일했던 글로벌 디자이너 울프강 예거를 수석 디자이너를 모셔 왔다. 예거는 중국에서 파란색과 회색 자동차가 거의 팔리지 않고, 검정은 공무원들이 주로 타는 차라는 점을 파악했다. 그래서 흰색과 짙은 갈색을 위주로 차를 디자인했다. 비야디는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한 배터리 개발에 힘을 쏟았다. 비야디는 ‘삼원계’ 대신 가격이 저렴한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주로 개발했다. 리튬인산철 배터리는 에너지 효율이 떨어져 주행거리가 짧다는 단점이 있었다. 비야디는 2020년 배터리 구조를 바꿔 문제를 해결했고, 한 번 충전하면 시 700㎞까지 달릴 수 있는 전기차를 선보였다. 차량은 저렴한데 테슬라 못지않은 주행거리를 선보인 셈. 블룸버그는 “왕촨푸는 비야디 자동차가 고객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백업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며 “회사의 뿌리인 (차량용) 배터리 제조업체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비야디 하면 ‘수직계열화’가 많이 언급되곤 한다. 비야디는 직접 생산한 배터리를 자사 차량에 탑재하는 사실상 유일한 회사다. 비야디는 왕촨푸의 사촌이 소유한 룽제(融捷) 그룹과 리튬(배터리 핵심 소재) 채굴 관련 파트너십을 맺는 등 배터리 소재 공급망까지 챙겼다. 비야디는 전력 반도체도 자회사가 직접 만든다. 코로나19 시기 차량용 반도체 칩 공급망 대란이 있었을 때 타격을 입지 않은 이유다.비야디는 “다른 브랜드의 절반 가격에 전기차를 팔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는데, 이는 비야디가 배터리와 모터, 전자제어 장치 모두를 자체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왕촨푸는 “우리는 다른 기업들과 다르게 전기차 제조 체인 전체를 보유하고 있다”며 “100년에 한 번 있는 기회(그동안 내연기관이 장악)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전설을 무너뜨릴 때가 왔다” 비야디는 한(漢), 탕(唐), 송(宋) 등 ‘왕조 시리즈(모델명이 중국 왕조 이름)’와 돌고래, 바다표범 같은 해양 시리즈 전기차 모델들을 내놨다. 2020년 9개였던 비야디 전기차 모델은 4년도 안 돼 20여 개로 늘었다. 실적도 어마어마하다. 비야디는 지난해 전년 대비 81% 급등한 300억 위안(약 5조600억 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물론, ‘비야디는 중국에서나 팔리는 전기차’라는 평도 있다. 2022년까지는 그랬다. 지난해 중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중단한 것을 계기로 비야디는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두드리는 중이다. (국내에서도 비야디 전기버스를 종종 볼 수 있다) 동남아에서는 태국과 베트남에서, 남미에서는 브라질에서 생산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인도에서 1877대의 전기차를 판매한 비야디는 2030년까지 인도 전기차 시장 점유율 40%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13억 달러(약 1조 7500억 원) 투자 계획을 밝혔다. 유럽 공략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비야디는 전기차 수출을 위해 선박까지 준비했다. 비야디는 최근 전기차 5000대를 한 번에 운반할 수 있는 자동차 운반선 ‘익스플로러 1호’를 직접 건조해 올해 1월 출항 기념식을 열었다. 2년 안에 이 같은 자동차 운반선을 7대까지 늘려 유럽 등 해외 판매를 가속하겠다는 전략이다. 왕촨푸는 지난해 한 연설에서 “오래된 전설을 무너뜨릴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테슬라를 겨냥한 선전포고였다. 주요 자동차 브랜드들도 비야디가 신경 쓰이는 분위기다. 올라 칼레니우스 벤츠 CEO는 “1886년 가솔린 자동차가 나오고 (치열해진 경쟁으로) 자동차 업계에서 일하기 가장 즐거운 시기”라며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동시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크다”고 했다. 비야디 등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이 남미, 유럽 등을 거쳐 결국에는 미국으로 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마린 자자 포드 최고고객책임자(CCO)는 “그들은(중국 자동차 브랜드) 도요타, 혼다 등 일본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미국) 올 것”이라고 말했다. 짐 팔리 포드 CEO는 “가까운 미래에 중국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자동차 제조사는 매출의 30%를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유명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걱정할 만하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업체 알릭스파트너스의 조사에서 미국인과 유럽인 10명 중 7명은 “중국 전기차가 다른 브랜드보다 20%가량 저렴하다면 중국산 EV를 고려하겠다”고 답했다.‘레드우드 프로젝트’ 일단은 머스크의 바람대로 됐다. 미국 정부는 15일(현지 시간)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현재의 25%에서 100%로 인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에 수출되는 수입차에는 기본적으로 관세 2.5%가 붙는다. 중국 전기차에는 여기에 25%가 별도로 추가되는데 이를 훨씬 더 높인 것이다.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산 전기차에 부과되는 관세를 4배로 인상하는 강수를 뒀지만, 미 CNBC는 “저렴한 중국 전기차를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전했다. 비야디 전기차에 100%의 관세를 붙이더라도 현재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다수의 전기차의 가격과 유사하거나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미국 이외에 유럽, 인도, 남미 등에서 중국 전기차와 경쟁해야 하는 것도 과제다. 물론, 자율주행 같은 소프트웨어를 고려하면 테슬라와 비야디는 경쟁 상대가 아니라는 분석도 많다. 테슬라는 월 199달러(약 27만 원)짜리 FSD(완전자율주행) 구독 서비스를 판매 중이다. 비야디는 중국 인터넷기업 바이두의 자율주행 기술(아폴로 플랫폼)을 장착하고 있다. 비야디도 약점을 잘 알고 있다. 올해 초 비야디는 자율주행 등 스마트카 기능에 140억 달러(약 18조90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테슬라가 저가 모델을 내놓아 판도를 뒤집어 놓을 수도 있다. 머스크는 최근 내년 6월 모델3보다 저렴한 저가형 전기차 ‘레드우드’를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머스크는 테슬라 내부에서 저가 모델을 만드는 것을 여러 차례 반대했다.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로보택시’가 저가 모델을 대신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21년 11월 머스크는 임원 회의에서 “로보택시가 모델3보다 작고 저렴한 자동차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즉, 머스크는 단순히 가격만 싼 전기차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다. 운전기사가 없는 완전한 자율주행차를 저가형으로 내놓는 것이 목표였다. 당시 머스크는 고위 임원들에게 “핸들과 페달이 없는 전기차를 설계하라”고까지 했다. 머스크는 2018년에도, 2020년에도 “3년 안에 2만5000달러(약 3400만 원)짜리 전기차를 출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테슬라는 이번에는 진짜로 저가 모델을 내놓고, 비야디와 경쟁을 펼칠까. 혹시 내년에 내놓겠다는 저가 모델에 운전대가 없는 것은 아닐까. 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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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에 남은 ‘드래곤볼’과 50세 ‘헬로키티’[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만약 정말로 드래곤볼로 소원을 하나 이룰 수 있다면…”일본 나고야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던 23세 청년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는 2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관뒀다.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포스터를 디자인하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져서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아 쓰던 그는 한 카페에서 만화상 응모를 발견했다. 상금이 탐이 난 토리야마는 스타워즈를 패러디한 만화를 그렸는데, 응모 기간이 이미 지나간 뒤였다. 마감을 놓친 그는 매달 만화상을 선정하는 주간 만화잡지 ‘소년 점프’에 그려둔 만화를 보냈다. 토리야마의 만화는 상을 받진 못했지만, 소년 점프의 편집자였던 토리시마 카즈히코가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회사에 전담을 자처했다.1978년 단편 ‘원더아일랜드’로 정식 만화가로 데뷔한 토리야마는 2년 뒤, 장편 만화 ‘닥터 슬럼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단행본이 3500만 부나 팔렸다.그를 천재 만화가 반열에 올린 작품은 따로 있었다. 1984년 등장한 ‘드래곤볼’이다. 드래곤볼은 전 세계에 신드롬을 일으킨 최초의 일본 만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5년까지 42권이 발매됐는데, 전 세계에서 2억6000만 부나 팔렸다. 한국 등 80여 개국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방영됐다. 지난달 초, 닥터 슬럼프, 드래곤볼 등을 만들어낸 유명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69)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손오공과 젊은 시절을 보냈던 많은 이들이 그의 별세를 안타까워했다.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는 소셜미디어에 “용신으로도 살려낼 수 없는 곳으로 그가 갔다”는 포스팅을 올렸다. 일본의 일이라면 날을 세우는 중국 정부도 이날만큼은 애도를 표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그의 작품은 중국에서도 환영받았다”며 “많은 중국 네티즌이 그를 기리고 있다”고 전했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수천 명이 한 광장에 모여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드래곤볼에 나오는 전투 기술 ‘원기옥’의 동작이다.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브라질, 멕시코 등에서도 추모 집회가 이어졌다.인기 만화 ‘나루토’의 작가 키시모토 마사시는 “만약 정말로 드래곤볼의 소원이 하나 이루어진다면…”이라며 만화에서처럼 그가 부활하기를 바랐다. 성실한 귀차니스트 토리야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와 관련된 일화들이 기사로 쏟아졌다. 먼저 그의 가능성을 처음 발견한 토리시마 편집자가 주목받았다.토리야마의 성공에는 편집자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원래 토리야마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소녀 로봇 ‘아리’를 1화에만 등장시키려 했다. 하지만, 편집자는 슬럼프 박사가 아닌 아리가 주인공이 돼야 한다고 맞붙었다. 당시 대부분의 만화에서 주인공은 남성 캐릭터였다. 둘은 “독자에게 물어보자”고 내기를 했고, 설문조사에서 아리가 순위권에 들면서 아리가 주인공이 됐다. 토리야마는 심통이 났는지, 만화에 편집자를 모델로 한 악역 캐릭터(닥터 마시리토)를 등장시켰다.드래곤볼도 편집자가 아니었으면 나오지 못할 뻔했다. 토리야마가 닥터 슬럼프 후속작을 구상하고 있을 무렵 편집자는 격투 만화를 제안했다. 그가 성룡의 무술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토리야마는 거절을 거듭했지만, 편집자는 끈질기게 그를 설득했고, 그 덕분에 드래곤볼이 탄생할 수 있었다. 드래곤볼 연재 초기에도 편집자의 조언이 있었다. 토리야마는 판타지물로 드래곤볼 스토리를 이끌어나갔는데, 인기가 식자(‘북두의 권’에 잠시 밀렸다고 함) 토리시마 편집자가 “전투신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후 ‘천하제일무술대회’와 녹색 피부의 외계인 악당 ‘피콜로’를 등장시키면서 드래곤볼은 1위를 다시 빼앗았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토리야마는 처음에 드래곤볼의 주인공을 성장시키는(만화에서 손오공은 12세로 등장해 45세로 끝남) 아이디어를 가져왔는데 편집자는 강하게 반대했다. 토리야마는 자기 뜻을 관철했고, 그 덕분에 스토리가 풍성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토리야마는 과거 인터뷰에서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며 “악당이 필살기로 거리를 날려버리는 장면이 종종 있는데 배경을 그리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천재성에 의존하는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토리야마는 한 인터뷰에서 본인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라고 소개한 적도 있었다.그러나 실제로 토리야마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에 가까웠다. 그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드래곤볼의 연재와 관련해 “10년 동안 그리는 데 있어 정한 규칙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마감은 무조건 지켰다. 광고회사에서 일할 시절 마감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지 실제로 보고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토리야마는 40여년간 단 한 번도 연재 펑크를 내지 않았고, 출판사에서 보낸 어시스트 한 명의 도움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의 힘으로 그림을 그렸다. (닥터슬럼프 연재 당시 밤샘 작업에 시달리다 가족에게 검은색 부분을 잉크로 칠해달라고 부탁하긴 했다) 업무량도 어마어마했다. 그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과 영화 22편을 모두 직접 감독하거나 관여했다. ‘게으른 천재’가 아니라, ‘성실한 귀차니스트’였다. 불멸의 손오공사실, 전설적인 음악가나 영화감독이 아닌, 만화가의 죽음에 전 세계가 가슴 아파하는 것은 굉장히 보기 드문 일이다. 토리야마와 드래곤볼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다. 드래곤볼은 서구권을 공략한 첫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1990년대 미국과 유럽의 많은 사람이 케이블TV에 나오는 드래곤볼을 보기 위해 TV 앞에서 기다렸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8일(현지시간) “미야자키 하야오(宮﨑駿) 같은 애니메이션 거장의 작품들이 미국에 전해졌지만,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들여다봤을 때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서구의 주류미디어에서 인기를 얻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몇 가지 큰 예외가 있다. ‘포켓몬스터’, ‘나루토’ 그리고 ‘드래곤볼’”이라고 전했다. 드래곤볼 단행본은 20개 넘는 언어로 번역돼 약 2억6000만 부가 판매됐다. 역대 가장 많이 팔린 만화 시리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토리야마에 대해 “일본 콘텐츠가 세계에서 폭넓게 인정받고, 일본 관광객 증가로도 이어졌다”며 “일본 문화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했다.토리야마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후배들은 ‘나루토’, ‘원피스’ 같은 글로벌 만화 히트작을 쏟아냈다. 토리야마는 “일본 만화가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만화는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통념을 깬 것도 드래곤볼이었다. 드래곤볼 IP(지식재산)는 TV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영화, 게임 등 다방면으로 활용됐다. 드래곤볼 관련 매출은 230억 달러(약 30조 원)에 달한다. 드래곤볼 덕분에 토리야마도 많은 돈을 벌었다. 2021년 토리야마의 예상 인세 수입은 114억4000만 엔(약 1030억 원)이었다. 기타 IP 수익을 포함하면 생전 수입은 훨씬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최근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드래곤볼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를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테마파크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서남쪽으로 약 40㎞ 떨어진 키디야 지역에 50만㎡ 규모로 건설된다. 테마파크 내부에는 ‘신룡(드래곤볼에서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을 형상화한 70m 높이의 롤러코스터를 비롯해 최소 30개의 놀이기구가 들어설 것으로 알려졌다. 토리야마는 세상을 떠났지만, 지구에 드래곤볼을 남겼다.그런데, 드래곤볼의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남미 등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을 푹 빠지게 만든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만화를 그릴 때 독자를 즐겁게 하는 것 이외에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2013년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에만 집중했다”고 밝혔다. 교훈적인 메시지 전달에 신경 쓰는 다른 만화가와 다르게, 재미에만 집중했다는 설명이었다. 작품의 해외 진출에 나라마다 다른 문화적 요소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재미는 만국 공통으로 통하는 특성이기 때문이다.50세 맞이한 헬로 키티 캐릭터 헬로키티 역시 드래곤볼 못지않게 수십 년간 사랑받은 일본의 대표 IP다. 일본 캐릭터 기업 산리오가 1974년 만든 헬로키티는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한국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헬로키티 50주년 특별전-산리오캐릭터즈와의 여행)이 13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렸는데, 입장과 기념품 구매에 각각 1시간 이상 대기 줄이 늘어설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고양이 캐릭터 하나에 엄청난 사람이 몰렸다.츠지 신타로((辻信太郎·97) 산리오 창업주(현재는 손자 츠지 토모쿠니가 대표를 맡고 있음)가 처음부터 고양이 캐릭터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 동부 야마나시현에서 자란 츠지는 어린 시절 카드 모으기 유행을 떠올리며 1960년 캐릭터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소소한 것을 주고받으면서 친구를 사귀었던 어린 날 행복감을 되살리고 싶었다. “카드 덕분에 외톨이었던 나는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진정한 행복은 우정을 통해 온다는 교훈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물론, 당시에는 우정을 키우는 일이 훗날 조 단위의 매출을 일으킬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츠지는 산리오라는 회사를 차리고 저렴한 제품들을 디자인하는 데 쓸만한 캐릭터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초등학생 아들의 같은 반 친구들에게 동물도감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어떤 동물에 호감을 보이는지 관찰했다.“처음에는 물고기를 시도했는데 관심 없었다. 고래, 돌고래도 시큰둥했다. 올빼미랑 펭귄에는 흥미는 보였는데 새는 보지도 않았다. 곤충, 나비, 벌, 무당벌레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의 1순위는 강아지였다. 2위는 흰 고양이, 3위는 곰이었고 기린, 사자 같은 야생동물이 뒤를 이었다. 당시 강아지 캐릭터 시장은 이미 ‘스누피’가 꽉 잡고 있었다. 그래서 츠지가 선택한 캐릭터가 흰 고양이다. 첫 사업 시장 조사 대상이 고작 초등학생 아들 반 친구들이라니. 너무 소박한 것 아닐까. “아이들 한 학급이 충분한 기반인지 누가 알 수 있나. 항상 완벽하게 맞출 순 없다. 미키마우스를 봐라. 그게 뭔가? 그냥 쥐 아닌가.” 츠지는 한 일본 만화가에게 흰 고양이를 그리게 했다. 저작권 등록을 위해 이름도 지었다. 영어 단어 ‘키티(고양이)’를 떠올렸다. 회사의 모토인 ‘사회적 소통’의 의미를 담을 수 있는 ‘헬로’를 그 앞에 붙였다. 그렇게 헬로키티가 탄생했다. 작은 비닐 동전 지갑에 처음으로 헬로키티 그림이 들어갔다. 귀여운 키티 옆에 귀여운 키티 헬로키티는 ‘IP 활용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제품에 활용됐다. 키티 팬들은 키티 인형뿐만 아니라, 키티가 그려진 운동화, 가방, 종이 타월부터 카세트 플레이어, 젓가락, 와인 등을 샀다. 홍콩에서 키티 모양의 만두가, 대만에선 키티로 디자인한 비행기가 등장했다. 현재 130여 국, 약 5만 종류의 제품에 키티가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키티 덕분에 산리오는 연 38억 달러(5조3000억 원) 매출의 ‘캐릭터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분홍빛 세계화: 헬로 키티의 태평양 횡단 이야기’ 책을 쓴 미국의 인류학자 크리스틴 야노는 “헬로키티는 수익을 창출하는 기계”라고 말했다. 산리오는 주로 캐릭터 라이선스를 판매해 수익을 올린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자체 소매점에서 판매하는 제품 제조에 집중하기도 했는데 마진이 많이 남지 않자 이후에는 라이선스 사업을 더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새로운 산업, 제품군에 진출했을 때 위험을 덜 감수해야 한다는 장점이 있다.대신, 품질 관리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예로, 홍콩에 있었던 헬로키티 딤섬 레스토랑(2017년쯤 폐점)은 장식부터 식기, 메뉴 등 세부적인 사항들을 산리오에 먼저 승인받도록 했다. 기본적으로 캐릭터 제작 과정에서는 폭력적인 요소나 어린아이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장면(술을 마시는 모습 등) 등은 배제했다. 캐릭터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산리오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헬로키티가 점차 나이가 들면서 브랜딩 파워가 약해졌다. 사람들이 주변에서 키티를 자주 접하다 보니 귀여움과 신선함을 예전만 못하게 느낀 것이다. 한 마디로, 캐릭터가 과잉 판매돼 식상해졌다는 의미다. 1999년부터 키티 관련 라이선스 매출은 10년 연속 감소하더니, 2010년에는 ‘호빵맨’에게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시치조 나오히로 와세다대 고등연구소 부교수는 “산리오는 처음에는 헬로키티 열풍이 걷잡을 수 없게 번지지 않도록 굉장히 조심했었다. 캐릭터가 한 번에 너무 큰 인기를 얻으면 안 된다는 것이 캐릭터 비즈니스의 암묵적인 규칙”이라고 강조했다. 키티 열풍이 전 세계로 퍼지고, 매출이 급증하자 캐릭터가 지나치게 많이 소비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매출이 꺾인 산리오는 키티를 어떻게 캐릭터 디자인 이상으로 활용할지를 두고 고심하기 시작했다. 드래곤볼처럼 키티 IP를 영화 등 여러 방면으로 쓰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헬로키티에는 입이 없다. “뭐? 키티가 고양이가 아니라고?” 2014년 미 LA타임스는 키티 팬들의 눈이 번쩍 뜨일만한 기사를 내보냈다. 키티가 사실은 고양이가 아니라 ‘키티 화이트’라는 어린 소녀였다는 내용이었다. 크리스틴 야노는 ‘재패니즈 아메리칸 내셔널 뮤지엄’의 전시 책임자로 있을 때 헬로키티 전시물에 ‘고양이’라는 설명을 달았다고 한다. 그러자 산리오가 ‘헬로키티는 고양이가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고 밝혔다. 산리오는 ‘키티는 항상 두 발로 앉거나 걸었지, 한 번도 네발로 묘사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산리오는 공식사이트에서도 헬로키티가 영국 출신의 소녀 캐릭터라고 밝혔다. 심지어 애완용 고양이도 있단다. 이름은 ‘차미 키티’다. 키티 양 볼 옆에 털 세 가닥에 대해서는 “소녀가 귀밑에 털이 있는 것”이라는 황당한 설명을 달았다. CNN, NYT 등 해외 주요 언론들이 잇달아 키티의 정체를 전했고, 헬로키티 팬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CNN은 “11월 1일생의 키티는 팬케이크 만들기, 종이접기를 좋아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친구는 너무 많이 가질 수 없다’이다. 오늘 (키티는 친구를) 몇 명 잃었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배신감을 느낀 팬들은 온라인에 분노를 표출했다. 당시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었는데,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전쟁 관련 소식보다 키티 관련 게시물이 10배 이상 많았다. 헬로키티의 정체를 알고 나서 아이들이 우는 동영상도 올라왔다.2019년 산리오는 콘텐츠 거물 워너브러더스와 헬로키티를 영화화하는 60억 달러(약 8조3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NYT는 “워너브러더스는 고양이를 영화로 제작하려고 산리오를 5년간 설득했다”고 전했다. 5년 전, 헬로키티의 정체를 밝힌 순간부터 산리오에 구애한 것이다. 산리오의 폭탄선언 덕분에 IP 다각화의 길이 열린 셈이다.귀여운 건 못 참지헬로키티의 매력은 두말할 것 없이 ‘귀여움’이다. 달콤하고 포근한 귀여움의 힘에 많은 사람이 쉽게 지갑을 연다. 그러다 보니 학계에서도 귀여움에 관한 연구가 꽤 진행돼왔다. 인간은 무엇을 귀엽다고 생각할까. 1940년대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콘라드 로렌츠는 사람들이 큰 눈과 작은 코와 입, 둥근 뺨, 통통한 몸, 짧은 팔과 다리, 흔들리는 걸음걸이를 가진 아기에게 끌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이미지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작지만 강력한 힘: 귀여움이 세상을 점령한 방법’이라는 기사에서 “만화 캐릭터도 이에 맞춰 변신을 거듭했다”면서 “예로, 미키마우스의 팔, 다리, 코는 1928년 이후 작아졌지만, 머리와 눈은 커졌다”고 강조했다.2015년 한 연구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고양이 동영상을 보고 더 활기차고 긍정적으로 느끼고 짜증과 불안, 슬픔을 덜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옥스퍼드대학교의 신경과학자 모르텐 크링겔바흐는 아기 얼굴을 보고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했는데, 뇌의 전두엽 부위에 있는 안와전두피질(쾌락과 관련된 영역)이 0.14초 이내에 활성화된다는 점을 발견했다.귀여움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에도시대(1603~1868년)의 일본 예술가들은 강아지를 그리거나 상아로 강아지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책 ‘거부할 수 없는’의 저자 조슈아 폴 데일은 “르네상스, 로코코 시대 예술에서의 귀여움의 주요 표현은 ‘날개를 단 아기(큐피드)’였다”고 주장했다.현대에서 고양이는 가장 사랑받는 콘텐츠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22년 유튜브에는 매일 9만 개 이상의 고양이 동영상이 업로드됐다.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월드와이드웹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는 ‘인터넷 사용에서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고양이”라고 답했다. 귀여운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그만큼 컸단 뜻이다.산리오는 구데타마, 마이멜로디, 쿠로미, 폼폼푸린 등 수많은 캐릭터를 발굴해냈지만, 헬로키티의 영향력은 아직도 절대적이다. 산리오 창립자는 한 인터뷰에서 헬로키티 열풍이 식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미키마우스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도널드덕? 구피? 미키를 대체할 수 있는 건 미키뿐이다. 스누피도 마찬가지다. 찰리브라운도 루시도 대신할 수 없다. 키티는 오직 키티만이 대체할 수 있다.”일본 장수 IP, 시대가 변해도 살아남을까 과거 레이 하토야마 산리오 해외사업총괄본부장은 드래곤볼과 헬로키티 같은 캐릭터의 글로벌 성공을 ‘쌀 수출’에 빗댔다. “쌀에 해외 각 국가들이 좋아하는 향신료를 넣으면 맛을 더할 수 있기 때문에 식재료를 판매하기 쉽다”고 말했다. 드래곤볼의 ‘재미’나 헬로키티의 ‘귀여움’ 같은 세계를 관통할 수 있는 무기가 있으면 IP를 다양하게 활용해 매출을 끌어올리기 쉽다는 의미다. (과거 만화 도라에몽이 일본 학교를 배경으로 해 해외 판매가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세계를 강타했던 일본 만화, 캐릭터 산업은 웹툰(웹 코믹)으로 대표되는 21세기 온라인 만화 시장에서 한국에 선두를 빼앗긴 지 꽤 됐다. 2020년 7월에는 ‘만화 종주국’ 일본에서조차 한국 기업이 만화 플랫폼 1위를 차지했다. 앞으로는 인쇄 만화보다 웹툰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만화 업계는 전 세계 웹툰 시장이 2030년 560억 달러(약 77조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일본의 인쇄 만화 시장은 20억 달러(약 2조7700억 원)에도 못 미치는 상태다. 