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

이설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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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설 기자입니다.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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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2~2026-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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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명상 효과…‘사운드 힐링’이 뜬다

    ‘딩 딩 댕 딩 댕….’ 8일 서울 강남구 디지바이브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묘한 소리가 심장을 울렸다. 양반다리로 앉은 남녀 다섯이 솥뚜껑처럼 생긴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터치감이 중요합니다. 구석구석 두드리며 소리를 느껴보세요.” 디지바이브 대표이자 핸드팬 연주자인 조현 씨(34)가 말했다. 이날 수업은 ‘사운드 힐링(Sound Healing)’. 스위스에서 2000년에 처음 만들어진 뒤 유럽 인도를 거쳐 2014년 국내에 도입된 ‘핸드팬’을 가르친다. 조 씨는 “지난해 봄부터 부쩍 수강 문의가 늘었다.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고 했다. 수강생인 김민정 씨(38)는 핸드팬의 매력을 “공명하는 음색이 몽환적이면서 편안하다. 손으로 두드리는 타악기라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적”이라 설명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사운드 힐링’이 주목받고 있다. 소리를 이용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다스리는 프로그램을 뜻한다. ‘힐링 악기’를 비롯해 요가·명상과 결합한 프로그램, 사운드 테라피(스파) 등이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한동안 유행했던 ‘컬러 힐링’이 ‘사운드’에 자리를 내주는 모양새다. 특히 힐링 악기는 ‘힙’한 이미지로 젊은층을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핸드팬을 시작으로 디저리두, 칼림바, 싱잉볼, 인디안 플룻 등 다양한 악기로 관심이 옮겨 붙었다. 지난해 말에는 처음으로 국내 핸드팬 제작업체도 문을 열었다. 서울 마포구 나모리 젬베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디저리두 오픈 클래스 등 관련 강좌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젠테라피 네츄럴 힐링센터. 명상을 하려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이곳에 수강생 11명이 눈을 감고 바닥에 누웠다. 강사인 천시아 씨가 작은 사발인 ‘싱잉볼’을 두드리자 강의실 전체가 진동으로 울렸다. 이어 ‘오션 드럼’을 흔들자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났다. 소리로 샤워를 하면서 묵은 감정을 떨쳐내는 ‘사운드 배스(bath)’ 수업이다. 천 씨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완과 명상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간편하고 쉬운 힐링을 원하는 이들이 프로그램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수업에 참여한 한모 씨(36)는 “평소 불면증으로 고생해 생각을 덜어내려고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요가·명상 분야에서도 사운드 힐링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최근 명상 인구가 늘면서 업계에서는 소리로 간편하게 명상에 입문할 수 있는 사운드 힐링에 눈을 돌리고 있다. 물 속에서 진동을 경험하는 독일의 대표적인 사운드힐링 프로그램 ‘페터 헤스’를 소개하는 기관도 등장했다. 크기가 작은 악기를 들고 다니며 나홀로 힐링을 즐기기도 한다. ‘사운드 테라피’(스파)도 인기의 한 축을 담당한다. 서울 종로구 크리스탈환타지에서는 소리굽쇠인 튜닝포크를 이용해 테라피를 진행한다. 러쉬 스파에서는 귀에 꽂는 이어 캔들과 튜닝포크를 이용한 ‘더 사운드 배스’를 받을 수 있다. 윤예진 러쉬코리아 홍보 담당자는 “싱잉볼 음악을 배경으로 지압 없이 소리와 진동만으로 테라피를 진행한다.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리는 고객에게 인기가 좋다”고 설명했다. 왜 소리일까.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소리는 인간 감정의 고양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며 “치유와 내면의 평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편안한 소리에 대한 재발견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중론도 나온다. 명상 강사인 김현경(35) 씨는 “나에게 맞는 소리가 따로 있다”며 “여러 악기와 분야를 체험한 뒤 내게 맞는 주파수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시간 비용 거리의 압박으로 ‘사운드 힐링’을 진행하는 외부기관을 찾기 힘들다면? 책과 동영상,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활용하면 된다. 이론만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1일 클래스로 실전을 병행할 수 있다. △책=전반적 개념을 잡기에 적당하다. 사운드 힐링을 다룬 책으로는 ‘사운드 힐링 파워’(젠북) ‘싱잉볼 명상’(젠북) ‘마이 네이처 사운드 테라피’(내소리연구회) 등이 있다. ‘사운드…’는 사운드힐링 개념을 서양에 처음 도입한 암전문의인 저자가 싱잉볼을 이용한 다양한 임상 사례를 전한다. ‘싱잉볼…’은 초보자용 실전 가이드북에 가깝다. 싱잉볼의 종류와 관리법, 명상법 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동영상=유튜브에서 ‘힐링사운드’ ‘힐링음악’ ‘자연의소리’를 최대 4시간씩 들려주는 동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양한 사물을 활용해 소리를 빚은 ‘DIY사운드’와 ASMR(자율 감각 쾌락 반응)도 인기. 소리와 명상법을 알려주는 채널도 다양하다. ‘정민마인드풀TV’는 싱잉볼, 자연의 소리, 무음 등을 배경으로 명상을 안내하는 영상으로 인기가 높다. △애플리케이션=무료 명상 음악 앱이 다수 출시돼 있다. ‘사운드 힐링’ ‘슬리포’ 등이 대표적. 특히 ‘사운드…’에서는 최근 유행하는 싱잉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랑해 명상’ 앱은 명상 초보들에게 적합하다. 버튼을 누르면 ‘세상은 당신이 원하는 모두를 이루고자 조력하기 시작한다’ 같은 명상 메시지가 뜨면서 5분 간 음악이 흐른다. ‘포레스트 사운드’ 앱은 수준 높은 소리와 이미지를 함께 제공한다. ‘마인드 브리딩’은 호흡법을 알려주는 앱이다. △명상 프로그램=1일 수업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관심 있는 악기 이름이나 ‘사운드 힐링’ ‘사운드 테라피’로 검색하면 강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제주도나 강원도 등 휴양지 숲에서 힐링 악기를 연주하는 트래킹 프로그램과 같은 독특한 프로그램이 다수 있다. 이설기자 snow@donga.com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19-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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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이승과 저승의 경계… 그 틈에서 살아가는 비루한 인생

    비극을 초단위로 부숴 쌓아올린 소설이다. 낱낱이 해부된 비극의 조각들이 페이지마다 아프게 밟힌다. 배경은 우주의 중심인 ‘태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이자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공간이다. 폴란드 작가인 저자는 태고를 터전으로 삼은 이들의 비루한 일생을 고집스레 뒤쫓는다. 그리고 거듭해 묻는다. ‘신은 존재하는가’ ‘운명은 누가 결정하느냐’라고. 짤막한 분량의 조각글 84편이 하나의 이야기를 향해 전진한다. 각 조각글에는 ‘○○의 시간’이란 머리글이 달렸다. 남편이 전쟁에 나간 사이 새파란 청년에게 설렘을 느끼는 게노베파의 시간, 딸과 결혼을 약속한 남자를 질투하는 미하우의 시간, 경험한 모든 선과 악을 체화하는 크워스카의 시간…. 이웃 격인 이들의 시간은 얽히고설켜 거미줄 같은 관계를 형성한다. 크워스카의 딸 루타는 게노베파의 아들과 비밀을 공유하고, 게노베파의 딸과 보시키 영감의 아들은 사랑에 빠진다. 크워스카는 느닷없이 광기에 사로잡힌 플로렌틴카의 딸이 되길 청한다. 이런 복잡한 관계는 진창 같은 현실에서 기댈 곳은 서로의 어깨뿐이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인간 심연을 꿰뚫는 작가의 시선은 3대에 걸친 서사를 비범의 영역으로 이끈다. “총을 쏜 건 그들이 아니었다. 낯선 나라에서 느끼는 공포와 고향을 향한 향수가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하늘이 마치 통조림통의 뚜껑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 신이 사람들을 가두어놓은 것만 같았다.” “신은 여섯 번째 세계를 우연히 창조하고는 떠나버렸다. … 홀로 내팽개쳐진 여섯 번째 세상은 그리하여 스스로 창조를 시작했다.” ‘방랑자들’로 지난해 맨부커상을 수상한 올가 토카르축의 첫 국내 출간 장편소설이다. 유대인 학살과 1·2차 세계대전, 냉전체제 등 폴란드를 훑고 간 역사적 비극을 곳곳에 배치했다. 환상 문학과 다큐멘터리의 중간 지점에서 실재보다 더 생생하게 현실을 구현했다. 책장을 덮고 나면 온 세상이 새로워 보이는 착각마저 든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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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폭력 문제,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하죠?

