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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먼지를 뒤집어쓴 백스테이지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애면글면 살면서 ‘진짜 무대’에 오르길 기다리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멋진 영웅 서사도 내 몫이 아닌 듯하다. 옆 사람에게 주어진 요행을 목도할 땐 울분과 허무감이 치민다. 우리는 대체 왜 요원한 꿈을 위해 현실에서 분투해야만 하는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사뮈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미국 극작가 데이브 핸슨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전 회차 전석 매진된 배우 신구, 박근형 주연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제작한 파크컴퍼니가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다.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공연된다. 작품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에 오르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두 대역 배우의 모습을 그린다. 연출가 또는 브로드웨이 진출, 별 다섯 개짜리 리뷰이기도 한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이들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깊이 있게 인생과 예술에 관한 질문과 씨름한다. 시시때때로 역정을 내는 ‘젊은 꼰대’ 에스터 역은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 출연한 곽동연이, 어수룩하지만 열정적인 늦깎이 밸 역은 박정복이 맡았다. 묵직한 베케트 원작에 비해 쉽고 가뿐하게 볼 수 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대화가 오가지만 “G.O.D.O.T(고도)에도 ‘신’이 있어” 등 웃음 포인트를 적절히 분산했다. 작품의 메시지도 비교적 친절하게 전달한다. “살면서 자기 인생의 의미를 다 깨닫는 사람이 있을까” 등 직관적 대사가 이해를 돕는다. 다만 공연 후반부에 메시지를 몰아치면서 연기 톤이 급작스레 진지해지는 것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배우 이순재가 출연 중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한 작품이다. 그는 에스터 역을 연기하면서 “평생 배우를 하면서 기다림에 대해서는 통달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늦더라도 반드시 기회가 온다”고 밝혔다. 두 대역배우를 비춰줄 듯 비춰주지 않는 스포트라이트 뒤편, “인생의 기회는 운명의 장난처럼 갑자기 달려들지. 그러니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어”라는 에스터의 말이 진실되게 다가온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일할 때도, 쉴 때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치열한 업무가 끝난 뒤엔 도통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넷플릭스에서 최신 콘텐츠를 챙겨 보거나 지친 몸으로 헬스장에 가고, 친구들과 ‘번개’를 잡아 진탕 술을 먹기도 한다. 요즘 사람들의 이 같은 행동을 두고 책은 이렇게 지적한다. “열정이 아닌 중독이다.” 현대사회에 이르면서 인간은 각종 고통과 불편함으로부터 보호받았다. 그러나 이는 무기력과 불안을 낳았고, 결국 도파민 중독의 사슬로 이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 책은 중독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도록 돕는 4주짜리 자가 치료 매뉴얼을 함께 담아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인 저자는 중독된 물질 또는 행동을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 이를 자기 삶의 맥락 안에서 분석해볼 수 있는 ‘일생 도파민 차트’, 중독 물질과 인지적 장벽을 쌓을 수 있게 만드는 ‘자기 구속 연습’ 등 꼼꼼한 자가 치료 도구를 제시한다. 24시간 단위로 나누어 중독 수준을 계산하도록 하는 등 객관적 자가 진단 방법도 담겼다. 디톡스 연습이 최소 4주간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경과학자 노라 볼코의 임상 경험에 따르면 중독된 물질이나 행동을 중단한 뒤 10∼14일째에 오는 고비를 넘기면 3, 4주부터 완만한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중독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담긴 점도 흥미롭다. 사소한 거짓말을 일삼는 이들이 중독에 더욱 취약하다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진실을 말하는 습관은 쾌락과 고통의 균형을 인식하고 그 간극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저자는 “의지력은 무한한 자원이 아니다”라며 의지만으로 도파민 디톡스를 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절제를 돕는 실제적인 장치를 곳곳에 만들어 둬야 하는 이유다. 디지털 중독을 막기 위해 애초에 휴대전화에 필수 앱만 받아 놓는다거나 운동 중독이 우려될 경우 예정한 운동 직후 지인과의 약속을 잡아두는 식으로 과한 몰입을 막을 구체적 방법 등을 제안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베테랑 배우 38명이 본인의 중요 작품을 시연하고, 지금까지 걸어온 연극 인생을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무료 공연이 열린다. 6일 서울문화재단 서울연극센터는 20년 이상 활동해온 중장년 배우들을 주축으로 하는 연극 인생 토크쇼 ‘리플레이(Re; Play·사진)’를 14일부터 29일까지 매주 목·금요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서울연극센터에서 선보인다. 이번 공연에는 김재건, 김화영, 고수희, 남명렬, 박지일, 우미화 등 원로에서 중견까지 연극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배우 총 38인이 참여한다. 