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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국적 이탈·상실자)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까지 한국 국적을 버린 사람은 1만8279명으로 한국 국적을 신청한 사람(1만5488명)보다 많았다.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이미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한국에서 그나마 있던 사람들마저 떠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다. 재외동포는 한국에 자산이 될 수도 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동포 수도 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을 떠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한국 사람이 모두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한민족의 이동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전 세계로 한국 사람이 뻗어가고, 또 전 세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는데도 이들에 대한 정책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조선족’을 향한 편향된 시각도 한몫한다. 외교부는 올해 목표로 재외동포로 구성된 글로벌 한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통일 준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해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려면 먼저 동포들이 한국에 대한 소속감을 갖고 한국을 위해 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재외동포 700만 명 시대. ‘한국 사람(한민족)’의 외연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 국경 없는 세상이 돼버린 지금, 재외동포는 어떤 존재이며 한국은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짚어봤다. ▼ “신임장 없지만 우리도 외교관”… 지구촌 176개국 진출 ▼‘무조건 미국’에서 변하는 이주 트렌드 지난해 한국 국적을 버린 사람은 한국 국적을 신청한 사람을 크게 웃돌았다.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 정책 통계 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적 포기자(국적 이탈·상실자)는 1만8279명. 국적 취득(귀화, 국적 회복) 신청자 1만5488명보다 2791명 많았다. 2009년 이후 한국 국적 신청자가 더 많은 것이 추세였다. 2010년 5월 개정 국적법이 적용돼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도 한국 국적을 유지하는 복수국적이 가능해지면서부터다. 하지만 지난해의 경우 ‘국적 순유출’로 나타나면서 한국 이탈로 추세가 돌아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국적을 상실한 사람의 목적지는 미국(1만548명), 캐나다(3332명), 일본(1653명), 호주(1145명) 순이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관계자는 “국적을 왜 버리는지 사유를 적지 않기 때문에 한국을 떠나는 이유를 보여주는 자료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재외공관에 ‘해외이주신고서’를 내면서 쓴 이주 형태를 보면 전통적 유형인 ‘연고이주’(친인척 소개로 이주) 수는 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9년 464명이던 연고이주는 이듬해 536명을 정점으로 301명(2011년), 225명(2012년), 173명(2013년)으로 꾸준히 감소했다. 반면 취업이주와 사업이주, 기타이주로 종류가 다양해졌다. 미국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이주 대상국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 출신으로 해외에 살다가 그곳에 뿌리를 내리겠다고 결심한 사람(현지 이주자)은 미국이 2946명이었다. 반면 일본은 3266명으로 최근 5년 사이 처음으로 미국을 앞질렀다. 최근 한일 관계가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의외의 현상이다. 또 ‘기타’로 분류된 국가에서 현지 이주자로 신고한 사람도 1112명으로 2009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전 세계로 동포들이 뻗어 나가고 있는 셈이다.위상 커진 한민족, 조직력은 걸음마 지금까지 해외에 거주하는 한민족의 분포는 특이했다. 미·중·일·러 주변 4강에 전체 재외동포의 대부분(86.3%)이 몰려 있었기 때문. 이들은 식민지배와 냉전의 질곡 속에 못사는 2등 나라, 분단국 출신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1952년 18개국 56만8000명이던 재외동포가 2012년에는 176개국 701만 명으로까지 숫자가 늘었고 사회적 위상도 인적 자원으로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만큼 올라가고 있다. 한국 국적을 가진 ‘재외국민’은 260여만 명인 반면 체류국 국적을 취득한 ‘시민권자’는 440여만 명으로 2배에 다다르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한인 정치인 17명이 당선됐으며 김용 세계은행 총재,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성 김 국무부 부차관보 등 정관계 진출도 크게 늘었다. 캐서린 문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한국 석좌(Korean chair)를 비롯해 중국 러시아 일본 싱크탱크와 학계에 포진한 한국계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동해 병기법안을 통과시키고 각지에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는 등 한국에 유리하도록 여론을 돌려세운 것도 동포의 힘이었다. 문제는 동포들의 역량을 하나로 결집할 수 있는 체계적인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유대인 로비단체 ‘공공정책협의회(AIPAC)’가 짜임새 있는 활동과 압도적인 영향력으로 미국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반면 한국은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는 “미국 의회가 움직이면 백악관이 움직이고, 백악관이 나서면 행정부가 변한다”며 풀뿌리부터 여론주도층까지 단계별 공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동포들에 대한 정책도 컨트롤타워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조직법상 재외동포 정책은 외교부 장관이 종합 수립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오는 ‘재한(在韓)’동포가 크게 늘고 있는데도 외교부는 이에 대한 정책 권한이 없다. 총리실 소속 ‘재외동포정책위원회’가 동포정책을 심의·조정하도록 돼 있으나 실제로는 법무부(출입국) 고용부(노무) 보건복지부(입양) 선거관리위(재외선거) 병무청(병역) 등으로 업무가 흩어져 있다. 1997년 설립된 재외동포재단을 동포청(廳) 또는 동포위원회로 키우자는 논의도 말만 무성할 뿐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한국이 필요로 하는 ‘재한동포들’ 지난해 1∼11월 재외동포 비자(F-4)를 받아 입국한 사람은 32만2833명. 최근 5년 중 가장 많은 수다. 전년 같은 기간(25만7752명) 대비 125%로 늘었다. 방문취업(H-2), 재외동포(F-4), 영주(F-5), 방문동거(F-1) 비자를 받아 한국에 머물고 있는 외국 국적 재외동포를 모두 합치면 70만1985명에 달한다. 이처럼 ‘재한동포’가 늘어나는 것은 한국도 이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7년 중국동포 방문취업제(쿼터 30만 명)를 도입하면서 획기적으로 입국 문호를 넓혔다. 귀화와 재외동포 비자 발급 기준도 완화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동포의 귀화에는 사실상 제한이 없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외국인력 유치를 위해 재외동포의 취업 제한을 추가로 완화하기로 했다. 저출산과 인구 감소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데 동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당국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인구정책연구본부장은 “지금처럼 저출산이 계속되면 2050년에는 군 병력이 현재보다 12만3000명 부족해질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한국 체류 동포 86%는 중국 출신 우리나라에 체류 중인 중국 국적 동포는 60만4553명으로 전체 외국 국적 동포의 86%에 달한다. 사실상 대부분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렇지만 중국동포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은 이중적이다. 노동력 부족 상황인 한국 사회는 ‘3D’(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업종에서 그들을 필요로 하면서 한편으로는 백안시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오원춘, 박춘봉 등 최근 입길에 오른 살인 사건의 범인이 공교롭게도 조선족으로 밝혀지면서 인식이 더욱 나빠졌다. 김형식 전 서울시의회 의원 살인청부 사건의 주범도 조선족 팽모 씨였다. ‘조선족 아줌마가 없으면 서울시내 음식점 중 80%는 문 닫아야 한다’는 우스개가 무색하게 중국동포의 강력범죄 뉴스가 한번 뜨면 직업소개소에는 “조선족은 무서워서 못 쓰겠다. 차라리 돈도 적게 요구하는 동남아나 중동 사람을 보내 달라”는 요구가 나온다고 한다. 익명이 보장되는 인터넷 카페에서는 과거 있었던 중국동포의 페스카마호 사건(선상 반란 살인), 인신매매 소재 영화 등을 거론하며 “추방하라”, “일자리를 뺏으라” 등 폄훼하는 글로 도배되는 게 현실이다. ‘조선족’은 한국 3D 업종에만 종사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다. 한국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해 취업하거나, 석·박사 과정으로 진학하기 위해 제3국으로 떠나거나, 한국 경험을 토대로 중국에서 창업을 하는 등 종사하는 업종과 진로 형태가 다양하다. 김봉섭 재외동포재단 교육지원부장은 “미국 내 조선족이 10만 명을 웃돌고 일본에도 동북 3성 출신 학생이 5만 명에 육박하는 등 중국동포들의 직업군과 거주지가 여러 패턴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미 한민족도 초국경사회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공부하고 생활은 미국에서 하는 ‘순환이주’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동포, 의무는 없이 권리만 누린다? 다른 지역 출신들도 중국동포보다 사정이 조금 나을 뿐 비난과 질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표적인 것이 병역·납세, 정치 참여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다. 할 일(의무)은 하지 않고 혜택(권리)만 누리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재미동포인 가수 유승준 씨의 병역 기피 사건이나, 1600억 원대 세금을 부과받았다가 추징 면제된 ‘구리왕’ 차모 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같은 복지 논란까지 가세했다. 고국이 힘들 땐 외국 생활을 누리다가 선진국 수준에 다다르자 노후 복지혜택을 즐기자는 것 아니냐는 게 비난의 핵심이다. 하지만 재외동포라는 자산의 역량을 끌어내 한국을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점에서 보면 병역, 납세의 ‘형평성’ 원칙은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국적법상 이중국적인 남성은 만 18세가 되는 해에 국적이탈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병역을 이행하지 않는 한, 38세까지 국적을 이탈할 수 없다. 그런데 미국에서 태어난 A 씨는 병역 면제가 목적이라면 38세까지 한국에 안 들어오면 된다. 