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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 ‘자포리자 원전’이 우크라이나군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시설 파괴 등 더 큰 불상사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자칫 ‘핵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했다.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7일 러시아 국영원자력기업인 로사톰은 “우크라이나가 자포리자 원전을 드론으로 공습해 소속 직원 3명이 다쳤다”며 “원전 6호기 돔과 하역장, 구내식당 인근 등을 3차례에 걸쳐 공격했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다만 이번 공격으로 원전 주변의 방사능 수치는 바뀌지 않았다고 덧붙였다.러시아는 즉각 우크라이나를 비난하고 나섰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서방 지도자들도 우크라이나의 핵 테러 행위를 규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자포리자 원전은 원래 우크라이나 소유였으나 2022년 러시아가 침공해 해당 지역을 장악한 뒤 관리하고 있다.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자포리자 원전을 공격한 적이 없다”며 러시아의 자작극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산하 총정보국(HUR)의 안드리 유소우 대변인은 텔레그램에 “우크라이나의 원전 구역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은 이미 잘 알려진 침략군의 범죄 행위”라고 주장했다.국제원자력기구(IAEA)은 우려를 표명했다. IAEA는 “자포리자 원전이 공격받은 사실을 확인했다”며 “원자력 안전에 위험이 생기진 않았으나, 원자로 격납기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는 심각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심각한 핵사고 위험을 키울 수 있는 만큼, 공격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우크라이나 자포리아주는 2022년 침공을 받은 뒤 상당 부분 러시아에 점령됐다. 원자로 6기로 구성된 자포리자 원전은 이듬해 3월부터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전쟁 이전엔 우크라이나 국영 기업 에네르호아톰의 관리 아래 연간 약 30000GWh의 전기를 생산해왔다.한편 러시아는 전쟁 발발 뒤 지속적으로 핵 전쟁을 거론하며 위협하고 있다. 파벨 쿠즈네초프 주핀란드 러시아대사는 6일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 인터뷰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한 핀란드에 핵무기가 배치되면 확실히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건강한 나무를 얻으려면 곡식을 키우는 것처럼 좋은 묘목을 길러내는 게 중요하죠.”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뉴질랜드 북섬에 있는 로토루아시 양묘장에서 만난 직원 로런 앤더슨 씨(34)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논밭처럼 평지에 펼쳐진 양묘장에는 라디에타 소나무 묘목 1800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마치 벼 모내기를 위해 모판을 짜듯, 나무를 숲에 옮겨 심기 위한 ‘묘목판’이 25ha(헥타르) 넓이의 양묘장에 빽빽하게 심어져 있었다. 톱날 장비가 달린 트랙터가 축구장(0.714ha) 35개에 달하는 양묘장 일대를 누볐다. 고르게 키우기 위해 일정한 크기로 묘목을 자르고 있었다. 지난해 10월에 심은 묘목은 반년 만에 40cm 가까이 자랐다. 양묘장에서 나온 묘목은 조림지에서 두 번째 목생(木生)을 시작한다. 조림지는 나무를 수확하기 위해 만든 숲이다. 이날 일부 묘목은 양묘장에서 4.7km 떨어진 레드우드숲으로 옮겨졌다. 이 숲은 보존해야 할 천연림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조림지가 공존하는 곳으로,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뉴질랜드 산림 면적은 전 국토(2670만 ha)의 36% 수준인 950만 ha. 이 중에서 조림지는 180만 ha(2022년 기준)다. 뉴질랜드는 연간 목재를 4조9000억 원 가량 수출하는 등 국내총생산(GDP)의 약 5%가 숲에서 나오는 ‘임업 강국’이다. 뉴질랜드 산림과학원(SCION) 팀 페인 수석연구원은 “숲은 보호와 이용이라는 양쪽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잘 심는 만큼 잘 활용해야 지속 가능한 자연이 유지된다”고 말했다.28년 주기로 나무 年 200만그루 수확… GDP 5%가 숲에서 나와 [창간 104주년]‘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3〉 ‘木맥경화’ 뚫은 뉴질랜드상품성 좋은 품종 주력으로 키워… 숲 기능 포함 안정적 목재 공급 역할조림지내 자전거길 年 60만명 찾아‘숲환생’ 벌채, 연간 5조 원대 수출… “환경-자원 넘어 안보영역으로 확장” “숲 한가운데 길게 비어 있는 공간이 ‘완전한 순환’이 이뤄지는 경계선입니다.” 뉴질랜드 산림과학원 팀 페인 수석연구원은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로토루아시 인근 레드우드숲 산등성이 중간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집어낸 공간은 빽빽한 초록 숲 사이에 난 빈틈이다. 이곳에는 양묘장에서 키운 라디에타 소나무 묘목이 심어져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텅 빈 곳처럼 보이는 묘목 식재 공간은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이 경계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처럼 레드우드숲 곳곳에선 15년 넘게 자란 나무들로 이뤄진 조림지와 나무를 베어낸 곳에 새로 묘목을 심은 공간이 맞닿아 있는 경계선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과정이 수십 년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목(木)맥경화’를 뚫어냈다. 조림지엔 1ha(헥타르)당 묘목 약 1000그루를 심는다고 한다. 평평한 땅에 바로 심지 않고 약간의 흙을 쌓아 올린 뒤 심는다. 밤에 기온이 떨어지면 묘목이 상할 수 있어 흙을 보온재처럼 쓰는 것이다.● ‘보호와 이용’ 선순환 만드는 숲 뉴질랜드 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조림지에 심은 나무는 평균 28년 키워내 상품성이 가장 좋은 시기에 수확한다. 조림지 조성 초기엔 다양한 수종을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산인 라디에타 소나무가 뉴질랜드 기후와 잘 맞아 본토보다 빨리 자라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최근엔 조림지의 91%를 채우고 있다. 페인 수석연구원은 “천연림에서는 다양한 나무가 어울릴 수 있도록 보존하고, 활용해야 할 조림지에는 다양한 수종보다는 상품성 좋은 품종을 주력으로 키운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솔송나무가 조림지의 약 5%를 차지하는데 수확하려면 평균 40년을 키워야 한다. 조림지는 천연림처럼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환경적 측면뿐만 아니라, 안정적으로 목재를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숲을 활용한 각종 레저산업을 파생시켜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기도 한다. 페인 수석연구원은 “숲은 자라면서 물과 공기를 정화하고 탄소를 저장한다”며 “시간이 지나 울창해지면 이런 공익적 가치 외에도 숲을 활용한 여가 생활이나 스포츠 등 다른 부가가치도 창출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레드우드숲은 산악자전거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활용 가치가 높다. 조림지 사이로 자전거길 160km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국제산악자전거협회(IMBA)는 2015년 이 길을 3등급 중 가장 높은 골드 등급으로 지정했다. 협회로부터 최고 등급을 받은 곳은 세계에서 6곳뿐이다. 뉴질랜드 전역에 있는 자전거길은 매년 60만 명이 방문해 약 3.9일간 머물며 하루 평균 292뉴질랜드달러(약 23만 원)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드우드숲 자전거길에서 만난 니콜 테일러 씨(32)는 “아들 네 명과 숲에 자주 온다. 광활한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숲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자연 살리려 나무 벤다” 환생 위한 벌채 뉴질랜드에선 숲을 키우고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계획적인 벌채로 선순환 고리를 이어간다. 벌채된 나무는 숲에서의 목생을 마치고 가공돼 다양한 목재로 환생한다. 레드우드숲에서 33km 떨어진 텍트 공원 주변 벌채지. 30ha에 달하는 광활한 벌판에선 최근 나무를 수확한 후 땅을 헤집어 놔 흙냄새가 가득했다. 벌채를 끝낸 민둥산 너머에는 푸른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조림지가 있어 경계선이 뚜렷하게 갈렸다. 뉴질랜드 산림과학원 더글러스 건트 책임연구원은 “이곳은 자연을 파괴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을 다시 살리는 공간”이라며 “나무를 벤 자리는 20년 뒤에 다시 풍성한 숲이 될 것”이라고 했다. 뉴질랜드는 연간 4000∼4500ha 규모의 숲을 벌채한다. 28년 주기로 벌채해 1ha당 약 500그루를 거둬들인다. 매년 2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베어내는 셈이다. 수확한 나무의 40%는 자국에서 쓰고 나머지 60%는 수출한다. 산림과학원 통계를 보면 2022년 기준 뉴질랜드에서 수출한 원목, 펄프, 합판 등 목재는 60억7300만 뉴질랜드달러(약 4조8937억 원)가 넘는다. 올해는 5조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뉴질랜드산 목재 수입 상위 5개국은 중국 36억2400만 뉴질랜드달러(약 2조9202억 원), 호주 6억3800만 뉴질랜드달러(약 5141억 원)에 이어 한국 5억700만 뉴질랜드달러(약 4085억 원), 일본 4억7000만 뉴질랜드달러(약 3787억 원), 미국 3억8600만 뉴질랜드달러(약 3110억 원) 순으로 집계됐다. 