각자의 연극 인생에서 중요 작품들의 하이라이트를 독백 형식으로 시연하고, 관련 주제에 대해 대담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활동 당시 사진과 대본 등 영상자료가 더해져 더욱 실감 나는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모든 공연은 네이버 예약을 통해 무료로 예약할 수 있고 당일 현장 관람도 가능하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뮤지컬 ‘광화문연가’. 공연의 백미는 다름 아닌 커튼콜이다. 핀마이크 대신 핸드마이크를 들고 무대로 나온 출연진과 함께 관객이 야광봉을 흔들며 간판 넘버 ‘붉은 노을’을 떼창하기 때문. 공연장에서 판매되는 머천다이즈(MD) 중 야광봉은 프로그램 북 뒤를 잇는 효자 상품이 됐다. 소위 ‘시체 관극’이라 불릴 만큼 엄숙한 관람 문화가 요구되는 국내 뮤지컬계에서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커튼콜이 확산세다.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무까지 따라 추는 ‘싱어롱 커튼콜’이 환호를 사고 있는 것.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리지’의 커튼콜은 본공연 뒤 ‘숨겨진 3막’으로 불린다. 1막 마지막 넘버인 ‘누군가가 뭔 짓을 할 거야’를 포함해 총 5곡을 10분간 메들리로 들려주면서 관객 떼창을 끌어낸다. ‘회전문 관객’이 많고 떼창 문화가 자연스러운 국내에서 이런 커튼콜 문화는 더 인기를 끌고 있다. 한 공연 제작사 관계자는 “과거엔 뮤지컬 마니아들만 참여했던 것과 달리 최근엔 관객이 다함께 열광하는 추세”라며 “공연 시장이 성숙해지면서 여러 차례 관람한 관객이 늘어났고, 고유의 떼창 문화가 영향을 줬다. 미국 브로드웨이 등 해외와 비교해도 흔치 않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에 커튼콜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도 활발하다.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킹키부츠’는 기존 커튼콜용 MD인 발광다이오드(LED) 반지를 올해 야광 팔찌로 업그레이드했다. 무대에서 객석으로 내려온 출연진과 함께 대표 넘버 ‘레이즈 유 업(Raise you up)’을 부르고 춤추는 시간 야광 팔찌를 함께 흔든다. 서울 종로구 예스24아트원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이터니티’는 이달 5∼10일 ‘싱어롱 위크’를 열고 커튼콜을 위한 가사지와 야광봉을 무료로 제공한다. 싱어롱 커튼콜은 관객에게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하고, 공연의 여운도 짙게 만들 수 있다. 뮤지컬 ‘리지’를 만든 공연 제작사 쇼노트의 서수연 마케팅본부장은 “록 뮤지컬이라는 특성에 착안해 작품이 주는 음악의 힘을 마지막까지 이어가고, 억압에서 해방되는 작품 서사를 따라 객석에 앉아 있던 관객이 직접 해방을 체험하길 바랐다”며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즐길 수 있어 배우들도 싱어롱 커튼콜을 반긴다”고 했다. ‘광화문연가’를 제작한 CJ ENM 공연사업부 관계자는 “관객 경험은 예매하는 순간부터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공연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요소를 만들어 몰입감을 높이려 한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뮤지컬 ‘광화문연가’. 공연의 백미는 다름 아닌 커튼콜이다. 핀마이크 대신 핸드마이크를 들고 무대로 나온 출연진과 함께 관객이 야광봉을 흔들며 간판 넘버 ‘붉은 노을’을 ‘떼창’하기 때문. 공연장에서 판매되는 머천다이즈(MD) 중 야광봉은 프로그램 북 뒤를 잇는 효자 상품일 정도다.소위 ‘시체 관극’이라 불릴 만큼 엄숙한 관람 문화가 요구되는 국내 뮤지컬계에서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커튼콜이 확산세다.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무까지 따라 추는 ‘싱어롱 커튼콜’이 환호를 사고 있는 것.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리지’의 커튼콜은 본공연 뒤 ‘숨겨진 3막’으로 불린다. 1막 마지막 넘버인 ‘누군가가 뭔 짓을 할 거야’를 포함해 총 5곡을 10분간 메들리로 들려주면서 관객 떼창을 끌어낸다. 싱어송 커튼콜은 ‘회전문 관객’이 많고 떼창 문화가 자연스러운 우리나라에서 더욱 인기를 얻고 있다. 공연제작사 관계자는 “과거엔 뮤지컬 마니아들만 참여했던 것과 달리 최근엔 관객 다함께 열광하는 추세”라며 “공연 시장이 성숙해지면서 여러 차례 관람한 관객이 늘어났고, 고유의 떼창 문화가 영향을 줬다. 미국 브로드웨이 등 해외와 비교해도 흔치 않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에 커튼콜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도 활발하다.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킹키부츠’는 기존 커튼콜용 MD인 발광다이오드(LED) 반지를 올해 야광 팔찌로 업그레이드했다. 무대에서 객석으로 내려온 출연진과 함께 대표 넘버 ‘Raise you up’을 부르고 춤추는 시간을 밝히는 불빛이 더 커지고 밝아진 것. 서울 종로구 예스24아트원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이터니티’는 이달 5~10일 ‘싱어롱 위크’를 열고 커튼콜을 위한 가사지와 야광봉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향후 소형 슬로건도 증정할 예정이다.공연제작사는 긍정적인 관객 경험을 제공하고 공연의 여운을 강화할 수 있다. 뮤지컬 ‘리지’를 만든 공연제작사 쇼노트의 서수연 마케팅본부장은 “록 뮤지컬이라는 특성에 착안해 작품이 주는 음악의 힘을 마지막까지 이어가고, 억압에서 해방되는 작품 서사를 따라 객석에 앉아있던 관객이 직접 해방을 체험하길 바랐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즐길 수 있어 배우들도 싱어롱 커튼콜을 반긴다”고 했다. ‘광화문연가’를 제작한 CJ ENM 공연사업부 관계자는 “관객 경험은 예매하는 순간부터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공연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요소를 만들어 몰입감을 높이려 한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꼿꼿한 심지처럼 선 여인. “용서를 비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그녀는 곧 무정한 국가이자 아이를 빼앗긴 어머니였고, 남자들은 그녀에게 빠져 익사했다. 검은 파도가 날름대는 벼랑 끝에서 평생 자신을 불태운 여왕 메리가 객석의 숨통을 옥죄며 말했다. “아무도 없다.”1, 2일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프랑스 ‘국민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주역으로 선 연극 ‘메리 스튜어트’가 아시아 초연됐다. 