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원

사지원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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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편견을 허물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4g1@donga.com

취재분야

2025-11-08~2025-12-08
인사일반22%
연극18%
문화 일반18%
문학/출판15%
사회일반9%
음악6%
검찰-법원판결3%
대통령3%
만화3%
무용3%
  • [책의 향기]생명력의 근원일까, 단지 혈액 펌프일까

    “내가 그의 심장을 만져보아도 전혀 뛰지 않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영웅왕 길가메시가 친구 엔키두의 죽음에 대해 탄식하는 내용이다. 기원전 2600년경 쓰인 이 문헌은 인류 최초의 심장 박동에 대한 언급으로 추정된다. 무려 4600여 년 전 인류는 심장이 뛰지 않는 것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미국 심장 전문의인 저자는 수만 년에 걸친 심장의 역사를 설명한다. 고대 문헌 등에서 길어올린 심장의 문학적, 역사적 의미까지 다면적으로 다룬다. 고대 영어 ‘헤오르테(heorte)’에서 유래된 심장이란 단어는 본래 가슴, 영혼, 정신, 용기 등 다양한 의미를 지녔다. 고대 여러 문명에서 심장은 생명의 상징이나 영혼이 깃드는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고대 인도 의사들은 인간의 심장이 두 개라고 생각했다. 몸에 영양분을 전달하는 육체적 심장과 욕망·비애를 느끼는 감정적 심장은 별개라는 것이다. 기원전 6세기 고대 인도 의사 수슈루타가 남긴 논문에는 “임신한 여성은 두 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을 때 ‘갈망하는 여성’으로 불릴 수 있다”며 “갈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아이는 곱사등이거나 손이 없거나 절름발이가 된다”는 대목이 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심장 기능에 대한 믿음은 다소 축소됐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심장도 다른 기관과 같이 손상될 수 있는 인체의 일부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후 뇌과학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심장은 단순 혈액을 공급하는 펌프 역할에 그친다는 견해가 대세가 됐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심장이 인간의 성향 또는 감정을 결정짓는 기능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47세 전직 무용수인 클레어 실비아는 오토바이 사고로 숨진 18세 남성 팀 라미란드의 심장을 이식 받았다. 이후 클레어는 걸음걸이가 남자처럼 바뀌었고, 원래 싫어하던 맥주와 치킨너겟을 좋아하게 됐다. 팀의 가족은 “팀이 생전에 그랬다”고 증언했다. 이 외에도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최근 ‘심장신경학’에선 심장과 뇌 방향 사이 양방향 대화가 이뤄진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며 “심장에는 4만여 개의 감각 뉴런으로 만들어진 고유 신경계가 있고, 뇌가 심장에 보내는 것만큼 심장도 뇌에 많은 신경 신호를 보낸다”고 주장한다. 의사로서의 저자의 전문성이 드러나는 부분도 흥미롭다. 20세기 들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심장 치료법에 대한 정보가 풍부하다. 1944년 소아 심장학의 창시자인 헬렌 타우시그는 최초로 아동 환자에 대한 심장 수술을 시행했고, 1952년 존 루이스는 처음으로 저체온증을 활용한 개흉(開胸·심장을 열다) 수술에 성공했다. 이제 매년 전 세계에서 8000명이 심장 이식을 받고 있다. “심장이 부서질 것 같다”처럼, 우리는 여전히 애끓는 감정을 심장을 활용해 표현한다. 오랜 기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로 여겨진 심장을 역사, 문화, 과학이란 다각도에서 톺아 볼 수 있다. 학문적 지식과 스토리텔링이 적절히 조화돼 있어 읽기 부담스럽지 않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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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 산고끝에… 정약용의 시 134편, 영문판으로 태어나다

    “영문책 출간을 계기로 영미권에서 독특하고 개성 있는 조선의 한시들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한시를 모아 영문으로 번역한 시선집 ‘유학자 다산 정약용의 자서전(A Confucian Autobiography of Tasan Chong Yagyong·사진)’의 저자 홍진휘 번역가(61)는 이렇게 말했다. 다산이 결혼하러 한양 가는 배를 타던 1776년부터 75세가 된 1836년까지 60여 년 동안 그가 쓴 시 중 수작 134편을 골라 담았다. 번역된 한시 원문은 1817행, 한자 수는 총 1만4408자에 달한다. 이 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 고전 100선 영문 번역 사업’(현 한국학술번역사업) 지원을 받아 올 4월 네덜란드에 기반을 둔 국제학술출판사 ‘브릴(BRILL)’에서 출판됐다. 전근대 한국 문학을 통틀어 한 인물의 시를 모아 영문으로 번역한 단행본이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보와 도연명 등 중국 유명 문인들의 한시는 이미 영미 문화권에서 널리 번역돼 읽혀 온 것과 달리 한국은 영역된 인물 시선집이 없었다. 홍 번역가는 “한시 영역이 워낙 까다로워 연구자가 많지 않은 데다 한국 한문학의 위상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번 출간을 계기로 영미권 연구자들이 다산의 한시를 기존 중국 한시 연구들과 비교해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책은 10여 년간의 ‘산고(産苦)’ 끝에 나왔다. 시작은 지난달 작고한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2014년 홍 번역가에게 “함께 다산 시선집 영역 출간에 도전해 보자”고 제안한 것. 이후 홍 번역가와 한 교수, 김언종 한국고전번역원장이 팀을 꾸린 뒤 매달 모여 다산의 한시를 읽고 토론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역사와 동아시아 언어’ 박사 과정을 10년간 공부한 홍 번역가가 영문 번역을 맡았다. 김 원장은 “토론을 통해 기존 국역본의 오류를 바로잡는 등 다산 시의 본뜻에 좀 더 가까이 간 책”이라며 “다산 선생이 국제 무대에 데뷔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단순 영역본은 약 3년 만에 완성됐지만, 해외 출판사 측의 “시에 해설을 붙여 완성도를 높여 달라”는 요구를 반영하느라 실제 출판까지 시간이 더 걸렸다. 홍 번역가는 ‘다산의 자서전’이라는 콘셉트를 잡고 시의 의미는 물론이고 다산의 일생을 다루는 해설을 붙여 수년간 책을 보강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산과 관계 있는 인물 리스트도 책에 포함됐다. 책에는 다산의 인간적인 면이 많이 등장한다. 19세 때 쓴 시 ‘두치진(豆巵津)’에선 다산이 술과 고기, 생선 등 온갖 특산품이 몰려드는 장터를 보고 감탄하면서도 ‘이익을 좇는 세태’를 탓하는 이중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34세에 쓴 시 ‘탄빈(歎貧)’에선 안빈낙도(安貧樂道)에 만족하지 못하는 복잡한 심사를 읽을 수 있다. 홍 번역가는 “그동안 민족주의 시각에 의해 ‘구국(救國)’의 실학자로만 알려진 이미지를 잠시 뒤로 하고 다산의 소소한 삶을 제대로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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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산 정약용 한시 134편 영문책 출간…단일학자 시 영역은 최초

