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송평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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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칼럼니스트입니다.

piso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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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3%
  • [송평인 칼럼]한국사 자습서는 더 위험하다

    고등학생 딸이 보던 한 베스트셀러 한국사 자습서를 훑어보다 이런 대목이 눈에 띄었다. “김원봉이 서대문형무소에 끌려가 사흘 동안 모진 취조를 당해요. 누구한테요? 고문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노덕술한테 당합니다. 그에게 뺨을 얻어맞고 엄청난 모욕을 당해요… 자신을 고문하던 사람이 일제강점기 동안 자신을 잡으려고 그토록 발광했던 고등계 형사 노덕술입니다… 김원봉은 서대문형무소를 나와 대성통곡을 했답니다. 그 뒤 김원봉은 북으로 넘어가 버립니다.” 노덕술이 고문 경찰관인 것은 분명하지만 설마 김원봉 같은 당대의 정치 거물을 고문까지 했겠냐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근거를 찾아봤으나 찾을 수 없었다. 김원봉 연구서는 염인호 서울시립대 교수의 ‘김원봉 연구’(1993년)가 가장 상세하다. 어디에도 김원봉이 노덕술에게 뺨을 맞고 고문을 당했다는 말은 없다. 다만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의 회고록 중 “김원봉이 노덕술로부터 모욕적인 처우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정정화의 회고록은 부정확한 데가 많은 데다 이 말은 전해 들었다는 것이어서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 그것을 믿는다 하더라도 모욕적인 처우가 고문이었다면 고문이라고 하지 모욕적인 처우라고 에둘러 말했겠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염 교수는 또 한상도 건국대 교수의 ‘김원봉의 생애와 항일 역정’(1990년)을 인용해 “김원봉이 묶이어 장택상 수도경찰청장의 사무실로 끌려가자 장택상은 노덕술에게 화를 내며 ‘모셔 오랬지, 누가 이래라 했느냐’고 짐짓 황망해하면서 묶인 것을 풀어줬다”고 쓰고 있다. 이 말은 본래 1984년 당시 길진현 중앙일보 기자가 쓴 ‘역사에 다시 묻는다’에 김원봉의 의열단 동지였던 전 광복회장 유석현의 증언으로 나와 있던 것이다. 이 증언은 증언 날짜나 장소가 나와 있지 않아 사료적 가치가 의문시된다. 그래서 염 교수는 길 기자의 1차 자료를 인용하지 않고 교묘히 한 교수의 2차 자료를 인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증언을 좀 더 보면 “김원봉은 장택상과 노덕술에게 그런 수모를 당하고 나(유석현)에게 와서 사흘을 꼬박 울었다”고 돼 있다. 증언을 사실로 믿는다 해도 김원봉이 당한 수모라는 것이 기껏해야 수갑에 채워져 끌려갔다는 정도다. 김원봉이 뺨을 맞거나 고문당했다면 그런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하는데 없다. 증언에서 알 수 있는 유일한 내용은 김원봉이 수갑에 채워져 끌려갔으며 당대의 정치 거물이었던 그가 그것을 몹시 수치스럽게 여겼다는 정도다. 그럼에도 이 증언은 김삼웅 등 언론인 출신 아마추어 역사가들에 의해 김원봉 고문설로 확대 재생산되는 데 이용됐다. 김원봉은 당시(1947년) 김구와 결별하고 좌익연합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에 들어가 있었다. 그 전해 정판사 화폐 위조 사건 이후 공산당의 박헌영이 미군정의 체포를 피해 사라진 자리를 김원봉이 메우고 있었다. 김원봉은 대구 폭동의 민전조사단 단장 자격으로 경상도 지역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원봉은 미군정의 요(要)주의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김원봉은 일시 체포됐다 풀려난 후에도 1년 가까이 남쪽에 남아 있다가 북쪽으로 갔다. 그의 월북은 체포보다는 여운형의 암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봐야 한다. 광복이 됐는데도 친일파 경찰이 왕년의 항일 운동가를 고문한다는 만평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노덕술의 김원봉 고문설보다 더 극적인 사례는 찾기 어렵다. 노덕술은 고문 경찰관으로 악명이 높아서 그를 악마화해도 견제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오히려 이런 데서 한국 현대사 연구자들이 갖고 있는 좌편향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사 교과서도 문제지만 자습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 자녀들이 이런 교과서와 자습서로 공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분명 옳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도 국정화는 안 된다고만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한국사에서 현대사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커진 것은 노무현 정권 때다. 문 대표가 현대사 분야를 과감히 축소하는 대신 검정제를 유지하자는 식의 건설적인 제안을 한다면 국정화 고시 전에라도 불필요한 국론 분열을 막을 합의가 가능하지 않을까.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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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월드컵 키드’가 황금축구 세대로

    U-17 월드컵은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으로 2년마다 열리는 17세 이하 청소년 축구 대회다. U-17 월드컵 위로 20세 이하가 참여하는 U-20 월드컵이 있고 그 위로 월드컵이 있다. 한국은 월드컵에서 4강, U-20 월드컵에서 4강, U-17 월드컵에서 8강까지 진출해 봤지만 어느 월드컵에서건 브라질을 이겨본 적은 없다. 올해 칠레에서 열리는 U-17 월드컵에서 18일 처음으로 브라질을 이겼다. ▷스페인 프로축구 FC 바르셀로나 유소년팀 출신인 이승우 선수(17)는 공수를 오가는 맹활약으로 승리를 견인했다. 그 또래는 2002년 월드컵 당시 네 살에 불과했지만 진정한 ‘월드컵 키드’라고 할 수 있다. 이승우는 2011년 초등학생 때 누구의 지원도 없이, 순전히 자기 실력으로 FC 바르셀로나에 스카우트돼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박지성 선수(34) 때는 해외 축구 유학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손흥민 선수(23)만 해도 대한축구협회 지원으로 2008년 고교생으로 독일 함부르크 유소년팀에 입단할 수 있었다. ▷유학파만 뛰어난 게 아니다. 프로축구 K리그 울산 현대 유소년팀의 이상헌 선수(17)는 브라질 수비 2명을 상대로 현란한 개인기를 보여줬고, 장재원 선수(17)는 브라질 골망을 흔들었다. 이들 세대는 유학파건 국내파건 고교 때부터 프로축구와 연계한 고도의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있다는 점이 이전 세대와 다르다. 축구협회는 ‘월드컵 긴장돼? 축구 왜 시작했어? 결과는 나중이야! 그냥 한번 즐겨봐!!’라는 메모를 방문에 붙여주며 이들을 ‘즐기는 축구’로 이끌었다. ▷‘월드컵 키드’는 러시아 월드컵이 열리는 2018년 20세 안팎이 된다. 실력만 인정받는다면 러시아 월드컵에서부터 뛰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국가대표팀의 중추가 될 세대다. 청소년 시절부터 유학해서 축구를 배운 첫 세대인 손흥민 선수 등과 이들이 힘을 합한다면 2002년 월드컵 때의 4강을 넘어서는 새로운 신화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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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여왕’ vs 찌질한 남자들

