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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 명문인 도쿄대가 학사와 석사 과정을 통합한 ‘5년제 융합형 교육과정’을 신설한다고 요미우리신문 등이 19일 보도했다. 해외 명문대에 비해 ‘국제화에 뒤쳐졌다’는 위기감에 미국 주요 대학이 실시하는 학·석사 통합과정을 벤치마킹해 글로벌 인재를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도쿄대는 2027년부터 문리(文理) 융합형 교육과정인 5년제 ‘컬리지 오브 디자인(College of Design)’를 신설해 100명 가량의 신입생을 선발한다. 서구 대학과 경쟁하기 위해 4월에 학기가 시작되는 일본식이 아닌 9월 학기제로 운영한다. 수업은 모두 영어로 하고 100명 중 절반은 해외 유학생으로 받는다. 기존 도쿄대 학부 학생들도 융합형 교육과정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신설되는 융합과정에서는 문이과 제도에 구애되지 않고 학생 스스로 커리큘럼을 설계할 수 있다. 기존 도쿄대 교수에 더해 뛰어난 연구 실적을 가진 민간 기업 연구원이나 초빙 해외 연구원 등으로 교수진을 구성한다. 5년 중 1년은 기업 인턴십, 유학 등 대학 밖에서 보낼 수 있도록 한다. 학생 선발 방식도 기존 입시전형의 틀에서 벗어날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전형 요강은 올해 중 결정해 공표한다. 요미우리는 “기후변화나 생물 다양성 등 종래 종적으로 나뉜 학문 영역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지구 규모 과제에 대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인재를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전했다.1877년 아시아 최초의 근대 대학으로 설립된 도쿄대는 지난해 영국 대학 평가기관 ‘타임스 고등교육’ 세계 대학 순위 29위에 올랐다. 일본에서는 명실상부한 1위, 아시아 4위이지만 갈수록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다만 국내에서 랭킹이 가장 높은 서울대(62위)는 도쿄대보다 낮다. 더욱이 중국 칭화대, 베이징대, 싱가포르 국립대 등 아시아의 다른 명문 대학이 적극적인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일본 대학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도쿄대의 경우 학부 기준 유학생 비율은 2%에 불과하고 영어 수업도 일부에 그쳐 국제화 수준이 낮다는 평가가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15일 오전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요(菊陽)정. 목가적 풍경의 양배추 밭 너머로 흰색 벽의 거대한 건물이 눈에 확 들어온다. 구마모토 공항에서 차로 15분 걸려 도착한 공장 외벽에는 ‘jasm’이라는 알파벳 네 글자 간판이 걸려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의 일본 현지법인명이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 재건’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지원한 TSMC 구마모토 공장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 정부는 이례적 규모인 4760억 엔(약 4조2300억 원)의 보조금을 투입했다. 24일 준공식에는 모리스 창 TSMC 창업자가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고 대만 국영 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일본에서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일왕(日王) 조카 가코(佳子) 공주 등이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준공식을 9일 앞두고 공장 외부에서는 유리창을 닦고 정문 인근 정원을 손질하는 등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카모토 고헤이(坂本恒平) 기쿠요정 반도체산업지원실 계장은 “준공식은 다음 주지만 이미 공장 가동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완공된 TSMC 구마모토 공장에서는 올해 말부터 카메라, 자동차 등에 쓰일 12·16·22·28nm(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공정 제품을 생산한다. 양산 개시와 동시에 6나노급 생산 2공장이 착공된다. 1공장에 투입된 70억 달러(약 9조3500억 원·정부 보조금 포함)를 더해 총 200억 달러(약 26조7000억 원)가 투자된다. 일본 정부는 TSMC 2공장을 비롯한 해외 반도체 기업 투자 유치에 팔을 걷었다. 기시다 총리는 “(반도체, 이차전지 등) 전략 분야 사업에 필요한 인프라 투자를 전력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 경단련(經團連)은 이를 바탕으로 2027년 자국 설비투자 115조 엔(약 1022조 원) 달성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TSMC ‘메이드 인 저팬’ 반도체 연말 양산… 동시에 2공장 착공 TSMC 구마모토공장 르포인구 4만여명 시골마을 ‘상전벽해’… 1700명 직원중 대만주재원 400명“경제 파급효과 10년간 178조원”TSMC “日 감사”… 기술이전 본격화 TSMC 구마모토 공장 건설은 일본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속도전이었다. 애초 ‘5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지만 3년 앞당겨 2년 안에 마치기로 했다. 이후 365일 24시간 공사로 준공 시점을 2개월 더 줄여 22개월에 끝냈다. 지난해 말 시험 제작에 들어간 걸 고려하면 사실상 20개월 만에 공장을 지은 셈이다. 이미 지난해 말 장비 반입 및 설치 1차 작업이 마무리됐고 시험 생산도 시작했다. 당초 올해 말 양산 계획(12인치 웨이퍼 월 5만5000장)이 예정보다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TSMC 투자는 24일 준공으로 끝나는 단일 프로젝트가 아니다. 올해 말 12∼28나노급 양산과 동시에 6나노급 2공장을 착공해 2027년 2공장 양산이 개시된다. 3공장 건설도 검토 중이다. 차량뿐 아니라 슈퍼컴퓨터 등으로 분야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세계적 수준인 반도체 소재, 장비 생산력에 TSMC 공장 등이 더해지면 일본은 단숨에 세계 정상급 반도체 산업 인프라를 갖추게 된다. ● “100년에 한 번 오는 기회” 기대감 구마모토 TSMC 공장에는 직접 고용 기준 1700여 명이 근무한다. 이 중 400명이 대만에서 온 주재원이다. 기쿠요정 관계자는 “주재원 가족까지 더하면 750명이 왔다”고 전했다. TSMC 및 협력사들은 대만 및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 온 직원을 위해 곳곳에 주택, 기숙사를 마련했다. 아파트 1개 동을 통째로 임차하기도 했다. 공장 인근은 활기가 넘쳤다. 공장에서 차로 5분 떨어진 곳에 들어선 한국식당에는 평일인데도 저녁에 빈자리가 없었다. 오사카에 살다가 지난해 개업했다는 사장은 “요즘 일본에서 가장 돈이 많이 도는 동네다. 아르바이트생을 어제 새로 채용했다”고 전했다. TSMC 공장 인근에는 소니, 도쿄일렉트론, 에어리퀴드 등 반도체 관련 공장이 몰려 있다. 기쿠요정은 인구 4만1000여 명의 시골 마을이지만 왕복 4차선 대로변에는 일본 대형할인점 ‘이온’, 최대 가구 판매장 ‘니토리’ 등이 들어섰다. 2016년 지진 피해를 본 구마모토 공항은 지난해 3월 새 여객터미널이 문을 열었다. 일본 규슈경제조사협회는 TSMC 반도체 공장에 따른 경제 파급효과가 10년간 20조 엔(약 178조 원)을 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바시마 이쿠오(蒲島郁夫) 구마모토현 지사는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지역에 있어서 100년에 한 번 오는 큰 기회”라고 말했다. 구마모토현은 28일 반도체 기업이 대거 참가하는 ‘산업 부흥 엑스포’도 개최한다. ● TSMC “일본은 반도체하기 좋은 곳” TSMC는 공장 건설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일본에 만족했다.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공장을 지은 일본 가시마건설에 특별 표창장을 수여하며 “탁월한 공헌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모리스 창 창업자도 지난해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반도체 제조에 이상적인 곳이다. 토지, 물, 전기가 풍부하고 업무 문화도 좋다”고 평가했다. 기술 이전 및 협력도 본격화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소니 반도체 기술자 200여 명이 지난해 대만 TSMC 공장에 파견돼 제조설비 관리 등에 대한 연수를 진행했다. 소니 측은 TSMC의 인공지능(AI) 활용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TSMC가 대만 가오슝 새 공장 증설과 일본 2공장 건설을 서두르는 것은 미국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평가가 있다. 미 애리조나주 TSMC 2공장 가동은 당초 2026년에서 2028년으로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 미 정부가 보조금 규모를 확정하지 못한 데다, 대만 파견 인력을 놓고 현지 노동자 및 정치권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마모토=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다음달 중 한국을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방안이 일본에서 검토되고 있다고 일본 언론이 14일 보도했다. 