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

이설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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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설 기자입니다.

snow@donga.com

취재분야

2025-11-07~202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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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푸른 초원위 서늘한 바람, 숨만 쉬어도 절로 ‘힐링’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무더위를 날려 버릴 독특한 휴가지를 찾고 있다면 ‘목장’은 어떨까. 탁 트인 초원, 서늘한 바람, 순연한 표정의 동물들과 함께라면 숨만 쉬어도 힐링이 될 것 같다. ‘목장 휴가’를 찾는 휴가객들에게 ‘대관령 하늘목장’, ‘상하농원’, ‘남해 상상 양떼목장 편백숲’을 소개한다. ○ 대관령 하늘목장 하늘은 새파랗고 사방은 온통 초록이다. ‘도레미송’을 배경으로 하이디처럼 차려입고 춤을 춰야만 할 것 같다. 해발 1000m 고원에 자리 잡은 1000만 m² 넓이의 강원 평창군 ‘대관령 하늘목장’은 한국의 알프스라 불린다. 1970년대 정부 주도로 만든 낙농업의 본산으로 2014년 일반에 개방됐다. 손때 타지 않은 드넓은 목초지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이곳에는 다채로운 볼거리가 가득하다. 취향에 따라 산책로를 골라 걸어보자. 탁 트인 풍경을 선사하는 ‘너른 풍경길’, 숲 터널을 이룬 ‘숲속 여울길’, 자연 그대로의 ‘가장자리숲길’, 목장을 가로지르던 지름길인 ‘종종걸음길’이 조성돼 있다. 길을 걷지 않고 바로 하늘마루 전망대에 오를 수도 있다. ‘트랙터 마차’를 타고 곧장 전망대에 오르면 말문이 막힐 정도로 광활한 경관이 펼쳐진다. 백두대간 선자령 바로 아래에 위치한 이곳에선 백두대간 산줄기와 올망졸망한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운이 좋으면 발아래 깔리는 운무도 만날 수 있다. 선자령에 오르면 늠름하게 솟은 흰색 풍차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 풍차는 사계절 내내 부는 대관령의 강한 바람을 청정에너지로 바꾼다. 초원과 하늘과 풍차를 골고루 카메라에 담으면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 대관령 전체 풍력발전기 49대 가운데 29개가 하늘목장에 있다. 체험거리도 풍부하다. 트랙터와 마차를 결합한 트랙터 마차는 목장의 명물. 대기 시간이 30분∼1시간 정도로 길지만 마차 안에 옹기종기 앉아 목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5km 길이 목장 산책로를 둘러보는데 30분 정도 걸린다. 목장 울타리 안에서 양몰이를 하는 ‘양떼 체험’, 양 망아지 송아지에게 먹이를 주는 ‘동물 먹이주기 체험’도 인기다. 비슷비슷한 구조의 도시 놀이터와 달리 비뚤배뚤하게 지은 ‘내맘대로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대관령 하늘목장은 이달부터 서울랜드와 통합 경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서울랜드 홍보팀 관계자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지닌 대관령 하늘목장을 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도록 발전시킬 것”이라며 “목장에서 생산한 유기농 제품의 판매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하늘목장의 입장료는 대인 6000원, 소인 5000원.○ 고창 상하농원 전북 고창군의 ‘상하농원’은 건강한 재료로 직접 먹거리를 만들고 맛보는 공간이다. 매일유업이 2016년 ‘짓다, 놀다, 먹다’를 주제로 고창군과 함께 370억 원을 들여 만들었다. 10만 m² 규모에 각종 체험시설과 목장, 식재료 마켓이 있어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즐길거리가 풍부하다. 그림 같은 목초지 사이에는 각종 공방이 있다. 햄공방, 빵공방, 과일공방, 발효공방에서는 고창 지역에서 얻은 재료로 먹거리를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식탁에 자주 오르는 식품의 생산 과정을 볼 수 있어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있다. 텃밭에서 마늘, 고구마, 토마토 등 농작물을 직접 재배하다 보면 체력과 지력이 동시에 쑥쑥 자란다. 농부체험을 한 뒤에는 재배한 농작물과 고기, 햄, 유제품으로 구성된 식사도 제공한다. 체험프로그램은 성수기엔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인기다. 1시간 동안 치즈, 머핀, 소시지, 아이스크림, 동물쿠키 등을 선택해 만드는 수업도 늘 꽉 찬다. 동물목장, 양떼목장, 유기농목장을 방문하면 젖소 돼지 산양 등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건초 먹이 주기, 송아지 우유 주기 등의 체험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농장에 붙어있는 치즈 등 유제품을 만드는 상하공장도 견학할 수 있는데 40명씩 1일 4회 운영된다. 입장료 대인 8000원, 소인 5000원. ○ 남해 상상 양떼목장 편백숲 ‘한국의 몰디브’라 불리는 경남 남해에도 목장이 적지 않다. 이 중 설천면 양모리학교에서 편백나무숲을 따라 3분 정도 오르면 ‘상상 양떼목장 편백숲’이 나온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드넓은 고원 초목지에 올라서면 파란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뒤편으론 편백나무숲이 있어 바다 초원 숲 양떼를 한번에 만난다. 2017년 5월 문을 연 이곳에는 20만 m²(약 6만 평) 규모의 편백나무 군락이 있다. 70여 년 전 조성된 편백나무 숲길을 걸으며 크게 심호흡하면 심신이 맑아진다. 입장료만 내면 양몰이, 동물 먹이주기 등은 무료로 체험 가능하다. 다른 목장과 달리 건초를 추가하는 비용도 무료다. 양, 젖소, 산양뿐 아니라 미니 돼지와 토끼, 알파카 등 다양한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입장료 성인 5000원, 소인 3000원.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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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캠퍼스 안에 기업 400개… 산학협력 통해 4차산업 허브 급성장

    “세계에서 가장 큰 중성자 연구시설을 짓고 있습니다. 52개국에서 모인 연구원 등 인재들이 세계 각국의 기업과 대학이 의뢰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입니다.” 올 5월 찾은 스웨덴 최남단 도시 룬드의 ‘파쇄중성자원(ESS·The European Spallation Source)’ 신축 공사장. 임시 사무실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흙바람 사이로 크레인 10여 대가 고개를 주억이며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규모가 너무 커서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무엇을 짓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ESS는 2032년까지 단계별로 완공될 예정이다. 500여 명의 인력이 세계 각지의 기업과 대학이 연구개발을 의뢰한 프로젝트를 한 해 3000여 건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업규모는 4조 원가량. ESS가 완공되면 인구 2만여 명이 룬드에 유입돼 도시 성장을 이끌 전망이다. 프로젝트 책임자인 맨 린드루스 씨는 “유럽 각국에서 참여한 여러 도시와의 경쟁 끝에 ESS 유치에 성공해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과 가깝고 4차 산업 허브로 떠오르고 있는 룬드에 ESS를 조성키로 했다”고 말했다. ○ ‘외레순 벨트’로 성장 동력 찾은 교육 도시 룬드는 20여 년 전만 해도 조용한 교육도시였다. 1666년 설립된 명문 룬드대를 제외하곤 지역 산업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이제 미래형 도시로 탈바꿈했다. ESS와 가속기 ‘맥스IV’ 등 핵심 과학 연구시설과 4차 산업을 이끄는 기업 및 연구 인력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룬드의 혁신 비결 중 하나는 ‘동반 성장’이었다. 이웃 도시인 말뫼는 물론 인접국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과도 경쟁하기보다 함께 성장을 도모했다. 기차로 코펜하겐에서 말뫼까지 1시간, 말뫼에서 룬드까지는 20분이다. 말뫼와 룬드는 지리적으론 가까웠지만 성격은 크게 달랐다. 말뫼는 조선의 도시로 번창했던 반면 룬드는 한적한 교육 도시였다. 두 도시는 2000년 외레순 해협을 가로지르는 외레순 대교 개통을 계기로 운명공동체가 됐다. 말뫼는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 등 아시아 신흥국과의 조선업 경쟁에서 밀려 쇠락하기 시작했다. 2002년엔 골리앗 크레인이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매각되며 ‘말뫼의 눈물’을 흘렸다. 기반산업이 무너지자 사람도 기업도 도시를 떠났다. 실업률은 20% 가까이 치솟았다. 말뫼 사람들은 1986년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찾은 끝에 외레순 대교를 놓기로 했다. 이를 통해 ‘코펜하겐-말뫼-룬드’를 이어 생명공학·의학·제약 등 4차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어서 집세가 저렴한 말뫼에는 코펜하겐 시민들도 늘어났다. 룬드는 룬드대를 활용해 말뫼의 지식허브 역할을 하며 성장했다. 스테판 뮐러 말뫼 명예총영사는 “말뫼와 룬드는 북쪽에 멀리 떨어져 있는 수도 스톡홀름보다는 지리적 심리적으로 코펜하겐과 더 가깝다. 세 도시를 잇는 ‘외레순 벨트’는 국경을 초월해 북유럽을 대표하는 4차 산업 전초기지로 성장했다”고 했다. ○ 혁신의 비결은 ‘구성원 간 합의’ 룬드가 말뫼, 코펜하겐과 함께 동반 성장한 데는 룬드대의 역할이 핵심적이었지만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말뫼의 지역 발전 전략에 따라 룬드대는 순수 학문 연구에 치중한 상아탑에서 벗어나 기업과 긴밀히 협력해야 하는 새로운 역할이 필요했다. 하지만 구성원의 반발도 없지 않았다. 맷 배너 룬드대 과학정책과 교수는 “대학이 도시 발전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려면 기업의 지식센터 기능을 보강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에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룬드와 룬드대의 혁신 비결로 ‘구성원 간 합의’를 꼽은 이유다. 배너 교수는 “정부는 교수 연봉의 50%를 프로젝트 실적과 연동해 지급하는 혁신을 단행했다. 교수들에게 기업가적 자질을 중시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룬드대가 체질을 개선하는 데는 20여 년에 걸친 시행착오가 필요했던 셈이다. ○ 대학-기업 손잡고 가는 ‘이데온 사이언스 파크’ 룬드대와 외레순 벨트 지역 기업들 간 협력에는 ‘이데온 사이언스 파크’(이하 파크)도 큰 역할을 했다. 파크는 1986년 중앙과 시 정부, 룬드대, 기업이 대학에서 이뤄진 연구 성과를 산업화하기 위해 만든 과학 클러스터다. 대학 캠퍼스 안에 세워진 파크는 약 12만 m² 규모로 400여 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5월 방문한 파크 건물 외벽에는 기업 간판이 가득했다. 대학과 기업이 한자리에서 성장을 위해 손잡고 나가는 것을 그대로 보여줬다. 파크 내부에는 마이크와 단상만이 있는 툭 트인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미아 롤프 파크 최고경영자(CEO)는 “매일 아침 누구나 이 단상에 올라 연구 내용을 발표하고 아이디어를 교류한다. 투자자의 눈에 띄면 곧장 투자 상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파크는 대학과 기업의 인적·물적 교류도 적극 지원한다. 이곳을 통해 룬드대 학생은 원하는 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기업들은 인턴 제도를 통해 우수한 직원을 미리 확보해 서로 윈-윈이다. 파크는 스타트업(초기 벤처 기업)에 투자자를 소개하고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도 돕는다. 롤프 씨는 “매년 20개가량의 스타트업을 키워내고 있다”며 “룬드시가 기업 유치로 2022년 북유럽에서 가장 혁신적인 지역으로 성장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룬드시는 대학과 기업 간 네트워킹을 위해 2년 전부터 매주 목요일 ‘인터내셔널 시티즌 허브’도 개최하고 있다. 누구나 단상에서 짧은 연설을 하고 명함을 주고받으며 교류하는 자리다. 페르 페르손 룬드시 혁신과 비즈니스 홍보 담당자는 “룬드는 달이라는 뜻으로 우주산업을 이끄는 ‘문 빌리지 프로젝트’도 추진해 세계에서 손꼽히는 미래형 도시로 키울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룬드=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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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하나의 ‘클래식 한류’… 세계 무대 흔드는 2030 작곡가들