생존보다는 역사에 남기를 원했던 16세기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여왕 메리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1인극. 사별과 암살로 끝난 세 번의 결혼, 왕위를 빼앗긴 뒤 18년간 이어진 감금 생활, 단두대에서 맞은 죽음까지 아울렀다. 위페르가 펼친 첫 내한 공연으로, ‘이미지극의 대가’ 로버트 윌슨이 연출했다.공연은 30여 분간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독백으로 시작됐다. 반복적이고 시적인 대사는 번쩍이는 섬광, 극적인 음악 등과 어우러져 극장을 압도했다. 위페르는 경보음 울리듯 고성을 내다가 목이 졸린 듯 쉭쉭대고, 돌연 나직이 노래하듯 말하면서 우아한 군주와 무자비한 마녀, 비극적 어머니를 변화무쌍하게 오갔다. 총 86개 단락에 달하는 방대한 대사량을 따라가기 벅찰 때도 있었으나 쉼 없이 변주되는 말의 빠르기와 높낮이, 그에 더해진 각종 파열음이 메리의 삶을 더욱 직관적으로 전달했다.구체적 서사보다는 내면을 감각적으로 표하는 데 집중한 연출은 메리의 삶을 숭앙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입체적으로 관조하게끔 했다. 창백한 조명 이외 소품 하나 없는 무대 세트 역시 매력적이다. 넓지도 깊지도 않은 무대는 사방이 꽉 막힌 운명을 제시했고, “바위에서 스며 나온 물처럼 눈물을 쏟았다” 등 풍부한 묘사가 빈자리를 채웠다. 폭풍우 멎은 하늘빛의 조명 아래, 위페르가 양팔 벌려 유유히 움직이는 장면은 유독 잔상이 길다. “매가 날 수 없는 곳이라면 차라리 감옥이 낫다”는 대사가 활강하는 듯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걸그룹 블랙핑크 로제(사진)가 세계적인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협업한 싱글 ‘아파트(APT.)’가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 2위를 기록했다. 역대 K팝 여성 가수 중 최고 순위다. 1일(현지 시간) 공개된 최신 순위에 따르면 ‘아파트’는 지지 페레즈의 ‘세일러 송(Sailor Song)’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는 미국 빌보드와 더불어 세계 양대 차트로 불린다. K팝 가수로서는 2012년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유일하게 이 차트 정상에 올랐다. ‘아파트’는 지난달 25일 이 차트에 4위로 처음 진입했다. 다음 달 공개될 로제의 첫 솔로 정규앨범 ‘로지(rosie)’의 선공개 곡인 ‘아파트’는 한국 술 게임인 ‘아파트 게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으며 반복적이고 중독성 있는 후렴구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남편을 두고 ‘연극 속에 갇힌 손진책’이라고 농담할 때가 있어요. 손진책 씨가 본인 하고 싶은 작품만 맡을 수 있도록 옛날엔 제가 이 무대 저 무대 오가면서 뒷바라지했거든요. ‘벽 속의 요정’은 이렇게 가족에게 애틋함을 품어 봤다면 누구나 ‘내 이야기’라고 느낄 작품이에요.” 극단 미추의 1인극 ‘벽 속의 요정’을 20년간 이끌어 온 배우 김성녀 씨(74)의 말이다.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이 작품은 1950년대 반정부 인사로 몰리면서 벽 속에 숨어 살게 된 아버지와 그를 벽 속 요정이라고 믿었던 딸, 벽에 갇힌 남편을 대신해 밤낮으로 고생한 아내의 50년 세월을 그린다. 김 씨의 남편이자 극단 미추의 대표인 손 씨가 연출했다. 김 씨는 ‘벽 속의 요정’으로만 350회 가까이 무대에 섰다. 2005년 초연된 이듬해 동아연극상 연기상까지 안으면서 ‘관록 있는 배우’로 대중에게 각인을 새긴 작품. 지난달 31일 전화로 만난 그는 “시작할 땐 가시관, 끝나면 월계관으로 바뀌는 공연이다. 이 나이에 응석 부리는 게 웃기지만 저 정말 힘들다”며 웃었다. “아무리 20년을 한 작품이라지만 나이가 들면서 대사를 깜박하거나 노래가 벅찰 때가 있다. 그 대신 중압감에 압도됐던 옛날과 달리 이젠 등장인물이, 대사 한 줄 한 줄이 나에게로 온다”고 말했다. 5세 딸부터 70대 노인까지, 김 씨는 약 30개 배역을 넘나들며 2시간 동안 무대를 홀로 지킨다. 그는 “초연 때에 비해 사랑에 빠진 20대 처녀보다는 할머니가 되어 길을 걷는 마지막 장면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며 “20년 전 의상을 그대로 입기 때문에 체중을 조절하고자 오후 6시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1막의 아내 웃옷과 웨딩드레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대로”라고 했다. ‘벽 속의 요정’은 손 연출가가 아내만을 위해 연출한 첫 작품이다. 연습실에서 깐깐하기로 유명한 손 연출가지만 ‘또롱이’(김 씨를 부르는 애칭)의 연기에는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이에 김 씨는 “20년간 단 한 번도 똑같이 연기한 적 없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연극에 있어서는 좀처럼 타협하지 않는 사람인지라 아내라고 봐주지 않는다. 나 역시 틀에 박히지 않으려 안달복달하다 보니 작품이 생명력을 이어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에서의 공연이 끝난 뒤 내년부터는 지방 순회공연이 이어진다. 창극과 마당놀이, 뮤지컬 등을 거치며 50여 년을 배우로 산 김 씨에게 이 작품은 더욱 뜻깊다. “과분한 칭찬을 받아 온 작품인데, 20년이 지나고 보니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과 멋진 관객을 만난 덕택임을 깨달았어요. 모름지기 배우라면 무대에서 숨을 거두는 게 꿈이라지만 ‘벽 속의 요정’은 건강하게 몇 년간 더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남편을 두고 ‘연극 속에 갇힌 손진책’이라고 농담할 때가 있어요. 손진책 씨가 본인 하고 싶은 작품만 맡을 수 있도록 옛날엔 제가 이 무대 저 무대 오가면서 뒷바라지했거든요. ‘벽 속의 요정’은 이렇게 가족에게 애틋함을 품어봤다면 누구나 ‘내 이야기’라고 느낄 작품이에요.” 극단 미추의 1인극 ‘벽 속의 요정’을 20년간 이끌어온 배우 김성녀(74)의 말이다.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이 작품은 1950년대 반정부인사로 몰리면서 벽 속에 숨어 살게 된 아버지와 그를 벽 속 요정이라고 믿었던 딸, 벽에 갇힌 남편을 대신해 밤낮으로 고생한 아내의 50년 세월을 그린다. 김 씨의 남편이자 극단 미추의 대표인 손진책 연출가가 연출했다. 김 씨는 ‘벽 속의 요정’으로만 350회 가까이 무대에 섰다. 2005년 초연된 이듬해 동아연극상 연기상까지 안으면서 ‘관록 있는 배우’로 대중에게 각인을 새긴 작품. 지난달 31일 전화로 만난 그는 “시작할 땐 가시관, 끝나면 월계관으로 바뀌는 공연이다. 