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이상훈 기자

동아일보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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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정책사회부장입니다.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sanghun@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칼럼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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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 저출산 예산, 유럽 절반 수준… 육아지원 미래투자 더해야”

    《“韓 저출산 예산 충분하지 못해” “한국이 15년 동안 280조 원을 지원했으니 금액 자체가 작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련 예산의 비중은 겨우 1%대에 그친다.” 일본의 저출산 및 가족 문제 권위자인 야마구치 신타로(山口慎太郎·48) 도쿄대 경제학부 교수가 12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저출산 대응이 부족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2020년 기준 한국의 가족지원 예산은 GDP 대비 1.6%로, OECD 평균(2.1%)에 못 미친다. 일본(2.0%)보다도 낮다. 야마구치 교수는 “아이를 낳으면 사회 전체가 키워 준다고 느낄 만큼 정부가 최대치를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가 육아를 적극 지원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건, 시간이 걸린다 해도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 보면 정말 괜찮은 투자입니다.” 야마구치 신타로(山口慎太郎·48) 도쿄대 경제학부 교수는 12일 동아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뜬금없이 “결혼 전에도 아이를 갖고 싶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딱히 계획을 세워 가진 건 아니다”고 답하자 야마구치 교수는 웃으며 “나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첫아이를 갖기 전까진 자녀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이가 가족 모든 것의 중심이 됐죠.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행복을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이걸 경제적인 문제로 포기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야마구치 교수는 최근 일본에서 저출산, 육아 관련 연구로 크게 주목받는 경제학자다. 그의 연구실 벽에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담긴 사진들이 주르륵 걸려 있다. 소셜미디어에 아기 사진을 올려놓고 “초등학생 아들에게 게임 가르쳐주는 걸 좋아한다”고 자신을 소개할 정도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진하다. 그는 “당장 효과를 눈에 볼 수 없어 체감하기 어렵겠지만, 육아 지원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투자”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저출산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선진국 중에서도 특히 두 나라 출산율이 매우 낮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을 보면 202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은 0.78명으로 꼴찌, 일본은 1.26명으로 35위다.)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면 더 삶이 힘들어진다는 게 실제로 드러나니 출산율 저하가 가속화되는 게 아닐까. 낮은 합계출산율 숫자 자체보다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더 문제다.” ―일본에서도 육아가 힘들다는 인식이 강한가. “아이로 인해 얻는 장점은 표면적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안 좋은 점은 바로 드러나지 않나.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뺏기고 일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특히 일본에는 사회적으로 좋은 건 밖으로 자랑하길 꺼리는 문화가 있다. 육아는 괴롭다는 말은 서로 하면서도, 아이 덕분에 행복하다는 얘기는 남에게 잘 하지 않는다.” ―육아는 옛날이 더 힘들지 않았을까. “한일 양국 모두 20세기 중·후반 베이비붐을 겪었다. 그때는 앞으로 세상이 좋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사실 지금도 (미래가 어둡다는 주장에)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나아질 거란 전망이 보이지 않으니 청년들이 선뜻 아이를 갖겠다고 결심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결혼이 늦어지고 아예 연애도 하지 않으려 한다.” ―실제로 육아는 고충이 많이 따른다. “나 역시 아이를 갖기 전까지 자식을 낳겠단 생각이 없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꼭 아이를 갖겠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난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고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경험에 비춰보면 아이를 가진 내가 (아이가 없던) 과거의 나를 설득할 수 없을 것 같긴 하다. 아이를 갖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야마구치 교수는 이런 이유로 “핵가족화로 아이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청년들에게 육아 체험의 기회를 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요즘 청년들은 아기를 접할 기회가 드물어 아기가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느낌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그런 상황에서 육아가 어렵다는 얘기만 들으니 육아를 할 수 있다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일본의 몇몇 비정부기구(NGO) 단체는 중고생이나 대학생들을 육아 도우미로 활용한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15년간 저출산 해결에 280조 원을 썼다. “큰돈이긴 하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 규모나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그렇게 많이 쓴 것도 아니다.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면 육아 지원에 인색한 일본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1%대 후반인데, 한국은 1%대 중반이다. 유럽 국가들은 3%대 중후반인 곳도 많다. 유럽 등과 비교하면 한국이 결코 저출산 대책에 많은 예산을 쓴다고 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와 OECD 등에 따르면 한국의 가족 지원 예산은 2020년 기준 GDP 대비 1.6%로 스웨덴(3.4%)의 절반도 안 된다. 특히 아동수당, 육아휴직 급여 등 현금 지급 예산으로만 따지면 한국은 GDP 대비 0.5%로 OECD 회원국 평균(1.1%)의 45%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합계출산율이 높은 선진국 수준으로 정부의 가족복지 관련 지출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합계출산율(2022년 0.78명)은 OECD 회원국 중 가족 지원 예산이 가장 많은 스웨덴(1.52명)의 절반가량이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저출산 예산은 51조7000억 원. 이 중 46%(23조 원)가 주택 구입 및 전세자금 융자, 다가구주택 매입 임대 등 주거 지원 분야에 쓰였다. ‘집이 없어 아이를 못 낳는다’는 여론과 최근 집값 및 전세금 급등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돌아갈 직접적인 지원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저출산이 심각한데 왜 정부 지출은 적을까. “일본은 고령화 진행 영향이 크다. 정부 예산을 배정할 때 육아보다 연금, 의료 등 은퇴한 사람들에게 써야 한다는 압력이 있다. 물론 저출산 해결과 고령화 대응은 모두 중요한 과제다. 다만 현실적으로 젊은층보다 투표 참여율이 높은 고령층의 정치적 영향력이 큰 탓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청년들은 세금, 사회보험료로 돈은 돈대로 내면서 아무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크다. 이런 결과가 출산율 저하로 이어졌다. 이렇게 되면 젊은 세대들이 노인이 되는 미래의 일본 사회는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이 크다.” ―현금 지원을 늘리면 저출산이 해결될까. “(일본은 현재 3세 미만에게는 매달 1만5000엔, 3세부터 중학생까지는 매달 1만 엔의 아동수당을 지급한다.) 한국과 일본 모두 마찬가지일 텐데, 현금을 직접 주면 그 돈은 결국 사교육비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육아의 어려움은 오히려 가중될 수 있다. 부모에게 직접 현금을 주는 것보다 급식비나 수학여행비 등 각종 교육 제반 비용을 지원해 부모가 교육에 돈을 적게 써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선 치열한 경쟁 탓에 키울 자신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의 입시 경쟁은 일본에서도 유명하다. 궁극적으로 사회적 격차가 크다는 게 문제다. 어떤 대학에 입학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사회적 격차가 커져 버리니 입시에 매달리는 게 아닐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이나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은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고 있다. 이는 모두 저출산 현상으로 이어진다. 격차를 줄이고 소득 재분배가 있는 사회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저출산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도, 일본도 사회 전체가 아이를 키운다는 생각이 부족하다. 사회 전체적으로 육아를 지원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지 않는 한 저출산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아이에게 부모는 가장 중요한 존재이지만, 부모가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부담이 너무 크다. 조금만 부족하면 (사회적으로도, 스스로도) ‘부모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다 보니 출산, 육아의 벽이 너무 높아졌다. ‘이렇게 힘든데 굳이 부모가 될 필요가 있을까’라는 발상이 퍼지면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회가 된다.” ―최근 일본에선 ‘2100년까지 인구 8000만 명 유지’를 주요 내용으로 한 ‘인구비전 2100’ 정책이 나왔다. “출산, 육아를 가로막는 여러 문제가 해소되면 합계출산율이 1.8명까지 갈 것이라는 ‘희망 출산율’이라는 개념이 있다. 문제를 해결해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 감소 추세를 낮추자는 메시지를 사회적으로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 출산율이 0.7명대인 한국은 보다 더 큰 위기감을 갖고 당장 뭔가 해야 할 필요성이 높지 않나. 인구가 줄어들면 지금의 사회 인프라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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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기자協-아사히신문 ‘미디어 성평등 토론’

