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

이설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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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설 기자입니다.

snow@donga.com

취재분야

2025-11-07~2025-12-07
문화 일반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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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20%
학술7%
경제일반3%
문학/출판3%
  • “혼잣말 아닌 세상 향한 외침, 작품에 담을것”

    “뒷담에 낙서하는 심정으로 글을 써왔습니다. 이제 뒷담을 세상으로 확장시키겠습니다. 혼잣말이 아닌 모두를 향한 외침을 희곡이란 그릇에 담아내겠습니다.” ‘희곡가’의 이름으로 2019년 새해를 시작한 최상운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수상 소감을 밝혔다.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4일 열렸다. 최 씨를 비롯해 성해나(중편소설) 강석현(단편소설) 최인호(시) 강대선(시조) 민경혜(동화) 고지애(시나리오) 김채희(영화평론) 박다솜 씨(문학평론) 등 9명이 상패와 상금을 받았다. 수상자들은 벅찬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최인호 씨는 “당선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갓 태어난 신생아 시인의 자세로 오래도록 시와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김채희 씨는 “부끄러움과 감사한 마음이 교차한다. 초심을 잊지 않고 작품활동을 이어가겠다”며 활짝 웃었다. 수상자들은 이제 시작임을 잊지 않았다. 성해나 씨는 “상은 끝까지 힘내서 쓰라는 격려의 의미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더 진중하게 소설을 대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박다솜 씨는 “당선 소식을 듣고 평론가의 윤리에 대해 다시금 고민했다”며 “독자의 감각을 일깨우는 평론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출발의 각오도 다졌다. 강대선 씨는 “과거보다 더 부지런히 깨치고 쓰겠다”며 “상이 오길 기다리지 않고 상을 찾아가는 시조시인이 되겠다”고 했다. 민경혜 씨는 “아이들의 가슴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동화를 쓰도록 노력하겠다”고 했고 고지애 씨는 “다른 이에게 즐거움을 주는 작품을 보여드리겠다”고 전했다. 심사위원인 이근배 시조시인은 격려사에서 “당대 많은 최고의 소설가들이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며 “활기차고 장래가 촉망되는 시인을 배출한 것은 한국 문단사의 큰 경사”라고 말했다. 이어 수상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문학은 행복한 일이다. 앞으로 활발한 활동을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심사위원인 오정희 은희경 구효서 소설가, 김혜순 시인, 김영찬 문학평론가, 이근배 이우걸 시조시인, 송재찬 동화작가, 이정향 영화감독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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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블 시리즈처럼 하나의 세계관 완성하고 싶어”

    “그게… 그것이… 어떠한….” 청산유수로 답변을 쏟아내던 그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줄거리를 묻자 ‘어버버’했다. 22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열린 장편 스릴러 ‘싱글몰트 사나이’(휴먼앤북스) 기자간담회. 책을 쓴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 교수(50)는 “스릴러 장르라 말 못 할 내용이 많다. 범인을 미리 알면 재미없으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싱글몰트…’는 휴먼앤북스가 기획한 ‘스릴러 미스터리 컬렉션’의 첫 작품이다.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가 ‘한국의 토종 스릴러 부흥’을 기치로 내걸고 야심 차게 준비했다. 하 대표는 “해외 소설이 스릴러 장르를 장악한 현실에 울분이 솟았다. 재능 있는 작가를 발굴해 매년 4, 5편씩 출간하겠다”고 했다. 첫 작품으로 ‘싱글몰트…’를 택한 건 왜일까. 유 교수의 전작에서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고전소설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치는 유 교수는 2007년 ‘진시황 프로젝트’로 한 장르소설 문학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왕의 군대’ ‘윤동주 프로젝트’ 등 스릴러 작품을 펴내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이야기 뼈대는 형사 출신 시간강사인 강태혁이 기무사 소령 윤소영과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여기에 크고 작은 한국 사회의 문제와 소시민의 삶, 정치사가 촘촘히 끼어든다. 유 교수는 “스릴러지만 현실을 적극 반영했다. 각 작품을 연결해 마블 시리즈처럼 하나의 세계관을 완성하고 싶다”고 했다.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집필 과정에서 집단 지성의 힘을 빌린 점이 눈에 띈다. 미스터리 컬렉션 편집위원인 고인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허진 문학평론가와 두 번째 시리즈 작품을 집필한 이동원 작가, 그리고 유 교수가 작품을 두고 난상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유 교수는 “재미있게 읽히려면 여러 사람의 시각을 반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봤다. 방송작가들이 대본을 쓰듯 편집위원들에게 혼나고 검증받았다”고 했다. 그는 스릴러의 대중화가 ‘문학의 호시절’을 되찾을 ‘마스터키’라고 믿는다. “고전시대 소설은 오히려 지금의 대중소설에 가까웠어요. 국내에선 웹툰과 미국 드라마의 영향을 받은 젊은 작가들조차 장르문학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안타깝습니다. 한국도 스릴러 작가의 시대가 열리길 바랍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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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박완서, 이승과 저승 경계에서도 읽고 쓰던 영원한 현역”

    《최수철 조경란 이기호 김숨 정세랑 조남주….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29명의 짧은소설을 모은 ‘멜랑콜리 해피엔딩’(작가정신·1만4000원·사진)이 나왔다. 이들을 한데 모은 힘은 박완서 작가(1931∼2011)이다. 생전 선생이 ‘방 안에 들어앉아 창호지에 바늘구멍을 내고 바깥세상을 엿보는 재미’에 비유했던 짧은소설로 8주기를 기렸다. 이 가운데 함정임(55) 손보미 작가(39)를 1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함 작가는 한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하던 시절 맺은 인연으로 20년간 선생을 곁에서 지켜봤다. 그가 쓴 ‘그 겨울의 사흘 동안’에는 작가로 살다 간 어머니의 유작을 정리해 나가는 딸들의 연대가 담겼다. 함 작가는 “작품에 선생님을 적극 등장시켰다. 실화 99%에 허구 1%를 섞었다”고 말했다. 손 작가의 작품 제목은 ‘분실물 찾기의 대가3―바늘귀에 실 꿰기’. 그는 “선생님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의 부제 ‘바늘구멍으로 엿본 바깥세상 이야기’에서 따왔다”고 설명했다. 두 작가는 선생에 대한 추모 열기가 식지 않는 이유로 깊고 넓은 작품세계를 꼽았다. 함 작가는 “선생님은 작품 그 자체로 성별을 떠나 문단을 평정하고 독자에게 인정받았다”고 했다. 손 작가는 “선생님의 작품은 따뜻함, 기묘함, 신랄함, 부드러움을 종횡무진 넘나든다”고 말했다. “교과서에 실릴 만큼 부드러운 작품, 그로테스크한 이야기, 가슴 절절한 멜로…. 한 사람이 쓴 게 맞나 싶을 정도예요.”(손) “전쟁과 광복 이후 한국 사회를 겪어낸 복잡다단한 인생사가 작품에 녹아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함) 여성 후배들에게 남긴 유산도 적지 않다. 손 작가는 “호명되지 못한 채 사라진 여성 작가가 적지 않은데 선생님으로 인해 문학계 토양 자체가 달라졌다”고 했다. 닮고 싶은 선생의 면모는 뭘까. 함 작가는 평생 ‘현역’으로 살다 간 점을 꼽았다. “부지런히 신작 소설과 영화를 챙겨 보셨어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도 읽고 쓰는 영원한 현역이셨죠.”(함) 손 작가는 소설과 삶이 일치된 점을 본받고 싶다고 했다. 본인은 일상을 소설화해본 적이 없는데, 언젠가는 삶이 소설에 투영될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러자 함 작가가 손 작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작가는 단계마다 사회나 독자가 이끌어주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계속 쓰다 자연스럽게 그런 시점이 오지 않을까?” 서로를 향해 몸을 돌린 두 사람이 대화를 이어갔다. “선생님은 대선배지만 워낙 격의 없이 대해 주셔서 함께 있는 자리가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았어. ‘박완서 스타일’이랄까. 그나저나 손 작가 눈망울이 선생님을 닮았어. 맑고 예리한….”(함) “눈망울이 닮았다니, 괜히 뿌듯한걸요? 함 선생님도 박 선생님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몇 해 전 심사위원으로 만나 2박 3일 동고동락할 때 손수 커피와 빵을 싸오셨죠.”(손) “선생님 댁에 가면 박하 잎을 따다 차를 끓여 주시고 2, 3시간씩 고민을 들어주셨어. 직·간접적으로 겪고 느끼며 닮아가는 것, 이런 게 선생님의 힘인가 봐.”(함)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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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시련은 끝이 아니기에… 나는 다시 꿈을 꾼다