    “영문책 출간을 계기로 영미권에서 독특하고 개성 있는 조선의 한시들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한시를 모아 영문으로 번역한 시선집 ‘유학자 다산 정약용의 자서전(A Confucian Autobiography of Tasan Chong Yagyong)’의 저자 홍진휘 번역가(61)는 이렇게 말했다. 다산이 결혼하러 한양 가는 배를 타던 1776년부터 75세가 된 1836년까지 60여년 동안 그가 쓴 시 중 수작 134편을 골라 담았다. 번역된 한시 원문은 1817행, 한자 수는 총 1만4408자에 달한다.이 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 고전 100선 영문 번역 사업(현 한국학술번역사업)’ 지원을 받아 올 4월 네덜란드에 기반을 둔 국제학술출판사 ‘브릴(BRILL)’에서 출판됐다. 전근대 한국 문학을 통틀어 한 인물의 시를 모아 영문으로 번역한 단행본이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 두보와 도연명 등 중국 유명 문인들의 한시는 이미 영미 문화권에서 널리 번역돼 읽혀 온 것과 달리 한국은 영역된 인물 시선집이 없었다. 홍 번역가는 “한시 영역이 워낙 까다로워 연구자가 많지 않은 데다 한국 한문학의 위상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번 출간을 계기로 영미권 연구자들이 다산의 한시를 기존 중국 한시 연구들과 비교해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책은 10여 년간의 ‘산고(産苦)’ 끝에 나왔다. 시작은 지난달 작고한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2014년 홍 번역가에게 “함께 다산 시선집 영역 출간에 도전해 보자”고 제안한 것. 이후 홍 번역가와 한 교수, 김언종 고전번역원장이 팀을 꾸려 매달 모여 다산의 한시를 읽고 토론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역사와 동아시아 언어’ 박사 과정을 10년 간 공부한 홍 번역가가 영문 번역을 맡았다. 김 원장은 “토론을 통해 기존 국역본의 오류를 바로잡는 등 다산 시의 본뜻에 좀 더 가까이 간 책”이라며 “다산 선생이 국제 무대에 데뷔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단순 영역본은 약 3년 만에 완성됐지만, 해외 출판사 측의 “시에 해설을 붙여 완성도를 높여 달라”는 요구를 반영하느라 실제 출판까지 시간이 더 걸렸다. 홍 번역가는 ‘다산의 자서전’이라는 컨셉을 잡고 시의 의미는 물론 다산의 일생을 다루는 해설을 붙여 수년간 책을 보강했다. 이해를 돕기 위한 다산과 관계있는 인물 리스트도 책에 포함됐다. 책에는 다산의 인간적인 많이 등장한다. 19세 때 쓰인 시 ‘두치진(豆巵津)’에선 다산이 술과 고기, 생선 등 온갖 특산품이 몰려드는 장터를 보고 감탄하면서도 ‘이익을 좇는 세태’를 탓하는 이중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34세에 쓰인 시 ‘탄빈(歎貧)’에선 안빈낙도(安貧樂道)에 만족하지 못하는 복잡한 심사를 읽을 수 있다. 홍 번역가는 “그동안 민족주의 시각에 의해 ‘구국(救國)’의 실학자로만 알려진 이미지를 잠시 뒤로 하고 쓴 다산의 소소한 삶을 제대로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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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 종교의식에 뿌리내린 香을 찾아서

    향(香)은 그릇에 담긴 곡식에서 나는 좋은 냄새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선 고대부터 제사와 종교 의식에서 중요한 요소로 활용됐다. 호림박물관은 27일부터 서울 강남구 신사분관에서 향의 의미와 역사를 조명하는 특별전 ‘향, 푸른 연기 피어오르니’를 열고 있다. 다양한 향은 물론이고 향 관련 그림, 도자, 금속 등 각종 공예품 170여 점을 볼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향로 등 관련 유물은 조형성이 뛰어나 아름다움과 독창성이 풍부하다”고 설명했다.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국보 ‘금동합과 향’은 둥글넓적한 형태의 금동합으로 7세기 백제 지배층의 종교 의식 등에 사용되던 향 문화를 살필 수 있는 유물이다.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금동향로’ 등 보물 11점도 선보인다. 향의 문화사를 보여주는 문헌과 회화 작품도 전시된다. 조선 정조 대 남인의 당수였던 채제공(1720∼1799)의 초상화가 대표적이다. 분홍 관복 차림에 향낭(香囊·향을 넣어 몸에 차는 주머니)과 손부채를 든 모습이 선비의 정취를 보여준다. 불교에서 불단 위에 향을 피우기 위해 사용한 고려시대 향완, 조선시대 종묘 제사에 쓰인 유기 향로와 향합 등 종교와 향문화의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12월 21일까지.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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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헐버트 박사 75주기 추모대회, 내일 외국인선교사묘원서 열려

