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송평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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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칼럼니스트입니다.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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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6~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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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저신뢰사회 본색 보여준 롯데 ‘형제의 난’

    인류가 형제애를 강조한 것은 실상은 형제간 싸움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형제간 싸움은 성경의 첫머리에 등장한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두 아들이 갈등을 빚어 가인이 아벨을 죽인다. 고대 로마의 건국 신화에서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 형제가 힘을 합해 나라를 세우지만 동생이 형을 죽이고 왕이 된다. 신화에는 실제 역사가 비친다. 중국 당 고조 이연의 아들 이세민은 형제를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다. 조선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도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된다. 왕자의 난이란 말은 이런 고사들에서 연유했다. 왕이 사라진 오늘날 그 싸움은 기업으로 옮아갔다.나눌 수 없는 기업 권력 우리나라는 대기업에 가족기업이 많다. 정치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에 따르면 저신뢰사회일수록 가족기업이 번성한다. 선진국에도 중소기업은 가족기업이 많다. 그러나 대기업의 경우 가족기업이 남아 있더라도 가족은 경영에는 손을 떼고 소유만 하는 추세다. 소유와 경영을 모두 가족이 하는 재벌은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재벌은 ‘chaebol’로 영역돼 영어권에서 그대로 쓰일 정도다. 부모의 재산이 수억 원대만 돼도 부모가 돌아가실 때 형제간 싸움이 벌어지고 소송까지도 가는 게 인간사다. 부모의 재산이 수천억, 수조 원대 회사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정도 액수라면 왕이 되기 위해 벌이는 왕자의 난과 별다를 바 없다. 그래도 단순히 재산이라면 나누면 된다. 그것도 균등하니 안 하니 하면서 싸움이 벌어지지만 일단 나눌 수 있으면 분쟁의 소지는 줄어든다. 그러나 경영권은 권력과 같아서 쉽게 나눌 수 없다. 저신뢰사회는 신뢰의 범위를 최소화하는 사회다. 단순히 가족끼리만 신뢰한다는 차원을 넘어 가족의 규모가 커지려고 할 때 그 일부를 쳐내는 것도 필연적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사회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기업이 자식대로 넘어오면 자식 간의 협의로 운영하기보다는 그중 하나가 독차지할 때만 편안함을 느끼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형제애는 어느 시기가 오면 반드시 파탄에 이른다. 그것이 재벌가 형제의 난이다. 가족에서 씨족이 나오고 씨족에서 부족이 나왔다. 그렇게 사회가 형성됐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랑을 뜻하는 단어가 여럿 있었는데 그중에서 형제애를 필리아(philia)라고 불러 가장 고귀하게 여겼다. 형제애를 확장하면 사회에서의 우정이고 더 확장하면 인류애다. 유교는 효제(孝悌)를 중시했다. 공자는 효제는 인을 행하는 근본(爲仁之本)이라고 했다. 여기서도 가족애를 확장하면 공동체의 윤리가 된다.형제애도 파탄내는 재벌 형제애와 가족애에서 인류애가 나오듯이 가족에서 형성된 신뢰를 사회로 확장하는 것이 고신뢰사회다. 고신뢰사회에서는 가족기업이라도 대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자손이 참여해 결국 가족의 의미가 희박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 혈연을 벗어난 협력의 더 넓은 길이 열린다. 재벌은 근대화에서 앞선 일본에서 먼저 등장했다. 일본어로 재벌을 의미하는 자이바쓰(zaibatsu)도 그대로 영어로 쓰인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일본에서 재벌은 거의 사라졌다. 오늘날 일본은 고신뢰사회에 속한다. 롯데그룹은 한일에 걸쳐 있고 형제의 난은 일본 쪽 롯데에서 터졌다. 고신뢰사회 한가운데서 저신뢰사회의 본색을 보여준 ‘골육상쟁’이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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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정보위 선수교체, 김광진 빼고 안철수 넣어라

    국가정보원 리스크는 국회 정보위원회 리스크이기도 하다. 국회 정보위가 국정원의 비밀을 지켜준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국정원도 가능한 한 정보위를 피하고 싶은 것이다. 탱자가 된 국회 정보위 정보기관은 본래 의회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미국도 1970년대 와서야 중앙정보국(CIA)의 불법 활동이 쟁점이 되면서 상하원에 정보위가 신설됐다. 정보위가 비밀을 지켜준다는 조건하에 정보위에서만 비밀을 공개해 민주적 통제를 받는다는 일종의 타협책이었다. 그래서 미국 상하원 정보위는 창문도 하나 없이 이중벽이 설치된 특수 회의실에서 모임을 갖는다. 위원들은 회의장에서 노트를 할 수도 없다. 위원들은 정파를 떠나 정보업무를 다뤄야 한다는 압력을 끊임없이 받는다. 국회 정보위는 미국의 정보위를 본떠 만들어졌으나 태평양을 건너온 뒤 탱자가 됐다. 위원들이 회의만 끝나면 브리핑 내용을 다 적어 나와 앞다퉈 공개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위원들이 신뢰할 만하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은 국회에서 6·25전쟁 영웅인 백선엽 장군을 만주군 장교였다는 이유로 민족 반역자라고 불러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역사도 균형 있게 보지 못하는 사람이 정파를 떠나 일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과 함께 이런 사람을 정보위에 배정한 새정치연합은 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국정원의 내국인 해킹 의혹을 국회가 다룬다면 특위가 아니라 정보위가 다뤄야 한다. 비밀 유지가 필요한 그런 일을 다루라고 우리나라도 1994년 뒤늦게 정보위를 만들었다. 정작 필요할 때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임위라면 그런 상임위는 있어 뭐 하겠는가. 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이 사이버 보안의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이 의혹을 다루려면 국민정보지키기 위원회라는 새정치연합 내부의 의미 없는 위원회에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국회에서 정보위에 들어가야 한다. 마침 정보위에는 들어내 버리고 싶은 의원도 있다. 생각 같아서는 몇몇 의원을 더 들어내고 싶지만…. 오늘날 방첩은 디지털 공간에서 더 절실하다. 안 의원이라면 정보위의 전문성 부족을 보완할 수 있는 데다 덜 정파적인 정보위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정보위 활동을 하다 보면 국정원 보고 일개 정당의 위원회에 뭉텅이로 자료를 내놓으라는 요구가 얼마나 무리한지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새누리당은 안 의원이 이 의혹을 다룰 경우 안랩 주식의 백지신탁을 요구하고 있다.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걸고넘어지는 것은 뭔가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안 의원으로서는 새누리당이 정 백지신탁을 원한다면 백지신탁을 해서라도 이 의혹을 다루지 못할 게 없다. 안 의원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만나기 드문 기회다.경계선상의 얼룩들 정보기관이 늘 깨끗한 일만 할 수 없다. 국정원은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우리 국민을 대신해 때로 ‘더티 워크(dirty work)’를 수행하기도 한다. 세상사 늘 경계선상의 것이 문제가 된다. 간혹 우리 편인지, 저쪽 편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다. 자살한 국정원 직원 유서의 ‘오해를 일으킬 자료’라는 표현에서 벌써 그런 것이 느껴진다. 정보위 위원 정도 되면 세상을 김광진 의원처럼 단선적으로 봐서는 안 되고 겹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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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조직을 위한 희생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정보기관에는 자살의 문화가 있다. 그것을 굳이 문화라고 부른 것은 특정한 자살에 어떤 명예로움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정보원은 적에게 발각됐을 때 평소 갖고 다니던 독약을 입에 털어 넣거나 휴대하던 총을 스스로에게 쏴 자살을 시도한다. 개인적으로는 극심한 고문을 피하기 위한 것이면서 국가를 위해서는 공개해서는 안 되는 정보의 공개를 막기 위한 것이다. ▷국가정보원에서는 자살이나 그 시도가 때로는 정상적이 아닌 일탈적 정보활동을 숨기기 위해서도 나타난다는 점이 문제다. 지난해 3월 유우성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서 권세영 당시 국정원 대공수사국 과장이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승용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했다. 2005년 11월에는 안기부 불법 감청 사건 수사에서 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도청을 한 안기부 ‘미림팀’을 이끈 공운영 씨도 수사 도중 흉기로 자해를 시도했다. ▷서구에서는 정보원이 불법행위를 한 조직을 보호하려고 희생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반대로 조직이 정보원을 희생시켜서 스캔들이 되는 경우는 있다. 2003년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 국방부 정보국을 위해 일하던 데이비드 켈리 박사의 신원을 공개해 자살에 이르게 한 사건이나 2002년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인 밸러리 플레임의 신원을 드러나게 한 리크게이트 사건이 그렇다. ▷국정원에서 휴대전화 해킹프로그램 RCS를 도입하고 직접 운용을 담당한 직원 임모 씨가 자살했다. 그는 죽기 전 관련 전산기록을 모두 삭제했다. 국정원은 그의 자살로 불필요한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삭제된 파일은 100% 복구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완전한 복구가 가능할지도 의문이고,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운영자가 없으면 잘못이 모두 운영자 개인의 일탈로 돌아갈 수 있다. 그가 삭제한 자료는 유서에 썼듯 ‘대북 공작 활동에 오해를 일으킬 자료들’이다. 오해라 해도 불식시킬 수 없으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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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북한은 이란이 아니다