    ‘시뻘건 불기둥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버린 K-9 자주포, 그리고 나의 꿈….’ 폭발음이 일고 섬광이 번쩍했다. 눈을 떠보니 주변은 온통 불바다. 앞뒤 잴 새도 없이 불덩이 위를 네 발로 기어 겨우 그곳을 빠져나왔다. 2017년 8월 일어난 K-9 자주포 폭발 사건. 탑승해 있던 7명 가운데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크게 다쳤다. 당시 병장이던 이찬호 씨는 살아남았지만 오랜 시간 악몽 속에서 살았다. ‘괜찮아 돌아갈 수 없어도’는 그날 이후 그가 괜찮아지기까지의 처절한 기록이다. 책은 전신 55%의 화상을 입은 저자의 사진과 짧은 글로 구성됐다. 개구쟁이 꼬마 이찬호, 배우를 꿈꾸던 청년 이찬호, 사고 이후 흉터로 가득한 현재 이찬호의 모습이 차례로 펼쳐진다. 17일 전화로 인터뷰한 이 씨는 “흉터가 지닌 의미는 복잡다단하다. 글보다 이미지로 보여주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사고 이전 사진은 초등학교 이전 꼬마 때 모습뿐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자신을 보면 견딜 수 없어 사고 직후 과거 사진을 몽땅 버렸기 때문”이다. 극한의 육체적 고통과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을 다잡는 과정을 진솔하게 담았다. ‘모든 근육이 연소했다. 183cm의 키에 83kg이었던 몸무게가 66kg까지 불타버렸다’ ‘사고 이후 말 못 하는 강아지와도 대화했다’ ‘꿈을 잃었고 건강도 잃었어’…. 오래 품어온 배우의 꿈을 접고 전우들을 사고로 잃었다. “어떻게 버텼느냐”고 묻자 그는 “버티기 싫었다”고 했다. “매일 한 번 살을 긁어내는 드레싱을 하는데 그냥 생을 등지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었죠.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서요.” 1년 4개월 동안 받은 피부이식수술만 5차례. 지나고 보니 그를 살게 한 건 가족이었다. 전사로 변신한 어머니는 “눈물 보일 여유가 없다. 자식 지키려면 나부터 강해져야 한다”고 했다. 무뚝뚝했던 아버지는 “사랑한다”며 눈물을 글썽여 아들을 소스라치게 했다. 형은 직장까지 그만두고 동생 곁을 지켰다. 이웃 환자들로부터도 긍정 에너지를 얻었다. “내가 더 심하다.” “너는 운이 좋은 편이다.” 미라처럼 전신에 붕대를 휘감은 환자들이 주고받는 잔인한 농담 속에서 신기하게도 생의 의지가 샘솟았단다. 그는 “용광로 쇳물에 다친 동생, 엄청난 화상을 입은 꼬맹이 등 다양한 환자들과 가깝게 지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큰 위로를 줬다”고 했다. ‘불족발/ 불닭발/ 발이란 발엔 불이 붙는 데 전투화 덕분에 불이 안 붙었다’ ‘이 정도 괴물이면 잘생긴 거 아냐?’ ‘내 인생에 불을 만나고 불가능은 없다’…. 상황을 위트 있게 비튼 에세이는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 씨와 함께한 사진으로 마무리된다. 그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점을 안다. 배우의 꿈은 잃었지만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졌다. 전화위복인 셈”이라고 했다. 고통을 정면 응시한 책이 주는 공감의 종류는 제각각이다. 이런 비극이 나를 피해갔다는 위안일 수도, 함께 고통을 나누고 싶다는 연민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얼마나 공감하든 저자의 아픔은 읽는 이에게 어떠한 고양을 안긴다. 책으로 얻은 수익은 전액 화상환자와 소방기관에 기부할 예정이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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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 안해도 척척… 우린 서로를 치열하게 연구한 전공자”