    제 잘못으로 승부에서 진 남자들이 패배를 인정하기 싫으니까 상대방을 절대 권력을 가진 ‘여왕’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아닐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해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 개헌 얘기를 꺼냈다가 꼬리를 내렸다. 가만 보니 그의 ‘특기’가 자신도 모르고 국민도 모르는 얘기를 꺼냈다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접는 것이다. 추석 연휴에 느닷없이 들고나온 안심전화 공천제도 없던 일로 됐다. 그는 앞서 오픈프라이머리에 정치생명을 건다고 했다. 오픈프라이머리가 물 건너간 듯하자 ‘안심전화 공천제는 전화로 하는 오픈프라이머리’라고 우겼다. 오픈프라이머리도 안 되고 안심전화 공천제도 안 되자 그는 ‘그래도 전략공천은 없다’고 나왔다. 그러면서 ‘우선공천은 가능하다’고 한다. 전략공천은 우선공천과 뭐가 다른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사고가 뒤죽박죽이어서는 여왕이 아니라 여종과 싸워도 진다. 오픈프라이머리는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이나 그의 정치생명은 그대로다. 그 정도로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말에 무게가 없는 건 사실이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국회법 개정안이 대통령에 의해 거부됐을 때 대통령을 향해 공개적으로 ‘사죄합니다’ 한마디를 한 것으로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다. 여당의 원내대표가 대통령의 거부권 예고에도 불구하고 입법을 강행했으면 재의(再議)를 추진해 다시 통과시키든가, 그럴 수 없다면 자발적으로 사퇴하는 것이 정치적 도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원내대표를 계속 하겠다는 모습이 구차했다. 묘한 점은 김 대표나 유 전 원내대표가 이런 사태를 자신들의 잘못으로 보기보다는 박근혜 대통령을 여왕으로 만들어 그쪽으로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는 것이다. 유 전 원내대표가 사퇴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외친 것은 젊은 사람들 말로 피해자 코스프레(피해자인 척하기)다. 김 대표가 황당한 의제를 불쑥 꺼내 당내 분란을 만들어 놓고는 대통령과의 분란은 당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참는다는 식으로 거둬들이는 것 역시 ‘피해자인 척하기’다. 김 대표는 얼마 전 ‘오늘까지만 참는다’고 했는데 그 뒤로도 계속 참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참게 될 것 같다. 사실 그것은 여왕 대 공화국의 대립이 아니라 여성 대통령 대 찌질한 남자들의 대립이다. 우리나라 정치 제도에서 대통령이 당권까지 쥐고 있으면 제왕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친박(親朴) 의원들은 원내에서 소수파다. 당권도 쥐고 있지 못한 대통령을 여왕으로 부르는 것은 희화화에 가깝다. 최근 정치사를 보면 당권을 쥐지 못한 대통령은 언제든지 당에서 축출될 위기에 놓였다. 실제 여러 대통령이 임기 후반에 자기 의사에 반해 당에서 나왔다. 박 대통령은 단지 자신의 높은 지지율 때문에 이런 위기를 피하고 있을 뿐이다. 김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의 ‘피해자인 척하기’가 먹혀든 것은 언론의 프레임과 무관치 않다. 언론은 정당이 대통령과 싸울 때 대통령이 강자라고 여기고 비판하는 관성이 있지만 이 경우는 정당 쪽이 허술했다. 친박의 행태도 박 대통령을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것 같아 꼴사납다. 전략공천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 현실에서 국민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전략공천을 폐기하는 것이 옳다. 전면 폐기가 힘들다면 최소한 나가기만 하면 당선되는 서울 강남권과 대구 등에서 전략공천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사는 곳은 경기 성남시 분당갑 지역이다. 이곳도 새누리당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곳이다. 지난 총선에서 듣도 보도 못한 이종훈이라는 사람이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나중에야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의 경제학 박사로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측의 국가미래연구원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 후보는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김창호 씨가 나왔다. 청와대에서 국민 세금으로 이름을 알리다가 나와서 의원 출마하는 사람도 맘에 들지 않았다. 어느 쪽도 찍고 싶지 않았다.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가 집권할 때 ‘보수당에 남자는 대처뿐’이라는 농담이 오갔다. 지금 우리나라 집권여당이 꼭 그런 꼴이다. 당당한 남자들이 안 보인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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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송평인]“노년에 외롭지 않으려면 이성 친구와 ‘우정의 동거’ 하세요”

