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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죽인 원수를 찾아 나서는 여살수(女殺手) ‘냉소월’, 무협소설 속 여주인공으로 빙의해 악인을 처단하는 ‘당해원’…. 웹툰·웹소설 플랫폼 카카오페이지가 출시를 앞둔 작품들이다. 작품명은 각각 ‘취접냉월’(사진)과 ‘무협지 악녀인데 내가 제일 쎄’(무협지 악녀인데…)다. 취접냉월은 어렸을 때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무술을 갈고닦으며 여살수로 자란 냉소월이 원수를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만난 ‘백운비’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렸다. 무협지 악녀인데…에서는 무협 소설을 읽기 시작한 주인공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자신이 읽던 무협소설 속 악녀 당해원으로 빙의하고, 전설의 영약 ‘만년삼’을 삼키면서 최강 고수로 성장해 악인을 처단해나간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무협(武俠)’물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로맨스 판타지라는 것이다. 기존 무협물은 주 독자층이 남성이어서 주인공 역시 남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문학과 드라마, 영화, 가요는 물론 예능까지 주체적인 여성을 내세운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웹툰과 웹소설 무협물에도 여주인공이 등장하고 있다. 김선희 카카오페이지 코믹사업부 순정팀 팀장은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 단순한 남녀 간 사랑 묘사만이 아닌 여주인공의 성장을 담은 여성 서사가 인기 요인이 되고 있다”며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처럼 여주인공이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카타르시스와 공감을 느낀 시청자들이 많듯 남성 전유물같이 여겨진 무협물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드러지는 점은 과거 여주인공이 나온 무협물들의 ‘노블코믹화’(소설과 만화 간 리메이크)다. 취접냉월은 ‘굿바이 미스터 블랙’ ‘불새의 늪’ 등을 만든 순정만화계 대모 황미나 작가의 만화가 원작이다. ‘대사형’ ‘광검유정’ ‘홍엽만리’ 등을 쓴 무협소설 여성 작가 ‘진산’이 웹소설로 리메이크를 했다. 진산은 섬세한 감정묘사와 서정적 서사로 두꺼운 팬 층을 보유한 작가다. 웹소설은 12월 말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김 팀장은 “취접냉월은 여성 서사의 시작을 연 작품으로 볼 수 있다”며 “만화계와 무협소설계 유명 작가들이 만나는 프로젝트로, 준비하는 데 2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무협지 악녀인데…도 작가 윌 브라이트가 쓴 웹소설이 원작으로, 웹툰으로 리메이크돼 내년 1월 공개를 앞두고 있다. ‘유아니’가 그림을, ‘가비남’이 각색을 담당했다. 수배자 아버지 밑에서 남장을 하고 살아가던 소녀가 참수 위기에 처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입궁하는 과정을 그린 ‘연록흔’도 이달 말 시즌3이 공개된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어찌 보면 뻔하지만 준엄한 진리를 우리만의 색으로 풀어냈다.”(RM) 일상은 멈췄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로 방탄소년단이 돌아왔다. 코로나19로 월드투어가 취소되고 화상으로 팬들을 만나며 느낀 감정과 고민을 담은 새 앨범 ‘BE’를 통해서다. ‘∼이다’ ‘존재하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 ‘Be’를 앨범 제목으로 정해 형태를 규정하지 않고 열린 의미를 담았다. 방탄소년단은 타이틀곡 ‘Life Goes On’을 포함해 모두 8곡을 20일 공개했다. 이들은 이날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어깨 수술을 받은 슈가는 참석하지 못했다. 간담회장에는 취재진이 200명 넘게 몰렸다. 기자들은 체온 확인 및 손 소독을 하고 한 테이블에 한 명씩 앉았다. 테이블은 1m씩 간격을 뒀다. “코로나19로 모든 게 멈춰버린 상황과 맞닥뜨리면서 당황스럽고 공허한 1년을 보냈다. 답답하고 서글픈 감정을 솔직하게 담은 앨범이다.”(진) 그간 파워풀한 댄스곡을 주로 선보였지만 이번 앨범은 색깔이 달라졌다. ‘Life Goes On’은 서정적인 어쿠스틱 기타에 잔잔하게 음악이 흘러간다. 슈가 제이홉 뷔 지민이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담은 ‘내 방을 여행하는 법’, 뷔의 색깔이 반영된 팝 발라드 ‘블루 & 그레이’, 슈가가 작업 전반에 참여한 레트로 팝 디스코 ‘잠시’ 등 멤버별 개성을 뚜렷하게 담았다. 8곡의 작사, 작곡은 물론 기획 단계부터 앨범 재킷, 뮤직비디오 제작 등에 멤버 전원이 참여했다. 지민이 멤버들의 의견을 취합하는 총괄 프로젝트 매니저(PM)를 맡았고, 뷔는 뮤직비디오, 앨범 재킷 등 비주얼 전반을 총괄했다. “일상적인 모습을 편안하게 담으려 했다. 멤버들이 서로 찍어준 자연스러운 사진도 담았다.”(뷔) 본인들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공연을 하고 팬들을 만나는 것이 제가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인데 그걸 못 하게 되니 ‘내가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앨범 작업을 하면서 멤버들과 이야기하고 술 한잔 했던 순간들이 많이 위로가 됐다.”(지민) 내년 초 열리는 미국 최고 권위의 대중음악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즈’에 대해서도 말했다. 올해 8월 공개한 ‘Dynamite’로 빌보드 ‘핫100’ 정상에 오른 방탄소년단은 그래미 주요 상 중 하나인 ‘레코드 오브 더 이어’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등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래미 어워즈를 주관하는 미국레코드예술과학아카데미(NARAS)는 24일(현지 시간) 제63회 그래미 어워즈 후보를 발표한다. “연습생 시절인 2009년 릴 웨인, 제이지 등 래퍼들이 슈트를 입고 함께 무대에 서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대체 어떤 무대이길래 저 아티스트들이 다 올라와서 퍼포먼스를 할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RM) 세계적 그룹이 된 이들은 쉼 없이 달려온 탓에 지치기도 했지만 음악으로 이겨냈다. “번아웃을 많이 겪었다. 옛날엔 그 감정을 그대로 느껴 힘들었지만 그 느낌을 곡으로 표현하면서 극복하고 있다.”(뷔) 방탄소년단은 22일 열리는 ‘2020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타이틀곡 ‘Life Goes On’ 무대를 처음 공개한다. 한편 진은 병역 문제에 대해 “나라의 부름이 있으면 언제든지 응하겠다. 멤버들 모두 같은 생각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는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대중문화예술인에 대해 만 30세까지 군 징집 및 소집을 연기할 수 있도록 한 병역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 법안은 이른바 ‘BTS(방탄소년단)법’으로 불렸다.김재희 jetti@donga.com·이은택 기자}

1281만 관객을 동원한 ‘7번방의 선물’을 연출한 이환경 감독(50·사진)이 8년 만에 신작 ‘이웃사촌’으로 돌아왔다. 이웃사촌은 가택 연금된 정치인 ‘의식’(오달수)의 옆집에서 도청팀장 ‘대권’(정우)이 의식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 지 5년 만에 작품을 선보인 이 감독을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 감독은 “고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가택 연금 등 한국 정치사의 실화를 모티브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입을 열었다. “호랑이처럼 세상을 호령하던 분들이 집에서는 가족들에게 떡볶이도 만들어주고 자녀와 책도 읽으며 소소한 일상을 보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어요. 그분들의 전기, 자서전 등을 읽으며 시나리오 작업을 했어요.” 정우와는 17년 전 오디션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인연을 이어왔다. 이 감독은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느낌”의 정우를 데뷔작 ‘그놈은 멋있었다’에 조연으로 캐스팅했다. “이번 영화에서 정우가 상대 역의 멱살을 잡고 울부짖는 장면이 있었는데, 대사 50% 정도가 현장에서 바뀌었어요. 정우가 원래 대사의 느낌이 와닿지 않는다기에 저와 정우 둘이 봉고차 안에 들어가 가족 얘기, 아버지에 대한 추억 등을 이야기하다가 둘 다 울컥해 펑펑 울면서 즉흥적으로 나오는 대사로 고쳤죠.” 오달수는 7번방의 선물을 작업하면서 코믹한 이미지 속 진정성을 발견해 대권 주자 정치인 역을 제안했다. 오달수는 처음엔 “이런 묵직한 역은 자신 없다”며 고사했지만 이 감독 설득 끝에 합류했다. 영화는 2018년 촬영이 끝났지만 오달수의 ‘미투’ 논란이 불거지면서 개봉이 미뤄지기도 했다. 오달수는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2018년 2월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기존 배우 이미지와 상반된 ‘청개구리 캐스팅’을 즐깁니다. 7번방의 선물의 류승룡 배우도 거친 눈빛 속 강아지 같은 따뜻함을 느껴 캐스팅했듯 오달수 선배님도 웃긴 모습 뒤 묵직함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확신했어요.” 7번방의 선물, ‘각설탕’, 이웃사촌까지 이 감독 영화에 일관적으로 들어가는 감동 코드가 신파와 마찬가지라는 지적에 대해선 “그게 내가 잘 만드는 영화”라고 했다. “제가 만든 영화에는 익숙함밖에 없어요. 음식에 비유하자면 김치찌개, 된장찌개죠. 하지만 그 안에 새로운 재료가 들어가는 순간 ‘맛이 다르네’라는 걸 느껴요. 익숙함을 더 새롭게 표현하는 게 제가 잘하는 일인 것 같아요.”