    죽음 장애인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소수자 문제…. 최근 그림책 시장이 성숙하면서 사회문제를 다룬 ‘다크 그림책’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죽음을 다룬 ‘3일 더 사는 선물’(씨드북), 장애인 인권을 들여다본 ‘내가 개였을 때’(씨드북), 성소수자를 그린 ‘첫사랑’(움직씨)과 ‘사랑에 빠진 토끼’(비룡소), 가정폭력 문제를 짚은 ‘아빠의 술친구’(씨드북) 등이 대표적이다. 자녀들에게 이러한 책을 읽게 하는 대다수 부모들은 어려서부터 약자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걸 반기면서도 수위 조절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낯선 세계를 접한 뒤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아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해훈 이안아동발달연구소 소장, 남영하 씨드북 대표, 정해심 카모메 그림책방 대표 등 전문가들에게 ‘다크 그림책’의 올바른 독서 지도법을 물었다. ―죽음에 대한 책을 접한 뒤 자꾸 “엄마도 죽어요?” “죽으면 해골이 되나요?”라며 불안해한다. “아이마다 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제각각이다. 쉽게 불안을 느끼는 유아의 최대 관심사는 ‘엄마가 언제까지 내 옆에 있을 것인가’다.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굳이 강조하기보다는 ‘언젠가 헤어질 테지만 건강에 신경을 써서 오래오래 곁에 있어줄게’라는 설명 정도가 적당하다.”(최해훈 소장) “비유적인 표현보다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생에서의 완전한 이별을 뜻한다. 목숨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간다’고 알려줘도 아이들은 잘 받아들인다. 초중등 과정에서 세부 내용이 연계되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남영하 대표) ―가정·학교폭력을 다룬 책은 당사자와 제3자의 경우 접근법을 달리해야 할 것 같은데…. “폭력의 피해자라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문학적으로 내용을 함축한 책이라도 성급하게 책을 보여줘선 안 된다. 아이가 트라우마를 내적으로 극복한 뒤에 보여주는 게 좋다.”(정해심 대표) “제3자인 아이들도 부모가 자녀를 학대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정환경이 있는데, 너와 달리 어려움을 겪는 친구도 있다. 그 친구들도 같이 행복하고 즐거운 게 좋지 않겠느냐. 혼나는 친구가 있으면 알려 달라’는 식으로 얘기해준다.”(남영하 대표) ―성소수자를 다룬 책에 대한 부모들의 반응이 엇갈린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성소수자 문제를 인터넷 등을 통해 자연스레 알게 된다. 왜곡된 형태로 접하는 것보다 정제된 그림책으로 학습하는 게 낫다고 본다.”(최해훈 소장) “그림책의 1차 소비자는 부모인데, 관련 책에 구매 수요는 아직 적은 편이다. 어릴 때 동성친구에게 호감을 느낀 경험이 한두 번씩 있잖나. 아이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일 거라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정해심 대표) ―장애인 관련 책을 읽으며 ‘우리도 사고를 겪으면 장애인이 될 수 있다’고 했더니 아이가 며칠간 불안해하더라. “장애 이웃의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려는 의도는 좋다. 하지만 성향에 따라 직접 설명은 위협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피하는 게 좋다.”(최해훈 소장) ―7세 여아가 파랑은 남자색이라며 질색한다. “또래 문화다. 커가면서 스스로 생각을 깨칠 거다. ‘그래,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넘어가길 권한다. 정색하고 강요하면 아이가 반감을 느낄 수 있다.”(남영하 대표)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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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도 죽어요? 해골 되나요?”…‘다크 그림책’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죽음 장애인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소수자 문제…. 최근 그림책 시장이 성숙하면서 사회문제를 다룬 ‘다크 그림책’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죽음을 다룬 ‘3일 더 사는 선물’(씨드북), 장애인 인권을 들여다본 ‘내가 개였을 때’(씨드북), 성소수자를 그린 ‘첫사랑’(움직씨)과 ‘사랑에 빠진 토끼’(비룡소), 가정폭력 문제를 짚은 ‘아빠의 술친구’(씨드북) 등이 대표적이다. 자녀들에게 이러한 책을 읽게 하는 대다수 부모들은 어려서부터 약자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걸 반기면서도 수위조절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낯선 세계를 접한 뒤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아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해훈 이안아동발달연구소 소장, 남영하 씨드북 대표, 정해심 카모메 그림책방 대표 등 전문가들에게 ‘다크 그림책’의 올바른 독서 지도법을 물었다. ―죽음에 대한 책을 접한 뒤 자꾸 “엄마도 죽어요?” “죽으면 해골이 되나요?”라며 불안해한다. “아이마다 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제각각이다. 쉽게 불안을 느끼는 유아의 최대 관심사는 ‘엄마가 언제까지 내 옆에 있을 것인가’다.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굳이 강조하기보다는 ‘언젠가 헤어질 테지만 건강에 신경을 써서 오래오래 곁에 있어줄게’라는 설명 정도가 적당하다.”(최해훈 소장) “비유적인 표현보다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생에서의 완전한 이별을 뜻한다. 목숨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간다’고 알려줘도 아이들은 잘 받아들인다. 초중등 과정에서 세부 내용이 연계되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남영하 대표) ―가정·학교폭력을 다룬 책은 당사자와 제3자의 경우 접근법을 달리해야 할 것 같은데. “폭력의 피해자라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문학적으로 내용을 함축한 책이라도 성급하게 책을 보여줘선 안된다. 아이가 트라우마를 내적으로 극복한 뒤에 보여주는 게 좋다.”(정해심 대표) “제3자인 아이들도 부모가 자녀를 학대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정환경이 있는데, 너와 달리 어려움을 겪는 친구도 있다. 그 친구들도 같이 행복하고 즐거운 게 좋지 않겠느냐. 혼나는 친구가 있으면 알려 달라’는 식으로 얘기해준다.”(남영하 대표) ―성소수자를 다룬 책에 대한 부모들의 반응이 엇갈린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성소수자 문제를 인터넷 등을 통해 자연스레 알게 된다. 왜곡된 형태로 접하는 것보다 정제된 그림책으로 학습하는 게 낫다고 본다.”(최해훈 소장) “그림책의 1차 소비자는 부모인데, 관련 책에 구매수요는 아직 적은 편이다. 어릴 때 동성친구에게 호감을 느낀 경험이 한두 번씩 있잖나. 아이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일 거라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정해심 대표) ―장애인 관련 책을 읽으며 ‘우리도 사고를 겪으면 장애인이 될 수 있다’고 했더니 아이가 며칠간 불안해하더라. “장애 이웃의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려는 의도는 좋다. 하지만 성향에 따라 직접 설명은 위협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피하는 게 좋다.”(최해훈 소장) ―7살 여아가 파랑은 남자색이라며 질색한다. “또래문화다. 커가면서 스스로 생각을 깨칠 거다. ‘그래,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하고 넘어가길 권한다. 정색하고 강요하면 아이가 반감을 느낄 수 있다.”(남영하 대표)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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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행복한 가정 꾸린 순간에 맞닥뜨린 뜻밖의 불행

    무한 반복해 돌려보던 초음파 영상 속 생명체가 품에 안긴다. 뜨끈하고 물컹한 그것이 울음을 터뜨리며 목젖을 파르르 떤다. 부모가 된 이들이 인생의 하이라이트로 꼽는 출산의 순간이다. 주인공 아폴로도 이런 환희의 순간을 맞는다. 아이의 이름은 브라이언. 고된 육아로 인생의 장르가 로맨스에서 어드벤처로 바뀌긴 했지만 그럭저럭 따스한 나날이 이어진다. 그런데 돌연 그는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아내 에마가 생후 6개월 난 아들의 얼굴에 펄펄 끓는 물을 끼얹은 것. “저건 아기가 아니야.” 이 말을 마지막으로 아내는 홀연히 사라진다. 인종 계급 육아 교육…. 소설 앞부분은 현실 문제를 적절한 깊이로 파고들며 흥미를 돋운다. 아폴로는 우간다 출신 이민자 어머니 아래서 성장한다. 네 살 때 사라진 아버지의 부재는 성인이 된 후에도 채울 수 없는 구멍으로 남는다. 독서로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던 그는 고서적 수집상을 직업으로 삼는다. 소설 중반에는 사회문제를 깊이 파고들려는 건가 싶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보낸 6개월은 잠들지 못하고 보내는 3개월과는 확연히 다르다. 일단 정신이 질퍽질퍽해진다.” 아이를 기르는 일의 무게와 육아 분담 문제를 길고 세심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은 이내 환상의 장을 펼치며 반전을 선보인다. “가서 약이나 먹어라”라고 타박했던 에마의 말대로 브라이언은 그들의 아기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제 모든 걸 공유하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 놀이터를 공유하고 몇 시에 나갔는지도.” 온라인에 전시된 아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트롤들이 아기를 바꿔치기한 것이다. 육아는 유년 시절을 한 번 더 겪게 하는 축복 또는 고통이다. 이 지점을 영리하게 포착한 소설이다. 아폴로의 유년시절에 얽힌 비밀과 현재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이야기의 밀도를 더한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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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미호-소복 귀신만 있나요, 단피몽두-야광도 있어요”