보수적인 일본 만화 업계가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신작의 첫 발표는 ‘소년 점프’ 같은 주간만화잡지에서 한 뒤, 출판물로 인쇄돼 연재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일본 만화 장인들이 20세기 작업 방식에 갇혀 있는 것도 있다. 화법이 독창적이고 플롯(구성)이 정교한 인쇄 만화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내에선 웹툰을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평가하는 작가도 일부 있다고 한다. 전통적인 일본 만화 애호가들이 웹툰을 조잡하다고 평가하고, 인쇄 만화의 형식과 읽는 순서 등을 신성시하는 것도 있다. 웹툰은 전통 만화만큼 정교한 서사를 제공하진 못하지만, 색감이 화려하고 직관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편의성도 뛰어나다. 웹툰 관련 시장이 계속 커지는 이유다.이코노미스트는 “일본 만화 팬들은 고령화되고 있다. 소년 점프 독자의 평균 연령은 30세가 넘는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스크롤 해 본다. 아이들 취향에 맞는 것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변화를 촉구했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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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엔비디아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下)[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이번 신비월드는 ‘’의 후속편입니다. 16일 기사(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553586?sid=104)를 먼저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게임 덕후’가 만든 슈퍼컴퓨터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의 한 아파트 월세방에서 사업을 시작한 회사가 있었다. 게임 화질이 점차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한 창업자들은 사업을 위해 각자 잘나가던 기술 회사까지 관뒀다. 한 차례 폐업 위기를 넘긴 이 회사는 2000년대 그래픽카드 ‘지포스(GeForce) 시리즈’로 게임 업계를 휩쓸었다.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이야기다. 미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공부하던 대학원생 이안 벅은 공부만큼 게임을 좋아했다. 그는 2000년 23개의 지포스를 연결해 ‘퀘이크’라는 게임을 즐겼다. 그는 “8K 해상도의 첫 번째 게임 장비였다”며 “게임을 위한 장비가 벽 한쪽을 통째로 차지했는데, 정말 아름다웠다”고 회상했다. 이때만 해도 엔비디아는 게이머들 사이에서만 핫한 회사였다. 그런데, 벅처럼 게임과 컴퓨터를 모두 잘 아는 일부 연구원이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게임 이외의 용도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분자 관련 모델을 만들던 한 연구원은 연산 작업에 대학에 있던 슈퍼컴퓨터 대신 전자 매장에서 구매한 GPU를 사용했다. 몇 주가 걸릴 일이 몇 시간 만에 끝났다. 한창 게임에 심취해 있던 벅도 GPU의 잠재력을 발견한 이들 중 하나였다. 그는 게임에서 친구들에게 수류탄을 던지는 것 말고도 다른 곳에 GPU를 사용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다르파·DARPA)의 지원을 받던 벅은 지포스의 프로그래밍 도구인 셰이더(上편 참고)를 해킹해 다량의 연산을 빠른 속도로 해치우는 슈퍼컴퓨터를 개발했다. GPU를 활용한 ‘저예산 슈퍼컴퓨터’였다. 참고로, 미국 국방성 산하 핵심 연구개발 조직 중 하나인 다르파는 최초의 인터넷을 개발한 곳이기도 하다.얼마 안 돼 엔비디아에 스카우트된 벅은 2004년부터 ‘쿠다(CUDA)’ 프로젝트를 감독했다. 2006년 등장한 쿠다는 엔비디아의 GPU에서만 작동하는 일종의 프로그래밍 툴이다. 그래픽카드를 그래픽 작업 이외의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엔비디아가 개발한 플랫폼(생태계)이다. 컴파일러, 런타임, 디버거 등(기자도 모른다. 걱정하지 말자) 여러 개발 도구들이 쿠다에 포함돼 있다. 개발자들이 기존에 만들어 놓은 것들을 불러내는 라이브러리 기능도 있다. 기초 작업이나 간단한 것들을 라이브러리에서 꺼내 쓰게 해 시간을 절약시켰다. (벅은 현재 엔비디아 부사장으로 재직 중)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한 인터뷰에서 “모든 지포스 그래픽 카드에서 쿠다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며 “슈퍼컴퓨팅을 대중화하는 작업이었다”라고 회상했다.엔비디아는 2006년 1초당 3조 회 이상의 수학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차세대 프로세서(지포스 8800)를 출시했다. 연산 수행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그래픽 성능까지 일부 포기했다. 그래픽 구현보다 슈퍼컴퓨터로서의 성능에 초점을 맞춤 셈이다. 당시 미 뉴욕타임스(NYT)는 “수학적 기능을 갖추고 있는 8800은 (인텔) 슈퍼컴퓨터의 직접적인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GPU가 만든 피자 피자 제조업체부터 에너지 기업, 의료 회사까지 여러 기업 및 연구 기관에서 엔비디아의 GPU를 찾기 시작했다. 이들은 엔비디아의 GPU를 활용하면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만 사용했을 때보다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미국 식품 회사 제너럴밀스는 냉동 피자 제품을 개발하는 데 엔비디아의 GPU를 썼다. 냉동 피자를 완벽하게 만드는 일은 예술인 동시에 컴퓨터 문제다. 정교한 컴퓨터를 사용해 재료를 조합하면 실패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제너럴밀스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그래픽칩이 탑재된 컴퓨터를 선택해 작업 속도를 높였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의료 기기 회사 테크니스캔도 엔비디아의 GPU를 사용해 업무 효율을 높인 곳이다. 테크니스캔은 3차원 유방 스캔 장치에 엔비디아의 그래픽 프로세서를 도입했다. 기기는 스캔에서 발생한 데이터를 의료용 이미지 파일로 변환하는데, 인텔 프로세서만 사용했을 때 2시간 걸리던 작업이 15분으로 단축됐다. 테크니스캔의 엔지니어인 짐 하드윅은 “스캔 당 15분으로 단축하면 환자가 당일에 검사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미 최대 유전 탐사기업 슐룸베르거는 석유 매장지를 찾는데 엔비디아의 GPU와 쿠다를 활용했다. GPU로 석유 매장 징후를 스캔하는 알고리즘을 최적화 한 것. 슐룸베르거는 이를 통해 기존 컴퓨터보다 6배 이상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었다. 엔비디아 출신의 한 개발자는 “데이터 분석이 굉장히 중요했다. ‘여기 파보세요’라고 결정하는 데 1억 달러(1300억 원)가 걸려있었다”고 회상했다.쉽게 설명해 엔비디아의 GPU가 연산 작업을 특출나게 잘해서 데이터 처리나, 시뮬레이션 시간을 굉장히 단축했다는 의미다. 수조 원 들어가는 신약 개발 과정을 떠올리면 시뮬레이션 시간을 줄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엔비디아의 사업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엔비디아는 모바일 기기에 진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퀄컴에 밀려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엔비디아가 만든 태블릿PC, 텔레비전 셋톱박스, 스마트 스피커 등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2000년대 후반 리먼 브러더스 사태 때는 엔비디아도 휘청했다. 엔비디아의 기업가치가 고점 대비 80%나 추락했다. 젠슨 황은 전체 직원의 6.5% 수준인 360여 명을 해고해야 했다. 반도체 기업 AMD(황의 첫 직장이자 오늘날 엔비디아의 최대 라이벌)가 엔비디아를 인수하려고 했는데, 황이 합병 회사의 CEO 자리를 고집해 거래가 무산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AMD는 대신에 그래픽 반도체 업체 ATI를 인수했다. 5년여 동안 20억 달러(약 2조7000억 원)를 쏟아부은 쿠다는 아직 제대로 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시기 엔비디아의 분기당 매출이 1조 원 내외였던 것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투자였다. 쿠다 사용 개발자 수는 10만 명 근처에서 정체돼 있었다. “엔비디아 칩 좀 공짜로 보내주실 수 있나요?”엔비디아는 GPU 슈퍼컴퓨터 생태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2009년 1월 스탠퍼드대에서 최고 컴퓨터 과학자로 꼽히는 빌 달리(현 엔비디아 수석 과학자) 교수를 데려왔다. 같은 해 3월에는 처음으로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인 ‘GTC’를 개최했다. 컴퓨터 과학자인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첫 GTC 행사를 찾았다가 영감을 얻었다. 그는 행사가 끝나고 엔비디아에 연락해 이렇게 말했다. “방금 머신러닝 연구자 1000명에게 엔비디아 칩을 꼭 사야 한다고 이메일을 보냈어요. 그런데, 저 혹시… GPU 하나만 공짜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힌턴 교수는 신경망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AI)을 연구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인공 지능에 관한 연구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고,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수학이나 체스(또는 바둑)처럼 규칙과 정의가 명확한 분야에서만 작동했다. 논리적 추론이나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언어 등에서는 발전이 더뎠다. 예를 들어, AI에 번역을 맡기려면 두 언어의 전체 문법과 모든 단어를 입력하고 각각의 단어와 문장을 대응시키는 수작업이 필요했다.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걸리는 일일 뿐만 아니라, 중의적 표현을 완벽하게 소화해내지 못했다.사물에 대한 인식에서도 장벽이 높았다. ‘고양이’를 인식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치자. 먼저 고양이 이미지의 여러 요소를 분리해야 한다. ‘4개의 다리’와 ‘뾰족한 두 귀’, ‘수염’, ‘꼬리’ 등을 입력할 것이다. 그런 다음, AI에 귀가 접힌 스코티시폴드종 고양이를 보여주면 ‘고양이가 아닙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올 것이다. 최대한 상세하고 다양한 고양이 모습을 입력해놓을 수 있지만, 그 자체로 매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힌턴 교수는 기존과 다르게 인간의 뇌세포가 상호 작용하는 방식을 모방한 ‘인공 신경망’ 방식을 연구했다. 수천 장의 고양이 사진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패턴을 찾아내, 처음 본 고양이 사진도 고양이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딥러닝 기술의 기본 개념이다. 그런데, ‘뉴런(신경세포)’이 문제였다. 평균적으로 인간의 뇌에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각의 뉴런은 최대 1만여 개의 다른 뉴런과 연결돼 있다. 뉴런 간 접점이 100조에서 1000조 개 사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뇌를 흉내 내려면 컴퓨터가 뉴런들의 상호작용만큼 어마어마한 연산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인공 신경망 개념이 1940년에 등장하고도 진전이 없었던 이유다. 힌턴 교수는 GTC에서 답을 찾아냈다. 엔비디아 GPU의 병렬식 연산 능력이면 인공 신경망 구축이 가능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선구자들엔비디아는 제안을 거절했고, 힌턴 교수와 토론토대 조교들(일리야 수츠케버, 알렉스 크리제브스키)은 아마존에서 지포스 그래픽카드 2개(GTX 580)를 구입했다. 조교들은 엔비디아의 쿠다에서 시각 인식 신경망을 훈련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수백만 개의 이미지를 공급했다. 힌턴 교수는 “크리제브스키 집 침실에서 2개의 GPU가 윙윙거리며 학습했다”며 “전기세는 부모님이 내주셨다고 한다”고 말했다.인공 신경망에 ‘알렉스넷(AlexNet)’이라는 이름을 붙인 크리제브스키는 2012년 시각 인식 경연대회(ImageNet)에서 이를 선보였다. 인공 신경망을 사용한 참가자는 크리제브스키가 유일했다. 크리제브스키는 이전 대회에서 25% 수준이었던 오류율(딸기, 고양이, 강아지 같은 이미지에 라벨을 잘못 붙이는)을 15%까지 떨어뜨리며 1등을 차지했다. 대회 주최 측은 처음에는 부정행위를 의심했다. 그 정도로 큰 진전이었다. 알렉스넷에 대한 설명이 담긴 9쪽 분량의 크리제브스키의 논문은 이후 10만 번 이상 인용됐다. 엔비디아 그래픽카드 같은 특수 GPU가 범용 CPU보다 신경망을 최대 100배 빠르게 훈련할 수 있다는 내용이 논문의 핵심이다.조교 중 한 명인 수츠케버는 “GPU가 나타났을 때 기적처럼 느껴졌다”고 표현했다. 힌턴 교수는 “쿠다 없이 머신러닝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며 “패러다임이 바뀌는 빅뱅 같은 순간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름이 알려진 힌턴 교수와 일리야 수츠케버, 알렉스 크리제브스키는 회사를 차렸는데, 반년도 안 돼 구글에 인수됐다. 이들은 구글의 인공지능 연구팀 구글 브레인에 합류해 그렉 코라도, 제프 딘, 앤드류 응 등의 (현재 전설적인 인물로 꼽히는) 연구원들과 힘을 합쳤다.비슷한 시기 페이스북(현 메타)도 당시에도 굉장히 유명했던 컴퓨터 과학자 얀 르쿤 뉴욕대 교수(현재 AI 천왕 중 한 명으로 꼽힘, 힌턴 교수실에서 연구한 적 있음)를 영입했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저명한 학자들을 서로 모셔가면서 ‘인공지능 연구자 독과점 체제’를 구축해나갔다.구글 브레인 팀이 맡은 가장 큰 프로젝트는 당시 적자투성이였던 ‘유튜브’를 되살리기는 것이었다. 구글 브레인은 고객이 좋아할 만한 동영상을 파악하고 추천하는 방식으로 알고리즘을 다시 짰다. 또, 유튜브 비디오를 웹사이트나 블로그에 올릴 수 있게 해 유튜브를 단순 동영상 서비스가 아닌 소셜미디어 플랫폼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유튜브 동영상을 자동으로 재생하게 만든 것도 이들이 한 작업 중 하나였다. 이러한 기술들은 인공지능 연구에서 나온 것이고, 구글 브레인은 엔비디아의 GPU를 사용했다.얀 르쿤 교수의 페이스북도 유튜브처럼 AI를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 연구를 기반으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고객에게 어떤 콘텐츠를 먼저 보여줄지를 결정했다. 우리가 매 순간 맞이하는 고객 맞춤형 광고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나왔다. 그러자, 실리콘밸리에서 소수의 빅테크 기업이 인공지능 학자들을 독과점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업계에서 주목받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샘 올트먼 와이콤비네이터(현 오픈AI 최고경영자) 대표가 2015년 실리콘밸리 로즈우드 샌드힐 호텔에 구글과 페이스북의 주요 AI 연구원들을 초대했다.이들은 저녁 식사에서 “현재의 독과점 구조를 깨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을 지원해주면 될까”라고 물었다. 연구원들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시큰둥했다. 회사의 지원이 충실해 어디로도 이직할 마음이 없다는 뜻이었다. 딱 한 명, 힌턴 교수의 제자 일리야 수츠케버만 흥미를 보였다. 수츠케버는 구글에서 머스크와 올트먼이 지원하는 비영리 연구소(설립 당시 비영리 목적이 뚜렷했음)의 수석 과학자로 자리를 옮겼다. 2015년 문을 연 챗GPT의 ‘오픈AI’였다. “일론과 오픈AI 팀을 위하여!”오픈AI는 사업 초기부터 인공지능 언어 모델에 집중했는데, 당시에는 사람처럼 말하게 하는 AI라는 개념이 생소했다. 오픈AI 연구원들은 인공 신경망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알고리즘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엔비디아 유튜브 채널에 오픈AI의 수츠케버와 동료 개발자 안드레이 카르파티가 등장한 2016년 동영상이 있다. 영상에서 카르파티는 “대규모의 데이터를 네트워크에 입력하면 문장에서 단어들이 서로 이어지는 패턴을 파악할 수 있다. 결국에는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컴퓨터와 대화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구글 브레인 팀이 한발 앞서 ‘트랜스포머’라는 모델로 이를 구체화했다. 참고로 트랜스포머는 챗GPT에서 T의 약자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의 확률 관계들을 사전에 학습시켜 인간처럼 언어를 구사하게 한 것. 쉽게 설명하면, 컴퓨터가 A, B 다음 나올 철자가 C라는 것을 유추하게 만드는 개념이다. 번역할 때 맥락을 파악하는 일이기도 하다. 추리 소설로 비유할 수도 있다. 사람이 소설책을 끝까지 읽고 ‘확률적으로’ 범인을 예측하는 것처럼 인공지능이 비슷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이를 실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범인을 정확하게 예측하려면 이해관계부터 정황, 각종 증거 등을 전부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이 같은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려면 엄청난 양의 연산 작업(학습)이 수반돼야 한다. 컴퓨터가 수행해야 할 작업이 어마어마해지는 셈이다. 연산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번역을 예로 들면, 이전에는 문장을 단어들로 분리해 먼저 나오는 것부터 순서대로 연산 과정을 거쳐 대응 값을 출력했다. 맥락과 앞뒤 단어 사이의 관계성을 측정하는 트랜스포머 방식에서는 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병렬 방식’의 연산이 필요하다. 엔비디아의 GPU가 중요해졌다.엔비디아는 2016년 오픈AI의 주문을 받아 12만9000달러(약 1억7000만 원)짜리 AI 용 서버를 만들었다. 서류 가방 크기로 8개의 그래픽 프로세서가 탑재된 이 슈퍼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에서 6일 이상 걸리는 작업을 2시간 만에 처리했다. 젠슨 황은 오픈AI 사무실에 슈퍼컴퓨터를 직접 전달하면서 슈퍼컴퓨터에 응원 메시지와 사인을 적었다.“일론(머스크)과 오픈AI 팀을 위하여! 컴퓨팅과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오픈AI는 2018년 6월 첫 대형 언어 모델인 ‘GPT-1’을 선보였는데, 이 과정에서 돈이 곧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깨우쳤다. 오픈AI는 챗GPT 첫 번째 버전인 GPT-1에 1억2000만 개의 변수(파라미터)를 학습시켰다. 다음 해 나온 GPT-2는 15억 개를 훈련했다. GPT-3(2020년 6월 출시)는 1750억 개, GPT-4(지난해 3월)는 1조7000억 개(추정)의 매개변수를 학습했다. 공부를 많이 할수록(학습시킨 변수가 많을수록) 챗GPT는 똑똑해졌지만, 그만큼 뛰어난 연산 능력이 필요했다. 비싼 엔비디아 GPU가 많이, 정말 많이 필요했다.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조달하기 위해 비영리법인인 오픈AI는 2019년 영리법인을 자회사로 만드는 독특한 결정을 내리게 됐고, 결국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130억 달러(약 17조 원) 등 거금을 투자받았다. ▶오픈AI와 챗GPT 상업화 관련 내용은 신비월드 46화 참고.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31208/122542180/1 되살아난 ‘그레이스 호퍼’ 챗GPT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1억 명의 사용자를 모으면서 오픈AI에 투자한 MS에 먼저 관심이 쏠렸지만, 전문가들은 진정한 승자는 엔비디아라고 말한다. (연일 치솟는 엔비디아의 주가가 이를 증명해주는 듯하다) 엔비디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준비된 회사였기 때문에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 챗GPT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까지 AI는 기존 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이거나 수익성을 강화하는 방편으로만 존재했다. 인공지능 비즈니스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엔비디아는 불투명한 미래에 과감하게 배팅했다. 젠슨 황은 지난해 대만국립대 졸업식 연설에서 “이 새로운 분야(AI)를 발전시키기 위해 회사의 모든 부분을 전환했다”며 “지난 10년간 여기에 300억 달러(약 40조500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고 강조했다.먼저, ‘쿠다’가 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엔비디아는 인공지능이나 관련 알고리즘 개념이 생기기도 전에 개발자들과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엔비디아는 2006년 쿠다 출시 이후 4년 동안 개발자 10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지만, 쿠다에 대한 지원을 줄이지 않았다. 그 결과, 2016년 100만 명의 개발자가 쿠다에 모였다. 현재는 400만 명의 개발자가 쿠다를 사용하고 있다. 2020년에는 이스라엘의 작은 반도체 회사 멜라녹스를 70억 달러(약 9조4000억 원)에 인수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컴퓨터 네트워킹 공급업체인 멜라녹스는 대규모 데이터를 빠르고 원활하게 이동시키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때만 해도 기존 기술(이더넷)로 충분해 비싸게 샀다는 말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멜라녹스의 기술력이 빛을 뽐냈다. AI 연구개발로 여러 CPU와 수십 개가 넘는 GPU 등이 결합하면서 칩 간의 원활한 데이터 이동이 중요해졌다. (인텔도 멜라녹스를 사려 했는데 엔비디아에 뺏겼다)2022년, 엔비디아는 완전히 새로운 칩을 발표했다. 데이터센터 전용으로 쓸 수 있는 ‘그레이스 CPU’다. 엔비디아는 그동안 슈퍼컴퓨터를 만들 때 AMD나 인텔의 CPU를 라이선스 비용을 내고 구매해 넣어왔다. 그러다가 직접 CPU까지 개발했다.같은 해 9월, GPU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엔비디아 GPU 시리즈는 게임용 그래픽카드든 데이터센터용이든 동일한 설계방식(아키텍처)을 사용했는데, 이를 분리했다. 데이터센터 전용으로 설계한 GPU를 내놓은 것. 이 칩이 호퍼 GPU, ‘H100’이다. 제품들의 이름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술 발전을 주도한 여성 과학자 ‘그레이스 호퍼(1906~1992)’에서 가져왔다. MS + 애플 = 엔비디아엔비디아는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을 한 번에 이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DGX)를 지난해 선보였다. 호퍼 GPU와 그레이스 CPU, 칩 간의 뛰어난 데이터 네트워크 능력, 소프트웨어 개발 플랫폼 쿠다 등 AI 개발 전반에 걸쳐 필요한 기술들을 총망라했다. DGX 월 구독료만 내면 비싼 GPU를 사지 않고도 엔비디아의 최신 GPU와 기술들을 이용할 수 있다. H100 GPU 8개를 탑재한 DGX의 월 구독료는 서버당 3만7000달러(약 5000만 원) 수준이다. H100 GPU의 가격은 1대당 3만 달러(약 4000만 원)로 알려져 있다. AI 기업이 서비스 개발을 하려면 (엔비디아 GPU를 많이 사서) 데이터센터를 직접 조성하거나, (엔비디아 GPU를 많이 구매해놓은) MS 같은 클라우드 업체에 요금을 내고 데이터센터를 빌려 써야 한다. 엔비디아는 MS, 구글, 오라클 등 클라우드 회사들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AI 회사들은 MS 등을 통해서 엔비디아의 DGX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수 있다. 엔비디아는 자사 클라우드를 이용하면 AI 개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한 번에,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젠슨 황은 비용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고객의 비용을 줄여주는 회사”라고 강조했다. 클라우드 업체를 이용해도 엔비디아 GPU를 사용하는 것이니, 업체에 이용료를 내지 말고 엔비디아 클라우드를 곧바로 쓰라는 의미로 보인다. 그동안 개발자들은 엔비디아를 마이크로소프트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봤다. 엔비디아가 표면적으로는 반도체나 데이터센터 장비를 생산해왔지만, MS처럼 운영 체제나 프로그래밍 환경 등도 조성해왔기 때문이다. 애플과 비슷한 면도 있다. 엔비디아 플랫폼은 애플의 모바일 운영 체제 iOS(앱스토어)처럼 폐쇄적이다. 쿠다의 AI 개발 프레임워크나 도구, 라이브러리가 엔비디아 GPU에서만 작동한다. 쿠다를 사용하는 한, 엔비디아 칩을 써야만 한다. 애플이 아이폰을 판매하고 이후 구독 등 서비스로 이익을 거둔 점도 유사하다. 엔비디아는 현재 클라우드 서비스를 판매 중이다. 젠슨 황은 최근 여러 행사에서 “우리는 아이폰이 등장한 순간과 같은 혁명을 AI 분야에서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택받은 ‘칩’엔비디아는 지난해 4분기 매출 29조5000억 원, 순이익 16조4000억 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순이익률이 55.6%에 달했다. 지난해 분기 마진율(매출총이익률)이 70%가 넘게 나온 적도 있었다. (쿠다가 등장하기 전에는 마진율이 20%대였음)엔비디아가 AI 관련 시장에서 독점적 영역을 구축하고 놀랄 만큼 높은 이익을 거두자 빅테크들도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구글은 AI 연구개발에서 엔비디아 GPU를 대신할 수 있는 자체 칩(TPU)을 개발해 일부 사용하기 시작했다. 구글, 인텔, 퀄컴 등은 엔비디아 생태계에 맞서겠다며 손까지 잡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구글과 인텔, 퀄컴 등은 ‘UXL 재단’이라는 기술 컨소시엄을 구성해 ‘원API’라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해당 프로젝트는 어떤 반도체 칩이나 하드웨어에 상관없이 모든 컴퓨터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 iOS와 안드로이드 싸움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엔비디아를 대체할 수 있는 기업이 나올 수 있을까. 단기간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AMD나 구글이 엔비디아 못지않은 GPU를 ‘짠’하고 설계했다고 치자. 여기서 그쳐선 안 된다. 엔비디아가 멜라녹스를 인수하며 강화한 고속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NVLink)까지 갖춰야 한다. (멜라녹스만 한 회사가 아직 시장에 없다고 알려짐) 엔비디아의 DGX처럼 서버를 구축하려면 하드웨어 조립업체도 찾아야 한다. 더 큰 장벽이 있다. 쿠다 만큼 우수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쿠다 개발에는 수천 명의 전문가와 수조 원이 투입됐다. 무엇보다 쿠다에 대응하는 플랫폼을 내놓더라도 개발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개발자 400만 명의 ‘네트워크 효과’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없지만, 카카오톡 대신 다른 SNS를 쓰게 만드는 것만큼 어려워 보인다. 아, 경영진도 설득해야 한다. “시장에서 증명된 엔비디아를 두고 왜 다른 회사 제품을 구매해?”라는 답변이 돌아올 수 있다. 브랜드 파워가 이렇게 무섭다. 그런데, 빅테크 기업들이 대응책을 마련하는 동안 엔비디아는 가만히 있을까. 엔비디아는 6개월마다 신제품을 내놓는 괴물 같은 회사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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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엔비디아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上)[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마약보다 구하기 힘든 ‘H100’“지금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구하기가 마약보다 어렵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전 세계 정보기술(IT) 기업들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주력 제품이 인공지능(AI) 연구·개발의 필수재로 꼽히면서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수요가 몰리고 있어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5월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의 한 행사에서 엔비디아의 GPU 부족에 대해 언급했다. 품귀 현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현재 엔비디아의 최고 사양 GPU인 ‘H100’은 6개월은 기다려야 받아볼 수 있다. IT 기업들은 기다려서라도 받겠다는 상황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퓨처럼그룹의 수석 애널리스트인 대니얼 뉴먼은 “고객들은 엔비디아 경쟁사에서 제품을 구매하기보다 엔비디아 것을 기다리고 있다”며 “6개월이 아니라 1년 6개월을 기다려서라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엔비디아 실적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매출이 609억 달러(약 80조3900억 원), 영업이익은 329억 달러(약 43조4300억 원)로 전년보다 각각 125%, 311% 증가했다고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밝혔다. 4분기(11~1월) 영업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983%나 뛰었다. 시장 전망치를 넘어선 수치다. 엔비디아는 “H100과 같은 서버용 AI 칩 판매가 실적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데이터센터 사업도 409% 성장했다. 실적 발표 직후 뉴욕증시 시간외거래에서 엔비디아의 주가는 9.5%까지 증가했다.