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극장가에 한파가 지속되고 있지만 영화 한 편은 개봉, 다른 한 편은 다음 달 개봉을 앞둔 영화 제작사가 있다. 2017년 관객 1218만 명을 모은 ‘택시운전사’ 제작사 ‘더 램프’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7일 기준 관객 145만 명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170만 명) 고지를 눈앞에 뒀다. 다음 달 개봉하는 염정아, 류승룡 주연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한국 최초로 기성곡을 활용한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로 개봉 전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더 램프 사무실에서 만난 박은경 대표(48)는 “뒷심을 발휘할 것”이라며 입을 열었다. “‘삼진그룹…’ 개봉을 미뤄야 하나 고민했죠. 하지만 극장의 명맥을 잇겠다는 동업자 정신으로 개봉을 결정했어요. 개봉 후엔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요.” ‘삼진그룹…’은 1995년 입사 8년 차 고졸 출신 말단 여직원 ‘자영’(고아성)이 회사 공장에서 강으로 유독물질이 방류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동기 ‘유나’(이솜) ‘보람’(박혜수)과 회사의 비리를 파헤치는 과정을 그린다. 판단이 빠른 박 대표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고민이 됐다. 명확한 장르가 없었기에 ‘못 하겠다’는 생각이 커질 무렵 택시운전사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제작자상’을 받았다. “영화로 제 이름 석 자가 새겨진 트로피를 처음 받아봤어요. 상을 받은 당일 감사한 마음에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삼진그룹…’ 초고를 쓴 홍수영 작가님에게 전화를 했어요. ‘어떤 길을 가게 되든 영혼을 담아 만들겠다’고 했죠.” 제작 결정 이후 이종필 감독과 함께 각색을 거치며 ‘약자들의 연대와 성장’이라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직장 내 ‘미투’나 등장인물들의 러브라인을 과감히 걷어냈다. 초고에선 자영, 유나, 보람이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는 것에서 끝나지만, 수정된 시나리오에서는 이들의 내부고발이 회사 내 변화를 가져온다. “직장 일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잖아요. 그렇다면 ‘내 직장에 문제가 있어’라는 폭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더 좋은 직장으로 만들 수 있을까?’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기도 했고요.” 해운회사, 광고대행사,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등 다양한 직장을 거치다가 “업무 외 시간에 생각해도 지치지 않는 일”을 하고 싶어 영화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쇼박스에 발을 디뎠고, 2012년 더 램프를 차렸다. 첫 ‘1000만 영화’인 택시운전사는 쇼박스 재직 시절 ‘맨발의 꿈’ 촬영차 동티모르에 갔을 때 칼을 들고 현장에 난입한 괴한을 보고 혼비백산 도망쳤던 순간이 시작이었다.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남을 돕는 게 쉽지 않음을 경험했어요. 그 순간에 대한 부채의식이 절 계속 따라다녔어요. 위기의 상황에서 도망쳤다가 다시 그 현장으로 유턴하는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수백억 원을 들인 대작이 OTT로 향하는 격변의 시대, 영화가 갈 길에 대한 그의 답변은 명확했다. “‘극장에서 볼 가치가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현재 SF멜로, 액션, 전쟁 소재 영화를 제작하려 하고 있다. “극장에서의 경험은 OTT가 절대 대체할 수 없다고 믿어요. 지금은 ‘OTT용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까’보다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관객들이 극장에 올까’를 더 치열하게 고민합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인력은 부족한데 환자는 너무 많아. 장비도 부족해. 무기도 없이 전쟁에 나간 것 같아.”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의 뉴스 인터뷰가 아니다. 이달 초 한국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파리에선 사랑을’ 시즌2 에피소드7 ‘외출 자제 계획’에 나온 남자 주인공 ‘앙투안’의 대사다. 병원에서 일하는 그는 코로나19가 두려워 두문불출하는 여동생 ‘샬롯’을 찾아가 문 앞에서 괴로움을 털어놓는다. 샬롯은 “나도 너무 무섭다”며 눈물을 흘리지만 감염에 대한 공포로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드라마 영화 등 문화 콘텐츠가 코로나19의 여파와 충격을 담아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직후에는 전염병을 소재로 한 기존 영화 ‘감기’ ‘컨테이전’ 등 팬데믹이 배경인 콘텐츠가 인기를 끌었다면 코로나19가 계속 창궐하는 요즘은 이를 반영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1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소셜 디스턴스: 마음은 가까이’는 에피소드 8회 전체의 소재가 코로나19다. ‘모큐멘터리’(가짜를 뜻하는 ‘모크·mock’와 다큐멘터리의 합성어) 장르인 소셜 디스턴스는 아버지 장례식을 화상에서 모여 치르는 가족, 코로나19에 걸린 아내를 간호하면서도 아내가 있는 방에 들어가려는 아들을 혼내는 남편, 학교가 폐쇄돼 집에 있는 아이를 화상으로 돌보는 워킹맘 등 누군가는 겪었을 법한 일들을 그렸다. 영화의 경우 러닝타임을 1시간 내외로 단축하고 촬영장비, 세트장, 출연진을 대폭 줄여 코로나19를 반영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가장 먼저 코로나19를 다뤄 주목받은 작품은 캐나다 영화 ‘코로나’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들 중 중국인 여성이 코로나19 확진자로 드러나면서 그들 간에 벌어지는 갈등을 통해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를 꼬집었다. 감독 모스타파 케시바리는 2주 만에 각본을 썼고, 엘리베이터 세트는 10일 만에 완성했다. 영화는 올해 영화제에 출품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영화제들이 취소되면서 개봉이 무기한 연기됐다. 지난달 4일 미국 콘텐츠 스튜디오 ‘어센더(Ascender)’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18분 분량의 단편영화 ‘2020’은 올해 아카데미 촬영상 등 3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1917’을 패러디했다. 가게들이 문을 닫은 미국 캘리포니아.유일하게 문을 연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화장실 휴지를 구하려는 두 남성의 여정을 그렸다. 연출 및 각본을 담당한 스티븐 포드는 “단편영화임에도 코로나19로 인한 안전 규정을 지키느라 제작에 석 달이 걸렸다. 숱한 장애를 뚫고 ‘2020’이 세상에 나온 건 기적”이라고 밝혔다. 내년 개봉 예정인 마이클 베이 감독의 ‘송버드’는 변형된 ‘코로나23’의 확산으로 사망자가 1억1000만 명에 달한 상황에서 주인공 니코가 코로나23에 걸린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그녀가 있는 아파트로 향하는 과정을 담았다. 국내에서도 2020년 이후를 배경으로 한 콘텐츠는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상을 고려해 만들고 있다. A제작사 대표는 “각본 작업 중인 드라마에 코로나19가 퍼진 상황이 들어간다. 기존에는 좀비물, SF물이 판타지로 여겨졌지만 팬데믹 후 작품 속에서 각종 재앙이 덮친 상황이 현실에 더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반도’가 대재앙 이후인 ‘아포칼립스’를 그려 공감을 얻었듯 코로나19의 상황을 반영한 콘텐츠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불면증과 외로움,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어요.”(박명수) “너무 열심히 살아 왔어요. 앞으로는 여유를 갖고 주변을 돌아보고 싶어요.”(김구라) 100세 시대라고 할 때 삶의 딱 절반이라 할 50세를 맞이했거나 맞이할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민이다. 20여 년간 일과 가정을 오가며 쉴 새 없이 달려온 1970년생 연예인 4명이 뭉쳤다. 개그맨 김구라 박명수 지상렬, 배우 이성재다. 이들은 8일 오후 7시 50분 첫 방영된 채널A 일요 예능 프로그램 ‘개뼈다귀’에서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한자리에 나왔다. 개뼈다귀는 이들이 개띠인 것에 착안한 프로그램 이름이다. “동갑내기 친구들과 노는 기분으로 촬영하고 있다”는 이들 4인방을 12일 인터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의 고민은 여느 가장이나 직장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인생 후반기 인간관계는 어떻게 맺을지 등 더 깊어진다. 그런 동 세대의 고민을 동갑내기들과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싶어 출연했다는 것. 박명수는 “내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 같은 50세인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며 “앞으로 살아갈 날을 즐긴다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야외에서 펼쳐지는 예능은 경험이 많지 않은 김구라는 “예전엔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선호했지만 요즘엔 바깥에 나가서 일반인과 만나는 게 참 좋더라”며 “50세가 되면서 인간관계, 인생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던 찰나에 인생을 돌아본다는 프로그램의 주제의식이 맞닿아 있어 주저 없이 선택했다”고 했다. TV 예능의 고정 출연은 드물었던 이성재에게는 아버지와 나눴던 이야기가 이 프로그램을 선택한 계기가 됐다. ‘가장 하고 싶으신 일이 무엇이냐’고 그가 물었을 때 생전의 그의 부친은 “친구들과 여행가는 것”이라 답했던 것. 이성재는 그때 받았던 ‘행복이 별것 없구나’ 하는 느낌으로 출연을 결정했다. 