민영방송 후지TV는 이날 기시다 총리가 3월 20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리는 미국 메이저리그 공식 개막전에 맞춰 방한해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이날 경기에는 LA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대결한다. 특히 일본 최고 스포츠스타인 LA다저스 소속의 오타니 쇼헤이를 비롯해 다르빗슈 유 등 일본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다. 이 매체는 기시다 총리가 지난해 한일 양국 간에 부활한 셔틀 외교의 일환으로 방한해 윤 대통령과 북한 문제 등에 대해 협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4월 한국 총선이 있어 일본 측은 한일 협력에 적극적인 윤 대통령을 뒷받침하려는 목적이 있다”며 “(일본 측은) 긴밀한 관계를 보이기 위해 방문을 제안하고 있고 상황을 끝까지 지켜본 뒤 최종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대통령실 측도 “현재 추진되고 있는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일본 내에서는 국회 일정을 감안할 때 기시다 총리의 방한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4월에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일본에서는 3월 중·하순에 예산안이 처리되는데 의원내각제 특성상 이때 총리가 국회를 비우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시기인 총선 직전에 결과와 상관없이 논란의 가능성이 있는 한일 정상회담 추진이 양국 모두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지난해 총 7차례 정상회담을 하면서 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해 온 양 정상이 메이저리그 경기를 계기로 다시 만나 대북 대응 및 협력 공고화를 논의할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에서 인간에게 ‘장기이식’이 가능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돼지가 태어났다. 올해 돼지 장기를 원숭이에게 이식하는 수술까지 성공하면 세계 의학계의 숙원이던 ‘이종(異種) 장기이식’이 새로운 도약을 맞을 수 있다. 일본 메이지(明治)대 학내 벤처기업 ‘포르메드텍’은 13일 “인체에 장기를 이식해도 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돼지 3마리가 태어났다”고 밝혔다. 태어난 아기 돼지는 현재 건강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기업은 미국 바이오기업 ‘이제네시스’가 개발한 이식용 돼지 세포를 수입해 연구를 진행했다. 먼저 이 세포는 이식 시 거부 반응이 나지 않도록 유전자 10개가 변형된 상태였다. 이후 세포 핵을 주입한 난자를 암컷 돼지에게 주입해 출산까지 성공했다. 가고시마대와 교토부립의대는 이번에 탄생한 돼지의 신장을 이르면 올여름 원숭이에게 이식해 안전성을 확인하는 연구를 진행할 방침이다. 내년 가을쯤엔 중증 신부전증 및 간부전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 실험도 진행할 예정이다. 나가시마 히로시(長嶋比呂志) 메이지대 교수(생물학)는 요미우리신문에 “하루라도 빨리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법을 전하고 싶다”며 “위생 관리 등 전반적인 논의도 본격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포르메드텍에 유전자 변형 돼지 세포를 제공한 이제네시스는 지난해 “유전자 변형 돼지 신장을 원숭이에게 이식해 최장 2년 이상 생존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달에는 “돼지 간을 뇌사에 빠진 사람의 몸에 튜브로 연결해 3일간 혈액 순환을 시켰다”고 밝혔다. 동물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이종 장기이식’은 과학계가 오랫동안 연구해 온 과제다. 하지만 이식 뒤에 발생하는 거부 반응을 해결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아왔다. 2010년대 들어 유전자를 효율적으로 변형시키는 ‘게놈 편집’ 기술이 등장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았지만, 아직 확실하게 성공한 사례는 나오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2022년 메릴랜드대 의료센터에서 시한부 심장질환자가 세계 최초로 유전자를 조작한 돼지 심장을 이식받았으나 2개월 만에 숨을 거뒀다. 지난해에도 같은 대학에서 비슷한 수술이 진행됐지만, 결국 환자는 40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최근 일본 주식시장이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평균주가가 13일 장중 3만8000엔 선을 돌파했다. 1989년 12월 기록한 역대 최고치(3만8915엔)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도쿄증권거래소에서 닛케이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066.55엔(2.89%) 오른 3만7963.97엔에 장을 마쳤다. 상승 폭은 2020년 3월 이후 3년 11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날 코스피 상승 폭(1.12%)의 배가 넘는다. 장중 한때 3만8000엔 선도 넘어섰다. 대표 반도체 기업 도쿄일렉트론은 이날 13.33% 뛰었다. 최근 일본 주식시장의 상승세는 ‘멜트업(melt up·단기 과열 국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파르다. 거래액 및 시가총액 상위 500종목을 대상으로 산출하는 닛케이500 평균주가(3281.80엔)는 이미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닛케이지수는 이 중 상위 225종목을 대상으로 한다. 이 같은 오름세의 원인으로 우선 미국 증시의 상승세가 꼽힌다. 1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 또한 0.33%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지난해 4분기(10∼12월)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연율 3.3%를 기록해 월가 전망치(2.0%)를 크게 웃돌았다. 미 경제의 연착륙 기대감이 커지면서 일본 증시 또한 이 덕을 보고 있다. 부동산시장 부실 등의 우려로 중국 주식시장을 이탈한 외국인투자가들이 대거 일본으로 몰린 것 역시 주가 상승을 자극했다. 최근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조만간 마이너스(―) 기준금리 정책을 해제한다고 해도 당분간은 금융완화 정책을 고수할 것이라고 밝힌 것 역시 증시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수출 기업에 호재인 엔저 장기화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달러당 149.50엔에 거래됐다. 많은 전문가들은 닛케이지수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여기고 있다. SMBC닛코증권에 따르면 실적 발표를 마친 상장사 957곳 중 56%인 537개사에서 순이익이 증가했다. 이데 신고(井出真吾)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 주식 전략가는 “거품 경제 시기(1980년대)의 주가는 기업 실적으로 계산한 적정 수준보다 4배 이상 높았지만 현재는 적정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13일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도 일제히 올랐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12% 오른 2,649.64, 코스닥은 2.25% 오른 845.15에 거래를 마쳤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지난주 기자 통장에 현금 12만 엔(약 108만 원)이 입금됐다. 광역 지방자치단체인 도쿄도(都)가 보내준 ‘018 서포터’라는 이름의 육아 지원금이다. 도쿄에 거주하면서 0∼18세 아이를 키우면 올해부터 아이 1명당 월 5000엔을 준다. 두 아이를 키우니 월 1만 엔, 1년 치 12만 엔이 한 번에 통장에 꽂혔다. 도쿄 지원금에 소득, 재산 기준은 없다. 도쿄에 주소를 둔 1400만 명 중 200만 명이 이 돈을 받았다. 외국인을 배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일본어를 읽을 줄 몰라 못 받는 외국인이 있을까 봐 한국어, 영어, 중국어 안내문을 인터넷에 올렸다. 도쿄 논리는 단순하다. 도쿄에 사는 어린이 교육비가 지방보다 1인당 월 8000엔 정도 많이 드니 그 돈 일부를 도쿄도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지원금을 준다는 안내문이 왔을 때 신청을 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월 5만 원도 안 되는 돈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도쿄도지사 선거(7월 4일)를 앞둔 포퓰리즘 정책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아이 2명분의 1년 치 지원금이 연초에 목돈으로 한꺼번에 통장에 꽂히니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 덕에 100만 원 넘는 돈이 생겼다’는 생각에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달리 보였다. 아이 때문에 받는 돈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일본 정부가 지급하는 4개월 치 아동수당이 이달 말 지자체를 통해 들어온다. 3세 미만은 월 1만5000엔, 3세∼중학생은 월 1만 엔인 아동수당 4개월 치를 몰아 받는다. 3세 미만 아이가 둘이라면 한 달도 안 돼 또 100만 원 가깝게 받는다는 뜻이다. 올 4월 이후에는 일본 정부 지원금도 도쿄처럼 소득 제한이 폐지되고 고등학생까지 지급한다. 셋째부터는 기존 월 1만 엔에서 3만 엔으로 3배로 오른다. 일부 기초단체는 더 얹어준다. 