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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미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 사건과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법원은 20일 대통령 취임식을 앞둔 현실을 고려해 어떤 처벌도 내리지 않는 ‘무조건 석방(unconditional discharge)’을 선고했다. 또 법원은 이번 석방 판결이 대통령 직무수행을 위한 것으로, 트럼프 개인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이번에 트럼프 당선인이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은 2016년 대선 후보였던 그가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와의 과거 성관계 사실을 감추기 위해 13만 달러(약 1억7000만원)를 지급한 의혹이 골자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당선인은 입막음 돈의 지급 내역을 감추기 위해 회사 장부를 조작한 혐의도 받았다. 2023년 뉴욕 맨해튼 지검은 트럼프의 입막음 시도와 장부 조작이 유권자들을 속인 거라며 총 34개 혐의로 기소했다. 또 지난해 5월 배심원단 12명이 만장일치로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내렸다.트럼프 당선인 측은 대통령은 재임 기간 형사소추로부터 절대적 면책 특권을 갖는다며 유죄 선고가 대통령직 수행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법원이 사건 자체를 기각해야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담당한 후안 머천 판사는 유죄 판결은 공식화하면서도 트럼프 당선인이 조만간 대통령에 취임하는 특수성을 감안해 처벌은 피하는 결정을 내렸다. 머천 판사는 “법적 보호는 직책에 주어지는 것이지, 직책을 맡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it is the legal protections afforded to the Office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that are extraordinary, not the occupant of the office)”라고 밝혔다. 이로서 트럼프 당선인은 미 역사상 최초로 ‘중범죄’ 전력을 갖고 대통령에 취임하게 됐다.이날 온라인을 통해 재판에 출석한 트럼프 당선인은 “이 형사 재판과 유죄 판결은 매우 끔찍한 경험”이라며 “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외신들은 “판사가 판결을 내릴 때 트럼프가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눈살을 찌푸렸고, ‘두 번째 임기를 잘 마치라’는 말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고 전했다. 판결 직후 트럼프 당선인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오늘의 행사는 비열한 희극이었다. 이 허황된 주장에 항소하고 한때 위대했던 우리의 사법제도에 대한 미국인의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고 썼다.트럼프 당선인은 법적 처벌은 피했지만 향후 선거권 박탈 등의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AP통신은 “트럼프가 감옥에 가거나 벌금을 내거나 사회 봉사를 할 필요는 없지만 그가 거주하는 플로리다주는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의 투표를 금지하므로 형기를 마치기 전까진 투표할 수 없다”고 전했다. 또 미 연방법에 따르면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는 총기를 소지할 수 없으며, 뉴욕주의 범죄 데이터은행에 DNA 샘플을 제공해야 한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가장 분열된 국가에서도 공통 기반을 찾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미국 NBC방송)“정치적으로 분열된 워싱턴 정계에서 보기 드문 화합의 순간”(미국 CNN)‘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으로 불리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1977~1981년 재임)의 국장(國葬)이 미 동부 시간 9일 오전 10시(한국 시간 10일 0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수도 워싱턴의 국립대성당에서 열렸다. 조 바이든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전현직 대통령 5명이 총출동해 고인을 추모했다. 5명 전현직 대통령이 모인 건 2018년 12월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국장 이후 처음이다.특히 ‘현역’ 시절 갈등을 빚었던 전현직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스킨십을 갖는 모습을 보여줘 극단적인 정치 갈등에 빠진 한국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줬다. 주요 언론 또한 정치 갈등이 심각한 미국 사회에서 카터의 장례식이 모처럼만의 화합 계기가 됐다고 진단했다. ● 푸른 넥타이 맨 트럼프, ‘악연’ 오바마 옆 착석20일 집권하는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공화당의 상징색인 빨강이 아닌 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등장했다. 한때 그는 당적이 다른 카터 전 대통령을 “무능하다”고 비판했지만 엄숙한 태도로 고인을 기렸다. 뉴욕타임스(NYT) 또한 그의 푸른색 넥타이 착용이 카터 전 대통령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라고 진단했다.나란히 앉은 트럼프 당선인과 오바마 전 대통령의 친근한 모습도 주목받았다. 트럼프 당선인은 2016년 대선 과정에서 케냐인 아버지와 미국인 백인 어머니를 뒀으며 하와이주에서 태어난 오바마 전 대통령의 혈통과 출생지를 문제삼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 태생이 아니라는 거짓 주장을 제기했고 오바마 전 대통령의 중간 이름 ‘후세인’을 가지고도 공격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 또한 수 차례 트럼프 당선인을 “민주주의의 적”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두 정상은 이날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눴다. 특히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과 이야기하며 미소를 지었다. 영국 가디언은 이런 둘을 ‘특이한 조합(oddest pairings)’으로 평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의 집권 1기 부통령이었지만 2020년 대선 패배 후 결별한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과도 악수했다. 당적이 다른 부시 전 대통령과 오바마 전 대통령도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했다. 부시 전 대통령이 입장할 때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일어서서 그를 맞이했다. 부시 전 대통령 또한 오바마 전 대통령의 배를 친구처럼 툭툭 두드리며 반겼다. 두 정상이 최근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여러 차례 화합의 순간을 연출했다고 정치매체 더힐은 전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0년 대선에서 자신과 경쟁했던 앨 고어 전 부통령과도 악수했다. 당시 플로리다주의 개표 과정을 두고 연방대법원까지 개입한 끝에 부시 전 대통령이 이겼고, 대선에서도 최종 승리했다.● 바이든 “권력 남용 맞서야”생전 카터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추도사를 직접 낭독하며 “그와의 우정을 통해 훌륭한 인격은 우리가 가진 직함이나 권력 이상임을 배웠다”며 “우리는 증오를 받아들이지 않고 권력 남용에 맞서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카터 전 대통령의 품위, 정직 등을 강조해 트럼프 당선인의 거친 정치 스타일과 대비시켰다고 NYT는 짚었다.바이든 대통령은 이날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모든 연방기관이 문을 닫았고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시장도 휴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새 정부 출범 직전 폭풍전야 상황에서 치러진 이번 장례식에 대해 “정치적 긴장감 속에서도 엄숙한 휴식을 제공한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퇴임 후 인권 및 민주주의 강조, 기아 퇴치 등에 헌신해 ‘가장 존경받는 전 대통령’으로 불리는 카터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앞두고 워싱턴 정계의 극심한 정치적 반목 또한 일시적으로나마 멈췄다는 것이다.카터 전 대통령이 세운 비영리단체 ‘카터센터’를 이끌고 있는 고인의 손자 제이슨(50)은 할아버지는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었을 때도 자신의 원칙을 고수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있었다”고 추모했다.워싱턴= 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임현석 기자 lhs@donga.com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지난해 12월 29일(현지시간) 고향 조지아주에서 100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한 제39대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의 장례식이 9일 미 워싱턴DC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웅장하게 치러졌다. 이날 대성당 한 가운데에는 앞서 조지아에서 비행기로 운구된 카터 전 대통령의 관이 자리했고, 종교계 인사부터 정치 지도자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연단에 올라 카터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추모사를 낭독했다. 하지만 대성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가장 많이 울리고 미소짓게 한 건 그의 손자 제이슨 카터(49)의 추모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애틀란타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이자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조지아주 상원의원을 지낸 그는 현재 카터 전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난 후 설립한 비영리 단체인 카터 센터의 회장이기도 하다. 그는 이날 미국인 누구나가 ‘대통령 카터’를 넘어 ‘인간 카터’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자신의 추억을 풀어놓았다. 그는 “우리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파파’라고 불렀다”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조지아 주지사 관저에서 4년, 백악관에서 4년을 사신 분들이지만 나머지 92년은 (고향인)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집에서 보낸 소박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파파가 소탈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집에 가보는 것이었다”며 카터 전 대통령의 자택 모습을 묘사했다. 손자 카터는 “첫째로 그 집은 그들이 직접 손으로 지은 것처럼 보이는 집이고, 둘째로 집에 가면 할아버지는 70년대 스타일 짧은 반바지에 크록스를 신고 문을 열고 나왔다”고 말해 눈물 짓던 성당 안 추모객들을 크게 웃게 만들었다. 이어 “남부의 수천 명 조부모님 집들이 그러하듯 벽에는 낚시 트로피가 걸려있고, 냉장고에는 손주와 증손주들 사진이 가득 붙어 있었다”며 “전화기는 주방 벽에 고정된 유선 전화라 마치 박물관 전시품 같이 보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대공황 시대를 거친 파파의 절약 정신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로는 싱크대 옆에 지퍼백을 (재사용 하기 위해 씻어) 널어놓는 작은 받침대가 있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해군으로 복무하던 시절 핵잠수함 분야에서 일하는 등 핵 관련 엔지니어였던 카터 전 대통령이 휴대전화를 잘 다루지 못해 자신과 있었던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그는 “(유선전화만 쓰던 할아버지가) 결국 어느날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시작하셨는데 전화를 거셨길래 받았더니 ‘너 누구야’하고 되물은 적이 있다”며 “‘저예요, 제이슨. 