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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로 시행 8년을 맞는 성매매특별법(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 잡범만 양산하고 이 기간에 성매매 산업은 오히려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최근 엽기적인 성범죄가 급증하자 성매매특별법이 그 원인 중 하나라는 주장까지 나오는 등 이 법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1일 동아일보가 경찰청의 성매매 사범 처벌 현황을 분석한 결과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2004년 1만6947명이었던 성매매 사범은 이후 급증해 2009년 7만3008명으로 정점에 달했다. 다만 이듬해 절반으로 줄었고 지난해 2만6136명으로 감소했다. 성매매 사범 중 구속되는 비율은 매년 0.8∼1.8% 수준이어서 징벌 효과는 미미했다. 재판도 안 받는 기소유예 처분 비율이 매년 80%가 넘었고 기소가 돼도 대부분 수십만 원의 벌금형만 선고받았다. 1심 실형 선고 비율은 5% 남짓이었다. 집창촌 등 눈에 띄는 성매매 시설은 줄었지만 오피스텔이나 ‘풀살롱’ 등으로 성매매는 더욱 확장되고 있다. 요즘은 술집 마담들이 등록금 부담에 시달리는 여대생을 접대부로 고용하려고 대학가에서 ‘캠퍼스 현장 면접’에 나설 정도다.이처럼 성매매특별법 실효성 논란이 커지면서 일각에선 ‘배출구(성매매)를 막아 버려 성범죄가 늘어난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달 한국갤럽 설문조사(전국 성인 남녀 624명 대상)에서 남성의 56%, 여성의 41%가 성매매 금지와 성범죄 급증의 이 같은 ‘함수관계’에 공감했다.하지만 실제 성범죄는 성매매 단속 강도와 무관하게 계속 늘어나는 추세여서 둘 사이의 연관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범죄는 2007년 1만3396건에서 매년 완만하게 증가해 지난해 1만9498건으로 늘었다. 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 안태윤 연구위원은 “성범죄자는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욕구 충족의 도구로 보는데 성매매가 만연하면 이런 왜곡된 성의식이 더욱 심해진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성범죄자는 성매매로 만족하지 않고 더 큰 자극을 얻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신상정보를 공개하게 돼 있는 성범죄 전과자 중 64명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조차 파악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상정보를 거짓으로 신고하거나 제대로 등록하지 않은 성범죄 전과자도 339명에 달했다. 경찰은 전국의 신상정보 등록 대상 성범죄자 4509명을 일제 점검한 결과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64명을 지명수배하고 허위 부실 등록한 339명을 형사입건했다고 18일 밝혔다. 신상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성범죄자는 단순 성추행이 아닌 강간이나 강제추행 등의 중한 성범죄를 저질러 2008년 4월 이후 유죄판결이 확정된 사람이다.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가 3487명, 성인 대상 성범죄자가 1022명이다. 재범 가능성이 높다고 분류된 이들 신상공개 대상자 가운데 64명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것은 언제든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시한폭탄’이 방치되는 셈이어서 국민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소재불명 성범죄 전과자의 수는 서울(25명) 경기(14명) 인천(8명) 부산(5명) 등 순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7일 경북 영덕군의 한 노래방에서 이모 씨(61)가 50대 여성을 납치해 차에 태우고 사라졌다. 일주일 만인 14일, 이 씨 차 안에서 피해 여성이 탈진 상태로 발견됐지만 이 씨는 도망가고 없었다. 경찰은 셰퍼드 세 마리를 차에 들여보내 운전석과 운전대, 범인 것으로 보이는 남성용 잠바의 냄새를 꼼꼼히 맡게 했다. 차에서 범인 냄새를 ‘흡입’하고 나온 개들은 차 뒤편의 야산으로 향했다. 이 야산은 경찰관들이 이미 대대적 수색을 벌였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어 포기했던 곳이다. 개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다. 얼마 뒤 숲 속에서 셰퍼드가 ‘컹컹!’ 하며 짖는 소리가 들렸다. 임도(林道·숲 사이로 나 있는 길)에서 40∼50m 떨어진 산기슭에 ‘바스코’란 이름의 개가 앞발을 모은 채 앉아 있었다. 그 옆에 이 씨의 시신이 있었다. 대규모 경찰력으로도 찾아내지 못한 범인을 발견한 이 개들은 ‘체취증거견(Human Scent Evidence Dog)’이다. 한 번 맡은 사람 냄새를 기억해 냄새로 범인을 추적하는 일이 임무다. 국내에는 셰퍼드(독일산)와 말리누아(벨기에산) 각각 3마리, 레트리버(영국산) 2마리 등 총 8마리가 이 임무를 맡고 있다. 현재 증거견들은 17일 경찰서 유치장 배식구를 통해 탈주한 전과 25범 강도 피의자 최모 씨(50)를 쫓는 일에 투입돼 그가 달아난 곳으로 보이는 야산을 수색하고 있다. 경남 통영 아름이 사건, 제주 올레길 살인 사건, 울산 자매 살인 사건 때도 체취증거견이 범인과 피해자의 냄새를 추적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대형 사건이 나면 전국 경찰특공대에 나뉘어 있던 체취증거견들이 기동타격대 출동하듯 사건 현장에 즉각 급파된다”고 말했다. 체취증거견은 잠깐 스치듯 맡은 냄새도 오래 기억해 제3의 장소에서 해당 냄새를 정확히 식별한다. 또 범인이 손으로 만진 물건에서 맡은 냄새를 응용해 신발 등 신체의 다른 부위가 닿은 물품까지 골라낸다. 한마디로 냄새로 범인을 잡는 ‘CSI(과학수사)견’이다. 경찰에는 마약이나 폭발물을 탐지하는 수색견 97마리가 있지만 이 중 체취증거견 8마리는 냄새 식별 능력 강화를 위해 특화된 훈련을 받는다. 특정인의 소지품 냄새를 맡게 한 뒤 그의 다른 소지품을 숨기고 찾게 하는 훈련을 반복해 체취를 분간하는 능력을 키운다. 숙달된 개들은 땀이나 침, 눈물 등 타액으로도 특정인의 고유한 냄새를 구분하는 기술을 습득한다.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일본 경찰은 체취증거견 1469마리를 운용하고 있다. 지난해 이시오카(石岡) 시에서는 강도범의 지갑 냄새를 맡은 체취증거견이 1km 떨어져 있는 주택에서 범인 신발을 찾아내 방에서 잠을 자던 범인을 붙잡았다. 일본 등 선진국에선 체취증거견의 전문성을 인정해 이들의 ‘동물적 판단’을 유전자(DNA)나 지문처럼 법적 증거로 인정한다. 한국 경찰도 이 견공들을 육군 군견훈련소와 미국 국토안보부 특수견 훈련소에 전지훈련을 보내는 등 2년 전부터 집중 육성하고 있다. 2015년 경찰견 종합훈련센터가 설립되면 체취증거견을 대거 양성해 수사에 활용할 계획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부 경찰관들이 ‘직장협의회(직협)’ 설립 추진 움직임에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현행법상 경찰은 직협을 만들지 못하게 돼있으나 이들은 현직 경찰 및 관련 단체의 표심을 무기 삼아 대선후보 공약에 관련법 개정이 반영되도록 압박을 가한다는 방침이다. 16일 경찰에 따르면 일선 경찰과 유관단체 등이 주축이 된 ‘무궁화클럽’과 폴네티앙닷컴 등이 경찰 직협 설립을 추진하기로 하고 이 이슈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우선 민주통합당 서영교 진선미 한정애 의원과 함께 17일 국회도서관에서 경찰 직협 설립문제를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열기로 했다. 공무원 직협은 공무원의 처우나 복지 등 권익 보호를 위해 기관별로 결성된 협의기구다. 단결권과 단체협의권은 있지만 일반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은 없다. 현행 공무원직장협의회의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을 보면 6급 이하 공무원은 공무원 직협을 만들 수 있지만 경찰과 소방 등의 직종은 예외다. 치안과 안전 유지가 본연의 임무인 만큼 위급상황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일선 공무원들이 직협을 기반으로 단체행동을 시도할 경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만든 조항이다. 하지만 경찰관들은 “공무원 대다수가 직협은 물론 노조 설립이 가능한데 경찰과 소방 직종만 금지하는 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며 “직협이 없다보니 경찰 조직 내 소통이 부족해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 강남경찰서 유착비리 사건 등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직협을 만들면 경찰관의 직무 만족도가 높아져 대민서비스 질이 개선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동안 경찰청은 “직협 설립이 현행법상 금지돼 있다”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일선 경찰관의 요구가 워낙 높아 법 개정 운동 자체에 대해선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을 방침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법개정 움직임 자체는 합법적이라 일단 추이를 지켜보고 있지만 복무규정에 어긋나는 행태를 보이면 규정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고 밝혔다. 경찰이나 소방 공무원의 직협 설립 문제를 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못하다. 민생에 직결되는 업무를 하는 직종인 만큼 복지나 처우문제 등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집단행동에 나설 경우 치안 공백의 피해를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경찰 직협 설립 운동을 이끌고 있는 경남 마산동부서 양영진 경감은 “파업 등 단체행동은 어떤 경우에도 할 수 없다”면서 “직협은 경찰 내부 민주화에 기여해 궁극적으로 치안 서비스의 질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대학 캠퍼스 커플인 남자친구가 요즘 싸울 때 칼을 들어요. 연애 초기에는 안 그랬는데 정말 무서워요. 혼자 힘으론 도저히 헤어질 수가 없어요.”(20대 여대생)“4년간 만나면서 여러 번 헤어졌는데 그때마다 남자친구가 가족까지 죽인다고 협박해 할 수 없이 받아줬어요. 제 동생은 그것 때문에 세 번이나 이사했어요. 