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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지난해 한 시도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팀에 ‘관내 정부 기관이 해킹 피해를 봤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피해 범위와 해커 그룹의 소속 국가에 따라서는 정부의 기밀이 유출될 수도 있는 상황. 신속히 출동해 서버를 차단하고 악성코드의 성격을 밝혀야 했지만, 수사팀은 곧장 출동할 수 없었다. 당시 출동할 수 있는 사이버테러 전담 인력이 1명뿐이라서 인근 시도경찰청으로부터 인력 지원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장면2. 최근 영남에 있는 한 기업이 해킹을 당했다. 관할 사이버테러수사팀 인력 대다수는 다른 해킹 피해 대응을 위해 출장 중이었다. 급한 대로 평소 온라인 도박이나 보이스피싱 범죄를 수사하는 인력을 빌려 와서 투입해야 했다. 간신히 추가 해킹은 막았지만, 갑작스러운 인력 차출로 해당 지역의 사이버 범죄 업무는 반나절가량 마비됐다.● 사건 9만 건 증가 동안 10명 보강 최근 북한과 중국의 해커 그룹이 대법원과 방산업체, 병원 등 국내 주요 기관을 대상으로 전방위 해킹 공격을 펴고 있지만, 이를 막기 위한 경찰의 사이버테러 수사 인력은 5년 새 10명 늘어나는 데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기간 해킹 등 사이버범죄 처리에 드는 기간도 약 1.5배로 길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선 수사 인력의 공백이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해킹 등 사이버범죄를 입건부터 검찰 송치까지 처리하는 데 든 기간은 지난해 평균 110.2일 수준으로, 2018년 평균 73.5일에서 한 달 이상 느려졌다. 3월 초엔 중국계로 의심되는 해커가 충북경찰청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공격해 기존 게시물을 전부 삭제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경찰은 두 달이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해킹 수사력이 관련 사건의 증가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송재호 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청과 전국 18개 시도경찰청의 사이버테러 수사 전담 인력은 지난해 말 기준 총 172명이다. 2018년 162명에 비해 고작 10명 늘어났다. 경찰청과 서울경찰청, 경기남부경찰청을 제외한 16개 시도경찰청의 관련 인력은 각각 10명도 채 안 됐다. 특히 관내 정부세종청사가 있는 세종경찰청은 타 시도경찰청과 달리 해킹 전담 부서조차 꾸리지 못하고 있다. 사이버성폭력 등 다른 사이버범죄까지 총괄하는 전체 인력(4명) 중 1명만 해킹 전담이다. 충남·전북·전남·제주경찰청의 해킹 전담 수사 인력은 총 4명에 그쳤고, 광주경찰청은 관련 인력이 3명뿐이었다. 반면 해킹을 포함한 사이버범죄는 2018년 14만9604건에서 2022년 23만355건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는 9월 기준 18만2421건으로, 연말까지 약 24만 건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치안 인력 강화하며 사이버 수사 인력 부족현상 이는 지난해 경기 성남시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등 이후, 사이버테러 수사에 필요한 인력을 치안 현장에 대거 배치한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은 지난해 9월 발표한 조직개편안에 따라 사이버수사국을 수사국과 통폐합했다. 해킹 범죄가 심각해지는데 사이버테러 수사 기능에는 별다른 인력보강이 되지 않은 셈이다. 치안 수요에 따라 세밀하게 인력을 재배분해야 하는데, 급하게 조직을 개편하면서 오히려 중요성이 커지는 사이버테러 수사 분야에 구멍이 생겼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과학적 치안 수요 진단 없이 임기응변식으로 지난해 급격히 경찰 조직을 개편했다”며 “사이버테러 위협이 점증하는데 관련 수사 기능을 줄인 건 정책 오류”라고 분석했다. 해킹 수사의 핵심인 경찰의 대응력이 흐트러지면 안보의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권오국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은 “보안과 예방은 국가정보원 등 타 기관도 돕지만, 해킹 수사는 엄연한 경찰의 역할이다. 수사의 축인 경찰이 무너지면 다른 기관과의 협조도 의미가 없어진다”면서 “정보통신 강국인 우리나라 경찰의 사이버테러 수사력을 보강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송유근 기자 big@donga.com}

“코인으로 돈 버는 얘기만 할 수 있는 천국.” ―가상자산 운용사 A사 “가상자산 거래 경험 있는 분.”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 C사 국내 가상자산 업체가 올린 채용 공고다. 얼핏 숙련된 트레이더를 뽑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을 모집하는 글이었다. 병역특례는 군생활 대신 산업체에서 근무하며 병역 의무를 대행하는 제도다. 정부 지침상 가상자산 매매 및 중개업체는 병역지정업체로 선정될 수 없는데도, 유명 코인 거래소와 운용사가 버젓이 ‘병역특례’를 내세워 사람을 뽑고 있는 것이다. 병역지정업체 선정과 심사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인 거래소 직원이 ‘병역특례 요원’ 1일 병무청에 따르면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코인) 매매 및 중개업’이 주 업종이면 병역지정업체로 신청할 수 없다. 병무청에 정보기술(IT) 업체를 병역지정업체로 추천하는 중소벤처기업부가 2017년 신설한 조항이다. 가상자산 거래가 각종 사기에 연루되는 일이 잦아 “신청 제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특별히 예외를 둔 것. 그런데 취재팀이 병무청 선정 병역지정업체 8780곳(지난달 30일 기준)의 명단을 분석한 결과, 최소 6곳이 가상자산 매매와 중개를 주력으로 삼은 업체로 나타났다. 이 중엔 가상자산 중개를 담당하는 가상화폐 거래소는 물론 가상자산 컨설팅, 위탁운용, 자동매매 프로그램 등의 업무를 주로 하는 업체들도 포함돼 있다. 이는 주 업종을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컴퓨터 프로그램 서비스’ 등으로 바꿔서 병역지정업체로 신청하면 심사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인 매매는 기본적으로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램에 기반을 뒀기 때문에 이런 ‘우회 신청’이 가능한 것이다. 유명 코인 거래소인 C사도 ‘소프트웨어 개발업’으로 주 업종을 신고해 2017년 병역지정업체로 선정됐다. 이후 매년 1∼9월 병무청이 실시하는 실태 점검에서도 지정이 취소되지 않았다. 또 다른 5대 가상자산 거래소 K사 역시 ‘전문연구요원 가능’이라며 여러 직군에 병역특례 채용 공고를 내놓았다. 이에 대해 중기부 관계자는 “이들 업체는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 가장 많은 매출이 잡혔고 지금도 주 업종이 소프트웨어 개발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병역지정업체는 병역특례 요원 채용 공고에 대상 직군을 ‘트레이더’로 명기하기까지 했다. 가상자산 운용사 A사는 ‘병역특례 가능’이라는 문구를 앞세운 공고에 “개인 트레이딩을 이미 하고 있지만 혼자 하는 게 재미가 없는 분” “실력은 좋은데 시드(종잣돈)가 부족해서 손해 본다는 확신이 드는 분” 등의 자격요건을 적어놨다. A사도 ‘소프트웨어 개발’로 주 업종을 신고해 2018년 병역지정업체로 선정된 사례다. 법인 등기상 설립 목적을 ‘자산 운용 및 컨설팅’으로 신고했는데도 병무청의 실태 조사를 간단히 통과했다. A사 측은 “해당 공고는 실수였다. 현재 근무 중인 병역특례 요원 3명은 모두 코인 거래가 아닌 개발 직군에 배치돼 있다”고 해명했다.● ‘테라 사태’ 관련 업체도 병역특례 정부가 선정하는 병역지정업체가 되면 입지를 다지고 대외적으로 안정적인 업체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고급 인력을 싼 인건비로 영입하기도 유리해 중기부 기준 한 해에만 4000개 이상 업체가 신청에 몰려든다. 병역지정업체에 대한 허술한 관리는 자칫 사기 피해를 방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5월 국내 투자자 28만 명에게 대규모 피해를 준 가상자산 테라의 개발에 관여한 가상자산 컨설팅 업체 G사도 2020년 병역지정업체로 선정됐던 게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전문가들은 코인 관련 업체를 일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로 분류해 병역특례 혜택을 주는 건 명백한 관리 부실이라고 지적했다. 예자선 경제민주주의21 금융사기감시센터장(변호사)은 "가상자산 관련 회사에서 병역특례 요원들이 내부에서 실제로 어떤 업무를 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전문가인 변창호 코인사관학교 대표는 “코인 업체가 코인 거래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해서 주 업종을 ‘개발업’으로 보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병역특례가 만연한 현실 속에 기준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병무청 관계자는 “병역 의무자가 가상자산 매매 등의 분야에서 복무하는 건 병역법에 따라 엄격히 금지돼 있다”며 “향후 관련 업체를 전수조사해 위반 사항이 확인된 경우 업체와 요원 등을 고발하거나 복무 연장 등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자전거는 두고 걸어 올라가 주세요.” 27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 경비원이 음식 배달 가방을 자전거에 실은 채로 단지로 들어가려던 기자를 제지하면서 말했다. 