할아버지가 저한테 전화하셨잖아요’ 했더니 ‘난 안했어. 난 사진 찍고 있었어’라고 말했다”고 전해 눈물짓던 좌중을 또 미소짓게 만들었다. 손자 카터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소도시 사람들로서, 자신들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절대 잊지 않았다”며 “하지만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가 그들이 단순히 소탈한 사람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이후 카터의 정치적 사회적 업적을 비중있게 다뤘다.이날 워싱턴 대성당에서 75분 동안 진행된 장례식이 끝난 후 카터 전 대통령의 관은 다시 비행기로 그의 고향인 조지아주 플레인스로 이송됐다. 여기서 그는 다시 자신이 평생 다닌 고향 마을의 마라나타 침례교회에서 가족들만을 위한 추모식을 가질 예정이다.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카터 전 대통령은 이 교회에서 90세가 넘어서까지도 주일 교회학교 교사로 일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손자 카터는 이날 추모사에서 “우리 교회에서는 ‘깨어나는 순간부터 머리를 뉘는 순간까지 신의 선하심을 노래하겠다’는 노래를 부른다”며 “할아버지는 분명 그런 사람이었고 그의 삶은 신의 선하심에 대한 증거였다”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고향 플레인스에서 2023년 11월 사망한 아내 로잘린 카터 옆에 묻힐 예정이다. 플레인스는 500여 명 규모의 작은 시골 마을로, 카터 부부는 77년을 해로했다. 손자 카터는 “그는 떠났지만 멀리 가지는 않았다”며 “우리에게 그는 부엌에서 팬케이크를 만들거나, 목공소에서 증손주를 위한 요람을 만들고 있거나, 할머니와 송어 낚시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냥 조지아의 들판과 숲을 함께 걷는 모습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말로 추모사를 마쳤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

“북미 시장은 경쟁이 심하고 기술 변화도 빨라 차별화된 기술과 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이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박인욱 현대모비스 북미연구소장) 지난해 12월 16일 미국 미시간주 플리머스의 현대모비스 북미연구소를 찾았다. 미시간주는 북미 상위 100대 자동차 관련 기업 중 96곳이 본사 및 거점 시설을 두고 있는 곳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자동차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 뒤부터 현지에선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로도 불리지만, 여전히 ‘미 자동차 산업의 메카’로 통한다. 이날 연구소에서는 미래차 개발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건물 안에는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전기식 브레이크 등과 관련된 실험이 진행되는 연구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GM 등에 기술과 제품 제공현대모비스는 2004년 현대자동차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에 처음 진출했다. 2008년 자체 R&D 조직을 설립했고 2014년 별도 연구소를 세웠다. 그 후 기술력을 인정받아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리비안 등 미국 자동차 기업에도 기술과 제품을 제공했다. 설립 초기 40여 명이었던 연구소 인력도 200여 명으로 늘어났다. 현지에서 이 연구소는 한국 자동차 기술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여겨진다. 1986년 현대차가 ‘포니 엑셀’을 수출하며 한국 자동차의 미국 시장 진출이 시작됐지만, 1990년대 중·후반까지 한국 자동차의 이미지는 ‘성능이 떨어지는 값싼 차’였기 때문이다. 이랬던 한국 자동차가 미국에 연구소를 세워 현지 자동차 기업과 협력하고, 미래차 기술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현지 자동차 업계에서의 위상 역시 올라가고 있다. 미시간주 경제개발공사(MEDC)의 레이철 도널드슨 글로벌 비즈니스 유치 총괄 이사는 “현대모비스를 포함한 미시간주의 한국 기업은 미국의 산업 발전과 첨단 기술 개발에서 없어선 안 될 핵심 파트너”라고 호평했다.● 韓美 기업은 반도체·배터리 분야도 핵심 파트너 한국과 미국 기업은 자동차 외에 반도체, 배터리 등 다른 첨단산업 분야에서도 긴밀한 협력을 펼치며 ‘윈윈’을 이어가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전 세계 시장의 약 35%를 점유했다. 하지만 한국 대만 등에 밀리며 2020년대 들어 시장 점유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현재 10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이하 첨단 고집적 반도체는 한국과 대만만 생산이 가능하다. 이에 미국은 대규모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외국 반도체 기업이 미국에 직접 생산 및 연구 시설을 짓도록 독려했다. 한국 기업은 이 ‘러브콜’에 가장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미국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현지 전자 기업들과의 기술 협력과 우수 인력 확보 등을 위한 취지였다. 삼성전자는 총 370억 달러(약 54조6120억 원)를 투자해 텍사스주에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 달러를 투입해 첨단 메모리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두 회사는 미국 정부로부터 각각 47억4500만 달러, 4억580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을 예정이다.● 韓 제조 역량과 美 연구기술 시너지 반도체 분야에서 두 나라의 협력이 긴밀히 진행되는 건 한국 기업들의 앞선 기술력 때문이란 평가가 많다.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1위 삼성전자는 3nm 첨단 시스템 반도체 양산이 가능하다. SK하이닉스 역시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인 첨단 고대역폭메모리(HBM) 양산에서 선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 및 AI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려 하면 할수록 첨단 반도체의 핵심 기술을 지닌 한국 기업과의 협력이 필수적인 것이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2000년을 전후로 일본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쇠퇴하면서 한국 기업이 안정적인 제품 공급이 가능한 사실상 유일한 미국의 파트너가 됐다”며 한국 기업이 AI 반도체의 핵심인 HBM의 양산 등에서도 선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배터리도 마찬가지다. 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유명 미국 완성차 기업은 전기차 개발 과정에서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배터리 기업과 긴밀히 협력했다. 얼티엄셀스(LG에너지솔루션-GM), 블루오벌SK(포드-SK), 스타플러스에너지(삼성SDI-스텔란티스) 등 합작법인(JV)을 세워 전기차 배터리 제조에 나섰다. 이는 미국의 약점인 배터리 양산 기술과 제조 역량을 한국 기업이 보유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미국은 세계적인 명문 공대와 연구소, 풍부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기반으로 한 원천기술과 과학기술 인력이 풍부하다.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업계에서는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 기업 간 협력은 지속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플리머스=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8일 오전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연방법원 1305호. 개나리색 반팔 점프슈트 죄수복 차림의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34·사진)가 나타났다. 양팔을 붙잡은 두 명의 법정 경관과 함께였다. 권 씨의 허리에는 육중한 쇠사슬이 한 바퀴 감겨 있었고, 두 손은 사슬과 연결된 주황색 수갑에 결박돼 있었다. 한때 수십 조원 규모의 가상화폐 테라·루나를 개발하며 전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그가 미국에 끌려온 중범죄자 신세가 됐음을 보여 주는 순간이었다. 이날 뉴욕 남부연방지법 폴 A 엥겔마이어 판사는 권 씨 재판에 대한 첫 사전심리를 진행했다. 지난해 12월 31일 몬테네그로에서 미국으로 송환이 확정된 뒤 2일 약식 심리를 제외하면 미국에서 열리는 첫 정식 재판이었다. 미국 정부를 대리하는 검찰은 2일 제출한 79쪽 분량의 공소장 내용을 설명하며 “권 씨는 마치 테라·루나가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해 돌아가는 가상화폐인 것처럼 홍보했지만 거짓이었다”며 “이 사건은 40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초래하고 세계적으로 100만 명이 넘는 피해자를 낳은 대규모 사기”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권 씨 변호인은 “테라·루나에는 분명 알고리즘이 있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날 3명의 변호인단과 함께한 권 씨는 두 시간에 걸친 심리에서 질의와 논쟁이 이어지는 동안 변호인이 준비해 온 서류를 읽고 정면을 주의 깊게 응시했다. 또 변호인에게 여러 차례 귓속말로 의견을 전달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엥겔마이어 판사는 “재판 개시를 1년 뒤로 잡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면서도 권 씨에 대한 재판 시작 날짜를 내년 1월 26일로 잡았다. 검찰이 “살펴볼 자료가 워낙 방대하고 자료의 상당수가 한국어라 번역 시간이 필요하다”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권 씨의 이메일, 소셜미디어 X 계정, 휴대전화 4대를 확보해 분석할 계획이다. 내년에 재판이 시작되면 판결까지 4∼6주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권 씨는 미 검찰로부터 상품 사기, 증권 사기 등 총 9개 혐의를 받고 있다. 미 법무부는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대 130년의 징역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날 심리가 끝난 뒤 권 씨는 다시 두 명의 법원 경관에 의해 허리와 손이 쇠사슬과 수갑으로 묶여 교도소에 다시 구금됐다. 다음 사전 심리는 3월 6일에 열린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8일(현지 시간) 오전 미국 뉴욕 맨하튼의 남부연방법원 1305호. 성인 키의 5배쯤 되는 높은 천장에 고풍스런 마호가니 목재로 장식된 엄숙한 법정 안에서 3명의 검사와 3명의 변호사, 그리고 10여 명의 기자들이 두 명의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기다린 한 명은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주인공으로 교도소에 구금돼 있다 이날 출석할 예정이었던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34). 또 한 명은 권 씨 재판을 담당할 뉴욕 남부연방지법 폴 A. 엥겔마이어 판사였다. 이날 이 곳에서는 오전 10시 30분부터 권 씨 사건에 대한 증거와 법적 논점 등 절차적 문제를 다루기 위한 사전심리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예정됐던 시각에서 5분쯤 지난 10시 35분, 일반인들이 출입하는 법정 오른쪽 문이 열리고 양팔을 붙잡은 두 명의 흑인 법정 경관과 함께 개나리색 반팔 점프수트 죄수복 차림의 권 씨가 나타났다. 엄숙한 법정의 색감이나 영하 5도의 이날 날씨와 전혀 맞지 않는, 하지만 만에 하나 도주라도 한다면 이 세상 누구라도 알아볼 법한 그런 색감의 죄수복이었다. 삭발에 가까운 짧은 머리의 권 씨는 테라폼랩스 대표 시절의 얼굴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마른 모습이었다. 