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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갈수록 심해지는 우리 사회의 혐오 표현은 단순히 ‘듣기 싫은 말’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위협과 사회 불안을 야기시키고 있다. 올해 초 ‘말이 칼이 될 때’(어크로스)라는 책을 펴낸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43·사진)는 ‘된장녀’ ‘맘충’ 등 일상적으로 쓰게 된 단어들이 모두 혐오 표현이라고 지적한다. ‘동남아 출신들은 게으르다’ ‘조선족들은 칼을 갖고 다니다 휘두른다’ 등 특정 소수자집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말들이나 여성에 대해 “조신해야 한다” “나서지 마라” 등 한계를 지우는 유형도 차별을 낳는 혐오 표현이다. ―혐오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사회 문제들은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혐오는 그것을 단순화해준다. 문제의 진짜 원인보다는 희생양을 찾는 게 쉽고 편하니 습관적으로 그렇게 한다. 다원적 구성을 가진 한 집단에 특정한 한 가지 이미지를 씌우고 차별, 배제의 수순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이런 단순화 담론들이 빠르고 쉽게 확산된다.” ―혐오 표현에 대한 적절한 제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는데….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서 오해를 하다 보니 혐오가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혐오가 마치 근거가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혐오를 근절하거나 완전히 없앤다는 목표보다는 최소한 공적인 매체를 통해서는 충분히 걸러진 이야기가 나오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언론, 정치 지도자, 사회 유력인사나 연구자들이 사안에 대해 충분하고 다양한 정보와 시각을 제공하며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물론 극단적 혐오나 선동에 대해선 규제도 필요하다.” ―여혐, 남혐, 중국동포에 대한 혐오에서 최근에는 난민 문제까지 혐오의 대상이 다양해졌다. 가장 심각한 사례는 무엇인가. “아무래도 난민 문제가 최근에는 가장 극단적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난민 문제는 무척 복잡하고 역사적 문제도 예민해 전문가들도 어려워한다. 어떤 문제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이슈를 단순히 난민을 혐오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나오는 것이 문제다.” ―사회 전반에 혐오가 만연하게 될 경우 부작용은…. “윤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 실리적 면에서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어릴 때부터 도마뱀을 좋아한 소녀 조앤. 뱀, 거북이, 악어의 매력에 빠지면서 파충류를 돌보며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된 조앤은 런던 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파충류박물관의 첫 여성 학예연구사가 된다. 1900년대 파충류를 연구한 여성 과학자 조앤 프록터의 이야기를 그림책에 담았다. 상상력과 용기로 세상을 바꾼 여성들을 소개하는 시리즈 가운데 하나. 한계에 맞서 변화를 이끌어낸 여성의 이야기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풀어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눈을 감고 꿈나라로 가면,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 아이는 선장이 돼 미지의 세계로 나간다. 비가 내리기도 하고, 보물을 찾아 낯선 곳을 돌고 또 돌기도 하고. 때론 괴물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빗방울 소리는 즐겁고, 직접 부른 자장가에 괴물은 아기처럼 쌔근쌔근 잠든다. 그리고 아이들은 멋진 항해 끝에 나만의 보물을 찾아낸다. 더 놀고 싶어 하며 잠들기 싫어하거나 깜깜한 밤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좋은 이야기.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육아에 지친 엄마들을 위로하는 책이 다양하게 출간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기존 육아서들이 육아 관련 경험담이나 노하우를 담았다면 최근에는 엄마들의 정체성 고민이나 제도, 환경 등 육아를 둘러싼 여성들의 문제의식을 한층 심화시킨 책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 모성을 강요하고 여성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는 사회에 대한 반발과 문제의식이 두드러진다. ‘오늘도 엄마인 내가 낯설지만’(강안 지음·들녘·1만3800원)은 아이 둘을 키우며 박사과정을 밟은 저자가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엄마들을 위로하기 위해 펴낸 책이다. 저자는 남들이 뭐라고 하건 ‘나는 나’라는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방식대로 아이들을 기르라고 조언한다. ‘엄마는 이제 미안하지 않아’(다부사 에이코 지음·위즈덤하우스·1만3800원) 역시 남성 중심 사회에서 강요되는 모성에 대해 비판한다. ‘엄마라면 이래야 돼’라는 착한 엄마 콤플렉스에 반기를 들고 이 시대 엄마로 사는 삶에 대한 고충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와 고민을 독서, 글쓰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도 있다. ‘나는 엄마다’(심소영 지음·길벗·1만5000원)는 글쓰기를 통해 육아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다져나감으로써 남들 말에 휘둘리는 육아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한다. 