단지 내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지하 주차장을 포함한 내부에 외부 자전거나 오토바이의 출입을 막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기자는 단지 밖에 자전거를 세워둔 채 음식 가방을 들고 목적지까지 약 600m를 달리기 시작했다. 낮 최고기온 26도로 무더웠던 이날 배달 기사 체험에 나선 기자의 상의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배민 ‘주소 비공개’ 이후 “골라 배달 어려워져”이 아파트는 단지 내 인도뿐 아니라 지하 주차장에도 이륜차 진입을 금지하고 있어 배달 기사 사이에서 ‘까다로운 아파트’로 이름나 있다. 일부 배달 기사들은 이런 아파트의 목록을 ‘블랙리스트’처럼 만들어 공유하기도 한다. 강남구 인근에서 일하는 배달 기사 유모 씨(32)는 “단지 입구부터 아파트 건물까지 1km 넘게 걸어야 하거나 경비실에 신분증을 맡겨야 하는 몇몇 아파트는 배달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두 달 전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배달 기사에게 손님의 상세 주소를 공개하지 않기로 한 후로 상황이 달라졌다. 기사가 배달을 수락한 후에야 아파트 이름 등을 볼 수 있게 된 것. 실제로 27일 기자가 배달 기사용 애플리케이션(앱)의 주문 접수 메뉴를 열어 보니 배달할 아파트의 이름이 ‘****’ 등으로 가려져 있었다. 배달 플랫폼 2, 3위인 요기요와 쿠팡이츠에 이어 시장 점유율이 약 60%인 1위 배달의민족까지 이런 조치를 하면서 사실상 ‘골라 배달하기’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배달 기사 측에선 ‘일을 선택할 권리를 침해받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부 주상복합 아파트에선 배달 기사가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도록 하거나 건물 내에서 헬멧, 우의를 벗도록 요구해 기사들이 ‘갑질’을 당했다고 느끼는데, 이런 곳까지 걸러내지 못하게 한 건 과도하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일부 배달 기사는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에서 일하길 거부하거나 아예 ‘요주의 아파트’ 인근에서 온 주문까지 피한다고 한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배달에 제약이 많은 지역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하는 추세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상호 불신이 사회 전체에 불편 초래” 반면 배달의민족 측은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기존 시스템에선 불특정 다수의 배달 기사가 손님의 주소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에 따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자율규제 규약을 맺은 결과라는 것이다. 배달 기사의 오토바이 통행을 막는 아파트 측도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일부 배달 기사가 ‘지하 주차장으로만 다니겠다’고 경비원을 속이고 실제로는 단지 내 인도에서 오토바이를 몰거나, 놀이터 주변 등 어린이가 많이 다니는 곳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탓에 단지 내 여론이 ‘일괄 제지’ 쪽으로 기울었다는 설명이다. 헬멧 착용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에 대해선 강남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혹시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폐쇄회로(CC)TV로도 얼굴을 확인하지 못할 외부인이 돌아다니면 혼잡하고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대구에서는 배달 기사로 위장한 20대 남성이 원룸 건물에 침입해 여성을 성폭행하려 한 사건이 일어났다. 전문가들은 소수의 사례가 초래한 불안이 ‘상호 불신’으로 이어지며 전체 사회에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파트 주민은 일부 배달 기사의 난폭운전 때문에, 배달 기사는 일부 아파트의 ‘갑질’ 때문에 서로 불편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배달원과 아파트 주민 모두 사회를 구성하는 일부인 만큼,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사회적 신뢰를 지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민감한 개인정보를 가리면서도 배달 기사가 온전한 정보를 토대로 (배달) 계약을 맺을 수 있게끔 플랫폼이 다양한 주체와 소통해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54억 뜯어낸 MZ 피싱 조직코인 사기로 54억 원을 뜯어낸 MZ세대(밀레니얼+Z세대) 피싱 조직 37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은 특이하게도 ‘투자 리딩방’이나 ‘로또 당첨번호 분석업체’ 등에서 이미 한 차례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피해를 보상해줄 테니 폭등이 예상되는 코인에 헐값에 투자하라고 속인 것. 쓰린 속을 위로하면서 추가 입금을 유도하는 감언이설에 넘어간 피해자가 80명이 넘었다.》“안녕하세요, 로또 분석업체 가입비 환불해 드리려고 연락했어요.” 수화기 너머 남성의 목소리는 친절했다. 지난해 6월 주부 김선미(가명·41) 씨는 모처럼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김 씨는 몇 달 전 ‘로또 당첨번호를 예측해 주겠다’는 한 업체의 꼬드김에 넘어가 350만 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당첨번호는 맞지 않았다. ‘사기를 당했나’라고 생각하던 차에, 그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최소 4배로 폭등할 가상화폐(코인)를 살 기회를 주겠다는 전화였다. 상담원이 쓰린 속을 다 안다는 듯 “앞으로 로또 번호는 그냥 ‘자동 선택’으로 고르시는 게 나아요”라고 위로하자 김 씨는 그를 완전히 믿게 됐다. 그리고 상담원이 알려준 계좌로 돈을 보낸 뒤에야 깨달았다. 또 당했다는 사실을.● 증권사 사칭한 ‘바람잡이’가 거액 투자 유도 김 씨처럼 로또 분석업체나 투자 리딩방에서 사기를 당했던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넘겨받아 코인 사기를 벌인 조직이 경찰에 검거됐다. 23일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서울과 인천 일대에 콜센터를 차리고 2022년 11월부터 이달 초까지 80여 명으로부터 54억 원을 뜯어낸 혐의(사기, 범죄단체조직 등)로 37명을 검거하고 그중 총책 A 씨(33) 등 15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조직 내에서 ‘본사’라고 불린 B 씨(25)로부터 ‘사기 목표’의 정보를 넘겨받았다. B 씨가 투자 리딩방 등에 유료로 가입했던 피해자의 이름과 연락처, 결제 금액 등을 넘기면 이를 조직원에게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조직원은 코인 발행업체 상담원을 가장해 ‘로또 분석업체 등을 인수했는데 한국소비자원에 피해 신고가 너무 많이 접수돼서 보상 방식을 대신 상담하고 있다’는 등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가 가짜 전자지갑에 기록된 입금 내역을 믿고 소액을 입금하면 증권사 직원으로 속인 다른 조직원은 재차 피해자에게 접근해 추가 송금을 유도했다. “우리도 못 구한 코인을 어떻게 구했느냐. 대량으로 매입해 줄 테니 최대한 많이 사들여라”라며 바람을 잡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5억3000만 원을 뜯긴 피해자도 있었다. 피해자가 의심하면 즉시 잠적하고 지역을 옮기며 범행을 이어갔다. 경찰은 지난해 6월 일부 피해자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했다. 올 1월부터 이달 초까지 콜센터 4곳을 덮쳐 A 씨 등 일당을 붙잡고 현장에서 고가 시계 등 18억 원어치의 금품을 압수했다. 경찰은 B 씨가 리딩방 등 피해자 정보를 어떻게 입수했는지 수사 중이다.● 중고차 사기 MZ 일당, 코인 사기로 업종 바꿔 A 씨 일당 37명은 모두 20, 30대였다. 특히 그중 12명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중고차 판매 사기를 벌이다 벌금형이나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업종을 코인과 리딩방 등 신종 경제사기로 변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범죄조직 사이에서 코인, 리딩방 등 신종 지능범죄가 추세처럼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달 3일 강원 지역에선 투자 리딩방을 이용해 사기를 벌이던 20, 30대 일당 35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청 형사기동대 심무송 피싱범죄수사계장은 “코인, 투자 리딩방 관련 범죄에 대한 투자자들의 경각심이 덜한 점을 이용해 MZ 범죄조직이 한꺼번에 많은 피해자를 속일 수 있는 코인 사기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채팅방 등에서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를 유치하는 행위는 일단 의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금융감독원에 정식 투자자문업자로 등록하지 않으면 채팅방 등 양방향 채널에서 투자 영업을 할 수 없다. 정식 업체는 금감원 정보포털(fine.fss.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투자 리딩방에서 개인정보를 요구하면 일단 불법이라고 의심하는 게 현명하다”고 경고했다.