얼마든지 병역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반면 A 씨는 38세 이전에는 미국·캐나다 사관학교에 입학하거나 공직에 진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국 국적을 포기할 방법이 없고 미국 정부는 이중국적자를 미군이나 공무원으로 뽑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병역 자원이 안 될 A 씨라면 병역을 면제하는 게 낫지 않으냐며 수차례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지금까지 모두 기각됐다. 세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중과세 방지 원칙에 따라 거주지에만 세금을 내면 되지만 실제 ‘거주지’가 어디냐를 두고 과세 당국과 재외동포 사이의 법정 다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치 참여도 대승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외국에 살면서, 한국을 위해 기여한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왜 투표권을 주느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해외에 있는 재외동포는 국적을 초월해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 집단이다. 이들은 현지사회에 잘 적응하면서 동시에 모국의 전통과 문화를 유지해야 하는 이중 목표를 갖고 있다. 임채완 전남대 교수(세계디아스포라학회 회장)는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도 그들에게 한국 정치에 적극 참여하고 모국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전형적 네트워크 정책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다만 모국을 떠난 지 20년이 넘으면 참정권을 제한하는 영국 사례 등을 참고해 제도를 보완할 필요는 있다. 국제관계 석학인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해 한국 강연에서 “미국이 인구 13억의 중국보다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전 세계로부터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다양성을 결집해 중국 한(漢)족보다 창의적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피와 섞여 살면서도 한국의 뿌리를 잊지 않는 재외동포 700만 시대, 한국도 순수성보다 다양성이 창의적인 경쟁력의 토대가 된다는 나이 교수의 말을 곱씹어 볼 때가 됐다. ▼ “차별 당해도 모국은 나 몰라라”… 남몰래 우는 한인들 ▼재일동포 2세인 김민정(가명·44·여·도쿄 거주) 씨는 공문서에 일본식 이름(통명·通名) 대신 한국 이름을 사용한다. 국적도 한국이다. 결혼도 재일동포와 할 정도로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의료보험증은 일본식 이름으로 만들었다. “일본인들은 제가 한국인이란 사실을 알면 한 단계 아래로 봅니다. 혹시 의사가 저를 얕보고 대충 치료하면 안 되잖아요. 한국인이란 사실을 숨기려면 의료보험증에 일본식 이름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재일동포는 약 89만 명. 재일 외국인 중 중국인 다음으로 많다. 일본으로 건너간 지 100년이 넘었고 숫자도 많지만 재일동포들의 힘은 아직 약한 편이다. 보이지 않는 차별도 수시로 당하고 있다.재일동포 사회의 성장 1945년 8월 일본의 패망 직전 재일 조선인 수는 236만5263명에 달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귀국길에 오르지 못했다. 귀국해도 먹고살기가 막막해서였다. 1947년 외국인등록령에 따라 등록한 재일 조선인은 59만8507명. 이들이 재일동포 사회를 이루는 원류가 됐다. 1945년 10월 ‘재일본조선인연맹’(1955년 5월 재일조선인총연합회로 개명)이 결성됐다. 이 단체가 점차 좌익 성향을 보이자 보수계 인사들은 1946년 10월 ‘재일본조선거류민단’(1948년 10월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으로 개명)을 만들었다. 한때 북한 김일성 정권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으며 1984년까지 재일동포 9만여 명을 북송할 만큼 영향력이 컸던 총련은 냉전 해체와 북한 경제의 와해로 지금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빠졌다. 반면 민단도 신규 단원 등록이 뜸해지고 고령화하면서 쇄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임의단체’인 민단을 법인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안팎에서 거세지고 있다. 한편 1980년대 이후 한국 유학생이나 비즈니스맨들이 일본에 활발하게 진출하기 시작했다. 일명 ‘뉴 커머(new comer)’로 불리는 이들은 신오쿠보(新大久保) 일대에 거대 상권을 형성했고 2001년 5월엔 재일본한국인연합회(한인회)라는 단체도 결성했다. 재일동포 사회가 형성된 지 100년 이상 지나면서 일본 내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경제계에선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 롯데 창업자인 신격호 회장, 빠징꼬 업계 최대 그룹인 마루한의 한창우 회장이 꼽힌다. 정계에서도 일본에 귀화한 박경재(일본명 아라이 쇼스케·新井將敬) 씨와 백진훈(일본명 하쿠 신쿤·白眞勳) 씨가 각각 중의원과 참의원의 의원으로 당선됐다. 학계는 강상중 씨가 재일동포 중 처음으로 국립 도쿄대 교수로 임용돼 화제가 됐다. 이외에도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 등 수백 명의 한국인 교수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다. 1960년대 높은 인기를 누렸던 가수인 이춘미(일본명 미야코 하루미·都はるみ), 야구선수 장훈 등도 동포 출신이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고위 공무원이나 판검사 등 최고위직에 재일동포 출신이 거의 없다. 혹시 있다고 치면 일본에 귀화한 인물이다. 재일동포지만 차별을 피하기 위해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면서 그들이 동포인지 아닌지 파악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민단의 한 간부는 “재일동포들이 높은 지위로 올라갈수록 독도와 역사인식에 대해 의견을 밝혀야 한다.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는 일본 땅’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없다’고 말하지 않는 한 재일동포가 일본의 핵심 주류사회에 들어갈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풀뿌리 정치서 성과 낸 미국 지난해 11월 4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캘리포니아 주 하원에 입성한 재미동포 영 김 의원은 미주 한인의 주류 정치 참여 모범 사례로 꼽힌다. 그는 1990년 당시 주 상원의원이던 에드 로이스 연방 하원 외교위원장을 돕는 것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한인이라는 신분을 약점이 아닌 이점으로 활용해 지역구의 한인 유권자를 관리하고 북한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정책 보좌로 워싱턴 정치권에 이름을 알렸다. 한인사회는 그가 로이스 위원장의 자리를 물려받아 연방 하원까지 진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2014년은 미주 한인사회의 정치력이 양적,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한 해로 평가된다. 지난해 미국 중간선거에서 주 의회와 교육위원 등 선출직 공무원 자리에 출마한 한인 후보 25명 가운데 17명이 당선됐다. 지난해 2월 미국 버지니아 주 상원은 주내 모든 공립학교가 동해와 일본해가 병기된 교과서로 수업을 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주지사의 서명을 거쳐 이 법은 지난해 7월부터 공식 발효됐다. 지명의 단일 표기를 원칙으로 하는 미국 지방자치단체가 동해 병기 원칙을 받아들인 것은 버지니아 한인들의 힘이었다. 지난해 미주 한인들은 정치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는 첫걸음도 내디뎠다. 지난해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미주 한인 풀뿌리 활동 콘퍼런스(KAGC)’가 그것. 해마다 3월 워싱턴 한복판의 컨벤션센터에 수만 명이 운집하는 재미 유대인 로비단체 ‘공공정책협의회(AIPAC)’만큼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한국판 AIPAC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의미가 크다. 고급인력 늘면서 중국 동포 분화 현상 조선족, 조선족 동포, 재중 한인, 재중 동포, 중국 동포, 중국 교포, 연변 동포. 중국 국적을 가진 동포만큼 다양하게 불리는 ‘외국 국적 동포’도 없다. 여러 호칭만큼이나 중국 국적 동포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태도도 다양하다. 1992년 한중 수교 직후에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동포들과 접촉이 먼저 이뤄져 중국 동포 하면 ‘연변 동포’ 또는 ‘연변 조선족’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또 중국 변방에서 소수 민족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전통 문화를 잊지 않게 하고 경제적으로도 도와야 한다는 정서가 많았다. 반면 초기 한국에 온 동포들이 주로 식당 종업원이나 공장 근로자, 막노동에 종사하면서 ‘중국 동포=3D 종사자’라는 인식을 심었고 지금도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조선족 동포’들이 대륙을 여는 큰 자산이자 우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실제로 수교 20여 년 만에 중국이 한국의 제1 교역국으로 부상하는 데는 동포들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접촉이 늘면서 갈등도 늘어나 사기사건 등 불미스러운 일도 없지 않았다. 중국 국적 동포들은 ‘3-3-3’이라는 표현을 쓴다. 한때 연변 등 동북 3성에 있던 조선족의 3분의 1은 한국, 3분의 1은 산하이관(山海關) 남쪽의 전 중국으로 흩어지고 나머지 3분의 1만 남았다는 것을 말한다. 한중 교역과 인적 교류가 늘고, 한국 정부의 동포에 대한 포용적인 비자 정책 등으로 한국과 중국 국적 동포의 관계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2013년 9월 시작된 ‘재외 동포 비자(F-4)’는 만 60세 이상의 모든 외국 국적 동포와 일정 조건을 갖춘 60세 미만 동포에게 사실상 한국 체류의 길을 활짝 열었다. ‘5년 복수로 2년 연속 체류’가 가능하고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연장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2014년 4월부터 발급된 ‘동포 방문 비자(C-3-8)’는 60세 미만에 대해서도 중국 정부에 발급한 ‘조선족’ 신분만 확인되면 3년 복수 유효로 90일간 체류가 가능해 사실상 한국 방문의 제한을 없앴다. 2013년 말 현재 한국 체류 중국 재외 동포는 45만 명이 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8만7633명에 이른다. 중국 정부의 10년 주기 인구 및 민족 조사에 따르면 2010년 ‘조선족’ 인구가 183만929명으로 30%가량이 한국으로 왔다. ‘3-3-3’으로 중국 재외 동포가 분화한 만큼 이들을 포용하고 한민족의 자산으로 만들려는 노력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한국 안팎의 동포 유대 강화 마련해야 최근 주목을 받는 것은 ‘한국 내 중국 국적 동포’들이다. 이들 중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 지식을 가진 엘리트 계층이 많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재외 동포 지식인들은 스스로를 ‘제3세대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의 활동을 밑거름으로 중국으로 돌아가 크고 작은 기업을 일군 사람도 늘고 있다. 중국과 한국, 일본을 잇는 전문인으로 활약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다. 한국 체류 중국 국적 동포 중에는 국적을 바꿔 더이상 ‘중국 동포’가 아닌 사람도 늘고 있다. 법적으로는 ‘귀화한 조선족’ ‘돌아온 한국인’이 됐지만 정서적으로 융화하지 못해 다시 중국 국적 환원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동북 3성에 남은 동포들에게 민족 정체성을 보존하고 한국과 유대감을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일도 필요하다. 중국이 소수민족을 직접 지원하는 문제를 민감하게 여기는 만큼 ‘세련된 접근법’이 필요하다. 베이징 주재 한국 총영사관 김도균 영사는 중국 국적 동포와 한국이 보다 발전적으로 공존하는 시스템으로 ‘재정착 순환 구조’를 수립하는 데 한국 정부와 동포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베이징=구자룡 / 워싱턴=신석호 / 도쿄=박형준 특파원}