    “구미호와 소복 입은 처녀귀신만 있는 게 아닙니다.” 얼굴까지 가리는 모자를 쓴 ‘단피몽두’, 뼈와 살이 까맣게 탄 ‘야광’, 굶주린 채 보자기를 쓰고 다니는 ‘복기’…. ‘한국 괴물 백과’(워크룸프레스·2만2000원)에 등장하는 우리네 괴물은 282종에 이른다.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30일 만난 곽재식 공상과학(SF) 소설가(37·사진)는 “18세기 이전 문헌에 등장한 괴물만 추렸다”며 “아직 소개하지 못한 괴물이 많다”고 했다. ‘한국…’은 입소문을 타고 조용히 인기를 얻고 있다. 1월 넷째 주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출간한 소설보다 ‘핫’한 반응이다. “‘돌풍’까지는 아니고 ‘찻잔 속 태풍’ 정도예요. 최근엔 게임 영화 드라마에서 쉽게 환상의 세계를 접할 수 있잖아요? 괴물을 소비하는 독자층이 예전보다 두꺼워진 것 같습니다.” 책은 사전 형식을 취했다. 실감 나는 괴물 삽화와 함께 짤막한 소개글로 구성됐다. 보는 재미와 소장 욕구를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가 괴물의 세계에 눈뜬 건 2007년이다. 작품 소재를 찾을 겸 과거 문헌을 뒤지다가 하나둘 괴물 자료를 채집하면서 ‘재야의 괴물 박사’로 알려졌다. “드라큘라나 구미호는 식상하잖아요. 다른 한국 괴물들은 알수록 굉장히 신선했어요. 처음 접하는 데다 특징도 뚜렷했죠. 또 문헌에 기록된 내용이라 막연하지 않았어요. ‘영조 때 경복궁에서…’라는 수식어가 붙으니 훨씬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제목과 만듦새는 장난기가 가득하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다. 원전이 분명한 괴물만 택했고, 삽화도 기록에 근거하면서 최소한의 상상력만 더했다. 고려시대 역사서인 ‘고려사절요’, 18세기 이덕무가 쓴 여행기인 ‘가야산기’ 등 200여 권을 참조했다. “매력적인 토종 괴물들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미디어의 틀에 갇히지 않은 원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18세기 이전으로 시기를 제한했죠.”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괴물로는 ‘강철’과 ‘무두귀’를 꼽았다. 대표적인 토종 괴물인 강철은 사자와 용을 섞은 모습에 농사를 망치는 괴물로, 1800년대 후반 들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머리가 없는 귀신인 무두귀는 병자호란 이후 자주 언급됐다. 그는 “강철은 이야기 전승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무두귀는 슬픈 시대상을 반영한다”며 “조상들이 머릿속으로 그린 괴물들로부터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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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디의 우산’ 펴낸 황정은 소설가 “광장에서 목격한 차별-혐오의 기억, 현실감 있게 담아”

    “현실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은 작품입니다.” 황정은 소설가(43)가 4년 반 만에 펴낸 신작 ‘디디의 우산’(창비·1만4000원). 빨간 바탕에 파란 우산이 그려진 표지가 상큼하다. 하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다. 책에 실린 2개의 중편소설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묶는 키워드는 ‘혁명’이다. 두 작품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공간은 ‘광장’이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25일 만난 그는 “광장 이전에는 이야기를 쓰는 재미로 소설을 썼는데 광장에서 타인의 삶들을 목격하면서 서로의 삶이 연결돼 있다는 걸 알았다. 그 경험이 소설에 반영됐다”고 했다. ‘d’에서 광장은 단절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우연히 찾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주인공 d는 차벽에 둘러싸인 채 막막함을 느낀다. 하지만 작가는 d가 그저 체념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d는 오디오의 진공관을 바라보면서 문득 깨닫는다. 광장에서 느낀 진공 역시 빛과 신호로 채워져 있다는 걸. “소설을 쓴 2016년 당시에 ‘혁명의 불가능성’과 ‘돌파의 불가능성’을 많이 생각했어요. d처럼 저 역시 낙담하고 있었죠. 하지만 그 감정이 전부는 아니라고 믿고 싶었어요. 진공관에서 빛을 느끼는 순간(마지막 장면)에 이르려고 소설을 썼습니다.” ‘d’가 혁명의 시작을 말한다면 ‘아무것도…’는 혁명 이후를 논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결정을 받던 날, 주인공인 나는 상념에 빠져든다. 바라던 혁명을 이뤘다고 모두가 환호하는 순간 그가 떠올린 건 배제 혐오 차별의 기억들이다. 1996년 연세대 사태 때 시위대를 연행하던 경찰은 여성들에게 “××는 어떻게 씻었냐. 드러운 ×들”이라 조롱하고, 학교 선배들은 ‘5대 독자’ ‘3대 장손’을 자랑스레 떠벌린다. 구두회사 사무직원으로 일하는 현재의 동료는 나를 ‘K의 작업녀’라 부르며 낄낄댄다. “광장에서도 여러 층위의 배제와 차별을 목격했어요. 우리 사회에 당연시되는 ‘상식’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소수자에 대한 논의가 폭넓고 진지하게 이뤄지길 바랍니다.” 요즘 그의 화두는 가부장제, 여성주의, 장애인 인권 문제다. 약자가 배제된 시스템에 대한 관심은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단다. 그는 어떤 작가를 꿈꿀까. “실재하는 삶을 존중하고 제가 지닌 한 줌 사랑을 유지하는 것. 1순위로 염두에 두는 부분입니다. 제가 경험한 모든 게 소설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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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고상 받은 여성작가 2인, SF 소설 나란히 국내 출간

    독특한 세계관에 현실을 버무린 공상과학(SF) 소설이 나란히 국내에 출간됐다. 아프리카계 미국 작가 N K 제미신의 ‘다섯 번째 계절’(황금가지)과 중국 작가 하오징팡의 ‘고독 깊은 곳’(글항아리)이다. 그간 SF계에선 비주류 대접을 받았던 여성 작가들이 ‘SF의 노벨문학상’인 휴고상을 받은 작품이란 공통점을 지녔다. ‘다섯 번째…’는 전 시리즈가 휴고상을 받은 ‘부서진 대지’ 3부작 중 첫 작품. 배경은 수세기마다 대륙이 완전히 재구성되는 ‘다섯 번째 계절’을 겪는 초대륙이다. 이야기는 에너지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조산력(造山力)’을 지닌 소수종족 ‘오로진’이 이끌어간다. 사회적 핍박을 피해 숨어 살던 오로진 세 여성이 모험을 떠나는 여정과 현실의 인종, 계급 문제가 겹쳐진다. 방대하지만 힘 있는 서사에 치밀한 심리묘사, 매혹적인 문체를 모두 잡은 수작. 이 작품은 2016년 아프리카계 여성의 첫 휴고상 수상으로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인종 역차별 특혜’라는 근거 없는 비난도 없지 않았다. 당시 작가 제미신은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일침을 날렸다. “다른 휴고상 수상자와 마찬가지로 매우, 매우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상을 받았다!” ‘고독…’은 하오징팡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발표한 중단편 소설을 묶었다. 휴고상 수상작인 ‘접는 도시’를 비롯해 ‘현의 노래’ ‘곡신의 비상’ 등 10개 작품이 실렸다. 대표작 ‘접는 도시’ 배경은 미래의 베이징. 부족한 공간과 자원을 알뜰하게 쓰기 위해 3개의 계층이 돌아가며 도시를 이용한다. 상류층인 1공간은 24시간, 중산층인 2공간은 16시간, 최하위층인 3공간은 8시간씩 지표면을 차지한다. 1공간 속 사람들은 조금 일하고 많은 돈을 벌지만, 3공간 사람들은 1공간 사람들이 배출한 쓰레기를 종일 치우고도 쥐꼬리만 한 월급만 손에 쥔다. 계급 불평등의 모습을 시공간의 개념으로 구체화했다. 최하위층 3공간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라오다오가 딸의 유아원 비용을 마련하려고 1공간으로 잠입하는 과정이 소설의 큰 줄기.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있을 법한 미래를 정확한 과학지식과 기발한 상상력, 날카로운 현실인식으로 버무린 점”을 작품의 미덕으로 꼽았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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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F의 노벨문학상’ 휴고상 받은 여성작가 SF소설 국내 출간 눈길

    독특한 세계관에 현실을 버무린 SF(공상과학)소설이 나란히 국내에 출간됐다. 아프리카계 미국 작가 N. K. 제미신의 ‘다섯 번째 계절’(황금가지)과 중국 작가 하오징팡의 ‘고독 깊은 곳’(글항아리)이다. 그간 SF 계에선 비주류 대접을 받았던 여성 작가들이 ‘SF의 노벨문학상’인 휴고상을 받은 작품이란 공통점을 지녔다. ‘다섯 번째…’는 전 시리즈가 휴고상을 받은 ‘부서진 대지’ 3부작 중 첫 작품. 배경은 수세기 마다 대륙이 완전히 재구성되는 ‘다섯 번째 계절’을 겪는 초 대륙. 이야기는 에너지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조산력(造山力)’을 지닌 소수종족 ‘오로진’이 이끌어간다. 사회적 핍박을 피해 숨어 살던 오로진 세 여성이 모험을 떠나는 여정과 현실의 인종, 계급문제가 겹쳐진다. 방대하지만 힘 있는 서사에 치밀한 심리묘사, 매혹적인 문체를 모두 잡은 수작. 이 작품은 2016년 아프리카계 여성의 첫 휴고상 수상으로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인종 역차별 특혜’라는 근거 없는 비난도 없지 않았다. 당시 제미신 작가는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일침을 날렸다. “다른 휴고상 수상자와 마찬가지로 매우, 매우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상을 받았다!” ‘고독…’은 하오징팡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발표한 중단편 소설을 묶었다. 휴고상 수상작인 ‘접는 도시’를 비롯해 ‘현의 노래’ ‘곡신의 비상’ 등 10개 작품이 실렸다. 대표작 ‘접는 도시’ 배경은 미래의 베이징. 부족한 공간과 자원을 알뜰하게 쓰기 위해 ‘공간’이라 부르는 3개의 계층이 돌아가며 도시를 이용한다. 상류층인 1공간은 24시간, 중산층인 2공간은 16시간, 최하위층인 3공간은 8시간씩 지표면을 차지한다. 1공간 속 사람들은 조금 일하고 많은 돈을 벌지만, 3공간 사람들은 1공간 사람들이 배출한 쓰레기를 종일 치우고도 쥐꼬리만한 월급을 손에 쥔다. 계급 불평등의 모습을 시공간의 개념으로 구체화했다. 최하위층 3공간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라오다오가 딸의 유아원 비용을 마련하려 1공간으로 잠입하는 과정이 소설의 큰 줄기.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있을 법한 미래를 정확한 과학지식과 기발한 상상력, 날카로운 현실인식으로 버무린 점”을 작품의 미덕으로 꼽았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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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두 거장의 대담… 문학은 명쾌하고 삶은 깊어졌다