정아은 소설가가 쓴 ‘엄마의 독서’(한겨레출판사·1만4000원)는 육아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책들에 대한 감상문이다. 분야를 넘나드는 독서를 바탕으로, 완벽한 엄마 역할을 강요하고 일을 하든 포기하든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아냈다. 육아 책이 엄마들의 생생한 고민과 비판을 담고 문제 제기를 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은 페미니즘 열풍과도 연관이 깊다. 손민규 예스24 인문사회MD는 “남성과 똑같은 교육을 받고 커리어를 쌓다 출산 이후 경력이 끊기게 된 여성들의 고민을 반영한 현상”이라며 “육아에서의 불평등 등 사회구조적 문제에 집중한 육아서들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그 시절의 기억과 아픔, 그리고 상처. 작가는 이야기를 주저 없이 흘려보내면서도, 어른대는 과거의 그림자를 담담히 환기시켜 보인다. 모두에게, 그런 시간들이 있었음을.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가 10만 부 넘게 팔리며 최근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 최은영 작가(34)가 신작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문학동네)으로 2년 만에 돌아왔다. 신인 작가가 첫 책, 특히 단편소설집을 베스트셀러에 올린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던 만큼 그의 신간에 대한 관심이 컸다. 전작 ‘쇼코의…’는 동시대 젊은 층의 고민을 반영한 섬세한 감성으로 독자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신작 역시 그런 측면에서 전작과 궤를 같이한다. 그가 겪었던 ‘시대 코드’가 뚜렷하다. 1980년대 유년을 보낸 뒤 90년대 10대를 보낸 이들이 이야기를 이끈다. 2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 작가는 “당시엔 잘 몰랐지만 1980년대는 한국에서나 가능했던 이상하고 폭력적인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복고 열풍’이 불 땐 좋았던 시절로 추억되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가부장제 문화는 뿌리 깊었고 인권 감수성도 낮았다. 학생과 여성들은 한없이 약자였던 시대. 최 작가의 소설은 남아 선호가 심했던 당시의 부조리한 현실을 다룬 작품(‘601, 602’)이나 이들이 겪었던 기억에 기반을 둔 작품(‘모래로 지은 집’)이 여럿이다. 그는 이런 꿈과 좌절, 소통의 갈망 등 동시대 청춘의 경험을 반영한 주제에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성을 한껏 더해냈다. “학교 선생님께 맞았다고 하면 외국인 친구들은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느냐’며 깜짝 놀라요. 하지만 우린 다 알잖아요. 그땐 그랬다는 걸. 이질적일 수도 있지만, 직접 경험하고 정체성을 통과해 나온 것을 다루는 게 문학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특수하지만 보편적인 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상대적으로 주류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관심도 두드러진다. 최 작가 작품의 중심 인물은 모두 여성이다. 이번 작품집에 실린 ‘그 여름’ 등에선 국내 소설에서 보기 드문 여성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작가는 “남성이 주인공일 땐 그렇지 않으면서, 여성이 주인공이면 왜 여성 얘기만 쓰냐는 말이 나온다. 아직도 남성을 보편적 인간상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성애 역시 “세상에는 이성애자가 존재하듯 동성애자도 실제로 함께 살아가고 있으므로 다뤘을 뿐”이라고 말했다. “여성, 특히 한국에 사는 여성들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발언권을 가진 건 남성들이잖아요. 신문이나 TV, 영화를 채우는 중심도 모두 남성이고 온통 그들의 서사뿐이에요. 저는 여기 함께 사는 여성에게 관심이 많고 그게 훨씬 재밌어요.” 그는 부지런한 작가다.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자’고 스스로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등단 5년 만에 책 두 권을 냈고 내년부터 장편 연재도 시작할 예정이다. 최 작가는 “책을 너무 막 내는 것 아닌가 싶어 겁이 나기도 했지만 소설 쓰는 일이 천직이구나 싶을 만큼 무척 행복하다”며 “언젠가 한국 여성의 관점에서 근현대사를 다룬 장편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 2010년 개봉한 영화 ‘부당거래’에서 부패한 검사 역을 맡았던 배우 류승범의 이 대사는 그간 다양하게 패러디되며 지금도 회자되는 유행어다. 한 웹툰에서는 “‘호이(호의)’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안다”는 말로 변형돼 인기를 끌었고 “호의를 계속 베풀면 ‘호갱’이 된다”는 신(新)격언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표현은 달라도 메시지는 같다. 호의는 베푸는 사람만 손해다, 그러니 신중해라. 호의에 대한 이런 인식이 얼마나 광범위한지 연관검색어로도 ‘권리’ ‘둘리’ ‘분개’가 줄줄이 뜬다. 영화 ‘다크나이트’(2008년)에서 조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잘하는 게 있다면, 절대로 그냥 해주지 마라.” 각박하다. 물론 호의가 의무가 아닌 건 사실이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도 책 ‘공항에서의 일주일’에서 비슷한 분석을 했다. 공항에서 일하는 수많은 근로자를 관찰하며 그는 호의야말로 의례적 서비스를 감동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결정적 요소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아무리 연봉과 복지가 좋은 기업이라도 서류상 정해진 업무 외의 ‘호의’까지 탑재하도록 지시할 순 없다. 