    세계에 이름을 알린 국내 연주자는 적지 않지만 작곡계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정상급 교향악단의 무대에 작품을 올린 작곡가는 진은숙(57) 정도가 유일하다. 이런 한국 작곡계에 최근 청신호가 켜졌다. 국제적 감각을 갖춘 젊은 작곡가들이 국내외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약하고 있다. 선두 주자로는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신동훈(35)이 꼽힌다. 2010년 제1회 국제작곡콩쿠르에서 공동 우승한 뒤 2016년 영국 로열필소사이어티가 뽑은 올해의 작곡가에 선정되며 ‘제2의 진은숙’으로 주목받고 있다. 명문 악단인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아카데미와 협연하는 등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2014∼2016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상주작곡가로 활동한 김택수(38)와 프랑스 명문 악단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최근 작품을 초연한 정진욱(25)도 주목받는 유망주다. 지난해 나란히 제71회 제네바 국제 콩쿠르 작곡부문 1위와 제1회 바젤 작곡 콩쿠르 3위에 오른 최재혁(24)과 최한별(37), 2015년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 현악사중주 부문 작곡 2등에 오른 이성현도 눈여겨볼 만하다. 최우정 서울대 작곡과 교수는 “콩쿠르에서 입상한 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20, 30대 작곡가만 10여 명에 이른다”며 “외적지표를 근거로 볼 때 2030 작곡가들의 약진은 분명히 눈에 띈다”고 했다. 이들의 선전 요인은 10여 년 전 도입된 작곡가 지원 제도가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6년 서울시향이 ‘서울시향 작곡 마스터클래스’를 도입한 뒤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 한국창작음악제’, 코리안심포니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상주작곡가 제도 등이 생겨났다. 서울시향 작곡 마스터클래스 출신인 신동훈은 “마스터클래스는 작곡가가 자신이 쓴 곡의 소리조차 들어보기 힘든 현실에서 무척 소중한 기회였다. 유럽에서 곡을 위촉받으며 활동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고 했다. 유학 뒤 학계에 자리 잡은 40, 50대 작곡가들이 후배들의 성장을 이끈 측면도 크다. 이들은 해외 정보를 공유하는 한편으로 ‘팀프앙상블’ ‘소리앙상블’ 등을 만들어 현대음악의 저변을 넓혔다. 2000년대 중반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자리를 잡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활성화되면서 작곡계의 전반적 수준이 높아졌다는 의견도 있다. 최한별은 “2000년대 중반부터 학생들도 해외 콩쿠르에 도전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유튜브나 SNS로 다양한 현대 곡을 접하게 된 것도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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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릿빛 피부 욕심내다… 피부에 화상 입고 휴가 망쳐요

    남태평양의 관광지 괌으로 휴가를 다녀온 직장인 최주혁 씨(42)는 그림 같은 바다를 앞에 두고 누워만 있다 와야 했다. 잘못된 선탠 지식이 화근이었다. 한 번 바르면 3시간가량 효과가 있는 선크림처럼 선탠오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 오일을 바르고 3시간가량 피부를 태웠다. 밀가루처럼 흰 피부를 구릿빛으로 바꾸고 싶어서였다. 밤에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르고 속이 메슥거렸다. 다음 날엔 오한 구토와 함께 피부에 물집까지 생겼다. 자외선이 피부에 침투해 염증을 일으킨 일광 화상(햇빛 화상)을 입은 것이다. 천상의 휴가지라도 아프면 소용이 없다. 여행지에서 건강을 챙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피부 “1시간 이상 선탠은 금물” 선크림을 바르는 등 보호 조치 없이 햇볕이 내리쬐는 해수욕장에서 1∼2시간 있으면 1도 화상을 입을 수 있다. 먼저 피부가 붉어지면 찬물 샤워와 얼음찜질로 열기를 빼 진정시켜야 한다. 물집이 잡히거나 살갗이 검은색 또는 하얀색으로 보이면 2도 화상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가까운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아야 한다. 피부 화상을 막으려면 햇빛을 잘 가려 과도하게 자외선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자외선이 가장 강한 오전 10시∼오후 2시에는 실외활동을 억제하는 것도 방법이다. 임이석 피부과 전문의는 “피부 물집이 터졌다가 생긴 각질은 벗겨내지 말고 보습제를 발라줘 자연스럽게 없어지도록 해야 한다. 각질이 벗겨지면 2차 감염이나 피부가 검게 변하는 색소 침착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눈 “수영 후 식염수로 눈 씻어야” 휴가지에서 감염으로 눈병을 앓으면 불편한 것은 물론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도 큰 제약을 받는다. 전염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떤 눈병은 한 번 걸리면 3∼4주 이상 지속된다. 아이들은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후 유치원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물놀이 시설을 이용하기 때문에 눈병 감염 우려가 높다. 가장 흔한 질병이 전염성 강한 유행성 각결막염이다. 아데노바이러스에 감염돼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고 눈곱이 끼면서 눈이 벌겋게 충혈된다. 좀 더 심각한 것은 ‘아폴로 눈병’이라 부르는 ‘급성 출혈성 결막염’으로 통증과 열을 동반한다. 엔테로바이러스 제70형이나 콕사키바이러스 A24형에 감염되면 나타난다. 눈병 전염을 막기 위해 가족 간에 각자 개인 수건을 사용하고 수영 후 식염수로 눈을 씻어내야 한다. 피부뿐 아니라 눈도 자외선에 민감하다. 에어컨과 선풍기 바람도 직접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 모발 “축축한 채로 에어컨 안 좋아” 여름 휴가철 바닷가로 나가면 선크림을 챙겨 피부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모발 보호에는 신경을 덜 쓴다. 하지만 모발도 자외선에 오래 노출되면 색깔이 변하고 두피의 모낭 손상으로 탈모가 진행될 수도 있다. 피부암을 유발할 수도 있는 ‘자외선 B’는 머리카락에 너무 많이 쐬면 주요 성분인 단백질을 파괴한다. ‘자외선 A’는 두피 속으로 침투해 모근을 약하게 만든다. 자외선이 강할 때는 모자나 양산만으로는 모발을 완전히 보호할 수 없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물놀이 뒤에는 모발과 두피를 완전히 말리는 것이 좋다. 젖은 머리카락은 건조한 머리카락보다 자외선이 쉽게 투과된다. 축축한 채로 에어컨 바람을 쐬면 비듬도 쉽게 생긴다. ○ 위장 “상온에 오래 둔 물과 음료 버려야” 물갈이로 인한 배앓이와 함께 식중독, 장염 등도 가장 흔한 여름철 휴가지 복병이다. 고온 다습한 환경에선 식중독균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상한 음식물로 인한 살모넬라 비브리오 등 세균에 의한 식중독이 90%에 이른다. 설사 고열 복통을 일으키는 식중독 예방을 위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상한 음식과 물이다. 원장원 경희대 의과대 가정의학교실 교수는 “상온에 반나절 이상 보관한 물, 뚜껑을 딴 지 오래된 음료 등은 가급적 버리는 게 좋다”고 말했다. 상온에 노출된 음료에는 침이 묻어 있어 살모넬라균과 녹농균이 번식해 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 여행 전 예방접종은 기본 해외여행 전에는 지역별로 예방접종을 해야 하는 곳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인도 동남아 지역도 콜레라, 이질, A형 간염 접종이 필요할 때가 있고, 아프리카는 말라리아 예방약 복용이 필요한 곳도 있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과 중남미 지역은 황열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일본에 가기 전 일본뇌염 접종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오한진 을지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일본뇌염 접종을 안이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뇌척수염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심각한 질병”이라고 강조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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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루마 “단순해서 친근한 선율, 훨씬 더 힘겹게 작곡”

    “선율이 단순하다고 더 쉽게 써지는 건 아니에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이루마(41)는 커다란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그의 음악은 ‘국민 배경음악’ 같다. 열차 도착을 알리거나 의료기기가 작동을 마무리할 때도 그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지나치게 익숙한 탓일까. 국내외에서 독보적 세미클래식 음악가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쉬운 음악을 한다는 선입견이 따라다닌다. 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기 어려운 것처럼 단순한 곡을 만드는 게 더 힘들다”며 “수백 년 뒤엔 이루마의 음악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모를 일”이라고 했다. 다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한 이루마는 음악이 흐르는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님, 누나 둘과 모였다 하면 건반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고 손님이 오면 ‘피아노 명곡 500선’을 쳤다. 11세에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대 킹스칼리지에서 작곡을 전공한 뒤 2001년 ‘러브 신’으로 데뷔했다. ‘키스 더 레인’ ‘리버 플로스 인 유’ 등 히트곡이 셀 수 없이 많다. “작곡이 안 풀릴 땐 손가락이 이끄는 대로 피아노 연주를 해요. 그래도 제자리걸음이면 프랑스 영화를 보거나 시를 읽죠. 미지의 이야기에 마음이 이끌리는 편인데, 특히 스타워즈는 저의 보물 같은 콘텐츠죠.” 저작권 문제로 2010년 소속사를 옮긴 뒤에는 해외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강렬한 공연을 선호하는 분위기 탓에 머뭇했지만 해외 반응은 뜨거웠다. 2016년 미국 카네기홀과 오페라하우스 공연이 매진된 뒤로 자신감이 붙었다. “벨기에 여행 중 성당을 지나가는데 종탑에서 ‘리버 플로스 인 유’가 흘러나왔어요. 호텔 로비에서 누군가가 제 곡을 연주하기에 ‘내 곡이야’ 하면서 직접 피아노를 친 적도 있죠. 의외의 장소에서 제 곡이 들려오면 행복하면서도 이게 내 곡인가 싶은 기분에 휩싸입니다.” 데뷔 18년 차, 마흔한 살. 그는 음악인들과 연대하는 꿈을 꾼다. 후배들을 위한 기획사나 음악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움텄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눈여겨보던 음악인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내 만나기도 했다. 그는 “클래식 아니면 실용음악으로 나뉘는 음악계 풍토가 아쉽다. 동료들과 음악학교를 만들어 경계 없는 음악을 논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 달 1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그는 ‘시티 썸머 페스티벌―낭만식당’의 마스터 셰프로 나선다. 기존 히트곡과 피아노 트리오 공연을 선사한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기름 토스트를 딸에게 가끔 해줘요. 요리법은 단순하지만 사랑 온기와 추억을 간직한 간식이죠. 요리 실력은 ‘꽝’이지만 ‘음악 마스터 셰프’로서 기름 토스트와 같은 음악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오후 5시. 3만3000∼9만9000원.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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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재료 반입부터 기내 탑재까지, 숨 가쁜 배식 작전