이 프로그램의 흥망성쇠는 이들 4명이 얼마나 친해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4인방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었다. 유쾌한 독설과 호통개그의 1인자 자리를 다투는 김구라와 박명수, 이들에게 ‘말빨’로는 뒤지지 않는 유일한 개그맨 수식어가 붙는 지상렬이지만 개뼈다귀만큼은 조화에 방점을 뒀다. 그는 “박명수 씨는 어머니 같은 섬세함, 김구라 씨는 이웃 일에 훈수 잘 두는 아저씨, 저는 어디에든 있을 듯한 동네 형 역할이다. 우리 셋의 색깔이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 박명수는 “김구라 씨는 말이 너무 많은데도 잘한다. 지식과 상식을 모두 동원해 말이 끊이지 않는 매력이 있다. 이성재 씨는 카리스마가 있는데 촬영할수록 정말 진솔한 친구다. 지상렬 씨와는 개그 호흡이 잘 맞아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특히 ‘나 혼자 산다’ ‘정글의 법칙 in 인도차이나’ 등의 예능에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홀로 배우인 이성재가 어떤 활약을 보일지도 관심사다. 이성재는 “연기에 비해 예능은 대본의 틀에 갇히지 않고 말과 행동이 무한대로 열려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예능의 특성을 이미 간파한 듯했다. 그는 “촬영 전 워낙 개성이 강한 캐릭터 탓에 김구라 씨와 친해질 수 있을지 걱정도 됐지만 첫 만남 후 잘 사귀고 있다. 박명수 씨와는 웃음코드가 가장 잘 통해 앞으로의 케미(호흡)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일찍 결혼하고 자식도 일찍 결혼시켜 4명 중 유일하게 손녀를 둔 할아버지인 그는 “자식 키우는 조언은 훨씬 잘해줄 자신이 있다”고 전했다. 개뼈다귀는 ‘인생 중간 점검’이라는 취지에 맞춰 누구나 고민하지만 혼자서는 답을 쉽사리 찾기 어려운 질문을 정하고 4인방이 각자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1화의 화두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였고 15일 2화의 주제는 ‘행복이란 무엇인가’다. 김구라는 “물질의 풍요가 행복의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삶은 고단하지만 윗세대의 마음은 고단하지 않을 수 있다”며 “그들이 걸어온 길, 삶의 철학을 듣고 싶다”고 했다. 이들이 직접 주제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성재는 “중학교 때 봤던 고교입시 체력장 6종목을 50세가 된 지금 똑같이 테스트 해보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지상렬은 “꼰대와 아이들의 소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4인방이 입을 모으는 개뼈다귀의 강점은 공감이다. 누구나의 고민을 ‘대리 해결’해주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이 위안을 얻길 바란다. 지상렬은 “개뼈다귀는 나이 든 이들의 일기장, 그들의 아버지, 삼촌의 일기장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구라는 “우리의 고민이 결국 30, 40대의 고민, 내 큰형, 우리 아빠의 고민인 동시에 시청자의 고민이다. 진정성 있게 고민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대리만족을 느끼실 것”이라고 말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불면증과 외로움,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어요.”(박명수) “너무 열심히 살아 왔어요. 앞으로는 여유를 갖고 주변을 돌아보고 싶어요.”(김구라) 100세 시대라고 할 때 삶의 딱 절반이라 할 50세를 맞이했거나 맞이할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민이다. 20여 년간 일과 가정을 오가며 쉴 새 없이 달려온 1970년생 연예인 4명이 뭉쳤다. 개그맨 김구라 박명수 지상렬, 배우 이성재다. 이들은 8일 첫 방영된 채널A 일요 예능 프로그램 ‘개뼈다귀’에서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한 자리에 나왔다. 개뼈다귀는 이들이 개띠인 것에 착안한 프로그램 이름이다. “동갑내기 친구들과 노는 기분으로 촬영하고 있다”는 이들 4인방을 12일 인터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의 고민은 여느 가장이나 직장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인생 후반기 인간관계는 어떻게 맺을지 등 더 깊어진다. 그런 동세대의 고민을 동갑내기들과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싶어 출연했다는 것. 박명수는 “내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 같이 50세인 친구들과 같이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며 “앞으로 살아갈 날을 즐긴다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야외에서 펼쳐지는 예능은 경험이 많지 않은 김구라는 “예전엔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선호했지만 요즘엔 바깥에 나가서 일반인들과 만나는 게 참 좋더라”며 “50세가 되면서 인간관계, 인생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던 찰나에 인생을 돌아본다는 프로그램의 주제의식이 맞닿아있어 주저 없이 선택했다”고 했다. TV 예능의 고정 출연은 드물었던 이성재에게는 아버지와 나눴던 이야기가 이 프로그램을 선택한 계기가 됐다. ‘가장 하고 싶으신 일이 무엇이냐’고 그가 물었을 때 생전의 그의 부친은 “친구들과 여행가는 것”이라 답했던 것. 이성재는 그때 받았던 ‘행복이 별것 없구나’ 하는 느낌으로 출연을 결정했다. 이 프로그램의 흥망성쇠는 이들 4명이 얼마나 친해지느냐에 달려있다고 4인방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었다. 유쾌한 독설과 호통개그의 1인자 자리를 다투는 김구라와 박명수에게 인지도는 몰라도 ‘말빨’로는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지상렬은 개뼈다귀만큼은 조화에 방점을 뒀다. 그는 “박명수 씨는 어머니 같은 섬세함, 김구라 씨는 이웃 일에 훈수 잘 두는 아저씨, 저는 어디에든 있을 듯한 동네 형 역할이다. 우리 셋의 색깔이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 박명수는 “김구라 씨는 말이 너무 많은데도 잘한다. 지식과 상식을 모두 동원해 말이 끊이지 않는 매력이 있다. 이성재 씨는 카리스마가 있는데 촬영할수록 정말 진솔한 친구다. 지상렬 씨와는 개그 호흡이 잘 맞아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특히 ‘나 혼자 산다’ ‘정글의 법칙 in 인도차이나’ 등의 예능에 간간히 모습을 드러냈지만 홀로 배우인 이성재가 어떤 활약을 보일지도 관심사다. 이성재는 “연기에 비해 예능은 대본의 틀에 갇히지 않고 말과 행동이 무한대로 열려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예능의 특성을 이미 간파한 듯했다. 그는 “촬영 전 워낙 개성이 강한 캐릭터 탓에 김구라 씨와 친해질 수 있을지 걱정도 됐지만 첫 만남 후 잘 사귀고 있다. 박명수 씨와는 웃음코드가 가장 잘 통해 앞으로의 케미(호흡)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일찍 결혼하고 자식도 일찍 결혼시켜서 4명 중 유일하게 손녀를 둔 할아버지인 그는 “자식 키우는 조언은 훨씬 잘해줄 자신이 있다”고 전했다. 개뼈다귀는 ‘인생 중간 점검’이라는 취지에 맞춰 누구나 고민하지만 혼자서는 답을 쉽사리 찾기 어려운 질문을 정하고 4인방이 각자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1화의 화두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였고 15일 2화의 주제는 ‘행복이란 무엇인가’다. 김구라는 “물질의 풍요가 행복의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삶은 고단하지만 윗세대의 마음은 고단하지 않을 수 있다”며 “그들이 걸어온 길, 삶의 철학을 듣고 싶다”고 했다. 이들이 직접 주제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성재는 “중학교 때 봤던 고교입시 체력장 6종목을 50세가 된 지금 똑같이 테스트 해보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지상렬은 “꼰대와 아이들의 소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4인방이 입을 모으는 개뼈다귀의 강점은 공감이다. 누구나의 고민을 ‘대리 해결’해주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이 위안을 얻길 바란다. 지상렬은 “개뼈다귀는 나이든 이들의 일기장, 그들의 아버지, 삼촌의 일기장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구라는 “우리의 고민이 결국 30, 40대의 고민, 내 큰형, 우리 아빠의 고민인 동시에 시청자의 고민이다. 진정성 있게 고민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대리 만족을 느끼실 것”이라고 말했다.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1986년 ‘깜보’(1986년)로 데뷔한 이래 영화 38편에 출연했지만 김혜수(50)에게는 여전히 작품을 결정하게 되는 ‘운명적 계기’가 있다. 12일 개봉하는 ‘내가 죽던 날’(박지완 감독)도 그랬다. 수년 전 그가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지날 때 시나리오를 접했다. 오래전 연을 끊은 어머니의 억대 채무 문제가 다시 불거져 그의 이름이 오르내릴 때였다. 자신만큼이나 피폐해진 듯한 주인공 현수에게 동질감을 느껴 출연을 결정했다는 김혜수를 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정말 기묘하게도 절망감에 휩싸여 있을 때 이 작품을 만났어요. 살다 보면 내가 시작하지 않았고,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예측할 수도 없는 고통과 절망에 맞닥뜨리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 처한 현수의 감정이 저와 닮았다고 느꼈어요.” 영화는 이혼 소송과 신체 마비 등으로 꽤 오랫동안 휴직하다 복직을 앞둔 경찰대 출신 경위 현수가 범죄 사건의 핵심 증인인 소녀 세진(노정의)의 실종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렸다.