인류애는 법으로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자의 마음까지 다독이는 의사, 넘겨도 될 민원을 자기 선에서 처리해주는 상담원, 불편을 끼친 타인의 실수를 웃으며 넘겨주는 누군가의 관대함은 순전히 자발적인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런 호의는 근본적으로 “수십 년 전 부모가 자비와 유머로 아이를 기르던 집에서 지배하던 사랑의 분위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초공동체인 가정에서 이뤄지는 따뜻한 교육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한 사회의 경제, 사회, 문화적 근간이 타인과 사회를 향해 자발적 선의와 호의를 베풀 줄 아는 시민을 양성한다는 뜻이다. 이런 이들이 많은 사회가 훨씬 살맛 나는 곳일 거란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요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안타깝다. 노키즈존과 맘충 논란에서부터 제주 예멘 난민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차별과 배제가 만연하다. 조금의 손해도 용납 않는 성난 목소리에선 삶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약간의 호의’마저도 찾아보기 어렵다. 누구도 성가신 남의 집 아이들이나 나와 상관없는 난민에게까지 선의를 가지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적대와 배척 일변도로 흐르는 최근의 논쟁이 더 안타까운 건 그래서다. 의무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그것을 베풀 줄 알았던 이들이 갈수록 줄어든다.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 장치인 가정,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가 삐걱대고 있어서는 아닐까. 단순한 찬반 논쟁을 떠나 ‘잃어버린 호의’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 2010년 개봉한 영화 ‘부당거래’에서 부패한 검사역을 맡았던 배우 류승범의 이 대사는 그간 다양하게 패러디 되며 지금도 회자되는 유행어다. 한 웹툰에서는 “‘호이(호의)’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안다”는 말로 변형돼 인기를 끌었고 “호의를 계속 베풀면 ‘호갱’이 된다”는 신(新)격언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표현은 달라도 메시지는 같다. 호의는 베푸는 사람만 손해다, 그러니 신중해라. 호의에 대한 이런 인식이 얼마나 광범위한지 연관검색어로도 ‘권리’ ‘둘리’ ‘분개’가 줄줄이 뜬다. 영화 ‘다크나이트’(2008년)에서 조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잘 하는 게 있다면, 절대로 그냥 해주지 마라.” 각박하다. 물론 호의가 의무가 아닌 건 사실이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도 책 ‘공항에서의 일주일’에서 비슷한 분석을 했다. 공항에서 일하는 수많은 근로자를 관찰하며 그는 호의야말로 의례적 서비스를 감동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결정적 요소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아무리 연봉과 복지가 좋은 기업이라도 서류 상 정해진 업무 외의 ‘호의’까지 탑재하도록 지시할 순 없다. 인류애는 법으로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자의 마음까지 다독이는 의사, 넘겨도 될 민원을 자기 선에서 처리해주는 상담원, 불편을 끼친 타인의 실수를 웃으며 넘겨주는 누군가의 관대함은 순전히 자발적인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런 호의는 근본적으로 “수십 년 전 부모가 자비와 유머로 아이를 기르던 집에서 지배하던 사랑의 분위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초공동체인 가정에서 이뤄지는 따뜻한 교육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한 사회의 경제, 사회, 문화적 근간이 타인과 사회를 향해 자발적 선의와 호의를 베풀 줄 아는 시민을 양성한다는 뜻이다. 이런 이들이 많은 사회가 훨씬 살 맛 나는 곳일 거란 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요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안타깝다. 노키즈존과 맘충 논란에서부터 제주 예멘 난민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차별과 배제가 만연하다. 조금의 손해도 용납 않는 성난 목소리에선 삶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약간의 호의’마저도 찾아보기 어렵다. 누구도 성가신 남의 집 아이들이나 나와 상관없는 난민에게까지 선의를 가지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적대와 배척 일변도로 흐르는 최근의 논쟁이 더 안타까운 건 그래서다. 의무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그것을 베풀 줄 알았던 이들이 갈수록 줄어든다.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 장치인 가정,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가 삐걱대고 있어서는 아닐까. 단순한 찬반 논쟁을 떠나 ‘잃어버린 호의’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비 내리는 날 아침, 아이는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이다. 빗속을 돌아다니고 싶고, 빗방울을 받아먹고, 물웅덩이에서 첨벙거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할아버지는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한다. 창밖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드디어 비가 그쳤다. 기다림 끝에 찾아온 설렘과 기쁨. 물웅덩이 가득한 도로는 마치 바다 같다. 물에 비친 도시가 일렁인다. 할아버지와 아이는 비가 그친 거리로 멋진 항해를 떠난다. 비 내리는 날 아이들의 설레는 마음과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아름다운 그림 안에 담아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낚시가 요즘처럼 대중에게 친숙했던 때가 있었을까. 