산림 안보에도 숲의 활용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재난,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 대비해 국가가 식량을 확보해야 하는 것처럼 목재 역시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일정량을 스스로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트 책임연구원은 “그린스완 시대가 시작되면서 산림과 목재 사용 자립도는 환경이나 자원의 문제를 넘어 안보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며 “나무를 어떻게 가꾸고 쓸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뉴질랜드 로토루아시에 있는 산림과학원(SCION)에 들어서자 10m에 달하는 높은 층고가 한눈에 들어오는 1층 로비에선 알싸한 숲 향이 느껴졌다. 뉴질랜드 정부 국가조사연구소인 산림과학원 건물은 목재로 지어졌다. 건물 뼈대와 바닥, 계단 등 눈길이 닿는 곳곳 모두 나무로 만들어졌다. 로토루아 지역 산봉우리 모양을 따 삼각형으로 만든 입구 문을 열자마자 건물 안에서 참새 두 마리가 날아들었다. 새들도 자유롭게 드나드는 이곳은 로토루아에서 심고 키워서 수확한 나무(550㎥)를 이용해 2020년 12월 건립됐다. 약 2000m² 넓이의 3층짜리 건물에는 35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산림과학원 관계자는 “이 건물의 탄소저장 효과는 418t”이라며 “승객 160명을 태운 비행기가 뉴질랜드 오클랜드와 영국 런던을 왕복하며 배출하는 탄소량과 같다”고 했다. 건물 내부에 사용한 목재는 나무 성질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화학약품 처리를 최소화했다. 목재가 비나 바람에 노출되면 쉽게 부식될 수 있기 때문에 건물 외관은 유리 등으로 마감했다. 유리에는 나무 이파리 색과 비슷하게 녹색과 노란색 등 마름모 문양을 채워 넣었다. 이처럼 뉴질랜드 땅에서 키우고 수확한 나무는 건축 재료로 많이 쓰인다. 탄소 중립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철근, 콘크리트보다 지진에 유연하게 반응한다. 과학원 관계자는 건물 중앙 마름모 모양의 나무 기둥을 가리키며 “뉴질랜드는 지진이 잦은데, 건물이 뒤틀려도 목재는 유연하게 대응해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토루아시 곳곳에선 나무로 집을 짓는 공사 현장을 쉽게 볼 수 있었다. 2층 주택을 새로 만드는 공사 현장에선 인부들이 작업하려고 설치한 임시가설물(비계)만 철제를 사용했고 주재료는 촘촘하게 끼워 맞춘 목재였다. 주민 아라타키 펜더 씨(25)는 “햇빛이 들면 나무 기둥에서 ‘쩍’ 하는 소리가 나는데, 주민들은 ‘건물이 숨을 쉬는 소리’라고 부른다”며 “나무로 된 건물은 자연의 숲처럼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파리에서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 ‘파리가 매력을 잃고 있다.’프랑스 언론들에는 이런 헤드라인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파리 인구가 줄고 있다는 통계가 발표됐기 때문이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는 워낙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프랑스에선 왜 유독 파리 인구 감소에 난리일까. 파리는 세계적인 관광 도시인 만큼 다른 유럽 도시들에 비해 항상 붐빈다. 집값도 비싼 만큼 많은 이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프랑스인들이 인구 감소 현상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법도 하다.게다가 최근 인구 감소 폭이 이례적으로 커서 더 반향을 일으켰다. 올해 7월 파리 올림픽 개막을 앞둔 프랑스인들에겐 이런 뉴스가 걱정스러울 수 있다. 세계적 축제를 앞두고 도시의 매력과 가치를 한껏 끌어올리려는 노력에 ‘찬물 끼얹기’가 된 분위기다.● 파리 학교마저 문 닫고 학급 줄여세계적인 관광도시 파리는 다른 유럽 도시들에 비해 유동 인구가 넘쳐난다. 벨기에 언론 브뤼셀타임스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가 거의 종료된 2022년 파리 관광객은 4400만 명이었다. 파리가 그해 세계에서 가장 방문자가 많은 도시였다. 그런데 인구 통계는 이와 상반된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파리 인구는 2015년 220만6000명에서 2021년 213만3111명으로 줄었다. 6년간 파리 인구 약 7만3000명이 증발한 것이다. 르몽드는 이에 대해 “역사적인 감소 폭”이라며 “파리 인구의 감소세는 2010년부터 시작됐지만 최근 10년간 감소율이 두 배로 늘었다”고 설명했다.감소세의 주요 원인은 기본적으로 출산율 하락이다. 파리에서 2022년엔 3만2000명이 태어났지만 2023년에는 2만2000명이 태어나는 데 그쳤다. 이런 출산율 감소는 코로나19를 거치며 결혼과 동거가 줄며 더 가속화됐다.출산율 감소가 두드러지게 가시화되는 곳이 파리 곳곳의 공립학교다. 출산율 하락에 따른 학생 수 감소로 아예 문을 닫거나 학급 수를 줄이는 학교들이 생겨나고 있다. 학교 정문마다 ‘우리 학급에 손대지 말라’, ‘학부모들은 화가 났다’는 문구를 담은 현수막이 걸렸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안전하고 가까운 곳에서 수업을 들을 권리를 빼앗긴다며 노발대발이다.● 집엔 실거주자 대신 관광객주택난도 한몫했다. 르몽드는 휴가용 임대 주택과 투자용 주택이 급증하면서 실거주자들이 살기 힘들어졌다고 분석했다. 실거주용 주택이 턱없이 부족해진 것이다. 실거주자들이 매물을 구하기 힘들다 보니 가격이 급등해 파리에 집 사기는 더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안 이달고 파리시장의 도시계획 담당자인 에마뉘엘 그레고아르 씨는 르몽드에 “도시의 인구 통계는 부동산 시장과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주택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 파리시가 에어비앤비의 임대를 제한했지만 그간 임대주택이 워낙 급증해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여기에 이혼 증가도 영향을 줬다. 그레고아르 씨는 “20여 년간 가족의 절반이 편부모 가정으로 채워졌다”며 이혼으로 인해 가족 일부가 파리를 떠나며 거주 인구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교통, 건물 정비 등 정주 여건도 우수하진 못하단 목소리가 나온다.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RFI)에 따르면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 샹드마르스가 있는 부촌 7구에서 최근 인구 감소세가 가장 두드러진다. 이 구의 라치다 다티 시장은 “7구가 교통 문제, 버스 노선 건축 공사로 인한 버스 운행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파리는 항상 (다른 도시보다) 더 더럽고 더 불안하다”고 지적했다. 해외 거주자 커뮤니티 인터네이션스에 따르면 ‘외국인이 살기 좋은 도시’ 조사에서 파리는 50곳 중 48위를 차지했다. 물론 볼거리, 식당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의료서비스와 대중교통이 편리하다는 평가가 나오긴 했다. 하지만 장기간 체류하는 외국인들은 주택난, 주택 가격, 언어 등을 장애물로 지적했다.여기에 정부의 재산세 인상 기조도 실거주자들을 파리 밖으로 몰아내고 있다. 비싼 집값에 높게 책정되는 재산세를 감당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 200곳에서 재산세가 전년 대비 7.1% 인상됐다. 전문가들은 올해에도 재산세 추가 로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사진)이 “북한과 이란의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을 차단하거나 처벌하는 안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3, 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나토 외교장관 회의에서 해당 논의를 한 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주요국이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에 강한 제재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블링컨 장관은 2일 프랑스 파리에서 스테판 세주르네 프랑스 외교장관과 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란, 북한, 중국 등이 러시아 방위산업 기반을 강화하는 무기와 물자를 지원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어 “우리는 이러한 성격의 지원을 차단하거나 처벌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며 “며칠 내에 나토 동료들과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3, 4일 나토 외교장관 회의에서 해당 안을 논의하겠다는 뜻이다. 회의 첫날인 3일(현지 시간)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또한 취재진에게 이란과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 및 탄약을 대대적으로 공급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했다. 특히 그는 “아시아의 안보가 유럽과 얽혀 있다”며 이 사안에 공동 대처하자는 뜻을 강조했다. 스톨텐베르그 총장은 올 7월 미 워싱턴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해 뉴질랜드, 호주, 일본 등 인도태평양 4개국 정상을 초청했다”고도 밝혔다. 이들 4개국과 우크라이나 지원, 사이버 전쟁에 대한 공동 대처 방안 등을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로써 한국은 나토 정상회의에 3년 연속 초대받게 됐다. 한편 나토는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에 대비해 향후 5년간 최대 1000억 달러(약 134조 원)의 우크라이나 지원금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제철소 용광로를 구석구석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신기하네요.”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뒤스부르크시의 란트샤프트 공원. 중앙에 우뚝 선 7m 높이 용광로 꼭대기에서 만난 주민 클라우스 페테르존 씨는 40여 년 전인 어렸을 때부터 제철소를 보고 자랐다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제철소는 안전 조명만 드리워진 어두컴컴한 ‘접근금지 구역’이었다. 보안 직원들이 막고 있는 데다 너무 위험해 근처에 다가갈 상상도 못 했던 이곳이 가동을 멈춘 뒤 이제 전망대로 변했다. 이날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축구장 약 250개 크기(180ha·헥타르)의 터엔 용광로, 파이프 등 녹슨 제철소 시설과 푸른 녹음이 한데 어우러진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울타리 없이 개방된 공간에 방문객들이 유모차를 끌고 카메라를 멘 채 모여들었다. 