    아시아나항공이 ‘비행기 여행의 꽃’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기내식을 싣지 못하고 운항하는 ‘노 밀(No Meal)’ 대란을 초래했다. 이는 기내식 공급의 막후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배식 전쟁’의 의미를 경영층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내식은 가격 전쟁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승객 유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비슷한 가격이면 기내식 때문에 국적기를 선택하는 이들이 적잖다. 세계 각국 주요 항공사도 기내식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최첨단 과학까지 동원하고 있다. ○ 승객 앞에 오기 전 기내식에 담긴 ‘속도전과 과학’ 공항에 여객기가 도착한 뒤 승객이 내리면 곧바로 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또 다른 항공사 직원들이 들어간다. 청소를 마치면 바로 다음 행선지에 맞춰 필요한 기물 탑재가 시작되는데 가장 꼼꼼하게 다루는 ‘특급 기물’이 기내식이다. 대한항공에 기내식을 싣는 업체인 한국공항에서 일했던 홍모 씨(34)는 “늦어도 1시간 안에 일반, 영유아, 채식, 코셔(유대교 율법에 따른 음식), 할랄(이슬람 율법에 따른 음식) 등 필요한 기내식을 실어야 한다”며 “첫 고객 탑승 전까지 작업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외국 항공사의 경우 깐깐한 승무원을 만나면 1시간을 넘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내식은 식재료 반입, 조리, 디시 업(담기), 플레이팅(식판 음식 배열), 탑재에 이르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과정마다 일반 음식점 요리와는 다른 요구 조건이 많다. 먼저 조리 과정은 과학에 가깝다. 무게를 정확히 맞추기 위해 햄 한 쪽도 똑같은 모양으로 잘라야 한다. 조리는 식사가 이뤄지는 기내 환경에 맞춰서 이뤄져야 한다. 기압이 낮은 상공에서는 맛에 둔감해져 소금과 설탕을 30% 정도 더 넣거나 낮은 기압으로 샴페인 기포가 너무 많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보관 온도를 낮춰야 한다. 영유아, 코셔, 할랄, 베지테리언, 건강식 등 승객의 요구를 탑승 전에 미리 받아 맞춰 제공하기도 한다. 대한항공이 준비하는 기내식 종류만 120여 가지에 이른다. 보관도 까다롭다. 기내식은 조리 후 2∼12시간 뒤 승객에게 전달된다. 조리 후 하루가 지난 기내식은 폐기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리 후 맛을 유지하고 세균 번식을 막기 위해 섭씨 5도 이하로 식힌 뒤 기내 주방인 갤리에 보관했다가 이륙 후 오븐에 데워 서비스한다”고 말했다. 기내식은 출발지에서 조리하거나 재료를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 해당국 사정에 따라 버터나 과일 종류가 달라질 수 있지만 플레이팅, 무게 등은 같아야 한다. 아시아나 기내식 포장업체로 사장 윤모 씨가 제때 공급 업무를 마치지 못한 압박감에 목숨을 끊은 협력업체 화인CS의 한 직원은 “기내식은 후식이나 작은 버터 하나만 빠져도 안 되는데 어느 것 하나 제 시간에 충분히 공급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작은 식판 위에 올라오는 기내식을 모두 갖춰 포장해 여객기에 탑재하기 전까지 긴박한 준비 과정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업계 관계자는 “기내식 수량은 탑승객 수보다 약간 더 준비하며 쇠고기 수요가 많아 쇠고기와 닭고기 비중은 8 대 4 정도”라고 말했다. 남은 음식은 폐기하는 게 원칙이지만 복지시설에 기부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내식을 유료로 제공하는 저비용항공사(LCC)는 대부분 미리 주문받은 기내식만 비행기에 싣는다. 그 대신 라면, 샌드위치, 컵밥 등 간단한 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전 세계 기내식 시장은 지난해 기준 17조5000억 원 규모다. 마진이 10∼20%로 급유나 정비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코노미석 기내식은 안정화된 반면 비즈니스석과 1등석 승객용 기내식 메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화재와 안일한 대처가 초래한 기내식 대란 국내 기내식 시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계약을 맺은 업체(6월 말까지는 LSG스카이셰프, 7월 이후 게이트고메코리아·GGK)가 사실상 양분하고 있다. 한국에 취항하는 외국 항공사의 기내식도 대부분 이들 회사가 공급한다. 대한항공은 30여 개, LSG는 15개 외국 항공사의 기내식을 조달하고 나머지 외국 항공사나 LCC는 자체적으로 중소 기내식 업체들과 계약을 맺어 공급받는다. 기내식은 재고를 쌓아둘 수 없어 공급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곳에서 긴급히 조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다른 기내식 업체에 주문을 한다고 해도 기존 거래처에 보내야 할 물량 때문에 추가 생산이 여의치 않다. 대한항공이 올해 3월 GGK 공장 화재로 기내식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린 아시아나항공의 협조 요청에 난색을 표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GGK 공장 화재 이후 LSG에 다시 주문을 했으면 ‘기내식 대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LSG 직원 900명 가운데 750명이 GGK로 이직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LSG가 아시아나항공 물량을 공급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설 snow@donga.com·송진흡 기자}

    • 2018-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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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니스트 막심 므라비차 “2년 만에 한국팬과 만날 생각하니 벌써 설레”

    “제겐 고향 공연장까지 찾아와 주는 한국 팬들이 있죠. 선희, 보미, 올리비아, 빛나, 정말 고마워!” 월드스타지만 한국에서 유독 큰 사랑을 받았다. 건반 위를 질주하는 연주로 ‘신이 내린 손가락’이라 불리는 크로아티아 피아니스트 막심 므라비차(43). 2004년 처음 한국을 찾은 이후 2016년까지 모든 국내 공연이 매진됐다. 그가 10월 6일 부산KBS홀, 10월 7일 서울 올림픽경기장 올림픽홀에서 ‘2018 막심 위드 히즈 밴드 인 코리아’ 콘서트를 연다. e메일로 만난 그는 “최근 발매한 9집 앨범 ‘뉴 실크로드’ 수록곡과 ‘왕벌의 비행’ 등 기존 히트곡도 무대에 올린다”고 말했다. “실크로드 이야기에 감명받아 9집 앨범엔 동양적 느낌을 담았어요. 중국 전통악기와 협연하는 등 동서양 선율의 조화에 중점을 뒀죠. 수록곡 ‘뉴 실크로드’는 뮤지컬 메들리처럼 재미있고 ‘올 오브 미’는 대중음악이지만 쇼팽의 녹턴처럼 투명하게 편곡했어요.” 지붕 위로 포탄이 오가던 1990년대 크로아티아. 아홉 살 소년 막심은 피아노를 친구 삼아 두려움을 떨쳤다. 타고난 재능으로 3년 뒤 자그레브 국제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2003년 거물 작곡가와 매니저에게 발탁돼 ‘더 피아노 플레이어’로 데뷔한 뒤 스타로 떠올랐다. 15년간 꽃길만 걸어온 비결로 그는 음악을 팬들에게 선물하려는 마음과 탐구정신을 꼽았다. 막심은 “음악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즐긴다. 그 결과 클래식, 영화음악, 드라마 주제곡, 팝송, 제3세계 전통음악을 넘나드는 레퍼토리를 빚어낼 수 있었다”고 했다. 막심은 크로스오버 장르를 내세운 최초의 스타 피아니스트다. 음악계에서 정통성을 들어 비판할 때면 그는 “팝과 록도 색다른 매력이 있다”고 응수했다. 이런 자신감은 다수의 콩쿠르에서 우승한 실력과 클래식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다. “평소 듣는 음악의 70∼80%는 클래식이에요. 피아노 협주곡, 첼로 연주곡 등을 즐겨 듣죠. 집에서 종종 클래식을 연주하고 공연에서 베토벤과 쇼팽을 연주할 때도 있어요. 저는 클래식 음악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반항기 충만한 20대 피아니스트는 40대 ‘딸바보’ 아빠가 됐다. 여전히 친구들과 어울려 트레킹을 하고 클럽을 찾지만 세월이 안긴 변화도 적잖다. 예전보다 원숙해졌고 세상을 편하게 보는 지혜가 생겼다. 그는 “체력적으로는 에너지가 넘친다. 가족 친구들과 야외활동을 즐기며 최선을 다해 인생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크로스오버 뮤직을 탐구하면서 가보지 못한 지역에서 공연을 이어갈 거예요. 새로운 장소는 제게 큰 영감을 주거든요. 분명한 건 저의 뿌리는 클래식이란 겁니다. 피아노는 처음 마주한 순간 제 자신이 됐거든요. 10년 후쯤에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활동할지도 모릅니다.” 7만7000∼12만1000원.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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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민 “첼리스트 12명의 교향곡, 기가 막힙니다”

    ‘연주하고 싶은데 악보가 없네….’ 첼리스트 박상민 한국예술종합학교 기악과 교수(50)는 멋진 교향곡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웠다. 여러 대의 첼로를 동시에 연주하면 기가 막힌데 적당한 연주곡이 없었다. 그러던 중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첼로 주자 12명으로 구성된 ‘베를린필 12첼리스트’를 접하고는 ‘이거다!’ 싶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2일 만난 그는 “2013년 음악계 동료 및 제자 11명과 ‘첼리스타 첼로 앙상블’을 만들었다”며 “매년 1, 2회씩 교향곡, 팝송, 오페라 아리아 등 레퍼토리를 확장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고 했다. 클래식 애호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6세에 처음 첼로를 잡은 그는 10세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교사인 아버지는 두 아들의 음악 교육을 위해 고민 없이 미국행을 택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솔리스트로 성장하길 바랐지만 그는 오케스트라를 택했다. 줄리아드음악원 2학년이던 18세에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PO)에 최연소로 입단했다. “독주보다 서로의 음을 맞춰가는 실내악과 오케스트라에 마음이 이끌렸어요. 또 부모님과 인연이 있던 정경화 선생님을 보면서 ‘저 생활을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죠. 비행기 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연습만 하셨거든요.” 단원들의 평균 나이는 45세, 동양인은 통틀어 3명이었다. 하지만 매일이 환희의 연속이었다. 지휘계 거장 리카르도 무티, 쟁쟁한 단원들과 교류하며 음악적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8년쯤 지나 오케스트라를 그만두고 귀국해 강사 생활을 하다가 뉴욕 매네스음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어린 나이에 단원 생활을 시작해 반복되는 일상이 힘들게 느껴졌다. 멋진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을 때는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래서 지난해 서울시향 객원수석으로 잠시 무대에 섰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8일 오후 2시 열리는 ‘첼리스타 첼로 앙상블 여름음악회’에서는 ‘윌리엄 텔 서곡’과 ‘라 트라비아타’ 등 오페라 아리아와 비탈리 ‘샤콘’,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 모음곡’ 등을 연주한다. 김민지 서울대 교수, 김소연 한양대 겸임교수, 첼리스트 심준호 등이 함께한다. 2만∼3만 원.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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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년전 대학-기업-市 ‘3각 협력’… 덴마크 ‘로봇 창업’ 메카로