권 씨의 허리에는 육중한 쇠사슬이 한 바퀴 감겨있었고, 사슬은 다시 주황색 수갑과 연결돼 권 씨의 양손을 결박하고 있었다. 권 씨의 등장에 수트 차림의 변호인단이 일어서 권 씨를 맞았다. 권 씨는 법정 경관들이 수갑을 열쇠로 풀어준 뒤에야 피고인석에 앉을 수 있었다. 베이지색 바지와 검은 점퍼 차림의 경관들은 수갑을 풀어준 뒤 곧바로 권 씨의 뒷좌석에 앉아 1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그를 감시했다. 잠시 뒤, 판사실과 연결된 법정 정면의 문이 열리고 엥겔마이어 판사가 법정에 들어섰다. 권 씨를 포함한 모두가 기립해 판사에게 예의를 표했다. 동그란 검정 뿔테를 쓰고 검은 법복을 입은 엥겔 마이어 판사는 모두에게 새해 인사를 건넨 뒤 본격 재판을 시작하기에 앞서 명확히 하고 싶은 10여 개 사항에 대한 질의를 이어 나갔다. 이날 미국 정부를 대리하는 검찰 측은 지난 2일 제출한 79페이지 분량의 공소장 내용을 요약해 판사에게 설명했다. 검찰 측은 “이 사건은 40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초래한 대규모 사기에 관한 것”이라면서 “권 씨는 테라·루나가 알고리즘에 의해 돌아가는 안정적인 화폐라고 홍보했지만 이는 거짓이며 조작을 해야했다”고 밝혔다. 또 “세계적으로 100만 명이 넘는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권 씨 변호인 측은 “검찰은 마치 이 사건이 거대한 사기극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테라·루나에는 분명 알고리즘이 있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엥겔마이어 판사는 “미국 외에 다른 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소 등이 있는지 궁금하다”며 검찰 측에 확인을 요청했다. 권 씨는 발언권은 없었지만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 간 질의와 논쟁이 이어지는 동안 변호인이 준비해 온 서류를 꼼꼼히 읽거나 정면을 응시하며 판사와 검사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들었다. 변호사에게 여러 차례 귓속말로 의견을 개진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권 씨는 대원외고-스탠포드대 출신이라는 화려한 스펙에 가상화폐 테라·루나를 통해 수십 조원의 시장을 만들어 내며 한 때 ‘한국판 일론 머스크’라고도 불렸던 인물이다. 하지만 ‘테라 프로토콜’이라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화폐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했던 말과는 달리, 테라·루나 가치가 한 순간에 폭락하며 사기 범죄자로 전락했다. 그는 폭락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22년 4월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등을 거쳐 동유럽 발칸반도의 몬테네그로로 도피했지만 2023년 3월 위조 여권 소지 혐의로 현지 공항에서 체포됐다. 이후 한국과 미국이 범죄자 송환 경쟁을 벌인 끝에 지난해 12월 31일 미국행이 최종 확정됐고, 2일 있었던 약식 기소인부심리(기소된 죄목을 설명하고 유무죄 인정 여부를 묻는 절차)를 거쳤다. 사실상 이날이 미국에서의 제대로 된 법정 심리가 열리는 첫 날이었던 셈이다. 사전심리 막바지에 63세의 엥겔마이어 판사는 “내 판사 생활에서 재판 시작일을 1년 뒤로 잡는 건 처음”이라며 권 씨에 대한 재판 시작 날짜를 내년 1월 26일로 잡았다. 재판은 4주에서 6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재판 시작 날짜가 내년으로 미뤄진 이유는 검찰 측이 “살펴볼 자료가 워낙 방대하고 자료 중 상당수를 한국어에서 영어로 번역해야 한다”며 충분한 시간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앞서 검찰은 전날 법원에 권 씨의 업무 및 개인 이메일 계정, X(옛 트위터) 계정 및 4대의 휴대전화에 대해 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이날 제러드 레노 수석 검사는 “휴대전화 잠금 해제 등에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며 “관련 데이터가 약 6테라바이트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이에 엥겔마이어 판사는 “우리가 여기로 유홀(U-Haul·이사용 트럭업체)을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조로 말하기도 했다. 엥겔마이어 판사는 “사건의 엄중함과 큰 변호인단의 규모 등을 고려해 이 사건을 길게 가져가고 싶진 않다”며 “교도소 구금 상태에 있는 권 씨가 혹시라도 더 빠른 재판 진행을 원한다면 1주일 내에 변경을 요청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변호인단은 크게 재판 일정을 앞당기려는 움직임을 보이진 않았다. 일각에서는 가상화폐 업계에 우호적일 가능성이 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사법 환경 변화를 기대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이날 심리가 끝난 뒤 권 씨는 다시 두 명의 법원 경관에 의해 허리와 손이 쇠사슬과 수갑으로 묶였다. 권 씨는 법정을 빠져나가다 방청석에 있던 미국 기자를 보고 “잘 지냈냐, 좋아보인다”며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해당 기자는 수년 전 뉴욕에서 테라폼랩스 대표로 승승장구하던 권 대표를 만나 인터뷰한 사이라고 했다. 그는 “그 때만 해도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권 씨는 미국 검찰에 각 2건의 상품 사기(최대 징역 10년), 증권 사기(20년), 정보통신 사기(20년) 혐의를 비롯해 사기 및 시세조종 공모(각 5년), 자금 세탁 공모(20년) 등 총 9개 혐의를 받고 있다. 미 법무부는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대 130년의 징역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식 재판 준비를 위한 다음 사전 심리는 3월 6일 오전 11시 맨해튼 남부연방법원에서 다시 열린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미국 조지아주를 선택한 한국 기업은 ‘조지아주의 기업’이 됩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를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조지아주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미국 기업과 똑같이 ‘조지아주의 기업’으로서 성공하길 바랍니다.”(팻 윌슨 조지아주 경제개발장관)지난해 12월 17일 미 동남부의 조지아주를 찾았다. 조지아주에는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포스코, CJ 등 한국 대기업이 다수 진출해 있다. 110개 이상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1만7000여 개의 직접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미국 내 대표적인 ‘K산업기지’로 꼽힌다.특히 조지아주에선 엘라벨의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가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2년 반에 걸쳐 지은 초대형 공장인 HMGMA가 지난해부터 가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HMGMA와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등에 총 126억 달러(약 16조8000억 원)를 투자했다.현지에선 고용 효과가 큰 자동차 공장이라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대가 크다. 또 현대차는 이곳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집중 생산해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을 크게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그러다 보니 HMGMA가 외국 기업과 지역사회가 장기적으로 ‘윈윈’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K공장 들어서자 지역경제 들썩이날 엘라벨의 ‘제네시스 드라이브’(현대차 브랜드인 제네시스에서 따온 명칭)로 이름 붙여진 길을 따라 HMGMA 부지에 들어서니 고속도로처럼 길게 뻗은 공장 진입로가 나타났다. 시속 약 64km로 달려도 공장 끝에서 끝까지 5분 남짓 걸릴 정도로 넓은 규모였다.풀러 등 다른 인근 지역에서도 한국 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낳고 있는 개발 열기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아파트 건설 현장이 연이어 나타났고, 미 동부 3대 항구 중 하나인 서배너항으로 향하는 도로들은 4차선을 6차선으로 늘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까맣고 매끌매끌한 새 아스팔트로 덮인 도로들이 이 지역의 새로운 경제 핏줄을 보여주는 듯했다. 지역 주민인 비비언 씨는 “지금 건설 중인 아파트 단지가 한두 개가 아니다”라며 “현대차 공장 가동이 시작됐고 향후 8500명을 고용한다고 하니 인구가 계속 늘어날 전망이고, 건설사들도 미리 투자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서배너 지역에서 건설업을 하는 제임스 임 씨는 “아직은 (현대차 공장의) 채용이 시작 단계지만 공장이 본격적으로 돌고 동반 진출한 협력사들까지 풀 가동되면 지역경제 전체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니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조차 불법 이민자는 싫어 해도 외국 기업은 환영한다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실제로 조지아주는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지난해 미 대선 때도 트럼프 당선인이 승리했다.조지아주에 따르면 HMGMA가 직접 창출할 8500개 일자리 외에도 동반 진출한 15개 이상의 협력업체에서 690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간접 고용까지 합하면 새로 생기는 일자리 규모가 최대 3만7000개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윌슨 장관은 “현대차에 고용된 조지아주 주민들은 (현대차에서 주는 임금으로) 주택담보대출을 갚고, 자동차를 구입하고, 외식을 즐기며 지역 경제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대미 투자와 고용 역대 최대… 일자리 질도 우수최근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는 역대 최고치로 늘었다. 2023년 한국의 해외직접투자(ODI)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3.7%로 277억 달러에 달했다. 특히 일자리 창출 기여가 컸다. 대미 투자를 진행한 한국 기업(지사 포함)의 수는 2184개로 2020년(2038개)보다 7.2% 증가했지만, 이 기간 진출 기업들의 현지 인력 고용은 두 배 가까이로 늘어 8만8850명에서 17만7423명으로 급증했다.미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의 상당수가 자동차와 반도체 등 핵심 산업 분야와 관련 있는 만큼 현지에 제공하는 일자리의 수준도 높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미국 내 외국계 기업의 평균 연봉은 8만7000달러 수준이지만, 한국 기업 고용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10만4000달러로 약 20% 높았다.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정식 출범하면 한국 기업들의 이 같은 ‘양질의 대미 투자 확대’를 강조해 미국과의 무역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도원빈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면 관세 부과 등 통상 압박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우리의 대미 투자 내용과 산업 기여도를 명확히 정리해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엘라벨·풀러·서배너=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한재희 기자 hee@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학교 운동장의 불량배(schoolyard bully)’를 다루듯 관리해야 한다. 그는 특정 사안에 오래 집중하지 않을 때가 많다.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과 행동 하나하나에 과잉 반응하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한국의 우선 순위에 집중하라.” 