도쿄 중심지 미나토(港)구는 자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0세∼고등학생에게 5만 엔어치 상품권을 지급한다. 이 정도면 ‘묻고 더블로 가’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랏빚이 세계 최대라는데도 적어도 저출산 지출에 언론, 시민단체 등이 제기하는 우려는 크지 않다. 향후 5년간 방위비를 2배로 늘리겠다는 방위비 확충을 두고는 야당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신중한 목소리가 있었지만, 육아 지원금 지급만큼은 별다른 이견을 찾기 어렵다. ‘돌다리를 두들긴 뒤 건너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신중한 일본이지만, 저출산 정책에 있어서는 한국보다 훨씬 빠르고 적극적이다. 한국에서 저출산 정책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기획재정부 중 어디가 주무 부처인지조차 불분명하지만, 일본은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어린이 정책 총괄 기관인 ‘어린이 가정청’을 지난해 신설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직접 주재하는 ‘어린이 미래 전략 회의’에서는 회의를 열 때마다 현금 지급이든 육아휴직 확대든 뭐라도 내놓는다. 최근 저출산 재원 조성을 위해 의료보험료를 월 500엔(약 4500원)가량 추가 징수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해 논란이 있지만,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논의조차 못 하는 한국보다는 몇 걸음 앞서 있다. 한국은 합계출산율 0.73명의 소멸 위기에 처했는데도 저출산 정책 마련에 있어서는 한가할 정도로 위기감이 없다. 가장 적은 돈을 들이고 출산율을 높이는 방법, 정교한 정책 설계로 저출산을 해결하는 정교한 수단을 찾는다고 한다면 애당초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괜찮은 외국 정책은 뭐라도 일단 검토한 뒤 적용해 볼 때다. 아이 1명에 매달 100만 원을 주겠다는 정도의 정책이 과한 예산 낭비로 보인다면 연간 신생아가 20만 명을 밑도는 저출산 반전 모멘텀을 찾긴 어렵다. 속도감 있는 대담한 전략은 한국의 전매특허 아닌가.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

최근 일본 주식시장이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평균주가가 13일 장중 3만8000엔 선을 돌파했다. 1989년 12월 기록한 역대 최고치(3만8915엔)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도쿄증권거래소에서 닛케이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066.55엔(2.89%) 오른 3만7963.97엔에 장을 마쳤다. 상승폭은 2020년 3월 이후 3년 11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날 코스피 상승폭(1.12%)의 배가 넘는다. 장중 한 때 3만8000선도 넘어섰다. 대표 반도체 기업 도쿄일렉트론은 이날 13.33% 뛰었다. 영국 반도체 설계사 ‘암(ARM)’을 소유한 소프트뱅크그룹 주가도 6.27% 올랐다. 최근 일본 주식시장의 상승세는 ‘멜트업(melt up·단기 과열 국면)’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파르다. 거래액 및 시가총액 상위 500종목을 대상으로 산출하는 닛케이500 평균주가(3281.80엔)는 이미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닛케이지수는 이중 상위 225종목을 대상으로 한다. 이 같은 오름세의 원인으로 우선 미국 증시의 상승세가 꼽힌다. 1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 또한 전0.33%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지난해 4분기(10~12월)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연율 3.3%을 기록해 월가 전망치(2.0%)를 크게 웃돌았다. 미 경제의 연착륙 기대감이 커지면서 일본 증시 또한 이 덕을 보고 있다. 부동산시장 부실 등의 우려로 중국 주식시장을 이탈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일본으로 몰린 것 역시 주가 상승을 자극했다.최근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조만간 마이너스(―) 기준금리 정책을 해제한다 해도 당분간은 금융완화 정책을 고수할 것이라고 밝힌 것 역시 증시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긴축에 대한 우려가 잦아들면서 증시로 향하는 투자자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된 것이다. 수출 기업에 호재인 엔저 장기화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달러당 149.50엔에 거래됐다. 많은 전문가들은 닛케이지수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여기고 있다. SMBC닛코증권에 따르면 실적 발표를 마친 상장사 957곳 중 56%인 537개사에서 순이익이 증가했다. 이데 신고(井出真吾)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 주식 전략가는 “거품 경제 시기(1980년대)의 주가는 기업 실적으로 계산한 적정 수준보다 4배 이상 높았지만 현재는 적정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13일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도 일제히 올랐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12% 오른 2,649.64, 코스닥은 2.25% 오른 845.15에 거래를 마쳤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일본 도쿄 시나가와구에 있는 편의점 ‘로손 동시나가와4초메점’에는 일반 상품 판매 코너 옆에 약국이 설치돼 있다. 진통제나 반창고 같은 일반의약품은 물론이고 처방전을 갖고 와 조제약도 지을 수 있다. 로손 측은 이를 “헬스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건강 스테이션’으로 진화한 편의점”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편의점은 요양보호사가 노인 요양 상담도 해주고 있다. 로손은 건강 서비스에 특화된 이런 점포를 ‘케어 로손’으로 지정해 운영한다.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9.1%인 초고령 국가인 일본에서 편의점이 ‘고령사회 인프라’로 떠오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 2위 이동통신사 KDDI가 일본 3대 편의점 체인 중 하나인 로손에 4971억 엔(약 4조4400억 원)을 투자한 것에 대해 “고령화, 일손 부족이란 사회적 현상이 쇼핑 스타일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확신한 KDDI가 일본 고령 소비자에게 베팅했다”고 짚었다. 8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KDDI는 4월에 주식공개매수(TOB)를 단행해 로손 지분을 2.1%에서 50%까지 높인다. 로손 모회사 미쓰비시상사와 50%씩 지분을 갖고 공동 경영을 한다. 소액 주주가 사라지기 때문에 주식시장에서는 상장 폐지된다. KDDI는 “저출산 고령화 추세가 가속화되면서 전국에 오프라인 점포를 가진 편의점이 기반시설로서 그 역할이 점점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년층은 상대적으로 이동 반경이 작고 서비스별로 세분화된 전문 점포를 찾기 어려워 가까운 편의점에서 ‘원스톱 서비스’를 받고 싶은 욕구가 클 것이라는 판단이다. 로손 측은 지분매수를 발표한 6일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고령자를 겨냥한 다양한 서비스를 추가적으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스마트폰 사용법 안내나 복약 지도, 금융 상담 등을 위한 창구도 설치하고 드론을 이용한 원격 배송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 편의점 업계에서 고령화는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지만, 또 다른 문제도 낳고 있어 ‘양날의 검’으로 여겨진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편의점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편의점 업계 2위인 패밀리마트는 최근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로봇 직원’ 도입에 나섰다. 청소는 물론이고 AI 카메라를 통해 부족한 상품을 파악해 발주도 할 수 있다고 한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평균주가가 또 34년 만에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해도 금융완화를 지속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커졌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사상 최고치 기록을 경신한 것도 일본 증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8일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닛케이지수는 전날보다 2.06% 오른 3만6863.28엔에 장을 마쳤다. 이는 일본 거품경제가 꺼지기 시작한 1990년 2월 이후 34년 만에 최고치다. 이날 영국 반도체 설계 업체 ARM이 예상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발표하면서 2016년 이곳을 인수한 소프트뱅크 그룹 주가가 11.06%나 상승했다. 반도체 장비업체 어드밴테스트(7.56%), 일본 시가총액 1위인 도요타자동차(2.76%) 등 대기업 주가도 크게 올랐다. 