경찰에 신고해서라도 헤어지고 싶은데 그러면 정말 해코지할 것 같아요.”(30대 직장인)“헤어진 남자친구를 피해 계속 옮겨 다니고 있어요. 잡히면 제 부모님, 동생들까지 다 죽이고 자살하겠대요. 직장을 잡으면 알고 쫓아올까봐 취직도 못해요.”(20대 여성)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남자친구에 대한 공포를 토로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울산 자매 살해범 김홍일처럼 이별을 요구하는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계속되면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16일에도 경기 성남시 중원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박모 씨(24)가 자신의 여자친구 박모 씨(24)와 박 씨의 어머니 문모 씨(48)의 목과 복부를 흉기로 마구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박 씨는 경찰에서 “여자친구 어머니가 우리의 교제를 반대해 평소 앙심을 품었다”고 진술했다.전남 여수경찰서는 헤어지자는 여자친구의 집에 불을 지른 혐의로 정모 씨(41)를 16일 구속했다. 정 씨는 12일 오전 5시경 옛 여자친구인 A 씨의 여수 집으로 찾아가 출입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혐의다.이처럼 헤어진 연인에게 앙심을 품은 옛 남자친구가 연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살해하거나 방화를 저지르는 등 무차별 공격하는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김홍일은 7월 20일 새벽 자신이 쫓아다녔던 여성의 동생을 먼저 살해했다. 그러고 나서 언니를 살해했다. 사귀다 헤어지거나 자신이 스토킹했던 여성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과거엔 남성이 자살 소동을 부리며 자해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엔 여성을 살해하고 심지어 여성의 가족까지 해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남성의 집착에서 순정은 사라지고 공격성과 이기적인 성향만 강해진 것이다.이별을 원하는 많은 여성이 선뜻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도 남자친구가 “가족을 해치겠다”고 협박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연인의 폭력이 살해 위협으로 악화되지 않으려면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연애 초기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면 단호하게 “싫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신속히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주연 수원여성의전화 소장은 “여성이 폭력을 당하고도 순응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남성은 관계 유지 수단으로 폭력을 활용하게 된다”며 “한 번 사죄를 한 뒤에 또 폭력을 휘두른다면 고쳐질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연인을 해치는 남성은 폭력을 통해 ‘상처 난 자존심을 회복한다’고 여긴다. 김홍일은 경찰 조사에서 “헤어지자는 말에 자존심이 상해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특히 사회적 지위가 낮은 남성은 평소 연애 과정에서 축적된 열등감이 결별 통보 직후 극단적 분노로 바뀌기 쉽다.연애 초기 남성들이 보이는 과도한 정성과 집착을 헌신으로 오해하는 것도 위험하다. 선물공세 등 물질적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공세적으로 매달리는 남성일수록 이별 통보를 받으면 거기에 비례해 박탈감과 배신감을 느낀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준호 교수는 “이런 남성들은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하는 보상심리에 폭행 자체를 정의로 착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홍일도 피해자 부모가 운영하던 주점에 갔다가 가게에 있던 피해여성에게 반해 5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고, 다른 인간관계 없이 이 여성에게만 매달렸다. 김홍일 전화 통화의 90%는 모두 이 여성과의 통화였다.경기대 이수정 교수는 “집착 증세를 보이는 연인과는 만남 횟수를 줄이고 상대가 다양한 인간관계를 만들도록 유도해 이별 후에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
경찰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여자관계를 뒷조사했다고 보도한 뉴시스가 해당 내용과 관련한 사정당국 관계자의 녹취록을 12일 공개했다. 이 관계자는 경찰 정보라인에서 고위 간부를 지낸 A 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녹취록에 따르면 A 씨는 지난달 뉴시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초쯤 추적해본 적이 있다”는 말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녹취록에서 A 씨는 “(안 원장이 다녔다는 룸살롱에 대해) 확실하게 잘 모르고, 그때 ‘로즈’인가 뭐 있잖아요. 거기 들락날락하고 여자가 있다고 해서 우리가 한번 추적을 해본 적은 있지”라고 말했다. 이어 “실제 우리가 그 사람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얘기는 많이 떠돌았는데. 실제 그때 확인할 만한 그런 그게 안 되더라”고 말했다. A 씨는 통화 말미에 “지금 이야기되는 (안 원장 관련) 내용들이 다 그런 식의 루머다. 우리가 좀 확인을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영 안 되더라”며 “자칫 잘못하면 민간사찰 이런 오해를 받을까봐 시기 자체가 그래서 조금 하다가 하지 말자고 해서 끝냈다”고 말했다. A 씨는 이 통화에서 안 원장 관련 소문을 알아본 시기에 대해 “작년 초쯤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해당 시기에 A 씨는 한 지방경찰청의 정보책임자로 근무했다. 안 원장은 정치권에서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하던 시기였다. A 씨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뉴시스) 기자가 안 원장과 관련된 세간의 루머에 대해 물어와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은 있지만 실체는 알지 못한다고 답한 게 통화의 전체적인 맥락이었다”며 “(안 원장의 사생활에 대해) 확인하거나 추적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소문 내용을 알아봤다’는 취지로 말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만약 그런 표현을 썼다면 전화를 빨리 끊으려다 말실수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A 씨는 지난달 뉴시스 기자와 이 같은 내용의 통화를 할 당시에는 정보업무와 무관한 보직에 있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제가 어렸을 때 이런 교육을 받았다면 그 끔찍한 죄를 짓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땐 왜 그런 기회가 없었을까요. 성범죄가 뭔지도 잘 몰랐던 제가 한심하네요.” 얼마 전 교도소를 방문해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주는 교육을 실시한 성교육 전문가 이현숙 대표는 한 30대 수강생으로부터 이처럼 뒤늦은 후회의 소리를 들었다. 이 대표는 “학교 성교육이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했다. 최근 한 남학생이 고교 시절 성범죄 전력을 숨기고 성균관대에 입학해 물의를 빚었다. 해당 학생을 포함해 남자 고교생 16명은 지적장애 여중생을 한 달간 집단 성폭행하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상당수는 중상위권 성적에 부모가 교사나 공무원인 안정된 가정의 자녀였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가 크게 저항하지 않아 합의가 된 줄 알았다”고 주장했다. 사건담당 경찰관은 “의사표현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을 성폭행하고도 자기 기준에서만 판단한 것”이라며 “그 발언을 듣고 ‘그 학생들이 성폭행이 뭔지 제대로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효성 있는 성범죄 예방교육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전문가들의 6가지 제언을 정리했다. ① ‘현장형 수업’을 하자 성교육은 청소년들의 일상생활에서 언제든 적용 가능한 ‘현장형’이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성폭력의 정확한 기준이 무엇이고 성폭력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성교육 시간에 정립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초등학생들에게 “수영복을 입었을 때 가려진 부분은 부모가 만지더라도 ‘안 된다’고 외치라”고 가르칠 정도로 세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또 성폭행 위험에 처하면 ‘무조건 소리를 지르라’고 할 게 아니라 “성폭행범이 팔을 뻗었을 때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침착히 대응하고 그 범위 밖이라면 소리를 지르며 도망쳐라. 성폭행범은 적발될 위험을 무릅쓰고 피해자를 굳이 쫓아가지 않는다”는 현장 상황에 맞는 대처법을 가르쳐야 한다.② 성범죄 예방 교과 만들자 전문가들은 성범죄 예방 내용을 지금처럼 여러 과목에 나눠놓고 ‘수박 겉핥기’로 끝낼 게 아니라 통합된 정규 과목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초중고교 교육 과정에 맞춰 체계적인 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육 효과를 높이려면 연령이나 성향 등 학생 개인의 특성에 맞게 소규모로 나눠 맞춤형으로 교육해야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성범죄 피해 대처 요령에 대해 집중교육하고 중고교생은 성폭력 개념, 올바른 남녀 관계 정립에 중점을 둬야 한다. ③ 툭 터놓고 얘기하자 학교와 가정에서 성에 대해 솔직히 말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과 덴마크 등 선진국에선 1차적인 성교육자가 부모라는 인식이 강해 자녀들이 민감한 주제를 두고 부모와 대화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미국 현지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성관계나 동성애 등에 대해 부모와 대화할 때 편안함을 느꼈다고 답한 비율이 65%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교사가 성교육 시간에 콘돔 사용법을 알려줬다가 ‘성관계를 부추긴다’는 학부모 항의를 받고 강의에서 피임법을 빼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④ 가정으로 확대하자 교사는 매년 바뀌지만 부모는 자녀의 ‘평생 교사’다. 