세계화 열풍이 불던 1990년대부터 ‘세계화의 한계’를 주장해 온 국제정치경제학 분야의 석학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행정대학원) 교수가 지난해 12월 말 동아일보와의 신년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로드릭 교수는 최근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극우 정당의 득세와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에 대해 “(인위적으로) 무역과 자본의 개방을 강요했던 ‘초세계화(Hyper-Globalization)’의 폐해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초세계화가 균열과 양극화를 낳았고 이에 대한 각국 유권자의 반발과 거부감을 이용해 각국의 극우 세력이 힘을 얻었다는 의미다. 그는 “이제 각국은 자국의 핵심 영역을 강하게 지키는 ‘작은 마당, 높은 울타리’ 전략을 추구할 것”이라며 “한국도 어떤 정책을 마련할지 자체적으로 판단해 대비하라”고 조언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곧 취임한다. 국제통상 측면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트럼프 당선인은 그간 관세에 대해 계속 말해 왔다. 그가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해도 이제 아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에 합류할 사람들 중에는 관세를 덜 선호하는 이도 많다. 이들은 무역 상대국으로부터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협상 수단으로만 관세를 생각한다. 그래서 최선의 경우에 트럼프 당선인의 높은 관세 위협은 ‘빈말(empty threats)’로만 끝날 것이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엔 정말로 높은 관세가 부과될 수도 있다. 그때 미국의 무역 파트너들은 보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냉정하게 반응하며 협상에 나서야 한다. 무분별한 관세 부과는 대부분 자국 경제에 해를 끼친다. (미국이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고 해서) 다른 국가들도 보복 관세로 문제를 악화시킬 이유가 없다. 그건 자신의 발등을 찍는 일이다. 트럼프는 그냥 트럼프 식대로 하게 둬라(Let Trump be Trump).” ―한국도 관세 부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무엇보다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과 행동에 과잉 반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의 편을 들라고 압박하더라도 한국은 미국의 룰에 따라 움직이기보다 모든 국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특정 사안에 오래 집중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 점을 잘 이용해야 한다. 한국을 포함해 미국의 무역 파트너들은 인내심을 갖고, 마치 학교 운동장의 불량배를 다루는 것처럼 그를 관리하면서 자국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사항들에 초점을 맞추라고 조언하고 싶다.” 로드릭 교수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스페인 엘파이스, 인도이코노믹타임스 등 각국 주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얇은(thin) 세계화’, ‘다극주의’ 등을 초세계화 이후 시대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개별 국가에 ‘국제 표준 모델’을 압박하는 기존의 세계화에서 벗어나 각국이 자국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취지다. 특히 그는 한국 일본 대만 등은 세계 경제에 통합되는 동시에 고도의 경제 성장을 달성했다며 ‘얇은 세계화’와 ‘자국 우선주의’가 양립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한 사례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한국은 최근 정치 혼란을 겪고 있다. 더 큰 도약을 위한 경제·산업 정책도 잘 보이지 않는다.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사태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다만 한국 국민의 대응은 그야말로 모범적이었다. 한국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최근에 민주주의를 이룩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 모습이 더욱 돋보였다. 한국이 미국 등 세계의 무역 파트너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번영하는 경제’와 ‘통합된 사회’다. 이 두 개는 모두 한국 안에서 이뤄 내야 하는 목표다. 이를 달성할 가장 좋은 방법 또한 한국이 판단해야 한다.” ―여러 저서와 기고에서 일찌감치 세계화의 문제점과 폐해를 지적했다. 1990년대만 해도 소수 의견이지만 이젠 당신이 맞았다는 평가도 많다. “‘초세계화’는 각국의 정책 결정권자들에게 자국의 경제나 사회적 목표 달성에 앞서 무역과 자본의 개방을 우선시하도록 요구했다. 이로 인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경제적 승자와 패자 사이에 심각한 균열과 양극화가 생겨났다. 양질의 일자리를 잃고 경제적 불안을 겪는 지역과 노동자들이 생겨났지만 정치 엘리트들은 이들의 어려움과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다. 최근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권위주의적인 극우 세력의 등장과 영향력 확대는 이러한 정치적 반발을 이용한 것이다. 초세계화는 결국 그 자체가 가진 취약성과 지속 가능성의 한계 때문에 약화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세계 경제와 글로벌 공급망은 너무나 깊이 연결돼 있다. 보호무역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맞다. 글로벌 공급망은 여전히 중요하고 여기서 큰 붕괴가 있으리라 보진 않는다. 약간의 지역화(regionalization)가 일어나고 중국과 서구 간에 더 큰 분리가 일어날 수 있겠지만 세계 무역의 심각한 붕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언급했던 ‘작은 마당, 높은 울타리’ 원칙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국가가 안보나 특정 핵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분야에서는 좁은 마당에 높은 울타리를 치듯 자국의 영역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나는 이 원칙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단, 그 조치는 명확하고 투명한 이유에 근거해 선택돼야 한다. 또 경제 활동의 매우 좁은 범위에 한정돼야 할 것이다.” ―미국이 그간 ‘작은 마당, 높은 울타리’ 원칙을 잘 지켰다고 보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이 원칙을 충실히 따랐는지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재집권한다면 그 원칙이 더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마당, 높은 울타리’ 원칙은 중요하다. 각 나라가 자국의 근간에 관련된 이익을 지키려면 정책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마당’이란 표현은 이 ‘울타리’가 명확한 목표 아래 선별적으로 취해져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은 무역 분쟁에서 중국 공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초세계화는 미국이 주도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체제의 가장 큰 승자는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모든 나라가 무역과 자본의 개방성을 요구하는 초세계화의 규칙을 따를 때 홀로 자체적인 경제 정책을 운영하며 무역 보호, 보조금 지급 같은 산업 정책, 자본 통제, 환율 관리 등을 실행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를 통해 단순히 서구의 경제적 경쟁자를 넘어 지정학적 경쟁자가 됐다. 이제 서구 전체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의 미중 관계를 어떻게 예측하나. “트럼프 당선인은 정말로 예측 불가능한 인물(a wild card)이다. 그가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안정시킬 수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중국을 세계 무대에서 고립시키겠다는 명확한 전략적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에 대해 훨씬 ‘거래중심적(transactional)’인 접근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그가 자신의 즉흥적 판단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양국 관계 또한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로드릭 교수는 지난해 11월 비영리매체 ‘프로젝트신디케이트’ 기고에서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이 모두 축소되고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튀르키예, 나이지리아 등 6개 중견국이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다극체제를 예상했다. 많은 중견국이 미국 혹은 중국의 절대적인 우방으로 분류되기를 거부하는 만큼 각자 고유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며 다층적인 통상 및 외교관계를 구축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경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세계가 다시 초세계화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본다. 세계 경제의 개방성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각 나라가 자체적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도전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정책적 자율성을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경제 민족주의(economic nationalism)’의 부활을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물론 일부 형태의 경제 민족주의가 해로울 수 있지만 상호 이익이 될 수 있는 형태도 많을 것이다.” 대니 로드릭△ 1957년 튀르키예 이스탄불 출생△ 1979년 미국 하버드대 졸업△ 1985년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컬럼비아대 등 교수 역임△ 2021∼2023년 국제경제학회(IEA) 회장△ 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국제정치경제학 교수△ 주요 저서: ‘세계화는 너무 멀리 간 것일까’(1997년), ‘세계화 패러독스’(2011년), ‘그래도 경제학이다’(2015년) 등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한국 정부와 항공사가 유족들의 심리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조치는 신속하고 수준 높은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비행 트라우마 전문가인 조너선 브리커 워싱턴대 심리학과 교수(사진)는 4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수백 명에 달하는 유가족들의 슬픔과 한국 사회의 충격을 달랠 방안에 대해 이같이 조언했다. 브리커 교수는 25년 이상 비행 관련 트라우마를 연구해 온 심리학자다. 그는 “신속 정확한 조사와 이에 대한 시의적절하고 명확한 설명, 나아가 올바르고 분명하게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것도 유족들의 트라우마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브리커 교수는 또 “많은 유족이 (이번 사고에 대한) 분노를 경험, 표현하고 있고, 이들은 이런 감정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다”며 “자격을 갖춘 정신건강 전문가의 소개와 평가, 치료가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에게 주변에서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각자의 고통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라며 “가족과 함께 이야기하라”고 권했다. 