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드는 현수의 모습이 실제 자신과 겹쳐 보였다는 김혜수는 영화 대사 일부를 직접 쓰기도 했다. 인터뷰 현장에서 그는 전날 촬영을 마친 것처럼 대사를 술술 읊었다. “‘난 매일 꿈을 꿔. 꿈에서 난 죽었더라고. 죽어 있는 나를 보면서 그 생각을 해. 저걸 누가 좀 치워라도 주지.’ 제가 고통스러웠던 그때 반복해서 꿨던 꿈이에요. 대사에 넣을 생각은 없었는데 촬영을 거듭하면서 ‘현수도 그때 내 마음 같았겠구나’ 하는 마음에 추가했어요.” 스크린 속 현수는 눈은 충혈됐고 립스틱은 대충 발라 삐져나왔다. ‘타짜’의 정 마담, ‘도둑들’의 팹시, ‘관상’의 연홍 등 요염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던 그의 대표작 속 캐릭터와는 상반된다. “작은 영화지만 제가 힘을 실어주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출연한 적은 한 번도 없고, 할 생각도 없어요. 이런 이야기가 제대로 만들어져 소개될 필요가 있겠다 싶으면 선택하죠.” 운 좋게도 힘들 때 곁을 지켜준 친구들이 있었다는 김혜수는 이 영화가 삶의 벼랑 끝에 놓인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고통은 극복하기보다 그 순간을 버텨내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말없이 건네는 손길 하나가 큰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현수가 세진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진 못해요. 다만 자신과 닮은 상처를 가진 사람을 보듬음으로써 현실과 직면하고 그 다음을 생각할 용기를 내는 거죠. 영화 제목대로 ‘내 마음이 완전히 죽던 날’이지만 다시 살아갈 날이 남아 있다는 희망을 관객이 느끼셨으면 좋겠어요.”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깜보’(1986년)로 데뷔해 34년간 영화 38편에 출연했지만 김혜수(50)에게는 여전히 작품을 결정하게 되는 ‘운명적 계기’가 있다. 12일 개봉하는 ‘내가 죽던 날’(박지완 감독)도 그랬다. 시나리오를 접한 것은 수년 전 그가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지날 때였다. 8년 전 연을 끊은 어머니의 억대 채무 문제가 다시 불거졌을 때. 자신만큼이나 피폐해진 주인공 현수에게 동질감을 느꼈다는 김혜수를 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정말 기묘하게도 절망감에 휩싸여 있을 때 이 작품을 만났어요. 살다 보면 내가 시작하지 않았고, 전혀 예측할 수도 없는 고통과 절망의 순간에 맞닥뜨릴 때가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 처한 현수의 감정이 저와 닮았다고 느꼈어요.” 영화는 이혼소송과 신체마비 등으로 오래 쉬다가 복직을 앞둔 경찰대 출신 경위 현수가 범죄사건의 핵심 증인이다가 실종된 소녀 세진(노정의)의 자취를 추적하는 과정을 그렸다.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드는 현수의 모습이 실제 자신과 겹쳐보였다는 김혜수는 영화 대사 일부를 직접 쓰기도 했단다. 전날 촬영을 마친 듯 대사를 술술 읊었다. “‘난 매일 꿈을 꿔. 꿈에서 난 죽었더라고. 죽어있는 나를 보면서 그 생각을 해. 저걸 누가 좀 치워라도 주지’라는 대사가 있어요. 제가 괴로웠을 때 반복해서 꿨던 꿈이에요. 대사에 넣을 계획은 없었는데 촬영을 거듭하면서 ‘현수도 그때 내 마음 같았겠구나’ 하는 마음에 추가했어요.” 운 좋게도 곁을 지켜준 친구들이 있었다는 김혜수는 이 영화가 삶의 벼랑 끝에 놓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고통은 극복하기보다 그 순간을 버텨내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말없이 건네는 손길 하나가 큰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현수가 세진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진 못해요. 다만 자신과 닮은 상처를 가진 사람을 보듬음으로써 현실과 직면하고 그 다음을 생각할 용기를 내는 거죠.” 스크린 속 현수는 충혈 된 눈, 대충 발라 삐져나온 립스틱으로 표현된다. ‘타짜’의 정 마담, ‘도둑들’의 팹시, ‘관상’의 연홍 등 요염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던 그의 대표작 속 캐릭터와는 상반된다. “작은 영화지만 제가 힘을 실어주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출연한 적은 한 번도 없고, 할 생각도 없어요. 이런 이야기가 제대로 만들어져 소개될 필요가 있겠다 싶으면 선택하죠. 영화 제목대로 ‘내 마음이 완전히 죽던 날’이지만 다시 살아갈 날이 남아있다는 희망을 관객이 느끼셨으면 좋겠어요.”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비싼 티켓, 매진 등으로 영화제에 참석할 수 있는 관객은 한정적이었다. 온라인 영화제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피어스 핸들링 전 토론토 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은 6일 강원 강릉시 라카이 샌드파인리조트에서 열린 강릉국제영화제 행사 ‘강릉포럼’의 온라인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영화제는 신도가 돼야 내부를 알 수 있는 종교만큼 배타적이어서 열성적 관객 외에 새로운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항상 고민해 왔다. 유튜브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열리는 온라인 영화제는 일부 사람들에게 한정됐던 영화제를 지방, 전국, 나아가 세계적인 영화제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5일 개막한 강릉국제영화제는 7일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열린다.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 시대의 영화제’를 주제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서 각국 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과 집행위원장들이 화상을 통해 코로나19의 여파로 격변하는 영화제의 상황을 짚어보고 지향점을 논의했다.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은 “코로나19로 영화제를 취소하거나 온라인으로 개최하는 등 영화제가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영화제의 생존이 과제가 된 만큼 각국이 경험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핸들링 전 조직위원장 등 11명의 해외영화제 관계자가 온라인으로, 이준동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국내영화제 관계자 6명이 오프라인으로 참석했다. 핸들링 전 조직위원장은 코로나19 이후에도 영화제가 영화산업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가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영화제의 중요한 역할은 영화제 초청 이력을 통해 영화의 이름을 알리고, 해당 감독의 이후 작품 제작 및 투자로 이어진다. 이 역할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독립영화에 여전히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영화 구매와 판매가 이뤄지는 영화제 시장의 미래에 대해서는 “칸 영화제와 마찬가지로 토론토 영화제에서도 온라인 시장이 열렸다. 이는 영화제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작은 배급사에 더 많은 영화 판매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영화제를 취소한 홍콩 국제영화제의 윌프레드 웡 조직위원장은 “영화제에서 선정한 작품 리스트를 대중에게 공개했으며 온라인을 통해 신인감독 작품을 심사하고 수상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사브리나 바라체티 이탈리아 우디네 극동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이탈리아 최대 웹사이트와 협약을 맺고 온라인 영화제 플랫폼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온라인 영화제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나왔다. 마에다 슈 후쿠오카 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온라인 영화제는 진정한 의미의 영화제는 아니다. 영화제는 큰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고, 상영 후 감독과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내년 5월로 연기한 후쿠오카 영화제는 오프라인으로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틴 테루안 프랑스 브줄 국제아시아영화제 조직위원장도 “영화제는 제작자들에게 다른 영화를 만들 예산을 마련하는 발판이다. 상업적 경쟁력이 부족한 국가의 감독들에게 현실적으로 더욱 필요한 사안이다”라고 강조했다.강릉=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배우 정수정(26)보단 아이돌 그룹 f(x)의 크리스탈이 더 익숙하다. 12일 개봉하는 ‘애비규환’은 대중들에게 배우 ‘정수정’ 이름 세 글자를 각인시킬 영화다. 진한 화장과 화려한 의상을 입고 도도한 표정으로 노래하던 크리스탈은 맨 얼굴에 질끈 묶어 올린 머리,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대학생 임신부 ‘김토일’의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 정수정보다 두 살 많은 최하나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애비규환은 연하 남자친구 ‘호훈’(신재휘)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자 결혼을 하게 된 대학생 토일의 이야기다. 토일은 임신 사실이 밝혀진 뒤 어머니와 양아버지로부터 “넌 대체 누굴 닮아 이 모양이냐”라는 얘기를 듣자 친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설상가상으로 남자친구 호훈도 실종되면서 토일은 결혼을 할지 고민하는 기로에 놓인다. 