    “새 시집에 ‘아내에게’란 헌사 붙여줄 거지?” 장난 섞인 아내의 부탁을 남편은 짐짓 모른 체했다. 하지만 남편은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이번 시집의 주인은 당연히 아내라고. 장석주 시인(64)이 5년 만에 시집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문학동네)를 펴냈다. 박연준 시인(39)과 결혼한 2015년부터 3년간 써내려간 시를 엮었다. 시집 첫 페이지에는 ‘아내 박연준에게’란 일곱 글자가 또렷하다. 서울 마포구의 한 북카페에서 18일 웃는 눈모양이 똑 닮은 부부를 만났다. 서로를 ‘장 시인’ ‘박 시인’ ‘남편’ ‘아내’라며 호칭을 섞어 불렀다. ○ 오랜 망설임, 책으로 알린 결혼 “문학두뇌가 굉장히 명석하다고 느꼈어요. 학점도 잘 줬던 것 같고요.”(장) “당시에는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어요. ‘이상한 머플러를 두르고 다니는 강사’ 정도로 생각했죠. 10년 뒤 제가 그 머플러를 하게 된 건 ‘안비밀(비밀이 아님)’입니다.”(박) 두 사람은 2002년 한 대학 캠퍼스에서 서로를 처음 알게 됐다. 박 시인이 다니던 대학에서 장 시인이 소설 창작을 가르쳤다. 남편은 아내의 반짝반짝한 산문을 눈여겨봤지만 정작 아내는 시에 빠져 있었다. 아내는 남편이 유명 시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서로를 제대로 읽게 된 건 ‘시’로 소통하면서부터다. “몇 년 후에 아내와 오다가다 인사를 나누게 됐어요. 어느 날 아내가 시를 보여줬는데 깜짝 놀랐어요. 굉장히 새롭고 생동감 넘쳤죠. 아내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장 시인이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박 시인은 장 시인의 격려에 힘입어 그해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이후 e메일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진 두 사람. 하지만 연인으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사제지간, 돌싱(장 시인), 문단의 눈초리, 나이차…. 보이지 않는 벽은 생각보다 힘이 셌다. “시작할 때도 많이 망설였고 사귀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도망가려 했어요. 아내가 저보다 젊고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비겁했죠.”(장)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장석주 시인은 정말 젊었어요. 50대 초반임에도 혼자 사는 사람이라 그런지 흰머리 한 올 없이 쌩쌩했죠. 성격이나 행동패턴도 역동적인 편이라 나이차를 크게 느끼지 못했어요.”(박) 다가왔다 멀어지길 반복하는 남편을 용기로 붙든 건 아내였다. 오랜 고민과 ‘밀당’ 끝에 둘은 연인이 됐다. 잠시 이별하기도 했지만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관계로 지낸 기간이 무려 10년. 2015년 혼인신고를 하기 전까지 아무도 이들의 관계를 몰랐다고 한다. “아무래도 사제지간인 데다 나이차도 꽤 있다보니 구설에 오를 일이 걱정됐어요. 불편한 시선에 시달릴 수 있으니까요. 아내가 괜한 상처를 받는 게 싫었습니다.”(장) “몰래 연애를 해도 가까운 이들은 결국 알게 되잖아요. 한데 저희는 나이차 때문인지 겹치는 인맥이 없어 끝까지 비밀을 지킬 수 있었죠.”(박) 혼인신고 후 1년쯤 지나 김민정 시인이 ‘책결혼’을 제안했다. 신혼여행 겸 시드니에서 한 달간 보낸 이야기를 담아 산문집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난다)로 세상에 부부임을 알렸다. ‘우리는 새벽의 나무 둘처럼 행복합니다. 잉걸불 속으로 걸어가는 한 쌍의 단도처럼 용감합니다’(박연준) ‘어느 해 여름 우리는 바닷가에서 쏟아지는 유성우를 함께 바라봤지요. 그때 당신과 나의 거리,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를 유지한 채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장석주). 지인과 팬들로부터 축하가 쏟아졌다. ○ 서로의 어깨에서 영글어가는 시심(詩心) 시인 부부의 일상은 어떨까. 두 사람 모두 매일 회사원처럼 바지런히 읽고 쓴다. 남편은 새벽부터 이른 저녁까지, 아내는 늦은 오전부터 새벽까지 노트북과 씨름한다. 볕 좋은 날엔 동네 산책을 하거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 미약하게 아내와 남편의 역할이 나눠지기도 하지만 결혼이란 제도가 주는 보편적인 책임과 의무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다. 장 시인은 “우리 부부는 문학적 동지이자 동업자”라고 했다. ―시인 부부의 장점은 뭔가요? “말하지 않아도 척척 통해요. 원고, 마감,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툭툭 내뱉어도 단박에 이해하고 배려하죠. 또 둘 다 책을 좋아해 끝없는 ‘책 수다’가 가능합니다.”(장) “오롯이 혼자인 시간이 필요한 작가의 숙명을 이해한다는 게 가장 큰 장점 같아요. ‘원고 써야 해. 며칠 다녀올게’ 하면 남편은 1초 만에 고개를 끄덕이죠. 남편 역시 일할 땐 동굴처럼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요.”(박) ―문학적으로 주고받는 영향도 클 것 같습니다. “시를 쓰는 제가 남편이 산문에 소질이 있다며 독려했어요. 덕분에 조금 더 확장된 작가가 될 수 있었죠. 그간 영향을 받은 게 없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불현듯 깨닫고 남편에게 말했죠. ‘나 혼자 해낸 줄 알았는데 아닌 거 같아. 고마워’라고요.”(박) “당연하죠.(웃음) 아내는 칭찬이 많아요. 시인에게도 격려가 중요한데 첫 독자인 박 시인의 격려에 늘 큰 힘을 얻습니다. 반면 저는 객관적으로 오목조목 평가하는 편이에요.”(장) ―상대방의 문학적 소양이 매력으로 작용하나요. “비슷한 경험치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사람이 글을 잘 쓰는 거잖아요. 아내는 모든 소재를 이야기로 만들 수 있어요. 시도 좋지만 산문을 정말 맛깔나게 잘 씁니다.”(장) “삶을 바라보는 가치판단의 중심에 문학이 있어요. 자연히 문학적 소양이 상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죠. 장 시인이 쉼 없이 문학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 계속해서 쓰고 진취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에서 매력을 느낍니다.”(박) ―문학계 선후배로서 신경전 같은 건 없나요. “독자층이 다르고 세대가 달라요. 젊은 독자들에겐 박 시인이 훨씬 유명해요. ‘우리는 서로…’를 냈을 때 독자 10명 중 8명이 박연준 시인의 글이 더 좋다고 하더군요. 감성적인 부분은 박 시인이 뛰어나고 저는 좀 분석적인 편이지요.”(장) “등단한 지 40년이 지났는데도 장 시인의 시는 한결같이 젊고 힘이 넘쳐요. 그런 시적 감성이 어디서 샘솟는지 존경스럽죠. 끊임없이 읽고 공부하는 모습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가끔 저보다 책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아 얄밉지만요.(웃음)”(박) ○ “아내에게 더 보호받는 느낌” 결혼은 편집이 안 되는 네버엔딩 스토리. 박 시인의 말이다. 반짝이는 순간만 잘라내 오려붙이는 연애와 달리 한 사람을 전면적으로 겪어내야 하는 과정이란 얘기다. 결혼 후 달라진 부분을 묻자 장 시인은 “여러모로 평온해졌다”고 했고, 박 시인은 “더 큰 사랑을 알게 됐다”고 답했다. “크게 달라진 점은 없어요. 다만 사교생활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 생활이 단순화됐죠. 집에 아내를 혼자 두면 애처로워요. 함께할 날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곁에 머물고 싶죠.”(장) “오직 한 사람, 장석주에게 몰입하다 보니 인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랑의 극단은 휴머니즘 같아요. 결혼은 그 사랑을 체험하고 공부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박) 넘치게 받으면서도 투정하는 사람. 모든 걸 챙기면서도 아쉬운 소리 한 번 못 하는 사람. 가정 안에서도 리더와 팔로어가 있다. 사랑의 크기가 다른 게 아니라 타고난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떨까. “제가 오히려 남편을 아들처럼 돌봐요. 나이차가 꽤 나지만 어린 사람이 일방적 돌봄을 받을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에요. 남편은 속정이 깊지만 누굴 살갑게 돌보는 성격은 아니에요. 자기 일에 집중하면 옆은 전혀 못 보죠.”(박) “아내가 주도권을 꽉 쥐고 있어요. 저는 꼬박꼬박 경어를 쓰는데 박연준 시인은 이따금 말도 낮추고.(웃음) 처음과 달리 관계가 역전됐다고 할까요. 결혼 후에 서로가 좋은 방향으로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장) 언제 서로에게 특히 고마움을 느낄까. “제가 부당한 일을 당했는데 남편이 저보다 더 펄쩍 뛰며 속상해하더군요. 그 모습에 ‘고맙다, 든든하다, 사랑받고 있구나’ 하고 느꼈어요.”(박) “요리에 취미가 없는 아내가 제 건강을 위해 이따금 아침을 챙겨줘요. 적지 않은 나이라 건강식으로 채소, 된장, 청국장 같은 걸 만들죠. 올빼미형이라 밤잠이 모자랄 텐데 저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에 감동을 받습니다. 지금은 제가 더 보호받는 느낌이에요.”(장)○ “…해서 좋아요” ‘추억을 탕진한 채 돌아오는 당신, 원한다면 내 피의 전량을 드릴게요, 혈관의 다채로운 감정들, 중불에 뭉근하게 졸인 참극과 불행마저 가지세요…’(‘구월의 기분-연남동2’) ‘헤어진 사람의…’에는 서교동 연남동 베를린 등 지명이 자주 등장한다. 부부가 손잡고 산책하거나 여행했던 곳들이다. 나란히 걸으며 나눴던 풍경 이야기와 마음이 시집 곳곳에 녹아 있다. “죽음의 비극을 넘어서게 하는 힘은 사랑, 오직 사랑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시집을 통해 죽었던 연애세포를 일깨우고 고갈된 사랑의 에너지를 회생시키는 힘을 건네고 싶었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장) “헌사 ‘아내 박연준에게’에 붙들려 뒷장을 못 넘기겠더라고요. 그 일곱 글자가 전부처럼 다가와서 정말 행복했죠.”(박) 두 사람은 서로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연구한 전공자라고 입을 모은다. ‘장석주란?’ ‘박연준이란?’ 짧은 질문에 긴 답변이 이어졌다. 모든 문장이 “…해서 좋다”고 끝났다. “박연준 시인은 늘 새로워서 좋아요.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사유하죠.”(장) “남편이 여러 번 깊이 실패한 사람이라서 좋아요. 가난, 고교 중퇴, 사업과 결혼 실패 등을 겪으면서도 더 나은 방향으로 극복해냈다는 게 놀랍죠.”(박) “아내는 소소한 신경전 뒤에 늘 먼저 화해를 청할 정도로 마음이 넓어서 좋아요.”(장) “장 시인은 양파처럼 까도까도 신기해서 질리지 않습니다. 논문을 쓴다면 연구거리가 넘치는 노다지인 셈이죠.”(박) 연인 시절 두 사람은 결혼이란 제도에 연연하지 않았다. 다만 오래 함께하다 보니 병원에서 법적 보호자 역할조차 할 수 없는 불편함 등을 겪으며 혼인신고를 했다. 내용이 넘쳐 결혼이란 형식을 취한 셈이다. 연애 10년, 결혼 5년차. 엄청난 사랑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시기를 지나 가족애에 가까운 사랑으로 넘어왔다. 완전히 편안하고 애처롭고 다정한 요즘이 더없이 좋다는 두 사람. “아내가 웃으면서 이따금 같은 날 죽고 싶다고 해요. 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정색하고 맞받아치죠. 저보다 살날이 한참 더 많이 남았는데 문학이든 생이든 더 즐겨야죠.”(장) “장석주 시인은 세상을 애틋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에요. 2차선 도로에서 어미 꿩과 새끼인 꺼병이들이 총총 줄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봤다며 눈물을 글썽일 줄 아는 사람이지요. 그 정도로 여리고 따뜻하지만 엄살 없이 홀로 나아가는 의연함을 지닌 사람입니다.”(박) 두 사람은 언젠가 제주도에 작은 도서관을 짓고 뒤편에 집을 마련해 살고 싶단다. ‘2인분의 고독을 뜨겁게 늠름하게 받는’(‘우리는 서로…’ 장석주) 사랑으로 제주도 해변을 나란히 걷는 미래를 그린다.● 시인 장석주-박연준 부부는장석주 시인: 1979년 동아일보(문학평론) 조선일보(시)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햇빛사냥’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산문집 ‘새벽예찬’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이다’ 등을 펴냈다. 박연준 시인: 2004년 중앙일보에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와 산문집 ‘소란’등을 펴냈다. 두 사람이 같이 쓴 책으로는 산문집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가 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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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 4개월동안 피부이식수술만 5차례, 고통속에서 나를 다시 살게 한 건…

    ‘시뻘건 불기둥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버린 K-9자주포, 그리고 나의 꿈…’ 폭발음이 일고 섬광이 번쩍했다. 눈을 떠보니 주변은 온통 불바다. 앞뒤 잴 새 없이 불덩이 위를 네 발로 기어 겨우 그곳을 빠져나왔다. 2017년 8월 일어난 K-9 자주포 폭발 사건. 탑승해 있던 7명 가운데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크게 다쳤다. 당시 병장이던 이찬호 씨는 살아남았지만 오랜 시간 악몽 속에 살았다. ‘괜찮아 돌아갈 수 없어도’는 그날 이후 그가 괜찮아지기까지의 처절한 기록이다. 책은 전신 55% 화상을 입은 저자의 사진과 짧은글로 구성됐다. 개구쟁이 꼬마 이찬호, 배우를 꿈꾸던 청년 이창호, 사고 이후 흉터로 가득한 현재 이찬호의 모습이 차례로 펼쳐진다. 17일 전화로 인터뷰한 이 씨는 “흉터가 지닌 의미는 복잡다단하다. 글보다 이미지로 보여주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사고 이전 사진은 초등학교 이전 꼬마 때 모습뿐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자신을 보면 견딜 수 없어 사고 직후 과거사진을 몽땅 버렸기 때문”이다. 극한의 육체적 고통과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을 다잡는 과정을 진솔하게 담았다. ‘모든 근육이 연소했다. 183cm의 키에 83㎏이었던 몸무게가 66㎏까지 불타버렸다’, ‘사고 이후 말 못 하는 강아지와도 대화했다’, ‘꿈을 잃었고 건강도 잃었어’. 오래 품어온 배우의 꿈을 접고 전우 두 명을 사고로 잃었다. “어떻게 버텼느냐”고 묻자 그는 “버티기 싫었다”고 했다. “매일 한 번 살을 긁어내는 드레싱을 하는데 그냥 생을 등지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었죠.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서요.” 1년 4개월 동안 받은 피부이식수술만 5차례. 지나고 보니 그를 살게 한 건 가족이었다. 전사로 변신한 어머니는 “눈물 보일 여유가 없다. 자식 지키려면 나부터 강해져야한다”고 했다. 무뚝뚝했던 아버지는 “사랑한다”며 눈물을 글썽여 아들을 소스라치게 했다. 형은 직장까지 그만두고 동생 곁을 지켰다. 이웃 환자들로부터도 긍정 에너지를 얻었다. “내가 더 심하다”, “너는 운이 좋은 편이다”. 미라처럼 전신에 붕대를 휘감은 환자들이 주고받는 잔인한 농담 속에서 신기하게도 생의 의지가 샘솟았단다. 그는 “용광로 쇳물에 다친 동생, 엄청난 화상을 입은 꼬맹이 등 다양한 환자들과 가깝게 지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큰 위로를 줬다”고 했다. ‘불족발/ 불닭발/ 발이란 발엔 불이 붙는 데 전투화 덕분에 불이 안 붙었다’, ‘이 정도 괴물이면 잘 생긴 거 아냐?’, ‘내 인생에 불을 만나고 불가능은 없다’. 상황을 위트 있게 비튼 에세이는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 씨와 함께한 사진으로 마무리된다. 그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점을 안다. 배우의 꿈은 잃었지만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졌다. 전화위복인 셈”이라고 했다. 고통을 정면 응시한 책이 주는 공감의 종류는 제각각이다. 이런 비극이 나를 피해갔다는 위안일 수도, 함께 고통을 나누고 싶다는 연민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얼마나 공감하든 저자의 고통은 읽는 이에게 어떠한 고양을 안긴다. 책으로 얻은 수익은 전액 화상환자와 소방기관에 기부할 예정이다. 이설기자 snow@donga.com}