엔비디아의 주가는 연일 상승세다. 연초 470달러 수준에서 이달 8일 974달러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6월 1조 달러(약 1310조 원) 수준이었던 엔비디아의 기업가치는 2조 달러(약 2620조 원)마저 넘어섰다. 엔비디아는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사우디 아람코를 제치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비싼 회사가 됐다. 1위와 2위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이다. 뉴스트리트리서치 피에르 페라구 애널리스트는 “빅테크 업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들도 엔비디아 CEO인 젠슨 황에게 정말, 정말, 정말 정중하게 행동하고 있다. 모두가 엔비디아를 화나게 할까 봐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엔비디아 GPU가 뭐길래, 얼마나 중요하면 이렇게 난리일까. 엔비디아는 어쩌다가 이토록 중요한 제품을 개발하게 됐을까. ● 김밥천국을 좋아하는 남자 엔비디아를 창업한 젠슨 황 CEO는 1963년 2월 17일(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과 같은 날 출생) 대만의 남부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을 해외에서 살았다. 캐리어(에어컨 회사) 엔지니어였던 아버지가 ‘기회의 땅’에서 젠슨 황이 성장하기를 희망해서다. (황이 4살 무렵 미국 뉴욕에 갔다가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고, 이 같은 다짐을 했다고 한다) 젠슨 황의 부모는 황이 9살이 되자 미국 켄터키주 오네이다의 저렴한 기숙학교에 입학시켰다. 황은 “오네이다 마을에 온 최초의 중국인”이라고 회상했다. 등록금이 저렴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사고 친 아이들이 모이는 특수학교였기 때문.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그의 룸메이트는 일곱 군데의 자상(刺傷)에서 회복 중이었다. 황은 학교에서 인종 차별과 따돌림을 당했는데(칼에 찔린 적도 있다고 함), 좌절하지 않고 화장실 청소를 도맡아 했다. 자신보다 8살 많은 룸메이트에게는 수학을 가르쳐줬다.가정형편 탓에 몇 년이 지나서야 젠슨 황의 부모가 미국에 건너왔다. 가족은 워싱턴주를 거쳐 오리건주 포틀랜드 교외로 이사했다. 당시 공립학교에 다니던 황은 학업에서 재능을 보여(특히 수학) 남들보다 2년 일찍 오리건주립대에 입학했다. 전공은 전기공학. 반도체 산업에 발을 담근 건 1985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다. 황은 자신만큼 전기공학을 사랑한 아내를 만나 실리콘밸리로 이사했다. 반도체 기업 AMD(오늘날 엔비디아의 최대 라이벌)에 취업한 황 CEO는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8년여 끝에 미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엔지니어 경험을 쌓은 젠슨 황은 몇 년 후 LSI로직이라는 브로드컴 자회사로 이직했는데, 그의 가장 큰 고객사 중 한 곳이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자바 언어 개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였다. 1992년 석사 학위를 마친 황은 어느 날 썬에서 친하게 지내던 엔지니어들(크리스 말라코프스키, 커티스 프리엠)과 축하 자리를 가졌다. 황은 자신이 좋아하는 ‘데니스(Denny‘s)’에서 친구들을 보기로 했다. 데니스는 나초, 햄버거, 샌드위치 등 ‘미국식 백반’을 파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이다. 지점이 많고 24시간 영업해 ‘미국의 김밥천국’, ‘미국의 기사식당’으로 불린다. 학창 시절에 여기서 아르바이트했던 황은 “이때 경험이 외향적인 성격을 갖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지난해 그는 미 시사주간지 뉴요커와의 인터뷰도 데니스에서 했다.이곳에서 셋은 운명을 바꿀 대화를 나눴다. 썬의 엔지니어들은 “직장생활이 재미없다”면서 ‘게임용 3차원(3D) 그래픽카드’를 함께 개발하자며 창업을 제안했다. 일반 PC나 비디오게임에서도 3D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그래픽을 ‘가속(업무 처리 속도를 증폭)’하는 보급형 장치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였다. 평소 게임을 좋아했던 황은 금세 마음을 빼앗겼다. 당시 3D 그래픽에 관한 관심이 뜨거웠다. 영화 ‘쥬라기 공원’이 곧 개봉할 예정이었다. 다만, 3D 그래픽은 쥬라기 공원 제작비 정도는 있어야 활용할 수 있는 ‘비싼 기술’이었다. 이들의 안목이 대단한 이유는 대화를 나눈 시기가 1993년이었기 때문이다. PC(개인용 컴퓨터) 게임 시장 자체가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95’는 1년 반 후에나 등장했다. 시장이 생겨나기도 전에 제품부터 떠올린 셈이다.● “우리 회사 폐업까지 30일 남았습니다”세 사람은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투자사인 세퀘이아 캐피털 등에서 창업 자금을 지원받아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회사 이름부터 지어야 했다. 당시 이들은 첫 번째 그래픽 칩을 설계하고 있었는데, 작업 중인 파일을 ‘dot-NV’로 저장하고 있었다. ‘NV’는 ‘넥스트 버전(Next Version)’의 약자다. 세 사람은 ‘NV’가 포함된 단어를 찾기 위해 사전을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라틴어 ‘인비디아(Invidia)’를 발견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질투의 여신’의 이름이다. 그렇게 최초의 그래픽카드 전문 회사 ‘엔비디아(Nvidia)’가 탄생했다. 그에게 사업은 수학만큼 쉽지 않았다. 엔비디아는 처음 게임 기기용 그래픽 칩(카드)을 개발했는데 새로운 설계방식(아키텍처)을 택했다가 쫄딱 망했다. 3D PC 게임의 가능성을 본 것은 엔비디아만이 아니었다. MS는 윈도에서 개발자들이 3D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개발 생태계(DirectX)를 만들고 있었다. 개발자들은 윈도에서 직접 3D 그래픽을 구현하길 원했다. 엔비디아의 제품은 윈도 생태계에서 호환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개발자들이 ‘듣보잡’ 회사 제품에 관심 자체가 없었다. 엔비디아는 100여 명의 직원 중 70%를 해고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직원’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그래픽카드를 다시 설계하고, 프로토타입을 만든 뒤 파운드리(제조사)를 오가는 테스트 과정에 통상 2년은 걸리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쟁사들은 가만히 있을까.엔비디아는 100만 달러(약 13억 원)의 거금을 들여 이 과정을 대신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에뮬레이터)를 구매했다. 개발한 그래픽카드의 기능이 여러 PC에서 잘 작동하는지, 호환에는 이상 없는지 등을 빠르게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주 검증되지 않은 스타트업의 기술이었지만, 엔비디아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엔비디아는 이를 통해 6개월 만에 두 번째 그래픽카드인 ‘RIVA 128’을 1997년 8월 선보였다. PC용 그래픽카드인 RIVA 128은 경쟁사보다 1년 이상 앞선 제품이었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금세 입소문이 나면서 RIVA 128은 4개월 만에 100만 대나 팔렸다. ‘스타크래프트’ 출시 등 ‘게임 황금기’로 불린 1998년 엔비디아는 410만 달러(약 54억 원)의 이익을 거뒀다. 다음 해 엔비디아는 미국 증시에 상장됐다. 황은 “휘청거렸던 때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무너뜨리기 가장 어려운 CEO라고 불립니다”라고 말했다.참고로 RIVA 128 제품이 출시됐을 때 엔비디아에 남은 돈은 직원들 한 달 치 월급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몇 년 동안 엔비디아는 직원 프레젠테이션 때 ‘우리 회사는 폐업까지 30일 남았다’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스타트업 대표가 TSMC에 보낸 편지황이 자신을 ‘좀비 CEO’로 칭한 데는 단순히 사업 위기를 극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CPU의 세상에서 GPU(Graphics Card, 그래픽카드)를 살려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젠슨 황에 따르면 인텔은 엔비디아를 여러 차례 퇴출하려고 시도했다. 황은 인텔과 엔비디아를 ‘톰과 제리’에 비유하면서 “인텔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한다. 인텔이 가까이 올 때마다 나는 칩(GPU)을 들고 도망친다”고 말했다. 과거만 해도 GPU 시장은 틈새시장에 가까웠다. 당시 PC 시장은 훨씬 더 똑똑한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 Central Processing Unit)가 점령하고 있었다.CPU는 사람이 디지털 기기에 특정 업무를 지시하면 이를 해독하고, 제어하고, 계산하는 장치다. 컴퓨터 ‘두뇌’라고 보면 된다. 인텔의 CPU는 1980년대 PC에 탑재된 이후로 거의 모든 분야에 사용됐다. 데이터 처리 시장에서 99%라는 어마어마한 점유율을 차지했었다. 인텔이 수십 년 동안 세계 최대 칩 제조업체로 자리할 수 있었던 이유다. (현재는 아님) 앞으로 언급할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과 구글의 광고 추천, 챗GPT 등장에서 엔비디아의 역할을 이해하려면 CPU와 GPU의 차이를 알고 넘어가야 한다. 어렵고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는 CPU는 차례대로 업무를 수행하는 장치다. 저장한 엑셀 파일을 불러오고, 인터넷을 실행하고, 동영상을 재생하는 작업을 CPU가 한다. 반면, GPU는 복잡한 수학 작업을 아주 작은 계산으로 나눈 다음에 ‘병렬 컴퓨팅’이라는 방식으로 한꺼번에 처리한다.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간다고 생각해보자. 쇼핑카트를 직접 밀면서 쇼핑하는 것이 CPU다. 마트 통로를 돌아다니며 적어 놓은 쇼핑목록을 하나씩 집어넣고 계산대로 간다. 빠르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할 수 있다. GPU는 여러 사람에게 손바구니를 쥐여주고 각자 사 올 것을 지시하는 개념이다. 각자 흩어져 과일이나 화장지, 물, 고기 등을 담아온다. 손바구니에 TV나 청소기를 담아오긴 어렵지만,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은 제품들을 빠르게(동시에 흩어져 가져오는 만큼) 쇼핑할 수 있다. 다량의 단순 업무를 수행할 때, 상대적으로 정확도보다 속도가 중요할 때 GPU가 적합하다는 의미다.처음 GPU가 비디오게임용으로 개발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미지 픽셀들을 하나하나 명령해 동시에 모니터에 출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CPU도 게임용으로 활용은 가능하지만, 1초당 화면이 수십 번 이상 바뀌는 게임에서는 GPU가 더 적합하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엔비디아가 존재하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인텔에 의해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며 “게임은 엔비디아가 GPU라는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엔비디아가 RIVA 128로 50억 원 이상을 벌었지만, 아직은 스타트업 수준. 그런데, 이때 엔비디아는 대만 TSMC와 위탁생산 계약을 맺었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2017년 TSMC 창립 30주년 행사에서 비밀이 밝혀졌다. 엔비디아는 사업을 시작하고 TSMC에 계속 접촉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씹혔다. 젠슨 황은 RIVA 128이 소기의 성과를 내고 나서 대만에 있는 모리스 창 TSMC 창업자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보냈다.모리스 창은 편지를 읽자마자 젠슨 황에게 전화를 걸었다. 황과 직원들은 고객에게 보낼 RIVA 128 제품이 이상은 없는지 수작업으로 테스트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처음 보는 전화번호에 황은 “누구시죠?”라고 물었고, 모리스 창은 자신이 누군지 밝히며 “편지 잘 받았다”고 인사했다. 몇 초 동안 전화에서 침묵과 환호성이 공존했다.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스타트업 대표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고 상상해보자. 일단 수화기를 막고 소리치지 않았을까. 딱 그 상황이다. 둘이 통화한 다음 해에 엔비디아는 TSMC와 장기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이때 맺어진 인연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엔비디아가 이후 내놓은 ‘괴물 GPU’들을 시장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던 데에는 TSMC의 역할이 컸다. ● 엔비디아와 개발자들의 첫 연결고리 ‘지포스’엔비디아는 RIVA 128을 계속 업그레이드시켰는데, 1999년 공모전을 통해 그래픽카드의 이름을 지었다. ‘지오메트리 포스’를 줄인 ‘지포스(GeForce)’다. 이는 엔비디아의 첫 브랜딩 시도였다. 결국, 지포스는 수년간 엔비디아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엔비디아는 1999년 8월 지포스 이름을 단 제품(지포스 256)을 선보였는데, 이 모델이 최초의 GPU(Graphics Card)로 꼽힌다. 이전에는 ‘그래픽카드’나 ‘그래픽칩’으로 불렸다. 지포스 256은 경쟁사 GPU들보다 성능이 5배가량 뛰어났다. 쉽게 말해, 경쟁사보다 더 좋은 화질을 더 빠르게 구현하는 기술을 내놨다는 의미다. 2000년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공부하던 대학원생 이안 벅은 23개의 지포스 GPU를 연결해 ‘퀘이크’라는 게임을 즐겼다. 그는 “8K 해상도의 첫 번째 게임 장비였다”며 “게임을 위한 장비가 벽 한쪽을 통째로 차지했는데, 정말 아름다웠다”고 회상했다.지포스 시리즈는 단숨에 게임용 그래픽카드 시장을 평정했다. 2013년(엔비디아 설립 20주년) 기준 전 세계 PC의 70%가 엔비디아의 GPU를 썼다. 엔비디아는 MS 콘솔 게임기 엑스박스(Xbox)에 GPU를 공급하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연간 5억 달러(약 66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의 GPU가 다른 그래픽카드와 큰 차이를 보인 것 중 하나가 프로그래밍 도구인 ‘셰이더(Shader)’다. 조명, 입체감, 그림자 등을 개발자들이 직접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래밍 기능을 GPU(정확히는 지포스3)에 넣은 것. 엔지니어가 명령어를 넣는 일상 작업뿐만 아니라, 팔레트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창의성을 발휘해 화면을 구현할 수 있게 했다.이러한 기술 개발은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하드웨어 성능뿐만 아니라 (우리 하드웨어에서만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구축해 차별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애플이 아이폰뿐만 아니라 앱스토어를 만들어 개발자들이 각종 앱을 만들게 한 것과 유사하다. 엔비디아는 이후 개발한 프로그래밍 플랫폼 ‘쿠다(CUDA)’에서 이 같은 전략을 극대화한다. 엔비디아는 마이크로소프트와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CG)도 만들어 GPU 개발 생태계를 구축했다. 일각에서는 이때부터 ‘개발자’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으로 본다.엔비디아가 기술적으로나 사업적으로 뛰어났던 또 다른 이유는 독보적으로 빠른 신제품 출시 간격이다. 엔비디아는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6개월마다 성능이 향상된 새 제품을 선보였다. 반면, 1년 반에서 2년마다 새로운 것을 내놨던 경쟁사들은 하나둘씩 조용히 사라졌다.● 거대한 아르키메데스 지렛대그런데, 게임용 장치를 만들던 엔비디아는 어쩌다가 인공지능 분야에 뛰어들게 됐을까. 2000년대 초반 엔비디아가 그래픽카드 시장에서 한창 잘 나가고 있을 무렵 젠슨 황은 스탠퍼드대의 한 양자화학 연구원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다짜고짜 “당신 덕분에 오래 걸릴 연구를 단번에 해치웠다. 감사하다”고 인사했다.분자 관련 모델을 만들던 연구원은 단순 연산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학교의 슈퍼컴퓨터를 이용해도 몇 주나 걸리는 작업이었다. (초기 슈퍼컴퓨터가 CPU의 성능 위주로 구성돼 있었기 때문) 그런데 게임에 빠져 있던 아들이 단순 계산 작업이니 지포스(GPU)를 활용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연구원은 가전제품 매장인 프라이스에 가서 지포스 여러 개를 구매해 몇 시간 만에 연산을 해치웠다. 결과를 믿을 수 없었던 연구원은 스탠퍼드대의 슈퍼컴퓨터에서 똑같은 작업을 수행했다. 몇 주 뒤 나온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황은 이를 통해 게임 화면 개선 이외에 GPU의 활용 가능성을 알아챘다. 그는 GPU를 ‘거대한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무거운 것(대규모 작업)을 들어 올릴 수 있는 GPU의 능력을 비유한 것이다. GPU는 패턴과 관계를 인식하고, 추론하고, 예측하는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최근 10년 동안 인공지능 속도가 100만 배 이상 향상된 배경에는 엔비디아의 GPU가 있었다.사실, 엔비디아의 GPU는 인공지능 열풍이 불기 한참 전부터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있었다. 유튜브 영상 추천, 인스타그램 피드, 구글 광고 등이 전부 GPU를 활용한 알고리즘으로 작동한다. 한국벤처창업학회장을 역임한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 교수는 “엔비디아는 처음에는 핵심 고객인 게이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GPU 성능을 계속 발전시켜나갔다. 그 덕분에 알고리즘 추천이나 AI 등 새로운 시장에서 돋보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물론, 단번에 엔비디아가 이를 실현한 것은 아니었다.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는 10년여 간의 과정이 있었다. 2012년 이미지 인식 대회에 참가해 세상을 놀라게 한 미 토론토대 연구원들 이야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엔비디아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下)’ 편은 30일 소개합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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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잉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습니다[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알래스카 1212편, 비상사태입니다”지난달 5일(현지 시간) 금요일 오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공항. 캘리포니아주 온타리오로 가는 알래스카항공 1282편은 주말을 앞두고 승무원과 탑승객 177명으로 만석에 가까웠다. 26열 왼쪽을 포함해 몇몇 좌석만 비어있었다. 기내는 조용했다. 좌석 등받이에는 스크린이 없었고 이륙을 위해 내부 조명은 어두워져 있었다. 1282편 여객기는 4시 52분 게이트를 떠나 5시가 조금 넘어 이륙했다. 10분 후, 비행기가 지상 약 4880미터 고도에 이르렀을 무렵 26열에서 ‘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비행기 옆면에 구멍이 뚫렸다. 벽으로 개조한 비상구 덮개가 뜯겨 나간 것이다. 당시 비행기는 시속 440마일(약 708km)로 운항 중이었다.산소마스크가 승객들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한 승객이 “비행기 측면에 구멍이 났다”고 소리쳤고, 일부 승객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무원은 승객들에게 안전벨트를 매고 자리에 앉아있으라고 명령했다. 1282편 조종사는 항공 교통 관제소에 즉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비행기가 압력을 잃어 돌아가야 한다”고 전하고 회항을 결정했다. 이후 약 10분 동안 ‘죽음의 운항’이 이어졌다. 26열의 비상구 바로 옆 좌석 두 곳에는 승객이 없었지만, 인근에 앉아있던 10대 소년은 입고 있던 셔츠가 통째로 벗겨져 밖으로 빨려 나갔다. 27열에 앉아 있던 조시아 맥컬 군(12)은 자신이 놀라 떨어뜨린 휴대전화가 구멍 사이로 날아가는 것을 지켜봤다. 할머니가 캄보디아에 다녀와 선물한 연갈색 곰인형도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맥컬 군은 “1초 정도 고요했다가 얼어붙을 것 같이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어요”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히크먼 씨(44)는 원래 29석에 예약돼 있었다. 탑승 직전 함께 탈 어머니가 불편할까 봐 좌석을 업그레이드해 일등석 바로 뒤인 8번째 줄에 앉아있었다. 구멍에서 꽤 떨어진 자리였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비행기가 추락하면 좌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옆자리에 앉은 여성이 그에게 “손을 좀 잡아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히크먼 씨와 그의 어머니는 여성의 손을 꼭 잡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공포에 질린 승객들은 가족과 지인들을 찾았다. 니콜라스 호크 씨(33)는 “하얀 수증기나 구름 같은 것이 기내에 흘러 들어왔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스테파니 킹 씨도 “남자친구와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1282편은 인명 피해를 보지 않고 5시 27분 포틀랜드공항에 긴급 비상 착륙했다. 탑승객들에 따르면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뒤에도 기내는 한참 동안 조용했다. “잠시 자리에서 기다려 달라”는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오자 승객들은 그제야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 “여러분의 가족이 탔을 수도 있습니다” 미 연방항공청(FAA)은 다음날인 6일 1282편의 사고 기종인 ‘보잉 737 맥스9’의 운항을 전면 중단시키고 점검을 지시했다. 미국 내 171대의 737 맥스9이 4~8시간씩 점검받았다.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사고 원인을 찾기 위해 포틀랜드에 진상 조사단을 파견했다. 최우선 과제는 사라진 ‘비상구 덮개(도어 플러그)’를 찾는 것. 도어 플러그는 창문과 벽체로 이뤄진 일종의 덮개다. 더 많은 좌석을 넣기 위해 불필요한 비상구를 막는 데 쓰인다. 폭 66㎝, 높이 121.9㎝ 크기의 30㎏짜리 덮개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행기의 경로를 추적하고, 관련 지역 사람들에게 마당과 건물 옥상 등을 뒤져봐 달라고 요청해야 했다. 이틀 뒤, 과학 교사인 밥 사우어의 집 뒷마당에서 ‘문짝’을 발견했다. NTSB는 도어 플러그에서 문을 비행기에 고정하는데 사용되는 볼트 4개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NTSB 관계자들은 볼트가 애초에 제대로 설치돼 있었는지를 파악 중이다. 737 맥스9의 도어 플러그는 볼트 4개와 12개의 고정용 부품으로 동체에 결합한다. 항공사들의 자체 조사 결과 미국 내 동일 기종에서 유사한 결함이 발견됐다. 미 유나이티드항공은 737 맥스9 79대 중 약 10대에서 도어 플러그의 볼트가 충분히 조여지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8일 발표했다. 알래스카항공도 65대 중 일부에서 비슷한 문제를 발견했다.주말이 지나고 8일 뉴욕 증시에서 보잉 주가는 8% 넘게 하락했다. 미국 증시가 1월 내내 상승 랠리를 펼쳤지만, 보잉의 주가는 이후에도 하락세를 보였다. 여행객들이 737 맥스9 기종의 탑승을 피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항공사와 여행사에 비행기 기종과 좌석 배치를 묻는 전화가 이어졌다. 여행을 앞둔 이스트버그 씨(25)는 “제 좌석이 26열(덮개가 날아간)과 가깝다. 창가 자리라 더 걱정된다”고 전했다. 미 항공기 제작사 보잉의 데이브 칼훈 최고경영자(CEO)는 9일 미 시애틀 인근 737 공장에서 열린 직원 간담회에서 여객기 안전사고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는 손상된 비행기 사진을 떠올리며 “나도 자식이 있고 손자가 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일이 될 수 있으니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26일 검사 및 유지보수 절차를 거친 737 맥스9이 3주 만에 운항을 재개했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1282편 이후에도 일부 보잉 항공기가 말썽을 일으켰다. 17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탑승하려던 보잉 737 미국 공군기에서 산소 유출이 탐지되는 결함이 발견됐다. 20일에는 보잉 757 기종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미 항공사 델타항공 982편이 애틀랜타 하츠필드 잭슨 국제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중에 앞바퀴가 떨어져 나갔다. 당시 982편에는 170명 넘는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다. 미국 항공사 CEO들은 운행 지연 등 보잉 항공기 사고로 발생한 손실을 토로하면서 쓴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알래스카항공은 1282편 사고 여파로 2000억 원가량의 손실을 보았다고 밝혔다. 벤 미니쿠치 알래스카항공 CEO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좌절과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유나이티드항공은 보잉과의 계약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양사는 미국에서 737 맥스9 기종을 가장 많이 운용해온 주요 고객이다. 로버트 아이솜 아메리칸항공 CEO는 애널리스트들과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보잉 정말 정신 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우리가 성공하지 못하면 그들도 성공하지 못합니다”일각에서는 보잉이 항공기 제조 비용을 줄이려고 과도하게 ‘아웃소싱’을 한 것이 결함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보잉은 10조 원이 넘는 비행기 개발비를 줄이기 위해 2000년대 중반부터 기체 주요 부분의 설계와 제작을 외부 업체에 맡겨왔다. 보잉이 최종 조립에 집중해 수익성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었다. 항공기 기체 부품 제조사인 ‘스피릿 에어로시스템’은 보잉의 핵심 공급사다. 2005년 보잉에서 분사돼 사모펀드사인 오넥스에 매각됐다. 1916년 보잉 창립 이후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품질 관리가 외부로 넘어간 것. 1282편의 추락한 덮개를 포함해 보잉 737 맥스9의 70%가량을 스피릿이 제작한다. 스피릿은 캔자스주 위치타 공장에서 알루미늄 동체 등을 제작해 워싱턴주 렌튼의 보잉 공장으로 보낸다. 보잉 737 맥스 같은 단일통로(Single-aisle) 항공기는 40만 개 이상의 부품으로 구성되는데, 배관작업(튜브)과 함께 날개와 꼬리 등을 볼트로 조여 조립한 뒤 내부를 장식한다. 현재 보잉은 매월 약 38대의 항공기를 생산 중이다. 내년엔 50대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외신들은 보잉의 압박과 스피릿의 과도한 업무 할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보잉의 결함 문제로 이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피릿의 전현직 직원들은 보잉이 생산 속도를 높이라고 무리하게 요구해 직원들이 과도한 업무에 허덕이고 있다”고 13일 전했다. 스피릿 직원들은 하루 2대 속도로 기체를 생산할 경우 한 달간 볼트와 패스너, 리벳 등을 조합해 채워야 하는 구멍이 1000만 개에 달한다고 주장했다.코넬 비어드 국제기계항공노조 스피릿 위치타 공장 지부장은 “스피릿이 직원들에게 작업을 너무 재촉해 전 세계 곳곳에 문제가 있을 법한 비행기가 돌아다니고 있다”고 꼬집었다.2018년, 2019년 추락 사고 이후에도 비슷한 지적이 있었지만, 보잉은 아웃소싱 관행을 크게 손보지 않았다. 737 맥스8 기종은 2018년 인도네시아, 2019년 에티오피아에서 운항 중 추락한 바 있다. 당시 탑승자 전원(총 346명)이 목숨을 잃었다. FAA는 2019년 3월 맥스8의 운행을 중단시켰다가 결함 보완 후 2020년 12월 운항을 재개했다. 737 맥스는 크기에 따라 7, 8, 9, 10(7이 가장 작음)으로 구분된다.보잉과 스피릿은 지난해 4월과 8월에도 결함으로 737 맥스의 납품을 일시 중단했다. 4월에는 수직 꼬리날개를 동체와 연결하는 부품이 말썽을 일으켰고, 8월에는 기내 압력 유지 부품에서 의도치 않은 구멍이 발견됐다. 대형 사고와 각종 결함에 대한 화살이 부품 제조사에 날아오자 스피릿 CEO가 나섰다. 팻 샤나한 스피릿 CEO는 지난해 가을 한 인터뷰에서 “우리가 성공하지 못하면 그들도(보잉) 성공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비행기 품질 문제가 단순히 스피릿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 의도치 않았던 ‘737 맥스’ 개발 보잉은 비용과 생산 속도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비판을 수년간 받아왔다. 보잉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이 기종을 개발하면서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737 맥스’다. 2011년 초 보잉에 위기가 찾아왔다. 10년 넘게 보잉에서만 여객기를 받아온 아메리칸항공이 유럽연합의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에 신형 제트기 수백 대를 주문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에어버스는 2010년 단일통로형 항공기 A320의 연료 효율을 높인 업그레이드 버전 A320네오(neo)를 선보였는데, 아메리칸항공이 이 기종을 눈여겨본 것이다. 