    《 올해 95세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답변은 흠잡을 데 없이 또박또박했다. 1시간 반의 인터뷰 동안 전혀 지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건강한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더욱 놀라운 것은 지적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에만 40회의 강연을 했다. 강연만이 아니다. 매일 평균 원고지 40장을 집필하고 있다. 최근의 글을 모은 책 ‘나는 아직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가 이번주에 나온다. 다음 달에는 최근 강연 내용을 담은 ‘희망과 사랑이 있는 이야기’(가제)가 나온다. 95세의 현역이라니 경이롭다. 김 교수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정년 은퇴했다. 그렇지만 나 같은 586세대(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까지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도 중고교 시절에 사촌형들의 책꽂이에 있던 그의 수필집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읽었다. 》 ―선생님의 대표작은 역시 ‘영원과 사랑의 대화’라고 할 수 있겠죠. “1961년 출판사에 원고를 맡기고 미국으로 나가 있었습니다. 대학에서는 본봉밖에 나오지 않아 생활에 보탬이 될까 해서 책을 냈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그해 출판 연감을 보니 출판 역사의 2가지 신기록을 세웠더군요. 소설보다 비소설이 더 많이 팔린 것과 단행본으로는 최초로 한 해 60만 부 이상 팔린 겁니다.”95세 건강 비결은 일 ―왜 그렇게 많이 읽혔을까요. “충북 영동에 강연을 갔더니 어느 나이 드신 분이 오셔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1960, 70년대는 경제적으로만 가난했던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황무지에서 살았다고요. 당시 안병욱 선생과 저의 책을 읽고 마음의 안정을 얻고 희망도 가졌다고 했습니다.” 1960, 70년대 철학자가 쓴 인생에세이로 이름을 떨쳤던 김형석 안병욱 김태길 교수는 모두 1920년생으로 동갑이고 마지막 길까지 친구로 지냈다. 김태길 전 서울대 교수가 2009년 89세로 가장 먼저 세상을 떴다. 2013년 별세한 안병욱 전 숭실대 교수는 2009년부터 몸져누웠기 때문에 사실상 89세에 활동을 중단한 셈이다. 김 명예교수만 지금도 정정하게 활동하고 있다. ―100세까지 거뜬하실 듯합니다. “제 나이에 5년 후를 기약하지 않습니다. 2년 앞만 내다보고 그 이후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2년 정도는 더 살 자신이 있습니다.” ―도대체 비결이 뭡니까. “일이 건강이라고 생각합니다. 30년 전 65세로 연세대에서 은퇴하고 15년간 사회교육 활동을 했습니다. 80세가 됐을 때 이제는 쉬어 볼까 하고 외국으로 여행도 다녔습니다. 돌아다녀 보니 일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일에서 일로 옮겨 다니다 보니 정신적 에너지가 계속 충전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운동은 하십니까. “50대 중반부터 수영을 시작해 지금도 이틀에 한 번 30분 정도 합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글쓰기같이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은 힘들지 않나요. “매일같이 긴 일기를 씁니다.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도 글을 쓰면 또렷해집니다. 일기를 쓸 때 꼭 재작년과 작년의 오늘 날짜 일기를 읽어보고 나서 씁니다. 그래야 제 생각이 후퇴하고 있지 않나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글 쓸 때의 집중력을 물었는데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95세 나이에도 낡은 글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얘기까지 했다. 그는 단정히 차려입은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나타났다. 선비도 이런 선비가 없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드는 법이지만 그의 경우는 흐트러지려는 정신력을 끊임없이 다잡기에 건강을 유지하는 것 같다. ―선생님의 인생론식 철학에 불만인 사람도 있습니다. “전 한국 사람의 문제가 철학이지 칸트나 헤겔 그 자체가 우리 철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칸트를 읽고 나오고 헤겔을 읽고 나오고 하면서 이게 내 문제에 얼마나 의미가 있느냐 찾으려고 하니까 건방지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공감한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나 같은 고민을 한 사람이 서울대의 박종홍, 김태길 교수였습니다. 대개는 칸트나 헤겔 소개하다가 끝나고 말았습니다.”인생 아는 60… 75세가 좋을 때 ―철학을 한 사람이 어떻게 선생님처럼 종교적(기독교적)일 수 있습니까. “철학자들 가운데 겸손한 사람, 즉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철학자니까 철학과 종교의 한계를 넘어가지는 않지만 종교와 가장 가까이 있습니다. 칸트는 읽어보면 하나님 얘기도 않고 예수님 얘기도 않지만 결론을 낸 것을 보면 기독교입니다. 그의 ‘실천이성비판’의 기본은 예수가 말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원하는 대로 너도 남을 대접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칸트와 같이 경건한 이성을 가진 사람은 결국 요청적(要請的) 유신론자가 되고 맙니다.” ―가장 힘든 때는 언제였나요. “김태길 선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 1년간 참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2년 전 안 선생마저 떠났을 때 혼자만 남았다는 생각에 더 힘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95세 무렵의 진짜 문제는 외로움이다. 어떻게 해서 95세의 나이까지 산다 해도 주변에 친구가 남아 있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는 아내와 10년 전 사별했다. 아내는 20년 동안 병중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 30년간 혼자였다. 공백을 달래주던 벗들마저 잇달아 세상을 떴다. “아내와 사별했을 때 제 나이가 85세였습니다. 80대 중반을 넘어서면 애욕 같은 것은 없습니다. 남녀 관계에 애정을 넘어선 우정이 어렵다고 하지만 그 나이가 되면 가능합니다. 이번 주 나오는 신간에 ‘누나의 선택이 옳았다’는 제목의 글을 실었습니다. 누님은 나이가 많아 남편과 사별하고 다른 남자를 만났는데 그 선택이 옳았습니다. 무슨 애욕이 있어서가 아니라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같이 살아야 합니다. 새로 결혼하는 것이 재산 문제 때문에 어렵다면 동거 선언이라도 하고 살면 됩니다. 기독교인입니다만 교리를 떠나 저부터 먼저 여자친구를 사귀는 모범을 보였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몇 살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제일 좋은 나이가 60세에서 75세가 아닌가 합니다. 60세 이전에는 인생이 뭐냐고 물어보면 자신이 없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인생이 뭔지 알고 행복이 뭔지 알면서 발전하는 시기가 60에서 75세라고 생각합니다.”청춘이여 낮은 데서 출발하라 ―요새 청춘들 취업도 잘 안 되고 불쌍합니다. “일거리가 정말 없어서인가요, 자신에게 맞는 일거리가 없어서인가요. 대학을 너무 많이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는 직장을 찾다 보니 어려운 건 아닐까요. 제가 보잉사의 아시아 지역 간부들을 모아놓고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참석자들의 프로필을 봤는데 매사추세츠공대(MIT) 같은 명문 공대 출신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우리는 기술자들을 뽑아서 낮은 데서부터 키운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명문 공대생은 다 어디 있느냐 했더니 ‘연구소 같은 데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제도를 이렇게 바꿔야 합니다.” 김 명예교수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컴퓨터도 사용하지 않는다. 아니 사용해본 적도 없다. 지금도 종이신문만 읽고 원고지에 글을 쓴다. 그래도 그는 최신 뉴스를 잘 알고 많은 강연에 초청받을 만큼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저명한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2008년 100세 생일을 맞았을 때 당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직접 집으로 찾아가 축하해줬다. 그와 헤어지면서 “100세까지도 건강하고 총명하셔서 그때 다시 한번 인터뷰할 기회가 온다면 좋겠다”는 인사를 건넸다.:: 김 명예교수가 본 인촌 김성수 선생 ::사랑과 지혜로 대하신 선생… 그분 밑에서 있던 교단시절 가장 많이 배우고 행복했죠김형석 명예교수의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읽어보면 인생에서 친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승만 박사와 인촌 김성수 선생을 비교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박사는 언제나 친구가 없었다. 그가 아무리 위대한 정치 역량을 지녔다 해도 마침내 친구를 못 가졌기 때문에 고독했다. 그러나 인촌 같은 분은 항상 좋은 친구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일생을 보냈다. 두 분 중에 누가 더 우리 사회에 업적을 남겨주었는가는 오늘(4·19혁명 직후)에 와서는 의심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김 교수는 연세대로 옮기기 전에 중앙고에 근무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1947년 가을 학기에 중앙고에 부임해서 교사로 3년, 교감으로 3년 있으면서 인촌 선생을 가까이에서 모셨다”며 “당시 인촌 선생은 중앙고의 교주(校主), 오늘날로 말하자면 이사장이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인생에서 직접 보고 배운 두 명의 은사로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인촌 선생을 꼽았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부하를 사랑하고 지혜롭게 대해 주는 데 인촌 선생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며 “인촌 선생 밑에서 있었던 때가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행복했으며, 그 이후에 그런 분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고려대에서 영국사를 가르쳤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까지 이름이 올랐던 고 김성식 교수로부터 ‘인촌이 살아있을 때 야당은 분열한 일이 없었는데 인촌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야당이 한 번도 합쳐본 적이 없다’는 평가를 직접 들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인촌 선생의 인덕은 늘 제1선이 아니라 제2선에 있으면서 한번 믿고 쓴 사람을 끝까지 믿고 썼다는 데 있다”며 생전에 인촌을 알고 지낸 사람들이 거의 사라지면서 인촌이 일각에서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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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미국 ‘菊花 클럽’도 실망한 아베 담화

    일본 왕실의 꽃은 벚꽃이 아니라 국화(菊花)다. 루스 베네딕트의 저명한 일본문화 연구서 ‘국화와 칼’의 국화는 거기서 나왔다. 실제로 존재하는 클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지일파(知日派) 지식인들을 뭉뚱그려 ‘국화 클럽’이라고 부른다. 하버드대 교수로 1960년대 주일 미국대사를 지낸 에드윈 라이샤워가 국화 클럽의 원조쯤 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첫 국가정보국(ONI) 국장을 지내고 은퇴 후 사사카와평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데니스 블레어도 국화 클럽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사사카와평화재단은 워싱턴 정가의 주요한 싱크탱크로 각종 일본 관련 세미나와 콘퍼런스를 주관하거나 후원한다. 과거 사사카와재단으로 불렀던 닛폰재단과의 관계로 보면 닛폰재단의 워싱턴 사무소 격이다. 닛폰재단은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혐의자로 3년간 수감됐다 풀려난 사사카와 료이치가 경정(競艇)사업을 시작해 그 수익금으로 설립한 재단이다. 자선단체이지만 사상적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조부였던 극우 정치인 기시 노부스케의 이념을 추종한다. ▷블레어 이사장이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를 ‘책임 회피로 일관한 실망스러운 문서’라고 비판한 ‘이사장 메시지’를 최근 사사카와평화재단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그는 20년 전 무라야마 담화는 주어가 분명한 능동태를 사용한 반면 아베 담화는 빈번하게 익명의 수동적 표현을 사용한 데다 장황하고 두서가 없어 책임 소재를 찾기 어려웠다고 일갈했다. 그는 “아베 총리 자신의 사죄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아베 총리는 지지자들을 교육시키고 다른 나라를 안심시킬 큰 기회를 놓쳤다”고 실망감을 나타냈다. ▷블레어 이사장의 소감에 특별한 것은 없다. 일본의 침략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베 담화를 듣고 느꼈을 만한 당연한 소감을 말했을 뿐이다. 한국인이나 중국인만 피해의식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 아니다.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조차 아베 담화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됐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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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50세 이상만 스포츠 영웅?