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시세보다 저렴해 ‘로또 분양’이라 불린 서울 강남구 한 펜트하우스 아파트를 계열사로부터 임의 분양 형태로 받은 현대차그룹 사장이 경찰에 고발돼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이 같은 사건을 내사하다가 종결한 지 5개월 만이다. 22일 서초경찰서는 현대차그룹 사장 김모 씨와 현대건설 전 사장 박모 씨를 각각 배임수재와 배임증재 등 혐의로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2018년 현대건설은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자이 개포’ 아파트의 펜트하우스를 분양할 때 앞순위 당첨자 2명이 모두 ‘잔금 마련 불가’ 등 이유로 입주를 포기하자, 같은 해 11월 이를 임의 분양 형식으로 김 씨에게 넘겼다. 당시 특혜 의혹이 불거지자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내사를 벌이다가 지난해 11월 종결했다. 당시 수사팀은 임의 분양을 금지하는 개정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이 시행되기 전이라서 주택법 위반 혐의 적용이 어렵고 배임 혐의는 불명확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올 3월 관련 고발장이 접수되며 경찰이 정식 수사에 착수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수개월간 미분양 상태였던 매물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처분한 것뿐”이라며 “경찰이 이미 혐의가 없다고 보고 내사를 종결한 상황인 만큼 특혜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20대 여성 인터넷방송 진행자(BJ)를 납치하고 2100만 원을 빼앗아 달아난 남성이 나흘 만에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경찰은 특수강도상해 혐의로 40대 남성 고모 씨를 구속했다고 21일 밝혔다.경찰에 따르면 고 씨는 14일 오후 6시경 강남구 역삼동으로 여성을 불러낸 뒤 폭행하고 차에 태워 납치했다. 이어 A 씨를 흉기로 위협해 약 2100만 원을 강제로 송금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은 고 씨가 차에서 잠시 내린 사이 탈출해 경찰에 신고했고, 현장에서 도주한 고 씨는 18일 대전의 부모 자택에서 검거됐다.납치 당시 고 씨는 저항하던 여성에게 “시청자와 나를 무시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고 씨는 지난해부터 온라인을 통해 여성을 돕는 ‘매니저’ 역할을 했지만, 서로 직접적으로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 씨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뒤 “피해자를 납치한 뒤 어떻게 하려고 했냐”는 취재진 질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범행을 계획했는지 묻는 질문엔 “계획한 적 없다”고 답했다. 법원은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바둑과 체스, AI시대 엇갈린 운명바둑의 인기는 8년 전 인공지능(AI) ‘알파고’가 등장한 후로 내리막을 걷고 있다. 반면 28년 전 AI에 최강자의 자리를 내준 체스는 여전히 미국에서 약 8000만 명이 즐길 정도로 인기다. 무엇이 바둑과 체스의 운명을 갈랐을까.“이놈이 이 기원에서 제일 고수예요.” 15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의 한 바둑 기원. 김위호 씨(72)가 아무도 없는 바둑판 맞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고심하며 검은 돌과 흰 돌을 번갈아 바둑판 위에 올렸다. 1인기(혼자 두는 바둑)라기엔 표정이 심각했다. 약 1시간 후 김 씨가 마침내 돌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바둑판은 인공지능(AI)이 탑재된 특수 바둑판이었다. 사람이 한 수를 두면 AI가 다음 수를 계산해 돌을 놓을 위치에 불이 들어오는 방식이었다. 가장 실력이 낮은 25급부터 프로 기사와 맞먹는 9단까지 AI의 실력을 설정할 수도 있었다. 평생 사람과 바둑을 두다가 얼마 전부터 AI 대국만 즐기고 있다는 김 씨는 “이 친구(AI)는 좀 오래 생각한다고 눈치를 안 줘서 좋다”며 웃었다. 》● ‘알파고 쇼크’ 8년, 대국-해설 수준은 높아져 2016년 3월 9일, 구글 딥마인드팀이 개발한 바둑 AI ‘알파고’가 당시 전 세계 최정상이었던 이세돌 9단을 꺾은 사건은 많은 바둑인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하나의 대국이 완성되는 경우의 수가 우주의 모든 원자 수(약 10의 80제곱)보다 많아 AI가 인간의 직관을 넘어설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기보를 딥러닝 방식으로 학습한 AI는 자가 대국까지 반복하며 실력을 키워 오늘날엔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알파고 이후 카타고(미국)와 릴라(벨기에), 줴이(絶藝·중국) 등 강력한 바둑 AI가 등장했고 AI끼리 우위를 겨루는 세계 대회도 생겼다. 인간 기사의 바둑 수준 자체는 AI의 등장 이후 전반적으로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때 바둑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목진석 9단은 “바둑 AI 등장 이후 형식적이었던 초반 포석에서 새로운 전략이 많아졌다”며 “대표팀 훈련의 70% 이상은 바둑 AI와 두게 했다”고 말했다. 한국바둑협회(협회)도 바둑 AI를 탑재한 애플리케이션(앱)을 배포해 선수들이 자유롭게 훈련할 수 있도록 했다. 대국 해설과 중계의 정확도도 한 단계 높아졌다. 프로기사가 돌을 놓으면 AI가 판세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준다. 복잡한 국면에서 대국자가 장고하면 해설진은 AI가 최선으로 꼽은 다음 수를 슬쩍 알려준다. 시청자가 이미 답을 아는 상태로 대국을 지켜보는 셈이다. 협회 관계자는 “바둑 AI의 등장 이후 바둑은 모든 좌표를 수학적인 확률로 풀어내는 과정으로 변했다”고 평했다.● 거듭된 ‘AI 커닝’에 흥미 식어 하지만 바둑 AI의 등장은 바둑계의 쇠퇴를 가속하기도 했다. ‘어차피 인간의 대국은 AI보다 몇 수 아래다’라는 생각 탓에 바둑인들이 흥미를 잃고 떠난다는 것이다. 남치형 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는 “승리를 위한 답이 정해져 있다는 걸 안 순간 수학 문제처럼 정답을 찾는 과정이 된다”며 “아름다운 수를 고안해 내는 과정에서 보람을 얻던 바둑인들은 흥미를 잃을 수 있다”고 했다. 이세돌 9단도 “AI가 나온 이후로 바둑의 예술성은 퇴색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AI를 악용한 부정행위까지 판치며 공식 대회의 신뢰성까지 무너뜨리고 있다. 입단 당시 국내 최연소 기록을 보유했던 김은지 9단(17)은 2020년 한 온라인 바둑 대회에서 바둑 AI를 사용하다가 적발돼 자격정지 1년의 징계를 받았다. 이듬해엔 도은교 초단(39)이 온라인 대회에서 바둑 AI를 사용하다가 덜미를 잡혀 1년 자격정지를 당했다. 2022년 12월 세계바둑선수권 대회에서도 상대적 열세였던 리쉬안하오 9단(29)이 신진서 9단(24)을 꺾자 중국의 같은 팀 동료였던 양딩신 9단(26)이 부정행위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영향으로 바둑을 즐기는 인구는 줄고 있다. 협회는 지난해 국내 바둑 인구를 883만 명으로 추산했다. 8년 전 921만 명보다 40만 명가량 줄었다. 바둑 인구 대다수가 60대 이상이고 젊은 애호가의 유입은 적다. 최근 명지대의 바둑학과 폐과 결정은 국내 바둑의 몰락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1997년 개설돼 78명의 프로 기사를 배출한 이 학과는 젊은 바둑 인구가 줄면서 내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도 지난해 21억 원이던 대한바둑협회 지원 예산을 올해 전액 삭감했다. 대한바둑협회는 27일 “바둑학과 진학을 희망하던 학생들의 꿈이 짓밟히는 일이 없도록 관련 기관과 협의해 대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체스는 젊은 유튜버 입소문 타고 중흥기 체스는 바둑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전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온라인 체스 플랫폼인 ‘체스닷컴’은 2022년 12월경 가입자가 1억 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집계된 시장 규모는 한화로 약 2조8500억 원이다. 체스가 AI에 최정상 자리를 내준 건 1996년이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가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와의 첫 번째 경기에서 37수 만에 패배하며 AI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알파고 쇼크’가 나오기 20년 전이다. 당시만 해도 “체스를 두는 사람이 없어질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체스는 28년이 지난 현재 어떻게 명성을 되찾았을까. 그 비결은 ‘젊은 게임’으로 이미지를 쇄신한 점이 꼽힌다. 체스닷컴 직원 성모 씨(35)는 “2010년 체스는 ‘아저씨 게임’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슈퍼스타가 등장하고 선수들이 유튜브 등 개인 방송을 하면서 ‘젊은 게임’이라는 이미지를 얻은 덕택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 세계 최정상급 선수인 히카루 나카무라(40)의 유튜브 채널은 230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재치 있는 입담으로 체스를 해설하는 레비 로즈먼(29)의 채널은 480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여성 체스 선수 알렉산드라 보테즈(29)도 마찬가지로 체스 선수인 여동생과 길거리 체스 도장 깨기, 체스 복싱(체스와 복싱을 번갈아 하는 스포츠) 등의 콘텐츠를 앞세워 구독자 150만 명을 달성했다. 체스가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AI 부정행위로 인해 실망하고 떠나지 않도록 방지 장치들을 도입한 것이다. 체스닷컴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데이터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부정행위 단속팀을 구성해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경기를 심의하고, 계정 정지 등의 조처를 하고 있다. 