    “화학비료 대신 벌레를 뿌려 천적을 퇴치하는 드론, 사람 대신 일하는 고성능 농기계, 마비된 팔 근육을 되살려주는 운동 로봇…. 이곳은 무인항공시스템과 로봇 천국입니다.” 지난달 15일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시에서 기차로 1시간 반을 달리자 오덴세시를 알리는 간판이 나왔다. 창밖으로 형광빛을 품은 황금 논밭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로봇도시’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풍경에 어리둥절할 때쯤 네모반듯한 흰색 건물이 보였다. 오덴세 지역 대학인 덴마크남부대(SDU) 무인항공시스템(UAS)센터 건물이다. UAS센터는 무인항공·로봇 관련 기업, 대학, 스타트업, 관련 종사자가 함께하는 일종의 클러스터다. 한창 공사 중인 이곳은 완공 후 7300m²(약 2200평) 터에 각종 실험 시설과 중장비가 들어서게 된다. 브래드 비치 UAS 센터장은 “대학 안에 있던 UAS센터 건물을 확장해 시설을 새로 짓고 있다”며 “기업인, 학생, 연구진이 어울리며 열정과 영감을 돋울 수 있도록 개방형으로 건물을 설계했다”고 했다. UAS센터는 오덴세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1970∼80년대 이 도시는 조선업으로 호황을 이뤘다. 세계 1위 선박기업인 묄러-머스크 그룹이 지역 경제를 이끌었다. 지역주민 대부분 이 회사에서 일했고 오덴세조선소를 중심으로 돈과 활기가 돌았다. 허나 1980년대 중반 시련이 닥쳤다. 저임금을 앞세운 신흥 선박 강국에 밀려 조선업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 1990년대 이후 주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도시는 생기를 잃었다. ○ ‘로봇도시’ 25년 ‘어떻게 하면 시가 활기를 되찾을까.’ 시정부, 기업, 대학은 머리를 싸맸다. 격론 끝에 덴마크는 조선술이 발달해 로봇산업에 도전해볼 만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고임금으로 인한 제조업 침체를 로봇개발로 타개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26년 전 머스크는 로봇을 다음 먹거리로 정했고 정부, 시정부와 합자해 SDU에 1200만 달러(약 134억 원)를 투자했다. ‘대학-기업-시정부’의 트라이앵글 협력이 시작됐다. 투자를 받은 SDU는 로봇분야 선도대학이 되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관련 학과를 신설하고 전 세계에서 연구진과 교수진을 스카우트했다. 그 결과 SDU는 오덴세의 거의 모든 로봇기업의 지식센터로 기능하게 됐다. 헨리크 빈드슬레프 SDU 공대 학장은 “기업과 일하면 연구비가 생기고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 학교 재정도 자연히 안정된다”며 “산학협력은 기업과 대학 모두에 이익”이라고 했다. 또 “대학이 발 빠르게 최신 연구동향을 따라잡지 않으면 기업의 지식센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대학 투자→대학 성장→연구결과 기업에 기여’의 선순환 모델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지나친 산학협력 드라이브에 교수진의 반발은 없었을까. 덴마크 대학은 논문실적뿐 아니라 연구·특허·투자유치 모두 평가 대상이다. 자연히 기업과의 협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엄격한 교수 임용 체계는 산학협력의 또 다른 동력. 코펜하겐시의 코펜하겐공대(DTU) 박사후연구원 배한솔 씨는 “한국은 교수 30명 중 20명이 정년을 보장받지만 덴마크는 많아야 5명 정도 정교수에 임용된다. 이런 시스템은 교수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귀띔했다. 현재 오덴세는 세계적인 로봇도시로 꼽힌다. 2016년 로봇 밀집도(Robot Density) 기준으로 덴마크는 전 세계 6위. 자동차 제조국을 빼면 덴마크가 1, 2위쯤 되는 셈이다. 세계적인 로봇회사인 유로로봇 등 로봇 관련 기업 150여 곳이 오덴세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다. 병원, 철도, 학교, 아파트…. 오덴세 곳곳은 공사판이었다. 지역 기업·대학에서 일할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도시 기반시설을 닦는 것이다. 빈드슬레프 학장은 “2001년 첫 스핀아웃 기업을 배출한 뒤 15년간 로봇 관련 기업 150여 곳이 이곳에서 탄생했다”며 “시가 성장하면서 이곳에 정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다시 도시가 활력을 되찾았다”고 했다. ○ “교수님은 CEO” “사고로 팔을 쓰지 못하던 환자가 이 로봇으로 6개월간 훈련한 뒤 팔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SDU 연구장인 앤더슨 쇠렌슨 씨가 이렇게 말하며 자신이 만든 재활훈련 로봇을 시연했다. 2012년 오덴세조선소가 문을 닫은 뒤에는 로봇 관련 스타트업 육성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SDU 곳곳에서 스타트업 직원들이 머리를 맞댄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교수, 석·박사 과정 학생, 학부생 등은 아이디어를 상용화해 창업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다. 클러스터 조직도 새로 만들었다. 구멍이 뚫린 외부 디자인이 인상적인 코어텍스파크는 각종 중장비 기기를 갖춘 메이커스페이스, 비즈니스컨설팅센터, 협업 공간 등이 들어서 있다. 신선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첫 개발품을 만들어 시장에 선보이는 과정은 쉽지 않다. 시제품을 만들고 자금을 확보하고 유통망을 마련해야 한다. 연구 공간과 컨설팅 인력이 상주하는 코어텍스파크를 통하면 시장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학부 2학년 예스퍼 씨는 “상주 전문가의 도움으로 3개월 만에 학생들을 위한 전자기기 키트를 만들었다”며 “곧 인터넷에서 판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코어텍스파크를 만든 뒤 창업 관련 실적이 급증했다. 2년 전 16개에 불과하던 스타트업이 현재 150여 개에 이른다. 빈드슬레프 학장은 “벤처컵 대회를 했는데 5개 중 3개 분야에서 SDU가 우승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덴세 지역에 기반을 둔 대부분 로봇회사가 SDU와 연구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SDU 연구진이나 교수가 만든 자회사도 적잖다. UAS센터도 오덴세에 활력을 가져온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오덴세공항, 오덴세시, SDU의 합작품인 UAS센터는 3자가 ‘윈윈’하는 시스템이다. 대학은 최고의 연구 시설을, 시는 회사 유치를, 공항은 터 활용이라는 이익을 얻게 된다. 덴마크 정부 펀드가 공항 터를 사들인 뒤 로봇 관련 연구·교육·산업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지방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적극 협조한다. 최근 오덴세시는 오덴세 상공 800km²를 드론 우선 지역으로 지정했다. 이곳에서는 어떤 비행물체보다 드론이 우선해서 비행할 수 있다. SDU 측의 건의를 오덴세시가 검토한 뒤 정부에 전달해 해당 규정을 바꾼 것. 등록 드론과 비등록 드론을 구분하는 규제를 도입하는 등 필요한 행정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거미줄 시스템과 수평적 문화 덴마크는 1990년대 이후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인구 고령화로 노동생산성은 하락하고 복지지출로 재정이 고갈됐다. 정부, 민간기업, 연구기관은 국가 발전전략을 새로 짰다. 그 결과 생명공학·로봇·의료·제약 등에 집중하기로 했다. 대학은 정부 전략산업에 집중해 지역 성장을 이끌고, 시는 이들의 요구를 수용해 연구개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 덴마크의 산학연 시스템은 물샐틈없이 촘촘하다. 자금, 인력, 아이디어를 묶어주고 실행하는 다양한 기관들이 덴마크 경제를 이끈다. 기업·연구기관·대학의 연구과제와 인력을 통합관리하고 협력하는 ‘메이드(MADE)’, 덴마크 대학·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이노베이션센터’, 해외의 기술과 자본을 덴마크에 도입하는 비영리 독립기구 ‘코펜하겐코페서티’, 생명공학 클러스터인 ‘바이오피플’ 등 각 분야 클러스터 등이 대표적이다. 덴마크 특유의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문화도 빠른 국가 체질개선을 도왔다. 바이오피플의 페르 스핀들러 이사는 “덴마크에선 학생과 교수가 거리낌 없이 토론하고 교류한다. 이는 창업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오덴세=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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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장 지휘자 아바도를 지휘하는 사나이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KBS교향악단이 텅 빈 객석과 마주한 채 말러의 ‘교향곡 제9번’을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자 상임 지휘자인 요엘 레비(68) 앞에 놓인 스피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바이올린이 충분히 레가토(음과 음 사이를 끊어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연주하는 것)로 연주되지 않은 것 같아요.” 이에 레비가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영국 출신의 유명 음반 프로듀서인 크리스토퍼 올더(65)였다. 그와 e메일로 만났다. 올더는 “음반은 오롯이 연주자의 것”이라며 “프로듀서는 녹음에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할 뿐 해석에 과도하게 개입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가 작업에 참여한 KBS교향악단의 제728회 정기연주회 음반은 도이체그라모폰(DG) 레이블로 올해 말 발매될 예정이다. 음반 프로듀서는 ‘지휘자의 지휘자’로 불린다. 지휘자, 연주자와 소통하며 음반에 알맞은 소리를 이끌어내고 불필요한 소리는 걷어낸다. 올더는 1980년대부터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등과 작업한 명프로듀서. 2008년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 음반도 그의 작품이다. 영국 런던의 길드홀 음악학교를 나와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에 다니던 그는 1980년 우연한 기회에 DG에서 테이프 에디터 보조 업무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처럼 시작한 일은 아바도의 눈에 띄면서 평생 직업이 됐다.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을 담당하던 프로듀서가 사망하자 아바도가 보조로 일하던 그를 후임으로 지목한 것. “DG 측은 어리고 경험이 적은 나를 못미더워했지만 아바도가 고집을 꺾지 않았어요. 음반 녹음 작업에 대한 질문에 제 나름대로 대답을 했는데 아바도가 이를 좋게 본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뜻밖의 좋은 기회를 얻게 됐죠.” 1986년 리코딩 엔지니어, 1989년 책임 프로듀서를 지냈다. 그는 현재 DG에서 독립해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30여 년간 그래미상만 열 번 수상했다. 특히 말러에 조예가 깊어 아바도의 모든 말러 음반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빈필하모닉은 묵직하고 다채롭게, 베를린필하모닉은 우아하고 유려하게 말러를 빚어내죠. KBS교향악단은 말러에 어울리는 따듯한 음색을 지녔어요. 특히 마지막 악장에서 보여준 감정의 깊이에 감동받았습니다.” 프로듀서는 결과물을 얻기까지 연주자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테이크(연속으로 녹음된 하나의 단위)를 반복한다. 거의 모든 클래식 연주곡의 총보를 숙지해야 하며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적잖다. 완벽한 음반을 위해서는 ‘좋은 공연장, 준비된 오케스트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 모두를 갖춘 환경은 드물다. “음반 녹음은 실제 공연과 달리 반복 연주로 흠결을 줄일 수 있죠. 누군가에게 만족스러운 청각 경험을 선물하는 이 일을 사랑합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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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현정 “여성들만의 모차르트 연주 기대하세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가운데 1악장 카덴차 부분을 직접 작곡할 정도로 에너지를 쏟아 준비했습니다.”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29일 오후 8시 열리는 ‘서울 아카데미 앙상블’의 52주년 기념 정기연주회 무대에 서는 피아니스트 원현정(33)의 목소리에는 열정이 넘쳤다. 이날 서울아카데미 앙상블은 정치용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의 지휘 아래 레스피의 ‘옛 춤곡과 아리아 조곡’,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 등도 연주할 예정이다. 원 씨는 피아니스트로서 무대에 서기까지 수많은 시련을 극복해왔다. 네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예원학교를 졸업했지만 일반고인 이화여고에 진학했다. “혹독한 연습에 지쳐 돌연 피아노가 싫어졌다”는 이유에서 였다. “제게 다시 용기를 주신 것은 어린 시절 스승님이었어요. 제게 ‘재능이 있으니 피아노를 다시 쳐보라’고 설득하셨지요. 결국 대학에서 피아노과로 진학한 뒤에 마음 가는 대로 음악을 하며 피아노에 대한 흥미를 되찾았죠.” 그는 이화여대 피아노과를 거쳐 미국 이스트먼음대 석사, 미시간대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영국 왕립음악학교에서 최고연주자 과정도 이수했다. 그런데 석사 1년 차 때 건초염(힘줄을 덮고 있는 건초에 생기는 염증)이 찾아왔다. 2년 동안 건반 앞에 앉을 수조차 없어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밑바닥에서 헤매던 어느 날, 팔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직 음악에, 선율에 감동한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벅찼어요. 힘들 때면 팔을 쓸 수 없었던 그 시절을 떠올려요. 모든 음이 제자리에 놓인 듯한 ‘건반 위의 음유 시인’머리 퍼라이아(미국)의 연주를 동경해요. 그런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여성만으로 구성된 실내악단인 ‘서울 아카데미 앙상블’은 ‘한글날 노래’ 등을 작곡한 고(故) 박태현 작곡가와 당시 서울시향 여성 단원들이 1966년 ‘서울 여성 스트링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창단했다. 1984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고, 1991년 대만 정부 초청 연주 등 350여 차례 해외공연을 소화해 왔다. 3만∼5만 원.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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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번째 선수들 ‘붉은악마 vs 초록전사’ 축제가 시작됐다