제목처럼 토일이 10여년 만에 찾아 나선 ‘친 애비’와 어머니의 재혼 후 토일을 사랑으로 키운 ‘지금 애비’, 토일이 뱃속 아이의 ‘예비 애비’와 한 바탕 소동극을 거치며 토일은 이혼가정, 결혼, 임신 등 자신을 정의하는 수많은 단어들과 정면으로 부딪히고 답을 찾아 나간다. 첫 영화 주연으로 임신부를 연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법도 하지만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정수정은 “고민 없이 출연을 결정했다”고 입을 열었다. “처음에 임신부 역할 제안이 들어왔다는 이야길 들었을 땐 ‘헉’ 소리를 냈을 정도로 놀랐죠. 지금까지 연기해온 것과 너무 다르기도 했고요. 그런데 대본을 읽는 순간 이 역할을 안 할 이유가 없겠더라고요. 이야기가 너무 재밌기도 했고, 앞으로 연기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하기에 저한테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했어요.” 김토일을 구현하는데 가장 먼저 고민한 건 ‘어떻게 하면 진짜 임신부처럼 보일까’였다. 최 감독은 정수정과의 첫 미팅에서 “볼이 너무 핼쑥하다. 5개월 차 임신부처럼 보여야 한다”고 했다. 출연 결정 직후 다이어트를 중단했다. 촬영 내내 불룩한 배를 연출하기 위해 복대를 찼다. “복대가 너무 가벼우면 자꾸 돌아가서 적당히 무게감이 있는 복대를 차야 했어요. 없던 게 생기니 목부터 시작해서 허리까지 굉장히 아프더라고요. 서 있을 때도 허리를 잡고 배를 앞으로 내민 ‘펭귄자세’로 서 있다보니 온 몸이 틀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스크린으로 본 토일이가 살도 통통하게 오르고 진짜 임신부 같아서 전 너무 좋던데요?” 현실적인 외모만큼 많이 고민했던 건 토일의 성격이다. 토일은 한 단어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인물이다. 임신한 게 무섭지 않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난 무서운 것보다 궁금한 게 더 크다”고 주저 없이 답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당차지만, “다 망한 것 같다”며 눈물을 머금기도 하는 나약함도 있다. 토일이의 다층적인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최 감독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땐 토일이가 당당한 아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자기 멋대로 할 것 같고요. 감독님과 작업을 시작하면서 이혼가정에 대한 콤플렉스, ‘난 누굴 닮아서 이런 사람이 됐나’에 대한 고민 등 토일이의 속내를 더 깊이 알아갔어요. 감독님과 좋아하는 영화, 카페 등이 신기할 정도로 비슷해서 대화가 잘 통했어요.” 이해가 되지 않는 토일이의 행동에 대해서는 “대체 얘는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거에요? 저 좀 이해시켜 주세요”라며 현장에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5개월 동안 임신 사실을 숨기고, 무턱대고 친 아빠를 찾겠다며 대구로 떠나는 토일이의 행동이 저에겐 새로우면서 부럽기도 했어요. 제가 의외로 보수적이거든요. 전 가족 의견을 잘 따르는 편이에요. 토일이의 선택을 보면서 ‘난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를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어요. 제가 토일이라면 대구에 가기 전 철저하게 준비를 했을 거예요. 전 세심하게 정리하고 계획을 세우는 성격이라서요. 쉽게 말해 쫄보에요. (웃음)” 소녀시대 멤버였던 친언니 제시카는 고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찾는 버팀목이다. 자매는 ‘제시카&크리스탈’이라는 예능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같은 일을 해봤으니 말 실수를 할까 긴장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는 존재죠. 서로 마음을 만져주는 느낌이에요. 가끔 서로의 방에 가서 옆에 가만히 누워있다 오고 그래요.” 아이돌로 데뷔한 정수정은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상속자들’ ‘하백의 신부’ ‘슬기로운 감빵생활’ ‘써치’까지 시트콤과 드라마, 영화를 섭렵하며 배우로서의 외연을 넓혀 왔다. “저는 군인, 임신부 등 특색 있는 역할을 많이 해서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도 해 보고 싶어요. 배우로서의 목표요? 제가 출연했다고 하면 ‘그래, 보자’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거요. ‘거르지 않게 되는 배우’. 그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영원한 제임스 본드’ 배우 숀 코너리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90세. BBC는 “코너리가 바하마 나소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나소는 코너리가 출연한 007 시리즈 중 하나인 ‘선더볼 작전’ 촬영지다. 1930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난 그는 공장 노동자 아버지, 청소부 어머니를 뒀다. 13세에 학교를 그만둔 뒤 해병대에 입대하기 전까지 우유 배달부터 관(棺)에 광택을 내는 일, 벽돌공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다. 위궤양으로 3년 만에 제대한 후에도 트럭운전, 안전요원 등을 하며 지냈다. 축구에 재능이 있던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연기자의 길을 택했다.1954년 단역으로 연기를 시작해 첫 주연을 맡은 BBC 드라마 ‘블러드 머니’(1957년)로 경력을 쌓았다. 코너리는 이언 플레밍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007 시리즈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그는 1962년 제작된 007 시리즈 첫 작품 ‘007 살인번호’(Dr.No)를 시작으로 ‘위기일발’ ‘골드핑거’ ‘선더볼 작전’ ‘두 번 산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까지 모두 7편에서 본드 역을 맡았다. 리처드 버턴, 캐리 그랜트가 본드 역으로 물망에 올랐지만 당시 제작자의 아내가 무명에 가까웠던 코너리가 적임자라고 설득했다. 플레밍은 코너리가 본드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지만 화면 속 그를 보고 바로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50여 년에 걸쳐 제작된 24편의 007 시리즈에서 피어스 브로스넌, 대니얼 크레이그 등 6명이 본드를 연기했지만 코너리는 단연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본드 연기는 세련되고 능글맞으면서도 유머감각을 지닌 매력적인 스파이의 기준을 확립했다. 코너리는 ‘오리엔탈 특급살인’(1974년) ‘장미의 이름’(1986년) ‘언터처블’(1987년)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1989년) ‘더록’(1996년)에서 수도사, 고고학자, 수사관 역을 중후하고 매끄럽게 소화하며 연기의 폭을 넓혔다. 언터처블로 1988년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2개의 영국아카데미상(BAFTA), 3개의 골든글러브상을 받았다. 2000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2006년 공식 은퇴했다. 1989년 59세에 미국 피플지가 선정하는 ‘현존하는 가장 섹시한 남성’으로 뽑혔고 상당 기간 이 순위의 상위권에 오르며 나이 든 남성도 매력적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지지하며 꾸준히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6대 본드를 연기한 크레이그는 코너리에 대해 “시대와 스타일을 정의한 인물”이라며 “그가 스크린에서 보여준 재치와 매력은 메가와트 수준으로, 현대 블록버스터를 창조하는 데 일조했다”고 추모했다. 오스카상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는 “전설적인 배우를 기린다. 그는 우리 영화공동체와 삶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고 애도했다. 코너리는 호주 출신 배우 다이앤 클라이언토와 결혼했지만 이혼했다. 이후 재혼해 유족으로는 아내 미슐린 로크브륀과 두 아들 제이슨 코너리, 스티븐 코너리가 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영원한 제임스 본드’ 배우 숀 코너리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0세. BBC는 “코너리가 바하마 나사우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나사우는 코너리가 출연한 007 시리즈 중 하나인 ‘썬더볼 작전’ 촬영지다. 1930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난 그는 공장 노동자 아버지, 청소부 어머니를 뒀다. 13세에 학교를 그만 둔 뒤 해병대에 입대하기 전까지 우유배달부터 관(棺)에 광택을 내는 일, 벽돌공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다. 위궤양으로 3년 만에 제대한 후에도 트럭운전, 안전요원 등을 하며 지냈다. 축구에 재능이 있던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연기자의 길을 택했다.1954년 단역으로 연기를 시작해 첫 주연을 맡은 BBC 드라마 ‘블러드 머니’(1957년)로 경력을 쌓았다. 코너리는 이언 플레밍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007 시리즈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그는 1962년 제작된 007 시리즈 첫 작품 ‘007 살인번호’(Dr.No)를 시작으로 ‘위기일발’ ‘골드핑거’ ‘썬더볼 작전’ ‘두 번 산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까지 모두 7편에서 본드 역을 맡았다. 리차드 버튼, 캐리 그랜트가 본드 역으로 물망에 올랐지만 당시 제작자의 아내가 무명에 가까웠던 코너리가 적임자라고 설득했다. 플레밍은 코너리가 본드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지만 화면 속 그를 보고 바로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50여년에 걸쳐 제작된 24편의 007 시리즈에서 피어스 브로스넌, 대니얼 크레이그 등 6명이 본드를 연기했지만 코너리는 단연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본드 연기는 세련되고 능글맞으면서도 유머감각을 지닌 매력적인 스파이의 기준을 확립했다. 