오프라인 대회에서도 불시에 금속탐지기 검사를 실시하거나, 경기의 생방송 송출 시간을 의도적으로 지연시켜 실시간으로 ‘AI 훈수’를 받을 수 없게 했다. 바둑이 4대 ‘아재(아저씨)’ 취미인 바둑과 등산, 골프, 낚시 중에서 유일하게 젊은 층 인기를 되찾지 못한 건 어려운 규칙 등 높은 진입장벽 탓도 있지만, 쇄신 노력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명예교수는 “젊은 바둑 인구를 끌어오기 위해 해외 체스계의 성공 사례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면서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여기가 스쿨존이라고요?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표시만 보이는데요.” 17일 오후 1시경 서울 송파구 송파동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일방통행 차로에서 역주행하던 한 트럭 운전사가 이렇게 말했다. 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다니자 스쿨존에서 걷던 학부모들은 깜짝 놀라며 아이의 손을 안쪽으로 잡아당기기 바빴다. 이곳에선 11일 오후 4시 40분경 인근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던 4세 남자아이가 승용차에 치여 숨졌다. 하지만 엿새가 지난 이날도 이 일대엔 스쿨존에 들어서기 전에 속도를 낮추지 않거나 불법 주차된 차량을 수십 대 볼 수 있었다.● 스쿨존 표시 1개뿐, 과속방지턱은 없어 송파경찰서 등에 따르면 11일 가해 차량 운전자는 차량 1대가 간신히 지나가는 이면도로에서 스쿨존으로 진입하다가 좌회전하던 중 사고를 냈다. 운전자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 아동을 미처 보지 못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운전자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어린이보호구역 치사 혐의 등을 적용해 운전자 전방 주시 등 안전운전 의무를 어겼는지 조사 중이다. 이 골목은 2006년부터 스쿨존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17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사고 현장 일대를 확인한 결과 노면에는 ‘일방통행’ 표시만 있을 뿐 스쿨존임을 안내하는 별도 표지는 없었다. 사고 지점 바로 앞에는 스쿨존 표지판이 하나 설치돼 있었으나 4, 5m 높이라서 일반 승용차 운전자가 주행 중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적색 미끄럼방지 블록이나 ‘옐로 카펫’ 등 스쿨존을 나타내는 장치도 없었다. 이날 이곳을 지난 운전자 대다수는 ‘스쿨존인 줄 몰랐다’고 했다. 과속방지턱은 스쿨존과 연결된 인근 일반도로는 물론이고 스쿨존 내 약 160m 구간 어디에도 없었다. 스쿨존 내에 턱이 없는 가상 과속방지턱 2개가 그려진 게 전부였다. 과속 단속 카메라도 없었다. 2020년에 개정 도로교통법(일명 ‘민식이법’)이 시행돼 간선도로 등 대다수 스쿨존에선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이번 사고가 발생한 골목길 등 이면도로는 설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도로 곳곳에 불법 주정차한 차들도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이날 현장 인근에는 1t짜리 용달 차량이 도로 절반을 가리고 30분 넘게 정차해 있었고, 차량을 피하기 위해 주민들이 도로 한가운데로 나가는 등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곳은 평소에도 차량이 많이 통행해 아이들이 홀로 보행하기는 위험했다고 한다. 평소에 이곳을 자주 지나다닌다는 주민 김모 씨(76)는 “매일 등·하원 때마다 아이들 곁으로 차가 쌩쌩 지나가 조마조마했다”며 “불법 주정차나 역주행 차량에 대한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인근 어린이집에서 근무 중인 관계자는 “(사고 지점 인근이) 인도와 차도 구분이 안 돼 있어 어른들도 다니기 불편했다”고 토로했다.● “지자체가 스쿨존 내 안전시설 적극 나서야” 스쿨존은 어린이 교통사고 예방을 목적으로 초등학교, 유치원 등의 주 통학로에 안전 시설물과 표지판 등을 설치하도록 지정된 구역으로, 1995년 도입됐다. 2022년부터는 ‘어린이가 자주 왕래하는 곳 중 조례로 정하는 시설 및 장소’로 지정 범위가 대폭 확대됐다. 스쿨존 내 제한 속도는 시속 30km지만, 지난 9월부터 심야 시간대 일부 간선도로에 한해 40∼50km로 상향됐다. 다만 안전 시설물 설치 등은 여전히 지방자치단체 자율에 맡기고 있어 일부 필수 안전시설 설치를 법률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임채홍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자체나 경찰, 학교와 어린이집 등 스쿨존 관계자들이 긴밀하게 소통해 스쿨존 내에 부족한 시설물을 보완하고 위험 상황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경기 파주시 호텔에서 20대 여성 2명이 살해당한 가운데, 가해자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이 미리 살인을 공모한 정황을 경찰이 확보했다. 경찰은 이들이 금전 갈취와 같은 경제적 목적으로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남성은 경찰이 찾아가자 투신해 숨졌다. 14일 경찰에 따르면 두 남성은 범행 전 여성들을 호텔 객실로 유인한 후 해치는 등의 계획을 텔레그램으로 주고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처음부터 살해할 목적으로 여성들을 일부러 호텔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찰은 이들이 두 여성의 손목 등을 묶는 데 사용한 케이블타이와 청테이프 등을 미리 마련한 점도 고려해 계획범죄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동아일보가 확보한 호텔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 등에 따르면 남성들은 8일 오후 3시 48분경 여행용 캐리어(28인치 추정) 안에 케이블타이 등으로 보이는 물체를 넣은 후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이들은 9일 오전 5시경 차량을 타고 호텔을 벗어났다 약 5시간 후인 오전 10시경 또 다른 케이블타이 등을 손에 들고 다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경찰은 두 남성이 금전 갈취 등을 목적으로 범행을 준비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두 남성 모두 제대로 된 직업이 없는 상태였다. 이 중 한 명의 휴대전화에서 도박과 관련된 정황이 일부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실제 이들이 여성들로부터 돈을 빼앗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찰은 현장 인근에서 발견된 칼 두 자루에 대해 두 남성이 범행 후 시신 처리를 위해 신체 일부를 훼손하려 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숨진 여성 중 한 명의 오른팔에 길이 9cm, 깊이 3cm의 상흔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현장에서는 육안상 혈흔이 보이지 않았다. 혈액 순환이 이미 멈춘 시신에 상처를 내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 유기 등을 목적으로 남성들이 처리를 시도하다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경찰은 숨진 남성들의 휴대전화를 확보해 디지털포렌식 작업도 진행 중이다. 사라진 여성의 휴대전화 행방에 대해선 여전히 추적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4명이 주고받은 대화 기록을 이미 확보한 만큼 앞으로의 수사 진행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경찰은 10일 파주시 한 호텔 방 안에서 목과 손목이 케이블타이로 묶인 채 살해된 여성 2명을 발견했다. 경찰 방문 당시 방 안에 있었던 남성 2명은 경찰이 여성들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호텔 프런트로 나간 사이 투신해 사망했다. 경찰은 여성들의 사인을 질식사로 잠정 추정하고 있으며, 정확한 사인은 국과수 감정 결과를 통해 드러날 예정이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파주=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경기 파주시 호텔에서 20대 여성 2명이 살해당한 가운데, 가해자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이 미리 살인을 공모한 정황을 경찰이 확보했다. 경찰은 이들이 금전 갈취와 같은 경제적 목적으로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남성은 경찰이 찾아가자 투신해 숨졌다.14일 경찰에 따르면 두 남성은 범행 전 여성들을 호텔 객실로 유인한 후 해치는 등의 계획을 텔레그램으로 주고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처음부터 살해할 목적으로 여성들을 일부러 호텔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찰은 이들이 두 여성의 손목 등을 묶는 데 사용한 케이블타이와 청테이프 등을 미리 마련한 점도 고려해 계획범죄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동아일보가 확보한 호텔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 등에 따르면 남성들은 8일 오후 3시 48분경 여행용 캐리어(28인치 추정) 안에 케이블타이 등으로 보이는 물체를 넣은 후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이들은 9일 오전 5시경 차량을 타고 호텔을 벗어났다 약 5시간 후인 오전 10시경 또 다른 케이블타이 등을 손에 들고 다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경찰은 두 남성이 금전 갈취 등을 목적으로 범행을 준비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두 남성 모두 제대로 된 직업이 없는 상태였다. 