    독립유공자인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사진)의 제75주기 추모대회를 30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내 100주년선교기념관에서 연다고 사단법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가 28일 밝혔다. 헐버트 박사는 1886년 육영공원의 교사로 한국에 와서 한국에 관한 20권의 단행본과 논문, 기고문을 발표해 세계에 한국을 알린 인물이다. 한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투쟁한 점 등이 인정돼 건국공로훈장,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이기도 하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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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잃어버린 첫사랑 다시 만난 기분”

    “손으로 책을 집어든 순간 ‘잃어버린 첫사랑’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어요.” 26일 ‘박인희 컬렉션’(마음의 숲·사진)으로 오래전 쓴 저서들을 재출간한 가수 박인희(79)는 이렇게 말했다. 1970년대 활발히 활동한 1세대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한 박인희는 ‘모닥불’(1973년), ‘목마와 숙녀’(1974년) 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인기 절정이던 1981년 미국으로 홀연히 떠난 뒤 2016년 35년 만에 가수로 컴백해 화제를 모았고 올해 6월 단독 콘서트를 가졌다. 컬렉션은 산문집 ‘우리 둘이는’(1987년)과 시집 ‘소망의 강가로’(1989년), ‘지구의 끝에 있더라도’(1994년) 등 절판된 그의 책 세 권을 모았다. 가수 활동을 접고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라디오 DJ로만 활동하면서 틈틈이 적은 원고다. 재출간을 기념해 23일 서울 여의도 모 카페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히트곡 속 통기타와 잘 어울리는 청아한 목소리를 간직하고 있었다. “평소엔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그는 수수한 민낯이었다. 산문집 ‘우리 둘이는’에는 자작시 24편과 함께 중학교 시절부터 우정을 나눴던 이해인 수녀와의 편지와 일기 등이 수록돼 있다. 두 사람의 어릴 적 문학적 감성을 엿볼 수 있어 그동안 ‘한정판’으로서의 가치가 높았다고 한다. 단독 콘서트를 위해 한국에 머무르던 그는 책이 비싼 값에 중고 거래된다는 사실을 알고 재출간을 결심했다. “20만 원, 30만 원에도 거래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당시 책을 편집했던 권대웅 씨가 이제 출판사(마음의 숲) 대표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출간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죠.” 인터뷰 내내 조곤조곤한 목소리 톤을 유지하던 그는 이해인 수녀 이야기가 나오자 달라졌다. 얼굴은 상기됐고 목소리는 발랄해졌다. “중학교 입학하기 하루 전 사복을 입고 양 갈래 머리를 한 걔(이해인 수녀)를 보는데 ‘쟤하고 한 반 되면 좋겠다’ 싶었죠. 그런데 반 편성 때 우리 반이 된 거예요.” 글을 잘 쓰지만 부끄러움이 많았던 두 소녀는 서로의 책상 서랍에 편지를 남기며 깊은 우정을 쌓아 갔다. 84편의 시가 실려 있는 그의 첫 시집 ‘소망의 강가로’에는 “외로워도 외롭지 않고, 방랑은 해도 방황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그의 메시지가 녹아 있다. ‘지구의 끝에 있더라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장벽을 넘을 수 있는 교감에 대해 노래한다. 요즘엔 9월 서울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리는 앙코르 공연 연습에 한창이다. 콘서트 후에는 공식 활동을 접고 미국으로 돌아간 것과 달리 이번에는 한동안 한국에 머무를 예정이다. 미처 발표하지 못한 노래나 시를 다듬고 자작곡을 다른 가수에게 주는 것도 고려 중이다. 그는 “활동을 잘 안 하는데도 기다려주는 팬들에 대한 책임감과 감사함이 있다”며 “내가 지은 노래를 누군가가 불러준다면 또 다른 즐거움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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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가의 길, 풍류의 길 따라… ‘국가유산 여권’ 들고 인증 챌린지

    연두색 한복을 입고 올해 6월 충북 보은군 속리산의 법주사에 방문한 한복 크리에이터 김현진 씨(34)는 법주사 셀프 체험존에 들러 ‘국가유산 방문자 여권’에 인증 도장부터 찍었다. 지금까지 모은 도장만 40개. 남성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그는 한복과 잘 어울리는 유적지를 수시로 찾아다니는데, 국가유산 방문자 여권에 인증 도장을 찍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 됐다. 김 씨는 “처음엔 영상을 찍기 위해 찾아다녔지만 이제는 아름다운 유적지의 인증 도장을 수집하는 게 또 다른 목표가 됐다”고 말했다. 국가유산 방문자 여권이 최근 쉽게 구할 수 없는 ‘핫템’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이 함께 진행하고 있는 ‘국가유산 방문 캠페인’ 중 하나로 실제 여권 크기와 비슷하게 제작된 이 가상 여권은 온·오프라인으로 발급 받은 뒤 전국 10개 코스의 거점 76곳에 방문해 도장을 찍을 수 있다. 스탬프 개수에 따라 여권 케이스, 레디백 등의 상품도 받는다. 76곳에서 모두 도장을 찍으면 완주 인증서와 크리스털 인증패가 수여된다. 원래는 단순 스탬프 투어였지만 2022년 10월부터 여권을 도입하면서 인기가 더 많아졌다. 국가유산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발권 예정이었던 여권 7만5000부는 상반기 안에 모두 소진됐다. 추가 물량 3만5000부를 더 생산했지만 이마저 금세 동이 났다. 여권에 표기된 76곳 모두를 방문한 인원은 이달 기준 199명에 이른다. 진흥원 최은정 지역협력팀장은 “콜센터로 여권을 다시 발급해 달라는 전화가 하루 평균 300통가량 올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고 했다. 방문자들은 국내 명소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데다 특별한 여행 기념품이 된다는 점을 국가유산 여권의 인기 요인으로 꼽는다. 방문 코스는 각 지역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콘셉트에 맞는 대표 명소들로 구성돼 있다. 예를 들어 경상 지역 중심의 ‘가야 문명의 길’은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 등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야 고분 7곳과 수로왕릉, 국립김해박물관 등 9곳이다. 수도권 ‘왕가의 길’은 남한산성과 창덕궁, 사도세자와 정조 부부의 무덤인 화성 융릉과 건릉 등으로 구성됐다. 잘 알려진 문화유산 외에 숨겨진 보물 같은 장소를 찾는 재미도 있다. 전업주부 신유미 씨(55)는 지난해 7월부터 올 3월까지 친구와 함께 전국 여권 투어를 완주했다. 2주에 1번씩 강원, 전라, 경상도 등 전국 곳곳을 돌았다. 신 씨는 “가야 문명의 웅장한 고분군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며 “이젠 해외보다 국내 여행에 더 흥미가 생긴다”고 했다. 여권 투어는 자녀 교육용으로도 인기다. 진흥원에 따르면 여권을 신청한 남성의 32.7%, 여성의 52.9%가 30, 40대인데, 대부분 어린 자녀를 동반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단우 군(7)의 아버지 김용민 씨(47)는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2년에 걸쳐 여권 투어를 완주했다. 김 씨는 “우리나라 모든 지자체는 거의 발도장을 찍었다”며 “매 주말 아이와 전국을 여행하며 역사와 선조들의 지혜를 배워가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진흥원은 올해 안에 추가로 여권 1만 부를 제작해 배포할 계획이다. 국가유산 방문 캠페인 홈페이지에서 신청받으며 조기 소진을 막기 위해 매월 20일 선착순 1500부씩 배포한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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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한국영화공로상에 故 이선균 배우

