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한국이 핵미사일 앞에서 무방비라면, 북한의 최대 약점은 체제 위기다. 근래에 한반도라는 그라운드에서 한미연합팀과 북한팀 사이에 벌어진 게임은 늘 반(半)코트 싸움이었다. 북한은 상대의 약점을 노린 극단적 공격 전술로 나왔고, 한미는 방어에만 급급했지 상대의 약점을 노려 반격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미연합팀 총괄감독이 버락 오바마에서 도널드 트럼프로 바뀌면서 판세가 바뀌었다. 트럼프는 상상 이상으로 북한의 약점을 파고드는 강공 작전을 구사했다. 북한의 최대 스폰서인 중국을 힘으로 압박해 지원을 못 하게 만들었다. 몇 년 안으로 북한은 굶주려 허우적대다 쓰러질 판이다. 북한팀 감독 김정은은 상황 판단이 빨랐다. 그는 공격 모드에서 방어로 급히 전술을 바꾸었다. 이대로 가면 팀이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평창에 대규모 화해 대표단을 파견하고, 한국팀 문재인 감독을 평양에 초대한 것은 양 팀의 공수가 바뀐 상징적 사건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감독직을 세습한 김정은은 본인의 능력인지, 아버지가 물려준 코치진의 능력인진 알 길이 없지만, 지금까진 자기 팀을 잘 이끌어왔다. 부임 첫해에 선수 사기 진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희망을 심어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더는 허리띠를 조이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 뒤 젊은 부인의 팔짱을 끼고 나와 ‘나는 가족을 중시하는 젊은 남자이니 믿어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잇따른 경제와 농업 개혁 조치 선언으로 기대감도 끌어올렸다. 이듬해 장성택 처형을 통해 그는 ‘북한의 왕은 나’라고 대내외에 과시했다. 마치 잉글랜드의 위대한 축구 감독 알렉스 퍼거슨 경이 데이비드 베컴이라는 걸출한 스타플레이어를 걷어차 ‘맨유는 퍼거슨의 팀’임을 보여줬듯이 말이다. 물론 코치진이 ‘강력한 2인자를 두고 장기 집권한 독재자는 역사에 없다’고 조언해 주었겠지만, 대단한 권력의지가 아니라면 자신을 돌봐주던 고모부를 처형하긴 어렵다. 김정은이 집권 6년 내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렸던 것도 ‘가진 것 없어 무시당하는 수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한미가 가장 두려워하는 핵미사일을 손에 넣고 종신 집권을 위한 통 큰 거래를 하겠다는 것이 그의 장기적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재작년 말부터 예상치 못하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조차 예상치 못했던 트럼프의 집권을 김정은이 미리 알아챘을 리 만무하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거래 상대가 됐다면 김정은은 “그것도 이미 내 로드맵에 있었어”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트럼프가 집권 후에 보여준 저돌성은 더욱 놀랍다. 중국이 북한의 3대 돈줄(석탄, 수산물, 의류임가공)을 끊고, 원유 지원도 대폭 줄일 거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 어려운 미션을 트럼프가 해냈다. 이제 와선 트럼프가 북한 공격 명령을 내리지 못할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는 전문가도 점점 줄고 있다. 조급해진 김정은은 지난 1년여 동안 눈과 귀를 다 틀어막고 그야말로 ‘미친 듯이’ 핵미사일 완성에 매달렸고, 2017년이 지나가기 전에 ‘핵 무력의 완성’을 부랴부랴 선언했다. 그러곤 새해 벽두부터 핵미사일 완성 이후로 세워둔 로드맵상의 ‘흥정’ 단계로 넘어가려 한다. 하지만 여유롭게 배를 내밀며 하려던 흥정이, 숨을 헐떡이며 시간에 쫓겨서 하게 된 이상 제대로 될 리는 만무하다. 김정은의 장기 플랜에는 두 가지가 없었다. 첫째는 트럼프 당선, 둘째는 고난의 행군이다. 중국이 대북 압박에 동참하자 북한 내부에선 곧바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연료가 없어 군부대가 기동할 수 없고, 고위 간부와 장성조차 추위에 떨고 있다. 춘궁기로 가면 식량 가격이 치솟아 기근이 다시 북한을 덮칠 가능성도 높다. 그러면 김정은을 ‘신뢰할 수 없는 사기꾼’으로 비난하는 내부 불만이 치솟아 역심(逆心)이 꿈틀거릴 것이고, 김정은이 제일 두려워하는 체제 위기가 현실화된다. 약점을 정확히, 매우 아프게 공격당해 순식간에 수세에 몰린 김정은은 급히 상황 반전에 나섰지만, 문제는 거래 조건이 달라졌다. 이제 김정은이 부르는 핵미사일 값은 단순 호가일 뿐, 실거래 가격이 될 수 없다. 북한이 거래를 거부하면 그건 곧 고난의 행군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김정은은 자기 처지에서 어떤 것이 최선일지를 잘 판단해왔다. 만약 김정은이 핵미사일을 부둥켜안은 채 몇 년 정도는 고난의 행군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최후의 오판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1990년대 중반 1차 고난의 행군을 체험했고 평생 북한을 지켜본 나의 판단으론, 북한은 절대 고난의 행군을 또다시 견뎌내지 못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2013년 세계적 영화제인 베를린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심사위원 대상(은곰상)을 수상했던 보스니아 집시 출신의 나지프 무이치(사진)가 48세를 일기로 숨졌다. 20일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무이치는 18일 보스니아 스바토바치의 가난한 고향 마을에서 지병으로 숨졌다.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평소 앓고 있던 당뇨합병증으로 추정된다. 보스니아 출신 다니스 타노비치 감독은 쓰레기더미 근처의 쓰러져 가는 집을 찾아가 무이치와 동거녀, 자녀 둘의 이야기를 9일 동안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시나리오도 없었고 예산은 1만7000유로(약 2258만 원) 정도만 들었다. 무이치는 영화제 수상식에서 “나는 배우가 아니라 단지 내 이야기를 연기했을 뿐이다. 배역은 내 가족 속에 있는 나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 다큐는 2013년 부산영화제에서도 소개됐다. 다큐로 이름을 알렸지만 무이치는 생활고 때문에 다시 원래의 직업인 고철상으로 돌아갔다. 무이치는 승용차 등 개인 물품을 팔아서 생활비를 충당하다 결국은 올해 1월 베를린 영화제에서 받은 은곰 트로피를 5000달러(약 536만 원)에 내다팔았다. 당시 그는 트로피를 판 이유에 대해 “매우 힘든 결정이었지만 아이들이 3일간 거의 먹지 못했다”고 밝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8일(현지 시간) 방영된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중국 측 카운터파트에게 ‘당신과 내가 실패하면 이 사람들(these people)이 전쟁에 이를 것이다. 그건 우리가 바라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적 노력이 실패한다면 북한과의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중국 측에 알렸으며 이를 막기 위한 중국의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틸러슨 장관이 언급한 중국 측 카운터파트는 양제츠(楊潔篪)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으로, 두 사람은 이달 8일에도 워싱턴에서 만나 북핵 문제를 논의했다. 틸러슨 장관은 ‘중국도 북한의 변화를 절박하게 원하고 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북한이 중국에도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공통된 인식을 미국과 중국이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틸러슨 장관은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해 당근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신 큰 채찍(large stick)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점을 북한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은 최악의 한반도 상황을 가정한 주한 미국인 대피 등의 비상대책을 손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은 14일 의회 청문회에서 “만약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날 경우 미국인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과 함께 비전투요원철수작전(NEO) 계획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사진)가 “정부는 나 같은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게이츠는 18일(현지 시간) CNN의 ‘GPS’ 프로그램에 출연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세금을 100억 달러 넘게 더 냈지만, 나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내라는 요구를 받아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기업세를 35%에서 21%로 내리고,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기준을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세제개혁법에 대해 “그것은 진보적인 세법이 아니라 퇴행적 세제법”이라고 비난했다. 