이 중 한 명의 휴대전화에서 도박과 관련된 정황이 일부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실제 이들이 여성들로부터 돈을 뺏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찰은 현장 인근에서 발견된 칼 두 자루에 대해 두 남성이 범행 후 시신 처리를 위해 신체 일부를 훼손하려 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숨진 여성 중 한 명의 오른팔에 길이 9cm, 깊이 3cm의 상흔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현장에서는 육안상 혈흔이 보이지 않았다. 혈액순환이 이미 멈춘 시신에 상처를 내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 유기 등을 목적으로 남성들이 처리를 시도하다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경찰은 숨진 남성들의 휴대전화를 확보해 디지털포렌식 작업도 진행 중이다. 사라진 여성의 휴대전화 행방에 대해선 여전히 추적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4명이 주고받은 대화 기록을 이미 확보한 만큼 앞으로의 수사 진행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경찰은 10일 파주시 한 호텔 방 안에서 목과 손목이 케이블타이로 묶인 채 살해된 여성 2명을 발견했다. 경찰 방문 당시 방 안에 있었던 남성 2명은 경찰이 여성들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호텔 프런트로 나간 사이 투신해 사망했다. 경찰은 여성들의 사인을 질식사로 잠정 추정하고 있으며, 정확한 사인은 국과수 감정 결과를 통해 드러날 예정이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파주=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경기 파주시 호텔에서 20대 남녀 4명이 숨진 사건과 관련해 남성 2명이 범행 도구를 미리 마련하고 여성들을 유인한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이 살해한 여성 2명의 시신을 훼손하려고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12일 경기북부경찰청에 따르면 남성 2명은 8일 오후 4시경 여행용 가방을 들고 처음 이 호텔 21층 객실에 들어갔다. 이어 9일에도 주차장과 객실 앞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 이들이 여성들의 손목과 목을 묶는 데 사용한 케이블타이를 들고 올라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사건 현장에서 CCTV에 포착된 것보다 훨씬 많은 케이블타이와 피해자들의 입을 막은 청테이프 등이 발견된 점에 비춰볼 때 경찰은 남성들이 미리 범행 도구를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숨진 여성 2명 중 침대 위에서 발견된 여성의 오른팔에는 길이 9cm, 깊이 3cm의 상흔이 있었다. 과학수사대는 여성이 사망한 뒤 남성들이 시신을 훼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방 안에서 발견된 칼 2자루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 의뢰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칼들은 호텔 내에 원래 비치돼 있었으며, 범행 현장에선 침대 옆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육안상 혈흔이 남아있진 않았다. 경찰은 숨진 여성들의 휴대전화를 찾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은 10일 오전 투신한 남성 2명이 범행 직후 호텔방을 오가면서 피해자들의 휴대전화를 밖으로 가지고 나간 뒤 버리고 돌아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숨진 여성 중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는 여성 1명은 남성 1명과 2, 3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남성은 8일 텔레그램에 아르바이트 구인 글을 올렸고, 다른 여성 한 명이 연락해 만나게 된 것으로 확인됐다. 남성들은 친구 사이로 전과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복수의 지인들에 따르면 이 중 한 남성은 짧게는 3개월가량 시공업체에서 일하는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으며,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경찰은 남성들이 피해자들을 목 졸라 살해한 뒤 객실 밖으로 투신한 것으로 보고 범행 동기 등을 파악하고 있다.의정부=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경기 파주시의 한 호텔에서 20대 여성 2명이 목 졸려 숨지고 남성 2명이 투신해 사망한 가운데, 경찰이 투신 사건 약 30분 전 해당 객실을 찾았지만 “(여자가) 나갔다”는 남자의 말을 듣고 안에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사건 전날 실종신고를 받고 수색에 나섰지만 폐쇄회로(CC)TV 영상이 확보되지 않아 약 13시간 동안 추적이 중단된 사실도 확인됐다. 적극적인 실종자 수색을 위한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CCTV 못 구해 13시간 추적 중단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9일 오후 4시 40분경 20대 여성 A 씨의 가족이 고양경찰서에 찾아갔다. A 씨가 8일 오후 5시경 ‘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집을 나선 후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수사팀은 9일 오후 6시경 A 씨의 아파트를 방문해 CCTV 기록을 요청했지만 관리사무소 담당 직원이 퇴근해서 확보하지 못했다. 현행법상 성인 실종은 범죄 혐의가 뚜렷하지 않으면 ‘가출’로 분류돼 관리사무소 등 민간의 협조를 강제할 수 없다. 수사팀은 10일 오전 7시에 관리사무소를 다시 찾아 CCTV를 확인했고, A 씨가 탑승한 택시를 추적해 그가 8일 파주시의 한 호텔로 향한 사실을 파악했다. 추적이 약 13시간 지연된 것. A 씨 등 여성 2명은 10일 해당 호텔 객실 안에서 손목과 목이 케이블타이로 묶인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수사팀이 CCTV를 처음 요청했던 시간에 여성들이 살아 있었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 시간 등을 파악하기 위해 정밀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 투신 30분 전 객실 찾았지만 돌아나와 1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1차 부검 결과 A 씨 등 여성 2명의 사망 원인은 목 졸림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냈다. 경찰은 A 씨 등이 살해당했다고 보고, 함께 투숙했다가 투신해 숨진 B 씨 등 남성 2명이 그 과정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남성들이 투신하기 전 경찰이 그들을 연행해 진상을 조사할 기회가 있었다는 점이다. 수사팀은 실종된 A 씨를 추적한 끝에 10일 오전 10시경 이들이 묵고 있던 호텔의 21층 객실을 방문했다. 그런데 B 씨가 문을 살짝 열고 얼굴만 내민 채 “(A 씨가) 고양시의 한 상점가에 나갔다”고 답하자 방 안을 확인하지 않고 1층 프런트로 내려왔다. A 씨가 실제로 호텔 밖으로 나갔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 사이 10시 35분경 B 씨 등 남성 2명은 객실 밖으로 투신했다. 경찰 관계자는 “A 씨의 휴대전화 신호가 실제로 고양시의 상점가에서 끊긴 상태였기 때문에 범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상 객실 등에 강제로 진입하려면 범죄 행위가 눈앞에서 벌어지는 등 ‘긴급 상황’이어야 하는데, 당시로선 이에 해당한다고 볼 근거가 부족했다는 얘기다.● 실종자 수색 법안, 폐기될 처지 이에 따라 당시 수사팀이 ‘긴급 상황’을 더 적극적으로 해석했거나 강력한 실종자 수색 매뉴얼이 있었다면 사건 결과가 달랐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종자를 수색할 때 강제 진입이나 CCTV 협조 요구를 명확히 규정한 ‘실종성인의 소재 발견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2022년 2월 국회에 발의됐지만 소관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21대 국회가 폐원하면 이 법안도 자동 폐기된다. 경찰이 남성들의 휴대전화를 조사한 결과 숨진 남성 중 1명과 여성 중 1명은 지난해부터 알던 사이였다. 다른 여성과의 관계는 파악되지 않았다. 남성 중 1명이 8일 오후 3시경 보안 메신저에 구인 공고를 올렸는데, 해당 여성이 이를 보고 찾아왔을 가능성이 있다. 해당 공고는 단순 아르바이트로, 성범죄와 연관성은 없었다고 한다. 객실 안에서도 성범죄나 마약류 투약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B 씨 등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할 방침이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파주=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파주=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경기 파주시의 한 호텔에 머무르던 20대 남녀 4명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객실 안에서 발견된 여성 2명이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정확한 경위를 파악 중이다. 10일 파주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35분경 파주시 야당동의 한 호텔 정문 앞 큰길 쪽 인도에 남성 2명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들은 투숙하던 최상층(21층) 객실 테라스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됐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남성들이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건 직후 현장을 목격한 한 시민은 “등산복을 입은 거구의 남성 2명이 푸른 천으로 덮여 있었고 주위로 피가 흥건했다”고 전했다. 