채널A ‘도시어부’ 등의 인기에 힘입어 일렁이는 파도 위에서 사투를 벌이며 펼치는 고기잡이의 묘미에 눈을 뜬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고기잡이에 생각보다 오랜 역사가 깃들어 있다는 걸 아시는가. 고기잡이는 호미닌(hominin·사람과에 속하는 현생 인류와 그 조상 그룹)의 출연에서부터 고대문명의 발상, 중세 교역문화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 전체를 관통한다. 고기잡이의 역사는 인류 역사만큼 길다.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된 195만 년 전 메기 뼈는 당시 인류가 수심이 낮은 곳을 이동 중인 메기 떼를 붙잡는 매우 초기적 형태의 고기잡이를 시도했음을 유추하게 한다. 100만∼70만 년 전의 고대 인류 호모에렉투스 표본과 함께 발견된 물고기 뼈, 연체류 잔해 역시 인간이 오래전부터 수산물을 먹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고기는 부패가 빨라 한시적으로만 먹을 수 있었지만 190만 년 전 불이 사용됐을 즈음 물고기를 건조해 보관하는 방법을 터득하며 제대로 된 식량으로서의 지위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만5000년 전, 빙하시대 말기 바닷물 상승으로 습지대, 강어귀가 형성되며 물고기를 잡는 도구들 역시 정교해지기 시작했다. 고기잡이가 문명의 발상에 영향을 미친 정황은 안데스 문명에서 살펴볼 수 있다. 고고학자들은 산업화 이전 문명은 집약적 농경으로 출현할 수 있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페루 연안지대에서 태동한 안데스 문명은 이 가정과 맞지 않는다. 이곳은 기원전 2000년 집약적 농경이 시작되기 전부터 번성을 누리며 사회적 체계가 자리 잡았다. 안초비(멸치류의 작은 물고기), 정어리 등 풍성한 어장에서 1만여 년 전부터 고기잡이를 하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연안지대를 따라 대대적 건축공사가 이뤄져 고기잡이 사회가 형성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안초비가 문명의 기반이 된 셈이다. 이후 물고기는 상품화된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 물고기는 일꾼들의 흔한 양식이었고, 생선소스 가룸은 로마의 주요 경제상품으로 영국에까지 거래됐다. 950∼1000년경부터 물고기 교역은 국제적 사업으로 발전했다. 소도시가 성장하며 돈벌이가 되는 청어, 대구잡이가 활성화됐고 노르웨이 등지에서는 주요 수출품이 됐다. 하지만 18세기 초부터 저인망 어선, 건착망 같은 고기잡이 도구가 계속 개발돼 물고기를 대량으로 잡아들이며 남획의 징조가 나타났다. 저자는 물고기 수가 급감하고 있는 오늘날까지 짚어 내려오며 “지속 가능한 어업은 월턴의 조용한 낚시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예술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편이 낫다. 안 그러면 바다에서 더 이상 물고기를 구경하지 못할 테니까”라고 경고한다. 어부는 지금껏 역사에서 ‘무명의 존재들’이었고 그들의 역사 또한 학계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고기잡이의 관점에서 인류 역사의 퍼즐을 다시 짠 이 책을 들여다보다 보면 바다의 역사가 농경에 필적할 만큼 인류 문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고고학, 고기후학, 해양생물학 문헌부터 각 지역의 고대 물고기 뼈까지 찾아다니며 연구한 저자의 바다 냄새 물씬 나는 지적 탐사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미래초등학교 5학년 1반 담임은 인공지능(AI) 로봇 김영희 선생님이다. 처음에는 호기심뿐이었지만 학생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화장도 마다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생님에게 아이들은 점점 마음의 문을 연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에게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하고 폐기 처분의 위기에 놓이고 만다. 선생님을 이대로 보낼 수 없는 아이들은 비밀 작전을 세우며 맞선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인간다움의 의미, AI의 장단점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SF 동화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2018 책의 해’를 맞아 전국 동네 서점들이 이달부터 매달 마지막 금요일 밤 ‘심야 책방의 날’ 행사를 연다. 보통 오후 9시 전후로 문을 닫지만 이날은 밤 12시 넘어서까지 영업을 하고 폐점 시간은 자율로 정해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책의해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첫 행사가 열리는 29일에는 서울 24곳을 비롯해 광주, 제주, 경기 시흥, 인천 등 전국 77개 서점이 참여한다. 매월 추가로 신청을 받아 연내 참여 서점을 200곳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서점마다 다채롭고 개성 넘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심야의 원고 청탁’ ‘읽다 포기한 책 남에게 읽히기’ ‘동네 빵집·국숫집과 컬래버’ ‘서점 주인과 손님의 팔씨름 대회’ ‘작가와 고등어구이 막걸리 파티’ 등 이색 행사를 선보인다. 행사 참여 희망자는 해당 서점에 사전 문의를 한 뒤 참여하면 된다. 자세한 사항은 ‘책의 해’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10년간 신작 장편을 내놓지 않은 소설가를 두고 골수팬들은 말들이 많았다. 경남 창원에서 집안 과수원을 물려받아 농사를 짓고 있다는 설, 그래서 드물게 흉작인 해에만 단편 하나씩 발표하는 거라는 추측. 몰래 밤에 가서 과수원을 어떻게(?) 하면 장편을 쓸 거란 엉뚱한 모의까지. 국내외에서 200만 부 이상 팔리며 한국 판타지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드래곤 라자’의 저자인 이영도 작가(46) 이야기다. 그런 그가 드디어 긴 침묵을 깨고 ‘오버 더 초이스’(민음사·사진)란 새 장편으로 돌아왔다. 작가라는 거창한 말 대신 스스로를 ‘타자(打者·자판을 두드리는 사람)’라 일컫는 그의 귀환에 벌써부터 반응이 뜨겁다. 