정부가 초등학교 교사들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성범죄 위험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응답자 48.7%가 ‘가정 성교육 강화’를 꼽아 가장 많았다. 하지만 부모의 성교육 관련 지식 수준은 한참 모자란다. ‘아하 서울청소년성문화센터’ 홈페이지에 올라온 상담글을 보면 “자위를 하는 아들을 야단쳐야 하느냐” “초등학생 남매가 컴퓨터로 야한 사진을 보는데 어떡해야 하느냐” 등의 문의가 상당수다. 전문가들은 집에 성교육 관련 서적을 비치해 놓으라고 조언한다. 책이 손에 닿는 곳에 있으면 자녀가 자연스럽게 읽고 부모와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 ⑤ 성교육 연령을 낮추자 최근 성범죄 대상이 되는 연령층이 낮아지면서 성교육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현재 학교 성교육은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5학년 이후 이뤄지지만 이를 최소한 초등학교 입학 단계로 앞당겨야 한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2010년 전국 보건교사와 보육원 교사 175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이상적인 성교육 시작 시기로 응답자 59.4%가 3∼5세를 꼽았고 초등학교 1∼3학년이라고 생각하는 교사가 16.9%를 차지했다. ⑥ 교육 전문교사 양성하자 성범죄 예방교육 전문 교사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성교육 교사가 성폭력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과 풍부한 사례가 없으면 ‘성교육은 역시 뻔하다’는 학생들의 선입견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 현재 보건교과에는 성범죄 예방 관련 내용이 비교적 상세히 포함돼 있지만 보건 교과를 채택한 학교는 7.8%에 불과하고 이들 학교에서마저 성범죄 예방교육은 뒷전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

“성범죄 대책이 무수히 나왔지만 작정하고 달려드는 사람을 무슨 수로 막습니까. 사람을 욕구 충족 대상이 아닌 인격체로 보게 하는 교육의 힘이 절실하죠. 학교에서 제대로 성교육 받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여덟 살 난 딸 나영이(가명)가 조두순에게 성폭행 당하는 참극을 겪은 아버지는 의외의 성범죄 해법을 내놨다. 그는 최근 전남 나주 여아 성폭행 사건 등 잇따르는 성범죄와 관련해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결국 올바른 성교육이 답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하고 있을까? 남녀 신체 차이, 임신, 출산 등 생물학적 설명에만 치중한 채 성관계가 남녀 간의 사랑과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임을 가르치는 데는 소홀한 게 아닐까?동아일보는 5일 서울시내 초중고생 28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남자 고교생(100명)의 38%가 ‘성욕을 강제로라도 해소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답했다. 전체 조사 대상에서는 28.4%가 그런 대답을 했다.‘성교육 담당 교사가 권한 성욕 해소 방법이 효과가 있었나’라는 질문엔 그렇다(‘매우 그렇다’ 포함)라고 답한 학생은 23.5%에 불과했다. 남자 고교생 가운데 40%가 아동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 동영상을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하지만 학교 성교육의 내용 가운데 성범죄 예방 등 실질적 내용은 미미했다. 남녀 신체 차이, 임신, 출산 등 생물학적 설명이 대부분이었다. 전문가들은 성교육이 성범죄 예방과 남녀 간 바람직한 관계 형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남승희 명지전문대 청소년교육복지학과 교수는 “성교육이 남녀 간 생물학적 차이만 나열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않다 보니 오히려 범죄를 정당화하도록 유도하는 측면이 있다”며 “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언행을 바로잡는 방향으로 학교 성교육을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경찰은 서울대 안철수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 경찰 등 정보기관의 뒷조사가 이뤄졌다는 안 원장 측의 의혹 제기에 대해 강력히 부인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경찰이 안 원장의 사생활에 대한 첩보를 수집했다는 금태섭 변호사의 주장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경찰은 치안에 관련된 정보활동만 할 뿐 정치인 개인에 대한 ‘정치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며 금 변호사가 ‘경찰’을 적시해가며 아무 근거가 없는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도 “사실관계 자체가 다른 일방적 주장에 대해 더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최근 안 원장에 대한 사찰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의 기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해 조정 절차를 밟고 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초등학생들의 학교폭력에 아홉 살 소년은 반신불수가 됐다. 소년의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결국 법원이 가해 학생의 부모에게 배상금 지급을 명령했지만 가해 학생 부모는 재산 명의를 바꾸고 ‘돈이 없다’며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정우네 가족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가족의 절망은 2007년 봄 집 앞 문구점에서 시작됐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김정우(가명·14) 군은 문구점용 간이 오락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오락기 화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게임 빨리 끝내.” 같은 학교 동급생 4명이 뒤에서 정우를 재촉했다. 2학년 때 같은 반에 있으면서 정우를 괴롭히던 아이들이었다.“잠시만, 조금만 더 하고.” 정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뒤통수로 주먹이 날아왔다. 정우는 게임을 멈추고 일어났다. 오락기 옆에 있는 ‘뽑기’ 기계 쪽으로 걸어가는 순간 정우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몸의 중심을 잃었다. 뒤의 누군가가 “야, 시간 없는데 왜 이제 일어나!”라며 정우의 왼쪽 다리를 걷어찬 것이다. 바닥에 넘어진 정우가 일어서려 하자 뒤에서 더 센 발길질이 날아왔다. 정우는 뒤로 넘어지며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정우는 다시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이번엔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도와 달라’고 외치려 했지만 말도 나오지 않았다. 4명은 재빨리 도망쳤다. 문방구 근처에 있던 정우의 한 살 터울 형이 쓰러진 동생을 향해 달려왔다. 정우는 눈만 멀뚱멀뚱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형은 친구와 함께 동생이 폭행당하는 장면을 옆에서 보고도 당황한 나머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울부짖었다. 정우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한순간에 장애인 된 소년그날 이후 정우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나흘째 되던 날 정우는 다시 말을 시작했지만 말투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어눌해져 있었다. 왼쪽 얼굴과 팔, 다리 등 몸 한쪽이 마비돼 움직이지 못했다. 머리가 바닥에 부딪힐 때의 충격으로 뇌경색이 생겼고 그 여파로 반신마비가 온 것이다. 담당 의사는 정우에게 뇌병변 1급의 중증장애 판정을 내리며 “수술 후에는 휠체어를 타라”고 했다.엄마 이모 씨(44)는 아들을 이렇게 만든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정우는 병상에서 최준영(가명) 군과 임재현(가명) 군 등 4명이 자신을 때렸다고 했다. 이 씨는 학교를 찾아 각각의 담임교사가 동석한 가운데 네 아이를 한 명씩 만났다. “저는 그날 하루 종일 집에 있었어요.” “저는 그때 학원에 갔는데요.” “저는 그 문방구가 어딘지도 몰라요.” 아이들은 정우를 때리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경찰 조사 때는 가해학생 부모들까지 가세해 폭행을 전면 부인했다. ‘우리 애는 절대 친구를 때릴 아이가 아니고 그날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반신불수가 된 정우가 가해자를 한 명 한 명 꼽았지만 때린 사람은 아무도 없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됐다. 하지만 경찰은 현장 탐문 결과와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4명이 폭행에 가담했고 최 군과 임 군이 주로 때렸다”고 결론 내렸다.당시 가해학생은 9세, 10세의 어린 나이여서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었다. 죗값을 치르게 하려면 부모들이 돈으로 손해배상을 하는 길밖에 없었다. 학교폭력 사건이 어른들의 ‘전쟁’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사건은 이듬해 민사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4명 중 최 군 한 명만 유죄를 인정했다. 