이들이 투숙하던 객실 안에서는 여성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여성들은 케이블타이로 손목이 묶인 상태였다. 경찰은 숨진 남성들이 여성 2명의 사망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객실 안에선 빈 소주병 4개가 발견됐다. 다만 주사기 등 마약류를 사용한 흔적이나 성관계의 물증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음주나 마약류 사용 여부 등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시신을 모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부검을 의뢰했다. 1차 부검 결과는 7일 내로 경찰에 전달되며, 정밀 결과는 약 한 달 뒤에 나온다. 숨진 4명은 8일부터 이 호텔에 투숙한 것으로 조사됐다. 남성 2명이 먼저 입실하고 여성 2명은 약 1시간 간격으로 따라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남성 2명은 지인 관계였지만, 숨진 여성들과 무슨 관계였는지는 파악 중이다. 남성 중 1명은 특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왔고, 여성 중 1명은 갓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예약한 객실은 평일은 10만 원대, 주말에는 25만 원대로 이용할 수 있는 방으로, 바비큐 장비 등이 갖춰진 테라스에는 약 1.5m 높이의 유리 난간이 설치돼 있다. 이들은 21층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는 수영장도 예약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호텔 폐쇄회로(CC)TV와 고인들의 휴대전화를 확보해 포렌식하는 등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류 투약이나 동반 자살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파주=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파주=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10일 오전 서울 동작구 상도초등학교 내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 투표소. 투표 참관인석에 앉은 대학생 이주원 씨(26)가 투표용지 배부 등을 지켜보고 있었다. 충남 천안시에서 자취하는 이 씨는 이날 오전 6시부터 낮 12까지 참관인으로 활동하고 식비를 포함해 총 11만4000원을 받았다. 이 씨는 “투표 참관인은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가성비가 좋고, 무엇보다 선거가 이뤄지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어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10일 치러진 총선은 민주주의의 축제이자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등 청년에게 생활비를 보탤 기회였다. 각 시도 선관위는 참관인과 투·개표 사무원 중 일부를 일반인 중에서 추첨한다. 별도 면접이 없고 선거사무를 참관하거나 보조하는 단순 업무인데도 시급으로는 1만6000원이 넘어 인기가 많다. 이날 영등포구 여의도중학교 투표소에서 투표 참관인으로 활동한 대학생 박지호 씨(26)는 “벌이가 괜찮으면서 종일 앉아서 하는 경우도 많아 지원했다”고 말했다. 2020년 제21대 총선거 땐 참관인 수당이 약 5만 원이었지만 2022년 4월 시행된 개정 공직선거법에 따라 이번 총선에선 약 10만 원으로 올랐다. 투·개표 사무원 업무도 인기였다. 개표 사무원은 주로 접힌 투표용지를 열거나 가지런히 정리하는 등 단순 보조 업무에 투입된다. 심사·집계 등 중요한 절차는 맡지 않는다. 취업준비생 김모 씨(27)는 이날 오후 4시부터 개표가 종료될 11일 새벽까지 동작구의 한 개표소에서 개표 사무원으로 일하고 18만4000원을 받았다. 김 씨는 “투표는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인데 그 과정을 보는 게 뜻깊기도 해 일거양득”이라고 했다. 투·개표 사무원 수당도 전년 대비 올해 3만 원 인상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 전체 선거관리 인력의 29.1%였던 일반인의 비율은 2020년 제21대 총선거에서 38.8%로 올랐다. 이번 총선에선 약 40%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투표 인증을 하면 물건값을 깎아 주는 등 투표 독려 이벤트를 여는 점포도 많았다. 경기 화성시의 한 프랜차이즈 제과점은 이날 종업원에게 투표확인증이나 투표소 외부에서 찍은 사진을 보이면 아메리카노를 410원에 판매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서울 용산구의 한 와인바는 투표 인증 사진을 보이면 기본 와인 세트 메뉴를 무료로 제공했다. 한 화장품 업체는 이날 밤 12시까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투표 인증을 한 모든 이에게 제품을 배송해 주기로 했다.최원영 기자 o0@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서울의 한 식당에서 심정지로 쓰러진 중년 여성이 현장에 있던 경찰관의 신속한 심폐소생술(CPR)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10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후 7시경 서울 성동구 용답동 식당에서 한 중년 여성이 식사하다가 바닥으로 쓰러진 채 숨을 쉬지 않았다. 심정지였다. 가장 먼저 나선 건 퇴근 후 옆 테이블에서 아내와 식사하던 성동경찰서 범죄예방대응과 소속 변해솔 경사(42·사진)였다. 변 경사는 쓰러진 여성을 보자마자 함께 식사하던 아내에게 “119를 빨리 불러 달라”고 부탁한 뒤 즉시 CPR을 시작했다. 약 1분 후 쓰러졌던 여성은 ‘컥’ 하고 숨을 내뱉으며 의식을 되찾고 몸을 일으켰다. 이후 119구급차로 인근 병원에 이송돼 건강을 회복했다. 변 경사는 평소 경찰서에서 실시하는 정기 응급처치 교육 말고도 유튜브 등에서 관련 영상을 따로 찾아볼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군 복무 시절 동료 병사가 갑자기 쓰러진 것을 본 뒤 꾸준히 공부해 온 것. 같은 경찰서의 한 동료는 변 경사에 대해 “모르면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배우려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새벽 5시까지 업무를 하다가 아침 9시에 다시 출근해도 활기를 잃지 않는 분”이라고 말했다. 변 경사는 “정신없이 응급조치를 하다 보니 어느새 구급대가 도착해 있었다”며 “경찰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고, 본분을 다하면 언젠가 일곱 살 된 딸에게 덕이 돌아갈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경기 파주시의 한 호텔에 머무르던 20대 남녀 4명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객실 안에서 발견된 여성 2명이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정확한 경위를 파악 중이다.10일 파주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35분경 파주시 야당동의 한 호텔 정문 앞 큰길 쪽 인도에 남성 2명이 쓰러져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들은 투숙하던 최상층(21층) 객실 테라스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됐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남성들이 숨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건 직후 현장을 목격한 한 시민은 “등산복을 입은 거구의 남성 2명이 푸른 천으로 덮여있었고 주위로 피가 흥건했다”고 전했다.이들이 투숙하던 객실 안에서는 여성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여성들은 케이블타이로 손목이 묶인 상태였다. 경찰은 숨진 남성들이 여성 2명의 사망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객실 안에선 빈 소주병 4개가 발견됐다. 다만 주사기 등 마약류를 사용한 흔적이나 성관계의 물증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음주나 마약류 사용 여부 등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시신을 모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부검을 의뢰했다. 1차 부검 결과는 7일 내로 경찰에 전달되며, 정밀 결과는 약 한 달 뒤에 나온다. 숨진 4명은 8일부터 이 호텔에 투숙한 것으로 조사됐다. 남성 2명이 먼저 입실하고 여성 2명은 약 1시간 간격으로 따라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남성 2명은 지인 관계였지만, 숨진 여성들과 무슨 관계였는지는 파악 중이다. 남성 중 1명은 특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왔고, 여성 중 1명은 갓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예약한 객실은 평일은 10만 원대, 주말에는 25만 원대로 이용할 수 있는 방으로, 바비큐 장비 등이 갖춰진 테라스에는 약 1.5m 높이의 유리 난간이 설치돼있다. 