    배우 고(故) 이선균이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영화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0월에 열리는 영화제에선 그를 기리는 ‘고운 사람, 이선균’ 특별기획 프로그램이 열린다.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는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이고, 세계적 성장에 기여한 영화인에게 수여하는 한국영화공로상 올해 수상자로 이선균 배우를 선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시상은 10월 2일 개막식 때 이뤄진다. 고인을 기리는 특별기획 프로그램은 그의 대표작 6편의 상영회와 스페셜 토크 행사로 구성됐다. 상영 작품으로는 2010년 라스팔마스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파주’(2009년)를 비롯해 ‘우리 선희’(2013년), ‘끝까지 간다’(2014년) 등 이선균이 대중에게 영화배우로 각인된 초기작 3편이 포함됐다. ‘파주’에서 운동권 출신의 소명 의식을 지닌 인물을 연기한 이선균은 이중적인 캐릭터를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끝까지 간다’에선 부도덕한 형사로 출연해 강렬한 액션과 긴장감 넘치는 연기를 보여줬다. 이와 함께 한국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고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을 석권한 ‘기생충’(2019년)과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강직한 군인을 연기한 그의 마지막 작품 ‘행복의 나라’(2024년)도 상영된다. 또 담담하고 따뜻한 연기로 많은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준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년)도 스크린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상영회에선 총 16화 드라마 중 그가 연기한 박동훈의 감정이 깊이 있게 전달됐다고 평가받는 5화를 보여준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2∼11일 열흘간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열린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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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트럼프-푸틴 배후… 극우 세력의 근간을 파헤치다

    2018년 6월 미국 인류학자인 저자가 뉴욕의 최고급 호텔에 들어선다. 미리 전달 받은 암호명을 말하자 호텔 직원이 펜트하우스로 그를 은밀히 안내한다. 창밖의 맨해튼 고급 주택가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이는 스티브 배넌. 우파 온라인 매체 브라이트바트 뉴스의 설립자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책사였다. 2017년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지낸 그는 반이민주의 등 트럼프 정부의 주요 정책 메시지를 만들었다. 저자는 배넌에게 녹음기를 켜며 묻는다. “당신은 전통주의자인가요?” 신간은 블라디미르 푸틴과 트럼프라는 두 거물의 오늘을 있게 한 2명의 책사를 파헤친 르포르타주다. 배넌과 푸틴의 책사로 알려진 정치철학자 알렉산드르 두긴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세계를 움직이는 권력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극우주의자’라는 것이다. 저자는 정치인이나 정치학자가 아니다. 스웨덴인 어머니와 유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 콜로라도대 민족음악학 교수다. 어쩌다 민속음악을 전공한 인류학자가 극우 포퓰리즘 정치인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됐을까. 그는 스웨덴 민속음악을 연구하던 중 극우 정당인 스웨덴 민주당의 자금과 인력이 민속음악계에 유입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연구 주제를 확장했다. 인류학 연구로 얻게 된 인맥을 활용해 오래 공들여 두 인물과의 인터뷰에 성공한 것. 1980년 1월 상고머리를 한 26세의 배넌은 색다른 관심사를 가진 해군 엘리트였다. 동료들이 밤 문화를 즐기러 다닐 때 그는 서점을 찾아가 불교, 힌두교 등 동양 종교에 심취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인간을 상품으로 대하는 신자유주의는 천박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결국 서구 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세계화를 반대하는 극우의 기반이 된다. 두긴은 공식적인 푸틴의 조언자였던 적은 없다. 그러나 러시아를 지배해 온 ‘푸티니즘’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2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때 ‘유진스키 서클’에서 활동했다. 파시즘과 나치즘, 내셔널리즘, 신비주의 등을 연구하는 독특한 모임이었다. 그는 서구 근대 문명이 확립되기 전 유교, 이슬람, 힌두교 등 다양한 문명이 공존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자유주의와 페미니즘, 성소수자 보호 등의 가치가 서양 지배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본다. 국제사회에서 대척점에 있는 미국과 러시아이지만 주요 정치 세력의 사상적 근간이 하나로 통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를 추적하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잘 만들어진 누아르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2018년 11월 배넌과 두긴의 ‘로마 비밀 회동’이 대표적이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논란으로 시끄러울 무렵 두 책사가 실질적 교감을 가진 것이다. 당시 배넌은 두긴에게 “전통주의자로서 미국과 함께 반대 세력에 맞서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합리성과 거리를 둔 극우 정치사상가들의 의기투합이 이뤄진 것. 오늘날 급부상하는 전통주의, 우파 포퓰리즘의 사상 지도를 촘촘히 그려낸 책이다. 트럼프의 재선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그의 사상적 기반이었던 인물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매력적이다. 막전막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이들 전통주의자들은 실천적 혁신을 전혀 이뤄내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들이 전통주의적 가치를 권력을 쥐기 위한 포퓰리즘 수단으로만 이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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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이선균, 부국제 한국영화공로상 수상자로 선정