이어 “대부분의 경우 몇 달 안에 트라우마가 사라지겠지만 어려움이 계속된다고 느낄 땐 반드시 전문가를 통해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지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비행기의 불시착과 폭발 장면이 담긴 영상이 지속적으로 반복 재생됐다는 점도 우려했다. 브리커 교수는 “극적이고 선명한 장면들은 우리의 상상을 사로잡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것들이 불안 장애의 트리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둔 미국 사회가 새해 첫날부터 잇달아 발생한 두 건의 테러 추정 사건으로 안보 불안에 휩싸였다. 1일 남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는 퇴역 군인 샴수드딘 자바르(42·사진)가 자행한 차량 및 총기 테러로 최소 15명이 숨지고 35명이 부상당했다. 같은 날 서부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트럼프 호텔 앞에서도 전기차가 폭발해 1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국 사회는 테러 현장에서 경찰에 사살된 자바르가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한 정황에 경악하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아프가니스탄 파병까지 다녀온 전직 군인이 무고한 시민을 대거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IS는 2014년 6월 시리아와 이라크 영토 약 3분의 1을 점령하고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2017년까지 극단적 이슬람주의에 기반한 잔혹한 통치로 악명을 떨쳤으나 쿠르드족 민병대와 미군 등의 공격으로 2019년경 사실상 와해됐단 평가를 받았다. 다만, 최근 53년의 세습독재가 반군에 의해 막을 내린 시리아 정세가 불안해지며 IS 잔당들이 다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현재 미국에선 뉴올리언스와 라스베이거스 사건이 연계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용된 차량이 모두 ‘투로(Turo)’라는 차량 공유 앱을 통해 빌린 차였기 때문이다. 수사 당국도 두 사건의 연계 여부 및 추가 테러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의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IS에 영감, 단독 범행 아닌 듯”CNN,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자바르는 미 중부시간 오전 3시 15분경 흰색 포드 F-150 전기 픽업트럭을 몰고 뉴올리언스 버번가에서 새해맞이를 즐기던 시민들에게 돌진했다. 차량에서 내린 후 총기도 난사했다. 과거 본인이 올린 유튜브 영상 등에 따르면 자바르는 텍사스주 보몬트에서 나고 자랐다. 2007∼2020년 육군에서 복무하며 아프간에 파병됐고 다수의 훈장도 받았지만 음주운전 여파로 제대했다. 컨설팅사인 딜로이트에서 근무했지만 두 번의 이혼과 사업 실패 등으로 경제난에 시달렸다. 자바르가 테러에 사용한 트럭에는 IS를 상징하는 깃발이 걸려 있었다.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자바르는 테러 몇 시간 전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행동이 “IS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다. 그가 공유 숙박업소를 빌려 사제 폭탄(IED)을 제조한 정황도 드러났다. 또 이슬람교로 개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국은 이번 테러가 조직적 범행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WP는 당국이 테러 현장 인근에서 최소 3명의 남성과 여성 1명이 폭발물을 설치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AP통신도 원격폭발용 두 개의 폭탄을 포함해 여러 개의 즉석 폭발물이 현장 일대에서 발견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테러 직후 트루스소셜에 “(불법 이민) 범죄자들이 미국 범죄자보다 훨씬 더 나쁘다고 말한 게 사실로 밝혀졌다”며 용의자가 불법 이민자일 것으로 단정했다. 자바르의 신원이 확인된 후 틀린 주장으로 판명 났지만 그가 취임 직후 어떤 식으로든 반(反)이민 정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와 테슬라…정치 테러 주목”뉴올리언스 테러 약 5시간 후인 미 서부시간 오전 8시 40분경 라스베이거스의 트럼프 호텔 입구에서는 테슬라의 전기 픽업트럭 ‘사이버트럭’이 폭발했다. 사고 차량은 2024년형 신형으로 호텔 앞에서 갑자기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 직후 큰 폭발이 뒤따랐다. 사망자는 해당 차량에 탑승하고 있었고, 당국은 아직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차량 뒤편에선 불꽃놀이용 박격포, 가스통, 캠프 연료통 등도 발견됐다. 당국은 폭발 장소가 트럼프 당선인 일가가 소유한 호텔이며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또한 당선인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라는 점에서 정치 테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머스크는 X를 통해 차량 폭발이 “테러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 뉴올리언스 테러와도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썼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임현석 기자 lhs@donga.com}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둔 미국 사회가 새해 첫날부터 잇달아 발생한 두 건의 테러 추정 사건으로 안보 불안에 휩싸였다. 1일 남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는 퇴역 군인 샴수드딘 자바르(42)가 자행한 차량 및 총기 테러로 최소 15명이 숨지고 35명이 부상당했다. 같은 날 서부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트럼프 호텔 앞에서도 전기차가 폭발해 1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미국 사회는 테러 현장에서 경찰에 사살된 자바르가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한 정황에 경악하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아프가니스탄 파병까지 다녀온 전직 군인이 무고한 시민을 대거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IS는 2014년 6월 시리아와 이라크 영토 약 3분의 1을 점령하고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2017년까지 잔혹한 통치로 악명을 떨쳤으나 쿠르드족 민병대와 미군 등의 공격으로 2019년경 사실상 와해됐단 평가를 받았다. 다만, 최근 53년의 세습독재가 반군에 의해 막을 내린 시리아 정세가 불안해지며 IS 잔당들이 다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현재 미국에선 뉴올리언스와 라스베이거스 사건이 연계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용된 차량이 모두 ‘투로(Turo)’라는 차량공유 앱을 통해 빌린 차였기 때문이다. 수사 당국도 두 사건의 연계 여부 및 추가 테러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의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IS에 영감, 단독 범행 아닌 듯”CNN,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자바르는 미 중부시간 오전 3시 15분경 흰색 포드 F-150 전기 픽업트럭을 몰고 뉴올리언스 버번가에서 새해맞이를 즐기던 시민들에게 돌진했다. 차량에서 내린 후 총기도 난사했다. 과거 본인이 올린 유튜브 영상 등에 따르면 자바르는 텍사스주 보몬트에서 나고 자랐다. 2007~2020년 육군에서 복무하며 아프간에 파병됐고 다수의 훈장도 땄지만 음주 운전 여파로 제대했다. 컨설팅사인 딜로이트에서 근무했지만 두 번의 이혼과 사업 실패 등으로 경제난에 시달렸다. 자바르가 테러에 사용한 트럭에는 IS를 상징하는 깃발이 걸려 있었다.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자바르는 테러 몇 시간 전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행동이 “IS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다. 그가 공유 숙박업소를 빌려 사제 폭탄(IED)을 제조한 정황도 드러났다. 또 이슬람교로 개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당국은 이번 테러가 조직적 범행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WP는 당국이 테러 현장 인근에서 최소 3명의 남성과 여성 1명이 폭발물을 설치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AP통신도 원격폭발용 두 개의 폭탄을 포함해 여러 개의 즉석 폭발물이 현장 일대에서 발견됐다고 전했다.트럼프 당선인은 테러 직후 트루스소셜에 “(불법 이민) 범죄자들이 미국 범죄자보다 훨씬 더 나쁘다고 말한 게 사실로 밝혀졌다”며 용의자가 불법 이민자일 것으로 단정했다. 자바르의 신원이 확인된 후 틀린 주장으로 판명났지만 그가 취임 직후 어떤 식으로든 반(反)이민 정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와 테슬라…정치 테러 주목”뉴올리언스 테러 약 5시간 후인 미 서부시간 오전 8시 40분 경 라스베이거스의 트럼프 호텔 입구에서는 테슬라의 전기 픽업트럭 ‘사이버트럭’이 폭발했다. 사고 차량은 2024년형 신형으로 호텔 앞에서 갑자기 연기가 피어올랐고 직후 큰 폭발이 뒤따랐다. 사망자는 해당 차량에 탑승하고 있었고, 당국은 아직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차량 뒤편에선 불꽃놀이용 박격포, 가스통, 캠프 연료통 등도 발견됐다.당국은 폭발 장소가 트럼프 당선인 일가가 소유한 호텔이며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또한 당선인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라는 점에서 정치 테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 측은 “사건이 트럼프 호텔 앞에서 발생했고, 사고 차량이 테슬라 트럭이며, 머스크가 트럼프 당선인과 협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우려할 지점이 있다”고 했다. 머스크는 X를 통해 차량 폭발이 “테러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 뉴올리언스 테러와도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썼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임현석 기자 lhs@donga.com}