사건 목격자로 법정 증언대에 선 정우 형의 친구 A 군이 최 군 한 명만 가해자로 지목한 게 결정적이었다. A 군은 재판 후 “임재현도 그날 폭행 현장에 같이 있는 걸 봤지만 그 친구가 학교 ‘짱’하고 워낙 친해 나중에 복수할까 봐 차마 얘기하지 못했다”고 했다.○ 홀로 끝나지 않는 비극비극은 정우 혼자로 끝나지 않았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정우네 가족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정우 부모는 부부가 함께 동네 빵집을 운영했다. 하지만 정우가 병상에 누운 뒤 엄마 이 씨가 병간호에 전념하면서 남편 홀로 빵집 일을 해야 했다. 이 씨는 전국의 유명 병원을 다니며 아들을 고쳐줄 의사를 찾아 헤맸다. 혼자는 거동이 불가능한 아들을 등하교시키고 재활치료를 해주는 일도 엄마 몫이었다.남편은 오전 4시부터 밀가루 반죽을 하기 시작해 밤 12시쯤 장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일상을 2년간 반복했다. 매달 수백만 원씩 드는 정우 치료비를 대려면 아르바이트생도 쓸 수 없었다. 남편은 피로가 누적돼 지난해 3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심장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유증으로 망막박리 등 눈에 이상이 왔고, 5개월 만에 양쪽 시력을 모두 잃었다. 생계를 책임졌던 남편마저 장애인이 되자 빵집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정우 부모는 가게를 처분한 돈으로 소송비용을 대고 남은 돈으로 둘째 정우를 포함해 아들 셋을 키우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치료비를 지원하는 제도가 2010년 생기긴 했지만 그 이전에 벌어진 일이라 대상에서 제외됐다. 외부 도움은 아동복지기관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최근 수술비 지원을 받은 게 전부다.기자가 정우 가족의 59m²(약 18평) 임대아파트를 찾았을 때 집 벽지는 습기가 차 곰팡이로 새카맣게 변색돼 있었다. 30년 된 건물이라 부엌에 물이 안 나와 욕실에 설거지거리가 잔뜩 쌓여 있었다.○ 재산 명의 넘겨버린 가해자 가족정우 어머니는 2010년 6월 대법원의 중재로 가해자인 최 군 아버지와 마주앉았다. 1, 2심에서 모두 최 군의 유죄가 인정돼 대법원까지 갔고 담당 대법관이 합의를 해보자며 양측을 부른 것이다. 사건 3년여 만에 피해자와 가해자 부모가 처음 만난 자리였다. 최 군 아버지는 거기서도 “우리 아들은 때린 적이 없는데 정우가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그해 8월 최 군의 폭행 사실을 인정해 피해자 가족에게 4억30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확정 판결했다. 폭행으로 인한 장애 정도가 심각해 노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보고 향후 일할 수 있는 나이를 산정해 일당으로 계산한 액수였다. 3년에 걸친 법정 공방이 그렇게 끝날 줄 알았지만 또 다른 시작일 뿐이었다. 대법원 판결이 난 직후 최 군 아버지는 정우 부모를 찾아와 “우리 아들이 잘못을 한 건 아니지만 사정이 딱하니 1000만∼2000만 원에 합의를 보자”고 제안했다. 어머니 이 씨는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면 최대한 노력해볼 마음이 있었는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최 군 부모는 올해 5월 “배상액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며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개인회생은 채무자가 수입이 있는 경우 그 돈으로 5년간 생계비를 제외한 일정 금액만 갚으면 남은 채무는 없던 것으로 해주는 제도다. 최 군의 아버지는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어머니는 정부 중앙부처 중간간부로 재직 중인 국가직 공무원이다.개인회생이 받아들여지면 정우네 가족은 법원이 판결한 피해배상을 거의 받지 못한다. 최 군 부모는 향후 5년간 매달 몇만∼십몇만 원 남짓한 돈만 피해자에게 주면 남은 배상액을 모두 탕감 받는다. 받을 수 있는 돈은 모두 합해봐야 1000만 원 안팎이다. 법원의 피해 배상 결정을 한순간에 무력화시키는 셈이다. 정우 어머니는 “한 아이와 가족의 인생을 망친 죄에 대한 대가인데 평생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교묘히 책임을 피하려 한다”며 울먹였다. 정우 부모가 최 군 부모의 재산 목록을 확인한 결과 빈털터리로 보이기 위해 개인회생 신청 전 보유 재산을 일부 숨긴 사실이 드러났다. 대법원 판결 후 4개월 만인 지난해 2월 최 군 아버지는 법원에 재산 목록을 신고하면서 자신 명의로 된 수억 원짜리 부동산을 누락했다. 공시지가 기준(올해 1월)으로만 1억9300만 원에 이르는 땅이었다. 최 군 아버지는 법원 재산 신고 3개월 뒤인 지난해 5월 그 땅 명의를 누나 등 다른 가족에게 넘겼다. 지난해 9월까지 꼬박꼬박 재산세를 냈던 땅이다. 최 군 부모가 낸 개인회생 신청에 대한 법원 심리가 열린 지난달 13일 판사는 최 군 부모에게 그 문제를 거론하며 “재산 신고를 사실대로 하지 않으면 (개인회생 심사 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군 부모의 개인회생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이날 법원에서 기자와 만난 최 군 아버지는 “원래 가족들을 위한 집안 땅인데 명의만 내 앞으로 돼 있던 것을 정상화시킨 것”이라며 “개인회생이라도 되지 않으면 우리 가정 역시 파탄 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최 군 어머니도 “아이들 진술과 증언으로만 판결이 나 수긍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축구선수의 꿈은 어디로사건 후 5년, 이제 중학생이 된 정우에겐 그날 사건의 흔적이 온몸에 배어 있다. 4일 기자가 정우네 집을 찾았을 때 정우는 ‘딸그락’ ‘딸그락’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두 발로 걷지 못하고 왼쪽 다리가 들린 채 오른발 하나로 총총 걸음을 내딛는 소리였다. 옆으로 뒤틀린 왼발은 발바닥이 하늘을 향한 채 힘없이 흔들거렸다. 두 다리의 길이도 10cm쯤 차이가 났다. 오른쪽 다리는 계속 자랐지만 성장이 멈춘 왼쪽은 5년 전 그때에 머물러 있었다. 정우는 가해자 2명과 같은 중학교에 다닌다. 사는 동네도 같아 등하교 때마다 거의 매일 마주친다. 초등학교 때는 보조기구를 착용한 외모가 흉하다고 욕을 하거나 때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가해자 2명 역시 거기에 동참했다. 정우는 “그 아이들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만 해준다면 다시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했다.정우는 지난달 16일 발목이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수술을 받았다. 아직 한국에는 검증된 치료법이 없어 완치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우는 어려서부터 박지성 선수를 좋아해 축구선수가 꿈이다. 수술 뒤 회복을 위해 학교를 쉬고 있는 요즘도 하루에 서너 시간은 TV로 축구 경기를 본다. 정우 어머니는 ‘수술 결과가 좋아도 보통 사람처럼 살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아들에게 전하지 못하고 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흉악한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일을 저지른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경고 차원에서라도 (사형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4일 밝혔다. 흉악범죄가 잇따르면서 사형 집행과 관련한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대선주자로는 처음으로 견해를 밝힌 것이다. 박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아동 성폭행범 등 흉악범에 대한 사형집행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사형제 폐지 움직임이 있었을 때도 저는 사형제 폐지는 신중하게 고려할 일이지 폐지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대통령이라면 사형을 집행하겠느냐’라는 질문엔 잠시 생각한 뒤 “글쎄…. 저는 예전에도 그렇게 (사형제 존치를) 주장한 사람”이라고만 했다. 즉답을 피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사형 집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정치권과 학계, 법조계에서 사형제 존폐 및 집행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4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사형 집행은) 인권문제가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면서 “제도적으로 사형제를 유지하면서 집행은 하지는 않는 현 상태가 지속되는 게 옳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이날 경기도청 제1회의실에서 열린 월례조회에서 “범인들의 인권보다는 피해자의 인권이 더 중요하다”며 “인륜에 반하는 자들에게 1심, 2심에서 사형 판결을 내려놓고 대통령부터 집행부까지 모두 (사형) 집행을 안 하고 있다. 이게 누구를 위한 인권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지사는 “대한민국의 현행 법률에는 (사형) 제도가 있는데도 해괴한 궤변으로 할 일을 하지 않아 (사회)문제가 악화하고 있다”고 정부를 비판했다.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까지 15년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국제앰네스티(AI)로부터 사형폐지국으로 지정받았다”며 “(사형 집행 요구는) 성급한 주장으로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법학자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형법에 명시된 대로 집행해야 한다”는 주장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한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이영란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한국은 범죄와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법으로 정해 놓은 ‘죄형법정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이미 선고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허일태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법의 상위법인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사형제는 폐지돼야 한다”면서 “국가는 복수심이라는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일반 여론은 사형 집행과 사형제 자체에 찬성하는 쪽이다. 6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남녀 7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사형선고와 집행이 모두 필요하다’고 답한 사람이 58.4%, ‘사형선고는 하되 집행은 고려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27.1% 등 전체 응답자의 85.5%가 사형제 존치에 찬성했다. 사형제 폐지는 5.4%가 요구했다.이날 ‘사형 집행 논란’을 다룬 4일자 본보 기사가 올라온 동아닷컴 홈페이지에는 550여 건의 댓글이 달렸다. 특히 사형제에 찬성하는 누리꾼 ‘GraceMegu*****’의 글은 1000여 차례 추천을 받았다.그러나 현직 법원 관계자들은 “사형 집행 요구는 지금처럼 감정이 격해진 분위기에서 논의할 문제는 아니다”라는 신중한 의견을 보였다. 서울고법의 한 현직 부장판사는 “사법부는 최후의 심판 기관으로 만에 하나 벌어질 수 있는 잘못된 선택까지 고심해야 한다”며 “흥분된 분위기에서 사형 집행 문제가 거론될수록 진지하고 성찰적인 실천적 학문적 논의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