    김연아 선수가 대한체육회가 진행한 2015년 스포츠 영웅 인터넷 투표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1위를 차지했지만 최종 선정 과정에서 탈락했다. 그 대신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84), 양정모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62), 박신자 전 농구 국가대표 선수(74)가 올해의 스포츠 영웅으로 꼽혔다. 대한체육회는 지난해까지 있던 50세 이상이라는 나이 제한을 없애고 ‘스포츠 영웅을 국민이 직접 뽑아 달라’고 홍보했는데 결국 국민을 기만한 셈이다. ▷김 선수가 나이가 어려 스포츠 영웅에서 탈락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 투표 결과 반영률이 10%에 불과했다는 게 대한체육회 측 해명이다. 그러면서 스포츠 영웅을 선정하는 취지는 스포츠 발전에 생애를 바친 원로를 대우하고 후배 스포츠인들의 귀감으로 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50세 이상이란 나이 제한을 없애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말든가 처음부터 국민에게 스포츠 영웅이 아니라 ‘생애공로상’ 수상자감을 뽑아 달라고 했어야 한다. ▷김 전 IOC 부위원장은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서울 올림픽 유치,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 채택 등 스포츠 외교 분야에서 공헌한 바가 크다. 하지만 한때 공을 세웠더라도 그 공을 평생 까먹지 않고 살기는 쉽지 않다. 김 전 부위원장은 2005년 세계태권도연맹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에 추징금 7억8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가 귀감이 되는 인물인지 의문이다. 국제사회에서도 IOC와 국제축구연맹(FIFA) 위원 부패 연루자에 대한 비난이 높다. ▷대한체육회는 젊은이들과의 소통에도 실패하고 오히려 구태(舊態)만 드러낸 꼴이 되고 말았다. 나이 제한을 없앴다고 했다가 사실상 나이 제한으로 다시 돌아간 것은 경기 도중에 규칙을 바꾼 것과 다름없다. 다른 건 몰라도 스포츠 영웅만은 대부분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김정행 현 대한체육회장은 대한체육회장도 지낸 김 전 부위원장의 직계로 꼽힌다. 어느 모로 보나 공정한 선정이라고 하기 어렵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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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유엔 제70차 총회와 한국

    영국 역사학자 존 키건은 이렇게 말했다. “근대 이후 세상을 바꾼 4차례의 회의가 있었다. 30년 전쟁 후인 1648년의 베스트팔렌 회의, 나폴레옹 전쟁 후인 1815년의 빈 회의,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9년의 파리 베르사유 회의,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5년의 샌프란시스코 회의다.” 1945년 6월 샌프란시스코 회의가 열려 유엔헌장이 채택되고 이에 따라 그해 10월 24일 유엔이 창설됐다. ▷올해가 유엔 창립 70주년이다. 우리에게는 광복도, 분단도 70주년인 올해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유엔 제70차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한다. 유엔 없이 대한민국을 생각하기 어렵다. 해방 정국에서 미소(美蘇)공동위원회에 의해 추진되던 독립 절차가 미소의 충돌로 진전되지 못하고 결국 유엔으로 이관됐다. 대한민국은 유엔 감시하의 선거를 통해 탄생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다. 대한민국이 북한의 침공을 받아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준 것도 유엔군이었다. ▷우리나라는 한때 유엔 창설일을 공휴일로 삼을 정도로 유엔을 고맙게 여겼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유엔 회원국이 되지 못하는 상태에서 1976년 북한의 유엔 산하 기구 가입이 허용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유엔의 날을 공휴일에서 빼버렸다. 1991년 우리나라는 단독이 아니라 북한과의 동시 가입이라는 조건하에 유엔에 가입할 수 있었다.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인 대한민국으로서는 기분 상하는 일이었지만 국제 평화를 위해 감수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했던 전쟁이었다.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유엔이 창설됐다. 지난 70년을 돌아보면 유엔은 베트남전 등 지역 규모의 전쟁을 저지하지 못했지만 제3차 세계대전을 예방하는 데는 그런대로 잘 작동했다. 하지만 베스트팔렌 체제도, 빈 체제도, 베르사유 체제도 결국 무너졌다. 다만 유엔은 핵폭탄의 위협 속에 태어났다. 핵전쟁을 막지 못한다면 인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유엔을 지켜온 힘이라고 할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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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날치기, 한국과 일본의 차이

    일본 의회의 안보법 처리 과정에서 여야 의원이 뒤엉켜 몸싸움하는 사진이 한국 언론에도 크게 보도됐다. 우리 국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언론은 날치기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아니 일본 의회의 일인데도 날치기라고 보도한 한국 언론이 적지 않았다. 일본은 자기 나라 일인데도 날치기라고 쓰지 않지만 우리는 남의 나라 일인데도 날치기라고 쓴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차이다. 일본은 강행채결(强行採決)이란 말을 쓴다. 우리에게도 강행채결과 비슷한 강행처리란 말이 있지만 날치기라는 용어가 더 선호된다. 본래 날치기는 피해자가 보는 앞에서 물건을 빼앗아 가는 범죄 행위다. 일본에도 범죄 행위로서 날치기를 뜻하는 갓바라이 같은 용어가 있다. 하지만 법안의 강행처리를 지칭하는 말로는 쓰지 않는다. 강행채결이든 강행처리든 강행이란 말 속에 어느 정도 비판적인 뉘앙스가 들어 있다. 소수당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지 수적 우세만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너무 강하게 비판하면 다수(多數)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원칙과 모순되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날치기 같은 용어는 쓰지 않는다. 법안의 강행처리를 범죄를 연상케 하는 날치기로 지칭하는 것은 순전히 한국적인 언어 습관이다. 한국 정치에서 날치기란 말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과거 독재정권에서 정당성이 부족한 다수당의 전제를 견제하려는 시도에서 야권과 언론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87년 이후 민주헌법에 따라 정당한 정권과 의회가 탄생하고 두 차례의 정권 교체와 한 차례의 의회권력 교체까지 이뤄진 뒤에도 날치기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일본 의회에서는 이번 안보법안만이 아니라 1999년 통신감청법안, 2003년 이라크 조치법안, 2004년 국민연금 개혁법안이 야당의 방해 속에 질의와 토론도 없이 강행처리됐다. 강행처리 때마다 야당으로부터 무효라는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언론은 그 말을 정치적 비판의 용어로 받아들이지 법적 효력을 다투는 용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 일본에서 안보법에 반대하는 여론이 50%를 넘고 의회에서의 처리 방식이 좋지 않았다고 보는 여론은 70%에 가깝지만 안보법의 성립 자체를 부정하는 언론은 없다. 다만 헌법학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헌법 9조의 평화조항을 고치지도 않고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만든 데 대해 위헌법률소송이 추진되고 있을 뿐이다. 일본 헌법이 다수결을 전제로 하는 이상 강행처리로 입법된 것이라 하더라도 법률의 효력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의 관념이다. 한국에서는 2009년 언론관련법이 당시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강행처리로 통과됐을 때 어느 신문은 ‘용납할 수 없는 의회 쿠데타’라는 제목을 달고 ‘원천 무효’를 주장했다. 당시 민주당은 의안 상정을 방해해 강행처리의 원인을 제공하고도 강행처리는 무효라며 헌법재판소로 끌고 갔다. 헌재는 민주당의 무효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국회가 스스로 판단할 일로 돌려보냈어야 할 사안을 심사한 끝에 ‘위법하나 무효로 할 수 없다’는 황당한 결정을 내렸다. 날치기 공세는 직전 국회에서 가장 극성이었다. 민주당은 각종 쟁점 법안에 날치기 공세를 편 것으로도 모자라 급기야는 매년 내는 예산안까지 날치기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날치기 공세와 그로 인한 몸싸움을 막는다고 만든 것이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다. 그러나 국회선진화법은 잘못된 처방이다. 그것은 물 버린다고 물통에 든 아이를 함께 버린 것과 같다. 날치기 공세도 몸싸움도 사라졌지만 다수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원칙도 함께 사라졌다. 그 대신 소수가 다수의 의사 관철에 일상적으로 제동을 걸고, 그 제동을 풀어주는 대가로 소수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체제가 등장했다. 국회선진화법은 실은 뒷문으로 몰래 진짜 날치기를 불러들였다. 다수가 관철시킨 법안은 소수파의 저지 때문에 불가피하게 강행처리되는 형식을 취한다 해도 여전히 다수의 의사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을 강행처리라고 부를지언정 날치기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그러나 소수의 지지밖에 받지 못하는 법안이 어떤 꼼수를 통해 통과된다면 그것은 날치기라고 불러 마땅하다. 60년 전 그 꼼수는 이승만 정권의 사사오입(四捨五入)이었다. 오늘날 그 꼼수는 법안연계처리라고 불린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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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프랑스에서도 뜬 K뷰티