    읽고 쓰는 행위로 존재하는 이들의 ‘말년 대화록’이다. 일본 문학의 거장 오에 겐자부로(84)와 후루이 요시키치(82)가 1993년부터 2015년까지 다섯 차례 만나 나눈 대담을 엮었다. 죽는 날까지 언어 문학과 씨름하는 동년배 작가. 대담은 때때로 자신에게 건네는 밀어처럼 느껴진다. 상대를 향한 존중과 애처로움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각 만남에는 ‘명쾌하며 난해한 말’ ‘100년의 단편소설을 읽다’ ‘시를 읽다, 시간을 바라보다’ ‘말의 우주에서 헤매고, 카오스를 건너다’ ‘문학의 전승’이란 제목이 붙었다. 첫 장은 대화의 형식을 취한 문학 언어에 대한 비평에 가깝다. ‘명쾌한 말이 어떻게 난해해지는가 하면, 말이 그 사람 자신의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오에) ‘소설이라는 것은 아무리 암담하고 해결 불가능한 것을 써도 저절로 형태가 성담에 다가가는 낙천적인 것을 내재하고 있습니다’(후루이) ‘설명적이면서도 명쾌한 말’에 다가가기 위한 두 거장의 처절한 노력이 주는 여운이 짙다. 2장에서는 일본 근현대 단편소설 35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 등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대부분 낯선 작가와 작품들이다. 하지만 거장들의 ‘단호박’ 비평은 작품을 찾아 읽고픈 ‘역주행 의지’를 부른다. ‘(젊은 작가들은) 억지로 결합시키는 우직한 수단을 써서 완성한 단편 하나를 내본다는 마음이 없는 것 같다’(오에)는 일침이 인상적이다. 3장에서는 외국어 텍스트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독문학자로 여러 작품을 번역한 후루이는 이렇게 토로한다. ‘쓰는 사람은 심연을 슬쩍 비치는 데까지만 이른다. …번역할 생각이라면 그 앞에서 멈춰버리고 만다. 그 앞은 아마 언어가 감당할 수 없는 곳이 아닌가 싶다’라고. 4, 5장에서는 문학의 바다를 항해한다. 작가로서의 산통에 대한 이야기도 담겼다. 문학 이야기 틈틈이 인생 이야기도 끼어든다. ‘노년을 덮치는 황홀감, 노년을 덮치는 환희도 있지 않을까…’(후루이), ‘체념도 달성감도 없이 그저 이런 것을 스물두 살부터 70대 중반까지 계속해왔구나’(오에). 릴케, 말라르메, 네이딘 고디머, 프랑스의 미셸 투르니에, 로베르트 무질…. 50여 년간 문학 거장이 탐독한 작품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백미는 말년의 뜨거움과 겸손함이다. 여든 넘어서까지 펄펄 끓는 열정으로 라틴어를 공부하고 시 쓰기를 꿈꾸는 한편 ‘넘어지는 인간’이 된 자신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두 사람. ‘이런 이야기를 해두면 이런 늙은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젊은 사람들도 다소는 알아주겠지요.’(후루이)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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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잣말 아닌 세상 향한 외침, 작품에 담을것”

    “뒷담에 낙서하는 심정으로 글을 써왔습니다. 이제 뒷담을 세상으로 확장시키겠습니다. 혼잣말이 아닌 모두를 향한 외침을 희곡이란 그릇에 담아내겠습니다.” ‘희곡가’의 이름으로 2019년 새해를 시작한 최상운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수상 소감을 밝혔다.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4일 열렸다. 최 씨를 비롯해 성해나(중편소설) 강석현(단편소설) 최인호(시) 강대선(시조) 민경혜(동화) 고지애(시나리오) 김채희(영화평론) 박다솜 씨(문학평론) 등 9명이 상패와 상금을 받았다. 수상자들은 벅찬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최인호 씨는 “당선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갓 태어난 신생아 시인의 자세로 오래도록 시와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김채희 씨는 “부끄러움과 감사한 마음이 교차한다. 초심을 잊지 않고 작품활동을 이어가겠다”며 활짝 웃었다. 수상자들은 이제 시작임을 잊지 않았다. 성해나 씨는 “상은 끝까지 힘내서 쓰라는 격려의 의미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더 진중하게 소설을 대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박다솜 씨는 “당선 소식을 듣고 평론가의 윤리에 대해 다시금 고민했다”며 “독자의 감각을 일깨우는 평론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출발의 각오도 다졌다. 강대선 씨는 “과거보다 더 부지런히 깨치고 쓰겠다”며 “상이 오길 기다리지 않고 상을 찾아가는 시조시인이 되겠다”고 했다. 민경혜 씨는 “아이들의 가슴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동화를 쓰도록 노력하겠다”고 했고 고지애 씨는 “다른 이에게 즐거움을 주는 작품을 보여드리겠다”고 전했다. 심사위원인 이근배 시조시인은 격려사에서 “당대 많은 최고의 소설가들이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며 “활기차고 장래가 촉망되는 시인을 배출한 것은 한국 문단사의 큰 경사”라고 말했다. 이어 수상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문학은 행복한 일이다. 앞으로 활발한 활동을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심사위원인 오정희 은희경 구효서 소설가, 김혜순 시인, 김영찬 문학평론가, 이근배 이우걸 시조시인, 송재찬 동화작가, 이정향 영화감독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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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블 시리즈처럼 하나의 세계관 완성하고 싶어”

    “그게… 그것이… 어떠한….” 청산유수로 답변을 쏟아내던 그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줄거리를 묻자 ‘어버버’했다. 22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열린 장편 스릴러 ‘싱글몰트 사나이’(휴먼앤북스) 기자간담회. 책을 쓴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 교수(50)는 “스릴러 장르라 말 못 할 내용이 많다. 범인을 미리 알면 재미없으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싱글몰트…’는 휴먼앤북스가 기획한 ‘스릴러 미스터리 컬렉션’의 첫 작품이다.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가 ‘한국의 토종 스릴러 부흥’을 기치로 내걸고 야심 차게 준비했다. 하 대표는 “해외 소설이 스릴러 장르를 장악한 현실에 울분이 솟았다. 재능 있는 작가를 발굴해 매년 4, 5편씩 출간하겠다”고 했다. 첫 작품으로 ‘싱글몰트…’를 택한 건 왜일까. 유 교수의 전작에서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고전소설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치는 유 교수는 2007년 ‘진시황 프로젝트’로 한 장르소설 문학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왕의 군대’ ‘윤동주 프로젝트’ 등 스릴러 작품을 펴내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이야기 뼈대는 형사 출신 시간강사인 강태혁이 기무사 소령 윤소영과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여기에 크고 작은 한국 사회의 문제와 소시민의 삶, 정치사가 촘촘히 끼어든다. 유 교수는 “스릴러지만 현실을 적극 반영했다. 각 작품을 연결해 마블 시리즈처럼 하나의 세계관을 완성하고 싶다”고 했다.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집필 과정에서 집단 지성의 힘을 빌린 점이 눈에 띈다. 미스터리 컬렉션 편집위원인 고인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허진 문학평론가와 두 번째 시리즈 작품을 집필한 이동원 작가, 그리고 유 교수가 작품을 두고 난상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유 교수는 “재미있게 읽히려면 여러 사람의 시각을 반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봤다. 방송작가들이 대본을 쓰듯 편집위원들에게 혼나고 검증받았다”고 했다. 그는 스릴러의 대중화가 ‘문학의 호시절’을 되찾을 ‘마스터키’라고 믿는다. “고전시대 소설은 오히려 지금의 대중소설에 가까웠어요. 국내에선 웹툰과 미국 드라마의 영향을 받은 젊은 작가들조차 장르문학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안타깝습니다. 한국도 스릴러 작가의 시대가 열리길 바랍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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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박완서, 이승과 저승 경계에서도 읽고 쓰던 영원한 현역”