    한국여성기자협회가 19일 일본 도쿄에서 아사히신문과 ‘한일 미디어의 성 평등을 둘러싼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협회 소속 여성 기자들은 아사히신문 편집 간부 및 여성 기자들과 성차별 해소를 위한 언론 정책에 대해 논의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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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日 여성 기자들, ‘미디어 성 평등’ 논의… “빠른 사회 변화 따라가야”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언론이 이런 사회 변화에 빨리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일 여성 언론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성 평등을 위한 사회적 여론 형성 등을 고민하는 자리를 가졌다.한국여성기자협회는 19일 일본 도쿄에서 아사히신문 초청으로 ‘한일 미디어의 성 평등을 둘러싼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여성기자협회는 국내 언론사 여성 기자 17명이, 아사히신문은 편집 간부와 여성 기자 등 30여 명이 참가했다.아사히신문은 이 자리에서 “2020년 4월 발표한 ‘젠더 평등 선언’ 이래로 ‘사람(ひと)’란 인물 성별 균형, 사내 관리직 여성 비율 향상, 남성 직원 육아휴직 사용 확대 등을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화제 인물을 다루는 아사히신문의 ‘사람’ 란에서 여성 등장 비율은 선언 이전엔 20%대 수준이었으나 2022년 45.8%까지 높아졌다.신문의 모든 편집국 부서가 젠더 담당 데스크를 두고 성 평등 관점에서 기사를 쓰려 노력한다는 점도 소개했다. 후쿠시마 노리아키 아사히신문 젠더 담당 이사는 “성 차별 해소를 위해 다양한 대응을 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설명했다.김경희 여성기자협회 회장은 “아사히신문의 다양한 성 평등 정책은 한국 언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성 평등 구현 및 올바른 여론 형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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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년 유리천장 깬 JAL… 승무원 출신 여성사장 발탁

    포즈를 취해 달라는 카메라 기자들의 요청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는 좀처럼 표정을 펴지 못했다. 마이크를 잡고서도 꿀꺽 침을 삼키고 숨을 크게 들이켜 쉬더니 그제야 찬찬히 입을 뗐다. “항공사는 기본이 안전과 서비스입니다. 이 두 가지는 제가 가진 경력의 전부입니다. 앞으로도 저답게 해 나가겠습니다.” 소속 직원만 3만6000명. 일본을 대표하는 73년 역사의 국적기 항공사인 ‘일본항공(JAL)’에서 17일 신임 사장으로 임명된 돗토리 미쓰코(鳥取三津子·60) 전무는 짤막하지만 정론(正論)으로 포부를 밝혔다. 일본 내에서도 보수적이라 평가받는 항공업계에서 여성 승무원 출신이 항공사 사장으로 발탁되는 첫 순간이었다. 여성에 대한 ‘유리 천장’이 높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돗토리 사장의 취임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은 세계경제포럼(WEF)의 지난해 ‘성 격차 보고서’에서 남녀평등지수가 조사 대상 146개국 가운데 125위에 머물렀다. 로이터통신은 “(그의 취임은) 직장에서 성차별과 싸우고 있는 일본 여성들에게 매우 상징적인 조치”라고 평했다.● 여성, 지방대… 허들을 뛰어넘다 1964년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난 돗토리 사장은 나가사키 갓스이(活水) 여자단기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뒤 1985년 도아국내항공 객실 승무원으로 항공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가 나온 대학은 2005년 폐교됐으며, 훗날 일본에어시스템(JAS)으로 이름이 바뀌었던 도아항공도 2006년 일본항공과 통합되며 흡수 합병으로 사라졌다. 비행기 하면 스튜어디스를 떠올리듯, 항공사는 여성 승무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하지만 여성이 임원급 고위직에 오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일본항공은 임원 32명 가운데 단지 7명만 여성이다. 참고로 대한항공은 임원 74명(사외이사 제외) 가운데 여성이 상무 2명에 불과하다. 돗토리 사장에겐 ‘여성’만 장애물이 아니었다. 지방 2년제 대학 졸업이나 피합병회사 출신이란 점도 회사생활엔 힘겨운 꼬리표였다. 하지만 그는 당당했다. 한 인터뷰에서 “빨리 사회에 나가고 싶어 2년제를 택했다. 놀 틈이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항공 내에 한때 ‘JAL 출신’과 ‘JAS 출신’으로 파벌이 생기기도 했지만, 돗토리 사장은 다양성을 조직문화 개선에 적극 활용했다. 돗토리 사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회장으로 취임하는 아카사카 유지(赤坂祐二) 사장은 “여러 사람의 힘을 어떻게 끌어내느냐에 회사의 명운이 달려 있다”며 “사업이 다각화되는 지금 같은 시대엔 팀 경영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조직 논리보다 “고객이 정말 원하냐” 강조 입사 뒤 줄곧 승무원으로 일한 돗토리 사장은 2020년 객실 본부장에 취임한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기쁨을 누릴 새도 없었다. 승무원들이 한 달에 2, 3일밖에 비행을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돗토리 당시 본부장은 우선 낙담하여 일자리 잃을 걱정에 빠진 직원들의 기를 살리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다. 기업이나 관공서 등과 연계해 콜센터, 화물 작업, 사무 등으로 파견을 보냈다. 이렇게 직원들의 고용을 유지한 공로로 그는 지난해 6월 최고고객책임자(CCO)가 됐다. 그에게는 항상 ‘여장부 기질’이 있으면서도 원리원칙을 따진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사내 회의에서도 조직의 시각에 치우칠 때 “고객이 정말 그렇게 원하냐”고 지적하며 결론을 바꾼 적도 많다고 한다. 특히 화장실 청소에 대한 고집이 센 건 안팎에서 유명하다. 2020년 인터넷 여행업체가 일본항공을 ‘종합 만족도 1위’로 선정하자 “화장실만큼은 마음을 담아 청소했다. 청결함으로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는 수상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돗토리 사장은 입사 때부터 잊지 못하는 사건이 있다. 입사 첫해인 1985년 525명이 사망한 ‘JAL 123편 추락 사고’다. 그는 “당시 충격을 지금도 가슴에 새기고 있다. 우리는 안전의 중요성을 계승할 책임감이 있다”고 했다. 항공업계에서는 객실서비스 총책임자였던 돗토리 사장이 2일 도쿄 하네다공항 JAL 화재 사건에서 승객들을 무사히 대피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사장에 올랐다는 의견도 나온다. 돗토리 사장 역시 “모두를 구출하겠다는 강한 사명감이 있었다”며 “고객들이 협조해 준 덕분이지만 (당시 탑승한) 승무원 9명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남녀 차별이 여전한 일본 사회에서 돗토리 사장의 취임은 단순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일본은 상장사의 여성 임원 비율이 지난해 기준으로 13.4%에 그친다. 한국 100대 기업은 6.0%에 불과하다. 돗토리 사장은 “경력을 쌓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 직원들에게 (저의 승진이) 힘과 용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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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기시다 “자민당 기시다파 해산 검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사진) 일본 총리가 자신이 이끌던 집권 자민당 내 파벌 ‘기시다파’(고치카이)의 해산을 검토한다고 18일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최근 자민당 주요 파벌의 비자금 조성에 따른 각종 의혹이 불거지고 국민적 비판 또한 고조되면서 지지율 하락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파벌을 없애 국면 전환을 시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기자단과 만나 “(기시다파의) 해산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며 “정치 신뢰 회복을 위한다면 (기시다파 해산도)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계파인 자민당 내 최대 파벌 아베파 등이 후원회에서 모금한 정치자금 일부를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고 소속 의원들에게 나눠준 혐의가 드러나 정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대대적 수사에 나섰고 비자금 조성에 연루된 주요 장관 또한 대거 사임했다. 이후 기시다파에서도 3년간 약 3000만 엔(약 2억9000만 원)이 보고서에 기재되지 않은 혐의가 드러났다. 현직 총리가 소속된 파벌인 만큼 논란이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일본의 현행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 보고서에 누락된 비자금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이 직접 개입하지 않는 한 회계담당자가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자민당 간부 대부분은 입건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부패 정치의 중심인 파벌 의원들이 이 법을 이용해 빠져나가고 힘 없는 회계담당자만 책임을 진다는 비판 또한 상당하다. 기시다파는 1957년 설립됐고 자민당 내 주요 파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관료와 가까운 온건세력이 이끌어 ‘비둘기파’로 꼽힌다. 1990년대까지 자민당 주류였다가 이후 파벌 분열, 일본 사회 우경화 움직임 등에 맞춰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 다만 기시다 총리가 직접 본인의 파벌을 해산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이제 정계의 관심은 비자금 혐의의 중심에 있는 아베파의 거취에 모아지고 있다. 아베파는 19일 의원 총회를 열고 파벌 해체를 포함한 향후 진로를 논의한다. 아베파 소속 한 의원은 “기시다파가 해산을 검토한다면 아베파도 해산해야 한다. 19일 의원총회에서 해산을 주장하겠다”고 말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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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GDP, 55년만에 獨에 밀려 세계 4위