사형이 인간 존엄성을 침해한다며 2008년 위헌소송을 낸 사람은 전남 보성에서 젊은이 4명을 연쇄 살해한 어부 오종근(74)이었다. 오종근은 2007년 8월 바닷가에 놀러온 19세 대학생 커플을 자신의 배에 태워 바다로 나간 뒤 남자를 물에 빠뜨려 숨지게 했다. 여대생을 성추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의 손길을 거부하는 여대생마저 바다로 내던졌다. 그는 3주 뒤 같은 방법으로 20대 여성 2명을 더 살해했다.그는 법정에서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 대학생 커플은 파도가 요동쳐 물에 빠졌는데 구하지 못한 것뿐이고 20대 여성 2명에 대해선 가슴을 만지려 실랑이를 벌이다 함께 바다에 빠졌다가 혼자만 살아나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피해자의 시신은 피부가 군데군데 까졌고 시커먼 타박상으로 뒤덮여 있었다. 배 위로 기어오르려다 오종근이 휘두른 흉기에 맞아 생긴 흔적이었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2심 도중 사형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요구했다.○ 1인당 평균 3.5명의 목숨 빼앗아오종근처럼 사형수가 사형제 위헌 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1953년 사형이 형법에 명시된 이후 네 차례 있었다. 그들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는 헌법 제10조를 근거로 살인범의 생명도 소중하다고 주장했다. 사형이 확정돼 수감 중인 사형수는 현재 60명(군인 사형수 2명 포함). 이들이 살해한 피해자는 모두 207명으로 사형수 한 명에게 평균 3.5명이 희생됐다. 여러 명의 생명을 빼앗아놓고 자신의 인권은 존중해 달라고 요구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은 사형 집행이 억울하게 숨진 원혼을 위로하고 유족의 인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방편이라고 여긴다. 경기 수원시에서 오원춘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20대 여성의 남동생은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무고한 사람을 그렇게 난도질하고도 반성의 기미조차 없는 살인마에게 왜 인간 대우를 해야 하느냐”며 “수십 년이 지나도 사회로 못 내보낼 위험인물이라면 사형을 통해 사회와 영구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 경남 통영에서 김점덕에게 납치 살해된 아름 양(10)의 아버지도 “그 어린 것의 억울함을 달래주려면 아빠인 내가 복수를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면 국가가 대신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집행도 안 되는 사형 선고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울분을 토했다.헌법은 특정 법률의 위헌 여부가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면 피고인 등 당사자가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하거나 헌법소원을 낼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살인과 특수강간으로 사형이 확정된 정모 씨는 1995년 “사형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해 폐지해야 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7 대 2로 ‘합헌’ 결정했다. 오종근이 제기한 위헌심판도 1년 5개월에 걸친 심리 끝에 합헌으로 결론 났다. 이때는 5 대 4로 재판관의 판단이 팽팽했다. ‘합헌’ 재판관 5명 중 2명이 인권을 중시하는 시대 변화를 반영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사형수 대부분 범행 시인사형의 합헌성이 두 차례 확인됐지만 사형은 1997년 이후 15년간 집행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사형수 60명을 살려두기 위해 한 해 13억2000만 원가량의 예산을 쓰고 있다. 법무부는 사형수 1명에게 들이는 돈을 연간 약 2200만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식비 의류비 등 직접경비는 약 200만 원, 그 외 교도관 인건비와 건물 감가상각비, 공공요금 등이 2000만 원가량 드는 셈이다. 일반 수용자와 사형수의 처우 차이는 없기 때문에 같은 비용이 든다고 한다. 노인과 출장마사지 여성 20명을 자신의 ‘살인용’ 쇠망치로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유영철, 초등생이었던 혜진이 예슬이를 성추행한 뒤 토막살해한 정성현, 부녀자 10명을 납치 살해한 강호순 등 흉악범죄자들을 먹여 살리는 데 거액의 세금이 매년 소요되는 것이다. 이들처럼 현재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 가운데는 인명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며 엽기적 살인 행각을 벌인 살인마들이 많다. 피해자 가족들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살인마를 먹여 살린다는 게 얼마나 미칠 노릇인지 정부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울부짖고 있다.현재 복역 중인 사형수 60명 대부분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범행을 시인했다. 법정에서 “더이상 재판도 필요 없고 살고 싶지 않으니 빨리 사형을 시켜달라”고 주장한 경우도 있다. 군사독재 시절 대표적 ‘사법살인’ 사례로 거론되는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처럼 잘못된 재판에 의해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사형수는 형이 확정됐지만 집행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결수’ 신분으로 구치소 독거실에서 홀로 생활한다. 구치소 밖으로 나올 희망이 없는 데다 어차피 ‘죽을 몸’이라고 생각해 자신의 기분이 틀어질 때는 다른 재소자나 교도관에게 돌발 행동을 하며 위협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구치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다만 법무부가 2008년 관련법을 개정해 미결수인 사형수를 기결수에 준해 처우하는 것으로 바꾸면서 사형수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서울구치소에 수십 명이 몰려 있던 이들을 대전 대구 부산 광주구치소로 분산 수감했고 희망자는 노역장에서 일도 할 수 있게 됐다. 2010년 3월 이귀남 당시 법무부 장관은 청송교도소(현재의 경북북부교도소)에 사형 집행 시설을 설치하고 사형수 상당수를 이곳에 격리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이 계획은 추진되지 않고 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

전남 나주에서 7세 여아를 납치해 성폭행한 고종석(23)은 아동 포르노광이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모텔이나 PC방에 틀어박혀 성인 남성이 여자 어린이와 성행위하는 일본 포르노를 자주 봤다고 했다. 경남 통영에서 10세 소녀를 살해한 김점덕이나 초등학교 건물 복도에서 8세 초등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김수철도 PC에 수십, 수백 건의 아동포르노를 저장해놓고 범행 전 집중적으로 시청했다. 경찰은 7월에 김점덕 사건이 터진 직후 아동포르노가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로 이어진다는 언론의 지적이 나오자 아동음란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동음란물이 대량 유통되는 성인전용 PC방은 지금도 당국의 허술한 감시 속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1일 오후 동아일보 취재팀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성인전용 PC방을 찾았다. 이곳에서 100m 반경에만 성인전용 PC방이 3개나 있었다. 내부는 일반 PC방 형태와 크게 달랐다. 한낮에도 어두웠고 분홍빛 조명등만 드문드문 켜져 있었다. 컴퓨터는 보이지 않고 3.3m²(약 1평) 남짓한 방 10여 개가 닭장처럼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내부 복도를 오가는 사람 중에는 앳된 얼굴에 스포츠형 머리의 청소년도 있었다. 빈방이 없어 30분 넘게 기다린 끝에 들어가 방문을 열자 담배 찌든 냄새부터 풍겨왔다. 방 안에는 컴퓨터와 간이침대, 성인용품 자판기가 놓여 있었다. 재떨이와 휴지통에는 휴지가 수북했다. 컴퓨터 모니터는 ‘동영상 시청용’이어서 그런지 31인치로 꽤 컸다. 주인은 “시간당 5000원만 내면 컴퓨터에 저장된 음란동영상 수천 편을 볼 수 있고 2만 원을 내면 음란 화상채팅도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방 내부를 둘러보고 나와 복도를 지나는데 주인이 있는 카운터 앞쪽 방문이 열렸다. 