“몇 가지 사실관계가 다르다 해서 탈북자 신동혁 씨가 정치범수용소 출신이라는 근본적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북한 인권을 세계에 알리는 데 그의 역할은 중요했다.”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사진)은 21일 신 씨의 자서전 ‘14호 수용소 탈출’ 내용 번복 논란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안타까워했다. 신 씨가 자서전의 일부 내용에 대한 오류를 인정하자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신 씨 주장이 담긴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를 토대로 만들어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도 무효라고 주장했다. 신 씨와 함께 미국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데 앞장서 온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워싱턴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신 씨가 문제가 아니라 북한이 문제”라며 “만약 탈북자들의 증언에 문제가 있다면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외부의 접근과 모니터링을 허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사건의 파장이 클 것으로 보는가. “그가 정치범수용소 출신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14호 수용소(개천)와 18호 수용소(북창) 모두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수용소에서 태어났고 어머니와 형을 밀고한 뒤 그곳을 탈출했다. 이것이 핵심이다.” ―COI 보고서의 신뢰도까지 의심받을 사안인가. “신 씨 이야기는 보고서 400장 중 두 문단에 불과하다. 조사위는 서울 도쿄 런던 워싱턴에서 4번의 청문회를 열었고 80명의 공개 증언을 청취했다. 240명의 비공개 증언까지 들었다. 여러 북한 인권단체가 만든 자료를 참고했다. 신 씨 한 사람의 이야기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마이클 커비 당시 COI 위원장도 21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신 씨의 자서전 일부 번복 논란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인권 유린은 명백하다”고 밝혔다. ―신 씨의 오류가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하나. “수용소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심각한 정신적 외상 후 장애(트라우마)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과거의 모든 것을 시간대별로 기억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미국 전문가들과 언론도 그의 오류 인정에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했으나 점차 이해하고 있다.” ―이번 일이 향후 북한 인권 운동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북한 인권을 알리는 데 신 씨의 사연은 중요하고 강력한 것이었다. 다만 이번 일로 신 씨를 거짓말쟁이 취급하는 사람들이 나올까 우려스럽다.” 한편 신 씨는 현재 자서전 저자인 워싱턴포스트(WP) 기자 출신 블레인 하든 씨와 한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올 한 해 국정 운영의 방향을 밝히는 신년 연두교서에서 다시 사이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13일 백악관에 의회 지도부를 초청하고 국가사이버안보정보센터를 방문해 사이버 위협을 미국 사회를 흔드는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고 밝힌 지 일주일 만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1일 오후 9시(현지 시간) 워싱턴 연방 하원 의사당에서 가진 신년 국정연설에서 “어떤 외국도, 해커도 우리의 네트워크를 다운시키거나 우리 아이들의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사이버 위협에 맞서 싸우기 위해 정보를 통합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13일에는 소니픽처스를 해킹한 북한을 향해 “최고 수준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고 경고했으나 이날 연설에서는 북한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는 “갈수록 진화하는 사이버 공격에 맞서기 위해 의회가 필요한 법안을 통과시켜 주었으면 한다”며 “우리가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미국의 안보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국정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남은 임기 2년 동안 ‘부자 증세(增稅)’를 통해 재원을 마련해 중산층 살리기에 나서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상위 1%가 부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아 불평등을 초래했던 (세금) 구멍을 막자”며 “그렇게 해서 나오는 세금을 육아와 우리 아이들의 대학 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역사 왜곡에 침묵하던 미국 내 지일파 지식인들이 공개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 정부와 극우단체들이 최근 미국 역사교과서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술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한 것과 관련해 미국 지식인들은 미국의 가치인 학술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일본 역사를 전공한 미국 내 대표적인 지일파인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역사학과 교수는 19일 “미국 교과서를 상대로 한 일본의 역사왜곡 행위는 학술자유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라고 비난했다. 미국 동아시아 관련 정가 소식지인 넬슨리포트도 16일자에 익명의 동북아 전문가가 보낸 글을 게재했다. 이 전문가는 “일본이 보인 최근의 행동으로 인해 (미국의 일본 전문가들이) 예의를 갖추고 침묵할 때는 이제 끝난 것으로 보인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는 “(미국 내) 일본의 많은 친구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갈수록 많은 일본 전문가들이 일본이 도덕적 잣대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쿠바는 엄연한 사회주의 국가다. 침체된 사회주의 경제를 살릴 유일한 길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회주의의 그늘이 깊게 드리운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미국과 관계 정상화가 이뤄진 후에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우선 모든 호텔, 식당의 80%가 국영이다. 경제활동인구 500만 명(총인구 1100만 명) 가운데 47만2000명 정도(지난해 8월 현재)만 민간 자영업 분야에서 일하고 나머지는 모두 공무원이다. 1993년부터 자영업 허가를 꾸준히 늘려 오고 있다는데도 이 정도다. 1959년 혁명 이후 농업이 집단화되고 산업시설이 국유화되는 과정에서 쿠바의 자영업은 자본주의의 온상이라는 이유로 타도 대상이 됐다.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은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자영업 허가를 늘렸다 살 만해지면 줄이는 일을 반복했다. 2008년 2월 권좌를 물려받은 동생 라울 의장은 자영업 확대에 방점을 두는 경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2011년 6차 공산당대회에서 공무원 100만 명 퇴출 방침을 선언하면서 자영업을 중심으로 한 민간경제 부문 활성화에 박차를 가했다. 개혁의 핵심은 ‘종업원 고용 허가 제도’였다. 사회주의 쿠바에서는 국가가 아닌 개인이 다른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금지돼 있었다. 업주는 아내나 남편, 아들, 딸 등 가족과만 영업을 할 수 있었다. 2013년 12월 이를 과감하게 철폐해 지금은 종업원을 수십 명 고용한 ‘슈퍼 자영업자’들을 탄생시켰다. 현재 매달 8000명이 새로 자영업 등록을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바나 맥줏집에서 만난 매니저 마리엔도 “취업할 곳이 별로 없어 젊은이들은 자영업에 관심이 많다”며 “몇 년 뒤 친구들과 식당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식당 주인은 “자영업 규제 철폐 조치에 대해 일각에서 사회주의 원칙을 벗어나는 조치라고 비판했지만 지금은 종업원도 ‘일을 잘하면 인센티브를 주고 못하면 해고’라는 생각이 자연스러워졌다”면서 “식당 테이블을 최대 12개까지로 제한한 규제도 최근 풀렸다. 우리가 돈을 잘 벌면 결국 세금을 더 내게 되니 정부로서도 좋은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쿠바 정부는 2012년 8월 자영업 허용 업종을 201개로 늘렸다. 지난해 10월에는 그동안 정부가 운영해 온 식당 및 서비스 시설 1만3000여 개를 자영업자들에게 임대해 운영을 위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퇴출 공무원 13만여 명이 민간 자영업자로 새로운 직업을 찾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쿠바가 국제사회가 바라는 만큼 변하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간경제 활성화를 통해 시민들을 ‘사회주의적 인간형’에서 ‘자본주의적 인간형’으로 탈바꿈시킨다고 하지만 여전히 경제의 핵심 부분은 정부가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아바나대 법대 출신 롤란도 소아리 통상전문 변호사는 “쿠바의 개혁 개방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민간과 공공부문의 자율권을 확대한다면서도 교육, 의료, 에너지, 토지 개발 등 핵심 부문은 여전히 국가가 관장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카스트로 형제는 개혁 개방의 결과로 벌어들인 달러로 국방비를 조달하고 운영권 등을 공산당에 충성하는 핵심 체제 유지 계층에 몰아주는 방식으로 공산당 독재 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관광버스업만 봐도 잘 알 수 있었다. 현지에서 유럽, 캐나다, 중남미 등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을 부지런히 태워 나르는 관광버스는 국영회사 ‘가비오타’ 소속이다. 역시 국영회사인 ‘시멕스’는 외국인을 상대로 한 고급 식당과 백화점 운영권을 장악하고 있다. 두 회사의 지주회사인 ‘가에’는 군부 소속으로 이익금은 국방비로 쓰인다. 이 회사는 쿠바 관광 사업의 80%를 장악하고 있으며 대표는 카스트로 일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가족에게서 달러 송금을 받는 쿠바인들이 이용하는 아바나 명품 외화 상점들도 모두 군부가 운영하는 국영회사다. 아디다스 매장에서는 남성 운동화 한 켤레가 50∼100태환페소(달러)에 팔려 미국과 큰 차가 없었다. 집, 의료, 교육이 무상이라고는 하지만 달러를 손에 넣을 수 없는 서민의 생활은 비참한 수준이다. 