이들은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사 먹거나 곳곳에 설치된 벤치에서 여유롭게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라인강 지류 엠셔강 유역에 있는 뒤스부르크 란트샤프트 공원은 1985년 가동을 멈춘 티센그룹의 마이데리히 제철소가 ‘도시숲’으로 재탄생한 공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제철소를 살아있는 역사로 보존하면서 시민들에게 삭막한 도시의 쉼터를 제공했다. 거대한 흉물로 남을 뻔한 제철소에 숲이 생명을 불어넣어 준 셈이다.숲이 된 ‘녹색 제철소’ 年100만명 발길… 줄던 인구도 다시 늘어[‘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 〈2〉 獨 뒤스부르크 ‘도시숲’ 제철소 폐쇄 9년만에 공원 탈바꿈자전거 씽씽, 암벽등반… 콘서트까지SNS ‘핫플’로 인기, 해외서도 찾아와… 정류장 신설 등 도시 인프라 확대 ‘녹슬고 거대한 제철소를 어찌할 것인가.’ 1985년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뒤스부르크시의 마이데리히 제철소가 경영 악화로 가동을 멈추자 지방 정부와 주민들은 이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정치인들은 시설을 유지하면 재정에 부담이 된다며 “철거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주민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때부터 가족의 일터였던 85년 역사의 랜드마크를 없앨 수 없다”며 반발했다. 주민들의 일자리를 책임지던 지역 경제의 중심이 사라지자 도시가 소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생겨났다.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던 시민들은 ‘독일 산업유산협회’를 조직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제철소 보존의 필요성을 알리는 보고서를 작성해 정부를 설득했고, 정부가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정부는 국제건축전시회(IBA)를 열어 제철소와 주변 황무지를 개발할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이때 선정된 페터 라츠 건축가의 사업안으로 제철소 본연의 모습을 보존하되 숲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1994년 도시숲으로 재탄생한 뒤스부르크시의 란트샤프트 공원을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찾았다. 옛 광석 저장고 외벽에선 시민들이 암벽 등반을 하고 있었다. 석탄 수송용 기차가 달리던 철로에선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대형 탱크는 여름철 다이빙장으로 활용된다. 수시로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전통시장도 열린다. ● 소셜미디어 시대 ‘이색 관광지’로 독일은 국토의 약 33%가 산림으로 뒤덮여 도시마다 숲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도시에서 시민들의 건강과 휴양을 위해 조성되는 도시숲은 수도 베를린, 유럽 금융허브 프랑크푸르트 등에도 조성돼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쉼터로 자리 잡고 있다. 뒤스부르크시 란트샤프트 공원은 독일에서 유일하게 산업시설을 공원으로 탈바꿈시켜 주목받았다. 독일 산업화의 역사를 품은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만든 셈이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이런 이색적인 공원을 보기 힘들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학생 10여 명을 인솔해 견학을 온 사회복지사 조피 알더 씨는 “아이들에게 이 도시가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직접 보여주러 왔다”며 “도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돼 소중한 장소”라고 말했다. 이색적인 경관은 소셜미디어 시대를 맞아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에서 딸과 함께 방문한 메시카 씨는 “소셜미디어에서 사진을 보고 독특한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 공원은 최근 8년간 방문객이 연평균 100만 명이나 된다. 도시숲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나온 창의적 아이디어가 해외 방문객도 불러 모으고 있다. 공원의 물 관리 노하우가 대표적이다. 공장 지붕이나 건물 표면 굴곡진 부분에서 모은 빗물은 공원 곳곳에 설치된 작은 수로를 따라 나무와 꽃으로 흐르고 있었다. 공원 개장 이후 30년간 이곳에 뿌리 내린 식물은 700종을 넘는다. 이 공원 홍보 담당 레나 시엘러 씨는 “제철소 대형 탱크는 이제 저수조로 쓰이며 가뭄 때 공원 곳곳에 물을 공급한다”며 “네덜란드 등 수자원에 관심이 많은 국가에서 찾아와 어떻게 빗물 공급 시설을 운영하는지 묻는다”고 소개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015년 이 공원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오아시스’ 10곳 중 하나로 선정한 바 있다. 개방된 도심숲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운영 노하우도 주목받고 있다.● 낙후 지역에 인구 늘고 경제 활력 공원 개발로 뒤스부르크시는 활력을 되찾았다. 지역 방문객이 늘자 지방 정부도 도시 인프라에 투자하며 거주 여건이 개선되고 있다. 공원 옆에 있는 ‘란트샤프트 공원 북부’ 정류장은 지난해 말 확장 공사를 완료했다. 내년에는 인근에 약 600만 유로(약 87억 원)를 투입해 신규 정류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인근 낙후됐던 마르스로 지역은 공원으로 수혜를 입은 곳으로 꼽힌다. 마르스로는 1990년대 이민자들이 급격히 늘며 현재 주민 중 이민자 비율이 60%를 넘어섰다. 지역 경제가 침체돼 실업과 범죄가 늘었고, 경찰이 주시하는 지역이 됐다. 하지만 가까운 도시숲이 관광지로 발전하고 주기적으로 콘서트, 맥주 페스티벌 등 행사가 열리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일자리와 휴식을 얻었다. 제철소 폐쇄 뒤 인구가 급격히 줄었던 뒤스부르크시는 이민자 유입과 함께 란트샤프트 공원 조성 등 다양한 도심 재생 노력을 기울인 덕에 인구가 늘고 있다. 뒤스부르크시에 따르면 제철소가 가동을 멈추기 전인 1983년 54만1000명이었던 인구는 계속 내리막을 걸으며 2014년엔 48만6000명까지 줄어 최저점을 찍었다. 이후 인구가 점차 늘면서 지난해 52만5000명까지 회복됐고 올해는 5000명 더 늘 것으로 추산된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숲은 국가 공중보건의 중요한 인프라입니다.” 유럽 30개국으로 구성된 국제기구 유럽산림연구소(EFI)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봉쇄 기간 독일의 숲 이용객을 연구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코로나19 확산 시기에 개방된 장소인 숲은 전염 우려가 적고, 고립된 사람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공간으로 주목받으며 공중보건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EFI에 따르면 2020년 3월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이 시행되기 전 독일 서부의 본 주변 도시지역 숲 방문객은 하루 평균 290명이었다. 하지만 같은 해 3월 22일∼4월 28일 방역 대책 시행 중에는 방문객이 하루 평균 690명으로 늘었다.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방문객이 약 140%가 증가한 것. 방문객 최고치는 봉쇄가 풀린 직후인 같은 해 6월 4일 1275명이었다. 숲을 찾는 사람들의 유형도 달라졌다. 기존에 보기 힘들었던 20, 30대 젊은층,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지역 외부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아졌다. EFI는 “새로운 방문객들이 늘어나 숲이 사회 전반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게 됐다”며 “도시 지역의 산림 정책이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제 숲은 마음먹고 찾아야 하는 특별한 공간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다양한 시간대에 수시로 숲을 찾게 됐다. 코로나19 봉쇄 전엔 방문객들이 주로 평일 출퇴근 직전이나 직후에 숲을 방문했다. 하지만 봉쇄 기간엔 재택근무로 인해 대낮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특히 토요일은 숲이 가장 한산했던 날에서 가장 붐비는 날로 바뀌었다. 주로 쇼핑하던 인구가 숲으로 향한 것으로 분석됐다. 독일에선 전통적으로 숲이 ‘정서적 치유 공간’으로 여겨진다. 독일어에 ‘숲속에서 느끼는 편안한 고독감’을 뜻하는 발타인잠카이트(Waldeinsamkeit)란 고유한 단어가 있을 정도다. 이런 숲의 정서적 가치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재조명되고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잔 라자야 루 EFI연구원은 “방문객들이 숲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평온함 찾기’로 조사됐다”며 “숲의 영적 가치가 재평가되는 르네상스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산림보호협회는 이런 수요를 고려해 ‘마음챙김’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했다. 방문객이 스스로 숲길을 걸으며 호흡하고 명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앱이다. 이 앱은 구체적으로 몇 초간 걷다가 몇 초간 호흡할지, 나무 향을 어떻게 맡을지 소개하고 있다. 마음챙김 앱이 나온 뒤 독일 전역에는 ‘마음챙김 숲길’ 9곳이 추가로 조성됐다. 이 숲길에선 방문객들이 표지판에서 QR코드를 스캔해 숲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 서비스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토르스텐 뮐러 씨는 BBC 인터뷰에서 “앱은 숲 방문객이 호흡에 집중하도록 돕거나 숲의 색상 구조 질감 등 세부적인 모습을 관찰하도록 유도한다”며 “독일뿐 아니라 세계 어느 숲에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고 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무조건 심고 키우기만 한다고 좋은 숲이 아닙니다.” 지난달 27일 강원 춘천시 가리산. 잣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은 멀리서 봤을 땐 풍성해 보였다. 하지만 숲속으로 들어가자 키 큰 나무들 사이에 갇혀 썩은 나무들이 보였다. 김아름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사는 “다닥다닥 붙어서 자라는 탓에 햇빛을 못 봐 광합성도 못 하고 말라 죽은 것”이라며 “나무들도 전반적으로 고령화돼 탄소 흡수율이 떨어진다”고 했다. 