    • 201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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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담사가 권한 한 권의 책… 막막한 현실에 한 줄기 빛으로

    삶의 고민이 깊을 때, 막막한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고 싶을 때…. 요즘 ‘책처방’이 화제다. 책처방이란 약 한 시간 동안 상담사와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눈 뒤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받는 프로그램이다. 독립서점에서 주로 진행하며 비용은 5만 원 안팎. 독립서점 ‘카모메 그림책방’과 ‘책방이듬’, 모바일 도서플랫폼 ‘플라이북’을 찾아 기자가 직접 책처방을 체험해봤다.○ 상담은 ‘유쾌’ 추천은 ‘뾰족’… 시인의 처방 “병원처럼 위급한 부분이 책으로 치유되는 건 아니잖아요.”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책방이듬’을 운영하는 김이듬 시인은 원래는 ‘책처방’에 회의적이었단다. 하지만 책이 주는 위로를 원하는 이가 적지 않아 책처방을 도입했다. 김 시인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찾아오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직장에서 경력이 쌓일수록 부담감도 크다”는 고민에 “허약하고 파괴적인 생각을 하면 그렇게 된다. 강박은 피곤함만 낳을 뿐”이라며 ‘랩걸’(알마)을 권했다. “물욕을 줄이고 싶다”고 하니 “이미 경계하는 마음을 지녔다는 게 중요하다”며 고(故)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난다)를 추천했다. 다른 이들은 어떤 처방을 받았을까. “실수하면 며칠을 자책한다”는 신입사원에겐 ‘회사의 언어’(어크로스), ‘반응하지 않는 연습’(위즈덤하우스)을 추천했다. 다운증후군 자녀를 둔 부모에겐 서효인 시인의 ‘잘 왔어 우리 딸’(난다)을 소개했다고 한다. [후기] 상담은 유쾌하되 처방전은 날카롭다. 방대한 독서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맞춤 추천해줬다. 독서 편식을 바꿔보려는 이들도 이용할 만하다.○ 직관적 힐링을 주는 ‘그림책처방’ 11일 서울 성동구에 자리한 ‘카모메 그림책방’을 찾았다. 그림책 400여 권이 빼곡한 공간에 들어서자 마음이 절로 차분해졌다. 이곳에선 책처방 격인 ‘책톡프로그램’을 진행한다. 50분간 타로카드를 이용해 상담한 뒤 제공하는 그림책 1권을 포함해 3, 4권을 골라준다. “좋은 질문에서 좋은 대화가 나옵니다. 질문을 준비하세요.” 카드를 솜씨 좋게 펼치며 정해심 대표가 말했다.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단어’ ‘추천 받고 싶은 그림책 주제’를 묻는 질문지에 답을 채워갔다. “열심히 하는 것과 인정받는 게 늘 일치하는 게 아닙니다.” “성배를 들고도 마시지 못하는 (타로카드 속) 왕처럼 늘 갈급할 겁니다.” 타로가 매개여서인지 거부감 없이 속마음을 꺼낼 수 있었다. ‘타로 수다’를 마친 뒤 정 대표가 서가에서 척척 그림책 4권을 뽑아왔다.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시공주니어), ‘나는 고양이라고!’(시공주니어), ‘공기처럼 자유롭게’(미래아이), ‘구덩이’(북뱅크). 이 가운데 ‘샘과…’를 데려왔다. [후기] 그림책의 여운이 꽤 길었다. 평소 책과 친하지 않거나 그림책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잘 맞을 듯하다.○ 간편하게 다양한 책 골라주는 ‘플라이북’ 도서플랫폼 ‘플라이북’ 애플리케이션(앱)에 가입하면 ‘내 상태’를 묻는다. ‘요즘 상태’의 14가지 항목 가운데 ‘불안해요’ ‘행복해요’ ‘용기가 필요해요’ 등을, ‘요즘 관심사’로는 ‘진로’ ‘기획·마케팅’ ‘지식·상식’ ‘글쓰기’ 등을 택했다. 장르, 분량, 난이도는 특별한 선호가 없어 ‘아무거나’를 찍었다. 선택을 마치면 관심사와 상태별로 30여 권의 추천 목록이 뜬다. [후기] 평소 독서 범위 밖의 책들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추천 권수가 너무 많아 선택에 방해가 됐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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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어때요?”…당신에게 안성맞춤인 ‘책처방’ 받아 보세요

    요즘 ‘책처방’이 화제다. 책 처방이란 대략 1시간 동안 1대1로 이야기를 나눈 뒤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골라주는 프로그램을 일컫는다. 독립서점에서 주로 진행하며 비용은 5만 원 안팎. 책처방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독립서점 ‘카모메그림책방’과 ‘책방이듬’, 도서플랫폼 ‘플라이북’에서 책처방을 받아봤다. ●직관적 힐링 주는 ‘그림책처방’ 11일 서울 성동구에 자리한 ‘카모메그림책방’을 찾았다. 그림책 400여 권이 빼곡한 공간에 들어서자 마음이 절로 차분해졌다. 이곳에선 책 판매뿐 아니라 그림책 낭독 등 행사와 책처방 격인 ‘책톡프로그램’을 진행한다. 50분 간 타로카드를 이용해 상담한 뒤 제공하는 그림책 1권을 포함해 3, 4권을 추천해준다. “좋은 질문에서 좋은 대화가 나옵니다. 질문을 준비하세요.” 카드를 솜씨 좋게 부채 모양으로 펼치며 정해심 대표가 말했다.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단어’ ‘추천 받고 싶은 그림책 주제’를 묻는 질문지에 천천히 답을 채워갔다. 새로운 자리에 잘 녹아들지,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를 차례로 물었다. “열심히 하는 것과 인정받는 게 늘 일치하는 게 아닙니다.” “성배를 들고도 마시지 못하는 킹(카드)처럼 늘 갈급할 겁니다.” 심리학과 상담심리를 오래 공부한 정 대표가 말했다. 타로를 매개 삼아 재미있고 거부감 없이 속마음을 꺼낼 수 있었다. ‘타로 수다’를 마친 뒤 정 대표가 서가에서 척척 그림책 4권을 뽑았다.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시공주니어), ‘나는 고양이라고!’(시공주니어), ‘공기처럼 자유롭게’(미래아이), ‘구덩이’(북뱅크). 이 가운데 ‘샘과…’를 데려왔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 땅굴을 파던 샘과 데이브가 끝내 다다른 곳은 초콜릿 우유와 과자가 있는 집이란 이야기다. [상담 후기] 그림책은 한 번 봐도 잘 잊혀지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도 마음에서도. 평소 책과 친하지 않거나 그림책이 궁금한 이들에게 추천한다.●상담은 ‘유쾌’ 추천은 ‘뾰족’…시인의 처방 “병원처럼 위급한 부분이 책으로 치유되는 건 아니잖아요.”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책방이듬’을 운영하는 김이듬 시인은 ‘책처방’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책이 주는 위로를 원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절감한다. 김 시인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찾아오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며 “의료기관이나 전문 상담기관보다 이곳을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직장에서 경력이 쌓일수록 부담감도 크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허약하고 파괴적인 생각을 하면 그렇게 된다. 강박은 피곤함만 낳을 뿐”이라며 과학자가 쓴 ‘랩걸’(알마)을 권했다. “물욕을 줄이고 싶다”고 하니 “이미 경계하는 마음을 지녔다는 게 중요하다”며 고(故)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난다)를 추천했다. 다른 이에게 어떤 처방을 전했는지 궁금했다. “실수하면 며칠을 자책한다”는 신입사원에겐 ‘회사의 언어’(어크로스), ‘반응하지 않는 연습’(위즈덤하우스)을 추천했다. 다운증후군 자녀를 둔 부모에겐 서효인 시인의 ‘잘 왔어 우리 딸’(난다)를 소개했다고 한다. [상담 후기] 상담은 유쾌하되 처방전은 날카롭다. 김 시인은 방대한 독서력을 바탕으로 문학과 인문·철학, 경제·경영, 자기계발 등을 아우르며 다양한 책을 맞춤 추천해줬다. 독서 편식을 바꿔보려는 이들도 이용할 만하다.●간편하게 다양한 책 골라주는 ‘플라이북’ 도서플랫폼 ‘플라이북’ 어플리케이션에 가입하면 ‘내 상태’를 묻는다. ‘요즘 상태’의 14가지 항목 가운데 ‘불안해요’ ‘행복해요’ ‘용기가 필요해요’ 등을, ‘요즘 관심사’로는 ‘진로’ ‘기획/마케팅’ ‘지식/상식’ ‘글쓰기’ 등을 택했다. 장르, 분량, 난이도는 특별한 선호가 없어 ‘아무거나’를 찍었다. [상담 후기] 관심사와 상태별로 30여 권의 책을 추천해준다. 평소 독서 범위 밖 책들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추천 권수가 너무 많아 오히려 선택이 어렵게 느껴졌다. 이설기자 snow@donga.com}