우치다 신이치(内田眞一) 일본은행 부총재는 이날 강연회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하더라도 이후 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고 완화적 금융 환경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은행 관계자가 마이너스 금리 해제 후 금융정책에 대해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시장에서는 일본 금융당국이 돈줄을 조이는 긴축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주가가 탄력을 받았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0.41%(10.74포인트) 오른 2,620.32에 마감하며 연 이틀 상승세를 이어갔다. 미국 증시 훈풍 속에 외국인과 기관투자가가 각각 4113억 원, 3048억 원 순매수하며 지수 상승을 견인했다. 코스닥지수도 900개 넘는 종목이 오르며 1.81%(14.66포인트) 상승한 826.58에 거래를 마쳤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일본 도쿄 시나가와구에 있는 편의점 ‘로손 동시나가와4초메점’에는 일반 상품 판매 코너 옆에 약국이 설치돼 있다. 진통제나 반창고 같은 일반의약품은 물론 처방전을 갖고 와 조제약도 지을 수 있다.로손 측은 이를 “헬스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건강 스테이션’으로 진화한 편의점”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편의점은 요양보호사가 노인 요양 상담도 해주고 있다. 로손은 건강 서비스에 특화된 이런 점포를 ‘케어 로손’으로 지정해 운영한다.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9.1%인 초고령 국가인 일본에서 편의점이 ‘고령사회 인프라’로 떠오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 2위 이동통신사 KDDI는 일본 3대 편의점 체인 중 하나인 로손에 4971억 엔(약 4조4400억 원)을 투자한 것에 대해 “고령화, 일손 부족이란 사회적 현상이 쇼핑 스타일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확신한 KDDI가 일본 고령 소비자에게 베팅했다”고 짚었다. 8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KDDI는 4월에 주식공개매수(TOB)를 단행해 로손 지분을 2.1%에서 50%까지 높인다. 로손 모회사 미쓰비시상사와 50%씩 지분을 갖고 공동 경영을 한다. 소액 주주가 사라지기 때문에 주식시장에서는 상장 폐지된다. KDDI는 “저출산 고령화 추세가 가속화되면서 전국에 오프라인 점포를 가진 편의점이 기반시설로서 그 역할이 점점 커질 것”이라 내다봤다. 노년층은 상대적으로 이동 반경이 작고 서비스별로 세분화된 전문 점포를 찾기 어려워, 가까운 편의점에서 ‘원스톱 서비스’를 받고 싶은 욕구가 클 것이라는 판단이다.로손 측은 지분매수를 발표한 6일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고령자를 겨냥한 다양한 서비스를 추가적으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스마트폰 사용법 안내나 복약 지도, 금융 상담 등을 위한 창구도 설치하고 드론을 이용한 원격 배송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 편의점 업계에서 고령화는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지만, 또 다른 문제도 낳고 있어 ‘양날의 검’으로 여겨진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편의점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편의점 업계 2위인 패밀리마트는 최근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로봇 직원’ 도입에 나섰다. 청소는 물론 AI 카메라를 통해 부족한 상품을 파악해 발주도 할 수 있다고 한다. 패밀리마트 측은 “일손 부족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앞으로는 사람이 모든 업무를 해낼 수 없다”며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일본 ‘아시아 여성기금’ 설립에 기여한 아카마쓰 료코(赤松良子) 전 문부상이 별세했다. 향년 94세. 요코 전 문부상은 도쿄대 법학부를 나와 노동성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노동성 부인국장, 총리 부인문제 담당 실장 등을 역임하며 여성 정책 행정을 줄곧 맡았다. 1987년 남녀고용 기회균등법 제정을 주도해 ‘균등법의 어머니’라는 평가를 받았다. 남녀 차별 금지, 여성 사회 진출 촉진 등을 담은 이 법은 1988년 한국에서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도 영향을 줬다. 자민당이 처음 정권을 잃었던 1993년 비자민 연립내각에서 문부상으로 입각했다.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그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에도 적극 나섰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가 1995년 위안부 피해자에 사과하면서 조성한 아시아 여성기금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공식 주체가 민간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위안부 지원에 일본 정부가 처음 나섰다는 의미가 있다. 그를 비롯한 발기인 16명은 당시 일본 대국민 호소문에서 “일본 정부 사죄와 함께 위안부 제도 희생자에 대해서도 전국민적 규모의 모금에 의한 보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신념 하에 기금 발기인이 되었다”고 밝혔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너무 떨지 말고. 간바레(힘내).”1일 오전 일본 도쿄 아라카와구 가이세이(開成)중학교 앞. 아침 일찍 부모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은 다들 긴장한 표정이었다. 아빠 엄마는 6학년이지만 아기 티를 벗지 못한 자녀들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기며 학교로 들여보냈다. 한 엄마는 아이가 이미 보이지 않는데도 한참 허공을 보며 열심히 기도했다. 아이의 뒷모습을 휴대전화로 찍는 아빠의 표정에선 만감이 교차했다.》 이날 일본에선 가이세이중을 비롯한 주요 사립 중학교들이 입학시험을 치르며, 중학 입시 전쟁이 본격 시작됐다. 1969년 중학 입시가 폐지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지금도 사립은 입시를 치른다. 과거엔 일부 ‘치맛바람’으로 국한됐지만,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과열 양상까지 나타난다. 한국 대입 뺨치는 뜨거운 중학 입시 열기에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교육 학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중학 입시 성공이 명문대 보장” 이날 입학시험을 친 가이세이중은 자타 공인 일본 최고 중학교로 꼽힌다. 일본의 주요 명문 사립학교는 중고교를 합쳐 6년제로 통합한 ‘중고일관교(中高一貫校)’로 운영한다. 가이세이는 고교에서 100명을 추가로 뽑지만, 중학교 입학생 300명은 고3까지 그대로 간다. 고교 신입생을 아예 안 뽑는 일관교도 많다. 다른 학교에서는 한 명도 나오기 어렵다는 도쿄대 합격자가 가이세이에서 지난해 146명이 나왔다. 42년 연속 전국 1위다. 그러다 보니 중학 입시는 명문 학벌로 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계단’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좋은 중학교에서 좋은 고등학교를 거쳐 명문대 진학으로 이어지는 꽃길을 걸을 수 있다. 일부 대학 부속 중고교에는 대학으로 갈 수 있는 특별전형 코스까지 있다. 와세다중이나 게이오중을 들어가 와세다고, 게이오고를 거친 뒤 와세다대, 게이오대에 진학하는 방식이다. 일본 전체 중학교에서 사립 중학교 학생 비중은 7.7%다. 나머지는 대다수가 추첨으로 집 근처 공립 중학교에 간다. 언뜻 사립이 적어 보이지만 명문교가 몰린 도쿄만 놓고 보면 25.5%에 이른다. 진학률 차이는 더 크다. 도쿄 중심지로 도쿄대 등 명문 대학이 몰려 학구열이 높은 분쿄구는 초등학교 졸업생 49.5%가 사립중에 진학했다. 추오구(43.1%), 미나토구(42.3%) 등 집값 비싸고 교육 환경 좋은 이른바 ‘도쿄 8학군’ 지역의 사립중 진학률 역시 다른 곳보다 몇 배가 높다. 여기에 대입 전형 다양화 등 일본도 대입 제도가 개혁된 것도 사립학교 인기를 부추긴 원인 중 하나다. 일본도 저출산 장기화로 학생 수는 갈수록 줄어든다. 하지만 중학 입시에 도전하는 초등학생은 되레 늘고 있다. 입시정보 업체 ‘수도권 모시센터’에 따르면 2014년 4만3000명 수준이던 중학 입시 수험자는 지난해 5만2600명으로 증가했다. 센터는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영어나 정보기술(IT) 등 전문성 교육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는 현 상황을 사립학교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성적이 좋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사립학교들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거나 드론, 3차원(3D) 프린터를 이용한 과목을 개설하기도 한다. 도쿄에 있지만 캐나다에서 ‘해외학교’ 인가를 받아 일본과 캐나다 중학교 졸업 자격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학교도 있다. 올해 중학 입학시험을 치는 도쿄의 초등 6학년 엄마인 마쓰모토 씨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몰린 학교에서 서로 경쟁하며 자극 받으면 실력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예전 같진 않지만 잘나가는 동창들과 탄탄한 인맥도 구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공교육 방치-교육 학대 논란도 일본 언론은 해마다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 한국의 입시 열기를 대대적으로 보도해왔다. 