가리산뿐만이 아니다. 국내 숲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대한민국 국토에서 산림이 차지하는 면적은 세계 평균(31%)의 2배에 달할 정도로 양적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산림 선진국에 비해 숲을 활용하지 못해 무늬만 ‘숲의 나라’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기후변화로 경제적 충격과 재난 위기가 일상화된 ‘그린스완(Green Swan)’ 시대에 숲 활용도를 높이는 과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동아일보가 지난달 26∼28일 해외 산림 선진국을 취재한 결과 일본은 ‘명품 숲’을 만들어 인구 유입과 지역 소득 향상의 계기로 삼았고, 지역소멸 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 독일은 멈춰버린 제철소 위에 도시숲을 조성해 생명을 불어넣거나 숲에서 나온 목재 부산물 등 바이오매스(생물자원)로 새로운 산업을 창출했다. 뉴질랜드는 나무를 심고 가꾸고 쓰는 선순환으로 이른바 ‘목(木)맥경화’를 뚫어냈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반세기 넘게 약 115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황폐화된 숲이 다시 푸르러졌다. 국토 대비 산림 비율(63%)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선 네 번째로 높다. 동시에 한국은 열대 목재 수입량 세계 4위로, 자급률은 15%에 그친다. 영국 프랑스 등은 자급률이 50∼80%에 달한다. 국내 숲은 탄소 저감 효과도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나무 중 77.2%가 30년생 이상이기 때문이다. 주요 수종은 심은 후 평균 25년이 지나면 탄소 흡수량이 줄어든다. 박병배 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는 “이제는 단순히 나무를 많이 심는 양적 성장을 넘어 탄소 저감, 산림안보, 지역경제와의 연계 등 숲을 제대로 활용하는 질적 성장을 꾀할 때”라고 강조했다. 31일 산림청 분석 결과 숲 활용도를 높일 경우 산림산업뿐만 아니라 관광 등 부가가치를 더한 전체 매출액은 현재 161조 원(2021년 기준)에서 2030년 206조 원, 2073년 606조 원까지 커진다. 지난해 현대자동차 매출액 162조 원의 4배 수준이다. 산림산업 일자리도 현재 61만 명에서 2073년 204만 명까지 증가한다.그린스완(Green Swan)기후변화가 초래할 사회 경제적 충격과 극단적 재난 위기 등을 일컫는 용어. 예기치 못한 경제 위기를 뜻하는 블랙스완을 변형한 것으로, 2020년 국제결제은행(BIS)이 제시했다. 韓 ‘목맥경화’… 115억그루 심었지만 늙은 나무 방치, 선순환 안돼[‘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 〈1〉 韓日 ‘숲 정책’ 살펴보니 나무 다닥다닥… 어린 나무까지 ‘골골’필요 목재 85% 수입… 年 7조 달해선진국, 청년-중년나무 고루 분포… “숲, 양적성장 넘어 이젠 질적 성장을” 성인 1명이 쉽게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로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 나무 직경은 평균 30cm에 불과했다. 양팔로 나무를 안고도 두 손이 포개질 만큼 얇았다. 다닥다닥 붙어 자란 탓에 생장이 억제돼서다. 나뭇가지도 뿌리에 가까운 아래쪽부터 많이 나 있었다. 나무는 가지가 뻗어 나간 자리에 생기는 옹이가 많을수록 목재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지난달 27일 찾은 강원 춘천시 가리산의 풍경이다.● 아직까진 ‘무늬만’ 숲의 나라 반면 같은 잣나무인데도 관리를 해준 숲의 풍경은 달랐다. 산림청이 ‘숲가꾸기 시범림’으로 관리하고 있는 공간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굵고 곧게 뻗은 나무가 많았다. 2년생 묘목을 심은 뒤 건강한 나무만 남기는 솎아베기 과정을 거쳤다. 우량한 나무 주변에 있는 병든 나무, 굽은 나무, 노쇠한 나무는 잘라줬다. 그 결과 방치된 숲의 잣나무는 직경이 30cm 안팎에 불과했지만, 관리된 숲에선 잣나무 직경이 50cm 안팎까지 자랐다. 굵을 뿐만 아니라 길고 반듯하게 자라 목재로서 쓰임새도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관리를 받은 나무는 뿌리가 깊이 들어가 산사태 발생 시 말뚝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윤석범 춘천국유림관리소장은 “국내 대부분의 산이 나무를 심기만 하고 가꿔 주지 않아 적정 밀도보다 과밀한 상태”라며 “나무도 농작물처럼 제때 ‘수확’한다는 개념이 자리 잡아야 자연이 선순환한다”고 말했다. 국내엔 전국 어디에나 푸른 숲이 있고 나무도 빼곡하게 심어져 있지만, 상대적으로 숲 관리는 빈약하다는 의미다. 국내 목재 수요량의 85%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하는 열대 목재만 매년 7조 원 규모로 세계 4위다. 수입량이 많다 보니 인도네시아에서 원목 수출을 제한하면 국내 목재 가격이 요동치기도 한다. 윤 소장은 “목재를 해외에서 벌크선으로 수입해 오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며 “자국에서 생산한 목재를 자국에서 소비하는 게 탄소 중립 면에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숲에는 30년생이 넘어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줄기 시작한 나무가 10그루 중 7그루(77.2%)가 넘는다. 중부지방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연간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30년생일 때는 1ha(헥타르)당 12.1t 이지만 60년생이 되면 1.8t으로 7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다. 국내 산림면적에서 탄소 흡수량이 비교적 높은 ‘어린 나무’가 차지하는 비율은 1∼10년생 4%, 11∼20년생 3%, 21∼30년생 11%에 불과하다. ● ‘목(木)맥경화’ 뚫어 미래 성장기반으로 산림 선진국은 나이 든 나무를 수확해 목재로 활용하고 새 나무를 심는 ‘산림 선순환’이 자리 잡았다. 어린 나무, 청년 나무, 중년 나무를 고루 분포시켜 탄소를 계속 흡수하는 효과를 거두는 것. 철근, 콘크리트, 플라스틱은 한 번 사용하면 끝이지만 목재는 수확한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으면 20, 30년 뒤에 다시 목재로 쓰인다. 사실상 지속가능하게 쓸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인 셈이다. 일본 독일 등은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며 인구 유입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국내 숲은 녹화사업 이후 숲을 활용해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발전시킨 사례가 많지 않아 이른바 ‘목(木)맥경화’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2022년 기준 국내 산촌의 89.5%가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65세 이상 인구 대비 2030세대 가임여성 인구 비율이 0.2 미만인 지역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전남 장흥군 등의 사례처럼 ‘명품 숲’을 발굴해 관광 자원화하고 산촌 주민 공동체와 연계한 소득 사업을 발굴하면 인구 절벽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장흥군은 편백숲에 치유의 숲, 숙박 및 체험시설을 조성해 연간 67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장흥군 인구 3만6000명의 18배가 넘는 방문객을 유치하고 연계소득 1240억 원을 창출했다. 경북 울진군도 금강소나무 지역에 숲길을 조성해 인구 4만7000명의 3배가 넘는 15만 명이 매년 방문하는 관광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박병배 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는 “산림 선진국은 숲을 산업과 문화관광 자원이자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양적 성장을 넘어 이젠 질적 성장으로 넘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나무를 올려다보시겠어요? 소리가 다르죠?” 지난달 28일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 기리시마(霧島)시 기리시마 긴코완 숲에서 만난 산림 세러피 가이드 우스자키 노키(臼崎のき·70) 씨가 웃으며 권했다. 삼나무,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등 사전을 찾아봐도 생소한 이름의 나무들이 하늘로 쭉쭉 뻗어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새 소리와 어우러졌다. 고층빌딩으로 가득한 대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인구가 약 12만 명에 불과한 기리시마시는 숲을 주요 관광자원으로 내세우면서 연간 560만 명(2022년 기준)의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 감소 위기를 겪는 지방으로서는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 한국과 비슷하게 국토의 75%가량이 산인 일본은 숲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닌 인구 감소를 막고 지역 경제를 살리는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2000년대 이전에는 나무를 심고 보호하는 데 주력한 반면, 이후에는 숲을 활용해 경제 효과를 극대화하고 지역 활성화를 꾀하는 쪽으로 적극 나서고 있다. ● 관리 대상에서 체험 공간으로 탈바꿈 기리시마시는 2007년 4곳의 ‘산림 세러피 로드’를 지정했다. 표고 500∼700m 높이에 길이 900m∼2.5km로 체력이 약한 사람도 천천히 1∼2시간가량 걸으면서 숲을 즐길 수 있다. 4곳 모두 지역 전통 관광 명소인 천연온천 인근에 있어 ‘산책 후 온천’을 매력으로 내세운다. 이곳에서는 4∼12월 9차례의 정기 산림 세러피 투어를 운영하며 관광객들에게 숲을 체험할 기회를 준다. 지역에서 운영하는 ‘가이드 클럽’에 신청하면 개별 투어도 가능하다. 관광객 누구나 가볍게 산책하며 숲을 즐길 수 있다. 이날 숲 인근 호텔에서는 관광버스 2대로 온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밤에는 온천을 즐기고 낮에는 숲을 산책하며 자연을 즐겼다. 하마다 겐 기리시마시 관광PR과 주무관은 “숲은 온천과 더불어 지역의 가장 소중한 자원”이라며 오사카 등 대도시 고교 수학여행 팀도 찾는다고 귀띔했다. 숲을 활용한 관광 자원과 소니 등 지역 내 대기업 공장 등의 영향으로 이 지역 인구는 2000년 12만7900명에서 지난해 12만3135명으로 20년 넘게 12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숲과 산을 활용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산림 서비스 산업이 각광받고 있다. 