1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입구에서 테슬라의 전기 픽업트럭인 사이버트럭이 폭발해 1명이 사망하고 최소 7명이 부상당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수사당국은 전날 뉴올리언스에서 발생한 사건과의 연관성을 포함해 테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NYT에 따르면 이날 사건은 새해 첫날 오전 8시 40분 경 발생했다. 라스베이거스 경찰청은 기자회견에서 “이 때 트럼프 호텔에서 폭발 발생 신고를 받았다”며 “2024년형 사이버트럭이 호텔의 마지막 입구 문까지 왔고, 차량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한 뒤 큰 폭발이 일었다”고 전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차량 안에는 1명이 있었지만 사망했고, 인근의 최소 7명이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소셜미디어에는 불길에 휩싸인 사이버트럭의 모습과 대피하는 투숙객들의 모습이 이어졌다. 일부 투숙객은 “가스냄새 같은 것이 났다”고 전하기도 했다. 폭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경찰 당국은 전날 뉴올리언스에서 40여명의 사상자를 낸 차량 돌진 테러가 발생했다는 점, ‘트럼프’ 타워의 상징성 등을 이유로 테러 가능성을 염두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사이버트럭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퍼스트 버디’로 자리매김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혁신성을 상징하는 대표 차종이기도 하다. 맥마힐 라스베이거스 경찰청 보안관은 “우리는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난 사건을 잘 알고 있다”며 “상징적인 라스베이거스 대로에서 폭발이 일었기 때문에 지역사회를 안전하게 하기 위한 필요한 모든 예방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차남 에릭 트럼프는 X(옛 트위터) 게시물을 통해 “라스베이거스 트럼프 호텔 소식을 들었다”며 “손님과 직원의 안전과 복지가 최우선”이라고 남겼다. 라스베이거스의 트럼프 호텔은 64층 건물로 약 1300개의 스위트룸을 보유하고 있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내년 1월 20일 취임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최측근으로 부상하며 이른바 ‘퍼스트 프렌드’로 거론되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사진)에 대해 “(법적으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머스크 CEO가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실상 ‘대통령’ 노릇을 한다는 지적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취임 뒤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과 이민 및 국경 통제 등과 관련해 자신의 정책들을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란 점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상식적 혁명(common-sense revolution)을 추진해 ‘미국의 황금기’를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남아공 출신 머스크는 “대통령 못 돼” 트럼프 당선인은 22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보수단체 터닝포인트USA가 주최한 ‘아메리가 페스트 2024’ 행사에서 차기 행정부 운영 계획 등에 대해 90분에 걸쳐 연설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최근 민주당이 새로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그들은 ‘트럼프가 머스크에게 대통령직을 양도했다’는 것인데 아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머스크가 의회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예산안까지 뒤집을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커졌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이에 대해 반박한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또 “머스크는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없다. 그는 이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난 안전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대통령이 되려면 미국에서 출생하거나 부모가 모두 시민권자여야 한다. 머스크는 미국 시민권자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생이라 법적으로 대통령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설명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가 머스크의 대통령 설을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머스크가 차기 행정부에 미치는 남다른 영향력을 입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머스크를 의식하는 발언을 했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연설에서 머스크에 대한 신뢰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그는 머스크가 경영하고 있는 우주기업 스페이스X를 거론하며 “난 똑똑한 사람을 좋아한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펜실베이니아주에 한 달이나 머물며 우리의 (대선) 승리를 도왔다”며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 “미국 황금기 열겠다” 푸틴 만남도 시사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연설에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취임을 염두에 둔 듯 차기 행정부에서 강조할 정책 설명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특히 그는 “새로운 행정부와 함께 미국의 황금기가 시작될 것”이라며 불법 이민자 추방에 전력을 기울일 뜻을 밝혔다. 그는 “취임 첫날 국경을 폐쇄하는 역사적인 행정 명령에 서명할 것”이라며 “같은 날 우리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추방 작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해 지지자들의 갈채를 받았다. 트럼프 당선인은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영향력이 커진 성적 다양성 포용 정책에 대해서도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는 트랜스젠더 광기를 끝낼 것”이라며 “우리는 남성(트랜스젠더 여성 선수)을 여성 스포츠에서 배제할 것이고, 미국 정책에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 성별만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그간 필요성을 강조해 온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과 관련해선 임기 초기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다”며 “푸틴이 가능한 한 빨리 만나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이 일(만남)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고, 중동의 혼란을 멈추고, 3차 세계대전을 막겠다고 약속한다”며 “3차 세계대전은 매우 가까이에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산업 정책과 관련해선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을 중단할 계획임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우리 경제를 구하기 위해 취임 첫날 에너지 생산에 대한 바이든의 모든 규제를 종식시키고, 그의 미친(insane)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폐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석유와 가스, 다른 것들을 많이 갖게 될 것”이라며 “당신들은 ‘대통령님, 그만하세요. (자원이) 너무 많아서 가격이 너무 내려가고 있어요’라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자신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실상 ‘대통령’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가짜뉴스”라며 “그런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트럼프 당선인은 22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터닝포인트USA’ 주최의 ‘아메리가 페스트 2024’ 행사에서 새 행정부의 계획 등에 대해 90분에 걸쳐 연설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최근 민주당이 새로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머스크에 대통령직을 양도했다’는 것인데 아니다, 아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근 머스크 CEO가 상하원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예산안까지 뒤집을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커진 것에 대한 비판이 일자 이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는 대통령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말할 수 있다”며 “난 안전하다. 왜인지 아느냐? 그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그는 이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며 웃었다. 미국 대통령이 되려면 미국에서 출생하거나 부모가 모두 시민권자여야 하는데 머스크는 시민권자이긴 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생이라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취지다.블룸버그통신은 이에 대해 “트럼프 당선인이 머스크의 권력에 대해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머스크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보여준 남다른 영향력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이날 연설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여러 차례에 걸쳐 머스크 CEO를 칭찬하고 신뢰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나는 똑똑한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 달 전 성공한 스페이스X의 일명 ‘젓가락 권법’ 우주발사체 회수를 언급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거대한 우주 발사체를 마치 아름다운 아기를 품에 안듯 잡아냈다”며 “믿을 수 없이 멋진 일”이라고 치하했다. 또 머스크 CEO가 경합주였던 펜실베이니아주 유세에 함께 했던 사실을 강조하며 “그는 펜실베이니아에서 한 달이나 머물며 우리가 그 주에서 승리하도록 도왔고 우리는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미 정계에서는 머스크의 과도한 정치적 영향력을 두고 연일 말들이 나오고 있다. 한때 트럼프의 최측근이었다가 반(反) 트럼프로 돌아선 공화당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는 ABC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할 때 탓할 사람이 필요한데 그 대상이 머스크가 되면 (두 사람의) 관계가 끝난다. 누구도 그게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며 ”트럼프의 사람들에게는 유통기한이 있다”고 말했다.크리스 쿤스 민주당 상원의원 역시 CNN 인터뷰에서 “예산안을 새로 합의하는 과정에서 미국 기업의 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내용이 빠졌다”며 테슬라가 중국에 갖고 있는 공장 때문에 이런 내용이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취지로 지적했다.반면 빌 해거티 공화당 상원의원은 CNN 인터뷰에서 “머스크는 (예산안 마련의) ‘투명성’에 기여했다”며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해 신께 감사하다. 그게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 예산안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라고 평했다.한편, 이날 트럼프 당선인은 연설에서 “새 행정부가 추진할 ‘상식적 혁명(common-sense revolution)’에 대해 설명하겠다”며 불법 이민자 추방, 트랜스 젠더 종식 등을 약속했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미국이 건설한 파나마 운하를 파나마에 넘겨준 것은 미국의 관대함을 상징하는 사례였다. 그런 파나마 운하를 미국을 ‘착취(rip-off)’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면, 미국은 파나마에 운하를 다시 반환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1일(현지 시간) 미 해상 무역은 물론이고 안보 측면에서도 전략적 가치가 높은 파나마 운하의 운영에 대해 파나마 정부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최근 파나마 정부가 운하의 통행료를 높이고 중국과의 인프라 협력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 계정에서 “파나마 운하는 미국 경제와 국가 안보에 매우 중요한 자산”이라며 “결코 다른 잘못된 이의 손에 넘어가게 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이어 “파나마 운하는 미 해군의 신속한 배치와 이동 및 미 항구로의 상선 이동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며 “110년 전 3만8000명의 미국인 남성이 목숨을 잃어가며 만든 운하”라고 가치를 부여했다. 