    • 2019-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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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정하고 명랑하게… ‘네가 쓴 글 맞냐’ 사람들이 물어요

    김소연 시인(52)은 스스로를 ‘무심하고 날카로운 사람’이라 읽는다. 시도 그를 닮아 빛보다 어둠이 많이 서려 있다. 하지만 최근 펴낸 산문집 ‘나를 뺀 세상의 전부’(마음의숲·사진)는 살짝 결이 다르다. 1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작정하고 명랑하게 썼다. 지인들이 ‘네가 쓴 글이 맞느냐’고 할 정도”라고 했다. “2014년 이후 3년간 자유롭게 쓴 글과 칼럼을 모아 엮었어요. 비극과 부정성에 대한 친화력을 바탕으로 살아왔는데, 이 시기에 정신과 문학을 재편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죠. 저 자신은 싹 지우고 직접 경험한 사람과 세상을 따뜻하게 기록했습니다.” 글쟁이로 살아온 지 20여 년. 기존 분위기를 떨치기란 쉽지 않았다. 새삼 육하원칙을 되새기며 덜고 빼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는 “담백한 문장은 전달력이 약한 것 같아 망설여졌다. ‘네가 정말 똑똑해지면 쉬운 글을 쓸 것’이란 대학 시절 은사의 말씀이 자주 떠올랐다”고 했다. “문체도 문체지만 해석하고픈 욕망을 멈추느라 힘들었어요. 의견을 덧붙이지 않고 정황만 전달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예컨대 병원에서 겪은 의사의 태도나 식당에서 엿본 상사와 부하의 대화는 관찰 기록에 가깝죠. 용기를 내서 독자들에게 해석을 맡긴 겁니다.” 1993년 계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한 뒤 첫 시집 ‘극에 달하다’(1996년)를 시작으로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2006년), ‘눈물이라는 뼈’(2009년), ‘수학자의 아침’(2013년)을 냈다. 특히 산문집 ‘마음사전’(2008년)과 ‘시옷의 세계’(2012년), ‘한 글자 사전’(2018년)으로 두꺼운 팬 층을 형성했다. “오래도록 쓰고 싶어서 산문과 시를 함께 씁니다. 각각 필요한 근육이 달라서 균형감각 유지에 도움이 되거든요. 시가 갱을 뚫는 고된 작업이라면, 산문은 심층까지 가지 않고도 할 말을 펼쳐 보이는 즐거움이 있지요.” ‘시대를 향한 응전력(應戰力·전쟁 등에 대응하는 힘)이 있는 시인이 되자’고 20대 시절 자주 다짐했다. 응전력은 세월의 강을 건너면서도 잃고 싶지 않은 중심축 중 하나다. 그는 “패턴을 읽는 능력은 세월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응전력을 잃지 않되 거시적 관점으로 시를 써 나가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부지런히 읽고 듣고 배운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까마득한 후배 시인과 독립서점을 팔로잉한 뒤 그들의 활동을 ‘구경한다’”며 “재미있고 공격적으로 문학하는 후배들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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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부자 편에 선 자본주의… 야바위게임처럼 불공정”

    돈이 돈을 낳는 자본주의 시스템. 가만히 있어도 통장이 황금알을 낳는 부자와 달리 빈자는 오늘보다 내일 더 가혹한 빈곤을 겪는다. 계층사다리마저 무너진 오늘날, 청년세대는 진창에 빠졌다. 불평등의 원인으론 인종, 젠더, 계급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그 공식은 간단치 않다. 저자는 평등한 사회를 가정한 뒤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해 불평등을 빚어내는 과정을 되짚는다. 책에 따르면 평등사회는 그냥 무너진 게 아니다. 절도, 착취, 약탈 같은 반칙 또는 그것을 허용하는 규칙이 불평등을 낳았다. 이 가운데 후자는 교묘하게 불평등을 고착화한다는 점에서 더 위협적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역시 불공정 게임을 정당화하는 규칙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소유권이 인권에 우선한다’는 자본주의 대원칙은 온전히 부자의 편. 속임수로 상대를 속이는 야바위게임처럼 자본가들은 세상을 입맛대로 주무른다. 다양한 장치를 동원해 지배계급은 현 상태를 유지하려 애쓴다. 틀을 바꿀 수 있다는 상상력을 억압하고, 연대에 균열을 내고, 약자 간 갈등을 부추긴다. ‘은연중에 인간과 타자에 대한 차별을 담고 있는 구분법’에 젖어든 대중은 상상력을 잃고 서로 물고 뜯으며 제도에 순응한다. 불평등의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상상하고 의심하고 연대해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 모두가 당연시하는 규칙을 문제 삼는 이들이 호감을 얻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상대방이 이성의 끈을 놓지 않게끔 하는 의사소통의 기술이 필요하다.” 사회학과 교수가 들려주는 대학 강의를 풀어쓴 노트에 가깝다. 광장 시위로 길 막히는 게 그저 못마땅한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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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별 특화, 페미니즘 독립잡지 뜬다

    페미니즘이 문학과 다채롭게 결합하며 다양한 결과물이 쏟아지고 있다. 페미니즘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작가가 적지 않고 대다수 문예지가 페미니즘을 조명했다. 특히 페미니즘에 정체성을 둔 정기·비정기 간행물(잡지)의 선전이 최근 눈에 띈다. 1997년 발간된 국내 최초 페미니즘 잡지 ‘이프’는 원래 종합지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요즘엔 한 가지 테마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2015년 6월 발간된 ‘소녀문학’은 여성주의와 퀴어에 집중하는 독립문예지를 지향한다. 여성과 성소수자를 다룬 원고를 투고 받아 지면에 싣는다. 지난해 7월 발간된 4호 ‘아침’에 실린 ‘문단 내 성폭력 공론화 이후’는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바다출판사에서 만드는 ‘우먼카인드’는 페미니즘 이슈를 인문학적 코드로 풀어낸다. 박선영 전 기자의 미투 지지글을 담은 ‘#미투: 불의에 맞선다, 고로 나는 존엄하다’(3호), 김진아 울프소셜클럽 대표의 ‘그건 나의 권력이 아니었어’ 등이 호응이 좋았다. 2017년 11월 창간호 이후 5호까지 나왔다. ‘히스테리안’은 페미니즘 강의 수강생들이 필진으로 참여하는 과정을 담아 지면을 꾸린다. ‘나쁜년’ ‘미칠년’에 이어 ‘환향년’을 준비하고 있다. 여성주의 문화운동단체 ‘언니네트워크’가 발간하는 ‘)’(페미니스트+삶·2016년 창간)도 마니아층이 두껍다. ‘세컨드’는 영화와 여성에 대한 이슈를, ‘계간홀로’는 페미니즘을 바탕으로 비연애주의 등을 살핀다. ‘보슈매거진’ ‘프리즘오브’ 등도 독립서점 대표들이 추천하는 잡지들이다. 이 밖에도 민음사 비평지 ‘크릿터’ 1호가 페미니즘을 집중 조명하는 등 일반 문예·비평지도 꾸준히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다.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소개하는 독립서점 ‘꼴’도 등장했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어려움을 겪다 폐간한 잡지도 적지 않다. 2013년 창간해 10호까지 낸 뒤 2017년 폐간한 ‘젖은잡지’의 정두리 편집장은 “잡지를 운영하는 동안 안티페미니즘의 공격과 열악한 재정 상황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나희영 우먼카인드 편집장은 “책은 논의의 관점을 넓고 깊게 볼 수 있게 한다. 남성 독자들까지 확산시키는 게 과제”라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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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한기 모르는 ‘농부작가’… “못 쓴 이야기 너무 많아요”