    일본 경제 규모가 지난해 독일에 따라잡혀 세계 3위에서 4위로 밀려날 것이 확실시된다. 1968년 이후 55년 만에 독일에 뒤처지는 것이다. 16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미쓰비시UFJ 리서치컨설팅은 지난해 일본 국내총생산(GDP)을 591조 엔(약 4조2000억 달러)으로 예측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국제통화기금(IMF)도 2023년 일본 명목 GDP가 전년 대비 0.2% 감소한 4조2308억 달러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공식 통계는 2월 발표된다. 반면 독일 통계청은 지난해 GDP가 전년보다 6.3% 증가한 4조1211억 유로(약 4조5006억 달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일본 경제 규모는 1968년에 서독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이후 2010년 중국에 뒤져 3위가 됐고 이제는 한때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독일에 뒤져 4위로 떨어지게 됐다. 2026년에는 인도에도 추월당해 5위로 내려앉을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 경제 규모가 커진 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해 일본 이상으로 물가가 오른 영향이 크다. 명목 GDP는 시장 가격으로 산출하기 때문에 물가가 상승하면 그만큼 커진다. 반면 일본은 엔화를 기준으로 한 GDP는 전년 대비 5.7% 증가했으나, 엔저 현상이 이어지면서 달러화로 환산했을 때는 1.2%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GDP가 지난해 독일에 밀린 데에는 엔화 약세와 독일의 물가 상승 영향이 크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독일 경제성장률이 일본을 웃돌았다”며 “2000∼2022년 실질 성장률이 독일은 1.2%지만 일본은 0.7%”라고 분석했다. 일본은 1인당 GDP가 이미 2022년에 3만4064달러로 이탈리아에도 뒤져 주요 7개국(G7) 중 최하위였다. 엔저 장기화는 수출 여건이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일본의 경제력이 다른 나라보다 저하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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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산율 0.6명→1.97명… 日기업 9년만의 ‘기적’

    “유연 근무제와 재택근무를 활용하니 확실히 아이 키우며 일하기가 쉬워졌습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면서 업무 집중력도 높아졌어요.” 일본 5대 종합상사 중 하나인 이토추상사의 정보기술(IT) 부문 19년 차 여직원 이치하시 가요(市橋加代) 씨는 “2022년 딸을 낳고 육아휴직을 쓴 후 지난해 11월 복직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치하시 씨는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아침형 유연 근무제’와 주 2회 집에서 일하는 ‘재택근무제’를 동시에 이용하고 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딸은 매일 아침 아빠와 등원하고, 오후에는 일찍 퇴근한 엄마와 함께 집에 온다. 이치하시 씨는 “매일 야근하던 때와 비교하면 건강도 좋아졌다”며 “회사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을 독려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토추상사는 일본에서 일하는 방식을 개선해 생산성과 출산율을 동시에 높인 ‘기적의 회사’로 통한다. 2012년 0.60명이었던 이 회사 직원들의 합계출산율은 2021년 1.97명으로 3배 이상이 됐다. 2010년 대비 2021년 노동생산성(직원 1명당 순이익)은 5.2배로 더 크게 늘었다. 이 같은 성과가 화제가 되면서 이 회사는 지난해 아사히신문 등이 선정한 ‘대학생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 1위에 올랐다. 2005년 합계출산율 1.26명으로 최저점을 찍었던 일본은 이후 전방위적인 출산·육아 지원에 나서며 2015년 합계출산율을 1.45명까지 반등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2022년 다시 1.26명으로 떨어지면서 국가적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일하는 방식’을 바꿔 청년이 마음 놓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정책이 그 중심에 있다. 지난해 3월 당시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산업상은 이토추상사 본사를 방문해 “이토추상사 같은 창의적 발상을 촉진하고 싶다”며 ‘이토추 모델’을 확산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재 캐논, 덴소, 아지노모토, 도쿄가스, 일본항공, 후지제록스 등의 대기업이 각자의 특성에 맞는 유연 근무제를 도입한 상태다.“야근 금지”… 일하는 방식 바꿨더니 ‘출산율-생산성’ 둘다 뛰어 야근 밥먹듯 하던 회사가 야근 금지… 회사가 사무실 돌며 강제로 불 꺼조기출근땐 수당, 업무효율 높아져日 ‘이토추 모델’ 모범 사례로 꼽아… 경제단체, 회원사에 도입 권고 지난해 12월 14일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이토추상사 본사. 오전 7시로 이른 시간임에도 지하 1층 구내식당 입구에 무료 아침밥을 먹기 위한 긴 줄이 생겼다. ‘아침형 유연 근무제’를 선택하고 오전 5∼8시에 출근한 직원들이다. 아침형 근무제는 쉽게 말해 야근을 다음 날 아침에 하는 것이다. 이토추상사는 오후 8시 이후 야근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오전 5∼8시 업무를 심야근무로 취급해 추가 근무수당을 준다. 대신 퇴근은 이르면 오후 3시부터 할 수 있게 했다. 아침형 근무제는 2013년 도입 후 직원 합계출산율을 끌어올린 견인차로 평가받는다. 현재 전체 직원의 약 60%가 아침형 근무제를 선택하고 있다.● 퇴근 눈치 보던 회사에 ‘야근 금지’ 충격 1858년 창업한 이토추상사는 20년 전만 해도 옛날식 업무 방식을 고집하던 회사였다. 일이 끝나도 상사 눈치를 보느라 퇴근을 못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부서원이 모두 남아 야근하고 밤늦게 몰려가 회식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2000년대 들어 ‘일하기 쉬운 회사’라는 목표를 세운 이토추상사는 먼저 인사제도 개혁에 착수했다. 육아기 단축 근무, 배우자 해외 발령 휴직, 관리직 여성 일정 비율 채용 등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기대만큼 효과가 나오지 않았다. 사내에선 “왜 육아를 하는 직원만 우대하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시행착오 후 회사 측은 목표를 바꿨다. ‘일하기 쉬운’ 대신 ‘힘들어도 보람 있는 회사’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2010년 사내 어린이집을 설치하고, 2013년 아침형 유연 근무제를 도입했다. 장시간 근무가 미덕이던 일본 기업에서 조기 출근, 야근 금지는 충격에 가까웠다. 제도 정착을 위해 인사팀 직원들이 매일 오후 8시에 사무실을 돌며 강제로 불을 껐다. “일하는 중인데 뭐하나”, “잘못되면 인사팀이 책임질 건가” 등의 고함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오후 3시 이후 퇴근할 수 있는 유연 근무제는 직원들의 생활 패턴과 기업 문화를 동시에 바꿨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회식 문화가 없어졌고, 기혼 직원들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미혼 사원은 자기계발과 취미생활에 시간을 쓸 수 있게 됐다. 오전 7시 50분 전에 근무하면 심야근무와 같은 할증 임금(25%)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사내 노동조합이 뽑은 ‘회사의 가장 뛰어난 정책’ 1위에 아침형 근무 제도가 꼽히기도 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는 게 당연해지면서 사내 분위기도 바뀌었다. 이치하시 씨는 “육아에 참여하는 남자 직원이 많아지면서 서로 공감하는 환경이 조성됐다. 상사들도 육아에 필요하다면 일은 알아서 할 것으로 믿고 자연스럽게 업무 조정을 해 준다”고 말했다.● 노동생산성 향상 대책이 출산율 높여 저출산 대책으로 고민하는 일본 정부는 이토추상사의 일하는 방식 개혁을 모범 사례로 꼽고 확산에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 경제 정책인 ‘일본 재흥 전략’에 사례로 들어갔고 최대 경제단체 경단련(經團連)이 각 회원사에 도입을 공식 권고했다. 이토추상사 측은 출산율 상승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노동생산성 향상 대책이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이토추상사 관계자는 “특정 사원만을 위한 대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남녀 모두 일하는 방식과 습관을 바꾼 게 결과적으로 여성 활약 촉진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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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3자녀 이상 대학 공짜… 아동수당도 늘려

    일본에선 내년부터 아이가 3명 이상인 가정은 모든 자녀를 대학에 무료로 보낼 수 있게 된다. 학비가 비싼 사립대에 여러 자녀를 보내는 경우 최대 1억 원 이상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말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어린이 미래 전략’을 발표하면서 다자녀 가구에 대해 2025년부터 대학을 무상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자녀가 3명 이상이면 셋째는 물론이고 첫째 둘째도 대학 등록금과 입학금을 면제해 주는 내용이다. 의대 등 6년제 대학은 6년간 지원을 받게 된다. 현재는 연 소득 600만 엔(약 5460만 원) 미만 가구에 한해 수업료의 일부 또는 전액을 감면해 줬지만 내년부터는 소득 기준이 사라지면서 연간으로 국공립대는 54만 엔(약 490만 원), 사립대는 70만 엔(약 640만 원)까지 전액 지원해 주기로 했다. 자녀가 있는 가정에 지급하는 아동수당도 늘렸다. 이처럼 일본은 저출산 문제 해결에 사활을 걸고 나서고 있다. 2022년 합계출산율이 1.26명으로 역대 최저치인 2005년의 수준으로 돌아간 것에 위기감이 크다. 민간 전문가들이 모인 ‘인구전략회의’는 2060년까지 합계출산율을 2.07명까지 끌어올려 2100년 인구 8000만 명을 유지해야 한다는 ‘인구비전 2100’ 보고서를 9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에게 제출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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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업무효율 높이려 다양한 시도 했을 뿐… 회사도 뒤늦게 출산율 증가 보고 놀라”