    배우 고(故) 이선균이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영화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0월에 열리는 영화제에선 그를 기리는 ‘고운 사람, 이선균’ 특별기획 프로그램이 열린다.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는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이고, 세계적 성장에 기여한 영화인에게 수여하는 한국영화공로상 올해 수상자로 이선균 배우를 선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시상은 10월 2일 개막식 때 이뤄진다.고인을 기리는 특별기획 프로그램은 그의 대표작 6편의 상영회와 스페셜 토크 행사로 구성됐다. 상영 작품으로는 2010년 라스팔마스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파주(2009년)’를 비롯해 ‘우리 선희(2013년)’, ‘끝까지 간다(2014년)’ 등 이선균이 대중에게 영화배우로 각인된 초기작 3편이 포함됐다. ‘파주’에서 운동권 출신의 소명 의식을 지닌 인물을 연기한 이선균은 이중적인 캐릭터를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끝까지 간다’에선 부도덕한 형사로 출연해 강렬한 액션과 긴장감 넘치는 연기를 보여줬다.이와 함께 한국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고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을 석권한 ‘기생충(2019년)’과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강직한 군인을 연기한 그의 마지막 작품 ‘행복의 나라’(2024년)도 상영된다. 또 담담하고 따뜻한 연기로 많은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준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년)도 스크린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상영회에선 총 16화 드라마 중 그가 연기한 박동훈의 감정이 깊이 있게 전달됐다고 평가받는 5화를 보여준다.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2~11일 열흘간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열린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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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시험 요점 담은 ‘유설경학대장’ 등 보물 지정

    조선 시대 과거 시험에 출제된 내용의 요점을 정리한 ‘유설경학대장(類說經學隊仗)’이 보물이 됐다. 국가유산청은 성균관대 존경각이 소장한 유설경학대장을 비롯해 문화유산 4건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22일 밝혔다. 유학경학대장은 중국 명나라 주경원이 편찬한 유학서로, 과거 시험에 출제될 148개 항목의 내용을 상·중·하 3권으로 정리한 책이다. 존경각 소장본은 조선 초기 금속활자인 경자자(庚子字) 가운데 가장 크기가 작은 활자인 소자(小字)로 찍어낸 것으로 분석된다. 본문 전체를 소자로 인쇄한 것은 존경각 소장본이 유일하다. 경자자는 1420년 주자소에서 구리로 만들어진 활자로, 조선 초기 인쇄사 및 서지학 연구를 위한 중요 자료로 평가된다. 국가유산청은 “존경각 소장본은 다른 판본과 달리 서문과 목차, 본문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어 가치가 더 크다”고 밝혔다. 평양 출신 화가 김진여(1675∼1760)가 그린 ‘권상하 초상’도 보물로 지정됐다. 기호학파의 정통 계승자로 꼽히는 권상하(1641∼1721)는 조선 사림의 거두인 송시열(1607∼1689)의 학통과 이어져 있다. 그림에는 ‘한수옹(권상하) 79세 진영(寒水翁七十九歲眞)’이라는 문구가 들어 있어 권상하의 79세 모습을 그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영광 불갑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시왕상 일괄 및 복장유물’ ‘해남 은적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등 불교 문화유산 2건도 보물로 지정됐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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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인의 명맥 끊기지 않게… 시간을 잇는 손길

    전승이 중단될 위기에 놓인 국가무형유산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가유산청은 다음 달 3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덕수궁에서 국가무형유산 전승취약 종목을 활성화하기 위한 특별전 ‘시간을 잇는 손길’을 연다고 20일 밝혔다. 전승취약 종목은 대중성이 낮아 전승이 끊길 위기에 처한 무형유산으로, 국가유산청이 3년마다 선정해 지원한다. 지난해는 갓일(갓 제작) 장인과 낙죽장(불에 달군 인두로 대나무 표피에 글씨나 그림을 그리는 장인) 등 25개 무형유산이 선정됐다. 전시에선 20개 전승취약 종목에 종사하는 전승자 46명의 작품 15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덕수궁 돈덕전과 덕홍전 등 두 곳에서 진행된다. 돈덕전에선 보유자 작품 80여 점과 제작 도구, 제작 과정 영상을 볼 수 있다. 특히 나주 무명베 샛골나이 노진남 보유자 등 고인이 된 보유자 4명의 작품도 전시된다. 한때 고종 황제의 접견실로 사용된 덕홍전에선 전승자 11명이 전통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과 전통공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생활 공예품 70여 점이 전시된다. 전시 기간에는 참여형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다음 달 8일 돈덕전 2층 아카이브실에선 토크 콘서트 ‘이어가다’가 열린다. 전시를 기획한 김주일 감독과 전승자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다음 달 11∼16일에는 생활 소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공예 체험 프로그램이 매일 두 번씩 진행된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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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도의 걸작 등 조선서화 50점 한자리에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달 중 서화실 전시물 교체를 통해 조선시대 그림과 글씨 50점을 새로 선보인다고 19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되는 김홍도(1745∼?)의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는 1784년 그려진 작품으로, 북송 신종의 부마 왕선이 문인 등 15명을 초청한 모임을 그린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옛이야기 속 인물을 그린 그림)다. 박물관은 “이 작품은 조화로운 구도와 개성이 뚜렷한 인물 등 김홍도의 기량이 잘 발휘된 명작”이라고 설명했다. 김홍도의 30대 화풍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작품으로 인정받아 올 4월 보물로 지정됐다. 궁중 화원 이인문(1745∼?)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사진)’는 가로 8.5m의 두루마리에 대자연의 절경을 담은 그림이다. 잔잔한 수면과 깎아지른 듯한 산, 절벽이 이어지는 조화가 아름답다. 이번 전시에는 그림의 모든 폭을 펼친 상태로 공개된다. 올 6월 별세한 손창근 선생이 생전 기증한 조선시대 회화 6점도 새로 전시된다. 생전 고인은 국보 ‘세한도(歲寒圖)’를 비롯해 문화유산 304점을 기증했다. 이 중 장승업(1843∼1897)의 ‘말 씻기기’, 심사정(1707∼1769)의 ‘풍랑 속 뱃놀이’, 조선 후기 화원 변상벽(1730∼1775)의 ‘고양이와 참새’ 등을 이번에 선보인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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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실사회의 답까지 챗GPT가 알려줄 수 있을까