이 나이에 응석부리는 게 웃기지만 저 정말 힘들다”며 웃었다. “아무리 20년을 한 작품이라지만 나이가 들면서 대사를 깜박하거나 노래가 벅찰 때가 있다. 대신 중압감에 압도됐던 옛날과 달리 이젠 등장인물이, 대사 한줄 한줄이 나에게로 온다”고 말했다. 5살 딸부터 70대 노인까지, 김 씨는 약 30개 배역을 넘나들며 2시간 동안 무대를 홀로 지킨다. 그는 “초연 때에 비해 사랑에 빠진 20대 처녀보다는 할머니가 되어 길을 걷는 마지막 장면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며 “20년 전 의상을 그대로 입기 때문에 체중을 조절하고자 오후 6시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1막의 아내 웃옷과 웨딩드레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대로”라고 했다. ‘벽 속의 요정’은 손 연출가가 아내만을 위해 연출한 첫 작품이다. 연습실에서 깐깐하기로 유명한 손 연출가지만 ‘또롱이’(김 씨를 부르는 애칭)의 연기에는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이에 김 씨는 “20년간 단 한 번도 똑같이 연기한 적 없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연극에 있어서는 좀처럼 타협하진 않는 사람인지라 아내라고 봐주지 않는다. 나 역시 틀에 박히지 않으려 안달복달하다보니 작품이 생명력을 이어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에서의 공연이 끝난 뒤 내년부터는 지방 순회공연이 이어진다. 창극과 마당놀이, 뮤지컬 등을 거치며 50여 년을 배우로 산 김 씨에게 이 작품은 더욱 뜻깊다. “과분한 칭찬을 받아온 작품인데, 20년이 지나고 보니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과 멋진 관객을 만난 덕택임을 깨달았어요. 모름지기 배우라면 무대에서 숨을 거두는 게 꿈이라지만, ‘벽 속의 요정’은 건강하게 몇 년간 더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걸그룹 블랙핑크 로제가 세계적인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협업한 싱글 ‘아파트’(APT.)가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 2위를 기록했다. 역대 K팝 여성 가수 중 최고 순위다. 1일(현지시간) 공개된 최신 순위에 따르면 ‘아파트’는 지지 페레즈의 ‘세일러 송’(Sailor Song)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는 미국 빌보드와 더불어 세계 양대 차트로 불린다. K팝 가수로서는 2012년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유일하게 이 차트 정상에 올랐다. ‘아파트’는 지난달 25일 이 차트에 4위로 처음 진입했다. 다음 달 공개될 로제의 첫 솔로 정규앨범 ‘로지’(rosie)의 선공개 곡인 ‘아파트’는 한국 술 게임인 ‘아파트 게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으며 반복적이고 중독성 있는 후렴구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달 29일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 8위를 차지해 방탄소년단·지민·정국(1위), 싸이(2위) 등에 이어 ‘핫 100’ 10위 안에 진입한 다섯 번째 K팝 가수가 됐다. 지난달 18일 공개된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2억4000만 회를 넘어섰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과 밥을 먹는 부장이 됐다고 상상해 보자. 당신은 앳된 직원에게 “최근 도파민 중독 세태를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묻는다. 당차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모습을 떠올렸다면 편견일 가능성이 높다. 저자가 경험한 통계적 정답은 이렇다. ‘얼어붙는 연기를 한다.’ 책은 이처럼 기성세대의 관념과 다른 일본의 ‘요즘 젊은이’를 분석한다. 겉보기엔 활기차지만 딱히 하고 싶은 일 없이 최대한 묻어가려 하며, 협조적이지만 시키는 일 이상은 하지 않는 이들이다. 연령대는 대학생부터 20대 초반을 상정했다. 일본 이시카와현의 가나자와대 교수인 저자가 학교와 기업체에서 직접 겪은 일화를 소상히 녹여 냈다. 여러 퀴즈와 사고 실험을 제시하며 젊은층에 대한 인식을 깨부순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라는 납작한 꼬리표는 진취적 이미지를 부여했다. 그러나 책은 이들이 “결정이라는 행위에 강한 공포와 스트레스를 느낀다”며 “성실한 이미지를 풍기되 불필요한 말과 행동을 삼감으로써 어른을 조종한다”고 말한다. 회식은 무조건 싫어할 것이라는 예상도 정면으로 반박한다. 사생활을 중시하고 출세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지만 회식 참석 비율은 오랫동안 이어진 감소 경향에서 벗어나 다시 증가세라는 것. 이에 대해 저자는 “착한 아이이고 싶은 젊은층에겐 단호히 거절할 만큼 확고한 자아가 없고, 주변에 맞추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곳곳에 일본 정부 등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제시해 논지를 뒷받침했다. 일본의 젊은층을 다루기에 우리나라 현실과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목이 더러 있다. 그러나 유토리 교육(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난 경험 중시형 교육)과 경기 침체 등을 ‘착한 아이 증후군’의 원인으로 꼽았다는 점에서 비슷한 추세를 밟고 있는 한국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는 책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난달 24일 서울 용산구의 ‘포스트팝’.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의 3인조 프로젝트 그룹 ‘더 스마일’의 정규 앨범 발매를 기념하는 리스닝 파티가 열렸다. 시작 직후 20, 30대 방문객 10여 명이 작은 매장을 가득 메웠고 앨범 전곡을 즐기기 시작했다. 몇몇은 편안한 좌석을 뒤로 한 채 소리의 좌우 균형이 가장 잘 맞는 ‘스위트 스팟’에 서서 눈을 감은 채 음악을 감상했다. 1시간 가까이 이어진 감상회가 끝나자 사람들은 열띤 목소리로 감상평을 나눴다. 직장인 장영하 씨는 “음악은 혼자서도 들을 수 있지만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좋은 스피커로 음악을 즐기고자 파티에 왔다”고 말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특정 앨범이나 엄선된 플레이리스트를 여럿이 함께 감상하는 음악감상회(음감회)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포스트팝에서 25일 진행된 비틀스의 앨범 ‘애비 로드’ 음감회는 선착순 접수 인원 약 10명이 즉시 마감됐다. 