    “직원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독려하지 않았습니다. 업무 효율 향상을 위한 다양한 시책을 펴니 결과적으로 출산율이 높아진 겁니다.” 이토추상사의 업무 개혁을 총괄하는 고바야시 후미히코(小林文彦·사진) 대표이사 부사장은 지난해 12월 1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내 합계출산율이 10년 만에 3배로 높아진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노력이 출산율 제고로 이어졌다는 취지다. 아래는 일문일답. ―이토추상사의 출산율 상승이 화제다. “노동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일하는 방식을 바꾼 게 결과적으로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우리도 뒤늦게 출산율 수치를 보고 놀랐을 정도다. 회사가 바뀌면 저출산을 해결할 수 있는 걸 보고 놀라는 동시에 자신감도 생겼다.” ―사내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었나. “종합상사 업무는 일본에서 거칠기로 유명하다. 야근하고 늦은 시간까지 술 마시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다. 일하다 건강을 해치기도 했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오후 8시 넘어 일을 하면 죄책감마저 드는 분위기가 됐다.” ―기혼 여성 직원에게 어떤 지원을 해 주나. “특정 성별을 위한 정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20대 기혼 직원의 90%, 30대는 50%가 맞벌이다. 아침형 근무와 재택 근무 등은 전 사원 대상이다. 전 직원에게 동기부여를 해야 생산성이 올라간다.” ―한국 정부도 저출산 문제로 고민이 깊다. “이토추상사의 아침형 근무는 일본 정부가 주목해 널리 알려지면서 국가 전체적으로 흐름을 바꾸고 있다. 한국에서도 선진적으로 일하는 기업이 나오고 정부가 이 모델을 확산시키면 다른 기업들도 바뀌게 될 것이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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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 오셨다면 먼저 읽으세요”… 방재 매뉴얼 만들어 반복훈련[글로벌 포커스]

    10일 오전 일본 도쿄 아리아케(有明). 일본 최대 국제전시장인 ‘도쿄 빅사이트’ 옆에는 넓은 잔디광장이 펼쳐져 있다. ‘도쿄 광역 방재공원’이란 이름이 붙은 이곳은 수도권에서 대규모 지진 발생 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긴급 재해 대책본부로 쓰려고 조성한 공간이다. 평소 아이들이 뛰어노는 평범한 공원이지만 비상 상황에선 재해 구호 거점으로 탈바꿈한다. 이 때문에 공원에는 병원과 헬리콥터 착륙장 등이 마련돼 있다. 공원 한쪽에는 재난 체험 교육시설 ‘소나에어리어 도쿄’도 있다. ‘대비’를 뜻하는 일본어 ‘소나에(そなえ)’와 에어리어(area)의 합성어다. 규모 8.0 강진이 일어났을 때 도쿄가 어떻게 되는지, 시민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세세하게 체험할 수 있다. 평일 오전인데도 지자체 부녀회나 초등학생 단체, 가족 등 60여 명의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70대 여성 마쓰모토 씨는 “일본은 언제 어디서라도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나라”라며 “지진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노토반도 규모 7.6 강진, 도쿄 하네다공항 항공기 폭발 등 연초부터 일본에서 대규모 재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잇따랐지만, 이를 최소화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노하우도 덩달아 주목받는다. ‘재해 왕국’이면서도 ‘재난 대책 선진국’인 일본은 오랜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사전 대비책을 세워 왔다. 무엇보다 이를 현장에 적용해 철저하게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 남다르다.● 철저한 매뉴얼 만들고 반복 훈련 거듭 “새로 이사 오셨나요? 이 책자를 꼭 읽으세요.” 일본에선 전입신고를 위해 구청을 찾으면 제일 먼저 건네는 게 있다. 재난 대비 매뉴얼인 ‘방재 핸드북’이다. 일본어는 물론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 여러 언어로 만들어 외국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도쿄 시나가와구에서 제공하는 100쪽 분량 ‘방재 핸드북’을 살펴보자. 지진과 폭우, 화재, 쓰나미 등 다양한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응할지 자세히 안내돼 있다. ‘침실에선 베개나 이불로 머리를 보호한다’ ‘엘리베이터라면 모든 층 버튼을 누른 뒤 정지한 층에 내린다’ ‘정전 단수 발생을 전제로 피난용 생활용품을 비축한다’ 등 행동 요령 및 준비 사항을 자세히 담았다. 시나가와구 관계자는 “모든 주민, 특히 외국인은 재해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 반드시 읽고 기억하도록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재난 대책은 매뉴얼에 그치지 않는다. 도쿄에선 유치원, 초·중학교에서 연 11회 피난 훈련을 의무적으로 실시한다. 초등학생들은 자신이 앉는 의자 등받이에 접이용 방재 모자를 끼워둬야 한다. 평소엔 등받이 쿠션으로 쓰지만, 비상 상황에 바로 손을 뻗어 머리에 뒤집어쓸 수 있는 모자다. 평일 수업 중간에는 물론 일요일에 학교 운동장이나 체육관에 학생을 소집해 훈련하는 매뉴얼도 마련돼 있다. 재해는 평일과 공휴일을 가리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처럼 유치원 때부터 재해, 사고에 대비하는 훈련을 꾸준히 받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재난에도 침착하고 질서정연하게 지시에 따른다는 평가를 받는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일본은 학교, 직장에서 훈련을 생활화하고 지자체가 재난안전체험관을 마련해 시민들이 쉽게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도쿄만 따져봐도 소방청이나 지자체, 기상청 등이 마련한 재난 체험관이 12곳에 이른다. 2일 하네다공항 일본항공(JAL) 비행기 화재 사고는 이런 ‘침착함’이 잘 드러난다. 착륙 당시 한 승객이 찍은 동영상을 보면 화재로 기내가 연기로 자욱해진 상황에서도 승객들은 승무원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아 허리를 숙이고 안전띠를 풀지 않았다. “진정하세요. 짐을 들지 마세요”라는 지시를 듣자 승객들은 비행기 비상구에 펼쳐진 슬라이드로 90초 만에 379명 전원이 무사히 탈출했다. 미국 CNN은 1985년 8월 12일 도쿄에서 오사카로 가던 JAL기가 후지산에 추락해 520명이 사망한 최악의 항공 사고를 겪은 뒤 승무원들이 ‘90초 룰’을 엄격히 교육받았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피로 쓴 교과서를 40년째 잊지 않은 결과”라고 보도했다. 반면 국내에선 비슷한 사고 당시 승객들이 승무원 지시를 무시한 경우가 있었다. 2016년 5월 27일 하네다 공항을 출발하려던 대한항공 여객기의 엔진에서 불이 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승객들 상당수가 자기 짐을 챙겨 나와 논란이 됐다. 당시 한 승객은 방송 인터뷰에서 “설마 무슨 일이 생기겠나 싶어 머리 위 짐칸을 열어 짐을 챙겼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한 항공사 승무원 팀장은 “돌이켜 보면 당시 사상자가 없었던 게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5월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러시아 국영항공사 비행기 화재 사건에서는 짐을 챙기려 통로를 막은 승객들로 탈출이 늦어져 탑승객 78명 중 41명이 숨졌다.● “쉽게 확실하게” 강한 어조로 비상방송 노토반도에서 강진이 발생한 1일 오후 4시 6분, 일본 NHK방송은 자국 국가대표팀과 태국 대표팀의 축구 친선경기를 중계 중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감독 인터뷰를 하던 중, 속보 차임벨이 울리며 긴급 지진 속보 안내 자막과 자동 음성이 흘러나왔다. 별도 안내 없이 인터뷰가 중단된 채 화면은 스튜디오로 넘어갔다. 4분 뒤 재차 지진이 발생하자 그로부터 3분 뒤 쓰나미(지진해일) 경보가 발령됐다. 마이크를 잡은 야마우치 이즈미(山内泉)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격앙됐다. “쓰나미 경보입니다. 즉시 도망가세요”로 시작된 방송은 “TV를 보지 말고 도망가세요” “지금 당장 가능한 한 높은 곳으로 도망가세요” “동일본대지진을 떠올려 주세요”라며 피난을 재촉했다. 오후 4시 22분, 대형 쓰나미 경보가 발령되자 “지금 당장 도망갈 것”이라며 존댓말조차 생략하고 소리를 질렀다. 화면에는 ‘대피 요망’ 같은 어려운 한자어 대신 ‘쓰나미! 도망쳐!’ 등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막이 나왔다. 일본에서도 화제가 된 이날 방송은 즉흥적인 대응이 아니다. 철저히 ‘NHK 재난방송 매뉴얼’을 따랐다. NHK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침착한 재난방송이 오히려 시청자에게 대피 필요성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는 반성 아래 대대적으로 매뉴얼을 개편했다. 이때 재난방송 3원칙인 ‘확실하게 전파’ ‘시청자 행동을 촉구’ ‘가장 위험한 상황을 전달한다’가 세워졌다. 매뉴얼에 따라 NHK는 지진, 쓰나미 등이 발생하면 아나운서가 냉정함을 포기하고 강한 말투로 반복해 대피를 호소한다. NHK 아나운서들은 재해를 가정한 ‘긴급 보도 훈련’을 따로 받는다. NHK는 평소에도 홈페이지에 폭우, 폭설, 태풍, 폭염 등에 지자체, 기업, 학교 등이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 방송 문장과 아나운서 음성 파일을 공개하고 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비상경보 등 다양한 전달 수단이 있어도, 일본은 긴급 재난 시 공영방송 NHK를 최우선 속보 전달 매체로 활용한다. 2019년 4월 KBS가 강원도 대형 산불 때 현장에 가지 않고 마치 간 것처럼 중계하고 재난 속보 대신 정규 프로그램을 내보낸 것과 대비된다. 노토반도 지진 때 드러났듯 재난으로 정전이 되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도 무용지물이 된다. 이럴 경우 라디오 등 방송이 최후의 재난 소식 창구가 된다. NHK의 한 기자는 “NHK도 평소엔 오락 프로그램, 드라마를 제작하고 시청률에 신경을 쓰지만, 재난 때는 온 국민이 NHK를 본다는 생각으로 모든 조직이 특보에 임한다”고 전했다.● 재해 겪을 때마다 적극 법 규정 정비 일본에서는 큰 재해를 겪고 나면 어김없이 법 규정을 새로 만들거나 고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 원장은 “일본은 재난이 있을 때마다 대응 체계를 만들어 왔고 예방과 대비에 초점을 맞춘다”며 “뒷북 대응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지진이 일어나고 총리의 대응 지시가 나오는 데 불과 15분이 걸린 건 높이 평가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일본 재난 매뉴얼의 헌법 격인 ‘재해대책 기본법’은 1959년 이세만(伊勢湾) 태풍이 계기가 됐다. 5098명이 숨지거나 실종되고 160만 명의 이재민을 낳은 초강력 태풍을 겪으면서, 재해가 닥쳤을 때 정부나 지자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원칙을 담은 법을 제정했다. 한국에서 2004년 제정된 재난안전법에 큰 참고가 됐다. 노토반도 강진에 투입된 일본 경찰의 광역 긴급 원조대는 1995년 한신 대지진 이후 창설됐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뒤에는 재해부흥법이 제정돼 대규모 지원의 정책 체계가 마련됐다. 국내에선 일본 노토반도 지진 현장에 왜 총리가 가지 않는지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일본은 재난 초기 구호에 집중하기 위해 고위 정치인이 현장에 가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야당 대표들이 5일 개최한 여야 당수 회동에서도 재해지 시찰을 당분간 자숙하자고 합의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 202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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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한 日대사에 미즈시마 내정… 6년전 총괄공사 지낸 한국통