길이 82km에 이르는 파나마 운하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전략적 해상 통로다. 북아프리카 이집트에 위치한 수에즈 운하와 함께 글로벌 해상 무역에서 가장 중요한 운하로 꼽힌다. 미국은 군사·경제적 이득을 위해 1914년 운하를 건설해 운영해 왔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파나마의 반환 요구가 거세지자 1999년에 운하 운영권을 파나마로 넘겼다. 트럼프 당선인은 “파나마는 미 해군과 기업에 터무니없는 통행료를 부과하고 있다”며 “이런 착취는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파나마 운하는 통행료가 크게 오르며 미국 경제에 적잖은 부담을 주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파나마 정부는 올해 극심한 가뭄으로 수량(水量)이 크게 줄어들어 운하를 통과하는 선박 수를 약 36%나 줄여야 했다”며 “이로 인한 혼란이 공급망 압박으로 이어져 통행료 등이 크게 올랐다”고 설명했다. 폭스비즈니스에 따르면 파나마 운하의 통행료는 선박의 크기와 화물량에 따라 최대 50만 달러(약 7억2475만 원)까지 부과된다. 미국은 운하 전체 이동량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최대 이용국이다. 미국 다음으로는 중국과 일본이 많이 이용한다. 한편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일 “트럼프 당선인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 비중을 현 2%보다 두 배 이상 많은 5%까지 요구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내년 1월 취임을 앞둔 트럼프 당선인이 유럽에 본격적으로 ‘국방 청구서’를 내밀 것이란 관측이다.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나토 동맹국들이 충분한 방위비를 지출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드러내 왔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뉴스에 온통 한국이 계엄이라는데 무슨 말이야? 한국 괜찮은 거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가 벌어진 3일 미국인 지인이 이렇게 물어왔다. ‘나도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는 말 외에 할 말이 없었다. 윤 대통령의 ‘황당 계엄’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날 모든 미국 언론은 한국 기사로 도배됐다. 구글 트렌드 검색어 집계에선 전날까지 0에 가깝던 ‘계엄(martial law)’, ‘윤석열’ 검색 관심도가 미 전역에서 최고치인 100으로 증가했다. 2020년대에 계엄이란 단어와 함께 언급되는 나라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선혈이 낭자한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아프리카 수단과 아이티, 미얀마 정도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 느닷없이 잘나가던 ‘K’를 끌어내리고 이런 단어를 갖다 붙였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불가역적 피해 준 대통령의 계엄 계엄 후 20일이 지났다. 그사이 체감하는 한국을 보는 미국의 시선은 이전과 다르다. 전에는 ‘K팝’, ‘K드라마’, ‘K푸드’를 말하던 이들이 이제는 계엄을 말한다. ‘드라마 속 한국이 너무 쿨하고 예뻐서 꼭 가보고 싶다’던 이들이 이젠 ‘가도 안전하냐’고 묻는다. 얼마 전 만난 한 한국인 월가 관계자는 “큰 계약을 앞두고 서울 출장을 가야 했던 미국인 동료가 ‘신변이 괜찮을지 걱정’이라며 전화를 했더라”며 “‘한국에서 들어오는 거래 주문을 받아도 괜찮냐’고 묻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한 기업 주재원은 “이웃들이 한국의 가족들을 미국으로 데려와야 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더라”고 전했다. 계엄 사태 이후 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은 안 그래도 무서운 북한의 전쟁 위협에 계엄 리스크와 극심한 정치 갈등까지 폭발하는, ‘카오스적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요즘 뉴욕의 주재원과 교민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 중 하나는 ‘쪽팔린다’다. 지난 십수 년간 민관이 진행해 온 ‘국격과 국가 브랜드를 높이자’는 노력이 허탈하다 못해 허망하게 느껴질 정도다. 돈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는 국가의 피해다.리더십 부재에 경제 산업 위기 심화 돈으로 환산되는 피해도 이미 어마어마하다. 당장 계엄 당일 해외 증시에 상장돼 있던 우리 기업들의 주가는 최대 7% 넘게 급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15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1450원대를 돌파했다. 한국 역사에서 1450원대 환율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 단 두 번뿐이다. 그땐 다양한 경제, 산업적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대통령이 스스로 이 상황을 만들었다. 환율 급등은 몇 달 뒤 한국 기업의 실적 악화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평범한 한국 직장인들의 월급 명세서와 주식 계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요즘 미국에서는 내년 1월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국가 간 외교전과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양자컴퓨터, 인공지능(AI), 신경공학, 우주산업 등 최첨단 미래 산업을 선점하려는 미국과 중국 간 경쟁도 뜨겁다. 한국도 정부와 기업이 온통 달라붙어 밀어주고 끌어줘도 부족할 때지만 어디서도 국가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그들만의 싸움’이 있을 뿐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한국 기업들은 부모 없는 아이처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에 대비하려 현지에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이 모든 건 처음부터 너무나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계엄을 선택했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 되겠다던 그는 나라를 걸고 자폭해 버렸다.임우선 뉴욕 특파원 imsun@donga.com}

《‘살균되지 않은 생(生)우유(raw milk)를 마시지 않도록 권한다.’(미국 농무부,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맥도널드 햄버거의 대장균 사태를 일으킨 양파를 리콜한다.’(미 식품의약국·FDA)‘시리얼, 간식, 음료, 사탕에 들어가는 적색 색소의 사용 금지가 임박했다.’(NBC방송)최근 미국이 ‘식품안전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우유, 양파, 시리얼 등 먹거리 안전에 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당국과 언론이 잇따라 관련 경고와 보도를 내놓고 있는 것.》내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을 앞두고 이 같은 식품안전 및 보건 정책은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건복지 장관으로 지명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RKJ)는 “백신이 소아 자폐를 유발한다” “공공 상수도 내 불소는 암과 골절의 원인” 같은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은 발언을 일삼아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그가 복지부 수장이 되면 먹거리 안전 우려가 더 커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조류인플루엔자 인간 감염 우려 “트럼프 당선인이 재집권하면 즉시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H5N1)에 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이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될 가능성에 대비하라.”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전 행정부에서 식품의약국 국장을 지냈던 데이비드 케슬러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의대 교수가 최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미 전역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조류인플루엔자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치명적인 치사율과 빠른 확산력을 가진 이 바이러스는 그간 조류 사이에서만 감염되고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올 초 미국 내 소들이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됐고, 최근에는 생우유에서도 이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CDC에 따르면 아직 사람에서 사람으로 H5N1이 퍼진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최소 60명의 미국인이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됐고 대부분이 가금류 및 유제품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감염자들이 생우유를 마시지 않았다 해도 생우유를 만지거나 이것이 눈에 튀는 것만으로도 감염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살균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생우유에는 각종 박테리아성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바이러스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캘리포니아주의 식품기업 ‘로팜’이 생산한 생우유에서 H5N1이 검출됐다. 이 회사가 만든 생우유는 물론이고 이를 원료로 만든 생크림 등 유제품도 전량 회수됐다. 미국에서는 각 주(州)의 경계를 넘어 판매되는 우유는 반드시 저온 살균을 해야 한다. 다만 상당수 주는 주 내에서는 생우유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양파·당근 대장균 감염식품안전 사고는 주요 채소류에서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최근 맥도널드 햄버거에서 ‘O157:H7’ 대장균 감염 사태가 보고됐다. 그 원인으로 햄버거 속 생양파가 지목되고 있다. FDA에 따르면 이 사태로 14개 주에서 최소 104명이 발병했다. 콜로라도주의 한 노인은 사망했고, 34명이 입원했다. 맥도널드발 ‘양파 공포’에 버거킹, 피자헛, KFC, 타코벨 등 패스트푸드 기업들은 주요 메뉴에 생양파를 넣지 않기로 했다. NYT는 토양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병원균, 농지에 공급되는 오염된 물, 근처 농장의 동물 배설물 등이 모두 오염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대표 식품 체인 트레이더조스, 웨그먼스, 홀푸드 등에 납품된 유기농 당근에서도 대장균이 검출돼 39명이 감염되고 1명이 사망했다. 전문가들은 1993년 미국에서 600명 이상이 대장균에 감염되고 4명 이상의 어린이가 숨진 ‘잭 인 더 박스’ 햄버거 사건 이후 육류 관련 식품안전 사고는 줄어든 것으로 분석한다. 쇠고기, 돼지고기, 가금류에 대한 조리 온도 기준을 높이는 등 안전 기준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과일, 채소 등은 검사 비율이 극히 낮고 특히 해외 수입 물량은 1% 미만에 대해서만 검사가 이뤄져 안전성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입한 채소를 씻어서 먹기보다는 세척 과정을 거쳤다고 표기된 채소, 샐러드 등을 먹는 소비 습관 또한 생채소에 대한 우려를 높이고 있다.● “인공 색소가 ADHD 유발?” 시리얼, 과자, 사탕, 탄산음료 등에 첨가되는 석유 화합물 기반의 인공 식용 색소를 둘러싼 논란도 한창이다. 최근 프랭크 펄론 주니어 민주당 하원의원(뉴저지)은 “달콤한 간식이 넘쳐나는 성탄절 연휴를 앞두고 아이들이 먹는 음식에 화학 물질이 숨겨져 있다는 건 무서운 일”이라며 적색 3호(체리색) 인공 색소의 사용 금지를 FDA 측에 요구했다. 그는 “이런 색소는 제품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 외에는 첨가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FDA 승인을 받은 색소 첨가물은 36종. 