    이란 핵협상 타결 후 북한과 이란의 차이에 대해 많은 얘기가 나온다. 이란의 핵 보유는 중동의 핵무기 경쟁을 촉발시키고 테러집단의 핵무기 접근 가능성을 높여 세계적 위협이 되지만 북한의 핵 보유는 상대적으로 동북아에 국한된 위협이다. 따라서 미국은 이란의 핵 포기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이미 사실상 핵보유국인 반면 이란은 아직 우라늄 농축 단계에 있다. 가진 핵을 포기하게 하는 것보다는 개발 중인 핵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다. 강온파가 공존하는 이란 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북한에는 이란처럼 핵협상을 내부로부터 압박할 만한 정치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란은 이슬람 신정 국가라고 하지만 그 내부에 자유와 실용을 중시하는 세력이 남아있다. 그 씨앗은 가까이는 1979년 이란 혁명에 의해 쫓겨난 친서구적인 왕조에서 뿌리를 내린 것이고 멀리는 교양과 관용을 존중하는 페르시아 문명의 전통과도 연결된다. 이란 정치권에는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이번 협상을 성사시킨 온건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도 있다. 호메이니를 잇는 시아파 원리주의자의 지배하에서도 온건파 세력은 말살되지 않았다. 이란의 시아파는 원리주의라 하더라도 아랍 세계에서 기원한 수니파 원리주의 집단인 탈레반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 등처럼 극악하지 않다. 온건파 세력의 힘이 만만치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이 2004년 유럽연합(EU)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에 착수한 이후 이란인들은 큰 고통을 느꼈다. 온건파는 실용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적인 강경파와 달리 점점 더 심해진 경제적 고통을 참지 못했다. “이란 내부의 온건파를 활용해 이란의 안보 이익을 존중하면서 이란을 설득해야 한다”는 협상론은 거기서 근거를 찾았고 그 주장이 옳았음이 이번에 입증됐다. 한반도의 북쪽에는 역사적으로 한 번도 자유주의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 왕조에서 바로 일본 식민 지배로 넘어갔고 다시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소련 공산당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구한말과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어렵게 싹을 틔운 일부 자유주의 세력은 대거 월남해버렸다. 이란과 비교해보면 북한을 한편으로 경제제재로 압박을 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들여 핵 문제를 푸는 것이 왜 어려운지 이해할 수 있다.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동독 시위는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됐다. 라이프치히의 월요 시위는 이른바 ‘교양시민층’이라고 불리는 작가 교사 등 지식인들이 주도했다. 라이프치히대학을 나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그런 부류였다. 동독 공산당도 비밀경찰 슈타지도 그들의 삶에서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연유한 인간 기본권 존중의 기풍을 지울 수 없었다.자유의 기억이 없는 북한 북한은 이란처럼 호메이니 혁명 전의 친서구적인 시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동독처럼 바이마르공화국 시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반도의 북쪽은 조선의 왕, 총독이 대리한 일본 덴노(天皇), 그리고 김씨 1, 2, 3세를 섬긴 기억밖에 없다. 북한은 헤겔식으로 말하면 계속 한 사람의 자유만 존재한 곳이다. 북한은 이란도 독일도 아니다. 북한과의 핵협상도 북한과의 통일과정도 매우 다른 경로를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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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공화춘(共和春)은 우리나라 최초의 중국음식점 이름이다. 말 그대로 공화의 봄이란 뜻이다. 공화춘은 본래 산동회관이었으나 1912년 이름을 바꿨다. 그해 쑨원이 청나라 왕조를 타도하고 세운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 중화민국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대한민국도 공화국이다. 공화국은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보다 무엇이 아니라고 정의하는 것이 그 뜻을 쉽게 파악하는 방법이다. 공화국은 무엇보다 왕정이 아니다. ▷2013년 노무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영화 ‘변호인’에서 주인공 역의 송강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라고 외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2008년 미국산 수입쇠고기 광우병 논란 때 시위대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라는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그것을 떠올리면서 영화를 보도록 감독이 의도한 것이다. 이번에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그제 사임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외쳤다. 야당도 아니고 여당 원내대표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색다른 맛이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는 왕조국가가 아니며 박근혜 대통령의 압박으로 새누리당 의원들이 선출한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것이 잘못됐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의원들의 총의 없이 원내대표를 쫓아내는 것은 잘못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사임의 변을 아무리 읽어봐도 그가 왜 사퇴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변명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즉 사퇴하고 싶었다는 사람으로서는 어색한 화법이다. 어쩔 수 없이 사퇴하긴 하지만 내심으로는 수긍할 수 없다는 뜻이 읽힌다. ▷공화국의 어원은 라틴어 ‘res publica’로 공공의 것이란 뜻이다. 영국처럼 왕이 있는 민주국가는 공화국보다는 코먼웰스(commonwealth)란 표현을 쓴다. 그 말도 역시 공공의 것이란 뜻이다. 공화국에서 나라는 공공재다. 대통령이 국무회의 자리를 이용해 ‘배신의 정치’ 운운하며 사적 감정을 풀어놓는 것도, 여당 원내대표란 사람이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시작된 국정 혼란의 책임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은 것도 공화국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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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영리하지만 정치력 없는 민족, 한국과 그리스