    《최수철 조경란 이기호 김숨 정세랑 조남주….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29명의 짧은소설을 모은 ‘멜랑콜리 해피엔딩’(작가정신·1만4000원·사진)이 나왔다. 이들을 한데 모은 힘은 박완서 작가(1931∼2011)이다. 생전 선생이 ‘방 안에 들어앉아 창호지에 바늘구멍을 내고 바깥세상을 엿보는 재미’에 비유했던 짧은소설로 8주기를 기렸다. 이 가운데 함정임(55) 손보미 작가(39)를 1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함 작가는 한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하던 시절 맺은 인연으로 20년간 선생을 곁에서 지켜봤다. 그가 쓴 ‘그 겨울의 사흘 동안’에는 작가로 살다 간 어머니의 유작을 정리해 나가는 딸들의 연대가 담겼다. 함 작가는 “작품에 선생님을 적극 등장시켰다. 실화 99%에 허구 1%를 섞었다”고 말했다. 손 작가의 작품 제목은 ‘분실물 찾기의 대가3―바늘귀에 실 꿰기’. 그는 “선생님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의 부제 ‘바늘구멍으로 엿본 바깥세상 이야기’에서 따왔다”고 설명했다. 두 작가는 선생에 대한 추모 열기가 식지 않는 이유로 깊고 넓은 작품세계를 꼽았다. 함 작가는 “선생님은 작품 그 자체로 성별을 떠나 문단을 평정하고 독자에게 인정받았다”고 했다. 손 작가는 “선생님의 작품은 따뜻함, 기묘함, 신랄함, 부드러움을 종횡무진 넘나든다”고 말했다. “교과서에 실릴 만큼 부드러운 작품, 그로테스크한 이야기, 가슴 절절한 멜로…. 한 사람이 쓴 게 맞나 싶을 정도예요.”(손) “전쟁과 광복 이후 한국 사회를 겪어낸 복잡다단한 인생사가 작품에 녹아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함) 여성 후배들에게 남긴 유산도 적지 않다. 손 작가는 “호명되지 못한 채 사라진 여성 작가가 적지 않은데 선생님으로 인해 문학계 토양 자체가 달라졌다”고 했다. 닮고 싶은 선생의 면모는 뭘까. 함 작가는 평생 ‘현역’으로 살다 간 점을 꼽았다. “부지런히 신작 소설과 영화를 챙겨 보셨어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도 읽고 쓰는 영원한 현역이셨죠.”(함) 손 작가는 소설과 삶이 일치된 점을 본받고 싶다고 했다. 본인은 일상을 소설화해본 적이 없는데, 언젠가는 삶이 소설에 투영될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러자 함 작가가 손 작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작가는 단계마다 사회나 독자가 이끌어주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계속 쓰다 자연스럽게 그런 시점이 오지 않을까?” 서로를 향해 몸을 돌린 두 사람이 대화를 이어갔다. “선생님은 대선배지만 워낙 격의 없이 대해 주셔서 함께 있는 자리가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았어. ‘박완서 스타일’이랄까. 그나저나 손 작가 눈망울이 선생님을 닮았어. 맑고 예리한….”(함) “눈망울이 닮았다니, 괜히 뿌듯한걸요? 함 선생님도 박 선생님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몇 해 전 심사위원으로 만나 2박 3일 동고동락할 때 손수 커피와 빵을 싸오셨죠.”(손) “선생님 댁에 가면 박하 잎을 따다 차를 끓여 주시고 2, 3시간씩 고민을 들어주셨어. 직·간접적으로 겪고 느끼며 닮아가는 것, 이런 게 선생님의 힘인가 봐.”(함)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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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시련은 끝이 아니기에… 나는 다시 꿈을 꾼다

    ‘시뻘건 불기둥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버린 K-9 자주포, 그리고 나의 꿈….’ 폭발음이 일고 섬광이 번쩍했다. 눈을 떠보니 주변은 온통 불바다. 앞뒤 잴 새도 없이 불덩이 위를 네 발로 기어 겨우 그곳을 빠져나왔다. 2017년 8월 일어난 K-9 자주포 폭발 사건. 탑승해 있던 7명 가운데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크게 다쳤다. 당시 병장이던 이찬호 씨는 살아남았지만 오랜 시간 악몽 속에서 살았다. ‘괜찮아 돌아갈 수 없어도’는 그날 이후 그가 괜찮아지기까지의 처절한 기록이다. 책은 전신 55%의 화상을 입은 저자의 사진과 짧은 글로 구성됐다. 개구쟁이 꼬마 이찬호, 배우를 꿈꾸던 청년 이찬호, 사고 이후 흉터로 가득한 현재 이찬호의 모습이 차례로 펼쳐진다. 17일 전화로 인터뷰한 이 씨는 “흉터가 지닌 의미는 복잡다단하다. 글보다 이미지로 보여주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사고 이전 사진은 초등학교 이전 꼬마 때 모습뿐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자신을 보면 견딜 수 없어 사고 직후 과거 사진을 몽땅 버렸기 때문”이다. 극한의 육체적 고통과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을 다잡는 과정을 진솔하게 담았다. ‘모든 근육이 연소했다. 183cm의 키에 83kg이었던 몸무게가 66kg까지 불타버렸다’ ‘사고 이후 말 못 하는 강아지와도 대화했다’ ‘꿈을 잃었고 건강도 잃었어’…. 오래 품어온 배우의 꿈을 접고 전우들을 사고로 잃었다. “어떻게 버텼느냐”고 묻자 그는 “버티기 싫었다”고 했다. “매일 한 번 살을 긁어내는 드레싱을 하는데 그냥 생을 등지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었죠.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서요.” 1년 4개월 동안 받은 피부이식수술만 5차례. 지나고 보니 그를 살게 한 건 가족이었다. 전사로 변신한 어머니는 “눈물 보일 여유가 없다. 자식 지키려면 나부터 강해져야 한다”고 했다. 무뚝뚝했던 아버지는 “사랑한다”며 눈물을 글썽여 아들을 소스라치게 했다. 형은 직장까지 그만두고 동생 곁을 지켰다. 이웃 환자들로부터도 긍정 에너지를 얻었다. “내가 더 심하다.” “너는 운이 좋은 편이다.” 미라처럼 전신에 붕대를 휘감은 환자들이 주고받는 잔인한 농담 속에서 신기하게도 생의 의지가 샘솟았단다. 그는 “용광로 쇳물에 다친 동생, 엄청난 화상을 입은 꼬맹이 등 다양한 환자들과 가깝게 지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큰 위로를 줬다”고 했다. ‘불족발/ 불닭발/ 발이란 발엔 불이 붙는 데 전투화 덕분에 불이 안 붙었다’ ‘이 정도 괴물이면 잘생긴 거 아냐?’ ‘내 인생에 불을 만나고 불가능은 없다’…. 상황을 위트 있게 비튼 에세이는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 씨와 함께한 사진으로 마무리된다. 그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점을 안다. 배우의 꿈은 잃었지만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졌다. 전화위복인 셈”이라고 했다. 고통을 정면 응시한 책이 주는 공감의 종류는 제각각이다. 이런 비극이 나를 피해갔다는 위안일 수도, 함께 고통을 나누고 싶다는 연민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얼마나 공감하든 저자의 아픔은 읽는 이에게 어떠한 고양을 안긴다. 책으로 얻은 수익은 전액 화상환자와 소방기관에 기부할 예정이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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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 안해도 척척… 우린 서로를 치열하게 연구한 전공자”