일본 임야청 측은 “관광, 건강,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산림을 활용해 체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이용객에게는 새로운 숲 체험 기회를 주고 해당 지역에서는 새로운 고용과 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기업 제휴 맺으며 인구절벽 해결책 활용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으로 한국에도 익숙한 일본 나가노(長野)의 시골 마을 시나노(信濃)정은 지역의 유일한 자원인 산, 숲을 적극 활용해 지역 위기 돌파에 나서고 있다. 이곳은 1960년 1만3700명에서 최근 8000명대로 인구가 줄며 인구절벽에 직면한 곳이다. 과거 여느 다른 지역처럼 도로 확장, 쇼핑센터 유치 등에 주력했던 이곳은 2000년대 들어 발상 전환에 나섰다. 우리 지역에 ‘없는 것’을 만들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 지역에만 ‘있는 것’을 찾아 가꾸자는 데 지역민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렇게 시작된 사업이 2004년 ‘에코 메디컬 힐링 빌리지 사업’이었다. 이 사업을 통해 ‘치유의 숲’ 프로그램 조성에 나섰다. 적설량이 많아 겨울 스키장으로 유명한 ‘구로히메 고원’에 1.2∼7km의 숲길을 조성하고 산림욕, 맨발 진흙체험 등을 할 수 있게 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산림 메디컬 트레이너’는 방문객에게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일본 주요 기업들이 ‘치유의 숲’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30곳 넘는 기업이 이곳과 제휴를 맺어 연간 5000여 명의 각 기업 직원이 숲을 이용한다. 제휴 기업 직원들이 숲을 이용하면서 이 지역 숙박시설, 식당 수익 증가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고향 기부금’도 납부해 옥수수, 블루베리 등 지역 특산물 구입에도 앞장서는 ‘1석 3조’ 효과를 거둔다. 제휴 기업에 화답하기 위해 시나노정은 2019년 ‘노마드 워크 센터’라는 원격 근무 시설을 만들었다. 40명 수용이 가능한 이곳에서는 기업 단위로 사용 신청을 받아 5일간 30만 엔(약 270만 원)을 받는다. 주중에 일하면서 오후에는 카약, 등산, 요가 등을 즐길 수 있다. 기업 만족도는 높다. 일본 전기부품 업체 TDK람다는 시나노정과 협정을 맺고 2008년부터 매년 신입사원 연수를 이곳 숲에서 진행한다. 그 전까지는 3년 차 미만 직원 퇴직률이 12%에 달했지만 숲 연수를 실시하면서 1%로 떨어졌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산림 면적이 2508만 ha로 국토의 68%에 달하는 일본은 고도 경제 성장기에 적극적인 산림 육성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전체 숲의 40%가 인공림이며, 일본 내 어느 산이든 키를 훌쩍 넘는 나무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과거의 ‘숲 보호’에서 벗어나 다양한 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 임야청에 따르면 휴양림 등 정부가 지정한 숲을 이용한 인구는 자국 인구보다 많은 연간 1억4000만 명에 달했다. 숲을 쉽게 접하고 즐기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기업들의 관심도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임야청 설문조사 결과 응답 기업 392곳 중 60%가 숲, 임업, 목재와 관련한 활동을 현재 하고 있거나 실시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단순한 사회 공헌 차원을 넘어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숲, 임업에 기여하려는 기업들의 의지가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전체 숲의 1.5% 정도인 26만7000ha에 597곳을 ‘레크리에이션 숲’으로 지정하고 있다. 자연 휴양림, 실외 스포츠 등 목적에 따라 지정해 이런 활동을 정부가 보유한 국유림에서 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한다. 활용 방식은 다양하다. 일본 중부 야마나시현에는 ‘포레스트 어드벤처’라는 곳이 있다. 공중 걷기 등 숲 즐기기가 가능한 시설을 숲을 해치지 않고 마련했다. 이른바 ‘자연 공생 아웃도어 파크’라는 개념으로 정비한 숲 체험 시설이다. 인기를 끌면서 전국 35개 시설로 늘어났고 연간 50만 명이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즐기고 있다. 일본 유명 리조트 기업인 호시노그룹은 투숙객에게 산림 산책, 승마, 산악자전거, 야간 곤충 관찰 등 다양한 숲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전통 목조건축 강국인 일본은 나무를 활용한 건축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2020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인 도쿄 국립경기장은 ‘산림 스타디움’이라는 콘셉트로 전국 47개 광역단체의 삼나무로 경기장 처마를 꾸미는 등 철골과 나무를 조합한 하이브리드 건축물을 지었다. 멀리서 보면 숲으로 덮여 있는 느낌이 나고 경기장 안에 들어가면 곳곳에서 목재를 활용한 것을 볼 수 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지난달 28일 오후 2시. 경북 울진군 북면 한 야산의 정상. 김영훈 울진국유림관리소장이 새까맣게 그을린 소나무의 몸통을 어루만졌다. “비가 올 때면 항상 흙냄새가 향기롭게 풍기던 곳인데 아직도 희미한 탄내가 콧속을 파고드네요.” 손에는 거무튀튀한 잿물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선 채로 죽어 있는 나무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시선을 돌리자 벌거숭이처럼 변한 휑한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린스완(Green Swan)’에 대비해 국내 숲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대형 화재 등 재난 후 신속한 복원과 사전예방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가 2년 전 대형 화재를 겪은 울진-삼척의 숲이다. 2022년 3월 4일 울진에서 시작돼 강원 삼척까지 번졌던 초대형 산불은 무려 213시간 동안 서울 면적의 약 35%에 이르는 2만923ha(헥타르)를 태웠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당시 산불 피해를 입었던 곳들에선 죽은 나무가 뿌리째 뽑인 후 경사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김 소장은 “죽은 나무는 벌채해야 하고, 일대는 민둥산이 된다”며 “대형 산사태 피해가 일어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집을 잃었던 주민 181가구 가운데 30가구는 아직도 임시 컨테이너 주택에 머물고 있었다. 산불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울진 인구의 약 22%인 1만여 명은 송이 등 임산물 채취로 생계를 이어왔지만 최근엔 수확을 못 하고 있다. 대를 이어 송이 농가를 운영해 온 이운영 씨(51)는 “죽어서 눈감을 때까지 울진에서 송이를 볼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산불 피해 범위가 워낙 방대한 탓에 복구는 여전히 더디다. 울진군에 따르면 군 전체 피해 면적 1만4140ha 중 현재까지 벌채 면적은 1800ha에 불과하다. 자연복구 지역을 제외한 인공복구 범위 6900ha를 기준으로 보면 약 26%만 벌채가 진행됐다. 울진군 관계자는 “벌채 작업이 끝난 구역도 묘목 식재가 완전히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평균 기온이 올라 산불이 일상화되고 있어 사후 대응보다 사전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립산림과학원 권춘근 연구원은 “산불 발생 시 진화 작업에 사용할 수 있는 인공 담수지를 산불 위험 지역마다 조성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산불이 나면 진화 차량 등 장비가 진입할 수 있는 임도(林道)를 계획적으로 설치하는 것도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원전 주변이나 군부대 탄약고 주변처럼 초대형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것도 대비책으로 제시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세계 각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반도체 전쟁(Chip War)’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네덜란드가 자국 반도체장비 기업 ASML의 본사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25억 유로(약 3조6000억 원)를 투입하기로 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28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ASML 본사가 있는 에인트호번 일대의 주택, 교육, 교통, 전력망 인프라를 개선하고 법인세 인하 등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네덜란드는 이날 ASML의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한 이른바 ‘베토벤 작전’의 세부 내용을 공개하며 “ASML이 법상, 회계상, 실제 본사를 네덜란드에 유지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25억 달러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마련하기로 했다. 세계 유일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조기업인 ASML이 본사를 해외로 옮길 경우 경제 전반에 미칠 악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네덜란드 “ASML, 경제의 메시” 감세 추진 네덜란드, ‘베토벤 작전’ 본격 가동중앙-지방정부 함께 3.6조 마련본사 주변 주택-교통 인프라 등 개선ASML 해외이전 막기위해 총력 “ASML은 네덜란드 경제의 ‘메시’다.” 미키 아드리안선스 네덜란드 경제기후정책장관은 28일(현지 시간) ANP통신에 자국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의 본사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25억 유로(약 3조6000억 원)를 투입하는 ‘베토벤 작전’의 세부 내용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ASML이 네덜란드 경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세계 최고 축구선수로 꼽히는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와 맞먹으며, 이런 중요한 기업의 본사 해외 이전을 막으려면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6일 베토벤 작전을 예고한 지 한 달도 안 돼 예산 규모와 사업 내용을 구체화해 반도체 지원 속도전에 나섰다. 25억 유로는 중앙정부뿐 아니라 ASML 본사가 있는 에인트호번을 관할하는 지방정부도 함께 조달한다고 소개했다. 