게이츠는 “이런 세법으로 부자들이 극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얻는다”며 세제 혜택이 중산층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혜택을 준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어 “이는 사회안전망이 더 강화되고 상위 부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일반적 경향에도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불평등 증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는 “인구의 6분의 1이 실망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정부는 ‘우리가 왜 그런 사람들을 위해 더 좋은 일을 못 하고 있느냐’고 진정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개인자산 900억 달러(약 96조 달러)를 보유해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에 이어 세계 2위 부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이츠는 이미 400억 달러(약 42조6800억 원)를 기부했으며 오래전부터 전 자산의 90%를 기부하겠다고 밝혀 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8일(현지 시간) 방영된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중국 측 카운터파트에게 ‘당신과 내가 실패하면 이 사람들(these people)이 전쟁에 이를 것이다. 그건 우리가 바라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적 노력이 실패한다면 북한과의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중국 측에 알렸으며 이를 막기 위한 중국의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틸러슨이 언급한 중국 측 카운터파트는 양제츠(楊潔篪)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으로, 두 사람은 이달 8일에도 워싱턴에서 만나 북핵 문제를 논의했다. 틸러슨 장관은 ‘중국도 북한의 변화를 절박하게 원하고 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북한이 중국에게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공통된 인식을 미국과 중국이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북미대화와 관련해 “북미 대화 초기에는 북한과 일대일로 만나 협상을 시작할 이유가 있는지를 결정하겠지만 북한과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않게 되면 중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중국 측에 전했다”고 강조했다. 진행자가 8~10개월 동안 외교적 노력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미국이 가장 중요한 군사적 결정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미 정계 관측을 언급하며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시간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자 틸러슨 장관은 “외교적 노력은 첫 번째 폭탄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할 것이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지 모른다”고 즉답을 피했다. 틸러슨 장관은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해 당근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신 큰 채찍(large stick)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점을 북한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압박작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북한 수입원과 군사프로그램을 갉아먹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정은과 협상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는 이것(북핵 해결)을 외교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함께 일해야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은 최악의 한반도 상황을 가정한 주한 미국인 대피 등의 비상대책을 손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 군사전문지 밀리터리닷컴은 미 하와이 포트 새프터에 주둔한 미 육군 태평양사령관 로버트 브라운 장군이 전시에 한국에 거주하는 민간 미국인을 대피시키는 ‘비전투요원철수작전(NEO)’ 계획을 작업하고 있으며 곧 마무리를 지을 것이라고 18일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은 14일 의회 청문회에서 “만약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날 경우 미국인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빈스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과 함께 NEO 계획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앤서니 브라운 하원의원(민주당)이 “전시에 NEO계획이 필요할 때 손에 넣을 수 있는 정도는 아직 아닌 것 같다”고 지적하자, 해리스 장군은 “우리는 이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고 답변했다. 한국에는 약 20만 명의 미국인, 백만 명의 중국인, 6만 명의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플로리다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총기 규제 여론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정신이상자의 소행으로만 몰아갈 뿐 총기 규제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아 비난을 사고 있다. 연방수사국(FBI)과 학교, 주 정부 등이 총격범에 대한 제보를 접수하고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 등 대응 체계에도 구멍이 뚫린 것으로 드러났다.○ 맥베스 읽던 교실에 총탄 난사 마이애미에서 북쪽으로 72km 떨어진 파클랜드의 마저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에서 퇴학생이 저지른 총기 난사는 14일 오후 수업이 끝나기 10분 전쯤인 오후 2시 21분경에 시작돼 6분 만에 끝났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17명이 숨지고 16명이 부상당했다. 이는 최근 30년 동안 미국 내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중 7번째로 사망자가 많은 것이다. 영어 수업 중이던 1층의 한 교실에선 학생들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하나인 ‘맥베스’를 읽고 있었다. 경보기가 울리면서 교실 안에 총탄이 날아들었다.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범인은 1층 입구 교실 4곳을 차례로 옮겨가며 반자동 소총인 AR-15를 난사했다. 어떤 교실은 문을 잠그고 바리케이드를 친 채로 버텼고, 어떤 교실에선 교사가 학생들을 데리고 옷장에 들어갔다. 2층으로 옮겨간 범인은 다시 교실 한 곳을 향해 총을 난사한 뒤 3층으로 올라가 총을 버리고 탈출하는 학생들 틈에 섞여 유유히 빠져나갔다. 약 1시간 뒤 체포된 범인은 백팩에 총을 넣고 등교하는 등의 행동으로 지난해 이 학교에서 퇴학당한 19세 니컬러스 크루즈로 밝혀졌다. 그는 학교에 들어와 화재경보기를 작동시킨 뒤 방독면을 쓰고 연막수류탄을 터뜨렸고, 나오는 학생들을 겨냥해 총을 쐈다. 범행 뒤에는 태연하게 인근 패스트푸드점에서 음료수를 사먹기까지 했다. 범인은 경찰에게 “공격을 실행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머릿속으로 그런 음성을 들었다”며 “그것은 악령의 목소리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과거 총기에 집착하던 ‘왕따’였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또 단체 채팅방에서 “나는 유대인, 흑인, 이민자를 증오한다”거나 “동성애자들의 머리를 뒤에서 쏘라”는 등 수많은 과격 발언을 한 사실도 밝혀졌다. 그는 “친엄마가 유대인이고 그녀를 만나지 않아 좋다”고 쓰기도 했다. 