    새 주한 일본대사로 미즈시마 고이치(水嶋光一·62·사진) 주이스라엘 대사가 내정됐다. 11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한 일본대사 후임으로 미즈시마 대사를 내정하고 한국 정부에 아그레망(외교 사절 파견에 대한 주재국 동의)을 요청했다. 미즈시마 대사는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한 뒤 외무성에 들어가 주미 대사관 참사관, 북미2과장, 영사국장 등을 거쳤고 2021년부터 주이스라엘 대사를 지냈다. 2018년에는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 공사(부대사)로 부임해 한일 관계가 악화되는 과정도 지켜봤다. 한국 근무 경험이 있어 일본 외무성 내에서 ‘한국통’으로 평가받는다. 당초 지난해 하반기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임이 늦어졌다. 아이보시 현 대사는 2021년 1월 취임해 일본의 통상적인 대사 교체 주기인 3년 근무를 다 채운 상황이어서 교체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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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증시 3만5000엔선 돌파… 반도체 장비株 상승세 타고 훨훨

    일본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평균주가가 34년 만에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일본 거품경제가 꺼지기 시작한 1990년 2월 이후 3만5000엔 선을 처음 돌파했다. 11일 도쿄증권거래소에서 닛케이평균주가는 전날보다 1.77%(608.14엔) 상승한 3만5049.86엔으로 장을 마쳤다. 닛케이평균주가는 10일에도 34년 만에 3만4000엔 선을 넘는 등 최근 사흘간 매일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3만1000엔 선까지 내려갔던 닛케이평균주가는 연말 ‘산타 랠리’를 구가한 미국 뉴욕 증시 강세의 영향을 받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미쓰이 이쿠오 아이자와증권 펀드매니저는 지지통신에 “미국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약해지고 기업 실적이 개선되면서 3만9000엔대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 증시 상승의 견인차는 단연 반도체 관련 종목들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미국 엔비디아 주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일본의 관련주들도 따라 오르고 있다. 이날 2.74% 상승한 일본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이 대표적이다. 도쿄일렉트론은 지난해 말 시가총액이 사상 처음 12조 엔(약 108조 원)을 넘으면서 주가가 10년 전 대비 11배로 올랐다. 반도체 장비사 아드반테스트(1.63%), 소니그룹(3.54%) 등 다른 반도체 관련주들도 이날 상승했다. 엔-달러 환율이 140엔대에 머무는 엔저 장기화로 수출주의 실적 향상 기대감도 크다. 도요타자동차(3.61%) 등 자동차주, 이토추상사(4.50%) 등 종합상사 종목이 대표적이다. 올해부터 시작된 신규 소액투자 비과세제도(NISA) 도입도 주가 상승을 뒷받침하고 있다. 도입 10년 만에 개편된 신(新)NISA는 상품 구조가 단순해졌고 절세 혜택도 늘어났다. 그러자 개인투자자들이 NISA에 돈을 많이 넣으면서 증시에 자금이 풍부해졌다. 여기에 거품경제 후 최고가 기록을 연일 경신하면서 ‘지금 주식을 사지 않으면 안 된다’는 투자자들의 조바심도 강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연일 치솟는 장세로 ‘늦게 사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퍼지면서 상승장에 기름을 부었다”고 분석했다. 일본에서는 당분간 지금의 상승세가 계속될 것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다테베 가즈노리 골드만삭스 일본주 전략가는 닛케이 인터뷰에서 “아직 (일본 주식) 매수 여력이 크다”고 평가했다. 세계 증시에 투자하는 주요 펀드 투자자들이 미국 유럽 등에 비해 일본 증시 종목에 여전히 덜 투자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의 움직임이 향후 증시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서는 거품경제 붕괴 후 ‘잃어버린 30년’을 겪으면서 조금만 오르면 바로 주식을 팔고 차익을 실현하려는 분위기가 크기 때문이다. 금융 완화를 축으로 한 ‘아베노믹스’가 단행된 2013년 주가가 단기 상승하자 일본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이 9조 엔(약 81조 원) 가까운 매도에 나섰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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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주한 일본 대사에 ‘한국통’ 미즈시마 고이치 내정

    새 주한 일본 대사로 미즈시마 고이치(水嶋光一·62) 주이스라엘 대사(62)가 내정됐다. 11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한 일본대사 후임으로 미스시마 대사를 내정하고 한국 정부에 아그레망(외교 사절 파견에 대한 주재국 동의)을 요청했다. 미스시마 대사는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한 뒤 외무성에 들어가 주미 대사관 참사관, 북미2과장, 영사국장 등을 거쳤고 2021년부터 주이스라엘 대사를 지냈다. 2018년에는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 공사(부대사)로 부임해, 한일 관계가 악화되는 과정도 지켜봤다. 한국 근무 경험이 있어 일본 외무성 내에서 ‘한국통’으로 평가받는다. 당초 지난해 하반기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임이 늦어졌다. 아이보시 현 대사는 2021년 1월 취임해 일본의 통상적인 대사 교체 주기인 3년 근무를 다 채운 상황이어서 작년 후반기부터 외교가에서 교체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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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지진 124시간만에… 90대 할머니 ‘기적의 생환’