이들은 21층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는 수영장도 예약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호텔 폐쇄회로(CC)TV와 고인들의 휴대전화를 확보해 포렌식하는 등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류 투약이나 동반 자살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파주=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파주=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지난해 9월 서울 성동구의 한 주택가. 홀로 사는 이모 씨(58) 집으로 119 구급대원들이 황급히 출동했다. 사업 실패와 가정불화로 인해 2002년 무렵부터 혼자 지낸 이 씨는 2018년 무렵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 왔다. 이 씨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지만,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사회적 고립으로 고독사 위험이 있는 집에 성동구가 지원한 돌봄서비스 인공지능(AI) 스피커에 이 씨가 마지막 순간 “살려줘”라고 외친 덕이었다. 이처럼 전국에 혼자 사는 1인 세대가 1000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9일 나타났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처음으로 5세대 중 2세대 이상이 혼자 사는 것으로 집계됐다. 홀로 사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고독사 예방을 비롯한 사회적 안전망 대책과 더불어 저출산 극복을 위한 대책 등이 균형 있게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 홀로 세대, 60대 가장 많아 이날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전국 1인 세대 수는 올해 3월 기준 1002만1413명으로,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2400만2008세대의 41.8%에 달한다. 나이별로는 60∼69세가 185만1705명(18.5%)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30∼39세 168만4651명(16.8%), 50∼59세 164만482명(16.4%) 순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남자가 515만4408명으로, 여자 486만7005명보다 상대적으로 많았다. 전체 세대원 수를 살펴보면 1인 세대, 2인 세대 등 개인화된 세대는 늘었지만 4인 세대 이상은 감소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2월 대비 1인 세대 수는 3만9711명이 늘었지만, 4인 세대는 1만4158세대가 줄었다. 특히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1인 세대가 집중됐다. 경기 225만1376명, 서울 200만6402명이었고, 이어 부산 65만6027명, 경남 62만8547명 순이었다. 다만 전체 세대에서 1인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남이 47.2%로 가장 높았고, 경북 45.9%, 강원 45.4% 순으로 나타나 지역에서도 1인 세대 비중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행안부의 주민등록 인구 통계상 1인 세대는 통계청이 인구주택총조사를 통해 발표하는 1인 가구와 다른 개념이다. 1인 가구는 실제로 홀로 사는 사람을 뜻하고, 1인 세대는 여기에 주민등록상 1인 세대주로 분리된 이들까지 더한 수치다. 이 때문에 1인 세대가 1인 가구보다 다소 많은 편이다. 예를 들어 부부와 자녀 1명은 3인 가구지만, 각각 다른 주소지에 살고 있다면 1인 세대 3명이 된다.● 사회적 고립·저출산 심화 우려 문제는 이 같은 1인 세대 5명 중 4명이 고독사 위험군으로 분류돼 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올 1월 발표한 2022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홀로 사는 19세 이상 성인 9471명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78.8%)이 고독사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또,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면서 주택 보급률이 올라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인 세대가 늘어나면서 주택 보급률이 오히려 하락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1인 세대가 증가하는 추세에 맞춰 고령층의 고독사 문제 등을 정부가 전담해서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원래 청년이 가정을 꾸리며 ‘혼자 사는 것’이 일시적인 단계였다면 이제는 중년까지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저출산·고령화는 물론이고 고독사 위험군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이들을 전담하는 기구를 정부 차원에서 설립해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나홀로족’을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는 주변 원룸 시세의 50∼70% 수준의 임대료로 ‘따로 또 같이’ 살 수 있는 공유주택을 2027년까지 2만 채 공급해 고독사나 사회적 고립을 방지하겠다는 계획이다.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한 941명(지역구 694명·비례대표 247명) 가운데 64명(6.8%)은 본인이나 가족 소유의 가상자산을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는 비트코인 등 시가총액이 큰 가상자산을 신고했지만, 일부 후보는 가격 변동성이 큰 이른바 ‘잡코인’이나 ‘스캠(사기)코인’도 신고했다. ● 잡코인 20종 이상 신고 4명 8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각 후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재산신고서를 전수조사한 결과 가상자산을 신고한 후보 64명 중 지역구 후보는 44명, 비례대표 후보는 20명으로 나타났다. 정당별로는 국민의힘과 국민의미래가 24명으로 가장 많았다. 더불어민주당·더불어민주연합(21명)과 개혁신당(7명), 새로운미래(3명), 조국혁신당(1명) 등이 뒤를 이었다. 총선 후보 재산신고 대상에 가상자산이 포함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개정 시행된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에 따라 공직자와 공직후보자의 가상자산 보유 현황 공개가 의무가 됐다. 이번에 신고된 재산은 지난해 12월 31일 기준이다. 가장 많은 가상자산을 신고한 후보는 국민의힘 장성민 후보(경기 안산갑)였다. 배우자와 함께 4억6390만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1억1420만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신고한 민주당 김준혁 후보(경기 수원정)가 뒤를 이었다. 이 중 20종이 넘는 잡코인을 재산신고서에 기재한 후보는 4명이었다. 지난해 무소속 김남국 의원이 시세 차익을 노리고 투자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위믹스코인과 비트토렌트를 신고한 후보도 11명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김기흥 후보(인천 연수을)는 총 2400만 원 상당의 코인 21종류를 신고했다. 이중에는 최근 제작자가 약 216억 원을 챙겨 밀항하려다 검거된 포도코인도 있었는데, 현재는 상장폐지됐다. 김 후보 캠프 측은 “보유한 포도코인은 2.16개로, 2021년 3월 기준 40원 가량의 가치”라며 “(후보 측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과 보유 수량도 적어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문제가 있는 코인인지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후보(전북 익산갑)는 비트코인, 루나클래식 등 26종의 코인을 신고했다. 이 중 9종은 이미 상장 폐지 등으로 현재 거래가 불가능한 상태다. 신 후보는 “2017년 비트코인 붐 당시 (가상자산에) 입문했으나 실체가 없다고 판단해 2021년 7월경 전부 처분했다”고 했다. ● 與野, ‘코인 과세 유예’ 등 법안 앞다퉈 공약 강원 속초-인제-고성-양양에 출마한 현역 의원 국민의힘 이양수 후보는 본인 소유 2만8000원, 장남 명의로 2471만5000원의 가상자산을 각각 신고했다. 이 후보는 2022년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한 뒤 이해충돌 논란이 제기된 바 있는데, 이번 재산신고에서도 가족이 여전히 코인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후보는 “2021년 4월경 내가 소유한 가상자산 중 처분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매각했다”고 밝혔다. 아들의 가상자산 보유에 대해선 “경영학도 출신이고 다양하게 금융 쪽 공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야는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를 유예하거나 거래 한도를 늘리는 총선 공약을 앞다퉈 발표했다. 민주당은 가상자산의 상장지수펀드(ETF)의 발행·상장·거래를 허용하고 세액 공제 한도도 기존 25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2025년 1월로 예정된 가상화폐 과세를 유예하는 공약을 냈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이 주식 등 다른 자산에 비해 가격 변동이 극심한 만큼 신고 규정에 대한 구체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행 재산신고 규정상 해외 거래소에 둔 가상자산은 빠뜨려도 확인하기 어렵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총선 출마자는 코인 거래 명세와 수량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서울 강동구에서 90대 치매 환자와 60대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치매를 앓던 A 씨가 사망하자 그를 돌보던 자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 모녀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치매 지원사업에 등록되지 않은 상태였다. 