모자를 눌러 쓴 한 남성이 나오더니 “애들 나오는 건(아동포르노)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그거 따로 폴더에 많이 모아놨는데…” 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에게 해당 폴더를 직접 찾아주고 나온 주인은 “이런 거(아동포르노) 좋아하는 사람이 꽤 많다”며 “진짜 어린애들이 나오는 건 많지 않고 성인이 어린이 흉내를 내는 동영상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주인은 취재진을 직접 사무실로 데리고 가 PC방 상영용으로 수집한 아동포르노 수십 편의 목록을 보여줬다. 열 살 남짓한 학생들이 등장하는 동영상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신림동을 비롯해 전국에 퍼져 있는 성인전용 PC방이 왜곡된 성의식을 가진 일부 남성들의 욕망 분출구가 되는 현장이었다.이 같은 성인전용 PC방은 음란물을 영리 목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음란물 배포를 금지한 현행법상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성인 PC방 업주들은 음식점이나 일반 게임장 등으로 영업 신고를 해 단속을 피하거나 아예 신고 자체를 하지 않는다. 간판도 ‘휴게텔’ ‘남성 휴게실’ ‘○○ PC방’ 등으로 달아 외관상으로는 성인전용 PC방인지 알 수 없다. 실제로 본보 취재진이 찾은 성인전용 PC방 5곳의 영업 신고 여부를 관할 구청에 확인한 결과 2곳은 일반 게임장으로 신고했고 3곳은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단속 사각지대에 있다 보니 성인전용 PC방을 이용하는 미성년자도 적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PC방에서 음란물을 틀어준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가보면 PC방 주인이 음란물을 볼 수 있는 내부 연결망을 즉각 차단해버린다”며 “그러면 방 안에 일반 컴퓨터를 진열해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단속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성폭행범 고종석을 1, 2일 이틀간 면담한 경찰청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감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종석은 평소 범행 대상을 정해놓고 기회를 노리다 부모의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계획대로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고종석이 범행 전 피해자 어머니에게 딸들의 안부를 물은 이유는….“범행을 앞두고 상황 판단을 위해 정보를 수집한 것이다. 고종석은 사건 당일 우발적으로 성적 충동을 느낀 게 아니고 평소 큰딸에게 성욕을 느끼면서 꾸준히 성폭행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피해자 엄마가 집을 계속 비우고 있고 현관문도 열려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범행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고종석은 평소 피해자 부모를 매형, 누나로 불렀지만 상대방의 피해에 대한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다 보니 평소 친분은 개의치 않는다.”―집 안까지 들어와 피해자를 이불로 싸서 납치하는 건 어떤 심리….“피해자를 어떻게 납치할지 고민하다 집에서 직접 데리고 나오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낮에 바깥에서 납치를 시도할 경우 주변 사람 눈에 띄기 때문이다. 또 피해자 가족과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혹시 들키더라도 안부인사 겸 들렀다고 둘러댈 수 있다. 이불째 통째로 들고 나온 것도 성폭행을 할 때 편의를 위한 것이다. 바닥이 울퉁불퉁한 다리 밑에서 범행을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이불이 있으면 더 수월하다고 본 거 같다. 고종석은 범행 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침착하게 계획대로 움직였다.”―고종석은 반성하고 있나.“이런 성범죄자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하필 거실 바깥쪽에 자는 바람에 결국 운이 없어 걸려든 것으로 본다. 범행을 피하지 못한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다고 보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은 못 느낀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아동 상대 성범죄를 충동질하는 요인 중 하나인 아동 포르노에 대해 한국은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해 왔다. 아동 음란물을 소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중 처벌하는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인터넷상에서 아동 음란물을 내려받아 보관하는 행위가 불법이라는 인식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영국 인터넷감시기구인 IWF(Internet Watch Foundation)는 한국을 세계에서 5번째로 아동 음란물이 많이 유통되는 나라로 분류하고 있다.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아동 음란물은 만 19세 미만 청소년이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동영상 또는 사진을 뜻한다. 음란물에 등장하는 인물이 실제로는 성인이더라도 미성년자로 보이게 변장했다면 이 역시 아동 음란물로 간주된다. 이 법은 ‘아동이나 청소년이 나오는 음란물을 제작하거나 수출입한 자에 대해 5년 이상의 징역, 배포하거나 전시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순 소지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아동음란물 소지 행위도 벌금을 물리도록 돼 있지만 이 처벌 조항이 실제로 적용된 적은 없다. 반면 미국은 지난해 11월 아동 포르노를 내려받은 20대 남성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할 정도로 처벌 의지가 강하다. 아동 포르노를 컴퓨터에 내려받기만 해도 통상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작년 468명 중 225명 풀려나… 1년새 ‘집유’ 6.8%P 증가, 성인대상 성범죄도 솜방망이 ▼아동(만 12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게 법원이 실형이 아니라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비율이 지난해에 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8월 31일 부산에서 열린 전국형사법관포럼 발표 자료에 따르면 1심 선고 기준으로 만 12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비율은 2010년 전체 482명 중 199명으로 41.3%였지만 지난해에는 48.1%(468명 중 225명)로 6.8%포인트 높아졌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 유형 중 60%가량을 차지하는 강제추행 사건은 집행유예 비율이 9.8%포인트 늘었다. 반면에 강제유사성교는 1.1%포인트, 강간은 1.7%포인트 정도 집행유예 선고 비율이 낮아졌다. 성인 대상 범죄를 포함한 전체 성범죄에서도 2010년 38.8%(1525명)에서 지난해 40.4%(1721명)로 집행유예 비율이 높아졌다. 벌금형에 처한 비율도 2010년 10.5%(414명)에서 지난해에는 13.5%(573명)로 높아졌다. 반면에 무기징역을 포함한 실형 선고는 3%가량 줄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추행 신고건수가 늘어나 집행유예도 함께 늘어난 것”이라며 “추행은 합의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빚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7월 18일 경기 부천시에 사는 송모 씨(37·여)는 직장에서 회의를 하다 딸 이름으로 걸려온 휴대전화를 받았다. 중학교 2학년인 딸(14)이 학교에 있을 오전 10시경이라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중학교 ○반 ○○○ 어머니시죠? 따님이 사고가 났습니다.” 전화기에선 굵은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딸의 학교와 학급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송 씨가 “많이 다쳤느냐”고 묻자 남자는 “딸과 직접 얘기해 보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넸다. 수화기 너머로 어린 여자의 신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눈이 안 보여. 무서워.” 긴가민가했지만 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전화를 건 남자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딸 데려가려면 빨리 1000만 원 보내. 전화 끊기거나 허튼짓하면 칼로 찌른다.”송 씨는 회의실을 박차고 나가 회사 1층에 있는 현금인출기로 향했다. 수화기에선 여자의 비명이 계속 들렸다. 송 씨는 급한 대로 계좌에 있던 290만 원을 두 차례 송금했다. 모자란 돈을 부치려고 남편에게 연락하자 남편이 학교에 가보겠다고 했다. 전화기에선 “5분 내로 돈 안 부치면 딸을 죽이겠다”는 남자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속이 다 타들어갈 즈음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딸은 학교에 있었다. 송 씨는 지금도 전화를 받을 때마다 ‘그놈 목소리’가 귀에 윙윙거려 괴로워하고 있다.○ 발신번호 조작 해외선 얼마든지 가능자녀나 노부모의 휴대전화 번호로 발신번호를 조작해 전화를 건 뒤 “자녀(노부모)를 납치했으니 돈을 보내라”고 협박하는 신종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이스피싱 사례가 많이 알려지면서 피해건수는 감소하고 있지만 이 같은 가족 납치 빙자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져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자녀 이름이 뜬 전화를 받으면 납치범이 자녀 전화기를 빼앗아 대신 전화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특히 7월 경남 통영 ‘아름이 사건’이나 8월 30일 전남 나주에서 일어난 7세 여아 납치 성폭행 사건 등 어린 자녀를 상대로 한 흉악범죄가 잇따르면서 부모들은 이런 전화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현재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 가운데 가족 납치 빙자가 35%를 차지해 가장 많다.