    세포라(Sephora)는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화장품 전문 매장이다. 루이뷔통 계열의 화장품 판매 체인인 세포라가 이달 초부터 한국산 화장품을 전면에 진열해 판매하고 있다고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가 16일 전했다. 르 피가로는 ‘한국이 피해갈 수 없는 화장 패션의 허브로 자리 잡았다’는 내용의 기획기사에서 랑콤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최근 수년간 화장품 업계의 큰 성공 사례는 BB크림, 흐림효과용 블러(Blur), 티슈마스크까지 대부분 한국에서 나왔다”고 평가했다. ▷아모레퍼시픽이 중국발(發) K뷰티 열풍으로 코스피 시장의 황제주로 등극했다. 아모레퍼시픽이 세계적으로 통하는 브랜드의 가능성을 처음 인정받은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 현지 법인을 설립해 1997년 내놓은 향수 ‘롤리타 렘피카’가 샤넬의 ‘No.5’나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자도르’ 등과 당당히 겨루는 향수가 됐다. 하지만 일반 화장품 분야에서는 프랑스 시장을 쉽게 뚫지 못했다. 이제 그 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어와 영어로 TV에서 스타일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아이린 김(27)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 세계 55만 명의 팔로어에게 자신의 뷰티 팁(tip)을 전했다. 올 7월 미국 화장품 업체 에스티로더가 아이린을 ‘글로벌 뷰티 컨트리뷰터(global beauty contributor)’에 발탁했다. K뷰티의 노하우를 글로벌 트렌드와 연결해줄 사람으로 아이린을 뽑은 것이다. 에스티로더가 한발 앞서 K뷰티에 주목한 것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프랑스 화장품 업계에도 영향을 줬다. ▷프랑스 사람들은 과거 동양 여성의 특징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여주인공 뮬란 같은 찢어진 눈(les yeux brid´es)을 많이 거론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같이 부드러운 피부에 더 주목하고 있다. 특히 한국 여성이 일본이나 중국 여성보다 더 좋은 피부를 갖고 있으며 그것이 섬세한 화장에 의해 유지된다고 여긴다. 화장품의 원조 국가 프랑스까지 관심을 갖게 한 K뷰티의 잠재력이 어디까지일지 궁금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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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김무성 ‘사위 잔혹사’

    코카인 5회, 필로폰 5회, 엑스터시 3회, 대마 1회, 스파이스 1회 등 모두 15회 마약 투약. 지난해 11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예비 사위였던 신라개발 회장 아들 이모 씨가 구속 기소된 혐의다. 이 씨는 올 2월 초범임이 참작돼 1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다. 이 씨와 김 대표의 딸인 현경 씨는 올 8월 워커힐호텔의 연예인 배용준 씨가 결혼했던 장소에서 비공개로 결혼식을 올렸다. ▷이 씨가 풀려난 데 대해 ‘권력무죄’ ‘유전(有錢)무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연예인 김성민 씨만 봐도 2011년 필로폰 5회, 대마 3회를 투약한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으로 풀려났다. 김 씨와 비교할 때 이 씨의 선고 형량에 눈에 띄는 차이는 없다. 안철수 캠프에 있었던 검찰 출신의 금태섭 변호사도 비정상적 선고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김 대표는 이 씨가 풀려나고 한 달 뒤에야 마약 투약 사실을 알고 딸을 파혼시키려 했으나 딸이 간청해 ‘자식 이기는 아버지 없다’는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허락했다고 해명했다. 마약은 중독성이 강해 김 대표에게 사위가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딸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으로 반전을 꾀했다. ▷김 대표 사위의 일이 뒤늦게 공개된 데 대해 권력 암투설도 제기됐다. 유승민 의원을 손본 친박계가 이번에는 김 대표의 흠집을 내기 위해 일부러 흘린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김 대표 사위의 판결 내용을 특종 보도한 언론은 동아일보다. 누가 흘린 것이라면 확인하느라 몇 주간 고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김 대표가 ‘하객이 몰려드는 사태를 막는다’는 이유로 딸의 결혼식을 비공개로 한 것까지는 좋으나 측근들까지 오는 것을 막으면서 오히려 궁금증을 키웠다. 사위가 준(準)재벌집 아들이라는 것도 결혼에 임박해서야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너무 숨기려 한 김 대표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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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오색 케이블카, ‘설악’은 없고 욕심만 있다

    며칠 전 오랜만에 설악산 대청에 올랐다. 도중에 오색으로부터 케이블카가 놓인다는 끝청에서의 전망을 봤다. 인상적이지 않았다. 한계령휴게소에서 능선(서북능선)에 올라 끝청을 거쳐 대청으로 가는 동안 왼쪽으로는 장관이 펼쳐졌지만 오른쪽으로는 눈길이 거의 가지 않았다. 케이블카는 그 오른쪽을 향하여 놓인다. 대청에서 오색으로 내려왔다. 여름 성수기가 지난 오색은 썰렁했다. 저녁식사 시간 무렵인데도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호텔의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유독 한 곳 오색2리 마을회관만 들썩들썩했다. 안을 들여다보니 ‘정문헌 의원님, 고맙습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붙어 있고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지역 유지들이 탄 듯한 외제차가 오가고 취기가 오른 사람들이 서성거렸다. ‘정문헌 의원님’이 케이블카 유치에 힘을 써 사시사철 오색에 사람들이 몰려오게 해준 것을 감사하는 자리였다. 아주 오래전 고즈넉했던 약수터 마을 오색이 기억난다. 그곳에 언제부터인가 약수터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호텔이 들어서고 온천이 들어서고 식당이 들어섰다. 성수기만 지나면 썰렁해지는 오색은 무모한 과잉 투자의 결과다. 잘못된 투자를 잘못된 민원으로 만회하려 한 것이 케이블카다. 이 민원을 해결하는 데 지난 대선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노무현-김정일 비밀대화록을 공개해 현 정권 창출에 기여한 정 의원이 지역구 의원으로서 큰 역할을 했나 보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설악산 대청에 올랐다. 설악산은 내게 국토에 대한 사랑 같은 걸 느끼게 해준 곳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때라 외국에 나가 보지 못해 그랬을까. 아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설악산은 여전히 아름답다. 숲과 어우러진 화강암 바위들의 능선, 초록빛 감도는 맑은 계곡 물…. 알프스에서도, 로키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 산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설악산은 건장한 남성도 오르기 힘든 험한 산이다. 난 산행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근육이 풀리지 않아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의 대중화’를 위해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산행이 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설악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면 케이블카를 놓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놓으려면 제대로 된 곳에 놓아야 한다. 우리가 보통 설악이라고 부르는 곳은 끝청에서 대청을 바라봤을 때 서북능선의 왼쪽을 말한다. 그쪽으로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이 있고 더 멀리 울산바위가 있다. 울산바위가 설악이란 성의 바다 쪽 외곽이라면 서북능선은 내륙 쪽 외곽이다. 케이블카는 이 성벽을 등지고 서서 반대쪽을 바라본다. 한마디로 엉뚱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오색이 속한 양양군도 끝청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대청봉을, 그 다음에는 관모능선을 원했으나 국립공원위원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 양양군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쪽이든 출발지는 똑같이 오색이다. 오색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이 전제 자체가 틀려먹었다. 설악산은 국민의 공원인 국립공원인데도 오색 케이블카는 애초 국민을 위한 케이블카가 아니라 양양군을 위한 케이블카로 계획됐다. 오색 케이블카 논의 자체가 “속초시가 권금성 케이블카로 큰 이익을 누리고 있으니 양양군에도 하나 허가해 달라”는 요구에서 출발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오색 케이블카는 이해관계의 타협이지 관광 개발과 환경 보전이라는 상반된 가치의 타협이 아니다. 환경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설악산의 진면목을 보게 해주는 명품 케이블카를 놓아 보겠다는 야심 찬 기획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국립공원위원회는 설악의 내부로 밀고 들어오려는 케이블카를 어떻게든 외곽에 묶어 놓는 데 성공했으니 한숨 돌린 것이고, 오색 주민으로서는 그래도 설악의 가장자리에 간신히 케이블카를 놓을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인 것이다. 우리 시대의 합리성이 권금성 케이블카가 허가된 1960년대의 합리성만 못하다. 권금성은 사실상 등산장비 없이는 올라가기 힘든 극히 험난한 곳에 있으니까 케이블카 설치가 의미가 없지는 않다. 오색 케이블카는 지역주민의 이익을 빼놓고는 왜 설치하는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기 힘들다. 국립공원위원회의 승인은 아직 조건부다.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으면 되돌리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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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산케이신문의 閔妃망발