그는 어렸을 때 로저, 린다 크루즈 부부에게 입양됐지만 로저는 2004년, 린다는 지난해 사망했다. 양어머니 사망 후 크루즈는 범행에 사용한 AR-15 소총을 비롯해 적어도 5정의 총기류와 방탄복을 사들였다.○ 트럼프 “정신건강 문제일 뿐”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참사를 FBI에 공세를 펴는 호재로 활용해 빈축을 샀다. 그는 17일 트위터에 “플로리다 총격범이 보낸 그 많은 신호 전부를 FBI가 놓쳤다는 게 너무 슬프다. 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은 트럼프 캠페인과 러시아 간의 공모를 증명하려고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고 적었다. FBI가 2016년 대선 때 자신의 캠프가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혹을 수사하는 데 대한 불만을 총격 사건과 연관시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에도 트위터에 “플로리다 총격범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수많은 징후가 있었다. 이웃과 급우들은 범인이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적었다. 이어 몇 시간 뒤 대국민 TV 연설에선 이번 사건을 “끔찍한 폭력, 증오, 악의 광경”으로 부르며 “어려운 정신건강 문제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총기 규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판한 것처럼 실제 FBI는 범인인 크루즈에 대해 2차례의 제보를 받았지만 모두 묵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FBI는 크루즈가 지난해 9월 유튜브에 “나는 전문적인 학교 총격범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동영상을 올렸다는 것을 신고받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지난달 5일 범인의 지인이 FBI에 “크루즈가 범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제보 전화까지 했지만 이 역시 묵살했다. FBI뿐만 아니라 학교 당국과 주 정부도 제보를 묵살했다.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 등에 따르면 총기 난사가 일어난 고교 재학생인 데이나 크레이그, 매슈 로사리오, 에니어 사바디니 등은 학교에 크루즈의 위험성을 알렸다. 이 중 사바디니는 크루즈의 옛 여자친구와 사귄다는 이유로 크루즈로부터 위협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크레이그는 “크루즈가 총기와 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사바디니와 크루즈가 다툰 뒤 학교에 알렸다”고 말했다. 플로리다주 아동가족보호국(DFS)과 지역 사법당국은 2016년 9월 크루즈가 스냅챗에 자신의 팔을 칼로 베고 총을 구입하고 싶다고 말하는 영상을 올린 사실을 확인하고 집으로 조사관을 보냈다. DFS는 크루즈와 면담까지 했으나 자신이나 남을 해칠 위험이 낮다고 결론을 내렸다.○ 10년간 총기 사망자 31만여 명 트럼프 대통령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총기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다시금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을 포함해 벌써 올해에만 중고교에서 4건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17일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 연방법원 앞에는 수천 명의 시민과 학생 등이 몰려와 ‘지금 무언가를 하라’, ‘내 친구들을 죽게 하지 말라’, ‘투표로 몰아내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전날 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의 전미총기협회(NRA) 본부 앞에도 100여 명이 모여 총기 규제 강화를 촉구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15일 트위터에 “우리는 대다수 미국인이 원하고, 오래전 해결했어야 하는 총기규제법을 포함해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로 총기 규제 입법을 강하게 촉구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 재무위원장을 지냈고, 현재도 ‘큰손’ 기부자로 알려진 부동산 사업가 앨 호프먼 주니어는 공격용 총기류 규제 법안을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들에게는 후원금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 국무부와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통계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미국에서 총기 사건 및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31만6545명으로 집계됐다. 반면 테러에 의한 사망자는 313명에 불과했다. 이처럼 총기 규제의 당위성은 충분하지만 NRA의 로비를 이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회원이 420만 명인 NRA는 정치권에 막대한 자금을 뿌리는 것 외에도 전국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총기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NRA는 2016년 학교 사격 프로그램에 220만 달러(약 24억 원)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크루즈도 NRA가 자금을 지원한 주니어 ROTC 조직에 가입해 사격 훈련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주성하 zsh75@donga.com·위은지 기자}
이스라엘군 F-16 전투기가 10일 시리아 내 이란 군사시설 폭격 작전을 수행하던 중 대공 무기 공격을 받아 격추되면서 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 전투기가 적국의 공격을 받아 격추된 것은 1982년 1차 레바논 전쟁 이후 36년 만이다. 중동의 하늘을 장악했다고 자부해 온 이스라엘은 주력 전투기가 추락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시리아에 대한 대대적 공격으로 반격했다. 사건은 이날 오전 4시 25분 시리아 기지에서 발진한 이란 무인기가 이스라엘 영공에 침입하면서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이란 무인기를 격추시킨 뒤 전투기들을 보내 무인기 발진 기지로 의심되는 시리아 중부 사막의 군사시설을 집중 공습했다. 시리아는 대공미사일을 발사했고, F-16 전투기 1대가 피격돼 이스라엘 북부에 추락했다. 조종사 2명은 모두 부상당했고, 한 명은 중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은 같은 시아파인 시리아 정부를 지원해왔다.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 공격에 나섰다. 시리아 정부군의 SA-5와 SA-17 미사일 기지 3곳과 시리아 내 이란 군사시설 4곳 등 모두 12개 기지를 향해 공습과 미사일 공격을 퍼부어 시리아 정부군 6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군 수뇌부를 소집해 비상회의를 개최한 데 이어 시리아 정부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의견을 교환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이란이 시리아 영토를 이용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다”며 강력 대응할 뜻을 밝혔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시리아와 다른 국가들의 주권과 영토 보전권이 보장돼야 한다”며 긴장 자제를 주문했다. 반면 미국 국무부는 “이란의 계산된 위협과 야심이 중동 지역 주민들의 삶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며 이스라엘 편을 들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중국의 안면인식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악명 높은 중국 공안의 불심검문 방식도 바뀌고 있다. 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시 공안은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를 맞아 안면인식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안경’을 전면 도입했다. 이 안경은 초소형 카메라로 상대 얼굴을 인식해 태블릿PC로 보내고, 이를 기기에 저장된 범인 사진과 대조한다. 