당시 항공사들의 여객기 선호도도 초대형에서 에어버스 A350, 보잉 787 같은 쌍발 광동체 여객기(통로와 엔진이 각각 2개인), A320 등의 단일통로형으로 바뀌는 시기였다. 가격이 비싸고 연료 소비가 큰 초대형 비행기의 효율성이 떨어져서다. 항공 수요에 따라 수익 변동성도 컸다. 손님을 가득 채우지 못하고 뜨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2008년 에어버스는 483대 비행기를 인도했지만, 보잉은 375대에 불과했다”며 “에어버스는 2011년 파리에어쇼에서 약 730대를 주문받았는데, 연료 효율성이 높은 신형 기종 A320네오가 인기를 끌었다”고 2019년 전했다.에어버스에 주문량을 추월당한 보잉은 A320네오의 경쟁 모델인 737을 완전히 새로운 기종으로 바꾸려는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737을 빠르게 업그레이드(737 맥스)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혁신보다 수익성을 택한 셈이다. 한 전직 보잉 임원은 “보잉이 맥스를 제작하기로 한 이유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쉽고, 저렴하며, 항공사(고객)에는 연료 절감 효과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1년 아메리칸항공이 737 업그레이드버전 100대를 주문하기로 하면서 같은 해 8월 맥스 개발이 시작됐는데, 보잉은 에어버스를 따라잡기 위해 개발에 속도를 냈다. 보잉 직원들은 촉박한 일정에 압박이 심했다고 털어놨다. 보잉의 전직 직원들은 “엔지니어들이 평소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기술 도면과 설계를 제출해야 했다”고 NYT에 전했다. 배선 조립을 담당했던 한 엔지니어는 “몇 달 동안 개발자들이 엉성한 청사진을 전달했다”며 “배선 관련 사항은 개발 후반부에 정리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청사진에는 복잡한 지침들이 전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 파멸로 이끈 속도전아이러니하게도 737 맥스 개발의 핵심은 전작인 737과 동일한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FAA 등으로부터 인증을 빠르게 받기 위해서였다. 이는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중요했다. 기존과 다른 모델로 인증을 받게 되면 조종사들이 추가로 훈련받아야 한다. 항공사들에는 제법 큰 비용이다. 보잉은 A320네오의 연료 효율성을 넘어서기 위해 (A320네오보다 연료 소모를 4% 낮추는 것이 목표) 737 맥스에 새 엔진을 장착했는데, 공기 역학이 달라지는 바람에 기체가 기울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보잉은 항공기의 기울기가 적당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기수를 조정하는 소프트웨어(MCAS·기동 특성 증대 시스템)를 추가했다. 하지만, 보잉은 이러한 변화를 조종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NYT는 “이 시스템은 백그라운드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보잉은 조종사에게 이 시스템에 관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규제 당국도 이에 동의했다. 조종사는 시뮬레이터로 훈련할 필요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맥스의 새로운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총 346명을 사망하게 만든 2018년, 2019년 추락 사고의 원인이 됐다. 데니스 뮬렌버그 당시 보잉 CEO는 소프트웨어 센서의 오작동이 737 맥스 추락 사고의 원인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뮬렌버그 CEO는 2019년 10월 물러났고(사실상 해고), 칼훈 현 최고경영자가 자리를 이어 받았다. 규제 기관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미 연방항공청(FAA)이 비행기 제조사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01년부터 보잉은 자체 안전 테스트를 더 많이 수행하기 위해 로비를 활발히 했고, FAA가 2005년부터 이를 허용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한 전직 보잉 고문은 이를 두고 “어린아이에게 과자 가게를 맡긴 것과 같다”고 평했다. NYT에 따르면 보잉은 737 맥스 사고로 2019년 80억 달러(약 10조600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2021년에는 추락 사고와 관련해 미국 법무부와 25억 달러(약 3조3300억 원)의 벌금을 납부하는 데 동의했다. ● “아이디어는 달러로 측정된다”보잉의 추락사고와 각종 결함은 속도와 비용 등을 우선시한 데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737 맥스의 실패는 속도와 비용, 무엇보다도 주주 가치에 중점을 둔 결과”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뮬렌버그가 2015년 CEO에 자리한 뒤 공급업체(스피릿 같은)에 가격 양보(마진 축소)를 요구하고 엔지니어에게 더 많은 부담을 안겼다. 더 많은 비행기를 생산하면서 인력을 7% 감축한 뮬렌버그의 지휘 아래 효율성 추구가 가속했다”고 꼬집었다. 보잉 전 엔지니어는 “회사의 끊임없는 비용 절감에 안전이 희생됐다”라고도 했다. 737 맥스의 연료 시스템 기술자는 아담 딕슨은 보잉에서 30년 근무했다가 2018년 11월 회사를 그만뒀다. 그가 “회사의 이윤과 맞닿아 있는 성능 목표에 도달하려면 안전을 희생해야 했다. 이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회사를 나왔다”고 했다. 전직 보잉 직원에 따르면 엔지니어의 설계 비용은 연례 성과 평가에 반영됐다. 한 관리자는 한 엔지니어의 연례 평가에서 “아이디어는 달러로 측정된다”고 말했다.보잉은 이에 대해 강하게 부정했다. 보잉은 “비용을 우선시한다는 일각의 우려에 동의할 수 없다. 안전을 성과나 목표와 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보잉이 혁신보다 지나치게 주주 가치에 신경 썼다는 비판도 있었다. 보잉 경영진은 2010년부터 400억 달러(약 53조4000억 원) 이상을 자사주 매입에 쏟아 부었다. 블룸버그는 “이 전략으로 보잉은 월스트리트를 열광시키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에서 한동안 최고의 실적을 기록했지만, 불황과 새로운 경쟁 위협에 대한 대비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보잉은 추락사고와 결함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품질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기존의 경영 방식을 크게 바꾸진 않았다. 오히려 공급사에 책임을 떠넘겼다는 주장도 있었다. 스피릿의 전직 품질 검사관인 조슈아 딘은 보잉이 2018년, 2019년 사고 이후 공급사들에 결함을 줄일 것을 요구했고, 이는 품질 제고가 아닌 결함 축소 보고로 이어졌다고 폭로했다. 그는 “스피릿 직원들은 품질 관련 우려가 관리자에 전달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품질 검사관들은 문제를 많이 지적할 경우 보복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지난해 스피릿 노조는 다수의 결함을 발견한 검사관들이 계약직으로 바뀐 것에 대해 회사에 항의했다. 딘은 자신이 기체에 잘못 뚫린 구멍을 지적한 뒤 해고됐다고 주장했다. ● 추락만큼 무서웠던 팬데믹 2020년 말 737 맥스의 운항이 재개됐지만,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거치면서 보잉은 최근까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보잉은 한 분기에만 수천억 원의 손실을 보았다. 2020년부터 6개 분기 연속 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보잉은 (추락 사고에 따른) 737 맥스 운항 중단, 팬데믹 등 두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 약 390억 달러(약 51조9000억 원)의 순부채를 재무제표에 기록하고 있다”고 최근 전했다.매출의 대부분을 보잉의 737에 의존해 온 스피릿(보잉 기체 납품사)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2019년 말 미국 내 4개 공장에서 1만59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던 스피릿은 팬데믹으로 수천 명을 해고했다. 리오프닝 이후 여객, 화물 등 항공 수요가 급증했지만, 이번에는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인재들이 아마존의 블루오리진이나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같은 돈 많은 우주탐사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WSJ은 “단순히 직원을 잃은 개념이 아니다. 스피릿은 수년간 쌓아온 전문성을 잃었다”며 “숙련된 정비사나 작업 품질을 검사할 수 있는 전문가도 부족했다”고 전했다. 이는 보잉도 마찬가지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737 맥스 추락사고 이후 3200명 이상의 엔지니어가 보잉을 떠나 아마존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보잉과 스피릿의 재정적 위기와 공급망 문제, 인력 부족 사태 등은 항공기 생산 지연으로 최근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일부 고객사들이 크게 반발했다. 저가 항공사인 라이언에어의 마이클 오리어리 CEO는 “머리 없는 닭처럼 (생각 없이) 뛰어다니고 있다”며 지난해 보잉 경영진을 비판했다. 블룸버그는 “같은 업계에 있으면 한 다리 건너 아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CEO 해임을 요구하는 경우는 드물다. 설사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어도 공개적으로 비난하진 않는다”며 보잉에 대한 비판이 이례적이라고 평했다.● 737 맥스, 가장 성공적인 ‘실패작’으로 남을까 일각에서 737 맥스를 ‘실패작’으로까지 깎아내렸지만, 추락사고 이전까지만 해도 이 기종은 보잉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보잉이 처음 737 맥스를 내놓았을 때 주문이 5000대 넘게 들어왔었다. 이 기종의 가격이 약 1억 달러(약 1300억 원)부터 시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수익이 확보됐던 셈이다. 보잉이 2017년부터 현재까지 인도한 737 맥스는 1370대 수준이다. 최근 미중 관계가 개선할 여지를 보이면서 보잉은 지난달 중국남방항공에 737 맥스의 인도 재개를 준비하고 있었다. 2019년 추락사고 이후 4년 넘게 기다려온 인도였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지난달 737 맥스 기종에서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결함이 발생했다. WSJ은 “결함에 따른 추가 검사가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 없지만, 베이징에 의해 수년간 동결된 인도 시점에 불확실성을 더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향후 20년 동안 전 세계 항공기 인도량의 5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시장으로 꼽히는 곳이다. 보잉은 지난달 문짝이 떨어지는 결함은 2018, 2019년 추락사고에 비하면 굉장히 경미한 문제라고 판단할지 모른다. 일단 인명 피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보잉이 ‘문짝 이탈’ 결함을 추락사고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뢰가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브룩 서덜랜드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지난해 737 맥스에서 결함이 발견됐을 때 이렇게 말했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보이면 더 많은 바퀴벌레가 있을 수 있다’는 진부한 표현이 있다.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이제 문제는 얼마나 더 많은 바퀴벌레가 남아있느냐는 것이다.”보잉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품질 관리를 개선하고 과거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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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서 억만장자처럼 쇼핑할 수 있습니다”[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테무에서 억만장자처럼 쇼핑하세요”미 매사추세츠주(州) 다트머스에 사는 창고 시설 관리자 캐시 베네티(68)는 지난해 말 중국 온라인 쇼핑 플랫폼 ‘테무(TEMU)’에 처음 접속했다가 깜짝 놀랐다.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장바구니에는 금세 제품 14개가 담겼다. 총 결제 금액은 90달러(약 11만7000원)에 불과했다. 그가 산 고기 연육제는 69센트(900원), 스웨터는 10달러(1만3000원), 재킷은 15달러(1만9500원)였다. 며칠 뒤, 테무를 다시 찾은 베네티는 223달러(약 29만 원)를 내고 34개 품목을 구매했다. 그는 “여러 상품이 아마존보다 저렴하다는 점에 놀랐다”고 말했다.중국의 초저가 온라인 쇼핑몰 ‘테무’가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테무는 중국 3위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拼多多)가 지난해 9월 미국에서 출시한 쇼핑 앱이다. 미국의 쇼핑 대목인 블랙프라이데이가 있었던 11월 테무의 미국 거래액은 전월보다 29% 증가했다. 테무의 올해 해외 거래액은 140억 달러(약 18조2400억 원)에 달한다. 내년 목표치로는 300억 달러(약 39조 원)를 내세웠다.테무는 올해 2월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 슈퍼볼(Super Bowl) 광고에도 등장했다. 30초짜리 영상에는 곱슬머리 여성 모델이 스마트폰을 계속 두드리며 원피스와 구두 등을 끊임없이 쇼핑하는 장면이 나온다. 광고의 마지막 문구가 강렬하다. “테무 앱을 다운로드하고 억만장자처럼 쇼핑하세요.” (참고로 올해 슈퍼볼 광고비는 1초당 3억 원 수준이었다. 광고를 한 번 트는데 회사가 90억 원가량을 쓴 것) 미국에서 테무의 흥행 덕분에 앱을 선보인 핀둬둬의 기업 가치도 크게 뛰었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핀둬둬의 시가총액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기준 1958억 달러(약 255조 원)로, 알리바바(1905억 달러)까지 제쳤다. 정말 무서운 기세다. 핀둬둬의 테무는 현재 미국 이외에 유럽, 일본 등 40여 국가에 진출한 상태다. 한국에는 올해 7월 등장했는데 벌써 350만 명의 사용자를 모았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이 가격이 진짜 맞나’ 의심하게 될 정도다. 5만9839원짜리 겨울용 남성 신발을 84% 할인해 9059원에 판매(27일 기준) 중이다. 여행용 배낭은 1만5452원, 가죽 벨트는 6689원이다. 정말 가죽이 맞긴 한 걸까)● 리콴유를 동경한 청년 사업가8년 전만 해도 핀둬둬가 알리바바를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중국 쇼핑 앱 시장은 알리바바와 징둥닷컴이 굳건히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핀둬둬는 구글 엔지니어 출신의 1980년생 황정(黃崢, 콜린 황)이 창업했다. 황정은 알리바바 본사가 있는 항저우에서 자랐다. 중학교를 마치지 못한 그의 부모는 공장에서 일했지만, 황정은 12살에 지역 명문 학교인 항저우 외국어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수재였다. 그는 중국 저장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위스콘신대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학교에 다니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인턴 생활도 했다. 황정은 2004년 졸업을 앞두고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에 동시에 합격했다. 당시 MS는 PC 윈도 등으로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었지만, 구글은 검증되지 않은 검색 엔진 회사였다. 뉴욕 증시에도 아직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는 “확실치 않은 미래가 맘에 든다”라면서 구글을 택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황정은 구글에서 주로 검색 알고리즘을 연구했다. 2006년, 그는 중국 지사에서 바이두 등 현지 업체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는데 미국 캘리포니아주 본사에 수시로 가야 했다. 검색 결과의 글자 크기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 창업자들(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사인을 받아야 했다.구글 상장 초기에 투자해 이미 수십억을 번 황정은 2007년 회사를 나와 스마트폰 등을 판매하는 온라인 플랫폼 회사를 차렸다. 3년 뒤, 황정은 자신의 사업이 차별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매각했다. 이후 웹사이트 마케팅 회사, 게임 회사를 만들었고, 두 회사 모두 성공을 거뒀다. 그는 주변에 “재정적으로 자유로워졌다”고 이야기했다.2013년 그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는데, 집에서 1년간 머무는 동안 생각이 변했다. 리콴유 싱가포르 초대 총리와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벤저민 프랭클린을 존경한다는 그는 세상을 바꾸는 일에 여전히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가 중국의 두 거대 기업이 황정의 눈에 들어왔다.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와 중국 최고의 게임 회사이자 ‘중국판 카카오톡’ 위챗을 보유한 텐센트다. ● 전자상거래와 게임의 만남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며 중국의 핵심 기업으로 거듭났지만, 상대방의 사업 영역에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황정은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 두 회사는 서로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상거래와 게임에서 창업 경험이 있는 그는 두 분야를 합치면 엄청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쇼핑 앱을 게임처럼 재밌게 만들겠다는 전략을 세웠다.황정은 2015년 100억 원가량을 투자받아 전자상거래 회사 ‘핀둬둬’를 차리고 몇 달 뒤 애플리케이션(앱)을 선보였다. 중국에서 내놓은 앱 이름은 회사 이름과 같은 핀둬둬였다. 그는 일단 물건이 저렴해야 사람들이 만족감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제조사와 고객을 직접 연결하는 ‘C2M(Customer-to-Manufacturer)’ 비즈니스 모델을 택했다. 유통 비용을 없앤 것. 핀둬둬가 받는 거래 수수료가 0.6%다. 사실상 회사도 수수료를 안 받는 셈이다. 대신, 판매자에게 광고비를 받아 수익을 올렸다. 매출의 70%가량이 광고비에서 나온다.핀둬둬는 일정 고객 이상이 모이면 제품 가격을 깎아주는 ‘대륙판 공동구매’로 이보다 가격을 더 낮췄다. 주문 물량을 어느 정도 확보해 판매자가 가격을 더 낮출 수 있게 했다.핀둬둬는 고객들이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으로 지인들의 참여를 독려하게 했다. 고객이 지인에게 “그룹 초대에 참여하고 정장 한 벌을 48위안(8700원)에 구매하시겠습니까?” 같은 메시지를 보내는 식이다. 중국어로 ‘핀’은 ‘모은다’, ‘둬둬’는 ‘많이’라는 뜻이다. 회사 이름에 ‘많이 모이면 저렴하게 해준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듯하다. 쇼핑 앱 곳곳에는 ‘게임적 요소’를 배치했다. 고객이 룰렛을 돌리거나, 가상의 물고기를 키우면 할인 쿠폰을 주는 방식이다. 핀둬둬 관계자는 “반짝 세일을 연상케 하는 한정 시간 판매, 백화점 행사 같은 행운권 추첨도 있다. 친숙한 오프라인 경험을 디지털 세계에 재현해 재미와 친숙함을 더했다”고 했다. 보통 고객들은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아무 이유 없이 들리지 않는다. ‘수건을 사야겠다’, ‘콜라가 떨어졌네’ 같은 목적을 가지고 앱을 켠다. 플랫폼에선 물건만 사고 바로 나가버린다. 황정은 여기서 아이디어를 찾은 듯하다. 핀둬둬가 게임만큼 즐겁고 재밌으면 앱에 자주 드나들면서 쇼핑을 많이 하게 될 것이라는 발상이다. (계획하지 않은 물건까지)핀둬둬는 중국에서 초기에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더니 현재 고객이 9억 명을 돌파했다. 해외에서도 전략이 먹힌 것 같다. 핀둬둬는 미국 진출 1년 만에 월간 활성 사용자 5200만 명을 확보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샬럿 흐리스(32)는 최근 친구의 권유로 테무를 내려받았다가 틈날 때마다 앱에 접속해 게임을 하고 있다. 그는 “값싼 도파민에 중독돼 가입하게 만든 친구를 원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테무는 미국 앱 다운로드 시장에서 아마존, 월마트 등을 제치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로켓 배송 필요 없다”핀둬둬의 3분기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93.9% 뛴 688억 위안(약 12조3800억 원)이다. 순이익은 155억 위안(약 2조7900억 원)으로 22.6% 늘었다. 해외에서의 흥행이 핀둬둬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핀둬둬의 미국 진출 타이밍이 한몫했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소비자들이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근심이 커질 무렵 핀둬둬는 ‘극강의 가성비’로 빠르게 시장에 침투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들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전 100달러로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었던 물건들을 현재 구매하려면 119.27달러(지난달 말 기준)가 필요하다. 식료품 가격은 2020년 1월보다 25% 뛰었다. 같은 기간 중고차 가격은 35%, 임대료는 20% 상승했다. 미국 근로자들의 월급이 뒤따라 오르긴 했지만, 물가 상승에 못 미치는 경우도 많았다.여기에 미국 금융당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0.25%에서 5.50%까지 올리면서 가계에 부담이 커졌다. 미국 가계는 그간 저축해 놓은 것으로 버텨왔지만, 높은 물가와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소비 심리가 차츰 둔화했다.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미국 소비자들은 테무에 열광하고 있다. 아마존에서 8.47달러(약 11000원)에 판매하는 한 무선 이어폰은 테무에선 쿠폰을 적용하면 3달러(약 3900원)면 살 수 있다. 테무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는 13달러(약 1만7000원)짜리 차량용 휴대 진공청소기다. 미 텍사스 북부에 사는 린 해치(42)는 “이제 아마존에 접속하기 전에 테무를 먼저 살펴본다”고 말했다.테무의 무료 배송은 9~20일로 아마존에 비해 한참 느리다. 미국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중국에서 개별 고객에게 직접 배송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소비자들은 가격만 착하면 ‘느린 배송’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분위기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린에서 마케팅 일을 하는 줄리아 벨킨(28)은 “가정용품이나 가구 같은 물건들이 정말 저렴하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테무를 자주 쓴다는 그는 “물건이 정확히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것도 꽤 흥미진진하다”고 덧붙였다.미국 물류 관리 소프트웨어 서비스 업체 쉬포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당일 또는 익일 배송을 선호하는 전자상거래 쇼핑객은 지난해 18%에서 10%로 감소했다. 로라 베런스 우 쉬포 최고경영자(CEO)는 “온라인 쇼핑객들이 이제는 익일 배송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며 “2~3일 배송, 심지어 5~8일 배송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문제와 금리 인상 여정은 다음 기사 참고.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20605/113793005/1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602/119603694/1● “중국산… 누구요, 저요?!” 핀둬둬를 비롯한 중국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서구권 공략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해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0년대부터다. 외국인들이 중국 공장에 투자하고 값싼 중국산 제품을 전 세계에 퍼뜨렸다. 2000년대 중반 들어 중국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이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부를 인수하는 일까지 있었다.글로벌 금융정보서비스 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중국 기업들은 약 900억 달러(약 117조 원) 상당의 해외 기업들을 인수했다. 대상은 대부분 서양 기업이었다. 그러다가 미·중 관계가 악화하면서 미국의 중국 기업에 대한 압박이 거세졌다. 미국이 중국 정보통신기기 업체 화웨이를 제재 명단에 올린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 기업들은 서구권에서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자 ‘메이드 인 차이나’부터 감췄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올 3월 서구권에 진출한 기업 수십 곳의 웹사이트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이 서양 브랜드로 착각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구성해 놓았다. 온라인 쇼핑몰 쉬인(Shein), 소셜미디어 틱톡(TikTok)처럼 이름부터가 영어다. 핀둬둬도 중국과 다르게 테무(TEMU)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진출했다. ‘중국색’을 빼기 위해 본사를 이전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테무는 미 보스턴에 본사를 세웠고 모기업인 핀둬둬 역시 중국 상하이에서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거점을 옮겼다.중국 기업이 해외 시장을 공략할 때 자체적인 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대다수 중국 기업은 자체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을 활용해 고객에게 직접 물건을 판매하는 중이다. 이를 통해 해외 고객의 데이터를 직접 모으고, 정교한 분석을 통해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아마존, 페이스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업체가 기술력으로 ‘공급자 마인드’가 아닌 수요자 중심(온디맨드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방식으로 중국의 온라인 쇼핑몰 쉬인은 지난해 미국에서 200억 달러(약 25조9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미국에서 2020년보다 3배 많은 돈을 벌었다. 미국 등에 자산을 최대한 두지 않는 것도 중국 기업의 생존 전략으로 보인다. 쉬인은 미 인디애나주에 유통센터를 열었지만, 대부분은 중국에서 직접 배송한다. 테무는 미국에는 공장은커녕 창고도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캠핑용품 브랜드 ‘네이처하이크’는 중국 밖에서 단 한 명의 직원도 고용하지 않고 서구와 일본을 정복했다”고 강조했다. ▶미국 MZ세대를 사로잡은 중국 의류 쇼핑몰 ‘쉬인’에 대한 내용은 다음 기사 참고.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707/120131075/1● 테무가 넘어야 할 산 모바일 분석기관 앱토피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미국 소비자들은 하루에 테무 앱을 평균 18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쇼핑 앱 ‘알리 익스프레스’는 11분, 아마존은 10분이었다. 앱토피아는 “젊은 층은 테무를 일 평균 19분 사용했다”고 전했다. 아마존은 “테무와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품질, 배송 등 여러 면에서 초저가형 직구 앱과는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테무나 쉬인 같은 중국 서비스가 아마존 등 미국 기업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아마존의 월간 순 방문자 수는 2022년 9월 2억1750만 명에서 올해 3월 2억1100만 명으로 감소했다. 2022년 9월은 테무가 미국에 상륙한 시기다.물론, 중국 기업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꽤 있다. 미 정치권의 견제가 시작됐다. 현재 미국 관세법은 800달러(약 105만원) 이하의 수입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2015년까지 이 기준이 200달러 수준이었는데, 2016년 3월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해 금액을 상향했다. 최근 미 의회에서 중국 기업들이 이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 의원들과 일부 미국 기업들은 “중국 기업이 국제 우편을 대규모로 이용해 안전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제 노동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배송하면서 세금까지 피하고 있다” 등의 비판을 내놓았다. 