    “어머님! 힘내세요.” 6일 오후 8시 20분경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스즈(珠洲)시. 무너진 2층집 아래 깔린 90대 할머니에게 구조대가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생기 없던 손에 조금씩 온기가 돌며 맥박이 잡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구조대는 3시간여 만에 드디어 구출에 성공했다. 노토반도 지진 발생 124시간 만이었다. “ABC(기도, 호흡, 혈액순환) 오케이. 이송 개시.” 의사가 호흡 등을 체크한 뒤 할머니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다. 할머니는 7일 오전 편하게 대화할 정도로 회복된 것으로 전해졌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열악한 상황에서 희망의 빛이 보였다”며 “구조 활동을 하는 모든 분께 경의를 표한다”고 감사했다. 재난 현장에서 생사가 걸린 ‘골든타임’은 보통 72시간을 한계로 본다. 124시간 만에 구출된 사례는 기적에 가깝다. 일본 경시청 관계자는 “오랫동안 구조 활동을 해왔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했다. 당시 같은 집에서 발견된 40대 여성은 심정지 상태였다. 노토반도 강진 사망자는 7일 오후 2시 기준 128명으로 집계됐다. 지진 사망자가 100명이 넘은 건 2016년 구마모토 지진(276명 사망) 이후 8년 만이다. 아직 연락이 닿지 않은 이도 222명이다. 게다가 지진 피해가 심한 와지마(輪島)시와 스즈시 등엔 7일 종일 눈이 내려 구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 기상청은 해당 지역에 8일까지 최대 강설량 60cm의 폭설이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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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지진 124시간만에…90대 할머니 ‘기적의 생환’

    “어머님! 힘내세요.” “잘 하고 계세요.”6일 오후 8시 20분경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스즈(珠洲)시. 1일 노토반도 강진으로 무너진 2층집에 깔린 90대 할머니에게 구조대가 큰 소리로 말을 걸었다. 꼼짝도 않던 할머니 손이 점차 온기가 돌며 맥박이 잡혔다. 발견 이후 구출이 시작된 지 3시간여 만이었다. 지진이 발생한 지는 124시간이 지났다. “ABC(기도, 호흡, 혈액 순환) 오케이. 이송 개시.”구조대 의사가 드디어 할머니의 호흡 등이 확보됐다는 사인을 보내자 담요에 덮인 할머니는 들것에 실려 긴급하게 병원에 옮겨졌다. 발견 당시에도 약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할머니는 7일 오전에는 편하게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것으로 전해졌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열악한 상황에서 희망의 빛이 보였다”며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구조 활동하는 모든 분께 경의를 표한다”고 감사했다. 재난 현장에서 생사가 오가는 ‘골든타임’은 보통 72시간을 한계로 본다. 124시간 만에 구출된 할머니의 사례는 기적에 가깝다. 일본 경시청 관계자는 “오랫동안 구조 활동을 해왔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했다. 당시 같은 집에서 발견된 40대 여성은 심폐정지 상태였다. 구조대는 할머니를 구하면서 ‘압좌 증후군(크러쉬 신드롬)’ 발생을 가장 우려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 무거운 물체에 깔려있던 사람은 갑자기 압박하던 물체를 치우는 순간 혈액을 타고 독소가 퍼져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때문에 구조대는 구출 속도를 섬세하게 조절하며 의료 처치를 동시에 진행했다. 노토반도 강진 사망자는 7일 오후 2시 기준 128명으로 집계됐다.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100명을 넘은 건 2016년 구마모토 지진(276명 사망) 이후 8년 만이다. 연락이 두절된 피해자도 아직 222명이나 남아있어 사상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지진 피해가 심한 노토반도의 와지마(輪島)시와 스즈시 등에는 7일 종일 눈이 내리고 기온도 영하로 떨어져 구조대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 기상청은 해당 지역에 8일까지 최대 강설량 60cm의 폭설이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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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땅이 잼처럼 물컹” 도로 뒤틀린 日마을… 72시간 골든타임 지나

    “마을이 이렇게 돼 버려 계속 여기서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4일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해안 마을 우치나다(内灘)정. 1일 발생한 노토(能登)반도 규모 7.6 강진의 직격탄을 맞아 도로를 따라 서 있던 전봇대가 엿가락처럼 쓰러져 있었다. 도로, 집 마당 곳곳이 1m 이상 솟구쳐 오른 모습도 목격됐다. 지진 지역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액상화’다. 연약한 지반과 지하수 등이 섞여 땅이 잼처럼 물컹해지는 현상이다. 지진 피해가 가장 큰 노토반도는 인명 구조 ‘골든타임’으로 여겨지는 지진 발생 후 72시간이 지나도록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가 179명에 이른다. 더욱이 산골 마을은 구호품이 제때 닿지 않아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는 극한 상황에 이르렀다. ● 지진 액상화에 늪처럼 변한 땅 우치나다정은 이시카와현 최대 도시 가나자와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곳이다. 바닷가에 모래 퇴적물이 쌓여 형성된 호수인 석호(潟湖) 주변이라 지반 대부분이 모래다. 강, 호수, 모래, 갯벌 매립지가 지진으로 뒤섞이면서 이곳에선 지반이 늪처럼 변하는 액상화 현상이 나타났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현 지방도 8호선은 아스팔트가 갈라졌고 도로 및 주변 지역은 땅이 울퉁불퉁해졌다. 쓰러진 도로 안내판을 보고서야 이곳이 차도였다는 걸 알아차렸다. 주차돼 있던 차량은 구석에 박히거나 뒤틀린 아스팔트 사이에 끼였다. 길에서 만난 50대 주민은 “여기서 살긴 어려울 것 같다. 평화로운 마을이 한순간에 이렇게 돼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마을에 몰려 있는 소규모 섬유 공장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또 다른 40대 주민은 “살고 있던 2층 목조 주택이 지진으로 크게 뒤틀려 대피소 신세를 지고 있다. 집에 있던 가전제품, 먹거리는 다 못 쓰게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사흘째 아무것도 못 먹어” 노토반도에서는 이날도 여진이 계속돼 도로 곳곳이 갈라졌고 산사태가 이어졌다. 흙더미가 쏟아져 내리거나 바위가 떨어진 도로는 통행이 제한됐다. 식량 부족은 가장 심각한 문제다. 국도 변의 대피소 등 일부 주민들은 구호 식량을 공급받아 외지인과도 일부 나눠 먹고 있지만, 산사태 및 도로 갈라짐 등으로 고립된 산골 마을에서는 먹을거리가 떨어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시카와현은 이날 와지마시 및 스즈시로 향하는 주요 국도 및 지방도에 구급차, 구호품 트럭, 자위대 등 필수차량 우선 통행 조치에 들어갔다. 스즈 산골 마을에 고립된 한 남성은 “아이가 꼬박 사흘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여기는 구호품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자위대가 지진 발생 후 사흘 만에 이날 처음으로 헬리콥터를 동원해 국도 휴게소에 물자를 전달했지만 고립 지역까지 구호품이 전달되진 못하고 있다. 고립지에서 걸어서 스즈 시내까지 나왔다는 한 남성은 NHK에 “비축한 컵라면, 물로 사흘간 버텼지만 이게 떨어지면 더 이상 먹을 게 없다”고 말했다. 지진 재난구조의 골든타임인 72시간이 지난 가운데 생존자 수색이 계속되고 있다. 노토반도는 일본에서도 외진 시골이라 노인 한두 명이 사는 가구가 많다. 이곳에 어머니가 거주한다는 한 남성은 이날 NHK와의 통화에서 “3일 오전 유선전화가 연결돼 무사하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이후 연락이 안 된다. 지방자치 사무소에 물어봤지만 어머니 거주 지역에 대한 정보가 없다고 한다”고 애를 태웠다. 이날 오후 8시 기준 지진 사망자는 84명으로 확인됐다. 이시카와현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주민 179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NHK 라디오가 실종자 이름, 나이, 성별, 거주지를 반복해 방송하고 있다. 와지마 등 일부 지역에서는 TV 지상파 방송도 중단됐다. 정전이 계속되고 TV 중계소에 연료 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비상용 배터리 충전도 불가능해서다. 일부 지역은 FM 라디오마저 끊겨 AM 라디오만 간신히 나오는 형편이다.우치나다=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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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강진에 고립된 마을, 비에 산사태까지… “대피소 식량 곧 바닥”