스마트 안경을 착용한 공안들이 기차역 입구 4곳을 지키며 지나가는 승객들을 훑어보면 지명수배범이 무사히 통과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안경이 5m 거리에서 2, 3초 내에 범죄자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한 공안은 “스마트 안경이 경찰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해 지명수배범 여부를 곧바로 색출해 내기 때문에 종전처럼 다가가서 신분증을 요구하거나 경찰서에 데려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정저우 공안은 스마트 안경을 도입한 이달 초부터 인신매매범, 뺑소니범 등 용의자 7명을 체포했으며, 가짜 신분증을 제시한 26명도 적발했다. 중국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상하좌우로 720도 회전이 되고, 안면 및 동작 인식 기능을 갖춘 경찰용 카메라를 개발해 전국에 보급하고 있다. 어깨에 착용하는 이 카메라는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회전해 경찰이 볼 수 없는 후면까지 고해상도 화질로 감시한다. 안면인식 기능으로 군중 속에서 지명 수배자를 찾아내고, 뒤에서 공격하는 용의자도 감지해 대응하게 해준다. 중국은 2015년 13억 국민을 3초 안에 90% 정확도로 식별하는 안면인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고 밝히는 등 치안 분야에서 안면인식 기술을 적극 적용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안면인식 기술력을 보유한 중국은 다양한 곳에서 이를 활용하고 있다. 하루 수십만 명이 오가는 일부 국경 세관에는 하루에 2번 이상 국경을 드나드는 사람을 밀수 용의자로 구별하는 안면인식 기술과 인공지능이 결합된 장비도 설치돼 세관원 수십 명을 대신한다. 중국 자오상(招商)은행은 지난해부터 길거리 현금자동인출기(ATM)에 안면인식 기술을 적용해 카드 없이 얼굴만 인식시키면 돈을 인출할 수 있게 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1996년 11월 26일 연평도로 북한 병사 정광선이 탄 목선이 표류해 왔다. 한국 경비정에 구조된 그는 조사 뒤 북으로 돌아갔다. 얼마 뒤 노동신문은 그를 ‘혁명전사의 귀감’이라며 한 개 면을 털어 크게 내세웠다. “괴뢰 놈들이 배를 끌고 가려 할 때 도끼를 휘두르며 정신 잃을 때까지 싸웠고, 집요한 귀순 회유에도 장군님 품으로 가겠다는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19세 정광선은 말단 상등병에서 바로 장교로 진급했고, 죽기 전엔 받기 어렵다는 최고의 명예인 공화국영웅까지 됐다. 함북 청진의 그의 모교는 ‘정광선고등중학교’로 개명됐다. 그로부터 3년쯤 뒤 정광선이 술자리에서 “남조선을 암흑의 세상이라고 배웠는데, 서울에 가보니 완전히 불바다더라”라고 했고, 이를 전해 들은 김정일이 “앞으로 남조선을 암흑의 세상이라 교육하지 말라”고 했다는 말을 북에 있을 때 들었다. 실제로 이후 북한 대남 교육은 “한강 다리 아래 거지가 득실댄다”는 레퍼토리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극심해 살기 힘든 사회”로 바뀌었다. 남쪽에 살던 한 탈북자는 2012년 북으로 돌아가 기자회견까지 하고도 반년 뒤 다시 탈북했다. 남조선에서 먹었던 삼겹살과 삼계탕 이야기를 했다가 보위부에 잡혀가 고문을 받았고, 숨 막혀 살 수 없어 다시 도망쳤다는 것이다. 집중 감시를 받는 줄 뻔히 알면서도 술이 들어가니 입을 통제 못 한 것이다. 진실은 자루 속 송곳과 같다.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을 활용해 체제 선전 공세를 펼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게 통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우리 국민을 우습게 본 것이다. 일부러 눈과 귀를 틀어막은 극소수를 빼곤 북한이 어떤 곳인지 다 안다. 오히려 북한이 체제 선전을 한다면 엄청난 역풍을 받을 게 뻔하다. 북한 예술단이 싫은 사람들이 진짜로 걱정해야 하는 것은 북한 여성들이 체제 선전 가요가 아닌, 한국 노래를 심금을 울릴 정도로 너무 감동적으로 부르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따져보면 역대 최대 규모로 500여 명이나 남쪽에 내려보낸 북한이야말로 엄청난 용기를 낸 것이다. 아무리 입단속을 하고 감시를 해도 그들이 북으로 돌아간 뒤 언제 어디에서 어떤 말을 할지 알 수가 없다. 최소한 가족 형제에게는 비밀이 없다. 북한이 동포애를 발휘해 남쪽 잔치가 흥하라고 위험을 감수하며 대규모 대표단을 보낸 것이 아님은 누구나 안다. 북한이 올림픽 이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재개해 남북 관계가 지난해 수준으로 돌아간다 해도, 올림픽 기간 북한 도발을 관리해 평화적으로 대회를 치른 한국의 득이 더 크다. 그걸 북한이 모를 리가 없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에 간다고 했을 때는 이미 올림픽을 활용해 분위기를 바꾼 뒤 어떻게 하겠다는 구상은 서 있었을 것이다. 그걸 위해 동생 김여정까지 포함된 대규모 남한 방문단이란 떡밥을 던진 것이다. 북한은 무엇을 노리고 있을까. 떡밥의 양과 질을 봤을 때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정도로 만족할 것 같진 않다. 또 미국의 동의 없이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 것이다. 북한의 모사(謀士)들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더구나 북은 목을 내놓고 결재받는 곳이다. 하지만 핵이나 ICBM을 내걸지 않고 미국을 움직일 순 없다. 안 될 것도 없다. 원료 추출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핵무기보단 기술을 이미 확보해 수십 개를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는 ICBM은 얼마든지 흥정판에 올려놓을 수 있다. 사실 북한은 미국까지 가는 ICBM을 굳이 가질 필요는 없다. 미국 영토에 쏴봐야 자살 행위이고, 가진 것만으로도 미국의 분노만 키울 뿐이다. 협박용 핵미사일은 주한미군만 사거리에 넣어도 충분하다. 북한도 지금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적잖게 파악했을 것이다. 말을 얼마나 쉽게 바꾸고, 자화자찬은 얼마나 능숙하게 하는지 등을 말이다. 남한을 활용해 북-미 대화를 성사시킨 뒤 “김정은을 압박해 미국을 핵 공격 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 냈다”는 업적을 트럼프에게 만들어준다면 흥정할 수 있다고 계산했을지도 모른다. ICBM 포기와 함께 미국에 “신뢰를 지키면 핵무기도 폐기하겠다”는 약속도 못 할 것은 없다. 그렇게 목을 조이는 대북제재를 풀어내고, 경제협력을 하자며 남한 돈을 다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시간도 벌고 잇속도 챙길 수 있다. ICBM은 필요할 때 미국이 약속을 깼다며 다시 만들면 그만이다. 북한은 늘 임기 내 업적에 안달인 한미 대통령들을 봉으로 활용하는 데 능숙했다. 이미 한국 정부는 “말씀만 하십시오” 자세라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창 올림픽 이후의 대북카드는 걱정할 필요도, 급해할 필요도 없다. 고위급 대표단이나 다른 라인을 통해서 북한이 먼저 낚싯대를 던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들이 낚으려는 게 잉어인지 가물치인지 판단하면 된다. 세상에 떡밥만 뿌리고 가는 낚시꾼은 없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8000만 방문자를 기록한 주성하 기자의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가 주소를 바꾸어 새로 문을 열었습니다. 생동하고 전문적인 북한 이야기로 여러분들을 계속 찾아갑니다.}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며 수백 명의 적을 베어나가던 할리우드의 대표적 여전사 우마 서먼(48·사진)도 현실에선 성폭력의 피해자였다. 서먼은 3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와의 인터뷰를 통해 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MeToo·나도 당했다)을 촉발시킨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에게 성폭력을 당했던 과거를 털어놓았다. NYT에 따르면 서먼은 영화 ‘펄프 픽션’(1994년 개봉)을 찍으며 와인스틴과 가깝게 지냈다. 서먼은 “와인스틴과 자주 몇 시간씩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위험 징후’를 간과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영국 런던 사보이 호텔 스위트룸에서 와인스틴이 갑자기 성폭행을 시도했다며 “그는 노출을 시도했고 온갖 종류의 불쾌한 일들을 했다”고 서먼은 밝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태국이 1일부터 유명 해변 휴양지 24곳에서 강력한 흡연 단속을 시작했다.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해변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해양공원법을 적용해 최대 1년의 징역형 또는 10만 밧(약 342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푸껫 빠똥, 파타야 동딴 등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들도 단속 대상에 올라 있어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담배를 피우려면 해변 입구에 마련된 흡연실을 이용해야 한다. 