    일본 언론에는 일왕 및 왕실 비판과 풍자에 금기가 있다. 서양 언론에선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에 대한 금기가 있긴 하지만 왕실에 대한 금기 같은 건 없다. 영국 타블로이드판 신문들은 로열패밀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한다. 일본에서도 일왕가 비판과 풍자가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극우단체들의 폭력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른바 ‘자주규제(自主規制)’라는 것을 두어 스스로 단속한다. ▷일왕의 심기를 거스르는 보도는 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남의 나라 국가원수에 대해서는 선정성 오보도 서슴지 않는 것이 극우 신문 산케이가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다. “증권가 관계자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과 한 유부남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지난해 8월 가토 다쓰야 당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세월호 사고 당시 박 대통령의 행적에 관해 쓴 기사의 일부다. 자기들끼리는 작은 폐라도 끼칠까 조심하다가도 타자를 향해서는 참으로 무례하게 돌변해버리는 것이 일본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다. ▷노구치 히로유키 산케이신문 정치부 전문위원이 지난달 31일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란 제목으로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에 독설을 퍼부으며 ‘민비를 둘러싼 조선도착(倒錯)사’라는 걸 늘어놓았다. “이씨 조선에는 박 대통령과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로 시작해서 “민비는 암살됐다”로 끝난다. ‘되다’체 동사로 암살의 주체를 얼버무린 것은 비열하다. 또 일본이 저지른 암살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커녕 그 일을 들어 협박성 선동을 하는 것은 깡패 짓과 다를 바 없다. ▷한국이 다리를 미국에 걸치든 중국에 걸치든, 일본 언론이 자기 나라의 나쁜 유산이나 걱정하지 왜 남의 나라 일까지 걱정하는지 궁금했다.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니 걱정하는 이유가 나와 있다. 한국이 ‘힘센 친구’를 바꿀 때마다 일본이 존망의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하니까 괜히 ‘힘센 친구들’에게 양다리 걸치는 정부가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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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몰카 사회의 관음증

    피핑톰(Peeping Tom)이란 말이 있다. 여자의 알몸을 몰래 훔쳐보다 그 벌로 눈이 멀게 됐다는 톰이란 사람에게서 유래한 말로 관음증(觀淫症)의 남성을 뜻한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이창(裏窓·Rear Window)’은 사고로 휠체어에 의존해 사는 한 사진작가가 카메라 렌즈로 주변 이웃들을 훔쳐보는 것이 줄거리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처럼 훔쳐보기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된다. 영화 속의 망원렌즈 카메라는 몰래카메라의 원조쯤 된다. ▷언제부터인가 TV에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등장하기 시작해 지금은 하나의 장르로 정착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영화나 드라마 속의 ‘그럴듯한 현실’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를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의 욕망에 부응한다. 하지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현실도 따지고 보면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출연자들은 아닌 것처럼 하지만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다. 정말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했던 현실 그 자체는 몰래카메라 속에나 들어 있는지 모른다. ▷최근 26세 여성 최모 씨가 워터파크 여성 샤워장에서 샤워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찍어 음란물 유통 사이트에 팔았다가 구속됐다. 최 씨는 채팅 앱을 통해 만난 어느 남성으로부터 돈을 주겠다는 제안과 함께 휴대전화 케이스형 몰래카메라를 건네받고 185분 분량의 영상을 찍어 넘겼다. 그 영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워터파크의 여성 샤워장을 훔쳐봤다. 영상에는 성인 전용 휴식 공간의 광고 전화번호가 나와 있다고 한다. 단순히 개인적 호기심이 아니라 사업적 동기에 의해 추진됐다는 게 더 심각한 측면이다. ▷얼마 전 드론 몰래카메라가 누드 해변을 촬영했다는 뉴스를 봤다. 이미 초미니 드론이 개발됐고 이 드론이 몰래카메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벌레나 곤충 형태의 드론이 창문 틈을 통해 몰래 들어가 촬영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다. 불쾌한 상상이지만 그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겨우 몰래카메라의 초창기 시대에 살고 있을 뿐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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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박 대통령 중국 전승절 참석의 明暗

    중국이 9월 3일을 전승절로 지정한 것은 바로 지난해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상임위원회에서다. 전승절은 70주년을 앞두고 급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은 장제스의 중화민국에서 전승절이었지만 1949년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뒤 1955년부터는 군인절(군인의 날)로 바뀌었다. 때론 과거 묻지 말아야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이 된 것은 제2차 대전의 전승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대국으로 굴기하기 위해서는 이 아이덴티티의 기원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그것이 뒤로 치워뒀던 전승절을 부활한 동기라고 볼 수 있다. 일본과 싸운 연합국의 주역은 미국 영국 중국이었다. 그래서 1943년 카이로선언, 1945년 포츠담선언의 당사자도 이 세 나라였다. 카이로선언에 한국을 적절한 절차를 거쳐 독립시킨다는 내용이 처음으로 들어갔고 포츠담선언에 계승됐다. 한국의 독립이 포함된 것은 기본적으로 국제연맹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계를 맺고 있던 장제스의 도움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 영국 소련과 달리 온전한 전승국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중국은 일본이 항복할 당시 광대한 영토를 일본에 빼앗긴 상태였고 중국이 지배하던 곳마저 장제스의 국민군과 마오쩌둥의 공산군이 양분해 다투고 있었으니 제 코가 석 자인 상황이었다. 중국이 한국의 광복에 무슨 실질적 도움을 줬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장제스를 몰아내고 들어선 마오쩌둥의 중국은 6·25전쟁에서 북한을 도와 한반도의 통일을 막았다. 한국은 중국 전승절 행사에 가야 할 이유는 별로 없고 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확실하다. 그럼에도 외교란 때로 미래를 위해 과거를 묻어둬야 할 때가 있다. 지난 70년 사이 중국의 대표 주자는 중화인민공화국, 한반도의 대표 주자는 한국이 됐다. 중국 외교부는 25일 전승절 행사 참석자들을 공개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보다 앞서 첫 번째로 거명했다. 서방 국가 정상들이 한 명도 참석하지 않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참석이 중국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계에서 조롱받는 세습국가 북한의 지도자보다는 종전 이후 가장 성공한 한국의 지도자가 와주는 것이 중국이 지향하는 전승절 이미지에 부합한다. 최근 남북 대치 국면에서 우리 군은 확성기에 대고 박 대통령은 중국을 3번이나 방문했지만 김정은은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틀었다. 중국 관영 환추시보는 북한이 도발로 전승절 행사를 망치려 한다며 불쾌감을 표현했다. 김정은의 집권과 박근혜의 집권이 겹치는 기간에 마치 쇼트트랙 게임에서처럼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이 북한을 추월하는 변화가 생겼다. 이 변화가 롱트랙에서도 지속될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지속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美日에 비칠 인상 걱정 다만 일본은 중국의 굴기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미국에는 도널드 트럼프처럼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에 무임승차한다는 인식을 가진 대선 후보가 의외의 인기를 얻고 있다. 박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나란히 서서 중국 인민군의 열병을 하는 사진은 미국과 일본의 대중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던질 것이다. 그 이미지를 완화시킬 방법을 찾지 못하면 우리가 얻는 것 못지않게 잃는 것도 적지 않을 것임을 각오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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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괴담 시장’ 이재명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이다. 10대 때 성남의 한 장갑 공장에서 일하다 왼쪽 손목이 골절되는 산재 사고를 입었다. 그의 왼팔은 지금도 구부러져 있다. 공장에서 독한 화학물질을 많이 들이켜 후각도 잃었다. 고입과 대입 모두 검정고시로 통과한 뒤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다. 그의 심심치 않은 도발적 언행은 상식의 편견과 싸운 삶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 시장이 최근 ‘북에서 먼저 포격? 연천군 주민들은 왜 못 들었을까’라는 제목으로 쓴 미디어오늘의 기사를 링크해 트위터에 올렸다. 북한이 정말 먼저 포탄을 쏜 것인지 의심하는 뉘앙스가 풍긴다. 그는 지난달 19일 국가정보원 해킹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도 자살한 국정원 직원의 유서에 대해 “아무리 봐도 유서 같지가 않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해 12월에는 “세월호의 실소유주는 청해진해운이 아니라 국정원”이라는 주장을 폈다. ▷의심은 그 근거가 공감을 얻지 못하면 괴담이 된다. 북이 포격에 사용해 경기 연천군 야산에 포탄이 떨어진 14.5mm 고사포는 직경이 크지 않아 쏘는 곳에서야 큰 폭발음이 나겠지만 야산에 떨어질 경우에는 ‘푹’ 하는 소리 정도가 날 뿐이다. 그것을 주민들이 듣지 못했다고 해서 포격을 의심한다는 것은 포격훈련도 한번 구경하지 못한 사람들이나 할 소리다. 의심은 진실을 찾아가기 위한 방법적 의심이어야지 의심 자체가 목표여서는 안 된다. ▷경향신문은 최근 한명숙 전 총리 유죄 확정과 관련해 대법원 판결을 정치 재판이라고 비판하는 사설을 썼다. 보수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한겨레신문까지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는 사설을 쓰자 경향신문만 ‘나 홀로’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한 꼴이 돼 버렸다. 이 시장이 과거의 도식에 사로잡혀 젊은 세대에게조차 공감을 얻지 못하는 시비를 계속 건다면 어느 사이 현실과 동떨어진 괴담이나 퍼뜨리고 있는 한심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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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대한항공 부지의 ‘관제 프로젝트’