고사장 앞에서 후배들이 목이 터져라 응원하거나 경찰차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입실하는 모습은 일본 TV에서 자주 소개돼 일본인들도 익숙하다. 이런 요란한 풍경은 없지만, 일본의 중학교 입시 열기는 한국 대입 못지않다. 한 입시전문가는 “한국 초등 사교육은 멀리는 대입, 가깝게는 특수목적고 등의 입시를 준비하는 ‘사전 준비’에 가깝다면, 일본 중학 입시는 12∼13세 때 인생의 큰 진로가 결정되는 ‘본선’”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성적순으로 명문중에 가고 이 아이들이 수월성 교육을 받아 명문대까지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 중학교 입시는 평생의 학벌을 좌우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 일본에선 “대학 입시는 중학 입시의 패자부활전”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중학교 입시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분위기다. 입학 시험은 초등 6학년 졸업에 맞춰 치르지만, 시험 준비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사실상 시작된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대 주부는 “3학년부터 시작하는 게 보통이고, 4학년부터 시작하면 늦었다고 한다. 5학년 때 시작하기에는 무리”라고 귀띔했다. 유명 입시학원 체인인 E사의 중학 입시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초1·2 대상 ‘주니어 코스’부터 초3·4 ‘중입 준비 코스’, 초5·6의 학교 수준별 입시 대책 코스 등이 있다. 고학년 주 3회 수업 기준 학원비는 월 6만 엔(약 54만 원) 안팎이다. 최대 월 20만 엔(약 180만 원)이 넘는 일대일 강습도 인기다. 학원 인근은 오후 9시 전후 끝나는 수업에 맞춰 자녀를 데리러 온 학부모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최근 자녀를 중학교에 보냈다는 40대 신문기자는 “초등학생 때인 1980년대에는 한 반에 2, 3명 정도가 입시 준비를 했지만 요즘엔 2, 3명을 제외한 대부분이 입시 준비를 한다”며 “어렸을 때는 중학 입시를 준비하는 애들이 신기했는데, 지금은 학원에 안 다니는 애들을 이상하게 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도쿄 중심 지역에서 입시로 가는 사립중 진학률이 40%대라는 건 실제 입시 준비생은 2배가량으로 많다는 뜻이다. 중학교 입시가 지나치게 과열돼 사회 문제로 번지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최근 도쿄 주요 초등학교의 6학년 수업 파행 운영이 대표적 사례다. 사립 진학률이 높은 도쿄 중심 초등학교는 1월에 학급 학생 3분의 1가량이 입시 준비나 컨디션 관리 등을 이유로 결석했다. 주요 중학교가 시험을 치른 이달 초에는 절반가량이 학교를 빠진 곳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는 최소 수업일수마저 채우지 않고 학원이나 개인과외로 향하는 경우도 많았다. 학교에서 ‘코로나 결석’으로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문부과학성이 2021년 국회 답변을 통해 각 지방자치단체에 “(입시 명목의 결석은) 의무교육 취지와 어긋난다. 등교가 원칙”이라 촉구했지만, 그다지 소용은 없었다. 최근엔 일본에서 이런 중학교 입시 전쟁을 두고 ‘교육 학대’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아사히신문이 최근 보도한 실태에 따르면 공부를 강요한 부모가 초3 자녀를 의자에 묶어둔 사례가 있다. 아이에게 “열심히 하지 않으면 부모 노릇을 그만두겠다”고 폭언하거나, 입시 스트레스를 받은 초등 5학년 어린이가 원형 탈모증에 시달린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9월 서부 사가현에선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에게 맞으며 폭언을 듣고 공부했던 학생이 국립대에 입학한 뒤 “복수하겠다”며 부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만든 사건도 발생했다. 피의자는 1심에서 징역 24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

“너무 떨지 말고. 간바레(힘내).”1일 오전 일본 도쿄 아라카와구 가이세이(開成) 중학교 앞. 아침 일찍 부모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은 다들 긴장한 표정이었다. 아빠 엄마는 6학년이지만 애기 티를 벗지 못한 자녀들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기며 학교로 들여보냈다. 한 엄마는 아이가 이미 보이지 않는데도 한참 허공을 보며 열심히 기도했다. 아이의 뒷모습을 휴대폰으로 찍는 아빠의 표정에선 만감이 교차했다. 이날 일본에선 가이세이중을 비롯한 주요 사립 중학교들이 입학시험을 치르며, 중학 입시 전쟁이 본격 시작됐다. 1969년 중학 입시가 폐지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지금도 사립은 입시를 치른다. 과거엔 일부 ‘치맛바람’으로 국한됐지만,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과열 양상까지 나타난다. 한국 대입 뺨치는 뜨거운 중학 입시 열기에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교육 학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중학 입시 성공이 명문대 보장” 이날 입학시험을 친 도쿄 가이세이중은 자타 공인 일본 최고 중학교로 꼽힌다. 일본의 주요 명문 사립학교는 중·고교를 합쳐 6년제로 통합한 ‘중고 일관교(中高一貫校)’로 운영한다. 가이세이는 고교에서 100명을 추가로 뽑지만, 중학교 입학생 300명은 고3까지 그대로 간다. 고교 신입생을 아예 안 뽑는 일관교도 많다. 다른 학교에서는 1명도 나오기 어렵다는 도쿄대 합격자가 가이세이에서 지난해 146명이 나왔다. 42년 연속 전국 1위다. 그러다 보니 중학 입시는 명문 학벌로 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계단’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좋은 중학교에서 좋은 고등학교를 거쳐 명문대 진학으로 이어지는 꽃길을 탈 수 있다. 일부 대학 부속 중·고교에는 대학으로 갈 수 있는 특별전형 코스까지 있다. 와세다중이나 게이오중을 들어가 와세다고, 게이오고를 거친 뒤 와세다대, 게이오대에 진학하는 방식이다. 일본 전체 중학교에서 사립 중학교 학생 비중은 7.7%이다. 나머지는 대다수가 추첨으로 집 근처 공립 중학교에 간다. 언뜻 사립이 적어 보이지만 명문교가 몰린 도쿄만 놓고 보면 25.5%에 이른다. 진학률 차이는 더 크다. 도쿄 중심지로 도쿄대 등 명문 대학이 몰려 학구열이 높은 분쿄구는 초등학교 졸업생 49.5%가 사립중에 진학했다. 츄오구(43.1%), 미나토구(42.3%) 등 집값 비싸고 교육 환경 좋은 이른바 ‘도쿄 8학군’ 지역의 사립중 진학률 역시 다른 곳보다 몇 배가 높다. 여기에 대입 전형 다양화 등 일본도 대입 제도가 개혁된 것도 사립학교 인기를 부추긴 원인 중 하나다.일본도 저출산 장기화로 학생 수는 갈수록 줄어든다. 하지만 중학 입시에 도전하는 초등학생은 되레 늘고 있다. 입시정보 업체 ‘수도권 모시센터’에 따르면 2014년 4만3000명 수준이던 중학 입시 수험자는 지난해 5만2600명으로 증가했다. 센터는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영어나 정보기술(IT) 등 전문성 교육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는 현 상황을 사립학교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성적이 좋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사립학교들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거나 드론, 3D프린터를 이용한 과목을 개설하기도 한다. 도쿄에 있지만 캐나다에서 ‘해외학교’ 인가를 받아 일본과 캐나다 중학교 졸업 자격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학교도 있다. 올해 중학 입학시험을 치는 도쿄의 초등 6학년 엄마인 마쓰모토 씨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몰린 학교에서 서로 경쟁하며 자극받으면 실력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예전같진 않지만 잘나가는 동창들과 탄탄한 인맥도 구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공교육 방치-교육 학대 논란도일본 언론은 해마다 한국의 수학능력시험 당일 한국의 입시 열기를 대대적으로 보도해왔다. 고사장 앞에서 후배들이 목이 터져라 응원하거나 경찰차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입실하는 모습은 일본 TV에서 자주 소개돼 일본인들도 익숙하다. 이런 요란한 풍경은 없지만, 일본의 중학교 입시 열기는 한국 대입 못지않다. 한 입시전문가는 “한국 초등 사교육은 멀리는 대입, 가깝게는 특수목적고 등의 입시를 준비하는 ‘사전 준비’에 가깝다면, 일본 중학 입시는 12~13세 때 인생의 큰 진로가 결정되는 ‘본선’”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성적순으로 명문중에 가고 이 아이들이 수월성 교육을 받아 명문대까지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 중학교 입시는 평생의 학벌을 좌우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 일본에선 “대학 입시는 중학 입시의 패자부활전”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중학교 입시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분위기다. 