테무나 쉬인 등 중국 의류 플랫폼들은 강제노동 의혹이 제기된 중국 신장 지역에서 공급받은 면화를 제품화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해당 기업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미 관세국경보호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면세 혜택을 받고 미국에 들어온 소포는 약 10억 개다. 2019년의 2배 수준이다. 미 의회는 자체 조사 결과 이 중 3분의 1가량이 테무와 쉬인의 물량이라고 밝혔다. 킴 글래스(Kim Glas) 미 섬유단체협의회(NCTO) 회장은 “관세 면세 한도는 세계 최대의 암시장이며 놀랍게도 미국 정부에 의해 합법화됐다”고 꼬집었다.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도 있다. CNN은 올 4월 미국과 유럽, 아시아 전문가에게 자체 의뢰해 분석한 결과 핀둬둬에서 악성코드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핀둬둬가 사용자의 통화 기록과 문자 메시지, 사진 앨범 등을 훔쳐본 것이다. 핀둬둬는 고객의 휴대폰 사용 내역을 조회해 경쟁사를 견제하고 사용자 정보로 맞춤형 광고 등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이번 논란에 테무가 연루된 것은 아니지만, 테무의 글로벌 확장에 악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후에도 테무가 잘나가긴 했지만)● “‘노마진’으로 살아남기” 테무가 과연 수수료 없이 현재와 같은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처럼 할인 쿠폰을 뿌려가면서 수익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최근 모건스탠리의 조사에 따르면 테무의 고객 중 44%가 앱에서 지출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앱에서 소비를 늘린 고객은 22%에 불과했다. 첫 구매 할인 등을 노리고 온 고객들이 재구매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블룸버그는 “신규 고객을 충성 고객으로 전환하지 못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상대적으로 소비 여력이 취약한 계층이 테무의 주요 타깃인 것도 약점이다. 고객 특성상 할인(비용) 폭이 커야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테무의 쇼핑객이 여성, 젊은 층, 저소득층에 편중돼 있다”며 “고객 중 절반 이상이 연 소득 5만 달러(약 6500만 원)보다 적고, 58%가 45세 미만”이라고 전했다.투자사 샌포드 번스타인은 테무가 올해 해외에서 130억 달러(약 16조8400억 원)의 매출에도 불구하고 36억5000만 달러(약 4조7200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품질 문제도 테무의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핀둬둬는 사업 초기 ‘짝퉁 브랜드’ 전자제품을 판매했다가 이슈가 됐다. 핀둬둬의 이용자들은 삼성전자의 영문명(Samsung)을 교묘히 비튼 ‘Shaasuivg’라는 짝퉁 브랜드를 찾아냈다. 유통기한이 지난 분유를 한 캔에 7.5위안(약 1360원)에 팔았다가 질타받기도 했다. ‘정말 싼데 기대 없이 한 번 사볼까’에서 ‘그냥 2000~3000원 더 주고 믿을 만한 데서 사야지’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다. 미국의 테무 열풍은 파괴적 혁신일까, 아니면 경기 흐름에 따른 일시적인 수혜일까. 중국 쇼핑 앱의 흥행이 계속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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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짜 위험한 가짜뉴스가 온다[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고등학교 덮친 가짜 포르노올해 10월 16일(현지 시간) 미국 뉴저지주(州) 웨스트필드고교의 2학년 여학생들은 학교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남학생들이 평소보다 지나치게 조용했다. 일부는 특정 여학생을 보면서 수군대기도 했다. 나흘 뒤, 한 남학생이 “남학생들이 몇몇 여학생의 가짜 누드 사진을 만들어 돌려봤다”고 고백하면서 학교가 한바탕 뒤집혔다.남학생들이 인공지능(AI)에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에서 복사한 여학생들의 실제 사진을 AI 기반 웹사이트에 올리고 클릭 몇 번 했을 뿐이다. 남학생들은 가짜 나체 사진을 그룹 채팅에서 공유했다. 피해 여학생들의 신고로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AI 활용 이미지에 대한 규제와 법률이 명확지 않아 관계 기관 사이에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학교 측은 문제의 이미지가 삭제돼 더 이상 유포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학생들은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해당 이미지가 외부로 공개돼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 중이다. 미 빅테크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가운데, 딥페이크 관련 범죄와 가짜 정보(가짜뉴스), 저작권 침해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에선 딥페이크 기술 악용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딥페이크(deepfake)’는 AI 기술인 딥러닝(deep learning)과 가짜를 뜻하는 페이크(fake)의 합성어다. 인공지능으로 특정 인물의 이미지나 목소리 등을 디지털 콘텐츠에 합성하는 기술이다.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드는 기술로 이해하면 된다. 미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한 사용자(닉네임 deepfakes)가 2017년 조작 동영상을 만드는 알고리즘을 올리면서 나온 용어다. 특히, 딥페이크 기술의 불법 음란물 활용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일반인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하는 ‘포르노 딥페이크’ 생성이 급증했다. 딥페이크 분석가인 제네비브 오는 미 블룸버그에 “2019년 이후 관련 동영상이 9배나 증가했다”고 전했다. 오가 올해 5월 30여 개의 해외 사이트를 조사한 결과 약 15만 건의 딥페이크 음란물이 발견됐다. 총 조회수는 38억 회에 달했다. 글로벌 유명 배우나 가수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한 영상도 떠돌았다. 돈을 받고 친구나 회사 동료 등 평범한 여성의 사진을 나체 이미지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미국에는 합의되지 않은 딥페이크 포르노의 제작이나 공유를 범죄로 규정하는 연방법이 아직 없다. 현재까지 미국에서 관련 혐의(비동의 성적 콘텐츠 제작 및 공유)로 기소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치과 보험 파는 가짜 톰 행크스 현재 온라인에는 수없이 많은 딥페이크 이미지가 떠돌고 있다. 일부 딥페이크 사진과 동영상을 사람들이 진짜라고 착각해 수만 번 이상 공유한 사례도 종종 등장하고 있다. 3월 소셜미디어에 흰색 롱패딩을 입은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이 등장했다. 사진 속에서 교황은 은색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그의 오른손은 텀블러를 들고 있다. 온라인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 한 SNS 계정에 올라온 이 사진의 조회수만 2540만 회가 넘었다. “힙(hip)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돈 모이니한 조지타운대 교수는 패딩 브랜드 이름을 묻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진은 인공지능 툴인 ‘미드저니(Midjourney)’로 만든 ‘가짜 이미지’였다.비슷한 시기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뉴욕 경찰에 체포되는 사진이 빠르게 확산했다. 트럼프가 자신을 체포하려는 경찰로부터 도망가거나, 경찰의 체포 시도에 강하게 저항하는 모습 등 버전이 다양하다. 교도소에서 주황색 재소자 복장으로 청소하는 모습도 있다. 전부 AI 기술이 만든 가짜 이미지다. 논란이 확산하자 뉴욕 경찰이 나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구금된 바 없다”고 밝혔다. 5월에는 미국 국방부 청사(펜타곤) 인근에 불이 난 듯한 가짜 이미지가 온라인에 빠르게 퍼지면서 미국 주식시장이 출렁이는 소동까지 일어났다. 해외 전문가들은 AI가 만든 흔적이 뚜렷하다고 평가했지만, 투자자들은 진위를 가리는 데 시간이 걸렸다. 사실 확인이 어려운 중동전에서는 딥페이크 사진이 선전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초기 불에 탄 아이 시신 사진이 인터넷으로 빠르게 퍼졌는데 인공지능이 만든 이미지였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아기들을 참수했다는 속보도 있었는데 거짓으로 드러났다) AI 가짜 광고도 등장했다. 일부 업체들이 유명 배우들의 목소리와 이미지를 도용해 광고에 실제 출연한 것처럼 AI로 꾸민 것이다. 스칼렛 요한슨은 IT 회사의 앱 홍보에, 톰 행크스는 치과 보험 홍보 영상에 도용됐다. 업체들은 배우의 사진과 영화 속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 낸 AI 아바타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톰 행크스는 자신의 SNS에 사칭 광고에 속지 말라고 당부했고, 스칼렛 요한슨은 법적 조치에 나섰다. ● 미 정치권 딥페이크 경계령미 정치권에선 내년 대선을 앞두고 딥페이크 기술이 가짜 정보나 여론 조작에 쓰일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2월 미국의 시카고 시장 선거 전날, 소셜미디어 엑스(X·전 트위터)에 ‘시카고 레이크프론트 뉴스’라는 새 계정이 녹음 파일을 올렸다. 파일에는 “경찰이 용의자를 죽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예전이 그립다”는 폴 발라스 후보(전 시카고 교육청장)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당시 발라스는 경찰지원 확대를 최우선 공약으로 앞세워 경찰노조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녹음은 더욱 그럴싸하게 들렸다. 수천 명이 이를 공유했는데, 녹음은 발라스의 목소리를 흉내 내도록 훈련된 딥페이크 작품이었다. 발라스는 결선 투표에서 탈락했지만, 녹음 파일이 퍼진 다음 날 1차 선거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가짜뉴스가 선거의 당락까진 결정하진 못한 것이다.스탠퍼드대 연구진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올라온 연구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여론 조작(주로 러시아 봇)이 정치적 태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러시아의 허위 선거 운동이 후보자 득표율에 0.01포인트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했다. 주로 소셜미디어에서 퍼지는 딥페이크 정보가 선거 결과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영향력은 없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은 미치지 않더라도 사회적 자산인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딥페이크는 범죄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모든 정보를 의심하게 될 것”이라며 “군인은 명령을 신뢰하지 못하고, 대중은 정치인의 스캔들을 거짓으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진짜’ 뉴스조차 일단은 의심부터 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교한 가짜 정보가 양적으로 많아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고도화된 딥페이크 기술이 등장한 지 아직 1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기술은 더 발전할 여지가 충분하다. 또 과거와 달리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점점 더 쉽게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는 “전쟁이나 주요 사건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한 허위 주장이 일상화되고 있다. 딥페이크 확산은 사람들이 사실에 근거한 의견 형성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 부모도 속는 딥페이크 기술과거 딥페이크 기술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결과물이 조잡해 가짜는 금방 들통났다. (포토샵 보정도 나름 정교해지긴 했지만) 그러다가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얼굴이나 목소리까지 훨씬 더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됐다. 현재 AI 이미지 생성 서비스로 달리(DALL-E), 미드저니, 스테이블디퓨전 등이 많이 쓰이고 있다. 모두 생성형 AI 기술이다. (달리는 챗GPT를 선보인 오픈AI의 플랫폼이다) 이들은 챗GPT와 똑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요청한 이미지를 만드는데, 왜곡된 부분(노이즈)은 학습을 거칠수록 실제와 유사해진다.현재 공개된 가장 큰 데이터 세트인 ‘LAION-5B’에는 58억5500만 개의 이미지가 포함돼 있다. 사진 58억5500만 개를 공부한 AI가 주문 제작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WSJ의 테크 칼럼니스트 조안나 스턴은 딥페이크 기술이 얼마나 정교한지 파악하기 위해 올 4월 인공지능 ‘아바타’를 만들었다. 스튜디오를 찾은 스턴은 30분 정도 동영상을 찍고, 2시간 분량의 음성 녹음을 진행했다. 이를 학습한 AI(AI 동영상 제작 플랫폼 신디시아 활용)는 스턴과 똑같이 생긴(목소리 포함) 아바타를 선보였다. 문장을 입력하면 아바타가 스턴이 실제 이야기하는 것처럼 떠든다. 그는 “긴 문장을 입력하면 약간 로봇처럼 말했지만, 짧은 문장은 자연스러웠다. 마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스턴은 다른 플랫폼을 사용해 음성 복제도 시도했다. 이번에는 스튜디오를 찾지 않고 90분 분량의 음성 파일을 웹사이트에 올렸다. 2분도 지나지 않아 목소리가 복제됐다. 그는 은행에 전화를 걸어 ‘AI 스턴(봇)’에게 이름과 주소를 대신 답하게 했는데, 은행 생체인식 시스템은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 딥페이크 기술은 가족까지 속일 정도로 정교해졌다. 스턴은 “자주 통화하는 여동생이 목소리를 구별해내지 못했지만 내가(AI 스턴이)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똑같이 아버지한테 전화해 봇(AI 스턴)으로 아버지의 사회보장번호를 물어봤는데, 녹음된 목소리가 나오는 줄 알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하니 파리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컴퓨터 과학 교수는 딥페이크 이미지, 동영상과 진짜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행운을 빈다”고 답했다.▶챗GPT 기술을 쉽고 자세하게 설명한 기사를 찾고 있다면 다음 참고.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311/118276311/1● 빅테크 “우리를 규제 해달라”빅테크 기업들도 AI 기술의 위험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기업들이 “우리를 규제해달라”고 나서서 요구할 정도다. (현재까지 딥페이크 기술의 부작용을 위주로 설명했지만, 챗GPT의 ‘환각’도 위험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이는 챗GPT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 등 거짓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지어내는 증상이다. 빅테크 기업들은 이를 개선하려고 노력 중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애플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 등 유명 인사 1100여 명은 올 3월 말 미 비영리단체 ‘삶의 미래 연구소(FLI)’의 공동 서한에 서명했다. “모든 AI 연구소가 현재 수준을 능가하는 AI 시스템 개발을 최소 6개월간 중단하자”는 것이 서한의 핵심 내용이다. 세계적 AI 권위자로 꼽히는 스튜어트 러셀 UC버클리 컴퓨터과학과 교수, 딥러닝의 창시자로 알려진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 구글 딥마인드 연구진 등 AI 전문가들도 서한에 이름을 올렸다. AI 이미지 생성 서비스 스테이블디퓨전의 CEO 에마드 모스타크도 있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올 4월 한 인터뷰에서 “(AI 위험성에 대한 걱정 때문에) 밤잠을 설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사회에 해를 끼치는 딥페이크 동영상을 제작하는 행위에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가 따라야 한다”며 “AI를 다뤄본 사람은 이것이 너무나 위험한 문제라는 것을 알 것이다. 사회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규제 기관을 만들자는 의견도 나왔다. ‘챗GPT 신드롬’의 주인공인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5월 미 의회 청문회에서 “AI 기업에 ‘라이센스’를 부여하는 규제 기관 창설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AI 부작용을 관리할 수 있는 기업에만 개발 허가권을 주자는 주장이다. 미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인공지능의 사용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고 느끼고 있었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AI 위험 관리에 초점 맞춘 인공지능 지침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AI 개발자가 프로그램에 대한 데이터와 기타 정보를 정부에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을 포함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7월 구글, 메타, MS, 오픈AI 등 주요 AI 개발 업체에 인공지능 서비스를 대중에 공개하기 전에 전문가들의 안전성 검사를 거치겠다는 ‘자발적 약속’을 하도록 압박하기도 했다. ● 드라마 못지않은 오픈AI 사태 지난달 오픈AI에서 이 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만한 일들이 벌어졌다. 오픈AI 이사회에서 ‘윤리성’을 중요시하는 일부 이사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들은 챗GPT 출시에 결정적 역할을 한 올트먼 CEO를 내보냈다. 외신들은 “AI 개발론자가 안전론자에 승리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지난달 17일(현지 시간) 오픈AI 이사회는 “이사회와 소통에 솔직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면서 올트먼 CEO에 해고를 통보했다. 명확지 않은 사유에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본인도 황당했는지 다음 날 SNS에 “멀쩡하게 살아 있는 내 추도사를 읽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고 올렸다. 20일 오픈AI의 최대 투자자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올트먼이 새 AI 팀을 이끌 것”이라며 영입을 발표했다. 그러자 오픈AI 임직원 702명이 이사회 측에 “우리도 MS로 가겠다”고 선포했다. 오픈AI의 임직원은 총 770명이다. 투자자들과 임직원의 반발로 오픈AI 이사회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오픈AI는 21일 올트먼이 CEO로 전격 복귀했다고 밝혔다. 쿠데타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이 회사의 특이한 지배구조부터 알아야 한다. 오픈AI는 2015년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을 안전하게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단체로 출발했다. 지분이 없는 6명의 이사진이 모든 결정권을 갖는다. 챗GPT 개발이 외부 입김에 흔들리지 않도록 자본과 경영을 분리한 것이다. 투자자들 역시 경영에 간여할 수 없게 했다. 이상은 곧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경쟁자인 알파벳(구글)이 문제였다. 덩치 싸움에서 게임이 되지 않았다. AI 개발과 인재를 데려오는데 끝도 없는 돈이 투입됐고, 진도는 더뎠다. 가장 답답해한 인물 중 한 명이 오픈AI 공동설립자였던 일론 머스크였다. 그는 오픈AI 개발에 더 많이 개입하고자 했는데 개발자들과 종종 충돌했다. 한 연구원은 머스크에게 현재 개발이 윤리적인 부분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했는지 물었다가 “얼간이(Jackass)”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오픈AI 직원들은 이 연구원에게 ‘얼간이’라고 적힌 트로피를 만들어 선물했다) 머스크는 2018년 2월 회사를 떠났다. 내부에서 “서비스를 상용화하는 계획을 내놓고 투자자를 유치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오픈AI는 결국 2019년 영리법인을 자회사로 만들었다. 비영리법인이 자회사인 영리법인을 통제하는 독특한 구조가 만들어진 것. 오픈AI는 ‘사업성보다 윤리성과 사회적 안전을 우선하는 AI로 돈 버는 회사’가 됐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30억 달러(약 17조 원)를 투자해 영리법인 지분 49%를 확보했지만, 비영리법인의 이사회 의석은 1석도 보유하지 못했다. (올트먼이 잘릴 때 MS가 반대의견을 낼 수 없었던 이유다) ●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남자 이사회는 올트먼의 퇴출 사유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올트먼이 챗GPT의 윤리적 안전성보다 투자 유치 및 MS와의 사업 확대에 치중한 것을 우려한 결정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어떻게 보면, 이사회는 자신의 역할을 다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AI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고려했을 때 비영리법인이 영리법인을 자회사로 두는 오픈AI의 지배구조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올트먼의 실제 삶도 모순적이긴 하다. 채식주의자인 그는 주말엔 자신의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농장에서 와인용 포도와 소를 기른다. (그의 배우자가 소고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채식주의자가 육식을 사랑하는 배우자를 위해 기르는 육우라니!) 올트먼은 AI에 한해 개발론자보다 이상론자에 가까워 보인다. 올트먼은 2019년 미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오픈AI의 AI 개발을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와 비유했다. 그는 “우리가 열망하고 바라는 AI 개발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만큼 스케일이 크다”면서 오픈AI가 세상을 뒤흔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트먼은 오픈AI의 기업 가치를 860억 달러(약 113조 원)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가 가진 지분은 ‘0’이다. 올트먼이 회사에서 받는 돈은 약 6만5000달러(약 8500만 원)의 연봉뿐이다.그는 허위 정보의 범람 같은 부작용 역시 종종 걱정했지만, AI가 세상에 가져올 이점이 더 크다고 자신했다. 올트먼은 “ 일반인공지능(AGI·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은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번영과 부를 가져올 것”이라며 “AI의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 역시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해외에선 이번 사태로 오픈AI의 AI 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내다봤다. AI 개발에 따른 부작용 우려보다 사업성에 더 초점을 둘 수 있다는 뜻이다.IT 매체인 더 버지에 따르면, 오픈AI는 이사회 규모를 기존 6명에서 9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MS 측 인사도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새로운 이사들은 오픈AI를 좀 더 사업적인 조직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올트먼 역시 과거보다 더 높은 강도의 성과 압박을 받게 될 것 같다. 구글과의 경쟁이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구글은 7일(현지 시간) 차세대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AI ‘제미나이(Gemini)’를 전격 공개했다. 제미나이의 울트라 버전은 수학과 물리학, 역사, 법률, 의학, 윤리 등 57개의 주제를 복합적으로 활용해 지식과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하는 ‘대규모 다중작업 언어이해 테스트(MMLU)’에서 90.04점을 받았다. 전문가(사람)는 89.3점을 기록했다. 사람보다 높은 점수를 기록한 최초의 인공지능으로 등극한 것이다. 오픈AI 챗GPT의 ‘GPT-4’는 같은 테스트에서 제미나이보다 낮은 86.4점을 기록했다. AI의 미래가 어디까지 닿을지 가늠하는 건 지금으로서는 무리 같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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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동훈 장관이 마약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이유[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록펠러 마약법 50주년지난달 10일 미 캘리포니아주(州) 플레이서 카운티 고등법원. 로즈빌에 사는 나다니엘 카바쿤간(20)이 살인죄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다른 범죄자들처럼 총을 쏘거나 칼을 들지는 않았지만, 이에 못지않은 치명적인 약물을 판매해 지난해 6월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카바쿤간이 제공한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로 한 15세 여학생이 사망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마약상’에게 살인죄를 인정한 첫 사례였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역사적 판결”이라고 평가했다.마약 중독과 이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미국이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최근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마약 사망 사건을 전담하는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형벌도 한층 강경해진 분위기다. 펜타닐 유통·판매업자뿐만 아니라, 약물을 전달해 사망에 이르게 한 대상에게도 살인죄를 적용하고 있다. 올해 9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90㎞가량 떨어진 산타로사에서 생후 15개월 된 유아가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숨졌다. 새벽에 잠에서 깬 부모가 숨을 헐떡이는 딸을 발견하고 구급차를 불렀지만, 병원에서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현장에 출동한 수사관은 침실 탁자에 있는 빨대와 불에 그을린 은박지, 흰색 가루 등을 발견했다. 경찰은 펜타닐 가루가 젖병 등을 통해 유아에게 전달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유아의 부모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올해 입법 시즌에 미국의 46개 주에서 펜타닐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NYT는 6월 “펜타닐 관련법이 심각하게 분열된 국가에서 초당적 지지를 끌어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약 30개 주가 펜타닐 공급자를 살인죄로 기소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사실, 미국에는 마약 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이 50년 전부터 있었다. 1973년 제정된 ‘록펠러 마약법’이 대표적이다. 당시 뉴욕 주지사였던 넬슨 록펠러는 마약의 소유, 판매를 엄격히 처벌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4온스(약 113g) 이상의 헤로인, 코카인 등을 소지하거나, 2온스(약 57g) 이상을 판매할 경우 초범이라도 15년 형을 선고하도록 했다. 엄한 처벌이 마약 범죄를 줄이는데 큰 효과가 없다는 주장이 줄곧 나왔다. 이 때문에 치료를 앞세운 온건책 등을 도입한 주도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마약 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다시 힘이 실리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일찍’ 목숨을 잃어서다.● 펜타닐노믹스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10만9680명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2015년(5만2404명) 이후 6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늘었다. 