    서울 경복궁 옆 송현동 부지는 대한항공 땅이다.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남의 사유지에 한국 문화체험 공간인 케이-익스피리언스를 짓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조현아의 땅콩 회항 사건과 함께 재산 헌납 같은 시대착오적인 말들이 떠올랐다. 문화융성, 표현부터 졸렬대한항공이 한옥이든 뭐든 7성급 호텔을 지어 ‘부자들만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데에 나도 반대다. 그곳이 사유지이긴 하지만 서울의 중요한 공간인 만큼 공공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엇을 지을지 결정하고 발표하는 것은 대한항공이어야 한다. 대한항공은 발표장에서 정부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케이-익스피리언스 계획은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와 함께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문화융성 정책의 하나로 발표됐다. 내게 문화융성은 그 표현부터가 졸렬하다. 과거 문화창달이란 복합어만 해도 ‘문화를 창달하자’는 식으로 두 단어가 연결돼 구호의 말로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문화융성은 ‘문화가 융성하다’는 식으로밖에 연결할 수 없어 뭘 하자는 말로서는 어색하다. 이 정부의 조어 실력이 이렇게 형편없다. 오늘날의 상업적인 문화는 정부가 개입해서 융성해지는커녕 쇠락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케이팝이 딱 그렇다. 정부가 개입하면서부터 케이팝의 창의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정부가 도움을 준 이상 공무원은 성과를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인기가 검증된 노래와 춤을 선호하고 기획사도 따를 수밖에 없다. 창의적인 것은 실패할 확률이 크기 때문에 배제된다. 창의력을 다퉈야 할 자리에 선정성이 들어섰다. 최근 스텔라라는 걸그룹의 선정적인 의상과 춤을 보고 놀랐다.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식의 싱그러운 매력은 사라졌다. 멤버를 바꿔 돌아온 원더걸스마저 스텔라를 닮아가고 있다. 케이팝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 내리막길이다. 그 내리막길은 문화융성만 거론하면 케이팝 얘기를 꺼내는 박 대통령의 임기와 정확히 겹친다. 미다스의 손은 고철도 황금으로 만들지만 우리 정부 문화부는 황금도 고철로 만들어 버린다. 광화문광장에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물을 볼 때마다 옛 문화부 건물로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 건물은 바로 옆의 미국대사관 건물과 더불어 필리핀 기술로 지은 남국적인 느낌의 아름다운 쌍둥이 건물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개조하면서 쌍둥이 건물 특유의 아름다움과 함께 역사성도 사라졌다. 다른 정부 부처도 아니고 문화부가 한 반(反)문화적 개조에 화가 나기도 한다. 지금 광화문 일대에서 가장 문화적 개조가 필요한 곳은 세종문화회관이다. 강북에서 평일 저녁 공연 시간에 맞춰 강남 예술의전당까지 가는 것은 쉽지 않다. 세종문화회관이 형편없는 음향시설 때문에 음악공연장으로 기능하지 못한 지 오래다. 세종문화회관은 아예 건물을 새로 짓는 식의 전면적 개조가 필요하다.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 소관이라고 하지만 정부가 정말 문화가 융성하게 하려면 이런 것부터 지원해야 한다. 관제로는 성공 못해 광화문 일대에서 가장 생동적인 문화적 공간은 교보문고이다. 민간이 운영하기 때문에 내버려둬도 끊임없이 쇄신해서 그럴 것이다. 케이-익스피리언스라는 복합문화센터는 대한항공이 관에 떠밀려 짓는 것이다. 지지부진하다가 호텔 얘기가 다시 나올 것이다. 문화라는 게 묘해서 정부가 앞장서 끌고 가려 해서는 절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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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함석헌에게 배우는 겸손한 해방

    “해방은 도적같이 온 것이다. 고로 하늘에서 온 것이다. 이것이 미신이라 하는 자는 이 조선에서 그림자도 없어져라.” 함석헌의 말이다. 그의 방점은 흔히 생각하듯이 도적같이 온, 예상할 수 없었던 해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해방이 하늘에서 왔다는 데 있다. 해방은 “어느 파(派)나 어느 인물의 노력에서 온 것”이 아니다. 해방은 “선물”이다.해방은 대가없이 주어졌다 해방은 이승만이 루스벨트나 스탈린의 마음을 움직인 까닭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독립군이나 빨치산이 일본군과 싸워 이겨 얻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함석헌은 “해방은 자기네가 투쟁한 결과로 되었다”고 하는 자들은 “그림자도 없어져라”고 일갈하고 있다. 함석헌은 마흔 다섯의 원숙한 나이에 해방을 맞았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오산학교 교사를 지내고 옥고도 치른 적이 있는 총명하고도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눈에 비친 해방은 선물이었다. 하늘에서 온 선물이라는 것은 미신이 아니다. 거기에는 ‘내가 내 적공(積功)으로 받은 것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해방을 대하는 겸손한 마음이 거기서 시작된다. 이국땅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하며 싸운 독립유공자들의 정신은 고결한 것이다. 그 정신을 기리고 후손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많아야 고작 수백 명에 불과했던 병력으로 일본의 패망에 무슨 기여나 한 것처럼 억지를 부려선 안 된다. 망명 자유 폴란드군은 수십만 명이 연합군의 편에 서서 싸웠는데도 자기 나라를 대가로 받지 못했다. 연합군이 ‘코리아’라고 부른 나라의 해방은 그 말의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선물이었다. 해방정국의 혼란도, 오늘날의 역사전쟁도 해방이 어느 파나 어느 인물의 노력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한쪽에서는 이승만을 치켜세우고 한쪽에서는 김구를 내세우고 또 한쪽에서는 김일성이나 박헌영, 아니면 여운형 같은 중도파에서 정통성을 찾는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역사관이 있다. 나는 대한민국 건국에 동참하면서도 이승만의 독재와 싸웠던 세력의 시각으로 역사를 보고 싶다. 다만 어떤 역사관을 갖든지 해방을 직접 맞았던 당대인의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서는 안 된다. 나의 할아버지는 해방 때 서른 무렵이었다. 그는 더 젊을 때 만주에도 갔었으나 돌아와 가난한 농민으로 해방을 맞았다. 오래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해방은 어떤 것인지 미처 물어보지 못했지만 함석헌의 다음 말에서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이 해방에 관련된 자가 있다면 그는 무지한 민중뿐이다. 무지한 한 가지 원인으로, 맘이 못 생긴 한 가지 탓으로, 황국신민(皇國臣民) 노릇도 잘 못하고, 출세도 잘 못하고, 외국으로 도망(逃亡)도 못하고, 시세(時勢)에 맞출 줄을 몰라 큰 뜻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조선을 못 놓고 조선 땅을 못 떠난 민중이다.”해괴한 역사전쟁 집어치워라 선물은 그 선물을 어떻게 간수했느냐에 의해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값없이 주어진 나라를 얼마나 먹고살 만하고 자유로운 나라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논점에서 벗어난 역사전쟁은 해괴한 것이다. 함석헌이 살아 돌아온다면 다시 한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해방이 어느 파나 어느 인물의 노력에서 온 것이라고 하는 자는 이 조선에서 그림자도 없어져라.”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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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진보의 ‘反헌법행위자’