    그리스와 한국은 멀리서 보면 닮은 점이 많다. 유럽행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 쪽에서 유럽으로 들어서면 러시아의 평원 지대와 대조적인 발칸 반도의 쭈글쭈글한 산악 지형이 내려다보인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는 한국의 지형과 흡사하다.빨치산 숨기 좋은 지형 비슷 역사도 그렇다. 산이 많은 곳이 빨치산이 숨기 좋다. 그리스는 터키 식민 지배 때부터 빨치산으로 이름 높다. 공산 빨치산은 그리스에서 나치를 몰아내는 데는 자유진영과 협력했으나 냉전 체제에서는 위협이 됐다. 1947년 트루먼 독트린은 그리스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나왔다. 그 무렵 지구 반대편에서도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작업이 시작됐다. 그리스는 분단을 겪진 않았지만 좌우 세력은 서로를 나치협력자와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우며 대립했다. 한반도에서는 북한이 공산국가로 떨어져 나갔으나 한국은 북한과의 체제 경쟁 속에서 불안한 정치를 이어갔다. 그 결과 두 나라 모두 민주주의가 싹을 내리지 못하고 군사 쿠데타를 맞았다. 그리스는 1974년 군사정권을 종식시켰다. 한국은 1987년에 민주화를 이뤘다. 그리스는 민주화 이후 외국 자본의 유입으로 경제적 급성장을 경험했다. 그러나 성장이 주춤해지자 파이를 나누는 갈등이 시작됐다. 그리스의 좌우 양대 정당은 집권만을 위해 무책임한 선심 공약을 남발하다 나라를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한국도 큰 스펙트럼에서 보면 그리스보다 조금 늦을 뿐 비슷한 경로를 가고 있다. 그리스는 예술의 나라다. 마리아 칼라스 같은 불멸의 소프라노를 낳았고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같은 뛰어난 작곡가도 배출했다. 게오르기오스 세페리아데스, 오디세우스 엘리티스 등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이름이 낯설다면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떠올려볼 수 있다. 배우 멜리나 메르쿠리, 가수 나나 무스쿠리 같은 연예인도 있다. 그리스는 국민 개개인은 뛰어나지만 정치의 그리스는 아니다. 고대 그리스는 민주주의의 발상지이긴 하지만 그 민주주의는 아테네 지역에 한해 페리클레스 시대를 전후한 짧은 기간 나타났을 뿐이다. 고대 로마인의 눈에 이미 그리스는 예술에는 유능했지만 정치에는 무능한 민족으로 비쳤다. 그리스와 한국이 근대사회에 포섭된 것은 시간적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스는 400년간 터키 지배하에 있다가 1827년 독립하면서 르네상스 시대도, 계몽주의 시대도 비켜갔다. 그리스인이 다른 유럽인에 비해 합리적 사고와 규율이 몸에 배지 않은 이유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독일 베를린에 갔을 때 훔볼트대 앞에서 누군가가 내게 전단을 하나 건넸다. 그 전단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자본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 그리스부터 끊어내자.’정치지도자 부재도 같다 한국도 영리한 민족이지만 정치의 한국은 아니다. 광복 70년을 앞둔 지금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내세울 지도자도 없다. 훌륭한 지도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느 지도자에 대해서건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것 자체가 약점이다. 권위주의 정권의 강제 조정력이 민주화 이후 힘을 잃고 가신(家臣)정치의 지도자들마저 사라진 뒤 정치력 부재 현상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마침 이런 때 성장률은 둔화하고 복지 요구는 폭증하기 시작했다. 그리스 일이 남 일 같지 않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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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한국인 세계 해양대통령

    세계 최대 재보험회사인 로이드사는 1688년 에드워드 로이드가 영국 런던에 연 ‘로이드 커피하우스’로부터 출발했다. 선주들이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당시로서는 손실이 가장 큰 범선 사고 대책을 논의했다. 보험을 중심으로 해운이 발전하다 보니 해사 관련 국제기구만은 뉴욕이나 제네바가 아니라 런던에 몰려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도 런던에 본부를 둔 유엔 기구로 선박 안전과 해양환경 보호를 위한 규범 제정을 목적으로 한다. ▷세계 해양대통령으로 불리는 IMO 사무총장에 임기택 부산항만공사 사장이 선출됐다. 이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활약하고 있지만 작고한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로 배출한 유엔 전문기구 수장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IMO는 WHO나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버금가는 큰 유엔 전문기구다. 뛰어난 보건전문가나 농업전문가가 아니면 WHO나 FAO에서 활약할 수 없듯이 뛰어난 해사전문가가 아니면 IMO의 이너서클에 낄 수 없다. ▷임 사장은 해양수산부 관료 중에서도 보기 드문 마도로스 출신이다. 1977년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뒤 외항선 항해사로 배를 탔고 선장 자격도 갖고 있다. 1986년 해운항만청 사무관으로 특채된 뒤 순환 보직을 마다하고 해사안전 분야 한길만 뚫었다. IMO 연락관으로 3년, 주영대사관 공사참사관으로 3년 IMO를 담당하면서 IMO 전문가가 됐다. 덕분에 수십 년간 IMO 일을 해온 외국의 전문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할 수 있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잔칫상에 젓가락을 놓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정부가 임 사장 당선에 아무런 협조를 하지 않다가 내가 모처에 특별히 부탁하고 나서야 협조가 이뤄졌다”며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을 겨냥했다. 해수부가 반박하자 김 대표 측은 지난해 일이라며 물러섰다. 그러나 임 사장의 출마는 현 IMO 사무총장이 신병으로 연임을 포기하면서 올 초 결정된 것이다. 좋은 일에는 모두가 공을 다투고 불리한 일이 터지면 숨기 바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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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유승민이 사퇴해야 하는 이유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로 초래된 사태를 박근혜 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개인적 관계로 몰아가는 것은 본질을 흐린다. 물론 박 대통령이 간단히 ‘노’라고 하면 될 것을 ‘배신의 정치’ 운운한 결과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누구를 배신자로 지목했건 그것은 새누리당 내에서 자기들끼리 알아서 할 문제다.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두 권력, 즉 국회와 대통령 사이의 균형이 깨질 뻔했고 그 책임을 묻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국민 속이려한 與원내대표 박 대통령은 제왕처럼 노기를 부렸지만 제왕이 아니었다. 여당 내 소수파에 불과한 친박 의원들만으로는 유승민을 강제 사퇴시킬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유승민은 힘 대결에서 밀리지 않는다. 다만 그가 밀리는 것은 정당성 싸움이다. 비박도 그의 국회법 개정안 처리가 옳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유승민은 국회법 개정안이 강제성이 없으며 위헌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럼으로써 이미 있는 권고 규정을 왜 개정하느냐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그는 강제성 논란이 계속되자 ‘요구’를 ‘요청’으로 딱 한 글자 고쳐놓고는 남은 우려마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국민을 조삼모사(朝三暮四)로 속일 수 있는 원숭이 정도로 취급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야권에서는 강제성이 있다고 위헌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왔다. 유승민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됨에도 국회법 개정안 통과를 주도했다. 이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으니 다시 통과시킬 책임도 그에게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 의원총회는 재의 표결에 불참하기로 했다. 유승민은 재의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상당한 표를 얻는다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의원총회는 그런 길을 막아버리고 대통령의 거부권을 받아들였다. 유승민은 사실상 불신임을 받은 것이다. 의원총회가 그의 강제 사퇴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이 메시지를 읽지 못하면 모자란 사람이다. 유승민은 속으로 이렇게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야당이 원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주지 않았으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도 통과되지 못했다. 국회선진화법하에서는 때로 대통령 거부권까지 감수하고 야당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회법은 법률이지만 그중에 헌법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지닌 규정이 적지 않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 규정이 그렇고 이번 개정안도 그렇다. 원내대표 정도 되는 국회 지도자라면 국회법의 어느 규정이 그런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야 한다. 여당이 야당의 요구를 무조건 거부해서는 아무런 법안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연계처리 법안으로 받아들일 게 있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있다. 국회의 행정입법 강제 규정은 설혹 위헌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른 법안에 연계하는 식으로 다룰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 정도 식견이 없다면 원내대표의 자격이 없다. 그가 더 위험한 일에 개입되기 전에 그를 사퇴시켜야 한다.야윈 돼지가 뛰기 전에 주역에 야윈 돼지가 뛰려고 하는 모양의 괘가 있다. 야윈 돼지가 우리를 뛰쳐나와 사방을 뛰어다니며 엉망으로 만들려는 순간에 그 돼지를 제지한 것이 이번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본질이다. 그 야윈 돼지가 꼭 유승민이 아니라 누가 됐더라도 제지했어야 한다. 제때 제지하지 못할 때 어떤 혼란이 벌어지는가는 국회선진화법이 이미 잘 보여주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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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한 번만 하고 마는 표절은 없다