    “제 작품을 ‘문학이 아니다’라고 정의하더라도 저는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을 100% 활용한 글도 문학작품이 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일본 소설가 구단 리에(34)는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는 것이 난센스인 것처럼 문학과 문학이 아닌 것을 구분해 생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도쿄도 동정탑’으로 올 초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그는 “소설의 5% 정도는 챗GPT가 만든 문장을 인용했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심사위원들은 “AI 활용이 작품 심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로 작품의 수준이 높았다”고 했지만, 문학에서 생성형 AI의 활용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논란이 됐다. 지난달 31일 ‘도쿄도 동정탑’의 국내 번역 출간을 계기로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소설은 도쿄 도심에 71층짜리 최첨단 교도소 ‘도쿄도 동정탑’이 들어서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곳에서 범죄자들은 처벌 대신 동정을 받아야 할 ‘호모 미세라빌리스’(불쌍한 인간이라는 뜻의 라틴어)라고 불린다. 범죄자들은 불우한 환경 탓에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논리에 따라 탑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다. 탑의 설계를 맡은 건축가로 과거 데이트 폭력 피해자였던 마키나 사라는 이에 공감하지 못한다. 주변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고, 생성형 AI인 ‘에이아이 빌트(AI-Built)’에 여러 질문을 던지며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구단은 “말로 대화하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이 소설을 썼다”며 “인간의 말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성형 AI가 작품에 등장한 것은 필연”이라고 말했다. 소설엔 생성형 AI가 만드는 공허한 문장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깔려 있다. ‘에이아이 빌트가 똑똑하고 공손한 양식을 잘 꾸미는 건 치명적 문맹이라는 결점을 감추기 위함’이라는 서술이 대표적이다. 구단은 “사물의 본질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말을 바꾼다 한들 현실은 변하지 않는 게 아닐까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작품을 쓰면서 생성형 AI의 변화에 놀라움을 느꼈다고 한다. 작품을 완성한 시점에는 AI의 답변을 예측할 수 있게 돼 별 재미를 못 느꼈지만, 수상 이후 답변이 달라져 있었다는 것. “구사하는 단어의 수준이 달라진 정도가 아니라, 대화의 자세 자체가 훨씬 더 인간처럼 바뀌었더라고요. 정답보다 공감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 거죠.” 실제로 도쿄도 동정탑 같은 시설이 현실화된다면 어떨까. 그는 “일하지 않아도 안전하게 지낼 장소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면 노동 의욕을 잃게 될 것”이라며 “10년쯤 지나면 ‘동정받아야 할 사람들을 수용한다’는 애초의 개념은 희미해지고 단순히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시설로 전락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소 비현실적인 세계관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꼬집는 그의 작품 스타일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저도 현실 사회의 답을 얻고 싶어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현실과 연결해서 작품을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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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동유럽이라는 관념… 오래된 편견 부수기

    동유럽은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서유럽 동쪽의 20여 개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주로 지리적 특징보다도 냉전 시절 공산권 국가들을 묶는 정치적 용어로 사용돼 왔다. 또 동유럽은 서유럽에 비해 낙후됐다는 이미지가 있어 멸칭(蔑稱)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소련이 사라진 뒤에는 실체적 개념마저 희미해졌다. 이제 체코, 슬로바키아 등은 자국을 ‘중유럽’으로 칭한다.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등 발트 국가들은 북방의 노르딕 국가로 인식되길 원한다. 이쯤 되면 폴란드계 미국인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다음처럼 도발적인 서두를 꺼내든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존재하지 않는 지역에 대한 역사다. 동유럽 같은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동유럽이란 용어는 외부 사람들이 편의적으로 만들어낸 말”이라며 “가난, 폭력, 민족 갈등 같은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감추기 위해 사용된다”고 지적한다. 이전까지 동유럽 관련 책은 오스만, 합스부르크, 소련으로 이어지는 정복사 이야기를 다루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 책은 종교, 민족, 전쟁 등 14가지 키워드를 내세우며 각 국가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우선 동유럽의 정체성을 ‘다양성’으로 정의한다. 제국의 틈바구니에서 약 1000년간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여러 민족과 언어, 종교가 혼재된 용광로가 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19세기 말 폴란드 에세이 작가 예지 스템포프스키의 예를 든다. 동유럽을 “가장 특이한 민족적 혼합이 있는 하나의 거대한 체스판”이라고 칭한 스템포프스키는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에서 시작해 몰도바를 거치는 드네스트르강 인근에서 태어났다. 이곳에서 지주는 폴란드어를, 농민은 우크라이나어를, 관리들은 러시아어를 사용했다. 저자는 10분만 걸어가도 또 다른 언어권이 등장하는 이 같은 동유럽의 독특함을 보여주며 “동유럽의 모든 공동체는 혼합되지 않을 수 없고 ‘순수’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세계사 교과서에 나올 법한 딱딱한 이야기 대신 흥미로운 미시사도 가득하다. 동유럽에선 성탄절 후 늑대인간이 12일 동안 돌아다닌다는 미신이 있었다. 1692년 라트비아에선 티에스라는 노인이 ‘늑대인간’이라는 혐의로 재판을 받은 뒤 태형으로 사망한다. 엄격한 종교 분리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비극적인 이야기 등도 시선을 끈다. 이 책은 동유럽이 단순히 서유럽의 부속이 아닌 독립적이고 매력적인 문화를 가진 곳임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가 폴란드인 부모에게서 비롯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20년간 탐독한 자료들이 풍부히 녹아 있다. 역사를 다루면서도 에세이 형태의 무겁지 않은 문체를 써서 쉽게 읽힌다는 점도 매력이다. 최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 일부를 점령하며 동유럽의 긴장감이 다시 고조되는 이때 지역적 배경을 이해하기에 도움이 되는 책이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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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로 만나는 ‘미인도’… 여인의 옷고름-치마까지 흔들려