아바나 시내 대로변을 조금만 벗어나면 좁은 골목길에 스페인 식민지 시절 지어진 낡은 건물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 가는 쿠바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정부의 월급(약 350페소·14.6달러)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 불법으로 부업을 한다. 낮에는 국영기업에서 빈둥거리고 밤에는 달러벌이를 하는 ‘혼합경제’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쿠바 정부는 그동안 국영기업 분권화 및 구조조정, 외국인 투자 및 수출자유무역지구 확대, 농업협동조합 개혁, 시장 확대 등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실적은 저조하다. 예를 들어 외국 기업이 쿠바 현지 직원을 채용하려면 대외무역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하고 보통 1, 2개월이 걸린다. 수입도 모두 정부가 맡는다. 50년 이상 지속된 사회주의 체제가 낳은 국영기업의 비효율과 부패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소아리 변호사는 “더 많은 개혁과 개방을 위해 공산당이 관료주의와 보수적인 생각을 어떻게 바꿀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후 쿠바는 과연 얼마나 변할 것인가. 미국 피츠버그대 카멜로 메사라고 교수가 최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의미심장하다. 미국 최고의 쿠바 정치경제 권위자인 그는 “쿠바 스스로가 사회주의적 비효율성을 깨지 못한다면 미국과의 관계 개선도 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아바나=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지난해 12월 1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쿠바와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지 한 달 가까이 된 14∼17일 방문한 아바나 분위기는 확실히 달랐다. 우선 손님맞이 준비가 한창이었다. 21, 22일 아바나에서는 미국과 쿠바 양국 고위 당국자들이 모이는 역사적인 첫 회담이 열린다. 로버타 제이컵슨 국무부 서반구 담당 차관보가 이끄는 미국 대표단이 아바나에 와서 국교 정상화와 대사관 재개설, 이민제도 정비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아바나 곳곳에서는 미국 손님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배려한 흔적이 엿보였다. 길게 늘어진 해변도로 말레콘 방파제는 아바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명소다. 근처에서 대사관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 이익대표부 건물에는 평소 드리워져 있던 수십 개의 검은 깃발이 모두 내려지고 없었다. 깃발은 ‘대미항전’ 도중 목숨을 잃은 쿠바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정치적 상징물이었지만 이제 깃대만 남은 상태로 변했다. 1959년 혁명 직전까지 사용됐던 옛 쿠바 국회의사당 건물도 3월 재입주를 앞두고 개보수가 한창이었다. 쿠바가 미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 아래 있던 1929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워싱턴 연방의회와 똑같이 생겼다는 이유로 홀대를 받았었다. 15일 해질 무렵 말레콘 방파제 위에서는 결혼 축하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커플이 친구 몇 명에게 둘러싸여 쿠바 특산품인 럼주 한 병과 맥주 몇 캔으로 축하연을 벌이고 있었다. 기자가 신랑에게 다가가 “미국과 관계 개선에 나선 쿠바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고 하자 그는 대뜸 럼주를 병째 권하면서 “테 아모(사랑해요), USA. 쿠바 사람들이 50여 년 동안 너무도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쿠바는 물론이고 미국 두 나라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약 7년 전인 2007년 11월 박사학위 논문 자료 수집차 아바나에 온 적이 있다. 그때와 비교해보면 쿠바인들의 태도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그때는 아바나 어디를 가도 미국에 대한 적대적인 말들이 들렸다.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후안 트리아나 아바나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인들이 다시 들어오면 혁명 이전처럼 쿠바의 값진 재산과 예쁜 여성들을 독차지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밑바닥 민심에서부터 지식인들까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우선 가장 반기는 쪽은 관광업계. 아바나 시민들은 이번 조치로 혁명 이전처럼 ‘하와이(자연경관), 라스베이거스(카지노), 파리(역사)’가 어우러진 중남미 최고 관광 휴양도시로 아바나가 부활할 것이라는 기대가 역력했다. 지난해 쿠바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00만 명으로 25억 달러에 달하는 관광수입은 서비스 수출(의사 교사), 해외 친척 송금에 이은 쿠바의 세 번째 외화 획득 사업이다. 아바나 민박집 ‘카사 엔 미라마르’의 주인 리오클레스 토라블라스 씨는 “쿠바에는 좋은 호텔이 많지 않다. 앞으로 우리 집을 찾는 미국인 방문객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정보보안 관련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는 그는 아바나에서만 고급 민박집 3채를 운영하는 ‘큰손’이다. 7년 전 방문했을 때 자주 들렀던 식당 ‘비스타마르’는 이미 초대형 수영장을 갖춘 소형 리조트로 변해 있었다. 저녁엔 기타를 치며 미국 팝송 ‘호텔 캘리포니아’를 부르는 쿠바 가수도 만날 수 있었다. 한때 반미혁명의 성지라 불리던 아바나에서 미국에서도 퇴폐 논란을 불렀던 노래를 듣다니…. 이런 곳은 아바나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한 맥줏집은 쿠바인지 미국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대형 스크린에서 무희들의 현란한 군무(群舞)가 펼쳐지는 가운데 바텐더는 기자 일행에게 위스키와 맥주를 서빙했다. 또 흰색과 빨간색 원피스를 맞춰 입은 10여 명의 젊은 쿠바 여성이 햄버거와 피자 등을 날랐다. 미국식 스포츠바에 맥도널드를 합친 쿠바식 복합 패스트푸드점 같았다. 정훈 KOTRA 아바나무역관 부관장은 “자영업자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 철폐 이후 경쟁이 이뤄지면서 유명 맛집들이 체인점을 내는가 하면 1박에 최고급 국영호텔 수준인 200태환페소(CUC·외국인들이 외화를 내고 바꿔 사용하는 화폐·약 200달러)에 이르는 호화 민박집도 성업 중”이라고 전했다. 기자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4박 5일 일정의 쿠바 여행을 시작한 멕시코인 프레사 코르케 씨는 “미국 쿠바 양국의 관계 개선은 멕시코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14일 멕시코시티에서 아바나로 들어온 멕시코항공 보잉737기는 좌석 130석이 거의 모두 들어찼다. 미국과 쿠바 관계 정상화는 관광업의 부활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쿠바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인의 쿠바 송금 한도가 현재 500달러(약 55만 원)의 4배인 2000달러(약 220만 원)로 늘어난다. 미 국무부는 최근 미국에서 쿠바로 송금되는 금액이 매년 20억 달러(약 2조2000억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미국인 관광객들이 쿠바 현지에서 미국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정보화 후진국인 쿠바에 미국 통신업체들이 진출하면 관련 투자도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과 문화 교류에 대한 기대도 높았다. 블라디미르 도밍게스 아바나대 외국어학과 교수는 16일 “쿠바 대학생들이 미국의 좋은 대학에 가서 많은 경험을 하고 훌륭한 미국 교수들이 아바나대에 와서 가르치며 쿠바를 이해하고 갈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아바나=신석호특파원 kyle@donga.com}

미국 워싱턴에서 제114회 연방의회가 개원한 6일 오후. 하원의원 사무실이 모여 있는 레이번 빌딩은 유권자들로 북적였다. 한인 유권자가 많은 뉴저지 주 출신 빌 패스크렐 하원의원(민주) 사무실 앞에는 한인들도 많이 모여 있었다. 본회의장 개원식 참석 후 곧바로 사무실로 돌아온 패스크렐 의원은 복도에 늘어선 한인 유권자들을 보자 손을 잡고 포옹을 하며 “한인 사회는 나의 사회”라면서 “어서들 들어오라. 내 사무실은 오늘뿐만이 아니라 언제든지 열려 있다”며 반겨줬다. 사무실에서는 의원 가족과 보좌진이 유권자들과 어우러진 개원 축하 파티가 열렸다. 패스크렐 의원 측은 샌드위치 음료수 등을 준비해 늦은 점심을 접대하며 유권자들을 맞았다. 개원 첫날 의원이 유권자와 얼굴을 맞대고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오픈 하우스 파티’였다. 미국 하원의원들은 2년마다 찾아오는 개원 첫날 사무실별로 리셉션을 열고 예약 없이 찾아온 유권자라도 기꺼이 맞이해 그동안의 지지에 감사하고 널리 의견을 수렴하는 문화가 있다. 유권자가 갑(甲) 자격으로 을(乙)을 자처한 의원과 만나 의견을 교환하는 소통의 장인 셈이다. 이런 풍경은 4년마다 한 번 찾아오는 개원일에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장 주재로 취임 선서를 하고 의사일정을 확정하는 게 주요 일정인 한국 국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의원들은 취임 선서 뒤 당과 상임위원회의 사정에 따라 회의에 참석하거나 지역구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바로 국회를 떠난다. 의원이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에게 의원실을 개방하는 행사는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이번에 10선 의원이 된 패스크렐 의원은 한인을 포함한 유권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뒤 참모와 말단 여직원까지 일일이 이름을 부르고 소개하며 존재감을 부각시켜 줬다. 모든 의원실이 파티를 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의원실이 방문을 열고 손님을 맞았다. 이날 처음 미국 의회를 방문했다는 김지수 씨(29·뉴욕 컬럼비아대 국제정책대학원 석사과정)는 “시민들이 국회의원을 만나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놀랍고 부러웠다”며 “마냥 ‘높은 분들’처럼 느껴지는 한국의 국회의원과 보좌관들도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그래서 더 다양한 의견을 청취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폭설을 맞으며 뉴욕 시와 뉴저지 주에서 내려온 한인 유권자 단체인 시민참여센터 관계자 17명은 이날 하루 동안 지한파 의원 사무실 20여 곳을 방문했다. 의원들을 만난 뒤 ‘한국계 미국인을 위한 5대 우선 정책’ 서한을 전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인 사회 주요 관심사인 △포괄적 이민개혁 법안 마련 △한국인 전문직 비자 확대 법안 △한미관계 강화 △북-미 이산가족 상봉 지지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통한 한미일 3각 동맹 회복 등을 공개 청원한 것. 김동석 상임이사와 김동찬 대표 등 시민참여센터 지도부를 만난 피터 로스컴 하원의원(공화·일리노이)은 즉석에서 “2013년 발의했다가 입법화에 실패한 한인 전문직 비자 연간 1만5000명 확보 법안을 이번 의회에서 다시 발의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민주·캘리포니아)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백악관 방문 및 미셸 오바마 여사 면담 건을 계속 추진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또 다른 지한파 제리 코널리 하원의원(민주·버지니아)은 “올해도 코리아 코커스 공동의장직을 계속 수행하며 미주 한인 사회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북한 인권 운동가인 공화당 수잰 숄티 후보(북한자유연합 대표)와 같은 지역구에서 맞붙으면서 한인 표가 갈려 크게 고전했지만 한인들에게 섭섭하다는 내색은 전혀 없었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기념재단은 8일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행동요청서인 ‘어둠 속의 빛’ 보고서를 발표하고 북한 내부로 유입되는 외부 정보의 양을 늘리기 위해 드론(무인기)를 동원해서라도 현재의 대북 전단 살포 방안을 선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단 측이 공개한 A4용지 13쪽짜리 보고서는 △북한 인권 문제 국제 여론 환기 △북한 내 정보유입 △미국 내 탈북자 지원 △유엔 내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최우선과제로 만들기 △미국 내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최우선과제로 만들기 △중국의 도움 얻기 등 6개 분야에 걸쳐 상세한 ‘액션플랜’을 제시했다. 