태국은 지난해 7월 제정된 ‘담배제품 금지법’에 따라 이미 방콕 같은 주요 도시에서 흡연 단속 조치를 크게 강화했다. 특히 환각제 등을 넣어 사용할 우려 때문에 전자담배는 소지 자체가 불법이고 적발 시 막대한 벌금형에 처해진다. 태국 당국이 해변 금연 조치를 내린 것은 담배꽁초에 의한 해변 오염이 점점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푸껫 빠똥 해변을 조사한 결과 m²당 평균 0.76개의 담배꽁초가 나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됐던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가 낙마하면서 주한 미국대사직이 12개월가량 공백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공석 기간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가장 길다. 1949년 4월 초대 주한 미국대사로 존 조셉 무초 대사가 부임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22명의 주한 미대사가 있었다. 제임스 레이니 대사가 1997년 2월 이임한 뒤 스티븐 보즈워스 대사가 부임한 그해 12월까지 10개월여 공백이 그동안 가장 길었다. 빅터 차 석좌의 낙마 이후 새 대사 후보 내정, 아그레망(주재국 임명동의), 상원 인준 절차 등을 감안하면 대사 공석 상태가 얼마나 더 길어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대사 자리가 오래 비어 있어 논란이 되는 국가는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의 동맹국 호주 역시 미국대사 자리가 2월 현재 17개월 동안이나 비어 있어 지난달 ‘외교적 모독’ 논란이 벌어졌다. 팀 피셔 전 호주 부총리가 미국을 향해 “외교적 모욕에 가깝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우리는 격하됐고, 우선순위가 뒤처져 있다”고 말해 논란이 확대됐다. 미국 CNN방송은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요르단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 주재 대사 자리 수십 곳이 여전히 공백 상태라고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이날 기준으로 미국의 주요 외교직 30여 곳은 내정자 지명조차 되지 않았고, 7곳은 인선은 마쳤지만 부임하지 못하고 인준을 기다리는 상태다. 국무부 전체로 보면 차관 6석 중 2석이 내정자를 기다리고 있고, 2곳은 지명자는 나왔지만 인준이 끝나지 않았다. 차관보 24석도 대부분 공석이거나 대행이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대북 업무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주한 미국대사뿐 아니라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도 내정은 됐지만 상원 인준을 마치지 못해 공석으로 남아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입장에서도 ‘이건 전면전이 아니라 경고성 차원의 공격이다’라고 인식할 수 있게 때리는 걸 ‘매우 제한적인 타격(very limited strike)’이라고 표현하더라. 범죄자를 제압하거나 범행을 잠시 멈추게 하기 위해 경고사격을 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미국을 방문한 뒤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미국에 가보니 대북 군사전략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진척돼 있었다”며 현지에서 학계 인사 및 당국자들과 나눈 대화를 우려 섞인 목소리로 이같이 소개했다. 특히나 ‘매우 제한적인 타격’ 방안은 ‘처음 들은 개념’이었다고 설명했다. 북한에 겁주기식 선제타격을 하는 동시에 전면전 확전은 피해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겠다는 ‘코피 터뜨리기(bloody nose)’ 전략이 이미 작년 11월부터 워싱턴 정가에선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었던 것이다. ○ 맥매스터 “평화적 해결책 아닌 해결책에 전념” 미 시사지 애틀랜틱은 지난달 31일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해 여름부터 대북 ‘예방적 선제타격(use of preventive force)’을 위한 방안을 만들어오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두 차례 벌인 7월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이 나온 8월경이 군사적 대응 논거를 구상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지목된 것이다. 북한의 도발이 최고조에 달한 지난해 여름에 제기됐던 해당 아이디어는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구체화된 것으로 보인다. 태 전 공사가 지난해 11월 ‘매우 제한적인 타격’이라고 표현했던 미국의 초강경 대북 군사대응책은 12월 20일 영국 텔레그래프와 이틀 후 야후뉴스 보도에서 ‘코피 터뜨리기’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다. 비슷한 시기인 같은 달 19일 맥매스터 보좌관은 BBC 인터뷰에서 “모든 옵션은 테이블 위에 있다”며 “우리는 ‘평화적 해결책’에 전념하지 않는다. ‘해결책’에 전념한다”고 강조했다. 문제 해결의 과정보다는 결과에 방점을 두겠다는 설명이다. 올 1월 9일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코피 터뜨리기’ 전략이란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이를 “북한의 전면적인 보복을 촉발하지 않는 선에서 (선제타격을 가해 북한에 잘못된) 행동으로 지불해야 하는 높은 비용을 보여주려는 방안”이라고 소개했다.○ ‘코피 전략’ 대상은 어디? ‘코피 전략’의 구체적 시행 방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지만 몇 가지 추측은 가능하다. 20여 년간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근무하며 한국 담당 부국장을 맡았던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CNN 인터뷰에서 “(‘코피 터뜨리기’ 입안자들이) 아직 정확한 타깃을 규정하지 않았다”면서도 “(북한에) 신호를 보내는 차원에서 두세 개의 대상을 때릴지, 아니면 전면전 확전 가능성은 더 높지만 ICBM 무력화가 가능한 더 넓은 차원의 대상을 설정할지 (모르겠다)”며 논의의 큰 그림을 짚었다. 태 전 공사는 이 같은 제한적 선제타격이 비군사시설을 노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난해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나포된 뒤 북한에 전시돼 있는) 푸에블로호에 정밀 타격을 딱 때려서 순간에 박살낼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높은 기술력으로 주변 인명피해도 내지 않고 북한이 놀라게 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푸에블로호는 법적으로 미국 재산이라 북한으로서는 자신들이 공격당했다고 주장할 근거가 비교적 빈약해 공격 대상으로 언급됐다는 해석도 있다.○ 美 “北 열병식 열리지 않길 바란다” ‘코피 터뜨리기’ 전략이 백악관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북한의 향후 군사 도발 여부가 주목되는 가운데 미 국무부는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 전날로 예정된 북한의 열병식에 대해 “열리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미국의소리(VOA)는 스티브 골드스타인 국무부 공공외교정책 차관이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우리와 한국은 북한이 경기 참가를 위해 사람들을 보내기로 합의한 만큼 전 세계 나라들과 선수들을 축하하는 데 함께하길 바란다”며 열병식 개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골드스타인 차관은 올림픽 기간에 서울과 평창 등지에 외교안전 요원 약 100명을 파견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한기재 record@donga.com·주성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 연방의회 하원 본회의장에서 가진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북한 관련 메시지의 대부분을 할애해 북한 정권의 잔학성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1시간 20분여에 걸친 국정연설에서 외교·안보 정책 중 북한 문제에 가장 많은 시간인 약 7분을 할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잔혹한 독재정권보다 자국민을 철저히 야만적으로 억압한 정권은 없었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북한의 무모한 핵미사일 추구가 우리 국토를 곧 위협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의 압박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과 동맹국에 가하는 핵위협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북한 정권의 타락상을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운을 뗀 뒤 6분가량을 할애해 북한의 인권 실태를 거론했다. 