    “새 시집에 ‘아내에게’란 헌사 붙여줄 거지?” 장난 섞인 아내의 부탁을 남편은 짐짓 모른 체했다. 하지만 남편은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이번 시집의 주인은 당연히 아내라고. 장석주 시인(64)이 5년 만에 시집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문학동네)를 펴냈다. 박연준 시인(39)과 결혼한 2015년부터 3년간 써내려간 시를 엮었다. 시집 첫 페이지에는 ‘아내 박연준에게’란 일곱 글자가 또렷하다. 서울 마포구의 한 북카페에서 18일 웃는 눈모양이 똑 닮은 부부를 만났다. 서로를 ‘장 시인’ ‘박 시인’ ‘남편’ ‘아내’라며 호칭을 섞어 불렀다. ○ 오랜 망설임, 책으로 알린 결혼 “문학두뇌가 굉장히 명석하다고 느꼈어요. 학점도 잘 줬던 것 같고요.”(장) “당시에는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어요. ‘이상한 머플러를 두르고 다니는 강사’ 정도로 생각했죠. 10년 뒤 제가 그 머플러를 하게 된 건 ‘안비밀(비밀이 아님)’입니다.”(박) 두 사람은 2002년 한 대학 캠퍼스에서 서로를 처음 알게 됐다. 박 시인이 다니던 대학에서 장 시인이 소설 창작을 가르쳤다. 남편은 아내의 반짝반짝한 산문을 눈여겨봤지만 정작 아내는 시에 빠져 있었다. 아내는 남편이 유명 시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서로를 제대로 읽게 된 건 ‘시’로 소통하면서부터다. “몇 년 후에 아내와 오다가다 인사를 나누게 됐어요. 어느 날 아내가 시를 보여줬는데 깜짝 놀랐어요. 굉장히 새롭고 생동감 넘쳤죠. 아내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장 시인이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박 시인은 장 시인의 격려에 힘입어 그해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이후 e메일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진 두 사람. 하지만 연인으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사제지간, 돌싱(장 시인), 문단의 눈초리, 나이차…. 보이지 않는 벽은 생각보다 힘이 셌다. “시작할 때도 많이 망설였고 사귀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도망가려 했어요. 아내가 저보다 젊고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비겁했죠.”(장)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장석주 시인은 정말 젊었어요. 50대 초반임에도 혼자 사는 사람이라 그런지 흰머리 한 올 없이 쌩쌩했죠. 성격이나 행동패턴도 역동적인 편이라 나이차를 크게 느끼지 못했어요.”(박) 다가왔다 멀어지길 반복하는 남편을 용기로 붙든 건 아내였다. 오랜 고민과 ‘밀당’ 끝에 둘은 연인이 됐다. 잠시 이별하기도 했지만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관계로 지낸 기간이 무려 10년. 2015년 혼인신고를 하기 전까지 아무도 이들의 관계를 몰랐다고 한다. “아무래도 사제지간인 데다 나이차도 꽤 있다보니 구설에 오를 일이 걱정됐어요. 불편한 시선에 시달릴 수 있으니까요. 아내가 괜한 상처를 받는 게 싫었습니다.”(장) “몰래 연애를 해도 가까운 이들은 결국 알게 되잖아요. 한데 저희는 나이차 때문인지 겹치는 인맥이 없어 끝까지 비밀을 지킬 수 있었죠.”(박) 혼인신고 후 1년쯤 지나 김민정 시인이 ‘책결혼’을 제안했다. 신혼여행 겸 시드니에서 한 달간 보낸 이야기를 담아 산문집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난다)로 세상에 부부임을 알렸다. ‘우리는 새벽의 나무 둘처럼 행복합니다. 잉걸불 속으로 걸어가는 한 쌍의 단도처럼 용감합니다’(박연준) ‘어느 해 여름 우리는 바닷가에서 쏟아지는 유성우를 함께 바라봤지요. 그때 당신과 나의 거리,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를 유지한 채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장석주). 지인과 팬들로부터 축하가 쏟아졌다. ○ 서로의 어깨에서 영글어가는 시심(詩心) 시인 부부의 일상은 어떨까. 두 사람 모두 매일 회사원처럼 바지런히 읽고 쓴다. 남편은 새벽부터 이른 저녁까지, 아내는 늦은 오전부터 새벽까지 노트북과 씨름한다. 볕 좋은 날엔 동네 산책을 하거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 미약하게 아내와 남편의 역할이 나눠지기도 하지만 결혼이란 제도가 주는 보편적인 책임과 의무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다. 장 시인은 “우리 부부는 문학적 동지이자 동업자”라고 했다. ―시인 부부의 장점은 뭔가요? “말하지 않아도 척척 통해요. 원고, 마감,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툭툭 내뱉어도 단박에 이해하고 배려하죠. 또 둘 다 책을 좋아해 끝없는 ‘책 수다’가 가능합니다.”(장) “오롯이 혼자인 시간이 필요한 작가의 숙명을 이해한다는 게 가장 큰 장점 같아요. ‘원고 써야 해. 며칠 다녀올게’ 하면 남편은 1초 만에 고개를 끄덕이죠. 남편 역시 일할 땐 동굴처럼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요.”(박) ―문학적으로 주고받는 영향도 클 것 같습니다. “시를 쓰는 제가 남편이 산문에 소질이 있다며 독려했어요. 덕분에 조금 더 확장된 작가가 될 수 있었죠. 그간 영향을 받은 게 없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불현듯 깨닫고 남편에게 말했죠. ‘나 혼자 해낸 줄 알았는데 아닌 거 같아. 고마워’라고요.”(박) “당연하죠.(웃음) 아내는 칭찬이 많아요. 시인에게도 격려가 중요한데 첫 독자인 박 시인의 격려에 늘 큰 힘을 얻습니다. 반면 저는 객관적으로 오목조목 평가하는 편이에요.”(장) ―상대방의 문학적 소양이 매력으로 작용하나요. “비슷한 경험치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사람이 글을 잘 쓰는 거잖아요. 아내는 모든 소재를 이야기로 만들 수 있어요. 시도 좋지만 산문을 정말 맛깔나게 잘 씁니다.”(장) “삶을 바라보는 가치판단의 중심에 문학이 있어요. 자연히 문학적 소양이 상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죠. 장 시인이 쉼 없이 문학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 계속해서 쓰고 진취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에서 매력을 느낍니다.”(박) ―문학계 선후배로서 신경전 같은 건 없나요. “독자층이 다르고 세대가 달라요. 젊은 독자들에겐 박 시인이 훨씬 유명해요. ‘우리는 서로…’를 냈을 때 독자 10명 중 8명이 박연준 시인의 글이 더 좋다고 하더군요. 감성적인 부분은 박 시인이 뛰어나고 저는 좀 분석적인 편이지요.”(장) “등단한 지 40년이 지났는데도 장 시인의 시는 한결같이 젊고 힘이 넘쳐요. 그런 시적 감성이 어디서 샘솟는지 존경스럽죠. 끊임없이 읽고 공부하는 모습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가끔 저보다 책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아 얄밉지만요.(웃음)”(박) ○ “아내에게 더 보호받는 느낌” 결혼은 편집이 안 되는 네버엔딩 스토리. 박 시인의 말이다. 반짝이는 순간만 잘라내 오려붙이는 연애와 달리 한 사람을 전면적으로 겪어내야 하는 과정이란 얘기다. 결혼 후 달라진 부분을 묻자 장 시인은 “여러모로 평온해졌다”고 했고, 박 시인은 “더 큰 사랑을 알게 됐다”고 답했다. “크게 달라진 점은 없어요. 다만 사교생활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 생활이 단순화됐죠. 집에 아내를 혼자 두면 애처로워요. 함께할 날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곁에 머물고 싶죠.”(장) “오직 한 사람, 장석주에게 몰입하다 보니 인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랑의 극단은 휴머니즘 같아요. 결혼은 그 사랑을 체험하고 공부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박) 넘치게 받으면서도 투정하는 사람. 모든 걸 챙기면서도 아쉬운 소리 한 번 못 하는 사람. 가정 안에서도 리더와 팔로어가 있다. 사랑의 크기가 다른 게 아니라 타고난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떨까. “제가 오히려 남편을 아들처럼 돌봐요. 나이차가 꽤 나지만 어린 사람이 일방적 돌봄을 받을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에요. 남편은 속정이 깊지만 누굴 살갑게 돌보는 성격은 아니에요. 자기 일에 집중하면 옆은 전혀 못 보죠.”(박) “아내가 주도권을 꽉 쥐고 있어요. 저는 꼬박꼬박 경어를 쓰는데 박연준 시인은 이따금 말도 낮추고.(웃음) 처음과 달리 관계가 역전됐다고 할까요. 결혼 후에 서로가 좋은 방향으로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장) 언제 서로에게 특히 고마움을 느낄까. “제가 부당한 일을 당했는데 남편이 저보다 더 펄쩍 뛰며 속상해하더군요. 그 모습에 ‘고맙다, 든든하다, 사랑받고 있구나’ 하고 느꼈어요.”(박) “요리에 취미가 없는 아내가 제 건강을 위해 이따금 아침을 챙겨줘요. 적지 않은 나이라 건강식으로 채소, 된장, 청국장 같은 걸 만들죠. 올빼미형이라 밤잠이 모자랄 텐데 저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에 감동을 받습니다. 지금은 제가 더 보호받는 느낌이에요.”(장)○ “…해서 좋아요” ‘추억을 탕진한 채 돌아오는 당신, 원한다면 내 피의 전량을 드릴게요, 혈관의 다채로운 감정들, 중불에 뭉근하게 졸인 참극과 불행마저 가지세요…’(‘구월의 기분-연남동2’) ‘헤어진 사람의…’에는 서교동 연남동 베를린 등 지명이 자주 등장한다. 부부가 손잡고 산책하거나 여행했던 곳들이다. 나란히 걸으며 나눴던 풍경 이야기와 마음이 시집 곳곳에 녹아 있다. “죽음의 비극을 넘어서게 하는 힘은 사랑, 오직 사랑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시집을 통해 죽었던 연애세포를 일깨우고 고갈된 사랑의 에너지를 회생시키는 힘을 건네고 싶었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장) “헌사 ‘아내 박연준에게’에 붙들려 뒷장을 못 넘기겠더라고요. 그 일곱 글자가 전부처럼 다가와서 정말 행복했죠.”(박) 두 사람은 서로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연구한 전공자라고 입을 모은다. ‘장석주란?’ ‘박연준이란?’ 짧은 질문에 긴 답변이 이어졌다. 모든 문장이 “…해서 좋다”고 끝났다. “박연준 시인은 늘 새로워서 좋아요.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사유하죠.”(장) “남편이 여러 번 깊이 실패한 사람이라서 좋아요. 가난, 고교 중퇴, 사업과 결혼 실패 등을 겪으면서도 더 나은 방향으로 극복해냈다는 게 놀랍죠.”(박) “아내는 소소한 신경전 뒤에 늘 먼저 화해를 청할 정도로 마음이 넓어서 좋아요.”(장) “장 시인은 양파처럼 까도까도 신기해서 질리지 않습니다. 논문을 쓴다면 연구거리가 넘치는 노다지인 셈이죠.”(박) 연인 시절 두 사람은 결혼이란 제도에 연연하지 않았다. 다만 오래 함께하다 보니 병원에서 법적 보호자 역할조차 할 수 없는 불편함 등을 겪으며 혼인신고를 했다. 내용이 넘쳐 결혼이란 형식을 취한 셈이다. 연애 10년, 결혼 5년차. 엄청난 사랑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시기를 지나 가족애에 가까운 사랑으로 넘어왔다. 완전히 편안하고 애처롭고 다정한 요즘이 더없이 좋다는 두 사람. “아내가 웃으면서 이따금 같은 날 죽고 싶다고 해요. 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정색하고 맞받아치죠. 저보다 살날이 한참 더 많이 남았는데 문학이든 생이든 더 즐겨야죠.”(장) “장석주 시인은 세상을 애틋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에요. 2차선 도로에서 어미 꿩과 새끼인 꺼병이들이 총총 줄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봤다며 눈물을 글썽일 줄 아는 사람이지요. 그 정도로 여리고 따뜻하지만 엄살 없이 홀로 나아가는 의연함을 지닌 사람입니다.”(박) 두 사람은 언젠가 제주도에 작은 도서관을 짓고 뒤편에 집을 마련해 살고 싶단다. ‘2인분의 고독을 뜨겁게 늠름하게 받는’(‘우리는 서로…’ 장석주) 사랑으로 제주도 해변을 나란히 걷는 미래를 그린다.● 시인 장석주-박연준 부부는장석주 시인: 1979년 동아일보(문학평론) 조선일보(시)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햇빛사냥’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산문집 ‘새벽예찬’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이다’ 등을 펴냈다. 박연준 시인: 2004년 중앙일보에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와 산문집 ‘소란’등을 펴냈다. 두 사람이 같이 쓴 책으로는 산문집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가 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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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 4개월동안 피부이식수술만 5차례, 고통속에서 나를 다시 살게 한 건…