    작가 신경숙의 사과가 어딘가 불안하다. 신 씨는 단편소설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에 대해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미시마는) 오래전에 그의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이 없는 작가로 우국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의식 못하는 표절 더 위험 신 씨는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나 역시 오래전 금각사와 우국을 읽어봤지만 금각사만 기억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금각사의 제목만 기억했다. 우국은 제목조차 기억하지 못하다가 얼마 전 김항의 ‘제국 일본의 사상’이란 책을 읽으면서 그 속에 나오는 우국의 내용을 보고서야 ‘아, 그 책’ 하며 떠올린 경험이 있다. 신 씨가 쓴 “여자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는 표현은 시인 김후란의 1983년 번역본에만 나온다. 원작에는 ‘레코(여주인공)는 기쁨을 알았고…’라고 밋밋하게 돼 있다. 신 씨가 금각사를 읽은 게 그 번역본이었다면 우국도 봤을 것이다. 그 번역본에는 특이하게도 금각사가 우국과 함께 실려 있다. 우국은 단편이어서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는다. 미시마의 대표작은 금각사라고 하지만 미시마 자신은 금각사보다 우국을 더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신 씨가 우국이란 작품의 중요성을 몰랐다면 제목까지 기억해둘 필요를 못 느꼈을 수 있다. 다만 우국은 플롯이 선명하고 표현이 강렬해서 작가 지망생이라면 뭔가 적어두고 싶었을 책이다.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은 어떤 것일까. 읽고 필사하면서 기억에 담아두었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대로 끄집어냈다는 식의 설명은 비현실적이다. 번역본 아니면 그것을 필사한 노트를 앞에 놓고 ‘전설’을 썼다고 본다. 다만 지금은 번역본도, 필사한 노트도, 심지어 그것을 필사했다는 기억마저도 남아있지 않을 뿐이다. 신 씨의 말을 믿는다. 하지만 표절하는 사람이 한 번만 표절하는 법은 없다. 석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표절한 사람은 반드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또 표절하게 돼 있다. 책을 읽은 기억도, 필사한 기억도 남아있지 않다면 신 씨가 의식하지 못하는 더 많은 표절이 신 씨의 작품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다른 표절 의혹이 나오고 있다. 의식하지 못하는 표절이라고 해서 의식하는 표절보다 덜 위험한 것은 아니다. 창작과비평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보니 이런 글이 올라 있다.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는 ‘예스터데이’를 작곡해 놓고도 너무 귀에 익어 다른 누군가가 과거에 만든 노래가 아닐까 의심하고 주변에 계속 물어봤다고 한다. 신 씨는 절필을 거부하며 “문학이란 땅에서 넘어졌으니 그 땅을 짚고 일어나겠다”고 했다. 대부분의 독자가 그의 절필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정말 문학이란 땅을 짚고 일어서고 싶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차기작을 내서는 안 된다. 그 전에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표절을 가능한 한 최대로 복구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작가가 일반인과 다른 점 ‘의식하지 못하는 표절’은 중요한 철학적 주제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인용으로만 된 글을 써보려 했다. 우리의 생각 중에 정말 우리 자신의 생각은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은 어디선가 보고 들은 것이다. 어디서 습득했는지 일일이 찾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작가는 자기 생각과 남의 생각을 구별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일반인과 다른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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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한국의 못 말리는 과학결핍증후군

    2000년 옛 농림부 출입기자로서 국내에 처음 발생한 구제역 사태를 취재한 적이 있다. 구제역은 발에 굽이 있는 동물만 걸리는 전염병이다. 당시에도 과민반응이 많아 사람도 감염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육류 소비가 현저히 감소했다.독일 구제역 한글 푯말 하지만 구제역은 사람이 감염되고 싶어 안달이 나도 감염되지 않는 병이다. 발굽을 만드는 유전자가 구제역 바이러스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학자들이 아무리 얘기해도 그런 얘기가 안 먹혔다는 것이다. 그 후 독일에 출장 갔다가 프랑크푸르트 공항 세관에서 ‘구제역은 인간에게 전염되지 않습니다’라고 쓰인 한글 푯말을 봤다. 독일 소시지 판매 때문이었는데 한국인을 위한 특별한 배려에 고맙기보다는 씁쓸했다. 어떤 바이러스는 기침 등의 비말(飛沫)로만 전파되고 어떤 바이러스는 공기로도 전파된다. 그것도 신비로운 과학적 현상이다. 메르스가 공기를 매개로 전파되지 않는다는 것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위에 의존할 필요도 없이 한국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공기 전염이 아닌 한 산발적으로 병원 밖 감염이 일어난다 한들 지역사회 감염으로서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은 연일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쓰고 정치인은 부채질한다. 이러니 국민이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나. 메르스 감염자는 대부분 병원 내 감염이다. ‘대부분’이라 해도 무방한 것은 병원 밖 감염이 있더라도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비말 감염은 말 그대로 비말이 있어야 일어난다. 비말이 있을 정도의 증상이면 병원을 찾아가게 돼 있다. 그래서 병원 밖 감염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병원에서만 일어나란 법은 없다. 비말을 뿜는 환자가 집에 있다면 왜 가족이 감염되지 않겠는가. 다만 그런 감염은 산발적이어서 지역사회 감염의 의미가 없다. 일각에서 연무질에 의한 감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설혹 가능하다 하더라도 비말이 퍼지는 범위를 좀 더 확장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변이가 없는 한 지역사회 감염을 일으킬 수 없다. 그러나 ‘비말 2m 이내’ ‘최대 잠복기 2주’ 등 방역 기준은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무제한 방역을 할 수 없으니까 외국 사례를 기초로 한 국제기구의 기준을 따른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 기준을 바꾸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를 두고 과학을 신뢰할 수 없다는 듯이 몰아가서는 안 된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소통을 학문의 주제로 삼은 독일의 대(大)학자다. 그러나 그가 소통을 강조했다는 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그는 소통 이전에 소통이 그 위에서 이뤄지는 합리화한 일상(lifeworld)을 훨씬 더 많이 강조했다. 합리화하지 않은, 즉 막스 베버의 표현을 따르자면 주술에 사로잡힌 일상에서는 올바른 소통이 이뤄질 수 없다. 과학에 기초할 때 비로소 토론이 가능하고 합의에 이를 수 있다. 억지와 괴담을 받아주는 것이 소통이 아니다.비합리적 일상 언제까지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고 하지만 한국인의 일상은 합리화와는 거리가 멀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지역사회 감염 우려가 없다고 방역당국이 말하고, 전문가들이 말하고, WHO 같은 국제기구가 말해도 믿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광우병 시위 때도, 천안함 폭침 때도 그랬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말해도, 국제 민관합동조사단이 말해도 믿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반복해야 하나.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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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마그나 카르타 800주년