국가 대표 기업을 위해 중앙 및 지방정부가 ‘원팀’으로 총력을 쏟겠다는 취지다. ASML은 세계 유일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조업체다. EUV를 이용하면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에 5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이하의 극도로 미세한 회로를 새겨 넣을 수 있다. 고성능 반도체 제조를 위해 꼭 필요한 장비라는 의미다. 28일 기준 시가총액이 약 3818억 달러로 덴마크 제약업체 노보노디스크, 프랑스 명품기업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에 이은 유럽 3위다. 에인트호번 일대에는 ASML은 물론 필립스 등 주요 기술 기업이 자리했다. 또 ASML 본사 직원 약 2만3000명 중 40%가 외국인이다. 에인트호번 일대가 미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요람 ‘실리콘밸리’와 맞먹는 네덜란드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유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는 이 돈을 에인트호번 일대의 주택, 교육, 교통, 전력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쓰기로 했다. 교통 혼잡을 해결하기 위해 이 지역 고속도로, 철도 등을 새로 짓고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 에인트호번 공대에도 투자한다. 그간 ASML은 “에인트호번을 ‘기술 허브’로 키우기 위한 정부의 인프라 투자가 실패했다”고 불만을 표했다. 법인세 인하, 세금 감면 등 각종 세제 혜택을 위한 법안 또한 이미 의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앞서 2018년 정부가 배당세를 강화하자 정유기업 셸, 소비재기업 유니레버 등이 영국 런던으로 본사를 옮겼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극우 자유당이 제1당에 오르자 재계에서는 반(反)이민 정책이 강화돼 고급 외국인 인재를 유치하기 힘들고, 외국 기업의 투자 또한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실제 우파 성향이 강화된 의회는 최근 고숙련 이주 노동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없애는 안을 가결했다. 지난달 현지 기업가 설문에서는 ‘네덜란드를 사업하기에 매력적인 국가로 보지 않는다’는 답이 44%였다. 1년 전 28%보다 16%포인트 늘었다. ‘네덜란드를 떠날 것을 고려한다’는 응답도 같은 기간 13%에서 20%로 증가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ASML은 네덜란드 경제의 ‘메시’다.”미키 아드리안선스 네덜란드 경제기후정책장관은 28일(현지 시간) ANP통신에 자국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의 본사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25억 유로(약 3조6000억 원)를 투입하는 ‘베토벤 작전’의 세부 내용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ASML이 네덜란드 경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세계 최고 축구선수로 꼽히는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와 맞먹으며, 이런 중요한 기업의 본사 해외 이전을 막으려면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6일 베토벤 작전을 예고한 지 한 달도 안 돼 예산 규모와 사업 내용을 구체화해 반도체 지원 속도전에 나섰다. 25억 유로는 중앙정부뿐 아니라 ASML 본사가 있는 아인트호벤을 관할하는 지방정부도 함께 조달한다고 소개했다. 국가 대표 기업을 위해 중앙 및 지방정부가 ‘원팀’으로 총력을 쏟겠다는 취지다.ASML은 세계 유일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조업체다. EUV를 이용하면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에 5nm(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의 극도로 미세한 회로를 새겨 넣을 수 있다. 고성능 반도체 제조를 위해 꼭 필요한 장비라는 의미다. 28일 기준 시가총액이 약 3818억 달러로 덴마크 제약업체 노보노디스크, 프랑스 명품기업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에 이은 유럽 3위다.에인트호번 일대에는 ASML은 물론 필립스 등 주요 기술 기업이 자리했다. 또 ASML 본사 직원 약 2만3000명 중 40%가 외국인이다. 에인트호번 일대가 미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요람 ‘실리콘밸리’와 맞먹는 네덜란드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유다.이에 따라 네덜란드는 이 돈을 에인트호번 일대의 주택, 교육, 교통, 전력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쓰기로 했다. 교통 혼잡을 해결하기 위해 이 지역 고속도로와 철도를 새로 건설하고,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 에인트호벤 공대에도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ASML은 “에인트호번을 ‘기술 허브’로 키우기 위한 정부의 인프라 투자가 실패했다”고 불만을 표했다. 정부는 조만간 법인세 인하, 세금 감면 등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앞서 2018년 정부가 배당세를 강화하자 정유기업 셸, 소비재기업 유니레버 등이 영국 런던으로 본사를 옮겼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극우 자유당이 제1당에 오르자 재계에서는 반(反)이민 정책이 강화돼 고급 외국인 인재를 유치하기 힘들고, 외국 기업의 투자 또한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실제 우파 성향이 강화된 의회는 최근 고숙련 이주 노동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없애는 안을 가결했다. 지난달 현지 기업가 설문에서는 ‘네덜란드를 사업하기에 매력적인 국가로 보지 않는다’는 답이 44%였다. 1년 전 28%보다 16%포인늘었다. ‘네덜란드를 떠날 것을 고려한다’는 응답도 같은 기간 13%에서 20%로 증가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러시아 정보당국 수장인 세르게이 나리시킨 대외정보국(SVR) 국장(사진)이 평양을 전격 방문했다. 지난해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이 긴밀한 관계를 구축한 가운데, 러시아의 핵심 정보 당국자까지 이번에 방북한 것.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을 대거 제공 중인 가운데,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나리시킨 국장이 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나 전투기 개량 등과 관련해 협력을 약속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은 김일성 생일(태양절)인 다음 달 15일을 전후해 4차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한미 정보당국은 보고 있다.● “적대 세력 정탐 모략 책동 대처” 28일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나리시킨 국장은 25∼27일 평양을 방문해 북한 국가보위상 리창대와 회담했고, SVR 대표단과 국가보위성 간부들 간 실무 회담도 이뤄졌다. SVR은 러시아 대통령 직속의 해외 첩보기관이고, 국가보위성은 북한의 공안·첩보기관이다. SVR은 연방보안국(FSB)과 함께 러시아의 양대 정보기관으로, 미국의 중앙정보국(CIA)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 통신은 북-러 정보 수장이 이번 회담을 통해 “적대 세력들의 가증되는 정탐 모략 책동에 대처하여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실무적 문제들을 폭넓고 진지하게 토의했다”고 주장했다. 또 “시종 동지적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회담들에선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완전한 견해 일치를 보았다”고도 했다. 북한이 나리시킨 국장의 방문을 공개한 건 2011년 이후 13년 만이다. 통상 정보당국 수장의 방문은 공개하지 않는 게 관례지만 최근 양국 간 긴밀한 관계를 과시하기 위해 나리시킨 국장이 평양을 떠난 지 하루 만에 공개한 것으로 풀이된다. 나리시킨 국장은 이번 방북에서 우크라이나 정세를 교환하고 양국 군사협력을 한 단계 높이는 방안을 논의했을 것으로 정보 당국은 보고 있다. 특히 북한이 곧 4차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와 관련한 협력을 약속했을 가능성도 크다. 우리 당국은 러시아가 이미 북한에 정찰위성 발사 관련 기술적 지원을 해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리 군 소식통에 따르면 군 당국은 북한이 정찰위성을 탑재해 발사할 로켓 동체 일부로 추정되는 물체를 서해 동창리 발사장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습 등을 최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미 방북을 약속한 만큼 나리시킨 국장이 이번에 푸틴 대통령 방북 관련 메시지를 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 경제대표단이 27일(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했다고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러시아 천연자원부 장관이 밝히는 등 북-러는 최근 각급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 韓에 “패트리엇 미사일 지원” 요구 이런 가운데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우리 정부에 패트리엇 미사일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살상무기인 포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돕는 게 전략적 안보 이익이라고 주장한 것. 쿨레바 장관은 27일(현지 시간) 온라인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엇 방공 체계와 관련해 요격 미사일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한다”며 “이는 본질적으로 매우 인도주의적인 원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제가 아는 한 한국은 패트리엇 방공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며 “패트리엇은 미사일을 격추하고 미사일을 제외한 아무도 파괴하지 않는 비살상무기”라고도 했다. 