    인공지진, 동성애 혐오 응원, 벌금 1000만 원…. 단 한 경기 만에 역대급 일화를 많이도 남겼다. 멕시코 축구팬은 열정과 과격의 경계에 걸친 팬심으로 ‘자국 선수단마저 외면한 워스트팬(worst fan)’이란 오명을 썼다. 어찌 됐든 한국에 이들은 위협적인 12번째 선수다. 한국 응원단이 분발해야 하는 이유다. 23일 밤 12시 멕시코와의 일전에 앞서 양국의 응원단 대결 포인트를 들여다봤다. ○ 축구사랑: 추억 vs 열기 “아내의 반대 때문에 함께하지 못한 친구 하비에르예요.” 최근 멕시코 방송에서 희한한 장면이 방영됐다. 월드컵을 보기 위해 러시아에 건너온 여섯 남자가 사람 크기의 종이 인형을 데리고 다니며 먹이고 입히고 재웠다. 동창생인 이들은 수년 전부터 러시아 월드컵 여행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곗돈을 붓고 중고 스쿨버스를 산 뒤 멕시코 상징색과 문양으로 차를 꾸몄다. 하지만 그들 중 하나인 하비에르는 아내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친구들은 함께하지 못한 하비에르의 종이 인형과 축구여행을 다닌다. 한국의 축구사랑은 2002년 이후 세계적 수준으로 달아올랐다. 월드컵을 개최한 경험과 각종 드라마를 거듭하며 이룬 4강 신화는 ‘꿈에도 못 잊을’ 국민 추억으로 꼽힌다. 이후 대표단의 성적에 따라 부침이 있었지만 축구에 대한 관심은 늘 보통 이상이다. 월드컵은 당연히 챙겨봐야 할 이벤트가 됐고, 월드컵 기간엔 각종 ‘특수’가 넘친다. 멕시코의 축구사랑은 훨씬 전면적이다. 멕시코 교민이나 한국의 멕시코인들은 “한국은 일부 광팬을 제외하곤 월드컵 시즌에만 전 국민적인 응원 열기가 끓어오른다. 멕시코는 늘 열기로 뒤덮여 있고, 월드컵 기간엔 활화산처럼 열기가 폭발한다”고 했다. 이번 월드컵이 멕시코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현지 언론은 “6월 말에 8강 진출이 결정되면 7월 1일 대선 투표율이 낮아지고, 그러면 지지율이 높은 좌파 후보가 불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현지 응원: 대통령 포함 1000여 명 vs 3만 명 한국과 멕시코 경기에는 멕시코 팬 3만여 명이 찾을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 등 외신은 “멕시코 팬이 거리를 점령했다. 어디를 가도 아즈텍 복장을 한 초록전사들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멕시코는 월드컵을 인생 이벤트로 여기는 이들이 상당수다. 4년간 돈을 모아 축구여행을 떠나고 다시 귀국해 일하다 축구여행을 계획하는 식이다. 송기진 주멕시코한국문화원장(45)은 “멕시코인들은 뭐든 한번 빠지면 끝장을 본다. 취미 이상으로 취미를 즐기는 문화가 보편적”이라고 했다. “멕시코는 빈부격차가 심해요. 과거 식민시대 토지 재벌이 적지 않아 이들은 여유롭게 축구여행을 즐기죠. 그렇다고 저소득층은 축구여행을 떠나지 못하느냐. 그들도 갑니다. 월급이 30만∼40만 원 선인데 매달 5만∼10만 원씩 저축해서 축구여행을 가는 거죠.” 6월 흥행 돌풍을 일으킨 축구 관련 코미디 영화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나타내 보인다. 영화 제목은 ‘너는 나의 열정(res mi pasion)’. 멕시코 프로축구단 ‘크루스 아술’에 빠져 직장과 아내로부터 버림받은 축구광의 이야기를 다뤘다. 주인공은 영화 마지막 순간에야 삶의 균형을 되찾고자 마음먹는다. 송 원장은 “저소득층 축구 광팬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몇 달간 응원 여행을 하고 돌아와 다시 직장을 찾는다. 영화의 인기는 내용이 그만큼 실감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 관중은 최대 1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붉은악마’ 등 응원단은 갓을 쓰고 전통 복장 차림으로 외국인 관중에게 한국 홍보를 하는 등 수적 열세를 만회하려 애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직접 경기장을 찾아 힘을 보탠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표팀 월드컵 경기를 관전하는 건 16년 만에 처음.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경기장을 찾은 바 있다. 해외에서 열리는 A매치 관전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 거리응원: 광화문광장 vs 소칼로광장 한국은 2002년 월드컵 응원 역사를 새로 썼다. 거리응원, 붉은악마, 월드컵 베이비, 축맥(축구&맥주), 월드컵 여신 등으로 대표되는 응원 문화를 꽃피웠다. 이후 성적에 따라 들쑥날쑥했지만 응원 문화는 진화를 거듭하며 이어지고 있다. 이번 월드컵 열기는 다소 식었다. 하지만 ‘애국심’을 덜고 해외 경기를 응원하는 등 응원 문화는 한층 성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에도 곳곳에서 거리응원전이 열린다. 서울에선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영동대로 일대, 연세로, 스타필드 하남 아쿠아필드 등에서 응원전이 준비돼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 야탑역 광장,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과 원마운트 이벤트 광장, 인천 동인천역 북광장, 경기 수원월드컵경기장에도 스크린이 걸린다. 스포츠펍에서 새벽을 불태우는 방법도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봉황당’과 상수동 ‘더그아웃’, 서울 이태원 ‘커넉스’ ‘샘라이언스’ 등이 있다. 스포츠펍이 아니라도 ‘축맥’ 프라임타임을 준비하는 호프집이 적지 않다. 회사원 김주한 씨(43)는 “동네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모바일로 삼삼오오 축구를 즐길 것”이라고 했다. 멕시코에서는 20만 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멕시코시티 소칼로광장에 시민들이 모여 경기를 본다. 경찰의 통제하에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며, 경기 후엔 20여 분 떨어진 레포르마 거리로 몰려가 축제를 즐긴다. 18일 멕시코-독일전 땐 광장에만 7만5000명이 몰렸다. 이르빙 로사노가 선제골을 넣은 순간, 이들이 동시에 발을 구르는 바람에 인공지진까지 감지됐다. 오전에 경기가 끝나면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종일 거리에서 여흥을 즐기는 게 일반적이다. 여차 하면 1박 2일로 잔치판을 벌인다. 멕시코인인 구스타보 산체스 계명대 컴퓨터공학과 조교수(29)는 “멕시코에선 집이나 펍, 거리에서 응원을 한다. 주로 맥주에 감자칩이나 땅콩 같은 간단한 안주를 곁들이며, 경기 후엔 테킬라도 마신다. 거리에선 음주가 불법”이라고 했다. ○ 응원가: ‘오 필승 코리아’ vs ‘야 야 야이 송’ 한국의 공식 월드컵 응원가는 2002년 이후 조금씩 변해 왔다. 2002년 발매된 응원가 음반 ‘꿈은 이루어진다’에 수록된 ‘오 필승 코리아’(윤도현밴드)와 ‘Into The Arena, 아리랑’(신해철)이 히트했다. 2006년 발매된 응원가 음반 ‘Reds, Go Together’에서 록그룹 트랜스픽션이 부른 ‘승리를 위하여’도 명곡으로 꼽힌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의 응원가 앨범 ‘위, 더 레즈(We, the Reds)’에는 빅스의 레오와 걸그룹 구구단의 김세정이 부른 ‘우리는 하나’ 등이 실렸다. 멕시코는 ‘시에르토 린도’라는 노래를 떼창(떼로 부름)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율에 단조로운 가사 등 응원가로선 최적의 요소를 갖췄다. ‘야 야 야 야이야’라는 후렴구가 유명해 ‘야 야 야이 송’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후렴구에 ‘푸토(puto)’라는 욕설을 붙이는 게 문제. 독일전 때도 후렴구에 욕설을 섞어 국제축구연맹(FIFA)이 멕시코축구협회에 벌금 1000만 원을 매겼다. 이에 멕시코축구협회 측은 자국 팬들에게 욕설 자제를 당부했다. AP통신은 “멕시코의 가장 큰 적은 다음 상대인 한국이 아니라 자국 팬”이라고 전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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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안에서 음악이 흘러나올 때 가장 큰 자유”… 노르웨이 첼리스트 트룰스 뫼르크

    “악보가 아닌 내 안에서 음악이 흘러나올 때가 있어요. 음악과 함께 한없이 자유로운 그 순간을 사랑합니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립교향악단 사무실. 북유럽을 대표하는 노르웨이 태생 첼리스트 트룰스 뫼르크(57)를 만났다. 농구 선수처럼 큰 체격이지만 미소와 말투는 더없이 온화하다. 그는 21, 22일 ‘트룰스 뫼르크의 엘가 ①②’, 23일 ‘실내악 시리즈Ⅲ: 트룰스 뫼르크’ 무대에 오른다. 엘가의 첼로 협주곡 E단조와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제2번 F장조, 슈만의 피아노 사중주 Eb장조 등을 연주한다. “엘가 곡은 여러모로 ‘작별’의 정서와 맞닿아 있고, 브람스 첼로 소나타는 강렬한 선율이 매혹적이에요. 실내악은 브람스와 슈만의 관계를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울 겁니다.” 뫼르크는 첼리스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를 뒀다. 처음엔 아버지 친구에게 바이올린을 배우다가 11세부터 아버지에게 첼로를 배웠다. 피아노, 바이올린과 달리 첼로는 처음부터 내 악기다 싶었단다. 그는 “작은 실수도 못 견디던 나와 달리 아버지는 여유가 넘치는 분이었다. 아버지의 너그러움 덕분에 첼로를 더 사랑할 수 있었다”고 고인이 된 아버지를 떠올렸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수제자인 프란스 헬메르손, 러시아 첼리스트 나탈리아 샤콥스카야 등을 사사한 그는 각종 콩쿠르를 휩쓸며 유럽과 미국에서 활약했다. 하나 2009년, 느닷없는 시련이 닥쳤다. 뇌염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왼쪽 팔이 마비된 것. “병이 낫는다면 매 순간 기쁘게 힘껏 살아내겠다고 기도했어요. 2년 뒤 기적처럼 병이 나았고 예전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 조금은 여유가 생겼죠. 여전히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실수를 해도 크게 자책하진 않습니다.” 첼로를 켜지 않을 땐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역사적 맥락에서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시사한다”며 최근 읽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를 추천했다. “심준호 이경윤 등 2명의 한국인 제자를 뒀어요. 이번 무대는 제자 심준호와 함께해 기대가 큽니다.” 21, 22일 오후 8시 서울 롯데콘서트홀. 1만∼9만 원. 23일 오후 5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1만∼5만 원.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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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객에게 ‘음악적 쾌감’ 선사한 페트렌코

    1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오른 ‘서울시향의 차이콥스키 협주곡’. 오후 8시에 시작한 공연은 10시를 훌쩍 넘겨 끝났다. 지휘봉을 잡은 러시아 출신 바실리 페트렌코(42)는 관객석에 강력한 음악적 쾌감을 안겼다. 첫 곡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 캐나다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가 무대에 올랐다. 연미복 차림의 두 남자가 눈짓을 주고받고선 눈을 감았다. 에네스의 연주는 눈부시게 정확하고 빨랐다. 노승림 음악평론가는 “20세기 줄리아드 학파의 연주를 최고 수준으로 구가하는 연주자”라고 그를 평했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제2번 E단조엔 전성기 시절 라흐마니노프의 예술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지휘자 페트렌코는 이 작품에 대해 “구체제가 붕괴되고 혁명으로 전환기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탄생한 작품이라 역사 속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고 소개했다. 이 곡은 연주 시간이 1시간이 넘어 종종 40분 내외로 줄인다. 시향은 전체 버전을 연주했지만 지루하진 않았다. 페트렌코는 자칫 놓치기 쉬운 작곡가의 의도를 꼼꼼히 반영해 음악적 재미를 살렸다. 각 파트는 정확히 때를 맞춰 치고 빠졌다. 페트렌코는 영국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과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유럽연합 청소년 오케스트라 등 3곳에서 상임 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서울시향 단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의 리더십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페트렌코는 연주 전 기자 간담회에서 “지휘자는 지휘봉을 갖고 지휘하지만 ‘지휘봉은 소리 내지 않는다’고 배웠다”며 “단원들을 통해 소리가 만들어지기에 단원들을 존중해야 좋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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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래의 기술? 이번엔 거래의 본능