예약 판매분 3500부가 첫날 다 팔렸고, 출간한 지 일주일도 안 돼 3만 부가 넘었다. ‘역시 타자’란 평가다. PC통신 시절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이 은둔형 작가는 온라인 공간에서 소통할 때 훨씬 거침없고 편안해 보인다. 인터뷰 역시 e메일로 진행했다. ―많은 독자들이 기다렸다. 복귀 소감은…. “선비는 사흘 만에 봐도 눈을 닦고 봐야 한다는데 선비는 못 되겠구나 싶다. 이런 점이 나아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부분이 떠오르지 않아서다. 이 책은 첫 글자를 두드리기 시작해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석 달 정도 걸렸다. 공개한 글은 오랜만이지만, 내 재미를 위해 이런저런 글 두드리는 건 계속했다.” 그는 “일과도 읽고 두드리는 것 위주로 돌아갔다”며 과수원 운영설(?)을 일축했다. 이번 장편은 가상의 한 소도시 폐광에 어린 소녀가 갇혀 목숨을 잃는 사건에서 출발한다. 아이를 구하는 데 실패한 보안관, 사랑하는 딸을 잃은 부모의 슬픔 등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부활과 종말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거침없이 확대된다. 특히 식물의 접붙임, 생물의 순환 등을 통해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발한 개념도 제시한다. 이 작가는 독자에게 자유로운 해석의 여지를 주기 위해 발상, 설정 배경에 대해 함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역시나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의 상호작용, 일종의 ‘나비효과’ 속에서 나오게 됐다”는 답만 돌아왔다. 뚜렷한 주제의식과 탄탄한 전개만큼이나 소설을 흡인력 있게 만드는 건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와 이들이 빚어내는 위트 있는 상황들이다. ―유머를 중요하게 생각하나. “그렇지는 않다. 반드시 지키고 싶은 건 앞뒤가 맞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판타지 장르가 매력적인 이유는…. “이야기 내부에서 정합성을 갖추어 리얼리티를 획득한다는 전제 아래 무슨 사건을 일으켜도 상관없다는 점이 즐겁다. 내 경우엔 두드리는 재미를 느낄 때 중요한 이점이다.” ―한국 판타지 문학 활성화를 위해 뭐가 필요하다고 보나. “어떤 면에서 한국의 판타지 장르는 현재진행형으로 성황 중이다. 죽음 이후의 심판, 움직이는 시체가 들끓는 기차를 다룬 영화도 있었다. 비현실에 대한 관대함을 놓고 본다면 굉장히 호의적 환경이다. 터무니없는 이야기 한다고 핀잔 받을 일 없으니 좋아하는 방식으로 즐겁게 쓰면 되지 않을까.” 이 작가에 대한 팬들의 유일한 불만은 신작 발표 간격이다. 신작에 환호하면서도 ‘앞으로 또 10년을 기다려야 하느냐’는 한탄이 벌써부터 나온다. 작가의 대답은 어떨까. “아…음…, 전 아직도 재미있을 것 같으면 제 깜냥을 무시한 채 그냥 두드리는 뻔뻔함을 가지고 있다는 말밖에 드릴 말이 없군요.”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반가운 이름들이 돌아왔다.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중견작가들이 모처럼 신작으로 대거 출격한 것. 등단 후 20∼30년 넘게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며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꾸준히 구축해 온 이들이 한층 깊어지고 세심해진 소설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1만3000원·문학과지성사)는 조경란 작가가 5년 만에 펴낸 단편소설집이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일상의 순간, 마음의 동요를 포착해낸 단편들이 수록됐다. 언뜻 단조롭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관계의 틈, 상처, 감정의 파고를 물 흐르듯 자연스레 풀어내며 조용히 위안을 건넨다. 표제작은 양아버지와 함께 사는 서른일곱 살 남자, 이 집에 오게 된 열아홉 살 가사도우미가 새로운 형태의 가족으로 발전해가는 이야기다. 각자의 사연과 상처, 기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 안에서 부대끼고 보듬으며 가족이 돼 가는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환승역을 놓쳤다 우연히 집회 인파로 가득한 도심 광장을 향해 걸음을 내딛게 된 청년의 이야기 ‘11월 30일’, 아내에게 이별을 고하는 중년 남자의 사연을 서간체로 털어놓은 ‘오랜 이별을 생각함’ 등이 수록됐다. 김인숙 작가의 ‘단 하루의 영원한 밤’(1만3000원·문학동네) 역시 단편소설집이다. 삶의 냉혹함과 불가해함이 흡인력 있는 이야기와 생동하는 인물들을 통해 때로는 익살맞게, 때로는 숨 막히는 긴장으로 변주돼 다가온다. ‘델마와 루이스’는 아흔이 다 된 자매가 가출을 감행한 이야기. 편견을 깨는 할머니들의 도전, 여러 세대 여성들 간의 유쾌한 연대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평범한 가정을 일궈온 한 남자가 품고 있는 섬뜩한 비밀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 ‘빈집’, 하루의 일탈로 씻을 수 없는 모욕과 평생 싸워야 했던 노교수의 죽음을 다룬 ‘단 하루의 영원한 밤’ 등이 수록됐다. 역사 분야에서 여러 인기작을 배출한 ‘이야기꾼’ 김탁환 작가는 조선 후기를 풍미했던 실존 인물 광대 달문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1만6800원·북스피어)로 돌아왔다. 입이 귀까지 찢어지고, 귀가 어깨에 닿을 정도로 늘어졌으며 눈썹이 없는 왕방울 눈을 한 추남 달문. 하지만 타고난 춤꾼이자 재담꾼으로 조선을 휘어잡은 그는 재물, 명예보다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을 우선시하고, 부귀영화보다는 춤추고 노래하는 거리의 삶을 택한다. 인삼가게를 운영하며 소설가를 꿈꾸는 모독의 시점에서 ‘한없이 좋은 사람’ 달문의 삶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승우 작가의 ‘만든 눈물 참은 눈물’(1만3500원·마음산책)은 엽편에 가까운 짧은 소설 27편을 수록한 작품집이다. 짧은 에피소드, 단상을 통해 수수께끼 같은 삶에 질문을 던진다. 소설로 쓰려고 하는 소재마다 누군가 썼던 것 같아 일일이 찾아보다 아무것도 못 쓰게 된 작가(‘읽지 않으려는 것으로부터’), 달리기로 철저히 건강을 관리해온 공장 소유주가 결국 공장의 폐수, 매연 때문에 죽음을 맞는 이야기(‘뛰는 남자’) 등 삶의 아이러니와 모순을 날카롭게 포착한 이야기들이 실렸다. 