대북 전단 발송에 무인기를 활용하자는 도발적인 제안은 민간 단체들의 대북 전단 발송을 놓고 남한 내에서 사회적인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이 문제에 대한 한미간 인식 차 드러낸 것이어서 주목된다. 외부 정보 유입과 관련해 보고서는 인공위성을 통해 북한 전역에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해 북한 당국이 가진 인터넷 사용권과 검열권을 원천적으로 빼앗자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날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남한 주민들은 1명 당 2개 이상의 인터넷 주소(IP)를 사용하는데 비해 북한 주민은 2만4000명에 하나 꼴이라고 소개했다. 새로운 방식을 통해 주입해야 할 정보의 내용에 대해 보고서는 “북한 체제 등에 무작정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내용은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내용도 포함해야 한다”며 △북한에서의 시장의 성공 상황 △여성 기업가의 역할 △북한에서의 정보기술(IT) △시장을 억압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대한 사회적 저항 등을 제시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여성과 관련된 이슈를 부각하라는 지적 역시 적실하다. 보고서는 “북한 여성들은 조용히 개혁과 저항의 주체가 되고 있다”며 “여성들을 비록 개개인이 정치적인 의제를 가지지 않더라도 시장 활동을 통해서 조용히 북한 사회의 개혁과 저항의 주체가 되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보고서는 또 유엔 내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인권문제를 6자회담 등 북한 비핵화 관련 대화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권 유린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대북 제재 방안을 찾고 북한을 다시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리는 방안도 제시됐다. 보고서에 제시된 ‘액션플랜’들은 북한 인권 증진을 추구하는 전 세계 정부와 민간단체들에게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2004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퇴임 후에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시 전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작품이라는 의미가 크다. 보고서 작성은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가 맡았다.워싱턴 = 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2015년 새해가 밝자마자 내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정권 교체를 노리는 공화당 예비 후보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6일 시작하는 제114대 의회에서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한 기세를 등에 업고 당내 경선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현재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은 사실상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독주하는 판세이지만 공화당은 경쟁이 치열하다.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는 지난 6년 동안 진행해 온 폭스뉴스의 시사 토크 프로그램에서 3일 전격 하차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후보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도 지난해 말을 기해 비영리 단체와 영리 기업의 이사직을 모두 내놓아 대선 출마를 위한 신변 정리를 끝마쳤다. 두 정치인은 모두 탄탄한 지지 세력에 행정 및 선거 경험을 갖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허커비 전 주지사는 “그동안 내가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여러 추측이 있었다. 내가 그런 가능성을 절대적으로 배제할 수 있었다면 이 자리를 지켰을 것”이라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침례교 목사 출신으로 1996년부터 2007년까지 주지사를 지낸 그는 ‘사회적 보수주의’ 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다. 2008년 대선 당내 경선의 첫 관문인 아이오와 주 코커스에서 1위를 차지해 기염을 토했지만 중도 하차하는 불운을 겪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차남인 젭 부시 전 주지사는 정치 명문 ‘부시가(家)’ 출신답게 공화당 주류 세력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29일 공화당원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23%의 지지를 얻어 2위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13%)를 10%포인트 앞섰다. 워싱턴포스트(WP)는 4일 ‘공화당 경선이 빨리 가열되고 있다’는 기사에서 두 예비 후보의 움직임을 조명하면서 “출마 여부를 빨리 결정하는 것이 선거자금과 조직 동원에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민주당 후보로 확정적인 클린턴 전 장관은 당내에서 큰 경쟁이 없어 선거자금을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화당도 이미 대선 준비 체제로 들어선 형국이다. 114대 의회에서 상원 다수당 대표 자리를 차지한 미치 매코널 공화당 원내대표는 틈만 나면 “반대만 하는 의회가 아니라 일하는 의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행정 능력 부족을 드러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판하며 수권정당의 면모를 갖춘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데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개혁 추진과 흑백 갈등 촉발 등으로 인해 민주당 지지층인 히스패닉과 흑인 유권자들이 결집하고 있는 점은 공화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나타내고 있는 클린턴 전 장관에게 필적할 후보를 내느냐가 승패의 관건으로 꼽힌다. 따라서 남은 2년 동안 오바마 대통령 및 민주당과 거의 모든 이슈에서 대립각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이민개혁을 통해 불법 이민자 구제에 방점을 두는 반면 공화당은 국경 경비 강화를 더 강조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멕시코 만까지 미국을 관통하는 키스톤 송유관 건설 사업도 민주당은 환경보호를 이유로 반대하지만 공화당은 지역 경제 회생을 이유로 밀어붙이겠다는 각오다. 중산층 회복을 위해 재정지출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민주당에 비해 공화당은 긴축재정과 고소득층 세율 인하 정책을 선호한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작성하는 ‘월드 팩트북’ 인터넷 한국 지도에서 독도가 아예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CIA 월드 팩트북은 세계 주요 기관들이 국가정보를 인용할 때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권위 있는 자료다. 5일 현재 CIA 인터넷 홈페이지(www.cia.gov) ‘월드 팩트북’에서 한국을 선택하면 초기 화면에 한반도 지도가 뜨는데 독도는 흔적은 물론이고 지명조차 찾아볼 수 없다. 검은색 글씨로 섬 모양과 함께 ‘Ulleungdo(울릉도)’라는 표기가 있을 뿐이다. 인터넷상에는 지난해 6월 20일 최종 수정됐다고 표시돼 있다. 하지만 같은 날 최종 수정된 일본 지도에는 독도 위치에 섬을 그려 놓은 뒤 ‘Liancourt Rocks(리앙쿠르 암)’이라는 지명 표시까지 돼 있다. ‘리앙쿠르 암’은 독도를 표현하는 미국 표기의 관행이다. CIA는 그동안 독도에 대한 표기를 “한국과 일본이 함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1849년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독도를 발견하면서 붙인 ‘리앙쿠르 암’이라는 이름으로 표기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수정된 지도에서는 한국의 경우 섬은 물론이고 이름조차 삭제하고 일본 지도엔 둘 다 표기해 누구든지 지도만 보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오해를 갖게 만든다. 만약 CIA의 수정이 의도적이었다면 독도가 다케시마(竹島)라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일본의 대미(對美) 로비가 먹혀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미국이 발간하는 지도가 결국 세계의 표준이 되는데 이를 바꾸는 데 일본의 노력이 상당히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삭제 경위를 파악하고 정확한 해명을 요구하는 등 적절한 대응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부 대응은 허술하다. 당국자는 5일 “지난해 말 인터넷 지도에서 독도가 삭제된 사실을 파악하고 변경된 이유와 향후 방침을 미국 정부에 문의한 상태”라고 밝혀 인터넷에 수정본이 올라온 지 반년이 지나서야 사태 파악을 했음을 시인했다. 한편 CIA는 이번에도 한국과 일본 지도에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CIA에 ‘일본해’ 표기도 바로잡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 조숭호 기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작성하는 ‘월드 팩트 북’ 인터넷 판의 한국편 지도에서 독도의 미국식 표기인 ‘리앙쿠르 암초(Liancourt Rocks)’가 삭제된 것으로 확인돼 외교부와 주미 대사관이 원인 파악에 나섰다. CIA의 월드 팩트 북은 세계 주요 기관들이 국가정보를 인용할 때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권위 있는 자료다. 인터넷의 한국 페이지는 지난해 6월 20일 최종 수정됐다고 표시돼 있다. CIA 인터넷 홈페이지(www.cia.gov)에 있는 ‘월드 팩트 북’에서 한국을 선택하면 뜨는 지도에는 검은 색 글씨로 ‘울릉도’는 표기돼 있지만 독도는 섬의 흔적은 물론 지명을 찾아볼 수 없다. 반면 같은 날 최종 수정된 일본편 지도에는 화살표로 작은 섬을 표시한 뒤 ‘리앙쿠르 암초’라는 지명 표시가 돼 있다. CIA는 당초 “1954년 한국에 점령당한 리앙쿠르 암초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한다”는 설명과 함께 한국편, 일본편 지도에 모두 리앙쿠르 암초를 표기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독도’라는 지명이 있다가 빠진 것은 아니지만 두 나라의 지도만 놓고 보면 섬 자체가 일본 영토라는 오해를 낳게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주미 대사관 관계자는 “현재 지도가 수정된 이유를 파악하고 있다”며 “지도 제작자의 실수일 수도 있고 뭔가 다른 뜻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의도적으로 한국편 지도에서만 지명을 삭제했다면 독도가 다케시마(竹島)라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일본의 대미(對美) 로비가 먹혀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정부는 CIA를 상대로 리앙쿠르 락의 한국식 지명은 ‘독도’이며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할 예정이다. 