    ‘(고작) 이걸 위해 그렇게 대대적인 선전을 한 거야? (늘 자랑하던) ‘거래의 기술’은 어디 갔지? 이게 다인가?’ 지난해 영국 BBC의 ‘화제의 방송사고’로 스타가 됐던 로버트 켈리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인 12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보여준 태도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국제협약을 탈퇴하며, ‘파투’(화투에서 판이 무효가 되는 것)도 불사하던 것과는 사뭇 달라 의아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일각의 부정적인 평가대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치밀한 포석(布石)에 ‘말린(?)’ 것일까. 아니면 비즈니스 게임의 고수로서 최후의 순익을 즐기려는 것일까. ○ 사업가 출신의 거래 본능 트럼프 대통령의 잘 알려진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는 사업가로서의 거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중 하나가 불확실한 리스크를 피하려 한다는 점과 ‘을’이 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점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970년대 중반 미국 뉴저지 애틀랜틱시티에서 도박이 합법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고 한다. 5000달러면 살 수 있던 가정집이 30만 달러로 오르더니 나중에는 100만 달러까지 간 것.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투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합법화 전에 사면 큰 차익을 벌 수 있지만 만약 안 될 경우 물거품이 되기 때문. 카지노는 수익성이 엄청난 사업이기 때문에 돈을 더 주더라도 합법화가 된 후 입지가 좋은 곳을 골라 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1977년 애틀랜틱시티에서 도박이 합법화한 후 3년이 더 지난 1980년 카지노 사업을 시작했다. 트럼프보다 먼저 사업에 뛰어든 업체들이 공사 지연, 공사비 부족, 카지노관리위원회의 허가 거부 등의 어려움을 충분히 본 뒤였다. 호텔 공사도 서두르지 않았다. 통상 다른 업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기 위해 호텔 공사와 카지노관리위원회의 허가 절차를 동시에 진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확실하게 카지노 영업 허가를 받은 뒤 공사를 시작하기로 하고, 만약 인허가가 지나치게 늦어지면 땅을 팔고 사업을 접겠다는 방침으로 협상에 임했다. 일단 호텔 공사를 시작하면 물러날 곳이 없기 때문에 카지노위원회가 이런저런 요구를 할 경우 거절할 수 없어 계속 끌려다닐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코가 꿰이는’ 것을 본능적으로 피한 셈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돌출적이고, 불확실적이며,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일반인들의 인식과는 다른 면모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언제 어떻게 상황이 달라질지 모르는 게 국제 정세인데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과 시간까지 명기할 경우 당장은 찬사를 받겠지만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길 경우 미국에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모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과정이 명시될 경우 미국 입장에서는 속된 말로 ‘한 번에 다 털어먹는’ 장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이후에는 차질이 생길 때마다 비판만 들어야 하는 반면에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과 시간표를 명기하지 않으면 향후 성과가 나올 때마다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공이 된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비핵화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인데 11월 선거와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한 방’에 털어먹기보다는 성과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것이다.○ 명분보다는 이익 대표적인 게임 이론 중 하나인 ‘치킨게임’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자동차 게임으로, 서로 마주 보고 달려오다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지는 경기다.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1000억 달러 추가 관세 부과를 지시하고 8, 9일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공동성명을 보이콧하는 등 다른 나라가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에 놓는 치킨게임 전술을 자주 써왔다. 물론 그 기저엔 명분이나 고상한 가치가 아닌 ‘머니’가 깔려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최고지도자가 된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적 마인드를 그대로 드러냈다. 북-미 정상회담 후 한미 연합훈련 중단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고 있다. 한국도 돈을 내고 있지만 100%는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얘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반 정치인들이 비록 속마음엔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에둘러 말하거나 다른 비유적 수사로 표현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적나라한 화법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도 외교안보의 관점이 아닌 사업과 미국의 이익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종수 교수는 “핵이 당면한 문제인 우리에게는 비핵화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철저한 해체 프로세스가 우선이지만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비핵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신들의 이익이 더 큰 고려 사항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꿰뚫은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미사일 엔진 시험장 파괴라는 선물을 안겼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자신의 실적으로 자랑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 CVID를 명기하기보다는 북한이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쇄하는 식으로 눈에 보이는 약속을 하나하나 이행하면 이를 비핵화 절차를 진행하는 것으로 포장해 성과를 낸 것처럼 알리려 할 것이라는 얘기다.○ 게임은 계속된다 트럼프의 방식이 궁극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할지는 미지수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트럼프는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이다. ‘허가’를 받아내고 ‘돈’을 버는 게 부동산 개발의 목적이다. 하지만 사적 재화를 다루는 비즈니스와 공적 재화를 다루는 정치는 다르다. 정치 영역은 경제적 이익 외에 고려해야 할 가치가 많다”며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하면 안 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국적으로 게임의 승리자가 될지를 놓고도 관측이 엇갈린다. 이한영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외교 분야의 경우 극단적으로 막장까지 갔을 때 겪을 파국이 전쟁”이라며 “파국의 상황이 (경제 분야보다) 훨씬 심각하기 때문에 양측이 협상에 더 조심스럽게 임하게 되고, 그래서 더 좋은 협상을 이끌어낼 가능성도 높아진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사업을 할 때보다 덜 저돌적일 수밖에 없었을 테고, 또 이번 회담은 순차게임이라 아직은 결론 내리기가 이르다”고 말했다. 안세영 성균관대 국제협상전공 특임교수는 “트럼프가 마치 양보처럼 보이는 통 큰 협상전략을 쓴 것으로 본다”며 “북한이 예전처럼 잔재주를 부리면 반격 전략으로 거칠게 나올 것”이라고 했다. 실제 김정은 일가가 과거처럼 미국을 상대로 장난치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른바 참수작전 등으로 자신을 제거할 수 있는 미국에 대해 갖는 불안감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 그러나 종신 집권자이자 국가 오너인 김 위원장으로선 임기가 정해져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자기 나름대로의 장기적인 스케줄을 갖고 협상에 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진구 sys1201@donga.com·이설 기자}

    • 2018-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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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더 유 “음악적 영감 키우려 뇌과학에 빠져있죠”

    “최근엔 뇌과학 관련 책을 읽고 있어요. 사람의 감정, 심리, 사고의 회로가 궁금해서요.” 한국계 최초로 BBC 선정 신세대 예술인에 선정된 미국 국적의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24)에겐 ‘나이보다 성숙한 연주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13일 전화로 만난 그는 “할머니 손에서 자라 다소 조숙한 편이다. 연주가 성숙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했다. 에스더 유는 미국 뉴저지주에서 나고 자라 6세 때 벨기에로 이주했다. 바이올린을 처음 접한 건 4세 무렵. 당시 뉴욕 스즈키아카데미 4년 과정을 8개월 만에 끝내 신동 소리를 들었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3위), 퀸 엘리자베스 바이올린 콩쿠르(4위)에 모두 최연소 입상했다. 2014∼2016년엔 한국계 최초로 BBC 선정 신세대 예술인에 선정됐다. “할머니가 피아니스트셨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취미로 각각 바이올린과 피아노, 플루트를 배우셨어요. 태아 때부터 클래식을 접한 셈이죠.” 평소에도 클럽보다 독서나 등산을 즐겨 ‘젊은 할멈(young grandma)’이란 별명을 가졌지만 음악에 있어선 도전을 즐긴다. 영국 음악축제 ‘BBC프롬’에서 만난 동료와 ‘젠 트리오’를 결성해 음반을 냈고 2년 전엔 서울의 한 클럽 무대에 올랐다. 최근엔 영화 ‘체실비치에서’의 OST를 녹음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팬들과 일상도 적극 공유한다. 그는 “콘서트홀이나 무대에서만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시대는 지나갔다”며 “무대 위나 밖에서 팬과의 만남을 즐긴다”고 했다. 그는 일반 국제학교를 거쳐 독일 뮌헨음대에 입학했다. 이 시절 공부한 지식과 인연은 가장 값진 음악적 자산이라고. ‘전설적 거장’과의 협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로린 마젤은 복잡다단한 음악가의 삶을 건강하게 이끄는 방법에 대해 알려줬고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에겐 음악을 향한 헌신과 넘치는 에너지를 배웠다”고 말했다. 에스더 유는 27일 부산, 28일 서울에서 러시아의 거장 미하일 플레트뇨프가 이끄는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연주곡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그는 “시벨리우스콩쿠르 최종 결선 무대에서 연주했던 곡”이라며 “위대한 지휘자가 이끄는 러시아 오케스트라와 고국에서 공연하게 돼 기대가 크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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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음여왕’의 멘델스존… 절제된 연주에서 나오는 투명함

    일시정지 상태의 구체관절인형 같았다. 꼿꼿한 자세와 견고한 표정. 오른팔만 격렬히 운동할 뿐, ‘얼음여왕’은 마지막 음표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곳곳에서 나지막한 감탄사가 터졌다. 누군가는 이렇게 내뱉었다. ‘사람이 아니다. 컴퓨터다.’ 이달 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러시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물로바(59)가 무대로 걸어 나왔다. 크림색 인어라인 드레스 차림 탓인지 키가 더 커 보였다. 연주곡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이 한 곡만 남겼어도 지금과 같은 명성을 누렸을 것’이란 찬사가 따라붙는 독일 낭만파 대표곡이다. 한없는 투명함에서 진한 페이소스를 담은 묵직함까지. 연주에 따라 스펙트럼이 넓다. 물로바는 구도자처럼 부동의 자세로 한 음 한 음 빠르고 정확하게 짚어 나갔다. 격렬하지는 않지만 맑고 단단한 에너지가 전해졌다. 한 음악계 관계자는 “몸과 감정은 함께 간다. 움직임을 절제하다 보니 음색도 이지적이고 투명한 것”이라고 했다. ‘컴퓨터 연주’는 러시아에서 받은 혹독한 훈련 덕이다. 연주자가 되면 서방 세계에 드나들 기회가 비교적 많았던 1960년대, 부모는 네 살배기 딸에게 바이올린을 쥐여줬다.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친구 하나 없이 연습만 했다”. 시벨리우스 경연대회(1980년)와 차이콥스키 콩쿠르(1982년)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1983년에는 영화 같은 탈출 작전으로 세계 언론을 장식했다. 당시 연인인 지휘자 박탕 조르다니아와 핀란드 공연 도중 스웨덴으로 망명한 것. 2년 뒤 빈에선 26세 연상의 거장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를 만났다. 5년간 동거하며 아들 미샤 물로프아바도를 낳았다. 8일 선보인 앙코르곡 ‘브라질’은 재즈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는 아들이 작곡했다. 2000년 이후 바로크 음악, 재즈 등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결혼한 영국인 첼리스트 매슈 발리는 든든한 음악적 동지다. “남편은 클래식과 재즈, 인도음악, 전자음악을 넘나들며 장벽을 허무는 음악을 사랑해요. 저도 다양한 레퍼토리를 탐험하며 음악가로서 풍부한 경험을 하고 있답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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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타는 질문을 던지다… 남자는 되고 왜 우린 안되나, 여자의 몸이 왜 음란물인가