코너리는 ‘오리엔탈 특급살인’(1974년) ‘장미의 이름’(1986년) ‘언터처블’(1987년)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1989년) ‘더록’(1996년)에서 수도사, 고고학자, 수사관 역을 중후하고 매끄럽게 소화하며 연기의 폭을 넓혔다. 언터처블로 1988년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2개의 영국아카데미상(BAFTA), 3개의 골든글러브상을 받았다. 2000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2006년 공식 은퇴했다. 1989년 59세에 미국 피플지가 선정하는 ‘현존하는 가장 섹시한 남성’으로 뽑혔고 상당 기간 이 순위의 상위권에 오르며 나이든 남성도 매력적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지지하며 꾸준히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6대 본드를 연기한 크레이그는 코너리에 대해 “시대와 스타일을 정의한 인물”이라며 “그가 스크린에서 보여준 재치와 매력은 메가와트 수준으로, 현대 블록버스터를 창조하는 데 일조했다”고 추모했다. 오스카상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는 “전설적인 배우를 기린다. 그는 우리 영화공동체와 삶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고 애도했다.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2013년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미르’가 미국 ‘니켈로디언’의 ‘코라의 전설’ 시즌1 제작을 마쳤을 때였다. 유재명 스튜디오미르 대표(48)는 이후 시즌까지 함께하길 바랐던 니켈로디언에 작별을 고했다. 지나치게 세세한 지시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게 한 작업 방식 때문이었다. 일본 ‘스튜디오피에로’가 만든 코라의 전설 시즌2가 공개되자 완전히 달라진 그림체로 팬들의 지탄이 쏟아졌다. 서울 금천구 스튜디오미르 사무실에서 20일 만난 유 대표는 니켈로디언 애니메이션 부문 사장이 찾아왔던 당시를 회상했다. “로봇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건 못 하겠다고 했어요. 지금 인터뷰를 하는 이 자리에서 2013년 니켈로디언 사장과 마주 앉았죠.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대폭 수정해 코라의 전설 시즌2 후반 회차를 제작했어요. 미국의 방식이 정답이라는 사고를 바꾸고 싶었어요.” 유 대표는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사들과의 협업에서 창의성을 요구하며 한국이 애니메이션 ‘하청 기지’라는 선입견을 깨왔다. 1990년 AKOM 프로덕션 애니메이션 제작부에서 일을 시작한 그가 2010년 스튜디오미르를 세운 이유도 “기존 방식을 답습하는 건 창작이 아니다”라는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미국이 일을 주니 그에 맞춰 만드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어요. 창의적 아이디어가 반영되지 않다 보니 하청 구조가 고착화됐죠. 그걸 깨고 싶었어요. ‘망해도 좋으니 우리만의 방식으로 가자’는 생각으로 회사를 세웠어요.” 스튜디오미르를 ‘까칠한 회사’라고 정의하는 그는 니켈로디언과의 ‘담판’을 계기로 업계에서 기술뿐 아니라 창의력까지 갖춘 회사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2014년엔 미국 최대 애니메이션 기업 ‘드림웍스’와 78편으로 구성된 애니메이션 ‘볼트론-전설의 수호자’를 공동 제작하는 계약을 맺었다. 2019년 넷플릭스와 체결한 ‘프로덕션 라인 계약’은 기획, 제작, 후반 작업까지 전 과정을 총괄한다는 점에서 한 차원 더 창작의 자율성을 확보한 계약이었다. 수년간 다수의 작품을 제작한다. 이 계약 후 직원 수는 70명에서 150명으로 늘었다. 스튜디오미르는 넷플릭스가 프로덕션 라인 계약을 맺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9곳 중 유일한 한국 업체다. “넷플릭스로부터 시나리오만 받고 스토리보드, ‘애니메틱’이라 불리는 동작 시뮬레이션, 그림, 성우 선정, 음악까지 전부 저희가 담당합니다. 저희가 결정한 내용을 기반으로 총책임자인 넷플릭스 ‘쇼 러너’와 논의해 최종 결정을 하죠.” 스튜디오미르가 선보일 넷플릭스 첫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위쳐’의 애니메이션 영화다. 위쳐는 괴물을 사냥하며 살아가는 ‘게롤트’가 여자 마법사,비밀을 간직한 공주와 대륙에서 생존하는 과정을 그렸다. 시즌 1은 7600만 명이 봤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청과 창작의 차이는 일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창작을 해도 하청이고, 하청을 받아도 내 생각을 넣으면 창작이죠. 창작의 자유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저희만의 색을 구축해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곳으로 키울 겁니다.”유재명 스튜디오미르 대표는…△1990년 AKOM프로덕션 애니메이션 제작부△1991년 아트플러스(현 선민동화) 애니메이터 데뷔△2000년 동우애니메이션 감독 데뷔△2005년 JM애니메이션 TV 시리즈 ‘아바타―아앙의 전설’ 총감독△2006년 미국 애니어워드 캐릭터 애니메이션 부문 감독상 수상(국내 최초)△2009∼2010년 TV 시리즈 ‘분덕스’ 시즌3 리비전 총감독△2010년 스튜디오미르 설립, ‘아바타―코라의 전설’ 시즌1 프로덕션 총감독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배우 이제훈(36)에게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 독기와 순수, 장난기와 진중함을 오간다. 영화 ‘파수꾼’에서 친구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위태롭고 거친 고등학생 ‘기태’를 연기했던 그는 ‘건축학개론’에서 첫사랑에 아파하는 숫기 없는 스무 살 대학생 ‘승민’으로 변신했다. ‘박열’에서는 숨통을 조여 오는 일본에 뜻을 굽히지 않는, 패기 어린 독립운동가 박열을 재현했다. 11월 4일 개봉하는 영화 ‘도굴’에서 이제훈의 얼굴은 또 새롭다. 흙의 맛만 봐도 보물이 묻힌 곳을 직감으로 아는 천재 도굴꾼을 연기한 그는 능청스럽고 뻔뻔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강동구’라는 캐릭터 안에 담아냈다. “강동구를 연기하다 보니 실제로 말이 많고 밝아졌다”는 그를 2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강동구는 고미술계 엘리트 큐레이터 ‘윤실장’(신혜선)의 제안으로 고분벽화 도굴 전문가 ‘존스 박사’(조우진), 삽질의 달인 ‘삽다리’(임원희)를 섭외해 ‘드림팀’을 꾸린 뒤 서울 강남구 한복판에 있는 선릉 도굴 계획을 추진한다. “강동구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캐릭터라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머리에 총이 겨눠진,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쉴 새 없이 떠들죠. 촐싹대지만 능청스럽게 위기를 탈출해요. 이런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전 사석에서도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 편이고, 정적이 흘러도 어색해하지 않는 성격인데 강동구를 연기한 뒤 말이 많아지고 능청스러워졌다는 얘길 많이 듣고 있어요.” 캐릭터를 분석할 때 기존 작품들을 참고한다는 그는 이번 작품에선 그럴 필요가 없었을 정도로 머릿속에 강동구가 쉽게 그려졌다고 했다. “대사를 읽는데 저도 모르게 능청스러운 강동구를 표현해 내더라고요. 동구의 대사량이 굉장히 많은데 정보를 전달한다기보다 제가 빠져들어 신나서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강동구는 황영사 금동불상, 고구려 고분벽화에 이어 선릉에 묻힌 조선의 보물까지 숨 돌릴 틈 없이 도굴의 판을 키운다. 고구려 고분벽화 도굴 장면에서는 전동드릴을 들고 벽을 뚫었고, 선릉 도굴 촬영 때는 물이 차오르는 땅굴에서 굴렀다. “땅을 파고, 벽을 뚫는 과정에서 잔해물이 많이 떨어지는데 미술팀이 콩가루, 선식 등 먹을 수 있는 재료로 세트를 만들어 주셔서 어렵지 않게 촬영했어요. 수중촬영에서는 물이 흐르는 상황이라 고인 물에 들어가 있는 것보다 훨씬 추웠고, 흙탕물을 마시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 순간들도 다 추억이에요.” 출연하는 영화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그는 지금 “농익은 멜로에 목이 마르다”고. “건축학개론에서 20대의 풋풋한 첫사랑을 표현했다면, 30대 중후반에 사랑을 연기할 기회를 너무나도 기다리고 있어요. 마흔이 되기 전에 어른스러운 사랑, 짙게 물들 수 있는 사랑을 꼭 표현해보고 싶습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배우 이제훈(36)에게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 독기와 순수, 장난기와 진중함을 오간다. 영화 ‘파수꾼’에서 친구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위태롭고 거친 고등학생 ‘기태’를 연기했던 그는 ‘건축학개론’에서 첫사랑에 아파하는 숫기 없는 스무 살 대학생 ‘승민’으로 변신했다. ‘박열’에서는 숨통을 조여 오는 일본에 뜻을 굽히지 않는, 패기 어린 독립운동가 박열을 재현했다. 11월 4일 개봉하는 영화 ‘도굴’에서 이제훈의 얼굴은 또 새롭다. 흙의 맛만 봐도 보물이 묻힌 곳을 직감으로 아는 천재 도굴꾼을 연기한 그는 능청스럽고 뻔뻔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강동구’라는 캐릭터 안에 담아냈다. “강동구를 연기하다 보니 실제로 말이 많고 밝아졌다”는 그를 2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강동구는 고미술계 엘리트 큐레이터 ‘윤실장’(신혜선)의 제안으로 고분벽화 도굴 전문가 ‘존스 박사’(조우진), 삽질의 달인 ‘삽다리’(임원희)를 섭외해 ‘드림팀’을 꾸린 뒤 서울 강남구 한복판에 있는 선릉 도굴 계획을 추진한다. “강동구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캐릭터라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머리에 총이 겨눠진,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쉴 새 없이 떠들죠. 