한층 원숙하고 유려해진 이들의 작품 세계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남은 건 어떤 작품을 먼저 읽는 게 좋을지에 대한 즐거운 고민뿐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라쿤 가족이 새 동네로 이사 왔다. 하지만 꼬마 라쿤은 새로운 게 싫다. 처음 보는 친구들은 왠지 두렵고 외톨이가 된 것만 같다. 새 학교에 처음 등교한 날부터 기가 죽는다. 옛집과 오랜 친구들이 그립기만 한 꼬마 라쿤이 새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환경의 변화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꼬마 라쿤처럼,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렵다. 하지만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달라질 수 있다. 낯선 환경에서 위축되기 쉬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마음과 격려를 전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양조장집 박순득, 자전거포집 이순득. 한마을에 사는 이름이 같은 단짝 소녀들. 어느 날 새벽 영문도 모르고 헤어진다. 전쟁이 터지면서다. 아이들은 숨바꼭질하듯 피란을 떠난다.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폭격기를 피해 꼭꼭 숨는 놀이다. 시간이 흘러 고향으로 돌아온 자전거포집 순득이. 신나게 친구를 찾아가지만 양조장은 폭격으로 무너졌고, 아무리 헤매도 친구는 없다. 순득이가 말한다. “어디어디 숨었니? 못 찾겠다 꾀꼬리.” 숨바꼭질 놀이를 통해 그린 전쟁의 비극이 길고 아린 여운으로 남는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소설가 ‘김금희’. 요즘 한국 문학에서 가장 핫한 이름 가운데 하나다. 전작인 2016년 단편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는 한국 소설엔 시큰둥했던 이들까지 다시 책을 들게 만들었단 평가를 받았다.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디테일한 묘사가 일상과 관계에 지친 독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신형철 평론가는 당시 “지금 가장 읽고 싶은 것은 그의 다음 소설”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창비)을 펴냈다. 첫 장편치고는 제법 두툼한 원고지 1300장 분량. 19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사옥에서 만난 김 씨는 “인물 내면 심리묘사를 깊고 자세하게 하려는 욕심을 내다 보니 생각보다 좀 긴 소설이 됐다”며 웃어 보였다. 계간지 연재 뒤 보완해 2년간 다듬은 소설에 벌써부터 평단의 호평이 쏟아진다. 소설은 사양산업이 된 ‘미싱(재봉틀)’ 회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직 국회의원인 아버지 끈으로 입사한 뒤 팀장이 된 공상수와 그 밑에 유일한 팀원으로 들어온 박경애가 주인공이다. 팀장과 팀원으로 만났지만, 이들에겐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있다. 상수는 퇴근 후 남몰래 연애상담 페이지를 운영하는데, 연인과 이별한 경애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온라인에서 매일 답신을 교환한다. 두 사람은 화재 사건으로 소중한 친구를 잃은 같은 아픔도 가지고 있다. 이런 공통점을 인식하지 못한 채,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남녀의 애틋한 다가섬을 다룬 소설임에도 작가는 1999년 실제로 있었던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 대규모 해고와 파업, 쇠락해가는 산업 현장 등 묵직한 사회적 주제와 부모의 죽음, 조직의 냉대, 이별 등 개인적 아픔들을 촘촘히 엮어 간다. 삶의 다층적 측면을 치밀하게 조명하면서도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의 파고를 섬세히 붙드는 ‘김금희표 이야기’다. 그는 “이런저런 상처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인물이 남는 소설’을 쓰는 데 공을 들였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현실의 결, 복잡다단한 한 사람의 내면을 살리기 위해 그가 발붙이고 선 곳, 주변 환경, 내력까지 면밀히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게 작가의 습관이다. 김 씨는 “카페든 식당이든 누군가의 대화가 들리면 절로 몸이 그쪽으로 기울어 별명이 ‘미어캣’일 정도로 주변 일에 흥미가 많다”고 말했다. 가장 반가운 독자 반응도 ‘내 이야기 같았다’는 말이라고 했다. “내가 만든 세계, 그 인물이 이해받고 전달됐다는 걸 알게 된 셈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서른이 되던 해인 2009년 등단한 뒤 소설집 두 권을 펴낸 그에게 이 장편은 세 번째 작품이다. 긴 호흡으로 소설을 쓴 게 처음이었던 그는 “마치 첫 책을 내는 것처럼 무척 긴장된다”고 말했다. ‘위로가 됐다’는 주변 반응을 보며 ‘뭔가를 쓰긴 쓴 거구나’ 싶어 마음이 조금 놓였다고.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자칭 ‘한국소설광’이다. 2년간 장편에 매달리느라 최근 나온 작가들 작품을 거의 못 봤다. 김 씨는 당분간 가장 하고 싶은 일로 “원 없이 한국소설을 읽고 싶다”며 웃어 보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세상사 고민을 가볍게 해줄 책을 처방해주는 ‘읽는 약국’,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쉬어 갈 수 있도록 한 ‘멍 때리는 의자’, 꽃과 식물로 가득 장식한 출판사 부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재기발랄한 부스가 국내 최대 규모 책 축제를 가득 채웠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해 올해 24회를 맞은 서울국제도서전이 2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막을 올렸다. 국내 234개 출판사와 주빈국 체코를 비롯한 프랑스, 미국, 일본, 중국 등 32개국 91개사가 참여했다.