한편 CIA는 한국편과 일본편 지도 모두에 동해의 명칭을 여전히 ‘일본해(Sea of Japan)’로 단독 표기했다. 하나의 바다나 산 등에 하나의 이름만 인정하는 ‘단일 표기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 시간)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개발, 인권 침해, 사이버 테러 등 모든 악행(惡行)을 포괄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고강도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미 재무부는 북한 정찰총국 등 단체 3곳과 개인 10명을 제재 대상으로 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휴가 중에 미국 상·하원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소니를 상대로 파괴적이고 위협적인 사이버 공격을 감행한 데 대한 대응 차원에서 행정명령을 발동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명령은 김정은 정권에 어떤 형태의 도발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사진)이 2일(현지 시간) 발표한 대북 제재 행정명령은 과거보다 적용 범위가 크게 넓어진 것이 특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조치가 필요한 이유로 △북한의 소니픽처스에 대한 해킹과 영화 ‘인터뷰’ 상영 저지 협박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저지를 규정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위반 △심각한 인권 침해 등 세 가지를 들었다. 이번 행정명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의 소니 해킹 공격에 대해 “비례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대응 의지를 천명한 지 14일 만에 나온 것이다. 제재 대상에 오른 단체 3곳과 개인 10명은 앞으로 미국 금융시스템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고 미국의 기업이나 개인도 이들과 거래할 수 없다. 이성윤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교수는 “앞으로 미국 정부가 임의 또는 필요에 따라 김정은을 포함한 모든 북한 고위 관료의 해외자산을 동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 재무부는 북한의 대남·해외공작 총괄기구인 정찰총국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북한의 많은 사이버 작전이 이곳을 통해 이뤄진다”고 밝혀 정찰총국이 소니 해킹 사건의 배후라는 전문가들의 결론을 재확인했다.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와 조선단군무역회사 및 두 기관 소속 관계자 10명은 과거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거래에도 관여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한반도 담당 선임연구원은 “이번 조치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더욱 가혹한 접근법을 알리는 신호”라며 “미국을 위협하는 행동을 계속할 경우 좋지 않은 결과가 있을 것임을 경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의 실효성 논란도 없지 않다. 제재 대상으로 지목된 개인과 기관은 이미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 올라 있어 제재의 실효적 의미보다 상징성을 부각하기 위해 선정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조엘 위트 38노스 편집자는 “북한에 대해 가끔씩 반응하는 이 같은 접근법은 북한의 핵개발 위협을 저지하는 효과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발언에 이어 나온 이번 조치는 오바마 대통령이 남은 임기 2년 동안 북한에 대해 유화나 양보는 없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 소식통은 “이번 조치에 대해 북한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향후 북-미관계의 향배가 달려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4일 “소니 해킹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국제적 여론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조치는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 김정안 기자}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기념재단이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포괄적인 행동 요청(call to action)을 담은 보고서 ‘어둠 속의 빛’을 8일 발표한다. 미국 전직 대통령 측이 북한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해 구명 성명서를 내 물의를 빚고 있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측과는 대조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3일 북한인권법 제정 10주년 당시부터 북한 인권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왔다. 이번 보고서 작성 및 발표도 부시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이해와 지지 속에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31일 재단 측에 따르면 이번 보고서는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가 주도적으로 작성했다. 차 교수는 부시 행정부 2기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국장을 지냈다. 재단 측은 북한 인권 상황을 청취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미국 내 탈북자 170여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에는 북한 내부에 외부 정보를 퍼뜨려 변화를 추동하는 방안과 북한제재강화법안(HR1771)의 상·하원 양원 통과를 통한 압박 방안 등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북한이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미국 소니픽처스의 영화 ‘인터뷰’를 거론하면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원숭이’에 비유하는 등 원색적 비난을 했다.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27일 대변인 담화에서 “소니픽처스에 대한 해킹 공격은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다”며 오바마 대통령을 “열대수림 속에 서식하는 원숭이”라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그 누가 제 놈에 대한 테러를 줄거리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면 지금처럼 ‘표현의 자유’를 떠들며 환영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국방위는 영화 ‘인터뷰’에 대해서도 국가수반의 명예 침해를 금지한 국제법에 배치되는 ‘불순반동 영화’라며 “반(反)테러를 주장하는 미국이 특정 국가에 대한 테러를 선동하는 것은 이중적 행태의 극치”라고 주장했다. 또 북한의 인터넷망 불통 사태에 대해 “미국이 마치 코흘리개들의 술래잡기 놀음이나 하듯 우리(북) 공화국 주요 언론매체들의 인터넷 가동에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며 미국을 배후로 지목했다. 북한의 주요 웹사이트들은 다운 엿새째인 28일에도 간헐적으로 접속이 끊기는 접속불량 상태를 보였다. 중국 선양(瀋陽)과 단둥(丹東)에 서버를 둔 대외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와 ‘류경’ ‘려명’은 23일 북한 주요 사이트들이 일제히 다운된 이후 불안정한 상태다. 한편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북한 국방위의 비난에 반응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겨울 휴가지인 하와이에 머무는 한 백악관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지금 당장의 정부 논평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앞서 올해 5월에도 오바마 대통령을 겨냥해 ‘잡종’ ‘광대’ ‘원숭이’라며 인종차별적 표현을 썼다. 당시 미 정부는 “추하고 무례하며 역겹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미국 하원 전문위원 출신인 데니스 핼핀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초빙교수는 동아일보에 보낸 e메일에서 “한 국가의 공식 매체가 이처럼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절대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일이고 북한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고 비난했다.김정안 기자 jkim@donga.com /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북한 김정은의 암살을 그린 영화 ‘인터뷰’를 제작한 소니픽처스 해킹 사건으로 미국의 내년도 대외 정책에서 북한 문제의 중요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우선 내년 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신년 국정연설에서 강경한 대북 정책 기조를 밝힐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 1월 국정연설에서 한반도 문제를 아예 언급하지 않았고, 이후 새로운 외교독트린을 제시한 5월 웨스트포인트 연설과 9월 유엔총회 연설 때도 북한을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니픽처스 해킹 사건이 미국인의 ‘표현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는 여론을 새해 대북정책에 반영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내년 1월 시작되는 114차 의회에서 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도 대북제재 강화법안(HR1771)의 상원 통과 같은 압박 정책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25일부터 미국에서 상영되고 있는 ‘인터뷰’는 많은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상영 첫날인 25일 오후 미국 버지니아 주 센터빌 인근 ‘마나서스 4 시네마스’ 영화관에는 워싱턴에서 표를 구하지 못한 관객들이 일찍부터 몰려들었다. 이곳에서 만난 클린트 에번스 씨는 “김정은 같은 독재자가 미국인들에게 ‘영화를 상영하라, 하지 말라’ 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3년 전 이 영화관을 인수했다는 인도인 바니 코라나 씨는 “2개월 전에 영화를 주문했는데 북한의 위협으로 개봉이 취소돼 화가 났었다”며 “예정대로 영화를 상영할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첫 회분을 감상한 미국인들은 극중 주인공인 데이브 스카이라크(제임스 프랭코 분)와 에런 래퍼포트(세스 로건 분)의 코믹 연기에 연신 폭소를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영화가 북한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며 절정을 향하자 영화에 빠져드는 듯 보였다. 특히 북한과 김정은의 실상을 깨달은 스카이라크가 북한의 밤하늘을 향해 “(김정은은) 거짓말쟁이야! 거짓말쟁이”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오자 관객들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또 두 미국 언론인을 도와 김정은을 제거하게 되는 북한 언론 담당 여비서가 “김정은을 죽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인터뷰를 통해 그가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것을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 줘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영화를 보고 나오자 다음 회를 기다리는 관객들이 극장 로비에 빽빽이 줄을 서 있었다. 관객들은 북한 문제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관객은 “북한의 테러가 무섭지 않지만 카드를 쓰는 게 꺼림칙해 극장표를 살 때 현금으로 지불했다”고 말했다. 우정엽 아산정책연구소 워싱턴사무소장은 “제작진이 진지하게 연구한 흔적이 보이지만 사이버 테러 논란이 없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하루 동안 미국 전역의 소형 독립영화관 300여 곳에서 이 영화가 상영됐다. 우려했던 테러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 윤완준 기자}