이런 수법이 성행할 수 있는 건 각종 개인정보가 인터넷에 무단 유출되면서 범인들이 가족 단위 신상정보를 쉽게 입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족 구성원의 직장 및 학교 등 소속을 파악한 뒤 자녀나 노부모의 휴대전화 번호로 발신번호를 바꿔 현금 인출권이 있는 가장에게 전화를 건다.범인들은 피해자가 자녀나 노부모에게 연락해 사기 여부를 확인할 경우에 대비하여 미리 해당 번호로 여러 차례 전화한 뒤 학교 수업이나 취침 등의 사유로 전화 연결이 안 되는 때를 노린다. 피해자 자녀에게 전화를 걸어 욕설을 하거나 스팸 문자를 퍼부어 전화를 끄게 만들기도 한다. 발신번호 조작은 국내에선 금지돼 있지만 중국 대만 등 해외에선 제약이 없다. 경찰 관계자는 “해외에서 음성적으로 운영되는 사설 통신망을 통하면 발신번호를 쉽게 조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납치 전화’ 오면 112에 신고해야자녀가 납치됐다는 전화가 오면 즉각 112에 신고하는 게 좋다. 실제 납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통화는 계속하되 메모나 문자메시지 등을 이용해 주변 사람에게 신고해 달라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발신번호가 자녀 번호이더라도 다른 전화로 자녀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전화가 꺼져 있거나 신호음이 가면 ‘납치 전화’는 거짓일 수밖에 없다.연락이 닿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자녀가 가깝게 지내는 친구나 평소 자주 가는 곳을 확인해둘 필요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들은 피해자의 경찰 신고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협박에 흔들리지 말고 무조건 112에 신고해야 한다”며 “그러면 위치조회 등을 통해 납치 여부를 확인해 주고 납치 가능성이 있으면 바로 수사에 착수한다”고 말했다.경찰은 112센터와 은행 콜센터 간에 전용라인을 구축해 피해자가 112에 지급정지를 요청하면 해당 은행 콜센터로 즉시 연결해 해당 계좌에서 돈이 인출되지 않도록 막아준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운영하는 110콜센터(국번 없이 110번)도 유용하다. 바로 상담원과 통화할 수 있어 상황별 대처법을 신속히 안내받을 수 있다.보이스피싱범으로 의심되는 자에게 계좌번호 등 개인정보를 이미 알려준 상황이라면 곧바로 경찰이나 해당 금융기관에 신고한 뒤 ‘개인정보 노출자 사고예방 시스템’에 등록해야 한다. 국번 없이 1336(한국인터넷진흥원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전화해 상담을 받는 것도 좋다. 또 평소에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의 ‘명의도용 방지 서비스’를 이용하면 자신의 개인정보가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 확인해 예방조치를 취할 수 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
“다른 친구들은 이제 다치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나영이와 몇 번이나 약속했는데 그걸 못 지켰네요. 정말 억장이 무너집니다.”2008년 12월 조두순에게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 나영이(가명·당시 8세)의 아버지는 8월 30일 전남 나주에서 7세 여아가 집에서 잠자다 납치돼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에 밤새 잠을 못 이뤘다. 그는 31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4년 전 비극이 떠올랐는지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했다.“세상 살기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짐승이 돼가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을까요. 자고 있는 그 어린아이를 어떻게 집 안에까지 들어와 납치해 갈 수 있는지….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그는 “나영이가 사건 직후 응급실에서 깨어나자마자 ‘친구들이 주변에 있으니 그 아저씨(조두순)한테 안 다치게 해 달라’고 했다”며 “언론 인터뷰도 자기 얘기를 알려서 다른 피해가 없게 해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하라고 했는데 결국 이런 일이 또 터져 딸을 볼 낯이 없다”고 했다.나영이는 2010년 학교 복도에서 김수철에게 납치돼 성폭행을 당한 8세 초등학생의 병실을 직접 찾아 선물로 차고 있던 시계를 주고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며 위로했다고 한다. 두 학생은 이후 종종 만나며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고 있다. 나영이 아버지는 “아이들이 어렵게 상처를 회복해 가고 있는데 어린 소녀들이 납치되고 죽는 일이 반복되면 피해자들은 그때 공포가 떠올라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예전 상처에 파묻히게 된다”며 울먹였다.나영이는 심각한 성폭행 후유증에 시달리다 배변주머니를 제거하고 얼마 전부터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하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올 7월 경남 통영 김점덕 사건이 발생한 이후엔 종종 불안 증상을 보인다고 했다. 나영이 아버지는 “나주 사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딸에게 차마 얘기하지 못했지만 알게 되면 예전처럼 또다시 말문을 닫을까봐 걱정”이라며 “나영이가 최근 여러 성범죄 사건을 접하며 ‘요즘도 나쁜 아저씨들이 이렇게 많아요?’라고 물어올 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말했다. 나주 사건은 나영이와 가족들에게 4년 전 악몽을 고스란히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나영이 아버지는 그동안 여러 성폭력 대책이 나왔지만 정부가 이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약물치료(화학적 거세)를 도입한다고만 했지 관련 연구나 보완을 통해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있다”며 “사람이길 포기한 성범죄자들은 철저히 격리해야 하는데 사건이 지나가고 나면 그 심각성에 무관심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성세대가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성폭력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왜곡된 인식이 많은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시민들도 나주 성폭행 사건이 터지자 “야수의 손길이 집안까지 뻗친다면 도대체 안전한 곳이 어디냐”며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딸을 둔 주부 강문영 씨(36)는 “그동안에는 학교나 학원 다녀오는 길만 신경 쓰면 됐는데 이제는 아이를 집에 두고 장보러 갈 때도 불안에 떨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신영호 씨(47)는 “김점덕 사건 이후 초중고교생인 세 딸을 등하굣길마다 자가용으로 태워주는데 도대체 얼마나 더 신경을 써야 하느냐”며 “아내는 직장에 있을 때도 아이들 걱정에 일손이 안 잡힌다고 하는데 딸들 가방에 호신용품이라도 달아줘야 되는 거냐”고 토로했다.지난달 딸을 출산한 정모 씨(30)는 “여성과 어린이를 지켜주는 사회 안전망이 완전히 무너진 것 같다”며 “아기를 위해서라도 이민을 가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성폭행범을 강력 처벌하자’는 서명운동이 벌어져 31일 하루에만 2만여 명이 서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국민께 심심한 위로를 표하고 가족에게도 위로를 보낸다. 정부를 대신해 국민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

‘왜 긴급전화인 112가 통화 중일까.’ 112에 전화하면 평균 10통 중 3통이 ‘통화 중’ 상태여서 연결되기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살인이나 성폭행 위험에 놓인 피해자가 생명을 위협받으며 전화해도 연결이 안 될 확률이 30%나 되는 것이다. 실제로 22일 서울 여의도에서 일어난 흉기난동사건 때 현장에 있던 김모 씨가 범행 장면을 목격하고 112에 전화했지만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다.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이니 대기하라”는 자동응답시스템(ARS) 음성만 반복된 것이다. 김 씨는 할 수 없이 전화를 끊고 허리띠를 풀어 범인과 맞서야 했다.○ 신고자 14%, 통화 안 돼 신고 포기 동아일보가 29일 입수한 서울지방경찰청 112 신고전화 대기 현황을 보면 지난달 하루 평균 걸려온 112 전화 2만1429건 중 통화 대기된 건은 6306건이었다. 신고자의 29.4%는 112가 ‘통화 중’인 탓에 바로 신고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1∼6월에도 30∼32%가 전화 연결을 기다려야 했다. 서울경찰청 112센터의 경우 18∼23명의 근무자가 모두 신고를 받고 있으면 그 후 걸려온 전화는 계속 대기하다 접수원 중 한 명이 전화를 끊어야 연결된다. 112 연결이 안 되는 상황은 범죄가 빈발하는 오후 10시∼오전 3시에 가장 심했다. 범죄가 적은 오전시간대에 비해 신고대기 건수가 3∼6배 많았다. 금요일과 토요일의 통화대기 건수도 일요일과 월요일보다 각각 2배 많았다. 경찰 관계자는 “수원 20대 여성 피살사건 때 112 신고를 제대로 받지 못한 데 따른 징계가 내려진 뒤 한 건이라도 제대로 신고를 받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다른 신고자의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기자의 절반은 통화도 못해 보고 전화를 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서울경찰청에 들어온 112 신고전화 857만 건 중 통화대기 상태에서 끊긴 전화는 119만 건으로 14%에 달했다. 10명 중 3명은 ‘통화 중’에 걸리고 그중 절반(14%)이 신고를 포기하는 것이다. 