    《“현대는 움직이는 과녁 같아서 계속 변화해요. 역사는 고정돼 있지만 관점에 따라 달라지죠. 역사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작업에 매력을 느낍니다.” 무표정을 모르는 듯 사라지지 않는 미소. 줄줄이 달려 나오는 이야기보따리. 9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소설가 성석제(59)는 의인화한 그의 작품 같았다. 이 시대 만담꾼인 그가 5년 만에 장편소설 ‘왕은 안녕하시다 1, 2’(문학동네·작은 사진)를 펴냈다. 그는 “2003년부터 역사에 관심을 가진 뒤로 각종 사료와 논문을 파고 한학자인 외숙부로부터 개인 교습도 받았다. 이젠 통성명만 해도 가문 내력부터 떠올릴 정도로 ‘와이어링(동기화·일체화)’이 됐다”고 했다. 》 이번 작품은 조선 숙종 대를 배경으로 한다. 내키는 대로 살던 파락호(난봉꾼) 성형이 고귀한 세자(숙종)와 의형제를 맺으며 벌어지는 활극을 그렸다. 실제 인물과 사건을 소재로 한 왕실 권력 다툼 등이 큰 줄기다. 그로선 2003년 장편 ‘인간의 힘’, 2006년 단편 ‘집필자는 나오라’에 이은 세 번째 역사소설. “두 편의 역사소설에 등장한 주인공들이 한 작품에 나온다고 상상을 해왔어요. 이번 작품이 그 결과물입니다. 역사라는 1%의 뼈대 위에 99%의 허구를 더해 당대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했죠.” ‘왕은 안녕하시다’는 읽다 보면 페이지마다 장르가 바뀌는 기분이 든다. 심장 쫄깃한 미스터리부터 장쾌한 무협활극, 농염한 연애소설까지 넘나든다. ‘조선왕조실록’과 ‘연려실기술’ 같은 역사서와 ‘인현왕후전’ ‘박태보전’ 등 당대 문학을 쫄깃한 질감으로 뒤섞었기 때문이다. “작품 곳곳에서 다양한 레퍼런스(참고문헌)를 인용했어요. 치열하고 아름다운 조상들의 문장과 결기 어린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당대가 지금보다 우월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작가는 저열하고도 고귀한 인간을 포용의 문장으로 품어야 하니까요.” 전작인 ‘투명인간’(2014년)은 사실주의 측면이 강했고, 2007년 작 ‘도망자 이치도’는 활극 분위기가 더 짙었다. 이렇듯 온도 차는 있지만, 그의 작품은 이름을 모르고 봐도 티가 난다. 비극 속에 빛나는 웃음과 페이소스가 성석제의 ‘브랜드’다. “능소능대하게 진지와 웃음을 오가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제가 잘 웃는 편이기도 해요. 어릴 때 고모 누나 여동생 등 여성이 많은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항상 시끌벅적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죠. 그 영향도 있지 싶어요.” 이제 막 책이 나왔건만 작가는 벌써 새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또 한 번 역사소설에 도전한다. 고구려에서 시작한 승마 기술인 ‘박차(拍車)’가 주요 소재다. “역사 속에서 인간성, 삶의 진실한 면모 등을 살피는 작업에 요즘 매력을 느낍니다. 어릴 적 한문에 능했던 할아버지와 책 읽던 기억 때문일까요, 허허.” 그는 농한기 없는 ‘농부작가’란 별명을 지녔다. 쉼 없이 다작(多作)해서다. 요즘 50, 60대 문인들의 작품을 만나기 어렵다는 문단의 평가를 슬쩍 흘려봤다. 그는 “나이가 들면 자연인으로서 정신적 근력이 감소한다.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환갑을 바라보는 농부작가도 지치기 시작했을까. “글쎄요. 여전히 숨 쉬고, 혈관에 피가 흐르고, 추위와 더위를 느끼고…. 살아 있다는 게 좋아요. 못 가본 곳도, 만나지 못한 사람도, 못 쓴 이야기도 너무 많습니다. 계속 나아가서 언젠가는 ‘이제 그만 써도 되겠다’는 지점을 만나고 싶습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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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석제 “역사는 관점에 따라 달라져…현미경 들이대는 작업 매력”

    “현대는 움직이는 과녁 같아서 계속 변화해요. 역사는 고정돼 있지만 관점에 따라 달라지죠. 역사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작업에 매력을 느낍니다.” 무표정을 모르는 듯 사라지지 않는 미소. 줄줄이 달려 나오는 이야기보따리. 9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소설가 성석제(59)는 의인화한 그의 작품 같았다. 이 시대 만담꾼인 그가 5년 만에 장편소설 ‘왕은 안녕하시다 1,2’(문학동네)를 펴냈다. 그는 “2003년부터 역사에 관심을 가진 뒤로 각종 사료와 논문을 파고 한학자인 외숙부로부터 개인교습도 받았다. 이젠 통성명만 해도 가문 내력부터 떠올릴 정도로 ‘와이어링(동기화·일체화)’이 됐다”고 했다. 이번 작품은 조선 숙종 대를 배경으로 한다. 내키는 대로 살던 파락호(난봉꾼) 성형이 고귀한 세자(숙종)와 의형제를 맺으며 벌어지는 활극을 그렸다. 실제인물과 사건을 소재로 한 왕실 권력다툼 등이 큰 줄기다. 그로선 2003년 장편 ‘인간의 힘’, 2006년 단편 ‘집필자는 나오라’에 이은 세 번째 역사 소설. “두 편의 역사 소설에 등장한 주인공들이 한 작품에 나온다고 상상을 해왔어요. 이번 작품이 그 결과물입니다. 역사라는 1%의 뼈대 위에 99%의 허구를 더해 당대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했죠.” ‘왕은 안녕하시다’는 읽다보면 페이지마다 장르가 바뀌는 기분이 든다. 심장 쫄깃한 미스터리부터 장쾌한 무협활극, 농염한 연애소설까지 넘나든다. 소설에서 언급한 ‘조선왕조실록’과 ‘연려실기술’ 같은 역사서와 ‘인현왕후전’ ‘박태보전’ 등 당대 문학을 쫄깃한 질감으로 뒤섞은 탓이다. “작품 곳곳에서 다양한 레퍼런스(참고문헌)를 인용했어요. 치열하고 아름다운 조상들의 문장과 결기 어린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당대가 지금보다 우월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작가는 저열하고도 고귀한 인간을 포용의 문장으로 품어야 하니까요.” 전작인 ‘투명인간’(2014년)은 사실주의 측면이 강했고, 2007년 작 ‘도망자 이치도’는 활극 분위기가 더 짙었다. 이렇듯 온도차는 있지만, 그의 작품은 이름을 모르고 봐도 티가 난다. 비극 속에 빛나는 웃음과 페이소스가 성석제의 ‘브랜드’다. “능소능대하게 진지와 웃음을 오가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제가 잘 웃는 편이기도 해요. 어릴 때 고모 누나 여동생 등 여성이 많은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항상 시끌벅적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죠. 그 영향도 있지 싶어요.” 이제 막 책이 나왔건만. 작가는 벌써 새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또 한번 역사소설에 도전한다. 고구려에서 시작한 승마기술인 ‘박차(拍車)’가 주요 소재다. “역사 속에서 인간성, 삶의 진실한 면모 등을 살피는 작업에 요즘 매력을 느낍니다. 어릴 적 한문에 능했던 할아버지와 책 읽던 기억 때문일까요, 허허.” 그는 농한기 없는 ‘농부작가’란 별명을 지녔다. 쉼 없이 다작(多作)해서다. 요즘 50, 60대 문인들의 작품을 만나기 어렵다는 문단의 평가를 슬쩍 흘려봤다. 그는 “나이가 들면 자연인으로서 정신적 근력이 감소한다.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환갑을 바라보는 농부작가도 지치기 시작했을까. “글쎄요. 여전히 숨 쉬고, 혈관에 피가 흐르고, 추위와 더위를 느끼고…. 살아있다는 게 좋아요. 못 가본 곳도, 만나지 못한 사람도, 못 쓴 이야기도 너무 많습니다. 계속 나아가서 언젠가는 ‘이제 그만 써도 되겠다’는 지점을 만나고 싶습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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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이형 소설 ‘그들의…’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제43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윤이형 작가(43·사진)의 중편소설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가 선정됐다. 7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윤 작가는 “스스로를 소수 취향의 작가로 여겨왔는데 뜻밖의 수상 소식에 놀랐다. 앞으로 더 정진하라는 뜻으로 알고 감사히 상을 받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심사를 맡은 권영민 문학사상 주간은 “부부가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미움 증오 비방 같은 감정 없이 담아낸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시상 이유를 밝혔다. 윤 작가는 2005년 단편소설 ‘검은 불가사리’로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 ‘러브 레플리카’, 중편소설 ‘개인적 기억’ 등을 펴냈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과 문지문학상 등을 받았다. 우수작으로는 ‘해변의 묘지’(김희선) ‘현수동 빵집 삼국지’(장강명) ‘울어본다’(장은진) ‘사라지는 것들’(정용준) ‘일 년’(최은영) 등 5편이 뽑혔다. 작품집은 이달 21일에 발간하며, 시상식은 11월에 열린다. 대상 상금은 3500만 원, 우수상 상금은 각 300만 원이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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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6년 윤심덕이 첫 캐럴 취입… 창작곡은 1958년 송민도 노래가 효시