▼김정은이 감추고 싶은 ‘독재의 허상’ 고발▼신석호 워싱턴 특파원·북한학 박사김정은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북한 당국자들은 사이버테러와 협박을 통해서라도 영화 상영을 막을 만했다. 김정은 자신이 평양에 불러들인 두 명의 미국 언론인에게 목숨을 잃고 북한이 해방된다는 결말은 비록 코미디 영화라지만 체제에 대한 도전이다. 헬기를 탄 극 중 김정은이 미국 언론인들이 쏜 대포알에 맞아 불타 죽어가는 장면이나 브래지어와 팬티만 걸친 기쁨조와 밤을 즐기는 김정은의 모습이 공개적으로 상영되는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은 비록 영화에서라도 ‘수령’의 존엄이 침해되는 것을 막을 것을 강요하는 ‘유일사상 10대 원칙’에 어긋난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특히 민감했을 대목은 북한을 전혀 모르는 외부인들이 ‘수령 절대주의 독재체제’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일 듯하다. 김정은을 처음 인터뷰하는 특종을 잡게 된 앵커 데이브 스카이라크(제임스 프랭코 분)는 평양에 들어가 김정은과 식사와 농구를 함께하고 기쁨조와 환락을 경험한 뒤 ‘독재 권력의 마력’에 빠져 허우적댄다. 스카이라크는 김정은을 암살하라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령을 거부하려 한다. 하지만 그는 국영상점 식품진열대에 놓인 과일과 음식이 모두 전시용 가짜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눈을 뜨게 된다. 북한 체제의 허구성을 깨달은 스카이라크가 김정은의 생방송 인터뷰 도중 “왜 국민을 굶기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하는 대목에서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저급한 상업주의 저작물”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에 대한 회의야말로 김정은과 북한 당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 전혀 北같지 않은 무성의한 설정에 실망 ▼주성하 기자·김일성대 졸업영화 ‘인터뷰’는 한국에서 상영됐다면 성공하지 못할 영화로 보인다. 후하게 쳐서 10점 만점에 3, 4점 정도 줄 수 있겠다. 일단 영화 전체에서 제작자들이 북한을 모른다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평균적 북한 상식에도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북한 군복을 입은 동양인 배역들을 제외한다면 전혀 북한다운 냄새가 풍기지 않는 배경에서 북한 같지 않은 설정이 이어졌다. 영화 제작자들이 북한 관련 책은 읽어보고 제작했는지 의문이다. 코미디 영화라는데 웃기지도 않았다. 김정은을 암살한다는 요소를 빼면 작품성은 평가하기 민망한 수준으로 보였다. 영화를 본 뒤 2003년 초 한국에서 흥행 참패를 했던 ‘007 어나더데이’가 생각났다. 당시 영화에 동남아 물소가 밭을 가는 한국 농촌 풍경이 잠깐 등장하자 한국 누리꾼들은 “한국을 비하했다”며 관람 보이콧 운동을 벌였다. 역시 북한 주민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엄청나게 화가 날 것 같다. 그래서 ‘김정은이 오히려 이 영화를 북한에서 상영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미제(미국)가 우리를 얼마나 왜곡 중상하고 조선 사람을 멍청하게 묘사해 조롱하는지 생생한 증거가 여기 있다”면서 말이다. 북한 쪽에서 이 영화만큼 훌륭한 반미 교재가 또 있을까 싶다. 마음에 드는 대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영화가 이렇게 목달개(깃받이)까지 붙어 있는 북한 군복을 제대로 만들어낼 줄 몰랐다. 정체 모를 군복에 견장마저 거꾸로 단 북한군이 등장하는 한국 영화들은 이것만큼은 따라 배웠으면 좋겠다. ▼ ‘최고존엄’ 희화화… 번뜩이는 풍자는 없어 ▼강유정 영화평론가수준을 논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이전에도 사담 후세인이나 오사마 빈라덴 등 독재자나 테러리스트를 악당으로 그리는 B급 패러디 영화는 많았다. 그런 영화들은 독재자를 극단적인 악당으로 묘사해 B급 영화다운 전복성을 지녔다. 하지만 ‘인터뷰’는 김정은이라는 인물에 대한 태도가 애매하다. 김정은이 겉으로는 미국 타도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미국 문화에 경도된 오타쿠처럼 희화화하지만 동시에 김정은이 “이런 연극놀이에 지쳤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웃기기 위해 독재자로서 김정은의 이미지를 소비할 뿐 김정은이라는 인물이나 북한 체제를 날카롭게 풍자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렇게 김정은을 강력한 적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북한 정권의 심기를 거슬렀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할리우드 배우인 제임스 프랭코와 세스 로건의 연기는 볼만하다. 하지만 중간 중간 어색한 한국어가 등장하는 데다 김정은 역할의 랜들 파크와 실제 김정은의 일치도가 낮아 이질감이 느껴진다. 한국 관객 입장에서는 몰입하기가 다소 어려운 영화다. 북한의 협박과 개봉 취소 등 일련의 해프닝이 없었다면 그냥 “이런 영화가 있었구나” 하고 잊혀졌을 영화다. 정리=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김정은의 암살을 다룬 코미디 영화 ‘인터뷰’가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현지 시간) 인터넷을 통해 전격 개봉됐다. 당초 상영이 취소됐던 이 영화는 25일 독립영화관 300여 곳에서도 개봉돼 미국에서 온·오프라인을 통해 모두 볼 수 있게 됐다. 제작사인 소니픽처스는 24일 인터넷 비디오 상영 사이트인 ‘구글 플레이’ ‘유튜브 무비’ ‘엑스박스 비디오’와 자체 제작한 웹사이트(www.seetheinterview.com) 등을 통해 주문형비디오(VOD) 형식으로 영화를 개봉했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5.99달러(약 6589원)에 48시간 동안 영화를 볼 수 있고 14.99달러(약 1만6489원)면 내려받을 수 있다. 해외 서비스는 시작하지 않았으나 구글 플레이 미국 계정으로 볼 수 있다. 당초 미국에서 상영이 취소됐던 영화가 온·오프라인을 통해 개봉되면서 북한은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자충수를 둔 셈이 됐다. 제작사인 소니픽처스가 독립영화관 개봉에 이어 인터넷 유료 배포까지 나서 미국 가정과 사무실에서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탱크 포탄에 맞아 죽어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북한 측의 사이버 테러와 미국의 보복 공격 논쟁은 영화의 인지도를 더욱 높여주는 결과를 낳았다. 백악관은 전날 영화관 상영 결정에 이어 이날 온라인을 통한 배포를 다시 환영했다. 에릭 슐츠 백악관 대변인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명확하게 밝혔듯이 외국 독재자가 미국 영화를 검열할 수는 없다. 영화를 볼지 말지는 국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클 린턴 소니픽처스 최고경영자(CEO)는 “솔직히 우리는 이 영화를 상영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할 수 없었다”며 “하지만 우리의 싸움이 무위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고 사이버 범죄가 결코 우리에게 침묵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에 자긍심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의 김성 참사관은 24일 AP통신에 “영화 상영을 반대하지만 물리적 대응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 연방수사국(FBI)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상영관에 대해 테러 경계를 강화했다. FBI는 이날 영화 상영을 결정한 영화관 목록을 전국 일선 지부에 돌리고 요원들에게 영화관들을 상대로 테러 가능성이 있다고 알리도록 지시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한반도담당 선임연구원은 포브스 기고문에서 “북한이 궁지에 몰리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을 포함해 해킹보다 더욱 파괴적인 대응책을 내놓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 2014년 국내외 주요 뉴스를 아우르는 키워드는 ‘아픔’이었다. 국민들은 올해 내내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입었다. 4월 16일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침몰 이후 대한민국은 거대한 눈물바다로 변했다. 군(軍)에서는 폭행과 성추행이 난무했다. 정치도 아픈 국민을 달래주지 못했다. 총리 후보자들은 거듭 중도 낙마했고, 대통령 ‘비선 실세’라는 정윤회 씨와 관련한 청와대 보고서가 외부로 유출돼 연말 정국을 뒤흔들었다. 해외에서도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과 우크라이나 내전 등 우울한 뉴스들이 전해졌다. 동아일보가 선정한 국내외 10대 뉴스를 소개한다. 》 거리엔 노란 리본… 유병언 죽음 미스터리4월 16일 세월호 침몰 이후 온 국민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거리는 노란 리본으로 뒤덮였고 추모 분위기 속에 사회 전체가 집단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시달렸다. 희생자 304명(사망 295명, 실종 9명)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은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검경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추적은 떠들썩했지만 결국 유 전 회장은 7월 의문만 남기고 시신으로 발견됐다. ‘종북’ 통합진보당 헌정 사상 첫 정당해산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청구한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사건에서 헌정 사상 최초로 정당해산을 결정했다. 헌법 재판관 9명 중 8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진당은 강제 해산되고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도 선고와 동시에 모두 박탈됐다. 이 결정 이후 시대 변화와 자기성찰에 게으른 낡은 진보가 아닌 건강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비선실세 의혹 ‘정윤회 문건’ 정국 들썩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으로 ‘비선 실세’ 의혹을 사온 정윤회 씨와 청와대 핵심 비서관 등이 인사와 국정에 개입한다는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이 11월 28일 세계일보에 보도돼 큰 파문이 일었다. 문건 내용은 허위로 판명됐지만 정 씨와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 간의 권력암투설이 확산됐고, 둘 다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한국 다독여준 교황… ‘8월의 크리스마스’프란치스코 교황은 ‘8월의 크리스마스’를 선물했다. 산타클로스를 닮은 그의 배낭을 채운 것은 검소함과 겸손, 사랑과 자비였다.