입시 시험은 초등 6학년 졸업에 맞춰 치르지만, 시험 준비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사실상 시작된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대 주부는 “3학년부터 시작하는 게 보통이고, 4학년부터 시작하면 늦었다고 한다. 5학년에 시작하기는 무리”라고 귀띔했다. 유명 입시학원 체인인 E사의 중학 입시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초1·2 대상 ‘주니어 코스’부터 초3·4 ‘중입 준비 코스’, 초5·6의 학교 수준별 입시 대책 코스 등이 있다. 고학년 주 3회 수업 기준 학원비는 월 6만 엔(54만 원) 안팎이다. 최대 월 20만 엔(180만 원)이 넘는 1대1 강습도 인기다. 학원 인근은 오후 9시 전후 끝나는 수업에 맞춰 자녀를 데리러 온 학부모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최근 자녀를 중학교에 보냈다는 40대 신문기자는 “초등학생 때인 1980년대에는 한 반에 2, 3명 정도가 입시 준비를 했지만 요즘엔 2, 3명을 제외한 대부분이 입시 준비를 한다”며 “어렸을 때는 중학 입시를 준비하는 애들이 신기했는데, 지금은 학원에 안 다니는 애들을 이상하게 보는 분위기”라 말했다. 도쿄 중심 지역에서 입시로 가는 사립중 진학률이 40%대라는 건 실제 입시 준비생은 2배가량으로 많다는 뜻이다. 중학교 입시가 지나치게 과열돼 사회적 문제로 번지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최근 도쿄 주요 초등학교의 6학년 수업 파행 운영이 대표적 사례다. 사립 진학률이 높은 도쿄 중심 초등학교는 1월에 학급 학생 3분의 1가량이 입시 준비나 컨디션 관리 등을 이유로 결석했다. 주요 중학교가 시험을 치른 이달 초에는 절반가량이 학교를 빠진 곳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는 최소 수업일수마저 채우지 않고 학원이나 개인과외로 향하는 경우도 많았다. 학교에서 ‘코로나 결석’으로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문부과학성이 2021년 국회 답변을 통해 각 지방자치단체에 “(입시 명목의 결석은) 의무교육 취지와 어긋난다. 등교가 원칙”이라 촉구했지만, 그다지 소용은 없었다. 최근엔 일본에서 이런 중학교 입시 전쟁을 두고 ‘교육 학대’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아사히신문이 최근 보도한 실태에 따르면 공부를 강요한 부모가 초3 자녀를 의자에 묶어둔 사례가 있다. 아이에게 “열심히 하지 않으면 부모 노릇을 그만두겠다”고 폭언하거나, 입시 스트레스를 받은 초등 5학년 어린이가 원형 탈모증에 시달린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9월 서부 사가현에선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에게 맞으며 폭언을 듣고 공부했던 학생이 국립대에 입학한 뒤 “복수하겠다”며 부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만든 사건도 발생했다. 피의자는 1심에서 징역 24년형을 선고받았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2022년 피살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어머니로 일 보수정치계의 ‘대모’로 불렸던 아베 요코(安倍洋子) 씨가 4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 일본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고인은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용의자였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장녀다. 신문기자였던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 전 외상과 1951년 결혼해 아들 셋을 낳았다. 남편은 결혼 뒤 기시 전 총리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남편이 별세한 뒤 차남인 아베 전 총리가 지역구를 물려받고 정치적으로 성장한 데는 고인의 공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출간한 자서전에는 “아들을 정치에 입문시킨 뒤 자민당 주요 실력자들을 찾아가 ‘잘 키워달라’며 고개 숙이고 인사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기시-아베 가문은 지금까지 총리 3명과 장관 2명을 배출해, 일본에선 고인을 ‘보수파의 갓 마더(대모)’라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고인은 아들이 총리일 당시 정치적 조언을 건네고 아베파 의원 부인 모임을 주최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만의 유력 정치인들을 자택에 초청해 대접하기도 했다고 한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미국 대표 철강기업 US스틸을 일본 기업이 사들인다고 발표한 가운데, 11월 미 대선에서 경쟁하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모두 반대 의사를 밝혔다. 경제 안보와 일자리를 두고는 중국은 물론이고 핵심 동맹국인 일본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한 것으로, US스틸 인수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5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미국철강노동조합(USW)은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인수 반대를) 지지한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밝혔다. 노조 측은 “(일본제철의 인수는) 조합원과 국가의 이익을 위험에 빠트린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우리를 밀어주는다는 개인적 확약을 얻어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지난해 말 US스틸 인수에 대해 “조사 결과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적절한 행동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다소 모호한 태도를 보였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반대 입장을 밝힌 셈이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일본의 인수를) 즉시, 무조건 막을 것”이라며 “US스틸이 일본에 팔리는 건 너무 끔찍하다. 우리는 일자리를 미국으로 되찾아오길 원한다”고 말했다. 야당 공화당 대선 후보로 유력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US스틸 인수를 공개 반대하자 노조를 의식해 바이든 대통령의 태도가 바뀐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에서는 미 철강 산업의 상징이자 122년 역사의 US스틸이 일본에 팔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철강 산업 기반 약화, 기술 유출 등도 우려하고 있다. US스틸 공장이 있는 미시간주와 펜실베니아주는 이번 미 대선의 격전지로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 이 지역 노동자의 지지를 얻는 것에 사활을 걸고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제강점기 일본에 끌려간 한인 136명이 희생된 조세이(長生) 탄광 사고 82주년 추도식이 3일 열렸다.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은 이날 야마구치현 우베에서 한국 유족회, 일본 시민, 한국 정부 관계자 등 1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을 가졌다. 조세이 탄광 사고는 1942년 2월 우베 바닷가 해저 갱도의 누수로 발생했다. 당시에도 법으로 채탄이 금지된 위험 지역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석탄이 부족했던 일본은 조선인 등을 동원해 무리한 작업을 종용했다. 결국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한인과 일본인 47명 등 최소 183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희생자 수습은커녕 진상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유족회 등이 진상 규명, 유골 발굴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 측은 “사고 위치 및 깊이가 분명하지 않다”며 협조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추도식에도 별다른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임시흥 주히로시마 한국총영사는 “많은 일본 시민이 자발적으로 희생자를 생각하고 있다”며 일본 시민사회의 관심과 협조를 당부했다. 이어 “한일 양국 시민의 따뜻한 관심 속에 해저의 유골이 햇빛을 볼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고 강조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올해는 반도체주와 화학주가 유망합니다. 주주에게 배당을 많이 하는 종목에 관심을 가져 보세요.” 일본 도쿄에 있는 한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는 한국인 최모 씨(35)는 얼마 전부터 인터넷으로 운영하는 한 개인 투자자 학습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수백 명이 동시 접속할 정도로 인기인 이 모임에선 최근 관심 끄는 업종과 종목명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투자를 적극 권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개발자로 일하다가 2022년 일본 회사로 이직한 최 씨는 지난해 9월부터 일본 주식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성적은 괜찮은 편이다. 