그는 북한에 17개월간 억류됐다가 지난해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사례와 북한에서 기차에 치여 두 다리와 팔을 잃은 장애인 탈북자 지성호 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북한 관련 연설 32문장 중 지 씨에게 18문장이, 웜비어에게 9문장이 할애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대북 제재는 물론이고 북한에 대해 미국이 기대하는 주문사항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은 “트럼프는 가장 주목받는 국정연설에서 외교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타락한 김정은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부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진보적 온라인 언론 ‘복스’는 “이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가장 무서운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을 인류의 적이자 그리스도의 적인 국가로 묘사하고, 국민을 학대하는 정부가 핵무기로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고 호소한 수법은 2003년 이라크전쟁을 앞둔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2002년 국정연설에서 했던 방식과 똑같다는 것이다.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주성하 기자}

“당신의 위대한 희생은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준다. 성호의 이야기는 자유롭게 살려는 모든 인간의 열망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고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국정연설 중 이 말과 함께 관중석을 가리켰다. 양복 차림에 안경을 쓰고, 눈물을 글썽이며 앉아 있던 남성이 일어나 목발을 번쩍 치켜들고 흔들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연설장에 입장한 모든 사람이 일어서 함께 박수를 보냈다. 박수는 무려 40초 동안이나 이어졌다. 박수를 받은 주인공은 탈북 장애인 지성호 씨(36).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장기간 억류됐다가 지난해 미국으로 송환된 직후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을 거론한 뒤 “끝으로 북한 정권의 불길한 본성에 대한 증인이 한 명 더 우리와 함께 있다. 그의 이름은 지성호이다”라고 소개했다. 지 씨는 백악관의 초청으로 지난달 28일 미국으로 떠났다. 지 씨의 지인은 “3, 4일간 전화를 꺼둘 것이란 언질을 미리 받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국정연설에 등장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탈북 과정도 자세히 소개했다. 1996년 굶주린 소년이었던 성호는 어느 날 철로에서 석탄을 훔쳐 음식과 바꾸려다 배고파 정신을 잃고 쓰러져 기차에 치였다. 이후 그는 마취제도 없이 여러 차례 팔다리 절단 수술을 견뎌냈다. 먹을 것을 찾아 중국으로 넘어갔다 온 뒤 북한에서 고문을 당했고, 보위부는 그가 기독교인을 만난 적이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결국 그는 자유를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수천 마일을 이동했다. 목발을 짚은 채였다. 그의 아버지는 탈출하려다 붙잡혀 고문을 받던 중 사망했다. 성호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한 뒤 박수를 유도한 트럼프 대통령은 “약 250년 전에 미국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곳을 만든 것이 바로 자유를 향한 열망이다”라며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 씨에 대한 언급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북한에 억류됐다가 숨진 웜비어의 부모와 형제자매를 소개하며 “당신들은 우리 세계를 향한 위협에 대한 강력한 증인이며 당신의 힘은 우리 모두를 고무케 한다. 오늘밤 우리는 ‘미국의 결의’로 오토를 예우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475개 단어를 할애했다. 취임 첫해 자신의 주요 업적으로 내세우는 이슬람국가(IS) 소탕과 관련해 302개 단어를 언급한 것보다 훨씬 많았다. 이란에 대해 48개 단어, 아프가니스탄에 34개 단어를 할당한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과거의 경험은 자만과 양보가 침략과 도발을 불러올 뿐이라는 교훈을 줬다. 나는 우리를 이렇게 위험한 지경에 빠뜨린 전임 행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자신의 인내심이 소진되고 있음을 시사한 대목으로 풀이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방 전쟁(preventive war)’을 진지하게 고려 중임을 시사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평화운동단체 위민크로스DMZ의 크리스틴 안 창립자는 타임에 “트럼프의 연설은 북한 주민을 ‘해방’시키기 위한 미국의 예방 전쟁의 도덕적 논거를 세우려고 했다”며 “이번 연설은 2002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했던 ‘악의 축’ 국정연설과 매우 유사하다”는 해석을 내놨다. 인터넷매체 복스 역시 “적을 문명의 악으로 규정하고, 우리의 안전과 인류의 미래를 위해선 적이 패배해야 한다는 논리는 미국 대통령들이 전쟁을 팔아 왔던 방식”이라며 “부시가 후세인을 언급한 것과 같은 논리로 트럼프가 북한을 묘사한 것은 우려할 만한 경고 신호”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시사지 애틀랜틱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을 바란다면 인권에 대한 언급은 역효과를 초래하겠지만 그는 김정은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부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국정연설의 내용과 빅터 차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의 막판 낙마는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석했다. 국정연설에서 웜비어와 지 씨 사례를 언급한 것은 도덕적 분노를 야기해 대북 군사 공격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어 “트럼프의 국정연설은 최소한 군사작전 논의가 이제 의회로 넘어갔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지난 20여 년간 미국 여자 체조 국가대표팀을 거쳐 간 선수 160여 명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저질러 미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55)가 24일 최장 징역 175년형을 선고받았다. 미시간주 랜싱법원의 로즈메리 아킬리나 판사는 이날 판결문에서 “당신에게 선고를 내릴 수 있어 자랑스럽다. 당신은 다시는 감옥 밖으로 걸어 나가선 안 된다”고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나는 당신의 사형집행 영장에 서명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사르는 이미 지난해 12월 아동 포르노 소지 혐의로 60년형을 선고받았다. 아킬리나 판사는 이날 성범죄 혐의 등으로 175년형을 선고하면서, 가석방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최소 의무 복역 기간을 40년으로 명시했다. 즉 나사르가 가석방 신청을 하려면 60년형과 40년형을 더해 100년을 채우는 2117년(154세)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175년형은 판결 가이드라인에 따른 최대치라고 미 언론은 전했다. 나사르는 선고에 앞서 “나로서는 일어난 일들에 대해 어떻게 죄송하다고 해야 할지 그 깊이와 넓이를 표현할 말이 없다”고 사죄했다. 하지만 아킬리나 판사는 그가 자신에게 보낸, 피해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취지의 편지를 내던지며 “이것이 당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모른다는 증거다. 당신에게는 (치료를 위해) 내 애견도 보내지 않겠다”고 일갈했다. 선고에 앞서 7일간이나 열린 피해자 증언 때 희생양이 됐던 여성 156명이 한 명씩 나와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증언했다. 올림픽 금메달을 몇 개씩 걸었던 스타들도 수치심을 이겨내고 법정에 나와 나사르의 추악한 범행을 생생하게 폭로했다.○ 다정한 선생님 가면을 쓴 악마 나사르는 왜소한 체격에 소심한 인상을 가진, 다정다감하고 일에 열정적인 의사였다. 