서울 마포구의 ‘스튜디오 오오이’는 하이파이 스피커, 앰프, DAC 장치 등이 완비된 24평 규모의 앤티크한 공간에서 매달 주제를 바꿔 일주일씩 음감회를 운영하는데, 역시 예약 시작 즉시 마감된다. 수년 전부터 유행이 된 LP카페도 ‘아무 데나 가지 않는’ 식으로 진화했다. 어중간한 청음 설비가 아닌 하이파이 오디오 시설이 완비된 곳을 찾는 것. 29일 찾은 서울 중구의 ‘헬카페 뮤직’은 수천만 원대 스피커로 음악을 들려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의 발길로 북적였다. 세계적인 하이파이 오디오 브랜드 탄노이의 ‘웨스트민스터 로열’ 모델을 사용한다. 카페를 방문한 박은현 씨(34)는 “보급형 스피커로 LP를 틀어 주는 곳은 이제 감흥이 덜하다. 더욱 풍성한 소리를 접해 보고 싶어 집에서 한 시간 반이 걸리지만 굳이 찾아왔다”고 했다. 서울 광진구의 ‘헤르츠커피로스팅’ 역시 탄노이의 ‘코너 캔터베리’ 스피커를 사용해 마니아층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이는 보다 진화된 ‘청음 트렌드’란 평가가 나온다. 강태규 음악평론가는 “음악을 듣는 방식조차도 흔한 것을 거부하려는 것이 요즘 젊은 세대”라면서 “특히 홈 오디오, 음악 큐레이션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팬데믹 이후 취향이 세분화, 고급화하면서 스마트폰이나 가정용 오디오로 음악을 듣는 데 한계를 느낀 영향도 있다”고 했다. 포스트팝을 운영하는 김민형 씨는 “스트리밍 시대 이후 음악을 앨범이 아닌 음원 단위로 소비하게 되면서 아쉬움을 느낀 젊은 층의 반응이 좋다.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고, 감상평을 나누며 함께 공부할 수 있어 재방문율도 높은 편”이라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김복희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 ‘흙의 울음’이 다음 달 6, 7일 서울 강동구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에서 공연된다. 우리나라 현대무용계에서 독보적인 안무가이자 창작 무용가로 꼽히는 김복희 한양대 무용학과 명예교수(전 한국무용협회장)가 직접 안무를 맡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원로예술인 공연 지원 사업’ 중 하나다. ‘흙의 울음’은 인간의 역사가 흙에서 시작되어 흙으로 돌아가고, 흙에서 정화되어 다시 그 흙 위에서 생성, 반복되는 것을 표현하는 작품이다. 공연은 시인 서정주가 남긴 시 ‘신부’를 바탕으로 한 ‘삶꽃 바람꽃Ⅳ-신부’로 시작된다. 작품에는 첫날밤 소박을 당한 뒤 고통을 인내해야 했던 전통적인 여인이 등장한다. 40년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허무하게 재가 되어 버린 한 여인의 삶을 춤으로 보여 준다. 2부에서는 25명의 무용수가 출연하는 무용단의 대표작 ‘흙의 울음’이 이어진다. 역사는 피로 얼룩지지만, 흙이 그 얼룩을 흡수하고 정화하면서 새로운 역사가 쓰인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사육신, 사도세자 등 죽음을 남긴 역사적 사건들을 시각화하고, 음양오행과 윤회 등의 주제를 춤으로 풀어낸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기민이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무용수예요. 한국에 오기 전, 파리오페라발레단 동료들에게 ‘우주대스타’ 기민 킴이랑 공연하러 간다고 자랑하고 왔어요.” “세은 누나는 제가 초등학생 때 ‘같이 춤추자’며 쫄쫄 따라다닌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순혈주의가 강한 파리오페라발레단에 한국인 단원이 늘어난 건 세은 누나의 활약 덕분이죠.” 다음 달 1, 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에 주인공 역으로 출연하는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에투알(수석무용수) 박세은(35)과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32)이 이렇게 말했다. 27일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였다. 두 사람이 14년 만에 파트너로 만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회차당 약 2000석 규모 티켓은 3분 만에 매진됐다. 둘의 호흡은 2010년 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가 마지막이다. 소속 발레단의 시즌 공연이 한창인 때, 두 사람이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이번 무대에 오르기로 결심한 이유는 뭘까. 이들은 “처음으로 함께 춤춘 곳이 15년 전 국립발레단이었기 때문에 더 뜻깊다. 특히 한국에서 전막 발레에 출연할 수 있어 정말 기쁘다”고 입을 모았다. 김기민은 “2010년 ‘라 바야데르’에선 내 욕심이 지나쳤다. 이번엔 누나의 춤이 돋보이도록 뒤에서 잘 받쳐주겠다”며 웃었다. 두 사람은 2011년 나란히 유럽에 진출하면서 세계적인 무용수로 도약했다. 그해 각자 마린스키발레단과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한 김기민과 박세은은 2015년과 2021년에 소속 발레단 사상 첫 동양인 수석무용수가 됐다.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는 김기민이 2016년, 박세은이 2019년에 최고 무용수상을 수상했다.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추는 ‘라 바야데르’는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를 뜻한다. 고대 인도를 배경으로 힌두 사원의 무희 니키야와 전사 솔로르 간 비극적 사랑을 그린다. 박세은과 김기민은 각각 니키야, 솔로르 역으로 춤춘다. 이번이 네 번째 ‘라 바야데르’인 박세은은 같은 작품에 지금까지 100회 가까이 출연한 김기민을 이렇게 치켜세웠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느낌이 있고, 작품의 모든 버전을 다 해석하고 있어요. 2015년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기민이가 ‘라 바야데르’를 추고 간 후 동료들이 기민이의 영상을 돌려봤죠. 당시 부상을 당하고도 춤을 잘 추는 모습에 동료들이 놀라던 기억이 나요.” 세계적인 발레 스타를 꿈꾸는 한국인 무용수들에게 이들은 본보기다. 박세은의 입단 이후 현재 파리오페라발레단에는 한국인 무용수가 총 7명으로 늘었고, 마린스키발레단에는 발레리노 전민철이 입단할 예정이다. 박세은은 “후배들은 신체 조건으로도, 기술적으로도 훨씬 좋아지고 있기에 조언을 해주기는 어렵다. 