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이 독자와의 만남을 대폭 늘리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해 흥행에 성공했던 만큼 올해는 개막식을 하기 전부터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는 등 활기가 감돌았다. 참여하는 출판사들도 이색 상품과 행사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책을 사면 증정하거나 별도로 구매할 수 있는 출판사별 굿즈는 관람객들의 인기를 끌었다. 민음사가 선보인 고양이 모양 배지, 정유정 작가의 신작(‘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출간 기념으로 은행나무가 제작한 ‘당신의 초고’ 표지를 넣은 원고지 묶음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 상품이 다양했다. 24일까지 열리는 올해 도서전은 ‘확장’을 주제로 잡지, 전자책, 라이트노벨 등 다양한 분야까지 끌어안은 기획전도 마련했다. 일본의 유명 라이트노벨 작가와 삽화가가 참석하는 사인회와 원화 전시회, 강연회도 열린다. 주말에는 이영도, 김탁환, 이승우 등 유명 작가들이 각 출판사 부스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진행할 예정이다. 윤철호 출판문화협회장은 “서울국제도서전이 시민들의 관심과 출판인의 노력으로 지난해부터 활기찬 책 축제로 변모하게 됐다”며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도서전으로 발전시켜 우리 문화의 깊이를 세계에 보여주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주말마다 아이와 함께 서울 도심 박물관을 한 군데씩 다니기 시작했다. 길 위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하게 되는 교외행은 피하면서도 나들이 기분은 내기 위한 워킹맘의 꼼수인데, 생각보다 장점이 많다. 다들 교외로 빠져나가서인지 주말 도심 한복판, 특히나 박물관 일대는 생각보다 훨씬 한적하다. 오가는 길 막히지 않는 데다 쾌적한 인구밀도까지 유지되니 슬렁슬렁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의외의 발견이었다. 패션몰이 밀집된 곳에 아이와 뭘 하겠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하 하디드의 전위적 건축물은 계단 없이 건물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멋진 길이 곳곳으로 연결됐다.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기에도 좋았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전시도 다양하게 열리고 있었다. 최근까지도 서점가에서 ‘탈서울’은 계속해서 뜨거운 화두다. 런던, 뉴욕, 베를린 등 해외로 이민 가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에세이는 환상과 선망을 불러일으킨다. 굳이 그렇게 멀리 가지 않더라도 귀촌, 귀농, 제주 이주 이야기를 푼 신간이 수시로 쏟아진다. 대부분 서울에서의 삶을 비인간적으로, 숨 막히는 것으로 회상하는 책들이다. 치열한 경쟁, 야근, 꽉 막힌 교통, 어디든 북적이는 인파, 비싼 집값까지 이 도시에서의 삶은 한국 사회가 가진 모든 병폐를 응축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박물관 덕택에 보물찾기 하듯 곳곳을 다니다 보니, 새삼 서울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 되묻게 됐다. 서울 도심에는 서울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경찰박물관, 민속박물관, 쌀박물관 등에 이르기까지 박물관 종류가 정말 많다. 괜찮은 콘텐츠를 갖춘 어린이 열람실을 따로 두고 있고 먹을거리, 즐길거리를 갖췄는데 입장료도 대부분 무료다. 대학 시절 이후부터 줄곧 서울에서만 살고 있지만 아이 때문에 일부러 돌아다니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해외여행이라도 가면 그 도시의 시청, 중앙역, 도서관, 박물관, 작은 갤러리까지 필사적으로 돌아다니면서 정작 이곳에 뭐가 있는지에 대해선 너무 무심했었단 생각이 든다. “한낮의 해가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뜨겁게 주변을 물들인다. 너무 당연하게 존재하고 있어서, 잊고 있던 한강도 아름답게 반짝반짝 빛난다.”(에세이집 ‘저는 아직 서울이 괜찮습니다’ 중에서) 최근 나온 에세이집의 한 구절처럼, 너무 당연해서 잊고 있던 이 도시의 ‘반짝이는 것들’이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탈서울’ 바람이 여전히 거세지만 무작정 떠나는 것만이 대안이 될 순 없다.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 변화도 가능하다. 일단 이곳에서 자신만의 보물찾기 탐험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서울에서의 삶이 훨씬 더 살 만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

주말마다 아이와 함께 서울 도심 박물관을 한군데 씩 다니기 시작했다. 길 위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하게 되는 교외 행은 피하면서도 나들이 기분은 내기 위한 워킹맘의 꼼수인데, 생각보다 장점이 많다. 다들 교외로 빠져나가서인지 주말 도심 한복판, 특히나 박물관 일대는 생각보다 훨씬 한적하다. 오가는 길 막히지 않는데다 쾌적한 인구밀도까지 유지되니 슬렁슬렁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의외의 발견이었다. 패션몰이 밀집된 곳에 아이와 뭘 하겠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하 하디드의 전위적 건축물은 계단 없이 건물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멋진 길이 곳곳으로 연결됐다.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기에도 좋았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전시도 다양하게 열리고 있었다. 최근까지도 서점가에서 ‘탈서울’은 계속해서 뜨거운 화두다. 런던, 뉴욕, 베를린 등 해외로 이민 가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에세이는 환상과 선망을 불러일으킨다. 굳이 그렇게 멀리 가지 않더라도 귀촌, 귀농, 제주이민 이야기를 푼 신간이 수시로 쏟아진다. 