쿨레바 장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하면 한국의 안보도 불리해질 것으로 봤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성공하면 결국 세계적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다”라며 “내 생각에 이는 북한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며 최고의 안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은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것(패트리엇 미사일 지원)은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지는 치명적인 탄도미사일로부터 아이와 가족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부정하면 독일에서 받는 처벌은 무엇인가.” 독일이 앞으로 귀화시험에 제2차 세계대전 나치의 홀로코스트 등 과거사에 대한 책임 등을 다룬 질문들을 추가하기로 했다. 일본 등과 달리 유대인에 대한 사죄를 지속해 온 독일 정부가 “과거사 책임은 독일 정체성의 일부이며, 이런 가치를 공유하지 않으면 독일 시민이 될 수 없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26일 독일 주간지 슈피겔 등에 따르면 독일 내무부는 성명에서 “귀화시험에 출제될 예상 문제 300여 개로 구성된 목록이 곧 수정될 예정으로 최종 승인을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수정 예상 문제에 들어갈 질문은 ‘유대인 예배당의 명칭은 무엇인가’ ‘이스라엘 건국 시기는 언제인가’ ‘독일이 이스라엘에 특수한 책임을 지고 있는 이유는 뭔가’ 등이다. 추가 질문들에는 유대인과 관련된 단순 지식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서 독일의 과거사 책임과 처벌 방식을 묻는 질문들을 상세하게 포함했다. 독일 귀화시험은 독일 시민권을 받기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다. 33개 질문으로 구성되며, 응시자는 1시간 내에 객관식 문제를 최소 17개를 맞혀야 통과한다. 낸시 페저 독일 내무장관은 슈피겔에 “과거 독일은 홀로코스트라는 인류를 배반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며 “그 결과 우리에게는 유대인과 이스라엘 보호라는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수정 취지를 설명했다. 나치는 홀로코스트 때 유대인 약 60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 정부의 이번 결정은 동부 작센안할트주(州)가 지난해 12월 주에서 귀화 요건으로 ‘이스라엘이 국가로 존재해야 할 권리’를 서면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밝힌 뒤 몇 달 만에 나온 것이다. 독일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건 불법 행위로,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반(反)유대주의는 그 자체로는 불법이 아니지만, 범죄의 동기로 판명되면 가중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독일에서는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뒤로 반유대주의 관련 사건이 2000건 넘게 발생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으로 벌어진 전쟁이지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인도주의적 위기가 심각해지자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지난주 독일에선 올라프 숄츠 총리의 연설이 논란이 됐다. 숄츠 총리는 20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도서전에서 연설에 나섰다가 여러 차례 중단해야만 했다. 연설 도중 관중 세 명이 돌아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총리실이나 행사 주최 측으로선 작지 않은 사고였다. 소셜미디어에 퍼진 이날 영상을 보면 한 여성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영어로 40초 넘게 “숄츠 씨, 당신은 민주주의를 논할 수 없다. 당신이 모은 돈과 무기가 가자와 서안지구에 있는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죽이고 있다”고 외쳤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른 쪽에서 한 남성이 우뚝 서서 “이스라엘에 무기 보내는 걸 중단하라”, “당신은 (전쟁) 공범이다”라고 소리쳤다. 또 다른 여성도 독일어로 약 40초간 분노에 찬 목소리를 냈다. 총리 연설이 여러 차례 중단되는 사고에 총리실 등 관계자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영어로 연설한 여성에겐 행사 관리자로 보이는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와 설득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곳에서 촬영된 영상에도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속삭이며 여성을 다독였다. 마지막으로 나선 남성은 결국 경호원들에게 이끌려 행사장을 나갔다. 하지만 반복된 고성에도 요즘 국내에서 회자되는 ‘입틀막(입 틀어막기)’은 보이지 않았다. 이 남성은 행사장에서 퇴장당하는 순간까지 약 20초간 총리를 비난했다. 어쩌면 독일 총리실도 내심 강경하게 대응하고 싶었을 수 있다. 요즘 숄츠 총리는 경기 침체에다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초기에 강력히 지지한 탓에 인기가 추락하며 신경이 곤두서 있다. 지난해 9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7%까지 곤두박질쳤고, 최근에도 20%대로 크게 회복되질 못하고 있다. 응답자의 64.3%가 ‘숄츠 총리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에게 총리직을 넘기길 원한다’고 답해 숄츠 총리에게 굴욕을 안겼을 정도다. 이런 분위기에도 숄츠 총리는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잠시 연설을 멈추고 객석에 나온 반대 목소리를 들었다. 그 뒤 “소리를 지르는 것과 민주주의를 혼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들께 이 대화와 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길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답했다. 이에 또 다른 야유도 나왔지만, 대부분은 차분하게 박수를 보냈다. 현지에선 ‘총리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잘 대응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물론 독일에서도 총리의 연설을 방해한 이들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다소 매너는 아니었더라도 ‘표현의 자유’라는 대의에 수긍하는 반응이 훨씬 많다. 독일 역시 과거 국가와 민족을 앞세워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던 전체주의 역사를 겪었다. 그래서 더욱 누구의 입도 함부로 막아선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만약 총리의 연설을 방해한 시민들이 어디처럼 ‘입틀막’으로 제지를 당했다면 엄청난 역풍이 불었을 것이다. 다른 유럽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불리한 여건에 처해도 소통을 멈추지 않는다. 숄츠 못지않게 요즘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그렇다. 계란 세례에 심지어 뺨까지 맞았으면서도 현장으로 달려가 대화를 시도한다. 그가 20%대 지지율에도 연금 개혁, 이민 개혁 등 각종 개혁 릴레이를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은 이런 끝없는 소통 노력 덕분이란 게 현지 반응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3년 전 한 시민에게 뺨을 맞은 직후 현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은 지금 우리 정치권에 던지는 충고로 손색이 없다. “국민들 중엔 항상 (폭력적인) 소수가 있다. 하지만 압도적인 다수는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다. 그렇기에 난 토론을 멈추지 않는다.” 근본적인 답을 찾으려면 소통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조은아 파리특파원 achim@donga.com}

“둥둥 둥둥둥!” 강한 박자의 모던한 음악이 무대에 울려 퍼지자 중앙 대형 스크린에 검정 탱크톱과 가죽 레이스가 돋보이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흑인 아바타가 등장했다. 아바타가 스크린 안에서 워킹을 시작하자 실제 흑인 모델이 같은 의상을 입고 스크린 앞 런웨이를 걸어 나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와 처음 시도한 ‘모드 엣 파리’ 패션쇼가 22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시내 웨스틴 방돔 호텔에서 열렸다. 세계 유명 브랜드들이 쇼를 여는 곳이다. 이날 유럽 패션 관계자와 인플루언서 등 약 200명이 패션쇼를 지켜봤다. 쇼에 참석한 프랑스 인플루언서 나피 벨라 씨는 “모델이 등장하기 전에 큰 화면에 아바타가 나타나는 장면이 정말 멋졌다”며 “파리에서 열리는 쇼에선 정말 보기 드문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패션 행사 기업 피티 이매진의 프란체스카 타코니 코디네이터는 “한국 패션뿐 아니라 문화 자체가 상당히 많은 영감을 주고 재미있다”고 했다. 쇼 배경음악도 특징적이었다. 밴드 잠비나이의 이일우 씨와 인공지능(AI)이 함께 만들어 낸 음악이다. 이 씨는 쇼에 등장하는 패션 브랜드들과 잘 어울리는 음역대, 박자, 악기 등을 AI의 데이터학습으로 추려내 곡을 만들었다. 콘진원과 제페토가 이러한 ‘신기술 패션쇼’에 나선 이유는 메타버스, AI 등 신기술이 오랜 전통의 명품들로 공고한 유럽의 패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무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희선 콘진원 음악패션팀 부장은 “10대 후반∼20대 초반인 메타버스 이용자들이 향후 패션산업의 유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둥둥 둥둥둥!”강한 박자의 모던한 음악이 무대에 울려 퍼지자 중앙 대형 스크린에 검정 탱크톱과 가죽 레이스가 돋보이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흑인 아바타가 등장했다. 