    희망 용기 따듯함 거룩함 쾌활함…. 정해진 공식이 없는데도 캐럴은 비슷한 정서를 자아낸다. 중세시대 종교적 민요에 뿌리를 둔 탓이다. 국내에서도 캐럴은 대중가요 탄생과 동시에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당대 문화를 이끈 캐럴에는 어떤 곡들이 있을까. 국내 최초의 캐럴은 1926년 소프라노 윤심덕이 부른 ‘파우스트 노엘(The First Noel)’이다. 창작 캐럴로는 송민도가 1958년 발표한 ‘추억의 크리스마스’가 처음이다. 가수 윤일로도 1960년 ‘성종이 울리는 밤’을 발표했다. 하지만 성탄절이 전통 기념일이 아닌 탓에 창작 캐럴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1960, 70년대에 캐럴은 전성시대를 누렸다.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과 12월 31일만 통금의 적용을 받지 않으면서 연말 파티 문화가 형성됐고, 젊은이들의 흥을 돋울 캐럴의 인기가 치솟았다. 박성서 대중가요평론가는 “1년 중 통금이 없는 연말은 밤새 자유를 만끽하는 축제 기간이었다. 젊은이들은 야외에서 키보이스의 ‘징글벨 락’ 등 로큰롤을 가미한 캐럴을 들으며 흥을 분출했다”고 했다. 이미자 패티김 나훈아 등 인기가수는 물론 김미화 김형곤 심형래 등 개그맨도 캐럴 음반을 냈다. 가수들의 단골 번안곡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징글벨’, ‘기쁘다 구주 오셨네’, ‘실버벨’, ‘화이트크리스마스’ 등. 개그맨들은 가사를 재미있게 바꿔 불렀는데 심형래의 ‘흰눈 사이로 썰매를 탈까 말까’는 당대 최고의 히트곡이었다.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호세 펠리시아노의 ‘펠리스 나비다’ 등 팝 캐럴의 인기도 꾸준했다. 하지만 1982년 통금이 풀리고 2000년대 초반 디지털 음원이 보편화되면서 캐럴의 시대도 저물었다. 길거리 분위기를 주도하던 리어카 노점상과 레코드 가게가 사라진 것도 이런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여기에 저작권 문제가 겹치면서 캐럴은 필요할 때 찾아 듣는 음악이 됐다. 캐럴의 자리는 미스터 투(Mr.2)의 ‘하얀 겨울’(1993년), DJ DOC의 ‘겨울 이야기’(1996년), SM엔터테인먼트의 캐럴 음반(1999∼2011년), 별의 ‘12월 32일’(2002년), 박효신의 ‘눈의 꽃’(2004년) 등이 대신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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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심에선 화려한 불빛축제, 교외로 가면 고요한 별빛축제

    나흘 뒤면 성탄절. 소중한 이들과 멋진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아직 계획이 없는 이들을 위해 맞춤형 성탄 연휴 사용설명서를 준비했다.#“로맨틱한 성탄절이 좋아”… 성탄절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다면? 일곱 살 쌍둥이 자녀를 둔 직장인 김지경 씨(40)는 업무와 육아에 치여 아직 성탄절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김 씨의 로망은 화려하면서도 성스러운 크리스마스 야경. 아이들은 외출을 좋아하는 ‘망아지과’다. 동심을 부르는 ‘대형 트리’, 바라만 봐도 설레는 도심 야경…. 중세풍 유럽 도시에서 볼 법한 성탄절을 국내에서도 만날 수 있다. 성탄절 전후에 전국에서 화려한 크리스마스 야경을 동반한 축제가 펼쳐진다.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5번 출구 초입부터 장통교 구간에서는 새해 첫날까지 ‘서울크리스마스 페스티벌’이 열린다. 매일 오후 5시 산타마을을 주제로 꾸민 조형물이 환하게 불을 밝힌다. 대형 트리, 잔망스러운 토끼, 사랑스러운 하트, 화려한 벽면 장식 등이 인기 포토존. 청계천 변을 따라 걷다가 허기가 지면 광장시장에서 발걸음을 멈추자. 빈대떡, 육회, 잡채김밥, 칼국수 등으로 ‘만원의 만찬’을 즐길 수 있다.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 일대에서는 25일까지 ‘인천 송도 불빛축제’가 열린다. 수상공원 전체를 6개 테마의 불빛아트로 꾸몄다. 하트터널, 기린게이트, LED놀이터 등 ‘인생샷’을 건질 공간이 수두룩하다. 공간이 널찍하고 보트 타기, 야광 소품 만들기(유료) 등의 체험거리가 많아 유아 동반 가족도 방문할 만하다. 평일 오후 6∼10시, 주말 오후 6∼11시 매시 정각에 펼쳐지는 라이팅쇼가 축제의 백미.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인천 1호선 센트럴파크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이 밖에 경기권에서는 ‘에버랜드 별빛축제’, ‘롯데월드 크리스마스 미라클’, ‘조명박물관 크리스마스 특별전’ 등이 열린다. 지역 축제에서는 자연경관과 성탄 분위기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보성차밭빛축제’, ‘담양산타축제’, ‘영월 석항 크리스마스축제’ 등이 눈에 띈다.#“바깥은 위험해”… 사람은 고픈데 붐비는 건 질색? ‘외출했다가 화병 나서 귀가하기.’ 유통업계에 종사하는 직장인 이지후 씨(34)는 매년 성탄절마다 이 패턴을 반복했다. 사람은 좋은데 복잡한 게 싫어 외출은 께름칙하고 홈파티는 해본 적이 없어 겁이 난다. 이 씨 같은 취향은 홈파티가 ‘딱’이다. 준비는 어렵지 않다. 1인 가구와 홈파티 인구 증가로 시중에 필요한 거의 모든 물품이 나와 있다. 약간의 시간과 마음을 들이면 우리만의 시간을 소중한 이들과 나눌 수 있다. 홈파티의 핵심은 분위기다. ‘다이소’ ‘아트박스’ ‘플라잉타이거코펜하겐’ 등 라이프스타일 숍에서 가성비 좋은 아이템을 취향껏 골라 보자. 산타전구, 앵두전구, 꼬마트리, 트리 방울 장식, 빨간색 부직포 등이 인기 아이템. 냅킨을 일회용 접시에 오려붙인 벽걸이 장식이나 색종이 산타를 지인들과 직접 만들어도 좋다. 내친김에 의상도 기분껏 챙겨 입자. 온·오프라인 생활잡화 매장에서 트리와 산타 복장을 변형한 파티복(1만∼10만 원 선)을 판매한다. 새로 사는 게 부담스럽다면 빨강 초록 화이트 등으로 드레스코드만 맞춰도 기분이 난다. 루돌프 모양 핀과 산타 코 안경 등 액세서리도 준비하자. 스펀지 루돌프 코는 웃음을 유발하는 아이템으로 인기가 많다. 코가 낮아 장착하기 힘들면 양면테이프로 붙이면 된다. 먹거리는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연휴 기간 배달은 평소보다 시간이 2∼3배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바비큐, 스파게티 등 메인 요리에 과일로 만든 트리, 맥주병을 쌓아 올린 트리 등으로 분위기를 돋우는 게 정석. 간단히 기분을 내려면 카나페나 감바스가 제격이다. 요리 고수라면 에그노그(미국), 통나무 모양의 초코케이크 브슈 드 노엘(프랑스), 하몬과 전통과자 쿠론(스페인) 등 특식을 준비해 보자.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다양한 레시피가 올라와 있다. #“카타르시스 분출이 절실해”… 조용히 지성·감성 충전하고 싶다면? 대학원생 신모 씨(28)는 크리스마스가 반갑지 않다. 크리스마스 후 닷새만 더 지나면 한국 나이로 앞자리 수가 바뀌는데 이룬 것도, 같이 보낼 친구도 없다. 사람 만나 마음을 다치느니 혼자 자유롭고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게 낫지 싶다. 연말 연례행사로 통하는 모임, 공연 관람, 쇼핑. 남들이 다 해도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가시방석이다. 일과 사람에 치여 1년간 내달린 만큼 연말에는 오롯이 나로 ‘채우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 외출을 즐긴다면 편하게 볼 수 있는 전시회로 눈을 돌려 보자. 서울 성동구 갤러리아 포레에서 열리는 전시 ‘슈가플래닛’은 어린시절 믿던 수호 요정처럼 달콤한 위로를 건넨다. 사탕이 둥둥 떠다니고 커다란 젤리곰 풍선이 마련된 공간에 머무르다 보면 착한 에너지가 퐁퐁 샘솟는다. ‘가끔은, 셀 수 없는 것들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곤 합니다. 이를테면 별이나 함께 나눈 시간 같은 것’ 등의 전시설명 구절 앞에선 ‘돈심(돈을 탐하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오래전 내쳤던 ‘시심(詩心)’을 돌아보게 된다.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앨리스 인 원더랜드’도 방문할 만하다. 미처 여행 준비를 못했다면 공항에서 머무르는 공항 체류 여행도 방법이다. 나홀로 외출이 부담스럽다면 ‘추억 소환 여행’을 떠나 보자. 모든 게 내 마음대로였던 어린시절로 돌아가면 심신이 절로 힐링된다. 우선 ‘그때 그 감성’을 자극할 당대 유행곡을 찾아 듣자. 그룹 왬의 ‘라스트 크리스마스’, 머라이어 케리의 ‘올 아이 원 포 크리스마스’, 영화 ‘러브 액츄얼리’ 삽입곡인 ‘크리스마스 이즈 올 어라운드’ 같은 캐럴이 성탄 기분을 살리기에 적당하다. 성탄 관련 콘텐츠가 아니라도 괜찮다. 학창 시절 나를 설레게 했던 가요, 팝송, 만화책, 영화 등을 미리 준비하자. 50대 중반 직장인 강모 씨는 대학가요제 포크송과 만화책 ‘바벨2세’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종사하는 신진아 씨(36)는 만화책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최고의 감성 촉매제로 꼽았다. 30대 직장인 박모 씨는 싸이월드 둘러보기를, 40대 후반 직장인 송상훈 씨는 반 친구 모두에게 손수 만들어 돌리던 카드 만들기를 추천했다. 사진첩 정리도 좋은 방법. 빛바랜 사진에서 발견한 옛 친구에게 성탄 메시지를 보내 보자. 이럴 경우 상대방도 나를 떠올리는 ‘크리스마스 텔레파시’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이것저것 준비할 에너지가 없다면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탐험하자. 연말 여흥을 돋우는 영화로는 ‘34번가의 기적’(1994년), ‘첨밀밀’(1996년), ‘세렌디피티’(2001년), ‘러브 액츄얼리’(2003년), ‘엘프’(2004년), ‘건축학 개론’(2012년), ‘배드 맘스 크리스마스’(2017년) 등이 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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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과 함께 합창 공연, 연인과 함께 스타 앙상블