    1215년은 세계사에서 1517년 루터의 종교 개혁,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1789년 프랑스 혁명, 1917년 러시아 혁명, 1990년 구(舊)소련 붕괴 등과 함께 기억해둘 만한 중요한 해다. 그해 6월 15일 영국에서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가 제정됐다. 마그나 카르타는 영어로 그레이트 차터(Great Charter), 우리말로는 대헌장(大憲章)이 된다. 마그나는 원래 위대해서가 아니라 내용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수식어다. 그러나 결국 인류 역사의 위대한 문서가 됐다.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면 얼마 안 가 러니미드 초원 위를 지난다. 800년 전 그곳을 날아갔다면 귀족들과 기사들의 천막이 점점이 쳐진 사이로 잉글랜드 왕기(王旗)가 날리는 보다 큰 천막 하나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실지왕(失地王)이라 불린 존 왕의 천막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잃은 땅을 찾기 위한 전쟁의 자금 조달을 위해 세금을 올렸다. 반발한 귀족들이 봉기해 런던을 빼앗고, 캔터베리 대주교의 중재로 러니미드에서 왕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데 그 결과가 대헌장이다. ▷본래 라틴어로 쓰인 대헌장은 처음에는 귀족들의 언어인 프랑스어로 번역되고 그 후 영어로 번역됐다. 13세기 말엽부터는 농민들도 대헌장을 기억해뒀다가 부정의에 항의할 때 인용했다. 1640년대 영국 의회는 찰스 1세를 몰아내는 법적 근거를 대헌장에서 찾았다. 18세기 미국 독립운동의 혁명가들부터 20세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까지 마그나 카르타에 기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마그나 카르타 제39조에는 ‘자유민은 누구도 그의 동료들의 적법한 재판 또는 그 나라의 법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되거나 구금되지 않는다’고 쓰여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않고서는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800년 전 마그나 카르타와 대한민국 헌법은 이렇게 이어져 있다. 오, 위대한 문서여.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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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거짓말 바이러스와의 싸움

    ‘닥터 하우스(House M.D.)’는 2012년 막을 내린 미국 드라마다. 주인공 닥터 하우스는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Everybody lies)’는 대사로 유명하다. 그는 ‘나는 환자들에게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묻지 않는다. 환자들은 거짓말하고 있다고 그저 상정할 뿐’이라고 말했다. ▷메르스 1차 유행의 출발점인 1번 환자는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할 당시 바레인을 다녀왔을 뿐이라며 메르스 발병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여행한 사실을 숨겼다. 건양대병원 등에서 22명을 감염시킨 16번 환자는 수술을 거부당할까 봐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숨겼다. 삼성서울병원의 비정규직 환자이송요원은 월급 삭감을 우려해 증상 발현 뒤에도 9일간 숨기고 일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평소 같으면 환자의 거짓말은 환자 자신이 피해를 보는 ‘자기 책임의 원리’로 다루면 되지만 전염병이라면 다르다. 의사는 공공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관처럼 ‘취조’를 해서라도 환자에게서 진실을 캐내야 할 의무가 있다. ▷병원이 잘못해 놓고 그 실수를 환자의 거짓말에 뒤집어씌우려 한 경우도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2차 유행의 출발점인 14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숨겼다고 주장했으나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서 찍은 컴퓨터단층촬영(CT) 사진을 입원 시 제출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환자이송요원에 대해서는 14번 환자가 응급실에 있을 때 근무했던 9명을 격리하고 90명 전원을 대상으로 감염을 조사했으나 이 과정에서 1명이 누락돼 환자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락의 책임 소재는 불분명하다. 환자가 교묘히 빠져나갔다는 뉘앙스가 없지 않다. ▷사실을 말하자면 환자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병원도, 방역당국도 책임을 떠넘기려는 유혹을 받고 있다. 비판자들은 거짓 우려를 퍼뜨린다. 닥터 하우스는 ‘진실은 거짓말에서 출발한다(Truth begins in lies)’고 말했다. 거짓은 극복해야 할 상수다. 메르스와의 싸움은 단순히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아니다. 거짓과도 싸워야 한다는 데 이 싸움의 어려움이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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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박원순 이재명 황우여의 메르스 호들갑