촐싹대지만 능청스럽게 위기를 탈출해요. 이런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전 사석에서도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 편이고, 정적이 흘러도 어색해하지 않는 성격인데 강동구를 연기한 뒤 말이 많아지고 능청스러워졌다는 얘길 많이 듣고 있어요.” 캐릭터를 분석할 때 기존 작품들을 참고한다는 그는 이번 작품에선 그럴 필요가 없었을 정도로 머릿속에 강동구가 쉽게 그려졌다고 했다. “대사를 읽는데 저도 모르게 능청스러운 강동구를 표현해 내더라고요. 동구의 대사량이 굉장히 많은데 정보를 전달한다기보다 제가 빠져들어 신나서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강동구는 황영사 금동불상, 고구려 고분벽화에 이어 선릉에 묻힌 조선의 보물까지 숨 돌릴 틈 없이 도굴의 판을 키운다. 고구려 고분벽화 도굴 장면에서는 전동드릴을 들고 벽을 뚫었고, 선릉 도굴 촬영 때는 물이 차오르는 땅굴에서 굴렀다. “땅을 파고, 벽을 뚫는 과정에서 잔해물이 많이 떨어지는데 미술팀이 콩가루, 선식 등 먹을 수 있는 재료로 세트를 만들어 주셔서 어렵지 않게 촬영했어요. 수중촬영에서는 물이 흐르는 상황이라 고인 물에 들어가 있는 것보다 훨씬 추웠고, 흙탕물을 마시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 순간들도 다 추억이에요.” 출연하는 영화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그는 30대 후반에 접어든 지금 “농익은 멜로에 목이 마르다”고. “건축학개론에서 20대의 풋풋한 첫사랑을 표현했다면, 30대 중후반에 사랑을 연기할 기회를 너무나도 기다리고 있어요. 마흔이 되기 전에 어른스러운 사랑, 짙게 물들 수 있는 사랑을 꼭 표현해보고 싶습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소울(Soul)’의 제작은 ‘치료’를 받는 과정이었다.” 디즈니·픽사가 12월 25일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할 예정인 신작 애니메이션 ‘소울’을 만든 피트 닥터 감독(52)은 6일 화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5년에 걸친 소울의 제작 과정을 ‘치료(Therapy)’에 비유했다. 그는 ‘몬스터 주식회사’,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업’, ‘인사이드 아웃’ 등을 제작했다. 1990년 픽사 애니메이터로 입사한 뒤 올해 1월 디즈니·픽사의 크리에이티브 총괄책임자(CCO·Chief Creative Officer) 자리에 오르기까지 쉬지 않고 작업해 온 그에게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이 찾아왔다. “‘영화만 완성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평생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제 안에 있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을 만들 때도 그랬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제대로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지금의 우리를 만든 건 뭔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도 각기 다른 성격을 갖는 건 왜인지를 고민한 것이 영화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 과정은 제게 치료를 받는 것과도 같았어요.” 닥터 감독이 2015년부터 5년에 걸쳐 제작한 소울은 미국 뉴욕 최고 재즈클럽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게 된 중학교 음악선생님 ‘조 가드너’가 맨홀에 빠지면서 영혼이 지구로 오기 전 단계인 ‘태어나기 전 세상(The Great Before)’에 이르고, 이곳에서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이야기다. 디즈니·픽사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을 주연으로 내세웠고, 제이미 폭스가 조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조뿐만 아니라 현실세계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흑인이다. 조의 어머니부터 조의 단골 미용실 직원, 재즈클럽의 뮤지션들까지. 그는 “재즈 뮤지션을 꿈꾸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설정했고, 재즈가 흑인 음악이라 흑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울 팀은 영화 속 캐릭터에 흑인들의 체형, 머리 스타일, 피부 등의 특성을 제대로 녹이기 위해 회사 내 흑인 직원들, 뉴욕 퀸스 공립학교의 흑인 선생님, 맨해튼 재즈클럽의 흑인 음악가 등을 만났다. 조는 마른 몸에 큰 키, 긴 얼굴에 콧수염을 기른 흑인으로 탄생했다.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은 늘 작고 귀여운 이미지였어요. 제 키가 거의 6.4피트(약 195cm)예요. 키가 큰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보여줘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조 가드너의 모습이 어디에서 왔을까요? 하하.” 인간의 감정을 의인화한 인사이드 아웃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소울까지 철학적 메시지를 지닌 영화를 제작해 온 닥터 감독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철학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스토리텔링의 기본은 내면의 믿음에 기반해 캐릭터의 행동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조는 왜 재즈를 그토록 원할까? 그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면 조는 불행한 걸까? 여러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과정이 캐릭터에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관객 역시 소울을 본 뒤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영화에 대해 얘기해 보자’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이렇게 불행한 드라마 주인공이 또 있었을까. 24일 최종회에서 채널A 드라마 최고 시청률 8.6%(닐슨코리아 수도권 가구 기준)를 기록한 ‘거짓말의 거짓말’의 주인공 ‘지은수’(이유리) 얘기다. 가정폭력, 남편을 죽였다는 누명, 10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딸과의 생이별, 10년 만에 되찾은 딸의 투병까지. 평범한 일상이 사치였던 은수의 비극에 시청자들은 “은수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응원을 보내며 함께 울고 웃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15일 만난 김지은 작가는 “‘은수에게 부디 기적 같은 일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대본을 썼다”고 했다. SBS ‘청담동 스캔들’, MBC ‘전생의 웬수들’ 등 100부작이 넘는 연속극을 써 온 그에게는 첫 미니시리즈 도전이었다. “시놉시스에 소설 ‘빨강머리 앤’의 한 구절을 썼어요. ‘엘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는 거니까요’라는 구절이죠. 은수의 삶도 잔혹하리만큼 생각대로 풀리지 않지만 생각지 못한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어요. 그녀가 행복해지는 기적요.” 지하철역 10개 거리는 거뜬히 걸을 정도로 걷기를 즐기는 김 작가는 산책을 하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부녀를 보고 드라마 소재를 처음 떠올렸다. “잠수교를 걷던 중 우주 또래의 딸과 아빠가 자전거를 옆에 두고 셀카를 찍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어요. 두 사람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한 여성이 있었고요. 아빠와 딸이 있는 프레임 안에 엄마로 추정되는 그 여성을 끌어오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그 과정을 가장 힘들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게 이야기의 시작이었죠.” 드라마를 관통하는 감정은 부모의 사랑이다. 은수와 ‘강지민’(연정훈), 은수의 시어머니 ‘김호란’(이일화)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녀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내던진다. “드라마 시장의 변화가 너무 빨라 고민이 많았어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로마의 휴일’ 같은 고전을 그 시기에 몰아 봤는데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죠. 인간의 본성 중 변치 않는 사랑, 그중 가장 깊은 감정인 모성애를 소재로 정면승부를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배우들의 열연도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했다. 은수는 강인함과 여림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어야 했고 지민은 불우한 은수를 감싸줄 만큼 따뜻하고 신뢰 가는 배우여야 했다. “첫 미팅 때 유리 씨가 얘길 하며 웃는데 환한 미소 끝에 이상하게 마음이 짠해지면서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느낌이 있었어요. ‘지은수가 걸어 나오면 유리 씨 같은 느낌이겠구나’ 확신했죠. 연정훈 배우도 ‘막걸리를 와인 잔에 따라 마셔야 해’라고 말하면 그게 맞는 것 같은, 신뢰가 가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에요.” 우주 역의 고나희 양의 사진을 보고 실제 소리를 질렀다. “감독님이 나희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탄성이 나왔어요.복숭아같이 희고 사랑스러운 우주의 이미지를 그대로 갖고 있었거든요. 2회에서 은수가 우주를 껴안는 장면이 있어요. 나희 양이 놀라움, 두려움 속에서도 은수에게 끌리는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해낸 걸 보고 소름이 돋았죠.” 