나사르는 1986년부터 2015년까지 국가대표 여자 체조팀 주치의로 일했고, 올림픽도 4차례나 참가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벗겨진 가면 뒤에는 추악함이 흘러넘쳤다. 나사르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 대부분은 10대 미성년자였다. 가장 나이 어린 소녀는 6세였다. 심지어 선수의 부모가 방에 함께 있는 상황에서도 대담하게 성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6년 피해자들 중 가장 먼저 나사르를 고발한 레이철 덴홀랜더는 “2000년 등이 아파 그를 찾아갔는데, 그는 가슴 등을 더듬었고 속옷을 벗겼다”며 “당시 나는 15세였다”고 말했다. 수년 전 피해를 당한 에밀리 모랄레스(18)는 “그는 내 엉덩이에 젤을 바르고, 장갑을 끼지 않은 다른 손으로 날 추행했다”고 폭로했다. 나사르는 심리 조작에 뛰어났다. 힘들고 지치고, 때로는 다쳐 외로운 소녀들에게 ‘너희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고 아픈 몸을 낫게 해줄 사람은 나뿐이다. 나를 친구로 믿고 모든 것을 맡기면 된다’고 세뇌시켰다. 실제로 일부 선수들은 그를 ‘누구도 낫게 할 수 있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miracle worker)’으로 여기고 치료를 받으러 찾아가기도 했다. 나사르는 척추를 치료해 준다며 민감한 부위를 만지고, 심리를 치료한다며 구강성교를 강요했으며, 반항이 없으면 성폭행으로 이어갔다. 이렇게 심리를 길들인 뒤 몇 년 동안 학대를 지속했고, 20여 년 동안 대표팀을 거쳐 간 10대 소녀들에게 똑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덴홀랜더는 “나사르는 가장 위험한 종류의 학대자다. 냉정하게 계산된 방법으로 피해자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린아이들을 꾸준히 추행할 수 있도록 고의적으로 건전하고 따뜻한 겉모습을 보여 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사르가 체포된 뒤 그의 집에선 3만7000개의 아동 포르노와 사진이 나왔다.○ 수치심을 떨쳐낸 용기와 동참 나사르에게 사실상 종신형을 선고한 아킬리나 판사는 재판 뒤 법정에서 내려가 덴홀랜더를 꼭 껴안고 “당신은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용감한 사람”이라고 격려했다. 선수 은퇴 뒤 변호사가 된 덴홀랜더가 용기를 내 나사르를 고발하지 않았다면 그의 범죄는 영영 묻혔을지도 모른다. 피해자들이 수치심 때문에 입을 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덴홀랜더가 2016년 첫 폭로를 한 이후 한 명 한 명씩 동참했다. 특히 지난해 미국을 휩쓸었던 할리우드발 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의 영향으로 폭로자들이 늘어나면서 나사르가 결국 단죄를 받게 됐다. 나사르에 대한 피해자 증언에 80여 명이 나설 것이란 예상을 깨고 무려 156명이 증언대에 섰다. 덴홀랜더의 용기가 성폭력 후유증으로 불안과 우울, 자기학대에 시달리던 여성들을 세상 밖에 나설 수 있게 한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3개나 목에 걸었던 체조 스타 앨리 레이즈먼은 법정에 나와 나사르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그 오랜 기간 비정하게 학대했던 우리는 이제 힘을 가졌다.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상황은 역전됐고 우리가 여기 있다. 우리는 목소리를 갖고 있고,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나사르가 부교수로 일했던 미시간주립대 루 애나 사이먼 총장이 사퇴하고, 체조협회 고위급 인물도 대거 사임했다. 앞으로 체조계에서 비슷한 폭로가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미국 인디애나주 지역지인 인디스타는 지난해 12월 “미국 전역에서 지난 20년간 368명의 체조 선수가 코치 등 관계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주성하 zsh75@donga.com·위은지 기자}

29999호. 오늘자 동아일보 지령(紙齡) 번호다. 내일(26일)이면 지령 3만 호다. 2만 호 발행이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6년 10월 1일이었으니 3만 호 발행까지 31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이 기간은 내가 철들어 살아온 시대와 일치한다. 지령 3만 호를 맞아 동아일보에는 ‘나와 동아일보’라는 연재 시리즈가 게재되고 있다. 주로 한국 명사들의 추억담이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남쪽에서만 영향을 미쳤던 게 아니다. 동아일보는 북에서 자란 나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나는 다행히 노동신문을 구독하는 집에서 자랐다. 노동신문은 누구나 구독할 수 없고 일정한 직책이 있어야 당에서 구독을 허락하는 신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노동신문을 정독했는데 5면이 남조선 면이다. 1980년대 남조선 면엔 늘 각종 시위 소식이 실리곤 했다. 이 지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신문이 동아일보였다. 북한 당국도 나름 공신력을 증명하려 했던지 ‘동아일보에 따르면…’이라는 리드로 남조선 소식을 보도했다. 최근 영화 ‘1987’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1987년 노동신문도 남조선 소식을 연일 신이 나서 보도했다.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숨졌다는 동아일보의 특종 보도에 이어 6월 민주항쟁의 생생한 장면까지, 불의에 굽히지 않은 동아일보의 용기는 노동신문에 그대로 옮겨졌다. 최루탄으로 뿌연 서울의 거리와 곤봉을 휘두르는 백골단의 사진으로 도배하던 노동신문은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라는 김중배 당시 동아일보 논설위원의 명칼럼도 인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나는 여러 대학에서 벌어지는 시위 중계 보도를 보면서 “남조선에서 제일 좋은 대학은 어느 대학일까” 하고 궁금해 하기도 했다. 노동신문은 가끔 독재정권의 언론 탄압을 비판하는 백서도 실었는데 이때마다 동아일보의 백지광고 사태도 빠짐없이 거론됐다. 1992년부터 발간된 김일성 회고록에도 동아일보는 자주 거론됐다.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까지 회고록에서 동아일보는 19번이나 거론됐다. 김일성은 동아일보를 매우 호의적으로 서술했다. 가령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을 소개하며 “우리 부대의 모든 대원은 ‘동아일보’ 편집 집단이 취한 애국애족적인 입장과 용단에 열렬한 지지와 연대성을 보내었다”고 추억하는 식이다. 북한은 창작의 자유가 극히 제한됐지만 남쪽을 소재로 한 작품은 자주 나왔다. 그런데 여기엔 기자가 많이 등장한다. 숨기는 진실을 폭로하며 권력과 싸우는 정의로운 인물을 설정하기엔 기자란 직업이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1990년대 초반의 한 소설은 새벽까지 과음하고 늦잠을 잔 기자가 여유롭게 출입처로 출근해 당국자들을 만나 진실을 캐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그때 ‘남쪽 기자들은 늦잠 잘 때도 있고, 아무 데나 들어가 자유롭게 누구와도 만나도 되는구나’ 싶어서 한국의 기자 생활을 부럽게 상상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성(性)고문 사건을 폭로했는데, 나는 당연히 그가 동아일보 기자였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북한에서 성장한 내가 서울에 와서 동아일보 기자가 된 것은 확률로 설명하긴 어려운 기적이었다. 발령받은 첫 부서의 차장석엔 ‘새벽까지 과음하고 오전 늦게 출입처에 나갔다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대특종을 했던’ 선배가 앉아 있었다. 어느덧 남쪽에 와서 기자가 된 지 16년째를 맞았다. 후회 없는 삶이었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탈북해 와도 동아일보 기자를 할 것이다. 동아일보에 대한 북한의 ‘짝사랑’이 싸늘하게 식은 지 오래다. 걸핏하면 동아일보의 보도가 입맛에 맞지 않다고 삿대질을 하곤 한다. 하지만 저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제 통치와 독재정권하에서 목숨 걸고 기개를 지켰던 ‘100년 언론의 전통’이 그 정도의 협박 따위에 무너질 일이 절대 없다는 것을. 북한이 3대 세습 독재를 이어가고 핵과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는 한 좋은 평가를 받는 일도 없을 것이란 것을. 1986년 동아일보 창간 2만 호엔 3만 호가 발행되는 30여 년 뒤의 세상을 예측한 특집 기사가 있다. 첫 번째 예측은 “최소한 남북 간 왕래가 자유롭고 무역거래도 활발해지는 민족적 통일은 이루어질 것”이란 전망이었다. 빗나갔다. 동아일보가 4만 호를 발행하려면 30여 년이 더 흘러야 한다. 내 기명 기사는 아마도 제호 3만 몇 번째에서 끝나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3만 호’를 맞이하는 지금, 나의 최대 소원은 북한 사람들이 내가 쓴 기사를 직접 읽는 날을 보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까지 내가 원했던 일은 거의 이뤄졌다. 