    색색의 조명을 받는 커튼들을 헤치고 들어가면 숲속에 여인 한 명이 서 있다. 가체(加髢)를 쓰고 한복을 입은 여인은 새초롬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다. 그런데 여인의 옷고름과 풍성한 치마가 흔들린다. 코끝에는 숲을 재현한 풀향이 스쳐 몰입을 돕는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 화가 혜원 신윤복(1758∼?)의 ‘미인도’를 디스플레이 속에 재현한 미디어아트다. 간송미술관은 15일부터 소장 작품 99점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미디어아트 전시 ‘구름이 걷히고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열고 있다. 이는 간송미술관이 여는 최초의 몰입형 미디어아트전이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비롯한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들이 디지털 콘텐츠로 새롭게 태어났다. 30장면으로 구성된 ‘혜원전신첩’은 각 그림의 기생과 선비들이 등장하는 14분짜리 영상으로 제작됐다. 조선 중기 화가 탄은 이정(1554∼1626)의 ‘삼청첩’은 대나무와 매화, 난과 같은 사군자가 화려하게 피어난다. 이 밖에도 훈민정음 해례본,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서화, 겸재 정선(1676∼1759)의 ‘해악전신첩’ 등이 디지털 콘텐츠로 만들어졌다. 전시실 8곳 등 대형 전시공간(1462m²)을 모션그래픽과 라이다 센서를 활용한 몰입형 전시로 꾸몄다. 이번 전시는 고미술을 젊은 세대에게 친숙하게 소개한다는 취지로 열렸다. 어려운 전시 설명 대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사진을 올리기 좋도록 공간 연출에 신경을 썼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젊은 층이 고미술에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시도”라며 “앞으로 문화유산 IP를 활용해 주제별, 작가별 미디어아트 전시 라인업을 갖춰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4월 30일까지.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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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어선 대한의 귀신될 것”… 일제에 뺏긴 의병문서 110년만의 귀환

    “막내아우가 여기 있지 않은데 (중략) 눈물을 흘리다가 저도 모르게 어지러워 땅에 쓰러졌습니다. 분하고 원통하여 죽고 싶은데 무어라 형언할 수 없습니다.” 의병장 허겸(1851∼1939)은 역시 의병장이자 동생인 허위(1855∼1908)가 일제에 체포돼 목숨이 위태롭게 된 슬픔을 이렇게 편지에 남겼다. 이들 형제는 1907년 8월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경기도 양주에서 조직된 의병인 13도 창의군에서 활동했다. 허겸은 동생을 잃을 위기에도 의연했다. 동료 의병들에게 보낸 편지에 “서로 사랑하고 보호하길 전보다 더한 후에야 국권을 회복하고(하략)”라고 전한다. 하지만 동생 허위는 체포 넉 달 만에 결국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한다. 약 110년 전 일제 헌병경찰에게 뺏겼던 항일 의병들의 기록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제79회 광복절을 앞둔 14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해외에서 환수한 한말 의병 관련 문서 13건과 ‘한일관계사료집’, ‘조현묘각운(鳥峴墓閣韻)’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한말 의병 관련 문서는 1851년부터 1909년까지 작성된 문서 13건이다. 13도 창의군에서 활동한 허위 등의 글, 의병장 최익현(1833∼1907)의 서신 등이 포함됐다. 이 문서들은 두 개의 두루마리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첫머리에 쓴 글을 볼 때 당시 일제 헌병경찰이었던 아쿠다카와 나가하루(芥川長治)가 문서 수집 후 지금 형태로 만들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아쿠다카와는 각 두루마리에 ‘한말 일본을 배척한 우두머리의 편지’, ‘한말 일본을 배척한 폭도 장수의 격문(檄文)’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일제의 입수 경위가 명확하게 기록된 데다 당대 일제의 의병 탄압의 실상을 엿볼 수 있어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의병 전문가인 박민영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강년과 허위 등 대한민국 건국 훈장 중 최고 등급을 받은 불세출의 의병장들이 실제로 생산한 공문서들을 확인할 수 있어 가치가 높다”고 했다. 문서 곳곳에는 어려움에도 기개를 꺾지 않는 의병장들의 모습이 생생히 나타난다. “살아서는 대한의 백성이 될 것이요, 죽어서는 대한의 귀신이 될 것이다.” 1909년 2월 의병장 윤인순은 이런 고시를 남긴다. 1908년 5월 13일 일제에 체포되던 당일까지 “합진(부대를 합쳐 진을 침)해 군대의 성세를 떨치겠다”고 다짐하는 허위의 서신도 가슴을 울린다. 또 군수 물자 부족, 의병 간 갈등 등 당시 의병들의 활동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날 함께 공개된 ‘한일관계사료집’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연맹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서 편찬한 네 권짜리 역사서. 삼국시대부터 3·1운동에 이르기까지 연대별로 일본 침략을 고발했다. 총 100질이 제작됐지만 현재 완본은 독립기념관 소장본과 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도서관 소장본 등 2질뿐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에 세 번째 완본이 공개된 것이다. 또한 고하(古下) 송진우 선생(1890∼1945)의 부친이자 담양학교 설립자인 송훈(1862∼1926)이 시를 나무판에 새긴 조현묘각운도 함께 공개됐다. 국가유산청 등은 한말 의병 관련 문서들은 복권기금을 통해 일본에서 구입했고, 나머지 2건은 각각 미국과 일본 개인 소장자로부터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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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항 보경사 오층석탑 보물로… 통일신라∼고려 승탑양식 지녀