    최근 이른바 진보진영에서 ‘헌법’을 자주 거론한다. 강만길 서중석 함세웅 씨 등 지식인들은 어제 ‘광복 70년, 역사와 헌법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선언문을 냈다. 이들은 “독립운동의 전통을 계승한 제헌헌법과 민주화운동 정신에 기초해 개정된 현행 헌법의 핵심 가치들은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을 비판하고 분단 극복을 외치던 이들이 대한민국의 토대인 헌법을 강조했다는 게 눈길을 끈다. ▷오늘 서울 백범기념관에서는 ‘누가 반(反)헌법행위자인가’라는 주제로 ‘반헌법행위자 열전’(가칭) 제정을 위한 1차 토론회가 열린다. 기조발제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맡는다. 특이한 것은 반헌법행위자 열전에 수록되려면 일단 공직자이거나 공권력의 위임을 받아 직무를 수행한 자여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 ‘변호인’의 배경인 1981년 부림사건 당시 고영주 검사,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 등도 수록 대상자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공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감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나로서는 반헌법행위자라고 하면 대한민국을 폭력으로 전복하려고 선동했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통진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위헌 정당으로 해산됐다. 1968년 통일혁명당 간첩 사건에 연루돼 형을 산 박성준 전 성공회대 교수(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는 무슨 이유인지 재심도 청구하지 못하고 있다. 임명직 공직자가 아니면 모두 빠져나가는 반헌법행위자 열전을 누가 공정하다고 할까. ▷진보좌파진영은 같은 주장을 해도 헌법에 근거한다는 인상을 주면 지지를 얻기 쉽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광우병 시위부터 ‘변호인’을 거쳐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의 원내대표 고별사에 이르기까지,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지닌 호소력을 체감한 탓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과 헌법을 얘기하는 진보가 색다른 것만은 틀림없지만 헌법에마저 편협한 이념을 덧씌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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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히로시마 센티멘털리즘

    70년 전 1945년 오늘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이다. 사흘 후인 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다. 그리고 15일 정오 쇼와 일왕이 라디오방송을 통해 항복을 선언한다.가해는 잊고 피해만 기억 당시 쇼와가 녹음한 선언 원본이 최근 공개됐다. 70년 전 그 녹음은 라디오 전파의 잡음이 심한 데다 난해한 한문 투여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내용보다는 신으로 추앙받던 일왕이 국민 앞에서 처음으로 말했다는 사실 자체가 패전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선명한 녹음에 기초해 현대 일본어로 풀어 쓴 전문(全文)을 보니 전쟁을 개시한 데 대한 반성은 전혀 없다. 오히려 일본의 독립과 동아시아 제국(諸國)의 안전을 위해 미국에 전쟁을 선포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항복의 계기는 ‘적국이 새로운 잔악한 무기(원자폭탄)로 죄 없는 사람들을 살상해 그 비참한 피해가 미칠 범위가 어디까지일지 몰라서’라고 돼 있다. 히로시마만 기억하고 히로시마 이전을 망각하는 일본인의 사고방식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약 열흘 전 연합국의 포츠담 선언이 나왔다. 일본이 ‘전멸의 문턱(threshold of annihilation)’에서 벗어날 최후의 기회를 준다는 통첩을 보낸 것이었는데 일본이 응답하지 않아 원폭이 투하됐다. 올 5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05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포츠담 선언은 미국이 원폭을 투하해 일본에 참상을 일으킨 뒤 ‘어떠냐’고 일본에 내민 것”이라고 말한 것이 뒤늦게 논란이 됐다. 아베의 머릿속에 포츠담과 히로시마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었다. 히로시마를 통해 가해의 역사는 잊고 피해의 역사만 기억하는 심리를 ‘히로시마 센티멘털리즘’이라고 불러보자. 흥미로운 것은 ‘히로시마 센티멘털리즘’이 아베 같은 일본 보수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본의 진보진영에서 ‘히로시마 센티멘털리즘’은 단순한 망각을 넘어 도덕적 반전을 꾀한다. 히로시마 피폭으로부터 반핵(反核)·평화의 도덕적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가해의 과거사가 주는 죄책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폐허가 된 히로시마 원폭 돔 앞에 서면 숙연해지지만 가해의 과거사는 알 수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버섯구름에서도 환경을 중시하는 메시지는 읽히지만 일본이 저질렀던 만행의 그림자는 찾을 수 없다. 최근 아사히신문이 히로시마 피폭을 2011년의 후쿠시마 원전의 비극과 연관해 다룬 종전 70주년 기획을 읽으면서도 비슷하게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가해의 과거사가 주는 죄책에서 탈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럼으로써 과거사는 똑같이 망각되고 마는 것이다.일본, 값싼 感傷 벗어나야 히로시마에 인류의 보편적 심정에 호소하는 비극적 요소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히로시마는 나가사키와 함께 원폭이 실제로 투하된 지구상의 특별한 장소로 기억돼야 한다. 수만 명의 조선인도 함께 피해를 봤으므로 우리에게도 남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나도 피해자’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 일본이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감상에 빠지지 않고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직시할 때 성숙한 일본이 될 수 있고 히로시마도 반핵·평화의 상징으로 올바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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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박근령 리스크

    얼마 전 영국 타블로이드판 신문 ‘더 선’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일곱 살 때 팔을 뻗쳐 나치 식 경례를 하는 영상자료 사진을 실어 관심을 끌었다. 이 사진에는 엘리자베스의 동생 마거릿도 보인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평생 근엄하게 산 데 비해 마거릿 공주는 ‘여성 돈 후안’이라고 할 만큼 많은 염문을 뿌렸다. 언젠가 마거릿 공주는 “두 자매가 있는데 한 사람이 여왕이면 다른 하나는 가장 창조적으로 못된 일을 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한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 근령 씨는 2007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둔 시점에 14세 연하의 신동욱 당시 백석대 교수와 약혼식을 올려 세간의 화제가 됐다. 신 씨는 2009년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을 강탈했다고 비방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2011년에는 처남인 지만 씨가 살인교사를 했다고 무고한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가 2013년 풀려났다. 이런 신 씨와 근령 씨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근령 씨는 남들 앞에서 박 대통령을 ‘언니’라 부르지 않고 ‘형님’이라 부른다. 그 호칭은 두 자매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나타낸다. 언니는 동생보다 두 살 위일 뿐이지만 1974년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신하면서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마저 서거한 후에 엄한 가장 노릇까지 했다. 근령 씨가 독립하기 위해서는 언니의 그늘을 벗어나야 했을 것이다. 그런 관계가 1990년대 들어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둘러싼 다툼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근령 씨가 일본은 한국인 위안부에게 보상할 필요가 없다느니, 한국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니 하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한일관계 정상화 회담 당시 위안부 문제는 제기되지 않았고 신사 참배는 일본이 A급 전범을 뒤늦게 합사해 문제가 됐다는 점에 무지한 발언이다. 근령 씨 부부는 그간의 행적에 비추어 정치에도 뜻이 있어 보인다. 박 대통령에게는 ‘박지만 리스크’에 못지않게 ‘박근령 리스크’도 있는 것 같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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