    열흘 뒤면 새해가 시작된다. 소중한 이들과 멋진 연말연시를 보내고 싶지만 아직 계획이 없다면 공연장으로 눈을 돌려보자. 대규모 단원들이 훈훈한 분위기를 빚어내는 합창은 연말 가족 공연으로 인기가 많다. 2000년 창단한 국내 합창단인 그라시아스합창단은 21∼23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선보인다. 1부에선 예수의 일대기를 오페라로, 2부에선 뮤지컬 ‘크리스마스 선물’을, 3부에선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선보인다. 평일 오후 7시 반, 주중 오후 3시 반, 7시. 4만∼12만 원. 연인, 친구와 함께라면 스타 연주자의 크리스마스 공연이 제격이다.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26일 ‘임동혁의 슈베르티아데’ 무대에 오른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 첼리스트 문태국 등이 슈베르트를 통해 교감한다. 오후 8시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3만∼10만 원. 관객과의 소통을 즐기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소규모 콘서트를 준비했다. 28일 300∼400석 규모의 소셜베뉴 라움 체임버홀(서울 강남구)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 플루티스트 조성현과 ‘커튼콜-예스엠아트 두 번째 송년회’를 연다. 잔디밭이 있는 중세풍 건물에서 연주자와 눈을 마주치며 음악을 느낄 수 있다. 오후 7시 반. 전석 5만 원. 영화 주제곡을 연주하는 ‘슈퍼히어로와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콘서트’는 친구들과 왁자하게 즐기기 좋다. 25일 오후 7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만5000∼5만5000원.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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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S에 일상 공유… 팬들과 소통하며 음악적 영감받아요”

    “지난 두 달간 이 공연에 모든 걸 쏟아부었어요. 어쩌면 인생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39)이 21일과 22일 각각 서울 롯데콘서트홀과 인천 연수구 아트센터 인천에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2번, 3번과 파르티타 3번을 연주한다. 바흐 탄생 333주년을 기념한 월드 투어 무대의 일환이다. ‘바흐 스페셜리스트’지만 무반주곡으로 단독 무대에 오르긴 처음. 그는 “독주는 숨을 공간 없이 오롯이 혼자 모든 걸 감내해야 한다. 준비 과정이 쉽진 않았지만 관객들에게 굉장한 에너지를 선사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4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열 살에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했다. 열다섯에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베토벤 협주곡을 협연했고, 데뷔 앨범으로 디아파종 상을 받았다. 그가 ‘잘 자란 영재의 전형’으로 꼽히는 이유는 실력만큼 빛나는 소통 능력 때문이다. 20년간 블로그에 글을 썼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연습 장면을 공개하기도 했다. “온라인은 창의성을 배출하는 창구와 같아요. 온라인으로 팬들과 소통하다 보면 탐구할 원동력을 얻고, 그 결과 기대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게 되거든요.” 그는 음악과 일상 사이 균형을 위해 10년마다 안식년을 갖는다. 안식 기간에는 거의 연습하지 않고 라디오를 들으며 도예와 용접 등을 배운다. 남편도 이 기간에 만났다. 다음 안식년의 계획은 계획 없이 지내는 것. 그는 “나에게 바이올린은 ‘목소리, 여행, 사고의 확장, 자신’을 의미한다”며 “당분간 바흐에 집중하면서 다음 도전 과제를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18, 19일에는 파보 예르비가 이끄는 도이체 카머필하모닉과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을 협연한다. △‘파보 예르비 & 도이체 카머필하모닉’: 18일 오후 7시 반 대구 콘서트하우스. 3만∼15만 원. 19일 오후 8시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6만∼25만 원. △‘힐러리 한 바이올린 리사이틀’: 21일 오후 8시 서울 롯데콘서트홀. 5만∼15만 원. 22일 오후 5시 인천 연수구 아트센터 인천. 1만∼10만 원.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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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팡이 짚은 노장의 지휘봉… 따뜻한 선율로 보답한 피아니스트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독일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BRSO) 공연. 감흥을 쉬 흘려보내기 아쉬워 꾹꾹 눌러 담으려던 찰나, 폭죽음과 함께 무대에 금비가 우수수 내렸다. BRSO가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다. 관객과 단원 모두 깔깔 웃음보가 터졌다. 축제 같은 이날 공연의 화룡점정이었다. 명장 마리스 얀손스(75), 천재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47)이 함께하는 이날 공연은 단연 올해의 기대주였다. 공연 한 달 전 건강 악화로 얀손스 대신 주빈 메타(82)가 지휘봉을 잡는다는 소식이 들렸다. 인도 출신으로 60년간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이스라엘 필하모닉을 거친 거장이다. 한데 메타도 지팡이를 짚고 등장했다.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걸음을 옮겨 의자에 몸을 뉘였다. 무대 밖에선 휠체어를 탈 정도로 쇠약했으나 불필요한 관심을 우려해 미리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숙연함으로 술렁이던 객석은 곧 연주에 몰입했다. 리스트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향한 메타의 지휘봉은 강력하면서도 매서웠고, 단원들은 따로 또 함께 귀신같은 기량을 선보였다. 키신은 오케스트라에 홀로 맞선 검객처럼 독보적 음색을 선보였다. 이 곡은 리스트가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던 파가니니의 연주에 필적할 피아노 주법을 담았다고 알려진다. 단원 두세 명이 앙상블 연주를 하는 듯한 BRSO의 흥겨운 연주 태도도 인상적이었다. ‘앙코르 인심’으로 유명한 키신은 이날 메타를 배려해서인지 차이콥스키 명상곡 Op.72 5번을 비롯해 2곡을 선사했다. 2부 연주곡인 리하트르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에는 더 뭉클했다. 슈트라우스의 음악적 자서전으로 알려진 이 곡은 노장 메타의 생애와 겹쳐졌다. 호기롭게 불타올랐다가 고난 투쟁 사랑을 거쳐 안식하는 선율이 따뜻하게 무대를 휘감았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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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 민진당 선거 참패 뒤엔… 中의 경제압박 있었다

    “돈 벌어서 대만의 민진당 후원하는 것 아니냐.” 중국 대륙에서 활동하는 대만 사업가 중에는 이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듣는 경우가 있다고 중국의 한 전문가는 전했다. 2016년 1월 독립 성향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당선된 이후 중국의 민진당 압박 분위기를 보여준다. 지난달 24일 대만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국민당에 참패한 원인을 두고 중국의 경제적 압박도 주요한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 광역 지방자치단체장 중 민진당 소속은 13명에서 6명으로 줄어든 반면 야당인 국민당 소속 당선자는 6명에서 15명으로 늘었다. 민진당은 20년간 지켜 온 텃밭인 제2 도시 가오슝(高雄) 시장직도 국민당 한궈위(韓國瑜) 후보에게 뺏겼다. 중국은 차이 총통 집권 이후 대만행 관광객 쿼터를 축소하는가 하면 일부 농산물과 수산물 수출 제한 조치를 내렸다. 대만에서 공급받던 부품을 대륙 내에서 자체 조달하는 이른바 ‘홍색 공급망’의 가동 강화도 중소기업 부품 산업이 주력인 대만 경제에 큰 타격을 줬다. 박한진 KOTRA 중국지역본부장은 3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차이 총통 집권 이후 중국은 대만으로 가는 단체관광객 규모를 40% 가까이 줄이는 등 제재를 가했다. 관광 분야에서 특히 어려움이 컸다”고 말했다. 차이 총통 취임 당시 22개국이던 대만의 수교국이 올해 17개국으로 줄어들 만큼 외교적 고립 작전도 강화됐다. 이번 선거에서 민심이 민진당에 등을 돌린 주요인은 민생경제 악화다. 지난해 총 수출액 중 41.1%(홍콩 포함)를 차지할 정도로 대만의 중국 대륙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중국의 민진당 압박이 계속되자 대만 유권자들이 ‘명분보다는 실리’ ‘양안 갈등보다는 안정’을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친중 성향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의 10년 집권 후 대만 유권자들이 민진당의 차이 총통을 선택할 때는 얼마 정도의 양안 갈등도 예상했다. 차이 정부는 동남아와의 교류 확대 등 ‘신남방 정책’으로 돌파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중국과 등을 돌리면 경제가 너무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지방선거에서 차이 전 총통의 기반 지지층인 청년층 이탈이 심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중국정치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이 69%에 달한다”며 “대만 내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민진당이 중국과 계속 엇박자를 내자 청년 지지층이 등을 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3분기(7∼9월) 대만의 청년세대 실업률은 12.29%로 전체 실업률(3.76%)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대륙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대만인은 15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에는 전기·전자 부품 공장 임직원도 많다.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거나 통계에 잡히지 않는 방식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중국에 진출한 사업가들은 국민당 지지와 집권을 위해 선거 때면 비행기를 타고 대만으로 가 투표를 하고 돌아올 정도로 적극적이다.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마샤오광(馬曉光)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과 대만의 도시 차원의 교류가 확대될 것”이라며 “중국 단체관광객이 가오슝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당이 승리한 지역을 중심으로 교류를 확대하는 등 집권 민진당을 압박하면서도 친중국 지자체에 유화적인 조치가 병행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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