    ‘시뻘건 불기둥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버린 K-9자주포, 그리고 나의 꿈…’ 폭발음이 일고 섬광이 번쩍했다. 눈을 떠보니 주변은 온통 불바다. 앞뒤 잴 새 없이 불덩이 위를 네 발로 기어 겨우 그곳을 빠져나왔다. 2017년 8월 일어난 K-9 자주포 폭발 사건. 탑승해 있던 7명 가운데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크게 다쳤다. 당시 병장이던 이찬호 씨는 살아남았지만 오랜 시간 악몽 속에 살았다. ‘괜찮아 돌아갈 수 없어도’는 그날 이후 그가 괜찮아지기까지의 처절한 기록이다. 책은 전신 55% 화상을 입은 저자의 사진과 짧은글로 구성됐다. 개구쟁이 꼬마 이찬호, 배우를 꿈꾸던 청년 이창호, 사고 이후 흉터로 가득한 현재 이찬호의 모습이 차례로 펼쳐진다. 17일 전화로 인터뷰한 이 씨는 “흉터가 지닌 의미는 복잡다단하다. 글보다 이미지로 보여주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사고 이전 사진은 초등학교 이전 꼬마 때 모습뿐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자신을 보면 견딜 수 없어 사고 직후 과거사진을 몽땅 버렸기 때문”이다. 극한의 육체적 고통과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을 다잡는 과정을 진솔하게 담았다. ‘모든 근육이 연소했다. 183cm의 키에 83㎏이었던 몸무게가 66㎏까지 불타버렸다’, ‘사고 이후 말 못 하는 강아지와도 대화했다’, ‘꿈을 잃었고 건강도 잃었어’. 오래 품어온 배우의 꿈을 접고 전우 두 명을 사고로 잃었다. “어떻게 버텼느냐”고 묻자 그는 “버티기 싫었다”고 했다. “매일 한 번 살을 긁어내는 드레싱을 하는데 그냥 생을 등지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었죠.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서요.” 1년 4개월 동안 받은 피부이식수술만 5차례. 지나고 보니 그를 살게 한 건 가족이었다. 전사로 변신한 어머니는 “눈물 보일 여유가 없다. 자식 지키려면 나부터 강해져야한다”고 했다. 무뚝뚝했던 아버지는 “사랑한다”며 눈물을 글썽여 아들을 소스라치게 했다. 형은 직장까지 그만두고 동생 곁을 지켰다. 이웃 환자들로부터도 긍정 에너지를 얻었다. “내가 더 심하다”, “너는 운이 좋은 편이다”. 미라처럼 전신에 붕대를 휘감은 환자들이 주고받는 잔인한 농담 속에서 신기하게도 생의 의지가 샘솟았단다. 그는 “용광로 쇳물에 다친 동생, 엄청난 화상을 입은 꼬맹이 등 다양한 환자들과 가깝게 지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큰 위로를 줬다”고 했다. ‘불족발/ 불닭발/ 발이란 발엔 불이 붙는 데 전투화 덕분에 불이 안 붙었다’, ‘이 정도 괴물이면 잘 생긴 거 아냐?’, ‘내 인생에 불을 만나고 불가능은 없다’. 상황을 위트 있게 비튼 에세이는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 씨와 함께한 사진으로 마무리된다. 그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점을 안다. 배우의 꿈은 잃었지만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졌다. 전화위복인 셈”이라고 했다. 고통을 정면 응시한 책이 주는 공감의 종류는 제각각이다. 이런 비극이 나를 피해갔다는 위안일 수도, 함께 고통을 나누고 싶다는 연민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얼마나 공감하든 저자의 고통은 읽는 이에게 어떠한 고양을 안긴다. 책으로 얻은 수익은 전액 화상환자와 소방기관에 기부할 예정이다. 이설기자 snow@donga.com}

    • 201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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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담사가 권한 한 권의 책… 막막한 현실에 한 줄기 빛으로

    삶의 고민이 깊을 때, 막막한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고 싶을 때…. 요즘 ‘책처방’이 화제다. 책처방이란 약 한 시간 동안 상담사와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눈 뒤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받는 프로그램이다. 독립서점에서 주로 진행하며 비용은 5만 원 안팎. 독립서점 ‘카모메 그림책방’과 ‘책방이듬’, 모바일 도서플랫폼 ‘플라이북’을 찾아 기자가 직접 책처방을 체험해봤다.○ 상담은 ‘유쾌’ 추천은 ‘뾰족’… 시인의 처방 “병원처럼 위급한 부분이 책으로 치유되는 건 아니잖아요.”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책방이듬’을 운영하는 김이듬 시인은 원래는 ‘책처방’에 회의적이었단다. 하지만 책이 주는 위로를 원하는 이가 적지 않아 책처방을 도입했다. 김 시인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찾아오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직장에서 경력이 쌓일수록 부담감도 크다”는 고민에 “허약하고 파괴적인 생각을 하면 그렇게 된다. 강박은 피곤함만 낳을 뿐”이라며 ‘랩걸’(알마)을 권했다. “물욕을 줄이고 싶다”고 하니 “이미 경계하는 마음을 지녔다는 게 중요하다”며 고(故)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난다)를 추천했다. 다른 이들은 어떤 처방을 받았을까. “실수하면 며칠을 자책한다”는 신입사원에겐 ‘회사의 언어’(어크로스), ‘반응하지 않는 연습’(위즈덤하우스)을 추천했다. 다운증후군 자녀를 둔 부모에겐 서효인 시인의 ‘잘 왔어 우리 딸’(난다)을 소개했다고 한다. [후기] 상담은 유쾌하되 처방전은 날카롭다. 방대한 독서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맞춤 추천해줬다. 독서 편식을 바꿔보려는 이들도 이용할 만하다.○ 직관적 힐링을 주는 ‘그림책처방’ 11일 서울 성동구에 자리한 ‘카모메 그림책방’을 찾았다. 그림책 400여 권이 빼곡한 공간에 들어서자 마음이 절로 차분해졌다. 이곳에선 책처방 격인 ‘책톡프로그램’을 진행한다. 50분간 타로카드를 이용해 상담한 뒤 제공하는 그림책 1권을 포함해 3, 4권을 골라준다. “좋은 질문에서 좋은 대화가 나옵니다. 질문을 준비하세요.” 카드를 솜씨 좋게 펼치며 정해심 대표가 말했다.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단어’ ‘추천 받고 싶은 그림책 주제’를 묻는 질문지에 답을 채워갔다. “열심히 하는 것과 인정받는 게 늘 일치하는 게 아닙니다.” “성배를 들고도 마시지 못하는 (타로카드 속) 왕처럼 늘 갈급할 겁니다.” 타로가 매개여서인지 거부감 없이 속마음을 꺼낼 수 있었다. ‘타로 수다’를 마친 뒤 정 대표가 서가에서 척척 그림책 4권을 뽑아왔다.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시공주니어), ‘나는 고양이라고!’(시공주니어), ‘공기처럼 자유롭게’(미래아이), ‘구덩이’(북뱅크). 이 가운데 ‘샘과…’를 데려왔다. [후기] 그림책의 여운이 꽤 길었다. 평소 책과 친하지 않거나 그림책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잘 맞을 듯하다.○ 간편하게 다양한 책 골라주는 ‘플라이북’ 도서플랫폼 ‘플라이북’ 애플리케이션(앱)에 가입하면 ‘내 상태’를 묻는다. ‘요즘 상태’의 14가지 항목 가운데 ‘불안해요’ ‘행복해요’ ‘용기가 필요해요’ 등을, ‘요즘 관심사’로는 ‘진로’ ‘기획·마케팅’ ‘지식·상식’ ‘글쓰기’ 등을 택했다. 장르, 분량, 난이도는 특별한 선호가 없어 ‘아무거나’를 찍었다. 선택을 마치면 관심사와 상태별로 30여 권의 추천 목록이 뜬다. [후기] 평소 독서 범위 밖의 책들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추천 권수가 너무 많아 선택에 방해가 됐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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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어때요?”…당신에게 안성맞춤인 ‘책처방’ 받아 보세요