    공중보건과 관련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중이 과민 반응하는 것은 원시시대 때부터의 생존본능의 발휘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사회지도층의 호들갑은 그렇게만 볼 수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밤 기자회견을 자청해 ‘35번 메르스 환자’가 접촉한 재건축조합총회 참석자 1500여 명을 자가 격리 조치하겠다고 밝힌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한 명의 감염자도 나오지 않았다. 35번 환자가 총회에 참석한 것은 증상도 없고 확진 판정도 받기 전이었다. 이런 상태로는 메르스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 정부와 전문가의 소견이었고 실제 그렇게 됐다. 불필요하거나 시급성이 떨어지는 방역조치에 서울시 인력과 예산이 과도하게 낭비된 것이다.박원순의 소인배 같은 행동 박 시장의 ‘방역 쿠데타’가 정부의 병원 공개를 이끌어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는 엉뚱한 곳을 타격했는데 때마침 반응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할 것이다. 이미 온라인에서는 몇 개 병원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돌았고 언론도 공개를 촉구하고 있었다. 정부의 정보 공개가 늦었던 것은 실책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는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여야가 협력해 물리쳐야 할 전염병과의 싸움인데 가장 큰 지자체의 수장이 설득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싸우려는 태도를 취한 것은 소인배(小人輩) 같았다.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한술 더 떴다. 정부에 의해 자가 격리된 한 주민이 분당구 서현동 한양아파트에 산다는 사실과 그 자녀가 서현초등학교를 다닌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나섰다. 한양아파트 주민들로서는 같은 엘리베이터를 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몇 동 몇 호에 사는지까지 추적에 나서 결국 알아냈다. 이 시장의 조치는 주민들의 불안 심리에 편승해 호응을 얻었지만 인권 침해의 소지가 큰 것이다. 그의 선례를 따른 다른 지자체장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조치의 부당성을 보여준다. 이 시장은 성남시의 다른 자가 격리자의 신상은 공개하지 않아 스스로도 일관성을 잃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는 3일 보건복지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교장 재량에 따른 휴교를 허용했다. 2012년 메르스 원조국인 사우디아라비아조차 휴교까지는 가지 않았다. 메르스는 병원 내 감염이 주된 전파경로라는 이유에서 복지부는 반대했지만 같은 정부에 몸담고 있는 교육부 수장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나 보다. 국회선진화법 제정에 앞장섰던 그 포퓰리스트적인 DNA가 어디로 가겠는가.선무당 같은 감으론 안 돼 과잉 대응이 늦장 대응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과잉 대응도 늦장 대응만큼 잘못된 것이다. 방역이든 뭐든 단계별로 적절한 조치가 있는 법이다. 적절했는지는 신이 아닌 이상 사후에나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 적절한지 따져보지도 않고 일단 크게 벌이고 보자는 것은 비용 개념 없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정부는 삼성서울병원을 중심으로 한 메르스 2차 유행에도 불구하고 평택성모병원을 중심으로 한 1차 유행 때와 상황이 질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았다고 보고 ‘주의’ 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역 사회 감염이 없다면 다른 병원을 중심으로 3차 유행이 일어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중이 과민 반응할수록 ‘선제적’이라는 빌미의 선무당 같은 감(感)이 아니라 과학에 입각한 대응이 필요하다. 사회지도층이라면 호들갑을 잠재우기는커녕 최소한 먼저 호들갑을 떨지는 말아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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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이종걸은 헌법공부 얼마나 했나

    민주정치를 이해하기 위해 읽어야 할 3권의 고전이 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 로크의 ‘통치론’,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다. 지난해 말 수능 국어에 칸트의 ‘판단력 비판’ 지문이 나온 걸 보고 출제자들이 제정신인가 의아했다. ‘판단력 비판’은 읽고 있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바보가 된 느낌이지만 앞의 책들은 읽으면 똑똑해지는 느낌이 든다.입법독재 막는 권력분립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국가를 계약론으로 설명한 최초의 책이다. 그러나 권력분립의 개념은 없다. 로크의 ‘통치론’이 처음 권력분립을 논했다. 다만 입법과 행정의 이권(二權)분립이었다. 사법을 포함한 삼권분립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 처음 나온다. 이 정도는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책을 읽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로크와 몽테스키외의 진정한 차이는 이권분립이냐 삼권분립이냐보다는 권력분립에 얼마나 철저했느냐에 있다. 로크는 입법권과 집행권의 분립에도 불구하고 입법권의 집행권에 대한 우월을 주장한 반면 몽테스키외는 두 권력 사이의 팽팽한 균형을 강조했다. 로크라면 ‘유승민-이종걸 조(組)’처럼 ‘국회는 정부가 시행령을 똑바로 만들지 않으면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몽테스키외는 “입법부는 그 만들어진 법이 어떤 방법으로 집행되고 있는지 검사할 권리를 가져야 하지만 이 검사가 어떤 것이든 입법부는 집행자의 행위에 대해 재판하는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썼다. 몽테스키외는 권력분립을 끝까지 밀고 나가 민주정치의 원칙으로 만들었다. 몽테스키외는 의회 우월의 민주주의가 입법독재로 흐를 가능성을 로마사 연구를 통해 예민하게 느꼈던 것이다. 일본 학계의 덴노(天皇)로 불렸던 마루야마 마사오가 지적했듯이 최초의 민주혁명을 일으킨 미국과 프랑스의 헌법이 채택한 것은 로크가 아니라 몽테스키외의 이론이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정도로 권력분립을 안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권력분립은 새누리당 유 원내대표처럼 경제학 박사라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새정치민주연합 이 원내대표처럼 사법시험 공부하느라 헌법책 좀 봤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구의 대학에서 하듯이 고전을 읽고 그 함의에 대해 많은 생각과 토론을 해봐야 비로소 깨달아지는 것이다. 인문학적 소양 부족은 오늘날 대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1970, 80년대 ‘운동 아니면 고시’였던 시기에 대학을 다닌 오늘날 정치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몽테스키외를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치지도자가 되려면 읽어 보는 게 좋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한국에 수입된 대통령제가 어떤 권력분립의 개념 위에 서 있는지 안다면 국회가 정부에 시행령을 강제한다는 따위의 발상은 할 수 없다. 유 원내대표는 이제 와서 강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조삼모사(朝三暮四)도 아니고 국민을 무슨 바보로 아나.소양 부족한 정치지도자들 몽테스키외는 “집행권은 입법권을 저지하는 식으로 입법에 참가할 수 있다”고 썼다. 로크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말이다. 법률까지 거부할 수 있는 대통령이 행정입법권 행사에 일일이 국회의 통제를 받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것은 현재의 대통령이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와는 상관없다. 미국에서 의회가 대통령의 행정입법을 통제하려 한 시도는 위헌 판정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 간단히 “노(No)”라고 하면 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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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머리 둘 달린 ‘세계 희귀종 국회’