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자신을 낮추는 그의 모습에 한국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교황이 집전한 서울 광화문 시복식에는 수십만 명이 몰렸다. 사람들이 종교를 넘어 ‘비바, 파파’를 연호한 것은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갈구였다. 총기난사-윤일병 폭행사망-性범죄… 위기의 軍올해 군은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다. 육군 22사단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과 28사단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을 비롯해 음주 물의를 일으킨 신현돈 전 1군사령관의 전역을 두고 진위 공방이 벌어졌다. 성범죄 사건도 끊이지 않았다.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17사단장 현역 장성이 사상 처음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육군 중령은 성희롱으로 사상 첫 계급 강등 징계를 받기도 했다. “내려”… 조현아 前부사장 ‘땅콩회항’ 파문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12월 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는 대한항공 항공기에서 간식 제공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승무원에게 폭언을 한 뒤 회항시켜 사무장을 공항에 내려놨다.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자 전 국민적인 지탄을 받았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도덕성에도 치명상을 입혔다. 조 전 부사장에게는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건희 회장 장기입원… 삼성 ‘이재용 시대’5월 10일 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곧바로 인근 순천향대병원에서 긴급 심폐소생술(CPR)을 받은 덕에 ‘최악의 사태’는 피했으나 이 회장은 25일 현재까지 의식이 완전치 않은 채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있다. 이후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하는 ‘이재용 시대’를 맞게 됐다. 안대희-문창극 국무총리 후보 연달아 낙마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 앞서 연달아 낙마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총리후보 지명 6일 만에,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14일 만에 사퇴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려 한 정홍원 총리는 사의 표명 60일 만에 유임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세월호 국면을 정면 돌파하려던 박근혜 대통령은 한동안 인사 참극이란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이순신 신드롬… 영화 ‘명량’ 1761만명 관람7월 개봉한 영화 ‘명량’의 광풍은 거셌다. 1761만 명을 넘겨 2009년 ‘아바타’(1362만 명)를 제치고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8월 미국과 캐나다에 이어 이달 중국에서 개봉해 해외 시장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이순신 신드롬을 일으키며 세월호 참사와 윤 일병 사건 등의 충격에 빠져 있던 우리 사회에 리더십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으로 평가받았다. 한중 FTA 체결… 13억 대륙시장과 손잡아한국은 11월 10일 13억 인구의 거대 내수시장을 보유한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전격 체결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3대 시장인 미국, 유럽연합(EU), 중국과 모두 FTA를 맺은 유일한 나라가 됐다. 한중 FTA가 발효되면 한국은 매년 6조 원의 관세 절감 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쌀을 비롯한 주요 농산물 시장을 열지 않은 대신 자동차 관세 철폐 등을 얻어내지 못해 개방도가 낮다는 지적도 있다. 아베 총선 승리로 장기집권 길 열어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총선을 통해 장기 집권으로 가는 길을 넓혔다. 엔화 약세를 몰고 온 아베노믹스와 내각이 흔들리자 지난달 중의원 해산이란 승부수를 던졌다. 전체 의석 3분의 2를 넘는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그가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를 부정하고 평화헌법을 바꿀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한국과 중국은 그의 우경화 행보에 긴장하고 있다. 8000명 사망 육박… 에볼라 공포 확산에볼라 바이러스에 공인 받은 치료제가 나오지 않는 사이 그 공포가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세계로 확산됐다.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처음 발병한 뒤 2만 명 가까운 감염자, 8000명에 육박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미국 스페인 영국 노르웨이에서 에볼라 환자를 돌보던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도 감염됐다. 각국이 공포에 떨었지만 아프리카 밖에서 피해는 크지 않았다. 美-쿠바, 53년만에 국교 정상화 합의미국과 쿠바가 1961년 이후 53년 만에 국교 정상화에 전격 합의해 미국과 북한의 관계 개선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렸다. 양국은 지난해 3월부터 진행된 비밀협상 결과를 12월 17일 발표했다. 미국은 양국 간 여행 자유화와 송금 한도 확대, 통상 및 정보 교류 등 10여 개의 구체적인 관계 개선안과 함께 쿠바를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푸틴, 크림반도 합병… 美-러 新냉전 속으로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전격 합병했다. 강대국이 다른 나라 국경을 인위적으로 변경시킨 사건이다. 미국과 유럽은 제재에 착수해 ‘신냉전’으로 불리는 대결 구도가 이어졌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도 반군을 지원해 내전이 격화됐다. 제재 영향으로 루블화 가치 하락에 시달리는 러시아는 국가부도 직전의 위기에까지 몰렸다. 반토막 난 국제유가, 신흥국 위기 불러국제유가가 폭락했다. 6월 100달러대에서 12월 50달러대로 반 토막이 났다. 미국이 셰일 원유 공급량을 확대하는 가운데 11월 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가 실패한 것이 폭락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미국은 내수가 살아나면서 경제성장의 호재를 만났지만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신흥국들은 자국 통화 가치의 동반 폭락과 금융위기에 노출됐다. ‘인질 참수’ IS 득세… 이라크 등 전쟁회오리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올해 초부터 중동 정세를 위협하는 최대 세력으로 떠올랐다. IS의 출발은 알카에다의 이라크 하부 조직이었지만 6월 이라크와 시리아 일부 지역에서 신(神)·정(政) 일치의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 설립을 선포했다. 8월부터는 미국인 3명 등 인질을 잇달아 참수했고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IS에 대대적인 공습을 했다. 시진핑 ‘부패 호랑이’ 사냥… 홍콩 ‘우산혁명’ 소멸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저우융캉(周永康·전 정치국 상무위원) 링지화(令計劃·중앙통일전선공작부장) 등 거물 정치인을 부패 혐의로 처벌하면서 체제를 탄탄히 다졌다. 중국의 급부상은 G2(주요 2개국)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행정장관의 완전한 직선제를 요구하던 홍콩의 ‘우산혁명’도 시진핑 체제의 장기 방치(放置) 전술에 힘이 빠지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11년만에… 필레, 인류 첫 혜성 ‘터치다운’11월 13일 오전 1시 인류가 사상 최초로 혜성 ‘터치다운’에 성공했다. 유럽우주기구(ESA)의 탐사로봇 필레는 로제타호에 탑재돼 10년 8개월 동안 우주를 비행하다 지구 방향으로 날아오는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의 머리 부분에 착륙했다. 필레는 혜성과 지구의 물이 화학적 구성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동면에 들어간 필레는 내년 봄에 가동된다. 여소야대-흑백 갈등 겹친 오바마 ‘레임덕’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선 임기 2년차를 맞아 급속한 레임덕(권력누수)을 겪었다. 외교정책 부진 속에 각종 개혁정책이 벽에 부딪히면서 지지율이 40% 아래로 떨어졌다. 11월 4일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해 2006년 이후 8년 만에 여소야대가 됐다. 흑인 대통령 집권기에 오히려 흑백 갈등이 격화돼 소요와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실종-피격 말레이항공기 잇단 사고말레이시아항공의 여객기가 두 차례나 추락해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3월 8일 239명을 태우고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던 MH370편이 이륙한 지 50여 분 만에 갑자기 사라졌다. 10여 개국이 수색에 나섰지만 잔해나 블랙박스가 발견되지 않아 미스터리가 됐다. 7월 17일에는 MH17편이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상공에서 미사일에 격추되면서 탑승자 298명이 모두 숨졌다.}

“아베 신조 총리와 자민당 극우세력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말해봐야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일 뿐이다. 이제는 일본 민초(民草)에게 호소할 때다.” 2007년 미국 연방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 주역인 마이크 혼다 의원(민주·캘리포니아·사진)은 23일 “일본 민초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이해시켜 이들이 아베 정권을 압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혼다 의원은 이날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한국의 교회와 일본의 교회가 교류하고 한국의 여성단체와 일본의 여성단체가 교류하는 것을 상정해보라”며 “서로 정보를 교류하면서 일본 민초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이해시킬 수 있으며 이것은 일본의 여론을 움직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교실에서 아시아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아 학생들은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가 없다”며 “예를 들어 교회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를 얘기하다 보면 언론에서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고 이는 정치의 영역으로 스며들면서 일본의 여론을 움직이게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혼다 의원은 ‘내년에 새로운 위안부 결의안을 추진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가능성은 열려 있다”며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사과하도록 백악관과 국무부 등 높은 차원에서 좀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7일부터 5일 동안 한국을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 등을 예방했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