은수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는 그는 결말에 대해 “해피엔딩”이라고 못 박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은수가 납골당에 먼저 와 지민과 우주를 기다리고 있어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은수의 생사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일었다. “은수는 아버지 납골당 옆으로 ‘윤 비서’(이원종)를 모시는 작업을 돕기 위해 먼저 도착해 있었던 거예요. 은수는 지민, 우주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열린 결말이 아니라 꽉 막힌, 완벽한 해피엔딩입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이렇게 불행한 드라마 주인공이 또 있었을까. 24일 최종회에서 채널A 드라마 최고 시청률 8.6%(닐슨코리아 수도권 가구 기준)를 기록한 ‘거짓말의 거짓말’의 주인공 ‘지은수’(이유리) 얘기다. 가정폭력, 남편을 죽였다는 누명, 10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감옥에서 겪은 딸과의 생이별, 10년 만에 되찾은 딸의 투병까지. 평범한 일상이 사치였던 은수의 비극에 시청자들은 “제발 은수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응원을 보내며 함께 울고 웃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최근 만난 김지은 작가는 “‘은수에게 제발 기적 같은 일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대본을 썼다”고 했다. “시놉시스에 소설 ‘빨강머리 앤’의 한 구절을 썼어요. ‘엘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는 거니까요’라는 구절이죠. 은수의 삶도 잔혹하리만큼 생각대로 풀리지 않지만 부디 그녀에게 생각지도 못한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어요. 로또에 당첨되는 기적 말고 그녀가 행복해지는 기적이요.” 황폐했던 은수에게 처음으로 온기를 느끼게 해 준 ‘강지민’(연정훈)과 딸 ‘강우주’(고나희)라는 기적이 찾아왔듯 드라마는 김 작가에게도 생각지 못한 기쁨을 안겼다. SBS ‘청담동 스캔들’, MBC ‘전생의 웬수들’ 등 100부작이 넘는 연속극을 집필해 온 그가 처음 사전제작 미니시리즈를 쓰면서다. “상처를 받을까 댓글을 잘 안 봐요. 이번엔 사전제작이라 여유가 생겨서 댓글을 봤는데 ‘묘하게 힐링이 된다’는 반응을 보면서 제가 더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작가는 방안에 박혀 세상과 단절돼 글을 쓰는 외로운 직업이거든요.이번에 댓글을 보며 시청자들과 함께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하철역 10개 거리 정도는 거뜬히 걷는다는 김 작가는 산책하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부녀의 모습을 보고 드라마 소재를 처음 떠올렸다. “잠수교를 걷던 중 우주 또래의 딸과 아버지가 자전거를 옆에 두고 셀카를 찍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어요. 두 사람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한 여성이 있었고요. 아버지와 딸이 있는 프레임 안에 엄마로 추정되는 그 여성을 넣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그 과정을 가장 어렵고 힘들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었죠.” 드라마 전반을 관통하는 감정은 부모의 사랑이다. 은수와 지민은 물론, 은수의 시어머니 ‘김호란’(이일화), 지민의 전 아내 ‘은세미’(임주은)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녀를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내던진다. “드라마 시장의 플랫폼과 소재 변화가 너무 빨라서 고민이 많았어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로마의 휴일’ 같은 고전들을 그 시기에 몰아 봤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본질은 변하지 않는구나’라는 걸 깨달았죠.인간의 본성 중 변치 않는 사랑, 그 중 가장 깊은 사랑의 감정인 모성애를 소재로 정면승부를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배우들의 열연도 드라마의 인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은수는 강인하면서도 여림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어야 했고 지민은 감정이 메마른 은수를 서서히 변화시킬 수 있는, 따뜻하고 신뢰가 가는 배우여야 했다. “이유리 배우와 첫 미팅 때 유리 씨가 얘길 하며 웃는데 그 환한 미소 끝에 이상하게 마음이 짠해지면서 사람을 무장 해제시키는 느낌이 있었어요. ‘지은수가 사람으로 걸어 나오면 유리 씨 같은 느낌이겠구나’를 확신했죠. 연정훈 배우는 ‘막걸리를 와인 잔에 따라 마셔야 해’라고 말해도 그게 맞는 것 같은, 신뢰가 가고 똑똑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배우예요. 그게 강지민과 맞아 떨어졌죠.” 우주 역의 고나희 양은 감독이 보내온 사진을 보고 실제 소리를 질렀을 정도였다. “오디션 날 감독님이 나희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와!’하는 탄성이 나왔어요.나희는 제가 상상했던 복숭아같이 희고 사랑스러운 우주의 이미지를 그대로 갖고 있었거든요. 연기는 어지간한 성인 배우 넘어설 정도로 깊었죠. 2회에서 은수가 우주를 껴안는 장면이 있어요. 나희 양이 놀라움, 두려움, 그 속에서도 피가 당기는 것처럼 이 사람에게 이끌리는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해낸 걸 보고 소름이 돋았죠.” 은수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는 그는 결말에 대해 “완벽한 해피엔딩”이라고 못 박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은수가 아버지의 납골당에 먼저 와 지민과 우주를 기다리고 있어 시청자들 사이에선 은수의 생사 여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붙었다. 은수가 살았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상당수는 “은수가 흰 옷을 입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은 게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해석을 시청자 각각에게 맡긴 열린 결말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작가가 나서서 결말이 뭔지 확실히 밝히는 기자회견(?)을 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올 정도였다. “은수는 아버지 납골당 옆으로 ‘윤 비서’(이원종)의 봉인함을 들여오는 작업을 돕기 위해 먼저 도착해있던 거예요. 은수는 어디에선가 지민, 우주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열린 결말은 없는 꽉 막힌 해피엔딩, 완벽한 해피엔딩입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막장이라고요? 현실에는 더한 사람들도 살고 있지 않을까요?” 24일 마지막 16회가 방영된 채널A 금·토드라마 ‘거짓말의 거짓말’에서 빼앗긴 딸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지은수를 연기한 배우 이유리(40)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6회는 수도권 가구 시청률 8.6%를 기록해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이유리는 “현실에는 막장이 더 많지 않나요. 문을 열어 보진 않았지만 ‘문이 닫힌 곳에서는 더 극한 상황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고 밝혔다. 드라마에서 지은수가 놓인 상황은 시청자의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지은수는 가정폭력을 일삼은 남편을 죽인 혐의로 10년간 옥살이를 했다. 그 과정에서 시어머니에게 빼앗긴, 삶의 유일한 희망인 딸 우주(고나희)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살아간다. “‘저런 여자도 있을까? 제발 행복하게 좀 둬’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시청자분들도 ‘제발 저기서 (지은수를) 구출해 줘’라며 응원하는 마음에서 봐주신 것 같아요.”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 역으로 ‘국민 악녀’라는 별명을 얻는 등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온 이유리는 이번 드라마에서 가슴 저린 모성애를 연기했다. 대본을 읽는 자리에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정을 이입했다. 시청자들 사이에선 ‘믿고 보는 이유리’라는 얘기가 터져나왔다. 이유리는 “대본을 보고 ‘이런 사람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전체 대본 연습 날 너무 슬퍼서 굉장히 창피할 정도로 눈물이 났다. 대본 연습 때 이렇게 울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드라마 초반에는 10년간 떨어져 있다 만난 딸 우주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연기 포인트였다. 처음엔 서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응축됐던 모성애를 분출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줘야 했기 때문. “은수가 딸을 낳자마자 헤어졌기 때문에 처음 이 아이에게 어떻게 모성애를 표현하고 사랑해줘야 하는지도 몰라요. 극 초반에는 캐릭터 형성 차원에서 (나희와) 거리를 두면서 설레는 감정을 느끼려고 노력했어요. 나희가 굉장히 사랑스럽고 여린 꽃잎처럼 순수한 아이여서 연기가 저절로 나왔어요.” 이유리는 (작품에 깔린 각종 복선과 암시를 밝혀내는) 시청자들께서 추리력이 정말 대단하더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최종회를 보시고 나면 ‘아, 끝까지 봐야 더 재미있구나’라는 생각이 드셨을 것”이라고 했다.김재희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