    “속보입니다. 진도 5강(强)의 지진이 다시 발생했습니다.” 3일 오전 10시 54분경 일본 서부 이시카와(石川)현 노토(能登)반도의 중부 아나미즈(穴水)정. 지진해일(쓰나미) 피해 지역인 스즈(珠洲)시로 향하던 자동차가 갑자기 높은 파도를 만난 배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1일부터 이어지던 여진이 또다시 발생한 것이다. 10초도 안 돼 차에 켜둔 NHK 라디오에서 지진 경보가 흘러나왔다. 거북이걸음으로 서행하던 주변 차량 운전자들은 사색이 된 채 핸들을 꽉 부여잡고 있었다. 인근 국도에서는 더욱 아찔한 순간을 마주했다.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터널 앞에서 지진 여파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지름 1m짜리 커다란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산사태가 벌어졌다. 앞서 달리던 자동차는 급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면 생명마저 위험할 상황이었다. 자동차를 이용해 돌아본 노토반도의 강진 피해 지역은 진앙 가까이로 갈수록 참혹한 광경이 잦아졌다. 1일 규모 7.6의 강진으로 수많은 집이 무너졌고, 도로 곳곳이 끊겨 있었다. 몇몇 고립된 마을은 전기와 수도 공급이 끊긴 채 피해 상황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진에 비까지 겹쳐 산사태 곳곳 이날 오후 아나미즈정에 도착하자 스마트폰에선 안테나 표시가 사라지며 연결이 끊겼다. 통신망에도 문제가 생긴 것이다. 국도변 휴게소에선 수돗물이 나오지 않았다. 요시무라 고키(吉村光輝) 아나미즈정장은 NHK와 만나 “기지국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휴대전화 연결이 사흘째 끊겼다. 우리도 정확한 정보를 발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노토반도 중심부에 있는 아나미즈정은 지진 사망자가 가장 많은 와지마(輪島)시와 스즈시를 가기 위해선 받드시 거쳐 가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고속도로 통행이 금지되며 2차로 국도에는 일반 차량은 물론 경찰 구조대와 자위대 차량, 물자 지원 트럭 등이 뒤엉켜 교통 체증이 심각했다. 우회도로 대부분은 건물이 무너지며 가로막힌 상태. 마을에서 만난 70대 남성은 “주민들은 거의 초등학교 대피소로 갔다. 나도 피난소에서 이틀째 머물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가장 피해가 큰 스즈시 등은 사실상 고립 상태에 빠졌다. 특히 지진으로 흔들리며 지반이 약해진 데다, 비까지 내려 산사태의 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는 “배로 구호물자를 보내겠다”고 했지만 쓰나미로 수심이 달라져 배가 해안에 접근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스즈시 관계자는 “짙은 구름이 끼고 비가 오는 바람에 헬리콥터도 접근이 여의치 않다”며 “시 전체가 괴멸 수준이다. 별도 지원이 없으면 일부 대피소는 당장 내일부터 물과 식량이 바닥날 것”이라고 전했다.● “도로 끊기고 집 무너져 갈 곳 없어” 이시카와현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망자는 3일 오후 6시 기준 73명으로 늘어났다. 노토반도에서 연락이 두절된 약 60명은 포함하지 않은 숫자다. 스즈시 측은 “구조 요청이 왔지만 불가항력으로 대응할 수 없는 건수도 72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와지마시의 한 남성은 “갈 곳이 없다. 급한 대로 자동차와 비닐하우스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다”고 전했다. 와지마시와 스즈시는 전기, 수도가 끊겨 자위대 급수차가 배급하는 비상용 물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것마저 받지 못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즈미야 마스히로(泉谷満寿裕) 스즈시장은 현 대책 회의에서 “무사한 집이 없다. 시내 6000가구 중 5000가구는 생활할 수 없는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이날 강진 피해자 구조 작업과 관련해 “지진 발생 뒤 40시간 이상 경과한 시점”이라며 “피해자 구조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는 “구조가 필요한 피해자가 약 130건 있다는 정보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접수되지 않은 피해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1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와지마시에서는 관광 명소인 ‘아사이치’ 새벽시장 점포와 주택 등 200동 이상이 불에 탔다. 사흘째인 이날까지도 불길은 완전히 잡히지 않았다. 스즈시 주민들은 “지진해일로 시청 인근 주택가 도로까지 작은 배들이 올라왔다”고 전했다. 물이 역류하며 마을 곳곳에선 바닷물과 하수도 냄새가 섞인 역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고 한다.아나미즈=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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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日지진 부상자 몰린 병원, 물끊겨 수술-투석 어려워… 온천선 옷도 못입고 탈출”

    난도질을 당한 듯 찢어진 도로, 힘없이 주저앉은 목조 주택, 골목 가운데 쓰러져 빈 깡통처럼 나뒹구는 돌기둥…. 차가운 바닷바람이 부는 거리에는 담요를 둘둘 두른 노인들이 넋이 나간 듯 말 없이 무너진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10분 넘게 서 있어도 행인 한 명 찾기 힘든 시내 중심가에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는 구급차만 어딘가로 바쁘게 향했다. 2일 오후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 있는 나나오(七尾)시. 새해 첫날부터 규모 7.6의 강진에 휩쓸린 도시는 하루 만에 삶의 온기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인구가 약 5만 명 되는 소도시지만, 공립노토종합병원은 지진 피해를 입은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병원 관계자는 “물이 끊겨 수술이나 투석이 어렵다. 급수차 지원이 절실하다”고 답답해했다. 와쿠라 온천 등 인근 명소를 찾았던 관광객 1400여 명은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탈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가장 큰 지진해일(쓰나미) 경보가 내려졌던 1일 노토반도 지진은 우려했던 해일 피해는 크지 않았다. 허나 목조건물 등이 붕괴되며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많아 이사카와현 집계 기준 2일 오후 8시 현재 현 전체에서 최소 48명이 목숨을 잃었다. 빠른 대처가 쉽지 않은 노년층이 주를 이뤘고, 10대 청소년도 포함됐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이날 오전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비상재해대책본부회의에서 “피해자의 조속한 구출이 최우선”이라며 “피해 지역 도로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뱃길을 통해 구호물자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日 강진에 최소 48명 사망… 6만 이재민, 여진 우려에 거리서 밤새 노토반도 피해현장 르포 교통망 끊긴데다 단전-단수 고통“구호물자 부족… 모닥불 쬐며 버텨”잔해에 깔린 아버지 끝내 잃기도… 日국토지리원 “도시 1.3m 이동” “이곳에서 65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큰 흔들림을 느꼈다.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머리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탁자 밑으로 들어갔다.” 2일 나나오시 중심부 나나오역 뒤편의 주택가에서 만난 쓰카모토 씨(68)는 전날의 끔찍한 지진을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골목 곳곳에는 무너져 내린 주택에서 떨어진 기와, 벽돌, 유리창 등 잔해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일본 노토반도 강진 발생 다음 날인 이날 오전 10시경, 피해 지역에 내려졌던 지진해일(쓰나미) 경보와 주의보는 모두 해제됐다. 하지만 아직 명확한 피해자 수도 집계되지 않은 채 살아남은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터전을 잃은 이재민 5만7000여 명은 인근 교통망이 끊긴 데다 정전 및 단수까지 겹쳐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잔해에 깔린 父, 구조 늦어 잃기도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에 등장해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은 나나오시 중심가의 ‘나카야마 약국’은 건물 1층이 폭삭 주저앉았다. 6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상점가 잇폰스기(一本杉) 거리에 위치한 일본 유형문화재 ‘다카자와 양초’ 점포도 통째로 무너졌다. 거리에 있는 편의점들은 24시간 영업이 무색하게 곳곳이 문을 닫았다. 일부 문을 연 주유소에는 기름을 넣기 위한 차량 수십 대가 줄을 서 있었다. 나나오시로 들어가는 국도 249호선은 도로 곳곳이 쩍쩍 갈라지고 30cm가량 솟구쳐 올라온 곳도 보였다. 심하게 주저앉은 일부 구간은 아스팔트로 땜질을 하는 긴급 보수가 이뤄졌지만 울퉁불퉁하게 구겨진 상당수 구간은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다. 또 다른 주요 피해 지역인 이시카와현 와지마(輪島)시에서는 뿌리가 뽑힌 듯 옆으로 무너진 7층 건물이 이번 참상을 대변해줬다. 현지 매체 훗코쿠 신문에 따르면 눈앞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낸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다. 와지마시에 있는 친정을 찾은 다케모토 유키에 씨(51)는 가족과 거실에 모여 있다가 지진을 겪었다. 그와 남편, 딸은 가까스로 대피했지만, 아버지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다케모토 씨는 폐허 속에서 아버지를 겨우 찾아냈지만 잔해에 깔려 구조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구조대는 연락이 닿지 않았고, 아버지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며 통곡했다. 결국 아버지는 이날 오후 인근 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다.● 여진 무서워 노숙하는 이재민들 갈 곳을 잃은 일부 시민은 또 다른 여진에 건물이 무너질까 봐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웠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영하의 기온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버텼다. 한 주민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지나가는 차들을 붙잡아 물어보는 중”이라며 답답해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이날 비상재해대책본부회의에서 “‘푸시형 지원’을 통해 이재민을 돕도록 관계 부처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푸시형 지원이란 현장 요청을 기다리지 않고 중앙정부에서 선제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피해 현장에는 자위대 1000명을 비롯해 경찰 634명, 소방 2039명 등이 투입됐다. 일본 국토지리원은 이번 강진 발생 전후 관측 데이터(GPS)를 실시간 분석한 결과 와지마시가 서쪽으로 1.3m(잠정치) 이동하는 등 이시카와현 주변 지역에서 상당히 큰 지각 변동이 관측됐다고 밝혔다. 나나오=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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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칼럼/이상훈]자연재해 앞에서 한없이 약한 우리의 존재