반년도 안 돼 수십만 엔(수백만 원)을 벌었다. 이렇게 매일매일 일본 주식시장을 들여다보니, 한국에선 낯설던 신에쓰화학이나 도요타자동차 등 대형주 종목명이 그에겐 익숙한 일상의 단어들이 돼버렸다. “한국에서도 주식을 했는데 너무 빠지기만 해 실망이 컸죠. 일본에 와 보니 일본 증시는 계속 오르더라고요. 작년에도 한 달 치 월급 정도는 벌었어요. 올해는 열심히 공부해서 제대로 도전하려고요.”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린 일본 경제 장기침체의 상징과도 같던 일본 증시가 최근 확 달라졌다. 지난해 2만 엔대에 머물던 일본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평균주가는 지난달 3만6000엔 선을 넘었다. 이러다 보니 해외에서도 투자 기피 현상까지 벌어졌던 일본 증시에 국내는 물론 외국인 자금까지 대거 몰려드는 형국이다. 하지만 지금의 호황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확답하기 어렵다. 일본 전문가들도 “일본 증시가 ‘장기 상승 추세’로 갈 것이라고는 단언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일본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세에 들어섰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판단이다. 게다가 ‘투자 알레르기’라 불리는 일본 중장년층의 증시 투자 외면 현상도 여전하다.● ‘외국인 투자-실적 개선’ 쌍끌이 상승 닛케이주가는 22일 3만6546.95엔으로 마감하며, 거품 경제가 꺼지기 시작하던 1990년 이후 3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최근 금리 인상에 신중한 자세를 보인 뒤 주가가 어느 정도 조정 국면에 들어갔지만, 일본 증시는 세계 주요 시장 가운데 가장 큰 오름세를 보였다. 세계 증시의 2022년 말 종가 대비 올해 1월 말 상승률을 보면 이는 뚜렷이 드러난다. 닛케이주가는 38%로 미국(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 기준 28%)이나 한국(코스피 11%)보다 훨씬 높았다. 중국(상하이종합지수)은 같은 기간(13개월) 동안 오히려 8%나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일본 증시의 상승은 놀라울 정도다. 한국에서도 일본 증시에 관심 갖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른바 ‘일학개미’(일본 주식을 사는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크게 늘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국내 개인 투자자는 올들어 일본 주식 3억4152만 달러(약 4550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아직 미국 증시 매수액(121억 달러)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지난해보다 5배 넘게 늘어난 규모다. 국내 개인·기관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선 2조4171억 원가량 순매도한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관심이다. 일본 증시에 순풍이 부는 가장 큰 요인은 뭘까. 일단은 ‘엔저 장기화’가 꼽힌다. 1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46.88엔에 거래됐다. 1년 전보다 엔화 가치는 13%가량 낮아졌다. 미 기준금리가 연 5.25∼5.50%까지 올랐는데도, 일본은행은 여전히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영향이 크다. 엔화 환율이 낮으면 수입 가격이 높아지는 부담이 있지만,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는 데다 외국인 투자자 및 해외 관광객을 유인할 수 있다. 실제로도 일본 주식의 상승세를 주도하는 건 외국인 투자자다.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의 일본 증시 순매수 규모는 3조1215억 엔(약 28조3210억 원)에 이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시절 ‘돈 풀기’가 이뤄졌던 아베노믹스 첫해(2013년) 이후 최대 규모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중국의 외국인 규제 등으로 아시아 최대 증시인 중국 시장에서 빠져나온 돈이 일본으로 몰린 것도 호재다. 게다가 일본 상장기업의 지난해(회계연도) 상반기(4∼9월) 순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탈(脫)중국 현상에 일본 기업들의 실적 개선세가 더해져 자연스럽게 외국인 자본 유입이 활발해졌다. 뱅상 모르티에 프랑스 아문디그룹 총괄 최고투자책임자는 NHK 인터뷰에서 “최근 수년간 일본은 투자처로서 고려되지 않았지만 지난해부터 바뀌었다”며 “중국 주식을 팔고 일본 주식을 사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데 신고(井出真吾)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 주식전략가도 “물가 상승과 대폭적인 임금 상승이 겹치며 오랫동안 방치됐던 저렴한 일본 주식에 시선이 쏠렸다”고 분석했다. ● 금융 투자 우대정책에 나선 日정부 실적 개선에 힘입어 일본에선 최근 제조업이나 종합상사 등 일본 경제를 떠받쳐온 기업들의 주가가 새로이 주목받고 있다. 올해 초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일본 기업 경영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유망 종목으로 다이킨공업(전자 화학)과 이토추상사(종합상사), 소니그룹(전자) 등이 꼽혔다. 이들은 올해 닛케이주가가 1989년 기록한 사상 최고치였던 3만8915엔도 넘어설 것으로 봤다. 30년 만에 맞이한 일본 증시 활황에 모처럼 일본 투자자들도 자국 증시로 눈을 돌리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일본에서 증가한 증시 투자액 160조 엔 가운데 절반이 최근 1년간 증가했다. 다이이치생명 경제연구소가 분석한 개인 자금 흐름을 보면 지난해 4분기 예금액은 4400억 엔 줄어든 반면 투자신탁 유입액은 2500억 원 늘었다. 저축에서 투자로 돈의 흐름을 돌리는 건 일본 정부의 숙원 과제였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2021년 10월 취임 뒤 ‘새로운 자본주의’란 슬로건을 내걸었고, 이듬해 ‘자산 소득 배증 계획’ 계획도 내놨다. 기시다 총리는 2022년 5월 유럽 금융 중심지인 영국 시티오브런던에서 한 강연에서 “인베스트 인 기시다(기시다에게 투자해 달라)”라고 호소했다. 일본 정부는 2014년 시행한 소액투자 비과세제도(NISA) 통장을 개편한 신NISA를 올해 내놓기도 했다. 20%에 이르는 매매 차익 및 배당 소득세를 감면해 주고, 보유 한도를 180만 엔으로 기존보다 2배 이상으로 늘렸다. 종전까지 20년이던 비과세 적용 기간을 아예 없애버려 누구나 평생 비과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금융 투자 우대 정책과 최근의 오름세로 심각할 정도로 보수적이었던 일본의 투자 행태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우라타 하루카 일본 피델리티 수석연구원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젊은 세대는 예금만으로는 성공 경험을 쌓을 수 없게 됐다. (투자) 세대교체가 꾸준히 진행될 것”이라 내다봤다. 일본 금융당국에 따르면 일본 39세 이하 개인 주주 수는 196만 명으로 5년 전 대비 70%가량 늘었다. ● 개인 ‘주식 알레르기’는 여전 하지만 분위기가 아직 과거 한국의 ‘동학개미운동’처럼 전국민적 주식 투자 열기로 이어지기엔 난관이 있다. 극단적으로 투자를 멀리하고 예금을 선호하는 일본 국민의 성향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본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일본의 전체 금융자산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4.2%에 이른다. 주식이나 펀드 등 금융투자 상품 비중(16.3%)의 3배가 넘는다. 선진국 가운데 금융 자산의 현금 비중이 절반을 넘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최근 들어 금융투자 비중이 20% 정도로 높아졌다는 보도가 나오지만 미국(58%)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다. 특히 50대 이상 중·장년층의 ‘주식 투자 알레르기’는 철옹성에 가깝다. 거품 경제 시절엔 재테크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투자 붐이 일었지만, 30년 넘게 자국 증시가 침체하면서 주식을 외면하는 성향이 굳어져버렸다고 한다. 일본 경비회사에서 근무하는 30대 남성 마쓰모토 씨도 “주가가 오른다는 뉴스는 접했지만 주변에서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 없다”며 “주식 투자는 왠지 도박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노무라애셋매니지먼트가 지난해 실시한 금융교육 인식조사를 보면 일본인들이 얼마나 금융 투자에 관심이 없고 투자를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다. 투자 시기를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은 ‘무슨 일이 있어도 투자는 하지 않는다’(31%)였다. 현재 어떤 금융상품을 보유하고 있냐는 질문에는 ‘아무것도 없다’(53%)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주식시장과 거시경제 상황에는 큰 괴리가 있다. 경제 지표는 신통치 않고 소비는 여전히 침체됐다.” 일본의 유명 경제학자인 시라이 사유리(白井さゆり) 게이오대 교수(경제학·사진)는 1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최근의 주식시장 상승세를 회의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 미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엔 가치가 오르면 증시 호조세가 꺾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의 증시 활황이 상당 부분 엔 약세에서 기인한 만큼 거시경제 환경 변화가 주가 상승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의미다. 