예술은 행하는 본인이 정답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기민은 이렇게 답했다. “꿈이 한 가지에 그치면 단조로운 예술가가 될 수밖에 없어요. 다른 방향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선배로서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기민이는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무용수예요. 한국에 오기 전, 파리오페라발레단 동료들에게 ‘우주대스타’ 기민 킴이랑 공연하러 간다고 자랑하고 왔어요.”“세은 누나는 제가 초등학생 때 ‘같이 춤추자’며 쫄쫄 따라다닌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순혈주의가 강한 파리오페라발레단에 한국인 단원이 늘어난 건 세은 누나의 활약 덕분이죠.”다음 달 1, 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에 주인공 역으로 출연하는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에투알(수석무용수) 박세은(35)과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32)은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14년 만에 파트너로 만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약 2000석 규모 티켓은 3분 만에 매진됐다. 둘의 호흡은 2010년 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가 마지막이었다. 소속 발레단의 시즌 공연이 한창때, 두 사람이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이번 무대에 오르기로 결심한 이유는 뭘까. 27일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함께 춤춘 곳이 15년 전 국립발레단이었기 때문에 이번 공연이 더 뜻깊다. 특히 한국에서 전막 발레에 출연할 수 있어 정말 기쁘다”고 입을 모았다. 김기민은 “2010년 ‘라 바야데르’에선 내가 어리고 욕심이 지나쳤다. 이번엔 누나의 춤이 돋보이도록 뒤에서 잘 받쳐주겠다”고 웃었다.예원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2011년 나란히 유럽에 진출하면서 세계적인 무용수로 도약했다. 그해 각자 마린스키발레단과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한 김기민은 2015년, 박세은은 2021년에 소속 발레단 사상 첫 동양인 수석무용수가 됐다.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는 김기민이 2016년, 박세은이 2019년에 최고 무용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두 사람이 호흡을 맞추는 ‘라 바야데르’는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를 뜻한다. 고대 인도를 배경으로 힌두 사원의 무희 니키야와 전사 솔로르, 그의 약혼녀인 감자티 공주, 니키야를 짝사랑하는 최고승려 브라민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다. 박세은과 김기민은 각각 니키야, 솔로르 역으로 춤춘다. ‘라 바야데르’는 이번이 네 번째 공연인 박세은은 같은 작품에 지금까지 100회 가까이 출연한 김기민에 대해 이렇게 치켜세웠다.“진심에서 우러나는 느낌이 있고, ‘라 바야데르’의 모든 버전을 다 해석하고 있어요. 2015년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기민이가 ‘라 바야데르’를 추고 간 후 동료들이 기민이의 영상을 돌려봤죠. 당시 부상을 당하고도 춤을 잘 추는 모습에 동료들이 놀라던 기억이 나요.” 세계적인 발레 스타를 꿈꾸는 한국인 무용수들에게 이들은 본보기다. 박세은의 입단 이후 현재 파리오페라발레단에는 한국인 무용수가 총 7명으로 확대됐고, 마린스키발레단에는 발레리노 전민철이 입단할 예정이다. 박세은은 “후배들은 신체 조건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우리 때보다 훨씬 좋아지고 있기에 조언을 해주기는 어렵다. 예술은 행하는 본인이 정답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기민은 선배 무용수로서 이렇게 답했다.“꿈이 한 가지에 그치면 단조로운 예술가가 될 수밖에 없어요. 다른 방향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선배로서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노력하겠습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에서 희뿌연 연기가 심연처럼 피어난다. 증오와 비애가 덧칠된 얼굴을 한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 숙부를 정면으로 보고 섰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응어리진 내면이 햄릿의 숨소리에 응축됐다. 햄릿을 연기한 배우 조승우는 낮지만 또렷하게 읊조리며 비극의 서막을 알린다. “폐하, 제 애도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달 17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리는 연극 ‘햄릿’의 도입부다. 조승우가 데뷔 24년 만에 처음 택한 연극이란 사실이 화제가 되며 약 1000석 규모 좌석은 예매 시작 직후 전 회차 매진됐다. 조승우를 포함해 총 15명의 배우가 단일 캐스트로 출연한다. 연기 경력 51년의 원로 배우 전국환, 드라마 ‘비밀의 숲’ 등에 출연한 배우 박성근이 각각 덴마크의 선왕 역과 숙부 클로디어스 역을 맡았다. 조승우는 이번이 첫 연극인 만큼 수개월의 고민 끝에 출연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영화 ‘춘향뎐’으로 데뷔한 이후 ‘지킬 앤 하이드’ ‘오페라의 유령’ 등 굵직한 뮤지컬에 얼굴을 비쳤다.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는 배역이지만 올해 들어 주요 무대에서만 세 번째로 오르는 ‘햄릿’이란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박정자, 전무송 등 연극계 거목이 대거 출연한 신시컴퍼니 버전과 파격적 각색으로 큰 호응을 얻은 국립극단 버전이 앞서 공연됐다. 오랜 고민이 무색하게 조승우는 익살과 살의를 오가는 말투, 턱과 눈썹의 미세한 떨림 등으로 햄릿의 하릴없는 고뇌를 능숙하게 표현했다. 국립극단 공연에서 배우 이봉련이 햄릿의 광기와 강인함을 집중적으로 풀어낸 것과 차별화됐다. 3막 1장,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로 잘 알려진 명대사는 속도감 있게 쏟아내 강렬함을 줬다. 