    정치외교학과 12학번으로 입학해 학생회 활동을 했다. ‘알바연대알바노조’에서 적극 목소리를 냈다. 2015년 1월 일명 ‘김군 사건’이, 2016년 ‘강남역 살해 사건’이 터졌다. 당시 온·오프라인을 통해 페미니즘을 파고들었다. ‘불꽃여성농구단’ 동료들과 2016년 5월 21일 여성운동단체 ‘불꽃페미액션’을 만들었다. 이달 2일 페이스북코리아에 항의하는 ‘찌찌해방만세’ 시위를 벌인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가현 씨(26) 이야기다. “퍼포먼스 차원이었어요. 취재진이 없으면 우리끼리 사진 찍고 마무리할 생각이었는데….” 7일 양천구에서 만난 가현 씨가 말했다. 상의 탈의 시위가 남긴 인상은 강렬했다. 대중은 미투운동 이후 소강상태였던 페미니즘을 다시 돌아봤고, 저마다 ‘신체의 자유’란 물음표를 머릿속에 그렸다. ○ 불꽃페미액션: 가현 이야기 ‘불꽃페미액션’은 낙태죄 폐지와 천하제일겨털대회 등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여성해방 운동을 하는 페미니스트 그룹이다. 집행부 5명과 회원 200여 명은 이슈가 있을 때마다 연대하고 행동한다. 회원 대부분은 20대다. 30대는 20% 안팎이다. 가현 씨는 웃통을 두 번 깠다. 5월 ‘월경페스티벌’과 이번 페이스북 항의 시위에서다. 두 번째 탈의는 첫 번째 시위 때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이 음란물로 파악해 삭제하면서 이뤄졌다. 남성 가슴 노출 사진은 그대로 두면서 여성 가슴 사진만 삭제한 데 항의하는 뜻으로 2일 시위를 진행한 것.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후 설왕설래가 뜨거웠다. “벗고 다니겠다는 게 아니라 벗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적극 지지한다.”(29세 여성 학원강사) “반대하진 않지만 상의 탈의를 무기로 삼아선 안 된다. 이럴 땐 드러내고 저럴 땐 ‘시선강간’이라 공격하고. 잣대를 일원화해야 한다.”(40대 남성 언론인) “가슴을 보면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자가 초식을 할 수 있나.”(20대 남학생) (이에 반발하며) “그건 학습된 거다. 가슴을 드러내고 생활하는 부족도 있고, 조선시대 아들 낳은 여성들도 가슴을 내놓고 다녔다.”(20대 여학생) 응원을 건넨 이들도 많았지만 온라인에선 비난이 쏟아졌다. “상의 탈의를 하면서 ‘시선강간’으로 남성을 비난하느냐. 짧은 치마를 입고 계단을 오를 땐 뒤따르는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 말라”는 댓글이 가장 흔했다. 이에 가현 씨은 “가리지 않으면 몰래 카메라에 찍힐 위험이 있다. 여성의 안전과 남성의 불쾌한 기분, 둘 중 무엇이 중요한가”라고 반문했다. 외모를 비하하거나 성희롱에 가까운 댓글도 넘쳤다. 가현 씨를 비롯한 회원들은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시위의 뜻과 방식에 대한 비판이라면 수용하겠는데, ‘고추가 안 서네’ ‘뚱뚱하네’ 하는 글은 “좀 그랬다”. “사실 비난엔 익숙해요. 가슴을 ‘까기’ 전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는 순간부터 상상 가능한 온갖 욕이 날아왔죠. 한데도 등에 살이 접혔다는 이야기는 상처가 됐어요. ‘내가 더 예뻤더라면 덜 비난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탈코르셋 운동: 2030 여성 이야기 “근대화를 거치며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로 여성의 신체가 대상화됐다. 인터넷에 가둬두고 언제든 꺼내보는 물건처럼 된 것이다.”(김혜경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뒤에서 몰래 성적 대상화를 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불법촬영 범죄가 대표적이다.”(가현 씨) “남자는 웃통을 벗으면 상남자고 여자는 비키니를 입어야 상여자인가. 2000년대 들어 여성을 소비하는 콘텐츠가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편견이 심화됐다고 본다.”(30대 페미니스트) 가슴해방 운동은 이에 맞서는 방식이다. 1968년 미국 미스아메리카대회장 밖에선 속옷 태우기 운동이 있었다. 2000년대 한국 여성단체는 ‘노브라 선언’을 했다. 2009년 우크라이나에서 결성된 국제여성인권단체 ‘페멘(FEMEN)’은 가슴을 노출하고 꽃왕관을 쓴 채 여성 인권을 외친다. 2015년 미국에선 가슴 노출을 단속하는 공권력에 맞서 ‘프리 더 니플(Free The Nipple)’ 운동을 벌였다. ‘코르셋 벗기’ 운동도 같은 맥락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20대 여성 중심 카페 ‘여성시대’, ‘쭉방카페’ 등에는 코르셋 벗기에 동참한 이들의 인증샷이 넘쳐난다. ‘단백질 히잡(긴머리) 자르고 드라이기도 안 쓴다. 사람처럼 살고 있다’, ‘화장품 살 돈으로 책 사고 맛난 거 먹는다. 내 얼굴을 평가하지 않게 된다. 자존감이 높아진다’ ‘봉긋한 가슴을 위해 하던 브래지어를 벗었다. 세상 시원하다. 빨랫감이 줄었다. 브래지어 비싼데 돈 굳었다’ 등이다. 코르셋 벗기를 주도하는 건 1020세대. 30대도 간간이 참여한다. 정연보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모 평가, 외모로 인한 차별, 성적 대상화가 여성에게 더 심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탈코르셋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코르셋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직장인 송모 씨(27)는 “온라인 카페에서 화장품을 부순 인증샷을 올리는 이들이 많은데 실제 주변에 그런 친구는 단 1명”이라며 “이유야 어쨌든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라고 했다. 두 아이를 둔 워킹맘 김모 씨(37)는 “운동을 통해 뱃살이 줄어들 때 뿌듯함을 느낀다”며 “탈코르셋 동참 여부는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가현 씨는 “동참하지 않는 여성들이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 탈코르셋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 여혐 vs 남혐: 1990년대생 남성 이야기 1980년대의 시니어페미니스트,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 영페미니스트에 이어 2015년 이후 넷페미, 영영페미니스트 세대가 등장했다. ‘메갈리아’ ‘워마드’ 등 온라인 공간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뜻한다. 개별로 활동해 일상적 문제에 보다 집중하며, 온라인이 무대인 탓에 과격한 성향을 띤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오랜 기간 응축된 페미니즘 에너지가 온라인과 만나 폭발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여혐 vs 남혐’ 논란으로 번지는 점은 안타깝다는 의견이 나온다. 20대 취업준비생 강모 씨는 “넷페미들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남성에게서 찾는다. 양보 없이 뭐든 더 내놓으라는 식이어서 거부감이 든다”고 했다. “어머니 세대가 겪은 차별을 이용해 혜택을 받으려는 것 같다”, “남성에게 여성이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심을 체험해보라며 화장실 몰카를 설치하는 건 범죄”라는 비판도 있다. 1990년대생 남학생들은 여성들에게 학업경쟁 등에서 밀려난 첫 번째 세대다. 이들은 대체로 페미니즘에 부정적이다. ‘82년생 김지영’에 대항한 ‘90년생 김지훈’ 소설 크라우드펀딩 활동, 페미니즘 성향을 보인 연예인들 비난 등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자연히 페미니즘 이슈마다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이는 시대 배경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과거 2030 남성에게 결혼과 취업은 도달 가능한 목표였다. 지금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개별경쟁 가속화, 노동인구 고령화, 대학졸업 인구 증가에 따라 청년세대 전체가 진창에 빠졌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청년세대가 더 나은 시대를 고민하기 힘든 사회구조다. 눈앞의 논쟁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청년세대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계급 문제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페미니즘 운동은 ‘기성세대 아웃’ 성격이 짙다. 남성중심 체제에 복무하는 기성세대 여성도 ‘아웃’ 대상에 포함된다”며 “기존 체제에 종속된 남녀 간 갈등은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생 여성들은 동년배 남성들의 인식을 어떻게 느낄까. ‘불꽃페미액션’의 선물 씨(가명)는 “동년배 페미니스트가 증가하는 추세지만 대부분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얕다. 남성 페미니스트의 덕목은 여성의 말을 경청하고 남성 지인들에게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꽃페미액션’의 한솔 씨는 “대부분 무관심한 상태에서 남성 주류 매체를 통해 페미니즘을 접한다. 그러니 막연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성평등은 모든 성별이 함께 잘살기 위함이다. 거부감을 조금만 걷고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미러링(Mirroring·혐오 뒤집어 보여주기)은 여성이 받은 혐오를 남성에게 덧입혀 되돌려주는 전술이다. ‘된장녀’에 대응하는 ‘한남충’을 만들어 모욕을 주는 식이다. 최근엔 남성에게 코르셋을 씌우기도 한다. 가슴, 허리, 다리 등으로 여성의 신체를 쪼개 품평하는 남성문화를 모방해 넓은 어깨, 핑크빛 입술, 잘록한 허리, 상·하체 비율을 따지며 외모 잣대를 들이대는 것. 남성용 핑크색 립밤이 출시되기도 했다. ‘워마드’는 장애인, 성소수자 같은 사회적 약자도 미러링의 대상으로 삼는다.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기도 한다. 최근 워마드 게시판에는 남성 화장실을 불법촬영한 사진과 게시글이 올라온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여성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넷페미니스트로 활동하는 최모 씨(26)는 “워마드의 취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남성들과 공존해야 하므로 이들을 덮어놓고 비난하는 행위는 반대한다”고 했다. 한 시니어페미니스트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성 문제, 계급 문제, 탈식민주의 문제 등의 맥락에서 진지하게 이슈에 접근했다. 요즘은 역사의식 구조의식이 빈약하다”며 “전체 맥락에서 이슈를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여성계가 정치 세력화를 우선순위에 두고 ‘워마드’의 문제 행동에 침묵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페미니스트 머릿수 늘리기에 골몰해 범죄 행위에도 눈을 감는다는 지적이다. 취재하면서 만난 20대 여성들은 같은 점수를 받고도 남성이 취업에 유리하다는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게임업계에 취업하고픈 꿈이 좌절됐을 때 페미니즘을 찾았다고 말했다. ‘노오력’을 해도 뚫기 힘든 벽 앞에 기댈 곳은 페미니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동면하다 터진 넷페미니즘 에너지는 곳곳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택광 교수는 “방향을 잡고 에너지를 분출할 때다. 지금의 페미니즘은 사회적 모순 해결을 과제로 삼은 과거와 달리 더 나은 사회 건설을 고민한다.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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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백질 히잡 자르고, 브라도 벗었다…그녀들이 웃옷을 벗은 이유