전국 미등록 치매 환자가 약 38만 명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 간병’ 가족의 사회적 고립을 막을 안전망이 초고령사회에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숨진 세 모녀, 지자체 치매 서비스 안 받아” 7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0시 10분경 강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화단에 사람 2명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숨진 60대 자매였다. 경찰이 자택을 확인해보니 90대 A 씨도 몇 시간 전에 사망한 상태였다. 한 목격자에 따르면 집 안에서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잘 부탁드린다’는 취지의 메모가 발견됐다. 두 자매가 쓴 것으로 추정된다. 오랜 기간 치매를 앓던 어머니의 사망을 비관한 문구도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A 씨의 시신에 외상 등 타살로 의심할 정황이 없어 일단 자연사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파악하기 위해 부검을 의뢰하기로 했다. 인근 주민에 따르면 숨진 A 씨는 약 10년간 치매를 앓아왔고, 그의 두 딸이 돌봄을 도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이웃 주민은 “두 딸이 어머니를 돌보며 오래전부터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A 씨 가족은 지자체의 치매 지원 서비스를 받은 적이 없었고, 관할 치매안심센터에도 등록되지 않은 상태였다. 전국 256개 시군구에 구축된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환자의 가족이 오랜 기간 돌봄 스트레스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상담사 연결 등 다양한 심리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환자 측이 직접 센터를 방문해야 관리 대상에 포함된다. 강동구 치매안심센터 관계자는 “A 씨 가족은 우리 센터에 방문한 적이 없고, 기초생활 수급자가 아니기 때문에 관할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연계되지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강동구 관계자도 “치매 투병은 개인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별도로 지원사업을 신청하기 전엔 선제적으로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치매안심센터 미등록 환자 38만 명 간병 부담에 시달리던 치매 환자 가족이 함께 비극을 맞는 사례는 자주 일어나고 있다. 올해 1월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치매를 앓는 80대 아버지를 50대 아들이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중앙치매센터가 지난해 5월 발간한 ‘대한민국 치매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88만6173명으로 추산된다. 같은 해 전국 치매안심센터에 등록된 치매 환자는 50만2933명이었다. 약 38만 명이 미등록 상태라는 뜻이다. 이 중엔 A 씨 가족처럼 돌봄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도움을 청할 곳을 찾지 못한 이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 잠시라도 쉴 수 있도록 환자를 단기보호기관에 잠시 맡기거나 종일 방문요양 서비스 이용권을 주는 ‘치매가족휴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홍보 부족 탓에 이용자가 연평균 1000명에 못 미친다. 지난해 12월 강원광역치매센터가 관내 치매 환자를 설문한 결과 상당수가 “그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돌봄 부담을 덜기 위한 제도의 존재를 몰라서 환자의 보호자가 벼랑 끝에 내몰리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기원 전 중앙치매센터 부센터장(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는 “돌봄 부담에만 매여 지내는 치매 환자의 보호자 같은 경우 바우처나 여행지원 제도 등 보호자 지원 사업이 있는 줄도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했다.임재혁 기자 heok@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투표 인원 부풀리기를 위해 폐쇄회로(CC)TV를 가린 게 아닌가 의심이 되고요.”4·10총선을 앞두고 전국 40곳의 사전투표소와 개표소, 본투표소 등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해 검거된 유튜버 한모 씨(49)가 지난해 10월 13일 게재한 동영상에서 한 발언이다. 같은 달 11일 실시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조작됐다는 취지였다. ‘후원 ○○은행 한××’이라며 계좌번호를 자막으로 표시한 이 동영상은 1만 명이 넘게 시청했고, “우리 모두 이 채널을 후원합시다” 등 댓글이 300건 넘게 달렸다. 이처럼 일부 유튜버가 극우·극좌 성향 유권자를 겨냥해 과격한 주장을 되풀이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선거 등 제도 정치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커지고 있다. 허위사실 유포와 음모론 등이 수익으로 이어지는 생태계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법 카메라·음모론… 도 넘은 정치 유튜버31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불법 카메라 설치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유튜버 한 씨는 자신의 채널에서 ‘부정선거’ 등 의혹을 주장해 왔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땐 투표소에 카메라를 설치한 뒤 “실제 들어간 인원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가 200명 가까이 차이가 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확인되지 않은 주장으로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유튜버는 한 씨만이 아니다. 올해 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피습됐을 당시에도 구독자가 88만 명이 넘는 한 극우 성향 유튜버는 “피습은 이 대표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극좌 성향 유튜버들도 “여권 인사가 배후” 등을 외치며 ‘클릭 장사’에 몰두했다. 이런 영상 앞뒤에는 어김없이 광고가 붙었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피습 사건 땐 한 보수 성향 유튜버가 “만약 배 의원의 동선이 사전에 새어 나간 거라면 미용실을 의심해야 한다”라며 ‘배후설’에 무게를 실었다. 진행자는 영상 말미에 녹용과 피로회복제를 광고했다. 지난해 7월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당시 친야 성향 방송인 김어준 씨는 ‘(교사 사망에) 국민의힘 3선 의원이 연루돼 있다’는 취지로 의혹을 제기했다가 이튿날 정정했는데, 해당 방송 앞에는 닭곰탕 광고가 붙었다.법원의 판단이 나오기까진 시일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한 좌파 성향 유튜브 채널은 2022년 12월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의 ‘청담동 심야 술자리 의혹’을 주장했다가 이듬해 3월 법원으로부터 영상 삭제 가처분 결정을 받았다. 해당 채널 운영진 측은 최근 관련 민사 소송에서 “한 전 장관이 그 시간에 다른 곳에 있었다는 증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단 지지자 후원금→자극적 영상, ‘악순환’유튜브에서 자극적이고 편향된 주장은 큰 수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유튜브 채널 분석 업체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슈퍼챗(후원 시스템) 규모 상위 30개 채널 중 9개가 정치 유튜브로 나타났다. 슈퍼챗 규모 상위 정치 유튜브 채널 10곳이 지난해 슈퍼챗으로 받은 후원금만 평균 2억5942만 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신종 신념사업’이라고 보고 있다. 영세 유튜버가 후원금을 끌어모으기 위해 말초적인 의혹을 주장하면 대형 유튜버는 기존 구독자를 유지하기 위해 더 강한 발언을 쏟아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도 정치권이 거리를 두기는커녕 여기 편승하는 행태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극단 성향의 유튜버의 인기에 현직 국회의원이나 주요 정당 후보까지 편승하면서 적대와 혐오를 키우고 있다”며 “과거 이념적(이성적) 양극화보다 지금의 정서적 양극화가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지지율 유지를 위해 극단적인 유튜버를 이용하는 정치인도 사실은 ‘공생 관계’에 있다”고 했다.구글 등 플랫폼 기업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유튜버를 제재하도록 법적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춘식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슈퍼챗 등 광고수익을 정산받지 못하게 하거나 개인 후원계좌를 병기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