    11세기에 제작된 고려 석탑으로 문고리와 자물쇠 무늬가 새겨진 ‘포항 보경사 오층석탑’(사진)이 보물로 지정된다. 국가유산청은 보경사 오층석탑을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13일 밝혔다. 이 석탑은 경북 포항시 내연산 보경사 경내에 비로자나불을 모신 적광전(寂光殿)의 맞은편에 서 있다. 높이 4.6m로 단층기단 위에 5층짜리 탑신석(塔身石·몸돌)과 옥개석(屋蓋石·지붕돌)으로 구성됐다. 사명대사로 알려진 조선 중기 승려 유정이 쓴 내연산보경사금당탑기(內延山寶慶寺金堂塔記)에 따르면 이 석탑은 고려 현종 14년(102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정은 “고려 현종 14년 사찰에 탑이 없어 청석(靑石)으로 5층탑을 만들어 대전 앞에 놓았다”고 썼다.석탑은 통일신라부터 고려까지 이어진 승탑 건축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1층 탑신석 정면에는 석탑 내 사리가 있음을 의미하는 문비형(틀에 끼워 여닫는 문이나 창의 한 짝 모양)과 자물쇠, 문고리 조각이 선명하게 표현돼 있다. 국가유산청은 “탑의 조성 시기에 대한 기록이 명확하고, 11세기 석탑의 전형적인 조영 기법과 양식이 잘 나타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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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시정부 애국창가집 ‘망향성’ 원본 첫 공개

    독립기념관은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아 여성 독립운동가 이국영이 쓰고, 대한민국임시정부 관계자들이 부른 애국창가집 ‘망향성’ 원본을 처음 공개한다고 12일 밝혔다. 2권의 노트로 구성된 망향성에는 ‘풍년가’ ‘광복군아리랑’ ‘독립군가’ 등 163곡의 애국창가들이 수록돼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애국창가집 중 가장 많은 곡이 실려 있으며, 악보가 함께 수록된 유일한 필사본 창가집이다. 그동안 구전으로만 전해진 ‘독립군가’의 가사가 4절까지 온전하게 담겨 있다. 창가 외에도 동요, 가곡, 대중가요, 영화 주제가 등 당대 국내에서 유행한 노래들이 실려 있다. 망향성을 쓴 이국영(1921∼1956)은 임정 한국혁명여성동맹 회원으로 활동하며 1939년 무렵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의 중국 류저우 공연에 참여했다. 충칭에 거주한 임정 요인과 한인 교포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3.1유치원에서 교사로도 활동했다. 이국영 집안은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의 부친 이광, 모친 김수현을 비롯해 남편 민영구, 시부 민제호 등이 모두 임정 요인으로 활동했다. 남편 민영구는 광복 이후 해군 창설에 기여했고, 해군사관학교 교장을 지냈다. 14일 망향성 공개 행사에서는 이국영의 딸이 망향성의 수록곡 일부를 부르는 콘서트도 열린다. 바리톤 권용만의 ‘근화세계’ 독창과 더불어 여럿이 ‘독립군가’를 부르는 시간도 펼쳐진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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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前 소설 역주행, ‘좀비 홍학’이라 부르더라고요”

    “3년 전 나온 책인데 지금도 (베스트셀러) 순위를 지키고 있으니 누가 ‘좀비 홍학’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작가 정해연(43)은 3년 전 출간 땐 빛을 보지 못했던 장편소설 ‘홍학의 자리’(엘릭시르)가 최근 역주행하며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스릴러가 인기를 끄는) 여름 시즌 덕분인 것 같다”며 겸손하게 말하기도 했다. 이 책은 2021년 출간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 지난해 여름부터 속도감 있는 문체와 고정 관념을 깨는 설정이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결말 스포 주의’ 문구가 달린 후기가 잇따라 올라온 것. 지난해 8월 넷째 주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에 194위로 처음 진입한 뒤 약 1년 만인 이달 첫째 주 15위(한국 소설 중에선 2위)로 수직 상승했다.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서재가 꼽은 올 상반기(1∼6월) 인기 도서 100권 중 가장 높은 완독률(88%)도 기록했다. 종이책 및 전자책 판매량이 최근 10만 부를 넘어섰다. 소설은 45세의 고교 교사로 유부남인 준후가 내연 관계인 18세 제자 다현의 시신을 호수에 유기하면서 시작된다. 준후는 다현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목격자’일 뿐이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다. 다현의 몸에서 자신의 DNA 등 육체 관계의 흔적이 발각될 것을 우려한 것. 결국 다현의 시신이 다른 사람에 의해 발견되면서 경찰의 수사망이 준후를 조여 온다. 정해연은 “범인이 아니지만 범인으로 몰릴 위기가 닥친 인물을 주인공으로 쓰면 ‘스릴’이 살겠다고 생각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가장 타격이 클 직업으로 선생님을 골랐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 장편 스릴러 ‘더블’로 등단하기 전에는 인터넷에 로맨스 소설을 연재했다. 어느 날 “네가 좋아하는 장르 소설을 왜 안 쓰냐”란 오빠의 얘기를 듣고서 미스터리와 스릴러 집필로 방향을 틀었다. “어렸을 때부터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읽기만 하다 직접 써 보니 독자들을 ‘놀래키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하하하.” 사이코패스끼리 대결을 벌이는 내용의 ‘더블’은 중국과 태국에 번역 출간됐고, 어설픈 유괴범과 천재 소녀를 다룬 ‘유괴의 날’은 드라마로 제작됐다. 그는 “미스터리, 스릴러는 인간을 가장 깊게 다루면서도 사회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장르”라고 말했다. 다만, 실제 범죄 이야기는 피해자에게 폐가 될 수 있기에 소설의 소재로 무작정 쓰는 것은 지양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블랙 유머가 담긴 스릴러 ‘2인조’(엘릭시르)를 출간했다. 교도소에서 석방된 2인조가 재개발 중인 부촌에서 만난 시한부 노인을 대상으로 사기를 계획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는 “교도소에서 자신이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으스대는 범죄자들을 떠올리며 쓴 이야기”라며 “코믹과 범죄 스릴러가 섞여 무더운 여름에 가볍게 즐기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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