올여름 공연된 4대 비극 ‘맥베스’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 황정민이 셰익스피어 특유의 시적인 대사 속 운율감을 잘 살렸다면, 조승우는 대사 속 혼재된 감정을 예민하게 담아내 말 한마디 한마디의 속뜻을 부각했다. 공연에는 청각적 효과가 섬세하게 사용돼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끌어올렸다. 날카로운 검을 바닥에 긁고, 반지 낀 손가락으로 술잔을 두드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등장인물들이 파멸에 접어드는 공연 후반부는 그 내리막길을 비교적 완만하게 펼쳐내 작품의 메시지를 강조했으나 다소 늘어지는 느낌을 줬다. 작품 연출은 ‘와이프’ ‘그을린 사랑’ 등에서 감각적, 현대적 해석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으며 제56회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수상한 신유청이 맡았다. 그가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연출한 건 처음이다. 불안감을 시각적으로 자극하고 등장인물을 강조한 무대세트도 강점이다. 무대 깊숙이 펼쳐진 23m 길이의 계단식 복도, 피사의 사탑처럼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선 3개의 기둥은 늪에 빠진 듯한 내면을 무게감 있게 표현했다. 동아연극상에서 무대예술상을 두 차례 거머쥔 무대미술가 이태섭이 디자인했다. 다만 햄릿을 제외한 나머지 등장인물의 매력이 잘 느껴지지 않는 점은 아쉽다. 덴마크의 왕비이자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드가 욕망과 죄의식 사이에서 갈등하는 면모는 다소 평면적으로 다뤄진 듯하다. 햄릿의 연인 오필리아 역은 450 대 1에 달하는 치열한 공개 오디션 경쟁률을 뚫은 배우 이은조가 연기했다. 그러나 광기를 분출하는 장면 등 일부 대목에서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고, 당대 억압된 여성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오필리아의 입체성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초인공지능(AI)이 인간의 삶을 통제하는 근미래, 분절된 불협화음이 극장을 울린다. ‘띠-띠-뚜-뚜-띠….’ AI ‘라이카’가 알고리즘 분석에 돌입한다. 관객 귀 옆에서 들리던 신호음은 점차 객석 뒤편으로 멀어지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라이카가 관장하는 세상이 구축된 것 같다.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국립극단 공상과학(SF) 연극 ‘모든’은 화려한 시각효과 없이 음향만으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보여 준다. 최근 연극계에 SF가 주요 장르로 자리 잡으면서 다채로운 음향 효과가 활용되고 있다. SF 영화에 비해 시각효과의 제한이 많지만, 극장의 공간감과 현장성을 음향과 결합해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 연극 ‘모든’의 김정호 음향 디자이너는 “등장인물별 효과음을 만들어 각기 다른 스피커에서 출력되도록 했다”며 “영화에서 흔히 접했던 효과음, 음향 방식 대신 예상치 못한 소리를 입체감 있게 들려줌으로써 관객에게 낯선 감각을 제공하려 했다”고 말했다. SF 연극에서 음향 효과는 보조 수단을 넘어 관객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주역이다. 31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서울 종로구 씨어터 쿰에서 공연되는 ‘어느 물리학자의 낮잠’은 극 중 핵심 소재인 ‘야광 버섯’이 별처럼 군락을 이루고 우주처럼 확장되는 이미지를 소리로 들려준다. 시공간이 순환하는 소리는 스피커 출력 위치를 좌우로 옮겨 가며 표현된다. 사운드 디자인을 맡은 목소(본명 우정인)는 “찬란한 느낌의 소리를 신시사이저로 만들되, 사이버틱한 질감을 덜고 별 무리의 따뜻함을 강조했다”며 “실제 우주 공간에는 소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난다면 왜, 어떻게 들려야 하는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했다. SF 영화에서 들어본 익숙한 소리에 그친다면 상상의 여지가 축소된다”고 했다. 가상현실(VR) 콘텐츠, 게임업계에서 상용화된 입체(3D) 오디오 기술을 적극 도입하기도 한다. 올 8, 9월 서울 성동구 우란2경에서 열린 SF 연극 ‘땅 밑에’는 무대에 배우가 없는 오디오형 연극이다. 관객은 헤드폰과 스피커를 타고 생생하게 들려오는 연기와 소리만으로 주인공들의 탐사를 좇는다. 사전 제작된 오디오는 배우들이 실제 곁에서 말하는 것 같은 현장성을 느낄 수 있도록 객석에 설치된 특수 마이크를 통해 녹음했다. 작품을 연출한 사운드 아티스트 정혜수는 “스피커 40여 대를 공연장 천장부터 객석 밑까지 반구 형태로 배치해 공간 음향적 효과를 강화했다”며 “헤드폰엔 헤드트래커를 부착해 관객이 각자 움직임에 따라 능동적으로 이야기에 빠져들게끔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정혜수 사운드 아티스트는 “연극의 경우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 극장의 음향적 특성 등을 고려해 소리의 위치와 움직임을 계산하면서 세심하게 설계할 수 있다”며 “관객의 상상력을 영화보다 더 효과적으로 자극해 몰입감 높고 차별화된 관극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K팝과 관련된 콘텐츠는 모조리 봤어요. 안무는 물론이고 이를 담아낸 뮤직비디오에 감탄을 거듭했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영화로는 한국 영화를 꼽겠어요. 시각적으로 특출난 나라에서 ‘샤잠!’을 다시 공연할 수 있어 기쁩니다.” 25∼27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지는 ‘샤잠!’을 연출한 필리프 드쿠플레(63·사진)가 내한 공연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22일 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다. 현대무용과 서커스, 연극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샤잠!’이 한국에서 공연되는 것은 1999년 이후 25년 만. 세계적인 연출가 겸 안무가인 드쿠플레는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겨울올림픽 개회식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걸그룹 블랙핑크의 리사가 출연해 화제가 된 프랑스 카바레 쇼 ‘크레이지 호스’의 ‘욕망’을 연출하기도 했다.이번에 공연되는 ‘샤잠!’은 1998년 초연작을 3년 전 개작한 버전이다. 