    정치외교학과 12학번으로 입학해 학생회 활동을 했다. ‘알바연대알바노조’에서 적극 목소리를 냈다. 2015년 1월 일명 ‘김군 사건’이, 2016년 ‘강남역 살해 사건’이 터졌다. 당시 온·오프라인을 통해 페미니즘을 파고들었다. ‘불꽃여성농구단’ 동료들과 2016년 5월 21일 여성운동단체 ‘불꽃페미액션’을 만들었다. 지난 1일 페이스북코리아에 항의하는 ‘찌찌해방만세’ 시위를 벌인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가현(26) 씨 이야기다. “퍼포먼스 차원이었어요. 취재진이 없으면 우리끼리 사진 찍고 마무리할 생각이었는데….” 7일 양천구에서 만난 가현 씨가 말했다. 상의 탈의 시위가 남긴 인상은 강렬했다. 대중은 미투 운동 이후 소강상태였던 페미니즘을 다시 돌아봤고, 저마다 ‘신체의 자유’란 물음표를 머릿속에 그렸다. ●불꽃페미액션: 가현 이야기 ‘불꽃페미액션’은 낙태죄 폐지와 천하제일겨털대회 등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여성해방 운동을 하는 페미니스트 그룹이다. 집행부 5명과 회원 200여 명은 이슈가 있을 때마다 연대하고 행동한다. 회원 대부분은 20대다. 30대는 20% 안팎이다. 가현 씨는 웃통을 두 번 깠다. 지난 5월 ‘월경페스티벌’과 이번 페이스북 항의 시위에서다. 두 번째 탈의는 첫 번째 시위 때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이 음란물로 파악해 삭제하면서 이뤄졌다. 남성 가슴 노출 사진은 그대로 두면서 여성 가슴 사진만 삭제한 데 항의하는 뜻으로 지난 1일 시위를 진행한 것.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후 뜨거운 설왕설래가 오갔다. “벗고 다니겠다는 게 아니라 벗을 수도 있다는 거잖나. 적극 지지한다.”(29세 여성 학원강사) “반대하진 않지만 상의 탈의를 무기로 삼아선 안 된다. 이럴 땐 드러내고 저럴 땐 ‘시선강간’이라 공격하고. 잣대를 일원화해야 한다.”(40대 남성 언론인) “가슴을 보면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자가 초식을 할 수 있나.”(20대 남성 학생)(이에 반발하며) “그건 학습된 거다. 가슴을 드러내고 생활하는 부족도 있고, 조선시대 아들 낳은 여성들도 가슴을 내놓고 다녔다.”(20대 여성 학생) 응원을 건넨 이들도 많았지만 온라인에선 비난이 쏟아졌다. “상의 탈의를 하면서 ‘시선강간’으로 남성을 비난하느냐. 짧은 치마를 입고 계단을 오를 땐 뒤따르는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 말라”는 댓글이 가장 흔했다. 이에 가현은 “가리지 않으면 몰래 카메라에 찍힐 위험이 있다. 여성의 안전과 남성의 불쾌한 기분, 둘 중 무엇이 중요한가”라고 반문했다. 외모를 비하하거나 성희롱에 가까운 댓글도 넘쳤다. 가현을 비롯한 회원들은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시위의 뜻과 방식에 대한 비판이라면 수용하겠는데, ‘고추가 안 서네’ ‘뚱뚱하네’ 하는 글은 “좀 그랬다.” “사실 비난엔 익숙해요. 가슴을 ‘까기’ 전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는 순간부터 상상 가능한 온갖 욕이 날아왔죠. 한데도 등에 살이 접혔다는 이야기는 상처가 됐어요. ‘내가 더 예뻤더라면 덜 비난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탈코르셋운동: 2030 여성 이야기 “근대화를 거치며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로 여성의 신체가 대상화됐다. 인터넷에 가둬두고 언제든 꺼내보는 물건처럼 된 것이다.”(김혜경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뒤에서 몰래 성적 대상화를 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불법촬영 범죄가 대표적이다.”(가현) “남자는 웃통을 벗으면 상남자고 여자는 비키니를 입어야 상여자인가. 2000년대 들어 여성을 소비하는 콘텐츠가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편견이 심화됐다고 본다.”(30대 페미니스트) 가슴 해방 운동은 이에 맞서는 방식이다. 1968년 미국 미스코리아대회장 밖에선 속옷 태우기 운동이 있었다. 2000년대 한국 여성단체는 ‘노브라 선언’을 했다. 2009년 우크라이나에서 결성된 국제여성인권단체 ‘페멘’(FEMEN)은 가슴을 노출하고 꽃 왕관을 쓴 채 여성 인권을 외친다. 2015년 미국에선 가슴 노출을 단속하는 공권력에 맞서 ‘프리 더 니플’(Free The Nipple) 운동을 벌였다. ‘코르셋 벗기’ 운동도 같은 맥락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20대 여성 중심 카페 ‘여성시대’, ‘쭉방카페’ 등에는 코르셋 벗기에 동참한 이들의 인증샷과 간증이 넘쳐난다. ‘단백질 히잡(긴머리) 자르고 드라이기도 안 쓴다. 사람처럼 살고 있다’, ‘화장품 살 돈으로 책사고 맛난 거 먹는다. 내 얼굴을 평가하지 않게 된다. 자존감이 높아진다.’ ‘봉긋한 가슴을 위해 하던 브래지어를 벗었다. 세상 시원하다. 빨랫감이 줄었다. 브래지어 비싼데 돈 굳었다.…’ 등이다. 코르셋 벗기를 주도하는 건 1020세대. 30대도 간간이 참여한다. 정연보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모 평가, 외모로 인한 차별, 성적 대상화가 여성에게 더 심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탈코르셋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코르셋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직장인 송모 씨(27)는 “온라인 카페에서 화장품을 부순 인증샷을 올리는 이들이 많은데 실제 주변에 그런 친구는 단 1명”이라며 “이유야 어쨌든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고 했다. 두 아이를 둔 워킹맘 김모 씨(37)는 “운동을 통해 뱃살이 줄어들 때 뿌듯함을 느낀다”며 “탈코르셋 동참 여부는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가현 씨는 “동참하지 않는 여성들이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 탈코르셋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여혐vs 남혐: 1990년대생 남성 이야기 1980년대의 시니어페미니스트,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 영페미니스트에 이어 2015년 이후 넷페미 세대가 등장했다. ‘메갈리아’ ‘워마드’ 등 온라인 공간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뜻한다. 개별로 활동해 일상적 문제에 보다 집중하며 온라인이 무대인 탓에 과격한 성향을 띤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오랜 기간 응축된 페미니즘 에너지가 온라인과 만나 폭발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여혐vs남혐’ 논란으로 번지는 점은 안타깝다는 의견이 나온다. 20대 취업준비생 강모 씨는 “넷페미들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남성에서 찾는다. 양보 없이 뭐든 더 내놓으라는 식이어서 거부감이 든다”고 했다. “어머니 세대가 겪은 차별을 이용해 혜택을 받으려는 것 같다”, “남성에게 여성이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심을 체험해보라며 화장실 몰카를 설치하는 건 범죄”라는 비판도 있다. 1990년대 생 남학생들은 여성들에게 학업경쟁 등에서 밀려난 첫 번째 세대다. 이들은 대체로 페미니즘에 부정적이다. ‘82년생 김지영’에 대항한 ‘90년생 김지훈’ 소설 크라우드펀딩 활동, 페미니즘 성향을 보인 연예인들 비난 등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자연히 페미니즘 이슈마다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이는 시대 배경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다. 과거 2030남성에게 결혼과 취업은 도달 가능한 목표였다. 지금은 아니다. IMF 한국외환위기 이후 개별경쟁 가속화, 노동인구 고령화, 대학졸업 인구 증가에 따라 청년세대 전체가 진창에 빠졌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청년세대가 더 나은 시대를 고민하기 힘든 사회구조다. 눈앞의 논쟁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청년세대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계급문제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택광 교수는 “페미니즘 운동은 ‘기성세대 아웃’ 성격이 짙다. 남성중심 체제에 복무하는 기성세대 여성도 ‘아웃’ 대상에 포함된다”며 “기존 체제에 종속된 남녀 간 갈등은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생 여성들은 동년배 남성들의 인식을 어떻게 느낄까. ‘불꽃페미액션’의 선물 씨는 “동년배 페미니스트가 증가하는 추세지만 대부분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얕다. 남성 페미니스트의 덕목은 여성의 말을 경청하고 남성 지인들에게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꽃페미액션’의 한솔 씨는 “대부분 무관심한 상태에서 남성주류 매체를 통해 페미니즘을 접한다. 그러니 막연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성평등은 모든 성별이 함께 잘 살기 위함이다. 거부감을 조금만 걷고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 우리 모두의 이야기 미러링(Mirroring·혐오 뒤집어 보여주기)은 여성이 받은 혐오를 남성에게 덧입혀 되돌려주는 전술이다. ‘된장녀’에 대응하는 ‘한남충’을 만들어 모욕을 주는 식이다. 최근엔 ‘미러링’으로 남성에게 코르셋을 씌우기도 한다. 가슴, 허리, 다리 등으로 여성의 신체를 쪼개 품평하는 남성문화를 모방해 넓은 어깨, 핑크빛 입술, 잘록한 허리, 상·하체 비율을 따지며 외모 잣대를 들이대는 것. 최근 남성용 핑크색 립밤이 출시되기도 했다. 남성 혐오 사이트 ‘워마드’는 장애인·성소수자 같은 사회적 약자도 미러링의 대상으로 삼는다.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기도 한다. 최근 사진과 워마드 게시판에는 남성 화장실을 불법촬영한 게시글이 올라온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여성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넷페미니스트로 활동하는 최모 씨(26)는 “워마드의 취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남성들과 공존해야 하므로 이들을 덮어놓고 비난하는 행위는 반대한다”고 했다. 한 시니어페미니스트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성문제, 계급문제, 탈식민주의문제 등 맥락에서 진지하게 이슈에 접근했다. 요즘은 역사의식 구조의식이 빈약하다”며 “역사의식을 가족 전체 맥락을 읽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여성계가 정치 세력화를 우선순위에 두고 ‘워마드’의 문제 행동에 침묵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페미니스트 머릿수 늘리기에 골몰해 범죄 행위에도 눈을 감는다는 지적이다. 취재하면서 만난 20대 여성들은 같은 점수를 받고도 남성이 취업에 유리하다는 현실을 맞닥뜨렸을 때, 게임업계에 취업하고픈 꿈이 좌절됐을 때 페미니즘을 찾았다고 말했다. ‘노오력’ 해도 뚫기 힘든 벽 앞에 기댈 곳은 페미니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동면하다 막 터진 넷페미니즘 에너지는 곳곳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택광 교수는 “방향을 잡고 에너지를 분출할 때다. 지금의 페미니즘은 사회적 모순 해결을 과제로 삼은 과거와 달리 더 나은 사회 건설을 고민한다.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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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학-독서가 음악적 영감 키워줘… 폭넓게 배워야”

    5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올해 ‘디토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피아니스트 한지호(26), 첼리스트 문태국(23), 클라리네티스트 김한(22)을 만났다. ‘디토 앙상블’의 리더인 용재 오닐(40)은 10년째 디토 페스티벌을 이끄는 리더. 3인방은 올해 디토 페스티벌이 선정한 라이징 스타다. 피아니스트 한지호는 2014 독일 뮌헨 ARD 국제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했고, 첼리스트 문태국은 아시아인 최초로 2014년 카잘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실력파. 두 사람은 올 2월 워너 인터내셔널 듀엣 앨범을 함께 녹음했다. 문 씨는 “형하고 알고 지낸 지는 1년 정도 됐는데, 두 사람 모두 음악가치곤 성격이 무던한 편이라 의견은 달랐지만 조율이 쉬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씨는 “무대에서 연주자도 일종의 연기를 한다. 감정을 소모하고 나면 다시 그것을 채우는 시간이 필요한데, 성격이 예민하면 그 과정이 힘들다”며 의견에 동의했다.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은 최근 핀란드 방송 오케스트라 최연소 부수석으로 임명됐다. 그는 “원래 솔로에 관심이 많았는데 클라리넷은 모차르트 곡을 제외하면 연주할 곡이 많지 않았다”며 “목관 앙상블 ‘바이츠퀸텟’ 동료인 함경과 조성현이 오케스트라에 입단한 영향도 컸다”고 설명했다. ―이번 디토 페스티벌 무대는 어떻게 꾸렸나. ▽문=10주년을 맞아 초심으로 돌아가 음악에 더 집중하는 게 모토다. 드뷔시와 풀랑을 연주하는데, 정말 즐겁게 준비하고 있다. ▽김=하고 싶은 곡들을 넣다 보니 굉장히 어려운 레퍼토리가 완성됐다. 8년 만에 갖는 국내 독주회 무대인데, 상당히 어깨가 무겁다. ―셋 다 중고교 때 유학을 갔다. 투자한 만큼 도움이 됐는가. ▽문=국내에도 유학파 교수님이 많아서 교육면에선 비슷하다. 다만 클래식 뿌리가 서양음악이라 문화·언어적 측면에서 이점이 크다. ▽한=확신이 있다면 결과와 관계없이 유학생활이 어디에서든 활용될 거라 본다. 재능의 크기는 다 다르지만, 가진 그릇을 꽉 채운다면 크든 작든 쓸 곳이 있을 거다. ▽김=한국에선 어릴 때부터 악기에만 집중해 다른 분야를 접할 기회가 적다. 외국에선 다른 공부도 하면서 악기를 한다. 그리고 대학에 가면 본격 연습에 매진한다. 반면 한국은 중고등학교 때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대학에선 지치는 경향이 있다. ―악기 외에 음악에 도움이 되는 공부가 있다면…. ▽김=수학도 도움이 된다. 음계나 옥타브 차이도 수학과 관계가 깊다. 리듬감도 좋아지고 무의식으로 채운 지식들이 무대에서 표출된다. ▽한=사유의 방식이 더 유연해질수록 예술가로서 영감을 얻기 쉬운 상태가 된다. 그래서 많이 읽는 게 중요하다. ▽문=숲에 나무 시냇물 꽃 다람쥐 등이 공존해야 조화로운 생태계가 되듯 전인적 교육이 음악성에도 중요하다고 본다. ―대중적인 기획이나 스타 시스템을 도입하는 클래식 공연이 늘어나는 추세다. ▽한=부정적이진 않지만 연주자는 늘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이미지가 소진되고 다른 스타가 나오면 힘들 수 있다. 정보 유통이 짧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클래식 시장이 달아오르긴 쉽지 않다. 하지만 종이책처럼 클래식은 꾸준할 거라고 본다. ▽문=스타가 아니라 나의 성 ‘문(moon)’처럼 은은하게 자리를 지키는 솔리스트가 되고 싶다. 문태국&한지호 9일 오후 8시. 김한 10일 오후 2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3만∼5만 원. 1577-5266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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