미국의 교통사고(2020년 기준 약 4만2000명)와 총기사고(약 4만4000명) 사망자 수를 합친 것보다도 많다. 미국에서 1999년 이후 약물 과다복용으로 총 100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을 고려하면, 최근 사망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난 셈이다. 펜타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해 7만5217명이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젊은 층에서 사태가 심각하다. 현재 미국 18~45세 청장년층의 사망 원인 1위가 펜타닐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지난해 3억7900만 회 투여분의 펜타닐을 압수했다. DEA는 “미국인 전부를 죽이기에 충분한 양”이라고 밝혔다. 펜타닐 치사량은 2㎎이다. DEA는 “연필로 찍었을 때 끝에 묻는 정도”라고 전했다. 펜타닐은 대표 ‘오피오이드’ 제품이다. 오피오이드는 ‘오피엄(Opium·아편)’과 ‘오이드(Oid·~와 비슷한)’의 합성어로 아편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합성 진통·마취제다. 실험실에서 합성해 만든 화학 물질이라는 점에서 아편과 차이가 있다. 옥시코돈, 옥시콘틴, 메타톤 등도 같은 오피오이드 제품이다. 이중 펜타닐은 1959년 벨기에 화학자인 폴 얀센이 개발했다. 모르핀보다 효과가 빠르고 강해 장시간 수술을 가능하게 만들었다.오피오이드는 합법적 약물이지만, 강력한 중독성 때문에 엄격하게 규제한다. 특히, 펜타닐은 헤로인보다 50배, 모르핀보다는 100배 독성이 강하다. 말기 암 환자나 내성이 생긴 만성 통증 환자에게만 처방한다. 커피에 넣는 작은 설탕 봉지 2개가 1년 치 복용량이다. 2000년대 들어 마약 범죄 조직들이 중독성이 강한 오피오이드에 주목했다. 멕시코 마약상과 밀매업자들은 헤로인보다 펜타닐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펜타닐에는 양귀비밭과 수확할 농부가 필요하지 않았다. 식물이 자라나고 분말로 정제하기까지(제품화)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오피스텔보다 작은 실험실이면 충분했다. DEA에 따르면 세계 최대 마약 밀매 집단인 멕시코 시날로아 카르텔은 10센트(약 130원)로 펜타닐 알약을 만들어 마약상에게 50달러(약 6만6000원)의 도매가에 판매했다. 헤로인보다 수익성이 20배나 높았다. DEA의 현장 요원인 존 델레나는 “마약상들에게 펜타닐은 ‘마법의 가루’”라며 “일부는 (중독성이 너무 강해) 헤로인을 다시 원했는데, 그러자 마약상들은 헤로인에 펜타닐을 섞었다”고 전했다. ● “멕시코가 월마트라면, 중국은 아마존”펜타닐의 주원료인 전구체(화학 성분)는 중국에서 들여온다. 세계 최대 의약품 원료 수출국인 중국에는 40만 개 이상의 화학 회사(불법 업체 포함)가 있는데, 이 중 일부가 제조한 전구체가 멕시코로 향한다. 멕시코에서 펜타닐로 제품화해 미국 국경을 넘는 수법이다. 멕시코는 2개의 마약 카르텔(시날로아와 할리스코)이 펜타닐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가 지난해 8월 한 멕시코 카르텔의 마약 제조 현장을 찾았다. 흙바닥의 허름한 공간에 ‘순수 아세톤’, ‘중국 화학’ 등이 적힌 유리병들이 놓여 있었다. 방호복과 고글,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한 조직원은 이 3평 남짓한 공간에서 1주일에 최대 2500달러(약 330만 원)를 받고 펜타닐을 제조하고 있었다. 연봉으로 치면 억대다. (그것도 세후로. 독성 화학 물질에 노출되는 정도를 고려하면 사실상 목숨값이지만) WSJ은 “조잡한 실험실에서 20대 청년들이 고수익 수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화학 업체들이 전구체나 펜타닐을 미국에 직접 보내는 양도 상당했다. 중국 업체들은 주로 인터넷에 전구체 물질들을 홍보했다. 거래는 특정 프로그램을 거쳐 접속하는 ‘다크 웹’을 통해 진행됐다. 결제는 비트코인. 물건은 페덱스, UPS 등 우편으로 전달했다. 한 펜타닐 복용자는 “10달러(약 1만3000원)를 주고 구매한 10mg(0.01g)의 분말이 온종일 나를 기분 좋게 해줬다”고 말했다.미국 법무부는 올해 6월 중국 우한에 본사를 둔 ‘후베이 아마벨 바이오테크’라는 화학 업체를 적발했다. 아마벨 바이오테크는 온라인에 ‘100% 스텔스 보장’이라는 문구와 함께, 과거 배송 이력을 담은 ‘인증샷’을 게시하고 있었다. DEA에 따르면, 아마벨 바이오테크는 200㎏ 이상의 전구체 물질을 미국으로 보냈다.DEA에 적발된 중국 전구체 판매 업체들은 “의약품을 제조하는 합법적인 물질”이라고 주장했다. 뉴욕 동부 연방지방검찰청의 브론 피스 검사는 “중국 업체들은 이 물질들이 펜타닐 제조에 사용될 것을 알고 있었다”며 “폭발물 제조에 사용될 것을 알면서 폭탄 부품을 판매하는 것과 같다”고 반박했다. 펜타닐이 담긴 중국발(發) 택배는 2010년 이후 급증한 ‘직구(해외직접구매)’ 배송 사이에 뒤섞였다. 미 상원 국토안보위원회는 2018년 1년의 조사 끝에 104장 분량의 관련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중국에서 미국으로 보낸 소포는 2007년 12억 개에서 2015년 206억 개로 뛰었다. 세관이나 배송 업체들이 펜타닐을 걸러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택배를 하나하나 뜯어본다고 쉽게 확인되는 것도 아니었다. 워낙 극소량인데다가 과자 같은 건조식품에 든 실리카겔(방습제)로 위장했기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마약 정책 연구원인 브라이스 파르도 박사는 “수익성이 있다면 중국 업체들은 10g도 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멕시코 카르텔이 마약 시장의 마트라면, 중국은 저렴하고 편리하며 어디에나 있는 아마존”이라고 표현했다. DEA에 따르면, 2016년과 2017년 국제우편 서비스에서 압수한 마약 중 중국산 펜타닐이 97%를 차지했다.● 12시간의 지속성, 1%의 중독성 중국과 멕시코의 대량 공급도 영향을 미쳤지만, 사실 미국 마약 중독의 근간에는 펜타닐 이전 같은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콘틴’의 유행이 있었다. (환각효과가 크고, 복제약이 많아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펜타닐이 나중에 빠르게 확산했다)제1차 세계대전 이전,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에서 뉴욕으로 터전을 옮긴 새클러가(家)에서 3형제 아서(1913~1987), 모티머(1916~2010), 레이먼드(1920~2017)가 태어났다. 이들은 전부 의사였지만, 유대인 출신답게 사업 수완도 지녔다. 형제는 의료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광고 대행사를 만들고 대형 제약사들의 제품을 홍보했다. 아서는 신문사를 직접 차려 60만 명의 의사에게 의약품을 마케팅했다. (당시, 이해 상충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1952년 이들은 의약품 회사 ‘퍼듀 프레데릭’을 인수해 설사약과 귀지 제거제 같은 별 볼 일 없는 제품을 판매했다. ‘퍼듀 파마’로 회사 이름을 바꾼 형제는 ‘MS콘틴’이라는 ‘제어 방식(지연 흡수 메커니즘)’의 마약성 진통제(모르핀 기반)를 개발해 큰돈을 벌기 시작했다. 기존 진통제와 다르게 약물이 혈류에서 천천히 녹는 것이 특징이었다. 2번에 걸쳐 먹을 것을 한 번만 먹게 만든 것이다. (콘틴은 ‘Continuous·지속성’의 줄임말이다) 1980년대 중반 퍼듀 경영진은 MS콘틴을 대체할 약을 찾기 시작했다. MS콘틴의 특허 만료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퍼듀에서 일했던 레이먼드의 아들 리처드 새클러는 1916년 독일 과학자들이 개발한 진통제 ‘옥시코돈’에 주목했다. 생산비용이 저렴한 옥시코돈에 MS콘틴의 제어 방식을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퍼듀는 이를 통해 다른 제약사보다 복용량은 적고, 효능은 뛰어난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을 개발했다.리처드는 옥시콘틴을 말기 암 환자뿐만 아니라 더 넓은 용도로 활용하고자 했다. 그러려면 정부의 도움이 필요했다. 퍼듀는 미 식품의약청(FDA)부터 공략했다. NYT에 따르면 리처드는 FDA에 옥시콘틴의 중독성 등급을 낮춰달라고 로비했다. FDA의 승인을 받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독성 실험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퍼듀는 1995년 옥시콘틴을 중증의 통증 치료에 사용해도 된다는 FDA의 승인을 받아냈다. 심지어 옥시콘틴의 특허 기술(지연 흡수 메커니즘)이 경쟁 진통제보다 안전하다는 포장 내용물까지 승인받았다. 이례적이었다. 이때 FDA를 이끌었던 데이비트 케슬러는 “이 승인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승인을 담당했던 커티스 라이트 박사는 FDA를 이미 떠난 상태였다. 라이트 박사는 옥시콘틴을 승인하고 2년 뒤 퍼듀로 자리를 옮겼다. 1999년 리처드가 퍼듀 사장을 맡으면서 미국 전역에 옥시콘틴 판매가 본격화했다. 리처드는 신약 연구개발(R&D)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공격적인 판촉 정책을 펼쳤다. 퍼듀는 FDA 승인을 근거로 가벼운 허리 통증이나 편두통 환자에게도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하게 했다. 퍼듀는 영업사원들에게 “약효가 12시간 동안 지속된다는 점과 옥시콘틴 복용 환자 중 1% 미만이 중독됐다는 내용을 의사에게 강조하라”라고 교육했다.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퍼듀가 자금을 지원한 1999년 연구는 이와 달랐다. 옥시콘틴을 복용한 두통 환자의 중독률은 13%에 달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환자에게서 약의 효과가 8시간 이후 사라져 더 많은 약을 찾게 만들었다”고 2019년 지적했다. ● ‘다인 앤 대쉬(Dine and Dash)’ 전략처음에는 판매가 영 시원찮았다. 마약성 진통제의 중독성 문제를 잘 아는 의사들이 옥시콘틴을 처방할 리 없었다. 의사들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다.퍼듀는 ‘다인 앤 대쉬(Dine and Dash)’ 전략을 썼다. 영업사원들은 의사들의 단골 식당을 파악해 이들이 음식 픽업을 주문하면 미리 결제해놨다. 이후 의사가 음식을 찾으러 오면 병원까지 가는 ‘5분’ 동안 옥시콘틴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당시 퍼듀는 미 의료계에 네트워크를 보유한 애보트와 판촉 계약을 맺었다. 미 의료 전문매체 스탯에 따르면 애보트는 처음 옥시콘틴 판매에 300여 명을 투입했다 간호사와 일반 직원에게도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영업사원들은 옥시콘틴 스펠링 모양으로 도넛과 케이크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돌렸다. 미 주간지 뉴요커는 “영업 담당자들은 중독성에 대한 사전 교육을 받았다. 의사가 이에 관해 물어보면 ‘약물이 천천히 전달되는 특허 기술이 남용을 줄일 수 있다’는 준비된 코멘트를 내놨다”고 전했다. (퍼듀의 영업 관리자였던 윌리엄 게르겔리는 2002년 플로리다주 수사관에게 “퍼듀 경영진이 사실상 중독성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라고 지시했다”고 털어놨다) 퍼듀는 의학 콘퍼런스도 수시로 열었다. 의사들의 경비를 대고 옥시코틴 글자가 새겨진 낚시 모자, 장난감 등을 제공했다. 의사들은 강연료를 받고 옥시콘틴의 장점에 대해 발표했다. 서로 처방 경험도 공유했다. 사실상, 옥시콘틴의 효과를 공유하는 ‘간증’의 시간이었다. 퍼듀는 의학 저널 등에도 옥시콘틴을 광고했다. 뉴요커는 “퍼듀 내부 기록에 따르면 세미나에 참석한 의사가 그렇지 않은 의사보다 옥시콘틴 처방전을 2배가량 많이 쓴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옥시콘틴 처방이 많이 될수록, 처방 용량이 늘어날수록 영업사원들은 큰돈을 벌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 영업사원은 (옥시콘틴으로) 2009년 1분기(1~3월)에 1만6000달러(약 2100만 원) 이상의 보너스를 받는 등 연 10만 달러(약 1억3000만 원) 이상의 돈을 벌었지만, 하와이 여행을 보너스로 받은 최고 영업사원(내부에서 ‘톱퍼·Toppers’로 부름)은 아니었다”고 2018년 전했다. 옥시콘틴의 매출은 출시 첫해 4900만 달러(약 640억 원)에서 2002년 16억 달러(약 2조1000억 원)로 증가했다. 옥시콘틴이 출시 이후 약 20년 동안 올린 수익은 350억 달러(약 45조7300억 원)에 이른다.물론, 의사들의 의도가 모두 나쁜 것은 아니었다. 캐나다 토론토대 약리학자 데이비드 주링크는 의사들이 옥시콘틴의 치료 효과를 진정으로 믿고 싶어 했기 때문에 옥시콘틴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의료 행위의 목표는 고통의 완화이고 의사들이 가장 흔하게 보는 유형이 ‘통증’”이라면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를 진짜 돕고 싶어 하는 의사가 많은데 갑자기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치료제가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 ‘사무직 마약상’의 치명적인 처방전 옥시콘틴은 통증 완화에는 도움이 됐지만, 일주일 안에 중독되는 사람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독된 사람들은 급격히 사용량을 늘렸고, 과다복용으로 죽거나 불법 제조된 싼값의 마약성 진통제를 찾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에서 2012년 한 해 동안 무려 2억5900만 장의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처방전이 발급됐다. 미국 전체 인구가 3억3000만 명이다. 처방전을 손에 쥔 사람들은 대형 약국 체인인 CVS나 월그린, 대형할인점 월마트 등에서 합법적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타갔다. 수많은 청소년이 옥시콘틴에 중독됐다. (월마트는 오피오이드 오남용 조장으로 50개 주와 소송을 벌였고, 최근 31억 달러·약 4조 원에 합의했다) 대도시 일부 사람들을 병들게 했던 헤로인과 다르게, 옥시콘틴 같은 마약성 진통제는 시골의 평범한 주민들 사이에 스며들었다. 미국에서 오피오이드 1인당 소비량이 가장 많은 주는 대표적인 시골인 웨스트버지니아주였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2006~2012년 웨스트버지니아주 주민들은 1인당 연평균 67정을 복용했다. 켄터키주(63정), 사우스캐롤라이나·테네시주(58정), 네바다주(55정), 오클라호마주(52정) 등이 뒤를 이었다. 인구가 10만 명도 채 되지 않는 웨스트버지니아의 카벨 카운티에서는 2010년대 주민의 약 1%가 오피오이드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016년 오하이오에서는 검시소에 마약성 진통제 과다복용으로 시신이 밀려 들어와 일주일 동안 시신을 냉장 트럭에 보관해야 했는데 올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2017년 전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주별로 제약사와 관련 마케팅사에 대한 고소가 이어졌다. 마약 진통제 사건의 주범인 퍼듀에는 수천 건의 피해배상 소송이 걸렸다. 퍼듀는 법원에 파산신청을 했고, 2021년 퍼듀와 새클러 가문은 총 60억 달러(7조8300억 원) 규모의 합의금을 내는 조건을 내세웠다. 파산법원은 이를 승인하려 했지만, 미 대법원이 최근 합의를 보류시킨 상태다. 새클러 가문이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매사추세츠주에서 진행된 소송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새클러 일가는 퍼듀로부터 40억 달러(약 5조2000억 원) 이상을 받았다. ● “제가 처방받은 건 마약이 아니었습니다”미국의 마약 중독자들은 어쩌면 퍼듀의 법적 다툼보다 더 긴 싸움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 정부가 옥시콘틴, 펜타닐 등의 약물 관리와 유통을 강화하자 다수의 중독자가 헤로인으로 발길을 돌렸다. 미국 중독의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헤로인을 주사하려는 5명 중 4명은 마약성 진통제로 중독됐다. 여기에는 일반적인 통증으로 병원에 찾은 사람도 포함돼 있었다. 미국 항공기 제작사 보잉의 엔지니어였던 앤서니 해서웨이는 2005년 허리 디스크 수술 후 옥시콘틴을 처방받았다가 마약에 중독됐다. 그는 처방의 한계에 다다르자 헤로인으로 갈아탔고, 하루 수십만 원을 약을 구하는데 쏟아부었다. 회사에서 잘린 해서웨이는 약값을 구하기 위해 2013년 2월 5일부터 1년여간 은행 30곳을 털었다가 FBI에 붙잡혔다.그는 수사관에게 “약이 삶을 어떻게 점령하는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하긴 어렵다”라고 말했다.우리 몸은 운동하거나,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뇌의 보상 회로가 작동해 기분이 좋아진다. 엔도르핀 때문이다. 옥시콘틴, 펜타닐, 헤로인 같은 약물은 이 보상 회로에 파도를 일으킨다. 약물 경험자에 따르면 다른 사람이 보면 기절한 것처럼 보이지만(‘좀비’처럼) 내면에서는 평화가 깃들고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 펜실베이니아에 사는 아만다 라이언 카(24)는 “예수님이 안아주시는 것 같다”고 했고, 미시간에 거주하는 매트 스탯맨(48)은 “평생 참던 숨을 내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통에서 벗어난 강렬한 안도감”이라고 표현했다.NYT는 “(첫 복용) 당시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입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들었는지 등을 몇 년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수년간 이 느낌을 쫓게 된다”고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뇌는 온도 조절기처럼 자체적으로 엔도르핀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외부 공급원이 넘치면 시스템이 무너진다. 동시에, 마약성 진통제는 뇌신경의 흥분을 전달하는 도파민을 급격하게 일으킨다. “약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니 빨리 더 복용해라”라고 신호를 보낸다는 의미다.NYT는 “약물 복용 횟수가 점차 늘어나고 매 순간 첫 번째 고점(극한의 안도감)을 쫓게 되지만, 수천 번을 복용해도 처음의 경험을 되돌릴 순 없다”고 강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기가 뒤바뀐다. 쾌락은 줄어들고 더 많이 원하는 시기가 길어진다. 뇌가 약물에 적응한 것이다. 금단 증상이 찾아온다. 미시간에 사는 라지 메타(51)는 ”금단이 오면 모든 게 아프다. 머리 빗는 것도 면도하는 것도 아프다“며 ”계속 우울하고 절망감을 느낀다. 단 한 봉지의 마약이 10초 안에 우리의 감정 체계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깨닫게 된다“고 강조했다. 나중에는 쾌락이 아니라 고통을 피하려고 마약을 찾는다는 의미다. 펜실베이니아의 자스민 존슨(29)은 “마치 악마가 기어 나오는 것 같다. 차라리 죽어서 고통을 끝내고 싶은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 미사일을 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오피오이드 중독으로 인해 연간 5000억 달러(약 650조 원)의 비용이 든다고 추산한다. 의료, 경찰, 재활 센터, 아동 보호 등이 포함된 수치다.미 정치권은 멕시코와 중국에 수년간 정치적 압력을 펼쳐 왔지만 신통치 않다. 마크 에스퍼 전 미국 국방장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임기 중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제조소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까지 고려한 적이 있다. 최근 미·중 관계 개선의 첫걸음으로 ‘펜타닐’이 나온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증명한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5일(현지 시간)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펜타닐 단속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펜타닐 문제는 다가올 미 대선의 주요 쟁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긴 어렵다. 중국이 안 만들면 미얀마 등 다른 나라가 이를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 미얀마 군, 경찰은 2020년 북부 샨주의 정글에서 2억 달러(약 2600억 원)어치의 마약을 압수했다. 펜타닐, 헤로인, 필로폰 등이다. 마약은 다수가 경험하기 전에 경각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막는 수밖에 없다.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카르텔과의 전쟁’이라는 표현은 써도,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마약 상담사(전 중독자)는 LA타임스 출신의 탐사보도 언론인 샘 퀴노네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펜타닐을 오래 사용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다 죽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마약 중독 대응에 관한 내용은 다음 기사 참고.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413/118811916/1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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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다를 꼭 돌려보내야 하나요?”[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의 판다 환송회 “조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판다들을 미국에 머물게 해달라’고 부탁할 가능성이 있을까요?”올해 8월 28일(현지 시간) 미 백악관 정례브리핑에서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의 회담이 이뤄지면 판다의 ‘거취’ 문제가 언급될 가능성이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 예상 밖의 질문이었는지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곧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표정과는 다르게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판다는 연말에 중국으로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 동물원에 사는 ‘샤오치지 가족’ 이야기다. 수컷 자이언트판다 샤오치지(3)와 그의 부모인 톈톈(26·수컷), 메이샹(25·암컷)은 12월 중국으로 돌아간다. 중국 정부와 동물원의 임대계약이 만료돼서다.스미스소니언은 지난달 23일부터 1일까지 샤오치지 가족의 환송회를 열었다. 동물원은 영화 ‘쿵푸팬더’와 샤오치지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상영하고, 판다 그림 그리기 등의 행사를 열었다. 판다 티셔츠를 입고 동물원을 찾은 관람객들은 밝은 표정이었지만,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참고로, 샤오치지는 전 세계 팬들이 선정한 인기 1위 판다다)워싱턴에 사는 간호사 노마 발렌티니(52)는 “이별을 견디기 힘들다”고 전했다. 그는 “저는 젊은 시절을 판다와 보냈다고 할 정도로 동물원을 자주 찾았다”면서 “최근 주 1회 이상 동물원에 와서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정말, 정말 슬프다”고 말했다.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마이클 카디날레(10)는 ‘판다 캠’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전했다. 판다 캠은 판다 우리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다. 카디날레는 “판다는 저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였다”라며 판다의 귀환을 아쉬워했다. 미국 전역에서 판다와의 이별이 이어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동물원과 테네시주 멤피스 동물원은 각각 2019년과 올해 초 판다를 중국에 돌려보냈다. 현재 미국에는 판다 7마리(샤오치지 가족 포함)가 살고 있는데, 조지아주 애틀랜타 동물원에 있는 나머지 4마리도 내년 말이면 중국과의 임대 계약이 끝난다. 미 AP통신에 따르면, 애틀랜타 동물원 역시 중국과 임대 계약 연장을 논의하지 않고 있다. 애틀랜타 동물원의 판다들마저 중국으로 돌아가면, 미국의 판다 팬들은 자국에서 더 이상 판다를 볼 수 없게 된다.● 1300년 역사의 털북숭이 외교관들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동물원의 판다 한 쌍(수컷 ‘양광’과 암컷 ‘톈톈’)도 올해 12월 중국으로 돌아간다. 2011년 영국에 도착한 후 12년 만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판다들의 임대 기간이 10년에서 2년 연장됐다. 알리슨 맥켈런 에든버러 동물원 육식동물팀장은 “12월 첫 주에 중국으로 돌려보내도록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호주 애들레이드동물원의 마스코트인 수컷 판다 ‘왕왕’과 암컷 판다 ‘푸니’는 내년 11월 ‘비자’가 만료된다. 왕왕과 푸니는 중국 정부의 임대 기간 연장으로 15년 동안 애들레이드동물원에서 지냈다. 호주 언론 애들레이드나우는 “판다들의 두 번째 임대 계약 연장은 양국 정부의 손에 달려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가 판다 소유권을 가지고 있어서다. 중국은 전 세계 약 2400마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은 취약종 판다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오로지 대여 형식으로만 판다를 해외에 보내고 있다. 과거에는 그냥 선물로 주기도 했지만, 1981년 중국이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임대 방식으로 변경됐다. 해외에서 태어난 판다의 소유권 역시 중국 정부에 있다. 판다들은 성체가 되는 생후 4년 차쯤 짝을 찾기 위해 중국으로 돌아간다. 한국 에버랜드 동물원에 있는 ‘푸바오’도 중국 반환이 임박했다. 푸바오는 최근 3살 생일을 맞았다.미국의 판다들이 전부 중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지면서 중국과 서방의 ‘판다 외교’가 반세기 만에 끝을 맺었다는 평가도 나온다.▶51년 만에 저무는 ‘판다 외교’ 관련 내용은 ‘글로벌 현장을 가다’ 기사 참고.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913/121170462/1● 세상에서 가장 정치적인 동물 최초의 판다 외교는 7세기 당나라 때로 전해진다. 중국 최초이자 유일한 여황제인 측천무후가 원활한 외교 관계를 위해 일본 천황에게 곰 2마리를 선물로 보냈는데, 이 곰이 판다라는 해석이 있다. 현대식 판다 외교는 1941년 시작됐다. 장제스(蔣介石) 당시 중화민국 국민정부 주석의 부인 쑹메이링(宋美齡) 여사가 중일전쟁 지원에 대한 감사 표시로 미국에 판다 한 쌍을 선물했다. 이후, 1949년 공산당이 집권하고 중국은 한동안 판다의 국외 반출을 금지했었다.냉전 시기로 강대국들이 치열하게 외교전을 펼치던 1972년 2월 21일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 부부가 중국을 찾았다. 라이벌 소련과의 패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중국과의 데탕트를 시도한 것. 닉슨 대통령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를 만나, 소련군의 국경 배치 정보를 제공했다. 중국과 소련의 갈등 관계를 파고들면서 중국 정부의 마음을 얻으려 했다.이날은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처음 방문한 역사적인 날이기도 했다. 저녁 만찬 자리가 열렸고, 당시 중국 최고 권력자였던 마오쩌둥(毛澤東)이 참여했다. 그의 옆자리에는 팻 닉슨 여사가 앉았다. 마오 앞에 놓인 담배를 유심히 보던 팻 여사가 입을 열었다. “이거, 귀엽지 않아요?” 담배통에는 판다 두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마오는 곧바로 “제가 좀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당황한 팻 여사가 “담배요?”라고 다시 물었고, 마오는 “아니요, 판다요”라고 말했다. 그 해, 판다 ‘링링’과 ‘싱싱’이 워싱턴 스미스소니언에 도착했다. (이들은 각각 1992년과 1999년 폐사했다) 판다는 ‘세상에서 가장 정치적인 동물’이 됐다. 판다가 실제로 정치를 한다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다. 중국이 판다를 정치적인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1957년부터 1983년까지 중국은 우방 9개국에 판다 24마리를 나눠줬다. 이때 ‘판다 외교’라는 용어가 생겼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마오는 살아 숨 쉬는 존재가 국제 협력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평했다. ● 판다노믹스 중국이 점점 자본주의화 되면서 판다는 경제적 도구로도 활용됐다. 1980년대부터 중국은 한 달에 5만 달러(약 6700만 원)씩 받고 판다를 임대하기 시작했다. 멸종 위기의 판다 연구에 사용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현재 판다를 보유한 동물원은 중국 정부에 연 10억 원가량(한 쌍 기준)을 보호 기금(번식 기금) 명목으로 내고 있다. 에버랜드의 푸바오처럼 해외에서 새끼 판다가 처음 태어나면 추가로 50만 달러(약 6억7000만 원)를 내야 한다. 두 번째 산 차(최근 태어난 푸바오 동생들)에는 30만 달러(약 4억 원)의 보호 기금을 제공해야 한다. 중국은 임대 국가의 경제력에 따라 수수료(보호 기금)를 책정해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그동안 중국이 판다를 아무 국가에나 막 빌려준 것도 아니었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에 따르면 중국은 스코틀랜드, 캐나다, 프랑스 등 주로 무역 계약을 체결한 나라에 판다를 빌려줬다. 대상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아시아 국가’와 ‘천연자원과 첨단 기술을 중국에 공급한 나라’였다. 이 같은 추세는 2008년 중국 쓰촨성 지진으로 판다 보호 시설이 피해를 본 뒤 더 분명해졌다. 중국 내 보호 시설이 취약해지면서 판다를 경제 협력 도구로 더 활용한 것이다.각국 동물원들은 판다의 귀여움을 무기로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각종 기념품을 팔았다. 2011년 영국 에든버러 동물원에 판다 한 쌍이 도착하고 2년 동안 방문객 수가 400만 명이나 증가했다. 스미스소니언의 판다 ‘톈톈’이 눈 속에서 뛰어놀고 있는 짧은 동영상은 소셜미디어에서 약 200만 번 공유됐다. 