칸 영화제 5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이 작품은 고난도 무용과 거울, 영상, 액자 등을 다채롭게 활용한 ‘환상적 이미지’로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다. 20여 년 전 16mm 필름으로 촬영한 공연 영상이 무대 위에 투사되고, 무용수들의 춤이 영상 및 거울 속 반사체와 중첩되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간다. 새롭게 다듬은 버전이지만 초연을 이끈 무용수와 연주자들이 그대로 출연한다. 오프닝 장면에는 창립 단원들과 함께 세월을 맞은 드쿠플레가 직접 무대에 올라 즉흥 안무를 선보인다. 그는 “초연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던 한 여자 무용수는 이제 중년이 됐다. 25년 전 췄던 독무를 이번에도 추는데, 다리를 180도로 들어 올리는 각도가 지금은 조금 모자랄지도 모르겠다”면서 “그러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충만함과 우아함이 부족한 5%를 채운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신체적 예리함은 잃을지라도 더 큰 존재감을 갖게 되는 법”이라며 작품의 메시지를 설명했다. ‘샤잠!’은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15분 전, 극장 로비에서부터 시동을 건다. 커다란 털모자를 쓴 무용수와 북을 두드리고 트럼펫을 부는 연주자들이 코앞에서 퍼레이드를 펼치는 것. 약 40년간 ‘벽’을 허물고자 노력해온 드쿠플레는 이번 공연을 통해 ‘방울방울 신선한 공기’를 한국 관객에게 안겨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네 일상이 행복하기만 하진 않죠. 하지만 관객이 행진을 따라 객석으로 들어서고, 공연을 끝까지 본 뒤엔 행복감에 젖어들 수 있길 바랍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돈과 가족’을 소재로 한 옴니버스 블랙 코미디 창작극이 대학로에서 펼쳐진다. 극단 ‘제작소 샐러리’는 11월 20~2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드림시어터 소극장에서 연극 ‘극한 가족’을 공연한다. 이번 연극은 가족과 평범한 삶을 꾸려나가고자 하지만 돈에 흔들리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4개의 단막극으로 담았다. △강아지를 키우는 부자 이모에게 돈을 빌리러 찾아온 조카의 이야기 ‘이모집 강아지 뽀삐’(정다운 작·연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보금자리를 떠나 지방으로 가게 된 가족을 소재로 한 ‘가족여행’(조인숙 작, 안소현 연출) △냉혹한 현실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는 아버지를 다룬 ‘국밥집 살인사건’(정다운 작, 안소현 연출) △누구보다 가깝지만 사소한 갈등이 끊이지 않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 ‘박순수 침구’(정다운 작·연출) 등으로 구성됐다. 극단 측은 “옆집에 실제 살 법하지만 특별한 가족의 이야기”라며 “‘돈’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지거나 흔들리는 모습들이 잔잔한 웃음과 감동으로 무대 위에서 펼쳐질 것”이라고 밝혔다. 2022년 11월 창단한 제작소 샐러리는 일상의 풍경과 소소한 에피소드를 소재로 따뜻한 감성의 창작극을 무대에 올려 왔다. 이번 공연엔 예문지, 이귀우, 하지운, 김성일, 노다인, 이다래 배우가 출연한다. 만 13세 이상 관람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K팝에 관련된 콘텐츠는 모조리 봤어요. 안무는 물론, 이를 담아낸 뮤직비디오에 감탄을 거듭했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영화로는 한국 영화를 꼽겠어요. 시각적으로 특출난 나라에서 ‘샤잠!’을 다시 공연할 수 있어 기쁩니다.”25~27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지는 ‘샤잠!’을 연출한 필립 드쿠플레(63)가 내한 공연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22일 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다. 현대무용과 서커스, 연극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샤잠!’이 한국에서 공연되는 건 1999년 이후 25년 만. 세계적인 연출가 겸 안무가인 드쿠플레는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개막식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걸그룹 블랙핑크의 리사가 출연해 화제가 된 프랑스 카바레 쇼 ‘크레이지 호스’의 ‘욕망’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번 공연되는 ‘샤잠!’은 1998년 초연작을 3년 전 개작한 버전이다. 칸영화제 5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이 작품은 고난도 무용과 거울, 영상, 액자 등을 다채롭게 활용한 ‘환상적 이미지’로써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다. 20여 년 전 16mm 필름으로 촬영한 공연 영상이 무대 위 투사되고, 무용수들의 춤이 영상 및 거울 속 반사체와 중첩되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간다. 새롭게 다듬은 버전이지만 초연을 이끈 무용수와 연주자들이 그대로 출연한다. 오프닝 장면에는 창립 단원들과 함께 세월을 맞은 드쿠플레가 직접 무대에 올라 즉흥 안무를 선보인다. 그는 “초연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던 한 여자 무용수는 이제 중년이 됐다. 25년 전 췄던 독무를 이번에도 추는데, 다리를 180도로 들어 올리는 각도가 지금은 조금 모자랄지도 모르겠다”면서 “그러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충만함과 우아함이 부족한 5%를 채운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신체적 예리함은 잃을지라도 더 큰 존재감을 갖게 되는 법”이라며 작품의 메시지를 설명했다.‘샤잠!’은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15분 전, 극장 로비에서부터 시동을 건다. 커다란 털모자를 쓴 무용수와 북을 두드리고 트럼펫을 부는 연주자들이 코앞에서 퍼레이드를 펼치는 것. 약 40년간 ‘벽’을 허물고자 노력해온 드쿠플레는 이번 공연을 통해 ‘방울방울 신선한 공기’를 한국 관객에게 안겨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네 일상이 행복하기만 하진 않죠. 하지만 관객이 행진을 따라 객석으로 들어서고, 공연을 끝까지 본 뒤엔 행복감에 젖어들 수 있길 바랍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