전화가 도중에 끊기면 경찰 내부전산망에 번호가 남지만 당장 들어오는 신고를 받기에도 급급한 상황이라 끊긴 번호로 다시 연락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911로 걸려온 전화가 접수원이 받기 전에 끊기면 해당 번호의 발신지를 추적해 무조건 경찰이 출동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1초가 중요한 긴급 상황 때 이용되는 112가 통화 중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신고가 빨리 접수돼야 피해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범인도 수월하게 검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신고 대기 건수를 줄이려면 신고 접수가 부실해지는 게 문제다. 112센터 관리자가 대기전화 현황을 파악해 직원에게 신속한 처리를 독촉하면 서둘러 전화를 끊느라 출동한 경찰관에게 충분한 현장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6월 경기 수원시에서 동거남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던 여성이 몰래 112 신고를 했는데 출동한 경찰관이 가해 남성에게 전화로 폭행 사실을 물은 뒤 되돌아가 피해를 키운 사건도 그런 사례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피해 여성은 거의 감금상태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의 폭행을 당하고 있었는데 해당 신고를 받은 경찰관이 서두르느라 피해자의 부상 정도나 폭행 내용을 자세히 명시하지 않아 출동한 경찰관이 사안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인력 증원하고 접수방식 개선해야 경찰은 ‘통화 중 증상’을 해결하려면 전국적으로 112 접수 및 지령요원을 1500명가량 증원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현재 112 직원 1인당 하루 평균 접수처리 건수는 61.5건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32건), 일본 도쿄(30건) 등에 비해 두 배가량 많다. 거짓 오인신고와 긴급하지 않은 민원전화도 많아 불필요한 일에 인력이 분산되는 것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무작정 인력을 늘리기보다 신고가 집중되는 시간대에 근무요원을 늘리고 그렇지 않을 때는 다른 업무로 배치하는 탄력적 운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수요와 공급이 맞도록 112 시스템을 효율화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태현 연세대 경영대 교수(한국생산관리학회 회장)는 “비긴급 전화는 추후 다시 연락하거나 다른 곳에 연결하고 거짓전화를 신속히 걸러내는 시스템을 갖춰 업무 집중도를 높여야 한다”며 “다만 112는 국민 생명이 달린 공공 서비스인 만큼 지나치게 효율성에 집착하기보다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

20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주택가에서 전자발찌를 찬 채 성폭행을 시도하다 30대 주부를 살해한 서진환(42)은 범행 직전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까지 복용하는 등 사전에 치밀하게 성폭행을 준비한 것으로 확인됐다.28일 경찰에 따르면 서진환은 범행 당일 새벽까지 밤새워 음란동영상을 본 뒤 아침 일찍 성폭행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 비아그라를 복용했다. 평소 스트레스성 발기부전 증상이 있었던 그는 성폭행을 작심하고 약까지 챙겨 먹은 것이다. 서진환을 면담한 경찰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 요원) A 경사는 “평소 모든 관심이 오로지 성욕에만 집중돼 있는 전형적인 강간범”이라고 진단했다.경찰 조사 결과 서진환은 피해자를 살해하기 앞서 얼굴과 옆구리, 배 등을 수십 차례 때린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피해자는 칼에 찔리기 전 서진환의 무자비한 폭행으로 이미 저항력을 잃은 상태였다. 사건 후 발견된 시신은 얼굴 대부분이 피멍으로 검게 부어올라 유족조차 쉽게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A 경사는 “잔혹한 살해 수법으로 볼 때 좌절된 성욕이 필요 이상의 과도한 폭력성으로 변화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강간살해범들은 흔히 피해자가 소리를 지를 수 없도록 베개로 머리를 누르거나 목을 조르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질식해 숨지게 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서진환은 피해자의 저항 여부와 무관하게 칼을 휘두르는 극단적 폭력을 가해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보였다. A 경사는 “상습 강간범인 서진환은 피해자의 정서적 육체적 아픔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고 피해자를 자신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대상으로만 봤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서진환의 사례처럼 성범죄는 강압적 성관계뿐 아니라 폭행으로 인한 상해나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성폭행범은 상해나 살인 등은 피해자가 격렬히 저항해 이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진 일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얄팍한 변명이라고 지적한다. 성폭행 중 벌어지는 폭행은 성욕뿐 아니라 내면의 분노, 평소 억압됐던 욕구를 일시에 표출하는 일종의 ‘의식’으로 대부분 사전에 계획된다는 것이다. 성폭행은 피해자를 학대해 물리적 심리적으로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단순히 성욕 해소를 위한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는 설명이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 강은영 연구원은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볼펜이나 젓가락만 들고 있어도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경우가 많아 죽음을 각오하고 저항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며 “저항 의사가 없는데도 피해자에게 일부러 주먹이나 흉기를 휘두르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상대를 지배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단순히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르는 가해자들은 폭행 살인 등 추가 범죄는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피해가 커지면 경찰의 집중 수사 대상이 돼 성범죄 행각을 이어 갈 수 없기 때문이다.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성폭행 범죄 현장에서 흔히 발견되는 테이프, 칼, 노끈 등의 증거물들을 ‘강간범 세트’라고 부른다. 서진환도 이런 장비를 치밀하게 준비했다. 피해자를 결박할 청테이프와 얼굴을 가릴 청색 마스크,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과도를 갖췄다. 경찰 관계자는 “서진환이 그동안 세 차례 성범죄를 저지르며 나름대로 정교하게 범행 수법을 익힌 것 같다”며 “청테이프는 사전에 범행을 계획했다는 확실한 증거”라고 말했다. 이처럼 성폭행의 상당수는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돼 저질러진다. 성폭행범들은 흔히 “노출이 심한 옷차림의 여성을 보고 순간적으로 충동을 못 이겨 범죄를 저질렀다”고 진술하지만 이는 피해자에게 책임의 일단을 돌리려는 변명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진환의 사례가 보여 주듯 단순히 성욕을 채우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쌓여 온 성적 좌절감과 열등감을 여성에 대한 폭행이나 살인을 통해 표출하는 계획적 성폭행범이 많아진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성폭행범에 대처하는 대책과 처벌도 그에 맞게 강화되어야 함을 보여 준다.고현국 기자 mck@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한 경찰의 뒷조사 의혹에 대해 민주통합당이 집중 공세에 나섰다. 민주당 백재현 의원은 2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결산심사 보고에 나선 김기용 경찰청장에게 “(경찰이) 안 원장의 유흥업소 출입을 사찰하고 여성 문제를 조사했다는 언론 보도가 사실이냐”고 따졌다. 김 경찰청장은 “그런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자 같은 당 유대운 의원은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느냐”며 “경찰청장이 모르는 비선(조직)이 있을 수 있지 않으냐”고 다그쳤다. 김 경찰청장은 “가능한 모든 범위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런 사실이 없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유 의원이 “경찰청장의 답변과 상이한 사실이 드러나면 그때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이냐”고 묻자 김 경찰청장은 “가정해서 답하기 어렵다.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런 일은 없었다”고 같은 답변을 되풀이했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 전체회의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이 권재진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안 원장에 대한 경찰의 불법 사찰 의혹에 대해 (검찰에서) 수사할 용의가 있느냐”고 물었다. 권 장관은 “구체적 수사 단서가 있으면 그때 가서 검토할 수 있다”면서 “현재로선 언론을 통해 접한 것 이외에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날 경찰이 안 원장의 단란주점 출입 여부 등을 지난해 초 내사했다고 보도한 민영통신사 뉴시스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경찰은 “안 원장의 사생활 정보를 수집한 사실이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며 “언론중재위 조사 결과를 토대로 뉴시스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도 묻겠다”고 덧붙였다.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