동아일보에 통일의 벅찬 감동을 전하는 나의 기사가 실릴 날도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베트남 법원이 떠오르는 스타였던 정치국원에게 13년형을 선고했다. 베트남 당국은 ‘적폐청산’이라고 주장하지만, 외신들은 적폐청산을 내건 정적 제거라고 평가하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하노이인민법원은 22일 딘라탕 전 공산당 정치국원 겸 호찌민시 당 서기장(57)에게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그는 국영 석유가스공사(페트로베트남)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하던 2009∼2011년 경영 부실과 비위로 손실을 끼친 것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탕 전 서기장은 이사회 의장 이후 교통부 장관으로 영전했으며 작년 초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지도부(전체 19명)인 정치국원에 임명됐다. 또 베트남 최대 도시 호찌민의 당 서기장까지 겸직하며 떠오르는 스타로 주목을 받아 왔다. 하지만 2년 전 응우옌푸쫑 공산당 서기장이 이끄는 공산당 보수파가 정치국을 장악한 뒤 상황이 급반전했다. 탕 전 서기장은 지난해 5월 공산당 회의에서 부패 혐의로 해임됐다. 최고지도부의 일원인 현직 정치국원이 해임된 것은 20여 년 만에 처음이며, 1986년 개혁개방 이후 두 번째다. 이후 탕 전 서기장은 페트로베트남 자회사인 페트로베트남건설의 찐쑤언타인 전 회장 등 22명과 함께 재판을 받았다. 독일로 도피했던 타인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베를린의 한 동물원에서 베트남 정보요원에게 납치돼 송환됐으며, 22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탕 전 서기장과 타인 전 회장은 고의로 베트남 경제 규제 등 법을 위반하고 페트로베트남을 통해 지열 발전소에 투자하면서 국가에 1190억 동(약 56억 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법정에 섰다. 탕 전 서기장은 최후 진술에서 “죽기 전에는 감옥 밖으로 나오고 싶다. 내 집에서 가족들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호소했고 이 영상은 베트남 국영 방송을 통해 전역에 방영됐다. 같은 날 페트로베트남과 관련된 각종 비리로 기소된 22명에게는 3∼9년형이 선고됐다. 베트남 공산당과 정부는 작년부터 적폐 청산을 주장하며 부패 관련자들을 엄중히 처벌하고 있다. 하지만 BBC 등 외신들은 쫑 서기장이 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정적을 숙청해 권력 기반 강화를 노린다고 분석했다. 전임 응우옌떤중 전 총리는 2006년부터 10년간 행정부를 이끌며 외국인 투자 유치 확대 등 대외 개방을 통한 경제 성장 정책을 주도했지만 국영 기업의 방만 경영과 부실·비리, 부패 확산에 책임이 있다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다. 중 전 총리는 2016년 전당대회에서 연임을 노리는 쫑 서기장에게 맞서 서기장 직에 도전했다가 중도 포기하는 등 여전히 정치적 파워가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이번 재판을 놓고 쫑 서기장이 중 전 총리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탕 전 서기장을 제거해 경고를 보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날 수감된 탕 전 서기장은 지난해 5월 해임 직전 삼성 롯데 한화 CJ 등 국내 대기업 7곳의 오너와 서울에서 만났고, 경북도를 방문하는 등 한국과도 친분이 있는 인물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한국이 17년 넘는 연구를 거치면서도 실패한 차세대 보병용 복합소총을 중국은 이미 전력화해 5만 명 특수전 병력에 전량 보급한 것으로 알려졌다.중국육군망은 22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이달 초 군복을 입고 중부전구(戰區)의 한 부대를 시찰하면서 한 개인용 화기를 시험해보고 있는 장면을 공개했다. ‘전략소총’으로 소개됐지만, 외형상 돌격용 소총과 유탄발사기를 결합한 복합소총으로 보인다. 중국에선 이 소총을 ‘QTS-11’라고 부른다. 한국군이 개발한 복합소총 K-11과 이름은 물론 외형도 비슷하다. 현지 언론에 소개된 이 소총은 무게 5㎏에 5.8㎜ 구경의 소총탄과 20㎜ 공중폭발탄을 장전한다. 소총으로 800m 이내의 목표에 대해 유효 사격을 가할 수 있고, 유탄의 유효 사거리는 200m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총에는 열 추적기, 광전기 시스템, 레이저 거리측정기, 위성항법장치, 디지털정보시스템 등을 추가해 장착할 수 있다.한국의 K-11보다 무게는 가볍다. 한국의 K-11 역시 5.56㎜탄과 20㎜ 공중폭발탄을 사용하지만 무게는 6.1㎏으로 더 나간다. 다만 중국의 복합소총에 레이저 측정기 등을 모두 장착하면 몇 ㎏이 더 늘어날지 알 수는 없다. 한국군의 돌격소총은 이런 장비들이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다.제일 큰 차이는 중국은 이미 실전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홍콩 군사전문가 량궈량(梁國樑)은 “이 같은 전략소총이 이미 육군 13개 집단군의 특전여단 3만¤4만 명에 공중돌격여단, 공군 공수여단까지 합해 총 5만 명의 병력에 지급됐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중국은 이 총을 10여 년의 연구를 거쳐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복합소총 연구에는 한국이 더 먼저 뛰어들었다. 국방과학연구소 주도하에 S&T대우, 이오시스템, 풍산, 한화 등 국내방위산업체들이 개발에 참여했다. 2000년대부터 개발을 시작하여 2005년 11월 실물 크기의 모형을 공개했고, 2008년 7월 시제품을 제작해 전투용으로 적합 판정을 받았다. 복합형소총 실전배치를 2011년 4월로 예정했으나, 사격통제장치 불량문제로 그 도입 시기가 계속 늦춰지고 있다.미국도 복합형소총(OICW: Objective Individual Combat Weapon) 개발에 한국보다 먼저 뛰어들었지만, 아직 실전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몇 개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중국은 세계 최초로 차기 보병용 복합소총을 실전배치한 국가가 된다. 물론 중국의 QTS-11의 성능과 고장률 등은 공개된 바가 없다.중국의 복합형 소총은 가격이 매우 비싼 것이 흠이다. 량궈량은 “QTS-11은 스마트 소총으로 설계, 용접, 연삭 모두 사람 손으로 완성해야 하고 일일이 검측 시험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제조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군이 운용 중인 최고가 보병 무기인 JS7.62㎜ 저격용 소총의 제조가가 27만 위안인 것과 비교하면 QTS-11은 최소 50만 위안(약 8345만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스마트 작전복과 센서, 위치 헬멧 등까지 합하면 군인 한 명당 100만 위안(약 1억 6700만원) 가치의 장비를 지니게 된다. 반면 한국의 K-11은 1정당 약 1,600만 원으로 책정됐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요리계의 교황’으로 불리던 프랑스의 전설적 셰프 폴 보퀴즈(사진)가 20일(현지 시간) 9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보퀴즈는 프랑스 요리를 바꾼 대표적인 인물이다. 프랑스 전역의 주방에서 요리사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그의 영면을 애도했다. 보퀴즈는 프랑스 남동부 리옹 인근에서 ‘폴 보퀴즈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로 일했다. 이 식당은 1965년 미슐랭 가이드 별 3개 등급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이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보퀴즈는 버터와 크림, 고기 등 무거운 재료 중심의 전통적인 프랑스 요리에서 벗어나 채소 사용을 늘리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데 집중한 조리법 ‘누벨 퀴진’ 운동을 선도해 명성을 쌓았다. 보퀴즈는 농어의 파이요리를 처음 만들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1975년 요리인 최초로 레종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을 받았다. 그는 또 디저트 요리 ‘크렘 브륄레’의 고안자로도 유명하다. 보퀴즈는 미식 평론지 고미유(1989년)와 미국 CIA 요리학교(2011년)가 선정한 ‘세기의 요리사’에 뽑히기도 했다. 음식 평론가 프랑수아 사이먼은 “그는 프랑스 미식을 대표하는 인사였고, 요리계의 샤를 드골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명성을 바탕으로 그의 요리는 프랑스 지도자와 프랑스를 방문한 국빈들의 식탁에 자주 올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