그중 9종이 인공 합성 색소다. 인공 색소가 논란에 휩싸인 건 이들 색소가 일부 민감군 어린이들에게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와 유사한 신경계 병증을 유발한다는 주장이 속속 제기되면서다. 캘리포니아주는 2021년 “합성 식용 색소를 섭취하면 일부 민감군 어린이에게 과잉 행동 및 기타 신경 행동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23년 10월에는 “2027년까지 주내 공립학교의 음식 및 음료에서 FDA가 승인한 9가지 인공 식품 염색제 중 6가지를 금지한다”는 법안도 마련했다. 뉴욕, 일리노이주 등에서도 올해 비슷한 법안이 발의됐다. 비영리기관인 미 공익과학센터의 토머스 갈리건 수석 과학자는 NBC 인터뷰에서 “이러한 색소가 실제로 어린이의 행동에 해를 끼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간 임상시험이 27건 있었다”고 밝혔다. 전 FDA 수석 고문 겸 전 농무부 차관보인 제럴드 맨더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 겸임교수 역시 “안전을 강화하는 것이 완화하는 것보다 낫다”며 색소 규제에 힘을 실었다. 다만 아직까지 FDA 자문위원회는 “인공 색소와 소아 과잉 행동의 연관성은 인과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케네디 주니어 지명자 또한 식용 색소 반대론자다. 그는 “식용 색소는 암과 관련이 있다”며 “(장관에 취임하면) 고도로 가공된 식품 및 식품 첨가물을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상당수 전문가 또한 백신, 불소에 관한 그의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지만 색소 등 식품안전에 대한 주장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만 NBC에 따르면 미 식품업계는 연간 최소 140억 달러(약 19조6000억 원)를 광고에 지출하고 있다. 규제 기관에 대한 로비에도 엄청난 돈을 지출하는 만큼 케네디 주니어 지명자가 색소 금지에 관한 소신을 실제 정책 집행에 반영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는 반응도 나온다.임우선 뉴욕 특파원 imsun@donga.com}

최근 미국 동부 지역에서 정체불명의 무인기(드론)가 속속 발견되면서 대중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공공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시민들의 우려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란 등 미국에 적대적인 나라에서 만든 드론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퍼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연방 정부가 드론의 실체를 공개할 수 없다면 (차라리) 격추하라”고 주장했다. 15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지난달 18일부터 최근까지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펜실베이니아, 매사추세츠, 버지니아주 등 동부 연안의 최소 6개 주에서 드론이 보고됐다. 상당수 주민은 “드론이 머리 위를 맴돌거나 무리지어 이동하는 것을 봤다” “드론이 작은 트럭만큼 컸다”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드론들은 뉴욕 라과디아 공항과 스튜어트 공항, 뉴욕주의 군사 시설, 트럼프 당선인의 뉴저지주 골프장, 동부 해안가 등 다양한 장소에서 목격됐다. 스튜어트 공항에선 드론으로 인해 활주로가 13일 약 1시간 동안 폐쇄되는 일도 벌어졌다. 연방수사국(FBI)은 3일부터 관련 신고를 전화로 접수하고 있다. 2주도 안 되는 기간에 약 5000건의 제보가 쏟아졌다. 온라인에서도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 등 적대적 외국 세력의 음모일 수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추측이 퍼지고 있다. 우려가 커지자 백악관은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드론은 국가 안보나 대중 안전을 위협하는 종류가 아니며 외국의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보고된 목격 사례를 검토한 결과, 상당수가 합법적으로 비행하는 유인 항공기였다”고 덧붙였다. 주무 부처인 국토안보부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장관도 15일 ABC방송에 출연해 “관련 사건을 조사하는 뉴저지주 경찰을 지원할 자원, 인력을 배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물론 민주당 주요 정치인들도 바이든 행정부의 대응이 소극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8일부터 한국계 최초로 연방 상원의원 임기를 시작한 앤디 김 민주당 상원의원(뉴저지)은 소셜미디어 X를 통해 “당국의 소극적 설명이 시민 불안을 키웠다”며 안보를 책임지는 당국자들이 대중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리처드 블루먼솔 코네티컷주 상원의원 또한 트럼프 당선인과 마찬가지로 “드론이 공항이나 군사기지 위를 날고 있다면 격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최근 미국 동부 지역에서 정체불명의 무인기(드론)이 속속 발견되면서 대중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공공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다”고 밝혔지만 시민들의 우려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란 등 미국에 적대적인 나라에서 만든 드론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퍼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연방 정부가 드론의 실체를 공개할 수 없다면 (차라리) 격추하라”고 주장했다.15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지난달 18일부터 최근까지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펜실베이니아, 매사추세츠, 버지니아주 등 동부 연안의 최소 6개 주에서 드론이 보고됐다. 상당수 주민은 “드론이 머리 위를 맴돌거나 무리지어 이동하는 것을 봤다” “드론이 작은 트럭만큼 컸다”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드론들은 뉴욕 라과디아 공항과 스튜어트 공항, 뉴욕주의 군사 시설, 트럼프 당선인의 뉴저지주 골프장, 동부 해안가 등 다양한 장소에서 목격됐다. 스튜어트 공항에선 드론으로 인해 활주로가 13일 약 1시간 동안 폐쇄되는 일도 벌어졌다.연방수사국(FBI)은 3일부터 관련 신고를 전화로 접수 받고 있다. 2주도 안 되는 기간에 약 5000건의 제보가 쏟아졌다. 온라인에서도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 등 적대적 외국 세력의 음모일 수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추측이 퍼지고 있다.우려가 커지자 백악관은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드론은 국가 안보나 대중 안전을 위협하는 종류가 아니며 외국의 것도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보고된 목격 사례를 검토한 결과, 상당수가 합법적으로 비행하는 유인 항공기였다”고 덧붙였다. 주무 부처인 국토안보부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장관도 15일 ABC 방송에 출연해 “관련 사건을 조사하는 뉴저지주 경찰을 지원할 자원, 인력을 배치했다”고 밝혔다.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물론 민주당 주요 정치인들도 바이든 행정부의 대응이 소극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8일부터 한국계 최초로 연방 상원의원 임기를 시작한 앤디 김 민주당 상원의원(뉴저지)는 X를 통해 “당국의 소극적 설명이 시민 불안을 키웠다”며 안보를 책임지는 당국자들이 대중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리처드 블루멘탈 코네티컷주 상원의원 또한 트럼프 당선인과 마찬가지로 “드론이 공항이나 군사기지 위를 날고 있다면 격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연방항공청(FAA)에 따르면 미국에는 총 79만1597대의 드론이 등록돼 있다. 상업용과 오락용 비중이 각각 반반이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미국이 때 아닌 ‘드론 공포’에 휩싸였다. 뉴저지주를 비롯한 대서양과 맞닿은 미국 동부 여러 주의 주택가와 국가 기반시설, 군사시설 상공 등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드론 떼가 계속 출몰하고 있어서다. 국토안보부(DHS) 등 연방 기관은 “국가 안보에는 문제 없다”는 입장이지만 시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정치권도 “더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며 정부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1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AP통신, CNN 등 외신들에 따르면 최근 이 같은 드론 목격 신고는 뉴저지, 뉴욕, 코네티컷, 펜실베이니아, 매사추세츠, 버지니아 등 동부 연안의 최소 6개 주에서 보고됐다. CNN은 “연방항공청(FAA)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지난달 18일 뉴저지 주 모리스 카운티 근처에서 시작됐다”며 “주민들은 드론이 머리 위를 맴돌거나 때론 무리지어 이동하는 것을 보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드론 떼는 뉴욕의 수원지 상공을 비롯해 군사 연구 및 제조시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골프장 등 뉴저지 전역에서 목격됐다”며 “최근에는 해안 지역에서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작은 트럭 크기”, “하늘 위에 수십 개의 대형 드론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NYT는 “모리스 카운티의 육군 기지를 비롯해 뉴욕 라과디아 공항 근처, 스튜어트 국제공항 근처 등 여러 곳에서 드론이 목격됐다”며 “이로 인해 스튜어트 국제공항의 활주로는 1시간 동안 폐쇄됐다”고 밝혔다. 항만청이 운영하는 공항 활주로가 드론 활동으로 폐쇄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는 성명을 통해 “이건 심각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NYT는 “FBI가 12월 3일 신고 전화를 개설한 이후 약 5000건의 제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다만 CNN은 “이 중 100건 미만이 추가 조사 활동의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신고였다”고 밝혔다.우려가 커지자 백악관은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연방수사국(FBI), 국방부, FAA 등의 합동 설명을 통해 “드론은 국가 안보나 대중 안전을 위협하는 종류가 아니며 악의적인 외국의 것도 아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보고된 목격 사례를 검토한 결과, 상당수가 합법적으로 비행하는 유인 항공기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대중의 과민반응’이라는 식의 정부 설명에 여론은 반발했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드론이 러시아나 중국, 이란이나 북한 등 적대적 외국 세력의 음모일 수 있다”는 추측이 빠르게 퍼졌다. 뉴저지주 당국은 “연방 정부가 군대를 포함한 모든 연방 자원을 총동원해 우리 지역에서 허가 없이 드론을 비행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이에 드론 공포는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조 바이든 정부의 대응이 적절치 않다며 비판에 나섰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정부가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믿는다”며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면 당장 드론을 격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처드 블루멘탈 코네티컷주 상원 의원 역시 “특히 공항이나 군사기지 위를 날고 있다면 이를 격추해야 한다”고 말했다. FAA에 따르면 미국에는 총 79만1597대의 드론이 등록돼 있고 상업용과 오락용이 반반이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