아바타가 스크린 안에서 워킹을 시작하자 실제 흑인 모델이 같은 의상을 입고 스크린 앞 런웨이를 걸어 나왔다. 모델과 아바타가 같은 의상을 동시에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와 처음 시도한 ‘모드 엣 파리’ 패션쇼가 22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시내 웨스틴 방돔 호텔에서 열렸다. 세계 유명 브랜드들이 쇼를 여는 곳이다. 이날 유럽 패션 관계자와 인플루언서 등 약 200명이 패션쇼를 지켜봤다.이날 선보인 브랜드는 콘진원이 공모로 선발한 두칸, 메종니카, 므아므, 본봄, 분더캄머, 뷔미에트, 비건타이거, 아이아이, 줄라이칼럼, 한나신 등 10개. 각자 두 벌씩 대표 의상을 선보였다. 이 의상들은 2024년 봄여름 시즌 컬렉션으로 제페토에서 공개된 바 있다.쇼에 참석한 프랑스 인플루언서 나피 벨라 씨는 “모델이 등장하기 전에 큰 화면에 아바타가 나타나는 장면이 정말 멋졌다”며 “파리에서 열리는 쇼에선 정말 보기 드문 모습”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이탈리아 패션행사기업 피티 이매진의 프란체스카 타코니 코디네이터는 “한국 패션뿐 아니라 문화 자체가 상당히 영감을 주고 재미있다”고 했다. 쇼 배경음악도 특징적이었다. 밴드 잠비나이의 이일우 씨와 인공지능(AI)이 함께 만들어낸 음악이다. 이 씨는 쇼에 등장하는 패션 브랜드들과 잘 어울리는 음역대, 박자, 악기 등을 AI의 데이터학습으로 추려내 곡을 만들었다.콘진원과 제페토가 이러한 ‘신기술 패션쇼’에 나선 이유는 메타버스, AI 등 신기술이 오랜 전통의 명품들로 공고한 유럽의 패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무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제페토에서 6주간 열린 2023년 가을겨울 컬렉션에 참여한 약 330만 명 중 무려 95%가 해외 유저였다. 세계 누적 가입자 수가 4억 명인 제페토에서 유럽 국가 중 가입자 수가 가장 많은 국가가 프랑스다. 서희선 한국콘텐츠진흥원 음악패션팀 부장은 “메타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들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데 이들이 향후 패션산업의 유저가 될 수 있어 메타버스를 활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불붙인 ‘우크라이나 파병론’이 유럽 곳곳으로 번지는 조짐이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폴란드의 외교장관은 서방 병력의 우크라이나 주둔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발언해 주목받았다. 마침 전날 러시아 정보국장은 프랑스가 2000명 규모의 파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혀 파병설을 더 구체화했다. 이에 서방 국가들이 공식 파병을 위한 ‘군불 지피기’에 나선 것인지, 서방 국가들이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다툼인지 묘한 궁금증을 낳고 있다. 최근 한 달 새 파병론을 다섯 차례나 언급한 마크롱 대통령은 19일 우람한 팔뚝으로 복싱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웃통 벗기’ 사진을 통해 강인함을 과시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서방 우크라 파병, 공공연한 비밀”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파리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 국제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나 유럽연합(EU) 일부 국가의 우크라이나 파병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밝히며 파병론에 처음 불을 지폈다. 이에 미국, 독일 등이 파병 가능성을 부인하고 정치인들이 비판에 나서는 등 서방 국가들이 발칵 뒤집어졌다. 그럼에도 마크롱 대통령은 7일 자국 정당 지도자와의 회의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키이우와 오데사에 진격하면 개입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방향까지 내놨다. 독일 및 폴란드 총리와의 3국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4일에는 “옵션들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했고, 다음 날 공개된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 인터뷰에서도 “어쩌면 어느 시점에서는 러시아 병력에 맞서기 위해 지상작전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서방 분열을 노리는 러시아뿐 아니라 나토 회원국 내부에서도 혼란스러운 소식들이 이어져 파병론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교장관까지 20일 dpa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큰 나라들의 군대가 이미 우크라이나에 있다”며 “폴란드어에 모두가 아는 비밀을 뜻하는 ‘타옘니차 폴리시넬라’란 말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19일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세르게이 나리시킨 러시아 대외정보국(SVR) 국장이 “SVR에 전달되는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파견될 (프랑스) 파병부대가 이미 준비 중이다. 초기 병력은 약 2000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美가 힘 못 쓰니 마크롱이 나서” 마크롱 대통령이 ‘외교적 파괴자(diplomatic disruptor)’라는 비판 속에도 한 달 새 다섯 차례 파병 발언을 쏟아내는 것을 두고 ‘약한 미국’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BBC는 “마크롱 대통령은 러시아가 공격성을 완전히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본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더 이상 동맹국으로 신뢰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판단해 일부러 강경한 어조로 유럽이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공교롭게 19일 마크롱 대통령 전속 사진작가 소아지그 드 라 무아소니에르의 인스타그램에는 마크롱 대통령이 강렬한 표정으로 팔뚝을 드러내며 복싱하는 사진이 두 컷 올라왔다. BBC는 “이 사진은 자신의 건강함을 보여 주려 웃통을 벗고 계속 사진을 찍는 크렘린궁의 적수(푸틴)에게 인상을 남길 것”이라고 평했다. 국제사회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취지란 분석도 있다. 도미니크 드빌팽 전 프랑스 총리는 프랑스 BFM TV에 “우리는 외교 싸움, 영향력과 신뢰를 위한 싸움에서 밀리고 있다”면서 이를 만회하려는 행보로 해석했다. 올 6월 예정된 유럽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한 친(親)러시아 극우 세력을 저지하려는 저의로 보는 시각도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마크롱 대통령은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을 저지하기 위한 카드로 우크라이나 지원안을 활용할 것”이라고 봤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역사적인 공간을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김수자 작가의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프랑수아 피노 케링그룹 회장) 구찌와 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케링그룹의 프랑스 파리 피노컬렉션 전시관이 19일(현지 시간) 한국 설치미술가 김수자 작가(67)의 작품 40여 점을 공개했다. 유럽 예술계의 ‘큰손’으로 불리는 케링그룹이 피노컬렉션에서 한 작가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조명하는 건 이례적이다. 전시관 측에 따르면 부르스 드 코메르스(증권거래소) 건물에 있는 피노컬렉션은 김 작가에게 전시 기획의 전권을 주는 ‘카르트 블랑슈(Carte Blanche)’를 부여했다. 중앙 메인 전시 장소인 ‘로통드(rotonde)’와 24개 쇼케이스, 지하 공간까지 내준 것도 2021년 개관 이래 두 번째로, 아시아 작가에겐 처음이라고 한다. 첫 번째는 알바니아계 세계적인 미술가 안리 살라였다. 김 작가의 작품들은 20일 개막해 9월 2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흐르는 대로의 세상(Le monde comme il va)’에서 소개된다. 해당 전시는 제프 쿤스와 신디 셔먼, 마우리치오 카텔란 등 이른바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 받는’ 작가들의 작품이 가득하다. 모두 29명의 작가가 참여했는데, 김 작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된 셈이다. 실제로 전시관을 둘러보니 로통드관부터 김 작가의 설치작 ‘호흡’이 관객을 맞았다. 지름 29m 크기의 원형 전시장 바닥 전체에 주로 사각 형태인 거울 418개를 깔아놓은 작품. 거울 바닥은 맑은 호수처럼 돔형 천장의 투명 유리와 19세기 프레스코화를 고스란히 비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김 작가는 “로통드 건축구조 자체를 모든 것을 싸고 있는 보따리라 여겼다”며 “두 개의 반구를 붙여 달항아리를 만들 듯 실재하는 공간과 거울이 만들어낸 가상 공간이 만나 하나로 연결되는 세계를 만들려 했다”고 했다. 미술전시관의 원형 공간을 로통드라 부르나, 어원은 19세기 여성이 입던 둥근 망토임을 떠올리게 하는 해석이다. 김 작가는 또 “관객들이 거울을 바라보며 반응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대중을 설치예술의 퍼포머(행위자)로도 초대한 셈”이라고 했다. 피노컬렉션을 설립한 피노 회장은 “로통드 전시관에 관한 기존 인식을 뒤집기 위해 거울을 사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며 “방문객에게 단순히 관람자 이상의 역할을 부여하고, 무한한 깊이를 지닌 공간 배치로 주체가 될 기회를 제공하는 점도 좋았다”고 했다. 이날 전시관을 찾은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도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깊은 한국을 대표하는 김 작가의 멋진 작품을 파리에서 만나니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지하 전시공간에선 피노컬렉션 소장품이기도 한 김 작가의 미디어아트 ‘바늘 여인’이 상영된다. 상하이와 델리, 도쿄, 뉴욕 등을 배경으로 작가의 뒷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세계 곳곳에서 촬영한 16mm 필름 연작 ‘실의 궤적’은 6편 전편이 처음 공개된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