에버랜드도 최근 푸바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관련 굿즈 판매량이 이전보다 60%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에버랜드 유튜브 구독자 수도 최근 100만 명을 돌파했는데, 푸바오와 7월 태어난 동생 ‘루이바오(睿寶·슬기로운 보물)’, ‘후이바오(輝寶·빛나는 보물)’ 덕분이었다. 일본 NHK는 새끼 판다가 일본에 주는 경제효과를 267억 엔(약 2400억 원)으로 추산했다. 동물원 입장료와 인근 식당들의 매출, 기념품 판매 등을 합친 규모다. 2017년 일본 우에노동물원의 판다 한 쌍이 새끼를 낳았는데, 당시 동물원 근처에 매장을 보유한 중식당 체인 업체의 주가가 10% 가까이 급등했다. 새끼 판다가 공개되면 관람객이 증가해 수혜를 입을 것이란 기대가 반영됐다.과거에는 동물원들의 판다 유치 경쟁이 치열했다. 1972년 중국이 미국에 판다를 보내주기로 약속했을 당시 NYT는 미국 동물원들의 치열한 판다 유치전을 1면에 다루기도 했다. ● 하동 대나무 로켓배송 반면, 판다 유지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는 지적도 있었다. 에버랜드는 사육 공간과 체험 공간을 조성하는 데 200억 원을 투자했다. 호주 애들레이드 동물원도 판다 공간에 800만 호주달러(약 69억 원)를 쏟아부었다. 사육 비용도 만만찮다. 영국 BBC는 “판다 한 마리를 돌보는 데 연간 수억 원이 든다”며 “판다는 동물원에서 사육하는 데 가장 비싼 동물로, 코끼리 사육비의 약 5배가 든다”고 했다.판다가 먹는 대나무 비용이 이 중 대부분을 차지한다. 성체 판다는 하루에 약 12㎏의 대나무를 먹는데, 양뿐만 아니라 ‘품질’도 중요하다. 판다는 인상은 순해 보이지만 식성은 까다롭다. 젖어있거나 싱싱하지 않은 대나무 잎은 절대 먹지 않는다고 한다. 카타르 같은 중동이나 유럽에서는 항공이나 선박으로 좋은 대나무를 공수해야하기 때문에 특히 비용이 많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버랜드는 매주 1~2회 경남 하동에서 당일 배송으로 그날 벤 대나무를 공수해 온다. 대나무를 비용은 연 1억 원 정도다.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판다 비즈니스’에 대한 의구심을 종종 제기했다. 1999년 판다들이 애틀랜타 동물원에 도착했을 때 동물원 방문자 수가 60% 증가했다. 하지만, 몇 년 뒤 관람객은 판다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고 비용은 증가했다. BBC는 “판다를 비즈니스로 생각한다면,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올까? 판다 사육비를 동물원 방문객 증가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기자는 판다의 귀여움이 비용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중국 정부에 내는 높은 ‘임대료’도 부담이다. 미국 동물원들은 2006년 대표단을 꾸려 중국에 수수료를 최대 50% 인하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핀란드에서는 이 비용이 부담돼 임대 기간이 종료되기 전 판다를 조기 반환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 데탕트의 상징에서 애국심의 상징으로 물론, 미국 판다들이 비용 때문에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미국의 판다는 경제성보다는 미중 관계의 온도에 따라 ‘거취’가 달라졌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0년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회담을 결정하자 중국 정부는 미국에서 태어난 판다 두 마리를 중국으로 귀환시켰다. 이듬해,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하는 등 화해 무드가 조성됐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미국에 대한 판다 대여를 5년 연장했다.미국 판다들이 올해 말 중국으로 돌아가게 된 데는 최근 악화한 미중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양측(중국과 미국)은 판다 대여에 정치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만, 중국은 오랫동안 보상을 하거나 처벌하는데 ‘판다 외교’를 활용해왔다”며 “미국의 판다 복귀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가 역사상 최악으로 치닫는 등 대부분 협력이 단절된 순간에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갈비 판다’ 논란으로 중국 내 여론이 악화한 것도 있다. 미 멤피스 동물원에서 20년 지낸 수컷 판다 ‘러러’는 올해 2월 중국 송환을 앞두고 숨을 거뒀다. 러러와 함께 온 암컷 판다 ‘야야’의 모습이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중국 내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야야는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수척해진 상태였다. 중국에서 ‘조기 반환’ 요청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동물원은 올 4월 대여 기간이 끝나자마자 야야를 중국에 돌려보냈다. 멤피스 동물원은 러러의 사인을 심장마비로 판정했지만, 중국 네티즌들은 학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야야의 중국 내 인기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까지 제쳤다. 야야는 중국 정부의 검진과 격리 기간 등을 거쳐 올 6월 베이징 동물원으로 옮겨졌는데, 여기에 중국인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테슬라 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중국을 찾은 머스크 소식이 묻혔다. 미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야야가 뛰어노는 영상은 소셜미디어에서 2억30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지만, 머스크의 저녁 식사는 5100만 회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가 애국적 자부심을 자극하는 용도로 판다를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블룸버그는 “‘중국의 국보(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표현을 빌림)’인 판다를 집으로 데려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애국적 자부심의 표현으로 홍보될 것”이라고 지난달 전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야야의 복귀는 중국 정부가 엄격하게 검열하고 관리하는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비꼬았다.● 지구상 가장 번식이 어려운 동물블룸버그는 중국 정부의 판다 활용법이 달라진 배경으로 ‘개체수’를 꼽았다. 블룸버그는 “판다가 더 이상 멸종 위기에 처해 있지 않기 때문에 시 주석은 판다로 민족주의 정치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최근 몇 년간 판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국제적인 협력이나 보호 기금 등의 필요성이 감소했다는 설명이다.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2016년 멸종 위험도 적색목록에서 자이언트 판다 지위를 ‘멸종 위기(endangered)’에서 ‘취약(vulnerable)’으로 한 단계 격하시켰다. 판다 숫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 다큐멘터리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중국 쓰촨(四川)성 판다 보호구역에 서식하는 판다는 1986년 500마리에서 2015년 1300여 마리로 3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2006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쓰촨성 보호구역은 판다 최대 서식지다. 세계자연기금(WWF)은 현재 판다 1800여 마리가 야생에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물원에 사는 판다는 600마리 정도다. 1900년대 성행했던 판다 밀렵이 사라지고 판다 서식지 인근에서 벌목이 줄어든 덕분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판다 사냥은 합법이었지만, 지금은 판다를 죽이면 20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당시, 판다 가죽은 국제 암시장에서 10만 달러(약 1억3000만 원)의 고가에 팔렸다.판다 ‘번식’ 기술의 발전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판다는 신체적 특성과 기질 때문에 번식이 가장 어려운 동물로 꼽힌다. 얼마나 어려운지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은 지난해 ‘판다의 성생활(The Sex Lives of Giant Pandas)’이라는 특별 팟캐스트까지 제작했다.판다가 임신에 성공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1년 중 고작 24~72시간밖에 안 된다.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판다의 기질 탓에 둘을 붙여 놓는다고 사랑이 불타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까지 번식과 새끼 사육에서 실패한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글로벌 판다팀의 짝짓기 연구 그러다가, 서구 연구진의 도움으로 반전이 일어났다. 중국 과학자들은 스미스소니언 보존생물학 연구소 연구진 등 글로벌 팀을 구성해 연구를 거듭했다. 현재 중국에서 사용하는 판다 ‘번식 프로토콜’을 개발한 것도 이 연구진이다. 중국 사육사들은 분위기 조성을 위해 판다의 짝짓기 장면이 담긴 ‘판다 포르노’를 틀었다. 비아그라와 성인용품까지 동원했다. 장허민 사육사는 “쓰촨성 청두의 성인용품점을 찾아가 점원에게 ‘예열에 쓸만한 성인용품을 달라’고 말했다. 동시에 정부에 비용을 돌려받기 위해 영수증을 요청했다”고 회상했다. (비아그라와 성인용품은 큰 효과를 못 봤다고 한다)연구진은 암컷이 발정기에 있을 때를 세밀하게 평가하는 기술을 만들고, 수컷 정자를 이용한 인공 수정도 프로토콜에 포함했다. 유전학자 조나단 발루(스미스소니언 연구소)는 “판다는 사육 중인 동물 중 유전적으로 가장 다양한 동물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중국인들이 판다 번식에 적용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발루의 동료인 데이비드 와일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끼 판다들이 무더기로 태어났다”고 회상했다. 중국 정부와 해외 연구진이 판다를 위해 손을 잡은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1980년 세계 최대 비영리 국제 자연보전기관인 세계자연기금(WWF)이 서양 단체로는 처음으로 중국 정부와 판다에 관해 협력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WWF는 저명 야생 생물학자 조지 샬러를 중국에 파견 보냈고, 그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판다 기초 연구를 수행했다”고 전했다. 판다의 숫자가 늘어난 데에 서구의 연구 기술이 한몫한 셈이다. 팡왕 중국 푸단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현재 수준의 판다 개체수 증가는 20년 전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판다는 매우 성공적인 사례”라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자국 내 판다 서식지 역시 지속해서 늘려왔다. 쓰촨(四川), 간쑤(甘肅), 산시(陝西)성 등 3개 성에 걸쳐 조성한 판다 국립공원의 면적은 2만7134㎢에 달한다. 홍콩(2754㎢)의 10배,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8991㎢)의 3배 수준이다. 중국은 현재 3개 성의 대왕판다 보호구역을 통합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나중에는 중국 정부가 더 이상 판다를 해외로 보낼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판다 팬들도 중국에 가야만 판다를 볼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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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약 사려고 ‘투잡’ 뛰고 있습니다”[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위고비 신드롬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사는 직장인 티나 마리 포터(49)는 최근 ‘투잡’을 시작했다. 월 100만 원이 넘는 ‘약’을 사려면 어쩔 수 없었다.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사는 조던 존스(30)도 같은 이유로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다. 외식을 줄이고, 식료품을 살 때는 영수증을 꼼꼼히 살피는 중이다. 약값이 비싼 탓에 남자친구까지 나섰다. 그의 남자친구는 최근 근무시간을 늘려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있다. 포터는 “(약을 복용하고) 인생이 바뀌었다”면서 “비용이 정말 많이 들지만, 덕분에 더 건강해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이 약을 구하기 위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이하 노보)’가 개발한 비만치료제 위고비(Wegovy) 이야기다. 주사 1대 값이 45만 원에 이를 정도로 고가지만, 역대 가장 좋은 비만치료제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위고비를 사기 위해 일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소셜미디어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위고비는 마커펜 모양의 주사다. 복부나 허벅지, 팔에 스스로 주사를 놓는 방식이다. 일주일에 한 번만 놓으면 되고, 한 달 치인 주사기 4개를 한 세트로 판다. 위고비 한 세트는 미국에서 1350달러(약 180만 원)에 달한다. 한 달에 180만 원이 대중적인 가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입소문을 빠르게 탔다. 1년 4개월(68주)간의 임상시험에서 위고비를 맞은 참여자들은 체중이 평균 15% 줄었다. 대상은 과체중(BMI 27∼29.9)이면서, 심혈관계 질환 등 한 가지 이상의 체중 관련 질환이 있는 환자들이었다. 지난달 노보는 위고비가 ‘비만뿐 아니라 심장마비,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을 20%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덴마크의 한 병원 연구진이 위고비의 주요 성분을 복용한 사람들의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낮은 것을 발견했다.‘위고비는 만병통치약’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 “단식, 그리고 위고비”사실, 비만치료제가 등장한 지는 꽤 됐다. 위고비는 2021년에 미 식품의약품(FDA)에서 판매 허가를 받았다. 위고비와 용량만 다른 ‘오젬픽’은 이보다 4년 전인 2017년 FDA 승인을 받았다. ‘삭센다’라는 비만 주사는 2014년부터 판매하고 있다. 다만, 오젬픽은 애초에 당뇨약으로 승인을 받았고, 삭센다는 매일 주사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위고비가 살을 더 많이 빼주는 것도 맞다. 이 때문에 위고비는 출시 5주 만에 삭센다 4년 치 판매량을 돌파하기도 했다. (위고비와 오젬픽, 삭센다 모두 노보의 치료제다)그런데, 최근 치료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요가 폭증했다. 노보가 위고비의 유럽 출시 계획을 늦출 정도. 약 구매 문의가 끊이지 않자 FDA는 의약품 실시간 상황판에 ‘수요 증가로 물량 부족. 언제 해소될지 알 수 없음’이라고 안내했다. 품귀 현상의 배경에는 유명인들의 ‘간증’이 있었다. 모델 킴 카다시안을 비롯해 여러 할리우드 스타들이 위고비를 맞는다는 소식이 입소문을 타면서 치료가 필요한 비만 환자뿐만 아니라 미용 목적의 구매까지 몰린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한 X(구 트위터) 사용자가 지난해 10월 머스크 에게 “13㎏을 감량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머스크는 이렇게 답했다. “단식, 그리고 위고비(Fasting And Wegovy).” ● 날씬해지기 vs. 살아남기부유한 백인 밀집 거주 지역으로 뉴욕에서 비만율이 최하위인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도 위고비 열풍이 불었다.미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미 뉴욕시의 처방 데이터를 분석해 “어퍼이스트사이드 주민 2.3%가 위고비 등 비만치료제를 처방받았다”고 전했다. 비만율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브루클린 처방 비율의 2배 수준이었다. 위고비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비만치료제가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에게 향하고 있던 것. 뉴욕 부촌의 생활상을 주로 집필하는 작가 질 카그먼은 “요즘 부자들은 위고비를 ‘살 빠지는 비타민’ 정도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만치료제를 흔히 먹는 ‘다이어트 보조제’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꼬집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약값 부담은 부자들이 덜하다. 공공 건강보험인 메디케어는 당뇨병 치료가 아닌 살을 빼기 위해 비만치료제를 사용할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반면 부유층이 보통 가입하는 민간 의료보험은 체중 감량이 목적일 때도 보험 처리를 해준다. 비만치료제는 복용을 중단하면 체중이 다시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번 살이 빠지는 것을 경험하면, 끊기 어려운 구조다. 주사를 맞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고정 수요는 증가하게 된다. 공급이 크게 늘지 않는 한 품귀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비만치료제가 절실한 환자들은 약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블룸버그는 “콜로라도주에 사는 한 여성은 주사를 구하려고 약국 100여 곳에 전화를 돌렸고, 그의 남편이 2시간 반을 운전해서야 겨우 0.25mg(오젬픽 1회 분량)을 받아올 수 있었다. 일부는 약을 구하지 못해 체중이 다시 늘었다”며 “치료가 급한 환자들이 페이스북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고 지난달 전했다. 최근 들어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까지 구하기 어려워져 당뇨병 환자들도 괴로워하고 있다. 살을 빼려는 사람들이 위고비가 구하기 어려워지자 오젬픽을 대신 처방 받았기 때문이다. 미 헬스케어 데이터 분석업체 코모도헬스에 따르면 지난해 오젬픽을 구매한 사람 중 40%는 당뇨병 환자가 아니었다. 코모도헬스는 “체중 감량 목적으로 처방받은 것”이라고 분석했다.▶비만치료제 열풍에 관한 내용은 ‘글로벌 포커스’ 기사 참고.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30915/121203446/1● 루이비통 넘어선 회사올해 2분기 위고비 판매액은 7억3500만 달러(약 9800억 원)에 달했다.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6배다. 위고비 인기에 힘입어 노보 주가는 2021년 이후 4배 이상으로 올랐다. 올해만 주가가 40%가량 뛰었다. 위고비 덕분에 노보는 유럽 기업 시가총액 최고액을 찍었다. 노보는 4일(현지 시간) 덴마크 증시에서 시가총액 4280억 달러(약 572조 8800억 원)로 세계 최대 명품 기업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기업 가치(약 4190억 달러)를 제치고 유럽 증시에서 처음 1위를 차지했다. 국내외에서 ‘비만주사가 명품 가방을 이겼다’는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잘 만든 비만 치료제 하나가 국가 경제까지 이끌고 있다. 노보 시총은 덴마크의 국내총생산(GDP)마저 추월했다. 덴마크 정부는 지난달 말 제약 산업의 성장을 주요 요인으로 꼽으며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0.6%에서 1.2%로 올렸다.국가 경제에서 노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자 덴마크 경제학자들은 노보를 제외한 경제 통계를 내야할 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덴마크는 인구 600만 명으로 경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전 세계 아이들의 블록 장난감인 ‘레고’, 해운회사 ‘머스크’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다수 있다. 그런데도, 노보가 덴마크 경제에 미친 영향이 훨씬 컸다. 요나스 단 페테르센 덴마크 국가통계국 수석 보좌관은 “지난해 덴마크 경제 성장의 3분의 2를 제약 업계가 차지했다”고 밝혔는데, 덴마크 제약 업계에서 노보 매출은 2위 제약 업체 ‘룬트벡’의 10배가 넘는다. 블룸버그는 “노보의 성장이 없었다면 덴마크 경제는 1년 반 동안 정체되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보의 활약 때문에 덴마크 기업들이 기(氣)를 못 편 점도 있다. 배가 아파서가 아니다. 각국에서 치료제 구매가 몰리다보니 화폐(크로네) 가치가 상승해 기업 경쟁력에 압박이 심해진 탓이다. 이 때문에 일부 경제학자들은 덴마크에 ‘네덜란드병’이 도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네덜란드병은 네덜란드가 1960년대 천연가스를 수출하면서 급격하게 소득이 증가했지만 화폐가치가 오르면서 여러 산업들이 경쟁력을 잃게 된 것을 의미한다.한 회사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핀란드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때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했던 ‘노키아’가 쇠락하면서 핀란드 경제 전반이 침체한 것을 떠올린 것이다. 제약업 특성상 일자리 창출이 많지 않다는 점도 덴마크의 고민 중 하나다. ● 당뇨약에 진심인 회사 사실, 노보는 비만주사 이전에 당뇨병 치료제에 진심인 회사였다. 1923년 창립한 이후 무려 100년 동안 당뇨약 개발에 전념해왔다. (얼마나 열정인지 코펜하겐 본사 건물을 인슐린 분자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고 한다) 1922년 코펜하겐대 교수이자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아우구스트 크록은 예일대에 강연하기 위해 부인 마리 크록과 미국을 찾았다. 미국 방문 중에 캐나다 연구진을 만난 부부는 1921년 발견한 호르몬인 인슐린으로 당뇨병을 치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아내 마리 크록이 제1형 당뇨병 환자 주치의이었고, 본인이 제2형 당뇨병 환자였기 때문이다. 부부는 인슐린을 개발한 캐나다 토론토대로 건너가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인슐린을 생산, 판매할 수 있는 허가를 따냈다. 부부는 1923년 ‘노디스크 인슐린연구소’를 차렸다. (1925년 덴마크에서 당뇨병 치료제 기업 ‘노보 테라퓨티스’가 설립됐는데, 둘은 경쟁하다가 1989년 합병했다. 그래서 ‘노보 노디스크’가 탄생했다) 이 회사는 기술 혁신을 거듭하면서 1978년 유전자 재조합으로 인간 인슐린을 세계 최초로 생산했다. 1985년에는 최초의 펜 형태 주사제를 내놨다. 이후, 당뇨병 환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노보가 수혜를 봤다. 2000년 1억5000만 명이던 전 세계 당뇨병 환자 수는 5억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노보는 현재 전 세계 인슐린 시장의 45.7%를 차지하는 당뇨병 치료제 업계 1위 업체다.노보 직원 중에서도 당뇨병 환자이거나 환자의 가족인 경우가 적지 않다. 2017년 노보 최고경영자(CEO)였던 라스 프루어가르드 예르겐센의 아버지, 부사장 겸 세포치료 R&D 책임자인 제이콥 스텐 피터슨의 어린 딸도 당뇨병을 앓고 있다. 피터슨은 “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20년 동안 일했다”며 “딸이 20살이 되기 전에 치료를 약속했다”고 강조했다.▶노보의 비즈니스 전략에 관한 내용은 ‘딥다이브’ 기사 참고.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30822/120812748/1● 굶주린 쥐이전에는 노보의 비즈니스가 당뇨병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사업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그런데 노보가 당뇨약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위고비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비만치료제가 당뇨병 약 개발 과정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노보는 당뇨병 임상시험 도중 참가자들의 체중이 줄어드는 ‘부작용’을 알아챘다. 당뇨병 치료제가 체내 호르몬인 ‘GLP-1(혈당조절 호르몬)’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밥을 먹으면 GLP-1이 장에서 생성돼 인슐린 분비를 촉진한다. 뇌에는 포만감을 느끼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비만치료제는 GLP-1처럼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켜 체내 혈당을 줄이고 뇌에 신호를 보내 배가 부르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간에선 포도당 합성을 감소시키고, 위는 음식을 천천히 소화하게 된다. 음식이 위장에 오래 머무는 만큼 포만감을 느끼고 덜 먹고 싶게 된다. 비만 주사는 배고픔을 조절하는 뇌의 시상하부에도 영향을 미친다. 첫 발견은 ‘굶주린 쥐’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 초 노보 연구원들은 당뇨약 개발을 위해 GLP-1을 생성하는 췌장 세포 종양을 실험용 쥐에 이식했는데, 쥐가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실험 대상 쥐들이 스스로 굶어 죽는 모습이 의아했다. 노보 연구진인 로떼 비예르 크누센은 “당시 ‘식욕 조절’에 미치는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확신했다”고 했다.연구진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GLP-1 주사를 맞은 사람들이, 주사를 안 맞은 사람보다 뷔페에서 12% 덜 먹는다는 결과를 얻었다. 노보는 당뇨약을 비만주사로 만들었다. 화이자가 심장병 약으로 만들던 ‘비아그라’를 발기부전 치료제로 만든 것과 유사하다. 노보의 위고비는 ‘우연히 발견한 행운’인걸까? 그런 시각이 많지만, 비만치료제 개발은 쉽게 도전할 만한 분야는 아니었다. 그동안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들은 비만치료제가 효과적이지 않고,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려왔기 때문이다.1934년 여러 제약사들이 ‘디니트로페놀(DNP)‘이라는 약물을 다이어트 약으로 판매했는데, 이 약의 독성 때문에 약 2만5000명이 시력을 잃었다. 미 정부는 사용을 금지했다. 1990년대에는 ‘다이어트 한약’으로 ‘마황(Ephedra)’을 사용했다. 심장마비와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2004년 사용이 금지됐다. 이후, 리모나반트와 시부트라민 같은 제제가 체중 감소 약으로 처방됐지만 안전성 우려로 미국에서 판매가 중단됐다. 노보의 비만주사 개발은 고도화된 전문성의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뇨병을 연구하며 발견한 가능성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노보의 (비만주사) 성공은 처음부터 무언가를 창조하기보다, 고도로 전문화한 비즈니스의 인접한 영역에서 혁신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입증하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 “게으른 게 문제 아닌가요?”노보에서 비만치료제 개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경영진 설득부터가 쉽지 않았다. 노보는 100년 가까이 한 종류의 치료제만 만들던 회사였다. 1990년 이후 CEO가 3명에 불과할 만큼 안정성을 중시해왔다. 한 마디로, 보수적인 회사라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내부에서도 비만치료제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만큼 비만주사 개발이 쉽지 않아서다.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에서 일했던 독일 헬름홀츠 뮌헨 연구소의 마티아스 초프 박사는 “(비만치료제 개발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라며 “신체에는 체중을 조절하기 위해 상호 작용하는 신경 자극과 호르몬의 중복된 회로가 너무 많아서 하나를 조정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비만주사를 개발한 노보에서조차 약물의 작용 원리를 세세하게 파악하지는 못했다. NYT는 “오젬픽과 위고비가 삭센다보다 더 효과적인 이유는 여전히 미스테리다. 왜 일주일에 한 번 주사하는 것이 하루에 한 번 주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체중 감소를 가져올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노보와 일라이 릴리에 자문해 온 미 미시간대 비만 연구자 랜디 실리도 “아무도 GLP-1의 작동 원리를 전부다 이해하진 못했다”고 설명했다.약물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보다 더 큰 문제는 ‘비만’에 대한 편견이었다. 노보의 임원이었던 리차드 디 마르키 박사는 “제약 업계에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다”며 “비만을 질병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뇨병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다니엘 드러커 교수는 “GLP-1 연구는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을 줬다”면서 “학회를 신청하면 강연 시간을 맨 마지막으로 잡아줘 많은 참석자들이 공항으로 떠났고 어떤 때는 강연 도중에 강연장을 철거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1980, 1990년대 초반까진 거의 텅 빈 강당에서 연설했다”고 덧붙였다.