대부분 서울에서의 삶을 비인간적으로, 숨 막히는 것으로 회상하는 책들이다. 치열한 경쟁, 야근, 꽉 막힌 교통, 어디든 북적이는 인파, 비싼 집값까지 이 도시에서의 삶은 한국 사회가 가진 모든 병폐를 응축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박물관 덕택에 보물찾기 하듯 곳곳을 다니다보니, 새삼 서울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 되묻게 됐다. 서울 도심에는 서울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경찰박물관, 민속박물관, 쌀 박물관 등에 이르기까지 박물관 종류가 정말 많다. 괜찮은 콘텐츠를 갖춘 어린이 열람실을 따로 두고 있고 먹을거리, 즐길 거리를 갖췄는데 입장료도 대부분 무료다. 대학시절 이후부터 줄곧 서울에서만 살고 있지만 아이 때문에 일부러 돌아다니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해외여행이라도 가면 그 도시의 시청, 중앙역, 도서관, 박물관, 작은 갤러리까지 필사적으로 돌아다니면서도 정작 이곳에 뭐가 있는지에 대해선 너무 무심했었단 생각이 든다. “한낮의 해가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뜨겁게 주변을 물들인다. 너무 당연하게 존재하고 있어서, 잊고 있던 한강도 아름답게 반짝반짝 빛난다.” (에세이집 ‘저는 아직 서울이 괜찮습니다’ 중에서) 최근 나온 에세이집의 한 구절처럼, 너무 당연해서 잊고 있던 이 도시의 ‘반짝이는 것들’이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을 지도 모른다. ‘탈서울’ 바람이 여전히 거세지만 무작정 떠나는 것만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 변화도 가능하다. 일단 이곳에서 자신만의 보물찾기 탐험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것만으로 서울에서의 삶이 훨씬 더 살만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온 가족이 둘러앉아 각자 스마트폰, 태블릿 PC를 들여다본다. 친구들끼리 모여서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느라 대화는 건성으로 한다. “연결될수록 번영한다”는 모토가 지배하는 디지털 시대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같은 장소에 있지만, 모두 다른 곳에 속해 있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기술심리학 전문가인 저자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든다. 현대인이 테크놀로지에 의해 자아성찰, 창의력, 생산성의 핵심이 되는 뭔가를 빼앗기고 있다는 것. 바로 ‘대화’다. 대화는 공감과 자아성찰 능력을 이끌어냄으로써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핵심적 수단이다.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고독, 우정, 그리고 사교(사회)다. 고독은 자의식과 집중력, 창의적 발상을 다지고 우정과 사교는 자아성찰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술이 이 순환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가장 먼저 취약해진 것이 고독이다. 실시간으로 세계와 연결되는 시대,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15분 동안 전화, 책 없이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실험에서 상당수 사람들은 6분쯤 됐을 때 ‘전기충격이라도 받겠느냐’는 제의에 동의했다고 한다. 내면을 향해 집중할 수 있는 진득한 고독을 그만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우정과 사교도 공격받는다. 인간적 교감이 이뤄지는 가장 핵심적 장소인 가정에서도 그렇다. 모유수유를 하면서 휴대전화를 보고, 유모차를 밀고 가면서도 페이스북을 하는 부모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은 안정적인 대화를 하는 첫 단추를 놓친다. 요즘 아이들에게 친구 관계는 언제든 휴대전화로 응답할 수 있는 ‘항시 대기 우정’으로 이해된다. 저자는 이런 비정상적 관계가 결국은 “제대로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나름의 대처”라고 비판한다. 교육현장과, 사무실, 사회에서도 제대로 된 대화가 사라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을 겪고 있다. 기술을 활용한 멀티태스킹은 통념과 달리 효율성이 높지 않다. 삶을 각성과 유사한 지속적 경계 상태로 몰고 감으로써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교육이 각광받고 있지만 대면교육의 효과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연구결과도 나온다. 야후, IBM 같은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시행했다 직원들을 다시 회사로 불러들인 이유 역시 기술에 기반해 대면회의, 대화를 없앤 것이 생산성과 창의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온라인 정치 운동에 회의적이다. 실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좋아요’를 누르거나 해시태그를 공유하는 것 이상의 더 깊은 신뢰, 역사적 유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알면서도 방심한 채, 정확히 의식하지 못한 채 기술 발전과 변화에 떠밀려 여기까지 와버렸다. 이 책은 이제 우리가 기술과의 ‘마술 같은 연애’에서 깨어날 때라고 말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전자기기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한 여름 캠프에서 아이들은 공감능력과 대화에 대한 놀라운 회복력을 보였다. 가정에서는 자녀들과 대화하기 위해 전자기기가 없는 공간을 만드는 작은 실험부터 시작할 수 있다. 기술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존중할 수단을 함께 강구해야 한다. 인간은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는 솔직하고 대담한 대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