    요즘 ‘책처방’이 화제다. 책 처방이란 대략 1시간 동안 1대1로 이야기를 나눈 뒤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골라주는 프로그램을 일컫는다. 독립서점에서 주로 진행하며 비용은 5만 원 안팎. 책처방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독립서점 ‘카모메그림책방’과 ‘책방이듬’, 도서플랫폼 ‘플라이북’에서 책처방을 받아봤다. ●직관적 힐링 주는 ‘그림책처방’ 11일 서울 성동구에 자리한 ‘카모메그림책방’을 찾았다. 그림책 400여 권이 빼곡한 공간에 들어서자 마음이 절로 차분해졌다. 이곳에선 책 판매뿐 아니라 그림책 낭독 등 행사와 책처방 격인 ‘책톡프로그램’을 진행한다. 50분 간 타로카드를 이용해 상담한 뒤 제공하는 그림책 1권을 포함해 3, 4권을 추천해준다. “좋은 질문에서 좋은 대화가 나옵니다. 질문을 준비하세요.” 카드를 솜씨 좋게 부채 모양으로 펼치며 정해심 대표가 말했다.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단어’ ‘추천 받고 싶은 그림책 주제’를 묻는 질문지에 천천히 답을 채워갔다. 새로운 자리에 잘 녹아들지,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를 차례로 물었다. “열심히 하는 것과 인정받는 게 늘 일치하는 게 아닙니다.” “성배를 들고도 마시지 못하는 킹(카드)처럼 늘 갈급할 겁니다.” 심리학과 상담심리를 오래 공부한 정 대표가 말했다. 타로를 매개 삼아 재미있고 거부감 없이 속마음을 꺼낼 수 있었다. ‘타로 수다’를 마친 뒤 정 대표가 서가에서 척척 그림책 4권을 뽑았다.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시공주니어), ‘나는 고양이라고!’(시공주니어), ‘공기처럼 자유롭게’(미래아이), ‘구덩이’(북뱅크). 이 가운데 ‘샘과…’를 데려왔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 땅굴을 파던 샘과 데이브가 끝내 다다른 곳은 초콜릿 우유와 과자가 있는 집이란 이야기다. [상담 후기] 그림책은 한 번 봐도 잘 잊혀지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도 마음에서도. 평소 책과 친하지 않거나 그림책이 궁금한 이들에게 추천한다.●상담은 ‘유쾌’ 추천은 ‘뾰족’…시인의 처방 “병원처럼 위급한 부분이 책으로 치유되는 건 아니잖아요.”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책방이듬’을 운영하는 김이듬 시인은 ‘책처방’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책이 주는 위로를 원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절감한다. 김 시인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찾아오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며 “의료기관이나 전문 상담기관보다 이곳을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직장에서 경력이 쌓일수록 부담감도 크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허약하고 파괴적인 생각을 하면 그렇게 된다. 강박은 피곤함만 낳을 뿐”이라며 과학자가 쓴 ‘랩걸’(알마)을 권했다. “물욕을 줄이고 싶다”고 하니 “이미 경계하는 마음을 지녔다는 게 중요하다”며 고(故)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난다)를 추천했다. 다른 이에게 어떤 처방을 전했는지 궁금했다. “실수하면 며칠을 자책한다”는 신입사원에겐 ‘회사의 언어’(어크로스), ‘반응하지 않는 연습’(위즈덤하우스)을 추천했다. 다운증후군 자녀를 둔 부모에겐 서효인 시인의 ‘잘 왔어 우리 딸’(난다)를 소개했다고 한다. [상담 후기] 상담은 유쾌하되 처방전은 날카롭다. 김 시인은 방대한 독서력을 바탕으로 문학과 인문·철학, 경제·경영, 자기계발 등을 아우르며 다양한 책을 맞춤 추천해줬다. 독서 편식을 바꿔보려는 이들도 이용할 만하다.●간편하게 다양한 책 골라주는 ‘플라이북’ 도서플랫폼 ‘플라이북’ 어플리케이션에 가입하면 ‘내 상태’를 묻는다. ‘요즘 상태’의 14가지 항목 가운데 ‘불안해요’ ‘행복해요’ ‘용기가 필요해요’ 등을, ‘요즘 관심사’로는 ‘진로’ ‘기획/마케팅’ ‘지식/상식’ ‘글쓰기’ 등을 택했다. 장르, 분량, 난이도는 특별한 선호가 없어 ‘아무거나’를 찍었다. [상담 후기] 관심사와 상태별로 30여 권의 책을 추천해준다. 평소 독서 범위 밖 책들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추천 권수가 너무 많아 오히려 선택이 어렵게 느껴졌다. 이설기자 snow@donga.com}

    • 2019-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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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정하고 명랑하게… ‘네가 쓴 글 맞냐’ 사람들이 물어요

    김소연 시인(52)은 스스로를 ‘무심하고 날카로운 사람’이라 읽는다. 시도 그를 닮아 빛보다 어둠이 많이 서려 있다. 하지만 최근 펴낸 산문집 ‘나를 뺀 세상의 전부’(마음의숲·사진)는 살짝 결이 다르다. 1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작정하고 명랑하게 썼다. 지인들이 ‘네가 쓴 글이 맞느냐’고 할 정도”라고 했다. “2014년 이후 3년간 자유롭게 쓴 글과 칼럼을 모아 엮었어요. 비극과 부정성에 대한 친화력을 바탕으로 살아왔는데, 이 시기에 정신과 문학을 재편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죠. 저 자신은 싹 지우고 직접 경험한 사람과 세상을 따뜻하게 기록했습니다.” 글쟁이로 살아온 지 20여 년. 기존 분위기를 떨치기란 쉽지 않았다. 새삼 육하원칙을 되새기며 덜고 빼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는 “담백한 문장은 전달력이 약한 것 같아 망설여졌다. ‘네가 정말 똑똑해지면 쉬운 글을 쓸 것’이란 대학 시절 은사의 말씀이 자주 떠올랐다”고 했다. “문체도 문체지만 해석하고픈 욕망을 멈추느라 힘들었어요. 의견을 덧붙이지 않고 정황만 전달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예컨대 병원에서 겪은 의사의 태도나 식당에서 엿본 상사와 부하의 대화는 관찰 기록에 가깝죠. 용기를 내서 독자들에게 해석을 맡긴 겁니다.” 1993년 계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한 뒤 첫 시집 ‘극에 달하다’(1996년)를 시작으로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2006년), ‘눈물이라는 뼈’(2009년), ‘수학자의 아침’(2013년)을 냈다. 특히 산문집 ‘마음사전’(2008년)과 ‘시옷의 세계’(2012년), ‘한 글자 사전’(2018년)으로 두꺼운 팬 층을 형성했다. “오래도록 쓰고 싶어서 산문과 시를 함께 씁니다. 각각 필요한 근육이 달라서 균형감각 유지에 도움이 되거든요. 시가 갱을 뚫는 고된 작업이라면, 산문은 심층까지 가지 않고도 할 말을 펼쳐 보이는 즐거움이 있지요.” ‘시대를 향한 응전력(應戰力·전쟁 등에 대응하는 힘)이 있는 시인이 되자’고 20대 시절 자주 다짐했다. 응전력은 세월의 강을 건너면서도 잃고 싶지 않은 중심축 중 하나다. 그는 “패턴을 읽는 능력은 세월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응전력을 잃지 않되 거시적 관점으로 시를 써 나가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부지런히 읽고 듣고 배운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까마득한 후배 시인과 독립서점을 팔로잉한 뒤 그들의 활동을 ‘구경한다’”며 “재미있고 공격적으로 문학하는 후배들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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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부자 편에 선 자본주의… 야바위게임처럼 불공정”

    돈이 돈을 낳는 자본주의 시스템. 가만히 있어도 통장이 황금알을 낳는 부자와 달리 빈자는 오늘보다 내일 더 가혹한 빈곤을 겪는다. 계층사다리마저 무너진 오늘날, 청년세대는 진창에 빠졌다. 불평등의 원인으론 인종, 젠더, 계급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그 공식은 간단치 않다. 저자는 평등한 사회를 가정한 뒤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해 불평등을 빚어내는 과정을 되짚는다. 책에 따르면 평등사회는 그냥 무너진 게 아니다. 절도, 착취, 약탈 같은 반칙 또는 그것을 허용하는 규칙이 불평등을 낳았다. 이 가운데 후자는 교묘하게 불평등을 고착화한다는 점에서 더 위협적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역시 불공정 게임을 정당화하는 규칙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소유권이 인권에 우선한다’는 자본주의 대원칙은 온전히 부자의 편. 속임수로 상대를 속이는 야바위게임처럼 자본가들은 세상을 입맛대로 주무른다. 다양한 장치를 동원해 지배계급은 현 상태를 유지하려 애쓴다. 틀을 바꿀 수 있다는 상상력을 억압하고, 연대에 균열을 내고, 약자 간 갈등을 부추긴다. ‘은연중에 인간과 타자에 대한 차별을 담고 있는 구분법’에 젖어든 대중은 상상력을 잃고 서로 물고 뜯으며 제도에 순응한다. 불평등의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상상하고 의심하고 연대해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 모두가 당연시하는 규칙을 문제 삼는 이들이 호감을 얻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상대방이 이성의 끈을 놓지 않게끔 하는 의사소통의 기술이 필요하다.” 사회학과 교수가 들려주는 대학 강의를 풀어쓴 노트에 가깝다. 광장 시위로 길 막히는 게 그저 못마땅한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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