노보의 일부 경영진조차도 비만이 의지력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노보 재단의 CEO이자 최고과학잭임자인 마즈 크로스가드 톰슨은 “최고경영자에게 비만이 단순히 생활 방식에서 오는 질환이 아니라는 점을 설득하는데 반년을 소비해야했다”고 말했다. ● 비만은 21세기 신종 유행병?많은 사람들이 비만을 폭식과 게으름(또는 나태함)의 결과물로 여기지만, 비만도 엄연한 병이다. 운동과 식습관 노력만으로 비만을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연구도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인체의 뇌는 얼마나 많은 지방을 체내에서 운반할지 일종의 ‘설정점(또는 방어 지방량)’을 결정한다”며 “뇌는 사람이 섭취하는 양을 조절해 이 설정 포인트를 유지한다”고 전했다. ‘요요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다. (위고비 같은 비만주사는 뇌의 설정점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WSJ은 “과학적 증거에 따르면, 비만은 신체의 호르몬 변화를 일으켜 줄어든 체중을 회복하게 만든다”고도 했다. 비만을 의지력보다 생물학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유전적인 영향도 있다. 학계에서는 최소 1500여 개의 유전자가 체중과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 미 뉴욕 마운트 사이나이 의대의 루스 루스 교수는 “어떤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체중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유전자의 변이 조합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유전자 변형을 일으킬 수 있는 식품이 이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떤 이에게 체중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NYT는 “미 미시간주 앤아버의 체중 관리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무엘 심슨은 비만과 당뇨병을 앓았던 어머니와 형제들의 운명을 자신도 겪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며 “그들은 모두 신부전증에 걸렸고, 결국 59세의 나이에 각각 숨졌다”고 전했다. 미 미시간대 의대 교수인 에이미 로스버그는 “(비만) 환자에게 ‘의지의 문제’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미국 의학협회는 2013년 비만을 만성 질환으로 분류했다. 비만이 공식적으로 질병이라고 공표한 것. 세계보건기구(WHO)는 2014년 비만을 ‘21세기 신종 유행병’으로 진단했다. 블룸버그는 “비만 관련 건강질환은 236가지에 달한다”며 “비만인 사람은 제2형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2배보다 더(243%) 높고, 심장병과 고혈압을 앓을 확률도 일반 사람보다 각각 69%, 113% 더 높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 글로벌 휩쓰는 ‘비만의 경제학’전 세계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뚱뚱해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WHO에 따르면, 전 세계 비만 인구는 10억 명을 넘어섰다. 세계비만연맹은 2035년 세계 인구의 절반인 40억 명 이상이 비만이나 과체중으로 분류될 것으로 전망했다. 가공식품 섭취가 늘고,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증가한 탓이다.비만은 보통 키 대비 체중 비율인 체질량 지수(BMI)를 사용해 측정한다. 25가 넘으면 과체중, 30이 넘으면 비만으로 본다. (예로, 키가 175㎝인 남성은 77㎏ 이상이면 과체중, 92㎏가 넘으면 비만이다)미국에서 비만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1974년 12%였던 미국의 비만율은 현재 42%에 달한다. 50년 동안 비만율이 2년 연속 감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WHO에 따르면 2020~2022년 미국에서 약 64만 명이 비만으로 목숨을 잃었다. 과체중은 의료비나 근로 시간 감소 및 생산성, 건강 보험, 병가, 수명 단축 등 다방면으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학계는 전 세계 ‘비만 비용’이 2035년 4조 달러(약 5335조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 세계 GDP의 2.9% 수준(2019년 2.2%)에 이를 수 있다. 2021년 미 하버드대와 조지워싱턴대 연구진은 비만이 1인당 연 1861달러(약 250만 원)의 초과 의료 비용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비만 관련 지출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살을 빼기 위해 연 2500억 달러(약 337조 원) 가량을 소비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미국인들은 헬스장과 칼로리를 계산하는 운동 추적 앱, 다이어트 식단 등 체중 감량을 위해 연간 700억 달러(약 94조 원)를 쓴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비만 자체가 거대한 경제력을 지녔다”고 표현했다. 국제학술지 영국의학저널 글로벌 헬스는 비만 인구를 현재보다 5%포인트 낮추면 연 4290억 달러(약 579조 원)를 절감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비만 인구가 더 오래, 더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점도 수치에 고려했다. ● 노키아 아닌, 아이폰의 탄생제약 업계는 ‘위고비’를 시작으로 비만주사의 사용이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새로운 치료제가 비만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글에서 “일부 환자가 구토, 설사 같은 부작용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경우 처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비만치료제의 효과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설명이다. 노보 이외에 다른 글로벌 제약사들도 비만치료제 신약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화이자는 위고비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알약 형태의 치료제를 개발했다. 일라이릴리는 위고비보다 감량 효과가 더 큰(평균 20%) 비만치료제 출시를 앞두고 있다. 조 풀러 하버드비즈니스스쿨(HBS) 교수는 “(비만 치료제)의 등장은 스마트폰의 등장이나 택시에서 우버로의 전환처럼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고 강조했다.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비만치료제가 ‘역대 최대 규모의 신약’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 투자사 제프리스는 2031년까지 비만치료제 시장 규모가 1500억 달러(약 203조 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2021년 제약사들의 전체 암 치료제 매출이 1850억 달러(약 249조 원) 수준이었다. 비만치료제 시장이 금세 이를 따라잡을 것이라는 예측이다.그러나 몇 가지 우려가 남아있다. 먼저, 비만 약을 어떻게 평생 먹느냐는 지적이다. 비만치료제는 약을 복용하는 동안에만 효과를 보인다. 약을 끊는 순간 체중이 다시 늘어난다. 노보가 자체 진행한 두 건의 임상시험에서 비만주사를 중단한 환자들의 몸무게는 1년 이내에 대부분 제자리 근처로 돌아왔다.제약사는 이에 대해 “비만을 진정성 있게 질병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이 나오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예르겐센 노보 CEO는 “고도 비만인 환자의 대부분이 비만을 만성 질환이라고 생각한다”며 “고혈압 환자가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혈압이 상승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비만을 만성 질환과 같은 시각에서 치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약에만 의존하게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약으로 쉽게 체중을 줄이면 생활 습관을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식단 관리나 운동에 소홀해진다는 것이다.결정적인 건 역시 ‘돈’ 문제다. 위고비의 정가는 연 1만3600달러(약 1800만 원)에 달한다. 미 비만학회 학술지 ‘비만(Obesity)’은 “위고비의 원가는 월 40달러(약 5만4000원)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연간으로 계산해도 정가에 비해 원가가 턱 없이 낮다. 노보가 약을 지나치게 비싸게 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의 경우 보험에 의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의학저널은 메디케어에 가입한 미국 비만 환자 중 10%만 위고비를 복용해도 연 270억 달러(약 37조6000억 원)가 투입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저널은 “현 의료 시스템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복제약은 10년 뒤에나 살 수 있다. 위고비의 미국특허는 2032년 만료된다. 위고비는 비만이라는 병의 적절한 답일까, 아니면 또 다른 골칫거리일까.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3-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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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계속될 수 있을까[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빈민촌 성공 신화의 몰락 중국 대형 부동산 개발기업 헝다(恒大, 에버그란데)그룹의 쉬자인(許家印) 회장은 중국 경제 성장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쉬자인은 1958년 허난성 저우커우시의 빈민촌에서 태어나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태어난 지 일 년도 안 돼 어머니가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에서 월 14위안(약 2500원)의 최저생계비를 받으며 겨우 생활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공부는 잘했다. 쉬자인은 우한과학기술대학의 금속학과에 3등으로 입학했다. 이후 제철소와 무역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1996년 그는 덩샤오핑이 경제특구로 지정한 선전시에 ‘헝다부동산’을 차렸다. 직전 회사에서 부동산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헝다는 당시 다른 부동산 개발사들과 다르게 작은 면적과 싼 가격을 앞세웠다. 주택에 ‘클라우드 레이크 로열 가든’, ‘리버사이드 맨션’ 같은 서구식 이름을 붙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헝다는 수백 도시에서 100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맡았다. 연간 33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직간접적으로 창출했다. 회사의 직원 수도 10명에서 수천 명으로 늘었다.헝다는 생수부터 전기차, 돼지 사육, 축구단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넓혔고, 쉬자인은 억만장자가 됐다. 중국 부호 순위를 조사하는 후룬바이푸에 따르면 2020년 쉬자인의 자산은 1981억 위안(약 36조 원)으로 당시 중국에서 세 번째로 돈이 많았다. 1, 2위는 알리바바의 마윈과 텐센트의 마화텅이었다. 쉬자인은 2018년 한 연설에서 “내가 가진 모든 것과 헝다 그룹이 이룬 것은 당과 국가, 사회 전체가 준 것”이라며 중국 공산당에 감사함을 표했지만, 그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과실을 가장 열심히 맛본 사람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쉬자인은 희귀한 프랑스 와인을 맛보기 위해 파리를 여행하고, 100만 달러짜리 요트와 최고급 항공기를 사 모았다”고 전했다. 헝다와 중국 신규 주택 판매 1위를 다툰 대형 부동산 개발사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 창업자 양궈창(楊國強)의 성공 스토리도 영화 못지않다. 양궈창은 17살까지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건설노동자로 현장에서 일하다가 1992년 비구이위안을 창업했다. 그는 사업 초기 명문 학교를 유치하면서 고급 아파트 프로젝트를 성공시켰고, 경쟁이 덜한 3선, 4선 도시를 공략하며 사업을 키웠다. 비구이위안은 2015년 1000억 위안(약 18조 1700억 원), 2017년 2000억 위안(약 36조3000억 원)의 연 매출을 거두며 업계 1위에 올랐다. ▶비구이위안의 성공 전략과 비즈니스 취약점에 관한 내용은 ‘딥다이브’ 기사 참고. ● 중국판 리먼 사태 우려그런데, 그렇게 잘 나가던 회사들이 최근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문 닫을 처지에 놓였다.비구이위안은 지난달 6일 만기가 된 채권 이자 2250만 달러(약 300억 원)를 제때 갚지 못해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현재 비구이위안은 이자와 공사자금 확보를 위해 긴급하게 자산을 처분하고 있다.2021년 디폴트 상태에 빠진 헝다는 지난달 28일 17개월 만에 홍콩증권거래소에서 거래를 재개했지만, 주가가 80% 이상 폭락했다. 헝다는 지난해 상반기 664억 위안(약 12조 원), 올해 상반기 330억 위안(약 6조 원)의 순손실을 냈다. 부채 구조조정 중인 헝다는 최근 해외 발행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대형 부동산 개발사들의 위기가 금융권으로 확산하면서 ‘리먼 모멘트’ 직전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중국 최대 민영 자산관리그룹인 중즈계(中植系) 산하의 중룽(中融)신탁은 최근 만기가 된 신탁 상품의 상환 중단을 선언했다. 중국 부동산 업계의 돈줄 역할을 하던 회사가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못 돌려주겠다고 밝힌 것이다. 신탁사는 은행처럼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고 구조도 복잡해 ‘그림자 금융’으로 꼽힌다. 위험의 크기와 여파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된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중국에서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중국판 리먼 사태’로 확산될지는 차치하더라도 비구이위안의 디폴트 문제는 파급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전문 리서치 업체 게이브칼에 따르면, 비구이위안의 미지급 대금은 3900억 달러(약 518조 원)에 달한다. 수많은 건설 노동자, 원자재 공급 업체들이 어마어마한 돈을 떼일 수 있다는 의미다.무엇보다 올해 말까지 입주하기로 하고 비구이위안에 돈을 지급한 사람들이 길바닥에 나앉게 될 수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상반기 비구이위안의 주택 공급량으로 추정해보면, 최소 14만4000명이 올겨울 추위에 떨 수 있다”고 지난달 전했다. ● 중국인들의 부동산 ‘영끌’ 투자중국 부동산 업계에서 6년 연속 매출 1위(2017~2022년)를 기록한 비구이위안의 채무불이행 선언이 도화선은 됐지만, 사실, 중국 부동산 업계는 이전부터 흔들렸다. 비구이위안과 자웅을 겨루던 헝다는 2021년부터 이미 디폴트 상태였다. 중국 부동산 시장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의 문을 연 1978년 이후 중국 경제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이후 중국의 1인당 소득은 25배 증가했다. 8억 명 이상이 빈곤에서 벗어났다. 중국이 이처럼 성장한 배경에는 인프라, 부동산 건설(투자)의 역할이 컸다. 2008~2021년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의 44%가량을 매년 인프라와 부동산에 투자해왔다. 전 세계 평균(25%)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특히, 1990년대 후반 시작된 부동산 민영화가 중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당시, 부동산 기업들은 지방정부에 토지 사용권을 판매하라고 제안했고 지방정부는 이를 받아들이면서 부동산 개발을 본격화했다. 지방정부는 이를 통해 지역을 도시화하고 곳간도 채웠다. 헝다, 비구이위안 같은 개발사들이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주택과 빌딩을 지었다. 중국의 부동산 가격은 25년 넘게 꾸준히 상승했다. 매년 중국 부자 순위 상위권을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점령했다. 너도나도 부동산 개발에 뛰어들었다. 자산의 가격 상승은 중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민의 소비가 늘고,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지면서 중국 경기에 온기가 돌았다. (물론, 수출 등으로 경제 기초체력이 좋아진 것도 있다) 경기가 좋으니 무주택자는 열심히 일해 집을 살 수 있었고, 유주택자는 부동산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고 집을 더 구매했다. 부동산은 중국 지방정부와 가계의 부(富)를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2016년 초, 순탄했던 경제가 미·중 갈등과 자국 내 태양광 기업 부실 사태 논란으로 휘청했다. 연일 상해종합지수가 폭락했다. 중국 정부는 부랴부랴 경기 부양책을 내놨는데 이 중 하나가 주택담보대출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었다. 아파트 구매에 필요한 최소 계약금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의 ‘영끌 투자’가 시작됐다. 중국인들이 마땅한 대안이 없어서 부동산에 돈을 넣은 것도 있다. NYT는 “중국 가계는 투자의 선택권이 (정부 규제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새 주택이나 공장에 돈을 넣는 것 외에는 거의 대안이 없었다”고 전했다. 현재도 중국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은 70% 수준이다.● 무너지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2016~2020년 중국의 부동산 가격은 40% 이상 급등했다. 저금리를 기반으로 한 투자(부채)와 집값 상승의 기대감(수요)이 빙글빙글 돌면서 거품을 일으켰다. 미 블룸버그는 “(정점이었던) 2019년 중국의 부동산 가치는 약 52조 달러(약 6경 8770조 원)로 미 부동산 시장 규모의 2배에 이르기도 했다”고 전했다. 결국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칼을 꺼내 들었다. “주택은 거주용이지 투기용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시 주석은 2020년, 부동산 대출 잔액 기준 마련, 개발사들의 부채 축소 등 강력한 부동산 규제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시 주석이 부동산 규제에 드라이브를 건 배경에는 중국 연간 경제 생산(GDP)의 282%(미국은 257%)에 달하는 중국 내 부채 문제도 있었지만, 경제 정책 노선 변화가 더 컸다. 중국 정부는 미·중 갈등이 본격화하면서 인프라 투자, 수출 등 국가 주도 경제에서 내수 기반의 경제 전환을 시도하고 있었다. 집값 상승으로 발생한 빈부 격차도 줄이고자 했다. 중국 언론에서 시 주석의 ‘공동부유(共同富裕·같이 잘살자)’ 문구가 자주 등장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부동산 업체들은 정부 규제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는데, 곧이어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직격탄을 날렸다. 코로나19 사태로 도시가 봉쇄되면서 주택 건설과 구매 수요가 위축된 것이다. 실제로, 팬데믹 봉쇄가 한창이던 지난해 상반기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건설이 지연됐고, 주택 판매도 반토막 이상 떨어졌다. 팬데믹 봉쇄가 풀린 뒤에도 집값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중국 부동산 중개인 등 민간 데이터 제공업체들은 상하이 등 주요 대도시와 중국의 2, 3선 도시의 절반 이상에서 기존 주택 가격이 고점보다 최소 15%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항저우시의 알리바바 본사 근처 주택 가격은 2021년 말보다 25%나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집값이 내려가면서 과잉 공급 속에 감춰져 있던 중국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시난(西南)재경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2018년 중국 도시 아파트의 약 20%인 1억3000만 채가 사실상 비어 있는 상태였다.중국 부동산 시장이 크게 오르기 시작한 2016년부터 실수요가 꺾였다는 주장도 있다. NYT는 지난달 “2016년 이후 중국의 연간 출생과 혼인 건수가 거의 절반으로 줄면서 새 아파트 구매 수요는 점차 약화한 상태”라고 지적했다.중국의 경제 성장 속도가 완만해진 것과 팬데믹 시기에 중국 정부가 미국과 다르게 가계에 직접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부동산 가격 급락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NYT는 “돈을 빌려 아파트를 짓는 비즈니스 모델은 집값이 오르는 동안에만 작동한다”고 꼬집었다. ● “중국의 40년 호황 끝났다” 미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최근 3년간 50개 이상의 중국 부동산 개발사가 채무불이행에 빠졌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사업을 포기한 부동산 개발사들을 상대로 입주 예정자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중국 전역의 100곳이 넘는 도시에서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상환을 거부하자는 운동까지 일어났다.당시 NYT는 “‘모기지 반란’이 100여 개 도시로 확산하고 있다”며 “중국에서 부동산은 수십 년간 안전한 투자로 여겨졌지만 이제 부동산은 중산층의 부의 기반이 아니라 불만과 분노의 원천이 됐다”고 평가했다.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중국 경제가 부동산 침체로 40년 호황을 끝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중국은 그동안 세계 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연 6~7%의 GDP 성장률을 기록해왔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향후 중국의 연간 성장률이 4% 미만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WSJ은 “중국을 빈곤에서 벗어나 대국으로 이끈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와 건설 위주 성장 모델이 더는 지속되기 힘들다”며 “저출산과 미국과의 갈등으로 ‘중진국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미국도 영원히 추월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제지표도 중국 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부추기고 있다. 중국의 7월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4.5% 급락했다.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2020년 3월 이후 최저 증감률이다. 야셍 후앙 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수출과 수입은 총 경제생산량의 40%를 차지한다. 중국의 수입품 중 상당수는 수출이 예정된 제품의 부품이다. 후앙 교수는 올해 5월 한 행사에서 “중국은 수출이 감소하면 수입도 감소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며 “이는 일자리와 소득도 줄인다. 불행한 이야기”라고 전했다. 실업률은 이미 사상 최고 수준이다. 올해 들어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6개월 연속 증가해 6월 21.3%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사상 최악의 기록이 나오자 중국 국가통계국은 7월 실업률은 아예 공개하지 않았다. 국가통계국은 “수치 수집이 더 개선되고 최적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베이징대의 한 경제학자는 “구직 활동을 중단한 수백만 명의 근로자를 포함하면 올봄 청년 실업률은 46.5%에 달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거꾸로 가는 중국 경제 중국의 7월 소비자, 생산자 물가도 전년 동기보다 각각 0.3%, 4.4% 떨어졌다. 소비자물가가 2년여 만에 마이너스 구간에 진입했다. 생산자물가는 10개월 연속으로 하락했다. 전 세계가 중국의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을 걱정하고 있다.경제학자들은 디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만큼이나 위험하다고 말한다. 물가가 떨어질 것이라 전망되면 수요가 더 위축돼 웬만한 경기 부양책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 상품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해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부채가 많은 중국에서 디플레이션은 치명타가 될 수 있다. WSJ은 “디플레이션은 대출 상환 비용을 증가시키고 소비와 투자를 줄이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커서 중국처럼 부채 부담이 높은 국가에는 특히 위험하다”고 전했다. 물가(제품 가격)가 떨어지면, 이전에 제품을 1개 팔아서 갚을 수 있는 돈을 2개는 팔아야 마련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기존 대출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사람들의 불안 심리가 모여 물가를 더 급하게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 ▶ 인플레이션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2019년 중국 남부 지역에 아파트를 구입한 리 시(33)는 지난해 펀드에 돈을 투자했다가 꽤 많이 손실을 보았지만, 남은 돈을 찾아 모기지를 갚기로 결정했다. 그는 “지금은 경제가 확실히 불안하다. 내일 직장을 잃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WSJ에 전했다. 중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국민보다 저축을 많이 하는 편이다. 세계은행은 중국의 GDP 대비 저축률이 다른 주요 선진국보다 높다고 추정했다. NYT는 “중국은 사회 안전망이 빈약해 오랫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저축을 많이 하는 국가 중 하나에 속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미국처럼 소비 중심의 국가로 알았는데 아니었다.원래도 저축을 많이 하던 중국인들이 경제가 불안해지자 최근 저축을 더 늘렸다. 올해 상반기 중국 가계의 총 은행 예금은 약 12조 위안(약 2176조 원) 증가했다. 1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NYT는 “저축이 늘고 투자와 소비가 줄어든 것은 사람들의 (향후 경제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담 포센 미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장은 팬데믹부터 이어진 중국의 소비 위축을 두고 ‘경제적 장기 코로나’라고 평했다. ● 신뢰의 위기 중국 정부도 다방면으로 경기를 되살리려고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쉽지 않다. 위안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져 화끈한 금리 인하도 어렵다. 외국인 투자나 자본 유출이 우려돼서다. (물론, 중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팬데믹 봉쇄와 미·중 갈등, 민간 기업 옥죄기 등이 얽히면서 지난해 초의 5% 수준으로 이미 쪼그라든 상태다. 또한, 중국 정부는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펀드 등의 해외 투자도 통제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환율에 영향을 덜 주면서 유동성을 늘릴 수 있는 단기 금리를 낮춰왔는데, 최근 기준금리(LPR·대출우대금리)까지 연 3.45%로 0.1%포인트 내렸다. 생각보다 경기가 쉽게 반등하지 못해서다. 블룸버그는 “경기 부양을 위해 중국 국영 은행들이 모기지 금리까지 인하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가 소비자들의 소비 여력 향상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고 지난달 29일 전했다. 중국 정부의 정책이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할지 다들 지켜보자는 분위기다.중국이 부동산과 인프라 투자를 줄이고도 과거와 같은 경제 성장을 이끌어내려면 생산성이 높은 고부가가치 사업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분석도 많다. 시 주석 역시 ‘과학기술 자립·자강론’을 들어 반도체나 전기차, 배터리, 인공지능 같은 첨단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이를 위해서는 미·중 무역 갈등의 완화는 물론, 그간 시 주석이 ‘공동부유’를 이유로 기를 죽여 놓은 빅테크 기업의 활약이 필수적이다. (‘알리바바’가 대표적) 물론, 시 주석이 그동안 집착해 온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쉽게 내려놓지는 않을 것 같다. 향후 중국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은 ‘시진핑 국가주석’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김성모기자 mo@donga.com}

    • 202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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