    2022년 3월 16일, 일본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일본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입국 규제를 완화하며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닷새 만이었다. 당시 규모 7.3의 강진에 3명이 사망하고 5000채 가까운 집이 무너지거나 부서졌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11년 만에 같은 곳에서 발생한 지진의 충격은 작지 않았다. 무엇보다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 수습이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 긴장감이 더욱 컸다. 코로나19에 따른 입국 뒤 자가격리 조치로 호텔에 머물고 있던 기자는 비로소 ‘지진의 나라’에 왔다는 사실을 몸으로 실감했다. 한밤중인 오후 11시 30분을 넘어 발생한 지진으로 마치 바다에 떠 있는 배처럼 방이 출렁거리는 흔들림을 느꼈다. 그날 송고한 지진 1보 속보 기사가 도쿄 특파원으로 처음 쓴 기사였다. 한국에서 지진을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기자가 종종 일본인 지인에게 흔들림을 감지한 경험을 얘기하면 “언제 지진이 났었냐”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지진 속보 시스템을 갖춘 일본에선 지진이 발생하면 TV에 긴급 속보가 자동으로 나간다. 하지만 규모 3∼4 정도 지진은 TV에 흘러가는 한두 줄 자막에 그친다. 연간 1000회 이상 크고 작은 지진이 나는 일본에서 약간의 흔들림은 일상이다. 그 정도로 지진에 익숙한 일본이지만 새해 첫날 발생한 규모 7.6의 강진은 열도를 바짝 긴장시켰다. 직선거리로 300km 이상 떨어져 있고 해발 3000m 산맥을 사이에 둔 태평양 연안 도쿄에서도 흔들림이 감지됐다. 지진해일(쓰나미) 경보가 발령되자 TV 진행자는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라” “지금 당장 도망가라” “동일본 대지진을 기억하라” “목숨을 소중하게 지켜라”. 흔들림을 느끼긴 했지만 다소 편한 자세로 보던 TV에서 나온 아나운서의 찢어질 듯한 고함은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착각마저 느끼게 했다. 다음 날인 2일,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과 화재 현장을 보며 왜 그토록 아나운서가 소리를 질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뿌리째 뽑혀 옆으로 풀썩 쓰러진 7층짜리 건물, 도시 한가운데 하얀 연기가 올라오며 까만 잿더미로 변한 집들, 휴지처럼 구겨지고 갈라진 아스팔트 도로 등 평소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전기, 수도가 곳곳에서 끊겼고 재해 지역 주민들은 모닥불에 고구마를 구워 식사를 해결하고 있었다. 이런 지진의 상처는 쉽게 낫질 않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후쿠시마현 후타바정(町)은 지금도 지역의 절반 이상이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귀환 곤란 구역’이다. 기차역이나 고속도로 나들목 근처 일부가 ‘부흥 거점’으로 지정돼 개발이 추진되고 있지만, 여전히 차로 5분 정도만 벗어나면 풀썩 주저앉은 건물과 지붕 절반이 잘린 주택, 잡초가 무성해진 문 닫은 상점 등이 방치돼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에 따른 방사능 유출로 마을을 떠난 주민들은 지금도 객지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이 언제 복구될지, 원전 폐로는 언제 마무리될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시시각각 늘어가는 사망자, 부상자 숫자를 보면서 자연재해가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한다. 자연재해 중에서도 가장 예측이 어려운 게 지진이라고 한다. 아무리 첨단 경보 시스템을 갖춘 일본도 피해를 완벽하게 예방하는 건 불가능하다. 지구촌 곳곳에서 인류를 위협하는 자연재해는 새해 첫날부터 현실로 나타났다.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새삼 느낀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

    •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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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규모 7.6 강진-쓰나미 “당장 도망가라”… 동일본대지진 후 최대

    동해와 맞닿은 일본 서부 이시카와(石川)현 노토(能登)반도에서 새해 첫날인 1일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했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 중 낙도 지역을 제외하면 13년 만에 가장 강력했다. 이번 강진 직후 노토반도 등에 최대 높이 5m의 대형 지진해일(쓰나미) 경보가 발령됐고 일부 지역에는 높이 120cm가 넘는 지진해일이 관측됐다. 대형 화재, 가옥 붕괴, 도로 갈라짐 등의 피해가 발생했고 부상자가 다수 나오면서 일본 열도 전체가 큰 혼란을 겪었다. 지진 지역에는 원자력발전소가 밀집해 일본 정부는 이상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일본 기상청은 향후 일주일 사이 비슷한 규모의 강진이 또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동일본대지진 후 최대 규모 지진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10분쯤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 있는 와지마(輪島)시에서 북동쪽으로 30km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강진이 일어났다. 이번 지진은 동해 쪽에서 대규모 지진해일 피해를 일으킨 1983년 동해 중부 지진(규모 7.7), 1993년 홋카이도 남서부 지진(7.8)에 육박하는 규모다. 동일본대지진(9.0)보다는 작고 1995년 한신·아와지(阪神·淡路) 대지진(7.3)보다는 크다. 첫 지진이 관측된 뒤 오후 늦게까지 수십 차례 여진이 발생했다. 진앙인 일본 열도 서쪽은 물론이고 태평양 쪽인 수도 도쿄에서도 고층 건물이 흔들리는 등 일본 열도 전체에서 지진이 감지됐다. 노토반도에서는 진도(震度) 7의 흔들림이 감지됐다. 진도는 지진에 따른 흔들림을 측정하는 단위로, 진도 7은 사람이 서 있을 수 없고 바닥에 고정하지 않은 가구 대부분이 쓰러질 수 있는 수준이다. NHK 등 일본 주요 방송국은 정규 방송을 일제히 중단하고 지진 속보에 들어갔다. 지진해일 경보가 발령되자 NHK 진행자는 방송에서 “지금 당장 도망가라. 동일본대지진을 기억해야 한다. 목숨을 소중하게 지켜라”라고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지진해일! 도망가!’라는 커다란 글씨가 영상으로 반복해 나왔다. ● “건물 잔해에 묻히고, 대형 화재 발생”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지진 발생 직후 기자회견에서 “건물 붕괴 등으로 사람이 산 채로 잔해에 파묻힌 사례가 6건”이라고 밝혔다. NHK는 경찰청을 인용해 “나나오시에서 2명이 심폐정지 상태로 발견됐다”고 전했다. 머리를 다치거나 뼈가 부러진 부상자도 다수 발생했다. 일부 병원은 병상이 부족해 주차장에서 임시 치료에 나섰다. 이시카와현 스즈(珠洲)시 종합병원 의사는 “부상자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의사가 제때 도착하지 못해 의료진이 부족하고 정전 때문에 예비 전력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와지마시 중심부에서는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으며 가옥이 불타는 대형 화재가 났다. 전봇대가 쓰러지고 수도관이 파열되는 사고가 여러 곳에서 보고됐다. 단독주택이 큰 흙먼지를 내면서 통째로 붕괴되거나 지붕, 벽 등이 무너지고 기왓장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이시카와 항공자위대 와지마기지에는 주민 1000여 명이 대피했다. 이날 지진 여파로 신칸센 나가노∼가나자와 등 고속철도 운행이 중단됐고 니가타 공항 등 서부 지역 주요 공항 항공편도 결항했다. 이시카와현 등의 주택 3만4000채에서 정전이 발생했고, NTT도코모 등 휴대전화 통화 및 무선 인터넷 서비스가 중단됐다. ● 원전 밀집 지역, 이상 여부 점검 착수 일본 정부는 이번 지진에 따른 원전 이상 유무 점검에 나섰다. 노토반도의 시카(志賀) 원전(2기)을 비롯해 이번 지진 발생 지역에는 일본 최대 원전 가시와자키카리와(柏崎刈羽) 원전(6기) 등 다수가 몰려 있다. 일본 원자력규제청은 시카·가시와자키카리와 원전에 이상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진원지에 인접한 이 두 원전은 모두 운전 금지 조치, 정기 점검 등으로 가동 정지 중이다. 일본 국가비상대응센터는 지진 발생 지역과 인접한 원전이 안전상 중요한 전력을 확보하고 있고 사용후핵연료 냉각 시설도 작동 중이라고 밝혔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은 외부에서 공급받던 전력이 끊기고 자체 비상발전기마저 지진해일로 침수된 상황에서 냉각수가 끓어올라 지진 발생 다음 날인 2011년 3월 12일 수소 폭발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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