    인기 있는 어린이 책 중에 ‘두리틀(Dolittle) 의사의 이야기’란 책이 있다. 이 책에 ‘푸시미풀유(push-me-pull-you)’라는 동물이 나온다. 머리가 둘 달려 있고 그 머리들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려고 할 경우 뜻대로 움직이기 힘든 상상의 동물이다. 국회선진화법하의 국회는 푸시미풀유를 닮았다. 그 무능함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do-little)는 뜻의 주인공 의사 이름과도 묘하게 통한다. 국회가 도입한 ‘여야 합의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제도다. 학자들은 의회 민주주의를 영국식 다수제와 유럽대륙식 합의제로 구별하곤 한다. 둘 다 단순 다수결을 토대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를 바 없다. 다만 유럽대륙식 합의제는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제1당이나 제2당이 군소정당을 끌어들여 과반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영국식 다수제와 다르다. 멀쩡한 과반 의석 정당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제도는 어느 쪽으로도 분류할 수 없는, 푸시미풀유만큼 기괴한 것이다.한쪽은 밀고, 한쪽은 당기고 둘 이상의 정당이 합해 과반을 만드는 것을 의원내각제에서 연정이라고 한다. 연정은 제1당이나 제2당이 군소정당을 끌어들여 과반을 만드는 소(小)연정이 일반적이다. 간혹 군소정당을 끌어들여도 과반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이때 제1당과 제2당이 합해 과반을 만드는 것을 대(大)연정이라고 한다. 대연정은 유럽대륙에서도 독일권 외에는 찾아보기 힘든 예외적인 것인데 국회선진화법은 그런 대연정을 상설화했다. 연정은 소연정이든 대연정이든 연정에 앞서 당대당(黨對黨) 협상을 통해 임기 중 시행할 정책 전반에 대해 사전에 합의한다. 이것을 연정 협상이라고 부른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연정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다시 총선을 치르기도 한다. 그러나 국회선진화법하의 사이비 대연정은 여야가 사안마다 협의를 해야 하고, 합의가 안 된다고 해서 다른 해결책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비생산적인 제도다. 푸시미풀유는 머리가 둘 달려 있어 뜻대로 움직이기 힘들 수 있다고 앞에서 말했지만 이 경우 ‘뜻대로’란 말은 애매모호한 데가 있다. 동화에는 머리 둘 달린 동물을 처음 본 누군가가 저 동물도 한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고 묻는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다행히 푸시미풀유는 천성이 착한 동물이기 때문에 뜻을 하나로 모으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국회는 머리 둘이 하나는 밀고(push), 하나는 당기는(pull) 집단이어서 선의에 의한 합의가 쉽지 않다.할 일 안하고, 안할 일 하고 여야가 5월 임시국회에서 공무원연금법과 관련해 한 일이라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를 명기하되 결정된 수치가 아니라 논의할 수치로 처리한 것이다. 공무원연금도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으면 내년 총선까지의 정치 일정상 다시 다루기가 힘들다고 하는 판에, 더 결론을 내리기 힘든 국민연금을 놓고 갑론을박(甲論乙駁)하다 보면 시급한 사학연금과 군인연금 개혁은 물 건너갈 게 뻔하다. 왜 갖다 붙였는지 국민은 이해할 수 없는 국민연금이란 혹을 떼 낸 것도 아니고, ‘무늬만 개혁’인 공무원연금 합의안을 뜯어고친 것도 아니고, 고작 이 정도 하려고 또 한 달을 보냈나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하라는 공무원연금 개혁은 똑바로 안 하면서, 시키지도 않은 국민연금 개혁에는 열심인 국회가 삐딱한 사춘기 청소년처럼 고약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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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日 세계유산 등재의 조건

    일본 정부는 근대화 산업유산 23개를 묶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 가운데 나가사키 조선소에는 조선인 강제 징용자가 4700명, 다카시마 탄광에는 4만 명, 하시마 탄광은 600명, 미이케 탄광 및 미이케 항은 9200명, 야하타 제철소에는 3400명이 있었다. 일본은 ‘비서양 세계에서 근대화의 선구’라는 멋진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어두운 측면은 숨기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협약 전문에는 ‘세계의 모든 인민을 위해 독특하고 대체 불가능한 유산을 보호한다’고 되어 있다. 한 국가의 문화유산이 세계의 문화유산이 되려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1868∼1912년)에 한정한 것으로 일제 말기의 강제 징용과는 상관없다는 입장이지만 궤변이다. 나가사키 조선소를 방문해 메이지 시대의 나가사키 조선소를 구별해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 방한 중인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만나 조선인 강제징용으로 악명 높은 하시마 탄광 등을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하루 전날 이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보코바 사무총장에게 똑같은 우려를 표명한 마당에 “굳이 대통령까지 나설 필요가 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등재 여부를 판단하는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은 위원국들이 내린다.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사무총장은 개입하기 어렵다. 효과는 기대할 수 없고 일본의 반발만 초래한 우려 표명이었다. ▷우리 외교관들은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자체를 막기는 어렵다고 토로한다. 이들의 현실적인 목표는 등재 조건으로 과거 조선인 강제징용이 있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독일은 나치 시절 강제노동이 있었던 촐페라인 탄광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정부 차원의 추모 시설을 지었다. 아베 신조의 일본이라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오늘 이 문제로 한국과 일본의 첫 번째 협의가 열린다. 양국이 이 문제로 오래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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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공무원에 의한, 공무원을 위한 찔끔 개혁

    국회 공무원연금 합의안은 ‘9인 실무기구’란 곳에서 만들었는데 구성원 대부분은 공무원이다. 공무원단체 측에서는 전국공무원노조 공동집행위원장, 공무원노조 총연맹위원장, 한국교총 회장이 참여했다. 정부 측에서 참여한 인사혁신처 차장,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실장도 당연히 공무원이다. 심지어 전문가 자격으로 참여한 국회 예산정책처 재정정책분석과장과 입법조사처 연구관도 공무원이다. 9명 중 7명이 공무원이다. 남은 2명은 여야가 각각 공동위원장으로 추천한 민간인 교수 2명이다. 민간인 2명 대 공무원 7명이라는 비율 자체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기구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게다가 민간인 교수도 사학연금의 수혜자가 될 사람들로, 다른 건 몰라도 연금 개혁 앞에서는 공무원과 동병상련(同病相憐) 관계에 있다. 민간인 교수와 공무원, 또 공무원단체 대표와 정부 측 인사 간에 입장이 같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들 모두 국민연금이 아닌 특별연금의 수혜자라는 대동(大同)에 비하면 입장차는 소이(小異)에 불과하다.국민대타협은 애초 없었다 실무기구 합의안은 한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나온 결과다. 실무기구라는 이상한 기구가 출현한 것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가 활동 시한 종료일인 3월 28일까지도 합의안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대타협이 실패하고 실무기구가 가동돼 합의안을 내놓은 것은 5월 1일이다. 이 합의안에 여야 대표가 동의하고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위가 통과시켰다. 국민대타협기구는 ‘공무원연금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이라는 설립 근거가 있지만 실무기구는 이런 근거도 없다. 국민대타협기구 자체에 이미 너무 많은 공무원이 들어가 있다. 그래도 국민대타협기구에는 여야 의원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포함돼 있고 민간인 교수도 더 있었지만 실무기구는 거의 공무원 일색이다. 실무기구가 근거가 있건 없건 여야가 받아들였으니 그 안(案)이 국회의 안이 틀림없다. 다만 이것을 국민대타협의 결과라고 강변한다면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국민대타협 대신 입장이 약간씩 다른 공무원들의 대타협이 있었다. 공무원은 공무원연금에서 개혁의 대상이지 개혁의 주체가 아니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공무원들과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는 사안인 만큼 공무원들이 옵서버로 참여해 협의 과정을 지켜볼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입안자가 되는 것은 합의된 결과가 어떤지를 떠나 그 형식부터가 잘못됐다.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개혁 공무원연금 합의안이 나온 이후 나라는 떠들썩한데 공무원 단체들은 조용하다. 5월 1일까지만 하더라도 주말마다 도심을 시위로 얼룩지게 했던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시위’라는 것이 5월 2일 이후로는 쏙 들어갔다. 공무원연금 적자를 70년 동안 333조 원을 줄이는 것이 어느 정도 의미있는 개혁인지는 일반인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반응을 보면 공무원들이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미미한 개혁에 그쳤음에 틀림없다. 공무원연금 합의안은 국민연금과 연계됐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합의안 자체가 실패한 것이다. 하나의 원칙이 무너지면 다른 원칙도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국회선진화법으로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나니까 이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평범한 개혁 원칙도 무너지는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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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김종필과 이완구, 정치인의 거짓말