시라이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 일본은행 정책위원회 심의위원(한국 금융통화위원 격) 등을 역임했다. 국내외 언론에서 활발한 경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 증시가 최근 크게 오른 이유는…. “중국 투자 의욕이 꺾인 미국, 유럽 투자자들이 대안으로 일본을 선택한 게 주 원인이다. 외국인 투자자 사이에서 열광적인 일본 투자 붐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일본 경제와 기업의 기본 방식은 변한 게 없다. 안정적이나 역동성은 없다. 일부 해외 투자자는 일본 기업의 지배구조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실제 그런 변화는 없다.” ―1980년대 거품 경제 시기와 지금의 다른 점은…. “과거에는 일본인이 주식을 많이 사들여 주가가 높아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일본 경제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주로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다만 현 상황이 ‘거품’은 아니라고 본다. 이제까지 너무 낮았던 주가가 보통 수준으로 돌아온 것이다.” ―올해 증시 전망과 향후 변수는…. “엔저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증시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미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서면 엔저가 엔고로 바뀔 수 있고 주가도 변화할지 모른다. 다만 연준이 금리 인하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당분간 엔 약세는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증시에 도움이 된다.” ―일각에서는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에서 탈피해 금리 정상화를 시도할 것으로 본다. “솔직히 지금 일본은행이 금리를 정상화할 상황은 아니다. 지난해 일본 춘투(春鬪·대기업 노사 임금협상)에 따른 임금 상승률은 3.6%로 30년 만에 가장 높았다. 그러나 중소기업까지 포함하면 1.3%에 그쳤다. 물가가 임금보다 더 올랐기 때문에 실질 임금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일본은행이 금융 정상화 조건으로 내건 ‘2% 물가 안정 목표 견지’와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마이너스 금리 해제에 나서는 건, 가능한 한 빨리 정상화를 하지 않으면 시기를 놓칠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 부실 등 중국 경제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중국은 현재 근본적인 정책 수단이 없다. (유명 부동산 회사 헝다에 관한 홍콩 법원의 자산 청산 명령 등) 부동산 부실에 관해 명확하고 효과적인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민 불신까지 겹친 뿌리깊은 문제다. 채무를 더 늘릴 수 없으니 금리 인하도 어렵다. 최근 중국 내 투자자금의 유출 또한 일어나고 있다. 미국과의 패권 갈등에 따른 지정학적 위험 고조로 미국, 유럽 등이 중국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올해 중국 당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시 현립공원 ‘군마의 숲’에 있던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가 철거된 모습이 1일 확인됐다. 콘크리트 추도비 시설은 굴착기로 부서져 산산조각이 난 채 치워졌다.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31일 오전 군마의 숲 상공에서 찍은 조선인 추도비 철거 현장 사진을 이날 보도했다. 군마현 측은 철거가 시작된 지난달 29일부터 2주간 공원을 폐쇄한 뒤 취재진 등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사진을 보면 군마현 측이 부른 것으로 보이는 굴착기가 추도비 단상 등을 부수고 있다. 조각이 난 추도비 시설은 추도비 자리에 쌓여 있다가 치워졌다. 추도비 옆에 있던 높이 4m 정도의 금색 탑 모양 기념물은 파란색 덮개에 싸여 옆으로 눕혀진 뒤 사라졌다. 추도비 자리는 공터가 됐다. 철거 전 추도비에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고 적힌 금속판과 건립 취지가 쓰인 안내문 등 팻말 3장이 붙어 있었다. 이 금속판은 추도비 철거 전 소유주인 시민단체 측에 전달됐다. 군마현 시민단체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양심이 갈기갈기 찢겼다”고 밝혔다. 단체 측은 “죽은 사람을 추도하는 시설을 공권력이 마음대로 없애는 행위를 용서할 수 있을까. 군마현이 역사에 큰 죄를 남겨 매우 유감”이라고 언급했다. 추도비는 지역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2004년 군마현 허가로 군마의 숲에 세워졌다. 하지만 2012년 추도 모임에서 한 참석자가 “강제연행 사실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 발언을 일본 우익 세력이 문제 삼으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애초 10년간 설치 허가를 내줬던 군마현은 연장을 불허했고 2022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가 지자체 불허 결정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했다. 철거를 집행한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 군마현 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재판으로 결판이 났다는 게 모든 대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시 현립 공원 ‘군마의 숲’에 있던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가 철거된 모습이 1일 확인됐다. 추도비가 있던 자리에는 굴삭기로 산산히 부수어진 콘크리트 조각이 쌓여 있었다. 추도비가 있던 자리는 공터가 됐다. 아사히신문은 ‘군마의 숲’ 상공에 헬리콥터를 띄워 조선인 추도비 철거 현장을 포착해 보도했다. 군마현 측은 철거가 시작된 29일부터 2주간 공원을 폐쇄하고 취재진을 비롯한 일반인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공원 주변에서는 내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삼엄한 경계가 펼쳐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오전에 찍은 사진을 보면 군마현 측이 부른 것으로 보이는 굴삭기가 추도비 자리에서 추도비 단상 등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콘크리트를 부수고 있다. 산산조각난 콘크리트 더미는 트럭에 실려 치워졌다. 추도비 옆에 있던 높이 4m 정도의 금색 탑 모양 기념물은 파란색 덮개에 쌓여 옆으로 뉘어 있었다. 철거 전 추도비에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고 적힌 금속판과 건립 취지가 쓰인 안내문 등 팻말 3장이 붙어 있었다. 이 팻말은 추도비가 철거되면서 소유주인 시민단체 측에게 전달됐다. 군마현 시민단체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 측은 이 사진을 보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양심이 갈기갈기 찢겼다”라고 밝혔다. 이 모임은 “죽은 사람을 추도하는 시설을 공권력이 마음대로 없애는 걸 용서할 수 있을까”라며 “분노를 느낀다. 군마현이 역사의 큰 죄를 남겨 매우 유감”이라고 반발했다. 군마현 추도비는 지역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2004년 ‘군마의 숲’에 세워졌다. 과거 일본 육군 화약공장이 있던 곳으로, 1974년 시민공원으로 개장했다. 추도비에 붙어 있던 안내문에는 “일본이 조선인에 대해 크나큰 손해와 고통을 입힌 역사 사실을 깊이 기억에 새기고 진심으로 반성하여 (중략) 과거를 잊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며 새로운 상호 이해와 우호를 바란다”라고 쓰여 있었다.2012년 추도비 앞에서 열린 추도 모임에서 참석자가 “강제연행 사실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 발언을 일본 우익 세력이 문제 삼으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애초 10년간 설치 허가를 내줬던 군마현은 연장을 불허했고 2022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가 지자체의 불허 결정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했다. 군마현의 철거 요청을 시민단체가 거부하면서 ‘행정 대집행’으로 철거가 이뤄졌다.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일본 외상은 군마현 조선인 추도비 철거에 대해 일본 정부의 입장을 묻는 본보 질의에 “지방자치단체의 결정 사항으로 최고재판소에서 판결이 확정된 사안으로 정부는 코멘트를 삼가겠다”고 말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30일 사설에서 추도비 철거에 대해 “급작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폭거”라며 “즉시 중지할 것을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 군마현 지사에게 요구한다”고 주장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