    히틀러는 정치인의 거짓말에 관한 ‘명언’을 잘도 쏟아냈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승리다.’ ‘성공은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는 유일한 재판관이다.’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더 쉽게 넘어간다.’ 히틀러는 마키아벨리의 추종자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때로 개인적 차원의 미덕을 접어두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마키아벨리가 상정한 군주는 진실로든 거짓으로든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이 히틀러와 다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이후 민정 이양 약속을 깨고 대통령이 됐다. 내게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1992년 대통령선거 패배 후 눈물을 흘리며 정계 은퇴를 선언하던 장면이 생생하다. 그러나 그는 1997년 대선에 나와 당선됐다. 언젠가 기자가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하느냐”고 묻자 그의 대답이 궤변이라면 궤변이고 걸작이라면 걸작이다.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뿐이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진실을 이기는 것은 없다”며 검찰에 출두한 날, 김종필(JP) 전 총리는 기자들에게 “정치를 하려면 때로는 편의상 말도 바꿀 수 있지만 절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내가 현장에 있었다면 말 바꾸기와 거짓말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어봤을 것이지만 기자들은 더이상 묻지 않았다. JP는 거짓말이 아닌 한에서의 말 바꾸기만 했다는 것인가. 역시 DJ의 말처럼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다. ▷JP와 ‘포스트 JP’로 불렸던 이 전 총리의 관계가 묘하다. 같은 충청 출신이긴 하지만 이 전 총리는 2002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으로 이적하면서 JP가 이끈 자민련의 몰락을 재촉하고 새누리당에서 포스트 JP로 커왔다. JP만큼 정치 자금의 현실을 잘 아는 사람도 없다. JP의 말은 “내가 당신도 알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도 아는데…”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대중이란 정계 은퇴 같은 큰 거짓말은 봐줄지라도 받은 돈 안 받았다든가, 혼외자식 모른다고 하는 거짓말은 용서하지 않는 법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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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근현대사 비중을 줄여야 하는 이유

    학부모는 자녀가 어떤 한국사 시험을 치르는지 잘 모른다. 2015학년도 수능 한국사 시험 문제 하나를 소개해 보겠다. 그림 속에 제복을 입은 멋진 교관이 이렇게 말한다. “오랜 투쟁 끝에 ‘본교’가 설립되었고, 다음 달에는 한국 대일 전선 통일 동맹이 출범할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한국 독립과 만주 탈환이다. 제군들은 이를 위해 학업과 군사훈련에 힘쓰라.” 해답은 이 본교가 어디인지 알아야 풀 수 있다. 참고자료로 ‘정치학-한일래, 철학-김원봉, 사격 교범-김종, 폭탄 사용법-이동화’라고 쓴 이 학교의 교관 목록이 제시돼 있다.조선혁명학교까지 알아야? 학생들은 대부분 김원봉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이다. ‘본교’는 그가 1932년 설립한 조선혁명간부학교(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말한다. 김원봉은 중국 황포군관학교를 다녔고 조선공산당 간부였던 안광천과 함께 조선공산당재건동맹을 결성해 잡지 ‘레닌주의’를 발행하고 레닌주의정치학교를 설립한 적이 있다. 조선혁명간부학교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세웠다. 김원봉은 현대사의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그가 택한 노선에 대한 평가는 다른 것이다. 대부분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는 그가 안광천과 조선공산당재건동맹 활동을 하고 해방 정국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에 참여한 뒤 북한에서 고위 각료를 지내다 숙청된 사실은 나와 있지 않다. 교과서에도 시험에도 멋진 무장 독립투사 김원봉만 나온다. 수능 한국사시험 문항은 모두 20개다. 2015학년도에는 20개 중 14개가 개항 이후의 근현대사에서 출제됐다. 개항 이전의 전(前)근대사 문항은 조선시대 2개를 포함해 고작 6개뿐이다. 현 한국사 교과서는 근현대사와 전근대사를 50 대 50의 비중으로 다룬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이런 비중은 별 의미가 없다. 학생들이 수능을 보기 위해서는 70 대 30의 비중으로 근현대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제 학교에서도 근현대사를 중점적으로 가르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그제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 토론회에서 앞으로 교과서의 근현대사와 전근대사의 비중을 4 대 6으로 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옳은 방향이다. 다만 그런 방향을 지향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그동안은 수능이 교과서 비중과는 달리 제멋대로 출제되는 것을 보고는 뭘 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이념편향 극복 어려워 근현대사와 전근대사를 배우는 비율은 50 대 50이 적절하고 근현대사의 비중을 더 높여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갖고 있는 외국 역사 교과서에서 전근대사의 비중은 여전히 크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서구처럼 장기간의 의미 있는 근대사를 갖지 못했다. 최근대사인 현대사 서술은 분단된 현실에서 통일이 될 때까지는 좌든 우든 이념적 편향에 대한 비판을 극복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근현대사의 비중을 줄여 큰 맥락만 가르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 고등학생이 김원봉의 조선혁명간부학교까지 알아야 하는 현실은 정상적이지 않다. 역사 공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는 다른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정신과학의 방법인 ‘이해(Verstehen)’는 후자에 더 잘 어울린다. 우리는 지나간 다른 과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때 다가오는 다른 미래에 대해서도 보다 개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다. 전근대사를 근현대사 못지않게 배워야 하는 이유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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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한국, 베니스, 미술 영화

    미술을 회화나 조각이 아니라 설치 작품이 주도한 지는 오래됐다. 언제부터인가 어두컴컴한 데서 갑갑하게 봐야 보이는 영상 작품도 많아졌다. 그 최초의 형태는 백남준이 창시한 비디오 아트다. 요즘은 비디오 아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영화에 가까운 작품도 많다. 이러다가는 언젠가 영화와 미술의 구별이 없어지고 이탈리아 베니스 영화제와 베니스 비엔날레(미술제)도 따로 열 필요가 없는 때가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임흥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Factory Complex’(한국어 제목 ‘위로공단’)가 9일 개막한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는 최고상으로 황금사자상이 있고, 그 아래 은사자상, 다시 그 아래 특별상이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전수천, 강익중, 이불이 각각 1995년, 1997년, 1999년에 특별상을 수상한 적이 있지만 은사자상은 처음이다.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아니라 영화계에서 활동하는 감독이 탔다는 것이 더 놀랍다. ▷임 감독의 작품은 아시아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와 판타지적인 영상이 결합되어 있다. 인터뷰에 주목한다면 다큐멘터리 영화이고, 영상에 주목한다면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는 가발 공장 모습을 보여 주는 2분짜리 부분 영상을 볼 수 있었을 뿐이지만 가발 공장의 즉물성을 판타지와 결합해 보여 주는 감각이 놀라웠다. 주제의식도 묵직해서 구로공단에서 사라진 장면을 베트남 캄보디아의 공장을 통해 보여 줌으로써 아시아 여성 노동자들이 시대 차를 두고 겪는 공통의 경험을 부각시켰다. ▷미술로서의 영화는 우리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분류할 때의 예술영화와도 다르다. 얼마 전 한국에서 샤넬 한복쇼를 연 카를 라거펠트는 패션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도 만든다. 물론 그것은 상업영화도 예술영화도 아니고 미술로서의 영화, 혹은 패션으로서의 영화다. 그러고 보니 미술과 영화의 경계선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 어수선한 변경지대에서 우리 작가가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게 더 큰 기쁨이라 하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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